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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종소리가 난다는 만어사 어산불영 영남알프스둘레길14코스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종소리가 난다는 만어사 어산불영 영남알프스둘레길14코스

   

밀양시 삼랑진읍의 뒷산 격인 만어산(萬漁山·699.6m). 무심코 보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산을 영남알프스 둘레길 구간에 포함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이미 지난해 둘레길 개척 기획단계에서부터 본지 개척단이 깊이 고민했던 사안이다. 만어산을 포함하지 않고 혜산서원과 고택들이 즐비한 전통마을인 산외면 다죽리에서 칠탄정과 칠산정을 거쳐 단장면 금곡리로 진행한 후 밀양호 방향으로 갈 것인지, 만어산을 경유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내부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였던 탓에 각계의 자문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논란 끝에 얻은 결론은 '반드시 만어산을 경유하자'는 것이었다. 도대체 만어산이 어떤 산이기에 개척단이 이미 기획단계 때부터 고민해야만 했을까.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경남 밀양 만어산을 상징하는 만어사 앞 너덜겅인 '어산불영' 사잇길을 지나고 있다. 동해 용왕 아들을 따라 나선 만 마리의 물고기가 바위로 변신해 너덜지대를 이뤘다는 전설이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해 온다.


주지하다시피 만어산 정상 바로 아래에 만어사(萬漁寺)라는 천년고찰이 있다. 그렇다면 만어사는 왜 중요한가. 그곳에는 무봉사 태극나비, 땀 흘리는 표충비, 얼음골과 함께 '밀양 4대 신비'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만어사 경석(磬石)으로 이뤄진 너덜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돌로 두드리면 마치 종을 두드릴 때와 같은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낸다고 해서 경석, 또는 종석(鐘石)이라고 하는 이 돌무지는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 그뿐인가. 이 너덜지대를 다른 말로 '어산불영(漁山佛影)'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기원과 관련해 '만 마리의 물고기가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 '삼국유사'에 기록돼 있을 만큼 깊은 내력이 스며 있다. 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만어산이다.

조금만 둘러 가는 수고를 감수한다면 '만어사를 빠트리고 갔다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둘레길을 표방하는 개척단의 취지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기꺼이 만어산으로 올랐다. 만어산을 경유하면 '밀양 3대 오지마을' 중 한 곳인 감물리(甘勿理)까지 자연스럽게 둘레길 코스에 포함시킬 수 있다.


◇ 만어산 8부 능선 휘돌아 감물리까지 14.5㎞

   
만어령 오르는 길가에 산딸기가 지천이다.

제13코스의 종착점인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구미마을 구미교에서 출발, 법흥리 만어령 만어사 감물고개를 거쳐 감물리 용소마을에서 마무리한다. 총거리는 14.5㎞,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20분 걸린다. 휴식과 만어사 관람 등을 포함하면 5시간30분가량 잡으면 된다. 코스 대부분이 임도여서 걷는 데 어려움은 없다. 다만 만어산 8부 능선에 있는 만어령까지 가는 오르막에서는 땀을 좀 쏟아야 한다는 것만 유념하자.

출발점인 구미교 앞 구미마을 버스정류소에서 칠탄산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넌 후 하천을 끼고 좌회전한다. 왼쪽에 하천을 끼고 7분쯤 가면 동편마을 갈림길(구미2길 32번지 앞). 이곳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 1분만 가면 컨테이너박스에 '구미광암쉼터'라는 현판이 걸린 가건물 앞 갈림길. 다시 왼쪽 길을 택한다.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 조금만 가다가 비포장 강둑길로 직진한다. 대추나무밭과 밤나무밭이 잇따라 펼쳐지고 강둑을 좀 더 따르다가 왼쪽으로 꺾어 밤나무밭 사이로 진행하면 시멘트포장길이 나타나고 곧바로 아스팔트도로에 닿는다. 밀양 단장면 금곡리에서 미촌리 안법리 감물리를 거쳐 삼랑진읍까지 연결되는 도로다. 일단 우측으로 꺾어 아스팔트길을 따른다. 10분 후 안법리 보건진료소 앞 갈림길에서 우측 법흥사지 방향으로 접어든다. 정면 멀리 가장 높은 봉우리가 만어산, 오른쪽 2시 방향으로 가깝게 보이는 산은 칠탄산이다.


◇ 대부분 임도 구간…만어령 오르며 땀 쏟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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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분 후 길 오른쪽에 당산나무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밀양 법흥상원놀이가 태생한 마을인 법흥리 법흥마을 문화회관 앞을 지난다. 회관 앞에 법흥상원놀이 전수관도 아담하게 지어져 있다. 정월 대보름날 행해졌던 상원놀이는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했던 대보름제에서 기원한 흥겨운 놀이마당이다.

법흥마을을 지나 좀 더 골짜기 안으로 길을 따르면 사지마을회관. 이곳에서 왼쪽 길을 택해 아늑한 산골마을 골목으로 올라서면 작은 사거리가 나오는데 직진한다. 좀 더 가다 보면 또 한 번의 대추나무 앞 삼거리를 만난다. 이번에는 만어산 중계탑을 보면서 왼쪽으로 일단 길을 잡는다. 3분 후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우측 전신주에 '만어사'라는 표시가 된 방향으로 민가를 보면서 오른쪽 길을 택한다. 여기서부터는 갈림길에서 고민할 필요 없이 만어령까지 임도만 따르면 된다. 20여 분 후 작은 저수지를 지난다. 길을 따라 오르는 내내 "어떻게 이런 산골에 논이 있고 모내기를 했을까"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바로 이 저수지를 보는 순간 궁금증이 말끔히 씻어진다.


◇ 삼랑진읍 감싸는 낙동강 큰 물길 바라봬

   
만어사로 가는 길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시원하다.

저수지를 지나면 마지막 민가를 통과하고 이후에는 만어령까지 줄곧 갈지(之)자가 여러 개 포개진 형태로 뚫린 임도를 따르게 된다. 중간에 너덜겅을 통과하는 등 40분쯤 쉬엄쉬엄 오르면 만어령 고갯마루다. 일단 왼쪽으로 50m쯤 가면 만어산 정상으로 오르는 직진 능선길과 우측 내리막길로 나뉘는데, 만어사로 가기 위해서는 오른쪽 내리막을 택해야 한다. 5분 후 만어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만어사로 접어드는 길. 한적한 이 길에 걸린 현수막 한 장이 눈길을 끈다. '강은 우리의 생명, 4대강 사업 즉각 중단하라- 대한불교조계종 환경위원회'. 여러 가지를 생각게 하는 현수막이다. 이윽고 절집 아래 소위 '어산불영'이라고 불리는 드넓은 너덜강을 품고 있는 만어사 법당 앞에 선다. 검정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아담한 절 만어사. '삼국유사'에는 1181년에 창건됐다고 전해지며 대웅전 앞 오른쪽에는 보물 제466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원래의 상륜부는 없어지고 후대 사람들이 상륜부만 따로 올렸다고 한다.


   

2층 누각인 미륵전에는 불상이 따로 없고 높이 5m가량의 뾰족한 거석을 미륵불로 모시고 있다. 이 미륵돌과 절 앞의 너덜지대인 '어산불영'과 관련된 전설은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 전해온다. '만어운해(萬漁雲海)'는 '밀양8경'에 속하는 절경으로 꼽힌다.

하산길은 일단 만 마리의 물고기가 변했다는 '어산불영' 너덜지대를 가로질러 가야 한다. 어산불영을 통과한 후 오솔길을 따르면 곧바로 임도. 왼쪽으로 임도를 따른다. 임도길 중간에서 우측 아래를 보면 삼랑진읍과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눈에 들어온다. 선교종 부도공원을 지나 20분쯤 가면 좌측의 만어산과 우측의 구천산을 연결하는 등산로를 가로지르는 고개를 지나는데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다. 내리막임도 좌측으로 시야가 탁 트이는 곳에서 바라보면 감물저수지와 깨밭고개, 그 너머 멀리 향로봉과 향로산이 보인다. 20분 후 아스팔트도로를 만나는데 감물고개다. 오른쪽으로 가면 삼랑진읍, 왼쪽은 감물리다. 왼쪽으로 15분쯤 내려서면 아스팔트 도로 중간에서 우측 마을로 내려서는 시멘트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른다. 감물리 용소마을이다. 주변에 빼곡한 다랑이논이 밀양 3대 오지 중 한 곳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사진설명 : 유명 도예가인 무성 정재헌 씨가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동편마을에 있는 자신의 작업공간 '우해요(牛海窯) '에서 전통 도자기가마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2006년 벡스코에서 열린 한국차(茶)대전 대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정 씨는 10여년 전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상여를 함께 메거나 마을 잔치 준비를 함께 하는 등 마을 일에 적극 동참, 반장도 역임했다는 그는 나그네에게 기꺼이 차 한 잔 내 놓을 줄 아는 고마운 '시골 사람'이다. >



# 두드리면 쇳소리 내는 돌 찾는 재미, 만어사에 얽힌 두가지 전설도 신기

   

밀양 지역은 삼국시대를 전후한 당시 가야와 신라의 치열한 영토 쟁탈전이 치러진 곳으로 알려져있다. 당초에는 가야의 세력권에 들어 있었지만 신라가 확장 정책을 펼치면서 피할 수 없는 격전이 치러진 곳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은 해석일 테다. 물론 큰 강인 낙동강을 끼고 있는 지역이다 보니 가야와 신라 모두 포기할 수 없는 땅이었을 것이다. 밀양 땅에서도 삼랑진읍 쪽에 가까운 만어산의 경우도 원래 가야의 영토라고 봐야 하겠다. 이 같은 추론은 고려 중기 일연 선사가 저술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만어사 창건 및 어산불영에 관한 전설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가야국의 수로왕 시절, 가야국의 옥지(玉池)라는 연못에 살던 독룡(毒龍)과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羅刹女)가 서로 사귀면서 뇌우와 우박을 일으키자 4년 동안 흉년이 들었고 백성의 생활은 피폐했다. 이에 수로왕이 인도에 있던 부처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수로왕의 간절한 뜻을 알아차리고 6명의 비구와 1만 명의 천인을 데리고 와서 독룡과 나찰녀를 굴복시키고 가르침을 내림으로써 평온을 되찾았다. 수로왕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곳에 절을 지었고, 그것이 곧 만어사라는 것이다. 부처님이 데려온 1만 명의 천인은 물고기로 변해 절 앞의 너덜지대인 어산불영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만어산과 만어사가 원래 가야 땅이었음을 유추케 하는 대목이다.

조선시대의 기록인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는 삼국유사와 다른 전설이 기록돼 있는데 잠시 살펴보자. 이에 따르면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은 자신의 목숨이 다한 것을 알고 가야 땅 무척산에 살던 선승을 찾아가 새로 살아갈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스님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인연 닿는 곳"이라고 알려주었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날 때 수만 마리의 고기떼가 뒤를 따랐으며 그가 멈춰 쉰 곳이 바로 이곳 만어사터다. 왕자는 이곳에서 큰 미륵돌로 변했고 수만 마리의 고기떼도 바위로 변했다. 현재 만어사 미륵전에는 불상 대신 높이 5m짜리 큰 돌이 모셔져 있는데 그것이 바로 왕자가 변한 미륵돌이며 미륵부처님으로 모셔진다. 또 뜰 앞의 어산불영은 고기떼가 변한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만어산과 만어사의 이름 또한 이 같은 전설에서 연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가지 상이한 기록으로 볼 때 삼국유사에 전하는 1181년이라는 만어사 창건 연대가 과연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쇳소리를 내는 경석(또는 종석)이 하도 신기해서 조선 세종 때 이 돌들을 가져다가 악기로 만들려고 했다가 포기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신비한 물체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산불영의 모든 돌이 쇳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처음 방문한 사람은 쉽게 찾기가 어렵다. 차근차근 두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경쾌한 쇳소리를 내는 돌을 발견하게 된다. 참고로 대웅전에서 우측 계단을 내려서서 미륵전으로 가다가 미륵전 못 미친 곳 왼쪽에 몇 개의 큰 바위가 있는데 처마처럼 생긴 바위 아래 틈의 바위를 작은 돌로 두드려 보면 쇳소리를 들을 수 있다.





# 떠나기 전에

- 법흥상원놀이… 평화 염원하는 대보름 축제

   

법흥리에서 탄생한 '법흥상원놀이(사진)'에서 '상원'은 정월 대보름을 일컫는 말. 그래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졌던 놀이'를 상원놀이라고 말한다. 옛날에 당산나무에서 곡소리가 들려오고, 마을에 나쁜 일이 자주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이 당집을 세우고 대보름날 제를 지내게 됐고 그 이후 평안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모두 세 마당으로 나뉘는 데 첫 마당은 마을과 집안의 평안과 풍년을 비는 당산제를 지내고, 각 집을 돌며 지신밟기를 한다. 둘째 마당은 놀이마당으로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를 하고, 다리에 병이 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다리밟기를 한다. 뒷마당에서는 달맞이를 하면서 달집을 태워 마을의 모든 재앙이 불타 없어지고 새 복이 오기를 빈다. 모든 마당이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신명 나는 놀이판을 벌인다.

답사를 끝내고 출출함을 달래 줄 음식점 한 곳을 소개한다. 단장천과 산내천이 합쳐지는 교통 요충지인 산외면 금곡리 단산마을의 '두꺼비 식육 식당(055-352-5101)'은 된장삼겹살과 김치찌개가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다. 특히 묵은지를 듬뿍 넣어 끓여 낸 김치찌개는 얼큰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소문을 듣고 부산 대구 등에서도 손님이 올 정도. 게다가 반찬으로 나오는 햇김치와 직접 키워 싱싱한 야채, 그리고 쌈장의 맛도 남다르다.




# 교통편

- 밀양터미널서 감물리행 버스 하루 5회 운행

부산발 밀양행 무궁화호는 부산역 기준 오전 5시10분 첫차가 출발한다. 이후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43분 소요된다. 요금은 3800원. 밀양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감물리행 새마을버스를 이용한다. 새마을버스는 오전 6시10분, 8시10분, 11시50분 등 하루 5차례 출발한다. 미촌리 구미마을 버스 정류소에서 내리면 된다. 답사를 마친 후 감물리 버스 정류소에서는 밀양행 새마을버스가 오후 1시, 4시30분, 7시20분에 출발하니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이 버스들을 놓쳐 단장면 금곡리까지 2시간가량 걷거나 택시를 불러야 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24번 국도 울산 언양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금곡교차로에서 단장 표충사 방향(1077번 지방도) 표지판을 보고 오른쪽으로 내린 후 금곡교를 건너자마자 삼거리에서 오른쪽 감물 방향으로 진입한다. 미촌리 사촌마을 삼거리에서 구미마을 쪽으로 우회전, 400m쯤 가면 구미교 앞 구미마을 버스정류소에 닿는다. 답사 후 차량 회수를 하려면 감물리에서 버스를 타고 나와 사촌마을에서 하차, 구미마을까지 10분쯤 걸어야 한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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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다랑이 논에서 만난 순박한 농부가 부르네요. "더울 텐데 저기 당산나무 그늘에서 좀 쉬었다 가오"



감물리 다랑이 논의 모습으로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논과 논 사잇길을 따라 뱀처럼 용소마을로 이어진다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다랑이 논에서 만난 순박한 농부가 부르네요. "더울 텐데 저기 당산나무 그늘에서 좀 쉬었다 가오"




   

투명하던 봄이 바람을 타고 흐른 곳에 짙은 여름이 서성이고 있다. 대지도 짙푸르고 공기도 끈적인다. 한 걸음 내딛기도, 몸을 옴짝달싹하기도 힘겨운 계절. 하물며 하루 온종일 길을 걷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다. 그러나 이 계절은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왕성한 생명력이 발휘되는 시기다. 이마와 등줄기에 흐르는 땀 방울을 이리 닦고 저리 훔치며 걷다보면 그 왕성한 생명의 기운이 뿜어내는 '자연의 교향곡'에 흠뻑 취하며 어느새 '여름 길 걷기'의 참맛을 알게 된다. 작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만 들어도 시원한 쾌감을 느낀다. 고갯마루 넘어설 때 귓불에 흐른 땀을 훔쳐주는 바람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문득 도저히 사람들이 모여 살기 힘들 것 같은 오지 마을을 지난다. 그 산간 오지 작은 들판의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에서 굽혀진 허리 이리저리 비틀어가며 바쁜 일손 놀리고 있는 농부라도 만난다면 슬그머니 미안해지는 마음. 그것 또한 둘레꾼 누구나 느끼는 인지상정일 테고….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일손을 멈춘 농부들이 "여보시오, 나그네 양반. 더울 텐데 저기 당산나무 그늘에서 좀 쉬었다 가오"라며 새참 보자기에서 꺼낸 막걸리 한 잔 권할 요량이면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 '밀양 3대 오지' 감물리 출발 17.5㎞ 구간

   
천지봉 구천산 만어산 석이덤방우산 등에 둘러 싸인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는 영남알프스의 서남쪽 끝 오지 마을이다. 계단을 이루는 다랑이논이 정겹고, 인심 좋은 사람들이 산다. 개척단은 이 곳의 3개 자연마을을 거치는 둘레길을 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5코스는 경남 밀양의 대표적인 산간 오지 마을들을 지나가는 길이다. 인정 많은 촌부들과 작은 암자의 공양간 보살님으로부터 감동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천에 널린 산딸기. 붉다 못해 검게 익어가는 산딸기의 유혹은 여름 길 걷기를 절정으로 이끈다.

출발지는 '밀양 3대 산간 오지 마을' 중 하나인 단장면 감물리 용소마을 회관 앞이다. 깨밭고개, 달똥고개 등 해발 400~500m대의 고갯마루 2개를 넘어야 하는 이번 코스는 종착지인 단장면 사연리 동화전마을까지 총거리 17.5㎞에 달한다. 걷는 시간만 5시간, 휴식을 합치면 6시간30분은 잡아야 한다. 여름철 당일 걷기 코스치고는 결코 짧지 않은 거리다. 그러나 쉬엄쉬엄 걸으면 못 갈 거리도 아니다. 탈수 현상을 방지하려면 물은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데 다행히 곳곳에 식수 보충할 곳이 있으니 참고로 하자.

감물리는 용소마을 중리마을 구기마을 등 3개 마을로 이뤄진 해발 300m급 산간 마을이다. 옛날부터 맑고 달콤한 샘물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달 감(甘)자를 쓴다. 용소마을은 그중 제일 남쪽 산기슭에 있는데 옛날에 작은 늪에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용소마을과 중리마을 사이 들판은 아담한 다랑이논이다. 개척단은 눈앞에 보이는 다랑이논 사잇길로 올랐다가 왼쪽으로 돌아 내려설 계획이다. 이렇게 길을 잇는 것은 좀처럼 방문하기 힘든 오지 마을인 감물리에 이왕 온 걸음이니 속속들이 밟아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용소마을을 출발하면 만나는 돌담으로 돌맹이가 지멋대로 쌓아 놓은 시골의 담장이다. 그 위를 덮고 있는 담쟁이는 푸르름을 더하며 운치있는 모습으로 시골 돌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소눌 노상직 선생이 1913년 건립한 자암서당.

일단 용소마을회관에서 남쪽 당고개 방향으로 200m쯤 가다가 첫 번째 갈림길에서 왼쪽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다랑이논 사이의 조그마한 밭에서 깻잎을 따던 주민 박수화(66) 씨가 "좀 쉬었다 가오. 저기 남서쪽의 저 산은 꼬깔봉이고 동쪽의 저 산은 석이버섯이 많이 난다고 석이덤방우산이라 하고, 감물분교터 뒤 야트막한 산은 연화봉이라 하고…. 단장면이 넓어서 옛날부터 양산보다 세 평 좁다고 했지"라며 인정스럽게 지형 설명을 해 준다. 당집과 당산나무 앞을 지난 후 계속 길을 이어가면 다랑이논 사이를 통과해 중리마을회관을 지난다. 왼쪽으로 꺾어 내리막 길을 따라 7분쯤 가면 감물분교터와 감물리 버스정류소를 잇따라 지나고 곧바로 구기마을 입구 갈림길이다. 마을 표지석을 보면서 우측 길로 진입한다. 왼쪽에는 오래된 옛 방앗간과 감물저수지가 있다. 감물리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저수지가 있는 것을 두고 "못은 우리 동네에 있는데 그 이득은 아랫마을인 안법리와 미촌리 사람들이 본다"는 푸념을 한다.

당산나무와 당집이 있는 용소마을 입구로 예전에는 이길로 용소마을 당고개를 넘어 삼랑진으로 길이 이어 졌을 것이다. 용소마을 주민인 박수화씨가 마을의 지명과 유래를 둘레길 취재팀에게 들려주고 있다.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다랑이 논에서 만난 순박한 농부가 부르네요. "더울 텐데 저기 당산나무 그늘에서 좀 쉬었다 가오"






■ 다랑이논 지나 400~500m대 고개 2곳 넘어


뒤돌아본 용소마을의 모습과 그 뒤로 삼랑진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용소마을에서는 감물고개, 용소고개, 큰고개로 불리며 삼랑진 우곡리와 영남알프스 둘레길인 14코스 만어사로 이어진다.

10여 분쯤 가면 구기마을 경로당 못미친 갈림길에서 우측 길을 택해 오른다. 차량 통행도 가능할 것 같은 임도는 깨밭고개까지 이리 꺾고 저리 틀며 오른다. 길가에는 한창 물오른 산딸기가 지천이다. 40분쯤 부지런히 올라야 깨밭고개에 닿는데 앞뒤로 조망이 탁 트인 곳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고갯마루에 커다란 나무가 있어 쉼터 또는 식사 자리로 삼으면 좋겠다. 감물리 사람들이 단장면 소재지로 오가던 주요 길목이다. 옛날에 고개 아래에 깨밭이 있었다고 이름 붙여진 깨밭고개에서 왼쪽은 천지봉, 오른쪽은 석이덤방우산을 지나 금오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로 연결된다.

깨밭고개로 넘어서면 만나는 시원한 숲 그늘의 임도 길로 지소마을 까지 이어진다

이어지는 직진 내리막 임도 역시 이리저리 꺾어지면서 무릉리 지시동 경로당까지 이어진다. 35분쯤 걸린다. 무릉리는 '무릉도원'처럼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시동경로당 앞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비포장길로 들어서면 대추밭 사잇길로 이어진다. 그 끝에서 다시 왼쪽으로 살짝 틀었다가 우측으로 길을 이어가면 무릉동 경로당. 아스팔트 도로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무릉교회를 지나고 곧바로 버스정류장이다. 왼쪽 20m 지점의 무릉교를 건넌다. 국전천 또는 용포천으로 불리는 이 하천 변 갈대가 유명한데 옛날에는 이 갈대를 잘라서 여러가지 생필품을 만들어 밀양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 300m쯤 가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초반 우국지사로 이름을 높인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1854~1931년) 선생이 망명지인 만주에서 돌아와 후진양성을 위해 1913년 설립한 자암서당(경남문화재자료 제194호)을 지난다. 수도꼭지가 있어서 빈 물통을 채울 수 있다.

중리마을 앞 소류지의 모습으로 중리마을과 그 뒤를 감싸는 석이덤산의 능선이 그림 같다.

서당 앞에서 보면 가야 할 방향의 수리덤산 암벽이 훤칠하다. 보문사까지는 조금 힘겨운 오르막 임도길이지만 중간 중간 만나는 예쁜 전원주택들을 보면서 힘을 낸다. 20여 분 후 보문사 입구에 배낭을 벗어놓고 아담하지만 운치있는 절집에 들러 샘물에서 마른 목을 적신다.

■ 마을회관·자암서당·보문사에서 식수 보충


감물저수지와 구기마을의 멋스러운 소나무가 둘레길의 아름다움을 더욱 업 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코스 막바지 보풀잘룩이에서 사연리로 내려서는 길.

보문사 입구에서 계속 길을 이어가면 새로 짓는 절집 아래에서 우측으로 휘어진다. 곧바로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들어서서 산딸기의 유혹을 애써 외면하며 5분쯤 가면 임도가 지능선을 넘어 왼쪽으로 휘어지는 곳에 닿는다. 이곳에서 시멘트포장 임도를 버리고 왼쪽 능선으로 곧장 치고 오르면 수풀이 우거지지만 30m만 가면 옛 등산로가 나타난다. 달똥고개로 오르는 길이다. 25분가량 우거진 숲속 길을 따라 오르면 달똥고개. 옛날 산에 나무가 없던 시절 무릉리에서 보면 이 고개 너머로 둥근 달이 떠오른 모습이 예뻐서 달똥고개라 부르게 됐다. 일종의 사거리인 이곳에서 다시 왼쪽 오르막으로 100m가량 가다보면 우측으로 희미한 길이 있는 갈림길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희미한 길을 따라 10분쯤 가면 보풀잘루기고개다. 왼쪽은 수리덤산, 오른쪽은 취경산 수연산(뇌암산) 벼락덤이로 가는 방향인데 하산 하려면 정면 오른쪽 1시 방향으로 비스듬히 내려가는 길을 타야 한다. 5분 후 학성 이씨 김해 김씨 합장묘에서 왼쪽 10시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을 따르면 6분 후 임도에 닿는다. 단장면 사연리 성지골 상류다. 왼쪽으로 50분쯤 내려서면 동화마을회관을 지나고 1077번 지방도의 동화전마을 표지석에 닿는다. 왼쪽으로 150m가량 가면 사연마을 표지석과 '동화 버스정류소'에 닿아 코스를 마무리한다. 사연마을 뒤편 북쪽으로 정각산이 우뚝하다.



◆ 둘레길 이야기-수리덤산 보문사


마당바위 선바위 흔들바위의 모습으로 조용한 사찰의 분위를 나타낸다. 그 앞으로 도연명의 무릉도원 같은 무릉리의 마을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 인자한 노스님 머무는 인심·조망 좋은 도량

   
보문사 흔들바위.

둘레길을 걷다보면 많은 사찰과 암자를 거치게 된다. 그렇다고 소위 '천년고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리 잡은 지 100년도 안 된 암자라 하더라도 절집의 분위기가 그윽하고 조망도 빼어나며 스님을 비롯한 관계 보살님들의 인상 또한 선하디선한 곳도 많다. 이번 제15코스에서 방문하게 되는 밀양시 단장면 무릉리 보문사(普門寺) 또한 그런 암자 중 하나다.

올해로 창건 68년째를 맞은, 사찰의 나이로 보면 아직 젊다고 해야 할 보문사에는 몇 가지 매력이 있다. 우선은 수리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보니, 남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무릉리 마을의 풍광이 시원스럽다. 옛날 밀양 땅에서 관직을 거쳤던 선비나 학자들이 중국 동진과 송나라 문장가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상상 속 이상향인 '무릉도원'을 닮았다고 이름 붙인 동네를 바라보는 것. 결국 절이 '무릉도원'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 절에는 4개의 바위가 있는데 저마다의 매력을 품고 있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입암(일명 선바위)은 사람의 얼굴 모습을 닮아 있어 신비스럽고, 그 앞의 높이 1.5m 남짓한 '흔들바위'는 혼자서 밀어도 끄덕거릴 정도로 절묘한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어 새로운 명물이 되고 있다. 또 흔들바위 아래의 배바위, 요사채 뒤 50m 지점에 있는 마당바위도 볼거리다. 특히 높이 10m가량의 깎아지른 절벽 윗면이 평편하다고 이름 붙여진 마당바위는 오랜 옛날부터 스님과 도인들의 수도장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보문사로 올라가는 황톳집과 돌담의 모습으로 지붕만 손질하면 옛 모습 그대로의 우리내 집인 것 같다.

   
보문사 주지 신행 스님.

보문사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웅전 계단 아래의 시원하고 달콤한 샘물과 절집 사람들의 훈훈한 인정이다. 샘물은 수리덤 절벽 아래에서 스며 나오는 탓인지 그 맛이 일품이다. 세속 나이로 79세, 법랍 56세인 노스님인 주지 신행 스님은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하루도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손수 괭이와 호미 등을 들고 절 뒤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신행 스님의 소탈한 성품 못잖게 공양간 보살님 또한 인정스럽기 이를 데 없다. 어쩌다 들린 나그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시원한 수박과 단술, 떡을 내놓으며 "그저 편안하게 쉬었다가 가시라"고 웃음 짓는다. 천년고찰이라는 이름표만 믿고 어쩐지 위압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일부 사찰에 비해 훨씬 더 맘 편하게 들릴 수 있는 도량이 바로 보문사다.


지소마을 뒤 밤밭에서 바라본 무릉리로 소류지 밑 둘레길인 농로길을 따라 이어진다.
◆ 교통편

- 밀양터미널서 감물리행 버스 하루 5회 운행

계단식 논인 다랭이논의 모습으로 감물리에서 볼 수 있다.

밀양행 무궁화호는 부산역 기준 오전 5시10분부터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소요시간은 43분이다. 3800원. 밀양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감물리행 새마을버스를 이용한다. 오전 새마을버스는 오전 6시10분, 8시10분, 11시50분 등 하루 5차례 출발한다. 약 30분 소요. 용소마을회관은 감물리 입구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야 한다. 답사 후 동화에서 밀양행 버스가 20~40분 간격으로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 막차는 오후 8시10분.

자가용의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24번 국도 표충사 얼음골 언양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금곡교차로에서 표충사 방향으로 빠져나가 금곡교를 지나자마자 오른쪽 감물리 방향으로 진입, 계속 직진하면 감물리에 닿는다. 감물저수지 지나 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우측 길로 200m쯤 가다가 아스팔트도로를 버리고 왼쪽의 시멘트길로 들어서면 용소마을회관 앞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답사 후 차량 회수를 하려면 동화전에서 버스를 타고 금곡리까지 간 후 밀양발 감물리행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금곡리에서 오후 3시50분과 6시50분(막차)쯤 감물리행 버스를 탈 수 있다.


노곡마을을 건너는 무릉교이며 이곳에서 300m를 올라가면 만주에서 돌아온 노상직이 자암서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하였던 곳이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국제신문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모습과 깨밭고개의 노거수이다. 감물리 주민들은 단장면 사무소로 가기위해서는 꼭 이고개를 넘어 갔다한다.



보문사로 올라가는 길로 옛집과 요즘 새로 지은 별장 같은 집이 같이 공존하는 산골 마을이다. 

보문사에서 바라본 무릉이의 모습으로 올라온 높이를 짐작 할 수 있다.

보문사에서 달똥고개를 거쳐 동화전으로 가기위해서는 보풀잘루기를 넘어가야 한다. 수리덤과 취경산 사잇의 고개로 이고개를 넘어 성지골로 내려선다. 둘레길에서 지천으로 만나는 산딸기로 이맘때는 간식으로도 훌륭하다.

성지골을 내려가는 임도길로 황토에 너와를 올린 특이한 집을 만난다. 옛날에 성지란 감여가가 살았다는 성지골.

도착마을인 사연리 동화전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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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그너머 <734> 제16코스 : 밀양 단장면 사연리 ~ 고례리 평리마을회관
'구절양장' 단장천 물길 거스러니 "발도 시원, 눈도 시원"

이번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출발점인 사연교다리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구절양장 단장천 영남알프스 둘레길 16코스 이야기. 단장면 사연리~고례리


   
무더운 여름철 땡볕 아래에서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수행자가 될 각오를 해야 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간혹 작은 계곡의 이름 없는 폭포를 만나거나 물길 넉넉한 하천을 만나면 반갑기가 비할데 없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번 주 답사한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6코스는 밀양의 깊은 산골을 향해 수행자처럼 걷는 길이다. 하지만 중간에 시원한 하천을 따라 걸으며 더위도 식힐 수 있고 아름다운 풍광에다 발길 닿는 곳마다 숱한 이야깃거리까지 들을 수 있으니 결코 지루하지는 않은 길이다.

출발지는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동화전마을의 동화버스정류소 인근 사연마을 표지석 앞이다. 반계정 범도리 골마 아불 범도마을 등을 거쳐 고례리 평리마을회관 앞에서 답사를 끝낸다. 총거리 12.5㎞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휴식 시간을 포함하면 5시간 쯤 잡으면 되겠다.




평리의 수중생태관찰장으로 여러가지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이 되어 있다. 이번 장마로 인해 많은 곳이 떠내려 가 버렸다.
■ 사연교 건너 정각산 등산로 진입… 12.5㎞ 5시간쯤 소요

   
밀양 단장천은 재약산 천황산 일대 계곡과 배내골의 물길이 합쳐져서 형성된 아름다운 하천이다. 본지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단장천 변을 걷고 있다.
사연리(泗淵里)는 원래 단장천 변에 발달한 사구와 소(沼) 연못 등이 많아서 '모래 사(沙) 못 연(淵)'을 붙여 사연(沙淵)이라고 불렸다. 그러던 중에 선비들이 마을에 터를 잡기 시작하면서 공자가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중국의 사수(泗水)라는 하천에서 이름을 따와 사연(泗淵)이라고 불렀다. 출발지인 동화전(桐花田)마을은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동나무 꽃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동하진(東下津)'이라고도 불리는데, 신작로가 뚫리기 전까지 밀양 읍내에서 표충사로 가려면 단장천 서쪽의 사연 본동 마을을 거쳐 배를 타고 단장천을 건너야 했던 데서 유래한다. 사연 본동 마을의 동쪽에 있는 나루터라는 의미.

1077번 지방도 상의 사연마을 표지석에서 단장천 방향으로 간다. 7월의 둘레길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탐스러운 자두가 익어가고 있다. 단장면은 원래 대추의 주산지로 전국적 명성을 날리는 고장이지만 자두나 사과 감 등을 함께 경작하는 농가가 적지 않다. 난간 없는 사연교 다리 아래로 단장천 물살이 거세다. 이틀 전부터 답사 당일 아침까지 퍼붓던 장맛비가 영남알프스의 천황산과 재약산 자락의 여러 골짜기와 배내골 구천천 시전천 등의 계곡을 타고 내려와 이 거센 물살을 만든 것이리라. 사연교 위에서 북쪽을 보면 정각산(正覺山·859.7m)이 우뚝하다.


사연리의 과수원에 열린 자두로 수분 함량이 많은 육즙으로 새콤달콤한 맛을 내며 아불에서 이어지는 도로는 이팝나무길로 봄에는 이팝나무꽃 축제가 열리는 아름다운 길이다.

   
종점인 고례리 평리마을 하천의 벼락바위와 산 위 벼락청덤.
사연교를 건너 50m쯤 가면 '사연2길 35-1번지' 앞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꺾는다. 정각산과 승학산 등산로 표지판이 보인다. 등산로는 아주 완만한 오르막이다. 오른쪽 아래로는 단장천이 유유히 흐른다. 20분쯤 가면 오른쪽 아래 곰소(熊淵) 방향으로 가는 작은 갈림길이 있지만 능선길을 따라 직진한다. 10분쯤 더 가면 사거리 갈림길. 직진하면 정각산 및 승학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이어지지만 둘레길 개척단은 우측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로 방향을 잡는다. 한동안 편평한 길이 이어지다가 10여 분 지나면서부터 길이 조금 험해진다. 잡목과 수풀이 우거진 길을 헤쳐야 하는 길이다. 안내리본을 참고해서 진행하자. 이렇게 길을 개척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모과나무군락지에 닿는다. 주변에 수십 그루의 모과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누군가 일부러 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산중에 모과나무 군락지가 있을까 싶다. 아무래도 옛 절터가 있었던 곳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정확한 자료를 찾기 힘들다. 우측으로 살짝 휘어지는 길은 곧바로 내리막 능선길로 연결된다.

얼마 가지 않아서 인동 장씨 묘를 지난다. 봉분 앞에서 바라본 단장천과 그 뒤로 이어진 백마산 자락이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묘에서 1시 방향으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곧바로 작은 폭포를 닮은 지계곡에 닿아 시원한 계곡물에 땀줄기를 가볍게 씻어내고 계곡을 타고 곧장 아래쪽 단장천으로 내려선다.

이번 장마로 이 다리는 떠내려 가고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당모렝이 인근에 설치된 다리였는데 사연교에서 골마교 중간의 유일한 다리 였다. 비로 유실되고 말았다.

옛날에는 박미마을이 있었는데 지금은 마을은 사라지고 퇴로리 여주이씨 이종극의 별업으로 지어진 도원정과 암자인 봉화사만 남아 있다. 봉화사의 스님이 도원정을 관리하고 계신다.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구절양장 단장천 영남알프스 둘레길 16코스 이야기. 단장면 사연리~고례리


■ 계곡화 신고 물길 걷기 가능… 반계정 도원정 운치 좋아

   
정각산 모과나무군락지에서 단장천으로 가다가 만난 계곡.
아뿔싸. 이를 어쩌나. 평상시 같으면 단장천에 닿는 순간부터 등산용 샌들이나 계곡화로 갈아 신고 왼쪽으로 틀어서 상류 방향으로 가장자리의 얕은 물을 거슬러 첨벙거리며 진행할 구간인데 불어난 물로 인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최대한 하천에서 가까운 왼쪽 숲길을 개척해서 진행한다. 하지만 큰 비가 온 직후가 아니라면 경상도 사투리로 '갱분길'이라고 하는 하천길을 따라 시원하게 걸을 수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는 말자.

일단 이날만큼은 하천 변의 수풀 우거진 길을 따른다. 곧바로 가족묘지를 지나고 계속 하천 변을 따르는데 크고 작은 암벽과 바위들이 냇물과 어우러지며 멋진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어 지겨울 새가 없다. 20분쯤 가면 커다란 바위가 길을 가로막는데, 왼쪽 길로 살짝 틀어서 진행하면 반계정(盤溪亭)이다. 조선 영조 51년(1775년) 첨지중추부사인 반계옹 이숙(李潚)이 세운 별장인 반계정은 거대한 자연 반석 위에 세워졌고 그 앞 하천을 청계(淸溪)라고 부른 데서 이름을 따서 붙였다. 단장천 하류 방향에 있는 곰소(熊淵) 등과 맞물려 경치가 좋은 곳으로 예로부터 알려져 있다. 반계정 본 건물 오른쪽 뒤로 반계정사가 따로 있는데 관리가 깨끗하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은 받을 수 없다.


반계정의 모습

   
인동 장씨 묘에서 보면 단장천과 백마산 자락 풍광이 멋지다.
반계정 앞 물가에 굵은 배롱나무 한 그루가 운치를 더하는 가운데 하천길을 좀 더 따르면 작은 개울을 건너고, 갈림길에서 우측 큰 하천 쪽 길을 따라 걷는다. 온통 대추밭의 연속이다. 10분을 채 걷지 않아 범도리 골마마을. 정각산 아래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양질의 닥나무가 많이 자라서 한때 '범든종이'라고 불렸던 한지 생산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우측으로 골마교를 건너 길을 따르면 아불마을에 있는 범도 보건진료소를 지나 1077번 지방도 상의 아불에 닿는다. 왼쪽으로 200m쯤 가서 제2아불교를 건너면 밀양댐 방향인 우측으로 길을 잡는다. 1051번 지방도다. 아불마을은 원래는 작은 주막거리에 불과했지만 1920년대 사립표충학원이 서고 이후 산동초등학교가 들어선데다 버스정류소와 표충사 가는 큰 길가에 위치하게 되면서 범도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 됐다. 밀양댐 방향으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르게 된다. 600m쯤 가면 범도리의 본동인 범도마을. 마을 앞 단장천에 범도연(泛棹淵)이라는 큰 소가 있는데, 옛날부터 뱃놀이를 했던 곳이다. 아불마을에서 평리마을로 가는 이 길은 봄에 이팝나무 축제가 열리는 '이팝나무길'이다.

반계정 내부의 모습

■ 밀양댐 아래 고례리 평리마을 벼락바위 3개 인상적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모과나무군락지는 원시림 그 자체다.
범도마을을 지나 2㎞쯤 가면 왼쪽 백마산 자락 중턱에 툭 불거진 거대한 바위벼랑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소나 말의 밥상 역할을 하는 구유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구시방방우다. 그 오른쪽 작은 계곡은 구시방골. 옛날에 한 사람이 이 골짜기의 명당에 묘를 쓴 후 부자가 됐지만 그 부인이 넘쳐나는 손님 접대가 지겨워서 묘 아래에 연못을 팠다가 집안이 망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구시방방우 아래를 지나 10분쯤 가면 봉화사 표지석을 보고 우측 냇물 쪽으로 꺾는다. 주변 절벽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드러내는 단장천의 징검다리를 건너 5분 정도 오르면 도연정. 여주 이씨 이종극의 별업이었던 도원정(桃源亭)은 운치 그윽한 정자지만 조금은 을씨년스런 분위기다.

   
자연 반석 위에 세워진 반계정 앞을 지나고 있는 개척단원들.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자마자 우측 강둑길로 꺾는다. 들판 사잇길로 이어질 즈음 멀리 밀양댐과 그 머리 위 향로봉이 보이고 왼쪽에 은빛 암반 찬란한 백마산이 눈에 들어온다. 1051번 지방도와 합쳐진 후 조금 더 가면 고례리 평리마을. '평리 팜스테이마을' 현판에서 우측으로 꺾어 냇가로 나가본다. 뇌암산 벼락칭더미가 우뚝하고, 벼락을 맞아 떨어졌다는 거대한 바위 3개가 하천에 드러나 있다. 가운데 큰 바위가 조피바위, 우측은 마당바위, 그리고 좌측 기도처가 있는 바위가 소원바위다. 주변에 자연생태관찰로와 하천 분수대 등이 잘 갖춰져 있어 쉬었다 가기에 좋은 곳이다. 다시 1051번 도로로 돌아와서 길을 건너면 당산나무가 여러 그루 밀집한 당숲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꺾으면 평리마을회관앞이다. 해거름녘 마실 나온 동네 어르신들이 선한 웃음을 지으며 나그네들을 반겨 준다.

단장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둘레길 탐사팀. 이번 장마로 물이 많이 불었지만 그 이외에는 계곡화를 신고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도 되는 곳으로 여름철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 아니면 계곡 좌측을 끼고 진행을 할 수 있다 

# '배 띄워 노 저어간다'는 형상의 범도리

- 마을에 우물 파지않는 금기 전해와

당모렝이의 곰소로 이곳 지형이 곰이 물을 먹는 형상이라 한다.

   
물길이 호박소와 연결되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밀양 사연리 단장천의 '곰소'.
영남알프스 둘레길 속 마을마다 갖가지 이야기가 넘쳐나지만 특히 주변 산세와 하천 바위 등 눈에 보이는 지형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유독 많다. 그것은 아마도 눈에 보이는 것들 모두가 자연의 일부분인 까닭에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갖고자 했던 옛사람들의 무의식이 빚은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번 제16코스에 속해 있는 범도리(泛棹里)와 고례리(古禮理) 일대에도 지형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있는데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특히 지형과 연관된 이야기가 실제 마을과 주변 봉우리 하천 소 등에 지명(地名) 속에서 살아 있음을 알고 나면 옛이야기가 그냥 심심풀이 삼아 해 보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절감케 된다.

범도리라는 마을은 동북쪽에서 흘러내리는 구천천과 동쪽 표충사의 시전천, 남쪽 밀양댐 및 배내골 방향에서 흘러오는 고사천이 만나 단장천을 이루는 곳에 있다. 합수지점이다 보니 하천 폭이 크다. 그런데 이 마을 이름부터가 뜰 범(泛)에 노 도(棹)자를 쓰는데 이는 '큰 배가 물위에 떠서 노를 젓고 나가는 형상'을 뜻한다. 마을 북쪽의 가장 높은 정각산을 선수로 보고, 벼락더미가 있는 남쪽의 뇌암산을 선미로 보며, 아불마을과 범도마을의 뒷산인 미물산과 번데기산으로 이어지는 얕은 능선을 배의 노로 본다. 그래서 큰 배가 노를 저어 가는 형상, 즉 행주형(行舟形) 마을이라는 것이다. 또 범도리의 본동인 범도마을 앞 고사천에 범도연(泛棹淵)이라는 큰 소가 있는데 이곳은 '배를 띄워 사람이 노를 저어 간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웃 마을인 밀양댐 쪽 고례리(古禮里)의 옛 이름을 고예(姑曳)라 한 것도 범도리로 상징되는 이 큰 배를 마고할미가 끌고 갔다고 해서 붙인 지명이다. 선소(船沼), 이선대(移船臺) 등 배와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고 풍수지리상으로 옛날부터 배설(舟穴)이라 하여 마을에 우물을 파지 않는 금기가 전해오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있다.

범도마을 앞의 범도연으로 옛날에는 이곳에서 배를 탔다고하여 뱃머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 단장천 자락의 사연리 사연교에서 범도리 쪽 상류로 거슬러 오르다 보면 당모랭이 인근 하천에 곰소(熊淵)라는 깊은 소(沼)가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푸른 물이 감돌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도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오는데, 이 깊은 물에 옛날부터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소 아래로 물길이 뚫려 있으며 그 물길은 정각산 너머 얼음골 인근 산내면 백운산 자락의 명승지인 호박소(臼淵)와 연결돼 있다고 한다. 호박소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 소머리를 바치게 되면 그 살점과 소 코의 나무가락지가 이곳 곰소 물 위에 떠올랐다고 전해진다. 이런 전설 때문에 호박소와 곰소에서는 동시에 기우제를 지내는 일이 많았다. 지금은 아는 사람들만 즐겨 찾는 물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물이 깊어 항시 위험이 존재하는 곳이다. 제16코스의 전반부에 정각산 산행로를 따르다가 모과나무군락지를 지나 다시 단장천으로 내려서서 오른쪽으로 약 100m만 가면 곰소를 볼 수 있다.


◆ 떠나기 전에

사연리 침류정으로 현재는 벽진이씨가 되는 분이 구입을 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탄생하였다. 지금은 침유정팬션의 고택 체험 민박집으로 이용되고 있다.

- 들머리 탐스런 자두, 함부로 따지 않는 '착한 걷기'를…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사연마을에는 침류정(枕流亭)이 있다. 의령(宜寧) 남씨(南氏)의 정자인데 원래는 1900년께 군수였던 안장원이 세운 경호정(鏡湖亭)이었다. 그것을 1953년 남씨 문중에서 사들여 재실로 삼고 현판도 바꿨다고 한다. 두 칸짜리 방과 널찍한 대청마루로 이뤄진 단촐한 정자다. 특히 그 앞에는 범머리못이라는 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못은 없어지고 따로 만들어진 연못이 있다. 현재는 다시 개인이 사들여 고택 체험 민박집으로 꾸몄다.

한편 출발지인 동화전마을에서 사연교 방향 우측에 자두밭이 있는데 열매가 유달리 굵다. 이 마을 주민 김태연 씨가 정성들여 키운 것이다. 달콤 새콤한 맛이 일품이다. 특히 과즙이 풍부해서 갈증 해소용 간식으로 좋다. 함부로 손 대지는 말자. 택배 또는 현장 구매가 가능하다. 전화(011-9503-1131)로 문의하면 된다.

사연리 본동인 사연마을 입구 성황당으로 논 한가운데 있다.

◆ 교통편

- 종점 고례리서 오후 5시25분, 7시30분 밀양행 버스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 편으로 밀양역까지 간다. 부산역 기준 오전 7시45분, 8시35분, 9시25분, 10시20분 등 여러 편있다. 해운대역에서 밀양행 무궁화호도 오전 7시45분에 출발한다. 밀양버스터미널에서 표충사행 또는 고례리행 버스를 타고 동화에서 내린다. 오전 7시35분, 8시45분, 9시10분 등 자주 있는 편이다. 코스 종점인 평리마을에서 밀양행 버스는 오후 5시25분, 7시30분(막차)에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24번 국도 언양 표충사 방향 우회전 후, 금곡교차로에서 내려 금곡교를 건넌다. 표충사 방향으로 1077번 지방도를 타고 10분쯤 가면 동화전마을 동화버스정류소에 닿는다. 인근에 주차 할 공간이 있다.


평리마을의 수중생태관찰장의 모습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사연마을에서 정각산 산길을 오르고 있는 둘레길 탐사팀으로 숲이 우거져 시원하며 둘레길 또한 편안하게 이어져 나간다.

둘레길에서 만난 모과나무군락지로 수십기의 모과나무에 모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에전에는 집터 또는 절터의 흔적 같은게 보인다.

인동장씨묘역으로 내려서면 가야할 단장천과 그 뒤로 영남알프스 산군인 미물산 향로산 백마산 향로봉의 모습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단장천 옆 길을 걷고 있는 둘레길 탐사팀.

이팝나무길로 봄에는 이팝나무꽃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이팝나무 축제가 열리고 있다.

범도천으로 사회동 농바위에서 사연리 사연교까지 구곡천이라 부르는데 아홉구비를 돌아 흐른다하여 그래부른다한다.채지당 박구원의 고사구곡가에서 따온 말로 구곡은 사연, 정각산,범도리,승학동,단애,증소,도장연,농암대,선소를 일컫는다.

평리마을로 걸어가는 둘레길 탐사팀. 멀리 밀양댐의 모습도 보인다.

단장천에서 본 동화전마을로 장마로 인해 많은 물이 흘러 내린다.

당모렝이란?. 당산나무가 있는 모렝이의 뜻으로 예전 부터 있던 이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현대화의 물결인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이제는 도로 중간에 턱 버티고 있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표충사를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는 이곳에서 숨을 돌리며 세상사 이야기를 풀어 놓았을 당산나무자리는 이제는 사방으로 아스팔트가 뒤덮여 버린 신세가 되었다. 

범도리 범도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를 깻잎 밭에서 만났다. 앳날 이야기를 하시며 이곳은 어디고 저곳은 어디며 설명을 하시는데 옛날 젊었을 대는 당시기를 짜 가지고 머리에 이고 큰골의 보풀고개를 넘어 진주동으로 시집간 딸래집에 가고 했다며 옛날의 고생담을 이야기하신다.

단장천에서 다슬기를 잡고 있는 돈네분의 모습으로 장마전에 찍은 사진이다.

반계정 앞의 단장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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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마을에서 언곡마을로 내려오는 중간쯤인 다람쥐골에서 민가를 한채 만난다. 예전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문이 잠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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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류동 가산마을 다람쥐골 이어 가는 13㎞

   
경남 밀양시와 양산시의 경계를 이루는 까치목에서 산중 오지인 가산마을로 향하는 오솔길은 영남알프스 둘레길 전체 코스에서 최고 구간 중 하나라해도 이상할 것 없을 만큼 순하며 아름다운 길이다. 본지 개척단의 발걸음이 가볍다.

이번 주 답사한 제17코스인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고례마을~양산시 원동면 선리 구간에서는 한 마디로 "무릇 둘레길이라고 하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는 길이다. 그만큼 곱고 순하면서도 가장 자연을 닮은 아름다운 숲길을 만난다. 특히 까치목에서 가산마을까지 가는 오솔길, 가산마을에서 선리까지 내려서는 '다람쥐골' 계곡길은 한동안 잊기 힘든 걷기의 추억을 선사해 주는 구간이라 할 수 있다.

출발지는 밀양댐 아래에 위치한 단장면 고례리 고례마을이다. 마을의 볼거리 몇 곳을 들른 후 제16코스의 종착점이었던 고례리 평리마을을 거쳐 백마산(774m) 중턱의 산골마을인 풍류동, 배꼽목, 까치목, 가산마을을 거쳐 다람쥐골을 따라 배내골의 중심 마을 격인 원동면 선리마을회관(정보화센터)에서 끝난다. 총거리 13㎞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휴식시간까지 포함해도 5시간 정도 걸리니 한나절 걷기에는 적당하다.




다람쥐골에서 만나는 작은 폭포로 이런 폭포가 수 없이 많아 둘레길꾼들의 탄성을 자아 내게 한다.

2001년 밀양댐이 완공되기 이전까지 고례 평리 덕달 사희동 죽촌 등 5개 행정마을을 아울렀던 고례리는 비록 오지였지만 밀양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마을로 통했다. 백마산과 향로봉(726.8m) 뇌암산 등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구곡천(九曲川)이라고도 불리는 고사천(姑射川)이 관통하며 수많은 기암절벽과 깊은 소, 바위들을 만들어냈다. 밀주구지(密州舊誌)에 '산명수려(山明水麗)하고 계류와 전답이 아름다우며 기암절벽이 마치 옥(玉)기둥을 세워 놓은 듯 깨끗한, 인세(人世)의 진경(眞境)'이라고 기록했을 정도다. 고사천(姑射川) 상류에 있는 농암대(籠岩臺)는 그 대표적인 명승지 였다. 조선 초기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제자들과 함께 이 곳을 자주 찾아 노닐었고 그 승경(勝景)을 읊은 시(詩)도 남겼다. 신선이 살았던 곳이라는 뜻에서 고사리(姑射里), 고사산(姑射山), 고사천(姑射川) 등의 이름도 생겨났다. 하지만 밀양댐의 건설로 사희동과 덕달 죽촌 등의 3개 마을과 김종직 선생이 주유했던 농암대를 비롯한 절경이 모두 수몰되는 아픔을 겪었다. 밀양댐 순환도로 중간 전망대 쉼터공원의 망향정만이 실향민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있을 뿐이다.

수몰민의 애환이 서린 밀양댐으로 점필제 김종직 선생의 유적지인 농암대도 저기 물 속에 잠들어 있다. 밀양과 양산의 경계에 있는 '밀양바위 양산바위'등 숱한 애환이 이 물속에 잠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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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단장면 풍류동 앞 공터는 쉴 만한 그늘이라 좋다.

고례리의 본동마을인 고례마을은 밀양발 새마을버스의 종점이자 1592년 이후 내려온 인동 장씨 문중의 세거지다. 본격적인 답사에 앞서 재실과 고택들을 둘러볼 수 있다. 일단 버스 종점에서 양지교라는 작은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틀면 댐 앞쪽에 인동 장씨의 재실인 옥봉정이 있다. 단촐하면서도 절제된 균형미를 갖춘 재실인데 한국전쟁 직후에 건립됐다고 한다. 다시 양지교를 건너 하천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1051번 지방도로와 만나는데, 길 건너 맞은편 산 밑에 운치 그윽한 작은 정자가 보인다. 조선 숙종 때 이 마을에 들어와 살았던 낙주(洛洲) 장선흥(張善興)과 그 후손인 농산(聾山) 장영석(張永錫)을 추모하기 위해 1918년 인동 장씨 가문에서 건립한 재실인 낙주정(洛洲亭)이다. '임경대'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누마루에 올라 낮은 담장 너머로 고사천을 바라보면 일상의 시름이 일순간 사라지는 느낌이다. 낙주정에서 돌아나와 고례교를 지나면 우측에 효자각이 보인다. 이 역시 장씨 문중의 것이다.


인동장씨 세거지인 낙주정과 효자각

고례마을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10분쯤 가면 평리마을이다. 최근 팜스테이체험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원래 평리마을은 '고례산대추' 산지로 더 유명하다. 농촌가꾸기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탔을 정도로 잘 가꿔진 동네이기도 하다. 넓은 들판과 아름다운 하천을 갖춘 평리마을은 강변의 벼락덤이와 진지소, 동북쪽의 백마산 등이 어우러져 풍광이 빼어나다. 또 밀양의 삼대 오지마을 중 두번째로 손꼽히는 바드리(일명 소월리)와 산중 마을인 풍류동(風流洞)까지 포함하고 있어 그 품이 넓고 깊다.


풍류동마을길이며 현재는 전원주택지로 각광을 받고 있어 주말마다 사람들이 찾고 있다 한다.

◇ 밀양 양산 경계 까치목 이후 구간 환상적

   
가산마을과 향로산이 보이는 전망대에 선 개척단.

마을회관 앞 운동시설을 지나 마을 안 길로 진행한다. 풍류동 가는 길이다. 3분 후 구씨 재실 앞 갈림길에서 '은하수펜션' 방향 왼쪽 길로 오른다. 완만한 오르막 길. 주변 산자락의 대추밭은 초록빛 일색이다.

25분 정도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 산중 마을인 풍류동에 닿는다. '바드리 아랫마'라고도 불리는 풍류동은 말 그대로 풍류를 즐기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다. 둥둥재, 북바위, 퉁소바위, 칭칭이산 등 마을 주변에 풍류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퉁소를 불고 북을 둥둥 치며 '칭칭나네'를 부르고 춤을 추는 풍류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차량은 풍류동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좁은 차로가 끝나는 곳에 마을 공터가 있다. 나무그늘 아래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가산마을과 배내골을 잇는 다람쥐골의 무명폭포.

까치목에서 가산마을로 내려가는 둘레길 탐사팀의 발걸음이 경쾌하다.둘레길 최고의 길이라 할만하다.

3분쯤 오르면 우측으로 '풍류동→배꼽목 1㎞'라는 안내판을 보고 배꼽목 방향 산길로 들어선다. 초반에는 조금 까다롭다. 그러나 작은 개울을 지나 50m 정도만 가면 길은 금새 편안해진다. 갈 지(之)자 모양이 여러개 이어진 형태로 계속되는 산길은 별로 숨 찰 것도 없이 순하다. 10분 후 중간 갈림길을 만나는데 왼쪽으로 오르막을 좀 더 타야한다. 15분 후 작은 고개마루인 '배꼽목'에 닿으면 다시 왼쪽 오르막 능선길을 탄다. 널찍하고 걷기 편한 길이다. 5분 후 갈림길에서도 능선을 따라 직진하면 잠시 후 임도에 닿는다. 표충사 입구 구천삼거리에서 번데기마을과 바드리를 거쳐 까치목까지 연결된 비포장 임도다. 우측으로 가면서 보면 밀양호반이 눈에 들어오고 그 동남쪽에는 향로봉이 우뚝하다.

900m쯤 가면 임도 종착점인 까치목이다. 밀양시와 양산시 경계선 상에 위치한 까치목은 좌측의 백마산과 우측의 향로봉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작은 고개다. 정면 멀리 우뚝한 향로산(975m) 방향의 좁다란 오솔길로 직진한다. 해발 550m 산 중턱에 자리잡아 전기 조차 들어오지 않는 가산마을까지 가는 길은 걷기 좋고 아름다운 자연 숲길이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이 유순한 길에는 일체의 걸림이 없다. 걷는 이의 발길은 마치 부드러운 계류를 따라 흘러가는 나뭇잎처럼 가볍기만 하다. 이런 길을 언제 또 걸어 봤던가. 언젠가 꿈 속에서나 이런 길을 걸었을까.


밀양댐 전망대에 세워진 농암정과 배꼽목으로 오르는 옛길의 모습이 갈지(之)자로 포개어져 올라 간다

◇ 소박한 다람쥐골 폭포 소 즐비한 숨은 비경

   
백마산 허리춤을 감싸고 도는 호젓한 비포장 임도.

3분 후 작은 갈림길에서 우측 길을 택해 만나는 전망대에 서면 움푹한 곳에 민가 4채가 겨우 보일락말락한 가산마을과 그 뒤에 우뚝 솟은 향로산의 풍광이 마치 선계(仙界)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전쟁기 그 많은 빨치산들이 주민들을 약탈하고 토벌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른 비극의 현장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10분쯤 내려서면 어느새 민가에 닿는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외딴집 처마 끝에 도화지 한 장 크기의 작은 태양열 집열판이 보인다. 냉장고가 없다 보니 각종 채소와 과일 김치통 등을 물동이에 담아 놓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다람쥐골의 최상류인 이 지점에서부터 선리마을까지는 줄곧 내리막이다. 다람쥐가 많았다고 해서 다람쥐골이라고 명명된 이 계곡은 화려하지 않지만 결코 왜소하지도 않은, 자연스러움이 빛나는 청정 계곡이다. 민가 한 채를 더 지나니 크고 작은 폭포와 아담한 물 웅덩이가 이어진다. 높이 3m가량의 중간급 폭포도 나타난다. 숨은 비경이다. 10분 후 오솔길이 끝나는 곳 개활지부터 임도가 이어진다. 20분가량 내려서면 원동면 선리 언곡마을. 예쁘장하게 지은 전원주택과 '배내골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밭이 나그네를 반겨준다. MMF연수원과 선리 당산나무를 지나 양산배내골사과마을로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선리 마을정보센터에 도착, 신발끈을 푼다. 배내골의 중심마을인 선리(善里). '착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의미인가 보다.

풍류동에서 배꼽목으로 향하는 옛길로 한국전쟁때 빨치산을 피해 가산에서 어린애를 등에 엎고 피난을 왔다던 한 많은 엣길이다.

# 떠나기 전에

- 고례리 고사천은 절경 갖춘 일명 '구곡천'

경남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앞을 흐르는 하천은 고사천이라고도 불리지만 옛날부터 구곡천(九曲川)으로도 불렸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밀양호에 수몰된 고례리 사회동마을에서 제16코스의 출발지였던 단장면 사연리에 이르는 구간의 하천을 일컫는다. 구곡천이란 '아홉 굽이를 돌아 흐른다'고 해서 생긴 이름인데 조선 초기 학자인 채지당(採芝堂) 박구원(朴龜元)이 당시 사희동 마을에 살면서 지은 고사구곡가(姑射九曲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박구원은 하천 유역의 9개 명소를 구곡(九曲)으로 꼽았는데 사연, 정각산(正覺山), 범도리, 승학동(乘鶴洞), 단애(丹崖), 증소(甑沼), 도장연(道藏淵), 농암대(籠岩臺), 선소(船沼)를 가리킨다.


배꼽목으로 향하는 옛길의 모습이 아름답다

한편 이번 코스에서는 살짝 비켜 갔지만 백마산 중턱의 바드리마을은 밀양의 3대 오지마을에 꼽히는 곳이다. 밀양에서는 옛날부터 '일오치' '이소월' '삼감물'이라는 말로 오지마을들을 표현했는데 '이소월(二所月)'이 바로 바드리를 가리킨다. 소월리라는 말은 아주 오랜 옛날에 백마산에 사태가 나서 반쪽으로 갈라졌는데 그 모습이 반달을 닮았다고 해서 소월산이라고 불렀고 그 아래 마을을 소월리 또는 반달리라고 했던 것에서 나왔다. 반달리가 세월이 지나면서 바드리로 변형됐다는 것이다.

배꼽목에서 바드리 임도로 향하는 능선길로 옛사람들이 이길을 따라 가산 배내골로 다녔다는 넓은 길이 지금은 둘레길 꾼들의 길이 되었다.


# 교통편

- 밀양터미널서 고례행 버스 하루 4회 운행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 편으로 밀양역까지 간다. 부산역 기준 오전 7시45분, 8시35분, 9시25분 등 여러 편 있다. 해운대역에서 밀양행 무궁화호도 오전 7시45분에 출발한다. 밀양터미널에서 고례리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오전 6시40분, 12시 등 하루 4회 운행. 종착지인 배내골 선리에서는 원동역까지 가는 버스가 오후 3시05분, 3시40분, 5시55분, 8시05분(막차)에 있다. 원동역에서 부산역행 열차는 오후 4시03분, 4시25분, 6시36분, 8시48분에 있다.

까치목으로 향하는 임도길로 여타 임도길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 준다.

자가용은 차량 회수의 어려움으로 인해 권장할 사항이 아니다. 단 두 대 이상이 함께 출발, 종착지인 선리마을에 한 대를 먼저 세워 놓는 방법을 쓴다면 가능하긴 하다. 부산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양산IC에서 내린 후 언양 경주 방향으로 우회전 하자마자 다시 어곡공단 에덴밸리리조트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배내골 표지판을 보면서 에덴밸리리조트를 넘어야 한다. 고점사거리에서 우회전, 7분만 가면 선리에 닿는다. 고점사거리로 돌아가 밀양댐 단장 방향으로 우회전, 15분쯤 가면 고례마을에 닿는다.


가산마을로 향하는 최고의 둘레길을 걷고 있는 둘레길 꾼

# 고례리 '터줏마님' 장복술 할머니

- "전쟁때 빨치산 피해 가산에서 내려왔지"

   

"저기 보이는 백마산 너머 가산마을에서 6·25동란 나던 해에 죽을 고생을 하면서 피난 내려왔지. 빨치산들을 피해서 함께 도망치던 사람들 중에 네 명이나 총에 맞아 죽었어. 끔찍했지. 방년 18세때 였어."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7코스 초입인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평리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장복술(79·사진) 할머니는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현대사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산 증인이다. 인근의 지리 및 인문학적 특성까지 줄줄 꾀고 있다. 본지 개척단에게 60여년 전 기억을 거침없이 풀어낸 장 씨는 "남자들 뿐 아니라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들까지 완장을 차고 빨치산이라면서 밤만 되면 마을로 내려와 설쳐대는 것이 여간 무섭지 않더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장 씨는 또 "평리로 내려와서 전쟁이 끝난 후 시집을 가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애를 등에 업고 저기 둥댕이재를 넘어 국전마을로 가기도 하고 다람쥐골을 따라서 배내골까지 오가기도 했지"라며 주변 지형까지 읊어 준다. 잠시 목이라도 축이고 가라며 한사코 집 안으로 단원들의 손을 끈 장 씨는 아껴 뒀던 음료수를 냉장고에서 꺼내 준다. 당시 장 씨의 등에 엎힌 채 산길을 넘나들었던 그 아들은 장성해서 밀양시민을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현재 밀양시의회 손진곤 의장이 바로 장 씨의 장남이다. 총명함이 빛나는 장 씨 할머니를 보면서 개척단원들은 하나같이 "아, 이런 어머니가 계셨기에 아들이 커서 시민대표까지 됐구나"라며 입을 모았다. 장 씨는 "둘째 아들이 고례산대추도 키우고 얼음골에서 사과밭도 하니까 많이 선전 해 주게"라며 당부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비록 나이 들었어도 자식 걱정과 사랑 만큼은 한결같은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서 더 행복한 둘레길이다.



까치목에서 가산마을로 향하는 영남알프스 둘레길 최고의 둘레길

# 원동면 선리 서종수 이장·이월동 총무

- "아삭하고 달콤한 배내골 사과, 최고예요"

   

제17코스 종착지 마을인 양산시 원동면 선리는 배내골의 중간에 위치한 '배내골사과마을'로 유명하다. 사과 특산 정보화마을로 지정돼 있기도 한 선리 주민들이 사과 재배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께 부터다. 하류에 밀양댐이 건설되면서 배내골 대부분 유역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버려 살길이 막막해 진 주민들이 높은 일교차 등의 기후조건을 이유로 특산물로 사과를 재배키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낙동강환경관리청과 수자원공사 등 유관 기관의 지원과 주민들의 합심으로 시작된 선리마을의 배내골사과 농사는 이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제는 양산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자리잡았다. 약 6만㎡(1만8000여 평)의 공동 경작지에서 주민들이 공동으로 경작하는 사과나무는 총 5600여 그루. 나무 1그루 당 평균 두 상자 씩, 일년에 총 1만1000여 상자를 출하한다. 물론 개인이 따로 경작하는 사과밭도 있지만 일단 공동 경작한 사과 출하량의 수익은 공평하게 분배한다.


언곡마을을 지나 선리로 향하는 길에는 무궁화가 마을길에 조성되어 있어 장관을 연출 한다. 둘레길꾼이 폰에 그 모습을 담고 있다.

'배내골사과마을' 운영위원장 겸 선리 이장인 서종수(69·사진 왼쪽) 씨와 총무 이월동(67) 씨는 "배내골 사과가 비록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합심된 노력과 일교차가 큰 기후 조건의 혜택을 받아 당도가 17에 이를 정도로 높고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좋아 '명품 사과'로 거듭났다"며 "11월 첫 토·일요일 열리는 배내골 사과축제때도 방문해 훌륭한 사과도 맛보고 구매도 하기 바란다. 늦게 오면 없다"고 말한다. 마을 사랑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가산마을의 모습.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오지마을로 현재는 4가구이며 남자4명만 생활하고 있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 국제신문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선리마을의 500년된 당수나무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이다.



17코스 출발지인 평리 대추 정보화 마을

평리마을 전경과 벼락바위 칭덤

풍류동으로 향하는 둘레길 탐사팀 그 앞으로 백마산이 솟아 있다.

풍류동으로 향하는 취재팀과 잘룩이 안부인 배꼽목

풍류동마을로 .승용차는 여기까지 올라 올 수 있다.

언곡마을로 향하는 탐사팀, 그 옆으로 모내기한 논의 푸르름이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 온 것을 알 수 있다.

다람쥐골의 모습으로 청청의 계곡이다. 짙은 수림으로 쌓여 있어 햇볕 한점 구경하기 힘들다

배내골의 중심마을인 선리마을로 지금은 배내골 사과를 공동재배하여 부농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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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이것 좀 잡사보소" 영남알프스둘레길 18코스 배내골 옛길인 시살등을 넘다.

그러다가 보기 드문 자연 현상을 접하기라도 하면 더할나위 없이 신선하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새로우면서 동시에 친숙한 길이다. 코스를 걷다보면 분명히 새로 가는 길인데도 이전 어느 코스에서인가 걸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많다. 눈에 들어오는 봉우리와 능선, 계곡, 시냇물의 모양에서부터 사람들의 말과 나무 잡초 야생화 할 것 없이 대부분이 경상도 사람들의 정서에 익숙하기 때문이리라.






   
배내골 하류인 양산시 원동면 대리에서 풍호마을을 거쳐 사락골을 따르는 옛길을 오르면 해발 600m 대의 광활한 고원지대와 걷기 수월한 임도가 반겨 준다. 영남알프스둘레길 개척단이 일명 '석계 시살등'을 향해 가고 있다.

이번 주 답사한 제18코스는 양산 배내골의 중심마을인 원동면 선리에서 출발, 고갯마루인 시살등을 넘어서 상북면의 유서 깊은 마을인 내석리 내석마을에서 끝낸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새로움의 조화가 적절히 어우러진 코스다. 옛 사람들의 주 통행로였던 옛길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길이기도 해서 둘레꾼의 발걸음과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계곡과 능선의 옛길을 둘러싼 상수리나무숲은 하늘을 가리고 얼음보다 차가운 계곡물은 둘레꾼의 고마운 벗이 된다.

코스 총길이는 12.5㎞ 남짓하다. 비교적 짧은 셈이다. 밀양댐 건설 이후 상수원보호구역이 된 배내골의 중하류 부분 약 3.5㎞는 어쩔 수 없이 아스팔트 갓길을 따라야 하지만 나머지 구간은 비포장 오솔길과 임도로 구성돼 있다. 4시간30분~5시간 정도면 쉬어가면서 넉넉하게 마무리 할 수 있다.

배내골사과마을로 유명한 선리 마을회관에서 출발, 배내골 하류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배내골 건너 동쪽으로는 오룡산에서 염수봉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남서릉이 부드러운 하늘금을 그린다. 저 능선을 넘을 예정이다. 마을 입구 당산나무 앞 다리 부근에 '선리 선창가' 안내판과 돛단배 모형이 있다.



◇ 배내골 신비에다 옛 정취 더한 12.5㎞ 코스


   
배내골의 숨은 명물인 풍호대 아래 바위구멍은 억겁의 세월 동안 자연이 빚어낸 작품이다.

당산나무를 지나 대리마을 쪽으로 향한다. 풍경들이 낯설지 않다. 수박밭 고랑에는 덜 여문 수박들이 한여름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뒹군다. 텃밭 고추나무에는 풋고추와 붉은고추가 뒤섞여 키재기를 하고 있고 자주색 가지는 익을대로 익었다.

금천교와 대리교를 지난다. 예쁜 전원주택과 배내골 건너편의 한옥형 민박집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사실 배내골의 큰 마을인 대리와 선리 일대는 한국전쟁기에 빨치산들의 안마당이나 마찬가지였을 정도로 혼란을 겪은 곳이다. 주민들은 대낮에도 버젓이 마을을 활보하는 빨치산들의 위협을 피해 양산읍내나 석계, 밀양읍내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으로부터 피난 온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했다는데, 이념이 다른 동족에 의해서 다시 피난을 나가야 했던 것이다. 배내골 깊숙한 곳에 소위 '신불산 빨치산 본부'도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경남여행/양산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이것 좀 잡사보소" 영남알프스둘레길 18코스 배내골 옛길인 시살등을 넘다.



대리마을회관 앞 쉼터를 지나 10여분 가면 도로 우측에 약수터가 있다. 바위 틈 어딘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샘물이 얼음처럼 차고 달다. '물에서 배맛이 난다'고 해서 배내골이라고 했으니, 그 골짜기의 암반수 맛이야 오죽 좋을까. 지나던 차량 운전자들도 잠시 정차한 후 물을 한 통씩 받아 가거나 한 모금이라도 마시고 간다. 그 옆 한켠에 대리마을 주민 3명이 간이천막 아래에서 채소와 반찬거리를 팔고 있는데, 장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염수봉 가는 길목 시살등에서 내석마을로 내려서는 길.

곧바로 만나는 왼쪽의 풍호대교를 건너 풍호마을 쪽으로 가야 하지만 100m 정도만 더 직진, 풍호대(風乎臺)를 보고 다리로 돌아온다. 배내천 물줄기가 푸른 소를 이루고 바위 위에 수백년 노송이 군락을 이룬 이곳은 조선시대때부터 경치가 좋아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았다고 하는데 조선 후기 천은(川隱) 박기섭(朴基燮)이 대를 쌓고 놀았다고 한다. 당시에 비해 노송들이 많이 줄었다지만 풍치만큼은 썩 괜찮은 곳이다. 풍호대에서는 반드시 봐야 할 '기물(奇物)'이 하나 있다. 언덕 아래 배내천 바닥으로 내려가면 마치 충북 단양의 석문(石門)이나 해남 두륜산의 코끼리바위를 축소해 놓은 것 같은 모양의 바위구멍(또는 바위굴)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너비 2m, 높이 2m 가량의 크기인 이 바위구멍은 원래는 커다란 바위덩어리였지만 장구한 세월동안 배내천의 물줄기에 깎여 이같은 모양을 갖게 된 듯하다. 이 바위구멍에는 재미나면서도 애틋한 전설이 전해온다. 구멍을 막으면 마을에 벙어리 귀머거리 사내 아이가 태어나고, 구멍을 뚫린 채 두면 동네 아낙들이 바람이 난다고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고심 끝에 뚫어진 채로 두게 됐다는 내용이다. 신기한 자연 현상에 재미 있는 전설이 얽혔다.


◇ 바위구멍 막으면 벙어리 난다는 전설 흥미

   
시집 가던 색시가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있는 행기소.

풍호대교 다리를 건너면 '대밖동'이라고도 불리는 풍호마을. 현재는 수십채의 펜션이 들어서 있다. 동네 안길로 들어서면 '풍호대산장' 표지석이 보인다. 그 앞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은 후 다시 '배꽃내' 표지석 앞에서 오른쪽 길을 택해 가면 마을을 통과, 사락골 계곡으로 들어서게 된다. 임도를 좀 더 오르면 천도교 원동수도원 정문을 지난다. 문이 열려 있는데, '지나간 후 반드시 문을 닫아 달라'는 안내문이 있다. 3분쯤 더 가면 갈림길. 상수원보호구역 팻말을 보면서 철망 옆으로 직진하면 보호구역 출입문을 만나는데 오른쪽의 오솔길을 따른다.

본격적으로 옛길이 시작된다. 옛날 선리 대리 주민들이 양산장이나 석계장을 오갈 때 주 소통로로 활용했던 길이다. 최근 왕래는 많지 않았지만 오래된 길의 흔적이 뚜렷하다. 10여분 가면 물 맑은 골짜기를 건넌다. 이후부터 마치 S자를 수십개 이어붙인 것 같은 길이다. 키 20m가 넘는 상수리나무가 빼곡하다. 나뭇잎 사이로 하늘 보기가 쉽지 않다. 중간 중간 아름드리 노송들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30분쯤 오르면 계곡의 최 상단부.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간이 임도를 만난다. 주변은 온통 연둣빛 세상. 일단 우측으로 틀면 10분 후 소위 '염수봉 임도'로 불리는 주 임도를 만난다.



자갈이 곱게 깔린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꺾는다. 해발 600m가 넘는 고도지만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은 평지나 다름 없어 걷기에도 아주 좋다. 15분 후 임도 삼거리에 닿는데, 이곳이 바로 원동면 대리 선리 주민들과 상북면 석계 내석 사람들이 입을 모아 '시살등'으로 부르는 고개다. 통도사 뒷산인 영축산에서 남쪽 오룡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 상에 솟은 봉우리를 지칭하는 시살등이라는 이름을 이 곳에서도 만나다니. 또 코스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오룡산 아래 도라지고개 우측을 한피기고개라 부르는 것도 새롭게 알아낸 사실이다. 기존의 한피기고개는 영축산 시살등 옆에 있다. 개척단은 편의상 이 두 곳을 '석계 시살등', '석계 한피기고개'라 칭하기로 했다. 영남알프스에 시살등과 한피기고개가 각각 2곳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 또한 둘레길에서 건진 작은 소득이라 하겠다.



◇ 시살등 한피기고개 두 곳인 사실 첫 발굴

이제부터는 줄곧 내리막을 타게 되는데, 하산길 들머리를 찾으려면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진행방향에서 1시 방향으로 직진하면 염수봉으로 가게 되고, 왼쪽으로 270도 꺾어 임도를 타면 오룡산 아래 도라지고개로 가게 된다. 그런데 왼쪽으로 90도 정도만 틀어서 보면 작은 돌탑 앞 숲길이 보인다. 바로 이 길로 들어서야 내석마을로 내려설 수 있다. 이 길 또한 한 없이 걷기 좋은 옛길이다. 연속되는 S자 코스가 내석마을 상단부까지 계속된다. 10분쯤 내려서면 굵은 둥치의 소나무 아래 앉기 적당한 바위가 놓인 쉼터가 있다.



30여분 내려서면 옛길의 운치가 잦아들고 다시 속세의 냄새가 난다. 붉은 철문이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며 왼쪽 계곡을 흘낏 보면 깊은 물과 널따란 암반이 눈에 띈다. '행기소'라고 불리는 곳이다. 옛날 어느 시절에 산 너머 배내골에서 시집 오던 한 새각시가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전설이 있다. 무슨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그 사연을 알 수 없는 이 시대 둘레꾼에게 행기소는 잠시 발이라도 담궜다 갈 수 있는 반가운 곳일 뿐이다. 임도를 따라 15분가량 내려서야 종착점인 내석마을회관 앞 버스정류장에 닿는데, 길 옆 계곡의 아름다운 암반과 소를 보며 걸을 수 있다.


# 떠나기 전에

- 선리는 낙동강~배내골 오간 배 정박한 곳



제18코스 출발점인 양산시 원동면 선리는 구한말까지만 해도 물건과 사람을 실어나르던 조각배가 들어왔다고 한다. 선리 입구에 있는 선리 선창가 안내판에도 이같은 사실이 잘 소개돼 있다. 밀양강(남천강)에서 단장천을 거쳐 배내천까지 뱃길이 열려 있었는데 바로 이 선리에 배를 대던 선창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건과 사람을 실은 배는 밀양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연결됐고 김해 밀양읍 등 인근 지역과 교류하는 유일한 장거리 교역수단이자 배내골 상권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해온다. 그래서 이 마을의 옛 지명이 '선창마을'이었다고 한다. 물자 뿐 아니라 사람의 드나듦도 배를 통해 이뤄진 경우가 많다보니 당산나무 앞에 있었다는 선창은 말 그대로 만남과 이별의 장소이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의 배내천 모습을 보면 배가 어떻게 다녔을까 싶다. 새삼스럽게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 교통편



- 원동역에서 배내골행 버스 오전 5대 운행

무궁화호 열차로 원동역까지 간 후 배내골행 버스로 갈아타고 선리에서 내린다. 부산역 기준 오전 7시45분, 9시25분 출발, 2500원, 30분 소요. 원동역 앞 버스정류소에서 배내골행 버스는 오전 7시, 7시35분, 8시30분, 10시5분, 11시15분 등에 출발한다. 25분 소요. 코스 답사를 마친 후 양산 내석마을에서는 오후 3시, 4시20분, 5시10분, 7시10분(막차) 출발하는 양산터미널행 버스를 탈 수 있다. 양산지하철역에서 하차, 지하철2호선 양산선을 이용해 부산 시내로 진입하면 수월하다. 자가용 차량을 회수하려면 에덴밸리를 거치는 큰 고개를 다시 넘어야 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한결 좋다.


# "반찬 안사도 좋아, 세상 이야기나…"

- 배내골 대리약수터 할머니 3인방



   
하경남, 고상철, 장필도 할머니(왼쪽부터).

"이거 좀 잡사보소, 4년 삭힌 곤달비 아잉기요. 그리고 이것도 잡사봐, 3년 묵은 무시장아찌. 새콤 짭짜름하면서도 맛이 희한할끼라. 완저이 자연산잉기라. 여름에 별 반찬 있더나. 요론거 펼치노코 된장에 풋고추 찍어 묵고 냉수 한사발 들이키모 장땡이지! 콩비지도 무봐. 아, 안 사도 대니까 겁묵지들 말고. 껄껄껄."

아, 경상도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해하기조차 난해한 사투리가 배내골 자락에 한바탕 쏟아진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8코스를 답사하던 중 원동면 대리 풍호대 인근 약수터 옆에서 만난 3명의 할머니들. 이들의 언변은 거침이 없고 말소리는 경쾌하다. 직접 만들어 수년을 삭힌 밑반찬들과 밭에서 직접 키운 풋고추 깻잎 콩잎 등의 채소를 작은 간이천막에 펼쳐놓고 길 가는 사람과 피서객들에게 팔고 있다. 모두 대리마을 주민들. 올해 72세인 장필도 할머니와 한 살 적은 고상철 할머니, 그리고 '가장 어리다'고 극구 주장하는 하경남(63) 할머니 등 3명은 비만 안오면 여름 한철 이 천막 아래에서 시간을 보낸다. 채소와 반찬을 판다고 하지만 실상은 판매에 그렇게 열을 올리지는 않는다. 그저 오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낙이다. 대리마을에 한옥민박집까지 지어놓았다는 하경남 할머니는 "반찬들 싸 줄테니까 길 가다가 점심 먹을 때 먹어보소. 기분 좋아서 그냥 주는 거니까 꼭 묵어야 돼. 이런 맛에 사는 것 아니겠어"라며 한사코 사양하는 둘레꾼의 손을 끌어당긴다. 사람사는 이야기를 하며 보내는 시간이 재미있다는 배내골 할머니들. 그 친절과 소탈함에 감동하게 되는 둘레길이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 국제신문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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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여행/양산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발길 닿는 골마다 숨은 비경과 호비등길 영남알프스 둘레길 19코스


    근교산&그너머 <738> 제19코스 : 양산 상북면 내석리~삼감리 마을회관

    내석골 복호폭포·오룡골 삼백척반석… 발길 닿는 골마다 숨은 비경 줄줄이

    영남알프스에는 크게 5개의 큰 줄기가 있다. 그 가운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거쳐 시살등 오룡산 염수봉으로 이어지는 남동릉은 대도시권에 가장 가깝게 다가오는 산줄기다. 그렇다보니 부산 울산 양산 지역민들에게는 그만큼 친숙한 능선이기도 하다. 소위 '문명세계'와 가깝다는 것은 또한 그만큼 많은 길을 품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 배내골 대리에서 '석계 시살등' 고개를 넘어 양산시 상북면 내석마을까지 걸었던 지난 주(제18코스) 코스는 어쩌면 어머니 뱃속 같은 영남알프스의 속살을 헤집고 매끈하게 치장한 피부 표면으로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 드는 길이었다.



      

     (경남여행/양산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발길 닿는 골마다 숨은 비경과 호비등길 영남알프스 둘레길 19코스


    이번 주 제19코스는 소위 '내석 임도'라고 불릴 정도로 촘촘하게 얽혀 있는 오룡산 남쪽 및 동쪽 자락의 임도를 타고 걷는 길이다. 그렇다고 삭막한 포장도로만 상상한다면 오해다. 좀처럼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비경도 발견할 수 있고, 사람의 발길이라고는 닿지 않은 것 같은 한적한 숲길도 걷는다. 임도 구간 또한 절반 이상은 걷기 편한 흙길이다. 우렁차지 않은 대신 살며시 속삭이듯 귓전을 적시는 계곡물 소리는 여름 둘레꾼의 영원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출발은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 마을회관앞이다. 오룡골과 외석리를 거쳐 삼감리 마을회관 앞에서 끝낸다. 총거리는 16㎞,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40분이다. 식사 및 휴식시간까지 포함하면 6시간쯤 걸린다.

    ■ 오룡산 휘감는 임도· 숲길 걷는 16㎞ 구간… 6시간 걸려



       
    영남알프스의 숨은 비경인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의 2단 폭포인 복호폭포는 의외로 유량이 많다. 한때 마을 주민들의 여름철 물맞이 장소였다.
    시내버스 회차 지점이기도 한 내석 마을회관앞에서 계곡 상류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정면 멀리 배내골(원동면) 대리로 넘어 가는 고개인 '석계 시살등'과 염수봉, 채바우골만당 등이 눈에 들어온다.

    승용차 1대 정도 통행 가능한 마을길. 우측으로는 내석천 맑은 물이 흐른다. 8분 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내석고개(옛 이름 당곡고개)로 오르는 임도길이지만 내석천을 따라 오른쪽 길로 직진한다. 계곡 건너 작은 다랑이논에서 정성들여 손발을 놀리고 있는 촌부의 염원을 아는 것일까. 6월의 연둣빛 모는 어느새 초록빛 벼로 성큼 자라나 있다. 그렇다. 여름은 만물이 성장하는 '성숙의 계절'이다. 3분 후 오른쪽 오전교를 건너 오르막을 탄다. 오전마을로 가는 길. 시멘트 포장길이다. 5분쯤 갔을까. 두 굽이째를 돌고나면 반사경 20m 못미친 곳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임도를 벗어난다. 복호폭포 또는 오전폭포라고 불리는 숨은 비경을 보기 위해서다.

    숲길을 10m가량 내려서면 김해 김씨 묘가 있는데 묘 앞에서 왼쪽으로 비집고 들어가 계곡으로 내려서자 저만치 숨어 있던 2단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단 직폭은 높이 4m 정도 밖에 안되지만 그 위 상단폭포까지 합치면 13m는 족히 될법한 대형 폭포다. 내석마을 주민들이 옛날부터 등이나 어깨에 물맞이를 했다는 이 폭포는 그동안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개척단이 비로소 세상에 그 존재를 널리 알리게 되는 것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개척하면서 갖게 되는 가장 큰 보람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소개하는 기쁨인 것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들머리인 내석리 오전교 부근 다랑이논과 삽을 든 농부.
    폭포수를 원없이 뒤집어 쓰고 옛 사람이 남겼다는 한시라도 몇 자락 읊었으면 좋으련만, 아직 갈 길이 머니 후일을 기약하며 발길을 옮긴다. 다시 임도로 복귀하는데는 3분이면 족하다. 폭포 위에 자리잡은 잔디 잘 자란 예쁜 전원주택을 부러워하며 오전마을 삼거리까지 가는데는 7분가량 걸린다. 오전마을은 약 200년 전 동래 정씨가 처음 터를 잡고 살았다는 산골마을이다. 오동나무가 많아서 마을 이름이 '오전(梧田)'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삼거리에서 우측 이입정사, 청운사 방향으로 오른다. 임도 좌우에 다양한 표정의 달마스님을 화폭에 담은 채색된 달마도가 도열해 있다. 이 달마도 행렬은 이입정사 앞에서 끝난다.




    ■ 큰 능선 2개 넘어야 하지만 힘들이지 않고도 주파 가능

       
    오룡산 허리를 휘감아 도는 흙길을 걷고 있는 둘레길 개척단.
    이입정사를 지나 5분쯤 더 오르면 청운사 앞 갈림길. 우측으로 감아 도는 길을 택한다. 어느새 흙길로 바뀌어 있다. 오른쪽 멀리 염수봉과 채바우골만당 뒷삐알산 등이 시원하게 드러난다. 15분 후 닿은 고개마루의 이름은 '새길래기'. 올라온 길과 직진하는 길은 임도, 좌우의 능선길은 등산로인 사거리역할을 하는 곳이다. 왼쪽 능선길을 타고 오르면 도라지고개를 거쳐 염수봉 또는 오룡산에 오를 수 있다. 임도를 따라 직진한다. 오룡산 남쪽 허리자락을 굽이굽이 감아도는 임도가 호젓함을 더한다. 언뜻언뜻 오룡산 정상이 이마를 드러내기도 하고, 오른쪽 멀리로는 양산 3대 명산 중 하나라는 천성산이 그 넉넉한 자태를 뿜어내기도 한다. 25분쯤 여유있게 걷다보면 독립가옥 한 채가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왼쪽 길은 오룡산 동쪽 허리를 감아 돌아 통도사의 여러 암자로 갈 수 있는 길이지만 오른쪽 내리막을 탄다. 이제 정면 멀리 천성산 공룡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10분 후 외석리 오룡골마을을 지난다. 중간쯤 짓다가 중단된 절집 건물 앞을 지나 10분쯤 더 내려서면 우측 계곡 바닥이 평편하고 거대한 암반으로 이뤄진 곳을 만난다. 아무런 고민없이 임도를 벗어나 우측 계곡 바닥으로 내려선다. 물이 흐르는 계곡 바닥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바위 덩어리다. 약 100여m나 이어진 암반 위를 흐르던 물은 갑자기 툭 떨어지며 큰 소(沼)를 이룬다. 마치 설악산이나 오대산 두타산 같은 큰산 자락의 거대한 계곡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연의 조화를 이런 작은 계곡에서 만나는 것은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그 간단치 않은 깊이를 실감케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름이 없다고 한다. 개척단은 오룡골의 너럭바위라는 뜻으로 '오룡반석(五龍磐石)'이라 이름 지어 본다. 그 앞 구름다리에서 보면 작은 폭포와 반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룡반석'에서 몇몇 양계장 및 축사 앞을 통과해 석계공원묘지 입구까지는 15분, 다시 광명사표지석 앞 갈림길까지는 5분쯤 걸린다. 광명사 방향인 왼쪽길로 들어서야 하지만, 200m정도만 직진해서 연구대(蓮龜臺)를 보고 되돌아온다. 연구대는 옛날 양산의 많은 선비들과 시인 묵객들이 풍월을 읊으며 더위를 식혔던 곳으로 바위에는 많은 한시가 음각돼 있지만 그 내력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 없어 아쉽다. 몇몇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숯불을 피워가며 피서를 즐기고 있을 뿐.


    ■ 연구대 삼감리 대숲길 등 빠트리면 아쉬운 곳도 많아

       
    오룡골에는 길이 100m 이상 되는 암반 덩어리가 계곡 바닥을 이룬다.
    다시 광명사표지석 앞으로 돌아와서 광명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이곳에서부터 광명사를 지나 외석마을의 대흥정밀산업 정문 앞 갈림길까지 약 15분 정도 걷는 길은 그늘 하나 없는 들판길. 무더운 여름철이라면 꽤 힘겹다. 대흥정밀 정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세정재(世貞齋) 앞 당산나무 쉼터를 지나 1분 후 왼쪽으로 골짜기를 따라 오르면 눈 앞 멀리 멋진 소나무가 보인다. 참 예쁘고 잘 자란 소나무다. 소나무 뒤 대숲앞 Y자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잡고 2분쯤 오르면 습한 지점을 지나개울을 건너 5m쯤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 개울 옆 길을 따른다. 수풀이 무성한 여름철에는 순간적으로 길이 잘 안보일 수 있으니 유의하자.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 15m만 가면 개울 옆으로 나 있는 곱상한 길을 만난다. 완만한 오르막은 개울을 따라 계속되는데, 무덤 하나를 만나면 정면 1시 방향 으로 계속 오른다. 대나무숲과 낙엽이 무성한 묵은길이다. 10분 후 야트막한 능선 사거리. 오른쪽으로 능선길을 따라 2분만 가면 임도를 만난다.



       
    삼감리 대숲길. 햇볕 한 줌 들지 않아 보조광을 이용해 촬영했다.
    일단 왼쪽으로 1분 정도 가면 삼거리. 이곳에서 철탑공사장 방향인 오른쪽(윗길) 임도를 타고 200m쯤 가면 다시 임도 갈림길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휘돌아 내려서는 길을 따른다. 송전철탑 건설을 위해 닦은 길. 8분쯤 내려가다가 길이 확 넓어지는 곳에서 왼쪽을 잘 보면 능선을 타고 내려서는 산길이 보인다. 임도를 이탈, 이 길로 내려서면 10분 후 경운기가 다녔을 만한 비포장 임도와 만난다. 왼쪽 내리막으로 길을 잡으면 10분 뒤 숲을 벗어나면서 텃밭 앞 갈림길을 만나고, 다시 우측으로 꺾어 내려선다. 4분 후 임도에서 우측으로 보면 살짝 빠져나가는 숲길이 있는데 이길로 들어서면 호젓한 삼감리 대숲길을 지난다. 길 양쪽 언덕 높이가 2m를 넘는 대숲길. 햇살조차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 보이는 짙은 그늘을 이루는 이 길을 통과하면 '삼감도예' 뒷길로 연결된다. 왼쪽으로 꺾어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3분쯤 가면 수령 약 300년짜리 느티나무가 우뚝한 삼감마을회관 앞에 닿는다. 종착점이다. '삼감(三甘)'이라는 이름은 옛날부터 물맛이 달콤한 3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붙여진 지명이다. 경부고속도로 건너편에 천성산 내원사계곡이 손에 잡힐 듯하다. 둘레길 시종점인 통도사도 지척이다.



    ◆ 떠나기 전에

    - 내석마을 가기 전 천연기념물 '신전리 이팝나무' 볼 만

    여름철 둘레길을 걷다 보면 '모기와의 전쟁'을 치르기 일쑤다. 특히 숲길을 걸을 때가 심하다. 제19코스의 경우 막바지 구간인 삼감리 대나무숲길에서 모기떼의 습격을 받았다. 불과 100m 남짓한 대숲길을 통과하면서 물린 곳이 수도 없다. 뾰족한 대책은 없다. 다만 긴 소매 상의와 긴바지를 착용하고 다소 빠른 걸음으로 통과하는 것이 상책이다. 삼감리 대숲은 '호비등'이라고 불리는 능선의 끝자락에 있다. 마을 뒤 능선을 호랑이가 날아가는 듯한 형상이라고 호비등이라 했다고 전해온다.



    한편 들머리로 가기 전에 석계 내석입구삼거리에서 삼계교를 건너 내석마을로 향할 때 첫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1㎞쯤 가면 천연기념물 제234호인 '양산 신전리 이팝나무'가 있다. 줄기 둘레 4.15m, 키 12m인 이 나무는 밑둥이 갈라져 있어 신기하다. 초여름이면 나무 전체를 덮은 하얀 꽃이 장관을 이룬다. 고목 한 그루가 그 어떤 문화재보다 인상적일 때가 종종 있다.



    # 내석 이입정사 진입로 밝히는 달마도

    - 대학 강단 떠나 불가 귀의한 황금산 스님, 내석~통도사 '명상의 길' 조성 염원 담아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 오전마을의 이입정사로 오르는 길은 달마도를 감상하며 걷는 길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9코스 구간에 속하는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 오전마을에는 이입정사라는 사찰이 있다. 오전마을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오르면 나타나는 현대식 건축물인데, 특이한 것은 삼거리에서 이 절까지 오르는 약 400여m 길 양쪽에 다양한 표정의 달마대사가 그려진 달마도가 걸려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림 솜씨 또한 문외한의 눈으로 봐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데….

    과연 이 달마도는 어떤 연유로 이렇게 길 가에 걸리게 됐을까? 알고보니 이 달마도들은 '대한불교 약사종 총본산'이라고 부연 설명이 돼 있는 이입정사의 회주스님인 황금산(黃錦山) 스님이 직접 그린 작품들이었다. 황금산 스님은 동국대학교와 계명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의과학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던 선서화 화가 겸 학자다. 속명은 황신규 씨. 대한민국불교미술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고 국내에서는 달마도와 선서화(禪書畵)의 권위자 중 한 명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달마도와 선서화, 금니사경화 등에 관련된 많은 저서와 연구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교단에서 물러난 후 법명을 '금산(錦山)'이라 하고 불가에 귀의, 지난해 이입정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그가 직접 그린 달마도를 길 가에 전시한 까닭은 무엇일까? 황금산 스님은 "양산 내석에서 시작해 통도사 자장암까지 이어지는 임도는 그야말로 걷기 편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이 길은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참된 자아를 찾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걷기에도 딱 좋다. 그래서 참선과 수행을 강조하는 선사상의 태두이신 달마대사의 그림을 이 길에 걸어 보았다. 이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고요함 속에 진실된 자아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고 밝혔다. 자연을 배경으로 삼은 거대한 달마도 야외 전시장으로 꾸민 것이다.

    그는 개인적인 염원으로 시작한 달마도 걸개그림 전시를 계속할 예정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내석리에서 통도사까지 이어지는 길을 '명상의 길, 달마로'로 만드는 것이 작은 목표다. 그는 "흔한 말 같지만 영남알프스를 끼고 있는 이 길을 '명품 명상로'로 조성해 가꾸고 널리 홍보한다면 양산시 입장에서도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효과를 거둘수 있을 것"이라며 "물론 양산시 등 지방자치단체의 협조와 지원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더라도 남은 여생을 이 일에 바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회갑이 다되도록 불교 신도로 살아오다가 교단을 떠나 결국 불가에 귀의하게 된 황금산 스님의 염원이 이뤄질 수 있을지 관심있게 지켜 볼 일이다.



    ◆ 교통편

    - 지하철 양산역에서 내석행 시내버스 이용하면 편리



    부산도시철도 2호선 양산역 앞 우측 버스정류소에서 내석행 시내버스(107, 10번)를 탄다. 오전 6시30분, 7시30분, 8시50분, 11시30분 등. 내석 마을회관 앞에서 하차한다. 40분 소요. 답사를 마친 후 삼감마을에서 내원사 입구 용연 버스정류소까지 걸어야 한다. 15분 소요. 부산행 12번, 13번 버스가 15~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부산지역 교통카드 환승 가능.

    자가용 이용시 경부고속도로 양산IC에서 내려 35번 국도 언양 통도사 경주 방면 우회전 후 5.7㎞쯤 가다가 석계리 내석입구사거리에서 좌회전, 삼계교를 건너 골짜기 안쪽으로 직진한다. 석계공원묘지 앞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내석마을회관까지 갈 수 있는데, 주차 공간도 마련돼 있다. 답사 후 차량 회수를 하려면 삼감마을에서 신평렌트카(055-375-8212)를 이용하면 된다. 요금 1만 원 안팎.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 국제신문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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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알프스 언저리의 하늘은 변화무쌍하다. 부산이나 울산 등 대도시의 하늘이 맑은 날에도 잔뜩 먹구름을 드리운 채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 기어코 눈물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일 때도 적지 않다. 1000m급 고산이 9개나 둥지를 틀고 있는 큰 산군인 까닭에 산줄기 자체가 기류 이동의 장애물 역할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인가 싶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저쪽 하늘은 맑은 데 이쪽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서부 경남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소위 '호랑이 장가가는 날'을 숱하게 맞기도 한다. 그러나 거의 2000m에 육박하는 지리산의 하늘금과는 달리 영남알프스의 하늘금은 위압적이지 않고 적당해서 좋다. 하늘금이 그리는 곡선은 날카로운 듯, 부드럽다. 근엄한 아버지의 표정이 아니라 자애로운 어머니의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경남여행/양산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양산시 유래를 알게 된  영남알프스 둘레길 

    그런 영남알프스의 하늘에도 계절이 지나간다. 아직 가을로 가득 차 있지는 않지만, 아무 걱정 없이 밤하늘 별을 헤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한겨울인 지난 1월초 양산 통도사에서 첫 발을 내딛었던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은 이번 주 다시 통도사로 든다. 1000리 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던가. 한 달에 세 번씩, 거의 1000리에 육박하는 결코 짧지 않은 길을 걷는 동안 계절이 세 번 바뀌었다. 그리고 네 번째 계절이 눈앞에 왔다. 아직 초록은 지치지 않아 단풍조차 들지 않았건만 둘레꾼의 발걸음은 고단함 대신 약간의 성취감과 또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 채 최초 출발지에서 멎는다. 단풍 든 철의 둘레길 걷기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 둘레길 갈무리하는 12㎞ 알찬 코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경남 양산시 하북면 삼감리에서 봉화등 허리를 돌아가는 임도를 따라 걷고 있다. 멋들어진 소나무와 잘 생긴 바위들이 잇따라 나타나는 이 길은 둘레길 마지막 코스를 걷는 둘레꾼들에게 휴식같은 친구가 되어 준다.

    이번 주 제20코스는 국제신문이 2011년 신년 기획으로 시작한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 코스다. 양산시 하북면 삼감리 마을회관에서 출발, 통도사 입구 매표소 앞까지 간다. 직선거리 7㎞ 남짓한 길이지만 숲길과 산허리 임도, 백로가 노니는 들판길을 이으니 12㎞에 달한다. 이 마지막 코스에서 개척단은 양산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내력도 배우고, 올여름 일조량이 적어서 흉년이 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농부의 절절한 마음도 더욱 사무치게 알아가면서 그동안 걸머멨던 봇짐을 내려 놓는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영남알프스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 감사하면서 걸으니 5시간이 더 걸렸다.

    삼감리 마을회관 앞 당수나무 밑에서 큰길로 나간 후 왼쪽으로 꺾는다. 100m쯤 가다가 왼쪽 골목길로 들어서서 마을을 통과한다. 잇달아 나타나는 흙담과 대나무숲이 정겹다. 작은 사거리에서 곧장 직진하면 밭 사이 고운 흙길로 연결된다. 길 옆 텃밭에는 붉은고추와 옥수수, 호박 등 흙에서 자라고 농부가 키워 낸 먹을거리들이 탐스럽게 익어간다. 멋스러운 소나무 옆을 통과하면 숲길은 더욱 고즈넉해진다. 20여분 걸어 약간 넓어진 임도와 만나면 왼쪽으로 오르막을 따른다. 잠시 뒤돌아보니 삼감마을 저 너머로 천성산 자락이 멋지게 펼쳐진다. 3분 후 굴참나무 앞 삼거리에 닿으니 벌목작업을 하던 인근 주민들이 가는 비를 피해 간이 천막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 애독자라며 저마다 반가운 인삿말을 건넨다.



    ◇ 삼감리~학원 연결 임도 잘 가꿔진 명품길


    ☞(경남여행/양산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양산시 유래를 알게 된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 뒤로 보이는 천성산은 구름을 머금고 있다.

    왼쪽 길을 택해 오르면 5분 후 커다란 사슴 몇 마리가 살고 있는 사슴우리를 통과하고 본격적인 임도를 따르게 된다. 오르막이긴 하지만 무척이나 완만하고 굽이 굽이 휘도는 길인 까닭에 평지를 걷는 것이나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시나브로 걷다 보면 20분 후 임도 오른쪽에 툭 불거진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힘들이지 않고 올라보니 정족산과 천성산 자락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 아래로 경부고속도로가 내달린다. 이어지는 임도는 오룡산 아래 봉화등 또는 늪재라고 불리는 산등성이를 휘도는 길인데 곳곳에 알맞은 모양과 크기의 바위쉼터가 반겨주고 잘 생긴 소나무들이 맞아주니 더욱 평화롭다. 해발 300m 지점을 통과하니 서서히 내리막이다. 붉은색 페인트로 바위에 '해운'이라는 글씨를 써 놓은 곳 주변은 탁 트인 조망과 멋들어진 소나무가 어우러져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해 준다. 조금 더 내리막을 따라 걸으면 길이 5m 가량의 길쭉한 바위 2개가 아래 위로 포개진 '포갠바위'를 지나고 이윽고 하북면 삼수리에 위치한 기숙학원인 부산대성학원 운동장으로 들어선다.



       
    봉화등 임도에 바위 2개가 기묘하게 포개져 있다.

    공부하는 학생들 방해라도 할 새라, 급히 정문으로 나간 뒤 오른쪽으로 꺾는다. 100m 정도만 가다가 왼쪽으로 열려 있는 소나무숲길로 들어선다. 그윽한 솔향에 취하는 짤막한 길을 따라 가면 1분 후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왼쪽으로 꺾어 법수사로 향한다. 5분 후 도착한 법수사의 터는 여말선초의 조정 대신을 역임했던 이전생(李全生)이 고려 공민왕때 순찰사의 소임을 받고 이곳을 지나다가 천하명당임을 알아차리고 정착, 세 아들을 모두 조선 초기의 명장으로 키워낸 곳이다. 이전생은 조선 초기 양산부원군으로 책봉됐는데, 현재 양산시의 지명도 그의 책봉 호칭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또 삼수리라는 지명도 세 명의 장수가 배출된 마을이라는 뜻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아담한 크기의 대웅전은 천성산 홍룡사의 대웅전 건물 부재를 옮겨 지었다고 전해진다.

       
    대성학원 정문 아래에서 법수사로 연결되는 솔숲길.

    법수사에서 왔던 길로 다시 10여분 내려가면 만나는 야트막한 흙담 앞 갈림길에서 직진, 흙길로 진입해서 좀 더 내려서면 삼수하리 입구에 닿는다.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 직진, 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삭막한 아스팔트길을 최대한 피하고 여러 마을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길을 연결한 것이다. 삼수하리 마을회관에서 다시 왼쪽으로 꺽어 5분만 가면 다시 아스팔트 도로를 만나는데 길 건너 1시 방향 언덕에 큼지막한 비석이 보인다. '삼장수 유적비'다. 도로를 건너 비석앞으로 간다. 양산부원군 이전생의 세 아들인 이징석 이징옥 이징규의 공적과 삶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놓은 '삼수리 유래 안내판'과 비석을 본다. 이징옥은 조선 세조때의 '이징옥의 난'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 지명 유래 알고나니 양산이 다시 보여

       
    널찍한 들길은 우산 쓰고 걷기에도 충분하다.

    비석에서 삼수상리 마을 안으로 100m쯤 가다가 다담소 산인요 방향으로 우측 골목길을 따르면 삼수당산제단을 지난다. 마을에 즐비한 전원주택과 찻집 등은 한껏 멋을 부린 형태다. 멋들어진 소나무가 도열한 마을길을 통과, 오른쪽으로 휘어져 나가면 다시 아스팔트 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건너 우측 삼수상리 강터 표지석을 감아 돌면 세갈래 길이 나타나는데, 가장 왼쪽 길을 택해 걷는다. 사방이 탁 트인 들판길이다. 7분 후 막다른 길에서 왼쪽으로 꺾은 후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들판길을 이어간다. 옛날부터 백로가 많이 날아든다고 해서 백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오른쪽 양산천 건너에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드넓은 들판 곳곳에 백로가 평화롭게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15분 후 35번 국도와 만나면 다시 왼쪽의 하북농협경제사업소를 휘감아 돌아서 들판길로 진입한다. 5분 후 재차 아스팔트 도로를 만나면 우회전, 통도사 방향으로 간다. 5분후 삼거리 정자쉼터에서 우측 2시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20m쯤 가다가 다리를 건너지 말고 왼쪽의 찻집 겸 레스토랑인 '산 들 바람' 앞으로 꺾는다. 하천을 오른쪽에 끼고 걷는 길이다. 지곡마을 회관을 지난 후 4거리에서 직진하면 경주 이씨 재실인 영모정(永慕亭)을 만난다. 영모정 대문 앞의 통도사 경계석이 유난히 눈에 띈다. 영모정 앞에서 하천을 건넌 후 왼쪽으로 200m쯤 가면 통도사 입구다. 둘레길 개척단에게는 반가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 떠나기 전에

    - 둘레꾼에게 통도사는 '모든 길 통하는 절'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종착점인 통도사 앞에 섰다. 왼쪽부터 이창우 단장 김수원, 김양숙, 권윤혁 씨.

    통도사(通度寺)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영축산 아래에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어 불(佛) 법(法) 승(僧) 3보사찰 중 불보사찰로 불리기도 한다.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라는 일주문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것이기도 하다. 이 일주문 현판 아래 좌우 기둥의 주련에 적혀 있는 '국지대찰 불지종가(國之大刹, 佛之宗家)'라는 글씨는 '나라에서 가장 큰 절이며 불가의 종가집'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큰 절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통도사라 이름 지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뒷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한다는 것(此山之形通於印度靈鷲山形), 또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이 계단(戒壇)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爲僧者通而度之),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일체중생을 제도(濟度)한다는 의미 등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길을 떠나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속가의 영남알프스 둘레꾼 입장에서는 '길이 통했다'는 의미에서 통도사(通道寺)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베낭을 벗은 둘레꾼의 작은 소회다.


    # 교통편

    - 도시철도 온천장역에서 12, 13번 버스 이용



    부산도시철도 1호선 온천장역 앞에서 12번, 13번 버스를 타고 양산시 하북면 용연버스정류소에서 내린다. 이른 새벽부터 15~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삼감교를 건너 10분쯤 가면 삼감마을 회관앞에 닿는다.

    코스 답사를 마친 후 부산으로 갈 경우 통도사 입구 삼거리정류소에서 역시 12, 13번 버스를 타거나 신평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를 탄다. 시외버스는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양산IC에서 내려 35번 국도 경주 언양 방향으로 우회전, 내원사 입구인 용연에서 삼감리 방향으로 좌회전, 삼감교를 건넌 후 왼쪽으로 가면 삼감마을에 도착한다. 길 가 적당한 곳에 주차하면 된다.

    답사를 마치고 차량 회수를 하기 위해서는 통도사 입구에서 역시 12, 13번 버스를 이용해 용연에서 하차하거나 신평콜택시(055-381-1004)를 이용하면 된다. 미터기 적용 택시요금은 8000원 안팎이다.


    # 조선 초 장수 3명 탄생한 양산 삼수리

    - 이징석·징옥·징규 형제 종1품 장군으로…

       
    영축산~오룡산 능선을 등지고 서 있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의 삼장수유적비.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20코스의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三帥里)는 양산 사람들에게 상당히 특별한 의미를 지닌 마을이다. 바로 이 마을에서 양산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 유래는 고려말과 조선초기의 문신인 양산부원군 이전생(李全生)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순찰사(암행어사 역할)로 명받아 전국을 다니던 중, 서북쪽으로는 영축산 동남쪽으로는 천성산이 둘러싼 이 마을이 천하명당임을 감지한다. 이후 우왕6년(1380년) 이 곳에 터전을 잡고 부인인 밀양 박씨와의 사이에 3남2녀의 자녀를 두었다. 3명의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무용이 뛰어났는데, 하루는 서당에 다녀오는 길에 양민의 재물을 약탈하던 도적 50명을 생포했으며 이후 마을에는 도적이 나타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된다.

    이 아들 3명은 장남 징석(澄石), 차남 징옥(澄玉), 삼남 징규(澄硅)로 모두 17세 때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장수로는 최고위 직급이나 마찬가지인 종1품에까지 이르는 진기록을 남기게 된다.



    세 명의 장수를 배출한 이전생은 조선 태조 때 공조판서, 태종 때 예조판서와 영중추원사를 역임후 태종7년(1407년)에 하야하는데, 태종 임금은 그의 공을 기려 양산부원군으로 책봉한다. 그것이 바로 양산이라는 지명의 시작이다.

    한편 3명의 장수 중 장남 이징석은 서북4군 설치에 무공을 세우고 경상도 평안도 병마절도사와 병조판서를 거쳐 종1품인 판중추원사까지 올랐다. 양산군(梁産君)으로 책봉되기도 했다.

    차남인 이징옥은 특히 무공이 뛰어났던 인물로 전해진다. 무과 장원급제 후 18세 때 영북진절제사가 돼 현지에 부임한 후 산 채로 호랑이를 잡고 마음대로 부리는 신통력을 보여 현지의 여진족과 부하 장수 및 병졸들로부터 우러름을 샀다. 그는 김종서와 함께 6진 개척에 지대한 공훈을 세워 종1품인 함길도도절제사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수양대군의 계유정란과 맞물리면서 김종서가 화를 입는 등의 혼란기에 세조에 반기를 들게 된다. 여진족들을 이민족 오랑캐가 아니라 고구려의 후예로서 예우했던 그를 여진족들이 대금국을 세우며 황제로 옹위했고, 그 역시 명나라에 불복하고 여진인들과 함께 대고구려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던 중 부하에게 암살된다. 무공이 출중하고 도량이 컸던 한 인물의 비극적인 최후다. 이것을 역사가들은 '이징옥의 난'으로 부른다. 하지만 이징옥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는 과연 반란군의 수괴였을까, 조카를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사람을 임금으로 모시기보다는 차라리 민족의 옛 영토를 회복해 새 시대를 열고자 했던 비극적 영웅이었을까?



    삼남인 이징규 역시 어린 시절부터 무공이 출중했다. 무과 장원급제 후 판관 감찰로서 탐관오리 척결, 세종대왕 시절의 태평성대에 기여한 공로로 원종1등공신이 됐고 세조 때는 종1품인 판중추부사에 올랐다.

    이후로 이 마을은 3명의 장수를 배출한 마을이라고 해서 삼수리가 됐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국제신문    










    통도사 정문앞 경기식당의 산채비빔밥과 찹쌀파전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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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존에 있던 길 씨줄과 날줄로 엮어 개척한 24개 코스
    - 총길이 348㎞… 지리산 둘레길과 규모 면에서 엇비슷
    - 부산 울산 경남 주민 접근성 높고 숨은 비경도 즐비
    - 전국 둘레꾼 불러모을 명품 트레일 완성 과제로 남아

    8개월 만에 완료된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 작업은 영남알프스의 지평을 한 차원 넓히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제18코스 구간 중 가산마을로 향하는 개척단원들의 모습이다.

    2011년 1월1일 1코스 출발때의 통도사 모습으로 주위에 눈이 희끗희끗하다.

       

    산길을 걷는 것은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도 없을 만큼 참 매력적이다. 그런데 그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등산을 하면서 걷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져다 준다. 등산로만 걸을 때는 산이 하나의 대상으로 여겨지지만, 둘레길을 걸을 때는 하나의 대상을 넘어서서 생활의 일부요 삶의 터전으로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등산이라는 행위는 어쩔 수 없이 나와 산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을 가져다 주기 일쑤지만, 둘레길은 그같은 긴장감마저 풀어헤쳐 버리게 만든다. 오히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 속에서 그들의 삶을 엿보고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강둑길 들판길 숲길 고갯길 등을 완전 무장해제된 상태로 편안하게 걸으면서 산을 바라볼 때 높게만 여겨지던 산이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려오고 더욱 편한 친구로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남알프스둘레길 2코스 바람바위에서 등뒤로 영남알프스 능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본지가 지난 1월 시작했던 '영남알프스 둘레길 열다' 시리즈가 지난 주 금요일(8월 26일자) 제20코스 답사기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시리즈는 지금껏 없었던 길을 새로 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길들을 하나로 이어서 새로운 이름의 '큰 길'로 열기위한 노력이었다. 그 결과 '영남의 척추', '영남의 허파'로 불리는 영남알프스는 좀 더 풍요롭고 친밀한 존재로 어느새 영남 사람들 곁에 성큼 다가오게 됐다. 그 의미와 앞으로 남은 과제들을 짚어본다.


    ■구슬 서 말 꿰니 보배…총348㎞ 명품길 연결

    이미 지난해부터 본지가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열기로 계획하고 사전 답사를 거쳐 올해 1월부터 본격적인 개척에 들어간 이유는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걷기 좋고 아름다운 코스로 이름난 타 지역의 장거리 트레킹 코스들이 속속 열리고 있었지만 부산과 울산권에는 딱히 내세울 지역의 장거리 트레일이 없다는 안타까움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분명히 부산에서 그렇게 멀지 않고, 영남인들을 넘어 전국 산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한 '영남알프스'라는 훌륭한 자연자원이 존재하는데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 또한 컸다. 이 2가지가 결합돼 비로소 '영남알프스 둘레길'이라는 장거리 트레일 개척 작업에 나서게 됐다.

    그리하여 1월 첫 주 양산 통도사 입구에서 대장정의 첫 발을 내딛고 매주 3회 씩, 총 8개월에 걸쳐 전체 구간을 이음으로써 영남알프스를 크게 한 바퀴 도는 환형(環形) 종주길이 완성됐다.



    취재팀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담고 있는 진리를 수백번 되뇌면서 옛 사람들이 걸었던 길, 다랑이논의 들길, 한적하고 완만한 계곡길, 고즈넉한 산골 마을의 토담길, 수풀 우거진 묵은 길 등을 가리지 않고 이어나갔다. 그렇게 연결된 '길의 구슬'들은 튼튼한 '실'에 꿰어지고 꿰어져 총길이 348㎞라는 아주 긴 '보배 길'로 다시 태어났다.

    이렇게 탄생한 둘레길을 통해, 최고봉인 가지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연결돼 있는 총 9개의 해발1000m급 산봉들이 연결된 영남알프스 산군은 비로소 낮은 데로 임했고 그 넉넉한 품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통도사 운문사 등 거찰을 포함한 수많은 사찰과 암자, 월연정 박연정 만화정과 같은 옛 선비들의 자취가 밴 고풍스런 정자와 고택 서원들이 영남알프스의 품 속에서 빛을 발한다. 또한 천전리각석 반구대암각화와 같은 국보는 물론이고 수많은 국가지정 보물과 유형문화재, 사적지가 1000리에 가까운 이 길에서 중간 매듭 구실을 하면서 저마다 품고 있는 생생한 '느낌'을 전해준다. 수백년 묵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회나무 서어나무 소나무 등 고목들은 쉴만한 그늘이 돼 줄 뿐 아니라 편안한 친구가 되어 준다. 숨어 있던 크고 작은 폭포와 웅덩이는 목마른 둘레꾼에게 청량제 역할을 자임하기도 한다. 그 속을 걸으면서 둘레꾼들은 이런 많은 '매듭'들이 품고 있는 전설과 설화,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순박하고 인정 넘치는 영남알프스 자락의 사람들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슬며시 오늘을 사는 자신의 이야기도 풀어낸다. 그런 과정을 통해 길은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고 스스로의 영혼은 정화된다.



    348㎞에 달하는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경남 경북 울산 3개 시도의 5개 시군(양산시 울주군 경주시 청도군 밀양시), 17개 읍면 74개 리(동) 132개 마을을 거치는 방대한 코스다. 경남 전남북 등 3개 시도에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구례군 남원시 등 5개 시군 16개 읍면, 80여개 마을을 거치는 지리산 둘레길과 규모면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부울경 주민들이 접근하기에는 지리산 둘레길에 비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훨씬 유리한 잇점을 갖고 있다.

    총 24개 코스로 나눠져 있으며 코스 당 평균 거리는 14.5㎞로 당일 걷기 코스로는 아주 적합한 수준이다. 매주 한 코스씩 답사한다고 해도 꼬박 반년은 걸린다. 1코스부터 연결해서 걸어도 되지만 접근하기 좋은 곳, 또는 가보고 싶은 코스를 선택해서 편하게 걸어도 무방하다. 다만 영남알프스의 넓고 깊은 멋을 음미하면서 부산 울산권에도 이렇게 이야깃거리와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한 걷기 코스가 탄생한 기쁨을 함께 하면 좋겠다는 것이 취재팀의 바람이다.



    ■걸음마는 뗐지만…지자체 관심 협력 필수

    국제신문이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을 이뤄내긴 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개척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은 길목 길목마다 표시된 길 안내 부착물이라고는 본지 취재팀의 노란색 안내리본이 유일한 수준이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지난 8개월 동안 기사를 읽고 뒤따라 나선 많은 산꾼과 둘레꾼들이 취재팀에게 수많은 질문도 쏟아냈다. 이들이 던지는 질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안내판이나 이정표 쉼터 등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지리산 둘레길이나 북한산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 등에서 봤던 통일된 형식의 이정표와 안내판 등을 떠올려서 던진 질문이지만 아쉽게도 영남알프스 둘레길에는 아무런 안내시설이나 편의시설이 없다. 말 그대로 야생의 길일 뿐이다.



    굳이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는 명품 트레일을 열어보겠다는 국제신문의 의지는 제쳐둔다 하더라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는 '영남알프스 둘레길'이 제대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한 인근 지방자치단체들의 관심과 상호협력, 통일된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지난달 11일 울산시청에서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설을 목표로 한 울산 양산 밀양 경주 청도 등 5개 지자체 관련 공무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는 소식은 반갑기 이를 데 없는 소식이다. 올 봄 울산시청에서 열렸던 전문가 세미나에서 본지 취재팀이 적극 권장했던 '관련 지자체간 협력을 통한 별도의 통합기구 설치'의 초기 실행단계로 읽혀져 더욱 고무적으로 다가온다.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우선 울산권역의 둘레길 구간 65㎞를 내년 말까지 개설한다는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자칫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지, 또 둘레길 개설이라는 명분 아래 관 주도의 영남알프스 자연 훼손과 개발이 가속화 되지 않을지 우려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그동안 사전답사와 본답사를 통해 총 24개 코스를 개척한 실질적 길잡이인 본지 영남알프스둘레길 개척단의 이창우 단장은 "행정기관에서 나서 주는 것은 더 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자연스러움을 지키면서 불편한 구간을 보완하는 최소한의 시설 설치에 그쳐야 될 것"이라며 "코스 설정 등 세부적인 부분도 관 주도 보다는 외부 민간단체 및 전문가들이 망라된 별도 기구로 일원화하고 예산 배정과 사유지 경유 문제 조율 등의 부분을 관청에서 지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 등도 모두 관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별도의 민간 법인체가 주도하고 예산 및 행정 지원을 관에서 맡은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본지가 1단계 개척을 완성한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지만 이것이 전국의 둘레꾼들을 불러 모을 진정한 명품 트레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주민들의 관심과 의지, 그리고 합리적인 행정관청의 지원이 맞물려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 '부부 둘레꾼' 원경연 씨 완주 감상문

    - "둘레길을 걸으며 너무 행복했습니다, 길동무들과 함께 해서 더 행복했습니다"

    지난 1월부터 본지의 '영남알프스 둘레길 열다' 연재가 이어지는 동안 많은 둘레꾼들이 기사를 읽고 이 길을 따라 걸었다. 이들은 저마다의 느낌을 웹 상에 구축한 개인 블로그에 올리면서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널리 알리는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취재팀으로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웹상에서 닉네임(별명) '물결'로 알려진 원경연(경남 양산시) 씨는 부인 이정숙 씨와 함께 24개 전체 코스를 모두 완주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알찬 답사기를 연재했다. 그가 완주 후 올린 감상문인 '둘레길을 마무리하며…'는 취재팀에게도 큰 감동을 선사했다. 둘레길 답사 초반 긴가민가하면서 따라 나서던 부인이 중반 이후에는 오히려 더 앞장서서 "둘레길 가자"며 성화를 부린다고 엄살 섞인 일상을 소개하기도 했던 원 씨의 감상문 일부를 그대로 옮겨 소개한다.



    "둘레길을 걷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새로운 길에 대한 궁금증에 기다림이 즐거웠고, 길을 걸을 때는 둘레길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으며 잊혀진 옛모습을 마주할 때면 마음은 아스라히 옛추억을 더듬었습니다.

    둘레길 그 자체가 자연이었고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늦겨울의 정취에 따뜻함을 보았고 봄날의 향기에 취했으며 여름날의 푸르름에 하늘을 날것만 같았습니다.

    둘레길을 걸음으로써 평소에는 못보던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갈 때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들 말입니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곳에는 어김없이 정자가 있고, 이 곳에서 풍류와 옛선비의 낭만을 유추하며 과거로의 여행을 하곤 했습니다. 고택에서 느끼는 옛 사람들의 생활상에서 나의 생활과 비교하며 시간의 흐름을 배웠고, 둘레길 사람들의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내모습을 되돌아 보곤 했습니다.(중략) 정적뿐인 촌마을에 흐르는 적막감을 대할 때의 허허로움과 시골버스를 탈 때의 반가움과 텅빈 버스안을 둘러볼 때의 안타까움도 겪었습니다.

    둘레길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하고 많은 것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레길은 우리 부부의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살림과 생활에 바빠 무덤덤해져가는 중년의 부부에게 둘레길은 산만큼 높은 공경심과 계곡만큼 깊은 이해심과 들판만큼 넓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해 주었지요. 길에서 만난 열정적인 둘레꾼들과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중략) 오랜 시간동안 근교산을 개척한 근교산의 선구자인 국제신문과 개척단원 여러분께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국제신문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 답사 코스

    코스

    구간

    거리
    (㎞)

    경유
    마을

    특징 및 볼거리

    1

    통도사
    ~울주 작천정

    14.5

    5리
    10마을

    금강골 알바위 작천정,자수정동굴나라

    2

    울주 작천정
    ~지내리

    13.5

    5리
    6마을

    인내천바위,언양 지석묘, 부로산봉화대, 굴암사 김취려장군묘

    3

    울주 지내리
    ~내와리

    18.5

    6리
    13마을

    구량리은행나무 탑골 일명 '울산의 강원도'

    3-1

    구량리은행나무~반구대

    12.5

    3리
    5마을

    천전리 각석, 반구대암각화, 공룡화석

    4

    내와리
    ~경주 박달리

    12

    2리
    5마을

    태화강발원지 탑골샘백운산 김유신 전설

    5

    경주 박달리
    ~일부리심천

    17.5

    3리
    9마을

    상목골재 낙동정맥
    아부터재 

    6

    경주 심천
    ~청도 삼계리

    13.5

    2리
    2마을

    심원사 가슬갑사터
    계살피계곡 삼계리재

    7

    청도 삼계리
    ~운문사

    14

    1리
    4마을

    나선폭포 양바위
    운문사

    8

    청도 신원리
    (운문사 입구)
    ~임당리

    16

    3리
    5마을

    방음동 용신소 무적숲 무적암 정거고개 쇠등 임당내시집 옛길

    8-1

    청도 방음
    ~공암풍벽

    20

    3리
    4마을

    운문호 일주, 호산,공암풍벽 운곡정사, 망향정

    9

    청도 임당리
    ~신지리

    17

    3리
    5마을

    베틀바위 박곡지 대비사
    박곡리석조석가여래불
    억산 깨진바위 만화정 

    10

    청도 신지리
    ~장연리

    14.5

    4리
    5마을

    선암서원 어성산성 봉황애 삼족대 장수골

    11

    청도 장연
    ~밀양 고정리

    17

    5리
    11마을

    장연사지3층석탑 오대 마전암 박연정450년 은행나무

    12

    밀양 고정리
    ~남기리

    14

    4리
    11마을

    약산 김원봉 고명학교보담산 숲촌 장씨정려

    12-1

    밀양 고정리
    ~밀양교

    12.5

    4동
    6마을

    기회송림 월연정 백송용평터널 금시당 용두보

    12-1

    밀양 영남루
    ~교동 향교

    9

    2동
    3마을

    영남루 아랑각 밀양읍성 무봉사 추화산성 손씨고택촌

    13

    밀양 남기리
    ~미촌리

    14

    3리
    8마을

    혜산서원 모당샘 죽원재사 칠산정 칠탄서원 영원사지

    14

    밀양 미촌리
    ~감물리

    14.5

    3리
    5마을

    법흥상원놀이 만어사 경석용소마을

    15 

    밀양 감물리
    ~사연리

    17.5

    2리
    7마을

    깨밭고개 보문사 무릉동자암서당 

    16

    밀양 사연리
    ~고례 평리

    12.5

    2리
    5마을

    사연교 정각산 반계정 아불교 범도연 벼락덤이

    17

    밀양 고례리
    ~양산 선리

    13

    2리
    6마을

    낙주정 풍류동 가산마을 밀양댐 향로산 다람쥐골

    18

    양산 선리
    ~내석리

    12.5

    2리
    4마을

    풍호대 석계시살등옛길
    행기소 염수봉임도

    19

    양산 내석리
    ~삼감리

    16

    2리
    6마을

    복호폭포 오룡골 연구대
    삼감리대나무숲

    20

    양산 삼감리
    ~통도사

    12

    3리
    6마을

    봉화등임도 법수사
    삼장수유적 통도사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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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지정된 문화재가 폐가 수준인 영남알프스둘레길 13코스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지정된 문화재가 폐가 수준인 영남알프스둘레길 13코스


       
    청도와 마찬가지로 경남 밀양 또한 영남알프스의 넓고 깊은 자락에 수많은 문화재와 유적지, 고택들을 품고 있는 고장이다.

    이번 주 답사한 제13코스는 밀양이 자랑하는 전통마을과 정자를 거치며 옛 정취에 듬뿍 취하는 길이다. 유서깊은 전통을 가진 한옥마을과 넓은 들판, 폐허로 남은 절터와 정자를 찾아가며 밀양이 갖고 있는 다양한 특색들을 느낄 수 있다. 또 난생 처음으로 어마어마하게 넓은 대추밭 사이를 지나기도 한다. 녹음이 뒤덮인 산자락에 끝 없이 펼쳐진 대추밭 언저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흘린 땀'의 숭고함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를 가진다.






    코스 출발지는 경남 밀양시 산외면 남기리 남가마을의 남계교다. 그리고 종착점은 단장면 미촌리 구미마을 버스정류소. 총거리는 14㎞이고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40분, 휴식 등을 포함하면 6시간 정도는 걸린다.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는 막바지 구간인 칠탄정, 칠산정 구간의 묵은 옛길에 수풀이 우거졌기 때문이다.

    ◇ 다원고개 넘고 동창천 건너 14㎞, 넉넉 잡아 6시간


       
    영남알프스 둘레길에서는 흙돌담 정겨운 전통 한옥마을을 자주 만난다. 경남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또한 그 중 한곳이다. 옛 사람들의 운치를 그대로 살리고 있는 마을을 지날 때면 개척단의 발걸음도 더욱 가벼워진다.
    엄남천에 놓인 남계교를 건너 사거리에서 직진, 계속 동쪽으로 남계마을 들판길을 따른다. 정면 왼쪽의 꾀꼬리봉이 우뚝하고 오른쪽에는 물류창고가 있는 야트막한 화지산이 보인다. 두 산 사이의 안부 고개로 넘어갈 예정이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밑을 지나 양덕동(마을)에 들어선다. 양덕(陽德)이라고 한 것은 꾀꼬리봉에서 내려온 산기슭에 위치, 양지 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마을회관 앞에서 진영기와산업(주) 굴뚝을 보면서 직진한 후 공장 왼쪽의 골목으로 진입한다. 매꽃, 인동덩굴 등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3분 후 Y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다. 주변에는 온통 대추나무 일색이다. 다시 3분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 비포장 임도를 택해 50m쯤 가면 널찍한 공터가 나오는데 왼쪽을 잘 보면 임도로 휘어져 오르는 길이 보인다. 그 임도를 따라 가면 7분 후 다원고개에 닿는다. 능선을 타고 왼쪽으로 가면 꾀꼬리봉, 오른쪽은 화지산으로 가게 된다. 일단 우측으로 몸을 돌린 후 보이는 능선 마루금길과 왼쪽 11시 방향으로 휘돌아가는 길이 보이는데 비스듬한 왼쪽 길을 택한다. 3분 후 또 다시 작은 안부고개에 닿는다. 우측은 화지산, 직진하면 금촌리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왼쪽 능선길로 가야한다. 3분 후 무덤 앞 갈림길에서 능선을 버리고 왼쪽 내리막 길로 떨어진다. 얼마 가지 않아 다죽리 다원마을 포장도로에 닿는다.


       
    밀양사 산외면 다죽리 혜산서원 대문인 상례문을 나서는 개척단.
    다원마을은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연극배우 손숙 씨의 고향마을로, 일직 손씨 재실과 혜산서원(惠山書院) 등 고택들이 즐비해 은근히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이정표를 보면서 도로를 건너 혜산서원 방향으로 간다. 격재선생 신도비를 일별하고 흙돌담길 깊숙이 자리잡은 상례문(尙禮門)으로 들어가 서원의 강당과 사당 등을 둘러본다. 반질반질하게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하게 닦인 강당 대청마루는 후손들의 정성어린 관리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서원을 나와 흙돌담길을 따라 걷는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1호인 다죽리 손씨 고가 등 고택들이 이어진다. 참 운치있는 마을이다. 만화정과 운강고택이 있는 청도군 신지리 못잖다. 그러나 길에서 만난 마을 주민 아주머니는 "처음 온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지요. 그렇지만 뭐, 사람사는 곳이 다 마찬가지라오. 들일 하고, 농사 짓고, 자식 키우고. 그렇지 않소?"라며 밭으로 향한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손씨 고가에서 우측으로 꺾어 걸으면 옛 24번 국도 아스팔트 도로 사거리다. 나중에 이곳으로 돌아올 예정이지만 일단 왼쪽으로 꺾는다. 산외면사무소를 지나 주유소 앞에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선다. 그 골목 깊숙한 곳에 모당천(毛唐泉)이라는 샘터가 있다. 중국 원나라 말기에 모 씨와 당 씨가 전쟁을 피해 이곳까지 와서 식수용으로 팠다는 오래 된 샘물이다. 모당천을 지나 잘 생긴 소나무와 홍단풍의 호위를 받으며 올라서면 언덕 위에 죽원재사(竹院齋舍)라는 재실이 있다. 조선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지방관과 언관을 지낸 오한 손기양 선생을 기리는 제사를 모신 별묘가 있던 자리다. 1753년 최초 건립됐으며 이후 세월이 흐르며 황폐해 졌다가 1956년에 밀성 손씨 문중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했다. 본당 건물 앞 뜰에는 월연정과 금시당에서도 보았던 백송(白松)이 늠름하게 서 있다.


    ◇ 산외면 소재지 다죽리 전통한옥마을 운치 가득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지정된 문화재가 폐가 수준인 영남알프스둘레길 13코스


       
    다죽리 소재 죽원재사 가는 길. 홍단풍과 백송이 길손을 맞아 준다.
    죽원재사를 나오면 모당천 앞에서 직진, 마을 길을 따라 나오면 다원2리 경로당을 거쳐 옛 24번 국도에 닿는다. 우측으로 꺾어 산외면사무소를 거쳐 최초에 24번 국도에 닿았던 갈림길까지 돌아간다. 여기서 옛 국도를 건너 마을앞 들판인 다원들 사이 농로를 따라 율전마을 쪽으로 간다. 신 24번 국도 굴다리를 거쳐 직진하면 '털보양어장'을 가리키는 푯말 앞에서 화살표 방향대로 우회전하고 율전마을회관을 거쳐 털보양어장을 지나면 동천(또는 단장천)둑길에 닿는다. 우회전하면 '리더스CC' 표지판이 있다. 활성2교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밑 하천에서 다슬기를 줍는 50~60대 주민들이 눈에 들어온다. 초여름 햇살을 받은 여울이 반짝인다.

       
    대추밭 속에 숨은 영원사지. 조선 초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리를 건너면 큰 길을 버리고 왼쪽 강변 쪽으로 꺾어야 칠탄정으로 가는 길이지만, 일단 영원사지(瑩源寺址)에 들르기 위해 골프장 방향으로 직진한다. 영원사지 위치 안내판을 지나고 골프장가든 식당을 지나면 갈림길에서 우측 마을길을 따른다. 활성2동 경로당 앞을 지나면 온통 대추나무 천지다. 5분 후 대추나무밭에 숨은 영원사지에 닿는다. 골짜기 상류에 보면 골프장이 있고, 그 오른쪽에 자씨산 부도골이 보인다. 이 깊은 골짜기에 골프장을 건설한 것을 납득할 수 없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다. 영원사 창건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 충숙왕때인 1313년 왕사가 된 보감국사(寶鑑國師)가 머문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보감국사( 1250~1322)는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 스님의 제자로서 왕사에까지 오른 고승이다. 이 절터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호인 보감국사 부도와 제13호인 보감국사 묘응탑비가 있고 몇기의 고려시대 석불이 남아 있을 뿐 주변은 온통 대추밭일 뿐이다. 묘응탑비의 탑신도 오간데 없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다. 묘응탑비의 비문은 익재 이제현이 썼다고 알려졌지만 내용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비 상하단부의 조각 솜씨만은 예사롭지않다. 절은 조선 초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 드넓은 대추밭 속에서 찾은 영원사지 쓸쓸함 만 남아

       
    인적 적어 반 폐허가 된 칠산정 경내에 거대한 은행나무만 우뚝하다.
    15분이면 다시 활성2교 앞 골프장 입간판 앞까지 갈 수 있다. 다리 우측으로 진입, 강변의 숲길을 따른다. 큰 높낮이 변화없이 강변을 따라 가는 한적한 숲길. 그러나 최근에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잔가지들을 제법 헤치면서 진행해야 하는 길이다. 이 길도 정비만 제대로 된다면 '제12-1코스 상편'에서 답사한 금시당~팔각정 산책로 못잖은 걷기 좋은 길이 될 수 있겠다. 17분쯤 가면 다죽리의 죽원재사에 모셔진 오한 손기양 선생이 후학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는 칠탄서원(七灘書院·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2호)과 칠탄정(七灘亭)에 닿는다. 북쪽을 바라보며 지어진 이 건물은 강당과 정자 서재와 동재가 운치를 더하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잡초와 먼지만 무성해 을씨년스런 느낌을 준다. '칠탄'이라는 명칭은 산내천과 단장천이 합수된 단장면 단장리에서 이곳까지 흐른 동천의 거리가 칠리이며 이 구간을 '칠리탄'이라고 해서 붙었다고 전해진다.

    칠탄정의 동제 누각인 운강루(雲江樓) 아래 문을 통해 나가서 30m쯤 가면 우측으로 살짝 오르는 희미한 길을 타야 한다. 이곳부터는 길 상태가 험한 편이다. 안내리본을 잘 보고 조심스럽게 진행하자. 칠탄산 옆자락 타고 가는 험로를 30여분 가서 무덤을 만나면 길은 다시 좋아진다. 우측으로 살짝 틀면 일직 손씨 돌무덤이 있고 곧바로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살짝 돌아 다시 우측으로 임도처럼 넓은 길을 따른다. 묵었지만 그래도 갈만한 길이다. 5분 후 제대로 된 깔끔한 임도에서 우측으로 가면 곧바로 칠산정(七山亭)이 있다. 이 곳 역시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문화재라는 느낌이 덜하다. 다만 마당으로 들어서면 수백년 묵은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어 가을 분위기가 참 좋을 듯 할 뿐이다.

    칠산정에서 구미마을까지는 15분이면 족하다. 구미교를 건널 때 우측에 보이는 봉우리는 계령산. 다리 건너에 버스정류소가 있다. 제13코스의 종착점이다.


    # 떠나기 전에

    - 혜산서원 건물 사이 담장, 대원군 서원철폐령 피하려



    밀양 산외면의 면소재지인 다죽리에 있는 혜산서원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7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은 조선 초기 문신이자 학자인 격재(格齋) 손조서(1412~1473)의 학덕과 인품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조선 영조 29년(1753년) 건립한 서산서원이 있던 터에 1971년 확장 중건한 곳이다. 이 서원에는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일반 서원과는 달리 강당과 사당 살림채 등이 모두 담으로 구분돼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조선 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당시 건물의 강제 철거 만이라도 피하기 위해 일직 손씨 문중에서 가정집 처럼 꾸몄기 때문이다. 건물들 사이에 담벼락을 만들고 건물의 이름도 일반 가정집에 흔한 이름들로 바꿔 비로소 큰 화를 면했다는 것이다. 지혜의 산물인 셈.

    격재 선생은 집현전학사 병조정랑 봉산군수 등을 역임한 학자로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보면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마을에 돌아와 두문불출하며 학문의 길만 닦았던 인물이다. 그의 비장한 충절은 흔히 생육신의 그것에 비견된다.



    # 교통편

    - 밀양버스터미널서 정문마을까지 버스 30분 간격 운행

    무궁화호 열차는 부산역 기준 오전 5시10분 첫차를 시작으로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43분 소요, 3800원. 밀양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정문마을행 새마을버스 또는 얼음골 표충사행 직행버스를 이용한다. 새마을버스는 오전 6시10분부터 약 30분 간격으로 있고 직행버스도 7시05분부터 약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정문마을에서 하차, 남가마을 쪽으로 약 300m 걸어가면 남계교가 보인다. 코스 답사 후 종착점인 구미마을 버스정류소에서는 그냥 500m가량 걸어서 사촌마을 버스정류소에서 밀양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사촌마을 버스정류소에서 오후 4시35분, 7시25분에 탈 수 있다.

    자가용 이용의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향 24번 국도 긴늪사거리에서 좌회전, 200m쯤 간 후 다시 좌회전해 굴다리를 지나면 정문마을에 닿는다. 정려각에서 100m쯤 직진, 다리를 건너지 말고 좌회전해서 300m쯤 가면 된다.



    # 폐허같은 밀양 칠탄정·칠산정, 허술한 문화재 관리에 할말 잃어

    - 마당엔 잡초, 대청마루엔 쥐똥
    - 경내의 은행나무·배롱나무만이 수백년 지켜온 기품안고 우뚝

       
    밀양시 발행 관광안내서에도 수록된 칠탄정.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않돼 먼지와 잡초만 무성하다.
    아무리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다지만, 이번 제13코스 답사 도중 들린 중요 문화재인 밀양 칠탄정(七灘亭)과 칠산정(七山亭)의 폐허나 마찬가지인 몰골(?) 앞에서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두 곳 모두의 마당에는 웃자란 잡초들만 무성하고, 대청마루에는 쥐똥과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다. 여러 부속 건물마다 처마 밑에는 거미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펼쳐져 있기까지 하니 그 을씨년스러움에 기가 질릴 지경이다. 사실 칠탄정과 칠산정은 위치나 주변 풍광 면에서는 둘레길 개척단이 지금껏 답사한 각 구간에서 만난 그 어떤 정자나 서원들과 비교해봐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관리 실태만은 가장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어 안타까운 심경이다. 아니 '관리'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부끄러울 지경이라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칠탄산 자락에 자리잡은 칠탄정과 칠산정이 어떤 곳인가. 우선 칠탄정의 내력부터 살펴보자. 동천강 변에 북쪽을 보고 앉은 칠탄정은 임진왜란 당시 밀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손기양(1559~1617)이 만년에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1725년에 후손들이 건물을 다시 지어 진암서당이라고 명명했고, 1844년에는 청절사(淸節詞)라는 사당도 함께 지어 손기양의 위패를 모시고 '칠탄서원'이라고 불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손됐다가 1914년에 다시 복원했다. 칠탄정과 중앙의 강당을 두었고, 동서쪽에는 누마루가 있는 누각을 지어 강물과 그 너머 다원들판, 다죽리 마을, 비학산과 꾀꼬리봉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했다. 현재의 건물은 비록 20세기 초반에 지은 것이라고 하지만 조선 후기 양식을 대부분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역사성과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2호로 지정됐다. 손기양 선생은 밀양 손씨 문중 출신이다. 또 칠산정은 경남 문화재자료 제478호로 일직 손씨 가문의 별업 겸 재실이다.

    이들 두 곳 모두 수백 년 자란 은행나무와 베롱나무들이 경내에 그 세월의 흔적을 안고 우뚝하게 서 있고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들도 그 기품이 여전하지만 각 각의 건물들이 문화재다운 관리를 받지 못하다 보니 그 빼어남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누구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기관에서 무관심했든, 해당 문중에서 관리를 소홀히 했든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개척단이 칠탄정과 칠산정을 답사하면서 '우리의 문화재 관리 수준이 과연 이 정도밖에 안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근년 들어 찾는 이 드물어서 더욱 을씨년스런 이들 고 건축물들에 둘레꾼들의 발길이라도 계속 이어진다면 잃었던 생명력을 서서히 되찾을 것이고 제대로 된 관리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감을 나타내고 싶을 뿐이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 국제신문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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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이 생기기 이전 '영남'이라는 이름을 단 장소 가운데 국민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무엇일까. 물론 영남권, 영남지방 등의 광범위한 지역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추측건대 그것은 단연코 밀양의 '영남루(嶺南樓)'가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 건국 훨씬 이전인 조선시대 중반 이후부터 영남루는 진주 남강의 촉석루,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으로 명성을 날렸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누각을 찾아 밀양강과 용두산 줄기, 종남산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학문과 삶의 길, 정세 등을 논했다. 그래서일까. 영남루는 밀양 8경 가운데 으뜸인 제1경으로 불린다. 오늘날 영남루는 밀양 여행의 1번지로 자리잡았을 뿐 아니라 주변에 산재한 수많은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 밀양읍성 추화산성 너머 손씨 고택까지 가볍게 9㎞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추화산으로 오르고 있다. 산성과 봉수대가 있는 추화산 오름길은 가파르긴 하지만 갈 지(之)자 모양의 옛길을 닮아 큰 힘 들이지 않아도 걸을 수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이번 주는 지난주에 이어 제12-1코스 하편으로 영남루에서 시작해 밀양향교까지 가는 길을 엮었다. '하늘이 내린 축복의 땅'이라고 하는 밀양의 어제와 오늘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짧지만 알찬 걷기 코스다. 옛날부터 밀양 읍내를 지켜 온 두 개의 산성 성곽을 따라 걷기도 하고 천년고찰 무봉사와 조선시대 정절녀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아랑의 전설을 엿보기도 한다. 또 영남권의 대표적인 고택 마을인 교동 손씨 고택을 찾아 옛 사람들이 꾸며놓은 고건축물과 돌담길의 정취도 느낄 수 있어서 자녀들과 함께 걸어도 교육적으로 썩 괜찮은 길이다.

    총거리는 9㎞ 남짓이고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따지면 3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영남루, 밀양관아, 아랑각, 무봉사, 밀양읍성, 추화산 봉수대와 산성, 충혼탑, 밀양시립박물관, 교동 손씨 고택, 향교까지 여유있게 찬찬히 둘러 보려면 5시간 정도 잡으면 넉넉하다.

       
    밀양시 교동 손 씨 고택 마을의 흙돌담 골목길에 옛 정취가 물씬하다.
    제12-1코스 상편의 종착점이었던 밀양교 부근 밀양시 내일동 영남루 앞에서 우선 밀양관아(密陽官衙)로 향한다. 북쪽으로 인도를 따라 3분쯤 가면 내일동사무소 건너편에 포졸 2명의 밀랍인형이 보초를 서는 밀양관아가 있다.


    다시 영남루 입구 광장으로 돌아가서 영남루를 바라볼 때 오른쪽인 1시 방향 강변길로 내려선다. 석화(石花)와 아랑각을 먼저 본 후 영남루로 오르기 위해서다. 곧바로 석화가 나타난다. 동심원을 그리는 듯한 돌의 모양이 국화꽃을 닮았다고 해서 석화라 불리는 이 돌들은 영남루 경내 안팎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자연 현상이다. 석화 안내판 바로 옆에는 아랑각이 있다. 조선 명종 때 밀양 부사 윤 씨의 딸인 아랑이 영남루에 달구경 나왔다가 유모와 밀통한 괴한에게 겁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자결했고, 그 이후 주민들은 그녀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사당인 아랑사에는 영정이 모셔져 있고 왼쪽 쪽문으로 나가 보면 '사건의 현장'을 알려주는 비석이 있다. 지금도 밀양 최대의 축제인 '아랑제'가 열리고 있고 아랑아가씨까지 선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랑이 밀양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능히 짐작할 만하다.


    ◇ 아랑각 석화 천진궁 박시춘옛집까지 이야기거리 즐비

       
    아동산이라고도 불리는 밀양읍성 성곽 위를 걷는 둘레길 개척단.
    아랑각에서 계단을 오르면 왼쪽에 보물 제147호인 영남루가 보인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 찬찬히 건물도 돌아보고 남쪽의 밀양강과 일자봉(산성산) 용두산 줄기, 종남산 일대와 밀양시가지를 감상하노라면 신선이 따로 없다. 스피커에서는 지역의 민요인 '밀양아리랑'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영남루 뒤의 천진궁(天眞宮)을 둘러보고 밀양이 낳은 한국 가요계의 거목인 작곡가 박시춘 선생(1996년 작고) 생가 복원지도 돌아 본 후 무봉사(舞鳳寺)로 향한다. 신라 혜공왕 9년(773년) 법조 대사가 현재 영남루 자리에 있던 영남사의 부속 암자로 건립한 무봉사는 보물 제493호인 석조여래좌상도 유명하지만 '태극나비'로 더욱 유명하다. 날개에 태극무늬가 그려진 이 나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무봉사에서만 발견되는 것인데 국가에 큰일이 있을 때만 나타난다고 전해온다. 표충비, 얼음골, 만어사 경석 등과 함께 '밀양 4대 신비'로 통한다.


       
    밀양교에서 바라본 영남루 아래로 밀양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무봉사를 나와 일주문 우측의 샛길로 오르면 사명대사 동상을 만나고 조금 더 오르면 아동산에 위치한 밀양읍성이다. 사위가 탁 트인다. 날씨 맑은 날에는 동쪽의 영남알프스 능선까지 보인다. 성곽을 따라 올라 망루 겸 정자인 무봉대에서 심호흡을 한 후 동문고개다. 일단 도로를 건넌 후 오른쪽으로 30m쯤 가서 왼쪽 작은 마을 앞 공터 쪽으로 꺾는다. 샛길이 나오고 텃밭 우측 길을 따라 5분만 가면 다시 왕복4차로인 큰 도로를 만나는데 건너편에 '대공원' 방향을 가리키는 조그마한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쪽에 조금 떨어진 횡단보도를 건너 이정표에서 대공원 방향으로 산길을 탄다.

    첫 갈림길에서 왼쪽 밀성 박씨 묘 방향으로 간 후 무덤 뒤 능선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 길을 택한다. 공동묘지 옆 길을 따라 살짝 내리막을 걸으면 작은 임도 사거리가 나온다. 왼쪽에는 화장장, 직진하면 대공원 방향이지만 우측으로 임도를 따른다. 5분쯤 가면 수십 개의 둥치가 세월이 가면서 서로 엉겨붙은 것 같은 특이한 모양의 커다란 모과나무를 지난다. '밀양 독립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을강 전홍표 선생의 묘소 안내판을 통과한다. 추화산성(推花山城)으로 오르는 길이다. 솔 향기 짙은 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해발 240m인 추화산 정상 봉수대. 추화산은 신라시대에 이 산의 이름을 따서 밀양 일대를 추화군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지역의 역사와 함께 한 산이다. 특히 추화산성은 가야와 신라, 후백제와 신라 등이 서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반증해 주는 유적이다. 봉수대에서 내려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산성을 한 바퀴 도는 길을 걷는다. 벤치 우측 길로 접어 들어 임도를 따라 5분쯤 가면 우측에 성곽 복원물이 있는 갈림길. 왼쪽으로 돌아서 계속 임도를 따른다. 10분 후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일단 왼쪽으로 100m쯤 올라가서 왼편에 있는 성내 우물을 본 후 다시 돌아온다. 우측 내리막을 따라 가면 영천암 입구 삼거리. 우측에 영천암이 있는데, 물 맛 좋은 샘터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7호인 백운사 범종이 있다.


    ◇ 박물관 독립운동기념관까지… 자녀 동반 코스로 적합


    다시 삼거리로 돌아 나와 포장길을 따라 200m쯤 내려서면 왼쪽으로 살짝 벗어나는 흙길을 만난다. 포장길을 버리고 이 흙길을 택한다. 3분 후 무덤 몇 개가 있는 제사고개에서 내리막을 타면 7분 후 충혼탑. 최근에 완공된 이 충혼탑은 한국전쟁과 월남전 등에서 산화한 이 지역 출신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곳이다. 충혼탑에서 5분 거리에 밀양시립박물관이 있다. 밀양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유적과 근현대의 유적들, 밀양 백중놀이를 비롯한 민속놀이, 약산 김원봉을 비롯한 항일독립투사들의 기록 등이 소중하게 전시돼 있는 곳이니 천천히 둘러볼 만하다. 박물관 앞 뜰에는 바닥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며 인근 어린이들의 여름철 놀이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박물관 정면 도로 우측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건넌 후 200m쯤 가면 교동 손 씨 고택에 닿는다. 우측의 운치 그윽한 돌담길을 따라 들어가면 크고 작은 고택들이 길손을 맞아준다. 그 중 '열두대문'이라는 한정식집으로 운영되고 있는 고가는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한 때 99칸에 달하는 대 저택이었다. 조선 숙종 때인 17세기 중반 손성증이 최초로 지었다고 전해온다. 손 씨 고가 뒤에는 밀양 향교가 있다. 1602년 건립된 밀양 향교는 대문 역할을 하는 풍화루(風化樓)와 대성전 등이 있는데, 크기가 유독 커서 경주향교 진주향교와 함께 영남 지역에서는 가장 큰 향교로 손꼽힌다. 이 향교로 인해 동네 이름도 교동이 됐다.



    향교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문이 있는데 이 문을 지나서 2분쯤 골목길을 걸어나오면 교동농협 앞 버스정류소다. 이곳에서 코스를 마무리한다.


    # 교통편

    - 밀양역에서 영남루 행 시내버스 수시로 있어

    부산역에서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열차로 밀양역까지 간다. 무궁화호 첫 차는 오전5시10분에 있고 20~4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3분 소요, 3800원. 밀양역 앞에서 영남루 가는 시내버스는 수시로 있다. 1, 1-2, 5, 6번 등 다양하다. 10분 소요. 코스 종점인 교동농협앞 버스정류소에서도 밀양역 행 시내버스가 자주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에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타고 긴늪사거리에서 직진, 밀산교를 건넌 후 표지판을 따라 영남루 앞으로 가면 된다.



    # 떠나기 전에

    - 답사 후 '똥개' 촬영지 삼문동 '추억의 거리' 가 볼만


    '영남제일루'라고도 불리는 영남루는 원래 밀양의 손님들을 머무르게 했던 건물이다. 최초 건립은 고려 말인 1365년 밀양 군수 김주가 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조선시대 들어 여러 차례 중건을 거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84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거대한 건물인 영남루는 좌우의 건물과 복도 또는 계단으로 연결돼 더욱 웅장하면서도 조화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특히 천정에 조각된 문양과 용의 몸통을 형상화 한 대들보, 용 그림, 네 귀퉁이의 남주작 북현무 좌청룡 우백호 그림 등이 모두 빼어난 예술 작품을 이룬다. 이 건물에 특히 용 조각과 그림이 많은 것은 옛날 사람들이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물을 화마로부터 지키기 위해 물과 가까운 용을 많이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믿거나 말거나' 속설도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연인들이 영남루와 아랑각 일대에서 데이트를 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속설 때문에 요즘도 젊은 연인들은 영남루에서는 데이트 하기를 꺼린다고 한다. 시집을 가지 못한 아랑 낭자의 심술때문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코스 탐방을 마치고 시간이 남는다면 영화 '똥개'의 주 촬영지인 삼문동 '추억의 거리'를 방문해 볼 만하다. 골목마다 1970년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 밀양 천진궁의 영욕

    - 역대 시조王 위패 모신 성소, 일제가 헌병대 감옥으로 악용
    - 독립운동가·우국지사 고초 겪어
    - 광복 후 밀양시민 노력으로 천진궁으로 이름바꾸고 복원


       
    경남 유형문화재 제 117호로 지정된 밀양시 소재 천진궁.
    밀양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영남루. 이곳을 방문하면 반드시 보게 되는 또 하나의 오래된 건축물이 하나 있다. 영남루와 뒷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천진궁(天眞宮)이 바로 그것이다. 1665년(조선 현종 6년)에 건립됐으며 현재 경남 유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된 천진궁 건물은 우리 민족이 건설했던 역대 국가 시조 왕들의 위패를 모셨던 성스러운 곳이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치욕적인 수모를 겪는 등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당초 이 건물은 시조 왕들의 위패를 모신 공진관(拱振館)의 부속 건물이었다가 1722년부터 공진관을 대신해 위패를 모신 사당 겸 객사 건물로 이용됐다고 한다.

    위패의 배치는 남쪽을 향해 봤을 때 중앙에 민족의 시조왕인 단군왕검의 위패를 두고 왼쪽 벽에 부여와 고구려, 가야 시조왕과 고려 태조의 위패를 봉안했다. 또 오른쪽 벽에는 발해와 백제 신라의 시조왕 및 조선 태조의 위패를 둔 성스러운 장소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 일본의 행패가 시작되면서 수난을 겪게 된다.

    조선을 침략하고 강제로 이 땅을 빼앗은 일본 측은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해 이곳에 모셔져 있던 역대 시조왕들의 위패를 지하 땅에 묻어버리고 헌병대 감옥으로 이용한 것이다. 숱한 우국지사와 항일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서 고초를 겪었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광복 이후 공진관의 복원을 위한 밀양 시민들의 노력이 펼쳐졌다. 그리고 1957년에 건물 이름을 천진궁으로 바꾸고 정문을 만덕문으로 지어 시조왕들의 위패를 다시 모심으로써 민족 정통성 확립을 위한 노력이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된다. 대리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가진 주심포식 건물인 천진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웅장한 위상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건물의 건축적 의미를 떠나 일제에 의한 고난의 역사를 되새기는 것 또한 둘레길을 걷는 이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매년 봄에 어천대제(음력 3월15일), 가을에는 개천대제(음력 10월3일)가 열린다.

    한편 영남루와 밀양읍성 망루 사이에 있는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생가 복원지 안내판을 읽다 보면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914년에 태어나 1996년 작고할 때까지 애수의 소야곡, 전우야 잘자라, 굳세어라 금순아, 전선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한국인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감정을 달래 준 숱한 명곡을 남긴 박 씨지만 '친일 작곡가'라는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에 작곡한 아들의 혈서, 목단강 편지, 결사대의 안해, 혈서지원 등 단 4곡의 노래로 인해 2005년 9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인사 명단 발표 때 그의 이름이 포함됐다. 한국 가요계의 거목으로서 대중가요 작곡가 최초로 1982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을 서훈받기도 한 그였지만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천진궁을 코앞에 둔 그의 옛집 앞에 서면 누구라도 착잡한 심정을 가눌 수 없을 것이다.

    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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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알프스둘레길 12-1코스)밀양 월영정 금시당  영남루. 비밀의 정원 밀양시 영남알프스 둘레길 12-1 상코스

    근교산&그너머 <727> 제12-1코스(상) : 밀양 남기리 정려각~내일동 밀양교

     밀양강변 '비밀의 정원'들 … 마침내 빗장 열다




     
    경남 밀양은 흔히 시가지보다 외곽 지역의 여러 명소들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표충사 천황산 재약산 얼음골 호박소 등. 상대적으로 밀양 시가지의 보석 같은 명소들은 외지인들에게 미답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자면 '비밀스러운 양지'를 뜻하는 밀양(密陽)이 뜻하지 않게 숨겨 두었던, 그러나 엄연히 그 빼어난 존재감을 속으로 갈무리하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숨은 진주 같은 곳을 찾아가는 일은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걷는 둘레꾼들에게는 좀처럼 잊히기 힘든 경험이 될 것이다. "아, 밀양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이것 역시 영남알프스 자락의 힘인가"라고 되뇌며 경탄하게 되리라. 밀양 시가지가 꼭꼭 숨겨 두었던 '비밀의 화원'으로 가는 코스를 엮었다. 밀양의 속살과 가슴 떨리는 접촉을 시도한 것이다. 그 속에서 아름다운 정자와 정원, 희귀 노거수와 백송(白松·일명 백골송, 흰 소나무), 그리고 꿈결 같은 산책로를 만나며 정녕 아름다운 경험을 했다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 12.5㎞ 짧은 구간 볼거리 많아 5시간 잡아야 넉넉

     
      건물 배치, 풍경과의 조화, 분위기 등 여러 측면에서 담양 소쇄원과 쌍벽을 이룬다는 조선시대 정원 월연정. 영남알프스 둘레길 밀양 8경의 하나이기도 한 월연정을 둘러보고 있다. 오른쪽 작은 돌다리는 쌍청교다.
    출발은 제12코스의 종착지였던 산외면 남기리 정문마을 창녕 장씨 정려각(旌閭閣) 앞에서 한다. 긴늪솔밭유원지를 거쳐 밀산교를 건너고 이어서 오연정(鼇淵亭)~용평터널(일명 백송터널)~월연정(月淵亭)~용호정(龍湖亭) 심경루(心鏡樓)~살내마을 정자나무~금시당 백곡재(今是堂 栢谷齋)~일자봉 산책로~용두취입보~팔각정~천경사~용두교~소나무거리숲~밀양교까지 이어지는 총12.5㎞의 길이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30분 정도지만, 하도 볼거리가 많아서 걸음이 느려진다. 5시간 이상 여유를 잡고 걸으면 좋다. 사실 서두를 일도 없지 않은가. 걷는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이 바로 천천히 가면서 자세히 보고 느끼며 평정심 속에서 감동을 쌓는 것일 테니까.

    정문마을 정려각에서 긴늪유원지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10분 후 새 국도아래 굴다리를 통과하면 눈앞에 긴늪솔밭(일명 기회송림)이 보인다. 100m쯤 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입구가 있다. 전도연 주연의 영화 '밀양' 촬영지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긴늪솔밭은 100여 년 전부터 기회마을 주민들이 방풍림으로 조성하기 시작한 것. 이제는 수천 그루의 우람한 솔밭으로 변모해 지역민들의 큰 사랑을 받는 유원지가 됐다. 1970~1980년대에는 기업체 야유회나 계모임 나들이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오연정의 전면)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긴늪사거리에서 밀양 시가지 방향인 왼쪽 밀산교를 건넌다. 발밑에 밀양강이 흐른다. 왼쪽 가까이 보이는 산은 산성이 있는 추화산이다. 다리를 건널 때는 왼편 갓길을 이용하자. 다리가 끝나자마자 왼쪽 추화산 방향으로 내려선다. 블루베리농장 앞 사거리에서 직진한다. 곧이어 추화산 아래 T자 갈림길. 우측에는 영천암 표지석이 있지만 왼쪽으로 간다. 2분 후 이번 코스에서 만나는 첫 번째 정자인 오연정 입구다. 오른쪽 언덕으로 오른다. 우거진 소나무와 느티나무 밑을 지나는 길. 짙은 녹음이 내뿜는 청정 산소가 코를 간질인다. 오연정은 조선 명종 때 문신인 추천(鄒川) 손영제(1521~1588)가 낙향해서 지은 정자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8세기에 다시 지었다. 본당 건물은 'ㄱ자' 형태로 왼쪽에 누마루를 내고 본체의 앞과 뒤에 같은 폭만큼 마루를 설치했다. 앞뜰에는 배롱나무, 뒤뜰에는 단풍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누마루에서 보면 밀양강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멀리로는 영남알프스 산줄기가 강을 함께 달린다. 오연정 울타리 뒤에는 모례서원 유허비가 있다.

     
      추화산 자락에 자리잡은 오연정. 누마루와 배롱나무가 조화를 이룬다.
    다시 오연정 입구로 복귀, 길을 이어가면 10분 후 모례마을 버스정류소를 지나 일제강점기 때 경부선 철로로도 사용됐던 용평터널 입구에 닿는다. 길이 300m 너비 4m 안팎의 좁은 터널로 차량도 다니기 때문에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일명 백송터널로도 불리는 이 터널을 나서면 정우성이 주연한 곽경택 감독의 영화 '똥개' 촬영 기념 입간판이 있다.

    (월연정의 모습)
    영화 촬영 기념 입간판 왼쪽으로 걸어서 강을 따라 들어가면 월연정이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과 쌍벽을 이룰 만큼 아름다운 조선시대 정원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가운데 작은 개울에 놓인 쌍청교를 중심으로 왼쪽은 쌍경당, 우측은 월연대다. 월연대 앞에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희귀종인 백송이 밀양강을 내려보며 자라고 있다. 흰색 비늘 같은 껍질을 가진 이 나무는 원래 중국이 본산지다. 조선 초기 사신들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그 씨를 가져와서 국내에 심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월연정에는 백송 외에도 오죽(烏竹), 행단 등 희귀한 나무가 많아서 그 분위기를 더 심오하게 한다.


    ■ 오연정 월연정 용평터널 금시당… 밀양 숨은 명소 거쳐

     
      왼쪽부터 월연정 백송, 금시당 은행나무, 금시당과 백송.
    터널 출구로 돌아와서 길을 이어간다. 우측 용호정, 심경루를 지나서 왼쪽의 활성교를 건넌다. 강 건너엔 야트막한 산성산 줄기. 밀양 시가지에서 보면 한일(一)자처럼 보인다고 해서 일자봉이라고 불리는 산이다. 다리 건너 갈림길. 금시당 가는 방향은 오른쪽이지만 일단 왼쪽으로 간다. 강마을 식당을 지나 우측 살내마을로 들어선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고가교인 금시교 아래를 통과하면 눈앞에 어른 다섯 아름이나 되는 거대한 둥치의 느티나무를 만난다. 사실 이 나무를 보려고 일부러 이 마을에 들른 것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에서 만난 수많은 노거수 중 둥치의 굵기로만 따질 때 이 나무가 단연 으뜸이기 때문이다.

    다시 고속도로 밑 '금시교' 안내판까지 돌아간 후 왼쪽으로 간다. 고속도로를 머리 위에 이고 가는 길이다. 곧바로 작은 사거리에서 철조망 사잇길로 직진. 강물을 만나면 왼쪽으로 틀어 금시당으로 향한다. 5분 후 환상적인 금시당 산책로가 시작된다. 조선 명종 때 승지를 지낸 금시당 이광진(1513~1566)이 만년에 지은 정자인 금시당이 있다. 주변의 울울창창한 소나무뿐 아니라 '암새들'을 굽어도는 밀양강 물줄기를 내려다보는 고택의 배치 역시 호젓한 분위기를 북돋운다. 금시당에는 이광진이 1566년 직접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 수령 450년이 넘는 이 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돼 있는데, 가을 어느 날 황금빛 잎을 번쩍이다가 어느 순간 털어내고 또 한 겹의 나이테를 두를 테다. 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은데 왼쪽으로 돌아가면 담장 너머로 경내를 볼 수 있다. 뜰에는 은행나무뿐 아니라 배롱나무가 있고, 그 유명한 금시당 금시매화도 낮은 담장만큼이나 낮게 서 있다.

    (월연정)
     
      금시당에서 팔각정으로 가는 산책로는 밀양이 자랑하는 명품길이다.
    금시당 뒤에서 산성산(일자봉)으로 직접 오르는 등산로와 강줄기를 따라 팔각정까지 가는 1.8㎞ 길이의 산책로로 갈라지는데, 평편한 산책로를 따른다. '환상적'이라는 표현으로는 모두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호젓한 길이다. 달콤한 꿈속의 길 같다. 밀양 시내 주민들이 첫손에 꼽는 산책로이기도 한 이 길은 소나무와 아카시아, 참나무, 화살촉을 만드는데 사용됐다는 대나무 등이 울창하게 늘어서 있다. 오른쪽 아래에 밀양강을 끼고 돌아가는 길목마다 김남주의 '고목', 서정주의 '꽃', 천상병의 '강물' 등 서정성 뛰어난 명시(名詩)들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 밀양강 따라 가는 일자봉 산책로 환상적 분위기에 매료

     
      밀양시 활성동 살내마을의 노거수. 어른 다섯 명이 안을 만큼 굵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밑을 통과하고 기도터를 지나 호젓한 산책로가 좀 더 이어진 후 갈림길이다. 일단 오른쪽 내리막 계단을 타고 내려가서 용두취입보 보고 다시 올라오면 우측에 곧바로 팔각정 매점이 있다. 팔각정을 지나면 곧바로 천경사 입구.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계단길을 따른다. 3분이면 강가에 닿는다.

    (월연정)
    강변을 따라나가면 경부선 철로 밑을 통과하고 강을 가로지르는 3중 보를 잇따라 지나 용두교를 건넌다. 다리 건너 밀양사회복지관 앞에서 우측으로 틀어 강둑길을 걷는다. 강둑이 왼쪽으로 꺾어질 즈음, 강 건너에서 봤던 송림으로 내려선다. 지난 2002년 제3회 전국 아름다운 숲 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소나무거리 숲'이다. 강가에는 지역 출신의 이재금(1941~1977)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 그의 작품인 '도래재'가 새겨져 있는데, 그의 밀양 사랑이 절절히 녹아 있다.

    소나무길을 통과하면 강 건너에 밀양읍성과 무봉사, 영남루가 보인다. 둔치를 따라가다가 영남루 맞은편에 앉아 강물에 비친 거대한 누각의 그림자를 본다. 밀양교를 건너면 오늘 코스의 종점이다.

    (금시당백굑제)
    ◆ 교통편

    -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정문마을 행 버스 30분 간격

     
      밀양 영남루 건너편 고수부지에 있는 소나무거리숲.
    부산역에서 열차를 타고 밀양역으로 간다. 무궁화호는 오전 5시10분 첫차를 시작으로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43분 소요, 운임은 3800원. 밀양역에서 밀양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정문마을행 새마을버스 또는 얼음골 표충사행 직행버스를 이용한다. 새마을버스는 오전 6시10분부터 약 30분 간격으로 있고 직행버스도 7시05분부터 약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린 뒤 밀양 방향으로 가다가 첫번째 사거리인 긴늪사거리에서 좌회전, 200m쯤 가다가 다시 좌회전 굴다리를 통과해 우측으로 2분쯤 가면 남기리 정문마을회관앞에 닿는다. 정려각은 50m쯤 떨어져 있다.


    # 일제가 건설한 터널과 보 아직도 사용중


     
      일제가 경부선 철로용으로 건설한 용평터널. 폐선된 지금은 사람과 자동차가 다닌다(왼쪽). 용두취입보 전경.
    이번 주 밀양 시가지 길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두 곳을 지난다. 첫 번째가 한때 경부선 철로로 사용됐던 용평터널(일명 백송터널)이고 또 하나는 용두산 팔각정 아래에 있는 '용두취입보'다. 둘 다 100년이 지난 유산들이다.

    월연정 인근에 위치한 용평터널은 1905년 경부선 철길이 개통될 당시에 일본인들의 설계 하에 건설된 철로용 터널이다. 35년 동안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열차의 길로 역할을 다했지만 1940년 선로 복선화가 이뤄지면서 인근에 새 터널이 뚫리자 도보용 터널로 바뀌었다. 길이는 약 300m이고 높이 4~5m, 너비 3.5~4m 규모인 용평터널은 현재는 사람과 자동차가 이용하고 있다. 특히 차량은 교행이 안되기 때문에 멀리서 보고 반대편에서 한 대가 진입하면 이쪽에서 대기했다가 지나가야 한다. 걸을 때도 차량을 피하기 위해 한쪽 벽에 바짝 붙어야 한다. 그런데 이 벽면 중 일부는 106년 전 건설 당시 때부터 유지돼 온 것으로 보이는 화강암이 그대로 남아 있고 천장에도 벽돌로 마감을 처리한 흔적이 남아 있어 고풍스러움을 풍긴다.

    터널의 구조도 특이하다. 전체가 하나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중간에는 자연절벽과 뻥 뚫린 하늘이 있어 굳이 따지자면 두 개로 나뉘어 있는 셈이다. 이곳을 지날 때면 짙은 녹음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어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그래서 일부 사진작가들에게는 출사지로 인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곽경택 감독은 월연정 들머리 방향의 터널 앞에서 인기 배우 정우성을 내세워 영화 똥개를 촬영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일제강점기의 흔적인 '용두취입보'는 비록 일본인의 구상과 설계로 건설된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원래의 목적대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인상 깊은 곳이다.


    현재 이 용두취입보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밀양지사에 따르면 이 관개시설은 1909년 일본인 마쓰시타 데이지로가 구상해서 만들어낸 자연유화식 인공 터널 수로다. 밀양강에 보를 만들고 용두산 아래로 터널을 뚫어 물길을 낸 다음 산줄기 건너편 멀리 있는 상남면 일대 예림리 등 4개 마을 592㏊의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에서 건설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도 이 수로는 이들 지역의 농사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보석 같은 수리시설 역할을 한다. 전체 수로의 길이는 6438m이고 산 아래를 관통하는 터널의 길이만 433m에 달한다.

    (금시당의 모습으로 금시당 이광진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낙향하여 있는 것 즉 현재 자신의 처신이 옳았다는 뜻이 금시당이다)
    농어촌공사 밀양지사 관계자는 "요즘에는 펌프를 통해서 낮은 지대의 물을 끌어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농업용수를 댈 수도 있지만 100여 년 전에는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면서 "그렇다 하더라도 표고차를 이용해 밀양강의 물을 산 밑으로 연결해 농업용수를 공급하겠다고 구상하고 그것을 실행한 것을 보면 지금 입장에서 봐도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용평터널이나 이 용두취입보는 모두 일본인들의 설계와 구상으로 건설돼서 일면 유용하게 사용됐거나 현재도 사용 중이지만 그 터널들을 뚫기 위해 동원됐을 한국인 인부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애잔한 마음도 지울 수 없다. 일제의 유산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되겠지만, 그 속에 배여 있는 조상들의 아픔까지 잊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 GPS·동영상 www.kookje.co.kr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교동의 오연정은 전면으로는 ㄱ자 형태의 돌출된 마루를 넣었고 뒷면에도 일자형의 마루를 넣어 어느쪽이 전면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아름다운 누각이다. 추천손영제가 지은 정자로 경남문화재자료 제215호이다.(사진은 뒷면의 모습)








     지형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떤 모습의 동물을 상상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을 연상할 것이다.
    실제로 살내마을에서도 뒷산을 범의 얼굴로 생각을 하여 용과 호랑이가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생각을 한다
    그래서 살내마을 우측능선 끝부분을 범의 머리로 마을에서는 버머리깡이라 부르며 그 윗부분을 범설이라 부른다고 마을분이 이야기를 하였다. 일명호두산으로 불리며 그 앞으로 흐르는 천이 호랑이가 물을 뿜는 형상이라 호분탄이라 부른다.

    긴늪유원지유래석

    긴늪유원지

    긴늪유유ㅓㄴ지 앞의 북천으로 마을에서는 밀양강이 아닌 북천으로 부른다. 산외방향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동천이라 부르며 두 물줄기가 합하는 곳에 월연정이 있다.





    월영정의 백송

    금시당의은행나무

    오연정 입구

    살내마을의 당산나무로 느티나무껄이라 부르며 400년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북천과 동천이 서로 만나는 월연으로 그 뒤로 운문지맥의 끝부분인 비학산 보담산 낙화산 중산능선이 펼쳐진다. 그 안의 골짜기가 엄광리로 영남알프스 둘레길 12코스이다.

    밀양손씨의 용호정

    용두산과 그아래 용두연의 모습





    금시당 산책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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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알프스둘레길 12코스)고정리 박연졀~남기리정려각. 초록  융단 깔린 밀양 옛길 영남알프스둘레길 12코스

    근교산&그너머 <726> 제12코스 : 밀양 고정리 박연정~남기리 정려각

    밀양 옛길에 초록 융단 깔렸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길을 연결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은 길' 취급당하는 옛길을 찾아내고 그 길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자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길도 살리고 그 길을 걷는 사람도 활력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은 곧 '죽은 길'에 지나지 않지만 사람이 그 길을 다시 이용하게 되면 길은 길로서의 생명력을 회복한다. 복잡하고 메마른 길에 지친 현대인들은 자연의 일부이면서 숲의 향기와 옛사람들의 발자취가 가득한 옛길을 걸어 봄으로써 심신의 휴식을 취하고 또 다른 생명의 기운을 얻게 된다.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첫발을 내디뎠던 개척단이 울산 경주 청도 지역을 두루 거쳐 어느새 경남 밀양 땅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되도록 걷기 좋고 한적한 옛길을 찾아내서 이 길들을 연결함으로써 도보꾼들에게 걷기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하고자 노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주 답사한 제12코스 역시 밀양 사람들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옛길을 따라가는 길이다. 이 길에는 왜군들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지역 부녀자들의 애틋함과 일제강점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던 항일독립투사들의 저항정신이 녹아 있다. 그리고 옛길을 따라가면서 간간이 초현대식 길의 대명사인 고속도로(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만나고 최신형 길의 위 아래를 통과하거나 나란히 걸으면서 옛길과 오늘의 길을 비교하며 걸을 수 있기도 하다.


    ◇ 매화 고정리 등 산골 주민 밀양장 가던 길 14㎞ 코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경남 밀양시 상동면 가곡리에서 산외면 엄광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의 호젓함을 만끽하고 있다. 신작로가 뚫리기 전 수많은 인마의 주통로였던 이 고갯길도 머잖아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제12코스는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모정마을의 박연정(博淵亭)에서 출발해 산외면 남기리 정문마을의 창녕 장씨 정려각(旌閭閣)까지 가는 총거리 14㎞ 구간이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4시간20분, 휴식 포함 5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줄곧 영남알프스 산줄기인 운문지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낙화산 보담산 비학산 등을 보면서 걷다가 기어코 이 산줄기를 넘게 된다.

    바위 절벽인 수어대(數漁臺) 아래 있는 박연정에서 큰길을 버리고 모정마을 쪽으로 길을 잡는다. 곧이어 4분 후 양무공 김태허의 가묘터를 지난다. 모정마을 방향으로 걷다 보면 정면 고답마을 뒤에 낙화산(626m)이 우뚝 솟았고 모정마을 뒤에는 일명 '뒷말리성', '작은 하늘 방우산' 등으로도 불리는 소천봉(632m)도 눈에 들어온다. 모정마을은 노진촌(盧津村)으로도 불리는데, 동창천을 일명 '노진강'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마을의 옛 이름에서 따왔을 정도로 한때는 일대에서 중심이 된 마을이기도 하다. 아니, 고정리 전체가 경부선 철도와 신작로가 뚫리기 이전까지 밀양 상동면의 면소재지이자 중심 마을이었다.

    모정마을 복지회관에서 우측으로 꺾어 100m쯤 가면 당산나무가 있다. 당산나무 앞 버스정류소를 우측에 두고 계속 직진, 들판길을 걷는다. 300m쯤 가면 들판 한가운데 사거리. 왼쪽 고답마을로 향한다. 작은 연못을 지나 마을 앞 아스팔트 도로에 닿을 무렵 우측 20m 지점에 승용차 한 대 크기의 바위가 있다. 고답마을 칠성바위 중 하나다. 마을에 산재해 있는 북두칠성의 모양을 닮은 칠성바위는 그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특히 부녀자가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게 된다고 한다.

    아스팔트 도로 작은 사거리에서 용황사 표지판을 보며 좌회전, 100m쯤 가면 오른쪽 밭 안에 약산 김원봉 백민 황상규 등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자취가 밴 옛 고명학교 터 있다. 아무 표식이 없으니 개척단이 부착해 놓은 노란색 안내리본을 보고 접근해야 한다.


    ◇ 옛 고명학교터 칠성바위 당산나무… 고정리 볼거리 가득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고명학교 터에서 사거리로 되돌아간 후 왼쪽 '오르풀' 방향으로 살짝 들어가면 나머지 칠성바위 들도 이곳저곳에 눈에 띈다. 주택 마당에도 있고 논바닥에도 있다.

    오르풀의 칠성바위를 본 후 다시 마을 앞 사거리로 복귀, 왼쪽으로 꺾어 아스팔트길을 따른다. 노란색 씀바귀꽃이 싱그럽다. 고답버스정류소 앞 갈림길에서 왼쪽 골목으로 오른다. 자두밭을 통과한 후 만나는 쌍무덤에서 우측으로 꺾어 들어가면 포구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이 나무들이 고답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다. 그늘이 짙고 넓어서 더운 날 걷는 도보여행자들에게는 썩 훌륭한 쉼터가 되겠다. 무덤으로 되돌아간 후 첫 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특이한 구조의 이층 한옥을 지나 아스팔트 도로에 닿는다. 왼쪽으로 꺾어 가면 달성 서씨 재실인 경선재(景先齋)가 있고 곧바로 모정초등학교 교적비를 지난다. 44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도시화에 따른 이농현상의 파도를 넘지 못해 1995년 폐교된 사실을 기록한 이 교적비에 동문들의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난다.

    ◇ 가지산서 시작된 운문지맥 끝자락 넘는 숲길 호젓

     
      보담산 낙화산 중산 석이바위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엄광리를 감싼다.
    50m쯤 가면 갈림길. 왼쪽 골안마을 쪽으로 간다. 신작로가 뚫리기 전까지 매화리 신곡리 고정리 도곡리 등 상동면 4개리 사람들이 밀양장을 오가던 옛길을 찾아가는 길이다. 15분 후 골안마을 표지석 앞 갈림길에서 우측 오르막으로 간다. 바람에 실려오는 아카시아꽃 향기가 참 달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눈앞에 펼쳐지고 곧바로 굴다리를 통과한 후 왼쪽 오르막을 잡는다. 옛길과 새길이 평행선을 그리며 함께 달린다. 7분 후 은행나무 앞 갈림길에서 콘크리트길을 버리고 우측 비포장 임도를 따른다. 길바닥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10분 후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좀 더 오르면 능선에 닿는다. 여기서 우측으로 꺾어 20m쯤 가면 움푹 파인 고개다. 일명 고답고개 또는 비암고개로 불리는 곳이다. 왼쪽 내리막을 탄다. 무덤 언저리에 은방울 은대난초 금대난초 등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6~7분쯤 내려가면 왼쪽 개울의 물맛이 시원하고 달콤하다. 곧이어 작은 계곡을 건너면 다시 눈 앞에 고속도로가 펼쳐진다. 고정1터널이라는 도로표지판도 눈에 띈다. 왼쪽에는 보담산 오른쪽에는 고속도로를 끼고 가다가 굴다리를 통과하면 가곡리 비암골의 가곡저수지다. 이곳 주변에는 한국전쟁 때까지 비암마을이 있었는데 전쟁 중에 없어지고 지금은 마을 흔적만 남아 있다. 저수지는 주변에서 민물낚시터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동네 이름까지 숲촌이라 짓게 만든 밀양 엄광리 숲촌마을 회화나무숲.
    저수지 왼쪽 길을 따라가다가 둑 못미쳐 중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살짝 언덕을 넘는데 오른쪽 산 정상부에 가파른 절벽이 보인다. 그 바위가 일명 '낙화암(落花岩)'이다. 임진왜란 당시 밀양 박씨의 부인 여흥 민씨가 왜군들로부터 화를 당하지 않으려고 투신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가건물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10분 후 공동묘지를 통과하고 곧이어 운문지맥 마루금에 닿는다. 일명 공동산고개다. 왼쪽으로 능선만 타고 가면 보두산 낙화산 중산을 거쳐 운문산 가지산까지 갈 수 있다. 일단 살짝 올라섰다가 곧바로 우측 비학산 쪽으로 능선을 탄다. 150m쯤 가면 다시 한번 고개에 닿는다. 부산의 원로 산꾼이자 국제신문 '가고싶은 근교산' 2대 산행대장인 최남준 선생의 트레이드 마크인 '준·희' 푯말이 보인다.

    능선길을 버리고 왼쪽 내리막을 택한다. 산외면 엄광리로 내려서는 이 길은 그윽한 숲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호젓한 길이다. 10분 후 눈앞이 탁 트이며 엄광리 일대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보담산 낙화산 중산 석이바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과 동쪽 서쪽이 모두 산줄기에 싸였고 남쪽만 뚫려 있는 지세의 엄광리는 박연구 삼호산업 대표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형제의 고향이기도 하다.


    ◇ 회화나무 빼곡한 엄광리 숲촌숲 훌륭한 쉼터 역할


    엄광리 숲촌 마을은 마을 앞 숲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이름이다. 골목에 마실 나온 동네 할머니 세 분이 개척단을 반갑게 맞아준다. 시원한 보리차 한 잔 마시고 가라며 집 냉장고의 물을 꺼내 와서 건네주는 할머니의 인정스러움이 고맙기만 하다. 골목길을 통과해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고속도로 교각 못 미친 곳에 멋진 소나무 7그루가 있는데, 그 앞에서 왼쪽으로 엄남천 잠수교를 건너 숲촌숲으로 간다. 100년을 넘게 산 회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는 체육공원 겸 쉼터다. 점점 더워지는 계절에 도보꾼들이 쉬었다가 가기에 참 좋은 장소다.

    숲 쉼터에서 조금 전 건넌 잠수교 왼쪽으로 하천을 따른다. 교각 아래를 통과하고 10분 후 만나는 작은 다리 앞 사거리에서도 직진한다. 엄남천을 우측에 끼고 걷는 둑길이다. 왼쪽의 보리밭 너머 저편에 꾀꼬리봉이 보인다. 엄남교를 건너 계속 직진해서 내려가면 남기리 남가동 마을회관을 지나 옛 국도에 닿는다. T자 갈림길인 이곳에서 우측으로 틀어 100여m만 가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열부(烈夫) 창녕 장씨 정려각 앞에 닿는다. 12코스의 종착점이다. 운문지맥이 끝나는 곳이기도 하다.


    # 떠나기 전에

    - 임진왜란때 정절 지킨 두 부인 애틋한 뜻 기려

     
      남기리 창녕 장씨 정려각(왼쪽). 가곡리 여흥 민씨 정려각.
    둘레길 제12코스 구간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정절을 지킨 부인 2명의 흔적을 만난다. 그 중 하나는 코스 종착점인 밀양시 산외면 남기리 정문마을의 창녕 장씨 정려각(旌閭閣)이다. 밀성 손씨인 손기후의 처인 장씨는 왜란 당시 친정인 창원에 갔다가 그곳에서 왜군에게 화를 당할 위기에 처하자 창원 월영대에서 뛰어내려 부도를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문(旌門)'이라는 동네 이름도 바로 이 정려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또 다른 열부인 여흥 민씨 정려각은 제12코스 구간에서 살짝 비켜 있다. 밀양IC인근 긴늪사거리에서 25번 국도를 타고 차량으로 출발지인 박연정 방향으로 가다보면 상동역 못 미친 곳에 가곡리가 있는데 국도 변에 그를 기리는 정려각이 세워져 있다. 밀양 박씨인 박희량의 부인이자 삼매당 민구서의 딸인 민 씨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이 마을을 침범해 오자 마을 뒷산 동굴로 몸을 피했지만 결국 벼랑을 타고 추격해 온 왜군들로부터 몸을 지키기 어렵게 되자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려 정절을 지켰다. 그녀가 뛰어내린 정려각 뒷산을 낙화봉 또는 낙화듬이라하고 그 바위를 낙화암이라고 한다. 걷기를 시작하기 전이나 후에 여흥 민씨 정려각도 한번쯤 찾아가 볼만하다.


    # 교통편

    - 부산역 오전 7시45분 출발 무궁화호 타면 딱 좋아

    부산역에서 밀양 상동역까지 가는 무궁화호 열차는 오전 7시45분에 출발한다. 요금 4100원. 오전 8시40분 상동역에 내리면 신곡리행 새마을버스가 오전 9시05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이 버스를 이용해 고정리 박연정 앞까지 간다. 이 버스는 밀양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50분 출발한다. 상동역 인근에서 택시를 이용해도 된다. 요금은 5000원 안팎이다. 둘레길 순례를 마친 후에는 산외면 남기리 정문마을에서 밀양역 또는 밀양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20~30분 간격으로 운행되기 때문에 편리하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탔다가 곧바로 긴늪사거리에서 청도 방향으로 우회전, 25번 국도를 탄다. 상동역을 지난 후 상동교 앞에서 다리를 건너지 말고 직진, 고정 매화 방향으로 10분만 가면 박연정 앞에 도착한다. 답사를 마친 후 차량 회수를 하려면 종점인 정문마을에서 콜택시(055-356-6000, 355-5000)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요금 1만2000원 안팎.


    # 비운의 항일 영웅 김원봉 장군을 아십니까

    - 의열단 결성 단장 맡았던 항일투사
    - 남한 단독정부 반대해 월북 후 숙청

     
      김원봉 장군이 다닌 밀양 고명학교의 터. 지금은 과수원 밭으로 변해 흔적도 없다.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낙화산이다.
    "김원봉 장군이 돌아왔다. 만세 만세. 김원봉 장군 만세. 대한 독립 만세."

    1946년의 어느 날. 당시 밀양 읍내 시가지가 밀양은 물론이고 주변 경남 지역에서 운집한 20만여 명의 함성과 만세 소리로 들끓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밀양이 낳은 불세출의 항일독립운동가인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의 수십 년만의 귀향 환영식 참석을 위해서였다. 당시 밀양국민학교 행사장 주변에는 그가 밟을 수 있도록 광목 카펫이 깔릴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광복군 부사령관, 조선의용대 대장 등을 역임한 그였으니 '장군'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았다. 망명 항일독립운동가 가운데 백범 김구와 유일하게 쌍벽을 이룬 대표적인 독립투사였던 그였다. 그러나 요즘 중고생들을 붙잡고 물어보라. 백범 김구는 알아도 약산 김원봉을 아는 학생은 거의 없다.

    약산 김원봉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리고 왜 잊혀야만 했을까.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 경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항일무장테러조직인 '의열단(義烈團)'을 결성하고 단장을 맡았던 민족의 영웅이었다. 의열단은 23차례가 넘는 일본 요인 암살 및 주요 기관 폭파 등의 의거를 감행한 극강의 항일투쟁단체로서 나라 잃을 설움에 빠져있던 국민의 타들어가는 가슴을 적셔주는 단비와 같은 조직이었다. 그랬으니 김원봉에 대한 당시 국민들의 성원과 기대감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고명학교터로 답사당시 나를 가이드 해준 할머니)
    해방 후 3개월 만에 그는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군무부장 자격으로 귀국했다. 그의 부인이자 부산 동래여고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박차정 여사가 1944년 이국땅에서 숨진 지 갓 1년여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는 부인 박 여사의 유해를 안고 돌아와 밀양에 묻었다.

    그러나 그는 해방 후 돌아온 고국에서 오히려 더 큰 시련과 수모를 겪게 된다. 미국의 비호 아래 이승만이 주도한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않는 영세 중립국을 표방하는 남북합작 자주독립국 건설을 주장하면서 우익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괴롭힘을 당했다. 그가 존경했던 몽양 여운형이 1947년 암살당하는가 하면 그 자신도 친일경찰 출신 경찰에게 붙잡혀 뺨을 맞는 등 수모를 당하고 암살의 위협까지 높아지자 결국 김일성의 초청으로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협상회의에 김구 김규식 등과 함께 참석했다가 혼자만 북에 남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진 월북한 사람으로 취급됐고 북한 정권 초기 검열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등을 거쳤지만 1958년께 연안파 숙청 당시 함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의 영웅이었지만 남북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했던 비극적 인물이 바로 약산 김원봉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일컬어 "일제강점기 조선이 낳은 '최고의 별'이자 '가장 비극적인 영웅'"이라고 묘사한다.

    둘레길을 걸으며 방문한 옛 고명학교터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길은 없다. 1907년 개교한 이 학교에 다닐 무렵 의협심 강하고 용맹했던 김원봉은 일장기를 변소에 처박아 넣는 등의 기개를 떨쳤다고 전해지지만 이제는 학교 터마저 희미하다. 그냥 평범한 과수원 밭의 일부로 쓸쓸히 방치돼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일제 당국은 이 학교를 문제학교로 낙인 찍었고 결국 개교 14년 만인 1919년 폐교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같은 해 이미 중국 망명길에 올랐던 김원봉은 의열단을 결성했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모정마을을 통과하는 둘레길 취재팀 

    고답마을의 당산나무로 마을에서는 이곳을 당등이라 부른다.

    오르풀마을의 칠성바위로 마을 부녀자들이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는 바위

    고정분교터이며 맞은편 삼거리 길안마을 큰 표지석 뒤가 마전평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밀양에서 말을 타고 고답고개를 넘어와 이곳에서 말을 쉬게하였다하여 마전평이라 부르며 나루터에서 청도읍방향이나 산동방향으로 이동을 하였다 한다.

    골안마을 작은 표지석 앞으로 둘레길이 열린다.

    골안마을


    은방울꽃

    보담산아래의 볼수바위로 가곡마을에서부르는 지명이며 평능에서는 상여를 닮았다하려 생이바위라 부른다. 

    당고개(비암고개)로 지금도 고개마루에는 그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내가곡마을의 모습. 그 뒤로 밀양의 옥교산이 펼쳐진다.

    낙화듬으로 임진왜란때 정절을 지키기 위해 민씨부인이 왼쪽봉우리 바로 아래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하여 낙화암이라 부른다.

    공동산고개로 엄광리 숲촌마을로 이어진다.

    고개를 넘어서면 왼편으로 운문지맥의 마루금인 보두산 낙화산 중산 석이바위 능선이 부채살 처럼 펼쳐진다.

    호젖한 옛길을 걷고 있는 둘레길 취재팀

    운문지맥의 끝부분인 비학산 아래 장씨 정려각

    가곡리의 민씨 정려각

    둘레길에서 볼 수 있는 돌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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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여행/청도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 11코스. 감꽃대궐을  이루는 동창 천변 영남알프스 둘레길 11코스


    근교산&그너머 <725> 제11코스 : 청도 장연리 장수골~밀양 고정리 박연정

    '은자(隱者)의 강' 동창천 따라, 감꽃대궐 속으로…



     
    고헌산에서 발원해 경주 산내와 청도군 운문면 금천면 매전면을 남북으로 관통해 밀양 상동면 유천에서 청도천과 합쳐져 밀양강을 이루는 동창천.

    동창천은 주변 산세와 어우러진 풍광이 더없이 빼어나고 기묘한 절벽과 소가 즐비해 옛날부터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벼슬을 사양하거나 버리고, 또는 소임을 마치고 향리에 은거했던 이 선비들은 하천 자락 풍광 좋은 곳에 정자나 서당을 짓고 소탈하게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했다. 그들은 때로는 물길을 따라 걸으며 사색을 즐기고 시를 짓거나 하천 동쪽의 큰 산인 운문산을 위시한 영남알프스 산군을 두루 유람하기도 했고 나라가 위급한 순간에는 떨쳐 일어나 침략자와 맞섰다.

    수많은 젊은이가 기꺼이 이슬처럼 스러져간 격전의 현장이기도 한 동창천은 '은자(隱者)의 강'이면서 '구국의 강'이다. 이 하천은 영남알프스 산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최초 발원지도 영남알프스이고 중간 중간 합류하는 지류 대부분도 영남알프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오늘날 영남알프스라고 불리는 거대한 산군의 서쪽과 북쪽 경계선 역할을 한다. 산은 강을 넘지 못하지만, 산이 없으면 강도 없다.





    ■ 장연사지 보물 보고 박연정까지 17㎞… 5시간30분 걸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경북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 감나무밭길을 걷고 있다. 5월 중순부터 주변은 온통 연노랑 감꽃으로 뒤덮이는 '감꽃대궐'로 변한다. 오른쪽 봉우리는 부처산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1코스는 동창천 물줄기가 절정에 달하는 구간을 따라가며 경북 청도의 특산물인 '청도 반시(盤枾)'가 열리는 감나무 밭 사이로 여유롭게 걷는 길이다. 드디어 경상북도의 길이 경상남도의 길로 이어지는 구간이기도 하다.

    출발지는 경북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 장수골마을 경로회관 앞이다. 동창천과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총 17㎞를 걷는다. 종점은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이 빛나는 정자인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박연정(朴淵亭) 앞이다. 걷는 시간은 4시간, 휴식과 식사 포함이면 5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장수골 경로회관 인근 장연사지3층석탑(동서 쌍탑·보물 제677호)과 당간지주 등을 둘러보면 좋다.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경로회관에서 마을 안쪽으로 길을 잡는다. 눈앞에 보이는 산줄기는 부처산~육화산 능선이다. 2분 후 다리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는다. 주변은 온통 감나무밭. 연둣빛 감잎이 싱그럽다. 노란 애기똥풀꽃이 지천으로 널렸다. 계당마을 오른쪽 뒤 우뚝한 봉우리는 고깔모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고깔봉이라 불린다. 계당마을 안 '계당길 28번지' 앞에서 우측으로 꺾어 내리막길을 탄다. 3분 후 아스팔트 도로를 만나면 왼쪽으로 꺾는다. 5분 후 장연사지 당간지주 1개와 함께 서 있는 길명마을 은행나무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틀어 마을로 들어서면 곧바로 장연리 경로당이다. 이 경로당 앞 '길명길 10번지'를 감아 우측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야 한다. 왼쪽 도랑 건너 시골집 돌담이 평화롭다.

    감나무밭 사잇길로 10분쯤 오르면 키 큰 소나무 앞 갈림길. 왼쪽으로 200m쯤 가면 작은 가건물 앞 또 한 번의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10분 후 길 양쪽에 높이 1m 안팎, 두께 7㎝가량의 쇠파이프가 있는 곳에서 왼쪽 10시 방향 숲길로 들어서야 한다. 안내리본을 참고하자.


    ■ 감나무 지천인 마을길에 순박한 흙돌담 어우러져

     
      이서국 군사와 말들이 전멸했다는 마전암과 그 아래 말구르소.
    내동고개로 오르는 옛길이 나타난다. 내리 사람들이 장연리를 거쳐 동곡장까지 오갈 때 걷던 길이다. 삼림욕 하듯 편안하게 숲길을 오르면 내동고개. 오른쪽은 고깔봉, 왼쪽은 육화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직진해서 내려선다. 솔잎이 융단처럼 깔린 환상적인 숲길이다. 김해 배씨 묘를 지나면 다시 임도를 만나고 이내 주황색 지붕이 인상적인 독립가옥인 윤원훈씨 집에 닿는다. 인정스러운 윤 씨 집 마당에서 왼쪽을 올려다보면 육화산 정상부가 우뚝하다.

    10분가량 더 내려서면 청도군 매전면 내2리 안내동마을 삼거리. 감나무에 둘러싸인 한적한 마을이다. 5월 중순부터는 감꽃이 마을을 휘감을 것이다. 일단 왼쪽에 보이는 잘생긴 느티나무를 향한다. 수령 350여 년 된 보호수인 이 느티나무 쉼터는 점심 먹을 자리로 안성맞춤이다. 느티나무 뒤쪽에 관리는 잘 안된 듯한 석천서당이 있다.


    이 마을에서 계속 임도를 타고 골짜기 안으로 가면 오치고개를 넘어 밀양 산내면으로 가게 되지만 개척단은 마을 입구를 거쳐 동창천 쪽으로 간다. 잘 지어진 재실을 3개나 지나 동창천 중남교 다리 앞에서 왼쪽 둑길로 들어선다. 동창천 건너 오른쪽 멀리 오례산성이 눈에 들어온다. 둑길 왼쪽 아래 들판에는 보리가 파랗게 자라고 있다. 6분 뒤 둑길이 끝나는 곳에서 당황하지 말고 오른쪽 둑 아래 강변으로 내려선다. 때 묻지 않은 강변길. 오른쪽은 큰 냇물이고 발 딛는 곳 왼쪽으로는 폭 1m 안팎의 측구로 물이 흐른다. 버드나무와 인사하며 수풀을 밟고 가는 '야생의 길'이다. 조금만 정비한다면 참으로 정감 어린 길이 되겠다.

    ■ 동창천 갓길은 수풀 스치는 소리 정겨운 야생의 길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감나무와 돌담 정겨운 덕정마을 지나고 있다.
    15분쯤 가면 첫 번째 콘크리트 배수로를 만난다. 왼쪽 작은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물맛이 달콤하다. 여름철 도보 여행꾼들의 목을 축여줄 샘터로 삼아도 되겠다. 강변길을 7분쯤 더 진행하면 갈림길. 강변길을 버리고 콘크리트 측구 왼쪽 언덕으로 오르는 길을 따른다. 언덕을 넘으면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그림 같은 집을 만난다. 집도 예쁘지만 뜰을 뒤덮은 갖가지 꽃들이 더욱 어여쁘다. 다듬고 가꾼 집 주인의 정성을 알만하다.

    곧이어 구촌리 동산마을회관 앞 사거리에서 직진한다. 10분 후 덕정마을을 앞두고 Y자 갈림길에서 왼쪽 완만한 오르막길을 택한다. 살짝 휘어지며 언덕을 넘는 길에 멋들어진 소나무가 도열해 있다. 언덕 너머 '덕정길 18-2'번지 앞 갈림길에서 직진, 흙길로 들어선다. 150m쯤 가서 큰 나무 앞 갈림길에서 왼쪽 흙길로 200m쯤 가면 덕정고개다. 이곳이 바로 청도와 밀양의 경계선이자 경북과 경남으로 나뉘는 곳이다. 오른쪽 아래로 동창천이 유유히 흐르고 하천 건너에는 오례산성의 위용이 압도적이다.

     
      동창천 변 길은 다듬어지지 않아 더욱 정겹다. 정면의 산은 오례산성.
    덕정고개 너머의 쌍무덤 앞을 지나 3분 후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꺾어 내려선 뒤 다시 갈림길에서 왼쪽 밀양시 상동면 신곡리 오곡마을 방향으로 향한다. 정자나무 앞에서 우회전, 신곡천 작은 다리를 건너 100m쯤 가면 크지 않은 은행나무 앞 Y자 갈림길. 이곳에서 오른쪽 감나무밭 사잇길로 들어선다. 노란 애기똥풀꽃이 흐드러진다. 10분 후 왼쪽에 집 한 채, 오른쪽에 비닐하우스가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 내리막길을 따른다. '오대(梧臺)'를 둘러본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예정. 5분쯤 내려서면 신곡양수장이 나오고 그 우측 개울을 건너면 소나무 울창한 '오대'다. 조선 중기 학자이자 최초의 운문산 유람기인 '유운문산록(遊雲門山錄)'을 남긴 수헌(壽軒) 이중경(李重慶·1599~1678)이 18년간 오대정사(梧臺精舍)를 짓고 살면서 오대구곡가, 수헌집 등의 시와 저작을 남긴 유서깊은 곳이다. 지금도 여러 개의 정자 터가 남아 있고 바위에는 그가 직접 새겼다는 '한벽당(閑僻堂)…'이라는 글씨와 후손들이 새긴 '수헌선생 전의 의공 장구지소(壽軒先生 全義 李公 杖屨之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중경은 운문산 유람 당시 이곳에서 여생을 마치기로 다짐을 했지만 만년에는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 수헌 선생 체취 밴 오대·마전암 등 역사적 명소 가득

     
      제11코스 날머리인 박연정. 임진왜란 이후 양무공 김태허가 지었다.
    수헌 선생의 발자취를 뒤로하고 다시 비닐하우스 앞 갈림길로 돌아온 후 오른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예쁘장한 집을 잇따라 지나면 길은 다시 흙길로 변하고 옛길의 흔적을 더듬으며 나아가면 오른쪽 아래가 깎아지른 절벽인 마전암(馬轉岩)이다. 서기 1세기 전후 청도의 고대국가 이서국 군사와 말들이 침략군인 신라군과 맞서 백병전을 벌이다 이곳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 전멸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전암 아래 동창천의 물빛 짙푸른 '소(沼)'는 '말구르소'라고 불린다. 말구르소 물 밑에는 몰락한 부자 전설이 전해오는 장자바위가 있다.

    마전암을 지나 소나무 울창한 길을 이어가면 곧바로 '엘림'이라는 간판을 단 기독교회 수련관이 나오고 곧이어 아스팔트 포장도로와 합쳐진다. 6분 후 매화마을 버스정류소 왼쪽에 보면 밀양박씨 재실인 경무재(景武齋)와 수령 450년이 넘는 보호수인 매화리 은행나무가 있다. 버스정류소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15분쯤 더 가면 종착점인 상동면 고정리의 아름다운 정자인 박연정(博淵亭·경남도 지정문화재 제235호)에 닿는다. '박연'은 임진왜란 때 밀양부사와 울산군수를 역임하며 전공을 세우고 전후 정일품인 호위대장 이른 무신인 양무공 김태허의 호(號)이다. 양무공은 만년에 들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살았다.


    ◆ 떠나기 전에


    - '오대어부구곡가' '운문구곡가' 등 옛 시가의 산실

    제11코스 출발 전에 들러보는 장연사지 3층석탑은 보물677호로 지정된 동서 쌍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탑은 하천 변에 무너진 채 버려져 있던 것을 1980년에 복원했는데 최근 다시 보수 작업을 위해 해체했으며 현재도 공사 중이다. 경주 감은사지 탑이나 원원사지 탑과 형식이 유사하다. 동탑에서는 1984년 해체 보수 공사 때 몸돌 1단 내부에서 특이한 목재 사리함과 그 안에 장치했던 푸른색 사리병이 발견돼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코스 중간에 들리게 되는 오대는 수헌 이중경 선생이 '오대어부구곡가(梧臺漁夫九曲歌)'라는 시를 남긴 곳이다. 이는 중국의 주자가 무이산에 은거하며 지은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본따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경치 좋은 곳에서 짓곤 하던 '구곡가'의 하나다. 퇴계 이황의 도산구곡가, 율곡 이이의 고산구곡가, 한강 정구의 무흘구곡가, 우암 송시열의 화양구곡가 등과 궤를 같이한다. 또 하나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걸으며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조선 성리학자들의 '구곡가'류의 효시 격인 작품이 바로 제10코스의 시발점인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의 만화정에서 소요당 박하담 선생이 읊은 '운문구곡가(雲門九曲歌)'라는 점이다.

    한편 수헌 이중경은 44세의 나이에 운문산과 동창천 일대를 유람하며 쓴 '유운문산록'을 통해 밀양 상동 유천에서 시작된 발길이 박연정에 이르는 순간 "비로소 운문동에 들어섰다"고 읊었다. 그는 박연정을 운문산 자락의 들머리로 인식했던 것이다.


    ◆ 교통편

    - 청도역까지 간 후 유천 경유 동곡행 버스로 갈아타야

    무궁화호 열차 편으로 청도역까지 간 뒤 청도버스터미널에서 유천 경유 동곡행 버스를 타야 한다. 부산역 기준 오전 5시10분부터 40~5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 소요, 4800원. 청도에서 유천을 경유해 동곡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온막리에서 내린다. 오전 7시40분, 9시20분, 10시40분 등에 있다. 30분 소요. 코스 종점인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버스정류소에서는 오후 4시10분, 5시50분, 8시10분 등에 밀양행 버스가 있다. 밀양에서 부산행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향으로 가다가 첫 번째 만나는 사거리(긴늪사거리)에서 청도 방향으로 우회전, 25번 국도를 탄다. 상동역 지나서 상동교를 건너자마자 58번 국도를 따라 유천교를 건너 동곡 방향으로 가다가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 매전초등학교 못미친 곳에서 우측 장연사, 장연리 방향으로 꺾는다. 동창천을 건너 청도학생야영장 입구를 지나면 장수골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경로회관 앞에 주차장이 있다.

    길명마을의 예쁜 흙담벼락

    # 부산서 귀농한 윤원훈씨 가족

    - "적적한 이곳에 둘레길 열린다니 반갑죠"

     
    "복잡하고 바쁜 도시생활을 접고 육화산 자락에 묻혀 사니 참으로 여유롭고 행복합니다. 다만 가끔 느껴지는 적적함은 부인할 수 없는데, 영남알프스 둘레길이 집 앞으로 열린다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어요."

    제11코스를 걷다가 내동고개를 넘자마자 만난 예쁜 주황색 지붕의 외딴 집. 이 집 주인인 윤원훈(61) 씨와 박석순(56) 씨 부부는 취재팀으로부터 둘레길 개척 중이라는 말을 듣고 반색을 한다. 한사코 "생강꽃과 산수유꽃을 섞어 만든 신토불이 우리 차 한 잔씩 마시고 가라"며 마당 한켠의 파라솔 아래 탁자로 취재팀을 이끈 윤 씨 부부가 이곳에 새 보금자리를 잡은 것은 지난 2008년. 부산 초읍동에서 개인사업을 하던 윤 씨 부부는 "평소 산행을 즐기고 틈만 나면 자연 속으로 길을 떠나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귀농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들이 느끼는 자연 속의 삶은 어떨까? 부인 박 씨는 "여러가지 채소를 텃밭에 가꿔 먹고 숲에서는 수리취 참취 곰취 등 취나물 종류를 비롯한 제철 나물을 따서 먹는다. 새벽마다 새소리 물소리에 잠이 깨고 다리 다친 수리부엉이도 치료해주며 사람이 다가가도 경계심 없이 반겨주는 산토끼와 친구 하며 재미나게 산다"고 말한다. 만년의 삶을 이곳에서 보내기 위해 집도 예쁘게 지었지만 그래도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단다.

    윤 씨는 "육화산 등산객들이 가끔 집 앞을 지나가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가끔 부산의 친구나 친지들을 초청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사람 냄새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이제 둘레길이 열리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 좋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귀농을 할 수는 없는 일. 이들이 귀농에 성공,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진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윤 씨는 "아내가 선뜻 동의해 주지 않았다면, 여러가지 불편함도 감내하고 이해하며 여유로움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넓은 가슴이 없었다면 아마도 실패했을지도 모르겠다"며 아내 박 씨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금낭화 곱게 핀 집 앞 화단까지 따라나와 손님들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흔들며 배웅해 주는 윤 씨 가족이 더욱 행복하기를 개척단원 모두가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GPS·동영상 www.kookje.co.kr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운막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장연리로 찾아가는 길목에 있는 노거수로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원래 똑 같은 크기의 느티나무가 두그루였는데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가면서 배를 만든다고 베어가 지금은 한그루가 남았다 한다.

    장수골의 재실 화장실로 세월의 무게를 짐작 할 수 있다.

    장연사지의 당간지주로 재실의 앞 마당에도 그리고 길명마을의 입구에도 장연사지에서 나온 유물을 찾을 수 있었다.


    장연리 길명마을에서 내동고개로 올라가는 취재팀 그 뒤로 감나무가 지천이다,

    안내동마을의 350년된 느티나무로 보호수이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기에는 그만이다.

    안내동 마을 전경 그뒤로 취재팀이 내려온 내동고개가 보인다.

    내동의 안내동마을에 있는 석천서당

    동창천에서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동산마을의 동화같은 집들과 오례산성



    청도군의 마지막 마을인 덕정마을로 덕정고개만 넘어면 경남 밀양 땅이다.

    밀양땅에 들어선 취재팀. 상동면 신곡리이다.

    밀양박씨 재실인 경무재(景武齋)와 수령 450년이 넘는 보호수인 매화리 은행나무


    동창천의 물이 맑아 고기를 헤아린다는 수어대로 그  속에 경치가 수려하여 까마득하게 허공에 의지한다는 수지 절벽 빙허대.
    바위의 모양이 아이와 같이 생겼다하여 이방위 또는 아방위로도 불린다.


    빙허대에서 바라본 동창천과 영남알프스둘레길

    빙허대 위의 만년송

    박연정의 모습으로 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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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교산&그너머 <723> 제10코스 : 청도 신지리 만화정~장연리

    동창천 본류 따르는 솔숲길에 옛 선비 대쪽 기품 깃들었네

    (선암사원 뒷 운치있는 소나무 길, 그 아래 소요대라 부르는 용두암과 용두소 맞은편의 똥뫼(주산)가 있다.)


     
    경북 청도는 옛날부터 학문의 도가 높고 충성심이 강한 선비들이 많이 배출된 지역이다. 특히 이번 주 답사한 영남알프스둘레길 제10코스에는 이 선비들의 향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 많다. 전체 구간을 약 350㎞로 잡고 있는 둘레길 답사코스 가운데 반환점을 돌게 되는 구간이기도 한 이번 10코스에서는 또한 이 선비들이 걸었던 옛길을 따라 솔향기에 흠뻑 빠져볼 수도 있다. 그만큼 소나무숲이 울창해서 상쾌한 호흡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운치 그윽한 정자와 한옥들도 방문, 선현들의 멋과 풍류를 흠뻑 느낄 수도 있다. 야트막한 산을 넘을 때는 풍치 만점의 전망대도 여러 차례 들르기 때문에 지겨울 틈이 없다. 햇볕 따뜻한 봄날, 알록달록 피어난 야생화가 반겨주는 길을 걷다보면 진정으로 '살아 있음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세심대에 새겨진 글씨로 이와 세심대,산고수장이란 글씨도 볼 수 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경북 청도군 매전면 당호리 입구에서 애암고개로 가는 산길을 걷고 있다. 진달래 허벅진 능선길에 수백년은 된 것 같은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제10코스 출발점은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동창천 변의 운치 만점의 정자인 만화정(萬和亭) 앞이다. 이후 금천교를 건너 어성마을로 진입한 후 어성산 능선을 타고 오르다가 '봉황애(鳳凰崖)' 위쪽 능선으로 내려선 후 동창천을 따른다. 삼족대(三足臺)를 지난 후 매전교를 건너고, 당호리 입구에서 우측 산길을 타고 354봉(일명 호화동산) 능선으로 진입, 애암고개를 거쳐 장연리마을회관 앞에 도착, 코스를 마무리한다. 총 길이 14.5㎞,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4시간 걸린다. 휴식 시간까지 포함하면 5시간가량 소요된다는 점도 참고하자.

    만화정은 제9코스(영남알프스9코스참조) 답사기에서도 소개한 바 있듯이 조선 중종 때의 대학자이자 교육자인 소요당 박하담(1479~1560) 선생과 그 후손들의 향학열과 지역 인재 양성 의지가 오롯이 배어 있는 곳. '청도의 한옥마을'로 통하는 신지리에는 만화정 외에도 둘러볼 만한 한옥들이 많다. 운강고택 운남고택 섬암고택 선암서원 등이 만화정에서 불과 10분 안팎의 거리에 있다.

    ■어성산성 삼족대 거쳐가는 14.5㎞ 코스

    (소요대라 불리며 용두소와 용두암의 전경 뒤로 어성산이 보인다)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답사팀은 이들 고택을 찬찬히 둘러보고 만화정 뒤 언덕 너머 동창천 변의 바위에 한자를 새겨 놓은 '세심대(洗心臺)'까지 찾아본 후에 출발했다. 세심대는 만화정 인근 금천초등학교 정문 입구 삼거리에서 임당리 방향으로 200여m 가다가 왼쪽 논 옆 수풀을 해치고 하천쪽으로 가야 만날 수 있다. 옛 선비들이 마음을 씻은 곳이라고 하지만 현재는 인근 주민들 조차 그 존재를 거의 모를 정도로 버려진 채로 남아있을 뿐이다. 세월의 무심함이다.

    만화정에서 금천교를 건너 왼쪽 10시 방향을 보면 임진왜란 당시 의병과 왜적의 격전장이었던 어성산성이 있는 어성산과 봉황애가 보인다. 다리 건너 150m쯤 가서 만나는 도로표지판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대추나무밭 사잇길로 진입, 5분만 가면 어성교다. 이 다리를 건너면 어성마을. 원래는 왜적과 맞서 싸운 곳이라는 뜻으로 '의로운 성'을 의미하는 의성(義城)마을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어성마을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전해진다. 당산나무 오른쪽에 그릇 굽던 황토 폐가마가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어 찬찬히 살펴볼 만하다.

    당산나무 뒷길을 따라 왼쪽으로 꺾어 마을을 통과하면 능선으로 오르게 된다. 조금 가파르지만 널찍한 임도 수준의 길이다. 서서히 소나무 군락이 나타나고 주변에는 진달래가 지천이다. 마을 주민들은 '꽃이 많이 피는 곳'이라고 해서 이 능선 주변을 '꽃반티'라고 부른다. 길은 어느새 포근한 흙길로 바뀌었다. 20분 정도 천천히 오르면 쇠울타리가 설치된, 예쁘장한 무덤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울타리를 휘감아 돌면서 왼쪽 능선을 타고 내려서야 한다. 하지만 무덤에서 직진, 100m쯤 가면 돌로 쌓았던 어성산성 흔적이 있으니 둘러보고 와도 된다.

     
      어성산 오르는 편안한 길에 봄기운이 물씬하다.
    본격적으로 내리막 능선을 타면 솔숲 우거진 산길. 왼쪽 아래에는 천애절벽인 봉황애가 있다. 15분쯤 가면 왼쪽에 전망대. 발아래 동창천과 그 건너 한옥마을인 신지리가 보이고 그 뒤로는 영남알프스 주봉인 가지산을 비롯해 쌍두봉 범봉 억산 사자봉 구만산 흰덤봉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천혜의 조망처다. 10분만 더 내려서면 동창천 당호보 옆으로 떨어진다. 주변에 키 높이까지 자란 갈대밭이 무성하다. 그 사이로 난 널찍하고 평편한 길을 따른다. 10분 후 자그마한 오거리. 직진 방향 두 갈래 길 중에 오른쪽 포장로를 따른다. 길 주변에는 광활한 대추밭이다. 가을에는 탐스럽고 붉은 대추가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10분 후 수령 250년 된 보호수인 당호리 왕버드나무를 만난다. 정자 형태의 쉼터가 있는 왼쪽 길 대신 직진하는 길을 따라 계속 대추나무 사잇길로 15분 정도 더 가면 당호경로당. 여기서 150m쯤 가다가 콘크리트길을 버리고 오른쪽 희미한 길을 따라 들어가서 산줄기 쪽으로 붙는다. 길이 없을 것 같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훌륭한 길이 나타난다. 개척단의 안내리본을 참고하자. 무덤을 지나고 살짝 오르면 산허리를 타고 삼족대로 가는 호젓한 숲길이 이어진다.

    ■솔 향 진동하는 포근한 산길 걷기도 좋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운강고택으로 가는 골목.
    10분 후 능선 갈림길. 갓등산 등산로와 연결된 길이다. 왼쪽으로 살짝 내려서면 곧바로 조선 중종 때 학자인 삼족당 김대유 선생이 낙향 후 후진양성을 위해 지었다는 삼족대다. 유유히 흐르는 동창천 물길을 굽어보며 한동안 상념에 잠겨본다. 삼족대 아래의 팔각정은 지난 2007년께 지은 것이다.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면 20번 국도. 왼쪽으로 꺾어 5분쯤 가면 매전교를 만난다. 매전교를 건너면서 바라본 삼족대와 동창천의 어우러짐이 정겹다. 삼족대 뒤쪽 멀리 갓등산과 학일산 줄기도 눈에 들어온다. 다리 건너 5분쯤 가면 당호버스정류소 앞의 당호리 표지석이 보인다. 우측 아스팔트길로 직진하면 곧바로 도로표지판이 나타나고 우측 산 능선으로 접어드는 산길이 있다. 완만하고 걷기 적당하면서도 바닥에는 솔잎이 융단처럼 깔린 길이다. 이 능선길에도 진달래가 한창이다.

    포근한 흙길을 따라 올라 경주 이씨 묘를 지나고 진달래와 참철쭉이 뒤섞인 길을 5분만 더 오르면 해발 285m 삼각점봉이다. 이어서 평편한 길을 따르는데 솔향 실은 봄바람이 나그네 이마의 땀을 씻어준다. 10분쯤 가다가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직진하는 내리막을 계속 타기 쉽지만 오른쪽 2시 방향의 완만한 길을 따라야 한다. 역시 안내리본을 참고하자. 200m쯤 가다가 다시 갈림길이 나타나면 이번에도 우측 전방의 봉우리를 보면서 오른쪽 길을 따른다. 길이 조금씩 둔탁해지는 느낌이다. 암릉길 옆 멋들어진 소나무를 지나 살짝 오르면 왼쪽이 탁 트인 전망대. 억산과 구만산 북서쪽 자락이 드러난다. 여기서 본 산은 바다와 같다. 서로 겹치는 능선들은 물결치는 파도를 닮았다. 산이 바다라면, 그 자락에서 산나물 캐는 봄 아낙은 해녀 또는 잠녀(潛女)인가.

    (관하정)
    ■전망대 설 때마다 영남알프스 풍광 만끽

     
      삼족당 김대유 선생이 후학양성을 위해 지은 삼족대.
    잠시 후 이번에는 오른쪽이 탁 트이는 또 다른 전망대다. 동창천 자락의 무심암과 성주바위가 손에 잡힐 듯하고, 눈을 들면 용당산 비룡산 효양산(호랑산)이 가깝게 다가선다. 또 그 뒤로는 오래산성과 대남바위산 선의산 학일산 등 청도 일대의 아기자기한 산들이 서로 어깨 걸고 춤을 춘다.

    354봉을 넘고 전망대를 한 차례 더 지난 후 내려서면 안부사거리. 우측 동화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뚜렷한데 왼쪽 사곡마을 쪽 길은 희미하다. 개척단은 직진해서 살짝 오르막을 친다. 10분 후 307m봉에 오르면 주변 수목이 초토화된 산불지대. 저만치 부처산을 보면서 산불지대를 통과해 살짝 솟은 곳에서 왼쪽으로 본격적인 내리막길을 따르면 10분 후 임도인 애암고개에 닿는다. 왼쪽은 마을 입구의 애암이라는 바위 때문에 옛날에는 애암마을로 불리기도 했던 남양리 아음마을로 가는 길이지만 우측 장연리 쪽으로 간다. 부처산 자락 허리춤을 휘돌아가는 길이다. 부처산은 제8코스와 9코스에서 보이던 일명 '와불능선' 중 부처의 발꿈치 부분에 해당하는 산인데 정식 명칭이라기 보다는 인근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이해해야 한다. 내리막인 줄 알았던 임도가 갑자기 오르막으로 변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살짝 올랐다가 다시 내리막이 연결되니까. 종점인 장연리마을회관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삼족대)

    ◆ 떠나기 전에

    - 선암서원서 고택 숙박체험 해볼 만

    (선암서원의 천정 공포 모습으로 국내 서원에서는 보기가 드문 모습이란다)

     
    제10코스 출발지인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선암서원(仙巖書院·사진)은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인 소요당 박하담과 삼족당 김대유를 함께 모신 곳이다. 경북유형문화재 제79호인 이 서원의 본관 격인 강당은 대청마루 천정에 다포식 공포를 설치한 이색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또한 강당 앞문을 나서면 동창천 변의 용두암과 용두소 등이 노송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강당 앞뜰의 수백 년 된 배롱나무 두 그루는 여름이면 붉고 화사한 꽃을 피워 서원 전체를 뒤덮는다. 서당 건물 자체의 기품과 주변 풍광의 아름다움은 안동 도산서원에 비견될 만큼 높은 미학적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는 박향숙 씨가 서원을 관리하면서 전통고택 숙박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백일홍 꽃이 활짝 피는 여름 휴가철에는 방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인터넷홈페이지(http://sunam.co.kr) 또는 전화(070-4150-8445)로 예약 문의를 할 수 있다.

    한편 삼족대 인근 매전교에서 10분 정도만 면소재지인 동산리 쪽으로 가면 천연기념물 제295호로 지정된 '매전면 처진소나무'도 볼 수 있다.


    ◆ 교통편

    - 청도발 운문사행 버스 타고 신지리서 하차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청도역에서 내린다. 부산역 기준 오전 5시10분, 5시50분, 6시35분, 6시55분, 7시45분, 8시35분, 9시25분, 10시20분 등 자주 있는 편이다. 1시간 소요, 4800원. 청도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5분 거리에 있는 청도버스터미널에서 운문사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신지리에서 하차한다. 오전 7시40분, 9시20분, 10시40분, 11시30분 등 하루 8회 출발한다. 3200원. 코스 종착지인 장연리마을회관에서는 매전면 온막리 버스정류소까지 걸어야 한다. 25분 소요. 동곡에서 출발해 밀양시 상동면 유천 행 버스를 탄다. 상동역이 있는 곳이다. 오후 3시05분, 4시05분, 5시35분, 6시35분, 7시35분 등에 탈 수 있다. 장연리에서 온막리까지 매전 개인택시(054-372-8434)를 이용해도 된다. 7000원 안팎. 밀양 상동역에서는 오후 5시45분, 7시40분(막차) 등에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를 탄다. 자가운전의 경우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린 후 좌회전, 긴늪삼거리에서 청도방향 25번 국도를 타고 우회전한다. 상동역 지나 신곡삼거리에서 좌회전, 상동교를 건넌 후 25번 국도를 버리고 오른쪽 매전 금천 방향 58번 국도를 탄다. 동창천을 따라가다보면 매전면 소재지의 처진소나무를 지나 매전교를 만난다. 우회전 해 매전교를 건너 진행하면 금천면 신지리 만화정 앞에 닿는다.


    # 임진왜란때 의병 일으킨 밀양박씨 14義士

     
      청도 선암서원 뒤뜰에 있는 '임란창의 의사 전적비'를 둘러보고 있는 개척단원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보다 그렇지 않은 옛이야기가 훨씬 많은 것을 알지만,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걷다 보면 이같은 사실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특히 이번 주 답사한 제10코스에서도 마찬가지다. 경북 청도군 금천면과 운문면 매전면 일대에 신화처럼 전해져 오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지역 의병들의 활약상과 숭고한 희생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집안의 부자지간, 형제지간, 사촌지간 등 밀양 박씨 가문의 '14 의사(義士)'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왜 이런 이야기가 교과서에는 빠져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인상 깊다.

    물론 자료를 통해서도 알 수 있겠지만 현지 주민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면 더욱 실감나기 마련이다. 둘레길 개척단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은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만화정에서 만난 박성규(61) 씨. 그는 만화정을 처음 지었던 소요당 박하담 선생의 후손이다. 과거에 장원급제하고도 관직을 사양하고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매진했던 소요당의 후손 답게 박 씨 역시 대구에서 고교 교감선생님으로 재직하다가 명예퇴직하고 낙향, 만화정과 운강고택 등 고향의 문중 고택들을 관리하고 있다.
    (봉황애)
    만화정 내부를 속속들이 보여주던 박 씨는 "우리 역사상 한집안 출신 14명이 한날한시에 침략자들과 맞서 싸우기로 결의하고 전장에 나선 일은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가상한 일 아닌가"라며 운을 뗐다. 박 씨에 따르면 밀양 박씨 가문 14의사는 만화정 앞의 버드나무 뜰에서 창의(倡義), 의병을 조직해 어성산성에서 왜적과 함께 싸웠다. 그 가운데 천성만호 박경선 공은 전투 중 한쪽 팔목이 잘려나가는 부상에도 적장을 끌어안고 어성산의 절벽인 봉황애에서 동창천으로 함께 몸을 던져 순국했다. '청도 14의사 공훈록'에 따르면 그는 이후 승정원좌승지로 추증됐다. 조정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이들 대부분 의사들에게 무훈을 따져 1~3등 공신에 책봉했다.

    박 씨의 안내를 받아 선암서원 뒤뜰에 있는 '임란창의의사 전적비'도 둘러볼 수 있었다. 1974년에 건립된 이 전적비는 선암서원 서쪽 동창천 건너에 자리 잡은 어성산과 봉황애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선암서원과 만화정 운강고택 등을 두루 안내한 박 씨는 "고택들의 내력과 건축물의 기품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 전적비까지 들러서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떨쳐 일어섰던 선현들의 조국애도 함께 느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세심한 배려 눈에 띄는 운강고택의 특이한 구조

    (운강고택)
    소요당 박하담의 12대손인 박시묵이 19세기 후반에 크게 확장해서 지었다는 운강고택(중요민속자료 제106호)은 안채와 사랑채가 모두 별도로 'ㅁ'자 형태로 지어진 대저택이다. 생활의 필요에 따라 공간구성이 짜임새 있게 이뤄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안채 대청마루와 축대 사이의 나무 발받침과 사랑채 옆의 화장실 구조가 눈에 띈다. 안채 마루 발받침은 대청마루와 축대 사이에 계단 높이의 받침을 한 층 더 둠으로써 여성들이 오르내리기 수월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사랑채 옆 화장실은 소변기와 '푸세식' 대변기가 분리된 구조에다 목재를 사용한 깔끔한 마감처리가 눈에 띈다. 집주인을 비롯한 양반들은 이 화장실을 사용했고, 하인들이 사용하던 뒷간은 따로 있다. 운강고택으로 들어서는 돌담길도 운치가 그만이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 GPS·동영상 www.kookje.co.kr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운강고택을 찾아가는 길로 주위에 한집안으로 내려온 고택이 여럿 있다

    선암서원(仙巖書院·사진)은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인 소요당 박하담과 삼족당 김대유를 함께 모신 곳이다.

    선암서원의 수백년 된짐한 베롱나무와 소요대로 나가는 쪽문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지역 의병들의 활약상과 숭고한 희생 이야기를 기록하고 한집안의 부자지간, 형제지간, 사촌지간 등 밀양 박씨 가문의 '14 의사(義士)'를 남기기 위해 세운 '임란창의의사 전적비'

    '임란창의의사 전적비 아래에 있는 입암제 제실이다. 원래의 건물은 너무 낡아 2010년 7월 그때의 모습 그대로 복원을 하였다 한다.

    동창천에서 본 관하정, 이제는 봄이 왔는지 수목들이 푸른빛을 띠고 있다.

    선암서원 맞은편의 똥뫼로 이산은 용두암의 여의주로 주산이라고도 한다.

    선암서원으로 용두암과 용두소

    어성산의 봉황애 절벽의 모습. 천성만호 박경선 공은 전투 중 한쪽 팔목이 잘려나가는 부상에도 적장을 끌어안고 어성산의 절벽인 봉황애에서 동창천으로 함께 몸을 던져 순국한 장소이다. 아래 사진은 봉황애의 모습...




    어성산 오르는 둘레길 모습

    어성산성으로 밀양박씨 14의사가 임진왜란때 동래성이 함락되고 15일만에 이곳 청도까지 들어온 왜군들하고 격전을 벌린 현장이다.
    전망대에서 본 영남알프스 모습




    동호리릐 왕버들나무로 보호수이며 뿌리가 서로 붙어 연리근이다.
    삼족당 김대유 선생이 머문 곳으로 삼족대이다.
    동창천변의 삼족댜 모습으로 매전교에서 본 모습
    매암고개로 가는 둘레길의 모습들...


    애암고개로 가는 둘레길 전망대에서 본 영남알프스와 그 둘레의 산들...



    매전면 소재지인 동산리 동창마을과 그뒤로 통내산의 모습
    바위가 있는 부처산으로 남양리에서는 부처산으로 부른다.

    애암고개로 남양리와 장연리 장수곡을 있는 고개이다.
    사실 둘레길 취재팀은 많은 고심을 하였다. 남양리 마을을 통과하여 애암고개를 넘어 장연리 장수곡으로 넘어가는야 아니면 200~300m대의 야산을 넘어가느냐?.를 두고 두 코스를 다 답사를 하였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호화리와 남양리 사잇의 작은 능선을 둘레길 노선으로 확정을 하고 남양리 마을길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길은 우회길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 우회길도 여기 사진을 남겨 놓았다. 
    도로변에 있는 남양리 당산나무로 뿌리가 큰 방구를 감고 올라가고 있었다. 
    아음마을로 예전에는 애암마을이라 불렀다한다. 입구의 바위절벽 때문인 것 같다.
    배씨효자각뒤로 부처산이..
    사곡저수지에 본 애암고개가 v자의 파여진 곳이며 좌측이 부처산이고 우측능선이 영남알프스둘레길이다.
    애암고개로 이어지는 흙길과 시멘트길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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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교산&그너머 <722> 제9코스 : 청도 임당리 ~ 신지리 만화정
    깨진바위 밑 대비사 청정함 머금고 운치 만점 한옥마을로…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그동안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전부인 양 하염없이 높은 곳으로만 향하던 산꾼들의 발길을 돌려놓았다. 산에 오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산 아래에도 소중한 것이 많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또, 비록 산꾼이 아닌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영남알프스의 깊고 풍부한 멋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길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주 소개하는 제9코스는 산과 계곡을 품고 살아온 사람들의 소박하지만 고고한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는 속 꽉 찬 길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고인돌 유적과 신라 불교의 기풍을 느낄 수 있는 천년고찰 및 석불을 만난다. 또 오늘날 영남알프스라고 불리는 큰 산군을 터전 삼아 살아온 조선시대 선비들의 충절과 향학열, 멋과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보물급 문화재만 3개나 만날 수 있는 이번 코스에는 청도 지역의 고택들이 즐비하다.


     
      청도 동창천 변의 유서깊은 고택 만화정(萬和亭)에 봄이 왔다. 만가지가 다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염원하는 뜻으로 강 건너 '만화(萬和)들판'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원들도 만가지 조화 속을 거닌다.
    사위가 온통 봄 빛깔로 물든 4월 중순 '깨진바위' 우뚝한 억산(954m)을 원 없이 바라보며 고개를 넘고 호숫가를 거닐다 보면 저절로 영남알프스 자락의 풍요로움에 감사하게 된다. 불과 46m가 모자라서 해발 1000m급 봉우리에 속하지는 못했지만, 억산은 깨진바위의 웅장한 면모만으로도 영남알프스의 웬만한 봉우리들과 견줘 절대 뒤처지지 않는 명산이다. 그리고 이왕 억산을 바라볼 요량이면 깨진바위의 위용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보는 것이 좋은데 이번 코스가 바로 그런 특징을 갖고 있다.

    출발점은 경북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 임호서원이다. 박실고개를 넘어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을 친견하고 아름다운 박곡저수지길을 따라 천년고찰 대비사(大悲寺)에 들른 후 동창천을 바라보는 운치 만점의 고택인 신지리 만화정(萬和亭)에서 마무리한다. 총길이 17㎞,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30분이다. 휴식과 문화재 감상 등을 포함해도 6시간이면 충분하다.

    ◇ 총 6시간 17㎞ 코스 보물급 유물·유적 즐비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제8코스의 종착점이기도 했던 금천면 임당리마을회관 앞에서 본격적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먼저 들릴 곳이 있다. 마을 입구 임당교를 건너 폐교 쪽으로 가다 보면 폐교 맞은편에 '당등'이라고 불리는 작은 언덕이 바로 그곳이다. 만발한 벚꽃 아래 아담한 정자가 있는 이곳에는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고인돌이 여러 개 놓여 있는 아늑한 공간이다.

    다시 마을회관 쪽으로 되돌아가는 길 삼거리에서 오른쪽을 보면 고풍스러운 전통 가옥들이 보인다. 왼쪽이 임호서원(林湖書院)이고 오른쪽은 보물 제1237호로 지정된 '밀성 박씨 삼우정파 종중소장 문적'을 보관했던 보물전시각인 경의관(景義館)이다. 임호서원은 무과 장원급제자로서 임진왜란 때 두 아들 지남, 철남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고 선조 임금의 호송까지 책임졌던 삼우당 박경신(1539~1594) 선생 및 두 아들을 향배한 곳. 또 경의관은 종전 후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봉된 삼우당과, 호성원종공신 2등에 봉해진 두 아들에게 조정에서 내린 각종 문서 등의 보물을 전시했던 전각이다. 이 문서들은 대구국립박물관에 위탁 보관 중이다. 또 임호서원에 보관 중이던 말 안장 1점은 도둑맞았다가 지난 2005년 문화재관리청과 검·경 합동 단속 때 회수되기도 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임호서원에서 임당리마을회관앞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9코스로 접어든다. 일단 마을 안으로 흐르는 개울을 따라간다. 제8코스 막바지에 거쳤던 길이다. 200m쯤 가서 처음 만나는 왼쪽의 다리 건너 골목 안에 일명 '내시집'으로 불리는 임당리 통정대부 김씨 고택이 있다. 직진한 후 두 번째 작은 다리를 건너 개울을 오른쪽에 끼고 걷는다. 오른쪽에는 오봉산이, 정면에는 해들게봉 뒤편 독종골만당에서 도롱굴산(일명 시루봉, 까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능선 중간 오목한 곳이 정거고개다.

    ◇ 총천연색 봄꽃 환대 속에 박실고개 넘어


     
      박곡지를 돌아서 대비사 가는 길. 멀리 억산 깨진바위가 뚜렷하다.
    5분쯤 가면 갈림길. 오른쪽으로 작은 다리를 건너 20m쯤 가다가 재차 갈림길에서 우측 임도를 따라 오른다. 길가에는 진달래와 개나리 사과꽃이 만발하다. 35분가량 완만한 임도를 따라 오르면 어느새 박실고개. 임당리와 박곡리를 이어주는 길목인 박실고개에 오르면 남쪽 멀리 억산의 깨진바위가 확연히 드러난다. 고갯마루 주변에도 진달래 향기가 진동한다.

    이제부터는 줄곧 내리막. 커다란 오동나무가 많이 보이는 '얌전한' 길을 따르다 보면 어느 순간 오봉산 정상부의 베틀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임진왜란 때 인근 백성들이 산성을 쌓고 베틀로 베를 짜며 피난생활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바위다.

    15분 후 묘관음사(옛 약왕사) 입구. 오래된 사찰은 아니지만 잘 생긴 소나무가 멋진 법당 앞뜰에서 바라본 억산 구만산 능선을 조망할 수 있으니 한번쯤 방문할 만하다.

    묘관음사에서 5분쯤 내려서면 '소작갑사터'에 닿는다. '신라 진흥왕 21년(560년)에 한 신승이 나타나 대작갑사(현 운문사)를 짓고, 인근에 소작갑사(또는 대비갑사) 가슬갑사 천문갑사 소보갑사 등 4개 절을 더 지었다'는 운문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바로 그 소작갑사다. 지금은 불상과 전각은 온데간데없고 석등 받침 등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현재 억산 아래 박곡지 상류에 있는 대비사의 전신이 바로 이 절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 박곡지 돌아 대비사 갈 때 억산이 성큼

     
      대비사 대웅전 앞 뜰에 자목련이 곱게 피었다.
    봄꽃 만발한 길을 따라 5분쯤 가면 골안못을 지나고 이어지는 박곡리 곡란마을 골목을 통과한다. 담쟁이넝쿨, 황토벽이 멋스러운 반시 저장고, 흙돌담과 탱자나무 울타리 등 시골마을 골목길 분위기가 물씬한 곳이다. 마을 주민이 볍씨 심은 모판을 경운기에 조심스레 담아 못자리로 옮기고 있다. 가을의 황금빛 벼 수확을 위해 첫발을 내딛는 소중한 과정이다.

    정자나무 쉼터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만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대비사까지 왕복하는 거리가 7㎞다. 일단 대비사 방향으로 길을 잡아 걷다 보면 보물 제203호인 박곡리 석조석가여래좌상이 미륵당 안에 있다. 석굴암 불상과 비슷한 시대의 석불로, 풍만함과 강건함이 수려한 조각 솜씨에 녹아 있다. 다만 얼굴 부위가 훼손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기록에 따르면 18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두툼한 듯 부드러운 입술과 크지는 않지만 엷은 웃음을 띤 눈매가 잘 살아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어 훼손 시기는 일제강점기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임당리에서 박곡리로 넘어가는 박실고개.
    10분쯤 더 가면 박곡지에 닿는다. 인근 지역의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이 저수지 갓길을 따라 걷노라면 남쪽에 우뚝 솟은 억산의 위용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30분쯤 더 가서 정심교를 건너면 대비사다. 이 절의 전신은 박곡리 소작갑사터에 있던 소작갑사다. 고려시대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는데, 절 이름은 대자대비(大慈大悲)에서 따 왔다는 설과 신라시대 대비가 이 절에서 수양을 했기 때문에 붙었다는 설이 있다. 또 보물 제8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조선 숙종 11년(1685년) 때 지어진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조선 중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대웅전 뜰 앞에 자목련과 사과꽃이 꽃망울을 활짝 열어 봄날의 천년고찰 분위기를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준다.

    대비사에서 박곡리 정자나무까지는 45분 정도 걸린다. 그 길을 따라 옛 금천면 소재지이자 이 일대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신지리까지는 또다시 40분 정도 소요된다. 길부마을에서 길부저수지 둑길을 한 바퀴 돌아 나와 작은 고개를 넘어가면 금천면 신지리와 동창천 건너에 있는 현 면소재지 동곡리가 눈에 들어온다. 완만한 내리막길 오른쪽의 솔밭에는 쭉 뻗은 소나무 수천 그루가 밀림을 이루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운강고택을 거쳐 만나는 신지리 삼거리슈퍼 앞에서 보면 만화정이 보인다. 동창천 변에 자리 잡은 만화정 앞 왕버드나무의 연둣빛 새 잎들이 햇살에 반짝거리고 만화정 정문인 유도문(由道門) 옆 담장 아래에는 노란 개나리가 바람에 살랑거린다.


    # 떠나기 전에

    - 버리지 말고 손대지 말고 '착한 걷기'

    출발지인 임당리에서 박실고개로 오르는 길과 고개 너머 박곡리로 내려서는 길 양쪽에 감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등이 심어져 있는 과수원들이 많다. 봄철에는 화사한 꽃잎이 바람에 날려 그윽한 운치를 더한다. 그러나 여름과 가을로 접어들면 탐스러운 과실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다.그런데 염려되는 것이 하나 있다.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길을 걷는 사람들이 함부로 이 과실들에 손을 댄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길 걷기에 나선 사람들은 걷는 것에만 충실해야 한다. 과실들은 모두가 향토 주민의 삶과 직결된 생산물이다.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칠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걷는 사람들의 마땅한 의무요 예의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만이 착한 걷기라고 할 수는 없다. 주인 없는 풀과 나무도 함부로 손대지 않아야 하건만 하물며 버젓이 주인이 있는 유실수의 열매들까지 손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영남지역 트레킹의 명물로 영남알프스 둘레길이 더욱 발전하려면 이같은 착한 걷기가 정착돼야 할 것이라는 점, 모두가 공감하고 실천에 옮겼으면 하는 것이 개척단원 모두의 바람이다. '아니온 듯 다녀가소서'라는 말을 되새겨 주기 바란다.


    # 교통편

    - 동곡에서 언양행 버스 오후5시 막차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3200원. 50분 소요. 언양버스터미널에서 동곡 경유 대구행 완행버스를 타고 동곡까지 간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운행. 동곡버스정류장(054-372-3881)에서 임당리까지는 오전 8시30분 9시50분 11시20분 등에 새마을버스가 출발한다. 10분 소요. 버스가 여의치 않으면 동곡에서 택시를 타면 된다. 5000원 안팎. 코스 완주 후 만화정 앞에서는 다리를 건너 동곡리까지 걸어 가는 편이 낫다. 15분쯤 걸린다. 동곡에서 언양행 버스 막차가 오후 5시에 출발한다. 이 버스를 놓치면 동곡에서 오후 6시와 7시40분에 출발하는 청도행 버스를 타고 청도읍으로 간 후 열차편으로 부산으로 가면 된다.

    자가용 이용시에는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69번 지방도를 탄다. 운문사 입구를 거쳐 운문댐 아래 운문교를 건너자 마자 좌회전, 동창천을 왼쪽에 끼고 강둑길을 가다가 왼쪽 다리를 건너면 임당리다.


    # 대학자들 토론하던 학문의 요람 '만화정'


     
      청도 동창천변의 정자 만화정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9코스의 종착점인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동창천변 정자인 만화정(萬和亭)은 청도 한옥마을로 불리는 신지리의 여러 고택 가운데 주변 풍광과 가장 잘 조화된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전쟁기에 남쪽으로 피난했던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이곳에서 숙식했을 만큼 빼어난 풍치를 자랑하며 설계 또한 섬세함이 빛나는 건물이다. 만화정은 본래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소요당(逍謠堂) 박하담(1479~1560)이 건립한 서당 터였는데 그의 11세 손인 박정주(1789~1850)가 분가해서 살림집으로 지은 것이다. 이후 박정주의 아들인 운강(雲崗) 박시묵이 더욱 확장, 현재의 모습처럼 정자 형태로 변형했고 이곳에 강학소를 열어 지역 후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으며 그의 아들인 진계 박재형은 해동속소학 등 38권의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주변의 선암서원 등과 함께 청도 지역 학문의 요람 역할을 했다.

    운강과 진계가 이곳에서 학문을 갈고 닦고 후학들에 대한 교육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원래 이곳에 서당을 세웠던 소요당의 높은 인품과 학풍을 이어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요당은 조선 중종 때 사마시에 합격했지만 여러 관직을 모두 사양하고 초야에 묻혀 저술과 학문연구에 매진한 성리학자였다.

    특히 무오사화 등을 거치면서 더욱더 세속적인 출세와 벼슬길에 대한 마음을 접게 된 소요당은 본격적으로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게 된다. 그는 삼족당 김대유 등과 함께 운문사 아래에 최초의 사창(社倉)을 지어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던 백성에게 환곡법을 실시하는 등 빈민구제사업에 매진했다. 또 남명 조식, 삼족당 김대유 등 당대의 대학자들이 소요당을 찾아와 학문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같은 학풍과 인품이 12대손인 운강 박시묵대와 그 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 승천 못한 이무기가 쪼갰다는 억산 '깨진바위'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대비사에는 억산 깨진바위와 밀양 호박소 등과 연관 있는 이무기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여서 이미 알고 있는 이도 많을 것이다.

    옛날 대비사에는 고승 한 분과 동자승이 함께 살고 있었다. 스님과 동자승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곤 했는데, 어느 날 밤 잠에서 깬 스님은 옆에 누워 있는 동자승의 몸이 마치 냉수목욕을 한 것처럼 차갑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스님은 다음날 자는 척하면서 동자승의 동태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방을 빠져나간 동자승이 다음날 새벽이 돼서야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날 밤 살며시 동자승의 뒤를 밟은 스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절 가까운 곳에 있던 연못으로 간 동자승이 옷을 벗고 들어가서는 이무기로 변신, 유유히 헤엄을 치며 노는 것이 아닌가. 이무기는 스님이 지켜보는 것을 모른 채 연못에서 나와 산 너머 이무기못안골로 가서는 빗자루를 들고 주변을 쓸어댔다.

    결국 스님은 "네 이놈. 상좌야. 네가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라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에 놀란 이무기는 슬픈 울음을 터뜨리며 날아올랐다. 이무기는 "아, 하루만 더 있으면 용이 되어 승천하는 1000년 동안의 염원을 이룰 수 있었는데…"라며 절 뒷산의 정상 바위를 꼬리로 내려친 뒤 그 너머의 호박소로 들어가버렸다. 억산의 명물인 깨진바위는 바로 이 이무기의 꼬리가 만들어낸 자국이며, 운문사 위 이무기못안골에 마치 빗자루로 쓸어 댄 것 같은 자국이 바위에 많은 것도 모두 그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임호초교 폐교 맞은편에 작은 언덕인 '당등'. 만발한 벚꽃 아래 아담한 정자가 있는 이곳에는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고인돌이 있다 .

    박실고개을 올라서면 정면에 억산의 깨진바위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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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교산&그너머 <721> 제8-1코스 : 청도 운문면 방음리 ~ 공암리

    굽이굽이 운문호 50리길 걸으니 '천하절경' 공암풍벽이…

    현재의 운문댐 을 돌아가는 도로의 모습이다. 지금 운문산 8코스와 8-1 코스는 벚꽃 터널을 이루고 있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에 자리잡은 운문호는 밀양호와 더불어 영남알프스 둘레길에서 만나는 2대 호수 중 하나다. 1996년 완공됐다. 대구시 영천시 경산시 청도군 등 4개 지역의 상수도 취수원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홍수 조절 기능, 수력발전 기능 등 다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호산(314m)과 종지봉(367m) 사이 협곡에 건설된 길이 407m 높이 55m 규모의 댐에 갇힌 호수는 이 같은 현실적인 기능 외에도 주변의 영남알프스 자락과 어우러지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그 아름다운 풍광과 호젓한 분위기로 인해 언제부턴가 드라이브 및 하이킹 여행지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순환도로 상 발길 멈추는 곳 어디서든 호수 주변 풍경이 다르게 보이고, 하늘과 구름이 비친 수면도 시시각각 다른 표정을 짓기 때문에 지겨울 새가 없다. 운문호가 품고 있는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즐기며 걷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는 길이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의 공암풍벽은 동창천이 굽어지는 곳에 있는 거대한 절벽이다. 운문호 축조 이전 청도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혔다. 50리 길을 걸어서 공암풍벽에 도착한 둘레길 개척단이 주변 풍광을 살피고 있다.
    특히 봄과 가을이 좋다. 4월 중순부터 말까지는 수몰지구 실향민들이 '수구초심'의 염원을 담아 심은 벚나무에서 새하얀 벚꽃이 피어나 길의 정취를 더욱 높여준다. 영남알프스 주봉인 가지산과 운문산을 넘어온 봄바람에 흩어진 꽃잎은 스스로 '꽃비'가 되어 물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잔잔한 호수에 처연히 내려앉는다. 고향집을 잃은 실향민의 정서를 닮았다.

    또 가을에는 청도8경 중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공암풍벽(孔岩楓璧)'에서 단풍의 멋을 즐길 수 있다. 이번 주 개척단이 찾아간 제8-1코스는 운문호를 한 바퀴 돌아 공암풍벽을 찾아가는 길이다. 동창천이 운문천과 만나기 직전 큰 물돌이를 이루는 곳에 우뚝 솟은 절벽인 공암풍벽은 옛날부터 청도 제일의 풍광을 뽐낸 곳으로 유명하다. 그곳을 물들인 단풍이 너무도 아름다워 단풍 풍(楓)자를 썼을 정도이니 가을 경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코스 막바지에서 공암풍벽을 만나는 순간 그동안의 피로와 지겨움이 단번에 사라져 버린다.

    ■ 운문호 순환하는 20㎞ 장거리·6시간 걸려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제8코스의 중간 지점인 운문면 방음리 '방음동 새마을동산'에서 출발, 공암리 버스정류소까지 가는 이번 코스의 총 길이는 20㎞. 지금까지의 코스 가운데 가장 길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5시간, 휴식 등을 포함하면 6시간은 잡아야 한다.

    새마을동산 앞에서 운문댐 방향으로 69번 지방도로를 따른다. 봄바람에 살랑대는 운문호 물비늘이 곱다. 35분쯤 갔을까. 왼쪽 언덕에 경북도민속자료 제90호인 고택(古宅) 운곡정사(雲谷精舍)가 있다. 조선 중기 학자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많은 공을 세운 취죽당(翠竹堂) 김응명(金應鳴)의 8대손인 운곡 김몽노(金蒙魯·1828~1884)의 생가다. 지금도 그 후손이 살고 있다. 그 옆의 원모재(遠慕齋)는 김응명과 그의 아들 김주를 모시는 재실이다. 홍매화 백매화 개나리 목련 등 봄꽃이 두 고택을 감싸고 있다. 뒤돌아서서 운문호를 바라보니 정면에 볼록한 개산(317.4m)이 눈에 든다.

    운문댐 방향으로 이동한다. 마주 오는 자전거 동호회원들이 반가운 인사를 건네준다. 호산 약간 못 미친 곳에서 아주머니들이 길이 1~1.5m짜리 참나무 둥치에 홈을 파서 표고버섯 파종을 하고 있다. 수몰지구 이주민들의 여러가지 생계 대책 가운데 하나가 표고버섯 재배다. 인건비와 종자구입비 등의 비용은 한국수자원공사 측이 지원해 준다고 한다. 올 봄에 파종하면 내년 가을에 수확할 수 있다.


    ■ 조망 좋은 호산 정상 왕복 급경사길 조심

     
      망향정에서는 개산(왼쪽)과 호산이 좌우에 보인다.
    볼록하게 솟은 호산으로 오르는 길은 예전에는 나발고개 내리막이 시작되기 직전 오른쪽으로 난 임도를 타고 들어가 곧바로 산행로로 진입하면 됐지만 지금은 막혔다. 할 수 없이 나발고개 내리막 포장도로를 타고 8분쯤 간다. 운문교 약 200m 못미친 오른쪽 공동묘지 옆 버섯농장 옆 길로 올라야 한다. 오르막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다. 땀을 한 바가지 쏟으면 호산 정상. 아담한 정상석을 지나 3분쯤 더 가면 무덤 터 옆 전망대다. 이곳이 '호랑이를 사랑한 처녀의 전설에 나오는 처녀의 무덤 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발아래 드러난 운문호의 풍광 만은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올랐던 길로 되돌아 내려서는 데는 15분쯤 걸린다. 묘지에서 막 도로로 합류할 즈음 눈앞에 멀리 보이는 억산 구만산 방향의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억산 우측 구만산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그려진 능선 모양이 마치 미륵불이 누워 있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어 신기하다. 개척단원 중 누군가 "와불(臥佛) 능선이다. 새로운 발견인데…"라고 외친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나발고개를 내려와 왼편으로 펼쳐 지는 풍경으로 와불을 확인 할 수 있다.
    ■ 운문면 대천리는 수몰지 주민 이주단지

     
      공암풍벽 능선의 가리봉에서 본 운문호 풍경.
    운문교를 지나면 운문면 소재지인 대천리다. 이 마을은 수몰 주민들이 이주해 온 이주단지다. 원래의 운문면 소재지인 대천리는 동창천과 운문천이 만나는 개산 남쪽에 있었는데 수몰됐다. 이후 금천면 방지리의 3개 마을 중 상방지마을에 속했던 이곳에 이주단지가 건설된 것이다.

    삼거리에서 우측 경주 방향 20번 국도를 탄다. 곧바로 왼쪽에 보이는 재실은 이모정(二慕亭).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의병장인 이모당(二慕堂) 박경전(朴慶傳)을 모신 밀양 박씨 집안의 사당이다. 완만한 오르막을 5분쯤 가면 운문댐. '운문호'라고 적힌 입석이 있고 댐 건너편에는 호산이 솟아 있다. 호랑이가 웅크린 채 호수를 내려다 보는 듯한 모습이다. 운문호 풍광을 굽어보면서 20분쯤 가면 문명중고 망향비와 망향정을 만난다. 수몰 이주민들이 호수를 바라보며 향수를 달래는 곳이다. 정자에는 수몰 전 마을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대천리 순지리 서지리 공암리 방음리 오진리 지촌리 등 7개 마을이 전부 또는 일부 잠겼다. 망향정은 점심 식사를 하기에 좋은 장소다.

    100m쯤 가면 갈림길. 왼쪽은 한내고개를 거쳐 경산으로 가는 길이다. 계속 직진하면 20분 후 개산 북쪽 자락을 지난다. '창말'로 불리는 이곳은 수몰 전 대천리의 곡식과 소금 등을 보관한 창고가 있던 곳. 댐이 만들어지기 전 대천리는 동창천과 운문천, 2개의 큰 물길이 합쳐지는 곳에 자리 잡아 물난리가 많이 났기 때문에 이곳에 따로 보관창고를 두었다고 한다.

    ■ 코스 막바지 공암풍벽 보며 감탄사 연발

     
      표고버섯 파종 작업 중인 운문면 주민들.
    호수를 휘돌아가는 국도 20호선을 타고 50분쯤 완만한 오르막을 걷는다. 이 오르막이 정점에 달하는 고갯마루가 바로 이번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공암풍벽'으로 향하는 입구다.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난 산길을 5분쯤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가리봉(361m) 정상. 운문호와 주변 산들의 모습이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 공암풍벽이 가장 잘 보이는 전망대까지는 내리막을 타고 15분쯤 더 가야한다. 무덤을 지나 공암풍벽 전망대에 서면 '아, 운문호 자락에 이런 절경이 있었던가'라며 입을 다물지 못할 경이로운 풍광이 펼쳐진다. 예천 회룡포나 안동 하회마을처럼 물돌이가 일어나는 곳이긴 하지만 물돌이 안쪽이 평탄한 그곳들과는 달리 공암풍벽은 이탈리아 반도처럼 툭 튀어나온 능선이 가파른 절벽으로 이뤄져 있어 좀 더 특별하다.

     
      운문교 주변에서 왼쪽(남서쪽)에 보이는 와불능선.
    공암풍벽은 운문호 건설 이전,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근에서 소문난 명승지였다. 이미 그 당시에 절벽 밑 공암리에 케이블카 설치 움직임이 있었을 정도다. 지금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버려서 공암마을을 통과해 절벽 아래로 갈 수가 없게 됐다. 공암리 주민들의 아쉬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가을 풍광만큼은 전국 어느 명승지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기에 더욱 그렇다.

    전망대에서 100m만 더 가면 구멍 뚫린 바위가 보인다. 그것이 바로 '공암'이다. 옛날 전설에 따르면 공암풍벽 아래 곡천대 용굴에 살다가 승천하던 용이 꼬리로 바위를 내려쳐서 생긴 구멍이라고 전해진다. 이곳은 경주와 청도를 오가던 유일한 길목이었다. 소 한 마리가 거뜬히 통과했다고 한다. 다시 가리봉 정상을 거쳐 20번 국도로 복귀, 코스 종점인 공암마을 버스정류소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호랑이를 사랑한 처녀 이야기

    호랑이를 사랑한 처녀의 전설이 있는 호산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걷다 보면 마치 '전설따라 삼천리'를 따라가는 착각이 들곤 한다. 발길 닿는 곳마다 전설이 없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코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전설은 호산(虎山·일명 범뫼)에 전해 내려오는 '호랑이를 사랑한 처녀이야기'이다. 옛날 인근 골짜기에 단란한 가정이 있었다. 10대 후반의 아리따운 외동딸은 매일 저녁 숯 굽는 아버지와 밭일하는 어머니를 마중하러 동구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사라져 버렸다. 딸은 그 후 10년 넘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부모는 체념한 채 늙어갔다. 그런데 하루는 이 집에 호랑이 한 마리가 찾아와서는 부부를 봉긋하게 솟은 앞산 정상부의 한 무덤 앞으로 데려갔다. 호랑이에게 납치됐던 딸의 무덤이었다. 그런데 처녀는 호랑이를 사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잔뜩 겁에 질렸으나 자신을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먹이를 구해 온 호랑이의 정성에 감복해 결국 사랑에 빠졌다는 것. 동굴에서 살던 처녀는 세월이 흘러 결국 병에 걸렸다. 처녀는 호랑이에게 고향집이 보이는 높은 곳에 묻어 줄 것과 부모님에게 소식을 전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호랑이가 부모를 데리고 간 것이다. 사람들은 이후 이 산 이름을 호산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 교통편

    - 종착지 공암리서 대천 개인택시 이용하길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3200원. 50분 소요. 언양버스터미널에서 동곡 경유 대구행 완행 버스를 타면 방음리 새마을동산까지 갈 수 있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운행. 코스 종착지인 공암마을에서는 대천리나 동곡버스터미널(054-372-3881)까지 가는 버스가 오후에 드물게 있다. 오후 5시10분 전후와 7시10분 등에 있는데 이 경우 대천리에서 언양행 막차(오후 5시10분 출발)를 타기 힘들다. 따라서 늦어도 오후 4시20분 이전에는 완주 한 후 개인택시(054-371-6997)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1만5000원 안팎. 자가용 이용시에는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35번 국도를 타고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언양교차로에서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69번 지방도를 타고 운문령을 넘어 청도 방향으로 가면 방음리 새마을동산 앞에 닿는다. 차량 2대를 이용해 종점인 공암마을에 1대를 먼저 주차하면 편하다.


    # 댐이 앗아간 것들

    - 곡천대·용굴 등 명소까지 삼킨 운문호

     
      운문댐 건설로 수몰된 7개 마을 주민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지은 망향정.
    개발은 늘 상실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를 일컬어 '개발의 그림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인근 도시들의 상수도취수원, 홍수조절, 수력발전 등 현실적 기능을 목표로 지난 1996년 완공된 운문호는 영남알프스 북쪽 자락에 아름다운 호수가 됐지만 수몰지구에서 살아오던 주민들에게는 그에 못지않은 상실의 아픔을 남겼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삶의 터전이던 고향마을과 고향집, 어린 시절 뛰어놀던 그림 같은 놀이터와 청운의 뜻을 펼치기 위해 공부하던 모교도 모두 물 속에 잠겨버렸다. 이번 코스를 걷다 보면 운문호 건설로 수몰된 7개 마을 주민들이 실향의 아픔을 달래는 망향정(望鄕亭)을 지난다. 실향민들은 이곳에서 운문호를 바라보며 설움을 달랜다. 특히 망향정 앞에 있는 '망운교비(望雲校碑)'의 내용을 찬찬히 읽다 보면 그 아쉬움을 십 분의 일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1932년 개교해서 50년 만인 1982년 폐교된 운문국민학교 제7회 동기생들이 건립한 망운교비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말인 '수구초심(首丘初心) 망운지정(望雲之情)'이 새겨져 있다.

    이뿐일까. 저수지 축조는 청도 제일의 풍광을 자랑했던 공암풍벽의 많은 것들을 앗아갔다. 운문면 공암리 하수호(66·청도군 이장협의회장) 이장은 "옛날 경주·청도 지방의 선비들이 시류를 논하고 풍류를 즐겼다는 곡천대, 절벽에서 돌을 던져 넣으면 10여 분 동안 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만큼 깊었던 용굴, 공룡발자국, 옛날 신라 때 장육산에서 무술 연마를 하던 여섯 장군이 말을 탄 흔적이라는 전설이 서린 바위의 말발굽 자국 등도 모두 수몰됐으니 그 아쉬움을 어떻게 말로 다할까"라며 옛일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마을 북쪽의 왕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통일신라 말기에 인근에서 후백제 견훤군과 전투에서 패한 후 추격군을 피해 도주했던 길목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뭔가 굵직한 물건을 찾았거나 대물급 물고기를 잡았을 때 '왕건이 잡았다'는 말을 하는데 아마도 왕건과 왕재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근 최고의 경승지였던 공암풍벽은 이제 상수원보호구역에 묶여 버려서 마을을 통해서는 가까이 가 볼 수 없는 곳이다. 가리봉 능선을 통해서나마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또 하나, 공암풍벽으로 연결된 기다란 능선에 있는 '가리봉'이란 이름에 대해 공암리 주민들은 생소해한다. 주민들은 오히려 이 봉우리에 옛날부터 불이 자주 났다는 뜻에서 불 화(火)자를 써서 '화고난'이라고 부르고 있다.


    # 운문면은 '별들의 고향'… 윤필용 장군 등 다수 배출

    운문호가 자리 잡은 경북 청도군 운문면은 '별들의 고향'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별'이란 다름 아닌 국군 장성급, 즉 장군을 일컫는 비유어다. 청도군 자체가 경북 지역에서는 장군이 많이 배출되기로 유명하지만 그중에서 운문면 출신자가 특히 많다는 것이다.

    우선 대표적인 사람이 지난해 작고한 '풍운의 군인' 윤필용 장군이다. 1961년 군사정변 이후부터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회의 의장의 특별한 신임으로 의장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이후 국군방첩부대장과 수경사령관(소장) 등을 역임했지만 1973년 유명한 '윤필용 사건'에 휘말린 장본인이다. 윤 씨의 고향이 바로 이번 코스의 종점이자 공암풍벽에 둘러싸인 마을인 공암리다.

    제3사관학교 1기생으로 비육사 출신 최초의 장군, 최초의 대장 등의 기록을 세운 박영하 전 2군 사령관 역시 청도 운문면에서 태어났다. 오진리 출신인 박 장군은 둘레길 제7, 8코스에서 거쳤던 운문사 입구 신원삼거리 부근의 문명초교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영원한 빨간마후라'로 알려진 김상태 전 공군참모총장 역시 운문면이 배출한 장군이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GPS·동영상 http://www.kookje.co.kr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운곡정사 :조선 중기 학자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많은 공을 세운 취죽당(翠竹堂) 김응명(金應鳴)의 8대손인 운곡 김몽노(金蒙魯·1828~1884)의 생가다. 지금도 그 후손이 살고 있다. 그 옆의 원모재(遠慕齋)는 김응명과 그의 아들 김주를 모시는 재실이다

    원모재 뒤에서 본 운문댐

    호산 전망대 정면으로 가야 할 길과 개산.


    이모정임진왜란때 의병장 제우당 박경전을 위한 사당으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그의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부모에 대한 효심을 옅볼 수 있다.원래는 순지리뒤에 세워져 있었는데 1922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이 댐 아래가 운문댐이 생기기 이전에는 건도랑이란 지명으로 불렸다. 그때는 이곳이 운문면과 금천면의 경계로 대천리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대천리 옛어른의 말을 빌리자면 건도랑, 즉 호산과 종지봉 아래인 동창전에는 도적들이 우글우글 그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 돈을 강탈당하고 목숨만 겨우 부지하여 통과를 하였는데 도적을 피해 찾아 올라가는 곳이 호산과 시루봉사이의 나발고개 였다 . 나발고개로 올라가는 골짜기가 도둑놈골이라 부르며 지금의 도로가 넘어 다니는 재가 아니고 호산쪽으로 독립가옥 뒤가 옛날의 나발고개이다.

    운문댐을 걷다 보면 재미 있는 이야기가 한 토막 있어 소개를 한다. 지금은 어실마을이 운문댐에 잠겼지만 어실 마을뒷산을 어실산으로 불렸다. 그래서 어실 어른이 총산에 가서 총을 들고 개산에 올라가 사냥개를 몰고 호산에 있는 호랑이를 잡으러 갔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 오는데 운문댐 망향정 주위로 어실산, 총산, 개산, 범산이 포진을 하고 있다. 개산과 호산은 풍수적으로 보면 호랑이는 개를 잡아 먹을라고 웅크리며 노려보고 개는 36개 도망을 칠려고 호랑이를 등지고 도망갈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운문댐을 휘감아 도는 20번 국도에서 본 공암풍벽의 모습으로 흡사 한마기의 용이 호수에 물을 마시러 내려오는 모습을 하고 있다. 끝 봉우리를 공암마을에서는 용암이라 부르고 있다.


    공암풍벽을 보러가는 능선상에 만나는 가리봉 정상으로 운문댐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공암풍벽의 모습으로 지금은 수몰되어 현재의 모습은 마을에서 보기가 불가능하다. 공암풍벽의 끝 부분에 돌아가는 곳이 곡천대로 불리는 곳이다. 이곡천대 아래 용굴이 뚫여있었다는데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한다.여기 굴에다 명주실 한타레를 풀면 2km밑 웅덩인 마당수에 그 실타레가 나왔다하는 전설과 학굴이 있어 항상 학이 노닐었다하여 학소대라 부른다.

    공암이란 이름을 얻게 된 바위로 바위와 바위사에 길이 나있다. 마을에서는 굴바위골 창배기로 불리며 도로가 뚫리기 이전에는 경주 산내와 청도로 오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이고개를 넘지 못하면 가는 길이 없었다 . 곡천대에 아래 용굴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면서 꼬리로 내리쳐 공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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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교산&그너머 <719> 제8코스 : 청도 신원리 염창마을 ~ 임당리

    쉬엄쉬엄 옛정취 물씬한 고갯길… 숨은 볼거리는 덤



     
    옛 사람들은 산너머 큰 장터를 오갈때 평편하지만 거리가 먼 우횟길 대신 산등성이를 넘는 짧은 고갯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천 가 편한 길을 따라가면 될텐데 왜 굳이 힘든 산길을 애용했을까. 물론 요즘 사람들에 비해 걷기에 익숙해서 고개를 넘는 일이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옛길을 따라 가보면 꽤 높은 마루금을 넘는데도 별로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리 근육의 피로도 역시 산 아래를 휘감는 하천 길을 걸을 때와 별 차이가 없다. 이유가 뭘까. 그 비밀은 바로 일명 '지그재그형'으로 불리는 갈 지(之)자 형 길에서 찾을 수 있다. 오르막인데도 숨이 차지 않는다. 소나 당나귀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길이다보니 무거운 짐은 이들의 힘을 빌리면 된다. 갈지자형 길. 이것이 바로 선조들이 지름길인 고갯길을 쉽게 넘어가는 생활의 지혜였다.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의 무적숲 인근 용신소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
    제8코스는 경북 청도에서 선조의 지혜가 돋보이는 예쁜 고갯길을 넘는 길이다. 영남알프스가 숨겨 놓은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운문사 들머리인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본동 격인 염창마을 신원삼거리에서 출발, 금천면 임당리 마을회관 앞에서 마무리한다. 신원리 문명분교~국시당~신원1교~용신소~소진마을 입구~옹강산(오진마을) 입구~고갯마루 쉼터~방음동 새마을동산~영담한지미술관(보갑사)~무적암(폭포)~영담한지미술관~안마을못~이끼계곡~화전민 집터~정거고개(쇠등)~쌍무덤~임당리 김씨고택~임당리마을회관 순. 총 길이 16㎞에 걷는 시간만 5시간 걸린다. 휴식 등을 포함하면 6시간은 잡아야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전반부는 아스팔트길, 후반부는 포근한 옛길이다.

    ■국시당·무적숲·용신소… 발끝마다 스토리텔링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신원리 본동 염창(鹽倉)마을은 '운문사의 소금 창고' 역할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원천과 운문천이 합수점에 터를 잡았으니 경관이 수려하고 볼거리도 많다.

    신원삼거리에서 69번 지방도를 따라 문명분교와 신원교를 지나면 대리마을. '솥계'라고 불리는 곳이다. 오랜 옛날부터 솥 굽는 가마가 있다고 해서 붙은 별칭이다. 대화슈퍼 맞은 편 밭이 바로 신라 때부터 솥을 구웠던 가마터다.

    이어지는 운학사 표지판 앞에서 왼쪽 운학사 방향 마을길로 들어선다. T자형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20m쯤 가다가 왼쪽 좁은 골목길로 가면 막다른 집이 나온다. 우측 대나무숲 쪽 무덤 위로 오르면 3분 후 바위벼랑 앞에 닿는다. 그 앞의 수백 년 된 굴참나무에 당줄이 메여져 있다. 이 나무가 바로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주민들이 나라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다는 '국시당나무'다. 바위벼랑은 제단이다. 제사를 지낼 때 부정한 사람이 끼어 있으면 음식 담긴 그릇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는 전설도 함께 전한다. 자기 마을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국가의 안녕까지 염원하는 풍습에서 유달리 강한 신원리 사람들의 애국심을 엿볼 수 있다.

    다시 69번 지방도로. 청도 방향으로 간다. 신원1교에서 왼쪽을 보면 운문천 신원천 합수점에 낮고 길게 뻗은 절벽이 보인다. 마치 용의 몸통 같다. 다리를 건너면 '무적(舞笛)숲'이라고 불리는 곳. 신라의 왕이 아름다운 주변 풍광에 반해 피리 소리에 맞춰 춤추며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원래는 훨씬 울창했지만 한국전쟁 때 이곳에 숨어 있던 빨치산부대를 토벌하려고 벌목을 한 이후로 듬성듬성해졌다고 한다.

    '하얀집민박' 안내판에서 잠시 왼쪽 하천으로 내려선다. 왼쪽 10시 방향을 보면 짙은 녹색의 물빛이 인상적인 웅덩이, 즉 '용신소'가 보인다. 뒤편 절벽을 용의 몸통으로, 웅덩이에 담긴 바위는 용의 머리로 보고 '용이 물을 마시는 곳'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실제로 용머리를 닮은 바위가 웅덩이에 걸쳐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이 하천을 특별히 '무적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시 길을 이어간다. 이 동네 가로수는 감나무다. 참, 그랬지. 여기는 청도 땅이다. 눈앞의 웅장한 산은 옹강산. 신원2교를 건너 오진리 소진마을 입구와 옹강산 등산로 출발점이자 오진마을 입구를 잇따라 지난다. 짤막한 오르막을 거쳐 정자 쉼터를 지나 내리막을 걸을 때 오른쪽 아래로 운문호 상류가 펼쳐진다. 수량이 많이 줄었다. 수몰 마을의 옛 골목길과 다리 돌담 등의 흔적만 휑하다. 이 길의 가로수인 벚나무는 실향민들이 애틋한 마음이 담긴 '망향의 나무'다.

    ■노루귀 활짝 핀 임도옆에 숨은 이끼계곡

     
      청도 운문면 방음리에 있는 방음동 새마을동산.
    방음리 말음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왼쪽 계곡으로 들어서야 하지만 잠시 오른쪽 '방음동 새마을동산'에서 쉬어간다. 1972년3월24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 선진 마을 방문차 다녀간 것을 기념한 곳이다. 대통령과 주민들이 함께 찍은 사진, '새마을 정신(精神)'이라는 박 대통령의 친필 글씨 등은 새마을 운동 발상지라는 경북 청도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마을이 바로 이곳 방음리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흔적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범적이었던 마을도 호수에 잠겨 버렸다. 동산 뒤편에 남양 홍씨 가문의 재실 겸 묘택인 운암정사(雲巖精舍)가 있다.

    삼거리에서 '막바우골' 쪽으로 들어선다. 15분 후 보갑사 내 영담한지미술관. 영담 스님의 한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관람료는 2000원.

    미술관 건너편 작은 지계곡 산길로 일단 길을 잡는다. 잠시 '무적암'에 다녀오기 위해서다. '무적골'이라고 불리는 이 계곡을 따라 15분쯤 오르면 높이 30m짜리 바위가 나온다. '무적암'이다. 폭포이기도 한 무적암은 웬만큼 영남알프스를 안다는 사람도 모르는 숨은 볼거리다. 왼쪽으로 우회, 상단부에 오를 수도 있다.

    다시 미술관 앞으로 복귀, 임도를 타고 계곡 상류로 향한다. 안마을못을 지나면 흙길로 바뀌는데, 길가에 대표적 봄 야생화인 노루귀가 지천이다. 5분쯤 더 가면 임도 오른쪽에 원시적 분위기의 이끼계곡. 비록 규모는 작지만 영남알프스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어서 모두 탄성을 내지른다.

    3분쯤 더 오르면 갈림길. 길 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살짝 내려선 후 계곡을 건너야 하는데, 초입이 희미하다. 리본을 참고하자. 계곡을 건너면 화전민들의 밭 터가 나온다. 30m 정도 가서 왼쪽으로 꺾어 다시 5분쯤 가면 가마솥이 있는 화전민 집터. 여기서 주 계곡을 버리고 집터 위(오른쪽)로 오른다. 20m쯤 가면 지계곡을 만나는데 이 작은 골짜기를 따라 오른다. 이번 8코스에서 가장 험한 구간이다.

    ■정거고개 앞뒤로 갈지자 옛길 환상적

     
      영남알프스의 숨겨진 비경 막바우골 이끼계곡.
    10분 후 다시 걷기 좋은 길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살짝 돌아가는 길. 2분 후 지능선을 만나면 왼쪽으로 오른다. 드디어 옛길의 특징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갈지(之)자 길'이 시작된다. 10분 후 또다시 지능선 갈림길을 만나면 그대로 직진한다. 길이 확 넓어진다. 3분 후 8코스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정거고개. 해들게봉~도롱굴산(일명 까치산) 산행 시 반드시 거쳐 가는 이 고개는 '쇠등'이라고도 불린다. 옛날 방음리 사람들이 동곡장이나 청도장에 소 팔러 갈 때 넘던 고개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정거고개를 넘으면 환상적인 옛길이 이어진다. 산허리를 돌아서 내려가는 이 길은 산행로와는 달리 그 흔한 리본 하나 보이지 않는 깔끔한 길이다. 직선이다 싶으면 어느새 갈지자로 이어지고, 다시 부드러운 곡선 길이 이어진다. 저 멀리 임당리 마을과 동창천, 조금 눈을 들면 학일산이 눈에 들어온다. 30분쯤 가면 쌍무덤과 폐축사를 잇따라 지난다. 마을 길로 들어서서 작은 개울을 따르다가 동네 중간쯤에서 우측으로 다리를 건넌다. 전신주에 '임당2길' 표시가 된 난간없는 다리다. 골목으로 100m쯤 가면 고래등 같은 대저택이 나온다. 통정대부 정삼품 김씨고택. 일명 '임당리 내시집(29면 둘레길 이야기 참조)'으로 알려진 고택이다. 다리로 돌아와서 개울을 따라 2분만 가면 종착점인 임당리 마을회관 앞 버스정류소에 도착, 8코스를 마무리한다.


    ◆ 떠나기 전에

    - 신라왕이 무적숲 찾은 까닭은… 당시 전략적 요충지였을 수도

    제8코스의 주요 지점마다 숱하게 나오는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무적숲 무적천 무적들 무적골 무적암 등에서 발견되는 '무적(舞笛)'이라는 말이다.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는 의미인데, 청도 운문면 신원리 방음리 등의 주민은 이 말이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말이라고 믿고 있다. 즉 신라 왕이 이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즐겨 찾았고 흥겹게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교통수단이 지극히 불편했을 당시에 경주(당시 금성)에 있던 왕이 가까운 곳에 더 빼어난 절경지도 많은데 어째서 굳이 이곳까지 찾아 와야 했을까.

    이와 관련, 이창우 본지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장은 다소 독특한 주장을 한다. 운문사를 중심으로 한 주변 일대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면서 병참기지 및 화랑도 훈련장이었고, 왕이 전략적 요충지를 점검차 방문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왕이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무적숲 등에서 잠시 쉬었거나 장수와 병사들에게 연회를 베풀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청도 지역 향토사학계에서도 운문사 인근 지명인 '장군평' 등을 들어 이 일대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는 하니 그럴듯하다.

    세속오계를 전한 원광법사가 대작갑사(현 운문사)와 가슬갑사 등에 머무를 때 진평왕이 국사를 논하기 위해 자주 찾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무적숲은 여름 휴가철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피서지로 둔갑했다.


    ◆ 교통편 & 먹을 곳

    - 언양서 대구행 완행버스 오전 9시에 출발

    부산 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3200원. 50분 소요. 언양버스터미널에서 동곡 경유 대구행 완행버스를 타면 출발지인 신원삼거리까지 갈 수 있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운행. 코스 종착지 임당리에서는 오후 5시10분, 오후 7시30분 등에 동곡행 버스(동곡버스정류소 054-372-3881)가 있다. 하지만 언양행 시외버스 막차가 동곡에서 오후 5시, 운문면 소재지인 대천리에서 오후 5시1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임당에서 오후 5시1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도 놓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적어도 오후 4시 전후까지는 종착지에 도착해 운문면 대천리까지 걸어가거나(약 20분 소요) 대천 개인택시(054-371-6997)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8000원.

    자가용 이용 시에는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35번 국도를 타고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언양교차로에서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덕현삼거리에서 청도 방면으로 69번 지방도를 탄다. 운문령을 넘고 삼계리마을을 지나면 신원리 문명분교 앞에 도착한다.


    # 금천면 임당리 김씨고택

    - 사랑채에서 안채 감시, 독특한 내시 집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8코스의 종착지인 경북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에는 흔히 보기 어려운 특이한 고택이 있다. 바로 중요민속자료 제245호로 지정된 '청도 임당리 김씨고택(사진)'이다.

    마을의 중심에 해당하는 위치에 자리 잡은 이 조선시대 가옥은 궁중 내시의 신분으로 통정대부 정3품의 관직에까지 올랐던 이색적인 내력을 지닌 김일준(金馹俊)이라는 인물이 만년에 낙향해 건립한 집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 임진왜란 전부터 400여 년간 내시가계가 이어왔다고 알려져 있지만 김일준이라는 인물이 정확히 어느 시대의 인물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강희 이십오년 병인 윤사월'이란 연기가 표시된 기와가 사용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나라 강희제 20년, 즉 1685년 전후로 예상할 수 있지만 건물의 전체적 구조는 19세기 양식을 취하고 있어 적어도 이마저 분명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19세기 초반에 건립됐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총 7동으로 된 김씨고택은 안채(6칸), 사랑채(4칸), 중사랑채(7칸), 큰고방채(4칸), 소고방채(4칸), 대문채(5칸), 사당(3칸)으로 구성돼 있는데 배치가 다소 특이하다. 대문에서 사랑마당을 거쳐 안마당으로 출입하는 중문까지 모든 통과 공간을 사랑채에서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일반 사대부 저택보다 한층 더 엄격하게 내외공간이 구분돼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랑채에서 집 안팎의 출입, 특히 안채의 출입을 철저히 관리(감시)할 수 있게 돼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내시가 집 주인이었음을 감안하면 어쩌면 이같은 엄격함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랑채의 마루를 두르고 있는 목판마다 보통 사람의 양쪽 눈 간격 정도의 거리를 가진 구멍이 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 구멍으로 집주인은 감시의 눈을 번득였을까. 이 고택에 현재 거주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소란스럽지 않게 조용히 둘러볼 수는 있다.


    # 시민 개척단원 홍선화 씨

    - "아름다운 길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걸으면서 그동안 살아온 내 삶의 길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도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행복해져요. 행복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것 아니잖아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행복이지요."

    본지 둘레길 개척단에 시민단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홍선화 씨(47). 그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둘레길을 걷다 보면 삶의 의욕이 샘솟는다고 말한다. 코오롱스포츠 남포점 대표로서 아웃도어 의류 및 장비 판매업을 하는 홍 씨이지만 사실 부산의 웬만한 산악인이라면 알 만한 여류 산악인이기도 하다. 20대 중반까지 서울에 살 때는 북한산 인수봉 등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암벽타기에 매진했다. 또 부산에 정착한 후에는 낙남정맥과 낙동정맥 등 주요 산줄기 종주를 거뜬히 해냈을 정도로 산행에는 일가견이 있다.

    그런 그가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의 제1코스 답사 때부터 지속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걷는 것이 가져다주는 행복 때문이다. 홍 씨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잖아요. 그런데 아주 천천히 걷는 둘레길은 그런 속도전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휴식처입니다. 맑고 청아한 공기를 마시고 숲의 소리를 들으며 걸을 때 비로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죠. 모르고 있던 새 길을 개척하는 보람은 덤이고요"라고 말한다. 그는 길을 걷다가 간혹 쓰레기나 빈병이 보이면 말없이 주워서 배낭에 넣는다. 묵묵히 '착한 걷기, 행복한 걷기'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GPS·동영상 http://www.kookje.co.kr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운문면 신원리 솥계마을의 야철지로 예전에는 솥을 구워낸 가마터의 자리이다. 지금은 밭으로 변해 세월의 무성함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신원리의 바깥 당산나무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당신으로 모시고 있다. 안당산 나무는 국시당으로 마을 뒤 뒷골 중턱에 노거수인 참나무로 나라의 국운과 안녕을 기원하는 곳이다.

    국시당의 당산나무를 보기 위해 거치는 곳으로 신원마을의 전경과 복호산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

    용신소로 신원천에 용의 머리가 물을 마시고 있는 형상의 바위이다. 이마을에서는 용신웅덩이라 하였다.

    새마을 동산으로 1972년도에 박정희대통령이 이마을에 찾아 왔다는 내력과 박통나무등 다양한 볼 거리를 제공한다.

    새마을 동산의 새마을정과 새마을연못

    방음리 말음마을에 들어서면 영담스님의 한지미술관과 만난다. 입장료2000원

    막바우골의 노루귀로 봄이 성큼 다가 왔는 것을 볼 수 있다.

    막바우골의 이끼게곡으로 찾는 사람이 없어 한적한 계곡이다.





    운문면 방음리 말음마을에서 금천면 임당리로 넘어 다닌 옛길의 만당으로 지형도상에는 정거고개로 나와 있는데 임당리 노인분에게 여쭈어보니 그곳을 쇠(소)등이라 이야기를 하신다. 임당리로 내려 오는 모든능선에 이름이 있는대 그곳이 쇠등이 내려 오는 능선이고 정거등은 마을뒤의 긴 능선을 말씀하였다. 산길은 옛길 그대로로 조금만 손질하면 둘레길의 백미가 될 수 있는 멋진 코스가 될 것 같다.


    임당리의 고가로 내시집으로 불리는 임당리 김씨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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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교산&그너머 <718> 제7코스 : 청도 삼계리 나선폭포 ~ 운문사

    개울 건너 솔밭길 지나 아, 벌써! 운문사


     
    '명산(名山)에 대찰(大刹)'이라고 했던가. 영남알프스에는 그 넓고 깊은 자락에 어울릴 만큼이나 이름난 천년고찰들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 특히 양산 통도사, 밀양 표충사, 청도 운문사는 영남알프스를 대표하는 3대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이번 주에 걷게 되는 제7코스는 이 가운데 하나인 청도 운문사(雲門寺)를 찾아가는 길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양바위 앞 운문천을 건너고 있다. 왼쪽의 암봉은 복호산이다. 운문사 가는 길은 높낮이 없는 쉬운 길 . 그래서 한껏 여유를 부리며 갈 수 있다.
    '운문사'라는 이름이 전해주는 '울림'은 결코 간단치 않다. 한 신승이 진흥왕 21년(560년) 대작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이 절은 원광법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일연 스님 등 우리 역사에 커다란 자취을 남긴 스님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또 현재는 국내 최대의 비구니 승가대학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200여 명의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부처님의 법과 진리를 터득하고, 나아가 계도중생의 뜻을 펼치기 위해 일과 공부를 구분짓지 않고 조용히 용맹정진하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전 문화재청장)는 "운문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비구니 학인스님들이다"라고 했다. 오늘날 운문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손꼽히는 것도 바로 이 학인스님들의 새벽 예불 광경이다. 수백 명 스님들이 함께 새벽을 여는 낭랑한 염불소리와 절제된 행동은 '더할 것 없는 경건함' '모자랄 것 없는 장엄함'의 극치다. 그 외에도 운문사가 주는 '울림'은 수없이 많다. 그래서 가슴 떨리는 길이다.


     


    40m 직벽 나선폭포 거쳐 천년고찰까지 14㎞ 구간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운문사로 가는 제7코스는 평지에 자리 잡은 대가람을 찾아가는 길답게 줄곧 평편하고 쉬운 길이다. 그래도 어쩐지 중간에 실컷 딴청도 부려 보면서 최대한 느리게 걸어보고 싶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급하게 운문사로 가면 정갈하고 평온한 절집의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서일까.

    길을 걷는다는 것은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많이 느리지만 그만큼 꼼꼼하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걷는 길은 그 길이 내뿜는 숨소리를 들으며 가는 '호흡의 길'이요 비로소 '길과 하나 되는 길'이다.

    출발지는 제6코스 종착지였던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 칠성가든 앞이다. 배너미계곡 중간에 숨어 있는 나선폭포의 웅장한 모습을 보고 출발지로 되돌아온 후 운문사로 향하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코스를 살펴보면 칠성가든~천문사 입구~나선폭포~천문사 입구~성황당~수리덤계곡 입구~통점마을 당산나무~신원 삼거리~방지초등 문명분교 3·18독립운동기념관~양(용)바위~신원 삼거리~운문사 버스터미널~솔바람길~운문사 순이다. 총 길이 14㎞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휴식 등을 포함하면 5시간 정도 걸린다.

     
      배너미계곡 기슭에 자리 잡은 나선폭포의 위용.
    칠성가든 앞에서 북쪽에 보이는 천문사(天門寺) 입석을 보고 천문사로 향한다. 천문사 방향으로 가면 눈앞에 우뚝 솟은 2개의 뾰족한 암봉이 보이는데 바로 쌍두봉이다. 천문사 일주문 못 미쳐서 '등산로' 표시를 따른다. 잠시 후 하천을 건너지 말고 왼쪽으로 진행하면 천문사 후문이다. 중수 공사가 한창인 천문사를 일별한 후 다시 나와서 왼쪽을 보면 담장 옆으로 길이 보인다. 곧바로 쌍두봉 등산로 갈림길이다. 오른쪽 길을 택해 배너미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임도처럼 넓은 계곡길이 호젓하다. 15분쯤 가면 작은 돌무더기가 서너 개 있는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배너미재를 넘어 학소대계곡 학심이골 등으로 갈 수 있지만 나선폭포는 오른쪽 길로 5분가량 올라야 있다.

    단일 폭포의 높이로만 따지면 영남알프스의 수많은 폭포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나선폭포는 높이 40m가 넘는 직벽 폭포다. 아직까지 고드름이 폭포에 매달려 있어 이곳은 여전히 겨울이라고 강변하는 듯하다. 2002년 이후 영남 지역의 대표적인 자연 빙벽훈련장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원천 끼고 도는 낮고 평편한 길에서 여유 만끽 

     
      운문사 들머리 마을인 신원리 본동의 흙벽돌 골목길.
    다시 천문사 입구 69번 지방도로까지 돌아오는 데는 20분 정도 걸린다. 사실 제7코스는 나선폭포 왕복 구간을 제외하면 운문사 입구까지 대부분의 구간이 아스팔트 도로를 따르게 된다.

    69번 지방도를 타고 청도 운문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수리덤계곡 입구를 지나 10분쯤 가면 왼쪽 산자락에 이름 없는 바위가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3분 후 왼쪽에 알프스펜션이 보이는데 그 앞 신원천 풍경이 빼어나다. 너럭바위와 이름 없는 소(沼)가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물은 걷는 이의 가슴 속까지 청량감을 전해준다. 차를 타고 가면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풍경이다. 운문면 사무소와 삼계리마을 주민이 봄철 환경정화운동을 펼치며 상춘객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삼계리마을에서 통점마을로 가다가 만난 신원천의 맑은 무명소.
    통점마을 회관 앞까지는 15분 정도 걸리는데, 마을 회관 맞은편 목향공방 뒤편에 수백 년 된 키 큰 소나무 예닐곱 그루가 보인다. 18세 때 시집 와서 평생을 살았다는 한 70대 할머니는 "우리 동네 최고 어른"이라며 당산나무를 가리킨다. 그는 또 "이 동네는 아무리 땅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아. 그래서 신원천 물로 생활을 했지. 우물이 없는 마을인 셈이지"라며 마을의 특징을 설명해 준다.

    당산나무를 가까이서 본 후 다시 주 도로를 따라가면 왼쪽에 웅장한 암봉이 보인다.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복호산(伏虎山)이다. 차도 우측에 잔디가 곱다. 느릿하게 걷기에는 딱이다. 운문사와 청도읍 방향으로 갈리는 신원삼거리까지는 통점마을에서 25분 걸린다. 운문사는 왼쪽으로 2㎞ 정도 가야 하지만 일단 오른쪽으로 간다. 방지초등 문명분교에 있는 '운문면 3·18독립운동 기념관'에 들르기 위해서다. 1919년3월18일 청도 최초의 현대식 사립학교인 문명학교(현 문명분교) 교직원과 학생, 졸업생들이 주도해서 펼친 청도 운문면 일대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해 세운 시설이다. 평소 문은 잠겨 있지만 학교 측에 요청하면 기꺼이 문을 열어준다.

    ◇ 포근한 신원리 흙담 골목 지나 옛 양반 놀이터도 구경

     
      운문사 매표소를 지나면 이 절의 명물인 '솔바람길' 속으로 빨려든다.
    기념관을 둘러본 후, 잠시 학생 수 8명뿐인 시골학교 교정에서 우뚝한 복호산을 바라본다. 신선봉으로 불리기도 했던 복호산의 모습이 참으로 웅장하다. 1908년 문명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이 유서 깊은 학교에 다닌 모든 학생들도 저 웅장한 암봉을 보면서 큰 뜻을 품었으리라.

    교문에서 도로를 건너 마을회관 왼쪽 골목길로 들어선 후 '용바우 민박'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따라가 본다. 흙을 구워 만든 붉은색 흙벽돌과 황토를 적절히 섞어 쌓은 흙돌담길이 전통있는 향촌의 풍모를 자아낸다. 골목 끝 운문천 변에서 건너편 물가 왼쪽 바위가 양반들이 소풍놀이를 즐겼다고 해서 양바위, 또는 용을 닮았다고 해서 용바위로 불리는 바위다. 주변 또 다른 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유난히 눈에 띈다. 차를 타고 운문사를 찾을 때는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절경이다.

    다시 골목길을 돌아 나와 신원삼거리에서 복호산 등산로 입구 무덤 아래 불망비(不忘碑)를 보고 운문사로 향한다. 두 그루의 낙락장송을 지나는 데 멀리 정면에는 억산 깨진바위가 눈에 확 들어온다. 주변에 미나리 재배 하우스가 많다. 운문사 버스터미널에서 좀 더 가면 매표소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매표소를 통과하면 그 유명한 운문사 송림이 반겨준다. 차도 오른쪽으로 '솔바람길'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솔길이 나 있다. 300~400년 된 소나무 수천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사이로 오른쪽 호거대를 타고 넘어온 봄바람이 싱그럽다. 잠시 휴대전화를 꺼 놓아야 할 것 같은 길이다.

    ◇ 전국적 명성의 운문사 '솔바람길'에도 봄기운 성큼

     
      운문사 극락교와 이목소(離目沼).
    솔바람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운문사 절 직전 주차장에 닿는다. '호거산 운문사(虎距山 雲門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범종루까지 가는 길 오른쪽은 높지도 낮지도 않아 더욱 정갈한 느낌이 드는 돌담, 왼쪽에는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농사짓는 텃밭이다. 길 양옆으로 벚나무가 도열해 있다. 4월 중순이면 소리 없이 핀 벚꽃이 꽃비를 휘뿌릴 것이다. 그런데 이 돌담은 1980년대 초반 비구니학인스님들이 계곡에서 주워 온 돌을 골라서 쌓은 담장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어서도 안된다'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운문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쏟은 땀과 정성이 깃든 담장이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했다는 이 절 범종루를 통과하면 500년 넘은 반송(盤松·천연기념물 제180호)이 우선 반겨준다. 매년 봄 가을로 막걸리 25말을 마신다는 유명한 처진소나무다. 삼월삼짇날(음력 3월3일)에 막걸리 드리는 행사를 볼 수 있다. 7개의 국가지정 보물을 간직하고 있기도 한 절인 탓에 순례객들이 간과한 채 잘 못 보고 지나가는 곳이 있다. 비로전 (오래 된 대웅보전) 서쪽 계곡을 가로지르는 극락교와 그 아래 웅덩이인 이목소다. 사실 운문사에서 무언가를 보겠다는 마음은 욕심이다. 그저 호젓한 분위기에 젖어 본다는 느낌이면 그만이다. 일반인은 건널 수 없는 극락교와 그 아래 이목소는 운문사의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그만인 장소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보양국사와 서해 용왕의 아들 이목에 얽힌 전설을 떠올리면서 남쪽 멀리 우뚝한 운문산을 바라본다. 산과 산 사이로 구름문이 열렸다.


    # 떠나기 전에- 이목소 전설

    - 서해 용왕 아들과 보양국사의 우정과 의리 전해져

    운문사 경내 극락교 아래 이목소(離目沼)가 있다. 옛날에는 사방 100m가 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큰 연못이었다고 알려진 이 야트막한 웅덩이에는 10세기 중반 운문사를 중창한 보양국사와 서해 용왕의 아들 이목(離目)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일연 스님이 이 절에서 집필을 시작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다. 보양국사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서해 용왕의 초청으로 용궁을 방문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지면서 용왕이 자신의 아들 이목을 데리고 가 달라는 부탁을 하자 보양국사는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용의 모습을 한 이목은 이 연못에서 지내며 스님의 사찰 중창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 해 심한 가뭄으로 인근 주민들의 기근이 극에 달하자 스님이 이목에게 부탁해 비를 내리게 했다. 그러나 정작 하늘의 천제가 격노한 것이 문제였다. 비를 뿌리는 것은 하늘의 조화인데 감히 바다 용왕의 아들이 이를 거슬렀다는 것이다. 천제는 보양국사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이목을 벌하려 했다. 보양 스님은 진짜 이목을 툇마루 밑에 숨게 하고 법당 앞의 배나무(梨木)를 가리켰다. 이에 천제의 사자는 배나무에 벼락을 때리고는 하늘로 돌아갔다. 골짜기 연못에 사는 큰 뱀을 일컫는 '이무기'라는 말도 바로 이목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으로 전설같은 이야기다.


    # 교통편 & 먹을 곳

    - 언양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버스 오전 9시에 출발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 운행. 3200원. 50분 소요.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 버스를 타면 삼계리까지 갈 수 있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출발. 운문령 너머 삼계리 정류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운문사 앞 버스정류소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후 2시30분, 5시25분(막차) 등에 있다. 40분 소요. 3000원.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언양교차로에서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덕현삼거리에서 청도 방면으로 69번 지방도를 탄다. 운문령을 넘으면 삼계리 칠성가든까지 금방이다.

    음식점 겸 찻집도 한 곳 소개한다. 운문사 매표소와 버스정류소 사이에 있는 '어화벗님(054-372-6638)'이다. 사진 작가인 배춘옥 씨가 6년째 운영중인 이 집은 손칼국수와 녹두감자전 등이 맛있다. 다양한 야생화 차와 동동주도 맛볼 수 있다. 2층 모서리 창가 자리는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와 인기 있는 테이블. 배씨가 직접 키운 봄꽃도 예쁘다. 운문사 스님들도 자주 들른다.


    # 운문사 터 잡은 호거산은 어디?

    - 청도 사학계 "호거대가 바로 호거산"

     
      운문사 매표소 부근에서 바라본 호거대.
    둘레길 제7코스의 핵심은 역시 종착지인 천년고찰 운문사(雲門寺)다. 그런데 범종루에 걸려 있는 현판에는 '운문산 운문사'가 아니라 '호거산(虎距山) 운문사'라고 돼 있어 호기심 많은 순례객이 머리를 갸웃거리곤 한다. 공식 지형도 그 어디에도 없는 이름인 호거산. 한자의 뜻 대로만 보면 '호랑이가 걸터앉은 모양의 산'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 문제를 놓고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정확한 답은 없다. 다만 이 문제를 풀기위해 고심하고 공부하다 보면 운문사는 물론 영남알프스 일대를 좀 더 깊이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청도 지역 향토사학계의 의견과 고지도 등에 나타난 호거산의 위치 등을 종합해 간략하게나마 고찰해 본다.

    우선 호거산 위치에 대한 여러 주장들부터 살펴보자. 절의 남쪽에 있는 가장 높은 산인 현재의 운문산(1195m)을 원래의 호거산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고, 억산과 범봉 일대를 통틀어 일컫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내원암 사리암 청신암 등과 함께 운문사의 4대 부속 암자이면서 운문사 창건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모암(母庵)으로 알려진 북대암이 자리잡은 북동쪽의 복호산(伏虎山·678m)과 지룡산(池龍山 또는 地龍山·659m)을 합쳐서 호거산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운문사 매표소 오른쪽(서쪽) 산등성이 위에 커다란 바위가 얹혀 있는 모습이 보이는 '호거대(일명 장군바위 등선바위 등심바위·516m)' 주변 일대 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각 주장마다 나름대로의 근거도 있다.

    하지만 향토사학계의 해석과 김정호 작 대동여지도 등에 나타난 호거산위치 등을 고려할 때 '호거대=호거산' 설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우선 대동여지도를 살펴보자.그런데 먼저 주목할 것이 바로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운문산의 위치다. 고산자 선생은 지동에서 운문산의 위치를 현재의 운문산과 판이한 곳에 표시했다. 가지산과 고헌산 사이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뻗은 큰 산줄기 상의 높은 산으로 표시한 것. 즉 현재 문복산의 위치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산에서 서쪽으로 흐른 지능선은 현재의 옹강산 줄기로 보이고 그 맥은 큰 하천 두 개가 합수되는 지점, 즉 현재의 신원천과 운문천이 만나는 운문면 신원리 신원교 인근까지 뻗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합수지점 서쪽의 능선상에서 작은 글씨로 호거산을 표시했다. 현재의 운문천 서쪽 자락 능선이다. 또 호거산 표기 지점의 동쪽을 흐르는 운문천 줄기에 '약야계(若耶溪)'가 표시돼 있다. 현재도 운문사 서쪽 하천을 약야계라고 부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국 고산자 김정호는 호거대 또는 그 주변을 호거산으로 봤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청도 향토사학회장 겸 경북 향토사학회장인 박윤재 선생도 호거산의 위치를 현재의 호거대라고 단언한다. 박 회장은 "운문사 절 서쪽에 호거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호거산이라는 이름은 신라 때 원광법사가 중국 유학을 다녀온 후 운문사에서 주석을 할 때 중국 소주의 호구산(虎丘山) 이름에서 음을 따 온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가 걸터 앉은 모습의 산'을 뜻하는 '호거산'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광법사는 중국 유학시절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던 소주(蘇州)의 호구산에 들어가 그곳에서 수도하며 평생을 마칠 생각을 한 바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청에 못 이겨 펼친 강론에 청중들이 감화되는 것을 보고 세상에 나가 중생계도를 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전한다. 그만큼 높이 37m의 비록 아주 낮은 언덕 같은 산이지만 호구산은 원광법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또 하나 현재 운문사 약야계도 소주 호구산과 연관돼 있다. 오왕 합려가 죽은 후 제위에 오른 부차가 아버지의 무덤을 만든 곳이 호구산이고, 부차는 월나라 출신 미녀 서시에게 빠져 결국 패망의 길을 걷는 인물이다. 서시는 호구산에서 오왕 부차와 자주 노닐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약야계'란 범려가 서시를 발견한 절강성 소흥의 아름다운 하천 이름이다. 그 약야계가 운문사 옆 하천의 이름이 됐다. 우연의 일치일까.

    사실 '호거대=호거산' 설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김정호 선생도 틀릴 수 있기에. 다만 이런 고찰을 통해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이야기가 더욱 풍요로워 질 수는 있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영남알프스 둘레길 7코스 출발점으로 천문사를 입석을 보며 나선 폭포를 보기위해 따라간다.

    천문사 방향으로 들어가면 형제 용의 전설이 서려 있는 쌍두봉이 정면이다.

    배너미게곡으로 따라간다. 멀리 학심이계곡으로 넘어가는 배너미고개가 보인다.


    현재 불사가 진행중인 천문사 경내

    나선폭포로 영남알프스에 속해 있는 폭포로 한겨울철에는 부산경남 클라이머에게는 빙벽의 기쁨을 맛보게하는 곳이다.

    운문사로 향하는 도로상에서 보이는 기암

    신원천에서 만나는 작은 폭포와 소로 물이 맑기로 거울같이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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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점마을의 당산나무로 이마을 최고의 어른이라 이야기를 하며 여러기의 소나무가 자라 있다.

    통점마을의 노거수

    운문면 일원의 3.18독립만세운동으로 문명분교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청도군에서는 사학재단으로는 1호로 개교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산골의 학교이다. 8명의 전교생이 현재 수업을 하고 있다.

    3'18운동의 자료를 모아 놓은 곳으로 문명분교 안에 있다.

    운동장에서 본 복호암으로 신원에서는 복호암의 정기로 문명초교에서 이름난 분들이 많이 나왔다고 자랑을 하신다.

    신원리 염창마을의 돌담길로 운치가 있다. 대부분 돌담은 솥을 구운 가마터의 흙으로 쌓아 놓았다.염창마을은 삼국시대때는 화랑들의 식료품창고이며 그 후 운문사가 번창을 하였을때 운문사의 해산물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한다.

    양바위로 양반들이 물맑고 경치 좋은 이곳에서 놀았다하여 부르게 되었는데 근래에 와 용바위로도 부른다 한다. 

    양바위를 보고 운문천을 건너는 취재팀 뒤로 갈대가 무성하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다하여 복호암으로 부르고 있다.


    호거대, 등선바위 장군봉 덧니바위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 일대가 "호거산"이라 하며 "호거산 운문사"란 사찰 이름이 생겼다 한다.

    운문사 매표소로 소나무 숲길이 운치 있는 솔바람길이다.



    운문사 를 들어서는 문으로 일주문은 따로 없다.

    매년 막걸리를 마신다는 처진 소나무와 만세루

    처진소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 수령은 500년으로 보고 있다.

    이목소로 극락교 아래에 있다 현재는 둘레와 깊이가 형편없는 하천이지만 이목소가 메워지지 이전에는 넓고 검푸른 소 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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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교산&그너머 <717> 제6코스 : 경주 심천~청도 삼계리

    계살피계곡 비경 바라보며 '세속오계' 가르침 되새기네

     

    가설갑사 절터 옆의 계살피계곡으로 '가설갑사옆 계곡'이란 뜻을 가졌다. 삼계리 마을 부터 이어지는 계곡은 자연의 풍광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여과 없이 보여 주는 문복산의 주 계곡이다. 

     


     



    경주와 청도 사이에 솟아 있는 문복산(文福山·1014m)은 한때 영남알프스 권역에 포함되지 못한 채 '설움'을 겪었다. 그 이유를 명확히 말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일부 수도권 산꾼들이 언제부턴가 가지산 운문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재약산 등 7개 봉우리만 '영남알프스'로 대우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그들은 운문령 동쪽과 북쪽에 있는 해발 1000m급 봉우리인 고헌산(高獻山·1034m)과 문복산은 영남알프스와는 별개의 봉우리로 취급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는 문복산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의 인식일 뿐이다. 현재 영남의 산꾼들 가운데 문복산을 영남알프스 산군에 포함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 당당히 1000m가 넘는 높이 면에서 뿐 아니라 이 산이 꼭꼭 숨겨두었던 계살피계곡의 깊고 아름다운 비경(秘景) 때문에라도 당연히 영남알프스에 포함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신라 삼국통일의 주체 세력이었던 화랑도의 윤리적 근간이자 실천이념이었던 세속오계(世俗五戒)가 바로 이 산에서 시작됐음을 안다면 과연 이 산을 그렇게 무시할 수 있을까. 영남알프스의 그 어떤 산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역사성까지 갖춘 산이 바로 문복산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는 문복산의 북쪽에서 서쪽 자락을 휘돌아 가는 길이다. '신라의 정신'을 넘어 우리 민족의 중요한 정신적 계율로 승화된 세속오계의 발상지를 찾아가는 길이면서 솔 향기 그윽하고 진달래 군락 지천인 걷기 좋은 숲길을 따르는 길이기도 하다. 또 지금은 폐허나 다름없는 가슬갑사터를 지나며 1400여 년 전 바로 이곳에서 원광법사가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를 전해주던 장면을 상상해 볼 수도 있는 길이 바로 둘레길 제6코스다.

    ■ 삼계리재 넘어 가는 13.5㎞ 4시간이면 충분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는 문복산과 옹강산 사이의 삼계리재를 통해 경주에서 청도로 넘어가는 청정 숲길을 걷는 맛이 일품인 구간이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낙엽깔린 길을 따라 삼계리재에서 수리덤계곡 쪽으로 내려서고 있다.
    제5코스의 종착점이었던 경북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심천마을에서 출발, 심원사를 거쳐 삼계리재(또는 심원재)를 넘어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에 닿는다. 삼계리마을에서는 계살피계곡 왼쪽 길을 따라올라 세속오계 발상지인 가슬갑사터를 들렀다가 계곡 깊숙이 자리 잡은 폭포를 보고 나서 계살피계곡을 건너 우측길을 따라 다시 삼계리마을 칠성슈퍼 앞으로 내려선다. 총 길이 13.5㎞에 걷는 시간은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당산나무와 정자가 나란히 서 있는 일부리 심천마을에서 남쪽으로 길을 잡는다. 경로당을 지나고 3분쯤 가면 수령 500년 된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반긴다. 포장도로를 따라 좀 더 남쪽으로 가면 5분 후 우측 논바닥에 놓인 길이 4m 안팎의 바위가 보인다. 일부리지석묘다. 받침돌은 보이지 않는다. 지석묘를 선사시대 유적으로 분류한다고 볼 때, 관리가 참으로 부실하다는 느낌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10분쯤 남쪽으로 이어가면 심원저수지 둑에 닿는다. 이 저수지는 산내면 측에서 동창천의 생태보존 및 청정지역화를 위해 일부러 어류 방류를 한 곳으로 낚시 투망 등 일체의 어획 행위가 금지돼 있다. 반짝거리는 물살을 보며 심원지 오른쪽을 따르는 길은 운치가 그만이다. 멀리 왼쪽에 문복산 자락의 서담골봉이 보인다.

    ■ 천년고찰 심원사 지나 아늑한 숲길로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저수지 최상류에서 왼쪽으로 심원교를 건너면 천년고찰 심원사(深源寺). 한때는 신라의 큰 절이었고 심천마을 일대의 땅 대부분이 이 절 소유였다고 알려졌을 정도지만 지금은 작은 암자 같은 분위기다. 스님은 출타했는지 인적조차 없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다시 심원교를 건너와 갈림길에서 왼쪽 계곡으로 들어선다. 포장도로를 끝내고 숲길로 들어서게 되는 지점이다. 상수원보호 팻말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니 아담한 크기의 심원사 부도밭을 지난다. 3명이 나란히 걸을 만한 너비의 계곡길이 이어진다. 5분 후 계곡을 건너는 길과 우측길이 나뉘는 지점에서 계곡을 건너지 말고 우측의 옛길을 따른다. 진달래나무가 지천이다. 4월쯤이면 이곳도 진달래로 뒤덮일 것이다. 길 왼쪽의 계곡에는 크고 작은 소와 폭포가 이어진다. 5분 후 만나는 갈림길인 사거리에서는 곧바로 직진, 계곡을 계속 따라 오른다. 바닥에 깔린 낙엽이 무성한 길을 따라 여유롭게 20여 분 오르면 잘 알려진 삼계리재다. 왼쪽 능선길은 서담골봉(837m)을 거쳐 문복산으로, 오른쪽 능선은 옹강산(832m)으로 이어진다. 심천마을에서는 이 고개를 심원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개를 넘어 내리막을 탄다. 삼계리 방향이다. 편안한 길 양옆으로 낙엽이 수북하다. 길 자체의 상태와 주변 분위기가 전형적인 숲길인 탓에 개척단원들은 "영남알프스 속살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청도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의 세속오계 상징물.
    20분쯤 내려서면 널따란 계곡. 일명 수리덤계곡이다. 큰 계곡과 만나는 곳 오른쪽에 산사면 중간에서 흘러나오는 샘터가 있다. 누군가 설치해 놓은 파이프를 타고 흘러내린 샘물을 마셔본다. 달콤하고 시원해 가슴 속까지 청량감이 전해진다. 계곡을 건너면 삼계리주말농원 권역이다. 임도길 수준으로 넓어진 길을 따라 한 차례 더 계곡을 건너고 '끈티서야영장'을 지나면 장승과 돌탑 숙소가 곳곳에 설치된 주말농원. 이곳을 지나 다리를 건넌 후 펜션단지를 통과하면 69번 지방도로상의 수리덤계곡 입구에 닿는다. 본격적으로 청도군 지역에 들어선 셈이다.

    왼쪽 삼계리 방향으로 아스팔트길을 따르는데 쌍둥이처럼 뾰족하게 솟은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쌍두봉이다. 삼계리마을 주민은 형제봉으로도 부르는데 산꾼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암봉이기도 하다.

    ■ 원광법사 머물던 가슬갑사터에 비석만 1개

     
      가슬갑사터로 오르는 길에 발견한 문복산 연리목.
    삼계1교를 지나면 주민들이 복원해 새로 단장한 삼계리성황당이 있다. 신작로가 뚫리기 전에는 깊은 산골이었을 이 마을 주민들이 안녕을 기원하던 토속 신앙의 흔적이다. 그 우측에는 해발 256.3m를 표시한 국가시설물인 '수준점'이 보인다. 행정구역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속하는 삼계리마을은 3개의 골짜기가 모이는 곳이다. 문복산의 계살피계곡, 쌍두봉 서쪽의 배너미골, 그리고 운문령 방향의 생금비리 등 3개의 골짜기 물이 이곳에서 모여 신원천을 이룬 후 운문호로 흘러든다.

    성황당에서 70m쯤 더 가면 계살피계곡 입구. 가슬갑사터로 가기 위해 지방도를 버리고 왼쪽 길로 들어선다. 왼쪽에 세속오계 정신을 기린 상징물이 보인다. 화랑도 2명의 동상이 세속오계가 새겨진 돌을 떠받치는 듯한 모습이다. 곧바로 삼계리경로당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등산로 입구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이정표는 '가슬갑사터 1.8㎞, 35분'을 표시하고 있다. 3분 후 갈림길. 왼쪽은 능선길이고 오른쪽 길은 계곡을 따르는 길이다. 오른쪽 길로 간다. 계곡을 끼고 완만한 오르막을 15분쯤 가면 두 그루의 소나무가 서로 엉겨붙은 일명 '문복산 연리목'이 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모양의 나무다. 너덜지대를 지나 10분쯤 더 가면 7세기 초 신라 진평왕 시대에 원광법사가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를 전한 곳으로 알려진 가슬갑사터를 만난다. 하지만 높이 50㎝가량의 표지석만 있을 뿐, 주변은 폐허나 다름없다. 절터 앞 계곡은 더없이 깊고 아름답건만 정작 절터는 황량하기만 하다.

    ■ 청정 계살피계곡에 이름 없는 폭포 즐비

     
      계살피계곡 가슬갑사터 위에 있는 무명폭포.
    절터를 지나자마자 우측의 놀기 좋은 너럭바위를 비롯한 계살피계곡의 비경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길이 우측으로 살짝 휘어지는 곳의 작은 폭포도 멋지고, 이곳에서 조금 더 가서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계곡 안으로 들어서면 만나는 폭포도 그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영남알프스에 정통한 이창우 둘레길 개척단장은 "이름을 얻지 못한 폭포"라며 아쉬워한다. 맨 위 폭포 왼쪽으로 20m 정도만 오르막을 치면 다시 조금 전 폭포 밑 갈림길에서 헤어졌던 주 등산로와 만난다. 우측으로 10분쯤 가면 큰 갈림길. 해발 540m 안팎인 이곳에서 계속 직진하면 문복산 정상으로 향하게 되지만 개척단은 우측으로 계곡을 건너 내리막을 탄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주 등산로 역할을 했던 간이 임도다. 묵은 길 바닥에 잔돌이 많아 걸을 때 주의해야겠다. 35분 정도면 제6코스의 종착점인 삼계리 칠성가든 앞 69번 지방도로에 닿는다.


    ◆ 먹을 곳

    - 칠성가든 오리양념불고기 매콤한 맛 일품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의 종착지에는 칠성가든(054-371-5287)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슈퍼마켓과 음식점 민박집까지 겸하고 있는 이 집은 사실 영남알프스를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심 좋고 맛도 좋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매콤한 맛의 오리양념불고기(사진·3만5000원)와 산채비빔밥 된장정식(5000원) 등이 특히 인기있는 메뉴다. 밑반찬으로 계절에 맞는 산나물도 많이 올라온다. 요즘에는 봄나물인 냉이 달래도 보인다. 둘레길을 코스를 걷고 나서 시장기를 달래고 이야기꽃을 피우기에도 딱 좋은 곳이다. 산에서 직접 채취한 고로쇠 수액도 판매한다.

    많은 사람들이 '칠성가든'이라는 이름에 대해 궁금해 하지만 사실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한다. 그저 17년 전 대구 칠성동에서 이곳으로 이주, 음식점을 시작할 당시 마땅히 지을 이름이 없어 전에 살던 동네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 교통편

    - 경주서 산내 들러 일부리행 버스 갈아타야

    부산 노포동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를 탄다. 새벽 5시30분부터 10분 간격 운행. 4500원, 50분 소요. 경주버스터미널에서 산내까지 간 후 일부리행 352번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산내행 350번 버스는 오전 6시, 6시30분, 7시15분 등 하루 28회 운행한다. 산내에서 일부리행 버스는 오전의 경우 6시20분과 7시40분에 출발하는 2대밖에 없다. 이 버스를 놓치면 산내 개인택시(054-751-5955)를 이용한다. 심천마을까지 1만2000원 안팎. 종착지인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마을에서는 언양행 버스를 탄다. 오후 2시40분과 5시40분(막차)에 있다.

    자가용의 경우 두 대 이상이 동행, 먼저 제6코스 종착지인 삼계리에 한 대를 주차한 후 나머지 차량으로 출발지로 가야 차량 회수가 쉽다.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향으로 가다가 석남사·밀양 방향 24번 국도를 탄다. 석남사 램프 못 미쳐 청도·산내 방향 표지판을 보고 빠져나간 후 69번 지방도를 타고 운문령을 넘으면 삼계리 칠성가든 앞에 닿는다. 삼계리마을에서는 69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가 운문댐 밑 삼거리에서 우측 경주 산내 방향으로 튼다. 20분쯤 가면 산내면 소재지 못 가서 우측으로 '외칠리·일부리' 표지판을 보고 진입, 다리를 건넌 후 좌회전하면 외칠리에 닿는다. 다시 우측으로 상록병원 일부리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심천마을에 닿는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GPS·동영상 http://www.kookje.co.kr


    # '세속오계' 전한 가슬갑사터 단상

    - 화랑 정신 발원지에 황량함만 감돌고…

     
      작은 비석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황량한 문복산 가슬갑사터.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에 굳이 문복산 계살피계곡에 있는 가슬갑사(嘉瑟岬寺)터를 포함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이곳이 신라 화랑들의 윤리적 강령이자 실천이념이었던 '세속오계(世俗五戒)'의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황폐한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계살피계곡이 품고 있는 비경을 보지 않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점이다.

    그래도 역시 첫 번째 이유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가슬갑사터는 한 마디로 황량하다. 과연 이곳이 삼국통일의 초석이 된 화랑들의 기본 이념이 발원한 곳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세속오계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발견되지만 특히 가슬갑사에서 원광법사가 추항과 귀산이라고 하는 두 명에게 계율을 일러 주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정확하게 전해진다. 그렇다면 가슬갑사는 도대체 어떤 절이었을까.

    6세기 중반인 560년(신라 진흥왕 21년) 한 신승이 대작갑사(지금의 운문사)를 세우고 주변에 대비갑사 천문갑사 소보갑사 가슬갑사 등 4개의 갑사를 더 세웠는데 이를 신라 5갑사(또는 5대갑사)라 불렀다고 전해온다. 이후 신라의 중요한 사찰로 자리 잡은 것은 물론이다. 그 중 하나인 가슬갑사는 서기 600년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당대 최고의 승려 원광법사가 대작갑사 중창 등을 마친 후 머무르며 수도했을 만큼 당시로써는 상당한 기풍을 지닌 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국 전란의 격화에 휘말려 절이 없어지고 난 후 여태껏 제대로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복원은 고사하고 절터만이라도 제대로 정비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개척단의 발길을 이곳으로 이끈 셈이다. 혹시 아는가.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더 많이 이곳을 찾는다면 관할 지역자치단체에서라도 나서서 조금이나마 정비를 할지.


    # 삼계리 쌍두봉과 두 마리 용 전설


    - 승천 못한 용의 한 서린 '형제봉'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6코스 종착지인 경북 청도군 삼계리마을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한 봉우리처럼 보이지만 상단부가 둘로 나뉜 암봉이 우뚝 솟아있다. 산꾼들은 이 두 봉우리를 묶어서 쌍두봉이라고 부른다. 조금 더 높은 봉은 해발 929m, 그 앞 낮은 봉은 862m다. 그런데 삼계리마을과 인근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이 두 봉을 '형제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오는 두 마리 용에 관한 전설 때문이다.

    먼 옛날 이 산 깊은 계곡에 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깊은 소(沼)가 있었다. 사람들은 거대한 구렁이 두 마리가 살고 있다며 접근을 꺼렸다. 그러던 어느해 춘삼월 가까운 마을에 살던 형제가 사냥이라도 해서 고기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산에 들어갔다가 늦어져 할 수 없이 노숙을 했다. 새벽녘 동생이 소변을 보기위해 잠이 깼는데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용 한 마리가 소에서 하늘로 솟구쳐, 구름 너머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마침 이 소리에 놀란 형도 잠에서 깬 순간 다시 두 번째 용이 날아 올랐다. 이 때 형제가 놀라 자빠지며 동시에 "용, 용이 승천한다"라고 소리쳤다. 이로 인해 두 번째 용은 하늘에 닿지 못하고 떨어졌다. 승천하지 못한 한이 너무 컸던지 용은 떨어지면서 거대한 꼬리로 산 정상부를 내리쳤다. 그러자 봉우리는 두 개로 쪼개졌고 사람들은 이후 승천한 형님 용과, 그러지 못한 동생 용을 빗대어 형제봉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좀 더 높은 봉이 형님봉, 그 앞 낮은 봉은 동생봉이 된 셈이다.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영남알프스 둘레길 6코스는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심천동 당산나무에서 시작을 한다.  여러기의 당산나무 쉼터에서 요즘 마을마다 정자를 만들어 노아 운치를 더해주는 것 같다.

    심천동마을의 500년된 느티나무로 보호수이다

    심원사로 둘레길의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우측 논 한가운데 작은 바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석묘이다. 지금은 지석묘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이 바위를 괴었던 지줏돌이 있었다하고 그 지줏돌을 빼내었다 한다. 그리고 논은 복토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니 우리 문화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심원소류지 뒤로 보이는 서덤골봉으로 문복산과 옹강산 그리고 산내읍을 잇는 아부터재로 연결된다.

    심원소류지 뒤로 보이는 잘록한 부분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고개이다. 구름재로 지금은 산길이 묻혀 있지만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삼계리재를 넘어 심원사 앞을 거쳐 구름재를올라, 숲고개를 넘어 산내읍이나 내친김에 당고개를 넘어 경주로 걸어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지금은 구름재가 문명의 발달로 그 기능을 잃은지 오래고 마을 사람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좌측 철탑이 있는 산으로 방매산이다.

    신라시대 때의 고찰로 현재는 불국사 말사로 심원사이다.


    삼계리재로 들어는 옆 계곡

    심원사의 부도밭

    심원재(삼계리재)로 올라가는 둘레길 옆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작은 소와 폭포가 조금 있어면 진달래가  분홍색 꽃잎을 피워 계곡수와 어울리면 장관을 연출 할 것 같다. 아마 이것이 둘레길의 매력이 아닐까?.

    고개 막바지에서 봄기운을 받으며  걷고 있는 둘레길 팀원

    일부리 사람들이 부를 때는 심원재로 부르고 삼계리에서 심천동으로 넘어 올때는 삼계리재로 부른다는 고개이다. 국립지리원 발행지도에는 삼계리재로 나와 있다. 이고개가 경주군 산내면과 청도군 운문면의 경계이며 둘레길도 경주 땅을 버리고 이제는 청도땅으로 들어는 순간이다.

    청도땅으로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수리덤계곡으로 서덤골봉 이뤈에 예전부터 수리가 살았다하여 수리덤으로 불리며 혹 서담골봉도 그 이전에는 수림덤골봉 도는 수리덤으로 불렸는데 그게 세월이 가면서 잊혀지거나 아니면 잘못전달 되어서 서담골봉으로 되지 않았나 쉽은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수리덤골안의 주말농원의 목가적인 풍경으로 지금은 예전에 없던 펜션이 많이 들어서 있다.

    삼계리 주민들이 힘을 모아 최근까지 내려 오던 전통문화를 다시 복원해 새로 단장한 삼계리 성황당이 이다. 신작로가 뚫리기 이전에는 깊은 산골이었을 이 마을 주민들이 안녕을 기원하던 토속 신앙의 흔적으로 안에 호랑이를 탄 산신령이 모서져 있다.

    화랑도의 발생지로 청도에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원광법서가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인 화랑도의 기본 이념이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삼계리에 도로 옆에 두개의 홍보물을 설치해 놓았다.

    화랑인 귀산과 추항이 세속오계를 받는 모습을 홍보물로 나타내어 놓았다. 

    연리목으로 가슬갑사터를 찾아가는 둘레길 우측으로 소나무 두그루가 신기하게도 둥근 원을 나타내며 서로 붙어 있다. 이 나무가 세솟오계를 밭았던 귀산과 추항의 모습일까?.

    원광법사가 귀산과 추앙에게 세속오계를 주었다는 가슬갑사터는 어떤 모습일까 ?. 가슬갑사터는 현재 청도군에서 열성을 다해 홍보하는 화랑도의 발상지에 비해 무방비로 방치를 해 놓은 상태이다. 표지석 외에는 그 어떤 안내문구도 없으며 절터로 추중되는 곳에는 낙석과 잡목으로 인해 진짜 이곳이 가슬갑사터인지 의구심을 들게 할 정도이다. 누군가 답답해서 인지 절터에다   편편한 돌을 세워 스프레이로 가슬갑사터라 써 놓았다.

    현대의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아픈 나무의 모습이다. 6~70년대 까지 송진을 채취하였던 모습으로 소나무에게는 많은 아픔을 주었다.4~5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계살피계곡의 지계곡에 걸린 작은 무명폭포


    계살피계곡의 무명폭포로 영남알프스둘레길에도 이제는 봄이 오고 있다.  한겨울 두터운 하얀 솜이불을 걷어 내고  속살을 내보이는 계살피계곡의 모습을 둘레길 팀도 마냥 즐거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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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교산&그너머 <715> 제5코스 : 경주 내남 괘전~산내 심천
    고운 흙 깔린 산허리 길 오르니 낙동정맥 마루금도 어느새 '훌쩍'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걸을 때 낙동정맥을 넘지 않을 방법은 없다. 백두대간이 강원도 태백 매봉산에서 분기 해 동남쪽으로 커다란 산줄기 하나를 토해내는데 이것이 바로 부산 몰운대에서 바다와 만나는 낙동정맥이다. 414㎞에 달하는 이 커다란 산줄기는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의 동쪽에서 강과 나란히 내달리며 서서히 높이를 낮추다가 영남알프스에 이르러 다시 불룩 솟아오른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전체 구간 중 낙동정맥을 관통하는 곳은 2곳이다. 그 중 하나는 지난 1월 초 경남 양산 통도사 일주문에서 출발한 제1코스 답사 당시 이미 개척단이 통과한 바 있다. 통도환타지아에서 울산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로 향하던 길에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곳은 평지인 까닭에 마루금을 넘는 맛은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낙동정맥을 통과하는 제5코스에서는 제대로 된 마루금을 넘게 된다.

    ■ 경주 내남~박달 십리 임도 조망 운치 만점

     
      개척단원들이 낙동정맥 마루금인 상목골재 인근 전망대에서 단석산 선도산 복안산 등 주변 조망을 살피고 있다.
    울산을 벗어나 어느새 경북권으로 접어든 둘레길 개척단. 이번 제5코스는 낙동정맥을 넘는 길인 탓인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산골마을을 잇는 해묵은 옛길을 따라 고갯마루를 세 개나 넘어야 한다. 경주에서 가장 깊은 산골이라고 하는 산내면이 코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둘레길 치고는 비교적 험로에 속한다. 그러나 그만큼 원시림이 살아 있는 청정 흙길이다. 둘레길 코스 중 가장 북쪽 구간에 해당하는 길이기도 하다.

    출발지는 경주시 내남면 박달리 괘전마을의 '산내 내일~내남 박달 임도' 입구다. 종착지는 옹강산 동북쪽의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심천마을 노거수 앞. 총 17.5㎞로 당일 걷기 코스로는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5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내남면 박달리 괘전마을 숫당산나무(소나무) 인근 임도 입구의 '산내고원 한방휴양마을' 표지판에서 시작되는 임도는 낙동정맥 마루금인 상목골재까지 연결된 총 4.02㎞의 흙길이다. 지난 2002년 경북산림한경연구원이 개설했다. 산허리를 돌며 이어지는 길은 빼어난 조망을 즐기면서 소나무 참나무 사이로 걷는 운치 만점의 길이다. 딱 기분 좋을 만큼의 땀도 흘릴 수 있다.

     
     
    10분 뒤 목림농원 앞을 지나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동행자와 도란도란 얘기하며 걸으니 힘든 줄도 모른다. 30분 후 길이 살짝 휘어지는 곳에 높이 13m 가량의 무명폭포가 있다. 갈수기엔 그냥 바위절벽이지만 비가 많이 오면 자연폭포로 변한다. 괘전마을의 상수원이기도 하다.

    다시 10분쯤 오르면 오른쪽이 확 트이는 전망대. 박달리와 박달저수지 일대가 내려다보이고 북쪽 멀리 단석산에서 부터 시계방향으로 입암산 벽도산 선도산 복안산 아미산 천마산 백운산 삼강봉이 연이어 파노라마를 펼친다.

    전망대에서 비포장 임도가 끝나는 상목골재까지는 5분이면 족하다. 공식 지형도상의 상목골재는 이곳에서 북쪽으로 7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장승 무더기와 전원주택이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창우 개척단장은 "상목골 주민들은 이곳도 상목골재라고 부른다. 낙동정맥 종주 산꾼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결국 이 일대 전체를 상목골재로 보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개념도 참조). 좌우로 수십 개의 산악회 리본이 보인다. 낙동정맥 종주 산꾼들의 흔적이다. 쉴만한 공터도 있다.

    ■ 상목골재 디티재 아부터재 넘는 17.5㎞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낙동정맥 마루금으로 오르고 있다. 고운 흙과 자갈이 깔린 정감있는 임도 십리 길이다.
    해발 470m인 상목골재를 넘어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 산내면으로 접어든다. 갓 태어난 길가의 버들강아지가 '수줍은 봄 인사'를 하며 미소 짓는다. 조금 가니 왼쪽에 산내고원 참숯가마. 소위 '찜질방'이다. 10분쯤 더 내려가면 삼거리. 오른쪽은 지형도상의 상목골재 주변 전원주택단지로 가는 길. 왼쪽으로 꺾는다. 3분 후 윗상목골 입구 삼거리에서는 우측으로 틀어 내려간다. 표고버섯밭과 빨간우체통이 앙증맞은 시골집을 통과하면 갈대 울창한 개울 건너 왼쪽에 거대한 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상목골 당산나무다. 수백년은 됐을법한 당산나무 아래 누군가 밝혀 놓은 촛불이 마을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둘레길 개척단원들도 저마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돈다"며 감탄한다. 하지만 나무의 내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안내가 없어 아쉽다.

    상목골이라는 이름은 뒷산이 누에를 닮았다며 '잠두산'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누에는 뽕나무가 제격이라는 의미에서 '상목(桑木)골'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 옛사람 넘나들던 묵은 옛길 걷는 맛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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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빨간우체통 집을 지나 표고버섯밭 앞까지 돌아가는데는 5분쯤 걸린다. 버섯밭 우측으로 난간 없는 작은 다리를 건너 상목골 골짜기로 접어든다. 신작로가 놓이기 전 내일리 상목골 사람들이 대현리로 가기 위해 즐겨 걸었던 옛길이다. 200m 후 작은 갈림길. 오른쪽 컨테이너 가건물을 지나자마자 왼쪽 작은 골짜기로 통하는 희미한 길을 찾아 들어간다. 리본을 참고하면 큰 어려움은 없다. 잡목의 잔가지들이 걸리적 거리지만 이것이 묵은 옛길을 걷는 재미가 아닐까. 5분 후 작은 능선을 넘고 산허리길을 따라 10분쯤 더 가면 습지 지나 디티재(해발 467m)에 닿는다. 낙엽이 무릎을 덮는다. 디티재를 넘어 화전민 집터를 지나면 계곡을 따라 내려서게 된다. 작은 폭포가 있는 이 계곡은 '해매기골'이라고 불리는데 10분 정도 제법 험한 길이 이어진다. 계곡 끝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면 산내면 대현리 동편마을 삼거리. 동창천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편마을이라 한다. 하천 건너 마을 이름은 당연히 '서편'이다.

    대현교회 방향으로 왼쪽 골목길을 통과한 후 동창천으로 간다. 난간 낮은 다리에서 보면 오른쪽(북쪽)에 단석산과 조래봉이, 왼쪽(남쪽)에는 대부산이 솟아 있다. 동창천 물은 밀양강 낙동강과 잇따라 한몸이 된 후 부산 가덕도 앞바다에서 태평양과 조우한다. 다리를 건너면 921번 지방도로. 오른쪽은 산내면 소재지를 거쳐 경주 또는 청도로, 왼쪽은 산내불고기단지 지나 석남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왼쪽으로 간다. 파란하늘 푸른산 아래 산골마을의 까치집이 정겹다. 서편마을 대현정미소 앞 삼거리에서 직진한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울산 최고 오지인 소호마을로 갈 수 있다. 7분가량 직진, '안다미로'라는 작은 음식점을 지나면 오른쪽 계곡으로 연결되는 갈림길을 만난다. 우측 계곡으로 들어선다. 호랑이가 살았다고 해서 범골 또는 호곡으로 불리는 계곡이다. 3분쯤 가면 우측에 폐광산이 있다. 깊이 13m쯤 되는 광산굴이다.

    ■ 종착지 산내 일부리 '곤달비' 재배지 명성

     
      갓 피어난 버들강아지가 둘레길에 봄 기운을 전해준다.
    다시 계곡을 오른다. 왼쪽 계곡 건너 산의 늠름한 바위는 '범바위'라고 불린다. 수십년 전까지 바위 아래 '범굴'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 계곡의 채 다 녹지 않은 얼음 아래로 물이 흐른다. 졸졸졸. 봄이 '오시는' 소리다. 30분쯤 계곡을 따라 오르면 아부터재. 오늘 코스의 마지막 고비인 아부터재를 넘으니 제법 경사가 가파른 지형이다. 하지만 옛 사람들의 길이 대개 그렇듯, 길은 S자형으로 편하게 이어진다. 다만 낙엽이 많은 내리막이기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하자. 10분 후 전나무로 둘러싸인 묘비 없는 쌍무덤에서는 오른쪽 1시 방향으로 길이 열린다. 계곡을 따르는 길이다. 15분 가량 솔향기 맡으며 걸으면 어느덧 재궁마을에 닿는다. 마을에 큰 재실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전형적인 산골마을까지 경주 노선버스가 하루 세 차례 들어온다.

    버스정류소 직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다가 도로가 합쳐지면 다시 왼쪽으로 조금 간다. 재차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 멀리 보이는 산수마을 방향으로 꺾어 5분만 더 가면 개울가에 수백년을 버틴 버드나무가 있다. 왼쪽으로 작은 다리를 건너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만나면 개울을 우측에 끼고 오른쪽으로 간다. 산수마을 버스정류소를 지날 때 오른쪽을 보면 마을회관 뒤쪽에 커다란 노거수가 눈에 들어온다. 산수마을과 그 주변은 봄 나물 중 으뜸이라는 '곤달비' 재배지로 유명하다.

    산수2교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300m만 가면 제5코스의 종착점인 심천(深川)마을 당산나무 앞이다. 작은 정자가 당산나무와 잘 어울린다. 남서쪽에 우뚝 솟은 옹강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 교통편

    - 경주버스터미널서 505번 오전 두 차례 운행

     
      디티재에서 내려서는 계곡길. 비교적 험로에 속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차량 회수 부담이 없어서 편하다. 부산노포동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는 새벽 5시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요금 4500원, 50분 소요. 경주버스터미널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내남면 박달리 괘밭까지는 505번을 이용해야 하는데 오전 8시20분, 11시10분 등 하루 5회 운행한다. 40분 소요. 종착지인 산내면 일부리 심천마을에서는 경주터미널까지 오후 1시40분과 6시10분(막차)에 출발하는 352번 버스를 타면 된다. 1시간 소요. 경주 시내버스 시간표는 금아버스그룹 홈페이지(http://www.gumabus.com)에 접속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최소 2대 이상이 동행해 종착점인 산내면 일부리 심천마을까지 가서 일부 차량을 주차시킨 후 나머지 차량으로 내남면 박달리 괘밭마을까지 가서 출발하는 편이 그나마 낫다. 한 대만 이용해 출발지에 주차시킨 후 걷기에 나설 경우 차량 회수가 아주 번거롭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 한다. 종착점인 일부리 심천마을까지 가려면 경부고속도로 건천IC에서 내려 청도 산내 방면으로 우회전, 산내면 소재지에서 청도 방향으로 가다가 방통마을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다리를 건넌 후 다시 좌회전 한다. 내칠리 외칠리를 지나 일부리까지 8㎞정도 가야 한다. 차량 내비게이션이 설치돼 있을 경우에는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를 검색하면 편리하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GPS트렉·동영상 http://www.kookje.co.kr


    # 경주 아랫상목골 김남이 할머니

    - "차 한 잔 하고 걸어요" 선한 인정에 감동

     
    "길에서 이러지 말고 집에 들어갑시다. 맛 있는 차 한 잔씩 대접할테니까. 어여."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아래상목골 마을에 사는 김남이(77·사진) 할머니가 인정스러운 표정으로 본지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원들의 발길을 이끈다. 55년 전, 방년 스물 두 살의 나이로 해발 400m에 위치한 이 산골마을에 시집 와서 평생을 떠나보지 못했다는 김 할머니. 그는 지금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도 시골집을 떠나지 않고 혼자서 산다. 외로움이 사무칠만도 하건만 표정 만큼은 소녀처럼 해맑아서 개척단원들을 놀라게 한다. 혼자 시골집을 지키고 있지만 붉은 색 모자에다 예쁜 귀걸이와 목걸이로 한껏 멋을 낸 것이 여느 도회지 할머니 못지 않은 멋쟁이다.

    그는 "내가 시집왔을 때만 해도 우리 시댁이 이 마을에서 가장 논밭을 많이 가진 부잣집이었지. 지금도 산내면에서 '김남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 평생을 이곳에서 억척스럽게 살았으니, 모른다면 간첩이지. 그런데 지금은 놀리는 땅이 태반이야. 그래도 콩 표고버섯 고추 같은 것들은 밭에서 직접 기르고 있다오"라며 밝게 웃었다. 깔끔하게 새로 지은 양옥집에 대문이 없다. 도둑이 있으랴, 강도가 있으랴. 선량한 사람들만 살아가는 이 마을에서 대문이 무슨 필요 있을까 싶다. 집앞 당산나무가 한 해 동안 무탈하도록 지켜줄테니 무슨 걱정이 그리 있을 텐가. 할머니는 마당 한 켠에 주인 없는 예쁜 그네를 매달아 놓았다. 손자 손녀가 오면 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집 앞에 붙여 놓은 '자연산 팝니다'라는 작은 안내판이 궁금해서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파느냐고. 김 할머니는 "이것 저것 다 팔지. 콩 고추 버섯, 특히 송이버섯도 팔아. 주변 산에 가면 송이버섯을 심심찮게 볼 수도 있으니, 재미로 하는 것이지. 그래도 도시에서는 이런 것 못 사먹을 걸"이라고 대답한다. 길 떠나는 개척단이 안보일 때까지 연신 손도 흔들어 준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선뜻 집에 들어가서 얘기 좀 더 하자며 손을 이끄는 김 할머니의 마음은 둘레길에 걸쳐 있는 수많은 산골마을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의 체온과 호흡, 음성이 그리운 것일 게다.


    # 시민 개척단원- 주부 김양숙 씨

    - "고향서 마실 나가듯 걷는 정감에 매료"

     
    "지리산 둘레길이나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 마음 속으로 영남알프스도 둘레길이 열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마침 국제신문에서 둘레길 개척 프로젝트에 착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만사 제쳐 두고 따라나섰어요."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 사는 주부 김양숙(54·사진·설송산악회) 씨. 그는 본지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첫 발걸음을 내디딘 지난 1월초 제1코스때부터 줄곧 시민개척단원으로 동행하고 있는 열성 시민이다. 산과 계곡이 수려하고 물 맑은 고장인 경남 거창 출신인 김 씨는 산에 대한 친숙함에 이끌려 지난 30여년 동안 전국에 가보지 않은 산이 없을 정도로 산행을 많이 한 숨은 베테랑이다. 영남알프스 산군들 역시 거의 대부분을 섭렵했다. 그런 그에게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보석 같은 존재다. 김 씨는 "나처럼 산행을 많이 하지 않는 친구들과도 함께 편안하게 걸으며 자연이 주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서로를 더 깊이 알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좋다"며 "나중에 몸이 조금 불편한 친구들도 함께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김남이 할머니 처럼 둘레길에서 만나는 많은 산골 사람들의 순박함 속에서 작은 일에 연연하는 나 자신을 반성해 보곤 한다. 마치 고향의 오랜 친지를 만난 듯 반갑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산악시인 권경업 씨가 주도하는 히말라야 산골마을 병원 지어주기 사업단 단원으로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경주시 내남면 박달리 괘전마을에서 산내면 내일리 상목골로 이어지는 흙길의 임도길

    상목골재 직전의 전망대에서 박달리 내와리 주변의 산군을 살펴 보고 있다.

    예전에는 상목골재로 오르는 계곡으로 도진마을에서 시작을 한다. 뫼주골로 불리는 이곳은 현재 사유지와 옛길이 묵혀 흔적을 잧을 길이 없었다.
    상목골재로 산내면과 내남면의 경계이며 낙동정맥길이다. 박달리에서 나물을 캐 머리에 이고 이고개를 넘어 산내장에 반나절만에 갔다 왔다는 마을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윗상목골마을
    상목골마을의 당산나무로 높은 지대에 있어선지 위엄과 기품이 넘처 흐른다. 누구의 정성인지 당산나무 아래 촛불이 켜져 있다.
    상목골마을의 김남이할머니로 멋쟁이 였다. 시집와서 한번도 이 마을을 떠나본 적 없다는 할머니는 겨울철에는 지나는 사람이 반가운 것 같았다.
    디티재로 오르는 취재팀이 옛길을 걷고있다. 상목골의 도로가 뚫리기전에 넘던 옛길이며 이길이 대현리 동편마을과 연결된다.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 동편마을을 지나면 왼쪽으로 조래봉과 단석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도가도 산이요 머리를 들어도 하늘뿐 보이지 않는다는  산내면 산골이다.
    동창천 넘어로 대부산의 모습이다.
    서편마을로 향해가는 취재팀으로 이길이 대현고개를 넘어 언양으로 이어진다.
    범골로 들어서면 만나는 범바위로 바위아래 굴이 있는 데 범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아연을 캤다는 폐광으로 길이는 13m쯤 된다. 범골 입구에 있다.
    아부터재로 올라가는 취재팀

    아부터재를 넘어면 만나는 재궁마을로 예전에는 박씨 재실이 있어 재궁으로 부른단다.
    마을길을 나와 우측 곤달피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고목의 버드나무로 작은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따라가면 산수마을이다.
    대현마을에서는 대부산으로 불리는 산으로 일부리에서는 산이름이 틀린다. 대부산이 종지맥이이며 그아래 낮은 안부가 낮은맥이 그리고 그 우측 봉우리가 산밭맥이로 부른다. 그리고 방매산과 사이의 심원사로 넘어가는 옛길은 구름재로 부른다는 마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종지맥이모습으로 그 아래 거산마을이 있다. 마을 뒤로 큰 산이 있어 거산마을로 부른다. 
    뒤돌아본 재궁마을의 모습과 아부터재로 마을분의 이야기로는 아부터재가 나비가 날개를 펼쳐든 모습이라 이야기를 해 준다.
    산수마을의 당산나무로 안강의 황씨성을 가진 사람의 산소가 있다하여 산소로 부른던것이 산수로 바뀌었다는 산수마을에는 여러기의 당수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의곡초교 일부분교로 아직도 학교로 남아 있다. 여기서 산내면 소재지 까지 너무 멀어서 일까?
    5코스 마지막 종착점인 심천마을로 심천동이라 부른다." 아부터 "또는" 지푸네"로 불렸다는 심천마을은 옹강산. 서담골봉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과 삼계리재를 거쳐 신원리로 이어지는 깁고 긴 골짜기를 심천동이라 부르는 것 같다. 하루에 한사람씩 부자가 생겼다는 일부리는 지금은 곤달피를 재배하여 그 이름 값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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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교산&그너머 <714> 제4코스 : 울주 탑골~경주 박달리
    눈 쌓인 오솔길 올라 '백리 물길' 태화강 발원지를 만나다

     

     
    해발 1000m급 산이 9개나 걸쳐 있는 영남알프스는 그 자체가 거대한 산군인 까닭에 수많은 물줄기를 가른다. 그뿐만 아니라 비록 수백㎞짜리 큰 강은 아닐지라도 중간 규모의 강들과 크고 작은 하천의 발원지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울산의 서북단과 경주의 서남단을 잇는 고헌산과 백운산 일대는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과 경주를 거쳐 포항에서 동해로 합쳐지는 형산강, 청도 밀양을 거쳐 낙동강에 합류되는 밀양강 등 3개 강줄기가 발원하는 곳이다. 특히 해발 893m인 백운산의 경우 태화강과 형산강 발원지가 일명 호미지맥으로 불리는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둔 2개의 계곡에서 발원하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될 수 있으면 산 자락 아래로 둘레길을 엮고 있는 본지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의 경우, 적어도 산의 6부 능선 이상 지점에 위치한 이들 강 발원지를 모두 들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영남알프스에서 발원하는 3개의 강 가운데 한 곳 정도는 거쳐 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그나마 접근로가 선명하고 발원지 표시도 뚜렷한 태화강 발원지 탑골샘을 제4코스 구간에 포함했다.

    ◇ 계곡 따르는 오솔길 거치는 12㎞ 청정 코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울산 울주군 두서면 내와마을과 외와마을의 경계인 장고개를 넘고 있다. 백운산 삼강봉의 지능선에 해당되는 이 고갯마루에 서면 북쪽 멀리 낙동정맥 능선이 아스라히 펼쳐진다.
    따라서 이번 주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4코스는 제3코스 구간 끝나기 직전에 거치는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탑골마을 탑골삼거리에서 출발해 탑골 계곡을 따라 태화강 발원지인 탑골샘까지 올랐다가 되돌아 내려온 뒤 제3코스 종착점을 지나 경북 경주시 내남면 박달리 괘전(괘밭)마을까지 가는 길로 엮었다. 제3코스와 조금 겹치는 구간은 있지만 최대한 같은 길을 피하려 노력했으며 초반에는 일반 산행로를 따라 계곡을 오르내리며 걷는 구간도 포함해 단조로움을 줄였다. 또한 제1코스를 경남 양산 통도사 일주문에서 시작한 이래 5회차 만에 울산시 권역을 통과, 경북 권역으로 접어드는 코스이기도 하다.

    제4코스 전체 구간을 요약해 보면, 탑골삼거리~탑골샘~탑골삼거리~(임도 따라)호미지맥 통과~내와마을 회관~내와리 노거수(제3코스 종착점)~장고개~큰골~숲말~외와마을~박달재(울산 경북 경계선)~경주 내남면 박달리 숫당산나무(소나무)~상목골재 오르막 입구(박달리 내일리 임도 입구)에 이르는 전체 길이 12㎞ 구간이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40분쯤 걸린다.

     
     
    백운산 아래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탑골삼거리에서 삼백육십오일사 안내판을 보면서 절 쪽으로 길을 따른다. 콘크리트 포장 임도다. 5분 후 만나는 샬롬수련원 앞 삼거리까지의 구간은 제3코스 막바지에 거쳤던 길과 겹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제3코스 답사 때 아랫재를 거쳐 내와마을로 스며들었던 길이다. 샬롬수련원 입구 앞 작은 공터는 구한말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공소를 만들었던 탑골공소터.

    이 삼거리에서 계속 큰길을 따라 삼백육십오일사 방향으로 오른다. 정면 왼쪽 멀리 보이는 가장 높은 봉우리가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기도를 통해 신검(神劍)에 빛을 받은 후 삼국통일의 대업을 위해 나섰다는 전설이 서린 백운산 정상이다. 10분쯤 가면 '백운산 탑골샘' 안내 표지판이 있다. 이 안내판에 따르면 백운산 탑골계곡 최상류 해발 550m 지점 절터 밑 탑골샘에서 발원한 물이 미호천 대곡천을 거쳐 태화강을 이루는데, 총연장 47.54㎞의 태화강 최장거리 발원지라고 기록돼 있다. 이곳에서 발원한 강의 길이는 '상징적 태화강 발원지'로 알려진 가지산 쌀바위에서 시작된 강의 길이(45.43㎞)보다 약 2㎞ 길다. 울산시는 지난 2006년 하반기 울산발전연구원에 용역을 의뢰, 이같은 사실을 밝혀내고 탑골샘을 태화강 최장거리 발원지로 확정, 공표한 바 있다. 특히 신라 때 열박산(咽薄山)으로도 불렸던 백운산 정상 감태봉의 북쪽에 위치한 봉우리인 해발 845m 봉은 삼강봉(三江峰)으로 불리는데 그 이유도 재미있다. 빗방울 이 떨어져 남쪽으로 흐르면 태화강이 되고, 동북쪽 큰골로 흐르면 경주를 거치는 형산강이, 서쪽으로 흐르면 동창천을 거쳐 밀양강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분기되는 지점인 강원도 태백의 매봉산 인근 삼수령(三水嶺)의 명칭 유래와 유사하다. 삼수령에서 흐른 물이 서쪽으로 흐르면 한강을 거쳐 서해로,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을 거쳐 남해로, 동쪽으로 흐르면 오십천을 거쳐 동해로 스며든다고 전해진다.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뻗어내리다 해발 935m 삼수령에서 낙동정맥을 분기시키듯이 삼강봉에서는 낙동정맥과 호미지맥이 분기되는 점도 닮았다.

    여하튼, 이 안내판에서 왼쪽 계곡 오솔길로 접어든다. 2월 중순 내린 폭설의 여파로 아직 눈이 녹지 않아서 본의 아니게 때아닌 눈길 걷기가 되는 바람에 개척단원들이 무척 즐거워한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붙어서 곧 '연리지'가 될 듯한 신기한 나무도 보인다. 계곡 옆 뚜렷한 오솔길을 따라 40분쯤 천천히 오르니 '태화강발원지 탑골샘'에 도착한다. 화강암 표지석뿐 아니라 현대중공업 태화강탐사대, 현대청운고 태화강탐사대 등에서 부착해 놓은 리본과 소형 현수막도 눈에 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하루 용출수량이 15t에 달한다는 3m 안팎의 탑골샘은 눈에 덮인 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날이 좀 더 따뜻해지면 제모습을 보이리라.

    ◇ 내와마을 장고개 넘고 삼강봉 돌아 가는 길

     
      내와마을 장고개 너머의 큰골 임도를 지나는 개척단.
    다시 왔던 길을 따라 탑골샘까지 내려서는 데는 40분 정도면 충분하다. 탑골삼거리에서 내와마을로 가는 길은 한적한 콘크리트 임도. 우측 작은 골짜기를 끼고 걷는 길이 수수한 느낌을 준다. 5분 후 호미지맥 능선을 가로지른다. 우측 등산로를 따르면 김유신 장군이 신검에 빛을 받은 후 백운산에서 천마를 타고 뛰어내린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천마산(613m)으로 오를 수 있지만 개척단은 계속 임도를 따라 내와마을회관 앞까지 간다. 마을회관 직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틀어 1분만 가면 제3코스 종착점이기도 했던 내와마을 노거수 앞이다. 이곳에서 우측 길을 따라 마을을 통과한다. 옛날에는 죽세공품을 많이 생산했던 마을답게 대나무밭이 많다. 15분 뒤 장고개라고 불리는 작은 고갯마루를 넘는다. 눈앞 멀리 박달재 너머로 낙동정맥의 장쾌한 산줄기가 드러난다. 장고개에서 직진하면 왼쪽으로 계곡을 따라 서서히 휘어지는 임도. 눈이 쌓여 있어 마치 스키장 슬로프를 연상케 한다. 큰골이라고 불리는 계곡을 살짝 건널 때 왼쪽 산봉우리를 바라본다. 삼강봉이다. 이 골짜기 깊숙한 곳에 형산강의 발원지가 있다고 전해진다.

    ◇ 울산 첫 폐교 아픔 내와분교에 쓸쓸함 만이

     
      태화강 발원지인 백운산 탑골샘이 눈에 덮여 있다.
    10분쯤 가면 숲마을 또는 숲말이라고 전해지는 마을. 옛날에 이 마을에 큰 숲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길을 통과해 아스팔트 도로 가에 숲마을 표지석이 놓인 외와마을까지는 금방이다. 왼쪽으로 꺾어 아스팔트 도로를 탄다. 외와마을에는 현재 '울산 숲 자연학교'로 이용되고 있는 옛 두서초등학교 내와분교가 있다. 이 학교는 1954년 개교한 이후 53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99년 울산에서 처음으로 공식 폐교 조치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노후 시설인 탓에 '울산 숲 자연학교'도 조만간 이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더욱 쓸쓸해지는 소식이다.

     
      무릎까지 쌓인 눈길에서 눈사람을 만들어 본 개척단(왼쪽). 울산시 울주군과 경북 경주시 경계선인 박달재.
    외와마을에서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10분쯤 가면 경상북도와 울산시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박달재를 통과한다. 경주시 내남면 박달리 지역이다. 이후 계속되는 내리막. 15분 후 박달리 괘전마을 입구 왼쪽에 세 사람이 한꺼번에 안아야 할 만큼 굵은 둥치의 큰 홍송이 보인다. 키 25m 둥치 지름 1.7m가량인 이 소나무는 괘전마을 사람들이 '동네 최고 어른'으로 모시는 숫당산나무다. 당산나무에서 2분만 가면 '산내고원 한방휴양마을' 표지판이 있는 임도 입구에 닿는다. 제4코스 종착점. 왼쪽 어깨 위로 낙동정맥 준령이 개척단을 내려보며 우뚝 솟아있다. 제5코스에서 저 산줄기를 넘어야 한다.


    # 떠나기 전에

    - 백운산 정상 동쪽 '김유신 기도굴' 가볼 만

     
    백운산 자락 태화강 발원지인 탑골샘은 제4코스의 핵심이다. 그러나 둘레길 코스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전설적인 장소가 백운산에 한 곳 더 있다. 신라때 김유신 장군이 젊은 시절 기도 끝에 자신의 신검에 하늘에서 내려 온 두줄기 빛을 받고 삼국통일 대업을 위한 출정에 나섰다는 전설로 유명한 일명 '김유신 기도굴(사진)'이 바로 그곳이다. 물론 역사적 고증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이 동굴은 인근 지역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김유신 기도굴'로 통하고 있다. 개척단은 정규 코스에서 벗어나 있는 이 동굴을 찾아보기로 하고 별도의 답사를 벌였다. 탑골샘에서 왼쪽 길을 따라 1시간30분가량 올라 백운산 정상을 지나 50~70m 정도 내려선 후 다시 오른쪽으로 살짝 내려서서 70m쯤 가면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바위 밑에 동굴이 있다. 성인 20여 명은 족히 앉을 만 한 이 동굴이 옛날부터 '김유신 기도굴'로 전해지는 곳이다. 여유가 되면 방문 해 봐도 괜찮을 듯하다.


    # 교통편&먹을 곳

    - 언양터미널 부근 내와행 버스 오전 두 차례

    부산 노포동터미널에서 언양행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빠르다. 오전 6시40분부터 20분 간격 운행. 45분 소요, 3200원.

    언양버스터미널에서 석남사 방향으로 가다가 만나는 첫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틀면 메디팜 효성약국 앞 버스정류소가 있는데 두서 내와행 308번 버스를 이용한다. 오전 6시, 8시40분, 오후 1시40분, 6시10분 등 하루 4회 운행한다. KTX울산역에서도 탈 수 있는데 언양터미널 인근 정류소 대비 10분 이른 시간에 출발한다.

    내와마을회관 앞에서 하차 후 제4코스 출발점인 탑골삼거리까지는 2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버스를 놓칠 경우 택시를 이용하면 되는데 요금이 2만 원 안팎이어서 부담스럽다. 제4코스 종점인 경주시 내남면 박달리 괘전(괘밭)마을에서는 오후 3시15분과 6시20분에 경주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35번 국도 언양 경주 방면으로 우회전, 경주 방향으로 가다가 봉계교차로에서 내린 뒤 활천 방면으로 좌회전, 8㎞쯤 가면 내와리 내와마을회관 앞에 닿는다. 탑골삼거리까지도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 4코스 종착점인 괘밭마을에서 다시 차량 회수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되도록 차량 두 대 이상을 이용, 먼저 1대를 종점인 괘전마을에 주차해 두고 시작하면 편하다.


    # 경주 괘전마을 암·수 당산나무

    - 노거수 두 그루 '동네 최고 어른' 대접, 자연에 겸손하고 순응하는 마음 배워

     
      경주시 내남면 박달리 괘전마을 숫당산나무(왼쪽). 괘전마을의 암당산나무인 느티나무.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걷다 보면 참 많은 마을에서 수백 년 된 노거수를 만난다. 소나무 느티나무 서어나무 버드나무 등 수종은 특별히 구분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양하다. 도시인들에게는 이런 큰 나무들을 자주 만나는 것도 길 걷기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마을 주민이 이 나무들 중 하나를 동네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삼고 신성시한다. 당산나무로 대우하기 일쑤다.

    그런데 제4코스의 종착지 마을인 경북 경주시 내남면 박달리 괘전(괘밭)마을에는 오래된 노거수를 한 그루도 아니고 두 그루나 당산나무로 대접하며 신성시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이 마을은 당산나무를 암수로 나누어 남쪽의 수백 년 된 홍송을 숫당산, 북쪽 마을 안의 수백 년 된 느티나무를 암당산으로 삼고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동제(洞祭)를 지내며 마을의 평화와 번영, 주민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마침 정월대보름 직후에 이 마을에 찾아간 개척단의 눈에도 암수당산나무의 둥치에 새끼줄을 묶고 소원을 비는 종이를 매단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마을 70~80대 주민들에 따르면 암수 당산나무 가운데 좀 더 우람하고 힘찬 기상을 내뿜는 소나무를 숫당산나무로 대접하고 있는데 다른 말로는 '골매기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말뜻은 '골목에서 가장 큰 어른'이라는 것이다. 민간신앙적 요소도 없지는 않지만, 사람뿐 아니라 오래된 나무를 동네 최고의 어른으로 섬기며 보호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정신을 엿보며 자연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숫당산나무의 경우는 제4코스 막바지에 볼 수 있어 찾기가 어렵지 않지만 암당산나무인 느티나무는 일부러 마을을 통과해야 찾을 수 있다. 경로당을 겸한 괘전마을회관 앞에서 마을 안길로 들어선 후 100m쯤 가다가 오른쪽 민가 앞 낮은 언덕을 살짝 오르면 약 100m쯤 앞에 암당산나무가 보인다. 가로 1.5m 세로 1m 크기의 아담한 제단이 마련돼 있는데 제단석 뒤에 너비 30㎝가량의 구멍이 나무둥치 안으로 뚫려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들 두 그루의 나무를 암수로 구분짓고 서로 떨어진 채 그리워하는 듯한 설정을 함으로써 자연의 섭리인 음양의 이치를 강조하려 하지 않았을까.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3코스갈림길. 3코스는 우측. 4코스 둘레길은 좌측 태화강의 발원지 탑골샘을 찾아 올라간다
    탑곡공소 자리

    탑골샘으로 태화강의 발원지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365일사로 지은지 몇년 안된 사찰인 것 같다.
    휴식중인 대원들






    탑골샘을 둘러 본후 다시 탑골 삼거리로 내려가는 개척단원

    호미지맥 갈림길을 내려서면 기품있는 소나무 밑으로 통과한다. 
    내화마을로 내려서는 둘레길

    눈내린 내화마을의 목가적인 풍경
    내화마을의 노거수로 3구간 종착점. 여기서 우측길로 따라간다.

    장고개에 올라선 들레길 개척단


    박달고개로 오르는 도로를 따라간다.
    울산시에서 박달고개를 넘어 경북 경주땅으로 넘어선 개척단.
    괘전마을의 홍송으로 숫당산으로 불리며 골맥이쟁이로 불리며 골목의 큰 어른으로 마을에서 모시고 있었다.
    박달리 괘전마을의 암당산으로 보름달에 마을의 안녕과 기원을 올리는 마을의 어른이다. 숫당산과 부부목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백운산 정상아래 바위밑에 있는 굴로 김유신이 난승에게서 신검에다 두줄기의 빛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백운산 정상에서 본 삼강봉과 낙동정맥
    4코스 둘레길 개척단원들의 괘전마을의 암당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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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교산&그너머 <713> 제3-1코스: 울주 구량리~반구대입구
    각석 암각화 공룡발자국… 억겁의 시간 속을 걷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설렘이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또 다른 무엇이 나타나 길손을 반겨 줄지 상상하면서 걷는 기쁨은 길을 걸어 본 사람만이 진하게 공감할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 역시 이 같은 기쁨을 만끽할 수 있기에 발걸음도 가볍기만 하다.

    그렇지만 가끔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서 반드시 살펴봐야 할 것들을 빠트리지는 않았는지 염려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거대한 산군의 둘레로만 이어지던 연결 코스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영남알프스 언저리에 엄연히 존재하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선사시대 유적과 아름다운 길을 찾아갔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울산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각석과 대곡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공룡발자국 화석 유적지로 향하고 있다. 주변 풍광이 한 폭의 산수화를 닮았다.
    울산에 2개밖에 없는 국보이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암각화 유적으로 평가받는 '울주 천전리 각석(川前里 刻石·국보 제147호)'과 '반구대 암각화(盤龜臺 岩刻畵·국보 제285호)를 한꺼번에 찾아가는 길이다. 영남알프스 산군 중 하나이자 언양의 진산인 고헌산(1034년)에서 발원한 하천들이 흐르다가 작은 산 허리를 휘도는 절경지에 자리 잡은 유적들을 찾아가는 길이니만큼 당연히 영남알프스 둘레길에 포함해야 할 구간이기도 하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이제 고작 40여 년 밖에 안됐지만 이 유적들은 문화인류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감히 그 가치를 논하기조차 어려울만큼 소중한 우리 고장의 고귀한 문화유산이다. 신석기와 청동기, 삼국시대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적들을 두 발로 걸어서 찾아간다고 생각하며 걷는 길은 진정으로 가슴 설레는 현장이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12.5㎞

     

     
    그것뿐이랴. 이 길은 약 1억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발자국화석 유적지를 두 곳이나 품고 있다. 또 고려 말 충신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흔적을 엿보며 선현들이 걸었던 '의로운 삶의 길'에 대해 사색해 볼 수도 있고 태화강 줄기인 구량천 대곡천 반곡천 등의 물길이 그려내는 절경에 감탄할 수도 있다. 두 개의 박물관을 방문, 암각화·각석은 물론 대곡댐 건설로 수몰되기 이전에 발굴된 청동기와 삼국시대 유물과 유적들에 대해 공부도 할 수 있고 계곡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백로와 왜가리, 현대 과학의 결정체 중 하나인 초고속전철인 KTX 선로와 열차도 볼 수 있다. 굽이굽이 볼거리와 생각거리, 학습거리를 수없이 던져 주는 길이다. 이번 제3-1코스는 말 그대로 '수억 년을 관통하는 시간의 길'인 셈이다.

    제3-1코스는 지난달 28일자에 보도한 제3코스의 중간쯤에 위치한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 중리마을의 '구량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64호)' 앞에서 출발,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 전망대를 거쳐 35번 국도 변 반구대 입구에서 끝맺는 12.5㎞ 구간이다. 앞서 소개한 코스들에 비해 거리가 짧고 오르막도 거의 없어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워낙에 유적들이 많고, 아담하지만 예쁘고 내용도 알차게 꾸며 놓은 박물관이 2개나 있으며 경치까지 더없이 아름답다 보니 전체 코스를 제대로 답사하는 데는 실제로 최소 5시간 이상은 잡아야 한다.

     
      암각화 가는 길에 만나는 울주군 대곡리 연로개수기.
    지난 2003년 9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로 인해 550여 년을 버텨온 거대한 나뭇가지 일부가 훼손되는 아픔을 겪고도 여전히 고헌산을 등에 지고 의연하게 버티는 구량리 은행나무. 부울경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이면서 전국 4대 은행나무에 속하는 이 나무 아래에서 출발, 중리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남동쪽으로 길을 잡은 후 3분 뒤 구량중리길 21번지 앞 갈림길에서 직진, 들판길로 진입한다. 5분 후 농수펌프장이 있는 T자형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택해 계속 직진하면 구량천을 왼쪽에 끼고 걷는 둑길이다. 구량천은 고헌산 정상부에 있는 기우제 터인 용샘 근처에서 발원해 대곡천과 합쳐졌다가 태화강을 이룬 뒤 동해로 빠져나가는 하천이다. 태양열발전용 집열판을 지나자마자 구량교를 건넌다. 다리 건너 우측으로 꺾어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35번 국도를 향해 걷다 보니 길 오른쪽에 교통표지판 하나가 흉물스럽게 쓰러져 있다. 제때 정비가 안 된 것 같다.

    10분 후 만나는 울산학생교육원 두남학교는 인근 지역의 다문화가정 학생들 배움터다. 1분 후 2011년 새해 벽두 쓰나미처럼 전국의 축산농가를 휩쓴 구제역을 예방하기 위한 방역시설을 지나면 곧바로 35번 국도. 횡단보도를 건너 천전정미소 앞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아스팔트 길을 조금이라도 피하고 싶다면 정미소에서 직진해 경부고속도로와 KTX 선로 아래로 이어지는 구량천 왼쪽 둑길을 이용하면 된다(지면 개념도에 붉은 점선으로 표시).

    ■'아름다운 하천' 대곡천 주변 볼거리 즐비

     
      국내 최초 발견 암각화인 국보 제147호 천전리각석.
    일단 왼쪽으로 꺾어 100m가량 가면 표지판을 보고 오른쪽 천전리각석과 울산대곡박물관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고속도로와 KTX 선로 밑을 통과해 10분쯤 가면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대현마을. 수령 400년쯤 된 노거수인 땅버들이 반긴다. 이곳에서 만난 대현마을 주민 김정도(57) 씨가 "제방을 쌓기 전에는 지금 서 있는 도로도 모두 하천이었다. 이 버드나무도 당시에는 하천변에 서 있던 것"이라고 알려준다. 늦겨울 눈발이 점차 거세진다. 100m쯤 더 가니 이번에는 왼쪽에 서어나무와 팽나무 회화나무 등 3가지 종류의 수령 400년 안팎의 노거수 5그루가 있다. 노거수는 늘 반가운 생명체다. 노거수가 있어서인지 주변에 까마귀떼가 많다.

    10분 뒤 각석1교와 각석2교를 잇따라 지나니 저 멀리 울산대곡박물관이 눈에 들어온다. 각석2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에 보이는 대곡쉼터 앞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가로질러 장천마을길로 진행한다. 돌담이 놓인 마을길을 통과하면 곧바로 박물관 앞. 울산광역상수도사업을 위해 대곡댐을 만들기 전에 실시한 발굴(1999년~2005년)을 통해 출토된 청동기시대 집터, 삼국시대 고분군(하삼정 고분) 유물, 조선시대 분청사기 및 백자 옹기 기와 등의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2009년6월 개관했다. 박물관에서 나와 왼쪽의 대곡댐을 일별한 후 대곡천과 구량천 합수지점인 장천교로 간다. 장천교를 건너 직진하는데 서서히 아름다운 계곡 주변의 풍광이 모습을 드러낸다. 10분 후 천전리각석 입구 문화유산해설사 쉼터를 지나 오른쪽 잠수교를 건너 오르면 천전리각석. 경사 15도 정도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바위 면에 새겨진 형이상학적 도형과 사람 얼굴 그림, 기마 병사 그림, 글씨 등은 청동기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 놓은 문화유산이다.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이라는 울산 울주군 반구대(위 사진). 반구대에서 1.4㎞가량 떨어진 반구대암각화 전망대.
    다시 잠수교로 되돌아 나와 조금 더 가면 천전리 공룡발자국화석이 있다. 굳이 경남 고성이나 전남 해남까지 가지 않더라도 약 1억 년 전인 전기 백악기에 형성된 200여 개의 공룡발자국 화석을 볼 수 있는 자연사학계의 보고다. 대곡천 건너편에 조금 전 들렀던 천전리각석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산 허리를 통과하는 산길을 탄다. 깎아지른 절벽 위로 길이 잘 닦여져 있다. 울주군이 '원시문화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여 정비한 길이다. 오른쪽 아래로는 천전리각석과 공룡발자국 화석 유적 사이로 감아 도는 대곡천과 주변 산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조화를 이뤄 절경을 연출한다. 백로 한 마리가 여유롭게 먹이사냥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대곡천을 따라 20여 분 가면 오른쪽 반구교 건너 울주암각화박물관이 있다. 천전리각석과 반구대암각화, 그리고 주변 유적지에 대한 자료를 보면서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도 들을 수 있는 국내 암각화 분야 최고의 전시관이다.

    선뜻 동행해 주겠다는 김경숙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반구대암각화로 향한다. 반구교를 건너 우측으로 돌아가면 대곡천 건너 멋들어진 절벽이 눈에 들어오는데 절경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고려말 친원배명 정책을 반대하다가 언양에서 2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포은 정몽주 선생도 그 아름다움에 반해 자주 찾았다는 반구대가 바로 그곳이다. 경주 최씨 가문의 오래된 정자이자 현재는 청소년 예절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집청정(集淸亭) 앞에서 대곡천 건너편을 바라보면 거북이 머리에 해당하는 작은 언덕 위에 포은 선생 유허비가 보이고 그 아래 수면 위 바위에는 '반구(盤龜)'라는 음각 글자가 선명하다.

    ■정몽주 유허비 '의로운 삶의 길' 생각케 해

    곧바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된 대곡천을 설명한 안내판 인근 반구서원 앞에서 우측으로 길을 잡으면 울주 연로개수기(硯路改修記)가 기록된 바위가 있다. 연로개수기 유적을 지나 오른쪽으로 목재덱을 건너면 대나무숲길을 통과하면 곧바로 울주 대곡리 공룡발자국화석 유적. 천전리 공룡발자국화석과 마찬가지로 약 1억 년 전인 전기 백악기의 공룡들의 유적이다. 강 건너 반구대 절경이 어우러져 더욱 운치를 더한다.

    5분 후 강 건너 반구대 암각화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겨울철이어서 사연호 수위가 내려간 탓에 그나마 물때 낀 바위에 암각화 일부를 볼 수 있다. 고성능 망원경으로 찬찬히 살펴보면서 바로 옆 안내판의 바위그림들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에서부터 35번 국도 상의 반구대 입구 삼거리까지는 40분쯤 걸린다. 압골가마터유적지와 진현마을 청동기 집터 유적지 안내판 등이 있지만 도로확장 공사 당시 발굴된 후 안내판만 세우고 나머지 유적은 도로부지로 편입돼 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조금은 씁쓸하다. 도로변에 대리석으로 확대해 재연한 세부 암각화 그림들은 어린이들과 함께 걸으며 학습의 장으로 활용해도 그만이겠다.


    ◆ 울주 문화유산해설사 1호- 이양우 씨

    - "영남알프스 둘레길 알차게 개척해서 우리 고장 문화재 소중함 일깨우길…"

     
    "일본에는 선사시대 암각화가 단 한 개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것이 두 개나 있다. 하지만 그 소중함을 간과하고 너무 안일하게 관리해 온 것이 아닌가 싶어 염려된다."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자리 잡은 울산 대곡박물관 앞 마을은 장천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울주군 문화유산해설사의 효시 격인 이양우(67·사진) 씨가 살고 있다. 평생을 이 마을에서만 살아온 토박이인 이씨는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개척하면서 이곳까지 와 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좀 더 바란다면 천전리각석과 반구대암각화 공룡발자국화석, 포은 정몽주 선생 유허비 등 이 일대에 즐비한 유적과 유물들을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리를 좀 더 철저히 할 수 있도록 힘써 달라"며 개척단에게 당부했다. 고향의 문화유산과 유적을 너무 사랑해서 1980년대 초 당시에는 생소한 문화유산해설사로 자원한 인물 답다.

    그는 이어서 "일본, 유럽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는데 정작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오지 않는다"며 "해외여행에 돈 펑펑 쓰지 말고 우리 고장의 귀중한 문화유산부터 잘 알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현직에서 은퇴해 농사일과 함께 시와 수필 등을 쓰면서 소일하고 있다는 이씨는 울산뿐 아니라 밀양이나 청도 양산 등 다른 지역에 가더라도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부지런히 일깨우는 둘레길 개척단이 돼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 교통편&먹을 곳

    - 언양터미널·KTX역에서 버스 이용

    부산노포동 터미널에서 언양행 시외버스를 타면 빠르다. 오전 6시40분부터 20분 간격 운행. 45분 소요, 3200원. 언양버스터미널에서 석남사 방향 첫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틀어 메디팜 효성약국 앞 버스정류소에서 313번 시내버스를 타면 두서면 구량리 중리마을까지 곧장 갈 수 있다. 오전 6시45분, 9시 등 운행. 중리마을까지 곧장 가지 않고 35번 국도 상의 천전삼거리 인근 구량천 버스정류소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어서 중리마을에 있는 구량리 은행나무까지 갈 수도 있는데 이 경우 같은 버스정류소에서 308, 318번 버스를 타면 된다. 오전 7시, 7시30분, 8시05분, 8시40분, 9시10분, 9시40분 등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자가용 이용자의 경우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35번 국도 언양 경주 방면으로 우회전, 경주 방향으로 가다가 반구대입구를 지나자마자 만나는 천전교 앞 삼거리에서 차리 구량리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중리마을 버스정류소 인근 적당한 곳에 주차하면 된다. 답사를 마친 후에는 35번 국도상의 '반구대입구' 버스정류소에서 언양버스터미널까지 가는 308, 313, 318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이들 시내버스는 모두 KTX 울산역(일반)도 경유한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GPS트렉·동영상 http://www.kookje.co.kr


    # 천전리각석·반구대암각화 단상

    - 점차 부서지는 바위, 영영 사라질까 걱정

     
      반구대 정몽주 유허비 밑 '포은대' 음각 글자(위 사진). 반구대 바위 표면에 새겨진 학 그림.
    울산의 단 2개밖에 없는 국보인 천전리각석과 반구대암각화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논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 논란의 내용이라는 것이 바위에 새겨진 그림이나 글씨의 의미나 해석을 두고 벌어졌다기보다는 관리 및 보호를 두고 벌어진 것이어서 '둘레길 개척단'의 마음 역시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일단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인 천전리각석의 경우는 바위가 풍화작용과 열작용 등에 의해 부서지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함부로 손을 대지 말라'는 안내판도 있지만 특히 바위면 아랫부분의 훼손이 심각한 수준이다. 자연적인 훼손뿐 아니라 사람들의 그릇된 행위로 인한 훼손 흔적도 보인다. 쇠줄로 간이 칸막이를 설치해 놓았지만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 정도에 그칠 뿐, 실질적인 보호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각석 곳곳에 못 열쇠 등으로 저지른 낙서가 여러개 있다. 그리고 아무런 보호막 없이 비나 눈을 맞을 수밖에 없다 보니, 사암의 성질도 가진 각석의 자연훼손이 더욱 심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와 시민단체 학계의 논의를 거쳐 일단 눈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 시설이라도 설치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사연호 건설 이후 그에 따른 여름철 수위 상승이 빚은 반구대암각화 수몰 및 훼손 문제는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지난해 6월에는 울산시가 사연호 수문 설치로 수위를 낮춰 보호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한 바 있기에. 다만 울산시민들의 주요 상수원인 사연호의 담수량 축소로 인한 식수 부족을 해결할 대안으로 마련됐던 청도 운문호 용수 끌어오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문제다. 경북 대구 울산 등 3개 광역시도의 이해관계 충돌과 정부 부처의 안일한 중재 노력으로 인해 지연되면서 수문설치 사업 등도 지연되고 있고 올해 예산에서조차 관련 예산들이 대폭 삭감되거나 빠졌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울산시는 2015년까지 반구대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완료를 목표로 문화재청 등과 긴밀한 협의를 통한 영구적인 보존대책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는 하다. 특히 국토해양부 수자원 총괄 책임자였던 장만석 건설수자원정책실장을 최근 경제부시장으로 영입하면서까지 문제 해결에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은 뒤늦었지만 희망을 품게 하는 부분이다. 보존 문제가 절박한 만큼, 그 절박함이 정부는 물론 주변 광역시도에 제대로 전달되고 관련 예산도 차질없이 배정될 수 있도록 울산시가 나서서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남알프스 둘레길도 사실 주변 지자체와 주민들의 화합을 위한 길이다.

     
      천전리각석을 훼손한 낙서의 흔적들.
    한편 반구대는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포은 정몽주 선생의 호를 따서 '포은대(圃隱臺)'라고도 불린다. 반구라는 글자 외에 '포은대'라는 글자도 음각된 것이 눈에 띈다. 김경숙 울주군 문화유산해설사가 직접 촬영한 포은대 글씨 사진을 둘레길 개척단에 제공해 주었다.

    또한 반구서원에서 반구대암각화 쪽으로 가는 길에 '연로개수기(硯路改修記)'를 볼 수 있는데 훼손된 글자가 많아 전체 내용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아직 숙제로 남아 있다. 다만 순치 12년이라는 연호로 봐서 숙종조인 1655년 이전에도 이미 이 길이 있었다는 점, '연로'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벼루를 만드는 돌이 있는 길'이라는 의미로 '벼루길'을 뜻하지 않았을까 추정하는 점 등만 알려져 있다. 어쨌든 이 길이 최소 350여 년 전에도 있었던 길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구량리 은행나무를 출발하여 천전리 각석방향으로 내려가는 취재팀

    400년된 버들나무로 땅버들이라 대현마을에서는 부르고 있었다.

    대현마을의 350년된 세종류의 보호수


    울산대곡박물관의 내부 모습


    천전리 각석으로 국보147호


    천전리 공룡발자국 있는 곳으로 계곡건너 각석을 찾아 볼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를 잇는 아름다운 둘레길



    반구대 암각화 박물관의 내부모습

    집청정

    반구서원

    울산12경과 아름다운 하천 100경에 대곡천 반구대가 들어 가 있다는 표지석이 서 있다. 그 뒤로 정몽주의 유허비를 볼 수 있다.

    대곡리 연로 개수기



    반구대 공룡발자국






    반구대라 부르는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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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알프스둘레길 제3코스)울산의 강원도라 불리는 영남알프스 둘레길 3구간:상북 신광사~두서 내와리


     

    근교산&그너머 <711> 제3코스 : 상북 신광사 ~ 두서 내와리
    600년 버틴 은행나무 지나니 여기가 '울산의 강원도'


     
    - 옛 사람들 발자취 따라 걷는 18.5㎞
    - 전설 어린 고헌·백운산 자락 휘돌아
    - 울산 오지 마을들 잇는 청정 오솔길
    - 둘레 12m 구량리은행나무 지금도 생생


    국내 최대 공업도시로 알려진 울산광역시. 하지만 알고 보면 울산은 영남알프스 주요 봉우리들을 7개나 끼고 있고 태화강도 되살린 친환경도시. 특히 울주군은 영남알프스 자락의 넉넉한 품에 안겨있다 보니 보존이 잘 된 청정 산골마을이 매우 많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3코스는 울산의 오지 마을들을 이어가며 산골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품고 있는 전설, 역사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걷는 길이다. 갈대 무성한 반곡천을 건너는 개척단원들 왼쪽 멀리 언양의 진산인 고헌산이 우뚝 솟아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3코스는 '울산 속 오지'라고 부를 만한 마을들을 옛길을 따라 이어가는 코스다. 나뭇꾼 총각이 버섯 따는 사람에게 고함을 쳐서 살렸다는 전설의 고헌산과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기도한 후 신검에 두 줄기 빛을 받았다는 백운산 오른쪽 자락 작은 능선들을 수차례 넘어가며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풍광과 전설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길이다. 다만 이전 1, 2코스에 비해 구간이 길고 4차례나 크고 작은 고개를 넘어야 하기때문에 체력 안배가 필요하다.

    제3코스는 울주군 상북면 지내리 못안못 인근 신광사 앞에서 두서면 내와리 내와마을 서어나무 앞까지 총 18.5㎞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신광사~재궁곡못~능선 안부~언양읍 평리 원평리마을~반곡천~256봉~삼각점봉~구량리 은행나무~차리 상차리마을 경로당입구~고개마루 사거리(소호령 갈림길)~두서면 인보리 중선필마을 갈림길~상선필마을~능선안부 사거리(백운산 등산로 입구)~탑곡 삼거리~샬롬수련원 앞~호미지맥 능선 통과~내와마을 서어나무 앞에 이르는 긴 코스다. 걷는 시간만 5시간 정도. 식사 및 휴식까지 감안하면 6시간 이상은 잡아야 한다.

     


     



     
     
    신광사 주차장에서 우측 들판 길로 들어선다. 재궁곡마을(쟁골마을) 방향이다. 들판 사이로

     열린 콘크리트길 왼쪽으로 오리농법 벼 재배시설들이 보이고 그 뒤로 언양 진산 고헌산(1034m)이 넉넉한 품을 자랑하며 솟아 있다. 계속 직진하면 10여 분 뒤 마을 앞 재궁못. 한겨울인 탓에 꽁꽁 얼었다. 지궁곳으로도 불린다. 마을을 통과해 대숲길을 지나 유달리 굵은 둥치의 소나무가 멋스러운 지점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작은 골을 통과해 오솔길로 오르면 10분이면 능선 안부사거리에 닿는다. 왼쪽으로 틀어 송림이 울창한 능선길을 3분쯤 걷다 무덤 30m 앞 삼거리에서 우측 내리막길로 꺾는다. 밀양 박씨묘와 과수원, 경주 이씨묘를 잇따라 지나 오룡길 63번지 앞 삼거리까지는 7분 정도면 내려선다. 일단 우측으로 꺾어 곧바로 대불사 표지판이 있는 포장로 삼거리에 닿으면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200m쯤 간다. 축사를 지나자마자 왼쪽의 제법 소담스러운 송림이 보이는 갈림길에서 왼쪽 평리 들판 길로 들어선다.

    왼쪽 저 멀리 고헌산을 바라보며 직진하다 정면 야트막한 언덕 앞에서 왼쪽으로 돌아 들판 길을 걷는다. 평리 버스정류소가 있는 삼거리에서 일단 '오룡길' 표시가 된 전신주 우측으로 20m쯤 가다가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 좌측 밭 사이 원평리 마을 길로 접어든다. 70m만 가면 동네 안 사거리. 원평길 14-1번지 대문 쪽으로 직진해서 곧장 가면 반시계 방향으로 마을 안길이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우측 멀리 흰색 집이 보이는 길로 향한다. 3분 뒤 원평1길 16-21번지 흰색 집 앞에서 반곡천을 건넌다. 갈대숲이 장관이다.

    반곡천을 건너면 우측으로 비스듬히 오르는 포장임도. 솔가리가 수북이 덮여 있어 걷기엔 그만이다. 5분쯤 오르면 좌측으로 이조판서 안동 권씨묘가 보이는 갈림길. 우측 한적한 산길로 오른다. 3분 후 능선 갈림길에 닿으면 왼쪽 능선 오르막을 탄다. 솔향기 그윽한 오솔길. 15분 뒤 묘지 3기와 삼각점이 있는 256봉. 송림이 바람을 막아줘 잠시 쉬었다 가기 좋은 지점이다.

     
      천연기념물 제64호인 울주 구량리은행나무.
    50m쯤 직진하다 주능선을 버리고 우측 지능선의 희미한 산길로 내려선다. 진주 강씨묘까지 길은 희미하지만 100m 떨어진 김해 김씨묘부턴 또렷해진다. 능선이 왼쪽으로 살짝 휘어지는 듯하다. 임도 갈림길에서 직진, 산길로 향한 후 3분이면 서녁지 앞 산모퉁이 들판 길에 닿는다. 오른쪽 중리마을 들판 한가운데 천연기념물 제64호이자 이 고장의 자랑인 구량리 은행나무가 서 있다.

    직진하다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다.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서다. 이후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올 예정이다. 구량리 은행나무는 고려말 익재 이재현 선생의 후손이자 조선 세종 때 한성부판윤을 지낸 죽은 이지대 선생이 세조의 정권찬탈 등으로 이어지는 정변을 보며 낙향한 후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은행나무는 높이 22m, 어른 가슴높이의 둘레가 12m나 되는 거목이다. 올해로 559세지만 높이 22m, 둘레 12m나 되는 거목으로 여전히 굳건한 생명력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훼손하면 반드시 화 입고 아들이 없는 부인이 정성껏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전해져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한다. 은행나무 옆 20m 지점의 작은 샘은 다른 하천과 저수지가 얼어붙은 영하 5도의 날씨에도 되레 따뜻함이 느껴질 정도여서 신비함을 더한다.




     
      재궁곡에서 평리로 넘어갈 때는 밭두렁길도 지난다.
    되돌아온 갈림길에선 고헌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왼쪽으로 간다. 둥지교회 앞을 거쳐 15분이면 다시 아스팔트 길 삼거리에 선다. 우측으로 5분쯤 걸으면 구량천의 차리교를 지난다. 왼쪽 하차리 버스정류소 앞을 지나 정미소와 예배당을 거쳐 차리저수지 방향으로 20분쯤 가다가 상차리경로당 입구에서 우측 경로당 방향으로 골목길로 접어든다. 이 마을에는 남녀의 성기 모양을 닮은 남근바위와 음석바위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지만 두 바위 모두 남녀의 바람끼와 연관 있다고 해 남근바위는 묻어버렸고 음석바위도 외부 공개를 꺼린다고 한다.

     
      울주군 언양읍 평리 들판길을 걷고 있는 개척단.
    상차리 경로당을 지나면 호젓한 오르막 임도. 20분이면 이정표가 있는 고갯마루 사거리. 왼쪽은 옛날부터 이 지역의 주요 교통로로 이용됐던 낙동정맥 상의 소호령으로 가는 오르막길이고 왼쪽은 마병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지만 개척단은 선필마을 쪽으로 직진한다. 내리막길이다. 점점 오지마을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20분 뒤 민가 앞에서 우측으로 꺾어 5분쯤 더 가면 중선필마을 앞 삼거리. 왼쪽으로 크게 꺾어 상선필마을 방향으로 오른다. 정면 저 멀리 백운산(893m)이 보이고 마병천 계곡을 따라 길은 하염없이 이어진다. 15분 뒤 동래중앙교회 예람수양관 표지판이 있는 닭알집골 입구 갈림길에서 계속 직진, 오르막길을 계속 탄다. '닭알집골', 이름이 재밌다. 이창우 개척단장은 "백운산에 둘러싸인 마을이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소위 금계포란형인 것 같다"고 설명한다. 해발 380m의 오지인 상선필마을까지는 15분쯤 걸린다. 선필마을이란 이름은 '선한 사람들이 모여서 평화롭게 사는 곳'이란 의미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상차리마을에서 소호령 갈림길 쪽으로 향하는 개척단.
    마을회관 앞을 지나 2분이면 우측으로 빠지는 골목길로 접어든다. 거울 달린 전신주의 표지판에 '마당미기길 1→252'라고 표시된 지점에서 우측으로 꺾은 길이다. 골목길을 통과하면 곧바로 오르막 임도로 이어진다. 차량 통행도 가능할 만큼의 너른 길이지만 이 구간이 제3코스에서 가장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17분쯤 오르면 백운산 등산로 입구이기도 한고갯마루 사거리. 해발 515m나 되는 이 고갯마루에서 뒤돌아보면 지나온 길과 고갯마루가 산과 산이 겹치는 사이로 아득하다. 영락없는 '울산의 강원도'다. 구제역 때문인지 도로 한가운데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커다란 흙무더기가 놓여있다. 이제 내리막. 녹지 않은 눈이 사각거린다. 18분 만에 벽운암 앞을 지나 탑곡삼거리에 닿는다. 내와리 탑곡마을에는 풍천 임씨 문중의 '호식(虎食)과 명당' 전설이 있다.

    삼거리에서 '삼백육십오일사'라는 특이한 이름의 사찰 표지판을 보면서 왼쪽으로 꺾어 3분 뒤 샬롬수련원 앞에서 다시 우측 골목으로 들어선다. 작은 개울을 건너 짧은 논두렁길로 직진하면 곧바로 V자 형태의 오솔길. 3분 뒤 호미지맥 능선 안부 사거리를 만나면 직진한다. 종점인 내와마을 서어나무(수령 100~150년)까지는 15분쯤 걸린다.


    # 시민개척단 참가- 권윤혁 씨

    - "영남알프스 특징 극대화 시킨 길로…"

     
    "영남알프스 자락인 밀양 얼음골에서 태어났다. 건강을 위해 걷기운동을 시작한 후에도 발길은 자연스럽게 영남알프스로 향하게 됐다. 그래서 많은 산들을 오르내렸다. 그런데 이제는 산아래 길들도 걷고 싶어졌다. 지리산둘레길, 제주올레길 등과 비교하지 말고 영남알프스만의 특성과 가치를 살려 내는 둘레길로 조성됐으면 좋겠다."

    시민개척단의 일원으로 제3코스 답사에 함께 한 권윤혁(47·김해 효민독서실 대표·사진) 씨는 김해 시내에서 학원과 독서실 3개를 운영하는 '원장님'이다. 밀양시 산내면에서 태어난 그는 밤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상 체력을 기르기 위해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취재팀과 함께 걷는 시간 내내 "둘레길 개척단에 참여하고 보니 가지산 운문산 신불산 등 산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영남알프스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따스한 '속살'을 느끼게 돼 정말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객관적인 시각의 기사와 깊이 있는 칼럼을 학원생들에게도 읽혀야겠다는 생각으로 국제신문만 3부를 구독 중인 애독자이며 '근교산&그 너머' 시리즈의 열혈 팬이기도 하다.


    # 교통편&먹을 곳

    - 종착점 내와마을서 택시 이용이 편리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35번 국도 언양 경주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다시 밀양 석남사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갈아탄다. 석남사 방향으로 3분쯤 가다가 지내교차로에서 내려 지내리 방향으로 들어선 후 작은 고개를 넘어 우회전하면 신광사 앞에 도착한다. 절에 주차장이 있다. 일행이 차량 2대를 이용할 경우 종착점인 내와마을에 미리 1대를 주차해 놓으면 편리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부산도시철도 명륜동역 앞에서 12번 버스를 타고 언양터미널에서 하차해 후문쪽으로 이동해서 향산리 차리행 대우여객 313번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지내리까지 갈 수 있다. 오전 6시40분 8시10분 10시10분 오후 1시10분 2시40분 6시50분 8시50분에 있다. KTX울산역에서도 탈 수 있다. 313번 버스는 제3코스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상차리 중차리 하차리 등에서도 이용 가능하기 때문에 중간에 탈출하고 싶을 때 활용하면 된다. 종착점인 두서면 내와리 마을회관 앞에서 버스를 탈 수 있는데 오전 7시, 9시30분, 오후 2시, 6시50분 등 하루 4회 밖에 없어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언양콜택시(052-254-4545)를 이용해 언양정류소까지 가면 편리하다. 2만 원 안팎.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6~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 '울산의 오지' 선필·내와마을

    - 구한말 천주교인 추격 피해 숨어 들고 한국전쟁기 빨치산 습격에 학살까지…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3코스 후반부에 거치게 되는 울산 울주군 두서면 선필마을과 종착점인 내와마을은 모두 김유신 장군의 보검 전설을 품고 있는 백운산 자락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해발 300m대 마을이다.

    그래서 이들 마을에는 여러가지 이야기와 역사적 사실들이 혼재 되어 전해오는데 특히 구한말과 현대사에 얽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후기 천주교인들은 일단 잡히면 큰 곤욕을 치르기 십상이었고 심할 경우 처형까지 당했다. 이때 선필마을과 내와마을 인근 탑곡마을 주변 등으로 여러 명의 천주교인들이 피신해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마병천 계곡을 따라 백운산 깊숙이 이어지는 하선필 중선필 상선필마을(사진)이 옛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는 얼마나 오지마을이었던가를 대변해 주는 대목이다. 35번 국도변의 봉계교차로나 활천리에서 계곡을 따라 20리 길을 걸어 들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내와마을과 탑곡마을 역시 천주교인들의 피신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내와마을은 근대화 이전만 해도 도로 사정이 나빠서 산나물 등을 채취해 언양장 등에 팔러 갔던 주민들이 사흘만에 돌아왔다는 동네다.

    한편 선필마을은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들에 의한 주민 학살 현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대사의 비극이 담겨 있는 것이다. 당시 신불산 가지산 일대 빨치산들은 선필마을 습격, 전읍마을 습격, 두동면 이전마을 습격 사건 등을 일으켜 양민 200~300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중악 토굴에서 기도 끝에 난승을 만나 보검을 얻은 후 백운산에서 다시 기도 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룰 보검에 두 줄기 빛을 얻은 김유신 장군 이야기, 장군이 백운산에서 천마를 타고 훌쩍 뛴 산이 천마산이라는 이야기 등도 의미가 있지만 근현대사에 얽힌 울산 오지마을들의 이야기도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 제3코스다.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재궁곡 마을길을 따라가는 취재팀

    재궁마을을 통과하고

    소나무가 멋진 농로길도 지난다. 그 뒤로 영남알프스 신불산의 모습이 웅장하다.


    장쾌한 고헌산 능선과 취재팀

    반곡천의 갈대와 고헌산


    운치 있는 솔가리 임도길

    답사때의 구량리 은행나무

    차리마을를 찾아가는 취재팀


    하차리마을과 고헌산

    차리와 선필을 가르는 고개로 4거리 임도 직진하여 넘어서면 선필마을

    중선필마을로 내려서다 본 백운산과 상선필 마을 방향, 취재팀이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중선필마을로 선필이란 어질고 착한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뜻으로 모든 사람들이 순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닭알집골로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골짜기라 한다.

    상선필마을 우측 잘록이가 탑골로 넘어가는 길이다.

    상선필마을의 모습


    백운산

    탑골로 내려서기전 운치 있는 임도길

    탑골 삼거리로 다리를 건너 왼쪽 삼백육십오일사 방향을 따라간다.


    작은재를 넘어면 내와리 내와마을

    김유신이 백운산 정상의 바위에서 천마를 타고 이곳 천마산으로 뛰어 내렸다한다.

    내와리 서어나무

    3구간 최종 목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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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알프스둘레길 제2코스)영남알프스 둘레길 2구간 울주 작천정~상북 못안못

    근교산&그너머 <710> 제2코스 : 울주 작천정~상북 못안못

    영남알프스 '베이스캠프' 언양엔 '이야기 곶감'이 주렁주렁…

    - 봉화산 화장산 휘도는 13.5㎞ 구간

    - 도화꽃 전설·못안못 잉어잡이 등 흥미

    - 언양지석묘·김취려 장군묘등 유적 즐비

    - 바람바위에서 본 영남알프스 능선 장관

    - 쓰레기 안 버리는 '착한 걷기' 실천을…

    영남알프스의 동부 또는 북부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곳. 바로 울산 울주군 언양 땅이다. 영남알프스 자락의 어느 고장이라도 역사적 인물과 그들에 얽힌 이야기, 숨은 전설과 설화 풍습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유물유적이 없지 않지만 언양에는 특히 이야깃거리와 볼거리가 많다. 여기에 먹을거리까지 풍부하니 금상첨화라 할 만하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2코스는 유서 깊은 고장 언양이 들려주는 옛 이야기를 따라 가는 길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재미거리 중 하나가 멀리서 주능선을 감상하는 것이다. 개척단원들이 서 있는 울주군 언양읍 화장산 바람바위는 동부영남알프스가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전망대다. 낮지만 높은 곳이다.

     

    제1코스 종착점 작천정 인근 '인내천바위' 앞에서 출발, 봉화산(350m)과 언양의 주산인 화장산(花藏山·271m)을 지나 울주군 상북면 지내리 신광사에서 끝낸다. 구체적으로 요약해보면 인내천바위~대머리바위~봉화산 정상~342봉(돌탑)~경동교~언양지석묘~바람바위~화장산 정상~굴암사~김취려장군묘~못안못~지내리 지석묘~신광사 순. 총거리 13.5㎞에 걷는 시간만 4시간 걸린다.

    태화강 줄기를 건너는 길이고, 화장산 바람바위에서 바라본 동부 영남알프스 능선이 그려내는 장쾌한 풍광에 넋을 잃을지도 모르는 길이다. 게다가 영남에서 가장 큰 지석묘(고인돌)와 고려시대 호국대장군인 김취려 장군의 묘, 가슴 아픈 도화꽃 전설이 서려 있는 화장산 굴암사, 잉어잡이 풍습이 수백 년째 전해져오는 못안못에 이르기까지 언양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처마 밑 곶감 뽑아먹듯 맛보며 걸을 수 있다.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작천정 200m 못 미친 곳에 작은 돌탑과 장승, 인내천바위 안내판이 서 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혁명의 사상을 표현한 인내천(人乃天) 글씨가 새겨진 이 바위는 1915년 상북면 출신 김영걸 씨가 쓰고, 삼남면 출신 함석헌 씨가 음각했다고 한다. 30m 인근의 3·1운동사적비와 함께 암울했던 시대 희망을 갈구했던 언양 사람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바위다.

    잘 정비된 길을 따라 계속 오르막을 타면 곧바로 대머리바위. 언양 남부지역 일대가 훤히 드러나고 남쪽으로는 둘레길 제1코스 막바지에 거쳤던 백암산(일명 옥산) 자락과 작괘천이 시야에 들어온다. 또 영축산 정상과 신불산 간월산 천길바위 배내봉까지 확인 가능한 훌륭한 전망대다. 대머리바위는 울산지역의 암벽등반 기초 훈련장으로도 애용되는 바위다.

    1분 후 쌍무덤 앞에서 자연석으로 다듬은 석물(石物)을 쓰다듬고 작은 언덕을 넘으면 T자 갈림길. 왼쪽으로 가면 운치 있는 대숲 길을 지나고, 파평 윤씨묘 우측 갈림길에서도 왼쪽으로 틀어 오른다. 3분 후 길이 확 넓어지는 삼거리에선 왼쪽 길을 택한다. 손수레도 지날 수 있을 정도의 넓고 편한 흙길이다. 소나무가 빼곡해 삼림욕장으로도 손색이 없는 길이다. 15분 후 봉화산 정상.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는 '부로산(夫老山)'으로 표기돼 있는 산으로 울산시기념물 제16호인 부로산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왜적 침입 등 국가적 위기 때 부산 천마산과 금정산 계명봉, 원적산(현 천성산) 봉수대를 거친 봉화를 받아 경주 소산 봉수대로 이어주던 이 봉수대는 울산의 내륙 봉수대로는 유일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안내판과 터만 남아 있다. 마땅히 복원돼야 하며, 최근 그 필요성을 주장하는 여론이 일어 다행스럽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김취려 장군 묘를 참배하고 있다.

     

    TV 중계안테나 옆으로 내리막을 타면 작괘천과 등억온천단지 그리고 그 뒤로 신불산 가지산 능선이 보인다. 안부사거리에선 직진해 능선길을 탄다. 5분 후 돌탑 2기 서 있는 342봉에 선다. 언양읍이 훤하다. 왼쪽 내리막으로 10분쯤 걸으면 계곡 약수터를 만난다. 100m쯤 더 내려서면 20m쯤 되는 서어나무를 만나면서 산을 벗어난다. 인근 주민들이 신성시한다는 이 나무의 기운이 범상치 않다.

    곧바로 작은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휘돌아 경동청구아파트 주차장을 통과한다. 태화강에 놓인 경동교를 건너 왼쪽 횡단보도를 지나면 음식점 '기러기칼국수' 왼쪽 길을 따라 JCI(청년회의소) 건물을 거친다. 도로에서 우측으로 200m쯤 가면 울산시기념물 제2호인 언양지석묘. 언양읍 서부리에 위치한 이 고인돌은 길이 8.5m 너비 5.3m로 영남지역 최대 규모의 지석묘다. 언양이 선사시대부터 번성했던 땅이었음을 보여준다. 서부리 주민들은 '용바우'로 부르며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영남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언양지석묘.

    지석묘에서 앞서 왔던 도로로 나와 횡단한 후 '송대리 표지판' 옆 비스듬한 오르막 콘크리트길로 진입한다. 상수도시설 정문 앞에서 왼쪽으로 틀어 숲길을 지나 10분이면 잇단 전망대가 나오고, 여기서 살짝 돌면 언제나 바람이 거세다고 명명된 바람바위 앞에 선다. 영축산에서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 쌀바위 상운산 문복산과 언양의 진산인 고헌산에 이르는 영남알프스 동부능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10분 후 공동묘지가 조성돼 있는 화장산 정상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차량 통행이 가능할 정도의 넓은 길. 도화정(桃花亭)을 지나 체육시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굴암사(窟岩寺). 신라 제21대 소지왕이 중병을 앓던 중 이곳 굴 속에 핀 복숭아꽃으로 치유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봉화산 기슭의 수백년 된 서어나무를 지나는 개척단.

    체육시설 앞 삼거리까지 되돌아가 우측 길을 택한다. 간이화장실을 지나 정자가 위치한 사거리까지는 20분쯤 걸린다. 너비 3m 안팎의 오른쪽 흙길로 200m쯤 가면 임도에서 우측으로 빠져나가는 샛길이 있다. 길 찾기 유의할 지점이다. 리본을 참고하자.

    키 큰 산죽 사이로 5분만 가면 위열공 김취려 장군묘와 만난다. 고려 고종 때인 1216~1219년 거란의 공격을 물리친 호국대장군으로 이후 최고위직인 문하시중까지 오른 언양의 대표적 위인이다. 언양 김씨 후손들이 매년 가을 이곳에서 추모제를 지낸다고 한다. 왔던 길로 30m쯤 되돌아가면 우측으로 내려서는 반듯한 길이 보인다. 수령 100년은 넘었을 아름드리 소나무들 사이로 걷는 운치 있는 길이다.

    5분후 '김취려 장군 태지유허비'를 지나면 송대리 능골 마을로 들어선다. 장군의 묘가 있다고 해서 능골이라고 불렸을까. 첫 갈림길에서 왼쪽 대숲이 있는 마을 쪽으로 진입해 노란색 길상사 안내판 앞 삼거리까지 간 후 우측 24번 국도 쪽으로 튼다. 굴다리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곧장 10분쯤 더 가면 오른쪽에 또 다른 굴다리가 있다. 여길 통과한 후 갈림길에서 논두렁길을 지나 정면 야트막한 언덕 밑 포장로에 오른다. 우측으로 200m쯤 가면 파란색 철제 울타리가 있는 대풍농장 건물을 만난다.


    언양 화장산 굴암사에서 김취려 장군 묘 방향으로 가는 길. 여러명이 얘기 나누며 걸을 수도 있는 넓은 길이다.

    대풍농장 정문 왼쪽 묘지 쪽으로 산길을 탄다. 이번 코스에서 가장 묵은 길이다. 5분 정도 오르면 새터마을 상수도배수지 옆을 통과하고 7분이면 글씨가 음각된 너럭바위를 지난다. 동래 정씨묘까지 통과하면 길은 다시 반듯해진다. 100m쯤 가다가 왼쪽으로 살짝 비켜서면 전망대. 발아래 조선시대 이전부터 있었다는 못안못이 보이고 고헌산 가지산 등 영남알프스 줄기도 여전하다. 능선을 따라 못안못 옆 갈림길까지 5분이면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50m만 가면 왼쪽 포도밭에 지내리지석묘가 있다. 조금은 방치된 느낌. 지석묘를 지나 제2코스 종착점인 신광사 주차장까지는 4분 걸린다.

    ※ 잠깐!

    제발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 둘레길과 지역 주민들 가슴이 모두 멍든다. 지난주 제1코스를 따라간 이들은 쓰레기를 많이 버렸다.

    ◆ 시민개척단 참가-김수원 씨

    - "자연사랑 인간사랑 담아 영남의 자랑 되길"

    "국제신문에서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연다는 기사를 접하고 얼마나 반갑던지. 꼭 참여하고 싶어 이렇게 나섰지."

    이번 둘레길 제2코스 취재답사에 시민 개척단원으로 참여한 김수원 씨(71·울산 울주군 상북면 지내리). 그는 영남알프스가 고향인 사람이다. 제1코스 구간이었던 삼남면 가천리 신불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로 부산에서 45년간 봉직한 후 귀향, 91세 노모를 봉양중이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걷고 달리는 데서 찾아야한다. 김 씨는 울트라마라토너다. 이미 100㎞ 울트라마라톤 완주를 96회나 했다. 또 2007년 9월에는 18박19일에 걸쳐 전국 일주 마라톤 2030㎞를 완주했고, 이듬해 가을에는 거리를 더 늘려 24박25일 동안 2500㎞를 완주해 낸 괴력의 소유자이기도하다.

    그는 "국제신문 주최 부산 5산 종주 산악마라톤도 이미 몇 차례 참가, 완주했다. 완성된 영남알프스 둘레길에서 꼭 달려보고 싶은 것이 꿈이다. 자연사랑 인간사랑이 합일되는 둘레길로 조성돼 영남의 자랑으로 발전됐으면 좋겠다"라며 포부와 당부를 밝히기도 했다.

    ◆ 교통편&먹을 곳

    - 도시철도 명륜동역서 언양행 버스 이용

    부산도시철도 1호선 명륜동역 앞에서 언양행 12번 버스를 타고 작천정 입구에서 하차한다. 1시간 소요.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 요금소를 통과한 후 35번 국도 신불산군립공원 작천정 방향으로 간다. 3분쯤 가면 작천정 입구 표지판이 나오는데 작천정 방향으로 우회전 2분쯤 더 가면 오른쪽에 인내천바위 안내판이 있다. 인근에 넓은 무료 주차장이 있다. 코스 걷기를 마치면 울주군 상북면 지내리 신광사에서 대리꽃마을 산책로를 따라 왼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24번국도 지내교차로까지 갈 수 있는데 교차로 직전 버스정류소에서 언양행 버스를 탈 수 있다. 다만 막차가 오후 7시30분이고 배차간격은 192분이어서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지내교차로에서 향산리 방향으로 15분쯤 걸어서 향산초등학교 앞까지 가는 편이 났다. 향산리지석묘도 둘러볼 수 있다. 언양터미널행 시내버스가 20분 안팎 간격 운행.

    제2코스 중간 경동교 인근 음식점인 '기러기칼국수(052-264-0076)'에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다. 충남 예산에서 황토를 먹여 키운 기러기로 우러낸 육수에 기러기 수육과 파를 곁들인 칼국수가 별미다. 담백하고 구수한 국물이 입맛을 돋운다.

    ◆ 화장산 남매-도화 스님 전설

    - 가엾은 남매의 혼 송대마을 이름으로 환생

    - 신라왕 병 고친 도화 이야기도 흥미

    - 이후 화장산을 언양 주산으로 대접

    - 소설가 오영수 선생 묘도 들러볼 만

    언양 사람들은 해발 271m에 불과한 화장산(花藏山)을 주산으로 삼고 있다.

    도대체 화장산은 어떤 산일까. 우선 전설부터 한 번 보자. 때는 신라시대 어느 엄동설한. 산 밑에 사냥꾼 부부가 남매를 키우며 살았다. 그런데 산 위 바위굴에 살던 곰이 다른 짐승들을 잡아먹는 등 행패를 부렸다. 부부는 곰을 잡으려 했지만 오히려 곰에게 역습을 당해 죽고 말았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부모를 찾으러 나섰던 남매도 산을 헤매다 기진맥진해 눈 속에서 얼어 죽었다. 가엾게 죽은 오빠의 혼은 대(竹)가 되고 여동생의 정령은 소나무(松)가 됐다. 산의 동쪽 마을 이름이 송대리가 된 유래다. 그래서 지금 산 위와 아래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무성하다.

    전설이 또 있다. 이 즈음 신라 제21대 소지왕이 중병에 걸려 치유되지 않고 있었다. 하루는 관세음보살이 꿈에 나타나 "남방에 도화(桃花)가 있으니 그 꽃을 3일간 달여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왕은 엄동설한에 어떻게 도화를 구할지 걱정하면서도 신하들을 풀어 꽃을 찾게 했다. 한 신하가 헌양성(언양성의 옛 이름)에 이르러 가까운 산의 남쪽 바위에서 서기가 어리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니 꽃은 없고 도화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이 바위굴에서 수도중이었다. 서라벌로 간 도화 스님앞에서 소지왕은 3일간 기도했고 병은 보란듯이 나았다.

    크게 기뻐한 소지왕은 직접 언양에 가서 도화 스님이 머물던 산의 이름을 '꽃을 감춘 산'이라는 뜻으로 '화장산'이라 하고 석굴 속 샘물을 염천이라 불렀다. 또 화장암(굴암사의 전신)이란 절을 지어 매년 8월16일을 관례일로 삼았다. 이후 언양의 관민들은 해마다 이곳에서 제례를 올렸다. 화장산은 언양의 주산이 됐다.

    또 화장산 정상 기슭에는 천지(天池) 또는 세이지(洗耳池)라고 불리는 작은 연못이 있다. 이는 언양 사람들이 '더럽고 좋지 않은 말을 들었을 때는 이 물에서 귀를 씻는다'는 의미로 명명된 이름이다. 올곧은 삶을 영위하고자 했던 언양 사람들이 중국 요나라 때 인물인 소부와 허유의 고사를 따서 그렇게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화장산이 언양 김씨의 시조인 고려 대장군 김취려가 태어나 무예를 익힌 산으로 기록돼 있고, 현재 그의 묘가 있다.

    산아래 남쪽 자락에는 '갯마을'로 유명한 언양의 소설가 난계 오영수 선생의 묘(사진)가 있다. 그의 묘비에는 '작가 오영수 여기 잠들다'라는 글귀가 단촐하게 적혀 있다. 둘레길을 걷다가 한 번쯤 들러보자.

    # 못안못 잉어잡이 풍습

    - 500여년 전통…과욕금물 교훈

    둘레길 제2코스의 종착점인 상북면 지내리에는 '못안못'이라는 큰 저수지가 있다. 이 못은 조선 예종 원년(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 언양현조에 초산제(草山堤)란 이름으로 나온다. 500년은 된 못이다. 이 못의 잉어잡이 풍습은 예부터 제법 유명했다.

    워낙 크고 깊은 못이지만 10년에 한 번 정도 큰 가뭄이 들면 주민들이 주야로 며칠간 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특히 밤에 횃불을 들고 불야성을 이루며 잡는 '못안못 잉어잡이'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고 한다. 간혹 어린애 키보다 큰 황금빛 찌꿈잉어가 잡히면 성스럽게 예우해 놓아주었다고 한다. 이 찌꿈잉어를 잡으면 대풍이 든다는 속설도 있었지만 동네 어른들은 "욕심이 과하면 오히려 화를 당한다"며 젊은이들을 달래 놓아주게 했다는 것이다. 족함을 알고 욕심을 부리지 말며 살라는 교훈이 깃든 이야기다.

    지내리(池內里)라는 지명은 못의 안쪽 마을이라는 의미다. 못안못 서쪽 들에는 오리농법으로 벼를 재배하는 경작지가 있다. 주황색 지붕을 한 소형 오리장이 이색적이다. 제2코스를 마무리하고 버스를 타기 위해 향산초등학교 쪽으로 걷다보면 향산리지석묘가 있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GPS트렉·동영상=http://www.kookje.co.kr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들머리를 올라서면 인내천 바위로 "사람은 곧 하늘"이란?. 동학혁명의 사상을 표현한 바위이다. 

    인내천 바위를 지나면 대머리 바위 정수리에 올라서면 언양 일대의 조망이 펼쳐진다.  부산 울산 등지의 기초 암벽코스로 많이 이용을 하는데 대머리 처럼 바위 표면이 빤질빤질하여 슬랩등반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어 부르지 않았나 싶다. 머리 정족산 그리고 천성산까지 조망이 열린다.


    대머리 바위를 지나면 만나는 넓은 오솔길로 시누대길도 이어지고

    넓은 임도형길이 부로산 봉수대 턱밑까지 이어진다.

    부로산 봉수대 직전 우측 전망대에서 본 언양읍 전경으로 울산의 진산인 문수산과 그 우측 남암산이 소뿔처럼 솟아 있어 독특한 전경을 자아낸다. 

    부로산 봉수대로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는 '부로산(夫老山)'으로 표기돼 있다. 울산시기념물 제16호로. 왜적 침입 등 국가적 위기 때 부산 천마산과 금정산 계명봉, 원적산(현 천성산) 봉수대를 거친 봉화를 받아 경주 소산 봉수대로 이어주었다 한다.

    부로산봉수대를 내려서면 등억온천과 그 뒤로 신불산, 간월산 그리고 배내봉 밝을산등 힘찬 영남알프스 산군들의 곳갈까지 볼 수 있다.

    쌍탑이 있는 342봉으로 여기서는 돌탑 왼쪽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342봉에서 본 상북면 일대의 모습으로 상운산과 운문령 그리고 문복산 고헌산과 백운산등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모습을 확인 할 수가 있다. 

    언양읍과 넘어 가야할 화장산의 모습, 그리고 그 뒤로 울산의 치술령등 호미기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은 샘터

    노목의 서어나무를 지나면

    언양읍의 경동청구 아파트 앞을 지나간다.

    기러기 칼국수집의 칼국수로 육수가 담백하여 점심때 언몸을 달래주는데 유익하였다.

    화장산 입구의 언양고인돌로 영남일대에서는 규모가 가장크며 마을에서는 용바위로 신성시하였다 한다.

    화장산의 바람바위에서 바라본 동부 영남알프스로 시원한 전망을 자랑하며 영남알프스 최고의 전망대 중 한곳으로 이름을 올려도 될 법한 그런 곳이다.





    화장산의 전설을 간직한 굴암사로

    굴암사 내부의 모습이며

    언양읍성의 모습과

    언양김씨인 고려시대의 위열공 김취려장군 묘지를 거쳐

    고헌산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도로를 따라

    잉어잡이가 조선시대때 부터 성행하였다하여 오래전 부터 마을이 형성 된 것을 알 수 있는 못안못으로 그 뒤를 둘러싸고 있는 영남알프스

    재내리 지삭묘로 특이하게도 사유지인 포도밭에 둘러 싸여 관리가 엉망인체로 남아 있다. 

    2구간 마지막 종착지인 신광사 가는 길로 뒤로는 영남알프스 고헌산을 볼 수 가 있다.

    오리농법으로 유명한 적현마을의 앞뜰

     

    향산리 고인돌로 장군바위로도 불리며 2구간을 끝내고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중에 만나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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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알프스둘레길 제1코스)영남알프스 둘레길 1코스 통도사~작천정


     

    근교산&그너머 <709> 제1코스 : 양산 통도사~울주 작천정

    신불산신도 시샘할 마실길…신바람이 분다

     

     
    -영축산~금강골~신불산 풍광 엿보는 숲길
    -수평의 길 14.5km…4시간 정도면 충분
    -선사 유적 '방기리 알바위' 아들 기원 설화
    -자수정동굴나라 작천정 등 볼거리도 풍성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通度寺).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모신 법보사찰이다. 영축산(靈鷲山·1092m)의 기운을 받은 통도사 일주문 현판에 적힌 '영축산문'이라는 글씨가 뚜렷하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코스 구간 답사에 나선 개척단원들이 울주군 신불산 아래 숲길을 지나고 있다.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영남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쉼터이며 '영남의 허파'라 불리는 '영남알프스'에 명품 둘레길을 열겠다는 당찬 포부를 선언한 '국제신문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의 첫 걸음은 이곳 일주문 앞에서 시작된다. 독수리의 기상을 품은 영축산의 웅장한 자태를 배경으로 서 있는 일주문을 향해 잠시 무탈한 소임 완수를 위한 기원의 시간을 갖는다.

    경남 양산과 밀양 울산 울주와 경북 청도 경주에 걸쳐 있는 영남알프스의 수백 갈래 길을 아우르는, 좁지만 큰 길인 '둘레길'의 제1코스는 양산 통도사에서 울주 작천정에 이르는 14.5㎞ 구간이다.

    제1코스는 서쪽으로 우뚝 솟은 영축산 신불산 주능선과 그 아래 수많은 골짜기와 암릉, 폭포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걷는 풍광 좋은 길이다. 천년고찰의 향취와 선사시대 유적에 얽힌 설화, 고려 충신 정몽주와 울주 선비들의 발자취가 깃들어 있고 자수정 동굴 광산 일꾼들의 땀냄새가 배어 있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아픔과 미래의 발전을 가늠케 하는 산업현장이 서로 얽혀 있다.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시간의 길'이라 불러도 좋겠다.

    ▷ 800리 대장정 통도사 일주문 기점 삼은 원점회귀

     
     
    여정은 통도사~통도환타지아 뒤~지내마을 당산나무~방기리 알바위~방기뒷산(산불초소)~삼성SDI 뒤편 도로~포플러 나무~대나무 숲길~아리랑릿지 등반로 입구~장제마을 노거수~가천리 회관~능선 오거리 갈림길(신불재, 삼봉능선 등반로 입구)~가천저수지~아롱당(啞聾堂) 앞~한우 축사 사잇길~배밭~묘지~신불 공룡능선 등산로 입구~자수정동굴나라 대형 주차장~319m봉(일명 백암산)~작천정~인내천 바위 입구 순이다. 4시간이면 적당하다.

    통도사 일주문을 뒤로 하고 걸으면 왼쪽에 에쿠스모텔. 모텔 앞에서 왼쪽으로 꺾는다. 주차장 뒤로 오룡산에서 시살등 함박등을 거쳐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남동능선이 펼쳐져 있다. 3분 후 T자형 삼거리에서 왼쪽 대명파크 앞을 통과한다. 곧 버스정류소를 지나 50m만 더 가면 지산마을 앞 삼거리. 우측 순지리 지내마을 방향으로 꺾으면 통도환타지아 주차장이 보인다. 이어지는 모단 버스정류소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틀어 200m쯤 걸으면 400년 된 소나무인 지내마을 당산나무가 있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동민들이 해마다 제사를 모셔 왔던 나무다.

     
      '방기리 알바위' 유적지의 알바위 모습이다.
    당산나무를 지나 200m쯤 가면 왼쪽에 영축산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이 지점을 지나면 낙동정맥을 가로지르는 셈이 된다. 곧바로 울산 울주 땅이다. 정확히 말하면 삼남면 방기리. 7분 후 '방기리 영축사' 입간판이 있는 사거리에서 정면 멀리 보이는 야트막한 산의 산불감시초소를 보며 직진한다. 5분 후 작은 미용실 근처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보광사 방향으로 튼다. 보광사 앞에서 하천을 건너지 말고 7분 정도 마을길을 따라 내려가면 포장로가 나오는 삼거리 건너편에 야트막한 솔숲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선사시대부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민간신앙 성격의 기도처로 알려져 있는 '방기리 알바위' 유적이다.

    삼거리를 가로질러 만나는 알바위 유적지에는 둥그스름한 수십개의 크고 작은 바위가 흩어져 있다. 바위마다 지름 5~15㎝ 크기 반원형 구멍이 5~30여개씩 새겨져 있다. 예부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며 작은 돌로 문지른 탓에 생긴 흔적들이다. 천전리 각석, 반구대암각화 등과 동시대인 청동기 유적으로 파악되는 방기리 알바위는 울산시기념물 제10호로 지정돼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한 부녀자가 작은 돌을 계속 문질러 그 돌이 '성혈(性穴)'이라고 불리는 작은 구멍에 붙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설화가 재밌다.

    ▷ 방기뒷산서 내려서는 눈 덮인 밤나무길 고즈넉

     
      통도사에서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알바위 안내판에서 다리를 건너면 방기구판장. 다시 보광사 쪽으로 되돌아간다. 보광사 앞에선 오른쪽 1시 방향으로 열린 작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민가의 키 큰 목련, 엉개나무 등이 운치를 더한다. '사사문(思思門)'이라 적힌 재실을 끼고 우측으로 튼다. 농로를 따라 5분이면 '영스마린'이라는 업체 뒤 포장로와 만난다. 정면 산 쪽으로 난 흙길로 들어선 후 우측으로 산자락을 감아돌면 2분 후 양지 바른 곳. 잠시 쉰다. 이제 왼쪽 오르막 산길을 탄다. 두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금세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방기뒷산 정상.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 알바위 유적을 답사 중인 개척단



    독수리 부리를 닮은 영축산 정상과 그 우측 금강골이 시원하게 드러난다. 금강골은 에베로릿지 아리랑릿지 쓰리랑릿지 등의 암릉과 금강폭포 가 어우러져 금강산의 축소판을 연상케한다. 금강골을 보면서 왼쪽으로 살짝 내려선 후 안부에서 우측 2시 방향 밤나무밭 사이길로 접어들면 고즈넉한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정취가 더욱 짙어진다. 예비군 사격장을 지나 만나는 작은 연못은 추운 날씨 탓인지 꽁꽁 얼어붙었다. 연못 직후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꺾는다. 주변에는 조림목들이 가지런하다. 철조망 문을 비켜 통과하면 삼성SDI 공장 뒷편 도로. 왼쪽으로 꺾어 200m쯤 가니 사격장안내판이 있다. 우측으로 꺾은 후 공장 출입문 앞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아름드리 소나무 터널을 지나면 키 큰 포플러나무가 도열해 있다. 두번째 나무를 지나 만나는 '가천금사길 208-1번지' 민가 앞에서 우측으로 꺾은 후 이내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번엔 운치 그윽한 대숲길이다.

     
      울주 자수정동굴나라 부처바위 아래 수정광산 동굴.
    3분 후 염승테크 앞 삼거리는 신불산 아리랑릿지 등반로 들머리 역할을 하는 곳. 왼쪽 금강골의 금강폭포가 꽁꽁 얼었다. 금강폭포는 유명한 빙벽등반장이다. 우측 포장도로를 따른다. 수령 100~150년 된 장제마을 노거수(느티나무)와 어느 방향에서 봐도 똑같이 동그랗다는 고장산(321m) 아래 안락국사(安樂國寺)를 지나 가천리회관 앞에 이르기까지 15분쯤 걸린다. 회관 앞 갈림길에서 '신불산 불승사' 표지판 방향인 왼쪽 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약간 오르막이다. 능선 5거리에서는 정면의 운진사 표지판 옆 비포장 임도로 들어선다. 작은 언덕을 휘도는 한적한 흙길이다. 10분 후 포장로 만나면 왼쪽으로 크게 꺾는다. 우측에 '꽃내음'이라는 음식점이 보이고 가천저수지가 반긴다. '꽃내음' 앞에서 왼쪽 도로를 따른다. 청둥오리가 한가롭게 노니는 저수지를 우측에 끼고 걷는 길. 쉴 만한 의자라도 몇 개 있으면 참 어울리겠다. 5분 뒤 작은 다리를 지날 때 우측 은진 송씨, 밀양 박씨 재실인 아롱당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 우측의 '아롱당' 쪽으로 튼다. 다리 건너 직진하면 소가천마을의 축사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를 수 있지만 아롱당 앞을 거쳐 저수지를 휘도는 길이 좀 더 운치가 있고 걷기에도 좋은 흙길이어서 이 길을 택한다.

    ▷ 작천정 앞 너럭바위 '술잔 구멍'에 청정 계곡물 넘쳐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코스 종점인 작천정 앞 너럭바위.
    재실인 아롱당 앞에서 바라본 가천저수지의 물비늘이 참 곱다. 저수지 갓길을 따라 3분쯤 더 가면 길이 갈라지는데, 왼쪽의 완만한 골짜기로 통하는 길을 택한다. 완만한 오르막 흙길이 포근하다. 15분 후 무덤을 지나고 좀 더 오르면 능선 사거리.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소가천마을로 가는 길이지만 우측의 산 허리를 에돌아가는 길을 따른다.
     작은 계곡을 지나자 공동묘지. 묘지를 지나자마자 신불산 공룡능선 등산로 입구 삼거리. 왼쪽은 공룡능선을 따라 신불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지만 우측 넓은 길로 간다. 잠시 후 눈앞에 자수정동굴나라 전경이 펼쳐진다. 도로를 건너 동굴나라 윗쪽 길을 따라 대형주차장으로 간다. 왼쪽으로는 간월산 밝얼산 상운산 문복산 고헌산 등 영남알프스의 또 다른 봉우리들이 파노라마를 이룬다. 주차장에 닿기 전 중간쯤 우측에 작은 동굴이 하나 있다. 자수정을 캐던 동굴인 듯싶다. 대형주차장 입구에서 원래 진행방향은 직진. 하지만 틈을 내서 대형주차장을 가로지른 후 왼쪽으로 가 보자. 오래전 자수정 채굴 인부들이 안전을 기원하며 제를 지냈다는 부처바위가 있다. 내친 김에 우측 계단으로 내려가 자수정동굴 유적을 둘러보자. 다시 대형주차장 입구로 돌아온 후 왼쪽(당초 진행방향에서 보면 직진한 셈)으로 튼다. 50m쯤 가서 도로를 버리고 정면 작은 언덕으로 오르는 산길을 탄다. 능선을 따르며 가건물 앞을 지나면 319봉 정상. 지금은 '백암산'이라는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 이제 내리막길. 중간 전망대에선 제2코스의 봉화산과 대머리바위, 언양읍내가 확인된다.

    작괘천 변 오솔길에 닿으면 일단 왼쪽으로 꺾는다. 2분쯤 가면 콘크리트 제방을 만난다. 작괘천 건너 좌로 100m쯤 가면 고려 말 포은 정몽주가 유배 때 책을 읽었으며 조선 세종때 울주 언양 일대 선비들이 임금을 흠모하며 지었다는 작천정(酌川亭)이 있다. 작천정의 진수는 정자 아래 하얗고 널따란 너럭바위다. 간월산에서 발원한 작괘천 물이 오랜 세월 동안 흘러내려 파인 너럭바위의 크고 작은 구멍들이 신비감을 더한다. 바위의 동그랗게 파인 구멍들이 술잔을 닮았다고 작천정이라고 했던가.

    계단을 올라 작천정 위 도로에서 우측으로 꺾어 화장실을 지나 1분쯤 가면 왼편에 인내천바위 입구가 보인다. 볼거리 많고 이야깃거리가 곳곳에 숨은 아름다운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코스의 종점이다.


    # 떠나기 전에

    - 구제역에 고통 받는 축산농가 살피며 걷기를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코스는 길 걷기를 즐기는 그 어떤 여행자라도 가슴이 벅차 오를만한 아름다운 길이다. 하지만 개척단 입장에서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길 가의 풀 한송이 나무 한그루도 함부로 꺾거나 훼손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개설 초기 일부 비양심적 순례객들의 훼손 행위로 인해 지역 주민들과 갈등까지 빚었던 타 지역 둘레길의 시행착오를 영남알프스 둘레길에서 만은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 더구나 일부러 키운 묘목이나 정원수, 과실 등은 절대 건들지 말자. 또한 제1코스 주변에는 농장과 한우 축사가 제법 많다. 최근 구제역의 기승으로 축산농가의 시름이 어느 때보다 깊다는 것을 알고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이 축산농가 주변에서는 소란스럽지 않게 특히 조심하며 걸었으면 싶다.

    걷고 나면 출출해 지기 마련. 제1코스 종착점인 인내천 바위 입구에서 일명 '언양 벚꽃터널길' 사이로 5분쯤 걷다보면 우측에 '옹심이 칼국수' 울산 언양점(052-263-2550)이 있다. 따뜻하고 구수한 다시국물에 메밀로 뽑은 면과 감자 옹심이 또는 만두를 넣은 칼국수 맛이 썩 괜찮다. 메밀배추전과 옹심이 동동주 한 잔을 섞어도 길 가는 나그네에게는 꿀맛이다.


    # 교통편

    - KTX울산역 통해 서울서도 약 2시간만에 도착

    둘레길 제1코스의 출발점을 양산 통도사로 잡은 것은 불보사찰로서의 상징성과 역사성도 있지만 특히 교통편도 고려한 결정이었다.

    부산에서 이동할 경우 부산도시철도 1호선 명륜동역 앞에서 새벽 5시32분부터20~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언양행 버스를 타고 통도사 입구에서 내린다. 또 지난해 완전 개통된 KTX 울산역을 이용하면 수도권 시민들도 2시간30분만에 통도사 일주문까지 도착 가능하다. 울산역 앞에서 새벽 5시2분부터 25~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13번 버스를 타면 30분만에 통도사에 닿는다. 1코스 종착점인 작천정 인근 인내천바위 앞에서는 2~3시간 간격으로 언양행 버스가 운행되지만 기다리기 지겹다면 35번 국도까지 10분만 걷자. 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부산행 버스를 탈 수 있다. 자가용 이용자의 차량 회수때도 이 방법을 쓴다. 자가용 이용자는 경부고속도로 통도사IC에서 내려 35번 국도를 타고 통도사 방향으로 좌회전, 1㎞쯤 가다가 통도사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하면 된다. 일주문 오른쪽에 넓은 무료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1-563-0254 GPS트렉·동영상=http://www.kookje.co.kr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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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바퀴 800리 명품 트레일… 지리산 둘레길 뛰어넘는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열린다

    - 본지 '근교산' '갈맷길' 취재팀
    - 15㎞ 안팎 25~28개 구간 나눠 샛길까지 고려 루트 개척 나서

     


     



    - 부울경 주민 누구나 참여 가능…지역문화 등 스토리텔링 작업도
    - 본지 '주말&엔' 섹션 통해 소개

     
      국제신문 '영남알프스 둘레길 프로젝트'의 이창우 개척단장이 경북 청도 대남바위산 아래 언덕에서 눈덮인 가지산~운문산 능선을 조망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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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알프스'는 능선과 봉우리가 수많은 골짜기를 두고 서로 겹치며 일렁거리는 듯 산의 바다를 이룬 곳이다. 영남 사람에게는 삶의 터전임과 동시에 큰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제 '영남알프스'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길을 통해서다. 산정 높이 오르는 능선길이 아니라 마을과 마을의 모퉁이 길을 연결한 둘레길이다. 산꾼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었던 영남알프스가 남녀노소 모든 이들의 노스탤지어로 다가서는 것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따라 산은 들판이 되고 언덕이 되며, 그곳에서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

    국제신문은 '근교산'과 '갈맷길'을 통해 쌓은 노하우로 영남알프스와 그 언저리의 사람들, 그리고 이곳을 찾아 걸어갈 또 다른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 줄 가교 역할을 해 나갈 계획이다.

    ■1년 전부터 명품 트레일 개척 작업

     
    경남 양산과 밀양, 울산 울주, 경북 청도와 경주 등 3개 광역시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1000m 이상 9개 봉우리와 그 언저리를 통틀어 일컫는 '영남알프스'는 '영남의 하늘'이자 '영남의 허파'다. 가장 높은 가지산(1240.9m)과 운문산(1195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간월산(1069m), 천황산(1189m), 재약산(1119m), 고헌산(1032m), 문복산(1014m) 등 9개 산은 저마다 특징과 맛을 가지면서도 서로 능선을 통해 연결돼 하나의 거대한 산군을 이룬다.

    이곳은 통도사를 비롯해 표충사 운문사 석남사 등 전국적인 명성의 거찰들이 터를 잡았다. 학심이골 배내골 얼음골 등 깊고 아름다운 계곡을 품고 있으며, 수천 년 동안 이 산자락과 계곡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이 산줄기를 넘나들기 위해 길을 냈다. 운문령 석남고개 배내고개 등 수많은 고개가 바로 사람들의 길이었다.

    영남알프스는 산이면서 동시에 영남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역사 문화 전통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넉넉한 터다. 그 언저리에서 터전을 닦고 살아온 모든 지역, 모든 세대 사람들의 것이다.

    그런데 이 영남알프스를 에두르며 걸어서 돌아볼 수 있고, 지역과 지역을 연결해 하나로 이어주는 완성된 둘레길이 없다. 국제신문 '근교산' 취재팀 역시 지난 18년간 영남알프스의 거의 모든 봉우리와 능선 계곡들을 가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그것은 위로 갔다가 아래로 내려온 수직 걷기였을 뿐이다. '코끼리 등에 올라타서는 코끼리 전체를 볼 수 없다'는 말처럼 영남알프스를 멀찍이서 바라볼 필요성에 대한 자성의 기운이 2~3년 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1년 전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 이제 비로소 그 첫 흔적을 공개하는 것이다.

    국제신문의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낙동강에다 운문호 밀양호 등을 품는 영남알프스 둘레길이 성공적으로 완성될 경우, 섬진강과 연계된 지리산 둘레길을 뛰어넘어 전국 최고의 명품 트레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

    ■철저한 고증·답사, 사실성 극대화

    지난해 작고한 부산의 원로 산악인 성산 씨와 그의 대륙산악회 동료 겸 평생 악우(岳友)인 곽수웅 씨 등이 1970년대 초 처음으로 명명한 것으로 알려진 '영남알프스'. 그곳에 둘레길을 여는 것은 국제신문 '근교산' 취재팀과 '갈맷길' 취재팀의 숙원이었다. 따라서 이들 취재팀을 통합,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을 구성해 본격적인 길 열기에 나선다.

    최장 350㎞에 이를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전체적인 모습은 사전 답사를 통해 1차 밑그림이 그려진 상태다. 개척단은 구간별 15㎞ 안팎으로 나눠 총 25~28개 구간에 걸쳐 걸으며, 각 구간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 전설 생태 특산물 삶의 흔적 등 거의 모든 이야기를 보다 충실한 현장 답사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상세하게 소개한다.

    본지 주말 섹션 판인 '주말&엔'을 통해 소개될 '영남알프스 둘레길 프로젝트'는 상세한 지도와 특징 있는 사진을 대폭 확충, 한층 비주얼(visual)화한 지면으로 구성된다. 개척단은 근교산 시리즈의 이창우 산행대장 주도로 진행된다. 그는 영남알프스 일대의 거의 모든 샛길까지 머리에 담아두고 루트 개척에 나선다. 여기에 동참하고 싶은 부산 울산 경남 주민이라면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도 개방한다.


    〈특별취재팀〉

    박창희(팀장·기획탐사부) 강춘진 이흥곤 이승렬(이상 주말레저팀) 정두은 노수윤 이민용 박동필(이상 사회2부) 박수현 김성효 기자(이상 사진부) ▷문의 (051)500-5166~9

    ◆영남알프스 350㎞ 둘레길 연다◆
    본지 새해기획… 5개 시·군 걸친 탐방로 개척 프로젝트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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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울산 경남 등 영남 산꾼뿐 아니라 지역주민에게도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영남알프스'. 주봉인 가지산(1240.9m)을 비롯해 해발 1000m 이상 산봉 9개를 거느려 '영남의 허파'라 불리는 이곳에 '지리산 둘레길'에 버금가는 국내 최고의 명품 탐방로가 열린다.

    국제신문은 신묘년 새해 연중 기획으로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 프로젝트'를 10일부터 시작한다. 이 둘레길은 본선만 약 300㎞, 일부 구간의 지선까지 합치면 최대 350㎞에 달한다. 행정적으로는 울산 울주군, 경남 양산시, 밀양시, 경북 청도군과 경주시 등 3개 광역시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프로젝트는 그동안 인기를 끌어온 '근교산' 시리즈와 부산의 '걷고 싶은 길'인 '갈맷길'을 개척하며 쌓은 국제신문의 산행 및 걷기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풀 가동해 추진하는 연중 기획이다.

    산행지로만 인식되던 영남 알프스 일대를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편하게 걷게 만들어 풍요롭고 넉넉한 숨결을 몸소 체험하게 하자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이 둘레길은 산 아래 형성된 마을과 마을의 모퉁이를 돌고, 계곡을 건너고 호숫가 산책로를 따르며, 유적과 유적, 절과 절을 이어서 돌아가는 '수평의 길', 숨이 차오르는 길이 아니라 '숨을 쉬는, 휴식의 길'을 지향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목적은 둘레길 개척과 함께 영남알프스 내에 숨어 있는 역사와 문화유산, 자연 생태, 지역주민의 삶을 조명하고 스토리텔링화하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녹색관광의 길을 제시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겠다는 것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프로젝트'는 국토해양부가 오는 2019년까지 국비와 지방비, 민간자본 등 총 1조5559억 원을 투입해 추진하는 '영남 알프스 문화관광 클러스터' 사업과 연계가 가능하며, 1차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의미도 있다.


    ▶영남알프스

    경남 밀양시 산내면과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울산 울주군 상북면 등에 높이 1000m 이상 되는 9개의 산군(山群)이 유럽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연기념물 224호 얼음골을 비롯해 통도사 석남사 운문사 표충사 등의 명소와 사찰이 널려 있다.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영남알프스 길 개척 방점 찍는 작업될 것"
    이창우 개척단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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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신문 근교산 취재팀의 초대 산행대장이셨던 고 성산 선생께서 30여 년 전 '영남알프스'라 명명하셨고 나 또한 100여 회 넘게 영남알프스 산행로 개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둘레길 프로젝트만큼 가슴이 벅차오른 적은 없었어요."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장을 맡은 이창우(50·사진) 씨는 영남알프스의 거의 모든 길을 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전문 산악인이다. 15년이라는 긴 세월 국제신문 '근교산' 취재팀 최장수 산행대장을 맡기도 한 이 단장은 '국내 최고의 살아 있는 산길 GPS'라 불리기도 한다. 그는 둘레길 프로젝트의 의미에 대해 "그동안 영남알프스 길 개척 작업에 마지막 방점을 찍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단장은 "산꾼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영남알프스 주변의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샛길을 따라 마치 마실 나들이 하듯 편안하게 걸으며 영남알프스의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래서 사전 답사 과정에서 한층 편안하고 합리적인 길 연결을 위해 작은 봉우리의 능선 4~5개를 모두 오르내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이 단장은 "2탄으로 산꾼들을 위한 영남알프스 중턱 둘레길(가칭 '프리미엄급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루트는 거의 완성돼 있다고 그는 귀띔했다.

    이승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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