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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지리산 서암정사. 석굴법당 극락전의 불교예술품을 지리산 서암정사에서 만나다 


지리산 언저리를 돌다가 함양의 마천 칠선계곡 입구에 있는 서암정사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벽송사의 암자로 처음 시작했다가 절로 승격된 서암정사는 석굴법당으로 서는 현재 우리나라 근대 불교의 아름다움 예술품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한 100년 이후에는 아마 불교 문화재로 승격되는 것은 떼 놓은 당상 같은 그만큼 예술성이 모두 빼어났습니다.




칠선계곡 서암정사 주소: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279-2

 칠선계곡 서암정사 전화:055-962-5662


2008/10/13 - (경남여행/함양여행)지리산 칠선계곡 비선담 단풍 여행. 지리산 칠선계곡의 비선담에도 붉은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2008/10/17 - (경남여행/함양여행)지리산 칠선계곡 산행. 3시간짜리 칠선계곡을 더 길게 산행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2010/03/14 - (경남여행/함양여행)지리산 휴천 법화산 법화사. 지리산 천왕봉의 바람소리도 정겹게 들리는 법화산의 법화사

2009/08/13 - (경남여행/함양여행)오도재 지암재.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 함양 지암재




벽송사 갈림길에서 서암정사는 왼쪽 길이며 “경건한 마음가짐 그 얼굴 거룩하고 어지러운 행동거지 스스로 몸을 더럽힌다”가 조각된 돌기둥의 글을 읊조리며 마음을 씻어 봅니다.



그리고 일주문인양 곧 만나는 큰 두 개의 돌기둥에도 '백천강하만계류(白千江河萬溪流) 동귀대해일미수(同歸大海一味水)'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뜻을 옮겨보면 “백천 강물 만 갈래 시내가 흘러 바다에 돌아가니 한물 맛이네”라며 나중에는 모두 ‘똑 같아진다’는 아리송하지만 불가의 뜻을 생각하며 서암정사 경내로 들어섭니다.




봄꽃이 입구를 화사하게 바꾸어 꼭 무릉도원을 보는 듯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서암정사 안내도를 뒤로하면 또다시 갈림길입니다. 같은 값이면 이번에는 절을 지키는 사천왕상이 있는 대방광문으로 향합니다.




사천왕상은 수미산 정상에 있는 제석천을 받들며 불법에 귀의하는 대중을 지켜주는 호법신입니다. 비파를 들고 있는 지국천왕, 용을 들고 있는 광목천왕, 검을 들고 있는 증장천왕, 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이 동서남북을 지키며 손에는 각각의 상징물을 들었고 사대천왕, 호세사천왕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같이 모두 험상궂게 생겼으며 서암정사의 사천왕상은 경주 석굴암의 사천왕상을 참고해 조각했다 합니다. 매번 사천왕이 배치된 천왕문을 지나면 죄지은 것도 없는데 마음이 조리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래서 인간은 한갓 미물에 불과한 게 아닌 가 생각해봅니다.






석문을 통과하면 초라하게 있던 법당 대신에 화려하지만, 전통 불교 건축물과는 조금 다른 대웅전이 기다립니다. 이는 대만 자광사의 후원으로 건립하였으며 2012년에 완공했습니다. 한국 전통사찰 건물로는 잘 볼 수 없는 아(亞)자 형태이며 중층구조에 겹처마를 한 건물입니다.





그리고 금니사경 전시관도 있는데요? 사경은 불경을 베끼는 일을 말하며 먹으로 불교 경전을 베끼는 것을 초본이라 하고 그 위에다 금 가루를 가지고 경전을 입히는 것을 금니사경이라 합니다. 서암정사 금니사경 전시관에는 서암정사 창건주 원응스님의 작품이 전시 중입니다.





스님은 지리산 희생 영가의 명복을 비는 발원을 가지고 시작한 서암정사의 완공을 축원하면서 1985년 수행의 한 과정으로 처음 시작했습니다. 15여 년 만에 80권의 화엄경전 58만7261자의 방대한 금니사경 대불사를 이루었습니다. 고도의 집중력과 탈자나 오자 없이 한 자 한 자 옮기는 고된 수행 작업 때문에 스님은 여러 차례 실명의 위기를 모두 불심으로 이겨 내셨다 합니다.




이번에는 서암정사의 최고 걸작이라는 석굴법당 극락전을 보겠습니다. 서암정사와 이웃한 벽송사는 마천의 칠선계곡 산행 때마다 항상 함께 들렀습니다. 그 당시 석굴에 조각한 서암정사 석불을 보면서 받은 느낌은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사방은 물론이고 천정까지 빈틈없이 조각해 놓은 서암정사의 불교 조각 예술품을 볼 때마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서암정사의 창건에 관한 내용은 극락전의 조성 내력에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6·25 한국전쟁에 전국이 전화에 휩싸였고 특히 지리산은 전쟁 전후에도 좌·우의 이데올로기 속에 빨치산과 토벌대의 격심한 요동이 한참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지리산은 전쟁의 아픈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채 대자연의 섭리에 몸을 맡기며 전쟁의 아픈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갔습니다.

 



원응스님은 부산에서의 인연을 정리하고 청산에 묻힐 생각에 심산유곡의 수행처를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스님과의 인연지로 벽송사에 닿았으며 당시에 벽송사에서 수행생활은 전쟁 직후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참혹함 그자체였습니다. 마음의 갈등도 여러 번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전쟁의 상흔 속에 남아있던 법당의 색이 바랜 새까만 부처님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하였다합니다.




그러다 10여 년의 세월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후다닥 지나갔습니다. 1970년대 초반의 어느 해에 지리산 벽송사 빈터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이날도 벽송사에 남은 전쟁의 폐허를 수습하였습니다. 원응스님은 나른한 오후 선정에서 깨어나 잠시 경내를 거닐다가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렸습니다. 스님은 흔적만 겨우 남은 묵은 길을 찾아들었다가 그리고 딱 발을 멈춘 곳이 지금의 서암정사터입니다.

 


2008년 10월 서암정사 석굴법당 극락전 사진 입니다





옛 서암정사 모습





스님은 무엇인가에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어 주위를 살피고는 이곳이 부처님의 성지임을 단번에 느꼈다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굴법당 전면인 큰 바위를 마주하고는 그만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의 영산회상과 아미타상을 상상하였고 지극한 마음으로 염원하자 마음 깊은 곳에서 아미타불의 세계가 그려졌습니다.

 



스님은 전쟁의 참화로 지리산에서 희생된 수많은 원혼의 상처를 달래고 남북의 첨예한 대립의 벽을 허물고, 부처님의 대자대비함으로 평화로운 사회가 실현되는 발원으로 부처님의 세계인 서암정사 조성을 시작하였습니다. 30여년 만에 스님이 마음속으로 느꼈던 아미타불세계를 석굴법당에 조성하고 오늘날의 서암정사를 완공하게 되었다합니다. 지금의 석굴법당 극락전은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2008년 10월 서암정사를 방문하면서 담았던 극락전 사진을 여기 올렸습니다




극락전의 아름다운 불교 예술 세계를 만나보세요. 이외에 야외에도 불교 예술품이 많이 있습니다. 눈과 마음으로 부처님의 세계를 만나보세요. 서암정사에서의 여행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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