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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남원여행)국보 10호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보물 40호 백장암 석등 여행


남원 백장암은 지리산 천왕봉의 서쪽 분지에 자리한 실상사의 부속암자입니다. 

실상사는 828년 통일신라인 흥덕돵 3년에 증각대사(홍척국사)가 선종9산중 실상산문을 열면서 창건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장암은 원래 백장사로 불렸다 하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백장암 석등 백장암 주소: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산 28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백장암 석등 백장암 전화:063-636-3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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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9년(숙종5)에 일어난 화재로 불탔으나 백장사 복구보다는 실상사를 재건하면서 백장사는 작은 건물을 짓고 백장암으로 사격을 낮추었습니다. 

불타기 전의 백장사 터는 협소했지만, 규모가 그래도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868년(고종5)에도 불이 나자 그 이듬해 운월대사가 지금의 장소로 옮겨 세웠습니다. 

1901년(광무4) 또다시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이듬해 완종, 환월, 월허, 영담 스님 등이 다시 세웠습니다.

 


1910년에 건립된 목조 맞배지붕의 광명전과 1972년 지웅선사가 증축한 선실이 있으며 오늘날에는 백장선원을 운영하여 여러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백장암 삼층석탑은 당시 백장암 남쪽 아래 밭떼기에 석등과 함께 있었습니다. 

원래 석탑이 세워졌던 곳으로 보이며 그 북쪽에 금당 터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다 대웅전을 복원하고 삼층석탑과 석등 주위에 잔디를 깔아 놓았습니다. 

백장암 삼층석탑은 특이하게도 낮은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입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은 위로 올라갈수록 석탑의 너비와 높이가 줄어 드는데 백장암 삼층석탑은 너비가 거의 줄지 않으며 2층과 3층 탑신의 높이도 엇비슷합니다.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두툼하고 한 단이며 연꽃무늬를 조각했으나 3층만은 삼존상을 새겨 놓았습니다. 

이는 당시 석탑 양식에서 많이 벗어난다 하겠습니다. 

기단과 탑신 전체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조각하였으며 지붕돌에까지 다양한 조각을 새겼습니다. 

기단과 탑신 괴임에는 난간 모양을 새겨 한결 멋을 더했습니다.

 


실상사 벡장암 삼층석탑 국보 제10호



1층의 탑신 각 면에는 사천왕상과 신장상 2구씩을 조각했으며 2층의 각면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상 2구씩을 그리고 3층의 각면에는 천인좌상 1구씩을 새겼습니다. 

저도 많은 석탑을 보러 다녔고 국보를 만났지만, 백장암 삼층석탑 만큼 화려한 석탑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차로 올라왔지만 진짜 꼬불꼬불 험한 산길을 올라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백장암 석등은 어둠을 밝힐 대 사용하는 석물입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석등은 “중생의 마음에 불법을 밝힌다”라는 신앙적 의미를 가지며 석탑 앞에다 세웁니다. 

백장암 석등 또한 불을 밝혀 어두운 곳을 환하게 한다는 의미보다는 사바세계의 중생을 불법으로 인도한다는 그런 뜻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석등이 없는 절집은 없습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온 석등도 있지만, 최근에 새로 세운 석등도 있습니다. 

그 의미는 모두 똑같습니다, 

이번에 지리산여행을 하면서 보물 제40호인 백장암 석등을 만나고 왔습니다. 

석등은 상대석·중대석·하대석으로 구분합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지붕돌과 함께 상대석을 말합니다. 

화사석을 받치는 기둥인 간주석이 중대석이며 기둥을 받치는 연꽃무늬 받침돌이 하대석입니다. 

백장암 석등은 화사석 밑으로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인 보주를 얹었습니다.

 





석등을 바치는 간주석은 팔각의 기둥으로 되었으며 아래와 위 받침돌에는 한 겹으로 된 8장의 연꽃잎을 서로 대칭 하도록 조각했습니다. 

위 받침은 연꽃잎이 위로 향한 앙련이며 아래 받침돌은 연꽃잎이 밑으로 보는 복련 입니다.

 







석등의 높이는 2.5m이며 팔각형의 화사석은 네 면에 네모진 창을 내어 불빛이 새어나오도록 했습니다. 

화사석을 받치는 팔각의 간주석과 지붕돌은 아무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간결하게 처리했으며 머리장식인 연꽃봉오리 모양의 보주가 큼지막하게 있었으나 지금은 분실하고 없습니다.

 







백장암 석등의 지붕돌은 간결하며 평평하게 처리한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등 양식입니다. 

또한, 석등의 각 부분은 팔각형으로 만들었으며 연꽃과 난간을 새긴 기법이 백장암 삼층석탑과 같은 조각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보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백장암의 삼층석탑과 석등이 이리 처참하게 파괴된 것은 1980년 2월2일 새벽에 일어난 문화재 도벌꾼에 의해서입니다. 

이들은 기단부를 제외한 2층과 3층의 탑신과 지붕돌인 옥개석 전체를 밀어 넘어뜨려 산산조각내었는데 그때 백장암 삼층석탑은 처참할 정도로 파괴되었습니다.

 

실상사 백장암 석등 보물 제40호



상륜부의 보륜도 3개 중 2개가 깨졌으며 백장암 석등도 마찬가지로 넘어뜨려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나 백장암 석등은 1989년 10월5일 또다시 절도범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지붕돌 위의 보주인 연꽃봉우리 모양의 장식은 도둑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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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의 세월을 이어온 백장암 삼층석탑과 백장암 석등은 인간의 무지한 탐욕으로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잘 관리하여 후대에 물려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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