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경북의 오지마을인 봉화여행은 벌써 하고 왔는데 차일피일 여행 포스팅을 미루다 보니 이제 포화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봉화여행에서 밀린 숙제 한 곳을 하려 합니다. 봉화에는 100여 개가 넘는 정자가 있어 정자의 고장이라 하는데 그중에서도 번잡하지 않고 한적하여 신선이 내려와 머물렀을 정도로 조용하고 아담한 명소 와선정을 소개합니다.





봉화 춘양 와선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
봉화 춘양 와선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32호



2012/12/07 - (경북봉화여행)봉화 선달산산행. 신선이 놀던 곳 백두대간 선달산 산행

2012/12/16 - (경북여행/봉화여행)단맛없는 사이다 맛이 이런 맛.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 오전약수

2013/11/13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청량산 전망대 청량산 축융봉 산행.청량산

2017/09/25 - (봉화여행/봉화가볼만한곳)봉화목재문화체험관. 춘양목의 고장 봉화목재문화체험관 여행하기

2017/11/04 - (경북여행/봉화여행)산타마을 분천역. 우리나라에도 산타마을이 있어요? 영동선 분천역 산타마을

2017/11/15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도암정. 정자의 고장 봉화에서 만난 도암정 도암정





와선정은 태백산이 있는 봉화군에서도 춘양목으로 유명한 춘양면 소재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마침 춘양면소재지 고택에서 1박했던 터라 안내판의 와선정을 보고 이른 아침에 운동 삼아 휑하니 차를 몰고 둘러보고 왔습니다. 와선정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번지에 속칭 골띠마을에 위치합니다.




작은 주차장에서 나무로 만든 아치형의 오현교를 건너면 바로 토담을 두른 와선정 정자입니다. 그런데 오현교 아래를 보면서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골짜기의 깊이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꼭 편편한 암반을 끌로 깊게 긁어낸 듯 패인 골짜기에는 높이 5m의 폭포가 걸려 있으며 그 옆에 벼랑에다 와선정을 세웠습니다.

 


낭떠러지에서 쏟아내듯 떨어지는 물보라가 은색으로 반짝여 은폭이라 불리며 그 폭포를 안은 바위가 사덕암인데 이는 “덕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바위”로 풀이하자면 태백오현의 뒤를 이어 다시 와선정은 ‘덕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외에도 폭포 옆 바위에는 와선정과 사덕암의 글씨가 남아 있으며 와선정은 산림 처사의 은둔처로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곳에 다섯 분의 은자가 소요하며 시문을 나누고 후진양성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태백오현이라 불렀습니다. 태백오현은 잠은 강협(1602~1671), 포옹 정양(1600~1668), 각금당 심장세(1594~1660), 두곡 홍우정(1595~1654), 손유당 홍석(1604~1680)을 칭하는데 모두 고려와 조선에서 명문가로 이름을 더날였던 후손들입니다.

 











1636년(인조14년)에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태종에 세 번 절하고 9번을 땅에다 이마를 박으며 조아린 ‘삼배구고두례’인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자 이들은 결기의 심정으로 벼슬을 버리고 태백산 기슭으로 내려왔고 모두 와선정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살면서 대명절의를 지키며 서로를 위로하고 우의를 다졌다 합니다.







은폭



그들이 우위를 다졌다는 와선대에다 세운 와선정은 앞면 2칸, 옆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인 마루 형태의 건물입니다. ‘와선정기’를 보면 와선정은 1832년(순조32년) 후손인 강씨와 심씨가 합해 정자를 세우고 난 후 ‘와선지’ ‘사덕암지’의 뜻을 따라 와선정이라 이름 하고 1895년에는 정자를 수리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각문을 들어서자 작은 돌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정자의 뒷면입니다. 계곡을 마주하며 세살분합문을 들어 올리는 열개식인 앞면과 달리 뒷면은 판자로 막아 각각 칸에 작은 문을 1개씩 달았고 좌우에는 흙담 1칸에 1칸은 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통간이며 우물마루에다 정자 바깥의 네면은 쪽마루를 돌렸지만, 뒷면을 제외한 삼면에는 평난간을 설치했습니다.

 









‘태백오현’은 조선 정조 14년에 왕명으로 병자호란 때 재신척화 순절자를 기록한 추념록인「존주록배신열전」에서 이들 다섯 선비를 태백오현이라 기록하고 받들며 경의를 표한대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