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봉~수월봉 트레일 경로를 먼저 보면 차귀도 포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차귀도포구~당산봉입구~당산봉 능선 사거리 안부~당산봉수대터~차귀도 전망대~당산봉가마우지 전망대~생이기정~평택임씨 제주 종친묘~당산봉 정상~거북바위 덱전망대~ 차귀도 포구~해경출장소~녹고의 눈물~용운천~갱도진지~엉알 화산재 지층과 화산탄~수월봉 정상에 있는 고산기상대에서 트레킹을 마치며 전체 여정은 7㎞입니다.
수월봉 지질트레일의 장점은 가슴을 후벼 팔 정도로 전 구간이 탁 트인 전망대입니다.
그리고 무궁무진한 볼거리를 제공해서 둘레길 내내 지겨울 겨를이 없습니다.
산행 막바지에 만나는 갱도진지에서는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자 일본의 마지막 발악을 했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당산봉~수월봉 트레일 코스 출발은 차귀도 포구 주차장입니다.
차귀도가 바라보이는 해안에 넓게 조성된 주차장입니다.
이곳에서 차귀도로 들어가는 배도 탈 수 있습니다.
당산봉~수월봉 트레일은 먼저 당산봉 구간을 걷고 나서 이곳으로 되돌아와 수월봉으로 걸어갑니다.
차귀도 포구 주차장에는 고산 옛 등대가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도대불’로 불렸던 고산 옛 등대는 한경면 고산1리 자구내 포구에 돌로 지은 등대인데 얼핏 보면 첨성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등대는 고기잡이 나갔던 어선의 귀항을 돕는 유도등이었으며 1941년 고산과 목포를 오가던 화물선의 유도등으로 사용하든 등대였습니다.
요즘 등대를 생각하면 고산 옛 등대는 조선시대 봉수대 수준입니다. 불을 밝히려고 사다리를 설치하여 올라다녔으며 꼭대기의 집 모양은 근래에 만들었으나 원래 유리 등집에 석유등을 넣어 불을 밝혔다고 합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왼쪽 차귀도포구를 감싼듯한 당산봉의 해안 절벽에 눈길을 주며 식당이 즐비한 고산리 자구 마을 도로를 따라 걷습니다.
도롯가의 건조대에 한치가 걸려있는 풍경은 어느 어촌마을의 풍경과 똑같습니다.
멀리 고산 기상대가 있는 수월봉이 눈에 들어오고 왼쪽 당산봉 능선을 배경으로 섬 풍경 펜션이 그림같이 앉아 있습니다.
이곳이 당산봉입구입니다.
당산봉 안내판과 제주 올레길 이정표와 수월봉 트레일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왼쪽으로 꺾어 당산봉을 향합니다.
침목 계단의 오르막 오솔길을 벗어나면 능선위 갈림길입니다.
당산봉 트레일의 순방향은 오른쪽 당산봉 정상 쪽입니다. 이정표도 모두 순방향으로 맞추어져 있으나 차귀도의 조망이 궁금하여 역방향 코스를 걷기로 하고 직진을 합니다.
당산봉수가 있었다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해안초소가 조선시대 봉수대 터이며 당산봉봉수는 제주도 내에 25개의 봉수 중 하나로 동쪽의 모슬봉수와 서쪽은 만조봉수에 연결되며 유사시 적의 침입을 알리는 통신수단이었습니다.
시멘트 길을 잠시 내려가다 이정표를 보고 왼쪽으로 꺾어 능선으로 오릅니다.
시야가 트이면서 에메랄드 바다에 떠있는 차귀도가 펼쳐졌습니다.
이를 보면서 정말 선경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산봉 서쪽으로 내려가는 부드러운 능선길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차귀도와 함께 수월봉 트레일의 백미라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해안을 즐겼습니다.
정면으로 풍력발전단지와 비양도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당산봉가마우지 안내판이 있습니다.
새가 물속을 잠수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가마우지란 새는 잠수가 정말 뛰어나다 합니다.
그런데 잠수를 하고 나면 몸에 기름샘이 없어서 항상 갯바위나 해안절벽에서 깃털을 말려야 합니다.
몸을 말리면서는 배설을 하는 습성이 있어 하얀 분비물이 화산재 바위에 붙어 있는데 당산봉 서쪽 능선을 걸으면서 가마우지의 쉼터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당산봉을 내려서면 올레길과 지질트레일 화살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차귀도 포구로 다시 가려면은 화살 표시가 없는 오른쪽입니다.
삼거리 왼쪽에는 화산재가 드러난 바위가 있습니다. 이곳이 ‘생이기정’입니다.
생이는 제주 방언으로 ‘새’를 뜻하며 절벽을 뜻하는 ‘기정’과 합해서 ‘새가 날아다니는 절벽’을 뜻합니다.
돌담길을 지나면 곧 시멘트 길 삼거리에 닿습니다.
작은 이정표는 오른쪽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다시 삼거리길과 만납니다.
오른쪽 길은 이정표에 ‘탐방로’라 표시되었지만 봉수터가 있는 당산봉 능선 안부 갈림길 방향으로 질러가는 길이며 당산봉 정상은 왼쪽입니다.
시멘트길을 따라가다 사각형 큰 물탱크를 지나면 지질트레킹 이정표는 오른쪽을 가리킵니다.
시멘트길을 벗어나 흙길로 접어들자마자 바로 뚜렷한 직진 오르막길을 버리고 왼쪽 평탄한 임도 길을 따릅니다.
임도만 따라가면 웅장한 규모의 평택임씨 제주종친묘역이 나오고 여기서 왼쪽 방향입니다.
벽화가 그려진 물탱크 앞에서 오른쪽 침목 계단을 오릅니다.
한경면 소재지인 고산리와 너른 평야가 서로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산불초소를 지나면 삼각점이 있는 당산봉 정상입니다.
전망도 없고 해서 바로 직진하면 당산봉 거북바위가 있는 전망덱이 나옵니다.
이곳은 왼쪽의 수월봉과 차귀도, 지나온 당산봉 서릉, 특이하게 형성된 분화구와 당산봉의 오름이 잘 관찰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산봉은 용머리 해안과 산방산과 함께 제주도에서 오래된 화산체 중의 하나이며 당산봉의 유래는 뱀을 재사지내는 신당인 차귀당이 있었다 하여 차귀당이라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봉화가 올려진 곳이라 하여 당산봉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산봉의 형성은 뜨거운 마그마가 물을 만나면서 강한 폭발을 일으켜서 만들어진 수성 화산체입니다.
그 내부에는 분석(송이)으로 구성된 알오름이 있습니다.
분화구는 북쪽으로 열려있는 말발굽형태입니다.
거북바위 안내판은 있는데 웃자란 나무로 거북바위는 확인하기 힘들었습니다.
올라왔던 능선 안부 갈림길을 지나 차귀도 포구로 되돌아갑니다.
차귀도포구 주차장 입구를 지나면 1977년 영화 ‘이어도’ 촬영장소를 알리는 ‘영화의 고향’ 이정표가 차귀도를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제주해양경찰서 고산파출소 앞 삼거리에서 오른쪽 덱길을 갑니다.
해녀상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수월봉 엉알길이 시작됩니다.
해안 절벽 아래로 난 시멘트길을 걸어갑니다.
수월봉 엉알길의 해안절벽 곳곳에는 다양한 크기의 화산탄이 박혀있는데 이를 화산쇄설암층이라 부릅니다.
수월봉의 화산쇄설암층은 세계적으로도 지질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으로 화산쇄설물이 화산가스나 수증기와 뒤섞여 사막의 모래 폭풍처럼 지표면 위로 흘러가는 현상인 화쇄난류로 형성된 해안절벽입니다.
무수히 많은 화산쇄설층을 보면서 화산활동이 얼마나 격렬하게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치가 뛰어나 2009년 천연기념물 제513호에 지정 보호하고 있습니다.
화산퇴적층을 비집고 나오는 흐르는 샘물은 ’녹고의 눈물‘과 ’용운천‘입니다.
여기에도 전설이 있습니다. 남매는 몸이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몸이 아파 사경을 헤매게 되었고 이를 보다 못한 누이가 약초를 캐러 엉알절벽을 오르다가 그만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 동생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다 죽었는데 이후에 동네 사람은 이 절벽 아래 흐르는 샘을 ’녹고의 눈물‘이라 불렀으며 남매의 효심을 기려 이 절벽을 ’녹고물 오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수월봉 해안에는 갱도진지가 있습니다.
현재 입구는 막아놓아 출입할 수 없지만,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은 제주도 전역에 많은 군사시설 물을 구축하였으며 미군이 고산지역을 진입할 것에 대비하여 수월봉 해안절벽의 갱도에서 바다로 바로 발진하는 일본군 자살 특공용 보트와 탄약을 보관했던 곳이라 합니다.
뜨거운 마그마와 물이 만나 폭발하면서 만든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분출물이 차곡차곡 쌓여 두께가 70m인 화산재 지층을 만들었습니다.
수월봉 화산쇄설층의 백미인 수월봉 화산재 지층은 신기할 정도로 정말 아름다운 물결무늬였습니다.
현대 기술로는 도저히 흉내 내지 못할 아름다움에 빠져 그저 ’자연의 신비‘에 감탄사만 연발했습니다.
이제 당산봉~수월봉 트레일의 마지막 탐방지인 수월봉 정상의 고산기상대로 향합니다.
좁은 문 격인 화산석 사이로 난 시멘트길을 빠져나오면 제주도 지질공원을 알리는 큰 입간판이 서 있습니다.
바람의 언덕 수월봉 트레일 안내판을 보고서 고산기상대로 향했습니다.
국립공원 관리소를 지나면 오른쪽에 화산석 해안절벽을 위에서 보는 전망대가 나옵니다 발아래가 까마득하니 진짜 심장이 벌렁벌렁할 만큼 고도 감이 있었습니다.
선흘곶 동백동산은 용암동굴 이외에도 다양한 용암 지형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백나무, 개가시나무, 종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황칠나무 등과 같은 키가 큰 나무와 곳곳에 습지를 만들어 순채, 통발, 남흑삼릉의 습지식물과 발풀고사리, 제주고사리삼, 홍지네고사리 등 양치식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물장군, 물망개, 참개구리, 제주도룡뇽, 두점박이 사슴벌레, 긴고리딱새, 팔색조, 쇠살모, 비바리뱀 등 다양한 조류와 곤충, 파충류가 함께 생활하는 그야말로 천연 자연림의 보고입니다.
동백동산은 습지인 먼물깍을 중심으로 0.59㎢ 면적이 환경부 습지보호지역 및 람사르습지에 지정되었으며 동백동산 전체에는 국가 및 세계지질공원에 지정되어 그가치가 매우 뛰어나 국내외적으로도 본존가치를 인정 받았다하겠습니다.
이런 선흘곶 동백동산을 찾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흘곶 동백동산입구에는 동백동산습지센터에서 탐방에 관한 의문점을 친절하게 안내해주었습니다.
입구에는 제주의 상징인 화산석으로 하트를 날리는 돌하르방과 기타를 치는 돌하르방의 멋진 조각작품이 탐방객을 맞아 동백동산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동백동산 전 구간을 걸어보았는데 진짜 무장애 길이 따로 없었습니다.
누구나 걸을 수 있으며 힐링하기에 딱 좋은 숲길의 완만한 산길이었습니다.
제주에서 번잡한 관광지만 찾는 여행은 사실 무의미하다 하겠습니다.
이런 제주의 오름을 찾아 오르면서 제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한번 해보세요.
동백동산을 출발하면 곧 갈림길이 나옵니다.
풀코스를 돌면 이곳에서 서로 만납니다.
일단 직진하면 안내판에 도틀굴이 나옵니다.
그런데 출발 전에 도틀굴 안내를 보면서 제법 큰 굴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외관상 볼 때는 사람도 들어갈 수 없을 듯 작아 보였습니다.
도틀굴의 규모가 작아도 2003년 문화재청이 제주도 천연동굴 일제 조사를 하면서 문화재적 보존가치와 학술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보존 관리하는 동굴입니다.
동굴의 내부는 용암선반, 승상요암, 아아용암, 용암주석 등이 산재하며 용암종유와 동굴산호, 용암곡석 등 다양하게 관찰되어 보전가치가 뛰어나 현재 동굴 출입을 쇠창살로 막은 상태입니다.
입구는 좁아 보이는데 내부는 넓은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을 지나면 옛날에 임도가 놓였는지 길이 좋아지면서 여러 사람이 함께 걸을수 있게끔 넓습니다.
먼물깍까지 2km 남짓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걸을 수 있는 그런 숲길입니다.
옛날 숯막 터도 나옵니다.
숯을 굽기 위해 지은 움막이 있었던 곳이며 여기 말고도 동백동산의 여러 곳에 숯가마 터가 남아 있다 합니다.
그만큼 울울창창할 정도로 나무가 많았던 거 같습니다.
하기야 지금도 사람이 들어가면 으스스 할 정도의 짙은 숲입니다.
선흘곶도 곶자왈을 볼수 있습니다.
곶자왈은 제주도만의 특징인데 이는 숲을 뜻하는 곶과 돌 또는 자갈을 뜻하는 자왈이 합쳐서 붙여진 제주 방언입니다.
동백동산에도 화산활동을 하며 분출된 용암류의 바위 덩어리 지대에 풀과 나무가 자리를 잡아 숲을 이룬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곶자왈은 제주도의 대부분이 곶자왈이 아닌지 그래서 제주의 삼다에 돌이 들어가 있는가 봅니다.
편안한 숲길을 가다 보면 동백동산 트레킹 절반쯤에 먼물깍 습지가 나옵니다.
신기하게 숲 속에 만나는 웅덩인데요 제주라서 그런지 꽃사슴이 이곳에 와서 물을 먹고 가는 그런 그림이 그려집니다.
먼물깍은 맨 처음에는 큰 의미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명의 뜻을 이해하고 나니까 아주 평범한 이름이었습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졌다는 먼물과 끄트머리를 뜻하는 깍이 합한 이름으로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끄트머리에 있는 습지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제주에서 비만 오면 모든 빗물이 지하수로 흘러가버리는데 먼물깍은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오목한 곳에 모여 만들어진 습지로 옛날에는 생활용수나 가축 음용수로 이용했다 합니다.
제주도의 평지에 남아 있는 난대성 상록 활엽수로는 가장 큰 면적이며 순채 어라연꽃, 통발, 송이고랭이 등 습지식물과 백서향나무, 제주에서 최초로 발견된 제주고사리삼 등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출발지였던 동백동산 습지센터까지 2.5km 거리이며 마을까지 임도 길로 연결됩니다.
그래도 키가 큰 나무가 하늘을 가려 햇볕 한점 들어오지 않는 숲길이라 걷기가 정말 편안합니다.
동백동산의 숲길에서 최고의 길이라 해도 괜찮습니다.
먼물깍 이외에도 주변에 여러 개의 습지가 더 보였습니다.
동백동산의 서쪽 입구인 선흘리로 나오면 왼쪽으로 시멘트 포장길을 걷습니다.
정수장을 지나고 다시 숲속 오솔길을 걸으면 동백동산 입구 못 미쳐 삼거리에 닿고 동백동산 주차장은 지척입니다.
선흘곶 동백동산은 도지정문화재 기념물 제10호에 습지보존지역으로 2010년 11월 지정되었으며 2011년 3월 14일에는 람사르습지에도 지정되었습니다.
동백동산 습지보존지역 지정면적은 0.59㎢, 동백동산 습지 보존지역 위치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 12번지 일원, 동백동산 탐방안내소~먼물깍~서쪽입구~탐방안내소의 둘레길 전체거리는 약 5km이며 120분 소요.
그 우두에는 비양도란 돌섬이 부속 섬으로 있습니다. 본섬인 우도 비양동에서 약 120m 거리에 있으며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왜구의 침입을 본섬에 알렸던 봉수대와 바다에서 비양동 주민의 무사 안녕을 빌었던 해신당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제주도에는 두 곳의 비양도가 있습니다. 동쪽 우도면의 비양도와 서쪽 한림읍의 비양도로 동비양은 아침 해가 솟아오르는 곳이며 서비양은 해가 지는 곳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자연의 오묘함은 보면 볼수록 더욱 신기합니다.
해신당
동비양의 비양도는 이글거리는 일출의 기상을 느끼는 곳입니다. 비양도의 이름 또한 일출과 무관하지 않는데 섬에서 해 뜨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수평선에서 해가 날아오르는 것 같다 하여 비양도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비양도에는 전복, 소라, 해삼, 오분작이, 문어 등 해산물이 풍족하여 제주도 내에서도 많은 해녀마을이 있지만 비양동을 첫 번째 해녀마을로 꼽고 있습니다. 남다른 기를 자랑한다는 비양도는 배로 건너는 게 아니고 다리가 가설되어 누구나 쉽게 건너갈 수 있습니다.
돌의 기운도 받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면 먼저 만나는 게 해신당인 ‘돈짓당’입니다. 마을의 모든 걱정과 액운, 무사 안녕과 풍어를 용왕신께 기원하는 곳으로 이곳은 이 지역 여성들의 공동체 참여공간으로 삶의 애환을 기원하던 독특한 장소입니다.
현무암이 펼쳐진 비양도에는 현재 펜션과 해녀들이 문을 연 횟집을 겸한 조그마한 식당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소원성취 돌의자가 있는데 아침 일출의 기운과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로 인해 몸 안의 나쁜 독소를 정화해주고 또한 반대로 좋은 에너지를 받아들여 기쁨과 건강을 안겨준다 합니다. 돌의자에 한번 앉아보세요.
이제는 비양도의 끝자락인 등대로 가는 길입니다. 이곳은 밀물과 썰물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하다가는 바닷물에 갇혀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등대주위의 울퉁불퉁한 바위 구경도하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크게 심호흡을 하며 짭쪼름한 바닷냄새를 맡아도 봅니다.
이제 되돌아 나와 다시 봉수대 쪽으로 갑니다. 유일하게 초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1653년 조선 효종 14년에 염소를 사육했다는 기록이 탐라지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보기보다 염소의 먹이가 많았나 봅니다.
이곳의 봉수대는 망루 기능도 겸했는데 조선 시대 세종 때 봉수 시설 정비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군사적 통신시설로 이용하다가 1895년 봉수제가 폐지되면서 비양도의 봉수대도 함께 폐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순환버스로 이동하여 우도 홍조단괴 해빈인 백사장을 찾았습니다.
비양도 봉수대
천연기념물 제438호이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두면 연평리 해안에 있습니다. 이곳은 우도와 본섬인 성산 사이의 넓은 해역에서 광합성 작용을 일으켜 바닷물 속에서 석회조류 중의 하나인 홍조류가 탄산칼슘을 침전시켜 홍조단괴를 형성하였습니다.
얕은 바다에서 성장하던 홍조단괴는 태풍 등에 의해 바닷가로 운반되어 해빈 퇴적물로 쌓이게 되었으며 우도 홍조단괴 해빈에는 지름 4~5m에 이르는 혼조단괴가 해안선을 따라 수백 미터 길이에 폭이 15m 정도로 퇴적되어 있습니다.
국내와 해외에서도 해빈 퇴적물이 홍조단괴로만 이루어진 경우는 매운 드문 일로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되어 보존 관리하고 있습니다. 제주우도의 비양도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육지 해안에서 볼 수 없는 연평리 홍조단괴해빈의 특별한 해수욕장을 만났습니다. 또한, 우도의 명물인 땅콩아이스크림을 맛보며 시원한 우도 여행을 즐겼던 하루입니다.
우도여행시 교통편은 우도관광순환버스가 입니다. 1인 5천원이며 우도 관광시에 아주 편리합니다. 필자일행도 순환관광버스를 이용하여 우도관광을 했으며 간격은 대략 30분, 시즌에는 엄청 자주 오는것 같았습니다. 우도에서는 섬이 작아서 그런지 차와 오토바이 자전거등 여러 이동수단이 서로 엉켜 복잡합니다. 그래서 안전운행에 항상 조심해야합니다.
제주도에서 삼천만의 관광지하면 우도입니다. 성산포 여객터미널에서 아주 가까워 쉽게 우도로 갈 수 있습니다. 우도 선착장에 내리면 제주 본섬만큼 차량과 관광객으로 정신이 없습니다. 저도 일행과 함께 우도 관광을 위해 먼저 우도를 순환하는 관광버스를 이용했습니다.
우도 마을버스도 있지만 5,000원에 순환 환승하는 관광버스가 정말 편리합니다, 우도 관광지마다 내렸다. 다시 구경하고 돌아와서 다른 관광버스를 타면 되니까 예. 관광버스는 30분 간격으로 계속 있습니다.
먼저 우도를 알아야겠습니다. 우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만 년 전~1만 년 전인 신생대 제4기에 홍수와 빙하를 몇차례 거쳐 생성되었는데 이를 홍적세 또는 빙하시대라 합니다. 이때를 인류의 조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우도도 이때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며 1697년 조선 숙종 23년에는 우도에다 국마장을 설치하여 군마를 관리했습니다. 그 후 차츰 사람들이 드나들게 되었고 1842년 헌종이 입경 허가가 시행하여 2년 뒤에 김석린 진사 일행이 처음 입도하여 정착하였습니다.
동안경굴, 검멀레 해변입구
1900년에는 향교 훈장 오유학선생이 연평이라 불렀으며 입도한 주민들이 늘자 영일동, 비양동, 고수동, 주흥동, 우목동, 천진동 등 8개 동으로 마을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우도의 뜻을 보면 “물소가 머리를 내민 모양”이라 했는데 탐라지 기록에는 1651년 효종 2년 이원진 목사가 명명하였다합니다.
우도봉 입구
처음 우도는 ‘물에 뜬 두둑’이라하여 연평리로 불리며 구좌읍에 속했습니다. 차차 인구가 늘자 1986년 4월 우도면으로 승격하였습니다. 우도에는 우두만의 볼거리가 있습니다. 이를 우도8경이라 합니다. 주간명월, 야항어법, 천진관산, 지두청사, 천포망도, 후해석벽, 동안경굴, 서빈백사입니다.
그중 관광버스를 타고 첫 번째 만나는 게 우도봉과 동안경굴이 있는 검멀래입니다. 검멀래에서 보는 우도봉과 해안절벽을 이루는 석벽, 동안경굴 등 볼거리에서 가장 좋습니다. 시간도 시간이고 해안가로 내려가지 않고 그냥 전망대에서 조망을 즐겼습니다.
동안경굴과 후해석벽을 보려면 바닷가에 있는 보트를 타야합니다. 우리 일행도 보트타고 싶었지만, 우도봉 트레킹과 시간 제약으로 원하는 만큼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연둣빛과 시꺼먼 해안 절벽이 무시무시하면서 장관입니다.
생생 달리는 보트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완전 더위를 잊게 합니다. 그래도 우도 8경의 경안동굴은 알아야겠죠. 안내판을 보면 1601년 김사헌이 쓴 남사록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동쪽 바다 가운데 있으며 해안까지 거리는 10리, 섬의 둘레는 100리이며 닥나무가 많은 섬이라 합니다. 섬의 동쪽에 돌구멍이 나있어 배 한 척이 숨을 만하다 하였고 조금 더 가면 5~6척의 배가 숨을 수 있는 동굴이 있으며 왜선이 이곳으로 몰래 숨어들면 며칠 동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합니다.
돌구멍, 해식동굴, 고래굴, 코구멍동굴로도 불립니다. 이곳은 신령한 용이 사는 곳으로 7~8월경에는 고기잡이 배가이곳을 지나면 용이 노하여 갑자기 큰바람이 일고 천둥과 비바람이 몰아쳐 나무를 뽑아내고 농사도 망가뜨리게하였습니다. 건너면 오소포에서도 북소리, 악기 소리, 개와 닭 등 짐승의 소리라도 들리면 바람과 벼락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했습니다. 참으로 성질이 고약했던 모양입니다.
세종 2년 조선왕조실록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는데 “우도봉에는 왜선이 숨는 가장 요해 지역으로 왜적이 밤을 타고 들어오면 군사가 의지할 곳이 없어 대응하기 어려우니 성을 쌓게 하여 적에 대응하게 하였다” 했습니다. 이곳 일대를 검멀레 해변으로 부르는데 검은 모래를 뜻합니다. 우도에 왔다면 우도 등대가 있는 우도봉을 안 가볼 수 없습니다.
입구의 나무계단을 오릅니다. 우두 등대에서 먼저 만나는 게 등탑입니다. 1906년 처음 설치하여 97년간 우도 부근의 안전항해를 책임졌으며 2003년 11월 임무를 마치고 등탑은 은퇴했습니다. 그러나 그 항로표지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원형대로 영구 보존하고 있습니다
우도봉 우도등대역사관
제주도 최초의 등대인 우도 등간은 우도 등대 점등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5년 12월 원형대로 복원하여 1906년 3월 점등하였으며 그 후에 전면에 있는 벽돌을 쌓은 조적조 등대(구동탑)로 변경했습니다. 우도의 많은 여행지중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검멀레해변과 동안경굴, 석벽, 우도등대와 우도봉에서 우도의 모든 것을 알아보세요.
☞(제주맛집)성산일출봉 종달리 해안 맛집 소금바치 순이네. 무더위를 삭혀줄 매콤한 돌문어 볶음 조합이 인상적인 제주도 구좌읍 맛집 소금바치 순이네 돌문어 볶음.
제주도 맛집이라 해서 찾았던 구좌읍 종달리 바닷가의 “소금바치 순이네”. 소금바치 순이네도 순이네지만 식당 앞 종달리 해변이 압권이었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고 해안가를 잠시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일행이 식당에 들어간 시간이 아마 오전 11시 30분쯤이었습니다. 점심시간으로는 조금은 이른 시간인지 우리뿐이었는데 잠시 후 두 팀이 들어왔습니다. 그만큼 한적했습니다.
요번의 제주여행에서 우리 여행의 리드는 모두 인터넷을 검색하여 여행코스와 맛집 계획을 세웠는데 그중 이곳 소금바치 순이네도 한곳입니다. 돌문어 볶음이 유명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제주여행에서 매콤한 돌문어 볶음을 꼭 먹고 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일단 유명해서 반드시 먹고 온다는 돌문어 볶음 대(大)자를 양쪽에 주문했습니다. 밑반찬은 일반음식점과 대동소이하지만, 종달리 해안에서 나오는 미역과 해초는 인기 짱이었습니다. 우리 집도 바닷가라 매일 짠내를 맞고 살지만 역시 부산 짠 내와 이곳 미역의 짠 내는 완전 다른 맛이었습니다.
간판의 ‘순이네’는 알겠는데 그 앞에 ‘소금바치’ 이름이 아주 정겹습니다.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제주에서 가장 큰 염전이 있었고 많은 소금을 생산했던 곳이라 아마 이름도 이 소금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금을 많이 생산하여 소금 뒤에 ‘바치’는 접미사를 뜻하는데 ‘점바치’처럼 명사 뒤에 붙어 “그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뜻을 더하여 “소금을 만드는 사람”을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주 방언에 보면 ‘소금바치’는 ‘방아깨비’로 나와 있습니다.
방아깨비 하면 모두 아시죠. 어릴 때 양쪽 다리를 잡고 있으면 다리가 길어 마치 방아를 찧듯 몸을 앞뒤로 끄떡끄떡하며 움직이는 곤충 말입니다. 종달리 해변에는 방아깨비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그래도 “소금을 만드는 사람”이란 뜻의 소금바치가 맞는 것 같습니다.
“‘소금바치 순이네’의 옥호가 뭐가 중헌디, 장황하게 설명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실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해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소금바치로 노닥거리는 사이에 돌문어 볶음이 나왔습니다.
초록색 모자를 눌러쓰고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는 모습이 마구마구 식욕을 돋웠습니다. 마침 제주도의 숨구멍이라는 산굼부리와 미로 공원을 여행하고 왔던 뒤라 배도 출출했는데 빨리 먹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돌문어 볶음쯤 된다면 요즘 이미지 좋은 사진이 천지인데 돌문어 한 마리쯤 떡하니 올라와 있어야 하는 게 아닌지 히히 만구 내 생각인가요. 그런데 먹는 방법이 있다나요.
깻잎 모자를 옆으로 걷어내고 홍합을 모두 까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홍합과 잘게 썰은 문어 그리고 국수와 함께 먹으면 되는데 국수가 들어간 돌문어 볶음입니다. 조금 매콤한 게 젊은 층에는 인기인지는 모르지만 50대 중반 이후인 우리 일행이 먹기에는 조금 맞지 않았습니다.매운거 좋아하는 사람은 다르겠지만요. ㅎㅎ
먹으면서 모두 못마땅한 모습이었습니다. 제주여행을 기획했던 분도 이번에는 실패다며 저녁 맛집을 기다리라 했습니다. 저희 일행에게는 조금 매웠던 것 같습니다. 아마 제주여행에서 한 번쯤은 괜찮을듯하지만 일행 중 나이 드신 분이 있다면 맵다 할 것도 같습니다. 참고하세요
그래서 밥하고 함께 먹었더니 딱 좋았습니다. ㅎㅎ 그리고 아무리 볶음이지만 돌문어 볶음에 물기 하나 없는 거 보고 정말 신기했습니다. 요리를 어떻게 하면 이리 수분하나 없이 돌문어 볶음이 되는지 신기 신기,. 다 먹고 밖을 나왔더니 오른쪽에 수족관이 있었습니다.
소라와 문어 등이 보였는데 아마 음식 재료에 사용하는 어패류등을 보관하는 곳인가 봅니다. 이제 종달리 해안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이 길이 제주올레길하고 연결되고 앞에 보는 종달리 전망대 배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정면에 우도와 성산 일출봉이 정말 가까이 보였습니다.
‘족은 영산이 왓 불턱’과 ‘엉 불턱’으로 불리는 바닷가였는데 검은 화산석이 천지 삐까리이며 지명도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 및 작업 중 휴식하는 장소”를 말합니다.
우도
엉 불턱에서 엉은 “푹 들어간 곳을 말하며” 종달리 전망대 옆에 툭 튀어나간 자연형 불턱으로 염소 머리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어 ‘염소부리코지’라고도 합니다. 데크를 따라 걷는 길은 종달리 전망대까지 이어지고 전망대의 배에는 망원경도 설치되어 멀리까지 구경 가능합니다.
우도와 성산 일출봉을 더욱 가까이에서 만납니다. 소금바치 순이네에서 돌문어 볶음을 먹었다면 잠시나마 종달리 해안을 걸어보세요. 그리고 순이네 주차장에 한쪽의 커피집에서 시원한 냉커피로 더위도 달래고 다음 여행지로 출발했습니다.
성산일출봉
염소부리코지
종달리전망대
종달리 해안은 수국 길이 조성되어 있다는데 우리가 찾았을 때는 너무 늦어 수국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게 정말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