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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군위여행)제2석굴암으로 불리는 석굴암에 군위 삼존 석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군위사찰 여행을 하다 보면 본존불인 부처님을 모신 곳은 대부분 부처님을 몸을 의미하는 대웅전에 모십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모습인데 조금은 특별한 부처님을 모신 곳이 석굴입니다. 필자가 가보았던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은 너무나도 유명하며 또한 덜 알려졌지만, 부산 경남에서는 유명한 천성산 미타암의 보물 제998호인 ‘석조 아미타여래’입니다.




특별한 장소답게 모두 국보 또는 보물로 아주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입니다. 최근에 매우 가보고 싶었던 곳인 군위 석굴사원인 석굴암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경주 석굴암보다 100년이나 앞서서 세워졌다는 군위삼존석굴은 그 발견 경우도 아주 특별납니다

지금은 계단을 설치하여 누구나 쉽게 오르고 내리게 했지만 발견 당시에는 큰 자연 암벽의 굴속에 안치되어 있어 영겁의 세월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7년 인근 한밤마을 최두환씨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위에서 줄을 묶고 내려오다 우연히 발견을 하게 되어 석굴암의 존재를 알았다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계단의 안전과 석굴암 삼존불의 보호를 위해 출입을 할 수 없습니다. 밑에서 보게끔 굴의 턱을 깨어 밑에서도 삼존불을 볼수 있습니다.



군위 석굴암은 경주 남산 석굴암과 구분을 짓기 위해 통칭 제2 석굴암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군위 석굴암은 신라시대 제19대 눌지왕 때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삼존불이 모셔진 석굴은 아도화상이 용맹정진하며 깨달음을 얻어 아도굴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절벽동굴인 석굴암에 모셔진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미타 삼존불이라 하며 삼존불을 7세기경 석굴암에 봉안한 분은 원효대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위 삼존불이 있는 팔공산의 골짜기 곳곳에는 8만 9 암자가 있었다 할 정도로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임진왜란과 함께 팔공산의 사찰 대부분 화재로 불태워졌습니다. 그때 군위의 석굴암도 함께 소실되어 세월 속에 잊혔다 발견이 되었습니다. 정부로부터 1962년 국보 109호로 지정되었고 지금의 석굴암은 1985년 12월에 대대적인 중창 불사를 발원하여 오늘날의 도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군위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좌상입니다. 경상북도 유향문화재 제258호입니다. 9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불교 양식으로 광배는 없고 대좌 또한, 파손되어 사찰에서 보호 중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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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원여행)정병산 우곡사. 은행나무와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는 약수로 유명한 전단산 우곡사를 여행했습니다.


창원시 동읍 면사무소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길게 소가 드러누운 모습을 한 산이 있습니다. 전단산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정병산으로 더욱 알려졌습니다. 그 깊은 골짜기를 5km쯤 들어서면 아담한 전통사찰 우곡사가 보일 듯 말 듯 울창한 숲 속에 잠겨 있습니다.





 

우곡사는 837년 신라 시대 때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졌습니다. 그 당시 함께 세운 사찰이 팔판산 성흥사, 불모산 성주사, 비음산 불곡사 등이며 현재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무염국사가 왜 바다와 가까운 창원 쪽에 많은 사찰을 짓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팔판산 성흥사의 창건설화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해에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백성들은 약탈로 피해가 크고 삶이 피폐해져 흥덕왕의 근심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꿈에 노인이 나타나 지리산에서 수도 중인 도인을 찾아 부탁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깨어나 지리산의 도승을 모셔오게 하니 그분이 무염화상이었습니다. 무염은 지팡이를 들고 팔판산 꼭대기에 올라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손바닥으로 자신의 배를 두드리니 뇌성병력과 함께 신라군의 함성이 울려 퍼져 왜군은 깜짝놀라 물러갔다 합니다.


 

전단산의 우곡사도 그 당시 잦은 왜구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기 위해 무염국사기 세운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정해 봅니다. 천년이 넘는 오랜 전통을 가진 우곡사는 현재의 당우는 모두 근래에 세워졌습니다.


 

조선시대 정조 23년인 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에는 전단산에 있는 절이라 나와 있어 그 당시에도 우곡사는 존재한 것으로 알 수 있지만 언제 폐사가 되었는지는 전혀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곡사는 뚜렷한 문화재나 유적지도 하나 없지만, 노거수 은행나무와 우곡사 약수로 창원과 김해, 부산에서 많은 불자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그 중 우곡사 은행나무는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빗돌에는 500년을 추정하고 있지만 무염국사께서 우곡사를 창건할 때 함께 심은 나무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한때 은행나무는 장골 네 사람이 양팔을 벌려 겨우 안을 정도로 큰 둥치였고 높이 또한 30m의 우람한 모습에 인근에서 유명한 은행나무로 알려졌습니다.


 

 

근자에 들어 은행나무에 번개가 떨어져 발생한 화재로 껍데기만 남고 내부는 모두 타 버렸습니다. 그래도 강한 생명력으로 은행나무는 다시 가지를 뻗으며 용케 살아나 은행잎을 돋았습니다. 그 모습이 더욱 신기하여 지금도 우곡사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우곡사에는 일주문이 없습니다. 은행나무가 일주문을 대신 하는 양 출입구를 떡 하니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곡사에는 은행나무 외에도 약수로 아주 유명합니다. 평소에도 약수를 받기 위해 긴 행렬이 이어지는데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우곡사의 약수는 마르지 않으며 항상 일정한 물이 나온다 합니다.



무염국사가 우곡사를 창건할 때 찾아낸 샘물은 오랜 옛날부터 피부병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 물을 마시려고 일부러 찾을 정도입니다. 우곡사의 유래를 보면 전단산의 산세를 누워있는 소에 비유하는데 소가 북쪽을 보며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그 이유로 산의 북쪽에 물이 많이 난다고 하며 우곡사 약수로 이런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정병산 우곡사는 새 사진을 찍는 분들도 즐겨 찾습니다. 절 주위의 울울창창한 숲으로 인해 많은 종류의 텃새들이 둥지를 지어 작은 새를 담기 위해 대포를 들이댄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우곡사는 새 양복을 걸친 모습이지만 주위의 아름다운 숲과 은행나무, 피부병에 좋은 약수로 한 번쯤은 여행 코스로 괜찮은 곳입니다.


 

 참고:디지털 창원 문화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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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기장여행)기장 장산 안적사. 꾀꼬리가 길을 막았다는 상스러운 곳 앵림산 안적사 조용한 절집 여행하기.


부산 기장군 장산의 깊은 골짜기에는 안적사라는 아담한 사찰이 있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의 말사며 창건연대는 신라 30대 문무왕 원년인 661년에 원효대사께서 창건을 했다합니다. 그래서인지 도심과 가까운 사찰이지만 여느 심산유곡에 둥지를 튼 한적한 사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장산의 안적사는 신라시대 원효와 의상을 빼 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곳 안적사에는 두 스님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 내려옵니다. 유명한 전국의 대찰과 꼭꼭 숨은 수도처인 암자 등에서는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의 창건 설화가 많이 전합니다.


그때인가? 알 수 없지만 두 분이 수도의 길을 떠나 전국의 명산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발걸음은 동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곳 장산이 웅장하며 울창한 수림으로 뒤 덮여 명산에 반열에 올랐을 것으로 추정해봅니다.)

두 분이 사이좋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골짜기를 걷고 있는데 난데없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꾀꼬리떼가 모여들어 스님의 앞을 막으며 어께와 팔에도 앉고 스스럼없이 노는 것을 보고 원효스님이 이곳에 절을 세워 안적사라 하였습니다.


또한, 두 분이 이곳 안적사 주위의 토굴에서 공부하며 누구든지 먼저 도를 깨우치면 만나자하고 수도에 전념하였습니다. 어느 날 용맹정진하던 의상 앞에 천녀가 나타나 천공을 매일 올리니 의기양양해진 의상은 원효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천공을 같이하자며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천공을 가지고 천녀가 나타나지 않아 원효는 돌아가고 그제야 천공을 든 천녀가 나타났습니다. 의상은 천녀를 나무라니 가람주위로 화광이 가득 차 있어 들어 올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원효는 의상의 교만한 마음을 미리 알고 ‘금강삼매화’를 놓아 깨우치게 하였습니다. 이에 의상은 원효의 도력이 자신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고 사형으로 극진히 모셨다합니다.

지금의 안적사는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천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만 범어사 묘전스님께서 중건하였고 경허, 해령스님이 3차 중수를 거쳐 1973년 남곡덕명 스님에 의해 현재의 대가람인 안적사를 이루었습니다. 



문화재 등은 없지만 도심과 가까운 곳이라 번잡할 것 같지만 심산유곡에 찾아든 느낌이 들 정도로 아늑한 곳 안적사. 어딘가 떠나고 싶을 때 찾아본다면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위로 용궁사가 있어 함께 찾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꾀꼬리가 길을 막았다는 뜻으로 안적사가 있는 산을 앵림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앵림산 안적사’가 되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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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여행/용인여행)와우정사. 남북통일를 기원하는 독특한 부처님 동산 용인 와우정사 여행.

경기도 용인시에는 특별한 이력을 가진 사찰이 있습니다. 용인 와우정사이며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창건된 사찰입니다. 와우정사의 창건 취지를 주지 스님께 들어 알 수 있었습니다. 

와우정사는 신라의 호국불교를 계승하여 세워졌으며 우리나라의 숙원인 남북통일 기원 사찰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창건되었습니다. 완만한 골짜기에 넓은 터를 조성하여 세워진 와우정사의 규모가 대단합니다.

신라의 사찰인 황룡사의 종과 같은 방식으로, “통일의 종”을 국내 최대의 황동 범종을 조성하였으며 청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인도네시아의 스님이 보내준 향나무로는 “누워 계신 석가모니불”을 조성하였습니다.


대웅보전 또한 우리나라 최고의 건물인 국보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과 같은 양식으로 세웠고 황동 8만 근으로 10년이란 긴 세월 공덕을 들여 조성한 장육존상5존 불은 대웅전에 봉안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와우정사는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스리랑카 스님이 보내준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사찰로 대웅보전 앞에는 현재에도 공사가 진행 중인 높이 약 250척의 석가모니 부처님 입상이 조성 중입니다. 불두와 함께 현재 와우정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모습입니다.




전국사찰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보낸 돌로 세웠다는 통일의 탑과 금동 53존불, 아미타불 입상, 약사여래불, 5백 나한상, 석가모니 부처님 고행상 등을 조성하여 과연 부처님 동산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규모입니다.

용인여행에서 와우정사를 찾아 남북통일도 기원하고 사찰 내에 조성된 부처님 동산도 만나보세요. 와우정사는 요즘 용인에서 떠오르는 여행 코스입니다.

◆용인 와우정사 사진으로 보기◆














































◆(경기도여행/용인여행)와우정사 여행 안내정보

★용인정사

★주소: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 223

★전화:031-339-0101

★사찰

★대형 주차장 유

경기도 용인시청에서 초청 진행하는 팸투어에 참가해 작성한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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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선무도 본산 골굴사. 아름다운 석불인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골굴사에서 힘자랑하지 말라" 선문도 골굴사 여행하기


중국에는 소림사가 있다면 한국에는 선무도의 총 본산인 골굴사가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골굴사에서 힘자랑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무예를 갖춘 스님들이 수련하는 곳입니다.



가끔 중국 무협영화에서 봄 직한 고승들의 수련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골굴사는 역시 여느 절집과 조금은 다르게 들뜬 분위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끼게 했습니다.




골굴사에는 선문화관 등 선무도 수련을 하는 스님과 수련생의 모습을 종종 만나며 또한, 텔레비전에서 붕붕 몸을 날려 계단을 오르는 수련장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런 선무도의 본산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여 찾아갔습니다.



골굴사는 경주에서 동해안 감포로 가기 위해서는 토함산과 함월산 사이의 추령을 넘습니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따라 이어진 4번 국도는 경주에서 아름다운 드라이버 길로 알려져 사계절 많은 관광객이 찾아듭니다.



경주 시내에서 20km쯤 달렸다면 만나는 골굴사는 이웃한 기림사와 함께 함월산 불교 유적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기림사 사적기를 보면 골굴사는 불교문화가 가장 왕성했던 신라 시대 6세기 천축국인 인도에서 온 광유선인이 함월산 아래 기림사와 함께 세운 사찰입니다.



골굴사 마애여래석불과 12처의 석굴로 가람을 엮어 법당으로 사용한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으로 기림사와 함께 불국사보다 200년이 앞서 창건됐습니다. 인도 사원의 석굴 양식을 따 른 골굴사는 용회암 암반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목조와가를 올려 법당으로 사용했습니다.



지금 그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바위에 뚫려 있는 구멍의 흔적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겸재 정선의 “골굴 석굴도”와 “토함산 산중일기”를 쓴 정시한의 기행문에도 당시 기와를 얹은 석굴 사원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병풍을 보는 것 같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골굴사 일주문을 지나면 염주를 목에 걸고 있는 진돗개 강아지 동상을 만납니다. 겨울에 태어나 동아라고 불렀고 1990년에 골굴사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강아지 때부터 골굴사를 찾는 신도와 관광객의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동아의 행동은 보통 개와 달리 일반대중과 함께 새벽 예불과 참선, 탑돌이를 따라 하며 기도를 위해 골굴사를 찾는 신도를 안내했습니다.



강아지의 기괴한 행동에 국내외 방송과 언론에 노출되어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더욱 신기한 것은 자기 죽음을 미리 알았는지 동아는 홀연히 사라졌다가 오륜탑 인근에서 그를 찾았고 모든 불자는 동아 보살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골굴사에서 선무도와 함께 가장 유명한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을 보기 위해 계단을 올랐습니다. 골굴사의 주존 불로 동남쪽을 향한 암벽 4m 높이에 새겨져 있습니다. 보물 제 58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문화재 안내판을 보면 “높다란 상투 모양의 머리와 뚜렷한 얼굴, 가는 눈, 작은 입, 좁고 긴 코의 독특한 이목구비와 얼굴 전체에 웃음을 띤 형태 등을 보면 신라 9세기 불상의 모습”을 나타냈다 합니다. 본전불 뒤 광배는 불꽃무늬를 형상화 했습니다. 








경주 골굴사 마애여래좌상





온화한 미소를 띤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동해를 바라볼 수 있는 시원한 조망에 자리한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관음암과 대적광전을 둘러보았습니다. 마애불을 떠받치고 있는 암반은 상상속의 동물인 용의 머리를 닮은 것은 아닌지...... 용머리가 꼭 이 모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륜탑





◆경주 골굴사 경내도◆

골굴사 홈피 캡쳐

◆경주 골굴사 찾아가는 길◆

골굴사 홈피 캡쳐

◆경주 골굴사 교통편◆

골굴사 홈피 캡쳐

◆경주 골굴사 주소: 경북 경주시 양북면 안동리 산 304

경주 골굴사 전화:054-744-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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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가창여행) 최정산 운흥사. 보물 제1814호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최정산 운흥사 여행.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에 천년사찰 운흥사가 있습니다. 운흥사는 가창 저수지를 절 앞 정원으로 둘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며 대구광역시 전통사찰 제3호 사찰입니다. 운흥사의 창건은 신라 흥덕왕 때인 832년 운수화상에 의해 동림사로 개산을 하여 1620년 조선 광해군 12년 무념스님이 중수를 하면서 수암사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1751년 조선영조 27년 치화대사 때 최정산 정상 인근에 있던 절을 현 위치에다 새롭게 옮겨 중건중수를 한 뒤 운흥사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천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개명을 여러 번 거쳤지만 명맥을 유지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운흥사도 한때는 대가람을 이룰 정도로 사세가 대단했습니다. 임진왜란직전 까지만 해도 수백명의 스님이 구름 때처럼 몰려 수행도량으로 이름을 떨쳤고 임진왜란 때는 사명당 송운대사도 승병을 이끌고 이 절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운흥사에는 보물이 한점있습니다.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으로 2014년 1월 보물 제181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복장 후렴통과 발원문 등 봉안사찰, 제작년도, 제작자 등 조성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기록한 불상으로 17세기 불상연구의 귀중한 자료 입니다.


 

1653년 조각스님인 도우의 첫 작품으로 용연사 삼존좌상과 같은 양식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필자는 문화재를 사진으로 남기는 게 취미라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찍기 위해 운흥사에 들렀습니다.


 

대웅전등 단출한 전각에 비해 마당에 자리한 벚나무와 고목에서 더욱 고풍스러운 모습을 느꼈습니다. 삼존상은 통유리로 막고 있어 사진을 담을 수 없어 앞 유리에 카메라를 데고 한 컷 찍었습니다. 대구 운흥사주위를 둘러보면서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는 아름다운 절집입니다.


 

 

 

 

 

 

☞(대구여행/가창여행) 최정산 운흥사. 보물 제1814호 ‘운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최정산 운흥사 여행 교통편.


부산에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 운흥사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열차가 편리합니다. 부산역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무궁화와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 하차를 합니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여 칠성시장 역에서 내려 칠성시장 역(서문프라자 앞)버스 정류장에서 ‘가창2번 정대행’ 버스를 반드시 확인하고 타면 끝 입니다. 종점인 칠성고가정류장에서 오전 6시31분, 7시48분 9시02분 10시18분 11시36분에 출발합니다. 오2리 정류장에서 하차. 운흥사 절집 구경을 했다면 대구시내 방향으로 나오는 가장2번 버스는 오후 3시11분 4시23분 5시42분 6시57분 등 10시40분(막차)에 있습니다. 오2리 정류장 도착은 약 10분 더하면 된다. ‘경상감영공원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동대구역으로 이동하여 부산으로 오면 됩니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신대구~부산 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수성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월드컵로 대구 미술관(대구스타디움) 방면으로 좌회전합니다. 경기장 네거리에서 유니버시아드로 범물 방면 우측도로를 약 1.2km 가다 범안삼거리에서 범안로 범물동 방면으로 좌회전를 합니다. 삼덕톨게이트를 통과 후 4.8km 이동, 파동톨게이트에서 빠져나와 청도 방면 우측도로를 약1.1km 이동합니다. 헐티로 각북 방면 오른쪽으로 꺾어 가창저수지 둑을 지나면 곧 운흥사가 나온다. 

내비게이션은 가창면 운흥사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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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여수여행)돌산도 향일암. 남해 최고의 기도도량 여수 돌산도 향일암 여행.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여수시 돌산면 향일암을 다녀왔습니다. 입춘과 함께 많은 관광객으로 발디딜 틈이 보이지 않는 금오산 향일암은 유명세 만큼 입구에서 부터 밀리며 올라갔습니다. 필자는 여러번 향일암을 여행하였지만 또 다시 가고 싶은 곳이 향일암에서 바라보는 시원한 경관입니다.


 

향일임을 오르는 입구부터는 돌산도의 특산물인 갓김치와 함께합니다. 봄을 유혹 하 듯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는 갓김치의 유혹은 도저히 그냥 지나가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맛을 보고 가라며 일행을 잡습니다. 


 

갓김치의 유혹을 뒤로하고 향일암 입구의 매표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매표를 합니다. 곧 바로 우회길과 일주문을 통과하는 계단길로 나뉘어집니다. 우리는 편안한 우회길을 통해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일주문을 통과하는 계단길입니다. 많은 관광객이 이 계단을 밟고 올라갑니다. 한발 한발 디딤으로서 소원을 이루게 해 줄 것 같은  계단길입니다.

 


 향일암을 오르는 길은 봄이 왔는데도 겨울에 벗었던 옷을 아직 입지 않고 있습니다. "나 떨고 있니" 추워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는 아직 삭막한 겨울의 여운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길을 따라 갑니다. 


 

불노장생의 상징인 거북 굴에서 귀하디 귀한 약수가 나옵니다. 그 물을 한방울 이라도 흘릴까 싶어 용이 목을 길게 빼고  불이 나와야 할 입에서 연신 귀한 약수를 뿜어 냅니다. 용이 뿜어내는 물은 어떤 맛일까며 많은 분들이 맛을 봅니다. 시원한 감로수로 향일암의 기운을 받아 봅니다.

 

 

향일암을 들어서는 입구입니다. 계단길을 마다하고 왼쪽 좁은 석문을 통해 본존불이 봉안 된 향이암의 대웅전인 원통보전 앞으로 갑니다. 향일암 원통보전은 화재 후에 두번째입니다. 지금은 원통보전에 화려한 채색으로 단청을 입혀 마치 한마리의 봉황이 날아 갈 듯한 날렵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해 뜨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여수 돌산도 향일암은 백제 의자왕 4년(644)에 신라 원효대사가 처음 창건을 하면서 원통전이라 불렀습니다. 그 이후 윤필대사가 이곳에서 수도를 하면서 금오암이라 이름을 바꾸었고, 조선 시대 숙종 41년(1715)에 인묵대사께서 이곳으로 절을 옮긴 뒤 향일암이라 부르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먼저 대웅전인 원통보전입니다. 많은 관광객으로 원통전만의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화재이전에는 대웅전 현판이 걸렸습니다. 대웅전은 모든 사찰의 중심 건물입니다. 세상을 밝히고 인도하는 영웅을 모신 전각을 의미하며 ‘대웅’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위대한 영웅, 대웅이라는데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향일암의 원통보전에는 가운데 부처님과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을 봉안하였습니다.


 

 






원통전 오른 쪽 계단을 오르면 삼성각입니다. 산신, 칠성, 독성 세분의 성인을 봉안한 전각입니다. 


 

 

향일암에는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관음전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원통전 왼쪽 석굴을 들어서면 관음전으로 통하게 됩니다. 대낮인데도 석굴은 어두워 불을 환하게 밝혀 놓았습니다. 굴을 나서면 새 세상이 열리는 듯 갑자기 환해지면서 관음전 전각이 눈에 들어옵니다.

 

 

 

관음전을 등지고 남해바다를 봅니다. 원효대사께서 수도하였다는 넓은 바위가 보입니다. 원효대사님의 수도처인 관음전은 과연 향일암 최고의 전망을 자랑합니다. 멀리 큰 섬은 경남 남해도이며 그 오른쪽에 부처님의 모습을 닮았다는 세존도가 보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한토막입니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과 세존도, 향일암이 서로 삼각형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바다 속에 용왕이 살고 있는 용궁이 있다는 전설입니다. 아름다운 향일암의 전경에 용궁의 전설까지 얽혀 있는 향일암은 눈으로 호사를 누리기에 충분합니다.


 

 

 

 

금오산은 거북이 형상입니다. 원통보전 앞 난간에서 임포마을을 보면 툭 불거진 작은 산이 거북이 머리이며 향일암이 있는 금오산이 거북이 몸통, 향일암 관광버스 주차장은 거북의 왼발입니다. 풍수적으로 이는 거북이가 불경을 지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이라 합니다.


 

 

그것을 증명해 주듯 향일암에는 흔들바위로 불리는 경전바위가 있습니다. 출입이 통제된 구간으로 원효대사께서 수도를 끝내고 향일암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불경 책을 가져갈 수 없어 공중으로 날려 보낸 것이 경전바위로 변하였고 한번 밀어 바위가 흔들리면 한번의 경전을 읽는 공덕을 쌓는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새로 중수한 천수관음전을 보고 난뒤 해탈문의 석문으로 내려가기 위해 하산을 할려고 보니 뒤에서 보살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일방통행이라  내려갈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향일암의 해탈문은 1박2일에도 소개가 될 정도로 좁은 석문입니다. 한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틈으로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일방통행이라 일주문을 통해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향일암을 찾는 분은 참고하세요.


 

 

향일암 해탈문(예전 촬영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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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금정구여행)금정산 미륵사. 마음이 맑은 사람만 보인다는 코끼리를 닮은 바위를 찾아 보세요. 금정산 미륵사.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에는 많은 산내 암자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사찰이 범어사와 미륵사입니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범어사야 두말하면 잔소리로 그만큼 유명하여 전국적으로 알려진 사찰이며. 또 한 미륵사는 금정산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절집으로 서로 바늘과 실로 부르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지금이야 금정산 북문까지 임도길이 뚫여 미륵사 가는 길이 편해졌지만 그 이전에는 대단한 불심이 아니면 찾는 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을 사찰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륵사를 등지고 있는 미륵봉에 올라보면 신선의 세계가 이런 곳이 구나하며 여겨질 정도로 대단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누구나 저절로 득도를 할 수 있을 그런 곳 같습니다.

 


 

 그럼 금정산 미륵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통일 신라 문무왕 18년인 678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습니다. 미륵사의 유래는 암자 뒤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듯 한 큰 바위에서 나왔는데 염화전 뒤를 두른 큰 바위를 좌선바위라 합니다.

 

해가 지면서 어스름이 찾아 들 면 집채만한 바위들이 서로 엉켜 만든 작은 틈새까지도 삼켜 버립니다. 이때쯤이면 그 큰 바위가 좌선하는 스님의 형상으로 바뀌며 뒤의 큰 바위인 미륵봉을 향해 스님이 좌선하는 모습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원효대사가 이곳에 미륵암을 창건하였습니다.

 

 미륵사는 염화전을 중앙에 배치를 하였습니다. 정면과 측면 각3칸으로 다포계 팔작지붕이며 1952년 중수되었습니다. 내부 불단에는 석가 삼존불을 모셨는데 석가여래좌우로 미륵보살과 보현보살을 1985년에 봉안하였습니다. 1974년 조성한 후불탱이 삼존불 뒤로 배치를 하였고 신중탱과 지중탱 등 모두 석정 스님의 작품입니다.

 

 

 

 

 

 미륵암에는 쌀굴과 장군기를 꽂았다는 특이한 바위구멍이 두 개 있습니다. 염화전에서 오른쪽 칠성각 쪽 계단 중간쯤에 쌀바위 안내판이 보이며 바위틈에 구멍이 뚫여 있습니다. 매일 아침 작은 구멍에서 한톨 한톨 그날 먹을 끼니만큼만 쌀이 떨어져 사미승이 구멍을 크게 하면 더 많은 쌀이 나오라고 작대기로 구멍을 쑤셨는데 그 뒤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 합니다. 그 물이 현재 미륵사의 식수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염화전에서 왼쪽 독성각 계단을 올라 갑니다. 미륵사에서 가장 멋진 경관을 보여 주는 곳으로 원효께서도 아마 이곳에 올라 참선을 하였을 것 같습니다. 독성각 앞 쪽에 둥근 파이프가 꽂혔던 흔적 같은 구멍이 있습니다. 이곳에 원효께서 장군기를 꽂았다합니다.

 

원효대사께서 미륵사에 주석을 할 때입니다. 왜적 5만 병선이 동래 앞바다에 진을 친 뒤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첩자를 육지로 올려 보내는 것을 스님은 혜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원효스님은 사미승에게 호리병 5개를 구해오게 하여 탑 앞에 나란히 세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바위에는 신라의 장군기를 꼽았는데 그 장군기는 멀리서도 보였습니다. 두 명의 왜놈 첩자가 장군기를 보고 원효가 있는 미륵암까지 올라 왔습니다. 원효는 호리병으로 신통력을 부려 첩자의 목을 조르니 첩자는 살려 달라며 애걸복걸하여 호리병 3개를 너네 대장에게 갖다 주라며 돌려보냈습니다. 화가 머리 꼭대기 까지 오른 적장은 부하가 가져 온 호리병을 단칼에 내려쳤고 그 순간 적장은 피를 토하며 죽었다 합니다. 독성각 앞 바위의 구멍은 다시 장군기를 꽂힐 날을 기다리는지 뚜렷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한 독성각 처마 끝 모서리 바위에는 미륵바위의 장삼자락인지 부처님의 광배를 나타낸 것인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광배 같기도 합니다. 독성각 건물로 현재에는 가려져 있어 알 수 없지만 누군가 구멍을 내어 그 바위를 뜯어 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금정산 미륵사의 당우는 모두 근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알려진 뚜렷한 문화재도 없습니다. 그러나 원효대사와 함께 내려오는 전설을 보면 미륵사의 모습을 상상 해 볼 수 있습니다. 옛날 미륵봉아래 바위 굴속 연못에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 미륵사를 창건하였습니다.

 

 또한 염화전 뒤의 암봉이 마치 화관으을 쓴 미륵불 모습을 하고 있어 사람들에게 신령을 기운을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암봉을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마음이 맑고 깨끗한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코끼리 형상을 한 바위가 일곱 개 있습니다. 코끼리는 상스러운 동물이라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영물입니다. 이 일곱개의 코끼리 바위를 모두 찾는다면 당신은 곧 마음이 맑고 깨끗한 심성을 가진 분입니다. 혹 미륵사에 가게되면 도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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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9 - 남근석과 여근석을 찾아 나선 금정산 산행


2009/04/20 - 먹물 먹은 붓끝의 금정산을 호포에서 올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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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예산여행)덕숭산 수덕사. 만공대선사의 원력으로 선종 도량이 된 예산 덕숭산 수덕사.


예산 덕숭산 수덕사는 현재 문헌상의 창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백제 위덕왕(554~597)때 고승 지명이 세운 것으로 추정을 하는데 일설에는  599년 신라 진평왕 21년에 지명이 창건하고 원효스님에 의해 중수를 하였다고도 전합니다. 

 


그 후 제 30대 무왕때 혜연스님이 '묘법연화경'을 강설하면서 수덕사의 위상이 더 높았고 고려 31대인 공민화 때에 나옹선사가 주석하며 중수를 하였습니다. 현재의 수덕사 규모는 조선 제26대인 1865년 고종2년에 만공스님의 중창으로 선종 유일의 근본도량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예산의 수덕사를 찾아가는 길은 예사 거리가 아닙니다. 큰 마음을 먹고 찾아간 수덕사는 여행을 가기전 부터 필자에게는 많은 궁금증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가요인 '수덕사의 여승'를 들어면서 자랐던 저로서는 수덕사에 까까머리 여승들의 처연한 모습을 실제 만날 수 있을까도 생각을 하였습니다. 



수덕사를 찾아간 필자는 이곳도 여느 사찰과 똑 같은 모습인 것을 보았습니다. 수덕사의 환상이 깨어졌다고 할까요?. 나뭇가지를 때리는 겨울바람의 처연한 울음소리만 들리는 수덕사를 보기 위해 덕숭총림 수덕사 선문을 통과하였습니다. 



와!!!! 눈이다. 부산에서 좀체 보기 힘든 눈이 남아 있습니다. ㅎㅎ 반가움에 눈도 밟아 봅니다. 


'삼일수심 천재보 백년탐불 일조진'은 "삼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의 탐물은 하루 아침 이슬과 같다네" 참 좋은 법어입니다.


원담스님 부도탑을 지나면 덕숭산 수덕사로 들어서는 일주문이 반깁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덕숭산을 찾는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이 수덕사을 찾아 그야 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필자도 그중에 한사람이었습니다.

일주문 뒤쪽 현판에 동대제일선원인가요 누가 현판에다 지렁이 붙혀 놨네요. ㅋㅋ 좀 쉬운 글씨 채면 너무 좋은데 말입니다.



고암 이응노 화백이 머물렀다눈 수덕여관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덕숭산 수덕사 유래가 궁금합니다. 보통 천년사찰에는 한두가지의 창건설화가 전해오는게 정설입니다. 수덕사도 예외가 아닌 두가지 전설이 전해 옵니다. 



먼저 덕산 향토지의 내용입니다. 어느 마을에 수덕이란 도령이 살았는데 하루는 사냥을 갔다가 우연하게 낭자를 보고 그만 첫눈에 반하여 사랑에 빠집니다. 수덕도령은 그 낭자를 잊지 못하고 고민을 하다가 건너 마을의 덕숭낭자 임을 알게 되어 청혼을 하지만 여러 번 퇴짜를 맞습니다. 끈질긴 청혼에 덕숭낭자는 자기 집 옆에다 절을 하나 세워 줄 것을 조건으로 걸면서 청혼을 승낙합니다. 그 날로 수덕도령은 불철주야 절을 짓기 시작합니다. 여러번 절을 완공하지만 그때 마다 절에 불이나 다 타버리고 맙니다. 또 다시 절을 짓기 시작하면서 탐욕스런 마음도 버리고 덕숭낭자도 잊고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며 절을 짓습니다. 절이 완공되자 낭자는 어쩔 수 없이 도령과 혼인을 하지만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껴안는 순간 하늘에 천둥번개가 일면서 덕숭낭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낭자의 버선 한 짝만 남았습니다.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였고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는데 버선꽃이라 합니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그 이후부터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 수덕사가 되었고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 덕숭산이 되었습니다. 



또한 전설은 수덕사가 창건 된 후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을 하게 됩니다. 불사를 일으키기 위한 불사금을 모우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어느 날 공양주를 자청하는 여인이 나타납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요즘 말로 절세미인이 수덕사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은 빠르게 인근에 퍼져 나갔습니다. 그 날부터 수덕사에 여인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 때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어느 날 신라의 재상 아들인 정혜라는 사람이 소문을 듣고 수덕사를 찾아 와 여인을 보고 한눈에 반해 혼인을 하자며 청혼을 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수덕사의 대 중창 불사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청혼을 받아 들이겠다합니다. 이에 정혜도령은 자신이 불사금을 내어 절을 완공한 후 낙성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령은 여인보고 이제 같이 떠나자며 여인의 손을 잡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쩍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 짝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금도 봄이면 바위 틈으로 버선을 닮은 꽃이 피는데 이를 버선꽃이라부릅니다. 야생화를 찍는다고 다닌 경험이 있는 필자가 자세히 보니 ‘골담초’ 꽃입니다. 골담초가 버선꽃으로 불리는 사실과 수덕사 창건 전설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그 여인이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수덕이라 불렸으므로 수덕사라 부르게 되었고 정혜도령은 세상의 무상함을 느끼며 덕숭산으로 들어가 작은 절을 짓고 정혜사라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관음보살님 나빠요?????? 두 청년을 울리시니 말입니다. 흑흑(참고;수덕사 홈페이지)



덕숭산 수덕사 창건설화에 수덕도령과 덕숭낭자 정혜도령의 이름을 따 수덕사와 덕숭산, 정혜사가 된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수덕사 대웅전을 향하기 위해 금강문을 들어섭니다. 금강역사 두분이 좌우로 험상궂은 모습을 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그 문을 통과하면 사천왕문이 나옵니다. 사대천왕이 지키고 있어 온갖 악귀로 부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늠름한 모습을 보니 나쁜 놈들은 이 문을 통해서 절 안으로 한발짝도 들어오지 못 할 것 같습니다. "근무중 이상무"



지금부터 수덕사 사찰 구경을 천천히 하면 됩니다. 




먼저 문화재 자료 제181호인 수덕사 7층 석탑입니다. 1931년 일제강점기때 만공대선사에 의해 건립된 석탑으로 기단을 만들지 않고 바로 탑신과 옥개석을 올렸습니다. 문화재의 문외한인 필자 눈에는 너무 높다보니 약간 엉성하며 불안하게 보입니다(개인적인 생각).  


웅장한 코끼리석등의 모습입니다. 


황하정루 아래로 나가면 됩니다. 편액은 덕숭총림 수덕사 전 방장 원담 진성스님께서 쓰신 글씨입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이 있는 수덕사 마당입니다. 



수덕사 금강보탑입니다. 중창불사를 하면서 전탑좌대가 현위치에 발견되어 고증을 거쳐 석탑을 세우고 금강보탑이라 하였습니다. 금강보탑 내부에는 1988년 원담대선사께서 스리랑카를 예방하면서 한·스리랑카간의 우의 차원에서 스리랑카로 스님으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증정 받았습니다. 수덕사에서 십수년간 친견 법회를 열다 2007년 금강보탑을 완공한 후 봉안하였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입니다. 1962년 12월에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고 현존하는 목조건물인 국보 제15호 봉정사 극락전과 국보 제18호인 부석사 무량수전 다음으로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정면3칸, 측면 4칸의 주심포 양식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1937년 중수를 하면서 발견된 묵서에는 1308년인 충렬왕 34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의 단 아래에 위치한 수덕사 3층 석탑은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처음 신라 문무왕 5년에 건립된 탑으로 원효대사가 중수를 하였다하나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른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기단은 2층이며 위층은 4매의 돌로 면석을 조립하였습니다. 또한 각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표현되었고 지붕돌인 옥개석과 몸돌은 각각 1개의 돌로 만들었습니다. 1층은 5개의 옥개 받침을 하였고 2층과 3층은 3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면에는 1단의 받침으로 그 위에 몸돌을 받치고 있으며 지붕돌은 끝이 치켜 올라갔습니다. 보륜만 남아 있던 상륜부는 현재 찰주, 보개, 복발, 노반을 새로 만들어 올렸습니다.







관음바위 앞에 봉안된 관음보살상입니다. 온화한 미소가 너무 나 아름다운 관세음보살입니다. 석가모니께서 입적한 후 56억 7천만년을 지나 미래의 부처인 미륵보살이 출현 할때까지 중생을 고통으로로 부터 구해주는 대자대비의 보살이 관음보살입니다.  







수덕사 창건설화가 전해지는 전설의 관음바위입니다. 갈라진 바위 틈으로 버선꽃이 봄이면 피어 난다고 하니 봄에 찾아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관음바위를 지나면 덕숭산과 정혜사로 오르는 산길이 시작됩니다. 필자는 만공탑과 능인선원인 정혜사를 오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오르다 시간상 제약으로 그만 두고 사면 석불과 화소대를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하였습니다. 

사면석불입니다.



화소대 가는 오솔길

비구니 김일엽스님이 머물렀다는 화소대




두마리의 사자가 불법의 진리를 만방에 밝히는 석등을 들고 있는 쌍사자 석등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을 내려오면서 많은 관광객이 보고 있어 그냥 지나졌던 포대화상을 다시 만났습니다. 득남한다는 전설 때문인지 배쪽으로 손길의 흔적이 아주 많이 남아 있습니다.  


환회대도  만나고




금강문을 지나면 다시 일주문입니다. 오를 때 스쳐지나간 고암 이응노 화백의 수덕여관을 보기위해 찾아갑니다. 충청남도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이응노선생이 작고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던 곳입니다.



수덕사 관람요금 안내


대웅전 양옆에는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백련당과 청련당이 있고 조인정사와 정혜사를 오르는 1,020계단, 미륵불입상, 만공탑, 금선대, 진영각등과 만공스님이 참선 도량으로 세운 정혜사가 있습니다. 또한 부속 암자로는 비구니스님들의 참선도량인 견성암, 선수암, 극락암등이 있으며 견성암에는 비구니들이 참신정진하는 덕숭총림이 설립되어 있습니다. 문화재로는 보물제1236호인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 보물 제1381호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복장유물, 수덕사 유물인 거문고 소조불상좌상등이 남아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수덕사를 다 만나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방문이라 수덕사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만났는데 혹 다음에 또 다시 수덕사를 방문할 기회가 찾아 온다면 정혜사와 견성암등을 위주로 돌아 보고 싶습니다. (참고: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문화재 안내판)

◆수덕사 주소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안길 79 

◆전화:041-330-7700



수덕사 경내 조감도




2015/01/16 - (충남여행/예산여행)고암 이응노 화백과 수덕여관. 수덕사 여행길에 꼭 들러봐야 할 곳 이응노 화백의 수덕여관.


2015/01/13 - (충남여행/예산여행)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국보 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을 만나다.


2015/01/04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 보원사지. 서해안 폭설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서산 보원사지 여행.


2015/01/02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상.


2014/12/31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간월도 간월암. 서산 낙조 일번지라는 간월도 간월암의 해넘이 구경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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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금정구여행)금정산 국청사. 국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승장병이 머물렀던 호국사찰 국청사.


 우리나라는 전란 때 마다 의병과 승병들이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초계와 같이 버리며 외세와 싸워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특히 부산은 지리적인 위치로 일본과 가까이 있다 보니 툭하면 왜적의 약탈과 침입이 잦았습니다. 왜적의 칩입을 막기 위해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에는 18km의 거대한 산성을 축성하였고 금정산성을 방어하기 위해 승군 작대의 승장병이 거주하였던 승장소가 있었습니다. 만호승장, 성관승장이 머물렀던 승장소가 금정산 국청사입니다.



 신라시대 의상대사(625~702)께서 범어사와 함께 창건한 국청사는 1703년인 숙종 29년에 금정산성을 보수 하면서 승당과 선당등 승려가 거쳐하는 곳이 많이 세워 졌는데 그 수가 족히 100칸 규모였습니다. 침입해 오는 왜적을 막고 지키며 보호한다하여 국청사라 하였고 임진왜란 때는 금정산성을 지키든 승장이 국청사에 머물면서 왜적의 침입을 막았습니다.


 

승병을 관할한 승장의 직인인 ‘금정산성승장인’이 부산시 문화재자료 제 44호로 지정되어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보물제 1733호인 청동북이 있습니다. 국청사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난극복에 앞장을 썼던 때문인지 당우는 모두 최근에 지어졌습니다.


 지장보살 본원 삼층석탑

 

일주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연지의 삼층석탑은 전란 중 숨진 의병과 승군의 혼령을 천도하기 위해 1982년 연못가운데 지장보살 본원 삼층석탑을 조성하였습니다. 또한 금정산 국청사는 뚜렷한 볼거리는 사실 없습니다. 그러나 금정산성을 얘기 할 때는 빼 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전통 사찰 제 18호이며 국청사 주소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문로 42(금성동)


 

 

 

 

 

 

 

 

 

 

 

 

 

 금정산성승장인 모형



금정산성 동문



2008/06/04 - 부산 금정산(802m) 금정산성일주 (上)


2008/06/04 - 부산 금정산(802m) 금정산성일주 (下)


2013/10/02 - (부산여행/금정여행/금정산성 동문)금정산성 동문, 동래산성으로도 불렸던 금정산성 총길이는 18km,


2013/10/29 - (부산여행/금정여행)금정산 금정산성을 만리장성에 비유, 금정산성 남문


2013/09/25 - (부산여행/금정여행/금정산성) 금정산성 북문."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를 상기 시켜주는 금정산성


2013/01/01 - (부산여행/금정산산행)용과 호랑이의 싸움. 용쟁호투가 벌어지는 용호등의 산길에 경악, 부산의 산 금정산 원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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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구경하기.


대구에는 팔공산이 있고 팔공산에는 동화사가 있을 정도로 대구에서 유명한 사찰 동화사를 보고 왔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팔공총림 동화사는 중생들의 병을 치료하는 약사여래 근본 도량입니다.



동화사적비를 근거로 신라소지왕 15년인 493년에 극달 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로 부르다가 흥덕왕 7년인 832년 심지 대사가 중창을 하면서 오동나무가 겨울에 상서로운 꽃을 피워 동화사로 개칭하였다는 설이며 또 하나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진표율사로부터 영심대사에게 전해진 팔간자를 심지대사에게 받은 뒤 팔공산에 와 이를 던져 떨어진 곳에 절을 세우니 이곳이 동화사로 첨당 북쪽 우물이 있는 곳이라 합니다.



이 두 설화에서 신라흥덕왕 7년에 심지대사가 중창이 아닌 창건을 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또한 중창과 중건을 거듭했는데 신라 말인 934년 영조선사, 고려시대로 넘어와 명종 20년인 1190년에 지눌보조국사, 충렬왕 24년인 1298년 홍진국사에 의해서 각각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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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선시대에는 선조39년인 1606년 유정사명대사, 숙종3년인 1677년 상숭대사, 영조8년인 1732년 관허, 운구, 낙빈, 청월 대사 등에 의해 중창과 중건을 이루어 현재의 대가람이 이루어 졌습니다. 동화사의 당우는 대웅전을 위시하여 천태각, 영산전, 봉서루, 심검당 등 이 영조 대 중창 된 건물이고 1992년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이 낙성 되면서 많은 건물들이 새롭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천왕문 격인 용호문을 들어서면 동화사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상서로운 새인 봉황은 대나무의 열매만을 먹고 오동나무에서 집을 짓고 알을 품습니다. 동화사 터를 풍수지리적으로 봉황이 알을 품은 모습인 ‘봉소포란형’의 지세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봉서루 앞 넓은 바위에 3개의 둥근 돌인 봉황알이 놓여져 동화사에 봉황의 정기가 서려서 인지 경건한 마음이 저절로 들게 합니다.







먼저 봉서루를 지나 동화사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을 향합니다. 보물 제1563호로 지정되었고 조선 영조 3년인 1727년 중건된 건물입니다. 정면3칸에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의 두리기둥을 세웠습니다.



 임진왜란 이 후인 1606년 사명대사가 학인에게 중창을 하게하고 1677년 개창을 하였습니다. 1725년 을사년 큰불로 소실 된 것을 1727년에 천순, 낙빈당 홍제, 홍우, 의삼등에 의해 중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웅전에는 어칸과 협칸에 꽃살문인 연꽃, 국화꽃, 금강저를 새겨 넣어 더욱 우아하고 화려하게 보입니다.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으며 보물 제 254호로 지정되어 금당암 입구에 있습니다. 당간을 세우기 위해 좌우에 지탱하는 돌기둥입니다. 통일신라 때부터 사찰 앞에 설치했던 구조물로 두개의 기둥사이에 기다란 장대를 세우고 의장용 깃발인 당(幢)을 매달아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였습니다.






현재 동화사에서 가강 많은 관광객과 불교신자들이 찾는 곳은 1992년 11월27일 완공하여 점안 봉안한 통일약사여래대불입니다. 높이가 17m, 거기다 좌대 높이만 13m 에 달하는 불상으로 150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갔습니다. 현재 약사여래불의 최대 둘레는 16.5m이며 총높이는 30m로 국내 최대의 입불상이다. 불교인 만이 아닌 국민의 염원으로 이루어진 동화사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은 병들고 아픈 전 국민의 상처를 꼭 어루만져 낳게 해줄 것을 믿습니다. 이외에도 동화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동화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산내 암자에 흩어져 있는 비로자나불좌상, 비로암 삼층석탑, 금당암삼층석탑, 흥진국사부도 등의 보물과 문화재가 있습니다. 한참에 다 불러 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으로 다음 팔공산 동화사 여행에서는 이번에 보지 못한 여러곳을 꼭 찾고 싶습니다.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입장료와 관람안내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찾아가기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를 찾는 방법 

봉황문에서 오르는 방법은 오래전부터 동화사의 주 출입구로 필자도 이곳으로 많이 올라 다녔습니다. 아마 동화사를 찾아오면 집단시설 지구로 오르는 도로 입구에 있습니다. 봉황문의 일주문을 통과하면 바로 우측 절벽에 창건당시 조성된 보물 제243호인 마애불좌상을 보게 됩니다. 옛 동화사를 오르는 길이라 창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걷다 108계단을 오르면 통일대불전 갈림길이 나옵니다. 지금부터 동화사를 둘러 보시면 됩니다. 또한 방법은 새로 조성된 집단 시설지구에서 동화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현재 동화문이 주 출입문이 되었습니다. 연못 앞에 걸린 다리를 건너면 관광안내소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여느 사찰의 천왕문격인 용호문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동화사를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참고;동화사 홈페이지)




2014/11/10 - (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2014/11/06 - (대구여행/팔공산 산행)팔공산 서봉~파계봉 산행. 알찬 팔공산 산행코스 서봉~파계봉 산행을 하다.


2014/07/02 - (대구동구맛집)팔공산동화사맛집 돌방구가든. 건강함이 가득한 식탁이라면 이정도 되어야죠??? 산채진미 나물 밥상 돌방구가든.


2014/05/31 - (대구맛집/팔공산 동화사맛집)자연산 송이로 맛을 내는 6천원 순두부백반 너무 맛있어요. 팔공산 동화사, 갓바위 맛집 산골기사식당


2013/12/18 - (대구여행/달성여행)팔공산 동화사에서 비슬산 대견사지 중창 불사진행, 비슬산 대견사 새로운 관광지로 될듯.


2013/12/12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병들고 아픈 국민들을 어루만져줄 것 같은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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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예산여행)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국보 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을 만나다.

 

예산 덕숭산의 수덕사는 모든 분이 아실 것입니다. 송춘희씨가 처연할 정도로 불렀던 ‘수덕사의 여승’에 의해 대한민국 486세대 이상은 모두 ‘수덕사 여승’을 한번 쯤 읊조리며 따라 불렀습니다. 필자에게는 늘 가보고 싶었던 예산 덕숭산의 수덕사는 그러나 부산에서는 가기에 너무 먼 길이라 마음만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서산 쪽으로 여행을 가는 답사팀이 있어 두말하지 않고 따라 붙어 묵은 숙제 같았던 수덕사도 보고 ‘수덕사 여승’의 궁금증도 풀고 왔습니다. 까까머리 여승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여느 사찰과 똑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수덕사 전체 포스팅은 차차 올리도록하겠고 요번에는 수덕사의 중심건물인 대웅전만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수덕사는 창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백제 위덕왕(554~597)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 만 하고 있습니다.



천년사찰 수덕사에도 ‘나라의 보물’인 국보가 한 점 있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으로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목조건축물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봉정사 극락전은 국보 제15호이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 국보 제 18호입니다.



불교 건축물중 세 번째로 오래되었다는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시대 충렬왕 34년인 1308년에 세워진 건물로 국보 제49호입니다. 세월의 무게 앞에는 수덕사 대웅전도 견디지 못하고 여러 번 중수과정을 거쳤습니다. 



조선시대인 중종 23년(1528년)에, 영조때에는27년(1751년)과 46년(1770년)에 그리고 순조3년인 1803년에도 색채보수를 하였습니다. 수덕사 중수기에는 네차례 동안 부연과 풍판의 개수등을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근대에 와서도 대대적인 보수공사을 하였습니다.




1937년~1940년까지 4년 동안 만공스님에 의해 대웅전 전체를 해체 보수를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고려와 조선시대의 벽화가 발견되었습니다. 고려 벽화로는 ‘주악 비천도’ ‘공양화도’ ‘수화도’ 등이며 조선시대 벽화로는 ‘오불도’등이 남아 썼는데 지금은 유실이 되어 볼 수 없고 모사본만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합니다.



또한 대웅전 내부 대들보에 남아 있는 금룡도는 우아하고 화려한 색체와 생동감 있는 걸작으로 고려 불교 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합니다. 아쉽게도 대웅전 내부는 사진 촬영도 금하고 시간상 신발을 벗고 들어 갈 수 없어 내부를 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은 석가모니와 아미타불 그리고 약사불인 삼존불을 모시며 정면3칸에 측면 4칸으로 고려시대에 유행된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입니다.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비슷한 점이 많은 건물로 외관에 사용된 부재가 크고 굵어 전체적인 건물의 안정감이 뛰어나다하겠습니다.



바른 돌쌓기 양식의 기단에 사각형의 자연석으로 주춧돌을 놓았고 그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웠습니다. 또한 기둥을 연결하는 인방, 고주와 평주를 잇는 퇴보, 고주간을 맞잡는 대들보 등의 직선재와 이를 지탱하는 형식적인 포대공, 초방위에 주심도리를 지탱하는 우미량은 무량수전의 직선과는 달리 크게 휜 곡선 모양입니다.



대웅전을 정면에서 보면 각 칸에는 빗살 3분합문이 있고 뒷면의 가운데 칸에 문을 달았고 측면에는 앞쪽에 출입문을 넣었습니다. 맞배지붕의 선과 벽에서 노출된 목부재의 세련된 구도는 간결하면서도 우리 고건축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목조건축물이라 하겠습니다.(참고: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유인물과 수덕사 문화재 안내판)


◆사진으로 보는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2015/01/04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 보원사지. 서해안 폭설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서산 보원사지 여행.

 

2015/01/02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상.

 

2014/12/31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간월도 간월암. 서산 낙조 일번지라는 간월도 간월암의 해넘이 구경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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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 양북면 함월산 기림사 여행. 경주의 천년사찰 왕의 길 기림사를 만나다. 


경주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그 중 단연 경주를 대표하는 것은 불교문화재입니다. 이번 경주 여행에서는 신문왕 호국행차 길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함월산 기림사입니다. 신문왕이 부왕인 문무왕의 장례를 모시기 위해 감포 대왕암으로 넘든 고갯길이며 이견대에서 동해의 해룡으로 변한 부왕에게 만파식적과 옥대를 받기 위해 넘든 길 또한 이 길입니다. 이곳 기림사는 신문왕의 행차길을 모두 보았든 사찰로서 경주 양북면 함월산 자락 도통골에 있습니다.

 


그럼 먼저 기림사의 유래를 알아보겠습니다. 기림사는 신라의 원효스님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찰입니다. 창건은 인도의 천축국에서 온 광유성인이 세웠는데 임정사라 불렀습니다. 옛날 인도 범마라국의 임정사라는 절에 광유성인이 오백제자와 함께 설법을 하며 중생을 제도하였습니다. 또한 서천국의 400여개 소국을 다스리는 사라수대왕은 정사보다는 무상도를 찾고자하였습니다. 이에 광유성인은 사라수대왕를 임정사로 초청을 하였습니다. 먼길 이라 다리가 아픈 원앙 왕비는 장자의 집에 비녀로 팔고 왕은 임정사에서 왕생계를 외우며 수행에 정진했습니다. 그 후 왕비는 장자의 집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극락’을 뜻하는 ‘안락국’으로 이름을 짓고 7년 후 부왕인 사라수대왕을 만나게 됩니다. ‘안락국’은 부왕의 가르침에 따라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고 스승은 안락국에게 해동의 남쪽 지방에 명당자리가 있으니 그곳에다 절을 세워 불법을 전하고 중생을 교화하라며 안락국에게 떠날 것을 명합니다. 안락국은 스승이 가르쳐준 계림국의 명당 터인 이곳에 암자를 짓고 임정사라 하였습니다. 그 후 신라의 원효대사가 절을 확장하고 신라최초의 절이라는 뜻으로 부처님 당시 최초 절인 ’기원정사‘의 이름을 따 기림사라 하였다 합니다.

 


그런데 불교의 전래를 보면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신라 눌지왕때인 417년에 처음 구미의 냉산 도리사에서 신라에 불교가 전파되었는데 삼국 중 고구려와 백제는 불교를 일찍 받아들였지만 신라는 불교를 배척하다 아도화상에 의해 처음으로 들어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에 들어와 인도에서 허왕후와 장유화상의 우리나라에 불교를 처음 전래하였다는 남방전래설을 주장하는 분도 있으니 정확한 고증이 필요한 듯합니다. 필자는 뭐 기림사를 구경하기 위해서 온 것이니까 골치 아픈 문제는 생략 하겠습니다.



먼저 기림사 매표소를 통과합니다. 주차장이 어마어마 하여 사찰의 규모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본격적인 기림사 구경이 시작됩니다. 현판에는 ‘함월산 기림사’라 되어 있습니다.



기림사 본존불이 모셔진 대적광적은 오른쪽이며 삼천불전과 유물전시관은 왼쪽으로 갈라집니다. 필자는 대적광전이 있는 오른쪽으로 갑니다.


곧 무시무시한 사천왕이 문을 지키는 천왕문입니다. 아마 절 안으로 들어오는 사악한 무리들과 잡귀 등 모든 나쁜 것은 이곳에서 들어 올 수 없습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여 천왕문을 들어섭니다.






기림사는 창건당시부터 대적광전을 건립하여 삼신여래를 봉안하였고 약사여래불을 모신 약사전과 석조오백나한상을 모신 응진전, 삼층목탑과 정광여래사리각, 진남루와 무량수전 등이 건립되었다합니다. 그러나 사리각은 없어지고 삼층목탑은 초석만 남아 있습니다.

 


먼저 기림사의 문화재는 보물 제833호인 대적광전과 보물 제959호인 ‘금자사경’, 유물전시관에 있는 건칠보살상은 보물 제415호입니다. 또한 응진전 앞의 삼층석탑과 진남루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기림사는 ‘한국33 관음성지’로 전통 사찰 제2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왼쪽으로 범종각이 올려다 보입니다. 정면에는 새롭게 복원과정을 거쳐 단장한 진남루가 있습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1호.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지만 기림사는 임진왜란 때 수군과 승병의 근거지가 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만 할 뿐입니다. 앞면 7칸에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사람인(人)’자 형태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우물마루를 깔았고 판벽에 창호가 설치되었으나 사용용도에 의해 지금은 창호가 바뀌면서 원형이 알 수 없는 상태라 합니다 





기림사 응진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라한을 모신 건물이며 신라 선덕여왕때 처음 지어진 것으로 전하지만 조선후기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앞면 5칸, 옆면2칸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입니다.




고려시대 때 지어진 삼층석탑





삼층목탑 초석터





기림사 약사전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2호입니다. 1600년대 이전 건물로 추정을 하며 조선 효종 5년인 1654년에 중창되었고 숙종 4년인 1678년에 약사법당을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얕은 기단 위에 앞면3칸 , 옆면1칸으로 옆면에서 본 지붕은 사람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입니다. 지붕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다포양식이며 다른 건물과 다르게 옆면이 아닌 정면에 문을 둔 것이 특이합니다.





기림사를 대표하는 본전인 대적광전은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입니다. 643년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그 후 조선 인조 7년(1629년)과 정조 17년(1793년) 등에 고쳐 지어 졌습니다. 1862년인 철종 13년에 기림사 대화재 때 유일하게 화를 면했던 건물입니다. 앞면 5칸, 옆면 3칸,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다포식 건축 양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물 제833호








이외에도 기림사는 삼천불전, 관음전, 삼성각, 명부전, 유물전시관, 매월당 등 부속건물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기림사 뒤 임도를 따라 왕의 길 입구를 조금 지나면 용연폭포가 나타납니다. 이 폭포는 신문왕이 받아온 옥대의 용 비늘 장식을 떼어 물에 담그니 용으로 변해 승천을 하면서 폭포와 연못이 생겼는데 주위와 함께 도통골의 비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관음전



삼천불전




명부전

삼성각






용연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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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 보원사지. 서해안 폭설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서산 보원사지 여행.


충남 서산 여행에서는 문화유적지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태안반도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많은 문물이 이곳에서 왕래가 이루어 졌습니다. 불교문화도 마찬가지로 신라의 승려들은 이 루터를 따라 백제 땅으로 들어와  서산에서 배를 이용하여 유학길에 올랐던 스님의 '구도의 길'입니다. 



특히 충남 서산 가야산에는 천년사찰이 여럿 있습니다. 대중가요인 '수덕사의 여승'으로 너무나 유명한 수덕사가 이곳 가야산 자락에 숨어 있습니다. 사찰 이름만 들어도 애잔함으로 마음이 아려오는 느낌입니다. 



또한 개심사도 이곳 가야산에 있습니다. 수덕사의 말사로 의자왕 11년인 651년에 혜감국사에 의해 창건을 하였습니다. 이번 서산여행에 갈 계획을 세웠지만 갑자기 내린 폭설로 다음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물 제143호인 대웅전과 문화재 자료인 명부전, 심검당 등 건물이 여럿 있는데 참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을 만나고 급하게 찾아간 보원사지도 가야산 깊은 골짜기에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당나라로 유학길에 올랐던 승려들이 거쳐 갔다는 보원사는 현재 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절터의 흔적만 덩그런히 남아 있어 삭풍이 부는 겨울철에는 넓은 터 때문인지 쓸쓸한 모습입니다.



보원사지를 찾아가는 길은 폭설로 인해 들어 갈 수 없을 정도 였는데 관광버스는 겨우 겨우 거북이 걸음으로 몸을 낮추며 갔습니다. 그 길목에 있는 큰 바위 방선암을 보았습니다. 혜미현의 선비들이 봄이면 산자수려하고 천혜의 비경인 이곳 계곡의 마당바위로 소풍을 나와 시를 짓고하여 그 뜻을 기리기 위해 방선암이라 새겼다 합니다.  



폭설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버스를 돌리는 시간에 흔적만 만나보기위해 잠시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서산 보원사지는 사적 제316호로 1987년 7월 지정되었습니다. 백제시대 때 세워 진 것으로 전하는 보원사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크게 융성되었다 합니다. 특히 왕사와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 탄문이 기거하였을 때에는 인근에 100개의 암자와 1,000명의 승려가 있을 정도로 대단한 규모의 사찰이었습니다.



길 옆에 세워져 있어 버스에 내리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당간지주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세워진 당간지주의 모습에다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대형 철불 두 점이  모두 중앙박물관에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1967년도에는 금동여래입상까지 출토되어 그 당시 보원사의 가람 규모를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보원사지에서 나온 문화재는 백제와 신라, 고려 초 불교 미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합니다.


보물 제103호 당간지주


큰 돌을 장방형으로 파내어 만든 국내 최대의 돌로 만든 물통인 석조는 10세기 경으로 추정되며 보물 제 102호입니다. 석조와 사찰의 불교행사 때에 불기나 괘불을 걸기 위해 만든 보물 제 103호인 당간 지주, 백제 양식의 기단위에 통일 신라와 고려의 양식을 혼합한 보물 제104호 보원사오층석탑,



광종 26년인 975년 법인국사가 입적하자 광종의 어명으로 세운 보물 제105호 법인국사보승탑과 법인국사의 생애가 기록된 보물 제 106호인 법인국사보승탑비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어 그 당시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알 수 있습니다.


보물제102호 석조


그러나 폭설로 인해 하나하나 볼 수 없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버스에서는 호각을 불고 난리 났습니다. 빨리 버스에 올라타라고요. 아니면 계곡에 갇혀 나갈 수 없다면서.... 멀리서 바라본 보원사지의 불교 문화재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움마음으로 발길을 돌리며 다음 서산 여행때에는 오늘 가보지 못한 개심사와 보원사지를 천천히 보고 싶습니다. 




2015/01/02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상.


2014/12/31 - (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간월도 간월암. 서산 낙조 일번지라는 간월도 간월암의 해넘이 구경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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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화본리 오층석탑. 군위 덕림사 화본리 오층석탑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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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 면소재지인 화본리 뒷 산을 조림산이라 부릅니다. 아주 오래전 대홍수로 물난리가 크게 나 정상부가 새의 머리만큼 잠기지 않고 남았다하여 조림산으로 부릅니다. 조림산은 1950년 한국동란 때 피비린내 나는 대 격전지였습니다. 국군6사단 19연대와 인민군 8사단의 공방전으로 칠곡의 다부동 전투와 버금가는 격전지 였던 조림산에는 작은 사찰 덕림사가 있습니다.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석탑만이 이 자리에 있었는데 1960년 이 후 덕림사라 하여 극락전, 요사채, 산신각으로 작은 사찰이 들어섰습니다. 아쉽게도 옛 절터의 유래나 이름은 전하지 않는데 이곳에 남은 오층석탑은 한국동란의 격전지에서 그래도 포탄을 요행히 피해 석탑의 형태는 갖추고 있지만 훼손이 심한 상태입니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오층석탑으로 추정을 하며 높이는 2.95m이고 단층의 기단 하부는 현재 땅속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노출된 기단 상면에 3단 굄을 각출하고 그 위에 탑신을 올렸습니다. 맨 아래층 몸돌은 폭에 비해 높이가 높으며 나머지 몸돌은 높이가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몸돌위에 올려진 지붕돌인 옥개석은 모두 낙수면이 짧고 경사가 심합니다. 또한 상면에 1단 굄과 하면에 받침 4단을 조각하였습니다. 4층 몸돌을 제외하고 우주를 모각하고 2층 지붕돌과 3층 몸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었고 그 외 에는 지붕돌과 몸돌이 따로 만들어졌습니다. 지붕돌의 네 모서리에 풍탁을 걸기위한 두 개의 구멍이 뚫여져 있으며 상륜부에는 노반 파편이 남아 있습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6호. (참고:문화재안내판)
















2014/12/17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조림산 산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이 있어 여행을 겸한 산행 조림산이 최고.


2014/12/13 - (경북여행/군위여행)산성면 화본마을, 화본역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2014/12/05 -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2014/12/02 - (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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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여행/원동여행)원동 신흥사. 배내골 여행과 함께 화려한 건물 대광전이 돋보이는 양산 원동 신흥사 구경하기.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은 배내천을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명찰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원동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사찰이 축천산 신흥사 입니다. 축천산 신흥사는 원동역에서 약8km로 떨어져 있으며 양산 통도사를 품에 않은 영축산과 같다는 뜻이라합니다. 신흥사는 원동 축천산 아래 절골에 살포시 앉아 있습니다. 


 

30년 쯤 전에 신흥사를 찾았을 때는 달랑 대광전 뿐이었는데 이번에 찾아가보고 큰 불사에 뒤로 넘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신흥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낙동강을 끼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갑니다. 1300리를 쉼 없이 달려온 낙동강의 마지막 몸부림을 만날 수 있는 길입니다.


 

붉은 노을에 물든 낙조의 장관에 홀려 청춘남녀의 드라이버코스로 아주 인기가 높은 곳입니다. 이곳을 지나면 원동면소재지인 원리마을, 신흥사는 오른쪽으로 틀어 배내골 방향으로 들어갑니다. 내포리를 지나고 정면에 큰 산이 막고 있는 곳이 영포리입니다. 영포리에는 천년사찰 신흥사가 있습니다. 


 

창건에 관한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만 신흥사는 신라시대 때인 기림왕 14년인 298년에 신본스님이 창건을 하였다는 설과 원효대사가 창건을 하였다는 두 설이 전합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래 하였던 것을 보면 전자인 기림왕 14년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곳 신흥사를 오래전에는 만어사라 불렀다며 양산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 전설 또한 현재의 삼랑진 만어사와 엇비슷하여 필자는 의구심이 듭니다.


 

신흥사 창건설화를 보면 “만어사(萬魚寺:신흥사의 옛 이름)에서 기도를 하던 가야국의 수로왕에게 말하기를 양주 땅에 옥지가 있는데 그곳에 독룡이 살고 있으므로 이를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하였다. 수로왕이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함에 부처가 육신통의 주술을 발휘하니 만어사에 있던 돌들이 모두 고기로 변하여 옥지에 있는 독룡을 동해로 쫒아버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신흥사에 있는 돌을 두드리면 쇳소리가 났다하며 그곳에 절을 세워 만어사라 하였다하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창건 당시 신흥사는 현재의 자리 건너편에 있었다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고 대광전의 기둥을 보면 옮겨지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신흥사 앞을 흐르는 계곡 또한 오래전 부터 절골로 불렀던 것을 보면 이곳에 큰 사찰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흥사는 전통 사찰 제1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인 통도사 말사입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연혁을 보면 선조15년인 1582년 성순이 중건하였다는 기록입니다. 1592년인 임진왜란때에는 승군이 주둔하면서 영남대로를 따르던 왜군과 접전을 벌려 신흥사는 대광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됩니다.


 

그 후 영조때 제작된 ‘여지도서’에 신흥사의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사이에 다시 중건된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신흥사는 일제 강점기때 일본 승려인 대처승에 의해 수난을 겪다가 해방 후에는 한동안 비어 있는 사찰로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의 신흥사는 영규스님에 의해 1983년부터 중창이 되었고 현재의 대 가람을 이루었습니다. 


 

신흥사의 중심 법당은 대광전입니다. 세상에 광명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은 모신 곳으로 보물 제112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88년 대광전을 부분적으로 해체를 하였는데 그 때 상량문에 ‘순치14년’이란 명문이 나와 효종8년인 1657년에 중건 된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면3칸, 측면3칸의 규모로 옆에서 보면 사람인(人)자를 한 맞배지붕이며 지붕의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다포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조선 중기의 건물이면서도 조선전기의 건축기법이 특이하게 나타난 건물입니다.



 특히 신흥사 대광전은 다른 사찰의 내 외벽에 만날 수 없는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대광전의 벽화를 보면 건물 내·외벽과 포벽, 건물 내부의 대량과 고주에 그려진 것을 포함하여 70여점이나 됩니다. 건물 내부의 동쪽에는 앉은 자세의 삼존도와 여래도, 팔상도, 아수라도가 그려져 있고 서쪽에는 아미타삼존도, 6구의 보살도, 사천왕도, 여래도, 팔상도, 신중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약사삼존도와 아미타 삼존도는 17세기 후반의 벽화로 추정되며 화풍이 유려하고 빼어난 작품이며 후불벽의 관음삼존도는 군청색 바탕에 백색안료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벽화와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1801년 대광전 중수시 제작된 것이 아닌지 유추하고 있습니다.


 

신흥사 대광전 벽화는 보물 제1757호로 지정 관리 되고 있습니다. 대광전 내부의 촬영은 금하고 있어 외벽의 벽화만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훼손 상태가 심한데도 화려하고 빼어난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양산시청 홈페이지. 신흥사 문화재 안내판)


 

 

 

 

 

 

 

 

 

 

 

 

 

 

 

 

 

☞(양산여행/원동여행)원동 신흥사. 배내골 여행과 함께 화려한 건물 대광전이 돋보이는 양산 원동 신흥사 교통편.


경남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의 신흥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원동역 앞까지 가야한다. 부산에서 원동을 가기 위해서는 열차가 편리하다. 부산역을 출발하는 원동행 기차는 오전 7시50분, 9시28분에 있고 30분 정도 소요.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원동행 열차는 오전 6시10분, 10시35분에 각각 출발하며 약 40분 소요. 원동역 앞에서 출발하는 배내골행 2번 태봉 버스는 오전 7시, 8시30분, 10시10분, 11시20분, 오후 2시, 2시40분, 5시10분, 7시40분(막차)에 있다. 신흥사 절을 구경 한뒤 원동역으로 되돌아 올때는 태봉 출발 원동역행 버스 오후 12:00, 2시50분, 3시15분, 5시45분, 8시15분(막차)에 있다, 

양산시에서 원동으로 향하는 일반버스도 있는데 138번은 오전 5시30분, 6시, 7시25분, 11시10분에 출발하며 도시철도 2호선 양산역이나 물금농협에서 이용하면 된다. 물금농협에서 원동으로 가는 137번 버스는 오전 7시25분, 10시 정각에 있다. 원동초등학교에서 내린 뒤 원동역앞에서 태봉행 2번 버스를 이용한다. 소요 시간은 10분 안팎.

 ◆원동역~배내골 대중교통편 






2014/12/15 - (경남여행/양산여행) 양산8경 임경대, 최치원의 임경대에 올라 낙동강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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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구례여행)화엄사 동·서오층석탑. 부처님의 원력으로 화엄사의 지기를 다스리기 위해 조성한 화엄사 동·서오층석탑.


탑은 부처님의 무덤을 말합니다. 스투파, 수구파, 탑파라고도 부르는데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을 말하며 불사리탑인 석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시나가라(kusinagara)의 보리수 밑에서 열반에 들은 후 사리가 8개국에 나누어져 탑파를 쌓기 시작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사찰에서 신성시하며 부처님의 몸에 비유한 사찰의 가장 중심 건물인 대웅전 앞에다 새웁니다.

 


화엄사 동오층석탑(보물제1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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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기 헌강왕 원년인 875년에 화엄사 서탑과 함께 도선국사에 의해 조성된 탑입니다. 신라와 백제의 양식이 조화를 이루며 혼합된 탑으로 화엄사 홈페이지에서는 “부처님의 모든 탑이 거짓과 꾸밈이 없고 순수하여 진실 그대로 참된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는 부처님 도량은 참된 장소요. 세계요. 법계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탑이다”라 하여 화엄사 동오층석탑을 두고 증명탑, 다보탑, 다보분좌탑으로도 부르고 있습니다.

 

 

화엄사 대웅전 앞에 있는 동·서오층석탑은 두탑이 서로 비슷한 크기이지만 생긴 모습은 완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서탑은 광을 낸 뺀질이처럼 조각과 장식면에서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반해 동탑은 아무런 장식도 없이 그저 수더분한 시골 아낙의 단아한 모습을 한 탑 입니다. 온갖 기교와 재주를 피우지 않은 동오층석탑이지만 멋스러운 자태에서 풍기는 맛은 고고하며 우아하기까지 합니다. 1층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 기둥을 본뜬 조각을 두었습니다.


 


또한 탑신은 1층 몸돌이 높이에 비해 넓어 안정감이 있으며 각층 몸돌 넓이의 폭이 줄어드는 것에 비해 높이의 폭이 줄어드는 게 작아서 한층 늘씬하며 키가 커 보입니다. 지붕돌은 경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평평하며 얇게 얹혀 져 있는데 몸돌에 따라 지붕돌의 크기가 줄어드는 게 큰 편이며 특히 1층과 2층의 한층 차이는 더 큽니다. 맨 꼭대기 상륜부에는 머리장식 받침인 노반과 엎어 놓은 그릇 모양인 복발, 연꽃봉우리 모양의 보주가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탑은 2층의 기단인데 특이하게도 동오층석탑은 1층 기단에 세워진 석탑으로 기단부의 돌구성이 다소 짜임새 있는 모습이 아닌 느슨한 경향이 있는 점으로 보아 서탑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습니다.


석탑에서 오층의 의미는 욕계, 색계, 무색계, 보살계, 불계를 나타내고 장식과 꾸밈이 없음은 청정한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단층 기단은 신라고승 의상이 깨달음의 경계와 법에 대해 표현한 7언30구의 게송인 일승법을 뜻하여 동오층석탑은 화엄세계인 연화장 세계 즉 연꽃속에 담겨 있는 세계를 나타내는 탑이라 합니다.


 

화엄사 서오층석탑(보물제1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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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동탑은 아무런 조각 이 없는 그저 평범한 석탑의 모양이라면 서탑은 조각과 장식이 화려할 정도로 가득합니다. 화엄사 서오층석탑도 헌강왕 원년인 875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조성한 탑입니다. 백두대간 혈맥의 웅대한 힘과 태극을 그리며 흐르는 섬진강의 두 힘이 서로 충돌하여 땅의 기운이 대가람 화엄사란 배를 흔들어 버릴 태세라 풍수지리설의 대가인 도선국사는 부처님의 원력으로 막아보고자 동·서오층석탑에 부처님사리를 봉안하여 화엄사의 중심에 조성을 하였습니다.




 2층 기단에 5층의 탑신을 세웠는데 아래 기단 각면의 안상속에 십이지신상을 네방향으로 나누어 배치를 하였고 위층 기단은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본떠 두면으로 나누어 팔부신중을 그 안에 새겼습니다.


 

탑신인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서 몸돌은 각층 모서리에도 기둥모양을 새겨두었습니다. 1층 몸돌 네면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여 배치를 하였고 각층의 지붕돌은 밑면에 5단의 받침을 넣고 처마 밑은 수평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상륜부인 머리장식에는 2층의 단을 둔 받침위로 연꽃봉우리 장식을 한 보주를 올렸고 석탑의 형태를 보면 높아선지 약간은 불안한 감이 들지만 전체적인 상하의 체감비율에 지붕돌을 경쾌하게 처리한 수법등이 탑과 조화를 이루어 우아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래층의 기단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한 예는 흔하지 않은 석탑으로 팔부중과 사천왕상을 함께 조각한 것은 탑속에 모셔진 부처님 사리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보입니다. 동오층석탑과 같은 통일신라시대 9세기 작품으로 추정을 하며 화엄사 서오층석탑을 옹호탑이라 부릅니다.


 팔금강

 사천왕상

이는 십이지신, 팔금강과 사천왕은 부처님의 법과 부처님 제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신이란 의미에서 입니다. 동오층석탑의 단층기단과 달리 서오층 석탑의 2층 기단은 불이법을 표현한 것으로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상태를 초월하여 절대적이고 평등한 진리의 세계의 이치를 표현한 탑입니다.(참고:화엄사 홈페이지)


  팔금강

  사천왕상

  사천왕상

  팔금강

  사천왕상

  팔금강

 십이지신상

  십이지신상

 

 

 

☞(전남여행/구례여행)화엄사 동·서오층석탑. 부처님의 원력으로 화엄사의 지기를 다스리기 위해 조성한 화엄사 동·서오층석탑 교통편.


부산에서는 화엄사를 찾아가기가 너무 편하다.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화엄사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첫차 오전 7시부터 평균 1시간 간격으로 있다. 3시간30분 안팎 소요. 화엄사 구경을 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올 때 내렸던 화엄사 입구 버스정류소에서 타면 된다. 오후 1시10분, 3시10분, 4시10분, 5시10분, 6시10분(막차)에 구례 하동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땐 남해고속도로로 가다가 순천분기점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탄다. 황전IC에서 내려 구례구역과 구례군청 앞을 지나면 구례터미널을 거쳐 화엄사로 가면 된다. 내비게이션 화엄사 입력.








2014/11/28 -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 화엄사에서 화엄사 각황전과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을 보고 왔습니다. .


2014/11/26 - (전남여행/구례화엄사여행)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부처님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줄 광명등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2014/11/25 - (경남여행/하동여행/구례여행)평사리~화개장터 섬진강 둘레길. 박경리의 토지길과 섬진강 100리 길을 따라 걷는 둘레길,


2014/10/30 - (전남맛집/구례맛집)화엄사 맛집 지리각식당. 지리산이라 더욱 맛있는 산채비빔밥 맛집 지리각식당.


2014/10/16 - (전남구례여행)구례공용버스터미널 버스 시간표 올려요. 노고단(성삼재)버스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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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구례여행)화엄사 각황전과 원통전전사사자탑. 단일 불교 건축물로는 최고 최대라는 화엄사 각황전.

 

화엄사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은 각황전입니다. 현재 화엄사에서 연륜이 짧은 편으로 조선후기 숙종25년인 1699년에 중수된 목조건축물입니다. 원래 각황전 자리에는 의상대사가 670년에 창건 한 3층 건물 장륙전이 있었습니다. 내부 사방 벽면을 화엄석경으로 둘렀고 석가여래 입상인 장륙존상을 봉안하여 장엄하기가 이를 수 없었다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소실 되고 말았습니다. 장륙전 벽면을 돌렸던 화엄석경은 깨어져 1500여점 조각으로 남아 각황전 불단 밑에 보관되어 있으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각황전은 성능계파선사께서 소실된 장륙전 자리에 1699년 중건을 시작하여 1702년에 건물을 완공하였으며 국내에서 전해 내려오는 단일 불교 건축물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 합니다. 불교 건축에 무지한 필자가 보아도 규모가 너무 큰 게 국내 최고의 불교 건축물 같았습니다.

 

 

정면 7칸, 측면 5칸의 2층 규모로 내부를 들여다보면 통층 구조로 되었습니다. 건물을 받치는 기단이 높고 서쪽을 보도록 배치를 하였으며 팔작지붕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Daum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참고하면 각황전을 받치는 기둥은 평주이며 기둥 맨 위에 창방과 평방이 놓여 있고 평방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 올린 다포계 양식으로 1.2층 모두 안과 바깥에 두개의 공포로 도리를 받친 2출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포의 부재인 첨차는 아랫면을 둥글게 처리를 하였고 소의 혀 모양 장식을 쇠서라 하는데 그 끝이 모두 위로 올라간 앙서로서 이런 특징은 조선초기의 목조건축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1층의 앞면은 빗살무늬와 솟을살무늬로 장식된 문을 달았고 그 외의 면은 일부만 벽으로 막았습니다. 2층은 동서남북 모두 작은 창을 내었습니다. 2층까지 닿는 긴 기둥을 여러 개 배치하고 그 위에 대들보를 올려 종량의 한쪽 끝을 받치고 있습니다.

 

 

각황전은 우물 정(井)자형 천장으로 만들었고 그 주위를 경사지게 한 게 특이한 점입니다. 중앙의 뒤쪽에 놓인 대불단에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다보여래불을 모셨고 좌우로 보현보살, 관음보살, 문수보살, 지적보살의 3불4보살로 안치되어 있습니다. 모두 3m가 넘는 대형불상과 보살상으로 개금불사를 하면서 복장기가 나왔는데 숙종29년(1703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각황전을 중건하고 봉안 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습니다.

 

 

장륙전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일본인들이 각황전을 중수하면서 그때 일부가 변형된 것 같다 합니다. 이래저래 일본에 의해 각황전은 두 번이나 큰 시련을 겪게 된 샘입니다. 각황이란 뜻은 부처님을 깨달은 왕으로 성인중에 성인이라는 뜻이며 왕에게 불교사상을 일깨워 주었다는 뜻이라 합니다. 필자가 찾았던 이날은 각황전 외부와 내부 모두 복구인지 모를 공사가 진행중이었습다. 건물 외부의 왼쪽에 건축자재가 올라가고 내부 또한 양편으로 건축자재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부디 큰 공사가 아니길 빌어 보며 앞으로도 쭉~~ 천년 이천년  국보 제67호 문화재로 남아 주길 바래 봅니다.  

 

 

각황전 중건 불사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한토막입니다. 계파선사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장육전 중건불사를 위한 대발원의 백일기도를 올렸습니다. 마지막 날 밤에 신인이 꿈에 나타나 큰 불사를 이룰려면 “복 있는 화주승을 내어 큰 시주자를 얻어야 하느리라”하며 물담은 항아리와 밀가루를 담은 항아리를 준비하여 먼저 물항아리에 손을 넣고 난 다음 밀가루 항아리에 손을 넣어서 밀가루가 손에 묻지 않는 사람이 장륙전 건립의 화주승이 되어야 한다하며 사라졌다합니다.

 

 

 

천여 대중이 모두 하였지만 밀가루가 손에 묻지 않는 스님은 찾을 수 없었고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공양주 스님을 같은 방식으로 시험하게 한 뒤 손을 보니 밀가루가 묻어 있지 않아 계파스님은 공양주스님에게 장육전 건립의 화주승을 맡겼습니다. 공양주스님은 큰 시주자를 찾기 위해 화엄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문수보살이 지난밤 공양주 스님의 꿈에 나타나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권하라”하며 사라진 것을 기억하며 걸어가는데 반대편에서 스님을 향해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스님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공양주스님도 잘 알고 있는 남루한 행색의 노파로 절간의 일을 간혹 도와주며 공양주스님에게 누렁지 등을 얻어가는 거지 보살이었습니다.

 

 

망설임 끝에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 노파를 보고 시주를 하여 장육전을 지어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노파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음을 한탄하며 "이몸이 죽어서 왕궁에 태어나면 그 때 큰 불사를 일으키겠다"는 말을 남기며 연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화주승이 한양으로 올라가 창덕궁 앞을 지나는데 공주가 화주승을 잡고는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주는 태어나면서 한손은 주먹을 쥔 채 펴지지 않았는데 화주승이 그 손을 만지니 공주의 손이 펴지면서 손바닥에 장육전 석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숙종은 그 당시의 이야기를 소상히 듣고 노파가 공주로 환생하였다며 장육전을 중수할 수 있도록 크게 희사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숙종임금에게 불교사상을 일깨워 주었다는 뜻으로 각황전이 되었고 편액은 1703년에 형조참판 이진휴가 썼다 합니다.

 

 

☞(전남여행/구례여행)화엄사 각황전과 원통전전사사자탑. 사사자 감로탑으로 불리는 독특한 모습의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 만나고 왔습니다. 

 

화엄사 각황전 앞에는 석등과 또한 원통전과의 사이에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사자 감로탑으로도 불리며 화엄사 원통전 앞에 자리 하고 있습니다. 제작년도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독특한 석탑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생긴 사사자석탑을 함안군 함안면소재지 함성중학교 교정에서 보았습니다. 주리사지에서 옮겨 온 것으로 주리사지사사자석탑으로 불렸는데 파석이 되어 온전하게 남은 것은 사자상 뿐이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5층 석탑으로 추정을 하였는데 이곳 화엄사에서 통일신라 9세기의 사자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네 마리의 사자가 길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인데 절에서는 노주로 본다합니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지만 불사리를 모셨거나 공양대로 사용된 것이 아닌지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을 보면 탑을 받치기 위해 2단의 기단을 놓았습니다. 밑단은 무늬가 없는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모습이며 윗단은 이 탑의 특징인 각 모서리에 사자상을 안치하였습니다.

 

 

각각의 사자상은 연꽃 받침돌에 앉았으며 또한 연꽃이 세겨진 돌을 머리에 이고 있습니다. 그 위에 복련이 조각된 사각의 판석에 올려진 탑신은 직육면체의 몸돌로서 각 면에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렀습니다. 테두리 안에는 신장상을 조각하였고 그 위에 다시 앙련이 조각된 한 장의 판돌을 올렸는데 윗면에 반구형 돌이 솟아 있습니다.

 

 

사사자 감로탑의 네 마리 사자의 표정은 인간의 희노애락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번뇌를 뜻한다하겠습니다. 불가에서는 사자를 곧 부처님의 말씀으로 여깁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사자후 또는 감로법이라하며 이는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은 사부대중들이 부처님의 지혜를 얻어 죽으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연화장의 세계로 인도하는 탑이라 보고 있습니다. 보물 제300호로 지정.

(참고: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화엄사 홈페이지)

 

 


☞(전남여행/구례여행)화엄사 각황전과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 교통편


부산에서는 화엄사를 찾아가기가 너무 편하다.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화엄사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첫차 오전 7시부터 평균 1시간 간격으로 있다. 3시간30분 안팎 소요. 화엄사 구경을 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올 때 내렸던 화엄사 입구 버스정류소에서 타면 된다. 오후 1시10분, 3시10분, 4시10분, 5시10분, 6시10분(막차)에 구례 하동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땐 남해고속도로로 가다가 순천분기점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탄다. 황전IC에서 내려 구례구역과 구례군청 앞을 지나면 구례터미널을 거쳐 화엄사로 가면 된다. 내비게이션 화엄사 입력.


 

 

2014/11/26 - (전남여행/구례화엄사여행)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부처님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줄 광명등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2014/11/25 - (경남여행/하동여행/구례여행)평사리~화개장터 섬진강 둘레길. 박경리의 토지길과 섬진강 100리 길을 따라 걷는 둘레길,

 

2014/11/17 - (전남맛집/구례맛집)구례 산수유맛집 영실봉식당. 제주산 갈치로 만든 갈치탕 얼큰 한 국물이 끝내줘요. 구례 영실봉 식당.

 

2014/10/16 - (전남구례여행)구례공용버스터미널 버스 시간표 올려요. 노고단(성삼재)버스 시간표

 

2014/10/30 - (전남맛집/구례맛집)화엄사 맛집 지리각식당. 지리산이라 더욱 맛있는 산채비빔밥 맛집 지리각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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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구례화엄사여행)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부처님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줄 광명등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구례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여행지가 화엄사입니다. 많은 국보와 보물등 문화재를 품고 있어 문화재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화엄사를 빼 놓고 둘레길 여행을 할 수 없어 짧은 시간을 내어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범위가 워낙 넓어서 한 번에 다 볼 수 없다면 보지 못한 것은 다음기회에 만나기로 하면서 구경을 하였습니다. 화엄사에서는 각황전과 각황전 앞 석등, 동·서탑, 대웅전, 사사자석탑등 반드시 보고 올 것을 체크하고 올라갔습니다.


 

그럼 먼저 각황전 앞에 웅장한 모습으로 턱 버티고 있는 석등을 포스팅 하겠습니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석등 중에서 최고의 석등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 합니다. 그 높이만도 636㎝로 돌을 깎아 만든 석등으로는 믿기지 않을 큰 규모로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들게 합니다. 


 

각황전 앞 석등에 대해 문화재청 자료를 참고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석등은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여 설치를 합니다. 광명등이라고도 하여 등불을 밝히는 공양이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중에서 최고의 의미를 가진다합니다.


 

석등은 모두 다섯 단계로 나누어지는데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 화사석과 옥개석으로 위에 상륜부인 보주를 올립니다. 그 중 화사석은 등불을 밝히는 곳을 말합니다. 시대에 따라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 형태로 나누어집니다.


 

화엄사 앞 석등의 화사석은 팔각형으로 4개의 창문이 동서남북으로 뚫여 불빛이 사방으로 퍼지도록 한 백제의 화사석 형태로 통일신라시대에도 그 영향을 끼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대석을 보면 8각의 바닥돌 위에 큼지막하게 복련과 귀꽃을 조각해 놓았고 그 위로는 중대석인 장고 모양의 간주석을 세웠습니다. 배가 불룩한 특이한 기둥형태의 간주석은 통일신라 후기에 많이 사용되었던 양식입니다. 그 위에 앙련을 조각한 상대석은 8각의 화사석을 받치도록 하였고 화사석 위에 올린 8각의 옥개석 지붕돌은 귀퉁이마다 큼지막한 귀꽃을 달았습니다. 또한 상륜부는 보륜과 보개, 보주가 완벽하게 남아 있는 석등으로 정상부를 크게 장식 한 것이 특징이며 전체적 완성미가 아주 뛰어난 작품입니다.


 

석등의 연대는 통일신라 헌안왕 4년인 860년에서 경문왕 13년인 873년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을 하며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걸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국보 제12호

 

☞(전남여행/구례화엄사여행)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부처님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줄 광명등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대중 교통편은....


부산에서는 화엄사를 찾아가기가 너무 편하다.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화엄사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첫차 오전 7시부터 평균 1시간 간격으로 있다. 3시간30분 안팎 소요. 화엄사 구경을 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올 때 내렸던 화엄사 입구 버스정류소에서 타면 된다. 오후 1시10분, 3시10분, 4시10분, 5시10분, 6시10분(막차)에 구례 하동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땐 남해고속도로로 가다가 순천분기점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탄다. 황전IC에서 내려 구례구역과 구례군청 앞을 지나면 구례터미널을 거쳐 화엄사로 가면 된다. 내비게이션 화엄사 입력.



2014/11/25 - (경남여행/하동여행/구례여행)평사리~화개장터 섬진강 둘레길. 박경리의 토지길과 섬진강 100리 길을 따라 걷는 둘레길,


2014/11/17 - (전남맛집/구례맛집)구례 산수유맛집 영실봉식당. 제주산 갈치로 만든 갈치탕 얼큰 한 국물이 끝내줘요. 구례 영실봉 식당.


2014/10/30 - (전남맛집/구례맛집)화엄사 맛집 지리각식당. 지리산이라 더욱 맛있는 산채비빔밥 맛집 지리각식당.


2014/10/16 - (전남구례여행)구례공용버스터미널 버스 시간표 올려요. 노고단(성삼재)버스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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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대구 팔공산 파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말사입니다. 804년 애장왕5년에 심지왕상이 창건을 하였는데 파계사의 유래를 보면 ‘파계(把溪)’란 ‘물길을 잡는다’란 뜻으로 절 주위로 아홉 갈래의 계곡이 어지럽게 흩어져 땅의 기운을 한곳에 모우기 위해 절 아래 연못을 파고 파계사를 창건하게 되었다합니다.

 


현응대사나무

그 후 1605년인 선조38년에 계관이 중창을 하였고 1695년 숙종21년에 현응이 삼창을 하여 오늘날의 파계사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파계사는 영조임금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에도 영조대왕의 도포와 영조임금 나무인 느티나무가 파계사에 남아 있습니다.



왜 영조대왕의 원찰을 파계사라 할까요. 그 이유를 보면은 조선의 19대 임금은 숙종입니다. 숙종은 후궁 화경 숙빈 최씨를 위해 파계사의 현응에게 세자 잉태를 위한 백일기도를 부탁 합니다.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 숙빈 최씨의 꿈에 농산화상이 전세의 과보에 따라 숙종의 왕자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을 현몽하였고 훗날 백일기도로 태어난 분이 연잉군입니다.



연잉군은 숙종과 장희빈에서 태어난 20대 경종의 뒤를 이어 조선 제21대 임금에 오른 영조입니다. 왕자를 생산하게 된 숙종은 그 보답으로 파계사 주위의 40리를 파계사에서 세금을 거둘수 있도록 명을 내리지만 현응은 그 대신 선대임금의 위패를 모실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올려 선조, 숙종, 덕종, 영조 네 분의 신위를 기영각에 모심으로 조선 후기에와 더욱 기세가 높았던 숭유억불정책의 칼바람을 피해 갈 수 있었다합니다.



1979년 파계사 원통전 관음보살상을 금칠하게 되었는데 불상안에서 영조의 어의가 나왔다 합니다. 1740년 건륭 5년 9월에 제작된 도포와 발원문에는 ‘탱불 일천불’을 희사하고 파계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며 대왕의 청사상의를 복장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럼 파계사의 문화재를 하나하나 만나 보겠습니다.



먼저 매표소 전에 만나는 오래된 나무를 현응대사 나무라 부릅니다. 현응대사는 파계사를 삼창하고 숙종의 부탁을 받아 백일기도로 숙빈최씨에게 훗날 영조대왕인 왕자를 잉태케하였습니다. 수령이 260년 쯤 된 느티나무로 현응대사의 공덕을 기려 부르는데 팔공산에 단풍이 한창 들때 찾아간 파계사. 천년세월의 절집과 함께 너무 잘 어룰리는 고목이었습니다. 

 


파계사는 문화재 관람을 위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통과해야 합니다. 일반 1,500원이며 승용차 주차비는 2,000원입니다.일주문을 통과하고도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파계사 주차장에 닿기 전에 왼쪽에 파계지로 불리는 저수지입니다. 파계사의 아홉갈래 물길을 한곳에 모아 땅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팠다는 연못으로 파계사 창건 유래와 함께 합니다. 

 


먼저 파계사 안내도를 일별합니다. 파계사 경내를 들기위해서는 반드시 만나게 되는 큰 나무가 있습니다. 영조임금나무로 키가 엄청 큰 나무입니다. 


영조임금나무

수령이 약 250년 느티나무로 보호수며 높이가 17m, 둘레는 3.8m. 영조임금의 치적과 현응대사의 백일기도로 영조임금이 탄생하였고 왕실의 원당에 영조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어 영조임금나무로 이름을 붙였다합니다.




먼저 진동루 입니다.진동루는 파계사의 유래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절 주위로 아홉갈래의 물줄기를 따라 새어나가는 땅의 기운을 잡기 위해 연못을 파고 파계사라 하였는데 그것으로는 이곳의 기운을 모두 다스릴 수 없어 경내로 들어오는 입구에 문을 세우고 ‘진동’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먼저 계단을 올라 1층의 누문을 들어서면 파계사 경내에 들어서게 됩니다. 100여평의 넓이에 정면5칸, 측면3칸의 2층 규모로 팔작지붕을 올렸습니다. 현판에 팔공산 파계사가 걸려 있습니다. 정면으로 원통전과 좌측에 설선당, 우측에 적묵당입니다. 




 원통전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파계사 적묵당입니다.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9호이며 조선 광해군 12년인 1620년에 처음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 후 숙종21년인 1695년 현응이 삼창을 한 후 1920년에 중건을 한 후 보수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적묵은 ‘눈을 감고 조용히 명산한다’는 뜻으로 스님의 수양 공간 같습니다. 정면 5칸, 측면 6칸의 규모로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팔작지붕이며 기둥 위에 공포를 두지 않고 기둥사이에 작은 접시 모양을 한 소로를 끼운 조선후기 건물로 소박한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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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전을 기준으로 왼쪽은 설선당입니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이며 대중의 공양간과 강습소로 사용하였던 건물입니다. 1623년 인조 1년에 계관법사가 중수를 하였으며 1646년과 1725년에 중건을 거듭하여 1976년에 현재의 모습을 하였습니다. 건물은 정면7칸, 측면7칸의 규모로 적묵당과 함께 아름다운 곡선를 가진 팔작지붕입니다. 초석은 북을 엎은 모양으로 그 위에 공포를 두지 않은 둥근 기둥을 세웠습니다. 간결하며 견실한 모양의 민도리집 구조양식입니다. 








원통전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220호 영조임금의 도포와 보물 제992호인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및 복장 유물이 있습니다. 파계사는 다른 사찰과 다르게 대웅전이 아닌 원통전에 관세움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습니다. 원통은 ‘진리는 원만하여 모든 것에 통해 있다“는 뜻으로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올렸습니다. 지붕 처마를 박치기 위해 커다란 역삼각형으로 짜 맞춘 공포를 두 기둥사이에 장식한 다포양식으로 17세기 후반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삼베에 여러번 옻칠을 도포한 방식의 불상입니다. 1979년 불상을 금칠할 당시 복장유물로 영조임금의 도포와 발원문이 함께 나왔고 1447년 세종29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불상의 전체 높이는 1m8cm이며 머리에는 3중의 화관을 씌었고 목의 삼도와 오른손과 왼손에 나타난 손가락과 손바닥 모양을 보면 고려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보물 제1214호 파계사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담은 불화입니다. 1707년인 숙종33년에 연잉군이 왕자일 당시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시주한 불화이며 길이가 340cm, 폭은 254cm.  



파계사 기영각은 연인군이 탄생하면서 그 보답으로 현응의 청원을 받아들여 조선왕실의 위패를 모신 전각입니다. 숙종35년인 1696년에 현응이 창건. 정면3칸 측면2칸으로 팔작지붕이며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혀처럼 앞으로 나온 두 개의 익공에 연화와 연봉 등으로 위와 아래에 화려한 장식을 한 조선 후기 이익공계 양식을 한 모습입니다.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11호.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8호인 파계사 산령각의 창건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1976에 중건을 한 후 1979년에 보수를 하였습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옆면에서 보면 사람인자인 맞배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기영각과 같은 공포를 사용하였는데 익공에 연봉과 연화로 장식하고 보 머리에 봉황머리를 끼운 초익공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팔공산 파계사를 찾았을 당시 추색으로 완전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특히 지장전 가는 길에서 본 파계사 왼쪽 언덕은 그야말로 만추의 분위기를 보여 주어 아름다운 절집에 매료되어 넋을 빼고 바라보다가 일행의 그만 내려가자는 말에 부랴부랴 내려 왔습니다. 고즈넉한 파게사의 가을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안내판을 참고하였습니다. 





영조임금나무












2014/11/06 - (대구여행/팔공산 산행)팔공산 서봉~파계봉 산행. 알찬 팔공산 산행코스 서봉~파계봉 산행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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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거창여행)감악산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이 유명한 감악산 연수사에서 얼음물을 맞다.

경남 거창군 남상면에는 감악산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약수탕으로 유명한 연수사가 있습니다. 감악산 산정의 높이가 952m이며 연수사는 약 700m의 높이에 위치를 하여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너무 좋습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감악산이지만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임도가 열려 있어 연수사 앞 까지 승용차가 올라가게 되어 누구나 쉽게 찾아 갈 수 있습니다.

 

 

연수사의 연혁을 보면은 신라시대인 애장왕 3년(802년)에 감악조사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창건설화를 보면은 감악조사가 지금의 절 남쪽에다 절터를 정하고 그곳에서 절에 사용할 기둥과 서까래등을 다듬어 세워 두었는데 밤새 나와 보니 서까래가 사라지고 없어 감악조사가 현재의 대웅전에서 발견하고 깨달은 바가 있어 지금의 절터에 연수사를 창건하게 됩니다.

 

 

연수사는 또한 신라 헌강왕이 이곳에 와 약수를 마시고 목욕을 하여 불치병인 중풍을 말끔히 치유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며 사찰의 이름도 약수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에도 이물을 맞기 위해 거창군민들은 여름휴가를 이곳에서 지낼 정도라 합니다.

 

 

물맞이 온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연수사 위에 있는 약수바위 아래에서 비가 오나 가뭄이 드나 사실사철 일정한 양이 나온다며 물 온도도 일정하게 유지한다 하였습니다. 올해 여름철에 필자가 직접 맞아 보았는데 물의 온도가 성능 좋은 냉장고에 넣어 둔 얼음물을 뒤집어 쓸 정도로 찬물 이였습니다. ㅋㅋ 이바 딱딱하며 부딪칠 정도였습니다.

 

 

 

그 뒤 연수사는 조선시대인 이조 숙종때 벽암선사(1575-4660)에 의해 다시 중수되며 연수사의 중흥기를 맞게 됩니다. 거창군에서 가조면의 우두산 고견사와 함께 쌍벽을 이룰 정도로 알려졌다는 연수사는 현재 변변한 문화재도 하나 없습니. 지금의 연수사가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은 1991년 혜일스님에 의해 대웅전등 건물이 들어섰고 그 후 주지 석전스님에 의해 증 보수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곳 연수사 일주문 옆에는 수령 6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실제로 보면 어마어마 할 정도 높고 큰 은행나무로 둘레가 7m, 높이는 38m, 동서남북으로 20m 이상 가지가 뻗어나가 가을철에는 노란 은행잎으로 감악산과 연수사를 물들입니다. 은행나무 침대가 아닌 연수사 은행나무는 전설이 전해내려 옵니다.

 

 

고려 때로 한여인이 왕손에게 시집을 갔으나 청상과부가 되어 유복자를 낳은 뒤 연수사로 들어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됩니다. 어느듯 10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아이는 건강하고 영민하게 무럭무럭 자랐는데  노승이 아이를 위해 공부를 시켜야 한다며 여승을 설득합니다.

 

 

그녀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허락을 하였고 헤어지기 전날 아이는 홀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절 뒤에 전나무를 심고는 이 나무는 사철 푸르게 자랄것이니 저를 보듯이 키워 달라며 부탁을 합니다. 어머니 또한 아들에게 나는 절 입구에 은행나무를 심고 기다릴테니 혹 내가 없더라도 어미를 보듯 하라며 서로 헤어 졌다합니다.

 

 

그 뒤 모자의 애뜻함을 아는지 전나무와 은행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아들 전나무와 엄마 은행나무는 수백년을 서로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1980년 경 휘몰아친 강풍에 전나무는 부러져 죽고 은행나무만 잎이 무성하게 드리우며 아들 전나무를  그리워하며 연수사 앞 뜰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연수사 은행나무는 수나무라 합니다.




 

 

 

 

 

 

 

 

 

 

 

600년된 연수사 은행나무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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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합천여행)허불산 청강사. 4월에 가장 아름답다는 절집 허굴산 청강사를 보고오다.

우리는 야무지게 생긴 사람을 보고 속이 꽉 찼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만큼 빈틈이 없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자연에서도 흔치 않은 이름이 있습니다. 허굴산으로 속이 굴처럼 텅텅 비었다는 뜻인데 실제로 허굴산을 가까이 가 보면 완벽하게 꽉 차 있는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기암괴석과 함게 황계천에 드리워진 황계폭포와 수백년은 됨직한 노송등 어느 하나 빠트림이 없이 완벽한 모인데 왜 허굴산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옛 전설에는 허굴산을 허불산으로도 불렀습니다. “산을 들어서는 입구에서 이산을 바라보면 산의 중턱에 있는 굴 안에 부처님이 좌정하여 있는 것 같아 바랑을 벗어두고 부처님을 배알하기 위해 올라가면 부처님은 없고 허굴만 있다하여 허굴산이라 한다고 합니다.



그 허굴산의 배꼽에 청강사란 아담한 절집이 현재 있습니다. 연꽃모양을 한 듯 입을 벌리고 선 큰 바위를 비집고 들어서 있는 작은 절집은 그래서 더욱 정이 갑니다. 청강사를 들어서는 입구에는 일주문 대신 수백년은 넘어 보이는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청강사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절의 유래를 보면 청강사가 있던 이곳은 원래 고려 때에 창건된 허굴사의 절터였다합니다. 그러나 절터의 흔적만 남게 되었던 이곳에 처음으로 불사를 일으킨 이는 합천군 쌍백면의 유학자 정규락선생입니다.

 


선생은 스스로 청강거사라 하였고 1891년인 20세에 진사과에 합격 하지만 국운이 일인에 의해 짓밟히는 것을 보고 세상을 등져 허굴산에 은둔하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이곳에 만귀암을 짓지만 선생은 입적을 하고 그의 아들인 정방해 선생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12동에 80여칸의 절을 완공하며 사찰의 규모를 갖추게 됩니다. 또한 만귀암은 부친의 아호를 따 청강사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며 현재는 불가에 귀의한 후손 혜광스님이 주지로 있습니다.



청강사는 당대의 선승 동산스님과 정강 스님도 주석을 하며 수행을 하신 곳으로 현재 대웅전에 모신 부처님은 거창 감악산 연수사에서 모셔온 인도 전단향 목불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웅전 현판은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의 글씨이며 로전과 산신각 그리고 칠성각의 현판은 서예가 오제봉선생과 정현복 선생의 글씨라합니다.



아담한 절집인 청강사는 있는 듯 없는 듯 허굴산과 함께 동화되어 있으며 청강사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4월이라 합니다. 이때쯤이면 산과 절을 에워싼 산 벚꽃이 마치 눈발이 흩 날리 듯 청강사를 감싼다합니다.



화려함은 없지만 아담하며 조용한 절집 합천 허불산 청강사를 대병면 여행시 찾아보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웅전 현판글씨는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이 섰다.


거창 감악산 연수사에서 모셔온 인도전단향 목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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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경산여행)팔공산 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을 만나다.

대구의 팔공산은 신라5악의 하나인 중악으로 신라시대 때부터 불교 성지로 여겨졌는지 많은 유서 깊은 사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중 팔공산을 대표하는 불교 유적은 팔공산 맨 동쪽 끝에 자리한 관봉 석조여래좌상으로 머리에 이고 있는 편편한 돌이 갓 같아 갓바위 부처님으로 부릅니다.


 

 

갓바위 부처님이 있는 곳을 관봉이라 합니다. 이 높은 꼭대기에 이런 큰 부처님을 조성해 놓은 것을 보면 옛 신라인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 바위를 끼워 맞추어 조각을 한 것이 아닌 모두가 하나의 큰 자연석으로 조성하여 4m가 넘는 아름다운 불상으로 빚었고 더군다나 불상과 대좌를 한 돌로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천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미륵신앙이 발로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갓바위 부처님을 1930년때까지는 미륵불로 불렀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56억7000만 년 뒤에 사바세계에 나타나 구원해 준다는 미래의 부처님으로 이곳 관봉 석조여래좌상이 곧 미륵불이라 필자도 생각됩니다.


 

 

그만큼 관봉석조여래좌상이 앉아 있는 위치와 석불의 모습이 사바세계의 중생을 모두 구원 해 주고도 남을 것 같은 모습입니다.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는 미륵불로 불리던 관봉석조여래좌상을 약사여래불로 불렀습니다. 팔공산 관봉석조여래좌상의 왼손 바닥에 작은 약함을 들고 있어 병들고 아픈 중생을 모두 구원해주는 약사여래불에 오늘도 많은 신도분이 이곳 갓바위부처님을 찾고 소원을 빌며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보면 갓바위부처님은 멀리 부산 쪽을 바라보고 계시다하여 특히 부산에서 찾는 신도가 많으며 소원도 잘 이루어 준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편견을 두고 그러 실리야 있겠습니까. 우리 3천500만 국민에게 골고루 모두 복을 내려 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갓바위부처님은 부처님 몸에서 나는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없습니다. 그 대신 자연석 암벽이 부처님을 호위하듯 병풍을 치고 있습니다. 불상의 민머리 위에는 큰 육계가 뚜렷하며 얼굴은 풍만하고 탄력이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 상호인 백호가 도드라져 있습니다.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며 목에는 삼도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대좌는 신체에 비해 작고 상현좌를 하고 있으며 군위 제 2석굴암의 본존불 대좌와 유사하고 무릎위에 올려진 두 손은 석굴암의 본존불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는 것인데 이를 두고 약사여래좌상이라 하며 9세기의 대표적이 불상입니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하여 오늘도 갓바위부처님을 찾아 긴 행렬이 이어집니다.  보물제431호

 


 

 

☞(대구여행/경산여행)팔공산 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을 만나다. 갓바위 대중교통편

 

갓바위 오르는 입구 교통편은 두곳이며 오르는 산길도 두곳입니다. 대구역에서 나와 오른쪽 육교 방향으로 내려가 육교를 건너지 말고 육교 아래에서 401번 버스를 타고 진인동 종점(갓바위집단시설지구)에서 내리면 됩니다.  이곳 갓바위 오르는 코스는 엄청 힘이 듭니다. 또한 방법은 경산역에서 나와 경산역(서부1동주민센터)앞 버스정류장에서 803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를 한 후 30분 길을 올라가면 갓바위에 닿습니다(산보수준). 버스 시간은 경산출발 6시45분 첫차를 시작으로 막차 오후7시45분까지 매시 15분과 45분에 출발을 합니다. 자가운전시에는 내비게이션에 경산 선본사를 입력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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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거창여행)우두산 고견사. 거창을 대표하는 고견사 원효, 의상, 최치원의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거창 고견사. 


경남 거창에는 9할이 산으로 이루어 졌다할 정도로 산천지입니다. 그만큼 많은 명산 중에서도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춘 산이 소머리산인 우두산으로 꼽고 있습니다. 별유산으로 한때 불렸지만 제 이름찾기 일환으로 우두산은 국립공원 가야산과 어께를 맞대고 있으며 우두산 정상부 일부 또한 가야산 국립공원에 포함된 국립공원급의 산세입니다.






우두산에는 의상봉과 장군봉, 바리봉등의 산세로 사계절 내내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이런 명산에는 반드시 명찰이 있습니다. 거창을 대표하는 사찰인 고견사는 원효대사 창건설화를 가지고 있으며 특이한것은 의상대사가 수도하였다는 의상봉 아래 고견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는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전생의 부부 같습니다. 반드시 의상이 있는 곳에 원효가 있고 원효가 있는 곳에 의상이 있을 정도로 두 분은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이곳에서도 서로 사이좋게 함께 한 모습입니다.







고견사는 677년인 문무왕 7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던 견암사에서 그 유래를 두고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견암사를 창건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는데 이곳에 와 보니 전생에 이미 이곳을 다녀간 곳 이었다 합니다.






원효는 이곳에 절을 짓고 견암사라 하였으며 견암, 견암선사로도 불렀습니다. 고려를 멸망시킨 태조이성계가 전지 1백5십결을 내려 매년2월과 10월에 고려 왕조의 명복을 비는 수륙대재를 지냈게 하였다는 고견사.


 



가야산과 이곳 우두산 고견사는 신라말의 문인이자 대유학자인 최치원의 발자취가 찐하게 남아 있습니다. 가야산에서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고견사에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절 입구에 1000년의 비바람을 견디며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고가 28m며 둘레는 6.01m의 초대형 급으로 2000년 3월에 보호수로 지정되었습니다.






고견사는 1358년 공민왕 7년에 지희스님이 중수를 하였고 6.25 한국전쟁때 폐허가 될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가 되었습니다. 1988년 대대적인 중창을 하면서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습니다.




조선조 1630년인 인조때 만들어진 보물 제 1700호 고견사 동종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3호 고견사 석불, 숙종대왕이 원효대사를 기려 내렸다는 강생원의 운영당 현판이 남아 있으며 은행나무, 의상대사의 전설이 있는 쌀굴, 20m의 미끈한 고견폭포도 고견사의 볼거리입니다.



























































































2014/01/09 - (경남여행/거창가조여행)우두산 고견사. 예술성이 뛰어난 고견사 동종 보고 왔습니다. 고견사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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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군산여행)국내 유일 일본식 사찰 건물 동국사. 동국사에 일제 만행을 알리는 침탈 자료가 전시중입니다. 


전라북도 군산여행에서 빠지지 않고 보는 곳이 근대문화유산 거리입니다. 그 중에서도 군산시 금광동 135번지에 있는 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인 동국사는 국내에 하나뿐인 일본식 건축물 사찰입니다.


 

 




국내의 여느 사찰과는 다른 모양의 동국사는 일본내 어느 고택을 방문하는 그런 형태의 건물입니다. 동국사의 전신인 금강사는 융희 3년인 1909년 6월 일본 조동종 승려인 우찌다에 의해 포교소로 처음 시작되었는데 이때가 한일병합 1년전입니다.



 




1913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현재의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동국사. 1945년 해방을 맞으며 정부로 이관되었다가 불교전북교당에서 1955년 인수를 하여 김남곡스님에 의해 동국사로 이름을 바꾸고 대한불교조계종 24교구 선운사의 말사입니다.



 



대웅전은 화려함과 예술성이 들어간 우리의 전통사찰 대웅전과는 완전 다른 모습으로 정면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단층팔작지붕 홑처마 형식의 기와 건물입니다. 형식은 에도시대 건축 양식으로 지어 외관은 화려함이 절제되고 소박한 형식을 갖추었습니다.



 




지붕의 경사각은 75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건물 외벽에 “문틀의 아래위 홈대에 문짝을 끼워서 문 한짝을 밀어 다른 한짝 옆에 붙혀 여닫는 문”인 미서기문으로 되어 있으며 용마루 또한 일직선으로 전통한옥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웅전과 연결된 요사는 일본 전통 양식으로 지어졌고 복도를 이용해 법당과 요사가 서로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동국사에 사용된 목재는 모두 일본에서 들여온 쓰기목으로 건물을 완공하였고 범종 또한 1919년 일본 경도에서 만들어 들여왔으며  종에는 창건주와 개산, 시주자, 축원문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1899년 일본인이 군산항을 강제 개항하게 하면서 해방때까지 군산은 많은 일인이 거주를 하였고 군산항을 통해 수탈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현재 동국사 대웅전 안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침략자료인 사진과 그 당시 자료가 함께 전시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스님이 조선침략에 대한 참회의뜻으로 기증하고 동국사에서 소장하고 있든 자료를 합한 5,000여점의 자료 중 일제의 무단 통치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300여점을 엄선하여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전시기간은 2014년 3월10일~ 6월30일까지이며 일본의 악행과 만행을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필자도 일제 강점기를 겪지 못했습니다. 책 또는 부모님께 일제의 만행과 치를 떨게한 잔혹함을 보았고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동국사는 우리나라 격동기와 개화기에 겪었던 암담함의 역사를 증명하는 건축물로서 다시는 우리 후손에게 이런 참담함의 역사를 물려주지 않는 교육자료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북여행/군산여행)국내 유일 일본식 사찰 건물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은 보물 제 1718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효종 1년인 1650년에 조성되었고 높이가 160cm이며 나무에 흙을 입혀 만든 불상입니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모시고 있으며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합니다. 김제 금산사 대장전에 있던 것을 해방 후에 동국사로 모셔 왔다 합니다.

 



 

 




 




 




 




 




 




 




 




 




 




 




 




 




 




 




 




 




 




 




 




 




 




 




 




 




 




 




 




 




 




 




 




 




 




 




 




 




 




 







2014/04/24 - (전북여행/부안/군산여행)1박 2일 바쁘게 다닌 부안 변산반도와 군산 근대문화유산거리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2014/05/01 - (전북여행/군산여행)군산근대문화유산거리에서 만나는 국내 서양고전주의 3대 건물 구 군산세관를 보다


2014/05/04 - (전북여행/부안여행)변산반도 채석강과 적벽강. 서해안의 바다 경치 완결판 적벽강을 보고 왔습니다. 채석강과 적벽강


2014/05/05 - (전북여행/부안여행)새만금방조제홍보관. 단군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우리나라 지도를 바꾼 새만금 방조제 현장과 홍보관을 보다.


2014/05/06 - (전북맛집/군산맛집)근대문화유산거리맛집 빈해원. 군산여행에서 꼭 먹고 온다는 62년 전통의 빈해원 자장면 맛보고 왔습니다.


2014/05/07 - (전북맛집/부안맛집)변산반도 내소사 맛집 느티나무식당. 느티나무 정자껄에 앉아 먹는 고향 같은 집 느티나무 식당 산채정식.


2014/05/14 - (전북여행/군산여행)군산 리츠프라자호텔. 군산여행 근대문화유산 거리 최고의 숙박지로 리츠프라자호텔이 최고예요.


2014/05/20 - (전북맛집/군산맛집)새만금방조제맛집 새만금횟집. 군산여행에서 꼭 맛보고 온다는 싱싱한 활어회는 역시 새만금 횟집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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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고성여행)남해안 3대 기도도량 고성 무이산 문수암을 찾아가다. 


남해를 바라보며 많은 암자가 있습니다. 남해도 금산의 보리암과 여수 금오산 향일암 그리고 고성 무이산 문수암을 남해 3대 기도도량으로 불립니다. 얼마 전 부처님오신날 직전에 찾아간 무이산 문수암은 그야말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자리에 절묘하게 자리를 잡아 남해 3대 도량의 첫 번째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조망이 좋았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 말사인 문수암은 신라 31대 신문왕8년(688년)때 의상대사가 창건을 하였습니다. 의상대사의 문수암 창건 설화를 보면은 대사께서 남해 금산(보광산)으로 기도를 가던 도중 이곳을 지나다가 얼 풋 선잠을 들게 되는데 그때 노승이 나타나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 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가보라”는 꿈을 꾸다 깨어납니다.



 



의상대사는 꿈결이지만 이상타 생각하며 아침을 맞았습니다. 과연 의상대사 앞으로 한 걸인이 걸어가는게 아닙니까. 어디로 가시는 길이냐고 물어보니 무이산을 간다하기에 의상은 같이 갈 것을 부탁하며 동행을 하게 됩니다. 



 




걸인을 따라 산속을 걸어가던 대사는 점점이 떠 있는 수많은 섬들과 무이산 정상부 아래를 이루는 천길 단애에 다섯 개의 바위가 마치 오대산의 오대 중 중대라 하며절경에 감탄을 합니다. 걸인과 대사가 큰 바위 앞에 다다르자 걸인이 바위를 가르키며 “저곳이 나의 침소다”하니 또 한 걸인이 나타나 함께 바위 틈새로 사라져 버려 의상대사는 두 걸인이 들어간 바위를 유심히 보며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 바위틈에서 문수보살을 보고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꿈속에 노승은 관음보살이고 두 걸인은 문수와 보현 보살임을 알게 된 의상은 이곳에다 문수단을 세우고 문수암을 창건합니다. 지금도 문수암 대웅전 안 오른쪽에 있는 바위 틈 석벽에 천연의 문수보살상을 볼 수 있도록 유리문을 달아 놓았습니다.


 

 




문수암은 의상대사 이후 많은 고승들이 거쳐 갔고 신라 화랑도가 이곳에서 심신을 연마하였을 정도로 산자수려한 모습으로 이곳을 오르는 모든 관광객은 감탄을 합니다. 문수암은 중창과 중건의 사료는 알 수 없고 워낙 급한 산비탈에 터를 닦아 세운 암자다 보니 사라호 태풍때 건물이 붕괴되어 새로 중건을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971년 입적한 청담스님은 1955년 이곳 문수암에서 수도를 하였고 한국불교 정화운동과 통합 조계종 2대 종정, 총무원장등을 지낸 한국 불교계의 큰스님으로 1973년 신도들에 의해 문수암에 청담대종사의 사리탑이 모셔져 있습니다.

 



 

청담대종사 사리탑

 




 




 




 




 




천불전

 




 




 




 




 




 




오른쪽의 유리문을 보면 문수 보현 두 보살이 들어 갔다는 바위 틈을 볼 수 있습니다.

 




 




 




 




 



 




반야사 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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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공주마곡사여행)봄이면 꼭 찾게 된다는 천년사찰 마곡사, 봄바람을 맞다.


태화산 마곡사 춘마추곡의 마곡사는 봄이 아름다운 사찰로 유명합니다. 예로부터 호사가의 입으로 내려온 봄은 마곡사요 가을은 갑사라~~~. 그 실체를 알아보고자 찾아간 공주여행입니다. 여행 이틀째. 올해는 예년보다 봄도 일찍 찾아 왔습니다.





첫째 날은 가을갑사로 유명한 계룡산 갑사를 방문하여 꼭 추갑만 좋은 것이 아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갑사도 나름대로 너무 좋았습니다. 그와 반대로 그만큼 기대를 걸었던 마곡사 여행, 역시 춘마로 불리는 봄의 마곡사는 우리 일행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일찍 찾아온 봄 날씨에 마곡사는 절정을 넘어 끝무리에 춘마의 기운이 걸려 있어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봄의 마곡사를 느껴본 여행이었습니다. 지난 가을에는 추갑으로 유명한 가을 갑사를 찾으면서 마곡사도 함께 찾아와 보고 갔습니다.





그 때는 국화 전시가 한창이었는데 지금은 5월의 축제인 부처님오신날 앞두고 오색 연등이 하늘을 수놓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마곡사. 봄의 마곡사를 담아 보았습니다.



마곡사 해탈문



먼저 마곡사의 유래를 보면 신라의 보철 화상이 설법을 할 때 신도들이 인산인해를 이룰정도로 많아 꼭 마밭의 삼(麻)대 같아 마곡사라 하였습니다. 마곡사는 일주문부터 이어지는 벚꽃과 오래된 고목에서 생기를 받아 움트는 봄의 빛깔, 봄기운을 받아 올라오는 야생화가 태화산과 함께하여 더욱 아름다운 곳입니다.


 



마곡사는 640년인 백제무왕 41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고려의 명종때에는 보조국사가 중수하고 범일대사, 도선국사, 각순대사등 유명선사를 거쳐 중수와 보수를 거듭하며 현재의 모습을 하였습니다.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와서도 세조가 이절에 와 영산전이란 사액을 내렸다합니다.





창건당시에는 30여칸의 대사찰 이었습니다만 현재는 보물인 대웅보전과(보물 제801호),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영산전(보물 제800호), 오층석탑(보물 제799호)과해탈문, 사천왕문등 많은 문화재가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먼저 마곡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보전을 찾았습니다. 보물 제 801호이며 조선 중기인 효종 2년 각순대사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중수기에는 대장전의 기록이 있으며 외부는 2층으로 보이지만 통층의 구조로 지어진 건물로 아래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위층은 정면 3칸, 측면3칸으로 1.5m의 기단으로 인해 더욱 웅장한 모습입니다. 대웅보전은 법화경에서  부처님을 큰 영웅이라는 데서 유래를 하며 마곡사 대웅보전은 아들을 점지해 준다는 설화가 전해집니다. 특이하게도 전각 안에 네 기둥의 싸리나무가 있는데 이 싸리나무 기둥을 돌면 아들을 낳는다하여 많은 분들이 오늘도 이 기둥을 붙들고 돌고 있다합니다.


 

마곡사 천왕문










마곡사 명부전



 

그 아래에는 대광보전을 두었습니다. 마곡사의 본전 건물로 임진왜란때 소실되었으며 순조 13년인 조선후기에 와 지어진 건물입니다. 보물제 802호이며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이 동쪽으로 향하게 안치된 것이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또한 내부 바닥에는 참나무 돗자리가 깔려 있으며 창호의 꽃살무늬가 조각되어 있어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정면5칸에 측면3칸의 다포계 양식인 단층팔작지붕의 목조건물로 기둥은 배흘림이 뚜렷합니다. 이곳에는 세조가 김시습을 만나기 위해 타고온 어가가 보관되어 있다하며 다음기회에 그 어가를 꼭 보고 와야 겠습니다. 대광보전에는 앉은뱅이가 부처님께 공양을 할 삿자리를 짜며 자신의 업장 소멸을 빌었다하며 그 뒤 두발로 걸어 나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영산전은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650년에 중수되었고 보물 제800호입니다.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목불 7구가 안치되어 있으며 세조의 영산전 친필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마곡사에서 가장 영험한 곳으로 알려진 영산전은 정승과 장수를 배출한다는 군왕대의 기운이 모여 있는 곳이며 그래서 이곳을 세조가 찾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곡사 범종각







마곡사 오층석탑



대광보전 앞에는 특이한 오층석탑이 턱 버티고 있습니다. 일명 다보탑 또는 금탑으로 불리며 보물 제 7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방불이 2층의 네 면에 세겨져 있으며 특이한 것은 상륜부가 청동제인 풍마등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고려 후기의 석탑으로 전체 높이는 7.8m이며 라마식 보탑과 비슷하고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한국에서는 유일한 석탑입니다. 이 석탑은 나라의 기근을 3일 간 막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곡사는 백범 김구선생이 은거하였던 곳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며 독립운동가인 선생님은 1896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터지자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후 마곡사에서 은거하였습니다. 1898년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마곡사에서 출가하였고 백범 김구 명상길엔 선생이 처음 머리를 깎았던 삭발터가 남아 있습니다. 광복 후 다시 찾은 마곡사 대광보전에 걸린 주련(거래관세간 유여몽중사)를 보고 그때를 회상하며 응진전 앞에 향나무 한그루를 심었습니다. 지금도 김구나무라며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마곡사 대광보전









마곡사는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에 자리하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입니다. 봄의 마곡사는 많은 문화재와 전설이 남아 있고 또한 나라를 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신 김구선생님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잠시라도 떠올릴 수 있는 뜻 깊은 곳입니다.

 


























마곡사 대웅보전

























김구선생이 심었다는 향나무
















마곡사 응진전

























김구선생 삭발터



















마곡사 산신각




















2013/12/27 - (충남여행/ 공주여행)공주마곡사. 춘마추갑도 좋은데 가을 마곡사도 너무 좋아요.


2014/04/16 - (충남여행/공주여행)무령왕릉, 공산성, 갑사, 마곡사 공주 1박2일 여행 알차게 하는 하고 왔습니다.


2014/04/17 - (충남맛집/공주맛집)계룡산 갑사맛집 서울식당. 자연밥상 건강밥상인 갑사 서울식당 산채더덕구이 정식으로 봄을 먹었습니다.


2014/04/18 - (충남맛집/공주맛집)공산성, 무령왕릉맛집 명성불고기. 공주18미가 인정한 40년전통 소문난 으뜸 맛집 명성불고기


2014/04/19 - (충남맛집/공주맛집)공산성맛집 백제삼계탕. 으뜸 맛집인 공주 18미 착한가격의 무령왕릉 맛집 백제삼계탕에서 몸보신을 하다.


2014/04/20 - (충남여행/공주여행)국고개의 공주중동성당. 진주 전동 성당의 미니어쳐 같은 국고개와 공주중동성당 이야기.


2014/04/22 - (충남여행/공주여행)계룡산 갑사. 봄의 향기가 가득한 계룡산 갑사 춘마추갑도 이제 옛말인 듯, 봄 갑사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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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공주여행)계룡산 갑사. 봄의 향기를 따라갔던 계룡산 갑사 가을 갑사못지 않습니다. 


지난 가을에 질정 없는 발걸음이 추갑으로 유명하다는 갑사로 옮기게 하였다면 이번에는 춘마로 유명한 마곡사를 찾아가든 길에 들러 보았던 계룡산 갑사. 명산에 명찰은 계절을 상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춘마추갑의 가을갑사라지만 봄의 갑사도 봄바람난 여행객의 발걸음을 잡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나뭇가지마다 봄기운을 받아서인지 연둣빛 색감으로 서서히 옷을 갈아입는 갑사 오름길을 그야말로 자연의 천국이라 불러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재잘거리는 새소리와 겨울을 지낸 다람쥐의 몸동작에도 봄의 소리를 아는지 흥이 묻어나 있습니다. 갑사를 오르는 오리의 숲길에는 지난 가을의 붉은 단풍은 어디론가가고 대신 노란 황매화가 마치 마이다스의 손 인양 갑사를 황금의 사원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에 상관없이 계룡산은 돋아난 용의 등처럼 울퉁불퉁한 능선이 갑사와 함께 어우러져 마치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습니다. 4월의 갑사는 한창 바쁜 모습입니다.





5월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위해 예쁜 오색 연등이 갑사 하늘를 수놓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소원을 담은 연등의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계룡산 갑사의 창건은 고구려 아도화상입니다.





아도화상은 신라에 불교를 전래한 분으로 신라최초의 사찰인 선사의 도리사를 창건하고 고국인 고구려로 돌아가는 길에 계룡산을 지나게 됩니다. 그 때 상스러운 하늘의 기운이 계룡산을 비추니 아도는 그 빛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곳에는 천진보탑이 세워져 있어 부처님을 모시기에 위해 아도는 420년에 갑사를 창건합니다. 통일신라에는 의상대사가 갑사에 주석하여 ‘화엄대학지소’를 창건하여 화엄도량의 법맥을 있게 됩니다.





부석사, 해인사, 범어사, 화엄사 등과 함께 계룡산 갑사는 나라의 으뜸사찰인 화엄10대 사찰중 하나가 됩니다. 임진왜란때 영규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곳이 갑사로 전국 최초라 하며 영규대사는의병장 조헌과 금산성 전투에서 왜적과 용감히 싸우다 전사를 하게 됩니다. 갑사의 표충원에는 휴정, 유정, 영규대사의 영정이 함께 모서져 있습니다.


   



물소리 바람소리도 더욱 정겹게 들리는 봄의 계룡산 갑사, 계룡산과 함께 찾는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2014/04/09 - (충북여행/공주여행)마곡사신록축제 국고개역사문화축제 공산성수문장교대식 공주여행 여행블로거기자단 팸투어


2013/12/27 - (충남여행/ 공주여행)공주마곡사. 춘마추갑도 좋은데 가을 마곡사도 너무 좋아요.


2014/04/17 - (충남맛집/공주맛집)계룡산 갑사맛집 서울식당. 자연밥상 건강밥상인 갑사 서울식당 산채더덕구이 정식으로 봄을 먹었습니다.


2013/11/24 - (충남맛집/공주맛집)계룡산 갑사 맛집 꽃피는산골, 단호박 오리구이 정식 퓨전요리가 맛있는 꽃피는산골


2013/12/15 - (충남여행/공주여행)계룡산 갑사, 추갑으로 유명한 계룡산 갑사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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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사 서부도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동부도 서부도. 예술성이 빼어난 보림사 동부도 서부도 보고 왔습니다.

 

전남 장흥군 유치면의 보림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6.25 한국동란등 많은 전란속에서 전각은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아름다운 통일신라의 삼층석탑과 석등, 철조비로자나불상 그리고 보조선사 창성탑비와 탑, 동부도와 서부도, 여러기의 부도탑이 남아 보림사의 전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보림사는 9산선문 가지산파의 중심도량으로 헌안왕이 보조선사 체징을 주지로 권하게 되어 창건되었습니다 장흥의 가지산 보림사를 인도와 중국의 보림사와 함께 동양의 3보림이라 합니다.

 

 

보림사 동부도

 

 

보림사의 많은 문화재중 스님의 무덤인 보림사 동부도와 서부도에 대해서 찾아 보았습니다. 보통 부도는 사찰의 입구에 위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도골 또는 부도밭이나 비석골로 부르는데 이곳 보림사 부도밭은 동부도와 서부도 그리고 보림사 경내의 보조선사승탑등 세 곳으로 나누어져 특이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넘어 오면서 보림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특히 동부도와 서부도의 거리는 족히 700m 는 됨직 떨어져 있는 거리입니다. 늦은 오후에 먼저 보림사 입구에 있는 보림사 동부도를 찾아보았습니다.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동부도 서부도. 예술성이 빼어난 보림사 동부도 구경하기

 

동부도는 여러 기의 부도들이 모여 있는 비탈에 가장 위에 모셔진 부도로 그 중 가장 뛰어난 보도입니다. 1963년 1월에 보물 제155호 지정되었고 전체적인 높이는 3.6m로 날렵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부도의 양식으로 보아 서부도와 보조선사 탑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묘탑의 형식으로 보여 집니다.

 

 

 

 

 

 

부도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지면에 지대석을 놓습니다. 보림사 동부도는 8각의 얇고 넓은 지대석 위에 상중하대석을 올렸는데 하대석과 상대석은 연꽃잎을 돌렸습니다. 하대석은 8장의 연꽃잎을 돌려 새겨 놓았고 각 귀퉁이마다 꽃 장식을 달아 조형미을 더 한 것 같습니다.

 



 

 

 

연꽃잎 밑으로 낮은 기둥을 8각으로 돌려 각 면마다 안상을 조각하여 받치고 있습니다. 중대석은 상대석보다 가늘고 낮은 8각의 기둥으로 표면에는 아무런 조각을 넣지 않았습니다.

 

 

 

 

상대석은 큰 연꽃잎 8장을 돌려놓았고 밑에는 3단의 낮은 받침이 있고 윗면에는 2단의 탑신 받침을 두었습니다. 8각형의 돌기둥인 탑신은 한 면에 자물쇠가 붙은 문이 새겨있고 지붕돌은 낮은 편으로 탑신과 만나는 부분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 위로는 상륜부가 남아 있는데 간석이 있고 그 위에 꽃장식이 새겨진 보개를 놓았고 보륜과 이중연판위에 보주를 차례로 올렸습니다. 보림사 동부도는 세련된 조각 기법이지만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입체감이 떨어지며 상대석에 비해 중대석이 낮고 가늘어 전체적인 불안감이 나타납니다.

 

 

 

 

 

 

 

 

 

 

보림사 서부도와 함께 있는 또하나의 부도.

 

 

 

 

 

 

 

 

 

 

보림사 서부도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동부도 서부도. 예술성이 빼어난 두기의 보림사 서부도 구경하기.

 

보림사 서부도는 보림사와는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구석마을에 자리한 서부도는 두기의 부도가 남아 있습니다. 두기 모두 기단, 몸체돌, 지붕돌이 8각원당형으로 기본형태는 닽으나 조각수법에서 차이가 난다. 전체 높이는 3m가 약간 넘고 1963년 1월 보물 제156호로 지정 되었습니다.

 

 

 

 

보림사 서부도는 네모난 지대석에 변형된 8장의 연꽃잎이 겹쳐져 아래로 향하여 놓였습니다(복련).중대석은 8각이며 상대석은 8장의 연꽃 무늬가 위를 향한 모양(앙련)을 하고 있습니다. 몸체돌은 8각으로 1단의 받침이 있으며 지붕돌은 약간 좁고 경사가 급하며 추녀 끝에 꽃 장식이 없습니다.

 

 

 

부도의 상륜부는 원형의 복발이 있고 그 위로 구름무늬와 연꽃잎이 새겨진 구슬모양의 보주가 겹쳐저 올려져 있습니다. 높이는 3.6m

 

 

 

 

다른 하나는 하대석의 각 판의 끝부분에 꽃장식이 있고 얇은 면을 돌려 8각을 이룹니다. 그리고 탑신의 한면에 문짝에 자물쇠 모양이 새겨져 있는게 앞의 부도와 다릅니다.

 

 

 

지붕돌은 추녀가 거의 파손되었고 경사가 급하며 부도의 상륜부인 보개, 보륜, 보주가 올려져 있습니다. 전체 높이는 3.2m 이며두 부도는 고려시대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려 중기의 부도로 추정합니다.(내용은 문화재 안내판과 민족문화대백과를 참고하였습니다.

 

 

 

 

 

 

 

 

 

 

 

 

 

 


 

 

 

 

 

 

 

 

 

 

 

 


 

2014/02/25 -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 탑비와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 탑이 보물로 지정.


2014/02/19 -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석탑과 석등,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통일 신라 보림사 석탑과 석등



 

2014/02/08 -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목조사천왕상. 국내 모든 사천왕상의 표준 모델이 된다는 보림사 목조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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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 탑비와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 가지산문의 보조선사 체징 탑비와 승탑.


전남 장흥군의 가지산 보림사에는 보조선사 창성 탑비와 승탑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 탑비’는 보물 제158호이며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 승탑’은 보물 제15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탑비와 승탑에 대해 알기 전에 보조선사 체징에 대해 궁금합니다.



 

 

체징은 신라 후기의 선승으로 804년에 충청남도 공주인 웅진에서 출생하엿습니다. 성은 김씨에 시호는 보조선사 그리고 탑의 호는 창성으로 880년 그가 입적한 후 3년 뒤에 헌강왕9년에 왕이 내려주었습니다.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 탑비.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 가지산문의 보조선사 체징 탑비


보조선사는 선문구산중 가지산파의 도의선사와 염거화상의 법통을 잇는 3대 조사로 숭상받고 있습니다. 보림사 보조선사탑비는 용의 머리를 닮은 거북 받침돌의 머리는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험상궂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목은 꼿꼿이 세웠으며 거북등에는 6각의 무늬가 새겨져 있고 등의 중앙에 비신을 꽂아 두는 4각형의 받침대에는 구름과 연꽃을 새겨 놓았습니다. 비의 몸돌은 대리석으로 보조선사의 행적과 창건 연가설화등 그의 관한 기록을 새겨 놓았는데 김영이 비문을 짓고 김원과 김언경이 글씨를 썼다합니다.



 

 

귀부와 이수는 화강암에다 새겼습니다. 머릿돌인 귀두는 구름과 용의 모습을 세밀하게 조각하였는데 답신과 귀두와 이수가 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드문 일인데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비는 탑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었습니다. 비의 총 높이는 3.46m로 규모 또한 엄청 커 그 당시 석비의 대표작이다.




 

 

 


 

탑비의 앞면 중앙에는 ‘가지산보조선사비영’ 이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통일신라인 884년(헌강왕 10년)에 세웠다.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 가지산문의 보조선사 승탑.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은 부도탑으로 부도란 스님의 사리를 모신 일종의 무덤을 의미합니다. 보조선사 창성탑은 4.1m의 높이로 기단인 바닥돌과 몸체 돌 그리고 지붕돌이 모두 8각으로 팔각원당형을 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몸체 돌을 받치는 기단의 아래 받침돌에는 구름무늬를 매우 입체적으로 조각하였고 가운데 받침돌은 아래위로 띠를 두른 약간 배가 볼록한 모습입니다. 8개의 큰 연꽃 조각위에 탑신의 몸돌을 올렸습니다.



 

 

몸돌의 앞과 뒷면에는 문짝 모양을 넣었고 네 면에는 사천왕상을 새겻습니다. 몸돌위에 올린 지붕돌은 두터워 보이며 밑면에는 서까래를 표현하였습니다.



 

 

윗면에는 기왓골이 깊게 파여져 있으며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올렸습니다. 복발(엎어 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과 보륜 바퀴모양 장식),보주(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등을 차례로 올려 놓았지만 완전한 모양은 아니라 합니다.


 

 

 

보조선사가 880년 77세의 일기로 입적한 후 4년 뒤인 884년에  세운 승탑으로  안정감과 함께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장성군 홈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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