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창녕 화왕산인 자하골 입구에 송현동 고분군이 있습니다. 

송현동 고분군을 끼고 미륵사란 작은 암자에 단청을 입힌 전각이 있으며 그 안에 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을 모셨습니다. 

미륵사란 명칭도 송현동마애여래좌상으로 인해 생긴 것 같습니다.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5-4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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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문을 살짝 열어보았습니다. 

정면에 꼭 반달을 닮은 둥근 바위에 단아한 모습의 마애불이 앉아 계셨습니다. 

이 마애불은 바위 면에다 바로 불상을 돋을새김 했으며 광배와 불상을 바치는 대좌는 따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로 추정되며 마애불의 높이는 1.37m입니다.

 


머리 정수리에 두툼하게 솟은 육계는 지혜를 상징하고 아주 드물게 2단이며 소발은 둥글고 아담하게 표현했습니다. 

손동작인 수인은 악마을 항복시키는 항마촉지인이며 볼록한 뺨과 크지 않은 코, 작은 입, 어깨까지 내려온 귀는 부드럽고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 줍니다.




어깨는 넓으나 가슴은 두텁지 않으며 가부좌하여 앉은 하체는 안정감이 돋보이며 조금 크게 표현했습니다. 

창녕송현동마애여래좌상은 자세와 얼굴의 표현, 한쪽 어깨에 걸친 법의 모양을 보면 석굴암의 본존불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법의의 주름은 사실성이 떨어지고 가슴이 평평하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함이 빠진다는 느낌이며 석굴암 본존불과 같이 강력한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신라말에 제작된 불상양식입니다.(참고:문화재 안내판)

 

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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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105-4 | 창녕송현동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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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nnpenn 2018.03.30 07:13 신고

    편안하고 인자한 모습의 석불이네요.
    보물이라니 더욱 멋져 보입니다.

    오늘은 즐거운 금요일입니다.
    3월 마지막 주말을 잘 보내세요.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농산리 석불입상)과 행기숲


경상남도 거창군은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이며 또한, 너무 거창하다 해서 거창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무엇이 거창하냐고요? 거창은 거창한 볼거리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볼거리를 여행하기 위해서 수승대를 찾았습니다. 수승대에는 거창의 선비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거창문화유산여행 길이 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농산리 석조여래입상)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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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문화유산여행 길에는 소나무 숲과 월성계곡 그리고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옛 건축물이 대부분 차지하지만 유일하게 농산리 야산에는 숨은 석불이 있습니다. 이번에 거창여행 포스팅은 농산리 석조여래입상과 이웃한 월성계곡의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인 행기숲을 하겠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호에서 세련미와 수려한 조각 솜씨 등으로 문화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보물 제1436호로 승격 지정하였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석불로 천년의 세월을 이어오면서도 석불의 광배, 받침대인 연화대좌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졌는데 불상과 광배는 하나의 바위에 큰 자연석을 원뿔꼴로 다듬었고 또 한 개는 석조여래입상을 받치는 연꽃 대좌로 조각했습니다. 석불의 머리 부분은 높고 두툼한 상투 모양이며 얼굴은 둥글고 온화하고 옅은 미소를 띠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석불과 마주하면 당당한 모습에서 사내다운 풍모가 느껴집니다. 가슴과 유연한 어깨,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에 긴 다리, 얇은 옷자락 속에 보일 듯 말 듯 입체감의 드러난 몸매는 통일신라 시대의 뛰어난 불교 예술품입니다. 또한, 양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의 주름이 가슴 위로 U자형을 그리며 내려오다 허리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두 다리에서는 다시 밀착되어 작은 U자를, 종아리 부분에서는 큰 Y자로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양식의 불상을 인도의 우드야나(Udyana)왕 여래상형식이라 합니다. 이는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입적하고 성불하여 한때 33천 중 부처님의 네 번째 나라인 도리천에서 다시 태어나 어머니에게 설법하였다합니다. 그때 밧사(Batsa)국의 우드야나왕이 지상에 부처가 잠시라도 없는 것이 아쉬워 그 허전함을 달래려고 150cm 크기의 아담한 여래상을 만들어 공양한 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우드야나왕이 공양한 여래상이 최초로 만든 불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때 만든 여래상의 흘러내린 옷자락의 표현이 농산리 석불입상의 조각양식과 같아 우드야나왕 여래상형식이라 합니다. 이런 형태의 옷자락 표현은 통일신라 시대 불상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농산리 석불입상의 광배는 마멸이 심하지만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몸 전체를 감싼 형태입니다. 불상을 받치는 연꽃 좌대도 연꽃을 엎어 놓은 듯 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으로 심하게 마멸된 모습입니다.

 


두발은 불신과 따로 좌대위에 조각되어 있으며 마멸과 훼손이 심해 현재 왼쪽 발가락 일부만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광배의 오른쪽 끝부분은 깨어졌지만 하나의 돌에다 광배와 부처를 함께 조각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은 배 모양인 주형거신광으로 마멸과 손상은 심하지만,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큰 규모의 불상에다 정제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등 그 수가 많지 않은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과 이웃한 월성계곡에는 적송의 소나무 숲이 계곡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이며 정말 그림같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곳 행기숲에는 백제 무왕이 왕자 시절에 신라로 숨어들어 선화공주를 꾀어 백제로 돌아간 이야기가 전합니다.



월성계곡 행기숲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서동은 신라의 서라벌에서 서동요를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였고 나중에 선화공주와 함께 백제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인 월성계곡에 다다라 이곳의 빼어난 경관에 그만 넋을 잃고서 피로도 풀고 며칠 쉬어 갔다고 합니다. 행기숲은 서동과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의 로맨스만 있는 게 아닙니다.

 





행기 숲을 해인정(解印亭)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신라 말기에 고려의 침공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였습니다. 경순왕은 후백제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급하게 사신을 꾸려 보냈습니다. 사신이 이곳에 다다랐을 때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해 나라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신임을 증명하는 신표인 인장을 이곳에다 숨기고 종적을 감추었다 합니다. 해인(解印)은 인장을 싼 보따리를 풀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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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 농산리 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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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구황동 모전석탑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설의 사찰인 도림사가 구황동 모전석탑지.  


이번 경주 여행은 폐사지입니다. 황룡사지, 사천왕사지 등 폐사지라도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지를 뜻하는 감투(?)를 하나쯤 모두 쓰고 있는데 구황동 폐사지는 많은 부재가 남아 있음에도 문화재 지정 타이틀이 없이 그저 울타리만 둘려 잡초더미에 묻혀 있습니다. 이곳은 분황사와 황룡사지에서 도로 하나를 두고 있는 폐사지입니다. 사찰의 이름을 확인할 길이 없어서인지 모르지만, 동네 이름을 따와 구황동 모전 석탑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구황동 모전석탑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2016/11/10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여행. 가보지 않아도 가본것 같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석정, 화쟁국사비부, 보광전의 약사여래입상을 만나다.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아니 사실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찰 이름을 비정할 수는 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면 현재 구황동 모전 석탑 지에서 일제강점기인 1930년경에 일본인이 ‘도림(道林)이란 기왓조각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추정해보면 도림사가 맞는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으며 삼국유사에 ‘도림사는 입도림 곁에 있었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는 신라의 수도 즉 서라벌 입구에 자리했던 절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구황동 모전 석탑지가 도림사 폐사지가 맞다면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옵니다. 무엇이 재미있냐고요? 모두 아시는 이야기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신라 48대 왕은 경문왕입니다. 경문왕 때의 이야기입니다. 경문왕은 어느 날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더니 자신의 귀가 당나귀 귀와 같이 길어져 있었습니다. 왕은 깜짝 놀라 큰일 났다며 좌불안석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당나귀 귀같이 귀가 길다는 비밀은 왕후와 신하들 모두에게도 비밀로 하였지만, 자신의 왕관을 만드는 사람인 복두장에게 만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경문왕은 복두장에게 만약에 비밀을 발설하면 죽음뿐이라고 입단속을 시켰습니다. 하하 그리고 보면 사람이란 남이 모르는 비밀을 자신만 알고 있다면 입이 얼마나 근질근질 했겠습니까.

 


그것도 임금님 귀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요즘 같으면 ’특종‘감인데 말입니다. 아마 복두장이는 그 비밀을 말하고 싶어 제 명에 못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복두장이는 시름시름 몸을 앓았고 죽기 전에 비밀을 다 털고 갈 욕심에 도림사의 대나무 숲에서 “우리 임금님은 당나귀 귀”하며 큰소리로 외쳤고 복두장이는 죽었습니다. 그 후 바람만 불면 도림사 대나무 숲에서는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며 복두장이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경문왕은 큰일 났다며 사람을 시켜 도림사의 대나무숲을 모두 베게 하고 산수유를 심게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하며 소리가 났다 합니다. 이게 실제 사실이라면 경문왕은 황당해 했겠습니다.

 


모두 초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재미있게 들었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전설의 실제 도림사라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느낌입니다. 구황동 모전 석탑 지가 도림사였다 생각하니 어디선가 갑자기 복두장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곳 구황동 모전 석탑지의 남아 있는 부재를 보면 통일신라 시대 모전 석탑 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전 석탑은 중국의 벽돌탑을 모방하여 만든 탑이라 하여 모전 석탑 또는 전탑이라 하며 남은 부재로 짐작해보면 분황사 모전 석탑과 같은 형태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허물어져 산산이 조각났지만 남·북 감실의 돌기둥 2쌍만은 그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돌기둥이 배치된 모양으로 짐작해보면 탑은 정사각형이며 한 변의 길이가 4.5m쯤 되는 크기입니다.



이는 한 변이 13m인 분황사보다는 크기 면에서 아주 작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1층 탑신의 사면에다 감실을 넣고 사방불을 모신 형식이며 돌기둥에는 사천왕인 인왕상을 조각했는데 그 섬세함이 통일신라 조각 기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출토된 한 쌍의 인왕상 돌기둥은 금강역사상으로 국립경주박물관 고분관 입구에다 배치해 놓았다 합니다. 그러나 구황동 모전 석탑지의 부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게 화강암 석탑의 지붕돌인 옥개석과 탑신을 바쳤던 지대석입니다. 이를 보면 모전 석탑에 의문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저는 사학자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구황동 모전 석탑지에 남아 있는 부재인 인왕상 돌기둥 등을 보면 모전 석탑임이 틀림없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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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구황동 모전석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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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11.14 11:44 신고

    전설이 있는곳이로군요
    그래도 관리한 흔적은 보입니다
    찾아 봐야겠군요^^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황복사지 삼층석탑. 신문왕의 명복을 빌며 세웠다는 국보 제37호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만나다. 


황복사는 의상대사가 653년에 19세에 출가했던 곳으로 통일신라 효소왕이 부왕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모후인 신목태후와 함께 692년 7월 2일에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석탑은 이중의 기단 위에 쌓은 삼층의 석탑으로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 통일신라 석탑이며 국보 제37호로 지정하였습니다.





황복사지 3층석탑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103


2016/10/31 - (경주여행)신라 27대 선덕여왕릉.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낭산 도리천의 선덕여왕릉 여행과 세가지 예지력.

2016/10/29 - (경주여행)신라 26대 진평왕릉. 천년 세월을 말해주는 듯 웅장한 노거수에 마음까지 편안한 경주 진평왕릉 여행. 진평왕릉

2016/10/28 - (경주여행)경주보문사지 당간지주. 통일신라 경주보문사지 당간지주를 만나다.

2016/10/26 - (경주여행)경주 보문사지 석조. 보물 제64호 절에서 물을 담아두는 돌그릇인 경주 보문사지 석조를 만나다. 경주보문사지석조

2016/10/24 - (경주여행)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분황사 당간지주로 추정되는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를 여행하다.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2016/10/23 - (경주여행)전 홍유후 설총묘. 원효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던 신라 대문장가 설총묘 여행. 설총묘

2016/10/21 - (경주여행)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 황금들판의 보문들을 지키는 화려한 허수아비 경주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를 여행하다.



 

석탑의 높이는 7.3m로 당시 성행했던 고선사지 삼층석탑과 감은사지 삼층석탑보다 약 2m 정도 규모 면에서 작게 바뀌었습니다. 또한, 기단부의 하단 버팀 기둥인 탱주는 3개였던 개 가운데 기둥이 없이 2개이며 면석과 갑석은 각각 8매의 갑석으로 짜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상단의 면석은 8매에 갑석은 4매로 이것 또한, 차츰 간소하게 바뀌었습니다.

 

 

 

 

 

 

 

 

 이와 함께 1층의 몸돌은 이때까지 여러 개의 돌을 짜 맞추었다면 황복사지 삼층석탑은 하나의 몸돌을 사용했습니다.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5개 그대로이며 위층의 몸돌을 받치는 지붕돌의 상단은 2단의 각형 굄대로 아직은 신라 석탑양식이 많이 남아 있는 통일신라 석탑입니다. 이는 신라 시대 석탑양식에서 통일신라의 변화된 석탑양식의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석탑으로 보입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의 복장유물로는 금동사리함과 높이 12.2cm 금동여래좌상, 높이 14cm 여래입상이 있습니다. 이는 효소왕의 아들인 성덕왕이 신문왕과 효소왕의 두 선대 왕의 명복을 빌며 삼층석탑에 안치했는데 1943년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이 두 불상은 국보 제79호와 국보 제80호에 각각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입니다.

 

 

 

 

 

 

순금의 금동사리함 뚜껑 안쪽에는 효소왕이 부왕인 신문왕의 극락왕생을 빌고자 692년 이 탑을 세웠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합니다. 탑을 세운 목적과 건립연대가 뚜렷하게 나온 석탑입니다. 필자는 경주여행에서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마지막으로 보고 왔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져 바쁘게 설치다 보니 석탑 주변에 절반가량이 땅에 묻힌 목이 잘린 귀부 2개를 보지 못하고 왔는데 그 귀부의 등에 ‘임금 왕(王)’ 자가 새겨져 있다 합니다. 또한, 북쪽 밭에는 이곳에서 나왔던 12지신상을 한곳에다 파묻었다 하는데 어떤 모습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 번 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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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구황동 | 황복사지3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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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스델 ♥ 2016.11.01 10:24 신고

    국보 제 37호 황복사지 삼층석탑은
    탑을 세운 목적과 건립연대가 뚜렷하게
    나온 석탑이군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2. 드래곤포토 2016.11.01 22:37 신고

    귀한 사진 잘보고 갑니다
    좋은시간되세요

  3. *저녁노을* 2016.11.02 05:53 신고

    국보..구경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11월 맞이하세요^^

  4. 핑구야 날자 2016.11.02 07:29 신고

    신문왕과 관계가 있다니 다시 보게 되네요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전 홍유후 설총묘. 원효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던 신라 대문장가 설총묘 여행. 


경주 보문동에 설총묘가 있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설총하면 신라 중대 문장가로 알려졌지만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원효대사이며 어머니가 요석공주로 두 분 사이에 태어났다는 것이 더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보면 뼈대 있는 신라 왕족 집안입니다. 외할아버지가 삼국통일을 이룩한 태종무열왕 김춘추이며 친할아버지는 나마담날로 설총은 경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경주설씨와 순창설씨의 중시조이며 신라 10현이자 고운 최치원과 강수와 함께 신라 3문장 가로 꼽고 있습니다.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일화를 보면 출가한 요석공주는 과부가 되어 다시 궁궐로 들어와 요석궁에 머물렀습니다.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긴 행로로 몸도 피곤하고 하여 동굴인 줄 알고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잠을 자다 원효는 목이 말라 주위를 더듬다가 마침 손에 잡히는 바가지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 물 참 꿀맛이다”며 다시 곯아떨어졌는데 아침에 눈을 뜨고는 뒤로 까무러칠뻔했습니다. 목이 말아먹었던 그물은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이었으며 지난밤 단꿈에 쩔어 잤던 곳은 무덤 속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설총묘는 지금 이발중 ㅋㅋ



원효는 그곳에서 일체유심초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서라벌로 돌아와 노래를 불으며 민중 속을 파고드는 불법을 전합니다. 그러자 어느 날 원효는 색다른 노래를 부르고 다녔습니다.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허락하려느냐. 내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다듬고자 하는데 “하며 불렀지만 아무도 그 노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태종무열왕만은 노랫말을 듣고 “자기한테 여자를 주면 뛰어난 현자를 낳게 하겠다”는 뜻으로 단박에 이해하고는 과부로 있는 자신의 딸인 요석공주와 맺어줄 묘책을 짜냅니다. 원효는 김춘추가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궁궐로 향하다가 그만 문천교에서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는 바람에 입고 있던 옷이 다 젖게 되었습니다. 태종무열왕과 원효는 서로 이심전심이듯이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원효와는 별 바쁜 일이 없던 관계로 태종무열왕은 온몸이 젖었는데라며 옷을 말린 후 내일 보자며 바로 원효를 요석궁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김춘추는 요석궁에서 옷만 말리라 했는데 그날 밤에 바로 사달이 났고 10개월 후에 설총이 태어났습니다. 원효는 이 일로 파계승을 자처합니다. 모든 이야기는 여기서 설하고 설총은 중국의 한자를 우리말로 표현하는 이두를 만들었습니다.



코끼리 다리를 닮은 설총묘 석상다리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인 소리와 뜻을 새겨 우리말로 적은 것을 말합니다. 유교 경전도 우리말로 풀이하여 고려 중기까지 사용했으며 이두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전까지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설총이 저술한 우화적 단편 산문인 화왕계도 있습니다. 제목도 없이 삼국사기에 실렸다가 풍왕서란 이름으로 동문선에도 실렸으며 후대에서 화왕계로 불렀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외삼촌인 신문왕이 설총에게 마음이 울적한데 이를 풀 수 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설총은 향락을 멀리하고 도덕을 엄격히 할 것을 우화를 통해서 이야기합니다.

 


신문왕은 현명한 임금답게 글로 남겨 후세 임금은 모두 이를 본받도록 했습니다. 1022년인 고려 현종 13년에 홍유후라는 시호를 추증받았으며 최치원과 함께 문묘에 배향되었고 1623년 조선 인조원년에 경주 서악서원에 제향 되었습니다 크기는 지름이 15m, 높이 7m이며 흙을 쌓아 올린 반구형으로 아랫부분에는 보호돌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봉분은 작지만 꼭 신라왕의 무덤 같으며 앞에는 큰 상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돌로 위패를 모시는 자리는 흡사 돌의자 같았습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30호이며 전 홍유후 설총묘(傳 弘儒侯 薛聰墓)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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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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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귀여운걸 2016.10.25 20:25 신고

    오호~ 설총묘에 대해 덕분에 잘 알게 되었고 관심이 생겼어요~
    저두 꼭 한번 직접 가서 살펴보아야겠네요^^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 황금들판의 보문들을 지키는 화려한 허수아비 경주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를 여행하다. 


경주여행은 참 볼거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볼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무궁한 역사를 가진 천년의 문화재입니다. 일반적으로 경주 여행하면 유명 순으로 여행하는 게 하나의 공식 아닌 공식이 되었습니다. 석굴암, 불국사 분황사, 첨성대니 국립경주박물관 경주최씨 고택 등 하면서 익히 알려지고 한 번씩 모두 들렀던 곳을 다시 여행할 때 계획을 세웁니다.







이번 경주여행에서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곳 보다는 덜 알려진 곳을 걸으면서 둘러보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주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입니다. 문화재 안내판에는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로 나와 있습니다. 이는 황금 들판으로 채워진 보문들 가운데에 보문사지가 있고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와 가까이 있기 때문으로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보문동 또는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는 보문사 옛터와 실제적으로 보면 꽤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당시 보문사 터의 규모를 대강 짐작해 볼 수도 있지만 또는 다른 절터가 있었던지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당간지주는 보통 절 입구에 세웁니다. 절에서 불교 의식을 행할 때 부처님이나 보살의 공덕을 기린다든지 마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달았던 당이라는 깃발을 다는 깃대를 말하는데 이를 당간이라 합니다.




연화문

당간지주는 당간을 세울 때 고정을 했던 돌기둥을 말합니다.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도 이런 맥락으로 세웠으며 보통 똑같은 크기로 밋밋한 형태의 두 기둥이 대부분인데 보문사지 당간지주는 지주 끝에다 화려한 연화문을 장식한 게 특이하고 이채롭습니다.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당간지주로 높이는 146cm이며 이는 아랫부분이 매몰되어 다른 당간지주에 비해 작아 보이고 간대나 기단부의 구조가 어떠했는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두 지주의 간격은 62cm이며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사찰 창건과 함께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간지주 안쪽 면의 윗부분에는 너비 13cm의 크기로 구멍이 있는데 이는 당간을 고정했던 장식으로 보입니다. 또한, 당간지주의 양쪽 바깥 면의 윗부분에는 동그란 원안에다 지름 47cm의 팔엽연화문을 화려한 조각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제작연대는 8세기 중엽 이후로 추정하며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여러 개의 당간지주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합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말해 이 보문동(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의 소속 사찰은 인근의 보문사에서 세웠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경주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 보물 제910호, 

경주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7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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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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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도나그네 2016.10.21 16:31 신고

    경주의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가 황금벌판 들녁의
    가운데 외로히 서 있었군요..
    그래도 이렇게 가끔식 찾는 사람이있어 다행이기도 하구요..
    덕분에 좋은곳 소개 잘알고 갑니다..

  2. 핑구야 날자 2016.10.22 08:11 신고

    보문단지는 정말 많이 들어보핬는데 이렇게 소개로 처음 보게 되는군요

  3. 공수래공수거 2016.10.22 09:09 신고

    당간지주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한번 가 봐야겠군요^^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에밀레종, 성덕대왕신종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다.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

종을 치면 소리가 “에밀레 에밀레” 하며 꼭 어린이가 엄마를 부르는 듯해 그 종을 사람들은 에밀레종이라 불렀습니다. 이종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있으며 처음에는 봉덕사에 있어 봉덕사 종이라고도하고 성덕대왕 신종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2016/10/14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 최치원의 사산비명 비석 귀부였던 국립경주박물관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을 보다

2016/10/13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불두(부처머리). 1959년 사하라 태풍의 선물(?)이라는 경주 남산 철와골에서 발견된 초대형 불두를 경주 박물관에서 보다.

2016/10/12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장항리 석조불입상. 도굴꾼에 의해 다이너마이트로 파괴된 장항리 석조불입상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복원된 상태로 만나다.

2016/06/07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국보 제38호 고선사지 삼층석탑. 덕동호로 수몰된 고선사터 삼층석탑과 비석받침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경덕왕은 부왕인 성덕대왕의 생전 공덕을 기리고자 봉덕사에다 종을 만들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봉덕사신종은 그의 아들인 771년 혜공왕 때에 완성하는데 그게 성덕대왕신종입니다. 성덕대왕신종인 에밀레종은 종을 주조할 때 시주해온 어린아이를 종과 함께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성덕대왕신종


그 전설을 보면 경덕왕은 봉은사에 종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봉은사로 달려갔지만, 그때마다 종소리는 맑지 못하고 둔탁하며 깨지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내었습니다. 경덕왕은 실망하였고 주지 스님은 우리의 정성이 부족하여 그렇다며 열성을 다하여 시주해올 것을 스님들에게 당부합니다. 경덕왕은 봉덕사 스님에게 정성을 다하여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당시 신라 백성들은 삶은 궁핍하여 매일 끼니 걱정을 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입에 풀칠할 건더기도 없는 생활이었는데 하루는 주지 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한 농가에 찾아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주지 스님이 직접 시주를 받으러 왔는데 시주할게 없는 게 미안하여 “우리 집에서는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저 아이밖에 없습니다. 저 애라도 필요하시다면…….” 하면서 말끝을 흐렸습니다.


 

비천상

 

주지 스님은 깜짝 놀라며 “아이를 어찌 시주로 받습니까?” 하면서 돌아 나왔습니다. 그날 밤 주지 스님의 꿈에 “봉덕사의 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가 필요하다”는 생생한 울림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잠을 깨었습니다. 고심 끝에 스님은 여인의 집으로 찾아가 그 아이를 시주로 받아 갈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여인은 깜짝 놀라며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를 시주로 내어놓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다 부처님 뜻”이라며 합장을 하고 아이와 함께 돌아 나왔습니다. 그 뒤 봉덕사에는 새로운 종을 만들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아이를 넣어 종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혜공왕은 물론이며 경주의 모든 백성이 종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알고 종소리를 들으려고 봉은사로 달려왔습니다. 왕과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스님은 종을 힘차게 쳤습니다.


 




그런데 청아한 어린이의 목소리가 엄마를 간절하게 부르는 듯 “에밀레, 에밀레” 하며 종은 슬픈 소리를 내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소리를 듣고 아이가 엄마를 애타게 부른다며 ‘에밀레종’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는 게 교리입니다. 그래서 에밀레종을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종의 성분을 조사하였는데 뜻밖에도 사람의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고 아이를 넣어 만들었다는 에밀레종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혀졌습니다. 아마 성덕대왕신종의 신비로움을 강조한 게 아닌지 싶습니다.

 

용뉴와 음통





에밀레종의 크기를 보면 어마어마합니다. 높이가 333cm, 종구 너비는 227cm, 무게가 18.9톤의 초대형 종으로 국보제29호 지정 되었습니다. 또한, 종의 표면을 조각한 무늬를 보면 위쪽에는 보상화무늬와 모란당초무늬를 띠 모양으로 둘렀고 종신에는 4개의 유곽이 있으며 그 유곽안에는 각각 9개로 다 합쳐 36개의 유두가 있습니다. 흔히 유두는 연꽃봉우리와 비슷하여 연뢰라고도 합니다. 종을 치는 부분에는 두 개의 연화 당좌를, 또한 종신 가운데에는 손잡이가 달린 향로를 받쳐 들은 4구의 비천상은 연화좌위에 무릎을 꿇어 앉고 공양을 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비천상의 대표라 할 만큼 아름답습니다. 성덕대왕의 극락왕생을 나타내는 듯한 비천상은 더욱 아름답고 정교한 모습을 하여 성덕대왕신종의 의미를 말하는듯합니다. 우리나라 사찰의 종은 불교를 의미하는 범자와 합해 범종이라 합니다. 범종의 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을 비유하며 종소리를 들으면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던 중생까지도 모두 구제받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종하면 한자로 쇠 금(金) 자와 아이 동(童)자를 합해 일반적으로 종(鐘)자를 쓰며 이는 중국과 일본의 종에 사용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종은 쇠 금에 무거울 중(重 )짜가 합해진 새벽종·쇠북종(鍾)자입니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종은 우리 종과는 많이 다른데 종을 매다는 용뉴는 중국은 머리 둘 달린 용이라면 우리 종은 한 마리의 용이 머리와 다리를 힘차게 뻗치고 있는 형태입니다. 또한, 우리 종의 특징은 일본과 중국에는 없는 음통이 용뉴 옆에 붙어 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은 상원사동종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범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빠트릴 수 없는 성덕대왕신종을 경주여행에서 만나보고 에밀레종의 의미도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에밀레, 에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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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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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6.10.17 08:15 신고

    성덕대완신종의 소리를 한번 들어보고 싶군요. 정말 역사첵속의 소리와 같은지.,,,.

  2. 공수래공수거 2016.10.17 11:47 신고

    에밀레종을 보고 온지도 한참 되었네요
    조만간 보러가야 할것 같습니다

  3. 솜다리™ 2016.10.17 17:29 신고

    제이름에 '종'자가 새벽종자인데...
    요즘 옥편에는 쇠북종으로 되어 있더라구요..

    글고 에밀레종 아래 지지대...
    왠지 낯설어 뵈는군요..

  4. 멜로요우 2016.10.17 22:00 신고

    아이를 넣어 만들었다는 설은 사실이 아니였네요!! 저도 그거 듣고 충격을 받았는데.. 다행입니다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국립경주박물관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 최치원의 사산비명 비석 귀부였던 국립경주박물관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을 보다


경주여행에서 야외박물관이라는 경주 남산과 국립경주박물관을 보지 않고는 경주를 보고 왔다는 말을 하지 말아라 합니다. 그만큼 경주 남산과 경주박물관에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습니다. 특히 국립경주박물관의 야외 전시장은 경주 시내에 흩어져 있던 많은 문화재가 관리 소홀로 도굴될까 싶어 옮겨 놓았는데 그 많은 석물 하나하나가 사연과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2016/10/13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불두(부처머리). 1959년 사하라 태풍의 선물(?)이라는 경주 남산 철와골에서 발견된 초대형 불두를 경주 박물관에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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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7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국보 제38호 고선사지 삼층석탑. 덕동호로 수몰된 고선사터 삼층석탑과 비석받침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2016/06/10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과 석조관음보살입상. 경주 중생사에서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과 국립경주박물관의 석조관음보살입상을 만나다.




경주 철와골 불두(부처머리), 경주 장항리 석조불입상, 경주 중생사 관음보살 입상 등 보면 볼수록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문화재입니다. 이번에는 국립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 인근에 안치된 경주 숭복사 쌍거북 비석 받침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귀부인 거북받침은 많이 봤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쌍거북를 비석 받침으로 사용한 게 별로 없었습니다. 창림사지와 무장사지, 법광사지 등 겨우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온전한 형태가 이곳 숭복사 쌍거북 비석 받침이라 합니다. 먼저 숭복사 쌍거북 비석 받침이 발견된 숭복사지가 궁금합니다. 삼국유사를 보면 “원성왕의 능은 토함산 서동 곡사(숭복사)에 있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를 보면 숭복사는 원성왕의 명복을 빌었던 원찰입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최치원이 지었다는 사산비명의 탑비가 있었던 곳으로 그 최치원의 사산비명의 비석이 숭복사 쌍거북을 귀부로 사용했다 합니다.



왜! 귀부로 쌍거북을 받침으로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창림사와 무장사, 숭림사는 모두 신라왕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던 사찰입니다. 창림사는 박혁거세가 신라 최초 궁궐터로 삼았던 곳이며 무장사는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하고 ‘이제 전쟁은 끝났다’며 모든 병기를 숨겼던 곳입니다. 896년 신라 진성왕 10년에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을 썼다는 사산비명은 국보 제47호인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 국보제 315호 희양산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국보 제8호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와 이곳 ‘신라초월산대숭복사비’입니다. 사산비명중 유일하게 파손되어 비석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거북받침인 귀부와 반 토막 난 이수만 일제 강점기인 1930년경에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져 왔다고 하며 현재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라초월산대숭복사비'도 현재까지 남아 있었다면 다른 사산비명과 함께 국보가 되는 것은 떼 놓은 당상인데 정말 아깝습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인지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에 최치원의 유일했던 사산비명을 숭복사지에다 새로 세웠습니다. 쌍거북인 귀부와 비문과 비신, 이수를 복원하여 세웠는데 비문의 글자체는 쌍계사의 진감국사 비문을 집자하였고 이수 또한 진감국사 탑비의 이수와 똑같은 모습으로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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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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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6.10.15 07:37 신고

    예전에 살던 동네 거북 마을이 있었어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나는군요

  2. 공수래공수거 2016.10.15 08:49 신고

    이건 기억이 안 나는군요^^

  3. 드래곤포토 2016.10.15 19:03 신고

    귀한 유물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4. *저녁노을* 2016.10.16 07:28 신고

    ㅎㅎ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휴일되세요

  5. 2016.10.16 07:29

    비밀댓글입니다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국립경주박물관 불두(부처머리). 1959년 사라호 태풍의 선물(?)이라는 경주 남산 철와골에서 발견된 초대형 불두를 경주 박물관에서 보다. 


강한 태풍이 우리에게 큰 피해를 주지만 또한 더러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도 하고 갑니다.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중에서 우리 부모님 세대가 가장 끔찍했다 생각하는 태풍은 1959년 9월 17일 미명의 새벽에 한반도를 상륙한 사라호 태풍입니다. 최대풍속이 85m/s로 당시 사망과 실종자만 무려 849명과 이재민이 37만 명을 웃도는 한국 전쟁 이후 최대의 난리 아닌 난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라호도 큰 피해를 주고 가는 게 미안했던지 야외박물관이라는 경주 남산의 철와골에 대형 불두(부처 머리)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가버렸습니다.





 


이 부처 머리가 얼마나 큰지 높이는 153cm에 무게는 1.7톤으로 초대형 불두였습니다. 얼마나 크고 무거웠으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오는 것도 큰 문제였는데 군의 공병대까지 나서서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왔습니다. 불두를 자세히 보면 이목구비가 뚜렷한데 민머리에 틀어 올린 머리인 육계는 큼지막한 게 머리 위에 우뚝하고 이마에는 백호를 돋을새김했습니다. 또한, 반원형의 눈썹 하며 도톰한 눈두덩을 보면 마음씨 좋은 우리 옆집 아저씨의 모습입니다. 아쉽게도 오뚝했을 코는 사라호 태풍 때문인지 깨어졌으며 두툼한 입술은 옅은 미소가 베어져 나옵니다. 불두의 크기만으로도 석불상의 전체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입상이라면 10m 이상의 석불 상일 것이며 좌상이라도 최소한 6m 이상의 크기라야만 비례가 맞습니다.


 


그러나 철와골의 그 어느 곳에서도 이 불두를 지탱할만한 몸체를 찾을 수 없었다 합니다. 태풍에 의해 이곳으로 공중부양해서 떨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그럼 과연 이 불두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추정을 하면 경주 남산의 열암골 마애불이 그 좋은 예입니다. 열암골 불상의 비례는 불두만 1/4인 4등신에 전체 높이는 460cm입니다. 즉 기도자의 시선을 고려하여 이목구비가 선명하며 뚜렷한 부처님의 머리를 크고 잘 보이도록 하고자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인자한 얼굴이 기도하는 사람에게 가까이서 보인다면 더욱 숭배심이 생긴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뜻으로서 철와골의 부처가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 철와골에는 이 불두를 받칠만한 크기의 몸체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 경주남산의 미스터리 중 하나입니다. 사고 만 치고 가는 게 미안해서 아마 사라호 태풍이 선물한 게 아닌지 싶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대형 불두 발견한 곳: 경주남산 철와골

경주 남산 철와골 불두 제작시기: 통일신라 8세기 말에서 ~9세기초


★국립경주박물관 주소: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전화: 054-740-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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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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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nnpenn 2016.10.13 07:23 신고

    사하라 태풍 때 이런 거대한 불두가 발견되었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공감을 누르려니 <비정상적인 접근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떠면서 클릭이 안되는 현상을 처음 접합니다.
    참 이상하군요.

    날씨가 참 좋군요.
    목요일을 멋지게 보내세요.

  2. 핑구야 날자 2016.10.13 08:13 신고

    경주에는 딱 1번 가봤는데 ㅋㅋ 박물관은 못가봤네요

  3. 공수래공수거 2016.10.13 10:08 신고

    정말 신기한 일이로군요^^

  4. 에스델 ♥ 2016.10.13 10:26 신고

    무게가 1.7톤이라니~
    정말 엄청난 크기의 불두네요.
    태풍으로 인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

  5. 솜다리™ 2016.10.13 11:17 신고

    이런 크기의 불상이 발견되지 않다가... 사하라태풍때문에 발견되었다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국립경주박물관 장항리 석조불입상. 도굴꾼에 의해 다이너마이트로 파괴된 장항리 석조불입상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복원된 상태로 만나다. 


국립경주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 야외에 전시된 많은 불교 문화재가 있습니다. 통일 신라 불교예술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석불과 석탑 석등 등 수많은 석물의 부재를 전시 중인데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상반신의 석불입상이 있습니다. 모습은 세월에 치여서 그런지 광배가 이리 깨어지고 저리 깨어지고 해 온전한 모습이 아닌데 실제로 조각 조각난 불상을 외과 수술로 봉합하여 지금은 흉물스러운 옛 모습은 사라지고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를 가득 담은 온전한 불상이 되었습니다.







아마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석상이며 일반 화강암과도 바위 색상이 틀려 보여 일반 석불이 황인종 부처님이라면 꼭 백인종 부처님일 정도로 전체적인 느낌이 특이한 모습입니다. 장항리 절터에서 옮겨온 석불은 이목구비가 너무나 뚜렷한 호남형의 불상으로 경주 양북면의 토함산 자락에 있었습니다.



 경주 장항리 사지는 사적 제45호로 지정되었으며 앞에서도 말했지만, 토함산에서 동쪽 사면으로 흘러내린 두 개의 계곡이 서로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두 계곡의 물은 대종천을 따라 감은사지 앞과 이견대를 지나 대왕암이 있는 동해로 흘러갑니다. 현재까지 절터의 이름은 확인된 바 없으며 그곳 동네 장항리의 이름을 따 장항리 사지로 부릅니다.



일제강점기 때 욕심 많은 도굴범이 무엇을 훔쳐가기 위함인지 모르지만, 다이너마이트로 처참하게 폭파해 버렸다 합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현재 장항리 동·서탑과 좌대 등이 일부 남아 있습니다. 그중 서탑인 경주장항리오층석탑은 1987년 3월 국보 제23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서탑과 비교하면 동탑은 기단부가 남아 있지 않으며 파손상태가 심해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두 탑의 몸돌에 조각된 인왕상 조각은 매우 우수한 조각가의 섬세한 솜씨가 돋보이는 석탑입니다. 그와 함께 규모가 아주 큰 좌대가 인상적인데. 아래·위 2단입니다. 복련과 앙련의 연화 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진 상단과 그 아래 하단인 중대석은 8면에다 창문 모양의 안상을 만들었으며 4면에는 동물을, 또 다른 4면은 신장상을 조각하였습니다.



대강 짐작해도 이정도의 대좌라면 불상의 규모가 아주 큰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곳에 안치되었던 불상이 파괴되어 뒹굴던 것을 수습하여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갔습니다. 장항리 석조불 입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 경주국립박물관. 장항리석조불 입상은 높이 2.5m이며 통일신라 8세기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왜 하반신이 없는 상반신만 된 석조불상을 입불상이라 부르는지는 대좌에 남아 있는 불상을 세울 때 사용하는 촉구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석조불 입상의 전체적인 크기는 4.8m로 추정하는데 옛날의 척도를 보면 그 높이가 1장 6척입니다. 아주 큰 불상에 속하는데 이는 불교 경전에 석가모니 부처의 키가 1장 6척이라 하는데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배는 부처님의 몸에서 빛을 발하는 듯 불꽃형상과 작은 부처님 등 하나의 섬세한 예술작품을 만나는 듯합니다. 지금의 모습은 깨어진 불상 조각을 하나하나를 시멘트나 접착제로 붙였으며 부족한 부분은 장항리 절터 주위에 있는 똑같은 바위를 찾아내어 복원하여 마감재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장항리석조불 입상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석굴암의 본존불과 매우 유사합니다. 위엄 있는 표정에다 풍만하고 건강한 신체하며 사실적으로 나타낸 옷 주름 등의 조각수법에서 석굴암의 본존불과 같은 시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보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 중인 여러 불상 중에서 유독 돋보이는 부처인 장항리 석조불입상은 처참할 정도로 파괴된 상태라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통일신라 예술의 가치를 충분히 느끼고 볼 수 있는 불입상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주소: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전화:054-740-7500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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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장항리석조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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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6.10.12 08:11 신고

    도굴범들은 빨리 잡았으면 좋겠네요~ 복원이 되어 다행이군요

  2. 공수래공수거 2016.10.12 09:47 신고

    내년에는 경주 답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때 들러 보아야 할것 같네요^^

  3. 공수래공수거 2016.10.12 09:47 신고

    내년에는 경주 답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때 들러 보아야 할것 같네요^^

  4. 공수래공수거 2016.10.12 09:47 신고

    내년에는 경주 답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때 들러 보아야 할것 같네요^^

  5. 에스델 ♥ 2016.10.12 10:18 신고

    심각하게 파손된 상태로 인해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것이
    아쉽지만 섬세한 조각이 아름답습니다.^^




 

(포항여행/포항기볼만한곳)오어사. 포항에서 가볼만한 산사 운제산 오어사 여행.


포항 운제산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천 년도 훨씬 넘은 고찰로 자장율사에 의해 창간되었다 합니다. 처음에는 창건과 함께 항사사라 불렀습니다. 오어사의 사찰명에서 재미있는 전설이 삼국유사 제4권 의해편에 전합니다.





☞2016/09/30 - (포항여행/포항가볼만한곳)포항 운제산 오어사 자장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는 운제산 오어사 자장암 절집구경. 자장암

2016/09/27 - (포항여행)운제산 오어사. 1300여년전 원효대사께서 쓰든 삿갓과 보물 제1280호 오어사 동종을 포항 오어사에서 만나다.




그 내용을 보면 혜공대사와 원효대사가 이곳 운제산에서 수행한 일화입니다. 혜공은 지금의 오어사인 항사사에 머물었으며 원효대사는 산자락에다 초막을 짓고 수행에 정진했습니다. 그 당시 혜공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전업을 잇는 유학을 다녀와 70여 명의 대중을 모아놓고 이곳 항사사에서 불법을 전하며 지냈습니다.




혜공은 원효가 중국으로 유학길에 오른다는 소문을 듣고 원효를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혜공은 원효에게 “먼 중국까지 가서 부처님의 대법을 깨우치려면 신통한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법력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자”며 제한을 합니다. 혜공의 제한은 기발하였고 원효도 당장 수긍하였습니다.

 


절 앞 계곡의 물고기를 가르치며 각각 물고기를 한 마리를 잡아 삼켜 대변을 본 뒤 살아서 움직이는 물고기를 이기는 거로 하자며 두 대사는 물속에 첨벙 뛰어들어 각각 산 물고기를 한 마리 잡아 삼켰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죽어서 나오고 한 마리는 힘차게 헤엄을 치고 노니는 것을 보고 두 대사가 서로 “저게 내 물고기다”라며 서로 자기 물고기가 살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뒤 항사사는 나오(吾)자에 고기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도력이 뛰어났던 두 고승도 내기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가 봅니다. 서로 내가 이겼다고 하니 말입니다.


오어사 대웅전


어찌했던 원효는 유학길에 두 번 올랐다가 한번은 고구려군에 잡혀 실패하고 한번은 의상과 함께 다시 당나라로 가던 중 동굴에서 잠을 자다 목이 말라 바가지에 든 물을 아주 맛있게 마셨는데 다음날 깨어나 지난밤 맛있게 먹었던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겼던 물임을 알고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닫고 그길로 유학길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갑니다.



두 고승이 머물렀다는 포항 운제산의 오어사는 자장과 의상대사 등 신라의 4대 성인이 수행한 사찰이며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도 이곳에서 머물렀습니다. 지금이야 주변에 포항제철 등이 들어서서 사람들로 붐비지만, 당시에는 아마 절해고도의 정적만 감돌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님들의 용맹정진하는 수행공간으로는 아주 좋았을 것이며 주변의 산세 또한, 금강산이 따로 없을 정도로 빼어나 스님의 수행장소로는 최적이었던 가 봅니다. 운제산의 산 이름도 참 예사롭지 않습니다.



현재 오어사가 있는 주변을 보면 바위봉우리가 병풍같이 둘러졌는데 원효와 의상대사는 오어사가 마주 보는 계곡 건너 벼랑에서, 자장과 혜공은 지금의 자장암이 있는 바위벼랑 꼭대기에서 각각 수행하였고 이들은 구름을 불러모아 사다리를 만들어 서로 내왕해서 ‘구름사다리산’이라는 뜻의 운제산(雲梯山)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장과 원효, 의상 등 모두 중국 종남산의 운제사에서 공부를 했거나 그에 관련된 전설이 있는 것을 보면 운제산이란 이름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오어사의 유물 박물관에는 관심을 끌게 하는 유물이 있습니다.


원효대사 삿갓

원효대사께서 사용했던 삿갓과 고려 시대 범종인 오어사 동종입니다. 원효대사 삿갓은 7세기로 추정하는데 1,300년의 시공을 뛰어넘었어 그런지 그 형태만 남아있으도 삿갓임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유구한 세월을 보여주는 듯 해어진 삿갓은 종이와 실로 짓고 안에는 솜을 넣고 바깥에는 아주 가는 풀뿌리로 만들었다 하니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대나무를 가늘 게 쪼개어 만든 느낌입니다.


오어사 동종






오어사의 중심건물은 대웅전입니다. 석가 삼존불을 주불로 모셨는데 언제 대웅전이 지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웅전 상량문에 보면 1741년 영조17에 중수한 것으로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이며 포작은 3출목의 다포형식으로 1985년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8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2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대웅전 내부에는 주존불인 삼존불은 3단의 수미단 위에 봉안하였고 그 뒷벽에 후불탱인 불화를 걸었습니다. 또한, 삼존불을 모신 천장쪽으로는 연꽃봉우리를 조각한 닫집을 달았는데 화려한 게 웅장하며 분위기 또한 엄숙합니다.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여 연꽃무늬로 화려하게 단청을 했으며 좌우로 조각된 두 마리의 용은 대웅전을 더욱 위엄있게 만듭니다. 



오어사의 대웅전은 내부에도 많은 공을 들였지만, 바깥에도 정교한 조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공포는 외2출목으로 구성했는데 밖으로 돌출된 보머리는 봉황과 귀포의 상부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여 대웅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대웅전의 앞쪽에 3칸의 문은 맨 밑에 청판, 가운데 꽃살, 위쪽에 빗살문양으로 삼분합문으로 구성했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살은 조금씩 다른 모습입니다. 이는 꽃이 피는 모양을 다르게 표현한 세세한 조각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포항 여행에서 사찰을 여행한다면 반드시 가야 할 곳 중 하나로 오어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어사의 산경과 함께 문화재인 오어사 동종, 웅장하면서 정교하고 화려한 오어사 대웅전을 만나보세요. 그리고 천년전의 원효대사 삿갓도 만나는 행운을 누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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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 | 오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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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용작가 2016.10.01 11:20 신고

    포항 오어사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2. 공수래공수거 2016.10.03 09:10 신고

    올해 2번이나 간곳입니다
    그런데 원효대사 삿갓은 보지를 못했네요^^

  3. 귀여운걸 2016.10.05 01:14 신고

    와~ 웅장하면서도 정교하고 화려한 오어사 대웅전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네요~
    저두 꼭 한번 다녀와야겠어요^^



 


☞(영천여행/영천가볼만한곳)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균형미가 아주 빼어난 고려시대 철불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을 만나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우리나라에서 산수가 빼어나지 않은 곳이 없어 우리 강산을 금수강산이라 부릅니다. 그 때문인지 여행지를 다니다 보면 경치가 정말 아름다워 감탄을 하게 되는데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와 선원동을 끼고 흐르는 자호천의 그림 같은 풍광도 나의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고려말의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이 사색하며 즐겨 올랐다는 조옹대에서 자호천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진 천애 절벽이 도연명이 무릉도원과 비견되었는지 ‘선원동’이라 했다는데 유래를 보면 조선 인조 때 정호례는 벼슬을 물리고 낙향하면서 중국 동진의 시인이었던 도원명의 시 ‘도화원기’의 신선이 산다는 ‘도화선곡’에서 마을 이름을 따왔다 합니다. 신선이 거처한다는 무릉도원의 풍경에 선원동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하겠습니다.







 

◆영천여행/영천 가볼만한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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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여행은 임고서원과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을 보기 위함인데 임고서원에서 대략 1.2km 가면 자호천에 놓인 양향교를 건너면 바로 삼거리 왼쪽이 선원동과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가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다시 자호천을 건너고 선원동 마을입니다. 원래 이곳에는 선원동과 어울리는 큰 사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찾을 길 없으며 어떤 연유로 폐사되었는지 모르지만 인근 논에서 농사일하던 주민이 철조여래좌상을 처음 발견하였습니다. 지금의 환구 세덕사 주위가 옛 절터지만 그 안쪽에다 작은 절를 짓고 철불 좌상을 안치하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지금 선정사는 한창 불사가 진행 중이었으며 새로운 대웅전에다 철불을 봉안했는데 이를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이라 합니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의 불두는 나선형의 머리카락에다 큼지막한 상투 모양의 육계를 하였습니다.


 

 

 

 


이마 위쪽에는 고려 불상에서 잘 보여주는 반달모양을 표현했으며 긴 눈썹에 크고 길게 눈꼬리가 올라간 눈 하며 코와 입, 인중, 양 볼에 깊게 팬 보조개 등 목에는 삼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얼굴은 근엄한 표정에다 넓은 어깨와 남성적인 당당한 가슴 하며 다리는 결가부좌 하였으며 균형미가 아주 뛰어난 불상입니다. 이리보니까 풍기는 느낌이 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흡사합니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의 법의는 우측 어깨를 드러내며 흘러내린 ‘우견편단’으로 몸에 밀착되어 잘록하며 균형 잡힌 몸의 곡선을 잘 드러내었으며 옷 주름은 간략하지만 결가부좌한 양다리 사이로 부채꼴 주름을 표현하였습니다.


 

 

 

 



대좌와 광배 그리고 철불의 양손은 발견 당시 분실하여 남아 있지 않았지만, 손은 다시 수리하여 복원하였으며 불상을 자세히 보면 주조하여 땜질로 붙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의 전체 높이는 151cm인데 불두 높이와 무릎 높이는 각각 49cm, 101cm, 어깨와 가슴 넓이는 각각 77cm, 48cm입니다. 당시 철불 조성이 많았던 시기인 통일 신라 말의 섬세한 조각 수법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불상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969년 7월에 보물 제513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이 봉안된 선정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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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770 | 선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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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06.24 09:55 신고

    임고서원과 멀지 않았군요
    다움 갈 기회가 있으면 가 봐야겠군요^^

  2. 위네모 2016.06.24 13:18 신고

    여름에 경북 놀러갈 까 했는데 좋은 정보 알아가게 되네요.
    기회되면 경북 영천에 들러서 한 번 구경해보는 것도 좋을거 같아요

  3. 솜다리™ 2016.06.24 13:24 신고

    철로 만들었다니...
    넘 신기하내요..^^
    덕분에 귀한 장면 보내요~

  4. 도느로 2016.06.24 13:27 신고

    철을 재료로 불상을 만든것은 처음봅니다.
    그래서인지 여느불상과는 그 느낌이 다르네요.
    오늘도 좋은 곳 잘 알아갑니다. ^^

  5. 울릉갈매기 2016.06.24 14:04

    색감이 남달라요~^^
    행복한 시간 되세요~^^

  6. 행복한요리사 2016.06.24 17:35

    영천 선원동의 철조여래좌상을
    만나고 갑니다.
    더운 날씨에 수고하셨습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

  7. pennpenn 2016.06.25 07:19 신고

    철조여래좌상과 그 배경이
    보통의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네요.

    오늘은 6.25전쟁이 터진 날이라 마음이 착잡합니다.
    주말을 즐겁게 보내세요~

  8. 드래곤포토 2016.06.25 08:03 신고

    영천에도 철불이 있었군요
    철원의 도피안사에도 통일신라시대 철불이 있습니다.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건축물인 극락전, 대웅전이 있는 안동 천등산 봉정사를 만나다. 



안동 천등산 봉정사는 부석사의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 있습니다. 수덕사는 가요의 ‘수도사 여승’이 대웅전보다 더욱 유명하며 부석사는 무량수전이 워낙 유명한데 그에 반해 봉정사는 상대적으로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도 봉정사 방문 전에는 그저 극락전 정도 있다는 것만 알았지, 봉정사의 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봉정사 일주문


그러나 안동의 봉정사도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이 있는 것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봉정사의 문화재를 보면 극락전과 대웅전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고금당과 화엄강당은 물론이고 후불벽화,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보물이며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최근까지 봉정사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날려 봉황이 앉은 곳에 절을 세웠으며 그중 한곳이 지금의 봉정사라하였습니다.


 

 


그러나 1971년 극락전 수리과정에서 상량문이 나왔으며 신라 문무왕 12년인 672년에 능인대사가 창건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봉정사를 품은 산은 처음에는 대망산이라 불렀습니다. 능인대사는 도를 터득하려고 대망산 바위굴에서 수도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다 천녀가 나타나 능인을 시험하기 위해 파계하여 함께 살 것을 유혹하지만, 끝끝내 부처님 말씀을 따르겠다며 거부하였고 천녀는 스님의 도력에 감복하여 옥황상제께서 내린 등불을 굴 안에 환히 밝히게 하였습니다.


 

 


스님은 더욱 수도에 전념하였고 도력으로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이곳에 내려앉아 봉정사를 창건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 ‘하늘에서 등불이 내려왔다.’ 하여 천등굴이라 하였으며 산도 천등산이 되었습니다. 봉정사는 창건과 함께 대략 6번의 중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여러 번 어려운 과정을 겪었고 근대인 1950년 한국 전쟁 때는 인민군이 주둔하면서 사찰에 보관 중이던 여러 경전과 사지(寺誌) 등을 불태우는 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한, 1999년 4월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한국 방문을 하면서 이곳을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그럼 먼저 천등산 봉정사의 일주문을 보면 현판은 추사체의 맥을 잇는 서예가 은초 정명수(1909~1999)선생의 글씨입니다. 이외에도 해인사의 해탈문과 진주 촉석루 등 힘있는 선생의 여러 작품이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 날아오르는 봉황을 닮은 듯 한 보호수 소나무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면 봉정사를 들어서는 입구인 만세루입니다.


 

 

 

 


만세루는 봉정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고색창연하며 켜켜이 때가 묻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여느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천왕문 등은 없지만 2층 누각 형태인 만세루 아래를 지나야만 법당에 이르게 됩니다. 만세루는 1680년(숙종 6년)에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덕휘루(德輝樓)라 불렀습니다.


 

 

만세루 


만세루는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대웅전에서 보면 마당 높이와 같은 단층입니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2층 누각으로 1층은 출입구 역할만 합니다. 그리고 2층은 휴식을 취하는 정자와 스님의 강학장소인 강당을 겸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16/05/31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만세루. 천년고찰의 풍미를 간직하며 묵직하여 봉정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봉정사 만세루, 봉정사 만세루


 

 

 

 

 

 


만세루와 마주한 건물이 두 개의 봉정사 중심 건물 중 한곳인 국보 제311호 대웅전입니다. 대웅전도 극락전과 함께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습니다. 대웅전은 1428년(세종 10년)에 불화기록과 1431년에 단청을 칠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1425년인 세종 7년쯤에 중창한 것이 아닌지 추정을 했는데 최근 고려시대 불화로 추정되는 후불벽화가 발견되어 대웅전 조성을 고려 말기로 보고 있다고도 합니다.


 

 

 대웅전


 

 

2016/06/02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고려후기의 고건축물로 평가받는 독특한 불전인 국보 제311호 봉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특이한 것은 대웅전 앞면에 조선시대 누각 형태인 툇마루를 달아내었다는 점인데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이 접목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1963년 1월 보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국보로 다시 승격되었습니다.


 

 

 

 

 

 

 

 

 

극락전


그리고 대웅전과 함께 봉정사의 중심법당인 국보 제15호 극락전입니다. 우리나라 고려시대 건축물로 가장 오래된 곳 중 한 곳입니다.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하며 무량수전, 아미타 전이라 부릅니다. 1972년 해체 수리하면서 인조 3년인 1625년 작성한 상량문 기록을 찾았는데 고려 공민왕 12년인 1363년에 극락전의 지붕을 수리했다고 되어 있어 벌써 그 이전에도 건물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극락전은 가운데다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불당 벽을 만들어 불단을 설치했으며 닷집은 화려하지 않고 섬세하게 꾸몄습니다. 앞면 3칸에 옆면 4칸의 맞배지붕건물로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건물입니다. 처음에는 대장전으로 불리다가 극락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극락전 앞에는 고금당이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화엄강당을 세워 극락전과 대웅전을 두 개의 영역으로 만들었습니다. 고금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건물로 맞배지붕을 하였습니다.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여도 당시 건축기법이 주목받을 만큼 인상적이며 보물 제449호 지정되었습니다. 1969년 해체 수리과정에서 1616년인 광해군 8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을 찾았는데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엄강당 


화엄강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화엄강당은 ‘양법당중수기’를 보면 17세기에 대웅전을 고쳐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이때 화엄강당도 창건이나 수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본전의 대웅전을 고려하여 간결한 장식으로 꾸몄으며 법당과 강당의 차별성을 두려 했습니다. 보물 제448호.


 

 


2016/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 봉정사의 보물인 고금당, 화엄강당과 요사채인 무량해회를 만나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무량양회


 

 

 

 

 

 


봉정사 삼층석탑


극락전 앞에 자리한 봉정사 삼층석탑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중 기단에 석탑은 전체적인 무게로 인해 기단부가 일부 깨져있습니다. 또한 상륜부 일부는 분실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양호한 상태입니다. 고려시대 석탑이며 평범하며 일반적이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2016/06/16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삼층석탑. 봉정사의 고 건축물 극락전과 같은 고려 중엽의 봉정사 삼층석탑을 만나다. 봉정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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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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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06.17 09:38 신고

    꼭 가보고 싶군요^^

  2. 드래곤포토 2016.06.17 10:10 신고

    역사가 엿보이는 사찰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3. 도느로 2016.06.17 14:02 신고

    안동 봉정사도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네요.
    모진 역사를 이겨낸 만큼 잘 관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금요일되세요 ^^

  4. 행복한요리사 2016.06.17 22:12

    풍광이 아름답고 멋진
    천등산 봉정사를 둘러보고 갑니다.
    금정산님! 편한 시간 되세요. ^^

  5. 귀여운걸 2016.06.19 15:44 신고

    우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건축물을 접하고 오셨군요~
    정말 뜻깊고 알찬 시간이셨겠어요!
    저두 다음에 시간내서 한번 다녀와야겠네요ㅎㅎ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 봉정사의 보물인 고금당, 화엄강당과 요사채인 무량해회를 만나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의 봉정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과 그에 못지않게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대웅전이 국가 문화재인 국보로 지정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봉정사는 국보 이외에도 고금당과 화엄강당이 보물로 지정된 유서 깊은 사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 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찰에서 이리 많은 목조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다는 자체가 드문 일입니다. 봉정사의 여러 목조건물을 소개했지만, 이번에는 고금당과 화엄강당을 포스팅하겠습니다.







◆안동 봉정사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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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는 극락전과 대웅전을 각각 둔 두 개의 중심법당이 있습니다. 극락전과 대웅전의 공간을 가르는 건물은 화엄강당이며 고금당은 극락전 앞에서 화엄강당의 뒷면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금당을 보겠습니다. 고금당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단층 목조건물에 맞배지붕을 올렸습니다. 고금당의 규모는 작아도 보물로 지정될 만큼 당시 건축 기법이 주목받을 만큼 인상적입니다.





고금당의 특이한 건축기법을 보면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한 주심포집 계통입니다. 기둥 윗부분에 꽂은 홑첨차와 그 위에 주두에서 나온 살미첨차가 겹쳐친 위에 다시 행공첨차를 가로로 놓았으며, 그리고 외목도리를 받쳐놓았습니다. 주두의 좌우 벽면에 배치된 첨차와 창방은 포벽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건물 뒷면은 원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동의 봉정사 고금당은 해체 수리를 위해 1969년 찾아낸 기록을 보면 1616년(광해군 8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뿐이며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1969년에 극락전과 함께 봉정사 건물 대부분이 해체와 수리과정에서 본모습을 많이 훼손하였습니다. 현재 옛 모습이 남아있는 곳은 방 앞쪽 쪽마루와 칸마다 달린 외짝문뿐이라 하니 고건축물의 보수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하겠습니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현재의 고금당은 앞면 3칸에 2짝 여닫이문을 달았으며 옆면과 뒷면은 벽으로 막았습니다. 북쪽 측면은 후예 팔작지붕으로 바뀌었고 남쪽의 지붕은 연장하여 칸을 막아서 부엌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방은 온돌을 넣어 선방이든 것을 요사채로 사용하였으며 방 앞에는 쪽마루를 깔고 벽간마다 띠살문을 달아 원래의 문짝이 아니라합니다. 

공포를 구성하는 첨차 형태 등을 보면 조선 전기의 특색을 잃어버렸으며 또한, 변형되어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중기로 그저 짐작만 할 뿐입니다. 당호는 고금당(古今堂)이라 쓰는데 금당의 뜻인 고금당(古金堂)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건물의 규모와 위치를 보면 봉정사의 중심건물인 불전으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기 힘든데도 현재 불전을 뜻하는 고금당(古金堂)으로 사용 하고 있습니다. 보물 제449호





그리고 화엄강당은 대웅전 앞 경내로 올라서면 왼쪽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앞면3칸 옆면 2칸의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입니다. 화엄강당은 ‘양법당중수기’ 등에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경내 극락전과 대웅전을 17세기에 고쳐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그때 화엄강당도 함께 창건이나 수리 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안동 봉정사 화엄강당



강당으로서 규모가 큰 건물인데 부재들이 다른 기법과 섞여 절충형식을 보이면서도 대웅전의 위상을 고려하여 간결하게 장식을 갖추어 법당과 강당의 차별성을 두려 했습니다. 처음부터 강당으로 사용한 건물이라 기둥은 낮으나 공포를 크게 하여 외관과 균형을 맞추었습니다. 건물 내부는 남쪽 2칸이 부엌, 북쪽 4칸이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데 원래는 앞면 4칸, 옆면 4칸으로 현재 온돌방 뒤쪽에 4칸의 마루가 깔렸으며 부엌도 지금보다 넓었다고 하지만 언제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화엄강당은 봉정사 창건과 극락전 중창 그리고 조선 전기의 대웅전 중창 등 어떤 기록에도 나와 있지 않는 것을 보면 1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보물 제448호


 

 


안동 봉정사 무량해회


무량해회는 앞면 4칸에 옆면 3칸의 겹처마 집에 전면과 남쪽에 마루를 달고 양쪽의 중앙에 칸 벽을 설치하여 방으로 나누어진 요사건물입니다. 건물의 구조는 ‘트인 ㅁ자형’


 









 (참고:안동시청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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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06.13 10:07 신고

    봉정사 꼭 가 보고 싶습니다^^

  2. 비키니짐(VKNY GYM) 2016.06.13 14:29 신고

    잘 보고갑니다. 날이 덥네요. 건강관리 잘 하시는 하루 되세요^^

  3. 루비™ 2016.06.13 15:15 신고

    안동을 수도 없이 많이 가보았지만
    봉정사는 아직 미답의 곳입니다.
    여름에 한번 가봐야겠네요.

  4. 2016.06.13 17:37

    비밀댓글입니다

  5. 대한모황효순 2016.06.13 18:24

    마음이 평온해지는듯~
    넘 좋은걸요.
    멋진곳 감사히 보고 갑니다.

  6. 도느로 2016.06.13 23:12 신고

    둘러볼곳이 저렇게 많은데도 가끔
    안동을 찾으면 1등급한우만을 찾습니다. ㅜㅜ
    더운날씨가 느껴지는 사진에서 금정산님의 수고로움이 느껴집니다.
    잘 보고갑니다. ^^

  7. 맛있는여행 2016.06.15 21:01 신고

    절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봉정사가 지닌 의미는 정말 대단합니다.
    대웅전과 극락전 못지않게 고즈넉함을 보이는 고금당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과  석조관음보살입상. 경주 중생사에서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과 국립경주박물관의 석조관음보살입상을 만나다.  


경주 동쪽에는 작고 야트막한 산인 낭산이 있습니다. 낭산에는 신라 선덕여왕의 능이 있으며 또한, 문무대왕의 주검을 화장했다고 추정하는 능지탑이 있어 신라인에게는 경애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이곳 능지탑 안쪽에 신라 시대 사찰인 중생사가 단아하다 못해 쇠락한 채 그 뿌리만 남아 있습니다.





◆경주 남산 인근 가볼만한 여행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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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지탑을 지나 중생사로 찾아들면 경내에는 창건 당시의 사격을 알 수 있는 온갖 부재가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당시의 중생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석탑의 부재는 물론이며 불상의 좌대 등 성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게 없을 정도로 깡그리 파괴되어 지금은 옛 영화만 짐작할 뿐입니다.





경주 중생사지의 각종 부재들
















중생사




그리고 중생사 한쪽 작은 바위에는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이 흔적만 겨우 남아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눈을 부라리며 세심하게 봐도 그 형체만 겨우 짐작할 뿐인데 그래도 문화재적 가치가 아주 높아 보물 제66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은 특이하게도 보살상과 신장상을 나란히 배치하였으며 이런 예는 좀체 찾기가 힘들다 합니다.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의 가운데에 있는 본존불을 자세히 보면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습니다. 양어깨를 감싸면서 내려온 옷은 고려 불화에서 지장보살과 매우 유사하며 머리와 몸에서 빛을 내는 모습에 손 모양은 생략되었습니다.









왼쪽의 신장상은 갑옷 차림에 오른쪽에 칼을 집고 있으며 한쪽 다리를 곧추세운 채 앉아 있는 유희좌를 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신장상은 두 손에 무기를 들고 있어 악귀를 쫓아내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모든 게 파괴된 와중에도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마애보살삼존좌상이라도 남아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듭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석조 관음보살 입상


중생사는 일연의 삼국유사에 ‘삼소관음중생사’로 기록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관음보살의 전설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중국에서 시작됩니다. 중국에 황제의 사랑을 받은 궁녀가 있었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절세가인일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가졌던 모양입니다. 황제는 그림으로 궁녀를 길이길이 남기고 싶어 했고 어느 날 화가를 섭외하여 궁녀를 그리게 했습니다. 화가의 실력도 만만치 않아 아름다운 미모를 완벽할 정도로 똑같이 그려 하늘도 시샘을 했는지 그만 실수로 붓을 떨어트렸습니다.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처럼 그게 하필이면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인 배꼽 아래에 붉은 점을 찍고 말았습니다. 화가는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고칠 수 없자 그냥 황제에게 그림을 받쳤습니다. 황제는 감탄하며 그림을 찬찬히 보고 내려오다 배꼽 밑의 붉은 점을 보고는 눈동자를 고정하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자신만이 궁녀의 배꼽 밑에 붉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닌데 화가 난 천자는 화가를 가두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에 재상은 황제를 달래었고 황제는 화가에게 어젯밤 자신이 꾼 꿈을 똑같이 그려오면 죽음만은 면해주겠다 하였습니다. 이에 화가는 십일면관음보살을 그려 황제에게 바쳤고 황제는 깜짝 놀라며 자신이 꾼 꿈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아 감옥에서 풀어주었습니다. 화가는 상을 주질 못할망정 자신을 죽이겠다는 황제를 보고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해서 박사 분절에게 신라는 불교를 아주 숭상한다는데 그곳에 가서 나의 재주인 불화를 그리고 싶다며 함께 신라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화가는 신라 서라벌에 들어와 중생사에 머무르게 되었고 자신이 꿈에서 본 관음보살상을 조각하였는데 그 관음보살상이 지금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 중입니다.





화가가 누구인지 매우 궁금하지만 일연은 이 화가의 이름은 알 수 없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무제 때의 유명한 불화 화가인 ‘장승요’가 아닐까하고 추정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중생사의 관음보살은 여러 이야기가 전하는데 관음보살에게 기도 끝에 사내아이를 낳았지만 석 달이 되지 않아 후백제의 견훤이 쳐들어왔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피난을 갈 수 없어 관음보살 밑에 숨기고 떠났는데 백제군이 물러간 뒤 아이를 찾아가니 아이는 금방 목욕한 듯 촉촉하였고 입에서 젖 냄새가 났다 합니다. 후에 이 아이는 대성하여 큰 인물이 되었다 합니다.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삼국유사의 ‘삼소관음중생사’에 전합니다. 왜 관음보살입상이 경주박물관에 전시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면 관음보상상의 의문점이 풀립니다. 처음 발견 당시에는 머리와 몸체 좌대가 모두 따로따로였습니다. 보살상의 머리는 먼저 국립경주박물관에다 옮겨놓았고 몸체는 지금의 경주 낭산 서쪽인 능지탑 근처에 반쯤 묻혀 있었던 것을 찾아내었 습니다. 그때 인근의 노인장이 ‘이 불상의 머리는 경주박물관에 가져갔으며 그 모양은 여느 불상과 달리 길쭉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문화재 조사관은 보살 머리만 전시 중이던 박물관에 옮겨 몸체를 맞추었고 1997년 4월에는 몸체를 찾았던 근처에서 연꽃 대좌를 발견하여 지금의 석조 관음보살입상의 완벽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석조관음보살입상이 발견된 곳이 ‘중생사지’입니다. 이 관음보살은 독립된 예배대상으로는 신라 시대에 조성된 최대의 크기이며 높이가 376cm 통일신라 8~9세기에 조성되었습니다. 이 불상을 관음보살로 보는 이유는 관음보살상은 대게 보관에 작은 불상인 화불(化佛)을 새겼으며 한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는데 이 보살상은 마모가 심하지만, 보관에 화불을 새겼고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관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이라고도 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자비를 베풀며 실천하는 보살로 자비를 상징합니다. 오래전부터 사부대중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했던 관음보살입니다. 경주 중생사의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과 국립경주박물관을 여행하면서 중생사지에서 옮겨온 석조 관음보살 입상은 꼭 챙겨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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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06.10 09:27 신고

    정말 자세히 봐야 알수가 있군요
    그래도 보물인것이 신기합니다

  2. pennpenn 2016.06.10 09:42 신고

    한켠에 널려 있는 오래된 석조물들이
    세월의 무게를 말해 주는 듯 합니다.

    오늘은 즐거운 금요일,
    주말을 멋지게 보내세요!

  3. 에스델 ♥ 2016.06.10 09:45 신고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의 흔적만
    겨우 남아 있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4. 행복한요리사 2016.06.10 09:55

    국립경주박물관의
    석조관음보살상을 만나고 오셨군요.
    전설까지 잘 알고 갑니다.
    금정산님! 즐거운 날 되세요. ^^

  5. 드래곤포토 2016.06.10 13:18 신고

    독특한 모양이 석불상이네요
    경주는 정말 문화재의 보고 입니다.

  6. 멜로요우 2016.06.10 13:59 신고

    저도 박물관가서 봤는데 신기하더라고요. 거기다가 종도 신기하고요. 오래된만큼 그가치가 더 높아지는거같아요

  7. 『방쌤』 2016.06.10 14:34 신고

    경주박물관은 자주 갔었는데, 관음보살입상은 자세히 들여다 보지 못했네요.
    다음에 다시 가게 되면 조금 더 오랜시간 들여다 보고 싶습니다.^^
    즐거운 금요일 보내시구요~

  8. 영도나그네 2016.06.10 15:08 신고

    경주 낭산에도 이런 불상들이 많이 있군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한번 가보고 싶어진답니다..
    덕분에 좋은곳 소개 잘보고 갑니다..

  9. *저녁노을* 2016.06.10 16:21 신고

    볼거리가 많은 경주입니다.

    잘 보고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10. 도느로 2016.06.10 16:33 신고

    역시 그냥 보는것과 역사를 알고 보는 것은
    천지차이 같네요.
    글이 참 재미있습니다. ^^
    행복한 주말 맞으세요.

  11. 대한모황효순 2016.06.10 16:35

    아름다운 불상 인걸요.
    진짜 길쭉한듯한~
    좋은곳 보고 갑니다.

  12. 맛있는여행 2016.06.10 18:05 신고

    정말 경주는 전 지역이 박물관이라는 말을 실감케 합니다.
    불상의 조각이 너무나 섬세하고 아름답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국보 제38호 고선사지 삼층석탑. 덕동호로 수몰된 고선사터 삼층석탑과 비석받침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문화재의 보고 경주에서는 현재 많은 절터가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는 문화재발굴조사로 그 빛을 발한 곳도 있지만, 또는 잡목에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지난봄 경주국립박물관을 보면서 아주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이 고선사터의 비석 받침과 국보 38호인 고선사터 삼층석탑입니다. 

고선사터는 사실 생소합니다. 저도 생소한 절로서 보문호 하면 모두 알 것입니다. 보문호 상부댐을 덕동호라 하는데 원래 고선사가 있던 곳이 지금의 덕동호 물속이라 합니다. 










덕동호를 거쳐 경주 시내를 관통하는 하천을 알천이라 합니다. 그 상류는 경주시 암곡동이며 1975년 덕동호 건설로 암곡동의 고선사터가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고선사터에 흩어져 있던 여러 문화재와 삼층석탑, 비석 받침 등 부재를 이곳 국립경주박물관 야외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고선사는 일연의 저서인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시대 신문왕(재위 681~692)때 원효대사(617~686)께서 주석하셨던 곳이라 합니다. 그런데 1914년 5월 이곳에서 원효대사 행적을 기록한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 비문조각을 발견했는데 그 내용에 비추어보면 686년 원효대사가 입적하기 이전에 고선사는 사찰의 규모를 갖춰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사(高麗史)’에도 1021년(현종 12년)에 고선사에 금란가사와 불정골 등을 내전에 두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 당시까지도 법통은 꺼지지 않고 상당한 규모의 사격은 계속 이어져 왔던 것 같습니다. 덕동호 수몰로 고선사터 발굴 조사를 진행하면서 금당터, 강당터, 중문터, 회랑터 등의 건물터와 금동불 등 건물의 부재인 기와, 전돌 등 많은 문화재를 발굴하였습니다.








먼저 원효대사의 손자인 설중업이 할아버지 원효대사를 기리며 고선사에다 세운 ‘서당화상비(誓幢和上碑)’의 귀부인 비석 받침입니다. 거북을 닮은 받침돌은 머리 부분이 남아있지 않고 몸통 부분만 현재 남아 있습니다. 통일신라 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전체높이는 약 70cm입니다.

 




귀부인 거북등의 가장자리를 따라 무늬 띠가 일정한 폭을 유지하고 등 부분의 귀갑무늬는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거북등 가운데 비좌인 비석을 꽂은 네모난 홈 주위를 돌아가며 연꽃무늬를 새겼습니다. 서당화상비(誓幢和上碑)의 서당화상은 원효대사를 뜻합니다.





1914년 고선사터에서 비신의 아랫부분을 발견하였으며 1968년 경주시 동천동의 한 민가 우물터에서 빨래판으로 사용하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여 현재 경주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비신의 명문을 보면 원효의 사상과 업적에 관한 것으로 비문은 33행에 각행은 61자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있는 고산사터 삼층석탑입니다. 덕동호 수몰로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로 옮겨온 고산사터 삼층석탑은 682년(신문왕 2년)에 세운 감은사터의 동·서삼층석탑과 너무나 닮아 보였습니다. 필자는 안내판을 보기 전에는 감은사터 삼층석탑의 짝퉁인 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2단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렸는데 노반까지 높이가 10.2m에다 총 82장의 돌로 이루어져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판박이라 해도 쉽게 수긍할 만큼 똑같이 닮았습니다. 1.2층의 탑신과 옥개석은 여러 부재를 짜 맞추었는데 다만 3층 탑신석은 하나의 돌로 만든 게 사리함을 넣는 사리공 때문이라 추정됩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다른 점은 1층 몸돌 네 면에 문(문비)을 표현했는데 문화재 여행의 초보인 저는 감은사 삼층석탑에는 찰주가 남아 있지만 고선사터 삼층석탑은 없다는 점으로 구분해야겠습니다. 통일신라 시대 초기인 686년 이전에 새웠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삼층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는 통일신라 석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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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구황동 591-1 | 국립경주박물관 고선사지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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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풍 2016.06.07 10:49 신고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다른 점 잘 알아 갑니다.
    행복하세요. ^^

  2. 드래곤포토 2016.06.07 10:59 신고

    석탑이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네요
    귀한 석탑 잘보고 갑니다.

  3. 도느로 2016.06.07 11:59 신고

    지난해 경주박물관을 들렀습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신라문화에 대해 많이 배웠는데
    돌아서니 또 다 까먹었네요 ^^
    복습하고 갑니다. ㅎㅎ

  4. 귀여운걸 2016.06.09 18:03 신고

    소중한 문화재에 대해 제대로 알아갑니다..
    금정산님 덕분에 많이 배워가는것 같아요^^





☞(부산여행/서구여행)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부산 최고의 조망터에 자리한 부산 천마산 칠보사에서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만나다. 


부산시 서구 천마산에는 많은 절집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바다와 가깝고 뱃사람들의 무사 항해와 만선의 꿈을 위해서, 그리고 부산 서구는 근대에 아픈 사연이 가장 많은 동네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총알받이로 일본에 끌려갔던 분들이 광복과 함께 부산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다음은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피난민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자투리 땅이라도 비빌 언덕을 찾았습니다.





◆부산 서구 칠보사 인근 가볼만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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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비탈에 산을 깎아내었고, 일본인 공동묘지를 뭉개었고 눈만 붙이며 살 움막을 짓고 정말로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했습니다. 누군가 붙잡고 하소연도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이유 때문이라도 천마산에는 수없이 많은 사찰이 자리했나 봅니다.



가슴에 피멍이 든 귀환동포와 피난민의 가슴에 남은 아픈 상처는 가까운 사찰에서 풀었습니다. 답답한 현실과 지친 삶을 이들은 부모님의 그 부모님이 믿어왔던 부처님을 믿으며 어려움을 견뎠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한 번씩 집 뒤 천마산을 올라갑니다. 그러면 꼭꼭 여러 곳의 사찰을 거치게 되는데 하나같이 명산대찰도 부럽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만큼 시원한 조망과 함께 남북항의 모습을 동시에 보며 서구 천마산에서만 만나는 조망입니다. 서구의 전망 좋은 절집 중에서도 서구 남부민동 산복도로의 천마산로에 앉은 칠보사는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하는 시원한 조망터에 자리 잡아 아둔한 제가 봐도 부산 최고의 명당 같았습니다.

 


최근에 이곳을 지나면서 보지 못했던 문화재 안내판을 만났습니다. 이때까지 무의식으로 다니면서 못 보고 지나쳤는지 모르지만, 전국의 문화유적지를 찾아다니는 저로서는 내 고장의 문화재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스마트폰으로 칠보사 외관을 몇 장 담았습니다. 그리고 경내로 갈까 하다가 다음에 가지하고 그냥 지나쳤다가 2주일 뒤 다시 칠보사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분홍색 연등이 달린 칠보사는 더욱 화려하며 예쁜 모습이었습니다. 영도다리와 부산항대교 남항대교를 연등과 함께 사진을 담았습니다. 칠보사는 이름에서 보듯이 일곱 가지 보물이 있는 사찰입니다. 그중 첫 번째가 조망이라 생각할 만큼 압권입니다. 그럼 칠보사 경내를 둘러보기 위해 먼저 긴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작은 출입문이 있고 대웅전이 앞에 떡 버티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관음보살상이 아직은 은빛 모습으로 반짝입니다. 부산광역시지정 유형문화재 제126호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된 대웅전을 향합니다.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출토된 복장유물인 ‘제불복장범서’에 인경시기가 1730년 10월이라 밝혀 그때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또한 1730년경 창녕 포고당 목조여래좌상과 1927년 대구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의 목조삼세불좌상과 그 조각기법 등이 흡사하여 정확하지 않지만, 하천이 조성했던 작품이 아닐까 하며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앞으로 약간 구부린 자세이며 넓은 어깨와 무릎이 높고 넓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습니다. 오른손은 무릎에 올리고 왼손은 어깨높이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형식이며 삼존불을 모시는 왼쪽 협시보살상으로 추정됩니다.




머리에는 화려한 장식의 보관을 썼고 가운데는 화불, 그 좌우로 봉황문과 화염 보주 문을 장식하였습니다. 네모난 얼굴에 가늘게 뜬 눈, 큼지막한 코, 도드라진 인중, 얇고 긴 입술 등을 나타내어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단정한 인상을 줍니다.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의 전체적인 얼굴윤곽, 목 밑의 삼도, 오른쪽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가린 옷, 다리 앞의 옷 주름과 편삼 처리, 어깨 뒤로 넘어간 옷자락의 표현, 엄지중지 둘째 마디를 맞댄 수인 형식이 당시 하천이 조성한 불상과 매우 유사하다는 문화재 안내판의 해설입니다.




부산시 서구에서는 오래된 불상 문화재는 제가 알기로 보지 못했습니다. 이리 집과 가까운곳에서도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불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현재 칠보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개금 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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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구 남부민동 93-1 | 칠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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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솜다리™ 2016.05.16 08:38 신고

    아.. 이사찰에 이런..
    그냥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기회되면 함 들러봐야겠어요~~

  2. 공수래공수거 2016.05.16 09:25 신고

    천마산조각공원에서 내려 오면서 사찰이 하나 잇었는데
    거기는 아닌가 보군요
    조금 달라 보입니다

  3. 기회가 되면 꼭 들러봐야겠네요~
    잘 보고 갑니다^^

  4. 드래곤포토 2016.05.16 11:43 신고

    사진으로 위치를 대충 짐작합니다만
    멋진 곳에 자리한 절이네요 ^^

  5. *저녁노을* 2016.05.16 14:32 신고

    잘 보고갑니다.

    고즈넉하니 좋아 보입니다.^^

  6. 행복한요리사 2016.05.16 15:52

    멋진 곳이네요~
    동영상까지 즐겁게 보고 갑니다.
    행복한 월요일 되세요. ^^

  7. Ustyle9 2016.05.16 16:27 신고

    석가탄신일이 어제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였겠어요.~

  8. 워크뷰 2016.05.16 18:48 신고

    칠보사 힌번 가야겠습니다^^

  9. 공감공유 2016.05.16 19:49 신고

    와 부산 한 시내한복판에 있는 산에 저런 절이 있었군요~ ㅎㅎ

  10. 코리아배낭여행 2016.05.17 05:09 신고

    부산에 살면서 이런 절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네요.
    부산을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정말 장난 아니게 멋지겠스니다.

  11. pennpenn 2016.05.17 06:38 신고

    칠보사 목조 관음보살도 볼거리이지만
    사찰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더욱 좋습니다.

    아침부터 하늘이 매우 맑습니다.
    화요일을 잘 보내세요~

  12. 핑구야 날자 2016.05.17 07:31 신고

    빨간 연등이 참 예쁘네요 잘 보고 갑니다

  13. 죽풍 2016.05.17 07:53 신고

    부산 가면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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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능지탑지. 문무대왕 화장터로 알려진 경주 능지탑지 여행.


경주 능지탑지는 낭산 기슭에 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 쌓은 건축물로 능지탑, 능시탑, 연화탑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능지탑지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죽어 감포 앞바다 대왕암에 모시기 위해 시신을 화장했던 곳으로 추정하는 장소입니다. 그 이유를 보면 발굴조사를 하면서 소조불상 조각이 출토되어 탑묘로 보는 이도 있지만, 내부의 그을린 흔적과 주위에 사천왕사 선덕여왕과 신문왕릉 등 당시 유적을 함께 보면 문무왕의 화장터로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합니다.





◆통일신라 문무대왕과 관계된 여행지를 모았습니다.


2014/05/27 - (경북여행/경주여행)동해의 신비 경주주상절리 파도소리길 걷기, 읍천항벽화마을, 이견대, 문무대왕수중릉, 감은사지 해파랑길 걷기


2014/05/25 - (경북여행/경주여행)동해의 꽃으로 부르는 경주 양남 부채꼴 주상절리.독특한 경주주상절리를 보면서 누구나 감탄하게 됩니다.주상절리


2014/05/21 - (경주여행/감은사지 이견대 문무대왕수중릉 여행) 호국용 문무대왕의 혼이 깃든 경주 감은사지 이견대 대왕암 이른 봄여행


2014/05/21 - (경주여행/감은사지 이견대 문무대왕수중릉 여행) 호국용 문무대왕의 혼이 깃든 경주 감은사지 이견대 대왕암 이른 봄여행


2014/12/20 - (경북여행/경주여행)왕의길-신문왕 호국행차길. 신문왕이 되어 왕의 길인 추원마을~기림사 둘레길을 걸어보세요.


2015/01/06 - (경북여행/경주여행) 양북면 함월산 기림사 여행. 경주의 천년사찰 왕의 길 기림사를 만나다.


2015/06/06 - (경북여행/경주여행)선무도 본산 골굴사. 아름다운 석불인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골굴사에서 힘자랑하지 말라" 선문도 골굴사 여행하기


2011/11/06 - 호국용 문무왕의 전설인 용문바위와 공양왕릉의 슬픈이야기


 


 

백제·고구려·신라의 삼국은 신라 태종무열왕인 김춘추의 뒤를 이은 문무대왕에 의해 삼국통일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면 먼저 문무대왕을 알기 위해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신라는 김춘추를 고구려에 파견하여 백제를 치기 위한 원병을 청하지만 고구려는 신라 진흥왕이 차지한 고구려의 옛 땅인 한강유역 반환을 조건으로 내걸어 동맹은 파기되었고 어쩔 수 없이 당나라와 동맹을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당 연합군입니다. 일부는 나당과 연합하여 통일을 이루었다 하여 진정한 삼국 통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려 먼저 백제를 치고 나면 고구려까지 칠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나라 고종은 소정방에게 13만의 병력을 출병시켜 지금의 백마강 기벌포에 상륙하여 사비성을 공격하였고 태종무열왕의 명을 받고 출병한 김유신이 이끈 5만의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백제의 계백 장군이 이끈 5천의 결사대와 싸웠지만 죽기를 각오로 싸우는 백제에 4번이나 패했습니다.


 

 

그러나 화랑 출신인 관창에 의해 신라군은 전열을 제정비하여 백제군과 일전을 벌여 계백과 백제군은 전멸했습니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도 사비성으로 진격하자 의자왕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나·당 연합군에 항복 하고 멸망하였습니다. 이게 660년입니다.


 

 

그리고 667년 나·당 연합군은 고구려 공격에 나서게 되는데 그 당시 고구려는 중원을 호령하던 호랑이었지만 수나라와 당나라를 거치면서 숱한 전쟁을 치러 그 후유증으로 종이호랑이로 전락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강력한 통치권력을 가진 연개소문이 죽자 그의 세 아들과 동생은 서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힘겨루기를 하였는데 입지가 좁아진 장남 연남생은 당나라에 백기 투항하고 연개소문의 아우인 연정토도 신라에 12개의 고구려성을 받치고 항복해버렸습니다. 나당연합군은 이런 기회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당나라는 연남생을 길잡이로 하여 5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신라도 대군을 이끌고 당나라와 합세하여 평양성을 공격했지만 1여 년 동안 끈질기게 버티는 고구려군의 저항에 고전하다 668년 9월 마침내 평양성을 탈환하고 보장왕은 항복하였습니다.


 

 

 

신라와 당나라는 동맹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탈환했지만, 이들의 동맹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삼국이 통일되면 당나라는 대동강 이남의 땅을 신라에 주기로 하였는데 그 약속을 먼저 파기하면서 신라를 공격하여 속국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군을 지원하며 당나라의 힘을 서로 분산시키게 만들었고 마침내 백제땅에서 웅진도독부를 없애고 완전히 당나라군을 몰아내었습니다. 그다음 675년 신라는 매소성 전투에서 당나라 20만 대군을 맞아 승리하였고 승기의 주도권을 잡은 신라는 평양의 안동도호부까지 요동성으로 몰아내고 667년 마침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당나라까지 물리친 문무왕은 668년 56세로 죽으면서 시신을 화장해 동해에 장사지내게 유언을 남깁니다.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하고 당나라까지 몰아냈지만 정작 마음 한구석에는 노략질을 일삼는 바다 건너 왜구가 걱정이었습니다. 문무왕은 불력으로 서라벌을 왜구로부터 막고자 왜구의 주 침입통로인 동해구에 감은사를 짓게 했습니다. 그러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자 신문왕은 그의 유조대로 낭산의 능지탑에서 화장하여 감은사 앞 바위에다 해중릉을 만들었습니다.


 

그에 관한 <삼국사기 권7 문무왕 21년조>에는 “내가 죽거든 열흘 후 창고 문 밖 뜰에서 인도 불교의식에 따라 검소하게 화장하라”하였는데 ‘창고 문 밖’이 지금의 낭산 능지탑지 일대라 합니다. 이전에는 문무왕의 화장터를 원성왕릉인 괘릉이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조사과정에서 지금은 능지탑지로 완전히 인정하는 상태입니다.


 

 

문무왕의 세자 신문왕은 부왕 문무왕을 동해에 장사지내고 감은사를 완공하였습니다. 감은사는 용으로 변한 문무왕이 동해구로 따라 올라와 감은사 금당지 아래 석굴에서 휴식을 하였다 하며 신문왕이 이견대에서 하늘로 승천하는 용에게 받은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만파식적’입니다. 문무왕은 죽어서까지도 신라를 시키고자 했나 봅니다.


 

 

그러나 현재 허물어져 있던 탑의 부재를 짜 맞추어 2층의 능지탑으로 복원했지만, 원래는 5층으로 된 능지탑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도 주변에 많이 남아 있는 탑의 부재를 보고 문화재에 문외한인 저도 복원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고 하루빨리 원래 모습을 되찾았으면 합니다.


 

 남아 있는 능지탑지 부재들...

연화탑으로 부르는 능지탑은 연화문이 새겨진 석재가 기단과 탑신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단의 사방에는 12지신상을 배치했는데 현재 뱀상 호랑이상 용상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입니다. 경주 동남산을 보고 나오면서 들렀던 능지탑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던 문무대왕의 호국용에 관한 전설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하니 옛 문화재를 여행하는 저로서도 능지탑지는 더욱 의미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34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이제 또 다른 경주 여행지를 돌아보기 위해 출발합니다.



경주능지탑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6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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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배반동 621-1 | 능지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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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스델 ♥ 2016.04.29 09:34 신고

    문무대왕 화장터로 알려진 능지탑지의 모습을
    보니 이곳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듭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 울릉갈매기 2016.04.29 09:38

    경주 있었으면서도 저는 못가본곳이네요~^^
    행복한 시간 되세요~^^

  3. 행복한요리사 2016.04.29 10:12

    수학여행 갔었을때 행복했던
    추억이 그리워 지네요~
    금정산님! 기회가 되면 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4. *저녁노을* 2016.04.29 13:35 신고

    잘 보고갑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5. 도느로 2016.04.29 14:16 신고

    말씀해주신 삼국통일의 스토리를 듣고나면
    더더욱 경주여행이 즐거워질 듯 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갑니다. ^^

  6. 『방쌤』 2016.04.29 15:45 신고

    경주로 자주 여행을 가지만 항상 가던 곳만 가게되는데
    다음에는 조금 더 두루두루 둘러보고 싶네요^^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7. 대한모황효순 2016.04.29 19:31

    화장터 처음 접해보는걸요.
    항상 우리 문화재 덕분에
    잘보고 가는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8. 맛있는여행 2016.04.29 19:56 신고

    경주의 볼거리는 참 무궁무진하넹요.
    그렇게 찾아도 못 본 곳이 있으니 말입니다. ㅎㅎ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9. 청결원 2016.04.30 06:06 신고

    능지탑지 잘 보고 가네요



 

 

☞(경주여행/남산여행)염불사지 삼층석탑. 은은한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린다는 경주 남산리 염불사지 삼층석탑 여행하기. 


야외박물관이자 문화재의 보고로 부르는 경주 남산은 파도파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경주 남산 여행을 계획하면서 어떤 문화재와 다시 만날까 싶어 떠나기 전부터 내 가슴은 한참을 설레었습니다.




◆경주 남산 염불사지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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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1 - (경주남산여행)살인미소 짓는 부처님의 모습이 경주남산 보리사 석불좌상으로 태어나다. 미륵곡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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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 (경주여행/남산 신선암 마애불)신선암 마애불에서 기도하는 보살님



 

이번에는 동남산 자락에서 필자가 처음 만나는 전 염불사지 삼층석탑입니다. 워낙 문화재가 많아 염불사지 삼층석탑은 따로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으며 절터인 염불사지만 사적 제31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전 염불사지 동탑

 

염불하면 다 아시지요.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외우는 독경 소리를 말합니다. 많은 사찰 이름에서 염불사는 사실 생소한데 이곳에는 삼국유사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느 스님이 하루에 몇 번씩 시간을 정해 놓고 염불을 외우셨습니다. 그 소리가 서라벌 내 동서남북 360방 17만 호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목탁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우셨습니다. 매일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듣다 보니 사람들은 그를 공경하게 되었고 스님을 염불사(念佛師)라 불렀습니다. 그 후 스님이 입적하자 흙으로 스님의 소상을 만들어 민장사(敏藏寺)에 모시게 되었고 스님이 목탁을 치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던 동남산 아래 피리사(避里寺)를 염불사(念佛寺)로 고쳐 부르며 스님의 극락왕생을 빌었습니다.”


 전 염불사지 서탑

 

전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모두 무너져 있었고 탑재는 도지동의 이거사지 삼층석탑의 1층 옥개석과 조합하여 1963년 불국동 구정광장에 삼층석탑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다 2008년 1월 염불사지 삼층석탑을 복원하고자 해체하였고 2007년 6월부터 시작된 복원작업은 2009년 1월에 동·서 쌍탑인 삼층석탑을 복원 완료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서탑에는 사리장엄구를 봉안했던 사리함이 다른 석탑에서 볼 수 없는 2개가 들어 있었고 3층 탑신의 방형 사리공이 투공되고 탑재 등을 종합해보면 전 염불사지 삼층석탑은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염불사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1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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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남산동 1129-3 | 염불사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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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nnpenn 2016.04.26 07:29 신고

    이 정도의 석탑이면 보물급 아닌가요?
    화요일을 잘 보내세요~

  2. kangdante 2016.04.26 08:09

    우리나라 석탑은
    흔해 보이기도 하지만 귀한 문화재인 것 같아요.. ^^

  3. 핑구야 날자 2016.04.26 08:17 신고

    조용히 심신을 안정시키는데 좋을 것 같은 분위기네요

  4. 공수래공수거 2016.04.26 08:31 신고

    여긴 못 가본곳이로군요
    기회 잇으면 가 봐야겠습니다^^

  5. 워크뷰 2016.04.26 09:01 신고

    남산에 한번 가고 싶어집니다^^

  6. 2016.04.26 10:01

    비밀댓글입니다

  7. 맛있는여행 2016.04.26 13:28 신고

    봄이 되니 경주 남산이 많이 생각났는데
    오늘 글을 보면서 더욱 가고 싶어지는군요. ㅎㅎ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8. 도느로 2016.04.26 15:00 신고

    수없이 가본 경주지만 아직도 생소한 문화재들이 참 많네요.
    밟고 있는 땅이 모두 문화재라는 경주....참 가기 좋은시즌 같습니다. ㅎㅎ

  9. 『방쌤』 2016.04.26 15:03 신고

    남산은 자주 갔었는데 여기는 처음 보는것 같습니다
    항상 너무 같은 코스로 다녔나 봐요^^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10. 명태랑 짜오기 2016.04.26 17:38 신고

    포스트 잘보고 갑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11. 생명마루 신림점 2016.04.27 00:40 신고

    경주 구경잘했어요

  12. *저녁노을* 2016.04.27 06:33 신고

    작년에 다녀왔었지요.
    남산..보물이 가득하더군요.

    잘 보고갑니다.

  13. 죽풍 2016.04.27 07:59 신고

    염불사지 삼층석탑 보러 가 봐야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경남여행/의령여행)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보천사지 승탑. 폐사지인 보천사지에서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보천사지 승탑인 아름다운 부도를 만나세요.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벽화산 깊은 골에 보천사지 절터가 남아 있습니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 창건되었다합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승탑인 부도, 그리고 보천사지의 규모를 보면서 그 당시 보천사가 엄청나게 번창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폐사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보천사에 많은 빈대가 들끓어 폐사되었다합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처럼 남아 있는 절터의 폐사 원인을 보면 빈대로 인해 폐사되었다는 게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보천사지는 빈대가 폐사 원인으로 보기에는 조금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해봅니다.

 현재 보천사지가 있는 곳에는 벽화산성이 남아 있습니다. 벽화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다하며 임진왜란 때는 망우당 곽재우장군이 이곳 벽화산성에서 의병을 조직하여 왜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큰 승리를 하였던 곳입니다.

당시 벽화산성에서 왜적 수천 명을 몰살 시켰기에 왜구로부터 호남지역을 지킬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천사지와 벽화산성은 직선거리로 수백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으며 왜구들은 이곳 보천사애 주둔하며 벽화산성 탈환을 시도했던 것은 아닌지.

 또한,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의 힘은 약해 질대로 약해진데다 전란으로 보천사는 완전히 파괴되어 사라진 것은 아닌지 추정을 해 봅니다. 보천사지에는 현재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보천사지 승탑이 보물로 남아 전성기의 보천사를 짐작하게 할 뿐입니다.

 먼저 1960년 12월 보물 제373호로 지정된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을 찾았습니다. 고려시대 초기에 제작되었지만 2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른 석탑입니다.

 전체적으로 원만한 비례로 안정감을 주며 간결하고 기단부의 독특한 구성이 돋보이는 매우 수준 높은 작품입니다. 1967년에 도굴범의 소행으로 사리유물은 도난당했고 석탑은 파괴되어 다시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사리함의 흔적을 찾았는데 그 안에 청동 불상과 광배 모양의 구슬조각, 흙으로 만든 탑이 발견되었습니다. 넓은 빈터에는 삼층석탑만이 남아 있어 보천사지 승탑인 부도를 찾을 수 없어 현재 수암사 어디쯤 남아 있나 싶어 333개의 관음상이 세워진 진입로를 올라갔습니다.

 수암사는 보천사지 터에 최근 세워진 사찰로 옥석으로 제작된 2.8m 크기의 관음보살상이 볼거리이며 650m 거리에 양쪽으로 세워져 있어 장관입니다. 관음보살상을 보면서 가다 보통 승탑인 부도는 사찰 입구에 세워지는 게 일반적이다 싶어 다시 돌아 나와 수암 마을로 통하는 옛길을 찾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옛길 중간쯤에 의령 보천사지 승탑 1기를 찾았습니다. 승탑인 부도는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곳입니다. 보천사지 승탑은 부도의 주인은 알 수 없으며 1968년 12월에 보물 제472호에 지정되었습니다. 고려시대는 주로 석종형 형태를 이루어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부터 고려시대 초까지 조성된 팔각원당형과 구분이 됩니다. 승탑의 높이가 2.35m인 보천사지 승탑은 고려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팔각원당형의 기본 틀을 따랐습니다.

 문화재 안내판에 따르면 “지면에는 넓은 방형의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팔각 괴임을 일단 각출하여 하대석을 받치고 있다. 하대석은 팔각으로 상하를 갑석 모양의 팔각대로 구분하고 용과 구름무늬를 얕게 돋을새김 하였다”로 되어 있습니다.

 중대석도 하대석과 같이 팔각으로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상대석은 밑에 이단의 받침을 두고 앙련을 두텁게 새겼습니다. 팔각형 몸돌 한쪽 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짝 모양을 조각하였습니다.

 또한, 지붕돌인 옥개석의 추녀 밑은 수평이며 추녀는 얇으면서 옥개는 두꺼운 편입니다. 낙수면은 급경사를 이루다 추녀 부분에서 완만해지며 상륜부는 유실되어 현재 남아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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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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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nnpenn 2015.08.27 07:20 신고

    통일신라사대의 석탑은 대부분 보물이더군요
    부도도 상태가 매우 양호합니다.
    목요일을 잘 보내세요~

  2. kangdante 2015.08.27 07:41

    우리의 옛 문화에서
    석탑을 빼고는 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

  3. 죽풍 2015.08.27 08:06 신고

    의령여행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4. 윤중박희명 2015.08.27 08:16

    한번도 못가본 곳인데 포스팅으로 대신하면서 감사합니다

  5. 공수래공수거 2015.08.27 08:33 신고

    부도탑이 드물게 보물로 지정되었군요
    빈대때문에 폐사되었다니 참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6. 솜다리™ 2015.08.27 09:38 신고

    남아있는 흔적만으로 옛날 그시절의 모습..상상해 봅니다~

  7. 행복생활 2015.08.27 13:18 신고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를 보내셔요~

  8. 도느로 2015.08.27 14:14 신고

    굉장히 악날한 빈대군요..
    빈대가 저렇게 무서운 존재인지 몰랐습니다.
    많이 안타깝네요.

  9. 영도나그네 2015.08.27 15:19 신고

    경남 의령에 통일 신라시대의보천사지터와 함께 삼층석탑이 잘 보전되어 있었군요..
    아직도 폐사의 원인은 잘 모르지만 언젠가는 복원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덕분에 좋은자료 잘보고 갑니다....

  10. 헬로끙이 2015.08.27 18:14 신고

    석탑 세워놓은거 보면 참 신기한것 같아요 ^^
    덕분에 잘 보고갑니다

  11. 『방쌤』 2015.08.27 20:10 신고

    의령은 가까운 곳이라 자주 지나는데 꼭 한 번 들러보고 싶네요^^

  12. 드래곤포토 2015.08.27 22:05 신고

    덕분에 귀한 탑 보고 갑니다.
    즐거운 저녁되세요 ^^



 


 ☞(경북여행/청도여행)불령사 전탑. 문양을 새긴 전탑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는 청도 불령사 전탑입니다. 정말 정교한 예술품입니다. 


경상북도청도군 매전면 용산리 호랑산과 비룡산의 기암절벽을 갈라 비룡계곡을 만들었습니다. 물 맑은 수식어답게 이곳 비룡계곡은 한때 별천지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골짜기에 불령사가 있습니다.




 645년(선덕여왕 14년) 때 원효대사께서 창건하였으며 현재 이곳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불령사 모전탑입니다. 모전탑은 벽돌을 쌓아 만든 탑으로 석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돌로 만든 석탑에 비해 아주 귀한 존재입니다. 특히 불령사 전탑은 벽돌 한 장 한 장마다 불상과 삼층탑을 장식한 문양전이 남아 있으며 국내 남아 있는 전탑 중 유일하여 학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문양전 전탑은 당시의 작품을 유추해보면 원효와 함께 신라 최고의 조각가와 명필로 이름을 떨쳤던 석장사 양지 스님이 세운 것이 아닐까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동창천 건너 지금은 폐사하고 사라진 장연사에서 벽돌을 구워 인근 마을 불자에 의해 한 장식 머리에 이고 불영사로 옮겨 삼층탑을 조성하였다합니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불영사는 소실되고 전탑은 파괴되어 그 흔적만 남아 있다가 1912년에 들어와 봉주 스님에 의해 중건을 시작하였고 1930년 중수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불영사 전탑도 1968년 남아 있는 벽돌을 모아 오층으로 복원을 했지만 조잡하고 항상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0년에 와서 원형인 삼층 전탑으로 다시 복원되어 현재에는 무척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불령사 전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창건 당시의 전탑 원형은 알 수 없지만, 벽돌 한 장마다 옆면에 불상과 삼층탑을 번갈아 배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벽돌에 장식된 문양을 보면 세 구의 불상 사이에 삼층석탑 두기를 반 돋을 새김하여 같이 넣은 것을 보면 통일신라시대의 전탑양식을 따랐습니다.

 불상을 보면 연화좌대 위에 앉은 불신 전체를 감싸는 이중광배를 갖추었고 양다리를 꼬아 앉은 모습입니다. 불상의 머리에는 큼지막한 육계를 두었고 법의는 통견으로 옷자락이 배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대좌까지 내려옵니다.

 탑은 삼층으로 이중기단에 상륜부까지 나타낸 완전한 모습이며 기단 형태와 탑의 체감율 등은 완전한 탑의 형태를 나타내며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을 따랐을 정도로 불상과 석탑은 정교하게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불상과 석탑 상륜부에는 운상인 구름 문양을 넣어 적당한 여백을 두었으며 벽돌에 불상과 탑을 넣은 모전탑 배경은 천불천탑사상에서 연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불상과 삼층탑인 문양전이 사용된 탑은 울산 농소면과 경주 삼랑사지 등에서 출토되었지만, 전탑을 이룬 것은 청도 불령사가 유일하다합니다. 청고군청 홈페이지를 참고 했습니다.

 

 

 

 

 

 

 

 

 불령사 전탑

유형문화재 제472호

지정일:2013년 4월 8일

소재지:청도군 매전면 용산리 산98

시대:통일신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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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 불령사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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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복한요리사 2015.08.26 14:44

    아름답고 멋진 청도 불령사전탑을
    만나고 갑니다.
    기회되면 한번 가보고 싶네요. ^^

  2. 자취in 2015.08.26 15:17 신고

    이렇게 산들마다 절이 있는 이유가 뭘까요 ㅎㅎ

  3. 헬로끙이 2015.08.26 15:36 신고

    청도군이면 멀지 않은곳에 위치해 있군요 ^^
    덕분에 불령사에 대해 잘 알아갑니다

  4. 핑구야 날자 2015.08.26 17:54 신고

    벽돌에도 부처님이 계시네요. 대박 정교함에 놀랐습니다.

  5. 저녁노을 2015.08.26 18:57

    구경 잘 하고 갑니다.
    고즈넉하니 분위기 있는 사찰같아요

  6. 맛있는여행 2015.08.26 20:22 신고

    정말 처음보는 형태의 탑입니다.
    청도의 불령사도 처음 알게 되었구요. ㅎㅎ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7. 레이먼 2015.08.26 23:21 신고

    제 고향에 이런 사찰이 있다는 걸 이글을 통해 알게 되었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8. 워크뷰 2015.08.27 02:43 신고

    불령사 전탑도 보고 옆의 계곡도 보면 좋겠습니다^^

  9. 영도나그네 2015.08.27 15:24 신고

    청도의 불영사 전탑은 정말 정교한 미술기법으로 쌓아올린 특이한 모습의 벽돌탑이군요..
    벽돌 하나하나에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기도 하구요..
    자세한 설명과 함게 불영사에 대한 소개 잘보고 갑니다..

  10. 『방쌤』 2015.08.27 20:09 신고

    전탑을 가까이서 자세하게 보지 않으신 분들은 정말 후화되겠는데요^^

  11. 황룡사 2015.10.09 03:19

    잘 봤습니당. 이 탑에 새겨진 전각들이 황룡사복원에 큰 도움이 될것도 같더군요.
    http://luckcrow.egloos.com/2483273



 


☞(충남여행/부여여행)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시대 문화재를 만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충청남도 부여.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얼이 오롯이 남아 있는 전통 문화도시입니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서 26대 성왕이 지금의 공주인 웅진에서 천도한 곳이며 소부리 또는 사비라 불렀습니다.








 

그 후 123년 동안 이어오다 660년 의자왕(의자왕 20)이 집권하면서 나당 연합군에 패배해 백제는 멸망하였고 신라에 예속되어 문무왕 때인 672년 부여 도독부가 설치되었고 경덕왕 10년에 부여현이 되었습니다.


 

백제의 수도인 옛 사비를 상징하는 많은 문화재가 이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백제시대부터 이어진 부여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 국립 부여박물관입니다. 그래서 찾아간 부여박물관은 부소산의 낙화암과 고란사, 백마강, 정림사지, 궁남지 등 모든 문화재가 주위에 함께 있어 부여여행에서 참 편리했습니다.


 

부여박물관은 현재 박물관의 대표 유물인 국보 제287호인 백제 금동대향로와 국보 제288호인 백제 창왕 명석조 사리함, 국보제 293호인 금동 관세음보살입상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부여의 국보는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함께 모두 4점인데 그중 3점의 문화재가 이곳 부여박물관에 전시중입니다.


 

또한, 보물 제21호인 당유인원기공비, 보물 제107호인 보광사 대보광선사비, 보물 제194호인 부여석조, 보물 제196호인 금동 석가여래입상과 군수리 금동 미륵보살입상이 전시 중입니다. 그럼 부여박물관 입구로 들어가겠습니다.

 일단 내부로 들어서기 전에 많은 석물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먼저 ‘당유인원기공비’입니다.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때 당나라 장수 유인원의 행적을 기록한 비입니다. 원래 부소산 중턱에 있었다하며 몸돌과 용 6마리가 새겨진 머릿돌을 한 돌로 깎은 전형적인 당나라 형식의 비석입니다.



보광사대보광선사비는 보물 제107호로 보광사 중창을 주도한 원명국사 충감(1275~1339)의 행적과 보광사 중창과정을 기록한 비로 보광사 터에 있었습니다. 비문의 글씨는 그 뒤 마모가 되어 1750년 보광사 능일에 의해 다시 글씨를 새겼다 합니다.


 

 

동사리 석탑, 부여 금성산 천왕사지에서 발굴된 석조여래입상, 이수와 귀부, 연꽃 좌대 등이 야외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부여박물관 내부로 들어갑니다. 먼저 중앙에 보물 제194호인 부여석조가 웅장한 모습입니다.


 

 

 

절 등에서 물을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된 석조물로 백제의 왕궁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석조표면에는 정림사지 오층석탑 1층 탑신에 새겨진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했다’는 내용이 석조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가슴 아프네요.


 

지금부터 전시실 구경을 하겠습니다. 먼저 만나는 게 부여의 선시와 고대문화로 다양한 토기류와 철기류 등이 전시 중입니다.


 

 

 

 

 

 

 

 

 

 

 

 

 

 

 

 

 

 

 

 

 

 

 

사비 백제와 부여박물관의 대표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가 전시된 전시실입니다. 백제 창왕명석조사리감은 국보 제288호이며 부여 능산리 사지의 탑 심초석에서 출토되었는데 앞뒤로 같은 모양의 감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면에 뚜껑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뚜껑 턱이 있으며 사리를 봉안했던 용도로 사용되었고 출토 때 사리감은 폐기되어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리감은 성왕의 아들로 554년 왕위에 오른 창왕에 의해 만들어 졌는데 창왕의 여형제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는 내용이 명문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부여박물관을 대표하는 문화재는 역시 백제금동향로입니다. 국보 제287호. 1993년 12월 12일 백제 나성과 능산리 고분군 사이에서 출토되었고 높이는 61.8cm, 무게 11.8kg인 대형향로로 몸체와 뚜껑, 봉황과 받침대로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정교하고 화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백제시대의 공예술과 미술문화의 우수성을 알 수 있습니다.(호암미술관에 대여되여 부여박물관 홈피 사진 캡쳐)

.

 

이번 부여 박물관 관람에서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처럼 백제 금동대향로가 호암미술관에 대여 되어 정작 부여박물관 전시실은 텅 비어 있었고 아쉽게도 실물을 볼 수 없었습니다. 멀리 부산에서 달려갔는데 그것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는 중에 매우 아쉬웠습니다.(사진은 부여박물관, 부여군청 홈페이지 사진을 캡쳐했습니다.)


 

이외에도 부여박물관에는 보물 이외에도 많은 우리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여여행에서 꼭 둘러봐야 할 곳입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모두 관리자께 허락을 받고 찍은 사진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금동관세음보살입상은 국보 제293호. 1970년 충남 부여군 규암면의 절터를 발굴하면서 무쇠솥에서 관음보살 입상과 함께 발견되었는데 높이가 21.1cm로 작은 불상입니다. 머리에는 작은 부처가 새겨진 관을 쓰고 있으며 둥근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에다 목에는 가느다란 목걸이를 걸쳤고 옷의 주름 선까지 표현할 정도로 아주 정교하게 제작된 7세기 초 백제시대 불상입니다.


 

 

 

 

 

 

 

 

 

 

 

 

 

 

 

 

 

 

이곳은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보기 위해 찾았는데 아쉽게도 늦어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밖에서 눈팅만하고 돌아섰습니다.


 

 

 

 

부여박물관 안내정보

관람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토,일, 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오전 9시~ 오후 7시

야간개장: 매주 토요일(4월~10월) 오전 9시~오후 9시

단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휴관일

매주 월요일, 매년 1월1일

관람료: 무료

주차장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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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 국립부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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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신선함! 2015.08.05 13:10 신고

    잘 보구 가네요 ㅎㅎ
    좋은 오늘을 보내셔요~~

  3. 세이렌. 2015.08.05 13:57 신고

    몰랐던 문화재가 다양하게 있네요 잘 보고 갑니다~

  4. 천추 2015.08.05 13:59 신고

    부여는 낙화암만 가봤는데 담엔 박물관도 들려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 별내림 2015.08.05 14:02 신고

    무료라고하니관심이가지만멀어서아쉽기만해요~

  6. pennpenn 2015.08.05 14:53 신고

    부여에 가면 꼭 들리고 싶은 박물관입니다.
    수요일 오후를 잘 보내세요~

  7. 다딤이 2015.08.05 14:59 신고

    백제시대 문화를 알수있어서 좋겠습니다.
    잘알고 갑니다. 찜통더위 건강조심하세요^^

  8. 루비™ 2015.08.05 15:15 신고

    부여에는 들린 적이 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박물관을 보지 못했습니다.
    올려주신 사진으로 즐감했습니다.

  9. 행복한요리사 2015.08.05 15:23

    아이들 어릴때 들렀던 곳인데요~
    다시보니 추억이 그리워 집니다.
    한차례 소나기가 그리운
    더운 날씨입니다.
    건강 조심 하세요. ^^

  10. reene 2015.08.05 15:35 신고

    국사책에서 보던 유물들이 있는 부여!
    부여가면 박물관 꼭 가야겠네요^^

  11. 자취in 2015.08.05 16:03 신고

    아무 한눈에 부여박물관을 본 기분이 드네요~ ^^

  12. 대한모황효순 2015.08.05 16:58

    입장료가 없다니~
    너무 좋은걸요.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재
    감사히 보고 갑니다.^^

  13. 핑구야 날자 2015.08.05 18:28 신고

    볼거리가 많군요 백제 문화도 화려해서 외국인들이 좋아하겠죠

  14. 맛있는여행 2015.08.05 20:53 신고

    저희도 지금 부여 공주쪽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먼저 이렇게 안내를 해 주시네요. ㅎㅎ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15. 저녁노을 2015.08.05 21:31

    귀한 자료 잘 보고갑니다.^^

  16. 개인이 2015.08.05 22:20 신고

    박물관은 정말 아는만큼 보이는 것 같아요.

  17. 영도나그네 2015.08.06 16:40 신고

    백제시대의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는 부여박물관이 정말 잘 만들어져 있군요..
    다음기회에 꼭 한번 들려야 할것 같구요..
    덕분에 좋은 자료 잘보고 갑니다..

  18. 레드불로거 2015.08.06 19:08 신고

    어렸을 때 학교에서 단체로 견학갔던 기억이 새록새록해요! ㅎㅎ

  19. 『방쌤』 2015.08.06 21:04 신고

    경주는 정말 자주 갔었는데
    백제의 유적지에는 가본 기억이 없는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충남여행을 떠나면서 꼭 한 번 둘러보고 싶네요^^

  20. 악랄가츠 2015.08.06 21:45 신고

    아버지 손잡고 사진찍던 때가 문득 떠오르네요! ㅎㅎㅎ

  21. 귀여운걸 2015.08.08 15:49 신고

    백제시대의 문화를 만나러 가볼만한 곳이네요~
    국립부여박물관 주소 메모해갑니다^^





☞(충남여행/예산여행)덕숭산 수덕사. 만공대선사의 원력으로 선종 도량이 된 예산 덕숭산 수덕사.


예산 덕숭산 수덕사는 현재 문헌상의 창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백제 위덕왕(554~597)때 고승 지명이 세운 것으로 추정을 하는데 일설에는  599년 신라 진평왕 21년에 지명이 창건하고 원효스님에 의해 중수를 하였다고도 전합니다. 

 


그 후 제 30대 무왕때 혜연스님이 '묘법연화경'을 강설하면서 수덕사의 위상이 더 높았고 고려 31대인 공민화 때에 나옹선사가 주석하며 중수를 하였습니다. 현재의 수덕사 규모는 조선 제26대인 1865년 고종2년에 만공스님의 중창으로 선종 유일의 근본도량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예산의 수덕사를 찾아가는 길은 예사 거리가 아닙니다. 큰 마음을 먹고 찾아간 수덕사는 여행을 가기전 부터 필자에게는 많은 궁금증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가요인 '수덕사의 여승'를 들어면서 자랐던 저로서는 수덕사에 까까머리 여승들의 처연한 모습을 실제 만날 수 있을까도 생각을 하였습니다. 



수덕사를 찾아간 필자는 이곳도 여느 사찰과 똑 같은 모습인 것을 보았습니다. 수덕사의 환상이 깨어졌다고 할까요?. 나뭇가지를 때리는 겨울바람의 처연한 울음소리만 들리는 수덕사를 보기 위해 덕숭총림 수덕사 선문을 통과하였습니다. 



와!!!! 눈이다. 부산에서 좀체 보기 힘든 눈이 남아 있습니다. ㅎㅎ 반가움에 눈도 밟아 봅니다. 


'삼일수심 천재보 백년탐불 일조진'은 "삼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의 탐물은 하루 아침 이슬과 같다네" 참 좋은 법어입니다.


원담스님 부도탑을 지나면 덕숭산 수덕사로 들어서는 일주문이 반깁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덕숭산을 찾는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이 수덕사을 찾아 그야 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필자도 그중에 한사람이었습니다.

일주문 뒤쪽 현판에 동대제일선원인가요 누가 현판에다 지렁이 붙혀 놨네요. ㅋㅋ 좀 쉬운 글씨 채면 너무 좋은데 말입니다.



고암 이응노 화백이 머물렀다눈 수덕여관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덕숭산 수덕사 유래가 궁금합니다. 보통 천년사찰에는 한두가지의 창건설화가 전해오는게 정설입니다. 수덕사도 예외가 아닌 두가지 전설이 전해 옵니다. 



먼저 덕산 향토지의 내용입니다. 어느 마을에 수덕이란 도령이 살았는데 하루는 사냥을 갔다가 우연하게 낭자를 보고 그만 첫눈에 반하여 사랑에 빠집니다. 수덕도령은 그 낭자를 잊지 못하고 고민을 하다가 건너 마을의 덕숭낭자 임을 알게 되어 청혼을 하지만 여러 번 퇴짜를 맞습니다. 끈질긴 청혼에 덕숭낭자는 자기 집 옆에다 절을 하나 세워 줄 것을 조건으로 걸면서 청혼을 승낙합니다. 그 날로 수덕도령은 불철주야 절을 짓기 시작합니다. 여러번 절을 완공하지만 그때 마다 절에 불이나 다 타버리고 맙니다. 또 다시 절을 짓기 시작하면서 탐욕스런 마음도 버리고 덕숭낭자도 잊고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며 절을 짓습니다. 절이 완공되자 낭자는 어쩔 수 없이 도령과 혼인을 하지만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껴안는 순간 하늘에 천둥번개가 일면서 덕숭낭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낭자의 버선 한 짝만 남았습니다.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였고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는데 버선꽃이라 합니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그 이후부터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 수덕사가 되었고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 덕숭산이 되었습니다. 



또한 전설은 수덕사가 창건 된 후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을 하게 됩니다. 불사를 일으키기 위한 불사금을 모우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어느 날 공양주를 자청하는 여인이 나타납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요즘 말로 절세미인이 수덕사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은 빠르게 인근에 퍼져 나갔습니다. 그 날부터 수덕사에 여인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 때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어느 날 신라의 재상 아들인 정혜라는 사람이 소문을 듣고 수덕사를 찾아 와 여인을 보고 한눈에 반해 혼인을 하자며 청혼을 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수덕사의 대 중창 불사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청혼을 받아 들이겠다합니다. 이에 정혜도령은 자신이 불사금을 내어 절을 완공한 후 낙성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령은 여인보고 이제 같이 떠나자며 여인의 손을 잡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쩍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 짝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금도 봄이면 바위 틈으로 버선을 닮은 꽃이 피는데 이를 버선꽃이라부릅니다. 야생화를 찍는다고 다닌 경험이 있는 필자가 자세히 보니 ‘골담초’ 꽃입니다. 골담초가 버선꽃으로 불리는 사실과 수덕사 창건 전설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그 여인이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수덕이라 불렸으므로 수덕사라 부르게 되었고 정혜도령은 세상의 무상함을 느끼며 덕숭산으로 들어가 작은 절을 짓고 정혜사라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관음보살님 나빠요?????? 두 청년을 울리시니 말입니다. 흑흑(참고;수덕사 홈페이지)



덕숭산 수덕사 창건설화에 수덕도령과 덕숭낭자 정혜도령의 이름을 따 수덕사와 덕숭산, 정혜사가 된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수덕사 대웅전을 향하기 위해 금강문을 들어섭니다. 금강역사 두분이 좌우로 험상궂은 모습을 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그 문을 통과하면 사천왕문이 나옵니다. 사대천왕이 지키고 있어 온갖 악귀로 부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늠름한 모습을 보니 나쁜 놈들은 이 문을 통해서 절 안으로 한발짝도 들어오지 못 할 것 같습니다. "근무중 이상무"



지금부터 수덕사 사찰 구경을 천천히 하면 됩니다. 




먼저 문화재 자료 제181호인 수덕사 7층 석탑입니다. 1931년 일제강점기때 만공대선사에 의해 건립된 석탑으로 기단을 만들지 않고 바로 탑신과 옥개석을 올렸습니다. 문화재의 문외한인 필자 눈에는 너무 높다보니 약간 엉성하며 불안하게 보입니다(개인적인 생각).  


웅장한 코끼리석등의 모습입니다. 


황하정루 아래로 나가면 됩니다. 편액은 덕숭총림 수덕사 전 방장 원담 진성스님께서 쓰신 글씨입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이 있는 수덕사 마당입니다. 



수덕사 금강보탑입니다. 중창불사를 하면서 전탑좌대가 현위치에 발견되어 고증을 거쳐 석탑을 세우고 금강보탑이라 하였습니다. 금강보탑 내부에는 1988년 원담대선사께서 스리랑카를 예방하면서 한·스리랑카간의 우의 차원에서 스리랑카로 스님으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증정 받았습니다. 수덕사에서 십수년간 친견 법회를 열다 2007년 금강보탑을 완공한 후 봉안하였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입니다. 1962년 12월에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고 현존하는 목조건물인 국보 제15호 봉정사 극락전과 국보 제18호인 부석사 무량수전 다음으로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정면3칸, 측면 4칸의 주심포 양식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1937년 중수를 하면서 발견된 묵서에는 1308년인 충렬왕 34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의 단 아래에 위치한 수덕사 3층 석탑은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처음 신라 문무왕 5년에 건립된 탑으로 원효대사가 중수를 하였다하나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른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기단은 2층이며 위층은 4매의 돌로 면석을 조립하였습니다. 또한 각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표현되었고 지붕돌인 옥개석과 몸돌은 각각 1개의 돌로 만들었습니다. 1층은 5개의 옥개 받침을 하였고 2층과 3층은 3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면에는 1단의 받침으로 그 위에 몸돌을 받치고 있으며 지붕돌은 끝이 치켜 올라갔습니다. 보륜만 남아 있던 상륜부는 현재 찰주, 보개, 복발, 노반을 새로 만들어 올렸습니다.







관음바위 앞에 봉안된 관음보살상입니다. 온화한 미소가 너무 나 아름다운 관세음보살입니다. 석가모니께서 입적한 후 56억 7천만년을 지나 미래의 부처인 미륵보살이 출현 할때까지 중생을 고통으로로 부터 구해주는 대자대비의 보살이 관음보살입니다.  







수덕사 창건설화가 전해지는 전설의 관음바위입니다. 갈라진 바위 틈으로 버선꽃이 봄이면 피어 난다고 하니 봄에 찾아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관음바위를 지나면 덕숭산과 정혜사로 오르는 산길이 시작됩니다. 필자는 만공탑과 능인선원인 정혜사를 오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오르다 시간상 제약으로 그만 두고 사면 석불과 화소대를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하였습니다. 

사면석불입니다.



화소대 가는 오솔길

비구니 김일엽스님이 머물렀다는 화소대




두마리의 사자가 불법의 진리를 만방에 밝히는 석등을 들고 있는 쌍사자 석등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을 내려오면서 많은 관광객이 보고 있어 그냥 지나졌던 포대화상을 다시 만났습니다. 득남한다는 전설 때문인지 배쪽으로 손길의 흔적이 아주 많이 남아 있습니다.  


환회대도  만나고




금강문을 지나면 다시 일주문입니다. 오를 때 스쳐지나간 고암 이응노 화백의 수덕여관을 보기위해 찾아갑니다. 충청남도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이응노선생이 작고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던 곳입니다.



수덕사 관람요금 안내


대웅전 양옆에는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백련당과 청련당이 있고 조인정사와 정혜사를 오르는 1,020계단, 미륵불입상, 만공탑, 금선대, 진영각등과 만공스님이 참선 도량으로 세운 정혜사가 있습니다. 또한 부속 암자로는 비구니스님들의 참선도량인 견성암, 선수암, 극락암등이 있으며 견성암에는 비구니들이 참신정진하는 덕숭총림이 설립되어 있습니다. 문화재로는 보물제1236호인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 보물 제1381호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복장유물, 수덕사 유물인 거문고 소조불상좌상등이 남아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수덕사를 다 만나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방문이라 수덕사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만났는데 혹 다음에 또 다시 수덕사를 방문할 기회가 찾아 온다면 정혜사와 견성암등을 위주로 돌아 보고 싶습니다. (참고: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문화재 안내판)

◆수덕사 주소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안길 79 

◆전화:041-330-7700



수덕사 경내 조감도




2015/01/16 - (충남여행/예산여행)고암 이응노 화백과 수덕여관. 수덕사 여행길에 꼭 들러봐야 할 곳 이응노 화백의 수덕여관.


2015/01/13 - (충남여행/예산여행)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국보 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을 만나다.


2015/01/04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 보원사지. 서해안 폭설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서산 보원사지 여행.


2015/01/02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상.


2014/12/31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간월도 간월암. 서산 낙조 일번지라는 간월도 간월암의 해넘이 구경하고 왔습니다.











  1. *저녁노을* 2015.01.25 06:34 신고

    수덕사..고즈넉하니 평온해 보이네요.
    구경 잘 하고 갑니다.

  2. 아쿠나 2015.01.25 07:17 신고

    충남예산여행에 대해서 알아보시는 분들께도 좋고
    저도 잘 보고 가네요 ^^

  3. [블루오션] 2015.01.25 07:21 신고

    예산여행에 좋은곳 덕분에 잘 알아갑니다 ^^
    즐건 일요일 되세요~

  4. 2015.01.25 07:39

    비밀댓글입니다

    • 금정산 2015.01.25 07:58 신고

      아이고 먼길에 고생 많이 하셨네요. 어제까지만 해도 덕유산에 눈이나 볼까 하다가 게으름만 피우며 있습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5. landbank 2015.01.25 09:19 신고

    정말 너무 좋아보이네요 ㅎ
    잘보고갑니다

  6. 준스타(JUNSTAR) 2015.01.25 10:15 신고

    등산객들이 참 많네요 눈이와도 많이들 보시는거 같습니다
    직접 가지못하지만 늘 이렇게 사진으로 여행하고 갑니다^^

  7. 준스타(JUNSTAR) 2015.01.25 10:15 신고

    등산객들이 참 많네요 눈이와도 많이들 보시는거 같습니다
    직접 가지못하지만 늘 이렇게 사진으로 여행하고 갑니다^^

  8. 팰콘스케치 2015.01.25 12:09 신고

    오! 수덕사를 꼼꼼하게 다 둘러본 느낌이 들어요

  9. 멜옹이 2015.01.25 13:51 신고

    덕수산 수덕사 덕분에 잘보고 가네요

  10. 건강정보 2015.01.25 16:14 신고

    덕숭산 얘기 잘 읽고 갑니다~^^

  11. 귀여운걸 2015.01.26 02:46 신고

    꼼꼼한 설명과 덕불어 전설까지 알려주시니 너무 좋네요~
    조만간 구경하러 가봐야겠어요^^

  12. kangdante 2015.01.26 07:09

    잔설이 남아 있는 수덕사..
    더욱 아름답고 여유로워 보여 좋습니다.. ^^

  13. 한콩이 2015.01.26 08:19 신고

    수덕사 잘 구경하고 갑니다^^ 즐거운 한주되세요~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광한루. 성춘향과 이몽룡의 광한루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광한루가 있는 광한루원(2008년 명승 제33호)은 조선시대 지방관아에서 조성된 대표적인 관아정원으로 손꼽고 있습니다. 조선 세종때 황희가 처음 세워 관통루라 하였으며 그 뒤 정인지가 ‘광한청허부’라 하여 광한루가 되었습니다.



경복궁의 경회루 지원과 전남 담양군에 있는 우리나라 3대 정원의 소쇄원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광한루원은 한국의 독특한 조경양식을 만드는데 출발점이 되며 한국정원을 대표한다하겠습니다. 



광한루원을 대표하는 건물인 광한루를 포스팅하겠습니다. 보물제 281호인 광한루는 조선시대 청백리의 표상인 황희 정승이 1419년 남원의 유배 생활 때 지은 것으로 광통루라 불렀습니다.



세종 16년인 1434년에 정인지가 광한루 건물을 고쳐 세운 뒤 전설속의 달나라 궁전인 ‘광한청허부’를 닮았다하여 광한루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선조때인 1582년에는 정철이 광한루 앞에 다리를 만들면서 그 위를 가로지르는 반월형 교각을 놓고 오작교라 불렀습니다.



현재의 광한루는 1597년 정유재란 때 화재로 소실 된 것을 1626년 인조 4년에 다시 지은 건물입니다. 광한루의 부속건물은 정조 때 세웠습니다. 광한루의 규모를 보면 정면 5칸에 측면 4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입니다.


또한 누마루에는 난간을 둘렀고 기둥 사이에는 네면 모두 문을 달았습니다. 여름에는 사방을 개방하여 안쪽으로 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광한루 동쪽의 부속건물은 정면 2칸, 측면 1칸에 툇마루와 난간을 둘렀고 안쪽은 온돌방을 넣었습니다. 광한루 북쪽 중앙의 층계는 건물이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 후기인 고종 때 만든 것입니다.



광한루와 함께 평양의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를 우리나라 4대 누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광한루는 고전 춘향전의 무대로 성춘향과 이몽룡이 이곳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님원여행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광한루 여행입니다.


◆광한루 사진으로 만나보세요◆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광한루 입장요금과 관람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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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동 | 광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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