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서동리삼층석탑. 산림고교 교정에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소나무는 금강송이라 합니다. 우리나라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고산이 마지노선으로 일반 소나무와는 현격하게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강송은 단단함을 뜻하는 소나무입니다. 그 귀한 금강송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춘양면에서 모여 전국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봉화서동리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91, 서원촌길 8-14(서동리)

봉화서동리삼층석탑 연락처:054-679-6392

보물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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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금강송을 춘양목이라 따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번 봉화여행에서 춘양목의 집하장 춘양역이 있는 춘양면의 만산고택에서 1박을 하며 고택체험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황토집인 온돌방에서 푹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찍 잠을 깼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만산고택 구경을 하다가 밖으로 나와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어디 갈 곳이 없을까 싶어 생각해서 찾은 곳이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입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만산고택과 멀지 않았습니다. 대략 1km가 조금 안 된 거리였습니다. 봉화 삼층석탑은 특이하게도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경내에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에 검색해서 찾아갔는데 학교가 나와 처음에는 많이 황당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안개도 많이 끼고 해서 일단 교문을 들어가서 빙 둘러보았습니다. 교정 오른쪽에 삼층석탑이 보여 맞게 찾아왔구나 하며 아마 옛날에는 이곳이 절터였나 생각했습니다.

 






문수산에서 내려온 능선이 면 소재지와 가까워지면서 논밭 속에 봉화 춘양면 서동리 삼층석탑이 있었습니다. 동·서로 마주 보는 쌍탑 형식입니다. 이곳은 신라 시대에 있었다는 남화사 절터였다 합니다. 전하는 말로는 675년 신라 문무왕(16년) 때 원효가 이곳과 멀지 않은 각화산 아래에 현재의 각화사를 창건하자 폐사되었다 합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탑이 몹시 기울고 기단부가 흙더미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1962년 두 석탑을 해체·복원해서 현재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복원 당시 서탑에는 사리함이 들어갔던 공간이 발견되었으며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99개의 작은 흙으로 만든 탑이 두른 사리장엄구가 나왔습니다.





사리함에는 녹색 유리 사리병이 나왔고 그 안에서 좁쌀만 한 사리 3과가 있었다 합니다. 사리기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진 상태입니다. 높이는 동탑은 3.85m이며 서탑은 3.94m에 두탑은 13.5m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지대석은 여러 장의 판석을 깔았으며 그 위에다 기단석을 받치는 굄대를 여러 장의 돌로 두툼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탑 모두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기단은 네 면의 모서리에 운주인 기둥 모양을, 가운데에 다는 탱주를 한 개씩 새겼습니다. 또한, 몸돌과 지붕돌은 모두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규모가 줄어드는 체감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운주를 새겼으며 옥개석은 4단의 층급 받침에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렸습니다.

 







상륜부의 머리장식은 서탑에는 노반이 남아 있으며 동탑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비례와 균형이 잘 어울리고 정제된 조형미에서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봉화 춘양면 여행 때 한번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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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91 | 봉화서동리 동서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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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2.17 07:09 신고

    덕분에 구경 잘하고 갑니다 좋은 한주 되세요

  2. 핑구야 날자 2018.02.20 06:51 신고

    학생들은 정말 색다른 추억을 남기며 공부할 수 있겠는데요

  3. 핑구야 날자 2018.02.21 06:49 신고

    분위기가 마치 영화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드네요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 감실부처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


봉화여행 중에 봉화군에서 유일한 국보가 있다 하여 다른 일정을 잠시 미루고 북지리에 찾아갔습니다. 위치를 보면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의 호골산 지림사 경내에 있었습니다. 이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7c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1400여 년 전인 신라 시대에 ‘한절’·‘대사’라고 불렸던 큰 규모의 사찰이 있든 자리로 당시에 모셨든 불상으로 보입니다.





북지리마애여래좌상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657-2

북지리마애여래좌상 전화:054-673-6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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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은 고려 시대까지 명맥을 이어오다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절은 폐사되었다지만 정확한 이유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한국동란 이전인 1947년에 수월암 신축을 하면서 우연하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0년 들어 조명되어 1980년 9월 국보 201호에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봉화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낮은 언덕 같은 호골산 사면의 5m 암벽에 조각된 마애여래좌상입니다. 낮은 산세에 비해 대단한 힘이 느껴졌으며 주위에 27개의 사찰에다 500여 명의 스님이 수도를 했다고 하니 이곳에 대불인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싶었습니다.

 





워낙 지림사 경내가 넓어 조금은 황량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의 현재 상태를 보면 더욱 강하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현재 많이 훼손된 상태입니다. 그래도 아쉽지만, 전체적인 불상의 모습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상세하게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자연암벽을 깊게 파내어 넓은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다 높이 4.3m의 마애불을 양각했으며 이를 감실 부처라 합니다. 불상의 얼굴은 넓고 큼지막하며 양감은 풍부합니다. 머리는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었으며 전체적으로 자비로움이 느껴지는 게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진짜 거대한 불상이지만 위압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통견인 양어깨에 걸친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의 굵은 주름이 양팔을 거쳐 앉아 있는 불상의 대좌까지 흘러내렸습니다. 오른손은 손가락을 펴서 밖으로 향하게 하여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손바닥을 펴 앞으로 보이게 해 무릎에 내린 모습인데 이를 '시무외인(施無畏印)'이라하며 부처가 중생에게 무외를 베푸는 손동작입니다. 마애불 뒤에는 광배를 표현했습니다.








광배는 머리와 몸 광배로 따로 표현했으며 마애불 주위로 작은 불상을 여러구 부조했습니다. 그리고 머리광배는 보주형두광을 말하며 정교한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전체적인 불상은 딱딱함보다는 유려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봉화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도롯가에 큼지막하게 문화재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혹시 봉화여행에서 이 안내판을 만나면 꼭 찾아보세요. 훼손상태는 심하지만 웅장함과 수려함에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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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657-2 | 북지리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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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2.15 06:59 신고

    인자 하신 모습 정말 보기 좋은데요




(경북여행/봉화여행)대한민국 명승 제60호 석천계곡·석천정사,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석천정사


산 좋고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고장이 봉화입니다. 당파싸움에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칼날 위의 벼슬에 환멸과 염증을 느낀 많은 선비가 산림처사를 자처하며 정자를 짓고 자연을 노래하며 은둔했던 곳이 유독 많았던 봉화. 하나같이 세속을 등지고 안빈낙도의 삶을 즐기면서 벗과 시문을 나누고, 후학을 키우며 말년을 보냈습니다.





봉화 석천정사·석천계곡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945

봉화 석천정사 연락처:054-679-6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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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봉화의 산세는 남달랐습니다. 봉화에 몸을 숨긴 대표적인 처사로는 태백오현이 그러하고 또한 닭실마을의 청암정과 석천정사를 세운 청암 권동보 등 수많은 선비가 있습니다. 모두 자연 속에서 세상사 시름을 멀리하고 자기 수양을 하며 여생을 마쳤습니다.

 


봉화를 여행하면서 찾았던 석천계곡과 석천정사도 그런 곳 중 한 곳입니다. 봉화는 벌써 여행을 하고 왔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제야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늘과 실이라는 석천정사와 함께 찾는 곳이 닭실마을의 청암정입니다. 청암정 또한 청암선생이 세웠습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삼남의 4대 길지에 경주의 양동마을, 안동의 내앞마을, 풍산의 하회마을과 함께 봉화 닭실마을을 꼽았습니다. 그만큼 마을의 분위기는 낮은 산에 둘러싸여 포근해 보였습니다. 문수산에서 흘러내린 창평천과 닭실마을 뒤를 돌아 흐르는 동막천은 유곡 앞에서 하나의 물줄기가 되어 기암괴석과 하얀 암반을 끼고 석천계곡을 빚어낸 뒤 내성천에 합류하여 낙동강에서 꼬리를 감춥니다.

 


봉화군의 수많은 명소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석천계곡과 비탈에 걸터앉은 석천정사를 만나러 출발했습니다. 석천정사를 가는 길은 위쪽의 유곡리 닭실마을에서 내려가는 길도 있지만 저는 그 반대인 삼계리의 삼계 2교에서 출발했습니다. 이곳에도 석천계곡을 알리는 대형안내판과 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석천계곡을 끼고 반들반들 윤이 난 오솔길은 수많은 사람이 닭실마을을 거처 춘향으로 향했던 옛길이라 합니다. 그 때문인지 석천계곡의 운치는 더욱 좋아 보였습니다. 나도 그 뻔찔난 길에 발걸음을 보태었습니다. 계곡을 걷다가 문득 지게를 지며 올랐을 옛사람을 상상해보았습니다.



낙락장송의 거대한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석천계곡, 지겟발을 받치며 바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골바람에 땀을 식혔을 그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으로 붐볐을 석천계곡은 스산한 가을바람에 그 많았다는 인걸은 간데없고 할 일 없는 나그네만 찾아와서 왁자지껄 노닐었는데 진짜 우리 일행 빼고는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석천정사를 가는 소로 길이 바위벼랑을 돌아갔습니다. 그 바위벼랑에 왕희지도 울고 갈 “청하동천(靑霞洞天)”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청하동천’ 그 뜻을 보면 “하늘에 있는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글씨체가 용이 하늘을 마음껏 휘젓듯 힘차게 날아가는 듯했습니다.





글씨는 충재 권벌 선생의 5대손인 대졸자 권두웅(1656~1732)이 섰다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암괴석으로 수려한 절경을 자랑하는 석천계곡에 많은 도깨비가 몰려와서 떠들면서 놀았다 합니다. 석천정사에서 공부하던 서생은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였고 이를 참다못한 권두웅이 ‘청하동천’ 글씨를 바위에 세기고 그 위에다 붉은 칠을 하자 다시는 도깨비가 나타나지 않았다 합니다.









도깨비를 쫓아냈다는 청하동천 바위를 지나면 더욱 수려한 장관이 펼쳐지면서 계곡 건너에 석천정사가 나타났습니다. 바위에 걸린 나무다리를 건너 석천정사에 다다랐습니다. 석천정사를 들어서는 일주문이 꽉 닫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계곡을 내려가서 외곽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석천정사는 34칸의 큰 규모라 합니다. 석천정사는 충재 권벌의 큰아들인 청암 권동보가 1535년에 학문과 수양을 목적으로 세운 건물입니다. 선생은 1542년 중종 37년에 사마시에 합격해서 벼슬길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1547년 명종2년에 아버지가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삭주에 유배되었다가 1년 만에 숨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했습니다. 조선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져 복직되었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석천계곡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마음의 수양을 닦으며 여생을 마쳤습니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어 많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눈대중으로 대충 보아도 계곡을 비집고 절묘하게 들어선 정자에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렸으며 건물은 높은 축대 위에다 길게 늘어선 모습 입니다.







살짝 까치발을 들어 내부를 보았습니다. 한쪽은 개방된 마루라면 한쪽은 판장문을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하얀 암반에 미끄러지듯 흐르는 계곡의 풍경과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한 소나무의 솔향이 모든 건물에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선경이 따로 없는 석천정사를 지나면 닭실마을에서 석천정사로 들어서는 넓은 길이 이어졌습니다. 허리를 숙인 소나무의 사열을 받으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저 멀리 닭실마을의 청암정이 어서 와라 손짓했습니다. 명승 제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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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945 | 석천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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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2.12 06:42 신고

    기회가 되면 가 보고 싶군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2. 핑구야 날자 2018.02.13 06:49 신고

    꽃피는 봄이 간다면 정말 좋겠는데요 잘 보고 갑니다

  3. 핑구야 날자 2018.02.14 06:53 신고

    보내 구경 잘 하고 갑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고 싶군요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봉화에서 꼭 가보아야할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여행.


우리나라를 말할 때는 한반도라 부릅니다. 한반도는 용맹한 백두산호랑이를 닮았으며 그 호랑이의 척추를 이루는 굵은 산맥이 이중환의 ‘택리지’, 신경준의 ‘산경표’에서는 백두대간이라 불렀습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한 능선이 끊어지지 않고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르는 능선을 말합니다.



경상북도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509-4

경상북도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전화:054-679-1000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홈페이지:http://www.bdna.or.kr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관람시간:

하절기(4월~10월):09:00~18:00

동절기(11월~3월):09:00~17:00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휴관일:매주 월·화요일 1월1일, 설·추석 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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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0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백두대간의 총거리는 장장 1,400km에 이릅니다. 이러한 백두대간 능선에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33%가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특산식물만도 27%, 희귀식물 또한 17%를 이루는 식물과 동물의 천국이라 부를 정도로 생명 다양성을 보존하는 중요 생태축이라 하겠습니다.







동·식물의 생태계 보고인 백두대간 이름 딴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청정 산골 봉화군에 있어 먼 거리를 마다치 않고 찾았습니다. 특히 백두대간수목원에서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산림생물자원의 안정적 보전과 관리를 주안점으로 주는 대한민국의 대표 수목원으로 개장했습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2008년 9월에 조성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토균형발전위원회의 결정으로 백두대간을 체계적으로 관리 보호하고 산림생물자원의 보존관리가 주목적입니다. 그래서인지 규모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7년 만인 2015년에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옥석산과 문수산의 고산준령 속 분지에 조성한 수목원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시아에서 최고 수목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규모를 보면 5,179ha이며 중점 조성지역이 206ha에 종자저장시설 등 20개 건물에다 26개 전시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정식개원을 앞두고 현재에는 수목원과 수목원을 운행하는 호랑이 전기차를 무료 발권 중입니다. 어서 빨리 유료로 바뀌기 전에 봉화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여행을 해보세요. 정말 귀한 식물과 보지 못했던 장쾌한 백두대간 능선, 그 속에 자리한 수목원의 대단한 규모에 깜짝 놀랐습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전시 사진 촬영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전시 사진 촬영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전시 사진 촬영

안 보면 후회할 만큼 멋진 백두대간수목원이 어마어마한 규모에 전부 다 둘러 볼 수 없었습니다. 다음 여행지 출발 때문에 백두대간수목원의 전시장만 둘러보고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올봄에 다시 한번 백두대간수목원을 방문하여 보지 못했던 수목원의 여러 곳을 찾아야겠습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전시 사진 촬영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전시 사진 촬영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장기종자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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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509-4 | 국립백두대간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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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2.09 06:48 신고

    날이 좀 풀리는 거 같아서 주말에 한번 가 봐도 좋을 거 같네요

  2. 핑구야 날자 2018.02.10 06:57 신고

    아이들과 함께 가면 정말 좋겠는데요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좋아요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옥류암, 남양 홍씨 두곡종택인 봉화 옥류암 정자 여행 


봉화여행을 하면서 점심을 먹으려고 들렀던 '산수유길 사이로' 인근에 태백오현의 한 분인 두곡 홍우정(1595~1656)선생이 은거했다는 옥류암(玉溜庵)을 찾았습니다. 산수유길 사이로의 참살이 음식과 함께 잘 어울렸던 옥류암. 옥류암은 경북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산수유길 202-80번지인 뒤뜨물마을 뒷산 자락에 남향을 보고 있었습니다.




봉화 옥류암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192




2017/12/20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2017/11/16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 송이버섯 맛집 인하원. 봉화군청 봉화역 맛집 봉화 인하원 송이버섯

2017/11/15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도암정. 정자의 고장 봉화에서 만난 도암정 도암정

2017/10/31 - (경북맛집/봉화맛집)농가맛집 산수유길사이로. 테라푸드인 약선음식을 산수유길사이로에서 맛보다.

2017/09/25 - (봉화여행/봉화가볼만한곳)봉화목재문화체험관. 춘양목의 고장 봉화목재문화체험관 여행하기




다섯 칸의 두곡종택과 나란히 자리했으며 옥류암은 절의의 상징인 홍우정의 은거지답게 키가 크고 우람한 소나무가 빼곡하게 정자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 태종에게 삼전도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에다 이마를 찍어 이마가 깨져 피가 철철 흘렀다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수모를 당하자 전쟁이 벌어졌을 때 명분과 의를 지키려면 운명을 걸고 결전을 해서야 옳았다는 척화를 주장하며 낙향하여 봉화의 문수산 아래에다 은거하면서 세운 정자입니다.









옥류암의 유래는 정자와 종택 사이의 옥구슬 같은 물이 솟는 샘에서 나왔으며 이 물줄기는 문수산에서 흘러내린다 합니다. 옥류암은 1637년 처음 지어졌으며 1756년에 중건 하면서 기와를 얹었습니다. 그리고 미수 허목선생의 옥류암 현판과 대산 이상정선생의 기문이 걸렸다 합니다. 가로 120cm, 세로 60cm였던 옥류암 현판은 도난당했다가 되찾아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에 현재 보관하고 있습니다.







정자는 다시 1876년에 중수하였으며 앞면 3칸에 옆면 1칸 반 크기에다 팔작기와집에 정자주위에 토석담장을 둘렀습니다. 정자 앞 왼쪽으로 사주문을 세워 출입하게 했습니다. 정자 바깥으로는 3개의 연못을 만들었는데 시문에 연과 구기자, 국화, 소나무, 매화, 대나무를 심었다는 기록 등에 조선시대 민간 정원의 건축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자료라 합니다.






두곡 홍우정은 옥류암에 기거하면서 학문 증진과 후학을 양성했으며 태백오현과 교류하며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다. 내 차라리 죽을지언정 불의와 타협해 살고 싶지 않다”며 끝까지 벼슬길에 나가지 않다가 사재감직장을 잠깐 지냈을 뿐입니다.

 





사후에 영조는 두곡선생의 절의를 칭송하며 이조참의에 추증하였고 영조가 직접 ‘숭정처사’라는 칭호를 내렸습니다. 산림처사는 들어보았지만 숭정처사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1816년에 순조(16년)는 이조판서로 추증하고 이듬해에 ‘개절공’의 시호를 내렸으며 선생의 위폐는 구봉사와 문산사에 봉안했습니다.


옥류샘


봉화 옥류암



본관은 남양이며 자는 정이, 호는 두곡이며 형조판서를 지낸 조부 만전당 홍가신(1541~1615)과 부친은 한성서윤 홍영이며 다섯 형제 중 맏이로 대사헌과 대사성, 이조판서를 지낸 홍우원과 무과에 급제해서 제주목사와 수사를 지냈던 청백리 홍우량이 선생의 아우였습니다. 봉화 옥류암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31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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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192 | 봉화옥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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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2.08 06:55 신고

    덕분에 저도 여행하는 기분으로 보게 되었네요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한밤마을 돌담이 있는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여행


돌담마을 하면 제주도나 청산도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내륙에는 흙으로 어개어 돌담을 쌓은 마을이 대구에 있다 하여 대구 동구의 옻골마을에 갔다가 내친김에 팔공산만 넘으면 있다는 군위군 대율리 한밤마을의 돌담을 만났습니다. 이번에 포스팅은 돌담마을이 아니라 정겨운 한밤마을의 돌담 사이에 자리한 대율사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입니다.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691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연락처:054-380-6916




2009/04/05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아미산. 부처의 눈썹이 과연 이럴까?-경북 군위군 아미산(402.4m)

2014/12/02 - (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2014/12/05 -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2015/07/11 - (경북여행/군위여행)제2석굴암으로 불리는 석굴암에 군위 삼존 석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2014/12/26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화본리 오층석탑. 군위 덕림사 화본리 오층석탑을 만나다.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으로 불리는 대율리 석불은 문화재의 가치를 인정받아 1989년 4월에 보물 제988호에 지정되었습니다.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이 자리한 한밤마을은 팔공산의 그 너른 품에 안긴 형상입니다. 그래서 대율리 석불은 광배로 팔공산 주능선을 삼았는지 현재 광배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의 불두는 소발의 머리카락과 정수리에 혹처럼 큼지막하게 솟았으며 이는 살이나 머리뼈로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를 말합니다. 얼굴은 둥글면서 눈과 입은 그리 크지 않고 전체적으로 아담한 모습입니다. 짧은 목에 삼도가 있으며 그러나 어깨까지 길게 내려온 귀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양어깨에 걸쳐진 옷을 통견이라합니다. 군위대율리석불입상은 함양군 마천면 마애불입상과 같은 U자형 층단식으로 흘러내린 옷 주름이 온몸을 감싸며 무릎아래에서 안쪽으로 끝맺었는데 이는 인도의 굽타식 착의법을 묘사했습니다. 속이 보일 듯 말 듯한 얇은 옷 주름은 문외한인 제가 봐도 품위 있고 세련된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길게 내려진 오른손은 손바닥이 앞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모든 중생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부처님의 수인 중 하나인 여원인(與願印)을 뜻합니다, 왼손은 가슴까지 올려서 살짝 손바닥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양손과 발은 전체적으로 크게 표현을 해서 그런지 눈에 확 띄었습니다.





불신은 하나의 큰 돌에다 조각했다면 발은 따로 새긴 것을 시멘트인지 덧바른 것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넓직한 대좌 위에 부조하여 새긴 발과 불상은 조금은 수줍은 듯해 보이지만 불상의 전체적인 인상은 당당한 모습이며 통일신라 8세기 불상의 특징인 세련된 수법이 돋보이는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입니다. 이 석불은 한밤마을 이전에는 큰 사찰이 있었으며 그때 본존불로 모셔졌으나 폐사와 함게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많은 관광객이 군위군의 돌담마을을 보려고 찾습니다. 제주도의 돌담처럼 어디서 이런 돌이 많은 나와서 돌담을 쌓았는지 깜짝 놀랍니다. 돌담에 정신을 팔면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 석불 입상을 놓칠 수 있습니다. 한밤마을에서 꼭 대율사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을 챙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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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691 |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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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2.01 06:58 신고

    덕분에 구경 잘하고 갑니다




(경북여행/경주교동여행)경주 교동 최씨고택.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 최씨고택 여행.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최씨 고택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경주최씨 고택은 400여 년 동안 12대 9 진사를 배출한 만석꾼 집안으로 경주에 살았던 저는 경주 최부잣집이라 불렀습니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은 교동에 있습니다. 교동이란 지명은 682년 신라 신문왕 2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고려 때에는 향학이, 조선 시대에는 경주향교가 자리해서 교동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경주여행 교동최씨고택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69




2017/12/14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월정교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2016/11/10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여행. 가보지 않아도 가본것 같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석정, 화쟁국사비부, 보광전의 약사여래입상을 만나다.

2016/11/12 - (경주여행)경주 사천왕사지. 황량한 폐사지에 잡초만 무성, 초석만 천년 흔적을 말해주는 경주 사천왕사지 여행.

2016/11/08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신라 52대 효공왕릉. 신라 52대 효공왕릉 여행.


경주최씨 고택은 1700년경에 지금의 건물을 지을 때 경주향교의 유림이 반대하자 향교의 뜻을 적극 받아들여 향교건물 보다 두 단 낮게 터를 깎아내고 99칸의 저택을 지었습니다. 당시의 그런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경주최씨 최진립 장군의 성품에 기인한 후손의 뜻인지 모르겠지만, 건물의 규모에 비해서 경주최씨 고택은 화려하지 않고 그저 아담한 시골 아낙네를 닮은 듯 소박합니다.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는 경주최씨 최진립장군 사당이 있으며 여기서 조선 중기에 교동으로 옮겨와 경주 교동 최씨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에 화재가 일어나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가 화마에 불타버렸으나 2006년 큰 사랑채를 복원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에 보니까 작은 사랑채에는 주춧돌만 남아 있었는데 복원을 하려는지 정비된 모습이었습니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은 문간채, 사랑채, 안채와 고방 등이 현재 남아있습니다. 경주 최부잣집 하면 ‘타인능해’의 철학이 숨 쉬는 구례의 운조루와 같이 흉년에 주위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곳간을 열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사랑채에는 문객들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문객이 많은 집안을 보면 매일 많은 손님이 찾아오고 자연스럽게 접대가 많다 보니 대부분 그 집만의 비법인 가양주가 내려옵니다. 경주최씨 가양주 하면 술 좋아하시는 분은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경주 교동법주는 경주최부자집에만 내려오는 전통주이며 중요유형문화재 제86-3호에 지정되었습니다.



경주 교동법주의 유래를 보면 조선 숙종 때에 궁중의 음식을 관장했던 최국선이 낙향하여 빚었던 술로 궁중에서 유래된 비법으로 빚은 술이라 합니다. 교동법주는 9월에서 다음 해 4월까지가 술을 빚는 최적기라 합니다. 밑술로 밀누룩과 찹쌀을, 덧술로 찹쌀을 넣어 빚어서 100일 동안 숙성을 거쳐야만 미황색의 교동법주가 완성됩니다.

 


외관이 맑고 투명한 교동법주는 그윽한 향기와 맛을 가져 누구나 좋아하는 술이라는 평가입니다. 지금은 그의 10세손인 최경씨가 교동법주 기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럼 경주최씨 고택을 둘러보겠습니다. 일자형의 출입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복원한 큰 사랑채가 보무도 당당합니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복원을 기다리는 작은 사랑채의 주춧돌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단체 관광객이 있어 먼저 안채를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큰 목조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경주최씨 최부잣집의 부의 상징인 곳간입니다.



우리나라 목재 곳간건물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되었다 합니다. 앞면 5칸에 옆면 2칸이며 700~800석의 쌀가마를 보관했다 하니 어마하게 큰 건물로 아마 단독 건물로는 경주최씨 고택에서 가장 높고 큰 건물 같았습니다.

 




안채로 들어가는 쪽문을 지나면 건물은 ‘ㅁ’자 형태입니다. 안채 건물은 건립 당시 8동이었다 하나 지금은 3동만 남아있습니다. 장독대와 붉은 벽돌로 만든 높은 굴뚝을 보면서 교동 최씨 고택의 위상을 새삼 느끼게되었고 사랑채로 돌아 나왔습니다.



현재 화재로 타서 복원된 큰 사랑채가 있지만 불타기 전의 큰 사랑채는 조선 말기와 근대 시기에 나라를 되찾고자 독립운동과 의병에 뛰어들었던 많은 분이 머물렀다 합니다. 대표적인 분은 구한말 태백산 호랑이로 불렸던 영덕의 신돌석 장군, 면암 최익현 선생, 스웨덴의 구스타트 왕세자, 의친왕 이강 등입니다.






경주최씨 고택이 오늘날에도 남아 있게 된 것은 경주 교동 최씨만의 가훈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 기에는 땅을 널리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집안의 부를 후대에까지 잇는다는 것이 힘이 드는데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은 최진립 장군의 뒤를 이어 12대를 잇는 만석꾼 집안이 계속 이어진 것을 보면 대단한 집안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언뜻 보면 아주 쉬워 보입니다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자기 호주머니에 한 개가 있다면 한 개 더 갖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자신을 잘 다스림으로써 오늘날 존경받는 경주 교동 최부잣집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주 최부자집 12대 만석꾼이었던 독립유공자 최준 선생은 만석이나 되는 모든 재산을 나라를 찾는 독립운동과 교육사업에 내어 놓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국권 회복단과 대한 광복회에 군자금을 지원하였으며 대한 광복회의 재무를 맡아 활동하다 옥고를 치루기도 했습니다.





또한, 백산 안희재 선생과 백산상회를 설립하고 대표로 취임해서 독립운동에 자금을 지원하였고 상해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께도 군자금을 보내는 등 대한 독립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전 재산을 교육에 투자하여 나라를 이끌어 나갈 동량을 키우려고 대구에다 계림대학과 대구대학을 설립했는데 이게 오늘날 영남 대학교의 전신입니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을 돌아 나와 인근에 경주향교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경주 교동에서 마약 김밥으로 불리는 교동 김밥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반디인지 비단벌레인지 전동차가 요란하게 경주교동을 깨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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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교동 69 | 교동최씨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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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1.20 07:18 신고

    정말 규모가 어마어마 하군요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마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경북의 오지마을인 봉화여행은 벌써 하고 왔는데 차일피일 여행 포스팅을 미루다 보니 이제 포화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봉화여행에서 밀린 숙제 한 곳을 하려 합니다. 봉화에는 100여 개가 넘는 정자가 있어 정자의 고장이라 하는데 그중에서도 번잡하지 않고 한적하여 신선이 내려와 머물렀을 정도로 조용하고 아담한 명소 와선정을 소개합니다.





봉화 춘양 와선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
봉화 춘양 와선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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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정은 태백산이 있는 봉화군에서도 춘양목으로 유명한 춘양면 소재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마침 춘양면소재지 고택에서 1박했던 터라 안내판의 와선정을 보고 이른 아침에 운동 삼아 휑하니 차를 몰고 둘러보고 왔습니다. 와선정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번지에 속칭 골띠마을에 위치합니다.



작은 주차장에서 나무로 만든 아치형의 오현교를 건너면 바로 토담을 두른 와선정 정자입니다. 그런데 오현교 아래를 보면서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골짜기의 깊이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꼭 편편한 암반을 끌로 깊게 긁어낸 듯 패인 골짜기에는 높이 5m의 폭포가 걸려 있으며 그 옆에 벼랑에다 와선정을 세웠습니다.

 


낭떠러지에서 쏟아내듯 떨어지는 물보라가 은색으로 반짝여 은폭이라 불리며 그 폭포를 안은 바위가 사덕암인데 이는 “덕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바위”로 풀이하자면 태백오현의 뒤를 이어 다시 와선정은 ‘덕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외에도 폭포 옆 바위에는 와선정과 사덕암의 글씨가 남아 있으며 와선정은 산림 처사의 은둔처로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곳에 다섯 분의 은자가 소요하며 시문을 나누고 후진양성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태백오현이라 불렀습니다. 태백오현은 잠은 강협(1602~1671), 포옹 정양(1600~1668), 각금당 심장세(1594~1660), 두곡 홍우정(1595~1654), 손유당 홍석(1604~1680)을 칭하는데 모두 고려와 조선에서 명문가로 이름을 더날였던 후손들입니다.

 










1636년(인조14년)에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태종에 세 번 절하고 9번을 땅에다 이마를 박으며 조아린 ‘삼배구고두례’인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자 이들은 결기의 심정으로 벼슬을 버리고 태백산 기슭으로 내려왔고 모두 와선정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살면서 대명절의를 지키며 서로를 위로하고 우의를 다졌다 합니다.






은폭



그들이 우위를 다졌다는 와선대에다 세운 와선정은 앞면 2칸, 옆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인 마루 형태의 건물입니다. ‘와선정기’를 보면 와선정은 1832년(순조32년) 후손인 강씨와 심씨가 합해 정자를 세우고 난 후 ‘와선지’ ‘사덕암지’의 뜻을 따라 와선정이라 이름 하고 1895년에는 정자를 수리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각문을 들어서자 작은 돌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정자의 뒷면입니다. 계곡을 마주하며 세살분합문을 들어 올리는 열개식인 앞면과 달리 뒷면은 판자로 막아 각각 칸에 작은 문을 1개씩 달았고 좌우에는 흙담 1칸에 1칸은 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통간이며 우물마루에다 정자 바깥의 네면은 쪽마루를 돌렸지만, 뒷면을 제외한 삼면에는 평난간을 설치했습니다.

 








‘태백오현’은 조선 정조 14년에 왕명으로 병자호란 때 재신척화 순절자를 기록한 추념록인「존주록배신열전」에서 이들 다섯 선비를 태백오현이라 기록하고 받들며 경의를 표한대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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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 | 와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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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2.21 06:39 신고

    봄에 찾으면 정말 볼거리가 많겠군요





(경주남산여행)경주남산불곡마애여래좌상. 남산 감실부처 할매부처로 불리는 경주남산불곡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을 지탱하는 바위는 모두 소홀히 취급 할 수 없습니다. 이는 남산의 수많은 바위에 신라인의 숨결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경주 남산을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지붕 없는 박물관 또는 야외박물관이라 말합니다. 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보 1점에다 수많은 문화재가 보물로 지정되었고 단일장소로서 남산은 가장 많은 문화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주남산 불곡석불좌상(불곡마애여래좌상)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산 56

경주남산불곡마애여래좌상 보물 제198호



2016/07/09 - (경주 남산 여행/경주 남산 가볼만한 곳)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의 많은 불상과 석탑 문화재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경주남산칠불암마애불상군

2016/06/20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남산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을 보지 않고는 경주남산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없는 경주 남산의 모나리자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2016/04/28 - (경주여행/경주남산여행)동남산 서출지와 이요당, 연과 베롱나무가 꽃이 필때 최고 이름값을 한다는 1500년된 서출지와 조선시대 정자 이요당 여행.

2016/04/26 - (경주여행/남산여행)염불사지 삼층석탑. 은은한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린다는 경주 남산리 염불사지 삼층석탑 여행하기.

2013/03/08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남산)보일듯 말듯한 섬세한 조각기법이 예술.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그리고 지금도 확인되지 않은 많은 문화재가 바위 속에서 세상에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는 말인데 경주 남산에서 유행하는 웃스게 소리가 있습니다. 발에 채는 돌멩이도 문화재 일줄 모르니까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시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문화재가 있나 싶어 ㅎㅎ 보물찾기하는 심정으로 경주 남산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번 경주 남산여행에서는 아직 가보지 못했던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입니다. 경주 남산 불곡마애여래좌상은 주변의 보리사 석조여래좌상과 탑곡 여래불상군이 골짜기를 달리하며 몰려 있습니다. 항상 보리사와 옥룡암의 불상은 여러 번 찾았으나 조금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불곡마애여래좌상은 좀체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터에 이번에 답사하게 되어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감실에 모신 부처님은 여럿 있지만 바위를 조각한 석조불상과 바위면을 새긴 마애불에서 비해 상대적으로 그 숫자가 많지 않습니다. 하물며 경주 남산의 많은 부처님에서는 더 귀한 존재입니다. 경주 남산에서 만나는 감실 부처라는 신선암 마애불도 있지만, 이는 감실 흉내만 조금 낸 수준이라 한다면 불곡마애여래좌상은 온전하게 자연석을 1m 쯤 깊숙하게 파내고 그 안에다 돋을새김으로 1.42m 부처님을 조각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경주 남산의 감실부처는 남자가 아닌 여자의 모습입니다. 처음 불곡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어! 우리 엄마내”하며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진짜 엄마를 닮았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인 단아한 여인상인데 그 모습 때문인지 경주 남산 할매부처라는 애칭이 붙었습니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의 제작 시기는 조금은 차이가 있지만, 선덕여왕 재위 때인 7세기 전반에 제작되었으며 감실부처의 모델은 신라 여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선덕여왕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는 당시 여왕의 이미지와 함께 황룡사 구층목탑, 첨성대, 배동석불, 경주 남산 삼화령 애기부처 등 융성했던 신라불교 시기였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불곡 마애여래좌상을 보면 마음씨 좋으며 후덕한 엄마의 모습에 왜! 이제야 찾아왔는지 많이 후회되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뵙고 싶어 바위를 올랐습니다. 누구의 정성인지 모르겠지만 굵은 양초가 여러 개 불을 밝히며 꺼지지 않고 제 몸을 태우고 세상을 밝히는 게 꼭 할매 부처의 마음을 보는 듯했습니다.



할매부처의 머리부분은 두건이 귀부분을 덮은 듯 보였으며 둥근 얼굴에 눈은 돌하르방의 왕방울 같이 큼지막하게 표현했습니다. 어깨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옷은 양쪽 어깨에 걸친 통견입니다. 양손은 축 늘어진 소매 속에 서로 포개어 감춘 듯 보이며 부자연스러운 자세에서 발은 오른쪽만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할매부처는 고개를 살짝 숙인게 성당의 마리아상과도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두 종교의 관점이 같아서인가봅니다. 감실부처는 감실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자연채광을 한 온화한 부처의 얼굴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는 하루해가 가장 낮게 비칠 때인 동지를 전후해서 불그레한 빛이 바위를 비추면 꼭 살아 움직이는 듯 따뜻한 피가 흘러 바위가 화색이 돌면서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온전한 부처님이 드러납니다.

 


이 감실 부처님으로 인해서 부처님이 계시는 골짜기를 뜻하는 불곡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경주 남산은 많은 부처님이 있습니다. 대부분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지만 그 이전의 고신라 부처는 몇분 남아 있지 않는데 그중에 감실할매부처는 고신라 부처로서 현재 남아 있는 초고령 부처님 중 한 분입니다. 경주 남산 여행에서 꼭 보고와야 할 부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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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산 56 | 경주 남산불곡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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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2.20 07:09 신고

    일반 불상하고 다르게 보여서 많은 분들이 찾겠는데요

  2. 아필립 2017.12.25 21:45 신고

    이대장님^^ 잘보고 갑니다
    저도 내일 가보려구요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신라의 고도는 서라벌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경주가 옛날 신라의 수도입니다. 그런 경주에 현재 신라의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대역사가 진행 중입니다. 그 대역사가 월정교 복원공사입니다. 월정교는 경주를 관통하는 하천인 남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천에는 신라 천 년을 상징했던 다리가 하나가 아니고 두 곳이 있었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주 월정교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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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곳의 다리가 월정교와 춘양교입니다. 두 곳 모두 지금까지 무너진 교각 잔해만 하천바닥에 널부러저 있었습니다. 그 두 교각 중 한 곳인 월정교가 현재 새로운 대역사를 쓰고 복원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월정교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여행이라 했지만,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멀찍이서 주변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궁금해서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물었습니다. 언제쯤이면 공사가 끝나는냐고예 ㅎ ㅎ 그 관계자의 말로는 월정교 공사는 거의 끝났으며 주변 조경공사만 마무리하면 된다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내년 봄에는 모든 공사가 끝나 일반인도 관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내년 봄을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처음 월정교 복원공사를 본 게 아마 2년 전 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도 월정교 외관은 마무리된 것 같았는데 그러다 잊고 지내다, 최근에 블로그에서 월정교 야경 사진을 보고 당장 달려가야겠다 싶었습니다. 월정교 야경사진은 남천에 흐르는 불이 반영되어 정말 내 마음을 홀딱 반하게 만들었습니다. 포스팅 날짜를 보니까 그때가 11월 초순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남산 둘레길을 겸하면 되겠다 싶어 경주를 찾았습니다. 이른 아침인지라 상쾌한 기분을 즐기고 싶어 경주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월정교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3km 남짓한 거리를 걸으면서 경주의 다른 문화재를 곁눈질로 보는 즐거움도 누렸습니다. 계획은 도착해서 낮의 월정교를 찍고 둘레길을 걸은 다음 야경을 담으면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는 생각으로 월정교에 도착했지만, 월정교와 맞닥뜨린 나의 두 눈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실망보다 더한 낙담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블로그의 반영 야경은 어떻게 찍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월정교는 아직 겉모습만 마무리되었고 주변은 황량함 그대로였으며 특히 반영이 아름다웠던 월정교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물이 담겨 있을 만한 웅덩이도 없을 뿐 아니라 남천의 물도 말라 조금의 반영도 기대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웅장한 월정교의 누정과 교각의 모습에 그저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신라 시대의 월정교가 과연 이런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이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습니다. 그래도 섬세한 누각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천년 고도 경주를 상징하는 건물로서는 손색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월정교는 춘양교와 함께 서라벌의 왕궁을 들어서는 다리였습니다. 두다리는 신라 경덕왕 19년인 760년에 궁궐 남쪽을 흐르는 문천에다 놓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1280년인 고려 시대 충렬왕 6년에 중수했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500년 이상을 신라와 고려 시대를 넘나들면서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한 것은 틀림이 없나 봅니다.

 




월정교를 들어서면 곧바로 반월성의 끝과 연결되고 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요석궁이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자료로만 요석궁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조선 시대에 세워진 경주향교와 최 부자 고택이 있고 경주 교동마을의 고택체험과 상가로 탈바꿈했습니다. 현재 복원된 월정교의 19m 아래에는 요석공주와 원효대사 간의 연결 고리가 된 ‘유교’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원효는 의상과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도중에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닫고 그 길로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와 노래로서 민중 속을 파고드는 포교에 힘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효는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허락하려느냐. 내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다듬고자 하는데”라며 노래하고 다녔습니다.





태종무열왕은 원효의 노랫말을 알아듣고는 원효대사를 왕궁으로 불렀습니다. 원효는 태종무열왕이 찾는다는 전갈을 받고는 바로 그 길로 궁궐로 향했습니다. 원효는 문천(지금의 남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물에 풍덩 하고 빠져 걸쳤던 옷이 모두 젖어버렸습니다. 그 전갈을 태종무열왕이 받고는 당장 급한 거 없다며 먼저 젖은 옷과 몸을 말리라며 요석궁에 머물게 했습니다.

 


요석궁에는 무열왕의 공주인 요석공주가 머물던 궁이며 그날 밤 당장 사달이 났습니다. 그 사이에서 신라의 성현 중 한 분인 설총이 태어났습니다. 그 후 원효는 파계하여 소성거사라 하면서 대중 속을 파고드는 포교를 했습니다.. 원효가 발을 헛디뎌 빠졌던 다리의 흔적이 월정교 바로 아래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원효가 문천의 다리를 건널 때는 복원된 월정교처럼 누각을 올린 다리가 아닌 그저 평범하고 난간 없는 다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월정교 발굴조사에서 배 모양의 교각을 확인했는데 이는 상류에서 내려오는 센 물살을 고려한 듯 보입니다. 다리 길이는 60.57m이며 교각의 폭이 13m 인 것을 보면 오늘날 건설해도 거대한 다리라 생각됩니다. 교각 사이의 발굴조사에서 타다남은 목재와 기와 조각이 나왔던 것을 추정하면 교각 위에다 누각이 연결된 누교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이런 거대한 다리가 완공되었던 것도 놀랐지만 그 위에다 누각을 올린 다리라니 이를 보면 신라의 건축기술도 대단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월정교의 복원은 2008년~2013까지 66.15m의 교각과 누교 복원을 마쳤으며 그리고 총 110억 원을 들여 2017년까지 교량의 양쪽 끝에다 앞면 5칸, 옆면 3칸, 최고 높이 15.67m의 중층 건물인 문루를 각각 완공했습니다. 문루는 옆에서 보면 여덟 팔자 형태인 팔작기와지붕에 주심포양식입니다. 월정교는 2016년 형산강 8경에 선정되었고 국가지정문화재에 춘양교와 함께 사적 제457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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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교동 274 | 경주 춘양교지와 월정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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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2.15 07:06 신고

    복원 공사가 마무리가 되면 많은 분들이 찾겠군요

  2. 공수래공수거 2017.12.18 10:50 신고

    복원전에 갔었는데 다시 한번 다녀올 이유가 생겼군요^^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말이산고분군. 아라가야 지배지의 무덤 함안 말이산고분군 여행


함안을 대표하는 여행지는 함안군 가야읍 내에 있는 말이산고분군입니다. 이는 함안군을 소개하는 여행 광고판에 빠지지 않고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게 말이산고분군이며, 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번 함안 기차여행에서 함성 중학교의 함안 주리사지사자석탑과 함안읍의 소고기국밥, 그리고 무진정, 대산리 석조삼존상을 보고 성산산성을 올랐습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주소: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526-1

함안 말이산 고분군 연락처:055-580-2344




2014/08/05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성중학교 교정의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해태상을 보는 것 같아요.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2014/08/07 - (경남여행/함안여행) 함안대산리석불, 함안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을 보고 왔습니다.

2014/08/20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무진정. 한여름의 무더위도 걱정없는 정자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함안의 무진정.

2014/03/22 - (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백이산~숙제봉~오봉산 산행. 불사이충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의 산 백이산~숙제봉을 오르다

2010/03/06 - (경남여행/함안여행)휴천면 시암재 오도재. 지리산 제일 관문 오도재

2015/07/10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여항산 등산. 갓뎀산으로 불렸던 6.25 최대 격전지 함안 여항산 산행을 하다.



이번에 걸으면서 다니는 함안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말이산고분군과 함안박물관만을 남겨 놓았습니다. 무진정에서 성산산성을 올라 바로 말이산고분군으로 코스를 잡았지만, 산성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말이산고분군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내가 하산길을 찾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조남산에서 백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법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산행도 아니고 해서 느긋한 함안여행만을 생각하며 편안한 길로만 걷기로 하였기에 애써 무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출발지였던 무진정주차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성산산성 길은 무진정으로 돌아오게끔 길이 나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진동에서 가야읍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조남산을 돌아서니 왼쪽에 꼭 누에같이 납작 엎드린 말이산이 나타났습니다. 산 능에는 봉긋한 고분군도 보여 단박에 말이산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백산마을로 들어가는 마을길을 보며 왼쪽으로 꺾었습니다. 가로수의 은행나무는 자신의 몸을 둘렸던 나뭇잎을 모두 털어내는 듯 몸을 막 털듯이 떨었습니다. 그러자 우수수 은행잎은 떨어져 바람에 나뒹굴었으며 온 천지를 노랗게 물들였습니다. 그런 함안여행은 나의 발걸음을 더욱 급하게 했습니다.


성산산성이 있는 조남산



겨울의 해는 짧아 노루 꼬리만큼 남은 해의 꼬리를 붙잡으며 바쁘게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백산마을을 지나 도로를 건너서 말이산고분군의 끄트머리에 닿았습니다. 보통 말이산고분군은 함안박물관 쪽이나 함안군청 쪽에서 둘러보지만 저는 함안 읍내의 여러 문화재를 둘러보고 말이산고분군의 끝 부분인 31번 고분군부터 밟기 시작했습니다.





말이산고분군은 사적 제515호입니다 처음에는 사적 제84호 도항리 고분군과 사적 제85호 말산리 고분군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같은 시기에 조성된 하나의 고분군임을 발굴조사에서 밝혀지면서 통합하여 2011년 7월 재지정했습니다.











함안군 가야읍의 말이산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의 무덤이며 당시 찬란했던 아라가야의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로 아라가야의 도읍인 가야읍의 말이산 구릉지에 조성되어있습니다. 말이산(末伊山)의 뜻을 보면 머리산을 차음하여 한자로 표기한 것이며 이는 최고권력자를 상징하는 ‘우두머리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말이산의 규모는 남·북으로 1.9km 정도 길게 늘어선 주능선과 서쪽으로는 여덟 개의 지능선이 완만하게 흘러내려 그 구릉지에 고분군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지금 모습과는 다르게 북동쪽으로도 더 능선이 뻗어 나갔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진주~마산간 도로와 철도가 가설되고 마을이 커지면서 훼손되었다 합니다.





말이산고분군을 걷다 보면 주능선과 가지 능선의 봉우리에는 대형의 고분이 있고 가지능선의 산 사면에는 중소형고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말이산고분군은 현재 37개가 관리중이며 모두 번호를 붙여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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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외에도 고분으로 보이는 게 100여 기 정도이며 봉분이 깎여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생각한다면 1,000여 기 이상의 고분이 있었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습니다. 말이산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에 때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처음 발굴이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은 한반도 침략의 정당성인 임나일본부설(4세기 후반 고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백제와 가야·신라를 정벌해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200여 년간 지배했다는 학설)의 증거를 찾으려는 목적으로 6 가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말이산 4호 고분을 찬물에 밥 말아 먹듯 후다닥 10일 만에 발굴을 끝마쳤다 합니다.






그리고 1990대에 들어와 본격적인 학술조사가 10여회 이루어졌고 이때에 아라가야 최고지배자의 고분들로 밝혀졌습니다. 말이산고분군에는 기원전부터 6세기 전반의 다양한 무덤 양식인 덧널무덤, 널부덤, 구멍식돌덧널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조성되어 있어 아라가야의 성립에서 멸망까지를 고분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그중에서도 규모가 큰 고분은 아라가야 전성기였던 5세기 후반에 조성된 무덤으로 구덩식돌덧널무덤 방식이며. 길이가 10m에 너비가 2m인 무덤 안에서 5명의 순장인골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출토된 유물로는 불꽃무늬토기와 수레바퀴모양토기 등의 특이한 모양의 토기류와 쌍용문, 둥근고리큰칼, 투구, 갑옷, 말갑옷, 새모양장식 미늘쇠 등 철의 왕국이라 불렸던 아라가야의 발전된 다양한 철기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말이산고분군은 고분을 따라 둘레길이 아름답게 이어집니다. 경주에 있는 신라의 봉분은 대부분 평지에 자리했다면 가야의 말이산고분군은 야트막한 구릉에 봉긋하게 솟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여인의 아름다운 젖무덤이 연상될 정도로 유려한 곡선을 보여 예술의 사진이 나올 법도 한데 ㅋㅋ 마음먹은 대로 사진은 찍히지 않았습니다.

 










오뚝 솟은 고분을 끼고 탐방로는 이어졌습니다. 무덤을 보면서 산 자와 죽은 자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순간의 찰나인 한 끗 차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무슨 도를 터득한 사람도 아닌데 많은 봉분이 내 마음마저 차분하게 만들었습니다. 왼쪽 구릉 끝에 함안박물관건물이 보였습니다.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으면서 붉은 물을 토해내듯이 온 하늘을 붉게 물들였어 마치 하늘이 광란을 일으키는 것 같았습니다. 말이산고분군에서 맞는 저녁노을은 정말 탄성을 자아낼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걸음을 재촉하면서 함안박물관에 내려갔지만, 박물관은 업무를 마감하고 문을 닫은 뒤였습니다.

 












아쉽지만 이곳에서 출토된 많은 문화재는 다음 함안여행에서 보라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입구에 수레바퀴모양토기 모형을 보는 거로 만족하고 내려왔던 고갯길을 다시 올라 함안군청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함안 말이산 고분군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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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526-1 | 함안말이산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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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함안여행)신라시대 석성 함안 성산산성에서 시간여행을 하다. 함안 성산산성·조남산성


함안여행을 하면서 무진정 등 여러 곳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성산산성을 보고 왔는데 무진정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때 있는데도 들머리를 찾지 못해 “이산이 아닌가벼‘하고 되돌아 나오다가 우연히 무진정 주차장에서 성산산성 안내판을 찾았습니다.




함안 성산산성 사적 제67호 

함안 성산산성 주소:경상남도 함안군 함양읍 괴산리·가야읍 광정리 569





2014/03/22 - (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백이산~숙제봉~오봉산 산행. 불사이충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의 산 백이산~숙제봉을 오르다

2014/08/07 - (경남여행/함안여행) 함안대산리석불, 함안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을 보고 왔습니다.

2016/10/19 - (함안여행)고려동유적지. 조선에 있었던 고려땅 고려동을 아세요. 함안 고려동 유적지.

2015/07/10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여항산 등산. 갓뎀산으로 불렸던 6.25 최대 격전지 함안 여항산 산행을 하다.

2015/03/01 - (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원효암과 의상대. 한적함이 절간 같다는 말이 실감나게느껴지는 원효암 의상대 여행.




성산산성이 있는 조남산은 작은 산이지만 한바탕 부산을 떨고 올라야만 산성을 한 바퀴 돌 수 있습니다. 성산산성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게 스마트폰의 지도에는 조남산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발 전에 미리 성산산성의 위치를 확인했고 무진정이 있는 괴항마을에서 산으로 오르는 들머리를 찾았습니다.



처음에는 마을을 굽어보는 큰 나무에다 덱으로 전망대를 만들었고 그 옆으로 돌계단이 깔끔하게 설치되어 있어 아마 저 돌계단이 성산산성으로 오르는 길인가 싶다며 무진정과 대산리 석불상을 보고 되돌아와 돌계단 길을 올랐지만, 무덤가는 길이었습니다.



다시 내려와 마을 중간의 골짜기로 오르는 넓은 길로 들어섰습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둣빛 대나무가 길을 막아서면서 산길이 좁아지는 게 이 길도 아닌 것 같다며 다시 내려왔습니다.



동행한 일행은 "성산산성은 함안의 초·중·고등학생이 많이 찾는 유서 깊은 문화유적지라 길이 잘되어 있습니다"며 말했지만 스미트폰 앱의 지도에도 조남산으로 나와 우리는 "이산이 아닌가 보다"며 포기하고 말이산고분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무진정을 지나면서 주차장에서 성산산성의 작은 안내판을 보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던지 ”여깄네“하면서 돌아가신 아버님을 우연히 만날 만큼 반가웠습니다. 무진정 주차장에서 성산산성까지 거리는 약 700m 이며 과연 성산산성은 함안군민이 모두 찾는다는 문화유적지라 들머리부터 보도블록이 고갯마루까지 넓게 깔렸고 나머지는 흙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산산성을 조남산에 있다 하여 조남산성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진즉 알았다면 마을 소로로 올라도 되는데 ㅋㅋ 미처 그 생각을 못하고 성산산성을 찾는다고 죽도록 고생만 하고 일정도 차질이 생기고 하여튼 남은 일정을 생각해서 빨리 성산산성을 올라야 했습니다.

 




무진정 주차장에서부터 임도는 제법 가팔랐습니다. 한숨을 돌리며 턱 마루에 서서는 편안하게 길이 이어졌습니다. 멀리 하얀 띠가 보여 ”저게 뭐꼬“하며 가까이 가니 성산산성 발굴현장을 보호용 부직포를 덮었는데 현재에는 발굴이 중단된듯했습니다. 성산산성 안내판에는 조남산 정상부에 머리 띠 모양으로 둘러쌓은 퇴뫼식 산성이라 했습니다.











1991년 이후 4년간의 발굴조사를 하면서 석성임을 확인했습니다. 워낙 긴 세월을 지나다 보니 성벽이 허물어져 꼭 언덕처럼 낮게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산성이라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성산산성은 납작하게 다듬은 돌을 수직형태로 차곡차곡 쌓은 석축산성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합니다.









성산산성의 전체길이는 1.4km인데 가운데 작은 분지를 감싸며 그 주변의 높은 곳을 따라 성을 쌓았습니다. 남북은 긴 대신에 동서는 짧으며 타원형 형태입니다. 동쪽과 서쪽·남쪽에 각각 성문이 있고 우물 1개와 건물터 2곳도 확인되었습니다. 이 성산산성은 성(城)이 있는 산이라 해서 성산(城山)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지도서와 함주지에 가야 고성이라 기록하였으나 출토된 유물을 보면 대부분 신라기와, 토기 조각, 목제품, 과일씨 등 신라 시대 유물이라 합니다. 그리고 동문 터에서 27점의 목간이 나왔다 합니다. 목간은 종이 대신 나무에다 기록해 놓은 것을 말합니다.





성산산성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12년 동안 16회나 발굴조사를 하면서 6세기 중 반경에 쌓은 신라 시대 석축 산성임을 밝혀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동쪽 성벽 부근에서 부엽공법시설과 암거시설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배수시설이 눈에 띄는데 이는 계곡지형을 고려한 집수에 대비해 부엽층으로 덮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고대문서 역할을 했던 목간과 농공구와 방망이, 토기 이외에도 다양한 생활 목기가 나왔습니다. 2017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보도자료를 보면 2014년~2016년까지 17차 발굴조사를 했으며 출토된 23점의 목간에서 6세기 신라의 율령체계와 신라 왕경인(王京人)의 관직명인 ’대사(大舍)‘ 등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도 확인했다 합니다.

 




특히 네 면에 모두 글자가 기재된 사면 목간은 총 3점이 나왔는데 17차 발굴조사에서 나온 사면 목간 1점은 재질이 소나무이며 길이 34.4cm. 두께 1.0~1.8cm로 깎아 만들었고 총 56글자가 쓰여 있었다합니다.







이 목간을 보면 진내별 지방의 촌주가 중앙 출신 관리에게 보고서 형식으로 올린 문서로 6세기 중반의 신라 지방사회에까지 문서행정과 강력한 중앙정부의 공권력이 율령을 통해 지방까지 지배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합니다.


















함안 성산산성의 출토된 목간은 총 308점이며 이는 현재까지 출토된 우리나라 목간의 절반 정도로 많은 수량입니다. 함안여행에서 쉽게 지나치기 쉬운 함안 성산산성은 영남 최고의 민간정원인 무진정과 함께하면 아주 멋진 여행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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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569 | 함안성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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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2.06 07:10 신고

    개인적으로는 빨리 보였으면 좋겠네요 날씨가 추워지니 그리워집니다




(경북여행/포항여행)포항 오어사. 10월 여행지 포항 오어지와 오어사의 단풍에 반하다. 


포항 오어사는 오천읍에 있지만, 시내와 가까워 많은 시민이 휴식을 즐기려고 찾는 곳입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를 떠나서 정말 사람이 많이 찾습니다. 특히 가을빛이 오어지와 오어사를 물들이면 관광객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저도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때 오어사와 오어지 단풍구경을 위해 부산에서 길을 나섰습니다.





포항 오어사 주소: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향사리 34

포항 오어사 전화:054-292-9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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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산에서 포항은 포항~부산고속도로 때문에 아주 가까운 이웃이 되었습니다. 송정 톨게이트를 올리면 포항 톨게이트까지 40분이면 통과한다고 하니 어지간한 부산 시내보다도 더욱 가깝습니다. 그만큼 손쉽게 갈수 있습니다. 오어사·오어지 아랫마을까지는 수월하게 도착했습니다.

 


주말에는 오어지 둑방 아래에 만들어둔 두 곳의 대형주차장에서 주차하고 걸어서 올라가야 하지만 평일에는 오어사 앞 주차장까지 올라가서 주차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오어사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올라가는 도중 관광버스와 도롯가에 주차된 차량 그리고 들어가고 나오는 차량이 뒤섞여 완전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우리는 괜히 차를 끌고 올라왔다며 후회 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할수 없이 가는 데 까지 일단 가보자며 차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일주문 직전 다리를 건너기 전에 오른쪽에 주차공간이 있어 그곳에 냅다 그냥 꽂아 넣고 오어지를 돌아 오어사로 걸어갔습니다. 야!! 그곳에 주차하길 잘했다며 밀린 차량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갔습니다.





남들이 보면 꼭 차를 안 가지고 올라온 사람처럼 하고 말입니다. 오어사의 작은 출입문을 들어서면 먼저 큰 나무가 있는데 요게 보리수나무입니다. 보리수는 부처임이 열반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들었다 하여 불교에서는 하나의 상징적인 나무입니다.






그리고 이 보리수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더욱 불교와 밀접한 나무라 오어사 경내에 이 보리수나무가 있는 것을 보면 천년고찰의 오어사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습니다. 창건할 때는 항사사라 불렀으며 왜 오어사로 바뀌게 되었는지 그 사연이 있습니다.







 이는 삼국유사 제4권 의해편에 전하는데 오어사와 오어지는 원효대사와 혜공선사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운제산에서 혜공은 항사사(현 오어사)에 머물렀고 원효는 운제산 자락에다 초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그러자 혜공은 원효가 당나라에 유학을 떠난다는 소문을 듣고 먼저 당나라 유학을 다녀온 혜공으로서는 원효를 시험해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원효에게 제안하자 원효도 단박에 OK 하며 수긍했습니다. 혜공의 제안은 기발했습니다. 절 앞에 흐르는 계곡을 가리키며 물고기를 삼켜서 대변을 본 뒤 삼켰던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 이긴 걸로 하자였습니다.

 




원효와 혜공은 물속에 뛰어들어 각자 물고기를 한 마리씩 삼켰습니다. 그런데 삼켰던 물고기 중 한 마리는 죽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며 놀았습니다. 두 대사가 그 물고기를 가리키며 서로 내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인다며 고함쳤습니다. 그 후에 항사사는 나오(吾)자에 고기어(魚)자인 오어사가 되었다 합니다.

 


현재까지도 서로 자신의 물고기가 살았다 하여 물고기 주인은 할 수 없다 합니다. 오어사는 신라의 4대 성인이라는 원효·의상·자장·혜공선사가 머물렀던 사찰이며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스님도 수행했던 유서깊은 사찰입니다.

 


그리고 운제산의 유래를 보면 원효와 의상은 오어사 맞은 편 바위벼랑에서 수행하였고 자장과 혜공은 지금의 자장암 벼랑에서 각각 수행하다 구름을 모아서 사다리를 만들어 서로 내왕했다 하여 구름사다리 산인 운제산이 되었다 합니다.

 




오어사를 들어서면 먼저 오어사의 보물인 범종은 빠트리지 않고 보고와야 합니다. 오어사 범종과 원효대사의 삿갓이 오어사 박물관에 현재 전시 중입니다. 오어사 범종은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 합니다. 발견하게 된 사연도 오어사와 운제산의 유래처럼 재미있습니다.

 


오어사 앞의 오어지 저수지를 공사하다 진흙 속에 묻혀있던 것을 우연하게 찾아내어 보전처리를 거쳐 현재 전시 중입니다. 범종에는 고려 때인 1216년(고종3)에 대구 동화사 순성대사가 주조하고 종을 제작한 사람은 순광이란 이름까지 나와 있습니다.





신라시대 범종 양식을 잇고 있으며 종을 메 다는 용뉴와 우리나라 범종에만 있다는 음통은 용이 마치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이 힘차며 섬세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원효대사의 삿갓이 진짜로 맞는다면 삿갓은 1,300년 전의 것입니다.

 





삿갓을 보면 완전 누더기같이 헤어져 머리에 쓰고 다녔다는 삿갓이 의심될 정도로 훼손이 심한 상태입니다. 삿갓은 종이와 실로 만들었고 안에는 솜을 넣고 바깥에다 풀뿌리로 만들었습니다.





오어사 대웅전은 석가 삼존불을 주불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상량문을 보면 1741년(영조17)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앞면 3칸에 옆면 2칸에 다포형식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팔자모양을 한 팔작기와지붕입니다. 201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2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전체적인 대웅전은 화려하며 많은 공을 들인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자장암은 신라의 네 성인 중 한 분인 자장율사께서 수도했던 곳입니다. 지금은 태국에서 부처님 사리 7과를 기증받아 1998년 세운 금강계단이 있습니다.






 

오어사에서 보면 깎아지른 벼랑 위에 제비집 형태로 완전 벽에 붙었을 정도로 불안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20여 분 가파른 산길을 올라 자장암을 찾아가면 밑에서 봤던 것보다는 그리 위험하지 않아 안도하게 되는 두 얼굴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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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 | 오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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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12.01 11:40 신고

    오어사는 봄에만 2번 갔는데 다음엔 가을에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2. 핑구야 날자 2017.12.02 07:01 신고

    가을이 기다려집니다 올해는 어쩔 수 없겠네요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위양지. 가을 단풍이 아름다웠던 밀양 위양지 여행.


지난 주말 밀양시청도면 가는 길에 위양지를 보러 갔습니다. 아침 일찍 부산에서 출발해서 위양지에 조금은 이른 오전 9시경에 도착했는데 많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왔다갔다하면서 위양지 담기에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잠시 위양지를 둘러보기로 하고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습니다.





밀양 위양지 주소: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297





겨울의 삭풍은 아니지만 그래도 늦가을의 매서운 추위가 차를 나서는 나의 몸을 휘감았습니다. 손이 시럽다고 느끼면서도 혹시 물안개가 피어오르나 싶어 물가로 달려갔지만 위양지를 휘감은 물안개는 볼 수 없었고 그냥 휑한 상태였습니다.





위양지는 사계절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특히 5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꽃망울을 터트리는 이팝나무는 더욱 유명합니다. 위양지를 휘감은 이팝나무는 팝콘이 터지듯 일제히 만개하면 하늘도 하얗고 세상도 하얗고 위양지 물속도 하얗게 비쳐 그야말로 순백의 하얀색으로 치장합니다.





이때의 위양지는 전국의 사진작가를 불러모아 자신의 가치를 확 끌어 올리면서 위양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냅니다. 그러나 여름의 위양지 또한 이팝나무를 비롯한 노거수들이 일제히 녹색으로 갈아입어 시원한 정자나무로서 휴식을 제공해 줍니다.


 






가을에는 그 푸르렀던 나무가 서서히 붉은색으로 치장하는 모습은 위양지의 최고 볼거리입니다. 위양지의 가을 색이 궁금해서 5월 이팝나무의 위양지를 마다하고 찾았습니다. 시간은 오전 9시경, 오래된 고물 디카를 들고 위양지 둘레길을 나섰습니다.





카메라를 든 동호인이 여러 명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위양지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건졌는지 모두 즐거운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좋은 게 있나 싶어 나섰지만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붉게 변한 나뭇잎과 주위의 산만 자꾸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간이 맞지 않았는지 반영도 저에게는 보이지 않고 해서 그냥 이것저것 담으려고 카메라 셔터를 쿡쿡 눌렀습니다. 그리고 한 바퀴를 다 돌았더니 대략 1km쯤 되었습니다. 위양지는 신라 시대에 세워진 저수지입니다. 그만큼 역사성을 가진 오래된 저수지라 놀라웠습니다.

 




하기야 제방에 심어진 굵은 나무를 보면 족히 수백 년은 된 것으로 보여 위양지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위양지(位良池)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양민을 위한다는 뜻으로 임금이 백성을 위해 쌓은 저수지입니다.





이런 걸 보면 조선 시대에는 위양지가 이 근방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는 정말 유용한 저수지였을 거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아래쪽인 퇴로마을 앞에 규모가 엄청나게 큰 퇴로저수지 있습니다. 위양지는 신라와 고려를 거쳐오다 1634년에 밀주 부사인 이유달이 다시 쌓았다 합니다.

 










현재 위양지 안에는 작은 섬이 여러 개 있으며 그중 가장 큰 섬에 안동권씨가 세운 완재정이 분위기 있게 서 있고 위양지 또한 안동권씨 집안에서 관리하고 있다 합니다. 현재 위양지는 농사용수인 저수지 기능도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는 아름다운 경승지로서 더 큰 기능을 한다 하겠습니다.




이제 내년 이팝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5월이 손꼽아 기다려 집니다. 오늘 가을 단풍의 위양지를 만났다면 이팝나무가 화려한 5월의 위양지를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고 사진을 담고 싶습니다. 위양못 이팝나무숲은 ‘2016년 제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했으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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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297 | 위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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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1.29 07:08 신고

    내년 가을을 기약해야 될 꺼 같아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무진정. 영남을 대표하는 민간정원 함안 무진정의 가을 정취를 만나다.


영양 서석지,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은 우리나라 민간정원을 가장 대표하는 곳으로 꼽습니다. 그러나 이외에도 조선의 많은 선비는 연못을 만들고 그 속에 정자를 짓고 하면서 자연을 즐기는 삶을 즐겼습니다. 대부분 정치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산림처사로서 은둔하며 안빈낙도의 삶을 즐기려고 지었던 정자이며 함안 무진정도 그중 하나입니다.






경남 함안 무진정 주소: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547

경남 함안 무진정 연락처:055-580-2301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2008/11/24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방어산 마애불. 함안의 방어산에 예술성있는 마애불 찾아가기

2014/03/22 - (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백이산~숙제봉~오봉산 산행. 불사이충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의 산 백이산~숙제봉을 오르다

2014/08/07 - (경남여행/함안여행) 함안대산리석불, 함안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을 보고 왔습니다.

2014/08/20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무진정. 한여름의 무더위도 걱정없는 정자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함안의 무진정.

2015/03/01 - (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원효암과 의상대. 한적함이 절간 같다는 말이 실감나게느껴지는 원효암 의상대 여행.

2016/10/19 - (함안여행)고려동유적지. 조선에 있었던 고려땅 고려동을 아세요. 함안 고려동 유적지.





무진정 조삼선생은 성종 4년인 1473년 태어났습니다. 조선 중기 때 문신이며 자는 노숙(魯叔)이고 호는 무진정(無盡亭)입니다. 어계 조려선생의 손자이며 진산공 동호선생의 셋째였습니다. 17세에 진사에 합격하였고 그 뒤에 식년 문과에 급제하면서 함양, 창원, 대구, 성주, 상주 등에서 목사와 부사를 역임했습니다.



그리고 사헌부집의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냈을 때 일화가 지금도 회자하는데 조삼선생은 책 읽기를 즐겼다 합니다. 하루는 계집종이 조반을 들고 왔는데 조삼은 그 사실도 모르고 책 읽기만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계집종은 밥을 다 비웠다고 생각하고 밥상을 내어 나갔고 점심도 마찬가지로 그리했습니다. 해가 지자 조삼선생은 배가 출출해졌는지 그때야 “왜 조반을 들리지 않느냐?”며 계집종을 불렀다 합니다. 



조삼선생은 관직에 있으면서 관리의 편 가르기를 보고 이에 염증을 느끼자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하며 무진정을 세우고 기거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함께했던 동료는 모두 대윤과 소윤이 반목하는 과정에서 소윤이 대윤을 몰아낸 사건인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희생되자 선생의 혜안에 모든 사람이 감탄했다 합니다.







함안의 무진정을 1542년 주세붕선생이 기문을 짓고 무진정 현판도 남겼다 합니다. 기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선생은 다섯 고을의 원님을 역임하시다가 일찌감치 귀거래사를 읊으시고는 이 정자의 높은 곳에 누워 푸른 산, 흰 구름으로 풍류의 병풍을 삼고, 맑은 바람, 밝은 달로 안내자를 삼아 증점(曾點)의 영이귀 같은 풍류를 누리고 도연명의 글과 같은 시흥을 펴시면서 고요한 가운데 그윽하고, 쓸쓸한 가운데 편안하고, 유유한 가운데 스스로 즐기시면서 화락하게 지내셨다”는 글로 조삼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무진정에서의 편안한 삶을 잘 나타내었습니다.

 










그리고 무진정에 대해 언급한 대목도 있습니다.

 “이 정자의 규모는 2동인데 서쪽은 온돌방이요, 동북은 모두 창으로 되어있고 창밖에는 단(壇)이 있어 구슬 문빗장과 같으며 그 아래는 푸른 암벽이다. 큰 냇물이 남쪽에서 흘러오는데 물굽이에는 맑은 거울과 같고, 돌아 흐르는 곳은 구슬 띠와 같아 부딪칠 때는 패옥(佩玉)소리 같으며, 암벽을 둘러 풍탄(楓灘)으로 흘러 들어간다. 시내 밖에는 천 여 그루되는 벽오동이 있고 동으로 바라보이는 모든 산봉우리는 다 노송들이 십리에 뻗어 울창하다”하시며 주세붕 선생은 무진정을 “선생은 일찍이 이르기를 내가 죽어 돌아갈 곳이라 하셨다.”라며 기문을 섰습니다.






주세붕의 글씨라는 무진정 현판



그리고 무진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조물주의 무진장이라고 까지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들에는 보리가 자라며 푸른 물결 같이 하늘을 흔들고 곡식이 익으면 누른 구름처럼 땅을 덮는다. 겨울에는 문을 닫고 햇볕을 쪼일 수 있고 여름에 창문을 열면 더위가 가까이 하지 못하니 삼도의 자주빛 비취색 같은 좋은 경치와 통하고 십주의 노을빛보다 낫다하였다. 맑은 바람이 저절로 불어오고 밝은 달이 먼저 이르니 반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온갖 경치가 모두 모였으니 진실로 조물주의 무진장이라 하겠다.“



그리고 기문에는 조삼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난 것을 두고도 “벼슬이 비록 영화롭기는 하지마는 욕이 따르는 것이므로 군자는 용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라며 모름지기 군자는 자신이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며 선생의 용퇴를 칭송했습니다.

 




무진정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팔자 모양인 팔작지붕건물입니다. 앞면 3칸 중 가운데 칸은 마루로 방을 꾸몄으며 건물의 바닥을 띄운 누마루 형식입니다. 보통 누마루를 사방에 돌렸어도 가운데 온돌방을 넣었던 정자를 자주 보았으며 마루방형태는 잘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함양·산청·거창 등 한겨울 추운 지방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춥고 따뜻해서 마루방을 넣었는지 그냥 짐작해봅니다. 둥근 기둥 위에는 조각물 등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으며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의 건물로 지어져 조선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또한, 조삼선생의 청렴하고 강직한 선비 정신과 성품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무진정 아래 연못의 넓이는 약 3,300㎡이지만 원래는 연못이 아니었다 합니다. 이곳은 남에서 북으로 함안천이 흘렀는데 후손들이 물길을 돌려내고 난 뒤 연못을 만들고 연못 안에 세 개의 섬을 만들면서 이를 연결하는 돌다리를 놓아 무진정의 운치를 한결 더했습니다.






그러면서 큰 섬에는 영송루란 정자까지 갖추어져 매년 여기서 함안의 민속놀이인 낙화놀이가 열립니다. 낙화놀이는 매년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액운을 태워 없애고 한해의 풍년 농사를 기원하며 열립니다. 낙화놀이 준비는 참나무로 미리 숯을 만들어 곱게 가루로 만들어서 한지에다 말아 낙화 타래를 완성합니다.





이 타래를 연못에 매달아 불을 붙이면 숯가루가 타면서 연못으로 떨어지는데 반딧불이 같은 영롱한 불빛이 물에 반사되어 황홀한 장관을 연출합니다. 저도 내년에는 사월초파일에 무진정을 한 번 찾아 함안 낙화놀이를 즐겨야겠습니다. 이 함안 낙화놀이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3호입니다.


부자 쌍절각

무진정 입구의 도롯가에 있는 부자 쌍절각입니다. 정유재란으로 조준남은 왜적이 이곳까지 몰려와 조상의 묘를 파헤치는 만행을 저지르자 조상의 욕됨을 보다 못한 나머지 나라를 전복한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꾸짖으며 무진정에 올라가서 북쪽에다 재배하고 자결하였으며 그의 아들 조계선은 1627년 정묘호란에 전사하자 이들 부자의 효와 충을 기린 쌍절각입니다.

 

부자 쌍절각 옆에 노비였던 대갑의 비석 '충노대갑지비'

그리고 쌍절각 옆에는 또 다른 비석이 있습니다. ‘충노대갑지비(忠奴大甲之碑)“를 새겨 놓았습니다. 이 비석은 정묘호란 때 주인 조계선을 따라 전장에 나갔던 노비 대갑이의 충절을 기린 비석입니다. 조계선이 의주 전투에서 전사하자 돌아와 그의 죽음을 전하고 주인을 구하지 못하고 혼자 돌아온 것을 자책하면서 무진정앞 검암천에 투신해 죽었습니다. 주인에 대한 절의를 지켰던 노비 대갑이의 의를 기린 뜻을 비석에 새겼으며 지금도 쌍절각옆에서 주인을 지키고 있습니다.

 









영송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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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547 | 무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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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1.27 07:13 신고

    이젠 겨울인 듯한 날씨지만 구경 잘하고 갑니다




(경남여행/창원여행)주남저수지. 철새의 낙원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일몰과 억새를 만나다.  


창녕의 우포늪을 이야기하면 반드시 바늘과 실처럼 따라 나오는 곳이 있습니다. 창원의 주남저수지입니다. 이곳은 우포늪과 같은 방식으로 생긴 저수지이며 낙동강이 홍수로 범람하면서 낮은 곳의 웅덩이에 물이 고여 생긴 우포늪과 생성이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창원 주남저수지 주소: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리

창원 주남저수지 전화:055-225-2798




2014/01/03 - (경남여행/창원여행)저도 콰이강의 다리. 사랑을 약속하는 장소로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 사랑의 저도 연륙교 여행

2010/05/03 - (경남여행/창원여행)창원 백월산 산행. 철새들이 떠난 주남저수지가 발아래 창원 백월산 산행

2015/07/08 - (경남여행/창원여행)정병산 우곡사. 은행나무와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는 약수로 유명한 전단산 우곡사를 여행했습니다.

2015/07/01 - (경남여행/창원여행)창원 정병산 산행. 낙남정맥의 아름다운 산길 근교산 창원 정병산~독수리바위~우곡사 산길을 등산하다.

2015/12/19 - (경남여행/창원여행) 의창구 주남저수지 주남돌다리. 800년을 돌다리도 두드려보며 건넜다는 주남 돌다리로 주남 새다리라 불립니다. 주남석교 여행하기

2015/12/22 - (경남여행/창원여행)주남저수지 람사르문화관. 람사르 총회가 열렸던 창원을 기념하는 주남저수지 람사르문화관에서 습지 보존의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주남저수지 람사르문화관


 


또한, 주남저수지도 우포늪과 같이 여러 개의 저수지가 모였는데 여기도 가장 큰 곳이 주남저수지이고 주위에 산남저수지와 동판저수지가 함께 붙어 있습니다. 이 세 곳을 통칭하여 주남저수지라 부릅니다. 주남저수지는 창원시 의창구 동읍에 있습니다. 철새들도 겨울나기 최적의 장소라 생각하며, 우리는 ‘철새들의 낙원’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만큼 먹이 활동이 좋은 곳으로 겨울 철새의 월동장소에 최적이라는 주남저수지를 가을이 끝나는 길에 여행하고 왔습니다. 철새는 아직 조금 빠른 감도 있었지만, 그래도 백월산으로 넘어가는 저녁 낙조에다 가을의 끝자락을 잡는 ‘마지막 잎새’의 심정으로 늦가을을 불태우는 갈대와 억새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흔히 여자의 마음을 갈대라고 비유합니다. 이곳에 오면 왜 갈대를 여자에다 비유하는지를 곱씹게 됩니다. 아마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이리 흔들, 저리 흔들려서 그러는가 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래도 줏대 있는 분 이 더 많은데 왜!! 갈대에 비유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둑을 걸으면 사각사각하며 흔들리며 나는 칼날 같은 소리에 도통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주남저수지는 바람이 심하게 붑니다. 한겨울의 주남저수지 날씨가 평상시 시베리아 날씨와 비슷한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시베리아의 철새들이 추위를 피하기는 딱 좋은가 봅니다.









주남저수지의 면적은 898ha이며 대략 109종의 철새가 겨울을 나려고 찾아온다 합니다. 제가 찾았을 때는 주남저수지와 하늘에도 오리들만 꽥꽥하며 설쳤습니다. 이른 탓으로 아직은 귀한 철새인 천연기념물 203호 재두루미와 205-2호인 노랑부리저어새 등 철새의 황태자라는 진객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도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남저수지는 수생식물과 수서곤충이 다양하게 서식하는 그야말로 자연생태계가 살아있는 저수지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1980년에 가창오리 5만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와 월동을 난 후부터 매년 그 숫자가 불어나면서 덩달아 다양한 철새도 날아오고 있다고합니다.

 






또한, 올해도 가창오리의 황홀한 군무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아쉽다면 다양한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주남저수지가 지금은 연꽃천지였습니다. 그만큼 주남저수지의 생태계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인데 현재에는 2년 전의 연꽃보다 그 규모가 몇 배 커진 듯했습니다. 이를 보면서 몇 년 만 지나면 주남저수지를 모두 뒤덮을 것 같았습니다.



철새들을 위해서 무슨 특별한 조치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주남저수지 둑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억새와 저녁노을은 역시 최고였습니다. 주남저수지를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태양은 짧은 시간이 아쉽기도 하지만 또 다른 내일이 있기에 일몰의 여운을 남기며 ‘안녕! 내일 또 만나’하고 보낼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 주남저수지 일몰을 보자며 찾았던 이번 주남저수지 해넘이 여행은 그래도 맑은 날씨 덕에 찾아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다시 철새들이 모여드는 겨울에 진객들을 만나기 위해 주남저수지를 또 찾아야겠습니다. 그 때는 이번에 만나지 못했던 것만큼 곱빼기로 왕창 원 없이 보고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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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리 | 주남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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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1.22 06:55 신고

    이제는 겨울인 거 같어요 아침저녁으로 추워서 손이 시렵더라구요 억새풀 잘 보고 갑니다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북상13경 갈계숲. 산림처사의 안식처 였던 거창 갈계숲을 여행하다. 


거창 갈계숲은 거창 북상 13경중에서 3경에 속하는 아름다운 숲입니다. 수승대 둘레길(거창 수승대 문화유산 여행길)을 걷느라고 늦게 도착했던 거창 북상면의 최고의 숲인 갈계숲을 상세하게 볼 수 없었던 게 지금까지도 많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거창 북상 13경의 3경 갈계숲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2014/06/29 - (경남여행/거창여행)우두산 고견사. 거창을 대표하는 고견사 원효, 의상, 최치원의 전설이 남아 있는 거창 가조 우두산 고견사 둘러보기.

2014/08/26 - (경남여행/거창여행)점필재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일원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 남상 일원정

2014/08/27 - (경남여행/거창여행)감악산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이 유명한 감악산 연수사에서 얼음물을 맞다.

2014/09/02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감악산 산행. 감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뼈속까지 시린 물맞는 약수탕에서 물맞이를 하다.

2014/09/03 - (경남여행/거창여행)김숙자사당. 영남사림파의 발흥이 된 거창 남상면 강호 김숙자 사당을 보고오다.



 


여유있는 갈계숲 여행을 하면서 자세한 포스팅을 해야겠지만 시간 제약으로 어쩔수 없이 다음으로 미루야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박 겉핥기식이라도 보고 왔던 거창 북상면 갈계숲을 소개하겠습니다. 갈계숲에 들어서면  우람한 굵기의 나무 밑둥치와 최소한 수령이 수백 년은 됨직한 고목은 아직도 푸름을 잃지 않고 싱싱하며 또한, 엄청나게 넓은 나무숲에 정말 놀랐습니다.

 


이를 보면은 치내마을에서 갈계숲의 위상을 잘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지금까지마을에서 갈계숲을 잘 보존하고 관리해서 오늘의 갈계숲은 거창을 찾는 관광객에게 최고의 힐링 숲이라는 찬사를 받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거창 북상 갈계숲은 1982년 11월에 거창군에서 천연보호림 2호로 지정하였습니다.




갈계숲의 수종을 보면 주종인 소나무를 위시하여 물오리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 족히 200~300년 된 고목이 군집해 있습니다. 2ha 넓이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친 나무는 한여름에 수림의 바다를 연상시키듯 넓고 내리쬐는 뙤약볕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여 북상면의 찾는 관광객에게 정자나무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정말 냉장고 속 같이 시원했습니다.







갈계숲은 세상에 나서지 않고 산림 처사로서 은둔하며 지냈던 선비들이 몸을 숨기기에 좋았던 곳으로 보입니다. 갈계리에 은진 임씨가 입향하게 된 것은 의령현감이었던 임천년은 세종이 승하하자 벼슬에서 물러나기로 작정하고 덕유산 아래 산자수명한 갈계리를 찾아 눌러 앉았다 합니다.

 


이분이 갈천선생의 증조부이며 북상면 갈계리는 은진임씨 세거지가 되었습니다. 송계사 계곡에서 흐르든 옥수는 숲머리에서 물길이 동서로 갈라져 흐르는데 이를 갈천이라 합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섬이 만들어져 나무 숲을 이루었으며 갈계숲이라 하였습니다. 갈계숲은 가선정이 있어 가선림이라하였고, 치내마을의 숲이라 하여 치내숲, 최근에 청학교 가설로 청학림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갈계숲은 조선 중기 갈천의 부친 석천공 임덕번께서 사마시에 합격하면서 진사가 되었으나 당시 나라의 정세가 예사롭지 않음을 깨닫고는 벼슬의 꿈을 접고 고향인 갈계에서 은거하며 처사로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갈천 임훈, 도계 임영과 첨모당 임운 삼형제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문인들과 시를 짓고 시문을 서로 나누며 은사(隱士)로서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 삶을 살게됩니다.



갈계숲에는 시문을 나누었을 법한 정자가 현재 3개 있습니다. 가선정, 도계정, 병암정입니다. ‘신선이 타고 노니는 정자’라는 가선정은 효자로 알려진 갈천 임훈선생을 추모하는 정자로 일제강점기인 1936년 후손에 의해 중창했습니다. 정자를 보면 날아갈 듯한 날렵한 모습에 풍류를 아는 고고한 선비의 정신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앞면 2칸, 옆면 2칸인 가선정은 팔작지붕 형태의 2층 누정의 기와건물입니다. 가선정은 특이하게도  2층 마루로 오르는 계단을 마루 밑에 두었으며 마루 판자를 열고 오르도록 설치했습니다. 이는 마루의 전체적인 공간활용을 하도록 했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정자입니다.





가선정의 단청을 보면 천장의 대들보에는 용무늬와 천장에는 갖가지 화려한 단청이 그려졌는데 그중에는 신선 4명과 바나나와 수박 그림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중창하면서 그린 것이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도계정은 도계 임영을 추모해 1889년 후손들이 경모제를 세웠다가 1934년 중건하였고 1935년에는 정자인 도계정을 건립했습니다. 임영은 갈천 임훈선생의 동생입니다. 재주와 학식이 걸출한 분이었다지만 31세에 요절해 생전에 남아 있던 저술마저 전하는 게 없었으며 근래에 임씨 문중에서 도계선생의 ‘석천세고’와 ‘도계선생유사집’을 간행했다 합니다.



도계정은 요절했던 임영선생을 기려서인지 단청은 하지 않았습니다. 앞면은 3칸, 옆면은 2칸이며 가운데다가 방을 넣고 좌·우 각 1칸의 마루에 계자난간을 둘렀습니다. 기와지붕 네 귀퉁이에는 활주를 세웠으며 보기에도 누각의 안정이 전체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또 하나의 정자는 보지 못하고 왔던 병암정입니다. 병암정은 첨모당 임운의 증손자인 병암 임여남이 일찍부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자연을 접하는 처사로 사는 삶을 살았으며 병암정은 후손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선생이 살았던 마을 서쪽 시냇가에 병풍처럼 둘러쳐 진 아름다운 곳을 병암이라하면서 자신의 호를 병암이라 했습니다.

 




그후에 후손들이 선조 임여남의 유허지에다 '병암정사'를 짓고 학문을 논하다가 1868년 화재로 불탔습니다. 1909년에 다시 그자리에다 작은 정자를 짓고 ‘병암정’이라 했습니다. 병암정은 두정자와는 다르게 단청이 돋보일 만큼 화려한 게 특징입니다.

 




또한, 작고 아담해서 그런지 여성적인 분위기가 매우 돋보이는 정자라고 하며 네 귀퉁에 활주까지 갖추어져 중후하고 단아한 조선 여인을 닮았다는 평입니다. 조선 선비상인 갈계숲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가선정, 도계정, 병암정의 누각 건물을 보면서, 다음에 다시 기회가 찾아온다면 갈계숲에서 산림 처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갈천 임훈선생과 그의 형제를 다시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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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 갈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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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1.20 07:45 신고

    올해 는 갈대숲 구경을 제대로 못했네요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도암정. 정자의 고장 봉화에서 만난 도암정


봉화를 2박 3일 여행하면서 가장 먼저 찾았던 곳이 경상북도 봉화군 붕화읍 거촌2리 황전마을 앞의 도암정(陶巖亭)입니다. 막상 황전마을을 찾아가면 전체적인 황전마을의 분위기와 규모는 알 수 없이 정자인 도암정만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고백하자면 황전마을은 도암정 주변에 보이는 민가가 전부라 생각했는데 포스팅을 하면서 안쪽에 경암헌고택과 함께 큰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곳까지 가보지 않았던 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봉화 도암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502

봉화 도암정 연락처:054-679-6392




2012/12/07 - (경북봉화여행)봉화 선달산산행. 신선이 놀던 곳 백두대간 선달산 산행

2012/12/16 - (경북여행/봉화여행)단맛없는 사이다 맛이 이런 맛.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 오전약수

2012/12/17 - (경북여행/봉화영월여행) 단군왕검을 뜻하는 박달나무, 우리나라에 박달령이 많은 이유가 있네. 백두대간 선달산 박달령

2013/11/13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청량산 전망대 청량산 축융봉 산행.청량산

2017/02/10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송이 용두식당. 춘향목의 솔향이 가득한 봉화 송이돌솥밥 용두산장에서 맛보다.


도암정은 부산에서 출발해 남안동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봉화로 들어서는 915번 도로를 타고 봉화읍으로 가다 우리 눈에 얻어걸린 정자입니다. 봉화에서 같이 여행할 팀과 봉화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도 조금 이른 것 같아 차를 되돌려 지나쳤던 도암정을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런 누정을 워낙 좋아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도암정 앞으로 사각 형태인 큰 인공연못에 연꽃은 모두 졌지만 넓은 연잎이 푸름을 잃지 않고 연못을 온통 뒤덮고 있었습니다. 안쪽 귀퉁이에 차를 붙였습니다. 연못을 끼고 돌면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도암정의 날아갈 듯한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연못 가운데는 돌로 쌓은 인공섬인 석가산에 심은 큰 소나무로 도암정의 고색창연한 정자의 운치는 한층 더했습니다. 사실 자연을 탐하는 선비는 연못 속의 석가산을 실제 산보다도 더욱 귀하게 여겨 정자를 끼고 있는 연못에는 석가산은 빼놓지 않는 하나의 필수품이라 합니다.





그만큼 운치를 더하고 귀한 존재였던 석가산을 도암정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도암정을 세웠던 황파 김종걸(黃坡 金宗傑 1628~1708)의 자연을 보는 심미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도암정은 우리나라 3대 전통정원인 담양 소쇄원, 영양 서석지, 보길도의 세연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연못과 누정의 아름다움은 그에 못지않게 나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려 그 기억이 뇌리에 오랫동안 가시지 않습니다.









이런 멋진 정원을 가졌던 도암정의 주인인 황파 김종걸이 어떤 선비였는지 많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본관은 의성이며 자는 국경(國卿)이고 호는 황파입니다. 선생은 효성이 지극해서 부모님의 공양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합니다. 부모님께서 편찮다면 밤낮으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병간호를 하였으며 부모님께서 좋아하는 음식과 몸에 좋다는 약초가 있다면 천 리 길이라도 마다치 않고 꼭 구해와서 부모님께 드시게 했다 합니다.

 




어느 날 모친이 몸져눕자 소태산(小太山)에다 하늘에 기도하는 제단을 쌓고 7일 밤낮으로 금식하며 성심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약을 구하러 나선 황파 앞에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 영약이 있는 곳을 안내해서 어머님의 병을 낫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합니다.





또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서 집안을 일으켜주길 바라는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여러 번 과거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으며,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벼슬의 꿈을 접고 평소 행하고자 했던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벗과 교류하며 독서와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삶을 살았습니다




도암정 편액



도암정 편액인 연비어약(鳶飛魚躍)입니다. 이는 시경에 나온 구절로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물속에는 고기가 뛰논다”




도암정 내부 편액



그래서 건립한 정자가 도암정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선생은 남의 장점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고 그 대신 상대방의 약점은 비방하지 않으며 선비와는 학문을 논하고 농사꾼과는 농사일로 이야기하는 등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어느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합니다.



또한, 평생을 몸과 마음을 닦는 수신제가에 힘썼으며 권우를 스승으로 모시고 권두인, 권두경, 이완, 이광정, 김성구 등과 교유하면서 명리는 탐하지 않고 학문 연구에 힘써 안동의 산실인 퇴계학파를 계승하는 선비로서 몸가짐을 가볍게 하지 않았던 정통선비입니다.



도암정 앞쪽은 연못을 내려 보게끔 개방되었다면 삼면은 담장을 둘렀습니다. 출입문은 도암정 좌우에다 사주문을 내어 바깥과 소통하게끔 했습니다. 마을 안쪽에는 의성김씨 종택인 경암헌고택이 있습니다. 도암정은 여기에 딸린 별서라 생각되었습니다.



도암정의 건축은 김종걸이 1650년인 효종 원년에 건립했으며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홑처마팔작지붕에 다락이 딸린 건물입니다. 건물은 연못에서 바로 축대를 쌓아 그 위에다 대충 바닥을 고르고 주초석에 두리기둥을 세웠습니다.





건물은 자연석을 최대한 활용해서 지었으며 앞쪽에다 계자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달아내어 금상첨화(錦上添花)와 같은 광경을 내려다보게끔 지어졌다면 뒤쪽은 가운데에다 한 칸의 마루를 넣고 좌우에는 온돌방을 한칸 식 두었습니다. 도암정은 당시의 유림이 찾아와서 시사를 논하고 시를 읊조리며 학문을 교류했던 곳이라 간결하게 꾸며진 정자를 보면서 주인장의 성품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도암정의 유래는 아마 마을의 진입로를 두고 솟은 3개의 바위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이 바위를 마을에서는 큰 단지(장독)를 닮았다 하여 ‘단지바위’ 또는 ‘독바위’라 부릅니다. 도암정의 ‘도(陶)’도 ‘질그릇도’이며 이는 단지를 뜻해서 독바위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독바위는 전설이 있습니다. 독바위에 쌓였던 기가 넘쳐나면 천 년에 한번식 바위의 뚜껑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년바위라고도 부르는데 독바위의 뚜껑이 열릴 때마다 독바위 속에 살던 황학 한 쌍이 황금알 두 개를 낳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합니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황전마을 독바위의 기를 받으면 머리가 총명해지고, 벼슬길에 나아가고,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다 하여 요즘에도 대학 입시 철이면 바위의 기를 받으려고 찾는 사람들이 많다합니다.



아마 이마을 출신이 정계와 학계, 재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신빙성있는 이야기가 아닌지... 저도 진즉 알았다면 한번 독바위의 기를 받아 보고 오는 건데 모르고 갔다가 그냥 돌아온 게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혹시 다시 봉화여행 기회가 찾아온다면 꼭 독바위의 기를 받고 경암헌고택을 찾아야겠습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4호

봉화 도암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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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502 | 도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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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11.15 11:54 신고

    경북의 정자만 소개하는 책도 있더라구요^^

  2. 핑구야 날자 2017.11.16 06:56 신고

    다른 곳에 비해 더 정감 있어 좋아 보어요 잘 보고 갑니다




(경남창녕여행)가을이 물든 창녕 우포늪에 흠뻑 빠지다. 창녕 우포늪


11월 부산을 위시한 경남지방에는 어디를 가도 붉은색의 단풍이 자신을 불태우며 화려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을은 단풍만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계절만이 아닙니다. 갈대와 억새도 백조의 군무인 듯 흔들리는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화려하고 아름답기로는 단풍에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에 단풍도 보고 갈대도 구경하는 일거양득의 여행지를 찾아 창녕군 우포늪에 다녀왔습니다.






창녕 우포늪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 231-1

창녕 우포늪 전화:055-530-2161


2016/10/18 - (창녕여행)화왕산. 가을의 화왕산은 또 다른 얼굴, 핏빛 억새가 한창인 창녕 화왕산 억새산행을하다

2016/10/05 - (창녕여행)화왕산 화왕산성. 화왕산은 현재 억새 앓이 중. 임진왜란 홍의장군 곽재우와 의병들의 넋이 피빛인 억새가 되었다는 화왕산성

2016/09/24 - (창녕여행)창녕석빙고. 요즘 같은 지진에 더욱 빛나는 우리 문화재, 석빙고의 무지개 천장에 내진 설계가 적용된 조선시대 얼음창고 창녕석빙고.

2016/01/06 - (경남여행/창녕여행)남지유채꽃 남지수변공원. 18만평에 조성된 유채꽃길, 창녕 남지수변공원을 여행하다. 남지수변공원

2016/01/05 - (경남여행/창녕여행)낙동강 남지 개비리길. 개의 모성애가 뚫었다는 벼랑길인 남지 개비리길을 남지수변공원의 유채꽃 길과 함께 여행해보세요.





 


우포늪하면 그 뜻이 좀 생소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늪과는 많이 다릅니다. 흔히 늪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티브이나 영화에서 보면 늪 속에 사람이 빨려 들어가서 헤어나지 못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이런 곳을 늪이라 알고 있었는데 우포늪은 그저 물이 가득한 저수지 형태로 왜 우포를 늪지라 부르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창녕 우포늪의 생성은 평평한 땅의 가장자리가 푹 꺼져 물이 고인 웅덩이에 바닥은 진흙이 쌓여 웅덩이 주위로 수생식물이 잘 자라는 곳을 늪이라 합니다. 이룰 습지라고도 하는데 경남에는 우포늪과 주남저수지가 1998년 3월 세계 람사르협약에 등록하면서 그다음 해인 1999년 2월에 우포늪을 습지보호 지역으로 지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실 우포늪과 주남저수지는 부산 경남 인근의 출사지이며 철새 탐사지로 일부 사람에게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우포늪과 주남저수지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은 2008년 10월 제10차 람사르총회가 열리면서 공식 탐방 습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포늪은 총 4곳의 습지로 이루어졌는데 우포, 목포, 사지포와 쪽지벌이지만 규모면에서 가장 넓은 우포늪이 대표적입니다. 우포늪의 생성을 보면 화왕산에서 발원한 토평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입니다. 창녕은 낙동강의 하류에 있어 여름철 발생하는 홍수로 낙동강의 수위가 올라가면 자연적으로 강물이 범람하여 토평천으로 물이 역류하게 됩니다.


우포늪 생태관











역류한 물은 토평천 인근의 낮은 구릉지를 모두 침수시켰다가 낙동강의 수위가 점차 낮아지면서 이곳의 물도 서서히 줄어듭니다. 그러나 낙동강 보다 지면이 낮은 곳은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웅덩이를 만들었는데 이게 우포늪이 되었습니다. 우포늪은 창녕군 유어면 세진마을에서 주로 탐방이 이루어지며 우포늪 생태관도 있어 풍성한 우포늪 탐방을 즐길 수 있습니다.

 






우포늪 생태관은 즐길 시간도 짧고 유료라 패스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우포늪에서 어부의 어로 활동과 아주머니의 고동 줍는 모습, 담쟁이가 올라간 담벼락은 잎이 온통 붉은 물이 들었습니다. 그 속에 잠자리와 메뚜기 조형물이 현실감 있게 만들어져 있는게 우포늪의 자연생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다시 우포늪 입구로 나와 게이트를 통과했습니다.





우포늪 생명 길은 우포늪만 한 바퀴 도는데 약8.4km 거리입니다. 전 구간을 모두 걷는 것도 좋습니다만 우포늪을 느껴보기에는 우포늪을 오른쪽으로 돌아 목포제방 까지만 걸어도 전체적인 우포의 느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포늪 물가를 따라 너른 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따오기복원센터



청둥오리와 기러기가 한가하게 노닐고 있으며 때로는 역'V‘를 그리며 질서정연하게 화왕산 방향으로 날아가는 오리 때의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대략 1km를 걸었다면 왼쪽에 따오기 복원센터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인공으로 부화한 따오기의 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오래전 따오기는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텃새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서 따오기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래서 2008년 중국에서 따오기 한 쌍을 들여왔고 복원센터에서 번식시켜 우포늪에 방사할 계획이라 합니다. 그때가 되면 온 우포늪에서 따옥따옥 하는 따오기 소리를 들을 것 같습니다.

 






계절상 아직은 철새의 이동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가올 겨울에는 북쪽 시베리아에서 월동을 하기위해 많은 철새가 우포늪을 찾아옵니다. 그때는 정말 유용하게 사용될 탐조대가 중간중간마다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날은 바람 한 점 없이 평온한 날씨였습니다. 우포늪에 드리워진 산과 단풍으로 물든 나무의 반영을 선명하게 보면서 우포늪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질 수 있었습니다.





부엉덤을 지나면 다른 곳에는 없는 사초군락지가 펼쳐집니다. 노랑부리저어새가 큰 날개를 펼치며 화려한 군무를 뽐내었습니다. 이곳 제방은 비가 많이 올 때는 침수되어 건널 수 없지만, 한여름 장마 기간을 빼고는 토평천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갈 수 있습니다. 70년대 시골길인 신작로가 갑자기 나타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비포장도로입니다. 나뭇잎에 뽀얗게 흙먼지가 내려앉은 게 아마 우포늪의 생태계 보전 차원에서 포장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넓은 둔치에 살포시 내려앉은 갈대꽃이 빛을 받아 더욱 반짝였습니다. 우포늪의 물이 쪽지벌로 흐르는 입구는 한겨울철 진사님의 단골 촬영 포인트입니다.


노랑부리저어새



이는 이른 아침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우포에 고기잡이 나선 어부가 유유히 돛단배를 저며 나가는 모습을 담기 위해서인데 이는 우포늪을 알리는 단골 사진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요즘은 어부를 섭외해서 촬영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웃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포제방에 올라섰더니 잠잠하던 날씨가 갑자기 돌풍이 불어와 흙바람과 함께 몸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이곳을 벗어나려고 급하게 움직였습니다. 우리는 우포늪의 용신이 노했나 하면서 어서 빨리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빌었습니다. 그리도 심하게 바람이 불어도 우포늪의 아름다움은 모두 느낀 것 같아 걸어왔던 물가 옆길을 빠르게 되돌아 나갔습니다.

 














목포제방까지는 편도 약 3km에 왕복 6km이며 천천히 걸어도 2시간30분이면 충분합니다. 가을이 이제 끝나 겨울의 문턱으로 향해갑니다. 그러나 아직은 우포늪은 가을의 상징인 단풍과 갈대, 억새가 우포늪을 찾는 진객을 기쁘게 맞이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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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 231-1 | 우포늪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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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1.07 07:30 신고

    출사하기 좋은 곳이죠 많은 분들이 찾더라구요

  2. 공수래공수거 2017.11.08 16:11 신고

    우포 또 다녀 오고 싶어집니다^^




(경북여행/봉화여행)산타마을 분천역. 우리나라에도 산타마을이 있어요? 영동선 분천역 산타마을


우리나라에도 산타마을이 있습니다. 왜!! 뜬금없이 우리나라에 산타마을이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언제 한번 갈기 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기회가 생겼고 해서 여행과 출장을 겸해서 2박3일을 봉화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여행 중 3일째인 마지막 날 협곡열차의 출발지인 분천역, 체르마트길, 낙동강 비경길로 불리는 승부역 구간을 걷기로 하고 찾았습니다.





   분천역 산타마을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9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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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분천역에서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협곡열차인 관광열차를 타고 승부역에서 내려 다시 낙동강길인 영동선 철길을 따라 분천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걸었습니다. 이곳 출발지였던 분천역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산타마을입니다.



산타 하면 빨간 산타복을 입고 하얀 수염에 고깔모자를 쓴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가 꽃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멀리 하늘에서 쓩~~~하고 내려오는 모습을 모두 생각합니다. 실제 한번도 만나본적은 없지만, 꼭 여러 번 만난 듯한 착각을 들게 하는 산타할아버지,

 












산타클로스를 만나는 날은 추운 겨울인 12월 25일이며 이날을 우리는 크리스마스날이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계통 종교에서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날로 크리스마스이브 날 방에다 양말을 걸어두면 산타클로스가 몰래 나타나 양말에 선물을 넣고 사라진다고 해서 너도나도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두고 잠을 잤던 어린 시절이 모두 있을 것입니다. 저도 어릴 때 양말을 걸어두기도 했지만 이 산타클로스의 유래를 알아야 분천역의 산타마을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 터키 지역의 성 니콜라우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니콜라우스는 어느 가난한 집 앞을 지나다가 세 딸이 결혼할 적령기가 넘었는데도 지참금이 없어 결혼을 못한다는 딱한 사정을 듣고는 그날 밤에 몰래 그 집의 굴뚝으로 올라가서 굴뚝 안에다 금주머니를 떨어뜨렸는데 그게 마침 벽난로에 걸어두었던 양말에 쏙하고 들어갔습니다.







이일이 있고 난 뒤부터 미국에서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날 선물을 나누어 주는 게 일반화 되었으며 전 세계로 퍼졌다합니다. ‘한국대표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던 분천역의 산타마을은 1년 중 겨울은 12월 중하순부터 시작해 그다음 해 2월 중순까지 눈덮인 설국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산타마을을 즐길 수 있다면 7월 중하순부터 8월 중하순까지는 한여름의 산타마을을 조성해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도록 연2회 운영 중입니다.

 


그러나 분천역에 가시면 산타마을의 조형물과 분위기는 1년 내내 느끼게끔 해 놓았습니다. 분천역에 가시면 산타열차, 눈썰매장, 루돌프 얼음썰매장, 레일바이크, 마차 등의 체험 관광과 볼거리로는 역사 및 산타 조형물, 이글루, 트리와 대형풍차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경치가 좋은 산타마을이라도 금강산도 식후경입니다. 분천역에는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토속음식장터 운영과 농특산물 판매장, 산타 카페등을 운영하여 분천역 산타마을을 찾는 관광객을 함박웃음 짓게 합니다. 산타클로스 마을인 경북 봉화군 분천역은 경북 봉화에서도 태산준령에 둘러싸인 산간마을입니다.

 










지형적인 특성에다 워낙 오지 마을이다 보니 접근이 쉽지 않아 지금까지 자연경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청정지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봉화 여행은 교통의 불편을 감수해야만합니다. 부전역과 강릉역, 동해역 등 무궁화호가 일일 8회 운행하며 중부내륙순환열차와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일일 각각 4회와 6회가 운행 중입니다.





지금 이렇게라도 열차가 운행하게 된 것도 아마 동해와 영동선을 찾는 관광객이 대폭 늘어나서 운행하는 열차가 많아졌다 합니다. 그래도 부산 등지에서는 찾아가기가 쉽지 않은 분천역입니다. 또한, 분천이란 지명은 여우천의 물이 흘러 낙동강으로 합쳐진다 하여 부내라 했던 게 분천이 되었다 합니다.





영동선인 분천역은 1956년 1월1일 보통 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여름의 산타마을과 한겨울의 산타마을을 느끼고 싶다면 봉화군 분천역에서 청정 자연환경을 느끼며 힐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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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964-1 | 분천역산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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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1.06 07:32 신고

    싼타 할아버지가 있다니 정말 기분 좋은데요 올해도 아이들이 많이 기다리겠어요

  2. 공수래공수거 2017.11.06 16:07 신고

    여기는 다녀 왔던곳이라 반갑게 느껴집니다^^




(봉화여행/봉화가볼만한곳)봉화목재문화체험관. 춘양목의 고장 봉화목재문화체험관 여행하기


지금이야 철, 시멘트 등으로 목재의 효용가치가 많이 줄어 들어지만 20~30년전까지만 해도 목재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품목이었습니다. 예로부터 나무는 겨울에 추위를 이겨주는 땔감에다 더군다나 집을 짓는데 없어서는 안될 재료였습니다. 조선에서는 사계절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솔잎으로 선비들 사이에서는 매난국죽의 사군자와 함께 지조를 상징하는데 소나무를 포함시켰습니다. 당연히 산수화인 한국화에서 소나무가 빠지면 ‘앙코없는 찐방’으로 여길 정도로 샐각되어 휘어지고 꺽인 우리 소나무는 빠지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그만큼 소나무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만큼 중요합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구절로 151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전화:054-674-3363


봉화목재문화체험장 관람안내

봉화목재문화체험장 휴장일:1월1일, 설날, 추석연휴,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그다음날 휴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 개장시간:하절기: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1시간 전까지 입장)

동절기:오전9시~오후 5시까지(1시간 전까지 입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 관람요금:무료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체험료:재품별 별도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단체  체험객은 사전 예약을 꼭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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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 대해서 궁금한 것도 많고 해서 봉화 여행길에 먼저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을 찾았습니다. 이곳을 관람하면서 우리 소나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소나무중에서 가장 품종이 우수하고 단단한 소나무를 금강송이라합니다. 금강송하면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하고 고개를 꺄웃하실것입니다.



예!. 얼마전 숭례문이 화재로 불탔습니다. 그때 티비로 불타는 숭례문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 울었고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불탄 숭례문은 복원이 결정되었고 복원에 사용된 나무가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인 금강송입니다. 금강송은 단단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금강송 이외에도 지역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금강송은 우리나라 소나무를 대표하며 가장 우수한 품종으로 금강산 일대에서 주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금강송이라 부릅니다.

 


적송도 있는데요. 적송은 꼭 금강산과 동해의 고산이 아니라도 명산에 두루 분포하며 껍질이 붉고 속이 단단하고 가지 끝에 붙은 눈의 색깔이 붉은 소나무를 말하여 흔히 홍송이라고도 합니다. 강송도 있습니다. 이는 금강송을 줄인 말이며 강원도 금강산에서  경북 청송군까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동해안에서 곧게 자란 소나무입니다.



금강송의 대표나무인 황장목도 있습니다. 황장목은 이름에서 보듯이 나무의 단면이 창자처럼 생겼으며 속이 붉고 누렀다하여 황장목이라 불렸습니다. 황장목의 고귀함은 조선시대 왕이 승하하면 황장목으로 관을 짰다고합니다.



그리고 춘양목이 있습니다. 춘양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춘양면을 말합니다. 춘양목은 "춘양역에서 실려 온 소나무"을 뜻하며 이게 춘양목의 유래입니다. 1955년 7월 영암선이 개통되었는데 백두대간 일대에서 임산물과 광산물을 수송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또한, 봉화, 울진, 삼척 등지에서 목재를 벌채하면 춘양역에서 모두 모아 서울과 대도시로 팔려나갔습니다.

 


춘양에서 싣고 온 목재는 집을 짓는 현장의 실무자로부터 품질이 우수한 최고의 목재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 나무냐고 물으면 모두 춘양역에서 실어온다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입소문이 나서 질좋은 소나무하면 춘양목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춘양목은 단단하고 속이 붉으며 집을 짓는데 최고의 건축자재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나무가 금강송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춘양목 군락지에서 만났던 나무는 그야말로 쭉쭉빵빵 잘빠진 팔등신의 미녀를 닮아 정말 아름다웠는데 금강송이라 하는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이번에 경상북도 봉화팸투어를 하고 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뜻 깊었던 곳은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이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은 제가 꼭 한번 가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경북관광공사에서 봉화팸투어 목재문화제험장 공지를 보고 접수하여 참가한게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 덕택에 봉화군의 우수한 소나무인 춘양목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론을 익혔다면 이제는 현장 체험 인 나무를 이용한 만들기입니다. 망치로 못을 박고 접착제로 나무와 나무를 붙이며 어릴적 공작시간의 재미를 느끼는 멋진 체험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과 창평산림욕장 등의 관람은 무료입니다. 그리고 목재를 이용한 만들기 체험은 유료로 운영중입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은 2011년 9월 문을 열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면적을 보면 29,500㎡, 창평산림욕장은 95,000㎡ 의 규모입니다.



주요시설을 보면 2층 규모에 목공체험실, 공구실, 자재실, 목재도서관, 전시실, 어린이 체험관과 부대시설인 산림욕장, 자생식물단지, 야외교육장, 어린이 놀이시설, 잔디광장, 연못과 목재 육교, 전망대등이 갖추어져 부산에 생활하는 저로서는 이런 힐링 공간을 가까이 두고 있는 봉화 군민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안내도를 일별하고 계단을 오르면 2층이 목재문화제험장 입구입니다. 출입구옆에 나무로 만든 세발자전거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나무다 보니 조금은 툰탁해 보이지만 그래도 굴러가는게 신기했습니다. 체험관 견학을 온 아이들만 좋아하는게 아니었습니다. 어른들도 나무 세발자전거가 신기했던지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부러질까 불안했는데 그래도 튼튼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관은 모두 나무로 지어졌습니다. 그때문인지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했습니다. 입추도 지났지만 바깥의 온도는 찜통 더위로 쉽게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는데 목재로 만든 체험관 내부는 어디서 에어컨을 틀었는지 시원했습니다. 잠시후에 나무가 자연에어컨역할을 해서 시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것을 보면 나무가 그만큼 우리몸에 좋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요즘 통나무집이 인기인가 봅니다. 나도 빨리 돈을 벌어 통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관에는 우리소나무에 관해 많은 연구를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각으로 전시중입니다.  섬세하게 나무를 조각한 작품이 전시중인데 나무로 만들지 못하는게 없을 정도로 예술성 높은 전시품에 깜짝 놀랐습니다. 나무를 깎아만든 12지신상, 관음보살반가사유상 등 다양한 작품을 구경하고 봉화군의 춘양목에 대한 전시를 보고서야 조금은 춘양목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전시실 사진으로 구경하기




조선목수 도편수와 대목장 소목장 알아보기....








춘양목으로 조선 궁궐도 지었네요 


춘양목과 리기다 소나무 수피 모양을 비교하세요


춘양목에 대해 알아보아요??




봉화 이틀째 고택 체험을 했던 만산고택.. 춘양목으로 지어졌다합니다. 




일반 소나무와 춘양목 무엇이 다른가 우리 알아보아요?



당시 춘양목을 실어 날랐던 춘양역 전경. ㅎ 춘양에서 고택체험을 했는데 이곳에 가보지 안았던 것을 지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봉화목재민속체험관에서 여러가지 나무로 만들기 체험을 해보세요?



















우리나라에 나무 종류가 정말로 많습니다.

100가지 나무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어린이방













체험관 2층 내부를 일단 관람하고 밖으로 나와 창평 산림욕장을 걷기로했습니다. 숲해설가의 안내를 받으며 봉화목재문화체험관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숲속길로 들어갔습니다. 소나무에서 뿜어내는 짙은 솔향을 조금이라도 더 마시려고 더욱 크게 심호흡 했습니다.

 

창평산림욕장 걷기









청량감이 폐를 가득채웠더니 내 폐가 10년은 젊으진 듯 했습니다. 숲해설가의 싸리나무에 관한 어사박문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나무 숲길을 걸었더니 어느 새 정자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주위 경치는 소나무숲에 가렸지만 그래도 수확을 앞둔 황금들판이 나무 사이로 보였는데 농촌의 가을 풍경이 그림 같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음수대. 봉화목재문화공원은 모든게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다시 봉화목재문화체험관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몸과 마을을 힐링했다면 이번에는 목재 만들기 체험에 도전했습니다. 목재 체험장은 1층에 있었습니다. 2층에서 천장은 물론이고 벽체도 나무를 돌린 복도를 지나 나무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도전할 작품은 ‘손잡이 박스’였습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나무를 자르고 깎고 대패를 밀고 하는 게 아니라 요렇게 상자안에 체험하도록 딱들어있습니다. 뚜껑을 개봉합니다. 나이테가 그대로 살아 있는 매끈한 나무판과 재료가 들었습니다. 체험용 나무는 춘양목이 아니고 활엽수 나무라 했습니다.

 



손잡이 상자 개봉 전


손잡이 상자 개봉 후


판자와 못, 접착제와 모양을 낼 여러가지 스티커가 상자에 들어있고 망치는 따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춘양목은 체험하는 사소한 용으로 아마 사용할 수 없겠지요. 일단 판자를 자세히 보면 작은 홈이 나 있습니다. 홈이 있는 3개의 판자에다 망치를 가지고 못을 1/3 정도 들어가게 박습니다. 망치로 못대가리를 때릴 때 바른 자세로 때려야만 못이 휘어지지 않고 바로 들어갑니다. 잘못하면 못이 휘어져 망칠 수가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판자에다 못을 다 박았다면 좌우로 세우는 판자에다 손잡이가 되는 둥근 기둥을 끼웁니다. 그리고 나면 접착제를 가지고 못을 박은 반대편 부분과 손잡이가 있는 판자 아래 모서리 부분에다 잡착제 칠을 합니다. 어긋나지 않게 판자를 서로 맞추었다면 이제는 1/3 정도 박은 못을 끝까지 들어가도록 망치로 때려 박습니다.

 


망치로 못대가리를 살살 박으면서 점점 강도로 높여야 휘어지지 않고 끝까지 깨끗하게 박혀집니다. 사실 못질이 쉽지 않습니다. 어긋나지 않게 맞추어가며 판자에다 못을 다 박았다면 손으로 못대가리가 끝까지 잘 들어갔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판자가 서로 겹쳐진 부분을 확인합니다. 모난곳이 없이 깨끗하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저는 못대가리는 휘어지지 않고 깨끗한데 판자의 접합부분이 약간 어긋나 사포로 살살 문질렀습니다. 그래도 어긋난 부분은 감출 수 가 없었습니다. 나도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마음만은 뿌듯했습니다. 내가 잘 만들면 목재 장인의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나무로 멋진 만들기 체험을 마무리 했습니다.

 







봉화목재체험장 전경



이곳에서 시간의 여유가 있어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을 둘러 보기로 했습니다. 나무 육교를 건넜더니 정자가 나왔습니다. 전망대에서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전경이 다보였습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오솔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저곳이 뭐지!’하며 궁금해서 가보기로 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어린이 놀이터



넓은 터에 목재로 만든 어린이 놀이터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범선 같았습니다. 불연 듯 타이타닉이 생각나 “야! 저 꼭대기에 한번 서 보라“며 친구 등을 떠밀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 놀이시설인데 함부로 올라갈 수 없어 눈으로만 구경했습니다. 넓은 잔디 광장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웃고 뛰놀고해도 전혀 다치지 않을 것 같았으며 가족소풍장소로도 최고로 보였습니다.


소풍장소로 최고인 잔디광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보고 출발지로 내려 왔습니다. 이런 곳이 체험료만 빼고 모두 무료관람이라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부모님을 동반하면 참 좋은 곳이며 온가족이 소풍과 체험으로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곳입니다. 부산에서 온 저도 봉화목재문화체험장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힐링된 기분으로 다음여행지로 고고씽





※이 포스팅은 경북관광공사에서 주최한 '2017 창조지역사업 「나무사랑학교」 봉화 춘양목 팸투어에 참가하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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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363 | 봉화목재문화체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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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26 07:26 신고

    구경거리가 풍성해서 좋은데요 잘 보고 갑니디



거창 만월당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만월당과 임진왜란 의병 정용 비석을 만나다. 거창 만월당  


북상면의 갈계숲과 강선대 사이의 정용선생 유적지와 만월당을 여행했습니다. 만월당은 농산리 용수막 마을 도로 옆에 있습니다. 정용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카와 함께 집안 식구를 모아 의병을 조직하여 김면장군의 휘하에 들어갔습니다.





거창 만월당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314







조선 시대 3대 의병장 중 한 분인 김면은 거창과 고령에서 의병을 모아 군사를 일으켰으며 정용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선두에 서서 왜적과 싸웠습니다. 김면은 정용을 “충의로운 사람이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합니다.





여러 전투에 참여해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그의 마지막 전투인 진주성에서는 최경희의 휘하에 들어가 진주성을 지켰지만 사생결단으로 조여오는 왜적에 진주성은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정용은 두 조카에게 “우리가 적의 칼날에 죽는 거보다 남강에 빠져 죽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하며 두 조카와 함께 강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순절 12년 만인 1605년 선조 38년에 안문사가 관문을 보내옴에 따라 선조는 후손에게 조세와 부역을 면제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정용의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가지고 자식이 이익을 취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며 끝내 받지 않았다 합니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정용은 1539년 중종 34년에 갈계리의 본가에서 태어났으며 54세인 1592년에 의병으로 나가 1593년에 55세의 나이로 순절했습니다 그의 유적비가 현재 갈계리 용수막 만월당에 세워져 있습니다,




만월당

만월당은 1614년 만월당 정종주(1573~1653) 선생을 기려 처음지어졌다가 소실되었다합니다. 현재의 만월당은 1786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면 4칸에 옆면 1칸이며 옆에서 보면 사람 인자 모양인 겹처마 맞배지붕입니다. 남향을 보고 지어졌으며 가운데 2칸은 대청을 넣고 좌우 각각 1칸씩의 온돌방에 앞과 뒤로 툇마루를 달았습니다.

 

팔완


만월당정용비석

공포는 초익공집이며 5량가에 만월당 앞 마당에는 연못이 남아 있습니다.  정면에 만월당(滿月堂) 편액이 있으며 그 옆에는 팔완당(八玩堂)의 편액이 함께 걸려 있지만 건물의 공식 명칭은 만월당입니다. 





팔완당은 북상면 농산리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이후로 없어져 만월당에 함께 통합 복원하였습니다. 팔완당은 첨정을 역임한 정몽서를 기리고 있습니다. 만월당과 마주하며 진양 정씨 효우사가 있습니다. 만월당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70호입니다.


효우사

거창 만월당은 갈천선생의 문하였던 팔완당 정몽서와 손자인 만월당 종주를 모신 재실입니다. 그러다 2007년 맞은편에 효우사를 짓고 재례 기능은 모두 그쪽으로 옮겼갔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신 정용은 만월당 정종주의 삼촌으로 모두 한집안 일가입니다. 

만월당은 강당과 대문채로 구성되었으며 만월이란 당호에서 보듯이 밤에 물에 비친 달을 보기 위한 연못이 남아 있습니다. 

거창군에서 실시한 ‘거창 만월당의 기록화 조사 보고서’를 보면 만월당은 1786년 지어진 건축물로서 조선 중기 건축 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건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월당의 평면은 퇴칸을 사용하지 않은 홑집으로, 퇴칸으로 공간을 넓혀 겹집화 된 조선 후기의 건축물들과는 많이 다르게 지어졌으며 또한, 정면과 측면의 비율, 평면과 높이와의 관계로 결정되는 전통건축물의 비례체계에서 조금 다른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다합니다. 만월당은 조선 중기의 건축기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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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314 | 거창만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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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09.15 09:02 신고

    여긴 못 가봤네요
    다음번을 기약합니다^^

  2. *저녁노을* 2017.09.15 14:30 신고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3. 핑구야 날자 2017.09.16 08:10 신고

    거창 만월당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네요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겹처마인 눈썹지붕의 처마선이 아름다운 사랑채 동계정온고택을 만나다, 거창동계고택


조선 중기의 문신인 동계정온선생이 태어난 곳은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강동마을입니다. 동계선생은 절의를 상징하는 분으로 널리 알려져 거창 여행을 하면서 동계고택을 꼭 찾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기회가 닿아 거창을 둘러보면서 함께 동계정온고택을 찾아왔습니다.





거창 충신당 동계정온고택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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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선생이 태어난 집이지만 현재의 고택은 1820년인 순조 20년에 새롭게 지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동계선생이 생활했던 집이 아니라는 말씀. 동계고택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에 처음 지어졌습니다. 나무로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비바람에 노출되어 여러 번의 개보수가 있었는데 현재의 고택은 1820년에 지어졌다고 상량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문채는 일자형이며 가운데 솟을대문입니다. 출입문에 인조가 내린 정려문이 걸려있으며 안쪽으로 웅장한 사랑채 건물이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ㄱ'자의 사랑채에서 눈에 띄게 드러난 부분은 꺾인 부분에 누마루를 넣고 그 위에 올린 겹처마라 불리는 눈썹지붕입니다.

 


약간은 어색해 보이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겹처마는 정온선생의 절의를 상징하는 듯 보였습니다. 겹처마 덕분에 정온 고택의 위상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습니다. 눈썹지붕은 사랑채를 처음 지을 때 있었던 게 아니고 지붕의 처마가 건물에 비해서 작아 비가 누마루로 들이치고 하여 뒤에 새로 달아내었다고 합니다.



저는 고건축에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대부분의 고건축 전문가분의 공통된 의견인 것 같습니다. 사랑채는 남쪽을 향해 앉았고 앞과 뒤로 모두 툇마루를 달아내었으며 기단은 낮지만, 툇마루는 높게 만들었는데 이는 남부지방의 건물 특징중 하나라 합니다.

 

동계정온고택 사랑채



건물은 왼쪽부터 온돌방, 대청, 온돌방을 넣었으며 그 앞에 누마루를 배열했습니다. 온돌방의 앞쪽은 사랑방 역할을 하며 뒤쪽은 잠을 자는 침방으로 사용했습니다. 대청 또한 중간에 사잇문을 달아 나누어 사용했습니다. 누마루는 사방 문을 달아 개폐하도록 했는데 여닫이문의 문살이 눈이 부실 정도로 우아한 게 한국의 미를 보는 듯 매우 아름답습니다.





매미 소리 요란한 한여름에 누마루의 사방 문을 열고 책이라도 본다면 머리에 쏙쏙 들어올 것 같으며 또한, 드러누워 쿨쿨 낮 잠자기에 딱 그저 그만 일 것 같은 정온고택의 누마루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절의의 상징인 동계정온고택에서 한옥 민박체험을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6칸에 옆면 2칸 반이며 앞뒤로 두 줄로 된 겹집이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사실 안채는 살림집으로 현재에도 후손의 생활공간이며 출입할 수 없습니다. 빼꼼히 3칸의 중문을 통해 안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사랑채와 같은 남향이며 앞면 8칸에 옆면 3칸 반에 앞뒤로 툇마루가 있는 두 줄의 겹집으로 사랑채와 함께 주목받는 건물입니다.

 


건물의 구성은 대문채 사랑채, 안채, 아래채, 곳간채, 사당으로 이루어졌으며 거창의 동계고택은 영남 내륙의 추운 기후에 알맞게 우리나라 북부지방의 일반적인 겹집형태와 남부지방의 높은 툇마루를 잘 조화시킨 건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랑채에 걸린 충신당(忠信堂)과 모와(某窩)의 현판은 제주도에 유배 갔던 추사가 제주도의 대정에 유배왔었던 동계정온선생을 생각하며 훗날 정온의 놓은 절의를 기려 직접 동계고택을 찾아와 충신당을 적고갔다 합니다. 현재 그 현판은 거창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고택에 걸린 현판은 모작입니다.

 


모와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이씨조선의 마지막 왕족 의친왕 이강이 남긴 현판이지만 도둑맞아 다시 복원하였으며 모화당 또한 대원군이 자주 찾아왔을 때 그때 쓴 현판이라 합니다.

 




대문채에는 인조가 병자호란의 절의를 기려 내린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문간공동계정온지문’의 정려가 걸려 있습니다. 안채 뒤편에는 신위를 영원히 모실 수 있다는 동계정온선생의 ‘불천위’ 사당이 있으며 이는 나라에 크게 이바지를 한 분에게만 내렸다 합니다. 그만큼 동계선생의 충절이 크다 하겠습니다.

 


동계 정온 선생은 광해군이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을 사사 하고 영창대군의 생모인 인목대비의 폐모론을 거론하자 도의에 어긋난다며 격렬하게 항의하고 반대하다가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제주도 대정에 위리안치의 위배형을 내립니다.

 


안채전경





동계는 인조반정으로 10년 만에 풀려났으며 대사간, 경상도 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지냈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명나라와의 의리를 내세워 청나라와의 척화를 주장하였으나 화의가 이루어지자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자 벼슬을 마다하고 낙향하여 덕유산 인근의 모리에서 은거하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돌아가신 다음 숙종은 영의정에 추증하였으며 광주 현절사. 제주 귤림서원, 함양 남계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현재 동계정온고택은 중요민속자료 제205호에 지정되었으며 유품은 중요민속자료 제218호에 각각 지정되었습니다.










인조가 내린 정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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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0-1 | 충신당동계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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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14 07:52 신고

    도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어서 볼 때마다 좋아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9.14 09:40 신고

    안채는 들어가지 말고 사진도 찍지말라 하시던데요 ㅡ.ㅡ;;
    여기 고택 체험 숙박료가 좀 비싸다고 주인 아주머니께서 직접
    이야기 하시더군요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동계정온선생의 모리재를 찾다. 거창 모리재


거창의 인물에서 동계정온선생은 큰 비중을 차지하며 조선 중기 충과 절의를 상징하는 인물로도 동계정온선생은 빼놓지 않고 거론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동계정온고택과 동계 선생이 말년에 머물렀던 모리재를 두고 많이 망설였습니다.





동계정온선생의 모리재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73



2014/08/24 - (경남맛집/거창맛집)거창 거열산성 건계정 맛집 삼산이수. 거창 함토음식인 갈비탕과 갈비찜이 유명한 삼산이수에서 갈비탕 먹고 왔습니다.

2014/07/01 - (경남여행/거창가조여행)거창 가조 미녀봉 산행. 만삭의 여인을 닮은 아름다운 산 거창 미녀봉 등산 넘 좋은 산행지.

2014/05/23 - (경남맛집/거창맛집)거창스포츠파크, 거열산성 맛집 구구추어탕. 거창 향토음식인 추어탕과 어탕국수 맛있게 하는 구구추어탕.

2014/01/10 - (경남맛집/거창맛집)가조 엄마손 추어탕. 추운날에 먹는 따뜻한 엄마손 어탕국수로 겨울을 이겨내세요.

2014/09/02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감악산 산행. 감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뼈속까지 시린 물맞는 약수탕에서 물맞이를 하다.





두 문화재를 두고 포스팅의 순서를 나름대로 고심했는데 그래서 동계선생의 절의에 상징을 뜻하는 모리재를 먼저 포스팅하기로 하고 동계 정온선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인근에 있는 집에서 그냥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시지 않고 정온선생이 모리(이름없는 동네)에서 은둔하며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는지 궁금했습니다.

 

화엽문

그러려면 먼저 동계정온선생에 대해 조금은 알아야 했습니다. 동계선생은 모리재와 인접한 위천면 강천리 강동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거창의 명소인 수승대와는 거리가 1k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입니다.



동계정온선생은 광해군 시절 선조의 적자였던 영창대군이 강화부사 정항에게 피살당하자 상소를 올려 그의 처벌과 인목대비 폐모론의 부당함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광해군은 동계의 격렬한 항의에 격분하였고 제주도 대정에다 위리안치의 유배형을 내렸습니다. 그 후 인조반정이 일어나 10년 만에 해배되면서 광해군 때 절의를 지킨 인물로 추앙받아 이조참판의 관직까지 올랐습니다.

 



1636년인 인조 14년에 10만 대군을 이끌고 청나라가 쳐들어와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패했으며 인조는 궁을 버리고 급기야 피난을 가기에 이르렀습니다. 봉림과 인평대군, 비빈 등은 강화도로 피신하고 여의치 않은 인조와 소현세자는 남한산성으로 일단 몸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에 의해 강화도가 함락되어 왕자 등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인조는 청 태종에게 항복하여 무릎을 꿇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였습니다. 청나라 화친파와 끝까지 싸우자며 척화를 주장하는 신하로 나누어졌습니다. 동계는 당시 명나라와의 의리를 내세우며 최명길 등이 내세운 화의 주장을 반대하다가 인조의 항복 소식을 듣고는 의분을 참지 못하고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합니다.




 

모리재


절명시의 앞부분을 보면 그의 애끓는 충절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임금의 욕봄이 이미 극에 달했는데

신하로서 어찌 죽음을 늦추겠습니까.

목숨을 버리고 의를 얻는 일이

지금이 바로 그렇게 할 때입니다“

동계의 자결은 시종이 발견하여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는 몸을 추스르자마자 낙향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덕유산에 들어가 은거합니다.


구소


모리재의 위치는 덕유산에서 흘러 내려온 한 가닥이 황석산, 거망산, 기백산, 금원산인 1천 미터의 고봉을 만들었는데 이들 산군을 일명 경남 알프스라 부릅니다. 그리고 금원산에서 북동쪽인 위천을 향해 뻗은 지맥이 현성산이며 그 능선 자락에 꼭꼭 숨어 세상과 담을 쌓은 곳에 있습니다. 너무 깊은 산골짜기에 있다하여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하여 모리가 되었는지 말입니다. 

 

 




그는 떠나면서 누가 나를 찾아 “어디로 갔냐고 묻거든 모리로 갔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돌과 풀을 엮어 움막을 짓고 ‘구소(鳩巢)’라 하였고 주위를 개간하여 기장과 조를 심고 풀뿌리로 연명하며 살았습니다. 그때 동계를 찾아온 손님에게 “돌아가서 아무에게나 나의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합니다.







모리재는 강선대에서 2km 남짓 골짜기를 올라야 합니다. 모리재까지는 일제강점기 때 벌목을 위해 만든 임도가 시멘트 길로 포장되었지만 꼬불꼬불 좁은 길은 모리재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채미헌



모리재 입구에는 2층의 누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1806년에 세웠으며 화엽루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이익공계 팔작지붕 기와 건물로 주변의 돌을 쌓아 주춧돌을 만들고 그 위에 누각 아래를 바치는 네모난 돌기둥과 둥근 나무기둥을 세운 층층의 누각입니다.




사당



각 모서리의 처마를 바치던 활주는 4개가 있어야 하지만 현재 2개만 남아있습니다. 적막강산이란 말이 어울리는 이런 깊은 산속에 화려한 단청과 섬세한 조각을 한 웅장한 누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각 밑을 지나면 정면의 높은 기단 위에 모리재가 있습니다. 앞면 6칸에 옆면 2칸인 팔작지붕으로 2칸의 대청에다 좌우로 온돌방을 넣었는데 이곳을 찾은 지역 유림이 선생을 추모하고 서로 강론하며 공부하던 곳입니다.





모리재는 1921년에 전체적인 중수를 하였고 마루에는 구소와 채미헌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모리재는 선생이 낙향하여 지낸 것을 기념하여 사후인 1654년에 유림이 영당을 세워 제향하다 소실하자 1707년에 중건하면서 모리재라 하였습니다. 마침 제가 도착했을 때 승용차가 내려가던 것을 보았는데 이곳 모리재에는 아마 동계 선생의 후손이 생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모리재 내부는 후손의 손길이 닿아서인지 깨끗한 편이었으며 건물 뒤쪽에 사당이 있었습니다. 먼저 사당 입구의 삼문은 각 1칸의 맞배지붕인 일주문이며 사당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초익공계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