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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구여행)부산 송도해수욕장 겨울 바다 여행. 송도케이블카에서 보는 송도해수욕장 일출!!


올겨울 들어서 처음 부산 서구 암남동 송도해수욕장 출사를 나갔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과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도 ㅋㅋ

주로 아파트 옥상이나 베란다에서 일출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가까운데 익숙해서 그런지  사람이 자꾸만 게으르지는 거 같았습니다. 

겨울도 오고해서 이제는 안되겠다 싶어 송도해수욕장 출사를 감행했습니다.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주소: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 135-5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전화:051-240-4086




2015/09/15 - (부산서구/그곳에 가면-명소)(부산여행/서구여행)동대신동 닥밭골 벽화마을. 가을철 가보기 좋은 아름다운 벽화마을 닥밭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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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1 - (부산맛집/부산서구맛집)송도해수욕장 부산고등어. 국민생선 고등어 전문점 부산고등어에서 고등어 추어탕을 맛보다.




송도해수욕장 오른쪽 데크로 먼든 볼레길 입구까지 차를 얻어타고 갔습니다. 

이곳이 송도해수욕장 일출 촬영지이며 데크나 해안가 바위마다 

많은 찍사들이 자리를 잡고 오메가 촬영을 합니다.

올해 겨울은 초행이라 멀리 나가지 않고 송도해수욕장 케이블카 철탑 을 지나 사진촬영 포인트가 붙은 덱 전망대에다 자리를 잡았습니다.

 구름이 짙게 걸려서 오메가는 텃구나 하면서 일단 삼각대를 설치했습니다. 

날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일출 촬영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일출 출사에서 모든분이 오메가를 기다리지만 

오늘 같이 구름이 적당히 끼여 구름에 반사되는 여명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구름의 조화는 도저히 인간이 만들어 낼수 없는 그런 색상이었습니다. 





눈으로 호강하고 입으로 감탄하고 보낸 송도해수욕장 해돋이

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리고 

넋을 놓고 보았습니다.





붉은 해가 솟아 오르니까 이번에는 송도해수욕장의 새로운 명물꺼리가 된 

송도해수욕장 케이블카가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붉은 태양을 받으며 움직이는 송도해수욕장 케이블카를 넣어 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실력도 딸리고 사진기와 렌즈 화각이 좁아 ㅎㅎ 다  담을수 없었습니다. 






멋지긴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붉은 기운의 태양을 받으면서 움직이는 케이블카 

무ㅡ슨 영화의 한장면 같았습니다. 


 


원도 한도 없이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또 내일 구경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느긋해졌습니다. 

대충 삼각대를 접고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슬금슬금  걸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올 때는 차를 얻어 타고 왔지만 

갈 때는 얻어 타고 갈 차도 없어 아침의 송도해수욕장도 오랜만에 보고 집까지 걸었습니다.






요몇년동안 송도해수욕은 경천동지할 발전을 했습니다. 

송도해수욕장은 우리나라 사설해수욕장으로서는 1호이며, 

그 유명한 해운대해수욕장도 송도해수욕장에는 발아래입니다. 

100년도 더 넘은 오랜역사를 가진 송도해수욕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전용 해수욕장이었다가 한국동란때는 미군의 휴양지가 되는 등

 우여 곡절은 겪은 최고의 인기 해수욕장이었습니다.



지금도 생각나지만 송도해수욕장의 디이빙대와 거북섬의 케이블카가 

오랫동안 송도의 대명사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다 폐쇄되었으며, 

최근에 100년 송도해수욕장의 복원 프로젝트에 

하나하나 옛날 유명했던 송도해수욕장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송도해수욕장 볼거리는 바다 위를 걷는다는 바다 전망데크 길로 

일명 스카이워크 전망대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게 만들어졌다하며 

전국에서 송도해수욕장의 스카이워크 전망대를 보려고 많이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여름에 개장한 송도케이블카도 

송도해수욕장에서 즐기는 볼거리로는 이보다 더 좋을수 없는 최고라며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자주 걷는 길이지만 오늘 송도스카이워크 구름산책로를 걸었습니다. 

해를 보면서 걷는 스카이워크 전망대는 또 다른 맛이 있었습니다.



앞이 보이는 작은 소나무 동산이 송도 송림공원입니다. 

요기 옆에 송도해수욕장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습니다. 

쉴새없이 꿀벌이 먹이를 물고 들어 가듯이

 케이블카가 승강장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를 반복 합니다.

아침 일찍이라 타는 사람이 없고 아마 시운전중으로 보입니다.

 


케이블카의 끝은 암남공원입니다. 

저 끝에 보이는 곳이 암남공원 승강장이며 종착점입니다. 



여름 바다는 분답고 복잡하다면 

겨울바다는 조용하고 운치와 품위가 있습니다.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에서 추억을 쌓는 품위있는 겨울 여행을 계획해보세요. 

 

송도스카이워크인 구름산책로



















 이번에 송도해수욕장에 나가서 담았던 사진 중에서 몇장입니다. 

이른 아침 송도해수욕장 일출 여행도 아주 괜찮습니다. 

 항상 큰 배들이 바다를 지키고 있는 묘박지라서

텅빈 바다 보다는 훨씬 안정감 있는 일출 사진을 담을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 사진 기술과 예술성이 많이 부족하여 작품 같은 사진을

담기에는 내공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송도해수욕장 해돋이를 올겨울에 담아볼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에 와 닿는 송도해수욕장 일출 사진이 한장쯤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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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포항여행)포항 오어사. 10월 여행지 포항 오어지와 오어사의 단풍에 반하다. 


포항 오어사는 오천읍에 있지만, 시내와 가까워 많은 시민이 휴식을 즐기려고 찾는 곳입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를 떠나서 정말 사람이 많이 찾습니다. 특히 가을빛이 오어지와 오어사를 물들이면 관광객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저도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때 오어사와 오어지 단풍구경을 위해 부산에서 길을 나섰습니다.





포항 오어사 주소: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향사리 34

포항 오어사 전화:054-292-9554




2014/12/08 - (경북여행/포항구룡포여행)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완벽한 일본 거리로 바뀐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탐방-1

2014/12/10 - (경북여행/포항구룡포여행)호미지맥 응암산 박바위~명월산 산행. 호랑이 꼬리 호미곶 응암산 박바위~명월산 산행.

2014/12/21 - (포항여행/구룡포여행)구룡포항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2. 구룡포 공원과 일본가옥인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를 여행하세요.

2016/02/04 - (경북여행/포항여행)포항 달전리 주상절리. 200만년전 땅속의 불기둥이 굳어져 독특한 모습의 돌기둥으로 변한 포항 달전리 주상절리 여행

2016/02/17 - (경북여행/포항여행)포항 청하면 월포해수욕장 용산 산행. 동해 해돋이 명소로 소문난 낮지만 옹골찬 용의 전설을 간직한 포항 용산 산행. 포항 용산





요즘 부산에서 포항은 포항~부산고속도로 때문에 아주 가까운 이웃이 되었습니다. 송정 톨게이트를 올리면 포항 톨게이트까지 40분이면 통과한다고 하니 어지간한 부산 시내보다도 더욱 가깝습니다. 그만큼 손쉽게 갈수 있습니다. 오어사·오어지 아랫마을까지는 수월하게 도착했습니다.

 


주말에는 오어지 둑방 아래에 만들어둔 두 곳의 대형주차장에서 주차하고 걸어서 올라가야 하지만 평일에는 오어사 앞 주차장까지 올라가서 주차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오어사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올라가는 도중 관광버스와 도롯가에 주차된 차량 그리고 들어가고 나오는 차량이 뒤섞여 완전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우리는 괜히 차를 끌고 올라왔다며 후회 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할수 없이 가는 데 까지 일단 가보자며 차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일주문 직전 다리를 건너기 전에 오른쪽에 주차공간이 있어 그곳에 냅다 그냥 꽂아 넣고 오어지를 돌아 오어사로 걸어갔습니다. 야!! 그곳에 주차하길 잘했다며 밀린 차량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갔습니다.





남들이 보면 꼭 차를 안 가지고 올라온 사람처럼 하고 말입니다. 오어사의 작은 출입문을 들어서면 먼저 큰 나무가 있는데 요게 보리수나무입니다. 보리수는 부처임이 열반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들었다 하여 불교에서는 하나의 상징적인 나무입니다.







그리고 이 보리수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더욱 불교와 밀접한 나무라 오어사 경내에 이 보리수나무가 있는 것을 보면 천년고찰의 오어사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습니다. 창건할 때는 항사사라 불렀으며 왜 오어사로 바뀌게 되었는지 그 사연이 있습니다.







 이는 삼국유사 제4권 의해편에 전하는데 오어사와 오어지는 원효대사와 혜공선사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운제산에서 혜공은 항사사(현 오어사)에 머물렀고 원효는 운제산 자락에다 초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그러자 혜공은 원효가 당나라에 유학을 떠난다는 소문을 듣고 먼저 당나라 유학을 다녀온 혜공으로서는 원효를 시험해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원효에게 제안하자 원효도 단박에 OK 하며 수긍했습니다. 혜공의 제안은 기발했습니다. 절 앞에 흐르는 계곡을 가리키며 물고기를 삼켜서 대변을 본 뒤 삼켰던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 이긴 걸로 하자였습니다.

 




원효와 혜공은 물속에 뛰어들어 각자 물고기를 한 마리씩 삼켰습니다. 그런데 삼켰던 물고기 중 한 마리는 죽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며 놀았습니다. 두 대사가 그 물고기를 가리키며 서로 내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인다며 고함쳤습니다. 그 후에 항사사는 나오(吾)자에 고기어(魚)자인 오어사가 되었다 합니다.

 


현재까지도 서로 자신의 물고기가 살았다 하여 물고기 주인은 할 수 없다 합니다. 오어사는 신라의 4대 성인이라는 원효·의상·자장·혜공선사가 머물렀던 사찰이며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스님도 수행했던 유서깊은 사찰입니다.

 


그리고 운제산의 유래를 보면 원효와 의상은 오어사 맞은 편 바위벼랑에서 수행하였고 자장과 혜공은 지금의 자장암 벼랑에서 각각 수행하다 구름을 모아서 사다리를 만들어 서로 내왕했다 하여 구름사다리 산인 운제산이 되었다 합니다.

 




오어사를 들어서면 먼저 오어사의 보물인 범종은 빠트리지 않고 보고와야 합니다. 오어사 범종과 원효대사의 삿갓이 오어사 박물관에 현재 전시 중입니다. 오어사 범종은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 합니다. 발견하게 된 사연도 오어사와 운제산의 유래처럼 재미있습니다.

 



오어사 앞의 오어지 저수지를 공사하다 진흙 속에 묻혀있던 것을 우연하게 찾아내어 보전처리를 거쳐 현재 전시 중입니다. 범종에는 고려 때인 1216년(고종3)에 대구 동화사 순성대사가 주조하고 종을 제작한 사람은 순광이란 이름까지 나와 있습니다.





신라시대 범종 양식을 잇고 있으며 종을 메 다는 용뉴와 우리나라 범종에만 있다는 음통은 용이 마치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이 힘차며 섬세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원효대사의 삿갓이 진짜로 맞는다면 삿갓은 1,300년 전의 것입니다.

 






삿갓을 보면 완전 누더기같이 헤어져 머리에 쓰고 다녔다는 삿갓이 의심될 정도로 훼손이 심한 상태입니다. 삿갓은 종이와 실로 만들었고 안에는 솜을 넣고 바깥에다 풀뿌리로 만들었습니다.





오어사 대웅전은 석가 삼존불을 주불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상량문을 보면 1741년(영조17)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앞면 3칸에 옆면 2칸에 다포형식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팔자모양을 한 팔작기와지붕입니다. 201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2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전체적인 대웅전은 화려하며 많은 공을 들인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자장암은 신라의 네 성인 중 한 분인 자장율사께서 수도했던 곳입니다. 지금은 태국에서 부처님 사리 7과를 기증받아 1998년 세운 금강계단이 있습니다.







 

오어사에서 보면 깎아지른 벼랑 위에 제비집 형태로 완전 벽에 붙었을 정도로 불안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20여 분 가파른 산길을 올라 자장암을 찾아가면 밑에서 봤던 것보다는 그리 위험하지 않아 안도하게 되는 두 얼굴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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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위양지. 가을 단풍이 아름다웠던 밀양 위양지 여행.


지난 주말 밀양시청도면 가는 길에 위양지를 보러 갔습니다. 아침 일찍 부산에서 출발해서 위양지에 조금은 이른 오전 9시경에 도착했는데 많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왔다갔다하면서 위양지 담기에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잠시 위양지를 둘러보기로 하고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습니다.





밀양 위양지 주소: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297





겨울의 삭풍은 아니지만 그래도 늦가을의 매서운 추위가 차를 나서는 나의 몸을 휘감았습니다. 손이 시럽다고 느끼면서도 혹시 물안개가 피어오르나 싶어 물가로 달려갔지만 위양지를 휘감은 물안개는 볼 수 없었고 그냥 휑한 상태였습니다.






위양지는 사계절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특히 5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꽃망울을 터트리는 이팝나무는 더욱 유명합니다. 위양지를 휘감은 이팝나무는 팝콘이 터지듯 일제히 만개하면 하늘도 하얗고 세상도 하얗고 위양지 물속도 하얗게 비쳐 그야말로 순백의 하얀색으로 치장합니다.






이때의 위양지는 전국의 사진작가를 불러모아 자신의 가치를 확 끌어 올리면서 위양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냅니다. 그러나 여름의 위양지 또한 이팝나무를 비롯한 노거수들이 일제히 녹색으로 갈아입어 시원한 정자나무로서 휴식을 제공해 줍니다.


 






가을에는 그 푸르렀던 나무가 서서히 붉은색으로 치장하는 모습은 위양지의 최고 볼거리입니다. 위양지의 가을 색이 궁금해서 5월 이팝나무의 위양지를 마다하고 찾았습니다. 시간은 오전 9시경, 오래된 고물 디카를 들고 위양지 둘레길을 나섰습니다.






카메라를 든 동호인이 여러 명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위양지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건졌는지 모두 즐거운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좋은 게 있나 싶어 나섰지만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붉게 변한 나뭇잎과 주위의 산만 자꾸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간이 맞지 않았는지 반영도 저에게는 보이지 않고 해서 그냥 이것저것 담으려고 카메라 셔터를 쿡쿡 눌렀습니다. 그리고 한 바퀴를 다 돌았더니 대략 1km쯤 되었습니다. 위양지는 신라 시대에 세워진 저수지입니다. 그만큼 역사성을 가진 오래된 저수지라 놀라웠습니다.

 




하기야 제방에 심어진 굵은 나무를 보면 족히 수백 년은 된 것으로 보여 위양지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위양지(位良池)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양민을 위한다는 뜻으로 임금이 백성을 위해 쌓은 저수지입니다.





이런 걸 보면 조선 시대에는 위양지가 이 근방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는 정말 유용한 저수지였을 거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아래쪽인 퇴로마을 앞에 규모가 엄청나게 큰 가산저수지가 있습니다. 위양지는 신라와 고려를 거쳐오다 1634년에 밀주 부사인 이유달이 다시 쌓았다 합니다.

 










현재 위양지 안에는 작은 섬이 여러 개 있으며 그중 가장 큰 섬에 안동권씨가 세운 완재정이 분위기 있게 서 있고 위양지 또한 안동권씨 집안에서 관리하고 있다 합니다. 현재 위양지는 농사용수인 저수지 기능도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는 아름다운 경승지로서 더 큰 기능을 한다 하겠습니다.





이제 내년 이팝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5월이 손꼽아 기다려 집니다. 오늘 가을 단풍의 위양지를 만났다면 이팝나무가 화려한 5월의 위양지를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고 사진을 담고 싶습니다. 위양못 이팝나무숲은 ‘2016년 제16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했으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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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여행/울주여행)범서 선바위. 울산12경 선바위의 풍경에 반하다.

 

큰 바위가 계곡이나 마을 입구에 서 있는 곳을 지나다 보면 백발백중 그 마을의 지명은 선바위 또는 입암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지명에서 선바위가 있으며 전국의 선바위를 여러 곳 저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부산과 가까운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 태화강 가에 있는 범서 선바위였습니다.

 


울산 선바위 주소: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 135

울산 선바위 연락처:052-229-7635



2017/03/15 - (울산맛집/언양맛집)손막걸리 복순도가.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복순도가의 탄산막걸리 맛보세요??

2017/03/09 - (울산맛집/울주언양맛집)수제맥주 트레비어. 울주군 언양읍 수제맥주 트레비어에서 맥주의 참맛을 느끼다.

2011/02/25 - (울산여행/울주여행)천전리 암각화. 선사시대때 새긴 암각화의 모습, 천전리 암각화

2011/02/24 - (울산여행/울주여행)두동면 대곡박물관. 고향의 정취가 생각나는 울주군 두동면 대곡박물관의 모습

2013/01/03 - (울산여행/울주여행)만고충신 박제상과 그의 가족 영혼이 잠들어 있는 울산 치술령 산행



 

독립바위로서 우뚝 솟았는데 늠름한 기상이 넘쳐나는 장군을 닮기도 하고 장군의 투구 같기도 한 형상의 바위였습니다. 높이가 33m에다 둘레는 46m로 원뿔과 비슷한 모습이며 물속에 반쯤 박혀 백룡담 여울을 나홀로 지켰습니다.


 










 

 




범서 선바위의 암질은 이 부근의 지질이나 암층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바위라 합니다. 또한, 이곳의 경관을 금강산의 해금강에 비유했을 정도이며 뛰어나 울산 12경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백룡소에는 백룡이 선바위를 지키며 살았다는 전설과 가뭄으로 인근 고을이 타들어 갈 때는 이곳에서 비를 내려 달라는 기우제를 지냈다 합니다. 그때마다 항상 비가 내렸다 합니다.




 


 


 


 


 

절경이 빼어난 선바위의 풍광에 근방의 선비들이 찾아서는 물가에 발을 담그고 시문도 나누고 노래하고 풍류를 즐겼으며 자연을 벗 삼아 거닐었던 곳입니다. 아름다운 선바위에 정자가 없을 수 없습니다. 용암정으로 불리는 정자이며 입암정이라고도 합니다. 김종직, 권상일 등 많은 선비도 선바위를 찾아와 아름다움을 칭송했다합니다.


 


 


 


 


 


 

1796년인 정조 20년에 울산 부사였던 이정인이 현재 용암정이 있던 자리에 2칸짜리 입암정을 세웠지만. 보존하지 못하고 유실되어 내버려두다가 1940년에 후손에 의해 용암정을 창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용암정은 학성이씨 문중의 강당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선바위가 있는 이곳을 선바위공원이라 합니다. 여기서 울산 12경인 태화강 십 리 대밭 길이 시작됩니다. 그래서인지 주차장이나 기본 시설이 정말 잘 되어 있어 가족 간의 나들이에도 정말 좋아 보였습니다. 울산을 찾는다면 선바위도 한번 쯤 둘러볼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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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북상13경 갈계숲. 산림처사의 안식처 였던 거창 갈계숲을 여행하다. 


거창 갈계숲은 거창 북상 13경중에서 3경에 속하는 아름다운 숲입니다. 수승대 둘레길(거창 수승대 문화유산 여행길)을 걷느라고 늦게 도착했던 거창 북상면의 최고의 숲인 갈계숲을 상세하게 볼 수 없었던 게 지금까지도 많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거창 북상 13경의 3경 갈계숲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2014/06/29 - (경남여행/거창여행)우두산 고견사. 거창을 대표하는 고견사 원효, 의상, 최치원의 전설이 남아 있는 거창 가조 우두산 고견사 둘러보기.

2014/08/26 - (경남여행/거창여행)점필재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일원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 남상 일원정

2014/08/27 - (경남여행/거창여행)감악산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이 유명한 감악산 연수사에서 얼음물을 맞다.

2014/09/02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감악산 산행. 감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뼈속까지 시린 물맞는 약수탕에서 물맞이를 하다.

2014/09/03 - (경남여행/거창여행)김숙자사당. 영남사림파의 발흥이 된 거창 남상면 강호 김숙자 사당을 보고오다.



 


여유있는 갈계숲 여행을 하면서 자세한 포스팅을 해야겠지만 시간 제약으로 어쩔수 없이 다음으로 미루야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박 겉핥기식이라도 보고 왔던 거창 북상면 갈계숲을 소개하겠습니다. 갈계숲에 들어서면  우람한 굵기의 나무 밑둥치와 최소한 수령이 수백 년은 됨직한 고목은 아직도 푸름을 잃지 않고 싱싱하며 또한, 엄청나게 넓은 나무숲에 정말 놀랐습니다.

 


이를 보면은 치내마을에서 갈계숲의 위상을 잘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지금까지마을에서 갈계숲을 잘 보존하고 관리해서 오늘의 갈계숲은 거창을 찾는 관광객에게 최고의 힐링 숲이라는 찬사를 받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거창 북상 갈계숲은 1982년 11월에 거창군에서 천연보호림 2호로 지정하였습니다.




갈계숲의 수종을 보면 주종인 소나무를 위시하여 물오리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 족히 200~300년 된 고목이 군집해 있습니다. 2ha 넓이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친 나무는 한여름에 수림의 바다를 연상시키듯 넓고 내리쬐는 뙤약볕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여 북상면의 찾는 관광객에게 정자나무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정말 냉장고 속 같이 시원했습니다.








갈계숲은 세상에 나서지 않고 산림 처사로서 은둔하며 지냈던 선비들이 몸을 숨기기에 좋았던 곳으로 보입니다. 갈계리에 은진 임씨가 입향하게 된 것은 의령현감이었던 임천년은 세종이 승하하자 벼슬에서 물러나기로 작정하고 덕유산 아래 산자수명한 갈계리를 찾아 눌러 앉았다 합니다.

 


이분이 갈천선생의 증조부이며 북상면 갈계리는 은진임씨 세거지가 되었습니다. 송계사 계곡에서 흐르든 옥수는 숲머리에서 물길이 동서로 갈라져 흐르는데 이를 갈천이라 합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섬이 만들어져 나무 숲을 이루었으며 갈계숲이라 하였습니다. 갈계숲은 가선정이 있어 가선림이라하였고, 치내마을의 숲이라 하여 치내숲, 최근에 청학교 가설로 청학림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갈계숲은 조선 중기 갈천의 부친 석천공 임덕번께서 사마시에 합격하면서 진사가 되었으나 당시 나라의 정세가 예사롭지 않음을 깨닫고는 벼슬의 꿈을 접고 고향인 갈계에서 은거하며 처사로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갈천 임훈, 도계 임영과 첨모당 임운 삼형제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문인들과 시를 짓고 시문을 서로 나누며 은사(隱士)로서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 삶을 살게됩니다.



갈계숲에는 시문을 나누었을 법한 정자가 현재 3개 있습니다. 가선정, 도계정, 병암정입니다. ‘신선이 타고 노니는 정자’라는 가선정은 효자로 알려진 갈천 임훈선생을 추모하는 정자로 일제강점기인 1936년 후손에 의해 중창했습니다. 정자를 보면 날아갈 듯한 날렵한 모습에 풍류를 아는 고고한 선비의 정신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앞면 2칸, 옆면 2칸인 가선정은 팔작지붕 형태의 2층 누정의 기와건물입니다. 가선정은 특이하게도  2층 마루로 오르는 계단을 마루 밑에 두었으며 마루 판자를 열고 오르도록 설치했습니다. 이는 마루의 전체적인 공간활용을 하도록 했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정자입니다.





가선정의 단청을 보면 천장의 대들보에는 용무늬와 천장에는 갖가지 화려한 단청이 그려졌는데 그중에는 신선 4명과 바나나와 수박 그림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중창하면서 그린 것이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도계정은 도계 임영을 추모해 1889년 후손들이 경모제를 세웠다가 1934년 중건하였고 1935년에는 정자인 도계정을 건립했습니다. 임영은 갈천 임훈선생의 동생입니다. 재주와 학식이 걸출한 분이었다지만 31세에 요절해 생전에 남아 있던 저술마저 전하는 게 없었으며 근래에 임씨 문중에서 도계선생의 ‘석천세고’와 ‘도계선생유사집’을 간행했다 합니다.



도계정은 요절했던 임영선생을 기려서인지 단청은 하지 않았습니다. 앞면은 3칸, 옆면은 2칸이며 가운데다가 방을 넣고 좌·우 각 1칸의 마루에 계자난간을 둘렀습니다. 기와지붕 네 귀퉁이에는 활주를 세웠으며 보기에도 누각의 안정이 전체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또 하나의 정자는 보지 못하고 왔던 병암정입니다. 병암정은 첨모당 임운의 증손자인 병암 임여남이 일찍부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자연을 접하는 처사로 사는 삶을 살았으며 병암정은 후손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선생이 살았던 마을 서쪽 시냇가에 병풍처럼 둘러쳐 진 아름다운 곳을 병암이라하면서 자신의 호를 병암이라 했습니다.

 




그후에 후손들이 선조 임여남의 유허지에다 '병암정사'를 짓고 학문을 논하다가 1868년 화재로 불탔습니다. 1909년에 다시 그자리에다 작은 정자를 짓고 ‘병암정’이라 했습니다. 병암정은 두정자와는 다르게 단청이 돋보일 만큼 화려한 게 특징입니다.

 




또한, 작고 아담해서 그런지 여성적인 분위기가 매우 돋보이는 정자라고 하며 네 귀퉁에 활주까지 갖추어져 중후하고 단아한 조선 여인을 닮았다는 평입니다. 조선 선비상인 갈계숲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가선정, 도계정, 병암정의 누각 건물을 보면서, 다음에 다시 기회가 찾아온다면 갈계숲에서 산림 처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갈천 임훈선생과 그의 형제를 다시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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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도암정. 정자의 고장 봉화에서 만난 도암정


봉화를 2박 3일 여행하면서 가장 먼저 찾았던 곳이 경상북도 봉화군 붕화읍 거촌2리 황전마을 앞의 도암정(陶巖亭)입니다. 막상 황전마을을 찾아가면 전체적인 황전마을의 분위기와 규모는 알 수 없이 정자인 도암정만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고백하자면 황전마을은 도암정 주변에 보이는 민가가 전부라 생각했는데 포스팅을 하면서 안쪽에 경암헌고택과 함께 큰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곳까지 가보지 않았던 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봉화 도암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502

봉화 도암정 연락처:054-679-6392




2012/12/07 - (경북봉화여행)봉화 선달산산행. 신선이 놀던 곳 백두대간 선달산 산행

2012/12/16 - (경북여행/봉화여행)단맛없는 사이다 맛이 이런 맛.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 오전약수

2012/12/17 - (경북여행/봉화영월여행) 단군왕검을 뜻하는 박달나무, 우리나라에 박달령이 많은 이유가 있네. 백두대간 선달산 박달령

2013/11/13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청량산 전망대 청량산 축융봉 산행.청량산

2017/02/10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송이 용두식당. 춘향목의 솔향이 가득한 봉화 송이돌솥밥 용두산장에서 맛보다.


도암정은 부산에서 출발해 남안동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봉화로 들어서는 915번 도로를 타고 봉화읍으로 가다 우리 눈에 얻어걸린 정자입니다. 봉화에서 같이 여행할 팀과 봉화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도 조금 이른 것 같아 차를 되돌려 지나쳤던 도암정을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런 누정을 워낙 좋아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도암정 앞으로 사각 형태인 큰 인공연못에 연꽃은 모두 졌지만 넓은 연잎이 푸름을 잃지 않고 연못을 온통 뒤덮고 있었습니다. 안쪽 귀퉁이에 차를 붙였습니다. 연못을 끼고 돌면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도암정의 날아갈 듯한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연못 가운데는 돌로 쌓은 인공섬인 석가산에 심은 큰 소나무로 도암정의 고색창연한 정자의 운치는 한층 더했습니다. 사실 자연을 탐하는 선비는 연못 속의 석가산을 실제 산보다도 더욱 귀하게 여겨 정자를 끼고 있는 연못에는 석가산은 빼놓지 않는 하나의 필수품이라 합니다.





그만큼 운치를 더하고 귀한 존재였던 석가산을 도암정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도암정을 세웠던 황파 김종걸(黃坡 金宗傑 1628~1708)의 자연을 보는 심미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도암정은 우리나라 3대 전통정원인 담양 소쇄원, 영양 서석지, 보길도의 세연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연못과 누정의 아름다움은 그에 못지않게 나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려 그 기억이 뇌리에 오랫동안 가시지 않습니다.









이런 멋진 정원을 가졌던 도암정의 주인인 황파 김종걸이 어떤 선비였는지 많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본관은 의성이며 자는 국경(國卿)이고 호는 황파입니다. 선생은 효성이 지극해서 부모님의 공양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합니다. 부모님께서 편찮다면 밤낮으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병간호를 하였으며 부모님께서 좋아하는 음식과 몸에 좋다는 약초가 있다면 천 리 길이라도 마다치 않고 꼭 구해와서 부모님께 드시게 했다 합니다.

 




어느 날 모친이 몸져눕자 소태산(小太山)에다 하늘에 기도하는 제단을 쌓고 7일 밤낮으로 금식하며 성심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약을 구하러 나선 황파 앞에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 영약이 있는 곳을 안내해서 어머님의 병을 낫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합니다.





또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서 집안을 일으켜주길 바라는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여러 번 과거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으며,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벼슬의 꿈을 접고 평소 행하고자 했던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벗과 교류하며 독서와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삶을 살았습니다




도암정 편액



도암정 편액인 연비어약(鳶飛魚躍)입니다. 이는 시경에 나온 구절로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물속에는 고기가 뛰논다”




도암정 내부 편액



그래서 건립한 정자가 도암정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선생은 남의 장점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고 그 대신 상대방의 약점은 비방하지 않으며 선비와는 학문을 논하고 농사꾼과는 농사일로 이야기하는 등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어느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합니다.



또한, 평생을 몸과 마음을 닦는 수신제가에 힘썼으며 권우를 스승으로 모시고 권두인, 권두경, 이완, 이광정, 김성구 등과 교유하면서 명리는 탐하지 않고 학문 연구에 힘써 안동의 산실인 퇴계학파를 계승하는 선비로서 몸가짐을 가볍게 하지 않았던 정통선비입니다.



도암정 앞쪽은 연못을 내려 보게끔 개방되었다면 삼면은 담장을 둘렀습니다. 출입문은 도암정 좌우에다 사주문을 내어 바깥과 소통하게끔 했습니다. 마을 안쪽에는 의성김씨 종택인 경암헌고택이 있습니다. 도암정은 여기에 딸린 별서라 생각되었습니다.



도암정의 건축은 김종걸이 1650년인 효종 원년에 건립했으며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홑처마팔작지붕에 다락이 딸린 건물입니다. 건물은 연못에서 바로 축대를 쌓아 그 위에다 대충 바닥을 고르고 주초석에 두리기둥을 세웠습니다.





건물은 자연석을 최대한 활용해서 지었으며 앞쪽에다 계자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달아내어 금상첨화(錦上添花)와 같은 광경을 내려다보게끔 지어졌다면 뒤쪽은 가운데에다 한 칸의 마루를 넣고 좌우에는 온돌방을 한칸 식 두었습니다. 도암정은 당시의 유림이 찾아와서 시사를 논하고 시를 읊조리며 학문을 교류했던 곳이라 간결하게 꾸며진 정자를 보면서 주인장의 성품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도암정의 유래는 아마 마을의 진입로를 두고 솟은 3개의 바위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이 바위를 마을에서는 큰 단지(장독)를 닮았다 하여 ‘단지바위’ 또는 ‘독바위’라 부릅니다. 도암정의 ‘도(陶)’도 ‘질그릇도’이며 이는 단지를 뜻해서 독바위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독바위는 전설이 있습니다. 독바위에 쌓였던 기가 넘쳐나면 천 년에 한번식 바위의 뚜껑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년바위라고도 부르는데 독바위의 뚜껑이 열릴 때마다 독바위 속에 살던 황학 한 쌍이 황금알 두 개를 낳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합니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황전마을 독바위의 기를 받으면 머리가 총명해지고, 벼슬길에 나아가고,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다 하여 요즘에도 대학 입시 철이면 바위의 기를 받으려고 찾는 사람들이 많다합니다.



아마 이마을 출신이 정계와 학계, 재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신빙성있는 이야기가 아닌지... 저도 진즉 알았다면 한번 독바위의 기를 받아 보고 오는 건데 모르고 갔다가 그냥 돌아온 게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혹시 다시 봉화여행 기회가 찾아온다면 꼭 독바위의 기를 받고 경암헌고택을 찾아야겠습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4호

봉화 도암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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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부여여행)정림사지석불좌상. 부여 정림사지에서 거대한 석불좌상을 만나다


여러 곳의 석불을 둘러보면서 이번에는 부여여행에서 규모 면에서 압도하는 석불좌상을 만나고 왔습니다. 부여의 정리사지에 있는 정림사지석불좌상이며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함께 대단한 규모였습니다. 정림사지오층석탑과 정림사지석불좌상은 서로 마주 보게 일직선 상에 배치했습니다.





부여 정림사지 주소: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358

부여 정림사지 전화:041-832-2721




2017/10/22 - (충남여행/부여여행)정림사지5층석탑.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이라는 평제탑 정림사지5층석탑

2017/10/11 - (부여여행)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두 눈으로 확인했던 부여 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2015/08/17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부소산성 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부여 부소산성에서 백제를 만나다. 사비성

2015/08/07 - (충남여행/부여여행)낙화암과 고란사. 마지막 백제의 흔적 부소산성 백화정 낙화암 고란사를 여행하다. 낙화암과 고란사

2015/08/05 - (충남여행/부여여행)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시대 문화재를 만나다.

2017/09/29 - (부여맛집/부소산낙화암맛집)굿뜨래음식특화거리 구드래돌쌈밥. 부여 구드래돌쌈밥




정림사지의 창건연대는 6세기 중엽으로 추정하며 그 후 백제가 멸망하고 고려 시대까지도 정림사의 규모가 대단했음을 현재 남아 있는 문화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정림사지석불좌상이 고려 시대에 처음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이 웅장한 석불좌상을 보면서 당시 정림사의 사세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정림사지석불좌상은 현재 강단지었던 곳에 보호용 전각을 새로 세워 그 안에 따로 모셔져 있습니다. 강당은 석탑에서 대략 57m 떨어졌으며 보호각은 앞면 39.1m에 옆면 16.3m인 새장형으로 고려시대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이는 기존 강당지의 초석에서 확인된 앞면 31.8m. 옆면 17.9m의 규모보다 더 크게 지었으며 기단은 기와를 합장식 와적기단과 평적식 와적기단으로 쌓아 만들었습니다.





정림사지석조여래좌상은 전체 높이가 5.62m이며 재질은 화강석입니다. 부처 머리는 후대에 다시 만들어져 올려졌으며 현재 불신은 처참할 정도로 깨어졌는데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마멸되어 그 흔적만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석불좌상의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 등을 가늠하는 게 매우 힘들었다 합니다.







그러나 이곳 정림사지 강당지에서 발굴된 기와의 명문을 통해서 고려시대 때 절을 고치면서 석불좌상이 함께 만들어졌고 이 정도의 규모를 보면 정림사의 본존불이 아니었겠나 추정하고 있습니다. 1942년 강당지를 조사하던 중 “태평팔년무진정림사대장당초(太平八年戊辰定林寺大藏當草)”가 새겨진 기와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명문으로 정림사의 존재와 1028년 헌종 19년에 중건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석불상을 보면 불두에 비해서 몸집이 왜소하며 좁은 어깨는 밋밋하게 내려오고 왼손은 가슴까지 올라가면서 오른손이 왼손을 감싸 쥔 '지권인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정림사지석불좌상은 비로자나불의 특징을 보여주며 지권인은 "불법으로 모든 것을 감싼다"는 뜻입니다.





기단인 연꽃 대좌도 깨어지고 했지만, 석불좌상보다는 조금 상태가 양호한 편입니다. 하대석은 연꽃이 뒤집어져 핀 모습인 복련(覆蓮)에다 팔각형의 간석을 올렸고 각 면마다 안상을 새겼습니다. 또한, 상대석은 연꽃이 하늘을 보고 활짝 핀 모습을 한 앙련(仰蓮)을 하였습니다.

 


이때까지 많은 연꽃 대좌를 만났지만 거대한 석불좌상을 받치는 좌대답게 엄청나게 큰 규모였습니다. 정림사지석불좌상을 정면으로 만나보면 거대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작아진 나를 압도하였고 자연적으로 머리를 숙이게 하는 그 어떤 힘이 느껴졌습니다.





이래서 그저 인간은 하나의 작은 먼지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저 우러러만 봐도 마음 한구석에 울림이 날 정도로 대단했던 정림사지석불좌상을 정리사지오층석탑과 함께 만나보세요. 정림사지 석불좌상 보물 제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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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여행/영동여행)양산팔경 영동 강선대. 영동 최고의 관광지 송호국민관광지 영동 강선대 여행


공주와 부여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서 영동 강선대를 찾았습니다. 영동 강선대는 영동의 양산팔경 중 2경으로 손꼽는 곳이며 영동군 향토유적 제1호에 지정되어 그만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합니다. 강선대를 뜻풀이하면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곳’ 쯤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강선대 지명이 여러 곳이 있지만, 영동의 강선대는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빼곡한 비봉산과 금강물이 휘돌아가는 아름다운 곳에 자리해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 빼어난 진경 입습니다. 필자가 찾은 날에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 물안개가 앉은 금강과 강선대는 신선의 발자취를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럼 영동 양산면의 강선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층암절벽인 강선대를 휘감으며 금강물이 흘러갑니다. 그 위에 육각형의 정자가 앉았는데 이곳을 강선대라 합니다. 강선대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 천상에서 선녀가 지상을 내려다보다 금강에 비친 낙락장송과 우뚝 솟은 석대가 그림같이 잘 어울리는 게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넋을 잃고 보았다합니다. 그러다 선녀는 그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내려와 그 절경에 반해 강선대 아래 연못에서 목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강선대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전에도 정자가 있었다지만 지금의 정자는 1954년 함양여씨 종중에서 세웠다합니다. 이곳 강선대 일원은 그 경치가 빼어나 송호국민관광지로 지정해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사계절 관광지로 들썩이는 송호관광지는 푸르름을 잃지 않은 노송과 석대에 서릿발처럼 않은 단풍나무는 강선대와 함께 더욱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강선대에서 제일경은 뭐니 뭐니 해도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설경일 것입니다. 산수화의 대가였던 겸재 정선도 그 모습에 반해 울고 갔을 겨울 강선대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하얀 설원에 얼어붙은 금강과 용암, 북풍한설의 추위에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송호관광지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은 생각해봅니다.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어 머리를 흔들며 망상에서 깨어나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조심하며 금강천변으로 내려갔습니다. 여기서 보는 금강은 더욱 크고 넓어 보였습니다. 그 가운데에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던 장면을 훔쳐본 용이 승천하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받아서 그만 떨어져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용암이 있습니다.










송호국민관광지 솔밭에는 여의정이 있으며 봉황의 안식처인 비봉산과 봉황대, 함벽정과 태산 같은 천태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입니다. 오래전부터 시인묵객은 강선대를 만산홍엽이 물든 가을밤에 금강에 비친 둥근달의 황홀한 풍경을 보면서 선대추월(仙臺秋月)이라 칭송하였다합니다.

 




강선대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동악 이안눌이 찾았던 곳입니다. 이안눌은 특히 시 짓는 일을 즐겨해서 많은 양의 한시를 남겼습니다. 동악 또한, 선녀가 하강해서 목욕했다는 강선대의 절경에 반해 남기 시가 있습니다.



“하늘 신선이 이 대에 내렸음을 들었나니

 

 

옥피리가 자줏빛 구름을 몰아오는구나..

 

 

아름다운 수레 이미 찾을 길이 없지만

 

 

오직 양쪽 강 언덕에 핀 복사꽃만 보노라.

 

 

백척간두에 높은 대가 하나 있으니,

 

 

비 갠 모래 눈과 같으며 물은 이끼와 같구나.

 

 

물가에 꽃이 지고 밤바람도 저무는데.

 

 

멀리 신선을 찾아 달밤에 노래를 듣는구나“


 


그리고 백호 임제가 있습니다. 백호는 호방한 성격으로 술과 기생을 즐겨 찾으며 칼과 피리, 거문고를 좋아했다합니다. 벼슬을 버리고는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많은 시를 남겼는데 그런 그가 1583년 평안도도사로 부임하면서 송도의 황진이 무덤을 찾아 술상을 앞에 놓고 시문을 지은 일화는 임제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찬비를 뜻하는 ‘한우가’로 강선대를 노래했습니다. 찬비를 뜻하는 한우가 이지만 진짜 비를 만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비오는 강선대를 찾았기에 임제의 한우가를 읊어보며 강선대의 아름다움을 음미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생 한우가 있는지 한우야 하며 이름도 불러보고 주위도 둘러 보았지만 일장춘몽인 듯 공허한 메아리만 강선대에 울려 퍼졌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강선대를 잇는 금강둘레길을 저도 시인묵객이 되어 한우(?)와 꼭 걸어보고 싶습니다.





임제의 한우가와 기생 한우의 화답가입니다. 온몸이 따뜻해 오는 것 같습니다.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하며 읊자

 

 

기생 한우(寒雨)의 화답가가 걸작입니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나도 얼렁 집에 가서 전기장판에 불을 올려 찬비 맞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얼었던 몸을 녹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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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부여여행)정림사지5층석탑.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이라는 평제탑 정림사지5층석탑


우리나라 초창기 석탑의 전형은 목탑이었습니다. 목탑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을 말합니다. 나무다 보니 화재와 눈·비 등에 노출되어 내구성이 약하며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 이를 해결하려는 차원에서 돌로 석탑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목탑이 석탑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탑이 미륵사지 석탑(국보제11호)과 정림사지5층석탑(국보제9호)입니다.





정림사지박물관 정림사지5층석탑 주소: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



2015/07/26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서동 연꽃축제 궁남지. 백제의 도읍지 부여의 많은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축하. 부여 서동 연꽃축제가 궁남지에서 열렸습니다.

2015/07/31 - (충남맛집/부여맛집)부소산성맛집, 낙화암맛집,고란사맛집 부소산 칼국수. 구수한 콩국수로 여름도 이기고 백제의 사직과 함께한 삼천궁녀 낙화암도 구경하는 부소산 칼국수.

2015/08/05 - (충남여행/부여여행)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시대 문화재를 만나다.

2015/08/07 - (충남여행/부여여행)낙화암과 고란사. 마지막 백제의 흔적 부소산성 백화정 낙화암 고란사를 여행하다. 낙화암과 고란사

2015/08/17 - (충남여행/부여여행)부여 부소산성 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부여 부소산성에서 백제를 만나다. 사비성



이 두 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오는 초창기 과정을 가장 잘 보여준다 합니다. 그중에서도 목탑의 전형이 가장 많이 남은 석탑이 미륵사지석탑입니다. 미륵사지석탑은 목재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여러 가지 면에서 정형화되지 못했다면 정림사지5층석탑은 그에 반해 외형상 현재 석탑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군더더기가 붙어 있지 않은 깔끔하고 세련된 양식의 석탑입니다.


 


그럼 ‘정림사지박물관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정림사지 5층 석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정림사지5층석탑에서 목탑의 형식을 보여주는 게 여러 부분 남아 있습니다. 먼저 기단석 부분입니다. 일반 석탑의 기단과는 다르게 좁고 단층이 낮은 기단입니다.



기단 각 면의 모서리에 새긴 기둥을 우주라 하는데 이는 민흘림 기법이며, 지붕돌인 옥개석의 끝은 살짝 들렸고 낙수면의 내림마루를 보면 목탑에 사용된 기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림사지5층석탑을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이라 부릅니다.

 



사용된 기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림사지5층석탑을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이라 부릅니다. 미륵사지석탑은 석탑인데도 목재의 형식을 많이 따랐으나 정림사지5층석탑은 목탑의 모방에서 벗어나 석탑만의 온전한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첫 작품이라 보고 있습니다..그만큼 의의가 있는 석탑이라 국보 제9호로 지정하여 정림사지오층석탑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부여 정림사지5층석탑의 구조를 알아보겠습니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은 높이가 8.33m인 거대한 석탑입니다. 정림사지오층석탑도 지대석과 기단부 탑신부와 상륜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기단부는 단면이 방형인 다듬은 긴 돌기둥 8개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다 기단은 단층이며 여러 개의 돌로 낮게 만들어졌습니다.






중석의 각 면 귀퉁이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이를 우주라 하고 가운데 지탱하는 돌을 하나씩 끼웠는데 이것을 탱주라합니다....그 위에다 갑석을 올려 기단을 마무리했습니다. 갑석 위에는 1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네 귀퉁이에 별도의 돌로 민흘림의 기둥(우주)을 만들었고 우주 사이에 각각 두 장의 판석을 끼웠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몸돌은 작아져 4개, 2개, 1개의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몸돌 위에는 지붕돌인 옥개석을 올렸습니다. 지붕돌 아래에는 2단의 지붕 받침인 옥개받침이 있으며 몸돌과 마찬가지로 위로 올라갈수록 옥개받침의 석재 수가 줄어듭니다.






옥개석은 얇고 넓은데 반해 전각에 약간의 반전이 나타나며 또한, 옥개받침 아래에는 사각형의 석재가 목탑의 공포 형태를 간략하게 나타낸 것이라 합니다. 지붕돌 위에는 몸돌을 받치는 1단의 탑신받침이 각층의 지붕돌 위에 있으며 상륜부에는 노반을 두었습니다.


 










현재 정림사지5층석탑은 몸돌보다 지붕돌의 폭이 넓고 작은 석재를 이용하여 석탑을 조성한 게 목탑과 유사한 모습이라 합니다. 그러나 정리사지오층석탑을 보면 우선 안정감 있는 비율로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한 마리의 학처럼 우아하고 격조 높은 모습에 백제 장인의 혼이 담긴 매우 뛰어난 예술 작품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정리사지오층석탑에는 특별한 이력의 글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나당 연합국으로 당나라의 소정방이 1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를 침공했을 때의 일입니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의 1층 탑신 4면에는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전승을 기념하는 치적인 “백제를 징벌한 기념탑”을 석탑에 새겼으며 이 때문에 정림사오층석탑을 ‘평제탑’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정림사지5층석탑 탑재의 원재료인 석재는 강경읍에 있는 옥녀봉 일대에서 채취했다고합니다. 이는 이찬희 공주대 문화재과학과 교수의 ‘웅진문화21’에 수록한 논문에서 이곳의 돌이 정림사지5층석탑과 같은 석질로 밝혀졌다 합니다. 아마 다음에 정림사지오층석탑 복원 등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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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여행/청산도여행)담쟁이가 아름다운 청산도 명품마을 상서마을 돌담, 청산도 상서 돌담마을


청산도 들꽃민박에다 베이스캠프를 정하면서 다녔던 청산도 2박 3일 여행. 이번에는 들꽃민박에서 가까운 상동리에 있는 상서 돌담 마을입니다. 상서마을은 울타리가 돌로 둘려 있으며 이게 상서돌담마을길로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어촌마을이야 대부분 돌담이지만 상서마을의 돌담은 오밀조밀 한 게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등록문화재 제279호.





청산면 상서마을을 감싸는 산은 청산도에서 아름답다는 매봉산입니다. 매봉산 아래에 터 잡은 상서마을은 앉은 지대가 높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멀리까지 보여 조망이 다른 마을보다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다랭이로 불리는 계단식 논이 이곳 청산면에서는 독특하게 바뀌었는데 그게 온돌방의 구들장 같이 널따란 돌을 깔은 구들장 논이 층계를 이루는 농촌과 어촌이 복합된 마을입니다.






먼저 상서마을의 유래를 보겠습니다. 상서마을은 성산포에서 들어서는 길목에 자리했는데 이는 성산포에서 마주 보이는 매봉산이 태풍과 해풍을 막아주고 산세가 빼어나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됐는지 ‘한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먼저 정착하여 살았다 하며,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곳을 덜리라고 부르며 1960년대까지 1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었다지만, 지금은 그저 빈터만 남아 있습니다.  그 후로 상서마을은 숙종 때에 언양김씨와 밀양박씨 나주임씨등이 들어와 살다가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이 청산면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을 보면 청산도에서 가장 사람이 살기 좋았던 모양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759년~1789년에 여지도서 지명표를 보면 상서마을을 뜻하는 사정리(射亭里)와 걸리(桀里)가 나오며 걸리가 지금의 덜리로 바뀐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1800년인 정조 13년에도 사정리와 덜리의 지명이 확인되며 사정리는 마을회관 앞 정자나무에서 마을 사람들이 심신을 단련하는 활을 쏜 데서 유래 되었다하며 그 표적지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희미하지만 남아있다 합니다.











1895 고종 3년 당리진때 상서리로 기록이 나타나고 1914년 상서리와 원동리가 합해져 상동리가 되었다가 완도가 군으로 승격하면서 상서리로 바뀌었습니다. 상서마을의 돌담을 둘러보면 투박한 돌을 격식 없이 차곡차곡 막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섬지방의 바람을 막으려는 듯 어떤 곳은 높은 담장이지만 어떤 곳은 허리춤까지 오는 낮은 담장도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칭칭 돌담을 감으며 올라간 담쟁이는 상서돌담마을의 또 하나 볼거리였습니다. 제가 찾았을 때는 마침 능소화가 끝물이었지만 화려한 선홍색 꽃이 녹색의 담쟁이 속에서 그 자태를 잃지 않았습니다. 능소화와 담쟁이가 돌담을 감싸는 상서돌담마을길은 정말 평온한 어촌의 전원마을 풍경이었습니다.







상서마을은 사실 어촌과 농촌을 함께하는 곳입니다. 섬에서 보기 힘든 벼농사를 짓는 것을 보면 그만큼 수량도 풍부하고 청산도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빈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청산도중에서도 상서마을은 긴꼬리투구새우 서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우는 알겠지만, 긴꼬리투구새우는 정말 생소한 이름입니다.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도해서 상서마을의 논두렁에서 물속을 유심히 주시하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긴꼬리투구새우는 고사하고 어떤 생물도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 철이 아니거나 부끄러워서 그런가 생각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상서돌담마을길은 돌담이 볼거리중 최고라면 다랑논인 구들장 논과 긴꼬리투구새우 서식지는 덤입니다. 그리고 상서마을과 구들장논을 연결하는 상서마을 둘레길을 걸으면서 반나절을 사색의 시간으로 힐링하기에 그저그만이었습니다. 이래서 청산도는 태어나서 한번은 꼭 가야된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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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여행/청산도숙박)청산도 들꽃팬션, 청산도 최고의 위치이며 일출일몰이 황홀했던  들꽃민박

 

느리게 걷는게 아름답다는 청산도 여행, 이번 청산도를 세상에서 가장 느리다는 ‘늘보’의 마음으로 2박3일 동안 찾았습니다. 우리들이 묵었던 팬션은 청산면 상동리에 들꽃민박입니다. 청산도의 가운데에 위치해서 청산도를 여행하기에 편리한 지리적 잇점이 참 좋았습니다.

 
 
 

 

청산도 들꽃민박 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상동길 27청산도 들꽃민박 지번 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상동리 810청산도 들꽃민박 전화:061-555-4448, 010-3804-6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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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은 야생화를 뜻하는 들꽃의 이름을 달아선지 작고 아담했으며 들꽃민박이란 상호를 달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건물은 4동이며 주인이 묵는 관리사를 빼고는 3동의 건물에다 모두 각각의 독립형태였습니다. 들꽃민박은 이름답게 모두 아름다운 야생화로 방이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총 8명이었습니다. 청산도에서 여름철 시즌이면 많은 관광객으로 방이 부족할꺼라 예상하여 미리 예약하였으며 그 덕분에 편안하게 2박3일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방은 수수꽃다리방, 제비꽃방이며 모두 독립 구조였습니다.

 

 

 

 

 

수수꽃다리방은 복층 형태로 건물 내부에 중간을 반쯤 가로질러 다락이 설치되었으며 제비꽃방과 구절초방은 각각 단층 건물로 목욕탕이 있는 화장실과 주방이 독립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 넓은 공간에 각각 4명씩이다 보니까 널널하게 생활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펜션의 꽃이라는 밤에는 숯불(착화탄)을 피워 고기를 구워 오붓한 저녁을 즐길 수 있었던게 정말 좋았습니다. 풀벌레가 지천으로 울고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했던 청산도 들꽃 민박의 여름휴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근에 둘러 볼것도 참 많았습니다.

 

 

 

 

 

 

구들장논과 돌담장, 슬로우길과 항도, 그리고 청산도의 명산인 대봉산 등산 등 청산도에서만 즐기고 볼수 있는게 정말 많았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2박 3일 알차게 보냈습니다. 산행을 하고 펜션이 가까이 있어 일행에게 차를 부탁해서 차도 부르고 슬로우길은 원점회귀가 아니라 시작점과 끝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일행에게 어디로 차를 가지고 오라하며 부탁하기도 좋았습니다. 이 모든게 청산도 들꽃펜션의 위치가 한몫을 했습니다.

 

 

청산도는 다 아시는 것처럼 ‘청산’은 산에 나무가 울창하여 푸르렀다는 뜻입니다. 청산처럼 산은 물론이고 바다도 에메랄드 빛이라 청산도를 찾는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청산도에서의 잠자리는 들꽃민박이 집처럼 즐길 수 있었서 정말 좋았던곳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청산도 들꽃민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게 해돋이와 해넘이의 장관입니다. 바닷가로 나가지 않고 들꽃민박에서 일출과 일몰의 황홀함에 홀딱빠져 스마트폰 카메라를 연신 눌러 사진도 담고 또한 눈으로 즐겼서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이 청산도라합니다. 그러나 청산도를 한번 갔다온 사람은 다시 꼭 찾는게 불문율이라 합니다. 벌써 저도 내년 여름의 청산도가 기다려집니다. 그때도 다시 들꽃민박에 짐을 풀고 청산도의 일출과 일물은 물론이고 가보지 못했던 청산도 슬로루길도 걷고 끝내지 못한 산행도 마저 하며 청산도에 흥에 취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역시 잠자리리가 편해야겠죠.

 

 

 

 

 

 

 

상세한 정보는 여기서 확인하세요

들꽃펜션의 카페 주소입니다. 참고하세요? http://cafe.naver.com/annegilb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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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여행)완도연안여객터미널~청산도 배 시간표 알아보기, 청산도여객버스터미널~완도 배 시간표 알아보기 


청산도는 전남완도에서 대략 19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최남단의 섬으로 완도항에서 뱃길로 50분 거리입니다. 자연경관이 너무나 빼어나 ‘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봐야 할 섬’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완도연안여객터미널 주소: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보고대로 335.

(지번)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1255

완도연안여객터미널 전화:1666-0950




2013/08/12 -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청해포구 촬영장, 영화 드라마 cf 촬영으로 유명한 청해포구 촬영장 눈으로 즐기기.

2013/08/14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조선시대 대표 정원 정자 세연정에서 어부사시사를 짓다.

2013/08/21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 윤선도 원림)조선시대 최고의 정원 대한민국 명승 34호 어부사시사를 창작한 세연정이 있는 관광정보센터

2013/09/09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2014/11/04 -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명산 상황봉~백운봉 산행. 완도 오봉산 상황봉~백운봉 원점회귀 산행

2017/09/30 - (완도여행)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본다는 섬 청산도. 청산도 항도 여행. 청산도항도





예로부터 신선이 내려와 노닐 정도로 아름답다하여 청산여수, 선산, 선원이라 불렀다합니다. 청산도를 대표하는 상징은 푸른 바다와 푸른 산, 독특한 구들장논, 문화재로 지정된 돌담, 해녀 등이 있지만 지금은 느림의 풍경이라는 아시아 최초 슬로길이 있습니다.

 


2007년 12월 1일 슬로시티로 선정되어 ‘늘보’처럼 느리게 걸을수록 더욱 아름답다는 슬로길로 명실상부한 남해안의 힐링 1번지가 되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청산도의 향수를 자극한 한국 최초 백만 관중을 동원했던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촬영되었으며 KBS 드라마 ‘봄의 왈츠’와 ‘1박2일’ SBS '여인의 향기‘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청산도를 배경으로 촬영하여 소개했습니다.



공중파와 종편에서도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하면 빠지지 않고 청산도가 소개되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와 CNN이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고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청산도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게 났다‘는 고사성어 처럼 한번은 꼭 봐야 할 환상의 섬인 남해 완도군의 청산도 여행의 시작은 완도군 완도읍 장보고대로 335호 완도연안여객터미널에서 부터입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청산도 여객선 시간표를 참고하세요.








2017년 긴 추석 연휴에 환상의 섬 완도군의 청산도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청산도 배편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완도연안여객터미널에서 청산도행 배편은 추석특송기간인 2017년 9월30일~2017년 10월 9일까지 증편 운행중입니다.





완도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오전 6시30분, 8시30분, 10시, 11시30분, 오후 1시. 2시30분, 4시30분, 6시(막배) 청산에서 나오는 배는 오전 6시30분, 8시30분, 10시, 11시30분, 오후 1시. 2시30분, 4시30분, 6시(막배)로 8회로 증편하여 완도와 똑 같은 시간에 서로 운항합니다.

 


그리고 추선 연휴가 끝나는 2017년 10월10일~10월 15일가지 완도~청산도 방면 여객선 시간표를 보면 완도에 출발이 오전 7시, 8시30분, 11시, 오후 2시30분, 6시(막배)이며 청산도에서 출발은 오전 6시50분, 9시, 오후 1시, 3시, 6시(막배)로 일 5회 운항합니다.

 



청산도 선편은 여객 및 차량의 증감에 변경될 수 있다하니 청산 매표소 061-552-9381, 완도연안여객터미널 061-552-0116·9385. 청산농협 061-552-9388로 문의를 해서 이용하세요. 그리고 사진이 붙은 신분증 지참은 필수이며 미리미리 도착해서 수속을 밟아 안전한 청산도 여행 하세요

 













청산여객터미널 주소: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

청산여객버스터미널 전화:061-552-9381


완도 청선도 운행 여객선은 퀸청산, 청산아일랜드, 슬로우시티청산호가 있으며 차량 선적은 미리 전화해서 알아보세요. 차량 도착순으로 배에 선적하니 미리 도착해서 주차선에 대기하여 기다려야 안전합니다. 꼭 참고하세요








완도~청산도 배 시간표, 청산도~완도 배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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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겹처마인 눈썹지붕의 처마선이 아름다운 사랑채 동계정온고택을 만나다, 거창동계고택


조선 중기의 문신인 동계정온선생이 태어난 곳은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강동마을입니다. 동계선생은 절의를 상징하는 분으로 널리 알려져 거창 여행을 하면서 동계고택을 꼭 찾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기회가 닿아 거창을 둘러보면서 함께 동계정온고택을 찾아왔습니다.





거창 충신당 동계정온고택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0-1




☞2017/08/14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여행일번지 수승대와 척수대.

2017/08/23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 용암정. 무더운 여름나기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을 여행하다

2017/09/02 -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농산리 석불입상)과 행기숲

2017/09/03 - (거창여행)야옹 정기필의 반구헌을 가다. 야옹 정기필의 반구헌

2017/09/07 - (거창여행)거창 월성계곡 강선대와 민들레울의 모암정 여행. 거창 강선대와 모암정

2017/09/10 - (거창여행)동계정온선생의 모리재를 찾다. 거창 모리재





동계선생이 태어난 집이지만 현재의 고택은 1820년인 순조 20년에 새롭게 지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동계선생이 생활했던 집이 아니라는 말씀. 동계고택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에 처음 지어졌습니다. 나무로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비바람에 노출되어 여러 번의 개보수가 있었는데 현재의 고택은 1820년에 지어졌다고 상량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문채는 일자형이며 가운데 솟을대문입니다. 출입문에 인조가 내린 정려문이 걸려있으며 안쪽으로 웅장한 사랑채 건물이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ㄱ'자의 사랑채에서 눈에 띄게 드러난 부분은 꺾인 부분에 누마루를 넣고 그 위에 올린 겹처마라 불리는 눈썹지붕입니다.

 



약간은 어색해 보이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겹처마는 정온선생의 절의를 상징하는 듯 보였습니다. 겹처마 덕분에 정온 고택의 위상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습니다. 눈썹지붕은 사랑채를 처음 지을 때 있었던 게 아니고 지붕의 처마가 건물에 비해서 작아 비가 누마루로 들이치고 하여 뒤에 새로 달아내었다고 합니다.



저는 고건축에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대부분의 고건축 전문가분의 공통된 의견인 것 같습니다. 사랑채는 남쪽을 향해 앉았고 앞과 뒤로 모두 툇마루를 달아내었으며 기단은 낮지만, 툇마루는 높게 만들었는데 이는 남부지방의 건물 특징중 하나라 합니다.

 

동계정온고택 사랑채



건물은 왼쪽부터 온돌방, 대청, 온돌방을 넣었으며 그 앞에 누마루를 배열했습니다. 온돌방의 앞쪽은 사랑방 역할을 하며 뒤쪽은 잠을 자는 침방으로 사용했습니다. 대청 또한 중간에 사잇문을 달아 나누어 사용했습니다. 누마루는 사방 문을 달아 개폐하도록 했는데 여닫이문의 문살이 눈이 부실 정도로 우아한 게 한국의 미를 보는 듯 매우 아름답습니다.






매미 소리 요란한 한여름에 누마루의 사방 문을 열고 책이라도 본다면 머리에 쏙쏙 들어올 것 같으며 또한, 드러누워 쿨쿨 낮 잠자기에 딱 그저 그만 일 것 같은 정온고택의 누마루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절의의 상징인 동계정온고택에서 한옥 민박체험을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6칸에 옆면 2칸 반이며 앞뒤로 두 줄로 된 겹집이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사실 안채는 살림집으로 현재에도 후손의 생활공간이며 출입할 수 없습니다. 빼꼼히 3칸의 중문을 통해 안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사랑채와 같은 남향이며 앞면 8칸에 옆면 3칸 반에 앞뒤로 툇마루가 있는 두 줄의 겹집으로 사랑채와 함께 주목받는 건물입니다.

 



건물의 구성은 대문채 사랑채, 안채, 아래채, 곳간채, 사당으로 이루어졌으며 거창의 동계고택은 영남 내륙의 추운 기후에 알맞게 우리나라 북부지방의 일반적인 겹집형태와 남부지방의 높은 툇마루를 잘 조화시킨 건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랑채에 걸린 충신당(忠信堂)과 모와(某窩)의 현판은 제주도에 유배 갔던 추사가 제주도의 대정에 유배왔었던 동계정온선생을 생각하며 훗날 정온의 놓은 절의를 기려 직접 동계고택을 찾아와 충신당을 적고갔다 합니다. 현재 그 현판은 거창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고택에 걸린 현판은 모작입니다.

 


모와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이씨조선의 마지막 왕족 의친왕 이강이 남긴 현판이지만 도둑맞아 다시 복원하였으며 모화당 또한 대원군이 자주 찾아왔을 때 그때 쓴 현판이라 합니다.

 




대문채에는 인조가 병자호란의 절의를 기려 내린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문간공동계정온지문’의 정려가 걸려 있습니다. 안채 뒤편에는 신위를 영원히 모실 수 있다는 동계정온선생의 ‘불천위’ 사당이 있으며 이는 나라에 크게 이바지를 한 분에게만 내렸다 합니다. 그만큼 동계선생의 충절이 크다 하겠습니다.

 



동계 정온 선생은 광해군이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을 사사 하고 영창대군의 생모인 인목대비의 폐모론을 거론하자 도의에 어긋난다며 격렬하게 항의하고 반대하다가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제주도 대정에 위리안치의 위배형을 내립니다.

 


안채전경





동계는 인조반정으로 10년 만에 풀려났으며 대사간, 경상도 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지냈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명나라와의 의리를 내세워 청나라와의 척화를 주장하였으나 화의가 이루어지자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자 벼슬을 마다하고 낙향하여 덕유산 인근의 모리에서 은거하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돌아가신 다음 숙종은 영의정에 추증하였으며 광주 현절사. 제주 귤림서원, 함양 남계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현재 동계정온고택은 중요민속자료 제205호에 지정되었으며 유품은 중요민속자료 제218호에 각각 지정되었습니다.











인조가 내린 정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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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월성계곡 강선대와 민들레울의 모암정 여행. 거창 강선대와 모암정


거창의 명소 수승대를 지나면 남덕유산 초입의 갈계리 갈계마을입니다. 이곳에서 계곡은 나누어지는데 오른쪽은 덕유산의 언저리에 송계사를 품은 소정 계곡이요, 왼쪽은 남덕유산에서 흘러내린 월성계곡입니다. 그 품이 하도 넓고 깊어 골짜기마다 수많은 사연이 전설되어 내려오는 덕유산.





거창 월성계곡 강선대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2017/09/03 - (거창여행)야옹 정기필의 반구헌을 가다. 야옹 정기필의 반구헌

2017/09/02 -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농산리 석불입상)과 행기숲

2017/08/23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 용암정. 무더운 여름나기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을 여행하다

2017/08/14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여행일번지 수승대와 척수대.

2014/08/26 - (경남여행/거창여행)점필재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일원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 남상 일원정




이번에는 거창 북상면의 덕유산 청정수가 모여 흘러내린 월성계곡의 첫 번째 경승지인 강선대(降仙臺)를 만났습니다. 강선대는 이름 그대로 ‘신선이 내려와 노닐다 간 곳’입니다. 주위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신선이 다 내려올까 싶어 필자도 신선이 된 기분으로 강선대를 찾았습니다.

 


강선대 마을과 강선대, 모암정을 함께 보면서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니 신선도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울고 갈 그런 곳이었습니다. 강선대는 사방이 산으로 둘려 그 앞을 흐르는 계곡과 소나무 숲이 감싼 마을은 풍수설에 ‘댓뒤’ ‘불무곡’이라 하며 모리재를 품은 모리산은 뒤를 막아 배산임수의 명당에 자리했습니다.

 




거창 북상면 월성계곡 13경의 4경인 강선대는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반석이 계곡을 덮고 그 위를 타고 흐르는 옥구슬 같은 맑은 물은 마치 물방울이 구르듯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그런 곳입니다. 이런 곳에 한여름 더위를 피해 탁족을 즐기며 선비들이 시문을 서로 나누었을 정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없는 게 이상하다 할 정도였으며 역시나 나의 생각은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아름다운 정자인 모암정이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고숲(古林)이라 불렀습니다. 고숲 한가운데인 강선대 암반을 깔고 은진임씨 정자인 모암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거창 월성계곡 민들레울·모암정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582-2

거창 월성계곡 민들레울·전화:055-942-5006



모암정은 규모도 엄청나게 큰 것 같았고 화려한 조각 솜씨로 아름답게 꾸며졌습니다. 모암정(帽巖亭)은 조선 명종·선조 때의 문신이자 충신인 갈천 선생으로 불리는 임훈의 후손인 모암 임지예가 시를 읊고 공부하며 거닐면서 머리를 식혔던 곳입니다.



고종 때에 절충장군행용위부호군 및 동지돈령부사를 지냈으며 정려에 배향된 이름난 효자입니다. 은진임씨 후손들은 선조의 뜻을 기리며 추모하는 뜻에서 1921년에 건립한 정자로 모암의 호를 따서 모암정이라 하였습니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넜습니다.






정자에는 올라갈 수 없게 막아 놓았지만, 부연(겹처마)과 처마를 받치는 4개의 활주인 돌기둥에는 도마뱀, 포도 덩굴 등을 새겼으며 우물마루를 깐 천장에는 아름다운 꽃병과 용 두 마리가 어우러져 있는 게 모암정의 가치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현재 모암정은 허브농원인 민들레울에서 정자와 땅을 매입하여 개인 사유지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다른 곳의 정자보다는 훨씬 관리가 잘되어 보였는데 아쉽게도 원형에서 조금은 훼손이 된듯했습니다. 옛말에 효자 집안에 효자 난다고 모암정에서 월성계곡을 300m를 쯤 거슬러 올라가면 모암 임지예의 아들인 덕산 임진원을 기리는 정자인 덕산정이 월성계곡을 끼고 나란히 있습니다.

 





월성계곡의 맑은 물과 은은한 허브향이 가득한 모암정의 정자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면 이번에는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강선대 바위를 찾아갑니다. 강선대는 강선대 다리를 건너면 바로 만납니다. 정자나무인 노거수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큰 바위에다 강선대 세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이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이며 제단 같은 독특한 형태입니다. 또한, 조선 인조와 광해군 때 충절로 이름난 동계 정온선생이 병자호란 때 명나라와의 의리로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지만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며 항복합니다.




정온선생은 청과의 화의를 끝내 반대하다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낙향하여 고향 뒷산인 모리에서 은거하며 일생을 마쳤습니다. 강선대는 정온선생의 은거지였던 모리와 지척에 있어 함께 여행하면 좋습니다. 아마 동계정온 선생도 이곳을 즐겨 찾지 않았나 생각하며 다음여행지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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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야옹 정기필의 반구헌을 가다. 야옹 정기필의 반구헌


거창 수승대 일원을 여행하고 게을러 여행 블로그 포스팅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 미루다가는 거창 여행은 버려야 할 판이라 급하게 다시 블로그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야옹 정 기필(1800~1860) 선생의 반구헌입니다. 반구헌은 스스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반성한다는 뜻이 있어 당시 정기필 선생의 선비로서의 마음가짐을 보는듯했습니다.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반구헌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정기필 선생의 반구헌 문화재 안내판에는 영양 현감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머물 집한 칸이 없을 정도로 전임지에서 목민관의 도리에만 힘썼다 합니다. 그러한 선생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던 안의 현감이 이곳에다 묵을 집을 마련해주었던 게 반구헌입니다.






청빈한 선비의 삶과 목민관의 도리를 다했던 야옹 정기필 선생의 반구헌을 생각하다가 요즘 뉴스거리에 연일 톱으로 떠 오르던 분들이 생각나 개똥쑥을 씹은 것같이 참 기분이 더러워졌습니다.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했는지 마침 빌린 돈이 있어 주식에 투자했는지 모르지만 7억의 수익에다 이외에도 족집게 같은 주식투자로 수익을 올렸다는 모 법조인. 주식에 투자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이분은 목민관보다는 증권가에 족집게 주식 투자자로 소문나면 더욱 많은 수익을 올릴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리고 65억의 재산이 있다는 분은 명품가방 하며 수천만 원대의 금품을 받았다는 구설수가 나자 본인은 다 되돌려주었다는 해명을 내놓았는데 정작 본인은 그리 깨끗한 척 하시던 양반이라 참 세상에 믿을 양반 하나도 없다는 것에 더욱 화가 납니다. 왜!!! 요즘은 황희정승, 야옹 정기필 선생 같은 이런 분들은 없는지 이런 분이 목민관으로 있는 세상은 요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꿈이 되어버린 게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어휴, 답답해서 주저리 읊었습니다. 각설하고 반구헌에 대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먼저 정기필 선생은 초계정씨입니다. 초계정씨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 동계 정온선생입니다. 현재 초계정씨가 이리 뿌리를 탄탄히 내리고 남아 있는 것도 선조인 동계 정온선생 때문입니다.





정온의 4대 후손인 정희량이 무신년에 이인좌와 함께 반란을 도모하였다가 실패해 멸문의 위기에 몰렸지만, 동계 정온선생의 높은 명망에 멸문은 면하였습니다. 야옹 정기필이 20여년 동안 강동마을에서 숨죽이며 숨어 지내야 했던 정씨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 오늘날 명문가로서 남게 되었으며, 현재 강동마을의 정씨 대부분은 정기필의 후손이라 합니다.

 





그럼 안의 현감의 도움으로 지어졌다는 반구헌을 둘러보겠습니다. 남은 건물은 대문채와 사랑채가 전부였으나 현재에는 사랑채 뒤편으로 새롭게 들어선 기와 건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채라고 만든 것인지 조금은 복원된 건물이 기존의 건물과 맞지 않는 게 어찌보면 생뚱맞아 보였습니다.



5칸의 대문채는 한일자 형태로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 중간에 1칸의 솟을대문을 넣고 건물 왼쪽에 부엌인지 마구간, 광인지 모르는 1칸에다 1칸의 온돌방을 넣었습니다. 오른쪽에는 1칸씩인 온돌방을 두 개 넣었습니다. 마당을 들어서면 정면이 사랑채입니다. 앞면 5칸에 옆면 2칸의 팔자지붕인 민도리집입니다.

 



일반적인 양반가옥의 사랑채와는 구조가 조금 다르게 지어졌던 게 반구헌의 특징입니다. 가운데에다 대청을 넣고 좌우로 방을 넣는 게 일반적이라면 반구헌은 대청을 1칸으로 하고 왼쪽에다 두었으며 각각 1칸씩의 온돌방을 3개 내면서 그 옆면에다 계자난간을 두른 누마루를 달았습니다.

 




앞쪽 마루 밑에는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따로 있으며 건물 뒤편에는 가운데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있는데 방 2개를 동시에 난방하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대부의 사랑채라면 건물과 집주인의 위세와 품격을 더 높이기 위해 대청을 넓게 만드는데 반구헌은 허식보다는 실속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리 온돌방을 많이 넣은 것을 보면 찾아오는 손님을 최상의 예우로써 따뜻하게 맞이하려는 정기필 선생의 마음 씀씀이를 보는것 같습니다. 반구헌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2호에 지정되었으며 사랑채의 상량문을 보면 1870년경에 창건이나 중건되었다 합니다. 선비이자 목민관으로서 초연한 삶을 살았던 야옹 정기필 선생을 거창 위천면 강천리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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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농산리 석불입상)과 행기숲


경상남도 거창군은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이며 또한, 너무 거창하다 해서 거창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무엇이 거창하냐고요? 거창은 거창한 볼거리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볼거리를 여행하기 위해서 수승대를 찾았습니다. 수승대에는 거창의 선비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거창문화유산여행 길이 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농산리 석조여래입상)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2017/08/23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 용암정. 무더운 여름나기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을 여행하다

2017/08/14 - (거창여행)거창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여행일번지 수승대와 척수대.

2015/05/08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양민학살 추모공원이 있는 월여산 산행, 청정 거창의 오지 산행지 월여산 등산을 하다.

2008/07/03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건흥산~아홉산 산행. 백제군이 결사항전한 역사의 현장을 가보세요

2008/07/01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미녀봉과 장군봉 전설. 미녀와 야수 이야기 2-거창 장군봉~미녀봉




거창문화유산여행 길에는 소나무 숲과 월성계곡 그리고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옛 건축물이 대부분 차지하지만 유일하게 농산리 야산에는 숨은 석불이 있습니다. 이번에 거창여행 포스팅은 농산리 석조여래입상과 이웃한 월성계곡의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인 행기숲을 하겠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호에서 세련미와 수려한 조각 솜씨 등으로 문화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보물 제1436호로 승격 지정하였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석불로 천년의 세월을 이어오면서도 석불의 광배, 받침대인 연화대좌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졌는데 불상과 광배는 하나의 바위에 큰 자연석을 원뿔꼴로 다듬었고 또 한 개는 석조여래입상을 받치는 연꽃 대좌로 조각했습니다. 석불의 머리 부분은 높고 두툼한 상투 모양이며 얼굴은 둥글고 온화하고 옅은 미소를 띠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석불과 마주하면 당당한 모습에서 사내다운 풍모가 느껴집니다. 가슴과 유연한 어깨,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에 긴 다리, 얇은 옷자락 속에 보일 듯 말 듯 입체감의 드러난 몸매는 통일신라 시대의 뛰어난 불교 예술품입니다. 또한, 양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의 주름이 가슴 위로 U자형을 그리며 내려오다 허리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두 다리에서는 다시 밀착되어 작은 U자를, 종아리 부분에서는 큰 Y자로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양식의 불상을 인도의 우드야나(Udyana)왕 여래상형식이라 합니다. 이는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입적하고 성불하여 한때 33천 중 부처님의 네 번째 나라인 도리천에서 다시 태어나 어머니에게 설법하였다합니다. 그때 밧사(Batsa)국의 우드야나왕이 지상에 부처가 잠시라도 없는 것이 아쉬워 그 허전함을 달래려고 150cm 크기의 아담한 여래상을 만들어 공양한 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우드야나왕이 공양한 여래상이 최초로 만든 불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때 만든 여래상의 흘러내린 옷자락의 표현이 농산리 석불입상의 조각양식과 같아 우드야나왕 여래상형식이라 합니다. 이런 형태의 옷자락 표현은 통일신라 시대 불상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농산리 석불입상의 광배는 마멸이 심하지만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몸 전체를 감싼 형태입니다. 불상을 받치는 연꽃 좌대도 연꽃을 엎어 놓은 듯 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으로 심하게 마멸된 모습입니다.

 


두발은 불신과 따로 좌대위에 조각되어 있으며 마멸과 훼손이 심해 현재 왼쪽 발가락 일부만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광배의 오른쪽 끝부분은 깨어졌지만 하나의 돌에다 광배와 부처를 함께 조각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은 배 모양인 주형거신광으로 마멸과 손상은 심하지만,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큰 규모의 불상에다 정제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등 그 수가 많지 않은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과 이웃한 월성계곡에는 적송의 소나무 숲이 계곡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이며 정말 그림같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곳 행기숲에는 백제 무왕이 왕자 시절에 신라로 숨어들어 선화공주를 꾀어 백제로 돌아간 이야기가 전합니다.



월성계곡 행기숲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서동은 신라의 서라벌에서 서동요를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였고 나중에 선화공주와 함께 백제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인 월성계곡에 다다라 이곳의 빼어난 경관에 그만 넋을 잃고서 피로도 풀고 며칠 쉬어 갔다고 합니다. 행기숲은 서동과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의 로맨스만 있는 게 아닙니다.

 





행기 숲을 해인정(解印亭)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신라 말기에 고려의 침공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였습니다. 경순왕은 후백제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급하게 사신을 꾸려 보냈습니다. 사신이 이곳에 다다랐을 때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해 나라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신임을 증명하는 신표인 인장을 이곳에다 숨기고 종적을 감추었다 합니다. 해인(解印)은 인장을 싼 보따리를 풀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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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수승대 용암정. 무더운 여름나기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을 여행하다


거창하면 수승대와 빼어난 경승지인 용암정(龍巖亭)을 함께 보는 게 당연시합니다. 어쩜 둘은 바늘과 실의 관계로 함께라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지금은 수승대 쪽에서 거북바위 앞 돌다리를 건너면 성령산 아래를 따라 흐르는 위천(월성계곡)에 오솔길을 정비해서 누구나 쉽게 용암정까지 산책할 수 있습니다.



거창 용암정 주소: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3



2013/10/25 - (경남여행/거창여행)가조 우두산, 거창한 동네의 거창 소머리산인 우두산 가을 산행이 최고

2014/06/29 - (경남여행/거창여행)우두산 고견사. 거창을 대표하는 고견사 원효, 의상, 최치원의 전설이 남아 있는 거창 가조 우두산 고견사 둘러보기.

2014/08/26 - (경남여행/거창여행)점필재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일원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 남상 일원정

2014/08/27 - (경남여행/거창여행)감악산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이 유명한 감악산 연수사에서 얼음물을 맞다.

2014/09/02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감악산 산행. 감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뼈속까지 시린 물맞는 약수탕에서 물맞이를 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하얀 암반과 짙은 솔숲, 차디찬 계곡물, 덕유산에서 부는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걷는 수승대~용암정 둘레길, 군데군데 덱과 전망대를 설치해 놓아 더욱 분위기 있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거창 수승대 위 용암정은 대략 200년이 조금 넘은 역사를 가졌습니다. 이는 다른 여러 고건축물에 비해 그리 긴 연륜을 갖지 않았지만, 용암정의 자태는 자연 암반에 걸터앉은 게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한 한 마리의 학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춤추며 날아갈 듯 우아한 모습을 한 매우 빼어난 건축물입니다.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그 아름다움을 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포스팅을 하는 지금도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거창 용암정은 함안 출신인 용암 임석형(1751~1816)이 건립한 정자입니다.



1801년 건립한 용암정은 그가 남긴 용암정기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용암은 정자를 건립하고 한시도 이곳을 떠나지않았을 정도로. 그만큼 용암정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선비로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습니다. 어릴 때부터 재주가 비상하고 머리가 영특했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처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용암 임석형, 세속에 초월한 듯 용암정에서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를 알던 영호남 선비들은 이곳을 지나다가 서로 시문을 교류하면서 ‘원학주인(猿鶴主人)’이라 칭송했습니다. 임석형의 ‘용암정 창건기’와 이휘준의 중건기를 보면 1864년인 고종 1년에 보수 공사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용암정은 위천의 자연 암반에 계곡을 바라보고 동향으로 지어졌습니다. 용암정에서 누마루나 방문을 열면 월성계곡과 덕유산, 금원산의 물과 바람인 산수를 그대로 받아들이게끔 지어졌습니다. 용암정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으로 누하주가 낮은 형태인 중층의 누각입니다.




위에서 보면 가운데 배면에 사방 1칸의 온돌방을 넣고 3면은 전부 누마루로 돌렸습니다. 온돌방도 4면에다 모두 문을 달았는데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와 같은 평면 양식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3호인 수승대의 요수정과 비슷합니다.



출입은 뒤편 배면에 걸친 좁은 나무계단입니다. 이를 올라 용암정의 누마루와 온돌방으로 들어갑니다. 작은 통나무를 찍어내어 홈을 판 나무 계단을 보면서 투박한 주인의 성품을 보는 듯했습니다. 불을 지피는 아궁이와 구들장이 깔린 온돌방에 겨울철 거창은 얼마나 추운지 짐작이 갑니다.



누마루와 온돌방 이를 보면서 저도 용암정 같은 정자 하나 같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용암정의 공포양식은 초익공이며 도리가 다섯 개인 5량가 건물로 위천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각을 바친 자연 암반에다 용암정의 글씨를 새겨 놓았는데 붉은색을 입혔습니다.




정자 안쪽에는 ‘용암정’ ‘반선헌 ’청원문‘ ’환학란‘의 편액이 걸려 있으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위천쪽에 내려갈 엄두도 나지 않고 해서 암각과 편액은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는데 다음 거창여행에서는 용암정을 가장 먼저 들러 누마루에 올라 용암 임석형선생의 초연한 삶을 생각하며 세심하게 용암정을 둘러봐야겠습니다.






용암정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3호로 지정되었다가 정자와 함께 위천의 암반과 아름다운 경관으로 2012년 국가 명승 제88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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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여행일번지 수승대와 척수대.


거창하면 수승대, 수승대 하면 거창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거창에서는 여름 피서지이자 휴양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거창의 수승대 인근 둘레길을 걸으면서 만난 수승대와 척수대는 거창의 명승지답게 심한 가뭄에도 많은 수량이 흘러내려 산자수려함을 뽐내었습니다.



2015/05/08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양민학살 추모공원이 있는 월여산 산행, 청정 거창의 오지 산행지 월여산 등산을 하다.

2014/09/03 - (경남여행/거창여행)김숙자사당. 영남사림파의 발흥이 된 거창 남상면 강호 김숙자 사당을 보고오다.

2014/09/02 - (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감악산 산행. 감악산 산행에서 만나는 뼈속까지 시린 물맞는 약수탕에서 물맞이를 하다.

2014/08/27 - (경남여행/거창여행)감악산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이 유명한 감악산 연수사에서 얼음물을 맞다.

2014/08/26 - (경남여행/거창여행)점필재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의 일원정을 만나고 왔습니다. 거창 남상 일원정




오늘날의 수승대(搜勝臺)는 1543년까지 수송대(愁送臺)라 불렀습니다. 수송대가 수승대로 바꾸어 부르게 된 연유를 보면 퇴계 이황 선생의 일화가 있습니다. 수승대는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 앞 위천의 바위 절경을 말합니다.


수승대관광지 척수대

덕유산의 여러 골짜기에서 섬섬옥수가 흘러내려 빚어놓은 절경이라 예로부터 시인 묵객이 이곳을 찾았다면 세상사 모든 근심을 잊게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합니다. 그런데 삼국시대의 수승대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이며 백제의 최전방이었습니다.








백제 조정은 신라에다 사신을 파견하면서 이곳 수승대에서 몸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며 전별을 했던 곳으로 처음에는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했다 하여 근심 수(愁)에 보낼 송(送)을 써서 수송대라 불렀습니다. 이는 이곳의 경치가 “속세의 근심·걱정을 잊을 만한 절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승대는 조선 중종 때 요수 신권 선생이 은거하며 구연 서당을 열어 후진 양성을 하였고 위천의 수승대의 큰 바위는 거북이를 닮아 암구대라 불렀으며 이곳을 구연동이라 하였습니다. 그 후 퇴계 이황 선생이 안의현의 삼동에 유람차 들렀는데 수송대의 내력을 듣고는 이름이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급한 정무로 들러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하며 수승대로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를 보내었습니다.

 





이에 신권 선생은 그 뜻을 받들어 바위에다 새겨 오늘날 수승대가 되었습니다. 또한, 수승대는 모현대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수많은 현인과 은사가 찾아와 시문을 나누었던 곳으로 남명 조식 선생은 원학동의 대표명소인 수승대를 두 번이나 찾았다고 합니다.


 


수승대 하면 서로 마주 보며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이웃한 곳에 척수대가 있습니다. 수승대가 사신으로 가면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했다는 곳이라면 척수대는 신라로 떠났던 사신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이곳에서 근심을 씻었던 곳입니다.

 


처음 수승대를 개척했던 척암 성윤동이 척수대에서 소요하였으며 구연동에서 황산을 드나드는 길목이라 구연동의 남문이라 했습니다. 또한, 척수대는 이태사랑바위로도 불렸습니다. 이태하면 조선 후기의 명의였던 유이태를 말합니다. 거창군 위천면 서마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유년기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수승대 관광지 주차장

서당에서 글공부하던 어느 날 밤, 하늘의 달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놓고 위천가를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입맞춤을 해달라고 속삭였습니다. 이태는 여인의 유혹에 빠져 그만 입맞춤을 하였더니 입속으로 구슬이 굴러 들어왔습니다.

 

수승대 거북바위

구슬의 유혹 때문인지 모르지만 유이태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그와 반대로 몸은 점점 쇠약해졌습니다. 서당의 훈장이 이를 알고는 이태에게 구슬을 그냥 삼키라 하였습니다. 이태가 구슬을 삼켰더니 여인은 백여우로 변하면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이태는 삼킨 구슬을 빼내 몸에 지니고 다니자 예전처럼 건강이 회복되었고 더욱 총명해져 이름난 명의가 되었다 합니다.



거창 수승대관광지 주소: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

거창 수승대관광지 전화:055-943-5383


수승대 요수정

그 뒤부터 이태사랑바위에서 소원을 빌면 연인은 사랑이 이루어지고 자식은 훌륭한 인재로 성장한다고 전해져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소원을 빈다고 합니다. 척수대는 수승대문화유산둘레길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관광지라 많은 사진과 주위를 상세하게 보았지만, 수승대는 수승대문화유산둘레길의 막바지에 만나 늦은 시간으로 사진을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수승대관수루

다음 거창 여행에서는 수승대문화유산둘레길이 아닌 수승대만을 꼭 다시한번 찾고 싶습니다. 관수루와 요수정, 원각사, 구연 서당 등을 둘러보는 수승대 여행을 이 여름이 가기전에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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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여행/군위가볼만한곳)선방산 지보사삼층석탑. 예술성이 뛰어난 군위지보사삼층석탑 


경북 군위를 여행하면서 마지막에 들렀던 지보사입니다. 사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지보사에는 아름답기로 둘째라 하면은 서러워할 삼층석탑이 있어 많이 알려진 사찰입니다. 군위읍 소재지에서 동북 방향 6km 거리인 상곡리 선방산 골짜기에 있습니다.





군위 선방산 지보사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상곡리 280

군위 선방산 지보사 전화:054-383-2898




2009/04/05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아미산. 부처의 눈썹이 과연 이럴까?-경북 군위군 아미산(402.4m)

2014/12/02 - (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2014/12/05 -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2014/12/13 - (경북여행/군위여행)산성면 화본마을, 화본역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2014/12/26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화본리 오층석탑. 군위 덕림사 화본리 오층석탑을 만나다.




마을 앞이 마치 배를 띄운 모습과 같다 하여 선방산이라 합니다. 그런 유서 깊은 산에 지보사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현재 지보사의 상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673년 신라 문무왕 13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만 전하며 지보사의 유래는 이 절에 세 가지 보물이 있었다 하여 지보사라 불렸다고 합니다. 그 보물은 큰 가마솥과 절에 단청을 입히는 물감에 쓰였다는 천연의 오방색 흙과 맷돌인데 현재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민족문화 말살을 획책하며 일본사람이 지보사의 보물을 모두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소실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지보사는 근대에 와서 1942년과 1972년에 각각 중수하였으며 대웅전, 삼성전, 서별당과 요사채, 그리고 경내에 보물 제 682호인 지보사 삼층석탑이 남아 있어 천년 사찰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지보사 삼층석탑을 알아보겠습니다. 지보사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렸으며 머리 장식인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지붕돌 등이 많이 깨어져 훼손 상태가 심하지만, 안정감과 세련미에 우아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몸돌을 바치는 기단석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줍니다. 기단의 각면 모서리와 가운데에는 기둥문양인 탱주를 조각했으며 두 기둥 사이에 각각의 무늬를 새겼습니다. 아래층은 동물상인데 사자 같아 보이지만 확실하지 않으며 위층 역시 팔부중상을 두 탱주사이의 각면에 새겨 넣었습니다.















또한, 기단 윗면과 몸돌 사이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판돌을 별도로 끼워 한층 더 삼층석탑의 품위를 높였습니다. 맨 아래층 몸돌에는 부처님을 모시는 감실을 뜻하는 문짝 모양을 새겼으며 별도의 돌을 올린 옥개석은 밑면에 4단인 받침이 있습니다.


































지보사 삼층석탑은 기단석과 판돌로 인해 전체적으로 우뚝한 느낌이며 석탑의 조각수법을 보면 통일신라 석탑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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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여행/통영가볼만한곳)통영 제석봉~발암산 산행. 한국의 산토리니 통영 제석봉~발암산 등산


통영 제석봉~발암산 산행은 통영농업기술센터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합니다. 산행 경로를 보면 용봉사~키위농장 산길 진입~원문 갈림길~용호 갈림길~향교 갈림길~제석봉 직전 발암산 갈림길~제석봉~(제석봉 직전 발암산 갈림길)~용호 갈림길~죽림 갈림길~암수바위~홀리골 갈림길~발암산~큰바위~한퇴 갈림길~편백숲~상노산 갈림길~한마음선원 입구~헬기장~폐광 돌탑~신애원 입구~죽림·향교 버스정류장을 지나 통영농업기술센터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입니다. 전체 산행 거리는 대략 10㎞이며 산행시간만 3시간30분~4시간, 휴식과 점심시간을 포함하면 4시간30분~5시간이 걸립니다.







2017/06/03 - (통영여행/통영가볼만한곳)경남 민간정원 2호 해솔찬정원, 40년을 자식같이 가꾼 자연 동산 민간정원 해솔찬정원

2016/06/25 - (통영여행/통영가볼만한곳)연대도~만지도. 환상의 섬 통영 연대도 만지도 바다 백리길 연대도 지겟길과 연대도~만지도 출렁다리 여행. 연대도~만지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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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 (경남여행/통영여행)벽방산 안정사. 한산무송 벽방 8경의 소나무를 보며 벽방산 안정사에서 힐링을 하다.

2013/10/30 - (경남여행/통영여행/비진도선유봉)탱탱한 여인의 젖가슴을 닮은 비진도와 선유도 선유봉 섬 산행


   


통영 제석봉~발암산 산행은 200m대의 산행이지만 통영 바닷가를 가까이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다도해는 물론이고 시원한 조망을 선사하여 짙은 수림으로 여름 산행지로도 손색없는 코스입니다. 먼저 산행은 통영시 광도면의 통영농업기술센터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합니다. 



오른쪽 골짜기 안에 보이는 황금색 불상이 있는 절이 용봉사입니다. 참고하세요. 통영시내 방향 약 30m 에 '제석산 용봉사'와 화진주사우나 등 여러 간판이 세워져 있고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제석봉 입구' 이정표도 있습니다. 등산로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꺾습니다.








쭉 뻗은 농로 시멘트 포장길을 걸어갑니다. 곧 마을앞 1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화진주사우나를 지나고 큰 불상이 있는 용봉사에 닿습니다. 용봉사에는 천연 취옥석으로 만든 와불이 눈길을 끕니다. 제석봉산행은 용봉사를 지나 ‘길없음’ 안내판을 무시하고 오르면 탐스러운 키위가 주렁주렁 달린 농장이 나옵니다.



이곳이 실질적인 제석봉 들머리입니다. 정비된 산길을 3분여 오르면 능선 안부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왼쪽은 원문(0.7km)방향, 제석봉은 오른쪽입니다. 지금부터 해안가 이쪽저쪽 마을을 연결하는 이정표 갈림길이 여럿 나옵니다.

 










대부분 사람의 통행이 뜸한지 그저 산길의 흔적만 보였습니다. 용호 갈림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향교(0.3km)에서 올라오는 산길에서도 제석봉(0.7km)은 능선을 따라 그대로 직진합니다. 갑자기 전망이 열리는게 제석봉 정상인가 싶어 지도를 보니 제석봉 직전 삼거리였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첫번째 만나는 전망대였습니다. 삼각형의 미륵산이 우뚝하고 그 오른쪽 해상에는 대·소망자도 목섬 장도 가메여 필도 장구도 등 다도해가 그림같이 펼쳐집니다. 이정표에는 왼쪽은 발암산(2.6㎞)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죽림 방향이며 그 옆에 누군가 작은 글씨로 ‘제석봉‘을 적어 놓았습니다.







제석봉까지 갔다가 되돌아나와 다시 발암산으로 향합니다. 제석봉 정상에는 사각정자외 평상, 그네까지 있는게 그만큼 많은 시민이 찾는가 봅니다. 전망 좋은 정자에서 땀도 식혔습니다. 오른쪽에 3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삼형제가 같은 삼봉산이 솟았고 그 왼쪽 끝으로 가조도 옥녀봉이 피라미드를 닮았으며 거제도의 명산과 삼성조선의 빨간 독(dock)도 보였습니다.








이제 갈림길로 되돌아가 발암산 이정표를 따라갑니다. 작은 봉우리를 여럿 넘어야합니다. 그 가운데 왼쪽으로 용호 갈림길이 있으며 죽림 갈림길은 오른쪽입니다. 무시하고 직진 능선길을 따릅니다. 안부에서 다시 살짝 오르막을 오르면 이번에는 암수바위이정표입니다.

 




왼쪽으로 들어서면 바위 2개가 있으며 왜 암수바위라고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근석과 여근석을 말하는 듯 했습니다. 가까이서보면 조금은 그런 느낌도 들었습니다. 다시 산길로 복귀해서 능선을 타고 발암산으로 향합니다.

 

















시원한 바위전망대에서 한 번 더 다도해를 굽어보면서 숫자도 세어보고 정말 작은 섬이 많았습니다. 왜 다도해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돌탑을 쌓았던 게 꼭 삿갓을 쓴 도사가 바위에 걸터앉아 다도해를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돌탑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며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261m, 265m봉인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연달아 넘는 산길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발암산 직전 안부에서 오른쪽에 하산길이 열립니다. 홀리골 갈림길입니다. 발암산 정상까지는 200m 남았으며 꾸준한 오르막입니다.



















산불초소가 있는 이정표에는 정상석 대신 발암산 정상 안내판을 붙여 놓았습니다. 오른쪽은 상노산(2.7㎞) 방향. 목탁을 닮은(?) 큰 바위를 돌아 가장 높은 바위에 올라섰습니다. 제석봉 등 걸어온 산길이 한눈에 펼쳐지고 용바위 봉우리와 건너편 도산면의 장막산 봉화산도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습니다. 그래 다음 통영 산행은 너로서 결정했다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상노산 방향으로 하산하면 곧 코끼리바위와 거북바위가 함께 있는 큰 바위를 만납니다. 거대한 암벽이 막아선 게 예사롭지 않습니다. 산길은 거대한 바위를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261봉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거북바위






통영지맥길인 왼쪽 한퇴(0.5㎞) 방향으로 빠지지 말고 그대로 상노산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10분 정도면 오른쪽에 초록색 융단인 깔린 염소농장이 보이고 시원한 느낌이 들었던 편백숲을 통과하면 이정표 없는 갈림길입니다. 왼쪽은 상노산 방향이며 신애원은 오른쪽 능선을 탑니다.

 




산길은 편안하게 15분 이어지고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왼쪽 길입니다. 다시 10여분 편안한 산길을 따라가면 갑자기 오른쪽에 특이한 건물이 보입니다. 한마음선원 통영지원 건물이며 우리는 선원 입구에 내려섭니다.






다시 맞은편의 넓은 임도를 걷습니다.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폈고 곧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입니다. 그대로 직진하면 산길은 봉우리로 오르지 않고 산허리를 돌아나갑니다.

 


 곧 일제강점기 때 금광을 캐내었다는 폐광이 나옵니다. 폐광에 나온 돌을 모아 누군가 돌탑을 쌓고 있었는데 김수돌씨로 16년을 모신 의어머님이 101세에 돌아가셨는데 처음에는 그 어머님을 생각하며 돌탑을 쌓게 되었다합니다.



돌탑마다 의미를 부여한 이름이 각각 있으며 현재 5개째 탑을 쌓는 중이라 했습니다. 모두 7개의 돌탑을 쌓아 이곳을 칠성탑이라 부르고 싶다며 작은 소망을 이야기했습니다.




돌탑에서 금을 캐내었다는 폐광 웅덩이를 왼쪽으로 돌면 신애원 철망울타리 갈림길입니다. 오른쪽 철망울타리를 따라 하산합니다. 상엿집 앞의 ‘모정’ 돌탑을 지나면 신애원입구에 내려서고 비로소 산을 벗어납니다. 여기서 대중교통편인 직행버스를 타고 왔다면 인근에 있는 통영종합버스터미널로 곧장 갑니다.



그러나 자가운전을 했다면 이제 출발지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오른쪽으로 걸어서 죽림2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마른 하천 둑길을 걷습니다. 14번 국도를 따라 죽림버스정류장과 향교버스정류장을 차례로 지나면 출발지 통영농업기술센터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부산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직행버스(오전 6시10분부터 약 20분 간격 운행)를 타고 통영종합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합니다. 터미널에서 1.2㎞ 거리에 농업기술센터 입구 버스정류장이 있으며 그 인근에 통영농업기술센터가 있습니다. 자가 운전 시에는 내비게이션에 통영농업기술센터를 검색합니다.




트랭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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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여행/군위가볼만한곳)김수환추기경생가. 우리나라 최초 추기경 군위 김수환추기경 생가 여행


일연선사의 삼국유사는 인각사에서 완성했으며 인각사와 각시산 여행을 하면서 겸사겸사 30km 떨어진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생가를 다녀왔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는 군위읍 용대리 산비탈에 새로 지은 초가집이 달랑한 채 있었습니다.





군위 김수환추기경 생가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238-7



작은 방이 두 개에다 부뚜막에 솥이 하나 걸려 있었으며 안방을 통하는 작은 봉창문이 붙어 있고 툇마루와 야트막한 지붕을 한 전형적인 산골의 오두막집이었습니다. 이를 초가삼간이라 하나요. 김수환 추기경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집안은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에 뿌리를 내렸으며 충청도에 천주교가 전파하던 초창기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순교자 집안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할아버인 김요한 공은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옥중순교했으며 할머니 강말손 여사는 남편이 순교하자 더욱 성심을 다해 교우들을 뒷바라지하였습니다.



김수환추기경 아버지는 부친의 순교로 유복자로 태어났고 이름은 영석에 세례명은 요셉이셨습니다. 요셉은 경상도 사목을 담당하고 대구교구 설립자이신 김보록신부의 일을 도왔다가 동학난이 일어나자 칠곡군 장자동 옹기골로 몸을 숨겼습니다.

 


이곳에서 김보록과 뮈맬 신부가 주선하여 서중하(마르띠나)와 혼인을 치릅니다. 이분이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이십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부모님은 왜관 평장목, 김천 지대골의 옹기골, 대구 남산동, 칠곡의 산나무골과 선산을 전전하다가 1922년 4월에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추기경의 형제는 모두 6남 2녀이며 군위로 이사 오던 그해에 막내인 김수환 추기경이 태어났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와 가까워졌습니다. 8살 때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옹기와 포목 행상으로 가정을 꾸렸습니다.





현재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238번지에 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는 추기경님이 다섯 살 때부터 살았던 곳이며 군위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카톨릭대학의 전신이 성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사셨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추기경의 유년기를 모두 이곳에서 보냈으며 또한, 신앙인의 꿈을 키웠던 곳이라 더욱 의미가 큰 곳으로 생전에 추기경도 당시를 떠올리시며 생가지를 가끔 찾으셨다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2009년 2월 16일 선종하셨으며 군위군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이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복원을 추진해서 지금은 막바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사랑과 나눔 정신을 계승하는 공원 조성사업 현황은 필자가 찾았을 때 생가 뒤로 추모전시관 등 여러 건물이 들어선 것을 보았습니다.







곧 수련시설, 십자가의 길, 평화의 숲이 조성된 김수환추기경 생가와 추모전시관을 만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재수 좋게 김수환추기경 생가구경을 하고 왔지만 2017년 6월 14일부터 12월 공사가 끝날 때까지 생가 출입을 제한한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공사가 끝나면 이제 완전한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를 만나시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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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삼광사 연등 축제. CNN이 '한국의 아름다운 곳 50선'에 선정한 연등의 바다 삼광사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올해에도 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삼광사에서 열리는 연등 축제를 보고 왔습니다. 삼광사 연등 축제 행사는 4월 16일부터 시작했고 이제 3일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5월 3일 부처님오신날을 끝으로 연등축제는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예년의 기준을 보면 공식적인 연등축제는 끝이 나도 밤을 밝히는 연등은 연장했던 것 같습니다.






부산 삼광사 주소: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54-58

부산 삼광사 전화:051-808-7111


삼광사 대중교통편은 도시철도 1호선과 2호선이 통과하는 서면역에서 영광도서 방향인 9번 출구로 올라오면 영광도서 건너편 분수대 옆에 부산진구 15번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버스 편은 7대가 운행하며 수시로 있어 교통에 불편함이 전혀 없습니다. 자가운전은 이맘때면 삼광사 일대가 혼잡하여 주차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2015/05/27 - (부산맛집/부산진구맛집)삼광사 맛집 시골보리밥. 3,000원에 먹는 맛있는 보리밥 삼광사 앞 시골보리밥.시골보리밥

2015/05/26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천태종 삼광사. 단일 사찰 최대의 연등 축제 부산 천태종 삼광사 연등 축제.







삼광사 연등축제는 CNN이 ‘한국의 아름다운 곳 50선’에 선정했을 정도로 약 5만 개의 연등은 관광객을 혼을 빼어놓습니다. 전국 어느 사찰을 가도 삼광사 연등과 같은 장관을 보지 못했습니다. 삼광사 입구부터 길게 늘어선 연등은 삼광사를 다 채웠고 그리고 삼광사 언덕배기의 산책길까지 하늘을 가릴 정도였습니다.











대웅전을 정면으로 보면 청룡과 황룡의 용 등이 수문장처럼 입구를 지키고 코끼리등, 십이지신등 등 모양과 크기도 다양한 연등이 방문객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삼광사 연등은 이제 두 번째 방문입니다. 지지난해 삼광사 연등 사진을 보고 퇴근길에 무작정 찾았습니다.



 






그러나 사진 속에서 보았던 삼광사 연등의 모습은 일반인으로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포기하고 주변의 여러 곳을 다니며 찍었습니다. 올해에도 삼광사의 메인 사진은 역시나 지관전과 법화삼매당을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이 블로그의 삼광사 연등 사진으로 도배해 기필코 삼광사 연등 포인트에서 사진을 담기로 작정하고 출발했습니다.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이란다고 올해에는 부처님이 저의 소원을 들어주셨는지 다행히 이쪽저쪽 계단을 쑤시고 다닌 결과 요행이 삼광사의 연등을 두 눈으로 즐기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한 단을 높인 2층에서 내려다보는 삼광사의 연등은 숫제 불을 밝힌 ‘연등의 바다’를 보는 이색적인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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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황홀했으며 왜 CNN에서 ‘대한민국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에 선정을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아름다운 삼광사 연등으로 눈을 호강하고 즐겼습니다.








이 연등의 밝은 빛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사회의 온갖 어둠을 걷어내는 자비와 지혜가 가득한 빛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아직 부산 삼광사 연등 축제를 구경하지 못했다면 오늘 밤이라도 떠나보세요. 아직도 늦지 않습니다.















맨 끝 용 사진은 삼광사를 여행하고 집에 가던 길에 버스 환승을 기다리다 광복로 입구에 설치된 부처님오신날 용등입니다. 삼광사 자매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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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여행/밀양가볼만한곳) 밀양에서 꼭 보고와야 할 여행지 밀양시립박물관, 밀양독립운동기념관. 


밀양여행을 하면서 밀양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면 밀양시립박물관을 찾아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저도 밀양의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그래도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던 차에 밀양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밀양시립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밀양시립박물관은 이번에 처음 찾았던 것은 아닙니다.





밀양시립박물관 관람시간:09:00~18:00(입장시간 09:00~17:00)

밀양시립박물관 휴관일:1월1일 설날·추석 당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밀양시립박물관 관람료: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20인 이상 단체 관람료 별도

밀양시립박물관은 2014년부터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을 ‘문화의 날’이라 지정하여 당일 무료 관람 시행.

밀양시립박물관 예약안내:055-359-5589

밀양시립박물관 주소:경상남도 밀양시 밀양대공원로 100


 


2016/12/10 - (밀양여행)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약산 김원봉, 석정 윤세주, 최수봉, 백민 황상규등 밀양 독립운동가 거리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2016/12/05 - (밀양맛집)밀양내일동 전통시장 단골집, 백종원의 3대 천왕 맛집 70년 전통 돼지국밥 밀양 단골집.

2011/06/24 - (경남여행/밀양여행)산외면 죽원재사. 밀양시 옛고을 다원리 오한 손기양의 죽원재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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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8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영남루,. 무더운 날에 밀양 영남루에 올라 시원한 대청마루를 생각한다. 영남루




항상 논에 피를 뽑듯이 듬성듬성 보고 다녔기에 별 감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갈 기회가 생겨 이번에야말로 꼼꼼하게 둘러보았으며 밀양의 많은 문화유적지와 밀양을 대표하는 인물을 알면서 새롭게 밀양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몇 년 사이에 밀양시립박물관이 있는 일대가 완전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박물관 이외에도 참말로 구경할 게 많아 아이와 함께 찾는다면 풍성한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이곳은 요즘은 흔적조차도 찾기 힘든 영남대로가 재사 고개로 넘어가는 길목이라 시립박물관으로 더욱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밀양시립박물관의 주요 전시실을 보면 1층에 밀양 독립운동기념관이 독립된 부스로 전시 중이며 역사와 민속 시립박물관으로 기획전시실을 제외하면 모두 4개의 테마로 꾸며졌습니다.

 



특히 밀양에서 가장 관심이 있는 곳은 독립운동기념관입니다. 보통 독립운동기념관 하면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생각하기 쉽지만, 밀양은 을사늑약 이후 많은 밀양 출신이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목숨을 바쳐 뛰어들었습니다. 영남지방 최초라는 3.13 밀양 만세 의거를 시작으로 23회에 걸친 폭탄 투거인 의열 투쟁의 선봉에는 밀양 출신의 많은 의열단원이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민족혁명당의 창당과 조선 청년혁명 간부학교, 조선의용대와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항일독립투쟁의 역사 속에 특히 밀양 출신의 의사가 많았습니다. 의열단 단장·조선민족혁명당 총서기·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역임한 김원봉,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황상규, 조선 민족 혁명당과 조선의용대 윤세주, 대종교 3대 교주 윤세복 최주봉 등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던 밀양. 밀양의 독립운동 뿌리를 시립박물관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올강 전홍표 동화학교 교장의 영향을 받은 김원봉은 무장투쟁의 의열단 단장이었으며 한봉근, 김상윤, 김대지 등이 의열단의 중요간부였고 의열단의 핵심으로 김원봉을 보좌하며 의열투쟁을 벌렸습니다.








의열단의 석정 윤세주 또한, “무수한 동지들이 체포되었지만, 체포되지 않은 우리 동지들은 도처에 있으니, 반드시 강도 왜적을 섬멸하고, 우리의 목적을 도달할 날이 있을 것이다”며 3.13 밀양만세의거와 밀양폭탄의거를 주도했지만 밀양폭탄의거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조선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 교관,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조선의용대 훈령 주임과 정치위원을 거쳤으며 중국태항산 반소탕전투에서 부상의 후유증으로 순국하셨습니다.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의거의 최주봉 의사는 의열단의 김상윤, 이종암, 고인덕과 의거를 준비하여 1920년 12월 27일 밀양경찰서에다 창문으로 폭탄 한 개를 던지고 기다렸다 순사들이 뛰쳐나오자 다시 폭탄을 던졌습니다. 일경의 추적을 받자 자결을 시도했다 체포되었으며 사형을 선고받고 다음 해 7월 8일 순국했습니다. 그는 죽음 직전까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대한남아의 기개를 보였다 합니다.









황상규 의사는 “나는 죽어도 집에서 죽지 않고, 대중을 위해서 밖에서 일하다가 밖에서 죽겠다”는 유언을 남겼으며 밀양폭탄의거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그의 의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3월 13일 밀양 장날에 맞추어 함성이 퍼져나갔습니다.





의열단의 결성은 1919년 11월 10일 중국길림성(지린성)에서 김원봉의 주도하에 “일제 침략을 물리치고 정의를 되찾기 위해 맹렬하게 투쟁할 것을 맹세”하며 결성했습니다. 의열단원을 보면 황상규, 윤치형, 김상윤, 윤세주, 강인수, 한봉근, 한봉인, 고인덕, 김성수, 김원봉 등 유독 밀양 출신이 많았습니다.

 






1935년 7월 민족혁명단으로 바뀔 때까지 일제는 의열단을 두고 “파괴, 흉폭행위를 실천에 옮기는 단체는 오직 의열단 뿐”이라며 두려워 했습니다. 의열단의 암살대상은 조선총독부의 고관 군 수뇌부, 대만 총독, 매국노, 친일파 거두, 적 염탐꾼, 반민족적 토호열신과 파괴대상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와 침략기관 등이었습니다.




김원봉은 “자유는 우리의 힘과 피로 얻어지는 것이지 결코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선 민중은 능히 적과 싸워 이길 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구자가 되어 민중을 각성시켜야 한다”고 박태원의 ‘약산과 의열단’에 나와 있습니다.













조선 민족 혁명당의 결성과 활동의 뒤를 이어 조선의용대의 창건은 1937년 7월 7일 일제의 중국 침략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자 이에 중국 정부는 한국인의 항일투쟁을 높이 평가하여 1938년 10월 후난성에 조선의용대를 창건하도록 지원하여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이 총대장을 맡았습니다.




















1919년 4월 10일까지 아홉 차례나 밀양만세시위운동이 벌어졌으며 460여 명의 주민이 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참 많은 기록이 전시 중인 밀양시립박물관의 밀양독립운동관, 수많은 밀양의 독립투사 발자취를 알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밀양시립박물관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유물이 전시 중입니다. 단장면에 새롭게 출토된 후기구석기유물로 추정되는 타제석기인 뗀석기가 수습되었습니다. 이것으로는 아직 구석기 유물이라 단정하는데는 한계가 있으며 현재 밀양은 아쉽지만 신석기 유물과 주거지 등이 나온 게 없습니다.




그러나 지석묘인 고인돌과 석관묘인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유물인 마제석기, 김해 가야토기와 신라 토기 등이 많이 출토된 것을 유추 해보면 밀양의 역사는 청동기 시대 이후부터 집단 주거가 이루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밀양은 변진 12국의 하나였던 미리미동국이며 이는 신라에 병합되어 사라집니다. 이 모든 밀양의 선사시대 유물과 옛 역사를 밀양시립박물관에서 만났습니다. 




































고려와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밀양을 대표하는 수많은 유물과 인물이 있습니다. 그중 꼽으라면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인 영남루, 사림파의 태두인 점필재 김종직 등이며 이외에도 많은 밀양의 유물과 인물들을 밀양시립박물관에서 만나 보세요. 밀양에 대해서 더욱 많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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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여행/진안가볼만한곳)마이산 고금당 나옹암. 마이산 전망 일번지 고금당 나옹암을 찾아가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 하면 언뜻 생각나는 게 말의 두 귀를 닮은 바위봉우리와 사람의 힘으로 쌓았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탑사입니다. 이갑용 처사가 30년 동안 쌓았다는 돌탑은 “불가사의”라 합니다. 현재 탑사에는 돌탑이 80여 기가 있습니다.






고금당 주소: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탑사가 마이산도립공원을 대표한다면 광대봉의 고금당과 나옹암은 마이산의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또하나의 볼거리입니다. 그 때문에 마이산을 찾는 등산객은 반드시 고금당과 나옹암, 마이산과 탑사는 빼놓지 않고 보고 옵니다.

 

 

고금당은 탑영제 아래에 있는 금당사의 모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처음 금당사가 있었다는 곳이 현재 고금당 자리입니다. 바위 면에 절묘하게 자리한 고금당은 고려말의 고승이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의 수도처인 자연 석굴입니다.

 

 

나옹화상께서 수도했던 굴이라 하여 나옹암·나옹굴이라 부르며 현재에는 석굴 입구에 목탑의 형식을 갖춘 독특한 모양의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건물 외관은 고금당과 함께 누런 황금색을 입혀 규모는 작지만, 꼭 황금색 사원을 보는 느낌입니다.

 

 

 

 

 

 

고금당은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왔던 보덕스님의 제자 무상스님과 스님을 따르던 금취가 650년인 백제 의자왕 10년에 금동사로 처음 창건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해서 혈암사로 불리다가 절을 옮기면서 옛터에 있던 절은 고금당이라하고 옮겨와 다시 세운 절은 금당사가 되었습니다.

 

 

 

 나옹암

 

 

현재 고금당의 법당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좌우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셨습니다. 고금당에서 바라보는 마이산의 경치는 가히 감탄사가 연이어 터질 정도로 정말 아름답습니다. 나옹화상이 도통했다는 굴이자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꿈속에서 금척을 받아 훗날 조선을 건국했던 개국의 성지가 마이산 나옹굴이며 ‘금척천명지(金尺天命地)’라 칭합니다.

 

 

 

 

한, 동학농민의 녹두장군 전봉준 딸도 이곳 나옹굴에서 10여 년 동안 숨어 지냈으며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호남최초의 민중항쟁인 항일의병결사 창의동맹이 처음 시작되었던 애국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고금당 

 

 

어느날 이성계는 꿈속에서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고 깨어납니다. 그 후에 아지발도가 이끈 왜구와 남원의 운봉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이산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마이산을 보고 이성계는 얼마 전 꿈에 금척을 받았던 곳과 주변 모습이 똑같았기에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이성계는 땅에서 솟았다는 용출산을 “선인에게 받은 금척을 묶어 놓은거 같다”하여 속금산(束金山)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성계의 성씨인 이(李)자가 나무목(木)이 있는 목성이라 금(金)성 과는 상극에 해당하여 “금의 기운을 묶어둔다”는 뜻이라 합니다. 그 뒤에 태종이 이 산을 보고 말의 귀와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한 게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성계의 전설이 남아 있는 천하절경 고금당과 나옹암을 가는 길은 마이산 남부 매표소를 지나 밀집한 상가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600m 거리에 2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룡대 전망대에서  본 나옹암과 고금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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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여행/여수가볼만한곳)여수 돌산공원 여행. 여수 관광 1번지 돌산공원에서 돌산대교를 만나다.


여수 돌산공원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여수에서 가장 큰 섬인 돌산도를 1984년에 다리로 연결했는데 이게 돌산대교입니다. 돌산대교를 완성하고 돌산대교 준공기념탑을 돌산도 입구 그러니까 돌산대교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건립하면서 공원으로 조성이 됐으며 이게 1988년도에 완공해 오늘날의 돌산공원입니다.





돌산공원 주소: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799-76



 

그런데 지금은 여수의 자산공원하고 여수 한려해상 케이블카까지 연결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오동도와 함께 여수여행 일번지로 인기 몰이 중입니다. 돌산공원의 전체면적은 212,700㎡의 규모이며 돌산대교 준공기념탑과 그늘막이 5동 등 공원의 부대시설도 완벽하게 갖추어져 공원을 돌면서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준공기념탑 이외에도 1999년에는 여수시 타임캡슐을 공원 정상에 묻고 100년 후에 개봉을 기다리며 2002년에는 거친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다 숨져간 어민들의 혼백을 위로하는 어업인 위령탑도 세워 바다와 더욱 가까운 여수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여수 시내는 물론이고 여수 옛 항과 돌산대교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빼어난 경치 덕분에 여수로 신혼여행을 왔거나 결혼식을 끝낸 신혼부부가 기념사진을 찍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돌산공원에서의 제1경은 돌산대교 야경입니다.

 

 

돌산대교 야경도 구경하고 돌산대교 아래를 흐르는 청정의 에메랄드 바다도 만나보세요. 또한, 호빵을 올려 놓은 듯 닮은 장군도의 위용이 정말 대단합니다. 장군도는 여수시 중앙동 1번지이며 돌산대교를 건너다보면 왼쪽에 보이는 섬입니다.

 

 

장군도는 연산군 때의 이량장군이 바다 밑에 쌓은 수중성이 있습니다. 1497년 연산군 3년 이량장군은 전라도 흥양에 일어난 왜변을 다스린 공으로 전라좌수사로 발탁되었으며 전라좌수영에 부임하여 왜구의 침범 해로로 이용이 되는 돌산도와 장군도 사이의 해로를 돌을 막아 쌓은 수중제방이 성의 역할을 하여 수중성이라 불렀습니다.

 

 

 원래 독섬에서 대섬이라 불렀으며 이량장군이 쌓은 수중성인 장군성이 있다 하여 장군도라 불리고 있습니다.



 

 

 

 

 

 

 

 

장군도 

 

 

 

 

 

 

 

 

 

 

 

 

 

 

 

 

 

 

 

 

 

 

 

 

 

 

 

돌산공원내 여수해상케이블카 타는 곳 

 

돌산공원에서 여수해상케이블카를 타보세요??? 

 

돌산공원케이블카 

 

바다를 가로 지르는 여수해상케이블카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짜릿한 기분입니다.   

 

야호!!!!하며  고함도 질러봅니다. ㅋㅋ 

 

 

 

 

 

 

 

 

 

 와우 그림이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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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퇴계태실 노송정종택과 퇴계종택. 퇴계 이황 태실인 노송정종택과 퇴계 이황 종택을 여행하다. 


‘동방의 주자’ 퇴계 이황선생은 경북 안동 도산면의 온혜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에는 이황 선생이 태어난 퇴계태실 노송정종택이 있습니다. 안동을 여행하면서 여행의 피로도 풀 겸해서 온천수가 좋다는 도산온천을 일행과 함께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온천 못미처 퇴계 태실 안내판과 우측으로 고래등 같은 고가의 위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퇴계태실 노송정종택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604

퇴계태실 노송정종택 전화:054-856-1052


2017/03/29 - (안동여행)안동하회마을 충효당, 서애류성룡 종택인 하회마을 충효당을 보다.

2017/03/28 - (안동여행)하회마을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하회마을 양진당을 만나다.

2017/02/10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송이 용두식당. 춘향목의 솔향이 가득한 봉화 송이돌솥밥 용두산장에서 맛보다.

2017/01/17 - (안동여행)안동 이천리 석불상, 제비원석불, 제비원 미륵불로 불리는 오뚝이를 닮은 독특한 마애불.

2017/01/14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헛제사밥이라해서 헛배가 부른게 아니예요. 맛있는 음복음식 안동 맛50년 헛제사밥

2016/12/26 - (안동여행)안동법흥사지칠층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여행.



 

갑자기 궁금증도 생기고 해서 퇴계태실 노송정을 갈 욕심에 도산온천 앞에서 일행과 헤어졌습니다. 혼자 차를 몰고 퇴계 태실을 찾았습니다. 노송정종택은 퇴계 이황 선생 이외에도 송재선생, 온계선생 등이 태어나고 분가할 때까지 생활했던 생가입니다.

 

 

 

 

 

퇴계태실(노송정종택) 출입문에 성림문 현판

물론 퇴계 이황선생도 이곳에서 태어나셨는데 이황 선생의 어머니인 춘천박씨는 퇴계 선생을 낳을 무렵에 성인이 찾아오는 꿈을 꾸고 퇴계 선생이 태어났다 하여 노송정종택의 솟을대문인 출입문을 성림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퇴계선생이 태어날 무렵 성인이 왕림하는 꿈을 꾸었다하여 성림문 현판

 

노송정

 

 

또한, 태어나신 방은 태실, 선생이 공부하던 방은 책방, 선생이 기거했던 방 등 여러 편액이 집안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처음 노송정 종택은 1454년인 단종 2년에 이황 선생의 할아버지인 이조판서 이계양공이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켰던 계유정난을 보면서 초야에 묻혀 살기로 작정하고 처음 이곳에다 집을 지었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져옵니다. 이계양공이 봉화현의 훈도를 지냈는데 하루는 이곳을 지나다가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에 흠뻑 취해 신라현 고개를 넘게 되었습니다. 그때 고개를 넘어오는 허기진 노승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면서 서로 온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다 노승과 함께 다시 온계로 되돌아왔습니다.

 

 

 

 

 

 

 

 

지금의 노송정종택은 그 당시 노승이 집터를 정해주면서 이곳에다 집을 짓고 살면 후에 귀한 자손을 얻을 것이라는 말에. 이계양공은 이곳에다 집을 짓고 가계를 이룹니다. 그 후 이곳에서 아들인 송재 이우와 손자인 온계 이해 선생, 1501년 11월 퇴계 이황이 태어나 노승의 귀한 자손은 맞춘 샘이 되었습니다.


 

 

 

온천정사

 

 

노송정은 이계양공의 호이며 퇴계 태실 등이 있는 건물은 그분의 호를 따와 노송정 종택이라 부릅니다. 먼저 성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노송정이 있습니다. 퇴계 태실이 있는 본채는 노송정 앞마당에서 왼쪽에 ‘ㅁ'자로 앉았으며 퇴계 태실은 본채 가운데에 누각 형태를 한 건물이 있는데  ’퇴계선생태실‘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태실은 돌출된 건물에 앞쪽에는 작은 마루와 방이 독립형태로 앉았습니다. 삼면은 쪽마루를 덧붙여 계자난간을 달은 독특한 건물로 꾸며져 있는 게 다른 곳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형태입니다. 또한, 성림문 옆인 본채 건물 동남쪽 모서리고 마루로 꾸며져 있습니다. 큰사랑과 작은 사랑 사이에 4 합의 살문은 달아 여닫는 마루로 온천정사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퇴계선생태실

 

 

 

 

본채 앞에는 누마루와 온돌방이 붙은 노송정이 있으며 그 오른쪽에 사당도 있습니다. 노송정종택은 1985년 지방문화재 제60호에 지정되었으며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면모와 태실을 갖춘 독특한 건물은 당시 상류 가옥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송정 

 

퇴계종택 

퇴계 태실을 보고 나서 급하게 차를 몰아 퇴계 이황을 배향한 도산서원으로 달렸습니다. 도산서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관리인이 매표소 문을 닫으면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다시 차를 몰고 퇴계 이황선생 종택으로 달렸습니다.



퇴계종택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68-2

 

 

생가에 도착했더니 사위는 벌써 어둠이 내려앉은 지 한참이 지났습니다. 늦게 집을 찾아가는 것도 실례고 하여 문 앞에서 그냥 분위기만 보고 돌아왔습니다. 퇴계종택은 퇴계 태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퇴계종택은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으며 경상북도 기념물 제42호입니다. 현재 지어진 퇴계종택은 1929년 선생의 13대손인 하정공이 옛 종택 건물을 짐작하여 지금의 터에 새로 지은 건물입니다.

 

 

앞면 6칸에 옆면 5칸인 ‘ㅁ’형 건물로 대문과 정자, 사당으로 구분하고 석축을 높이 쌓아 그 위에 둥근 기둥과 네모기둥을 혼용하여 지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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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여행/영덕가볼만한곳)삼사해상공원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영덕 어촌의 생생한 역사를 전시한 어촌민속전시관.


경상북도 영덕 하면 영덕대게를 제외하면 그리 볼거리나 먹거리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가 영덕을 여러 군데 다녀보면서 영덕은 동해안의 가운데 있어 참말로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문화유적지는 물론이고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선은 모두가 전망대일 정도로 공원으로 조성하여 영덕을 찾는 관광객에게 쉼터를 제공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영덕 첫 번째 공원은 삼사해상공원입니다.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158-10 삼사해상공원 내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전화:054-730-6790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이용안내

관람료:성인 2천원, 학생 1천원, 15인 이상 단체 할인

휴관일:매주 월요일, 설날 추석날

관람시간:오전9시~오후6시(매표마감 오후5시30분)

입체영산관 상영:시간대별 상영, 단체관람은 사전예약

문의사항:054-730-6790~4



2016/12/20 - (영덕여행)강구 삼사해상공원. 동해안 일출 1번지 삼사해상공원 여행. 영덕 삼사해상공원

2015/04/17 - (경북여행/영덕여행)영덕 해맞이 공원. 꽃대궐을 이룬다는 영덕 해맞이 공원과 창포말 등대 동해여행.

2013/12/02 - (경북여행/영덕여행)해파랑길 블루로드 B코스. 해맞이 공원의 블루로드 해안가 멋진길 블루로드 B 코스.블루로드

2015/04/28 - (영덕맛집/강구맛집)팔각산맛집, 7번 국도 맛집 나비산기사식당. 미주구리(물가자미) 찌개가 맛있는 나비산기사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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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해상공원은 특히 동해안 일출 1번지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영덕군민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도 이곳 삼사해상공원의 호텔에서 느긋하게 1박 하면서 공원 내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특히 삼사해상공원에서 꼭 봐야 할 곳이 있는데 영덕어촌민속전시관입니다,

 

 

 

 

영덕어촌민속전시관을 가려면 삼사해상공원의 너른 주차장을 가로질러 경북대종 종각을 보고 갑니다. 종각 오른쪽 도로를 오르면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안내판이 있고 곧 어촌전시관이 나옵니다. 출입문 옆에는 영덕의 상징물인 대게가 척하니 붙어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전시관은 일반 성인 2천원 등유료관람입니다. 현재 어촌민속전시관은 요즘 어촌에서도 보기 힘든 여러 가지 어로 기구와 전통 민속, 어촌생활를 찾아내어 보존하며 또한 우리 전통어업 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경상북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어촌민속전시관입니다. 


 

 

 

그 때문인지 2,494평의 부지에 지하 1층에 지상 3층, 총건평이 725평인 어촌전시관으로서는 매머드급으로 전시내용을 보면 각종 전시품은 물론이고 체험시설, 3D 입체 영상관, 옥외조형물과 편의시설까지 갖추었습니다.

 

 

 

 

 

 

 

 

 

 

 

 

 

 

 

 

 

 

전시실은 1·2 전시실로 나누어졌으며 제1전시실은 영덕 푸른 바다와의 만남, 영덕 어촌의 삶과 의식주, 영덕 어촌의 놀이와 문화, 동해안의 별신굿, 어선 제작과정, 및 대게잡이 당도리, 영덕의 어구와 고기 잡는 법 이외에도 전통어선 전시 등 다양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제2전시실은 어로 도구 유물전시와 해저의 지형, 영덕 앞바다의 비경과 항구체험 이외에도 영덕 특산물인 영덕대게에 대해 여러 가지 알 수 있는 유익한 공간입니다. 대게의 일생과 맛으로 보는 영덕대게. 대게잡이 체험과 해녀들의 삶, 어촌시장의 풍경 등 다양한 영덕어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영덕어촌민속전시관은 제가 방문했을 때는 늦은 시간에다 혼자였고 해서 3D 입체 영상관의 ‘대게 왕자의 모험’은 관람하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방문한다면 꼭 영상관과 영덕어촌민속전시관을 여유를 가지며 천천히 둘러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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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여행/여수가볼만한곳)전라좌수영 진남관. 우리나라 최대 단층목조건물인 웅장한 진남관 위용.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당시 조선국왕인 선조도 아니고 또한, 태자인 광해군도 아닌 23전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이순신장군입니다. 세계 해군사의 전무후무한 기록이라는 영웅인 이순신장군, 우리는 이분을 성웅 이순신이라 부릅니다. 이순신장군은 남해에 빗장을 걸듯이 철통같이 지켜내어 전라도로 진격하는 왜군을 막았으며 그들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끝내는 조선에서 왜군을 몰아내는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여수 진남관 주소: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 472

여수 진남관 전화:061-659-5711


2017/03/07 - (여수여행/여수가볼만한곳)동백꽃 오동도. 3월이면 동백꽃이 최고절정이라는 여수 오동도 여행. 오동도

2015/03/13 - (전남여행/여수여행)자산공원 여수해상교통관제센터 곤충 체험실 빠삐용관을 만나고 왔습니다.

2015/03/12 - (전남여행/여수여행)여수케이블카와 자산공원. 자산공원에서 여수케이블카도 타고 즐거운 여수 여행 하고 왔습니다.

2015/03/11 - (전남맛집/여수맛집)자산공원 맛집, 여수 엑스포 맛집 한일관. 남도 해산물 명가 여수 한일관에서 봄내음 가득한 해산물 한정식 먹고 왔습니다.

2015/03/10 - (전남여행/여수여행)돌산도 향일암. 남해 최고의 기도도량 여수 돌산도 향일암 여행.

 


많은 조선군과 장수, 의병과 의병장, 승군과 잡초 같은 근성의 백성이 힘을 합해 조선땅을 지켜냈지만, 그 가운데 조선을 지켜내는데 큰 공적을 세운 분이 이순신 장군이라 해도 큰 무리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지금 남해안 여행을 떠나면 이순신을 상징하는 거북선 모형이 전시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이순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순신 장군이 머물며 조선 수군을 지휘했던 전라좌수영 본영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여수에 전라좌수영 본영 건물이 있었나 생각하겠지만 분명히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라좌수영보다는 진남관으로 더욱 유명해져 모두 진남관으로 부르고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 진남관이 있는 곳이 이순신장군이 머물렀던 전라좌수영 본영 터입니다.

 




당시 성안에는 80여 동의 건물과 2,000여 호의 민가, 우물 등이 있었으며 봄에는 성곽 주변으로 매화가 만발해서 ‘매영성’으로도 불렸다 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재차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명량대첩에서 다시 패하자 명나라 장수에게 뇌물을 주며 물러나려니까 길을 열어달라며 화의를 재촉하지만, 이순신은 완강히 거부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죽자 일본은 철수를 감행하고 이순신은 마지막 해전을 준비합니다. 노량해협에서 일전을 벌여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또한, 관음포로 달아나는 적을 끝까지 추격하다 흉탄에 그만 전사하셨습니다. 전란 속에 전라좌수영의 모든 건물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순신장군께서 이 진남관에 머물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 왜 전라좌수영에 진남관이 들어서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진남관은 ‘남쪽 왜구를 진압해서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으로 정유재란이 끝나고 선조 32년인 1599년 삼도수군통제사이자 전라좌수사였던 이시언이 잿더미가 된 진해루터에다 75칸 규모의 객사를 지었습니다.












1664년 이도빈이 개축하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숙종 42년인 1716년에 발생한 화재에 그만 소실되었습니다.  2년 뒤인 1718년 전라좌수사였던 이제면이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웅장하고 장엄하여 조선 수군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으며 역대 국왕의 전비와 궐패를 봉안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관아의 수령이 정례 참배했습니다. 또한,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는 임금을 보듯 대궐을 향해 ‘향궐망배’ 의식을 거행하고 중앙관리나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는 건물로도 사용했다 합니다.







여수에 전라좌수영이 처음 들어서게 된 때는 1479년인 조선 성종 10년이며 1895년인 고종32년에 좌수영을 폐했습니다. 400여 년의 긴 세월을 남해안 방어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전초기지였던 전라좌수영 건물을 그대로 내버려 뒀다가 경술국치로 일본에 강제병합하면서 남아 있던 성곽과 관아건물은 모두 파괴와 헐렸습니다.

 






순종 4년인 1910년에는 전라좌수영 본영 입구를 지키던 망해루가 헐렸고 진남관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패배를 앙갚음이나 하려는 듯 건물 구조를 변형시켜 여수공립보통학교, 여수중학교, 야간상업중학원등의 학생 교실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1950년 일어난 6.25 한국동란에는 전쟁통에 건물이 붕괴위기에 내몰렸고 그 와중에도 긴급하게 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1959년 보물 제324호로 지정하여 그때부터 본격적인 원형 보존과 보수, 단청 등 성역화 작업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헐렸던 망해루는 1991년 2층 누각으로 복원하였으며 2001년 진남관의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하여 국보 제301호로 승격 지정하였습니다.

 


진남관의 규모를 보면 정면 길이가 54.5m, 높이는 14m, 넓이는 748㎡입니다. 건물을 받치는 기둥은 총 68개로 앞면 15칸에 옆면 5칸인 사찰의 회랑과 궁궐 건물을 제외하면 해인사의 장경판전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입니다. 저는 여수 쪽을 여러 번 여행하며 찾았지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조선수군인 전라좌수영의 본영 터인 진남관을 좀체 찾을 기회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다시 1박 2일 여수 쪽 여행과 산행을 기획하면서 도착과 동시에 가장 먼저 찾아 참배했습니다. 지금 진남관은 다시 보수공사 중입니다. 진남관을 빙 둘러 접근을 금지하는 안전펜스가 설치되어 진남관의 기둥을 만져본다든지 대청마루에 오르지 못해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사람도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하듯이 3백 살인 진남관도 아픈 부분을 고쳐서 이순신장군이 지켜냈듯이 우리 남해안을 지켜낸 전초기지의 역사를 후세에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진남관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본 유물인 문인석이 한 점 남아 있습니다. 여수석인으로 전란 속에 눈속임용으로 돌로 사람 형상을 깎아 세웠는데 두건에 도포를 입고 팔짱을 낀 형상이며 7기가 있었다지만 현재 1기만 남아 있습니다. 여수석인은 진남관과 마주하며 진남관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도지정문화재 제33호













그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순신 장군이 이끈 전라좌수영,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역사의 현장에 ‘진남관임란유물전시관’이 개관중입니다. 진남관의 건축적 특징과 규모, 축조와 용도 등 진남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명나라 황제인 신종이 이순신장군에게 선물했다는 참도 모형


그리고 유물로는 명나라 황제인 신종이 이순신장군에게 선물했다는 참도를 재현해 전시중이며 진품은 통영 충렬사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1917년, 1925년, 1930년에 교실로 사용했던 진남관을 사진으로 만나고 이순신장군이 임진란과 정유재란의 7년 전쟁을 하면서 쓴 진중 일기인 국보 제76호 난중일기와 가족과 친척에게 보낸 편지를 수집하여 만든 책인 국보 제 76호 ‘서간첩’도 재현해 전시 중입니다.








1917년, 1925년, 1930년에 교실로 사용했던 진남관 사진


변형된 진남관 모습






이순신장군이 임진란과 정유재란의 7년 전쟁을 하면서 쓴 진중 일기인 국보 제76호 난중일기


이순신장군이 가족과 친척에게 보낸 편지를 수집하여 만든 책인 국보 제 76호 ‘서간첩’





임진왜란과 이순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거북선입니다. 정조 때 편찬한 ‘이충무공전서’에는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길이와 너비 등 치수는 통제영 거북선과 같으나 다만 거북 머리 아래에 귀신 머리를 새겼다. 거북 잔등 덮게 판에는 거북 무늬를 그렸고, 좌우에 문이 2개씩 있다. 거북 머리 아래에 대포 구멍이 2개, 뱃전 좌우에 대포 구멍이 1개씩 있다. 뱃전 난간 좌우에 대포 구멍이 10개씩, 덮게 판 좌우에 대포 구멍이 6개씩, 좌우 노는 8개씩이다.”라고 거북선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이 항상 벽에 걸어두었다는 두 자루 장검에는 ‘삼척서천 산하동색(三尺誓天 山河動色), 일휘소탕 혈염산하(一輝掃蕩 血染山河)’란 친필을 새겨 스스로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었다는 합니다. 그 뜻을 보면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또한 정치권이고 간에 이순신 장군의 어록 중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게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인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다.”입니다. 참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까지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며 백척간두의 조선을 구한 장군의 유물과 전란에서 조선 수군이 사용했던 무기류 등을 관람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망해루를 지나면 왼쪽에는 전라좌수영 비군이 있습니다. 선정비와 불망비이며 그중에서도 ‘이량장군방왜축제비’가 문화재자료 제240호로 지정하였습니다.

 




1479년 연산군 3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량이 돌산도와 장군도 사이 수중에 제방을 쌓아 왜구의 침입을 막은 업적을 기념해 1643년 후손들이 장군도에 세웠으나 비석이 훼손되어 1710년에 좌수영 서문밖에 다시 세웠던 것을 1984년 이곳에 옮겨왔습니다. 현재 전라좌수영은 보수 중이지만 참관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으며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진남관임란유물전시관 개관시간은 하절기(3월~6월) 9시~18시, 동절기(11월~2월) 9시~17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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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5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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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맛집/울주언양맛집)수제맥주 트레비어. 울주군 언양읍 수제맥주 트레비어에서 맥주의 참맛을 느끼다. 


우연히 부산근교인 울산시 울주군에 있는 양조장 두 곳을 탐방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경부고속도로 서울산요금소인 언양인데 이곳에서 영남권은 물론이고 전국의 주당에게 입소문이 났다는 수제 맥주 양조장과 전 통 막걸리 양조장이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보리밭을 스쳐 지나가도 취할 정도로 술에는 아주 약합니다.






트레비어 비어포트브로이 주소: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로 1302-2

트레비어 비어포트브로이 전화:052-225-1111


2015/07/28 - (울산여행/영남알프스여행)신불산자연휴양림, 파래소폭포, 왕봉골. 영남알프스 여름철 최고의 휴양지 신불산 자연휴양림, 파래소폭포와 왕봉골 여행.

2015/06/26 - (울산맛집/언양맛집)원조언양옛날곰탕. 장맛비가 오면 보양식으로 더욱 생각나는 음식 언양곰탕의 원조 언양 옛날 곰탕,

2015/06/12 - (울산여행/영남알프스 신불산산행)영남알프스 신불산 산행. 실록의 6월 울퉁불퉁 칼바위 암릉 신불산 공룡능선을 넘다.

2012/12/22 - (울산여행/언양여행)영남알프스 최고봉 가지산. 가지산 산행을 즐기다.

2011/02/08 - (영남알프스둘레길 제3코스)울산의 강원도라 불리는 영남알프스 둘레길 3구간:상북 신광사~두서 내와리

2011/02/04 - (영남알프스둘레길 제2코스)영남알프스 둘레길 2구간 울주 작천정~상북 못안못


그래서 누가 저보고는 술 먹자는 말을 절대 안 합니다. 왜냐면 술을 못 먹는 데다 안주는 또 킬러니까 주당들로서는 정말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생각해서인가 봅니다. 그만큼 술하고는 인연을 멀리하고 살았는데 이번에 언양의 양조장 두 곳을 간다기에 그것도 전통방식인 수제 양조장이라 궁금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기고 해서 이번 기회에 찾게 되었습니다.



우리 막걸리는 큰 규모를 뜻하는 양조장보다는 친근감 있는 이름인 도가 또는 술도가라 불렀습니다. 어릴 때 아버님 심부름으로 주전자를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나는데 수제 맥주는 처음 접하는 부분이라 이참에 수제 맥주 시음도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먼저 포스팅 할 곳은 영남지역에서 가장 대규모로 크래프트 맥주 생산공장을 갖춘 트레비어 브루어리입니다. 언양에서 봉계가는 35번 국도 도롯가에 붉은 벽돌을 한 건물이 눈에 띄는데 이곳이 양조장을 겸한 트레비어 시음장입니다. 제가 건물 외벽을 처음 접한 느낌은 웬 교도소 같은 느낌이고 하며 생각했는데 그래도 황량한 느낌에서 수제 맥주 분위기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궁금증은 바로 풀 수 있었습니다. 처음 이곳에는 농산물 냉장보관창고였고 건물을 인수해서 허물지 않고 그대로 리모델링만 한 상태라 합니다. 그래서 조금은 거칠어 보이는 게 영남알프스의 준봉인 고헌산과 함께 이국적인 풍경에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두 동의 건물로 트레비어 시음장과 양조장, 냉장보관창고가 있습니다.





앞 건물은 트레비어 사무실이며 그 뒤편 계단이 있는 건물이 현장에서 직접 맛을 볼 수 있는 시음장을 겸하는 판매장입니다. 그리고 시음장과 맞붙은 뒤쪽은 양조장과 보관창고로 사용중입니다. 수제 맥주를 맛보는데 양조장과 창고까지 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양조장 내부와 완성된 맥주를 보관하는 냉장보관소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왔습니다.





시음장은 대략 20평쯤 되었으며 총 6개의 식탁에 30여 명이 앉아 즐길 수 있으며 초창기에는 무료시음을 했다 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한잔에 3~5천 원에 사 마셔야 하며 간단하게 맛을 보고는 맥주를 사가는 테이크아웃 방식입니다. 현재 포스팅한 맥주잔보다는 조금 더 큰 맥주잔입니다. 참고하세요.





이곳에는 독일 맥주(3), 미국 맥주(3), 벨기에 맥주(2)를 합해 총 8종류의 맥주를 생산하며 시음할 수 있습니다. 트레비어에서 가장 먼저 독일 맥주를 선보였는데 이곳 대표께서 독일을 여행하다가 뮌헨 비어가르텐을 찾게 되었으며 귀국하여 2003년에 울산에서 수제 맥주 전문점인 트레비레스토랑을 창업하였고 동시에 독일식 맥주인 필스너, 바이젠, 둥켈을 가장 먼저 시제품으로 선보였습니다.



둥켈은 4.5도이며 트레비어의 초창기 맥주로서 검붉은 색인 볶은 맥아를 사용해 만든 독일식 흑맥주입니다. 거품이 풍부하며 맥아의 고소함. 색상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필스너 역시 4.5도이며 고소한 맛인 필스너 몰트(엿기름)를 사용해 기존 필스너보다 쓴맛이 적다는 평이며 목 넘김이 좋고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바이젠은 독일 남부식의 밀맥주로 4.5도입니다. 바이젠 특유의 바나나 향에 달콤한 향과 부드러운 거품은 목 넘김이 좋아 저 같은 초보 술꾼에게 정말 좋았습니다. 독일 맥주를 맛봤다면 이번에는 황야를 느끼게 하는 아메리카 스타일의 미국 맥주입니다. 독일식 맥주보다는 알코올 도수가 조금 더 높은데 호피라거와 페일에일은 5도이며 인디아페일에일은 6도입니다.





호피라거는 유로피안홉에 아메리카홉을 더해 상쾌한 청량감에다 맥주의 깊은 맛까지 느끼게 하는 트레비어 자체개발 맥주로 투명하며 다양한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페일에일은 과일향 느낌이며 감귤류의 향미와 홉의 쌉쌀함이 좋은 밝은 오렌지빛의 맥주로 색상의 아름다움이 자리를 더욱 즐겁게 해줍니다.







인디아페일에일은 아로마의 풍미가 입맛을 자극하는 맥주로 뒤끝이 좋은 미국 동부스타일. 그리고 최근에 개발한 벨기에 맥주는 5도인 세종과 8.5도인 임페리얼스타우트입니다. 임페리얼스타우트는 이름에 어울리게 실크 같은 거품이 고급스러운 이미지인 맥주로 시음자의 눈길을 한눈에 사로 잡습니다.







임페리얼에 어울리게 고급 맥주만 담는다는 미국의 버본 위스키를 담았던 전통 오크통(참나무통)에다 숙성한다고 합니다. 고급은 달라도 다른 것 같습니다. 세종은 벨기에와 프랑스의 농주로 우리의 막걸리에 해당합니다. 일한 뒤의 갈증과 피로를 해소해주는 맥주라서 그런지 새콤함과 달콤함이 특징입니다.


발효조


숙성조





그리고 현재에는 볼 수 없는 양조장을 특별히 둘러보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규모가 큰 발효조와 상대적으로 작은 숙성조, 그리고 기계적인 공정 이외에는 모두 전통방식인 수작업을 고집해 맥주의 본 맛을 그대로 유지하며 완성된 맥주는 모두 20ℓ 용기인 케그에 담겨 냉장 보관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임페리얼 맥주 보관용 오크통



수제 맥주 맛도 보고 양조장 구경을 하고 나오면서 수제 맥주를 포장해 나왔습니다. 그리고 수제 맥주라 3일 이내에 먹는 게 맥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맥주 시설인 양조장 구경을 하고 왔지만 오는 5월부터 일부지만 양조장 투어와 시음과 구매를 겸한 3시간 정도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한다고 하니 그 기회를 이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완제품 보관창고 20리터 케그






 

여름철 산행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마시는 캔맥주의 참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이곳 트레비어에서 그런 느낌인 청량감과 깊은 수제 맥주의 참맛을 느끼기에 개인적으로 충분했습니다. 다음번에 고헌산 산행을 하고 이쪽으로 하산해서 꼭 들러보고 싶습니다. 타는 목마름을 시원한 트레비어 수제 맥주로 해소하며 그 맛을 음미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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