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여행/강진여행)월출산 월남사지삼층석탑. 해체해서 발굴조사와 복원을 기다리는 월남사지삼층석탑 여행


진도 출장을 가면서 강진의 병영 읍성이 있는 병영 오일장의 수인관에서 맛있는 연탄돼지불고기를 먹고 월출산 아래에 있는 월남사지를 잠시 들러가기로 했습니다. 

월남사지에는 보물 제298호인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보물 제313호인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강진 월출산 월남사지 삼층석탑 주소: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4

강진 월출산 월남사지 삼층석탑 전화:061-430-3224





2011/05/17 - (전남여행/강진여행)강진 만덕산 산행. 백련사 동백숲과 만덕산 봄 향기에 취하다.

2016/09/12 - (강진여행/강진가볼만한곳)전라병영성. 지금 한창 발굴조사가 진행중인 제주도와 전라도 육군 총지휘부였던 전라병영성 여행, 그 규모에 입이 쩍~~강진 병영성

2016/09/14 - (강진산행)강진 수인산 수인산성 산행. 여기에도 산길이 있을까? 멋진 가을 산행이 기다리는 철옹성 같은 산성이 있는 강진 수인산.

2016/09/20 - (강진여행/강진가볼만한곳)하멜표류기와 하멜기념관. 서양에 최초로 조선을 알린 하멜보고서의 하멜표류기와 하멜 기념관 여행

2018/04/17 - (전남맛집/강진병영맛집)연탄돼지불고기 강진 수인관. 수인산맛집 전라병영성지 하멜기념관맛집 수인관



개인적으로도 꼭 가보고 싶었던 월남사지였던지라 쌩하며 차를 달렸습니다. 

멀리 닭볏 같이 울퉁불퉁 치솟은 바위 능선이 차츰 눈앞에 크게 다가왔습니다. 

곧 월남사지 안내판을 보고 들어섰습니다. 

함께한 일행이 이쯤이면 월남사지 삼층석탑의 상층부가 보여야 하는데 왜! 안보이지 했습니다. 

막상 월남사지 앞에 도착했더니 펜스로 가람막을 해 놓았습니다.



월남사지 2013년도 촬영 사진



월남사지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굴착기가 들어와서 진각국사비가 있는 곳을 막 헤집고 난리였습니다. 

아!! 월남사지 삼층석탑을 보려는 열망은 월남사지 삼층석탑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듯 허망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ㅋㅋ 갑자기 열불이 확 뻗쳐올랐습니다. 

머시고 만날천날 복구작업이고 하면서 괜히 엉뚱한데다 화풀이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문화재를 찾아 전국의 여러 곳을 많이 답사했지만, 보수공사를 한다고 가림막을 쳐 놓고 했던 곳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몇 시간을 달려 멀리까지 찾아갔다가 막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허탈감이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옛날 속담처럼 어찌 그런 속담과 맞아떨어지는지 하필 월남사지가 가는 날이 장날과 같이 발굴조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이 있던 자리 지금은 휑한 모습입니다.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는 아예 형체도 볼 수 없이 산산조각으로 해체해서 큰 건물 안에 일렬로 보게끔 진열해 놓았습니다. 

그래도 이곳은 해체한 부재를 한곳에 모아둔 곳이라도 보게끔 해놓아 아쉬운 마음에 해체된 부재를 보고 마음을 달래었습니다. 

월남사지는 월출산의 남쪽에 자리한 폐사지입니다. 

그런데 정확한 창건 연대는 확인되지 않았다합니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의 말사였다고 합니다. 

월남사에 관한 기록을 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월남사는 월출산 남쪽에 있으며 고려시대 진각국사가 창건하였고 이규보가 찬한 비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외의 문헌에도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월남사의 창건을 그 이전으로 보는 게 진도 용장성에서 출토된 청동함에 다음과 같은 명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진양부조월남사월악산양삽구인(晋陽付造月南社月岳山樣九印)”의 명문에서 월남사와 당시 고려의 최충헌이 무신정권으로 집권하며 진강후에 봉작되고 그의 뒤를 이은 최우가 진양부를 세워 최씨 무신정권의 중심 권력기구가 됩니다.









여기에서 진양부를 보면 월남사는 최씨 무신과 특별한 관계 속에 사세가 번창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때 순천 송광사에 2세 사주였던 혜심이 최씨 무인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월남사를 크게 중창하였고 이를 혜심의 창건으로 잘못 기록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최근 발굴되는 유물에서 백제기와와 통일신라와 조선시대 유구가 함께 출토되며 이를 추정하면 월남사 창건은 백제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문화재 발굴 안내판을 참고하면 월남사의 폐사는 1739년 무위사 사적기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적기에는 정유재란으로 무위사만 남고 주변 모든 사찰이 불탔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그때 월남사도 함께 불탔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현재 월남사지는 형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해체해서 드러누운 월남사지 삼층석탑을 보고 왔습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 또한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으며 문헌과 석탑의 양식에서 고려 초기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벽돌처럼 다듬은 여러 석재를 쌓은 전탑(벽돌탑) 형식을 모방하였으며 지붕돌인 옥개석의 층급받침에서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은 석재를 사용했습니다. 

기단이 단층이고 옥개석의 끝이 미세하고 반전한 것을 보면 이와 비슷한 석탑이 국보 제9호인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입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을 모전 석탑인 백제계 양식의 탑으로 알고 있었으나 높이가 8.4m인 거대한 삼층석탑에다 기본양식과 결구 수법 등이 백제 석탑의 전형을 따르고 있어 2002년부터 월남사지 모전 석탑이 아닌 월남사지 삼층석탑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일부사진: 문화재 발굴조사 안내판 촬영)



일단 월남사지 삼층석탑도 해체되어 실물을 볼 수 없고 부재만 볼 수 있습니다. 

복원되면 그때 다시 월남사지를 방문하여 완벽한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혜심의 진각국사비를 포스팅하겠습니다. 

큰 부재와 수박만 한 크기의 부재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서 하루 일찍 복원되기를 빌었습니다.









월남사지 터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4 | 월남사지삼층석탑
도움말 Daum 지도



(경북여행/경산여행)경산 제석사와 계정숲 여행. 원효 탄생지 제석사와 한장군 묘와 계정숲


경산시를 삼성현의 고장이라 부릅니다. 

이 세 분의 성현은 원효대사와 그의 아들인 설총,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선사를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원효대사의 탄생지라는 경산 자인면의 제석사를 보고 왔습니다. 

원효대사의 탄생을 보면 유성이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원효를 가졌으며 만삭에 집 옆의 밤나무가 많은 골짜기인 ‘율곡’을 지나다가 산통을 느껴 밤나무 아래에서 원효를 낳았다 합니다.





경산 원효대사 출생지 제석사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226-1

경산 원효대사 출생지 제석사 전화:053-857-2271


2016/01/23 - (경북여행/경산여행)경산 삼성산 산행. 원효, 설총, 일연선사의 고장 삼성현. 경산 삼성산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상대온천에서 온천산행 추천.

2016/02/03 - (경북여행/경산여행)삼성현역사문화공원과 삼성현역사문화관. 삼성현 역사문화공원 문화관에서 원효, 설총, 일연을 만나다. 1편

2016/02/06 - (경북여행/경산여행)삼성현역사문화공원 삼성현역사문화관. 경산시 남산면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의 삼성현역사문화관에서 원효, 설총, 일연을 만나다. 2편

2016/11/26 - (경산여행)난포고택. 경북 경산시 용성면 여행에서 꼭 가봐야할 곳 난포고택. 난포고택

2017/01/08 - (청도여행)경산 용성 반룡사를 찾아가다 금천면 소천리 석현마을 '소천리 새김글' 첨앙대 여행하기

2018/04/22 - (경북여행/경산여행)사진 찍기 좋은 곳 경산 반곡지 복사꽃. 경산 반곡지 여행





이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든 부처님을 떠오르게 합니다. 

원효가 태어났던 곳인 큰 밤나무를 사리수라 불렀고 그 밤나무에서 열리는 밤을 사리밤으로 불렀습니다. 

이 밤은 주위의 밤보다도 밤알이 토실토실한 게 월등히 컸다 합니다. 

원효는 15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충격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원효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곳은 자인면사무소 뒤쪽인 속칭 밤골이라 불리는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원효는 출가하고 나서 자신이 살았던 옛집을 헐어내고 절을 짓고는 초개사라 불렀으며 자신이 태어났던 밤나무인 사라수 옆에도 절을 짓고는 사라사라 했다고 삼국유사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개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년 전에 한 농부가 밭갈이를 하다가 불상과 탑의 몸돌을 발견하고는 이곳이 오래전에 절터였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후 유찬이 절을 짓게 된 게 오늘날 제석사가 되었다 합니다.

 


제석사 한쪽에는 석조좌불, 부서진 탑신과 석등을 받쳤던 연화문 대석등의 부재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 일대가 신라하대의 고찰터 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원효가 세웠던 초개사나 사라사의 확실한 근거는 아직 찾을 수 없으며 이 일대가 원효의 출생지라 그리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신라시대 부재



한국사찰전서에 제석사는 1625년 유찬이 창건했으며 1802년과 1910년 거사 손대권과 월파대사가 각각 중창하였고 1933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후에 제석사는 쇠퇴하면서 폐사가 되었다가 1962년에 다시 대웅전을, 1965년에 칠성각을 건립하면서 불법의 등불을 밝히게 됩니다. 

2001년에 와서 대웅전을 새롭게 중창하면서 삼존불을 봉안하고 대웅보전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칠성각 또한 산신각으로 개명했습니다.







제석사는 다른 사찰과 다르게 이곳은 원효대사의 탄생지로 추정되어 2003년 불교계 최초인 ‘원효성사전’을 건립했습니다. 

내부를 살짝 보았더니 안에는 원효대사의 좌상을 모셨습니다. 

주택가 안의 사찰이라 조금은 생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원효의 출생지 설화가 있는 사찰이라 그런지 신성하며 무엇인가 모를 무거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인근에 있는 계정숲으로 향했습니다. 

도심에서 보면 울울창창한 숲으로 우거진 언덕 같은 높이의 공원이었습니다. 

인공적으로 가꾼 숲이 아니고 천연숲인 계정숲은 이팝나무가 주종이며 말채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 낙엽수와 활엽수가 섞여 있어 여름철에는 시원한 숲을 제공해 줄 것 같았습니다.




경산 자인면 계정숲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68





계정숲 안에는 한 장군의 묘와 사당이 있습니다. 

한 장군이 어떤 분인가 싶어 자세히 보았습니다. 

십이지신상을 호석으로 두른 게 예사 분이 아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장군은 신라인지 고려인지 정확한 연대는 알수 없지만 도천산에 왜구가 출몰해서 주민을 괴롭히자 한 장군이 누이와 함께 화려한 꽃관을 쓰고 여원무를 추며 도천산의 버들못으로 왜구를 유인하여 칡으로 만든 그물에 가두어 검흔석에서 모두 참수했다는 분입니다.





1968년 8월 자인중·고등학교 신축을 하려고 땅을 파다가 석실묘를 발견하여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두개골과 은으로 만든 갑옷 투구와 무기류인 창 등 많은 토기류가 함께 나와 한 장군의 묘라 확정하였고 전설로만 내려오든 한 장군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1965년 5월에 계정숲에 한장군의 묘를 이장하여 매년 단오절에 한장군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당시 출토된 유물은 영남대학박물관에 있다가 2011년 12월에 대구 박물관으로 옮겨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 장군의 묘와 함께 한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진충묘(盡忠廟)도 있습니다.



 




한 장군은 누이와 함께 도천산 버들못에 은신해 있던 왜구를 ‘여원무’를 추어 유인해 섬멸했다고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화려한 화관을 쓰고 춘 춤이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에 지정되었으며 지역민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인 한장군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매년 경산자인단오제에서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진충묘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에 북사리의 ‘한당(韓堂)’을 계정숲으로 옮겨 세우면서 진충묘라 했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1칸의 맞배기와지붕입니다. 

진충묘옆에는 시중당의 현판을 단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1637년 (인조15년) 자인현감이던 임선백에 의해 신관동에 세워졌으며 자인현의 정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무금헌이라고 불렸으며 고을이 옮겨감에 따라 원당리와 북사리로 옮겨 지어졌습니다. 

시중당의 건물은 1870년(고종7년)에 세워졌으며 1910년에 행정구역 변경으로 하양과 자인, 경산이 통합되면서 자인중학교 교실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36년 서림 서편으로 옮겨 세웠다가 1980년 계정숲의 한 장군 사당 옆에 옮겨 건립했습니다.

 




요산정으로도 불렸다는 시중당의 나무 현판은 1763년(영조39년)에 자인현감이던 정충언이 쓴 글씨라 합니다. 

여행하면서 약간 시간을 내어 들렸던 계정숲은 한 바퀴 도는데 20분도 체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전설과 문화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 장군과 누이의 이야기는 구전으로만 전해왔던 것을 실체를 확인하고 계정숲에다 한장군묘와 사당이 세워지게 된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산 자인면 여행을 한다면 자투리 시간을 내어 제석사와 계정숲을 꼭 둘러볼 것을 권합니다. 

계정숲은 1997년 12월 기념물 제123호에 지정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북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226-1 | 제석사
도움말 Daum 지도
  1. 2018.04.25 05:03

    비밀댓글입니다




(경북여행/경산여행)사진 찍기 좋은 곳 경산 반곡지 복사꽃. 경산 반곡지 여행 


영천 대창면 복사꽃 마을인 구지리를 떠나서 두 번째 복사꽃 마을인 경산 남산면 반곡리의 반곡지에 도착했습니다. 

반곡지가 있는 이곳은 삼성현의 고장입니다. 

바로 반곡지를 품은 산도 삼성산이라 하는데 이곳 경산에 세 성인이 나왔다 하여 그리 부르고 있습니다. 

한 분은 원효대사이고 또 한 분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설총, 나머지 한 분은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선사입니다.





경산 복사꽃 촬영지 반곡지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




2014/07/04 - (대구여행/경산여행)팔공산 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을 만나다.갓바위

2016/02/03 - (경북여행/경산여행)삼성현역사문화공원과 삼성현역사문화관. 삼성현 역사문화공원 문화관에서 원효, 설총, 일연을 만나다. 1편

2016/01/23 - (경북여행/경산여행)경산 삼성산 산행. 원효, 설총, 일연선사의 고장 삼성현. 경산 삼성산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상대온천에서 온천산행 추천.

2016/02/06 - (경북여행/경산여행)삼성현역사문화공원 삼성현역사문화관. 경산시 남산면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의 삼성현역사문화관에서 원효, 설총, 일연을 만나다. 2편

2016/11/23 - (경산여행)구룡산 반룡사. 원효와 설총, 요석공주의 설화가 살아 숨쉬는 경산 구룡산 반룡사 여행.

2015/11/11 - (경북여행/경산와촌여행)불굴사와 홍주암. 팔공산 갓바위와 부부라는 불굴사 약사불괴 원효와 김유신의 수도처 홍주암을 여행하다.




반곡지 입구에 이 세 분을 모신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더욱 풍성한 반곡지 여행을 선사합니다.

이 세 성현의 출생지라 경산은 남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하겠습니다. 

그 1경이 반곡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반곡지의 명소는 익히 알려졌습니다. 

 


2011년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선정되어 많은 사진동호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봄이면 반곡지에 비치는 복사꽃이 반곡지의 1경이라면 여름에는 신록으로 물든 반곡지입니다. 

반곡지 제방에 늘어선 300년이 넘었다는 버드나무는 가지가 늘어져 잔잔한 수면에 모습을 비치면 그야말로 환상의 모습이 됩니다.





이 반곡지의 광경을 담으려고 전국의 사진 애호가가 몰려들고 있습니다. 

가을의 반곡지는 또 어떤가요? 

여름의 그 뜨거운 태양열을 받으며 보낸 세월을 보상이나 하려는 듯 가을의 반곡지는 붉게 물든 단풍에 만산홍엽의 반곡지를 연출합니다. 

한해의 마무리인 겨울 반곡지 또한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두텁게 몸을 둘렀던 이파리를 모두 털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차디찬 겨울을 온몸으로 맞는 반곡지, 그곳에 하얀 눈이라도 내리면 반곡지는 그야말로 영화의 한장면을 연출합니다. 

반곡지의 버드나무가 사시사철 변하는 모습을 담으려는 관광객으로 시즌이면 반곡지는 인산인해입니다.

 





부산에 사는 저도 항상 인터넷의 사진을 눈으로만 보다 봄과 여름의 반곡지가 생각나서 복사꽃이 있는 반곡지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청도 구지리의 복사꽃은 한창이었다면, 반곡지의 복사꽃은 가지에 꽃을 약간 남기고 모두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복사꽃은 서로의 자연환경에 적응한대서 정말 놀랐습니다.



 




반곡지에 복사꽃이 절정이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제방에 축 늘어선 연녹색 버드나무로 아쉽지만, 그 마음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반곡지 버드나무는 제방 쪽으로 쭉 늘어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쪽에는 덱이 놓였고 대부분 사진동호인은 이곳에서 물에 비친 버드나무 반영을 담습니다.

 




저도 이곳에 삼각대를 걸고 반곡지 반영을 담으려고 했으나 이날은 심하게 부는 바람으로 수면의 버드나무 반영이 잘 나타나지 않아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사람에게 많은 기회가 오듯이 저도 자주 반곡지를 찾아야겠습니다. 

그때는 바람한 점 없는 맑은 날씨의 반곡지 반영이 반길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반곡지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첫 반곡지여행이라 덱에서만 놀았는데 다음 여행에서는 반곡지 제방에도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일행이 있어 많은 시간을 반곡지에서 보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힐링을 받은 반곡지 여행이었습니다. 

경산 사진찍기 좋은 곳 반곡지 여행이었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북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 | 반곡지
도움말 Daum 지도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복사꽃마을 여행. 영천에서 복사꽃길을 걸어보세요 


매화꽃과 산수유꽃이 봄꽃의 시작이라면 그 자리를 이어받은 벚꽃이 또다시 자리를 내어주면서 복사꽃이 이제 자리를 받았습니다.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복사꽃 마을·복숭아 마을로 불리는 구지리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부산에서 언양나들목을 나와 운문령을 넘고 운문호를 돌아 영천으로 향했습니다.




영천 복사꽃마을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561-5



2016/05/11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모고헌, 독특한 누각이 돋보였던 MBC드라마 화정 촬영지 영천 보현산 아래 옛 태고와 누각 모고헌 여행.

2016/05/18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보현산~보현산 시루봉 산행, 하늘바라기에 좋은 산행지 보현산 천문대가 있는 영천의 지붕 보현산 산행. 영천보현산

2016/06/24 - (영천여행/영천가볼만한곳)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균형미가 아주 빼어난 고려시대 철불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을 만나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2016/07/11 - (영천여행/영천 가볼만한 곳)영천 임고면 환구 세덕사. 임고서원과 함께 갈만한 여행지 환구 세덕사

2016/09/06 - (영천여행)임고서원. 절개와 의리의 상징인 고려말 충신 포은정몽주의 영천 임고서원, 포은 유물관 여행.




영천을 찾아가는 도중 농촌은 벌써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농부의 손에서 진짜 봄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천 땅에 들어서면서부터 선분홍색의 복사꽃에 하늘의 색감이 완전히 달라 보였습니다.





고개를 넘으면서 구릉지에 펼쳐진 복사꽃은 진짜 무릉도원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늘도 복사꽃의 아름다움을 더 예쁘게 하려는 듯 화창해서 여행을 떠나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습니다. 

역시 빠른 소식통은 진사님입니다.







벌써 복사꽃의 아름다움을 알고 여러 분이 찾아와서 열심히 사진을 담고 있었습니다. 

나도 사진을 찍기 위해 포인트를 찾았습니다. 

경부선 KTX 선로와 복사꽃이 잘 조화를 이루는 사진포인트가 보였습니다.





벌써 한 분의 진사님이 삼각대를 걸어놓고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디선가 웅~~~~하는 소리와 함께 KTX가 쌩하며 통과 했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계속 왔다갔다하면서 자주 다녔습니다. 

사진을 몇 장 담고 구지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바로 한 모퉁이만 도니까 복사꽃 마을이었습니다. 

땅도 선분홍, 하늘도 선분홍, 내 마음조차 선분홍색 되었으며 활짝 핀 복사꽃에 내 몸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아이고 언제 복숭아 맛을 볼까? 그러나 곧 이 복사꽃이 여름 과일인 복숭아로 바뀌어 주렁주렁 달리 걸 생각하니 입안에 군침이 베어 나왔습니다. 

ㅎㅎ 새콤달콤한 맛있는 복숭아를 생각하며 다음 여행지인 반곡지로 향했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북 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561-5 | 구지리마을회관
도움말 Daum 지도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리고분군. 비화가야의 순장한 소녀 유골이 나온 창녕 송현리고분군 여행 


창녕 송현리고분군은 1963년에 사적 81호에 지정되었으며 인근의 창녕교동고분군은 사적 80호 각각 지정했습니다. 

그후 창녕 송현리고분군과 교동고분군은 서로 연대가 비슷한 5~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고분으로 추정되어 2011년 7월 두 고분군을 통합해서 사적 514호에 새롭게 지정했습니다.




창녕 송현리고분군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2

창녕 송현리고분군 연락처:055-530-1473





2018/04/1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동고분군을 만나다.

2018/04/0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2018/04/03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석빙고. 조선시대 얼음 창고 창녕 석빙고 여행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2018/03/29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2018/03/2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창녕 송현리고분군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진한의 12개 국가에 속했던 불사국인 비화가야시대의 고분군입니다. 

불사국은 창원의 옛이름인 비사벌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으며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삼한소국으로 수록되었다합니다. 

창녕송현리고분군은 화왕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인 목마산 아래 구릉지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타타시가 고분군의 존재를 처음 알렸고 1917년 분포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1918년과 1919년에 11기의 고분이 발굴조사 되었지만 21호 31호 고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도 나오지 않는 등 허점투성이의 발굴이었습니다. 

당시 교리고분군과 함께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양이 마차 20대 분량과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속공예품이었다 합니다.



그 당시 나왔던 그 많은 유물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일부만 소장해 있고 나머지 유물은 대부분이 행방이 묘연한 상태라 합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밀반출되어 팔려나간 거로 보입니다.



송현리고분군은 가야시기 창녕지역의 고분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 합니다. 

그리고 큰 고분은 지름이 20m가 넘고 중소형을 합해 모두 23기가 현재 있습니다.

 


2002년~2006년까지 4년 동안 경남문화재연구원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각각 2년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발굴 조사된 송현 6·7호 고분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배모양을 한 녹나무목관이 나왔습니다. 

그와 함께 토기 280여 점과 장신구·금동투조장식이 부착된 말안장 가리개와 말띠꾸미개 이외 마구류·무기류·농기구류 등 90여 점의 철기와 100여 점의 목기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이후인 2006년~2008년의 발굴조사에서는 15·16호 대형고분과 중형고분으로 보이는 17호 고분 그리고 작은 고분 7기에서 석곽 등의 유구를 조사했습니다. 

이들 고분을 조사하면서 이미 도굴된 상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봉토의 축조방법과 축조시기 등 다양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합니다.





또한, 2007년 12월 15호분에서는 4구의 순장 인골도 나왔습니다. 

남녀 두 쌍이 한 무덤 속에서 나왔으나 아쉽게도 도벌 꾼들로 인해 유골은 훼손되어 무덤의 신분조차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하는지, 그중에서 어린 여자로 추정되는 한 인골만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 소녀를 송현리고분군에서 발굴되어 ‘송현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이 유골을 수습하여 컴퓨터단층촬영과 3차원 정밀 스캔. DNA 확인 등 최첨단의 장비로 분석한 결과 1500년 전인 16세 어린 나이에 순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인은 중독 또는 질식사로 추정되었으며 키 152cm의 소녀가 죽은 주인과 함께 죽임을 당해 묻혔다니 요즘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502년 신라 지증왕이 순장을 법으로 금지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도 실제로 순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창녕군에서는 이 순장녀인 송현이의 넋을 위로하는 창녕 문화재 탐방로인 둘레길을 조성해 '송현이길'로 명명했습니다.





송현이가 묻혔던 고분은 횡구식석실묘(앞트기식돌방무덤)로 무덤 입구가 따로 있어 추가로 장례할 수 있 는가족 공동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토기와 각종 장신구와 금동관 일부도 나와 무덤의 주인은 상당한 위치에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토기류는 뚜껑 달린 굽다리접시와 작은 굽다 리 긴 목항아리는 관 주위에, 굽다리긴 목항아리는 무덤 입구에서 나왔으며 마치 제사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합니다. 

창녕군을 알고싶다면 가장 먼저 교리고분군과 송현리고분군을 찾고 그리고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중인 교리고분군에 있는 창녕박물관을 찾을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창녕박물관은 내부 리모델링 중이라 현재에는 관람할 수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 참고하세요.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2
도움말 Daum 지도



(전남남원/남원여행)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지리산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여행·


남원 실상사에서 세 번째 포스팅은 보광전 앞에 똑같은 모양을 한 동·서 삼층석탑입니다. 

실상사는 828년인 신라 42대 흥덕왕 3년에 흥척이 창건했으며 당시 구산선문의 실상산문으로 개창한 최초의 선종가람입니다.





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주소: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전화:063-636-3031




2018/04/11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실상사 석등. 보물 제35호 남원 실상사 석등

2018/03/13 - (전북여행/남원여행)지리산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우리나라에 가장 큰 남원 실상사 철불을 만나다

2014/01/14 - (전북여행/남원여행)아이의 울음도 멎게하는 썰매타기. 지리산 남원 바래봉 눈꽃축제을 즐기다.남원 허브밸리 눈꽃축제

2014/02/27 - (전북맛집/남원맛집)광한루맛집. 춘향이와 이몽룡이도 먹어보고 반한 오리생소금구이 춘향테마파크 산촌가든.

2015/01/20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광한루. 성춘향과 이몽룡의 광한루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2014/02/27 - (전북맛집/남원맛집)광한루맛집. 춘향이와 이몽룡이도 먹어보고 반한 오리생소금구이 춘향테마파크 산촌가든.





흥척은 당나라 유학에서 826년 귀국하여 왕실과 중앙귀족의 도움을 받아 실상사를 세웠으며 수철화상 등에 의해서 고려 초까지 사세를 확장하며 전성기를 맞습니다. 

그러다가 1468년에 화재로 폐사되면서 승려는 말사인 백장암과 인근 암자로 뿔뿔이 흩어져 수행했습니다.







그 후 215년 만인 1680년경 숙종 때에 실상사는 중창되어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조선 후기인 1883년 고종 20년에 유생의 어이없는 방화로 대적광전, 노전, 명부전 등이 불타고 말았습니다. 

그 이듬해 대적광전이 있었던 곳에 보광전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을 보겠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은 1875년(고종12년)에 오래되어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전형인 1금당 2탑 양식을 따랐습니다. 

두탑이 같은 형태인 쌍탑을 하고 있습니다.









지대석 위에 이중기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상·하층 기단 면석의 각 모서리에 우주와 중간에 탱주를 1개씩 새겼습니다. 

탑신부인 몸돌은 1층에서 3층까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1개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몸돌 모서리에는 우주를 조각했고 지붕돌인 옥개석 처마 밑은 수평이며 4단의 층급받침에 2단의 몸돌 받침이 있습니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렸으며,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상륜부입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은 상륜부의 구성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석탑 중 하나입니다.

 








실상사 동 삼층석탑은 노반·복발·양화·보륜·수연·용차·보주로 이어지는 상륜부에 부재 사이에 간석이 있다면 서 삼층석탑에서는 수연만 결실되었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의 높이는 동탑은 약 844cm, 서탑은 약 863cm이며 두 탑의 아름다움에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 실상사
도움말 Daum 지도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실상사 석등. 보물 제35호 남원 실상사 석등


남원의 대표사찰인 실상사에서 두 번째 포스팅은 석등입니다. 

실상사 석등은 1963년 1월 보물 제35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실상사는 통일신라인 828년 흥덕왕 3년에 흥척이 선종인 구산선문의 하나로 실상산문을 개창하면서 창건했습니다. 

실상사 석등은 보광전과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사이에 있었습니다.





남원 실상사 주소: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남원 실상사 전화:063-636-3031




2018/03/13 - (전북여행/남원여행)지리산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우리나라에 가장 큰 남원 실상사 철불을 만나다

2015/01/26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국악성지. 남원에 조성된 국악성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2015/01/22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광한루 광한루원. 조선시대 지방관아 정원으로서 유일한 광한루 광한루원에 깜짝 놀라다.

2014/01/18 - (전북여행/남원여행)춘향별과 몽룡별은 어디에. 남원항공우주천문대에서 찾아보세요. 남원항공우주천문대

2010/07/31 - (전북여행/남원여행)지리산 구룡계곡~덕운봉 산행. 아홉마리의 용이 계곡의 폭포에 내려와 놀고 갔다는 지리산 구룡계곡

2014/01/13 - (전북여행/남원여행)춘향골 도심속 향기원. 남원시민이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작품 도심속 향기원에서 멋진 야경을 만나다.





석등은 불을 밝히는 곳을 말하지만, 그 의미는 “중생의 마음에 불법을 밝힌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부처님의 자비의 빛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을 말합니다. 

석등은 하대석·중대석·상대석으로 나누어집니다.

 


실상사 석등도 마찬가지이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가운데 다 두고 밑에는 3단의 받침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에다 머리장식을 올렸습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등 형식인 팔각원단형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특히 실상사 석등은 둥근 기둥이 장고 모양을 하여 예술성이 돋보이며 일반 석등의 밋밋한 기둥과는 차이가 난다고 하겠습니다. 

하대석인 받침 부분은 아래 받침과 위 받침돌에다 연화문을 새겼으며 8장의 꽃잎이 앙련과 복련으로 서로 대칭 하도록 했습니다.

 








팔각인 화사석 또한 각 면에 모두 8개의 사각창을 내었으며 창 주위에는 창문을 달기 위한 구멍이 나 있습니다.

 지붕돌 또한, 팔각이며 각 모서리의 귀 끝이 모두 치켜 올려졌으며 끝에는 돌출된 꽃 모양을 얹었습니다.





지붕 위에 또 다른 작은 원형 지붕을 얹은 점이 독특하며 머리 장식에는 화려한 무늬를 새겨넣어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장식성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실상사 석등은 큰 규모 때문에 화사석에 불을 밝힐 때 밟고 오르도록 돌사다리를 만들었으습니다. 

지붕돌의 귀끝 꽃무늬나 받침돌의 연꽃무늬가 형식적인 점을 들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석등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 실상사
도움말 Daum 지도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리고분군을 만나다.


창녕군 창녕읍 내에서 만나는 고분군은 두 곳 있습니다. 

1963년 1월에 사적지로 지정했으며 사적 80호인 창녕 교리고분군과 사적 81호인 송현리고분군 입니다. 

2011년 7월 문화재청이 역사와 특성에서 두 고분군이 비슷하다고 인정되어 2011년 7월 통합해서 사적 제514호로 재지정했습니다.





 창녕교동고분군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124

창녕교동고분군 연락처:055-530-1473




2017/12/09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말이산고분군. 아라가야 지배지의 무덤 함안 말이산고분군 여행

2017/12/06 - (경남여행/함안여행)신라시대 석성 함안 성산산성에서 시간여행을 하다. 함안 성산산성·조남산성

2015/03/31 - (경남여행/김해여행)대성동고분박물관. 금관가야 발굴 유물 전시관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 여행.

2013/12/28 - (충남여행/공주여행)공주 석장리박물관, 우리나라 조상도 구석기시대 인물, 석장리 유적지에서 확인을 하다. 석장리고분군

2008/12/10 - (부산여행/동래여행)동래 복천동고분군. 도심한복판의 U.F.O가 가야시대 고분인 복천동고분군




문화재의 보고인 경주에 버금간다는 창녕에도 고대부터 내려온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경남의 경주라 일컫습니다. 

왜 창녕에 많은 고분과 문화재가 있는지를 보면 이곳 창녕은 오래전부터 소국가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진한의 12개 국가 중 하나였던 불사국으로 비화가야라고도 합니다.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수록된 삼한 소국의 이름이며 불사국은 경남 창녕의 옛 이름인 ‘비사벌(非斯伐)’에서 나왔을 것으로 유추하고 있습니다. 

창원교동고분군과 송현리고분군은 화왕산 서쪽 능선의 목마산성 아래인 구릉지에 널리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다시에 의해서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후에 1917년 분포조사를 시행하였고 1918년과 1919년에 11기의 고분 발굴이 이루어졌으나 제21호와 31호 고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도 나오지 않는 등 완전 날림씩 발굴조사에 유물 반출만 이루어졌던 모양입니다.



당시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의 규모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마차 20대 분량과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공예품이 박 쏟아져 나왔다 하니 말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일부 유물만 소장해 있으며 현재 유물 대부분은 소재 불명 상태라 합니다.



당시 자료에는 금동관, 금동관모, 금·은제수식 등 많은 금장신구와 각종 마구류, 비늘 갑옷, 철제 무기류, 철제농기구와 토기 등이 나왔으며, 이는 창녕교동고분군의 출토 유물의 성격이 신라 서라벌에서 출토된 유물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를 보고 교동고분군은 5~6세기 전반의 고분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다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창녕교동고분군의 고분은 현재 밝혀진 숫자만 103기나 됩니다.

제가 교동고분군을 답사하고는 먼저 큰 규모에 놀랐습니다. 

창녕박물관 왼쪽에도 여러 기의 큰 고분군이 있었으며 24번 국도 건너편에도 한 무더기의 고분이 구릉을 끼고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당집이 있는 고개 건너편에도 많은 고분군이 정비되어 관리하는 것을 보면서 김해, 고령, 대구와 경주 등 여러 고분군에 비해서 규모에서 창녕교동고분군도 전혀 빠지지 않을 듯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1992년 동아대학교 박물관과 2004년 경남문화재연구원, 2009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각각 창녕교동고분군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동아대박물관에서는 1~4호의 고분을 발굴하였습니다. 횡구식 석실 구조를 확인했으며 이 고분에서도 다양한 토기류와 각종 금속유물이 나왔고 고분의 구조와 나온 유물에서 5세기 중반 이후에 조성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2004년 창녕문화공원 조성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횡구식석실분 13기와 통일신라 폐와무지, 조선시대 배수로 삼가마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고분군의 축조구조와 출입구의 형태 변화와 출토유물에서 고분의 조성시기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중반이라 보고 있습니다.







2009년의 창녕교동고분군 주차장 부지 발굴조사와 2011년 2012년 일제 강점기 때 발굴되었던 7호분의 고분군 재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일제는 고분발굴조사를 하면서 고분은 뒷전이고 유물 수습과 반출을 하여 당시 남은 기록을 비교하며 우리 문화재 발굴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봉토와 축조과정, 매장 주체부의 내부구조를 파악할수 있었으며 이를 학술연구자료와 고분의 보존 정비에 기초자료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ㅎㅎ 발굴조사 과정에서 딱 철기 2점만 나왔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서 당시에 얼마나 유물을 쓸어 담아 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발굴조사를 기초하여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보는 고분으로 재정비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남 창녕 교동고분군을 보고 나서 이제 송현리고분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참고:2013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녕교동고분군 보고서)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
도움말 Daum 지도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와 함께 창녕군에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그러니까 창녕군에서 두 점의 국보 중 하나가 이곳 술정리 동 삼층석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있는 것을 보니까 같이 술정리 서 삼층석탑이 어디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2-20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전화:055-530-1473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2018/03/29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2018/03/2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2015/12/18 - (경남여행/함안여행)용화산 능가사. 남지철교와 낙동강을 끼고 앉은 최고의 절집 용화산 능가사 여행하기.

2015/12/11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남지철교. 6.25 한국동란 최대 격전지 낙동강 전투의 상흔이 남아 있는 등록문화재 145호 남지수변공원의 창녕 남지철교를 여행하다.




맞습니다. 술정리 서 삼층석탑도 있으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 사찰로 보기에는 힘들어 보였고 술정리 동·서삼층석탑으로 명시된 것에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인근에 절의 표시나 절을 알리는 당(깃발)을 묶은 깃대를 고정한 당간지주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일단은 사찰 터가 있었다고 생각되었으며 품었던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입니다. 

당시 가람배치의 형태는 대웅전 앞쪽에 좌우로 각각의 탑을 세우는 2탑 1금당 형식이며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절터에서 동·서 어느 쪽인지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라 이름 한 것도 1km쯤 떨어진 서쪽의 삼층석탑(술정리 서 삼층석탑. 보물 제502호)과 알기 쉽게 구분하기 위해서 붙여진 명칭이라 합니다.







2004년 11월 (재)동아문화연구원에서 낸 보고서에서는 “2002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동삼층석탑에 대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규명하고 석탑을 둘러싼 주변 사지(寺址)의 규모와 성격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의 수집을 위해 이 일대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한 결과, 동삼층석탑 주변 일대의 민가와 담장 등에서 확인되는 석재와 각종 문헌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곳에 ‘인양사(仁陽寺)’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를 보면 술정리 동 삼층석탑 일대는 인양사지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번 창녕여행에서 창녕 군청 옆 비각 안에 인양사 조성비를 보고 왔던 터라 그 조성 비문에서 인양사조성비를 금당 뒤쪽에 세웠다고 추정했습니다. 

인양사 조성비 부근에 절의 중심건물인 금당이 있었고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인양사 삼층석탑이라 보면 인양사의 규모는 정말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이층기단 위에 삼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입니다. 

그리고 불국사의 석가탑과 비슷한 모습에 군더더기 없는 절제미에 위풍과 당당함을 갖춘 아름다운 탑이며 경상남도에 남아 있는 석탑 중에는 가장 오래된 탑입니다. 

일명 ‘사지탑(寺址塔)’이라고 불리는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1965년 해체복원을 했습니다.





당시 해체를 하는 과정에서 3층 몸돌의 사리공에서 청동잔형사리용기, 사리병과 사리7과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현재 상륜부는 모두 남아 있지 않으며 납의 높이는 5.75m에 이릅니다. 

또한, 탑은 크고 웅장하며 기품있는 모습입니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이층의 기단을 올렸습니다. 

아래 기단과 위층기단의 각 면 모서리 기둥인 우주와 가운데 기둥인 두 개의 탱주를 새겼으며 몸돌은 각 모서리에 우주만 새겼습니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며 끝 모서리님 귀가 약간 들렸습니다. 

그 아랫면에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습니다.

 








2008년 10월~2009년 7월까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에서 석탑의 서편지역에서 문지로 보이는 건물지 1동과 계단 유구, 일부만 남아 있는 3동의 건물지를 확인했습니다. 

고려 시대로 보이는 건물지 1동에서 ‘송림사’ 명문이 들어간 기와가 발견되어 한때 송림사로 불렸다는 사실도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술정리 동삼층석탑을 보고 난 뒤 그 너른 광장 끝에는 국가 민속문화재 제10호인 창녕 진양 하씨 고택이 있습니다. 

이집의 특징은 요즘 좀처럼 볼 수 없는 초가집이란 점입니다. 

대문채에도 초가지붕이라 처음에는 이게 문화재인 초가집이구나 하며 신기하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진양 하씨고택인 초가집은 이 대문채가 아니고 대문을 들어서면 그 안쪽에 자리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대문이 굳게 잠겨져 있습니다. 

대문에는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평일에만 개방하고 주말에는 폐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요일에 찾았던 터라 개인 살림집인 고택 주인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멀리서 찾아간 우리로서는 그냥 발걸음을 돌린다는 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대문채 앞으로 기와건물인 사랑채가 있고 그 뒤에 초가지붕인 안채가 있어 밖에서는 까치발을 들어도 보고 보일만 한곳이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아도 초가집이 워낙 낮아서 볼 수 없었습니다. 

많이 아쉬웠으며 다음번에 평일 날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구조는 4칸의 일자형 건물로 흔히 말하는 초가삼간입니다. 

맨 왼쪽 1칸은 부엌이며 그다음은 안방 1칸에 대청이 1칸, 대청과 연결된 건넛방이 1칸입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2-20 | 창녕술정리동 삼층석탑
도움말 Daum 지도
  1. 공수래공수거 2018.04.06 10:43 신고

    아쉽네요..초가집
    평일에민 개방한다니..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서면 가볼만한 곳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 걷기.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


우리나라 대기업의 모태가 된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그중 내가 사는 부산도 한곳입니다. 

당시 부산에서 시작한 기업 대부분은 부산진구 서면 근방에 몰려 있었습니다. 

부산진구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 그룹의 면모를 일신하며 승승장구하는 기업도 여럿이 있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업도 있습니다. 

궁금했던 게 부산진구에서 기업을 일구어 대한민국 굴지의 회사로 성장했던 업체와 지금은 가물가물한 장소였습니다.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 안내도





2015/05/11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부산시민공원 송상현광장 부산 연등축제. 부처님 오신 날 광명으로 온세상을 비추는 부산 연등축제를 보다.

2015/05/26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천태종 삼광사. 단일 사찰 최대의 연등 축제 부산 천태종 삼광사 연등 축제.

2015/11/09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돌산공원과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우리의 삶이 벽화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현동 안동네 벽화마을 여행.

2016/05/10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부산 정중앙 표지석. 부산의 정중앙인 부산의 배꼽이 궁금하다면... 금계포란형의 명당인 부산 정중앙 표지석을 만나다.

2016/05/13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백양산 선암사. 천년고찰 백양산 선암사 여행. 부암동 선암사

2016/05/13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백양산 선암사. 천년고찰 백양산 선암사 여행. 부암동 선암사




제가 어릴 때 만 해도 이 모든 기업이 부산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찾아가봤자 아파트 뿐이지만 그 당시를 회상하며 꼭 한번은 부산에 있었던 산업 현장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런 기회가 빨리 찾아왔습니다. 

한일그룹의 모태인 경남 모직의 옛터는 전포동에 있었습니다.

 


삼성그룹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던 제일제당 터는 부전동에 있었으며, LG그룹과 GS그룹 모태였던 락희화학(럭키치약) 터는 연지동에 있었습니다. 

국제그룹의 모태였던 국제상사와 동명목재, 대양고무, 진양고무 등 수많은 기업이 부산 진구에서 발판을 마련했고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급변하는 기업환경과 변화의 큰 파도를 넘지 못한 기업도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부산진구에서 태동하여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룹의 모태와 서면 영화관을 잇는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걸어 보았습니다.



부산 진구청에서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조성했으며 2개 주제로 4개 코스입니다. 

한때 부산 경제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신발산업입니다. 

6대 신발기업이 있었을 정도로 부산하면 신발입니다. 

그 중심에 부산진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코스 이름도 그때의 생각을 반추해보는 황금신발길 A·B 코스와 서면영화길 A·B 코스입니다.



이들 코스는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 각각 2시간쯤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4개 코스를 한번에 엮어서 걷기로 했습니다. 

걷다보니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 코스에서 조금은 벗어나 지름길로도 걸었습니다.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걸어보고는 개인적으로 걷기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는 이정표와 제반 시설이 아직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전체적인 거리는 대략 9km에 4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거리는 별로 의미가 없지만,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기업의 뿌리가 되었던 곳을 빠지지 않고 보려는 노력은 했습니다. 

지금부터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출발합니다. 

출발지는 양정 송상현부사 동상에서였습니다. 

송상현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래성의 성문을 걸어 잠그고 결사 항전을 벌이다 순절한 분입니다.


롯데캐슬스카이아파트 옆 대양고무 흥아타이어 안내판

왜장은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다면 길을 빌려 달라“고 했지만 송상현부사는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으로 답하고 부사와 동래성을 지키던 군졸과 백성은 끝까지 동래성을 사수하다 장렬히 산화했습니다. 

건널목을 건너 송상현광장을 가로질러 서면 방향으로 향합니다.



메타세콰이어나무가 일렬로 늘어선 사이로 난 길입니다. 

보도블록이 갈려있는 길이지만 키큰 나무로 기분은 상쾌했습니다.  

광장 너머에는 높은 아파트가 늘어서 있었습니다. 

롯데캐슬스카이아파트이며 옛날 흥아타이어가 공장을 돌렸던 곳입니다.

 그 왼쪽 도로 건너편에는 대양고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서면 한신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은 슈퍼카미트란 브랜드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부전시장

당시 군계일학의 여러 유수업체가 부산 신발산업을 꽉 잡고 있었을 때인 1976년에 혜성같이 나타났던 슈퍼카미트 브랜드 대양고무는 1993년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겨가면서 전포동 시대를 마감했습니다. 

흥아타이어 또한 파란만장한 역사의 부침속에 그 명맥은 끝까지 유지하였고 현재에는 공장을 옮겨 넥센타이어로 생산 중입니다. 

지금은 롯데캐슬아파트 옆 담벼락에 당시 진양고무와 흥아타이어가 있었다는 작은 안내판만 서 있습니다.

 

부전역 곰장어거리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적십자빌딩과 옛 부산 동부터미널이 있던 자리입니다. 

동부터미널은 온천동 롯데백화점자리로 옮겼다가 지금은 노포동 부산종합터미널로 옮겨 갔습니다. 

중앙대로를 건너 부산 최대의 시장인 부전시장으로 갑니다. 

‘없는 것이 없다’는 부전시장은 특히 기장에서 동해남부선을 운행하는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직접 밭에서 재배한 채소를 반티에 이고서 부전시장에서 퍼뜩 팔고는 다시 돌아가던 애환이 점철된 부전시장을 나오면 바로 부전역입니다. 

부전역은 동해남부선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늦게까지 사람들로 항상 붐볐고 그러다보니 기장에서 잡아온 장어로 부산에서 가장 먼저 곰장어 거리가 생겼습니다. 소줏잔을 기우리는 서민들의 배를 불려 주었던 곰장어는 자갈치가 유명하지만, 부산 곰장어의 원조는 부전역 곰장어 거리라고 합니다. 

광복 직후부터 시작하여 대부분 40~50년은 훨씬 넘겼다고 합니다.





부전역 계단을 올라 육교를 건너면 미군 부대는 이전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부산시민공원이 있습니다. 

이 일대가 1900년대 초에는 비옥한 농경지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세수를 목적으로 서면 경마장이 들어섰고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제는 기마 부대 설치와 1941년 태평양전쟁을 대비하여 제72병참경비대와 임시군속훈련소(노구치부대)를 설치했습니다.


부산시민공원



일제는 해방이 될 때까지 군수품 야적장으로 사용했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가 들어섰습니다. 

부산시민공원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박물관을 둘러보고 비로자나반가석불과 협시불이 있어 옛 절터였나 싶어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옆에 마두관세음보살 표석이 있는 것을 추정하면 경마대회를 열면서 사고사나 병사한 말의 위령재를 올렸을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부산 시민공원 역사관










부산시민공원 내 옛 서면 경마장 경주로



이곳을 나오면 국립부산국악원입니다. 

우리나라 국립국악원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이 부산이라 합니다. 

이곳을 지나 초읍 어린이대공원으로 가는 도로에 ‘LG사이언스홀’ 건물이 있습니다.

 LG그룹의 모태인 옛 락희화학(럭키화학) 자리입니다.

 








우리나라 치약의 대명사였던 럭키화학 공장은 연지자이아파트 자리이며 옛터 한쪽에 1998년 LG그룹의 모태를 상징하는 엘지사이언스홀을 개관했습니다. 

다시 서면 방향으로 내려오면 진양사거리입니다. 

진양은 국제화학을 창업한 양태진 회장에게 두아들이 있었습니다. 

국제상사 양정모 회장과 진양고무 양규모씨입니다.


진양사거리 황금신발상



국제상사는 ‘프로스펙스’를 상표로 진양고무는 ‘왕자표’ 신발을 생산했습니다.

이곳 진양사거리부터 부산 진구청 일원까지 진양고무가 있었던 곳입니다. 

한때 한국 신발산업의 메카였음을 보여주는 황금신발상을 2015년에 설치했습니다. 

바로 인근에 굴다리가 있습니다. 

굴다리 담벼락에는 서면 근대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벽화를 보면서 옛 추억도 떠올려봤습니다.

 





굴다리마을

이곳을 지나면 이번에는 동해남부선 철로에 놓인 굴다리입니다. 

이곳의 마을은 경부선 선로와 서로 엉키며 삼각형을 하고 있고 굴다리를 통행해서 마을로 들어선다 해서 굴다리 마을이라 부릅니다. 

다시 철둑 아래로 난 길을 따라 부전역 쪽으로 가면 부산진구 상징탑과 황령산 봉수대 모형이 나옵니다.




부산진구 조형물


황령산 봉수대 조형물


서면 로터리 조형물



영광도서 앞에서는 옛날 서면로터리 상징탑 모형을 지나 롯데 백화점 옆에 설치된 스웨덴 참전기념비를 찾았습니다. 

스웨덴은 중립국으로 한국전쟁에 의료지원으로 참전했습니다. 

1950년 9월23일 이곳에 설치되었던 유엔군 사령부 산하의 스웨덴 야전병원은 1950~1953년까지 한국전쟁에 참가했어 세운 기념비입니다.

 




이제 옛 서면 극장가를 찾아갑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1947년 서면 최초의 극장인 북성극장, 동보. 태화, 대한극장 등 총 16개의 극장이 성황을 이루었으나 현재에는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당시 극장 뒷골목은 베어링 볼트 등을 판매하는 부산 최대의 공구골목이었습니다.


서면 공구거리 조형물





지금은 카페와 맛집으로 모두 바뀌었으며 공구건물의 흔적은 보도블록에 스패너 모양과 인근에 공구를 형상화한 노란 원통형 조형물만 남았을 뿐입니다. 

이면도로를 따라 범냇골방향으로 갑니다. 한전부·울지역본부가 예전 전차가 다녔던 서면 종점이며 직진하면 동천앞입니다.

 



장미길


동천약어조형물


왼쪽에 장미길이 있고 더샵센트럴스타 아파트입니다. 

삼성그룹의 핵심 공장이었던 백설표 제일제당이 1953년에 공장가동을 시작했던 곳입니다. 

맞은편 동천 건너 범냇골과 부산금융단지 일대는 합판 왕국으로 이름 날렸던 옛 동명목재 부지였습니다. 

경남공고를 거쳐 부전 카페거리를 지나면 경남모직 옛터인 NC백화점입니다. 







경남공고 교정의 고 강수영 열사 기념비







부전 카페거리



1956년 미국의 원조를 받아 전포동에 경남모직이 처음 세워졌으며 K 앙고라 텍스는 양복과 양장 원단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곳에서 서면근대산업유산추억길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부산 부산진구 연지동 111 | 부산시민공원
도움말 Daum 지도
  1. 공수래공수거 2018.04.02 11:32 신고

    부산 서면에 이런곳이 있군요^^

  2. 2018.04.02 18:26

    비밀댓글입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창녕 군청을 지나 왼쪽 아담한 산봉우리에 팔각정이 보였습니다. 

이곳이 창녕읍내를 내려다보는 전망대로 손색없는 창녕문화공원입니다. 창녕문화공원을 찾다가 그 전에 왼쪽 아파트와 개인 주택 사이에 둘러싸인 밭 가운데 비각이 보였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았던 창녕 인양사 조성비였습니다.





창녕 인양사 조성비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294번지

창녕 인양사 조성비 전화:055-530-1472




2013/01/07 - (경남여행/창녕여행)제주도 돌하르방이 왜 여기, 관룡사의 비보역활을 한 창녕 관룡사 석장승

2013/01/11 - (경남여행/창녕여행)관룡사 용선대. 고해의 바다를 항해하는 반야용선을 의미, 관룡사 용선대 석가여래좌상

2013/01/13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관룡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부도탑이 원구형의 탑신에 불안. 관룡사부도탑

2013/01/13 - (경남여행/창녕여행)깨닮음을 얻어 도통할 것 같은 청룡암. 관룡사 청룡암.

2015/12/11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남지철교. 6.25 한국동란 최대 격전지 낙동강 전투의 상흔이 남아 있는 등록문화재 145호 남지수변공원의 창녕 남지철교를 여행하다.

2016/09/24 - (창녕여행)창녕석빙고. 요즘 같은 지진에 더욱 빛나는 우리 문화재, 석빙고의 무지개 천장에 내진 설계가 적용된 조선시대 얼음창고 창녕석빙고.




언뜻 생각해도 옛날에 인양사를 창건하면서 그에 관한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문화재를 찾아다녔고 폐사지 여행을 다녔지만, 불상의 복장유물에 종이로 기록한 것은 여럿 보았지만 이리 비석에 사찰의 조성 기록을 남긴 것을 보는게 창녕 인양사 조성비가 처음 입니다.

 


일단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미라 창녕문화공원을 잠시 미루고 인양사조성비를 보기로 했습니다. 

창녕인양사 조성비는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좁은 폭에 양면에다 남쪽은 인양사 조성기록을 새겼으며 북쪽인 뒷면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인양사 조성비는 통일신라시대인 771년(혜공왕 7년) 인양사 종을 만들면서부터 조성비를 세운 810년(헌덕왕 2년)까지 40년간의 행적을 기록해서 세운 비로 인양사(仁陽寺) 비상(碑像) 이라고도 합니다. 

인양사 금당 뒤쪽에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일대에서 신라와 고려 시대 때 만들어진 기왓조각 등이 여러 발견된다고 하며 규모로 봐서는 큰 규모의 사찰로 여겨집니다. 

이런 조성비까지 세워진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인양사 조성비는 직사각형의 바닥돌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올렸습니다.





인양사 조성비의 비문을 보면 10행에 각 행은 28자로 해서체에서 변형된 육조체라 합니다. 

비문은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 실려 있으며 비문의 내용은 인양사와 인양사와 관련 있는 여러 사찰의 범종, 석탑, 불상과 금당, 요사 등의 조성연대와 제반 사항을 빠짐없이 기재해 놓았습니다.



뒷면에 조각한 스님의 형상은 지장보살이라는 설도 있으며 인양사를 조성하면서 관련된 고승을 비석에 새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창녕 인양사 조성비는 금석문과 연대가 확실한 불상 조각으로 귀중한 문화재라 합니다.

 


현재 인양사지에 지키고 있는 유일한 유물이지만 머리가 유실된 석불좌상 1구도 함께 있었다 하나 현재 석불좌상은 창녕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이 인양사조성비에는 6.25 한국동란에 비석의 서쪽과 북쪽에 총탄흔적이 있다 하며 이번 여행에 확인을 못 했습니다.

 


비석의 높이는 1.58m이며 폭은 48cm, 두께는 18cm이며 1963년 1월에 보물 제227호에 지정했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294 | 창녕인양사조성비
도움말 Daum 지도
  1. 공수래공수거 2018.03.30 10:47 신고

    우포늪 갈때 한번 들러야겠습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창녕 화왕산인 자하골 입구에 송현동 고분군이 있습니다. 

송현동 고분군을 끼고 미륵사란 작은 암자에 단청을 입힌 전각이 있으며 그 안에 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을 모셨습니다. 

미륵사란 명칭도 송현동마애여래좌상으로 인해 생긴 것 같습니다.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5-4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75호




2015/12/11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남지철교. 6.25 한국동란 최대 격전지 낙동강 전투의 상흔이 남아 있는 등록문화재 145호 남지수변공원의 창녕 남지철교를 여행하다.

2012/12/06 - (경남여행/창녕여행)얼마나 아름다워 홍예교인 무지개다리라 할까. 영산의 만년교

2013/01/11 - (경남여행/창녕여행)관룡사 용선대. 고해의 바다를 항해하는 반야용선을 의미, 관룡사 용선대 석가여래좌상

2013/01/13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관룡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부도탑이 원구형의 탑신에 불안. 관룡사부도탑

2013/01/13 - (경남여행/창녕여행)깨닮음을 얻어 도통할 것 같은 청룡암. 관룡사 청룡암.

2015/06/20 - (경남여행/창녕여행)우포늪 둘레길. 국내 최고의 습지로 보호 받는 우포늪 생태길과 탐방로인 우포늪 둘레길을 걸어보다. 우포늘 둘레길




전각문을 살짝 열어보았습니다. 

정면에 꼭 반달을 닮은 둥근 바위에 단아한 모습의 마애불이 앉아 계셨습니다. 

이 마애불은 바위 면에다 바로 불상을 돋을새김 했으며 광배와 불상을 바치는 대좌는 따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로 추정되며 마애불의 높이는 1.37m입니다.

 


머리 정수리에 두툼하게 솟은 육계는 지혜를 상징하고 아주 드물게 2단이며 소발은 둥글고 아담하게 표현했습니다. 

손동작인 수인은 악마을 항복시키는 항마촉지인이며 볼록한 뺨과 크지 않은 코, 작은 입, 어깨까지 내려온 귀는 부드럽고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 줍니다.




어깨는 넓으나 가슴은 두텁지 않으며 가부좌하여 앉은 하체는 안정감이 돋보이며 조금 크게 표현했습니다. 

창녕송현동마애여래좌상은 자세와 얼굴의 표현, 한쪽 어깨에 걸친 법의 모양을 보면 석굴암의 본존불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법의의 주름은 사실성이 떨어지고 가슴이 평평하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함이 빠진다는 느낌이며 석굴암 본존불과 같이 강력한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신라말에 제작된 불상양식입니다.(참고:문화재 안내판)

 

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전각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5-4 | 창녕송현동석불좌상
도움말 Daum 지도
  1. pennpenn 2018.03.30 07:13 신고

    편안하고 인자한 모습의 석불이네요.
    보물이라니 더욱 멋져 보입니다.

    오늘은 즐거운 금요일입니다.
    3월 마지막 주말을 잘 보내세요.




(경북여행/구미선산여행)선산 금오서원.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를 배양한 선산 금오서원


구미 선산읍의 금오서원을 찾았습니다. 

선산 비봉산과 형제봉 산행을 하고 나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47개의 서원은 제외되었는데 금오서원은 그중 한곳이라 해서 일부로 늦은 시간이지만 찾았습니다. 

아마 꼭 보아야겠다는 열망이 더 컸다 하겠습니다.

 금오서원을 보면서 왜!!!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야은 길재 선생을 배향한 선산 금오서원 주소: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

야은 길재 선생을 배양한 선산 금오서원 전화:054-482-1435

선산 금오서원 경상북도 기념물 제60호




2014/11/14 - (경북여행/구미여행)채미정. 구미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야은 길재를 추모 하는 정자.

2014/11/09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90도 각진 모서리를 깎아 섬세함이 돋보이는 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2014/02/13 - (경북여행/구미여행)태조산 도리사.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사찰 냉산 도리사 여행하고 왔습니다.

2011/05/25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약사암.초생달이 걸여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금오산 약사암

2013/01/02 -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시 선산읍 수다사. 겨울 눈이 내려 흰 연꽂으로 피어난 연악산 수다사가 장관




이는 야은 길재 선생 때문이 아니었는지 싶습니다. 

고려 말에 고려의 충절을 상징하는 ‘삼은’이 있습니다. 

포은 정몽주와 목은 이색 그리고 야은 길재입니다. 

그중에서 금오서원은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서원입니다. 야은 길재(1353년~1419년)는 고려말과 조선 초의 성리학자로 호는‘야은’ 또는‘금오산인’이며 시호는 ‘충절’입니다.

 

선산 금오서원의 2층 누각 출입문 읍청루







그는 고려가 망하자 모든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되어 세자 이방원이 태상박사의 벼슬을 내렸지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의를 굽히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길재는 낙향하여 선산의 금오산 아래에서 학문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던 분입니다. 

김숙자 등 많은 문하가 그를 따랐으며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로 그의 학통은 이어졌습니다.





선산 금오서원 동·서재







야은은 고려가 망한 후에 옛 도읍지였던 개성(송도)을 찾아 읊은 ‘고려 유신 회고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 시조로 길재선생의 고려에 대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금오서원은 1567년(명종 22년)에 선산의 유학자가 중심이 되어 선산부사 송기충에게 서원 건립을 건의하였습니다. 

이에 경상감사를 거쳐 조정에까지 알려져 재가를 얻어 1570년(선조3년)에 금오산 아래에 건립하였고 1575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에 모두 불탔습니다.



1602년에 금오서원은 현재의 장소인 선산읍 원리의 남산 아래에 옮겨 복원하였고 1609년 광해군 원년에 다시 중건했습니다. 

금오서원은 김종직과 정붕, 박영, 장현광을 추가하여 5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금오서원은 2층 누각인 읍청루, 강당인 정학당, 동·서재, 내삼문, 사당인 상현묘로 구성하여 전묘후학 양식을 따랐습니다.













선산 금오서원의 오현을 모신 사당인 상현묘









정학당은 강당으로 앞면 5칸에 옆면은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입니다. 

가운데 3칸 마루를 넣고 양쪽에 1칸의 온돌방을 앞쪽에는 툇마루를 달았습니다. 

5량 형식의 가구구조입니다. 읍청루는 2층 누각에 누하에 서원의 출입문인 문루를 두었습니다. 앞면 3칸, 옆면 2칸 팔작기와지붕 건물로 겹처마입니다. 

사당인 상현묘는 앞면 3칸에 옆면 3칸이며 맞배지붕 건물로 겹처마이고 5량가형식입니다. 

현재 선산 금오서원은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새롭게 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북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 | 금오서원
도움말 Daum 지도
  1. 공수래공수거 2018.03.28 09:52 신고

    여기도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경북여행/구미선산여행)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여행. 오누이탑이라 불리는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이번에도 국보급 문화재를 보고 왔습니다.

국보급이 아닌 국보입니다. 

역시 국보는 나라의 보물이라서 그런지 달라도 무엇이 다른가 봅니다. 

이번에 소개할 국보는 구미에 있는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입니다. 

오층석탑에서는 가장 높고 웅장하며 크다고 합니다. 

처음 제가 탑 앞에 섰을 때도 탑의 웅장함에 움직일 수 없었으며 와!!!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구미 선산 죽장사오층석탑 죽장사 주소: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479-2

구미 선산 죽장사오층석탑 죽장사 전화:054-481-2736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국보 해평면낙산리삼층석탑제 130호



2008/07/10 - 경북여행/칠곡여행/구미여행)칠곡 금오동천~구미 금오산 산행.사람의 얼굴일까?.부처의 얼굴일까?-칠곡 금오산

2011/05/25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약사암.초생달이 걸여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금오산 약사암

2012/12/24 - (경북여행/구미여행)흰 연꽃이 아름답게 핀 백련봉의 백길바위가 장관. 연악산(기양산)~수선산 원점산행

2013/01/02 -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시 선산읍 수다사. 겨울 눈이 내려 흰 연꽂으로 피어난 연악산 수다사가 장관

2013/03/07 - (경북여행/구미여행)하늘이 내려준 산성은 이런 것. 천생산성이 있는 구미 천생산 산행.

2014/02/10 - (경북여행/구미시여행)냉산(태조산)도리사. 신라 최초 사찰 도리사의 석탑이 처음보는 특이한 석탑 형태. 도리사



그러나 삼층석탑은 이정도 높이와 크기를 여러 개 봤습니다. 

경주의 고선사지삼층석탑,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등인데 죽장사 오층석탑도 수려함과 아름다움에서 이들 탑에 비해서 조금도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 국보 중 하나였습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은 일명 오누이탑 또는 남매탑이라 부릅니다. 

웬 오누이 탑 하며 주위에 아무리 둘러봐도 석탑은 하나뿐이라 남매가 힘을 합쳐서 부처님의 탑을 만들었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은 누이가 만들었다면 오빠는 낙동강 건너 해평면의 낙산리 삼층석탑을 세웠다 합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두 개 내려옵니다. 

이야기의 출발은 같지만, 중반에서 전형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꼭 설화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착한 엄마와 심청이에 나오는 뺑덕어미나 콩쥐·팥쥐에 나오는 계모와 같은 급의 나쁜 엄마가 등장합니다.





계모라고 다 나쁜 분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엄마 상은 제가 보기에는 착한 엄마와 오누이의 친모로서 남매의 죽음을 거는 내기를 말리지는 않고 다부 부추기는 엄마입니다. 

각설하고 죽장사 오층석탑이 세워지게 된 유래를 보겠습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에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남매의 힘겨루기로 세워졌다 합니다.

 








때는 아마 죽장사 오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을 보면 그 당시로 추정됩니다. 

오누이는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며 살았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이들 남매는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괴력인 힘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놀기 삼아 오누이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여기서 죽장사오층석탑의 이야기가 갈라집니다.





먼저 우리 정서상 착한 엄마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남매를 앉혀놓고 지난번 스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스님이 이곳이 절터라고 했다며 어머니는 이곳에다 탑을 세우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남매는 서로 탑을 내가 세우겠다 하였고 어머니는 둘이 힘을 합해서 탑을 완성하면 어떠냐고 했습니다. 

남매는 서로 탑을 세우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어쩔 수 없이 딸에게는 여기서 탑을 쌓고 아들은 낙동강 건너에 탑을 쌓는 것이 어떠냐 하며 제안하면서 먼저 쌓는 쪽이 이긴다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먼저 쌓기를 원했지만, 딸의 탑 쌓기가 훨씬 빨랐습니다. 

그래서 딸의 탑 쌓기를 늦추기 위해서 궁리 끝에 딸에게 심부름도 시켰지만, 아들은 누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자꾸만 간격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비장의 카드로 펄펄 끓는 팥죽을 끓여 딸에게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으면 아들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딸이 먼저 오층석탑을 완성했습니다.

아들도 누이가 이기자 탑 쌓기를 그만두었고 그게 오늘날 낙산리 삼층석탑이 되었다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나이가 스무 살 즘 되었을 때 심한 충돌로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의 목숨을 빼앗는 내기를 걸었습니다. 

그 내기가 바로 아들은 50리 떨어진 금오산의 큰 돌을 가져오는 것이고 딸은 돌을 열 두자 높이로 탑을 쌓아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먼저 끝내는 쪽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내기는 시작되었지만, 남매의 어머니는 딸이 이기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아들에게는 멀리 심부름을 보내는 등 방해 공작을 벌였습니다. 

다음날 해는 떠올랐고 딸은 마지막 돌을 탑의 꼭대기에 올리면서 탑을 완성했으나 아들은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낑낑대며 바위를 지고 오던 아들은 동네 어귀에서 누이가 완성한 탑을 보고는 깜짝 놀라 뒤로 나 자빠졌습니다.

 


아들은 죽는 것이 두려워 그 길로 바위를 버리고 냅다 도망쳤으며 그때 버린 바위가 아직도 동네 어귀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후자에 등장하는 남매의 어머니란 분도 참 대단합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뜯어말리지는 못할망정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정서상 맞지 않는 설화로 보이며 구미 설화집에 있는 내용입니다.





하여튼 국보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석탑 이야기이며 그때 딸이 쌓은 석탑이 오늘날 죽장사 오층석탑이 되었다 합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은 현재 상륜부의 노반을 뺀 나머지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전체 높이는 약 10m에 오층석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규모입니다.



지대석은 18개의 장대석으로 탑을 지탱하게 했습니다. 

그 위에다 2단의 기단을 만들었습니다. 

아래층 기단은 14개의 넓은 돌로 구성했으며 그 위에 18개의 갑석을 올렸습니다. 

운주나 탱주는 보이지 않으며 그 대신 위층 기단은 각모서리 기둥인 운주가 2개이고 가운데 버팀 기둥인 탱주를 각각 3개씩 새겼습니다.

 






1층 몸돌 남쪽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감실이 있으며 문을 달았던 흔적인 작은 구멍이 남아있습니다. 

감실의 크기는 가로 66cm, 세로 107cm 크기로 최근 안치한 불상이 있습니다. 

각층의 몸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작아지고 낮아지며 각모서리의 기둥도 없습니다. 

죽장사오층석탑은 전탑(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으로 추정하는데 옥개석(지붕돌)의 경사면이 전탑에서 볼 수 있는 층단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죽장사에서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은 국보인 오층석탑과 당간석 1개와 종형인 부도, 이곳이 옛 절터였음을 알리는 부재가 한쪽에 있습니다. 

죽장사는 최근에 불사를 일으켜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지만 제 눈에는 오직 죽장사 오층석탑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죽장사를 둘러보던 중 한쪽에 선산갑오동학농민군의 총지휘를 했던 한문출장군과 항일독립투사 한중석선생이 피신하고 은거했던 곳이라며 작은 기념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479-2 | 죽장사
도움말 Daum 지도
  1. 공수래공수거 2018.03.27 09:23 신고

    국보를 보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여기를 한번 다녀 와야겠습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진흥왕척경비는 통칭하여 진흥왕순수비라고도합니다. 

신라 24대 진흥왕이 창녕지역의 비화가야인 비사벌을 6세기에 멸망시켜 영토를 확장하고 나서 여러 신료와 순행을 단행했는데 창녕에서 국가적 중대사를 논의하고 그 사실을 기념하는 비를 세웠습니다. 

이 비가 561년인 진흥왕 22년에 세운 창녕진흥왕척경비입니다.





창녕 만옥정공원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

창녕 만옥정공원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 전화:055-530-1473




2013/01/11 - (경남여행/창녕여행)관룡사 용선대. 고해의 바다를 항해하는 반야용선을 의미, 관룡사 용선대 석가여래좌상

2013/01/13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관룡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부도탑이 원구형의 탑신에 불안. 관룡사부도탑

2015/06/20 - (경남여행/창녕여행)우포늪 둘레길. 국내 최고의 습지로 보호 받는 우포늪 생태길과 탐방로인 우포늪 둘레길을 걸어보다. 우포늘 둘레길

2016/01/06 - (경남여행/창녕여행)남지유채꽃 남지수변공원. 18만평에 조성된 유채꽃길, 창녕 남지수변공원을 여행하다. 남지수변공원

2012/12/02 - (경남여행/창녕여행)영산 석빙고. 조선시대 냉장고는 어떤 모습일까요.영산 석빙고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만호정공원내 언덕에 있으며 국보 제33호입니다. 

원래 창녕진흥왕척경비는 지금의 위치에서 동쪽인 창녕읍 말흘리 85-4번지인 창녕여중고 병설 유치원 담장 아래쪽에 있었습니다. 

1914년 일본인 토리이 류조가 창녕의 고적을 조사하던 중 그때 보통학교장이던 하시모토 료조가 신라비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렸습니다.



이를 조선총독부에 조사 보고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17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고적조사사업의 하나로 비에 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대정육년도고적조사보고’에다 조사결과를 수록했습니다. 

그 후 1924년 진흥왕척경비는 지금의 위치인 만옥정공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창녕 진흥왕척경비 앞 안내판을 참고하면 비문 첫머리에 ‘신사년(辛巳年) 2월 1일 입(立)’이라 판독되는데 이는 561년 진흥왕 22년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진흥왕이 세운 4개의 순수비에서 창녕 진흥왕척경비 가 가장 앞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녕진흥왕척경비 비문 판독문과 해석





창녕진흥왕적경비는 편편하고 면이 매끄러운 화강암을 약간 다듬은 상태에서 비문을 새겼으며 개석이 없고 인명과 관등 표기방식이 독특하며 조각된 글씨는 해서체와 비슷하다 합니다. 

총 글자 수는 642자에서 400자 정도가 판독되었으며 앞부분은 마멸이 심하지만, 뒷부분은 관련 인물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모두 27행이며 한 줄에 보통 26자씩이며 마지막 줄은 3자를 새겼습니다. 

돌의 크기는 178cm, 폭은 175cm, 두께는 약 30cm입니다.


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원위치






1922년 진흥왕척경비의 모습                                           1914년 발굴 조사 모습                                       1914년 발굴 조사 모습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 | 만옥정공원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
도움말 Daum 지도
  1. 핑구야 날자 2018.03.26 06:49 신고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8.03.26 09:08 신고

    이제 저도 창녕으로 여행 다닐때가 되어 가는것 같습니다 ㅎ





(경남여행/거제도여행)바람의 언덕~우제봉 둘레길 산행. 거제도 동백꽃 산행지 바람의 언덕~우제봉 둘레길


남해안은 2월과 3월에 동백꽃으로 한바탕 몸살을 앓습니다. 

그만큼 겨울에 피는 동백꽃이 유명합니다. 

특히 거제도의 동백꽃은 지심도가 가장 유명합니다. 

그러나 거제도의 동백은 지심도의 명성에 가려 알려지지 않은 동백꽃 군락지가 여러 곳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관광지로 유명한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 해금강마을, 우제봉이 있습니다.




거제도 바람의 언덕 주소: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갈곷리 산 14-47 도장포마을

거제도 우제봉 주소: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갈곷리 산 2-16



2016/09/09 - (거제도여행)수선화 화원 공곶이. 거제도 새로운 관광 1번지 공곶이, 봄의 수선화는 천상의 화원이라면 몽돌과 파란바다도 최고.

2016/09/08 - (거제도여행)거제 서이말등대. 거제도 동쪽 끝에 쥐의 귀 끝인 서이말에 있는 등대를 아세요? 서이말 등대를 찾아가다.

2015/10/27 - (경남여행/거제도여행)외도 보타니아. 한국의 파라다이스, 환상속의 섬 외도 보타니아 여행.

2015/03/25 - (경남여행/거제여행)거제 학동 진석중가옥. 등록문화재 제277호 한식과 일식의 절충식 건물 거제학동 진석중가옥.

2015/03/26 - (경남여행/거제여행) 구조라해수욕장과 샛바람소릿길, 망치몽돌해변을 걸었습니다. 거제도 걷기여행.

2016/09/03 - (거제도여행/거제도가볼만한곳)거제와현봉수대. 거제 동쪽 끝 최고의 조망대, 거제 해금강. 보타니아 외도, 내도, 지심도, 가덕도, 대마도 전망대 와현 봉수대.



신선대

어느 곳보다 관광명소로 유명하지만, 동백꽃 군락지로는 덜 알려져 있어 트레킹 겸 나만의 동백꽃 길을 걷고 즐겼습니다. 

바람의 언덕~우제봉 둘레길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쪽빛 바다 조망에 탄성을 자아내는 최고의 경관 코스였습니다. 

그래서 경관 조망은 물론이고 꽃 중의 꽃인 겨울 동백꽃을 보려고 거제도 우제봉 둘레길을 찾았습니다.




거제도 우제봉 둘레길 경로는 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신선대 입구인 도장포마을을 출발해서 ~도장포 선착장~~바람의 언덕~당산~해금강마을 갈림길~곶개봉~해금강 선착장~ 해금강 주차장~우제봉 전망대~해금강 주차장~신선대 전망대~신선대 입구~신선대를 거쳐 출발지였던 도장포마을 입구로 되돌아오며 총 7.5km 거리에 3시간30분~4시간 쯤 걸리는 원점회귀 코스입니다.





우제봉 둘레길 출발은 시내버스가 다니는 도장포 버스정류장 앞에서 시작합니다. 

도장포마을과 신선대를 알리는 큰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오른쪽에 해금강테마박물관이 있으며 그 옆에 신선대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신선대는 우제봉을 돌아 둘레길 막바지에 보기로 하고 먼저 도장포버스정류장에서 왼쪽 도장포 선착장으로 내려갑니다.






바람의 언덕의 명소인 풍차가 정면에 보입니다. 

곧 왼쪽 담장에 ‘순례자의 교회’ ‘별 그대 동백나무 숲길’ ‘유람선 타는 곳’ 안내판이 있습니다. 

직진해서 유람선이 있는 선착장으로 바로 내려가도 됩니다. 

그러나 동백나무 숲길을 보고 한 사람이 기도할 수 있는 크기의 초미니 교회인 ‘순례자의 교회’도 볼 겸 안내판이 가리키는 왼쪽으로 갑니다.







입구부터 큰 둥치의 동백나무가 반깁니다. 

수령이 최소한 300~400년이 넘었다는 동백나무 군락지가 대단한 기세입니다. 

동백꽃의 사열을 받으며 그 아래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 순례자 교회 계단을 내려갑니다. 

교회 문을 살짝 열어보았습니다. 진짜 한 사람이 기도할만한 공간이었습니다.




바람의 언덕


도장포마을



유람선을 타는 선착장을 돌아가면 바다로 나가는 해상 덱 앞입니다. 

여기서 오른쪽 ’바람의 언덕‘을 오르는 덱계단이 있습니다. 

바람의 언덕을 뜻하는 매서운 겨울 바람 대신에 오늘은 포근한 날씨 탓인지 많은 관광객이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바람의 언덕 주변은 가릴 것이 없는 시원한 조망을 펼쳐줍니다. 

학동에서부터 북병산 망치마을 구조라 해수욕장 그리고 오른쪽 쥐꼬리처럼 길게 튀어나온 망산의 서이말등대, 내도와 거제도의 파라다이스라는 외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습니다.







끼익 끼익 힘들게 돌아가는 풍차를 지나고 덱계단을 직진해서 올라가면 갈림길입니다. 

오른쪽 길은 출발지였던 도장포 입구로 다시 나가며 해금강마을은 직진하는 통나무 계단을 오릅니다. 

이곳부터 산길 주변의 나무는 거의 동백나무 군락지입니다. 

급경사 계단 길을 지나면 2층 정자가 있으며 또다시 오르막을 오르면 똑같은 형태의 정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키 큰 나무에 가려서 전혀 조망이 없는 이런 곳에 왜! 정자를 세워야 했는지 그렇다고 관광객이 이곳까지 많이 오는 곳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나 ‘떡 본 김에 재사 지낸다’고 여기서 잠시 쉬었습니다. 

곧 만나는 무덤봉은 155.2m 봉이며 그 옆에 165m인 당산이 있습니다. 해금강마을 주민은 이 봉우리를 마을의 안영을 빌어주는 당산이라 부릅니다.

 




지금은 마을까지 2차선 도로가 뚫려 있어 차로 쌩 쌩 다니지만, 그 이전에는 도장포마을에서 산허리를 돌아 당산 아래로 난 고개를 넘어 다녔다 합니다. 

무덤 옆에는 지명이 떨어져 나간 이정표로 둘레길을 걷는 우리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잘 가고 있다는 위치 표시로만 짐작하며 대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내려갑니다. 

오른쪽 나무 사이로 처음 해금강이 모습을 드러내며 조릿대 사이로 난 계단을 내려서면 안부에서 오늘 처음으로 해금강이 전체적으로 보였습니다.







안부를 지나면 짙은 대나무 숲에 해금강마을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제봉에 곧장 가고자 한다면 오른쪽 해금강마을로 내려가면 됩니다. 

곶개봉을 올랐다가 해금강마을로 가려면 이정표에서 아무런 포시가 없는 왼쪽 오르막길입니다. 

곶개봉 정상을 오르는 곳은 숫제 동백나무 터널입니다.





답사 때에는 초반이라 동백꽃이 꽃망울을 맺어 꽃필 준비를 하였는데 동백꽃이 폈다 졌다 할 때는 장관일 듯싶었습니다. 

곶개봉(135m) 정상은 남쪽인 해금강과 우제봉, 해금강마을이 움푹 꺼진 항아리 형태로 보였습니다. 

북쪽은 내도와 외도 구조라와 노자산, 북병산 조망이 시원하게 열려 빼어난 조망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마을 주민이 가끔 올라오는지 그네도 걸려 있고 해금강 방향으로 벤치도 놓여있어 쉬어가기 좋았습니다. 

하산길에 바람을 막아주는 따뜻한 곳에는 어김없이 동백꽃이 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정상에서 10여 분이면 삼거리 도로에 내려섭니다. 

직진해서 도로를 내려갑니다. 도로가 왼쪽으로 꺾는 곳에서 오른쪽 나무난간이 설치된 보도블록 길로 향합니다.







왼쪽 소나무 숲 사이에 해금강의 사자 바위가 보이고 해변에 널린 바위에는 낚시꾼이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펜션 앞에서 오른쪽 마을길로 내려가면 제일 횟집 앞 갈림길입니다. 

여기서 해금강 선착장의 해금강 최고 비경을 보려고 왼쪽으로 내려갔다 되돌아옵니다. 

우제봉 덱 전망대와 함께 해금강선착장은 바다의 금강산인 해금강 전망대로서 알아주는 1급 전망대입니다.




해금강 선착장은 거제도 일출의 백미인 사자바위 일출 촬영 포인트입니다. 

3월에는 전국에서 사진작가 들이 사자바위 일출 촬영을 하려고 선착장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다합니다. 

ㅎㅎ 저도 꼭 한번 그 장관을 접하고 싶습니다. 

되돌아 나와 제일횟집 앞을 지나서 ‘주차장 가는 길’ 안내판을 보고 왼쪽 골목으로 올라가면 해금강 주차장이 나옵니다. 

해금강 주차장 직전 도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해금강 호텔 방향으로 갑니다.







해금강 유람선 선착장 가는 길과 해금강호텔을 지나면 시멘트 포장길 끝에서 오른쪽에 우제봉과 서자암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서자암 직전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낮인데도 짙은 동백나무 숲이 어두컴컴했습니다. 

덱계단을 올라서면 능선 갈림길입니다. 

왼쪽 우제봉 전망대에 갔다가 되돌아와 이곳  갈림길에서 직진해서 해금강 주차장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우제봉 덱 전망대는 해금강과 그 반대쪽의 대·소병대도, 매물도 등 막힘없는 경치였습니다. 

이곳 우제봉에는 최고의 선경지대를 뜻하는 해금강이란 닉네임이 말해주듯 중국 진시황이 서불과 동남동녀 500명을 제주도의 삼신산에 급파해서 불로초를 구하게 했습니다. 

삼신산에서 불로초를 구할 수 없자 서불 일행은 남해의 경승지를 뒤지다가 서불은 항상 왔다갔다는 흔적을 바위 남겼습니다. 

그게 “서불이 다녀가다”라는 뜻의 ‘서불과차’이며 우제봉 정상아래 바위에 각자해 있었습니다.


해금강

우제봉



그 '서불과차' 각자는 1958년 사라호 태풍에 바위가 떨어져 나가 지금은 바위의 흔적만 남아 있다 합니다. 

우제봉(107m) 정상은 군 시설물로 올라갈 수 없지만 그 아래까지 덱계단이 놓여 있어 그곳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와 삼거리에서 직진합니다.

 








해금강 주차장 못 미쳐 동백나무 군락지도 덱 길이 놓였으며 해금강마을에서 동백꽃을 볼 수 있는 최고 비경 코스로 추천하는 곳 입니다.  

그러나 아쉽지만 시간관계로 직진해서 해금강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라 도장포마을로 향했습니다. 

인도가 따로 없어 마주 달리는 차로 주의해야합니다.

 


왼쪽으로 동백나무 사이에 보이는 해금강과 해금강마을, 그리고 우제봉의 전경은 오늘 바람의 언덕~우제봉 둘레길의 최고 하이라이트였습니다. 

푸른 바다와 기암이 꼭 육지 속의 호수에 솟은 금강산을 연상시켰습니다. 그래서 바다의 금강산이라 하며 해금강을 명승지 2호에 선정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산모퉁이를 돌면 쌈지공원에 조성된 신선대전망대가 나옵니다.

 








발아래 신선대가 보이고 대·소병대도와 매물도, 가라산이 늬엿늬엿 지는 해에 더욱 붉게 변했습니다. 

다시 우제봉 둘레길 출발지인 도장포마을 입구에 도착하면 신선대를 보기 위해 돌계단을 내려갑니다. 

꼭 배의 돛대처럼 큰 바위가 서 있는 신선대는 옆에 자갈마당을 안고 있어 더욱 운치 있었습니다.

 되돌아 나와 신선대 입구 출발지에서 바람의 언덕~우제봉 둘레길을 마무리했습니다.

 




거제도 신선대. 바람의 언덕, 도장포마을, 해금강마을, 우제봉 대중교통편.

부산서부터미널에서 거제시 고현시외버스터미널행 버스를 탑니다. 부산서부터미널에서 6:00~22:00까지 운행하며 20분 간격, 심야버스 23:00 운행,

 고현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해금강행 55번(6;25, 9;05, 11;05, 13;05, 1705, 18;25) 시내버스를 타고 도장포버스정류장에 내리면 끝. 우제봉 둘레길을 마친 후 해금강주차장이나 도장포마을에서 고현시외버스터미널행(7:35, 12:38. 14:38. 16:38, 18:48, 19:30)은 각각 총 6회 운행합니다. 

고현에서 부산서부(사상)터미널행은 6:00~21:30까지 약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심야버스(22:00, 23:00)도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내비 검색은 해금강테마박물관 입력


우제봉둘레길 지도



우제봉둘레길 고도표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남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산 14-47 도장포마을 | 바람의언덕
도움말 Daum 지도
  1. 핑구야 날자 2018.03.20 06:45 신고

    해외에 온 듯한 기분이 드는데요 정말 잘 보고 갑니다




(경북여행/군위여행)대율리 한밤마을 돌담길 여행. 군위 한밤마을 돌담길을 만나보세요


대구와 군위를 경계 짓는 팔공산 북사면인 부계면에 팔공산을 이고선 마을이 있습니다. 

1,000m가 넘는 높은 팔공산이 마을을 감싸 않아 아침 해가 늦게 떠올라 항상 한밤중 같은 마을이라 해서 한밤마을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군위 한밤마을 돌담을 보려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테마 거리 경북 군위 한밤마을 돌담길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756


2018/03/16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대율리 대청. 돌담이 이쁜 마을 가운데 특이한 쉼터 군위 대율리 대청

2018/01/30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한밤마을 돌담이 있는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여행

2017/07/19 - (군위여행)선방산 지보사삼층석탑. 예술성이 뛰어난 군위지보사삼층석탑

2015/07/11 - (경북여행/군위여행)제2석굴암으로 불리는 석굴암에 군위 삼존 석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2014/12/05 -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2014/12/13 - (경북여행/군위여행)산성면 화본마을, 화본역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2014/12/02 - (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대구 시내에서 한티재를 넘는 줄 알았는데 팔공산 아래에다 바람구멍인 팔공산 터널이 새롭게 뚫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오를 것을 걱정했던 마음은 기우였습니다. 

차는 2018년 대구의 번잡한 도심에서 타임머신을 탄 듯 순식간에 1970년대에 멈춰선 산골 마을에 나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여러 번 군위여행에서 군위 삼존불을 보러 왔었습니다. 

그때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겨 보지 못했던 한밤마을 돌담길을 이번 여행에서는 오로지 한밤마을과 주위를 둘러볼 욕심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덕분에 이번에는 시간에 쫓기는 부담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

한밤마을의 유래를 보면 고려 중기에 재상을 지냈던 홍란이라는 선비가 처음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어 대야(大夜)라 불렀다고합니다. 

그러다가 밤을 뜻하는 夜 자를 밤 栗 자로 고쳐 대율(大栗)이라 하면서 한밤마을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한밤마을은 부림 홍씨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었습니다. 

한밤마을의 특징은 제주도의 돌담마을과 닮은 마을의 담장이 사람 머리만 한 돌로 쌓아 돌담이 유명한 제주도와 비교 된다고 해서 육지 속의 제주도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많은 돌이 다 어디에서 나왔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한밤마을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살 집을 지어야 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편편하게 터를 고르는데 땅 밑에서 무수한 돌이 쏟아져 나와 이를 처리하려고 집의 경계인 돌담을 쌓았는 게 오늘날 한밤마을 돌담의 시초라 합니다.





오로지 돌만으로 쌓았다는 것을 눈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돌담의 높이는 낮은 곳은 장정의 허리와 놓은 곳은 어께 높이로 쌓아 숨길 것이 없다는 듯 집안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웃과 왕래하는 우리 선조의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느껴졌으며 또한, 홍씨 집성촌을 이루다 보니 더욱 그러했던 게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돌담에 눌러앉은 세월의 더께는 이끼에서 알 수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구불구불 이어지는 마을길은 모나지 않은 훈훈한 우리네 시골 인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분 모두 친절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비보림인 소나무 숲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송강 홍천뢰장군이 의병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라합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마을길을 따라 들어갑니다. 

중간쯤에 작은 암자인 대율사가 있습니다. 대율사 안에는 보물 제988호에 지정된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이 있습니다. 

마을 한가운데 불상이 남아 있으며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오래전에 한밤 마을 일대가 아주 큰 사찰 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 가운데 군위 대율리 대청이 있는 곳이 범종이 걸렸던 대종각 자리였다 합니다.


한밤마을 남천고택



대율리 석조여래입상은 신라시대 석불상이며 폐사전 큰 사찰의 본존불로 모셔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 옆 남천고택은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옥체험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남천고택이 현재 군위군에 남아 있는 고택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상매댁(上梅宅), 쌍백당(雙柏堂)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남천고택은 입향조인 홍노선생의 10세손인 홍우태의 살림집이었으며 그 후 대대로 맏손자가 물려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의 사랑채는 1836년 현종 2년에 지어졌으며 고택의 배치는 ‘흥(興)’자형의 독특한 모양이었으나 1945년 광복 이후 중문채와 아래채를 철거하고 대문채를 옮기면서 가옥의 구조가 바뀌었다 합니다.







남천고택과 나란히 있는 군위 대율리 대청은 대청 옆에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250년 된 잣나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율리 대청은 조선 전기에 세워졌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며 그 후 여러 번 중수되었다가 1705년인 숙종 32년에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율리 한밤마을 비보림





한밤마을의 최대 볼거리는 역시나 자연돌을 차곡차곡 쌓은 돌담입니다. 

봄을 알리는 매화가 기지개를 켜고 한밤마을 돌담에 산수유나무가 참 많았는데 지금쯤이면 노란 산수유 꽃이 살포시 돌담에 내려 앉아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756 | 군위한밤마을 돌담길
도움말 Daum 지도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대율리 대청. 돌담이 이쁜 마을 가운데 특이한 쉼터 군위 대율리 대청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팔공산 북사면인 대율리의 한밤마을에는 큰 대청이 문화재로 지정해 있습니다. 

이름 하여 군위 대율리 대청이며 최근에 와서는 한밤마을 중앙에 자리해서 마을의 공동 쉼터인 대청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마을의 대소사와 소통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돌담이 아름다운 한밤마을 군위 대율리 대청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858

군위 대율리 대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




2017/07/19 - (군위여행)선방산 지보사삼층석탑. 예술성이 뛰어난 군위지보사삼층석탑

2015/07/11 - (경북여행/군위여행)제2석굴암으로 불리는 석굴암에 군위 삼존 석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2014/12/26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화본리 오층석탑. 군위 덕림사 화본리 오층석탑을 만나다.

2018/01/30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한밤마을 돌담이 있는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여행

2014/12/05 -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대청 하면 큰 마루입니다. 

창건 당시부터 대청으로 지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 내력이 참 궁금했습니다. 

한밤마을의 대청이 있는 마을 전체는 오래전에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큰 사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게 보물 제988호인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이 인근에 현재 남아 있습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은 조선전기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탔다가 1632년 인조 10년에 중창해서 유생들이 학문을 갈고닦는 장소로 이용되었던 강학소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1651년 효종 때와 1705년인 숙종 때에 각각 중수했다가 1992년에 와서 건물을 완전히 해체하여 부식된 부재와 기와를 교체하고 기단도 보수해서 다시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마을 전체가 절이었을 때 이 건물은 범종이 걸린 대종각 자리였다고 합니다.

 대율리 대청은 앞면 5칸에 옆면 2칸이며 서측 퇴칸에만 간주가 서 있었고 마루는 전부 우물마루를 깔았고 사면이 개방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중창 당시에는 가운데 마루를 두고 좌우로 방을 넣은 형태로 보여집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은 조선 중기 건축물이며 기둥 위의 초익공의 수법이나 포대공 등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858 | 대율리대청
도움말 Daum 지도
  1. 핑구야 날자 2018.03.17 06:53 신고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기회가 되면 봄나들이로 좋은데요





(전북여행/남원여행)지리산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우리나라에 가장 큰 남원 실상사 철불을 만나다


철불은 석불과 비교하면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아 별로 기억에 남는 불상이 몇 안 됩니다. 그러나 적은 숫자에 비해 뚜렷한 인상으로 기억하는데 그중에서도 남원 실상사 철불과 장흥 보림사 철불 그리고 영천 선원동 철불입니다. 

제가 부산이 연고지다 보니 주로 남쪽의 철불만 만났습니다.





남원 실상사 주소: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남원 실상사 전화:063-636-3031




2015/01/26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국악성지. 남원에 조성된 국악성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2015/01/20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광한루. 성춘향과 이몽룡의 광한루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2015/01/23 - (전북맛집/남원맛집)주천맛집 지산지소 자연밥상. 우리농산물로 만든 음식이 가득합니다. 로컬푸드 식당 지산지소 자연밥상을 받아보세요

2015/01/22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광한루 광한루원. 조선시대 지방관아 정원으로서 유일한 광한루 광한루원에 깜짝 놀라다.

2014/01/21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국립민속국악원. 우리 가락 판소리와 신기한 국악기를 만날 수 있는 국립민속국악원을 댕겨 왔습니다.




 

철의 특징인 붉은 색상에 꺼무튀튀하고 거친 표면의 불상이 내 머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기술로 화강암을 불상으로 빚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쇠를 녹여 돌로 만든 불상과 같은 형태의 철불을 만들었다는 것에 우리 선조의 손재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지리산의 너른 품에 자리한 실상사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남원의 지리산 여행을 할 때마다 한 번씩 찾아서 그런지 그리 생소하지는 않습니다. 

이번에도 지리산의 수많은 계곡 중 가장 아름답다는 뱀사골의 비경인 신선 둘레길을 걷고는 인근에 있는 실상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실상사 방문 전에 조금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두 곳 모두 보면 좋지만 늦은 오후라 딱한 곳만 볼 수 있는 시간만 남아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실상사의 부속 사찰인 백장사에서 국보인 삼층석탑을 보는 게 좋을까 아니면 실상사 철불을 만날까 하며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도 항상 실상사를 찾을 때마다 강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는 실상사 철불을 만나야겠다며 실상사로 향했습니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실상사 입구 매표소 관리인은 철수하고 없어 본의 아니게 무료입장을 했습니다.



실상사는 만수천에 걸린 해탈교를 건너야 비로서 실상산문에 들어섭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돌장승이 실상사 수문장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실상사는 통일신라인 828년 헌덕왕 3년에 증각대사 홍척이 지실사란 이름으로 창건했습니다. 

실상선문은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개창한 선문입니다.



이는 신라 왕실의 지원 아래 이루어졌으며 선종을 배우려는 많은 승려가 실상사에 몰렸던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때가 실상사의 최전성기였으며 홍척의 뒤를 이어 실상선문의 2대 조사 수철화상이 4천근의 쇠를 녹여 실상사 철불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2.69m 크기로 우리나라 철불로는 가장 큰 규모라 합니다.



실상사 철불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불상을 받치는 좌대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맨땅을 좌대로 삼아 바로 불상을 안치했는데, 일반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철불이라면 아마 어마어마한 규모의 좌대가 있을 법한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한반도의 기운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한 비보의 성격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실상사 철불은 지리산 천왕봉을 향하고 있으며 천왕봉에서 직선에 일본의 성스러운 산인 후지산이 있어 일본으로 넘어가는 한반도의 맥을 끊기 위해서라는 설명입니다. 

이를 보면 실상사는 호국불교의 성격이 짙으며 이런 비보의 성격 때문인지 정유재란에도 왜군이 불을 질러 전소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실상사 철불을 모신 전각인 약사전은 1468년 세조 14년에 소실되었다가 1659년인 효종 10년에 중창되었으며 1701년인 숙종 27년에 삼창 되었다 합니다. 

이번에 찾았던 약사전도 수리가 있었는지 새 부재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선종 사원에서 철로 불상을 만들었습니다. 

그중에서 실상사 철불이 가장 오래되었다 합니다.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상의 부처님 머리는 뽀글뽀글한 소라 모양이며 머리 꼭대기인 정수리에는 두툼한 상투 형태를 했습니다. 이를 육계라 하며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합니다. 

긴 귀에다 목에는 3개의 주름인 삼도를 표현했습니다. 이마는 좁고 길게 찢어진 눈, 다문 입에서 부처님의 근엄함을 표현했습니다. 

U자형의 옷 주름은 양어깨에 모두 걸친 형태로 통견이라 하며 넓은 가슴에 갸름한 허리는 온유함과 생동감이 잘 나타난 삼국시대 불상과는 달라진 모습입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통일신라 말에 제작된 불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상사 철불의 손은 분실되어 나무로 깎아 맞춘 두 손이 그 자리를 차지했는데 우연하게 복장 속에서 찾아내어 지금은 원래 모습으로 양손을 붙여 복원했으며 불상의 무릎 아래도 복원된 것이라 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상은 장애우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상은 보물 제41호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 실상사
도움말 Daum 지도
  1. 공수래공수거 2018.03.13 09:57 신고

    실상사를 간적이 있는데 그땐 저 불상을 보지
    못하고 왓네요 ㅎ

  2. 핑구야 날자 2018.03.14 06:53 신고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한수정. 충재 권벌을 추모하는 봉화 춘양 한수정 여행. 


경북 봉화군 춘양 면소재지인 의양리 134번지에 머리를 식히기 아주 좋았을 정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한수정(寒水亭)인데 뜻을 보면 “찬물과 같은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역시 찬물을 한 바가지 둘러써야 잘 되는가 봅니다. 춘양면 소재지인 춘양장터 인근에 있는데 아침을 먹으려고 나섰다가 찾게 되었습니다.





충재 권벌의 봉화 한수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




2018/02/26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계서당. 춘향전에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생가 봉화 계서당 여행

2018/03/06 - (경북여행/봉화여행)해저 만회고택. 봉화 독립운동의 산실 해저 만회고택 여행. 만회고택

2018/01/24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군청맛집 자갈마당. 아침에 좋았던 봉화 자갈마당 자연산 송이 국밥

2017/12/20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2017/11/16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 송이버섯 맛집 인하원. 봉화군청 봉화역 맛집 봉화 인하원 송이버섯





사방은 낮은 담장으로 둘려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출입문이 꽉 잠겨 있어 속속들이 내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낮은 담장 덕분에 수려한 한수정의 정원과 건물은 멀리서 보는 것 만으로도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수정이 있는 이곳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재(沖齋) 권벌(權伐. 1478~1548)이 거연헌(居然軒)이란 건물을 처음 지었다가 소실하자 그의 2대손인 석천(石泉) 권래(權來. 1562~1617)가 1608년(선조 41년)에 다시 건물을 짓고 한수정이라 이름 했습니다.






1741년인 영조 17년에 중수했다가 1991년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 일부가 불탔으며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원래 상태로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충재 권벌은 본관이 안동이며 호는 충재 또는 훤정(萱亭), 시호는 충정(忠定)입니다.







1496년 연산군 2년 때 진사시에 합격하고 1507년인 중중 2년에 문과에 급제해 사관과 삼사, 승정원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을사사화 때 소윤일파에 의해 삭주로 유배 가서 그곳에서 숨졌으나 선조 때 신원이 회복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봉화 삼계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한수정 정자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T'자형 건물이며 홑처마 팔작지붕건물입니다. 바닥은 1단을 높였고 양측에 각각 2칸인 온돌방을 넣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를 깔은 형태입니다. 한수정 주위 3면에는 와룡연이라는 연못을 팠으며 초연대라 불리는 넓은 반석과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된 회나무 등이 둘린 아름다운 정자 정원입니다.

 






한수정은 경암 이한응(1778~1864)의 춘양구곡가(春陽九曲歌)에서 제 8곡입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7호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 | 봉화한수정
도움말 Daum 지도
  1. 핑구야 날자 2018.03.08 06:58 신고

    덕분에 구경 잘하고 갑니다

  2. 핑구야 날자 2018.03.09 06:53 신고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경북여행/봉화여행)해저 만회고택. 봉화 독립운동의 산실 해저 만회고택 여행


봉화여행을 하면서 1박을 청했던 곳이 아름다운 지명인 바래미마을의 소강고택입니다. ‘바래미’는 바다였다는 뜻이며 아주 오래전에 이 일대가 바다였는지 알 수 없지만 최근까지도 마을 안의 논과 웅덩이에서 조개들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마을이 포근하고 아늑한 게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봉화 해저 만회고택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485

중요민속자료 제169호





한옥스테이를 했던 소강고택 포스팅은 다음에 하고 우선 바래미마을 인근에 있는 해저만회고택을 포스팅하겠습니다. 소강고택에서 새벽 일찍 일어나 계속 누워 있기도 뭐하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마을 구경삼아 동네 한 바퀴 했습니다. 소강고택 이외에도 많은 고택이 즐비했는데 그중에서도 소강고택의 건너편 마을에 있는 해저 만회고택을 이정표만 보고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해가 떠오르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찾아가기가 부담스러웠지만, 외관만이라도 만나볼 욕심에 찾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대문이 없는 개방식 비슷한 고택이었습니다. 주위 고택은 솟을 대문에 높은 담장이 둘러싸여 바깥에서는 전혀 내부를 볼 수 없었는데 만회고택은 대문이 없어서 바깥에서도 훤하게 사랑채가 잘 보였습니다.

 


특히 새벽바람을 가르며 시골 마을을 걸을 때는 개 짖는 소리에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끄러워 마을을 둘러보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래도 행운인지 모르겠지만 만회고택은 집을 지키는 강아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만회고택의 자랑인 사랑채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으며 집주인이 잠에서 깰까 싶어 조용하게 사진을 찍고 소리소문없이 나왔습니다.



만회고택은 봉화군에서 애국심으로 큰 자랑인 고택건물입니다. 건물의 웅장함도 있지만 만회고택의 사랑채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산실이라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봉화 해저 만회고택이 자리한 해저리에는 조선 숙종 때 관찰사를 지냈던 팔오헌 김성구 선생이 처음 자리를 잡아 의성김씨가 세 가를 이루었습니다.





지금의 만회고택인 안채는 김건수씨 6대조께서 마을에 들어와 여씨(余氏) 성을 가진 분이 살던 집을 사들여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안채는 1690년대에 지어졌다 합니다. 이 집을 만회 고택이라 부르는 것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건수(1790~1854)선생의 호인 만회헌(晩悔軒)에서 따왔습니다.



만회고택의 사랑채인 명월루(明月樓)는 만회선생이 건립했으며 1850년에 전체적인 수리를 했다고 합니다. 백두대간의 흥 걸 찬 기원이 감도는 명월루의 지세는 예로부터 명산 대천을 찾는 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닦던 곳으로 이곳에서 약 1,000여 편의 시가 쓰였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명월루는 봉화 해저리에서 독립운동의 산실역을 담당했다 합니다. 특히 해저마을 주민 전체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14명의 독립운동가를 마을에서 배출한 독립유공자 마을입니다. 그 이유를 보면 성주 대가면 출신인 심산 김창숙 선생이 명월루에 거처하면서 해저마을의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독립 자금도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랄 일은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열렸던 제2회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비밀리에 파견하면서 독립청원서를 보냈는데 독립청원서의 초안을 명월루에서 작성하였다고 하며 독립유공자 마을인 해저 마을의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 외 많은 독립운동의 지원 등을 의논했던 장소에 명월루가 이용되었다 하니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인 현장입니다.



사실 만회고택의 안채는 이른 아침이라 내부를 볼 수 없어 많이 아쉬웠지만, 사랑채인 명월루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을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만회고택 명월루를 알아보겠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게 사랑채인 누각형태의 명월루입니다.





사랑채가 명월루임을 알리는 현판이 돌출한 누마루에 달렸어 눈에 확 띄었으며 이외에도 만회고택과 사랑채의 툇마루에 앉으면 시원한 바람을 느낀다는 청풍헌 현판도 따로 걸려 있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4칸이며 옆면 1칸 반 규모로 만회고택은 앞쪽에 일자형의 중문간채와 'T'자 형의 사랑채, 안채는 ‘∩’자형이며 전체적으로 튼 ‘ㅁ’자 배치입니다.



안채를 중심으로 좌우로 연결된 건물이 사랑채로 이어지며 안채의 동쪽 날개 끝에서 동쪽으로 치우쳐져 사랑채가 자리했습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했으며 전면의 툇마루와 누마루에는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사용하여 건물의 멋과 권위를 한층 더 높였습니다.





사랑채 옆의 안채로 드나들던 출입문인 중문간채는 퇴락하여 1981년에 철거했다가 다시 복원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찬찬히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이른 아침 남의 집을 찾아서 내 욕심대로 보는 것도 실례이고 그리고 소강고택에서 다음 일정으로 일행들도 기다릴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돌아 나왔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해저 만회고택에서 한옥체험 민박도 하고 보지 못했던 안채와 수박 겉핥기로 보았던 사랑채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챙겨봐야겠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485 | 해저만회고택
도움말 Daum 지도
  1. 핑구야 날자 2018.03.07 06:50 신고

    주말에 찾기 참 좋은 곳이군요 잘 보고 갑니다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옥류암, 남양 홍씨 두곡종택인 봉화 옥류암 정자 여행 


봉화여행을 하면서 점심을 먹으려고 들렀던 '산수유길 사이로' 인근에 태백오현의 한 분인 두곡 홍우정(1595~1656)선생이 은거했다는 옥류암(玉溜庵)을 찾았습니다. 산수유길 사이로의 참살이 음식과 함께 잘 어울렸던 옥류암. 옥류암은 경북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산수유길 202-80번지인 뒤뜨물마을 뒷산 자락에 남향을 보고 있었습니다.




봉화 옥류암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192




2017/12/20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2017/11/16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 송이버섯 맛집 인하원. 봉화군청 봉화역 맛집 봉화 인하원 송이버섯

2017/11/15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도암정. 정자의 고장 봉화에서 만난 도암정 도암정

2017/10/31 - (경북맛집/봉화맛집)농가맛집 산수유길사이로. 테라푸드인 약선음식을 산수유길사이로에서 맛보다.

2017/09/25 - (봉화여행/봉화가볼만한곳)봉화목재문화체험관. 춘양목의 고장 봉화목재문화체험관 여행하기




다섯 칸의 두곡종택과 나란히 자리했으며 옥류암은 절의의 상징인 홍우정의 은거지답게 키가 크고 우람한 소나무가 빼곡하게 정자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 태종에게 삼전도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에다 이마를 찍어 이마가 깨져 피가 철철 흘렀다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수모를 당하자 전쟁이 벌어졌을 때 명분과 의를 지키려면 운명을 걸고 결전을 해서야 옳았다는 척화를 주장하며 낙향하여 봉화의 문수산 아래에다 은거하면서 세운 정자입니다.









옥류암의 유래는 정자와 종택 사이의 옥구슬 같은 물이 솟는 샘에서 나왔으며 이 물줄기는 문수산에서 흘러내린다 합니다. 옥류암은 1637년 처음 지어졌으며 1756년에 중건 하면서 기와를 얹었습니다. 그리고 미수 허목선생의 옥류암 현판과 대산 이상정선생의 기문이 걸렸다 합니다. 가로 120cm, 세로 60cm였던 옥류암 현판은 도난당했다가 되찾아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에 현재 보관하고 있습니다.







정자는 다시 1876년에 중수하였으며 앞면 3칸에 옆면 1칸 반 크기에다 팔작기와집에 정자주위에 토석담장을 둘렀습니다. 정자 앞 왼쪽으로 사주문을 세워 출입하게 했습니다. 정자 바깥으로는 3개의 연못을 만들었는데 시문에 연과 구기자, 국화, 소나무, 매화, 대나무를 심었다는 기록 등에 조선시대 민간 정원의 건축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자료라 합니다.






두곡 홍우정은 옥류암에 기거하면서 학문 증진과 후학을 양성했으며 태백오현과 교류하며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다. 내 차라리 죽을지언정 불의와 타협해 살고 싶지 않다”며 끝까지 벼슬길에 나가지 않다가 사재감직장을 잠깐 지냈을 뿐입니다.

 





사후에 영조는 두곡선생의 절의를 칭송하며 이조참의에 추증하였고 영조가 직접 ‘숭정처사’라는 칭호를 내렸습니다. 산림처사는 들어보았지만 숭정처사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1816년에 순조(16년)는 이조판서로 추증하고 이듬해에 ‘개절공’의 시호를 내렸으며 선생의 위폐는 구봉사와 문산사에 봉안했습니다.


옥류샘


봉화 옥류암



본관은 남양이며 자는 정이, 호는 두곡이며 형조판서를 지낸 조부 만전당 홍가신(1541~1615)과 부친은 한성서윤 홍영이며 다섯 형제 중 맏이로 대사헌과 대사성, 이조판서를 지낸 홍우원과 무과에 급제해서 제주목사와 수사를 지냈던 청백리 홍우량이 선생의 아우였습니다. 봉화 옥류암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31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북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192 | 봉화옥류암
도움말 Daum 지도
  1. 핑구야 날자 2018.02.08 06:55 신고

    덕분에 저도 여행하는 기분으로 보게 되었네요





(전남여행/목포여행)목포 이훈동 정원. 개인 소유 정원이  문화재, 목포 유달산 이훈동 정원


목포여행을 하면서 유달산 아래 이훈동 정원을 둘렀습니다. 이훈동 정원은 주변에 많은 근대문화유산과 함께 꼭 찾게 됩니다. 이훈동 정원은 1930년인 일본 강점기에 지어진 정원입니다. 그런데 1988년 3월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5호로 지정될 정도로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정원이라 합니다.





목포 이훈동정원 주소: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동 4-1

목포 이훈동정원 전화:061-244-2529


2015/04/16 - (전남여행/목포여행)갓바위. 타포닌 지질의 목포 갓바위 그 모습이 신기.

2015/04/20 - (전남맛집/목포맛집)쑥꿀레. 유달산 맛집, 목포역 맛집, 쑥으로 만든 추억의 간식 쑥꿀레 목포 여행에서 꼭 맛보세요.

2015/04/21 - (전남여행/목포여행)유달산 어민동산. 쌈지공원인 독특한 유달산의 어민동산 여행.

2015/04/22 - (전남여행/목포여행)목포 평화광장 카페거리에서 진한 커피와 춤추는 음악 분수쇼를 즐기세요.

2015/05/13 - (전남맛집/목포맛집)유달산 맛집, 목포여객터미널 맛집, 목포유원지 맛집 선경준치회집. 참고기인 진짜 생선 준치회무침이 맛있는 목포 선경준치회집.

2015/05/25 - (전남여행/목포여행)목포 숙박 호텔 위드. 목포 여행에서 편안한 숙박지 "호텔 위드" 였습니다.






그래서 그 궁금 정을 풀 욕심에 주위 근대 문화유산과 함께 보고 왔습니다. 이훈동 정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이 소유한 정원입니다. 그런데 조금은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정원이라 하겠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우찌다니 만빼이가 지은 집을 이곳과 이웃한 해남 출신인 전 국회의원 박기배씨가 사들였던 것을 조선내화 창업주 이훈동이 사들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원과 어울리는 건물도 눈에 들어오지만 이훈동 정원은 유달산의 남서쪽 기슭에 자리했으며 목포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등 전망이 정말 좋았습니다.




일본인이 처음 정원을 만들어서 그런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일본풍이 많이 느껴지는 정원입니다. 이훈동 정원이 호남 일원에서 개인 정원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입구에서부터 대단한 규모를 갖추었으며 안뜰과 숲과 개울을 갗 춘 정원은 물론이고 계단을 이루는 후원까지 각종 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나무의 종류만도 113종류인데 우리나라 토종이 37종, 일본원산종 39종, 중국원산종 25종이며 그와 12종이라 합니다. 특이하게도 건물을 들어서는 현관앞에는 암수 한 쌍의 향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이는 사람이 심은 게 아니고 스스로 발아해서 이만큼 자랐다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일본에서 화산이 터지면서 그 영향으로 향나무 씨앗이 바람에 날려 목포까지 날아와 싹이 텄다는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가 있는 나무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훈동 정원에서 가장 멋졌던 정원수는 땅에 붙을 듯 드러누웠던 소나무였습니다. 얼마나 감탄을 했던지 정원수로서 가격을 매겨보기도 했습니다. 가격이 억하면서 억수로 비싸겠다며 생각을 하고 후원 계단을 올랐습니다.




유달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고 목포 시내와 바다가 가슴이 탁 터게 시원하게 펼쳐졌습니다. 정원은 대체로 남부지방이 원산지인 난대성 상록수가 많았습니다. 이훈동 정원이 있었던 곳은 목포항과 가까워 당시 많은 일본인이 거주했던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식 석물과 석등, 5층과 7층 석탑이 정원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원의 기본설계는 작은 계곡을 끌어들이는 등 우리나라 조선 시대의 정자 정원 양식을 따랐다 합니다. 현재 이훈동 정원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당시의 모습은 많이 잃었지만 그래도 일본식 정원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제강점기 종로통을 주름잡았던 김두한의 일대기였던 드라마 야인시대가 촬영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모든 남성을 티브이 앞에 잡아 놓았던 야인시대의 촬영지 이훈동정원 목포여행에서 둘러보세요.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전남 목포시 유달동 4-1 | 이훈동정원
도움말 Daum 지도
  1. 핑구야 날자 2018.02.03 07:22 신고

    관리로 잘했네요 보기만 해도 가보고 싶어지는군요

  2. 2018.02.05 23:31

    비밀댓글입니다




(전남여행/광양여행)도선국사의 중흥사 삼층석탑, 광양 중흥사 쌍사자석등 모작을 만나다.


광양 백운산 둘레길 7코스를 걸으면서 중간에 만났던 중흥사. 중흥사을 휘감은 편백숲이 사찰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었으며 청량감까지 들었습니다. 중흥사는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께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입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중흥사 당우는 폐사된 절터를 1963년에 중건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중흥사의 사격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석조물인 중흥사삼층석탑과 쌍사자 석등, 석조지장보살반가상 뿐입니다.




광양 여행 중흥사 주소: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90-1

광양 여행 중흥사 전화:061-763-6655


2017/11/28 - (전남맛집/광양맛집)광양백운산맛집 광양백운산자연휴양림 맛집 광양향수청국장, 광양향수청국장

2016/05/03 - (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백계산~제비추리봉산행. 한 많은 여자의 넋이 환생했다는 동백꽃이 아름다웠던 옥룡사지 동백숲과 백계산~제비추리봉 산행.

2016/04/21 - (전남여행/광양여행)백운산자연휴양림. 걷기 좋은 솔숲길과 산막에서 즐기는 휴식이 꿀맛일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여행. 광양백운산 자연휴양림

2014/10/22 -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 망덕포구 시인 윤동주 유고 보존집 정병욱 가옥 여행하기...

2016/04/30 - (전남여행/광양여행)폐사지를 찾아서 옥룡사지 동백림. 도선국사의 마지막 수도처 광양 옥룡사지와 절터의 기운을 도우기 위해 심었다는 동백림을 만나다. 옥룡사지동백림





중흥사의 흥망성쇠는 중흥산성과 아주 밀접합니다. 중흥산성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시대 초기로 보고 있는데 이는 출토된 와편 등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중흥산성의 규모는 중흥사 뒤의 200~400m 대의 6개 산봉우리와 계곡을 끼고 조성된 포곡형 토성입니다.





임진왜란 때는 중흥산성이 승병과 의병의 훈련 장소가 되었으며. 승병과 의병의 훈련장이란 정보를 입수한 왜군의 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그때 의병과 승병은 모두 전사하고 중흥사도 함께 불타면서 폐사되었습니다. 필자는 중흥사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게 예술성이 뛰어나면서 화려한 중흥사 삼층석탑과 중흥사쌍사자석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중흥사쌍사자석등은 국보 제103호로 지정되었지만 중흥사에 있지 않고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의 운명도 참 기구합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조선 말기까지 중흥사터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삼층석탑과 함께 궂궂하게 하늘을 받치며 그 자태를 뽐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시샘하는 놈들이 있었으니 그게 일제강점기 때인 1913년에 일본인이 밀반출을 시도하려다가 주민의 강력한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에는 경복궁에다 보관했습니다. 그러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이관하여 보관 중인데 하루빨리 원래 자리인 광양의 중흥사로 옮겨 왔으면 합니다.

 






현재 중흥사에는 중흥사쌍사자석등의 모조품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이 창건 당시 위치가 맞는다면 현재의 가람배치인 대웅전의 위치는 많이 달라져보입니다. 보통 금당을 중심으로 가운데 삼층석탑을 세우고 그 좌우에 석등을 배치하는 순서로 짐작하건대 말입니다.











그럼 필자가 보고 감탄과 함께 탄성을 질렀던 중흥사 삼층석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중흥사 삼층석탑은 지난해 보았던 군위군의 지보사삼층석탑과 느낌에서 비슷하다 생각했으나 중흥사삼층석탑을 보면서 정교한 조감솜씨와 사방불인 여래상과 인왕상, 보살상, 사천왕상을 도드라지게 세긴 것을 보고 더욱 뛰어난 예술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곳에 필이 꽂히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열심히 관찰합니다. 그 케이스가 이번 중흥사삼층석탑인데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즐겼다가 함께한 일행은 중흥사를 빠져나가 둘레길을 따라 흔적도 없어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접고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흥사삼층석탑은 신라 말기에 조성된 석탑이며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지금은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각과 장식이 매우 화려해서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탑의 몸돌과 지붕돌인 옥개석은 하나의 돌로 되었으며 각 층의 몸돌 네 귀퉁이에는 운주인 기둥을 굵직하게 나타내었습니다.

















옥개석의 아래 층급받침은 3단이며 처마 밑은 수평으로 처리했습니다. 1층의 몸돌에는 동서남북 각 면에다 연꽃 대좌 위에 앉은 여래불을 새겼으며 이는 사방불로서 어디에나 부처님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1층 몸돌을 받치는 기단은 각 면을 모두 둘씩 나누었고 앞면에는 인왕상을, 그 반대편인 뒷면은 보살상을 , 좌우 양쪽 면은 사천왕상을 새겼습니다.

 






그리고 2.3층의 몸돌은 급격하게 작아지면서 기단과 비교하면 기단부가 너무 크게 보이는데 이는 전체적인 석탑의 안정감은 뛰어나다 하겠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모작이지만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중흥사쌍사자 석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쌍사자 석등은 연꽃무늬 받침돌 위에 두 마리의 사자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서서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상입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하나의 돌을 조각해서 석등을 만들었을 정도로 그 조각 예술이 정말 빼어나다하는데 오리지널 중흥사쌍사자석등을 보지 못해 정말 많이 아쉬웠습니다. 어서 빨리 돌아오라 오버 중흥사 쌍사자 석등. 그리고 전남유형문화재 제142호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시간 관계로 보지 못해서 그냥 패스합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 갈 기회가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전남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90-1 | 중흥사
도움말 Daum 지도
  1. 핑구야 날자 2018.01.18 06:53 신고

    경치가 참 불만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 보고 싶네요




(울산여행/정자항여행)울산 북구 정자항 유포석보와 신라 충신 박제상 발선처 여행


동해와 남해 쪽으로 가다 보면 해안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산성이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조선을 침입한 왜군이 교두보를 마련하려고 쌓은 왜성 등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울산 북구의 정자동을 갔다가 조금은 독특한 ‘유포석보’란 이름을 한 산성을 만나고 왔습니다.





울산 북구 정자동 박제상공 사왜시발선처와 유포석보 주소:울산광역시 북구 동해안로 1455-6





유포석보는 정자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만들어진 석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유포석보는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먼저 이름도 생소하고 그래서 마을 주민을 잡고 유포석보가 어딥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이 마을에 살지만 그런 곳은 처음 듣는다고 했습니다.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큼지막한 유포석보 안내판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화살표는 오른쪽 마을 길로 안내했습니다.



마을을 들어서서 산성의 흔적을 아무리 찾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안의 향나무 식당에다 유포석보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분도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 저기 전봇대 뒤에 하얀 판이 보이죠! 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들어오는 입구 오른쪽 대나무 숲 꼭대기였습니다.



왔던 길을 돌아 나와 동해안로 도로에서 10m쯤 들어서면 ‘동해안로 1467-4’호 민가에서 오른쪽 좁은 길로 들어서면 대나무 숲에 올라서서 맨 끝에 안내판과 석성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포석보 석성 주위에는 채소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유포석보는 조선 시대의 보로 고을의 수령인 만호가 관리하는 제진을 보조하는 방어적 시설로 최전방에서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역할을 주로 하면서 위급할 때에 주민의 대피장소로 이용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전투를 하는 규모가 작은 성을 말합니다. 보 주위는 봉수대가 설치해 있어 즉시 신호나 기타 소리로서 주민대피를 시키면서 인근 지역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정자동의 유포석보는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와 있습니다. 삼도 도체찰사 정분이 왜구를 막기 위해서 성을 쌓을 것을 건의했으며 1450년에 문종이 즉위하면서 목책 성을 설치했으나, 1452년에 다시 석성을 쌓을 것을 건의해서 1455년인 세조 원년에 기존의 목책 성에서 5리 떨어진 곳에다 석성을 쌓기 시작하여 4년 만에 완공했습니다.



정자항의 유포석보는 왜구의 동태를 살피는 방어기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 경상좌병사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정자동 유포석보는 병영·울산과 경주의 군사 3백 명이 3교대로 주둔하면서 수비할 만큼 중요했던 곳입니다. 유포석보의 규모는 전체 둘레가 약 755m였고, 계곡을 끼고 능선과 구릉의 낮은 평지 주위에다 쌓았습니다.

 

유포석보



현재 유포석보는 황폐할 정도로 그 존재가 파괴되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정자항 방파제 공사를 하면서 유포석보의 큰 돌을 빼서 쌓았다 합니다. 남아 있는 석성의 규모를 보면 동문 쪽에 2m 정도의 높이로 약간 남아 있습니다. 유포석보는 바닷가에 들어섰지만, 육군이 담당했으며 조선시대 최초의 석보라는 점에서 그 가지와 의의가 매우 높다는 평가입니다.

 

신라충신 박제상공 사왜시발선처 비석



이곳 유포석보는 신라 시대 충신이었던 박재상의 발선처 비가 있습니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입니다. 왜국에 볼모였던 미해(미사흔)를 구출하려고 사신을 가장하여 율포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를 띄웠다 합니다. 그 율포가 현재 북구 정자동의 유포마을로 보고 있습니다. 유포석보에는 박제상이 왜국으로 떠난 곳을 기리는 ‘신라충신 박제상공 사왜시발선처’ 비석을 세워 놓았습니다.







유포석보를 한 바퀴 돌면서 정자항의 전경과 멀리까지 펼쳐지는 바다 풍경은 그야말로 작은 나룻배 한 척도 보일 만큼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일본으로 떠난 박제상의 흔적을 더듬으면서 왜군의 방어 진지인 유포석보를 만나보세요 유포석보는 1998년 10월에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7호에 지정.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울산 북구 정자동 625 | 유포석보
도움말 Daum 지도
  1. 핑구야 날자 2018.01.17 07:57 신고

    서울의 미세먼지가 많아서 소개해주신 명소를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하늘이 너무 파래서 좋아요






(울산여행/북구여행)강동해변의 아름다운 포구 당사항과 당사해양낚시공원 용바위 여행. 당사항


울산광역시 북구에 대표어항인 정자항과 판지항을 여행하면서 이번에는 세 번째 여행지 당사항입니다. 당사동은 마을 입구에 500년이 넘은 큰 느티나무와 당산제를 지내는 당(堂) 집 때문에 당사동이 되었습니다. 당사동에는 자연산만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당사자연산직판장이 있으며 이곳에서 아주 저렴하게 자연산 회를 먹을 수 있고 포장도 할 수 있었습니다. ㅎㅎ 지금은 한창 가자미가 제절이라 했습니다.




울산 당사해양낚시공원, 당사항 주소:울산광역시 북구 당사동 378-3



 





















그리고 당사항을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당사항 등대는 특이하게도 한국의 고전미를 연상시켰습니다. 지붕에는 기와를 올렸으며 창문은 우리 전통 문향을 넣어 아주 친근감이 있어 좋았습니다. 어항에는 작은 배들이 묶여 있고 작은 물결에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습니다. 당사항은 한적함이 묻어나 보였습니다.


 




그래도 방파제에는 많은 낚시꾼이 손맛을 느끼려고 자리를 잡고 낚싯대를 드리우며 분주해 보였습니다. 마침 등대 쪽으로 가는 데 아쉬운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제법 큰 물고기를 낚아 올렸는데 바로 눈앞에서 고기가 그만 달아나 버린 모양입니다. 그 물고기 오늘 십년 감수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물고기는 입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금방 다시 낚싯바늘에 코가 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ㅋㅋ 다시 등대를 돌아 나와 용바위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당사동 용바위는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졌습니다.

 





원래에는 하나의 바위였는데 지금은 그 가운데가 칼로 가른 듯 쪼개져 두 개의 바위가 되었습니다. 이 틈을 용굴 또는 용난터, 용왕미기, 굴방구라 합니다. 옛날에 호랭이가 담배 피우던 어느 날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하늘나라에서 거북이와 뱀이 앙숙처럼 싸움만 하며 지냈습니다.

 




보다보다 옥황상제는 할 수 없이 거북이와 뱀을 지상으로 내려가서 살라고 했습니다. 이 둘은 지상에서 벌을 받으면서도 서로 다투었는데 평소 묵직한 행동을 했던 거북이를 옥황상제는 더욱 신임하였습니다. 옥황상제는 하늘에서 이 둘의 행동을 자세히 보았더니 거북이가 밤낮없이 모함과 음모를 꾸미는 것을 알았습니다.

 


옥황상제는 뱀의 죄를 용서하면서 금비늘 날개옷과 뿔, 발톱, 여의주를 내려주면서 하늘로 다시 승천하라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동굴에 살던 뱀이 용으로 모습이 변하면서 용은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고 승천을 시작했습니다. 용은 의기양양하게 꼬리를 힘껏 내리쳤고 그러자 큰 바위는 둘로 쪼개졌습니다.



용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무룡산 정상에서 한바탕 질펀하게 춤을 추고 나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울산 북구에는 용이 춤을 췄다는 무룡산이 있으며 승천하면서 꼬리로 내리쳤다는 바위는 현재 당사항 용바위가 되었습니다.



용바위는 문중의 개인소유로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당사해양낚시공원입구를 통해 용바위에 만든 용 조형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보는 조망은 당사항에서 최고였습니다. 가까이는 넘섬까지 다리를 만든 당사해상낚시공원이, 멀리는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가 하늘까지 맞닿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사해양낚시공원은 강동 주민의 관광 활성화와 소득향상을 위해서 2013년 7월에 개장을 했으며 총 35억 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합니다. 바닥이 보이는 그물형태 구름다리인데 바다로 뻗어나간 길이만도 약 220m이며 유료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낚시는 성인 기준 하루 1만 원이며 넘섬까지 갔다 오는 구름다리 입장은 1천 원입니다.

 


그리고 전망대와 편의 시설까지 갖추었다고 하니 당사항에서 최고의 볼거리중 하나라고 합니다. 개장시간은 하절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제한하며, 낚시꾼은 탄력적 운영으로 오전 5시 30분부터 밤 8시까지 가능합니다.



그리고 주요 어종은 참돔, 우럭, 농어 등 낚시꾼의 어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어종이 잡혀 손맛을 느끼기에 최고라 합니다. 어족 자원 보호로 1인 2kg까지 제한한다고 합니다. 당사해양낚시공원을 연결하는 넘섬은 파도를 다스리는 아그락 할매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사마을 앞바다의 파도가 잔잔한 것은 이야기보따리를 아주 잘 푸는 그 할매 덕분이라 합니다.



할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온갖 미물이 다 모여들었는데 그중에는 파도도 있었습니다. 파도는 성질이 매우 급해 항상 큰 너울을 일으키며 왔습니다. 그때마다 큰 파도는 마을을 덮쳤으며 마을은 물난리로 큰 피해가 났습니다. 그러자 할매는 경계 표시를 하려고 큰바위 하나를 바다에 던지고 나서 파도에게 “너는 이 바위를 넘지 말고 여기서 이야기를 들어라” 명령하였습니다.



그 뒤부터 파도는 바위를 넘지 않았으며 마을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합니다. 이후부터 파도가 바위를 넘어오지 않는다 해서 넘섬이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당사항에서 금천마을로 넘어가는 짤록이 오른쪽 바닷가에 용바위가 있으며 두 마을을 연결하는 통로를 ‘벌레목’이라 합니다. 지금은 용바위를 상징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벌목’이 변해서 벌레목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벌(伐)은 ‘치다’를 뜻하며 “용이 꼬리로 쳤다”는 뜻입니다. 




벌레목을 빠져나오면 해안에 작은 바위가 널려 있습니다. 그중 꼭 못된 거북이를 닮은 바위가 있었습니다. 저놈이 뱀에게 누명을 덮어씌운 놈이 아닌가 하며 꿀밤을 한방 주었습니다. 갑자기 금천마을 앞에는 몽돌해변이 펼쳐졌습니다. 파도에 밀려온 몽돌이 산더미를 이루었습니다.

 











자그락자그락 몽돌을 밟으며 걸었습니다. 그리고 로켓을 닮은 붉은 등대를 보러 갔습니다. 로켓을 닮은 등대를 타고 우주를 한번 여행해보는 꿈을 꾸어 봅니다. 어물동에서 북쪽의 해안을 따라 신명동까지 길이가 13km이며 폭은 40m인데 이를 강동해변이라 통칭 부릅니다.

 




정자항, 판지항, 당사항도 모두 이 강동해변에 포함됩니다. 강동해변은 동해에서 남쪽으로 치우쳐져 있으며 청정바다는 물론이고 주상절리와 검은 몽돌이 펼쳐진 수려한 자연 경관을 자랑합니다. 또한, 신년 해맞이는 물론이고 일출맞이 장소로서도 최적지로 알려져 많은 사진작가가 아름다운 일출 사진 촬영을 위해 찾는다고 합니다.







동해의 아름다운 해안인 강동 해변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풍경을 한눈에 담아 보세요. 울산 북구의 정자항, 판지항, 당사항을 함께하는 3항 3색 겨울 바다여행을 즐겨보세요. 정말 아름다운 바다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울산 북구 당사동 378-3 | 당사항
도움말 Daum 지도
  1. 핑구야 날자 2018.01.15 06:52 신고

    한적한 모습이 보기 좋네 기회가 되면 바람 쐬러 가보면 좋겠어요





(울산여행/울산정자항여행)바다는 겨울이 제맛, 귀신고래 등대가 있는 울산 정자항 여행


겨울은 하얀 설원의 산도 좋습니다만 철썩이는 파도가 방파제를 때리는 겨울 바다도 괜찮은 여행입니다. 그래서 울산의 대표항구인 울산시 북구 정자항에 갔습니다. 정자항도 규모가 대단했습니다. 때마침 날씨는 뺨을 애를 정도로 추웠습니다. 그리고 파도는 무서울 정도로 자르르하며 자갈을 애무하는 우렁찬 소리를 내며 방파제를 때렸습니다.





울산 정자항 주소: 울산광역시 북구 정자동




2016/03/25 - (울산여행/방어진여행)화정천내봉수대 주전봉수대 여행, 울산의 관문 방어진에 있는 화정천내봉수대와 주전봉수대를 여행했습니다.

2016/01/02 - (울산여행/울산동구여행)방어진체육공원 염포산 울산대교 전망대, 울산 전역이 관람권인 울산대교 전망대, 화정산 울산대교 전망타워에 올라보세요.

2017/01/21 - (울산울주여행)진하 강양항. 초보 사진가 사상 처음 울산 온산 강양항 일출촬영 좌충우돌 출사기

2015/02/12 - (울산여행/간절곶여행)울산 간절곶. 한반도 일출 일번지 간절곶을 여행하다.

2015/02/13 - (울산여행/간절곶드라마셋트장)간절곶 드라마셋트장의 회장님 별장은 이런 모습, 간절곶 드라마하우스 여행

2016/12/27 - (울산여행)울기등대와 대왕암공원. 울산 방어진 울기등대와 대왕암공원 여행. 대왕암







정자항은 1971년 12월에 국가 어항으로 지정되었으며, 정자는 오래전 마을 한가운데 정자나무인 느티나무가 24그루 있어 마을 주민의 휴식처인 정자역할을 했다 합니다. 그래서 정자(亭子)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정자마을의 동북쪽은 북정자이며 남서쪽은 남정자라 부릅니다.









또한, 두 개의 등대도 있는데 각각 남·북방파제 등대라 부릅니다. 울산 하면 생각나는 게 고래입니다. 선사시대부터 울산에서는 고래의 포획이 이루어졌으며 그게 벽화로 남아 있습니다. 정자항에는 울산의 유명한 고래를 조형물로 세운 등대가 있습니다. 이 등대는 귀신고래를 형상화하여 각각 세웠는데 귀신고래 등대라 부릅니다.







남 방파제 등대는 흰색인 귀신고래이며 북 방파제 등대는 붉은색 귀신고래 등대입니다. 정자항 남·북방파제 등대는 2010년에 건립한 귀신고래 모양의 조형 등대인데 왜! 귀신고래 등대를 세웠는가 하면 울산의 정자항  부근 해역이 귀신고래가 회유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래는 멸종되다 시피해서 현재 전세계인이 보호하는 어획금지 어종이며 울산 앞바다가 새끼를 낳기 위해 이동하는 귀신고래의 경로라 합니다. 왜 귀신고래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부르는지 궁금한데 귀신고래는 암초가 많은 바닷속에 신출귀몰하듯이 귀신같이 나타났다 사라져서 얻은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 천연기념물 제126호에 지정하여 관리 중입니다. 어마무시하게 큰 게 위엄과 웅장함가지 갖춘 등대입니다. 귀신고래는 흰색과 붉은색이 없습니다. 등대라 국제기준에 따라 흰색 등대는 좌현표지를 말합니다. 그럼 북방파제의 붉은색은 홍 등대라 하는데 우현표지를 뜻합니다.

















정자항은 여름철에는 남동풍이 불며 겨울철에는 북서풍이 많이 분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자항 주위로 작은 암초가 많아 운항하는 배들은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실제로 보니까 정자항 주위 바다에 솟아오른 기기묘묘한 바위가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자앞 바다의 주요 어종은 문어와 가자미입니다.







안그래도 정자항이나 주위 작은 포구에 가자미를 말리려고 늘어놓은 것을 자주 봤습니다. 현재 정자항은 가자미가 제철이라고 합니다. 쫀득하니 감칠 맛나는 가자미회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셔봅니다.

















그리고 요즘 정자를 대표하는 게 대게입니다. 대게 하면 영덕이 유명하고 또한 울진이 있지만 아마 수온의 변화로 대게 어장이 남쪽으로 많이 내려와 정자 앞바다에서 잡아 올립니다. 이제 울산 정자도 대게로 유명해서 정자 대게라고 따로 불립니다.

 










남해나 서해안의 바다 빛깔이 180도 다른 동해안의 바다는 그야말로 에메랄드빛인 청정해역입니다. 부산에서 멀지 않은 울산 정자항만 가도 그걸 느끼고도 남습니다. 그만큼 맑은 동해 기운이 넘쳐나는 울산 정자항 여행을 한번 계획해 보세요.



















여기는 고등어를 잡는분들입니다. 은어 씨알만한 고등어를 모래에다 많이 묻어 놓았는것을 봤습니다. ㅎㅎ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울산 북구 정자동 | 정자항
도움말 Daum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