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여행/경주여행)나원백탑으로 불렸다는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만나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


경주 금박산 아래 나원리 오층석탑을 여행했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국보에 지정된 석탑입니다. 

경주 야외박물관이라 하는 남산과 그 주위에 있는 석탑이 아니라 형산강 건너 외따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로서는 경주 여행을 여러 번 했지만,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항상 마음만 가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원백탑 경주나원리오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나원리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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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멀어지면 마음까지 멀어진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독야청청하다보니 그런가봅니다. 

이번에 다시 경주를 찾게 되었습니다. 

경주에서 모든 일을 끝내고는 이번에는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반드시 찾아보기로 작정을 하고 부산에서 출발했습니다.



일을 마무리 하고 하늘을 보니 벌써 해는 노루 꼬리만큼 남았고 마음은 덩달아 급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어서 빨리 차를 몰아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해는 벌써 꼴깍 넘어가 버린 뒤였고 햇빛이 사라진 석탑을 보면서 참 많은 아쉬움을 달래야만했습니다.




석탑에서는 빛이 연출하는 명암이 중요한 한부분을 차지하는데 말입니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석탑의 그림자는 느낄 수 없었으나 세월의 무게를 이기며 한자리를 지켜온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묵직하며 장중함은 빛의 오묘함이 아니라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현재 절터의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석탑의 정식명칭은 나원리에 있는 오층석탑이라 하여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이라 부릅니다. 

신라 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는 사찰의 영화는 오층석탑만이 남아 천년세월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원리오층석탑 주위에서 ‘의봉4년개토’란 이름의 와당 기와파편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679년 문무왕 19년을 뜻합니다. 

이를 보면 최소한 이곳 오층석탑의 절터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래전부터 이곳이 ‘난원사터’란 이야기와 809년 신라헌덕왕 때에 승려 대각이 창건하여 국운창달을 기원하던 사찰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져오고 있다 합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의 건랍연대를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1995년 석탑이 해체 전까지는 모두 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의 건립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발굴된 사리함에서 나왔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1995년~1996년에 해체·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문화재 도굴로 보이는 1층 탑신이 30㎝ 정도 벌어져 붕괴의 위험이 우려되어 해체·복원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오층석탑의 3층 옥개석 부근에서 밀폐된 사리공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리공 안에서 사리함이 나왔는데 사리함의 뚜껑에는 연화당초문과 사면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개봉한 사리함에는 금동 소탑과 금동 소불상 등 많은 사리장엄구가 함께 나왔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리함 안쪽에 무구정광경의 다라니 묵서가 발견되었고 따라서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의 정확한 건립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구정광다라니경은 산스크리트어이며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된 게 704년이라 합니다. 

이를 근거로 보면 나원리오층석탑은 그 이후에 건립되었으며 석탑 기단부의 결구 방식 등에서 보면 8세기 중엽에 건립된 것을 추정할수 있다고 합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석재가 흰색을 띠고 있어 ‘나원백탑’이라 하며 '신라팔괴'의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이중의 기단에 오층의 탑신을 올렸습니다.

 2층인 기단과 1층 몸돌, 1·2층의 지붕돌인 옥개석을 뺀 나머지는 모두 하나의 돌로 짜맞추어 졌습니다.






아래 기단은 면석이 1매이며 양모서리(우주)에 각각 1개의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가운데에 3개의 탱주(기둥모양)를 새겼습니다. 

윗기단은 양모서리(우주)에 각각의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가운데에는 2개의 탱주를 새겼습니다.





탑신부인 몸돌 5개는 양모서리에만 기둥모양을 각각 새겨놓았습니다. 

몸돌 위에 올린 옥개석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렸으며 밑면에는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습니다. 

상륜부에는 현재 머리장식의 일부인 노반만 보였는데 밑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머리장식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쇠막대인 찰주가 끊어져 남아 있습니다.








경주에서는 몇 개 안되는 오층석탑이지만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신라 불교예술의 걸작품은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경주를 여행하면서 많은 석탑을 보았습니다. 

크기와 무게감 등을 생각해 대표적인 것만 꼽아도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황복사지 삼층석탑, 창림사지 삼층석탑, 고선사지 삼층석탑, 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정혜사지13층석탑,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등이 있습니다.

 










경주의 석탑은 다른 지방과 다르게 그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가슴속에 꽉 차듯이 밀려왔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 역시 고대하고 기대한 만큼 큰 감동이 쓰나미 처럼 밀려왔습니다. 

군더더기가 전혀 붙어 있지 않은 모습에 근육질에 수려한 외모를 가진 남성을 보는 듯 석탑의 자태는 아름다웠습니다.

 



늦은 시간에 찾았던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나를 다시 찾을 수 있게끔 흥분시켰습니다. 

경주여행을 다시 계획할 때 가장 먼저 한 번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국보 제39호에 1962년 12월에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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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현곡면 라원리 672 | 나원리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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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하회마을 서애 류성룡의 병산서원 여행. 병산서원


안동 풍천면 하회마을 뒷산인 화산과 서애 류성룡의 본가가 있는 하회마을에서 서애 류성룡선생이 병산서원을 오가며 낙동강을 끼고 걸었을 선비길을 다녀왔습니다. 

선비길 입구에 병산서원이 있습니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며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안동 병산서원 주소:경산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안동 병산서원 전화:054-858-5929

사적 제2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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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하면 가장 대표적인 게 징비록입니다. 

징비록은 영의정과 도체찰사에서 파직당하고 낙향하여 임진왜란이 끝나자 임란(1592~1598) 당시의 기록을 남겼는데 이게 ‘징비록’입니다. 

징비록은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 등 임진란의 전반을 수기한 사료로 현재 국보 제132호에 지정했습니다.

 

복례문


서애선생을 배향한 병산서원의 방문은 더욱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병산서원은 도동서원·도산서원·소수서원·옥산서원과 함께 조선시대 5대 서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성 때문인지 병산서원을 보는 내내 외적인 화려함 보다는 고고한 소나무처럼 선생의 우국충정을 서원의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병산서원의 전신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이며 고려 때부터 존재했던 사립기관입니다. 

류성룡선생이 1572년(선조5년)에 현재의 장소로 옮겨 왔으며 그 뒤 1607년 선생이 타계하자 지역유림들에 의해 1613년 존덕사를 세우고 위패를 모시면서 이듬해 병산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병산서원에는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선생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병산서원은 1863년인 철종 14년에 ‘병산’이란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868년(고종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한곳입니다. 

병산서원도 일반 서원과 마찬가지로 강학공간을 앞에 두고 배향공간인 사당을 뒤에 배치하는 전학후묘의 양식을 따랐습니다.

 

광영지


이와 함께 서원은 강학과 제향 공간, 그리고 부속건물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집니다. 

유생의 강학 건물은 복례문, 만대루, 동·서재, 입교당, 장판각이라면 제향건물은 내삼문, 존덕사, 전사청이 있으며 병산서원을 관리하는 부속건물로는 고직사, 뒷간, 광영지 등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병산서원의 주 출입구는 솟을 대문인 북례문입니다. 

‘복례’는 논어의 『극기복례위인』에서 따왔으며 “자기를 낮추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다”라는 공자의 가르침인 자기절제의 정신을 함축해 놓았습니다. 

최초의 복례문은 만대루 동편에 있었다고 하며 낙동강 건너 험준한 산세인 병산의 지세를 피하려는 풍수지리에 따라 지금의 장소로 옮겨 세웠습니다. 

솟을 삼문인데 특이하게 좌우는 벽체로 막았으며 가운데 칸만 판문을 달았습니다.



복례문을 들어서면 만대루와 사이에 작은 연못인 광영지가 왼쪽에 자리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가 정원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게 연못인데 서원에서는 처음 보는 듯했습니다. 

병산서원에는 작은 규모지만 연못이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연못이라 부르기에도 너무 작아보였으며 그 규모는 많이 축소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작은 연못이지만 많은 뜻이 있습니다. 

연못은 사각모양인데 이는 땅을 의미하며 연못 가운데 섬은 둥글며 이는 하늘을 상징합니다. 

글 읽던 유생들이 이곳에 나와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바람 소리,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닦아 학문에 정진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게 만대루입니다. 

강당인 입교당과 마주한 건물로 2층의 누각형태로 병산서원에서 가장 웅장하며 분위기 있는 건축물로 서원의 대표건물입니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지은 앞면 7칸, 옆면 2칸의 건물이며 병산서원에서 가장 빼어난 조형미를 가진 건축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인지 만대루를 보면 무채색의 웅장함이 가슴을 팍팍하게 만듭니다.

 


‘만대’는 당나라 시인인 두보의 시 ‘백제성루’인 ‘취병의만대 백곡회심유(翠屛宜晩對 白谷會深遊)’에서 따왔습니다. 

그 뜻을 보면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수는 늦을 녘 마주 대할만하고, 흰바위 골짜기는 여럿 모여 그윽이 즐기기 좋구나”를 뜻합니다. 

저녁무렵 팔작기와지붕에 홑처마 건물로 된 누마루에 올라서면 낙동강에 비친 병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 폭의 수채와 같은 선경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입교당은 병산서원의 중심건물인 강당이며 숭교당 또는 명륜당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가르침을 바로세운다”는 뜻인 입교당은 앞면 5칸에 옆면 2칸인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의 5량가건물로 유생들의 강학장소였습니다. 

가운데 3칸은 마루를 두고 왼쪽에는 경의재, 오른쪽은 명성재인 1칸 온돌방을 각각 넣었습니다.

 



명성재는 서원의 원장이 머물렀으며 경의재는 교무실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입교당과 만대루 사이에 마당을 두고 좌우에 건물은 동·서재이며 유생들이 머물던 기숙사로 사용한 공간입니다.

 











장판각

입교당 뒤 존덕사 왼쪽에 책을 찍을 때 사용했던 목판 유물을 보관하던 장판각 건물이 있습니다. 

서원에서 강당건물과 함께 가장 중요한 건물이 추모공간인 존덕사입니다. 

존덕사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만나지만,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아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잠금 된 상태입니다.



존덕사 내삼문

서애 류성룡선생과 수암 류진선생의 위패를 모셨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인 익공양식의 겹처마로 옆면에 풍판을 달았습니다.


전사청





병산서원에서 가장 특별하게 보인 곳이 뒷간입니다. 

뒷간이라 하면은 화장실을 말하는데 흙담장을 마치 달팽이형태로 말 듯이 쌓아 여러 서원을 여행했지만 이런 형태의 화장실은 처음 보았습니다. 

이 화장실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일꾼(머슴)이 사용했다고 하며 하늘을 지붕 삼았으며 400여 년 전에 서원건물과 함께 지어졌다고 합니다. 

초창기에는 대나무로 벽을 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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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 병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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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9.01.08 06:30 신고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2. 공수래공수거 2019.01.17 13:08 신고

    여긴 봄에한번 가볼려고 합니다.^^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복사꽃마을 여행. 영천에서 복사꽃길을 걸어보세요 


매화꽃과 산수유꽃이 봄꽃의 시작이라면 그 자리를 이어받은 벚꽃이 또다시 자리를 내어주면서 복사꽃이 이제 자리를 받았습니다.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복사꽃 마을·복숭아 마을로 불리는 구지리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부산에서 언양나들목을 나와 운문령을 넘고 운문호를 돌아 영천으로 향했습니다.




영천 복사꽃마을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561-5



2016/05/11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모고헌, 독특한 누각이 돋보였던 MBC드라마 화정 촬영지 영천 보현산 아래 옛 태고와 누각 모고헌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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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을 찾아가는 도중 농촌은 벌써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농부의 손에서 진짜 봄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천 땅에 들어서면서부터 선분홍색의 복사꽃에 하늘의 색감이 완전히 달라 보였습니다.





고개를 넘으면서 구릉지에 펼쳐진 복사꽃은 진짜 무릉도원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하늘도 복사꽃의 아름다움을 더 예쁘게 하려는 듯 화창해서 여행을 떠나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습니다. 

역시 빠른 소식통은 진사님입니다.







벌써 복사꽃의 아름다움을 알고 여러 분이 찾아와서 열심히 사진을 담고 있었습니다. 

나도 사진을 찍기 위해 포인트를 찾았습니다. 

경부선 KTX 선로와 복사꽃이 잘 조화를 이루는 사진포인트가 보였습니다.






벌써 한 분의 진사님이 삼각대를 걸어놓고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디선가 웅~~~~하는 소리와 함께 KTX가 쌩하며 통과 했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계속 왔다갔다하면서 자주 다녔습니다. 

사진을 몇 장 담고 구지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바로 한 모퉁이만 도니까 복사꽃 마을이었습니다. 

땅도 선분홍, 하늘도 선분홍, 내 마음조차 선분홍색 되었으며 활짝 핀 복사꽃에 내 몸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아이고 언제 복숭아 맛을 볼까? 그러나 곧 이 복사꽃이 여름 과일인 복숭아로 바뀌어 주렁주렁 달리 걸 생각하니 입안에 군침이 베어 나왔습니다. 

ㅎㅎ 새콤달콤한 맛있는 복숭아를 생각하며 다음 여행지인 반곡지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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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561-5 | 구지리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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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선산여행)선산 금오서원.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를 배양한 선산 금오서원


구미 선산읍의 금오서원을 찾았습니다. 

선산 비봉산과 형제봉 산행을 하고 나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47개의 서원은 제외되었는데 금오서원은 그중 한곳이라 해서 일부로 늦은 시간이지만 찾았습니다. 

아마 꼭 보아야겠다는 열망이 더 컸다 하겠습니다.

 금오서원을 보면서 왜!!!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야은 길재 선생을 배향한 선산 금오서원 주소: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

야은 길재 선생을 배양한 선산 금오서원 전화:054-482-1435

선산 금오서원 경상북도 기념물 제60호




2014/11/14 - (경북여행/구미여행)채미정. 구미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야은 길재를 추모 하는 정자.

2014/11/09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90도 각진 모서리를 깎아 섬세함이 돋보이는 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2014/02/13 - (경북여행/구미여행)태조산 도리사.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사찰 냉산 도리사 여행하고 왔습니다.

2011/05/25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약사암.초생달이 걸여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금오산 약사암

2013/01/02 -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시 선산읍 수다사. 겨울 눈이 내려 흰 연꽂으로 피어난 연악산 수다사가 장관




이는 야은 길재 선생 때문이 아니었는지 싶습니다. 

고려 말에 고려의 충절을 상징하는 ‘삼은’이 있습니다. 

포은 정몽주와 목은 이색 그리고 야은 길재입니다. 

그중에서 금오서원은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을 기리는 서원입니다. 야은 길재(1353년~1419년)는 고려말과 조선 초의 성리학자로 호는‘야은’ 또는‘금오산인’이며 시호는 ‘충절’입니다.

 

선산 금오서원의 2층 누각 출입문 읍청루







그는 고려가 망하자 모든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되어 세자 이방원이 태상박사의 벼슬을 내렸지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의를 굽히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길재는 낙향하여 선산의 금오산 아래에서 학문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던 분입니다. 

김숙자 등 많은 문하가 그를 따랐으며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로 그의 학통은 이어졌습니다.





선산 금오서원 동·서재







야은은 고려가 망한 후에 옛 도읍지였던 개성(송도)을 찾아 읊은 ‘고려 유신 회고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 시조로 길재선생의 고려에 대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금오서원은 1567년(명종 22년)에 선산의 유학자가 중심이 되어 선산부사 송기충에게 서원 건립을 건의하였습니다. 

이에 경상감사를 거쳐 조정에까지 알려져 재가를 얻어 1570년(선조3년)에 금오산 아래에 건립하였고 1575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에 모두 불탔습니다.



1602년에 금오서원은 현재의 장소인 선산읍 원리의 남산 아래에 옮겨 복원하였고 1609년 광해군 원년에 다시 중건했습니다. 

금오서원은 김종직과 정붕, 박영, 장현광을 추가하여 5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금오서원은 2층 누각인 읍청루, 강당인 정학당, 동·서재, 내삼문, 사당인 상현묘로 구성하여 전묘후학 양식을 따랐습니다.













선산 금오서원의 오현을 모신 사당인 상현묘









정학당은 강당으로 앞면 5칸에 옆면은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입니다. 

가운데 3칸 마루를 넣고 양쪽에 1칸의 온돌방을 앞쪽에는 툇마루를 달았습니다. 

5량 형식의 가구구조입니다. 읍청루는 2층 누각에 누하에 서원의 출입문인 문루를 두었습니다. 앞면 3칸, 옆면 2칸 팔작기와지붕 건물로 겹처마입니다. 

사당인 상현묘는 앞면 3칸에 옆면 3칸이며 맞배지붕 건물로 겹처마이고 5량가형식입니다. 

현재 선산 금오서원은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새롭게 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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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 | 금오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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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3.28 09:52 신고

    여기도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경북여행/칠곡여행)신유장군 유적지, 나선정벌을 승리로 이끈 신유장군 유적지.


경상북도 칠곡군 신유장군 유적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신유(1619~1680)장군 유적지를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그런지 사당을 들어서는 외삼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밖에서 얼쩡거리며 구경을 했습니다. 

그러다 늦게 도착한 내가 원죄지만 조금 억울한 생각도 들어 출입문의 자물통을 자세히 보니 자물통으로 채워 놓은 게 아니라 문이 저절로 열리지 않게 걸어놓은 것을 알았습니다.



칠곡 신유장군 유적지 주소: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산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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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늦게 도착한 사람은 열고 보고 가라고 자물쇠로 채우지는 않았던 거 같습니다. 

신유장군 유적지를 참배하고 나오면서 출입문은 원래대로 걸어놓았습니다. 

신유장군은 이순신 장군에 비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학교 수업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신유장군의 약력을 간략하게 보겠습니다. 

조선 효종 때 무신으로 1619년(광해군11)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에서 출생하셨습니다. 

27세에 무과에 급제했으며 선전관 등을 거쳐 효종 9년인 1658년에 청나라는 조선에 조총군의 파병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에 함경북도 병마우후였던 신유장군이 제 2차 나선정벌에 나섰습니다. 

조총군 200명과 모두 260여 명을 병력을 거느리고 출병하여 영고탑에서 청나라군사와 합류해 흑룡강으로 나아갔습니다. 

흑룡강에서 남하하던 스테파노프가 이끌던 러시아군을 맞아 거의 전멸시키는 승전을 올렸습니다.


 




이를 나선 정벌이라 합니다. 

이 원정을 북정일기에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신유장군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로로 가선대부에 올랐으며 경상좌도병마절도사와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 포도대장을 지내셨습니다.





신유장군은 1680년 62세로 숨지자 숙종이 제문과 예관을 보내어 제사지내게 했습니다. 

그 후 숭무사에 제향했으며 신유장군유적지내에 신도비를 세웠는데 판서 이현일이 비문을 지었으나 6.25 전쟁 때 포격으로 파괴되어 새로 세운 비석과 함께 비각에 나란히 전시 중입니다.

 




신유장군 유적지는 사당인 숭무사. 존성재, 북정문, 선위문, 비각으로 5동의 건물로 구성되었습니다. 

장군의 묘소는 숭무사 뒤쪽 에 부인 묘와 함께 있습니다. 1982년 8월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에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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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산 21-5 | 신유장군유적지앞공영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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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선산여행)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여행. 오누이탑이라 불리는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이번에도 국보급 문화재를 보고 왔습니다.

국보급이 아닌 국보입니다. 

역시 국보는 나라의 보물이라서 그런지 달라도 무엇이 다른가 봅니다. 

이번에 소개할 국보는 구미에 있는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입니다. 

오층석탑에서는 가장 높고 웅장하며 크다고 합니다. 

처음 제가 탑 앞에 섰을 때도 탑의 웅장함에 움직일 수 없었으며 와!!!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구미 선산 죽장사오층석탑 죽장사 주소: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479-2

구미 선산 죽장사오층석탑 죽장사 전화:054-481-2736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 국보 해평면낙산리삼층석탑제 1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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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층석탑은 이정도 높이와 크기를 여러 개 봤습니다. 

경주의 고선사지삼층석탑,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등인데 죽장사 오층석탑도 수려함과 아름다움에서 이들 탑에 비해서 조금도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 국보 중 하나였습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은 일명 오누이탑 또는 남매탑이라 부릅니다. 

웬 오누이 탑 하며 주위에 아무리 둘러봐도 석탑은 하나뿐이라 남매가 힘을 합쳐서 부처님의 탑을 만들었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선산 죽장사 오층석탑은 누이가 만들었다면 오빠는 낙동강 건너 해평면의 낙산리 삼층석탑을 세웠다 합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두 개 내려옵니다. 

이야기의 출발은 같지만, 중반에서 전형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꼭 설화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착한 엄마와 심청이에 나오는 뺑덕어미나 콩쥐·팥쥐에 나오는 계모와 같은 급의 나쁜 엄마가 등장합니다.





계모라고 다 나쁜 분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엄마 상은 제가 보기에는 착한 엄마와 오누이의 친모로서 남매의 죽음을 거는 내기를 말리지는 않고 다부 부추기는 엄마입니다. 

각설하고 죽장사 오층석탑이 세워지게 된 유래를 보겠습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에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남매의 힘겨루기로 세워졌다 합니다.

 








때는 아마 죽장사 오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을 보면 그 당시로 추정됩니다. 

오누이는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며 살았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이들 남매는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괴력인 힘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놀기 삼아 오누이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여기서 죽장사오층석탑의 이야기가 갈라집니다.





먼저 우리 정서상 착한 엄마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남매를 앉혀놓고 지난번 스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스님이 이곳이 절터라고 했다며 어머니는 이곳에다 탑을 세우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남매는 서로 탑을 내가 세우겠다 하였고 어머니는 둘이 힘을 합해서 탑을 완성하면 어떠냐고 했습니다. 

남매는 서로 탑을 세우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어쩔 수 없이 딸에게는 여기서 탑을 쌓고 아들은 낙동강 건너에 탑을 쌓는 것이 어떠냐 하며 제안하면서 먼저 쌓는 쪽이 이긴다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먼저 쌓기를 원했지만, 딸의 탑 쌓기가 훨씬 빨랐습니다. 

그래서 딸의 탑 쌓기를 늦추기 위해서 궁리 끝에 딸에게 심부름도 시켰지만, 아들은 누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자꾸만 간격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비장의 카드로 펄펄 끓는 팥죽을 끓여 딸에게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으면 아들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딸이 먼저 오층석탑을 완성했습니다.

아들도 누이가 이기자 탑 쌓기를 그만두었고 그게 오늘날 낙산리 삼층석탑이 되었다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나이가 스무 살 즘 되었을 때 심한 충돌로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의 목숨을 빼앗는 내기를 걸었습니다. 

그 내기가 바로 아들은 50리 떨어진 금오산의 큰 돌을 가져오는 것이고 딸은 돌을 열 두자 높이로 탑을 쌓아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먼저 끝내는 쪽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내기는 시작되었지만, 남매의 어머니는 딸이 이기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아들에게는 멀리 심부름을 보내는 등 방해 공작을 벌였습니다. 

다음날 해는 떠올랐고 딸은 마지막 돌을 탑의 꼭대기에 올리면서 탑을 완성했으나 아들은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낑낑대며 바위를 지고 오던 아들은 동네 어귀에서 누이가 완성한 탑을 보고는 깜짝 놀라 뒤로 나 자빠졌습니다.

 


아들은 죽는 것이 두려워 그 길로 바위를 버리고 냅다 도망쳤으며 그때 버린 바위가 아직도 동네 어귀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후자에 등장하는 남매의 어머니란 분도 참 대단합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뜯어말리지는 못할망정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정서상 맞지 않는 설화로 보이며 구미 설화집에 있는 내용입니다.





하여튼 국보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석탑 이야기이며 그때 딸이 쌓은 석탑이 오늘날 죽장사 오층석탑이 되었다 합니다. 

죽장사 오층석탑은 현재 상륜부의 노반을 뺀 나머지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전체 높이는 약 10m에 오층석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큰 규모입니다.



지대석은 18개의 장대석으로 탑을 지탱하게 했습니다. 

그 위에다 2단의 기단을 만들었습니다. 

아래층 기단은 14개의 넓은 돌로 구성했으며 그 위에 18개의 갑석을 올렸습니다. 

운주나 탱주는 보이지 않으며 그 대신 위층 기단은 각모서리 기둥인 운주가 2개이고 가운데 버팀 기둥인 탱주를 각각 3개씩 새겼습니다.

 






1층 몸돌 남쪽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감실이 있으며 문을 달았던 흔적인 작은 구멍이 남아있습니다. 

감실의 크기는 가로 66cm, 세로 107cm 크기로 최근 안치한 불상이 있습니다. 

각층의 몸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작아지고 낮아지며 각모서리의 기둥도 없습니다. 

죽장사오층석탑은 전탑(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으로 추정하는데 옥개석(지붕돌)의 경사면이 전탑에서 볼 수 있는 층단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죽장사에서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은 국보인 오층석탑과 당간석 1개와 종형인 부도, 이곳이 옛 절터였음을 알리는 부재가 한쪽에 있습니다. 

죽장사는 최근에 불사를 일으켜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지만 제 눈에는 오직 죽장사 오층석탑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죽장사를 둘러보던 중 한쪽에 선산갑오동학농민군의 총지휘를 했던 한문출장군과 항일독립투사 한중석선생이 피신하고 은거했던 곳이라며 작은 기념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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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479-2 | 죽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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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3.27 09:23 신고

    국보를 보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여기를 한번 다녀 와야겠습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신라 제49대 전헌강왕릉과 신라 제50대 전정강왕릉 여행.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경주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나는 문화재 중 하나가 신라 왕릉입니다. 

신라는 935년에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 의해 망할 때까지 긴 역사를 가진 왕조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왕릉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아마 경주 왕릉을 다 둘러보려면 몇 날 며칠을 잡아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신라 제49대 헌강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5




2017/12/14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월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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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5 - (경주여행)경주 신문왕릉.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라 31대 신문왕릉을 여행하다. 경주 신문왕릉

2016/10/31 - (경주여행)신라 27대 선덕여왕릉.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낭산 도리천의 선덕여왕릉 여행과 세가지 예지력.



 


그리고 경주의 많은 왕릉은 29대 태종무열왕을 제외하고는 정확하게 무덤 주인을 밝히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와 유사한 기록을 보고 후대에서 모두 비정한 상태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도 삼국사기의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을 근거로 1730년경에 경주김씨 문중에 의해서 비정된 상태라 합니다.



하도 왕릉이 많아서 훌륭한 업적이나 치적이 많지 않아 생소한 왕도 있습니다. 

이번 경주 여행에서 찾았던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은 약 400m 거리를 두고 다정하게 있습니다. 

이 두 분의 능은 경주 통일전 옆 남산자락에 있습니다. 

여느 왕릉과 마찬가지로 소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예스러움이 가득 묻어나 경건하게 옷매무시를 고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며 신라건국을 한 6촌장중 한 분의 후손으로서 예를 갖추었습니다.



먼저 헌강왕릉을 보고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 정강왕릉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헌강왕은 그래도 많이 알려진 왕입니다. 

신라 49대 왕이며 성은 김씨 이름은 정(晸)이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알려진 경문왕의 아들입니다. 

875년에 즉위해서 12년간 통치했고 886년에 승하했습니다.

 


헌강왕 재위 시절의 통일신라는 태평성세를 누려 서라벌 민가의 지붕은 모두 기와를 올렸으며 밥은 나무 대신 숯으로 짓고 온 장안에 노랫소리와 피리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고 합니다. 

일왕이 사신을 보내어 황금을 바쳤을 정도였다 하니 말입니다. 

또한. 헌강왕 시절에 ‘처용무’도 만들어졌습니다. 

하루는 헌강왕이 울산지방의 세죽에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물가에서 여유롭게 앉아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구름과 안개가 껴 천지를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헌강왕은 신하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게 하였고 동해의 용왕이 한 짓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헌강왕은 신하에게 명령을 내려 이곳에다 동해 용왕을 위한 절을 짓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사라졌습니다. 

이러하여 개운포라는 지명이 현재에도 남아 있습니다.

 


동해 용왕은 헌강왕이 자신을 위해 절을 짓고 망해사라 한다는 이야기에 크게 감복했습니다. 

그러면서 일곱 왕자와 함께 헌강왕 앞에 나타나 왕의 성덕을 찬양하였습니다. 

용왕의 왕자 중에서 한 명을 궁궐에 남게 하여 헌강왕을 도와 정사를 돌보게 했는데 그 왕자가 처용이었습니다. 

처용이 하루는 궁궐에서 늦게 귀가하자 아내를 범하려는 천연두를 옮기는 귀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용이 자신이 지은 노래와 춤을 추어 역신을 물리쳤다는 설화인데 그때 춘 춤과 노래가 오늘날의 처용무입니다. 

처용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2009년 지정되었습니다. 

헌강왕릉의 높이는 약 4m이며 능의 지름은 약 15m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입니다. 

현재 헌강왕릉의 하단부에 4단의 호석을 두른 상태입니다.


신라 제49대 전헌강왕릉



1993년 왕릉 내부 조사과정에서 벌써 도굴된 상태였으며 길이 142cm, 너비 128~96cm 크기의 연도가 석실의 동쪽 벽에 치우쳐 있는 구조입니다. 

석실의 크기는 남북 2.9m 동서 2.7m에다 벽면은 큰 돌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았는데 천장으로 올라갈수록 원형으로 모이는 형식입니다.











정강왕릉은 신라 제50대 왕을 지냈습니다.

 경문왕의 아들로 헌강왕의 아우였습니다. 

이름은 ‘황(晃),’ 헌강왕이 승하하자 태자 요(嶢)가 돌이 안 된 어린 나이였기에 김황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886년에 왕위를 이어받아 1년간 재위하다 887년 승하했습니다.



신라 제50대 정강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3




워낙 재위기간이 짧아 뚜렷한 업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황룡사에서 열린 백고좌에 참석하였고 이찬 김요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했을 정도입니다. 

봉분의 높이는 약 4m이며 지름은 약 15.5m로 헌강왕과 마찬가지인 원형 봉토분입니다.

 봉분 아래쪽에 2단의 호석을 돌렸는데 맨 아래쪽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다 자연석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았습니다.

능 앞에 1장의 넓은 돌인 상석이 있고 그 앞에 장방형의 돌을 다듬어 석단을 만들었습니다. 

 






헌강왕름과 정강왕릉의 호석에 관한 새로운 재기를 발표한 논문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의 호석구조에 관한 위덕대학교 이진락교수님의 연구 논문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의 호석구조는 민애왕릉과 비숫하며 두 왕릉의 요석 층수는 4단과 2단이 아니라 모두 3단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나오는 1910년대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기록사진과 1995년 경주 문화재 연구소에서 간행한 ‘헌강왕릉보수수습조사보고서(憲康王陵補修收拾調査報告書)’에 나오는 헌강왕릉 토층단면도 등 자료를 비교 분석하였다"는 이진락교수님의 ‘전헌강왕릉과 전정강왕릉의 호석 원형에 대한 일고찰’의 논문에서 입니다. 


신라 제50대 전정강왕릉



그러니까 논문은 두 왕릉 모두 지대석 위에 3단 요석, 그 위에 갑석을 올린 형식이라 합니다. 

이진락교수님 논문의 일부지만 이러한 사실을 보지 못했다면 헌강왕릉은 4단 호석이고 정강왕릉은 2단 호석으로만 그저 알고 넘어 갈 뻔 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왜 다른 호석을 했는지 문화재청의 정확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헌강왕릉과 전정강왕릉 호석은 이러한 사실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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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남산동 산 55 | 신라헌강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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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3.23 06:50 신고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다시 한번 보게 되네요

  2. 공수래공수거 2018.03.23 10:25 신고

    경주 왕릉을 돌아 보는것도 의미있을듯 싶습니다^^




(경북여행/군위여행)대율리 한밤마을 돌담길 여행. 군위 한밤마을 돌담길을 만나보세요


대구와 군위를 경계 짓는 팔공산 북사면인 부계면에 팔공산을 이고선 마을이 있습니다. 

1,000m가 넘는 높은 팔공산이 마을을 감싸 않아 아침 해가 늦게 떠올라 항상 한밤중 같은 마을이라 해서 한밤마을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군위 한밤마을 돌담을 보려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테마 거리 경북 군위 한밤마을 돌담길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756


2018/03/16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대율리 대청. 돌담이 이쁜 마을 가운데 특이한 쉼터 군위 대율리 대청

2018/01/30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한밤마을 돌담이 있는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여행

2017/07/19 - (군위여행)선방산 지보사삼층석탑. 예술성이 뛰어난 군위지보사삼층석탑

2015/07/11 - (경북여행/군위여행)제2석굴암으로 불리는 석굴암에 군위 삼존 석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2014/12/05 -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2014/12/13 - (경북여행/군위여행)산성면 화본마을, 화본역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2014/12/02 - (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대구 시내에서 한티재를 넘는 줄 알았는데 팔공산 아래에다 바람구멍인 팔공산 터널이 새롭게 뚫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오를 것을 걱정했던 마음은 기우였습니다. 

차는 2018년 대구의 번잡한 도심에서 타임머신을 탄 듯 순식간에 1970년대에 멈춰선 산골 마을에 나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여러 번 군위여행에서 군위 삼존불을 보러 왔었습니다. 

그때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겨 보지 못했던 한밤마을 돌담길을 이번 여행에서는 오로지 한밤마을과 주위를 둘러볼 욕심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덕분에 이번에는 시간에 쫓기는 부담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

한밤마을의 유래를 보면 고려 중기에 재상을 지냈던 홍란이라는 선비가 처음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어 대야(大夜)라 불렀다고합니다. 

그러다가 밤을 뜻하는 夜 자를 밤 栗 자로 고쳐 대율(大栗)이라 하면서 한밤마을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한밤마을은 부림 홍씨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었습니다. 

한밤마을의 특징은 제주도의 돌담마을과 닮은 마을의 담장이 사람 머리만 한 돌로 쌓아 돌담이 유명한 제주도와 비교 된다고 해서 육지 속의 제주도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많은 돌이 다 어디에서 나왔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한밤마을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살 집을 지어야 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편편하게 터를 고르는데 땅 밑에서 무수한 돌이 쏟아져 나와 이를 처리하려고 집의 경계인 돌담을 쌓았는 게 오늘날 한밤마을 돌담의 시초라 합니다.





오로지 돌만으로 쌓았다는 것을 눈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돌담의 높이는 낮은 곳은 장정의 허리와 놓은 곳은 어께 높이로 쌓아 숨길 것이 없다는 듯 집안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웃과 왕래하는 우리 선조의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느껴졌으며 또한, 홍씨 집성촌을 이루다 보니 더욱 그러했던 게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돌담에 눌러앉은 세월의 더께는 이끼에서 알 수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구불구불 이어지는 마을길은 모나지 않은 훈훈한 우리네 시골 인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분 모두 친절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비보림인 소나무 숲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송강 홍천뢰장군이 의병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라합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마을길을 따라 들어갑니다. 

중간쯤에 작은 암자인 대율사가 있습니다. 대율사 안에는 보물 제988호에 지정된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이 있습니다. 

마을 한가운데 불상이 남아 있으며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오래전에 한밤 마을 일대가 아주 큰 사찰 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 가운데 군위 대율리 대청이 있는 곳이 범종이 걸렸던 대종각 자리였다 합니다.


한밤마을 남천고택



대율리 석조여래입상은 신라시대 석불상이며 폐사전 큰 사찰의 본존불로 모셔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 옆 남천고택은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옥체험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남천고택이 현재 군위군에 남아 있는 고택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상매댁(上梅宅), 쌍백당(雙柏堂)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남천고택은 입향조인 홍노선생의 10세손인 홍우태의 살림집이었으며 그 후 대대로 맏손자가 물려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의 사랑채는 1836년 현종 2년에 지어졌으며 고택의 배치는 ‘흥(興)’자형의 독특한 모양이었으나 1945년 광복 이후 중문채와 아래채를 철거하고 대문채를 옮기면서 가옥의 구조가 바뀌었다 합니다.







남천고택과 나란히 있는 군위 대율리 대청은 대청 옆에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250년 된 잣나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율리 대청은 조선 전기에 세워졌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며 그 후 여러 번 중수되었다가 1705년인 숙종 32년에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율리 한밤마을 비보림





한밤마을의 최대 볼거리는 역시나 자연돌을 차곡차곡 쌓은 돌담입니다. 

봄을 알리는 매화가 기지개를 켜고 한밤마을 돌담에 산수유나무가 참 많았는데 지금쯤이면 노란 산수유 꽃이 살포시 돌담에 내려 앉아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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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756 | 군위한밤마을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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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대율리 대청. 돌담이 이쁜 마을 가운데 특이한 쉼터 군위 대율리 대청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팔공산 북사면인 대율리의 한밤마을에는 큰 대청이 문화재로 지정해 있습니다. 

이름 하여 군위 대율리 대청이며 최근에 와서는 한밤마을 중앙에 자리해서 마을의 공동 쉼터인 대청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마을의 대소사와 소통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돌담이 아름다운 한밤마을 군위 대율리 대청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858

군위 대율리 대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




2017/07/19 - (군위여행)선방산 지보사삼층석탑. 예술성이 뛰어난 군위지보사삼층석탑

2015/07/11 - (경북여행/군위여행)제2석굴암으로 불리는 석굴암에 군위 삼존 석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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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 하면 큰 마루입니다. 

창건 당시부터 대청으로 지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 내력이 참 궁금했습니다. 

한밤마을의 대청이 있는 마을 전체는 오래전에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큰 사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게 보물 제988호인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이 인근에 현재 남아 있습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은 조선전기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탔다가 1632년 인조 10년에 중창해서 유생들이 학문을 갈고닦는 장소로 이용되었던 강학소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1651년 효종 때와 1705년인 숙종 때에 각각 중수했다가 1992년에 와서 건물을 완전히 해체하여 부식된 부재와 기와를 교체하고 기단도 보수해서 다시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마을 전체가 절이었을 때 이 건물은 범종이 걸린 대종각 자리였다고 합니다.

 대율리 대청은 앞면 5칸에 옆면 2칸이며 서측 퇴칸에만 간주가 서 있었고 마루는 전부 우물마루를 깔았고 사면이 개방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중창 당시에는 가운데 마루를 두고 좌우로 방을 넣은 형태로 보여집니다. 

군위 대율리 대청은 조선 중기 건축물이며 기둥 위의 초익공의 수법이나 포대공 등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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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858 | 대율리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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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3.17 06:53 신고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기회가 되면 봄나들이로 좋은데요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한수정. 충재 권벌을 추모하는 봉화 춘양 한수정 여행. 


경북 봉화군 춘양 면소재지인 의양리 134번지에 머리를 식히기 아주 좋았을 정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한수정(寒水亭)인데 뜻을 보면 “찬물과 같은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역시 찬물을 한 바가지 둘러써야 잘 되는가 봅니다. 춘양면 소재지인 춘양장터 인근에 있는데 아침을 먹으려고 나섰다가 찾게 되었습니다.





충재 권벌의 봉화 한수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




2018/02/26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계서당. 춘향전에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생가 봉화 계서당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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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은 낮은 담장으로 둘려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출입문이 꽉 잠겨 있어 속속들이 내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낮은 담장 덕분에 수려한 한수정의 정원과 건물은 멀리서 보는 것 만으로도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수정이 있는 이곳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재(沖齋) 권벌(權伐. 1478~1548)이 거연헌(居然軒)이란 건물을 처음 지었다가 소실하자 그의 2대손인 석천(石泉) 권래(權來. 1562~1617)가 1608년(선조 41년)에 다시 건물을 짓고 한수정이라 이름 했습니다.






1741년인 영조 17년에 중수했다가 1991년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 일부가 불탔으며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원래 상태로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충재 권벌은 본관이 안동이며 호는 충재 또는 훤정(萱亭), 시호는 충정(忠定)입니다.







1496년 연산군 2년 때 진사시에 합격하고 1507년인 중중 2년에 문과에 급제해 사관과 삼사, 승정원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을사사화 때 소윤일파에 의해 삭주로 유배 가서 그곳에서 숨졌으나 선조 때 신원이 회복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봉화 삼계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한수정 정자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T'자형 건물이며 홑처마 팔작지붕건물입니다. 바닥은 1단을 높였고 양측에 각각 2칸인 온돌방을 넣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를 깔은 형태입니다. 한수정 주위 3면에는 와룡연이라는 연못을 팠으며 초연대라 불리는 넓은 반석과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된 회나무 등이 둘린 아름다운 정자 정원입니다.

 






한수정은 경암 이한응(1778~1864)의 춘양구곡가(春陽九曲歌)에서 제 8곡입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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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 | 봉화한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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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3.08 06:58 신고

    덕분에 구경 잘하고 갑니다

  2. 핑구야 날자 2018.03.09 06:53 신고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서동리삼층석탑. 산림고교 교정에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소나무는 금강송이라 합니다. 우리나라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고산이 마지노선으로 일반 소나무와는 현격하게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강송은 단단함을 뜻하는 소나무입니다. 그 귀한 금강송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춘양면에서 모여 전국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봉화서동리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91, 서원촌길 8-14(서동리)

봉화서동리삼층석탑 연락처:054-679-6392

보물 제52호


2017/11/04 - (경북여행/봉화여행)산타마을 분천역. 우리나라에도 산타마을이 있어요? 영동선 분천역 산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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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7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옥류암, 남양 홍씨 두곡종택인 봉화 옥류암 정자 여행




이 때문에 금강송을 춘양목이라 따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번 봉화여행에서 춘양목의 집하장 춘양역이 있는 춘양면의 만산고택에서 1박을 하며 고택체험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황토집인 온돌방에서 푹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찍 잠을 깼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만산고택 구경을 하다가 밖으로 나와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어디 갈 곳이 없을까 싶어 생각해서 찾은 곳이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입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만산고택과 멀지 않았습니다. 대략 1km가 조금 안 된 거리였습니다. 봉화 삼층석탑은 특이하게도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경내에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에 검색해서 찾아갔는데 학교가 나와 처음에는 많이 황당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안개도 많이 끼고 해서 일단 교문을 들어가서 빙 둘러보았습니다. 교정 오른쪽에 삼층석탑이 보여 맞게 찾아왔구나 하며 아마 옛날에는 이곳이 절터였나 생각했습니다.

 






문수산에서 내려온 능선이 면 소재지와 가까워지면서 논밭 속에 봉화 춘양면 서동리 삼층석탑이 있었습니다. 동·서로 마주 보는 쌍탑 형식입니다. 이곳은 신라 시대에 있었다는 남화사 절터였다 합니다. 전하는 말로는 675년 신라 문무왕(16년) 때 원효가 이곳과 멀지 않은 각화산 아래에 현재의 각화사를 창건하자 폐사되었다 합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탑이 몹시 기울고 기단부가 흙더미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1962년 두 석탑을 해체·복원해서 현재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복원 당시 서탑에는 사리함이 들어갔던 공간이 발견되었으며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99개의 작은 흙으로 만든 탑이 두른 사리장엄구가 나왔습니다.





사리함에는 녹색 유리 사리병이 나왔고 그 안에서 좁쌀만 한 사리 3과가 있었다 합니다. 사리기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진 상태입니다. 높이는 동탑은 3.85m이며 서탑은 3.94m에 두탑은 13.5m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지대석은 여러 장의 판석을 깔았으며 그 위에다 기단석을 받치는 굄대를 여러 장의 돌로 두툼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탑 모두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기단은 네 면의 모서리에 운주인 기둥 모양을, 가운데에 다는 탱주를 한 개씩 새겼습니다. 또한, 몸돌과 지붕돌은 모두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규모가 줄어드는 체감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운주를 새겼으며 옥개석은 4단의 층급 받침에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렸습니다.

 







상륜부의 머리장식은 서탑에는 노반이 남아 있으며 동탑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비례와 균형이 잘 어울리고 정제된 조형미에서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봉화 춘양면 여행 때 한번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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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91 | 봉화서동리 동서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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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2.17 07:09 신고

    덕분에 구경 잘하고 갑니다 좋은 한주 되세요

  2. 핑구야 날자 2018.02.20 06:51 신고

    학생들은 정말 색다른 추억을 남기며 공부할 수 있겠는데요

  3. 핑구야 날자 2018.02.21 06:49 신고

    분위기가 마치 영화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드네요

  4. 공수래공수거 2018.02.26 08:08 신고

    봉화가면 한번 들려 볼곳이로군요^^




(경북여행/봉화여행)대한민국 명승 제60호 석천계곡·석천정사,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석천정사


산 좋고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고장이 봉화입니다. 당파싸움에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칼날 위의 벼슬에 환멸과 염증을 느낀 많은 선비가 산림처사를 자처하며 정자를 짓고 자연을 노래하며 은둔했던 곳이 유독 많았던 봉화. 하나같이 세속을 등지고 안빈낙도의 삶을 즐기면서 벗과 시문을 나누고, 후학을 키우며 말년을 보냈습니다.





봉화 석천정사·석천계곡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945

봉화 석천정사 연락처:054-679-6375




2018/02/08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봉화에서 꼭 가보아야할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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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봉화의 산세는 남달랐습니다. 봉화에 몸을 숨긴 대표적인 처사로는 태백오현이 그러하고 또한 닭실마을의 청암정과 석천정사를 세운 청암 권동보 등 수많은 선비가 있습니다. 모두 자연 속에서 세상사 시름을 멀리하고 자기 수양을 하며 여생을 마쳤습니다.

 


봉화를 여행하면서 찾았던 석천계곡과 석천정사도 그런 곳 중 한 곳입니다. 봉화는 벌써 여행을 하고 왔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제야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늘과 실이라는 석천정사와 함께 찾는 곳이 닭실마을의 청암정입니다. 청암정 또한 청암선생이 세웠습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삼남의 4대 길지에 경주의 양동마을, 안동의 내앞마을, 풍산의 하회마을과 함께 봉화 닭실마을을 꼽았습니다. 그만큼 마을의 분위기는 낮은 산에 둘러싸여 포근해 보였습니다. 문수산에서 흘러내린 창평천과 닭실마을 뒤를 돌아 흐르는 동막천은 유곡 앞에서 하나의 물줄기가 되어 기암괴석과 하얀 암반을 끼고 석천계곡을 빚어낸 뒤 내성천에 합류하여 낙동강에서 꼬리를 감춥니다.

 


봉화군의 수많은 명소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석천계곡과 비탈에 걸터앉은 석천정사를 만나러 출발했습니다. 석천정사를 가는 길은 위쪽의 유곡리 닭실마을에서 내려가는 길도 있지만 저는 그 반대인 삼계리의 삼계 2교에서 출발했습니다. 이곳에도 석천계곡을 알리는 대형안내판과 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석천계곡을 끼고 반들반들 윤이 난 오솔길은 수많은 사람이 닭실마을을 거처 춘향으로 향했던 옛길이라 합니다. 그 때문인지 석천계곡의 운치는 더욱 좋아 보였습니다. 나도 그 뻔찔난 길에 발걸음을 보태었습니다. 계곡을 걷다가 문득 지게를 지며 올랐을 옛사람을 상상해보았습니다.



낙락장송의 거대한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석천계곡, 지겟발을 받치며 바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골바람에 땀을 식혔을 그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으로 붐볐을 석천계곡은 스산한 가을바람에 그 많았다는 인걸은 간데없고 할 일 없는 나그네만 찾아와서 왁자지껄 노닐었는데 진짜 우리 일행 빼고는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석천정사를 가는 소로 길이 바위벼랑을 돌아갔습니다. 그 바위벼랑에 왕희지도 울고 갈 “청하동천(靑霞洞天)”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청하동천’ 그 뜻을 보면 “하늘에 있는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글씨체가 용이 하늘을 마음껏 휘젓듯 힘차게 날아가는 듯했습니다.





글씨는 충재 권벌 선생의 5대손인 대졸자 권두웅(1656~1732)이 섰다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암괴석으로 수려한 절경을 자랑하는 석천계곡에 많은 도깨비가 몰려와서 떠들면서 놀았다 합니다. 석천정사에서 공부하던 서생은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였고 이를 참다못한 권두웅이 ‘청하동천’ 글씨를 바위에 세기고 그 위에다 붉은 칠을 하자 다시는 도깨비가 나타나지 않았다 합니다.









도깨비를 쫓아냈다는 청하동천 바위를 지나면 더욱 수려한 장관이 펼쳐지면서 계곡 건너에 석천정사가 나타났습니다. 바위에 걸린 나무다리를 건너 석천정사에 다다랐습니다. 석천정사를 들어서는 일주문이 꽉 닫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계곡을 내려가서 외곽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석천정사는 34칸의 큰 규모라 합니다. 석천정사는 충재 권벌의 큰아들인 청암 권동보가 1535년에 학문과 수양을 목적으로 세운 건물입니다. 선생은 1542년 중종 37년에 사마시에 합격해서 벼슬길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1547년 명종2년에 아버지가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삭주에 유배되었다가 1년 만에 숨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했습니다. 조선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져 복직되었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석천계곡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마음의 수양을 닦으며 여생을 마쳤습니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어 많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눈대중으로 대충 보아도 계곡을 비집고 절묘하게 들어선 정자에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렸으며 건물은 높은 축대 위에다 길게 늘어선 모습 입니다.







살짝 까치발을 들어 내부를 보았습니다. 한쪽은 개방된 마루라면 한쪽은 판장문을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하얀 암반에 미끄러지듯 흐르는 계곡의 풍경과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한 소나무의 솔향이 모든 건물에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선경이 따로 없는 석천정사를 지나면 닭실마을에서 석천정사로 들어서는 넓은 길이 이어졌습니다. 허리를 숙인 소나무의 사열을 받으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저 멀리 닭실마을의 청암정이 어서 와라 손짓했습니다. 명승 제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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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945 | 석천정사
도움말 Daum 지도
  1. 핑구야 날자 2018.02.12 06:42 신고

    기회가 되면 가 보고 싶군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2. 핑구야 날자 2018.02.13 06:49 신고

    꽃피는 봄이 간다면 정말 좋겠는데요 잘 보고 갑니다

  3. 핑구야 날자 2018.02.14 06:53 신고

    보내 구경 잘 하고 갑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고 싶군요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옥류암, 남양 홍씨 두곡종택인 봉화 옥류암 정자 여행 


봉화여행을 하면서 점심을 먹으려고 들렀던 '산수유길 사이로' 인근에 태백오현의 한 분인 두곡 홍우정(1595~1656)선생이 은거했다는 옥류암(玉溜庵)을 찾았습니다. 산수유길 사이로의 참살이 음식과 함께 잘 어울렸던 옥류암. 옥류암은 경북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산수유길 202-80번지인 뒤뜨물마을 뒷산 자락에 남향을 보고 있었습니다.




봉화 옥류암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192




2017/12/20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2017/11/16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 송이버섯 맛집 인하원. 봉화군청 봉화역 맛집 봉화 인하원 송이버섯

2017/11/15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도암정. 정자의 고장 봉화에서 만난 도암정 도암정

2017/10/31 - (경북맛집/봉화맛집)농가맛집 산수유길사이로. 테라푸드인 약선음식을 산수유길사이로에서 맛보다.

2017/09/25 - (봉화여행/봉화가볼만한곳)봉화목재문화체험관. 춘양목의 고장 봉화목재문화체험관 여행하기




다섯 칸의 두곡종택과 나란히 자리했으며 옥류암은 절의의 상징인 홍우정의 은거지답게 키가 크고 우람한 소나무가 빼곡하게 정자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 태종에게 삼전도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에다 이마를 찍어 이마가 깨져 피가 철철 흘렀다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수모를 당하자 전쟁이 벌어졌을 때 명분과 의를 지키려면 운명을 걸고 결전을 해서야 옳았다는 척화를 주장하며 낙향하여 봉화의 문수산 아래에다 은거하면서 세운 정자입니다.









옥류암의 유래는 정자와 종택 사이의 옥구슬 같은 물이 솟는 샘에서 나왔으며 이 물줄기는 문수산에서 흘러내린다 합니다. 옥류암은 1637년 처음 지어졌으며 1756년에 중건 하면서 기와를 얹었습니다. 그리고 미수 허목선생의 옥류암 현판과 대산 이상정선생의 기문이 걸렸다 합니다. 가로 120cm, 세로 60cm였던 옥류암 현판은 도난당했다가 되찾아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에 현재 보관하고 있습니다.







정자는 다시 1876년에 중수하였으며 앞면 3칸에 옆면 1칸 반 크기에다 팔작기와집에 정자주위에 토석담장을 둘렀습니다. 정자 앞 왼쪽으로 사주문을 세워 출입하게 했습니다. 정자 바깥으로는 3개의 연못을 만들었는데 시문에 연과 구기자, 국화, 소나무, 매화, 대나무를 심었다는 기록 등에 조선시대 민간 정원의 건축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자료라 합니다.






두곡 홍우정은 옥류암에 기거하면서 학문 증진과 후학을 양성했으며 태백오현과 교류하며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다. 내 차라리 죽을지언정 불의와 타협해 살고 싶지 않다”며 끝까지 벼슬길에 나가지 않다가 사재감직장을 잠깐 지냈을 뿐입니다.

 





사후에 영조는 두곡선생의 절의를 칭송하며 이조참의에 추증하였고 영조가 직접 ‘숭정처사’라는 칭호를 내렸습니다. 산림처사는 들어보았지만 숭정처사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1816년에 순조(16년)는 이조판서로 추증하고 이듬해에 ‘개절공’의 시호를 내렸으며 선생의 위폐는 구봉사와 문산사에 봉안했습니다.


옥류샘


봉화 옥류암



본관은 남양이며 자는 정이, 호는 두곡이며 형조판서를 지낸 조부 만전당 홍가신(1541~1615)과 부친은 한성서윤 홍영이며 다섯 형제 중 맏이로 대사헌과 대사성, 이조판서를 지낸 홍우원과 무과에 급제해서 제주목사와 수사를 지냈던 청백리 홍우량이 선생의 아우였습니다. 봉화 옥류암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31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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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192 | 봉화옥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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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2.08 06:55 신고

    덕분에 저도 여행하는 기분으로 보게 되었네요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한밤마을 돌담이 있는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여행


돌담마을 하면 제주도나 청산도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내륙에는 흙으로 어개어 돌담을 쌓은 마을이 대구에 있다 하여 대구 동구의 옻골마을에 갔다가 내친김에 팔공산만 넘으면 있다는 군위군 대율리 한밤마을의 돌담을 만났습니다. 이번에 포스팅은 돌담마을이 아니라 정겨운 한밤마을의 돌담 사이에 자리한 대율사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입니다.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691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연락처:054-380-6916




2009/04/05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아미산. 부처의 눈썹이 과연 이럴까?-경북 군위군 아미산(402.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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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5 -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2015/07/11 - (경북여행/군위여행)제2석굴암으로 불리는 석굴암에 군위 삼존 석불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2014/12/26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화본리 오층석탑. 군위 덕림사 화본리 오층석탑을 만나다.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으로 불리는 대율리 석불은 문화재의 가치를 인정받아 1989년 4월에 보물 제988호에 지정되었습니다.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이 자리한 한밤마을은 팔공산의 그 너른 품에 안긴 형상입니다. 그래서 대율리 석불은 광배로 팔공산 주능선을 삼았는지 현재 광배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의 불두는 소발의 머리카락과 정수리에 혹처럼 큼지막하게 솟았으며 이는 살이나 머리뼈로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를 말합니다. 얼굴은 둥글면서 눈과 입은 그리 크지 않고 전체적으로 아담한 모습입니다. 짧은 목에 삼도가 있으며 그러나 어깨까지 길게 내려온 귀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양어깨에 걸쳐진 옷을 통견이라합니다. 군위대율리석불입상은 함양군 마천면 마애불입상과 같은 U자형 층단식으로 흘러내린 옷 주름이 온몸을 감싸며 무릎아래에서 안쪽으로 끝맺었는데 이는 인도의 굽타식 착의법을 묘사했습니다. 속이 보일 듯 말 듯한 얇은 옷 주름은 문외한인 제가 봐도 품위 있고 세련된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길게 내려진 오른손은 손바닥이 앞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모든 중생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부처님의 수인 중 하나인 여원인(與願印)을 뜻합니다, 왼손은 가슴까지 올려서 살짝 손바닥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양손과 발은 전체적으로 크게 표현을 해서 그런지 눈에 확 띄었습니다.





불신은 하나의 큰 돌에다 조각했다면 발은 따로 새긴 것을 시멘트인지 덧바른 것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넓직한 대좌 위에 부조하여 새긴 발과 불상은 조금은 수줍은 듯해 보이지만 불상의 전체적인 인상은 당당한 모습이며 통일신라 8세기 불상의 특징인 세련된 수법이 돋보이는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입니다. 이 석불은 한밤마을 이전에는 큰 사찰이 있었으며 그때 본존불로 모셔졌으나 폐사와 함게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많은 관광객이 군위군의 돌담마을을 보려고 찾습니다. 제주도의 돌담처럼 어디서 이런 돌이 많은 나와서 돌담을 쌓았는지 깜짝 놀랍니다. 돌담에 정신을 팔면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 석불 입상을 놓칠 수 있습니다. 한밤마을에서 꼭 대율사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을 챙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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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691 | 군위대율리석조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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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2.01 06:58 신고

    덕분에 구경 잘하고 갑니다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경북의 오지마을인 봉화여행은 벌써 하고 왔는데 차일피일 여행 포스팅을 미루다 보니 이제 포화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봉화여행에서 밀린 숙제 한 곳을 하려 합니다. 봉화에는 100여 개가 넘는 정자가 있어 정자의 고장이라 하는데 그중에서도 번잡하지 않고 한적하여 신선이 내려와 머물렀을 정도로 조용하고 아담한 명소 와선정을 소개합니다.





봉화 춘양 와선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
봉화 춘양 와선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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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선정은 태백산이 있는 봉화군에서도 춘양목으로 유명한 춘양면 소재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마침 춘양면소재지 고택에서 1박했던 터라 안내판의 와선정을 보고 이른 아침에 운동 삼아 휑하니 차를 몰고 둘러보고 왔습니다. 와선정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번지에 속칭 골띠마을에 위치합니다.




작은 주차장에서 나무로 만든 아치형의 오현교를 건너면 바로 토담을 두른 와선정 정자입니다. 그런데 오현교 아래를 보면서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골짜기의 깊이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꼭 편편한 암반을 끌로 깊게 긁어낸 듯 패인 골짜기에는 높이 5m의 폭포가 걸려 있으며 그 옆에 벼랑에다 와선정을 세웠습니다.

 


낭떠러지에서 쏟아내듯 떨어지는 물보라가 은색으로 반짝여 은폭이라 불리며 그 폭포를 안은 바위가 사덕암인데 이는 “덕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바위”로 풀이하자면 태백오현의 뒤를 이어 다시 와선정은 ‘덕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외에도 폭포 옆 바위에는 와선정과 사덕암의 글씨가 남아 있으며 와선정은 산림 처사의 은둔처로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곳에 다섯 분의 은자가 소요하며 시문을 나누고 후진양성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태백오현이라 불렀습니다. 태백오현은 잠은 강협(1602~1671), 포옹 정양(1600~1668), 각금당 심장세(1594~1660), 두곡 홍우정(1595~1654), 손유당 홍석(1604~1680)을 칭하는데 모두 고려와 조선에서 명문가로 이름을 더날였던 후손들입니다.

 











1636년(인조14년)에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태종에 세 번 절하고 9번을 땅에다 이마를 박으며 조아린 ‘삼배구고두례’인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자 이들은 결기의 심정으로 벼슬을 버리고 태백산 기슭으로 내려왔고 모두 와선정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살면서 대명절의를 지키며 서로를 위로하고 우의를 다졌다 합니다.







은폭



그들이 우위를 다졌다는 와선대에다 세운 와선정은 앞면 2칸, 옆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인 마루 형태의 건물입니다. ‘와선정기’를 보면 와선정은 1832년(순조32년) 후손인 강씨와 심씨가 합해 정자를 세우고 난 후 ‘와선지’ ‘사덕암지’의 뜻을 따라 와선정이라 이름 하고 1895년에는 정자를 수리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각문을 들어서자 작은 돌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정자의 뒷면입니다. 계곡을 마주하며 세살분합문을 들어 올리는 열개식인 앞면과 달리 뒷면은 판자로 막아 각각 칸에 작은 문을 1개씩 달았고 좌우에는 흙담 1칸에 1칸은 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통간이며 우물마루에다 정자 바깥의 네면은 쪽마루를 돌렸지만, 뒷면을 제외한 삼면에는 평난간을 설치했습니다.

 









‘태백오현’은 조선 정조 14년에 왕명으로 병자호란 때 재신척화 순절자를 기록한 추념록인「존주록배신열전」에서 이들 다섯 선비를 태백오현이라 기록하고 받들며 경의를 표한대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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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 | 와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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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2.21 06:39 신고

    봄에 찾으면 정말 볼거리가 많겠군요




(경북여행/포항여행)포항 오어사. 10월 여행지 포항 오어지와 오어사의 단풍에 반하다. 


포항 오어사는 오천읍에 있지만, 시내와 가까워 많은 시민이 휴식을 즐기려고 찾는 곳입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를 떠나서 정말 사람이 많이 찾습니다. 특히 가을빛이 오어지와 오어사를 물들이면 관광객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저도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때 오어사와 오어지 단풍구경을 위해 부산에서 길을 나섰습니다.





포항 오어사 주소: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향사리 34

포항 오어사 전화:054-292-9554




2014/12/08 - (경북여행/포항구룡포여행)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완벽한 일본 거리로 바뀐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탐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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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7 - (경북여행/포항여행)포항 청하면 월포해수욕장 용산 산행. 동해 해돋이 명소로 소문난 낮지만 옹골찬 용의 전설을 간직한 포항 용산 산행. 포항 용산





요즘 부산에서 포항은 포항~부산고속도로 때문에 아주 가까운 이웃이 되었습니다. 송정 톨게이트를 올리면 포항 톨게이트까지 40분이면 통과한다고 하니 어지간한 부산 시내보다도 더욱 가깝습니다. 그만큼 손쉽게 갈수 있습니다. 오어사·오어지 아랫마을까지는 수월하게 도착했습니다.

 


주말에는 오어지 둑방 아래에 만들어둔 두 곳의 대형주차장에서 주차하고 걸어서 올라가야 하지만 평일에는 오어사 앞 주차장까지 올라가서 주차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오어사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올라가는 도중 관광버스와 도롯가에 주차된 차량 그리고 들어가고 나오는 차량이 뒤섞여 완전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우리는 괜히 차를 끌고 올라왔다며 후회 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할수 없이 가는 데 까지 일단 가보자며 차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일주문 직전 다리를 건너기 전에 오른쪽에 주차공간이 있어 그곳에 냅다 그냥 꽂아 넣고 오어지를 돌아 오어사로 걸어갔습니다. 야!! 그곳에 주차하길 잘했다며 밀린 차량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갔습니다.





남들이 보면 꼭 차를 안 가지고 올라온 사람처럼 하고 말입니다. 오어사의 작은 출입문을 들어서면 먼저 큰 나무가 있는데 요게 보리수나무입니다. 보리수는 부처임이 열반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들었다 하여 불교에서는 하나의 상징적인 나무입니다.







그리고 이 보리수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더욱 불교와 밀접한 나무라 오어사 경내에 이 보리수나무가 있는 것을 보면 천년고찰의 오어사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습니다. 창건할 때는 항사사라 불렀으며 왜 오어사로 바뀌게 되었는지 그 사연이 있습니다.







 이는 삼국유사 제4권 의해편에 전하는데 오어사와 오어지는 원효대사와 혜공선사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운제산에서 혜공은 항사사(현 오어사)에 머물렀고 원효는 운제산 자락에다 초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그러자 혜공은 원효가 당나라에 유학을 떠난다는 소문을 듣고 먼저 당나라 유학을 다녀온 혜공으로서는 원효를 시험해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원효에게 제안하자 원효도 단박에 OK 하며 수긍했습니다. 혜공의 제안은 기발했습니다. 절 앞에 흐르는 계곡을 가리키며 물고기를 삼켜서 대변을 본 뒤 삼켰던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 이긴 걸로 하자였습니다.

 




원효와 혜공은 물속에 뛰어들어 각자 물고기를 한 마리씩 삼켰습니다. 그런데 삼켰던 물고기 중 한 마리는 죽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며 놀았습니다. 두 대사가 그 물고기를 가리키며 서로 내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인다며 고함쳤습니다. 그 후에 항사사는 나오(吾)자에 고기어(魚)자인 오어사가 되었다 합니다.

 


현재까지도 서로 자신의 물고기가 살았다 하여 물고기 주인은 할 수 없다 합니다. 오어사는 신라의 4대 성인이라는 원효·의상·자장·혜공선사가 머물렀던 사찰이며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스님도 수행했던 유서깊은 사찰입니다.

 


그리고 운제산의 유래를 보면 원효와 의상은 오어사 맞은 편 바위벼랑에서 수행하였고 자장과 혜공은 지금의 자장암 벼랑에서 각각 수행하다 구름을 모아서 사다리를 만들어 서로 내왕했다 하여 구름사다리 산인 운제산이 되었다 합니다.

 




오어사를 들어서면 먼저 오어사의 보물인 범종은 빠트리지 않고 보고와야 합니다. 오어사 범종과 원효대사의 삿갓이 오어사 박물관에 현재 전시 중입니다. 오어사 범종은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 합니다. 발견하게 된 사연도 오어사와 운제산의 유래처럼 재미있습니다.

 



오어사 앞의 오어지 저수지를 공사하다 진흙 속에 묻혀있던 것을 우연하게 찾아내어 보전처리를 거쳐 현재 전시 중입니다. 범종에는 고려 때인 1216년(고종3)에 대구 동화사 순성대사가 주조하고 종을 제작한 사람은 순광이란 이름까지 나와 있습니다.





신라시대 범종 양식을 잇고 있으며 종을 메 다는 용뉴와 우리나라 범종에만 있다는 음통은 용이 마치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이 힘차며 섬세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원효대사의 삿갓이 진짜로 맞는다면 삿갓은 1,300년 전의 것입니다.

 






삿갓을 보면 완전 누더기같이 헤어져 머리에 쓰고 다녔다는 삿갓이 의심될 정도로 훼손이 심한 상태입니다. 삿갓은 종이와 실로 만들었고 안에는 솜을 넣고 바깥에다 풀뿌리로 만들었습니다.





오어사 대웅전은 석가 삼존불을 주불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상량문을 보면 1741년(영조17)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앞면 3칸에 옆면 2칸에 다포형식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팔자모양을 한 팔작기와지붕입니다. 201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2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전체적인 대웅전은 화려하며 많은 공을 들인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자장암은 신라의 네 성인 중 한 분인 자장율사께서 수도했던 곳입니다. 지금은 태국에서 부처님 사리 7과를 기증받아 1998년 세운 금강계단이 있습니다.







 

오어사에서 보면 깎아지른 벼랑 위에 제비집 형태로 완전 벽에 붙었을 정도로 불안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20여 분 가파른 산길을 올라 자장암을 찾아가면 밑에서 봤던 것보다는 그리 위험하지 않아 안도하게 되는 두 얼굴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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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 | 오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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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12.01 11:40 신고

    오어사는 봄에만 2번 갔는데 다음엔 가을에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2. 핑구야 날자 2017.12.02 07:01 신고

    가을이 기다려집니다 올해는 어쩔 수 없겠네요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도암정. 정자의 고장 봉화에서 만난 도암정


봉화를 2박 3일 여행하면서 가장 먼저 찾았던 곳이 경상북도 봉화군 붕화읍 거촌2리 황전마을 앞의 도암정(陶巖亭)입니다. 막상 황전마을을 찾아가면 전체적인 황전마을의 분위기와 규모는 알 수 없이 정자인 도암정만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고백하자면 황전마을은 도암정 주변에 보이는 민가가 전부라 생각했는데 포스팅을 하면서 안쪽에 경암헌고택과 함께 큰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곳까지 가보지 않았던 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봉화 도암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502

봉화 도암정 연락처:054-679-6392




2012/12/07 - (경북봉화여행)봉화 선달산산행. 신선이 놀던 곳 백두대간 선달산 산행

2012/12/16 - (경북여행/봉화여행)단맛없는 사이다 맛이 이런 맛.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 오전약수

2012/12/17 - (경북여행/봉화영월여행) 단군왕검을 뜻하는 박달나무, 우리나라에 박달령이 많은 이유가 있네. 백두대간 선달산 박달령

2013/11/13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청량산 전망대 청량산 축융봉 산행.청량산

2017/02/10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송이 용두식당. 춘향목의 솔향이 가득한 봉화 송이돌솥밥 용두산장에서 맛보다.


도암정은 부산에서 출발해 남안동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봉화로 들어서는 915번 도로를 타고 봉화읍으로 가다 우리 눈에 얻어걸린 정자입니다. 봉화에서 같이 여행할 팀과 봉화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도 조금 이른 것 같아 차를 되돌려 지나쳤던 도암정을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런 누정을 워낙 좋아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도암정 앞으로 사각 형태인 큰 인공연못에 연꽃은 모두 졌지만 넓은 연잎이 푸름을 잃지 않고 연못을 온통 뒤덮고 있었습니다. 안쪽 귀퉁이에 차를 붙였습니다. 연못을 끼고 돌면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도암정의 날아갈 듯한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연못 가운데는 돌로 쌓은 인공섬인 석가산에 심은 큰 소나무로 도암정의 고색창연한 정자의 운치는 한층 더했습니다. 사실 자연을 탐하는 선비는 연못 속의 석가산을 실제 산보다도 더욱 귀하게 여겨 정자를 끼고 있는 연못에는 석가산은 빼놓지 않는 하나의 필수품이라 합니다.





그만큼 운치를 더하고 귀한 존재였던 석가산을 도암정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도암정을 세웠던 황파 김종걸(黃坡 金宗傑 1628~1708)의 자연을 보는 심미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도암정은 우리나라 3대 전통정원인 담양 소쇄원, 영양 서석지, 보길도의 세연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연못과 누정의 아름다움은 그에 못지않게 나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려 그 기억이 뇌리에 오랫동안 가시지 않습니다.









이런 멋진 정원을 가졌던 도암정의 주인인 황파 김종걸이 어떤 선비였는지 많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본관은 의성이며 자는 국경(國卿)이고 호는 황파입니다. 선생은 효성이 지극해서 부모님의 공양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합니다. 부모님께서 편찮다면 밤낮으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병간호를 하였으며 부모님께서 좋아하는 음식과 몸에 좋다는 약초가 있다면 천 리 길이라도 마다치 않고 꼭 구해와서 부모님께 드시게 했다 합니다.

 




어느 날 모친이 몸져눕자 소태산(小太山)에다 하늘에 기도하는 제단을 쌓고 7일 밤낮으로 금식하며 성심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약을 구하러 나선 황파 앞에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 영약이 있는 곳을 안내해서 어머님의 병을 낫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합니다.





또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서 집안을 일으켜주길 바라는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여러 번 과거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으며,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벼슬의 꿈을 접고 평소 행하고자 했던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벗과 교류하며 독서와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삶을 살았습니다




도암정 편액



도암정 편액인 연비어약(鳶飛魚躍)입니다. 이는 시경에 나온 구절로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물속에는 고기가 뛰논다”




도암정 내부 편액



그래서 건립한 정자가 도암정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선생은 남의 장점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고 그 대신 상대방의 약점은 비방하지 않으며 선비와는 학문을 논하고 농사꾼과는 농사일로 이야기하는 등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어느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합니다.



또한, 평생을 몸과 마음을 닦는 수신제가에 힘썼으며 권우를 스승으로 모시고 권두인, 권두경, 이완, 이광정, 김성구 등과 교유하면서 명리는 탐하지 않고 학문 연구에 힘써 안동의 산실인 퇴계학파를 계승하는 선비로서 몸가짐을 가볍게 하지 않았던 정통선비입니다.



도암정 앞쪽은 연못을 내려 보게끔 개방되었다면 삼면은 담장을 둘렀습니다. 출입문은 도암정 좌우에다 사주문을 내어 바깥과 소통하게끔 했습니다. 마을 안쪽에는 의성김씨 종택인 경암헌고택이 있습니다. 도암정은 여기에 딸린 별서라 생각되었습니다.



도암정의 건축은 김종걸이 1650년인 효종 원년에 건립했으며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홑처마팔작지붕에 다락이 딸린 건물입니다. 건물은 연못에서 바로 축대를 쌓아 그 위에다 대충 바닥을 고르고 주초석에 두리기둥을 세웠습니다.





건물은 자연석을 최대한 활용해서 지었으며 앞쪽에다 계자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달아내어 금상첨화(錦上添花)와 같은 광경을 내려다보게끔 지어졌다면 뒤쪽은 가운데에다 한 칸의 마루를 넣고 좌우에는 온돌방을 한칸 식 두었습니다. 도암정은 당시의 유림이 찾아와서 시사를 논하고 시를 읊조리며 학문을 교류했던 곳이라 간결하게 꾸며진 정자를 보면서 주인장의 성품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도암정의 유래는 아마 마을의 진입로를 두고 솟은 3개의 바위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이 바위를 마을에서는 큰 단지(장독)를 닮았다 하여 ‘단지바위’ 또는 ‘독바위’라 부릅니다. 도암정의 ‘도(陶)’도 ‘질그릇도’이며 이는 단지를 뜻해서 독바위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독바위는 전설이 있습니다. 독바위에 쌓였던 기가 넘쳐나면 천 년에 한번식 바위의 뚜껑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년바위라고도 부르는데 독바위의 뚜껑이 열릴 때마다 독바위 속에 살던 황학 한 쌍이 황금알 두 개를 낳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합니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황전마을 독바위의 기를 받으면 머리가 총명해지고, 벼슬길에 나아가고,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다 하여 요즘에도 대학 입시 철이면 바위의 기를 받으려고 찾는 사람들이 많다합니다.



아마 이마을 출신이 정계와 학계, 재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신빙성있는 이야기가 아닌지... 저도 진즉 알았다면 한번 독바위의 기를 받아 보고 오는 건데 모르고 갔다가 그냥 돌아온 게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혹시 다시 봉화여행 기회가 찾아온다면 꼭 독바위의 기를 받고 경암헌고택을 찾아야겠습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4호

봉화 도암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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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502 | 도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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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11.15 11:54 신고

    경북의 정자만 소개하는 책도 있더라구요^^

  2. 핑구야 날자 2017.11.16 06:56 신고

    다른 곳에 비해 더 정감 있어 좋아 보어요 잘 보고 갑니다




(경북여행/봉화여행)산타마을 분천역. 우리나라에도 산타마을이 있어요? 영동선 분천역 산타마을


우리나라에도 산타마을이 있습니다. 왜!! 뜬금없이 우리나라에 산타마을이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언제 한번 갈기 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기회가 생겼고 해서 여행과 출장을 겸해서 2박3일을 봉화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여행 중 3일째인 마지막 날 협곡열차의 출발지인 분천역, 체르마트길, 낙동강 비경길로 불리는 승부역 구간을 걷기로 하고 찾았습니다.





   분천역 산타마을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9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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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1 - (경북맛집/봉화맛집)농가맛집 산수유길사이로. 테라푸드인 약선음식을 산수유길사이로에서 맛보다.







먼저 분천역에서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협곡열차인 관광열차를 타고 승부역에서 내려 다시 낙동강길인 영동선 철길을 따라 분천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걸었습니다. 이곳 출발지였던 분천역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산타마을입니다.



산타 하면 빨간 산타복을 입고 하얀 수염에 고깔모자를 쓴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가 꽃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멀리 하늘에서 쓩~~~하고 내려오는 모습을 모두 생각합니다. 실제 한번도 만나본적은 없지만, 꼭 여러 번 만난 듯한 착각을 들게 하는 산타할아버지,

 













산타클로스를 만나는 날은 추운 겨울인 12월 25일이며 이날을 우리는 크리스마스날이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계통 종교에서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날로 크리스마스이브 날 방에다 양말을 걸어두면 산타클로스가 몰래 나타나 양말에 선물을 넣고 사라진다고 해서 너도나도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두고 잠을 잤던 어린 시절이 모두 있을 것입니다. 저도 어릴 때 양말을 걸어두기도 했지만 이 산타클로스의 유래를 알아야 분천역의 산타마을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 터키 지역의 성 니콜라우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니콜라우스는 어느 가난한 집 앞을 지나다가 세 딸이 결혼할 적령기가 넘었는데도 지참금이 없어 결혼을 못한다는 딱한 사정을 듣고는 그날 밤에 몰래 그 집의 굴뚝으로 올라가서 굴뚝 안에다 금주머니를 떨어뜨렸는데 그게 마침 벽난로에 걸어두었던 양말에 쏙하고 들어갔습니다.







이일이 있고 난 뒤부터 미국에서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날 선물을 나누어 주는 게 일반화 되었으며 전 세계로 퍼졌다합니다. ‘한국대표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던 분천역의 산타마을은 1년 중 겨울은 12월 중하순부터 시작해 그다음 해 2월 중순까지 눈덮인 설국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산타마을을 즐길 수 있다면 7월 중하순부터 8월 중하순까지는 한여름의 산타마을을 조성해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도록 연2회 운영 중입니다.

 


그러나 분천역에 가시면 산타마을의 조형물과 분위기는 1년 내내 느끼게끔 해 놓았습니다. 분천역에 가시면 산타열차, 눈썰매장, 루돌프 얼음썰매장, 레일바이크, 마차 등의 체험 관광과 볼거리로는 역사 및 산타 조형물, 이글루, 트리와 대형풍차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경치가 좋은 산타마을이라도 금강산도 식후경입니다. 분천역에는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토속음식장터 운영과 농특산물 판매장, 산타 카페등을 운영하여 분천역 산타마을을 찾는 관광객을 함박웃음 짓게 합니다. 산타클로스 마을인 경북 봉화군 분천역은 경북 봉화에서도 태산준령에 둘러싸인 산간마을입니다.

 










지형적인 특성에다 워낙 오지 마을이다 보니 접근이 쉽지 않아 지금까지 자연경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청정지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봉화 여행은 교통의 불편을 감수해야만합니다. 부전역과 강릉역, 동해역 등 무궁화호가 일일 8회 운행하며 중부내륙순환열차와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일일 각각 4회와 6회가 운행 중입니다.





지금 이렇게라도 열차가 운행하게 된 것도 아마 동해와 영동선을 찾는 관광객이 대폭 늘어나서 운행하는 열차가 많아졌다 합니다. 그래도 부산 등지에서는 찾아가기가 쉽지 않은 분천역입니다. 또한, 분천이란 지명은 여우천의 물이 흘러 낙동강으로 합쳐진다 하여 부내라 했던 게 분천이 되었다 합니다.





영동선인 분천역은 1956년 1월1일 보통 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여름의 산타마을과 한겨울의 산타마을을 느끼고 싶다면 봉화군 분천역에서 청정 자연환경을 느끼며 힐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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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964-1 | 분천역산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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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1.06 07:32 신고

    싼타 할아버지가 있다니 정말 기분 좋은데요 올해도 아이들이 많이 기다리겠어요

  2. 공수래공수거 2017.11.06 16:07 신고

    여기는 다녀 왔던곳이라 반갑게 느껴집니다^^




(군위여행/군위가볼만한곳)선방산 지보사삼층석탑. 예술성이 뛰어난 군위지보사삼층석탑 


경북 군위를 여행하면서 마지막에 들렀던 지보사입니다. 사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지보사에는 아름답기로 둘째라 하면은 서러워할 삼층석탑이 있어 많이 알려진 사찰입니다. 군위읍 소재지에서 동북 방향 6km 거리인 상곡리 선방산 골짜기에 있습니다.





군위 선방산 지보사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상곡리 280

군위 선방산 지보사 전화:054-383-2898




2009/04/05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아미산. 부처의 눈썹이 과연 이럴까?-경북 군위군 아미산(402.4m)

2014/12/02 - (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2014/12/05 -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2014/12/13 - (경북여행/군위여행)산성면 화본마을, 화본역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2014/12/26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화본리 오층석탑. 군위 덕림사 화본리 오층석탑을 만나다.




마을 앞이 마치 배를 띄운 모습과 같다 하여 선방산이라 합니다. 그런 유서 깊은 산에 지보사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현재 지보사의 상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673년 신라 문무왕 13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만 전하며 지보사의 유래는 이 절에 세 가지 보물이 있었다 하여 지보사라 불렸다고 합니다. 그 보물은 큰 가마솥과 절에 단청을 입히는 물감에 쓰였다는 천연의 오방색 흙과 맷돌인데 현재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민족문화 말살을 획책하며 일본사람이 지보사의 보물을 모두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소실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지보사는 근대에 와서 1942년과 1972년에 각각 중수하였으며 대웅전, 삼성전, 서별당과 요사채, 그리고 경내에 보물 제 682호인 지보사 삼층석탑이 남아 있어 천년 사찰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지보사 삼층석탑을 알아보겠습니다. 지보사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렸으며 머리 장식인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지붕돌 등이 많이 깨어져 훼손 상태가 심하지만, 안정감과 세련미에 우아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몸돌을 바치는 기단석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줍니다. 기단의 각면 모서리와 가운데에는 기둥문양인 탱주를 조각했으며 두 기둥 사이에 각각의 무늬를 새겼습니다. 아래층은 동물상인데 사자 같아 보이지만 확실하지 않으며 위층 역시 팔부중상을 두 탱주사이의 각면에 새겨 넣었습니다.















또한, 기단 윗면과 몸돌 사이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판돌을 별도로 끼워 한층 더 삼층석탑의 품위를 높였습니다. 맨 아래층 몸돌에는 부처님을 모시는 감실을 뜻하는 문짝 모양을 새겼으며 별도의 돌을 올린 옥개석은 밑면에 4단인 받침이 있습니다.


































지보사 삼층석탑은 기단석과 판돌로 인해 전체적으로 우뚝한 느낌이며 석탑의 조각수법을 보면 통일신라 석탑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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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군위읍 상곡리 280 | 지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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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07.19 07:49 신고

    위염이 있어서 좋아 보입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 공수래공수거 2017.07.21 09:38 신고

    다음 군위 지역 답사때 가볼곳입니다^^

  3. *저녁노을* 2017.07.23 04:31 신고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욜^^




(의성군여행/의성군가볼만한곳)의성군 비봉산 대곡사 대웅전.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잘보여주는 의성 대곡사 대웅전 여행.


의성군의 비봉산 아래 고찰인 대곡사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대곡사는 산이 낮지만, 봉황이 날개를 펼친 듯 옹골찬 모습을 한 비봉산 기슭에 1368년 고려 공민왕 17년 지공스님이 원나라와 고려를 왕래하면서 불법을 펼친 것을 기념해 지은 절이라 합니다. 이는 처음 세운 목적에 따라 대국사로 불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대국사는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





의성 대곡사 주소: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894

의성대곡사 전화:054-862-4222


2016/11/07 - (경북의성여행)대곡사 적조암. 비봉산 대곡사 적조암의 독특한 건축양식인 구포루 인법당.


 


그러다 1605년 선조 38년에 탄우대사가 중창하였는데 그 뒤부터 대곡사로 절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대곡사의 창건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1960년 대곡사 앞의 작은 텃밭에서 통일신라 후기 것으로 보이는 금동 불상이 나왔고 고려 초기로 보이는 대웅전 앞의 다층석탑, 백운 이규보의 대곡사 탐방시구 등을 보면서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정확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의성 비봉산 대곡사에는 현재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곡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문화재는 대웅전입니다. 대웅전은 원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0호였다가 보물 제1831호로 2014년 6월에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보물로 승격된 대곡사 대웅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왜 보물로 지정되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한데 대곡사 대웅전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 규모의 다포계양식의 팔작지붕으로 5량가 건물입니다. 1605년 탄우대사가 중창했던 대웅전을 1687년 숙종 13년에 태전선사께서 다시 중건했습니다.





대웅전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불단이 뒷줄의 평주선 보다 뒤쪽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불단의 위치가 평면구성이 같은 다포계 양식의 팔작지붕인 불전에서는 18세기 이후 점차 줄어드는 추세로 대곡사 대웅전은 17세기 후반인 중건 당시의 불교 건축물의 건축사적 흐름을 읽게 해줍니다.





또한 후면 서측협칸에는 창호 중간에 기둥을 두어 창문을 두 개처럼 보이게 하는 영쌍창구조이며 좌우 측면과 배면의 벽체에는 중인방 없이 세로 벽선을 세웠으며 정면과 양 측면의 기둥 아래쪽에는 쪽마루를 달아 낸 흔적인 큰 구멍이 남아 있습니다.





불전 정면에 마루를 둔 사례나 영쌍창과 세로 벽선은 18세기 이전 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양식입니다. 다포계 형식의 포작은 내외 3출목이며 건물의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 면 기둥 간격을 똑 같게 하고 주간에 두 구씩의 공포를 배치하여 지붕 하중을 안정되게 받게 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건축공간계획과 구조계획이 함께 설계된 세심하고 능숙한 기법을 볼 수 있습니다. 기둥과 보 등의 부재를 보면 섬세한 가공이나 미적인 의장성은 최소화하고 가구의 구조는 간결하며 명확하게 결구된 양식입니다.





한마디로 대곡사 대웅전의 특징은 공포의 동일한 내외출목수, 배면 개구부의 영쌍창, 불단의 배치와 건의 마루 흔적 등을 보면서 대곡사 대웅전의 중건 당시 시기적 경향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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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사 대웅전은 의성지역의 불교사찰이 부흥하던 시기의 건축 양식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건축사적으로 대단한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화재청 보도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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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ngdante 2016.11.15 07:35

    단청을 하지 않은 대웅전 건물이
    오히려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

  2. 핑구야 날자 2016.11.15 07:57 신고

    컬러가 정말 아름답네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3. 공수래공수거 2016.11.15 09:59 신고

    고색창연하군요
    의성 대곡사 기억하겠습니다^^

  4. *저녁노을* 2016.11.15 15:17 신고

    단청이 화려하지 않고 자연그대로이군요.
    잘 보고갑니다.

  5. 영도나그네 2016.11.15 17:40 신고

    천년고찰 의성의 대곡사는 오랜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아름답고 고즈녁한 사찰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곳 소개 잘보고 갑니다..



 


☞(영천여행/영천가볼만한곳)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균형미가 아주 빼어난 고려시대 철불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을 만나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우리나라에서 산수가 빼어나지 않은 곳이 없어 우리 강산을 금수강산이라 부릅니다. 그 때문인지 여행지를 다니다 보면 경치가 정말 아름다워 감탄을 하게 되는데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와 선원동을 끼고 흐르는 자호천의 그림 같은 풍광도 나의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고려말의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이 사색하며 즐겨 올랐다는 조옹대에서 자호천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진 천애 절벽이 도연명이 무릉도원과 비견되었는지 ‘선원동’이라 했다는데 유래를 보면 조선 인조 때 정호례는 벼슬을 물리고 낙향하면서 중국 동진의 시인이었던 도원명의 시 ‘도화원기’의 신선이 산다는 ‘도화선곡’에서 마을 이름을 따왔다 합니다. 신선이 거처한다는 무릉도원의 풍경에 선원동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하겠습니다.







 

◆영천여행/영천 가볼만한곳◆


2008/11/17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거동사. 단풍이 황홀한 영천의 거동사입니다.

2016/05/06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정각리 삼층석탑. 보현보살을 상징하는 보현산의 상징인 영천 정각리 삼층석탑 여행. 정각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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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1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모고헌, 독특한 누각이 돋보였던 MBC드라마 화정 촬영지 영천 보현산 아래 옛 태고와 누각 모고헌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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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여행은 임고서원과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을 보기 위함인데 임고서원에서 대략 1.2km 가면 자호천에 놓인 양향교를 건너면 바로 삼거리 왼쪽이 선원동과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가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다시 자호천을 건너고 선원동 마을입니다. 원래 이곳에는 선원동과 어울리는 큰 사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찾을 길 없으며 어떤 연유로 폐사되었는지 모르지만 인근 논에서 농사일하던 주민이 철조여래좌상을 처음 발견하였습니다. 지금의 환구 세덕사 주위가 옛 절터지만 그 안쪽에다 작은 절를 짓고 철불 좌상을 안치하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지금 선정사는 한창 불사가 진행 중이었으며 새로운 대웅전에다 철불을 봉안했는데 이를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이라 합니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의 불두는 나선형의 머리카락에다 큼지막한 상투 모양의 육계를 하였습니다.


 

 

 

 


이마 위쪽에는 고려 불상에서 잘 보여주는 반달모양을 표현했으며 긴 눈썹에 크고 길게 눈꼬리가 올라간 눈 하며 코와 입, 인중, 양 볼에 깊게 팬 보조개 등 목에는 삼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얼굴은 근엄한 표정에다 넓은 어깨와 남성적인 당당한 가슴 하며 다리는 결가부좌 하였으며 균형미가 아주 뛰어난 불상입니다. 이리보니까 풍기는 느낌이 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흡사합니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의 법의는 우측 어깨를 드러내며 흘러내린 ‘우견편단’으로 몸에 밀착되어 잘록하며 균형 잡힌 몸의 곡선을 잘 드러내었으며 옷 주름은 간략하지만 결가부좌한 양다리 사이로 부채꼴 주름을 표현하였습니다.


 

 

 

 



대좌와 광배 그리고 철불의 양손은 발견 당시 분실하여 남아 있지 않았지만, 손은 다시 수리하여 복원하였으며 불상을 자세히 보면 주조하여 땜질로 붙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의 전체 높이는 151cm인데 불두 높이와 무릎 높이는 각각 49cm, 101cm, 어깨와 가슴 넓이는 각각 77cm, 48cm입니다. 당시 철불 조성이 많았던 시기인 통일 신라 말의 섬세한 조각 수법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불상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969년 7월에 보물 제513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이 봉안된 선정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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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770 | 선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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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06.24 09:55 신고

    임고서원과 멀지 않았군요
    다움 갈 기회가 있으면 가 봐야겠군요^^

  2. 위네모 2016.06.24 13:18 신고

    여름에 경북 놀러갈 까 했는데 좋은 정보 알아가게 되네요.
    기회되면 경북 영천에 들러서 한 번 구경해보는 것도 좋을거 같아요

  3. 솜다리™ 2016.06.24 13:24 신고

    철로 만들었다니...
    넘 신기하내요..^^
    덕분에 귀한 장면 보내요~

  4. 도느로 2016.06.24 13:27 신고

    철을 재료로 불상을 만든것은 처음봅니다.
    그래서인지 여느불상과는 그 느낌이 다르네요.
    오늘도 좋은 곳 잘 알아갑니다. ^^

  5. 울릉갈매기 2016.06.24 14:04

    색감이 남달라요~^^
    행복한 시간 되세요~^^

  6. 행복한요리사 2016.06.24 17:35

    영천 선원동의 철조여래좌상을
    만나고 갑니다.
    더운 날씨에 수고하셨습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

  7. pennpenn 2016.06.25 07:19 신고

    철조여래좌상과 그 배경이
    보통의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네요.

    오늘은 6.25전쟁이 터진 날이라 마음이 착잡합니다.
    주말을 즐겁게 보내세요~

  8. 드래곤포토 2016.06.25 08:03 신고

    영천에도 철불이 있었군요
    철원의 도피안사에도 통일신라시대 철불이 있습니다.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건축물인 극락전, 대웅전이 있는 안동 천등산 봉정사를 만나다. 



안동 천등산 봉정사는 부석사의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 있습니다. 수덕사는 가요의 ‘수도사 여승’이 대웅전보다 더욱 유명하며 부석사는 무량수전이 워낙 유명한데 그에 반해 봉정사는 상대적으로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도 봉정사 방문 전에는 그저 극락전 정도 있다는 것만 알았지, 봉정사의 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봉정사 일주문


그러나 안동의 봉정사도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이 있는 것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봉정사의 문화재를 보면 극락전과 대웅전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고금당과 화엄강당은 물론이고 후불벽화,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보물이며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최근까지 봉정사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날려 봉황이 앉은 곳에 절을 세웠으며 그중 한곳이 지금의 봉정사라하였습니다.


 

 


그러나 1971년 극락전 수리과정에서 상량문이 나왔으며 신라 문무왕 12년인 672년에 능인대사가 창건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봉정사를 품은 산은 처음에는 대망산이라 불렀습니다. 능인대사는 도를 터득하려고 대망산 바위굴에서 수도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다 천녀가 나타나 능인을 시험하기 위해 파계하여 함께 살 것을 유혹하지만, 끝끝내 부처님 말씀을 따르겠다며 거부하였고 천녀는 스님의 도력에 감복하여 옥황상제께서 내린 등불을 굴 안에 환히 밝히게 하였습니다.


 

 


스님은 더욱 수도에 전념하였고 도력으로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이곳에 내려앉아 봉정사를 창건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 ‘하늘에서 등불이 내려왔다.’ 하여 천등굴이라 하였으며 산도 천등산이 되었습니다. 봉정사는 창건과 함께 대략 6번의 중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여러 번 어려운 과정을 겪었고 근대인 1950년 한국 전쟁 때는 인민군이 주둔하면서 사찰에 보관 중이던 여러 경전과 사지(寺誌) 등을 불태우는 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한, 1999년 4월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한국 방문을 하면서 이곳을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그럼 먼저 천등산 봉정사의 일주문을 보면 현판은 추사체의 맥을 잇는 서예가 은초 정명수(1909~1999)선생의 글씨입니다. 이외에도 해인사의 해탈문과 진주 촉석루 등 힘있는 선생의 여러 작품이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 날아오르는 봉황을 닮은 듯 한 보호수 소나무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면 봉정사를 들어서는 입구인 만세루입니다.


 

 

 

 


만세루는 봉정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고색창연하며 켜켜이 때가 묻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여느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천왕문 등은 없지만 2층 누각 형태인 만세루 아래를 지나야만 법당에 이르게 됩니다. 만세루는 1680년(숙종 6년)에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덕휘루(德輝樓)라 불렀습니다.


 

 

만세루 


만세루는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대웅전에서 보면 마당 높이와 같은 단층입니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2층 누각으로 1층은 출입구 역할만 합니다. 그리고 2층은 휴식을 취하는 정자와 스님의 강학장소인 강당을 겸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16/05/31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만세루. 천년고찰의 풍미를 간직하며 묵직하여 봉정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봉정사 만세루, 봉정사 만세루


 

 

 

 

 

 


만세루와 마주한 건물이 두 개의 봉정사 중심 건물 중 한곳인 국보 제311호 대웅전입니다. 대웅전도 극락전과 함께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습니다. 대웅전은 1428년(세종 10년)에 불화기록과 1431년에 단청을 칠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1425년인 세종 7년쯤에 중창한 것이 아닌지 추정을 했는데 최근 고려시대 불화로 추정되는 후불벽화가 발견되어 대웅전 조성을 고려 말기로 보고 있다고도 합니다.


 

 

 대웅전


 

 

2016/06/02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고려후기의 고건축물로 평가받는 독특한 불전인 국보 제311호 봉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특이한 것은 대웅전 앞면에 조선시대 누각 형태인 툇마루를 달아내었다는 점인데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이 접목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1963년 1월 보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국보로 다시 승격되었습니다.


 

 

 

 

 

 

 

 

 

극락전


그리고 대웅전과 함께 봉정사의 중심법당인 국보 제15호 극락전입니다. 우리나라 고려시대 건축물로 가장 오래된 곳 중 한 곳입니다.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하며 무량수전, 아미타 전이라 부릅니다. 1972년 해체 수리하면서 인조 3년인 1625년 작성한 상량문 기록을 찾았는데 고려 공민왕 12년인 1363년에 극락전의 지붕을 수리했다고 되어 있어 벌써 그 이전에도 건물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극락전은 가운데다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불당 벽을 만들어 불단을 설치했으며 닷집은 화려하지 않고 섬세하게 꾸몄습니다. 앞면 3칸에 옆면 4칸의 맞배지붕건물로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건물입니다. 처음에는 대장전으로 불리다가 극락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극락전 앞에는 고금당이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화엄강당을 세워 극락전과 대웅전을 두 개의 영역으로 만들었습니다. 고금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건물로 맞배지붕을 하였습니다.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여도 당시 건축기법이 주목받을 만큼 인상적이며 보물 제449호 지정되었습니다. 1969년 해체 수리과정에서 1616년인 광해군 8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을 찾았는데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엄강당 


화엄강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화엄강당은 ‘양법당중수기’를 보면 17세기에 대웅전을 고쳐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이때 화엄강당도 창건이나 수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본전의 대웅전을 고려하여 간결한 장식으로 꾸몄으며 법당과 강당의 차별성을 두려 했습니다. 보물 제448호.


 

 


2016/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 봉정사의 보물인 고금당, 화엄강당과 요사채인 무량해회를 만나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무량양회


 

 

 

 

 

 


봉정사 삼층석탑


극락전 앞에 자리한 봉정사 삼층석탑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중 기단에 석탑은 전체적인 무게로 인해 기단부가 일부 깨져있습니다. 또한 상륜부 일부는 분실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양호한 상태입니다. 고려시대 석탑이며 평범하며 일반적이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2016/06/16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삼층석탑. 봉정사의 고 건축물 극락전과 같은 고려 중엽의 봉정사 삼층석탑을 만나다. 봉정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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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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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06.17 09:38 신고

    꼭 가보고 싶군요^^

  2. 드래곤포토 2016.06.17 10:10 신고

    역사가 엿보이는 사찰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3. 도느로 2016.06.17 14:02 신고

    안동 봉정사도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네요.
    모진 역사를 이겨낸 만큼 잘 관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금요일되세요 ^^

  4. 행복한요리사 2016.06.17 22:12

    풍광이 아름답고 멋진
    천등산 봉정사를 둘러보고 갑니다.
    금정산님! 편한 시간 되세요. ^^

  5. 귀여운걸 2016.06.19 15:44 신고

    우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건축물을 접하고 오셨군요~
    정말 뜻깊고 알찬 시간이셨겠어요!
    저두 다음에 시간내서 한번 다녀와야겠네요ㅎㅎ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삼층석탑. 봉정사의 고 건축물 극락전과 같은 고려 중엽의 봉정사 삼층석탑을 만나다. 봉정사 삼층석탑



 안동 봉정사에는 석조조형물 중 석탑으로는 유일하게 고려 시대 중엽에 극락전과 함께 조성된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었으며 극락전 앞마당에 자리합니다. 봉정사 삼층석탑은 이중 기단으로 이루어졌는데 석탑의 전체적인 무게 때문인지 기단부 일부가 파괴되었습니다.







◆안동 봉정사 꼭 보야할 곳◆


☞2016/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 봉정사의 보물인 고금당, 화엄강당과 요사채인 무량해회를 만나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2016/06/02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고려후기의 고건축물로 평가받는 독특한 불전인 국보 제311호 봉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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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9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2016/05/24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 양화는 남아 있으며 그 외에는 분실되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층석탑은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습니다. 봉정사 삼층석탑은 이중기단의 방형석탑으로 기단부보다는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은 적당한 데 반해 옥개석은 높이보다 폭도 좁고 옥개석의 처마 또한, 반전이 약합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날렵하지 않은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는 평가입니다. 봉정사 삼층석탑의 전체높이는 318cm이며 기단부의 한변은 237cm로 2층 기단을 만들어 탑의 토대를 만들고 다시 삼층의 몸돌을 올려 전형적인 석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단과 2단의 기단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기단부보다 폭이 확 좁아진 탑신부 각층의 몸돌 크기는 위로 올라갈수록 비례감 있게 줄어들면서 폭의 변화도 적습니다.


 

 

 

 


지붕돌은 높이에 비해 폭도 좁고 두께도 두툼한 게 당시에 조성된 다른 석탑과 비교해도 두드러지고 드러난 게 없는 그저 평범하며 일반적인 고려 중엽 석탑양식을 보여줍니다.


 

 

 

 

 

 

 

 

 

 

 

 


안동 봉정사 


☞봉정사 주소: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봉정사 전화: 054-853-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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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6.06.16 06:09 신고

    봉정사삼층석탑...잘 보고갑니다.
    분위기도 고즈넉하니 좋아 보이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2. pennpenn 2016.06.16 07:27 신고

    봉정사 삼층석탑 구경 잘 했습니다.
    미세먼지가 없으니 하늘이 깨끗합니다.
    목요일을 잘 보내세요.

  3. kangdante 2016.06.16 07:28

    고려시대 삼층석탑..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

  4. 핑구야 날자 2016.06.16 08:08 신고

    세월을 기억하고 있는 삼층석탑이 중심이 되겠네요

  5. @파란연필@ 2016.06.16 09:11 신고

    봉정사는 극락전으로 많이 알려진 사찰인것 같은데... 잘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6. 공수래공수거 2016.06.16 09:26 신고

    봉정사에 역사 유물이 많군요
    꼭 들러 봐야겠습니다 ㅎ

  7. 죽풍 2016.06.16 09:28 신고

    빠른 시일 안에 봉정사로 떠나고 싶네요.
    잘 보고 갑니다. ^^

  8. 浩然 2016.06.16 09:53 신고

    지난 4월에 다녀온 곳이라 그런지 감회가 새롭습니다.
    선관광 후학습 잘하고갑니다^^

  9. 솜다리™ 2016.06.16 10:28 신고

    탑주변의 노오란 꽃들이 인상적이내요..^^

  10. 대한모황효순 2016.06.16 13:23

    아름답고 멋집니다.
    직접 보면 더 멋지겠어요.
    감사히 보고 갑니다.

  11. 비키니짐(VKNY GYM) 2016.06.16 13:30 신고

    봉정사에 대해서 잘 보고갑니다.
    좋아보이네요^^ 즐 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