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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광양여행)폐사지를 찾아서 옥룡사지 동백림. 도선국사의 마지막 수도처 광양 옥룡사지와 절터의 기운을 도우기 위해 심었다는 동백림을 만나다.  


예로부터 신비의 물이라는 고로쇠 수액은 우수를 시작으로 경칩을 전후하여 채취합니다. 그리고 고로쇠 수액은 ‘뼈를 이롭게 한다’ 하여 많은 분이 이 시기에 고로쇠 물을 먹기 위해 광양 백운산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왜 고로쇠 물 하면 광양 백운산을 첫손가락으로 꼽는지 그 이유가 있습니다.





◆광양 옥룡사지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2016/04/21 - (전남여행/광양여행)백운산자연휴양림. 걷기 좋은 솔숲길과 산막에서 즐기는 휴식이 꿀맛일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여행. 광양백운산 자연휴양림


2016/03/05 - (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 백운산~신선대 산행. 뼈에 이롭다는 고로쇠와 매화꽃 산행지 광양 백운산~신선대 산행


2016/03/01 - (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 산남리 남정지석묘군.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현대 무덤이 함께하는 광양 산남리 남정지석묘군을 보며 명당은 똑 같은 모양입니다.


2014/10/22 -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 망덕포구 시인 윤동주 유고 보존집 정병욱 가옥 여행하기...


2014/09/13 -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면 망덕포구. 섬진강과 호남정맥의 끝과 시작인 망덕포구 가을 여행을 떠나보세요.망덕포구


2014/10/14 - (광양여행/하동여행)광양 하동 걷기 좋은 섬진강 둘레길. 광양 망덕포구~하동 하동송림 섬진강 둘레길을 걷다.1



 

고로쇠 물은 선승이며 풍수가의 대가로 유명한 선각국사 도선(827~898)에 의해서 알려졌습니다. 도선은 백운산 토굴에서 수도 정진하여 득도에 이르렀으나 무릎이 굳어 펴지지 않아 나뭇가지를 잡았는데 그 나무가 체중에 의해 부러져버렸습니다.


 

한참을 앉은 상태로 있던 도선은 부러진 가지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었더니 굳어진 다리가 풀리면서 정신을 차렸다 합니다. 그때부터 뼈에 이로운 물이다며 골리수라 하였고 오늘날 고로쇠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도선이 고로쇠 물을 받아먹고 무릎을 펼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이곳 도선이 입적할 때까지 35년간을 주석했던 옥룡사지로 추정됩니다.


 

옥룡사는 8세기 초인 통일신라 시대 때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깡그리 사그라졌습니다. 864년~898년까지 머물렀다는 옥룡사지에서 도선의 흔적을 느껴보고 동백꽃을 만나기 위해 찾았지만 어디서고 도선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1920년경 일제강점기 때까지 도선국사의 흔적인 비석과 부도 그리고 동진대사의 부도와 탑비가 있어 비석거리라 불렸다지만 그 비석은 지금 찾을 수 없고 최근에 도선국사와 경보스님의 탑비와 부도를 다시 복원했습니다.



그러나 옥룡사는 1878년 고종 15년인 조선 말기까지 건재했으나 그해에 일어난 큰불로 옥룡사는 모두 타버렸습니다. 천 년을 넘게 법통은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지만, 한순간 화재로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면서 옥룡사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구례에 거주하던 청주한씨 문중에서 옥룡사지 절터와 주변을 매입하여 선대의 재실과 묘지로 사용하고 주변을 경작하여 더욱 본모습을 잃었습니다. 광양시에서 1996년부터 정비 복원계획을 세우고 토지매입과 옥룡사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비석거리에 탑비와 부도를 보호했던 비각건물이 두 채 있었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도선의 부도 전으로 추정되는 8각 바닥 돌 아래에서 석관이 들어 있는 돌덧널을 발견하였으며 그 안에는 도선국사와의 연관성을 추정하는 인골이 나와 학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옥룡사지 주위로는 100~300년 된 동백나무 7,000여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도선국사가 이곳에 옥룡사를 창건하고 절터의 기운을 보강하려고 직접 동백나무를 심었는데 그게 천년의 세월을 이어오는 동안 풍성한 동백나무 숲을 이루어 도선국사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선국사와 옥룡사 터에 얽혀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스갯소리 하나하겠습니다. 옥룡사지에는 지금 작은 토굴이 있습니다. 모든분이 왠 토굴하며 혹시 도선국사 수도처(?)로 의심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토굴은 이곳에서 감자 경작을 하던 땅주인이 감자 보관용 창고로 팠다는 문화해설사님 이야기입니다. 오해 없도록 해주세요


 

 

풍수에 밝아 전국을 돌며 참선과 수행에 전념하던 도선은 이곳을 지나다가 천하명당인 비천오공(飛天娛蚣)의 혈지를 찾아내고 옥룡사를 창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가운데 큰 연못이 있어 상심하다가 묘책을 찾아내고는 숯을 한 가마니씩 지고 와 연못에 넣고 백계산 정상 아래 샘물을 마시면 눈병이 낫는다고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눈병 환자가 구름같이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연못을 메우고 절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눈병 환자는 샘물을 마시고 눈병이 낫고 침침하던 눈까지 밝아져 그 샘을 ‘눈밝이 샘’이라 불렀습니다. 이곳 샘은 비천오공의 생식기에 해당하는데 동향서출하는 형세를 가지고 있어 눈병에 특효가 있다 합니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하다고 생각하거나 눈병이 있는 분은 옥룡사 창건 설화를 따라 ‘눈밝이 샘’에서 약수 한 그릇 해보세요. 혹시 아나요. 보이지 않던 세상까지 훤히 보이는 투시력까지 생길지 말입니다. 저도 먹었는데 숯을 안 넣어서 그런지 아직 효과는 보지 못했지만 물맛 하나는 끝내줬습니다. 옥룡사지는 국가사적 제407호. 1998년 8월3일 지정


비천오공의 생식기라는 눈밝이샘


옥룡사지 주소: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산35-1번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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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능지탑지. 문무대왕 화장터로 알려진 경주 능지탑지 여행.


경주 능지탑지는 낭산 기슭에 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 쌓은 건축물로 능지탑, 능시탑, 연화탑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능지탑지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죽어 감포 앞바다 대왕암에 모시기 위해 시신을 화장했던 곳으로 추정하는 장소입니다. 그 이유를 보면 발굴조사를 하면서 소조불상 조각이 출토되어 탑묘로 보는 이도 있지만, 내부의 그을린 흔적과 주위에 사천왕사 선덕여왕과 신문왕릉 등 당시 유적을 함께 보면 문무왕의 화장터로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합니다.





◆통일신라 문무대왕과 관계된 여행지를 모았습니다.


2014/05/27 - (경북여행/경주여행)동해의 신비 경주주상절리 파도소리길 걷기, 읍천항벽화마을, 이견대, 문무대왕수중릉, 감은사지 해파랑길 걷기


2014/05/25 - (경북여행/경주여행)동해의 꽃으로 부르는 경주 양남 부채꼴 주상절리.독특한 경주주상절리를 보면서 누구나 감탄하게 됩니다.주상절리


2014/05/21 - (경주여행/감은사지 이견대 문무대왕수중릉 여행) 호국용 문무대왕의 혼이 깃든 경주 감은사지 이견대 대왕암 이른 봄여행


2014/05/21 - (경주여행/감은사지 이견대 문무대왕수중릉 여행) 호국용 문무대왕의 혼이 깃든 경주 감은사지 이견대 대왕암 이른 봄여행


2014/12/20 - (경북여행/경주여행)왕의길-신문왕 호국행차길. 신문왕이 되어 왕의 길인 추원마을~기림사 둘레길을 걸어보세요.


2015/01/06 - (경북여행/경주여행) 양북면 함월산 기림사 여행. 경주의 천년사찰 왕의 길 기림사를 만나다.


2015/06/06 - (경북여행/경주여행)선무도 본산 골굴사. 아름다운 석불인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골굴사에서 힘자랑하지 말라" 선문도 골굴사 여행하기


2011/11/06 - 호국용 문무왕의 전설인 용문바위와 공양왕릉의 슬픈이야기


 


 

백제·고구려·신라의 삼국은 신라 태종무열왕인 김춘추의 뒤를 이은 문무대왕에 의해 삼국통일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면 먼저 문무대왕을 알기 위해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신라는 김춘추를 고구려에 파견하여 백제를 치기 위한 원병을 청하지만 고구려는 신라 진흥왕이 차지한 고구려의 옛 땅인 한강유역 반환을 조건으로 내걸어 동맹은 파기되었고 어쩔 수 없이 당나라와 동맹을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당 연합군입니다. 일부는 나당과 연합하여 통일을 이루었다 하여 진정한 삼국 통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려 먼저 백제를 치고 나면 고구려까지 칠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나라 고종은 소정방에게 13만의 병력을 출병시켜 지금의 백마강 기벌포에 상륙하여 사비성을 공격하였고 태종무열왕의 명을 받고 출병한 김유신이 이끈 5만의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백제의 계백 장군이 이끈 5천의 결사대와 싸웠지만 죽기를 각오로 싸우는 백제에 4번이나 패했습니다.


 

 

그러나 화랑 출신인 관창에 의해 신라군은 전열을 제정비하여 백제군과 일전을 벌여 계백과 백제군은 전멸했습니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도 사비성으로 진격하자 의자왕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나·당 연합군에 항복 하고 멸망하였습니다. 이게 660년입니다.


 

 

그리고 667년 나·당 연합군은 고구려 공격에 나서게 되는데 그 당시 고구려는 중원을 호령하던 호랑이었지만 수나라와 당나라를 거치면서 숱한 전쟁을 치러 그 후유증으로 종이호랑이로 전락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강력한 통치권력을 가진 연개소문이 죽자 그의 세 아들과 동생은 서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힘겨루기를 하였는데 입지가 좁아진 장남 연남생은 당나라에 백기 투항하고 연개소문의 아우인 연정토도 신라에 12개의 고구려성을 받치고 항복해버렸습니다. 나당연합군은 이런 기회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당나라는 연남생을 길잡이로 하여 5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신라도 대군을 이끌고 당나라와 합세하여 평양성을 공격했지만 1여 년 동안 끈질기게 버티는 고구려군의 저항에 고전하다 668년 9월 마침내 평양성을 탈환하고 보장왕은 항복하였습니다.


 

 

 

신라와 당나라는 동맹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탈환했지만, 이들의 동맹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삼국이 통일되면 당나라는 대동강 이남의 땅을 신라에 주기로 하였는데 그 약속을 먼저 파기하면서 신라를 공격하여 속국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군을 지원하며 당나라의 힘을 서로 분산시키게 만들었고 마침내 백제땅에서 웅진도독부를 없애고 완전히 당나라군을 몰아내었습니다. 그다음 675년 신라는 매소성 전투에서 당나라 20만 대군을 맞아 승리하였고 승기의 주도권을 잡은 신라는 평양의 안동도호부까지 요동성으로 몰아내고 667년 마침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당나라까지 물리친 문무왕은 668년 56세로 죽으면서 시신을 화장해 동해에 장사지내게 유언을 남깁니다.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하고 당나라까지 몰아냈지만 정작 마음 한구석에는 노략질을 일삼는 바다 건너 왜구가 걱정이었습니다. 문무왕은 불력으로 서라벌을 왜구로부터 막고자 왜구의 주 침입통로인 동해구에 감은사를 짓게 했습니다. 그러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자 신문왕은 그의 유조대로 낭산의 능지탑에서 화장하여 감은사 앞 바위에다 해중릉을 만들었습니다.


 

그에 관한 <삼국사기 권7 문무왕 21년조>에는 “내가 죽거든 열흘 후 창고 문 밖 뜰에서 인도 불교의식에 따라 검소하게 화장하라”하였는데 ‘창고 문 밖’이 지금의 낭산 능지탑지 일대라 합니다. 이전에는 문무왕의 화장터를 원성왕릉인 괘릉이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조사과정에서 지금은 능지탑지로 완전히 인정하는 상태입니다.


 

 

문무왕의 세자 신문왕은 부왕 문무왕을 동해에 장사지내고 감은사를 완공하였습니다. 감은사는 용으로 변한 문무왕이 동해구로 따라 올라와 감은사 금당지 아래 석굴에서 휴식을 하였다 하며 신문왕이 이견대에서 하늘로 승천하는 용에게 받은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만파식적’입니다. 문무왕은 죽어서까지도 신라를 시키고자 했나 봅니다.


 

 

그러나 현재 허물어져 있던 탑의 부재를 짜 맞추어 2층의 능지탑으로 복원했지만, 원래는 5층으로 된 능지탑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도 주변에 많이 남아 있는 탑의 부재를 보고 문화재에 문외한인 저도 복원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고 하루빨리 원래 모습을 되찾았으면 합니다.


 

 남아 있는 능지탑지 부재들...

연화탑으로 부르는 능지탑은 연화문이 새겨진 석재가 기단과 탑신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단의 사방에는 12지신상을 배치했는데 현재 뱀상 호랑이상 용상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입니다. 경주 동남산을 보고 나오면서 들렀던 능지탑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던 문무대왕의 호국용에 관한 전설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하니 옛 문화재를 여행하는 저로서도 능지탑지는 더욱 의미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34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이제 또 다른 경주 여행지를 돌아보기 위해 출발합니다.



경주능지탑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6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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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남산여행)동남산 서출지와 이요당, 연과 베롱나무가 꽃이 필때 최고 이름값을 한다는 1500년된 서출지와 조선시대 정자 이요당 여행. 


봄이 시작될 무렵인 4월에 다녀왔던 양산 경주여행 이번 포스팅은 동남산의 서출지와 이요당입니다. 서출지와 이요당은 오래전에 가을이 시작될 때 한번 여행을 했으며 이번의 봄 여행은 또 다른 재미를 주었습니다.





◆서출지와 이요당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2016/04/26 - (경주여행/남산여행)염불사지 삼층석탑. 은은한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린다는 경주 남산리 염불사지 삼층석탑 여행하기.


2011/01/12 - (경주여행/남산 신선암 마애불)신선암 마애불에서 기도하는 보살님


2012/09/24 - (경주남산여행)보리사 마애석불. 잔잔하며 엷은 미소가 아름다운 보리사 마애석불


2012/11/01 - (경주남산여행)살인미소 짓는 부처님의 모습이 경주남산 보리사 석불좌상으로 태어나다. 미륵곡석조여래좌상


2013/02/21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 신선이 빚었을 것 같은 우아한 모습




 

처음 서출지를 찾았을 때는 여름 뒤라 그런지 연잎이 서출지를 완전히 뒤덮고 있어 여름철 신록의 맛을 완전히 느꼈다면 이번 여행은 두꺼운 이불 같은 묵은 낙엽을 완전히 털어내고 서출지에 새봄에 맞는 새 이불을 덮을 준비를 하는 듯 연못이 말끔히 정돈된 상태였습니다.


 

서출지는 까마귀 전설이 있습니다. 왜 서출지에 까마귀 전설인지 궁금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신라 21대인 소지왕 때입니다. 어느 날 소지왕이 궁 밖을 나왔다가 어쩌다 보니 남산 아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까마귀와 쥐가 나타났는데 쥐가 소지왕에게 하는 말이 “까마귀가 날아가는 쪽을 따라가라.” 하였습니다.


 

 

 

소지왕의 명을 받은 신하는 까마귀를 따라가는데 서출지 인근에서 멧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보고 그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때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주면서 소지왕에게 꼭 전해 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소지왕은 “봉투를 보면 두 명이 죽을 것이요 만약에 보지 않으면 한 명이 죽는다”는 글을 보고 소지왕은 생각하기를 편지를 보고 두 명이 죽는 것보다 차라리 보지 않고 한 명이 죽는 게 나은 생각이라며 봉투를 뜯어보지 않을까 했습니다.


 

 

 

신하가 봉투를 보고 말하기를 “두 명은 백성을 말하며 한 명은 임금을 뜻한다”며 소지왕에게 봉투를 뜯어 볼 것을 고하였습니다. 소지왕은 봉투 안의 편지에 화살로 거문고 통을 쏘라는 뜻인 ‘사금갑(射琴匣)’을 보고 궁궐로 돌아와 화살로 거문고 통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악’하며 외마디 비명이 나 통 안을 보니 궁녀와 승려가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소지왕은 그들을 잡아 참형시켰고 서찰을 받아 임금의 목숨을 구한 연못이라며 서출지(書出池)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서출지에는 까마귀가 임금의 목숨을 구했다며 정월 보름에 감나무 밑에 찰밥을 묻어 까마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제삿밥을 주는 풍습이 생겼는데 이는 ‘오기일(烏忌日)’로 지금도 경주에는 그 풍습이 남아 있다 합니다.


 

 

서출지는 임씨 집성촌인 경주시 남산동에 있습니다. 연못의 둘레는 약 200m이며 조선 현종 5년(1664년)에 임적이라는 분이 서출지 연못에다 ‘ㄱ'자 모양을 한 정자를 짓고 이요당 현판을 걸었는데 남산과 연못의 운치가 너무나 좋아 그래서 이요당(二樂堂)이라 했던 것 같습니다.


 

 

 

 

서출지와 이요당은 연꽃과 꽃이 피면 백일 동안 간다는 백일홍이 필 때면 최고의 이름값을 할 정도로 볼만합니다. 그 시기에는 서출지가 전국 사진동호인의 출사 일 번지로 몸값이 제일 비싸집니다. 그때쯤 저도 삼각대를 들고 다시 한 번 서출지와 이요당 여행을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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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기장여행)국립부산과학관. 다양한 과학 체험으로 기계치를 면하게 해주었던 첨단과학 전시장 국립부산과학관 여행. 국립부산과학관


기장에 있는 국립부산과학관을 다녀왔습니다. 먼저 너른 부지에 대단한 규모를 보고 놀랐습니다. 역시 부산시민의 염원이자 청소년의 바람이었던 국립부산과학관은 부산·울산·경남지역의 과학 꿈나무는 물론이고 꼭 과학자가 꿈이 아닌 청소년도 꼭 찾아보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국립부산과학관 인근 가볼만한 여행지와 맛집◆


2016/04/04 - (부산여행/기장여행)국립부산과학관. 국립부산과학관 특별전 장영실. 미국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장영실이 있다. 국립부산과학관 장영실


2016/02/18 - (부산여행/기장여행)조선시대 교육기관 기장향교.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교리 기장향교를 여행하다. 기장향교


2015/07/07 - (부산맛집/기장맛집)대변맛집, 동부산 관광단지 맛집 진주횟집. 전통방식 짚불곰장어도 일품인 활어 전문 진주 횟집에서 양념곰장어, 멸치찌개도 최고였습니다.


2015/02/19 - (부산여행/기장여행)죽성리 드림성당 황학대 어사암 여행. 볼거리가 많은 기장 드림성당, 황학대, 어사암 여행.


2015/02/04 - (부산여행/기장정관여행)정관박물관. 삼국시대 생활사 박물관 정관박물관 개관.


2015/02/09 - (부산맛집/기장맛집)기장맛집 죽성리 드림성당맛집 기장밀면 전문점. 부산하면 역시 밀면 아잉교.기장밀면


2015/01/30 - (부산맛집/기장정관맛집)정관박물관 맛집 이비가 짬뽕. 화학조미료 제로, 국내산 재료로 짬뽕이 맛있는 부산 정관점 이비가 짬뽕.


2011/10/08 - (부산여행/기장여행)기장 죽성 해송 왜성. 멋스러운 소나무가 어울리는 바닷가 기장 해송 국수당과 왜군이 쌓았다는 죽성왜성.


2011/10/19 -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기장군 해동용궁사 탐방기



 

국립부산과학관이 들어서게 된 계기는 특별합니다. 2006년 처음 ‘아이들에게 과학관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과학관 유치 100만 서명 운동을 시작하여 부산시민 114만 명이 서명운동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산과학관 건립계획이 확정되어 지난 2013년 1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3년만인 2015년 12월에 완공하였는데 부산과학관 유치 서명운동 10년 만에 개관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국립부산과학관의 전시실은 다양하게 꾸며 줘 있습니다. 총 사업비 1,217억 원이 들어간 국립부산과학관은 동남권의 주력사업인 자동차 항공우주, 선박, 에너지 및 방사선의학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 거점형 과학관으로 180여 개의 과학전시물을 설치하였고 대부분 기초과학의 원리와 첨단 기술을 본인이 느끼며 체험하는 전시물로 꾸며 줘 있습니다.


 

 

그리고 천체과학관, 어린이과학관, 야외전시장, 캠프관까지 갖추어 전시·관람·교육의 장소를 넘어 가족과 함께 즐기는 휴식공간인 과학테마파크로 조성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부산과학관을 둘러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과학관 중앙홀의 탑승형 슬라이더였습니다.


 

 

 

 탑승형 슬라이더 입구

 탑승형 슬라이더

 

보통 과학 하면 먼저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는데 머리를 싸매는 골치 아픈 과학개념이 아닌 즐기면서 과학의 이해를 돕게끔 하는 게 정말 좋았습니다. 입구에서 매표하면 긴 띠를 줍니다. 요일마다 띠는 색상을 달리하는데 손목에 감게 되어 있습니다. 요게 아마 입장권을 대신하며 지하철 게이트같이 생긴 1관 전시관 게이트를 그냥 쓱 지나가면 됩니다.


 

 

간단하게나마 2층의 상설전시실을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1관은 ‘자동차와 항공우주관’입니다. 첨단과학과 수송기술의 결합인 자동차와 항공우주관은 먼저 바퀴를 발명하면서 엔진과 자동차의 진화와 원리, 항공, 우주로 나가는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과 창조를 여러 전시물로 보여줍니다.


 

 

 

자동차의 발달과정과 기계움직임을 보여주는 ‘트랜스토피아’ 영상관, 실제 발사하는 모형 제트엔진, 달의 중력을 체험하는 월면 걷기 등으로 과학의 원리를 쉽게 이해하고 첨단 과학기술의 미래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자동차와 항공우주관은 첨단과학의 결정체임을 알게 됩니다.


 

 

 

 

 

 

 

 

 

 

 

 

 

 

 

 

 

 

 

 

 

 

 

 

 

 

 

 

 

 

 

 


 2관은 선박관입니다. 물 위에 배는 어떻게 뜰까요? 그것이 궁금하다면 이곳 선박관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 수학과 해양과학을 연계한 여러 체험전시물이 갖추어져 있는데 입구의 거대한 코끼리 모형을 이용해 부력과 선박의 관계를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르키메데스의 실험으로 부력의 원리와 무게중심을 익히는 기초과학, 선박설계, 조립과 같은 조선공학, 선박의 운항과 항해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3관은 에너지와 방사선 의학관입니다. 에너지·방사선 의학관은 햇빛·물·바람을 이용한 자연에너지로 더욱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미래 청정에너지를 활용하는 기술의 발달 과정을 탐구하는 전시관입니다. 그리고 에너지원으로 사용된 방사선은 난치병인 암을 치유하는 데 활용하고 방사선의학의 원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1층 중앙홀의 어린이 관과 바깥에 야외전시장, 캠프장 등이 있습니다. 어린이 관은 100% 놀이를 이용한 체험전시물로 구성되어 쉽고 즐겁고 재미있게 과학을 이해하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도록 꾸며 줘 있다합니다. 어른이라 들어갈 수 없고하여 어린이관은 패스합니다.  


 천체투영관

 

 

야외전시장은 여름철에는 물놀이 시설로 이용하며 대형 요요 등을 설치한 과학 공원, 경주용 차를 직접 조정하는 신나는 레이스장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600m 거리인 나무숲을 달리는 꼬마 증기기관차는 어린이를 동반한 나들이객에 최고의 인기 코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120도로 편안하게 누워서 대형 스크린에 밤하늘의 신비스러운 모습과 쏟아지는 별들의 잔치를 체험할 수 있는 천체투영 관도 있습니다. 또한 120명이 1박 2일 숙박을 하면서 야간천체관측 등 다양한 형태의 과학체험활동이 가능하도록 꾸며진 캠프 관도 갖추고 있습니다.


 

 

 

부산과학관을 여행하면서 눈으로 보는 게 전부가 아니고 직접 머리로 생각하고 손으로 느끼며 몸으로 체험하도록 꾸며 줘 있어 과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과학기자재를 보면서 평소 ‘기계치’란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부산과학관을 둘러보고 체험하면서 이제 그 소리는 면하게 된 것 같습니다.


 

  국립부산과학관 1층 안내도(이하 부산과학관 홈피캡쳐)

  국립부산과학관 2층 안내도

  국립부산과학관 안내도

   ◆ 국립부산과학관 개관, 관람시간,휴관일 안내◆ 

  ◆ 국립부산과학관 입장료 안내◆ 

 ◆ 국립부산과학관 입장시 주의사항과 주차요금 안내◆ 


◆ 국립부산과학관 대중교통편 안내◆ 

일반버스:국립부산과학관 정문 하차는 시내버스 185번 이용. 롯데몰 하차는 100번 시내버스.

당사 입구 하차:38번, 39번, 40번, 63번, 139번, 180번, 182번, 200번, 

급행버스인 1001번, 1003번은 일반버스 환승 후 당사 입구 하차

기장에서는 청강리공용버스주차장에서 185번 환승 또는, 도시철도 2호선 장산역 5번과 7번 출구  사이 버스정류장에서 185번 버스 환승하면 부산과학관 정문에 하차하여 가장 좋은 방법임



◆국립부산과학관 정보안내

★주소: 우)46081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산관광6로 59

문의전화:051-750-2300

홈페이지주소:http://www.sciport.or.kr/front/index.do

입장료:유료

주차장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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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남산여행)염불사지 삼층석탑. 은은한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린다는 경주 남산리 염불사지 삼층석탑 여행하기. 


야외박물관이자 문화재의 보고로 부르는 경주 남산은 파도파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경주 남산 여행을 계획하면서 어떤 문화재와 다시 만날까 싶어 떠나기 전부터 내 가슴은 한참을 설레었습니다.




◆경주 남산 염불사지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2012/09/24 - (경주남산여행)보리사 마애석불. 잔잔하며 엷은 미소가 아름다운 보리사 마애석불


2012/09/28 - (경주남산여행)장인의 조각솜씨에 경탄, 화강암을 시루떡이라 생각했는지-경주남산탑곡마애불상군


2012/11/01 - (경주남산여행)살인미소 짓는 부처님의 모습이 경주남산 보리사 석불좌상으로 태어나다. 미륵곡석조여래좌상


2012/11/05 - (경주남산여행)각기 다른 동,서탑의 모양이 특이한 경주 남산리 삼층 석탑


2013/02/04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신발견 마애불을 보면 신이 있다고 믿을 수 밖에... 열암곡 신발견 마애대불


2012/09/30 - (경주여행)경주남산서출지. 추석날 고향 같은 분위기가 좋은 서출지와 이요당


2013/02/21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 신선이 빚었을 것 같은 우아한 모습


2011/01/12 - (경주여행/남산 신선암 마애불)신선암 마애불에서 기도하는 보살님



 

이번에는 동남산 자락에서 필자가 처음 만나는 전 염불사지 삼층석탑입니다. 워낙 문화재가 많아 염불사지 삼층석탑은 따로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으며 절터인 염불사지만 사적 제31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전 염불사지 동탑

 

염불하면 다 아시지요.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외우는 독경 소리를 말합니다. 많은 사찰 이름에서 염불사는 사실 생소한데 이곳에는 삼국유사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느 스님이 하루에 몇 번씩 시간을 정해 놓고 염불을 외우셨습니다. 그 소리가 서라벌 내 동서남북 360방 17만 호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목탁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우셨습니다. 매일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듣다 보니 사람들은 그를 공경하게 되었고 스님을 염불사(念佛師)라 불렀습니다. 그 후 스님이 입적하자 흙으로 스님의 소상을 만들어 민장사(敏藏寺)에 모시게 되었고 스님이 목탁을 치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던 동남산 아래 피리사(避里寺)를 염불사(念佛寺)로 고쳐 부르며 스님의 극락왕생을 빌었습니다.”


 전 염불사지 서탑

 

전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모두 무너져 있었고 탑재는 도지동의 이거사지 삼층석탑의 1층 옥개석과 조합하여 1963년 불국동 구정광장에 삼층석탑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다 2008년 1월 염불사지 삼층석탑을 복원하고자 해체하였고 2007년 6월부터 시작된 복원작업은 2009년 1월에 동·서 쌍탑인 삼층석탑을 복원 완료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서탑에는 사리장엄구를 봉안했던 사리함이 다른 석탑에서 볼 수 없는 2개가 들어 있었고 3층 탑신의 방형 사리공이 투공되고 탑재 등을 종합해보면 전 염불사지 삼층석탑은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염불사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1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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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웅산면 남강서원. 천성산 아래 죽재 이겸수를 배향한 남강서원을 여행하다.


양산시 웅산면 주남동 주남공단에는 공장 건물이 꽉 들어차 있는 가운데 새롭게 복원된 남강 서원이 있습니다. 이곳은 죽재 이겸수(1554~1598) 공이 태어나고 성장하였던 곳입니다. 공은 38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사명대사를 도와 일본장수인 가토 기요마사 등과 만나 약탈과 횡포를 일삼는 왜군과 외교 교섭을 벌였습니다.








◆양산 웅산면 남강서원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기록을 보면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적이 울산 서생포에 진을 치고 조선조정에 화친하자며 문서를 보내자 조정은 장희춘과 함께 그 진위를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명을 받은 죽재공은 적진에 들어가 가토 기요마사의 부관을 만났으며 적진의 동태를 자세히 살피며 화친의 진의가 무엇인지 탐색하여 조정에 보고했습니다.


 

 


 그 후 죽재공은 1596년 7월에 기장 현감으로 부임했고 44세에는 정주 판관으로 부임했지만 안타깝게도 그해 월성부에서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남강 서원은 정조 7년인 1783년 처음 죽재 이겸수 선생을 기리는 남강사로 창건했으며 1868년 고종은 남강서원으로 승호하였고 사림 유생들의 강학장소와 후학양성을 위한 장소로 활용하였습니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으며, 훼철과 함께 130년이 지난 2004년 학성 문중은 죽재 선생의 남강 서원 복원을 의결하고 성균관에서 남강 서원 복원의 승인과 고증을 받았습니다. 이어 2008년 1월에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2009년 5월에 완료하는 낙성식을 거행했습니다.

 

 

남강 서원은 대지가 517평에 사당인 충렬사와 내삼문, 강당, 동재, 서재, 외삼문 등 전학후묘의 서원 양식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필자는 지난 주말 웅산을 거쳐 웅촌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장재터에 복원된 남강서원을 찾았지만, 서원은 문을 닫았고 고졸한 분위기 속에 주위 공장의 기계음만 요란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당장 바깥에서 목을 빼고 까치발로 둘러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당인 선인당에는 선비생활 체험을 한다는 빛바랜 현수막만 걸려있었습니다.

양산 남강서원 주소:경남 양산시 용주로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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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서구여행)동아대학교부민캠퍼스 석당박물관. 등록문화재 제41호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 건물인 동아대학교 박물관 여행하기....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41호로 2011년 포스팅을 했습니다. 그때는 동아대학교 부민 캠퍼스 박물관이 있는 뒤 신축 건물 공사 때문에 앞부분만 둘러보았습니다. 이번 동아대학교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앞부분이 아닌 건물 뒷면이 궁금했고 박물관 내부도 궁금해 다시 찾았습니다.






◆동아대학교석당박물관과 주위 가볼만한 곳


☞2008/09/23 - 6.25전쟁 때 옮겨온부산의 임시수도기념관 함보세요


2011/10/25 - 여러분은 전차의 모습을 아세요. 미국산전차로 부산에서 운행했던 것입니다.


2011/11/25 - 등록문화재인 옛 경남도청 건물이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2016/04/20 - (부산여행/서구여행)동아대학교박물관 부산 전차 구경. 우리나라에 한량 남아 있는 미국제 전차를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박물관에 전시중입니다.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은 1925년에 건립하면서 처음에는 경남도청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건물은 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건물이 서양의 고전주의 양식과 일본 특유의 목조 양식을 결합하여 붉은 벽돌로 지었는데 그 당시 경남도청(현 동아대학교박물관)건물도 그중 한곳입니다.

 

 

격동의 세월인 한국전쟁 당시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부산으로 옮겨오면서 임시 정부청사 건물로 사용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임시정부청사 건물은 다시 경남도청이 들어왔고 1983년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옮겨가면서 부산지방법원과 지방검찰청으로 사용하여 우리에게는 법원으로 더 익숙했습니다.


 

 

부산지방검찰청과 부산지방법원은 부산시청과 함께 연산동 시대를 열면서 다시 옮겨갔으며 2002년 동아대학교에서 인수하여 현재에는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동아대학교에서 인수와 함께 건물은 한국 근대사의 유물로 인정되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그에 걸맞게 동아대학교에서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대적인 복원공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건물은 외관 모양만 남기고 뼈대부터 모두 새로 세웠을 정도로 전면적인 복원 수리 공사였습니다. 외벽은 붉은 벽돌과 돌 그리고 콘크리트 블록을 벽체로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내부 바닥과 지붕을 받치는 뼈대 등은 모두 나무를 사용했던 것을 박물관으로 사용 시에 안정성을 고려하여 바닥은 콘크리트를 깔고 지붕을 받치는 기둥 등은 모두 철골로 교체했습니다.


 

 

지금도 3층에는 그때 당시 사용했던 지붕을 받쳤던 목재를 전시 중이며 그 위로 지붕을 받치는 철골을 보면서 복원공사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동아대학교박물관 1층 로비로 들어갔습니다.


 

 

관리하시는 분께 혹시나 싶어 사진촬영을 문의하였더니 2층 전시실부터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국립박물관에서도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데 왜 사진 촬영이 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플래시를 터트리면 전시물인 문화재에 혹시 모를 변형을 줄까 싶어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라면 전시물에 쏘는 전등 빛이 더 심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요즘 누가 박물관에서 플래시를 쏘고 사진을 찍는지 참. 사진 촬영이 안된다 하여 정말 아쉬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로마에 왔다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동아대학교 박물관 법을 따라야겠지요.


 

 

그러나 1층 로비는 사진 촬영이 된다 하여 광개토대왕릉비 탁본과 철제용기 그리고 복원공사를 하면서 당시 사용된 붉은 벽돌을 그대로 남겨 놓은 벽체 등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는 고구려 장수왕 2년인 414년에 장수왕은 부왕인 광개토대왕을 기리는 비석을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중국 지린 성 집안) 동쪽에 대왕의 능과 함께 세웠습니다.


 

현재 광개토대왕비는 높이가 6.39m이며 비석 사면에 총 44행 1,755자를 새겼는데 마모되어 완전한 판독은 불가하다 합니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주몽, 유리왕, 대무신왕의 약력과 광개토대왕의 정복활동 전반에 관한 내용이라 합니다.


 

 

철제용기는 철제 주조물로 몸통에는 두 군데 사자가 시문 된 손잡이가 달려 있고 용기를 받치는 세 발이 아랫부분에 달려 있습니다. 용기 외부에는 문양을 새겼는데 초화문과 파어문을 양각 주조로 배치하였으며 사찰의 금당 앞에 연지와 같은 용기로 사용하였거나 물을 담는 용기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동아대학교 박물관 여행을 위해 2층 전시실로 향했습니다. 1959년 11월에 동아대학교 설립자이신 석당 정재환박사에 의해 부산에서 최초로 개관한 박물관이라 이곳을 둘러보는 저로서도 더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전시실은 고고실과 도자실, 와전실, 불교미술실, 서화실, 민속실, 3층에는 부산 임시수도정부청사 기록실로 꾸며져 있으며 약 30,000점의 문화재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눈여겨볼 것은 ‘동궐도(국보 249호)’와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국보 69호)’인 국보 두 점입니다.

 



동궐도는 경복궁 동쪽의 궁궐인 동궐, 창경궁과 창덕궁을 그렸는데 아주 상세하게 표현하여 건물을 지을 때 그려 놓은 궁궐도감 같았습니다. 또한, 불교미술실의 ‘의령보리사지금동여래입상(보물 731호)’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3(보물 269-3호’ 등 많은 보물과 문화재가 전시 중입니다. 이곳 박물관에서 만나는 문화재는 또 다른 맛을 보여줬습니다.




 

 

 

3층 정부청사 기록실은 복원 수리를 하면서 기존 벽체를 그대로 사용하며 최소한의 구조 변경을 하였습니다. 또한, 지하 수장고와 전시실 곳곳에 당시의 흔적인 벽체를 그대로 보존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의 설음과 아픔을, 전쟁을 겪으면서 임시정부청사로 사용했던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고스란히 기록한 건물인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임시정부청사 기록실을 만나보세요. 참 가슴이 먹먹해 왔습니다. 그리고 야외 전시한 문화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야외전시실

 

 

 

 

 ◆동아대학교석당박물관 관람안내◆

 ◆동아대학교석당박물관 오시는 길 안내◆

 ◆동아대학교석당박물관 도록◆

(일부사진 팸플릿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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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여행/울주여행)은현리 적석총. 고구려 돌무덤으로 추정되는 은현리 고분인 은현리 적석총을 한반도 남쪽 울산지방에서 만나는게 신기했습니다.


 영남 쪽에서는 돌무덤인 적석총은 사실 생소합니다. 필자는 산청 왕산 밑에 있는 전 구현왕릉만 보았을 뿐입니다. 이곳의 돌무덤을 보면서 많이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울산 울주군 웅촌면을 돌아다니면서 은현리 적석총 안내판을 보고 무작정 걸었습니다.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적석총 주위 여행지◆


2012/05/14 - (경남양산) 지금쯤 분홍색 철쭉 치마폭에서 아마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정족산 산행


2008/10/11 - (울산여행/울주여행)청량면 청송사지 삼층석탑 여행. 신라시대 예술품 청송사지 삼층석탑 입니다.


2011/02/25 - (울산여행/울주여행)천전리 암각화. 선사시대때 새긴 암각화의 모습, 천전리 암각화


2011/02/24 - (울산여행/울주여행)두동면 대곡박물관. 고향의 정취가 생각나는 울주군 두동면 대곡박물관의 모습



 

입구에서 1.7km. 은현마을은 무제치늪을 품고 있는 정족산 자락의 구릉지에 있었습니다. 마을은 평온하며 정겹게 보여 살기 좋은 동네 같았습니다. 마을 회관 앞을 지나는데 돌무덤을 찾았더니 이곳에서는 유명한지 어르신들 모두 낯선 이방인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을 둘러보고는 집집이 담장은 모두 자연석 돌을 둘렀습니다. 어디 제주도도 아니고 어디서 이런 많은 돌이 나왔는지 그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인근에 돌무덤인 적석총이 들어선 게 아닌지 싶었습니다.


 

마을을 벗어나니 귀촌이라 해야 할지 귀농이라 해야 할지 시골동네 집과는 다르게 경비업체가 지키는 별장 같은 집들이 동네를 이룬 다솔마을을 지났습니다. 이제 은현리 적석총이 200m 남았다는 안내판이 보였습니다.


 

 

넓은 흙길을 걸었더니 보기 좋은 솔숲에 울타리를 두른 돌무덤 은현리 적석총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처음 만난 적석총은 차곡차곡 쌓아 놓은 돌탑 형식이 아니고 봉분이 무너진 듯 둥그스름하고 제멋대로 쌓아 놓은 그냥 그런 돌무덤 같았습니다.


 

 

은현리 적석총은 수박만 한 크기의 자연석을 쌓아 만든 삼국시대 무덤입니다. 처음에는 산청의 전 구현왕릉이나 서울 송파구의 백제 무덤인 석촌동 3·4호분, 광개토대왕릉같이 네모 형 기단 위에 돌을 차곡차곡 삼각형으로 쌓았을 것으로 추정하며 그게 세월이 흐르면서 무너져 이런 형태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적석총은 높이가 약 6~7m, 네모꼴인 기단 한변의 길이가 20m 내외를 보면 무덤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위 마을의 많은 돌담을 보면서 신기하게도 여기에 이런 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마 오래전부터 누군가의 돌무덤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적석총과 30m 거리를 두고 돌담이 둘러진것은 무덤의 영역을 나타내는것이라합니다. 

 

 

고구려의 적석총과 같은 돌무덤이 왜 이곳에 있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고구려 장수왕이 부왕의 능 앞에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워 그의 업적을 기록했는데 그중 신라 부분을 추론해보면 바다 건너 왜군이 쳐들어오자 광개토대왕이 군사를 신라에 보내어 낙동강 근처에서 왜군과 싸워 이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곳 은현리 일대에서 고구려군이 신라 내물왕과 함께 왜군을 막기 위해 진지를 구축하였고 그때 전투에서 숨진 고구려 장수의 무덤이 아닌지 그냥 나의 짧은 역사 지식으로 추론해 봅니다.


 

 

또 한설은 울산이란 지명을 낳은 ‘우시산국’이 이곳을 무대로 강력한 부족국가를 형성했는데 신라의 거도에 의해 멸망하고 복속됩니다. 그 우시산국을 다스린 우두머리가 고구려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가야의 마지막 왕인 전 구현왕릉도 돌무덤인데 가야인의 돌무덤이라 주장해도 할 말이 없을듯합니다.

 

 

그러나 당장 어떤 결론을 내릴 수도 없으며, 적석총의 규모를 보면 어느 권력자의 무덤만은 확실합니다. 특히 적석총은 대부분 고구려 무덤으로 보며 그런 돌무덤을 한반도 최남단인 울산에서 만난다는 게 역사여행의 또 다른 재미인 것 같습니다.

 


은현리 적석총(은현리고분) 문화재 정보◆ 

시대:삼국시대 신라

★문화재지정:울산광역시 기념물 제8호

★문화재지정일:1997년 10월9일

★주소: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2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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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광양여행)백운산자연휴양림. 걷기 좋은 솔숲길과 산막에서 즐기는 휴식이 꿀맛일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여행.


 전남 광양시 옥룡면 벽계산 옥룡사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옥룡사지는 풍수사상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처음 절터를 잡고 입적할 때까지 35년을 머물렀던 곳입니다. 도선국사가 이곳의 지기를 보강하기 위해 손수 심었다는 동백나무는 수령이 100~300년에 이르는 아름드리 나무로 3~4월에는 동백나무 7,000여 그루가 동백꽃 길을 만들어 일대 장관을 연출합니다.

 





◆광양 백운산 자연휴양림 인근 여행지


☞2016/03/05 - (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 백운산~신선대 산행. 뼈에 이롭다는 고로쇠와 매화꽃 산행지 광양 백운산~신선대 산행


2016/03/01 - (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 산남리 남정지석묘군.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현대 무덤이 함께하는 광양 산남리 남정지석묘군을 보며 명당은 똑 같은 모양입니다.


2014/10/22 -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 망덕포구 시인 윤동주 유고 보존집 정병욱 가옥 여행하기...


2014/10/14 - (광양여행/하동여행)광양 하동 걷기 좋은 섬진강 둘레길. 광양 망덕포구~하동 하동송림 섬진강 둘레길을 걷다.1


2014/09/13 -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면 망덕포구. 섬진강과 호남정맥의 끝과 시작인 망덕포구 가을 여행을 떠나보세요.망덕포구


 

이번에 광양여행에서 옥룡사지 동백림도 둘러보고 인근에 있는 백운산자연휴양림 탐방도 함께하였습니다. 백운산자연휴양림은 역시 그냥 자연휴양림하고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쭉쭉 뻗은키 큰 소나무하며 이름 모를 식물과 야생화에 그 너른 품의 백운산을 마음껏 활보하는 동물까지 백운산은 생태·경관 보호지역에다 야생 동·식물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역시 이름값을 하였습니다.





 

 

이 중심에 백운산 자연휴양림이 자리하며 누구나 백운산자연휴양림을 탐방하면 건강이 따라올 것 같습니다. 맑은 공기와 차다 못해 얼음장 같은 샘은 도시에서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치유하고도 남을듯합니다.


 

 

백운산자연휴양림의 수목은 삼나무와 편백 등 인공으로 조림된 숲과 자연발생적인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천연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휴양림에는 산막과 숙박동, 물놀이장, 황톳길과 운동장 등 숙박과 야영시설을 함께 갖추고 요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오토캠핑 시설까지 갖춘 최고시설의 휴양지입니다. 가족과 함께 즐기는 자연학습장 또한 최대 볼거리로 봄에 산책삼아 솔숲 길을 걸어보았습니다.


 

 

 

백운산 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

 

 

 

 

 

 야영장(평상)

 

 

 

 

 

 

 

 

 

 산막의 케빈하우스

 

 옥련사지 동백림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입장료와 주차요금 안내◆ 

(이하 백운산자연휴양림 홈피 캡쳐)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부대 시설 요금표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안내도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입장시간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에 대해 알아보기

 

◆광양 백운산 자연휴양림 영업정보

주소:(57702)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백계로 337

★문의전화:061-797-2655~6

평일 오전9시~오후6시, 단 토·일·공휴일 휴무

백운산 자연휴양림(생태숲)예약 홈페이지http://bwmt.gwangy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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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서구여행)동아대학교박물관 부산 전차 구경. 우리나라에 한량 남아 있는 미국제 전차를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박물관에 전시중입니다.  


부산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에는 부산 전차의 발자취인 1952년에 미국에서 도입한 전차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당시 ICA 원조자금으로 40대가 들어 왔는데 부산에 20대를 배정받아 시민의 발인 대중교통 수단으로 운행했습니다.







◆동아대학교 박물관 건물과 전차, 임시수도기념관 보기


2011/11/25 - 등록문화재인 옛 경남도청 건물이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2011/10/25 - 여러분은 전차의 모습을 아세요. 미국산전차로 부산에서 운행했던 것입니다.


2008/09/23 - 6.25전쟁 때 옮겨온부산의 임시수도기념관 함보세요



 

그러나 차츰 교통의 다변화로 인해 전차 운행은 매년 불어난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였고 이에 한국전력에서 1968년 이사회를 열어 전차운행 중단을 결의하여 동년인 5월19일에 마지막 전차 운행을 하면서 53년간 부산 시민의 발이었던 전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당시 전차는 전기로 움직이다보니 요즘으로 말하면 교통부 소관이 아니고 한국전력에서 운행한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전차가 운행을 중단하면서 전차 1량은 1969년 2월에 동아대학교에 기증하였고 동아대학교 구덕캠퍼스에서 보관해 오다가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면서 보존처리를 한 다음 2010년 12월에 이곳에서 일반인에게 공개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보존처리를 해서 그런지 새것같이 

삐까번쩍하니 보기가 참 좋습니다. 


 

우리나라에 전차가 처음 도입된 시기는 1899년(광무 3년)입니다. 서울 서대문에서 청량리를 잇는 8km 구간을 개통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 전차가 처음 운행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11월 1일 부산진~온천장 구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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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츰차츰 대청동과 광복동, 영도, 대신동 노선을 확장하면서 부산은 전차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1945년 8월15일 광복과 함께 조선와사전기에서 운행하던 전차는 1946년 5월에 한국전력의 전신인 남선전기(주)가 운행을 맡아 운영하였습니다.


 

 

이곳에 전시중인 전차는 1927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제작하여 애틀랜타에서 운행했던 전차로 1952년 무상원조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1968년 부산에서 전차운행을 멈출 때까지 마지막을 함께한 전차 중 한 대며 근대 부산 교통 역사에서 아주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당시 노선안내판

 요즘 차량에 광고판을 붙이덧 

당시에도 유명상표였던 태화고무 말표신발 

광고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딱 3량의 전차가 남아 있으며 그중 두량은 일본제 전차이고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에서 전시중인 전차는 미국에서 생산된 전차로 현재 국내에서 1량만 남아 유일합니다. 전시된 전차를 보면 앞과 뒤 외장은 물론이며 내부의 앞쪽과 뒤쪽이 형태와 구조가 똑같은 모양입니다.


 

 

 

지붕에 달린 집전기입니다. 역삼각 기둥꼴로 된 전기설비로 전차위에 있는 전선과 접촉하여 전차에 전기를 공급하며 스프링의 힘으로 전선에 밀착하도록 밀어 올리며 작동합니다


 

 

그리고 외부는 철재로 처리하였으며 내부는 나무로 마감 장식하였습니다. 전차 지붕 가운데에 전력공급을 하는 집전기인 뷔겔이 설치되었으며 전차의 양쪽 끝 부분에는 서로 마주보며 출입문인 미닫이문이 총 4개 달려 있습니다.


 

내부에는 앞·뒤 운전석에 조종장치인 속도와 전·후진장치, 제동장치를 각각 설치하였습니다. 좌·우 순방향과 역방향으로 앉을 수 있는 좌석이 각각 10개씩 배치하였고 운전석 뒤에는 서로 마주 보도록 각 2개의 좌석을 설치해 총24개의 좌석에다 입석을 위한 손잡이, 조명등과 알림벨 등 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당시 부산 전차 승차권 구경하세요 

 

 

좌석은 길게 마주보는 일본식 좌석배치가 아닌 미국식 전차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필자는 일요일 2시 조금 넘은 시간에 갖다가 내부를 보지 못하고 허탕 쳤으며 후에 다시 방문하여 내부 사진을 담았습니다.



 반드시 오후1~2시 사이에 개방하며 공휴일과 월요일 비, 눈 등 기상이 악화할 때는 문화재 보호차원에서 내부를 개방하지 않습니다. 이전차는 현재 등록문화재 제494호에 지정되었습니다.





"내부는 두 명씩 앉게끔 24개의 의자가 있으며 입석을 포함해서 약 100여명이 탈수 있습니다. 지하철처럼 긴 좌석이 아닌 두 명씩 앉는 좌석은 미국식 전차의 특징이며 전차 외부 앞과 뒤의 모양은 똑같고 양쪽에는 미닫이문이 2개씩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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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전차관람 안내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부산 전차 정보 안내 ◆

동아대학 석당박물관 주소: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부민동 2가)

문의전화는 051-200-8493.

★관람료:무료

교통편: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토성역 하차, 2번 출구로 올라와 도보 약 10분 거리,

버스는 15, 16, 40, 58-1, 70, 81, 123, 126, 161, 190번 버스 동아대학 부민캠퍼스 정류장 하차.

내비게이션 동아대학부민캠퍼스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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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 봄에 걷기 좋은 여행지 근대 역사문화박물관 범일동호랭이 이바구길을 걷다. 호랭이 이바구길


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은 도시철도 1호선인 범일역 인근 현대백화점 앞에서 시작합니다. 현대백화점 입구 맞은편에 호랭이 이바구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백화점 오른쪽을 끼고 들어가면 범일동과 범천동의 유래가 된 호계천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범일동 호랭이이바구길 과 이중섭거리, 초량동이바구길


2016/04/12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누나의 길. 호랭이 이바구길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누나의 길이 있습니다.


2016/04/11 - (부산여행/동구여행)교통부 보림극장, 서민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부산 최초의 쇼 전문극장 보림극장이 호랭이 이바구길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2016/04/08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 쉼터 똥산 전망대. 70~80년대 똥구덩이 산이 부산 최고의 힐링코스 호랭이 이바구길 똥산 전망대로 바뀌었습니다.


2016/04/06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안창마을. 70~80년대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 억척스럽게 살았던 대한민국의 참 모습을 찾는다면 범일동 안창마을 여행 추천.


2014/10/09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이중섭거리. 한국의 고흐 '이중섭 범일동 풍경'으로 만나다.


2014/06/09 - (부산여행/동구여행)초량이바구길. 근대의 역사길을 따라가는 초량 이바구길을 만나다.초량 이바구길



 현대백화점 출발

 

지금이야 인근의 하수 등으로 오염되어 초라한 모습이지만 한국전쟁 이전에는 울창한 수림으로 호랑이가 살았다합니다. 부산역을 잇는 경부선 선로가 길을 끊어놓아 구름다리로 연결하였으며 이곳에서 천만관객을 동원한 곽경택 감독의 ‘친구’가 촬영되었습니다.


 

“내가 니 시다바리가” “니가 가라 하와이”등 한때 많은 유행어를 날리며 지금도 부산영화를 이야기하면 회자하고 있습니다. 책가방을 옆에 끼고 구름다리를 뛰어올라 범일동 극장 골목으로 냅다 뛰는 장면을 보면서 필자도 중·고교 시절 친구와 싸움하면서 놀았던 학창시절을 생각하며 저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친구' 영화 촬영지 구름다리

 

중·고교 시절을 보낸 사람은 모두 하나씩 이런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육교 양쪽 계단에는 영화 친구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아주 특색 있게 보여 좋았습니다. 아직도 오래전 모습인 민속골동품가게와 점바치 집이 남아 있어 70~80년대 모습을 더욱 실감 나게 보여줍니다.


 

 

 

지금도 이 거리는 곽경택의 친구가 대명사처럼 될 정도로 영화 ‘친구의 거리’입니다. 육교를 넘으면 교통부로 불렸던 범천로터리입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이 일대는 흔히 말하는 고무신공장이 주위에 밀집해 있었습니다.


 보림극장

왼쪽의 건널목을 건너면 바로 옛 모습을 간직한 영화관 보림극장입니다. 이제는 폐관하여 영화 상영도 하지 않으며 걸개그림을 달아 그 당시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보림극장 하면 쇼 전문극장으로 당대의 유명가수였던 이미자. 하춘화, 남진, 나훈아와 코미디언 배삼룡 서영춘 등 영화보다는 리사이틀이 더 많이 열려 관객을 웃기기도하고 울게도 하였습니다.


 

 범일골목시장

문화생활이란 전혀 없던 시절 보림극장은 청춘남녀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었으며 지금도 50대 이후 사람들은 당시 보림극장의 유명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보림극장 왼쪽에는 범일동 골목시장입니다. 골목시장은 6.25 한국동란 이후 피난민들과 주민들에 의해 처음 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근의 국제상사. 삼화고무, 태화고무 등 신발공장 여공들이 퇴근하면서 채소와 생선 과일 등을 구입하여 집으로 돌아가던 꽤 규모가 큰 시장이었지만 지금은 다 떠나버린 추억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아침과 저녁에는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으로 활기가 넘쳤다는 범일골목시장을 보다보면 한쪽에 ‘호천석교비’ 빗돌이 있습니다.


 호천석교비

1711년(숙종37)까지 이곳에 나무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썩고 하여 돌다리로 교체하면서 세운 기념비입니다. 당시 이곳에 세웠던 비석은 2000년에 박물관으로 옮기고 대신 지금의 비석을 세워놓았습니다.


 

호랑이 길을 상징하는 호랑 형상을

회화적으로 그려 보도블럭에 깔아 놓았습니다.  


 

 누나의 길

이제 골목시장을 빠져나오면 60~80년대 무작정 고향을 떠나 이곳 고무신공장에서 여공이 되었던 많은 누나의 삶을 조명해보는 ‘누나의 길’을 만납니다. 새벽이면 출근하는 누나들의 발자국이 ‘따각 따각’ 골목길을 울릴 정도였다 하니 얼마나 많은 여공이 집안의 가장이 되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는지 '누나의 길‘에서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그분들의 고단했던 삶을 사진으로 만나보고 신발박물관에서 수출역군으로 경제를 일으켜 세웠던 우리누나들을 둘러보면 어느새 삼일고무 자리입니다. 지금은 호계천이 모두 복개되어 어디가 호계천인지 알 수 없지만 도로를 따라 오르면 똥산 담벼락에 ’극장이야기‘가 옛날 잘나가던 시절의 동구를 보여줍니다.


 

 

 

 

 

영화 포스트와 보림극장, 삼일극장, 삼성극장 등 범일동과 좌천동에 수많은 영화관이 있다가 지금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엄마 없는 하늘아래“ ”영자의 전성시대“ ”미워도 다시 한 번“ 등 추억의 영화 포스트가 당시를 더욱 생각나게 합니다.


 

 

 

 

 

 

호랭이 이바구길은 영축사 계단 길을 오릅니다. 똥산을 오르는 길로 지금은 호랭이 이바구길 전망대가 세워져 똥산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천하제일 전망대입니다. 그러나 80년대까지만 해도 범일동에는 사람이 몰려들었고 집집이 똥바가지에 똥을 지고 이곳 똥산에다 구덩이를 파고 묻었습니다.




 똥산 전망대

멋모르고 이곳 똥산을 오르다 숱하게 똥구덩이에 빠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으며 지금은 공원조성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곧 쌈지공원이 탄생할 예정입니다. 정말 전망이 좋아 떠나기가 아쉬웠지만, 안창마을까지 연결하는 호랭이 이바구길을 모두 걷기 위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찾아가면 해방과 함께 부산항에 몰려든 귀환동포를 수용했던 수용소 시설이 있습니다. 6·25 이후에는 피난민까지 몰려 많이 늘어났으며 지금도 주위보다 더 낙후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천재화가 이중섭이 1951년 12월에 아내 마사코여사와 함께 피난하여 생활했던 곳입니다.


 귀환동포마을

마사코(이남덕) 여사는 ’범일동 1497번지‘ 판잣집에 생활할 때가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했다며 술회합니다. 마사코 여사는 아이와 함께 친정인 일본으로 떠나고 이중섭은 부두노동자와 술로 가족을 그리워하다, ’범일동 풍경‘인 이중섭 최대의 역작을 남겼습니다.

 

 

 

 호랭이 쉼터

다시 골목길을 따라가면 호랭이 쉼터입니다. 쌈지공원으로 운동기구를 설치해 마을주민들이 휴식을 즐기게끔 했습니다. 수정산에서 안창마을을 가로지르는 호계천은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엄청나게 숲이 우거져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던 모양입니다. 아마 호랑이를 만났다면 오금을 못 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안창마을로 향합니다. 가는 도중 만물상회를 만났습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을 것 같은데 그 크기를 보고 더욱 놀랐습니다. 아마 크기가 반 평쯤 될까요??? 그리고 이곳 범일동은 통일교의 발생지이며 성지로 전세계에서 많은 통일교신도가 찾고 있습니다.


 

 

 

 

 

 통일교성지

통일교를 세운 문선명이 6.25 한국동란 때 이곳 범일동으로 피난와 기도를 했던 곳으로 ’눈물의 바위‘ 이외에도 수정산 주위로 많은 기도터가 있습니다. 세계 40개국에서 들고 왔다는 돌도 보고 본성지인 ’눈물의 바위‘를 둘러보고 돌아 나와 이제 안창마을로 향합니다.


 

 

 

 안창마을

 

동구의 마지막 달동네로 통하는 안창마을은 ”산골짜기 안쪽의 좁은 분지마을“을 뜻합니다. 6.25 한국전쟁으로 몰려든 피난민에 의해 처음으로 마을을 이루었고 그 뒤에는 경제발전으로 산업화바람을 타고 무작정 고향을 떠났던 분들이 공장이 많았던 범일동으로 몰려들면서 안창마을로 유입되어 지금의 큰마을이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사라지고 없지만, 당시 이른 새벽에는 안창마을에서 범일동 고무신공장으로 출근하는 근로자로 장사진을 이루었다합니다. 그리고 90년대 초반에야 전기와 수도시설이 모두 갖추어졌을 정도로 낙후성을 면치 못했던 안창마을이 지금은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으로 많은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호랭이 이바구길도 그 일환이며 호랑이를 모티브로 한 벽화등 볼거리가 무궁무진할 정도로 다양합니다. 60~80년대 그 어려웠던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근대 문화 박물관 안창마을 호랭이이바구길을 걸으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정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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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부북면 김종직 생가 추원재. 성리학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 생가인 밀양 추원재를 여행하다. 


세조가 그의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 찬탈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를 무오년에 일어났다하여 무오사화라 합니다. 당시 점필재 김종직이 이끄는 사림파와 한명회의 훈구파가 정치권을 양분하며 정권을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잡기위해 물밑노력을 기울이는데 사람파는 정도가 아니라며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합니다.






◆강호산인 김숙자 김종직 다른 여행지


2008/07/13 - (경남여행/밀양여행)부북면 예림서원.점필재김종직과 예림서원


2014/09/03 - (경남여행/거창여행)김숙자사당. 영남사림파의 발흥이 된 거창 남상면 강호 김숙자 사당을 보고오다.


2014/08/26 - (경남여행/거창여행)점필재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일원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 남상 일원정


2016/04/16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우령산~종남산 산행. 부산 근교산 진달래 산행지 밀양 우령산~종남산 산행. 흐트러지게 핀 진분홍색 진달래가 온산을 태우다.


2014/11/14 - (경북여행/구미여행)채미정. 구미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야은 길재를 추모 하는 정자.



 

훈구파는 세조가 정권을 잡은 것을 찬성하며 세조 또한 이들 한명회와 신숙주 등 훈구파를 중심으로 정치를 이끌어 갑니다. 자연적으로 사림파는 정치권에서 멀찍이 물러나 성리학인 유학에 몰두하였고 성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사람파들도 다시 벼슬길에 진출하여 사람파와 훈구파는 또다시 당쟁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일손이 스승인 김종직이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비꼬는 내용‘인 ‘조의제문’을 사초인 성종실록에 올린 것을 두고 훈구파의 이극돈과 유자광이 연산군에게 고하자 연산군은 김일손 외 수많은 사림파를 처형하였으며 죽은 김종직은 관을 파헤쳐 목을 자르는 부관참시형을 당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그의 많은 문집은 소각되었습니다.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한골마을에는 점필재 김종직 생가인 추원재가 있으며 그의 묘소인 봉분은 최근에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이곳은 그의 부친인 강호산인 김숙자가 결혼과 함께 처가 입향하여 처음 거처를 잡았던 곳입니다. 점필재 김종직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성장했으며 낙향하여 돌아가신 곳입니다. 현재 추원재 뒤편에는 그의 무덤이 있습니다.


 

 

 

김종직은 고려 말 삼은 중 한분인 야은 길재의 학통을 이어받았으며 성리학의 종조로서 조선시대 사림파의 유학자는 정신적인 지주이자 뿌리 같은 곳으로 여겨 김종직 생가를 많이 찾았다합니다. 김종직 생가는 전란과 세월 속에 파괴와 허물어져 훼손이 심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림과 후손들에 의해 1810년에 중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건물은 6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며 가운데 추원재(追遠齋) 현판이, 대청에는 전심당(傳心堂) 당호가 걸려 있습니다. 전심(傳心)이 가진 뜻은 ‘도학의 의리정신을 전하였음“을 기리는 뜻이라 합니다. 점필재 김종직은 절의와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며 실천하는 도학사상으로 그를 따르는 제자가 많았습니다.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유호인, 남효은, 조위, 이맹전, 이종준 등과 그의 정신을 계승한 조광조등 걸출한 제자를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또한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저서로는 ’점필재집‘ ’유두류록‘ ’청구풍아‘ 당후일기’ 등이며 ‘일선지’ ‘이준록’ ‘동국여지승람’ 등을 편저하였습니다.


 

 

 

 

 

김종직은 1506년 중종반정으로 신원이 회복되어 밀양의 예림서원, 선산 금오서원, 이외 여러 곳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문충’공입니다. 밀양여행길에 꼭 들러보세요. 빠듯한 시간과 다른 일정으로 김종직 묘와 김종직이 부관참시로 밀양으로 묘를 이장하자 호랑이가 나타나 슬퍼하며 무덤을 지키다 죽었다합니다. 그 호랑이 무덤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다음기회에 다시 한 번 찾고 싶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9호


 

 김종직 신도비


 김종직 신도비각

 

 

☞(경남여행/밀양여행)부북면 김종직 생가 추원재 대중교통편.


부산에서 밀양 가는 방법은 열차와 시외버스가 있습니다. 먼저 부산역에서 밀양역으로 출발하는 무궁화 열차는 오전5시13분, 5시40분, 6시35분, 7시05분, 7시50분,9시20분,10시18분, 10시50분 등. 밀양역 앞 시내버스정류장에서 버스로 밀양버스터미널로 이동합니다. 부산서부터미널에서 밀양터미널행 버스는 오전 7시, 8시, 9시, 10시, 11시 등에 출발하며 밀양터미널에서 김종직생가인 추원재로 가는 버스는 구기행 버스를 갈아타고 한골정류장에 내립니다. 오전6시40분, 6시50분, 7시50분, 8시20분, 9시20분, 10시10분, 11시30분 등내비게이션에는 추원재, 또는 김종직 생가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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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 생가 추원재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우령산~종남산 산행. 부산 근교산 진달래 산행지 밀양 우령산~종남산 산행. 흐트러지게 핀 진분홍색 진달래가 온산을 태우다. 


4월에 들어서면서 산과 들에는 상춘객을 유혹하는 봄꽃들이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남녘에는 벚꽃이 서서히 사그라지고 그때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온 동네 뒷산에는 진분홍색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기 시작했습니다. 김소월의 약산 진달래가 아니라도 우리 민족의 끈질긴 저항성을 진달래꽃은 담고 있습니다.






 



 

자꾸만 꺾어도 진달래꽃은 없어지지 않고 더욱더 무성하게 자라 온산을 붉게 물들어버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는 여린 듯 여리지 않은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민초들의 꽃이라 했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에게 환한 미소를 전해주는 진달래꽃은 모든 산에서 만나지만 무리지은 진달래로 봄이면 유명세를 치르는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김종직 신도비각

 농협 밀양물류센터 끝 우령산 들머리

여수의 영취산과 거제도의 대금산이 그러하고 창원의 천주산과 창녕의 화왕산, 현풍의 비슬산 등이 피고지고 반복하며 5월까지 진달래꽃 물결을 이룹니다. 특히 부산과 가까운 진달래군락지로는 밀양시의 남쪽에 튀어 오르듯 불끈 솟은 종남산이 유명합니다.


 

종남산 정상부의 진달래군락지는 남해의 진달래 군락지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펼쳐져 산행도 즐기고 진달래꽃도 보며 일거양득의 봄 산행을 즐기기에 최적입니다. 특히 밀양 종남산 산행은 보통 상남면소재지인 고노실마을에서 대부분 시작합니다.


 

건각들은 덕신사나 덕은암을 산행기점으로 잡아 덕대산을 거쳐 종남산을 오르며, 또는 무안면 마흘리 신생마을에서 시작하여 우령산을 거쳐 종남산으로 산행하는 종주 코스등 다양하게 이용합니다. 이번에 필자는 부북면의 제대리 김종직 생가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우령산을 거쳐 종남산을 오른 뒤 예림서원을 거쳐 원점회귀 산행을 했습니다.


 오우선생사적비

종남산 산행은 진달래 산행과 함께 역사적인 인물인 점필재 김종직선생을 찾아 떠나는 역사기행이라 더욱 의미있는 산행이라 하겠습니다. 밀양 우령산~종남산 산행경로를 보겠습니다.


 철탑안부 갈림길

밀양 우령산~종남산 산행경로를 보겠습니다. 김종직 생가(추원재) 주차장~농협밀양물류센터~산행들머리~오우선생사적비앞 갈림길~철탑갈림길~265m 능선 갈림길~도원사·백안지갈림길~우령산 정상~전망덱~복호암~방동고개~종남산 밑 능선 삼거리~종남산정상~안부 삼거리~헬기장 삼거리~봉화재(임도 갈림길)~예림서원~은행나무 삼거리~박양춘 여포비각~내곡~송악~박차정묘소갈림길~못골교차로~농협밀양물류센터~추원재 주차장순입니다.


 

예림서원까지 산행거리는 11km 쯤 되고 예림서원에서 추원재 주차장까지 거리는 약 3km 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산행거리는 약 14km에 산행시간은 5시간~5시간 30분가량 걸립니다. 그러나 종남산 정상에서 진달래꽃구경과 추원재, 김종직 묘, 예림서원 관람 등을 포함하면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참고하세요.


 백안지·도원사 갈림길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한골마을의 김종직 생가인 추원재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추원재는 점필재 김종직선생이 성장하며 후예 별세한 곳으로 점필재는 야은 길재선생의 학통을 이어받아 성리학의 뿌리를 내리게 하셨던 분입니다. 그와 함께 조선시대 사림파의 유학자는 이곳이 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고향과 같은 곳으로 소중하게 여겨왔습니다.


 

추원재 뒤편에는 현재 점필재 김종직선생의 묘소도 함께 있어 둘러보길 권합니다. 추원재 주차장에서 마을로 들어왔던 도로를 되돌아 나갑니다. 입구에 연두색 잎이 돋은 수령 230년생 느티나무가 마을의 분위기를 더욱 고색창연하게 만듭니다. 선생의 신도 비각을 지나면 농협밀양물류센터 끝에 철망 담벼락 옆길이 우령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입니다.


 

독립가옥을 지나면 곧바로 등산길입구인데 사람의 흔적이 뜸해서인지 괴괴한 분위기입니다. 오우선생사적비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만나는 안부의 철탑 갈림길에서 또 오른쪽 능선길입니다. 산길은 줄딸기, 가시나무가 발길을 잡으며 40여분을 꾸준히 오르면 265봉 능선 갈림길입니다.


 

오른쪽 마흘리 고개에서 오르는 산길과 만나며 산길은 왼쪽으로 우령산정상까지 뚜렷하게 이어집니다. 10분이면 백안지(1.7km)·도원사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왼쪽 우령산(1.3km) 방향입니다. 우령산 정상에 오를수록 산길은 더욱 가팔라지고 외길의 산길은 진달래꽃이 흐트러져 오늘의 목적지인 종남산 정상의 진달래꽃에 더욱 기대를 하게 하였습니다. 50분이면 우령산 정상이며 삼거리입니다.


 우령산 전망덱

오른쪽은 마흘리 신생마을(4.6km) 방향이며 종남산(2.3km) 정상은 왼쪽입니다. 100m쯤 진행하면 종남산 전망덱이 있습니다. 가야할 종남산 정상부에는 진달래가 만개하여 선분홍색을 띤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또한, 왼쪽에는 밀양 시내를 관통하는 밀양강의 물돌이를 보는 최고의 조망처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종남산 정상 진달래군락지

 

 복호암

다시 나무 계단을 만나고 오른쪽에 툭 불거진 바위가 복호암입니다. 수직절벽에 가깝도록 고추선 복호암은 일제강점기 때 전설이 내려옵니다. 복호암은 호랑이가 쪼그려 앉아 밀양시를 째려보고 있는 형상인데 당시 밀양경시청에서 복호암이 째려보고 있어 기분 나쁘기도 하여 석공을 불러 복호암을 깨버리라고 합니다. 석공이 올라가 복호암을 깨는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석공은 죽었고 나머지 인부들은 놀라서 모두 도망쳤다는 이야기입니다.

 

 

 

 

 

 

방동고개

 원래 복호암은 더 큰 규모의 바위였는데 그때 깨져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합니다. 복호암에서 종남산을 더욱 가까이서 보며 주위의 조망도 우령산 정상에서 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덱 계단으로 돌아와 계단을 내려갑니다. 우령산 정상에서 30분이면 방동고개에 내려섭니다. 지금은 오른쪽 봉황리 방동 꽃새미 마을(2.0km) 쪽으로만 하산길이 뚫려 있습니다.


 

 

예전에는 무안등지에서 밀양장을 가기위해서 모두 이 고개를 넘었으며 방울을 단 소가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넘었다하여 방울재 또는 방동고개라 불립니다. 종남산(0.93km)은 직진하고 이제 지척입니다. 최근에 돌풍이 불었는지 소나무 등 큰 나무가 많이 꺾여 넘어져 있으며 그 사이로 선분홍색 진달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샘터를 알리는 안내판에서 왼쪽으로 200m 진달래 터널을 통과합니다. 김소월의 진달래 시인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중략~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 우리다“ 갑자기 콧노래가 나오면서 2003년 인기를 끌었던 마야의 노래를 부르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아래 삼거리였습니다.


 

 

 

선분홍색 진달래꽃이 절정을 맞은 모습에 그저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오른쪽으로 정상을 향하는 길에도 진달래꽃이 사태를 이루었습니다. 진달래 꽃길에 헤엄칠 정도로 230m를 허우적거리며 올라가니 어느새 종남산 봉수대가 있는 정상입니다. 종남산 정상에서 보는 진달래꽃은 대박이었습니다.




 

 

멀리 휘돌아가는 물돌이 밀양강의 모습과 종남산의 진달래꽃을 보고 사진을 담으면서 지난밤 내린 봄비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필자는 봄 산행으로 종남산을 수십 번도 더 찾았지만 올해처럼 진달래꽃이 만발한 산행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날씨가 흐려 생각만큼 담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산행이었습니다.


 

 

 


 정상에서의 조망 또한, 압권입니다. 비슬산 화악산 남산 화왕산 구만산 억산 운문산 가지산 천황산 재약산 만어산 등 영남알프스와 대구·창녕의 산새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예림서원으로 하산하는 길만 남았습니다.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면서 진달래와 작별인사를 합니다.


 

 

 

 

 

 

 

 

조금 전 정상 밑 삼거리에서 헬기장(0.325km) 팔봉산(5.9km) 관음사(2.81km) 방향으로 직진하며 내려갑니다. 진달래 꽃길은 이어지고 오른쪽 전망 덱에서 바라본 진달래꽃에 산비탈 전체가 온통 진달래 불꽃이 터졌습니다. 진달래로 눈을 호강하며 안부 삼거리에서 마지막으로 진달래와 작별합니다.


 삼거리 안부

 

직진하는 산길과 오른쪽 모두 상남보건지소와 고노실 방향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두 길은 서로 만나며 오른쪽은 편안한 임도 길이지만 필자는 직진하여 헬기장으로 향했습니다. 헬기장에 올라 마지막으로 손에 잡힐 듯한 종남산 진달래와 다시 내년에 만날 것을 눈인사하고 헤어졌습니다. 오른쪽은 팔봉산(5.45km) 가는 길이며 하산은 왼쪽 상남보건지소(2.7km)방향입니다.


 

 헬기장 갈림길 

 임도 갈림길

 

 

외길의 하산 길은 쑥쑥 고도를 낮추며 25분이면 임도에 내려서고 삼남보건지소와 고노실마을의 직진길 대신 예림서원은 왼쪽 임도로 향합니다. 다시 만나는 임도삼거리에서 직진하여 사포농공단지 갈림길에서 왼쪽 계곡 옆 둑길을 따라가다 만나는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 바로 예림서원 주차장에 닿습니다.


 

 예림서원

임도 갈림길에서 30분 소요되었습니다. 예림서원은 점필재 김종직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입니다. 다시 출발하여 250m쯤 내려오면 은행나무가 있는 갈림길입니다. 왼쪽 은행나무가 있는 ‘송포로’를 따라가면 추원재로 갑니다.


 은행나무 삼거리

박양춘 여포비각

 ‘후사포리여성경로당’을 지나고 임진왜란 때 북상하던 왜군의 장수도 박양춘의 효행에 감복하여 부하에게 함부로 마을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표식인 비석을 세웠다합니다. 그 비석이 ‘박양춘 여포비각’입니다.


 

 


 여포비각을 지나면 내곡 마을이고 다시 송악마을의 송악 못을 끼고 오른쪽 도로를 따라갑니다. 약산 김원봉의 부인이자 독립운동에 투신한 박차정 묘소 안내판을 지나 못골교차로에서 왼쪽 농협밀양물류센터 앞을 지나면 예림서원에서 출발한지 약40분만에 산행출발지 김종직 생가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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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직 생가 주차장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우령산~종남산 산행 교통편


부산에서 밀양 가는 방법은 열차와 시외버스가 있습니다. 먼저 부산역에서 밀양역으로 출발하는 무궁화 열차는 오전5시13분, 5시40분, 6시35분, 7시05분, 7시50분,9시20분,10시18분, 10시50분 등. 밀양역 앞 시내버스정류장에서 버스로 밀양버스터미널로 이동합니다. 

부산서부터미널에서 밀양터미널행 버스는 오전 7시, 8시, 9시, 10시, 11시 등에 출발하며 밀양터미널에서 김종직생가인 추원재로 가는 버스는 구기행 버스를 갈아타고 한골정류장에 내립니다. 오전6시40분, 6시50분, 7시50분, 8시20분, 9시20분, 10시10분, 11시30분 등

밀양버스터미널에서 김종직생가인 추원재 주차장까지 거리는 약 3.3km 택시 이용도 편리합니다.

내비게이션에는 추원재, 또는 김종직 생가 입력. 



우령산~종남산 고도표

우령산~종남산 지형도


◆밀양 가고 싶은 여행지◆


2016/01/30 - (경남여행/밀양여행)산내면 하양마을~운문산 산행. 신기루 같았던 겨울왕국 운문산 겨울 눈산행.


2015/07/24 -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 능동산~쇠점골~호박소 산행. 얼음골케이블카를 타고 떠난 여름 최고 산행지 영남알프스 능동산~쇠점골~호박소 등산


2015/07/21 - (경남여행/밀양여행)얼음골 호박소와 쇠점골. 밀양 영남알프스 여름피서지로 아주 좋은 얼음골 호박소와 쇠점골를 추천합니다.


2015/07/16 -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를 이용 영남알프스 최고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2014/04/09 - (경남여행/밀양여행)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204호 밀양상동터널. 1905년 경부선 개통때 뚫은 밀양 상동터널 벛꽃이 한창


2014/04/06 - (경남여행/밀양여행)부북면 가산저수지 위양못 둘레길, 밀양8경인 위양못 5월 이팝나무 꽃이 필때가 최고의 둘레길, 밀양연극촌 고가 탐방로


2014/04/03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퇴로리 여주이씨 고가. 봄 여행지로 좋은 밀양 부북면 퇴로리 '오구' 촬영지 여주이씨 고가를 보고 왔습니다.


2014/04/01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위양못(위량지). 5월이면 사진작가의 단골 출사지인 위양못에 댕겨 왔습니다. 이팝꽃은 없지만 역시 밀양8경의 풍경입니다.


2011/06/28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칠산정.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문화재 관리의 현주소 밀양 칠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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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3 - (경남여행/밀양여행)활성동 영원사지. 밀양 용두산의 잠자는 용을 깨우기 위해 세운 사찰 영원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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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1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남기리 정려각과 가곡리 민씨 정려각. 정절과 정려각, 옛길을 가다 만난 슬픈 이야기


2011/05/16 - (경남여행/밀양여행)상동 박연정. 강물에 노니는 물고기 수를 헤아렸다는 수어대가 있는 밀양의 박연정


2011/03/02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무안면 홍제사. 땀흘리는 일이 없어면 좋을 것 같은 땀흘리는 표충비와 홍제사


2008/07/13 - (경남여행/밀양여행)부북면 예림서원.점필재김종직과 예림서원


2008/07/18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종남산~팔봉산 산행. 밀양에도 육지속의 섬마을이 있어요 -밀양 종남산~팔봉산


2008/12/09 - (경남여행/밀양여행)사명대사 생가와 기념관. 사명대사의 고향 마을인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에 댕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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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당간지주. 사찰을 표시하며 행사를 알리는 깃발을 걸었던 당간과 지주가 양산 통도사에도 있습니다. 통도사 당간지주


통도사 일주문 앞에는 당간지주로 불리는 석당간이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간은 사찰을 표시하며 사찰의 행사를 알리는 깃발인 당(幢)을 거는 대를 말합니다. 당간은 거의 목재로 만들어 세웠고 현재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양산 통도사 여행·맛집을 찾는다면


☞2008/09/30 - (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자장암 금개구리. 통도사 자장암 금개구리를 보섰나요


2008/10/01 - (경남여행/양산여행)통도사 자장암 여행.금와보살이 산다는 통도사 자장암 찾아가기...


2011/08/16 - 천년동안 통도사의 경계를 표시했던 국장생석표가 보물로 남아 있네요.


2012/01/05 - 암, 스님의 밥그릇이 이정도는 되어야지. 통도사 봉발탑


2012/01/18 - 임진왜란때 왜구가 활시위를 당겼다가 주변 경치에 반해 그만 두었다는 통도사 안양암


2012/01/24 - 부처님 불상이 없는 대신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 통도사 금강계단


2012/04/28 - (경남양산) 영남 알프스 통도사 서운암 들꽃 축제에서 넋을 빼앗기다....봉화봉~늪재봉


2011/09/07 - 고추장과 나물로 쓱삭 비벼 먹는 경기식당 산채비빔밥


2011/12/12 - 영남알프스 산내음으로 만든 산채비빔밥이 6천원하는 통도사 앞 맛집 통도식당


2012/06/26 - (양산통도사맛집) 통도사앞 뱀나올 것 같은 산채식당보다 시원한 국물에 다슬기와 장아찌가 맛있는 옥석





그러나 돌당간과 철당간이 국내에 남아 있으며 통도사 당간과 지주는 모두 석당간입니다.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양쪽을 잡아주는 지주인 기둥은 당간지주 또는 찰간지주라 합니다.





거의 보면 사찰입구에 똑같은 모양을 한 두 개의 돌기둥이 서로 마주보며 세워져 있습니다. 통도사 당간의 지주는 기단의 구조와 지주의 규모 등을 고려하면 고려 말에 세웠던 것을 추정할 수 있으며 당간의 가운데에는 아직도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는 명문이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옴에 따라 통도사 당간지주는 많은 변형을 거쳤으며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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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왕리 푸조나무

☞(경남여행/하동여행)지리산 옛길 서산대사 길. 봄에 걷기 좋은 둘레길. 서산대사 휴정이 신흥마을과 의신마을을 오고가며 걸었던 지리산 옛길인 서산대사 길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조성된 서산대사길을 걸었습니다. 서산대사는 사명대사와 함께 승병을 조직하여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던 스님으로 필자는 서산대사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서산대사길을 걸으면서 생각해보니 전혀 알고 있는 게 없었습니다.






◆지리산 옛길 서산대사 길 가까운 여행지 보기



2016/04/13 - (경남여행/하동여행)범왕리 푸조나무. 고운 최치원이 지리산에 입산하면서 꼿았던 지팡이가 살아나 범왕리 푸조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의 나무.


2016/03/28 - (경남여행/하동여행)칠불사 아자방. 한번 불을 지피면 석달 열흘간 따뜻하다는 칠불사 아자방을 욕심내어 찾아갔지만 보수공사로 보지도 못하고 왔네요. 칠불사 아자방


2009/05/29 - (경남여행/하동여행)화개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지리산 쌍계사 중앙에 자리잡은 진감선사 대공탑비의 화려한 예술성입니다.


2011/06/30 - (경남여행/하동여행)쌍계사.한 겨울 칡꽃이 핀 자리에 쌍계사를 짓고 꽃이핀 마을이라 화개마을




 

서산대사 휴정은 지리산 대성골의 작은 암자 원통암에서 출가했다는 작은 지식만 가지고 무작정 떠났습니다. 그래서 서산대사에 대해 공부를 좀해야 했습니다. 서산대사 휴정의 속명은 최여신이며 본관은 완산, 자는 현응이고 호는 청허이며 법명은 휴정입니다. 주로 묘향산에서 주석하여 묘향산인 또는 서산대사로 많이 불립니다.


 세이암

서산대사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안주목사였던 이사증의 양자가 되어 한양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러 번 과거를 보지만 낙방하여 벗들과 함께 지리산 기행을 떠났다가 지리삼매에 빠져 우연하게 찾은 원통암에서 설법을 듣고 깨달은바가 있어 불교공부에 매진하였습니다.


 지리산 옛길 서산대사 길 입

그리고 5년 후인 1540년(중종35) 스스로 머리를 깎고 일선에게 구족계를 받아 승려가 되었습니다. 1549년(명종4)에는 승과에 합격하여 ‘선교양종판사’에 오르지만 중이 관직을 가진다는것에 회의를 느껴 사직하고 금강산 묘향산등 명산을 돌며 수행에 전념합니다.



 1589년(선조22)에 정여립 모반사건에 몰리기도 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에는 선조의 명을 받고 맨 먼저 앞장서서 승군을 모집하는 격문을 띄우고 승병을 진두지휘하여 명군과 함께 평양성을 다시 탈환하였습니다.


 신흥마을 지리산 옛길 게이트

그리고 1604년 묘향산 원적암에서 그의 제자 유정과 처영에게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라는 임종계를 남기고 가부좌하여 앉은 채 입적하였습니다.


 

신흥마을~의신마을의 서산대사길은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 입구에서 시작합니다. 대성동마을을 돌아오면 약 거리는 10km,  산행시간은 3시간 30분~4시간이 소용됩니다. 먼저 고운 최치원이 지리산을 찾으면서 세상의 온갖더러운 소리를 들었던 귀를 화개천에서 씻어내고 그가 짚고 왔던 지팡이를 꽃았는데 그게 살아나 오늘날 범왕리 푸조나무가 되었다합니다. 그 푸조나무가 지리산 옛길인 서산대사길 입구에 있습니다. 


 야생차밭

 

우리나라 푸조나무 중에서 가장 크며 500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서산대사길 입구는 왕성분교 축대밑 도로를 따라갑니다. 곧 오른쪽 화개천에 고운이 귀를 씻었다는 세이암이 있습니다. 다시 신흥교가 나오면 직전에 왼쪽으로 지리산 옛길인 서산대사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옛길 4.2km' ‘신흥~의신 옛길’ 게이트를 통과하면 수문장인양 큰 바위가 입구에 턱 버티고 있습니다. 이 길은 서산대사께서 출가하여 신흥마을의 신흥사에서 의신마을의 의신사까지 오르내렸던 옛길이자 의신마을에 도로가 생기기 이전에는 마을주민이 화개장과 하동장을 다녔던 마을길입니다.


 

서산대사길은 조금은 정리를 하였지만 그래도 옛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지리산 산길의 정취와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자 그럼 서산대사길을 출발합니다. 먼저 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차며 콸콸~~ 요란하여 귀가 먹먹합니다.


 

 

그리고 편안하게 휘어지는 산길에 유난히 진한 초록색 잎이 눈에 보여 자세히 보았더니 야생 차밭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차나무의 효시가 바로 이곳 화개인데 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3) 김대령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차나무를 가져왔습니다. 신라 흥덕왕이 직접 지리산 기슭에 심으라하여 지금 화개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가 있습니다.


 

이곳 서산대사길의 차밭은 모두 그의 후손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보니 참 양지 바른곳에 차나무가 자라는가봅니다. 지리산 옛길이란 예쁘고 작은 명패가 나무에 걸려 있고 멀리 지리 능선이 아직은 겨울의 묵은 때를 다 벗지 못하고 무채색을 띠고 있습니다.


 서산대사 의자바위

계곡과 나란히 달리는 지리산 옛길인 서산대사길, 급하지도 지겹지도 않으며 지난겨울 동안 묵혔던 몸에 시동을 거는 코스로 제격이며 자연을 벗 삼아 걷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왼쪽에서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린 시원한 약수로 목도 축여봅니다.


 


 옛길은 조금씩 고도를 높이더니 작은 돌의자가 있는 안부에 도착했습니다. 일명 서산대사가 앉았다는 의자바위입니다. 의자바위에는 서산대사 전설이 전합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 의신마을의 의신사를 불태우면서 범종을 훔쳐가는 것을 이곳에서 지켜보던 대사는 괘씸하게 생각하여 도술을 부려 범종을 돌의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에 왜구는 놀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합니다. 지금도 서산대사길에는 누구나 앉아 쉴 수 있게 돌 의자가 있으며 이곳에서 푹 쉬었습니다. 서산대사의 요술로 만들어서 그런지 푹신푹신한 소파보다 더욱 편했습니다.


 지리산 옛길 독립가옥

다시 화개천을 끼고 옛길을 갑니다. 국립공원에서 설치한 ‘의신 옛길’ 푯말도 보이며 작은 계곡에는 징검다리가 두 줄로 걷기 좋게 놓여 있습니다. 옛길은 계곡과 붙어가고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 밑에는 벌통이 놓여 연신 꿀벌이 바쁘게 들락날락합니다.


 

곧 파란 지붕을 한 독립가옥이 한 채 있습니다. 때마침 집주인이 어디로 나서는지 새신을 비닐봉지에 담고 샌들은 신고 있었습니다. 계곡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불어난 물에 모두 잠겨 어쩔 수 없어 갈아 신을 신발은 들고 화개천을 건너는 모습을 보면서 지리산에 살려면 먼저 자연에 순응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농작물은 농부의 소중한 땀방울입니다. 손대지 마세요!”하는 안내판이 옛길 내내 붙어 있습니다. 옛길 안내 푯말에는 의신마을이 2km 남았다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신흥마을에서 이제 1/2쯤 왔습니다. 계곡에는 깊고 넓은 소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크크 여름철에는 많은 피서객이 찾아 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계곡에 들어가지 못하는지 “계곡내 출입금지” 안내판이 걸려 있어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계곡 건너에는 띄엄띄엄 집도 있지만 서산대사길에서는 딱 한집 빼고는 민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옛 집터의 흔적인 축대 등이 남아 있으며 마을터의 흔적도 있었습니다. ‘의신 1.6km. 쉼터’ 이정표 방향으로 오르막을 살포시 올랐더니 키 큰 소나무가 있는 쉼터가 나왔습니다. 푯말을 보면 '의신 옛길 1.4km' 남았습니다.


 숯가마터

참나무를 구웠던 흔적인 숯가마터 구덩이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옛길을 걸어갑니다. 곧 앞에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나며 서산대사 길의 끝인 의신마을입니다. 흡사 알프스의 어느 산간지방같이 모든 집이 아주 이국적인 풍경입니다.


 

34년 전 대학 1학년 때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 대성마을로 하산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의신마을을 생각하면 지금의 의신마을은 경천동지할 일입니다. 의신마을에 세워진 게이트를 나오면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 앞입니다.


 

 

 의신마을

 

 지리산반달가슴곰 생태 학습장

지리산 반달가슴곰을 알리는 여러 조형물이 세워져 있으며 이곳에서 반달곰에게 먹이주기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계곡에 걸린 출렁다리를 건너면 의신마을입니다. 도로에 올라 왼쪽에 있는 ‘지리산 역사관’을 보기위해 찾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매주 월·목요일은 휴무였습니다.


 의신마을 지리산 옛길 게이트

 의신마을 출렁다리

 

 지리산역사관

 

세석대피소·원통암 방향 갈림길

 어쩔 수 없이 도로를 따라 100여m를 내려오면 지리산 세석대피소로 오르는 입구가 나옵니다. ‘서산대사 출가지 원통암 0.9km, 세석대피소 9.1km, 대성마을 2.5km' 이정표를 보고 50m 시멘트 포장길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꺾어 벽소령 산장 앞을 지나갑니다.


 벽소령산장

 

 항일투사 17인 의총

참고로 서산대사가 출가했다는 원통암은 직진합니다. 많은 산행 리본이 붙어 있습니다. 의신마을을 벗어나고 제법 큰 봉분인 ’항일투사 17인 의총‘ 묘지가 있습니다. 1908년 2월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결사 항전했던 의병 30인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합니다.


 

80여명의 의병은 지금의 지리산 역사관 뒤 배명고지에 초병을 세우고 주위 경계를 하던 중 설날아침에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이틀 동안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막강한 화력 앞에 많은 의병이 숨졌습니다.


 지리산 국립공원 대성골 게이트

후에 의신주민이 시신을 수습하여 여러 곳에 묻었습니다. ’항일 투사 17인 의총묘소‘도 그중 한곳인데 광복66주년에 훼손된 봉분을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시멘트길이 이어지고 곧 지리산 국립공원 입구인 게이트가 나옵니다.


 

지금부터 흙길로 바뀌며 여기서부터 대지리산 산길이 시작됩니다. 멀리 삼신봉 능선이 보였으며 걸어왔던 화개천 옆 서산대사길도 가늠해 보며 대성동마을로 향했습니다. 대성골 20분 남았어요” 작은 안내판이 나오고 다시 갈림길입니다.


 

 

 

 원통암 갈림길

 원통암

 

 

 

 

의신마을에서 약1.8km 거리 입니다. 직진하면 원통암 가는 길이며 등산로 아님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대성동마을(0.9km)은 오른쪽으로 내려갑니다. 이제 거의 다왔습니다. 대성동마을에는 지금 다섯가구가 살고 있으며 지리산에서 활동한 빨치산과 군경 토벌대와의 최대 격전지중 한곳입니다. 이곳 대성동마을에서 왔던길을 되짚어 의신마을로 향했습니다.


 대성동마을

 

 대성동계곡


☞(경남여행/하동여행)지리산 옛길 서산대사 길 대중교통편.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7시 구례행 첫차를 타고 하동터미널에서 내립니다. 하동터미널에서는 오전 10시20분 출발하는 칠불암 의신행 버스를 이용하여 신흥마을정류장에 하차하여 화개초교 왕성분교를 찾아갑니다 곧 지리산 옛길인 서산대사 길 들머리입니다.. 의신마을에서 하동으로 나오는 버스는 오후 1시, 4시20분, 6시40분(막차)에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내비게이션에는 범왕리푸조나무 또는 화개초등교 왕성분교 입력


지리산 옛길 서산대사 길 고도표

지리산 옛길 서산대사 길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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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하동여행)범왕리 푸조나무. 고운 최치원이 지리산에 입산하면서 꼿았던  지팡이가 살아나 범왕리 푸조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의 나무. 범왕리 푸조나무


지리산 가는 길에 높은 키와 우람한 덩치를 한 푸조나무가 있습니다. 필자가 찾았을 때는 겨울의 끝자락을 잡고 있었는데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이제 겨울 티를 완전히 벗고 지금쯤은 초록색 새싹이 움트며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것 같습니다.




◆하동군 범왕리 푸조나무 인근 여행지◆


☞2011/06/30 - (경남여행/하동여행)쌍계사.한 겨울 칡꽃이 핀 자리에 쌍계사를 짓고 꽃이핀 마을이라 화개마을


2016/03/28 - (경남여행/하동여행)칠불사 아자방. 한번 불을 지피면 석달 열흘간 따뜻하다는 칠불사 아자방을 욕심내어 찾아갔지만 보수공사로 보지도 못하고 왔네요. 칠불사 아자방



2009/05/29 - (경남여행/하동여행)화개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지리산 쌍계사 중앙에 자리잡은 진감선사 대공탑비의 화려한 예술성입니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신흥마을 화개초교 왕성 분교 입구에 자리하여 지리산 입구를 지키는 관문인 듯 500년의 풍상을 견뎠습니다.


 

우리나라 푸조나무 중에서 가장 큰 나무로 알려졌는데 전설에 의하면 통일신라말 학자이자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이 지리산에 입산하면서 화개천에 앉아 세상에서 혼탁한 모든 것을 들었던 더러워진 귀를 깨끗이 씻고 집고 온 지팡이를 여기에 꽂아두고 가면서 이지팡이가 살아있으면 자신도 살아있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죽었다 생각했던 지팡이에 잎이 돋고 살아나 지금의 푸조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행적이 워낙 신출귀몰하고 특이하여 최치원 선생을 두고 아마 지리산의 신선이 되었을 거라 모두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설이 맞는다면 최치원 선생의 생몰이 857년에 태어나 돌아가신 해는 알 수 없습니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 최고령나무로 1,000살이 훨씬 뛰어 넘었을 것 같습니다.


 

푸조나무의 나이는 약 500살을 보고 있으며 그래도 푸조나무는 서산대사가 출가를 위해 이 길을 따라 지리산 원통암을 향할 때도 말없이 묵묵히 지켜보았으며 근대에는 한국동란 전후로 지리산에 들어온 빨치산과 토벌대간의 쫓고 쫓기는 토벌작전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범왕리 푸조나무는 높이가 25m에 동서 25.9m, 남북 29.2m로 수관은 우산모양처럼 넓게 퍼져 느티나무와 함께 마을의 정자나무로 많이 이용합니다. 또한,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난대성수종이라 우리나라에서는 경남과 전남지역에 주로 분포하여 산기슭과 계곡 주변에 잘자라고 특히 바닷바람에 잘 견뎌 방풍림으로도 많이 활용합니다. 범왕리 푸조나무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하동군 가볼만한 여행지◆



2014/11/25 - (경남여행/하동여행/구례여행)평사리~화개장터 섬진강 둘레길. 박경리의 토지길과 섬진강 100리 길을 따라 걷는 둘레길,


2014/10/29 - (하동여행/악양여행)박경리 토지 최참판댁, 대하소설 '토지' 무대 평사리 최참판댁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최참판댁


2014/10/24 - (경남여행/하동여행)화개장터. “있어야 할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2014/10/21 - (경남여행/하동여행)악양 평사리공원.오토 캠핑장과 함께 섬진강을 즐길 수 있는 조망처 평사리공원에서 힐링을 하다. 평사리공원


2014/10/20 - (경남여행/하동여행)하동8경의 백사청송 하동송림 찾아가기. 하동송림


2014/10/16 - (경남맛집/하동맛집)섬진강과 토지 최참판댁도 보고 하동읍내시장 간판없는 팥칼국수 먹고 왔습니다.


2014/10/14 - (광양여행/하동여행)광양 하동 걷기 좋은 섬진강 둘레길. 광양 망덕포구~하동 하동송림 섬진강 둘레길을 걷다.1


2014/10/11 - (경남여행/하동여행)하동 걷기 좋은 코스 하동포구~평사리 최참판댁 섬진강 둘레길을 걷다. 2


2014/09/24 - (경남여행/하동여행)하동숙박 테마모텔. 현지인이 추천한 하동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숙박지 테마모텔.


2014/09/22 - (경남맛집/하동맛집)동흥식당. 하동여행에서 재첩국이 맛있는 동흥식당 "재첩국 한그릇하이소".


2013/08/29 - (경남여행/하동여행)하동향교.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육기관 하동향교.


2012/12/20 - (경남여행/하동여행)정감록의 피난처로 알려진 오지속의 산행지 지리산 칠성봉


2009/05/29 - (경남여행/하동여행)화개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지리산 쌍계사 중앙에 자리잡은 진감선사 대공탑비의 화려한 예술성입니다.


2011/06/30 - (경남여행/하동여행)쌍계사.한 겨울 칡꽃이 핀 자리에 쌍계사를 짓고 꽃이핀 마을이라 화개마을


2012/09/18 - (하동여행)수험생이 보고 가면 대박 날 소나무, 소나무를 보면 공부를 잘 할 것 같은 하동축지리문암송


2012/09/20 - (경남하동여행)경천묘 금남사 목은 이색 영정등 문화재를 볼 수 있는 지리산 둘레길 10코스-청암면 평촌리


2012/12/20 - (경남여행/하동여행)정감록의 피난처로 알려진 오지속의 산행지 지리산 칠성봉


2008/07/23 - 토벌대와 파르티잔간의 격전지 -지리산 대성골


2008/06/05 - 하동 촛대봉(72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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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누나의 길.  호랭이 이바구길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누나의 길이 있습니다. 범일동 누나의길


부산시 동구에는 ‘호랭이 이바구길’이 있습니다. 그 안에 독특하지만 정감이가는 ‘누나의 길’이 있습니다. 범일동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노동집약산업인 고무신공장과 방직공장이 몰려있었습니다, 60년대 경제개발로 부산의 고무신공장과 방직공장은 호황기를 맞았고 24시간 공장가동을 하였습니다.







◆범일동 호랭이이바구길 맛집 여행지 알아보기◆

☞2016/04/08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 쉼터 똥산 전망대. 70~80년대 똥구덩이 산이 부산 최고의 힐링코스 호랭이 이바구길 똥산 전망대로 바뀌었습니다.


2016/04/06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안창마을. 70~80년대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 억척스럽게 살았던 대한민국의 참 모습을 찾는다면 범일동 안창마을 여행 추천.


2016/04/11 - (부산여행/동구여행)교통부 보림극장, 서민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부산 최초의 쇼 전문극장 보림극장이 호랭이 이바구길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2014/10/09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이중섭거리. 한국의 고흐 '이중섭 범일동 풍경'으로 만나다.


2012/07/31 - (부산동구맛집) 57년 전통에16년째 돼지국밥 한그릇을 4천원에 판매하는 고집있는집-교통부 할매돼지국밥.



 

 

공장은 많은 직공이 필요했고 우리의 누나들은 어려운 가정형편에 한입이라도 들기 위해 고향을 떠나 무작정 공장이 많다는 범일동으로 몰렸습니다. 그리고 학업도 포기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오직 집안과 동생들의 학업 뒷바라지를 생각하였고 이를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의 누나들.....


 

지금 범일동에는 당시 누나들의 고생담을 떠올리게 하는 ‘누나의 길’ 골목이 있습니다. 범천동 교통부 로터리 부산 은행 옆 골목길이 범일동 골목시장입니다. 골목시장 끄트머리쯤에 ‘Y'자 갈림길이며 오른쪽 좁은 골목길이 누나의 길입니다.

 

 

 

지금이야 한산한 그저 평범한 골목길에 불과하지만 60~80년대에는 이 골목으로 무수히 많은 누나와 형님이 새벽별을 보고 출근을 위해 내려왔으며 파김치가 된 지친 몸을 이끌고 이 골목으로 올랐습니다.


 

 

범일동에서 가장 달동네마을이라는 안창마을에서 가장 빨리 내려오는 지름길은 누나의 길입니다. 우리 누나들은 출근이 늦을까봐 종종걸음으로 새벽바람을 가르며 걸었습니다. 또각또각 경쾌한 소리를 내며 구두로 한껏 멋을 부려 청춘의 설렘을 달래야 했습니다.


 

 

 

 

 

 

 

누나의 길에는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는 구둣방이 있습니다. 반질반질 파리가 앉아 미끄러질 정도로 물광을 미긴 구두는 언제쯤 구두 주인이 나타날지 모르지만, 오늘도 구둣가게는 불이 켜져 있습니다.


 

또한, 누나들의 머리를 손질했던 미장원도 모두 떠나버린 누나들을 잊지 못하며 다시 한 번 누나의 길 골목에 옛날 영화가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창 꽃다운 나이인 20대 전후에 돈을 벌기위해 생활전선에 나섰던 우리의 누나들은 자신을 잊은 채 이런 힘든 세월을 보냈습니다.


 

 

당시 범일동의 경제를 주름잡았던 신발회사와 방직공장은 모두 떠났지만, 지금은 그때의 영화를 기억하는 작은 신발박물관만 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요일 신발박물관을 찾았다가 문이 닫혔기에 가게 할머니께 여쭈었습니다.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실컷 신발박물관이란 것을 만들어 놓고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일요일은 정작 문을 열지 않는다니 일요일 찾은 저로서는 매우 황당했습니다. 다른 관광지 휴무일처럼 월요일로 휴무일을 맞추면 저처럼 일요일 신발박물관을 찾는 방문객이 헛걸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산업의 주역이었던 ’누나의 길‘을 여행하면서 어려웠든 우리 경제를 일으켜 세웠던 게 모두 우리누나 형님들의 힘이었다 생각합니다. 



◆부산 동구 여행·맛집이 궁금하다면 


2009/03/02 - (부산여행/동구여행)수정동 정란각.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지며 방석집인 수정동의 정란각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009/03/09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자성대 공원. 왜군이 임진왜란때 침략의 교두보였던 부산진지성 자성대의 모습입니다.


2009/03/10 - (부산여행/동구여행)구봉산 금수사. 사명대사가 일본에 가기전 머물며 물맛에 극찬했던 부산 구봉산 금수사입니다.


2011/10/02 - (부산여행/동구여행)일신여학교. 동래여고 전신인 부산 최초 여자 교육기관 일신여학교의 서양식건물 모습,


2014/03/19 - (부산여행/동구여행)동구 이바구길 장기려 기념관. 바보의사의 이색 처방전 "환자에게 닭두마리 값을 내주시요-원장"


2014/06/09 - (부산여행/동구여행)초량이바구길. 근대의 역사길을 따라가는 초량 이바구길을 만나다.초량 이바구길



2014/10/12 - (부산맛집/동구맛집)범일동 현대백화점 맛집, 이중섭 거리 맛집. 쌀쌀한 날씨에 먹는 밀면 맛도 너무 좋은 본가밀면 본점.


2014/10/30 - (부산여행/축제)부산 산복도로 개통 50주년 마을 축제가 열려요.


2014/11/02 - (부산여행/동구여행)초량동 옛 백제병원 내부 들여다 보기. "옛 건물을 사랑해주세요. 조용조용 살금살금" 옛 백제병원 건물 내부를 보고 경악.


2014/11/13 - (부산여행/초량 이바구길~엄광산 둘레길 걷기)부산을 조망할 수 있는 엄광산 허리길 초량 이바구길~엄광산 둘레길 걷기


2014/11/22 - (부산여행/동구범일동여행) 범일동 매축지마을. 삶의 팍팍함이 묻어나는 일제 강점기 범일5동 매축지마을을 만나보세요.


2015/11/06 - (부산여행/동구여행)초량 이바구 야시장. 청년 창업가의 톡톡 튀는 맛이 궁금하다면 부산 제2호 야시장 초량 이바구 야시장을 찾아보세요.


2009/02/25 - (부산맛집/동구맛집)평양빈대떡. 빈대떡 신사가 울고간 57년 빈대떡집-범일동 평양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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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동구여행)교통부 보림극장, 서민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부산 최초의 쇼 전문극장 보림극장이 호랭이 이바구길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보림극장


 지금이야 영화관도 대형화되어 건물 전체를 통째 개봉관으로 사용하며 시도 때도 없이 영화관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50대 중반인 제가 어렸을 때는 학교 졸업식에 졸업기념으로 귀했던 자장면을 먹듯이 연례행사로 영화관도 명절날 온가족이 한 번씩 갔습니다. 그때는 영화관도 지금처럼 그리 쉽게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교통부 옛보림극장 인근 여행·맛집을 찾는다면 ◆


2014/10/12 - (부산맛집/동구맛집)범일동 현대백화점 맛집, 이중섭 거리 맛집. 쌀쌀한 날씨에 먹는 밀면 맛도 너무 좋은 본가밀면 본점.


2016/04/08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 쉼터 똥산 전망대. 70~80년대 똥구덩이 산이 부산 최고의 힐링코스 호랭이 이바구길 똥산 전망대로 바뀌었습니다.


2016/04/06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안창마을. 70~80년대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 억척스럽게 살았던 대한민국의 참 모습을 찾는다면 범일동 안창마을 여행 추천.


2012/07/31 - (부산동구맛집) 57년 전통에16년째 돼지국밥 한그릇을 4천원에 판매하는 고집있는집-교통부 할매돼지국밥.


2009/02/25 - (부산맛집/동구맛집)평양빈대떡. 빈대떡 신사가 울고간 57년 빈대떡집-범일동 평양집




 

부산의 영화관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저에게는 보림극장입니다. 보림극장의 추억은 제가 어렸을 적 명절 연휴로 기억합니다. 빌딩에 난 화재로 소방 아저씨의 활약 담을 담았던 영화인 ‘타워링’을 부모님과 함께 가슴 졸이며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 저는 온천장에 살았으며 집주위에 온천극장 동성극장 국보극장 등이 있었지만 먼 교통부까지 영화를 보러 왔습니다.


 

그때 본 보림극장은 규모와 시설 면에서 집주변의 영화관을 완전히 압도했습니다. 1968년 교통부에서 처음 영사기를 돌렸다는 보림극장은 극장이란 간판을 달고 있었지만, 영화관 기능보다도 당대 최고인 톱가수의 ‘리사이틀’이 열리는 부산 최고의 쇼 전문극장이었습니다. 이미자, 하춘하, 남진, 나훈아, 살살이 서영춘 비실이 배삼룡 등 가수와 코미디언들이 공연을 위해 내려오면 보림극장 앞은 완전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1974년의 하춘하 리사이틀에는 하루 5회 공연에 9,000명의 관객이 몰려 요즘에도 깨기 힘든 극장공연의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7080세대는 보림극장의 명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교통부는 고무공장, 신발공장, 방직공장 등이 참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범일동은 이들 근로자가 많이 몰려 살았습니다. 근로자들이 쉬는 일요일은 유일한 놀이 문화로써 영화관밖에 없었습니다. 청춘남녀의 데이트 장소로도 영화관이 최고 인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통부등 범일동 일대 영화관은 학생과 공장 근로자가 자연스럽게 많이 찾았습니다. 그 이유를 보면 백지장처럼 얇았던 서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했는지 남포동의 개봉관에 밀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2편 동시상영관이 운영되었으며 또한, 19금 전문 영화관으로 성인영화를 상영하기도 했습니다. 저렴한 영화비로 요즘 말하는 1+1인 두 편의 영화를 봤기 때문입니다.


 

 

 

 

 

극장 앞 대형 걸개그림을 보면서 얼굴을 붉히며 그래도 영화는 궁금해서 교복을 입고 가슴 졸이며 몰래 보기도 했습니다. 훗날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도 이 일대에서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도망가는 신 등이 촬영되었고 하정우 출연의 ‘아저씨’도 동구 매축지마을에서 촬영되어 동구 범일동은 부산 영화 산업의 뿌리 같은 존재입니다.


 

 

 


 

보림극장 이외에도 삼일극장, 삼성극장, 범일극장 등 주위로 수십 개의 영화관이 몰려 있었습니다. 항상 교통부 앞을 지나면 보림극장 건물이 눈에 띄었고 어릴 적 그때의 추억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남포동의 보림백화점에서 1955년 처음 보림극장 간판을 걸고 개관하였습니다. 전쟁 통에 고향을 떠난 실향민에게 웃음과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보림극장은 1968년 교통부 조양직물 자리를 인수하여 당시로써는 초현대식 건물을 지어 제2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산업화에 무작정 고향을 떠났던 많은 사람을 웃게 하고 눈물짓게 하며 고향의 향수를 달래게 했던 보림극장은 세월 속에 차츰 쇠퇴하였고 또한 영화배급이 남포동 극장가 위주로 바뀌게 되면서 그 명맥만 겨우 이어오다 범일동 교통부에서 38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졌습니다. 당시 범일동은 영화불모지였던 부산에서 문화 충족의 목마름을 풀어주는 영화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범일동 영화관의 중심에는 보림극장이 딱 버티고 있었으며 지금은 ‘호랭이 이바구길’ 초입에 옛 향수를 달래는 보림극장에 영화 상영을 알리는 듯 간판이 내걸렸습니다. ‘나훈아 리사이틀’ ‘하춘하 리사이틀’ ‘남진 리사이틀’ ‘별들의 고향’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 웃음과 눈물과 기쁨을 주었던 영화와 가수의 리사이틀을 알렸던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홍보하는 대형 걸개그림이며 실제로 영화와 쇼는 하지 않습니다.


 

 


 보림극장 간판이 걸린 극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옛날 극장의 향수를 아는 사람은 정말 반가울 것 같습니다. 교통부에 있는 범일동 골목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그 왼쪽 부산은행 뒷골목에 범일동에서 촬영된 영화와 당시 보림극장의 영화 포스트 등이 사진으로 붙어 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며 옛 추억을 느껴보세요.


 


 


 

 

 7080 영화포스트 구경하기

 진짜진짜 좋아해

 미워도 다시한번 

 성춘향

 고교얄개

 

엄마없는 하늘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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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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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달성 하목정. 낙동강의 저녁 낙조가 그리 아름답다는 달성 하목정에서 뉘엿뉘엿 서산으로 지는 붉은 저녁노을에 혼을 빼앗기다. 달성하목정


경북 청도군과 대구시 달성군의 여러 곳을 여행하고 마지막으로 찾았던 곳이 낙동강에 그림 같이 앉은 달성 하목정(霞鶩亭)입니다. 하목정의 저녁 낙조가 그리 아름답다는데 마지막 여행지라 그런지 때마침 노루 꼬리만큼 남은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으면서 아쉬운 듯 마지막 여운을 남겼습니다.





◆달성하목정과 함께하는 여행지 육신사. 태고정 도곡재 함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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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불을 토하듯 낙동강의 저녁노을은 강과 하산리 마을 앞의 긴 백사장, 하옥정의 정자까지 붉게 물들였습니다. 달성 하목정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참여했던 낙포 이종문(李宗文·1566~1638)이 1604년 선조 37년에 벼슬을 마다하고 산수 경치가 빼어난 이곳에 세운 정자입니다.


 

그는 이곳에 낙향하여 유유자적하면서 낙동강의 저녁 낙조를 보았고 자연이 빚어내는 현상에 몰입하며 벼슬을 물리치고 낙향하기를 아주 잘했다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호를 낙포(洛浦)라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하목정은 특이하게도 다른 사대부의 정자에서는 볼 수 없는 겹처마를 달아낸 부연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인조대왕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인조대왕이 세손인 능양군 시절에 이곳에서 쉬었다 갔는데 아마 낙동강의 선경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빼앗긴 모양입니다.


 

 

그 후 권좌에 오르고 때마침 이종문의 큰아들인 수월당 이지영도 벼슬길에 나갔습니다. 이지영이 어전에 입시하자 인조는 수월당을 알아보고 “정자에 어찌 부연이 없느냐”며 부연을 달게 하면서 인조가 친히 하목정의 편액을 써서 걸게 했다합니다.


 

원래 겹처마인 부연은 임금이 거처하는 궁궐이나 별궁 외에는 사대부의 99칸 저택이라도 달수 없습니다. 곧 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말합니다. 그리고 보면 하목정은 인조가 세자 시절에 잠깐 머물렀던 그 인연으로 부연을 새로 달았습니다.



 

 

 

 

또한, 하목정은 모퉁이인 추녀를 조금씩 잘라내어 처마 끝이 부채모양의 곡선을 그리는 방구매기 수법을 사용한 특이한 모양을 한 팔작지붕 정자입니다. 앞면 4칸, 옆면 2칸 크기로 오른쪽 한칸에는 앞쪽에다 누 한 칸을 덧달았고 뒤편에다 방 한 칸을 더 붙여 위에서 보면 정자(丁字)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하목정은 진경산수의 빼어난 경치로 많은 문인이 찾아들었으며 김명석과 남용익 등이 남긴 시액이 대청에 걸려 있습니다. 특히 하목정의 뜻은 중국의 당나라 시인 왕발(647~674)이 14세의 나이에 지었다는 ‘등왕각서’의 명문에서 따왔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낙하여고무제비(落霞與孤鶩齊飛·내리는 안개에 외로운 오리는 가지런히 날아가고 ) 추수공장천일색(秋水共長天一色·가을 물과 높은 하늘은 같은 색이다)”에서 취했는데 하목정이 위치한 낙동강의 모습하고 정말로 많이 닮았을 정도로 하목정의 풍경은 아름답습니다. 저녁 낙조와 함께 하목정 여행을 추천합니다. 하목정은 1995년 5월에 대구시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일반 사대부에서는 볼수 없는 겹처마인 부연과 추녀의 끝을 잘라내어 처마 끝이 부채모양으로 둥근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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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 쉼터 똥산 전망대. 70~80년대 똥구덩이 산이 부산 최고의 힐링코스 호랭이 이바구길 똥산 전망대로 바뀌었습니다.  


부산의 지명은 동구 범일동과 수정동 사이에 있는 증산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산의 형태가 꼭 가마솥과 같아 가마솥 부(釜)자를 써서 부산(釜山)이라 불렀으며 그런뜻에서 동구는 부산의 상징이자 부산의 중심지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 안창마을 보기◆


☞2016/04/06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안창마을. 70~80년대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 억척스럽게 살았던 대한민국의 참 모습을 찾는다면 범일동 안창마을 여행 추천.


초량 이바구길 보기


2014/06/09 - (부산여행/동구여행)초량이바구길. 근대의 역사길을 따라가는 초량 이바구길을 만나다.초량 이바구길


2014/11/13 - (부산여행/초량 이바구길~엄광산 둘레길 걷기)부산을 조망할 수 있는 엄광산 허리길 초량 이바구길~엄광산 둘레길 걷기



 

증산과 부산포가 있는 자성대까지는 산성이 길게 이어졌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는 부산진성을 사수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선 성종 이전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부산포(富山浦)라 기록하였다가 성종 때부터 부산포(釜山浦)로 바뀌어 기록돼 있습니다.


 

부산이라 불렸던 증산은 부산이 지명이 되면서 지금의 증산(甑山)으로 바뀌어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감과 이감이 엮었다는 예언집인 정감록에 세로글씨로 증산을 부산이라 적혀있는데 이를 풀어 써면 팔금산이라 읽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실제 안창마을의 사찰 현판에 팔금산○○사라 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 약장사 약 팔 이는 그만하고 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 쉼터이자 최고의 전망대를 포스트 하겠습니다. 이름하여 똥산 전망대입니다. 왜 똥산이냐고요. 범일동은 호계천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지금이야 호계천도 모두 복개하여 도로가 되었지만, 한국전쟁 이전에는 아주 산림이 우거진 숲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래전에는 호랑이도 살았던 모양입니다. 똥산은 증산과 마주하고 호계천을 끼고 있는 야트막한 산을말합니다. 50~80년대 범일동 사람은 근현대사의 아픔을 오롯이 가슴으로 삭이며 살았습니다. 한국동란 전의 범일동은 광복과 함께 귀환한 동포들이 있었다면 한국동란 후에는 몰려든 피난민으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천재화가로 불리던 이중섭도 이곳에서 부두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그의 작품중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 '범일동 풍경'을 남겼습니다. 70~80년에는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농촌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이 고무, 신발, 방직공장이 많았던 범일동에 몰려들었습니다.  힘없고 배경없던 사람을 모두 받아준 곳이 이곳 범일동이며 피난민과 이주민이 넘쳐나면서 울창한 산림은 차츰차츰 사라지고 그자리에 집이 들어섰습니다.


 

지금이야 일반가정집의 화장실은 대부분 수세식으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에는 모두 재래식화장실인 푸세식이었습니다. 집집이 똥통이 가득 차면 똥지게를 지고 이곳 똥산에다 구덩이를 파고 똥을 묻었습니다. 온산에다 구덩이를 파고 묻다보니 똥산을 오르다가 똥통에 빠지기가 예사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재래식 화장실은 수세식으로 바뀌고 더 이상 똥지게를 지고 똥산을 찾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하늘도 푸른 날 똥산 정상을 찾았습니다. 정상에는 아주 멋진 전망대와 주민 쉼터가 만들어져 있었고 똥산으로 불렸다는 똥구덩이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 아래는 지금 공원 조성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때마침 날씨가 따뜻하여  쉼터에 할머니 네 분이 쉬고 계셨습니다. 카메라를 메고 얼쩡거렸더니 “어디서 왔느냐”하며 물었보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경치가 참 좋습니다.”하니까 대뜸 하시는 말씀이 “이산을 옛날에는 똥산이라 불렀다 아이가”하시며 “그때 비하면 지금은 천지 개벽했지”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겨울동안 웅크리고 있었다며 오랜만에 운동이나 하자시면서 네 할머니는 똥산 정전망대에서 여러차례 쉬기를 반복하며 걸으셨습니다. 똥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동구와 부산진구의 전경은 한마디로 최고였으며 똥산 덕분에 정상에 이만한 터라도 남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똥산은 범일동 사람들의 가슴 절절한 사연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으로 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도 탄생하였고 똥산은 이바구길 쉼터이자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동구 초량동의 초량 이바구길과 함께 동구를 대표하는 힐링 걷기 코스입니다. 이바구길 쉼터에서 부산을 내려다보며 크게 쉼 호흡을 했습니다. 그 많았다는 똥구덩이는 다 어디 갔는지 이제 똥냄새는 나지 않고 향긋한 봄꽃내음이 똥산에 진동했습니다.  


 

부산의 근현대사가 궁금하다면 이곳 동구 범일동 여행을 추천합니다. 그만큼 범일동에는 우리 부산의 역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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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달성태고정. 사육신 박팽년의 순천박씨 집성촌 묘골 육신사 한옥전통마을에서 보물제554호 일시루·태고정을 만나다.


태고정은 박팽년과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달성군 육신사와 함께 있습니다.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골에는 사육신의 한사람인 박팽년의 순천박씨 집성촌입니다. 그런데 역모를 도모했다든지 하면 본인은 물론이며 집안의 사내는 모두 죽이고 여자는 관비로 넘겨 집안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을 만들었다 알고 있습니다.






달성군 하빈면 묘골 육신사, 도곡재 여행하기


2016/04/01 - (대구여행/달성여행)육신사의 도곡재. 하빈면 묘리 한옥전통마을 도곡재를 여행하다. 도곡재


2016/03/29 - (대구여행/달성여행)사육신의 육신사. 단종복위 거사 실패와 계유정란인 세조의 왕권 찬탈에 끝까지 반대한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대구 달성 육신사 참배.





박팽년 역시 세조에게 반기를 들고 단종 복위 거사를 시도하다 붙잡혀 삼족이 멸하는 것은 기본인데 어찌 후손이 대를 잇게 되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역시나 박팽년은 물론이고 그의 아들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행히 며느리인 이씨 부인은 관비가 되었지만 임신한 상태라 친정이 있는 대구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출산하여 사내아이면 죽이고 계집아이면 관비로 삼으라는 어명이 따라붙었습니다. 해산을 하고보니 불알 찬 사내아이가 태어나 이씨부인과 친정집은 걱정을 태산 같이하고 있는데 때마침 집안의 여종도 몸을 풀어 딸을 낳았습니다.


보물 제554호 태고정(일시루)


여종이 이씨부인과 의논하여 비밀리에 아이를 바꿔치기하여 박팽년의 유복손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그 손자는 비밀을 간직한 채 장성하지만, 훗날 자수하여 성종에게 사면을 받아 묘골에 정착한 박일산입니다. 후손이 없던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은 박일산은 먼저 할아버지 박팽년의 절의묘와 99칸의 종택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묘골의 한옥 규모는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박팽년과 사육신은 한강의 새남터에서 능지처참형벌로 죽었으며 사육신의 시신은 ‘금오신화’를 남긴 김시습이 수습하여 세조가 있는 경복궁을 등지게 하여 봉분을 만들었는데 지금의 노량진 사육신 공원입니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인 단종을 내쫓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습니다.




박팽년의 기일날 사육신인 여섯 사람이 사당 문밖에 서성이는 꿈을 박팽년 후손이 꾸었는데 박팽년 이외에는 모두 절손되어 육신사에 사육신의 위패를 함께 모시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포스트 할 건물은 태고정 정자입니다. 1479년(성종10년) 박일산이 처음 지었을 때는 별당으로 종가에 딸린 건물이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과 함께 일부 소실된 것을 1614년(광해군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새로 지었습니다.




앞면 4칸에 옆면 2칸 크기의 일자형 건물에 각각 2칸씩 대청마루와 방을 넣었습니다. 대청의 앞면은 개방하였으며 기둥사이에는 2단의 난간을 설치하였습니다. 또한, 태고정 건물은 왼쪽에다 온돌방을 넣었으며 그에 딸린 부엌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아궁이가 딸린 누각은 많은데 비해 부엌을 넣은 건물은 흔하지 않습니다.




태고정은 큰 규모는 아니지만 사용된 부재의 짜 맞춘 수법이 대단히 정교한 건물로서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청마루의 현판을 보면 윤두수의 한시와 명나라 선무관의 글씨 등이 있습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으로는 태고정은 한석봉의 글씨이며 일시루는 안평대군의 필체라 하는데 안평대군의 생몰 연대와 맞지 않아 글씨를 집자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달성태고정(일시루) 정보

 

보물제 554호

 

지정년월일:1971년 12월6일

 

소재지: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2

 

시대:조선시대 1479년(성종10년)


 

 

 

 한석봉의 글씨

 안평대군 글씨(?)

 

 

 

 

 

 

 



◆대구 달성군 여행지 알아보기◆


2016/03/24 - (대구여행/달성여행) 대구 용문산~닭지만당 산행. 비슬산군립공원 용문산~닭지만당 산행.


2016/03/23 - (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 용연사 금강계단. 통도사 금강계단의 진신사리가 비슬산 용연사 석조계단에 모시게된 유래가 궁금하다면. 용연사 금강계단


2016/03/21 - (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 용연사. 용연사 석조계단과 극락전, 천년고찰 대구 달성 용연사를 여행하다.


2016/03/18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 사문진나루터. 우리나라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왔던 사문진나루터에 봄여행을 떠나다. 화원 사문진나루


2016/03/11 - (대구여행/달성여행)최정산 남지장사·청련암·백련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의 승병훈련소였던 천년고찰 남지장사·청련암·백련암 여행.


2015/10/31 - (대구여행/달성여행)가창면 우록리 청산~우미산 산행.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 장군의 흔적을 찾아나선 우록리 청산~우미산 가을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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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5 - (대구여행/가창여행) 최정산 운흥사. 보물 제1814호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최정산 운흥사 여행.


2015/02/18 - (대구여행/달성가창여행)대구 주암산~최정산 산행. 올해 처음 눈꽃 산행을 즐긴 달성군 가창면 주암산~최정산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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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7 - (대구여행/스파밸리 포레스트12)대구여행에서 숙박 걱정마세요 스파밸리 포레스트12 끝내줘요.


2014/01/06 - (대구여행/달성여행)포레스트 스파밸리. 화려한 야경이 볼거리인 포레스트 빛의 축제에 깜짝 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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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1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유원지와 사문나루터, 한국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온 곳은 어디, 사문진나루터와 화원동산 .


2008/12/15 - (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 대견사지. 중국 당태종이 세숫대야에서 본 비슬산 대견사지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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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안창마을. 70~80년대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 억척스럽게 살았던 대한민국의 참 모습을 찾는다면 범일동 안창마을 여행 추천.   


부산에도 호랑이가 살았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역사적으로 호랑이가 출몰했다하여 지명이 된 곳이 부산 동구에 있습니다. 범일동과 범천동이며 모두 호랑이인 범을 말합니다. 그리고 범일동과 범천동은 ‘범내’ 또는 ‘호천’ ‘호계천’으로 불렸던 냇가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는데 범일동은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일제가 범천1리와 범천2리인 마을을 범천1리로 통합하면서 범일동이라 하였습니다.







 

그 범일동에는 범내의 발원지가 있으며 또한 동구의 마지막 달동네인 안창마을이 있습니다. 안창마을은 “산골짜기 안쪽의 좁은 분지 마을” 이라하여 ‘안골’로도 불렸으며 처음 마을이 들어서게 된 것은 6·25 한국동란으로 모여든 피난민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60~80년 산업화 바람을 타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왔던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형성된 마을입니다. 


 

그 당시에는 워낙 오지다 보니 행정력이 미치지 않아 하루 만에 뚝딱뚝딱하여 방 한 칸에 부엌을 넣은 무허가 판잣집을 지어 살았습니다. 지금은 경남아파트가 들어선 교통부에 삼화고무가 있었고 동양고무, 태화고무, 진양고무, 국제상사 등 요새 말로 고무신공장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조방앞’의 유래가 된 조선방직은 일제강점기 때 있었으며 조선방직 앞을 줄여 부른 게 요즘 말하는 '조방앞'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부산진시장과 자유·평화시장 등에는 가내공업인 봉제공장이 수두룩하게 몰려 있어 그 당시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난 젊은이는 범일동과 안창마을에 기숙하면서 모두 이곳으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출·퇴근시간에는 그 숫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안창마을로 향하는 길목은 모두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넘쳐 났다합니다. 그리고 당시 안창마을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이들 공장에 다녔다하니 그 숫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이 대충 갑니다. 그러는 동안에 범일동과 범천동은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고무공장과 신발공장은 폐업하거나 동남아로 공장을 이전하여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하였지만, 안창마을은 시간이 멈추어진 듯 옛 모습 그대로 낙후 마을을 면치 못했습니다. 무허가 건물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남들이 모두 누렸던 전기와 수돗물도 88년~90년대 초반에 모두 공사가 끝났다하니 안창마을의 당시 실상은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산에서 염소구이하면 금성동 산성마을 하듯이 오리구이하면 범일동 안창마을로 굳어져 부산에서 제일가는 오리구이 마을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안창마을에 들어서면 오리를 요리하는 음식점이 수두룩합니다.


 

 

또한, 새롭게 바뀐 것은 마을 분위기인데 회색의 우중충 했던 집들은 모두 화려한 색상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호랑이를 형상화한 재미난 이야기가 골목길마다 벽화로 만나 안창마을 하면 호랑이 마을하며 수식어가 따라붙게 되었습니다.


 

 

 

처음 안창마을에 변화의 바람을 넣은 사람은 미술작가와 지역 대학생들의 벽화 그리기였습니다. 그리고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공공프로젝트 지원 사업으로 환경개선과 조형물 설치 등을 하면서 마을은 조금씩 변했으며 이런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위해 많은 사람이 찾는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습니다.


 

또한, 인터넷에 올린 블로그의 포스트를 보면 안창마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안창마을은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으로 다시 한 번 변화하고 있습니다. 호랭이마을 회관 앞에 “어~흥‘하며 포효하듯 용맹스러운 호랑이 동상이 있으며 많은 식당이 도로를 따라 이어집니다.


 

 

곧 쉼터인 사각 정자가 나오며 왼쪽 골목에 정미집도 보이는 갈림길입니다. 왼쪽 골목길로 들어섭니다. 때마침 승용차를 타고 온 가족이 골목길을 걸어 올라갑니다. 골목에 입힌 색상이 너무나 예쁘고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골목에 빨래가 걸리고 빛바랜 사진이 작품을 만들어 내는 모든게 예술 작품이 되는 골목길입니다.


 

 

 

 

대충 블록으로 듬성듬성 엮은 담장도 여기서는 추상적인 작품이 되며 보일러 호스와 집 위를 건너다니는 전선과 그것을 이어주는 전봇대도 예술작품 속의 한 모습입니다. 이학준님의 ”너는 모른다“에서 안창마을을 ”남들이 보기에는 작은 마을이 아니냐고 그러지만 / 그러나 너는 모른다 / 이 마을의 진정한 아름다운 모습을“ 그렇습니다. 안창마을은 밖에서 보면 진정한 안창마을의 모습을 모릅니다.


 

마을 속 깊은 곳으로 찾아들면 진정한 내면의 안창마을을 만나게 됩니다. 안창마을 이찬옹 이장님의 ”호랭이 등에 업은 마을“ 이학준님의 "마을 오르막은 호랑이의 기세"등 호랑이가 살았다는 안창마을의 담벼락 시도 읽어 봅니다. 안창마을 골목 하나하나가 모두 작품입니다.


 

그럼 호랭이 관련 속담도 배워봅니다” 호랭이 굴에 가야 호랭이 새끼를 잡는다“ ”호랭이가 호랭이를 낳고 개가 개를 낳는다“ ”호랑이 애 어르듯“ ”호랭이 개물어간 것만 하다“ 등 많은 속담이 있는데 제가 모르는 속담이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호랭이 속담 중 삼천만이 안다는 ”호랭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호랭이 담배피던 시절"은 빠져 있습니다. 너무 쉬워서 빼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힘든 오르막이지만 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면서 오르니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골목 끝에서 내려다보는 안창마을의 전경은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집을 보면서 안창마을의 참모습을 다시 한 번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동의대학교 건물이 엄청나게 높아 보입니다. 골목길을 끼고 옆 골목으로 나가면 또 다른 벽화가 펼쳐집니다.


 

 

 

 

오르는 경사가 얼마나 심하면 계단에 설치하는 스텐리스 난간 손잡이가 담벼락에 붙어 있습니다. 마을을 지키는 어르신들이 많아 오르고 내려갈 때 사용하면 정말 편리하겠습니다. 우리 전례동화를 벽화로 만납니다. ”호랭이와 곶감“은 누구나 한번쯤 모두 들었던 호랭이 보다 더 무서운 곶감 이야기입니다.


 

 

 

모두다 전통 전래동화를 읽어보며 피식 웃기도 합니다. 또 한편의 전례 동화을 만났습니다. ”은혜 갚은 호랭이“는 정말 유명한 동화입니다. 모두 아시지요. 입안에 박힌 가시를 빼주자 목숨을 바쳐 끝까지 은혜를 갚은 호랑이 이야기를예.... 은혜 갚은 호랭이를 읽으면서 요즘 세상에 이런 은혜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하며 생각해봤습니다.

 

 

 

 

오랜만에 안창마을에서 호랭이 동화도 읽고 은혜를 갚은 호랑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다시 안창마을 도로로 내려오면 넓은 터에 들어선 ’루미네수녀 기념관‘을 만났습니다. 안창마을에 2평 크기 판잣집에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21년 동안 돌보며 희생과 봉사를 실천하신 독일인 루미네 수녀님을 기리며 조성된 기념관과 광장입니다.


 

 

 

 

다시 마을버스 종점을 지나 안창마을 주민들이 직접 사진으로 만든 골목길을 걸었습니다. 안창마을 주민들을 사진 속에서 만나며 오르는데 신호등이 보였습니다. 골목이 워낙 급하고 좁다보니 차가 올라오면 내려가는 차는 이곳에서 기다리라는 ”적색 신호시 진입금지“ 신호등을 보면서 억척스럽게 살았던 안창마을의 모습을 다시 봅니다.


 

 

 

이곳에서 골목으로 내려서며 안창마을 여행을 마쳤습니다. 안창마을은 29번 버스와 마을버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창마을을 느끼며 걷기에는 현대백화점에서 시작하는 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을 따라 걷는 힐링 길을 추천합니다. 필자도 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을 따라 걸었으며 호랭이 마을인 안창마을과 함께 호랭이 이바구길은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 포스트도 기대해주세요.

 


 

 

 

 

 

 

 



◆부산 동구 여행, 맛집이 궁금하다면◆


2016/02/24 - (부산여행/동구여행)부산진역 역전지게꾼 조형물.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날품을 팔았던 역전지게꾼의 조형물이 부산진역에 있습니다.


2015/11/06 - (부산여행/동구여행)초량 이바구 야시장. 청년 창업가의 톡톡 튀는 맛이 궁금하다면 부산 제2호 야시장 초량 이바구 야시장을 찾아보세요.


2014/11/22 - (부산여행/동구범일동여행) 범일동 매축지마을. 삶의 팍팍함이 묻어나는 일제 강점기 범일5동 매축지마을을 만나보세요.


2014/11/13 - (부산여행/초량 이바구길~엄광산 둘레길 걷기)부산을 조망할 수 있는 엄광산 허리길 초량 이바구길~엄광산 둘레길 걷기


2014/11/02 - (부산여행/동구여행)초량동 옛 백제병원 내부 들여다 보기. "옛 건물을 사랑해주세요. 조용조용 살금살금" 옛 백제병원 건물 내부를 보고 경악.


2014/10/30 - (부산여행/축제)부산 산복도로 개통 50주년 마을 축제가 열려요.


2014/10/12 - (부산맛집/동구맛집)범일동 현대백화점 맛집, 이중섭 거리 맛집. 쌀쌀한 날씨에 먹는 밀면 맛도 너무 좋은 본가밀면 본점.


2014/10/09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이중섭거리. 한국의 고흐 '이중섭 범일동 풍경'으로 만나다.


2014/06/09 - (부산여행/동구여행)초량이바구길. 근대의 역사길을 따라가는 초량 이바구길을 만나다.초량 이바구길


2014/03/19 - (부산여행/동구여행)동구 이바구길 장기려 기념관. 바보의사의 이색 처방전 "환자에게 닭두마리 값을 내주시요-원장"


2011/10/02 - (부산여행/동구여행)일신여학교. 동래여고 전신인 부산 최초 여자 교육기관 일신여학교의 서양식건물 모습,


2009/03/10 - (부산여행/동구여행)구봉산 금수사. 사명대사가 일본에 가기전 머물며 물맛에 극찬했던 부산 구봉산 금수사입니다.


2009/03/09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자성대 공원. 왜군이 임진왜란때 침략의 교두보였던 부산진지성 자성대의 모습입니다.


2009/03/02 - (부산여행/동구여행)수정동 정란각.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지며 방석집인 수정동의 정란각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009/02/25 - (부산맛집/부산진구맛집)평양빈대떡. 빈대떡 신사가 울고간 57년 빈대떡집-범일동 평양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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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서구여행)암남동 천마마을. 재개발로 곧 사라지는 아름다운 달동네 천마마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지난 일요일 잿빛 구름이 남항을 무겁게 짓누르며 온다던 비는 오지 않아 작은 행장을 꾸려 집을 나섰습니다. 뭐 목적지도 있는 게 아니고 그냥 집을 나섰습니다. 집 뒤 아리랑 고개를 넘어 천마산으로 향하는데 빗방울이 한방울두방울 뜨기 시작했습니다. 돌아 갈까하고 망설임도 잠시 배낭에 우산도 챙겨온 터라 잠시만 더 가보자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산에 오르기는 그렇고 하여 우리 동네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전에 찾았을 때 ‘개발 반대’라는 붉은 깃발이 걸렸던 천해로의 천마마을입니다. 낮은 집에 파란 지붕을 이은 참 예쁜 마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철거’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빈집이 참 많아 곧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빈터에 굴착기가 올라와 있고 드문드문 가림막을 해놓은 집을 보면서 이제 곧 천마마을도 사라지겠구나 싶었습니다. 그 속에서 아직도 남은 주민은 오순도순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마침 집을 나서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매요, 여기다 뜯기는 갑지예”

“몰따, 뜯는다고 다 뜯어지나?”

“우리보고 나가라 카는데 돈을 주야 나가지”

“우리보고 돈도 없이 어디 가서 살라 말이꼬” 하시며

젊은 청춘을 이 마을과 함께했는데 “우리보고 어디가라 말이꼬” 하셨습니다. 더 있기도 그래서 쭉 뻗은 오르막길을 올라 천마산으로 향했습니다.

 

 

할머니와 나눈 대화는 짧았습니다. 합의가 모두 끝난 사항이라며, 유언비어 유포 시에는 어쩌고 지짜고 하며 불어 재끼는 바람에 파닥파닥 달구 새끼가 날개를 퍼득이 듯 노란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부산에는 유난히 달동네라 부르는 동네가 많습니다. 모두다 광복과 함께 부산항을 통해 들어온 귀환동포와 6·25 한국동란으로 몰려든 피난민, 그리고 60, 70, 80년대에 먹고 살기위해, 또는 자식의 학업을 위해 헬고향 하신 분, 급격한 산업화로 개발현장에 집이 뜯겨 찾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우선 비와 이슬을 피할 요령으로 판자로 얽기 설기 엮은 성냥갑 같은 판잣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산에는 달동네가 아닌 마을이 없을 정도로 산비탈에 집이 천지 삐까리입니다. 대표적인 게 최근 천지개벽한 감천문화마을이 그러하고 문현동 안동네, 연산동 물만골, 범일동 안창마을 등 지금도 보름달을 가까이서 보며 사는 산골 마을입니다.


 

산업화와 도시미관에 내몰리며 밖에서 보이지 않는 어둡고 컴컴한 곳으로 자꾸만 몰아넣었던 시절 속에 이들은 고무줄보다 더 질긴 목숨을 잇기 위해 가족을 부둥켜안고 쫓겨 이곳 달동네를 의지하며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러나 도심 속에서만 재개발이 있으며 언제까지나 이런 산골짜기에는 재개발이란 용어가 없을 것 같았는데 이제 접시만한 둥근달을 가까이서 보던 달동네마저도 재개발 바람이 불었습니다.


 

붉은 깃발이 집집이 걸렸고 그처럼 아름답고 조용해 보였던 마을은 스산한 가을바람이 스쳐간 듯 삭막했습니다. 빈집이 많은 동네를 찾아가면 으레 그러하듯 여기도 할 일 없는 강아지들만 꼬리를 흔들며 낯선 이방인을 쫄랑쫄랑 따라다녔습니다.


 

천마마을은 부산서구 천마산을 끼고 생긴 마을입니다. 송도해수욕장도 내려다보이고 에메랄드 바다인 남항 묘박지에 배들이 점점이 떠 있는 정말로 전망 좋은 마을이라 마을 구경도 하며 가끔 이 길로 내려오는데 이제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면 이곳도 찾아올 리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 부산에는 역사가 있는 동해남부선 철길과 옛 해운대역사를 보존하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산의 문화와 역사를 보존하면서 근대 부산의 역사인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구’의 삶을 재조명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젊은 청춘이 파뿌리가 될 때까지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고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며 달동네를 의지하며 살았던 부산만의 흔적이 삐까번쩍한 문화재 못지않은 관광상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화와 역사는 한번 허물면 다시는 이을 수 없습니다. 영화 세트장처럼 겉모습은 만들 수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땀방울이 배어든 흔적까지는 복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아름답던 천마마을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착찹하여 두서없는 글 몇 자 적어 봤습니다.

 

 ◆재개발로 곧 사라지는 달동네마을 천마마을 사진으로 보기◆

 

 

 

 

 

 

 

 

 

 

 

 

 

 

 

 

 

 

 

 

 

 


◆부산 서구 여행지 둘러보기◆


2016/03/26 - (부산여행/부산남항여행)봄이 오는 길을 따라서 걸었던 부산남항 역사·문화·문학 탐방길. 부산공동어장. 자갈치시장, 영도대교, 대풍포, 깡깡이 아지매길, 수리조선소길,


2016/03/22 - (부산여행/서구여행)내고장 부산 서구 자랑질. 부산서구 천마산로에 부산 최고의 전망대인 누리바라기 전망대, 포토 전망대, 널바라기 쉼터가 있습니다.


2016/02/19 - (부산여행/부산남항여행)겨울 부산 남항. 맹추위가 기승을 부릴때 부산의 바다 남항 여행을 해보세요.


2016/01/27 -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서구 산복도로 해돋이로 벽화거리, 달동네라고요. 까꾸막이라고요. 내 고장 부산 서구 산복도로가 '생태바람길로' 이리 바뀌었습니다.


2015/10/28 - (부산여행/서구여행)부민동 '안심! 오름길' 골목과 가극 아리랑 작곡가 독립유공자 한형석 선생님이 세운 자유아동극장과 색동 야학터 찾아가기


2015/10/19 -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 송도해수욕장에서 고등어축제 했다 아잉교. 굽고 지지고 회치는거 구경 한번 해보소. 부산 송도 고등어축제


2015/10/17 - (부산여행/서구여행)제8회 부산고등어축제 불꽃놀이와 부산고등어 축제 행사 일정표


2015/09/21 - (부산서구/그곳에 가면-가볼만한 곳)(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 야경 좋은 곳. 영도다리, 부산항대교 야경 전망 좋은 곳 아미동~남부민동 산복도로.


2015/09/16 - (부산여행/서구여행)구덕산 시약산 시약정 전망대. 가을 산행지로 최고. 남부럽지 않은 가을 하늘을 느낄수 있는 곳입니다. 구덕산 시약산 시약정 전망대


2015/09/15 - (부산서구/그곳에 가면-명소)(부산여행/서구여행)동대신동 닥밭골 벽화마을. 가을철 가보기 좋은 아름다운 벽화마을 닥밭골.


2015/09/14 - (부산맛집/서구맛집)닥밭골, 동아대병원, 구덕운동장 맛집 영남냉면·밀면. 부산 만의 음식인 밀면 어때요. 닥밭골마을 구경도 하고 영남냉면·밀면의 밀면도 먹고...


2015/08/28 -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국가지질공원 송도반도 지질공원. 내 고장의 지질 구조를 알아보았습니다. 송도 볼레길 부산지질공원 탐방. 부산지질공원


2015/07/27 - (부산여행/서구여행)송도해수욕장 스카이워크. 공설해수욕장 1호 부산 송도해수욕장 하늘길 송도해수욕장 스카이워크 전망대를 만나보세요


2015/07/06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동비석마을 골목길 여행.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골목길도 누비며 구름이 쉬어가는 전망대도 만났습니다.


2015/06/22 -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공동어시장.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부산공동어시장 경매 현장을 다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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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4 -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 야경 촬영하기 좋은 곳, 아미동~남부민동 산복도로 부산 야경 촬영지로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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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9 - (부산여행/서구여행) 감천문화마을과 함께 천마산도 올라 보세요. 조망이 최고 부산의 전망대 천마산.


2015/01/11 - (부산맛집/서구맛집)암남공원 맛집 애경이네 집. 장모님이 사위를 위해 잡은 씨암탉을 끓이 듯 맛있는 닭백숙으로 소문난 애경이네 집.


2014/12/14 - (부산여행/서구여행)남부민동 고 이태석 신부 생가. 수단의 슈바이처 울지마 톤즈 고 이태석 신부 생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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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 (감천문화마을축제)한국의 마추피추 감천문화마을에서 가을축제를 열어요?


2014/10/13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동 비석마을, 세상에 이런집이.. 경악, 부산 아미동 무덤 위에 지은 집과 돌로만든 집


2014/10/01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문화학습관 최민식갤러리, 인간이 거기 있기에 나는 사진을 찍었다, 최민식 갤러리


2014/09/19 - (부산여행/서구여행)감천문화마을 천마산 산행, 우리 집 뒤에 이런 풍경이 펼쳐져요. 최고의 가을 산행 코스 천마산.


2014/09/16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동비석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만 아시나요. 일본인 공동묘지 위의 동네 비석문화마을과 최민식 갤러리도 만나보세요.


2013/11/14 - (부산여행/서구여행)임시수도기념관 부산밀면이야기, 부산 밀면에서 알지 못한 숨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2013/11/09 - (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항빛축제)송도해수욕장 부산항빛축제. 부산항빛축제 천년의 빛으로 송도해수욕장을 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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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1 - (부산여행/임시수도기념관여행)한국동란때 이승만대통령이 머물렀던 관저 임시수도기념관


2013/01/10 - (부산여행/서구여행)4차원의 갈매기 모습이 특이해. 100주년 부산송도해수욕장의 불밝힌 갈매기 조형물.


2010/01/03 - (부산여행/서구여행)천마산 천마바위 여행. 하늘의 천마가 내려와 대마도로 날아 갔다는 천마바위에서 본 부산


2009/04/10 - (부산여행/서구여행)천마산~옥녀봉~시약산~구덕산~엄광산 산행. 자갈치 앞바다를 볼 수 있는 곳, 천마산~구덕산~엄광산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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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기장여행)국립부산과학관. 국립부산과학관 특별전 장영실. 미국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장영실이 있다. 


지난해 초 이상훈의 장편소설 ‘한복 입은 남자’를 읽었습니다. 웬 뜬금없는 한복 입은 남자냐고요. 오늘 포스트 할 내용이 조선의 천재과학자 장영실 이야기입니다. 한복 입은 남자에서 장영실이 그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복 입은 남자의 줄거리를 대강 훑어 보면 마지막 부분에는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이 되어 다빈치가 비차를 설계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어쩌면 황당한 이야기 속 소설입니다.









한복 속의 남자에서도 장영실은 지금의 부산 동래에서 노비 출신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세종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측우기와 혼천의 해시계 등을 발명한 과학자로 종3품인 대호군의 벼슬까지 오릅니다. 한복 입은 남자에서 장영실은 다연발 무기인 신기전을 개발하고 홈경각을 설치하여 천문을 읽으며 조선실정에 맞는 역법을 사용하자 명나라 정통제는 대로합니다.

 

 

 

원래 시간을 다스리는 일과 하늘을 열수 있는 것도, 하늘을 볼 수 있는 것도 대국의 황제만이 할 수 있는 일로 조선조종에서는 매년 해가 바뀌면 그해 사용할 달력을 받으러 동지사를 명나라로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장영실은 천체의 운행과 별들의 위치를 측정했던 하늘시계인 혼천의를 1438년(세종20년)에 개발하였으며 세종의 명으로 자격루, 혼천의, 옥루기륜, 혼상 등을 설치한 천문관측기구인 홈경각을 설치하여 황제의 고유 권한인 하늘을 올려다보게 하였습니다.


 

이게 명나라 황제 귀에 들어갖고 황제는 명나라 환관인 이상인에게 장영실을 죽일 것을 지시하며 자객을 보내자 이상인은 자객에게 며칠 말미를 달라하고 세종에게 장영실을 죽일 참이냐며 어서 빨리 안전한 옥사에 가두도록 손을 써야한다고 독촉합니다. 세종은 상선을 시켜 장영실에게 가마를 만들라고 지시합니다. 세종은 장영실이 새로 만든 가마를 타고 온천행을 떠나는데 그만 어가의 손잡이가 부러지고 말았으며 장영실은 바로 하옥되어 불경죄로 다스렸습니다.


 

명나라와 가까운 대신들 앞에서 장영실은 참형을 선고 받고 다음날 바로 교수형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천재과학자 장영실을 살리려고 일부러 가마의 손잡이를 부러지게 연극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은 “좁은 조선 땅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며 장영실에게 배가 준비되었다며 어서 떠나라합니다. 기다리고 있던 중국의 여행 전문가 정화대장의 배를 타고 장영실은 10년간의 긴 항해로 로마에 도착하지만, 장영실의 지동설 주장이 로마 교황과 반목하여 다시금 목숨이 위태롭자 정화대장은 다시 배를 꾸려 항해에 나서 피렌체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어린 다빈치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으로 조금은 황당하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장편소설 ‘한복 입은 남자’ 장영실입니다. 지난 일요일 부산시 기장군 국립부산과학관을 찾게 되었습니다. 마침 특별기획전이 전시 중이었는데 ‘부산의 과학자 장영실’ 편이었습니다. 500년 전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세계최고수준으로 끌어 올린 천재과학기술자 장영실, 국립부산과학관의 특별전시에서 자격루와 옥루, 측우기, 갑인자 등 장영실의 발명품을 한자리에서 자유롭게 무료 관람하였습니다.


 

 

운영 요일:화·수·목·금·토

◆전시기간:2016년 3월 11일~2016년 5월 15일

◆장소:1층 중앙홀

◆문의:전시 기획실(051-750-2312)

관람료:무료(단 2층 상설전시실은 유료)


자율 앙부일구와 측우기 탁본체험도 있습니다.

◆기간:4월2일(토)~4월24일(일). 주말 총 8회 실시

◆대상:누구나 현장에서 선착순 체험가능


 

장영실이 발명한 발명품을 보면

‘해시계(앙부일구)’:솥에 받혀놓은 듯한 오목한 그릇(수영면)에 비치는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과 계절을 알 수 있는 장치입니다. 움푹 들어간 솥 모양은 “절기마다 해의 고도가 달라지는데 평면의 형태로는 그 변화를 나타낼 수 없지만 오목한 솥 모양은 정확한 시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앙부일구는 지금의 시각과는 약 30분이 늦다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보다 해가 빨리 뜨는 동쪽 즉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혜정교와 종묘거리에 설치하여 백성들도 시간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현재시간=앙부일구 시간+30분(시차보정)


 


 ‘선화당 측우대’

측우기는 세계 최초의 우량계로 다른 나라보다 200여년이 앞선 세종 23년(1441년)에 발명하였습니다. 앞면에는 ‘측우대’, 뒷면에는 ‘건륭경인오월조’가 새겨져 조선 영조 46년인 1770년에 제작된 것입니다. 측우기의 높이는 31.5cm, 지름은 14cm 측우기는 보물 제561호, 측우대는 보물 제842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일성정시의’로 해와 별을 관측해서 낮과 밤의 시각을 알아내는 천체관측기기입니다.


 

 

 

‘혼상’은 둥근면위에 하늘의 별자리 1,464개를 새겨놓은 천문 기기로 하룻밤의 시간과 일 년의 계절을 측정하는데 이용하였습니다. 혼상의 축은 하늘의 극축이며 지구의 자전축과 방향이 일치합니다.


 

 

‘옥루(혼천의)’는 해와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인 오행성의 위치를 측정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여기 진열된 혼천시계는 국보 제230호이며 1669년 제작하고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중인 송이영의 혼천시계중 혼천의 부분만 2.5배 확대 복원한 복원품입니다. 참고하세요.


 

‘간의’는 중국 원나라의 천문학자 곽수경이 1276년에 처음 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세종 14년인 1432년에 한양의 북극고도인 37.6도를 측정한 후 청동으로 제작하여 경회루 옆 간이대에 설치하였습니다. 요즘의 천체망원경격인 간의는 그 크기는 가로 248cm 세로 327cm, 무게는 5톤이며 고도와 방위측정, 낮과 밤의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갑인자’는 자치통감 권214 초주갑인자본입니다.

2007년 ‘중요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 임인호’씨가 복원한 활자판.

 


 

 

 

 

 

 

 

 

 

  

‘자격루’는 세종 15년인 1433년에 장영실이 자동 시보장치를 갖춘 기계식 자동 물시계로 우리고유의 기술과 중국 물시계. 이슬람 자동 시보장치원리를 가미한 혁신적 기기입니다.


 

"미국에는 스티브잡스가 있다며 한국에는 장영실이 있습니다"

 장영실이 궁금하다면 국립부산과학관 특별전 장영실 많은 관람해주세요. 


 

 

 

 

 

 


국립부산과학관 대중 교통편:부산도시철도 2호선 장산역에서 5번과 7번 출구 사이에서 185번 버스를 환승하면 국립부산과학관 정문에 하차합니다. 그 외에는 100번 버스 롯데몰 하차, 38, 39, 40, 63, 139, 180, 182, 200, 1001, 1003번은 내리마을 하차하여 도보로 약 1km. 동해남부선 송정역에서는 도보 약2km.


◆기장군 가볼만한 여행지와 맛집 검색◆


2016/02/18 - (부산여행/기장여행)조선시대 교육기관 기장향교.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교리 기장향교를 여행하다. 기장향교


2015/11/30 - (부산여행/기장여행)기장의 또다른 별칭 차성. 차성의 유래가 된 차릉, 차건신의 묘소를 찾다.


2015/07/07 - (부산맛집/기장맛집)대변맛집, 동부산 관광단지 맛집 진주횟집. 전통방식 짚불곰장어도 일품인 활어 전문 진주 횟집에서 양념곰장어, 멸치찌개도 최고였습니다.


2015/02/19 - (부산여행/기장여행)죽성리 드림성당 황학대 어사암 여행. 볼거리가 많은 기장 드림성당, 황학대, 어사암 여행.


2015/02/14 - (부산맛집/기장일광맛집)일광당 찐빵·손만두. 기장 일광 해변길에 옛날 찐빵이 맛있는 일광당찐빵·손만두


2015/02/09 - (부산맛집/기장맛집)기장맛집 죽성리 드림성당맛집 기장밀면 전문점. 부산하면 역시 밀면 아잉교.기장밀면


2015/02/04 - (부산여행/기장정관여행)정관박물관. 삼국시대 생활사 박물관 정관박물관 개관.


2015/01/30 - (부산맛집/기장정관맛집)정관박물관 맛집 이비가 짬뽕. 화학조미료 제로, 국내산 재료로 짬뽕이 맛있는 부산 정관점 이비가 짬뽕.


2015/01/24 - (부산여행/기장군여행)기장팔경중 1경 달음산 산행. 해맞이 산행지로 유명한 기장 달음산을 오르다.


2015/01/12 - (부산맛집/기장맛집)롯데아울렛 동부산점 맛집 바르미 샤브샤브 칼국수, 쇼핑하다 배고플 때 딱 좋아요.


2011/10/12 - (부산여행/기장여행)기장향교. 선현들의 가르침과 옛스러움이 묻어나는 기장향교 둘러보기


2011/10/10 - (부산여행/기장여행)죽성리 드림성당. 이런곳이라면 가만히 있어도 기도빨을 받을 곳 같은 기장 죽성리 성당 드림셋트장


2011/10/08 - (부산여행/기장여행)기장 죽성 해송 왜성. 멋스러운 소나무가 어울리는 바닷가 기장 해송 국수당과 왜군이 쌓았다는 죽성왜성.


2011/10/19 -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기장군 해동용궁사 탐방기


2008/12/16 - 천년을 이어온 풍경소리 불광산 장안사


2012/05/03 - (부산기장맛집) 만원의 행복, 식탁에 두번 차려야 다 나오는 돌솥밥 한정식에 경악, 멸치회는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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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진안여행)진안 천반산 산행. 천반산의 죽도는 기축옥사를 피해 정여립이 몸을 숨겼던 곳입니다. 정여립 모반 사건의 역사를 추적하는 천반산 죽도 산행. 


인물됨이 빼어나고 학식 또한 걸출한 사람을 두고 문무가 뛰어난 사람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산이 가진 역사와 산세가 꼭 문무가 뛰어난 사람을 닮아 참말로 오랜만에 산다운 산을 산행하고 왔습니다. 그런 산이 어디 있느냐고요. 진안의 천반산입니다.







 

필자가 몇 해 전 산행을 하고 아직도 그 여운을 잊지 못하는 산이 정선 백운산인데 그때 백운산을 산행하는 그런 느낌이 너무나 강렬하게 들었습니다. 정선 백운산은 동강이 빚어내는 물돌이가 구절양장을 이루어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계곡이고 구별이 되지 않았는데 이번 천반산은 금강과 구량천이 만나는 곳에 산이 계곡이고 계곡이 산일 정도로 기치창검을 두른 바위 병풍을 만들었습니다.


 섬계산장

그 끝에 마지막으로 찍은 죽도는 신의 한수라는 화룡점정일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금강과 구량천이 만나는 곳에 만든 죽도는 역사적 인물인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이 마지막 도피처로 삼았던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천반산은 정여립 쌓았다는 천반산성이 남아 있으며 말을 타고 뛰었다는 뜀바위와 말바위등 많은 전설이 있습니다.


 

 천반산 등산로 입구

기축옥사는 기축년에 일어난 '정여립 모반 사건'을 말합니다. 정여립은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으며 25세에 벼슬길에 나서지만, 너무 급진적인 정치성향으로 선조와 서인의 미움을 받아 고향인 전주로 낙향합니다. 그는 대동계를 조직하고 죽도에 머물면서 천반산에 산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켰습니다.


 

 

선조 22년에 정여립이 역모를 꾀한다는 고변으로 아들과 죽도에 피신하였으며 관군이 이곳까지 쫓아오자 함께 자결하였습니다. 기축옥사로 인해 3년 동안 1,000여명이 목숨을 잃었을 정도로 무자비한 살상이 자행됐던 사건으로 이로 인해 전라도는 반역의 땅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천반산 산행 경로는 섬계산장 옆 등산로 입구~ 안부 갈림길~먹재골~주능선 갈림길~천반산 휴양림 갈림길~천반산(깃대봉) 정상~전망바위~말바위~천반산(성터) 정상석~죽도·송판서굴 이정표~송판서 굴 갈림길~송판서 굴~뜀바위~구량천(죽도 앞)~스톤스토리펜션~장전버스정류장~천반산휴양림 입구~섬계교~섬계산장 천반산 등산로 입구로 되돌아오는 코스로 GPS 전체거리는 약 13km, 총 산행시간은 4시간30분~5시간 30분 쯤 걸립니다. 천반산 깃대봉을 지나면서 죽도 병풍바위 앞까지 하산하는 동안은 눈을 뗄 수 없는 빼어난 경치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참고하세요.


 

 

 안부 사거리 갈림길

천반산 산행은 진안군 동향면 성산리 섬계산장 옆에서 시작합니다. 빛바랜 천반산 안내도와 이정표가 있으며 이정표에는 천반산 깃대봉(2.92km)과 천반산 성터(4.12km) 두 곳의 정상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등산로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주의해야 합니다. 직진하지 말고 오른쪽으로 꺾습니다.


 

 먹재골

입구를 벗어나면 섬계산장 뒤를 돌아 산허리를 에돌아갑니다. 편안하게 옛길을 빙글빙글 돌아 약 25분이면 능선에 오르고 이정표가 있는 안부사거리입니다. 사방이 갈림길로 연결됩니다. 대부분 직진하는 능선 길을 택합니다. 그러나 능선을 에도는 코스로 이정표에는 천반산(깃대봉·2.02km)으로 표시하며 왼쪽은 열원리(0.72km) 방향입니다.


 

 

 

필자는 직진하여 능선을 우회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꺾어 지름길인 천반산(깃대봉·1.62km) 산길로 향했습니다. 이 길은 열원리에서 먹재를 넘어 연평리로 넘어다녔던 옛길로 먹재골까지는 옛길이 그대로 잘 남아 있었습니다. 혹시 성질 급한 봄꽃이 피었나 싶어 두런두런 좌·우를 살펴보며 걸었는데 계절이 아직 빠른지 당시에는 야생화는 보질 못했습니다.


 

 

겨우내 언 땅이 녹으면서 계곡에는 많은 물이 흐르고 10분이면 제법 틀을 갖춘 넓은 자연석 징검다리를 건너 왼쪽 오솔길을 따라갑니다. 아직도 겨울의 무채색은 벗질 못하였으며 지계곡을 만나면 곧 갈림길입니다. 왼쪽은 먹재로 향하는 넓은 옛길로 고개까지 길이 잘 나 있을 것 같지 않아 오른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을 오릅니다.


 천반산 깃대봉 정상

정상 직전에서 뻗은 능선이라 곧장 천반산으로 올라 붙습니다. 그런데 급하게 흘러내려온 만큼 올라가야할 능선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도 이름 모를 무덤도 있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능선에 가르마를 타며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30분쯤 ‘고난의 행군’을 꾸준히 하며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어느 덧 주능선에 닿습니다.

 

 마이산

 

왼쪽은 처음 만났던 사거리안부갈림길에서 직진하여 능선을 타면 이곳에서 만납니다. 천반산 깃대봉은 오른쪽입니다. 치받아 오르는 능선을 따라 조금씩 고도를 높여 정점인 듯 바위에 쑥 올라서면 갈림길입니다. 오른쪽은 천반산 자연휴양림에서 올라오는 길입니다.


 전망대

 천반산 성터봉과 대덕산

 

깃대봉은 왼쪽에 약100m 떨어져 있습니다. 사각기둥에다 ‘천반산 깃대봉’ 표지석을 세워 정상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멀리 두 귀를 바짝 세운 마이산이 보이지만 이날 날씨가 좋지 않아 사진을 담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정상에서 전망은 나무로 인해 별로지만 지금부터 천반산 산행의 백미인 조망과 천반산의 역사를 느끼며 걷는 산행입니다.


 

전망대

 

산행은 '천반산(성터) 1.2km', '죽도 3.3km' '가막 입구 2.7km' 방향입니다. 이정표의 거리는 무의미하다 하겠습니다. 곧 소나무가 멋들어진 바위전망대에 닿고 이곳에서 물돌이인 ‘U'자 모양의 구량천과 장전마을, 대덕산, 마이산 등 진안군이 빚어놓은 명산을 한참동안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곳을 살짝 내려서면 안부에 넓은 암반이 말바위입니다.


 말바위

 

정여립이 이곳에서 친지들과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말바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오른쪽 구량천의 조망이 마치 1급수의 계곡물을 마신 듯 청량하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느낌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시원합니다. 이제 내려온 만큼 또 다른 정상인 천반산 성터로 올라야 합니다.


 구량천의 비경

 

작은 봉우리를 우회하면 산길은 다시 바위 전망대에 오릅니다. 다시 한 번 구량천의 절경은 더욱 진하게 그려지며 장전마을의 옛 이름인 진밭마을의 모습이 마치 무릉도원의 선경입니다. 어찌 이런 협곡에 이런 터를 빚었는지 자연의 오묘함이란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감탄사를 자아내게 합니다.


 

 

정상에서 이곳까지 20여분이 소요되었으며 천반산의 이름을 낳게 한 성터까지는 능선을 따라 15분이면 됩니다. 어, 돌로 쌓은 담벼락이다 하고 보니 천반산 성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며 그 옆에 천반산 유래 안내판과 이정표도 있습니다. 천반산은 산위가 소반같이 널찍하고 편편하다하여 붙여졌으며 땅에는 천반, 지반, 인반의 명당자리가 있는데 이곳은 천반의 명당이 있어 천반산이라 부르게 되었다합니다.


 

 

 천반산 성터

천반산성은 그 면적이 약 33,000㎡에 둘레는 약 2km로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이며 정여립은 천혜의 요새로 여겨 이곳에서 군사를 모아 훈련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직진하면 할미굴 방향이지만 오른쪽으로 꺾어 송판서 굴(0.8km)·죽도(2.0km) 방향으로 하산합니다.


 

 천반서 성터 갈림길

 

 

 

 장전마을

 송판서굴 삼거리

 

 송판서 굴

천반산성을 가로질러 500m쯤 가면 송판서 굴 갈림길입니다. 왼쪽으로 300m쯤 내려가면 바위 절벽 끝에 자리한 송판서 굴인데 내려가는 길이 예삿일이 아닐 정도로 까다롭습니다. 송판서 굴은 자연암벽에 생긴 쌍굴로 큰 굴은 길이가 7m 정도이며 장정 10여명이 쉴 수 있는 크기입니다. 내부에는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으며 위장병에 좋다고 합니다.


 

퇴휴재 송보산선생은 1456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결기하여 낙향하였고 뒤에는 도학과 제자 벽가를 연구하면서 세상의 죄악을 씻으려고 석굴에 은거하여 수도하였습니다. 또한, 1.5km 거리의 할미 굴에는 송판서의 부인이 함께 입산하여 기거했으며 정여립 또한 대동계원을 거느리며 병마를 훈련하던 장소로 이용하였다합니다.


 정여립이 말을 타고 뛰었다는 뜀바위

다시 송판서 입구 삼거리로 되돌아갑니다. 진행방향인 죽도(1.5km)를 보고 100m쯤 가면 두 개의 바위봉우리가 있습니다. 뜀바위로 정여립이 두 바위 봉우리를 말을 타고 뛰었다고 합니다. 두 개의 바위봉은 모두 전망이 정말 좋았습니다.


 

 

 

 

 

 뜀바위 전망대

앞 바위봉우리를 올랐더니 뜻밖에 멋진 바위 전망대가 있었습니다. 시각을 달리하면서 펼쳐지는 구량천과 금강의 모습은 이곳에서 최고의 절정을 이루었고 필자는 감탄사를 연발하였습니다. 다시 내려와 또 하나의 암봉을 오르기 위해 바위를 넘었습니다. 또 덕유산의 물이 구량천을 타고 와 이곳 금강에서 흡수하며 정여립이 자결했다는 죽도와 함께 천혜 절경에 눈은 호강 그자체였습니다.


 

 

 

 구량천과 금강이 서로 만나며 오른쪽은 죽도

정여립이 자결했다는 죽도의 모습

 

 

이곳에서 오늘 천반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를 보는 것 같습니다. 실타레가 엉킨듯한 천반산과 대덕산, 죽도능선, 40분 내내 죽도를 바라보며 바위능선을 내려오는데 왜 죽도를 연결하는 바위능선이 끊어졌는지 궁금했습니다.  원래는 바위능선이 이어졌지만 30여 년 전에 물도리로 휘어지던 물길을 바로 연결하는 직강공사를 하면서 바위능선을 끊어내어 섬이 되었습니다.


 

 죽도를 연결했던 바위능선, 지금은 직강공사를 한다고 끊어 놓았다.

 

 병풍바위

죽도 앞의 암벽이 마치 병풍을 펼친 듯 넓지만, 이곳을 까내어 강을 바로 뚫을 생각을 한 그 자체가 황당합니다. 지금은 이빨 빠진 모습을 한 죽도 바위능선을 보면서 오른쪽으로 구량천변을 걸어갑니다.


 

 

 

 구량천 잠수교

멀리 필자가 걸었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구량천의 잠수교를 건너면 ’스톤스토리펜션‘을 지나 장전버스정루장에서 49번 지방도를 따라 천반산휴양림을 지나고 섬계교를 건너 약 3km면 출발지점인 섬계산장 옆 등산로 입구에 닿습니다. 걷는 내내 산에서 본 천반산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지루한지 모르고 걸었습니다.


 스톤스토리펜션

 장전버스정류장

 

 

 

 천반산휴양림 갈림길

 

 

 차안에서 본 마이산 



천반산 고도표

천반산 지형도


2008/08/02 - 조선 태종도 이자리서 말의 귀를 닮은 산이라 하였을까?-진안 마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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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육신사의 도곡재. 하빈면 묘리 한옥전통마을 도곡재를 여행하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는 박팽년과 사육신을 모신 사당인 육신사가 있습니다. 또한, 보물 제554호로 지정된 달성 태고정은 박팽년의 손자인 일산이 창건하였으며 묘골은 순천박씨 한옥마을 집성촌입니다.






◆박팽년과 사육신을 모신 사당 육신사가 보고 싶다면

☞2016/03/29 - (대구여행/달성여행)사육신의 육신사. 단종복위 거사 실패와 계유정란인 세조의 왕권 찬탈에 끝까지 반대한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대구 달성 육신사 참배.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박팽년 등 사육신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모두 처참한 죽임을 당합니다. 박팽년의 후손은 이곳에 사당을 지어 매년 향사를 지내고 세거를 이루었습니다. 현재에도 순천박씨 종택 등 그 외 많은 전각이 남아 있습니다. 많은 한옥 건물 중에서 도곡재도 있습니다.

 



도곡재는 육신사 입구 오른쪽에 있습니다. 역시나 박팽년의 후손으로 조선시대 정조2년(1778년)에 대사성 서정공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지었던 건물입니다. 그리고 1800년대에 도곡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되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박종우는 인조 때의 문신으로 문장과 절의, 덕행에 능하여 동방의 일인자로 칭송받았던 인물입니다. 낙재 서사원을 사사하였고 병자호란에 참여하여 전사하였습니다. 도곡재 건물은 처음에는 앞면 4칸에 옆면 1칸으로 지어졌는데 뒤에 1칸의 퇴칸을 넣고 대청마루도 크게 넓혀 누각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남향을 보며 도곡재가 자리하고 그 오른쪽에 달린 중문을 들어서면 ‘ㄱ’ 형태의 안채와 고방채가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어 출입은 할 수 없습니다.




건물의 형태는 자연석 위에다 네모기둥을 세운 납도리 홑처마 팔작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일반적인 양반가옥을 잘 보여주는 사랑채 건물입니다. 1995년 5월에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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