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여행/봉화가볼만한곳)봉화목재문화체험관. 춘양목의 고장 봉화목재문화체험관 여행하기


지금이야 철, 시멘트 등으로 목재의 효용가치가 많이 줄어 들어지만 20~30년전까지만 해도 목재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품목이었습니다. 예로부터 나무는 겨울에 추위를 이겨주는 땔감에다 더군다나 집을 짓는데 없어서는 안될 재료였습니다. 조선에서는 사계절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솔잎으로 선비들 사이에서는 매난국죽의 사군자와 함께 지조를 상징하는데 소나무를 포함시켰습니다. 당연히 산수화인 한국화에서 소나무가 빠지면 ‘앙코없는 찐방’으로 여길 정도로 샐각되어 휘어지고 꺽인 우리 소나무는 빠지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그만큼 소나무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만큼 중요합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구절로 151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전화:054-674-3363


봉화목재문화체험장 관람안내

봉화목재문화체험장 휴장일:1월1일, 설날, 추석연휴,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그다음날 휴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 개장시간:하절기: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1시간 전까지 입장)

동절기:오전9시~오후 5시까지(1시간 전까지 입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 관람요금:무료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체험료:재품별 별도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단체  체험객은 사전 예약을 꼭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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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 대해서 궁금한 것도 많고 해서 봉화 여행길에 먼저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을 찾았습니다. 이곳을 관람하면서 우리 소나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소나무중에서 가장 품종이 우수하고 단단한 소나무를 금강송이라합니다. 금강송하면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하고 고개를 꺄웃하실것입니다.



예!. 얼마전 숭례문이 화재로 불탔습니다. 그때 티비로 불타는 숭례문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 울었고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불탄 숭례문은 복원이 결정되었고 복원에 사용된 나무가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인 금강송입니다. 금강송은 단단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금강송 이외에도 지역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금강송은 우리나라 소나무를 대표하며 가장 우수한 품종으로 금강산 일대에서 주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금강송이라 부릅니다.

 


적송도 있는데요. 적송은 꼭 금강산과 동해의 고산이 아니라도 명산에 두루 분포하며 껍질이 붉고 속이 단단하고 가지 끝에 붙은 눈의 색깔이 붉은 소나무를 말하여 흔히 홍송이라고도 합니다. 강송도 있습니다. 이는 금강송을 줄인 말이며 강원도 금강산에서  경북 청송군까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동해안에서 곧게 자란 소나무입니다.



금강송의 대표나무인 황장목도 있습니다. 황장목은 이름에서 보듯이 나무의 단면이 창자처럼 생겼으며 속이 붉고 누렀다하여 황장목이라 불렸습니다. 황장목의 고귀함은 조선시대 왕이 승하하면 황장목으로 관을 짰다고합니다.



그리고 춘양목이 있습니다. 춘양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춘양면을 말합니다. 춘양목은 "춘양역에서 실려 온 소나무"을 뜻하며 이게 춘양목의 유래입니다. 1955년 7월 영암선이 개통되었는데 백두대간 일대에서 임산물과 광산물을 수송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또한, 봉화, 울진, 삼척 등지에서 목재를 벌채하면 춘양역에서 모두 모아 서울과 대도시로 팔려나갔습니다.

 


춘양에서 싣고 온 목재는 집을 짓는 현장의 실무자로부터 품질이 우수한 최고의 목재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 나무냐고 물으면 모두 춘양역에서 실어온다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입소문이 나서 질좋은 소나무하면 춘양목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춘양목은 단단하고 속이 붉으며 집을 짓는데 최고의 건축자재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나무가 금강송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춘양목 군락지에서 만났던 나무는 그야말로 쭉쭉빵빵 잘빠진 팔등신의 미녀를 닮아 정말 아름다웠는데 금강송이라 하는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이번에 경상북도 봉화팸투어를 하고 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뜻 깊었던 곳은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이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은 제가 꼭 한번 가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경북관광공사에서 봉화팸투어 목재문화제험장 공지를 보고 접수하여 참가한게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 덕택에 봉화군의 우수한 소나무인 춘양목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론을 익혔다면 이제는 현장 체험 인 나무를 이용한 만들기입니다. 망치로 못을 박고 접착제로 나무와 나무를 붙이며 어릴적 공작시간의 재미를 느끼는 멋진 체험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과 창평산림욕장 등의 관람은 무료입니다. 그리고 목재를 이용한 만들기 체험은 유료로 운영중입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은 2011년 9월 문을 열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면적을 보면 29,500㎡, 창평산림욕장은 95,000㎡ 의 규모입니다.



주요시설을 보면 2층 규모에 목공체험실, 공구실, 자재실, 목재도서관, 전시실, 어린이 체험관과 부대시설인 산림욕장, 자생식물단지, 야외교육장, 어린이 놀이시설, 잔디광장, 연못과 목재 육교, 전망대등이 갖추어져 부산에 생활하는 저로서는 이런 힐링 공간을 가까이 두고 있는 봉화 군민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안내도를 일별하고 계단을 오르면 2층이 목재문화제험장 입구입니다. 출입구옆에 나무로 만든 세발자전거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나무다 보니 조금은 툰탁해 보이지만 그래도 굴러가는게 신기했습니다. 체험관 견학을 온 아이들만 좋아하는게 아니었습니다. 어른들도 나무 세발자전거가 신기했던지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부러질까 불안했는데 그래도 튼튼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관은 모두 나무로 지어졌습니다. 그때문인지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했습니다. 입추도 지났지만 바깥의 온도는 찜통 더위로 쉽게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는데 목재로 만든 체험관 내부는 어디서 에어컨을 틀었는지 시원했습니다. 잠시후에 나무가 자연에어컨역할을 해서 시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것을 보면 나무가 그만큼 우리몸에 좋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요즘 통나무집이 인기인가 봅니다. 나도 빨리 돈을 벌어 통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관에는 우리소나무에 관해 많은 연구를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각으로 전시중입니다.  섬세하게 나무를 조각한 작품이 전시중인데 나무로 만들지 못하는게 없을 정도로 예술성 높은 전시품에 깜짝 놀랐습니다. 나무를 깎아만든 12지신상, 관음보살반가사유상 등 다양한 작품을 구경하고 봉화군의 춘양목에 대한 전시를 보고서야 조금은 춘양목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전시실 사진으로 구경하기




조선목수 도편수와 대목장 소목장 알아보기....








춘양목으로 조선 궁궐도 지었네요 


춘양목과 리기다 소나무 수피 모양을 비교하세요


춘양목에 대해 알아보아요??




봉화 이틀째 고택 체험을 했던 만산고택.. 춘양목으로 지어졌다합니다. 




일반 소나무와 춘양목 무엇이 다른가 우리 알아보아요?



당시 춘양목을 실어 날랐던 춘양역 전경. ㅎ 춘양에서 고택체험을 했는데 이곳에 가보지 안았던 것을 지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봉화목재민속체험관에서 여러가지 나무로 만들기 체험을 해보세요?



















우리나라에 나무 종류가 정말로 많습니다.

100가지 나무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어린이방













체험관 2층 내부를 일단 관람하고 밖으로 나와 창평 산림욕장을 걷기로했습니다. 숲해설가의 안내를 받으며 봉화목재문화체험관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숲속길로 들어갔습니다. 소나무에서 뿜어내는 짙은 솔향을 조금이라도 더 마시려고 더욱 크게 심호흡 했습니다.

 

창평산림욕장 걷기









청량감이 폐를 가득채웠더니 내 폐가 10년은 젊으진 듯 했습니다. 숲해설가의 싸리나무에 관한 어사박문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나무 숲길을 걸었더니 어느 새 정자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주위 경치는 소나무숲에 가렸지만 그래도 수확을 앞둔 황금들판이 나무 사이로 보였는데 농촌의 가을 풍경이 그림 같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음수대. 봉화목재문화공원은 모든게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다시 봉화목재문화체험관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몸과 마을을 힐링했다면 이번에는 목재 만들기 체험에 도전했습니다. 목재 체험장은 1층에 있었습니다. 2층에서 천장은 물론이고 벽체도 나무를 돌린 복도를 지나 나무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도전할 작품은 ‘손잡이 박스’였습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나무를 자르고 깎고 대패를 밀고 하는 게 아니라 요렇게 상자안에 체험하도록 딱들어있습니다. 뚜껑을 개봉합니다. 나이테가 그대로 살아 있는 매끈한 나무판과 재료가 들었습니다. 체험용 나무는 춘양목이 아니고 활엽수 나무라 했습니다.

 



손잡이 상자 개봉 전


손잡이 상자 개봉 후


판자와 못, 접착제와 모양을 낼 여러가지 스티커가 상자에 들어있고 망치는 따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춘양목은 체험하는 사소한 용으로 아마 사용할 수 없겠지요. 일단 판자를 자세히 보면 작은 홈이 나 있습니다. 홈이 있는 3개의 판자에다 망치를 가지고 못을 1/3 정도 들어가게 박습니다. 망치로 못대가리를 때릴 때 바른 자세로 때려야만 못이 휘어지지 않고 바로 들어갑니다. 잘못하면 못이 휘어져 망칠 수가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판자에다 못을 다 박았다면 좌우로 세우는 판자에다 손잡이가 되는 둥근 기둥을 끼웁니다. 그리고 나면 접착제를 가지고 못을 박은 반대편 부분과 손잡이가 있는 판자 아래 모서리 부분에다 잡착제 칠을 합니다. 어긋나지 않게 판자를 서로 맞추었다면 이제는 1/3 정도 박은 못을 끝까지 들어가도록 망치로 때려 박습니다.

 


망치로 못대가리를 살살 박으면서 점점 강도로 높여야 휘어지지 않고 끝까지 깨끗하게 박혀집니다. 사실 못질이 쉽지 않습니다. 어긋나지 않게 맞추어가며 판자에다 못을 다 박았다면 손으로 못대가리가 끝까지 잘 들어갔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판자가 서로 겹쳐진 부분을 확인합니다. 모난곳이 없이 깨끗하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저는 못대가리는 휘어지지 않고 깨끗한데 판자의 접합부분이 약간 어긋나 사포로 살살 문질렀습니다. 그래도 어긋난 부분은 감출 수 가 없었습니다. 나도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마음만은 뿌듯했습니다. 내가 잘 만들면 목재 장인의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나무로 멋진 만들기 체험을 마무리 했습니다.

 







봉화목재체험장 전경



이곳에서 시간의 여유가 있어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을 둘러 보기로 했습니다. 나무 육교를 건넜더니 정자가 나왔습니다. 전망대에서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전경이 다보였습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오솔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저곳이 뭐지!’하며 궁금해서 가보기로 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어린이 놀이터



넓은 터에 목재로 만든 어린이 놀이터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범선 같았습니다. 불연 듯 타이타닉이 생각나 “야! 저 꼭대기에 한번 서 보라“며 친구 등을 떠밀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 놀이시설인데 함부로 올라갈 수 없어 눈으로만 구경했습니다. 넓은 잔디 광장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웃고 뛰놀고해도 전혀 다치지 않을 것 같았으며 가족소풍장소로도 최고로 보였습니다.


소풍장소로 최고인 잔디광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보고 출발지로 내려 왔습니다. 이런 곳이 체험료만 빼고 모두 무료관람이라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부모님을 동반하면 참 좋은 곳이며 온가족이 소풍과 체험으로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곳입니다. 부산에서 온 저도 봉화목재문화체험장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힐링된 기분으로 다음여행지로 고고씽





※이 포스팅은 경북관광공사에서 주최한 '2017 창조지역사업 「나무사랑학교」 봉화 춘양목 팸투어에 참가하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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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363 | 봉화목재문화체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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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26 07:26 신고

    구경거리가 풍성해서 좋은데요 잘 보고 갑니디



거창 만월당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만월당과 임진왜란 의병 정용 비석을 만나다. 거창 만월당  


북상면의 갈계숲과 강선대 사이의 정용선생 유적지와 만월당을 여행했습니다. 만월당은 농산리 용수막 마을 도로 옆에 있습니다. 정용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카와 함께 집안 식구를 모아 의병을 조직하여 김면장군의 휘하에 들어갔습니다.





거창 만월당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314







조선 시대 3대 의병장 중 한 분인 김면은 거창과 고령에서 의병을 모아 군사를 일으켰으며 정용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선두에 서서 왜적과 싸웠습니다. 김면은 정용을 “충의로운 사람이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합니다.





여러 전투에 참여해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그의 마지막 전투인 진주성에서는 최경희의 휘하에 들어가 진주성을 지켰지만 사생결단으로 조여오는 왜적에 진주성은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정용은 두 조카에게 “우리가 적의 칼날에 죽는 거보다 남강에 빠져 죽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하며 두 조카와 함께 강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순절 12년 만인 1605년 선조 38년에 안문사가 관문을 보내옴에 따라 선조는 후손에게 조세와 부역을 면제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정용의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가지고 자식이 이익을 취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며 끝내 받지 않았다 합니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정용은 1539년 중종 34년에 갈계리의 본가에서 태어났으며 54세인 1592년에 의병으로 나가 1593년에 55세의 나이로 순절했습니다 그의 유적비가 현재 갈계리 용수막 만월당에 세워져 있습니다,




만월당

만월당은 1614년 만월당 정종주(1573~1653) 선생을 기려 처음지어졌다가 소실되었다합니다. 현재의 만월당은 1786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면 4칸에 옆면 1칸이며 옆에서 보면 사람 인자 모양인 겹처마 맞배지붕입니다. 남향을 보고 지어졌으며 가운데 2칸은 대청을 넣고 좌우 각각 1칸씩의 온돌방에 앞과 뒤로 툇마루를 달았습니다.

 

팔완


만월당정용비석

공포는 초익공집이며 5량가에 만월당 앞 마당에는 연못이 남아 있습니다.  정면에 만월당(滿月堂) 편액이 있으며 그 옆에는 팔완당(八玩堂)의 편액이 함께 걸려 있지만 건물의 공식 명칭은 만월당입니다. 





팔완당은 북상면 농산리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이후로 없어져 만월당에 함께 통합 복원하였습니다. 팔완당은 첨정을 역임한 정몽서를 기리고 있습니다. 만월당과 마주하며 진양 정씨 효우사가 있습니다. 만월당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70호입니다.


효우사

거창 만월당은 갈천선생의 문하였던 팔완당 정몽서와 손자인 만월당 종주를 모신 재실입니다. 그러다 2007년 맞은편에 효우사를 짓고 재례 기능은 모두 그쪽으로 옮겼갔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신 정용은 만월당 정종주의 삼촌으로 모두 한집안 일가입니다. 

만월당은 강당과 대문채로 구성되었으며 만월이란 당호에서 보듯이 밤에 물에 비친 달을 보기 위한 연못이 남아 있습니다. 

거창군에서 실시한 ‘거창 만월당의 기록화 조사 보고서’를 보면 만월당은 1786년 지어진 건축물로서 조선 중기 건축 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건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월당의 평면은 퇴칸을 사용하지 않은 홑집으로, 퇴칸으로 공간을 넓혀 겹집화 된 조선 후기의 건축물들과는 많이 다르게 지어졌으며 또한, 정면과 측면의 비율, 평면과 높이와의 관계로 결정되는 전통건축물의 비례체계에서 조금 다른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다합니다. 만월당은 조선 중기의 건축기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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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314 | 거창만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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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09.15 09:02 신고

    여긴 못 가봤네요
    다음번을 기약합니다^^

  2. *저녁노을* 2017.09.15 14:30 신고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3. 핑구야 날자 2017.09.16 08:10 신고

    거창 만월당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네요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겹처마인 눈썹지붕의 처마선이 아름다운 사랑채 동계정온고택을 만나다, 거창동계고택


조선 중기의 문신인 동계정온선생이 태어난 곳은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강동마을입니다. 동계선생은 절의를 상징하는 분으로 널리 알려져 거창 여행을 하면서 동계고택을 꼭 찾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기회가 닿아 거창을 둘러보면서 함께 동계정온고택을 찾아왔습니다.





거창 충신당 동계정온고택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0-1




☞2017/08/14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여행일번지 수승대와 척수대.

2017/08/23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 용암정. 무더운 여름나기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을 여행하다

2017/09/02 -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농산리 석불입상)과 행기숲

2017/09/03 - (거창여행)야옹 정기필의 반구헌을 가다. 야옹 정기필의 반구헌

2017/09/07 - (거창여행)거창 월성계곡 강선대와 민들레울의 모암정 여행. 거창 강선대와 모암정

2017/09/10 - (거창여행)동계정온선생의 모리재를 찾다. 거창 모리재





동계선생이 태어난 집이지만 현재의 고택은 1820년인 순조 20년에 새롭게 지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동계선생이 생활했던 집이 아니라는 말씀. 동계고택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에 처음 지어졌습니다. 나무로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비바람에 노출되어 여러 번의 개보수가 있었는데 현재의 고택은 1820년에 지어졌다고 상량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문채는 일자형이며 가운데 솟을대문입니다. 출입문에 인조가 내린 정려문이 걸려있으며 안쪽으로 웅장한 사랑채 건물이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ㄱ'자의 사랑채에서 눈에 띄게 드러난 부분은 꺾인 부분에 누마루를 넣고 그 위에 올린 겹처마라 불리는 눈썹지붕입니다.

 


약간은 어색해 보이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겹처마는 정온선생의 절의를 상징하는 듯 보였습니다. 겹처마 덕분에 정온 고택의 위상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습니다. 눈썹지붕은 사랑채를 처음 지을 때 있었던 게 아니고 지붕의 처마가 건물에 비해서 작아 비가 누마루로 들이치고 하여 뒤에 새로 달아내었다고 합니다.



저는 고건축에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대부분의 고건축 전문가분의 공통된 의견인 것 같습니다. 사랑채는 남쪽을 향해 앉았고 앞과 뒤로 모두 툇마루를 달아내었으며 기단은 낮지만, 툇마루는 높게 만들었는데 이는 남부지방의 건물 특징중 하나라 합니다.

 

동계정온고택 사랑채



건물은 왼쪽부터 온돌방, 대청, 온돌방을 넣었으며 그 앞에 누마루를 배열했습니다. 온돌방의 앞쪽은 사랑방 역할을 하며 뒤쪽은 잠을 자는 침방으로 사용했습니다. 대청 또한 중간에 사잇문을 달아 나누어 사용했습니다. 누마루는 사방 문을 달아 개폐하도록 했는데 여닫이문의 문살이 눈이 부실 정도로 우아한 게 한국의 미를 보는 듯 매우 아름답습니다.





매미 소리 요란한 한여름에 누마루의 사방 문을 열고 책이라도 본다면 머리에 쏙쏙 들어올 것 같으며 또한, 드러누워 쿨쿨 낮 잠자기에 딱 그저 그만 일 것 같은 정온고택의 누마루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절의의 상징인 동계정온고택에서 한옥 민박체험을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6칸에 옆면 2칸 반이며 앞뒤로 두 줄로 된 겹집이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사실 안채는 살림집으로 현재에도 후손의 생활공간이며 출입할 수 없습니다. 빼꼼히 3칸의 중문을 통해 안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사랑채와 같은 남향이며 앞면 8칸에 옆면 3칸 반에 앞뒤로 툇마루가 있는 두 줄의 겹집으로 사랑채와 함께 주목받는 건물입니다.

 


건물의 구성은 대문채 사랑채, 안채, 아래채, 곳간채, 사당으로 이루어졌으며 거창의 동계고택은 영남 내륙의 추운 기후에 알맞게 우리나라 북부지방의 일반적인 겹집형태와 남부지방의 높은 툇마루를 잘 조화시킨 건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랑채에 걸린 충신당(忠信堂)과 모와(某窩)의 현판은 제주도에 유배 갔던 추사가 제주도의 대정에 유배왔었던 동계정온선생을 생각하며 훗날 정온의 놓은 절의를 기려 직접 동계고택을 찾아와 충신당을 적고갔다 합니다. 현재 그 현판은 거창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고택에 걸린 현판은 모작입니다.

 


모와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이씨조선의 마지막 왕족 의친왕 이강이 남긴 현판이지만 도둑맞아 다시 복원하였으며 모화당 또한 대원군이 자주 찾아왔을 때 그때 쓴 현판이라 합니다.

 




대문채에는 인조가 병자호란의 절의를 기려 내린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문간공동계정온지문’의 정려가 걸려 있습니다. 안채 뒤편에는 신위를 영원히 모실 수 있다는 동계정온선생의 ‘불천위’ 사당이 있으며 이는 나라에 크게 이바지를 한 분에게만 내렸다 합니다. 그만큼 동계선생의 충절이 크다 하겠습니다.

 


동계 정온 선생은 광해군이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을 사사 하고 영창대군의 생모인 인목대비의 폐모론을 거론하자 도의에 어긋난다며 격렬하게 항의하고 반대하다가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제주도 대정에 위리안치의 위배형을 내립니다.

 


안채전경





동계는 인조반정으로 10년 만에 풀려났으며 대사간, 경상도 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지냈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명나라와의 의리를 내세워 청나라와의 척화를 주장하였으나 화의가 이루어지자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자 벼슬을 마다하고 낙향하여 덕유산 인근의 모리에서 은거하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돌아가신 다음 숙종은 영의정에 추증하였으며 광주 현절사. 제주 귤림서원, 함양 남계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현재 동계정온고택은 중요민속자료 제205호에 지정되었으며 유품은 중요민속자료 제218호에 각각 지정되었습니다.










인조가 내린 정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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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0-1 | 충신당동계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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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14 07:52 신고

    도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어서 볼 때마다 좋아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9.14 09:40 신고

    안채는 들어가지 말고 사진도 찍지말라 하시던데요 ㅡ.ㅡ;;
    여기 고택 체험 숙박료가 좀 비싸다고 주인 아주머니께서 직접
    이야기 하시더군요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동계정온선생의 모리재를 찾다. 거창 모리재


거창의 인물에서 동계정온선생은 큰 비중을 차지하며 조선 중기 충과 절의를 상징하는 인물로도 동계정온선생은 빼놓지 않고 거론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동계정온고택과 동계 선생이 말년에 머물렀던 모리재를 두고 많이 망설였습니다.





동계정온선생의 모리재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73



2014/08/24 - (경남맛집/거창맛집)거창 거열산성 건계정 맛집 삼산이수. 거창 함토음식인 갈비탕과 갈비찜이 유명한 삼산이수에서 갈비탕 먹고 왔습니다.

2014/07/01 - (경남여행/거창가조여행)거창 가조 미녀봉 산행. 만삭의 여인을 닮은 아름다운 산 거창 미녀봉 등산 넘 좋은 산행지.

2014/05/23 - (경남맛집/거창맛집)거창스포츠파크, 거열산성 맛집 구구추어탕. 거창 향토음식인 추어탕과 어탕국수 맛있게 하는 구구추어탕.

2014/01/10 - (경남맛집/거창맛집)가조 엄마손 추어탕. 추운날에 먹는 따뜻한 엄마손 어탕국수로 겨울을 이겨내세요.

2014/09/02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감악산 산행. 감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뼈속까지 시린 물맞는 약수탕에서 물맞이를 하다.





두 문화재를 두고 포스팅의 순서를 나름대로 고심했는데 그래서 동계선생의 절의에 상징을 뜻하는 모리재를 먼저 포스팅하기로 하고 동계 정온선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인근에 있는 집에서 그냥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시지 않고 정온선생이 모리(이름없는 동네)에서 은둔하며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는지 궁금했습니다.

 

화엽문

그러려면 먼저 동계정온선생에 대해 조금은 알아야 했습니다. 동계선생은 모리재와 인접한 위천면 강천리 강동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거창의 명소인 수승대와는 거리가 1k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입니다.



동계정온선생은 광해군 시절 선조의 적자였던 영창대군이 강화부사 정항에게 피살당하자 상소를 올려 그의 처벌과 인목대비 폐모론의 부당함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광해군은 동계의 격렬한 항의에 격분하였고 제주도 대정에다 위리안치의 유배형을 내렸습니다. 그 후 인조반정이 일어나 10년 만에 해배되면서 광해군 때 절의를 지킨 인물로 추앙받아 이조참판의 관직까지 올랐습니다.

 



1636년인 인조 14년에 10만 대군을 이끌고 청나라가 쳐들어와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패했으며 인조는 궁을 버리고 급기야 피난을 가기에 이르렀습니다. 봉림과 인평대군, 비빈 등은 강화도로 피신하고 여의치 않은 인조와 소현세자는 남한산성으로 일단 몸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에 의해 강화도가 함락되어 왕자 등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인조는 청 태종에게 항복하여 무릎을 꿇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였습니다. 청나라 화친파와 끝까지 싸우자며 척화를 주장하는 신하로 나누어졌습니다. 동계는 당시 명나라와의 의리를 내세우며 최명길 등이 내세운 화의 주장을 반대하다가 인조의 항복 소식을 듣고는 의분을 참지 못하고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합니다.




 

모리재


절명시의 앞부분을 보면 그의 애끓는 충절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임금의 욕봄이 이미 극에 달했는데

신하로서 어찌 죽음을 늦추겠습니까.

목숨을 버리고 의를 얻는 일이

지금이 바로 그렇게 할 때입니다“

동계의 자결은 시종이 발견하여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는 몸을 추스르자마자 낙향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덕유산에 들어가 은거합니다.


구소


모리재의 위치는 덕유산에서 흘러 내려온 한 가닥이 황석산, 거망산, 기백산, 금원산인 1천 미터의 고봉을 만들었는데 이들 산군을 일명 경남 알프스라 부릅니다. 그리고 금원산에서 북동쪽인 위천을 향해 뻗은 지맥이 현성산이며 그 능선 자락에 꼭꼭 숨어 세상과 담을 쌓은 곳에 있습니다. 너무 깊은 산골짜기에 있다하여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하여 모리가 되었는지 말입니다. 

 

 




그는 떠나면서 누가 나를 찾아 “어디로 갔냐고 묻거든 모리로 갔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돌과 풀을 엮어 움막을 짓고 ‘구소(鳩巢)’라 하였고 주위를 개간하여 기장과 조를 심고 풀뿌리로 연명하며 살았습니다. 그때 동계를 찾아온 손님에게 “돌아가서 아무에게나 나의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합니다.







모리재는 강선대에서 2km 남짓 골짜기를 올라야 합니다. 모리재까지는 일제강점기 때 벌목을 위해 만든 임도가 시멘트 길로 포장되었지만 꼬불꼬불 좁은 길은 모리재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채미헌



모리재 입구에는 2층의 누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1806년에 세웠으며 화엽루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이익공계 팔작지붕 기와 건물로 주변의 돌을 쌓아 주춧돌을 만들고 그 위에 누각 아래를 바치는 네모난 돌기둥과 둥근 나무기둥을 세운 층층의 누각입니다.




사당



각 모서리의 처마를 바치던 활주는 4개가 있어야 하지만 현재 2개만 남아있습니다. 적막강산이란 말이 어울리는 이런 깊은 산속에 화려한 단청과 섬세한 조각을 한 웅장한 누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각 밑을 지나면 정면의 높은 기단 위에 모리재가 있습니다. 앞면 6칸에 옆면 2칸인 팔작지붕으로 2칸의 대청에다 좌우로 온돌방을 넣었는데 이곳을 찾은 지역 유림이 선생을 추모하고 서로 강론하며 공부하던 곳입니다.





모리재는 1921년에 전체적인 중수를 하였고 마루에는 구소와 채미헌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모리재는 선생이 낙향하여 지낸 것을 기념하여 사후인 1654년에 유림이 영당을 세워 제향하다 소실하자 1707년에 중건하면서 모리재라 하였습니다. 마침 제가 도착했을 때 승용차가 내려가던 것을 보았는데 이곳 모리재에는 아마 동계 선생의 후손이 생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모리재 내부는 후손의 손길이 닿아서인지 깨끗한 편이었으며 건물 뒤쪽에 사당이 있었습니다. 먼저 사당 입구의 삼문은 각 1칸의 맞배지붕인 일주문이며 사당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초익공계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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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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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12 06:41 신고

    조용한 게 힐링하기에 참 좋을 것 같은 곳이 네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9.12 15:01 신고

    지난주 거창을 잠깐 다녀 왔습니다
    동계종택은 들렀습니다^^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월성계곡 강선대와 민들레울의 모암정 여행. 거창 강선대와 모암정


거창의 명소 수승대를 지나면 남덕유산 초입의 갈계리 갈계마을입니다. 이곳에서 계곡은 나누어지는데 오른쪽은 덕유산의 언저리에 송계사를 품은 소정 계곡이요, 왼쪽은 남덕유산에서 흘러내린 월성계곡입니다. 그 품이 하도 넓고 깊어 골짜기마다 수많은 사연이 전설되어 내려오는 덕유산.





거창 월성계곡 강선대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2017/09/03 - (거창여행)야옹 정기필의 반구헌을 가다. 야옹 정기필의 반구헌

2017/09/02 -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농산리 석불입상)과 행기숲

2017/08/23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 용암정. 무더운 여름나기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을 여행하다

2017/08/14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여행일번지 수승대와 척수대.

2014/08/26 - (경남여행/거창여행)점필재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일원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 남상 일원정




이번에는 거창 북상면의 덕유산 청정수가 모여 흘러내린 월성계곡의 첫 번째 경승지인 강선대(降仙臺)를 만났습니다. 강선대는 이름 그대로 ‘신선이 내려와 노닐다 간 곳’입니다. 주위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신선이 다 내려올까 싶어 필자도 신선이 된 기분으로 강선대를 찾았습니다.

 


강선대 마을과 강선대, 모암정을 함께 보면서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니 신선도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울고 갈 그런 곳이었습니다. 강선대는 사방이 산으로 둘려 그 앞을 흐르는 계곡과 소나무 숲이 감싼 마을은 풍수설에 ‘댓뒤’ ‘불무곡’이라 하며 모리재를 품은 모리산은 뒤를 막아 배산임수의 명당에 자리했습니다.

 




거창 북상면 월성계곡 13경의 4경인 강선대는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반석이 계곡을 덮고 그 위를 타고 흐르는 옥구슬 같은 맑은 물은 마치 물방울이 구르듯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그런 곳입니다. 이런 곳에 한여름 더위를 피해 탁족을 즐기며 선비들이 시문을 서로 나누었을 정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없는 게 이상하다 할 정도였으며 역시나 나의 생각은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아름다운 정자인 모암정이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고숲(古林)이라 불렀습니다. 고숲 한가운데인 강선대 암반을 깔고 은진임씨 정자인 모암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거창 월성계곡 민들레울·모암정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582-2

거창 월성계곡 민들레울·전화:055-942-5006



모암정은 규모도 엄청나게 큰 것 같았고 화려한 조각 솜씨로 아름답게 꾸며졌습니다. 모암정(帽巖亭)은 조선 명종·선조 때의 문신이자 충신인 갈천 선생으로 불리는 임훈의 후손인 모암 임지예가 시를 읊고 공부하며 거닐면서 머리를 식혔던 곳입니다.



고종 때에 절충장군행용위부호군 및 동지돈령부사를 지냈으며 정려에 배향된 이름난 효자입니다. 은진임씨 후손들은 선조의 뜻을 기리며 추모하는 뜻에서 1921년에 건립한 정자로 모암의 호를 따서 모암정이라 하였습니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넜습니다.





정자에는 올라갈 수 없게 막아 놓았지만, 부연(겹처마)과 처마를 받치는 4개의 활주인 돌기둥에는 도마뱀, 포도 덩굴 등을 새겼으며 우물마루를 깐 천장에는 아름다운 꽃병과 용 두 마리가 어우러져 있는 게 모암정의 가치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현재 모암정은 허브농원인 민들레울에서 정자와 땅을 매입하여 개인 사유지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다른 곳의 정자보다는 훨씬 관리가 잘되어 보였는데 아쉽게도 원형에서 조금은 훼손이 된듯했습니다. 옛말에 효자 집안에 효자 난다고 모암정에서 월성계곡을 300m를 쯤 거슬러 올라가면 모암 임지예의 아들인 덕산 임진원을 기리는 정자인 덕산정이 월성계곡을 끼고 나란히 있습니다.

 




월성계곡의 맑은 물과 은은한 허브향이 가득한 모암정의 정자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면 이번에는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강선대 바위를 찾아갑니다. 강선대는 강선대 다리를 건너면 바로 만납니다. 정자나무인 노거수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큰 바위에다 강선대 세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이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이며 제단 같은 독특한 형태입니다. 또한, 조선 인조와 광해군 때 충절로 이름난 동계 정온선생이 병자호란 때 명나라와의 의리로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지만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며 항복합니다.



정온선생은 청과의 화의를 끝내 반대하다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낙향하여 고향 뒷산인 모리에서 은거하며 일생을 마쳤습니다. 강선대는 정온선생의 은거지였던 모리와 지척에 있어 함께 여행하면 좋습니다. 아마 동계정온 선생도 이곳을 즐겨 찾지 않았나 생각하며 다음여행지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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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469-3 | 강선대 경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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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08 07:59 신고

    분위기가 괜찮아서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은데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7.09.08 13:37 신고

    거창을 다녀 올까 말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겸사겸사..ㅋ

  3. *저녁노을* 2017.09.09 05:59 신고

    잘 보고갑니다.
    ㅎㅎ
    즐거운 주말 되세요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야옹 정기필의 반구헌을 가다. 야옹 정기필의 반구헌


거창 수승대 일원을 여행하고 게을러 여행 블로그 포스팅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 미루다가는 거창 여행은 버려야 할 판이라 급하게 다시 블로그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야옹 정 기필(1800~1860) 선생의 반구헌입니다. 반구헌은 스스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반성한다는 뜻이 있어 당시 정기필 선생의 선비로서의 마음가짐을 보는듯했습니다.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반구헌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정기필 선생의 반구헌 문화재 안내판에는 영양 현감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머물 집한 칸이 없을 정도로 전임지에서 목민관의 도리에만 힘썼다 합니다. 그러한 선생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던 안의 현감이 이곳에다 묵을 집을 마련해주었던 게 반구헌입니다.





청빈한 선비의 삶과 목민관의 도리를 다했던 야옹 정기필 선생의 반구헌을 생각하다가 요즘 뉴스거리에 연일 톱으로 떠 오르던 분들이 생각나 개똥쑥을 씹은 것같이 참 기분이 더러워졌습니다.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했는지 마침 빌린 돈이 있어 주식에 투자했는지 모르지만 7억의 수익에다 이외에도 족집게 같은 주식투자로 수익을 올렸다는 모 법조인. 주식에 투자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이분은 목민관보다는 증권가에 족집게 주식 투자자로 소문나면 더욱 많은 수익을 올릴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리고 65억의 재산이 있다는 분은 명품가방 하며 수천만 원대의 금품을 받았다는 구설수가 나자 본인은 다 되돌려주었다는 해명을 내놓았는데 정작 본인은 그리 깨끗한 척 하시던 양반이라 참 세상에 믿을 양반 하나도 없다는 것에 더욱 화가 납니다. 왜!!! 요즘은 황희정승, 야옹 정기필 선생 같은 이런 분들은 없는지 이런 분이 목민관으로 있는 세상은 요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꿈이 되어버린 게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어휴, 답답해서 주저리 읊었습니다. 각설하고 반구헌에 대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먼저 정기필 선생은 초계정씨입니다. 초계정씨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 동계 정온선생입니다. 현재 초계정씨가 이리 뿌리를 탄탄히 내리고 남아 있는 것도 선조인 동계 정온선생 때문입니다.





정온의 4대 후손인 정희량이 무신년에 이인좌와 함께 반란을 도모하였다가 실패해 멸문의 위기에 몰렸지만, 동계 정온선생의 높은 명망에 멸문은 면하였습니다. 야옹 정기필이 20여년 동안 강동마을에서 숨죽이며 숨어 지내야 했던 정씨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 오늘날 명문가로서 남게 되었으며, 현재 강동마을의 정씨 대부분은 정기필의 후손이라 합니다.

 




그럼 안의 현감의 도움으로 지어졌다는 반구헌을 둘러보겠습니다. 남은 건물은 대문채와 사랑채가 전부였으나 현재에는 사랑채 뒤편으로 새롭게 들어선 기와 건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채라고 만든 것인지 조금은 복원된 건물이 기존의 건물과 맞지 않는 게 어찌보면 생뚱맞아 보였습니다.



5칸의 대문채는 한일자 형태로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 중간에 1칸의 솟을대문을 넣고 건물 왼쪽에 부엌인지 마구간, 광인지 모르는 1칸에다 1칸의 온돌방을 넣었습니다. 오른쪽에는 1칸씩인 온돌방을 두 개 넣었습니다. 마당을 들어서면 정면이 사랑채입니다. 앞면 5칸에 옆면 2칸의 팔자지붕인 민도리집입니다.

 


일반적인 양반가옥의 사랑채와는 구조가 조금 다르게 지어졌던 게 반구헌의 특징입니다. 가운데에다 대청을 넣고 좌우로 방을 넣는 게 일반적이라면 반구헌은 대청을 1칸으로 하고 왼쪽에다 두었으며 각각 1칸씩의 온돌방을 3개 내면서 그 옆면에다 계자난간을 두른 누마루를 달았습니다.

 




앞쪽 마루 밑에는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따로 있으며 건물 뒤편에는 가운데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있는데 방 2개를 동시에 난방하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대부의 사랑채라면 건물과 집주인의 위세와 품격을 더 높이기 위해 대청을 넓게 만드는데 반구헌은 허식보다는 실속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리 온돌방을 많이 넣은 것을 보면 찾아오는 손님을 최상의 예우로써 따뜻하게 맞이하려는 정기필 선생의 마음 씀씀이를 보는것 같습니다. 반구헌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2호에 지정되었으며 사랑채의 상량문을 보면 1870년경에 창건이나 중건되었다 합니다. 선비이자 목민관으로서 초연한 삶을 살았던 야옹 정기필 선생을 거창 위천면 강천리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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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1 | 반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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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09.04 11:06 신고

    이번주 거창 갈지도 모르는데 참고로 해야겠습니다 ㅎ

  2. 핑구야 날자 2017.09.06 08:20 신고

    한적하니 보기도 좋은데요. 날이 좋아지면 볼만 하겠어요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농산리 석불입상)과 행기숲


경상남도 거창군은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이며 또한, 너무 거창하다 해서 거창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무엇이 거창하냐고요? 거창은 거창한 볼거리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볼거리를 여행하기 위해서 수승대를 찾았습니다. 수승대에는 거창의 선비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거창문화유산여행 길이 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농산리 석조여래입상)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2017/08/23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 용암정. 무더운 여름나기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을 여행하다

2017/08/14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여행일번지 수승대와 척수대.

2015/05/08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양민학살 추모공원이 있는 월여산 산행, 청정 거창의 오지 산행지 월여산 등산을 하다.

2008/07/03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건흥산~아홉산 산행. 백제군이 결사항전한 역사의 현장을 가보세요

2008/07/01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미녀봉과 장군봉 전설. 미녀와 야수 이야기 2-거창 장군봉~미녀봉




거창문화유산여행 길에는 소나무 숲과 월성계곡 그리고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옛 건축물이 대부분 차지하지만 유일하게 농산리 야산에는 숨은 석불이 있습니다. 이번에 거창여행 포스팅은 농산리 석조여래입상과 이웃한 월성계곡의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인 행기숲을 하겠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호에서 세련미와 수려한 조각 솜씨 등으로 문화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보물 제1436호로 승격 지정하였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석불로 천년의 세월을 이어오면서도 석불의 광배, 받침대인 연화대좌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졌는데 불상과 광배는 하나의 바위에 큰 자연석을 원뿔꼴로 다듬었고 또 한 개는 석조여래입상을 받치는 연꽃 대좌로 조각했습니다. 석불의 머리 부분은 높고 두툼한 상투 모양이며 얼굴은 둥글고 온화하고 옅은 미소를 띠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석불과 마주하면 당당한 모습에서 사내다운 풍모가 느껴집니다. 가슴과 유연한 어깨,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에 긴 다리, 얇은 옷자락 속에 보일 듯 말 듯 입체감의 드러난 몸매는 통일신라 시대의 뛰어난 불교 예술품입니다. 또한, 양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의 주름이 가슴 위로 U자형을 그리며 내려오다 허리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두 다리에서는 다시 밀착되어 작은 U자를, 종아리 부분에서는 큰 Y자로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양식의 불상을 인도의 우드야나(Udyana)왕 여래상형식이라 합니다. 이는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입적하고 성불하여 한때 33천 중 부처님의 네 번째 나라인 도리천에서 다시 태어나 어머니에게 설법하였다합니다. 그때 밧사(Batsa)국의 우드야나왕이 지상에 부처가 잠시라도 없는 것이 아쉬워 그 허전함을 달래려고 150cm 크기의 아담한 여래상을 만들어 공양한 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우드야나왕이 공양한 여래상이 최초로 만든 불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때 만든 여래상의 흘러내린 옷자락의 표현이 농산리 석불입상의 조각양식과 같아 우드야나왕 여래상형식이라 합니다. 이런 형태의 옷자락 표현은 통일신라 시대 불상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농산리 석불입상의 광배는 마멸이 심하지만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몸 전체를 감싼 형태입니다. 불상을 받치는 연꽃 좌대도 연꽃을 엎어 놓은 듯 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으로 심하게 마멸된 모습입니다.

 


두발은 불신과 따로 좌대위에 조각되어 있으며 마멸과 훼손이 심해 현재 왼쪽 발가락 일부만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광배의 오른쪽 끝부분은 깨어졌지만 하나의 돌에다 광배와 부처를 함께 조각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은 배 모양인 주형거신광으로 마멸과 손상은 심하지만,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큰 규모의 불상에다 정제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등 그 수가 많지 않은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과 이웃한 월성계곡에는 적송의 소나무 숲이 계곡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이며 정말 그림같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곳 행기숲에는 백제 무왕이 왕자 시절에 신라로 숨어들어 선화공주를 꾀어 백제로 돌아간 이야기가 전합니다.



월성계곡 행기숲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서동은 신라의 서라벌에서 서동요를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였고 나중에 선화공주와 함께 백제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인 월성계곡에 다다라 이곳의 빼어난 경관에 그만 넋을 잃고서 피로도 풀고 며칠 쉬어 갔다고 합니다. 행기숲은 서동과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의 로맨스만 있는 게 아닙니다.

 




행기 숲을 해인정(解印亭)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신라 말기에 고려의 침공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였습니다. 경순왕은 후백제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급하게 사신을 꾸려 보냈습니다. 사신이 이곳에 다다랐을 때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해 나라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신임을 증명하는 신표인 인장을 이곳에다 숨기고 종적을 감추었다 합니다. 해인(解印)은 인장을 싼 보따리를 풀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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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 농산리 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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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수승대 용암정. 무더운 여름나기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을 여행하다


거창하면 수승대와 빼어난 경승지인 용암정(龍巖亭)을 함께 보는 게 당연시합니다. 어쩜 둘은 바늘과 실의 관계로 함께라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지금은 수승대 쪽에서 거북바위 앞 돌다리를 건너면 성령산 아래를 따라 흐르는 위천(월성계곡)에 오솔길을 정비해서 누구나 쉽게 용암정까지 산책할 수 있습니다.



거창 용암정 주소: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3



2013/10/25 - (경남여행/거창여행)가조 우두산, 거창한 동네의 거창 소머리산인 우두산 가을 산행이 최고

2014/06/29 - (경남여행/거창여행)우두산 고견사. 거창을 대표하는 고견사 원효, 의상, 최치원의 전설이 남아 있는 거창 가조 우두산 고견사 둘러보기.

2014/08/26 - (경남여행/거창여행)점필재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일원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 남상 일원정

2014/08/27 - (경남여행/거창여행)감악산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이 유명한 감악산 연수사에서 얼음물을 맞다.

2014/09/02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감악산 산행. 감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뼈속까지 시린 물맞는 약수탕에서 물맞이를 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하얀 암반과 짙은 솔숲, 차디찬 계곡물, 덕유산에서 부는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걷는 수승대~용암정 둘레길, 군데군데 덱과 전망대를 설치해 놓아 더욱 분위기 있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거창 수승대 위 용암정은 대략 200년이 조금 넘은 역사를 가졌습니다. 이는 다른 여러 고건축물에 비해 그리 긴 연륜을 갖지 않았지만, 용암정의 자태는 자연 암반에 걸터앉은 게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한 한 마리의 학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춤추며 날아갈 듯 우아한 모습을 한 매우 빼어난 건축물입니다.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그 아름다움을 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포스팅을 하는 지금도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거창 용암정은 함안 출신인 용암 임석형(1751~1816)이 건립한 정자입니다.



1801년 건립한 용암정은 그가 남긴 용암정기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용암은 정자를 건립하고 한시도 이곳을 떠나지않았을 정도로. 그만큼 용암정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선비로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습니다. 어릴 때부터 재주가 비상하고 머리가 영특했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처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용암 임석형, 세속에 초월한 듯 용암정에서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를 알던 영호남 선비들은 이곳을 지나다가 서로 시문을 교류하면서 ‘원학주인(猿鶴主人)’이라 칭송했습니다. 임석형의 ‘용암정 창건기’와 이휘준의 중건기를 보면 1864년인 고종 1년에 보수 공사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용암정은 위천의 자연 암반에 계곡을 바라보고 동향으로 지어졌습니다. 용암정에서 누마루나 방문을 열면 월성계곡과 덕유산, 금원산의 물과 바람인 산수를 그대로 받아들이게끔 지어졌습니다. 용암정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으로 누하주가 낮은 형태인 중층의 누각입니다.



위에서 보면 가운데 배면에 사방 1칸의 온돌방을 넣고 3면은 전부 누마루로 돌렸습니다. 온돌방도 4면에다 모두 문을 달았는데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와 같은 평면 양식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3호인 수승대의 요수정과 비슷합니다.



출입은 뒤편 배면에 걸친 좁은 나무계단입니다. 이를 올라 용암정의 누마루와 온돌방으로 들어갑니다. 작은 통나무를 찍어내어 홈을 판 나무 계단을 보면서 투박한 주인의 성품을 보는 듯했습니다. 불을 지피는 아궁이와 구들장이 깔린 온돌방에 겨울철 거창은 얼마나 추운지 짐작이 갑니다.



누마루와 온돌방 이를 보면서 저도 용암정 같은 정자 하나 같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용암정의 공포양식은 초익공이며 도리가 다섯 개인 5량가 건물로 위천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각을 바친 자연 암반에다 용암정의 글씨를 새겨 놓았는데 붉은색을 입혔습니다.



정자 안쪽에는 ‘용암정’ ‘반선헌 ’청원문‘ ’환학란‘의 편액이 걸려 있으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위천쪽에 내려갈 엄두도 나지 않고 해서 암각과 편액은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는데 다음 거창여행에서는 용암정을 가장 먼저 들러 누마루에 올라 용암 임석형선생의 초연한 삶을 생각하며 세심하게 용암정을 둘러봐야겠습니다.





용암정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3호로 지정되었다가 정자와 함께 위천의 암반과 아름다운 경관으로 2012년 국가 명승 제88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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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3 | 거창용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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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8.24 07:51 신고

    휴가 못 가신 분들은 무더위 피해서 찾아보면 좋겠네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8.25 11:35 신고

    내년 여름에 한번 가 봐야겠습니다^^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여행일번지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하면 수승대, 수승대 하면 거창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거창에서는 여름 피서지이자 휴양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거창의 수승대 인근 둘레길을 걸으면서 만난 수승대와 척수대는 거창의 명승지답게 심한 가뭄에도 많은 수량이 흘러내려 산자수려함을 뽐내었습니다.



2015/05/08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양민학살 추모공원이 있는 월여산 산행, 청정 거창의 오지 산행지 월여산 등산을 하다.

2014/09/03 - (경남여행/거창여행)김숙자사당. 영남사림파의 발흥이 된 거창 남상면 강호 김숙자 사당을 보고오다.

2014/09/02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감악산 산행. 감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뼈속까지 시린 물맞는 약수탕에서 물맞이를 하다.

2014/08/27 - (경남여행/거창여행)감악산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이 유명한 감악산 연수사에서 얼음물을 맞다.

2014/08/26 - (경남여행/거창여행)점필재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일원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 남상 일원정




오늘날의 수승대(搜勝臺)는 1543년까지 수송대(愁送臺)라 불렀습니다. 수송대가 수승대로 바꾸어 부르게 된 연유를 보면 퇴계 이황 선생의 일화가 있습니다. 수승대는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 앞 위천의 바위 절경을 말합니다.


수승대관광지 척수대

덕유산의 여러 골짜기에서 섬섬옥수가 흘러내려 빚어놓은 절경이라 예로부터 시인 묵객이 이곳을 찾았다면 세상사 모든 근심을 잊게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합니다. 그런데 삼국시대의 수승대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이며 백제의 최전방이었습니다.







백제 조정은 신라에다 사신을 파견하면서 이곳 수승대에서 몸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며 전별을 했던 곳으로 처음에는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했다 하여 근심 수(愁)에 보낼 송(送)을 써서 수송대라 불렀습니다. 이는 이곳의 경치가 “속세의 근심·걱정을 잊을 만한 절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승대는 조선 중종 때 요수 신권 선생이 은거하며 구연 서당을 열어 후진 양성을 하였고 위천의 수승대의 큰 바위는 거북이를 닮아 암구대라 불렀으며 이곳을 구연동이라 하였습니다. 그 후 퇴계 이황 선생이 안의현의 삼동에 유람차 들렀는데 수송대의 내력을 듣고는 이름이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급한 정무로 들러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하며 수승대로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를 보내었습니다.

 




이에 신권 선생은 그 뜻을 받들어 바위에다 새겨 오늘날 수승대가 되었습니다. 또한, 수승대는 모현대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수많은 현인과 은사가 찾아와 시문을 나누었던 곳으로 남명 조식 선생은 원학동의 대표명소인 수승대를 두 번이나 찾았다고 합니다.

 


수승대 하면 서로 마주 보며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이웃한 곳에 척수대가 있습니다. 수승대가 사신으로 가면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했다는 곳이라면 척수대는 신라로 떠났던 사신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이곳에서 근심을 씻었던 곳입니다.

 


처음 수승대를 개척했던 척암 성윤동이 척수대에서 소요하였으며 구연동에서 황산을 드나드는 길목이라 구연동의 남문이라 했습니다. 또한, 척수대는 이태사랑바위로도 불렸습니다. 이태하면 조선 후기의 명의였던 유이태를 말합니다. 거창군 위천면 서마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유년기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수승대 관광지 주차장

서당에서 글공부하던 어느 날 밤, 하늘의 달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놓고 위천가를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입맞춤을 해달라고 속삭였습니다. 이태는 여인의 유혹에 빠져 그만 입맞춤을 하였더니 입속으로 구슬이 굴러 들어왔습니다.

 

수승대 거북바위

구슬의 유혹 때문인지 모르지만 유이태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그와 반대로 몸은 점점 쇠약해졌습니다. 서당의 훈장이 이를 알고는 이태에게 구슬을 그냥 삼키라 하였습니다. 이태가 구슬을 삼켰더니 여인은 백여우로 변하면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이태는 삼킨 구슬을 빼내 몸에 지니고 다니자 예전처럼 건강이 회복되었고 더욱 총명해져 이름난 명의가 되었다 합니다.



거창 수승대관광지 주소: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

거창 수승대관광지 전화:055-943-5383


수승대 요수정

그 뒤부터 이태사랑바위에서 소원을 빌면 연인은 사랑이 이루어지고 자식은 훌륭한 인재로 성장한다고 전해져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소원을 빈다고 합니다. 척수대는 수승대문화유산둘레길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관광지라 많은 사진과 주위를 상세하게 보았지만, 수승대는 수승대문화유산둘레길의 막바지에 만나 늦은 시간으로 사진을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수승대관수루

다음 거창 여행에서는 수승대문화유산둘레길이 아닌 수승대만을 꼭 다시한번 찾고 싶습니다. 관수루와 요수정, 원각사, 구연 서당 등을 둘러보는 수승대 여행을 이 여름이 가기전에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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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 | 수승대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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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8.16 08:01 신고

    척수대의 모습이 너무 좋은데요 가보고 싶군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8.17 10:50 신고

    요번에 가 볼뻔 했는데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ㅎ




(문경여행/문경가볼만한곳)운달산 김룡사. 명품 숲 전나무가 좋은 운달산 김룡사 여행. 


운달산 아래 자리한 천년고찰 김룡사. 김용마을에서 김룡사까지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은 가히 명품 숲길입니다. 전나무 숲을 지나면 김룡사의 입구를 뜻하는 일주문이 위풍당당한 모습입니다. 김룡사는 588년 신라 28대 진평왕 때 온달조사가 창건하면서 운봉사라 불렀습니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불탔으며 1624년 조선 인조 2년에 혜총선사가 중창하였으나 다시 소실된 것을 1649년인 인조 27년에 의윤, 무진, 태휴 세분 대사께서 삼창하여 운봉사의 옛 모습을 되살렸습니다.



문경 운달산 김룡사 주소: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410

문경 운달산 김룡사 전화:054-552-7006



2008/11/03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대야산 산행. 문경의 명산 대야산 용추폭포와 만추홍엽 단풍보기

2016/05/17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 희양산 봉암사의 전성기를 이끈 정진대사 원오탑비를 만나다. 보물 제172호

2016/05/20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무릉도원의 선경인 용추동천의 백운대에 자리한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을 만났습니다.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2016/05/23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극락전. 잦은 화재로 봉암사 전각중 유이하게 남은 보물 제1574호 봉암사 극락전의 독특한 목탑양식 당우를 만나다. 봉암사 극락전

2016/05/26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 탑비. 보물에서 국보 제315호로 승격된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 탑비의 웅장함에 깜짝 놀라다. 봉암사지증대사탑비


한때 김룡사는 48동의 전각에 건평이 1,188평이었을 정도로 큰 대찰이었으나 1997년 불의의 화재로 대웅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전각이 불탔다가 창건에 버금가는 대 불사를 진행하여 현재 30여 동의 전각이 복구되었습니다. 운봉사가 김룡사로 바뀌게 된 것은 18세기에 절 밑 마을에 살던 김장자에 의해서입니다.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라에 큰 죄를 짓고 도망쳐 운봉사아래 몸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신인의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이들은 김룡사 부처님 앞에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며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러다 아들이 태어나 이름을 용이라 하였습니다. 그 후에 집안이 크게 흥하며 부자가 되었으며 마을 사람은 그를 김장자라 불렀습니다. 부자가 된 김장자는 운봉사에 희사를 많이 했는지 모르겠지만 운봉사는 김장자의 아들 이름인 김룡사로 바뀌었으며 자연스럽게 마을 이름도 김룡(용)이 되었다 합니다.

 




일주문에는 ‘운달산김룡사’와 ‘홍하문’ 편액이 걸렸는데 이는 절제된 김룡사의 현재 모습을 보는듯합니다. 홍하(紅霞)의 뜻을 풀이하면 붉은 노을이라 하며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는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에서 그 음을 취했습니다. 이는 운문종을 창시한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선사께서 남기신 게송의 일부분입니다.


 


생전에 성철스님도 이 게송을 좋아해 즐겨 운문선사의 음을 취했으며 그 때문인지 현재 겁외사를 들어서는 입구 누각에 벽해루 편액이 붙어 있습니다. 일주문의 두 편액은 독립운동가이자 구한말 서예가로 이름을 떨쳤던 동농 김가진(1846~1922)선생의 글씨라 더욱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김룡사 절집을 둘러보겠습니다. 어느 대감 집 출입구 같은 솟을대문에는 보장문 편액이 붙었습니다. 이는 보물을 품은 절을 들어선다는 뜻인데 절에서의 보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합니다. 이곳의 문을 들어섬으로써 진짜 부처님 세상인 불국토에 들어간다는 뜻을 품고 있으며 일주문의 편액을 쓴 동농 김가진선생의 글씨입니다.




 




일주문 오른쪽에는 근심을 푸는 해우소가 있습니다. 이 화장실이 대웅전과 함께 화마가 비껴간 건물이며 300여 년 긴 세월을 이겨냈다 합니다. 그런데 밖에서 보는 해우소 건물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머무는 처서 뒤편의 고방가 곧 쓰러질듯하며 진짜 오래된 건물로 보였습니다.







보장문을 들어서면 절 마당이며 김룡사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옵니다. 먼저 만나는 전각은 천왕문입니다. 천왕문은 절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상을 모신 곳입니다. 아마 불타고 복원하면서 돌이라면 불에도 끄떡없다고 생각했는지 석물로 만들어 안치했습니다.

 






증장, 지국, 다문, 광목천왕을 모셨는데 이분들을 사천왕이라 합니다. 천왕문을 지나면 다시 돌계단을 오릅니다. 보기에도 건물은 근래에 새로 지은 전각입니다. 왼쪽 건물은 스님들의 요사채와 강원인 설선당 건물이며 오른쪽은 2층 누 형태인 보제루입니다. 두 건물 사이로 오르면 대웅전 앞마당입니다.

 




먼저 왼쪽 설선당을 보겠습니다. 앞면 9칸에 옆면이 6칸인데 그 규모가 대단합니다. 아마 김룡사에서 가장 큰 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재로 타기 전에는 300명이 동시에 들어가서 큰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합니다. 1955년 성철스님은 팔공산의 파계사 성전암에다 철조망을 치고 한 번도 암자 밖으로 나오지 않는 ‘동구불출’의 수행을 10년간 하셨습니다. 1965년에 스님은 성전암 문을 저음 나서면서 김룡사의 강원인 이곳에서 가장 먼저 법문을 행했던 곳입니다.

 


보제루는 입구에서 보면 2층 형태지만 대웅전에서 보면 마당 높이와 맞춘 단층 건물입니다. 이곳에는 보제루와 운달산 김룡사의 편액이 걸렸으며 설선당 등 많은 편액이 서예가 권창륜씨 글씨입니다.





마당 좌우에는 윗면이 넓고 편편한 돌기둥이 두 개 있으며 이를 노주석이라 합니다. 밤에 행사가 있으면 이곳에다 불을 피워 주위를 밝혔습니다. 노주석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일본풍의 느낌이 많은 데 아니나 다를까 노주석의 뭉갠 글씨는 일본 연호인 소화 15년을 뜻하며 또 다른 노주석에는 희사한 분 이름인 득민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제 김룡사의 대표 전각인 대웅전을 보겠습니다. 이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외 3출목, 내 4출목에 상부 가구는 5량 가입니다. 김룡사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은 1624년 인조 2년에 중창했지만, 다시 1643년 불탔다가 1649년에 새로 지어졌습니다. 그러다 최근인 1997년 김룡사 대화재 때에 소실을 면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건물입니다.













































이외에도 김룡사는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인 보물 제11-2 문경김룡사동종과 보물 제1640호 문경김룡사영산회괘불도 등 전각과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해있습니다. 운달산 산행과 함께 짧은 시간에 훑다 보니 수박 겉핥기식으로 문경 김룡사 구경을 했습니다. 특히 문경 김룡사에서 유명한 약수도 빠트리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운달산의 산세가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며 그중에서도 김룡사는 소의 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꼭 집어 말하면 김룡사 명부전 자리가 핵심인 진짜 소의 눈으로 명부전 마당에 있는 약수터는 소의 눈물이며 항상 우윳빛을 띠는 명수라고 합니다. 운달산 김룡사 여행 시에 저처럼 빠트리지 말고 꼭 마시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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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410 | 김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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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05 23:02

    비밀댓글입니다

  2. 핑구야 날자 2017.08.07 07:52 신고

    보고 또 봐도 가보고 싶을 정도로 좋은데요

  3. 공수래공수거 2017.08.09 10:00 신고

    내년엔 여기를 한번 다녀 와야겠어요^^

  4. 해우기 2017.08.10 11:01 신고

    보기만 해도 걸어보고 싶은 곳이네요....ㅎㅎ

  5. *저녁노을* 2017.08.10 20:56 신고

    구경 잘 하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되세요^^




(군위여행/군위가볼만한곳)인각사 여행,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 삼국유사 일연의 행적을 소상히 기록했던 보각국사 탑 및 비


일연대선사하면 삼국유사를 남기신 분으로 아마 모르시는 분이 없을 정도로 알려진 스님입니다. 일연 스님의 부도와 탑비가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의 인각사에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로 전하고 있습니다. 일연스님은 1289년 고려 충렬왕 15년에 입적했으며 그의 행적을 소상하게 기록한 탑비와 보각국사 일연의 사리탑인 부도가 인각사 경내에 세워져 있습니다.





군위 인각사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 250

군위 인각사 전화:054-383-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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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와 탑비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데 부도는 원래 부도골에 나뒹굴고 있던 것을 현재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합니다. 먼저 보각국사 일연스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206년인 고려 희종 2년에 경산시(당시는 장산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속성은 김씨이며 자는 희연·일연이고 아명은 견명이라 했습니다.



1214년 9세 때 광주광역시 무량사에서 수학하다가 5년 뒤인 1219년 설악산 진전사에서 대웅스님에게 수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22세에 승과에 급제하였으며 1237년 삼중대사, 1246 선사. 1259년 대선사에 올랐습니다.

 


1250년 정안의 초정으로 정림사에 주석하면서 남해 분사도감의 증의로 팔만대장경 조성에 깊이 관여했으며 1283년에 국존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의 호를 받았습니다. 이듬해 조정으로부터 토지 100경을 받아 모친을 봉양하기 위한 인각사를 중건하였습니다. 일연대선사는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합니다.



보각국사 일연스님의 사리탑은 자연석을 깐 바닥에 세워져 있습니다. 탑은 받침돌과 몸돌, 지붕돌로 구성하며 팔각의 받침돌은 3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 가운데 부분에는 동물 조각이 희미하게 남아 있으며 윗부분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팔각의 몸돌에는 정면에 ‘보조국사정조지탑(普覺國師靜照之塔)’이 새겨져 있으며 그 뒷면에는 감실을 뜻하는 문 모양의 조각을 새겼습니다. 그리고 남은 여섯 면에는 사천왕 입상과 연꽃 위에 서있는 보살상을 새겨 놓았습니다.

 


지붕돌을 보면 두꺼운 추녀 밑은 위로 살짝 들렸고, 낙수면은 경사가 급하며 지붕선 귀 끝에 꽃장식이 달렸습니다. 지붕돌 위에는 앙련이 새겨진 큼지막한 머리 장식인 보개와 보주를 올려 위엄과 무게감이 더욱 있어 보입니다.

 


보각국사 일연 부도는 통일신라 시대에 성행했던 팔각원당형을 따랐지만, 형태와 조각수법을 보면 섬세하지 않고 약간은 둔중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1295년에 비문이 세워진 것을 보면 그 이전에 부도가 세워진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각국사 일연 탑비는 깨어져 훼손이 심한 편입니다. 탑비는 일연의 제자였던 법진스님이 세웠다 합니다. 비문은 당시 문장가였던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전면의 본문을 지었으며 후면은 산립이 지었습니다. 비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을 정도로 정성을 다했던 거 같습니다.



비신의 앞면에는 일연스님의 행적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스승에 대한 추모의 정을 새겼다면 뒷면에는 비를 세우게 된 경위와 다비식 때 일어난 영험, 제자들의 이름을 함께 새겨 넣었다 합니다. 비신을 보면 드문드문 글씨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훼손이 심해서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이는 후대로 와 왕희지의 글씨를 얻겠다는 욕심으로 수많은 탁본을 하였고 그로 인해 일연의 탑비는 많은 훼손이 되었다합니다. 군위 여행시 군위댐과 인근의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를 꼭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보물 제4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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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612 | 인각사 보각국사탑및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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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비™ 2017.06.28 12:18 신고

    오...인각사는 한 3년전에 가보았습니다.
    해설도 듣고 사진도 찍어왔는데
    어영부영하다 보니 포스팅도 못 하고 지나간게 생각나네요.
    멋진 사진 즐감했습니다.

  2. 핑구야 날자 2017.06.29 07:46 신고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7.06.30 10:39 신고

    저길 다녀 온지도 발써 2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4. 솜다리™ 2017.06.30 10:52 신고

    함 찾아보면 좋을 곳인듯 합니다~~~

  5. 핑구야 날자 2017.07.01 08:09 신고

    오늘 지방으로 가야 하는데 비 소식이 있네요 사진처럼 맑은 날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6. 드래곤포토 2017.07.01 09:09 신고

    7월 첫날
    좋은주말 보내세요 ^^

  7. 친절한엠군 2017.07.01 20:38 신고

    돌을 구해서 만드시는분들 보면 와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을테니 말이죠 ㅎㅎ 잘보고갑니다^^

  8. *저녁노을* 2017.07.04 05:39 신고

    장맛비가 내리는군요.
    건강 유의하세요.

    잘 보고갑니다.




(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이육사문학관. 7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의 청포도 이육사문학관 여행.


안동여행을 하면서 웬 뜬금없는 이육사문학관이 있나 생각했습니다. 민족저항 시인 이육사의 그의 대표작으로 첫손꼽는 ‘청포도’는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전 국민 모두에게 알 게 해 주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했던 시 청포도는 포항시 오천읍 한 어촌 마을의 포도농장을 배경으로 작품을 썼다 하여 필자는 이육사님의 고향이 경북 포항의 오천 한적한 어촌 마을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곳에도 이육사님을 기리는 안내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육사문학관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900

이육사문학관 전화:054-852-7337


2017/06/21 - (안동여행)월란정사. 천원 지폐 뒷면 그림 실제 모델지 겸재정선의 계상정거도 월란정사 여행.

2017/06/15 - (안동여행)퇴계종택. 안동 도산면에서 퇴계 이황의 퇴계종택을 여행하다.

2017/04/01 - (안동여행)퇴계태실 노송정종택과 퇴계종택. 퇴계 이황 태실인 노송정종택과 퇴계 이황 종택을 여행하다.

2017/01/14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헛제사밥이라해서 헛배가 부른게 아니예요. 맛있는 음복음식 안동 맛50년 헛제사밥

2016/12/26 - (안동여행)안동법흥사지칠층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여행.




그러나 이육사님은 포항 오천이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이육사님의 고향은 경북 안동 도산면의 원촌이며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 후손으로 퇴계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암울했던 우리 민족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짧지만 굵은 삶을 살았던 분이셨습니다. 이육사문학관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이육사님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1904년 4월 4일(음력)에 5형제중 둘째로 태어나셨으며 본명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육사가 아닌 ‘원록’입니다. 그리고 ‘원삼’ 또는 ‘활’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발표한 시에도 그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이름 이육사입니다.



왜. 육사란 이름을 사용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육사는 1927년 처음 옥고를 치를 때 그때 대구 형무소 수인번호가 264번이었습니다. 그 뒤부터 이육사를 아호로 썼다 합니다. 이육사님의 유년기는 고향 인근인 예안에 설립된 보문의숙을 다니다가 공립으로 개편되면서 도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이육사문학관 개관시간과 관람요금 안내

이육사문학관 개관시간

3월~10월: 09:00!18:00

11월~2월:09:00~17:00

이육사문학관 휴관안내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 월요일이 공휴일일인 경우 다음날


이육사문학관 관람요금

성인 2,000원. 청소년·군경 1,500원 어린이  1,000원 

이육사문학관 무료 대상자:장애인, 국가유공자, 65세이상, 7세이하

이육사문학관 안동시민 신분증 확인 후 50% 할인





그리고 대구로 이사하였고 부친의 명령으로 1921년 안용락의 딸 안일양과 결혼하면서 영천 처가가 있는 백학학원에 다녔습니다. 1924년 4월 일본 동경청치예비교와 일본대학 문과 전문부 유학을 떠났다가 그 이듬해 1월 귀국하여 대구를 중심으로 문학 활동을 펼치던 중 성주 출신의 이정기를 만나면서 조재만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조직인 ‘비밀결사단’을 조직하게 됩니다.

 




이들은 중국 북경을 답사하기도하였으며 재차 중국을 건너갔다 항일무장단체인 의열단 김창숙, 대한독립당군정서 대표 배병현, 국민당정의부위원 남형우 등과 만나면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27년 한인 군관학교 설립자금 모금을 위해 귀국했다가 10월 18일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이육사는 대구에서 체포되어 19개월 투옥되었다가 출소하였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과 1930년 대구 격문사건 등에 재차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이육사의 투옥 횟수는 모두 17회에 달한다 합니다.









1931년 다시 군관학교입교를 위해 북경으로 건너갔지만, 만주사변이 일어났습니다. 그곳에서 의열단의 윤세주를 만나 1932년 난징에서 새로 연 조선군관학교에 입교하여 1933년 1기로 졸업하고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조선군관학교 출신이 발각되면서 1934년 3월에 구속되었다가 6월에 석방됩니다.

 




이육사 님은 이후 문예활동으로 일제에 저항하는 시를 남겼는데 이 시기에 그의 주옥같은 시인 ‘광야’ ‘절정’ ‘청포도’를 1939년 ‘문장’ 8월호에 발표합니다. 중국과 국내를 자주 왕래하면서 조국 독립운동을 위해 앞장서다가 1943년 7월 돌아가신 지 1년 만인 어머니와 큰형의 첫제사에 참석하기위해 귀국했다가 서울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북경으로 이송되었으며 1944년 1월 북경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시신은 화장하여 국내로 운구되어 미아리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60년 고향 원촌마을 뒷산으로 이장했습니다. 이육사님의 41년 남짓 짧은 생애를 오직 일생을 조국광복을 위해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지만 그보다는 시인으로 더욱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육사님의 일대기를 알아가면서 평생을 오직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의 활동도 만만치 않으면서 그 상황에서도 주옥같은 작품은 어떻게 남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표작인 청포도, 황혼, 절정, 광야, 꽃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시의 작품 세계 하나하나를 생각하게 하면 말입니다. 이육사 님은 대구형무소에서 1929년 5월 출소하면서 ‘중외일보’ 기자로 근무하였습니다. 1930년 조선일보 1월 3일 자에 ‘말’이라는 시를 처음발표하면서 그의 문학 활동을 시작하려다 대구격문사건으로 다시 구속됩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에 전념하다 조선 군관학교 출신이 탄로 나자 다시 투옥되었다가 출옥하면서 문예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여러 편의 저항 시를 남기 섰습니다. 이육사님이 순국하고 광복 후인 1946년 처음으로 ‘육사시집’이 간행되었습니다. 정부는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훈장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

 


현재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는 이육사문학관이 있으며 문학관에서 2.8km 거리에 이육사 묘소가 있습니다. 다른 일정이 겹쳐져 있어서 이육사 묘소를 찾아뵙지 못하고 온 것이 지금도 많이 후회로 남습니다. 안동여행에서 독립투사로서 민족저항시인으로서 이육사 님의 모든 기록이 보관된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해 볼 것을 꼭 추천하면서 이육사 님의 시 ‘절정’의 배경지로 알려진 천길 낭떨어지 내살미 칼선대를 만나기 위해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육사문학관 사진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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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7.06.28 05:53 신고

    이육사문학관...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2. 핑구야 날자 2017.06.28 07:43 신고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니 듣기만 해도 설레이네요

  3. 절대강자! 2017.07.03 17:14 신고

    아주 오래전에 방문했던 기억이있는 곳인데...
    그때보다가 많이 변한듯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군위여행/군위가볼만한곳)김수환추기경생가. 우리나라 최초 추기경 군위 김수환추기경 생가 여행


일연선사의 삼국유사는 인각사에서 완성했으며 인각사와 각시산 여행을 하면서 겸사겸사 30km 떨어진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생가를 다녀왔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는 군위읍 용대리 산비탈에 새로 지은 초가집이 달랑한 채 있었습니다.





군위 김수환추기경 생가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238-7



작은 방이 두 개에다 부뚜막에 솥이 하나 걸려 있었으며 안방을 통하는 작은 봉창문이 붙어 있고 툇마루와 야트막한 지붕을 한 전형적인 산골의 오두막집이었습니다. 이를 초가삼간이라 하나요. 김수환 추기경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집안은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에 뿌리를 내렸으며 충청도에 천주교가 전파하던 초창기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순교자 집안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할아버인 김요한 공은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옥중순교했으며 할머니 강말손 여사는 남편이 순교하자 더욱 성심을 다해 교우들을 뒷바라지하였습니다.



김수환추기경 아버지는 부친의 순교로 유복자로 태어났고 이름은 영석에 세례명은 요셉이셨습니다. 요셉은 경상도 사목을 담당하고 대구교구 설립자이신 김보록신부의 일을 도왔다가 동학난이 일어나자 칠곡군 장자동 옹기골로 몸을 숨겼습니다.

 


이곳에서 김보록과 뮈맬 신부가 주선하여 서중하(마르띠나)와 혼인을 치릅니다. 이분이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이십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부모님은 왜관 평장목, 김천 지대골의 옹기골, 대구 남산동, 칠곡의 산나무골과 선산을 전전하다가 1922년 4월에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추기경의 형제는 모두 6남 2녀이며 군위로 이사 오던 그해에 막내인 김수환 추기경이 태어났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와 가까워졌습니다. 8살 때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옹기와 포목 행상으로 가정을 꾸렸습니다.





현재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238번지에 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는 추기경님이 다섯 살 때부터 살았던 곳이며 군위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카톨릭대학의 전신이 성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사셨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추기경의 유년기를 모두 이곳에서 보냈으며 또한, 신앙인의 꿈을 키웠던 곳이라 더욱 의미가 큰 곳으로 생전에 추기경도 당시를 떠올리시며 생가지를 가끔 찾으셨다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2009년 2월 16일 선종하셨으며 군위군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이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복원을 추진해서 지금은 막바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사랑과 나눔 정신을 계승하는 공원 조성사업 현황은 필자가 찾았을 때 생가 뒤로 추모전시관 등 여러 건물이 들어선 것을 보았습니다.







곧 수련시설, 십자가의 길, 평화의 숲이 조성된 김수환추기경 생가와 추모전시관을 만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재수 좋게 김수환추기경 생가구경을 하고 왔지만 2017년 6월 14일부터 12월 공사가 끝날 때까지 생가 출입을 제한한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공사가 끝나면 이제 완전한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를 만나시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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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238-7 | 김수환추기경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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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6.24 07:36 신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를 다녀오셨군요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2. kangdante 2017.06.26 08:02 신고

    김수환추기경의 생가가
    의외로 조촐하네요..
    덕분에 즐감합니다.. ^^

  3. *저녁노을* 2017.06.27 04:47 신고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화요일 되세요^^

  4. 공수래공수거 2017.06.27 09:22 신고

    제가 갔을때랑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군요
    아직 공사를 하고 있군요




(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월란정사. 천원 지폐 뒷면 그림 실제 모델지 겸재정선의 계상정거도 월란정사 여행.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마을에는 월란정사가 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께서 1546년 하계의 동암 뒤편인 양진암에 거처하면서 이곳 월란암을 자주 찾아 공부하고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닦았던 곳입니다. 또한, 농암 이현보 선생, 금계 황준량, 매암 이숙량 등과 함께 요성대(월란대)에 올라 시문을 나누고 꽃놀이를 즐겼던 곳으로 그만큼 주위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안동 도산면 월란정사 주소: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마을

(무허가는 아닌것 같은데 건물에 새도로주소가 보이지 않습니다.)


☞2017/06/15 - (안동여행)퇴계종택. 안동 도산면에서 퇴계 이황의 퇴계종택을 여행하다.

2017/04/07 - (안동여행)안동 하회마을 여행. 풍산류씨 집성촌인 서애류성룡의 하회마을 여행

2017/04/01 - (안동여행)퇴계태실 노송정종택과 퇴계종택. 퇴계 이황 태실인 노송정종택과 퇴계 이황 종택을 여행하다.

2017/03/29 - (안동여행)안동하회마을 충효당, 서애류성룡 종택인 하회마을 충효당을 보다.

2017/03/28 - (안동여행)하회마을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하회마을 양진당을 만나다.



퇴계 선생은 많은 제자 중에서 만취당 김사원선생께 이 아름다운 정자 터를 물려주었다 합니다. 만취당 김사원은 22세 때에 퇴계의 제자가 되었으며 간재 이덕홍과 함께 10여 년간 동문수학했던 곳으로 1860년 월란암 옛터에다 사촌 문중의 만취당 후손들이 선조의 학덕을 기리며 지은 정자입니다.




월란정사는 1909년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현재는 김사원의 안동김씨 사촌 문중 소유지만 퇴계의 진성이씨 후손들과 함께 관리하고 있다 합니다. 월란정사 가는 길은 내살미 마을에서 삭실로 가는 산길을 따라 오릅니다,

 


야자 카펫을 깔아 신발에 흙 하나 묻지 않을 정도로 잘 정리되었지만, 막상 월란정사를 찾았을 때는 허리까지 자란 잡초에다 고가의 관리가 부실한지 여러 곳이 허물어져 퇴계선생과 겸재정선의 계상정거도 소문을 듣고 찾은 월란정사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주 무거웠습니다.








퇴계선생의 월란대시

月瀾臺(월란대)     

高山有紀堂(고산유기당) 높은 산에는 모서리도 있고 펀펀한 곳도 있는데

勝處皆臨水(승처개임수) 경치도 좋은 곳은 모두 강가에 있네.

古庵自寂寞(고암자적막) 오래된 암자 저절로 적막하니

可矣幽棲子(가의유서자) 그윽하게 사는 이에게 있을 수 있네.

長空雲乍捲(장공운작권) 넓은 하늘에 구름이 별안간 걷히니

碧潭風欲起(벽담풍욕기) 짙푸른 소沼에 바람 일 것 같네.

願從弄月人(원종농월인) 바라노니 달을 즐기는 사람을 쫓아서

契此觀瀾旨(계차관난지) 이 물결 이는 것을 관찰하는 취지에 부합하고자 하네.”

오묘한 한시 풀이를 할 수 없어 카페 '도산서원박약재(http://cafe.daum.net/dosanseowon)' 이동구님의 퇴계선생 월란대 시판 해석을 옮겨왔습니다.



















이곳 월란정사가 있는 월란대는 겸재 정선이 그린 계상정거도의 실제 모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겸재정선은 퇴계 선생을 추모하여 세 차례나 이곳을 찾아와 '계상정거도'를 완성했으며 대한민국 천 원권 지폐 뒷면에 나오는 그림입니다.





이곳을 방문 시에는 반드시 천 원권 지폐를 지참해서 서로 비교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월란정사 앞 천길 단애인 월란대에서 천 원권 지폐를 들고 맞추어 봤는데 지폐 속의 모습과는 조금은 달라 보였습니다. 아직 그림 보는 눈이 많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월란정사는 도산서원에서 5리 거리에 있습니다. 동향에 낙동강을 보며 앉은 품새와 정자를 두른 왕모산의 산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퇴계 선생의 도산 서당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월란정사는 경사진 산을 깎아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다 막돌로 된 초석을 놓고 전면의 네 기둥은 두리기둥을 나머지는 사모 기둥을 세웠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이며 가운데 1칸은 마루를 넣고 좌우 양쪽은 1칸의 온돌방을 각각 꾸몄으며 전면에 반 칸의 툇마루를 길게 달아내었습니다.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http://cafe.daum.net/jangdalsoo/)’에서 낙민님의 월란정사의 이만각 중건기 해석을 참고하면 동쪽 방은 은구재(隱求齋) 가운데 마루는 월영헌(月映軒)이라하고 서쪽 방은 관선재(觀善齋)라하였습니다.



은구재와 관선재는 퇴계 선생이 써 준 주자의 무이잡영에서 따왔으며 마루의 월영은 퇴계선생이 서림원에 화답해 쓴 시인 “산 위의 달이 외로운 이불 비추는 것을 스스로 가련하게 여기네”에서 따왔다 합니다. 편액 또한 “달빛이 여울에 아름답게 비춘다”는 뜻에서 월란정사(月瀾精舍)라 하였습니다. 실제 이곳에서 낙동강을 내려다보면 여울 속에 들어간 또 하나의 달이 월란정사를 아름답게 비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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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 월란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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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7.06.23 05:56 신고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2. 핑구야 날자 2017.06.23 07:41 신고

    지폐에서 보던 곳을 직접 보셔서 겠어요

  3. 공수래공수거 2017.06.23 09:18 신고

    저도 이런곳 찾는걸 좋아하는데 다음번 안동 여행시는
    천원권 지폐들고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4. 2017.09.28 09:13

    비밀댓글입니다




(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퇴계종택. 안동 도산면에서 퇴계 이황의 퇴계종택을  여행하다.


안동 도산면에 갔다가 퇴계종택을 보고 왔습니다. 퇴계종택은 지난겨울에 도산서원하고 함께 찾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구경을 하지 못했습니다. 도산서원은 관리인이 늦었다고 막아서고 퇴계종택은 후손이 살고 있어 늦은 시간 실례가 될 것 같아 대문 앞에서 그만 발길을 돌렸습니다.







 1982년 12얼 경상북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

안동 퇴계종택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68-2(백운로 268)



2014/06/10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2014/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와룡산, 천하를 호령하던 용이 몸을 뉘며 쉬었다는 와룡산에서 안동호의 한반도 지형을 만나다

2016/05/19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2016/05/24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그래서 이번에 안동시 도산면을 다시 가면서 그때 보지 못했던 퇴계종택을 여행함으로써 당시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도산면에는 많은 건축 문화재가 퇴계 이황 선생과 관계가 있습니다. 퇴계 태실, 도산서원, 퇴계종택, 퇴계 이황 묘 등 하도 많아 열거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안동의 풍천면은 하회마을 풍산류씨 류성룡이 있다면 도산면은 진성이씨 퇴계 이황이 있습니다. 퇴계 이황 종택은 도산서원과 산 하나를 경계로 하고 있으며 대략 3km 거리인 토계리에 있습니다. 원래 퇴계종택은 한서암 남쪽에 동암 이안도선생이 지었습니다.





1715년인 숙종 4년에는 정자인 추월한수정도 지어 진성이씨 퇴계종가의 변모를 크게 세웠습니다. 그러다 10세손인 고계 이휘녕이 종택은 따로 두고 건너편에다 새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 후인 1907년에 왜병이 집에다 불을 질러버리는 바람에 두 곳의 종택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현재의 퇴계종택은 1923~1926년 사이 13대 후손인 하정 이충호가 임씨가의 종택을 새로 매입해서 재건한 집이며 추월한수정도 그때 옛 방식으로 새롭게 세웠습니다.








현재 퇴계종택은 면적이 600평(2,119㎡)이며 영역은 솟을대문이 2개로  대문채가 각각 5칸이고 앞면 6칸에 옆면 5칸의 ‘ㅁ'자 형태인 정침영역, 그리고 추월한수정 영역에다, 정침과 추월한수정 뒤로 사당 영역으로 구분하며 총 34칸 규모입니다.





먼저 대문채는 가운데다. 솟을대문을 넣고 양쪽에는 온돌방을 2칸씩 넣었습니다. 사랑채 앞의 마당을 가로지르면 일자 형태인 사랑채입니다. 안채보다 기둥 간격을 좁게 하였으며 앞면 7칸에 옆면 2칸 규모입니다. 정면에서 보면 왼쪽 4칸은 앞쪽에다 툇마루를 달고 계자난간을 돌렸습니다.











툇마루 뒤로는 사랑 마루와 사랑방을 각각 2칸씩 넣었습니다. 오른쪽 3칸은 책방과 작은 사랑방 그리고 서향을 한 툇마루가 있습니다. 사랑채와 붙은 안채를 보겠습니다. 안채는 앞면 6칸에 옆면이 2칸이며 현재 후손의 살림집으로 출입 및 관람 할 수 없습니다.

 

퇴계종택 사당영역



대청마루를 두고 왼쪽에는 앞뒤로 통칸의 방이며 오른쪽 안방 2칸은 양쪽으로 문이 열리는 통 칸인 데다 앞쪽에 툇마루가 달려있어 그 폭만큼 물러나 방을 넣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하는 동익사는 중문간·광·방·문간이고 서익사는 창고·방 2개·문간이 각 1칸씩 들어가 있습니다.





사랑채와 안채는 한옥 구조로 모가 난 도리를 써서 지은 민도리집이며 사모(사각) 기둥에다 5량 가로 종보에서 중도리를 받쳐주는 제형 판대을 올린 기와 건물입니다. 옆의 정자인 추월한수정은 자연석 기단에 좌우로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앞면은 5.5칸이며 옆면은 2.5칸으로 일자형의 기와 건물입니다.



대청마루 서편은 1칸과 1.5칸의 온돌방을 앞뒤로 넣고 동편은 동서로 2칸 통방을 앞과 뒤로 배치하고 앞면에 반 칸의 툇마루를 길게 달았습니다. 앞면의 기둥과 대청 배면의 가운데에는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사랑채와 안채와 마찬가지로 5량 가에 제형판대공을 올린 민도리집입니다.





그 뒤쪽의 화강석 기단 위에는 사당이 있습니다. 퇴계종택이지만 실제로 퇴계 이황이 살았던 집은 아닙니다. 퇴계 종택은 그의 후손에 의해 오늘날까지 종가로서의 위엄을 갖추며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안동 도산서원 여행 시 함께 둘러보면 좋습니다.

 



참고:디지털 안동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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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68-2 | 퇴계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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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6.15 07:51 신고

    퇴계 종택 은 처음 봅니다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2. *저녁노을* 2017.06.16 05:26 신고

    구경 잘 하고 공감하고 가용.ㅎㅎ

    즐거운 주말 되세요

  3. 공수래공수거 2017.06.19 14:23 신고

    전 문이 잠겨서 안은 들어가 보질 못하고 바깥에서만
    보고 왔었습니다




(통영여행/통영가볼만한곳)경남 민간정원 2호 해솔찬정원, 40년을 자식같이 가꾼 자연 동산 민간정원 해솔찬정원


경남에는 산림청으로부터 민간정원이 3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남해에 2개가 있는데 섬이 정원과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이며 나머지 1개는 통영에 있습니다.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정원은 통영의 해솔찬정원이며 경남 민간정원 2호에 등록된 곳이기도 합니다.





통영 해솔찬정원 주소:경상남도 통영시 도산면 저산리 도산일주로 731

통영 해솔찬 정원 전화 010-9643-0564


2017/05/30 - (남해여행/남해가볼만한곳)민간정원 남해토피아랜드. 동화속 같은 그림 궁전 민간정원 남해토피아랜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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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 (경남여행/통영여행)벽방산 안정사. 한산무송 벽방 8경의 소나무를 보며 벽방산 안정사에서 힐링을 하다.





이곳 통영시 도산면 출신인 쥔장이 40여 년 전부터 가꾸어 오늘날과 같은 정원을 만들었다 합니다. 초창기에 굴착기를 동원해 출입하는 길만 내고 나머지는 호미와 곡괭이로 돌담도 쌓고 직접 다듬고 가꾸었다 합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인위적 느낌보다는 자연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전원주택의 정원 같은 느낌이라 더욱 정감이 갔습니다. 특히 해솔찬정원은 분재며, 야생화 등 정원내의 식물은 모두 두손으로 자식같이 가꾸었다 하니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살림집인 입구에 해솔찬안내도가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먼저 꽃마당이라 불리는 작은 마당은 패랭이꽃이 지천으로 핀 꽃밭이었습니다. 그리고 산책로에는 직접 잔디를 심어 요즘 같은 무더위에도 녹음방초 숲이 우거져 그리 덥지 않았습니다.









분재 같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단풍나무,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며, 감나무가 드문드문 뿌리를 내린 쉼터에는 2동의 오두막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나무로 지은 오두막이 여름용이라면 반대로 안쪽에 돌로 지은 건물은 온돌도 깔린 게 겨울용이라 했습니다. 널브러진 바위와 잔디, 그사이에 핀 이름 모를 꽃과 나무를 보면서 해솔찬 주인의 세심함 성격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되도록 손을 대지 않고 자연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는 해솔찬정원. 현재 해솔찬의 식물과 나무의 90%는 씨를 뿌렸거나 아니면 어린나무를 심고 분재하여 지금은 장성한 나무가 되었으며, 나무 한 그루 마다 40여 년의 연륜이 묻어나는 듯했습니다.

 




해솔찬에는 300여 평의 차밭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찻잎을 따와 투박한 가공과정을 거치며 감나무 쉼터에서 관람객에게 차로 내 놓기도 합니다. 전통차도 마시고 짜릿한 소금기가 밴 바다를 보면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해솔찬에서 힐링의 기쁨을 느껴보세요.

 


통영 민간 정원 해솔찬 사진으로 구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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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통영시 도산면 | 해솔찬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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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6.03 08:01 신고

    사십년이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이군요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네요




(남해여행/남해가볼만한곳)남해 섬이정원, 저도 이런정원 갖고 싶어요. 선녀도 심쿵한다는 유럽식 정원 섬이정원 


남해군 남면 밤내골짜기의 열두 마지기 다랑논에 보물섬 남해 속의 진짜 보물인 섬이정원이 있습니다. 섬이정원에서는 에메랄드의 청정 바다가 내려다보입니다. 오래된 돌담에다 연못을 만들고 다양한 식물을 심어 자연의 모습과 잘 어우러진 정원을 꿈꾸었던 쥔장이 서울 생활을 접고 벽촌에 내려와 만든 민간정원입니다.





남해 섬이정원 주소: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남면로 1534-110

남해 섬이정원 전화:010-2255-3577


2017/05/30 - (남해여행/남해가볼만한곳)민간정원 남해토피아랜드. 동화속 같은 그림 궁전 민간정원 남해토피아랜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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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2 - (경남여행/남해여행)남해 금산 산행. 한국인이라면 한번은 꼭 가야 할 남해 명산 금산 두모계곡~금산정상~보리암~쌍홍문 코스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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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2 - (경남여행/남해여행)남해 가인리 화석산지. 남해 창선면 여행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을 만나보세요. 남해 가인리 화석산지





무인매표소


무인판매기


섬이정원입구 돌다리



돌담을 쌓고 논을 갈아엎어 나무를 심고 하며 5년을 각고의 노력으로 일군 정원이 있다고 해서 남해토피아랜드와 함께 여행하고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민간정원을 법으로 정해놓았습니다. 섬이 정원은 경상남도 민간정원 1호에 산림청에 등록되었으며 1호의 명성답게 섬이 정원은 자연의 품속 같은 아늑함과 포근함이 느껴졌습니다.





다랑논의 높낮이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만들어낸 산책로와 정원은 단조로움을 없애려고 9개의 공간으로 꾸몄으며 그에 어울리게 각각의 작은 정원은 하늘의 선녀도 내려와 쉬어가게끔 아름답게 만들어졌습니다. 정원마다 개성을 두었기에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여행객은 다음 구간을 기대하면 심심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섬이 정원은 작은 연못이 여러 개 만들어져 있습니다. 모든 연못에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에 맞추어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여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합니다. 봄에는 수선화와 튤립 그리고 라벤더. 꽃창포, 꽃양귀비 등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여름에는 수국이 지천으로 피어 다른 식물과 하모니를 이루며 천상의 화원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합니다.

 




가을은 꿀풀과로 유럽이 원산지인 세이지의 보랏빛이 억새와 어울려 사색의 계절인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가을빛으로 물들게 만들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섬이 정원. 겨울에는 무슨 꽃 하겠지만 붉은 동백꽃과 호랑가시 열매가 정원의 돌담과 함께 절묘한 조화를 만들어내어 고요한 겨울을 깨우며 관광객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섬이 정원 가는 길은 다랭이 마을로 유명한 가천마을을 향하는 1024번 지방도에서 갈라집니다. 우뚝 솟은 암봉의 망기산을 휘감고 꼬불꼬불 오르는 1.2km의 시멘트 길은 자동차가 딱 한대만 다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중간중간 교행 장소를 만들어 놓았으며 이정표를 따라 골짜기 안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전망이 열리고 다랑논이 펼쳐집니다.







이 높은 곳까지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을 보면 전답이 부족한 섬마을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섬이 정원 입구의 제법 큰 주차장에 무인매표기를 갖춘 매표소도 있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하얀색 강아지 두 마리와 까만색 강아지가 꼬랑지를 흔들며 반갑다고 나타났습니다.

 




하얀색 강아지는 ‘쌀’과 ‘밀’이름을 가진 섬이 정원의 강아지라면 까만색은 주인 없는 떠돌이 강아지인데 섬이 정원 쥔장도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5km 거리의 사촌마을 강아지였습니다. 아마 섬이 정원의 이쁜 강아지가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거리도 엄청나게 멀고 산속까지 찾아간 것을 보면 강아지도 사랑에는 거리가 문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섬이 정원에서 쌀과 밀은 길 안내 담당이며 종일 산책로를 쪼르르 다니며 안내합니다. 전체적인 거리는 대략 600m이며 나뭇가지를 엮은 문과 연못에 걸린 아치형 다리, 공중전화부스와 곳곳에 벤치를 만들어 휴식과 함께 사진을 찍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입구에서부터 빨간색 화살표 방향을 따라가면 섬이 정원 산책로를 한 바퀴 돌 수 있게끔 만들어졌으며 중간에 오두막에는 무인 카페도 마련해 놓아 쉴 수 있게 했습니다. 섬이 정원의 핵심은 검은색 조형물과 사각 연못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이 섬이 정원에서 가장 높은 곳이며 설흘산의 바위와 멀리 보이는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게 액자에 간직하고 싶은 멋진 전망을 연출하는 곳입니다. 블로그에 올려진 이사진 한 장을 보고 무작정 길을 떠나오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섬이 정원에서 꼭 한번 찾아보세요.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에 마음마저 편안해지는 섬이 정원 가천암수마을인 가천다랭이마을 여행 시 참고하세요. 승용차와 12인승 봉고는 섬이 정원주차장까지 갈 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사진으로 섬이정원 구경해보세요





































무인판매소에서 뽑은 표는 이곳에서 반납하세요. 












가천다랭이마을


섬이정원입장료

섬이정원 관람료 일반과 남해군민으로 나누어지며 

일반은 성인 5천원, 경로 4천원, 청소년·군인 3천원, 어린이 2천원

남해군민은 어른 1천5백원, 청소년·군인 1천원, 어린이 5백원

입장시간:일출에서 일몰시까지

섬이정원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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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남면 평산리 888-4 | 섬이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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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위의 풍경 2017.06.02 05:54 신고

    조용히 산책하기 좋겠어요.

  2. 핑구야 날자 2017.06.02 07:52 신고

    정말 심쿵 하게 만드네요 잘 꾸며 오는 사람들마다 기분 좋게 구경하고 가겠군요




(남해여행/남해가볼만한곳)민간정원 남해토피아랜드. 동화속 같은 그림 궁전  민간정원 남해토피아랜드정원


조금은 생소한 이름인 민간정원이 있습니다. 정원이라 하면 ‘집 안에 만든 꽃밭’ 정도로 이야기합니다. 자연을 가까이하기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사군자인 매·난·국·죽을 가까이하며 집안에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에 폭포도 만들고 소나무, 대나무를 심고 쉴수 있는 정자도 만들었습니다.






남해토피아랜드정원 주소;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서부로 270-106(해바리마을)

남해토피아랜드정원 전화:055-867-1182


2013/05/19 - (경남여행/남해여행)가천암수바위. 남여의 모습이 너무 적날한 가천암수바위

2013/05/20 - (경남여행/남해여행)108층 빌딩 높이의 다랭이 논에 깜짝 놀래. 남해 가천 다랭이 마을

2013/05/24 - (경남여행/남해여행/남해바래길)남해에만 볼 수 있는 해안길에 저절로 힐링이 된다는 둘레길 다랭이 지겟길

2013/06/01 - (경남여행/남해여행)환상의 해안길 이보다 좋을 수 없다.남해바래길 말발굽길.

2014/03/25 - (경남여행/남해군창선도여행)남해바래길 고사리밭길, 봄맞이 힐링 걷기는 환상의 남해 고사리 밭길이 최고예요. 남해 바래길




떨어지는 물소리에,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의 사각 그리는 소리에, 부러질 듯 흔들거리는 꽃을 보고 선비들은 정자에서 시를 짓고 노래하며 그 감흥에 흠뻑 취했습니다. 흔히 우리나라 3대 민간정원의 풍경이며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세연정, 영양의 서석지를 두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개인이 만든 민간 정원이 조금은 바뀐 것 같습니다. 조선 시대의 민간정원은 본인과 지인이 보고 즐기기 위해 만들었다면 오늘날은 사적으로 만든 정원인데 법적으로 민간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개방 했다는 점입니다.

 


순천만이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국가공원 1호라면 민간정원은 현재 산림청에 등록된 게 총 8곳입니다. 아름다운 민간정원 1호에는 충남 천안의 ‘아름다운 정원 화수목’이며 2호는 제주도의 ‘생각하는 정원’, 경남 3곳과 전남 2곳, 충북 1곳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간정원인 소쇄원, 세연정, 서석지는 모두 여행 삼아 보고 왔는데 2015년에 지정된 민간정원은 어떠한 모습인지 궁금하여 부산과 가까운 경남의 민간정원 3곳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경남의 민간정원 1호는 남해의 섬이정원이며. 2호는 통영의 해솔찬정원 3호는 남해의 남해토피아랜드정원입니다.



경남의 민간정원 중에서 현재까지는 막내인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을 먼저 만나 보겠습니다. 풀하나 돌멩이 하나라도 자연 상태를 유지하려는 해솔찬 정원과 섬이공원하고는 아주 다른 분야라 생각되었습니다.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울타리의 나무를 전정해서 거북이 호랑이 등 다양한 사물의 모양을 만드는 일을 토피어리라 하는데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은 꽝꽝나무를 이용하여 수많은 형태의 토피어리로 만든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해 토피아랜드정원은 경남 남해군 창선면 지족리와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올 4월 말에 정식 민간정원으로 개방했습니다. 쥔장이 15년 전부터 계획을 세워 나무를 심고 하면서 기반을 다졌고 2년 전에 계단식으로 토목공사를  마무리 했습니다. 거기서 나온 돌을 가지고 1.5km의 돌담을 쌓았는데 꼭 다랭이 정원을 보는 듯합니다. 이 모든 게 쥔장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년 전부터 만들 모양을 생각하고서 나무에 줄을 묶고 이리 당기고 저리 매달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모양이 잡힌 꽝꽝나무에다 전정 작업을 하였습니다. 거북이, 공작, 공룡, 십이지신 등 우리와 아주 가까운 동물과 모양이라 누구나 쉽게 호감도 가고 알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들도 좋아하는 호빵맨, 라바, 뽀로로, 코코몽 등 여러 가지 만화 캐릭터에 부모님의 손을 잡은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온 가족이 앉아 와인을 즐기는 모습인 토피어리도 있으며 죽은 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조각품을 보면서 꿈과 상상의 나래를 마음대로 펼칠 수 있었습니다.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약 3천 평의 넓이에 조성된 편백숲입니다.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은 바닷가에 조성되어 있어 이날 높은 습도와 무더위에 몸이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그런데 편백숲에 들어섰더니 바로 청량한 공기 때문인지 금방 정신이 맑아 왔습니다. 지쳤든 온몸은 어느새 정신이 돌아왔으며 시원함에 힐링으로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이는 편백숲의 자랑인 피톤치드로 샤워한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평상과 의자로 쉼터를 만들어 놓아 심신의 피로를 씻을 수 있으며 남해토피아랜드정원에서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지족해협 건너편은 남해도 본섬이며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와 에메랄드 바다의 그림 같은 풍경은 덤이며 각가지 형태의 토피어리에 바다와 함께 꼭 외국의 휴양지 풍경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곳에다 곧 맨발체험장도 만든다하니 더욱 기대되었습니다. 그때 다시 와서 답답한 양말과 신발을 벗고 발에 자유를 주며 걸어야겠습니다. 편백숲에서 떠나기가 아쉬워 한참을 느긋하게 휴식하며 즐기다가 편백숲에 조성한 둘레길을 따라 대칭공원의 유럽왕궁을 보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산책로 좌우로 다양하게 만든 토피어리와 최근에 완공한 살림집이자 휴식공간이 함께 어울린 게 액자 속의 풍경 같았으며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같이 토피어리 작품 하나하나에 주인장의 예술 감각과 피땀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으며 남해토피아랜드정원을 여행하고 눈은 호강하며 가슴으로는 몸에 좋다는 청정의 피토치드를 한껏 담아왔습니다.







남해토피아랜드정원 입구에는 매표소가 있습니다. 입장료는 일반 5천원, 청소년·군인·경로 4천원, 어린이 3천원. 30인 이상 단체와 군민은 신분증 제시시 일반 4천원, 청소년·군인·경로 3천원, 어린이 2천원. 3급이상 장애인은 1인 동반자 포함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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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 남해토피어랜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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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5.31 07:44 신고

    남해를 가본 지가 벌써 일 년이 넘었군요 한번 가고 싶어지네요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군 마천면 고담사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 노래하는 심진스님이 있는 고담사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


지리산을 품고 있는 구례와 하동은 화엄사와 천은사, 쌍계사. 연곡사 등 여럿 천년고찰에서 국보를 비롯한 많은 불교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이에 지리산을 하나의 불교의 상징물로 보기도 합니다. 그만큼 남부 지리산에는 많은 불교 문화재가 남아있는 데 반해 이번에 여행했던 함양군은 넓고 깊은 지리산을 품고있지만 지리산에 남아있는 불교 문화재는 겨우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함양 마천 고담사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 주소: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766

함양 마천 고담사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 전화:055-962-5154


2008/10/13 - (경남여행/함양여행)지리산 칠선계곡 비선담 단풍 여행. 지리산 칠선계곡의 비선담에도 붉은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2008/10/17 - (경남여행/함양여행)지리산 칠선계곡 산행. 3시간짜리 칠선계곡을 더 길게 산행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2008/10/25 - (경남여행/함양여행) 지리산 칠선계곡 벽송사 서암정사 여행. 서산 사명대사를 배출한 지리산 벽송사와 불교예술의 서암정사를 만나보세요.

2008/11/15 - (경남여행/함양여행)함양 오봉산(상산)~천령산 산행, 함양의 공룡능선 오봉산의 바위능선를 함 타보세요

2010/03/14 - (경남여행/함양여행)지리산 휴천 법화산 법화사. 지리산 천왕봉의 바람소리도 정겹게 들리는 법화산의 법화사

2016/08/26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화림동계곡 군자정. 일두 정여창이 유영하였다는 영귀대 암반에 새운 군자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가는 여름을 잡아보다. 함양 군자정





구례와 하동과 같이 함양과 남원에서도 엄천사지 등 큰 규모의 절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모두 폐사지가 되어 그저 전설처럼 전해옵니다, 그러다보니 남아 있는 불교 문화재는 거의 전멸한 상태입니다. 겨우 찾을 수 있었던 게 벽송사의 삼층석탑과 남원 실상사의 철불이며 이번에 찾았던 고담사의 마애불 정도입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듯 화사하고 밝은 모습의 마애여래불은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가는 거 같습니다.







고담사는 한 때 노래로 공양을 짓는 심진 스님이 머물렀던 사찰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사찰이라하기에는 정말 아담한 절집입니다. 관음전 건물과 심진스님이 머물렀다는 작은 건물이 고담사의 전부입니다. 스님은 이른 16세에 불교에 입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앙승가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였으며 고담사의 마애불을 모시고 즐기는 노래로서 포교활동을 하려고 지리산에 들어오셨다가 지금은 경기도 파주의 보광사 주지로 가셨습니다. 가까이는 지리산 천왕봉이 웃는 듯 화사한 모습에 더욱 친근감이가는 작은 절집 고담사.

 




조선 시대까지는 이곳에 덕봉사란 사찰이 있었다 하며 이곳을 절골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봉황이 알을 품는 형상에 자리한 덕봉사는 조선 중기까지 남아 있었다지만 어떤 연유로 함양덕전리마애여래불만 덩그런 이 남고 폐사되었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래도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은 지리산 천왕봉을 보며 천년의 세월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은 앞으로 넘어질 듯한 커다란 사각의 돌기둥 한 면을 깎아 불상을 조각했습니다. 그 모습은 멀리서도 느낄 정도로 독특했습니다. 높이만 해도 5.8m이며 거대한 대불에 몸체와 연꽃 대좌, 그리고 화려한 광배까지 모두 보여주는 완벽한 모습입니다. 큰 불상답게 이목구비가 시원한데 얼굴이 넓으면서 큼지막하여 수려한 외모를 가진 신체 건강한 남성미를 느끼게 합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삼도가 있습니다. 직사각형의 큰 몸체와 큼지막한 발은 거대한 불상을 잘 보여주지만 긴 하체에 비해 상체는 상대적으로 짧은 모습입니다. 또한, 손은 큼지막한 발에 비해서 아주 작게 표현해 석불의 비례가 잘 맞지 않는 모습입니다.

 




목 중앙의 가슴에 뒤집어진 형태의 스카프는 꼭 망토를 걸친 듯하며 통견의 불의는 배와 다리에 U자형 옷 주름이 접어 내린 형태로 고려 초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배에는 구슬을 꿴 모양인 연주문과 불꽃무늬를 새겼고 연꽃좌대을 받치는 탑의 기단부 기둥 모양 등은 고려 초기 마애불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품이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100번 듣는거 보다는 한번 보는게 낫다고 함양 마천 지리산 여행에서 고담사의 함양덕전리마애여래입상을 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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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766 | 고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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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5.27 07:46 신고

    요즘 같은 시기에 정말 가볼만한 곳이군요 보내 잘 보고 갑니다

  2. 핑구야 날자 2017.05.29 07:36 신고

    불공드리러 오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잘 보고 갑니다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지리산조망공원휴게소.  지리산 전망대는 바로 여기요? 지리산조망공원휴게소


지난 4월 말경에 함양 쪽 지리산 자락을 둘러보는 여행을 했습니다. 그때 남부지방에는 벌써 다 떨어진 벚꽃이 함양 마천면에서는 그제서야 한창 화려하게 타올랐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지리산 골짜기라 역시 춥기는 춥은 날씨 임을 새삼 느꼈습니다. 함양 요금소를 나와 점필재 김종직과 남명 조식 등 수많은 선비가 지리산을 찾을 때 올랐다는 지리산 길을 저는 차를 타고 따랐습니다.

 

 

 

지리산조망공원휴게소 주소: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 산 60-2

지리산조망공원휴게소 전화:055-962-8544

 

2016/08/26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화림동계곡 군자정. 일두 정여창이 유영하였다는 영귀대 암반에 새운 군자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가는 여름을 잡아보다. 함양 군자정

2016/08/29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선비길 화림동계곡 거연정. 선비의 고고한 기풍이 느껴지는 함양 화림동 계곡 거연정에서 가을 하늘을 만나다. 함양 거연정

2009/08/13 - (경남여행/함양여행)오도재 지암재.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 함양 지암재

2010/03/14 - (경남여행/함양여행)지리산 휴천 법화산 법화사. 지리산 천왕봉의 바람소리도 정겹게 들리는 법화산의 법화사

2008/10/25 - (경남여행/함양여행) 지리산 칠선계곡 벽송사 서암정사 여행. 서산 사명대사를 배출한 지리산 벽송사와 불교예술의 서암정사를 만나보세요.


 


먼저 가루지기의 전설이 있는 옥녀와 변강쇠의 이야기를 지나면 꼬불꼬불한 고갯길로 아흔아홉 고비를 돌아야 한다는 지안재입니다. 지안재를 지나면 당시 한창 공사 중이었던 지리산 제일 관문인 오도재, 서산대사의 제자였던 청매 인오조사께서 이 고갯길을 넘어 지리산을 다니다 도를 깨우쳤다 하여 오도재라 이름하였습니다.



오도재를 넘어서면 비로소 장엄하다는 말밖에 형언할 수 없는 지리산 주 능선이 열두 폭 병풍처럼 한일(一)자로 길게 이어집니다. 과연 지리산이구나 하는 말이 탄식처럼 흘러나왔습니다. 지리산을 보는 조망처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리산을 가장 지리산답게 볼 수 있는 조망처는 몇 군데 없으며 오래전부터 지리산 8대라 하여 지리산 조망처를 정해 놓았습니다.



그 1대가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라는 마천면의 금대입니다. 2대는 마적대, 3대는 문수대, 4대 연화대, 5대 묘향대, 6대 만복대 7대, 수성대 8대 청신대이며 모두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과 반야봉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또한, 영험한 기도처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믿는 많은 신인이 이곳을 찾아 수행하며 도를 깨우쳤다 합니다.



지리산 8대 중 1대인 금대는 지리산 제일 관문인 오도재 옆인 금대봉에 있습니다. 신라말 풍수설의 대가로 알려진 도선국사는 지리산 금대봉에 올랐다가 천하명당 금대를 찾아내고 기뻐서 7일 동안 춤을 추었다 합니다. 그만큼 천왕봉과 마주한 금대의 지세가 대단해 도선은 이곳에다 금대암을 창건했습니다.

 


그 지리산 제일 전망대인 금대와 오도재 사이의 1023번 지방도에 새롭게 떠오르는 지리산 전망대가 있습니다. 호사가들은 지리산 9대에 포함할 정도라며 대단한 조망처로 치켜세웁니다. 함양에서는 이곳에다 지리산 조망공원휴게소를 조성해 놓았으며 민족의 영산 지리산 조망 안내도와 누구나 쉴 수 있는 정자인 지득정, 그리고 지리산을 찾았던 많은 분이 남긴 시비를 세웠습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천왕봉’은 “하늘과 땅과 풀이 그 어느 해에 처음 열려서 두류산을 준비하여 저 하늘을 떠받치었는가. 층계 진 언덕 그늘에는 봄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에 산 아래 구름 끼니 낮인데도 잠을 자고 싶구나”하며 지리산을 노래했습니다.

 




또한, 지리산 벽송사에 주지로 있었던 벽송인 배구한 원응스님은 이른 아침에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 시를 남겼는데 ‘천왕봉에 올라 아침 경치의 장관을 읊다 ’입니다. “칠선골 맑은 물에 세상 티끌 씻어내고/천왕봉에 올라서니 웅장한 기운 이는구나/굽어보니 우뚝우뚝 일천산 봉우리요/구름바다는 아득히 만리에 돌아드네!”라며 빗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지리산의 웅장함을 노래하였으며 이른 아침 천왕봉을 올라보고 세상을 내려다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숙재 강희맹의 ‘내고향’에서 “지리산 높이 솟아올라 만길이나 거대한데/그 산속에 묻힌 옛 고을 함양이라 이르네/화장사 옛 절터 지나서 엄천으로 가는 길에/푸른 대밭 띳집 있는 곳 거기가 내 고향일세”라는 시를 음미해보면 머릿속에 사숙재 강희맹의 아름다운 고향길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문동도의 지리산은 “넓고 넓은 그 위에 또 겹쳐 광대한 모습/그렇게 아득히 세속 먼지 벗어났네/꽃이 떨어져 계곡에는 비단 같은 물 흐르고/구름 생기나니 구렁에 자리를 펼쳤네!”라며 시구에 붓이 저절로 움직일 정도라며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무릉도원에 비유하며 칭송하고 평화스러운 지리산을 노래했습니다.







함양 지리산 조망공원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며 첩첩이 포개진 봉우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지리산의 실핏줄 같은 계곡이 바라보입니다. 모두가 아흔아홉 골이라는 지리산의 골짜기를 필자는 하나하나 세어보며 골짜기마다 숨은 내력을 음미해 보고는 대지리산의 새로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리산을 인자하고 푸근한 어머니에 비유합니다. 그만큼 지리산의 품은 넓고 광활하여 올해 전부터 천왕봉은 하나의 신성한 경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에 지리산 천왕봉에는 천왕 성모를 조각한 바위를 모셨으며 이를 지리산을 관장하는 마고 할미라 했습니다. 천왕봉을 지켰던 마고 할미는 대단히 영험하여 그를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전설로만 남아 있는 성모상을 함양군에서는 지리산 천왕봉 조망 전망대에 국태민안의 발원지로 정해 천왕성모인 마고할미상을 따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지리산을 상징하는 반달곰 가족도 함께하여 이제는 함양의 아름다운 지리산 조망공원이 지리산 천왕봉 최고의 전망대라 해도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함양 지리산조망공원휴게소에서 장엄한 지리산의 파노라마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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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 | 지리산조망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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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위의 풍경 2017.05.08 18:50 신고

    산행간지가 오래라. ㅎㅎ 부럽습니다.^^

  2. *저녁노을* 2017.05.10 04:25 신고

    여기도 전망 좋지요.
    ㅎㅎ
    잘 보고갑니다.

    행복한 수요일 되세요^^

  3. kangdante 2017.05.10 07:24 신고

    징감다리 연휴와 선거도 끝나고
    이제 세로운 일상의 시작입니다..
    여유롭고 편안한 하루되세요.. ^.^

  4. 핑구야 날자 2017.05.10 08:15 신고

    지리산에 가본지도 오래 됐네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5. 공수래공수거 2017.05.10 09:29 신고

    차를 타고 볼수 있는 전망대로군요^^




(영덕여행/영덕가볼만한곳)상대산 관어대, 목은이색의 영해 상대산 관어대에서 송천의 물고기를 헤아리다. 


동해를 따라 올라가면 영덕군의 긴 해안선이 바다와 접하며 수많은 해안단애의 절경을 빚어 놓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고래불해수욕장이 있는 영해면은 목은 이색 선생이 남긴 발자취가 여러 곳 남아 있습니다. 목은 이색 선생은 영해면 괴시리에서 태어났으며 마을 앞을 가로막은 상대산에 자주 올랐습니다.





상대산 관어대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 


☞2017/03/11 - (영덕맛집)이게 대게원조마을 인정. 영덕대게 원조마을인 차유마을 용진호 선주집에서 싱싱한 대게를 먹고 왔습니다.

2017/03/21 - (영덕여행)의병장 신돌석장군 생가와 기념관인 유적지. 신돌석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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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3 - (경북여행/영덕여행)영해 괴시리전통마을. 7번 국도 여행. 목은 이색선생 유허지가 있는 조선시대 양반마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전통마을에서 고가 구경하세요.

2015/09/02 - (경북여행/영덕여행)영해 괴시리 목은 이색선생 유적지. 고려삼은중 한 분인 목은 이색선생 생가터 무가정과 목은 기념관을 여행하다.

2013/11/29 - (경북여행/영덕여행)블루로드 축산 죽도산 전망대. 동해의 전망대로 대나무가 많아 죽도인 죽도산 등대 전망대







푸른 동해가 끝없이 펼쳐지고 명사 이십 리의 고래불 해수욕장이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빼어난 전망대에다 이색선생은 관어대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선생은 바위 절벽을 내려다보며 “송천에서 노는 고기를 헤아릴만하다”는 뜻으로 그만큼 맑은 물과 주위의 절경이 빼어남을 뜻합니다.





지금이라 보기 힘들지만 망망대해의 바다에 고래 무리가 물을 뿜으며 유영하는 모습은 벅찬 감동이었을 것입니다. 이곳에다 이색 선생은 고래불의 지명을 붙였습니다. 영해와 병곡평야, 곰솔의 소나무 방풍림이 한 폭의 진경산수화와 같은 명승 절경이라 고추선 산길에 고생하며 올랐지만 그 감회는 남달랐고 가슴까지 차오르는 벅찬 감동은 관어대에 오른 나에게 큰 희열을 느끼게 했습니다.







‘관어대(觀魚臺)’는 정상 서편 아래 절벽에서 “송천에 물고기가 헤엄쳐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셀 수 있다”하여 오래전부터 동해안의 최고 절경지로 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와 글을 남겼습니다.





목은 이색 선생 또한 ‘관어대소부’를 지어 중국에까지 관어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했으며, 조선 시대에 와서는 성리학의 태두셨던 점필재 김종직이 관어대에 올라 ‘관어대부’를 짓고 그를 따르는 후학들에게 관어대의 빼어난 경치를 설파했습니다.





이들 목은 선생과 점필재 선생은 관어대에서 보고 물속에서 노는 고기와 물 바깥에서 보는 내가 따로가 아닌 하나다며 “하늘이 우리에게 준 천성을 따르는 것이 바로 하늘의 이치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외에도 안노생 원척석 등 많은 시인묵객이 관어대를 찬양하는 시와 글이 남아 있습니다.






혹시 동해의 해안선인 7번 국도를 여행하다 만나는 고래불해수욕장에서 상대산 관어대를 올라 보세요. 주위 경치를 보면서 또 다른 동해여행의 묘미를 느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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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 상대산관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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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7.05.01 04:50 신고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잘 보고가요.

    행복한 한 주 되세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5.01 10:03 신고

    영덕에 이런곳이 있었군요
    기억해 놓겠습니다^^



 

 


(밀양여행/밀양가볼만한곳) 밀양에서 꼭 보고와야 할 여행지 밀양시립박물관, 밀양독립운동기념관. 


밀양여행을 하면서 밀양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면 밀양시립박물관을 찾아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저도 밀양의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그래도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던 차에 밀양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밀양시립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밀양시립박물관은 이번에 처음 찾았던 것은 아닙니다.





밀양시립박물관 관람시간:09:00~18:00(입장시간 09:00~17:00)

밀양시립박물관 휴관일:1월1일 설날·추석 당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밀양시립박물관 관람료: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20인 이상 단체 관람료 별도

밀양시립박물관은 2014년부터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을 ‘문화의 날’이라 지정하여 당일 무료 관람 시행.

밀양시립박물관 예약안내:055-359-5589

밀양시립박물관 주소:경상남도 밀양시 밀양대공원로 100


 

2016/12/10 - (밀양여행)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약산 김원봉, 석정 윤세주, 최수봉, 백민 황상규등 밀양 독립운동가 거리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2016/12/05 - (밀양맛집)밀양내일동 전통시장 단골집, 백종원의 3대 천왕 맛집 70년 전통 돼지국밥 밀양 단골집.

2011/06/24 - (경남여행/밀양여행)산외면 죽원재사. 밀양시 옛고을 다원리 오한 손기양의 죽원재사를 찾아서...

2011/05/16 - (경남여행/밀양여행)상동 박연정. 강물에 노니는 물고기 수를 헤아렸다는 수어대가 있는 밀양의 박연정

2011/06/18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영남루,. 무더운 날에 밀양 영남루에 올라 시원한 대청마루를 생각한다. 영남루




항상 논에 피를 뽑듯이 듬성듬성 보고 다녔기에 별 감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갈 기회가 생겨 이번에야말로 꼼꼼하게 둘러보았으며 밀양의 많은 문화유적지와 밀양을 대표하는 인물을 알면서 새롭게 밀양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몇 년 사이에 밀양시립박물관이 있는 일대가 완전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박물관 이외에도 참말로 구경할 게 많아 아이와 함께 찾는다면 풍성한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이곳은 요즘은 흔적조차도 찾기 힘든 영남대로가 재사 고개로 넘어가는 길목이라 시립박물관으로 더욱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밀양시립박물관의 주요 전시실을 보면 1층에 밀양 독립운동기념관이 독립된 부스로 전시 중이며 역사와 민속 시립박물관으로 기획전시실을 제외하면 모두 4개의 테마로 꾸며졌습니다.

 


특히 밀양에서 가장 관심이 있는 곳은 독립운동기념관입니다. 보통 독립운동기념관 하면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생각하기 쉽지만, 밀양은 을사늑약 이후 많은 밀양 출신이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목숨을 바쳐 뛰어들었습니다. 영남지방 최초라는 3.13 밀양 만세 의거를 시작으로 23회에 걸친 폭탄 투거인 의열 투쟁의 선봉에는 밀양 출신의 많은 의열단원이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민족혁명당의 창당과 조선 청년혁명 간부학교, 조선의용대와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항일독립투쟁의 역사 속에 특히 밀양 출신의 의사가 많았습니다. 의열단 단장·조선민족혁명당 총서기·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역임한 김원봉,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황상규, 조선 민족 혁명당과 조선의용대 윤세주, 대종교 3대 교주 윤세복 최주봉 등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던 밀양. 밀양의 독립운동 뿌리를 시립박물관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올강 전홍표 동화학교 교장의 영향을 받은 김원봉은 무장투쟁의 의열단 단장이었으며 한봉근, 김상윤, 김대지 등이 의열단의 중요간부였고 의열단의 핵심으로 김원봉을 보좌하며 의열투쟁을 벌렸습니다.







의열단의 석정 윤세주 또한, “무수한 동지들이 체포되었지만, 체포되지 않은 우리 동지들은 도처에 있으니, 반드시 강도 왜적을 섬멸하고, 우리의 목적을 도달할 날이 있을 것이다”며 3.13 밀양만세의거와 밀양폭탄의거를 주도했지만 밀양폭탄의거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조선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 교관,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조선의용대 훈령 주임과 정치위원을 거쳤으며 중국태항산 반소탕전투에서 부상의 후유증으로 순국하셨습니다.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의거의 최주봉 의사는 의열단의 김상윤, 이종암, 고인덕과 의거를 준비하여 1920년 12월 27일 밀양경찰서에다 창문으로 폭탄 한 개를 던지고 기다렸다 순사들이 뛰쳐나오자 다시 폭탄을 던졌습니다. 일경의 추적을 받자 자결을 시도했다 체포되었으며 사형을 선고받고 다음 해 7월 8일 순국했습니다. 그는 죽음 직전까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대한남아의 기개를 보였다 합니다.









황상규 의사는 “나는 죽어도 집에서 죽지 않고, 대중을 위해서 밖에서 일하다가 밖에서 죽겠다”는 유언을 남겼으며 밀양폭탄의거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그의 의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3월 13일 밀양 장날에 맞추어 함성이 퍼져나갔습니다.





의열단의 결성은 1919년 11월 10일 중국길림성(지린성)에서 김원봉의 주도하에 “일제 침략을 물리치고 정의를 되찾기 위해 맹렬하게 투쟁할 것을 맹세”하며 결성했습니다. 의열단원을 보면 황상규, 윤치형, 김상윤, 윤세주, 강인수, 한봉근, 한봉인, 고인덕, 김성수, 김원봉 등 유독 밀양 출신이 많았습니다.

 






1935년 7월 민족혁명단으로 바뀔 때까지 일제는 의열단을 두고 “파괴, 흉폭행위를 실천에 옮기는 단체는 오직 의열단 뿐”이라며 두려워 했습니다. 의열단의 암살대상은 조선총독부의 고관 군 수뇌부, 대만 총독, 매국노, 친일파 거두, 적 염탐꾼, 반민족적 토호열신과 파괴대상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와 침략기관 등이었습니다.



김원봉은 “자유는 우리의 힘과 피로 얻어지는 것이지 결코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선 민중은 능히 적과 싸워 이길 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구자가 되어 민중을 각성시켜야 한다”고 박태원의 ‘약산과 의열단’에 나와 있습니다.













조선 민족 혁명당의 결성과 활동의 뒤를 이어 조선의용대의 창건은 1937년 7월 7일 일제의 중국 침략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자 이에 중국 정부는 한국인의 항일투쟁을 높이 평가하여 1938년 10월 후난성에 조선의용대를 창건하도록 지원하여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이 총대장을 맡았습니다.



















1919년 4월 10일까지 아홉 차례나 밀양만세시위운동이 벌어졌으며 460여 명의 주민이 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참 많은 기록이 전시 중인 밀양시립박물관의 밀양독립운동관, 수많은 밀양의 독립투사 발자취를 알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밀양시립박물관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유물이 전시 중입니다. 단장면에 새롭게 출토된 후기구석기유물로 추정되는 타제석기인 뗀석기가 수습되었습니다. 이것으로는 아직 구석기 유물이라 단정하는데는 한계가 있으며 현재 밀양은 아쉽지만 신석기 유물과 주거지 등이 나온 게 없습니다.



그러나 지석묘인 고인돌과 석관묘인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유물인 마제석기, 김해 가야토기와 신라 토기 등이 많이 출토된 것을 유추 해보면 밀양의 역사는 청동기 시대 이후부터 집단 주거가 이루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밀양은 변진 12국의 하나였던 미리미동국이며 이는 신라에 병합되어 사라집니다. 이 모든 밀양의 선사시대 유물과 옛 역사를 밀양시립박물관에서 만났습니다. 



































고려와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밀양을 대표하는 수많은 유물과 인물이 있습니다. 그중 꼽으라면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인 영남루, 사림파의 태두인 점필재 김종직 등이며 이외에도 많은 밀양의 유물과 인물들을 밀양시립박물관에서 만나 보세요. 밀양에 대해서 더욱 많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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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교동 485-4 | 밀양시립박물관,독립운동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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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밀양에는 박물관이 정말 잘 되어있네요~ 꼭 가봐야겠어요^^

  2. kangdante 2017.04.25 07:28 신고

    슬픈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이군요..
    오늘도 멋진 하루되세요..

  3. 핑구야 날자 2017.04.25 07:59 신고

    나중에 밀양에 갈 일 있으면 들려봐야 겠네요 덕분에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향교 대성전. 조선시대 교육기관 경주향교 여행


경주 최부자 최 씨 고택을 둘러보고 인근에 있는 경주향교에 갔습니다. 경주향교는 요즘으로 치면 국립대학입니다. 사립교육기관인 서원과 함께 조선 시대의 양대 교육기관이었습니다. 경주향교의 전신은 신라 시대로 올라갑니다. 682년 신문왕 2년에 처음 세워졌던 국학이 있었던 곳이며 고려 시대에는 향학, 조선 시대에는 향교로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계속 지방교육기관이 들어섰습니다.





경주향교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경주향교 전화:054-772-3624


2008/10/18 - (경북여행/경주여행)무장사지 삼층석탑과 무장사지아미타불 조성 사적비 이수및 귀부 여행. 태종무열왕이 전쟁후 병기와 투구를 감춘 곳, 경주무장사지 입니다.

2010/07/20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진덕여왕 여행.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진덕여왕릉 찾아가기

2013/03/10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 이것.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2013/03/08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남산)보일듯 말듯한 섬세한 조각기법이 예술.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2013/03/05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야외 박물관 경주 남산 남북 종주 산행.




그리고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의 둘째 공주였던 요석공주가 과부가 되어 머물렀던 요석궁이 있었으며 훗날 이곳에서 원효와의 로맨스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주 향교 포스팅입니다. 경주향교의 건립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492년 조선 성종 23년에 경주부윤 최응현에 의해서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성전 등 경주향교의 주요건물은 모두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대성전에 봉안했던 성현의 위패는 경주 안강의 도덕산 두덕암(현재 도덕암)으로 옮겼으며 1600년 선조 33년에 경주부윤인 이시발이 대성전과 전사청을 먼저 중건하면서 위패를 다시 모셔왔습니다.



4년 뒤에는 윤성이 대성전 앞의 동·서무를 중건하고 1614년 광해군 6년에는 부윤 이안눌이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를 중건함으로써 소실되었던 경주향교의 면모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그 후 1668년과 1979년에 보수를 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경주향교는 약 5천 평으로 경상북도 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라 합니다.

 







명륜당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보았던 여러 향교는 모두 전학후묘였다면 경주향교의 건물배치는 전라도 나주향교·부여향교·전주향교와 강원도 강릉향교 등과 같은 전묘후학인 문묘 영역이 강학영역의 앞쪽에 배치하는 형식을 따랐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 향교의 대표적 형식이라 하는데 저도 여러 향교를 찾았지만, 문묘인 대성전이 앞쪽으로 나오는 형식은 경주향교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경주향교의 대성전과 동·서무는 공자 이외에 성현의 위패를 봉안하여 배향하며 전묘후학의 형식을 따른 향교의 공통점은 대부분 옛 도읍지에 있는 것을 보면 이는 왕들이 공자를 비롯한 성현을 먼저 문묘하는 것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합니다. 경주향교도 조선 시대에는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국가로부터 받아 교생을 가르친 국가교육기관입니다.







대성전은 공자의 시호인 ‘대성지성문성왕’에서 따왔으며 공자의 위패를 중심으로 연국복성공인 안자, 성국종성공 증자, 기국술성공 자사, 추국아성공 맹자 등 중국의 5성과 경주에서 태어난 홍유후 설총, 문장후 최치원, 문원공 이언적 선생 등 3현을, 문묘에 배향한 퇴계 이황, 율곡이이, 김굉필, 조광조, 김집, 송시열 등 우리나라의 18현을 봉안해 음력 2월과 8월 초정일에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존영각


존영각





문묘인 대성전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인 주심포계 외1출목 이익공식(새 날개처럼 생긴 공포 양식) 건물로 내력 또한 분명합니다. 건물의 공포와 창호, 가구는 옛방식의기법이 잘 남아 있고 대성전의 용마루 받침대인종도리에서 건물의 중건연대와 참여했던 장인 등 당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묵서명이발견되었습니다.


대성전



대성전은 경주향교의 중요건축물이며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으로 우수한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국가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경주향교는 입구의 큰문인 외삼문은 출입할 수 없게 잠겨있습니다. 이곳을 통하면 내삼문을 거처 대성전으로 바로 통하지만 문묘 공간이라 출입할 수 없습니다.





경주향교를 보기 위해서는 관리실과 통하는 쪽문을 통해 들어가야 합니다. 먼저 만나는 게우물입니다. 신라 시대 국학이 건립될 때부터 남아 있던 유물로 현재 경주향교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것 같습니다. 널다란 돌 2개를 짜맞추어바닥을 깔고 낮게 테두리를 다듬었으며 요즘 우리가 보는 우물의 모습과는 약간 달라 보입니다.













뚜껑이 덮여있어 알 수 없지만 얕은 우물이라 두레박이 아닌 바가지로 물을 퍼 담을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의 강학장소였던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거처로 사용했던 동·서재를 만나고 대성전은 동재나 서재 앞쪽 긴 담장 사이를 따라가면 대성전 출입문인 내삼문이지만 문은 굳게 잠겨있어 바깥에서 까치발로 내부 전경을 보고 돌아 나왔습니다. 경주향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1호이며 대성전은 보물 제1727호로 지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