(부산다대포일몰)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예쁜 자매를 담아 보았는데 모델은 수준급이고 찍사는 아직 초보수준이라 ㅋ ㅋ....
17.3.19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부산 일몰명소인 다대포해수욕장. 올해 들어서 토·일요일 매주 빠짐없이 다대포의 명소인 일몰을 보기위해서 찾았습니다. 날씨가 맑은날은 맑은 그대로 다대포를 물들였으며 구름이 꽉 끼여 흐린날은 흐린 그대로 다대포를 저녁노을로 물들였습니다.
이날은 평소보다 옅은 구름이 깔려 다대포일몰은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긴 다대포 백사장을 걸으며 어디 다대포 해변과 함께 담을 모델을 찾았는데.... 우연히 자매로 보이는 모델을 만났습니다. 사진은 담았는데 아직 초보수준이라 잘 담았는지, 열심히 담아야 어떤 사진이 좋은지 알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모습과 분위기가 좋아 올려봤습니다.
올해 부산불꽃축제가 지난 토요일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열렸습니다. 벌써 12회째입니다. 이제는 완전 부산축제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모두 이틀 동안 부산불꽃축제 행사가 열렸다면 올해는 딱 하루로 축소해 불꽃축제가 열렸습니다. 부산광안리불꽃축제의 많은 관람 포인트 중에서 어디서 봐야 가장 멋진 불꽃을 볼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하다 장산 유격대를 선택했습니다. 지난 11회 부산불꽃축제는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정면으로 봤습니다. 제작년 그러니까 10회 때에 이곳에 앉아 느긋하게 불꽃축제를 즐겼던 게 기억에 남아 찾았던 장산유격대, 내가 생각하고 찾았던 관람 포인트에도 벌써 많은 분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아마 불꽃 발사 2시간 30분 전이었습니다. 좋은 관람 포인트는 모두 삼각대를 설치해 놓아 역시 “아침 일찍 나온 새가 먹이를 얻는다”고 부지런 하신 분이 좋은 결과물을 얻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꽃 자체만은 광안리해수욕장이나 금련산 쪽에서 보는 게 부산불꽃축제의 가장 좋은 관람 포인트입니다. 남들은 불꽃 사진을 간추려 가장 좋은 사진을 몇 장 선택한다지만 내가 담았던 불꽃 사진을 보면서 너무 초라하여 선택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전부다 주르르 올렸습니다.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요산 김정한 생가, 요산문학관. 하늘은 높고 말을 살찐다는 계절 요산 김정한 생가, 요산문학관 여행 정말 추천합니다.
소설가 요산 김정한(1908~1996) 선생 생가와 요산문학관에 다녀왔습니다. '사하촌' '수라도'와 '사밧재' 등 요산 선생님의 소설을 여러 권 읽었지만, 막상 부산 금정구 남산동에 있다는 생가와 요산 선생님의 문학관을 가보질 못해 무언가 항상 허전했습니다. 이번에 범어사를 가면서 선생님의 생가를 찾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선생님의 생가 주위로 집들이 들어차 도리어 생가의 규모가 아주 작아 보였는데 1970년 중반에 필자가 다닌 금정중학교 일원은 논밭투성이로 완전 허허벌판이었습니다. 토요일이면 오전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온천장에 있는 집까지 걸어가면서 구불구불 논밭 사이로 이어진 농로를 따라 다녔으니까 지금의 모습을 보면 경천동지할 일입니다.
그 당시만 같아도 지대도 높고 논밭 사이로 선생님의 생가는 우뚝 솟아 주위 근방 모든 곳이 보였을 것이지만 이제는 주위에 큰 건물로 가려져 찾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요산 김정한 선생님은 동래구 북면 남산리 김해김씨 삼현파 집성촌인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본향은 경북 청도이신데 1498년 연산군 4년의 무오사화 때 16대 할아버지 김일손이 성종실록을 편찬하면서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의 사초 사건으로 참형을 당하셨습니다. 그 후에 후손들은 이곳으로 옮겨와 새 거를 이루었습니다.
선생님 또한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으로 격동의 20세기를 온몸으로 겪어 내신 분입니다. 1936년 단편소설 ‘사하촌’이 조선일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여러 번 옥고를 치르셨고 손수 우리말 사전과 식물도감을 만들어 우리의 민족혼을 일깨우셨으며 광복이 된 후에는 경남 건국준비위원회와 ‘민주신보’ 논설위원으로 일하셨습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부산중학교를 거쳐 부산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시며 많은 작품 활동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생가는 2002년 12월에 허물어져가던 옛집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일자형의 팔작지붕 한옥을 원형 그대로 2003년 6월에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생가 옆에는 요산문학관이 있습니다. 들어서는 입구에 선생님의 흉상이 세워져 있으며 지하 1층, 지상 3층의 현대식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1층은 세미나실, 2층은 전시실과 도서관, 3층은 후배 문학가들의 창작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먼저 세미나실로 들어갔습니다. 한쪽으로 선생님의 소설들이 전집과 판권으로 진열되었으며 판매도 하고 있었습니다.
요산 김정한선생님 작품 사하촌, 옥심이, 항진기, 모래톱이야기,
그물 당대풍 축생도, 낙일홍, 수라도, 제3병동 개와 소년, 사밧재 등
2층의 전시실은 선생의 유품과 육필원고, 그리고 선생님이 직접 만드신 우리말 낱말카드와 식물도감, 습작 노트 등을 전시 중이며 소설 속의 무대를 사진으로 소개하여 방문객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사밧재라든지 수라도의 화제리 등 실제로 저도 여러 곳을 다녀보아 이번 전시실을 보면서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이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입니다. 요산 김정한 선생님의 생가와 요산문학관도 여행하시고 평생을 올곧은 선비정신으로 삶을 사신 선생님의 뜻을 생각하며 선생님의 소설을 읽어보세요.
◆요산문학관 정보 안내◆
★관람안내:화요일~일요일, 오전 10시~오후5시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휴관, 입장료는 무료
★요산문학관 주소:600-815 부산광역시 금정구 팔송로 60-6
★교통편:도시철도 1호선 범어사역에서 청룡초등교 정문을 지나 600m, 도보 15분, 또는 도시철도 1호선 장전역 3번 출구로 나와 80번 버스로 환승하여 남산동 버스정류장에 하차하면 60m거리.
☞(부산서구여행/부산서구 가볼만한 곳)송도해수욕장과 송도구름산책로. 국내 최장인 365m 송도구름산책로와 공설해수욕장 1호인 송도해수욕장에서 여름 휴가를 즐겨보세요.
내 고장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자랑합니다. 이제 무더운 여름이고 하니 부산서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송도해수욕장을 소개합니다. 부산하면 삼면이 바다라 해수욕장이 유명한 것은 모두 다 아십니다. 그중에서도 요즘 부산에서 가장 핫한 이슈로 떠오르는 해수욕장이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입니다.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은 100년 넘은 전통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공설해수욕장 1호 타이틀을 가진 부산 송도해수욕장에 지난 6월 1일 송도구름다리 산책로가 완전하게 개통되었습니다.
국내 최장인 365m에 단조로움을 탈피하기 위해 꼭 파도를 치는 듯 곡선을 이룬 해상산책로는 부산을 대표하는 새로운 랜드마크라 하겠습니다. 요즘 주말이면 송도해수욕장에 구름 인파가 몰려 그 옛날 전국적으로 이름 날렸던 송도해수욕장의 명성을 되찾고 있습니다.
송도해수욕장 구름 산책로는 총 길이가 365m에다 폭은 2.3m 그리고 수면에서 높이는 9.3m입니다. 2단계로 나누어 공사가 진행되어 지난해 거북섬에서 등대 앞까지 104m인 1단계 공사를 완공하고 개통을 했는데 이번에 선착장 앞까지 남은 구간인 193m를 전부 개통하였습니다.
그리고 송도 구름 산책로는 무엇보다 바다 한가운데로 이어지는 국내 최장의 해상산책로로 보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길이가 긴만큼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은 짜릿함을 만끽하며 꼭 수상 레저를 즐기는 그런 느낌입니다.
송도구름다리 산책로 중간 중간에는 바닥 일부를 투명강화 유리와 디자인 그레이팅으로 설계하여 푸른 파도가 일렁거리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는 짜릿한 스릴감을 맛보며 아찔하고 현기증이 날 지경입니다.
송도 구름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송도해수욕장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며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 전망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모습의 송도해수욕장을 보기에 충분합니다.
송도 구름 산책로는 새로운 PR거더(Prestress Rib girder)공법를 사용하여 직선형이 대부분인 해상산책로를 곡선형으로 설계하였는데 이는 젊은 어부와 용왕의 딸인 인용의 전설을 간직한 거북섬에서 모티브를 얻어 흡사 용이 바다 위를 누비는 듯한 부드럽고 유려한 형태로 다리를 설계하여 더욱 재미있습니다.
송도해수욕장은 바로 우리 집 앞에 있습니다. 심심하면 찾아가는 곳인데 지난 주말에 송도 구름 산책로에 구름같이 관광객이 몰려 진짜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브랜드가 될 것 같았습니다. 송도해수욕장 이외에도 여러 곳에 구름전망대니 구름다리니 하며 많이 있지만, 송도해수욕장의 구름 산책로와는 비교를 하지 마세요.
크기와 높이와 길이에서 비교 불가이며 지금까지 국내 어디에서도 이런 바다 전망대 산책로는 없었습니다. 바다 위를 걷고 싶다면 지금 당장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으로 달려오이소. 이제 송도구름산책로가 있는 송도해수욕장을 소개하겠습니다.
요기가 송도구름산책로 입구라예
송도구름산책로 안내도.. 1년 365일 사계절 걷고 싶은 송도구름산책로 이길을 걷고 365일 건강하고 만사형통하이소
송도구름산책로 굿인기라예
송도구름산책로 게이트 통과
송도구름산책로 개방시간 오전 6시~밤 11시까지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임해행정봉사실 051-240-4086
오전 6시~오전9시 저녁 6시~밤 11시 서구청당직실 051-240-4222
송도 다이빙대
투명강화 유리와 디자인 그레이팅 설계로 안잔하게 바다를 볼 수 있게했습니다.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합니다.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요기가 행운의 자리라네요. 구름산책로를 찾다가 찾아보세요.
거북섬
거북섬의 모습입니다. 지금은 바위로 남았지만 오래전에는 이곳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도라 불렀습니다.
등대쪽 구름산책로입니다.
영도를 연결하는 남항대교 모습.
이날 공중파에서 송도해수욕장 구름다리산책로 취재를 왔었습니다.
거북섬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용과 젊은 어부 동상
여기는 송도공원에서 내려다본 송도구름산책로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이제 송도구름산책로가 있는 송도해수욕장을 소개하겠습니다. 전국 해수욕장 중에서 수질이 가장 깨끗하고 백사장의 모래도 부드러워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이곳을 자신들 전용해수욕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거북섬 케이블카와 다이빙대 등을 설치하여 송도해수욕장을 대표하고 최근까지 부산의 대표 상징물이었습니다.
그러다 인근 주택과 횟집의 무분별한 오수 등으로 부산의 여러 해수욕장에 밀리게 되었고 태풍으로 시설물도 파괴되어 점차 해수욕장의 기능은 사라지면서 그저 평범한 바닷가로 변했습니다.
그 뒤 송도해수욕장을 살리자며 주택과 횟집의 오수를 모두 정리하고 예전의 다이빙대 등 송도해수욕장을 대표했던 위락시설물을 착착 복원 중입니다. 구름산책로는 물론이고 지금은 송도의 명물로 탄생할 케이블카 공사가 송도공원에 진행 중입니다
부산 서구를 대표했던 송도해수욕장이 지난 6월 1일 개장하여 관광객과 피서객 맞이에 나섰습니다. 올해 송도해수욕장 개장 기간은 오는 9월 10일까지 장장 102일간입니다.
지난해 송도해수욕장 방문객이 무려 750여 만 명 이었다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50만 명을 늘려 800만 명으로 예상한다고 하니 이제 송도해수욕장은 부산 대표 해수욕장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내 고장 송도해수욕장은 일반 해수욕장과는 차별화된 인프라와 프로그램으로 볼거리, 즐길 거리를 더욱 강화했다고 합니다. 그저 밋밋하게 해수욕만 하고 가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송도해수욕장은 어떤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번에 송도해수욕장 개장에 딱 맞추어 국내 최장인 송도 구름 산책로 365m 전 구간을 개통하여 벌써 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이것만 있다면 섭하지예,
또한, 송도해수욕장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해상다이빙대(7.1.∼9. 10.)와 가족과 함께 찾는 송도해수욕장에서 유아전용 해수 풀장인 `아이 사랑 존(7.22∼8. 21.)'을 도입하여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설로 차별화하여 매년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관광 인프라가 다가 아닙니다. 올해에도 즐기는 프로그램을 더욱 다양하게 준비했다 아잉교. `2016년 송도 여름 바다 축제 및 제12회 현인 가요제(8.5.∼8.7.), `송도를 즐겨 樂'(6. 18.∼8. 20. 토 19:00) 등 축제와 가요제 등 각종 공연이 무더위를 확 날려버리며 한여름 밤의 추억을 선사한다.
서구관광안내소, 임해행정봉사실
또 제3회 해양수산부장관배 송도 전국해양스포츠대회(8. 27.∼8. 28.)가 열리며 올해 부산시의 수상 레포츠 특화사업 공모에 송도해수욕장이 선정되어 카약·윈드서핑·SUP 등 해양스포츠의 기초와 실습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송도 마린 아카데미’도 5월부터 9월까지 무료 운영하고 있습니다. 와우~ 나도 얼렁가서 수상 레포츠를 배워야겠습니다.
그리고 부산 서구에서는 해수욕장 개장을 하면서 해수욕장 안전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백사장에 6개소의 안전 망루대를 설치하였으며, 해수욕장 수영구역에 수영객의 안전을 위한 안전부표인 해수욕 ‘안전 존’을 설치했습니다.
다.
해수욕장의 기본인 수질 관리와 바다의 복병인 해파리구제, 백사장 내 이물질 제거 등 깨끗하고 아름다운 송도해수욕장을 만들어 이번 여름 피서객의 안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대시설로 서구관광안내소, 임해행정봉사실도 갖추고 있습니다.
궁금한점은 요기서 물어보세요. 조용하고 편안하고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한 방에 날려 버릴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이번 휴가는 역시 송도해수욕장이 최곤기라예. 그리고 주차문제도 걱정 마세요. 송도초등학교 운동장과 한진 매립지에서 널널하게 주차 할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퍼뜩 놀러 오이소
부산국제모터쇼에서 현대자동차와 함께 관심을 가지고 본 기아자동차 부스. 기아자동차에서는 SUV 텔루라이드가 주목받는 가운데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그만큼 요즘 자가운전자를 생각한 친환경과 연료절감인 연비 등에 주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2020년까지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 전기차 등 총 14개의 친환경 차종을 출시할 계획이라 하니 많은 기대가 됩니다.
부산국제모터쇼 기아자동차 전시장에서 만난 텔루라이드는 대형 SUV 콘셉트카로 2016 북미국제오토쇼에서 처음 공개한 뒤 국내에서는 부산국제모터쇼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습니다. 관람객으로부터 기아자동차 모델 중 모하비의 후속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텔루라이드는 같은듯하면서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아 프리미엄 대형 SUV 텔루라이드(KCD-12)
모하비보다 자동차의 높이는 10cm가 낮은 1,800cm이지만 전체 길이와 폭은 텔루라이드가 길고 큰 게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며 더 넓어 보였습니다. 또한, 모하비는 디젤자동차만 판매 중인데 반해 텔루라이드는 V6 가솔린 엔진에다 전기모터 혼합방식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입니다.
자동차의 품격을 결정하는 대형 그릴과 LED 헤드램프 등은 강한 야성미를 자극하는 듯한 디자인으로 SUV를 선호하는 자동차마니아에게 대단한 인기를 끌 것 같았습니다. 이번 부산국제모터쇼에서도 기아자동차의 텔루라이드에 유독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듯합니다.
특히 앞면 부에 비해 후방램프는 얇고 긴 세로형의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이며 두개의 머플러를 장착해 날렵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표현하였습니다. 기아자동차에서는 텔루라이드 양산계획은 세워져 있지 않다는 설명인데 저같이 전국을 여행하고 산을 찾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차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기대가 되는 자동차였습니다.
K7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외관 디자인이 세계최초로 이번 부산국제모터쇼에서 공개되어 자동차마니아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K7 하이브리드는 기존의 외관과는 다르게 신규 LED 헤드램프를 적용하여 고급스러움을 더욱 높였으며 하이브리드 전용 힐을 사용하여 공기저항을 줄이는 등 소소한 곳까지 신경을 쓴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아 k7 하이브리드
기아 k7 하이브리드 레이싱 모델 정경진
기아 K5 플러그 하이브리드
기아 자동차 K5 플러그인하이브리드(K5 PHEV)를 이번 부산국제모터쇼에서 공개했습니다. K5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9.8kW의 대용량 배터리와 2.0 GDI 엔진을 장착하고 50kW 모터를 적용한 전기+하이브리드 모드로 주행하는 친환경 자동차입니다.
최고출력은 동급최강인 156마력에 6단 자동변속기를 갖춘 K5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최대 44km를 전기 배터리로만 주행 가능하며 연료와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했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번에 왕복 주행이 가능한 차로 한마디로 경이적인 자동차라 하겠습니다.
K5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역동적인 동력성능을 제공하며 주행상황과 조건에 맞추어 변속기를 제어하는 기술인 EV 모두와 HEV모드의 자연스러운 변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기아 K5 sporty wagon
자율주행 VR 체험
자율주행차의 작동원리와 핸들 조작 없이 오토매틱 운전을 경험해보는 체험 프로그램을 부산국제모터쇼에서 만났습니다.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줄서기도 귀찮고 해서 체험프로그램은 모두 눈팅만했습니다.
그래도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현재 모래를 이용하여 모래 축제인 모래조각전을 열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모래축제가 5월 30일 오늘까지라 딱 반나절 남는 축제입니다.
흔한 말로 ‘사상누각(砂上樓閣)’이란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사상누각은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을 말합니다. 그 속뜻을 보면 “기초가 튼튼하지 못해 오래가지 못할 일이나 사물에 비유”를 종종 합니다. 모래는 모래끼리 절대 뭉쳐지지 않고 허물어져 버리는데 그 모래로 조각전을 매년 해운대에서 열려 갈 때마다 모래로 만든 예술품에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모래로 이런 훌륭한 작품도 만드는 것을 보면 이승만 전 대통령의 “뭉치면 산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모래도 자기들끼리 뭉치니 사상누각이라는 사자성어가 무색할 정도의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하는데 우리도 뭉쳐 요즘 경제 난국을 타개해야겠습니다. 하찮은 모래도 뭉치면 안 되는 것이 없는데 말입니다.
올해 해운대 모래축제에서는 우리나라, 미국, 캐나다 등 총 7개국에서 11명의 유명한 모래 작가분이 모였다 합니다. 올해도 모두가 훌륭한 대작이지만 그중에서도 ‘포세이돈’ ‘캐리비안 해적‘ ‘걸리버 여행기’ ‘크라켄’ ‘메두사’ 등 섬세한 예술작품이 풍성합니다. 특히 해운대해수욕장이 바다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바다와 탐험”을 주제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즘 가장 인기 있다는 3D 입체 조각 기법을 도입하여 작품이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넘쳐나 보였습니다. ‘해운대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는 야간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인 건물 모양 모래 작품에 3D 가상현실을 처음 도입한 ‘미디어 파사드’도 인기 짱이라 하는데 밤까지 기다릴 형편이 못되어 보지 못하고 온 것이 억수로 아쉽습니다.
2016년 해운대 모래축제는 5월 27일 금요일 시작하여 딱 4일간 열리는 중이며 진짜 모래바람처럼 후다닥 열려 어영부영하다 보면 모래축제 구경을 못 합니다. 하루 남은 오늘이라도 얼렁 세계 유수의 모래작품전을 보고 싶다면 빨리 해운대해수욕장으로 달려가세요. 그럼 시간관계로 가시는 못하는 분은 제 해운대 모래축제 포스팅을 보고 아쉬움을 달래야 겠습니다.
어제 제9회 부산항 축제가 개막했는데 그 전야제 행사로 밤 9시에 불꽃축제가 있었습니다. 그 전에 불꽃축제 명당자리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는데 작년 부산항 축제 때 수정동 산복도로에서 많은 인파에 뒤엉켜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올해 불꽃축제는 다른 불꽃축제 명당자리를 찾아 인터넷에 명당자리 검색을 했습니다.
블로그를 보니까 주로 영도 청학 배수지 등 부산항대교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이 추천장소로 나와 저도 잘 알고 있는 청학 배수지로 찜하고 출발했습니다. 1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촬영 포인트는 모두 선점하고 있어 어찌할까 생각하다 봉래산 중턱에 있는 불로초공원으로 올라갔습니다.
갑자기 한 등산하다 보니 등줄기에 땀이 뱄습니다. 이마의 땀도 훔치며 도착한 불로초공원 전망대 그곳도 사람들로 많은 사례였습니다. 모든 포인트마다 삼각대를 펼쳐 든 분들로 점령당해 할 수 없이 바로 위 전망 덱으로 갔는데 구경꾼들 틈에 끼여 저도 담아 볼 욕심에 대충 삼각대를 피고 설치했습니다.
시간은 9시가 조금 지나서 불꽃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단발식인 큰 축포만 몇 개 부산항 대교 아래에서 쏘고 나머지는 모두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쪽에서 불꽃축포를 쏘아대서 땀 흘리고 올라온 보람도 없이 헛심만 팔았습니다.
카메라 설치는 부산항대교 쪽으로 맞추었는데 엉뚱한 방향에서 쏘아대고 내뿜는 연기등 촬영 조건 등을 보면 영도 쪽 보다는 부산항 불꽃축제는 수정동 산복도로나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쪽이 최대 포인트 같습니다.
쪽에서 불꽃축포를 쏘아 올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불찰이었네요, 20분 동안 눈팅만하고 또 1년을 기다려 내년 부산항 불꽃축제를 기다려야겠습니다.
사람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한반도의 중심은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에 있습니다. 한반도의 배꼽인 정중앙에는 통일신라시대 7층 석탑이 있으며 이탑을 일명 국토의 정중앙이란 뜻인 ‘중앙탑’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사는 부산의 정중앙이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부산의 배꼽인 정중앙에 표지석이 있다는 것도 최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산의 배꼽을 확인하기 위해 부산진구 부암동 백양산 인근에 확인 차 갔습니다.
부산의 정중앙 입구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정중앙에는 ‘정중앙 표지석’이 있습니다. 처음 부산의 정중앙은 어디일까 하며 아주 궁금하게 생각했던 곳은 역시나 서울방송국 SBS ‘호기심 천국’ 담당자였습니다.
2001년 부산대 도시문제연구소에 부산의 정중앙을 찾아달라고 의뢰하였고 연구소에서는 부산시 부산진구 백양순환로95번길 47-10호임을 밝혀내었습니다. 북위 35도 10분 4초, 동경 129도 2분 17초에 2012년 8월 1일 부암3동에서 부산의 정중앙을 알리는 표지석을 설치하여 이곳이 부산의 정중앙임을 알렸습니다.
현재 부산 지형 전체를 놓고 보면 닭이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인 금계포란형의 모습이며 부산의 정중앙은 닭이 알을 낳는 자리라는 풍수가의 설명입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에는 첫새벽을 알리는 계명봉이 있습니다.
그 계명봉 아래에는 암·수한쌍인 닭의 형상을 한 바위를 옛날부터 ‘자웅석계’ 라 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은 한반도의 기를 꺾는다며 암탉을 무참히 파괴하였고 지금은 수탉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부산은 금계포란형의 명당임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일설에는 대마도는 지네 형이라 닭과는 상극인데 금정산 계명봉 때문에 대마도는 한국에 힘을 못 쓴다고 합니다. 그게 다 부산의 풍수가 금계포란형의 명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표지석을 둥근 형태로 조성한 게 닭의 알을 뜻하고 정중앙 표지석을 만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소원을 빌면 각 가정에 건강과 행복 그리고 만사형통은 물론이며 재물 운까지 따라온다 합니다.
부산의 정중앙을 찾아 표지석을 한 번씩 안아보세요. 하하 저는 정중앙 표지석을 만지지 않고 그냥 사진만 찍고 왔네요. 다음에 꼭 다시 방문하여 정성을 다하여 만져봐야겠습니다. 혹시 또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일이 술술 풀릴지예...
☞(부산여행/동구여행)교통부 보림극장, 서민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부산 최초의 쇼 전문극장 보림극장이 호랭이 이바구길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보림극장
지금이야 영화관도 대형화되어 건물 전체를 통째 개봉관으로 사용하며 시도 때도 없이 영화관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50대 중반인 제가 어렸을 때는 학교 졸업식에 졸업기념으로 귀했던 자장면을 먹듯이 연례행사로 영화관도 명절날 온가족이 한 번씩 갔습니다. 그때는 영화관도 지금처럼 그리 쉽게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부산의 영화관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저에게는 보림극장입니다. 보림극장의 추억은 제가 어렸을 적 명절 연휴로 기억합니다. 빌딩에 난 화재로 소방 아저씨의 활약 담을 담았던 영화인 ‘타워링’을 부모님과 함께 가슴 졸이며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 저는 온천장에 살았으며 집주위에 온천극장 동성극장 국보극장 등이 있었지만 먼 교통부까지 영화를 보러 왔습니다.
그때 본 보림극장은 규모와 시설 면에서 집주변의 영화관을 완전히 압도했습니다. 1968년 교통부에서 처음 영사기를 돌렸다는 보림극장은 극장이란 간판을 달고 있었지만, 영화관 기능보다도 당대 최고인 톱가수의 ‘리사이틀’이 열리는 부산 최고의 쇼 전문극장이었습니다. 이미자, 하춘하, 남진, 나훈아, 살살이 서영춘 비실이 배삼룡 등 가수와 코미디언들이 공연을 위해 내려오면 보림극장 앞은 완전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1974년의 하춘하 리사이틀에는 하루 5회 공연에 9,000명의 관객이 몰려 요즘에도 깨기 힘든 극장공연의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7080세대는 보림극장의 명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교통부는 고무공장, 신발공장, 방직공장 등이 참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범일동은 이들 근로자가 많이 몰려 살았습니다. 근로자들이 쉬는 일요일은 유일한 놀이 문화로써 영화관밖에 없었습니다. 청춘남녀의 데이트 장소로도 영화관이 최고 인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통부등 범일동 일대 영화관은 학생과 공장 근로자가 자연스럽게 많이 찾았습니다. 그 이유를 보면 백지장처럼 얇았던 서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했는지 남포동의 개봉관에 밀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2편 동시상영관이 운영되었으며 또한, 19금 전문 영화관으로 성인영화를 상영하기도 했습니다. 저렴한 영화비로 요즘 말하는 1+1인 두 편의 영화를 봤기 때문입니다.
극장 앞 대형 걸개그림을 보면서 얼굴을 붉히며 그래도 영화는 궁금해서 교복을 입고 가슴 졸이며 몰래 보기도 했습니다. 훗날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도 이 일대에서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도망가는 신 등이 촬영되었고 하정우 출연의 ‘아저씨’도 동구 매축지마을에서 촬영되어 동구 범일동은 부산 영화 산업의 뿌리 같은 존재입니다.
보림극장 이외에도 삼일극장, 삼성극장, 범일극장 등 주위로 수십 개의 영화관이 몰려 있었습니다. 항상 교통부 앞을 지나면 보림극장 건물이 눈에 띄었고 어릴 적 그때의 추억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남포동의 보림백화점에서 1955년 처음 보림극장 간판을 걸고 개관하였습니다. 전쟁 통에 고향을 떠난 실향민에게 웃음과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보림극장은 1968년 교통부 조양직물 자리를 인수하여 당시로써는 초현대식 건물을 지어 제2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산업화에 무작정 고향을 떠났던 많은 사람을 웃게 하고 눈물짓게 하며 고향의 향수를 달래게 했던 보림극장은 세월 속에 차츰 쇠퇴하였고 또한 영화배급이 남포동 극장가 위주로 바뀌게 되면서 그 명맥만 겨우 이어오다 범일동 교통부에서 38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졌습니다. 당시 범일동은 영화불모지였던 부산에서 문화 충족의 목마름을 풀어주는 영화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범일동 영화관의 중심에는 보림극장이 딱 버티고 있었으며 지금은 ‘호랭이 이바구길’ 초입에 옛 향수를 달래는 보림극장에 영화 상영을 알리는 듯 간판이 내걸렸습니다. ‘나훈아 리사이틀’ ‘하춘하 리사이틀’ ‘남진 리사이틀’ ‘별들의 고향’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 웃음과 눈물과 기쁨을 주었던 영화와 가수의 리사이틀을 알렸던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홍보하는 대형 걸개그림이며 실제로 영화와 쇼는 하지 않습니다.
보림극장 간판이 걸린 극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옛날 극장의 향수를 아는 사람은 정말 반가울 것 같습니다. 교통부에 있는 범일동 골목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그 왼쪽 부산은행 뒷골목에 범일동에서 촬영된 영화와 당시 보림극장의 영화 포스트 등이 사진으로 붙어 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며 옛 추억을 느껴보세요.
집 앞 송도 매립지를 출발하여 부산 남항을 한 바퀴 돌기로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부산공동어시장~충무동 새벽시장~자갈치시장~영도다리~영도 남항동 수리조선소길~조선소발상지~남항도선장~용신당~남항대교를 돌아 다시 송도매립지로 오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길로 우리 근대조선과 수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빠르게 걷는다면야 3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이곳저곳 둘러보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요거는 하늘 열차라고요. 아닙니다. 저 끝에 배를 정박하면 제빙공장에서 생산된 얼음을 배에다 싣는 장치로 바다에서 갓 잡은 생선을 상하지 않게 보관 합니다. 특히 부산남항은 전국수산물 냉가공 업체가 60% 몰려 있으며 공동어시장 주위 남항을 끼고 이런 시설물이 아직도 여럿 남아 있습니다.
부산의 대표적인 주택가 모습입니다. 평지에 지은 집보다 산비탈을 깎아내고 들어선 집이 부산에는 더 많을 정도입니다. 집이 절벽에 붙었다하여 외지인이 보고 "저런 곳에 어찌 사노"하며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부산사람은 이런 삶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부산남항에는 많은 어선이 출어를 기다리며 손길이 분주했는데 특히 바닷장어라 부르는 붕장어를 잡는 어선이 많았습니다. 뱀하고 비슷한 일명 아나고는 죽은 고기를 먹고 산다고합니다. 그래서 죽은 생선을 미끼로 쓴다는데 여기 꽂힌 바늘 하나하나에 생선 토막을 끼워 붕장어를 잡아 올린다하니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우리가 먹는 아나고회의 아나고는 그물로 한꺼번에 잡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낚시로 잡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부산항은 남·북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영도다리로 구분하는 것 같습니다. 북항은 현재 부산국제여객터미널과 컨테이너 등 물류운송업이 주를 이룬다면 남항은 자갈치시장 앞바다를 말하며 수산업과 수산가공업, 조선업 등이 주를 이룹니다.
현재 부산남항과 북항은 일제강점기 이전인 조선 말기에는 모두 조그만 어촌 포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삼포개항을 요구하였고 개항하면서 일본의 선박 왕래가 잦아져 남항의 기능을 갖게 되었습니다. 1930년경에는 경남지역 모든 물동량이 남항을 통해 운송되었고 전국최대의 공동어시장이 자리하여 연안수산업도 활기를 띠어 명실상부한 부산대표 항만이 됩니다.
부산남항의 기능을 갖추게 된 것은 1912년 시작된 충무동과 남부민동, 자갈치 일원의 매립과 방파제 축조 공사가 완공되면서 입니다. 또한, 1934년 11월 영도다리 개통으로 남항은 자갈치와 영도 남항동 봉래동을 연결하며 대변혁기를 맞습니다. 1945년 8·15광복으로 귀국한 동포와 6·25 한국동란으로 몰려든 피난민과 함께 부산은 그야말로 혼잡 그자체였습니다.
이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 바로 국제시장, 부산남항의 자갈치시장과 북항의 부두, 영도 수리조선소였습니다. 우리들의 할아버님 할머님 아버님 어머님이 자식들의 입에 거미줄을 걷어내기 위해 뼈가 가루가 되도록 일을 했던 부산남항은 오늘도 말없이 그때처럼 무덤덤이 모든 것을 그저 받아만 주고 있습니다.
영도다리에는 최근 새로운 조형물이 들어섰습니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금순이도 있고 김상국의 "자갈치 아지매" 에 자갈치 아지매도 있습니다. 피난길에 보따리를 이고 지고 메고 부산 영도다리로 몰렸던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6.25세대가 아닌 저로서는 이 조형물을 보면서 당시 영도다리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영도다리 아래에는 점바치 골목이라 불리며 많은 점집이 있었습니다. 영도다리와 함께 유명했는데 "우리 애 좀 찾아주세요" 하며 당시 피난 온 가족의 행방을 묻는 등 불안한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50여 곳이나 될 정도로 성업했던 점집도 시대의 상황과 개발 등으로 최근에는 모두 자취를 감추어 점바치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나 떴다“
국민가요인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랫말로 현인은 영도구 영선동에서 태어났습니다. 2002년 타계하기까지 수많은 노래로서 대중의 마음을 품어주었습니다. 영도에서는 이를 기념하기위해 영도 편 영도다리 입구에 동상과 함께 노래비를 세웠습니다. 그의 노래 가사처럼 영도다리 난간을 부여잡고 지금도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며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 피난민과 부산시민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작금의 영도다리는 그때처럼 “영도다리가 끄떡끄떡”했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 오후 2시에는 영도다리가 그때같이 끄떡하고 하늘로 치솟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이 광경을 보기위해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데 당시 애환을 겪은 많은 어르신이 그때를 회상하며 추억의 영도다리 도개를 보기위해 찾고 있습니다.
영도다리를 건너면 대풍포가 있습니다. 대풍포는 우리소형어선에게는 큰바람이나 높은 파도가 일면 이곳으로 배를 피난시키는 피난처였습니다. 대풍포의 의미는 “바람이 싫어서 평안하라”고하여 마을이름도 대평동으로 부쳐졌다는데 바람을 피했던 중요한 안식처였는지는 모르지만 1900년 전후 조선 말기에는 일본인의 조선 침탈의 전진기지화가 되면서 우리에게는 피맺힌 한이 자리한 현장입니다.
1876년 개항과 함께 영도에 일본인이 하나둘 들어섰는데 그와 함께 일본 어선이 대풍포에 정박하여 하역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887년부터는 다나까 조선소등 일본 조선소가 하나둘 진출하여 일본인들은 대풍포를 자신들의 전용선착장으로 만들어버렸고 급기야 사유지를 강제로 빼앗아 1926년에는 ‘영도 대풍포매축공도’를 실시하여 이 일대를 독점하다시피 사용하였습니다.
일본인은 매립한 땅을 반도보다 작은 육지란 뜻의 ‘갑정(미사끼마찌’)이라 불렀으며 주택가와 일본인 조선소가 들어섰습니다. 일본 조선소는 어선을 만들면서 수리도 하였는데 약 60여 곳의 일본인 조선업체와 관련 업체가 몰렸다하니 목선을 만드는 가내수공업의 우리조선소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모두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던 곳입니다. 지금도 대풍포는 조선업체와 그와 관련된 업체들이 몰려 오늘의 남항을 이끌고 있습니다.
또한 대풍포에 자리를 잡은 일본인은 1890년 영도 봉래동에서 용미산 남쪽(현재 롯데백화점 남포점 부근)을 다니는 조선인의 도선을 보고 1901년 자갈치(남포동)로 진출하기 위해 대풍포에서 자갈치를 잇는 뱃길을 개설하였습니다. 나룻배는 1910년 동력선으로 교체하였는데 영도다리가 개통된 이후에도 이 뱃길은 운영되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자갈치시장 현대화 공사로 인해 뱃길은 끊어졌고 필자도 자갈치에서 재미삼아 영도로 건너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소문에는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영도다리 개도와 함께 뱃길도 운행된다고 하는데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자갈치에서 영도 대풍포를 운행하는 추억의 뱃길도 다시 운영될 것 같습니다.
영도는 우리나라 조선 공업이 시작된 곳입니다. 이를 기념하는 ‘한국근대조선 발상 유적지’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남항동 대평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져있습니다. 영도에 처음 조선소가 들어선 것은 1887년 현재 남항동 대평초등학교에 일본인이 세운 다나까 조선소였습니다.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진출한 1호 조선업체로 목선만 만들던 한국에서 최초 근대식 조선소의 시작입니다.
그 후 1937년 한국최초의 강철로 만든 조선소가 세워졌는데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였습니다. 80년 가까이 조선기계 조선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대한조선공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은 한진중공업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습니다. 당시 대한조선공사는 새 배의 수주보다는 중고선박 수리를 했는데 1970년대에 들어 처음으로 대만에서 수주한 ‘팬 코리아호’를 진수하여 수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대통령되신 박근혜 근령 남매가 진수식에 참여했을 정도로 당시 대한조선공사 진수식은 큰 이슈이며 국가적인 큰 행사였나 봅니다. 현재 한진중공업 내에는 대한조선공사 초창기 대한민국 조선소의 흔적과 대한민국 최초 도크가 남아 있습니다. 조선산업의 역사가 바로 부산 남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사라지고 없지만, 수리조선소에는 ‘깡깡이 아지매’가 있었습니다. 자갈치 아지매도 아니고 깡깡이아지매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박수리를 전문으로 하다 보니 강철의 찌그러진 부분을 바로 핀다든지 험한 항해에서 강철판에 쓴 뻘건 녹을 벗겨내는 작업을 하는 아주머니를 ‘깡깡이 아지매’라 불렀습니다.
녹 제거를 위해 망치를 수천번 수만번 두드리면 ‘깡깡’ 소리도 수천번 수만번 나서 그리 불렀는데 이도 1970년대 중반부터 ‘깡깡이 아지매’가 하던 일을 콤프레샤로 모래를 쏘아 녹을 벗기는 작업으로 점차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직업을 잃은 깡깡이 아지매들은 자갈치시장과 공동어시장에서 고기를 선별하는 작업으로 옮겨갔으며 다시 이들을 ‘쓰쿠메’라 불렸습니다. 라디오의 장수 프로그램 중 자갈치아지매가 있습니다. 이분들도 억척스럽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어머님인 진정한 자갈치아지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가 부산 영도 대풍포 대한민국 조선소의 발상지입니다. 오늘의 모습 사진으로 보세요◆
남항동에는 용신당이 있습니다. 필자는 이번에 이곳을 방문하고 처음 알았는데 여기 모셔진 용왕 할매는 우리나라 신이 아닌 일본 할매를 모셨다합니다. 왜 일본 할매 신을 이곳에 모셨는지 많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영도다리를 건설하면서 많은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었고 그때 죽은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용신당을 건립했다합니다. 영도다리가 개통되면서 밤만 되면 영도다리 아래에서 사람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이는 다리공사를 하다 불귀의 객이 된 원혼이 원통하여 구천을 떠돌고 있다며 그들의 원혼을 달래줘야 한다고 모두들 수군 그렸고 마침내 이곳에 용신당을 짓고 위령제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뒤 용신당에는 바다에서 조업하다 숨진 뱃사람들의 넋을 달래는 곳이 되었으며 출항을 앞둔 선주는 이곳에서 풍어로 만선과 안전운항을 기원하는 용왕제를 올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용신당은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파괴되어 다시 지어졌습니다. 필자가 찾은 이날에도 용신당에는 어느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열렸는데 그 소리가 문밖까지 들렸습니다.
이제 부산 남항 한바퀴는 막바지입니다. 남항대교도 코앞이고 영화 변호인을 촬영했던 흰여울길의 아름다운 모습도 지척입니다. 오늘 남항을 걸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알게되었습니다. 이제 겨울은 봄에 자리를 내어주듯 두꺼운 이불을 걷어내고 따뜻한 봄을 찾아 역사길이자 문화·문학의 길인 부산 남항 길을 한 번쯤 걸어보세요. 봄기운이 '쑥' 밀려옴을 느낄것입니다.
☞(부산여행/황령산봉수대/황령산 쉼터·카페)황령산봉수대, 황령산 쉼터·카페. 부산을 한눈에 보기 딱 좋은 곳은 황령산봉수대와 황령산 쉼터·카페 입니다.
부산은 해안선을 끼고 있어 많은 왜세의 침입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한양에 급보하기 위해서는 요즘처럼 전화나 인터넷등 통신시설이 없어 봉수를 이용했습니다. 봉수는 군사적 목적으로 중요하게 이용하였는데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횃불로서 신호를 보냈는데 이를 우리는 봉수대라 부릅니다.
특히 봉수대는 사방팔방 훤히 드러난 산 정상을 많이 이용하였습니다. 부산은 해안가와 내륙의 산 정상에는 많은 봉수대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가덕도 연대봉, 강서구의 봉대산, 서구 천마산봉수대, 동구 구봉산봉수대, 금정구 계명봉수대, 진구 황령산봉수대, 해운대구 간비오산봉수대, 기장군 산성산과 이길봉수대 등 수많은 봉수대가 해안을 감시하며 급보를 중앙에 알렸습니다.
특히 부산의 중심인 황령산 정상에 세워진 황령산봉수대는 부산의 봉수대에서 가장 도드라져 주위 어느 곳에서도 보여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황령산 봉수대의 기록은 세종 7년인 1425년 이전부터 있었다 합니다.. 동구 초량동의 구봉봉수대에서 왜적의 출연을 신호 받아 해운대의 간비오산 봉수대와 금정산 범어사 동북쪽 계명봉수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최종목적지는 왕이 있는 한양의 남산봉수대로 황령산봉수대는 부산 봉수의 최첨병을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황령산봉수대는 동래부에서 직접 관리하였는데 별장 10명, 감고 1명, 봉군 100명을 배치하여 교대로 지켰습니다. 황령산봉수대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사실을 한양에 알렸다는 기록이 이순신장군의 ‘이충무공전서’에 나와 있습니다.
1592년 4월14일 황령산 봉수군 배돌이가 부산포에 왜군이 침입하였음을 봉수로 알렸으며 황령산봉수대는 나라의 매우 급박한 상황을 발 빠르게 조정에 올렸던 중요한 봉수대였지만 세월과 함께 무너져 흔적만 남았습니다. 1976년 10월 “우리 민족의 향토수호 의식과 국토방위 정신을 후손에게 알리기 위하여” 복원을 하였으며 2000년 6월에는 봉수대 주변 정화사업을 펼쳐 현재의 황령산 봉수대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최근에 황령산을 올랐다가 봉수대 옆에 ‘황령산 쉼터·카페’까지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부산 야경을 훤하게 내려다보는 부산 황령산봉수대에서 진한 커피와 함께 부산여행을 계획하면 오랫동안 추억에 남을 여행이 되겠습니다. 부산여행 황령산봉수대와 황령산 쉼터·카페 여행도 찾아보세요. 산이 높아 힘들다고요? 걱정은 붙들어 두세요. 남천동에서 연산동 물만골로 황단도로가 뚫려 자동차로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황령산봉수대는 비지정문화재입니다.
☞(부산여행/황령산·금련산산행)황령산~금련산 산행. 부산의 중심에 자리잡은 황령산~금련산을 부산국제금융센터·부산은행역에서 출발하는 코스.
부산의 산을 등급으로 매긴다면 단연 1위는 금정산입니다. 그럼 2위는 하면 장산과 백양산을 언급하지만 산 높이가 아니라 일일 산행을 하는 빈도수를 따지면 황령산과 금련산도 금정산, 장산, 백양산보다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황령산과 금련산은 부산에서는 작은 고추입니다. 높이라 해봤자 겨우 해발 400m가 조금 넘지만 앉은 자세는 부산의 심장이라 해도 괜찮을 부산광역시 중심에 있습니다. 사방팔방으로 도심이 둘리어 있어 누구나 어느 곳에서나 쉽게 오르는 부산의 산입니다.
황령산은 해운대구의 장산과 마찬가지로 오래전 부족국가가 존재했는데 신라에 복속하기 전까지는 거칠산국이 있었습니다. 거칠산국이 있었던 황령산을 거칠산 또는 거츨산이라 불렀는데 거칠황을 한자화하면서 황령산으로 바뀐 것이라 추정됩니다.
그리고 황령의 령자도 고개 령(嶺)자인데 고개가 아니 산봉우리를 의미하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예를 보면 울산의 치술령, 포항의 천령산 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거칠산국을 신라 경덕왕 때 동래군으로 고쳐 불렀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황령산으로 불렸다 생각됩니다.
부산의 진산인 황령산과 금련산은 산행로가 거미줄 같이 엉켜 사실 산행 코스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큰 맥락으로 등산로를 구분하면 남구, 진구, 동래구, 수영구로 나누며 이번 황령산·금련산 산행은 남구의 '부산국제금융센터·부산은행역'에서 출발하는 산행을 계획했습니다.
산행경로를 보면 부산국제금융센터·부산은행역~한얼고등학교~돌산공원(문현 안동네)~전포고개~칠공주 약수터~사자봉 정상~오거리 안부~황령산봉수대~황령산쉼터~황령산 정상석~황령산·금련산 횡단도로~금련산 방향 도로 이탈~헬기장 갈림길~황령산·금련산 횡단도로 화장실 갈림길~금련산 청소년수련원 입구~공무원교육원 갈림길~천신각~목양교회 순으로 거리는 약 9km, 전체산행시간은 3시간 3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황령산과 금련산 산행은 먼저 도시철도 2호선인 국제금융센터·부산은행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합니다. 골목으로 들어서 ‘황령산 옥천암·부성고등학교’ 입구 안내판을 만나면 산행 들머리는 잘 찾았습니다. 전포동 돌산공원 절개지를 애도는 급경사 도로입니다.
문현2동 안심길 안내판이 붙어 있으며 고도는 순식간에 높아서 국제금융센터 빌딩이 마천루를 연상케 할 정도로 주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곧 한얼고등학교 입구 갈림길에서 왼쪽 한얼고등학교 방향입니다. 학교를 왼쪽으로 돌면 호젓한 콘크리트길이 연결됩니다.
약 20분이면 문현동 안동네 벽화 마을입니다. 2008년에 환경개선작업의 일한으로 그려졌는데 마을은 7~80년대 정부의 강제철거로 철거민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형성되었습니다. 현재는 260세대 약 500명이 오순도순 이웃하며 살고 있습니다.
돌산공원 앞 갈림길에서는 오른쪽 골목을 따라 3분쯤 가면 자동차가 다니는 전포고개입니다. 건널목을 건너 왼쪽으로 가면 황령산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황령산 봉수대 방향 이정표가 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곧 5분이면 ‘자연보호’ 안내판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갑니다. 지금부터는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 약 25분이면 칠공주 약수터입니다. 약수터 왼쪽 바위를 오르는 산길이 바로 사자봉 정상으로 향합니다. 이 길을 15분 따라가면 일망무제의 사자봉 정상입니다.
정상석 뒤로 광안해수욕장을 가르는 광안대교는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은 흐린 날이지만 시원하게 펼쳐지고 이기대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입니다. 가야 할 황령산과 금련산은 모두 철탑이 짓누르고 있는데 산행은 돌담을 따라 5분쯤 내려가면 오거리 안부입니다.
좌우 무시하고 직진하면 약간 가풀막이지만 산길은 곧 편편해지며 사자봉이 잘 드러난 전망대에서 다시 한 번 사방을 둘러봅니다. 사자봉을 이루는 암괘가 대단한 위용입니다. 20분이면 황령산 봉수대에 올라섭니다.
황령산 봉수대는 조선시대 세종 7년 이전부터 있었다하며 동구 구봉봉수대에서 신호를 받아 해운대구 간비오산과 금정산 계명봉수대로 연결하여 서울 남산봉수대까지 연결되는 봉수대였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구의 출몰을 알린 봉수대로 ‘이충무공전서’는 기록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부산의 중심지인 동구 진구 서면 일대와 엄광산 구덕산 백양산 금정산 등 부산 도심과 산이 펼쳐집니다. 황령산 봉수대를 내려서면 포토존과 ‘황령산 쉼터 전망대’가 조성되었고 이곳에 카페까지 있는 것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전망덱을 올라서면 황령산 정상석을 지나고 능선길을 따라 금련산으로 향합니다.
산길은 ‘황령산·금련산 횡단도로’에 내려서고 오른쪽 도로를 따라갑니다. 도로 좌우는 황련산과 금련산의 유명한 벚꽃길입니다. 지금은 겨울철이라 황량한 모습이지만 4월이 오면 이 길은 상춘객으로 벚꽃과 관광객으로 장관입니다. 황령산 봉수대에서 30분이면 도로를 이탈하여 왼쪽 금련산 방향으로 향합니다.
금련산을 돌아가는 산길은 정상 밑 삼거리에 닿는데 왼쪽은 부산여상·수영터널 방향, 남천역 방향은 오른쪽입니다. 금련산 정상을 두고 오른쪽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10분이면 사각정자와 체육시설이 있는 헬기장이며 ‘망미동·동수영중학교 1.1km’, ‘광안동 굴다리 1.0km’ 는 직진방향, 남천역은 오른쪽 ‘금련산 청소년수련원 1.2km’ 방향입니다.
10분이면 산길은 금련산을 도는 임도를 걷고 다시 ‘황령산·금련산 횡단도로’에 닿으면 화장실이 있는 갈림길입니다. 왼쪽은 ‘광안동 굴다리 0.9km’ 방향. 직진하여 ‘금련산 청소련수련원 0.6km’ 방향으로 도로 옆 흙길을 갑니다. 곧 광안대교가 훤히 보이는 전망 데크를 지나고 금련산 청소년수련원입구를 지나 5분이면 금련산 5번이정표인 사거리입니다.
왼쪽은 ‘옥천약수터 1.3km’ 직진하면 ‘공무원교육원 0.6km·남천동(중앙교회)0.5km’ 방향, 남천역은 오른쪽 ‘남천동(목양교회·동원보라아파트) 1.0km’ 방향입니다. 내나 도로 옆길을 따라 하산합니다. 도로와 만나면 가로질러 맞은편 산길로 하산합니다.
곧 ‘남천동(목양교회·동원보라아파트) 0.7km’ 이정표를 지나고 능선길을 내려가면 400여년 전부터 매년 음력 10월초에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 천신각을 지나면 바로 목양교회에서 산행을 마무리하면 인근에 도시철도 남천역입니다.
부산시 기장군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1년 기장향교 여행을 했지만 이번에 다시 기장향교 구경을 하고 왔습니다. 향교야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것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향교가 있던 동네는 교리, 교동, 서원이라 불렀는데 이곳 기장향교도 기장군 기장읍 교리로 부르고 있습니다.
기장향교 입구에 도착했는데 외삼문이 닫혀 있는 게 못보고 가나하며 옆집 마당에서 풍화루를 보았습니다. 할 수 없지 하며 예전에 봤던 것을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이제 돌아갈 요령으로 나왔는데 왼쪽에 예전에 없던 향교 부속건물이 새롭게 지어져 있었습니다.
서원 관리실이라 생각하고 저곳에 관리인이 있던지 들어가면 되겠다 싶어 올라갔는데 향교로 출입하는 문이 있었습니다. 그곳을 통해 명륜당과 풍화루 사이의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기장향교는 1617년 광해군 9년에 처음 창건하였습니다. 1855년(철종6년)에 중건을 하고 ‘성묘중수기’를 남겼으며 현재 기장향교 건물은 이때 조성되었습니다. 기장향교도 기존 향교와 같이 전학후묘의 양식을 따랐습니다.
옛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유생들의 강학 장소인 명륜당 그리고 풍화루와 외삼문을 일직선으로 배치 하였습니다. 강학장소인 명륜당 좌·우로 유생들이 기거하는 숙소인 동·서재를 두었고 향교를 출입하는 외삼문인 세심문을 따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세심문을 들어서면 2층 누각인 풍화루가 나옵니다.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익공계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조선 후기의 양식을 따랐습니다. 풍화루의 상량문을 보면 임진왜란 이후에는 남루라 하다가 후대에 풍화루로 다시 바꾸었습니다. 1855년 기장향교를 중수하면서 내삼문, 명륜당, 동·서재, 외삼문, 고사, 담장 등을 수리하면서 그때 풍화루도 중건하였습니다
최근에 발견된 남루의 상량문에 1628년(인조6년)남루를 개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17세기 초에도 풍화루와 비슷한 남루가 향교 앞쪽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의 기장향교 풍화루는 여러 번 고쳐졌는데 1938년, 1975년에 각각 수리하고 1975년 단청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1981년 개축과 2001년에 기둥을 보수했습니다.
풍화루는 19세기 중엽에 지어졌으며 여러 번의 수리로 원형이 조금 바뀌어 진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과장된 장식적인 건축양식 등을 보아 조선말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명륜당과 대성전은 경사진 땅을 적절히 배치하여 위계질서를 나타내며 대성전은 정면3칸과 측면3칸의 맞배지붕입니다. 또한, 정면의 기둥 중간부분까지 초석을 올렸으며 양측벽에 잡석을 쌓아 방화벽과 비바람에 훼손되지 않게 하였습니다.
☞(부산여행/금정구여행)서동미로시장. 이색 벽화가 있는 전통시장 서동미로시장과 달인 출연 30년전통 계란만두로 청춘의 입맛을 사로잡은맛집맛나분식
티브이를 보다 우연히 알게 되었던 부산광역시 금정구 서동 미로시장. 다음날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서동시장 안에 그려진 벽화에 마구간의 송아지 등 이색적인 그림이 많이 소개되어 벽화구경도 하고 그리고 서동시장에 미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궁금했습니다.
미로란 “어지럽게 여러 갈래로 갈라져 헛갈리기 쉬운 길”을 말합니다. 서동미로시장을 보면서 딱 그 짝이었습니다. 미로 이름처럼 완전 골목골목을 끼고 어디가 어디인지 천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많은 골목에 형성된 시장을 보면서 미로가 따로 없었습니다.
서동미로시장의 태생을 보면 이곳은 1960년대 말에 정책적으로 철거민을 강제로 이주시켜 하나둘 사람이 모여들면서 1970년대부터 형성된 마을로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자연적으로 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한일자로 골목에 길게 이어진 골목시장과 서동시장 그리고 보리밥 골목인 향토시장이 합해져 서동미로시장이 탄생하였습니다. 서동미로시장은 옹기종기 서로 모여 있는 일반 전통시장과 달리 미로처럼 얽혀있는 골목과 여러 곳의 입구 등 애로점이 아주 많았는데 2014년 서동미로시장 육성사업단을 만들면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또한, 서동삼거리에서 서동 고개까지 이어지는 1.5km의 길고 좁은 골목이 마치 ‘미로’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서동미로시장 육성사업단에 의해 미로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길과 길로 이어져 소통되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시장으로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1960~70년대 시장의 옛 모습은 아직도 남아 있으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문화체험도 할 수 있는 요즘으로 말하면 젊은이가 찾는 현대식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 넓은 미로시장에 하늘을 가린 지붕이 모두 만들어져 비가와도 전혀 괜찮았고 중간중간 티브이 모니터가 달려 미로시장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서동미로시장의 시설은 요즘 인기 있는 유명 대형마트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라디오 스타“ DJ가 틀어주는 뮤직 박스 그리고 저렴한 가격에 풍부한 먹을거리, 만물상회로 비견되는 없는 게 없는 전통시장 서동미로시장은 시장투어도 하면서 서동시장의 맛집 탐방도 한번 계획하면 정말 최고입니다.
단돈 1만원에 4명이 배불리 먹는 곳이 이곳 서동미로시장입니다. 옛날 짜장이 단돈 2,000원, 옛날 짬뽕이 단돈 3,000원 냉온국수 1,500원 비빔국수 2,500원 시장에서 맛보는 순대 떡볶이 부침개 등 다양한 먹거리가 정말 저렴했습니다.
그리고 미로전통시장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30년 된 맛집이 있습니다. 미로시장 1길 중간쯤에 있는 맛나분식입니다. 공중파 방송인 ‘달인’에 출연을 했다고 사진이 붙어 있는데 학창시절 추억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필자는 도시철도 4호선인 서동역에 내려 지도검색을 하기 위해 서동미로시장을 검색했는데 블로그에 올라온 맛집에 맛나분식(051-522-9757)의 ‘계란만두’를 극찬하여 달걀로 만든 만두하며 매우 궁금했습니다.
마침 시장에 그려진 벽화를 찾는다고 여러 곳을 찾다가 매장안과 밖에 대기한 사람을 보고 ‘뭐지’ 하며 간판을 봤더니 인터넷 검색에서 보았던 맛나 분식이었습니다. 내려올 때 가야지하면서 벽화를 보고 다시 찾았지만, 여전히 바빴습니다.
순대 떡볶이 부침개 등도 있지만, 달인에 나왔다는 계란만두를 주문했습니다. 1인분에 1,000원이며 2인분을 주문했는데 손님은 계속 들어오고 밖에서는 계란만두 포장 주문이 쇄도했습니다.
마침 초등학생과 함께 들어온 아주머니는 아이와 함께 계란만두 등을 주문하면서 남편이 계란만두를 사오란다며 5,000원 포장도 따로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모자지간에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학창시절에 계란만두를 먹으려고 많이 왔다고 ”맛있다“며 아이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도 그 맛이 엄청나게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계란만두 만드는 방법을 보게 되었습니다. 넓은 철판위에 먼저 당면을 깔고 그 위에 날달걀을 깨서 올립니다.
그리고 넓게 펴고 나면 그 위에 밀가루(?)를 풀었는지 하얀 액체를 올리고 불에 익으면 끝입니다. 2~30년 전 간식이 귀했던 시절에는 계란만두가 학생에게는 중요한 단백질 보충과 맛으로 아주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영양보충에는 계란만두가 최고였겠습니다.
그 때문인지 당시 단골이 된 학생이 3~40대 청장년층이 되어 옛 생각을 하며 많이 찾는 모양입니다. 제가 인터넷 검색을 해서 왔으며 학생들이 좋아했을 것 같다고 했더니 골목 시장 끝에 학교가 여러 곳 있어 특히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전통시장인 서동미로시장에서 시장투어를 하면서 골목에 그려진 벽화도 찾는 이색적인 경험과 저렴한 먹거리가 너무나 풍부한 서동미로시장 여행을 추천합니다. 저도 옛날 생각을 하며 계란만두를 2,000원 포장하여 총총히 시장을 나왔습니다. 우리 골목시장인 전통시장이 정말 좋습니다.
☞(부산여행/연제여행)연산동 생태마을 물만골마을. 1970년에 멈춰버린 마을 '응답하라 1970'이 궁금하다면 황령산 물만골 마을 여행을 추천합니다.
지난 주말 물만골에 다녀왔습니다. 부산 동구 안창마을, 남구 문현동 안동네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연제구 물만골 등은 부산 대표 낙후지역인데 그중에서도 감천문화마을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로운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연제구 물만골에도 최근 ‘주민 자립형 생태 마을’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합니다. 지금까지는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때려 부수고 하는 무분별한 개발에 자연 생태계가 모두 파괴되어 사라져 버렸는데 물만골의 자연환경에 맞는 정비 사업을 계획한다니 황령산과 금련산을 즐겨 찾는 부산시민으로서 정말 반가운 뉴스였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와 찾아 나섰던 물만골.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은 없지만 유독 황령산과 금련산은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물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 덕분인지 체육공원마다 목을 축여주는 샘터가 만들어져 운동 전후 시원한 생수도 마시며 물통에 물을 담는 주민도 많았습니다.
그중에도 연제구 연산동의 물만골은 연중 차디찬 맑은 물이 황령산에서 흘러내려 ‘물이 넘친다’하여 물만골 또는 수만골로 불렀습니다. 예로부터 산 좋고 물 좋은 곳에는 사람이 살기 마련입니다. 한국동란 때 군사용 시설이 황령산과 금련산 정상에 들어서면서 도로가 개설되었고 또한, 목장이 들어서면서 집들이 물만골에 들어선 게 마을 형성의 시초였습니다.
또한, 해방과 한국동란으로 급격하게 불어난 피난민들이 초량동 등의 부산항 매축지에 움막을 짓고 살았는데 대한민국의 관문인 부산항의 미관 때문에 1964년 강제 철거되면서 철거민들이 물만골에 대거 이주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6~70년대 풍운의 꿈을 안고 도회지로 탈농촌을 꿈꾸던 청춘들이 풍찬노숙을 피해 우선 먹고 살기 위해 물만골로 찾아온 게 오늘날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70년대로 시간이 멈추어 버린 물만골 마을을 찾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부산의 중심이라는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시청역 4번 출구에서 연제1번 마을버스를 환승하면 바로 물만골 마을로 직행합니다. 또 다른 방법은 도시철도 3호선 물만골역에 내려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방법입니다. 필자는 전자인 시청역에서 연제1번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물만골 입구에 내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일정으로 잡았습니다.
물만골 마을을 둘러보고 먼저 놀랐던 게 두 가지입니다. 좁은 골짜기를 끼고 무슨 절집이 그리 많은지, OO사(寺)하며 수십 개의 사찰과 집집이 내걸린 빨래였습니다. 마침 전국을 강타했던 동장군의 기승에 물만골도 예외가 아니었나 봅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주말의 포근한 날씨에 집집이 밀렸던 빨래감을 빨아 늘었습니다. 걸린 형형색색의 옷을 보면서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집 마당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빨랫줄에는 물먹은 옷이 주렁주렁 걸렸습니다. 옷은 마르기도 전에 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동태가 되었으며 소매 끝에는 고드름이 달렸습니다. 그 고드름을 따서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무런 맛도 없었습니다. 물만골에서 널린 빨래를 보면서 어릴 적 추억이 그려집니다.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은 슬레이트 지붕은 이제 도심에서는 없는 풍경입니다. 물만골에도 이제 슬레이트 지붕은 단열 패널로 교체하는 집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유독 파란 지붕과 파란 물탱크가 돋보였던 물만골에 계곡을 끼고 쌓아 올린 축대와 그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집, 얽기 설기 판자를 엮은 집, 블록을 쌓아 형태만 갖춘 집이 아직도 많아 물만골의 환경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만골은 원래 무허가로 들어선 마을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치단체의 무허가 철거 정책에 맞서기도 했으며 1999년에는 마을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부지를 공동 매입하여 지금은 ‘물만골 공동체 마을’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 좋은 환경의 물만골을 꿈꾸고 있습니다.
마을이 3~40년 전 낙후된 모습이다 보니 이곳도 ‘응답하라 1988’ 같은 우리의 옛 모습을 담는 영화 촬영 세트장으로 많이 이용하였습니다. 특히 2006년 윤제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임창정과 하지원이 주연한 ‘1번가의 기적’은 모든 신이 물만골에서 촬영될 정도였습니다.
재개발 지역 마을 사람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꿈을 그렸던 1번가의 기적에서 물만골은 청송마을이 되었습니다. 황령산 정상에서 보면 푸른 숲에 둘러 진짜 청송마을 같았습니다. 영화처럼 연제구 연산동 물만골 마을도 언젠가는 재개발이란 유혹이 찾아올 것 같습니다. 개발이라는 핑계로 무분별한 파괴보다는 물만골만의 특색을 찾아 자연 환경과 주민의 편리성 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해법을 함께 찾아 개발하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면 찾아가고 싶은 물만골 마을을 아이와 함께 골목길을 걸어보세요. 도심에서 느끼지 못하는 사람 사는 냄새가 확 느껴집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삶에 방해가 있어 서는 안되겠습니다. 따뜻한 주말에 찾았던 물만골 마을의 정겨운 모습을 가슴에 담고 다시금 타임머신을 타고 2016년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서구 산복도로 해돋이로 벽화거리, 달동네라고요. 까꾸막이라고요. 내 고장 부산 서구 산복도로가 '생태바람길로' 이리 바뀌었습니다.
내 고장 부산 서구에는 천마산이 있습니다. 원추형의 천마산 산 사면을 따라 4개의 도로가 평행선을 긋고 돌아갑니다. 그중 부산공동어시장 앞 충무대로를 제외한 3개는 산복도로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산복도로는 부산에만 있는 특이한 도로입니다. 그것도 부산 서구는 평지에 있는 주택보다 산비탈에 개설된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주택이 필자가 보기에는 더 많습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얼마 전 버스를 타고 송도아랫길로 출근하는데 대구에서 오신 아주머니 두 분이 하시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와~ 저 집 봐라. 집이 벽에 붙었다. 아이가. 저런데 무서버서 어찌 사노”하시면서 혀를 끌끌 차시길 레 산복도로 마을이 형성된 유래를 설명해 드렸더니 대구에는 “저런 집이 없어 예” 하시면서 "처음 봐서 놀랐심더"하셨습니다.
1960~70년대는 밤에 외국 국적의 배가 부산항으로 들어오면 부산의 발전상에 깜짝 놀랐다 합니다. 엄청나게 높은 빌딩에 불이 켜진 것을 보면서 한국이 이리 발전했구나하였고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떠면 또 한 번 놀랐다합니다. 그 높은 빌딩은 신기루 마냥 온데간데없고 산비탈에 성냥갑만 한 판잣집이 엄청난 높이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전기공급도 잘 안되든 시절입니다. 또한, 가로등도 잘 없던 때라 모든 게 암흑천지였습니다. 집집이 촛불이나 호롱불, 전등 한 개씩을 켜 놓은 게 외국인의 눈에는 초고층 빌딩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을 일이지만 그 당시는 참 암담했던 우리나라 현실입니다. 하하 산복도로 이야기를 하다 이야기가 너무 나간 것 같습니다.
서구 아미동과 남부민동 산복도로는 천마로, 해돋이로, 천마산로라는 도로명이 붙어 있습니다. 도로명에서 벌써 남다른 느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중 이번 포스트는 '해돋이로'입니다. 해돋이는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본다는 뜻이고 그만큼 전망이 좋다는 뜻도 포함됩니다.
그러면 역설적으로 높이 개설된 도로를 뜻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그만큼 높이 개설된 도로입니다. 이번에 해돋이로가 ‘생태바람길’로 거듭났다기에 이웃님께 소개하겠습니다. 오가며 가끔 지나다니는데 언제부턴가 벽화가 그려진 걸 보았습니다. 웬 벽화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난 일요일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는 강추위 속에 왜 간다고 나섰는지...
해돋이로 입구에 딸이 내려주면서 “아빠 추우면 빨리 집에 오세요” 하는 말을 하였는데 정말 추워서 중간쯤에서 탈출했습니다. 날씨가 좀 풀리면 다시 한 번 가야겠습니다. 그래도 담아온 사진이니 몇 장 소개합니다. 생태 바람길은 환경부 공모사업으로 국비와 시비를 합해 6억9000만원을 투입하여 추진하였습니다.
‘친환경 지속가능한 도시조성사업'의 목적으로 조성하여 지난해 말 완공했습니다. 그 결과 골목이 확 달라졌습니다. 서구에서 특히 아미동과 남부민동의 산복도로 주변의 낡고 오래된 옹벽과 석축 약 280m에다 키가 작은 관목과 덩굴식물을 심어 회색 콘크리트 옹벽을 삭막함이 아닌 푸르고 화사한 분위기로 들게 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콘크리트 옹벽을 가리는 녹화사업입니다. 앞으로 여름이오면 푸른색으로 바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옹벽 사이에는 시각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입체조형물을 설치하여 주변의 미관을 크게 개선하였습니다. 또한, 내 고장 구어인 고등어와 부산 서구에서 가장 큰 축제인 부산 고등어 축제에서 아이가 맨손으로 고등어를 잡는 모습 등 우리와 친근한 모습의 벽화가 줄줄이 이어집니다.
또한, 우리나라 상설해수욕장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100년 전통의 송도해수욕장 모습을 형상화한 벽화는 오래전 송도의 모습을 알 수 있으며 송도해수욕장 케이블카, 다이빙대 등 과거 송도해수욕장에 인기였던 시설을 다시 복원하는 프로젝터를 진행해 현재 다이빙대는 여름철 송도해수욕장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조만간 송도해수욕장 케이블카도 다시 복원된다고 하니 그때가 기다려집니다.
또한, 해돋이로를 상징하는 해돋이 벽화에서 갑자기 가슴이 꿈틀 그렸습니다.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송도해수욕장과 해돋이로에서 일출을 보면 항상 따뜻한 태양의 기운을 받습니다. 아이를 목말 태운 아빠의 모습에 평화로운 서구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서구에는 여러 형태의 마을이 조성되어 있으며 서구를 대표하는 벽화 마을 중에서 비석마을과 딱밭골 벽화마을, 구덕령 꽃마을 등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 등을 겪으면서 생긴 마을이 여러 곳 남아 있습니다.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이곳 해돋이로와 연결되어 부산의 심장을 보기위한 관광코스로는 부산서구 산복도로인 해돋이로와 천마산로를 걸어보길 추천합니다.
부산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하며 놀랍니다. 특히 부산의 야경코스로는 천마산로가 으뜸입니다. 천마산로를 차로 한 바퀴 돌다 보면 누구나 부산 야경에 저절로 자동차를 세우게 됩니다. 해돋이로를 걷다가 모래바람이 얼굴도 때리고 춥고 진퇴양난이라 "마! 접자"며 골목길을 내려섰습니다.
그리 불던 바람도 잠잠해지며 좁은 골목길은 또 다른 '골목 풍경'을 보여줍니다. 천마로도 통과하고 충무동 골목시장에서 충무대로를 건너 충무해안시장을 돌았는데 명절을 앞둔 부산 최대 어시장인 자갈치와 충무시장은 이번 한파로 아직은 명절 기분이 나지 않고 한가했습니다.
남항으로 나갔습니다. 두루미 엮듯 어선은 꽁꽁 묶여 어서 날이 풀리기를 기다리는 모습도 사진에 담아보며 자갈치 구경을 하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산시 서구 산복도로인 해돋이로 생태 바람길 벽화 여행도 즐기고 송도해수욕장에서 태양의 기운도 한번 받아보세요.
아참 서구 남부민동에는 '울지마 톤즈'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님 생가도 있습니다. 해돋이로를 걸으면서 부지런하다면 만날 수 있습니다. 즐겁고 볼게 많은 부산 서구 여행 꼭 추천합니다.
☞(부산여행/영도여행)영도 봉래산 둘레길과 봉래산 산행. 발걸음이 즐거운 부산 최고 섬산행지 봉래산 둘레길과 산행.
부산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영도는 신석기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조개무지 등 발굴된 유적지를 통해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터를 이루며 살았는데 신라시대 이후부터는 이곳에 군마를 키운 목마장이 있었습니다.
전해진 예기로는 영도에서 기른 말은 모두 명마로 알려져 신라 성덕왕이 삼국통일을 이루는 데 공헌한 김유신의 공을 치하하며 그의 손자 윤중에게 이곳의 절영도 명마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습니다. 또한,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백제의 견훤이 태조 왕건에게 절영도의 명마를 선물로 보냈다가 ‘백제가 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돌려받았다는 기록 등을 보면 부산은 천마산 아래 초장동과 이곳 영도에서 군마를 많이 생산했던 것 같습니다.
영도의 유래도 말과 무관치 않습니다. 얼마나 빠른 말을 길렀는지 말이 한번 뛰었다하면 자신의 그림자도 따라오지 못했다하여 절영도로 불렸습니다. 그러다가 1910년경인 일제 강점기 때는 절영도를 목도라 하며 군마를 기르게 하여 대륙정복의 야욕을 키웠습니다. 지금의 영도는 절영도의 ‘절’자를 빼고 ‘영도’라 부르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도의 중심에는 봉래산이 있습니다. ‘봉황이 날아드는 산’인 봉래산은 삼신산의 봉래산과 똑같은 산 이름을 사용합니다. 지금은 봉래산으로 제 이름을 찾았지만 최근까지는 고갈산이라 불렀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고갈시키다’는 뜻인 고갈산으로 불렸던 게 그 이유인데 다시금 제 이름을 찾아 정말 다행입니다.
신선이 살 정도로 아름답다는 영도 봉래산은 부산을 대표하는 산입니다. 내륙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섬 산행의 진수를 가까이서 만끽할 수 있어 전국의 산꾼들이 즐겨 찾는 산행 대상지입니다. 또한,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는 봉래산 허리길인 둘레길이 만들어져 느린 걸음으로 영도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부산항 관문에 설치된 부산항대교 전망대가 영도로 알려져 영도의 진가는 더욱 뛰고 있습니다. 이번 봉래산 산행에서 먼저 영도 봉래산 둘레길을 걷고 봉래산의 진수인 조봉~자봉~손봉을 산행하는 경로로 꾸몄습니다.
봉래산 산행 경로를 보면 외나무약국 버스정류장~산정로 노인 쉼터~둘레길 입구~편백 삼림욕장~해돋이 벽화마을~청봉약수터~자연생태공원~해련사 입구~장사바위~고신대 갈림길~임도~목장원 삼거리~함지골 편백산림욕장~산불초소~복천사 약수터~복천사 주차장~산제당·아씨당~봉래체육공원~불로초공원~KBS송신소~봉래산 정상(조봉)~안부 갈림길~자봉~손봉~임도~절영 종합사회 복지관~절영 복지회관 정류장에서 산행을 끝낸다. 봉래산 둘레길과 조봉~자봉~손봉을 걷는 봉래산 산행 총거리는 약 9km에 산행 시간은 4시간쯤 걸렸습니다.
먼저 산행을 위해서 영도구 신선동의 외나무 약국 버스정류장까지 갑니다. 그곳에서 목욕탕 뒤 골목길을 올라가면 봉래산 산행 입구인 ‘산정로 노인 쉼터’가 나옵니다. ‘대법사·산제당 입구’이며 둘레길은 대법사 방향으로 20m 가면 왼쪽에 봉래산 둘레길을 통과하는 문과 이정표가 있습니다. 해돋이 배수지 방향을 보고 따라갑니다.
체육시설도 만나고 유림아파트 뒤를 지나면 봉래산 체육공원 갈림길과 만납니다. 해돋이 배수지 1.41km 직진 방향입니다. 올곧게 뻗은 울울창창한 편백 숲에 매우 많은 피톤치드가 공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지 내 머리도 한결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편백 산림욕장을 지나면 둘레길은 갈림길입니다.
오른쪽으로 꺾어 해돋이 배수지 이정표만 보고 갑니다. ‘영광마린아파트’이정표 갈림길에서도 해돋이 배수지 방향입니다. 살짝 오르막을 오르면 갑자기 이곳까지 마을이 올라와 있습니다. 영도에서 가장 높은 해돋이 마을입니다.
최근 환경개선사업 목적으로 마을 전체에 아름다운 벽화로 돋을새김 하여 한결 마을 분위기가 밝아졌으며 청학동 벽화마을로 알려져 새로운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서서히 부산항 대교의 웅장한 모습을 보면서 마을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면 만나는 갈림길에서도 해돋이 배수지 방향입니다. 솔숲을 따라가면 물소리가 들리는 청봉약수터입니다. 다시 만나는 이정표에서는 해련사 방향. 곧 철망 문을 통과하면 자연생태공원입니다. 봄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피는 곳으로 가족 단위로 편백 아래 쉼터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습니다.
해련사 입구 임도를 직진하면 곧 우뚝 솟은 장사바위와 만납니다. 장사바위에 장사의 신발과 같은 돌이 얹혀 있는데서 유래를 합니다. 봉래산에 9척이 넘는 장사가 살았는데 매일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청학동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힘도 세고 덩치가 크다 보니 한 끼에 쌀 한말을 먹어 치웠는데 하루는 마을에 괴물이 나타나 처녀를 잡아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장사는 지금까지 먹은 밥값을 할 요량으로 괴물과 싸우다 함께 죽었으며 장사는 신발 모양의 바위로 변했다합니다. 전망대에 올라가서 보면 꼭 큰 짚신을 닮았습니다. 이제 ‘목장원(2.28km)’ 이정표를 보고 갑니다. 그리고 이정표의 갈림길 오른쪽은 모두 봉래산 정상 방향입니다.
이기대 방향인 신선대 부두와 오륙도, 해양대학교의 아치섬과 국립해양박물관의 독특한 건물도 보게 됩니다. 다시 체육공원이 있는 샘터를 지나고 30분이면 고신대학·목장원 방향인 왼쪽으로 내려갑니다. 곧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이며 이정표에 목장원 방향으로 갑니다.
이제 편안한 임도에 내려서고 손봉으로 향하는 갈림길을 무시하고 15분이면 남항 앞바다의 묘박지를 볼 수 있는 전망 덱에 도착합니다. 많은 배들이 거친 항해에 지쳤는지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10분쯤임도 길을 걷습니다. 목장원 삼거리에서 ‘봉래산정상·복천사·백련사’ 방향인 오른쪽 임도입니다.
함지골 편백 산림욕장을 지나면 5번 산불초소에서 임도는 끝나고 오솔길을 따라 복천사 방향으로 갑니다. 곧 영선아파트 갈림길에서 오른쪽 복천사 방향입니다. 20분이면 만나는 전망 덱은 봉래산 둘레길 막바지에 만나는 구간으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봉래산 둘레길에서 이 부분이 가장 아름다운 코스며 경관을 보여줍니다.
남항대교와 송도해수욕장 등 남항과 자갈치 시장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복천사 약수터에서 왼쪽 복천사(0.23km) 방향으로 내려서면 복천사 입구 주차장입니다. 맞은편의 둘레길 문을 통과합니다. 유림아파트 갈림길 이정표에서 산제당은 오른쪽입니다.
곧 산제당 밑 모퉁이를 오른쪽으로 꺾어 봉래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산제당과 아씨 당은 영도를 대표하는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절영도의 목마장에서 말을 훈련해 조정으로 보내는데 그날 밤에 말이 원인 없이 매번 죽어나가 부산진첨사 정발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원인을 알아보니 시종을 거느린 여자가 봉래산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느 날 밤 정발 장군의 꿈에 선녀가 나타나 말하기를 자신은 한라산을 지키는 선녀입니다.
신돈에 꾐에 빠져 최영장군이 제주도로 유배를 왔습니다. 저는 최영장군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의 첩이되었습니다. 그런 뒤 최영장군은 유배가 풀려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최영장군의 소식만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최영장군이 영도에 귀향을 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영도 봉래산으로 급히 달려왔지만 최영장군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위해 이곳 봉래산에 사당을 지어주면 말이 죽어 나가는 일을 없게 해주겠다며 사라집니다.
정발장군은 조정에 이 사실을 알렸고 왕은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어명을 내려 산제당과 아씨당을 짓고 선녀의 넋을 위로 하게하였더니 그 후에는 말이 죽어나가는 일이 없게 되었다합니다. 산제당을 지나면 봉래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골짜기를 타고 이어집니다.
여러 번 갈림길이 나오지만 위로 향하는 길은 모두 봉래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가장 뚜렷한 산길을 30분 따라가면 헬기장이 있는 봉래산 체육공원입니다. 맨 왼쪽 끝에 2층 정자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가야 할 봉래산 정상과 송신소 중계탑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헬기장을 지나 시멘트 포장길을 오릅니다.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불로초공원입니다. 중국의 진시황이 서불에게 동남동녀 5천명과 함께 불로초를 구해 오게 했는데 중국에서 구할 수 없자 우리나라 남해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제주도와 남해 금산 등 여러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이곳 봉래산에도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서불이 왔다합니다. 그 이름을 따 생긴 공원으로 보입니다.
불로문 전망덱 야경
최근 이곳에는 불로문 전망 덱이 새로 조성되어 부산항대교, 신선대부두와 이기대, 아치섬등 북항 최고의 전망대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불로초공원을 가로질러 KBS 송신소를 지나 약 40분이면 봉래산 정상인 조봉에 올라섭니다. 이곳에서 보는 신선대 부두 방향 조망도 정말 보기가 좋습니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나가면 바위 전망대가 열리는데 그곳에서 보는 부산의 전망은 압권입니다. 발아래 영도다리와 부산항대교, 용두산공원과 대청공원 등 부산 서구·중구·동구를 속속들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저녁 일몰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사진애호가가 이곳을 찾을 정도로 아름다운 노을을 보여줍니다. 아마 부산 노을 1번지로 강력히 추천합니다.
봉래산 정상석 뒤에는 특이한 바위가 있습니다. 영도 할매바위로 불리는데 이곳에는 항상 사탕 등 먹을 게 놓여 있습니다. 멋모르고 이 바위에 올라갔다가는 영도주민에게 혼쭐이 납니다. 조심하길. 할매바위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영도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영도 삼신할매는 평소에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자식을 보살피듯 모든 영도주민을 보살핀다합니다.
그러나 영도에서 돈을 벌어 뭍으로 나가면 야멸차게 변하여 꼭 망하게 한 뒤 다시 영도로 돌아오게 하여 다시 품어 준다합니다. 영도를 벗어나려는 사람은 영도 봉래산 할매바위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사해야 한다는 우스개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믿거나말거나 그래서 영도주민은 되도록 영도를 벗어나지 않으며 떠났다가 실제로 다시 영도로 들어오는 분이 꽤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직도 해가 중천에 걸려있어 아름답다는 저녁노을을 기다릴 수 없으며 ‘봉래산 손봉·목장원’을 향해 출발합니다. 정상을 내려서면 안내판 앞 갈림길이며 직진하여 능선을 향하면 됩니다. 오른쪽은 복천사 방향. 봉우리에 전망이 열리면서 태종산과 묘박지, 망망대해의 남해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곧 오거리 안부에 닿습니다.
왼쪽은 봉래산 체육공원과 광명고등학교, 오른쪽은 목장원으로 내려가며 자봉은 봉래산 손봉의 직진능선입니다. 곧 2층 정자인 봉래산 자봉(387m)입니다. 산불초소와 정상석이 있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손봉으로 향합니다. 조봉에서 30분이면 손봉 정상에 닿습니다. 북항과 오륙도, 해양대학교의 아치섬, 태종산 등 영도의 반쪽을 모두 즐길수 있는 전망대가 여럿있습니다. 또한, 중리해변 등 빼어난 전망을 손봉에서 마주하며 중리산과 태종대의 태종산이 손에 잡히게 가까이 있습니다.
봉래산 정상인 조봉은 할아버지 산이며 그의 아들이 자봉. 그리고 가장 낮은 봉우리는 손자를 뜻하는 손봉입니다. 손봉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왼쪽은 목장원 방향이고 그대로 직진하여 능선을 탑니다. 정면에 소나무가 있는 바위에서 등산로는 왼쪽으로 꺾이며 내려갑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절경 또한 매우 빼어나 섬산행의 즐거움인 조망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덱 계단을 내려서고 마지막 전망대 직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갑니다. 두 방향 모두 목장원 임도로 내려갑니다. 임도를 가로질러 반도보라아파트 방향입니다. 손봉에서 30분이면 절영종합사회복지관 앞이고 도로에 있는 절영복지회관 버스 정류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돌산공원과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우리의 삶이 벽화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여행.
흔히 팍팍한 살림살이인 산동네 마을을 달동네라 부릅니다. 달이 뜨는 하늘이 가깝게 보인다는 달동네는 부산에 여러 곳 있습니다. 필자는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부산의 많은 마을을 여러 곳 소개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게 감천문화마을이 그러하고 아미동 비석마을, 동대신동 닥밭골마을, 대청동의 산복도로와 초량동 이바구길, 수정동 산복도로, 그리고 범 5동 매축지마을 또한, 영도의 해돋이마을과 흰여울길 마을 등등이며, 이외에도 많은 산동네 마을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이 마을의 특징은 모두 한가지입니다. 그 이유를 보면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 때 밀려드는 피난민과 강제징용으로 일본과 동남아로 끌려갔던 우리 동포들이 부산항으로 한꺼번에 몰려들었습니다.
부산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산이고 들이고 하천과 공동묘지를 구분하지 않고 한 뼘의 공간만 있으며 이들은 비바람과 추위를 피할 움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게 오늘날의 달동네라 부르는 산동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마을이 꼭 그때 생긴 게 아니란 것을 이번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을 보고 알았습니다. 6~7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전쟁의 참화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세계가 놀랄 만큼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와 함께 국력신장의 지표라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세계인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두 행사를 앞두고 판자촌마을 정비 계획을 시행합니다. 어둡고 칙칙한 판자촌 마을을 모두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분산시켜 집단 이주시켰는데 그중 한곳이 이곳 문현동 안동네입니다.
문현동 안동네는 그 당시 공동묘지였으며 그 빈 땅에 20여 가구가 옹기종기 살았습니다. 공동묘지에 한꺼번에 많은 이주민이 몰려들었고 빈 땅만 보인다면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추위를 피할 움막을 짓고 하여 지금의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지금도 마을에는 많은 망자의 무덤이 남아있었습니다. 명절 때면 무덤을 찾아 성묘하는 후손들이 많이 온다하니 무연고 묘는 아니라 합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모두 끌어 않은 문현동 안동네마을은 주변 도심의 격 혁한 환경변화로 도심 속의 흉물로 변했습니다.
그것을 벗어나고자 문현동 안동네는 2008년 마을주민이 모두 힘을 모아 벽화거리 시범사업을 실시하여 그야말로 지금은 환골탈태를 한 다정한 우리의 이웃 마을이 되었습니다. 마을의 분위기는 칙칙함과 어둠을 벗어버리고 밝은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그와 함께 벽화를 보기위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 부산벽화마을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6~70년대 우리 부모님이 그 어렵던 시절을 이겨내었던 흔적이 아직도 오롯이 남아 있는 마을입니다.
주위로 키가 큰 아파트도 들어서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꾸 올라가는 빌딩 숲에 언제까지 문현동 안동네 마을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문현동 안동네는 닫힌 우리 아파트촌 이웃 모습과 전혀 달랐습니다.
정겨움과 다정한 이웃의 정을 그대로 느끼는 마을 분위기를 보면서 안동네 골목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삶이 힘들고 팍팍하다고요. 그럼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을 여행해보세요. 우리의 삶이 벽화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부산여행/동구여행)초량 이바구 야시장. 청년 창업가의 톡톡 튀는 맛이 궁금하다면 부산 제2호 야시장 초량 이바구 야시장을 찾아보세요.
야호, 부산에서 드디어 두 번째 야시장이 개장되었습니다. 이름하여 부산 야시장 제2호 ‘초량 이바구 야시장’입니다. 부산에서 처음 생긴 야시장은 이제 전국적으로 알려져 그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부산 부평동 깡통야시장’입니다.
부평동 깡통 야시장은 세계적인 먹거리가 모두 모여 있는 부산대표야시장이라면 초량동 이바구 야시장은 젊은 감각이 톡톡 튀는 그런 멋진 곳입니다. 초량 이바구 야시장을 개장했다는 소문을 듣고 퇴근과 함께 칼 같이 달려갔습니다.
부평 깡통야시장을 벤치마킹해서인지 그 모습은 비슷했습니다. 일률적인 포장마차 형태로 꾸며져 있었지만 그러나 그 분위기는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초량 이바구 야시장의 특징은 청년 창업가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전통시장의 침체한 분위기를 아마 이분들이 많이 끌어 올릴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전통시장도 살고 야시장도 더욱 활기차게 타오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초량 이바구 야시장은 바로 부산역과 마주 보고 있으며 부산에서 이 골목을 모른다면 간첩으로 통한다는 ‘초량 돼지갈비 골목’과 바로 이웃하는 부산 대표 상권이라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 있는 초량 이바구 야시장, 그리고 야시장 골목이 넓어 포장마차에서 음식 등을 먹기에도 정말 편했습니다.
이제부터 초량 이바구 야시장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사진을 담는다고 담았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상품과 먹거리가 ‘천지 삐까리’로 있습니다. 이바구 야시장은 초량 전통 시장 내에 150m 구간인데 하나은행 초량지점 왼쪽 건물로 들어서면서 시작되고 새부산병원까지입니다.
가장 먼저 야시장을 알리는 네온사인 간판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여기가 야시장입네!’ 하며 반깁니다. 먼저 ‘면데이’에서 따뜻한 국물로 속을 데우고 출발합니다.
짜조, 베트남 만두, 일본 40년 전통의 수제 프리미엄 꼬치구이 ‘야끼동 겡끼’의 구이 냄새에 이끌려 발을 멈추게 했는데, 고기선별과 해체, 굽는 과정 등 제대로 된 일본 꼬치 요리법을 배웠다며 청년 창업가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아주 먹음직스럽게 보였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총빙, 우리 음식인 삼색 파전이 정말 아름다웠고 먹음직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호떡과 생소한 모양을 한 어묵은 ‘맛보기’를 먹었는데 쫀득한 게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어묵하면 부산 어묵 아잉교.
그리고 ‘단지’에서는 건강한 간식이라며 물꾸럭 튀김을 판매합니다. 생소한 이름 ‘물꾸럭’은 제주 방언으로 문어를 말합니다. 꼬지를 튀기는데 주꾸미로 오해를 한다며 준비한 문어를 보여주었습니다. 타우린이 풍부하며 100% 수작업을 한다합니다.
야시장에서 가장 어르신으로 보입니다. 역시 겨울에는 최고의 간식으로 군밤만 한 게 없습니다. 똥집과 닭꼬지도 먹음직하고 옆에서 ‘가마니’ 먹고 가세요. 하기에 가마니? 앵 웬 가마니 하며 궁금했습니다.
상호는 ‘오지다 가마니’, 가마니가 먼데요 하며 물었더니 우리 전통 음식이라 합니다. 한 개 달라고 하니 젊은이는 치즈와 유부를 즐겨 먹는데, 저를 쓱 보시더니 어르신은 팥 가마니를 즐겨 드십니다 합니다. 그래서 팥을 달라했습니다.
팥 가마니는 꼭 화덕에 구운 팥빵 맛이었습니다. 팥이 살짝 씹히는게 달곰하고 정말 맛있습니다. 유부국물과 함께 먹으라며 국물도 따로 담아주었습니다. 이런 맛과 기분으로 야시장을 찾는 것 같습니다.
초량 이바구 야시장 인근에는 부산 동구에서 가장 유명한 ‘초량 이바구길’ 출발점입니다. 근현대사의 아픔과 기쁨을 그대로 간직한 힐링 코스로 청마 유치환의 우체통, ‘기다리는 마음’의 시인 김민부 전망대, 바보의사 장기려박사 ‘더 나눔’ 부산의 최초 근대병원 ‘백제병원’ 등 많은 이바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산여행에서는 빠질 수 없는 초량 이바구 길을 걸었다면 저녁에는 초량 이바구 야시장에서 부산에서 맛볼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만나보세요. 그리고 따뜻한 부산만의 정을 느껴보세요
☞(2015년 제11회 부산불꽃축제)2015 제11회 부산불꽃축제 행사 일정표와 부산불꽃축제 관람 명당자리입니다.
올해에도 부산시 수영구 광안리 광안대교에서 화려한 부산 불꽃축제가 시작됩니다. 2015년 10월 23일(금)~24(토) 양일간 열리는 부산 불꽃축제는 올해로 11회를 맞았습니다. 올해에도 일본, 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해보다 더 많은 볼거리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합니다. 그리고 11회 부산 불꽃축제는 예년과 다르게 부산 불꽃 축제를 “불꽃축제 국제화와 관광상품화 원년”으로 정해 체류형 관광상품화를 통해 더욱 높은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일부 관람석을 유료화를 시도 하였습니다. 광안리 해수욕장 백사장에서 가장 명당자리에다 1만 명을 수용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유료관람석은 테이블과 의자를 갖추었습니다. R석은 10만원 1000명, S석 7만원 9000명 그리고 광안리해수욕장 유료화 좌석 이외에도 부산 불꽃축제를 관람할 수 있는 명당은 여러 곳에 있습니다. 손꼽는 명당은 이기대와 동백섬 누리마루, 장산과 옥녀봉 및 간비오산, 금련산과 금련산 수련원, 광안리 해수욕장 등입니다. 참고하세요
◆제 11회 부산불꽃축제◆
★일자:2015년 10월23일(금)~24일(토)
★장소:광안리해수욕장
★10월23일(금);전야 콘서트
★1024(토);부산멀티불꽃쇼(오후8시~9시)
★부산 불꽃축제의 명당자리는 남구의 이기대와 동백섬의 누리 마루에서도 손색이 없습니다. 광안대교의 뒤쪽에서 솟아오르는 불꽃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곳 또한 손색없는 사진 촬영지입니다.
★힘은 좀 들지만 힘겹게 오른 만큼 불꽃축제 작품을 건지게 하는 곳이 장산 일원입니다. 이곳에서 찍은 부산불꽃축제 사진이 전국 사진작가를 열광하게 하며 나만의 사진 포인트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장산 정상과 장산 둘레길의 너덜 길, 옥녀봉, 그리고 간비오산이 명당자리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센텀시티를 빠져나가는 ‘s'자의 광안대교와 그 위로 터지는 불꽃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으로 명당자리로 손색이 없습니다.
★금련산을 오르는 도로를 따라 불꽃축제를 바라볼 수 있는데 금련산 수련원 안에는 많은 사진작가가 미리 포진하여 장사진을 이룹니다. 이곳 또한 부산 불꽃축제를 찍기 위한 사진 작가들의 명당 장소로 금련산 오르는 도로는 통제되어 걷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멋진 작품을 건질 수 있습니다.
★역시 부산 불꽃축제의 가장 명당자리는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곳인 광안리 해수욕장입니다. 7,420m의 광안대교를 전면으로 바라보며 그 위로 터지는 불꽃의 향연은 웅장하며 현장감 또한 단연 최고로 명실상부한 부산 불꽃축제 명당자리 1번지입니다.
올해로 부산 고등어 축제가 8회를 맞았습니다. 지난밤 전야제를 시작으로 부산 고등어축제 행사가 주말까지 부산 송도해수욕장 일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도 체험프로그램 위주로 열리며 관람과 체험, 홍보 및 부대행사로 프로그램이 꾸며져 많은 관광객에게 기쁨을 선사할 것 같습니다. 올해 부산 고등어축제 컨셉은 “고등어의 비상”으로 정해 전국 제일의 생산지인 부산 고등어가 비상하여 부산 수산 경제가 확 살아나길 기대합니다.
☞(부산여행/부산국제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 비프빌리지 오픈 토크에 출연한 무뢰한의 전도연을 만나다.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토크 전도연.
칸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화배우 전도연 씨가 지난 주말 부산국제영화제 해운대 비프빌리지 오픈 토크에 출연하여 기다리는 많은 영화팬에게 흐뭇한 웃음을 주었습니다. 전도연 씨가 출연한 영화 ‘무뢰한’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의 오늘 파노라마 부분에 초청되어 해운대 비프 빌리지 오픈 토크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40대의 완숙한 미모와 배우로서의 관록은 세월을 무색하게 하였습니다. 특히 진행자가 질문하면 답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졌는데 지금까지 가장 호흡이 잘 맞았던 남자 배우와 같이 영화 작업을 하고 싶은 연하 남자 배우를 물었습니다.
전도연 씨는 송강호 씨를 이야기했는데 어릴 때 넘버3을 보고 송강호 씨 팬이 되었으며 ‘밀양’을 함께 작업하면서 서로 호흡이 잘 맞았다 합니다. 또한, 연하남자배우는 열심히 연기도 하면서 요즘 한창 물오른 연기력을 보이는 유아인 씨가 참 좋아 보인다 하여 영화팬으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무뢰한의 줄거리를 보면 “전도연은 무뢰한에서 사람을 죽이고 잠적한 박준길(박성웅 분)의 애인인 김혜경으로 나옵니다. 김혜경은 마카오란 주점을 운영하는데 살인자 박준길을 잡기 위해 형사(김남길 분)는 주점 마카오에 영업상무로 들어갑니다. 형사 정재곤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범인을 잡기 위해 애인이 경영하는 술집에 잠입하게 되었고 잠복 중 그는 혜경에게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순수함을 보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무뢰한에서 전도연의 연기는 완전히 물오른 연기로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2015년 68회 칸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으로 초청되었으며 2015년 18회 상하이 국제 영화제에서 특별예술공헌상을 수상하였고 금작장경쟁 후보에 올랐습니다.
2015년 15회 디랙터스 컷 어워즈에서 올해의 감독상과 올해의 여자연기상을 수상하였고 2015년 24회 부일영화상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음악상도 함께 수상했습니다.
☞(부산여행/부산국제영화제)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야외 무대 인사, 오픈 토크 일정표.부산국제영화제 일정표
드디어 부산 국제 영화제가 오늘부터 열립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은 모두 다 아시죠. 이제 청년으로 접어들어 20회를 맞이하였습니다. 그것에 맞게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는데 초청작으로는 75개국에 304편으로 꽉 짜여 있으며 월드+인터내셔널 프리미어 121편이 함께 상영됩니다. 역시 올해도 수준 높은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2015,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많이 기대해주세요. 특히 부산 국제 영화제의 꽃이라면 단연 레드카펫이지만 야외무대 인사와 이벤트로 오픈 토크 또한 영화인에게는 큰 볼거리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양한 볼거리와 부산 여행도 함께 하면 정말 좋습니다.
☞개최 기간: 2015년 10월 1일(목)~10일(토), 10일간 개최
☞상영관 :6개 극장 41개 스크린.
센텀시티:롯데시네마 센텀시티, CGV 센텀시티, 영화의전당,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
해운대 : 메가박스 해운대
남포동 : 메가박스 부산극장
야외무대 일정표와 이벤트 행사인 오픈 토크 일정표를 올립니다. 오픈토크에는 이정재, 전도연, 월드 스타 소피 마르소의 출연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 야경 좋은 곳. 영도다리, 부산항대교 야경 전망 좋은 곳 아미동~남부민동 산복도로.
얼마 전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은 대다수 국민을 감동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영화의 도입부인 덕수와 영자가 옥상에 앉아 회상하면서 시작되는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을 보면 영도다리와 부산항 대교가 가장 잘 내려다보는 부산 서구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미동에서 남부민동의 어느 집 옥상이 아닌가 싶은데 부산의 상징물인 영도다리와 부산항대교 야경을 손쉽게 보기위한 또 하나의 장소가 있어 소개합니다. 천마산 임도에서 만나는 부산 야경이야 익히 소문이 나 있지만 임도 또는 산행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조금은 편한 곳을 소개하자면 주차를 함과 동시에 사진을 담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바로 아미동에서 남부민동으로 이어지는 산복도로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최민식갤러리에서 시작되는 산복도로로 산복도로 끝까지 부산의 전망대 역할을 합니다. 특히 최민식 갤러리가 있는 ‘아미문화학습관’ 주위와 ‘한마음행복센터’ 옥상 전망대 주위 등은 가장 사진을 담기 좋은 곳입니다.
부산 야경을 가장 손쉽게 보기를 원하고 사진을 담고 싶다면 부산서구 아미동 산복도로를 찾아보세요. 이제부터 부산 야경을 보기에는 최고의 날씨이며 선명하게 영도다리와 부산항대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운동삼아 산복도로를 걷기에고 정말 좋은 곳입니다. 요 사진들은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고 임도 방호벽과 담벼락을 이용해서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