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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안동하회마을 충효당, 서애류성룡 종택인 하회마을 충효당을 보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두 번째 방문지 풍산류씨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입니다. 서애 류성룡의 호를 따 서애종택으로도 불리며 보물 제414호에 지정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습니다. 서애 류성룡 하면 조선 선조 때의 충신이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천거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환란 속에서 나라를 구했던 분입니다.





안동하회마을 충효당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56








엘리자베스 2세가 1999년 4월 방문하면서 심었던 기념식수



또한, 7년간인 두 전란의 모든 과정을 기술한 징비록은 시경의 구절에서 따왔으며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라는 뜻이라 합니다. 전란의 참상을 당시 겪게 되었던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기록한 징비록. 류성룡은 노량해전이 벌어질 때 정인홍과 이이첨 등 북인의 상소로 영의정에서 파직당합니다.





그 길로 고향 안동으로 내려와 선조의 부름을 받지 않고 징비록을 저술했다 합니다. 1605년 9월에 하회마을의 물난리로 학가산 기슭의 서미동으로 거처를 옮겨 기거하다 1607년 5월에 농환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하회마을의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후손과 그를 따르던 문하생들이 선생의 높은 뜻을 기려 1600년대에 건립했던 가옥으로 선생이 살았던 집은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중수와 증축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조선중엽의 전형적인 사대부집 양반가옥의 모습을 하며 문간채, 사랑채, 안채와 사당 등 52칸만 남아있습니다.

 






또한, 서애선생의 저서와 유품 등을 모아 전시하는 영모각이 따로 마련해 있으며 문간채 밖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1999년 4월 방문하면서 심었던 기념식수가 있습니다. 하회마을 북촌은 양진당이 대표 가옥이라면 충효당은 남촌을 대표하는 가옥으로 서로 하회마을 길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충효당을 들어서면 문간채와 행랑채가 길게 ‘一’자로 놓여 있으며 그 뒤편에 ‘ㅁ'자를 한 안채와 안채에서 길게 연결된 사랑채가 있습니다. 사랑채 뒤로는 사당과 그 우측에 유물전시관인 영모각이 자리했습니다. 충효당 역시 안채는 관람할 수 없으며 사랑채와 영모각만 둘러볼 수 있습니다.








입구의 행랑채는 총 12칸으로 사랑채와 마주보며 사랑채의 정면에 솟을 대문인 대문간을 내었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6칸에 옆면 2칸이며 가운데 개방한 4칸 크기의 대청마루를 깔았습니다. 특이한 점은 대청마루 뒷면 오른쪽은 골판문을, 왼쪽은 머름이 없는 높은 살문을 달아내어 안채와 뒷마당을 오가게 했습니다.





왼쪽 2칸은 온돌방과 침방을 앞뒤로 놓고 오른쪽은 작은 마루와 방을 앞뒤로 두었습니다. 작은 마루는 앞쪽과 왼쪽에 골판문과 살문를 달았고 오른쪽은 개방한 상태입니다. 이는 사랑채가 서향으로 앉았기 때문에 여름 오후의 따가운 햇볕과 겨울의 매서운 북서풍을 막으려는 조처로 보이며 전면과 우측면은 쪽마루를 달아내고 계자난간을 돌려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각의 품격을 한층 더 높였습니다.









사당 옆에는 유물전시관이 있습니다. 막 전시관으로 들어서는데 빨리 나오지 않고 뭐하느냐는 일행의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모두 하회마을 주차장에 다 도착했다며 빨리 나오라는 성화였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유물관을 보지 못하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 여행에서 양진당과 충효각은 꼭 보고 나오길 추천합니다. 










서애류성룡의 유물관인 영모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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