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여행/양산여행)단풍색으로 가을 앓이 중인 천성산 원효암 여행. 양산 천성산 원효암
경남 양산 천성산(922m) 억새 산행을 하면서 원효암을 찾았습니다.
원효암은 통도사 말사로서 천성산 남쪽 해발 750m에 자리했습니다.
위치가 높아서 그런지 원효암을 두른 나뭇잎마다 곱게 붉은 물을 들이며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습니다.
양산 천성산 원효암 주소: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1-1
양산 천성산 원효암 전화:055-375-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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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원효암은 646년인 선덕여왕 15년에 원효대사께서 창건한 사찰입니다.
원효대사와 천성산은 아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천성산의 산 이름도 원적산에서 바뀐 이유이기도 합니다.
원효대사와 천성산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한번 알아보았습니다.
원효대사가 기장의 불광산 척판암(담운사)에 주석하다 혜안으로 중국의 태화사에 산사태가 나는 급박한 상황을 보았습니다.
원효는 급한 나머지 척판암 부엌 문짝을 뜯어 “해동의 원효가 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하다”의 ‘해동원효척판구중’이라 쓰고 하늘로 던졌습니다.
판자는 태화사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았고 태화사의 대중들이 하늘의 판자를 보고 모두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산사태가 일어나 태화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태화사 대중들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리고 판자에 적힌 해동의 원효가 법력으로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며 신라의 원효를 찾아왔습니다.
원효는 이들을 이끌고 원적산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원적산 산신령이 나타나 천명의 대중이 머물 자리를 안내하겠다며 원적산 계곡으로 인도하고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원효는 산신의 뜻을 받들어 그 자리에 신령각을 짓고 대둔사와 상·중·하 내원사 세웠습니다.
골짜기에는 89 암자를 짓고 분산시켜 수행에 정진하게 했습니다.
원효는 천명의 대중들을 원효암 옆 화엄벌에 불러 모아 화엄경을 강설하였으며 천명의 대중은 모두 성불하여 천성산으로 바뀌었습니다.
원효암의 유래는 그때 세운 89 암자 중 한곳이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그 이후 원효암의 뚜렷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현재 원효암은 1905년에 효은선사가 중창하였고, 경봉선사는 1976년 범종각과 범종을 세우고 1980년에 나지막한 법당을 중건했습니다.
원효암을 찾을 때 항상 보았던 대웅전 건물은 인법당의 형태라 하여 2018년 5월에 큰 규모의 대웅전을 새로 중건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서 그런지 새로 지은 대웅전은 이번에 처음 보았습니다.
새로 중건한 대웅전이 원효암 주변 산세와 정말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천성산 원효암에는 2점의 문화재가 있습니다.
1점은 1648년 인조 26년에 제작한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복장유물입니다.
높이가 77㎝ 크기로 원래 통도사 약사전에 봉안되었다가 원효암으로 옮겨 안치했습니다.
불상 내부의 복장유물에서 불상 조성 발원문과 인쇄본 다라니경, 후령통 등이 함께 나왔습니다.
불상은 법당 안에 안치되어 사진을 담지 못했습니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30호.
1906년 조성된 ‘양산 원효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은 대웅전 오른쪽 바위 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바깥에 있어 눈으로 쉽게 확인하고 사진도 담을 수 있습니다.
양산 원효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배치했습니다.
3 불상은 바위 면에다 깊게 새기지 않았고 매우 정교한 조각수법에 종이 위에 꼭 불화를 그린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삼존불입상을 보면 아득한 느낌이 들면서 얼마나 마음이 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미타여래 입상은 하반신이 길고 아래에서 약간 위로 쳐다보아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매우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좌·우에 배치한 보살상은 아미타 본존불을 향해 합장을 하고 원형두광을 갖추었습니다.
삼존불 상단에 나무아미타불 명문과 대세지보살 우측에 `세존 응화 2933년`의 명문을 통해 본존불의 존명이 아미타불이며 1906년에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