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 경주 삼릉 가는길 천관사지 여행. 경주 천관사지


삼국통일의 영웅 김유신과 그의 젊은 날 연인이었던 천관녀의 전설이 있는 경주 천관사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학창시절 김유신과 함께 등장하는 천관녀의 이야기는 골치 아픈 다른 수업시간에 비해 머리에 쏙쏙 들어와 저장되어 장년의 나이가 된 지금도 잊지 않고 김유신 이야기만 나오면 천관녀가 함께 떠오릅니다.





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 경주 천관사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43

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 경주 천관사지 연락처:054-481-4763




2018/06/22 - (경북여행/경주여행)임진왜란 의병장 김호장군고택 경주 월암종택.

2018/01/19 - (경북여행/경주교동여행)경주 교동 최씨고택.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 최씨고택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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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2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장항리 석조불입상. 도굴꾼에 의해 다이너마이트로 파괴된 장항리 석조불입상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복원된 상태로 만나다.



저는 여행을 좋아해서 경주의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경주 남산과 연결된 마석산 산행을 하고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곳 지명이 말무덤이 있었고 산 이름도 마석산이고 저수지도 있고 해서 막연하게 이곳이 천관녀 집 앞에서 김유신에게 칼을 맞아 죽었다는 그 말무덤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천관녀가 있었다는 집이 이곳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주위를 보면 절터가 있었을 듯한 그런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김유신이 술 한잔을 걸치고 졸면서 말을 타고 오는 길과 오버랩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경주시 외동읍 북토리의 그 말무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말무덤은 맞는데 김유신에게 칼로 베어 죽었다는 그 말의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울산 치술령의 망부석으로 유명한 신라충신 박제상이 일본으로 왕자를 구하러 가면서 타고 온 말의 발목에 편지를 매달아 집으로 돌려 보냈는데 이게 그만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 헤매다 지쳐 이곳에서 죽었었습니다.

마을 사람이 불쌍해서 고이 묻어주었던 게 지명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오며 현재도 그 말무덤이 남아 있다 합니다.

 


김유신의 그 말과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경주시 교동 인근 탑동에 천관이란 지명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천관사의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최근에 경주 ‘삼릉 가는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마침 천관녀의 전설이 있는 천관사지 앞을 지나기에 얼마나 반가웠던지 전설로만 알고 있던 곳을 또 한곳 지나가는구나 싶었습니다.



문화재 안내판에는 그저 김유신과 천관녀의 이야기만 아주 짧게 나와 있어 인터넷을 뒤적이다 국립문화제 연구소의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보고서(2004년)’를 보게 되었습니다. 

천관사지에 관한 방대한 사진과 자료가 상세히 나와 있어 내심 반가웠습니다. 

천관사지보고서를 보면 천관사에 관한 남아 있는 기록 중 가장 빠른 게 고려 명종 때 이인로(1152~1220)가 지은 파한집(破閑集)이며 그다음은 고려 중기 이공승(李公升 1099~1183)이 천관사를 지나면서 지은 시가 있다 합니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김경신(金敬信 785~798)이 천관사의 우물로 들어간 꿈을 꾸고 왕위에 올랐다는 원성왕에 관한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경주부 고적조에서 천관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고려 중기 이공승이 찾았을 때까지는 천관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인로의 파한집에는 우리가 전설로 알고 있는 김유신과 천관녀의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김유신이 젊었을 때입니다. 

어머니인 만명부인은 항상 김유신에게 엄한 가르침으로 가정교육을 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김유신이 천관의 집에 머무르고 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만명부인은 김유신에게 따끔한 가르침으로 아들을 타일렀습니다. 김유신은 어머니에게 앞으로 다시는 천관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맹세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김유신은 술을 먹고 피곤한 나머지 말 위에서 잠깐 졸았는데 깨어나서 보니 천관녀의 대문 앞이었습니다. 

천관녀가 반가운 마음에 벗은 발로 뛰쳐나왔지만, 김유신은 “어찌 주인의 마음을 모르느냐”며 타고 온 말의 목을 베고 말안장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이에 천관녀는 실망하여 김유신을 원망하는 노래를 한 곡 지었으며 그게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유신은 삼국통일을 성취하고 천관녀의 집을 다시 찾았으나 집은 사라지고 터만 있어 절을 짓고는 옛 여인의 이름을 따서 천관사라 하고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합니다. 

천관사지는 경주시 교동 244번지 일대이며 사적 제340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천관사지는 도당산아래 구릉지로 1960년 이전에는 대부분 밭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다 보문호가 완공되고는 이곳에 농수로가 연결되어 밭을 계단식 논으로 개간했습니다. 

지금의 옛천관사지는 빈터로 변해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당시 논으로 바꾸는 개간공사를 하면서 천관사지의 유구가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당시 보고서에는 “탑지는 작은 둔덕을 이루며 지대석 서면이 노출된 상태였고 논두렁에는 기단갑석 3매와 장대석 초석 등이 논의 축대를 쌓으면서 보강하는데 사용되었다”라했습니다.

 천관사지의 석탑 기단부에서 발견된 팔부신장상등과 1974년 3월에 ‘대태각’ 명의 석장이 발견되어 고물상에서 찾는 등 천관사지에서 출토된 석재와 초석의 많은 석물이 외부로 반출되어 인근 학교 정원의 조경과 가정집의 장독대나 담장, 디딤돌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천관사지의 훼손상태를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천관사지의 규모를 보면서 한쪽에 남아 있는 깨어진 석재가 사실 몇 개 없는 것을 보고는 이상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게되었습니다. 

천관사지 발굴조사는 2000년 5월 25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탑지 1개소와 건물지 2곳, 우물 1곳, 석조시설 1곳 등을 조사하였고 그 이듬해 5월에 건물지 6곳과 우물 2곳, 석조시설 1곳과 담장, 배수로 등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3월에 유구 훼손 방지로 복토한 상태입니다.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

국립문화제 연구소의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보고서(2004년) 사진 캡쳐



천관사지에는 여느 사찰과는 다르게 특이한 점은 팔각삼층석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천관사지 팔각삼층석탑 부재인 팔각연화문옥개석이 전시 중이며 다음 기회에 경주박물관 여행을 할 때 꼭 챙겨보아야겠습니다.

 탑지의 부재와 상세한 천관사지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문화재청의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보고서(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WGB8Vd8JfK0javzSzjuPqLZuaOaBc3jd1pbyGJTF8gFdqRazgD9sMdjOjuYWWhlZ?nttId=18160&bbsId=BBSMSTR_1021&pageUnit=10&searchCnd=&searchWr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searchUseYn=&mn=NS_03_07_01)를 참고하세요. 내용이 빵빵합니다. 

저도 보고서를 저장해 놓고 다시 한 번 더 보고서를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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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교동 243 | 경주천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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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임진왜란 의병장 김호장군고택 경주 월암종택. 경주 김호장군고택


단일 시로서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곳이 경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주는 우리나라 문화재의 보고입니다. 

그 많은 문화재 중에서 이번에는 절충장군 부산첨사 김호 장군 고택을 찾았습니다. 

김호장군 종택은 그의 호를 따서 월암종택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경주 김호장군고택 경주 월암종택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633

경주 김호장군고택 경주 월암종택 전화:054-772-9455



2018/01/19 - (경북여행/경주교동여행)경주 교동 최씨고택.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 최씨고택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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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1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향교 대성전. 조선시대 교육기관 경주향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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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5 - (경주여행)경주 신문왕릉.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라 31대 신문왕릉을 여행하다. 경주 신문왕릉




처음 김호장군 월암종택을 방문하면서 조선시대 한 장수의 집이구나 하면서 쉽게 생각했습이다. 

그러나 역사가 400여 년이 넘은 고택이며 가정집 건물로는 몇 안 되는 오래된 건물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감짝 놀랐습니다. 

안내판을 보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큰 공을 세운 부산첨사 김호장군의 생가”로만 표기해 놓았습니다.

 


김호장군 월암종택 포스팅을 하면서 김호장군님의 연역을 알아보았습니다. 

김호장군은 1534년 경주부의 월남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570년(선조 3년) 식년 무과에 을과로 급제해 일찍부터 무인으로 20여 년 근무하다가 훈련원봉사를 끝으로 고향인 경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집안의 노비와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여 의병을 조직했습니다.





경주부윤은 그에게 경주 오봉산에 있는 부산성을 방비토록 했으며 경상초유사로 있던 학봉 김성일도 경상좌도 의병도대장에 김호를 임명했을 정도로 충·절·의가 남달랐던 분 같습니다. 

경주사람은 김호장군을 남면대장이라 따로 불렀습니다. 

이는 백운산(열박산)의 남쪽에서 오는 왜적을 모두 막아냈다 하여 붙은 별칭이라 합니다.

 




영천성 탈환에 여러 경주의 의병장과 나서기도 했으며 휘하에 1,400명의 부하를 이끌고 많은 전투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워 절충장군 부산첨사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부임하지 않고 경주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계속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경주읍성 탈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경주부에 들어온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다가 언양에서 올라오는 적의 기병 500기와 노곡에서 맞붙어 왜적을 궤멸시키고는 자신 또한 전사했습니다.



이전투가 당시 경주에서 일어난 임진왜란 전투에서 가장 큰 승리였다 합니다. 

김호장군을 경주사람은 동도오절중 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이는 조선시대 때 경주를 동도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김호장군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숨지자 첫째와 둘째 아들 또한 홍의장군 곽재우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의병활동을 하다 전사한 호국집안입니다.

 

경주월암종택 우물


경주 남간사지 석정, 비슷하지 않나요



김호장군은 사후 당상관에 추증과 전란이 평정되고는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습니다. 

영조 34년에 가선대부 형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추증되었으며 김호장군 경주월암종택은 중요민속자료 34호입니다.

 


김호장군 종택인 월암종택은 17세기경에 세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심건물인 안채가 대략 400년 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호종택에서 경주향교와 남간사지에서 본 똑같은 형태의 돌우물인 석정이 사랑채 터 앞에 있었습니다.



경주향교의 돌우물에 비교해서는 그 규모가 아주 작았고 남간사지 우물과는 그 크기가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곳의 우물이 모두 앉은뱅이 식인 신라시대 우물인데 김호장군 종택의 우물 또한 똑같은 양식이며 주변에 신라 절터 유구가 남아 있는 게 오래전에는 절터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안채가 있고 왼쪽에 초가집으로 엮은 아래채가 있습니다. 

주인장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계십니까?” 하고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문채에 붙은 작은 방에서 인기척이 나면서 두 사람이 나왔습니다. 

현재 김호장군종택은 전통한옥체험을 하는 민박집으로 운영 중인데 민박손님이었습니다.



그러자 부엌에서 쥔장이 나왔습니다. 정중히 집을 좀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양해를 구했고 “흔쾌히 구경하세요” 하기에 종택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보기 힘든 초가집이 있습니다.” 하니까 “원래는 초가집이 아니었고 모두 기와집이었습니다” 하시면서 처음에는 대문도 현재의 자리가 아니고 방향도 다르다고 했습니다.


 


쥔장은 대문은 집 앞 공터 바깥인 마을 길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랑채도 안 보이고 대문에서 안채가 바로 보이는 게 건물 배치가 조금 이상합니다" 하니까 "대문 오른쪽에 현재 정원으로 꾸며진 곳이 사랑채가 있던 곳입니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때 화재로 전소하여 급하게 짓다 보니 아래채를 초가집으로 짓게 되었고 사랑채는 아직도 복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채가 있던 자리를 자세히 보았는데 연못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꽤 풍치 있는 누마루가 있는 정자식 사랑채였을 것이라 짐작되었습니다. 

안채는 앞면 5칸에 옆면 1칸 규모로 왼쪽부터 부엌·방·대청·방인 아주 단순한 구조이며 대청에는 문짝을 달았습니다. 

아래채는 앞면 3칸에 옆면 1칸인 초가지붕입니다.

 왼쪽부터 방·방·부엌 순이며 굴뚝은 부뚜막 한쪽에 설치한 특이성을 보여줍니다. 

전형적인 남부지방의 공간구성입니다. 

종택 내에 김호장군 사당도 모셔져 있습니다. 

경주 남산 아래에 포석정, 배리삼존불, 삼릉, 남간사지와 청림사지 그리고 양산재, 나정, 신라왕릉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에 있어 민박체험 하기에 정말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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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탑동 633 | 경주 김호장군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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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여행/남구여행)울산 장생포고래문화특구 장생포고래박물관 야외 둘러보기


우리나라 최대의 고래 포경이 이루어졌던 곳이 울산의 장생포입니다. 

그래서 울산은 선사시대에서부터 고래잡이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것을 보면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래와 관계된 지명이 내륙의 깊숙한 곳에서 확인되는데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의 주산인 고헌산 아래 다개리에는 고래섬이란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마을 분에게 유래를 물었더니 장생포에서 잡은 고래를 이곳 까지 운반해왔다고 했습니다.




장생포고래문화특구 장생포고래박물관 주소:울산광역시 남구 매암동 139-29

장생포고래문화특구 장생포고래박물관 전화:052-256-6301





2018/05/21 - (울산여행/장생포여행)울산 장생포 고래 특구 장생포 벽화마을인 장생포 마을 이야기길 여행.

2018/05/08 - (울산여행)울산도서관. 새롭게 개관한 울산시립도서관 찾아서. 울산도서관

2018/05/06 - (울산여행)울산대공원 메타스퀘아 숲과 울산대공원 장미축제 등 볼게 무궁무진해요

2016/03/25 - (울산여행/방어진여행)화정천내봉수대 주전봉수대 여행, 울산의 관문 방어진에 있는 화정천내봉수대와 주전봉수대를 여행했습니다.

2015/02/13 - (울산여행/간절곶드라마셋트장)간절곶 드라마셋트장의 회장님 별장은 이런 모습, 간절곶 드라마하우스 여행

2015/02/12 - (울산여행/간절곶여행)울산 간절곶. 한반도 일출 일번지 간절곶을 여행하다.




그만큼 울산의 장생포는 고래와 떼어 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장생포가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장생포고래문화특구를 내부는 볼 시간이 나지 않고 해서 외부만 잠시 둘러보았는데 야외광장도 구경할 게 정말 많아서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장생포고래관광특구에는 장생포고래박물관, 장생포고래생태체험관, 장생포고래문화마을, 순양함인 울산함, 장생포마을 벽화골목, 웰리스키즈랜드, 윌리스장난감박물관등 고래와 관계된 전시관과 벽화, 그리고 7~80년대 장생포의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마을, 어린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놀이시설과 장난감 박물관등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무궁무진한 곳이었습니다.



장생포고래문화특구라서 그런지 야외 광장의 전시 규모도 만만치 않을 정도로 정말 대단했습니다. 

장생포고래박물관의 건물도 예사롭지 않으며 웅장했습니다. 

박물관을 돌아나가는 궤도열차 또한, 공사중이었지만 완공한다면 고래문화마을 까지 공중을 운행하며 더욱 볼거리와 타는 재미로 풍족한 장생포고래문화특구의 대표 놀이가 될 것 같았습니다.



장생포 고래박물관에는 실물 고래골격과 포경유물이 전시 중이며 돌고래수족관에는 고래생태체험관까지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야외에는 거대한 고래 조형물이 전시 중이며 고래와 관계된 여러 조형물 등이 많아 신기함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래 출몰시기에는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서만 볼수 있는 고래바다여행선이 있습니다.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 직접 고래를 보는 관광여행 상품인데 국내에서는 울산 장생포고래문화특구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돌고래의 유형도 직접보고 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고래문화마을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는 고래문화마을과 장생포마을의 벽화골목 등 많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으니 꼭 한번 찾아보세요? 

저도 다음 여행에서는 장생포고래박물관 내부를 꼭 둘러보아야겠습니다.



  


울산 장생포고래문화특구 장생포고래박물관 야외광장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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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구 매암동 139-29 | 장생포고래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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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해운대여행)2018 해운대 모래축제. 2018 해운대 모래축제를 만나다.


부산하면 해운대고 해운대 하면 해수욕장이 유명합니다. 

그런데 해수욕장 개장 이전인 5월 말에는 해운대 모래축제가 가장 유명합니다. 

지금까지 열린 해운대 모래축제를 매년 보고 왔습니다. 

그러나 2018년 부산 해운대 모래 축제의 규모가 가장 빵빵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모래조각품 또한, 예년보다 더욱 웅장했습니다.




2018 해운대 모래축제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주소: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1015



2013/06/10 - (해운대모래축제)사상누각도 옛말, 모래로 만든 작품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아. 해운대 모래 축제

2014/06/08 - (부산여행/해운대여행/해운대모래축제)이게 모래로 만든 작품이라 믿기 어려운 예술품. 제10회 해운대모래축제 보고 왔습니다.

2015/06/01 - (부산여행/해운대여행)2015년 해운대 모래 축제. 세계 명작 동화를 모래 작품으로 2015 해운대 모래 축제에서 만나다.

2016/05/30 - (부산여행/해운대해수욕장)2016년 해운대 모래축제. 사상누각인 모래로 만든 작품으로 믿기어려운 예술작품을 2016년 해운대 모래축제에서 만나다. 해운대모래축제

2017/06/03 - (부산여행)2017해운대모래축제. 해운대해수욕장에 열렸던 2017년 해운대모래축제. 해운대모래축제



2018년 부산 해운대 모래축제의 주제는 ‘영웅(hero), 모래로 만나다’입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에 누가 영웅이었는지 한번 생각을 해 보며 모래 조각품을 만났습니다. 

해운대 모래축제는 여느 축제와 다르게 모래로 만든 작품이다 보니 자연 친환경적인 축제라 하며 벌써 올해 해운대 모래축제가 14회째라 합니다.

 


해운대 모래 축제하면 제일 인기 있는 게 당연히 모래작품전입니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열리는 ‘세계 모래 조각전’의 명성 그대로 미국, 중국, 대만, 일본, 싱가포르 등 총 6개국 11명의 세계 유명 모래 조각가들이 조각한 이순신, 세종대왕, 어머니, 아이언맨, 관우 등의 영웅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삼국지의 영웅 관우는 긴 수염을 휘날리며 은월도를 휘두르는 그의 용맹함이 철철 넘쳐나는 게 척 봐도 “와 관우다!”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습니다. 

역시 삼국지의 최고 영웅입니다.

 




그럼 대한민국의 영웅은 과연 누구일까 생각하며 궁금증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으로 첫 금메달을 땄던 대한민국의 마라톤 영웅 손기정 옹도 모래 조각으로 만났습니다.







여러분이 이구동성으로 아!!! 맞다 이분들이 우리나라의 영웅이지 하며 맞장구를 치실 것입니다. 

한 분은 한글을 창제하시고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대왕이시며 또 한 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최대의 영웅이며 해전사상 23전 무패 대기록으로 조선을 구한 성웅 이순신입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며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적의 흉탄에 돌아가셨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이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영웅이 아닐까 싶습다.

 




그리고 가장 메인은 대형 3D 작품으로 ‘반지의 제왕’을 주제로 조각한 작품입니다.

그 크기가 높이 6m, 폭이 30m로 완전 대작 중에 대작이며 진짜 섬세한 게 작품이 리얼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영웅 한분 한분을 해운대 모래 축제에서 만나고 왔습니다. 

아이언맨 등 아이들도 좋아할 모래조각품이 정말 많았습니다.

 




2018년 해운대 모래축제는 지난 5월19일~5월 22일까지 나흘 동안 열렸습니다. 

저도 개인적인 일이 겹쳐 주말에는 가보지 못하고 마지막 날인 5월22일 부처님오신날 오전에 퍼뜩 둘러보고 왔습니다. 

예년에 보면 항상 모래축제 기간이 끝나도 당분간은 모래작품을 볼 수 있었으나 5월23일 오늘 부산은 추적추적 비가 오고 있습니다.




이 비로 인해서 아쉽지만, 올해 2018 해운대 모래축제는 끝이 아닌가 싶습니다. 

혹시 2018년 모래축제를 만나지 못했다면 제가 동영상을 담아 왔으니 동영상을 구경하세요.

 


2018 부산 해운대 모래 축제 사진으로 구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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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 중동 1015 | 해운대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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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여행/장생포여행)울산 장생포 고래 특구 장생포 벽화마을인 장생포 마을 이야기길 여행.

울산 장생포 하면 고래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만큼 장생포 하면 고래의 대명사가 된 곳입니다. 

그런 만큼 장생포 마을은 현재 울산 장생포 고래 특구로 지정되어 고래의 모든 게 총 집합해 있습니다.




울산벽화마을 울산장생포마을 이야기길 주소: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동 41-16(해양파출소 장생포출장소 주위 골목)




2018/05/19 - (울산여행/장생포여행)장생포고래박물관의 웰리키즈랜드 윌리스장난감박물관 여행

2018/05/06 - (울산여행)울산대공원 메타스퀘아 숲과 울산대공원 장미축제 등 볼게 무궁무진해요

2018/05/08 - (울산여행)울산도서관. 새롭게 개관한 울산시립도서관 찾아서. 울산도서관

2016/12/27 - (울산여행)울기등대와 대왕암공원. 울산 방어진 울기등대와 대왕암공원 여행. 대왕암

2016/01/02 - (울산여행/울산동구여행)방어진체육공원 염포산 울산대교 전망대, 울산 전역이 관람권인 울산대교 전망대, 화정산 울산대교 전망타워에 올라보세요.




그중에서도 이번에는 옛날 장생포 마을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장생포 골목길을 약간 둘러보았습니다. 

울산에도 벽화마을이 여러 곳 있는데 그중에서도 고래를 소재로 벽화마을을 조성한 곳은 장생포 벽화마을입니다. 

그래서 장생포에 조성된 벽화마을에 많은 눈길이 갔습니다.









장생포 벽화마을 테마는 “장생포 마을이야기길”로 재탄생했습니다. 

장생포마을 이야기 길은 총 3가지 테마로 벽화마을을 조성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1구간인 ‘고래 꿈의 길’을 둘러보았습니다. 

고래의 역동적이며 활기찬 이미지를 형상화해 옛날의 고려포경과 오늘날의 고래 특구로 장생포의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고래 꿈의 길’에서 고래와 장생포 사람들이 꾸는 꿈을 확인해보세요.





그리고 2구간은 장생포 이야기 길입니다. 

장생포가 포경으로 전성기를 누렸을 대 장생포의 활기찼던 사람들의 일상과 아이들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담은 장생포 이야기 길입니다. 

이때는 강아지도 일만 원권을 물고 다녔다는 이야기입니다. ㅎㅎ

 





3구간은 추억의 골목길로 지금부터 50년전인 1970년대를 생각하게 하는 여러 가지 캐릭터와 상품을 통해 당시를 생각해보는 추억의 골목길도 있습니다. 

시골마다 우물은 다 있습니다. 

장생포 마을의 공동우물이었던 우물이야기 길은 옛날 장생포 사람의 식수와 생활용수를 이용했던 곳입니다.

 








또한, 우물은 만남의 장이자 정보와 이웃 간의 정을 나누었던 공간의 우물이야기 길도 있습니다. 

이 모든 구간을 볼 시간이 나지 않아 장생포 고래 꿈의 길만 보았으나 장생포의 옛 생활과 장생포와 고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울산 장생포에서 꼭 둘러보고 오세요.



울산 장생포 벽화마을 사진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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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동 | 장생포마을 이야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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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5.21 17:36 신고

    가 봐야 할곳이네요^^




(울산여행/장생포여행)장생포고래박물관의 웰리키즈랜드 윌리스장난감박물관 여행


울산대공원과 울산도서관을 갔다가 고래로 유명한 장생포 쪽으로 갔습니다. 

장생포 고래박물관도 있고 웰리키즈랜드 4층의 윌리스장난감박물관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저의 집은 어린이도 없고 해서 웰리키즈랜드는 패스하고 윌리스장난감박물관으로 직행했습니다.




 장생포고래박물관 웰리키즈랜드 윌리스장난감박물관 주소:울산광역시 남구 매암동 220-7(웰리키즈랜드 4층)

장생포고래박물관 웰리키즈랜드 윌리스장난감박물관 전화:


윌리스장난감박물관 이용안내

관람시간:09:00~18:00

매표시간:09:00~17:30.

관람소요시간 평균 40분

단 동시 관람객수를 20명으로 제한 할수도 있다고 함.

관람요금 어린이 5,000원, 청소년 6‘000원, 어른 7,000원

20명이상일 때는 단체 할인가 적용 관람요금에서 1인 1,000원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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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김태유관장님은 부산에서 윌리스요양병원을 운영하시는 원장님이며 미리 약속되어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윌리스장난감박물관을 둘러보게 되었으며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장난감박물관 포스팅은 장생포 윌리스장난감박물관이 처음이었습니다.



방문했을 때 아직 개관이 안 된 상태였지만 장난감이 모두 제자리를 잡아 잘 진열되어 있었으며 개관을 위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라 조용한 상태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장난감을 둘러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장생포 윌리스장난감박물관에 진열된 장난감이 총 3,000여 점이라 했습니다. 

정말 그 넓은 면적을 차곡차곡 채운 것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거는 약과였습니다.

 20여 년 동안 총 수집한 게 3만 점 가량 된다는 말에 뒤로 나자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무슨 의사선생님이 애들 장난감이고 하시겠지만, 처음의 동기는 치매예방의 교재로 생각하여 단순한 장난감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형미와 재미가 더해지면서 취미로 바뀌게 되어 오늘날 장난감 수집광이 되었다 합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정말 과해도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장난감을 보고 집에서 타박도 많이 들었을 듯... ㅎㅎ

솔직히 울산 장생포 윌리스장난감박물관에만 해도 없는 장난감이 없을 정도로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그래서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장난감박물관이 여러 곳 있는 줄 압니다.



다른 장난감박물관은 테디베어, 인형박물관, 피규어박물관, 기차모형박물관 등 한 분야에 특화되어 있다면 윌리스장난감박물관은 종류와 시대별 장난감을 다양하게 수집하여 전시 중입니다. 

한 가지 종류가 아니라 모든 장난감이란 장난감은 전부다 모으다 보니 인형도 있고 그와 상반되는 전쟁놀이 장난감인 탱크와 장갑차. 전투기, 비행기 등 정말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장난감 종류가 많다 보니 부피가 큰 것도 많아서 보관도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둘러보는 내내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는 나로서는 정말 신기한 게 무지 많았습니다. 

이런 장난감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장난감을 보면서 어린아이들이 보면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어린이 장난감박물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난감이라고 꼭 어린이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번 윌리스장난감박물관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인 저도 장난감을 보고 어릴 적 추억에 헤어나지 못하고 감탄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온 가족이 함께 둘러보면 정말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웰리키즈랜드의 다양한 어린이 놀이와 함께 즐겨보세요.




울산 장생포 윌리스장난감박물관 사진으로 보기

이외에도 다양한 장난감이 무궁무진합니다.














































윌리스장난감박물관 김태유관장님. 



"떡 하나주면 안잡아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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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구 매암동 662-25 | JSP웰리키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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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합천여행)신라 폐사지를 찾아서 합천 백암리석등과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 여행


합천군과 의령군의 경계에 솟은 국사봉을 산행하고 항상 찾아가려고 마음만 먹었던 무월봉 아래 골짜기에 있던 폐사지에 합천 백암리 석등과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을 찾았습니다. 

도로에서 대략 2km 가량 떨어져 있어 대형버스는 갈수 없고 승용차나 걷는 수 밖에 없지만 걷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거리였습니다.



합천백암리석등과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 주소: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 102



2014/08/19 - (경남여행/합천여행)허불산 청강사. 4월에 가장 아름답다는 절집 허굴산 청강사를 보고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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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 (합천여행)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대가야 비운의 태자 월광태자의 전설이 남아 있는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다행이 자가운전을 해 온 덕분에 편안하게 합천 백암리 석등이 있는 폐사지 인근까지 갔고 주차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어서 대충 주위에 주차를 했습니다. 

저 멀리 석불좌상 노거수인 느티나무가 보였습니다. 

논밭 한가운데 자리해서 논둑을 따라가려니 찾아가는 것도 상그러워 보였습니다.



당시 모내기철이 아니라 급한 마음에 무논을 가로질러 바로 합천 백암리 석등을 찾아갔습니다. 

낮은 울타리가 쳐져 있고 작은 철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는 그야말로 황량한 분위기였습니다. 

합천 백암리석등과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과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한줄로 나란히 서서 손님을 맞았습니다.



안내판에는 백암사 또는 대동사가 있었다는데 확실하게 드러난 근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검색에서 백엄사로 추정하며 합천 해인사보다 더 큰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게 아닌가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서 이곳저곳을 찾아 공부를 좀 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이리 열심히 찾고 했다면 벌써 문화재 박사라도 했을 낀데 말입니다.

 


그런데 찾아본 결과는 국사봉 산행의 출발지인 서암마을에는 한지전시관이 있었습니다. 

한지는 닥나무로 만든 종이를 말하며 그 시초가 대동사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암리 석탑과 함께 있는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의 그 대동사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종이 이전에는 죽간이나 목간에다 글을 써서 기록했습니다.



종이의 발명이 우리 문명에 끼친 영향은 정말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특히 종이는 절에서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큰 사찰에서는 모두 한지를 자급자족하여 만들어 사용 했으며 절 주위에다 종이의 원료인 닥나무를 많이 심고 관리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지를 처음 만들었던 곳이 대동사이며 이절에 설씨 성을 가진 스님이 닥나무를 짓이겼더니 서로 엉켜붙는 것을 보고 연구 끝에 한지를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에 봉수면과 백엄사(대동사) 아래 백암마을에서는 대부분의 집이 한지를 생산하였고 우수한 품질로 궁궐의 진상품에 올랐으며 중국에 수출까지 했다고 합니다.



백엄사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도 등장합니다. 

삼국유사 권3 탑상4 ‘백엄사 석탑사리’편에 나온다고 합니다. 

백엄사의 창건은 신라시대이며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남아 있는 문화재를 보면 신라시대에부터 있던 사찰로 보여집니다.

 


그리고나서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고려시대인 906년(효공왕10년)에 양부화상이 중창하였으며 925년(태조8년)에 희양산파의 긍양화상이 10여년간 머물다 희양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긍양의 뒤를 이어 신탁화상이 주지가 되었으며 1065년 11월에 당시 주지였던 득오미정대사 석수립이 ‘백엄사에서 지켜야 할 규칙 10조’를 정하면서 새로 5층 석탑을 세워 부처님 진신사리 42과를 봉안했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엄사 규칙 10조를 보면 사재로서 보를 만들어 해마다 공양할 것, 백엄사에서 불법을 수행하던 엄흔과 백흔, 근악 세분의 보를 세워 공양할 것, 금당의 약사여래불 바리때에 매월 초하루에 쌀을 바꾸어 넣을 것 등입니다. 

엄흔과 백흔 두사람이 집을 희사하여 절을 창건했고 두사람의 이름인 백자와 엄자를 따서 백엄사로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또한, 신라 때에 북택청 터를 희사해서 창건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합천 백암리 석등은 주위에 널부러져 있던 부재를 모아 원래 모습그대로 인 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복원한 상태입니다. 

석등을 보면 그저 밋밋한 형태가 아니고 석등을 받치는 받침돌과 화사석의 사면에 새긴 조각을 보고는 매우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먼저 석등의 받침돌을 보면 아래로 향한 8장의 연꽃 잎인 복련을 새긴 둥근 받침돌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깨끗한 형태의 팔각기둥을 세웠습니다. 

그위에 화사석을 받치는 윗받침돌에 하늘로 향한 여덟장의 연꽃인 앙련을 새겼습니다.

 

대동사지 여래좌상

그 안쪽에는 홈을 파서 불을 밝히는 팔각의 화사석을 고정시켰습니다. 

화사석의 네면은 창을 내고 나머지 네면에는 악귀의 근접을 막는 사천왕입상을 도드라지게 새겼습니다. 

화사석 위에 지붕돌 밑면은 1단의 받침이 있으며 그 가운데에 홈을 내어 화사석을 고정시켰습니다.





지붕돌의 여덟 귀퉁이에는 꽃조각이 붙어 있었다하나 지금은 모두 깨어져 흔적뿐이며 지붕돌의 경사면은 얇지만 뚜렷하게 각을 지은 모습입니다. 

합천 백암리 석등의 여러 전형을 종합해보면 군드더기 없이 깔끔하고 늘씬한 게 8세기 후반의 통일 신라 석등의 전형적인 경쾌한 모습을 잘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물 제381호




합천백암리석등과 함께 있는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을 보았습니다. 

연꽃 좌대위에 석조불상이 사바세계을 내려 보는 듯 따뜻한 부처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얼굴부분은 알아 볼수 없게끔 마모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정교한 석조여래불입니다.



머리 가운데에 상투모양의 육계가 높이 솟았고 법의는 통견으로 양어깨를 감싼 형태이며 상체에서부터 흘러내린 옷주름은 무릎을 감싸고 있습니다. 

오른쪽 무릎에 올린 오른손은 아래를 보고 왼손은 왼쪽무릎에 올렸으며, 손끝은 아래를 향하여 땅속의 악귀를 물린친다는 뜻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대좌는 상중하대를 갖추었으며 연꽃잎이 하늘로 향한 앙련이며 팔각의 중대에는 각면에다 악귀의 근접을 막으려고 갑옷과 투구를 쓴 여덟명의 신장상을 새겨놓아 석조여래좌상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대 또한 상대와 반대방향인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함께한 합천백암리 석등에서 보듯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석조여래좌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합천 백암리 석등



현재 이곳은 두 번의 발굴조사가 있었으며 주위에 흩어져있던 부재와 부도골 등을 종합하면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엄사 또는 대동사는 모두 국사봉이 보이는 곳에 있었던 사찰 같습니다. 

발굴된 기와조각과 건물 터 등을 보면 고려와 조선초까지 연결되며 또한 삼국유사에 백엄사는 초팔현(지금의 초계면)에 속했으며 현재 대양면 백암리가 당시 초팔현에 속했다합니다.

 이와 함께 2008년 경남문화재연구원의 발굴조사에서 여러 정황을 비교해 백엄사지로 볼수 있다는 추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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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 102 | 합천백암리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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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5.17 10:23 신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더 좋을듯 합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과 창녕 직교리당간지주


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을 보고 나서 내친김에 술정리서삼층석탑을 보러 갔습니다. 

술정리동·서삼층석탑은 석탑의 이름에서 보면 같은 사찰의 동시대에 세워졌던 쌍탑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행정동이 같은 두탑이라 편의상 술정리동·서삼층석탑으로 나누어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4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 전화:055-530-1473



2018/04/27 - (경남여행/창녕여행)우천리 상월마을 반곡고택 여행, 창녕 반곡고택 여행

2018/04/18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리고분군. 비화가야의 순장한 소녀 유골이 나온 창녕 송현리고분군 여행

2018/04/1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동고분군을 만나다.

2018/04/0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은 탑의 정교함이 빼어나서 국보 제34호에 지정됐지만 술정리서삼층석탑은 기단부의 제작과 탑의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동 삼층석탑에 비해 격이 현저히 떨어지고 또한. 탑의 제작 시기도 다소 늦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두 탑의 직선거리도 600여m가량 떨어져 있어 한 사찰의 탑으로 보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술정리서삼층석탑 옆의 창녕천 건너 직교마을회관 안 골목에 당간지주가 있는 것을 보면 절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이곳에도 대사찰이 있었다는 것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은 높이가 5.1m에 석탑은 이중기단에 삼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의 탑입니다. 

탑의 기단부는 아래층과 위층을 8개의 돌로 짜 맞춘 특이한 수법이라 합니다.



아래 기단은 바닥돌과 받침돌의 면석을 같이 붙인 8장의 돌로 구성되었으며 네 귀퉁이에는 모서리 기둥인 운주를 새겼으며 그 중간에 가운데 기둥인 탱주를 2개씩 새겨넣었습니다.

 


위층 기단 역시 8장의 돌에 각 면의 중간에 널돌을 한 장씩 끼워 넣었으며 아랫단과 달리 네 귀퉁이에 모서리 기둥은 새기지 않은 대신 각 면에 2개의 구름 모양의 안상을 새겼습니다. 

남쪽 면의 가운데 돌에는 문짝으로 보이는 문양을 새겼는데 이는 후대에 조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개의 돌로 구성했으며 몸돌의 네 귀퉁이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5단에다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날렵하며 경쾌한 느낌입니다. 

탑의 상륜부인 머리장식은 네모난 노반과 복발만이 남아 있습니다. 보물 제520호.
















이번에는 창녕 직교리당간지주입니다. 

당간지주란 보통 사찰의 입구에 사찰의 각종 행사나 사찰임을 알리는 깃발을 단 기둥을 양쪽에서 잡아주는 지주를 말합니다. 

당간에는 목당간, 철당간, 석당간이 있으나 필자는 철당간과 석당간은 여럿이 보았으며 이를 잡아주는 당간지주는 거의 돌을 깎아 만들어 세웠습니다.

 




창녕 직교리 당간지주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직교리 64-11



경주와 여러 곳에서 많은 당간지주를 만났지만, 창녕 직교리당간지주는 조금은 특별한 형태였습니다. 

화강석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약 2.5m에다 안쪽으로 마주 보며 아래위로 각 두 개의 구멍이 파였습니다.





바깥 쪽의 당간지주 머리부분은 기둥처럼 깎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인근에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인양사조성비가 있지만, 현재 어떤 사찰이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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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4 | 술정리서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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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5.11 10:38 신고

    창녕문화재 잘 보고 갑니다^^




(울산여행)울산도서관. 새롭게 개관한 울산시립도서관 찾아서.


울산에 새롭게 개관한 울산도서관을 찾아갔습니다. 

도서관은 학생 때부터 수도 없이 많이 다녔지만 개관한 도서관을 찾아가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울산도서관은 시내 중심지가 아닌 약간 외각인 울산시 남구 여천동의 얕은 구릉지를 끼고 자리했습니다. 

울산에서 최첨단의 도서관이며 지난 4월26일에 개관 했습니다.



울산도서관 주소:울산광역시 남구 여천동 1261

울산도서관 전화:052-266-5670

(울산도서관과 울산시립도서관은 같은 도서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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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도서관



울산도서관의 전체면적이 15,100㎡이며 장서만 14만 6천 권에다 문화교실, 다목적홀, 전시실까지 갖춘 복합형태로 꾸며진 건물로 넓이와 그 크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매년 2만 5천 권의 도서를 살 계획이라니 완전 초 매머드급 도서관을 방문한게 나에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울산시립도서관을 들어서면서 건물을 보고 고래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울산 하면 고래를 상징해서 아마 고래의 유선을 따와 설계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울산시립도서관으로 들어서려면 도서관 교를 건너야 합니다. 

큰 책을 연상시키는 모형이며 그 책 속으로 들어가면 울산시립도서관입니다.





울산시립도서관 1층 로비로 들어서면서 내부의 책장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통층인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높은 1층 로비 전면을 책장으로 전체를 디자인하여 도서관의 이미지를 확 느끼게끔 했습니다. 

꼭 갖고 싶었던 책이 여럿 보였습니다.



특히 1층에는 우리나라의 꽃이라는 어린이와 유아 열람실이 따로 있어 눈에 띄었습니다. 

우스개로 옛날에는 밤에 책을 읽으려고 반딧불과 눈빛인 '형설지공'으로 공부했다는데 울산도서관은 난방시설에다 쾌적한 시설까지 갖춘 것을 보면서 저절로 글이 눈에 쏙쏙 들어올 것 같았습니다.





특히 저의 눈길을 잡았던 것은 1층의 특별전시였습니다. 『

독자의 발견, 독서의 기쁨』전인데요 아주 귀한 전시였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꼭 빠지지 않았던 1900년대 소설과 신문연재, 작가들을 만나는 전시였습니다. 

지난 4월 26일부터 7월1일 까지 전시 중이니 꼭 찾아보세요.

 











월북작가 홍명희의 임꺽정(임거정)과 심훈의 상록수, 정비석의 자유부인, 박경리의 토지, 이광수의 무정·흙. 채만식의 탁류, 이인직의 혈의 누,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현진건의 무영탑 등 근·현대를 아우르는 여러 빛바랜 신문지의 연재소설물이 전시중입니다. 

말로만 들었던 여러 고서들을 만나면서 그때의 그 감동을 그대로 느끼는 기회였습니다.

























뒷마당인 야외에는 원형의 책상이 놓여 있습니다. 

요즘 티브이에서 많이 보는 1대 100 같은 101인의 책상이 놓여 있어 실내에서만 아니라 야외에서도 책을 보게끔 해놓았습니다. 

그러나 한여름철에는 그늘 시설이 없어 조금은 아쉬워 보였습니다.




거울연못





그 옆에는 거울 연못이 있으며 어린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와 찾아가는 도서관인 울산시립도서관 버스도 보였습니다. 

울산시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화사한 울산도서관 버스를 보고 울산도서관 관람을 마무리하면서 울산시민이 많이 부러웠습니다. 

나도 울산으로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1인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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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구 여천동 1261 | 울산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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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5.09 13:41 신고

    울산 도서관 대단하네요^^




(대구여행)대구 불로동고분군. 엄청난 규모인 고분군 여행 대구 불로동고분군. 


올해 초 대구여행을 하면서 갔다 왔던 불로동 고분군을 이제야 포스트 합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우리나라의 많은 고분군 중에서 김해 대동면 예안리 고분군과 함께 1978년 6월 고분군으로서는 가장 먼저인 사적 제262호에 지정됐습니다. 

그만큼 규모 면에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대구 불로동고분군 주소: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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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의 고분 개수가 214기라 하니 당시 얼마나 큰 토착지배세력이 이곳 불로동을 근거지로 활동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팔공산의 남쪽 능선이 낮게 흘러내리며 금호강의 북쪽 충적 평야와 만나는 구릉지대에 있습니다. 

이를 보면서 역시 오래전인 삼국시대 이전의 주거지와 오늘날 주거지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분군이 발견된 주위로 현재에도 많은 집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서 주거지의 기본요소는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주택가의 골목을 400m쯤 거슬러 올라가면 야산의 구릉지에 자리했습니다. 

그 넓이만 해도 약 312,000㎡인데 이는 94,000평이 넘는 대규모로 불로동과 봉무동, 도동 등에 분포합니다.





저도 전국의 여러 고분군을 쫓아다녔지만 아마 제가 본 고분군에서는 가장 대규모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대규모 주택가에 있어서 그런지 정말 많은 시민이 휴식을 즐기려고 찾고 있었습니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구릉지라 걷기에 딱 좋아 보였습니다.







경주의 고분군은 모두 멀찍이 떨어져 보게끔 구분해 놓았지만 불로동 고분군은 고분과 고분 사이로 길이 나 있어 가까이서 고분군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의 발굴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 처음으로 2기를 발굴 조사하면서 ‘해안면 고분’이라 불렸습니다.







1963년 경북대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 2기의 고분을 추가 조사하면서 해안면 고분을 포함해서 대구 불로동고분군이라 명명했습니다. 

해안면 고분은 벽면을 축조하면서 산 돌을 이용했으며 바닥은 생토를 깔고 그 위에 다시 모래를 덮고 시신을 올려 둔 듯 보인다합니다.

 






부장품에는 금제와 금동제 장신구, 철도끼, 철제꺽쇠, 무늬가 새겨진 토기 등 다량이 나왔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5세기 전후에 삼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봉분의 크기를 보면 지름은 15~20m, 높이는 4m 내외인데 대형고분은 지름이 22m, 높이 6m의 원형 봉토분으로 당시 이 지역 토착세력의 지배층의 묘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내부를 보면 4기의 수혈식 석곽을 차례로 덧대어 만들었으며 대부분 지면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냇돌이나 깬돌로 4벽을 쌓아 넓고 납딱한 돌로 뚜껑을 덮은 직사각형의 수혈식석곽묘(구덩식 돌방무덤)입니다. 

이들 석곽은 시신과 부장품을 구분하는 칸막이를 가운데에다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위에다 자갈을 올리고 흙을 덮었습니다. 

1938년 18호와 22호 고분을 최초 발굴하였고 2007년 91호와 93호 고분 발굴조사를 마지막으로 했습니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의 탐방로 길이는 약 1.5k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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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 불로동 335 | 불로동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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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2018년 부처님오신날 삼광사 연등축제. 삼광사 연등 축제 구경하세요


지난 4월 29일 부산삼광사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연등 점등 행사가 있었습니다. 

부산 삼광사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항상 연등축제를 여는데 연등 숫자가 무려 5만 개여서. 그 넓은 삼광사를 완전히 연등으로 싹 다 뒤덮여 연등의 바다를 이룹니다. 

이 삼광사 연등 때문에 부처님오신날을 전후에서 전국에서 삼광사 연등을 보려고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부산 삼광사 주소: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54-58

부산 삼광사 전화:051-808-7111

부처님오신날 삼광사 연등축제 기간:2018년 4월29일~5월22일 

단 예년을 보면 부처님오신날이 지난 후에도 한동안 연등이 불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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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1 - (부산여행)삼광사 연등 축제. CNN이 '한국의 아름다운 곳 50선'에 선정한 연등의 바다 삼광사





지난해에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삼광사 연등을 보려고 방문했었는데 그때는 삼광사가 신도와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했습니다. 

올해에는 점등식이 있고 이틀 뒤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삼광사 연등 구경을 갔습니다. 

이날 근로자의 날인데도 생각보다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더 붐볐습니다.

 


삼광사 사진 포인트는 역시 대웅보전을 앞에 두고 좌우로 길게 이어지는 광장의 연등을 서로 담는 것입니다. 

먼저 왼쪽의 2층 테라서에 벌써 삼각대를 걸치고 연등에 불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진사님 옆에 저도 삼각대를 펴고 연등에 불이 점등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모든 분들이 어안렌즈를 장착했던 게 작년 부처님오신날 삼광사 연등을 담으면서 꼭 어안렌즈를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만 넘겼고 올해 다시 삼광사 연등을 보니 어안렌즈가 생각났습니다. 

왜 장만하지 않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진 담는 기술은 없으면서 장비에만 눈이 높으니 그래도 남들이 담는 사진을 흉내라도 내 보려면 어안렌즈를 올해는 장만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니콘 어안렌즈가 안된다면 삼양 어안렌즈라도 장만해서 내년 삼광사 부처님오신날 연등에서는 꼭 어안렌즈를 한번 써먹어야겠습니다.



찍는 기술은 하나도 없으면서 남들이 하는 거는 다 따라 하려고 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것은 아닌지 ㅎㅎ 가랑이가 찢어져도 어안렌즈는 꼭 장만해야겠습니다. 

다시 내려와 맞은편 2층에서 조금 전 담았던 그곳을 보며 삼각대를 설치하는데 이곳은 테라서의 난간이 삼각대 놓기가 모호하고 밀집한 연등으로 사진을 담는 게 녹록지 않았습니다.

 


대충 사진을 담고 내려와 부처님오신날 연등 행렬에 사용될 여러 모형의 연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청룡과 황룡이 움직이는 게 진짜 실감이 나게 만들었습니다. 인자한 부처님 연등을 보면서 올해 부처님오신날의 삼광사 연등축제가 이제 시작입니다. 

올해도 불 밝힌 삼광사 연등을 보면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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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54-58 | 삼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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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커피 한 잔의 여유 2018.05.03 14:10 신고

    사진만 봐도 삼광사 연등축제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겠네요.
    연등이 5만개라니...
    밤에 보는 풍경도 멋진데요.
    시간내서 한 번 가봐야겠네요^^




(전남여행/진도여행)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와 벽파정. 진도 이충무공전첩비


이순신장군의 3대첩 중 한곳인 명량대첩이 일어난 곳이 진도와 해남 사이의 명량인 울돌목입니다. 

이곳은 육지와 섬 사이의 좁은 수로로 바닷물이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와랑와랑 우는 소리를 낸다 하여 울돌목이라 부릅니다.




진도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 주소:전남 진도군 고군면 벽파길 74

진도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 전화:061-540-3427


진도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 2001년 10월 30일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5호에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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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은 알다시피 이순신 장군이 모함으로 옥에 갇혔고 원균은 패전으로 조선수군은 전멸하다시피 해서 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합니다. 

이에 류성룡 등의 탄원으로 선조도 어쩔 수 없이 이순신을 방면하여 백의종군토록 하였습니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이순신은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패한 뒤 배설이 퇴각하면서 남은 12척의 배와 한 척을 보태어 총 13척으로 133척(기록에 따라 333척이라 하기도 함)의 왜선을 상대하여 울돌목에서 전투를 벌여 해전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승전보를 울렸습니다.

 


무능한 선조는 이순신에게 육군에 참여하라는 교지를 내렸지만, 이순신은 “신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하며 준비했던 명량해전. 

그 명량대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벽파진입니다. 

벽파진은 전라남도 고군면 벽파리에 있으며 진도대교가 생기기 이전까지는 해남군 황산면에서 진도를 드나드는 관문역할을 벽파진이 담당했습니다.

 




벽파진은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한 곳이며 명량(울돌목)의 길목이었습니다. 

이순신장군은 명량해전을 준비하면서 열엿새 동안 벽파진에 머물러 작전을 짜는 등 일전을 준비했습니다. 

명량해전의 승리를 있게 한 벽파진에 1956년 11월 29일 노산 이은상선생이 글을 짓고 글씨는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 쓴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를 세웠습니다.

 




명량대첩의 승전을 기리며 이곳 벽파진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세워진 벽파진 전첩비를 보기 위해 찾았습니다.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의 비신은 높이가 3.8m, 폭이 1.2m, 두께 0.58m이며 거대한 거북좌대위에 세웠으며 비신 위에 머릿돌인 이수를 올려놓았습니다. 

웅장한 이 전첩비는 동양최대의 높이라 합니다.



비신에 새긴 글자는 비명이 9자이며 본문이 749자, 말문 85자, 찬시 134자로 전체 888자의 예서체로 특이한 점은 글씨 형태가 똑 같은 게 없이 비신의 네 면에다 모두 다르게 썼다고 합니다.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의 비문을 일부 보면 

“벽파진 푸른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고작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 곳이 여기더니라.

옥(獄)에서 풀려나와 삼도수군통제사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척을 겨우 거두어 일찍 군수로 임명되었던 진도땅 벽파진에 이르니 공이 53세 되던 정유년 8월 29일 이때 조정에서는 공에게 육전을 명령했으나 공은 이에 대답하되 신에게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삽고 또 신이 죽지 않았으며 적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못하리이다. 하고 그대로 여기 이 바닷목을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16일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불고 맏아들 회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 9월 초7일 적선 13척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9일에도 적선 2척이 감포도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살피다 쫓겨 갔는데 공이 생각한 바 있어 15일에 우수영으로 진을 옮기자 바로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12척 적은 배로서 330척의 적선을 모조리 무찌르니 어허 통쾌할 사 만고에 길이 빛날 명량대첩이여.”




“이 고장 민속 강강술래 구슬픈 춤과 노래는 의병전술을 일러주는 양 가슴마다 눈물어리고 녹진 명량 두 언덕 철쇄 걸었던 깊은 자욱엔 옛 어른들의 전설이 고였거니와 이제 다시 이곳 동포들이 은공과 정기를 영세에 드높이고자 벽파진에 한 덩이 돌을 세움에 및여 나는 삼가 끓어 엎디어 대강 그때 사적을 적고 이어 노래를 붙이노니 열두척 남은 배를 거두어 거느리고 벽파진 찾아들어 바닷목을 지키실 제 그 심정 아는 이 없어 눈물 혼자 지우시다 삼백척 적의 배들 산같이 깔렸더니 울돌목 센 물결에 거품같이 다 꺼지고 북소리 울리는 속에 저님 우뚝 서 계시다 거룩한 님의 은공 어디다 비기오리 피흘린 의사 혼백 어느 적에 살아지리 이 바다 지나는 이들 이마 숙이옵소서.” (이 내용은 안내판의 이충무공벽파진 전첩비 내용을 일부 발췌했습니다)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 비문을 일부 옮겨 놓은 안내판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 왔습니다. 

거친 파고와 싸우셨고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수백 척의 적선을 보면서 장군과 순절하신 병사와 백성은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똘똘 뭉쳐 승리했던 명량대첩이 있었기에 지금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하겠습니다.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를 참배하고 내려오면서 벽파정을 올라보았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명량해협은 사람의 죽음으로 피바다였겠지만 현재 벽파정에서 바라보는 벽파진의 풍경은 당시의 참혹함은 모두 가슴속에 삭히고 지금은 그림 같은 아름다움이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벽파정은 1207년(고려 희종3년)에 진도의 관문인 벽파나루 언덕에 세워졌으며 1465년(조선 세조11년)에 중건했으나 허물어져 그 자취만 남아 있었습니다.








2016년 9월에 벽파정은 창건 당시인 고려시대 양식으로 앞면 5칸에 옆면 3칸인 팔작기와지붕으로 벽파정의 역사를 고려해 복원했습니다. 

벽파진은 고려 후기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본거지를 옮겨오면서 대몽항쟁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이순신 장군이 열엿새 동안 머물면서 전략을 세우고 준비하여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곳입니다. 

벽파진에 복원된 벽파정을 보면서 이곳에 올라 호령하시는 이순신 장군을 뵈옵는 듯 늠름한 기상이 서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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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682-4 | 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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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우천리 상월마을 반곡고택 여행, 창녕 반곡고택 여행


창녕 화왕산을 남쪽으로 둔 마을인 우천리 상월마을에는 노희간이 세운 반곡고택이 있습니다. 

반곡은 노희간의 호에서 따왔으며 선생이 45세에 세웠다 합니다. 

반곡고택의 건물 배치는 'ㅁ'자 형태이며 장연노씨 반곡파종중의 소유로 건물의 내력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창녕우천리 반곡고택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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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에 일자형태의 사랑채가 자리했으며 좌우로 사랑채를 드나드는 작은 문이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채는 독립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사랑채에 노씨 후손들이 기거하는지 집안이 청소 등 사람의 손때가 묻어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반곡고택의 사랑채는 앞면 3칸에 옆면 1칸 반 규모로 현판과 기둥에는 주련이 주렁주렁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에다 툇마루를 넣었지만, 담장이 마루에 바짝 붙어 앞을 막아 많이 갑갑해 보였습니다.



사랑채 왼쪽에 안채로 통하는 넓은 입구가 있으며 현재 따로 문이 없어서 그냥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채에 사람이 있었다면 양해를 구하고 안채로 들어갔겠지만, 사람이 없어서 그냥 실례를 무릅쓰고 내부를 둘러보았습니다. 

안채를 들어서는 왼쪽에 곳간채가 있습니다.

 



반곡고택 사랑채



헛간이 붙어 있으며 툇마루가 달린 1칸의 방과 창고가 붙었습니다. 

1920년경에 사랑채와 함께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 1852년(철종4년) 중사랑채와 함께 지었다는 안채가 있습니다. 반곡고택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반곡고택 중사랑채

안채는 앞면 4칸에 옆면 1칸 반의 규모로 앞쪽에 툇마루가 붙었습니다. 

건물 가운데에다 대청을 넣고 그 좌우로 각각 1칸의 방을 배치했으며 왼쪽 방 에는 부엌을 붙였습니다. 

대청에는 반곡고택 현판이 걸려 있으며 마루를 붙였습니다.





부엌은 찬방을 두고 기둥의 바깥쪽을 막아 공간을 넓혔습니다. 

방에는 벽장이 있는 홑처마 합각지붕 형식입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있는 중사랑채는 앞면이 3칸이고 옆면은 1칸 규모입니다.




반곡고택 안채



건물 왼쪽의 1칸은 광을 넣었으며 가운데에다 1칸과 오른쪽에 반 칸의 방을 각각 넣고 나머지 반 칸은 마루를 달았습니다. 

건물은 홑처마에 우진각지붕 형식입니다. 

반곡고택의 건축형식은 조선 말기에서 근대 초기에 지어진 양반집 형태와는 전혀 다른 일반 백성의 집을 토대로 지은 농촌 출신의 양반 주택입니다.


반곡고택 곳간채


집의 기본구조와 재료, 크기 등에서 일반가옥과 별로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으며 전형적인 고향 집 분위기였습니다. 

마을 주민에게 반곡고택에 대해 물었더니 옛날에는 상월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이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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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260 | 창녕우천리 반곡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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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강진여행)월출산 월남사지삼층석탑. 해체해서 발굴조사와 복원을 기다리는 월남사지삼층석탑 여행


진도 출장을 가면서 강진의 병영 읍성이 있는 병영 오일장의 수인관에서 맛있는 연탄돼지불고기를 먹고 월출산 아래에 있는 월남사지를 잠시 들러가기로 했습니다. 

월남사지에는 보물 제298호인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보물 제313호인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강진 월출산 월남사지 삼층석탑 주소: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4

강진 월출산 월남사지 삼층석탑 전화:061-430-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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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도 꼭 가보고 싶었던 월남사지였던지라 쌩하며 차를 달렸습니다. 

멀리 닭볏 같이 울퉁불퉁 치솟은 바위 능선이 차츰 눈앞에 크게 다가왔습니다. 

곧 월남사지 안내판을 보고 들어섰습니다. 

함께한 일행이 이쯤이면 월남사지 삼층석탑의 상층부가 보여야 하는데 왜! 안보이지 했습니다. 

막상 월남사지 앞에 도착했더니 펜스로 가람막을 해 놓았습니다.



월남사지 2013년도 촬영 사진



월남사지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굴착기가 들어와서 진각국사비가 있는 곳을 막 헤집고 난리였습니다. 

아!! 월남사지 삼층석탑을 보려는 열망은 월남사지 삼층석탑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듯 허망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ㅋㅋ 갑자기 열불이 확 뻗쳐올랐습니다. 

머시고 만날천날 복구작업이고 하면서 괜히 엉뚱한데다 화풀이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문화재를 찾아 전국의 여러 곳을 많이 답사했지만, 보수공사를 한다고 가림막을 쳐 놓고 했던 곳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몇 시간을 달려 멀리까지 찾아갔다가 막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허탈감이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옛날 속담처럼 어찌 그런 속담과 맞아떨어지는지 하필 월남사지가 가는 날이 장날과 같이 발굴조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이 있던 자리 지금은 휑한 모습입니다.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는 아예 형체도 볼 수 없이 산산조각으로 해체해서 큰 건물 안에 일렬로 보게끔 진열해 놓았습니다. 

그래도 이곳은 해체한 부재를 한곳에 모아둔 곳이라도 보게끔 해놓아 아쉬운 마음에 해체된 부재를 보고 마음을 달래었습니다. 

월남사지는 월출산의 남쪽에 자리한 폐사지입니다. 

그런데 정확한 창건 연대는 확인되지 않았다합니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의 말사였다고 합니다. 

월남사에 관한 기록을 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월남사는 월출산 남쪽에 있으며 고려시대 진각국사가 창건하였고 이규보가 찬한 비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외의 문헌에도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월남사의 창건을 그 이전으로 보는 게 진도 용장성에서 출토된 청동함에 다음과 같은 명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진양부조월남사월악산양삽구인(晋陽付造月南社月岳山樣九印)”의 명문에서 월남사와 당시 고려의 최충헌이 무신정권으로 집권하며 진강후에 봉작되고 그의 뒤를 이은 최우가 진양부를 세워 최씨 무신정권의 중심 권력기구가 됩니다.









여기에서 진양부를 보면 월남사는 최씨 무신과 특별한 관계 속에 사세가 번창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때 순천 송광사에 2세 사주였던 혜심이 최씨 무인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월남사를 크게 중창하였고 이를 혜심의 창건으로 잘못 기록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최근 발굴되는 유물에서 백제기와와 통일신라와 조선시대 유구가 함께 출토되며 이를 추정하면 월남사 창건은 백제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문화재 발굴 안내판을 참고하면 월남사의 폐사는 1739년 무위사 사적기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적기에는 정유재란으로 무위사만 남고 주변 모든 사찰이 불탔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그때 월남사도 함께 불탔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현재 월남사지는 형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해체해서 드러누운 월남사지 삼층석탑을 보고 왔습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 또한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으며 문헌과 석탑의 양식에서 고려 초기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벽돌처럼 다듬은 여러 석재를 쌓은 전탑(벽돌탑) 형식을 모방하였으며 지붕돌인 옥개석의 층급받침에서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은 석재를 사용했습니다. 

기단이 단층이고 옥개석의 끝이 미세하고 반전한 것을 보면 이와 비슷한 석탑이 국보 제9호인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입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을 모전 석탑인 백제계 양식의 탑으로 알고 있었으나 높이가 8.4m인 거대한 삼층석탑에다 기본양식과 결구 수법 등이 백제 석탑의 전형을 따르고 있어 2002년부터 월남사지 모전 석탑이 아닌 월남사지 삼층석탑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일부사진: 문화재 발굴조사 안내판 촬영)



일단 월남사지 삼층석탑도 해체되어 실물을 볼 수 없고 부재만 볼 수 있습니다. 

복원되면 그때 다시 월남사지를 방문하여 완벽한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혜심의 진각국사비를 포스팅하겠습니다. 

큰 부재와 수박만 한 크기의 부재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서 하루 일찍 복원되기를 빌었습니다.









월남사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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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4 | 월남사지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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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산여행)경산 제석사와 계정숲 여행. 원효 탄생지 제석사와 한장군 묘와 계정숲


경산시를 삼성현의 고장이라 부릅니다. 

이 세 분의 성현은 원효대사와 그의 아들인 설총,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선사를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원효대사의 탄생지라는 경산 자인면의 제석사를 보고 왔습니다. 

원효대사의 탄생을 보면 유성이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원효를 가졌으며 만삭에 집 옆의 밤나무가 많은 골짜기인 ‘율곡’을 지나다가 산통을 느껴 밤나무 아래에서 원효를 낳았다 합니다.





경산 원효대사 출생지 제석사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226-1

경산 원효대사 출생지 제석사 전화:053-857-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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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든 부처님을 떠오르게 합니다. 

원효가 태어났던 곳인 큰 밤나무를 사리수라 불렀고 그 밤나무에서 열리는 밤을 사리밤으로 불렀습니다. 

이 밤은 주위의 밤보다도 밤알이 토실토실한 게 월등히 컸다 합니다. 

원효는 15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충격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원효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곳은 자인면사무소 뒤쪽인 속칭 밤골이라 불리는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원효는 출가하고 나서 자신이 살았던 옛집을 헐어내고 절을 짓고는 초개사라 불렀으며 자신이 태어났던 밤나무인 사라수 옆에도 절을 짓고는 사라사라 했다고 삼국유사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개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년 전에 한 농부가 밭갈이를 하다가 불상과 탑의 몸돌을 발견하고는 이곳이 오래전에 절터였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후 유찬이 절을 짓게 된 게 오늘날 제석사가 되었다 합니다.

 


제석사 한쪽에는 석조좌불, 부서진 탑신과 석등을 받쳤던 연화문 대석등의 부재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 일대가 신라하대의 고찰터 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원효가 세웠던 초개사나 사라사의 확실한 근거는 아직 찾을 수 없으며 이 일대가 원효의 출생지라 그리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신라시대 부재



한국사찰전서에 제석사는 1625년 유찬이 창건했으며 1802년과 1910년 거사 손대권과 월파대사가 각각 중창하였고 1933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후에 제석사는 쇠퇴하면서 폐사가 되었다가 1962년에 다시 대웅전을, 1965년에 칠성각을 건립하면서 불법의 등불을 밝히게 됩니다. 

2001년에 와서 대웅전을 새롭게 중창하면서 삼존불을 봉안하고 대웅보전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칠성각 또한 산신각으로 개명했습니다.







제석사는 다른 사찰과 다르게 이곳은 원효대사의 탄생지로 추정되어 2003년 불교계 최초인 ‘원효성사전’을 건립했습니다. 

내부를 살짝 보았더니 안에는 원효대사의 좌상을 모셨습니다. 

주택가 안의 사찰이라 조금은 생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원효의 출생지 설화가 있는 사찰이라 그런지 신성하며 무엇인가 모를 무거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인근에 있는 계정숲으로 향했습니다. 

도심에서 보면 울울창창한 숲으로 우거진 언덕 같은 높이의 공원이었습니다. 

인공적으로 가꾼 숲이 아니고 천연숲인 계정숲은 이팝나무가 주종이며 말채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 낙엽수와 활엽수가 섞여 있어 여름철에는 시원한 숲을 제공해 줄 것 같았습니다.




경산 자인면 계정숲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68





계정숲 안에는 한 장군의 묘와 사당이 있습니다. 

한 장군이 어떤 분인가 싶어 자세히 보았습니다. 

십이지신상을 호석으로 두른 게 예사 분이 아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장군은 신라인지 고려인지 정확한 연대는 알수 없지만 도천산에 왜구가 출몰해서 주민을 괴롭히자 한 장군이 누이와 함께 화려한 꽃관을 쓰고 여원무를 추며 도천산의 버들못으로 왜구를 유인하여 칡으로 만든 그물에 가두어 검흔석에서 모두 참수했다는 분입니다.





1968년 8월 자인중·고등학교 신축을 하려고 땅을 파다가 석실묘를 발견하여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두개골과 은으로 만든 갑옷 투구와 무기류인 창 등 많은 토기류가 함께 나와 한 장군의 묘라 확정하였고 전설로만 내려오든 한 장군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1965년 5월에 계정숲에 한장군의 묘를 이장하여 매년 단오절에 한장군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당시 출토된 유물은 영남대학박물관에 있다가 2011년 12월에 대구 박물관으로 옮겨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 장군의 묘와 함께 한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진충묘(盡忠廟)도 있습니다.



 




한 장군은 누이와 함께 도천산 버들못에 은신해 있던 왜구를 ‘여원무’를 추어 유인해 섬멸했다고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화려한 화관을 쓰고 춘 춤이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에 지정되었으며 지역민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인 한장군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매년 경산자인단오제에서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진충묘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에 북사리의 ‘한당(韓堂)’을 계정숲으로 옮겨 세우면서 진충묘라 했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1칸의 맞배기와지붕입니다. 

진충묘옆에는 시중당의 현판을 단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1637년 (인조15년) 자인현감이던 임선백에 의해 신관동에 세워졌으며 자인현의 정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무금헌이라고 불렸으며 고을이 옮겨감에 따라 원당리와 북사리로 옮겨 지어졌습니다. 

시중당의 건물은 1870년(고종7년)에 세워졌으며 1910년에 행정구역 변경으로 하양과 자인, 경산이 통합되면서 자인중학교 교실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36년 서림 서편으로 옮겨 세웠다가 1980년 계정숲의 한 장군 사당 옆에 옮겨 건립했습니다.

 




요산정으로도 불렸다는 시중당의 나무 현판은 1763년(영조39년)에 자인현감이던 정충언이 쓴 글씨라 합니다. 

여행하면서 약간 시간을 내어 들렸던 계정숲은 한 바퀴 도는데 20분도 체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전설과 문화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 장군과 누이의 이야기는 구전으로만 전해왔던 것을 실체를 확인하고 계정숲에다 한장군묘와 사당이 세워지게 된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산 자인면 여행을 한다면 자투리 시간을 내어 제석사와 계정숲을 꼭 둘러볼 것을 권합니다. 

계정숲은 1997년 12월 기념물 제123호에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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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226-1 | 제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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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25 05:03

    비밀댓글입니다




(경북여행/경산여행)사진 찍기 좋은 곳 경산 반곡지 복사꽃. 경산 반곡지 여행 


영천 대창면 복사꽃 마을인 구지리를 떠나서 두 번째 복사꽃 마을인 경산 남산면 반곡리의 반곡지에 도착했습니다. 

반곡지가 있는 이곳은 삼성현의 고장입니다. 

바로 반곡지를 품은 산도 삼성산이라 하는데 이곳 경산에 세 성인이 나왔다 하여 그리 부르고 있습니다. 

한 분은 원효대사이고 또 한 분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설총, 나머지 한 분은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선사입니다.





경산 복사꽃 촬영지 반곡지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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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지 입구에 이 세 분을 모신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더욱 풍성한 반곡지 여행을 선사합니다.

이 세 성현의 출생지라 경산은 남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하겠습니다. 

그 1경이 반곡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반곡지의 명소는 익히 알려졌습니다. 

 


2011년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선정되어 많은 사진동호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봄이면 반곡지에 비치는 복사꽃이 반곡지의 1경이라면 여름에는 신록으로 물든 반곡지입니다. 

반곡지 제방에 늘어선 300년이 넘었다는 버드나무는 가지가 늘어져 잔잔한 수면에 모습을 비치면 그야말로 환상의 모습이 됩니다.





이 반곡지의 광경을 담으려고 전국의 사진 애호가가 몰려들고 있습니다. 

가을의 반곡지는 또 어떤가요? 

여름의 그 뜨거운 태양열을 받으며 보낸 세월을 보상이나 하려는 듯 가을의 반곡지는 붉게 물든 단풍에 만산홍엽의 반곡지를 연출합니다. 

한해의 마무리인 겨울 반곡지 또한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두텁게 몸을 둘렀던 이파리를 모두 털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차디찬 겨울을 온몸으로 맞는 반곡지, 그곳에 하얀 눈이라도 내리면 반곡지는 그야말로 영화의 한장면을 연출합니다. 

반곡지의 버드나무가 사시사철 변하는 모습을 담으려는 관광객으로 시즌이면 반곡지는 인산인해입니다.

 





부산에 사는 저도 항상 인터넷의 사진을 눈으로만 보다 봄과 여름의 반곡지가 생각나서 복사꽃이 있는 반곡지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청도 구지리의 복사꽃은 한창이었다면, 반곡지의 복사꽃은 가지에 꽃을 약간 남기고 모두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복사꽃은 서로의 자연환경에 적응한대서 정말 놀랐습니다.



 




반곡지에 복사꽃이 절정이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제방에 축 늘어선 연녹색 버드나무로 아쉽지만, 그 마음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반곡지 버드나무는 제방 쪽으로 쭉 늘어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쪽에는 덱이 놓였고 대부분 사진동호인은 이곳에서 물에 비친 버드나무 반영을 담습니다.

 




저도 이곳에 삼각대를 걸고 반곡지 반영을 담으려고 했으나 이날은 심하게 부는 바람으로 수면의 버드나무 반영이 잘 나타나지 않아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사람에게 많은 기회가 오듯이 저도 자주 반곡지를 찾아야겠습니다. 

그때는 바람한 점 없는 맑은 날씨의 반곡지 반영이 반길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반곡지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첫 반곡지여행이라 덱에서만 놀았는데 다음 여행에서는 반곡지 제방에도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일행이 있어 많은 시간을 반곡지에서 보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힐링을 받은 반곡지 여행이었습니다. 

경산 사진찍기 좋은 곳 반곡지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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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 | 반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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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복사꽃마을 여행. 영천에서 복사꽃길을 걸어보세요 


매화꽃과 산수유꽃이 봄꽃의 시작이라면 그 자리를 이어받은 벚꽃이 또다시 자리를 내어주면서 복사꽃이 이제 자리를 받았습니다.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복사꽃 마을·복숭아 마을로 불리는 구지리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부산에서 언양나들목을 나와 운문령을 넘고 운문호를 돌아 영천으로 향했습니다.




영천 복사꽃마을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561-5



2016/05/11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모고헌, 독특한 누각이 돋보였던 MBC드라마 화정 촬영지 영천 보현산 아래 옛 태고와 누각 모고헌 여행.

2016/05/18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보현산~보현산 시루봉 산행, 하늘바라기에 좋은 산행지 보현산 천문대가 있는 영천의 지붕 보현산 산행. 영천보현산

2016/06/24 - (영천여행/영천가볼만한곳)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균형미가 아주 빼어난 고려시대 철불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을 만나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2016/07/11 - (영천여행/영천 가볼만한 곳)영천 임고면 환구 세덕사. 임고서원과 함께 갈만한 여행지 환구 세덕사

2016/09/06 - (영천여행)임고서원. 절개와 의리의 상징인 고려말 충신 포은정몽주의 영천 임고서원, 포은 유물관 여행.




영천을 찾아가는 도중 농촌은 벌써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농부의 손에서 진짜 봄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천 땅에 들어서면서부터 선분홍색의 복사꽃에 하늘의 색감이 완전히 달라 보였습니다.





고개를 넘으면서 구릉지에 펼쳐진 복사꽃은 진짜 무릉도원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늘도 복사꽃의 아름다움을 더 예쁘게 하려는 듯 화창해서 여행을 떠나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습니다. 

역시 빠른 소식통은 진사님입니다.







벌써 복사꽃의 아름다움을 알고 여러 분이 찾아와서 열심히 사진을 담고 있었습니다. 

나도 사진을 찍기 위해 포인트를 찾았습니다. 

경부선 KTX 선로와 복사꽃이 잘 조화를 이루는 사진포인트가 보였습니다.





벌써 한 분의 진사님이 삼각대를 걸어놓고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디선가 웅~~~~하는 소리와 함께 KTX가 쌩하며 통과 했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계속 왔다갔다하면서 자주 다녔습니다. 

사진을 몇 장 담고 구지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바로 한 모퉁이만 도니까 복사꽃 마을이었습니다. 

땅도 선분홍, 하늘도 선분홍, 내 마음조차 선분홍색 되었으며 활짝 핀 복사꽃에 내 몸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아이고 언제 복숭아 맛을 볼까? 그러나 곧 이 복사꽃이 여름 과일인 복숭아로 바뀌어 주렁주렁 달리 걸 생각하니 입안에 군침이 베어 나왔습니다. 

ㅎㅎ 새콤달콤한 맛있는 복숭아를 생각하며 다음 여행지인 반곡지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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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561-5 | 구지리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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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리고분군. 비화가야의 순장한 소녀 유골이 나온 창녕 송현리고분군 여행 


창녕 송현리고분군은 1963년에 사적 81호에 지정되었으며 인근의 창녕교동고분군은 사적 80호 각각 지정했습니다. 

그후 창녕 송현리고분군과 교동고분군은 서로 연대가 비슷한 5~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고분으로 추정되어 2011년 7월 두 고분군을 통합해서 사적 514호에 새롭게 지정했습니다.




창녕 송현리고분군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2

창녕 송현리고분군 연락처:055-530-1473





2018/04/1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동고분군을 만나다.

2018/04/0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2018/04/03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석빙고. 조선시대 얼음 창고 창녕 석빙고 여행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2018/03/29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2018/03/2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창녕 송현리고분군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진한의 12개 국가에 속했던 불사국인 비화가야시대의 고분군입니다. 

불사국은 창원의 옛이름인 비사벌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으며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삼한소국으로 수록되었다합니다. 

창녕송현리고분군은 화왕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인 목마산 아래 구릉지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타타시가 고분군의 존재를 처음 알렸고 1917년 분포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1918년과 1919년에 11기의 고분이 발굴조사 되었지만 21호 31호 고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도 나오지 않는 등 허점투성이의 발굴이었습니다. 

당시 교리고분군과 함께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양이 마차 20대 분량과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속공예품이었다 합니다.



그 당시 나왔던 그 많은 유물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일부만 소장해 있고 나머지 유물은 대부분이 행방이 묘연한 상태라 합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밀반출되어 팔려나간 거로 보입니다.



송현리고분군은 가야시기 창녕지역의 고분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 합니다. 

그리고 큰 고분은 지름이 20m가 넘고 중소형을 합해 모두 23기가 현재 있습니다.

 


2002년~2006년까지 4년 동안 경남문화재연구원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각각 2년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발굴 조사된 송현 6·7호 고분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배모양을 한 녹나무목관이 나왔습니다. 

그와 함께 토기 280여 점과 장신구·금동투조장식이 부착된 말안장 가리개와 말띠꾸미개 이외 마구류·무기류·농기구류 등 90여 점의 철기와 100여 점의 목기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이후인 2006년~2008년의 발굴조사에서는 15·16호 대형고분과 중형고분으로 보이는 17호 고분 그리고 작은 고분 7기에서 석곽 등의 유구를 조사했습니다. 

이들 고분을 조사하면서 이미 도굴된 상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봉토의 축조방법과 축조시기 등 다양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합니다.





또한, 2007년 12월 15호분에서는 4구의 순장 인골도 나왔습니다. 

남녀 두 쌍이 한 무덤 속에서 나왔으나 아쉽게도 도벌 꾼들로 인해 유골은 훼손되어 무덤의 신분조차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하는지, 그중에서 어린 여자로 추정되는 한 인골만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 소녀를 송현리고분군에서 발굴되어 ‘송현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이 유골을 수습하여 컴퓨터단층촬영과 3차원 정밀 스캔. DNA 확인 등 최첨단의 장비로 분석한 결과 1500년 전인 16세 어린 나이에 순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인은 중독 또는 질식사로 추정되었으며 키 152cm의 소녀가 죽은 주인과 함께 죽임을 당해 묻혔다니 요즘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502년 신라 지증왕이 순장을 법으로 금지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도 실제로 순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창녕군에서는 이 순장녀인 송현이의 넋을 위로하는 창녕 문화재 탐방로인 둘레길을 조성해 '송현이길'로 명명했습니다.





송현이가 묻혔던 고분은 횡구식석실묘(앞트기식돌방무덤)로 무덤 입구가 따로 있어 추가로 장례할 수 있 는가족 공동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토기와 각종 장신구와 금동관 일부도 나와 무덤의 주인은 상당한 위치에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토기류는 뚜껑 달린 굽다리접시와 작은 굽다 리 긴 목항아리는 관 주위에, 굽다리긴 목항아리는 무덤 입구에서 나왔으며 마치 제사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합니다. 

창녕군을 알고싶다면 가장 먼저 교리고분군과 송현리고분군을 찾고 그리고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중인 교리고분군에 있는 창녕박물관을 찾을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창녕박물관은 내부 리모델링 중이라 현재에는 관람할 수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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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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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남원/남원여행)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지리산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여행·


남원 실상사에서 세 번째 포스팅은 보광전 앞에 똑같은 모양을 한 동·서 삼층석탑입니다. 

실상사는 828년인 신라 42대 흥덕왕 3년에 흥척이 창건했으며 당시 구산선문의 실상산문으로 개창한 최초의 선종가람입니다.





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주소: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전화:063-636-3031




2018/04/11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실상사 석등. 보물 제35호 남원 실상사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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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4 - (전북여행/남원여행)아이의 울음도 멎게하는 썰매타기. 지리산 남원 바래봉 눈꽃축제을 즐기다.남원 허브밸리 눈꽃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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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척은 당나라 유학에서 826년 귀국하여 왕실과 중앙귀족의 도움을 받아 실상사를 세웠으며 수철화상 등에 의해서 고려 초까지 사세를 확장하며 전성기를 맞습니다. 

그러다가 1468년에 화재로 폐사되면서 승려는 말사인 백장암과 인근 암자로 뿔뿔이 흩어져 수행했습니다.







그 후 215년 만인 1680년경 숙종 때에 실상사는 중창되어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조선 후기인 1883년 고종 20년에 유생의 어이없는 방화로 대적광전, 노전, 명부전 등이 불타고 말았습니다. 

그 이듬해 대적광전이 있었던 곳에 보광전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을 보겠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은 1875년(고종12년)에 오래되어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전형인 1금당 2탑 양식을 따랐습니다. 

두탑이 같은 형태인 쌍탑을 하고 있습니다.









지대석 위에 이중기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상·하층 기단 면석의 각 모서리에 우주와 중간에 탱주를 1개씩 새겼습니다. 

탑신부인 몸돌은 1층에서 3층까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1개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몸돌 모서리에는 우주를 조각했고 지붕돌인 옥개석 처마 밑은 수평이며 4단의 층급받침에 2단의 몸돌 받침이 있습니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렸으며,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상륜부입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은 상륜부의 구성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석탑 중 하나입니다.

 








실상사 동 삼층석탑은 노반·복발·양화·보륜·수연·용차·보주로 이어지는 상륜부에 부재 사이에 간석이 있다면 서 삼층석탑에서는 수연만 결실되었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의 높이는 동탑은 약 844cm, 서탑은 약 863cm이며 두 탑의 아름다움에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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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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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실상사 석등. 보물 제35호 남원 실상사 석등


남원의 대표사찰인 실상사에서 두 번째 포스팅은 석등입니다. 

실상사 석등은 1963년 1월 보물 제35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실상사는 통일신라인 828년 흥덕왕 3년에 흥척이 선종인 구산선문의 하나로 실상산문을 개창하면서 창건했습니다. 

실상사 석등은 보광전과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사이에 있었습니다.





남원 실상사 주소: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남원 실상사 전화:063-636-3031




2018/03/13 - (전북여행/남원여행)지리산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우리나라에 가장 큰 남원 실상사 철불을 만나다

2015/01/26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국악성지. 남원에 조성된 국악성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2015/01/22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광한루 광한루원. 조선시대 지방관아 정원으로서 유일한 광한루 광한루원에 깜짝 놀라다.

2014/01/18 - (전북여행/남원여행)춘향별과 몽룡별은 어디에. 남원항공우주천문대에서 찾아보세요. 남원항공우주천문대

2010/07/31 - (전북여행/남원여행)지리산 구룡계곡~덕운봉 산행. 아홉마리의 용이 계곡의 폭포에 내려와 놀고 갔다는 지리산 구룡계곡

2014/01/13 - (전북여행/남원여행)춘향골 도심속 향기원. 남원시민이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작품 도심속 향기원에서 멋진 야경을 만나다.





석등은 불을 밝히는 곳을 말하지만, 그 의미는 “중생의 마음에 불법을 밝힌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부처님의 자비의 빛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을 말합니다. 

석등은 하대석·중대석·상대석으로 나누어집니다.

 


실상사 석등도 마찬가지이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가운데 다 두고 밑에는 3단의 받침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에다 머리장식을 올렸습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등 형식인 팔각원단형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특히 실상사 석등은 둥근 기둥이 장고 모양을 하여 예술성이 돋보이며 일반 석등의 밋밋한 기둥과는 차이가 난다고 하겠습니다. 

하대석인 받침 부분은 아래 받침과 위 받침돌에다 연화문을 새겼으며 8장의 꽃잎이 앙련과 복련으로 서로 대칭 하도록 했습니다.

 








팔각인 화사석 또한 각 면에 모두 8개의 사각창을 내었으며 창 주위에는 창문을 달기 위한 구멍이 나 있습니다.

 지붕돌 또한, 팔각이며 각 모서리의 귀 끝이 모두 치켜 올려졌으며 끝에는 돌출된 꽃 모양을 얹었습니다.





지붕 위에 또 다른 작은 원형 지붕을 얹은 점이 독특하며 머리 장식에는 화려한 무늬를 새겨넣어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장식성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실상사 석등은 큰 규모 때문에 화사석에 불을 밝힐 때 밟고 오르도록 돌사다리를 만들었으습니다. 

지붕돌의 귀끝 꽃무늬나 받침돌의 연꽃무늬가 형식적인 점을 들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석등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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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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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리고분군을 만나다.


창녕군 창녕읍 내에서 만나는 고분군은 두 곳 있습니다. 

1963년 1월에 사적지로 지정했으며 사적 80호인 창녕 교리고분군과 사적 81호인 송현리고분군 입니다. 

2011년 7월 문화재청이 역사와 특성에서 두 고분군이 비슷하다고 인정되어 2011년 7월 통합해서 사적 제514호로 재지정했습니다.





 창녕교동고분군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124

창녕교동고분군 연락처:055-530-1473




2017/12/09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말이산고분군. 아라가야 지배지의 무덤 함안 말이산고분군 여행

2017/12/06 - (경남여행/함안여행)신라시대 석성 함안 성산산성에서 시간여행을 하다. 함안 성산산성·조남산성

2015/03/31 - (경남여행/김해여행)대성동고분박물관. 금관가야 발굴 유물 전시관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 여행.

2013/12/28 - (충남여행/공주여행)공주 석장리박물관, 우리나라 조상도 구석기시대 인물, 석장리 유적지에서 확인을 하다. 석장리고분군

2008/12/10 - (부산여행/동래여행)동래 복천동고분군. 도심한복판의 U.F.O가 가야시대 고분인 복천동고분군




문화재의 보고인 경주에 버금간다는 창녕에도 고대부터 내려온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경남의 경주라 일컫습니다. 

왜 창녕에 많은 고분과 문화재가 있는지를 보면 이곳 창녕은 오래전부터 소국가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진한의 12개 국가 중 하나였던 불사국으로 비화가야라고도 합니다.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수록된 삼한 소국의 이름이며 불사국은 경남 창녕의 옛 이름인 ‘비사벌(非斯伐)’에서 나왔을 것으로 유추하고 있습니다. 

창원교동고분군과 송현리고분군은 화왕산 서쪽 능선의 목마산성 아래인 구릉지에 널리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다시에 의해서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후에 1917년 분포조사를 시행하였고 1918년과 1919년에 11기의 고분 발굴이 이루어졌으나 제21호와 31호 고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도 나오지 않는 등 완전 날림씩 발굴조사에 유물 반출만 이루어졌던 모양입니다.



당시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의 규모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마차 20대 분량과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공예품이 박 쏟아져 나왔다 하니 말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일부 유물만 소장해 있으며 현재 유물 대부분은 소재 불명 상태라 합니다.



당시 자료에는 금동관, 금동관모, 금·은제수식 등 많은 금장신구와 각종 마구류, 비늘 갑옷, 철제 무기류, 철제농기구와 토기 등이 나왔으며, 이는 창녕교동고분군의 출토 유물의 성격이 신라 서라벌에서 출토된 유물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를 보고 교동고분군은 5~6세기 전반의 고분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다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창녕교동고분군의 고분은 현재 밝혀진 숫자만 103기나 됩니다.

제가 교동고분군을 답사하고는 먼저 큰 규모에 놀랐습니다. 

창녕박물관 왼쪽에도 여러 기의 큰 고분군이 있었으며 24번 국도 건너편에도 한 무더기의 고분이 구릉을 끼고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당집이 있는 고개 건너편에도 많은 고분군이 정비되어 관리하는 것을 보면서 김해, 고령, 대구와 경주 등 여러 고분군에 비해서 규모에서 창녕교동고분군도 전혀 빠지지 않을 듯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1992년 동아대학교 박물관과 2004년 경남문화재연구원, 2009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각각 창녕교동고분군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동아대박물관에서는 1~4호의 고분을 발굴하였습니다. 횡구식 석실 구조를 확인했으며 이 고분에서도 다양한 토기류와 각종 금속유물이 나왔고 고분의 구조와 나온 유물에서 5세기 중반 이후에 조성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2004년 창녕문화공원 조성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횡구식석실분 13기와 통일신라 폐와무지, 조선시대 배수로 삼가마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고분군의 축조구조와 출입구의 형태 변화와 출토유물에서 고분의 조성시기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중반이라 보고 있습니다.







2009년의 창녕교동고분군 주차장 부지 발굴조사와 2011년 2012년 일제 강점기 때 발굴되었던 7호분의 고분군 재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일제는 고분발굴조사를 하면서 고분은 뒷전이고 유물 수습과 반출을 하여 당시 남은 기록을 비교하며 우리 문화재 발굴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봉토와 축조과정, 매장 주체부의 내부구조를 파악할수 있었으며 이를 학술연구자료와 고분의 보존 정비에 기초자료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ㅎㅎ 발굴조사 과정에서 딱 철기 2점만 나왔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서 당시에 얼마나 유물을 쓸어 담아 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발굴조사를 기초하여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보는 고분으로 재정비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남 창녕 교동고분군을 보고 나서 이제 송현리고분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참고:2013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녕교동고분군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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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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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와 함께 창녕군에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그러니까 창녕군에서 두 점의 국보 중 하나가 이곳 술정리 동 삼층석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있는 것을 보니까 같이 술정리 서 삼층석탑이 어디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2-20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전화:055-530-1473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2018/03/29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2018/03/2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2015/12/18 - (경남여행/함안여행)용화산 능가사. 남지철교와 낙동강을 끼고 앉은 최고의 절집 용화산 능가사 여행하기.

2015/12/11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남지철교. 6.25 한국동란 최대 격전지 낙동강 전투의 상흔이 남아 있는 등록문화재 145호 남지수변공원의 창녕 남지철교를 여행하다.




맞습니다. 술정리 서 삼층석탑도 있으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 사찰로 보기에는 힘들어 보였고 술정리 동·서삼층석탑으로 명시된 것에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인근에 절의 표시나 절을 알리는 당(깃발)을 묶은 깃대를 고정한 당간지주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일단은 사찰 터가 있었다고 생각되었으며 품었던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입니다. 

당시 가람배치의 형태는 대웅전 앞쪽에 좌우로 각각의 탑을 세우는 2탑 1금당 형식이며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절터에서 동·서 어느 쪽인지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라 이름 한 것도 1km쯤 떨어진 서쪽의 삼층석탑(술정리 서 삼층석탑. 보물 제502호)과 알기 쉽게 구분하기 위해서 붙여진 명칭이라 합니다.







2004년 11월 (재)동아문화연구원에서 낸 보고서에서는 “2002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동삼층석탑에 대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규명하고 석탑을 둘러싼 주변 사지(寺址)의 규모와 성격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의 수집을 위해 이 일대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한 결과, 동삼층석탑 주변 일대의 민가와 담장 등에서 확인되는 석재와 각종 문헌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곳에 ‘인양사(仁陽寺)’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를 보면 술정리 동 삼층석탑 일대는 인양사지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번 창녕여행에서 창녕 군청 옆 비각 안에 인양사 조성비를 보고 왔던 터라 그 조성 비문에서 인양사조성비를 금당 뒤쪽에 세웠다고 추정했습니다. 

인양사 조성비 부근에 절의 중심건물인 금당이 있었고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인양사 삼층석탑이라 보면 인양사의 규모는 정말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이층기단 위에 삼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입니다. 

그리고 불국사의 석가탑과 비슷한 모습에 군더더기 없는 절제미에 위풍과 당당함을 갖춘 아름다운 탑이며 경상남도에 남아 있는 석탑 중에는 가장 오래된 탑입니다. 

일명 ‘사지탑(寺址塔)’이라고 불리는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1965년 해체복원을 했습니다.





당시 해체를 하는 과정에서 3층 몸돌의 사리공에서 청동잔형사리용기, 사리병과 사리7과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현재 상륜부는 모두 남아 있지 않으며 납의 높이는 5.75m에 이릅니다. 

또한, 탑은 크고 웅장하며 기품있는 모습입니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이층의 기단을 올렸습니다. 

아래 기단과 위층기단의 각 면 모서리 기둥인 우주와 가운데 기둥인 두 개의 탱주를 새겼으며 몸돌은 각 모서리에 우주만 새겼습니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며 끝 모서리님 귀가 약간 들렸습니다. 

그 아랫면에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습니다.

 








2008년 10월~2009년 7월까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에서 석탑의 서편지역에서 문지로 보이는 건물지 1동과 계단 유구, 일부만 남아 있는 3동의 건물지를 확인했습니다. 

고려 시대로 보이는 건물지 1동에서 ‘송림사’ 명문이 들어간 기와가 발견되어 한때 송림사로 불렸다는 사실도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술정리 동삼층석탑을 보고 난 뒤 그 너른 광장 끝에는 국가 민속문화재 제10호인 창녕 진양 하씨 고택이 있습니다. 

이집의 특징은 요즘 좀처럼 볼 수 없는 초가집이란 점입니다. 

대문채에도 초가지붕이라 처음에는 이게 문화재인 초가집이구나 하며 신기하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진양 하씨고택인 초가집은 이 대문채가 아니고 대문을 들어서면 그 안쪽에 자리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대문이 굳게 잠겨져 있습니다. 

대문에는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평일에만 개방하고 주말에는 폐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요일에 찾았던 터라 개인 살림집인 고택 주인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멀리서 찾아간 우리로서는 그냥 발걸음을 돌린다는 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대문채 앞으로 기와건물인 사랑채가 있고 그 뒤에 초가지붕인 안채가 있어 밖에서는 까치발을 들어도 보고 보일만 한곳이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아도 초가집이 워낙 낮아서 볼 수 없었습니다. 

많이 아쉬웠으며 다음번에 평일 날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구조는 4칸의 일자형 건물로 흔히 말하는 초가삼간입니다. 

맨 왼쪽 1칸은 부엌이며 그다음은 안방 1칸에 대청이 1칸, 대청과 연결된 건넛방이 1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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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2-20 | 창녕술정리동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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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4.06 10:43 신고

    아쉽네요..초가집
    평일에민 개방한다니..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서면 가볼만한 곳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 걷기.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


우리나라 대기업의 모태가 된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그중 내가 사는 부산도 한곳입니다. 

당시 부산에서 시작한 기업 대부분은 부산진구 서면 근방에 몰려 있었습니다. 

부산진구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 그룹의 면모를 일신하며 승승장구하는 기업도 여럿이 있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업도 있습니다. 

궁금했던 게 부산진구에서 기업을 일구어 대한민국 굴지의 회사로 성장했던 업체와 지금은 가물가물한 장소였습니다.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 안내도





2015/05/11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부산시민공원 송상현광장 부산 연등축제. 부처님 오신 날 광명으로 온세상을 비추는 부산 연등축제를 보다.

2015/05/26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천태종 삼광사. 단일 사찰 최대의 연등 축제 부산 천태종 삼광사 연등 축제.

2015/11/09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돌산공원과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우리의 삶이 벽화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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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3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백양산 선암사. 천년고찰 백양산 선암사 여행. 부암동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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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때 만 해도 이 모든 기업이 부산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찾아가봤자 아파트 뿐이지만 그 당시를 회상하며 꼭 한번은 부산에 있었던 산업 현장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런 기회가 빨리 찾아왔습니다. 

한일그룹의 모태인 경남 모직의 옛터는 전포동에 있었습니다.

 


삼성그룹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던 제일제당 터는 부전동에 있었으며, LG그룹과 GS그룹 모태였던 락희화학(럭키치약) 터는 연지동에 있었습니다. 

국제그룹의 모태였던 국제상사와 동명목재, 대양고무, 진양고무 등 수많은 기업이 부산 진구에서 발판을 마련했고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급변하는 기업환경과 변화의 큰 파도를 넘지 못한 기업도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부산진구에서 태동하여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룹의 모태와 서면 영화관을 잇는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걸어 보았습니다.



부산 진구청에서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조성했으며 2개 주제로 4개 코스입니다. 

한때 부산 경제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신발산업입니다. 

6대 신발기업이 있었을 정도로 부산하면 신발입니다. 

그 중심에 부산진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코스 이름도 그때의 생각을 반추해보는 황금신발길 A·B 코스와 서면영화길 A·B 코스입니다.



이들 코스는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 각각 2시간쯤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4개 코스를 한번에 엮어서 걷기로 했습니다. 

걷다보니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 코스에서 조금은 벗어나 지름길로도 걸었습니다.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걸어보고는 개인적으로 걷기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는 이정표와 제반 시설이 아직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전체적인 거리는 대략 9km에 4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거리는 별로 의미가 없지만,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기업의 뿌리가 되었던 곳을 빠지지 않고 보려는 노력은 했습니다. 

지금부터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출발합니다. 

출발지는 양정 송상현부사 동상에서였습니다. 

송상현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래성의 성문을 걸어 잠그고 결사 항전을 벌이다 순절한 분입니다.


롯데캐슬스카이아파트 옆 대양고무 흥아타이어 안내판

왜장은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다면 길을 빌려 달라“고 했지만 송상현부사는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으로 답하고 부사와 동래성을 지키던 군졸과 백성은 끝까지 동래성을 사수하다 장렬히 산화했습니다. 

건널목을 건너 송상현광장을 가로질러 서면 방향으로 향합니다.



메타세콰이어나무가 일렬로 늘어선 사이로 난 길입니다. 

보도블록이 갈려있는 길이지만 키큰 나무로 기분은 상쾌했습니다.  

광장 너머에는 높은 아파트가 늘어서 있었습니다. 

롯데캐슬스카이아파트이며 옛날 흥아타이어가 공장을 돌렸던 곳입니다.

 그 왼쪽 도로 건너편에는 대양고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서면 한신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은 슈퍼카미트란 브랜드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부전시장

당시 군계일학의 여러 유수업체가 부산 신발산업을 꽉 잡고 있었을 때인 1976년에 혜성같이 나타났던 슈퍼카미트 브랜드 대양고무는 1993년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겨가면서 전포동 시대를 마감했습니다. 

흥아타이어 또한 파란만장한 역사의 부침속에 그 명맥은 끝까지 유지하였고 현재에는 공장을 옮겨 넥센타이어로 생산 중입니다. 

지금은 롯데캐슬아파트 옆 담벼락에 당시 진양고무와 흥아타이어가 있었다는 작은 안내판만 서 있습니다.

 

부전역 곰장어거리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적십자빌딩과 옛 부산 동부터미널이 있던 자리입니다. 

동부터미널은 온천동 롯데백화점자리로 옮겼다가 지금은 노포동 부산종합터미널로 옮겨 갔습니다. 

중앙대로를 건너 부산 최대의 시장인 부전시장으로 갑니다. 

‘없는 것이 없다’는 부전시장은 특히 기장에서 동해남부선을 운행하는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직접 밭에서 재배한 채소를 반티에 이고서 부전시장에서 퍼뜩 팔고는 다시 돌아가던 애환이 점철된 부전시장을 나오면 바로 부전역입니다. 

부전역은 동해남부선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늦게까지 사람들로 항상 붐볐고 그러다보니 기장에서 잡아온 장어로 부산에서 가장 먼저 곰장어 거리가 생겼습니다. 소줏잔을 기우리는 서민들의 배를 불려 주었던 곰장어는 자갈치가 유명하지만, 부산 곰장어의 원조는 부전역 곰장어 거리라고 합니다. 

광복 직후부터 시작하여 대부분 40~50년은 훨씬 넘겼다고 합니다.





부전역 계단을 올라 육교를 건너면 미군 부대는 이전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부산시민공원이 있습니다. 

이 일대가 1900년대 초에는 비옥한 농경지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세수를 목적으로 서면 경마장이 들어섰고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제는 기마 부대 설치와 1941년 태평양전쟁을 대비하여 제72병참경비대와 임시군속훈련소(노구치부대)를 설치했습니다.


부산시민공원



일제는 해방이 될 때까지 군수품 야적장으로 사용했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가 들어섰습니다. 

부산시민공원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박물관을 둘러보고 비로자나반가석불과 협시불이 있어 옛 절터였나 싶어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옆에 마두관세음보살 표석이 있는 것을 추정하면 경마대회를 열면서 사고사나 병사한 말의 위령재를 올렸을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부산 시민공원 역사관










부산시민공원 내 옛 서면 경마장 경주로



이곳을 나오면 국립부산국악원입니다. 

우리나라 국립국악원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이 부산이라 합니다. 

이곳을 지나 초읍 어린이대공원으로 가는 도로에 ‘LG사이언스홀’ 건물이 있습니다.

 LG그룹의 모태인 옛 락희화학(럭키화학) 자리입니다.

 








우리나라 치약의 대명사였던 럭키화학 공장은 연지자이아파트 자리이며 옛터 한쪽에 1998년 LG그룹의 모태를 상징하는 엘지사이언스홀을 개관했습니다. 

다시 서면 방향으로 내려오면 진양사거리입니다. 

진양은 국제화학을 창업한 양태진 회장에게 두아들이 있었습니다. 

국제상사 양정모 회장과 진양고무 양규모씨입니다.


진양사거리 황금신발상



국제상사는 ‘프로스펙스’를 상표로 진양고무는 ‘왕자표’ 신발을 생산했습니다.

이곳 진양사거리부터 부산 진구청 일원까지 진양고무가 있었던 곳입니다. 

한때 한국 신발산업의 메카였음을 보여주는 황금신발상을 2015년에 설치했습니다. 

바로 인근에 굴다리가 있습니다. 

굴다리 담벼락에는 서면 근대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벽화를 보면서 옛 추억도 떠올려봤습니다.

 





굴다리마을

이곳을 지나면 이번에는 동해남부선 철로에 놓인 굴다리입니다. 

이곳의 마을은 경부선 선로와 서로 엉키며 삼각형을 하고 있고 굴다리를 통행해서 마을로 들어선다 해서 굴다리 마을이라 부릅니다. 

다시 철둑 아래로 난 길을 따라 부전역 쪽으로 가면 부산진구 상징탑과 황령산 봉수대 모형이 나옵니다.




부산진구 조형물


황령산 봉수대 조형물


서면 로터리 조형물



영광도서 앞에서는 옛날 서면로터리 상징탑 모형을 지나 롯데 백화점 옆에 설치된 스웨덴 참전기념비를 찾았습니다. 

스웨덴은 중립국으로 한국전쟁에 의료지원으로 참전했습니다. 

1950년 9월23일 이곳에 설치되었던 유엔군 사령부 산하의 스웨덴 야전병원은 1950~1953년까지 한국전쟁에 참가했어 세운 기념비입니다.

 




이제 옛 서면 극장가를 찾아갑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1947년 서면 최초의 극장인 북성극장, 동보. 태화, 대한극장 등 총 16개의 극장이 성황을 이루었으나 현재에는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당시 극장 뒷골목은 베어링 볼트 등을 판매하는 부산 최대의 공구골목이었습니다.


서면 공구거리 조형물





지금은 카페와 맛집으로 모두 바뀌었으며 공구건물의 흔적은 보도블록에 스패너 모양과 인근에 공구를 형상화한 노란 원통형 조형물만 남았을 뿐입니다. 

이면도로를 따라 범냇골방향으로 갑니다. 한전부·울지역본부가 예전 전차가 다녔던 서면 종점이며 직진하면 동천앞입니다.

 



장미길


동천약어조형물


왼쪽에 장미길이 있고 더샵센트럴스타 아파트입니다. 

삼성그룹의 핵심 공장이었던 백설표 제일제당이 1953년에 공장가동을 시작했던 곳입니다. 

맞은편 동천 건너 범냇골과 부산금융단지 일대는 합판 왕국으로 이름 날렸던 옛 동명목재 부지였습니다. 

경남공고를 거쳐 부전 카페거리를 지나면 경남모직 옛터인 NC백화점입니다. 







경남공고 교정의 고 강수영 열사 기념비







부전 카페거리



1956년 미국의 원조를 받아 전포동에 경남모직이 처음 세워졌으며 K 앙고라 텍스는 양복과 양장 원단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곳에서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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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진구 연지동 111 | 부산시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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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4.02 11:32 신고

    부산 서면에 이런곳이 있군요^^

  2. 2018.04.02 18:26

    비밀댓글입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창녕 군청을 지나 왼쪽 아담한 산봉우리에 팔각정이 보였습니다. 

이곳이 창녕읍내를 내려다보는 전망대로 손색없는 창녕문화공원입니다. 창녕문화공원을 찾다가 그 전에 왼쪽 아파트와 개인 주택 사이에 둘러싸인 밭 가운데 비각이 보였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았던 창녕 인양사 조성비였습니다.





창녕 인양사 조성비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294번지

창녕 인양사 조성비 전화:055-530-1472




2013/01/07 - (경남여행/창녕여행)제주도 돌하르방이 왜 여기, 관룡사의 비보역활을 한 창녕 관룡사 석장승

2013/01/11 - (경남여행/창녕여행)관룡사 용선대. 고해의 바다를 항해하는 반야용선을 의미, 관룡사 용선대 석가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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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4 - (창녕여행)창녕석빙고. 요즘 같은 지진에 더욱 빛나는 우리 문화재, 석빙고의 무지개 천장에 내진 설계가 적용된 조선시대 얼음창고 창녕석빙고.




언뜻 생각해도 옛날에 인양사를 창건하면서 그에 관한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문화재를 찾아다녔고 폐사지 여행을 다녔지만, 불상의 복장유물에 종이로 기록한 것은 여럿 보았지만 이리 비석에 사찰의 조성 기록을 남긴 것을 보는게 창녕 인양사 조성비가 처음 입니다.

 


일단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미라 창녕문화공원을 잠시 미루고 인양사조성비를 보기로 했습니다. 

창녕인양사 조성비는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좁은 폭에 양면에다 남쪽은 인양사 조성기록을 새겼으며 북쪽인 뒷면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인양사 조성비는 통일신라시대인 771년(혜공왕 7년) 인양사 종을 만들면서부터 조성비를 세운 810년(헌덕왕 2년)까지 40년간의 행적을 기록해서 세운 비로 인양사(仁陽寺) 비상(碑像) 이라고도 합니다. 

인양사 금당 뒤쪽에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일대에서 신라와 고려 시대 때 만들어진 기왓조각 등이 여러 발견된다고 하며 규모로 봐서는 큰 규모의 사찰로 여겨집니다. 

이런 조성비까지 세워진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인양사 조성비는 직사각형의 바닥돌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올렸습니다.





인양사 조성비의 비문을 보면 10행에 각 행은 28자로 해서체에서 변형된 육조체라 합니다. 

비문은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 실려 있으며 비문의 내용은 인양사와 인양사와 관련 있는 여러 사찰의 범종, 석탑, 불상과 금당, 요사 등의 조성연대와 제반 사항을 빠짐없이 기재해 놓았습니다.



뒷면에 조각한 스님의 형상은 지장보살이라는 설도 있으며 인양사를 조성하면서 관련된 고승을 비석에 새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창녕 인양사 조성비는 금석문과 연대가 확실한 불상 조각으로 귀중한 문화재라 합니다.

 


현재 인양사지에 지키고 있는 유일한 유물이지만 머리가 유실된 석불좌상 1구도 함께 있었다 하나 현재 석불좌상은 창녕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이 인양사조성비에는 6.25 한국동란에 비석의 서쪽과 북쪽에 총탄흔적이 있다 하며 이번 여행에 확인을 못 했습니다.

 


비석의 높이는 1.58m이며 폭은 48cm, 두께는 18cm이며 1963년 1월에 보물 제227호에 지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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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294 | 창녕인양사조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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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3.30 10:47 신고

    우포늪 갈때 한번 들러야겠습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창녕 화왕산인 자하골 입구에 송현동 고분군이 있습니다. 

송현동 고분군을 끼고 미륵사란 작은 암자에 단청을 입힌 전각이 있으며 그 안에 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을 모셨습니다. 

미륵사란 명칭도 송현동마애여래좌상으로 인해 생긴 것 같습니다.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5-4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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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 (경남여행/창녕여행)관룡사 용선대. 고해의 바다를 항해하는 반야용선을 의미, 관룡사 용선대 석가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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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0 - (경남여행/창녕여행)우포늪 둘레길. 국내 최고의 습지로 보호 받는 우포늪 생태길과 탐방로인 우포늪 둘레길을 걸어보다. 우포늘 둘레길




전각문을 살짝 열어보았습니다. 

정면에 꼭 반달을 닮은 둥근 바위에 단아한 모습의 마애불이 앉아 계셨습니다. 

이 마애불은 바위 면에다 바로 불상을 돋을새김 했으며 광배와 불상을 바치는 대좌는 따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로 추정되며 마애불의 높이는 1.37m입니다.

 


머리 정수리에 두툼하게 솟은 육계는 지혜를 상징하고 아주 드물게 2단이며 소발은 둥글고 아담하게 표현했습니다. 

손동작인 수인은 악마을 항복시키는 항마촉지인이며 볼록한 뺨과 크지 않은 코, 작은 입, 어깨까지 내려온 귀는 부드럽고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 줍니다.




어깨는 넓으나 가슴은 두텁지 않으며 가부좌하여 앉은 하체는 안정감이 돋보이며 조금 크게 표현했습니다. 

창녕송현동마애여래좌상은 자세와 얼굴의 표현, 한쪽 어깨에 걸친 법의 모양을 보면 석굴암의 본존불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법의의 주름은 사실성이 떨어지고 가슴이 평평하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함이 빠진다는 느낌이며 석굴암 본존불과 같이 강력한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신라말에 제작된 불상양식입니다.(참고:문화재 안내판)

 

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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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5-4 | 창녕송현동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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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nnpenn 2018.03.30 07:13 신고

    편안하고 인자한 모습의 석불이네요.
    보물이라니 더욱 멋져 보입니다.

    오늘은 즐거운 금요일입니다.
    3월 마지막 주말을 잘 보내세요.




(경북여행/구미선산여행)선산 금오서원.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를 배양한 선산 금오서원


구미 선산읍의 금오서원을 찾았습니다. 

선산 비봉산과 형제봉 산행을 하고 나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47개의 서원은 제외되었는데 금오서원은 그중 한곳이라 해서 일부로 늦은 시간이지만 찾았습니다. 

아마 꼭 보아야겠다는 열망이 더 컸다 하겠습니다.

 금오서원을 보면서 왜!!!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야은 길재 선생을 배향한 선산 금오서원 주소: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

야은 길재 선생을 배양한 선산 금오서원 전화:054-482-1435

선산 금오서원 경상북도 기념물 제60호




2014/11/14 - (경북여행/구미여행)채미정. 구미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야은 길재를 추모 하는 정자.

2014/11/09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90도 각진 모서리를 깎아 섬세함이 돋보이는 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2014/02/13 - (경북여행/구미여행)태조산 도리사.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사찰 냉산 도리사 여행하고 왔습니다.

2011/05/25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약사암.초생달이 걸여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금오산 약사암

2013/01/02 -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시 선산읍 수다사. 겨울 눈이 내려 흰 연꽂으로 피어난 연악산 수다사가 장관




이는 야은 길재 선생 때문이 아니었는지 싶습니다. 

고려 말에 고려의 충절을 상징하는 ‘삼은’이 있습니다. 

포은 정몽주와 목은 이색 그리고 야은 길재입니다. 

그중에서 금오서원은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서원입니다. 야은 길재(1353년~1419년)는 고려말과 조선 초의 성리학자로 호는‘야은’ 또는‘금오산인’이며 시호는 ‘충절’입니다.

 

선산 금오서원의 2층 누각 출입문 읍청루







그는 고려가 망하자 모든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되어 세자 이방원이 태상박사의 벼슬을 내렸지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의를 굽히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길재는 낙향하여 선산의 금오산 아래에서 학문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던 분입니다. 

김숙자 등 많은 문하가 그를 따랐으며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로 그의 학통은 이어졌습니다.





선산 금오서원 동·서재







야은은 고려가 망한 후에 옛 도읍지였던 개성(송도)을 찾아 읊은 ‘고려 유신 회고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 시조로 길재선생의 고려에 대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금오서원은 1567년(명종 22년)에 선산의 유학자가 중심이 되어 선산부사 송기충에게 서원 건립을 건의하였습니다. 

이에 경상감사를 거쳐 조정에까지 알려져 재가를 얻어 1570년(선조3년)에 금오산 아래에 건립하였고 1575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에 모두 불탔습니다.



1602년에 금오서원은 현재의 장소인 선산읍 원리의 남산 아래에 옮겨 복원하였고 1609년 광해군 원년에 다시 중건했습니다. 

금오서원은 김종직과 정붕, 박영, 장현광을 추가하여 5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금오서원은 2층 누각인 읍청루, 강당인 정학당, 동·서재, 내삼문, 사당인 상현묘로 구성하여 전묘후학 양식을 따랐습니다.













선산 금오서원의 오현을 모신 사당인 상현묘









정학당은 강당으로 앞면 5칸에 옆면은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입니다. 

가운데 3칸 마루를 넣고 양쪽에 1칸의 온돌방을 앞쪽에는 툇마루를 달았습니다. 

5량 형식의 가구구조입니다. 읍청루는 2층 누각에 누하에 서원의 출입문인 문루를 두었습니다. 앞면 3칸, 옆면 2칸 팔작기와지붕 건물로 겹처마입니다. 

사당인 상현묘는 앞면 3칸에 옆면 3칸이며 맞배지붕 건물로 겹처마이고 5량가형식입니다. 

현재 선산 금오서원은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새롭게 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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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 | 금오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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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3.28 09:52 신고

    여기도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경북여행/구미선산여행)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여행. 오누이탑이라 불리는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이번에도 국보급 문화재를 보고 왔습니다.

국보급이 아닌 국보입니다. 

역시 국보는 나라의 보물이라서 그런지 달라도 무엇이 다른가 봅니다. 

이번에 소개할 국보는 구미에 있는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입니다. 

오층석탑에서는 가장 높고 웅장하며 크다고 합니다. 

처음 제가 탑 앞에 섰을 때도 탑의 웅장함에 움직일 수 없었으며 와!!!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구미 선산 죽장사오층석탑 죽장사 주소: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479-2

구미 선산 죽장사오층석탑 죽장사 전화:054-481-2736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국보 해평면낙산리삼층석탑제 130호



2008/07/10 - 경북여행/칠곡여행/구미여행)칠곡 금오동천~구미 금오산 산행.사람의 얼굴일까?.부처의 얼굴일까?-칠곡 금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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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층석탑은 이정도 높이와 크기를 여러 개 봤습니다. 

경주의 고선사지삼층석탑,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등인데 죽장사 오층석탑도 수려함과 아름다움에서 이들 탑에 비해서 조금도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 국보 중 하나였습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은 일명 오누이탑 또는 남매탑이라 부릅니다. 

웬 오누이 탑 하며 주위에 아무리 둘러봐도 석탑은 하나뿐이라 남매가 힘을 합쳐서 부처님의 탑을 만들었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은 누이가 만들었다면 오빠는 낙동강 건너 해평면의 낙산리 삼층석탑을 세웠다 합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두 개 내려옵니다. 

이야기의 출발은 같지만, 중반에서 전형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꼭 설화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착한 엄마와 심청이에 나오는 뺑덕어미나 콩쥐·팥쥐에 나오는 계모와 같은 급의 나쁜 엄마가 등장합니다.





계모라고 다 나쁜 분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엄마 상은 제가 보기에는 착한 엄마와 오누이의 친모로서 남매의 죽음을 거는 내기를 말리지는 않고 다부 부추기는 엄마입니다. 

각설하고 죽장사 오층석탑이 세워지게 된 유래를 보겠습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에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남매의 힘겨루기로 세워졌다 합니다.

 








때는 아마 죽장사 오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을 보면 그 당시로 추정됩니다. 

오누이는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며 살았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이들 남매는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괴력인 힘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놀기 삼아 오누이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여기서 죽장사오층석탑의 이야기가 갈라집니다.





먼저 우리 정서상 착한 엄마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남매를 앉혀놓고 지난번 스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스님이 이곳이 절터라고 했다며 어머니는 이곳에다 탑을 세우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남매는 서로 탑을 내가 세우겠다 하였고 어머니는 둘이 힘을 합해서 탑을 완성하면 어떠냐고 했습니다. 

남매는 서로 탑을 세우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어쩔 수 없이 딸에게는 여기서 탑을 쌓고 아들은 낙동강 건너에 탑을 쌓는 것이 어떠냐 하며 제안하면서 먼저 쌓는 쪽이 이긴다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먼저 쌓기를 원했지만, 딸의 탑 쌓기가 훨씬 빨랐습니다. 

그래서 딸의 탑 쌓기를 늦추기 위해서 궁리 끝에 딸에게 심부름도 시켰지만, 아들은 누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자꾸만 간격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비장의 카드로 펄펄 끓는 팥죽을 끓여 딸에게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으면 아들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딸이 먼저 오층석탑을 완성했습니다.

아들도 누이가 이기자 탑 쌓기를 그만두었고 그게 오늘날 낙산리 삼층석탑이 되었다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나이가 스무 살 즘 되었을 때 심한 충돌로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의 목숨을 빼앗는 내기를 걸었습니다. 

그 내기가 바로 아들은 50리 떨어진 금오산의 큰 돌을 가져오는 것이고 딸은 돌을 열 두자 높이로 탑을 쌓아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먼저 끝내는 쪽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내기는 시작되었지만, 남매의 어머니는 딸이 이기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아들에게는 멀리 심부름을 보내는 등 방해 공작을 벌였습니다. 

다음날 해는 떠올랐고 딸은 마지막 돌을 탑의 꼭대기에 올리면서 탑을 완성했으나 아들은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낑낑대며 바위를 지고 오던 아들은 동네 어귀에서 누이가 완성한 탑을 보고는 깜짝 놀라 뒤로 나 자빠졌습니다.

 


아들은 죽는 것이 두려워 그 길로 바위를 버리고 냅다 도망쳤으며 그때 버린 바위가 아직도 동네 어귀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후자에 등장하는 남매의 어머니란 분도 참 대단합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뜯어말리지는 못할망정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정서상 맞지 않는 설화로 보이며 구미 설화집에 있는 내용입니다.





하여튼 국보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석탑 이야기이며 그때 딸이 쌓은 석탑이 오늘날 죽장사 오층석탑이 되었다 합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은 현재 상륜부의 노반을 뺀 나머지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전체 높이는 약 10m에 오층석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규모입니다.



지대석은 18개의 장대석으로 탑을 지탱하게 했습니다. 

그 위에다 2단의 기단을 만들었습니다. 

아래층 기단은 14개의 넓은 돌로 구성했으며 그 위에 18개의 갑석을 올렸습니다. 

운주나 탱주는 보이지 않으며 그 대신 위층 기단은 각모서리 기둥인 운주가 2개이고 가운데 버팀 기둥인 탱주를 각각 3개씩 새겼습니다.

 






1층 몸돌 남쪽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감실이 있으며 문을 달았던 흔적인 작은 구멍이 남아있습니다. 

감실의 크기는 가로 66cm, 세로 107cm 크기로 최근 안치한 불상이 있습니다. 

각층의 몸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작아지고 낮아지며 각모서리의 기둥도 없습니다. 

죽장사오층석탑은 전탑(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으로 추정하는데 옥개석(지붕돌)의 경사면이 전탑에서 볼 수 있는 층단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죽장사에서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은 국보인 오층석탑과 당간석 1개와 종형인 부도, 이곳이 옛 절터였음을 알리는 부재가 한쪽에 있습니다. 

죽장사는 최근에 불사를 일으켜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지만 제 눈에는 오직 죽장사 오층석탑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죽장사를 둘러보던 중 한쪽에 선산갑오동학농민군의 총지휘를 했던 한문출장군과 항일독립투사 한중석선생이 피신하고 은거했던 곳이라며 작은 기념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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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479-2 | 죽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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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3.27 09:23 신고

    국보를 보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여기를 한번 다녀 와야겠습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진흥왕척경비는 통칭하여 진흥왕순수비라고도합니다. 

신라 24대 진흥왕이 창녕지역의 비화가야인 비사벌을 6세기에 멸망시켜 영토를 확장하고 나서 여러 신료와 순행을 단행했는데 창녕에서 국가적 중대사를 논의하고 그 사실을 기념하는 비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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