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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여행/동구여행)동구 이바구길 장기려 기념관. 명의가 뽑은 명의 성산 장기려 박사 기념관을 가다. 


다음 사전에는 “어리석고 못나게 구는 사람을 얕잡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 또는 “지능이 부족하고 어리석어서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바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바보하면 언뜻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바보 노무현’ 그러나 오늘 포스팅 할 분은 ‘바보의사’로 부르는 성산 장기려 박사님입니다.



 

 

성산 장기려 박사님은 전국의 내 노라 하는 명의가 뽑은 명의인데 왜 바보의사라 부르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였습니다. 바보의사 성산 장기려 박사님은 1911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 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의전를 졸업하고 일본 나고야 국제대학에서 의학박사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때가 일제 강점기인 1940년이었습니다. 귀국하여 1943년 우리나라 최초인 간암 환자의 설상절제수술을 성공하여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술로 의학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해방 후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장기려 박사님은 평양의과대학과 김일성 종합대학 외과교수로 근무를 하였습니다.



 

 

1950년 6.25 한국 전쟁으로 가족을 남겨 두고 차남과 함께 월남을 하여 피난을 와 장기려박사님과 부산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피난민과 행려환자를 무료진료하면서 가족처럼 돌보며 1951년 1월에 부산 영도에 고신의료원의 전신인 복음병원을 세워 무료진료를 함으로서 참의사의 표본이 됩니다.



 

 

또 한 1968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의료보험 조합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 받을 수 있게 하여 현재의료보험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1975년 복음병원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부산 동구 수정동에 무료 진료와 사회봉사 활동을 위한 청십자 병원을 설립하여 가난한 환자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부산진역 옆에는 장기려 박사님을 기억하는 청십자병원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평생을 환자와 사회활동에 헌신을 하고 청빈한 삶을 살다보니 은퇴 때 거처할 집이 없어 복음병원의 옥상에다 마련해준 관사에서 생활을 하였고 1995년 눈을 감을 때도 병원의 옥탑방에서 84세의 일기로 이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며 눈을 감았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있는 특권을 2번이나 거부를 하였습니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1980년 첫 번째 상봉 기회는 미국에 있는 제자들이 제3국에서 만날 수 있도록 주선을 하지만 선생은 “이산가족이 어디 나 혼자 뿐이냐며 통일이 되면 모두 함께 가서 만나지”하며 거절을 하였습니다.


 

 

 

1985년 남북고향방문단으로 서울과 평양을 교차 방문할 때 정부인사가 이산가족 상봉 추진을 제안하지만 거절을 하였고 1994년 2차 남북고향방문단의 일원으로 확정되었지만 교환합의가 무산되면서 그 충격으로 쓰러져 끝내 회복하지 못하였습니다.



 

 


1950년 월남을 하면서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며 눈을 감을 때 까지 독신으로 사셨던 장기려 박사님, 그분의 순애보적인 사랑이 요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찌 비추어 질지 궁금합니다.



 

 

한 평생을 베풀며 나눔을 실천한 삶으로 국민훈장 동백장, 적십자 인도장 금상, 막사이사이 사회봉사부문 등 많은 상을 수상하셨고 사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한국의 슈바이처’이자 ‘바보의사’로 부르고 있습니다.



 

 부산시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에는 특별한 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바구길’로 불리는데 경상도 버전의 이바구는 이야기의 사투리입니다. 이곳 동구 수정동은 6.25한국동란과 함께 많은 피난민이 몰려와 비탈진 곳을 깎아 판자 집을 짓고 살게 되어 현재에도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의 생활상을 이야기로 엮어 내어 만든 이바구길 중간에 ‘더 나눔 센터- 장기려 기념관’이 있습니다. 더 나눔 센터는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박사님을 기념하고 그 분의 신념인 무소유의 삶으로 의술을 인술로 베풀어 가난한 사람들의 의사였던 그분을 기려 2013년 4월1일 개소하였습니다.



 

 

1층에는 북카페, 일자리 나눔방, 작은 도서관으로 꾸며져 있고 2층에는 장기려 기념관, 마음나눔방, 건강 나눔방으로 보건복지 문화 복합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장기려박사님의 인간 생명존중의 철학을 기리고 있다 합니다. 자라나는 자녀와 함께 한국의 슈바이처이자 바보의사 장기려 기념관을 방문하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될 것 같습니다.



 

 

장기려 박사의 일화 한토막. 무엇보다 잘 먹어야 하는 환자에게 써 준 약 처방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합니다. 지금이야 의약이 분업된 상태지만 그 당시에는 병원에서 모두 약까지 조제를 하여 주었습니다. 그 당시 병원 원장이던 장기려 박사가 써준 처방전을 환자는 간호사에게 내 주었는데  "이 환자에게 닭 두마리 값을 내주시오-원장"  



 

 

장기려 기념관 교통편

산복도로에서 내려오기

버스노선:38번, 86번, 186번, 190번

정류소명:동일파크맨션

초량2동 공영주차장 밑 도로 180m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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