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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의성여행)낙동강 3대 누각 관수루에 올라 풍광을 즐기다. 의성 관수루


방가방가

이번 여행은 경북 의성군의 관수루입니다.

관수루는 여러번 여행했지만 

최근에는 2016년에 여행하고 왔는데 

이번 상주·의성 여행길에 둘러보고 왔습니다. ㅎㅎ




카카오지도 캡쳐


의성 관수루 주소:경북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 산 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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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루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낙동강을 굽어보고 있었습니다. 

변한게 있다면 2층 누마루에 

계자 나간 가까이 나가지 못하게 

나무 칸막이를 설치해 

계자 난간에서 낙동강을 볼 수 없도록 했습니다.



관수루는 밀양의 영남루, 안동의 영호루와 함께 

낙동강의 3대 정자로 불렸습니다. 

고려 중엽에 관수루가 지어졌다고 하며 

창건 당시에는 지금의 자리가 아닌 

맞은편 상주 땅에 세워졌습니다.

 


낙동강의 잦은 범람으로 관수루는 떠내려갔는지 

조선 초기에 지금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이건했다고 전합니다. 

관수루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1653년, 1734년 1842년에 중건과 중수가 이루어졌습니다.

 


1874년 갑술년에 들이닥친 홍수로 유실되었으며 

지금의 관수루는 1990년 의성군에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관수루의 '관수'는 도덕경에서 나왔으며, 

누각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2층 누각건물로 

2층은 통간이며 개방하였고 

우물마루에 계자난간을 돌렸습니다. 

이익공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5량가 기와 건물입니다.

 


동강에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리한 관수루라 그런지 

예로부터 시인묵객이 엄청나게 찾아들었나 봅니다. 

그대표적인 인물이 조선시대 성리학의 시조새라 불리는 점필재 김종직, 

김종직의 재자로 성종실록에 김종직의 사초로 극형을 당한 탁영 김일손, 

퇴계 이황, 백운 이규보, 수헌 권오복, 봉창 유황 등의 

시가 관수루를 빼곡하게 채웠습니다.

 


이중에서 김종직과 이황의 시를 옮겨 보았습니다.

김종직의 '낙동나루' 입니다.


“津吏非瀧吏 官人卽邑人(진리비농리 관인즉읍인·

나루의 아전은 농의 아전이 아니며 그 관리는 바로 읍사람이구나 )

 

三章辭聖主 五馬慰慈親(삼장사성주 오마위자친·

삼장으로 임금님을 떠나와 오마로서 인자한 어머님을 위로하구나)

 

白鳥如迎棹 靑山慣送賓(백조여영도 청산관송빈·

흰 새는 배 맞이하는 듯하며 청산은 손님 보내기에 익숙하구나)

 

澄江無點綴 持以律吾身(징강무점철 지이율오신·

맑은 강은 한 점 티끌조차 없으니 이를 나의 계율로 삼으려네“

 

 


김종직의 ‘낙동요’는 한시로서 

당시 탐관오리의 횡포를 질타하며 

자신 또한 관리로서 뒤돌아 보게 된다는 내용의 시입니다.

 

“黃池之源?濫觴(황지지원재남상:황지의 시원은 겨우 잔을 넘칠 정도인데)

 

奔流倒此何湯湯(분류도차하탕탕:이곳까지 흘러와서 어찌 이리 넓어졌나)

 

一水中分六十州(일수중분육십주:한 물이 육십 고을의 한가운데를 가르니)

 

津渡幾處聯帆檣(진도기처연범장:나루터마다 돛대가 줄을 서있네)

 

海門直下四百里(해문직하사백리:바다까지 사백리를 바로 흘러)

 

便風分送往來(편풍분송왕래상:편풍을 이용해 오고가는 상인의 배는 분주하고

 

暮宿觀水樓(모숙관수루:저녁에 관수루에서 머무네 )

 

樓下綱船千萬緡(누하강선천만민:누각 아래 배에는 천만냥을 실은 배가 묶였으니)

 

南民何以堪誅求(남민하이감주구:남쪽 백성들은 어찌 노략질을 견디리 )

 

缾缾已罄橡栗空(병앵이경상률공:쌀독은 비었고 도토리와 밤마저 없는데)

 

江干歌吹椎肥牛(강간가취추비우:강가에서는 풍악을 울리며 살찐 소를 잡네)

 

皇華使者如流星(황화사자여유성:임금이 보낸 사람은 떨어지는 별처럼 빠르게 지나가니)

 

道傍觸髏誰問名(도방촉루수문명:길 옆 해골에게는 누가 이름이라도 물어보겠는가)

 

少女風王孫草(소녀풍왕손초:왕손초에 소녀 바람이 불어 )

 

望眼悠悠入飛鳥(망안유유입비조:아득하게 멀리 보니 새는 날아들고)

 

故鄕花事轉頭新(고향화사전두신:고향의 꽃소식은 계절따라 피며)

 

凶年不屬嬉遊人(흉년불속희유인:흉년이라 봄놀이를 즐기는 사람 아무도 없고)

 

倚柱且高歌(의주차고가:기둥에 기대어 노래나 불러보리댄체 )

 

忽覺春興(홀각춘흥간:봄의 흥취는 어느 듯 가고 )

 

白鷗欲笑我(백구욕소아:갈매기는 나를 비웃으려는 듯 )

 

似忙還似閑(사망환사한:바쁜듯 되려 한가하게 )“




 

퇴계 이황의 ‘관수루’ 입니다.

 

“洛水吾南國(낙동오국남·낙동강 물은 우리 남국의 자랑)

 

尊爲衆水君(존위중수군·뭇 강물의 으뜸이라네)

 

樓名知妙悟(누명지묘오·누각 이름은 묘리의 깨달음을 알게 하고)

 

地勢見雄分(지세견웅분·지세는 웅대하게 분리됨을 보네)

 

野濶烟凝樹(야활연응수·들은 넓어 안개가 나무숲에 엉기고)

 

江淸雨捲雲(강청우권운·강물은 맑아 비온 뒤 구름이 걷히었네)

 

匆匆催馹騎(총총최일기·총총히 역마를 재촉해 달리니)

 

要爲趁公文(요위진공문·공문을 진달하기 때문일세)“

 

국제 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의 퇴계학맥 누정편 관수루 인용



이외에도 많은 시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낙동강을 굽어보는 관수루의 전경은 선경이 따로 없습니다. 

낙단보가 발아래 보이고 그 뒤로 

낙동강 전망대인 나각산이 우뚝합니다.

 


낙동강은 상주의 옛 지명인 ‘낙양의 동쪽’을 흐른다고 해서 

'낙동강'이란 지명이 생겼으며

지금도 상주에는 낙동면과 낙동리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관수루 내부에 걸린 

시인묵객의 시가 빼곡하며 

관수루의 위상을 알수 있습니다. 



관수루에서 본 낙동강과 나각산입니다.

낙동강은 예나 지금이나 유장하게 흘러갑니다. ㅎㅎ

 강폭이 워낙 넓다 보니 꼭 호수 같아 보입니다.




태백시 황지에서 발원한  강물이 

상주에와서 비로서 강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는 데서 

유래된 낙동강.



그 낙동강을 더욱 가까이 보기 위해서 

상주와 의성을 연결하는 낙단교로 나왔습니다. 

낙단교에서 본 관수루와 낙단보입니다. 



바위절벽에 자리한 관수루와 

주위 소나무 숲이 그림같이 어울려 

천년의 관수루를 떠 올려 봅니다. 



낙단교와 낙단보의 '낙단'은 

상주의 낙동면과 의성의 단밀면 

머리글자에서 따와 '낙단교·낙단보'가 되었으며

오늘도 상주와 의성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의 좋은 형제 같은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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