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어려서는 한학을 배웠으며 일본에 건너가 1932년에 오사카 나니와중학교 속성과를 수료했습니다.
1938년에 도쿄 국민예술원을 수료하면서 귀국하여 처음 부산 경남여고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이때 ‘중성’과 ‘백민’에다 1946년에 ‘바다’ 1948년에 ‘산골 아기’, 1949년 ‘6월의 아침’ 시를 발표했는데 소설가 이전에 먼저 시를 섰습니다.
1949년 9월 김동리의 추천으로 ‘신천지’에 ‘남이와 엿장수’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였습니다.
1950년에 서울신문에 단편‘머루’가 입선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54년 첫 창작집 ‘머루’를 간행했습니다.
1955년 ‘현대문학’ 창간과 초대편집장을 11년 지내면서 1956년 ‘갯마을’ 1958년 ‘명암’, 1960년 ‘메아리’, 1965년 ‘수련’ 등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쳤습니다.
1979년 타계할 때까지 30년 동안 200여편의 많은 단편소설을 발표했습니다.
오영수문학관 아래 주차장에다 차를 대고 오른쪽 찻길을 올라가면 큰 나무 밑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아 무엇인가?’ 생각하시는 선생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 옆에다 자리를 비워 놓았는데 이는 선생님과 기념사진을 찍게끔 놓았습니다.
여기서 기념사진을 한 장씩 찍고는 문학관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건물 왼쪽 너른터에는 누나 별 북 콘서트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밤하늘에 쏟아질 듯 떨어지는 별을 보면서 이곳에서 선생님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문학관 내부를 들어가면 정면에 오영수 선생의 큰 사진인 걸린 안내실 옆이 전시실 입구입니다.
“먼저 오영수는 누구인가?” 하며 빨간 테두리 안에 난계 오영수 선생의 흉상이 있습니다.
문화해설가님의 안내를 받으며 관람할 수 있습니다.
1949년 신천지 9월호에 발표된 고무신 중에서 “먼 산은 선 잠을 깬 여인의 눈시울처럼 자꾸만 선이 희미해 오고 수양버들은 아지랑이가 간지러운 듯 한들거렸다. 보리 이삭은 제법 파릿하고 남향집 밑에는 민들레가 놀란 듯 활짝 피었다”는 소설의 한 구절도 읽어보고 특이한 점은 선생의 그림 실력 또한 전문가 뺨칠 정도였습니다.
정말 깜짝 놀랬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광복 후 경남여고에서 미술 교사로도 활동 하셨다 합니다.
전시관에는 선생님의 많은 그림과 서예작품을 만날 수 있어 더욱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선생의 많은 작품 중에서 대표작인 갯마을은 1953년 12월에 발표되었습니다.
부산 기장군 일광이 소설 속의 무대입니다.
그리고 1968년에 영화로 촬영되기도 했습니다.
울산 언양 여행을 계획한다면 언양읍의 난계 오영수문학관 여행을 계획하면 더욱 뜻 깊은 여행이 되겠습니다.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