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여행/양산여행)황산문화체육공원의 꽃 양귀비 보고 왔습니다. 황산문화체육공원 꽃양귀비


요즘 꽃축제의 대세는 꽃 양귀비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아름다운 꽃의 대명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양귀비 하면 누구입니까? 당나라 현종의 왕후가 양귀비입니다. 

절세미인으로 알려진 양귀비에 비길만큼 꽃이 아름다워 양귀비의 이름을 얻은 양귀비꽃은 아름다운 꽃 말고도 마약성분이 들어 있어 일반인은 법으로 재배할 수 없는 꽃입니다.




황산문화체육공원 주소: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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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양귀비는 양귀비인데 앞에 접두사 꽃 자가 붙어 꽃 양귀비로 불리는 양귀비는 마약성분이 없습니다. 

그런 만큼 마음 놓고 키울 수도 있고 꽃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습니다. 

부산과 가까운 양산시 물금의 낙동강변에 새롭게 조성한 황산문화체육공원에 무지하게 넓은 터에 꽃 양귀비가 화려한 꽃을 피워 5월에는 많은 나들이객이 찾고 있습니다.




저도 소식을 듣고 주말에 한번 찾았습니다. 

붉은색 분홍색 등 각양각색으로 피어난 꽃 양귀비는 양귀비의 이름처럼 사람을 유혹하는 마력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들릴 만큼 사람의 마음을 환하고 밝게 해주었습니다. 

이번 주 중 까지는 그래도 꽃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어 보였습니다.



꽃 양귀비는 지기도 하고 꽃씨를 머금고 있기도 하며 녹색으로 둘러싼 산과 푸른 낙동강과 어울려 환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양귀비와 꽃 양귀비의 차이가 궁금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양귀비는 마약성분이 들어있고 꽃 양귀비는 마약성분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양귀비는 꽃대가 매끈한데 반해 꽃 양귀비의 꽃대는 솜털이 자라나 있습니다.




양귀비는 꽃대와 잎 등을 꺾으면 수액인 하얀 진액이 나오는 데 반해 꽃 양귀비는 하얀 진액이 나오지 않습니다. 

양귀비는 톱니모양의 넓은 잎에 열매가 둥글고 크지만 꽃 양귀비는 잎이 가늘며 열매가 양귀비보다 작다고 합니다. 참고하세요.

 


양산 물금 황산문화체육공원 꽃양귀비 사진으로 구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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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 1141 | 황산문화체육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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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5.29 16:08 신고

    꽃 양귀비가 요즘 또 대세로군요^^






(경남여행/합천여행)신라 폐사지를 찾아서 합천 백암리석등과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 여행


합천군과 의령군의 경계에 솟은 국사봉을 산행하고 항상 찾아가려고 마음만 먹었던 무월봉 아래 골짜기에 있던 폐사지에 합천 백암리 석등과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을 찾았습니다. 

도로에서 대략 2km 가량 떨어져 있어 대형버스는 갈수 없고 승용차나 걷는 수 밖에 없지만 걷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거리였습니다.



합천백암리석등과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 주소: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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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자가운전을 해 온 덕분에 편안하게 합천 백암리 석등이 있는 폐사지 인근까지 갔고 주차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어서 대충 주위에 주차를 했습니다. 

저 멀리 석불좌상 노거수인 느티나무가 보였습니다. 

논밭 한가운데 자리해서 논둑을 따라가려니 찾아가는 것도 상그러워 보였습니다.



당시 모내기철이 아니라 급한 마음에 무논을 가로질러 바로 합천 백암리 석등을 찾아갔습니다. 

낮은 울타리가 쳐져 있고 작은 철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는 그야말로 황량한 분위기였습니다. 

합천 백암리석등과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과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한줄로 나란히 서서 손님을 맞았습니다.



안내판에는 백암사 또는 대동사가 있었다는데 확실하게 드러난 근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검색에서 백엄사로 추정하며 합천 해인사보다 더 큰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게 아닌가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서 이곳저곳을 찾아 공부를 좀 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이리 열심히 찾고 했다면 벌써 문화재 박사라도 했을 낀데 말입니다.

 


그런데 찾아본 결과는 국사봉 산행의 출발지인 서암마을에는 한지전시관이 있었습니다. 

한지는 닥나무로 만든 종이를 말하며 그 시초가 대동사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암리 석탑과 함께 있는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의 그 대동사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종이 이전에는 죽간이나 목간에다 글을 써서 기록했습니다.



종이의 발명이 우리 문명에 끼친 영향은 정말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특히 종이는 절에서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큰 사찰에서는 모두 한지를 자급자족하여 만들어 사용 했으며 절 주위에다 종이의 원료인 닥나무를 많이 심고 관리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지를 처음 만들었던 곳이 대동사이며 이절에 설씨 성을 가진 스님이 닥나무를 짓이겼더니 서로 엉켜붙는 것을 보고 연구 끝에 한지를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에 봉수면과 백엄사(대동사) 아래 백암마을에서는 대부분의 집이 한지를 생산하였고 우수한 품질로 궁궐의 진상품에 올랐으며 중국에 수출까지 했다고 합니다.



백엄사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도 등장합니다. 

삼국유사 권3 탑상4 ‘백엄사 석탑사리’편에 나온다고 합니다. 

백엄사의 창건은 신라시대이며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남아 있는 문화재를 보면 신라시대에부터 있던 사찰로 보여집니다.

 


그리고나서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고려시대인 906년(효공왕10년)에 양부화상이 중창하였으며 925년(태조8년)에 희양산파의 긍양화상이 10여년간 머물다 희양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긍양의 뒤를 이어 신탁화상이 주지가 되었으며 1065년 11월에 당시 주지였던 득오미정대사 석수립이 ‘백엄사에서 지켜야 할 규칙 10조’를 정하면서 새로 5층 석탑을 세워 부처님 진신사리 42과를 봉안했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엄사 규칙 10조를 보면 사재로서 보를 만들어 해마다 공양할 것, 백엄사에서 불법을 수행하던 엄흔과 백흔, 근악 세분의 보를 세워 공양할 것, 금당의 약사여래불 바리때에 매월 초하루에 쌀을 바꾸어 넣을 것 등입니다. 

엄흔과 백흔 두사람이 집을 희사하여 절을 창건했고 두사람의 이름인 백자와 엄자를 따서 백엄사로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또한, 신라 때에 북택청 터를 희사해서 창건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합천 백암리 석등은 주위에 널부러져 있던 부재를 모아 원래 모습그대로 인 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복원한 상태입니다. 

석등을 보면 그저 밋밋한 형태가 아니고 석등을 받치는 받침돌과 화사석의 사면에 새긴 조각을 보고는 매우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먼저 석등의 받침돌을 보면 아래로 향한 8장의 연꽃 잎인 복련을 새긴 둥근 받침돌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깨끗한 형태의 팔각기둥을 세웠습니다. 

그위에 화사석을 받치는 윗받침돌에 하늘로 향한 여덟장의 연꽃인 앙련을 새겼습니다.

 

대동사지 여래좌상

그 안쪽에는 홈을 파서 불을 밝히는 팔각의 화사석을 고정시켰습니다. 

화사석의 네면은 창을 내고 나머지 네면에는 악귀의 근접을 막는 사천왕입상을 도드라지게 새겼습니다. 

화사석 위에 지붕돌 밑면은 1단의 받침이 있으며 그 가운데에 홈을 내어 화사석을 고정시켰습니다.





지붕돌의 여덟 귀퉁이에는 꽃조각이 붙어 있었다하나 지금은 모두 깨어져 흔적뿐이며 지붕돌의 경사면은 얇지만 뚜렷하게 각을 지은 모습입니다. 

합천 백암리 석등의 여러 전형을 종합해보면 군드더기 없이 깔끔하고 늘씬한 게 8세기 후반의 통일 신라 석등의 전형적인 경쾌한 모습을 잘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물 제381호




합천백암리석등과 함께 있는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을 보았습니다. 

연꽃 좌대위에 석조불상이 사바세계을 내려 보는 듯 따뜻한 부처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얼굴부분은 알아 볼수 없게끔 마모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정교한 석조여래불입니다.



머리 가운데에 상투모양의 육계가 높이 솟았고 법의는 통견으로 양어깨를 감싼 형태이며 상체에서부터 흘러내린 옷주름은 무릎을 감싸고 있습니다. 

오른쪽 무릎에 올린 오른손은 아래를 보고 왼손은 왼쪽무릎에 올렸으며, 손끝은 아래를 향하여 땅속의 악귀를 물린친다는 뜻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대좌는 상중하대를 갖추었으며 연꽃잎이 하늘로 향한 앙련이며 팔각의 중대에는 각면에다 악귀의 근접을 막으려고 갑옷과 투구를 쓴 여덟명의 신장상을 새겨놓아 석조여래좌상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대 또한 상대와 반대방향인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함께한 합천백암리 석등에서 보듯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석조여래좌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합천 백암리 석등



현재 이곳은 두 번의 발굴조사가 있었으며 주위에 흩어져있던 부재와 부도골 등을 종합하면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엄사 또는 대동사는 모두 국사봉이 보이는 곳에 있었던 사찰 같습니다. 

발굴된 기와조각과 건물 터 등을 보면 고려와 조선초까지 연결되며 또한 삼국유사에 백엄사는 초팔현(지금의 초계면)에 속했으며 현재 대양면 백암리가 당시 초팔현에 속했다합니다.

 이와 함께 2008년 경남문화재연구원의 발굴조사에서 여러 정황을 비교해 백엄사지로 볼수 있다는 추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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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 102 | 합천백암리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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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5.17 10:23 신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더 좋을듯 합니다






(경남여행/밀양여행)5월의 밀양 위양지 이팝나무 반영을 보고 왔습니다. 밀양 부북면 위양지 이팝나무,


벼르고 벼르던 밀양위양지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늦가을의 위양지와 초봄에 찾았던 밀양 위양지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시시각각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최고의 촬영 포인트였습니다. 

지난가을에는 날씨 탓인지 반영은 생기지 않았으나 그 대신 붉은 단풍으로 물드는 수십 그루의 노거수와 소나무가 장관이었습니다.




밀양 위양지 이팝나무 주소: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297



2017/11/28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위양지. 가을 단풍이 아름다웠던 밀양 위양지 여행. 밀양위양지

2017/04/24 - (밀양여행) 밀양에서 꼭 보고와야 할 여행지 밀양시립박물관, 밀양독립운동기념관.

2016/12/10 - (밀양여행)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약산 김원봉, 석정 윤세주, 최수봉, 백민 황상규등 밀양 독립운동가 거리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2018/01/11 - (밀양맛집/무안맛집)사명대사 생가 맛집, 홍제사 표충각 맛집 제일식육식당. 밀양 무안면 제일식육식당

2016/12/05 - (밀양맛집)밀양내일동 전통시장 단골집, 백종원의 3대 천왕 맛집 70년 전통 돼지국밥 밀양 단골집.





4월의 위양지는 막 파릇파릇 이파리를 달아내며 물가에 비치는 반영은 신의 손을 가진 미술가라도 담아내지 못할 그런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에 홀딱 반해 마침 밀양의 상가에 꼭 가야 해서 밤을 밀양 위양지에서 보내었습니다.



4월의 차 안은 얼마나 춥던지... 

그래도 새벽에 만날 위양지를 생각하며 긴 밤을 버텼습니다. 

새벽 5시에 뿌연 하늘을 가르며 아침이 열렸습니다. 

위양지를 돌면서 아침의 위양지를 이곳저곳 담았습니다. 

위양지의 이팝나무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올해는 완재정의 이팝나무에 이팝꽃이 언제쯤 필까 하며 내심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사진이나 여행 블로그에서 밀양위양지 이팝나무는 매년 5월 10일 전후에 절정이라는 포스팅을 여러 번 보았던 터라 그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보다 조금 이팝나무의 개화가 빠른지 부산에는 4월 말에 이팝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부산이 이렇다면 밀양 위양지도 한주쯤 후면 피겠지 생각했습니다. 

5월1일 근로자의 날에 아침부터 지인이 밀양 위양지 이팝나무에 꽃이 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일이 있어 가보지를 못하고 주말에라도 가야겠다며 생각하고 있었는데 출장과 날씨로 찾아 갈 형편이 못되어 이번 5월의 밀양 위양지 이팝꽃은 보지 못하는 가보다며 포기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끝물의 밀양 위양지 이팝나무를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밀양 위양지 이팝나무을 본다는 들뜬 기분 때문인지 카메라 메모리를 옮기면서 빼놓은 것을 모르고 그냥 들고 와서 여분의 2기가짜리만 꼽혀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찍기는 만큼만 담아야 했습니다. 

위양지 주변의 반영은 미리 담았기에 이번에는 완재정 주위의 이팝나무를 위주로 눈팅을 즐겼습니다.



와!! 정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역시 근방에서는 품위있는 이팝나무로 알려져 있었어 그런지 유치원 원생도 참새 잭짹하며 소풍을 나왔습니다. 

찍기는 만큼 담고 내년을 기약하며 돌아왔습니다. 

밀양 위양지(位良池)는 임금이 백성을 위해 쌓은 저수지입니다. 

그래서 양민을 위하는 군주의 마음이 위양지의 이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위양지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 때 조성하여 고려를 거치고 1634년 이유달 밀양부사가 재차 저수지 둑을 쌓았다 합니다. 

위양지안에는 크고 작은 인공섬이 여러 개 있으며 그 중 가장 큰 섬에 안동권씨에서 세운 완재정이 있습니다. 



이곳 주위에 이팝나무가 있어 고가의 완재정과 어울려 위양지의 비치는 모습은 가히 선경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밀양위양지는 농업용수로도 사용하겠지만 아름다운 경승지로 더 많은 관광객을 모으는 것 같습니다. 

올해에 아쉽지만 그래도 밀양위양지 이팝나무를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내년에는 더 나은 사진 실력을 익혀 보다 낳은 사진을 찍어야겠다며 아쉽지만 처음 만난 기념으로 위양지의 이팝나무 사진을 올려보았습니다. 

밀양 위양지는 ‘2016년 제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했으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에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5월의 밀양 위양지 이팝나무 사진으로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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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297 | 위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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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과 창녕 직교리당간지주


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을 보고 나서 내친김에 술정리서삼층석탑을 보러 갔습니다. 

술정리동·서삼층석탑은 석탑의 이름에서 보면 같은 사찰의 동시대에 세워졌던 쌍탑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행정동이 같은 두탑이라 편의상 술정리동·서삼층석탑으로 나누어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4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 전화:055-530-1473



2018/04/27 - (경남여행/창녕여행)우천리 상월마을 반곡고택 여행, 창녕 반곡고택 여행

2018/04/18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리고분군. 비화가야의 순장한 소녀 유골이 나온 창녕 송현리고분군 여행

2018/04/1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동고분군을 만나다.

2018/04/0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은 탑의 정교함이 빼어나서 국보 제34호에 지정됐지만 술정리서삼층석탑은 기단부의 제작과 탑의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동 삼층석탑에 비해 격이 현저히 떨어지고 또한. 탑의 제작 시기도 다소 늦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두 탑의 직선거리도 600여m가량 떨어져 있어 한 사찰의 탑으로 보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술정리서삼층석탑 옆의 창녕천 건너 직교마을회관 안 골목에 당간지주가 있는 것을 보면 절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이곳에도 대사찰이 있었다는 것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은 높이가 5.1m에 석탑은 이중기단에 삼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의 탑입니다. 

탑의 기단부는 아래층과 위층을 8개의 돌로 짜 맞춘 특이한 수법이라 합니다.



아래 기단은 바닥돌과 받침돌의 면석을 같이 붙인 8장의 돌로 구성되었으며 네 귀퉁이에는 모서리 기둥인 운주를 새겼으며 그 중간에 가운데 기둥인 탱주를 2개씩 새겨넣었습니다.

 


위층 기단 역시 8장의 돌에 각 면의 중간에 널돌을 한 장씩 끼워 넣었으며 아랫단과 달리 네 귀퉁이에 모서리 기둥은 새기지 않은 대신 각 면에 2개의 구름 모양의 안상을 새겼습니다. 

남쪽 면의 가운데 돌에는 문짝으로 보이는 문양을 새겼는데 이는 후대에 조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개의 돌로 구성했으며 몸돌의 네 귀퉁이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5단에다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날렵하며 경쾌한 느낌입니다. 

탑의 상륜부인 머리장식은 네모난 노반과 복발만이 남아 있습니다. 보물 제520호.
















이번에는 창녕 직교리당간지주입니다. 

당간지주란 보통 사찰의 입구에 사찰의 각종 행사나 사찰임을 알리는 깃발을 단 기둥을 양쪽에서 잡아주는 지주를 말합니다. 

당간에는 목당간, 철당간, 석당간이 있으나 필자는 철당간과 석당간은 여럿이 보았으며 이를 잡아주는 당간지주는 거의 돌을 깎아 만들어 세웠습니다.

 




창녕 직교리 당간지주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직교리 64-11



경주와 여러 곳에서 많은 당간지주를 만났지만, 창녕 직교리당간지주는 조금은 특별한 형태였습니다. 

화강석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약 2.5m에다 안쪽으로 마주 보며 아래위로 각 두 개의 구멍이 파였습니다.





바깥 쪽의 당간지주 머리부분은 기둥처럼 깎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인근에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인양사조성비가 있지만, 현재 어떤 사찰이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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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4 | 술정리서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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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5.11 10:38 신고

    창녕문화재 잘 보고 갑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우천리 상월마을 반곡고택 여행, 창녕 반곡고택 여행


창녕 화왕산을 남쪽으로 둔 마을인 우천리 상월마을에는 노희간이 세운 반곡고택이 있습니다. 

반곡은 노희간의 호에서 따왔으며 선생이 45세에 세웠다 합니다. 

반곡고택의 건물 배치는 'ㅁ'자 형태이며 장연노씨 반곡파종중의 소유로 건물의 내력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창녕우천리 반곡고택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260



2018/04/18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리고분군. 비화가야의 순장한 소녀 유골이 나온 창녕 송현리고분군 여행

2018/04/1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동고분군을 만나다.

2018/04/0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2018/03/2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2018/03/29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앞쪽에 일자형태의 사랑채가 자리했으며 좌우로 사랑채를 드나드는 작은 문이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채는 독립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사랑채에 노씨 후손들이 기거하는지 집안이 청소 등 사람의 손때가 묻어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반곡고택의 사랑채는 앞면 3칸에 옆면 1칸 반 규모로 현판과 기둥에는 주련이 주렁주렁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에다 툇마루를 넣었지만, 담장이 마루에 바짝 붙어 앞을 막아 많이 갑갑해 보였습니다.



사랑채 왼쪽에 안채로 통하는 넓은 입구가 있으며 현재 따로 문이 없어서 그냥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채에 사람이 있었다면 양해를 구하고 안채로 들어갔겠지만, 사람이 없어서 그냥 실례를 무릅쓰고 내부를 둘러보았습니다. 

안채를 들어서는 왼쪽에 곳간채가 있습니다.

 



반곡고택 사랑채



헛간이 붙어 있으며 툇마루가 달린 1칸의 방과 창고가 붙었습니다. 

1920년경에 사랑채와 함께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 1852년(철종4년) 중사랑채와 함께 지었다는 안채가 있습니다. 반곡고택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반곡고택 중사랑채

안채는 앞면 4칸에 옆면 1칸 반의 규모로 앞쪽에 툇마루가 붙었습니다. 

건물 가운데에다 대청을 넣고 그 좌우로 각각 1칸의 방을 배치했으며 왼쪽 방 에는 부엌을 붙였습니다. 

대청에는 반곡고택 현판이 걸려 있으며 마루를 붙였습니다.





부엌은 찬방을 두고 기둥의 바깥쪽을 막아 공간을 넓혔습니다. 

방에는 벽장이 있는 홑처마 합각지붕 형식입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있는 중사랑채는 앞면이 3칸이고 옆면은 1칸 규모입니다.




반곡고택 안채



건물 왼쪽의 1칸은 광을 넣었으며 가운데에다 1칸과 오른쪽에 반 칸의 방을 각각 넣고 나머지 반 칸은 마루를 달았습니다. 

건물은 홑처마에 우진각지붕 형식입니다. 

반곡고택의 건축형식은 조선 말기에서 근대 초기에 지어진 양반집 형태와는 전혀 다른 일반 백성의 집을 토대로 지은 농촌 출신의 양반 주택입니다.


반곡고택 곳간채


집의 기본구조와 재료, 크기 등에서 일반가옥과 별로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으며 전형적인 고향 집 분위기였습니다. 

마을 주민에게 반곡고택에 대해 물었더니 옛날에는 상월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이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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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260 | 창녕우천리 반곡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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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산여행)경산 제석사와 계정숲 여행. 원효 탄생지 제석사와 한장군 묘와 계정숲


경산시를 삼성현의 고장이라 부릅니다. 

이 세 분의 성현은 원효대사와 그의 아들인 설총,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선사를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원효대사의 탄생지라는 경산 자인면의 제석사를 보고 왔습니다. 

원효대사의 탄생을 보면 유성이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원효를 가졌으며 만삭에 집 옆의 밤나무가 많은 골짜기인 ‘율곡’을 지나다가 산통을 느껴 밤나무 아래에서 원효를 낳았다 합니다.





경산 원효대사 출생지 제석사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226-1

경산 원효대사 출생지 제석사 전화:053-857-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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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든 부처님을 떠오르게 합니다. 

원효가 태어났던 곳인 큰 밤나무를 사리수라 불렀고 그 밤나무에서 열리는 밤을 사리밤으로 불렀습니다. 

이 밤은 주위의 밤보다도 밤알이 토실토실한 게 월등히 컸다 합니다. 

원효는 15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충격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원효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곳은 자인면사무소 뒤쪽인 속칭 밤골이라 불리는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원효는 출가하고 나서 자신이 살았던 옛집을 헐어내고 절을 짓고는 초개사라 불렀으며 자신이 태어났던 밤나무인 사라수 옆에도 절을 짓고는 사라사라 했다고 삼국유사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개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년 전에 한 농부가 밭갈이를 하다가 불상과 탑의 몸돌을 발견하고는 이곳이 오래전에 절터였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후 유찬이 절을 짓게 된 게 오늘날 제석사가 되었다 합니다.

 


제석사 한쪽에는 석조좌불, 부서진 탑신과 석등을 받쳤던 연화문 대석등의 부재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 일대가 신라하대의 고찰터 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원효가 세웠던 초개사나 사라사의 확실한 근거는 아직 찾을 수 없으며 이 일대가 원효의 출생지라 그리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신라시대 부재



한국사찰전서에 제석사는 1625년 유찬이 창건했으며 1802년과 1910년 거사 손대권과 월파대사가 각각 중창하였고 1933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후에 제석사는 쇠퇴하면서 폐사가 되었다가 1962년에 다시 대웅전을, 1965년에 칠성각을 건립하면서 불법의 등불을 밝히게 됩니다. 

2001년에 와서 대웅전을 새롭게 중창하면서 삼존불을 봉안하고 대웅보전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칠성각 또한 산신각으로 개명했습니다.







제석사는 다른 사찰과 다르게 이곳은 원효대사의 탄생지로 추정되어 2003년 불교계 최초인 ‘원효성사전’을 건립했습니다. 

내부를 살짝 보았더니 안에는 원효대사의 좌상을 모셨습니다. 

주택가 안의 사찰이라 조금은 생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원효의 출생지 설화가 있는 사찰이라 그런지 신성하며 무엇인가 모를 무거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인근에 있는 계정숲으로 향했습니다. 

도심에서 보면 울울창창한 숲으로 우거진 언덕 같은 높이의 공원이었습니다. 

인공적으로 가꾼 숲이 아니고 천연숲인 계정숲은 이팝나무가 주종이며 말채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 낙엽수와 활엽수가 섞여 있어 여름철에는 시원한 숲을 제공해 줄 것 같았습니다.




경산 자인면 계정숲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68





계정숲 안에는 한 장군의 묘와 사당이 있습니다. 

한 장군이 어떤 분인가 싶어 자세히 보았습니다. 

십이지신상을 호석으로 두른 게 예사 분이 아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장군은 신라인지 고려인지 정확한 연대는 알수 없지만 도천산에 왜구가 출몰해서 주민을 괴롭히자 한 장군이 누이와 함께 화려한 꽃관을 쓰고 여원무를 추며 도천산의 버들못으로 왜구를 유인하여 칡으로 만든 그물에 가두어 검흔석에서 모두 참수했다는 분입니다.





1968년 8월 자인중·고등학교 신축을 하려고 땅을 파다가 석실묘를 발견하여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두개골과 은으로 만든 갑옷 투구와 무기류인 창 등 많은 토기류가 함께 나와 한 장군의 묘라 확정하였고 전설로만 내려오든 한 장군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1965년 5월에 계정숲에 한장군의 묘를 이장하여 매년 단오절에 한장군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당시 출토된 유물은 영남대학박물관에 있다가 2011년 12월에 대구 박물관으로 옮겨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 장군의 묘와 함께 한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진충묘(盡忠廟)도 있습니다.



 




한 장군은 누이와 함께 도천산 버들못에 은신해 있던 왜구를 ‘여원무’를 추어 유인해 섬멸했다고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화려한 화관을 쓰고 춘 춤이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에 지정되었으며 지역민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인 한장군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매년 경산자인단오제에서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진충묘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에 북사리의 ‘한당(韓堂)’을 계정숲으로 옮겨 세우면서 진충묘라 했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1칸의 맞배기와지붕입니다. 

진충묘옆에는 시중당의 현판을 단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1637년 (인조15년) 자인현감이던 임선백에 의해 신관동에 세워졌으며 자인현의 정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무금헌이라고 불렸으며 고을이 옮겨감에 따라 원당리와 북사리로 옮겨 지어졌습니다. 

시중당의 건물은 1870년(고종7년)에 세워졌으며 1910년에 행정구역 변경으로 하양과 자인, 경산이 통합되면서 자인중학교 교실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36년 서림 서편으로 옮겨 세웠다가 1980년 계정숲의 한 장군 사당 옆에 옮겨 건립했습니다.

 




요산정으로도 불렸다는 시중당의 나무 현판은 1763년(영조39년)에 자인현감이던 정충언이 쓴 글씨라 합니다. 

여행하면서 약간 시간을 내어 들렸던 계정숲은 한 바퀴 도는데 20분도 체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전설과 문화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 장군과 누이의 이야기는 구전으로만 전해왔던 것을 실체를 확인하고 계정숲에다 한장군묘와 사당이 세워지게 된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산 자인면 여행을 한다면 자투리 시간을 내어 제석사와 계정숲을 꼭 둘러볼 것을 권합니다. 

계정숲은 1997년 12월 기념물 제123호에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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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226-1 | 제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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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2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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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산여행)사진 찍기 좋은 곳 경산 반곡지 복사꽃. 경산 반곡지 여행 


영천 대창면 복사꽃 마을인 구지리를 떠나서 두 번째 복사꽃 마을인 경산 남산면 반곡리의 반곡지에 도착했습니다. 

반곡지가 있는 이곳은 삼성현의 고장입니다. 

바로 반곡지를 품은 산도 삼성산이라 하는데 이곳 경산에 세 성인이 나왔다 하여 그리 부르고 있습니다. 

한 분은 원효대사이고 또 한 분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설총, 나머지 한 분은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선사입니다.





경산 복사꽃 촬영지 반곡지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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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지 입구에 이 세 분을 모신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더욱 풍성한 반곡지 여행을 선사합니다.

이 세 성현의 출생지라 경산은 남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하겠습니다. 

그 1경이 반곡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반곡지의 명소는 익히 알려졌습니다. 

 


2011년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선정되어 많은 사진동호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봄이면 반곡지에 비치는 복사꽃이 반곡지의 1경이라면 여름에는 신록으로 물든 반곡지입니다. 

반곡지 제방에 늘어선 300년이 넘었다는 버드나무는 가지가 늘어져 잔잔한 수면에 모습을 비치면 그야말로 환상의 모습이 됩니다.





이 반곡지의 광경을 담으려고 전국의 사진 애호가가 몰려들고 있습니다. 

가을의 반곡지는 또 어떤가요? 

여름의 그 뜨거운 태양열을 받으며 보낸 세월을 보상이나 하려는 듯 가을의 반곡지는 붉게 물든 단풍에 만산홍엽의 반곡지를 연출합니다. 

한해의 마무리인 겨울 반곡지 또한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두텁게 몸을 둘렀던 이파리를 모두 털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차디찬 겨울을 온몸으로 맞는 반곡지, 그곳에 하얀 눈이라도 내리면 반곡지는 그야말로 영화의 한장면을 연출합니다. 

반곡지의 버드나무가 사시사철 변하는 모습을 담으려는 관광객으로 시즌이면 반곡지는 인산인해입니다.

 





부산에 사는 저도 항상 인터넷의 사진을 눈으로만 보다 봄과 여름의 반곡지가 생각나서 복사꽃이 있는 반곡지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청도 구지리의 복사꽃은 한창이었다면, 반곡지의 복사꽃은 가지에 꽃을 약간 남기고 모두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복사꽃은 서로의 자연환경에 적응한대서 정말 놀랐습니다.



 




반곡지에 복사꽃이 절정이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제방에 축 늘어선 연녹색 버드나무로 아쉽지만, 그 마음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반곡지 버드나무는 제방 쪽으로 쭉 늘어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쪽에는 덱이 놓였고 대부분 사진동호인은 이곳에서 물에 비친 버드나무 반영을 담습니다.

 




저도 이곳에 삼각대를 걸고 반곡지 반영을 담으려고 했으나 이날은 심하게 부는 바람으로 수면의 버드나무 반영이 잘 나타나지 않아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사람에게 많은 기회가 오듯이 저도 자주 반곡지를 찾아야겠습니다. 

그때는 바람한 점 없는 맑은 날씨의 반곡지 반영이 반길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반곡지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첫 반곡지여행이라 덱에서만 놀았는데 다음 여행에서는 반곡지 제방에도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일행이 있어 많은 시간을 반곡지에서 보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힐링을 받은 반곡지 여행이었습니다. 

경산 사진찍기 좋은 곳 반곡지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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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 | 반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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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복사꽃마을 여행. 영천에서 복사꽃길을 걸어보세요 


매화꽃과 산수유꽃이 봄꽃의 시작이라면 그 자리를 이어받은 벚꽃이 또다시 자리를 내어주면서 복사꽃이 이제 자리를 받았습니다.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복사꽃 마을·복숭아 마을로 불리는 구지리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부산에서 언양나들목을 나와 운문령을 넘고 운문호를 돌아 영천으로 향했습니다.




영천 복사꽃마을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561-5



2016/05/11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모고헌, 독특한 누각이 돋보였던 MBC드라마 화정 촬영지 영천 보현산 아래 옛 태고와 누각 모고헌 여행.

2016/05/18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보현산~보현산 시루봉 산행, 하늘바라기에 좋은 산행지 보현산 천문대가 있는 영천의 지붕 보현산 산행. 영천보현산

2016/06/24 - (영천여행/영천가볼만한곳)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균형미가 아주 빼어난 고려시대 철불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을 만나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2016/07/11 - (영천여행/영천 가볼만한 곳)영천 임고면 환구 세덕사. 임고서원과 함께 갈만한 여행지 환구 세덕사

2016/09/06 - (영천여행)임고서원. 절개와 의리의 상징인 고려말 충신 포은정몽주의 영천 임고서원, 포은 유물관 여행.




영천을 찾아가는 도중 농촌은 벌써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농부의 손에서 진짜 봄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천 땅에 들어서면서부터 선분홍색의 복사꽃에 하늘의 색감이 완전히 달라 보였습니다.





고개를 넘으면서 구릉지에 펼쳐진 복사꽃은 진짜 무릉도원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늘도 복사꽃의 아름다움을 더 예쁘게 하려는 듯 화창해서 여행을 떠나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습니다. 

역시 빠른 소식통은 진사님입니다.







벌써 복사꽃의 아름다움을 알고 여러 분이 찾아와서 열심히 사진을 담고 있었습니다. 

나도 사진을 찍기 위해 포인트를 찾았습니다. 

경부선 KTX 선로와 복사꽃이 잘 조화를 이루는 사진포인트가 보였습니다.





벌써 한 분의 진사님이 삼각대를 걸어놓고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디선가 웅~~~~하는 소리와 함께 KTX가 쌩하며 통과 했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계속 왔다갔다하면서 자주 다녔습니다. 

사진을 몇 장 담고 구지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바로 한 모퉁이만 도니까 복사꽃 마을이었습니다. 

땅도 선분홍, 하늘도 선분홍, 내 마음조차 선분홍색 되었으며 활짝 핀 복사꽃에 내 몸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아이고 언제 복숭아 맛을 볼까? 그러나 곧 이 복사꽃이 여름 과일인 복숭아로 바뀌어 주렁주렁 달리 걸 생각하니 입안에 군침이 베어 나왔습니다. 

ㅎㅎ 새콤달콤한 맛있는 복숭아를 생각하며 다음 여행지인 반곡지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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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561-5 | 구지리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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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리고분군. 비화가야의 순장한 소녀 유골이 나온 창녕 송현리고분군 여행 


창녕 송현리고분군은 1963년에 사적 81호에 지정되었으며 인근의 창녕교동고분군은 사적 80호 각각 지정했습니다. 

그후 창녕 송현리고분군과 교동고분군은 서로 연대가 비슷한 5~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고분으로 추정되어 2011년 7월 두 고분군을 통합해서 사적 514호에 새롭게 지정했습니다.




창녕 송현리고분군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2

창녕 송현리고분군 연락처:055-530-1473





2018/04/1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동고분군을 만나다.

2018/04/0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2018/04/03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석빙고. 조선시대 얼음 창고 창녕 석빙고 여행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2018/03/29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2018/03/2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창녕 송현리고분군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진한의 12개 국가에 속했던 불사국인 비화가야시대의 고분군입니다. 

불사국은 창원의 옛이름인 비사벌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으며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삼한소국으로 수록되었다합니다. 

창녕송현리고분군은 화왕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인 목마산 아래 구릉지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타타시가 고분군의 존재를 처음 알렸고 1917년 분포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1918년과 1919년에 11기의 고분이 발굴조사 되었지만 21호 31호 고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도 나오지 않는 등 허점투성이의 발굴이었습니다. 

당시 교리고분군과 함께 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양이 마차 20대 분량과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속공예품이었다 합니다.



그 당시 나왔던 그 많은 유물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일부만 소장해 있고 나머지 유물은 대부분이 행방이 묘연한 상태라 합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밀반출되어 팔려나간 거로 보입니다.



송현리고분군은 가야시기 창녕지역의 고분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 합니다. 

그리고 큰 고분은 지름이 20m가 넘고 중소형을 합해 모두 23기가 현재 있습니다.

 


2002년~2006년까지 4년 동안 경남문화재연구원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각각 2년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발굴 조사된 송현 6·7호 고분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배모양을 한 녹나무목관이 나왔습니다. 

그와 함께 토기 280여 점과 장신구·금동투조장식이 부착된 말안장 가리개와 말띠꾸미개 이외 마구류·무기류·농기구류 등 90여 점의 철기와 100여 점의 목기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이후인 2006년~2008년의 발굴조사에서는 15·16호 대형고분과 중형고분으로 보이는 17호 고분 그리고 작은 고분 7기에서 석곽 등의 유구를 조사했습니다. 

이들 고분을 조사하면서 이미 도굴된 상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봉토의 축조방법과 축조시기 등 다양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합니다.





또한, 2007년 12월 15호분에서는 4구의 순장 인골도 나왔습니다. 

남녀 두 쌍이 한 무덤 속에서 나왔으나 아쉽게도 도벌 꾼들로 인해 유골은 훼손되어 무덤의 신분조차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하는지, 그중에서 어린 여자로 추정되는 한 인골만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 소녀를 송현리고분군에서 발굴되어 ‘송현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이 유골을 수습하여 컴퓨터단층촬영과 3차원 정밀 스캔. DNA 확인 등 최첨단의 장비로 분석한 결과 1500년 전인 16세 어린 나이에 순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인은 중독 또는 질식사로 추정되었으며 키 152cm의 소녀가 죽은 주인과 함께 죽임을 당해 묻혔다니 요즘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502년 신라 지증왕이 순장을 법으로 금지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도 실제로 순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창녕군에서는 이 순장녀인 송현이의 넋을 위로하는 창녕 문화재 탐방로인 둘레길을 조성해 '송현이길'로 명명했습니다.





송현이가 묻혔던 고분은 횡구식석실묘(앞트기식돌방무덤)로 무덤 입구가 따로 있어 추가로 장례할 수 있 는가족 공동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토기와 각종 장신구와 금동관 일부도 나와 무덤의 주인은 상당한 위치에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토기류는 뚜껑 달린 굽다리접시와 작은 굽다 리 긴 목항아리는 관 주위에, 굽다리긴 목항아리는 무덤 입구에서 나왔으며 마치 제사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합니다. 

창녕군을 알고싶다면 가장 먼저 교리고분군과 송현리고분군을 찾고 그리고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중인 교리고분군에 있는 창녕박물관을 찾을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창녕박물관은 내부 리모델링 중이라 현재에는 관람할 수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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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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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남해여행)남해 임진성. 아난타남해 골프장 입구 임진왜란에 재축성 했다는 임진성 여행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해안가를 따라 많은 석성과 토성을 쌓았습니다. 

이는 바다 건너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번에 남해 여행을 하면서 남해군 남면 상가리의 임진성을 보고 왔습니다. 

임진성은 임진왜란 때에 쌓았던 산성이라 지금까지 알려졌었습니다.




남해 임진성 주소: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임가리 291

남해 임진성 연락처:055-860-8631

남해 임진성 경상남도 기념물 제20호


2013/05/19 - (경남여행/남해여행)가천암수바위. 남여의 모습이 너무 적날한 가천암수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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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새로운 발굴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쌍았던 산성임이 출토된 유물로 확인되었습니다. 

임진성의 규모는 높이가 1~6m이며 내성의 둘레는 약 246m이고 면적은 약 1만 6,000㎡입니다.


임진성 서문





2013년에 임진성 발굴조사에서 성 바깥벽의 최하단인 기초석에서 2m 높이까지는 통일신라 산성 축성법인 바른층쌓기법이 보였고 성 안에는 수혈건물지 터도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성벽의 방향과 평행하게 축조된 석축과 성 내부에서 어골문 기와 등이 출토되어 고려 시대에도 성벽을 고쳐 쌓았다고 보입니다.





특이 북쪽의 성벽에서 둥근 돌이 3000여 개나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이 둥근 돌은 투석전에 사용했던 돌로 보이며 거제도 둔기성과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에서 이런 종류의 투석환이 나왔는데 두 산성의 축성이 임진성과 같은 시기라 합니다.





저도 여러 여행지를 다녔고 많은 산성을 찾아다녔습니다. 

온달산성도 벌써 가보았으나 이번 남해 여행에서 온달산성에서 투석전에 사용된 둥근 돌이 나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런 유물을 보면서 우리 선조의 당시 처절했던 상황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임진성은 축성에 관한 구전이 내려옵니다. 

임진성이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임진왜란에 쌓았다는 산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임진성 앞 포구를 옥포라고 부릅니다.

이순신 장군이 1차 해전에서 옥포대첩을 승리하자 거제도의 옥포와 동명인 남해의 옥포에 왜적이 복수하려고 재침한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이소문을 듣고 민·관·군이 힘을 합해 단시일 내에 쌓았다 하여 임진산성을 민보성이라고도 부릅니다. 

임진성의 내부를 보면 축대를 쌓고 그 안쪽에다 흙으로 보루를 만들어 통로를 내었습니다. 

산성에 사용된 돌은 사람 머리만 한 크기의 편편한 돌로 쌓았으며 내성과 외성으로 나누어져 있고 내성은 돌로 쌓았다면 외성은 흙으로 쌓았습니다.





임진성 동문

현재 외성은 무너져 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축성 당시에는 성루와 망대, 서당(書堂) 등 건물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동문과 서문터 일부와 우물터만 남아 있습니다.

 








임진성 동문 앞에는 고려말 정지장군사적비가 있습니다. 

정지장군(1347~1391)은 최영, 이성계와 함께 고려말 3대 무신 중 한 분입니다. 

1380년(우왕6년) 진포해전 최무선의 화포를 처음 배에 장착하여 승리하였고 1383년(우왕9년) 남해 관음포 해전에서도 화포로 왜구를 대파하며 승리를 이끌었던 분입니다.

 





잔땡이고개 임진성 안내판, 이 길을 따라 오르면 임진성 동문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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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남면 상가리 291 | 임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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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리고분군을 만나다.


창녕군 창녕읍 내에서 만나는 고분군은 두 곳 있습니다. 

1963년 1월에 사적지로 지정했으며 사적 80호인 창녕 교리고분군과 사적 81호인 송현리고분군 입니다. 

2011년 7월 문화재청이 역사와 특성에서 두 고분군이 비슷하다고 인정되어 2011년 7월 통합해서 사적 제514호로 재지정했습니다.





 창녕교동고분군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124

창녕교동고분군 연락처:055-530-1473




2017/12/09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말이산고분군. 아라가야 지배지의 무덤 함안 말이산고분군 여행

2017/12/06 - (경남여행/함안여행)신라시대 석성 함안 성산산성에서 시간여행을 하다. 함안 성산산성·조남산성

2015/03/31 - (경남여행/김해여행)대성동고분박물관. 금관가야 발굴 유물 전시관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 여행.

2013/12/28 - (충남여행/공주여행)공주 석장리박물관, 우리나라 조상도 구석기시대 인물, 석장리 유적지에서 확인을 하다. 석장리고분군

2008/12/10 - (부산여행/동래여행)동래 복천동고분군. 도심한복판의 U.F.O가 가야시대 고분인 복천동고분군




문화재의 보고인 경주에 버금간다는 창녕에도 고대부터 내려온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경남의 경주라 일컫습니다. 

왜 창녕에 많은 고분과 문화재가 있는지를 보면 이곳 창녕은 오래전부터 소국가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진한의 12개 국가 중 하나였던 불사국으로 비화가야라고도 합니다.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수록된 삼한 소국의 이름이며 불사국은 경남 창녕의 옛 이름인 ‘비사벌(非斯伐)’에서 나왔을 것으로 유추하고 있습니다. 

창원교동고분군과 송현리고분군은 화왕산 서쪽 능선의 목마산성 아래인 구릉지에 널리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다시에 의해서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후에 1917년 분포조사를 시행하였고 1918년과 1919년에 11기의 고분 발굴이 이루어졌으나 제21호와 31호 고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도 나오지 않는 등 완전 날림씩 발굴조사에 유물 반출만 이루어졌던 모양입니다.



당시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의 규모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마차 20대 분량과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공예품이 박 쏟아져 나왔다 하니 말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일부 유물만 소장해 있으며 현재 유물 대부분은 소재 불명 상태라 합니다.



당시 자료에는 금동관, 금동관모, 금·은제수식 등 많은 금장신구와 각종 마구류, 비늘 갑옷, 철제 무기류, 철제농기구와 토기 등이 나왔으며, 이는 창녕교동고분군의 출토 유물의 성격이 신라 서라벌에서 출토된 유물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를 보고 교동고분군은 5~6세기 전반의 고분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다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창녕교동고분군의 고분은 현재 밝혀진 숫자만 103기나 됩니다.

제가 교동고분군을 답사하고는 먼저 큰 규모에 놀랐습니다. 

창녕박물관 왼쪽에도 여러 기의 큰 고분군이 있었으며 24번 국도 건너편에도 한 무더기의 고분이 구릉을 끼고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당집이 있는 고개 건너편에도 많은 고분군이 정비되어 관리하는 것을 보면서 김해, 고령, 대구와 경주 등 여러 고분군에 비해서 규모에서 창녕교동고분군도 전혀 빠지지 않을 듯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1992년 동아대학교 박물관과 2004년 경남문화재연구원, 2009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각각 창녕교동고분군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동아대박물관에서는 1~4호의 고분을 발굴하였습니다. 횡구식 석실 구조를 확인했으며 이 고분에서도 다양한 토기류와 각종 금속유물이 나왔고 고분의 구조와 나온 유물에서 5세기 중반 이후에 조성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2004년 창녕문화공원 조성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횡구식석실분 13기와 통일신라 폐와무지, 조선시대 배수로 삼가마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고분군의 축조구조와 출입구의 형태 변화와 출토유물에서 고분의 조성시기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중반이라 보고 있습니다.







2009년의 창녕교동고분군 주차장 부지 발굴조사와 2011년 2012년 일제 강점기 때 발굴되었던 7호분의 고분군 재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일제는 고분발굴조사를 하면서 고분은 뒷전이고 유물 수습과 반출을 하여 당시 남은 기록을 비교하며 우리 문화재 발굴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봉토와 축조과정, 매장 주체부의 내부구조를 파악할수 있었으며 이를 학술연구자료와 고분의 보존 정비에 기초자료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ㅎㅎ 발굴조사 과정에서 딱 철기 2점만 나왔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서 당시에 얼마나 유물을 쓸어 담아 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발굴조사를 기초하여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보는 고분으로 재정비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남 창녕 교동고분군을 보고 나서 이제 송현리고분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참고:2013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녕교동고분군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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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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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와 함께 창녕군에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그러니까 창녕군에서 두 점의 국보 중 하나가 이곳 술정리 동 삼층석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있는 것을 보니까 같이 술정리 서 삼층석탑이 어디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2-20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전화:055-530-1473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2018/03/29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2018/03/2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2015/12/18 - (경남여행/함안여행)용화산 능가사. 남지철교와 낙동강을 끼고 앉은 최고의 절집 용화산 능가사 여행하기.

2015/12/11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남지철교. 6.25 한국동란 최대 격전지 낙동강 전투의 상흔이 남아 있는 등록문화재 145호 남지수변공원의 창녕 남지철교를 여행하다.




맞습니다. 술정리 서 삼층석탑도 있으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 사찰로 보기에는 힘들어 보였고 술정리 동·서삼층석탑으로 명시된 것에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인근에 절의 표시나 절을 알리는 당(깃발)을 묶은 깃대를 고정한 당간지주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일단은 사찰 터가 있었다고 생각되었으며 품었던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입니다. 

당시 가람배치의 형태는 대웅전 앞쪽에 좌우로 각각의 탑을 세우는 2탑 1금당 형식이며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절터에서 동·서 어느 쪽인지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라 이름 한 것도 1km쯤 떨어진 서쪽의 삼층석탑(술정리 서 삼층석탑. 보물 제502호)과 알기 쉽게 구분하기 위해서 붙여진 명칭이라 합니다.







2004년 11월 (재)동아문화연구원에서 낸 보고서에서는 “2002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동삼층석탑에 대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규명하고 석탑을 둘러싼 주변 사지(寺址)의 규모와 성격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의 수집을 위해 이 일대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한 결과, 동삼층석탑 주변 일대의 민가와 담장 등에서 확인되는 석재와 각종 문헌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곳에 ‘인양사(仁陽寺)’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를 보면 술정리 동 삼층석탑 일대는 인양사지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번 창녕여행에서 창녕 군청 옆 비각 안에 인양사 조성비를 보고 왔던 터라 그 조성 비문에서 인양사조성비를 금당 뒤쪽에 세웠다고 추정했습니다. 

인양사 조성비 부근에 절의 중심건물인 금당이 있었고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인양사 삼층석탑이라 보면 인양사의 규모는 정말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이층기단 위에 삼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입니다. 

그리고 불국사의 석가탑과 비슷한 모습에 군더더기 없는 절제미에 위풍과 당당함을 갖춘 아름다운 탑이며 경상남도에 남아 있는 석탑 중에는 가장 오래된 탑입니다. 

일명 ‘사지탑(寺址塔)’이라고 불리는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1965년 해체복원을 했습니다.





당시 해체를 하는 과정에서 3층 몸돌의 사리공에서 청동잔형사리용기, 사리병과 사리7과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현재 상륜부는 모두 남아 있지 않으며 납의 높이는 5.75m에 이릅니다. 

또한, 탑은 크고 웅장하며 기품있는 모습입니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이층의 기단을 올렸습니다. 

아래 기단과 위층기단의 각 면 모서리 기둥인 우주와 가운데 기둥인 두 개의 탱주를 새겼으며 몸돌은 각 모서리에 우주만 새겼습니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며 끝 모서리님 귀가 약간 들렸습니다. 

그 아랫면에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습니다.

 








2008년 10월~2009년 7월까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에서 석탑의 서편지역에서 문지로 보이는 건물지 1동과 계단 유구, 일부만 남아 있는 3동의 건물지를 확인했습니다. 

고려 시대로 보이는 건물지 1동에서 ‘송림사’ 명문이 들어간 기와가 발견되어 한때 송림사로 불렸다는 사실도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술정리 동삼층석탑을 보고 난 뒤 그 너른 광장 끝에는 국가 민속문화재 제10호인 창녕 진양 하씨 고택이 있습니다. 

이집의 특징은 요즘 좀처럼 볼 수 없는 초가집이란 점입니다. 

대문채에도 초가지붕이라 처음에는 이게 문화재인 초가집이구나 하며 신기하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진양 하씨고택인 초가집은 이 대문채가 아니고 대문을 들어서면 그 안쪽에 자리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대문이 굳게 잠겨져 있습니다. 

대문에는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평일에만 개방하고 주말에는 폐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요일에 찾았던 터라 개인 살림집인 고택 주인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멀리서 찾아간 우리로서는 그냥 발걸음을 돌린다는 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대문채 앞으로 기와건물인 사랑채가 있고 그 뒤에 초가지붕인 안채가 있어 밖에서는 까치발을 들어도 보고 보일만 한곳이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아도 초가집이 워낙 낮아서 볼 수 없었습니다. 

많이 아쉬웠으며 다음번에 평일 날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구조는 4칸의 일자형 건물로 흔히 말하는 초가삼간입니다. 

맨 왼쪽 1칸은 부엌이며 그다음은 안방 1칸에 대청이 1칸, 대청과 연결된 건넛방이 1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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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2-20 | 창녕술정리동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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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4.06 10:43 신고

    아쉽네요..초가집
    평일에민 개방한다니..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석빙고. 조선시대 얼음 창고 창녕 석빙고 여행


창녕군 창녕읍 중심에 창녕을 대표하는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그중 한곳이 조선시대 얼음 창고였던 창녕석빙고입니다. 

석빙고는 얼음을 보관했던 곳을 말합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전기도 없는데 어떻게 녹지 않고 얼음을 보관했는지 과학의 시대에 사는 요즘 생각해도 신통방통합니다.





 창녕석빙고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288

창녕석빙고 전화:055-481-4650




2017/11/06 - (경남창녕여행)가을이 물든 창녕 우포늪에 흠뻑 빠지다. 창녕 우포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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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3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관룡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부도탑이 원구형의 탑신에 불안. 관룡사부도탑




특히 얼음의 용도는 추운 겨울철에 먹는 게 아니라 가마솥 같은 한여름 더위에 몸의 열을 식히려고 먹습니다. 

그 무더위에도 얼음을 녹지 않고 보관했다는데 그래서 우리나라 가전 회사가 냉장고를 세계 최고로 잘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는 “더위는 더위로써 다스린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을 마음에 새기며 더위를 이겨냈다고 합니다. 

그래도 특별한 날 왕이 얼음을 하사품으로 내렸을 때는 마음속으로 ‘우리 왕(王) 쨩’하며 쾌재를 부르며 머릿속에 이열치열이란 네 글자는 잊어버렸을 것 같습니다.

 


어찌하면 더위 가지고 더위를 다스릴 수 있는지 요즘도 이런 사람이 있다면 세상 물정 모르는 미련 곰탱이라 할 것입니다. 

얼음 맛을 보고는 조선시대 선비도 무더위에는 역시 시원한 얼음이 최고라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한여름에 그 귀했던 얼음을 보관했던 석빙고는 전국에 여러 곳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도 창녕석빙고는 가장 완벽한 석빙고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부로 들어갈 수 없게 문이 잠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의 석빙고는 모두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어 안내판을 보고는 대충 그 구조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얼음을 보관했던 창녕석빙고의 빙실은 네모나게 땅을 깊게 파낸 다음 바닥은 평평하게 납작한 돌을 깔아 한쪽을 약간 비스듬히 경사지게 하였습니다.

 



벽체도 바닥에서부터 돌을 다듬어 차곡차곡 쌓아 올렸으며 천장에서는 다듬은 돌을 서로 어긋나게 끼워 맞추어 무지개 모양의 골조가 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모양의 무지개다리는 총 4개였습니다. 

4개의 무지개식 돌다리 위에다 긴돌을 걸치고 그 위에다 보온하려고 흙으로 두텁게 덮었습니다.



바닥의 북쪽에는 녹은 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가 있으며 천장에는 바깥의 공기가 드나들도록 환기구멍인 굴뚝을 만들었습니다. 

이 환기구가 석빙고의 기능에서 얼음을 잘 녹지 않게 오랫동안 보관하는 중요한 센스역할을 합니다.



겨울철 계곡의 얼었던 얼음을 쪼개어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화왕산에서 내려오는 자하골을 보고 직각에 남북으로 길게 설치했습니다. 

출입구는 자하골 반대편인 남쪽에다 두었습니다. 

창녕석빙고의 설치는 1742년 조선 영조 때 창녕 현감 신서에 의해서입니다. 

보물 제310호이며 창녕석빙고 주차장 및 부대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관람료는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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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288 | 창녕석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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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4.03 09:58 신고

    창녕 석빙고가 2군데 있는걸로 압니다만
    가 볼곳입니다 ㅎ




(경남여행/산청여행)단속사지 삼층석탑과 정당매. 산청 3매 단속사지 삼층석탑의 정당매를 찾아서,


지리산 산청의 3매(梅)에서 이번에는 두 번째 여행지인 정당매의 단속사지입니다. 

산청 3매는 정당매, 남사예담촌의 원정매와 산천재의 남명매를 말합니다. 

남사리 하씨 고가에서는 원정매가 날씨 탓에 피지 않아서 허탕을 쳤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운리의 단속사로 향했습니다.





산청군 정당매,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운리 302

산청군 정당매,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 연락처:055-970-6441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보물 제72·73호


2018/03/21 - (경남여행/산청여행)남사예담촌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 가장 아름다운 마을 남사예담촌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

2013/06/13 - (경남여행/산청여행)남명선생 사적지 남명기념관. 시천면 덕산에서 그의 선비정신을 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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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지 또한, 1,000m가 넘는 웅석봉의 남쪽 청계 계곡을 끼고 자리한 곳인 만큼 아무리 남쪽을 향해 있다지만 매화가 과연 폈을까 반신반의하며 찾았습니다.

그냥 단속사지 삼층석탑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며 포기하고 삼층석탑 구경만 했습니다.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은 웅석봉 달뜨기 능선과 석대산의 두 능선이 내려오는 골짜기 안에 단속사지가 있습니다.

 


단속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을 보면 천년을 훨씬 넘긴 고찰 터입니다. 

단속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단속사 창건은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모두 신라 경덕왕 때입니다. 

748년(경덕왕 7년) 직장 이준은 평소에 출가해 절을 짓겠다는 뜻을 펼쳤는데 그걸 실현에 옮기며 조연에 있던 암자를 크게 중창 한 게 단속사라 합니다. 



또 다른 설은 763년(경덕왕 22년) 신충이 지리산을 찾아 ‘세속의 모든 인연과 절연하다’라는 뜻의 단속사를 창건했다는 설입니다. 

단속사는 신라의 신행, 고려의 탄연선사 등이 입적했던 곳으로 조선조까지 고승 대덕과 운수납자의 수행처였습니다.



단속사의 폐사는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으로 1568년(선조 1년) 유생에 의해 불상과 경판이 불살라졌고 정유재란에 방화로 소실되었다가 중수했으나 폐사되었다 합니다. 

현재 단속사지에 당간지주와 삼층석탑만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금당터와 강당터 등 당시 초석이 남아 있어 옛 단속사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금당터 앞에 이중기단으로 조성했습니다. 

그중에 아래 기단은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지붕돌의 아랫면에는 5단 층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두 탑 중에서 동탑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서탑은 상대적으로 파손이 심한 모습입니다. 

1967년 해체과정에서 서탑 몸돌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한 것으로 보이는 둥근 모양의 사리공이 나왔습니다.

 




단속사지에서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과 함께 유명한 게 매화입니다. 

단속사지의 매화는 정당매라고 따로 이름하여 부릅니다. 

단속사지 정당매는 고려말과 조선초의 문신이던 강희백(1357~1402)이 과거 준비를 하면서 단속사 경내에 심었던 매화나무입니다. 

그 매화를 강희백이 지낸 벼슬인 정당문학에서 따와 정당매라 부릅니다.





정당매가 늙어죽자 후손이 그 자리에다 새로운 매화나무를 갖다 심었습니다. 

그 세월이 600여년이 넘다보니 매화나무는 수도 없이 교체되어 오늘날까지 정당매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단속사의 정당매를 보고 많은 문인이 한시를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생육신의 한사람인 추강 남효은과 김종직의 제자였던 탁영 김일손, 지리산 천왕봉을 노래한 조선 중기의 남명 조식 선생도 단속사의 정당매를 찾아 시를 남겼습니다.







단속사지 앞에는 까만 빗돌에 남명선생이 마침 단속사를 찾은 사명당에게 준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옮겨 보면 

“꽃은 조연(槽淵)의 돌에 떨어지고/ 옛 단속사 축대엔 봄이 깊었구나/ 이별하던 때 잘 기억해 두게나/ 정당매(政堂梅) 푸른 열매 맺었을 때”

 








정당매가 과연 피었을 까하며 설레게 했던 단속사지. 

일행 중 단속사지 삼층석탑 주위의 매화나무를 유심히 보다가 “매화다”하는 소리에 흥분되어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모든 매화는 피었다가 또다시 꽃잎을 떨구며 자연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매화를 찍는다고 난리를 치니까 할머니께서 앉으시면서 요즘 매화를 찾으러 많은 사람이 온다고 했습니다. 

"여짝도 있고 저짝도 있다"하시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전각 옆의 진짜 정당매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단속사지 옆에 핀 매화를 몇 장 찍고는 빨리 이동하자며 마지막 남은 매화 여행지 산천재로 향했습니다.



산천재에 다 왔을 때 쯤 정당매에 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차를 되돌려 갈 수도 없고 다음 일정도 있어 단속사지 정당매는 미완의 숙제로 남겨두었습니다. 

과연 폈을까 아니면 안 폈을까를 노닥거리며 아마 진짜 정당매는 안폈을 것이라면서 위안 아닌 위안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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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302 |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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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창녕 군청을 지나 왼쪽 아담한 산봉우리에 팔각정이 보였습니다. 

이곳이 창녕읍내를 내려다보는 전망대로 손색없는 창녕문화공원입니다. 창녕문화공원을 찾다가 그 전에 왼쪽 아파트와 개인 주택 사이에 둘러싸인 밭 가운데 비각이 보였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았던 창녕 인양사 조성비였습니다.





창녕 인양사 조성비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294번지

창녕 인양사 조성비 전화:055-530-1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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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생각해도 옛날에 인양사를 창건하면서 그에 관한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문화재를 찾아다녔고 폐사지 여행을 다녔지만, 불상의 복장유물에 종이로 기록한 것은 여럿 보았지만 이리 비석에 사찰의 조성 기록을 남긴 것을 보는게 창녕 인양사 조성비가 처음 입니다.

 


일단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미라 창녕문화공원을 잠시 미루고 인양사조성비를 보기로 했습니다. 

창녕인양사 조성비는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좁은 폭에 양면에다 남쪽은 인양사 조성기록을 새겼으며 북쪽인 뒷면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인양사 조성비는 통일신라시대인 771년(혜공왕 7년) 인양사 종을 만들면서부터 조성비를 세운 810년(헌덕왕 2년)까지 40년간의 행적을 기록해서 세운 비로 인양사(仁陽寺) 비상(碑像) 이라고도 합니다. 

인양사 금당 뒤쪽에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일대에서 신라와 고려 시대 때 만들어진 기왓조각 등이 여러 발견된다고 하며 규모로 봐서는 큰 규모의 사찰로 여겨집니다. 

이런 조성비까지 세워진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인양사 조성비는 직사각형의 바닥돌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올렸습니다.





인양사 조성비의 비문을 보면 10행에 각 행은 28자로 해서체에서 변형된 육조체라 합니다. 

비문은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 실려 있으며 비문의 내용은 인양사와 인양사와 관련 있는 여러 사찰의 범종, 석탑, 불상과 금당, 요사 등의 조성연대와 제반 사항을 빠짐없이 기재해 놓았습니다.



뒷면에 조각한 스님의 형상은 지장보살이라는 설도 있으며 인양사를 조성하면서 관련된 고승을 비석에 새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창녕 인양사 조성비는 금석문과 연대가 확실한 불상 조각으로 귀중한 문화재라 합니다.

 


현재 인양사지에 지키고 있는 유일한 유물이지만 머리가 유실된 석불좌상 1구도 함께 있었다 하나 현재 석불좌상은 창녕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이 인양사조성비에는 6.25 한국동란에 비석의 서쪽과 북쪽에 총탄흔적이 있다 하며 이번 여행에 확인을 못 했습니다.

 


비석의 높이는 1.58m이며 폭은 48cm, 두께는 18cm이며 1963년 1월에 보물 제227호에 지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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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294 | 창녕인양사조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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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3.30 10:47 신고

    우포늪 갈때 한번 들러야겠습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창녕 화왕산인 자하골 입구에 송현동 고분군이 있습니다. 

송현동 고분군을 끼고 미륵사란 작은 암자에 단청을 입힌 전각이 있으며 그 안에 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을 모셨습니다. 

미륵사란 명칭도 송현동마애여래좌상으로 인해 생긴 것 같습니다.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5-4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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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문을 살짝 열어보았습니다. 

정면에 꼭 반달을 닮은 둥근 바위에 단아한 모습의 마애불이 앉아 계셨습니다. 

이 마애불은 바위 면에다 바로 불상을 돋을새김 했으며 광배와 불상을 바치는 대좌는 따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로 추정되며 마애불의 높이는 1.37m입니다.

 


머리 정수리에 두툼하게 솟은 육계는 지혜를 상징하고 아주 드물게 2단이며 소발은 둥글고 아담하게 표현했습니다. 

손동작인 수인은 악마을 항복시키는 항마촉지인이며 볼록한 뺨과 크지 않은 코, 작은 입, 어깨까지 내려온 귀는 부드럽고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 줍니다.




어깨는 넓으나 가슴은 두텁지 않으며 가부좌하여 앉은 하체는 안정감이 돋보이며 조금 크게 표현했습니다. 

창녕송현동마애여래좌상은 자세와 얼굴의 표현, 한쪽 어깨에 걸친 법의 모양을 보면 석굴암의 본존불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법의의 주름은 사실성이 떨어지고 가슴이 평평하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함이 빠진다는 느낌이며 석굴암 본존불과 같이 강력한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신라말에 제작된 불상양식입니다.(참고:문화재 안내판)

 

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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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5-4 | 창녕송현동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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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nnpenn 2018.03.30 07:13 신고

    편안하고 인자한 모습의 석불이네요.
    보물이라니 더욱 멋져 보입니다.

    오늘은 즐거운 금요일입니다.
    3월 마지막 주말을 잘 보내세요.




(경북여행/구미선산여행)선산 금오서원.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를 배양한 선산 금오서원


구미 선산읍의 금오서원을 찾았습니다. 

선산 비봉산과 형제봉 산행을 하고 나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47개의 서원은 제외되었는데 금오서원은 그중 한곳이라 해서 일부로 늦은 시간이지만 찾았습니다. 

아마 꼭 보아야겠다는 열망이 더 컸다 하겠습니다.

 금오서원을 보면서 왜!!!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야은 길재 선생을 배향한 선산 금오서원 주소: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

야은 길재 선생을 배양한 선산 금오서원 전화:054-482-1435

선산 금오서원 경상북도 기념물 제60호




2014/11/14 - (경북여행/구미여행)채미정. 구미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야은 길재를 추모 하는 정자.

2014/11/09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90도 각진 모서리를 깎아 섬세함이 돋보이는 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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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5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약사암.초생달이 걸여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금오산 약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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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야은 길재 선생 때문이 아니었는지 싶습니다. 

고려 말에 고려의 충절을 상징하는 ‘삼은’이 있습니다. 

포은 정몽주와 목은 이색 그리고 야은 길재입니다. 

그중에서 금오서원은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서원입니다. 야은 길재(1353년~1419년)는 고려말과 조선 초의 성리학자로 호는‘야은’ 또는‘금오산인’이며 시호는 ‘충절’입니다.

 

선산 금오서원의 2층 누각 출입문 읍청루







그는 고려가 망하자 모든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되어 세자 이방원이 태상박사의 벼슬을 내렸지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의를 굽히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길재는 낙향하여 선산의 금오산 아래에서 학문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던 분입니다. 

김숙자 등 많은 문하가 그를 따랐으며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로 그의 학통은 이어졌습니다.





선산 금오서원 동·서재







야은은 고려가 망한 후에 옛 도읍지였던 개성(송도)을 찾아 읊은 ‘고려 유신 회고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 시조로 길재선생의 고려에 대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금오서원은 1567년(명종 22년)에 선산의 유학자가 중심이 되어 선산부사 송기충에게 서원 건립을 건의하였습니다. 

이에 경상감사를 거쳐 조정에까지 알려져 재가를 얻어 1570년(선조3년)에 금오산 아래에 건립하였고 1575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에 모두 불탔습니다.



1602년에 금오서원은 현재의 장소인 선산읍 원리의 남산 아래에 옮겨 복원하였고 1609년 광해군 원년에 다시 중건했습니다. 

금오서원은 김종직과 정붕, 박영, 장현광을 추가하여 5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금오서원은 2층 누각인 읍청루, 강당인 정학당, 동·서재, 내삼문, 사당인 상현묘로 구성하여 전묘후학 양식을 따랐습니다.













선산 금오서원의 오현을 모신 사당인 상현묘









정학당은 강당으로 앞면 5칸에 옆면은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입니다. 

가운데 3칸 마루를 넣고 양쪽에 1칸의 온돌방을 앞쪽에는 툇마루를 달았습니다. 

5량 형식의 가구구조입니다. 읍청루는 2층 누각에 누하에 서원의 출입문인 문루를 두었습니다. 앞면 3칸, 옆면 2칸 팔작기와지붕 건물로 겹처마입니다. 

사당인 상현묘는 앞면 3칸에 옆면 3칸이며 맞배지붕 건물로 겹처마이고 5량가형식입니다. 

현재 선산 금오서원은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새롭게 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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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 | 금오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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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3.28 09:52 신고

    여기도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경북여행/칠곡여행)신유장군 유적지, 나선정벌을 승리로 이끈 신유장군 유적지.


경상북도 칠곡군 신유장군 유적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신유(1619~1680)장군 유적지를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그런지 사당을 들어서는 외삼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밖에서 얼쩡거리며 구경을 했습니다. 

그러다 늦게 도착한 내가 원죄지만 조금 억울한 생각도 들어 출입문의 자물통을 자세히 보니 자물통으로 채워 놓은 게 아니라 문이 저절로 열리지 않게 걸어놓은 것을 알았습니다.



칠곡 신유장군 유적지 주소: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산 21-5




2008/07/10 - 경북여행/칠곡여행/구미여행)칠곡 금오동천~구미 금오산 산행.사람의 얼굴일까?.부처의 얼굴일까?-칠곡 금오산

2015/09/17 - (경북여행/칠곡여행)가산 가산산성 진남문. 가을에 잘 어울리는 산성 걷기, 포곡식 산성인 칠곡 가산산성 진남문을 여행하다.

2015/09/24 - (경북여행/칠곡여행)칠곡 가산 가산산성, 가을 산행 최적의 코스, 가산산성 성곽 길을 걸어보세요.

2015/10/21 - (대구여행/달성군여행)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 일본인으로 귀화한 사야가 김충선장군을 모신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을 여행하다.

2015/10/31 - (대구여행/달성여행)가창면 우록리 청산~우미산 산행.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 장군의 흔적을 찾아나선 우록리 청산~우미산 가을 산행.





아마 늦게 도착한 사람은 열고 보고 가라고 자물쇠로 채우지는 않았던 거 같습니다. 

신유장군 유적지를 참배하고 나오면서 출입문은 원래대로 걸어놓았습니다. 

신유장군은 이순신 장군에 비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학교 수업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신유장군의 약력을 간략하게 보겠습니다. 

조선 효종 때 무신으로 1619년(광해군11)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에서 출생하셨습니다. 

27세에 무과에 급제했으며 선전관 등을 거쳐 효종 9년인 1658년에 청나라는 조선에 조총군의 파병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에 함경북도 병마우후였던 신유장군이 제 2차 나선정벌에 나섰습니다. 

조총군 200명과 모두 260여 명을 병력을 거느리고 출병하여 영고탑에서 청나라군사와 합류해 흑룡강으로 나아갔습니다. 

흑룡강에서 남하하던 스테파노프가 이끌던 러시아군을 맞아 거의 전멸시키는 승전을 올렸습니다.


 




이를 나선 정벌이라 합니다. 

이 원정을 북정일기에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신유장군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로로 가선대부에 올랐으며 경상좌도병마절도사와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 포도대장을 지내셨습니다.





신유장군은 1680년 62세로 숨지자 숙종이 제문과 예관을 보내어 제사지내게 했습니다. 

그 후 숭무사에 제향했으며 신유장군유적지내에 신도비를 세웠는데 판서 이현일이 비문을 지었으나 6.25 전쟁 때 포격으로 파괴되어 새로 세운 비석과 함께 비각에 나란히 전시 중입니다.

 




신유장군 유적지는 사당인 숭무사. 존성재, 북정문, 선위문, 비각으로 5동의 건물로 구성되었습니다. 

장군의 묘소는 숭무사 뒤쪽 에 부인 묘와 함께 있습니다. 1982년 8월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에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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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산 21-5 | 신유장군유적지앞공영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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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선산여행)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여행. 오누이탑이라 불리는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이번에도 국보급 문화재를 보고 왔습니다.

국보급이 아닌 국보입니다. 

역시 국보는 나라의 보물이라서 그런지 달라도 무엇이 다른가 봅니다. 

이번에 소개할 국보는 구미에 있는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입니다. 

오층석탑에서는 가장 높고 웅장하며 크다고 합니다. 

처음 제가 탑 앞에 섰을 때도 탑의 웅장함에 움직일 수 없었으며 와!!!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구미 선산 죽장사오층석탑 죽장사 주소: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479-2

구미 선산 죽장사오층석탑 죽장사 전화:054-481-2736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국보 해평면낙산리삼층석탑제 130호



2008/07/10 - 경북여행/칠곡여행/구미여행)칠곡 금오동천~구미 금오산 산행.사람의 얼굴일까?.부처의 얼굴일까?-칠곡 금오산

2011/05/25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약사암.초생달이 걸여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금오산 약사암

2012/12/24 - (경북여행/구미여행)흰 연꽃이 아름답게 핀 백련봉의 백길바위가 장관. 연악산(기양산)~수선산 원점산행

2013/01/02 -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시 선산읍 수다사. 겨울 눈이 내려 흰 연꽂으로 피어난 연악산 수다사가 장관

2013/03/07 - (경북여행/구미여행)하늘이 내려준 산성은 이런 것. 천생산성이 있는 구미 천생산 산행.

2014/02/10 - (경북여행/구미시여행)냉산(태조산)도리사. 신라 최초 사찰 도리사의 석탑이 처음보는 특이한 석탑 형태. 도리사



그러나 삼층석탑은 이정도 높이와 크기를 여러 개 봤습니다. 

경주의 고선사지삼층석탑,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등인데 죽장사 오층석탑도 수려함과 아름다움에서 이들 탑에 비해서 조금도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 국보 중 하나였습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은 일명 오누이탑 또는 남매탑이라 부릅니다. 

웬 오누이 탑 하며 주위에 아무리 둘러봐도 석탑은 하나뿐이라 남매가 힘을 합쳐서 부처님의 탑을 만들었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은 누이가 만들었다면 오빠는 낙동강 건너 해평면의 낙산리 삼층석탑을 세웠다 합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두 개 내려옵니다. 

이야기의 출발은 같지만, 중반에서 전형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꼭 설화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착한 엄마와 심청이에 나오는 뺑덕어미나 콩쥐·팥쥐에 나오는 계모와 같은 급의 나쁜 엄마가 등장합니다.





계모라고 다 나쁜 분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엄마 상은 제가 보기에는 착한 엄마와 오누이의 친모로서 남매의 죽음을 거는 내기를 말리지는 않고 다부 부추기는 엄마입니다. 

각설하고 죽장사 오층석탑이 세워지게 된 유래를 보겠습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에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남매의 힘겨루기로 세워졌다 합니다.

 








때는 아마 죽장사 오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을 보면 그 당시로 추정됩니다. 

오누이는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며 살았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이들 남매는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괴력인 힘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놀기 삼아 오누이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여기서 죽장사오층석탑의 이야기가 갈라집니다.





먼저 우리 정서상 착한 엄마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남매를 앉혀놓고 지난번 스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스님이 이곳이 절터라고 했다며 어머니는 이곳에다 탑을 세우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남매는 서로 탑을 내가 세우겠다 하였고 어머니는 둘이 힘을 합해서 탑을 완성하면 어떠냐고 했습니다. 

남매는 서로 탑을 세우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어쩔 수 없이 딸에게는 여기서 탑을 쌓고 아들은 낙동강 건너에 탑을 쌓는 것이 어떠냐 하며 제안하면서 먼저 쌓는 쪽이 이긴다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먼저 쌓기를 원했지만, 딸의 탑 쌓기가 훨씬 빨랐습니다. 

그래서 딸의 탑 쌓기를 늦추기 위해서 궁리 끝에 딸에게 심부름도 시켰지만, 아들은 누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자꾸만 간격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비장의 카드로 펄펄 끓는 팥죽을 끓여 딸에게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으면 아들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딸이 먼저 오층석탑을 완성했습니다.

아들도 누이가 이기자 탑 쌓기를 그만두었고 그게 오늘날 낙산리 삼층석탑이 되었다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나이가 스무 살 즘 되었을 때 심한 충돌로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의 목숨을 빼앗는 내기를 걸었습니다. 

그 내기가 바로 아들은 50리 떨어진 금오산의 큰 돌을 가져오는 것이고 딸은 돌을 열 두자 높이로 탑을 쌓아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먼저 끝내는 쪽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내기는 시작되었지만, 남매의 어머니는 딸이 이기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아들에게는 멀리 심부름을 보내는 등 방해 공작을 벌였습니다. 

다음날 해는 떠올랐고 딸은 마지막 돌을 탑의 꼭대기에 올리면서 탑을 완성했으나 아들은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낑낑대며 바위를 지고 오던 아들은 동네 어귀에서 누이가 완성한 탑을 보고는 깜짝 놀라 뒤로 나 자빠졌습니다.

 


아들은 죽는 것이 두려워 그 길로 바위를 버리고 냅다 도망쳤으며 그때 버린 바위가 아직도 동네 어귀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후자에 등장하는 남매의 어머니란 분도 참 대단합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뜯어말리지는 못할망정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정서상 맞지 않는 설화로 보이며 구미 설화집에 있는 내용입니다.





하여튼 국보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석탑 이야기이며 그때 딸이 쌓은 석탑이 오늘날 죽장사 오층석탑이 되었다 합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은 현재 상륜부의 노반을 뺀 나머지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전체 높이는 약 10m에 오층석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규모입니다.



지대석은 18개의 장대석으로 탑을 지탱하게 했습니다. 

그 위에다 2단의 기단을 만들었습니다. 

아래층 기단은 14개의 넓은 돌로 구성했으며 그 위에 18개의 갑석을 올렸습니다. 

운주나 탱주는 보이지 않으며 그 대신 위층 기단은 각모서리 기둥인 운주가 2개이고 가운데 버팀 기둥인 탱주를 각각 3개씩 새겼습니다.

 






1층 몸돌 남쪽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감실이 있으며 문을 달았던 흔적인 작은 구멍이 남아있습니다. 

감실의 크기는 가로 66cm, 세로 107cm 크기로 최근 안치한 불상이 있습니다. 

각층의 몸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작아지고 낮아지며 각모서리의 기둥도 없습니다. 

죽장사오층석탑은 전탑(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으로 추정하는데 옥개석(지붕돌)의 경사면이 전탑에서 볼 수 있는 층단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죽장사에서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은 국보인 오층석탑과 당간석 1개와 종형인 부도, 이곳이 옛 절터였음을 알리는 부재가 한쪽에 있습니다. 

죽장사는 최근에 불사를 일으켜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지만 제 눈에는 오직 죽장사 오층석탑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죽장사를 둘러보던 중 한쪽에 선산갑오동학농민군의 총지휘를 했던 한문출장군과 항일독립투사 한중석선생이 피신하고 은거했던 곳이라며 작은 기념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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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479-2 | 죽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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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3.27 09:23 신고

    국보를 보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여기를 한번 다녀 와야겠습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진흥왕척경비는 통칭하여 진흥왕순수비라고도합니다. 

신라 24대 진흥왕이 창녕지역의 비화가야인 비사벌을 6세기에 멸망시켜 영토를 확장하고 나서 여러 신료와 순행을 단행했는데 창녕에서 국가적 중대사를 논의하고 그 사실을 기념하는 비를 세웠습니다. 

이 비가 561년인 진흥왕 22년에 세운 창녕진흥왕척경비입니다.





창녕 만옥정공원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

창녕 만옥정공원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 전화:055-530-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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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만호정공원내 언덕에 있으며 국보 제33호입니다. 

원래 창녕진흥왕척경비는 지금의 위치에서 동쪽인 창녕읍 말흘리 85-4번지인 창녕여중고 병설 유치원 담장 아래쪽에 있었습니다. 

1914년 일본인 토리이 류조가 창녕의 고적을 조사하던 중 그때 보통학교장이던 하시모토 료조가 신라비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렸습니다.



이를 조선총독부에 조사 보고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17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고적조사사업의 하나로 비에 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대정육년도고적조사보고’에다 조사결과를 수록했습니다. 

그 후 1924년 진흥왕척경비는 지금의 위치인 만옥정공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창녕 진흥왕척경비 앞 안내판을 참고하면 비문 첫머리에 ‘신사년(辛巳年) 2월 1일 입(立)’이라 판독되는데 이는 561년 진흥왕 22년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진흥왕이 세운 4개의 순수비에서 창녕 진흥왕척경비 가 가장 앞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녕진흥왕척경비 비문 판독문과 해석





창녕진흥왕적경비는 편편하고 면이 매끄러운 화강암을 약간 다듬은 상태에서 비문을 새겼으며 개석이 없고 인명과 관등 표기방식이 독특하며 조각된 글씨는 해서체와 비슷하다 합니다. 

총 글자 수는 642자에서 400자 정도가 판독되었으며 앞부분은 마멸이 심하지만, 뒷부분은 관련 인물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모두 27행이며 한 줄에 보통 26자씩이며 마지막 줄은 3자를 새겼습니다. 

돌의 크기는 178cm, 폭은 175cm, 두께는 약 30cm입니다.


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원위치






1922년 진흥왕척경비의 모습                                           1914년 발굴 조사 모습                                       1914년 발굴 조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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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 | 만옥정공원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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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3.26 06:49 신고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8.03.26 09:08 신고

    이제 저도 창녕으로 여행 다닐때가 되어 가는것 같습니다 ㅎ




 (경북여행/경주여행)신라 제49대 전헌강왕릉과 신라 제50대 전정강왕릉 여행.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경주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나는 문화재 중 하나가 신라 왕릉입니다. 

신라는 935년에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 의해 망할 때까지 긴 역사를 가진 왕조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왕릉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아마 경주 왕릉을 다 둘러보려면 몇 날 며칠을 잡아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신라 제49대 헌강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5




2017/12/14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월정교

2017/04/11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향교 대성전. 조선시대 교육기관 경주향교 여행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2016/11/05 - (경주여행)경주 신문왕릉.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라 31대 신문왕릉을 여행하다. 경주 신문왕릉

2016/10/31 - (경주여행)신라 27대 선덕여왕릉.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낭산 도리천의 선덕여왕릉 여행과 세가지 예지력.



 


그리고 경주의 많은 왕릉은 29대 태종무열왕을 제외하고는 정확하게 무덤 주인을 밝히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와 유사한 기록을 보고 후대에서 모두 비정한 상태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도 삼국사기의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을 근거로 1730년경에 경주김씨 문중에 의해서 비정된 상태라 합니다.



하도 왕릉이 많아서 훌륭한 업적이나 치적이 많지 않아 생소한 왕도 있습니다. 

이번 경주 여행에서 찾았던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은 약 400m 거리를 두고 다정하게 있습니다. 

이 두 분의 능은 경주 통일전 옆 남산자락에 있습니다. 

여느 왕릉과 마찬가지로 소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예스러움이 가득 묻어나 경건하게 옷매무시를 고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며 신라건국을 한 6촌장중 한 분의 후손으로서 예를 갖추었습니다.



먼저 헌강왕릉을 보고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 정강왕릉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헌강왕은 그래도 많이 알려진 왕입니다. 

신라 49대 왕이며 성은 김씨 이름은 정(晸)이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알려진 경문왕의 아들입니다. 

875년에 즉위해서 12년간 통치했고 886년에 승하했습니다.

 


헌강왕 재위 시절의 통일신라는 태평성세를 누려 서라벌 민가의 지붕은 모두 기와를 올렸으며 밥은 나무 대신 숯으로 짓고 온 장안에 노랫소리와 피리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고 합니다. 

일왕이 사신을 보내어 황금을 바쳤을 정도였다 하니 말입니다. 

또한. 헌강왕 시절에 ‘처용무’도 만들어졌습니다. 

하루는 헌강왕이 울산지방의 세죽에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물가에서 여유롭게 앉아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구름과 안개가 껴 천지를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헌강왕은 신하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게 하였고 동해의 용왕이 한 짓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헌강왕은 신하에게 명령을 내려 이곳에다 동해 용왕을 위한 절을 짓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사라졌습니다. 

이러하여 개운포라는 지명이 현재에도 남아 있습니다.

 


동해 용왕은 헌강왕이 자신을 위해 절을 짓고 망해사라 한다는 이야기에 크게 감복했습니다. 

그러면서 일곱 왕자와 함께 헌강왕 앞에 나타나 왕의 성덕을 찬양하였습니다. 

용왕의 왕자 중에서 한 명을 궁궐에 남게 하여 헌강왕을 도와 정사를 돌보게 했는데 그 왕자가 처용이었습니다. 

처용이 하루는 궁궐에서 늦게 귀가하자 아내를 범하려는 천연두를 옮기는 귀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용이 자신이 지은 노래와 춤을 추어 역신을 물리쳤다는 설화인데 그때 춘 춤과 노래가 오늘날의 처용무입니다. 

처용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2009년 지정되었습니다. 

헌강왕릉의 높이는 약 4m이며 능의 지름은 약 15m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입니다. 

현재 헌강왕릉의 하단부에 4단의 호석을 두른 상태입니다.


신라 제49대 전헌강왕릉



1993년 왕릉 내부 조사과정에서 벌써 도굴된 상태였으며 길이 142cm, 너비 128~96cm 크기의 연도가 석실의 동쪽 벽에 치우쳐 있는 구조입니다. 

석실의 크기는 남북 2.9m 동서 2.7m에다 벽면은 큰 돌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았는데 천장으로 올라갈수록 원형으로 모이는 형식입니다.











정강왕릉은 신라 제50대 왕을 지냈습니다.

 경문왕의 아들로 헌강왕의 아우였습니다. 

이름은 ‘황(晃),’ 헌강왕이 승하하자 태자 요(嶢)가 돌이 안 된 어린 나이였기에 김황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886년에 왕위를 이어받아 1년간 재위하다 887년 승하했습니다.



신라 제50대 정강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3




워낙 재위기간이 짧아 뚜렷한 업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황룡사에서 열린 백고좌에 참석하였고 이찬 김요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했을 정도입니다. 

봉분의 높이는 약 4m이며 지름은 약 15.5m로 헌강왕과 마찬가지인 원형 봉토분입니다.

 봉분 아래쪽에 2단의 호석을 돌렸는데 맨 아래쪽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다 자연석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았습니다.

능 앞에 1장의 넓은 돌인 상석이 있고 그 앞에 장방형의 돌을 다듬어 석단을 만들었습니다. 

 






헌강왕름과 정강왕릉의 호석에 관한 새로운 재기를 발표한 논문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의 호석구조에 관한 위덕대학교 이진락교수님의 연구 논문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의 호석구조는 민애왕릉과 비숫하며 두 왕릉의 요석 층수는 4단과 2단이 아니라 모두 3단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나오는 1910년대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기록사진과 1995년 경주 문화재 연구소에서 간행한 ‘헌강왕릉보수수습조사보고서(憲康王陵補修收拾調査報告書)’에 나오는 헌강왕릉 토층단면도 등 자료를 비교 분석하였다"는 이진락교수님의 ‘전헌강왕릉과 전정강왕릉의 호석 원형에 대한 일고찰’의 논문에서 입니다. 


신라 제50대 전정강왕릉



그러니까 논문은 두 왕릉 모두 지대석 위에 3단 요석, 그 위에 갑석을 올린 형식이라 합니다. 

이진락교수님 논문의 일부지만 이러한 사실을 보지 못했다면 헌강왕릉은 4단 호석이고 정강왕릉은 2단 호석으로만 그저 알고 넘어 갈 뻔 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왜 다른 호석을 했는지 문화재청의 정확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헌강왕릉과 전정강왕릉 호석은 이러한 사실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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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남산동 산 55 | 신라헌강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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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3.23 06:50 신고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다시 한번 보게 되네요

  2. 공수래공수거 2018.03.23 10:25 신고

    경주 왕릉을 돌아 보는것도 의미있을듯 싶습니다^^




(경남여행/산청여행)남사예담촌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 가장 아름다운 마을 남사예담촌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 


통영 대전고속도로 단성나들목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가는 길에 반드시 거치는 곳이 남사마을입니다.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남사마을과 남명 조식 선생의 산천재와 단속사지를 엮어서 떠났던 산청 삼매(三梅) 여행은 초반인 남사마을에서 일이 틀어져 버렸습니다. 

블로그에 올라왔던 지난해 남명매와 원정매, 정담매의 포스팅 날짜를 참작하여 떠났으나 예년보다 올해 날씨가 상당히 추워서 그런지 꽃망울만 맺혀 올해 삼매 개화 시기는 한주쯤 더 기다려야 할 듯했습니다.




남사예담촌 산청 남사리 이씨고택 주소: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340-7




2009/05/21 - (경남여행/산청여행)남사예담촌. 돌담길이 아름다워 문화재로 등록된 남사예담촌의 풍경입니다.

2013/03/14 - (경남여행/산청여행)산림처사 남명조식선생이 강학한 시천면 덕천서원

2010/09/02 - (경남여행/산청여행)산청 지리산 꽃봉산~공개바위 산행. 한국판 피사의 사탑 지리산 공개바위 찾아가기

2013/06/13 - (경남여행/산청여행)남명선생 사적지 남명기념관. 시천면 덕산에서 그의 선비정신을 옅보다.

2013/06/03 - (경남여행/산청여행)천왕봉을 닮고자 한 남명조식선생 올곧은 선비의 기개를 보다. 산천재와 남명매





그래도 성질 급한 매화 몇 송이는 당연히 폈겠지 생각했는데 감감무소식이어서 정말 많이 아쉬웠습니다. 

지금이야 모두 피었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매화도 매화지만 ‘꿩대신닭’이란 심정으로 여행을 겸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남사예담촌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입구에 예전에 없던 남사마을의 전경을 보는 정자 전망대에 오르는 아치형 육교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남사예담촌은 많이 바뀐 모습이었습니다. 



지리산을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전통마을인 남사마을은 흙과 돌이 섞인 기하학적 모양의 담장이 아름다워 남사예담촌으로 불리며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남사예담촌의 많은 고가 중에서 특히 남사예담촌을 대표하는 풍경은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 입구에 있는 크로스 회화나무입니다. 

서로 기대어 선 모습이라 마치 부부 같이 서로 의지한다 해서 부부 나무라 부릅니다.



부부나무 앞에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 산청 남사예담촌’을 알리는 안내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골목 양쪽의 토담에 박혀 있는 몽돌이 어릴 적 시골에서 살던 때의 담장과 똑 닮았습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에서 보듯 많은 초가집과 흙담장이 초가 대신 슬레이트가 올라가고 토담 대신 시멘트로 찍어 낸 블록담장을 교체하여 농촌의 삶은 많이 바뀌었으나 그와 반대로 농촌의 역사성은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남사마을은 모진풍파(?)에 용케도 살아남아 우리에게 고향의 향기를 듬뿍 느끼게 합니다.



남사예담촌은 지금까지 여러 번 찾아왔고 그 때마다 이곳 부부 나무를 찾았지만, 안쪽의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는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출입문이 열려 있어 이씨고가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이씨고가는 1700년경에 지어졌으며 남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이라 합니다.

먼저 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키가 큰 회화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나무의 배꼽쯤 높이에 구멍이 나 있는데 관광객이 얼마나 문질렀는지 반질반질했습니다. 

이 회화나무는 마을에서 삼신 할매나무라고 합니다. 

삼신할매는 아이를 점지해주는 할머니입니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여인이 구멍에 손을 넣고 빌면 애를 갖게 해주는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라 합니다. 

남사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이며 수령도 450년쯤 되었다 하니 남사마을의 터줏대감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는 전통적인 남부지방의 사대부 한옥 구조입니다. 

안채를 중심으로 입구에 사랑채와 익랑채, 곳간채에 ‘ㅁ’자 형태이며 사랑채 오른쪽의 중문을 통해 안채로 들어가는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사당은 곳간채 뒤쪽에 배치하여 보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사랑채는 일자형에 안채와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앞면 4칸에 옆면 3칸인 사랑채는 앞과 뒤에 툇간이 있으며 들보 5량인 팔작기와지붕입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방방곡곡에 있는 이름난 고택을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고택은 대청을 중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산청 남사리 이씨고가는 특이하게도 대청은 방 사이에 1칸을 두었다는 것을 보면서 주거용도를 더 우선시 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귀중한 물건을 보관하는 수장 기능을 하도록 방의 뒤 툇간을 넓게 잡아 겹집형식의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안채는 앞면 6칸, 옆면 3칸 크기에 앞뒤로 툇간이 있고 들보 5량인 팔작기와지붕입니다.










남부지방의 일자형 가옥에 건넌방 툇마루는 대청보다 약간 높게 만들어졌는데 그 밑에 아궁이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안채도 사랑채와 같이 주거용도를 중시한 건물입니다.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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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340-7 | 남사예담촌이씨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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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3.21 07:03 신고

    보면 볼수록 모습이 정감이 가네요

  2. Deborah 2018.03.21 10:41 신고

    남사예담촌의 모습이 정감이가고 옛 우리 선조님들의 지혜로운 건물 양식을 보게 되는 군요. 나무에 구멍안에 손을 넣으면 삼신할머니가 아이를 점지 해준다는 전설도
    참 재미있게 읽었네요. 멋진 사진과 더불어 설명도 잘 하셔서 유익한 포스팅이였네요. 오랜만에 들렸군요. 그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자주 방문을 해야 할 것 같아요.

  3. 공수래공수거 2018.03.21 12:29 신고

    여기 언제 한번 방문을 해 봐야 할듯 합니다^^

  4. 핑구야 날자 2018.03.22 06:54 신고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5. pennpenn 2018.03.22 07:21 신고

    철이 약간 일러 제때 피는 꽃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참 표현하기 어렵지요.
    남사예담촌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춘분이 지났는데 동장군이 설치네요.
    목요일을 편안하게 보내세요.




(경북여행/군위여행)대율리 한밤마을 돌담길 여행. 군위 한밤마을 돌담길을 만나보세요


대구와 군위를 경계 짓는 팔공산 북사면인 부계면에 팔공산을 이고선 마을이 있습니다. 

1,000m가 넘는 높은 팔공산이 마을을 감싸 않아 아침 해가 늦게 떠올라 항상 한밤중 같은 마을이라 해서 한밤마을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군위 한밤마을 돌담을 보려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테마 거리 경북 군위 한밤마을 돌담길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756


2018/03/16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대율리 대청. 돌담이 이쁜 마을 가운데 특이한 쉼터 군위 대율리 대청

2018/01/30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한밤마을 돌담이 있는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여행

2017/07/19 - (군위여행)선방산 지보사삼층석탑. 예술성이 뛰어난 군위지보사삼층석탑

2015/07/11 - (경북여행/군위여행)제2석굴암으로 불리는 석굴암에 군위 삼존 석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2014/12/05 -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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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2 - (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대구 시내에서 한티재를 넘는 줄 알았는데 팔공산 아래에다 바람구멍인 팔공산 터널이 새롭게 뚫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오를 것을 걱정했던 마음은 기우였습니다. 

차는 2018년 대구의 번잡한 도심에서 타임머신을 탄 듯 순식간에 1970년대에 멈춰선 산골 마을에 나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여러 번 군위여행에서 군위 삼존불을 보러 왔었습니다. 

그때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겨 보지 못했던 한밤마을 돌담길을 이번 여행에서는 오로지 한밤마을과 주위를 둘러볼 욕심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덕분에 이번에는 시간에 쫓기는 부담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

한밤마을의 유래를 보면 고려 중기에 재상을 지냈던 홍란이라는 선비가 처음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어 대야(大夜)라 불렀다고합니다. 

그러다가 밤을 뜻하는 夜 자를 밤 栗 자로 고쳐 대율(大栗)이라 하면서 한밤마을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한밤마을은 부림 홍씨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었습니다. 

한밤마을의 특징은 제주도의 돌담마을과 닮은 마을의 담장이 사람 머리만 한 돌로 쌓아 돌담이 유명한 제주도와 비교 된다고 해서 육지 속의 제주도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많은 돌이 다 어디에서 나왔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한밤마을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살 집을 지어야 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편편하게 터를 고르는데 땅 밑에서 무수한 돌이 쏟아져 나와 이를 처리하려고 집의 경계인 돌담을 쌓았는 게 오늘날 한밤마을 돌담의 시초라 합니다.





오로지 돌만으로 쌓았다는 것을 눈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돌담의 높이는 낮은 곳은 장정의 허리와 놓은 곳은 어께 높이로 쌓아 숨길 것이 없다는 듯 집안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웃과 왕래하는 우리 선조의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느껴졌으며 또한, 홍씨 집성촌을 이루다 보니 더욱 그러했던 게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돌담에 눌러앉은 세월의 더께는 이끼에서 알 수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구불구불 이어지는 마을길은 모나지 않은 훈훈한 우리네 시골 인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분 모두 친절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비보림인 소나무 숲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송강 홍천뢰장군이 의병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라합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마을길을 따라 들어갑니다. 

중간쯤에 작은 암자인 대율사가 있습니다. 대율사 안에는 보물 제988호에 지정된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이 있습니다. 

마을 한가운데 불상이 남아 있으며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오래전에 한밤 마을 일대가 아주 큰 사찰 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 가운데 군위 대율리 대청이 있는 곳이 범종이 걸렸던 대종각 자리였다 합니다.


한밤마을 남천고택



대율리 석조여래입상은 신라시대 석불상이며 폐사전 큰 사찰의 본존불로 모셔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 옆 남천고택은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옥체험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남천고택이 현재 군위군에 남아 있는 고택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상매댁(上梅宅), 쌍백당(雙柏堂)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남천고택은 입향조인 홍노선생의 10세손인 홍우태의 살림집이었으며 그 후 대대로 맏손자가 물려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의 사랑채는 1836년 현종 2년에 지어졌으며 고택의 배치는 ‘흥(興)’자형의 독특한 모양이었으나 1945년 광복 이후 중문채와 아래채를 철거하고 대문채를 옮기면서 가옥의 구조가 바뀌었다 합니다.







남천고택과 나란히 있는 군위 대율리 대청은 대청 옆에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250년 된 잣나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율리 대청은 조선 전기에 세워졌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며 그 후 여러 번 중수되었다가 1705년인 숙종 32년에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율리 한밤마을 비보림





한밤마을의 최대 볼거리는 역시나 자연돌을 차곡차곡 쌓은 돌담입니다. 

봄을 알리는 매화가 기지개를 켜고 한밤마을 돌담에 산수유나무가 참 많았는데 지금쯤이면 노란 산수유 꽃이 살포시 돌담에 내려 앉아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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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756 | 군위한밤마을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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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대율리 대청. 돌담이 이쁜 마을 가운데 특이한 쉼터 군위 대율리 대청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팔공산 북사면인 대율리의 한밤마을에는 큰 대청이 문화재로 지정해 있습니다. 

이름 하여 군위 대율리 대청이며 최근에 와서는 한밤마을 중앙에 자리해서 마을의 공동 쉼터인 대청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마을의 대소사와 소통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돌담이 아름다운 한밤마을 군위 대율리 대청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858

군위 대율리 대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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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 하면 큰 마루입니다. 

창건 당시부터 대청으로 지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 내력이 참 궁금했습니다. 

한밤마을의 대청이 있는 마을 전체는 오래전에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큰 사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게 보물 제988호인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이 인근에 현재 남아 있습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은 조선전기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탔다가 1632년 인조 10년에 중창해서 유생들이 학문을 갈고닦는 장소로 이용되었던 강학소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1651년 효종 때와 1705년인 숙종 때에 각각 중수했다가 1992년에 와서 건물을 완전히 해체하여 부식된 부재와 기와를 교체하고 기단도 보수해서 다시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마을 전체가 절이었을 때 이 건물은 범종이 걸린 대종각 자리였다고 합니다.

 대율리 대청은 앞면 5칸에 옆면 2칸이며 서측 퇴칸에만 간주가 서 있었고 마루는 전부 우물마루를 깔았고 사면이 개방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중창 당시에는 가운데 마루를 두고 좌우로 방을 넣은 형태로 보여집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은 조선 중기 건축물이며 기둥 위의 초익공의 수법이나 포대공 등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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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858 | 대율리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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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3.17 06:53 신고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기회가 되면 봄나들이로 좋은데요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한수정. 충재 권벌을 추모하는 봉화 춘양 한수정 여행. 


경북 봉화군 춘양 면소재지인 의양리 134번지에 머리를 식히기 아주 좋았을 정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한수정(寒水亭)인데 뜻을 보면 “찬물과 같은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역시 찬물을 한 바가지 둘러써야 잘 되는가 봅니다. 춘양면 소재지인 춘양장터 인근에 있는데 아침을 먹으려고 나섰다가 찾게 되었습니다.





충재 권벌의 봉화 한수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




2018/02/26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계서당. 춘향전에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생가 봉화 계서당 여행

2018/03/06 - (경북여행/봉화여행)해저 만회고택. 봉화 독립운동의 산실 해저 만회고택 여행. 만회고택

2018/01/24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군청맛집 자갈마당. 아침에 좋았던 봉화 자갈마당 자연산 송이 국밥

2017/12/20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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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은 낮은 담장으로 둘려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출입문이 꽉 잠겨 있어 속속들이 내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낮은 담장 덕분에 수려한 한수정의 정원과 건물은 멀리서 보는 것 만으로도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수정이 있는 이곳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재(沖齋) 권벌(權伐. 1478~1548)이 거연헌(居然軒)이란 건물을 처음 지었다가 소실하자 그의 2대손인 석천(石泉) 권래(權來. 1562~1617)가 1608년(선조 41년)에 다시 건물을 짓고 한수정이라 이름 했습니다.






1741년인 영조 17년에 중수했다가 1991년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 일부가 불탔으며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원래 상태로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충재 권벌은 본관이 안동이며 호는 충재 또는 훤정(萱亭), 시호는 충정(忠定)입니다.







1496년 연산군 2년 때 진사시에 합격하고 1507년인 중중 2년에 문과에 급제해 사관과 삼사, 승정원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을사사화 때 소윤일파에 의해 삭주로 유배 가서 그곳에서 숨졌으나 선조 때 신원이 회복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봉화 삼계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한수정 정자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T'자형 건물이며 홑처마 팔작지붕건물입니다. 바닥은 1단을 높였고 양측에 각각 2칸인 온돌방을 넣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를 깔은 형태입니다. 한수정 주위 3면에는 와룡연이라는 연못을 팠으며 초연대라 불리는 넓은 반석과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된 회나무 등이 둘린 아름다운 정자 정원입니다.

 






한수정은 경암 이한응(1778~1864)의 춘양구곡가(春陽九曲歌)에서 제 8곡입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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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 | 봉화한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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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3.08 06:58 신고

    덕분에 구경 잘하고 갑니다

  2. 핑구야 날자 2018.03.09 06:53 신고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경북여행/봉화여행)해저 만회고택. 봉화 독립운동의 산실 해저 만회고택 여행


봉화여행을 하면서 1박을 청했던 곳이 아름다운 지명인 바래미마을의 소강고택입니다. ‘바래미’는 바다였다는 뜻이며 아주 오래전에 이 일대가 바다였는지 알 수 없지만 최근까지도 마을 안의 논과 웅덩이에서 조개들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마을이 포근하고 아늑한 게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봉화 해저 만회고택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485

중요민속자료 제169호





한옥스테이를 했던 소강고택 포스팅은 다음에 하고 우선 바래미마을 인근에 있는 해저만회고택을 포스팅하겠습니다. 소강고택에서 새벽 일찍 일어나 계속 누워 있기도 뭐하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마을 구경삼아 동네 한 바퀴 했습니다. 소강고택 이외에도 많은 고택이 즐비했는데 그중에서도 소강고택의 건너편 마을에 있는 해저 만회고택을 이정표만 보고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해가 떠오르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찾아가기가 부담스러웠지만, 외관만이라도 만나볼 욕심에 찾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대문이 없는 개방식 비슷한 고택이었습니다. 주위 고택은 솟을 대문에 높은 담장이 둘러싸여 바깥에서는 전혀 내부를 볼 수 없었는데 만회고택은 대문이 없어서 바깥에서도 훤하게 사랑채가 잘 보였습니다.

 


특히 새벽바람을 가르며 시골 마을을 걸을 때는 개 짖는 소리에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끄러워 마을을 둘러보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래도 행운인지 모르겠지만 만회고택은 집을 지키는 강아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만회고택의 자랑인 사랑채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으며 집주인이 잠에서 깰까 싶어 조용하게 사진을 찍고 소리소문없이 나왔습니다.



만회고택은 봉화군에서 애국심으로 큰 자랑인 고택건물입니다. 건물의 웅장함도 있지만 만회고택의 사랑채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산실이라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봉화 해저 만회고택이 자리한 해저리에는 조선 숙종 때 관찰사를 지냈던 팔오헌 김성구 선생이 처음 자리를 잡아 의성김씨가 세 가를 이루었습니다.





지금의 만회고택인 안채는 김건수씨 6대조께서 마을에 들어와 여씨(余氏) 성을 가진 분이 살던 집을 사들여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안채는 1690년대에 지어졌다 합니다. 이 집을 만회 고택이라 부르는 것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건수(1790~1854)선생의 호인 만회헌(晩悔軒)에서 따왔습니다.



만회고택의 사랑채인 명월루(明月樓)는 만회선생이 건립했으며 1850년에 전체적인 수리를 했다고 합니다. 백두대간의 흥 걸 찬 기원이 감도는 명월루의 지세는 예로부터 명산 대천을 찾는 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닦던 곳으로 이곳에서 약 1,000여 편의 시가 쓰였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명월루는 봉화 해저리에서 독립운동의 산실역을 담당했다 합니다. 특히 해저마을 주민 전체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14명의 독립운동가를 마을에서 배출한 독립유공자 마을입니다. 그 이유를 보면 성주 대가면 출신인 심산 김창숙 선생이 명월루에 거처하면서 해저마을의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독립 자금도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랄 일은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열렸던 제2회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비밀리에 파견하면서 독립청원서를 보냈는데 독립청원서의 초안을 명월루에서 작성하였다고 하며 독립유공자 마을인 해저 마을의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 외 많은 독립운동의 지원 등을 의논했던 장소에 명월루가 이용되었다 하니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인 현장입니다.



사실 만회고택의 안채는 이른 아침이라 내부를 볼 수 없어 많이 아쉬웠지만, 사랑채인 명월루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을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만회고택 명월루를 알아보겠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게 사랑채인 누각형태의 명월루입니다.





사랑채가 명월루임을 알리는 현판이 돌출한 누마루에 달렸어 눈에 확 띄었으며 이외에도 만회고택과 사랑채의 툇마루에 앉으면 시원한 바람을 느낀다는 청풍헌 현판도 따로 걸려 있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4칸이며 옆면 1칸 반 규모로 만회고택은 앞쪽에 일자형의 중문간채와 'T'자 형의 사랑채, 안채는 ‘∩’자형이며 전체적으로 튼 ‘ㅁ’자 배치입니다.



안채를 중심으로 좌우로 연결된 건물이 사랑채로 이어지며 안채의 동쪽 날개 끝에서 동쪽으로 치우쳐져 사랑채가 자리했습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했으며 전면의 툇마루와 누마루에는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사용하여 건물의 멋과 권위를 한층 더 높였습니다.





사랑채 옆의 안채로 드나들던 출입문인 중문간채는 퇴락하여 1981년에 철거했다가 다시 복원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찬찬히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이른 아침 남의 집을 찾아서 내 욕심대로 보는 것도 실례이고 그리고 소강고택에서 다음 일정으로 일행들도 기다릴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돌아 나왔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해저 만회고택에서 한옥체험 민박도 하고 보지 못했던 안채와 수박 겉핥기로 보았던 사랑채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챙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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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485 | 해저만회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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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3.07 06:50 신고

    주말에 찾기 참 좋은 곳이군요 잘 보고 갑니다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계서당. 춘향전에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생가 봉화 계서당 여행


청정골 봉화여행을 하면서 소설과 판소리의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생가가 있다 하여 아니 웬 봉화에 이몽룡생가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정보를 알고는 가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허구의 춘향전이 아니라 이몽룡은 실제 인물이라는 점에 더욱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찾아갔던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의 계서당은 그야말로 한적한 산골 오지에 자리했습니다. 




춘향전에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생가 봉화 계서당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301

춘향전에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생가 봉화 계서당 전화:054-679-6090




2017/11/04 - (경북여행/봉화여행)산타마을 분천역. 우리나라에도 산타마을이 있어요? 영동선 분천역 산타마을

2012/12/07 - (경북봉화여행)봉화 선달산산행. 신선이 놀던 곳 백두대간 선달산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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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3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청량산 전망대 청량산 축융봉 산행.청량산



 


춘향전의 남자주인공인 이몽룡의 실제 인물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이분의 성함은 창녕성씨 16대손인 계서 성이성(1595~1664)이며 청백리에 이름을 올린 분으로 한마디로 불의를 보면 참고 넘기지 못하는 똑 부러지는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소설 속에서 이몽룡 은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 관아를 찾아 갑니다.



변사또는 수청을 거부하는 춘향이를 앉혀 놓고는 주지육림으로 흥청망청하였고 이를 보다 못한 이몽룡은 사또를 칠언절구로서 질타하는 인물로 성이성선생과 너무 닮았다 하겠습니다. 이를 보고 소설 속의 이몽룡은 봉화의 성이성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은 아닌지 싶었습니다.

 













성이성의 4대 후손인 성섭의 교와문고(僑窩文藁)에는 춘향전의 어사 출도 장면과 비슷한 내용이 나오고 걸인 행색을 한 이몽룡이 지필묵을 요청해서 써내려간 한시“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금동이의 좋은 술은 천사람의 피요)/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爻萬姓膏:소반위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이 기름이라)/촉루낙시민루낙(燭淚落時民淚落:촛불의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노래소리 높은 곳에 원성의 소리 높더라)”가 수록되어 있다 합니다. 그러니까 춘향전 이몽룡 한시가 발견된 것이지요. 






또한, 성이성은 4번의 암행어사 직을 수행하면서 호남에 두 번이나 어사로 활동한 것을 보면 더욱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이몽룡과 성이성을 동일인이라 주장한 사람은 연세대학교 설성경교수로 1999년11월 그의 논문 ‘이몽룡의 러브스토리’에서 입니다.

 



성이성의 인물 탐구에 앞서서 춘향전의 대략 줄거리를 보면 남원부사의 아들인 이몽룡과 기생 월매의 딸인 춘향이 광한루에서 정분을 나누다가 남원부사가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게 되자 이도령과 춘향이는 다음에 만날 것을 언약하며 이별해야 했습니다.

 






그 이후 새로 남원부사로 부임한 신관 사또는 춘향의 미모에 홀라당 반하여 수청들 것을 강요하였고 춘향은 일부종사를 들어 수청들기를 거부하자 열받은 사또는 "니 한번 죽어볼래"하며 춘향이를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이몽룡은 과거에 급제해서 암행어사가 되어 “암행어사 출도야”를 외치며 들이닥쳐 탐관오리인 남원 사또에게 “니 죄를 니가 알렸다”하며 봉고파직하고 감옥에 가두는 서민인 우리로서는 아주 통쾌한 권선징악의 내용입니다.

 




아!! 요즈음에는 이런 서민을 위하는 정치인이 왜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 성춘향은 성이성과 같은 성씨 성을 썼다는 점을 보면 더욱 신빙성이 있습니다. 성이성의 아버지인 부용당 성안의(1561~1692)도 소설 속의 내용처럼 남원부사로 재직을 했으며 성이성 또한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 내려와 공부하고 뒤에 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되었습니다. 어쩜 내용이 소설 속과 많이 닮았습니다.





성이성은 21세인 1616년에 생원시에 합격해서나 당시 나라 정세가 너무나 어지러워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624년 인조 2년에 이괄의 난으로 인조를 호종하는 아버지를 따랐다가 난이 평정되자 성균관에 들어갔고 인조5년에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쳐 사간원정언에 임용됩니다.



그러나 인조는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올랐기에 그의 아버지인 정원군을 왕으로 추존하여 종묘에 들이려 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신하들의 반발로 논쟁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인조는 원종에 추증해 밀어붙였고 성이성은 이의 부당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관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의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성품으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암행어사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강계부사 재직 때에는 관서지방의 살아있는 부처라는 “관서활불(關西活佛)”로 칭송받는 훌륭한 목민관이었습니다. 그는 죽어서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으로서는 최고의 영예라는 ‘청백리’에 그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의 생가는 1613년인 광해군 5년에 지어졌으며 사랑채인 계서당은 후대에서 보수하였다 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성이성의 후손이 안채에서 생활하고 있어 집안에는 사람의 훈기가 가득했습니다. 6칸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나오고 정면에 사랑채가 자리했습니다.

 




사랑채를 보는 것을 잠시 미루고 사랑채와 붙은 중문을 지나 안채로 갔습니다. 성이성 선생의 후손으로 보이는 분이 툇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를 보고는 “어서오시라”며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저도 그 덕분에 오랫동안 안채를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농촌의 살림살이가 마당과 축대에 그대로 나뒹굴고 너른 대청이 훤하게 뚫려 있는 것을 보면 살아오면서 가옥 구조에 변화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전체적인 건물 형태는 ‘ㅁ'자형 배치입니다. 이런 구조는 추운 지방인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건물구조입니다. 밖으로 되돌아 나와 사랑채인 계서당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계서당은 높은 축대 위에 건물을 세워 웅장하며 듬직해 보였습니다. 떡하니 버틴 게 성이성의 강직한 성품을 마주하는 듯했습니다. 봉화여행에서 이몽룡의 실제 인물만이 아니라도 목민관의 본보기가 되는 성이성의 생가 계서당을 꼭 만나고 오세요.







  1. 공수래공수거 2018.02.28 16:08 신고

    한번 찾아 보고 싶은곳이로군요^^

  2. *저녁노을* 2018.03.04 08:46 신고

    잘 보고가요.

    행복한 휴일 되세요^^

  3. 핑구야 날자 2018.03.05 07:38 신고

    즐거운 시간 보냈군요 책에서만 보던 곳을 직접 본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죠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서동리삼층석탑. 산림고교 교정에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소나무는 금강송이라 합니다. 우리나라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고산이 마지노선으로 일반 소나무와는 현격하게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강송은 단단함을 뜻하는 소나무입니다. 그 귀한 금강송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춘양면에서 모여 전국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봉화서동리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91, 서원촌길 8-14(서동리)

봉화서동리삼층석탑 연락처:054-679-6392

보물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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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금강송을 춘양목이라 따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번 봉화여행에서 춘양목의 집하장 춘양역이 있는 춘양면의 만산고택에서 1박을 하며 고택체험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황토집인 온돌방에서 푹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찍 잠을 깼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만산고택 구경을 하다가 밖으로 나와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어디 갈 곳이 없을까 싶어 생각해서 찾은 곳이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입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만산고택과 멀지 않았습니다. 대략 1km가 조금 안 된 거리였습니다. 봉화 삼층석탑은 특이하게도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경내에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에 검색해서 찾아갔는데 학교가 나와 처음에는 많이 황당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안개도 많이 끼고 해서 일단 교문을 들어가서 빙 둘러보았습니다. 교정 오른쪽에 삼층석탑이 보여 맞게 찾아왔구나 하며 아마 옛날에는 이곳이 절터였나 생각했습니다.

 






문수산에서 내려온 능선이 면 소재지와 가까워지면서 논밭 속에 봉화 춘양면 서동리 삼층석탑이 있었습니다. 동·서로 마주 보는 쌍탑 형식입니다. 이곳은 신라 시대에 있었다는 남화사 절터였다 합니다. 전하는 말로는 675년 신라 문무왕(16년) 때 원효가 이곳과 멀지 않은 각화산 아래에 현재의 각화사를 창건하자 폐사되었다 합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탑이 몹시 기울고 기단부가 흙더미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1962년 두 석탑을 해체·복원해서 현재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복원 당시 서탑에는 사리함이 들어갔던 공간이 발견되었으며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99개의 작은 흙으로 만든 탑이 두른 사리장엄구가 나왔습니다.





사리함에는 녹색 유리 사리병이 나왔고 그 안에서 좁쌀만 한 사리 3과가 있었다 합니다. 사리기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진 상태입니다. 높이는 동탑은 3.85m이며 서탑은 3.94m에 두탑은 13.5m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지대석은 여러 장의 판석을 깔았으며 그 위에다 기단석을 받치는 굄대를 여러 장의 돌로 두툼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탑 모두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기단은 네 면의 모서리에 운주인 기둥 모양을, 가운데에 다는 탱주를 한 개씩 새겼습니다. 또한, 몸돌과 지붕돌은 모두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규모가 줄어드는 체감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운주를 새겼으며 옥개석은 4단의 층급 받침에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렸습니다.

 







상륜부의 머리장식은 서탑에는 노반이 남아 있으며 동탑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비례와 균형이 잘 어울리고 정제된 조형미에서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봉화 춘양면 여행 때 한번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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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91 | 봉화서동리 동서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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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2.17 07:09 신고

    덕분에 구경 잘하고 갑니다 좋은 한주 되세요

  2. 핑구야 날자 2018.02.20 06:51 신고

    학생들은 정말 색다른 추억을 남기며 공부할 수 있겠는데요

  3. 핑구야 날자 2018.02.21 06:49 신고

    분위기가 마치 영화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드네요

  4. 공수래공수거 2018.02.26 08:08 신고

    봉화가면 한번 들려 볼곳이로군요^^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 감실부처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


봉화여행 중에 봉화군에서 유일한 국보가 있다 하여 다른 일정을 잠시 미루고 북지리에 찾아갔습니다. 위치를 보면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의 호골산 지림사 경내에 있었습니다. 이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7c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1400여 년 전인 신라 시대에 ‘한절’·‘대사’라고 불렸던 큰 규모의 사찰이 있든 자리로 당시에 모셨든 불상으로 보입니다.





북지리마애여래좌상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657-2

북지리마애여래좌상 전화:054-673-6735




2013/11/13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청량산 전망대 청량산 축융봉 산행.청량산

2012/12/17 - (경북여행/봉화영월여행) 단군왕검을 뜻하는 박달나무, 우리나라에 박달령이 많은 이유가 있네. 백두대간 선달산 박달령

2017/10/31 - (경북맛집/봉화맛집)농가맛집 산수유길사이로. 테라푸드인 약선음식을 산수유길사이로에서 맛보다.

2017/11/16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 송이버섯 맛집 인하원. 봉화군청 봉화역 맛집 봉화 인하원 송이버섯

2018/01/24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군청맛집 자갈마당. 아침에 좋았던 봉화 자갈마당 자연산 송이 국밥





한절은 고려 시대까지 명맥을 이어오다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절은 폐사되었다지만 정확한 이유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한국동란 이전인 1947년에 수월암 신축을 하면서 우연하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0년 들어 조명되어 1980년 9월 국보 201호에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봉화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낮은 언덕 같은 호골산 사면의 5m 암벽에 조각된 마애여래좌상입니다. 낮은 산세에 비해 대단한 힘이 느껴졌으며 주위에 27개의 사찰에다 500여 명의 스님이 수도를 했다고 하니 이곳에 대불인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싶었습니다.

 





워낙 지림사 경내가 넓어 조금은 황량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의 현재 상태를 보면 더욱 강하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현재 많이 훼손된 상태입니다. 그래도 아쉽지만, 전체적인 불상의 모습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상세하게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자연암벽을 깊게 파내어 넓은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다 높이 4.3m의 마애불을 양각했으며 이를 감실 부처라 합니다. 불상의 얼굴은 넓고 큼지막하며 양감은 풍부합니다. 머리는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었으며 전체적으로 자비로움이 느껴지는 게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진짜 거대한 불상이지만 위압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통견인 양어깨에 걸친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의 굵은 주름이 양팔을 거쳐 앉아 있는 불상의 대좌까지 흘러내렸습니다. 오른손은 손가락을 펴서 밖으로 향하게 하여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손바닥을 펴 앞으로 보이게 해 무릎에 내린 모습인데 이를 '시무외인(施無畏印)'이라하며 부처가 중생에게 무외를 베푸는 손동작입니다. 마애불 뒤에는 광배를 표현했습니다.








광배는 머리와 몸 광배로 따로 표현했으며 마애불 주위로 작은 불상을 여러구 부조했습니다. 그리고 머리광배는 보주형두광을 말하며 정교한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전체적인 불상은 딱딱함보다는 유려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봉화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도롯가에 큼지막하게 문화재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혹시 봉화여행에서 이 안내판을 만나면 꼭 찾아보세요. 훼손상태는 심하지만 웅장함과 수려함에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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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657-2 | 북지리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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