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여행/거창여행)감악산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이 유명한 감악산 연수사에서 얼음물을 맞다.
경남 거창군 남상면에는 감악산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약수탕으로 유명한 연수사가 있습니다. 감악산 산정의 높이가 952m이며 연수사는 약 700m의 높이에 위치를 하여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너무 좋습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감악산이지만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임도가 열려 있어 연수사 앞 까지 승용차가 올라가게 되어 누구나 쉽게 찾아 갈 수 있습니다.
연수사의 연혁을 보면은 신라시대인 애장왕 3년(802년)에 감악조사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창건설화를 보면은 감악조사가 지금의 절 남쪽에다 절터를 정하고 그곳에서 절에 사용할 기둥과 서까래등을 다듬어 세워 두었는데 밤새 나와 보니 서까래가 사라지고 없어 감악조사가 현재의 대웅전에서 발견하고 깨달은 바가 있어 지금의 절터에 연수사를 창건하게 됩니다.
연수사는 또한 신라 헌강왕이 이곳에 와 약수를 마시고 목욕을 하여 불치병인 중풍을 말끔히 치유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며 사찰의 이름도 약수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에도 이물을 맞기 위해 거창군민들은 여름휴가를 이곳에서 지낼 정도라 합니다.
물맞이 온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연수사 위에 있는 약수바위 아래에서 비가 오나 가뭄이 드나 사실사철 일정한 양이 나온다며 물 온도도 일정하게 유지한다 하였습니다. 올해 여름철에 필자가 직접 맞아 보았는데 물의 온도가 성능 좋은 냉장고에 넣어 둔 얼음물을 뒤집어 쓸 정도로 찬물 이였습니다. ㅋㅋ 이바 딱딱하며 부딪칠 정도였습니다.
그 뒤 연수사는 조선시대인 이조 숙종때 벽암선사(1575-4660)에 의해 다시 중수되며 연수사의 중흥기를 맞게 됩니다. 거창군에서 가조면의 우두산 고견사와 함께 쌍벽을 이룰 정도로 알려졌다는 연수사는 현재 변변한 문화재도 하나 없습니. 지금의 연수사가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은 1991년 혜일스님에 의해 대웅전등 건물이 들어섰고 그 후 주지 석전스님에 의해 증 보수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곳 연수사 일주문 옆에는 수령 6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실제로 보면 어마어마 할 정도 높고 큰 은행나무로 둘레가 7m, 높이는 38m, 동서남북으로 20m 이상 가지가 뻗어나가 가을철에는 노란 은행잎으로 감악산과 연수사를 물들입니다. 은행나무 침대가 아닌 연수사 은행나무는 전설이 전해내려 옵니다.
고려 때로 한여인이 왕손에게 시집을 갔으나 청상과부가 되어 유복자를 낳은 뒤 연수사로 들어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됩니다. 어느듯 10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아이는 건강하고 영민하게 무럭무럭 자랐는데 노승이 아이를 위해 공부를 시켜야 한다며 여승을 설득합니다.
그녀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허락을 하였고 헤어지기 전날 아이는 홀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절 뒤에 전나무를 심고는 이 나무는 사철 푸르게 자랄것이니 저를 보듯이 키워 달라며 부탁을 합니다. 어머니 또한 아들에게 나는 절 입구에 은행나무를 심고 기다릴테니 혹 내가 없더라도 어미를 보듯 하라며 서로 헤어 졌다합니다.
그 뒤 모자의 애뜻함을 아는지 전나무와 은행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아들 전나무와 엄마 은행나무는 수백년을 서로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1980년 경 휘몰아친 강풍에 전나무는 부러져 죽고 은행나무만 잎이 무성하게 드리우며 아들 전나무를 그리워하며 연수사 앞 뜰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연수사 은행나무는 수나무라 합니다.
600년된 연수사 은행나무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