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여행/청산도여행)담쟁이가 아름다운 청산도 명품마을 상서마을 돌담, 청산도 상서 돌담마을


청산도 들꽃민박에다 베이스캠프를 정하면서 다녔던 청산도 2박 3일 여행. 이번에는 들꽃민박에서 가까운 상동리에 있는 상서 돌담 마을입니다. 상서마을은 울타리가 돌로 둘려 있으며 이게 상서돌담마을길로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어촌마을이야 대부분 돌담이지만 상서마을의 돌담은 오밀조밀 한 게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등록문화재 제279호.





청산면 상서마을을 감싸는 산은 청산도에서 아름답다는 매봉산입니다. 매봉산 아래에 터 잡은 상서마을은 앉은 지대가 높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멀리까지 보여 조망이 다른 마을보다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다랭이로 불리는 계단식 논이 이곳 청산면에서는 독특하게 바뀌었는데 그게 온돌방의 구들장 같이 널따란 돌을 깔은 구들장 논이 층계를 이루는 농촌과 어촌이 복합된 마을입니다.






먼저 상서마을의 유래를 보겠습니다. 상서마을은 성산포에서 들어서는 길목에 자리했는데 이는 성산포에서 마주 보이는 매봉산이 태풍과 해풍을 막아주고 산세가 빼어나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됐는지 ‘한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먼저 정착하여 살았다 하며,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곳을 덜리라고 부르며 1960년대까지 1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었다지만, 지금은 그저 빈터만 남아 있습니다.  그 후로 상서마을은 숙종 때에 언양김씨와 밀양박씨 나주임씨등이 들어와 살다가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이 청산면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을 보면 청산도에서 가장 사람이 살기 좋았던 모양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759년~1789년에 여지도서 지명표를 보면 상서마을을 뜻하는 사정리(射亭里)와 걸리(桀里)가 나오며 걸리가 지금의 덜리로 바뀐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1800년인 정조 13년에도 사정리와 덜리의 지명이 확인되며 사정리는 마을회관 앞 정자나무에서 마을 사람들이 심신을 단련하는 활을 쏜 데서 유래 되었다하며 그 표적지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희미하지만 남아있다 합니다.











1895 고종 3년 당리진때 상서리로 기록이 나타나고 1914년 상서리와 원동리가 합해져 상동리가 되었다가 완도가 군으로 승격하면서 상서리로 바뀌었습니다. 상서마을의 돌담을 둘러보면 투박한 돌을 격식 없이 차곡차곡 막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섬지방의 바람을 막으려는 듯 어떤 곳은 높은 담장이지만 어떤 곳은 허리춤까지 오는 낮은 담장도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칭칭 돌담을 감으며 올라간 담쟁이는 상서돌담마을의 또 하나 볼거리였습니다. 제가 찾았을 때는 마침 능소화가 끝물이었지만 화려한 선홍색 꽃이 녹색의 담쟁이 속에서 그 자태를 잃지 않았습니다. 능소화와 담쟁이가 돌담을 감싸는 상서돌담마을길은 정말 평온한 어촌의 전원마을 풍경이었습니다.







상서마을은 사실 어촌과 농촌을 함께하는 곳입니다. 섬에서 보기 힘든 벼농사를 짓는 것을 보면 그만큼 수량도 풍부하고 청산도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빈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청산도중에서도 상서마을은 긴꼬리투구새우 서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우는 알겠지만, 긴꼬리투구새우는 정말 생소한 이름입니다.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도해서 상서마을의 논두렁에서 물속을 유심히 주시하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긴꼬리투구새우는 고사하고 어떤 생물도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 철이 아니거나 부끄러워서 그런가 생각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상서돌담마을길은 돌담이 볼거리중 최고라면 다랑논인 구들장 논과 긴꼬리투구새우 서식지는 덤입니다. 그리고 상서마을과 구들장논을 연결하는 상서마을 둘레길을 걸으면서 반나절을 사색의 시간으로 힐링하기에 그저그만이었습니다. 이래서 청산도는 태어나서 한번은 꼭 가야된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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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0.19 07:37 신고

    돌담길이 참 애착이 가네요 좋은 구경 잘 하고 갑니다

  2. *저녁노을* 2017.10.20 05:47 신고

    졍겨운 풍경 가득하군요.

    구경 잘 하고 갑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7.10.20 11:53 신고

    청산도 또가고 싶은곳입니다^^

  4. 초등학생 시절 한컴타자 긴 글 연습란에 열심히 치던 청산도라는 작품이 먼저 떠오르네요 =) 그 푸르른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글 때문인지, 기억 한켠에 가본 적 도 없는 그 곳은 굉장히 아름다운 곳으로 남아있어요. 맑은 공기 가득한 유기농 생태마을답게 초록빛 잎에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투구새우를 못본 일은 아쉽지만, 낮은 돌담과 소박한 길들이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으셨으면 좋겠네요. 사진 잘 보고 갑니다, 환절기 건강 유의하세요 =)




(부여여행/부여가볼만한곳)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두 눈으로 확인했던 부여 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2년 전에 태안반도와 부여를 2박 3일 여행했습니다. 당시 잠은 태안반도의 끝에서 이틀을 자면서 여행은 부여에서 주로 했는데 그 이유는 부여의 여러 곳을 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 우리가 부여 여행을 할 때 백제 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하며 모든 문화재를 무료로 개방하는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국립부여박물관 주소: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 18-2

국립부여박물관전화:041-833-8562




2015/08/17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부소산성 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부여 부소산성에서 백제를 만나다. 사비성

2015/08/07 - (충남여행/부여여행)낙화암과 고란사. 마지막 백제의 흔적 부소산성 백화정 낙화암 고란사를 여행하다. 낙화암과 고란사

2015/08/05 - (충남여행/부여여행)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시대 문화재를 만나다.

2015/07/26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서동 연꽃축제 궁남지. 백제의 도읍지 부여의 많은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축하. 부여 서동 연꽃축제가 궁남지에서 열렸습니다.

2017/09/16 - (부여맛집/부소산낙화암맛집)구드래유람선선착장 맛집 장원막국수. 부여 장원막국수



 


그때 궁남지와 부여박물관, 부소산, 정림사지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제 취미가 전국의 고적과 고대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여행을 좋아해서 부여에도 많은 문화재가 있지만, 당시 부여읍내의 궁남지, 부소산의 낙화암, 거대한 정림사지 5층 석탑 등을 만나는 계획만을 세웠습니다.



부여의 유물은 한 번도 구경을 못했지만 부여의 많은 석재유물은 부산과 가까운 경주에서 거대한 감은사지 오층석탑 등 신라의 정밀한 국보문화재를 많이 보았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던 터라 부여의 여러 고대 문화재는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딱히 많은 궁금증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신라와 백제는 문화재마다 특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그게 그것이 아닌가하며 다 비슷하다는 생각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부여 여행을 한 번도 하지 않았기에 어떤 문화재일까하며 궁금증을 떨칠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부여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이는 부여박물관에 전시 중이던 백제금동대향로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금동대향로를 만남으로 부여여행은 모든 게 상쇄된다는 생각에 부여박물관 여행을 하면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가장 먼저 백제금동대향로 전시관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통했는지 그곳에는 불이 꺼진 채 삼성에버랜드에 3개월 동안 대여한다는 짤막한 안내문만 붙어 있었습니다. 그 안내문을 보는 순간 억장이 무너지고 황당하여 얼마나 분통을 터트렸는지 모릅니다.

 


오직 백제금동대향로를 보기위해 부여여행을 계획했었는데 그게 모두 수포가 되어 버리는 순간 너무나 황당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념 축제를 한다면서 부여 최고이자 최대의 백제 걸작품인 금동대향로를 삼성에다 대여하는 처사를 비난하면서 돌아섰던 기억에 부여 생각을 하면 지금도 그저 개똥쑥을 씹은 듯 씁쓸합니다.



이번에 다시 공주와 부여를 여행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일정표를 보니 당연히 부여박물관과 정리사지5층석탑이 들어가 있었으며 이번에도 부여박물관의 백제금동대향로가 다른 곳에 대관했다면 어찌하노 하면서 걱정 아닌 걱정을 했습니다.



백제관광호텔에서 일찍 조식을 해결하고 바로 부여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이는 가장 먼저 금동대향로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막상 부여박물관을 찾았는데 그때 시간이 오전 9시30분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개관 시간이 10시로 변경되었다며 지금 청소중이라 입장을 할 수 없다고 10시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아! 이번에도 일이 꼬이는구나 싶었습니다. 오늘 일진이 초반부터 틀어지는 것을 보니 백제금동대향로를 애시 당초 못 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습니다.



그래도 볼 수 있을 거라며 자신을 위안하고 기다렸습니다. 10시가 되어 부여 박물관에 입장 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금동대향로 전시실로 혼자 향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가 잘 있나 싶었습니다. 전시실을 들어서는 순간 붉은 광채를 내며 빛을 발하는 금동대향로를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사진으로만 만났던 금동대향로를 이리 두 눈으로 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과연 명품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사람의 손재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신인이 만든 예술품이었습니다.



신인이 만든 예술품답게 백제금동대향로의 출토과정도 드라마틱했다합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까딱했다면 영원히 지구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파괴나 사장될 뻔 했습니다. 그 이유를 보면 백제금동대향로의 출토장소가 능산리고분군 주차장 확장공사장이었습니다.



그때까지 큰 유구나 유물이 딱히 나온 게 없었기 때문에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해 다른 큰 이유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불도저로 밀고 주차장으로 만들어도 별 무리가 없었다합니다.



사적 제14호인 능산리 고분군과 사적 제58호인 부여나성 사이의 작은 계곡에 자리한 계단식 논은 혹시나 하는 당시 부여박물관장이었던 신광섭의 직감에 당시 문화재관리국 기념물과과장인 노태섭의 지원으로 재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두 분의 촉이 통했기에 오늘날의 백제금동대향로는 우리 눈앞에 찬란한 빛을 발하며 있게 된 것입니다.  1992년의 발굴조사에서 나온 유물로 보아 그저 금속제품을 만드는 공방 정도로 생각했던 곳이 1995년 금동대향로가 발견됨으로써 백제궁궐의 왕실 절터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발굴된 목탑의 흔적에서 사리장엄구를 보관했던 석조사리함이 발견되었으며“ 567년 창왕 13년에 정혜공주가 절을 지었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었다합니다. 이를 보면 금동대향로의 조성연대를 대략 유추할 수 있으며 백제 황실의 의식과 제사용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 가능합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향로 뚜껑과 몸통이 서로 분리된 상태로 물이 흠뻑 고인 진흙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1300여년의 오랜 세월 동안 녹슬거나 부식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는 진흙이 진공상태를 만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99% 상태의 완벽한 대향로가 기적같이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금동대향로를 자세히 보고 있으면 받침대를 한 용이 발가락에 힘을 주며 꼭 하늘로 솟아오를 듯 당찬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귀하디귀한 보물 중에 보물인 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해 세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금동대향로는 크게 뚜껑 부분과 몸체로 나누어지며 뚜껑 위쪽에는 봉황 장식에다 뚜껑을, 몸체는 향로와 용의 형상인 받침대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뚜껑의 끝부분에는 턱 밑에 여의주를 품은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갈 듯한 모습입니다.

 




또한, 봉황의 목과 가슴에는 작은 구멍이 3개 뚫려 있으며 여러 개의 구멍이 뚜껑에 더 있어 이는 향을 피우면 연기가 빠져나가는 구멍이라 합니다. 봉황 밑으로는 금, 완함, 꽹과리, 종적, 피리를 들은 5명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뚜껑을 자세히 보면 산봉우리가 여러 개 겹친 모양인데 모두 74개라고 합니다. 이는 신선들만 드나든다는 삼신산인 봉래산을 뜻합니다. 그 안에 17명의 신선이 있다하며 사자, 거북이, 원숭이, 코끼리를 포함한 37마리의 각종 상상의 동물상에다 나무와 폭포, 호수 등을 표현하여 무릉도원을 뜻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 또한 향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신선이 되어 함께 그 속에서 놀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 했습니다. 향로의 몸체는 연꽃으로 장식했습니다. 이는 뚜껑의 5단 산봉우리와 균형을 맞추려고 5단의 연잎으로 처리했습니다. 여기에도 신선 2명과 25마리의 동물을 새겼는데 뚜껑과는 다르게 물속과 물가 주위에다 물고기 등 수중생물을 나타내었습니다.





향로를 받치는 받침대는 상상속의 동물인 용의 형상입니다. 향로를 지고 하늘로 박차고 오르는 듯한 모습은 박진감과 힘이 넘쳐보였습니다. 상상속의 동물이지만 몸통과 꼬리 수염, 발, 머리카락 의 표현 등을 섬세하게 하여 꼭 움직이는 착각에 살아 있는 듯했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금동백제대향로를 박산향로라고 한답니다. 이는 중국 한대에 구리로 만든 향로로 바다에 신선이 사는 전설상의 산을 박산이라 하며 그 박산은 산과 신선 동물 등이 사는 이상의 세계인 무릉도원인데 이를 표현한 향로를 박산향로라 부른답니다.

 


박산향로는 도교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를 박산향로로 보는 이유이며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재도 외국에 나가 우리 문화재를 알리는 전시를 많이 합니다. 그중에서도 반출 할 수 없는 문화재가 딱 두 점이 있다고 합니다. 영조어진과 이 백제금동대향로이며 도난과 이동 중 파손, 여러 가지 여건 등을 고려한 조치로 백제금동대향로는 꼭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 높이 61.8㎝,

백제금동대향로 무게 11.85㎏

백제금동대향로 국보 제2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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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0.12 07:31 신고

    찬란한 통일 신라의 문화유산이 정말 아름답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구경해보고 싶네요

  2. 공수래공수거 2017.10.12 09:22 신고

    사진 잘 찍어주셨네요
    전 도무지 흔들려서..,
    보고 싶은 국보입니다

  3. 솜다리™ 2017.10.16 09:30 신고

    2012년도 가족여행으로 다녀온 부여박물관...
    저희 가족들도 모두 반해버린 금동대향로... 다시 봐도 찡~~ 하내요^^






(청산도여행/청산도숙박)청산도 들꽃펜션, 청산도 최고의 위치이며 일출일몰이 황홀했던  들꽃민박


느리게 걷는게 아름답다는 청산도 여행, 이번 청산도를 세상에서 가장 느리다는 ‘늘보’의 마음으로 2박3일 동안 찾았습니다. 우리들이 묵었던 팬션은 청산면 상동리에 들꽃민박입니다. 청산도의 가운데에 위치해서 청산도를 여행하기에 편리한 지리적 잇점이 참 좋았습니다.





청산도 들꽃민박 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상동길 27

청산도 들꽃민박 지번 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상동리 810

청산도 들꽃민박 전화:061-555-4448, 010-3804-6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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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4 -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명산 상황봉~백운봉 산행. 완도 오봉산 상황봉~백운봉 원점회귀 산행

2013/09/09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2013/08/24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윤선도가 마지막 숨을 거둔 낙서재와 곡수당, 동천석실 둘러보기.


펜션은 야생화를 뜻하는 들꽃의 이름을 달아선지 작고 아담했으며 들꽃민박이란 상호를 달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건물은 4동이며 주인이 묵는 관리사를 빼고는 3동의 건물에다 모두 각각의 독립형태였습니다. 들꽃민박은 이름답게 모두 아름다운 야생화로 방이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총 8명이었습니다. 청산도에서 여름철 시즌이면 많은 관광객으로 방이 부족할꺼라 예상하여 미리 예약하였으며 그 덕분에 편안하게 2박3일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방은 수수꽃다리방, 제비꽃방이며 모두 독립 구조였습니다.





수수꽃다리방은 복층 형태로 건물 내부에 중간을 반쯤 가로질러 다락이 설치되었으며 제비꽃방과 구절초방은 각각 단층 건물로 목욕탕이 있는 화장실과 주방이 독립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 넓은 공간에 각각 4명씩이다 보니까 널널하게 생활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펜션의 꽃이라는 밤에는 숯불(착화탄)을 피워 고기를 구워 오붓한 저녁을 즐길 수 있었던게 정말 좋았습니다. 풀벌레가 지천으로 울고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했던 청산도 들꽃 민박의 여름휴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근에 둘러 볼것도 참 많았습니다.







구들장논과 돌담장, 슬로우길과 항도, 그리고 청산도의 명산인 대봉산 등산 등 청산도에서만 즐기고 볼수 있는게 정말 많았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2박 3일 알차게 보냈습니다. 산행을 하고 펜션이 가까이 있어 일행에게 차를 부탁해서 차도 부르고 슬로우길은 원점회귀가 아니라 시작점과 끝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일행에게 어디로 차를 가지고 오라하며 부탁하기도 좋았습니다. 이 모든게 청산도 들꽃펜션의 위치가 한몫을 했습니다.



청산도는 다 아시는 것처럼 ‘청산’은 산에 나무가 울창하여 푸르렀다는 뜻입니다. 청산처럼 산은 물론이고 바다도 에메랄드 빛이라 청산도를 찾는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청산도에서의 잠자리는 들꽃민박이 집처럼 즐길 수 있었서 정말 좋았던곳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청산도 들꽃민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게 해돋이와 해넘이의 장관입니다. 바닷가로 나가지 않고 들꽃민박에서 일출과 일몰의 황홀함에 홀딱빠져 스마트폰 카메라를 연신 눌러 사진도 담고 또한 눈으로 즐겼서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이 청산도라합니다. 그러나 청산도를 한번 갔다온 사람은 다시 꼭 찾는게 불문율이라 합니다. 벌써 저도 내년 여름의 청산도가 기다려집니다. 그때도 다시 들꽃민박에 짐을 풀고 청산도의 일출과 일물은 물론이고 가보지 못했던 청산도 슬로루길도 걷고 끝내지 못한 산행도 마저 하며 청산도에 흥에 취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역시 잠자리리가 편해야겠죠.







상세한 정보는 여기서 확인하세요

들꽃펜션의 카페 주소입니다. 참고하세요? http://cafe.naver.com/annegilb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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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0.03 07:32 신고

    패션이 아늑하고 좋네요 노을 사진이 너무 예뻐요

  2. 공수래공수거 2017.10.06 09:20 신고

    청산도에서의 일박
    정말 여유 있을것 같습니다^^

  3. *저녁노을* 2017.10.07 06:53 신고

    좋아 보이는군요.
    잘 보고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청산도여행)완도연안여객터미널~청산도 배 시간표 알아보기, 청산도여객버스터미널~완도 배 시간표 알아보기 


청산도는 전남완도에서 대략 19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최남단의 섬으로 완도항에서 뱃길로 50분 거리입니다. 자연경관이 너무나 빼어나 ‘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봐야 할 섬’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완도연안여객터미널 주소: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보고대로 335.

(지번)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1255

완도연안여객터미널 전화:1666-0950




2013/08/12 -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청해포구 촬영장, 영화 드라마 cf 촬영으로 유명한 청해포구 촬영장 눈으로 즐기기.

2013/08/14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조선시대 대표 정원 정자 세연정에서 어부사시사를 짓다.

2013/08/21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 윤선도 원림)조선시대 최고의 정원 대한민국 명승 34호 어부사시사를 창작한 세연정이 있는 관광정보센터

2013/09/09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2014/11/04 -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명산 상황봉~백운봉 산행. 완도 오봉산 상황봉~백운봉 원점회귀 산행

2017/09/30 - (완도여행)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본다는 섬 청산도. 청산도 항도 여행. 청산도항도





예로부터 신선이 내려와 노닐 정도로 아름답다하여 청산여수, 선산, 선원이라 불렀다합니다. 청산도를 대표하는 상징은 푸른 바다와 푸른 산, 독특한 구들장논, 문화재로 지정된 돌담, 해녀 등이 있지만 지금은 느림의 풍경이라는 아시아 최초 슬로길이 있습니다.

 


2007년 12월 1일 슬로시티로 선정되어 ‘늘보’처럼 느리게 걸을수록 더욱 아름답다는 슬로길로 명실상부한 남해안의 힐링 1번지가 되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청산도의 향수를 자극한 한국 최초 백만 관중을 동원했던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촬영되었으며 KBS 드라마 ‘봄의 왈츠’와 ‘1박2일’ SBS '여인의 향기‘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청산도를 배경으로 촬영하여 소개했습니다.



공중파와 종편에서도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하면 빠지지 않고 청산도가 소개되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와 CNN이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고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청산도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게 났다‘는 고사성어 처럼 한번은 꼭 봐야 할 환상의 섬인 남해 완도군의 청산도 여행의 시작은 완도군 완도읍 장보고대로 335호 완도연안여객터미널에서 부터입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청산도 여객선 시간표를 참고하세요.







2017년 긴 추석 연휴에 환상의 섬 완도군의 청산도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청산도 배편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완도연안여객터미널에서 청산도행 배편은 추석특송기간인 2017년 9월30일~2017년 10월 9일까지 증편 운행중입니다.




완도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오전 6시30분, 8시30분, 10시, 11시30분, 오후 1시. 2시30분, 4시30분, 6시(막배) 청산에서 나오는 배는 오전 6시30분, 8시30분, 10시, 11시30분, 오후 1시. 2시30분, 4시30분, 6시(막배)로 8회로 증편하여 완도와 똑 같은 시간에 서로 운항합니다.

 


그리고 추선 연휴가 끝나는 2017년 10월10일~10월 15일가지 완도~청산도 방면 여객선 시간표를 보면 완도에 출발이 오전 7시, 8시30분, 11시, 오후 2시30분, 6시(막배)이며 청산도에서 출발은 오전 6시50분, 9시, 오후 1시, 3시, 6시(막배)로 일 5회 운항합니다.

 



청산도 선편은 여객 및 차량의 증감에 변경될 수 있다하니 청산 매표소 061-552-9381, 완도연안여객터미널 061-552-0116·9385. 청산농협 061-552-9388로 문의를 해서 이용하세요. 그리고 사진이 붙은 신분증 지참은 필수이며 미리미리 도착해서 수속을 밟아 안전한 청산도 여행 하세요

 












청산여객터미널 주소: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

청산여객버스터미널 전화:061-552-9381


완도 청선도 운행 여객선은 퀸청산, 청산아일랜드, 슬로우시티청산호가 있으며 차량 선적은 미리 전화해서 알아보세요. 차량 도착순으로 배에 선적하니 미리 도착해서 주차선에 대기하여 기다려야 안전합니다. 꼭 참고하세요






완도~청산도 배 시간표, 청산도~완도 배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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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0.02 07:51 신고

    연휴에 여행가도 좋을 것 같아요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완도여행/완도가볼만한곳)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본다는 섬 청산도. 청산도 항도 여행


청산도를 두고 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봐야할 곳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아직 청산도를 가보지 않았다하면 사람이 아니라 할까싶어 늦었지만 청산도 여행을 한번 하고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청산도안에서도 꼭 가보고 와야할 곳 중 한곳이 있어 소개합니다.





완도군 청산도 항도 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동촌리




2013/08/12 -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청해포구 촬영장, 영화 드라마 cf 촬영으로 유명한 청해포구 촬영장 눈으로 즐기기.

2013/08/14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조선시대 대표 정원 정자 세연정에서 어부사시사를 짓다.

2013/08/21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 윤선도 원림)조선시대 최고의 정원 대한민국 명승 34호 어부사시사를 창작한 세연정이 있는 관광정보센터

2013/08/24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윤선도가 마지막 숨을 거둔 낙서재와 곡수당, 동천석실 둘러보기.

2013/09/09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2014/11/04 -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명산 상황봉~백운봉 산행. 완도 오봉산 상황봉~백운봉 원점회귀 산행

 


청산도도 섬이지만 그 섬중에서도  또 섬속의 섬인 항도(肮道)입니다. 항도는 목을 뜻하는 섬이며 그 동쪽 끝에 새의 목이라는 새목아지섬이 있습니다. 이곳이 청산도에서 가장 유명한 일출 포인트라 합니다. 또한, 이곳은 들꽃민박집 여주인장의 말을 빌리면 감성돔이 많이 올라오는 낚시 포인트로 조사님의 파라다이스라는 섬입니다.



우리 일행 중에서도 민박집 주인장의 적극 추천 포인트에 낚시를 갔던 터라 밥 배달 겸 어떤곳인가 싶어 항도를 후다닥 갔다왔습니다. 밥은 내팽겨치고 혼자 항도 깊숙이 들어갔더니 새의 목처럼 잘룩한게 바닷물이 들어오는 밀물 때에는 섬으로 변해버리는 잘빠진 목이 나왔습니다. 이곳이 새목아지를 뜻하며 항도란 이름이  붙게된것 같습니다.









그리고 잘록한 새목아지를 지나면 목섬인데 꼭  새대가리를 닮았습니다. 다르게 보면 공룡 대가리 같기도 한 이곳을 보면서 주위 풍경이 완전히 거제도 해금강 뺨치는 모습에 넋을 잃고 쳐다봤습니다. 망망대해에 점점 떠 있는 다도해는 지상의 파라다이스가 별게 있을까 이곳이 지상의 낙원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풍광이 빼어났던 곳입니다.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방의 작은 나라인 한반도의 남해를 이곳저곳둘러보고 불로초를 찾으며 남긴 흔적과 전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곳인 청산도의 항도를 빠트리고 갔다면 아마 그는 큰 실수를 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청산도는 다른 섬과는 다르게 산에 나무가 많아 청산도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숲이 울창하여 더욱 푸르고 바다까지 에메랄드 빛인 아름다운 섬 청산도에서 더욱 아름다운 섬 항도. 항도안의 진주 새목아지인 목섬은 청산도 여행에서 꼭 한번 둘러보세요.





저도 어떤 섬인지 관광지도를 보고 궁금했는데 실제 답사를 해보고 정말로 아름다워 카메라의 화이트발란스를 막 바꾸어 가며 폼은 전문가 수준으로 항도의 추억을 여러장 담았지만 쓸만한 사진이 없었습니다.





청산도의 다른 이름은 신선선자가 들어가는 선산(仙山), 선원(仙源)이라 불렸습니다. 그만큼 아름다워 신선이 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뜻 같습니다. 신라시대부터 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고려시대에 탐진현 (현 강진군)에 속했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 그리고 임진왜란 등으로 외적의 침입이 빈번하자 조정에서 도서금주령으로  사람을 모두 소개시켜 한때 사람이 살지 않는 공도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1608년인 선조 41년에 다시 청산도 입도를 허가하여 사람이 거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청산도는 1681년 숙종 7년에 수군만호진을 설치하여 서남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으며 1866년 고종 3년에는 당리에 독진을 설치하였고 고종 33년에 완도군이 생기면서 완도군에 이속되어 청산면이 되었습니다.















 1981년 청산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이제 청산도 여행 중에서 항도를 대충 훑어보고 와서 사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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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 청산면 동촌리 | 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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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맛집/부소산낙화암맛집)굿뜨래음식특화거리 구드래골쌈밥. 부여 구드래돌쌈밥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의 글 일부분입니다. 항상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하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새 중년을 훌쩍 넘어 나도 20대의 두 자녀를 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글을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 입구인 굿뜨래 음식 특화거리의 맛집으로 알려진 구드래돌쌈밥 식당에서 감명 깊게 읽었던 글입니다.





부여 굿뜨래음식특화거리 맛집 구드래돌쌈밥 주소: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96-2

부여 굿뜨래음식특화거리 맛집 구드래돌쌈밥 전화:041-836-9257




2015/08/17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부소산성 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부여 부소산성에서 백제를 만나다. 사비성

2015/08/07 - (충남여행/부여여행)낙화암과 고란사. 마지막 백제의 흔적 부소산성 백화정 낙화암 고란사를 여행하다. 낙화암과 고란사

2015/08/05 - (충남여행/부여여행)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시대 문화재를 만나다.

2015/07/26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서동 연꽃축제 궁남지. 백제의 도읍지 부여의 많은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축하. 부여 서동 연꽃축제가 궁남지에서 열렸습니다.

2015/08/10 - (충남여행/서산여행) 간월도 간월암. 여름 간월도 간월암 보다 신비스러 웠던 겨울 간월도 간월암의 정취가 그리웠던 간월도 여름 여행.




저녁을 먹으러 부여 맛집이며 부여 현지인에게도 익히 알려진 구드래 돌쌈밥을 늦은 시간에 찾았습니다. 점심시간과 저녁 시간에는 길게 줄을 서서 먹는다는 부여향토음식 맛집 구드래돌쌈밥집인데 평일에다 늦은 덕분에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입구는 화려한 스펙이 아닌 그저 평범하고 아담한 우리의 옛 모습이라면 안으로 들어서면 예스러움이 묻어나는 물건들로 식당 내부를 장식한 따뜻하고 정감이 넘쳐나는 엄마의 모습입니다…. 화려하고 고가의 실내장식이 아닌 그저 농촌에서 볼 수 있었던 코뚜레, 워낭 등 어릴 적 추억으로만 꾸며져 소담하여 더욱 친근감이 가는 식당 구드래돌쌈밥. 이곳저곳을 구경하였는데 꼭 보물찾기하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평소에 쌈밥집은 들어 봤는데 ‘돌쌈밥’하면서 처음에는 웬 돌쌈밥이지하고 생소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는 아하!! 했습니다. 돌솥밥에다 쌈밥을 더해서 돌쌈밥이란 신조어를 만들었으며 구드래돌쌈밥이 그 원조집이라 했습니다.



쌈밥 전문점이다보니 채소에 많은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구드래돌쌈밥에서 사용하는 채소는 100% 계약재배로 이루어지며 농약 등은 배제하고 완전 무공해 수경재배를 하면서 20~30종류의 청정 유기농 채소를 사용하는 집으로 안심하고 드실 수 있다는 구드래돌쌈밥집.

 




여러 종류의 돌쌈밥이 있으며 불고기돌쌈밥과 편육돌쌈밥, 오리주물럭돌쌈밥, 송이돌쌈밥 등 모두 7종류이며 기호에 맞게 주문하면 됩니다. 우리는 불고기돌쌈밥을 기본으로 하고 추가로 편육을 따로 주문했습니다.





특히 구드래돌쌈밥 돌솥밥에는 찹쌀과 콩 당근 단호박 등 여러 가지 채소를 넣어 영양가도 높으며 구수해서 일반 밥보다도 맛에서 훨씬 뛰어났습니다. 영양 만점인 돌솥밥과 집된장으로 만들었다는 구수한 된장찌개는 환상의 궁합이며 채소는 꼭 보약 먹는 듯 쓴맛을 내는 갖가지 약초라 건강식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여럿이 먹다 보니 먹기 바빠서 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맛집 블로그 신분을 망각하게 만든 구드래돌쌈밥집, 전통의 돌솥밥도 그러하고 집에서 직접 담근 집된장으로 뚝배기에 끓여낸 된장찌개 하며 담지 못한 사진이 즐비합니다.

 








일행보다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했던 구드래쌈밥집 탐심이 저절로 발동 나게 해서 사진까지 마다하고 먹었던 부여 맛집이었습니다. 다양한 채소로 돌솥밥에 쌈을 싸서 먹는 구드래쌈밥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가장 깨끗한 음식점이며 친근감이 가득한 부여맛집 구드래돌쌈밥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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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96-2 | 구드래돌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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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30 07:50 신고

    와우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건강식이 따로 없군요 저절로 건강해질 것 같아요




(공주맛집/공산성맛집)공주 원진노기순청국장. 냄새나지 않는 전통 청국장이 좋은 원진노기순청국장


이번에 또 공주·부여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한번 질을 내니까 부산에서 정말 먼 곳이지만 자주 여행을 하게 됩니다. 전주한옥마을은 유명한 데 반해 공주에도 한옥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은 아마 몇 분 안될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 여행할 때 공주 한옥마을 앞을 그냥 스쳐 지나가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번에 일행과 만나는 장소가 공주 한옥마을이었습니다.





공주 맛집 공산성 맛집 원진노기순청국장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176-6(백미고을길 6)

공주 맛집 공산성 맛집 원진노기순청국장 전화:041-855-3456




2014/04/18 - (충남맛집/공주맛집)공산성, 무령왕릉맛집 명성불고기. 공주18미가 인정한 40년전통 소문난 으뜸 맛집 명성불고기

2014/04/16 - (충남여행/공주여행)무령왕릉, 공산성, 갑사, 마곡사 공주 1박2일 여행 알차게 하는 하고 왔습니다.

2014/05/12 - (충남여행/공주여행)공주 공산성. 백제의 중흥을 이끈 공주 공산성을 걸어 보았습니다. 공주 공산성

2015/10/10 - (충남여행/공주여행)공주 석장리박물관 파른 손보기기념관. 한국판 '인디아나 존스' 고고학의 선구자 파른 손보기 기념관이 석장리 박물관에 있습니다.

2015/11/13 - (충남여행/공주여행)웅진백제역사관. 웅진백제역사관에서 웅진 천도의 역사와 무령왕의 화려했던 백제 문화를 만나다.

2015/11/14 - (충남여행/공주여행)송산리고분군과 무령왕릉. 백제의 전성기를 이룬 무령왕의 왕릉이 있는 송산리고분군을 여행하다.



 


그래서 한옥마을을 잠시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공주한옥마을도 조선 시대 사대부가 등 다양한 건물로 꾸며져 있었으며 한옥체험을 하면 정말 좋겠다 싶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아무리 좋은 경치도 배고프면 식상하다고 ‘금강산도 식구경’이란 믿음을 가지고 공산성 앞에 청국장 맛집이 있다 하여 그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진짜 공산성을 정면으로 보고 한옥 식당가가 밀집해 있는데 그곳에 있었습니다. 공주·부여·서울에 거주하시는 분은 익히 들었다는 ‘원진노기순청국장’입니다. 30년전 서울 용두동에서 처음 갈빗집을 운영하면서 친정엄마에게 청국장 띄우는 법을 전수받아 옛방식 그대로 청국장 띄우는 비법을 터득했다 합니다.



사실 청국장은 옛 맛을 찾는 게 쉽지 않은데 전통의 청국장으로 손님에게 호응을 얻게 되면서 광우병으로 어려움을 겪던 원진노기순청국장의 중심메뉴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청국장 특유의 냄새인 쿰쿰한 냄새가 요즘 젊은 층과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청국장 장인 노기순부부는 모두가 즐겨 먹고 좋아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 청국장을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연구하였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과정을 거치면 어려움을 이겨내고 대중 음식으로 모두가 좋아하는 청국장을 개발하였습니다. 냄새없는 청국장 덕분에 입소문이 나면서 공중파에 여러 번 소개되었고 그리고 누구나 좋아하는 청국장 맛집으로 등극했습니다.



 2004년에는 냄새나지 않는데 고유한 맛을 내는 우리 청국장으로 ‘자랑스러운 서울 음식점 50선’에 선정되는 영광도 안았다 합니다. 그 후 서울의 청국장은 딸 부부에게 물려주고 2008년 고향인 충남 부여로 내려와 ‘ 청국장’을 열었고 2015년 충청남도 컬푸드식당인 ‘미더유’ 인증을 획득하면서 2015년 공주 공산성 앞에다 ‘원진노기순청국장을 개점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함께한 일행이 원진노기순 청국장이 맛집이 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보고 저도 청국장을 아주 좋아해서 기쁜 마음으로 찾았던 원진노기순청국장. 먼저 식당의 대단한 한옥 규모를 보고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청국장과 한옥의 컨셉이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우리 전통 음식인 청국장이 우리 전통 건축양식인 한옥의 조화에 그 맛은 분명 배가 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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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입구에는 ’한식대첩4, 4회 우승 충남 고수 배선호·노기순 청국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충남 대표로 출전해서 우승까지 했다는 원진노기순청국장을 보면서 오늘 제대로 된 우리 청국장을 먹겠구나 싶었습니다.



충청남도 지역 먹거리를 알리는 ’미더유‘ 인증패와 ’으뜸‘ 공주 맛집 인증패가 나란히 걸린 것을 보고 충남과 공주에서 인정하는 맛집인 원진노기순청국장. 식당 내부는 모두 나무로 마감을 해서 그런지 나뭇결이 살아 있는 게 자연 친화적이라 식당 분위기가 따뜻한 느낌이 들면서 한층 좋았습니다.



예약을 하고 갔는데 기본 상차림은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주의 주 생산품인 공주 밤으로 만든 ’공주 알밤전‘과 공주 알밤 막걸리도 함께 주문했습니다. 청국장은 사실 냄새 때문에 좋다. 나쁘다며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가려지는 음식이지만, 진짜 일반 청국장보다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진짜 냄새나는 청국장에 길든 분은 조금 아쉽다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딱 좋았던 청국장입니다. 그 대신 알밤전은 알밤 전이라는 이름에 비해 알밤의 양이 적고 조금 텁텁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만의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리고 시원한 막걸리와 알밤 전을 안주 삼아 목을 축였습니다.



밤 때문인지 단맛이 강한 알밤 막걸리는 밤새워 마셔도 괜찮을 듯했습니다. 술을 잘 못하는 저한테는 공주 알밤막걸리도 딱 좋았습니다. 청국장과 가마솥 같은 분위기의 솥밥이나왔습니다. 일단 밥을 다른 그릇에 들어내고 따뜻한 물을 붓고 나무 뚜껑을 덮었습니다. 나무 뚜껑과 가마솥의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먼저 뚝배기에 담긴 청국장 내용을 보기 위해 숟가락으로 들어보았습니다. 알알이 콩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숙성된 청국장을 따뜻한 밥에 비벼 먹었습니다. 아우!! 토속적인 전통 우리 음식이 코끝으로 전해왔습니다. 구수한 냄새가 진동했던 청국장에 쓱싹 비벼 먹는 그 맛은 지금도 청국장맛을 잊을 수 없으며 입맛을 다시게끔 합니다.

 


점심시간이면 길게 줄을 선다는 원진노기순청국장에서 냄새나지 않는 우리 청국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제 원진노기순청국장에서 청국장을 맛있게 먹고 백제의 궁궐이었다는 공산성 여행을 하러 출발.




세계유산 백제역사 유적지구 공산성


세계유산 백제역사 유적지구 공산성


세계유산 백제역사 유적지구 공산성


세계유산 백제역사 유적지구 공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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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27 07:43 신고

    청국장은 좀 냄새가 나더라도 건강을 위해서 먹고 있답니다




(봉화여행/봉화가볼만한곳)봉화목재문화체험관. 춘양목의 고장 봉화목재문화체험관 여행하기


지금이야 철, 시멘트 등으로 목재의 효용가치가 많이 줄어 들어지만 20~30년전까지만 해도 목재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품목이었습니다. 예로부터 나무는 겨울에 추위를 이겨주는 땔감에다 더군다나 집을 짓는데 없어서는 안될 재료였습니다. 조선에서는 사계절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솔잎으로 선비들 사이에서는 매난국죽의 사군자와 함께 지조를 상징하는데 소나무를 포함시켰습니다. 당연히 산수화인 한국화에서 소나무가 빠지면 ‘앙코없는 찐방’으로 여길 정도로 샐각되어 휘어지고 꺽인 우리 소나무는 빠지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그만큼 소나무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만큼 중요합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구절로 151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전화:054-674-3363


봉화목재문화체험장 관람안내

봉화목재문화체험장 휴장일:1월1일, 설날, 추석연휴,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그다음날 휴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 개장시간:하절기: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1시간 전까지 입장)

동절기:오전9시~오후 5시까지(1시간 전까지 입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 관람요금:무료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체험료:재품별 별도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단체  체험객은 사전 예약을 꼭 해주세요




2017/02/10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송이 용두식당. 춘향목의 솔향이 가득한 봉화 송이돌솥밥 용두산장에서 맛보다.

2013/11/13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청량산 전망대 청량산 축융봉 산행.청량산

2012/12/16 - (경북여행/봉화여행)단맛없는 사이다 맛이 이런 맛.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 오전약수

2012/12/07 - (경북봉화여행)봉화 선달산산행. 신선이 놀던 곳 백두대간 선달산 산행

2012/12/17 - (경북여행/봉화영월여행) 단군왕검을 뜻하는 박달나무, 우리나라에 박달령이 많은 이유가 있네. 백두대간 선달산 박달령



소나무에 대해서 궁금한 것도 많고 해서 봉화 여행길에 먼저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을 찾았습니다. 이곳을 관람하면서 우리 소나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소나무중에서 가장 품종이 우수하고 단단한 소나무를 금강송이라합니다. 금강송하면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하고 고개를 꺄웃하실것입니다.



예!. 얼마전 숭례문이 화재로 불탔습니다. 그때 티비로 불타는 숭례문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 울었고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불탄 숭례문은 복원이 결정되었고 복원에 사용된 나무가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인 금강송입니다. 금강송은 단단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금강송 이외에도 지역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금강송은 우리나라 소나무를 대표하며 가장 우수한 품종으로 금강산 일대에서 주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금강송이라 부릅니다.

 


적송도 있는데요. 적송은 꼭 금강산과 동해의 고산이 아니라도 명산에 두루 분포하며 껍질이 붉고 속이 단단하고 가지 끝에 붙은 눈의 색깔이 붉은 소나무를 말하여 흔히 홍송이라고도 합니다. 강송도 있습니다. 이는 금강송을 줄인 말이며 강원도 금강산에서  경북 청송군까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동해안에서 곧게 자란 소나무입니다.



금강송의 대표나무인 황장목도 있습니다. 황장목은 이름에서 보듯이 나무의 단면이 창자처럼 생겼으며 속이 붉고 누렀다하여 황장목이라 불렸습니다. 황장목의 고귀함은 조선시대 왕이 승하하면 황장목으로 관을 짰다고합니다.



그리고 춘양목이 있습니다. 춘양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춘양면을 말합니다. 춘양목은 "춘양역에서 실려 온 소나무"을 뜻하며 이게 춘양목의 유래입니다. 1955년 7월 영암선이 개통되었는데 백두대간 일대에서 임산물과 광산물을 수송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또한, 봉화, 울진, 삼척 등지에서 목재를 벌채하면 춘양역에서 모두 모아 서울과 대도시로 팔려나갔습니다.

 


춘양에서 싣고 온 목재는 집을 짓는 현장의 실무자로부터 품질이 우수한 최고의 목재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 나무냐고 물으면 모두 춘양역에서 실어온다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입소문이 나서 질좋은 소나무하면 춘양목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춘양목은 단단하고 속이 붉으며 집을 짓는데 최고의 건축자재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나무가 금강송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춘양목 군락지에서 만났던 나무는 그야말로 쭉쭉빵빵 잘빠진 팔등신의 미녀를 닮아 정말 아름다웠는데 금강송이라 하는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이번에 경상북도 봉화팸투어를 하고 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뜻 깊었던 곳은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이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은 제가 꼭 한번 가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경북관광공사에서 봉화팸투어 목재문화제험장 공지를 보고 접수하여 참가한게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 덕택에 봉화군의 우수한 소나무인 춘양목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론을 익혔다면 이제는 현장 체험 인 나무를 이용한 만들기입니다. 망치로 못을 박고 접착제로 나무와 나무를 붙이며 어릴적 공작시간의 재미를 느끼는 멋진 체험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과 창평산림욕장 등의 관람은 무료입니다. 그리고 목재를 이용한 만들기 체험은 유료로 운영중입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은 2011년 9월 문을 열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면적을 보면 29,500㎡, 창평산림욕장은 95,000㎡ 의 규모입니다.



주요시설을 보면 2층 규모에 목공체험실, 공구실, 자재실, 목재도서관, 전시실, 어린이 체험관과 부대시설인 산림욕장, 자생식물단지, 야외교육장, 어린이 놀이시설, 잔디광장, 연못과 목재 육교, 전망대등이 갖추어져 부산에 생활하는 저로서는 이런 힐링 공간을 가까이 두고 있는 봉화 군민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안내도를 일별하고 계단을 오르면 2층이 목재문화제험장 입구입니다. 출입구옆에 나무로 만든 세발자전거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나무다 보니 조금은 툰탁해 보이지만 그래도 굴러가는게 신기했습니다. 체험관 견학을 온 아이들만 좋아하는게 아니었습니다. 어른들도 나무 세발자전거가 신기했던지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부러질까 불안했는데 그래도 튼튼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관은 모두 나무로 지어졌습니다. 그때문인지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했습니다. 입추도 지났지만 바깥의 온도는 찜통 더위로 쉽게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는데 목재로 만든 체험관 내부는 어디서 에어컨을 틀었는지 시원했습니다. 잠시후에 나무가 자연에어컨역할을 해서 시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것을 보면 나무가 그만큼 우리몸에 좋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요즘 통나무집이 인기인가 봅니다. 나도 빨리 돈을 벌어 통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관에는 우리소나무에 관해 많은 연구를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각으로 전시중입니다.  섬세하게 나무를 조각한 작품이 전시중인데 나무로 만들지 못하는게 없을 정도로 예술성 높은 전시품에 깜짝 놀랐습니다. 나무를 깎아만든 12지신상, 관음보살반가사유상 등 다양한 작품을 구경하고 봉화군의 춘양목에 대한 전시를 보고서야 조금은 춘양목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전시실 사진으로 구경하기




조선목수 도편수와 대목장 소목장 알아보기....








춘양목으로 조선 궁궐도 지었네요 


춘양목과 리기다 소나무 수피 모양을 비교하세요


춘양목에 대해 알아보아요??




봉화 이틀째 고택 체험을 했던 만산고택.. 춘양목으로 지어졌다합니다. 




일반 소나무와 춘양목 무엇이 다른가 우리 알아보아요?



당시 춘양목을 실어 날랐던 춘양역 전경. ㅎ 춘양에서 고택체험을 했는데 이곳에 가보지 안았던 것을 지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봉화목재민속체험관에서 여러가지 나무로 만들기 체험을 해보세요?



















우리나라에 나무 종류가 정말로 많습니다.

100가지 나무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어린이방













체험관 2층 내부를 일단 관람하고 밖으로 나와 창평 산림욕장을 걷기로했습니다. 숲해설가의 안내를 받으며 봉화목재문화체험관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숲속길로 들어갔습니다. 소나무에서 뿜어내는 짙은 솔향을 조금이라도 더 마시려고 더욱 크게 심호흡 했습니다.

 

창평산림욕장 걷기









청량감이 폐를 가득채웠더니 내 폐가 10년은 젊으진 듯 했습니다. 숲해설가의 싸리나무에 관한 어사박문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나무 숲길을 걸었더니 어느 새 정자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주위 경치는 소나무숲에 가렸지만 그래도 수확을 앞둔 황금들판이 나무 사이로 보였는데 농촌의 가을 풍경이 그림 같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음수대. 봉화목재문화공원은 모든게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다시 봉화목재문화체험관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몸과 마을을 힐링했다면 이번에는 목재 만들기 체험에 도전했습니다. 목재 체험장은 1층에 있었습니다. 2층에서 천장은 물론이고 벽체도 나무를 돌린 복도를 지나 나무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도전할 작품은 ‘손잡이 박스’였습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나무를 자르고 깎고 대패를 밀고 하는 게 아니라 요렇게 상자안에 체험하도록 딱들어있습니다. 뚜껑을 개봉합니다. 나이테가 그대로 살아 있는 매끈한 나무판과 재료가 들었습니다. 체험용 나무는 춘양목이 아니고 활엽수 나무라 했습니다.

 



손잡이 상자 개봉 전


손잡이 상자 개봉 후


판자와 못, 접착제와 모양을 낼 여러가지 스티커가 상자에 들어있고 망치는 따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춘양목은 체험하는 사소한 용으로 아마 사용할 수 없겠지요. 일단 판자를 자세히 보면 작은 홈이 나 있습니다. 홈이 있는 3개의 판자에다 망치를 가지고 못을 1/3 정도 들어가게 박습니다. 망치로 못대가리를 때릴 때 바른 자세로 때려야만 못이 휘어지지 않고 바로 들어갑니다. 잘못하면 못이 휘어져 망칠 수가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판자에다 못을 다 박았다면 좌우로 세우는 판자에다 손잡이가 되는 둥근 기둥을 끼웁니다. 그리고 나면 접착제를 가지고 못을 박은 반대편 부분과 손잡이가 있는 판자 아래 모서리 부분에다 잡착제 칠을 합니다. 어긋나지 않게 판자를 서로 맞추었다면 이제는 1/3 정도 박은 못을 끝까지 들어가도록 망치로 때려 박습니다.

 


망치로 못대가리를 살살 박으면서 점점 강도로 높여야 휘어지지 않고 끝까지 깨끗하게 박혀집니다. 사실 못질이 쉽지 않습니다. 어긋나지 않게 맞추어가며 판자에다 못을 다 박았다면 손으로 못대가리가 끝까지 잘 들어갔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판자가 서로 겹쳐진 부분을 확인합니다. 모난곳이 없이 깨끗하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저는 못대가리는 휘어지지 않고 깨끗한데 판자의 접합부분이 약간 어긋나 사포로 살살 문질렀습니다. 그래도 어긋난 부분은 감출 수 가 없었습니다. 나도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마음만은 뿌듯했습니다. 내가 잘 만들면 목재 장인의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나무로 멋진 만들기 체험을 마무리 했습니다.

 







봉화목재체험장 전경



이곳에서 시간의 여유가 있어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을 둘러 보기로 했습니다. 나무 육교를 건넜더니 정자가 나왔습니다. 전망대에서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전경이 다보였습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오솔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저곳이 뭐지!’하며 궁금해서 가보기로 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어린이 놀이터



넓은 터에 목재로 만든 어린이 놀이터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범선 같았습니다. 불연 듯 타이타닉이 생각나 “야! 저 꼭대기에 한번 서 보라“며 친구 등을 떠밀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 놀이시설인데 함부로 올라갈 수 없어 눈으로만 구경했습니다. 넓은 잔디 광장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웃고 뛰놀고해도 전혀 다치지 않을 것 같았으며 가족소풍장소로도 최고로 보였습니다.


소풍장소로 최고인 잔디광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보고 출발지로 내려 왔습니다. 이런 곳이 체험료만 빼고 모두 무료관람이라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부모님을 동반하면 참 좋은 곳이며 온가족이 소풍과 체험으로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곳입니다. 부산에서 온 저도 봉화목재문화체험장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힐링된 기분으로 다음여행지로 고고씽





※이 포스팅은 경북관광공사에서 주최한 '2017 창조지역사업 「나무사랑학교」 봉화 춘양목 팸투어에 참가하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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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363 | 봉화목재문화체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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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26 07:26 신고

    구경거리가 풍성해서 좋은데요 잘 보고 갑니디




(영동맛집/황간맛집)민주지산맛집 월류봉맛집 황간 원조동해식당. 착한 마음으로 끓인  올갱이국 원조 황간 동해식당.


영동 쪽으로 가면 꼭 먹고 온다는 음식이 다슬기국입니다.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각각 달라 경상도에서는 고디라하고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올뱅이라합니다. 다슬기는 표준말로 지방에 따라 메뉴판 이름이 다르게 붙은 것도 보면 재미있습니다. 처음 듣는 분은 생소할 것 같습니다.




 

민주지산 월류봉 백화산 포성봉 맛집 황간 원조동해식당 주소: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마산리 42-33(황간역인근)

민주지산 월류봉 백화산 포성봉 맛집 황간 원조동해식당 전화:043-742-4024




2010/08/31 - (충북여행/영동여행)영동 월류봉 산행. 월류봉의 비경에 반해 달도 머물고 간다는 영동의 월류봉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만 다른 게 아니라 다슬기(올갱이)를 요리하는 방식도 제각각 다릅니다. 경상도에서는 들깨를 갈아 넣은 고디국이 있다면 충청도에서는 맑은 국물에 시래기를 넣어 끓여낸 올갱이국 또는 올뱅이국이 있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전자는 구수하며 약간 텁텁한 맛이라면 후자는 칼칼한 게 시원한 국물맛을 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지방마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부산에서도 맑은 국물의 고디국을 먹을 수 있어서 독특한 그 지방의 특색 있는 맛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맑은 국물의 고디국 원조라면 원조 격인 영동은 금강의 맑은 물이 내려와 예전에는 올갱이가 지천일 정도로 많이 잡혀서 올갱이국이 너무나 유명했다 합니다.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올갱이 식당이 여러 곳 있으며 영동 여행을 하면서 경부고속도로 황간 요금소로 진입하려다가 이곳까지 왔는데 황간역에 가서 올갱이국을 먹고 가자며 다시 차를 돌려 황간역으로 몰았습니다. 시간이 많이 늦어 영업하겠나 싶어 걱정했습니다. 올갱이국 전문점들이 여러 곳 있으며 많은 곳의 간판불이 꺼져 식당 문을 닫았지만 다행히 한 곳만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쓰러질 것 같은 옛 건물이 마음마저 편안하게 해주는 원조 동해식당입니다. 대략 40여 년의 역사는 오래된 건물이 말해줍니다.

“장사합니까? 하고 머리를 쑥 밀고 여쭈었습니다.

“예! 안으로 들어오세요” 하며 안에서 대답이 나왔습니다.



키가 큰 사람은 허리를 굽힐 정도로 낮은 문지방을 들어서면 예의 식당 내부도 60~70년대 영화에나 나올법한 ‘엄마 아빠 어릴적의 모습’을 보는 곳 같은 그런 집입니다. 식탁과 걸상은 어떠하고요? 개조는 했지만 둔탁한 나무 책상 같은 식탁에 걸상은 어릴 적의 추억을 끄집어 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친구와 동해식당에 오면 자연스럽게 말이 많아지는 이유가 이런 예스러운 식당의 분위기 때문인가 봅니다.



앉은뱅이 식탁인 골방에는 사방벽과 천장은 물론이고 식당의 내부에도 40여 년의 흔적이 역사가 된 손님의 낙서가 빼곡합니다. 그래도 늦게까지 하시네요 하면서 그 덕분에 우리가 올갱이국을 먹고 간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때마침 주민으로 보이는 한팀이 먹고 나가면서 이곳의 올갱이국이 최고라며 엄지 척을 했습니다. 눈인사하고 올뱅이국을 주문했습니다.



황간의 여러 곳에서 올갱이국을 먹고 다닌 터라 식당 내부의 분위기를 이야기하자 손님들도 예스러운 이런 분위기를 많이 좋아하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해식당에서는 올뱅이국이라 하지만 올갱이와 같은 말입니다. 이곳에서는 올갱이 또는 올뱅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뚝배기에 차려진 올뱅이국은 예의 맑은 국물로 땡초를 넣어 약간 더 칼칼하게 해서 먹었습니다.

 


진짜 땡초가 매워 많이 넣으면 안 됩니다. 국물 맛을 보고 땡초를 넣든지 아니면 넣지 않는 게 좋습니다. 숟가락으로 국물맛을 보는데 헛기침이 나면서 예의 목 안으로 핫한 느낌이 확 밀려 왔습니다. 몇 숟가락 먹었더니 그제야 적응이 되었는지 시원한 국물에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이때 어르신들은 “아따. 국물 맛이 시원하다”며 부채질을 연방 하실 듯...



뜨거운 음식을 후~후 불면서 드시고 국물이 시원하다는 말을 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어릴 때는 이해를 못 했는데 이제 그 뜻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다 보니 내 입에서도 국물이 시원한 게 끝내준다는 말을 연발하며 뚝배기 그릇이 바닥이 보일 때쯤 밥과 국물이 모자라면 더 달라고 하세요 하는 천사 같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앞의 일행은 그럼 눈치 없지만, 국물하고 밥을 조금 더 주세요 하면서 더 받아 먹었습니다.




속으로 이런 집도 있구나 하면서 오래전 청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주었습니다. 청도는 추어탕이 유명합니다. 그 유명 추어탕 집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 청도역에 내리면 당연히 그 추어탕 집에서 아침을 먹고 산행을 나설 정도로 꼭 그 집에서 추어탕을 먹고 나서는데 그날도 일행 수십 명이 그 집에서 추어탕을 먹는 중이었습니다. 다른 좌석에 부부가 꼬맹이를 데리고 왔는데 멋모르고 두 부부 모두 산초와 마늘을 넣어 매워 어린아이가 먹을 수 없게 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식당 할머니에게 생각도 안 하고 산초와 마늘을 넣어 아이가 매워 먹지 못하는데 국물을 조금만 얻었으면 합니다. 하고 정중하게 부탁을 하니 그 할머니 왈 “팔 국물은 있어도 그냥 내어줄 국물은 없다”는 말을 하기에 갑자기 추어탕 맛이 확 변하는게 밥맛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때 우리 일행들 모두 할매요? 할매도 아들이 있고 손자 손녀도 있으면서 아이가 매워 국물을 못 먹는다 하면 조금 갖다 주면 되지 뭘 그리 인색하게 하느냐면서 “다시는 이 집에 오는가 봐라”하고 계산하고 나왔습니다. 지금도 청도에 자주 가지만 그때마다 추어탕으로 아침을 먹습니다. 그러나 그 집만큼은 지금도 가지 않습니다.

 






음식도 사람이 만듭니다. 아름다운 마음씨가 좋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상술에 만드는 음식은 나쁜 재료에 이익만을 생각하고 나올 게 뻔한 뻔 자입니다. 동해식당처럼 모자라면 올갱이 국물을 더 먹으라는 그런 착한 마음씨가 40년 동안 이어온 동해식당의 힘인 것 같습니다. 친구한테 예전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면서 이런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식당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동해식당의 맛있던 올뱅이 국이 더욱 맛있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사람이 만듭니다. 따뜻한 마음씨가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동해식당의 올뱅이국은 주인장의 따뜻한 마음씨를 보면 틀림없이 건강한 식재료로 정성을 다해 올뱅이국을 끓일 것 같습니다. 올뱅이국만 시원한 게 아니고 황간 동해식당의 분위기도 올갱이국만큼 시원하고 칼칼한 분위기라 민주지산, 백화산 포성봉, 월류봉 산행을 하고 난 뒤 맛집으로 정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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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군 황간면 마산리 42-33 | 원조동해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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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21 07:33 신고

    올갱이국이 참 맛있어 보입니다 밥 한 그릇 뚝딱이겠는데요




(대구맛집/남구맛집)앞산맛집, 앞산카페거리 일본가정식 도키도키의 독특한 매력에 빠지다. 대구 도키도키


‘도끼도끼’ 참 음식점 이름 한 번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일본 가정식 전문점이라지만 도끼도끼가 머꼬 하며 궁금했던 한사람입니다.

다시 확인하니 ‘도끼도끼’가 아니라 ‘도키도키’였습니다.

일본말로 ‘두근두근’ 이라 하던가





앞산 카페거리 맛집 도키도키 주소: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509-2(대명남로 188)

앞산 카페거리 맛집 도키도키 전화:053-215-5252




2014/01/17 - (대구여행/중구여행)'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영원한 가객 김광석 벽화거리에서 만나다.김광석

2014/01/27 - (대구여행/스파밸리 포레스트12)대구여행에서 숙박 걱정마세요 스파밸리 포레스트12 끝내줘요.

2014/06/24 - (대구여행/수성구여행)수성못 용지봉~병풍산 산행. 대구의 근교산 용지봉~병풍산 산행.

2014/12/23 - (대구여행/대구근대문화골목여행)대구 마지막 남은 요정 가미, 대구근대문화골목에서 만나보세요.

2015/01/07 - (대구여행/대구 중구 골목투어)대구근대역사관. 1코스 경상감영달성길에서 대구 근대 역사를 한눈에 만나는 대구근대역사관 관람.




앞산 쪽에 일이 있어 찾았다가 마침 저녁 시간도 다되어 저녁을 먹고 가자는 일행.

“이곳에 대구에서 유명한 맛집 거리가 있다는데 그곳에 한번 가서 저녁 먹읍시다” 하기에 

“아무 데나 가서 먹자.”



일본 가정식이라니까 된장(미소)이 생각났는데 어떤 음식인가 싶어 먼저 마음에 끌렸습니다. 

그래 한번 가보자며 찾아갔던 대구 앞산 아래 카페 거리였습니다. 

그리고 보면 보수색채가 강한 도시라도 참 이런 것은 아주발 빠른 것 같았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도키도키를 찍었더니 일사천리로 안내되어 길 찾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도키도키 매장 앞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이 따로 없어 아주 난감하였습니다. 

도로에 주차할 수 없고 해서 도키도키로 전화를 때렸습니다. 

돌아온 말이 주위 골목으로 들어가서 아무 때나 보고 주차하면 된다였습니다. 

그래서 골목으로 들어가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도키도키에 찾아갔습니다. 



음식점 입구에서부터 색상과 분위기가 일본식의 아기자기한 면이 돋보였습니다. 

그런데 10대~20대가 가는 핫한 곳 아니가하며 조금은 어색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래 아직 나도 청춘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막상 안으로 들어가 앉아있는 손님을 보고 그리 젊은 층이 아닌 것 같아 

속으로 야 먹어도 되겠다며 남자 둘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분위기가 카페 같은 그런 좌석 배열이었습니다. 

분위 상으로 젊은 친구라든지 연인, 여성분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일단 이런 곳도 한 번씩 들어와 봐야 한다며 마음을 굳게 먹고 메뉴판을 기다렸습니다. 

메뉴판을 보고 이것저것 보다가 그중에서 가장 비싸다는 도키도키 스페샬(16,000원)을 둘 다 주문했습니다.



주위에 두 팀이 있었는데 모두 작은 숯을 놓고 구워 먹고 있었습니다.

“야! 야! 이 집에 저게 전문인갑다”

“이거 주문 잘못한 거 아이가”

“아이고 마, 형님 꿉기도 귀찮고 누가 꿉습니까”

“스페샬도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묵읍시다”

“그래 그라자. 다 똑 같겠제”하는 대화를 나누면서

“야! 그래도 저게 더 맛있어 안 보이나”하며 입맛을 쩍~ 다셨습니다.



물은 셀프였습니다. 

큰 유리 글라스에 담겨 있었는데 레몬이 들어갔는지 생수에 레몬 느낌이 나섭니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도키도키 스페샬이 나왔습니다. 

그때야 주문을 잘못했구나 싶었습니다. 

스페샬을 주문했다면 한 개는 다른 요리를 주문해서 같이 맛을 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주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각자 다른 요리를 주문하면 얼마나 귀찮게 생각할까 생각해서 

똑같은 요리를 주문한 중년의 아저씨들....



스페샬 요리를 먼저 눈으로 스캔했습니다. 

돈가스, 감자튀김과 새우튀김 1개 그리고 장어가 나왔는데 아마 도키도끼 모듬요리 같았습니다. 

그런데 장어가 몇 점 보였지만 너무 굵기가 작아서 참 아주 아쉬웠습니다. 

역시 음식은 단일품목으로 주문을 해야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겠다 싶었습니다.



음식에는 문외한이지만 일단 맛을 한번 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잘게 갈았던 깨소금을 돈가스 소스에 넣고 섞었습니다. 

그래도 대표 요리인 만큼 돈가스를 먼저 맛봤습니다. 

튀김 음식은 바싹한 게 괜찮았습니다.



우리는 분위기도 느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러 간 게 아니고

 저녁을 먹고 빨리 부산으로 돌아가야 해서 

급하게 이거 저것 먹다 보니 금방 그릇을 비웠습니다. 

아마 숯불을 앞에 놓고 구워 먹었다면 벌써 숨넘어갔을 것 같았습니다.

 


도키도키는 우리처럼 저녁을 먹기 위한 곳보다는 여러 음식을 놓고 천천히 친구와 이야기도 나누며 분위기도 느껴보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오직 우리는 후두닥 밥만 먹고 나왔던 도키도키였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온다면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이야기도 나누면서 도키도키의 음식 맛을 골고루 맛봐야겠습니다. 

도끼도끼가 아니고 도키도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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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남구 대명동 509-2 | 도키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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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20 07:22 신고

    색다르게 먹을 수 있어 재미재미있는 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9.20 09:30 신고

    저 동네에 갈만한곳이 참 많습니다 ㅎ




(장흥맛집)장흥토요시장맛집 명희네음식점, 장흥물축제 맛집 명희네 장흥삼합


전라남도 장흥군은 여름철물축제로 유명한 곳입니다. 탐진강에서 벌어지는 한여름의 물축제는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끼칩니다. 그만큼 시원함을 선사하는 장흥물놀이 축제가 열리는 장흥군 장흥읍에는 전통시장인 장흥 토요시장이 있습니다. 장흥의 전통시장이라 먹을게 즐비하지만, 특히 장흥의 먹거리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게 한우를 이용한 장흥삼합입니다.





장흥맛집 장흥물축제, 장흥토요시장 맛집 명희네 음식점 주소: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예양리 195

장흥맛집 장흥물축제, 장흥토요시장 맛집 명희네 음식점 전화:061-862-3369




2014/07/15 - (전남여행/장흥여행)장흥군 정남진 장흥 물축제. 정남진 장흥 물축제가 곧 열려 1박2일 장흥여행 미리 댕겨 왔습니다.

2014/07/16 - (전남여행/장흥여행)정남진 장흥 물축제. 2014년 정남진 장흥 물축제에서 시원한 여름를 만나세요.

2014/07/25 - (전남맛집/장흥맛집)우리차 청태전은 장흥다원. 전통차라고 다 똑 같은 차가 아니랍니다. 우리차 청태전을 알고 마셔요.

2014/07/27 - (전남여행/장흥여행)영화 천년학 촬영지. 선학동 유채밭이 있는 천년학 세트장 선학동에 용택의 주막을 댕겨 오다.

2014/08/17 - (전남여행/장흥여행)장흥 정남진 전망대. 한반도의 남쪽 끝인 정남진 구경하고 왔습니다.




어떤 분은 홍어삼합은 들어봤어도 장흥삼합은 처음 듣는다는 분도 있겠지만 장흥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 장흥삼합 이제부터 기억해주세요. 앞에서 말했듯이 한우와 키조개, 그리고 표고버섯이 합해져 만들어내는데 모두가 장흥 특산물입니다.



천관산 등 많은 곳에서 한우를 키우고 장흥 앞바다의 키조개, 장흥의 명산에서 재배하는 표고버섯이다 보니 자연의 향이 그대로 전해져 장흥삼합이 더욱 인기가 있습니다. 장흥삼합은 장흥에 가면 꼭 먹고 온다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장흥 여행길에 장흥삼합을 먹기 위해 부리나케 움직였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하여튼 장흥삼합을 먹기 위해 장흥 토요시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래서 도착한 게 밤 8시 30분쯤 되었는데 우리는 영업을 하나 안 하느냐며 명희네 식당으로 직행했습니다. 장흥 토요시장에는 장흥삼합 식당이 여러 곳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곳 명희네음식점이 장흥삼합 맛집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답니다.

 


식당 간판도 불이 들어와 있고 해서 문 앞에서 얼쩡거리니 안에서 주인아주머께서 나오셨습니다. 장흥삼합을 먹으려고 한다니까 지금은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장흥에서 장흥삼합을 맛보기 위해서는 일단 정육점에서 쇠고기를 먹을 만큼 사와야 합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키조개와 표고버섯 등 상차림 비를 주고 구워 먹는 방식인데 시간이 늦어서 정육점이 모두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오후 8시면 정육점이 모두 문을 닫는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그리고 명희네 식당도 9시까지 영업한다 해서 까딱하다가 저녁도 거르고 부산으로 갈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장흥삼합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꿩대신 닭이라고 장흥삼합 대신 먹을게 없을까 하며 메뉴판을 이리저리 보는데 요즘 짱뚱어가 제철이라며 짱뚱어탕을 권했습니다.



짱뚱어를 먹을까 하다가 그래도 장흥삼합을 먹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야겠다 싶어 장흥에서 한우도 유명하니 한우가 들어간 육회비빔밥을 주문했습니다. 아무래도 육회비빔밥이 더 나을 것 같아서요. 그때까지도 식당 안에 손님이 몇 팀 있었습니다.



식당 내부에는 방송국과 언론사에서 왔다 갔다는 맛집 인증서가 다닥다닥 붙은 게 정말 많이도 왔다 갔습니다. 진짜 일일이 다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1박 2일이니 백종원의 3대천왕이니 하면서 요즘 음식으로 인기 있는 방송에도 출연했는가 봅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눈에 들어온 게 2007년 천년학 촬영팀인 오정해. 조정현, 임권택감독과 배우도 먹고 갔다는 게 더욱 장흥 맛집으로 다가왔습니다.



명희네음식점은 매생이와 장흥삼합이 대표 음식이라 합니다. 고기를 먹은 다음 기름진 속을 씻어주며 시원하게 해준다고 알려진 매생이로 만든 음식은 전남 장흥의 대표적인 토속음식이며 장흥읍에서는 명희네가 가장 유명하다 합니다.

 


늦은 시간에 한참에 여러 음식을 맛볼 수도 없고 해서 육회비빔밥에 만족하며 기다렸습니다. 늦은 시간이지만 차려진 밑반찬은 대체로 깔끔했습니다. 그리고 육회가 들어간 비빔그릇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육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따로 나오나 하면서 젓가락으로 김 가루를 걷었습니다. 그 안에 선홍빛을 한 싱싱한 장흥 육회가 부끄러운 듯 살포시 자리해 있었습니다.



장흥표의 맛있는 육회이니 맛있게 먹으라는 듯 방긋하며 웃는 한우 육회를 젓가락으로 들어보았습니다. 제법 양도 많았습니다. 이제 뭐 밥을 넣고 왼쪽으로 비비고 오른쪽으로 비비는 일만 남았습니다. 비빔밥은 숟가락보다도 젓가락으로 비벼야 더 잘 비벼진다는 사실 기본인 거 모두 아시죠.







젓가락으로 잘 비볐다면 이제 육회비빔밥을 숟가락으로 크게 퍼서 먹는 일만 남았습니다. 크크 육회가 올려진 비빔밥 기념사진 한 장을 박고 드디어 입으로 슛했습니다. 부드러운 육질과 알싸한 비빔 재료의 조화에다 그리고 표고버섯도 들어가 있어 장흥삼합은 먹지 못했지만 대신 명희네의 육회비빔밥으로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오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늦어서 장흥의 명물인 장흥삼합을 먹지 못하고 가서 아주 섭섭하겠다며 위로해주시길래 다음에는 조금 일찍 와서 맛보고 가겠다며 명희네를 나왔습니다. 마침 탐진강 위로 둥근 달이 솟았던 게 보름이 얼마 남지 않았나 싶어 스마트폰으로 장흥 야경을 한 장 찍고 아주머니의 따뜻한 인심을 가슴에 담고 부산으로 먼 길을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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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군 장흥읍 예양리 195 | 명희네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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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비™ 2017.09.18 21:58 신고

    장흥삼합 사진 보다 하니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지요?
    행복한 한주 시작하세요~~




(부여맛집/부소산낙화암맛집)구드래유람선선착장 맛집 장원막국수. 부여 장원막국수


부여의 대표 여행지는 모두 한곳에 모여 있습니다. 백제왕궁터로 알려진 궁남지에 연꽃이 있으며 부여박물관과 정림사지 삼층석탑, 3천 궁녀가 떨어져 한 떨기 꽃이 되었다는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이 모두 다닥다닥 붙어 어슬렁어슬렁 걸으면서 한꺼번에 딱 구경하기 좋습니다.






부여맛집 부소산맛집 구드래나루맛집 장원막국수 주소: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나루터로 62번길 20(구교리 8-1) 구드래 유람선 선착장

부여맛집 부소산맛집 구드래나루맛집 장원막국수 전화:041-835-6561





2015/08/17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부소산성 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부여 부소산성에서 백제를 만나다. 사비성

2015/07/26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서동 연꽃축제 궁남지. 백제의 도읍지 부여의 많은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축하. 부여 서동 연꽃축제가 궁남지에서 열렸습니다.

2015/07/31 - (충남맛집/부여맛집)부소산성맛집, 낙화암맛집,고란사맛집 부소산 칼국수. 구수한 콩국수로 여름도 이기고 백제의 사직과 함께한 삼천궁녀 낙화암도 구경하는 부소산 칼국수.

2015/08/05 - (충남여행/부여여행)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시대 문화재를 만나다.

2015/08/07 - (충남여행/부여여행)낙화암과 고란사. 마지막 백제의 흔적 부소산성 백화정 낙화암 고란사를 여행하다. 낙화암과 고란사





백제의 향기를 맡으며 걷다 보니 아침에 빵빵하게 먹었던 배는 고무풍선에 바람 빠지듯이 금방 배가 꺼졌습니다. 그래서 부여여행을 하다가 급속 충전을 해야 해서 부근에 있는 사람을 붙잡았습니다. 부소산 아래라 저처럼 여행을 온 사람이 아닌 주민인 듯 보이는 분에게 다짜고짜 이곳에 자주 가는 맛집이 어디입니까하였습니다.

 


그분은 갑자기 묻는 게 황당했는지 웃으면서 맛집은 부근에 두 군데가 있다시며 장원막국수와 구드래쌈밥집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쌈밥집은 여기고 장원막국수는 구드래나루(구드래 유람선 선착장)에 있다는 이야기까지 덤으로 해주시면서 점심시간에 맞추어 가시면 아마 줄 서서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시간을 보니까 점심시간도 대충 맞아떨어지는 것 같고 해서 허기진 배에 배터리 보충을 하기로 했습니다. 두 곳 중에 점심이니까 장원막국수로 결정했습니다. 그 대신 쌈밥은 저녁에 먹기로 했습니다. 구드래나루가 가깝지만 그래도 IT 기계를 이용해서 목적지인 장원막국수 검색을 했습니다.

 


별다른 IT 기계가 아니고요 스마트폰으로 장원막국수 검색을 했더니 대략 300m 거리였습니다. 다시 발품을 팔면서 스마트폰을 보고 따라갔습니다.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막국수 먹을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먹는다는 생각 때문인지 발걸음이 구름 위를 산책하는 듯 가벼우며 빨라졌습니다.



장원막국수는 구드래나루가 있는 백마강(백강) 둑에서 오른쪽에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아주 안내를 잘해주었습니다. 구드래나루 주차장인지 모르겠지만 큰 주차장도 있는 게 정말 유명한 맛집 같았습니다. 점심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식당 건물을 보니까 진짜 오래된 전통 맛집이었습니다. 일반 가정집 같은 느낌에다 방으로 들어갔더니 시골의 사랑방 같은 분위기라 제 마음이 다 편안했습니다. 문종이를 바른 방문은 쓩쓩 구멍이 뚫렸고 빛바랜 벽지는 전통 막국수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장원막국수는 막국수 전문점으로 딱 메밀막국수와 함께 먹는 편육뿐입니다. 그것도 물 막국수였습니다. 사실 막국수만 먹어도 되는데 메밀막국수는 금방 배가 꺼져 고기와 같이 먹으면 맛도 좋고 배도 빨리 꺼지지 않고 든든해서 저도 좋아합니다. 원래 면 음식인 냉면이나 밀면, 국수, 막국수 등에 편육 한두 조각이 들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문은 막국수와 편육은 2명에 한접시가 가도록 했습니다. 막국수와 편육이 금방 나왔습니다. 편육은 수육이며 항정살인지 모르겠지만 얇으면서 부드럽고 조금 기다란 하여 막국수와 함께 딱 싸서 먹기 좋았습니다. 먼저 젓가락으로 막국수를 막 섞었습니다.

 


다른데 막국수 음식점처럼 가위도 없고 밀면이나 냉면에 꼭 넣는다는 식초와 겨자도 식탁에 보이지 않아 막국수에는 넣지 않고 먹었나 싶었습니다. 부산은 국수 빼고 전부 다 가위로 자르고 겨자와 식초를 넣어 먹는데 말입니다. 내 식성만 그런가 하며 식탁에 보이지 않아 부여의 막국수 법을 따라 그냥 먹기로 했습니다.





먼저 막국수의 육수 맛을 보기로 했습니다. 살얼음이 살짝 낀 막국수를 보니 술 먹은 다음날 해장으로도 최고 같았습니다. 그리고 막국수를 먹기 전에 육수로 속을 한번 씻어주고 먹는 게 정석이라나, 믿거나 말거나 그래도 경험상 입안이 깔끔한 게 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 괜찮은 방법이라 추천합니다.



막국수에 편육을 말아 함께 입안으로 쏙~~~크크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 나가도 모를 정도로 달곰한 맛이었습니다. 막 먹는다고 해서 막국수라는 이름처럼 형식이 없이 막 먹었습니다. 부산에 있다면 막국수 맛에 중독되어 만날천날 질릴 때까지 찾아갈 듯, 부산하고 멀리 떨어져 천만 다행이다고 생각했습니다.



면도 부드러우면서 입에 착 감기는 육수 맛에 막국수와 수육을 게눈 감추듯이 퍼뜩 한 그릇 비웠습니다. 그러면서 조금 부족했던지 입맛을 쩝쩝하고 다시며 나왔습니다. 부여 부소산 낙화암 여행에서 맛집을 검색한다면 구드래나루의 장원막국수도 있습니다.





리고 중요한 게 메모하세요. 장원막국수 가서 알았는데 점심시간에만 장사하고 저녁 시간에는 영업하지 않는다했습니다. 즉 오후 5시가 넘으면 막국수 맛을 볼 수 없습니다. 부여맛집이자 부소산 맛집 장원막국수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오후 5시까지입니다. 꼭 참고하시고 허탕 치는 일 없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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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8-1 | 장원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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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18 07:39 신고

    정말 먹음직스럽군요 여행길에서 만나면 정말 반갑겠어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9.18 09:00 신고

    구드레 선착장에서 보기만 했습니다 ㅎ



거창 만월당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만월당과 임진왜란 의병 정용 비석을 만나다. 거창 만월당  


북상면의 갈계숲과 강선대 사이의 정용선생 유적지와 만월당을 여행했습니다. 만월당은 농산리 용수막 마을 도로 옆에 있습니다. 정용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카와 함께 집안 식구를 모아 의병을 조직하여 김면장군의 휘하에 들어갔습니다.





거창 만월당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314







조선 시대 3대 의병장 중 한 분인 김면은 거창과 고령에서 의병을 모아 군사를 일으켰으며 정용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선두에 서서 왜적과 싸웠습니다. 김면은 정용을 “충의로운 사람이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합니다.





여러 전투에 참여해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그의 마지막 전투인 진주성에서는 최경희의 휘하에 들어가 진주성을 지켰지만 사생결단으로 조여오는 왜적에 진주성은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정용은 두 조카에게 “우리가 적의 칼날에 죽는 거보다 남강에 빠져 죽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하며 두 조카와 함께 강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순절 12년 만인 1605년 선조 38년에 안문사가 관문을 보내옴에 따라 선조는 후손에게 조세와 부역을 면제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정용의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가지고 자식이 이익을 취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며 끝내 받지 않았다 합니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정용은 1539년 중종 34년에 갈계리의 본가에서 태어났으며 54세인 1592년에 의병으로 나가 1593년에 55세의 나이로 순절했습니다 그의 유적비가 현재 갈계리 용수막 만월당에 세워져 있습니다,




만월당

만월당은 1614년 만월당 정종주(1573~1653) 선생을 기려 처음지어졌다가 소실되었다합니다. 현재의 만월당은 1786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면 4칸에 옆면 1칸이며 옆에서 보면 사람 인자 모양인 겹처마 맞배지붕입니다. 남향을 보고 지어졌으며 가운데 2칸은 대청을 넣고 좌우 각각 1칸씩의 온돌방에 앞과 뒤로 툇마루를 달았습니다.

 

팔완


만월당정용비석

공포는 초익공집이며 5량가에 만월당 앞 마당에는 연못이 남아 있습니다.  정면에 만월당(滿月堂) 편액이 있으며 그 옆에는 팔완당(八玩堂)의 편액이 함께 걸려 있지만 건물의 공식 명칭은 만월당입니다. 





팔완당은 북상면 농산리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이후로 없어져 만월당에 함께 통합 복원하였습니다. 팔완당은 첨정을 역임한 정몽서를 기리고 있습니다. 만월당과 마주하며 진양 정씨 효우사가 있습니다. 만월당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70호입니다.


효우사

거창 만월당은 갈천선생의 문하였던 팔완당 정몽서와 손자인 만월당 종주를 모신 재실입니다. 그러다 2007년 맞은편에 효우사를 짓고 재례 기능은 모두 그쪽으로 옮겼갔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신 정용은 만월당 정종주의 삼촌으로 모두 한집안 일가입니다. 

만월당은 강당과 대문채로 구성되었으며 만월이란 당호에서 보듯이 밤에 물에 비친 달을 보기 위한 연못이 남아 있습니다. 

거창군에서 실시한 ‘거창 만월당의 기록화 조사 보고서’를 보면 만월당은 1786년 지어진 건축물로서 조선 중기 건축 상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건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월당의 평면은 퇴칸을 사용하지 않은 홑집으로, 퇴칸으로 공간을 넓혀 겹집화 된 조선 후기의 건축물들과는 많이 다르게 지어졌으며 또한, 정면과 측면의 비율, 평면과 높이와의 관계로 결정되는 전통건축물의 비례체계에서 조금 다른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다합니다. 만월당은 조선 중기의 건축기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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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314 | 거창만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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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09.15 09:02 신고

    여긴 못 가봤네요
    다음번을 기약합니다^^

  2. *저녁노을* 2017.09.15 14:30 신고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3. 핑구야 날자 2017.09.16 08:10 신고

    거창 만월당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네요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겹처마인 눈썹지붕의 처마선이 아름다운 사랑채 동계정온고택을 만나다, 거창동계고택


조선 중기의 문신인 동계정온선생이 태어난 곳은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강동마을입니다. 동계선생은 절의를 상징하는 분으로 널리 알려져 거창 여행을 하면서 동계고택을 꼭 찾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기회가 닿아 거창을 둘러보면서 함께 동계정온고택을 찾아왔습니다.





거창 충신당 동계정온고택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0-1




☞2017/08/14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여행일번지 수승대와 척수대.

2017/08/23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 용암정. 무더운 여름나기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을 여행하다

2017/09/02 -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농산리 석불입상)과 행기숲

2017/09/03 - (거창여행)야옹 정기필의 반구헌을 가다. 야옹 정기필의 반구헌

2017/09/07 - (거창여행)거창 월성계곡 강선대와 민들레울의 모암정 여행. 거창 강선대와 모암정

2017/09/10 - (거창여행)동계정온선생의 모리재를 찾다. 거창 모리재





동계선생이 태어난 집이지만 현재의 고택은 1820년인 순조 20년에 새롭게 지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동계선생이 생활했던 집이 아니라는 말씀. 동계고택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에 처음 지어졌습니다. 나무로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비바람에 노출되어 여러 번의 개보수가 있었는데 현재의 고택은 1820년에 지어졌다고 상량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문채는 일자형이며 가운데 솟을대문입니다. 출입문에 인조가 내린 정려문이 걸려있으며 안쪽으로 웅장한 사랑채 건물이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ㄱ'자의 사랑채에서 눈에 띄게 드러난 부분은 꺾인 부분에 누마루를 넣고 그 위에 올린 겹처마라 불리는 눈썹지붕입니다.

 


약간은 어색해 보이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겹처마는 정온선생의 절의를 상징하는 듯 보였습니다. 겹처마 덕분에 정온 고택의 위상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습니다. 눈썹지붕은 사랑채를 처음 지을 때 있었던 게 아니고 지붕의 처마가 건물에 비해서 작아 비가 누마루로 들이치고 하여 뒤에 새로 달아내었다고 합니다.



저는 고건축에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대부분의 고건축 전문가분의 공통된 의견인 것 같습니다. 사랑채는 남쪽을 향해 앉았고 앞과 뒤로 모두 툇마루를 달아내었으며 기단은 낮지만, 툇마루는 높게 만들었는데 이는 남부지방의 건물 특징중 하나라 합니다.

 

동계정온고택 사랑채



건물은 왼쪽부터 온돌방, 대청, 온돌방을 넣었으며 그 앞에 누마루를 배열했습니다. 온돌방의 앞쪽은 사랑방 역할을 하며 뒤쪽은 잠을 자는 침방으로 사용했습니다. 대청 또한 중간에 사잇문을 달아 나누어 사용했습니다. 누마루는 사방 문을 달아 개폐하도록 했는데 여닫이문의 문살이 눈이 부실 정도로 우아한 게 한국의 미를 보는 듯 매우 아름답습니다.





매미 소리 요란한 한여름에 누마루의 사방 문을 열고 책이라도 본다면 머리에 쏙쏙 들어올 것 같으며 또한, 드러누워 쿨쿨 낮 잠자기에 딱 그저 그만 일 것 같은 정온고택의 누마루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절의의 상징인 동계정온고택에서 한옥 민박체험을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6칸에 옆면 2칸 반이며 앞뒤로 두 줄로 된 겹집이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사실 안채는 살림집으로 현재에도 후손의 생활공간이며 출입할 수 없습니다. 빼꼼히 3칸의 중문을 통해 안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사랑채와 같은 남향이며 앞면 8칸에 옆면 3칸 반에 앞뒤로 툇마루가 있는 두 줄의 겹집으로 사랑채와 함께 주목받는 건물입니다.

 


건물의 구성은 대문채 사랑채, 안채, 아래채, 곳간채, 사당으로 이루어졌으며 거창의 동계고택은 영남 내륙의 추운 기후에 알맞게 우리나라 북부지방의 일반적인 겹집형태와 남부지방의 높은 툇마루를 잘 조화시킨 건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랑채에 걸린 충신당(忠信堂)과 모와(某窩)의 현판은 제주도에 유배 갔던 추사가 제주도의 대정에 유배왔었던 동계정온선생을 생각하며 훗날 정온의 놓은 절의를 기려 직접 동계고택을 찾아와 충신당을 적고갔다 합니다. 현재 그 현판은 거창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고택에 걸린 현판은 모작입니다.

 


모와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이씨조선의 마지막 왕족 의친왕 이강이 남긴 현판이지만 도둑맞아 다시 복원하였으며 모화당 또한 대원군이 자주 찾아왔을 때 그때 쓴 현판이라 합니다.

 




대문채에는 인조가 병자호란의 절의를 기려 내린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문간공동계정온지문’의 정려가 걸려 있습니다. 안채 뒤편에는 신위를 영원히 모실 수 있다는 동계정온선생의 ‘불천위’ 사당이 있으며 이는 나라에 크게 이바지를 한 분에게만 내렸다 합니다. 그만큼 동계선생의 충절이 크다 하겠습니다.

 


동계 정온 선생은 광해군이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을 사사 하고 영창대군의 생모인 인목대비의 폐모론을 거론하자 도의에 어긋난다며 격렬하게 항의하고 반대하다가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제주도 대정에 위리안치의 위배형을 내립니다.

 


안채전경





동계는 인조반정으로 10년 만에 풀려났으며 대사간, 경상도 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지냈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명나라와의 의리를 내세워 청나라와의 척화를 주장하였으나 화의가 이루어지자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자 벼슬을 마다하고 낙향하여 덕유산 인근의 모리에서 은거하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돌아가신 다음 숙종은 영의정에 추증하였으며 광주 현절사. 제주 귤림서원, 함양 남계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현재 동계정온고택은 중요민속자료 제205호에 지정되었으며 유품은 중요민속자료 제218호에 각각 지정되었습니다.










인조가 내린 정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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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0-1 | 충신당동계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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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14 07:52 신고

    도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어서 볼 때마다 좋아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9.14 09:40 신고

    안채는 들어가지 말고 사진도 찍지말라 하시던데요 ㅡ.ㅡ;;
    여기 고택 체험 숙박료가 좀 비싸다고 주인 아주머니께서 직접
    이야기 하시더군요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동계정온선생의 모리재를 찾다. 거창 모리재


거창의 인물에서 동계정온선생은 큰 비중을 차지하며 조선 중기 충과 절의를 상징하는 인물로도 동계정온선생은 빼놓지 않고 거론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동계정온고택과 동계 선생이 말년에 머물렀던 모리재를 두고 많이 망설였습니다.





동계정온선생의 모리재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73



2014/08/24 - (경남맛집/거창맛집)거창 거열산성 건계정 맛집 삼산이수. 거창 함토음식인 갈비탕과 갈비찜이 유명한 삼산이수에서 갈비탕 먹고 왔습니다.

2014/07/01 - (경남여행/거창가조여행)거창 가조 미녀봉 산행. 만삭의 여인을 닮은 아름다운 산 거창 미녀봉 등산 넘 좋은 산행지.

2014/05/23 - (경남맛집/거창맛집)거창스포츠파크, 거열산성 맛집 구구추어탕. 거창 향토음식인 추어탕과 어탕국수 맛있게 하는 구구추어탕.

2014/01/10 - (경남맛집/거창맛집)가조 엄마손 추어탕. 추운날에 먹는 따뜻한 엄마손 어탕국수로 겨울을 이겨내세요.

2014/09/02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감악산 산행. 감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뼈속까지 시린 물맞는 약수탕에서 물맞이를 하다.





두 문화재를 두고 포스팅의 순서를 나름대로 고심했는데 그래서 동계선생의 절의에 상징을 뜻하는 모리재를 먼저 포스팅하기로 하고 동계 정온선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인근에 있는 집에서 그냥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시지 않고 정온선생이 모리(이름없는 동네)에서 은둔하며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는지 궁금했습니다.

 

화엽문

그러려면 먼저 동계정온선생에 대해 조금은 알아야 했습니다. 동계선생은 모리재와 인접한 위천면 강천리 강동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거창의 명소인 수승대와는 거리가 1k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입니다.



동계정온선생은 광해군 시절 선조의 적자였던 영창대군이 강화부사 정항에게 피살당하자 상소를 올려 그의 처벌과 인목대비 폐모론의 부당함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광해군은 동계의 격렬한 항의에 격분하였고 제주도 대정에다 위리안치의 유배형을 내렸습니다. 그 후 인조반정이 일어나 10년 만에 해배되면서 광해군 때 절의를 지킨 인물로 추앙받아 이조참판의 관직까지 올랐습니다.

 



1636년인 인조 14년에 10만 대군을 이끌고 청나라가 쳐들어와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패했으며 인조는 궁을 버리고 급기야 피난을 가기에 이르렀습니다. 봉림과 인평대군, 비빈 등은 강화도로 피신하고 여의치 않은 인조와 소현세자는 남한산성으로 일단 몸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에 의해 강화도가 함락되어 왕자 등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인조는 청 태종에게 항복하여 무릎을 꿇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였습니다. 청나라 화친파와 끝까지 싸우자며 척화를 주장하는 신하로 나누어졌습니다. 동계는 당시 명나라와의 의리를 내세우며 최명길 등이 내세운 화의 주장을 반대하다가 인조의 항복 소식을 듣고는 의분을 참지 못하고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합니다.




 

모리재


절명시의 앞부분을 보면 그의 애끓는 충절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임금의 욕봄이 이미 극에 달했는데

신하로서 어찌 죽음을 늦추겠습니까.

목숨을 버리고 의를 얻는 일이

지금이 바로 그렇게 할 때입니다“

동계의 자결은 시종이 발견하여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는 몸을 추스르자마자 낙향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덕유산에 들어가 은거합니다.


구소


모리재의 위치는 덕유산에서 흘러 내려온 한 가닥이 황석산, 거망산, 기백산, 금원산인 1천 미터의 고봉을 만들었는데 이들 산군을 일명 경남 알프스라 부릅니다. 그리고 금원산에서 북동쪽인 위천을 향해 뻗은 지맥이 현성산이며 그 능선 자락에 꼭꼭 숨어 세상과 담을 쌓은 곳에 있습니다. 너무 깊은 산골짜기에 있다하여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하여 모리가 되었는지 말입니다. 

 

 




그는 떠나면서 누가 나를 찾아 “어디로 갔냐고 묻거든 모리로 갔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돌과 풀을 엮어 움막을 짓고 ‘구소(鳩巢)’라 하였고 주위를 개간하여 기장과 조를 심고 풀뿌리로 연명하며 살았습니다. 그때 동계를 찾아온 손님에게 “돌아가서 아무에게나 나의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합니다.







모리재는 강선대에서 2km 남짓 골짜기를 올라야 합니다. 모리재까지는 일제강점기 때 벌목을 위해 만든 임도가 시멘트 길로 포장되었지만 꼬불꼬불 좁은 길은 모리재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채미헌



모리재 입구에는 2층의 누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1806년에 세웠으며 화엽루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이익공계 팔작지붕 기와 건물로 주변의 돌을 쌓아 주춧돌을 만들고 그 위에 누각 아래를 바치는 네모난 돌기둥과 둥근 나무기둥을 세운 층층의 누각입니다.




사당



각 모서리의 처마를 바치던 활주는 4개가 있어야 하지만 현재 2개만 남아있습니다. 적막강산이란 말이 어울리는 이런 깊은 산속에 화려한 단청과 섬세한 조각을 한 웅장한 누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각 밑을 지나면 정면의 높은 기단 위에 모리재가 있습니다. 앞면 6칸에 옆면 2칸인 팔작지붕으로 2칸의 대청에다 좌우로 온돌방을 넣었는데 이곳을 찾은 지역 유림이 선생을 추모하고 서로 강론하며 공부하던 곳입니다.





모리재는 1921년에 전체적인 중수를 하였고 마루에는 구소와 채미헌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모리재는 선생이 낙향하여 지낸 것을 기념하여 사후인 1654년에 유림이 영당을 세워 제향하다 소실하자 1707년에 중건하면서 모리재라 하였습니다. 마침 제가 도착했을 때 승용차가 내려가던 것을 보았는데 이곳 모리재에는 아마 동계 선생의 후손이 생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모리재 내부는 후손의 손길이 닿아서인지 깨끗한 편이었으며 건물 뒤쪽에 사당이 있었습니다. 먼저 사당 입구의 삼문은 각 1칸의 맞배지붕인 일주문이며 사당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초익공계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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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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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12 06:41 신고

    조용한 게 힐링하기에 참 좋을 것 같은 곳이 네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9.12 15:01 신고

    지난주 거창을 잠깐 다녀 왔습니다
    동계종택은 들렀습니다^^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월성계곡 강선대와 민들레울의 모암정 여행. 거창 강선대와 모암정


거창의 명소 수승대를 지나면 남덕유산 초입의 갈계리 갈계마을입니다. 이곳에서 계곡은 나누어지는데 오른쪽은 덕유산의 언저리에 송계사를 품은 소정 계곡이요, 왼쪽은 남덕유산에서 흘러내린 월성계곡입니다. 그 품이 하도 넓고 깊어 골짜기마다 수많은 사연이 전설되어 내려오는 덕유산.





거창 월성계곡 강선대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2017/09/03 - (거창여행)야옹 정기필의 반구헌을 가다. 야옹 정기필의 반구헌

2017/09/02 -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농산리 석불입상)과 행기숲

2017/08/23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 용암정. 무더운 여름나기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을 여행하다

2017/08/14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여행일번지 수승대와 척수대.

2014/08/26 - (경남여행/거창여행)점필재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일원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 남상 일원정




이번에는 거창 북상면의 덕유산 청정수가 모여 흘러내린 월성계곡의 첫 번째 경승지인 강선대(降仙臺)를 만났습니다. 강선대는 이름 그대로 ‘신선이 내려와 노닐다 간 곳’입니다. 주위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신선이 다 내려올까 싶어 필자도 신선이 된 기분으로 강선대를 찾았습니다.

 


강선대 마을과 강선대, 모암정을 함께 보면서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니 신선도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울고 갈 그런 곳이었습니다. 강선대는 사방이 산으로 둘려 그 앞을 흐르는 계곡과 소나무 숲이 감싼 마을은 풍수설에 ‘댓뒤’ ‘불무곡’이라 하며 모리재를 품은 모리산은 뒤를 막아 배산임수의 명당에 자리했습니다.

 




거창 북상면 월성계곡 13경의 4경인 강선대는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반석이 계곡을 덮고 그 위를 타고 흐르는 옥구슬 같은 맑은 물은 마치 물방울이 구르듯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그런 곳입니다. 이런 곳에 한여름 더위를 피해 탁족을 즐기며 선비들이 시문을 서로 나누었을 정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없는 게 이상하다 할 정도였으며 역시나 나의 생각은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아름다운 정자인 모암정이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고숲(古林)이라 불렀습니다. 고숲 한가운데인 강선대 암반을 깔고 은진임씨 정자인 모암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거창 월성계곡 민들레울·모암정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582-2

거창 월성계곡 민들레울·전화:055-942-5006



모암정은 규모도 엄청나게 큰 것 같았고 화려한 조각 솜씨로 아름답게 꾸며졌습니다. 모암정(帽巖亭)은 조선 명종·선조 때의 문신이자 충신인 갈천 선생으로 불리는 임훈의 후손인 모암 임지예가 시를 읊고 공부하며 거닐면서 머리를 식혔던 곳입니다.



고종 때에 절충장군행용위부호군 및 동지돈령부사를 지냈으며 정려에 배향된 이름난 효자입니다. 은진임씨 후손들은 선조의 뜻을 기리며 추모하는 뜻에서 1921년에 건립한 정자로 모암의 호를 따서 모암정이라 하였습니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넜습니다.





정자에는 올라갈 수 없게 막아 놓았지만, 부연(겹처마)과 처마를 받치는 4개의 활주인 돌기둥에는 도마뱀, 포도 덩굴 등을 새겼으며 우물마루를 깐 천장에는 아름다운 꽃병과 용 두 마리가 어우러져 있는 게 모암정의 가치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현재 모암정은 허브농원인 민들레울에서 정자와 땅을 매입하여 개인 사유지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다른 곳의 정자보다는 훨씬 관리가 잘되어 보였는데 아쉽게도 원형에서 조금은 훼손이 된듯했습니다. 옛말에 효자 집안에 효자 난다고 모암정에서 월성계곡을 300m를 쯤 거슬러 올라가면 모암 임지예의 아들인 덕산 임진원을 기리는 정자인 덕산정이 월성계곡을 끼고 나란히 있습니다.

 




월성계곡의 맑은 물과 은은한 허브향이 가득한 모암정의 정자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면 이번에는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강선대 바위를 찾아갑니다. 강선대는 강선대 다리를 건너면 바로 만납니다. 정자나무인 노거수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큰 바위에다 강선대 세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이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이며 제단 같은 독특한 형태입니다. 또한, 조선 인조와 광해군 때 충절로 이름난 동계 정온선생이 병자호란 때 명나라와의 의리로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지만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며 항복합니다.



정온선생은 청과의 화의를 끝내 반대하다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낙향하여 고향 뒷산인 모리에서 은거하며 일생을 마쳤습니다. 강선대는 정온선생의 은거지였던 모리와 지척에 있어 함께 여행하면 좋습니다. 아마 동계정온 선생도 이곳을 즐겨 찾지 않았나 생각하며 다음여행지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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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469-3 | 강선대 경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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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9.08 07:59 신고

    분위기가 괜찮아서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은데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7.09.08 13:37 신고

    거창을 다녀 올까 말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겸사겸사..ㅋ

  3. *저녁노을* 2017.09.09 05:59 신고

    잘 보고갑니다.
    ㅎㅎ
    즐거운 주말 되세요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야옹 정기필의 반구헌을 가다. 야옹 정기필의 반구헌


거창 수승대 일원을 여행하고 게을러 여행 블로그 포스팅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 미루다가는 거창 여행은 버려야 할 판이라 급하게 다시 블로그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야옹 정 기필(1800~1860) 선생의 반구헌입니다. 반구헌은 스스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반성한다는 뜻이 있어 당시 정기필 선생의 선비로서의 마음가짐을 보는듯했습니다.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반구헌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정기필 선생의 반구헌 문화재 안내판에는 영양 현감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머물 집한 칸이 없을 정도로 전임지에서 목민관의 도리에만 힘썼다 합니다. 그러한 선생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던 안의 현감이 이곳에다 묵을 집을 마련해주었던 게 반구헌입니다.





청빈한 선비의 삶과 목민관의 도리를 다했던 야옹 정기필 선생의 반구헌을 생각하다가 요즘 뉴스거리에 연일 톱으로 떠 오르던 분들이 생각나 개똥쑥을 씹은 것같이 참 기분이 더러워졌습니다.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했는지 마침 빌린 돈이 있어 주식에 투자했는지 모르지만 7억의 수익에다 이외에도 족집게 같은 주식투자로 수익을 올렸다는 모 법조인. 주식에 투자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이분은 목민관보다는 증권가에 족집게 주식 투자자로 소문나면 더욱 많은 수익을 올릴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리고 65억의 재산이 있다는 분은 명품가방 하며 수천만 원대의 금품을 받았다는 구설수가 나자 본인은 다 되돌려주었다는 해명을 내놓았는데 정작 본인은 그리 깨끗한 척 하시던 양반이라 참 세상에 믿을 양반 하나도 없다는 것에 더욱 화가 납니다. 왜!!! 요즘은 황희정승, 야옹 정기필 선생 같은 이런 분들은 없는지 이런 분이 목민관으로 있는 세상은 요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꿈이 되어버린 게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어휴, 답답해서 주저리 읊었습니다. 각설하고 반구헌에 대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먼저 정기필 선생은 초계정씨입니다. 초계정씨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 동계 정온선생입니다. 현재 초계정씨가 이리 뿌리를 탄탄히 내리고 남아 있는 것도 선조인 동계 정온선생 때문입니다.





정온의 4대 후손인 정희량이 무신년에 이인좌와 함께 반란을 도모하였다가 실패해 멸문의 위기에 몰렸지만, 동계 정온선생의 높은 명망에 멸문은 면하였습니다. 야옹 정기필이 20여년 동안 강동마을에서 숨죽이며 숨어 지내야 했던 정씨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 오늘날 명문가로서 남게 되었으며, 현재 강동마을의 정씨 대부분은 정기필의 후손이라 합니다.

 




그럼 안의 현감의 도움으로 지어졌다는 반구헌을 둘러보겠습니다. 남은 건물은 대문채와 사랑채가 전부였으나 현재에는 사랑채 뒤편으로 새롭게 들어선 기와 건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채라고 만든 것인지 조금은 복원된 건물이 기존의 건물과 맞지 않는 게 어찌보면 생뚱맞아 보였습니다.



5칸의 대문채는 한일자 형태로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 중간에 1칸의 솟을대문을 넣고 건물 왼쪽에 부엌인지 마구간, 광인지 모르는 1칸에다 1칸의 온돌방을 넣었습니다. 오른쪽에는 1칸씩인 온돌방을 두 개 넣었습니다. 마당을 들어서면 정면이 사랑채입니다. 앞면 5칸에 옆면 2칸의 팔자지붕인 민도리집입니다.

 


일반적인 양반가옥의 사랑채와는 구조가 조금 다르게 지어졌던 게 반구헌의 특징입니다. 가운데에다 대청을 넣고 좌우로 방을 넣는 게 일반적이라면 반구헌은 대청을 1칸으로 하고 왼쪽에다 두었으며 각각 1칸씩의 온돌방을 3개 내면서 그 옆면에다 계자난간을 두른 누마루를 달았습니다.

 




앞쪽 마루 밑에는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따로 있으며 건물 뒤편에는 가운데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있는데 방 2개를 동시에 난방하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대부의 사랑채라면 건물과 집주인의 위세와 품격을 더 높이기 위해 대청을 넓게 만드는데 반구헌은 허식보다는 실속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리 온돌방을 많이 넣은 것을 보면 찾아오는 손님을 최상의 예우로써 따뜻하게 맞이하려는 정기필 선생의 마음 씀씀이를 보는것 같습니다. 반구헌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2호에 지정되었으며 사랑채의 상량문을 보면 1870년경에 창건이나 중건되었다 합니다. 선비이자 목민관으로서 초연한 삶을 살았던 야옹 정기필 선생을 거창 위천면 강천리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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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1 | 반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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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09.04 11:06 신고

    이번주 거창 갈지도 모르는데 참고로 해야겠습니다 ㅎ

  2. 핑구야 날자 2017.09.06 08:20 신고

    한적하니 보기도 좋은데요. 날이 좋아지면 볼만 하겠어요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농산리 석불입상)과 행기숲


경상남도 거창군은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이며 또한, 너무 거창하다 해서 거창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무엇이 거창하냐고요? 거창은 거창한 볼거리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볼거리를 여행하기 위해서 수승대를 찾았습니다. 수승대에는 거창의 선비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거창문화유산여행 길이 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농산리 석조여래입상)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2017/08/23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 용암정. 무더운 여름나기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을 여행하다

2017/08/14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여행일번지 수승대와 척수대.

2015/05/08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양민학살 추모공원이 있는 월여산 산행, 청정 거창의 오지 산행지 월여산 등산을 하다.

2008/07/03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건흥산~아홉산 산행. 백제군이 결사항전한 역사의 현장을 가보세요

2008/07/01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미녀봉과 장군봉 전설. 미녀와 야수 이야기 2-거창 장군봉~미녀봉




거창문화유산여행 길에는 소나무 숲과 월성계곡 그리고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옛 건축물이 대부분 차지하지만 유일하게 농산리 야산에는 숨은 석불이 있습니다. 이번에 거창여행 포스팅은 농산리 석조여래입상과 이웃한 월성계곡의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인 행기숲을 하겠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호에서 세련미와 수려한 조각 솜씨 등으로 문화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보물 제1436호로 승격 지정하였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석불로 천년의 세월을 이어오면서도 석불의 광배, 받침대인 연화대좌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졌는데 불상과 광배는 하나의 바위에 큰 자연석을 원뿔꼴로 다듬었고 또 한 개는 석조여래입상을 받치는 연꽃 대좌로 조각했습니다. 석불의 머리 부분은 높고 두툼한 상투 모양이며 얼굴은 둥글고 온화하고 옅은 미소를 띠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석불과 마주하면 당당한 모습에서 사내다운 풍모가 느껴집니다. 가슴과 유연한 어깨,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에 긴 다리, 얇은 옷자락 속에 보일 듯 말 듯 입체감의 드러난 몸매는 통일신라 시대의 뛰어난 불교 예술품입니다. 또한, 양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의 주름이 가슴 위로 U자형을 그리며 내려오다 허리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두 다리에서는 다시 밀착되어 작은 U자를, 종아리 부분에서는 큰 Y자로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양식의 불상을 인도의 우드야나(Udyana)왕 여래상형식이라 합니다. 이는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입적하고 성불하여 한때 33천 중 부처님의 네 번째 나라인 도리천에서 다시 태어나 어머니에게 설법하였다합니다. 그때 밧사(Batsa)국의 우드야나왕이 지상에 부처가 잠시라도 없는 것이 아쉬워 그 허전함을 달래려고 150cm 크기의 아담한 여래상을 만들어 공양한 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우드야나왕이 공양한 여래상이 최초로 만든 불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때 만든 여래상의 흘러내린 옷자락의 표현이 농산리 석불입상의 조각양식과 같아 우드야나왕 여래상형식이라 합니다. 이런 형태의 옷자락 표현은 통일신라 시대 불상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농산리 석불입상의 광배는 마멸이 심하지만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몸 전체를 감싼 형태입니다. 불상을 받치는 연꽃 좌대도 연꽃을 엎어 놓은 듯 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으로 심하게 마멸된 모습입니다.

 


두발은 불신과 따로 좌대위에 조각되어 있으며 마멸과 훼손이 심해 현재 왼쪽 발가락 일부만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광배의 오른쪽 끝부분은 깨어졌지만 하나의 돌에다 광배와 부처를 함께 조각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은 배 모양인 주형거신광으로 마멸과 손상은 심하지만,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큰 규모의 불상에다 정제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등 그 수가 많지 않은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과 이웃한 월성계곡에는 적송의 소나무 숲이 계곡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이며 정말 그림같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곳 행기숲에는 백제 무왕이 왕자 시절에 신라로 숨어들어 선화공주를 꾀어 백제로 돌아간 이야기가 전합니다.



월성계곡 행기숲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서동은 신라의 서라벌에서 서동요를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였고 나중에 선화공주와 함께 백제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인 월성계곡에 다다라 이곳의 빼어난 경관에 그만 넋을 잃고서 피로도 풀고 며칠 쉬어 갔다고 합니다. 행기숲은 서동과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의 로맨스만 있는 게 아닙니다.

 




행기 숲을 해인정(解印亭)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신라 말기에 고려의 침공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였습니다. 경순왕은 후백제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급하게 사신을 꾸려 보냈습니다. 사신이 이곳에 다다랐을 때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해 나라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신임을 증명하는 신표인 인장을 이곳에다 숨기고 종적을 감추었다 합니다. 해인(解印)은 인장을 싼 보따리를 풀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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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 농산리 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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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수승대 용암정. 무더운 여름나기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을 여행하다


거창하면 수승대와 빼어난 경승지인 용암정(龍巖亭)을 함께 보는 게 당연시합니다. 어쩜 둘은 바늘과 실의 관계로 함께라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지금은 수승대 쪽에서 거북바위 앞 돌다리를 건너면 성령산 아래를 따라 흐르는 위천(월성계곡)에 오솔길을 정비해서 누구나 쉽게 용암정까지 산책할 수 있습니다.



거창 용암정 주소: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3



2013/10/25 - (경남여행/거창여행)가조 우두산, 거창한 동네의 거창 소머리산인 우두산 가을 산행이 최고

2014/06/29 - (경남여행/거창여행)우두산 고견사. 거창을 대표하는 고견사 원효, 의상, 최치원의 전설이 남아 있는 거창 가조 우두산 고견사 둘러보기.

2014/08/26 - (경남여행/거창여행)점필재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일원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 남상 일원정

2014/08/27 - (경남여행/거창여행)감악산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이 유명한 감악산 연수사에서 얼음물을 맞다.

2014/09/02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감악산 산행. 감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뼈속까지 시린 물맞는 약수탕에서 물맞이를 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하얀 암반과 짙은 솔숲, 차디찬 계곡물, 덕유산에서 부는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걷는 수승대~용암정 둘레길, 군데군데 덱과 전망대를 설치해 놓아 더욱 분위기 있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거창 수승대 위 용암정은 대략 200년이 조금 넘은 역사를 가졌습니다. 이는 다른 여러 고건축물에 비해 그리 긴 연륜을 갖지 않았지만, 용암정의 자태는 자연 암반에 걸터앉은 게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한 한 마리의 학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춤추며 날아갈 듯 우아한 모습을 한 매우 빼어난 건축물입니다.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그 아름다움을 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포스팅을 하는 지금도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거창 용암정은 함안 출신인 용암 임석형(1751~1816)이 건립한 정자입니다.



1801년 건립한 용암정은 그가 남긴 용암정기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용암은 정자를 건립하고 한시도 이곳을 떠나지않았을 정도로. 그만큼 용암정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선비로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습니다. 어릴 때부터 재주가 비상하고 머리가 영특했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처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용암 임석형, 세속에 초월한 듯 용암정에서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를 알던 영호남 선비들은 이곳을 지나다가 서로 시문을 교류하면서 ‘원학주인(猿鶴主人)’이라 칭송했습니다. 임석형의 ‘용암정 창건기’와 이휘준의 중건기를 보면 1864년인 고종 1년에 보수 공사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용암정은 위천의 자연 암반에 계곡을 바라보고 동향으로 지어졌습니다. 용암정에서 누마루나 방문을 열면 월성계곡과 덕유산, 금원산의 물과 바람인 산수를 그대로 받아들이게끔 지어졌습니다. 용암정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으로 누하주가 낮은 형태인 중층의 누각입니다.



위에서 보면 가운데 배면에 사방 1칸의 온돌방을 넣고 3면은 전부 누마루로 돌렸습니다. 온돌방도 4면에다 모두 문을 달았는데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와 같은 평면 양식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3호인 수승대의 요수정과 비슷합니다.



출입은 뒤편 배면에 걸친 좁은 나무계단입니다. 이를 올라 용암정의 누마루와 온돌방으로 들어갑니다. 작은 통나무를 찍어내어 홈을 판 나무 계단을 보면서 투박한 주인의 성품을 보는 듯했습니다. 불을 지피는 아궁이와 구들장이 깔린 온돌방에 겨울철 거창은 얼마나 추운지 짐작이 갑니다.



누마루와 온돌방 이를 보면서 저도 용암정 같은 정자 하나 같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용암정의 공포양식은 초익공이며 도리가 다섯 개인 5량가 건물로 위천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각을 바친 자연 암반에다 용암정의 글씨를 새겨 놓았는데 붉은색을 입혔습니다.



정자 안쪽에는 ‘용암정’ ‘반선헌 ’청원문‘ ’환학란‘의 편액이 걸려 있으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위천쪽에 내려갈 엄두도 나지 않고 해서 암각과 편액은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는데 다음 거창여행에서는 용암정을 가장 먼저 들러 누마루에 올라 용암 임석형선생의 초연한 삶을 생각하며 세심하게 용암정을 둘러봐야겠습니다.





용암정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3호로 지정되었다가 정자와 함께 위천의 암반과 아름다운 경관으로 2012년 국가 명승 제88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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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3 | 거창용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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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8.24 07:51 신고

    휴가 못 가신 분들은 무더위 피해서 찾아보면 좋겠네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8.25 11:35 신고

    내년 여름에 한번 가 봐야겠습니다^^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여행일번지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하면 수승대, 수승대 하면 거창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거창에서는 여름 피서지이자 휴양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거창의 수승대 인근 둘레길을 걸으면서 만난 수승대와 척수대는 거창의 명승지답게 심한 가뭄에도 많은 수량이 흘러내려 산자수려함을 뽐내었습니다.



2015/05/08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양민학살 추모공원이 있는 월여산 산행, 청정 거창의 오지 산행지 월여산 등산을 하다.

2014/09/03 - (경남여행/거창여행)김숙자사당. 영남사림파의 발흥이 된 거창 남상면 강호 김숙자 사당을 보고오다.

2014/09/02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감악산 산행. 감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뼈속까지 시린 물맞는 약수탕에서 물맞이를 하다.

2014/08/27 - (경남여행/거창여행)감악산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이 유명한 감악산 연수사에서 얼음물을 맞다.

2014/08/26 - (경남여행/거창여행)점필재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일원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 남상 일원정




오늘날의 수승대(搜勝臺)는 1543년까지 수송대(愁送臺)라 불렀습니다. 수송대가 수승대로 바꾸어 부르게 된 연유를 보면 퇴계 이황 선생의 일화가 있습니다. 수승대는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 앞 위천의 바위 절경을 말합니다.


수승대관광지 척수대

덕유산의 여러 골짜기에서 섬섬옥수가 흘러내려 빚어놓은 절경이라 예로부터 시인 묵객이 이곳을 찾았다면 세상사 모든 근심을 잊게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합니다. 그런데 삼국시대의 수승대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이며 백제의 최전방이었습니다.







백제 조정은 신라에다 사신을 파견하면서 이곳 수승대에서 몸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며 전별을 했던 곳으로 처음에는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했다 하여 근심 수(愁)에 보낼 송(送)을 써서 수송대라 불렀습니다. 이는 이곳의 경치가 “속세의 근심·걱정을 잊을 만한 절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승대는 조선 중종 때 요수 신권 선생이 은거하며 구연 서당을 열어 후진 양성을 하였고 위천의 수승대의 큰 바위는 거북이를 닮아 암구대라 불렀으며 이곳을 구연동이라 하였습니다. 그 후 퇴계 이황 선생이 안의현의 삼동에 유람차 들렀는데 수송대의 내력을 듣고는 이름이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급한 정무로 들러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하며 수승대로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를 보내었습니다.

 




이에 신권 선생은 그 뜻을 받들어 바위에다 새겨 오늘날 수승대가 되었습니다. 또한, 수승대는 모현대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수많은 현인과 은사가 찾아와 시문을 나누었던 곳으로 남명 조식 선생은 원학동의 대표명소인 수승대를 두 번이나 찾았다고 합니다.

 


수승대 하면 서로 마주 보며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이웃한 곳에 척수대가 있습니다. 수승대가 사신으로 가면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했다는 곳이라면 척수대는 신라로 떠났던 사신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이곳에서 근심을 씻었던 곳입니다.

 


처음 수승대를 개척했던 척암 성윤동이 척수대에서 소요하였으며 구연동에서 황산을 드나드는 길목이라 구연동의 남문이라 했습니다. 또한, 척수대는 이태사랑바위로도 불렸습니다. 이태하면 조선 후기의 명의였던 유이태를 말합니다. 거창군 위천면 서마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유년기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수승대 관광지 주차장

서당에서 글공부하던 어느 날 밤, 하늘의 달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놓고 위천가를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입맞춤을 해달라고 속삭였습니다. 이태는 여인의 유혹에 빠져 그만 입맞춤을 하였더니 입속으로 구슬이 굴러 들어왔습니다.

 

수승대 거북바위

구슬의 유혹 때문인지 모르지만 유이태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그와 반대로 몸은 점점 쇠약해졌습니다. 서당의 훈장이 이를 알고는 이태에게 구슬을 그냥 삼키라 하였습니다. 이태가 구슬을 삼켰더니 여인은 백여우로 변하면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이태는 삼킨 구슬을 빼내 몸에 지니고 다니자 예전처럼 건강이 회복되었고 더욱 총명해져 이름난 명의가 되었다 합니다.



거창 수승대관광지 주소: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

거창 수승대관광지 전화:055-943-5383


수승대 요수정

그 뒤부터 이태사랑바위에서 소원을 빌면 연인은 사랑이 이루어지고 자식은 훌륭한 인재로 성장한다고 전해져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소원을 빈다고 합니다. 척수대는 수승대문화유산둘레길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관광지라 많은 사진과 주위를 상세하게 보았지만, 수승대는 수승대문화유산둘레길의 막바지에 만나 늦은 시간으로 사진을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수승대관수루

다음 거창 여행에서는 수승대문화유산둘레길이 아닌 수승대만을 꼭 다시한번 찾고 싶습니다. 관수루와 요수정, 원각사, 구연 서당 등을 둘러보는 수승대 여행을 이 여름이 가기전에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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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 | 수승대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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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8.16 08:01 신고

    척수대의 모습이 너무 좋은데요 가보고 싶군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8.17 10:50 신고

    요번에 가 볼뻔 했는데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ㅎ




(문경여행/문경가볼만한곳)운달산 김룡사. 명품 숲 전나무가 좋은 운달산 김룡사 여행. 


운달산 아래 자리한 천년고찰 김룡사. 김용마을에서 김룡사까지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은 가히 명품 숲길입니다. 전나무 숲을 지나면 김룡사의 입구를 뜻하는 일주문이 위풍당당한 모습입니다. 김룡사는 588년 신라 28대 진평왕 때 온달조사가 창건하면서 운봉사라 불렀습니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불탔으며 1624년 조선 인조 2년에 혜총선사가 중창하였으나 다시 소실된 것을 1649년인 인조 27년에 의윤, 무진, 태휴 세분 대사께서 삼창하여 운봉사의 옛 모습을 되살렸습니다.



문경 운달산 김룡사 주소: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410

문경 운달산 김룡사 전화:054-552-7006



2008/11/03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대야산 산행. 문경의 명산 대야산 용추폭포와 만추홍엽 단풍보기

2016/05/17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 희양산 봉암사의 전성기를 이끈 정진대사 원오탑비를 만나다. 보물 제172호

2016/05/20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무릉도원의 선경인 용추동천의 백운대에 자리한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을 만났습니다.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2016/05/23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극락전. 잦은 화재로 봉암사 전각중 유이하게 남은 보물 제1574호 봉암사 극락전의 독특한 목탑양식 당우를 만나다. 봉암사 극락전

2016/05/26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 탑비. 보물에서 국보 제315호로 승격된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 탑비의 웅장함에 깜짝 놀라다. 봉암사지증대사탑비


한때 김룡사는 48동의 전각에 건평이 1,188평이었을 정도로 큰 대찰이었으나 1997년 불의의 화재로 대웅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전각이 불탔다가 창건에 버금가는 대 불사를 진행하여 현재 30여 동의 전각이 복구되었습니다. 운봉사가 김룡사로 바뀌게 된 것은 18세기에 절 밑 마을에 살던 김장자에 의해서입니다.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라에 큰 죄를 짓고 도망쳐 운봉사아래 몸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신인의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이들은 김룡사 부처님 앞에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며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러다 아들이 태어나 이름을 용이라 하였습니다. 그 후에 집안이 크게 흥하며 부자가 되었으며 마을 사람은 그를 김장자라 불렀습니다. 부자가 된 김장자는 운봉사에 희사를 많이 했는지 모르겠지만 운봉사는 김장자의 아들 이름인 김룡사로 바뀌었으며 자연스럽게 마을 이름도 김룡(용)이 되었다 합니다.

 




일주문에는 ‘운달산김룡사’와 ‘홍하문’ 편액이 걸렸는데 이는 절제된 김룡사의 현재 모습을 보는듯합니다. 홍하(紅霞)의 뜻을 풀이하면 붉은 노을이라 하며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는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에서 그 음을 취했습니다. 이는 운문종을 창시한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선사께서 남기신 게송의 일부분입니다.


 


생전에 성철스님도 이 게송을 좋아해 즐겨 운문선사의 음을 취했으며 그 때문인지 현재 겁외사를 들어서는 입구 누각에 벽해루 편액이 붙어 있습니다. 일주문의 두 편액은 독립운동가이자 구한말 서예가로 이름을 떨쳤던 동농 김가진(1846~1922)선생의 글씨라 더욱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김룡사 절집을 둘러보겠습니다. 어느 대감 집 출입구 같은 솟을대문에는 보장문 편액이 붙었습니다. 이는 보물을 품은 절을 들어선다는 뜻인데 절에서의 보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합니다. 이곳의 문을 들어섬으로써 진짜 부처님 세상인 불국토에 들어간다는 뜻을 품고 있으며 일주문의 편액을 쓴 동농 김가진선생의 글씨입니다.




 




일주문 오른쪽에는 근심을 푸는 해우소가 있습니다. 이 화장실이 대웅전과 함께 화마가 비껴간 건물이며 300여 년 긴 세월을 이겨냈다 합니다. 그런데 밖에서 보는 해우소 건물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머무는 처서 뒤편의 고방가 곧 쓰러질듯하며 진짜 오래된 건물로 보였습니다.







보장문을 들어서면 절 마당이며 김룡사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옵니다. 먼저 만나는 전각은 천왕문입니다. 천왕문은 절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상을 모신 곳입니다. 아마 불타고 복원하면서 돌이라면 불에도 끄떡없다고 생각했는지 석물로 만들어 안치했습니다.

 






증장, 지국, 다문, 광목천왕을 모셨는데 이분들을 사천왕이라 합니다. 천왕문을 지나면 다시 돌계단을 오릅니다. 보기에도 건물은 근래에 새로 지은 전각입니다. 왼쪽 건물은 스님들의 요사채와 강원인 설선당 건물이며 오른쪽은 2층 누 형태인 보제루입니다. 두 건물 사이로 오르면 대웅전 앞마당입니다.

 




먼저 왼쪽 설선당을 보겠습니다. 앞면 9칸에 옆면이 6칸인데 그 규모가 대단합니다. 아마 김룡사에서 가장 큰 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재로 타기 전에는 300명이 동시에 들어가서 큰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합니다. 1955년 성철스님은 팔공산의 파계사 성전암에다 철조망을 치고 한 번도 암자 밖으로 나오지 않는 ‘동구불출’의 수행을 10년간 하셨습니다. 1965년에 스님은 성전암 문을 저음 나서면서 김룡사의 강원인 이곳에서 가장 먼저 법문을 행했던 곳입니다.

 


보제루는 입구에서 보면 2층 형태지만 대웅전에서 보면 마당 높이와 맞춘 단층 건물입니다. 이곳에는 보제루와 운달산 김룡사의 편액이 걸렸으며 설선당 등 많은 편액이 서예가 권창륜씨 글씨입니다.





마당 좌우에는 윗면이 넓고 편편한 돌기둥이 두 개 있으며 이를 노주석이라 합니다. 밤에 행사가 있으면 이곳에다 불을 피워 주위를 밝혔습니다. 노주석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일본풍의 느낌이 많은 데 아니나 다를까 노주석의 뭉갠 글씨는 일본 연호인 소화 15년을 뜻하며 또 다른 노주석에는 희사한 분 이름인 득민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제 김룡사의 대표 전각인 대웅전을 보겠습니다. 이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외 3출목, 내 4출목에 상부 가구는 5량 가입니다. 김룡사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은 1624년 인조 2년에 중창했지만, 다시 1643년 불탔다가 1649년에 새로 지어졌습니다. 그러다 최근인 1997년 김룡사 대화재 때에 소실을 면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건물입니다.













































이외에도 김룡사는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인 보물 제11-2 문경김룡사동종과 보물 제1640호 문경김룡사영산회괘불도 등 전각과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해있습니다. 운달산 산행과 함께 짧은 시간에 훑다 보니 수박 겉핥기식으로 문경 김룡사 구경을 했습니다. 특히 문경 김룡사에서 유명한 약수도 빠트리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운달산의 산세가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며 그중에서도 김룡사는 소의 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꼭 집어 말하면 김룡사 명부전 자리가 핵심인 진짜 소의 눈으로 명부전 마당에 있는 약수터는 소의 눈물이며 항상 우윳빛을 띠는 명수라고 합니다. 운달산 김룡사 여행 시에 저처럼 빠트리지 말고 꼭 마시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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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410 | 김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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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05 23:02

    비밀댓글입니다

  2. 핑구야 날자 2017.08.07 07:52 신고

    보고 또 봐도 가보고 싶을 정도로 좋은데요

  3. 공수래공수거 2017.08.09 10:00 신고

    내년엔 여기를 한번 다녀 와야겠어요^^

  4. 해우기 2017.08.10 11:01 신고

    보기만 해도 걸어보고 싶은 곳이네요....ㅎㅎ

  5. *저녁노을* 2017.08.10 20:56 신고

    구경 잘 하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되세요^^




(울진여행/울진가볼만한곳)울진 백암산~신선계곡 산행. 여름철 최고의 피서 산행지 울진 백암산 신선계곡


산을 오르지 않고는 그 산을 알 수 없습니다. 울진의 백암온천이 있는 백암산은 온천이 있는 온정리에서 보면 그 산의 참모습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높지만 평범한 산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백암산 산행을 시작해보면 왜!! 산꾼이 울진 백암산 백암산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또한, 울진 백암산의 참모습은 백암온천 쪽에서 오르는 산길보다는 신선들의 물놀이장이라는 선시골 즉 신선 계곡에서 산행을 해야만 진짜 백암산의 모든 속살을 알 수 있어 여름 산행지로 최고의 인기 코스입니다. 그래서 여름 특집 산행으로 떠났던 백암산 신선 계곡(선시골) 산행은 올해 가뭄으로 신선 계곡의 아름다움을 올케 만끽하지는 못했지만 6km의 골짜기에서 뿜어내는 신선 계곡의 숨은 비경의 아름다움은 그래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백암산 신선계곡 지도

백암산 신선계곡 주소:경북 울진군 온정면 선구리




백암산 신선계곡 고도표


 2014/08/29 - (경북여행/울진여행)울진 통고산. 왕피천과 불영사계곡을 품은 통고산을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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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산~신선 계곡(선시골) 산행경로는 먼저 선구리 신선 계곡 입구 소형주차장에서 시작합니다. 디티재 갈림길~431봉~722.9봉~한화 콘도 갈림길~백암온천 갈림길~신선 계곡(선시골) 갈림길~폐헬기장~백암산 정상~(신선 계곡(선시골) 갈림길)~신선 계곡 합수골~전망 덱~마당바위~구름다리~샘물 바위 갈림길~2.3구름다리~용소전망대~옛 금장광산 정자 쉼터~구름다리~신선 계곡 대형주차장~신선 계곡 소형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입니다. 전체 산행 거리는 대략 15km이며 산행시간은 6시간 30분~7시간, 휴식과 점심시간을 포함하면 7시간 30분~8시간 소요되는 꽤 먼 거리입니다. 능선에는 따로 물 보충을 할 수 없기에 식수는 넉넉하게 준비하며 시작부터 정상까지 오르막 능선길과 막바지 신선 계곡의 오르내림이 만만치 않은 코스였습니다.



백암산~신선 계곡 원점회귀산행 출발은 신선 계곡 소형주차장에서 시작합니다. 신선 계곡 쪽에 있는 게 대형주차장이며 그 직전에 작은 주차장 맞은편의 시멘트 길이 등산로 입구입니다. 웃자란 잡풀이 덮인 임도를 50m쯤 따라가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너른 길을 끝까지 따라가면 묵은 임도는 끝나면서 가파른 산사면을 바로 치고 오릅니다.









희미한 발자국을 쫓아가면 그래도 옛 산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능선과 만나고 오른쪽으로 꺾어 묵은 길을 따라갑니다. 길의 흔적만 있다뿐이지 오르기가 만만찮은 된비알 길입니다. 10분이면 왼쪽 능선에서 올라오는 희미한 산길과 만나지만 그대로 능선을 직진합니다.



20분이면 다시 디티재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만나서는 오른쪽입니다.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상태라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능선이라도 발자국이 뚜렷하게 있다가도 갑자기 사라져 버려 주의하며 절대로 능선을 벗어나면 안됩니다. 이날은 진짜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으며 바람 또 잠잠해서 그야말로 찜통더위였습니다.



즐거운 산행이 아니라 완전히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며 탈출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떼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워낙 체력 소모가 많아 주위 풍광은 둘째 치고 모든 게 귀찮을 정도로 정말 여유가 없는 산행이었습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었습니다. 전투하듯 뚫고 오르던 능선 길이 갑자기 뚜렷한 산길과 만났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산길 잃을 염려가 없을 정도로 많은 등산객이 다니는 길입니다.



왼쪽은 한화 콘도로 하산하는 산길이며 백암산 정상은 오른쪽입니다. 50m 정도 가면 이정표가 있으며 직진하면 표지석과 이정표가 있는 큰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이곳부터는 여러 번 백암산 산행을 하면서 스쳐 간 곳입니다. 왼쪽은 온천장(백암온천) 하산길, 백암산은 직진합니다.







또다시 갈림길이 나옵니다. 표지석에 오른쪽은 선시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하산하면 되지만 오랜만에 백암산 산행을 와서 정상을 빼놓고 가면 섭섭할 것도 같아 하산이 늦더라도 백암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표지석에는 1,050m 거리이며 이곳부터 정상까지는 경사가 완만해서 왕복 40~50분이면 충분합니다.





940m의 폐헬기장을 지나면서 정상이 빠끔히 보였습니다. 400m 표지석을 보면서 막바지 있는 힘을 짜내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석과 큰 헬리포트장이 있었습니다. 정상은 Y자 갈림길입니다. 오른쪽 산길은 낙동정맥 길과 연결되고 왼쪽 산길은 백암폭포를 거쳐 백암온천으로 내려가는 하산 코스입니다.

 






울진 백암산 정상









하산 코스인 신선 계곡(선시골)은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 표지석이 있던 선시골 갈림길까지 가서 왼쪽으로 꺾습니다. 완만하고 굴곡진 능선길이 편안하게 이어져 신선 계곡 합수곡까지 거리는 2km에다 약 40분쯤 걸렸습니다.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쯤 계곡에서 물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고 이제 신선 계곡이구나 하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하산하면서 신선 계곡 하산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건 완전 산행을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심각한 가뭄 땜에 신선 계곡 합수곡에는 수량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끼 낀 계곡을 보면서 신선 계곡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신선 계곡 입구 주차장까지 6km 거리에다 3시간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고 그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편안하게 계곡을 끼고 가는 게 아니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인 길을 그것도 지친 몸이라 더욱 나를 힘들게 했습니다. 계곡까지 내려갔다면 다시 내려간 만큼 오르막에다 덱 산길까지 이어져 지친 몸을 완전 녹초로 만들었습니다.









전망덱에서 계곡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꼭 금강산의 상팔담을 연상시키는 소가 ‘탕폭탕폭’ 하며 늘어서 있는 게 혹시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는 게 아닌가 하며 환상에 빠져 당장에라도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비몽사몽 간에 정신줄이라도 바로 잡아야겠다며 원효대사의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되내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대신 업어 줄 것도 아니고 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출발했습니다. 계곡으로 내려섰습니다. 둥글고 편편한 바위를 만났습니다. 바위를 파낸 듯 깊고 좁은 홈을 따라 계곡물이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이제 사위는 어두워졌고 갈 길은 까마득하고 그래도 무조건 걷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선 계곡을 가로질러는 출렁다리를 지났습니다. 큰 독립 바위를 지나고 샘물 바위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여기까지가 3km 거리이며 신선 계곡의 딱 중간지점이었습니다. 날이 어두워 신선 계곡에 샘물 바위를 찾으러 갔다가 못 찾고 되돌아와 하산했습니다. 다시 구름다리를 건넜습니다. 호박소와 도적소 등 여러 비경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지만, 날도 어둡고 하여 무조건 통과했습니다.







용소 전망대에서 한숨 돌리고 또 죽자고 걸었습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 듯 갑자기 임도와 만났습니다. 옛 금장광산 벽화조성사업을 알리는 안내판과 정자에서 한숨 돌리며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수많은 별이 떨어질 듯 우리를 비추며 따라 왔는데 정작 그걸 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북두칠성도 우리 머리 위에 반짝여 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맑은 하늘이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마지막인 네 번째 구름다리를 건넜습니다.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을 짜내듯이 전부 쏟아내며 겨우 신선 계곡 대형주차장을 지나 우리 애마가 주차된 신선 계곡 소형주차장에 도착해 백암산~신선 계곡 원점회귀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울진여행/울진가볼만한곳)울진 백암산~신선계곡 산행. 여름철 최고의 피서 산행지 울진 백암산 신선계곡 대중교통편

도시철도 1호선 노포역 인근의 부산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해선 완행버스(오전 6시, 6시30분, 9시30분, 10시30분, 낮 12시, 오후 1시, 2시, 4시30분)를 타고 평해에서 내립니다. 평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백암온천행 버스(오전 6시25분, 7시5분, 8시, 8시40분, 9시20분, 10시, 11시25분, 낮 12시, 낮 12시40분 등 오후 6시30분))를 탑승해 백암온천에서 내려 택시(온정개인택시(054-787-3540), 요금 1만원 안팎)를 타고 신선계곡주차장까지 이동합니다. 평해에서 백암온천 운행 버스 중에서 오전 6시25분, 오후 1시20분 버스는 백암산~신선계곡 산행출발지인 신선 계곡 주차장 인근 내선미 버스정류장까지 운행 합니다. 이 버스를 탔다면 하차해서 신선계곡주차장까지는 도보로 500m 이동하면 됩니다.

산행을 마친 뒤 온정면 백암온천에서는 평해행 버스가 오전 7시20분, 7시50분, 8시40분, 10시, 11시, 11시45분, 오후 1시, 1시50분, 2시30분, 3시30분, 5시35분, 6시45분에 있으며 이중 내선미 버스정류장에서는 온정종합터미널에서 오후 2시30분, 6시35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내선미 버스정류장으로 들어갔다 돌아나와 평해로 나갑니다. 평해버스정류장에서 부산행 완행버스는 오전 7시15분, 9시10분, 10시15분, 낮 12시25분, 오후 1시15분, 4시35분, 5시45분, 6시45분에 있습니다. 이후에는 속초에서 내려오는 부산행 심야버스를 이용합니다.

자가 운전시에는 내비게이션에다 신선가든(주소:경북 울진군 온정면 선구리 산 152-2) 입력. 신선가든 입구에서 300m 직진하면 신선 계곡 표지석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신선계곡주차장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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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8.03 08:04 신고

    신선이 내려와서 놀만한 제목인데요 잘 보고 갑니다




(문경여행/문경가볼만한곳)문경 김룡사 운달산 산행. 삼복더위도 무색한 냉골의 운달산 운달계곡 산행. 


한여름 산행지로 첫손꼽는 문경 운달산 계곡 산행을 하고 왔습니다. 문경 운달산은 1,100m의 고봉답게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여러 개의 계곡이 있습니다. 그중 운달계곡은 냉골, 중앙골 등의 지계곡을 거느리며 7월 염천의 무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얼음장 같은 물과 바람에 산행 내내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무더위를 식히러 떠난 문경 운달산 산행은 여름 최고의 산행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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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달산 산행경로를 보면 김룡사 주차장~김룡사 입구 삼거리~김룡사~(김룡사 입구 삼거리)~여여교 앞 삼거리~징검다리~화장암 갈림길~운달계곡(합수곡 위 삼거리)~장구목~전망바위 갈림길~전망대~운달산 정상~폐헬기장~석문 밑~이정표 갈림길~화장암~(화장암 삼거리)~김룡사 주차장에 도착하는 원점회귀 코스입니다. 운달산 GPS 산행거리는 9㎞쯤이며 산행시간은 4시간~4시간 30분가량 걸립니다. 식사와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5시간~5시간 30분이면 운달산 산행을 끝낼 수 있습니다.



운달산 산행은 대부분 김룡사 주차장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도 김룡사 일주문 옆 주차장에다 차를 주차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김룡사 주차장에다 주차하면 김룡사에서 가장 유명한 전나무숲길을 걷지 못하게 됩니다. 그 여운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김룡사 주차장 주위의 전나무숲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역시 소문난 김룡사의 전나무 숲길은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조금 숲속을 걸었다고 벌써 도심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치유된 듯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전날 비가 와서 그랬는지 주차장 옆의 운달계곡에는 제법 많은 물이 흘렀습니다. 여기에서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김룡사 둘레길 안내판과 일주문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곧 김룡사 입구 삼거리길이 나왔습니다. 오른쪽에 쭉쭉 하늘로 뻗은 전나무가 사열하듯 절 입구를 지켰고 스님 한 분이 부드러운 흙을 날라 연신 길을 다듬고 계셨는데 속세의 인간이 보기에는 신선을 보는 듯 마음이 아주 편안했습니다. 여기서 먼저 김룡사 관람을 하던가 직진하여 운달산을 산행하고 하산해 편안한 마음으로 구경하던가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김룡사를 먼저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에게 합장하고 단청이 없다면 꼭 양반집 솟을대문 같은 보장문을 지나 절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보장문을 풀이해보면 부처님 가르침을 품고 있는 불국토에 들어간다“는 뜻이며 이문을 들어서면 부처님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서게 됩니다.

 


김룡사는 588년인 신라 28대 진평왕 10년에 운달 조사가 창건하면서 운달사라 불렸습니다. 그 뒤에 임진왜란과 함께 절은 완전히 불탔고 1624년에 조선시대 인조2년 혜총선사가 중창했지만, 또다시 소실되었다가 1649년 인조 27년에 의윤, 무진, 태휴 세 대사가 삼창해 한 때는 건평이 1,188평에 전각이 48동인 대사찰에 이르렀습니다.





1997년 일어난 대화재로 대웅전 등 전각을 빼고 모두 소실되었다가 새로 중수해 현재는 30여 동의 전각만 남아 많은 아쉬움이 남는 사찰입니다. 또한, 김룡사에는 우윳빛이 난다는 신기한 약수로 유명한데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절의 위치가 와우형국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김천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인 김룡사 동종, 1649년 설잠대사가 조성했다는 대웅전의 불상과 성균대사의 후불탱화가 남아 천년고찰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김룡사의 유래를 보면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짓고 운봉사 아래 숨어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녀를 만나 불전에 참회하며 지내다 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을 용이라 하였습니다. 그 뒤에 김씨는 가문이 번창하고 부자가 되면서 마을은 김룡리, 운봉사는 김룡사로 바뀌게 되었다합니다.



산행시간에 쫓겨 후다닥 둘러보고 다시 김룡사 입구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에서 양진암, 대성암. 화장암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김룡사의 백구가 손님 왔다고 길 안내를 자처하며 앞장을 서는 게 아닙니까? 지리산 둘레길의 길 안내하던 백구가 생각나 와!! 우리도 여기서 백구의 길안내를 한번 받아보려나 하면서도 내심 마음속으로는 걱정되었습니다.



우리는 점심으로 김밥 석줄이 전부라 진짜 운달산 정상까지 따라온다면 백구에게 점심으로 줄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온다 했으면 골치 아플 뻔 했습니다. 너른 길에 전나무가 하늘을 가려 사색하며 걷다보면 여여교 앞 갈림길입니다. 직진하여 다리를 건너면 대성암(80m)과 양진암(530m)방향. 온달산은 오른쪽 화장암(940m) 방향입니다.

 


백구가 그래도 눈치는 빨랐는지 이곳을 지나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마 우리 배낭에 김밥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말입니다. 저 인간들 따라갔다가 굶기 딱 십상이라며 줄행랑을 쳤다며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섭섭했습니다.

 






곧 징검다리를 건너고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려 햇볕 한점 들지 않는 너른 길은 저수조를 지나 화장암 갈림길까지 이어졌습니다. 상수원보호구역을 뜻하는 철조망 너머에는 계곡의 물소리가 정적을 깨우며 요란하게 흐르며 갑자기 오싹할 정도로 찬바람이 싹 불면서 이마의 식은땀을 식혀주었습니다.



온달계곡은 냉골로도 불린다더니 그 말이 빈말이 아닌듯했습니다. 왼쪽은 화장암(380m)을 거쳐 온달산 정상으로 향하는 직등코스라면 직진하는 길은 우회하여 운달산(3410m)으로 오르는 조금은 편안한 길입니다. 어느 쪽을 올라도 정상에 갈 수 있지만 힘든 화장암 코스보다는 완만한 직진 길을 선택해 정상을 거쳐 화장암으로 내려 오는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지금부터 계곡을 여러 번 건너기에 장마 기간이나 비가 많이 올 때는 위험해서 온달계곡 산행은 삼가야할 것 같습니다. 온달계곡을 건너서도 너른 길은 계속이어집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세찬 물소리가 들리는 게 왼쪽에 폭포가 보였습니다. 폭포 쪽으로 가까이 같더니 온도 차가 확 나는지 정말 시원했습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자며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아직 산행 초반이지만 배낭을 풀었습니다. 마음은 급하지만 이런 곳을 그냥 두고 갈 수 없다며 일행과 이심전심으로 딱 맞아떨어져 쉬면서 ”도끼자루 섞는줄“ 모르며 노닥거렸더니 시간이 한참 흘렀습니다.

 


















아쉽지만 폭포를 뒤로하고 마음을 다잡고 빠른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자꾸 계곡의 작은 소와 폭포가 바쁜 발걸음을 붙잡았습니다. 여러차례 운달계곡을 건너면 아래쪽에 냉골과 운달계곡 본류가 서로만나는 합수곡이 보입니다. 여기서 계곡을 건너면 큰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틀면 다시 계곡을 건너 오릅니다.

 










너른 산길은 좁아지면서 산길은 물소리가 잦아들고 계곡과 멀어져 급경사 산사면을 오릅니다. 한 발 한 발 올랐더니 장구목에 도착했습니다. 운달산과 966봉을 잇는 안부입니다. 반대편으로 넘어서면 용연리 방향인데 희미한 흔적입니다.

 


오른쪽은 문경대간인 장구령(1.0㎞)으로 가고 운달산 정상(1.1㎞)은 왼쪽으로 꺾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능선 산행입니다. 문경에서 많이 알려진 산행지지만 그래도 산길 중간중간은 희미하고 길이 좁은 구간도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희미한 흔적을 지나자마자 다시 뚜렷한 산길입니다. 왼쪽 능선길을 전망대가 있는 곳인데 누군가  못가게 나무를 걸쳐 막아놓았습니다. 저는 전망대를 보고 많이 위험하면 되돌아올 작정으로 직진하여 능선을 탔습니다. 두 곳 다 같은 방향을 보는 전망대와 만났습니다. 안왔다면 후회할뻔 했습니다.

 


맞은 편의 갓산과 산행 출발지 김룡사, 온달계곡이 다 들어나며 그뒤 사불산이라 불리는 공덕산과 바위암봉인 천주산도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바위구간으로 능선이 끊어져 바로 갈 수 없으며 오른쪽으로 바위를 내려가게 안전밧줄이 매달려 있습니다. 바위는 물기가 흘러 미끄러지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다시 등산로에 복귀하면 전망대 오르기 전 갈림길에서 우회해서 오는 산길과 여기서 만나고 운달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짧지만 바윗길을 지나면 편편한 쉼터바위에서 바위틈을 비집고 내려서면 지금부터 정상까지는 완만한 흙길입니다. 드디어 운달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은 쇠로 만든 안내판과 10m 떨어진 곳에 정상석이 있습니다. 안내판에는 없지만, 정상에는 오른쪽 성주봉으로 빠지는 능선길이 있으며 정상석 옆에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큰 바위가 있습니다. 이날은 전혀 조망할 수 없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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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문경읍과 성주봉, 석봉산, 조항령, 단산, 그리고 주흘산과 부봉등 문경을 지나는 장쾌한 백두대간 능선이 흘러 가기 때문입니다. 정상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은 석봉산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폐헬기장에서 직진하면 단산, 석봉산·조항령으로 향하지만, 원점회귀 산행을 위해 안전한 왼쪽 금선대·화장암, 대성암·김룡(용)사 방향으로 하산합니다. 하산길 초반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을 만큼 가팔랐습니다. 운달산 정상에서 이 능선으로 올랐다면 땀 꽤 뺐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바위기둥에 올려진 큰바위를 보면서 석문, 통천문하며 이름도 붙였습니다. 그래도 오를 때보다는 한결 힘이 들든 하산길이지만 중간중간 위험한 구간도 있어 끝까지 방심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끝까지 마음을 다잡고 내려가면 이제 지루한 능선도 끝이 보이는 이정표를 만났습니다.



뚜렷한 오른쪽은 나무로 출입을 막아 놓았지만 아마 금선대 방향인 듯 보였습니다. 왼쪽 ‘김용사(1360m)’ 이정표를 따라갑니다. 곧 화장암인 듯 출입문과 돌담이 둘러진 폐가 비슷한 게 나타났습니다. 화장암은 매우 한적한게 수도도량인 듯 신도들의 발길은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초창기 화장암은 중암이라 불렀다가 1758년 영조 34년에 백련화상이 중건하면서 화장암이라 불렀습니다. 1768년에 영파성규화상이 영각을 건립한 다음 양학대사, 수은상인, 풍곡연안화상이 각각 영각을 중수했으며 법당에는 여러 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습니다.

 




화장암을 지나면 계곡을 건너 너른 길을 따라 초반에 만났던 화장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서 김룡사 주차장에서 산행을 끝마쳤습니다.

 




(문경여행/문경가볼만한곳)문경 김룡사 운달산 산행 대중 교통편.


문경 운달산 산행 대중교통편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부산에서 출발한다면 부산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총 6회 운행하는 문경·충주행 버스(오전 8시40분, 11시25분, 오후 1시30분, 3시50분, 5시20분, 6시50분)를 타고 문경공용터미널에서 내립니다. 문경공용터미널에서 김룡(용)사·석봉행 50번 좌석버스(오전 6시50분, 8시30분, 10시30분, 낮 12시50분, 오후 3시10분, 5시10분, 6시40분)를 타고 김룡사에 내리면 됩니다. 산행 후 김룡사 또는 석봉 종점(오전 7시30분, 9시, 11시15분, 오후 1시50분, 4시10분, 6시5분 7시35분)에서 되돌아 나오는 버스를 타고 문경터미널로 가면 되는데 김룡사와 석봉에서 출발시간이 각각 차이가 날 수 있으니 여유를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문경터미널에서 부산 동부시외버스터미널행은 오전 8시30분, 10시20분, 낮 12시35분, 오후 1시55분, 3시20분, 6시25분(막차)에 있어니 참고하세요. 

자가운전 시 내비게이션에 김룡사 입력



문경 운달산 주소: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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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 운달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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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7.27 07:47 신고

    휴가철에 인기 잇는 계곡은 언제나 사람이 많더라고요 소개해주신 곳은 한적한 것 같아요 그래서 가보고 싶군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7.27 10:09 신고

    휴가를 이런곳에 가야 되는데 말입니다^^

  3. 깜쯱이 2017.08.01 21:16 신고

    티스토리를 하고 싶어서 초대장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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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여행/군위가볼만한곳)선방산 지보사삼층석탑. 예술성이 뛰어난 군위지보사삼층석탑 


경북 군위를 여행하면서 마지막에 들렀던 지보사입니다. 사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지보사에는 아름답기로 둘째라 하면은 서러워할 삼층석탑이 있어 많이 알려진 사찰입니다. 군위읍 소재지에서 동북 방향 6km 거리인 상곡리 선방산 골짜기에 있습니다.





군위 선방산 지보사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상곡리 280

군위 선방산 지보사 전화:054-383-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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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이 마치 배를 띄운 모습과 같다 하여 선방산이라 합니다. 그런 유서 깊은 산에 지보사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현재 지보사의 상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673년 신라 문무왕 13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만 전하며 지보사의 유래는 이 절에 세 가지 보물이 있었다 하여 지보사라 불렸다고 합니다. 그 보물은 큰 가마솥과 절에 단청을 입히는 물감에 쓰였다는 천연의 오방색 흙과 맷돌인데 현재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민족문화 말살을 획책하며 일본사람이 지보사의 보물을 모두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소실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지보사는 근대에 와서 1942년과 1972년에 각각 중수하였으며 대웅전, 삼성전, 서별당과 요사채, 그리고 경내에 보물 제 682호인 지보사 삼층석탑이 남아 있어 천년 사찰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지보사 삼층석탑을 알아보겠습니다. 지보사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렸으며 머리 장식인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지붕돌 등이 많이 깨어져 훼손 상태가 심하지만, 안정감과 세련미에 우아함을 잃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