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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산 쌍계사

경남 하동을 대표하는 사찰은 쌍계사이다.
쌍계사 입구의 십리 벚꽃길이 아니라도 쌍계사 만으로도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쌍계사는 지리산 남부 능선의 삼신봉 아래에 위치를 하고 있다.

일반 사찰의 일주문에는 지리산과 별 관계가 없어도
지리산을 앞에 붙여 지리산00사라 붙이는데 왜 쌍계사는 지리산의 일개봉우리인 삼신봉을 앞에 갖다 붙였을까.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쌍계사를 가기위해서는 쌍계사 주차장에서 화개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먼저 최치원이 바위에 새겼다는 쌍계석문을 지나야 한다.
정강왕이 두계곡이 만난다하여 쌍계사란 이름을 하사해
그것을 기념해 새겼다는 쌍계석문을 통과하면 큰 주차장과 만난다.
주차장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쌍계사로 들어선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22년인 723년에 대비, 삼법 두스님이
당나라 남선종의 6대 혜능 스님의 머리뼈를 모셔와 꿈속의 계시대로
눈속에 칡 꽃이 핀 자리에다 머리뼈(頂上)를 모시고 절을 지었는
현재의 금당자리가 칡꽃이 피어 있던 자리였다 한다.
그 후 어찌되었는지 절은 황폐화 되었다가
서기830년에 진감혜소국사게서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와 이곳에다 혜능의 영당을 짓고 크게 중창을 하여 옥천사라 하였다.
886년인 정강왕때 사명이 쌍계사로 바뀌었는데
입구의 화개란 명칭도 겨울에 칡꽃이 피었다는 전설로 생겨났다.
그래서 인지 봄메는 벚꽃이 십리를 뒤 덮고
산에는 이른 봄부터 많은 꽃들이 피어 쌍계사를 더욱 화려하게 만든다.
부도탑을 지나면 일주문과 만난다.

 



쌍계사 일주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로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서는
경계의 문으로 마음을 정갈이하고 옷깃을 다시 한번 여미어 본다.
일주란 양쪽에 한 개씩의 기둥을 세워 지붕을 받치게 하고 있다하여 부르는데
1641년인 인조19년에 벽암스님에 의해 세워졌는데
1977년에 고산스님에 의해 중수를 하였는데
세월의 무게에 의해 보조기둥을 세워 일주문의 성격을 잃어버렸다.
겹처마에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왜관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쌍게사 금강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로 금강이란
사찰에 들어갈 때 불법을 받들고 속세의 더러운 때를 씻고 들어간다는 의미로
사천왕이 있는 천왕문과 유사하며 840년 신라문성왕2년에 진감선사가 창건을 하였다.
그후 인조19년인 1641년에 벽암스님에 의해 중수되었고 근래
1979년 고산스님에 의해 중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악을 물리치고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를 모시는 곳으로
정면3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으로 밀적금강과 나라연 금강을 모시고 있다.
현판은 벽암스님의 글씨이다

 




쌍계사 천왕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사
천왕은 부처에 귀의하여 부법을 수호하고 수도승과 불자를 돕는 4명의 사천왕으로
부처가 거처하는 이상향인 수미산에는
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국천왕이 동서남북으로 각각 다스리며
이곳을 들어서면 수미산 즉 부처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순종30년인 1704년에 백봉스님에 의해 창건되었고 1
825년과 1978년에 각 중수를 하였다.
불교음악인 범패의 창시자
진감선사가 여기 섬진강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보고
여덟음률로 작곡을 하였다하여 팔영루라 한다.






팔영루 앞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것으로
최근에 조성된 구층석탑이다.










쌍계사 대웅전

보물제500호

임진왜란때 소실 된 것을 1632년 벽암대사에 의해 중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에는 여래불을 모시고 정면5칸 측면3칸의 큰 규모로
팔(八)자모양의 팔작지붕을 얹었다.
건물의 외관은 정교한 수법으로 조각되었고
화려한 단청으로 인해 더욱 돋보이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불교 건축물이다.


쌍계사 적묵당 과 설선당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호, 제153호

요사체로 스님들이 기거하고 공부를 하는 곳으로
진감선사가 840년인 문성왕2년에 대웅전과 함께 창건을 하였다.
1641년 중창을 하고 1978년애 고산스님에 의해 중수되었다.
정면6칸 측면3칸으로 규모가 꽤 크고 홑처마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로

국보제47호이며 쌍계사에서 유일한 국보이다.

진감선사는 당나라로 유학을 가 신감대사에게 계를 받고
수행에 전진하다 830년 신라로 돌아왔다.
그의 범상치 않은 법력과 학문에 왕과 백성들에게 많은 신망을 얻었다.
그후 77세때 옥천사(현 쌍계사)에서 입적하였다.
헌강왕은 885년에 ‘진감선사대공탑’를 세우게 하였고 2년후인 887년에 완공되었다.
탑비의 글은 고운 최치운이 짓고 썻는데 그의 사산비명의 하나로 꼽힌다.
현재 탑비를 보면 6.25한국동란과 빨치산 소탕때 총탄에 의해 깨어진 자국을 볼 수 있다.

 







쌍계사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

석등은 빛으로 부처님의 진리를 비추어
중생을 깨우치게 하여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의미로
절에서는 중요하게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탑과 함께 대웅전인 법당 앞 에 위치를 한다.




쌍계사 마애불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

자연석의 바위 한 면을 돋을 새김을 한 마애불로 고려시대 작품으로 보인다.

감실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불상 주위를 깊이 파 내었고
전체적으로 품기는 느낌이 너무 소박하여 부처의 모습보다는 승려의 모습 같은 느낌이 든다.













쌍계사 명부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명부전은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의식이 행해지는 곳으로
지장전 시왕전으로도 불린다.
조선후기에 와 민간 신앙이 불교와 혼합이 되는 양식을 보여 주는 것으로
명부전에는 지옥의 중생을 구한다는 지장보살을 중심에 두고
그 좌우에는 죽은자의 잘 잘못을 따져 영혼이 가야 할 곳을 정해주는 명부의 10대 제왕을 모신 곳이다.
1687년 숙종13년에 성안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1710년 신민대사에 의해 중수를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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