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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동구여행)초량동 옛 백제병원 내부 들여다 보기. "옛 건물을 사랑해주세요. 조용조용 살금살금" 옛 백제병원 건물 내부를 보고 경악.


부산 동구 부산역 앞에는 초량동 차이나타운과 함께 현재 근대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옛 백제병원으로 문화재위원회에 심의를 거쳐 문화재로 등록을 기다린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지금은 아마 문화재로 지정 되었을 것 같습니다.



옛 백제병원은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지어진 부산 최초의 개인종합병원으로 1922년 명지 출신 최용해씨가 5층 규모의 건물을 짓고 서양 의료진을 두어 성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개원과 함께 악성루머에 시달리다 1932년 폐업을 하였습니다.



그 후 건물의 관리권은 중국인에게 넘어가 봉래각의 상호가 걸린 중국요리집이 들어섰다가 일본아까즈끼부대의 장교숙소로 사용되다 해방을 맞았습니다.



해방 후에도 옛 백제병원은 많은 변화를 겪는데 치안대 사무소, 중화민국영사관을 거쳐 1953년에는 신세계예식장으로 운영되었습니다. 현재 옛 백제병원은 4층 규모로 남아 있는데 1972년 일어난 화재로 인해 5층 부분은 소실되어 철거가 된 상태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무실로 임대가 되어 건물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옛 백제 건물은 각각 건립된 두 동을 하나로 합친 형태의 건물입니다. 백제병원의 출발점이 초량 이바구길 출발점이다 보니 여러번 이곳을 가게 되었는데 내부는 아직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번 ‘산복도로 개통 50주년’ 행사에서 옛 백제병원 1, 2층을 동구의 사진전시실로 사용하여 겸사겸사하며 건물 내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외벽은 붉은 벽돌을 올려 지은 건물이며 건물의 내부를 들어가면 길게 이어진 복도를 지나고 왼쪽으로 2층으로 올라가는 목조계단과 장식 등이 그 당시의 모습대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또한 내부 구조는 사각형과 마름모꼴 등 건물의 모양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방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마침 1층에서 부산항설계공모전에 입선 된 분들의 사진전을 본다고 들어서니 건물관리인이 듯 한분이 “목조건물이라 2층에는 10명 이상 올려 보내지마세요”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1층 전시실 내부를 보면서 천장을 보았습니다. 콘크리트가 아닌 나무를 얼기설기 덧 데어진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고 벽면은 붉은 벽돌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사진전보다는 건물의 내부에 더 관심이 많아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삐걱삐걱하는 나무계단을 밟고 오르면 작은 사무실이 긴 복도를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벽에는 세월이 정지된 듯한 오래된 포스트와 표어가 붙어 있어 과거로의 여행을 온 기분입니다.




일부는 개인 사무실이라 출입을 할 수 없도록 막아 놓아 옛날 동구 모습이 ’추억의 사진‘으로 남아 있는 전시실로 가 보았습니다. 2층은 1층과 다르게 천정과 벽은 막혀 있지만 바닥은 꿀럭꿀럭 한게 덩치가 큰 사람이 올라서면 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2층에서는 아이나 어른이나 뛰는 것은 금물입니다. 살살 다녀야 합니다. 2014년 10월31일(금)부터 11월11일(화)까지 ’산복도로 추억 부산항 이야기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백제병원 내부를 아직 보지 못한 분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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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하동여행/악양여행)박경리 토지 최참판댁, 대하소설 '토지' 무대 평사리 최참판댁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토지는 1969년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94년 까지 25년간을 집필한 우리나라 최대의 대하소설입니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대표작으로 KBS와 SBS에서 여러번 드라마로 제작되어 시청자로부터 많은 인기를 끌었던 국민 드라마입니다.


 

소설속의 토지 무대는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입니다. 2001년도에 하동군에서는 토지속의 최참판댁을 소설 밖으로 나오게 한 뒤 건물을 준공하여 토지을 찾는 많은 관광객에게 볼거리와 이야기꺼리를 제공하였습니다.



 

현재 평사리에는 드라마 세트장과 함께 평사리 문학관, 최참판댁 소설의 무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최참판댁과 이용 일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가 됩니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토지는 전5부16권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럼 소설속의 토지 무대인 악양 평사리로 최참판댁를 만나 보겠습니다.

 

 

구한말인 1897년.. 하동의 평사리에는 5대째 지주를 하는 만석꾼 최참판댁.......그곳은 무듬이들로 불리는 악양들판이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경치가 너무 좋아 중국 호남성 악양에 견줄만하다는 하동의 악양에도 똑 같은 이름의 동정호와 들판을 지키는 부부소나무가 내려다 보입니다.


 

평사리는 악양 소상팔경중 7경인 ”평사리 흰모래밭에 기러기가 줄지어 앉고 있다“의 평사낙안(平沙落贋)에서 음을 취하였다는 평사리 상평마을 최참판댁. 섬진강의 흰모래밭에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악양 들판을 보노라면 토지속의 최참판댁이 또렷히 그려집니다.

 

 

최참판댁은 주말이면 관광버스를 이용한 단체관광객과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넘쳐 납니다. 필자도 섬진강을 따라 걷다가 찾아온 최참판댁, 걸어오면서 악양들판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곳에서 과연 만석꾼이 나올 수 있을까하며 만석이 나올 논의 규모를 생각하다 보니 최참판댁 입구 매표소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악양면은 최참판댁과 함께 국제슬로시티로 인증을 받았는데 국내에서는 5번째이며 세계에서 111번째라합니다. 차를 재배하는 곳으로는 세계 최초로 인증을 받았다는 안내판에  달팽이가 친환경을그려내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관광지라보니 '최참판댁 관람료'가 있습니다. 어른 1,000원, 청소년과 군인 800원, 어린이 600원


 

 

최참판댁 입구는 평사리의 상평마을입니다. 마을길을 따라 많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음식점및 악세서리 가게등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상평마을의 공동 우물입니다.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저도 시원한 우물물을 한바가지하고 올라갑니다. 곧 드라마 촬영을 위해 지어졌던 세트장이 시작됩니다. 요즘은 민속박물관이나 가야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는 초가집이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소설속의  토지 무대를 사진으로 만나봅니다. 끼이익~~끼이익 물레방아가 소음을 내며 돌아갑니다..... 


 

 

 

 

 

 

 

 

 

 

 

 

 

 

 

 

 

 

 

 

 

 

 

 

 

 

 

 

 

이제 최참판댁을 보기 위해 입구로 들어서면 최참판댁 촬영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되었네요. '군도' '꽃들의 전쟁' '구가의 서' '맏이'등 이 이곳에서 쵤영이 되었습니다. 


 

 

 

그럼 최참판댁 구경을 사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관광객이 마굿간으로 몰려가니 소가 머리를 흔들며 음메~음메~하는게 신기한지 어르신들이 많이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ㅎㅎ 진짜 소가 아닌 모형입니다. 


 

 

 

 

 

 

 

 

 

 

 

 

 

 

 

 

 

 

 

 

 

 

 

 

 

 

 

 

 

 

 

☞최참판댁 교통편

하동에서 평사리를 가기위해서는 화개, 쌍계사, 악양 완행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오전6:30분, 8시, 9시15분, 10시10분, 11시40분


하동에서 평사리 최참판댁 버스시간표






2014/10/24 - (경남여행/하동여행)화개장터. “있어야 할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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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축제)제7회 부산송도고등어축제 전야제 불꽃축제와 부산송도고등어 축제 일정


◆제7회 부산 고등어 축제◆

일정:2014년 10월24일(금) 전야제~10월26일)일) 3일간.

장소:송도해수욕장, 부산공동어시장 일원

◆제7회 부산 고등어 축제 행사 일정◆

제7회 부산고등어 축제는 10월24일 오후 6시에 개막식을 시작으로 여타 축제와는 다른 부산고등어축제만의 특화로 차별성을 하였습니다. 보여 주기식이 아닌 체험 프로그램 위주로 강화하여 한층 축제의 흥을 돋구도록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한 행사로 펼쳐집니다. 10월 24일 전야제의 불꽃축제 사진과 동영상입니다. 송도해수욕장을 화려하게 수놓은 불꽃의 향연 부산송도고등어축제 전야제는 끝이 났지만 본격적인 부산송도고등어축제는 지금 부터 시작입니다. 고등어 축제의 진수는  10월25일 26일 양일간이며 이때부터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시작됩니다. 

 

부산 고등어축제 일정을 보겠습니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고등어 작업 및 경매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행사가 24일~26일까지 합니다. 또한 고등어 축제 단골 행사인 맨손으로 고등어 잡기도 10월25일~26일 2일동안 열립니다. 부산에서는 고등어하면 고등어찌개도 맛있지만 고등어를 불에 직화하는 고갈비의 맛이 일품입니다. 대학시절 저렴하게 갈비를 뜯었던 고갈비 맛을 잊을 수 없는데 고갈비 화덕구이 체험도 10월25일~26일 양일간 열립니다. 고등어 경매잔치와 고등어 보물찾기도 10월25일~26일 행사를 하며 다양한 체험 및 참여 프로그램으로 꾸며집니다.

이외에도 전국주민자치회 경연대회(24

일), 댄스 동아리 베틀 전국댄스경연대회(25일). 고등어 요리 경연과 외국인 맛 대결(26일), 전국수산인 씨름대회(26일)등으로 진행 됩니다. 내고장 부산서구의 부산 고등어 축제 많이많이 놀러 오세요.

 

 

  10월24일 부산 고등어 축제 개막축하 공연은 7080 가수들로 꾸며지며 이은하, 건아들, 우순실, 박상운,백수정 등이 출연하였지만 25일 고등어 매직 콘서트, 26일 달밤 뮤직 웨이브(26일)가 각각 송도해수욕장 특설무대에서 오후 7시에 진행합니다. 제7회 남항대교 시민건강걷기대회(26일)와 고등어축제 사진공모전(24~26일), 고등어홍보관과 고등어요리관 수산물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수산 기업 홍보마당이 운영됩니다. 이번기회에 저렴하게 구입하세요. 고등어 버거 만들기, 고등어캐릭터 만들기 등 가족단위 관광객 체험부스도 마련이 되어 있습니다. (문의 문화관광과 051-240-4064)


◆2014 부산 송도 고등어 불꽃축제 사진으로 보기◆



























2014/10/21 - (축제)제7회 부산 고등어 축제가 송도해수욕장에서 열려요.


2014/10/23 - (축제/부산여행/부산불꽃축제)제10회 부산불꽃축제 행사 일정표와 부산불꽃축제 명당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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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하동여행)화개장터. “있어야 할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화개장터 삼매경에 빠지다


화개장터는 영호남의 화합을 상징하는 장터입니다. 그 이유는 김한길이 곡을 쓰고 가수 조영남이 부른 화개장터를 들어보면 그 해답이 나옵니다. 필자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구례와 하동, 광양이 만나는 곳에 장이 섰던 화개장터를 찾아갔습니다. 평일인데도 엄청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화개장터는 지리산이 품고 있어 그런지 온통 약초와 산나물 천지였습니다. 화개장은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유래를 보면.


 

 화개장터는 섬진강에 강물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사람이 모여 들었습니다. 삼한시대 부터 장터가 있었다는 구전으로 역사가 아주 오래된 곳입니다. 그러다 조선시대인 1726년에 최고의 번성기를 이룹니다. 남원과 상주의 상인까지 이곳에서 거래를 하였고 섬진강을 통해 중국비단과 제주도 생선까지 들어 올 정도로 화개장의 물동량이 엄청나 전국 7위 규모의 거래를 이루는 큰 장터 였습니다.


 

그러나 화개장은 6.25 한국동란과 함께 된서리를 맞습니다. 전쟁이 휴전되고 지리산으로 숨어든 빨치산의 토벌 등으로 산촌은 피폐되면서 화개장도 차츰 설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 후 산업화의 발달로 전통시장인 화개장은 명맥마저 끊어져 오다가 조영남의 ‘화개장터’와 함께 2001년 봄에 지금의 화개 장터가 개장되었습니다.

 

 

하동군 화개면 탑리의 화개 장은 지금은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는 조영남의 노랫말 처럼 전통시장의 규모보다는 관광지 역할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생활필수품 보다는 지리산에서 생산되는 온갖 진귀한 약초와 산나물이 시장 전체를 이룹니다. 


 

자 지금 부터 화개장터를 둘러 보겠습니다. 이곳을 둘러보아도 약초 판매장, 저곳을 둘러보아도 약초판매장, 가게마다 약초의 품목을 적은 종이가 다닥다닥 붙어 수십개가 넘어 보입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신기한 이름도 많습니다. 필자가 아는 이름도 좀 보입니다. ㅎㅎ 마가목, 산더덕, 표고버섯, 산마, 능이버섯, 자연산 송이, 둥굴레, 돼지감자, 곤드레 만드레하는 그 곤드레....ㅋㅋ황기, 죽순나물 등 말린 것과  건조하지 않은 생 약초까지 즐비합니다. 꼭 한방 약초원을 걷는 것 같습니다.


 

 

 

전통장터에서 볼 수 있는 이것은 ....아주머니가 야산에서 따온 것 같습니다.  ㅎㅎ 요고는 약으로 한다는 돌배. 배가 아주 크다고 생각하는데 돌배는 아주 작아요. 얼라(애기) 주먹 만 합니다. 


 

담벼락에 붙어 지리산에서 유명한 햇밤을 판매하는 아주머니입니다. 우리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한때 효자 상품이었던 밤도 이제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는데 올해는 밤 값이 좋아 아주머니의 굽은 등이 쭉 폈서면 합니다.


 

 

옛날 시골 장터에서는 반드시 있는 대장간입니다. 집안 텃밭에서 기르던 야채를 들고 나와 내다 팔고 이곳에 들러 호미며 낫을 손질하고 사고하며 장터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곳 대장간. 대장간 앞에 화개장터를 찾는 관광객이 제일 많이 몰려 있습니다. ㅎㅎ


 

 16세 까까머리 중학생일때 처음 쇠망치를 잡았다는 탁수기씨의 대장간은 어느듯 50여년인 넘어 대장 장인이 되었습니다. 진열된 칼이며 호미며 낮은 대장장의 삶을 보여 주듯 지금도 망치로 두드리며 담금질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요즘은 보기 힘든 풍경 화개장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누런 호박을 보면 가을을 떠 오르게 합니다. 초가지붕에 걸려 있는  호박, 어릴 때 늘 상 봐 왔던 일상입니다. 호박이 엄청 크네요. ㅎㅎ 한사람이 들 수 없을 정도로 큰 호박, 반으로 뚝 잘라 호박죽을 하면 너무 맛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호박떡도 하면 두명먹다 한명 어디로 간다고 해도 모를 맛이죠. 부모님과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늙은 호박도 사고 이번 주말에는 화개 장터를 찾아보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화개 장터는 화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섬진강에는 은어와 참게로 유명하여 화개 인근에 음식점에서는 은어구이, 은어회, 참게탕으로 요리를 하는 집이 즐비합니다. 시원한 참게탕이 급 땡기는데요.....살아 았는 은어와 참게가 수족관에 가득합니다. 


 

 

하동에서 유명한 대봉감으로 만든 곶감입니다. 필자의 고향에서는 '불통감'이라 했는데 ㅎㅎ 일반 곶감보다 훨씬 당도가 높고 맛있습니다.  말랑말랑 한게 산행을 할때 간식으로 최곱니다.


 


화개장터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장터에서 반드시 먹고 온다는 국밥입니다. 물건을 내다 팔고 아이들 간식거리도 사고하며 이곳에서 주린 배로 막걸리 한사발과 먹었을 것 같은 장터국밥,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의 장소입니다. 


 

 

 월래 화개 장터 자리는 지금의 화개터미널자리입니다. 김동리가 1948년에 쓴 소설 ‘역마’에 나오는 화개장터의 풋풋한 맛은 지금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옛 추억의 한 면은 화개장터를 찾는다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화개터미널 맞은 편에 옛 장터임을 알리는 화개장터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주위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습니다. 봄이면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우는 쌍계사 10리 벚꽃길, 천년사찰 쌍계사, 박경리 ‘토지’의 무대였던 악양 평사리 최참판댁, 구례의 피아골과 연곡사, 영호남을 잇는 남도대교, 광양매화마을 등 사계절 솔솔한 구경거리가 만만치 않은 곳입니다. 아참 빠질 수 없는 게 또 있습니다. 섬진강의 풍치 또한 놓치지 마세요.

 

☞(경남여행/하동여행)화개장터. “있어야 할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하동에서 화개장터 교통편.


하동터미널에서 화개가는 버스는 무지무지 많음. 직행은 오전8시20분, 9시30분, 10시30분, 11시30분 등 1시간 간격으로 11회 운행하며 군내버스인 완행도 많이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2014/10/21 - (경남여행/하동여행)악양 평사리공원.오토 캠핑장과 함께 섬진강을 즐길 수 있는 조망처 평사리공원에서 힐링을 하다. 평사리공원


2014/10/12 - (하동여행) 하동터미널 버스시간표. 군내버스, 직행버스, 고속버스 시간표가 있는 하동버스터미널


2014/10/11 - (경남여행/하동여행)하동 걷기 좋은 코스 하동포구~평사리 최참판댁 섬진강 둘레길을 걷다. 2


2013/08/25 - (전남/경남/구례군/하동군여행)지리산둘레길 숨게스트하우스. 구례,하동 지리산둘레길에서 잠자리 걱정은 끝-숨 게스트하우스


2011/06/30 - (경남여행/하동여행)쌍계사.한 겨울 칡꽃이 핀 자리에 쌍계사를 짓고 꽃이핀 마을이라 화개마을


2010/05/25 - 지리산 남부능선의 최남단 하동 형제봉을 부춘골에서 오르는 새코스


2009/05/29 - 지리산 쌍계사 중앙에 자리잡은 진감선사 대공탑비의 화려한 예술성입니다.


2008/06/05 - 하동 촛대봉(728m)


2008/07/23 - 토벌대와 파르티잔간의 격전지 -지리산 대성골


2013/05/18 - (전남여행/구례여행)섬진강에 솟은 하천산~밥봉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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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 망덕포구 시인 윤동주 유고 보존집 정병욱 가옥 여행하기...


시인 윤동주(1917~1945)를 민족 저항시인으로 부릅니다. 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고가 우연찮게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에 보관을 하였기에 현재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등 그의 대표적인 시들이 세상에 남아 있습니다.


 

그럼 윤동주와 정병욱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정병욱(1922~1985)의 집은 전라남도 광양 망덕포구에서 양조장과 정미소를 운영하였습니다. 부친은 진월면장을 역임하는 등 넉넉한 가정형편으로 1940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을 하여 2년 선배인 윤동주와 운명의 만남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준비하면서 그의 시 19편을 묶어 졸업기념 시집을 내려고 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을 우려한 주위의 만류로 포기하고 필사본 3권을 만들어 그의 절친인 정병욱과 스승인 이양하교수, 1권은 가지고 유학길에 오릅니다.


 

일본 유학에서도 그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에 재학 중 독립운동을 하였다하여 체포되어 고초를 겪다가 1945년 2월16일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만 27세의 젊은 나이에 옥사를 하게 됩니다.

 

 

세계2차대전을 일으켰던 일본은 수세에 몰리면서 마지막 발악을 합니다. 정병욱 또한 강제 징집을 당해 전장 터의 총알받이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는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 박아지여사에게 윤동주의 필사본 원고를 “꼭 지켜 달라” 부탁을 하면서 전쟁터로 나갑니다.


  

다행히 해방과 함께 살아 돌아와 윤동주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정병욱은 그 길로 고향집에 내려가 어머니에게 맡겨둔 윤동주의 필사본 행방을 찾습니다.

 

 

어머니는 집 마룻바닥을 뜯고 그 밑에다 항아리를 묻어 숨겼던 윤동주의 필사본을 찾아 정병욱에게 내어 주었고 그 뒤 서울에서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전 부산대, 성균관대 교수)와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이름으로 ‘윤동주 시집’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현재 망덕포구에는 1925년 건립된 정병욱 가옥이 근대문화유산 제34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병욱 교수의 어머니가 운동주의 필사본을 보관하기 위해 마룻바닥을 뜯었던 곳도 흔적을 달리하며 그 위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정병욱 가옥은 윤동주의 필사본을 숨겼던 곳으로 알려지면서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지정 후 복원공사를 한다며 지붕의 함석을 들어내고 새 함석과 기둥 등의 공사를 하였습니다.


 

함석지붕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녹이 쓸면서 삭았고 기둥은 덧 데어져 1962년도의 사진모습과는 완전 다른 외형으로 바뀌어 버린 것을 보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현재 건물을 관리하는 정병욱의 외종조카 박춘식씨로 부터 윤동주님과 정병욱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윤동주 유고집 보관 정병욱 가옥 사진으로 만나기◆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 망덕포구 시인 윤동주 유고 보존집 정병욱 가옥 여행하기...교통편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을 찾아가는 방법은 광양과 하동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필자는 하동구경을 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망덕포구로 이동했습니다. 부산서부터미널에서 하동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8시, 9시 등 1시간 간격으로 하루 10회 운행을 하며 (요금 1만1100원) 하동터미널에서는 54번 망덕행 광양 시내버스로 갈아 타면 됩니다. 오전 7시30분, 8시, 8시50분, 9시50분, 10시50분 11시50분 등 하루 15회 운행.

부산서부터미널에서 중마터미널행은 동광양 행 버스를 타면 됩니다.  오전7시20분, 9시20분,9시30분, 9시50분,11시 등 13회 운행. 광양시의 중마터미널에서 54번 하동행 시내버스 시간은 오전 6시, 6시50분, 7시8분, 8시8분, 9시8분, 10시8분, 11시08분 등 16회 운행. 하동과 중마터미널에서 출발하는 54번 버스는 망덕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섬진강 하구쪽으로 내려간 뒤 오른쪽으로 200m 쯤 거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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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하동여행)악양 평사리공원. 캠핑장과 함께 섬진강을 즐길 수 있는 조망처 평사리공원에서 힐링을 하세요,


동학혁명에서 근현대사까지를 담은 대하소설 박경리 '토지'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이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입니다. 또한 최참판댁의 만석지기 악양들인 무님이 들이 섬진강과 함께 그림 같은 모습으로 펼쳐집니다.



평사리는 비옥한 토지에다, 섬진강을 통한 해상 교통의 발전, 신라와 가야시대에 번성되었던 역촌은 육로 교통이 함께 활발하여 외래 문물 교역이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악양면은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며 평사리공원이 있는 섬진강 모래밭을 ‘금당’이라 하고 작은 호수를 ‘동정호’로 악양의 동정호에 빗대어 붙혀진 이름입니다.



현재 동정호는 확장을 하여 생태공원으로 새롭게 꾸며져 있습니다. 평사리의 유래는 악양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악양 소상팔경’의 하나인 평사낙안과 같다하여 평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평사리 토지길을 걷다보면 섬진강변에 마련된 평사리 공원은 공원의 기능과 함께 오토캠핑장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19번 국도에 있는 평사리공원은 여름이 끝나 갈 무렵에 찾아갔습니다. 평사리의 최참판댁을 찾는 관광객과 막바지 여름을 즐기려는 캠핑 족이 함께 어울려 평사리 공원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붐볐습니다.

 


이곳 백사장과 화개면 쌍계사 일대에는 요즘으로 말하면 영화 세트장이 꾸며졌습니다. 1955년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이 촬영된 지역으로 한국전쟁 중 빨치산들의 삶과 몰락을 그린 영화이며 그 당시 많은 논란을 낳았던 작품입니다.

 



이곳 백사장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주인공 노경희가 지리산에서 내려와 자유를 찾아가는 장면을 촬영하였던 곳입니다. 현재 한국영상자료원과 하동군에서 영화의 고향 ‘피아골’ 촬영장소란 표지석을 세워 놓았습니다. 필자도 태어나기 이전의 영화지만 ‘피아골’의 이름만 들어도 그 영화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구례군 토지면의 피아골은 유명합니다.



이곳에는 ‘상사의 내 하동’ 김동현, ‘섬진강’ ‘섬진강 탄곡’의 이영하가 작사한 섬진강 노래비와 토지의 등장 인물인 ‘서희와 길상’의 캐릭터도 함께 세워져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문화 생태 탐방로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 ‘토지길’ 중 평사리 공원 제1코스가 이곳에서 시작된다는 대형 안내판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부부소나무, 동정호, 최참판댁, 평사리 들판으로 걸어 갈 수 있습니다.

 




베롱나무의 꽃잎은 하나 둘 떨어지고 분수의 물줄기는 조금은 추워 보이지만 그래도 놀러온 아이는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평사리 공원은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요즘 많이 찾는 오토캠핑장이 이곳에도 조성되어 있어 가족과 함께 주말을 찾는다면 섬진강을 보면서 캠핑도 즐길 수 있습니다. 밤하늘에 우수수 떨어지는 별똥별과 하늘에 수정같이 반짝이는 별은 사실 도심에서 만나기 힘든 모습이지만 이곳에는 맑은 날이면 항상 만날 수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캠핑의 즐거움을 느껴보세요. 또한 가까운 곳에 관광지가 즐비합니다. 화개장터와 쌍계사, 피아골과 연곡사, 구례 토지면 운조루의 타인능해 유래등 교육과 볼거리가 너무 많은 곳 하동여행 즐거움을 두배 얻고 갑니다.

 

사진으로 만나는 하동군 악양 평사리공원














악양들의 동정호

악양들의 부부소나무

토지의 서희와 길상


☞하동군 최참판 댁과 평사리 공원 교통편


부산에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공원까지 대중교통 이용도 편리하다.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7시, 8시, 9시, 10시, 11시 등 대략 1시간 간격으로 하동터미널로 출발한다. 악양 평사리 공원은 하동공용터미널에서 화개, 쌍계사, 악양방면 완행버스를 이용하녀 개치마을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오전 6시30분, 7시40분, 8시, 9시15분, 10시10분, 11시40분. 하차후 악양삼거리에서 왼쪽 악양교를 건너 200m쯤 19번 도로를 따라가면 평사리공원입구에 안내판이 있다. 단 최참판댁은 버스를 타고 악양면사무소를 지나 평사에서 내린다. 하동터미너로 돌아가는 교통편도 자주 있다. 버스가 30분~1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하동터미널에서 부산으로 가는 버스는 오후 2시30분, 3시20분, 4시30분, 5시30분, 6시20분, 7시30분(막차)에 출발한다.




2014/10/20 - (경남여행/하동여행)하동8경의 백사청송 하동송림 찾아가기. 하동송림


2014/10/16 - (경남맛집/하동맛집)섬진강과 토지 최참판댁도 보고 하동읍내시장 간판없는 팥칼국수 먹고 왔습니다.


2014/10/11 - (경남여행/하동여행)하동 걷기 좋은 코스 하동포구~평사리 최참판댁 섬진강 둘레길을 걷다. 2


2014/09/22 - (경남맛집/하동맛집)동흥식당. 하동여행에서 재첩국이 맛있는 동흥식당 "재첩국 한그릇하이소".


2014/09/24 - (경남여행/하동여행)하동숙박 테마모텔. 현지인이 추천한 하동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숙박지 테마모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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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부산 고등어 축제. 제7회 부산 고등어 축제가 송도해수욕장에서 열려요.

 

우리밥상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국민생선이 고등어 인것은 다 아시죠. 그 고등어가 2011년 7월에 부산 시어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물론 필자가 생활하고 있는 부산 서구는 당연히 구어(區魚)가 고등어입니다. 아침을 깨우는 부산공동어시장에서 가장 많은 위판고는 물론 우리 국민 생선 고등어입니다. 그런 고등어가 내고장 부산 서구에서 고등어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벌써 올해인 2014년도에는 7회가 되었습니다. 전국유일의 수산업 문화축제인 고등어 축제의 주요 행사를 보면 우수 수산 기업 홍보관, 고등어 축제 주제관, 고등어 전문요리관등 고등에 관한 다양한 체험행사로 이루어집니다. 매년 송도해수욕장은 우리나라 제 1호 해수욕장이며 동양의 나폴리로 부를 정도로 아름답고 깨끗한 백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 100주년이 된 송도해수욕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물론 부산 고등어 축제는 부산서구 송도해수욕장에서 개최를 합니다. 고등어도 맛보고, 즐기고, 송도해수욕장도 구경하는 이번 제7회 부산고등어축제 많이많이 구경오세요.




송도해수욕장 100주년 조형물

송도해수욕장

송도해수욕장 조형물

 현인광장

제7회 부산 고등어 축제

일정:2014년 10월24일(금)~10월26일)일) 3일간.

장소:송도해수욕장, 부산공동어시장 일원

 

◆제7회 부산 고등어 축제 행사 일정

제7회 부산고등어 축제는 10월24일 오후 6시에 개막실을 시작으로 여타 축제와는 다른 부산고등어축제만의 특화로 차별성을 하였습니다. 보여 주기식이 아닌 체험 프로그램 위주로 강화하여 한층 축제의 흥을 돋구도록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한 행사로 펼쳐집니다.

 

 (고등어 맨손 잡기, 부산고등어 축제 보도자료 사진)

부산공동어시장에서 고등어 작업 및 경매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행사가 24일~26일까지 합니다. 또한 고등어 축제 단골 행사인 맨손으로 고등어 잡기도 10월25일~26일일 2일동안 열립니다. 부산에서는 고등어하면 고등어찌개도 맛있지만 고등어를 불에 직화하는 고갈비의 맛이 일품입니다. 대학시절 저렴하게 갈비를 뜯듯이 뜯었덩 고갈비 맛을 잊을 수 없는데 고갈비화덕구이 체험도 10월25일~26일 양일간 열립니다. 고등어 경매잔치와 고등어 보물찾기도 10월25일~26일 행사를 하며 다양한 체험 및 참여 프로그램으로 꾸며졌습니다.

 

이외에도 전국주민자치회 경연대회(24일), 댄스 동아리 베틀 전국댄스경연대회(25일). 고등어 요리 경연과 외국인 맛 대결(26일), 전국수산인 씨름대회(26일)등으로 진행 된답니다. 내고장 부산서구의 부산 고등어 축제 많이많이 놀러 오세요.

 

(고등어 경매 체험,부산고등어 축제 보도자료 사진 )

  10월24일 부산 고등어 축제 개막축하 공연은 7080 가수들로 꾸며지며 이은하, 건아들, 우순실, 박상운,백수정 등과 25일 고등어 매직 콘서트, 26일 달밤 뮤직 웨이브(26일)가 각각 송도해수욕장 특설무대에서 오후 7시에 진행합니다. 제7회 남항대교 시민건강걷기대회(26일)와 고등어축제 사진공모전(24~26일), 고등어홍보관과 고등어요리관 수산물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수산 기업 홍보마당이 운영됩니다. 이번기회에 저렴하게 구입하세요. 고등어 버거 만들기, 고등어캐릭터 만들기 등 가족단위 관광객을 체험부스도 마련이 되어 있다합니다. (문의 문화관광과 051-240-4064)

 

◆제7회 부산 고등어 축제 행사 일정

 

 

◆제7회 부산 고등어 축제 시간대별 행사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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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하동여행)하동8경의 백사청송 하동송림 찾아가기


하동송림의 소나무는 우리나라 고유 수종으로 어디든지 잘 자랍니다. 조선시대에서는 선비들의 고고한 자태를 상징하여 정자 등에 풍치림으로 많이 심었습니다. 특히 다른나무와 달리 소나무는 나무가 크고 잘 자라며 특히 바람에 강해 강이나 해안가의 바람과 모래를 막아주는 방풍림이나, 방조림으로 많이 심었습니다. 



전국에 여러 방풍림이 조성 된 곳이 있으나 하동송림 또한 대표적인 곳으로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섬진강가의 하동송림은 섬진강을 통해 불어오는 강바람과 모래바람, 범람하는 섬진강의 홍수를 막기 위해 1745년(영조21년)에 도호부사를 지냈던 전천상(1705~1751)이 심었습니다.



목민관으로서 모래와 강바람을 막아 백성을 편안하고 잘살게 하기 위해 광평리 일원에 심었던 방풍림인 하동송림은 그 길이만도 2km에 이르고 26,000㎡의 면적입니다.



일제 강점기인 1935년 하동과 광양 다압면을 잇는 섬진교를 건설하면서 홍수를 막기 위한 제방공사로 송림이 많이 훼손이 되었습니다. 그런 아픔을 뒤로하고도 풍상과 함께 오랜 세월을 버텨온 600여그루의 노송과 300여 그루의 어린 소나무가 남아 전국 제1의 인공 숲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동 송림은 섬진강의 모래밭과 어울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합니다. 하동 8경의 백사청송(白沙靑松)은 이곳을 말하며 현재 섬진강의 맑은 물, 백사장과 함께 어울려 하동 군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티비 드라마 식객 촬영지 입니다.

하동송림 교통편:하동버스 터미널에서 도보 15~20분 거리.





하동 송림 사진으로 여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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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서귀포여행)쫄븐갑마장길과 따라비오름 걷기. 억새 군무가 좋은 제주 오름 가을이 최적이라는 따라비오름을 오르다.


 제주도에는 많은 오름이 있다. 368개의 오름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한 오름이 어딜까 싶어 필자 또한 궁금하다. 제주 토박인 화가이자 트레일러인 안병식(42)씨는 따라비 오름이라며 자신 있게 추천을 하였다. 따라비오름은 오름의 여왕으로 부를 정도로 유순한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가을철에는 그야말로 새로운 옷을 갈아입어 능선은 환상적으로 변해 따라비 오름을 오름중의 여왕으로 일컫는다.



오름의 모양만 그런 게 아닌 실제로 따라비의 유래인 어원은 ‘따애비’에서 나왔는데 ‘땅의 할애비’란 뜻이다. 따라비오름과 함께 주변에 한가족을 이루고 있는 오름들의 이름을 보면 아들인 새끼오름과 며느리인 모지(母地)오름, 손자인 장자오름을 거느려 한자로 ‘땅의 조상’인 ‘지조악(地祖岳)’이라 한다.



따라비 오름을 오르면 정상 일원에는 세 개의 분화구로 꼭 ‘세잎 크로바’의 모습을 하고 있다.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어 더욱 신기한데 분화구를 따르며 쫄븐 갑마장길인 둘레길이 조성되어 따라비 오름 전체를 조망하며 걸어볼 수 있다.



큰사슴 오름과 따라비 오름 사이에 조선시대에는 넓은 갑마장이 조성되었다. 제주도를 흔히 삼다도라 한다 돌, 바람, 여자를 두고 하는 말인데 그만큼 제주도는 바람이 거침없이 분다. 또한 가시리인 이곳은 더욱 거칠게 바람이 불어 바람을 이용한 풍력발전단지가 더 넓게 만들어져 억새가 바람에 춤추며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모습은 꼭 대평원의 목장 길을 걷는 기분을 만들어 준다. “하늘은 넓고 말은 살찐다”는 옛 속담처럼 ‘짧은 갑마장길’이란 뜻의 ‘쫄븐 갑마장길’을 걸어보자.



'쫄븐 갑마장길'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유채꽃프라자'를 출발하여 이곳으로 돌아오는 짧은 코스로 8km 의 거리이지만 좀 더 걷기를 원한다면 큰사슴 오름까지를 넣고 걸어도 좋다. 따라비오름만 걷는다면 ‘쉬며놀며’의 제주 방언처럼 ‘쉬멍놀멍’ 해도 3시간이면 충분하고 큰 오름까지 포함하면 4시간이 소요된다.



제주에서 다른 일정이 없고 마음먹고 걷고 싶다면 가시리 마을을 한바퀴 도는 20km 의 갑마장길 추천한다. 이 코스는 하루를 요하는 먼거리로 필자는 오후 일정도 있어 가시리 유채꽃 프라자에서 따라비오름을 돌아오는 가장 짧은 코스를 선택하였다.



쫄븐갑마장길 경로를 보면 가시리 유채꽃프라자~풍력발전단지 관리동 앞 갈림길(우회전)~쫄븐갑마장길 입구~꽃머체~행기머체~가시천앞 갈림길~가시천 이끼계곡~따라비오름 입구~따라비오름 주차장 갈림길~따라비오름 정상~따라비오름 표지판 갈림길~삼나무 방풍림~잣성~풍력발전기 밑~국궁장~다목적광장~유채꽃프라자방향으로 길이는 8km 며 걷는 시간은 3시간 안팎.



유채꽃 프라자의 옥상 전망대에 올라서면 쫄븐 갑마장길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고 건물 뒤로 바가지를 엎은 모양의 큰사슴 오름도 억새를 이고 있다. 큰사슴 오름 왼쪽으로 멀리 한라산 정상부인 백록담이 보이는 멋진 풍경에다 큰사슴오름 언저리에 산악자전거 두 대가 어슬렁 어슬렁 내려오고 있다.



이제 쫄븐 갑마장길 걷기를 시작하자. 전망대에서 내려와 유채꽃 프라자를 뒤로 하고 들어온 입구 쪽으로 나간다. 큰 의자가 있고 그 뒤로 풍력발전기를 보며 길을 따라 간다. 풍력발전단지 관리동 건물 직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나간다.



풍력발전기 뒤로는 가야할 따라비 오름이 보이고 바닥에는 붉은 보도블럭이 깔려 있다 10분 쯤 길을 걸으면 ‘T'자 도로인 ’녹산로‘와 만난다, 도로직전 왼쪽으로 목마장 입구를 알리듯 ’ㄷ‘자 모양의 목책이 있고 '꽃머체, 와 ’따라비오름' 이정표가 있다.



왼쪽으로 흙길을 들어서 목책을 통과하면 ’쫄븐갑마장길‘이 시작된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목책을 여러 개 지나는데 이는 말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울타리로 지금도 주위로는 ’가시리 공동목장‘이라는 푯말을 볼 수 있다. 갑마장이란 최상급 말을 모장을 의미하는데 우수 마(馬)를 관리하던 곳이 이곳이다.




편안한 숲속길을 따라 10분여가면 갑자기 작은 돌산이 불쑥 솟아 있다. 평지에 돌무더기 모여있는데 그 위에 제주의 수목들이 자라고 있어 이를 ‘꽃머체’라 한다. 제주도에는 큰 돌무더기를 ‘머체’로 부른다.



같은 나라 안에서 완전 이해 할 수 없는 말로 불리는데 안내판이 없다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끌머체’로도 하며 높이가 6m, 폭이 14m크기의 현무암질 용암덩어리이다. 이곳에 자생하는 구슬잣밤나무와 제주참꽃나무에서 꽃이 핀다하여 꽃머체라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만 존재하고 지질학계에서도 세계적으로도 희귀성 가지고 있다.










꽃머체와 유사한 행기머체 앞 목책을 지나 왼쪽으로 간다. 가시천 갈림길에서 계곡을 건너 이정표의 따라비 오름 방향을 따라간다. 5분 후 다시 가시천을 건너 숲속길을 10여분 따라가면 길은 다시 가시천을 건너는데 계곡바닥에 초록의 이끼들을 뒤집어쓰고 있는 바위들을 지난다.




인간인 우리가 밟고 지나가기가 미안함을 느낄 정도로 완전 생태계가 그대로 보전이 된 것 같다. 조심스럽게 건너면 앞으로 따라비 오름이 가깝게 보인다. 넓은 길로 바뀌고 5분이면 따라비 오름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고 목책을 통과한다.





곧 제주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삼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면 따라비오름 주차장 갈림길을 만나고 왼쪽 정상 방향으로 나무계단을 오른다.




제법 가파른 계단과 흙길을 15분쯤 오르면 갑자기 억새가 반기는 능선에 닿는다. 거침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보는 오름은 평범한 모습이지만 정상으로 향하면서 따라비 오름이 3개의 분화구로 이루어 짐을 알 수 있다.






정상을 가기위해서는 오른쪽의 300m 능선을 걸어가면 해발 342m의 따라비오름 정상이다. 한라산도 가까이 보이고 360도로 열리는 경관에다 크고 작은 오름들이 어울려 신비함을 더한다.






유채꽃 프라자로 가기위해서는 올라온 능선 길을 조금 되돌아간다. 곧 두 분화구가 만나는 오른쪽 능선길을 따라 내려간다. 다시 가파르게 올라 능선에 서면 앞이 뻥 뚫리면서 출발한 유채꽃 프라자와 풍력발전기, 억새가 함께 어울려 이국적인 풍경을 하고 있다.





다시 봉우리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분화구를 도는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따라비오름을 알리는 사각 기둥이 있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능선을 따라 계속 하산을 한다.











돌을 두른 무덤을 지나면 정상에서 보았던 ‘1’자의 길고 짙은 방풍림인 삼나무 숲에 닿는다. 왼쪽으로 꺾어 숲속 길을 따르면 잣성인 돌담과 삼나무가 함께 길게 이어진다.





돌담인 잣성을 따라가다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의 풍력발전기 아래로 들어선다. 잣성인 돌담을 따라 직진하면 잣성 안내판을 지나고 국궁장 직전의 목책에서 두 길은 서로 만난다.




가까이서 풍력발전기를 보니 엄청 높고 크다. 머리 위에서 바람개비가 윙윙 돌아가니 혹 날개가 빠지면 어짜노 하며 실없는 걱정을 하며 큰사슴이 오름을 보면서 발걸음을 놀린다.



막바지에 목책을 빠져나오면 국궁장 앞 넓은 길과 만나고 유독 이곳에 코스코스가 만발하여 바람따라 몸을 흔들고 있다. 봄이면 이 일대 부터 코스모스 대신 유채꽃이 시작된다. 



왼쪽으로 넓은 도로를 따르면 축구장등 다목적 광장을 지나고 출발할 때 본 풍력발전단지 관리동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유채꽃 프라자 까지는 10분이면 된다.



☞(제주여행/서귀포여행)쫄븐갑마장길과 따라비오름 걷기. 억새 군무가 좋은 제주 오름 가을이 최적이라는 따라비오름 출발지 가시리 유채꽃프라자 교통편


교통편은 비행기도 있지만 여행을 즐기기에는 배편이 최고다. 부산에서 배를 이용하여 제주항을 가기위해서는 부산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주)서경카훼리 여객선을 이용한다. 필자의 경우처럼 주말을 끼워 금요일 저녁 배편을 이용하고 토요일 낮 답사후 저녁 배를 이용하여 일요일 새벽 부산항에 도착하면 된다. 서경카훼리는 서경파라다이스호(6626t급)와 서경아일랜드호(5223t급)가 격일로 부산~제주 항로로 운항한다. 서경파라다이스호는 월·수·금요일 오후 7시에 부산연안여객터미널을 출항 한다면 서경아일랜드호는 화·목·토요일 오후 7시 부산항에서 출항하여 다음 날 오전 7시에 제주항에 도착한다. 제주항에서는 서경파라다이스호가 화·목요일 오후 7시, 토요일 오후 7시30분에 출항한다. 서경아일랜드호 월,수,금요일 오전 7시 출항하여 다음날 7시에 부산항에 입항한다. 서경카훼리 홈페이지(http://skferry.haewoon.co.kr/)나 전화(1688-7577)로 문의와 예약을 할 수 있으며 유채꽃 프라자인 가시리행 버스는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번영로 노선 720번 시외버스 중 가시리 경유편을 타면 된다. 오전 6시28분, 11시28분 등 하루 4차례. 단체 답사일 경우는 그랑투어(051-554-6262) 통하면 편리하고 경비도 절약된다.





 









2014/10/15 - (제주여행/조천여행)거문오름. 2007년 세계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거문오름 탐방.


2014/09/29 - (제주맛집/신제주맛집)제주공항맛집 이가촌. 이가촌은 엄마의 손맛으로 만든 고등어 조림이 맛있습니다.


2014/09/21 - (제주여행/제주숙박)서귀포 표선면 숙박 유채꽃 프라자. 한라산을 가슴에 담고 숙박을 할 수 있는 유채꽃 프라자


2014/09/20 - (제주맛집/조천읍 맛집)에코로바 테마랜드 선녀와 나무꾼 맛집 낭뜰에 쉼팡. 토속음식으로 빛나는 건강한 밥상 낭뜰에 쉼팡


2014/09/12 - (제주맛집)제주공룡랜드, 러브랜드 맛집 늘봄 흑돼지. 제주에서 반드시 먹고 온다는 늘봄 흑돼지 먹고 왔습니다.


2014/09/11 - (제주여행/제주숙박)제주 여행에서 농촌테마체험도 즐기고 가족과의 숙박은 명도암 참사리 마을이 너무 좋아요.


2014/09/08 - (제주여행/제주마방목지)제주도에서 조랑말을 보고 추억 만들기를 하세요. 제주마방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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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중구여행)40계단문화테마거리. 동광동 40계단 문화축제가 열려요.

 

제13회 40계단 문화축제가 내일부터 열립니다. 40계단 하면 모두 아시죠. “굳세어라 금순아”등 노랫말에도 나오는 동광동 40계단은 영도다리와 함께 피난민들에게는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피난보따리를 꾸리면서 친구와 형제는 부산의 40계단에서 서로 만나자는 말만 주고받고 헤어져 이곳 40계단에서 서로 상봉을 위해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다렸다는 피난민.,. 피난민들의 가슴 절절한 사연이 계단 하나하나에 한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1993년 8월에 중구청에서는 40계단을 정비하며 기념비를 세우고 음력 정월 대보름을 맞아 동광동 동민화합 윷놀이 행사를 시작한 게 지금 “40계단문화축제”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특히 중구에는 피난 온 실향민들이 많아 더욱 의미가 있는 행사였습니다. 6.25 전쟁으로 피난민의 애환과 향수가 깃든 40계단의 의미를 제 조명하며는 올해에도 40계단 문화 축제를 개최합니다.

 

 

동광동40계단 거리로 오시면 2004년 4월에 도로정비를 하였는데 피난시절의 모습을 50~60년대로 재현을 해놓았습니다. 나무 전봇대 하며 영화벽보하며 추억의 장소로 부모님과 아이들과 함께 방문을 해 보세요. 동광동사무소5~6층에는 40계단 기념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행사가 진행됩니다. 본 행사는 40계단 앞 특설무대에서 오후 6시부터 행사를 진행합니다. 사전행사로는 난타공연, 남도공연,  트럼펫 연주, 하모니카, 시낭송, 가수공연과 경헌예술단, 마당굿, 부채춤, 가야금병창, 경기민요, 한랑무, 사물놀이, 대동놀이등이 열리고 본행사는 노래교실, 이은정과 맴버스앙상블, 40계단 가요제, 초청가수 공연이 열립니다. 강냉이죽, 벙튀기, 국화빵, 네일아트, 솜사탕, 떡메치기, 60세이상 무료한방진료의 부대 행사와 노래자랑 시상식과 경품추첨으로 진행이 됩니다.

◆일시:2014년 10월15일 수요일 오후2시부터 진행. 본행사는 오후 6시부터~~~

◆사진으로 만나는 40계단의 추억들...

 

 

 



피난시절의 40계단. 사진에 보면 물동이를 진 여인은 40계단 문화관 입구 오른쪽에 "40계단 여인상"으로 만날 수있습니다.

현재의 40계단

 

 

 

 

 

 

 

 

 

 

 

 

2008/10/07 - 부산의 특이한 이름인 "40계단" 추억을 아시나요

 

2012/08/26 - 40계단 문화의 거리에 세워진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이 일제의 잔재로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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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여행/하동여행)광양 하동 걷기 좋은 섬진강 둘레길. 광양 망덕포구~하동 하동송림 섬진강 둘레길을 걷다.


섬진강을 따라 걷는 섬진강 둘레길은 광양의 망덕포구에서 출발을 한다. 호남정맥의 기점이자 종점인 망덕포구는 가을철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로 유명하여 현재 전어 모양의 조형물이 포구 안쪽에 세워져 오고 가는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호남 정맥의 기종점을 알리는 대형 안내판에서 섬진강 걷기를 시작한다.






윤동주의 유고집이 보관 되었던 정병욱고가

윤동주의 유고집



먼저 걷기 전에 눈여겨 볼 것이 있다. ‘서시’와 ‘별헤는 밤’으로 유명한 윤동주의 유고집이 보관된 ‘정병욱 가옥’을 보고 출발을 하자. 정병욱 가옥은 근대문화유산 제341호로 현재 정병욱 교수의 외종조카 박춘식씨가 관리를 하고 있으며 그분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민족시인인 윤동주의 유고집은 정병욱 교수와 그의 어머님이 마루바닥을 뜯어 내고 땅을 파 장독을 묻고 보관하지 않았다면 아마 현재 이 세상에 그의 시는 존재를 하지 않았다. 그 마루바닥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정병욱가옥을 보고 되돌아 와 출발한다.





안내판이 있는 출발지에서 섬진강의 데크길을 따라 강을 거슬러오른다. 약 200m만 가면 쉼터와 만난다. 윤동주와 정병욱에 관련된 사진이 난간에 붙어 있고 또한 이곳은 의병장 황병학 전투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황병학은 어업권을 빼앗은 일본세력에 맞서 1908년 여름 산포수 100여명을 규합하여 광양의 백운산에 올라가 부대를 결성한 후 그해 9월 망덕포구에서 어업권을 침탈한 일본어민과 잡화상의 배와 가옥을 불태우며 강력한 저항을 하였습니다. 1909년 '남한폭도대토벌' 작전에 의해 해산하기 전 까지 의병 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섬진강을 걸어가는 길은 하동읍의 섬진교 까지 4대강 자전거 길 중 하나인 섬진강 자전거 길을 따르면 된다. 강과 바다가 서로 만나는 모래밭에 아주머니 한분이 열심히 무엇인가 캐고 있어 "뭐있습니까' 하니 맛 조개를 잡는다하였다. 한참을 구경하다 도로를 따르면 남해고속도로 섬진강 휴게소를 지나고 삼거리와 만난다.







오른쪽 청룡식당 쪽 강둑의 자전거 길을 따라간다. 길은 남해고속도로 섬진강 대교 아래를 지나면 다시 헤어졌던 도로와 만난다. 옛 섬진강을 가로지르며 놓여진 끊어진 옛 다리를 보면서 자전거 덱 길을 따라 간다. 섬진강 건너 오른쪽으로 구름을 이고 있는 하동의 진산인 금오산이 우뚝하다. 30분을 걸었다면 갈림길과 만난다.

 














오사배수장에서 자전거 길은 오른쪽 섬진강 강변을 따라간다. 섬진강 자전거 길에는 진월제방에서 오사제방에 이르는 6.2km 구간을 '맹고불고불길'로 불리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 추진을 하면서 당시 맹형규 행정자치부 장관이 이 구간에 많은 애착을 보여 그 뜻을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








이길을 따라 섬진강을 거슬러 가면 갈대가 숲을 이루고 있다. 또 한 대형 우체통 모양을 한 화장실이 독특한 모습으로 설치되어 있고 "마음의 편지를 보내는 곳"'글귀가 인상적이다. 별밤쉼터'를 지나면 소나무가 방풍림 역할을 하는 돈탁마을 입구를 지난다.







이곳은 망덕포구의 정병욱 교수 부친이 양조장을 운영하였던 마을로 무더위에 지친 몸을 잠시라도 솔밭에서 쉬었다 가자. 강변둑길을 따라 계속가면 새로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건설 현장을 지나 둑길 끝까지 나가면 도로와 합해지면서 경전선의 섬진강 철교 아래 쉼터에 닿는다.





대나무가 인상적인 쉼터를 지나 15분이면 하동읍과 광양의 원리를 연결하는 섬진교가 가까이 보이는 삼거리에서 자전거 길을 버리고 하동읍으로 건너가기 위해 왼쪽 도로를 돌아 간다.







섬진교 직전의 원동삼거리에서 2번도로와 합하고 오른쪽으로 꺾어 다리를 건너면 전라남도에서 경상남도 하동땅으로 들어서게 된다. 다리를 건너면 섬진교 삼거리에서 섬진강 둘레길을 마친다.





대중교통편은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출발지인 망덕포구로 가는 방법은 광양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하동행 시외버스를 타고 하동터미널에서 망덕행 광양시내버스를 시간만 잘 맞춘다면 더 편리하다. 부산서부터미널에서 하동 터미널행은 오전 7시, 8시, 9시 등 하루 10회 운행하고· 요금은 1만1100원. 하동터미널에서 망덕가는 시내버스는 오전 7시30분, 8시, 8시50분, 9시50분, 10시50분 등 하루 13회 운행한다..



또한 자가운전인 경우에는 망덕포구까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월IC에서 내려 좌회전한 뒤 망덕포구 이정표를 보고가면 된다. 둘레길을 마친 후 승용차 회수는 하동터미널에서 망덕행 광양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오후 2시50분, 3시50, 4시50분등 오후7시50분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요금 1800원.






◆섬진강 망덕포구~하동읍 고도표◆

◆섬진강 망덕포구~하동읍 지형도◆

◆섬진강 망덕포구~하동읍 다음 지도◆








2014/10/12 - (하동여행) 하동터미널 버스시간표. 군내버스, 직행버스, 고속버스 시간표가 있는 하동버스터미널


2014/10/11 - (경남여행/하동여행)하동 걷기 좋은 코스 하동포구~평사리 최참판댁 섬진강 둘레길을 걷다


2014/09/24 - (경남여행/하동여행)하동숙박 테마모텔. 현지인이 추천한 하동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숙박지 테마모텔.


2014/09/22 - (경남맛집/하동맛집)동흥식당. 하동여행에서 재첩국이 맛있는 동흥식당 "재첩국 한그릇하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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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동 비석마을, 세상에 이런집이 부산 아미동 무덤위에 지은 집과 돌로만든 집


 산 아미동에 비석마을로 부르는 동네가 있습니다. 그 유래를 보면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곳에 일제시대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었던 곳인데 광복과 함께 일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주인 없는 무덤터만 남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강제로 끌려 갔던 귀환동포 역시 해방과 함께 관부연락선을 타고 부산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6.25 한국전쟁과 함께 피난민들이 물밀 듯이 밀려와 자꾸만 산비탈을 올라가면서 피난민들이 비를 피할 움막이라도 지었습니다.

 


피난민들은 일인의 공동묘지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무덤사이사이에 움막을 짓고 살다가 비석과 상석을 뽑아 축대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덤의 봉분을 뭉개고 그 위에다 집을 짓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 마을은 비석마을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산복도로 르네상스’ 일환으로 아미동 비석마을에 스토리텔링을 입혀 비석문화마을로 제 단장이 되었습니다.



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에서 감천문화마을을 이르는 도로 중 비석마을의 산성교회 곡각부분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편입된 주택을 헐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완벽한 모습의 무덤위에 지어진 집을 발견하였습니다. 지금도 골목길 축대에 박혀 있는 비석의 흔적을 보면 '대정2년'이라 기록된 비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12~1914년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덤의 주인은 누구인지 현재로서 알 수 없지만 형태를 보아서 축대는 사선으로 쌓았고 화강석으로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판석을 끼운 형태를 하고 있어 일본 무덤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 아미동 비석마을은 집 밑에 아직도 많은 유골을 깔고 살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그래도 먼저 자리 잡았던 무덤 주인을 밀어낸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려 집안에 향을 피우며 무덤 주인의 극락왕생을 비는 집들이 아직도 많다합니다. 특이하게 무덤위에 집을 지은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을 꼭 찾아보세요.















무덤위 집에서 150m 아래쯤에 남부민동과 토성역으로 갈라지는 ‘Y'자 삼거리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왼쪽 토성역 방면으로 조금 내려서면 오른쪽에 돌로 지은 3층 건물 집을 만나게 됩니다.



산비탈을 이용하여 만든 돌집은 좁은 골목길과 함께 너무 운치 있는 모습입니다. 부산 산복도로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지은 지는 63년 가까이 되었는데 집주인 김동철씨는 해방과 함께 지금은 작고하신 부친이 이곳에 정착을 하면서 천마산등 주위에 널려 있는 돌을 매일 쌓고하며, 조금조금 집을 널려 33평의 돌집을 짓게 되었다 합니다.



산복도로에서 내려보는 돌집의 모습을 보면 꼭 외국 어느 마을의 주택을 보는 것 같습니다. 부산 서구 감천동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한다면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을 꼭 둘러 볼 것을 권합니다. 



또한 골목길을 걷다보면 빠트리기 쉬운게 무덤위에 지어진 집과 돌집입니다. 반드시 챙겨 볼 것을 권하며 또한 돌집 옆에는 다큐멘터리 1세대 사진작가 최민식 갤러리도 함께 만나보세요 전쟁 후 부산의 모습을 실감나게 만날 수 있습니다.

 




2014/10/13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동 비석마을, 세상 이런집에 경악, 부산 아미동 무덤 위에 지은 집과 돌로만든 집


2014/09/16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동비석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만 아시나요. 일본인 공동묘지 위의 동네 비석문화마을과 최민식 갤러리도 만나보세요.


2014/09/17 - (부산맛집/사하구맛집)감천문화마을 맛집 팥찌. 감천문화마을의 전경이 너무 좋은 팥찌에서 시원한 팥빙수가 3천원. 넘 좋아요.


2014/09/18 - (부산맛집/사하구맛집)감천문화마을 맛집 씨앗호떡. 이승기가 먹었다는 씨앗호떡 산상에서 먹는 맛은 어떤 맛, 궁금하지 않나요?.


2014/09/19 - (부산여행/서구여행)감천문화마을 천마산 산행, 우리 집 뒤에 이런 풍경이 펼쳐져요. 최고의 가을 산행 코스 천마산.


2014/10/01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문화학습관 최민식갤러리, 인간이 거기 있기에 나는 사진을 찍었다, 최민식 갤러리


2014/10/13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동 비석마을, 세상 이런집에 경악, 부산 아미동 무덤 위에 지은 집과 돌로만든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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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제23회 자갈치축제)가을철 최고 축제인 자갈치 축제에서 불꽃놀이를 구경했습니다.


2014년 부산 자갈치 축제가 지난 10월8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자갈치시장은 한국 최대의 수산물 시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국 수산물 유통의 중심입니다. 부산 자갈치는 1678년 조선 순종4년에 국제교역의 중심지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되고 일제강점기인 1928년 일본인 매축왕 이케다씨가 조선 총독부에 남항 건설 허가를 취득하여 1931년 4월에 현재의 자갈치 해안을 매축하여 준공하게됩니다. 그 이전에는 이곳 자갈치는 백사장 대신 자갈이 깔려 자갈+고기치가 합해져 자갈치로 불렸습니다. 남항이 건설되면서 선착장과 방파제가 들어와 상인들이 모여들면서 지금의 충무동해안시장 주변의 생선 상인들이 1946년 10월에 '생어상조합'을 결성한게 지금의 자갈치시장이 생기게 되었다는 이야기............



외지인의 처음 부산을 방문하며 찾는 곳이 이곳 자갈치 시장으로 그와 함께 우스게 소리로 ‘부산하면 자갈치 아잉교’하며 부산 대표 어시장인 자갈치에서 펄덕펄덕 뛰는 생선회를 맛보기 위해 꼭 찾고 있습니다. 싱싱한 생선회와 함께 자갈치를 상징하는 ‘자갈치 아지매’는 부산 자갈치의 대명사로 억척스럽고 강인한 생활력의 상징이자 부산 어머니를 대표합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제23회 부산자갈치 축제가 자갈치 시장과 신동아시장에서 열렸습니다. 어제 자갈치축제를 축하하기 위해 불꽃 축제가 있었습니다. 예정시간은 19시10분인데 조금 이른 시간에 폭죽을 쏘아 올려 처음에는 시간도 되지 않아 예행연습을 하는 가 생각을 했습니다. ㅎ ㅎ 그런데 신나게 축포를 쏘아 올리는게 자갈치 축제를 축하하는 불꽃놀이 였습니다. 부산 영도와 남부민동을 잇는 남항대교에서 불꽃놀이를 보았는데 오늘따라 바람이 심하게 불었습니다. 그래도 불꽃놀이 멋지게 잘 보았니다.




























2014/10/09 - (부산여행/자갈치 시장)자갈치축제한다 아잉교, 싱싱한 회 먹으러 자갈치 시장에 오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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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이중섭거리. 한국의 고흐 '이중섭 범일동 풍경'으로 만나다.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을 우리는 비운의 화가, 천재화가, 한국의 고흐 등 많은 수식어가 붙습니다. 그의 예술세계는 41년간 짧은 생애지만 한국화단을 대표할 만큼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분의 일생 중 부산에서도 화가 이중섭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는 1950년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피난을 와 1954년까지 생활을 하였던 곳으로 알려지면서 동구청에서 이중섭 스토리텔링 작업을 거쳐 현재 이중섭 거리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중섭은 1950년 12월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온 후 범일동 피난민촌에서 생활을 합니다. 그때 머문 곳이 지금의 범일동 1497번지입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부두 노동일을 하며 생활을 합니다. 

그런 생활속에서도 이중섭의 예술혼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꺼지지 않고 그의 작품 중 최고라 평가 받는 ‘범일동 풍경’이 탄생합니다. 그의 일본 유학시절 만난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이남덕)는 일본이 패망을 하자 그해 4월 목숨을 걸고 현해탄을 건너 이중섭을 찾아오지만 곧 이어 터진 전쟁과 함께 그의 생활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부산 범일동에서의 생활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회고하는 마사코씨는 1952년 아들 둘과 함께 생활고 해결을 위해 친정이 있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이중섭은 혼자 생활을 하다 1956년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에서 영양실조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지난 주말 이중섭거리를 찾아 범일동으로 달려갔습니다. 교통부로 불렸던 범곡교차로에는 옛 보림극장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참 70년~80년대에는 부산사람이라면 보림극장을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유명하였습니다. 그 당시 영화는 개봉관이 아닌 후줄근한 2편동시 상영관이지만 이미자, 남진, 나훈아, 하춘하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가수들의 ‘리사이틀’ 장소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보림극장 말고도 삼성극장 , 삼일극장이 줄지어서 요즘 같으면 비프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보림극장 건물을 지나면 보림의원과 보림주차장이 차례로 나옵니다. 이 사이 골목이 중앙대로 533번길입니다. 지금은 골목도 정비를 하여 그런지 많이 넓어 졌지만 얼마전까지 만해도 이곳은 좁은 골목길이었습니다.



동구청에서 이중섭거리를 만들면서 그에 관한 홍보물 또는 안내판 하나 만날 수 없는 게 의아할 뿐입니다. 만들어 놓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인지. 참.... 길을 따라 들어서면 근방에서 가장 역사가 있는 할매돼지국밥집이 나옵니다.



역사는 60여년으로 전쟁 후의 범일동과 같이 한다하겠습니다. 1956년 처음 문을 열었다는 할매돼지국밥은 범천로타리 옆 삼화고무가 호황기를 누릴 때 공장의 노동자들이 값싸게 국밥으로 배를 채우고 소주도 한잔 기우리는 장소였습니다. 긴 역사 만큼 여러번 장소를 옮겼지만 이곳 범일동을 벗어 나 본적이 없으며 1970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와 국밥집을 하고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만큼 단골손님이 워낙 많아 끼니때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기둥에 이중섭거리를 알리는 듯 강민자가 그린 작은 소 그림을 만납니다.



국밥집을 지나면 정면 축대에 이중섭의 부조가 붙어 있습니다. 이곳을 찾기 전까지는 긴 가 민가 하였습니다. 김춘수의 “내가 만난 이중섭”에서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




1916년 이중섭이 태어날 때부터의 기록, 그리고 1951년 범일동 생활의 ‘피난민에서 자유인으로‘. 1952년 마사코가 일본으로 떠나 '부두의 이별, 나는 곧 따라 가리다‘  아내 마사코가 생계를 위해 두아이와 일본으로 돌아 간 후 곧 따라기겠다는 절절한 사연 등 1956년 그가 사망할 때 까지의 일대기가 벽면을 차지 하고 있습니다. 길은 조금씩 오르막이지만 길은 갑자기 사거리가 나옵니다.













정면에 '중섭' 밑 화살표가 오른쪽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초행길인 필자는 화살표 오른쪽의 골목을 뜻하는 것으로 알고 직진하여 올라 갔는데 골목은 계단길로 바뀌어 할 수 없이 내려와 돌아다녔다가 '희망길 100계단' 중간에서 이중섭 거리를 만나 역으로 되짚어 계단을 내려 왔습니다.



‘시에스 월드빌 앞 사거리에서 반드시 오른쪽으로 꺾어 길을 따라 쭉 나가면 호천경로당을 만나게 되고 길은 잘 찾았습니다.


호천경로당


이곳부터 좌우로 이중섭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봄의 아이들 1953년“”부부 1953년“ (구상네가족 1955” “춤추는 가족 1953년”등........왼쪽 ’범곡로 53번길‘ 계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머리를 들어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긴 계단에 ’희망길 100계단‘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필자는 계단을 세어보지 않았지만 세어본 분이 180계단이라 함). 계단을 한발 한발 밟고 올라 갑니다.




“나의 소중하고 귀중한 귀여운 사람이여! 잘 있었소?” “우표 값이 없어 편지를 사흘에 한통 낼 수가 없다는게 말이오” “당신의 편지가 늦어지는 걸로 보아 혹시 당신이나 아이들이 감기로 눕지나 않았는지요?” 등 글귀가 붙어 있습니다. 

 



아마 이중섭과 일본으로 돌아간 아내 마사코와의 편지내용 중 일부분인 것 같습니다. 글을 보면서 당시의 이중섭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려 봅니다. 







계단 중간쯤 숨을 고르면 다시 직진하는 계단과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로 나누어 집니다. “아빠가 사다 놓은 종이가 떨어져 한 장 밖에 없어서 그림을 한 장만 그려 보낸다. 엄마와 태성이 태현이 셋이 사이좋게 봐 다오” 아마 아이 둘과 마사코 아내를 그린듯 하며 화가 이중섭이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히 담겨져 있습니다.




“화이트가 없어 얼마 전부터 페인트를 대용으로 자꾸자꾸 그리고 있소” 이중섭의 궁핍한 생활을 보게하는 대목으로 진정 예술가는 가난해야만 작품이 나오는 것인지... 참담함 마음이 듭니다.





필자는 오른쪽 쓰러질 것 같은 집을 지나 골목을 빠져나오면 산복도로의 마사코 전망대에 닿습니다. 이중섭 거리는 입구에서 400m 쯤 됩니다. 일본인 아내 마사코 이름을 따 '마사코 전망대'입니다. 현재 전망대만 볼 수 있고 나머지는 폐쇄되어 있습니다.








2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중 1층은 주민사랑방과 이중섭 갤러리가 들어서고 2층은 전망대와 이중섭의 편지글 등으로 꾸며져 지난 4월달에 문을 연 '이중섭 범일동 풍경' 거리, 이중섭 거리를 알리는 입구의 홍보용 간판도 없고 막대한 세금을 들여 지은 전망대 건물은 아직도 잠을 자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이중섭 범일동 풍경‘이 그 저 풍경이 아니고 부산 범일동에서 만날 수 있는 천재화가의 '이중섭 범일동 풍경'거리를 다시 볼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현재 이중섭 전시관은 제주도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부산 범일동에서 만나는 이중섭 범일동 풍경 거리는 가족의 여운이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마사코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이중섭거리는 부산의 특징인 부산만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산골짜기로 파고 들어간 일명 달동네로 불렸던 집들은 현재 모두 정리가 되어 아담한 주택과 아파트로 자리를 잡았고 산복도로로 오르는 계단길과 골목길은 그 당시 화가 이중섭이 팍팍한 삶을 위해 오르내렸던 그 길입니다. 그의 예술혼이 절정의 꽃을 피웠던 곳 범일동 이중섭 거리에서 '한국의 고흐' 이중섭님을 만나보세요.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이중섭거리. 한국의 고흐 '이중섭 범일동 풍경'으로 만나다. 교통편


교통편은 지하철이 편리합니다. 도시철도 1호선을 이용하여 범일역에서 하차를 한 후 현대 백화점쪽으로 오릅니다. 현대백화점을 보고 오른쪽 도로를 끝까지 가면 철길을 건너는 육교가 나옵니다. 육교를 건너면 보림극장이 있었던 옛 교통부 범곡교차로입니다.

교차로에서 왼쪽으로 걸어 가 건널목을 건너면 옛 보림극장 건물로 지금은 1층에 마트가 있습니다. 그 왼쪽이 '이중섭 범일동 풍경' 입구입니다.




















2014/09/10 - 부산 달동네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 산복도로 어르신의 발이 된 모노레일 승차기


2014/09/06 - (부산여행/갈맷길)갈맷길 3-2코스. 이바구가 주렁주렁 달린 가을철 걷기 좋은 코스 갈맷길에서 힐링을 하다.


2014/08/08 - (부산맛집/동구맛집)부산역 초량이바구길맛집 대건명가돼지국밥. 여름철 보양식으로 이만한게 없어 갈맷길 맛집 대건명가돼지국밥.


2014/06/09 - (부산여행/동구여행)초량이바구길. 근대의 역사길을 따라가는 초량 이바구길을 만나다.초량 이바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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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중구여행)부산보수동책방골목. 가을은 독서의 계절 책방골목을 가보니,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헌책으로 마음의 양식을 쌓아요.

이제 10월의 문턱을 넘어 본격적인 가을이 찾아 왔습니다. 학장시절에는 이맘때쯤이면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책 읽기에 좋은 날씨라 하였습니다. 요즘은 그것도 많이 바뀌어 독서는 이제 계절을 따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책하면 부산에서는 보수동 책방골목을 떠 올립니다. 새 책도 팔지만 주로 헌책을 팔던 곳으로 너무나 유명합니다. 필자도 학창시절에 이곳을 일주일에 한번 꼴로 다녔습니다. 남들이 생각하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한 학생으로 생각을 하겠지만 전공서적보다 필자는 산악서적을 구한다고 뻔질나게 다녔습니다.

 

 

그만큼 열성적으로 다녀 전공서적을 구했다면 아마 국내 아주 유명한 화학박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전공서적보다는 조선일보에서 나온 오래된 월간지인 '산'지, 미국의 ‘마운틴’ 일본의 ‘산과 계곡’과 산악도서, 산과 관련된 고서적 구입을 위해 헌책방을 뒤지고 물어보고하며 많은 책을 구입하였고 한편으로 원하는 책을 구입하면 그날은 아주 요즘 말로 기분이 째지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보수동 책방골목 포스팅을 하는 순간에도 그 때의 희열이 느껴지는 것은 그 당시 그래 미쳤던 것 같습니다. 초중고 교과서와 대학의 전공서적, 그리고 외국의 잡지와 원서 등을 모두 구할 수 있었던 보수동 헌책방 골목은 구하지 못하는 책이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유익한 곳이었습니다.

 

 

 

또한 참고서를 싼다며 엄마를 졸라 새 책 값을 받아 이곳에서 헌책을 구입한 후 남는 돈으로 군것질을 하고 아버지에게 들켜 혼구멍이 난 경험도 우리세대에게는 모두 한번쯤 있던 추억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헌책방은 차츰 설자리를 잃고 하나, 둘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모든게 풍족해지다 보니 새 책 만을 원하는 그런 세상이 온 것입니다.

 

 

보수동 책방의 유래를 보면 1950년 6.25 한국동란으로 대구를 거쳐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됩니다. 전세가 자꾸만 밀리면서 피난민도 남으로 남으로 함께 내려와 닿은 곳이 부산입니다. 부산은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전국의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는데 함경북도에서 피난온 부부가 이곳 보수동에서 헌 잡지를 내다 놓고 판매를 한 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네 개의 서점이 문을 열었는데 피난 온 대학과 학교들이 분교를 열면서 많은 헌책이 필요 하게 되었고 또한 공급과 수요가 넘쳐나 차츰 헌책방 골목은 규모가 커졌습니다. 지금의 글방쉼터가 보문서적이 있던 자리로 70년대까지는 70개의 점포가 들어설 정도로 그야말로 호황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예술인들 사이에서는 아지트였습니다. 피난온 예술인들은 지금의 용두산 공원이 예술인들 사이에는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 역할을 하여 매일 용두산을 오르내렸고 보수동 헌책방을 일과처럼 들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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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책방골목은 단순히 헌책만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 근대 문화가 숨 쉬고 있는 곳입니다.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보수동책방 주인들이 상가번영회를 조직하여 사라져가는 보수동 책방 골목을 살리기 위해서 1996년부터 보수동 책방골목축제와 헌책방 사진전시회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단순한 책만 판매하는 곳이 아닌 누구나 들러 쉬었다 가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도록 북 카페 등을 꾸며 놓았습니다. 책도 만나고 차도 마시며 맛있는 먹거리가 함께하는 보수동 책방골목을 이번 가을에 자녀와 함께 한번 찾아보세요.

 

 

 

보수동 책방 골목 중간 쯤에 있는 가게입니다. 추억의 간식인 팥도너츠, 고르케등을 판매하는 곳으로 보수동 책방골목 맛집으로 알려져 주말이면 이리 줄을 서는 진 풍경을 연출합니다. 필자도 궁금하여 고르케 맛을 보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추억의 맛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으로 30년이 넘는 동안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맛있는 간식도 먹고 책도 싸고.

 

 

3개 2,000원하는 고르케입니다. ㅎㅎ 고소하니 맛있습니다.

 

 

'책은 살아야 한다' 는 글귀처럼  보수동 책방 골목은 전통의 맥을 이어야 합니다. 책방골목 안내도가 있는 사거리에 '책방골목 벽화마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딸과 함께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은 모습이 너무 보기가 좋습니다. 벽화도 보고 엄마와 따뜻한 정도 쌓을 수 있는 보수동 책방골목.

 

 

 

 

 

 

 

 

 

 

다시 돌아 내려와 책방 골목을 구경합니다. 책방골목이 인기가 있을 때는 하루3,000명이 넘게 찾았다합니다. 지난 주말에 찾은 보수동 책방 골목은 독서의 계절이 무색할 정도로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모두 헌책으로 마음의 양식을 쌓아요.

 

 


 


 

 

 

 

 

 

 

 

 

 

 

 

 

 

 

 

 

 

 

 

 

 

 

 

2014/09/07 - (부산여행/부산깡통야시장 여행)부산에서 유일한 야시장 부평동깡통야시장 돌아보고 왔습니다.

 

2014/08/06 - (부산맛집/중구맛집)부평동깡통야시장 보수동책방골목 맛집 수목횟집. 까탈스러운 국제시장 부평동깡통시장 상인들의 입맛을 평정한 숨은 맛집 수목횟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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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문화학습관 최민식갤러리, 인간이 거기 있기에 나는 사진을 찍었다, 최민식 갤러리 감천문화마을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흑백사진을 보면 세월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이야 흔하디흔한 칼라시대에 살고 있어

흑백의 사진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죽으라고 흑백사진을 찍는 분이 있었습니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1957년부터 사진을 시작하여

오직 인간(Human)의

참모습을 담았던 분입니다.



그분은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1세대로 부르는 

고 최민식 작가님입니다. 

그분의 작품인 흑백사진에서

 우리 부모님의 일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처절하게 살아야 했던 이유가 사진에 담겨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우리 부모님은 눈물을 삼키며 그 어려웠던 순간을 넘겼습니다.



최민식선생님의 흑백사진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길입니다.

부산 서구 아미동에 있는 아미문화학습관 2층에 최민식갤러리가 있습니다.



최민식 선생님 갤러리는 생전에 그분이 다니시던 

충무동, 자갈치시장, 부민동, 남부민동, 영도 등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산복도로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산복도로 흔히 달동네라 부르는 동네입니다. 

달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마을 아미동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인 공동묘지입니다.



광복이 되면서 일본인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남겨진 무덤들.....

한국동란과 강제로 끌려간 우리 동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부산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공동묘지를 까뭉게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는 아미동 비석마을. 

무덤앞의 상석이 석축이되고 빗돌이 대들보가 되고 

지금도 비석마을에 가면 부모님들의 치열했던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최민식님의 사진에서는 그런 인간의 내면적인 모습까지 사진에 담았습니다. 

최민식갤러리 입구를 들어서면 만나는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최민식님은 민중의 숨소리에서 

"민중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이 얼마나 인간의 체취가 흐르는가.

 민초라고 불리는 이름없는 백성들이 

바로 역사적 생명력의 원천이 아닐까. 

그들이 마련해 놓은 역사의 무대 위에서 

이루고 있는 것을 나는 사진으로 포착한 것이다"



민중의 숨소리와 체취까지도 담아내려고 하신 최민식님

그분의 작업실입니다. 

선생님의 혼을 담은 사진이 이곳에서 나왔습니다.

 

생전에 열정적으로 하시던 선생님의 모습.

 "진정한 나눔은 그저 나눔일 뿐. 거기에는 계산이 없다.

베풀기 위해 내 눈은 항상 낮은 곳을 향해 있다."



최민식님의 작품을 평론한 조세희(소설가)님은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에서 

"사진기라는 도구를 들어 눈에 댔을 때, 그의 망막을 아프게 찌른 것은 상처 입은 동족의 슬픈 얼굴이었다. 민족주의는 박살이 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고통과 억압이 아주 넓게 퍼져 있는 땅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그것은 희생자들이 직면한 악몽과 같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었다."(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에서 발췌)




최민식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빵떡모자에 웃는 모습은 이웃의 아저씨 같습니다.




전쟁 후의 부산 모습입니다. 

부산의 역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선생님은 천진난만한 아의 웃음을 사랑했습니다. 




요즘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60~70년대 사진입니다.  

엉덩이를 들어 낸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납니다.


1960년 부산역 유세장 사진을 보면 

그당시 부산시민이 다 모였을 것 같습니다.



영도다리와 자갈치 시장 쪽 사진 같습니다. 

부산 아지매를 대표하는 자갈치 아지매....





1969년 부산자갈치 시장에서 촬영된 사진입니다. 

이 한장의 사진이 

선생님 담고자하시는 사진을 

모두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참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적인 모성애입니다.



소년시대입니다. ㅎㅎ 나의 어릴적 모습 같습니다. 

저런 모습이 이제 중년이 되었습니다.



소녀시대입니다. 참 어렵고 힘든 시절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부산 자갈치 시장입니다. 

지금과는 완전 다른모습이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엄청 많은 곳입니다. 





1964년 부산 범일동의 모습입니다. 

식수가 귀하다 보니 양동이에 을 받기 위해 늘어선 줄입니다. 

요즘은 이런 모습은 찾을 수 없습니다. 




1963년 부산 부민동의 사진입니다. 

산을 깎아 터를 만든 판자집입니다. 

이때는 전기도 귀한 시절이라 자연채광을 받기위해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도록 집을 지었고

부산의 산복도로에 지은 집들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현재의 부민동입니다. 

판자집이 들어선곳은 아예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전부 바뀌었습니다. 

1963년과 2014년 50년의 수레바퀴가 굴러 갔습니다. 




갤러리 쉼터에서 창밖을 바라 보면, 

선생님의 57년 활동 무대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만나게 최민식갤러리의 모습으로

먼저 선생님의 약력을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사용하시던 유품들이 전시된 공간이 한쪽에 따로 있습니다.


선생님의 저서와 관련된 책들입니다. 

선생님이 사용하시던 카메라와 유품들입니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선생님의 빵떡모자와 구두입니다.



"인간이 거기 있기에 나는 사진을 찍었다" 최민식님

최민식님은 1928년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 났습니다. 1957년 동경중앙미술학원 디자인과 2년 과정을 마치고 사진작업을 처음시작하였습니다. 애드워드 스타이켄의 “인간 가족”을 접하면서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하여 인간을 소재로 담았고 1962년에 카톨릭계의 한국자선회에서 사진을 담당한게 인간을 소재로 사진을 찍는 계기가 되었다.




3층 건물에는 까페가 마련된 전망대입니다. 

이곳까지 걸어오는 게 보통이 아닌데 

시원한 커피도 한잔하며 여유도 즐겨보세요.




이제 아미동 비석문화마을과 감천문화마을로 구경을 떠나볼까요.



◆최민식갤러리(아미문화학습관) 상세 정보◆

최민식갤러리(아미문화학습관)

★주소:부산광역시 서구 천마산로 410호

문의전화:051-240-4495~6

운영시간과 휴무:평일 오전 10시~오후 7시까지. (단 주말은 오후5시까지). 갤러리 월요일 휴무

★대중교통편: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하차-걸어서 20분 소요

버스이용:87번 -양성슈퍼 하차(걸어서 15분 소요). 134번-아미초등학교 앞 하차(걸어서 8번 소요)

마을버스:1번, 2번, 2-2번-충무동 서구청 앞, 토성역, 아미파출소 앞에서 감천문화마을 행 버스 이용-아미골 공영주차장 앞 하차 50m 

감천문화마을 도보 10분 거리

★주차장 유

★6개월에 한번 작품 교체

 

 

 


 





2014/09/19 - (부산여행/서구여행)감천문화마을 천마산 산행, 우리 집 뒤에 이런 풍경이 펼쳐져요. 최고의 가을 산행 코스 천마산.


2014/09/16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동비석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만 아시나요. 일본인 공동묘지 위의 동네 비석문화마을과 최민식 갤러리도 만나보세요.


2014/09/17 - (부산맛집/사하구맛집)감천문화마을 맛집 팥찌. 감천문화마을의 전경이 너무 좋은 팥찌에서 시원한 팥빙수가 3천원. 넘 좋아요.


2013/01/26 - (부산여행/임시수도기념관여행)처절했던 한국전쟁 후의 부산 모습을 전시한 임시수도기념관전시관-2


2013/01/22 - (부산맛집/서구맛집)1박2일 이승기 아침 복불복으로 먹었던 신창돼지국밥, 감천문화마을 갈때 좋은 신창돼지국밥


2013/01/21 - (부산여행/임시수도기념관여행)한국동란때 이승만대통령이 머물렀던 관저 임시수도기념관


2013/01/19 - (부산여행/감천문화마을여행)한국전쟁으로 형성된 마을로 한국의 산토리, 마추피추 감천문화마을


2012/10/22 - (부산맛집/사하구맛집)면의 달인이 만들면 달라. 면발의 굵기가 바늘 구멍를 통과한다는 면의 종결자 용수탕면 감천문화마을 맛집 실크로드


2012/09/02 - (부산사하맛집)한국의 마추피추에서 먹는 얼얼한 팥빙수 맛은-감천문화마을 우인(友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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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사하여행)다대포 몰운대. 꽃속에서 화장하는 여인의 모습에 비유하는 몰운대를 만나다.


부산의 경계는 해안가를 두르고 있어 많은 절경을 품고 있습니다. 황학대 해운대 이기대 신선대 자성대 태종대 몰운대등 이름만 들어도 아!. 경치가 빼어난 곳이라 모두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 중 부산을 대표한 3대(臺)는 몰운대와 태종대, 해운대입니다. 이름난 절경으로 모두 명승지입니다.

 



 

그럼 몰운대를 걸어봅니다. 몰운대는 옛날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감질나게 한 모양입니다. 지금 도 바닷가에 해무가 끼고하면 섬이 보일랑 말랑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조았다 풀었다 하는데 아주 오래전부터도 몰운대는 뭍사람들에게는 눈에서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였던 것 같습니다.

 

 

몰운대는 “안개와 구름이 낀 날에는 그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구름속에 잠긴 섬이라 하였습니다. 16세기까지도 몰운도라는 섬으로 불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육지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닌 바닷가의 섬으로 배를 타고 들어갔던 모양입니다.

 

 

낙동강에 홍수가 나고 하면 내륙지방의 많은 토사가 밀려 내려오게 되고 그럼 낙동강 하구언에는 대마도 진우도며 많은 모래섬이 생겼습니다. 그 모래가 이곳 다대포에도 쌓이고 쌓여 육지와 떨어저 섬이던 몰운도는 육지와 연결되었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듯 요즘 산줄기 걷기인 낙동정맥은 이곳 몰운대를 기종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대포에서 목을 쭉 빼듯이 낮은 구릉이 몰운대와 연결되면서 그곳은 상가로 변하였고 고운 모래사장인 다대포 해수욕장도 자리를 합니다. 소나무 숲이 울울창창한 몰운대 숲길을 걸어보면 기분까지 상쾌해집니다. 사람이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명확한 해답을 주는 몰운대 소나무 숲길.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공원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가덕도, 몰운대와 다대포는 충무공 이순신을 빼 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부산포해전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서 왜선 100여척을 파괴하며 대승를 하지만 그의 휘하 장수 정운장군을 잃는 아픔을 겪습니다. 그의 '정운공 순의비'가 이곳 몰운대에 있지만 통제지역이라 출입을 할 수 없습니다.

 

  

 

몰운대를 걷다보면 만나는 섬입니다. 동섬 쥐섬 동호섬입니다. 몰운대 앞에서 가장 잘 보이는 섬입니다. 


몰운도를 이루는 섬은 몰운대와 화손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통틀어 몰운대로 불려지고 있는데  화손대의 경치 또한 절경으로 아미산에서 내려온 완만한 능선에 지어진 고층아파트의 모습이 마천루를 보는 것 같습니다. 길게 늘어선 용의 능선 두송반도와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다대포항의 모습도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용의 능선 두송반도.......그 뒤로 태종이 와서 활을 쏘며 쉬었다는 태종대가 구름 속에 잠겨 있습니다.


 

 

다대포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몰운대 전망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끊어 질듯 이어지는 능선을 걷습니다. 

 

 

 “부산광역시 섬 이름 찾기”를 보면은 1763년 9월3일 조선통신사로 참여한 조엄이 일본으로 향하다가 이곳에 들렀습니다. 그의 '해사일기'에서 ”몰운대는 신라 이전에는 조그마한 섬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아름다워 아리따운 여자가 꽃속에서 치장을 한 것 같다“며 몰운대를 칭송하였습니다. 몰운대방향을 보면서 왼쪽 능선 끝 부분에  화손대가 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자갈마당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만들어져 있습니다. 쨔르륵 쨔르륵.  ‘조선통신사의 길에서 오늘을 묻다(한태문 저. 도서출판 경진)’에도 정사 조엄이 몰운대를 두고 ”몰운대는 작은 섬들이 곳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다 산들이 흡사 바다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며 몰운대를 치켜 세우고 있습니다



길게 내려간 능선은 현재 출입을 할 수 없는 통제지역입니다.  저 곳에 '정운공 순의비'가 있습니다.


 

몰운대 좌측에서 본 전망대입니다. 끝없는 바다가 펼쳐지며 맑은 날에는 지네형상이라는 대마도가 보입니다. 금정산은 새벽을 알리는 봉우리 계명봉이 닭의 형상이라 지네는 닭 앞에서는 꼼짝을 하지 못합니다. 계명암에는 자웅석계로 불리는 바위가 있습니다. 암,수 닭의 형상을 한 바위로 범어사에서는 '자웅석계'라 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인에 의해 암닭은 파괴되었고 지금은 장닭만 외로이 대마도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몰운대 앞바다는 워낙 쥐가 많이 뜰끓었던 모양입니다. ㅎㅎ 섬의 모양이 쥐처럼 보이나요. 동섬 쥐섬 동호섬입니다. 쥐섬에 구름이 걸려 넘어 갈때는 장관이었습니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다대포 객사입니다.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3호인 다대포 객사는 다대 첨절제사영에 있었던 객사입니다. 다대 1동 부산유아교육진흥원 내에 있던 것을 1970년 이곳 몰운대로 옮겨와 원형 그대로 복원을 하였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상좌도 7진중의 하나로 부산진과 함께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을 하여 첨사는 정3품 당상관이 상주하였습니다. 건물의 규모는 회원관의 현판이 걸린 정면5칸, 측면 2칸에 팔작홑처마지붕이며 이전 할때 벽을 없애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을 하였습니다.


 


키큰 해송 숲길을 따라 걸어 봅니다. 더욱 심호흡도 크게 해 봅니다.  잠시 뒤  시비가 있습니다. 


 

1999년 사하지역발전협의회가 세운 이춘원의 몰운대 시비입니다.1607년(선조40년) 7월 동래부사로 부임하여 남겼던 몰운대 시는

“호탕한 바람과 파도 천리요 만리

하늘가 몰운대는 힌구름에 묻혔네

새벽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언제나 학을 타고 신선이 온다“

동래부지(1704년)에 전하고 있는 이춘원의 몰운대는 1608년 2월까지 짧은 기간동안이지만 부산의 여러곳을 답사한 뒤 남긴 시입니다.


 

 

 

 

 

구름에 잠긴 몰운대를 빠져나오면 갑자기 신세계가 펼쳐집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1592년 임진왜란과 1700년대의 몰운대까지 만나보고 온 터라 더욱 그런것 같습니다.  과거로의 여행은 이런 재미가 있습니다. 부산에서 과거로의 여행 특히 다대포 몰운대는 더욱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2014/09/28 - (부산여행/사하여행)몰운대 다대포객사. 부산의 3대인 몰운대 다대포객사.


2014/08/13 - (부산맛집/사하구맛집)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맛집 가마솥추어탕. 50년 전통의 가마솥 추어탕 한그릇에 무더위를 훅~~ 날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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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사하여행)몰운대 다대포객사. 부산의 3대인 몰운대 다대포객사.


부산은 예로부터 사방팔방 조망권이 좋은 곳을 대(臺)라 하여 많은 시인묵객들이 조망을 즐기며 글을 남겼습니다. 그만큼 시가 저절로 떠오르는 곳이 많을 정도로 많은 전망대가 있으며 혹자는 부산의 3대, 5대, 8대로 나누어 분류를 합니다.

 




사람에 따라 조금은 다르지만 부산의 3대 몰운대, 태종대, 해운대를 말합니다. 부산사람이라면 모두 수긍을 할 정도 쟁쟁한 조망처 입니다. 또한 내륙의 전망대가 아닌 모두 바다를 끼고 있는게 특이합니다. 부산의 3대중 몰운대를 다녀 왔습니다.

 


몰운대는 16세기까지 몰운도라는 섬으로 불렸습니다. 지금이야 육지화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낙동강의 토사가 하류로 내려와 퇴적되었기 때문입니다.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그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다”는 뜻으로 몰운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일본과 가까이 있어 많은 부침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있던 정운장군이 이곳 부산포 해전에서 순절을 하였던 곳으로 현재 “정운공 순의비”가 몰운대에 있습니다. 일반인들 들어갈 수 없는 통제지역이라 너무 아쉬움이 남습니다. 부산포 해전은 100여척의 왜군을 격퇴한데서 정운장군이 큰 공을 세워 승리한 해전으로 지금도 부산 서구에 있는 장군산은 정운장군의 뜻을 기려 장군의 산이라 부르게 되었다합니다.






몰운대 정상부에는 다대포 객사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 다대 첨절제사영에 있었던 객사로 다대1동 부산 유아교육진흥원 내에 있던 것을 1970년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원형 그대로 복원을 하였습니다. 객사는 지방으로 출장을 나온 관리나 사신의 숙소를 말합니다.



다대포 객사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폐를 보관하였고 고을의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한양의 임금을 향해 신하의 예를 갖추어 망배를 드리던 장소로 사용이 되었고 또한 손님의 숙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객사라면 본채와 좌우에 방이 딸려 있어야 하는데 다대포 객사는 본체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다대포 객사는 정면 5칸, 측면2칸에 팔작지붕을 하였고 벽이나 기둥을 겹으로 두른 건물안쪽에 벌여 세운 기둥(안두리기둥)위에 마주보고 있는 두 기둥을 연결하는 나무인 들보를 올린 5량 건물로 벽은 두르지 않았습니다. 창건 연대는 불분명하지만 1825년(순조25년)에 중수를 하였습니다.



다대포 객사는 임진왜란 이후 더욱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여 경상좌도 7진중의 하나가 되었고 부산진과 함께 일반진의 두배인 병선을 거느리며 정3품 당상관이 상주를 하였던 곳입니다. 부산광역시 사하고 다대1동 산144번지에 위치하며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몰운대

화손대

다대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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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제주 배편 여행/부산항연안여객터미널)서경 카훼리 아일랜드호, 파라다이스호를 타면서 제주 여행을 하다.

대한민국의 오아시스는 단연코 제주입니다. 사막에서 만나는 옹달샘 처럼 제주는 그 만큼 반갑고 가보고 싶은 동경의 섬입니다. 육지와 또 다른 세계인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제주 여행길...... 파라다이스 제주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제주도는 섬입니다. ㅎㅎ 사방팔방 모두가 바다물로 덮혀 있습니다. ㅎㅎ 조오련 선수처럼 저는 수영을 하며는 건너 갈 수 없습니다. 왜냐고요, 맥주병이니까요. 그럼 제주도는 가야하는데 어떻게 가야하나요. 그리고 재미도 있고 가장 즐거운 여행 방법은, 그것을 찾기위해 고민을 하였습니다.


 

현재 제주도를 갈 수 있는 방법은 비행기와 배를 이용하는 두가지 방법. 공항에서 비행기를 이용하면 쓕~~~~~ 여기는 제주공항입니다. 어느 광고 맨트처럼 "벌써 깬거여"가 아닌 "벌써 도착한거여", 빠르면 너무 싱겁잖아요. 


 

그래서 필자가 선택한 방법은 배를 타고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걱정되는게 있었습니다. 지난 4월16일 세월호 사고입니다. 그래서 배편도 조금은 주저하게 되었는데 배를 탄 뒤 많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후 서경카훼리도 피나는 노력과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이였습니다.


 

배를 이용한 제주여행은 여러곳에서 가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부산과 장흥, 목포, 삼천포, 인천등 당일 또는 1박2일 일정으로 운항을 합니다. 물론 집이 부산이라 당연히 저는 부산항 연안 여객 터미널을 이용하였습니다.

 

 

부산항에서 제주항을 운행하는 정기여객선은 (주)서경카훼리의 아일랜드호와 파라다이스호가 격일로 운항중입니다. 수속이야 간단합니다. 예약을 하고 절차를 밟으며 됩니다.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만 탈 수 있습니다. 출항 1시간 전까지 도착.

 

 

부산항 연안여객터미널을 배를 타면서 본 모습입니다. 목요일 출항하는 배는 아일랜드호입니다. 19시출항. 참고로 아일랜드 부산 출항은 화, 목, 토. 제주출항은 월,수,금 19시. 파라다이스호는 부산출항 월, 수,금 19시. 제주 출항 화, 목, 토 출항을 하며 화, 목은 19시, 토요일만 19:30분에 제주을 출항합니다. 예약및 문의 전화는 대표전화 1688-7577.


 

용두산 공원의 부산타워도 가깝게 보입니다.


 

목요일 제주도로 출항하는 배는 아일랜드호입니다. 5,223톤으로 평균속력이 17노트, 여객정원은 880명까지 승선 가능합니다. 제주까지 배하면 대학다닐때 부산에서 도라지호를 타고 가던 생각이 납니다. 배 밑 바닥에 일반실이 있어 배멀미도 하면서 까만밤을 하얗게 지새웠던 기억에 두번다시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나봐라 몇번 다짐을 해도 방학때만 되면 다시 배를 타고 제주 한라산을 찾던 기억이 지금은 추억이 되어 있습니다. 


 

배는 서서히 바다속으로 미끄러져 갑니다. 모두 갑판 위로 나와 떠나는 항구를 봅니다. 그리고 부산항의 멋진 전경이 지금부터 펼쳐지며 제주 여행이라 그런지 들뜬 기분이 됩니다. 제주항을 나오면서 바라보는 모습은 들뜬 기분에 기름을 붓기에 충분한 전경입니다.


 

많은 관광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연신 감탄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에 바쁜 모습입니다. 필자도 연신 스마트폰을 눌렀습니다. 요즘 스마트폰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요 사진들 모두 스마트폰으로 찍었습니다.



 부산연안여객터미널과 국제선 터미널은 서로 이웃하고 있어 일본등으로 출항하는 배를 볼 수 있습니다. 역시 국제선이라 그런지 배가 엄청 크고 좋아보입니다. 한마디로 떼깔있고 삐까번쩍합니다. 


 

 

부산 북항에도 서서히 여명이 젖어듭니다. 붉게 물든 하늘과 홍조를 띤 관광객의 얼굴이 너무나 보기가 좋고 아름답습니다. 또한 수평선에도 붉은 피를 토하고 있는 모습에 내일의 장도가 자뭇 기대됩니다. 


 

북항에 건설된 부산항 대교의 모습입니다. 올해 개통을 하였습니다. 광안대교와 남항대교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부산항의 관문이 되었습니다.


 

다리가 완공되고는 처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ㅎㅎ 너무 멋진 다리입니다.


 

부산항 대교를 완전히 빠져나온 모습입니다. 저 뒤로 출항한 부산항연안여객터미널이 어둠에 묻혔습니다.


 

배안으로 들어왔습니다. 2인 침대가 좌우로 놓여 있습니다. 여느 장급 모텔의 숙박 시설과 똑 같은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옆 우측에 세로로 세워진 통안에 구명동의가 있습니다.



먼저 구명동의를 확인합니다. 조끼형태로 좌우 6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발생하는 불상사를 생각하여 반드시 확인법을 익혀둬여 합니다.


 

아일랜드 내부의 모습입니다. 좌우로 더블침대가 놓여 있고 냉장공와 에어컨, 티비가 벽에 붙어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샤워실이 포함된 화장실도 좌우로 똑같이 있습니다. 화장실이두개라는 말씀. 아마 다른 가족이 함께 동승을 할때는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냉장고 안에는 제주 삼다수가 두병 들어 있습니다. 오! 가동 중이라 생수가 시원합니다.


 

출입구의 모습입니다. 좌우로 화장실 손잡이를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밖으로 나와 맨 윗층으로 올라 갑니다. 식당칸을 통해서 후미로 나갈 수 있습니다. 마침 외국인 부부로 보이는 분이 태극기를 배경으로  부산항을 보고 있습니다. 멋진 그림입니다.





배 내부의 모습입니다. 


일반실입니다. 세월호 참사 후 배는 텅텅 빈 상태로 운항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심각한 재정상태란 생각이 들었고 하루 빨리 안정을 되찾았서면 합니다. 제가 오고 갈때 각 50여명 쯤 배를 탔습니다.




이곳이 식당칸에서 나오면 만나는 곳입니다. 관광객은 이곳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부산의 상징인 오륙도 입니다. 



식당칸의 밥




 멀리 동쪽 수평선 끝에 해가 솟아 아침이 온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편안하게 잠을 잔뒤라 그런지 조금 늦었네요 ㅎㅎ 





제주도의 모습과 한라산입니다. 



드녀 제주항에 도착을 하여 하선을 하였습니다.



제주 출항은 토요일 파라다이스호를 이용하였습니다. 출항시간은 19시30분 입니다. 신분증은 반드시 필수입니다.





파라다이스호입니다. 아일랜드호보다는 조금 더 큰 6,626톤입니다. 그런데 배는 더 큰데 승객정원은 613명이며 개인적으로 배도 큰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부산으로 돌아올때도 침대칸을 이용하였는데 제 개인적으로 아일랜드호가 더 좋았습니다. 아일랜드호는   화장실과 샤워실이 방 내부에 있지만 파라다이스호는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동으로 이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부산~제주 배편 서경카훼리 부산항연안여객터미널 안내

부산항연안여객터미널

★주소: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6가. 롯데백화점 광복점 뒤

★전화:051-400-3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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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영도흰여울길)변호사 촬영지 흰여울길, "니 변호사 맞재?" 변호사 촬영지 흰여울길을 여행하다.

부산에는 1950년대 한국동란 직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전쟁 통에 부산으로 피난을 와 마을을 이룬 산비탈 마을이 수 없이 많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마을마다 눈물을 짜내야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산비탈에 마을을 이루며  눈물과 한을 곰씹으며 고달픈 피난생활을 참아야 하였습니다. 감천문화마을, 초량 이바구길등 그때 피눈물을 흘리며 겪었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혼이 지금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이야기와 만났습니다. 


 

 감천문화마을과 초량이바구길, 영도 흰여울길을 부산 근대 이야기 길 3종 셋트라 합니다. 그 만큼 부산사람과 외지인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

 

그 중 영도의 흰여울길을 찾아 갑니다. 신선이 내려와 살았다는 봉래산의 산줄기에 그림처럼 앉아 있는 마을이 신선동입니다. 흰여울의 뜻은 갈맷길 안내판에 나와 있습니다. 인용하면 “흰여울길은 예전에 봉래산 기슭에서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림으로써 마치 흰눈이 내리는 듯 빠른 물살의 모습과 같다”며 붙은 이름입니다.


 

이름처럼 흰여울길의 마을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하며 그 앞으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모습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었습니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범죄와의 전쟁‘, 드라마는 ’영도다리를 건너다‘등이 촬영되었고 최근에는 1천만 관객을 동원한 ’변호인‘이 이곳에서 촬영되었습니다. 그 변호인 덕분에 흰여울길은 부산을 찾는 관광지의 단골 여행코스가 되었습니다.


 

그럼 흰여울길을 걸어가도록 합니다. 흰여울길은 절영해안산책로에서 찾아가도 됩니다. 또한 함지골을 잇는도로를 2송도라 하는데 2송도 순환도로에서도 찾아갑니다. 버스는 2송도 삼거리에서 하차를 하면 됩니다. 남포동에서 7번, 71번, 70번, 508번 버스 입니다. 지역주민은 절영해안산책로 입구를 지나 계단길을 통해도 오르지만 부산을 찾는 외지인은 택시를 이용하여 2송도 도로에서 바로 하차를 합니다.


 

필자의 집은 남항대교 건너편에 있어 남항대교를 걸어갑니다. 곧 절영해안산책로 입구가 나옵니다. 절영해안산책로 안으로 걸어가다 왼쪽하늘 끝까지 이어진 축대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가도 됩니다만 필자는 절영산책로 입구에 배 모양을 한 탐방안내소에서 덱 육교를 올라갑니다.


 

육교는 순환도로와 연결되어 흰여울길 입구로 갈 수 있습니다. 이곳이 영화 ’변호인‘이 촬영된 곳입니다. 벽에는 “니 변호사 맞제;. 변호사가 이르면 안되제’하는 글귀가 쓰여져 있습니다.


 

2송도 삼거리 부근에는 '흰여울길" 도로명 주소 안내판이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입구에' 흰여울길 3번을 찾는다면 입구입니다. 입구에는 예전의 골목길을 현재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골목을 넓은 길로 꼭 확장을 해야하는지 의구심이 들게합니다. 이곳을 찾는 이유가 원래 있는 그대로의 골목모습과 건물인데 지금은 자꾸만 변화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변호인 촬영지 그곳에만 촛점이 맞추어진 것 같습니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흰여울길의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이 나옵니다. 바다쪽으로 난 좁은 골목길, 오른쪽은 흰여울길의 특징인 남항 앞바다가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습니다. 이모습을 보고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와 멋지다"하며 감탄사를 하다 또 한번 골목길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지붕을 맞대며 들어서 있는 흰여울길, 이런 골목길 모습에서 필자는 어릴적 고향의 향수를 찾아봅니다.

 

 

골목길에 길게 늘어선 빨래줄에 울긋불긋한 옷가지가 내려쬐는 해를 맞으며 뜨거운듯 바람 방향에 따라 몸을 뒤틀고 주인없는 길양이는 이방인이 무섭지도 않는지 내 그림자를 밟고 지나가며 경계심을 나타냅니다.



좁은 길목 담벽락은 화단을 가꾸어 이름모를 꽃이 길손을 맞고 


 

낮은 담장아래에 그려진 장독대에서 아이들이 숨박꼭질을 하고 있는 그림을 보며 피식~,그리 먼 세월도 아닌데 벌써 나의 머리에는 서리가 내렸습니다. 그림을 보고 나의 어릴적 생각이나 웃어 봅니다. 저 아이들도 엄마한테 장독 깬다고 잔소리 엄청 들었을 것 같습니다. .......


 

골목길을 걷다보면 만나는 담벼락입니다. 변호사 송강호가 국밥집 주인 진우엄마 김영옥을 계단에 앉아 밤새도록 하염없이 기다리는 신을 찍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아 좁은 마당에 잡초만 무성합니다.


 

"니 변호사 맞재?

변호사님아 니 내 쫌 도와도"

"이런게 어딨어요? 이라면 안되는 거잖이요!

할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다!'

 

 

요 좁은 계단에서 변호사 송강호는 진우엄마를 밤새 기다리며....................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모두 한번씩 앉아 영화속의 변호인 송강호가 되어 봅니다. 저는 혼자라서  사진만 한장 남겨 봅니다.





 

걸어 왔던 흰여울길 모습입니다. 옛 모습이 아직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피난시절 당시 잠잘 방은 만들었지만 화장실이 없는 집이다 보니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 현재에도 남아 있습니다.



흰여울길을 사진으로 보겠습니다.


 


2송도로 오르는 도로를 올라 갑니다.창문틀에 걸린 빨래. 요즘은 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집과 집사이에는 이리 무덤도 볼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멀리 있는게 아닌 함께 있습니다.

 

 

 


2송도 도로에서 본 흰여울 마을의 모습입니다. 좁은 틈을 비집고 집들이 지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흰여울길에는 생활 속 문화예술 창작 공간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소리공작소의 모습입니다. 밴드의 연습실과 절영FM 방송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변호인 촬영지 입구를 알리고 있습니다. 실제 거리는 100m 쯤 될 것 같습니다.

흰여울길을  다  본 뒤 시간이 남아  2송도길을  걸었습니다.

 

 

 

 

 

절영해안산책로가 아래로 보입니다.



보물찾기 전망데크를 지나고  


 


하늘 전망대입니다. 이곳에는 사랑의 언약 장소로 알려져 자물통이 여럿 달려 있습니다. 


 


75년도에 만들어져 75광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누각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아보고요.

 


중리해변입니다. 이곳에는 해녀분들이 직접 자맥질을 하여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팔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소주 한잔과 흰여울길을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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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맛집/사하구맛집)감천문화마을 맛집 씨앗호떡. 이승기가 먹었다는 씨앗호떡 산상에서 먹는 맛은 어떤 맛, 궁금하지 않나요. 


부산 남포동 비프광장에서 가장 유명한 간식꺼리가  씨앗호떡입니다. KBS-TV 1박2일에서 이승기가 먹고 난뒤 "맛있다"는 그 한마디 때문에 벼락은 맞은듯 불난집에 호떡 처럼 손님이 몰려들어 부산의 레전드 먹거리가 된게 씨앗호떡입니다. 

 

 

'불난집의 호떡'처럼 인기 절정의 씨앗호떡이 이곳 산상마을인 감천문화마을에도 있습니다.  ㅎㅎ 감천문화마을을 들어서는 입구는 감정초등학교가 있는 아미고개(감천고개)입니다. 감천문화마을 관광안내소 왼쪽 도로가 문화마을 메인도로입니다. 이 도로를 일직선으로 끝까지 가면 삼거리가 나옵니다. 왼쪽으로 꺾어 모퉁이를 돌면 우측에 청년 두명이 씨앗호떡을 굽고 있는 가게입니다.  





 

산상에서 먹는 호떡은 어떤 맛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ㅎㅎ 이곳의 높이가 약 해발 160m 정도 됩니다.  부산 남포동이 거의 해발 제로에 가까워 엄청 높은 곳에서 맛 보는 씨앗호떡의 맛은 바삭바삭하니 너무 맛있습니다. ㅋㅋ 게눈 감추듯이 사진도 찍지 않고 훌렁훌렁 먹었다는 말씀......


 

방식은 남포동 호떡과 꼭 같습니다. 사진으로 보이시죠. 씨앗호떡의 주원료인  씨앗과 종이컵.  기름에 잘 구워낸 호떡을 세로로 잘라 그 속에 씨앗을 넣습니다. 그리고 종이컵에 하나식 담아 줍니다. 그럼 끝~~~~ 고소한 호떡과 함께 씨앗이 한입에 들어오면 그 맛은 이승기가 말한 '맛있다'라는 표현이 절로 나옵니다.


 

한사람은 호떡을 굽고 한사람은 호떡을 갈라 씨앗을 넣고 분업화가 착착되어 있습니다. 이 두분은 돈은 만지지 않습니다. 직접 돈통에 넣으면 됩니다. 호떡 한개 1,000원. 요즘 물가와  씨앗이 들어간 호떡을 보면 비싼가격이 절대 아님니다. 감천문화마을을 돌다보면 배도 출출하고 입이 궁금할때 딱 좋은 씨앗호떡. 너무너무 맛있고 좋습니다.


 

주말에는 호떡 집 앞에 인디밴드들이 나와 노래도 부르고 하였습니다. ㅎㅎ 노래도 듣고 호떡도 먹고 한국의 산토리니. 마추피추라는 감천문화마을 여행을 즐겁게 하세요. 감천문화마을 사진을 몇장올려 봅니다. 



◆감천문화마을 맛집 씨앗호떡 영업정보◆

★상호:씨앗호떡

★주소: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 내

★전화:010-2739-7954

★메뉴:씨앗호떡


 

감천문화마을 메인 도로에 있는 조형물입니다. 아마 감천문화마을 중심이 이곳 아닐까 싶습니다. 감천문화마을 전망대와 골목길을 빠져 나가는 곳이라 이곳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감천문화나을의 건물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한국동란으로 피난을 온 태극도 신봉자들이 공동 생활을 위해 만든 감천문화마을은 아래 집이 윗집을 가리지 않는 독특한 형태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감천문화마을에서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를 많이 끌고 있는 곳중 한곳인 어린왕자와 함께 사진을 찍는 곳입니다. ㅎㅎ 이곳은 줄을 써야만 사진을 담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멀리서 감천문화마을을 보기위해 왔다면 이곳만 보고 내려가면 섭하죠.ㅎㅎ 남포동 방향으로 고개를 내려가면 만나는 아미동 비석마을 안내판입니다. 부산은 가꾸막에 집을 지었는데요 그 연유를 보면 참 눈물이 흐릅니다. 특히 이곳은 더욱 그러한 곳입니다. 비석이 무엇인가요. 보통 무덤앞에 죽은자의 신분을 밝혀주는 것이 비석입니다. 



일제강점기때는 주로 서구 중구 일대에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를 하였고하여 이곳에 일본인 공동묘지를 만들었습니다. 8.15 광복으로 일본인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고 주인없는 무덤들만 이곳에 남았는데 일본에서 돌아온 귀환동포와 한국전쟁으로 피난온 피난민들에 의해 이곳 공동표지에 우막을 짓고 살게되었습니다. 평지를 만들기 위해 축대도 쌓아야 겠고하여 비석과 상석을 뽑아내어 담벼락을 만든게 비석마을로 불리게 된 유래입니다. 지금도 이마을에는 비석을 쌓은 축대들이 많이 있습니다.

 


비석문화마을을 보고 내려 왔다면 세계적인 사진작가 최민식갤러리를 가보세요. 비석문화마을에서 150m 거리에 있습니다. 한국 다투멘터리 사진작가 1세대인 선생님의 작품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근대 부산의 사진들을 봄으로 더욱 부산을 가까이 할 수 있고 부산을 알 수 있는 이곳 최민식갤러리도 빠지지 마세요.



2012/09/02 - (부산사하맛집)한국의 마추피추에서 먹는 얼얼한 팥빙수 맛은-감천문화마을 우인(友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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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 - (부산맛집/사하구맛집)면의 달인이 만들면 달라. 면발의 굵기가 바늘 구멍를 통과한다는 면의 종결자 용수탕면 감천문화마을 맛집 실크로드


2013/01/19 - (부산여행/감천문화마을여행)한국전쟁으로 형성된 마을로 한국의 산토리, 마추피추 감천문화마을


2014/09/16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동비석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만 아시나요. 일본인 공동묘지 위의 동네 비석문화마을과 최민식 갤러리도 만나보세요.


2014/09/17 - (부산맛집/사하구맛집)감천문화마을 맛집 팥찌. 감천문화마을의 전경이 너무 좋은 팥찌에서 시원한 팥빙수가 3천원. 넘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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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동비석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만 아시나요. 일본인 공동묘지 위의 동네 비석문화마을과 최민식 갤러리도 만나보세요.

어릴 때 TV 드라마중 여름날 단골소재가 있었습니다. 무시무시한 공동묘지에서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길게 내린 여인이 흐느껴 울면서 옆으로 눈을 돌릴 때 눈에서 붉은 광채가 나면 심장이 쪼그라들면서 본 한여름 밤의 공동묘지이야기.


 

무섭다며 이불 밑으로 숨고하며 깜짝깜짝 놀라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빼꼼히 눈만 보이며 TV의 공동묘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 헤어나지 못한 기억이 납니다. 아마 모두 무섭고 끔찍하다 하였을 것입니다.


 

 

부산 아미동의 산비탈에서 평생을 공동묘지 위에서 생활한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 것도 대도시인 부산에서 말입니다. 지금도 공동묘지위에 집을 지어 생활하고 있는 동네인 비석마을이 있어 소개를 하겠습니다.



 한국의 산토리니, 또는 마추피추라하며 국내는 물론 동남아등 심지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감천문화마을은 너무 잘 아실 것입니다. 사하구의 감천문화마을과 함께 붙어 있는 마을이 서구의 아미동입니다. 감천문화마을 입구에는 감정초등학교가 있으며 아미고개(감천고개)라 부릅니다.


 

 

고개를 넘으면 오른쪽 담벼락에 ‘산복도로 르네상스’ 일환으로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부산 서구 아미동 산 19번지 아미동 산상교회가 있는 산복도로 오른쪽 산비탈이 일제강점기때 일본인 공동묘지였습니다.


 

 

지금은 그 많은 공동묘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차곡차곡 집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미로 같은 골목길로 연결되어 있는데 골목 폭이 좁은 것은 50cm 안팎이며 사람이 옆으로 서서 빠져나가야 할 정도입니다. 아미동 공동묘지에 마을이 들어서게 된 연유를 알아 보겠습니다.


 

 

 

 

 

 

 

 

해방이 되면서 서구에서 살았던 일본인들은 모두 본국으로 떠나고 일본인 공동묘지는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끌려갔던 귀환동포가 돌아오고 1950년 6.25한국 전쟁으로 피란민이 모두 부산으로 몰려들면서 그 많은 사람을 좁은 땅에서 수용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둘 이곳 아미동 공동묘지에 올라와 비바람을 피할 움막을 치고 무덤위에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워낙 까꾸막이다 보니 무덤의 상석과 비석을 빼내어 바닥을 공구고 한 것이 지금은 축대로 드문드문 박혀 있습니다.


 

 

 

 

축대에 돌출된 비석을 보면 가문의 문양인 사꾸라가 새겨져 있는 것도 보이며 일본의 연호인 대정과 소화, 무덤 주인의 이름도 세겨져 있는데 누군가 인위적으로 지운 흔적도 볼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동떨어 진게 아닌 함께 살아간다고 하겠습니다.




지금도 마을 주민 중에는 그 당시 무덤 속 주인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며 향을 태우는 집이 있다하니 한여름밤의 남량 특집을 주민들은 매일 경험할 것 같습니다. 그런 어둠 칙칙한 분위기를 걷어내기 위해 비석마을이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부산만이 겪을 수 있는 독특한 산복도로마을에 거미줄처럼 연결된 골목 하나하나가 주민들의 삶과 애환이 묻어 있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이 인위적이라면 아미동 비석마을은 자연 발생적인 형태의 마을입니다.




담벼락과 옹벽의 벽화가 마을을 더 산뜻하게 하며 부산항과 남북항의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조망은 감천문화마을과 또 다른 매력입니다. 비석마을를 내려서면 도시철도 1호선인 토성역으로 향하는 산복도로를 걸어갑니다. 이곳은 또 다른 볼거리가 있습니다.





















곧 남부민동 산복도로 갈림길에 이정표가 붙어 있습니다. ‘아미문화학습관 50m', '최민식갤러리 50m', '기찻집 예술체험장 30m' 방향인 오른쪽  도로를 걸어갑니다. 왼쪽에는 새로운 부산의 광경이 펼쳐집니다. 






부산의 상징인 용두산 공원과 영도대교, 영도의 봉래산등 부산의 옛 중심지였던 중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집이 기차처럼 길어 기찻집으로 불렸던 곳이 지금은 '기찻집 예술체험장'이 들어섰고 지난 일요일 커피라도 마시며 분위기라도 낼까 싶어 계단을 올라보니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 옆 아미문화학습관은 비석마을과 함께 꼭 찾아봐야 할 곳입니다. 물론 전망대로도 최곱니다. 3층 건물로 2층에는 대한민국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가 최민식 갤러리가 있습니다. 마침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라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주말에는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며.....ㅋㅋ 주말에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평일 날 차라리 조금 늦게 문을 열고 주말에는 조금 더 길게 시간 조정이 있어야 겠습니다. 감천문화마을과 아미동비석마을을 보고 내려오는 관광객을 위해서라도예.........이날은 헛탕을 쳤지만 다음기회라도 꼭 보고 싶은 곳입니다.

 


부산의 감천문화마을만 찾고 다 봤다며 횡하니 떠나지 말고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의 모습과 그 당시을 상상도 해보고 최민식 갤러리를 꼭 방문하여 살아 있는 부산 모습을  만나면 한층 더 가깝게 부산속으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2013/01/19 - (부산여행/감천문화마을여행)한국전쟁으로 형성된 마을로 한국의 산토리, 마추피추 감천문화마을


2012/09/02 - (부산사하맛집)한국의 마추피추에서 먹는 얼얼한 팥빙수 맛은-감천문화마을 우인(友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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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제주 거문오름 탐방로에서 만난 쇠살모사. 그냥 조용히 지나가세요.


제주 거문오름을 걷기 위해 입구에서 해설사 분으로부터 간단한 거문오름의 해설과  이곳은 쇠살모사가 많다는 주의사항을 들었습니다. 뱀이라면 누구나 모두 징글징글해 할 것입니다. 이번 거문오름 탐방로를 걷다가 나무에 턱 몸을 걸쳐 말리고 있는 쇠살모사를 발견하였습니다.



보통 일반 뱀들은 사람소리가 나면 자신도 겁을 먹고 먼저 몸을 내 빼는데 독을 품고 있는 독사 종류는 도망을 가지 않고 먼저 덤벼들려고 하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이날도 50여명 쯤 그 길을 지났는데 ㅋㅋ 천하태평으로 나 할 일을 한다였는지 몸에 선탠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영양의 일월산 반변천 발원지 뿌리샘에서 만난 쇠살모사 보다는 색깔이 많이 검었습니다. 햇볕에 너무 태웠는지....그 날도 20여분 동안 후치고 해도 몸의 열을 시키기 위해선지 약수터에 담근몸을 빼지 않고 혀만 날름날름하였던 기억이 나 ‘어이쿠’ 하며 몸서리쳤습니다.



이놈은 혀는 날름날름 하지도 않고 그저 지할일만 하고 가끔 한번씩 살아 있다는 제스쳐로 몸만 움직일 뿐입니다. 그런데 주위의 색상과 너무 잘 어울려 잘못하다가는 뱀인줄 모르고 스쳐 지나가다 손이나 다리로 건드리는 경우가 있을 것 같은데 그 때는 조심해야 겠습니다. 혹 그 냥 덤벼들지 모르잖아요.






거문오름 탐방시에 쇠살모사를 조심하세요. 제주도 쇠살모사에 대해 알아보면 말입니다. 무시무시한 살모사과고요 한국, 중국, 러시아 등에 분포를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사람이 살고 있는 민가 근처에 주로 출몰하며 한라산 높이가 1950m 인데 1,600m 높이의 고산에도 나타난다하니 산행시에도 주의를 해야겠습니다.

 


몸의 길이는 40~80cm. 주로 들쥐, 개구리, 장지뱀등을 잡아먹고 아주 독성이 강한뱀으로 국내에 서식하는 살모사중에서 독성이 가장 강합니다. ㅎㅎ 다 아시죠. 살모사는 알이 아닌 새끼를 나무위에 놓습니다. 새끼도 태어나자 마자 독을 가지고 있어 주의를 요합니다. 



영양 일월산에서 만난 쇠살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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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면 망덕포구. 섬진강과 호남정맥의 끝과 시작인 망덕포구로 가을 여행을 떠나보세요.


강물이 흘러와 자연스럽게 바다와 한 몸이 되는 곳이 있습니다. 새벽에 나갔던 고깃배가 석양빛을 받으며 갯가로 들어오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있습니다. 누구나 아련한 추억 한 줄은 남아 있을 것 같은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그런 곳 망덕포구를 지난여름에 댕겨 왔습니다. 전날 엄청 내린 폭우로 포구에 묶어 둔 쪽배의 뱃머리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아픈 듯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바다 바람에 온 몸을 맞고 있습니다.





 

 망덕포구는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의 망덕산 아래에 복주머니처럼 옴폭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경상남도 하동군 금성면 고포리와 갈사리를 끼고 흘러온 섬진강이 물을 토해 내놓는 곳입니다.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 있는 팔공산 북쪽 천상데미로 불리는 봉우리 기슭에 있는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550리를 흘러 이곳 망덕포구에서 몸을 한결 낮추며 광양만에서 몸을 눕힙니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강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는 봉우리를 뜻하는 더미에서 나왔습니다. 데미샘의 발원지인 천상데미는 섬진강을 거슬러 천상으로 올라간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그의미가 자뭇 심장합니다. 


 

섬진강을 혹자는 아픔의 강이라 합니다. 좌우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아픔과 상처를 모두 보듬고 안아 말없이 흘러가는 섬진강. 그 섬진강을 감사는 산이 성스러운 여신의 산이라 부르는 지리산입니다. 모든 것을 품을 것 같은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이라 부릅니다. 너른 품으로 섬진강을 품고 쓰다듬어 그 아픔을 말없이 토해 내는 ‘엄마’의 눈물처럼 섬진강은 그렇게 강이 되어 강과 바다의 경계인 망덕포구로 흘러갑니다.


 

 

 

망덕포구는 끝과 시작의 점입니다. 섬진강물은 이곳에서 끝을 맺지만 백두대간의 또 다른 시작점입니다. 한반도의 등뼈로 통하는 백두대간의 최남단은 망덕포구입니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호남정맥은 망덕산을 올라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인 영취산을 만나고 백두산으로 거침없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망덕포구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먹거리가 있습니다. 섬진강과 남해가 서로 만나는 기수지역이라 이른 봄 벚꽃이 필 때 가장 물이 올라 맛있다는 벚 굴을 시작으로 전어, 맛조개, 백합, 재첩, 장어 등이 많이 나와 광양, 하동을 더욱 풍부한 먹거리로 만듭니다.

 

 

 

망덕포구의 가을은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전어가 망덕포구의 또 다른 별미입니다. 왠 집 나간 며느리가 그리 많은지 망덕포구의 9월은 모두 집나간 며느님이 와서 그런지 9월에 열리는 '망덕전어축제' 때는 방문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 합니다.


 

그 것을 증명이라 하듯 망덕포구 안에는 ‘전어고을 망뎅이’ 조형물이 큼지막하게 세워 놓았습니다. ‘여기가 바로 전어고을이제’하며 말입니다. 지금이야 교통의 발달로 이곳저곳 마음대로 다닐 수 있지만 예전에는 뱃길이 가장 빨랐습니다.





 

망덕포구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하동, 다압, 구례, 곡성까지 올라가는 유일한 길목 역할을 망덕포구가 하였다니 그 당시의 망덕포구가 상상이 됩니다. 망덕의 유래는 망덕산에 오르면 광양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하여 ‘망뎅이’라 하였는데 한자음에서 망덕(望德)이가 되었다는 이야기. 사진으로 보는 작은 산이 망덕산입니다. 

 

 


 

 

 

 

2001년 광양시장이 세웠던 ‘진남루기’ 표지석에 망덕포구를 잘 표현하여 옮겨 옵니다.“ 아, 이곳은 명지(名地)이다. 노화(蘆花)를 적신 물이 칠문(七門)을 통하여 배알도(拜謁島)를 휘감고 돌아 남해(南海) 물결과 만나고 영봉(靈峰) 억불봉(億佛峰)을 뒤로하고 풍치 좋은 무접도(舞蝶島)와 망덕산(望德山)을 좌우로 거느리고 여름이면 물결 출렁이는 소리와 겨울이면 갈대 서걱 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 .망덕포구의 가을은 이제 부터 시작입니다. 


 

 


 

망덕포구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08년 9월에 어업권을 찬탈한 일본인을 처단하기 위해 황병학(1876~1931)이 의병을 일으킨 곳입니다. 그해 여름 광양의 영산 백운산에서 산포수 100여명을 모아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망덕포구의 어장을 빼앗은 일본어민과 잡화상을 공격하여 가옥과 어선을 모두 불태우며 저항을 하였던 곳입니다. 지금은 광덕포구 쉼터가 마련되어 그 당시를 알리는 작은 안내판만 따가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습니다.


 

4월의 망덕포구는 벚꽃이 장식을 합니다. 망덕포구 전체가 하나의 벚꽃이 된다는 마을 분의 설명을 들으며  4월에 벚꽃이 필때  벚굴을 먹으러 다시 한번 찾고 싶은 망덕포구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서시'.' 별헤는 밤' 등 윤동주의 필사본이 왜인의 눈을 피해 보관되었던 정병욱 가옥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이 정병욱 가옥입니다. 지금은 근대 문화유산인 등록문화재 제341호로 1925년 건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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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제주마방목지)제주도에서 조랑말을 보고 추억 만들기를 하세요. 데두마방목지


말(馬)에 관한 속담중에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라 보내라”합니다. 그 만큼 제주도에는 말을 많이 키웠던 것 같습니다. 왜 제주도에 많은 말을 키웠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기후가 말 먹이가 되는 풀이 잘 자라 그런 것 같은데 제 개인의 생각입니다.

 

 

남쪽 지방인 부산과 남해도 제주도등에서 말을 많이 길렀다는 기록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부산에도 말을 키운 목마장이 여러 곳 지명으로 전해 내려오는데 서구 초장동과 영도입니다. 영도라는 지명도 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림자도 따라오지 못하는 명마를 절영마라합니다. 그런 명마인 절영마를 생산하였던 곳이 영도인데 절영마의 절자를 빼고 영도가 되었다합니다.


 

 


말 먹이인 풀이 무성하여 말을 놓아 키웠다는 초장동과 하늘에서 내려온 천마가 필자의 집 뒷산인 천마바위를 박차고 올라 영도로 날아 갔는데 그 때 생긴 말 발자국이 바위에 남아 있습니다. 말의 전설이 그 어느곳 보다 많은 부산도 제주도에서는 명암 내기가 어렵습니다. ㅎㅎ 제주말의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습니다.


 


문헌에 나와 있는 기록을 보면 1071년 제주의 명마를 고려 문종에게 진상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제주도에 말이 사육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원종에 와서는 원나라가 제주도에 목마장을 설치하고 말의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여 군마을 생산 공급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1276년 충렬왕 2년에 와서는 몽골에서 160마리가 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평에 들어 와 관리가 되었다합니다.


 

 


또한 고려의 공민왕때 까지 100여년간 몽골마가 들어와 훈련과 함께 우수한 품질의 말을 생산하기 위해 종마 개량을 하여 육지로 공출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제주마의 수요가 더욱 많아 세종때인 1430년에 한라산 기슭에 다 10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제주마를 관리 하였습니다.


 

이를 10소장이라 하며 10소장를 각각 나누는 경계에 수박머리만한 돌로 담을 쌓았는데 이를 잣성이라 합니다. 필자는 서귀시 표선면 가시리의 따라비 오름에서 큰사슴오름으로 길게 이어진 잣성을 보았습니다. 10소장의 경계선을 따라 6km 정도로 제주도 최대의 크기라합니다. 이것만 봐도 제주도에서 1~2만여 마리의 마필이 사육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주마인 망아지는 보통 3월에서 7월 짝짓기를 하여 임신기간은 사람보다 한달 더 긴 11개월입니다. 어미 말은 출산 후 보통 10개월간은 새끼 말에게 젖도 물리면서 정성것 어미로서 할 도리를 다 합니다. ㅎㅎ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식사랑은 똑 같은 것 같습니다.


 

제주말의 특징을 보면 몸집은 일반 말 보다 작지만 체력은 엄청 뛰어났다합니다. 조선 백성 처럼 성질도 온순하고  환경에 잘 적응하여 농경과 운송수단으로 많이 이용을 하였던 제주 조랑말.

  

 

 


제주 조랑말을 보기위해서 제주시 용강동에 있는 제주마방목지를 찾아갔습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횡단하는 5.16 도로를 가다 좌우로 넓게 조성된 마방목지가 제주 조랑말을 사육하는 곳입니다. 찾아간 이날은 전망데크가 만들어져 있는 마방지 입구에서 한참 떨어진 구석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습니다.


 

 

 


주차장에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조랑말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오른쪽 도로편 안전펜스에서 조랑말과 어린조랑말이 외따로 떨어져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 것이 보이기에 두말 없이 달렸습니다. 조랑말을 볼 욕심으로 주차장에 있는 전망대에서 그야말로 바람과 함께 뛰어 바로 눈 앞에서 제주 토종 조랑말을 보았습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분은 모두 이곳에서 차를 세웠고 귀여워도 너무 귀여운 제주 조랑말과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ㅎㅎ 저도 덕분에 사진기에 담을 수 있었던 제주 조랑말은 1986년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습니다.


 


◆제주마방목지와 조랑말 구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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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부산깡통야시장 여행)부산에서 유일한 야시장 부평동깡통야시장 돌아보고 왔습니다. 


야~~~~호. 부산에도 야시장이 생겼습니다. ㅎㅎ 대만 여행시 보았던 수많은 야시장의 모습과 특히 화시졔 야시장은 별천시 중에 별천지였습니다. 없는게 없을 것 같은 대만야시장을 보고 내고장 부산에는 왜 없지 했는데  부평동 깡통시장이 부평동깡통야시장으로 개장을 했습니다.



 

부평동에 있는 깡통시장은 6.25 한국전쟁 후 수많은 미군의 군수 물자가 흘러나와 시작되었습니다. 통조림등 전쟁 물자에서 다변화되어  전자제품등 모든 수입물품이 이곳에서 판매가 되었던 깡통시장. 지금이야 여행 자유화와 함께 자유롭게 무역상들이수입을 할 수 있어 깡통시장의 기능은 많이 줄었습니다. 



 

그 당시 부산에서 진귀한 상품은 이곳 깡통시장에 와야만 만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부산의 애환과 함께 한 부산 깡통시장은 요즘 많은 먹거리로 유명합니다. 부평동 돼지족발골목 다 이시죠. 야들야들 입안에서 녹는다는 그 맛........요즘 방송에도 많이 맛집으로 소개되었던 유부 주머니등 모든 맛집이 이곳 부평동 깡통시장과 인근에 몰려 있습니다.


 

가끔 깡통야시장에 들렀지만 추석 명절을 앞두고 찾아갔습니다. 이곳 부평동깡통야시장은 주야 모두 영업을 합니다. 주간은 좌우 점포가 문을 열어 부평깡통시장의 역할을 하고 저녁이 찾아들 무렵은 오후6시 부터 통로에 작은 이동식 손수레가 자리를 잡습니다. 


 

맛있는 먹거리가 즐비합니다. 요즘 다문화 가정이 많이 늘어서 인지 동남아등 그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들도 이곳 깡통야시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대만등 세계의 야시장에 비해 작은 규모지만 입소문을 타 외지의 관광객과 부산을 찾는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부산 여행을 하신다면 이곳 부평동깡통야시장 꼭 찾아보세요, 부산의 색다른 부산만의 여행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근의 자갈치시장과 남포동 광복동과 연계가 되어 걸으면서 둘러 볼 수 있습니다.





 

깡통야시장에서 맛있게 먹고 즐겼다면 야경을 블길 수 있는 곳을 추천하겠습니다. 용두산 공원입니다. 부산을 상장하는 120m 부산타워와 함께 펼쳐지는 용두산 공원의 야경. 한마디로 끝내줍니다. 



 부산 타워 전망대에 올라가 보면 맑은 날에는 대마도도 보이고 밤에는 크리스탈 처럼 반짝이는 부산항의 불빛에 넋을 빼앗기게 됩니다. 부산야경도 구경하고 부평동깡통야시장에서 추억도 쌓고 부산여행 무지무지하게 볼게 많은 곳입니다. 


 

부평깡통야시장 영업시간은  18시 부터 부평동깡통야시장이 열리고 24시에 문을 닫습니다. 부산여행시 참고하세요. 교통편은 도시철도 1호선을 이용하여 남포역 또는 자갈차역에 하차를 하면 됩니다. 버스는 다양하게 많이 있습니다.


용두산 공원 야경



2014/08/06 - (부산맛집/중구맛집)부평동깡통야시장 보수동책방골목 맛집 수목횟집. 까탈스러운 국제시장 부평동깡통시장 상인들의 입맛을 평정한 숨은 맛집 수목횟집이요


2014/04/15 - (부산맛집/중구맛집)부평동시장, 깡통시장, 국제시장맛집. vj특공대 간판없는 식당의 김치찌개가 한국인이 좋아할 김치찌개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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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갈맷길)갈맷길 3-2코스. 이바구가 주렁주렁 달린 가을철 걷기 좋은 코스 갈맷길에서 힐링을 하다. 


부산 둘레길인 갈맷길 3-2 코스를 걸었다. 부산 원도심을 걷는 길로 자성대 공원에서 남항대교 구간까지 약 15.8km, 5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그러나 갈맷길 3-2 구간을 조금 줄여서 부산진 시장에서 용두산 공원까지 걷기로 하고 떠난 둘레길 여행, 부산의 도심을 활보하며 부산의 특징인 산복도로의 형성 과정을 알 수 있는 구간이다. 이번 구간이 6.25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에 의해 형성된 근대 부산의 모습으로 판자집의 의미를 알수 있다. 요즘 자라나는 어린이와 함께 걸어보면 너무 유익한 코스이다. 왜 부산이라 부르게  되었는지 증산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으며 또 한 통영 출신 청마유치환 선생의 우체통이 왜 여기에 있는지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부산역 건너편에서 시작하는 동구 이바구길의 유래를 알 수 있고 초량동과 상해거리, 중앙동의 40계단 문화거리 등 용두산공원에서 걷기를 끝낼 때 까지 살아있는 우리 삶의 이야기가 끝임 없이 샘 솟는 재미있는 갈맷길 구간으로 걷기 마니아에게 강력 추천한다.

  


출발은 자성대공원 건너편에 있는 부산진 시장이다. 자성대는 범일동에 있는 조선시대에 쌓은 부산진성의 지성이다. 정식명칭은 부산진지성이며 1972년 6월에 부산광역시 기념물 7호로 지정되었다. 자성대의 유래를 보면 부산진성을 본성 또는 모성이라하고 자성대의 성을 지성 또는 자성이라 하였고 자성대 정상에 자성을 만들어 장대로 삼았다는데서 자성대라 부르게 되었다. 임진왜란때 왜군에 의해 함락되는 치욕을 겪었고 왜장 모리 부자에 의해 부산성이 헐리고 왜군이 다시 왜성으로 쌓았으며 소서성, 환산성이라 하였다. 자성대 구경을 하고 부산진역으로 돌아나오면 갈맷길 3-2 둘레길은 시작된다.


 

부산진시장 앞에 가로 걸린 육교를 건너 진시장 정문에서 왼쪽으로 시장바깥을 돌아간다. 건물 끝에는 남문시장 건물과 서로 붙어 있다. 남문시장을 오른쪽으로 돌아 시장를 끼고 있는 도로를 따라간다.


 

바닥에는 노란 글씨로 ‘긴급차통행로’라 써 놓았다. 직진하여 끝까지 들어가면 육교형 계단이 나온다. 육교 아래는 경부선과 경전선이 이곳 부산역에서 출발하여 지나간다.

 

 

 

 

 

 

육교를 건너면 부산에서 가장 크다는 좌천동 가구거리이다. 좌천동 도로 양쪽에 늘어선 가구점은 1950년대부터 형성되어 현재 200여곳이 성업중이며 부산 시내 가구점의 발상지이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은 모두 이곳에서 가구를 장만하였다는 좌천동 가구거리.


 

큰 도로로 나와 왼쪽으로 꺾어  도시철도 좌천역 8번 출구를 지나 있는 건널목을 건넌다. '좌천동 가구1번지거리' 광고판이  있고 갈맷길은 대진 침대 오른쪽 도로를 따라 간다.  정공단과 갈맷길 이정표를 보고 도로를 따라가면 일신기독병원 주차장 건물 앞의 'T'자 갈림길에 도착한다.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임진왜란때 부산진성에서 끝까지 항전하다 전사한 충장공 정발장군과 군민들을 추모하기 위해 1766년에 세운 정공단 건물이 있다. 평소 출입구가 닫혀진 경우가 많은데 이날도 문이 굳게 닫혀져 외관만 보고 갔다.   


 

 

다시 왕갈지 기념관과 일신유치원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오르는 길이 갈맷길 코스이다. 70m를 올라 부산진교회 앞에 부산 최초의 여학교인 일신여학교 기념관에 닿는다.

 

 

1905년 호주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부산진일신여학교 건물로 근대문화유산이다. 현재 그 당시의 원형을 잘 가지고 있으며 비례와 군형미가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고 건축학 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3.1 운동때는 부산지역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부산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인 박차정여사도 이곳 출신이며 뒤에 동래여고로 바뀌게 된다. 한국 기독교 사적 제7호. 비탈길을 거슬러 오르면 금성 중.고등학교 입구의 중복도로에 선다.


 

금성중고등학교 입구 왼쪽 계단을 오른다. 동구와 중구의 수정동, 좌천동, 대청동은 부산의 대표적인 서민주택지로 소위 까꼬막이란 비탈에 집을 지어 오르기가 힘이 든다. 다시 '증산동로' 길인 도로와 만나고 오른쪽에 금성 이용원이 있다.

 

 

 

금성중고등학교 후문쪽에 있는 금성아파트 사이 계단으로 오르면 농구 골대가 한개 있고 오른쪽에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갈맷길은 왼쪽이지만 오른쪽 70m에 있는 전망덱에 잠깐 둘러보자. 부산 북항과 부산항대교, 영도가 한눈에 보인다.


 

 

 

다시 체육공원으로 돌아와 진행방향으로 직진하여 큰 은행나무가 있는 숲길을  파고든다. 덱계단을 올라 증산동로 37번길 21호 앞에서 오른쪽  증산공원 방향 계단을 오른다. 야구장 오른쪽 철망을 돌면 공중화장실이 나온다. 

 

 

동구도서관이 있는 증산공원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증산공원 허리로 난 도로를 따른다. 증산에서 부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그 이유를 보면 부산의 부(釜)는 가마솥 부자를 사용한다. 증산의 모양이 꼭 가마솥과 닮아 15세기부터 부산으로 불렀다는 설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수정산과 범천동 그리고 황령산과 부산의 새로운 중심지로 바뀐 서면일대등이 빈틈이 없을 정도로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범일 배수지 입구를 지나면 증산공원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틀면 성북시장이다. 산 능선에 시장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성북시장을 나오면 성북고개 삼거리. 새마을 금고 앞 이정표에 오른쪽 방향은 안창마을방향.  가야할 갈맷길은 왼쪽 수정초교 1.0km 방향이다. 망양로라 부르는 도로를 내려가면 수정 삼거리가 나온다. 


 

 

수정삼거리에서 왼쪽 내리막은 동구청 방향, 오른쪽 수정초교. 동구 장애인 복지관 방향이 갈맷길 코스다. 수정산과 구봉산 허리를 도로가는 산복도로를 망양로라 부른다. 수정지구대와 수성초교를 지나고 곧 만나는 수정5동 우체국 앞 사거리에서도 직진한다.


 

 

 동구장애인 복지관 삼거리에 이정표가 있다. 왼쪽은 동구청(0.5km)으로 내려가는 수정로길. 부산종합사회복지관 0.25km, 초량천 숲 체험장 2.0km, 용운사 방향으로 직진한다. 


 

 

청광아파트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은 사회 복지관 방향이지만 직진 도로다. 수정아파트 우편취급국 맞은 편에 동구 신복도로 안내판이 있다. 산복도로는 산의 중턱에 있으며 도로가 서민의 삶인 양 구불 구불 하게 이어져 있다. 한국전쟁과 함께 생성된 수정동산복도로는 부산 근대 발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스토리화하여 아름다운 길로 탄생하였다는 설명이다.  

 

 

 

수정4동 주민센터 앞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도로는 살짝 올라 오른쪽으로 틀어 수정1배수지와 묘심사를 지나면 홍곡남로 갈림길. 계속 직진하면 초량이바구길 안내판이 붙어 있다. 


 

초량 이바구길 기.종점인 까꼬막 갈림길 안내판에서 직진하면 초량 이바구길의 중요 지점인 유치환 우체통이 있는 건물이 나온다. 이 일대의 조망이 갈맷실 3-2 코스 중에서 가장 조망이 좋아 포토존도 설치되어 있다.  산복도로와 가정집 옥상 높이가 같아 대부분 주택들은 옥상을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청마유치환의 고향은 통영으로 유치환 선생은 이곳 부산고등학교 재직시 뺑소니교통사고로 사망을 하였다. 유치환 선생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 이영도에게 연서를 5천통이나 보냈던 것으로 유명한데 현재 통영에서 이영도 선생에게 편지를 붙혔던 통영 중앙우체국이 아직 남아 있다.  


 

유치환 선생과 빨간 우체통을 보고  직진하면 멀리 중앙공원의 충혼탑도 보인다. 금수사 앞 삼거리에서 왼쪽 부산역, 초량돼지갈비 방향으로 꺾는다. 직진은 민주공원, 중앙공원 0.3km 방향이다. 


 

 

 

초량 6동 주민센터를 지나고 (구)해룡약국 버스 정류장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인 '초량상로 79번길'로 들어선다. 한일탕이 있고 초량성당에서는 급경사 내리막이다. 사거리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초량전통시장을 통과한다.


 

 

 

부산역과 연결되는 도로에 내려서면 하나은행 초량지점이 나오고 오른쪽 김광덕 이빈후과의원을 돌아 부산역 방향으로 걷는다. 부산역 맞은편 보리밥 집 앞에 초량 이바구길이 시작된다는 안내판을 보고 직진하면 초량 상해거리인 차이나타운을 알리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홍성방 앞에 갈맷길 안내판이 있다. 직진하면 초량사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은 영주터널 방향중앙대로를 따라 직진하여 건널목을 건넌다.   중부경찰서 0.6km, 40계단 문화거리 1.0km 이정표 방향으로 10여분 걸어 중부 경찰서 앞에 닿는다. 경찰서 앞 삼거리에서 오른쪽 일방통행 길로 들어선다. 


 

 

 

 

250m를 발품을 팔면 유행가 '경상도 아가씨'에 나오는 40계단 문화 거리이다. 영주동에서 옛 부산역과 국제여객부두를 왕래하던 계단길로 6.25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피난때 헤어진 가족 상봉 장소로 영도다리와 함께 널리 알려진 곳이다.  피난살이의 설움과 애환을 그대로 간직한  40계단 길. 


 


 힘든 노동에 지쳐 잠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아버지의 휴식' '어머니의 마음"등 다양한 동상을 40계단 테마거리에서 만난다.



 

 

 

 

백산기념관(426m) 가는 길은 직진하여 부산우체국 뒷길을 따른다. 부산우체국 옆  사거리에서 건널목을 건너 오른쪽으로 틀어 KD 대우증권 빌딩을 지나 금생약국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백산상회 터에 세운 백산기념관이 삼각형 건물로 세워져 있다. 


 

 

백산 상회는 백산안희제 선생이 독립군의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세운 가게로 부산의 항일 독립 운동 역사에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난 곳이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꼭 함께 가봐야 할 곳이 이곳 백산 기념관이다. 이곳을 지나면 타워호텔이 나오고 호텔 왼쪽으로 돌아가면 용두산 공원을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용두산 공원은 소나무가 너무 많아 송현산으로 불렀는데 용두산의 유래를 보면 산의 형태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용의 머리를 닮아 부르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때에는 왜인들이 우리나라의 기를 누르기 위해 이곳에다 신사를 짓고 갖은 행패를 다 부렸다. 용두산 공원의 대표적인 명소는 부산탑이다. 1972년 당시 진로에서 공사를 시작하여 1973년 말에 완공이 되었다. 해발 69m의 정상에 높이 120m의 거대한 부산탑은 일명 용두산공원 부산타워로 부르며 부산의 상징 같은 존재다.

 

 


한때 헐릴 운명에 처할 뻔한 부산 타워는 부산의 상징성을 인정받아 제 도약을 꿈꾸고 있다. 갈맷길 3-2 구간은 보수동과 부평동을 거쳐 영도다리를 지나 남항대교에서 끝을 맺어야 하지만 부산의 상징인 용두산 공원의 부산 타워 아래에서 마무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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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원여행)창원 대암산~신정봉 산행. 창원 근교산 산행 대암산~신정봉 산행


통합 창원시는 낙남정맥을 정면으로 받아서 김해 신어산으로 넘겨주는 역할을 한다. 그만큼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 산의 고장이다. 남으로는 바다를 끼고 해안을 따라 보면은 창원의 산세는 그 크기만큼 확 도드라져 눈에 들어온다. 마산구의 진산인 무학산이 그렇고 불모산도 그 중에 한 산으로 꼽는다.

 


필자도 창원에 있는 크고 작은 산을 많이 찾았다. 여름을 끼고 찾아간 창원 대암산은 이름에 어울리게 도심속에 자리하면서도 울창한 숲과 바위로 조망이 좋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가까이에는 용지봉과 봉림산이 이웃하고 있어 긴 산행과 짧은 산행등 입맛에 맞게 조절 할 수 있어 근교산을 찾는 산마니아에게는 최적의 산행지이다.



창원 대암산~신정봉 산행은 창원시 대방동 대방그린빌아파트 버스정류소를 출발하여 이곳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을 계획하였다. 대중교통편인 시내버스나 자가 운전도 편리하여 누구나 쉽게 산행을 할 수 있어 가족 산행지로 추천 할만하다.

 


☞(경남여행/창원여행)창원 대암산~신정봉 산행. 창원 근교산 산행 대암산~신정봉 산행 경로.


산행 경로를 보면 대방그린빌아파트 버스정류소~대방천~25번 국도 굴다리~대암산 산행안내판~제1약수터~B코스갈림길~제3약수터~방향목 사거리~헬기장~대암산 정상 직전 삼거리 이정표~대암산 정상~평지고개~돌탑~신정봉~평지마을 갈림길~철탑~용지봉, 삼정자동 갈림길~상점령 갈림길~구름다리~숲속나들이길 임도 합류(삼거리)~평바위~농바위~삼정자동마애불~벧엘교회~삼정2교~대방그린빌아파트 버스정류소 순으로 돌아오면 된다.

 



대암산 ~신정봉 산행 코스의 전체거리는 GPS로 약11.5㎞ 쯤 된다. 막바지에 만나는 숲속둘레길의 흙길 임도가 약 4km라 누구나 부담 없이 너무나 걷기 좋은 코스이다. 전체적인 산행시간도 4시간30분이면 충분하다.

 


대방그린빌 아파트 버스 정루소에 내리면 바로 산행 준비를 한다. 현재 25번 국도 접속 도로공사가 진행 중이라 어수선하다. 버스 정류장 20m 옆에 대방천이 흐르고 다리를 건너면 대암초등학교 입구가 도로 건너편에 보인다.  대암산 산행을 위해서는 오른쪽 대방나들목에 산행로 입구가 있다.




대방천을 끼고 따라가는 시멘트길을 걸어가면 정면으로 울퉁불퉁한 대암산이 길게 능선을 잇고 있다. 원도심의 공원 같은 산이라 그런지 많은 등산객들이 작은 배낭을 메고 산행을 즐기고 있다. 5분이면 25번 국도 굴다리를 지나 덱계단을 오르고 등산로 안내판이 있는 곳에 작은 주차공간이 나온다.



이곳이 실제적인 대암산 등산로 입구다. 왼쪽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넓게 산길이 조성되어 있고 이정표에는 대암산 정상 2.3㎞를 알리고 있다. 가까이에 도심지를 끼고 있지만 소나무 숲이 너무 울창하여 깜짝 놀라게 된다. 무더운 여름철에도 햇볕을 가려주어 시원한 기분으로 산행을 할 수 있다.



넓게 조성된 등산로를 따라 여유롭게 올라 12분 정도 가면 제1약수터기 나온다. 앉아서 물한모금 하면서 숨도 돌리고 난 뒤 출발한다. 곧 숲속나들이 갈림길과 만난다. 왼쪽 산길이 대암산 정상으로 향한다. 20m 쯤 오르면 ‘B코스’ 입구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표지목에 ‘창원 11-4’가 표시되어 있어 참고 하자.



필자가 오르는 대암산 산길은 C코스 길이다. 오른쪽 계곡은 대방천의 원류가 되고 산길은 고도를 높이면서 조금씩 경사가 가팔라진다. 지그제그 산길을 따라 25분 정도 천천히 오르는 어느새 제3약수터. 식수불가라 하여 폐쇄되어 있다.





다시 15분을 오르면 전방이 갑자기 열리면서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방향목사거리다. 직진을 하면 바로 평지고개로 가지만 대암산 정상은 왼쪽 나무계단을 올라야 한다.











헬기장의 작은 봉우리를 지나 3분 후에 이정표를 만나고 지금부터 낙남 정맥 길이다. 오른쪽은 가야할 용지봉 방향, 왼쪽의 비음산 방향에 있는  대암산 정상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 대암산 정상부는 능선이 푹 꺼진 웅덩이가있다.



 이곳은 옛날 군부대가 자리하였던 곳이다. 지금은 그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대암산 정상석이 세워진 둥근 자리가 대공포를 설치한 곳으로 추정된다. 대암산 정상을 가기위해서는 웅덩이 뚝을 100여m 따라가면 사각정자가 나오고 대암산 정상은 지척이다.




정상에서 보면 조망이 시원하게 열린다. 불모산, 용지봉, 시루봉, 안민고개에서 장복산 능선도 한 눈에 보인다. 또한 지리산 영신봉에서 이어진 낙남정맥의 무학산, 천주산, 봉림산, 비음산이 어께동무 하듯 가깝다.










 

다시 올라올 때 만난 낙남정맥 갈림길까지 돌아간다. 방향목사거리에서 올라온 산길이 오른쪽이고 용지봉, 신정봉가는 길은 왼쪽 내리막길이다. 7분이면 안부 사거리에 닿는다. 왼쪽 방향이 김해시 진례면 평지마을로 내려가는 옛 고개다.




이고개가 김해와 창원을 넘어 다녔던 고개로 평지고개로도 불린다. 오른쪽 5시 방향은 좀전에 지나온 방향목 사거리로 가는 길이다. 신정봉 방향은 직진길이다. 대암산 정상쪽에서 볼때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앙칼져 보여 힘든 오르막으로 느꼈는데 실제  능선길은 오른쪽으로 비스듬이 등산로가 이어져 생각보다 힘이 들지 않는다.









쉬엄쉬엄 20분 오르면 돌탑이 10여개가 만들어져 있고 잠시 뒤 708m 신정봉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는 아무런 표시는 없지만 돌무더기와 이정표가 서 있고 조망도 볼 수 없어 바로 통과를 하여 10여분 능선을 걸으면 삼거리인 683m 봉우리가 나온다. 직진 길은 평지마을 하산길이고 오른쪽 용지봉 방향으로 향한다.





3분이면 철탑을 지나고 바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다. 왼쪽 직진 능선길은 용지봉 방향이며 원점회귀 산행을 위해서는 오른쪽 삼정자동 4.4㎞ 이정표를 보고 하산한다. 산길은 뚜렷하게 잘 나있다. 너덜지대도 통과하고 집터 흔적을 지나 20여분이면 상점령, 삼정자동 갈림길 이정표와 만난다 삼정자동 3.5㎞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 방향으로 꺾는다.

 




산길은 밑으로 내려 갈수록 더욱 넓어지고 왼쪽으로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다. 10여분이면 계곡에 걸린 구름다리를 건너고 임도가 서로 만나는 삼거리 길에 닿는다.





왼쪽은 상점령 방향이며 원점회귀를 위해 오른쪽 방향으로 간다. 막바지에서 만나는 임도길은 창원시의 숲속나드리길로 편편한 옛 길이라 그런지 많은 시민들이 여유를 가지며 걷고 있다. 15분 이면 평바위 갈림길을 만나고 직진하여 3분쯤 더 가면 툭 튀어나온 바위와 만난다.






불모산동 농바위'라 불리며 바위가 농짝 같이 생겨 얻은 이름이다. 바위에 한자가 새겨져 있는데 불모산에 선산을 둔 후손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선산의 위치를 표시한 바위라 한다.





10분 뒤에는 대암산 입구 삼정자동 갈림길과 만난다. 등산안내판이 있고 왼쪽 삼정자동 방향 덱 계단을 내려가면 삼정자동마애불이 있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되었고 장군바위로 불리는 큰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항마촉지인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은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을 닮았다.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전체적으로 훼손이 너무 심해 안타까움을 주는 부처님 모습이다.

 


다시 임도로 복귀하여  따라간다. 콘크리트 길로 바뀌고 유니온 아파트를 지나면 벧엘교회에서 왼쪽으로 꺾어 유니온 아파트 정문 앞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는다. 삼정2교 다리를 건너면 다시 오른쪽으로 틀어 도로를 따라 3분 쯤 인도를 따라 가면 출발지 대방그린빌아파트 버스정류소에서 산행이 끝난다.


☞(경남여행/창원여행)창원 대암산~신정봉 산행. 창원 근교산 산행 대암산~신정봉 산행 교통편.


대중교통편은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마산버스터미널행 또는 창원종합터미널행 버스를 이용한다. 마산버스터미널에서는 101번, 창원종합터미널에서는 507번 버스를 타면 산행 출발지 대방그린빌아파트 버스정류소에 갈 수 있다. 부산서부터미널에서 마산행 버스는 오전 5시40분부터 7, 8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창원행은 오전 6시부터 10~15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편한 곳을 선택하면 된다.

 

 

자가운전은 서부산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장유IC에서 내려 창원터널 방향 1020번 지방도를 타면 된다. 창원터널을 통과하여 3.5㎞가량 계속 직진하여 성주광장 사거리가 나오면 지하차도 쪽 말고 우회전하여 도의회 법원 방면으로 가면 된다. 500m쯤 진행하다 만나는 삼거리에서 대암로 성산도서관 방면 오른쪽 방향으로 570m쯤 진행하여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 대방그린빌아파트버스정류소에 도착한다. 내비에는 창원대방그린빌아파트 또는 대방중학교를 입력하면 된다.



◆창원 대암산~신정봉 고도표



◆창원 대암산~신정봉 지도



◆창원 대암산~신정봉 다음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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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용산서원. 정무공 최진립장군 용산서원, 한옥 고가 숙박도 할 수 있습니다.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 가면 용산 서원이 있습니다. 조선의 무신인 정무공 최진립(1568~1636)을 제향하며 자는 사건, 호는 잠와, 본관은 경주입니다. 경주최씨 최진립 장군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그의 고택은 인근에 경주 최부자 집으로 유명한 충의당입니다. 처음 흡흡당으로 부르던 건물은 1760년경에 와 건물을 수리하면서 충의당으로 현판을 바꾸었습니다.

 

 

경주 최부자하면 아마 모르시는 분이 없을 것으로 유명합니다.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 용산서원과 이웃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이 이어진 경주최부자 이야기는 근대에 와서도 그 명성이 자자합니다.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해주는 대목입니다.

 

 

벼슬은 진사이상을 금하며 재산 또한 만석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하고 흉년에 남의 논밭 사는 것을 금하며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입니다. 이외에도 경주최부자의 쌀뒤주는 지금도 우리에게 회자하는 바가 큽니다.


 

경주 최부자의 유래는 최진립 장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육의당 최계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장에 나갔습니다. 또한 1597년 정유재란때도 서생포에서 왜군과 싸워 이겼고 권율장군과 합세하여 도산에서 승전을 하여 ‘선무원종공신’에 오르며 훈련원정을 제수 받습니다.

 

 

금나라의 침입으로 조정은 명나라 구원병을 요청하지만 반대하여 유배길에도 오릅니다. 인조반정 이후 사면되어 첨절제사에 복지하고 공조참판을 거쳐 1630년 전라좌수사에 올랐고 경기수사에 제수되어 삼도수군통제사를 겸직합니다.

 

 

1634년에는 전라수군절도사가 되며 1636년 병자호란이 일으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합니다. 적에 의해 남한 산성은 포위되고 최진립은 인조를 구하고자 출전하여 용인 험천 전투에서 전세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청군에게 패해 전사를 합니다.




 

 

1937년 병조참판에 추서와 함께 청백리에 이름이 오르며 시호 정무를 하사 받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용산서원을 참고하면 용산서원은 1699년(숙종25) 경주부윤 이형상이 최진립 장군을 향사하기 위해 지역 유림과 함께 건립 하였고 1701년 강당과 남북재를 세워 강당을 민고당, 양 협실을 흥인재, 명의재라 하고, 남재를 호덕재, 북재를 유여재 문을 식강문이라 하였습니다. 1711년에는 '숭령사우'의 묘액이 내려졌고 원호도 용산서원이라 하였습니다. ‘숭열사우’의 글씨는 이익의 형 이서의 글씨라 합니다. 1870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 되었다가 1924년 에 다시 세웠습니다.


 

용산서원은 전면에 교육시설인 민고당을 배치하고 그 뒤쪽에 단을 올려 숭렬사를 둔 전학후묘의 구조도 되어 있습니다. 숭렬사는 정면3칸 측면 1칸이며 민고당은 정면4칸, 측면2칸의 규모로 중앙의 2칸은 마루를 두고 양쪽편에 흥인재와 명인재의 1칸 방을 넣었습니다. 또한 전사창은 정면3칸, 측면 1칸 규모로 향사나 제사등 행사때 제수를 마련하는 곳이며 고사와 유사실도 두었습니다. 용산 서원입구에는 그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으며 1993년 2월에 경상북도기념물 제88호로로 지정되었습니다.


◆용산서원 사진으로 둘러보기

 

 

 

 

 

 

 

 

 

 

 

 

 

 

 

 

 

 현재 용산서원 부속건물인 한옥고택에는 민박을 할 수 있습니다. 2인실부터 대형 10~15인실까지 갖추어져 있습니다. 한옥고택 민박체험은 2인 기준 5만원이며 예약 및 문의는 054-748-2507


 

◆용산서원 한옥 고택에서 숙박도 가능합니다. 사진으로 둘러보기


 

 

 

 

 

 

 

 

 

 

 

 

 

 

 

 

 

 

 

 

 

 ◆정무공 최진립 장군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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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거창여행)김숙자사당. 영남사림파의 발흥이 된 거창 남상면 강호 김숙자 사당을 보고오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은 “조선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나왔고, 영남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영남사림파의 근간이 된 강호 김숙자로부터 시작되었다 합니다. 김숙자는 점필재 김종직의 아버지로 더욱 유명합니다. 또한 그의 아버지 김숙자로부터 성리학의 가르침을 받아 성리학의 태두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김숙자는 1389년에 출생하여 1456년 처가인 밀양에서 사망을 합니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이며 본관은 선산이며 호는 강호. 강호산인으로 블리어 졌습니다. 김숙자는 어릴때부터 총명하여 부친 김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숙자 나이 12세가 되면서 그 당시 고려 말의 충신 야은 길재가 공민왕을 폐위하고 왕의 자리에 오른 태조를 향해 고려의 신하로 있던 사람이 어찌 두 임금을 섬기겠는가 하며 고향 구미의 금오산 아래에서 은둔하며 망한 고려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킵니다.

 

 

야은 길재가 고향으로 낙향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김숙자는 그를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됩니다. 스승으로부터 소학과 경서의 가르침을 받았고 그의 학문의 갈증은 해가 갈수록 더 하였는데 그 때 역학에 밝은 윤상이 황간 현감으로 내려 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는 배우겠다는 일념하나로 단숨에 김천을 지나 추풍령을 넘어 그의 가르침을 청하니 그의 열의에 감복하여 주역의 이치를 세세하게 가르쳐 줍니다.


 

그는 약관 25세 때인 1414년 생원시에 합격을 하고 5년 뒤인 1419년에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합니다.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1436년에 추천으로 ‘세자우정자’가 되었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성균관 사예를 끝으로 1456년 그는 벼슬을 사직하고 처가가 있는 밀양으로 내려옵니다.


 

김숙자는 그를 따르는 제자나 아들인 김종직에게 스승이었던 야은의 가르침을 빠짐없이 실천하도록 하였고 또한 김종직은 일생을 스승이자 아버지인 김숙자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을 하였습니다.





 

남을 가르키기를 좋아하여 남다른 열정을 학문에 쏟았고 또한 길재로부터 이어온 학풍에 따라 공부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라며 ‘동몽수지’의 유학자설정속편을 알고 난 뒤 소학으로 넘어가는 순서를 두고 그것을 차례차례 따르게 하였습니다.

 

 

김숙자의 고향은 선산입니다. 선산의 낙봉서원에 제향되어 있는데 이곳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에도 김숙자 사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26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으며 8월에 찾아간 김숙자사당은 관리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김숙자의 후손들이 1706년에 세운 김숙자사당은 정문인 명성문을 통과하여 본체인 추원당 뒤편에 높은 단을 쌓아 만들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 구조로 된 맞배지붕 건물이며 명성문은 정면5칸, 측면1칸에 한일자 형태입니다. 중간에 솟을 대문인 출입문을 넣고 양쪽 2칸은 방과 광 등을 넣어 사용 하였습니다.


 

 본체인 추원당은 정면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정면에 툇마루를 넣고 계자 난간을 둘렀고 건물 왼쪽에 방1칸과 대청은 2칸을 넣었고 오른쪽에도 온돌을 넣은 방 2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필자가 찾아간 추원당의 명성문 문짝은 파손이 되었는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추원당을 두르고 있는 담장도 허물어져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루 빨리 관리가 된 김숙자사당을 기대해 봅니다.

 

 

 

 

 

 

 

 

 

 

 

 

 

김숙자 사당을 찾아가는 마을 입구에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이 있습니다. 한국화의 소재로도 너무 잘 어울리는 소나무는 수령이 300년이나 된 보호수로 1982년에 지정되었습니다. 둘레는 6.7m며 높이는 27m 대산리 한산마을 입구에 있어 김숙자 사당을 찾아가는 길에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웃 동네인 남상면 전척리에는 일원정이 있습니다.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의 칠현을 제향하는 곳으로 1905년 김숙자 후손들과 유림들이 건립하였답니다. 꼭 같이 둘러보면 좋습니다. 내비에 '김숙자사당'으로 입력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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