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수승대 용암정. 무더운 여름나기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을 여행하다


거창하면 수승대와 빼어난 경승지인 용암정(龍巖亭)을 함께 보는 게 당연시합니다. 어쩜 둘은 바늘과 실의 관계로 함께라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지금은 수승대 쪽에서 거북바위 앞 돌다리를 건너면 성령산 아래를 따라 흐르는 위천(월성계곡)에 오솔길을 정비해서 누구나 쉽게 용암정까지 산책할 수 있게 했습니다.



거창 용암정 주소: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3



2013/10/25 - (경남여행/거창여행)가조 우두산, 거창한 동네의 거창 소머리산인 우두산 가을 산행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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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6 - (경남여행/거창여행)점필재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일원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 남상 일원정

2014/08/27 - (경남여행/거창여행)감악산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이 유명한 감악산 연수사에서 얼음물을 맞다.

2014/09/02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감악산 산행. 감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뼈속까지 시린 물맞는 약수탕에서 물맞이를 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하얀 암반과 짙은 솔숲, 차디찬 계곡물, 덕유산에서 부는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걷는 수승대~용암정 둘레길, 군데군데 덱과 전망대를 설치해 놓아 더욱 분위기 있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거창 수승대 위 용암정은 대략 200년이 조금 넘은 역사를 가졌습니다. 이는 다른 여러 고건축물에 비해 그리 긴 연륜을 갖지 않았지만, 용암정의 자태는 자연 암반에 걸터앉은 게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한 한 마리의 학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춤추며 날아갈 듯 우아한 모습을 한 매우 빼어난 건축물입니다.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그 아름다움을 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포스팅을 하는 지금도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거창 용암정은 함안 출신인 용암 임석형(1751~1816)이 건립한 정자입니다.



1801년 건립한 용암정은 그가 남긴 용암정기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용암은 정자를 건립하고 한시도 이곳을 떠나지않았을 정도로. 그만큼 용암정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선비로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습니다. 어릴 때부터 재주가 비상하며 머리가 영특했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처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용암 임석형, 세속에 초월한 듯 용암정에서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를 알던 영호남 선비들은 이곳을 지나다가 서로 시문으로 교류하면서 ‘원학주인(猿鶴主人)’이라 칭송했습니다. 임석형의 ‘용암정 창건기’와 이휘준의 중건기를 보면 1864년인 고종 1년에 보수 공사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용암정은 위천의 자연 암반에 계곡을 바라보고 동향으로 지어졌습니다. 용암정에서 누마루나 방문을 열면 월성계곡과 덕유산, 금원산의 물과 바람인 산수를 그대로 받아들이게끔 지어졌습니다. 용암정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으로 누하주가 낮은 형태로 중층의 누각으로 지어졌습니다.



위에서 보면 가운데 배면에 사방 1칸의 온돌방을 넣고 3면은 전부 누마루로 돌렸습니다. 온돌방도 4면에다 모두 문을 달았는데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와 같은 평면 양식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3호인 수승대의 요수정과 비슷합니다.



출입은 뒤편 배면에 걸친 작은 나무계단입니다. 이를 올라 용암정의 누마루와 온돌방으로 들어갑니다. 작은 통나무를 찍어내어 홈을 판 나무 계단을 보면서 투박한 주인의 성품을 보는 듯했습니다. 불을 지피는 아궁이와 구들장이 깔린 온돌방에 겨울철 거창은 얼마나 추운지 짐작이 갑니다.



누마루와 온돌방 이를 보면서 저도 용암정 같은 정자 하나 같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용암정의 공포양식은 초익공이며 도리가 다섯 개인 5량가 건물로 위천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각을 바친 자연 암반에다 용암정의 글씨를 새겨 놓았는데 붉은색을 입혔습니다.



정자 안쪽에는 ‘용암정’ ‘반선헌 ’청원문‘ ’환학란‘의 편액이 걸려 있으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위천쪽에 내려갈 엄두도 나지 않고 해서 암각과 편액을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는데 다음 거창여행에서는 용암정을 가장 먼저 들러 누마루에 올라 용암 임석형선생의 초연한 삶을 생각하며 세심하게 용암정을 둘러봐야겠습니다.





용암정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3호로 지정되었다가 정자와 함께 위천의 암반과 아름다운 경관으로 2012년 국가 명승 제88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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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3 | 거창용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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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여행일번지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하면 수승대, 수승대 하면 거창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거창에서는 여름 피서지이자 휴양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거창의 수승대 인근 둘레길을 걸으면서 만난 수승대와 척수대는 거창의 명승지답게 심한 가뭄에도 많은 수량이 흘러내려 산자수려함을 뽐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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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수승대(搜勝臺)는 1543년까지 수송대(愁送臺)라 불렀습니다. 수송대가 수승대로 바꾸어 부르게 된 연유를 보면 퇴계 이황 선생의 일화가 있습니다. 수승대는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 앞 위천의 바위 절경을 말합니다.


수승대관광지 척수대

덕유산의 여러 골짜기에서 섬섬옥수가 흘러내려 빚어놓은 절경이라 예로부터 시인 묵객이 이곳을 찾았다면 세상사 모든 근심을 잊게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합니다. 그런데 삼국시대의 수승대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이며 백제의 최전방이었습니다.







백제 조정은 신라에다 사신을 파견하면서 이곳 수승대에서 몸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며 전별을 했던 곳으로 처음에는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했다 하여 근심 수(愁)에 보낼 송(送)을 써서 수송대라 불렀습니다. 이는 이곳의 경치가 “속세의 근심·걱정을 잊을 만한 절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승대는 조선 중종 때 요수 신권 선생이 은거하며 구연 서당을 열어 후진 양성을 하였고 위천의 수승대의 큰 바위는 거북이를 닮아 암구대라 불렀으며 이곳을 구연동이라 하였습니다. 그 후 퇴계 이황 선생이 안의현의 삼동에 유람차 들렀는데 수송대의 내력을 듣고는 이름이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급한 정무로 들러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하며 수승대로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를 보내었습니다.

 




이에 신권 선생은 그 뜻을 받들어 바위에다 새겨 오늘날 수승대가 되었습니다. 또한, 수승대는 모현대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수많은 현인과 은사가 찾아와 시문을 나누었던 곳으로 남명 조식 선생은 원학동의 대표명소인 수승대를 두 번이나 찾았다고 합니다.

 


수승대 하면 서로 마주 보며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이웃한 곳에 척수대가 있습니다. 수승대가 사신으로 가면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했다는 곳이라면 척수대는 신라로 떠났던 사신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이곳에서 근심을 씻었던 곳입니다.

 


처음 수승대를 개척했던 척암 성윤동이 척수대에서 소요하였으며 구연동에서 황산을 드나드는 길목이라 구연동의 남문이라 했습니다. 또한, 척수대는 이태사랑바위로도 불렸습니다. 이태하면 조선 후기의 명의였던 유이태를 말합니다. 거창군 위천면 서마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유년기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수승대 관광지 주차장

서당에서 글공부하던 어느 날 밤, 하늘의 달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놓고 위천가를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입맞춤을 해달라고 속삭였습니다. 이태는 여인의 유혹에 빠져 그만 입맞춤을 하였더니 입속으로 구슬이 굴러 들어왔습니다.

 

수승대 거북바위

구슬의 유혹 때문인지 모르지만 유이태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그와 반대로 몸은 점점 쇠약해졌습니다. 서당의 훈장이 이를 알고는 이태에게 구슬을 그냥 삼키라 하였습니다. 이태가 구슬을 삼켰더니 여인은 백여우로 변하면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이태는 삼킨 구슬을 빼내 몸에 지니고 다니자 예전처럼 건강이 회복되었고 더욱 총명해져 이름난 명의가 되었다 합니다.



거창 수승대관광지 주소: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

거창 수승대관광지 전화:055-943-5383


수승대 요수정

그 뒤부터 이태사랑바위에서 소원을 빌면 연인은 사랑이 이루어지고 자식은 훌륭한 인재로 성장한다고 전해져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소원을 빈다고 합니다. 척수대는 수승대문화유산둘레길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관광지라 많은 사진과 주위를 상세하게 보았지만, 수승대는 수승대문화유산둘레길의 막바지에 만나 늦은 시간으로 사진을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수승대관수루

다음 거창 여행에서는 수승대문화유산둘레길이 아닌 수승대만을 꼭 다시한번 찾고 싶습니다. 관수루와 요수정, 원각사, 구연 서당 등을 둘러보는 수승대 여행을 이 여름이 가기전에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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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 | 수승대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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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8.16 08:01 신고

    척수대의 모습이 너무 좋은데요 가보고 싶군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8.17 10:50 신고

    요번에 가 볼뻔 했는데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ㅎ




(문경여행/문경가볼만한곳)운달산 김룡사. 명품 숲 전나무가 좋은 운달산 김룡사 여행. 


운달산 아래 자리한 천년고찰 김룡사. 김용마을에서 김룡사까지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은 가히 명품 숲길입니다. 전나무 숲을 지나면 김룡사의 입구를 뜻하는 일주문이 위풍당당한 모습입니다. 김룡사는 588년 신라 28대 진평왕 때 온달조사가 창건하면서 운봉사라 불렀습니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불탔으며 1624년 조선 인조 2년에 혜총선사가 중창하였으나 다시 소실된 것을 1649년인 인조 27년에 의윤, 무진, 태휴 세분 대사께서 삼창하여 운봉사의 옛 모습을 되살렸습니다.



문경 운달산 김룡사 주소: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410

문경 운달산 김룡사 전화:054-552-7006



2008/11/03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대야산 산행. 문경의 명산 대야산 용추폭포와 만추홍엽 단풍보기

2016/05/17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 희양산 봉암사의 전성기를 이끈 정진대사 원오탑비를 만나다. 보물 제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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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6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 탑비. 보물에서 국보 제315호로 승격된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 탑비의 웅장함에 깜짝 놀라다. 봉암사지증대사탑비


한때 김룡사는 48동의 전각에 건평이 1,188평이었을 정도로 큰 대찰이었으나 1997년 불의의 화재로 대웅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전각이 불탔다가 창건에 버금가는 대 불사를 진행하여 현재 30여 동의 전각이 복구되었습니다. 운봉사가 김룡사로 바뀌게 된 것은 18세기에 절 밑 마을에 살던 김장자에 의해서입니다.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라에 큰 죄를 짓고 도망쳐 운봉사아래 몸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신인의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이들은 김룡사 부처님 앞에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며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러다 아들이 태어나 이름을 용이라 하였습니다. 그 후에 집안이 크게 흥하며 부자가 되었으며 마을 사람은 그를 김장자라 불렀습니다. 부자가 된 김장자는 운봉사에 희사를 많이 했는지 모르겠지만 운봉사는 김장자의 아들 이름인 김룡사로 바뀌었으며 자연스럽게 마을 이름도 김룡(용)이 되었다 합니다.

 




일주문에는 ‘운달산김룡사’와 ‘홍하문’ 편액이 걸렸는데 이는 절제된 김룡사의 현재 모습을 보는듯합니다. 홍하(紅霞)의 뜻을 풀이하면 붉은 노을이라 하며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는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에서 그 음을 취했습니다. 이는 운문종을 창시한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선사께서 남기신 게송의 일부분입니다.


 


생전에 성철스님도 이 게송을 좋아해 즐겨 운문선사의 음을 취했으며 그 때문인지 현재 겁외사를 들어서는 입구 누각에 벽해루 편액이 붙어 있습니다. 일주문의 두 편액은 독립운동가이자 구한말 서예가로 이름을 떨쳤던 동농 김가진(1846~1922)선생의 글씨라 더욱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김룡사 절집을 둘러보겠습니다. 어느 대감 집 출입구 같은 솟을대문에는 보장문 편액이 붙었습니다. 이는 보물을 품은 절을 들어선다는 뜻인데 절에서의 보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합니다. 이곳의 문을 들어섬으로써 진짜 부처님 세상인 불국토에 들어간다는 뜻을 품고 있으며 일주문의 편액을 쓴 동농 김가진선생의 글씨입니다.




 




일주문 오른쪽에는 근심을 푸는 해우소가 있습니다. 이 화장실이 대웅전과 함께 화마가 비껴간 건물이며 300여 년 긴 세월을 이겨냈다 합니다. 그런데 밖에서 보는 해우소 건물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머무는 처서 뒤편의 고방가 곧 쓰러질듯하며 진짜 오래된 건물로 보였습니다.







보장문을 들어서면 절 마당이며 김룡사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옵니다. 먼저 만나는 전각은 천왕문입니다. 천왕문은 절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상을 모신 곳입니다. 아마 불타고 복원하면서 돌이라면 불에도 끄떡없다고 생각했는지 석물로 만들어 안치했습니다.

 






증장, 지국, 다문, 광목천왕을 모셨는데 이분들을 사천왕이라 합니다. 천왕문을 지나면 다시 돌계단을 오릅니다. 보기에도 건물은 근래에 새로 지은 전각입니다. 왼쪽 건물은 스님들의 요사채와 강원인 설선당 건물이며 오른쪽은 2층 누 형태인 보제루입니다. 두 건물 사이로 오르면 대웅전 앞마당입니다.

 




먼저 왼쪽 설선당을 보겠습니다. 앞면 9칸에 옆면이 6칸인데 그 규모가 대단합니다. 아마 김룡사에서 가장 큰 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재로 타기 전에는 300명이 동시에 들어가서 큰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합니다. 1955년 성철스님은 팔공산의 파계사 성전암에다 철조망을 치고 한 번도 암자 밖으로 나오지 않는 ‘동구불출’의 수행을 10년간 하셨습니다. 1965년에 스님은 성전암 문을 저음 나서면서 김룡사의 강원인 이곳에서 가장 먼저 법문을 행했던 곳입니다.

 


보제루는 입구에서 보면 2층 형태지만 대웅전에서 보면 마당 높이와 맞춘 단층 건물입니다. 이곳에는 보제루와 운달산 김룡사의 편액이 걸렸으며 설선당 등 많은 편액이 서예가 권창륜씨 글씨입니다.





마당 좌우에는 윗면이 넓고 편편한 돌기둥이 두 개 있으며 이를 노주석이라 합니다. 밤에 행사가 있으면 이곳에다 불을 피워 주위를 밝혔습니다. 노주석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일본풍의 느낌이 많은 데 아니나 다를까 노주석의 뭉갠 글씨는 일본 연호인 소화 15년을 뜻하며 또 다른 노주석에는 희사한 분 이름인 득민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제 김룡사의 대표 전각인 대웅전을 보겠습니다. 이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외 3출목, 내 4출목에 상부 가구는 5량 가입니다. 김룡사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은 1624년 인조 2년에 중창했지만, 다시 1643년 불탔다가 1649년에 새로 지어졌습니다. 그러다 최근인 1997년 김룡사 대화재 때에 소실을 면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건물입니다.













































이외에도 김룡사는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인 보물 제11-2 문경김룡사동종과 보물 제1640호 문경김룡사영산회괘불도 등 전각과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해있습니다. 운달산 산행과 함께 짧은 시간에 훑다 보니 수박 겉핥기식으로 문경 김룡사 구경을 했습니다. 특히 문경 김룡사에서 유명한 약수도 빠트리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운달산의 산세가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며 그중에서도 김룡사는 소의 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꼭 집어 말하면 김룡사 명부전 자리가 핵심인 진짜 소의 눈으로 명부전 마당에 있는 약수터는 소의 눈물이며 항상 우윳빛을 띠는 명수라고 합니다. 운달산 김룡사 여행 시에 저처럼 빠트리지 말고 꼭 마시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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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410 | 김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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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05 23:02

    비밀댓글입니다

  2. 핑구야 날자 2017.08.07 07:52 신고

    보고 또 봐도 가보고 싶을 정도로 좋은데요

  3. 공수래공수거 2017.08.09 10:00 신고

    내년엔 여기를 한번 다녀 와야겠어요^^

  4. 해우기 2017.08.10 11:01 신고

    보기만 해도 걸어보고 싶은 곳이네요....ㅎㅎ

  5. *저녁노을* 2017.08.10 20:56 신고

    구경 잘 하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되세요^^




(군위여행/군위가볼만한곳)인각사 여행,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 삼국유사 일연의 행적을 소상히 기록했던 보각국사 탑 및 비


일연대선사하면 삼국유사를 남기신 분으로 아마 모르시는 분이 없을 정도로 알려진 스님입니다. 일연 스님의 부도와 탑비가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의 인각사에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로 전하고 있습니다. 일연스님은 1289년 고려 충렬왕 15년에 입적했으며 그의 행적을 소상하게 기록한 탑비와 보각국사 일연의 사리탑인 부도가 인각사 경내에 세워져 있습니다.





군위 인각사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 250

군위 인각사 전화:054-383-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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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와 탑비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데 부도는 원래 부도골에 나뒹굴고 있던 것을 현재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합니다. 먼저 보각국사 일연스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206년인 고려 희종 2년에 경산시(당시는 장산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속성은 김씨이며 자는 희연·일연이고 아명은 견명이라 했습니다.



1214년 9세 때 광주광역시 무량사에서 수학하다가 5년 뒤인 1219년 설악산 진전사에서 대웅스님에게 수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22세에 승과에 급제하였으며 1237년 삼중대사, 1246 선사. 1259년 대선사에 올랐습니다.

 


1250년 정안의 초정으로 정림사에 주석하면서 남해 분사도감의 증의로 팔만대장경 조성에 깊이 관여했으며 1283년에 국존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의 호를 받았습니다. 이듬해 조정으로부터 토지 100경을 받아 모친을 봉양하기 위한 인각사를 중건하였습니다. 일연대선사는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합니다.



보각국사 일연스님의 사리탑은 자연석을 깐 바닥에 세워져 있습니다. 탑은 받침돌과 몸돌, 지붕돌로 구성하며 팔각의 받침돌은 3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 가운데 부분에는 동물 조각이 희미하게 남아 있으며 윗부분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팔각의 몸돌에는 정면에 ‘보조국사정조지탑(普覺國師靜照之塔)’이 새겨져 있으며 그 뒷면에는 감실을 뜻하는 문 모양의 조각을 새겼습니다. 그리고 남은 여섯 면에는 사천왕 입상과 연꽃 위에 서있는 보살상을 새겨 놓았습니다.

 


지붕돌을 보면 두꺼운 추녀 밑은 위로 살짝 들렸고, 낙수면은 경사가 급하며 지붕선 귀 끝에 꽃장식이 달렸습니다. 지붕돌 위에는 앙련이 새겨진 큼지막한 머리 장식인 보개와 보주를 올려 위엄과 무게감이 더욱 있어 보입니다.

 


보각국사 일연 부도는 통일신라 시대에 성행했던 팔각원당형을 따랐지만, 형태와 조각수법을 보면 섬세하지 않고 약간은 둔중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1295년에 비문이 세워진 것을 보면 그 이전에 부도가 세워진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각국사 일연 탑비는 깨어져 훼손이 심한 편입니다. 탑비는 일연의 제자였던 법진스님이 세웠다 합니다. 비문은 당시 문장가였던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전면의 본문을 지었으며 후면은 산립이 지었습니다. 비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을 정도로 정성을 다했던 거 같습니다.



비신의 앞면에는 일연스님의 행적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스승에 대한 추모의 정을 새겼다면 뒷면에는 비를 세우게 된 경위와 다비식 때 일어난 영험, 제자들의 이름을 함께 새겨 넣었다 합니다. 비신을 보면 드문드문 글씨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훼손이 심해서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이는 후대로 와 왕희지의 글씨를 얻겠다는 욕심으로 수많은 탁본을 하였고 그로 인해 일연의 탑비는 많은 훼손이 되었다합니다. 군위 여행시 군위댐과 인근의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를 꼭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보물 제4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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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612 | 인각사 보각국사탑및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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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비™ 2017.06.28 12:18 신고

    오...인각사는 한 3년전에 가보았습니다.
    해설도 듣고 사진도 찍어왔는데
    어영부영하다 보니 포스팅도 못 하고 지나간게 생각나네요.
    멋진 사진 즐감했습니다.

  2. 핑구야 날자 2017.06.29 07:46 신고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7.06.30 10:39 신고

    저길 다녀 온지도 발써 2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4. 솜다리™ 2017.06.30 10:52 신고

    함 찾아보면 좋을 곳인듯 합니다~~~

  5. 핑구야 날자 2017.07.01 08:09 신고

    오늘 지방으로 가야 하는데 비 소식이 있네요 사진처럼 맑은 날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6. 드래곤포토 2017.07.01 09:09 신고

    7월 첫날
    좋은주말 보내세요 ^^

  7. 친절한엠군 2017.07.01 20:38 신고

    돌을 구해서 만드시는분들 보면 와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을테니 말이죠 ㅎㅎ 잘보고갑니다^^

  8. *저녁노을* 2017.07.04 05:39 신고

    장맛비가 내리는군요.
    건강 유의하세요.

    잘 보고갑니다.




(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이육사문학관. 7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의 청포도 이육사문학관 여행.


안동여행을 하면서 웬 뜬금없는 이육사문학관이 있나 생각했습니다. 민족저항 시인 이육사의 그의 대표작으로 첫손꼽는 ‘청포도’는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전 국민 모두에게 알 게 해 주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했던 시 청포도는 포항시 오천읍 한 어촌 마을의 포도농장을 배경으로 작품을 썼다 하여 필자는 이육사님의 고향이 경북 포항의 오천 한적한 어촌 마을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곳에도 이육사님을 기리는 안내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육사문학관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900

이육사문학관 전화:054-852-7337


2017/06/21 - (안동여행)월란정사. 천원 지폐 뒷면 그림 실제 모델지 겸재정선의 계상정거도 월란정사 여행.

2017/06/15 - (안동여행)퇴계종택. 안동 도산면에서 퇴계 이황의 퇴계종택을 여행하다.

2017/04/01 - (안동여행)퇴계태실 노송정종택과 퇴계종택. 퇴계 이황 태실인 노송정종택과 퇴계 이황 종택을 여행하다.

2017/01/14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헛제사밥이라해서 헛배가 부른게 아니예요. 맛있는 음복음식 안동 맛50년 헛제사밥

2016/12/26 - (안동여행)안동법흥사지칠층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여행.




그러나 이육사님은 포항 오천이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이육사님의 고향은 경북 안동 도산면의 원촌이며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 후손으로 퇴계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암울했던 우리 민족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짧지만 굵은 삶을 살았던 분이셨습니다. 이육사문학관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이육사님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1904년 4월 4일(음력)에 5형제중 둘째로 태어나셨으며 본명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육사가 아닌 ‘원록’입니다. 그리고 ‘원삼’ 또는 ‘활’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발표한 시에도 그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이름 이육사입니다.



왜. 육사란 이름을 사용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육사는 1927년 처음 옥고를 치를 때 그때 대구 형무소 수인번호가 264번이었습니다. 그 뒤부터 이육사를 아호로 썼다 합니다. 이육사님의 유년기는 고향 인근인 예안에 설립된 보문의숙을 다니다가 공립으로 개편되면서 도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이육사문학관 개관시간과 관람요금 안내

이육사문학관 개관시간

3월~10월: 09:00!18:00

11월~2월:09:00~17:00

이육사문학관 휴관안내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 월요일이 공휴일일인 경우 다음날


이육사문학관 관람요금

성인 2,000원. 청소년·군경 1,500원 어린이  1,000원 

이육사문학관 무료 대상자:장애인, 국가유공자, 65세이상, 7세이하

이육사문학관 안동시민 신분증 확인 후 50% 할인





그리고 대구로 이사하였고 부친의 명령으로 1921년 안용락의 딸 안일양과 결혼하면서 영천 처가가 있는 백학학원에 다녔습니다. 1924년 4월 일본 동경청치예비교와 일본대학 문과 전문부 유학을 떠났다가 그 이듬해 1월 귀국하여 대구를 중심으로 문학 활동을 펼치던 중 성주 출신의 이정기를 만나면서 조재만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조직인 ‘비밀결사단’을 조직하게 됩니다.

 




이들은 중국 북경을 답사하기도하였으며 재차 중국을 건너갔다 항일무장단체인 의열단 김창숙, 대한독립당군정서 대표 배병현, 국민당정의부위원 남형우 등과 만나면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27년 한인 군관학교 설립자금 모금을 위해 귀국했다가 10월 18일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이육사는 대구에서 체포되어 19개월 투옥되었다가 출소하였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과 1930년 대구 격문사건 등에 재차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이육사의 투옥 횟수는 모두 17회에 달한다 합니다.









1931년 다시 군관학교입교를 위해 북경으로 건너갔지만, 만주사변이 일어났습니다. 그곳에서 의열단의 윤세주를 만나 1932년 난징에서 새로 연 조선군관학교에 입교하여 1933년 1기로 졸업하고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조선군관학교 출신이 발각되면서 1934년 3월에 구속되었다가 6월에 석방됩니다.

 




이육사 님은 이후 문예활동으로 일제에 저항하는 시를 남겼는데 이 시기에 그의 주옥같은 시인 ‘광야’ ‘절정’ ‘청포도’를 1939년 ‘문장’ 8월호에 발표합니다. 중국과 국내를 자주 왕래하면서 조국 독립운동을 위해 앞장서다가 1943년 7월 돌아가신 지 1년 만인 어머니와 큰형의 첫제사에 참석하기위해 귀국했다가 서울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북경으로 이송되었으며 1944년 1월 북경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시신은 화장하여 국내로 운구되어 미아리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60년 고향 원촌마을 뒷산으로 이장했습니다. 이육사님의 41년 남짓 짧은 생애를 오직 일생을 조국광복을 위해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지만 그보다는 시인으로 더욱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육사님의 일대기를 알아가면서 평생을 오직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의 활동도 만만치 않으면서 그 상황에서도 주옥같은 작품은 어떻게 남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표작인 청포도, 황혼, 절정, 광야, 꽃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시의 작품 세계 하나하나를 생각하게 하면 말입니다. 이육사 님은 대구형무소에서 1929년 5월 출소하면서 ‘중외일보’ 기자로 근무하였습니다. 1930년 조선일보 1월 3일 자에 ‘말’이라는 시를 처음발표하면서 그의 문학 활동을 시작하려다 대구격문사건으로 다시 구속됩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에 전념하다 조선 군관학교 출신이 탄로 나자 다시 투옥되었다가 출옥하면서 문예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여러 편의 저항 시를 남기 섰습니다. 이육사님이 순국하고 광복 후인 1946년 처음으로 ‘육사시집’이 간행되었습니다. 정부는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훈장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

 


현재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는 이육사문학관이 있으며 문학관에서 2.8km 거리에 이육사 묘소가 있습니다. 다른 일정이 겹쳐져 있어서 이육사 묘소를 찾아뵙지 못하고 온 것이 지금도 많이 후회로 남습니다. 안동여행에서 독립투사로서 민족저항시인으로서 이육사 님의 모든 기록이 보관된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해 볼 것을 꼭 추천하면서 이육사 님의 시 ‘절정’의 배경지로 알려진 천길 낭떨어지 내살미 칼선대를 만나기 위해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육사문학관 사진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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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7.06.28 05:53 신고

    이육사문학관...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2. 핑구야 날자 2017.06.28 07:43 신고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니 듣기만 해도 설레이네요

  3. 절대강자! 2017.07.03 17:14 신고

    아주 오래전에 방문했던 기억이있는 곳인데...
    그때보다가 많이 변한듯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군위여행/군위가볼만한곳)김수환추기경생가. 우리나라 최초 추기경 군위 김수환추기경 생가 여행


일연선사의 삼국유사는 인각사에서 완성했으며 인각사와 각시산 여행을 하면서 겸사겸사 30km 떨어진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생가를 다녀왔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는 군위읍 용대리 산비탈에 새로 지은 초가집이 달랑한 채 있었습니다.





군위 김수환추기경 생가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238-7



작은 방이 두 개에다 부뚜막에 솥이 하나 걸려 있었으며 안방을 통하는 작은 봉창문이 붙어 있고 툇마루와 야트막한 지붕을 한 전형적인 산골의 오두막집이었습니다. 이를 초가삼간이라 하나요. 김수환 추기경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집안은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에 뿌리를 내렸으며 충청도에 천주교가 전파하던 초창기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순교자 집안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할아버인 김요한 공은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옥중순교했으며 할머니 강말손 여사는 남편이 순교하자 더욱 성심을 다해 교우들을 뒷바라지하였습니다.



김수환추기경 아버지는 부친의 순교로 유복자로 태어났고 이름은 영석에 세례명은 요셉이셨습니다. 요셉은 경상도 사목을 담당하고 대구교구 설립자이신 김보록신부의 일을 도왔다가 동학난이 일어나자 칠곡군 장자동 옹기골로 몸을 숨겼습니다.

 


이곳에서 김보록과 뮈맬 신부가 주선하여 서중하(마르띠나)와 혼인을 치릅니다. 이분이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이십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부모님은 왜관 평장목, 김천 지대골의 옹기골, 대구 남산동, 칠곡의 산나무골과 선산을 전전하다가 1922년 4월에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추기경의 형제는 모두 6남 2녀이며 군위로 이사 오던 그해에 막내인 김수환 추기경이 태어났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와 가까워졌습니다. 8살 때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옹기와 포목 행상으로 가정을 꾸렸습니다.





현재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238번지에 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는 추기경님이 다섯 살 때부터 살았던 곳이며 군위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카톨릭대학의 전신이 성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사셨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추기경의 유년기를 모두 이곳에서 보냈으며 또한, 신앙인의 꿈을 키웠던 곳이라 더욱 의미가 큰 곳으로 생전에 추기경도 당시를 떠올리시며 생가지를 가끔 찾으셨다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2009년 2월 16일 선종하셨으며 군위군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이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복원을 추진해서 지금은 막바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사랑과 나눔 정신을 계승하는 공원 조성사업 현황은 필자가 찾았을 때 생가 뒤로 추모전시관 등 여러 건물이 들어선 것을 보았습니다.







곧 수련시설, 십자가의 길, 평화의 숲이 조성된 김수환추기경 생가와 추모전시관을 만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재수 좋게 김수환추기경 생가구경을 하고 왔지만 2017년 6월 14일부터 12월 공사가 끝날 때까지 생가 출입을 제한한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공사가 끝나면 이제 완전한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를 만나시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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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238-7 | 김수환추기경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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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6.24 07:36 신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를 다녀오셨군요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2. kangdante 2017.06.26 08:02 신고

    김수환추기경의 생가가
    의외로 조촐하네요..
    덕분에 즐감합니다.. ^^

  3. *저녁노을* 2017.06.27 04:47 신고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화요일 되세요^^

  4. 공수래공수거 2017.06.27 09:22 신고

    제가 갔을때랑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군요
    아직 공사를 하고 있군요




(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월란정사. 천원 지폐 뒷면 그림 실제 모델지 겸재정선의 계상정거도 월란정사 여행.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마을에는 월란정사가 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께서 1546년 하계의 동암 뒤편인 양진암에 거처하면서 이곳 월란암을 자주 찾아 공부하고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닦았던 곳입니다. 또한, 농암 이현보 선생, 금계 황준량, 매암 이숙량 등과 함께 요성대(월란대)에 올라 시문을 나누고 꽃놀이를 즐겼던 곳으로 그만큼 주위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안동 도산면 월란정사 주소: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마을

(무허가는 아닌것 같은데 건물에 새도로주소가 보이지 않습니다.)


☞2017/06/15 - (안동여행)퇴계종택. 안동 도산면에서 퇴계 이황의 퇴계종택을 여행하다.

2017/04/07 - (안동여행)안동 하회마을 여행. 풍산류씨 집성촌인 서애류성룡의 하회마을 여행

2017/04/01 - (안동여행)퇴계태실 노송정종택과 퇴계종택. 퇴계 이황 태실인 노송정종택과 퇴계 이황 종택을 여행하다.

2017/03/29 - (안동여행)안동하회마을 충효당, 서애류성룡 종택인 하회마을 충효당을 보다.

2017/03/28 - (안동여행)하회마을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하회마을 양진당을 만나다.



퇴계 선생은 많은 제자 중에서 만취당 김사원선생께 이 아름다운 정자 터를 물려주었다 합니다. 만취당 김사원은 22세 때에 퇴계의 제자가 되었으며 간재 이덕홍과 함께 10여 년간 동문수학했던 곳으로 1860년 월란암 옛터에다 사촌 문중의 만취당 후손들이 선조의 학덕을 기리며 지은 정자입니다.




월란정사는 1909년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현재는 김사원의 의성김씨 사촌 문중 소유지만 퇴계의 진성이씨 후손들과 함께 관리하고 있다 합니다. 월란정사 가는 길은 내살미 마을에서 삭실로 가는 산길을 따라 오릅니다,

 


야자 카펫을 깔아 신발에 흙 하나 묻지 않을 정도로 잘 정리되었지만, 막상 월란정사를 찾았을 때는 허리까지 자란 잡초에다 고가의 관리가 부실한지 여러 곳이 허물어져 퇴계선생과 겸재정선의 계상정거도 소문을 듣고 찾은 월란정사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주 무거웠습니다.








퇴계선생의 월란대시

月瀾臺(월란대)     

高山有紀堂(고산유기당) 높은 산에는 모서리도 있고 펀펀한 곳도 있는데

勝處皆臨水(승처개임수) 경치도 좋은 곳은 모두 강가에 있네.

古庵自寂寞(고암자적막) 오래된 암자 저절로 적막하니

可矣幽棲子(가의유서자) 그윽하게 사는 이에게 있을 수 있네.

長空雲乍捲(장공운작권) 넓은 하늘에 구름이 별안간 걷히니

碧潭風欲起(벽담풍욕기) 짙푸른 소沼에 바람 일 것 같네.

願從弄月人(원종농월인) 바라노니 달을 즐기는 사람을 쫓아서

契此觀瀾旨(계차관난지) 이 물결 이는 것을 관찰하는 취지에 부합하고자 하네.”

오묘한 한시 풀이를 할 수 없어 카페 '도산서원박약재(http://cafe.daum.net/dosanseowon)' 이동구님의 퇴계선생 월란대 시판 해석을 옮겨왔습니다.



















이곳 월란정사가 있는 월란대는 겸재 정선이 그린 계상정거도의 실제 모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겸재정선은 퇴계 선생을 추모하여 세 차례나 이곳을 찾아와 '계상정거도'를 완성했으며 대한민국 천 원권 지폐 뒷면에 나오는 그림입니다.





이곳을 방문 시에는 반드시 천 원권 지폐를 지참해서 서로 비교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월란정사 앞 천길 단애인 월란대에서 천 원권 지폐를 들고 맞추어 봤는데 지폐 속의 모습과는 조금은 달라 보였습니다. 아직 그림 보는 눈이 많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월란정사는 도산서원에서 5리 거리에 있습니다. 동향에 낙동강을 보며 앉은 품새와 정자를 두른 왕모산의 산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퇴계 선생의 도산 서당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월란정사는 경사진 산을 깎아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다 막돌로 된 초석을 놓고 전면의 네 기둥은 두리기둥을 나머지는 사모 기둥을 세웠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이며 가운데 1칸은 마루를 넣고 좌우 양쪽은 1칸의 온돌방을 각각 꾸몄으며 전면에 반 칸의 툇마루를 길게 달아내었습니다.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http://cafe.daum.net/jangdalsoo/)’에서 낙민님의 월란정사의 이만각 중건기 해석을 참고하면 동쪽 방은 은구재(隱求齋) 가운데 마루는 월영헌(月映軒)이라하고 서쪽 방은 관선재(觀善齋)라하였습니다.



은구재와 관선재는 퇴계 선생이 써 준 주자의 무이잡영에서 따왔으며 마루의 월영은 퇴계선생이 서림원에 화답해 쓴 시인 “산 위의 달이 외로운 이불 비추는 것을 스스로 가련하게 여기네”에서 따왔다 합니다. 편액 또한 “달빛이 여울에 아름답게 비춘다”는 뜻에서 월란정사(月瀾精舍)라 하였습니다. 실제 이곳에서 낙동강을 내려다보면 여울 속에 들어간 또 하나의 달이 월란정사를 아름답게 비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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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 월란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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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7.06.23 05:56 신고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2. 핑구야 날자 2017.06.23 07:41 신고

    지폐에서 보던 곳을 직접 보셔서 겠어요

  3. 공수래공수거 2017.06.23 09:18 신고

    저도 이런곳 찾는걸 좋아하는데 다음번 안동 여행시는
    천원권 지폐들고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퇴계종택. 안동 도산면에서 퇴계 이황의 퇴계종택을  여행하다.


안동 도산면에 갔다가 퇴계종택을 보고 왔습니다. 퇴계종택은 지난겨울에 도산서원하고 함께 찾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구경을 하지 못했습니다. 도산서원은 관리인이 늦었다고 막아서고 퇴계종택은 후손이 살고 있어 늦은 시간 실례가 될 것 같아 대문 앞에서 그만 발길을 돌렸습니다.







 1982년 12얼 경상북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

안동 퇴계종택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68-2(백운로 268)



2014/06/10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2014/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와룡산, 천하를 호령하던 용이 몸을 뉘며 쉬었다는 와룡산에서 안동호의 한반도 지형을 만나다

2016/05/19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2016/05/24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그래서 이번에 안동시 도산면을 다시 가면서 그때 보지 못했던 퇴계종택을 여행함으로써 당시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도산면에는 많은 건축 문화재가 퇴계 이황 선생과 관계가 있습니다. 퇴계 태실, 도산서원, 퇴계종택, 퇴계 이황 묘 등 하도 많아 열거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안동의 풍천면은 하회마을 풍산류씨 류성룡이 있다면 도산면은 진성이씨 퇴계 이황이 있습니다. 퇴계 이황 종택은 도산서원과 산 하나를 경계로 하고 있으며 대략 3km 거리인 토계리에 있습니다. 원래 퇴계종택은 한서암 남쪽에 동암 이안도선생이 지었습니다.





1715년인 숙종 4년에는 정자인 추월한수정도 지어 진성이씨 퇴계종가의 변모를 크게 세웠습니다. 그러다 10세손인 고계 이휘녕이 종택은 따로 두고 건너편에다 새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 후인 1907년에 왜병이 집에다 불을 질러버리는 바람에 두 곳의 종택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현재의 퇴계종택은 1923~1926년 사이 13대 후손인 하정 이충호가 임씨가의 종택을 새로 매입해서 재건한 집이며 추월한수정도 그때 옛 방식으로 새롭게 세웠습니다.








현재 퇴계종택은 면적이 600평(2,119㎡)이며 영역은 솟을대문이 2개로  대문채가 각각 5칸이고 앞면 6칸에 옆면 5칸의 ‘ㅁ'자 형태인 정침영역, 그리고 추월한수정 영역에다, 정침과 추월한수정 뒤로 사당 영역으로 구분하며 총 34칸 규모입니다.





먼저 대문채는 가운데다. 솟을대문을 넣고 양쪽에는 온돌방을 2칸씩 넣었습니다. 사랑채 앞의 마당을 가로지르면 일자 형태인 사랑채입니다. 안채보다 기둥 간격을 좁게 하였으며 앞면 7칸에 옆면 2칸 규모입니다. 정면에서 보면 왼쪽 4칸은 앞쪽에다 툇마루를 달고 계자난간을 돌렸습니다.











툇마루 뒤로는 사랑 마루와 사랑방을 각각 2칸씩 넣었습니다. 오른쪽 3칸은 책방과 작은 사랑방 그리고 서향을 한 툇마루가 있습니다. 사랑채와 붙은 안채를 보겠습니다. 안채는 앞면 6칸에 옆면이 2칸이며 현재 후손의 살림집으로 출입 및 관람 할 수 없습니다.

 

퇴계종택 사당영역



대청마루를 두고 왼쪽에는 앞뒤로 통칸의 방이며 오른쪽 안방 2칸은 양쪽으로 문이 열리는 통 칸인 데다 앞쪽에 툇마루가 달려있어 그 폭만큼 물러나 방을 넣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하는 동익사는 중문간·광·방·문간이고 서익사는 창고·방 2개·문간이 각 1칸씩 들어가 있습니다.





사랑채와 안채는 한옥 구조로 모가 난 도리를 써서 지은 민도리집이며 사모(사각) 기둥에다 5량 가로 종보에서 중도리를 받쳐주는 제형 판대을 올린 기와 건물입니다. 옆의 정자인 추월한수정은 자연석 기단에 좌우로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앞면은 5.5칸이며 옆면은 2.5칸으로 일자형의 기와 건물입니다.



대청마루 서편은 1칸과 1.5칸의 온돌방을 앞뒤로 넣고 동편은 동서로 2칸 통방을 앞과 뒤로 배치하고 앞면에 반 칸의 툇마루를 길게 달았습니다. 앞면의 기둥과 대청 배면의 가운데에는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사랑채와 안채와 마찬가지로 5량 가에 제형판대공을 올린 민도리집입니다.





그 뒤쪽의 화강석 기단 위에는 사당이 있습니다. 퇴계종택이지만 실제로 퇴계 이황이 살았던 집은 아닙니다. 퇴계 종택은 그의 후손에 의해 오늘날까지 종가로서의 위엄을 갖추며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안동 도산서원 여행 시 함께 둘러보면 좋습니다.

 



참고:디지털 안동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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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68-2 | 퇴계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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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6.15 07:51 신고

    퇴계 종택 은 처음 봅니다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2. *저녁노을* 2017.06.16 05:26 신고

    구경 잘 하고 공감하고 가용.ㅎㅎ

    즐거운 주말 되세요

  3. 공수래공수거 2017.06.19 14:23 신고

    전 문이 잠겨서 안은 들어가 보질 못하고 바깥에서만
    보고 왔었습니다




(통영여행/통영가볼만한곳)경남 민간정원 2호 해솔찬정원, 40년을 자식같이 가꾼 자연 동산 민간정원 해솔찬정원


경남에는 산림청으로부터 민간정원이 3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남해에 2개가 있는데 섬이 정원과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이며 나머지 1개는 통영에 있습니다.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정원은 통영의 해솔찬정원이며 경남 민간정원 2호에 등록된 곳이기도 합니다.





통영 해솔찬정원 주소:경상남도 통영시 도산면 저산리 도산일주로 731

통영 해솔찬 정원 전화 010-9643-0564


2017/05/30 - (남해여행/남해가볼만한곳)민간정원 남해토피아랜드. 동화속 같은 그림 궁전 민간정원 남해토피아랜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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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 (경남여행/통영여행)벽방산 안정사. 한산무송 벽방 8경의 소나무를 보며 벽방산 안정사에서 힐링을 하다.





이곳 통영시 도산면 출신인 쥔장이 40여 년 전부터 가꾸어 오늘날과 같은 정원을 만들었다 합니다. 초창기에 굴착기를 동원해 출입하는 길만 내고 나머지는 호미와 곡괭이로 돌담도 쌓고 직접 다듬고 가꾸었다 합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인위적 느낌보다는 자연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전원주택의 정원 같은 느낌이라 더욱 정감이 갔습니다. 특히 해솔찬정원은 분재며, 야생화 등 정원내의 식물은 모두 두손으로 자식같이 가꾸었다 하니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살림집인 입구에 해솔찬안내도가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먼저 꽃마당이라 불리는 작은 마당은 패랭이꽃이 지천으로 핀 꽃밭이었습니다. 그리고 산책로에는 직접 잔디를 심어 요즘 같은 무더위에도 녹음방초 숲이 우거져 그리 덥지 않았습니다.









분재 같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단풍나무,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며, 감나무가 드문드문 뿌리를 내린 쉼터에는 2동의 오두막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나무로 지은 오두막이 여름용이라면 반대로 안쪽에 돌로 지은 건물은 온돌도 깔린 게 겨울용이라 했습니다. 널브러진 바위와 잔디, 그사이에 핀 이름 모를 꽃과 나무를 보면서 해솔찬 주인의 세심함 성격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되도록 손을 대지 않고 자연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는 해솔찬정원. 현재 해솔찬의 식물과 나무의 90%는 씨를 뿌렸거나 아니면 어린나무를 심고 분재하여 지금은 장성한 나무가 되었으며, 나무 한 그루 마다 40여 년의 연륜이 묻어나는 듯했습니다.

 




해솔찬에는 300여 평의 차밭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찻잎을 따와 투박한 가공과정을 거치며 감나무 쉼터에서 관람객에게 차로 내 놓기도 합니다. 전통차도 마시고 짜릿한 소금기가 밴 바다를 보면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해솔찬에서 힐링의 기쁨을 느껴보세요.

 


통영 민간 정원 해솔찬 사진으로 구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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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통영시 도산면 | 해솔찬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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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6.03 08:01 신고

    사십년이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이군요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네요




(남해여행/남해가볼만한곳)남해 섬이정원, 저도 이런정원 갖고 싶어요. 선녀도 심쿵한다는 유럽식 정원 섬이정원 


남해군 남면 밤내골짜기의 열두 마지기 다랑논에 보물섬 남해 속의 진짜 보물인 섬이정원이 있습니다. 섬이정원에서는 에메랄드의 청정 바다가 내려다보입니다. 오래된 돌담에다 연못을 만들고 다양한 식물을 심어 자연의 모습과 잘 어우러진 정원을 꿈꾸었던 쥔장이 서울 생활을 접고 벽촌에 내려와 만든 민간정원입니다.





남해 섬이정원 주소: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남면로 1534-110

남해 섬이정원 전화:010-2255-3577


2017/05/30 - (남해여행/남해가볼만한곳)민간정원 남해토피아랜드. 동화속 같은 그림 궁전 민간정원 남해토피아랜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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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2 - (경남여행/남해여행)남해 금산 산행. 한국인이라면 한번은 꼭 가야 할 남해 명산 금산 두모계곡~금산정상~보리암~쌍홍문 코스 산행

2015/10/12 - (경남여행/남해여행)어느덧 가을 빛이 찾아든 해안가 둘레길 남해 다랭이 지겟길을 걸었습니다. 남해 다랭이 지겟길

2015/11/02 - (경남여행/남해여행)남해 가인리 화석산지. 남해 창선면 여행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을 만나보세요. 남해 가인리 화석산지





무인매표소


무인판매기


섬이정원입구 돌다리



돌담을 쌓고 논을 갈아엎어 나무를 심고 하며 5년을 각고의 노력으로 일군 정원이 있다고 해서 남해토피아랜드와 함께 여행하고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민간정원을 법으로 정해놓았습니다. 섬이 정원은 경상남도 민간정원 1호에 산림청에 등록되었으며 1호의 명성답게 섬이 정원은 자연의 품속 같은 아늑함과 포근함이 느껴졌습니다.





다랑논의 높낮이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만들어낸 산책로와 정원은 단조로움을 없애려고 9개의 공간으로 꾸몄으며 그에 어울리게 각각의 작은 정원은 하늘의 선녀도 내려와 쉬어가게끔 아름답게 만들어졌습니다. 정원마다 개성을 두었기에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여행객은 다음 구간을 기대하면 심심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섬이 정원은 작은 연못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습니다. 모든 연못에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에 맞추어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여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합니다. 봄에는 수선화와 튤립 그리고 라벤더. 꽃창포, 꽃양귀비 등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여름에는 수국이 지천으로 피어 다른 식물과 하모니를 이루며 천상의 화원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합니다.

 




가을은 꿀풀과로 유럽이 원산지인 세이지의 보랏빛이 억새와 어울려 사색의 계절인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가을빛으로 물들게 만들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섬이 정원. 겨울에는 무슨 꽃 하겠지만 붉은 동백꽃과 호랑가시 열매가 정원의 돌담과 함께 절묘한 조화를 만들어내어 고요한 겨울을 깨우며 관광객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섬이 정원 가는 길은 다랭이 마을로 유명한 가천마을을 향하는 1024번 지방도에서 갈라집니다. 우뚝 솟은 암봉의 망기산을 휘감고 꼬불꼬불 오르는 1.2km의 시멘트 길은 자동차가 딱 한대만 다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중간중간 교행 장소를 만들어 놓았으며 이정표를 따라 골짜기 안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전망이 열리고 다랑논이 펼쳐집니다.







이 높은 곳까지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을 보면 전답이 부족한 섬마을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섬이 정원 입구의 제법 큰 주차장에 무인매표기를 갖춘 매표소도 있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하얀색 강아지 두 마리와 까만색 강아지가 꼬랑지를 흔들며 반갑다고 나타났습니다.

 




하얀색 강아지는 ‘쌀’과 ‘밀’이름을 가진 섬이 정원의 강아지라면 까만색은 주인 없는 떠돌이 강아지인데 섬이 정원 쥔장도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5km 거리의 사촌마을 강아지였습니다. 아마 섬이 정원의 이쁜 강아지가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거리도 엄청나게 멀고 산속까지 찾아간 것을 보면 강아지도 사랑에는 거리가 문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섬이 정원에서 쌀과 밀은 길 안내 담당이며 종일 산책로를 쪼르르 다니며 안내합니다. 전체적인 거리는 대략 600m이며 나뭇가지를 엮은 문과 연못에 걸린 아치형 다리, 공중전화부스와 곳곳에 벤치를 만들어 휴식과 함께 사진을 찍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입구에서부터 빨간색 화살표 방향을 따라가면 섬이 정원 산책로를 한 바퀴 돌 수 있게끔 만들어졌으며 중간에 오두막에는 무인 카페도 마련해 놓아 쉴 수 있게 했습니다. 섬이 정원의 핵심은 검은색 조형물과 사각 연못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이 섬이 정원에서 가장 높은 곳이며 설흘산의 바위와 멀리 보이는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게 액자에 간직하고 싶은 멋진 전망을 연출하는 곳입니다. 블로그에 올려진 이사진 한 장을 보고 무작정 길을 떠나오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섬이 정원에서 꼭 한번 찾아보세요.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에 마음마저 편안해지는 섬이 정원 가천암수마을인 가천다랭이마을 여행 시 참고하세요. 승용차와 12인승 봉고는 섬이 정원주차장까지 갈 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사진으로 섬이정원 구경해보세요





































무인판매소에서 뽑은 표는 이곳에서 반납하세요. 












가천다랭이마을


섬이정원입장료

섬이정원 관람료 일반과 남해군민으로 나누어지며 

일반은 성인 5천원, 경로 4천원, 청소년·군인 3천원, 어린이 2천원

남해군민은 어른 1천5백원, 청소년·군인 1천원, 어린이 5백원

입장시간:일출에서 일몰시까지

섬이정원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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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남면 평산리 888-4 | 섬이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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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위의 풍경 2017.06.02 05:54 신고

    조용히 산책하기 좋겠어요.

  2. 핑구야 날자 2017.06.02 07:52 신고

    정말 심쿵 하게 만드네요 잘 꾸며 오는 사람들마다 기분 좋게 구경하고 가겠군요




(남해여행/남해가볼만한곳)민간정원 남해토피아랜드. 동화속 같은 그림 궁전  민간정원 남해토피아랜드정원


조금은 생소한 이름인 민간정원이 있습니다. 정원이라 하면 ‘집 안에 만든 꽃밭’ 정도로 이야기합니다. 자연을 가까이하기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사군자인 매·난·국·죽을 가까이하며 집안에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에 폭포도 만들고 소나무, 대나무를 심고 쉴수 있는 정자도 만들었습니다.






남해토피아랜드정원 주소;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서부로 270-106(해바리마을)

남해토피아랜드정원 전화:055-867-1182


2013/05/19 - (경남여행/남해여행)가천암수바위. 남여의 모습이 너무 적날한 가천암수바위

2013/05/20 - (경남여행/남해여행)108층 빌딩 높이의 다랭이 논에 깜짝 놀래. 남해 가천 다랭이 마을

2013/05/24 - (경남여행/남해여행/남해바래길)남해에만 볼 수 있는 해안길에 저절로 힐링이 된다는 둘레길 다랭이 지겟길

2013/06/01 - (경남여행/남해여행)환상의 해안길 이보다 좋을 수 없다.남해바래길 말발굽길.

2014/03/25 - (경남여행/남해군창선도여행)남해바래길 고사리밭길, 봄맞이 힐링 걷기는 환상의 남해 고사리 밭길이 최고예요. 남해 바래길




떨어지는 물소리에,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의 사각 그리는 소리에, 부러질 듯 흔들거리는 꽃을 보고 선비들은 정자에서 시를 짓고 노래하며 그 감흥에 흠뻑 취했습니다. 흔히 우리나라 3대 민간정원의 풍경이며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세연정, 영양의 서석지를 두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개인이 만든 민간 정원이 조금은 바뀐 것 같습니다. 조선 시대의 민간정원은 본인과 지인이 보고 즐기기 위해 만들었다면 오늘날은 사적으로 만든 정원인데 법적으로 민간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개방 했다는 점입니다.

 


순천만이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국가공원 1호라면 민간정원은 현재 산림청에 등록된 게 총 8곳입니다. 아름다운 민간정원 1호에는 충남 천안의 ‘아름다운 정원 화수목’이며 2호는 제주도의 ‘생각하는 정원’, 경남 3곳과 전남 2곳, 충북 1곳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간정원인 소쇄원, 세연정, 서석지는 모두 여행 삼아 보고 왔는데 2015년에 지정된 민간정원은 어떠한 모습인지 궁금하여 부산과 가까운 경남의 민간정원 3곳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경남의 민간정원 1호는 남해의 섬이정원이며. 2호는 통영의 해솔찬정원 3호는 남해의 남해토피아랜드정원입니다.



경남의 민간정원 중에서 현재까지는 막내인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을 먼저 만나 보겠습니다. 풀하나 돌멩이 하나라도 자연 상태를 유지하려는 해솔찬 정원과 섬이공원하고는 아주 다른 분야라 생각되었습니다.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울타리의 나무를 전정해서 거북이 호랑이 등 다양한 사물의 모양을 만드는 일을 토피어리라 하는데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은 꽝꽝나무를 이용하여 수많은 형태의 토피어리로 만든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해 토피아랜드정원은 경남 남해군 창선면 지족리와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올 4월 말에 정식 민간정원으로 개방했습니다. 쥔장이 15년 전부터 계획을 세워 나무를 심고 하면서 기반을 다졌고 2년 전에 계단식으로 토목공사를  마무리 했습니다. 거기서 나온 돌을 가지고 1.5km의 돌담을 쌓았는데 꼭 다랭이 정원을 보는 듯합니다. 이 모든 게 쥔장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년 전부터 만들 모양을 생각하고서 나무에 줄을 묶고 이리 당기고 저리 매달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모양이 잡힌 꽝꽝나무에다 전정 작업을 하였습니다. 거북이, 공작, 공룡, 십이지신 등 우리와 아주 가까운 동물과 모양이라 누구나 쉽게 호감도 가고 알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들도 좋아하는 호빵맨, 라바, 뽀로로, 코코몽 등 여러 가지 만화 캐릭터에 부모님의 손을 잡은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온 가족이 앉아 와인을 즐기는 모습인 토피어리도 있으며 죽은 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조각품을 보면서 꿈과 상상의 나래를 마음대로 펼칠 수 있었습니다.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약 3천 평의 넓이에 조성된 편백숲입니다.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은 바닷가에 조성되어 있어 이날 높은 습도와 무더위에 몸이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그런데 편백숲에 들어섰더니 바로 청량한 공기 때문인지 금방 정신이 맑아 왔습니다. 지쳤든 온몸은 어느새 정신이 돌아왔으며 시원함에 힐링으로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이는 편백숲의 자랑인 피톤치드로 샤워한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평상과 의자로 쉼터를 만들어 놓아 심신의 피로를 씻을 수 있으며 남해토피아랜드정원에서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지족해협 건너편은 남해도 본섬이며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와 에메랄드 바다의 그림 같은 풍경은 덤이며 각가지 형태의 토피어리에 바다와 함께 꼭 외국의 휴양지 풍경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곳에다 곧 맨발체험장도 만든다하니 더욱 기대되었습니다. 그때 다시 와서 답답한 양말과 신발을 벗고 발에 자유를 주며 걸어야겠습니다. 편백숲에서 떠나기가 아쉬워 한참을 느긋하게 휴식하며 즐기다가 편백숲에 조성한 둘레길을 따라 대칭공원의 유럽왕궁을 보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산책로 좌우로 다양하게 만든 토피어리와 최근에 완공한 살림집이자 휴식공간이 함께 어울린 게 액자 속의 풍경 같았으며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같이 토피어리 작품 하나하나에 주인장의 예술 감각과 피땀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으며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을 여행하고 눈은 호강하며 가슴으로는 몸에 좋다는 청정의 피토치드를 한껏 담아왔습니다.







남해토피아랜드정원 입구에는 매표소가 있습니다. 입장료는 일반 5천원, 청소년·군인·경로 4천원, 어린이 3천원. 30인 이상 단체와 군민은 신분증 제시시 일반 4천원, 청소년·군인·경로 3천원, 어린이 2천원. 3급이상 장애인은 1인 동반자 포함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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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 남해토피어랜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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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5.31 07:44 신고

    남해를 가본 지가 벌써 일 년이 넘었군요 한번 가고 싶어지네요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군 마천면 고담사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 노래하는 심진스님이 있는 고담사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


지리산을 품고 있는 구례와 하동은 화엄사와 천은사, 쌍계사. 연곡사 등 여럿 천년고찰에서 국보를 비롯한 많은 불교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이에 지리산을 하나의 불교의 상징물로 보기도 합니다. 그만큼 남부 지리산에는 많은 불교 문화재가 남아있는 데 반해 이번에 여행했던 함양군은 넓고 깊은 지리산을 품고있지만 지리산에 남아있는 불교 문화재는 겨우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함양 마천 고담사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 주소: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766

함양 마천 고담사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 전화:055-962-5154


2008/10/13 - (경남여행/함양여행)지리산 칠선계곡 비선담 단풍 여행. 지리산 칠선계곡의 비선담에도 붉은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2008/10/17 - (경남여행/함양여행)지리산 칠선계곡 산행. 3시간짜리 칠선계곡을 더 길게 산행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2008/10/25 - (경남여행/함양여행) 지리산 칠선계곡 벽송사 서암정사 여행. 서산 사명대사를 배출한 지리산 벽송사와 불교예술의 서암정사를 만나보세요.

2008/11/15 - (경남여행/함양여행)함양 오봉산(상산)~천령산 산행, 함양의 공룡능선 오봉산의 바위능선를 함 타보세요

2010/03/14 - (경남여행/함양여행)지리산 휴천 법화산 법화사. 지리산 천왕봉의 바람소리도 정겹게 들리는 법화산의 법화사

2016/08/26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화림동계곡 군자정. 일두 정여창이 유영하였다는 영귀대 암반에 새운 군자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가는 여름을 잡아보다. 함양 군자정





구례와 하동과 같이 함양과 남원에서도 엄천사지 등 큰 규모의 절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모두 폐사지가 되어 그저 전설처럼 전해옵니다, 그러다보니 남아 있는 불교 문화재는 거의 전멸한 상태입니다. 겨우 찾을 수 있었던 게 벽송사의 삼층석탑과 남원 실상사의 철불이며 이번에 찾았던 고담사의 마애불 정도입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듯 화사하고 밝은 모습의 마애여래불은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가는 거 같습니다.







고담사는 한 때 노래로 공양을 짓는 심진 스님이 머물렀던 사찰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사찰이라하기에는 정말 아담한 절집입니다. 관음전 건물과 심진스님이 머물렀다는 작은 건물이 고담사의 전부입니다. 스님은 이른 16세에 불교에 입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앙승가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였으며 고담사의 마애불을 모시고 즐기는 노래로서 포교활동을 하려고 지리산에 들어오셨다가 지금은 경기도 파주의 보광사 주지로 가셨습니다. 가까이는 지리산 천왕봉이 웃는 듯 화사한 모습에 더욱 친근감이가는 작은 절집 고담사.

 




조선 시대까지는 이곳에 덕봉사란 사찰이 있었다 하며 이곳을 절골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봉황이 알을 품는 형상에 자리한 덕봉사는 조선 중기까지 남아 있었다지만 어떤 연유로 함양덕전리마애여래불만 덩그런 이 남고 폐사되었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래도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은 지리산 천왕봉을 보며 천년의 세월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은 앞으로 넘어질 듯한 커다란 사각의 돌기둥 한 면을 깎아 불상을 조각했습니다. 그 모습은 멀리서도 느낄 정도로 독특했습니다. 높이만 해도 5.8m이며 거대한 대불에 몸체와 연꽃 대좌, 그리고 화려한 광배까지 모두 보여주는 완벽한 모습입니다. 큰 불상답게 이목구비가 시원한데 얼굴이 넓으면서 큼지막하여 수려한 외모를 가진 신체 건강한 남성미를 느끼게 합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삼도가 있습니다. 직사각형의 큰 몸체와 큼지막한 발은 거대한 불상을 잘 보여주지만 긴 하체에 비해 상체는 상대적으로 짧은 모습입니다. 또한, 손은 큼지막한 발에 비해서 아주 작게 표현해 석불의 비례가 잘 맞지 않는 모습입니다.

 




목 중앙의 가슴에 뒤집어진 형태의 스카프는 꼭 망토를 걸친 듯하며 통견의 불의는 배와 다리에 U자형 옷 주름이 접어 내린 형태로 고려 초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배에는 구슬을 꿴 모양인 연주문과 불꽃무늬를 새겼고 연꽃좌대을 받치는 탑의 기단부 기둥 모양 등은 고려 초기 마애불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품이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100번 듣는거 보다는 한번 보는게 낫다고 함양 마천 지리산 여행에서 고담사의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을 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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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766 | 고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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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5.27 07:46 신고

    요즘 같은 시기에 정말 가볼만한 곳이군요 보내 잘 보고 갑니다

  2. 핑구야 날자 2017.05.29 07:36 신고

    불공드리러 오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잘 보고 갑니다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지리산조망공원휴게소.  지리산 전망대는 바로 여기요? 지리산조망공원휴게소


지난 4월 말경에 함양 쪽 지리산 자락을 둘러보는 여행을 했습니다. 그때 남부지방에는 벌써 다 떨어진 벚꽃이 함양 마천면에서는 그제서야 한창 화려하게 타올랐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지리산 골짜기라 역시 춥기는 춥은 날씨 임을 새삼 느꼈습니다. 함양 요금소를 나와 점필재 김종직과 남명 조식 등 수많은 선비가 지리산을 찾을 때 올랐다는 지리산 길을 저는 차를 타고 따랐습니다.

 

 

 

지리산조망공원휴게소 주소: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 산 60-2

지리산조망공원휴게소 전화:055-962-8544

 

2016/08/26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화림동계곡 군자정. 일두 정여창이 유영하였다는 영귀대 암반에 새운 군자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가는 여름을 잡아보다. 함양 군자정

2016/08/29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선비길 화림동계곡 거연정. 선비의 고고한 기풍이 느껴지는 함양 화림동 계곡 거연정에서 가을 하늘을 만나다. 함양 거연정

2009/08/13 - (경남여행/함양여행)오도재 지암재.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 함양 지암재

2010/03/14 - (경남여행/함양여행)지리산 휴천 법화산 법화사. 지리산 천왕봉의 바람소리도 정겹게 들리는 법화산의 법화사

2008/10/25 - (경남여행/함양여행) 지리산 칠선계곡 벽송사 서암정사 여행. 서산 사명대사를 배출한 지리산 벽송사와 불교예술의 서암정사를 만나보세요.


 


먼저 가루지기의 전설이 있는 옥녀와 변강쇠의 이야기를 지나면 꼬불꼬불한 고갯길로 아흔아홉 고비를 돌아야 한다는 지안재입니다. 지안재를 지나면 당시 한창 공사 중이었던 지리산 제일 관문인 오도재, 서산대사의 제자였던 청매 인오조사께서 이 고갯길을 넘어 지리산을 다니다 도를 깨우쳤다 하여 오도재라 이름하였습니다.



오도재를 넘어서면 비로소 장엄하다는 말밖에 형언할 수 없는 지리산 주 능선이 열두 폭 병풍처럼 한일(一)자로 길게 이어집니다. 과연 지리산이구나 하는 말이 탄식처럼 흘러나왔습니다. 지리산을 보는 조망처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리산을 가장 지리산답게 볼 수 있는 조망처는 몇 군데 없으며 오래전부터 지리산 8대라 하여 지리산 조망처를 정해 놓았습니다.



그 1대가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라는 마천면의 금대입니다. 2대는 마적대, 3대는 문수대, 4대 연화대, 5대 묘향대, 6대 만복대 7대, 수성대 8대 청신대이며 모두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과 반야봉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또한, 영험한 기도처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믿는 많은 신인이 이곳을 찾아 수행하며 도를 깨우쳤다 합니다.



지리산 8대 중 1대인 금대는 지리산 제일 관문인 오도재 옆인 금대봉에 있습니다. 신라말 풍수설의 대가로 알려진 도선국사는 지리산 금대봉에 올랐다가 천하명당 금대를 찾아내고 기뻐서 7일 동안 춤을 추었다 합니다. 그만큼 천왕봉과 마주한 금대의 지세가 대단해 도선은 이곳에다 금대암을 창건했습니다.

 


그 지리산 제일 전망대인 금대와 오도재 사이의 1023번 지방도에 새롭게 떠오르는 지리산 전망대가 있습니다. 호사가들은 지리산 9대에 포함할 정도라며 대단한 조망처로 치켜세웁니다. 함양에서는 이곳에다 지리산 조망공원휴게소를 조성해 놓았으며 민족의 영산 지리산 조망 안내도와 누구나 쉴 수 있는 정자인 지득정, 그리고 지리산을 찾았던 많은 분이 남긴 시비를 세웠습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천왕봉’은 “하늘과 땅과 풀이 그 어느 해에 처음 열려서 두류산을 준비하여 저 하늘을 떠받치었는가. 층계 진 언덕 그늘에는 봄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에 산 아래 구름 끼니 낮인데도 잠을 자고 싶구나”하며 지리산을 노래했습니다.

 




또한, 지리산 벽송사에 주지로 있었던 벽송인 배구한 원응스님은 이른 아침에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 시를 남겼는데 ‘천왕봉에 올라 아침 경치의 장관을 읊다 ’입니다. “칠선골 맑은 물에 세상 티끌 씻어내고/천왕봉에 올라서니 웅장한 기운 이는구나/굽어보니 우뚝우뚝 일천산 봉우리요/구름바다는 아득히 만리에 돌아드네!”라며 빗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지리산의 웅장함을 노래하였으며 이른 아침 천왕봉을 올라보고 세상을 내려다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숙재 강희맹의 ‘내고향’에서 “지리산 높이 솟아올라 만길이나 거대한데/그 산속에 묻힌 옛 고을 함양이라 이르네/화장사 옛 절터 지나서 엄천으로 가는 길에/푸른 대밭 띳집 있는 곳 거기가 내 고향일세”라는 시를 음미해보면 머릿속에 사숙재 강희맹의 아름다운 고향길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문동도의 지리산은 “넓고 넓은 그 위에 또 겹쳐 광대한 모습/그렇게 아득히 세속 먼지 벗어났네/꽃이 떨어져 계곡에는 비단 같은 물 흐르고/구름 생기나니 구렁에 자리를 펼쳤네!”라며 시구에 붓이 저절로 움직일 정도라며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무릉도원에 비유하며 칭송하고 평화스러운 지리산을 노래했습니다.







함양 지리산 조망공원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며 첩첩이 포개진 봉우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지리산의 실핏줄 같은 계곡이 바라보입니다. 모두가 아흔아홉 골이라는 지리산의 골짜기를 필자는 하나하나 세어보며 골짜기마다 숨은 내력을 음미해 보고는 대지리산의 새로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리산을 인자하고 푸근한 어머니에 비유합니다. 그만큼 지리산의 품은 넓고 광활하여 올해 전부터 천왕봉은 하나의 신성한 경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에 지리산 천왕봉에는 천왕 성모를 조각한 바위를 모셨으며 이를 지리산을 관장하는 마고 할미라 했습니다. 천왕봉을 지켰던 마고 할미는 대단히 영험하여 그를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전설로만 남아 있는 성모상을 함양군에서는 지리산 천왕봉 조망 전망대에 국태민안의 발원지로 정해 천왕성모인 마고할미상을 따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지리산을 상징하는 반달곰 가족도 함께하여 이제는 함양의 아름다운 지리산 조망공원이 지리산 천왕봉 최고의 전망대라 해도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함양 지리산조망공원휴게소에서 장엄한 지리산의 파노라마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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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 | 지리산조망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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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위의 풍경 2017.05.08 18:50 신고

    산행간지가 오래라. ㅎㅎ 부럽습니다.^^

  2. *저녁노을* 2017.05.10 04:25 신고

    여기도 전망 좋지요.
    ㅎㅎ
    잘 보고갑니다.

    행복한 수요일 되세요^^

  3. kangdante 2017.05.10 07:24 신고

    징감다리 연휴와 선거도 끝나고
    이제 세로운 일상의 시작입니다..
    여유롭고 편안한 하루되세요.. ^.^

  4. 핑구야 날자 2017.05.10 08:15 신고

    지리산에 가본지도 오래 됐네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5. 공수래공수거 2017.05.10 09:29 신고

    차를 타고 볼수 있는 전망대로군요^^




(영덕여행/영덕가볼만한곳)상대산 관어대, 목은이색의 영해 상대산 관어대에서 송천의 물고기를 헤아리다. 


동해를 따라 올라가면 영덕군의 긴 해안선이 바다와 접하며 수많은 해안단애의 절경을 빚어 놓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고래불해수욕장이 있는 영해면은 목은 이색 선생이 남긴 발자취가 여러 곳 남아 있습니다. 목은 이색 선생은 영해면 괴시리에서 태어났으며 마을 앞을 가로막은 상대산에 자주 올랐습니다.





상대산 관어대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 


☞2017/03/11 - (영덕맛집)이게 대게원조마을 인정. 영덕대게 원조마을인 차유마을 용진호 선주집에서 싱싱한 대게를 먹고 왔습니다.

2017/03/21 - (영덕여행)의병장 신돌석장군 생가와 기념관인 유적지. 신돌석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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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3 - (경북여행/영덕여행)영해 괴시리전통마을. 7번 국도 여행. 목은 이색선생 유허지가 있는 조선시대 양반마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전통마을에서 고가 구경하세요.

2015/09/02 - (경북여행/영덕여행)영해 괴시리 목은 이색선생 유적지. 고려삼은중 한 분인 목은 이색선생 생가터 무가정과 목은 기념관을 여행하다.

2013/11/29 - (경북여행/영덕여행)블루로드 축산 죽도산 전망대. 동해의 전망대로 대나무가 많아 죽도인 죽도산 등대 전망대







푸른 동해가 끝없이 펼쳐지고 명사 이십 리의 고래불 해수욕장이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빼어난 전망대에다 이색선생은 관어대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선생은 바위 절벽을 내려다보며 “송천에서 노는 고기를 헤아릴만하다”는 뜻으로 그만큼 맑은 물과 주위의 절경이 빼어남을 뜻합니다.





지금이라 보기 힘들지만 망망대해의 바다에 고래 무리가 물을 뿜으며 유영하는 모습은 벅찬 감동이었을 것입니다. 이곳에다 이색 선생은 고래불의 지명을 붙였습니다. 영해와 병곡평야, 곰솔의 소나무 방풍림이 한 폭의 진경산수화와 같은 명승 절경이라 고추선 산길에 고생하며 올랐지만 그 감회는 남달랐고 가슴까지 차오르는 벅찬 감동은 관어대에 오른 나에게 큰 희열을 느끼게 했습니다.







‘관어대(觀魚臺)’는 정상 서편 아래 절벽에서 “송천에 물고기가 헤엄쳐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셀 수 있다”하여 오래전부터 동해안의 최고 절경지로 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와 글을 남겼습니다.





목은 이색 선생 또한 ‘관어대소부’를 지어 중국에까지 관어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했으며, 조선 시대에 와서는 성리학의 태두셨던 점필재 김종직이 관어대에 올라 ‘관어대부’를 짓고 그를 따르는 후학들에게 관어대의 빼어난 경치를 설파했습니다.





이들 목은 선생과 점필재 선생은 관어대에서 보고 물속에서 노는 고기와 물 바깥에서 보는 내가 따로가 아닌 하나다며 “하늘이 우리에게 준 천성을 따르는 것이 바로 하늘의 이치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외에도 안노생 원척석 등 많은 시인묵객이 관어대를 찬양하는 시와 글이 남아 있습니다.






혹시 동해의 해안선인 7번 국도를 여행하다 만나는 고래불해수욕장에서 상대산 관어대를 올라 보세요. 주위 경치를 보면서 또 다른 동해여행의 묘미를 느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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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 상대산관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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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7.05.01 04:50 신고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잘 보고가요.

    행복한 한 주 되세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5.01 10:03 신고

    영덕에 이런곳이 있었군요
    기억해 놓겠습니다^^



 

 


(밀양여행/밀양가볼만한곳) 밀양에서 꼭 보고와야 할 여행지 밀양시립박물관, 밀양독립운동기념관. 


밀양여행을 하면서 밀양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면 밀양시립박물관을 찾아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저도 밀양의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그래도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던 차에 밀양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밀양시립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밀양시립박물관은 이번에 처음 찾았던 것은 아닙니다.





밀양시립박물관 관람시간:09:00~18:00(입장시간 09:00~17:00)

밀양시립박물관 휴관일:1월1일 설날·추석 당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밀양시립박물관 관람료: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20인 이상 단체 관람료 별도

밀양시립박물관은 2014년부터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을 ‘문화의 날’이라 지정하여 당일 무료 관람 시행.

밀양시립박물관 예약안내:055-359-5589

밀양시립박물관 주소:경상남도 밀양시 밀양대공원로 100


 

2016/12/10 - (밀양여행)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약산 김원봉, 석정 윤세주, 최수봉, 백민 황상규등 밀양 독립운동가 거리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2016/12/05 - (밀양맛집)밀양내일동 전통시장 단골집, 백종원의 3대 천왕 맛집 70년 전통 돼지국밥 밀양 단골집.

2011/06/24 - (경남여행/밀양여행)산외면 죽원재사. 밀양시 옛고을 다원리 오한 손기양의 죽원재사를 찾아서...

2011/05/16 - (경남여행/밀양여행)상동 박연정. 강물에 노니는 물고기 수를 헤아렸다는 수어대가 있는 밀양의 박연정

2011/06/18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영남루,. 무더운 날에 밀양 영남루에 올라 시원한 대청마루를 생각한다. 영남루




항상 논에 피를 뽑듯이 듬성듬성 보고 다녔기에 별 감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갈 기회가 생겨 이번에야말로 꼼꼼하게 둘러보았으며 밀양의 많은 문화유적지와 밀양을 대표하는 인물을 알면서 새롭게 밀양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몇 년 사이에 밀양시립박물관이 있는 일대가 완전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박물관 이외에도 참말로 구경할 게 많아 아이와 함께 찾는다면 풍성한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이곳은 요즘은 흔적조차도 찾기 힘든 영남대로가 재사 고개로 넘어가는 길목이라 시립박물관으로 더욱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밀양시립박물관의 주요 전시실을 보면 1층에 밀양 독립운동기념관이 독립된 부스로 전시 중이며 역사와 민속 시립박물관으로 기획전시실을 제외하면 모두 4개의 테마로 꾸며졌습니다.

 


특히 밀양에서 가장 관심이 있는 곳은 독립운동기념관입니다. 보통 독립운동기념관 하면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생각하기 쉽지만, 밀양은 을사늑약 이후 많은 밀양 출신이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목숨을 바쳐 뛰어들었습니다. 영남지방 최초라는 3.13 밀양 만세 의거를 시작으로 23회에 걸친 폭탄 투거인 의열 투쟁의 선봉에는 밀양 출신의 많은 의열단원이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민족혁명당의 창당과 조선 청년혁명 간부학교, 조선의용대와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항일독립투쟁의 역사 속에 특히 밀양 출신의 의사가 많았습니다. 의열단 단장·조선민족혁명당 총서기·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역임한 김원봉,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황상규, 조선 민족 혁명당과 조선의용대 윤세주, 대종교 3대 교주 윤세복 최주봉 등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던 밀양. 밀양의 독립운동 뿌리를 시립박물관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올강 전홍표 동화학교 교장의 영향을 받은 김원봉은 무장투쟁의 의열단 단장이었으며 한봉근, 김상윤, 김대지 등이 의열단의 중요간부였고 의열단의 핵심으로 김원봉을 보좌하며 의열투쟁을 벌렸습니다.







의열단의 석정 윤세주 또한, “무수한 동지들이 체포되었지만, 체포되지 않은 우리 동지들은 도처에 있으니, 반드시 강도 왜적을 섬멸하고, 우리의 목적을 도달할 날이 있을 것이다”며 3.13 밀양만세의거와 밀양폭탄의거를 주도했지만 밀양폭탄의거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조선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 교관,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조선의용대 훈령 주임과 정치위원을 거쳤으며 중국태항산 반소탕전투에서 부상의 후유증으로 순국하셨습니다.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의거의 최주봉 의사는 의열단의 김상윤, 이종암, 고인덕과 의거를 준비하여 1920년 12월 27일 밀양경찰서에다 창문으로 폭탄 한 개를 던지고 기다렸다 순사들이 뛰쳐나오자 다시 폭탄을 던졌습니다. 일경의 추적을 받자 자결을 시도했다 체포되었으며 사형을 선고받고 다음 해 7월 8일 순국했습니다. 그는 죽음 직전까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대한남아의 기개를 보였다 합니다.









황상규 의사는 “나는 죽어도 집에서 죽지 않고, 대중을 위해서 밖에서 일하다가 밖에서 죽겠다”는 유언을 남겼으며 밀양폭탄의거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그의 의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3월 13일 밀양 장날에 맞추어 함성이 퍼져나갔습니다.





의열단의 결성은 1919년 11월 10일 중국길림성(지린성)에서 김원봉의 주도하에 “일제 침략을 물리치고 정의를 되찾기 위해 맹렬하게 투쟁할 것을 맹세”하며 결성했습니다. 의열단원을 보면 황상규, 윤치형, 김상윤, 윤세주, 강인수, 한봉근, 한봉인, 고인덕, 김성수, 김원봉 등 유독 밀양 출신이 많았습니다.

 






1935년 7월 민족혁명단으로 바뀔 때까지 일제는 의열단을 두고 “파괴, 흉폭행위를 실천에 옮기는 단체는 오직 의열단 뿐”이라며 두려워 했습니다. 의열단의 암살대상은 조선총독부의 고관 군 수뇌부, 대만 총독, 매국노, 친일파 거두, 적 염탐꾼, 반민족적 토호열신과 파괴대상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와 침략기관 등이었습니다.



김원봉은 “자유는 우리의 힘과 피로 얻어지는 것이지 결코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선 민중은 능히 적과 싸워 이길 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구자가 되어 민중을 각성시켜야 한다”고 박태원의 ‘약산과 의열단’에 나와 있습니다.













조선 민족 혁명당의 결성과 활동의 뒤를 이어 조선의용대의 창건은 1937년 7월 7일 일제의 중국 침략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자 이에 중국 정부는 한국인의 항일투쟁을 높이 평가하여 1938년 10월 후난성에 조선의용대를 창건하도록 지원하여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이 총대장을 맡았습니다.



















1919년 4월 10일까지 아홉 차례나 밀양만세시위운동이 벌어졌으며 460여 명의 주민이 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참 많은 기록이 전시 중인 밀양시립박물관의 밀양독립운동관, 수많은 밀양의 독립투사 발자취를 알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밀양시립박물관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유물이 전시 중입니다. 단장면에 새롭게 출토된 후기구석기유물로 추정되는 타제석기인 뗀석기가 수습되었습니다. 이것으로는 아직 구석기 유물이라 단정하는데는 한계가 있으며 현재 밀양은 아쉽지만 신석기 유물과 주거지 등이 나온 게 없습니다.



그러나 지석묘인 고인돌과 석관묘인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유물인 마제석기, 김해 가야토기와 신라 토기 등이 많이 출토된 것을 유추 해보면 밀양의 역사는 청동기 시대 이후부터 집단 주거가 이루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밀양은 변진 12국의 하나였던 미리미동국이며 이는 신라에 병합되어 사라집니다. 이 모든 밀양의 선사시대 유물과 옛 역사를 밀양시립박물관에서 만났습니다. 



































고려와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밀양을 대표하는 수많은 유물과 인물이 있습니다. 그중 꼽으라면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인 영남루, 사림파의 태두인 점필재 김종직 등이며 이외에도 많은 밀양의 유물과 인물들을 밀양시립박물관에서 만나 보세요. 밀양에 대해서 더욱 많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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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교동 485-4 | 밀양시립박물관,독립운동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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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밀양에는 박물관이 정말 잘 되어있네요~ 꼭 가봐야겠어요^^

  2. kangdante 2017.04.25 07:28 신고

    슬픈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이군요..
    오늘도 멋진 하루되세요..

  3. 핑구야 날자 2017.04.25 07:59 신고

    나중에 밀양에 갈 일 있으면 들려봐야 겠네요 덕분에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향교 대성전. 조선시대 교육기관 경주향교 여행


경주 최부자 최 씨 고택을 둘러보고 인근에 있는 경주향교에 갔습니다. 경주향교는 요즘으로 치면 국립대학입니다. 사립교육기관인 서원과 함께 조선 시대의 양대 교육기관이었습니다. 경주향교의 전신은 신라 시대로 올라갑니다. 682년 신문왕 2년에 처음 세워졌던 국학이 있었던 곳이며 고려 시대에는 향학, 조선 시대에는 향교로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계속 지방교육기관이 들어섰습니다.





경주향교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경주향교 전화:054-772-3624


2008/10/18 - (경북여행/경주여행)무장사지 삼층석탑과 무장사지아미타불 조성 사적비 이수및 귀부 여행. 태종무열왕이 전쟁후 병기와 투구를 감춘 곳, 경주무장사지 입니다.

2010/07/20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진덕여왕 여행.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진덕여왕릉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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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의 둘째 공주였던 요석공주가 과부가 되어 머물렀던 요석궁이 있었으며 훗날 이곳에서 원효와의 로맨스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주 향교 포스팅입니다. 경주향교의 건립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492년 조선 성종 23년에 경주부윤 최응현에 의해서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성전 등 경주향교의 주요건물은 모두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대성전에 봉안했던 성현의 위패는 경주 안강의 도덕산 두덕암(현재 도덕암)으로 옮겼으며 1600년 선조 33년에 경주부윤인 이시발이 대성전과 전사청을 먼저 중건하면서 위패를 다시 모셔왔습니다.



4년 뒤에는 윤성이 대성전 앞의 동·서무를 중건하고 1614년 광해군 6년에는 부윤 이안눌이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를 중건함으로써 소실되었던 경주향교의 면모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그 후 1668년과 1979년에 보수를 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경주향교는 약 5천 평으로 경상북도 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라 합니다.

 







명륜당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보았던 여러 향교는 모두 전학후묘였다면 경주향교의 건물배치는 전라도 나주향교·부여향교·전주향교와 강원도 강릉향교 등과 같은 전묘후학인 문묘 영역이 강학영역의 앞쪽에 배치하는 형식을 따랐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 향교의 대표적 형식이라 하는데 저도 여러 향교를 찾았지만, 문묘인 대성전이 앞쪽으로 나오는 형식은 경주향교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경주향교의 대성전과 동·서무는 공자 이외에 성현의 위패를 봉안하여 배향하며 전묘후학의 형식을 따른 향교의 공통점은 대부분 옛 도읍지에 있는 것을 보면 이는 왕들이 공자를 비롯한 성현을 먼저 문묘하는 것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합니다. 경주향교도 조선 시대에는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국가로부터 받아 교생을 가르친 국가교육기관입니다.







대성전은 공자의 시호인 ‘대성지성문성왕’에서 따왔으며 공자의 위패를 중심으로 연국복성공인 안자, 성국종성공 증자, 기국술성공 자사, 추국아성공 맹자 등 중국의 5성과 경주에서 태어난 홍유후 설총, 문장후 최치원, 문원공 이언적 선생 등 3현을, 문묘에 배향한 퇴계 이황, 율곡이이, 김굉필, 조광조, 김집, 송시열 등 우리나라의 18현을 봉안해 음력 2월과 8월 초정일에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존영각


존영각





문묘인 대성전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인 주심포계 외1출목 이익공식(새 날개처럼 생긴 공포 양식) 건물로 내력 또한 분명합니다. 건물의 공포와 창호, 가구는 옛방식의기법이 잘 남아 있고 대성전의 용마루 받침대인종도리에서 건물의 중건연대와 참여했던 장인 등 당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묵서명이발견되었습니다.


대성전



대성전은 경주향교의 중요건축물이며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으로 우수한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국가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경주향교는 입구의 큰문인 외삼문은 출입할 수 없게 잠겨있습니다. 이곳을 통하면 내삼문을 거처 대성전으로 바로 통하지만 문묘 공간이라 출입할 수 없습니다.





경주향교를 보기 위해서는 관리실과 통하는 쪽문을 통해 들어가야 합니다. 먼저 만나는 게우물입니다. 신라 시대 국학이 건립될 때부터 남아 있던 유물로 현재 경주향교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것 같습니다. 널다란 돌 2개를 짜맞추어바닥을 깔고 낮게 테두리를 다듬었으며 요즘 우리가 보는 우물의 모습과는 약간 달라 보입니다.













뚜껑이 덮여있어 알 수 없지만 얕은 우물이라 두레박이 아닌 바가지로 물을 퍼 담을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의 강학장소였던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거처로 사용했던 동·서재를 만나고 대성전은 동재나 서재 앞쪽 긴 담장 사이를 따라가면 대성전 출입문인 내삼문이지만 문은 굳게 잠겨있어 바깥에서 까치발로 내부 전경을 보고 돌아 나왔습니다. 경주향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1호이며 대성전은 보물 제1727호로 지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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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교동 17-1 | 경주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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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04.11 10:02 신고

    경주 향교 규모가 대단하군요
    기회있을때 꼭 들러 봐야겠습니다^^

  2. 경주 향교를 오랜만에 사진으로나마 보고 공부하고 가네요^^

  3. 고르라 제주 2017.04.11 14:25 신고

    경주 향교 가보고 싶어 지네요!

  4. 핑구야 날자 2017.04.12 08:16 신고

    조용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 보입니다



 

 


(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안동 하회마을 여행. 풍산류씨 집성촌인 서애류성룡의 하회마을 여행


고장마다 같은 성씨가 모여 집성촌을 이루는 곳이 우리나라에 여러 곳 있습니다. 경주 양동마을과 영양의 두들 마을이 그러하고 또한, 안동의 풍천면 하회마을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안동의 풍천면 하회마을은 600여 년 동안 풍산류씨가 세거를 이루었던 곳이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성마을 집성촌입니다.







안동 하회마을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1176-1

안동 하회마을 전화:054-853-0103


2017/04/01 - (안동여행)퇴계태실 노송정종택과 퇴계종택. 퇴계 이황 태실인 노송정종택과 퇴계 이황 종택을 여행하다.

2017/03/29 - (안동여행)안동하회마을 충효당, 서애류성룡 종택인 하회마을 충효당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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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 (안동여행)안동 이천리 석불상, 제비원석불, 제비원 미륵불로 불리는 오뚝이를 닮은 독특한 마애불.

2016/12/26 - (안동여행)안동법흥사지칠층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여행.





기와지붕과 초가를 인 지붕이 조화롭게 마을을 이루는 안동 하회마을은 오랜 역사를 이어오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유교문화와, 풍속을 가장 잘 이어오고 있는 곳 중 한 곳입니다. 정부에서도 이를 인정하여 안동 하회마을을 중요민속자료 제122호에 지정하였으며 2010년 7월에는 지구촌 사람들이 모인 유네스코에서도 지구촌이 보호할 유산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개최된 제3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풍속과 문화가 마을주민에 의해 긴 세월 동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것을 이제는 우리나라를 넘어서 세계인이 지키고 이어갈 유산이라 평가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그이름을 올렸습니다.





하회마을의 지명도를 더욱 높인 것은 조선 시대의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서애 류성룡 형제가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겸암 류운룡선생은 퇴계 이황의 문하로 과거에는 별뜻을 두지 않았으며 임금의 명으로 벼슬길에 나가 여러 직책과 인동 현감, 풍기군수, 원주목사 등에 재임하여 목민관의 본보기가 될 정도로 법을 공평하게 다스려 백성의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이조판서 추증과 문경공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또한,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불멸의 성웅 충무공 이순신을 선조에게 천거하여 두 전란을 승리로 이끌었고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징비록을 남겨 후세에 전란의 참상을 겪었던 후회와 교훈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우리는 이 두 분을 낙양의 정호와 정이 형제의 우애와 견주어 ‘하남백숙(河南伯叔)’이라 칭송합니다.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굽이쳐 'S'자로 크게 휘돌아 마을을 감싸며 강물이 흐르는 곳의 마을로 흔히 물돌이 마을이라 합니다.



하회는 여기에서 유래했으며 풍수적으로 태극형, 연화부수형, 행주형이라는 명당에 조선 시대부터 가장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이라 알려졌습니다. 태백산의 지맥이 마을의 주산인 화산을 솟구쳤다면 일월산의 지맥이 남산과 부용대를 빚어 그 사이로 낙동강의 물길이 흘러 ‘산태극 물 태극’의 가운데에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물에 떠있는 연꽃 모양’이라는 연화부수형의 풍수지리설에서 마을의 주산은 화산, 마을과 부용대 사이를 흐르는 낙동강을 따로 화천이라 하는데 이는 ‘연화’인 연꽃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마을의 가장자리에는 터줏대감인 최고령 600살의 느티나무가 지키고 노거수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된 독특한 형태의 마을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집은 정남향 동남향을 보고 있다면 하회마을은 집의 앉은 모습이 일정하지 않습니다.또한, 기와집을 초가들이 빙 둘러싸며 배치된 게 이채롭습니다. 하회마을의 규모는 구한말까지 350여 가구였으나 현재 150여 가구만 남았습니다. 하회마을 내부에는 127가구에 437개 건물이 현재 있습니다.



하회마을에는 풍산류씨 세거 이전에 허씨와 안씨가 먼저 마을을 이루었다 합니다.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란 말이 전해오고 이는 안동 하회마을의 국보 제121호인 하회탈 제작자가 허 도령이란 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풍산 류씨가 하회미을에 자리를 잡게 된 연유를 알아보겠습니다.



풍산류씨 7세인 전서 류종혜공이 가뭄과 홍수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마을 주산인 화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강물의 흐름을 관찰하며 면밀하게 따져 최고의 명당으로 터를 잡았지만 그과정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뼈대인 기둥을 세웠지만, 그때마다 넘어져 건물을 지을수 없었습니다. 그때 꿈에 현몽하기를 이곳에다 터를 잡으려면 3년 동안 사람의 목숨을 구하여 살리는 활만인을 베풀라는 계시를 받고 그 길로 마을 입구 고개에다 초막을 짓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배가 고프면 음식을, 노자가 필요하면 노자를, 짚신이 필요한 사람에게 짚신을 나누어주고 베풂으로써 하회마을에서 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베풂의 삶 때문인지 서예선생 등 많은 명신을 배출하여 풍산 류씨는 대 명문가로 오늘날까지 번창하였습니다. 하회마을에는 서민과 선비들을 위한 놀이가 전래하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인 ‘하회별신굿탈놀이’로 이는 굿을 겸한 탈놀이를 말합니다. ‘하회선유불놀이’는 부용대 단애에서 열리는데 선유시회를 겸한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습니다.





이 모든게 하회마을의 전부는 아니지만, 수박 겉핥기식의 작은 지식을 습득했다면 이제 마을 길을 따라 출발합니다. 시간상으로 많은 고가를 전부 둘러보지 못하고 주민이 모두 생활하고 있는 삶의 공간이라 관람할 수 있는 고택은 정해져 있습니다. 저는 마을길을 중심으로 둘러보았습니다.



초가집 지붕을 이엉하는 모습은 실제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어릴 적 고향에서 자주 보았지만, 한동안 보지 못했고 이제 이런 전통마을에 와야만 만나는 하나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먼저 화경당을 찾았습니다. 솟을대문 입구에는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습니다.





최근에 부주의로 작은 화재가 일어나서 부득이 취한 조처라 합니다. 목재건축물은 작은 실수 하나에도 큰불이 납니다. 우리 모두 주의를 해야겠습니다. 출입문에는 한국국학진흥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풍산류씨 하회마을 화경당(북촌) 유교책판’ 명패가 붙어 있습니다.



화경당은 “화채로 어버이를 섬기고 경으로 임금을 섬긴다”는 뜻입니다. 1797년인 조선정조 21년에 류사춘이 처음 집을 지었습니다. 사랑채와 대문채, 날개채를 짓고 1862년 철종 13년에 그의 후손인 류도성이 안채와 큰 사랑채. 사당을 지으면서 사대부 가옥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특히 큰 사랑채의 누마루에서 보는 풍광은 매우 아름다우며 큰 사랑채를 두른 300년이 넘은 노송들은 하회마을을 굽어도는 강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합니다. 고가 내부를 못 보는 아쉬움은 크지만, 그래도 대문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골목을 돌아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하회마을의 중앙에 자리한 삼신당의 노거수를 찾았습니다. 처음 입향한 류종혜공이 심었다는 느티나무로 하당이며 화산 중턱의 상당서낭당과 중단국사당을 합해 삼당이라 하며 마을 주민의 소망을 비는 곳입니다. 정월 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상당과 중단에서 지내고 하당에서는 다음 날 아침에 제를 올리고 하회별신굿탈놀이도 열립니다.





이번에 찾은 고가는 하회마을 북촌의 대표 기와집인 양진당입니다. 풍산류씨 대종택으로 류종혜가 하회마을에서 최초로 지은 집입니다. 긴 세월동안 여러 번 어려움을 껶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화재로 일부 불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손으로 이어지면서 여러 번 새로 지었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웅장함을 잃지 않은 풍산류씨 대종택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문중의 모임을 이곳 사랑채에서 열리며 ‘양진당’은 풍산류씨 족보를 처음 완성한 류양(1687~1761)의 호에서 따 왔고 사랑채의 입암 고택은 류종영의 호에서 따왔습니다. 





다시 돌아 나와 이제 건너편의 서애 류성룡 종택인 ‘충효당’을 찾았습니다.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1999년 4월 이곳에서 묵었다는 뉴스를 여러 번 접해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보고 싶었던 고가입니다. 출입문인 솟을대문과 마주하고는 하회마을 방문을 기념하며 심었다는 구상나무가 있습니다.



 이 집은 서애류성룡 종택이지만 그 당시의 건물은 아니며 17세기에 지어졌습니다. 그의 손자와 제자들이 서예선생의 생전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으며 류성룡이 유난히 제자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가르침을 강조해서 충효당이라 부르게되었습니다.

 






들어서는 대문체에 붙은 12칸의 행랑채가 길게 이어져 있는데 류성룡의 8세손인 유상조가 병조판서를 제수받고 부하군사를 수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서예선생의 유물전시관도 있습니다. 하회마을을 나와 화천 둑길을 가기 전에 작천 고택이 있습니다.







건물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원래 두 채로 지어졌지으며 1934는 대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문간채가 쓸려나가면서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습니다. 류도관의 호에서 따와 작천 고택이라 부릅니다. 다시 하회마을 입구로 나가기 위해서는 강둑길을 따라갑니다. 천연기념물 제473호인 만송정 숲과 화천 건너 천길 단애를 이룬 부용대의 절경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겸암 류운룡공이 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잡아주고 북서쪽으로 들어오는 허한 기운을 메우려는 비보로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어 만송정이라 하였으며 현재의 소나무는 1906년에 다시 심었다 합니다. 부용대는 하회마을 조망을 한눈에 하는 곳으로 60m의 단애로 이루어졌습니다.

 













만송정


 


부용대



부용대는 중국고사에서 취했으며 부용은 연꽃을 뜻합니다. 하회마을의 풍수가 연화부수형이고 마을이 들어선 모습이 연꽃 같다는데서 유래하고 하회마을 전망대라 하여 부용대라 부릅니다. 하회마을 북쪽의 언덕이라 하여 ‘북애’로도 불렸다는 부용대에는 옥연정사,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현재 남아 있습니다. 하회마을에서는 나룻배를 타고 건너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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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1176-1 | 안동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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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7.04.09 16:15 신고

    잘 정비된 모습입니다.

    구경 잘 하고 가요.

    즐거운 휴일 되세요^^

  2. 핑구야 날자 2017.04.10 08:08 신고

    아직은 인파가 많지 않아서 여행하기 좋을 것 같아요




(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퇴계태실 노송정종택과 퇴계종택. 퇴계 이황 태실인 노송정종택과 퇴계 이황 종택을 여행하다. 


‘동방의 주자’ 퇴계 이황선생은 경북 안동 도산면의 온혜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에는 이황 선생이 태어난 퇴계태실 노송정종택이 있습니다. 안동을 여행하면서 여행의 피로도 풀 겸해서 온천수가 좋다는 도산온천을 일행과 함께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온천 못미처 퇴계 태실 안내판과 우측으로 고래등 같은 고가의 위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퇴계태실 노송정종택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604

퇴계태실 노송정종택 전화:054-856-1052


2017/03/29 - (안동여행)안동하회마을 충효당, 서애류성룡 종택인 하회마을 충효당을 보다.

2017/03/28 - (안동여행)하회마을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하회마을 양진당을 만나다.

2017/02/10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송이 용두식당. 춘향목의 솔향이 가득한 봉화 송이돌솥밥 용두산장에서 맛보다.

2017/01/17 - (안동여행)안동 이천리 석불상, 제비원석불, 제비원 미륵불로 불리는 오뚝이를 닮은 독특한 마애불.

2017/01/14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헛제사밥이라해서 헛배가 부른게 아니예요. 맛있는 음복음식 안동 맛50년 헛제사밥

2016/12/26 - (안동여행)안동법흥사지칠층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여행.



 

갑자기 궁금증도 생기고 해서 퇴계태실 노송정을 갈 욕심에 도산온천 앞에서 일행과 헤어졌습니다. 혼자 차를 몰고 퇴계 태실을 찾았습니다. 노송정종택은 퇴계 이황 선생 이외에도 송재선생, 온계선생 등이 태어나고 분가할 때까지 생활했던 생가입니다.

 

 

 

 

 

퇴계태실(노송정종택) 출입문에 성림문 현판

물론 퇴계 이황선생도 이곳에서 태어나셨는데 이황 선생의 어머니인 춘천박씨는 퇴계 선생을 낳을 무렵에 성인이 찾아오는 꿈을 꾸고 퇴계 선생이 태어났다 하여 노송정종택의 솟을대문인 출입문을 성림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퇴계선생이 태어날 무렵 성인이 왕림하는 꿈을 꾸었다하여 성림문 현판

 

노송정

 

 

또한, 태어나신 방은 태실, 선생이 공부하던 방은 책방, 선생이 기거했던 방 등 여러 편액이 집안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처음 노송정 종택은 1454년인 단종 2년에 이황 선생의 할아버지인 이조판서 이계양공이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켰던 계유정난을 보면서 초야에 묻혀 살기로 작정하고 처음 이곳에다 집을 지었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져옵니다. 이계양공이 봉화현의 훈도를 지냈는데 하루는 이곳을 지나다가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에 흠뻑 취해 신라현 고개를 넘게 되었습니다. 그때 고개를 넘어오는 허기진 노승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면서 서로 온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다 노승과 함께 다시 온계로 되돌아왔습니다.

 

 

 

 

 

 

 

 

지금의 노송정종택은 그 당시 노승이 집터를 정해주면서 이곳에다 집을 짓고 살면 후에 귀한 자손을 얻을 것이라는 말에. 이계양공은 이곳에다 집을 짓고 가계를 이룹니다. 그 후 이곳에서 아들인 송재 이우와 손자인 온계 이해 선생, 1501년 11월 퇴계 이황이 태어나 노승의 귀한 자손은 맞춘 샘이 되었습니다.


 

 

 

온천정사

 

 

노송정은 이계양공의 호이며 퇴계 태실 등이 있는 건물은 그분의 호를 따와 노송정 종택이라 부릅니다. 먼저 성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노송정이 있습니다. 퇴계 태실이 있는 본채는 노송정 앞마당에서 왼쪽에 ‘ㅁ'자로 앉았으며 퇴계 태실은 본채 가운데에 누각 형태를 한 건물이 있는데  ’퇴계선생태실‘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태실은 돌출된 건물에 앞쪽에는 작은 마루와 방이 독립형태로 앉았습니다. 삼면은 쪽마루를 덧붙여 계자난간을 달은 독특한 건물로 꾸며져 있는 게 다른 곳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형태입니다. 또한, 성림문 옆인 본채 건물 동남쪽 모서리고 마루로 꾸며져 있습니다. 큰사랑과 작은 사랑 사이에 4 합의 살문은 달아 여닫는 마루로 온천정사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퇴계선생태실

 

 

 

 

본채 앞에는 누마루와 온돌방이 붙은 노송정이 있으며 그 오른쪽에 사당도 있습니다. 노송정종택은 1985년 지방문화재 제60호에 지정되었으며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면모와 태실을 갖춘 독특한 건물은 당시 상류 가옥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송정 

 

퇴계종택 

퇴계 태실을 보고 나서 급하게 차를 몰아 퇴계 이황을 배향한 도산서원으로 달렸습니다. 도산서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관리인이 매표소 문을 닫으면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다시 차를 몰고 퇴계 이황선생 종택으로 달렸습니다.



퇴계종택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68-2

 

 

생가에 도착했더니 사위는 벌써 어둠이 내려앉은 지 한참이 지났습니다. 늦게 집을 찾아가는 것도 실례고 하여 문 앞에서 그냥 분위기만 보고 돌아왔습니다. 퇴계종택은 퇴계 태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퇴계종택은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으며 경상북도 기념물 제42호입니다. 현재 지어진 퇴계종택은 1929년 선생의 13대손인 하정공이 옛 종택 건물을 짐작하여 지금의 터에 새로 지은 건물입니다.

 

 

앞면 6칸에 옆면 5칸인 ‘ㅁ’형 건물로 대문과 정자, 사당으로 구분하고 석축을 높이 쌓아 그 위에 둥근 기둥과 네모기둥을 혼용하여 지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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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604 | 노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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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4.01 08:01 신고

    이황 종택을 덕분에 구경하게 되네요 잘 보고 갑니다.

  2. kangdante 2017.04.03 08:04 신고

    여유와 멋이 묻어있는 고택입니다..
    여유롭고 활기찬 한주 시작하세요.. ^^

  3. 공수래공수거 2017.04.03 10:01 신고

    저도 이곳에 다녀 온적이 있습니다^^

  4. 솜다리™ 2017.04.04 13:21 신고

    애들 어릴때 안동 한번 다녀왔는데..
    이곳은 찾아보지 못했내요..^^
    늦둥이와 함께 다시 한번더 찾아보면 꼭 함 들러봐야겠어요~

  5. *저녁노을* 2017.04.05 02:38 신고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모습이네요.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영덕여행/영덕가볼만한곳)삼사해상공원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영덕 어촌의 생생한 역사를 전시한 어촌민속전시관.


경상북도 영덕 하면 영덕대게를 제외하면 그리 볼거리나 먹거리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가 영덕을 여러 군데 다녀보면서 영덕은 동해안의 가운데 있어 참말로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문화유적지는 물론이고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선은 모두가 전망대일 정도로 공원으로 조성하여 영덕을 찾는 관광객에게 쉼터를 제공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영덕 첫 번째 공원은 삼사해상공원입니다.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158-10 삼사해상공원 내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전화:054-730-6790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이용안내

관람료:성인 2천원, 학생 1천원, 15인 이상 단체 할인

휴관일:매주 월요일, 설날 추석날

관람시간:오전9시~오후6시(매표마감 오후5시30분)

입체영산관 상영:시간대별 상영, 단체관람은 사전예약

문의사항:054-730-6790~4



2016/12/20 - (영덕여행)강구 삼사해상공원. 동해안 일출 1번지 삼사해상공원 여행. 영덕 삼사해상공원

2015/04/17 - (경북여행/영덕여행)영덕 해맞이 공원. 꽃대궐을 이룬다는 영덕 해맞이 공원과 창포말 등대 동해여행.

2013/12/02 - (경북여행/영덕여행)해파랑길 블루로드 B코스. 해맞이 공원의 블루로드 해안가 멋진길 블루로드 B 코스.블루로드

2015/04/28 - (영덕맛집/강구맛집)팔각산맛집, 7번 국도 맛집 나비산기사식당. 미주구리(물가자미) 찌개가 맛있는 나비산기사식당.

2015/09/02 - (경북여행/영덕여행)영해 괴시리 목은 이색선생 유적지. 고려삼은중 한 분인 목은 이색선생 생가터 무가정과 목은 기념관을 여행하다.

2017/03/11 - (영덕맛집)이게 대게원조마을 인정. 영덕대게 원조마을인 차유마을 용진호 선주집에서 싱싱한 대게를 먹고 왔습니다.



 

 

 

 

 

삼사해상공원은 특히 동해안 일출 1번지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영덕군민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도 이곳 삼사해상공원의 호텔에서 느긋하게 1박 하면서 공원 내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특히 삼사해상공원에서 꼭 봐야 할 곳이 있는데 영덕어촌민속전시관입니다,

 

 

 

 

영덕어촌민속전시관을 가려면 삼사해상공원의 너른 주차장을 가로질러 경북대종 종각을 보고 갑니다. 종각 오른쪽 도로를 오르면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안내판이 있고 곧 어촌전시관이 나옵니다. 출입문 옆에는 영덕의 상징물인 대게가 척하니 붙어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전시관은 일반 성인 2천원 등유료관람입니다. 현재 어촌민속전시관은 요즘 어촌에서도 보기 힘든 여러 가지 어로 기구와 전통 민속, 어촌생활를 찾아내어 보존하며 또한 우리 전통어업 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경상북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어촌민속전시관입니다. 


 

 

 

그 때문인지 2,494평의 부지에 지하 1층에 지상 3층, 총건평이 725평인 어촌전시관으로서는 매머드급으로 전시내용을 보면 각종 전시품은 물론이고 체험시설, 3D 입체 영상관, 옥외조형물과 편의시설까지 갖추었습니다.

 

 

 

 

 

 

 

 

 

 

 

 

 

 

 

 

 

 

전시실은 1·2 전시실로 나누어졌으며 제1전시실은 영덕 푸른 바다와의 만남, 영덕 어촌의 삶과 의식주, 영덕 어촌의 놀이와 문화, 동해안의 별신굿, 어선 제작과정, 및 대게잡이 당도리, 영덕의 어구와 고기 잡는 법 이외에도 전통어선 전시 등 다양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제2전시실은 어로 도구 유물전시와 해저의 지형, 영덕 앞바다의 비경과 항구체험 이외에도 영덕 특산물인 영덕대게에 대해 여러 가지 알 수 있는 유익한 공간입니다. 대게의 일생과 맛으로 보는 영덕대게. 대게잡이 체험과 해녀들의 삶, 어촌시장의 풍경 등 다양한 영덕어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영덕어촌민속전시관은 제가 방문했을 때는 늦은 시간에다 혼자였고 해서 3D 입체 영상관의 ‘대게 왕자의 모험’은 관람하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방문한다면 꼭 영상관과 영덕어촌민속전시관을 여유를 가지며 천천히 둘러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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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158-10 삼사해상공원 내 | 영덕어촌민속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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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7.03.31 05:02 신고

    구경 잘 하고 갑니다.
    볼거리가 많군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2. kangdante 2017.03.31 07:34 신고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곳 같아요..
    여유롭고 편안한 주말보내세요.. ^^

  3. 핑구야 날자 2017.03.31 08:09 신고

    어촌에 대해 좀 더 알아 볼 수 있어 좋을 것 같아요

  4. 워크뷰 2017.05.22 10:54 신고

    멋진곳 소개 감사합니다^^



 


 

(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안동하회마을 충효당, 서애류성룡 종택인 하회마을 충효당을 보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두 번째 방문지 풍산류씨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입니다. 서애 류성룡의 호를 따 서애종택으로도 불리며 보물 제414호에 지정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습니다. 서애 류성룡 하면 조선 선조 때의 충신이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천거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환란 속에서 나라를 구했던 분입니다.





안동하회마을 충효당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56








엘리자베스 2세가 1999년 4월 방문하면서 심었던 기념식수



또한, 7년간인 두 전란의 모든 과정을 기술한 징비록은 시경의 구절에서 따왔으며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라는 뜻이라 합니다. 전란의 참상을 당시 겪게 되었던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기록한 징비록. 류성룡은 노량해전이 벌어질 때 정인홍과 이이첨 등 북인의 상소로 영의정에서 파직당합니다.





그 길로 고향 안동으로 내려와 선조의 부름을 받지 않고 징비록을 저술했다 합니다. 1605년 9월에 하회마을의 물난리로 학가산 기슭의 서미동으로 거처를 옮겨 기거하다 1607년 5월에 농환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하회마을의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후손과 그를 따르던 문하생들이 선생의 높은 뜻을 기려 1600년대에 건립했던 가옥으로 선생이 살았던 집은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중수와 증축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조선중엽의 전형적인 사대부집 양반가옥의 모습을 하며 문간채, 사랑채, 안채와 사당 등 52칸만 남아있습니다.

 






또한, 서애선생의 저서와 유품 등을 모아 전시하는 영모각이 따로 마련해 있으며 문간채 밖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1999년 4월 방문하면서 심었던 기념식수가 있습니다. 하회마을 북촌은 양진당이 대표 가옥이라면 충효당은 남촌을 대표하는 가옥으로 서로 하회마을 길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충효당을 들어서면 문간채와 행랑채가 길게 ‘一’자로 놓여 있으며 그 뒤편에 ‘ㅁ'자를 한 안채와 안채에서 길게 연결된 사랑채가 있습니다. 사랑채 뒤로는 사당과 그 우측에 유물전시관인 영모각이 자리했습니다. 충효당 역시 안채는 관람할 수 없으며 사랑채와 영모각만 둘러볼 수 있습니다.








입구의 행랑채는 총 12칸으로 사랑채와 마주보며 사랑채의 정면에 솟을 대문인 대문간을 내었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6칸에 옆면 2칸이며 가운데 개방한 4칸 크기의 대청마루를 깔았습니다. 특이한 점은 대청마루 뒷면 오른쪽은 골판문을, 왼쪽은 머름이 없는 높은 살문을 달아내어 안채와 뒷마당을 오가게 했습니다.





왼쪽 2칸은 온돌방과 침방을 앞뒤로 놓고 오른쪽은 작은 마루와 방을 앞뒤로 두었습니다. 작은 마루는 앞쪽과 왼쪽에 골판문과 살문를 달았고 오른쪽은 개방한 상태입니다. 이는 사랑채가 서향으로 앉았기 때문에 여름 오후의 따가운 햇볕과 겨울의 매서운 북서풍을 막으려는 조처로 보이며 전면과 우측면은 쪽마루를 달아내고 계자난간을 돌려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각의 품격을 한층 더 높였습니다.









사당 옆에는 유물전시관이 있습니다. 막 전시관으로 들어서는데 빨리 나오지 않고 뭐하느냐는 일행의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모두 하회마을 주차장에 다 도착했다며 빨리 나오라는 성화였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유물관을 보지 못하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 여행에서 양진당과 충효각은 꼭 보고 나오길 추천합니다. 










서애류성룡의 유물관인 영모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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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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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ngdante 2017.03.30 07:38 신고

    안동 하회마을은
    언제봐도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여 좋습니다.. ^^

  2. 핑구야 날자 2017.03.30 07:53 신고

    나들이 가기 딱 좋은데요 북적이지 않고 조용해서 괜찮은 거 같아요



 



(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하회마을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하회마을 양진당을 만나다.


안동 하회마을을 여행하면서 워낙 넓어 먼저 무엇을 보는 게 우선일까 하고 많은 고민을 모두 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을 하다 보물 제306호인 풍산류씨 겸암 류운룡(1539~1573)의 대종가인 양진당과 보물 제414호인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충효당을 가장 눈여겨보고 왔습니다. 그럼 하회마을의 풍산류씨 대종택인 양진당을 둘러보겠습니다.




 


안동하회마을 양진당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29-4



2014/04/1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 맛집 간고등어 일직식당.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도 먹고 갔다는 안동간고등어 일직식당.

2014/06/10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2014/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와룡산, 천하를 호령하던 용이 몸을 뉘며 쉬었다는 와룡산에서 안동호의 한반도 지형을 만나다

2016/05/19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2016/05/24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그러나 아쉽지만, 우리나라 고택 대부분이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어 일부를 제외하고는 내부를 볼 수 없습니다. 여기 양진당도 마찬가지로 사랑채로 들어서는 솟을대문에 딸린 방과 사랑채의 겉모습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양진당은 확실하지 않지만 1600년대에 건립했다 하며 하회마을의 북촌을 대표하는 한옥입니다.

 


임진왜란에 안채가 불타 17세기에 중수하였으며 사랑채와 연결하는 부분에 당시 화재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합니다. 양진당은 특이하게도 고려말 건축양식과 조선 중기의 양식이 혼용된 모습이며 건립 당시에는 99칸의 저택이었지만 현재 53칸만이 남아 있습니다.


문간채에서 본 사랑채



하회마을에 처음 들어와 자리를 잡았던 풍산류씨 입향조는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이는 13세기에 전서 류종혜가 처음 이곳에 들어왔으며 그리고 가장 먼저 집터를 잡은 곳이 양진당입니다. 또한, 양진당은 하회마을의 여러 가옥과 다르게 정남향을 보고 있으며 하회마을은 풍수에서 연화부수형에 해당하는데 양진당이 연꽃의 꽃술 부위인 명당이라 합니다. 이를 보면 아마 풍산류씨의 대종가다운 면모를 당시에 갖추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가옥이 다 그러하듯이 안채와 사랑채는 독립된 형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체적인 건물 형태를 보면 좌측은 중문간채와 안채는 ‘ㅁ’자 형태이며 안채와 접해져 오른쪽에 ‘一’ 형태로 길게 이어진 사랑채가 있습니다.




사랑채


하회마을 주 통로에서 사랑채를 들어서는 입구는 솟을대문을 한 앞면 5칸인 문간채와 행랑채가 ‘一’ 형태로 길게 이어졌습니다. 가운데 출입문을 내고 좌우에 방과 마구간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높은 기단 위에 사랑채가 위엄있게 앉아있습니다.






가운데 작은문이 안채로 연결하는 통로 



사랑채에는 입암고택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는 겸암 류운룡선생의 부친인 입암 류중영(1515~1573) 선생의 호에서 따왔으며 양진당은 겸암 류운룡의 6대 후손인 류영(1687~1761)의 아호에서 따와 오늘날 입암고택 또는 양진당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4칸 옆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겹처마는 하회마을에서 유일하다 합니다. 왼쪽에는 1칸씩의 온돌방과 서재를 넣었으며 오른쪽 3칸은 6칸의 통마루를 깔았습니다. 이곳에서 하회마을의 풍산류씨 문중회의 등이 열린다합니다.


하회마을에서 유일한 겹처마 건물


앞에서 보는 사랑채는 삼면에다 쪽마루가 달렸으며 앞면만 계자난간을 달았습니다. 그 왼쪽 끝에는 안채와 연결하는 작은 통로가 있으며 3칸의 대청은 각각이 4개의 문짝을 붙인 여닫이문을 달아 대청마루를 여닫게 했습니다. 사랑채 뒤 오른쪽에는 두 개의 사당이 있습니다.

 



문간채·행랑채에 붙은 마구간


 

큰 사당은 입암 류중영선생이, 작은 사당은 겸암 류운룡 선생의 신위를 모셨는데 두 분 모두 불천위 사당으로 후손 대대로 제사를 올린다 합니다. 짧은 시간에 하회마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바로 서애종택인 충효당으로 발걸음을 총총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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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29-4 | 안동하회마을 안동양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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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03.28 10:39 신고

    다음 안동방문은 아마 하회마을,병산서원이 될듯 합니다^^

  2. kangdante 2017.03.29 07:52 신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습니다..
    아직은 관광객이 별로 붐비지 않는 듯 합니다.. ^^

  3. 핑구야 날자 2017.03.29 08:16 신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가 되었다고 하니 가보고 싶군요




 

(영덕여행/영덕가볼만한곳)의병장 신돌석장군 생가와 기념관인 유적지. 신돌석 의병장

 

영덕군 여행에서 보고 왔던 평민의병장 신돌석장군 생가지와 유적지. 사실 의병장 신돌석장군 생가지를 방문하기 전에는 학창시절 들었던 장군의 이름과 그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장을 했던 게 아니었을까 막연하게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생가를 방문하면서 알았던게 구한말인 1896년 일어난 명성 황후 시해 사건으로 전국에서 들볼 같이 의병봉기가 일어났으며 신돌석 장군 또한 영해에서 봉기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신돌석장군 생가주소: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528

신돌석장군 생가 연락처:054-730-6298

 

2017/03/11 - (영덕맛집)이게 대게원조마을 인정. 영덕대게 원조마을인 차유마을 용진호 선주집에서 싱싱한 대게를 먹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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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3 - (경북여행/영덕여행)영해 괴시리전통마을. 7번 국도 여행. 목은 이색선생 유허지가 있는 조선시대 양반마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전통마을에서 고가 구경하세요.

2015/09/02 - (경북여행/영덕여행)영해 괴시리 목은 이색선생 유적지. 고려삼은중 한 분인 목은 이색선생 생가터 무가정과 목은 기념관을 여행하다.

 

장군은 태백산 호랑이라고 부를 정도로 전투에서는 용맹무상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을 정도로 신출귀몰했다고 합니다. 먼저 신돌석장군의 생가는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의 ‘복디미’ 마을에 있습니다. 생가터는 장군의 부친이셨던 신석주옹이 1850년경에 초가를 엮은 집을 지었으며 장군은 1878년 11월에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장군의 생가는 우리민족의 독립 의지를 꺾으려고 일본군은 정략적 차원에서 여러 번 불태워졌습니다. 1995년 민족정기회복 차원에서 앞면 4칸, 옆면 1칸 규모의 일자형 초가집을 옛터에 복원했습니다. 현재 생가는 도 지정기념물에 지정되었습니다. 장군은 왕건을 도운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의 후손입니다. 성장하면서 범상치 않을 정도로 기개가 남달랐다 합니다.

 

 

 

 

본관은 평산이며 자는 순경, 호는 장산, 본명은 태호입니다. 그러나 장군은 어릴 적부터 돌석으로 불렸기에 현재 신돌석장군 생가지와 유적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장군은 유년기에 육이당 이중립에게 학문을 익혔으며 1896년 일제는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상투를 자르는 단발령을 시행하자  이에 항거하며 전국에서 을미의병이 일어났었고 장군도 100여 명의 동지를 모아 영해에서 떨치고 일어났습니다.

 

 

 

 

 

김하락의 이천의진이 경주에서 영덕으로 밀려와 신운석의 영덕의진과 연합하여 강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에 장군은 중군장으로 전투에 참여하며 초반에는 우세하게 전세를 이끌었으나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그만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김하락 의병장은 자결하고 일월산으로 후퇴한 의병은 유격전으로 맞섰습니다. 신돌석장군은 영덕읍 남천쑤 전투에 참가하면서 그의 구국 의병 활동이 시작됩니다. 장군은 일본과의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워 수많은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1904년 기울어가는 국운을 보고 평해 월송정에서 시 ‘우국(憂國)’을 짓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등루유자각망행(登樓遊子却忘行)

  가탄단허낙목횡(可歎檀墟落木橫)

  남아이칠성하사(男兒二七成何事)

  잠의추풍감개생(暫倚秋風感慨生)“으로

  그 뜻을 풀어보면

  “월송정 누에 오른 나그네가 갈 길을 잊고서

  떨어진 나무가 가로 놓인 단군의 터전을 한탄하노라

  사나이 27세에 이룬 것이 무엇이며

  가을바람이 부니 감개만 이는구나 “

  장군이 남긴 유일한 시로 우국충정의 굳은 마음과 신념을 알 수 있습니다.

 

 

 

 

신돌석장군 유적지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산 60-5

신돌석장군 유적지 전화:054-734-6397

 

 

 

 

 

 

1905년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3월에 영해지역 청년을 모아 영릉의병진을 조직하면서 본격적인 의병 항일을 전개하여 일본군 토벌에 나섭니다. 경상북도 청하, 영덕, 영해, 청송, 울진, 의성, 영양, 봉화, 삼척, 강릉 등 경상북도 북부와 강원도를 오르내리며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일본군은 태백산 호랑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합니다.

 

 

 

 

1908년 일본인은 더욱 간악하게 발악하자 그해 11월 장군은 의병대를 잠정 해산하고 만주로 활동무대를 옮기려고 장군의 외가가 있는 영덕군 지품면 눌곡리에 잠시 몸을 숨기려고 피신했습니다. 그러나 현상금에 눈이 멀었던 외사촌 김상렬, 상태, 상호 형제는 장군에게 독주를 먹이고 도끼로 무참하게 살해하여 장군은 만 30세의 짧은 나이로 12년을 의병 항쟁에 몸 바치며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고 1971년 국립묘지 유공자 묘에 안장했습니다. 또한, 영덕군과 국가보훈처는 선생이 태어난 축산면 도곡리에 생가 복원과 1999년 11월에는 사당과 동·서재 각 1동, 기념관을 조성하고 장군의 항일정신을 기억하는 성역화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왔습니다. 영덕대게축제와 영덕복사꽃축제가 열리면 많은 관광객이 영덕을 찾습니다. 영덕여행에서 평민의병장인 신돌석 장군 생가와 유적지를 찾는 여행도 매우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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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528 | 신돌석장군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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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솜다리™ 2017.03.21 17:48 신고

    아아... 이렇게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2. *저녁노을* 2017.03.22 05:51 신고

    구경 잘 하고 갑니다.^^

  3. kangdante 2017.03.22 07:54 신고

    단촐하고 아담한 초가집이지만
    정겨움이 묻어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