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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새해 해돋이 일출, 2015년 새해에 만나는 따끈따끈한 새해 해돋이 일출 구경하세요.


드디어 201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참, 지난 2014년 갑오년 말띠해는 중구난방으로 뛰는 말 처럼 다사다난한 한해였습니다. 이제 을미년 청양띠가 돌아왔습니다. 순백의 양 처럼 올해는 붉은 태양처럼 환하고 좋은 일만 생기는 한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올해도 필자의 해돋이 장소는 따끈따끈 한 집입니다. 

  


집에서 바라본 을미년의 청양띠는 더욱 붉은 색을 띠는 것 같습니다. 구름이 얕게 드리우져 있지만 그래도 올해 일출을 보지 못하는 곳도 있다하니 이남아 천만다행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여러분 올해에도 더욱 활기차고 건강한 한해 꼭 되세요


◆2015년 을미년 해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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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서산여행)서산간월도 간월암. 서산 낙조 일번지라는 간월도 간월암의 해넘이 구경하고 왔습니다.


지난 주말 무작정 떠난 서해안 여행길. 일기예보로는 주말에 대설주의보를 내린다는 뉴스를 접하였고 일요일 새벽의 공기는 얼음 조각이 얼굴에 데 인 것처럼 아리아리하게 쓰린 날씨였습니다.



일행들이 있는 버스에 올라타니 차는 출발하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쯤 아침을 맞았습니다. 하늘은 그야말로 맑고 깨끗하였습니다. 아니 무슨 대설주의보, 에이 아니겠지, 설마 오보겠지 하며 차안에서는 일주일 만에 만난 동호회 회원들이 반가움에 서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버스는 세종시를 지나 예산 수덕사에 닿아 ‘수덕사 여승’을 흥얼거렸고 점심을 먹을 때 까지도 하늘은 완전 완전 쾌청 이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서산 보원사지와 개심사, 서산 마애삼존불을 보기 위해 혜미읍성으로 달려가는데 하늘을 보았습니다.



좀 전까지 보았던 그 파란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먹장구름은 제 몸이 무거운지 아래로 아래로 자꾸만 처지더니 급기야 솜털 같은 눈발이 날렸습니다. 이때까지도 설마하였습니다. 눈발은 더욱 날리더니 급기야 아스팔트 도로도 하얗게 칠해 버렸습니다.



코스를 급격히 수정을 하였습니다. 가까이 있는 서산마애삼존불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보원사지로도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천지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휘갈기는 눈발을 원망하며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여행지인 간월도 간월암으로 달렸습니다. 서산의 세상은 온통 분칠을 하여 아름다운 설국의 나라로 변했습니다. 가는 동안 하늘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며 자꾸만 마음을 어둡게 하였고 버스는 간월도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일행들과 버스에서 내리는데 허탕을 치며 돌아가시는 분이 절망적인 이야기를 하십니다. “지금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위험하니 가지마세요”라며 우리를 말렸습니다. 그래도 부산에서 이곳까지 왔는데 정 안된다면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가겠다며 눈이 앉은 언덕바지를 기어오르듯 조심조심하며 올랐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작은 섬 간월도의 풍광에 멎었던 숨통이 갑자기 트였습니다. 언덕에서 바라보고 돌아가도 여안이 없었을 것 같았는데 조금 더 가깝게 보기위해 모두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간월도와 연결되는 사구는 잔잔한 파도에 길을 감추었다 열었다를 반복합니다.



건너편에 대 빗자루로 길을 쓸고 있는 처사님에게 고함을 치며 “조금 기다리면 건너 갈 수 있습니까?”며 물어 봅니다. 조금 있는데 진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간월도에 모세의 기적이 열린 것입니다.




파도가 덮어 버린 길이 어느새 들어나 육지와 연결된 길이 만들어 졌습니다. 그 길로 걸어갔습니다. 홍해가 갈라질 때 모세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습니다. 무사히 간월도에 닿았습니다. 간월도에는 작은 암자 간월암이 있습니다. 



서해 낙조 일번지로 불리는 서산 간월암은 무학대사의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때는 고려말로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도를 하다 하늘에 뜬 달을 보고 도를 깨우쳤다하여 암자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였고 돌섬은 간월도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간월암을 피안도 피안사로 불렸습니다. 또한 밀물시에는 물위에 떠 있는 한 떨기 연꽃에 비유를 하여 연화대라 하였고 낙가산 원통대로도 불렀습니다.



무학대사 사후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으로 간월암은 폐사 되었고 1941년 만공선사께서 중창을 하여 오늘의 간월암이 있게 되었습니다. 간월암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섬도 되었다 육지도 되었다 하며 신비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특히 태안반도의 섬들과 함께 서산 간월도의 낙조는 유명세로 익히 알려져 있으며 무학대사가 보고 도를 깨쳤다는 달은 그야말로 간월도의 최고 자랑입니다. 필자는 시간도 제약되어 간월도에 뜨는 달까지는 욕심이 과한 것 같고 말로만 듣던 간월암 낙조는 원 없이 보고 왔습니다.





간월암을 포근하게 감싸는 붉은 기운은 내 마음까지 따뜻해집니다. 아니 온세상을 따뜻하게 합니다. 2014년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해였습니다. 간월도의 해넘이를 보면서 올해의 그 힘든 사건사고를 모두 담아 떠나보냅니다. 새 술은 새 푸대에 담듯이 묵은 해를 보내며 2015년에 뜨는 새로운 태양을 기다려 봅니다.


◆서산 간월도 간월암과 낙조 사진으로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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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원동, 삼랑진 금오산 산행. 양산 최고의 오지 어영마을에서 금오산을 오르다. 


경상남도 양산시는 도시와 농촌이 함께 공존한다. 양산시 안에서도 가장 오지마을로 꼽는 곳이 있다하니 널밭과 어영마을이다. 양산의 하늘아래 첫동네로 통하는 널밭과 어영마을은 모두 원동면에 속해 있는 산간 마을로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동, 서, 북으로는 1,000m 대의 영남알프스 산군이 울산과 밀양을 경계 짓고 있다.



어영마을은 금오산과 매봉을 좌우로 두고 안에서 보면 밖으로 나가는 입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호리병의 지형을 이룬다. 임진왜란때 김해김씨와 김녕김씨가 난을 피해 들어 와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의 주 수입원은 대천량, 배천량, 닥천량으로 삼천량 마을로 불리며 인근에서는 가장 부자마을로 통했다. 



역설적으로 가장 오지 벽촌의 마을이 가장 여유롭고 풍족한 삶을 살았다하니 머리를 꺄웃할 수 밖 에, 어영마을을 품어 않은 금오산과 매봉산은 그 너른 품에 자연을 선물해 주었는데 닥나무가 많아 한지 생산으로 유명하여 양산 밀양등지에서 인기가 놓은 특산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명맥이 완전 끊겼다. 대나무와 이곳에서 나는 토종 배 또한 인근의 장터에서 최고품으로 거래가 되면서 인기가 있었다. 



어영이란 물고기가 헤엄치고 논다는 의미로 이곳에 들어온 물고기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이곳에서 먹고 자고 놀아도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며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실제 어영마을은 다른 오지마을에 비해 많은 주민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또한 마을 회관 앞 공터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어항처럼 갇혀 있는 모습이며 보이는 것은 산과 하늘뿐인 곳으로 문명과는 담을 쌓은 동네로 느껴진다. 필자 처럼 세상물정에 찌든 속세인은 이런 곳을 더 좋아하는지 어영마을은 요즘 뜨는 별장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금오산 산행은 보통 삼랑진 안촌마을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건각은 원동의 비석골에서 비석봉을 넘어 천태산과 숭촌고개를 지나 금오산을 찍고 안촌마을 또는 매봉을 경유 배태고개에서 산행을 마친다. 이번 금오산 산행은 원동면 영포리 어영마을에서 시작을 하였다. 



산행 경로를 보면 어영마을회관~백림사 갈림길~대나무 밭 삼거리~백림사~파란물통 사거리~앞고개~숭촌고개 갈림길 이정표~693m봉 앞 전망대~암릉 우회~금오산 정상 직전 이정표~당고개 갈림길~금오산~약수암 표지석 갈림길(임도)~당고개 밑 갈림길~원동기도원~어영마을회관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전체 산행거리는 약 6km이며 산행 시간은 3시간~3시간 30분 안팎으로 짧은 겨울 날씨에 여유를 가지며 산행을 할 수 있다.



산행 을 위해서는 먼저 영포리 어영마을 마을회관까지 간다. 원동역 앞에서 출발하는 3번 세원버스를 타고 어영마을 종점에서 하차한다. 또한 자가운전은 마을버스 회차를 위해서 너른 터의 마을회관 한쪽에 주차를 한다. 금오산 정상은 마을회관 앞에서 서북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며 왼쪽 잘룩이는 밀양 삼랑진 안촌으로 넘어가는 앞고개다. 금오산 정상 오른쪽 안부는 밀양시 단장면 국전리로 넘어가는 당고개며 산행 후 이곳에서 하산을 한다. 



금오산 정상을 향해 마을 회관 앞에서 다래식 산장, 원동 기도원 방향의 북서쪽으로 길게 올라가는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간다. 좌우로 전원주택들이 눈에 들어오고 다랭이 논밭을 보면 깊은 산골에 들어 온 것을 실감 할 수 있다. 200m 쯤 가면 백림사 팻말이 나오는 갈림길이다. 직진 길은 당고개에서 하산길, 앞고개는 왼쪽 백림사 방향인 간다. 어영천에 걸린 작은 다리를 건너고 곧 대나무 군락지 사이로 난 임도를 따라간다. 살짝 오르막을 넘으면 이내 무덤이 있는 갈림길. 양쪽 길 모두 앞 고개로 갈 수 있지만 필자는 백림사를 경유하여 가기위해 왼쪽으로 향한다.






백림사로 향하는 휘어진 길은 뒤 금오산능선과 너무나 잘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느낌이 든다. 백림사 돌계단을 올라 곧바로 오른쪽으로 꺾어 절 뒤쪽으로 난 묵은 흙길를 걷는다. 키큰 감나무에 주홍색 감이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며 나무에 메달려 있다. 5분이면 파란물탱크가 있는 사거리 갈림길에 닿고 앞고개 방행은 왼쪽으로 가면 된다. 백림사 전 무덤 앞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왔다면 이곳에서 만난다.






지금부터 앞고개까지는 한적한 묵은 산길이 이어진다. 이 길은 어영마을에서 삼랑진의 장터를 찾아 소를 몰고 오르내린 옛길이다. 어영 마을의 역사와 같이하는 길로 지금은 찾는 이가 드물어 잊혀지고 있지만 주민들이 찾았던 길 답게 완만하게 산허리를 돌아 40여분이면 앞고개에 난 임도에 선다.



직진의 임도를 가면 숭촌고개를 넘어 안촌마을, 삼랑진으로 간다. 금오산 정상은 오른쪽 능선을 따라 오른다. 살짝 올라서면 다시 무덤 앞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 무덤 쪽으로 간 뒤 다시 능선을 난 길을 탄다. 이번 금오산 산행에서 가장 급경사 구간이다.



30분이면 숭촌고개로 갈라지는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정상 방향은 '금오산 0.95km', 계속 오르막이다. 이정표의 거리를 보고 다 왔다고 생각을 하면 큰 오산으로 자신의 체력에 맞게 쉬엄쉬엄 올라야 된다. 어느 듯 바위 위에 옛날 무덤이 있던 넓은 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숭촌고개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폐쇄되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이곳에 올라서면 고도 때문인지 주위의 풍광이 열린다. 암봉으로 된 정상도 우뚝하고 남쪽으로는 천태산, 토곡산등 원동의 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제까지 힘든 오르막을 올라 왔다면 지금 부터는 시원하게 전망이 열리는 바위 능선길이다.



먼저 만나는 곳이 693m 봉 앞에 툭 튀어나온 바위전망대다. 예전에 이곳에 돌탑이 세워져 있었는 것 같은데 지금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 보는 전망은 최고로 끝내주지만 낭 떨어지 위 좁은 장소라 내려다보면 간이 콩알만큼 쪼그라들며 추락에 주의를 해야 한다. 때마침 차가운 낙동강의 강바람까지 휘몰아쳐 바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사진을 대충 찍고 정상을 향해 능선의 바위를 타고 간다.





곧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암릉을 오르는 길은 위험하므로 오른쪽으로 바위를 돌아간다. 다시 능선에 올라 이정표와 만나고 금오산은 0.02km, 약수암은 0.95km에 정상은 지척이다. 곧바로 정상에 올라선다. 지금은 밀양시에서 세운 금오산을 세긴 큰 정상석이 반긴다.











양산, 밀양의 천태산, 토곡산, 신선봉, 축천산, 천마산, 체바우골만당, 염수봉,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천황산, 향로봉, 정각산, 종남산, 만어산등이 일렬로 나열되는 조망의 산으로 1석 3조의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발아래 출발한 어영마을을 감싸고 있는 매봉이 예사로운 모습이 아니다.





어영마을 하산은 이정표를 보고 일단 매봉(0.87km) 방향으로 내려간다. 약수암 임도까지 내려가는 산길은 상당히 가팔라 조심을 해야한다. 혹 겨울철에는 낙엽 밑에 숨은 복병 서릿발이 올라와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한발한발 확인을 하며 내려서면 어느 듯 약수암으로 오르는 콘크리트 갈림길, 내 키보다 큰 약수암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 앞으로 난 넓은 능선 길을 따르면 매봉으로 향하는 길이다. 곧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은 매봉 방향으로 향하며 최저점에는 당고개가 있다. 필자는 오른쪽 방향의 산사면 길을 따른다. 10여분이면 당고개 밑 갈림길에 닿고 왼쪽으로 당고개가 바로 보인다.






오른쪽 어영마을로 하산 한다. 밀양시 단장면 국전리로 넘어가는 옛길로 이길도 주민들이 걷든 길로 완만하게 돌아서 이어진다. 콘크리트 임도에 닿고 돌을 높게 쌓아 만든 다랭이 논에 농사는 짓지 않고 묵혀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원동기도원을 지나고 백림사 갈림길을 지나면 산행을 시작한 어영마을회관은 지척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어영마을을 가기 위해 먼저 원동까지 간다. 부산에서 원동은 열차편이 편하다. 현실은 원동역 앞에서 어영행 마을버스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부산역을 출발하는 원동 방면 기차는 오전 7시50분, 9시28분에 있고 30분 쯤 소요된다.

<!--[if !supportEmptyParas]-->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원동 방면 열차는 오전 6시10분, 10시35분에 각각 출발하며 약 40분 쯤 소요된다. 원동역 앞에서 출발하는 어영행 3번마을 버스는 오전 6시05분, 8시15분, 11시30분에 있다.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7시50분 열차는 원동역에 8시20분 경 도착하여 버스 시간 맞추기가 힘들다. 양산시에서 원동으로 향하는 일반버스도 있다.물금에서 출발하는 137번과 북정에서 나오는 138번이다. 138번 버스는 오전 5시30분, 6시, 7시25분, 11시10분에 출발하며 도시철도 2호선 양산역이나 물금농협에서 타면 된다. 물금농협에서 원동으로 가는 137번 버스는 오전 7시25분, 10시 정각에 있다. 원동초등학교에서 내린 뒤 원동역앞에서 어영행 3번 버스를 이용한다. 원동역에서 어영마을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약 10분.


산행을 마쳤다면 어영마을에서 조금 내려오면 마을의 수문장역할을 한 붓돌바위가 있다. 어영마을을 지켜주는 바위라 한다. 오래전 부터 붓돌 바위에서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들어주었다하며 일제 강점기때 일인들이 도로를 넓히기 위해 바위를 깨부수다 주민의 반발로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다. 이 바위를 가지고 불을 일으켜 담배불을 붙히는 등 부싯돌로 사용되었다.



원동면 영포리 신흥사 대광전은 보물제 1120호로 지정되어 있고 건물 내부와 외부의 벽화도 보물 제1172호로 지정되어 한번 쯤 둘러 볼만하다. 



물금을 지나 원동방면으로 가다 만나는 최치원의 임경대. 양산8경으로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원동가는 길에 들러 보세요.




금오산 고도표

금오산 지형도








2014/12/25 - (양산여행/원동여행)원동 신흥사. 배내골 여행과 함께 화려한 건물 대광전이 돋보이는 양산 원동 신흥사 구경하기.


2014/12/15 - (경남여행/양산여행) 양산8경 임경대, 최치원의 임경대에 올라 낙동강을 바라보다.


2014/01/25 - (경남여행/양산원동여행)천태산천태정사. 웅장한 아미타여래좌상과 협시보살이 세계최대규모인 천태산 천태사


2014/01/20 - (경남여행/양산여행)천태산 산행. 낙동강 바라보기에 좋은 양산의 3대 악산 비석봉~천태산.


2014/01/08 - (부산여행/낙동강 뱃길)낙동강뱃길. 을숙도에서 물금까지 낙동강에 배를 타고 새로운 부산을 보다.


2013/12/24 - (경남여행/양산여행)낙동강 자전거길이 영남대로길, 물금역~삼랑진역(황산잔도~작원잔도)를 걷다.


2013/12/19 - (경남여행/양산여행)김정한의 소설속 수라도의 배경인 미륵당이 지금의 용화사. 용화사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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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화본리 오층석탑. 군위 덕림사 화본리 오층석탑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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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 면소재지인 화본리 뒷 산을 조림산이라 부릅니다. 아주 오래전 대홍수로 물난리가 크게 나 정상부가 새의 머리만큼 잠기지 않고 남았다하여 조림산으로 부릅니다. 조림산은 1950년 한국동란 때 피비린내 나는 대 격전지였습니다. 국군6사단 19연대와 인민군 8사단의 공방전으로 칠곡의 다부동 전투와 버금가는 격전지 였던 조림산에는 작은 사찰 덕림사가 있습니다.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석탑만이 이 자리에 있었는데 1960년 이 후 덕림사라 하여 극락전, 요사채, 산신각으로 작은 사찰이 들어섰습니다. 아쉽게도 옛 절터의 유래나 이름은 전하지 않는데 이곳에 남은 오층석탑은 한국동란의 격전지에서 그래도 포탄을 요행히 피해 석탑의 형태는 갖추고 있지만 훼손이 심한 상태입니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오층석탑으로 추정을 하며 높이는 2.95m이고 단층의 기단 하부는 현재 땅속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노출된 기단 상면에 3단 굄을 각출하고 그 위에 탑신을 올렸습니다. 맨 아래층 몸돌은 폭에 비해 높이가 높으며 나머지 몸돌은 높이가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몸돌위에 올려진 지붕돌인 옥개석은 모두 낙수면이 짧고 경사가 심합니다. 또한 상면에 1단 굄과 하면에 받침 4단을 조각하였습니다. 4층 몸돌을 제외하고 우주를 모각하고 2층 지붕돌과 3층 몸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었고 그 외 에는 지붕돌과 몸돌이 따로 만들어졌습니다. 지붕돌의 네 모서리에 풍탁을 걸기위한 두 개의 구멍이 뚫여져 있으며 상륜부에는 노반 파편이 남아 있습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6호. (참고:문화재안내판)
















2014/12/17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조림산 산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이 있어 여행을 겸한 산행 조림산이 최고.


2014/12/13 - (경북여행/군위여행)산성면 화본마을, 화본역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2014/12/05 -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2014/12/02 - (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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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여행/원동여행)원동 신흥사. 배내골 여행과 함께 화려한 건물 대광전이 돋보이는 양산 원동 신흥사 구경하기.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은 배내천을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명찰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원동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사찰이 축천산 신흥사 입니다. 축천산 신흥사는 원동역에서 약8km로 떨어져 있으며 양산 통도사를 품에 않은 영축산과 같다는 뜻이라합니다. 신흥사는 원동 축천산 아래 절골에 살포시 앉아 있습니다. 


 

30년 쯤 전에 신흥사를 찾았을 때는 달랑 대광전 뿐이었는데 이번에 찾아가보고 큰 불사에 뒤로 넘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신흥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낙동강을 끼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갑니다. 1300리를 쉼 없이 달려온 낙동강의 마지막 몸부림을 만날 수 있는 길입니다.


 

붉은 노을에 물든 낙조의 장관에 홀려 청춘남녀의 드라이버코스로 아주 인기가 높은 곳입니다. 이곳을 지나면 원동면소재지인 원리마을, 신흥사는 오른쪽으로 틀어 배내골 방향으로 들어갑니다. 내포리를 지나고 정면에 큰 산이 막고 있는 곳이 영포리입니다. 영포리에는 천년사찰 신흥사가 있습니다. 


 

창건에 관한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만 신흥사는 신라시대 때인 기림왕 14년인 298년에 신본스님이 창건을 하였다는 설과 원효대사가 창건을 하였다는 두 설이 전합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래 하였던 것을 보면 전자인 기림왕 14년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곳 신흥사를 오래전에는 만어사라 불렀다며 양산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 전설 또한 현재의 삼랑진 만어사와 엇비슷하여 필자는 의구심이 듭니다.


 

신흥사 창건설화를 보면 “만어사(萬魚寺:신흥사의 옛 이름)에서 기도를 하던 가야국의 수로왕에게 말하기를 양주 땅에 옥지가 있는데 그곳에 독룡이 살고 있으므로 이를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하였다. 수로왕이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함에 부처가 육신통의 주술을 발휘하니 만어사에 있던 돌들이 모두 고기로 변하여 옥지에 있는 독룡을 동해로 쫒아버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신흥사에 있는 돌을 두드리면 쇳소리가 났다하며 그곳에 절을 세워 만어사라 하였다하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창건 당시 신흥사는 현재의 자리 건너편에 있었다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고 대광전의 기둥을 보면 옮겨지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신흥사 앞을 흐르는 계곡 또한 오래전 부터 절골로 불렀던 것을 보면 이곳에 큰 사찰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흥사는 전통 사찰 제1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인 통도사 말사입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연혁을 보면 선조15년인 1582년 성순이 중건하였다는 기록입니다. 1592년인 임진왜란때에는 승군이 주둔하면서 영남대로를 따르던 왜군과 접전을 벌려 신흥사는 대광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됩니다.


 

그 후 영조때 제작된 ‘여지도서’에 신흥사의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사이에 다시 중건된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신흥사는 일제 강점기때 일본 승려인 대처승에 의해 수난을 겪다가 해방 후에는 한동안 비어 있는 사찰로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의 신흥사는 영규스님에 의해 1983년부터 중창이 되었고 현재의 대 가람을 이루었습니다. 


 

신흥사의 중심 법당은 대광전입니다. 세상에 광명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은 모신 곳으로 보물 제112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88년 대광전을 부분적으로 해체를 하였는데 그 때 상량문에 ‘순치14년’이란 명문이 나와 효종8년인 1657년에 중건 된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면3칸, 측면3칸의 규모로 옆에서 보면 사람인(人)자를 한 맞배지붕이며 지붕의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다포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조선 중기의 건물이면서도 조선전기의 건축기법이 특이하게 나타난 건물입니다.



 특히 신흥사 대광전은 다른 사찰의 내 외벽에 만날 수 없는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대광전의 벽화를 보면 건물 내·외벽과 포벽, 건물 내부의 대량과 고주에 그려진 것을 포함하여 70여점이나 됩니다. 건물 내부의 동쪽에는 앉은 자세의 삼존도와 여래도, 팔상도, 아수라도가 그려져 있고 서쪽에는 아미타삼존도, 6구의 보살도, 사천왕도, 여래도, 팔상도, 신중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약사삼존도와 아미타 삼존도는 17세기 후반의 벽화로 추정되며 화풍이 유려하고 빼어난 작품이며 후불벽의 관음삼존도는 군청색 바탕에 백색안료를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벽화와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1801년 대광전 중수시 제작된 것이 아닌지 유추하고 있습니다.


 

신흥사 대광전 벽화는 보물 제1757호로 지정 관리 되고 있습니다. 대광전 내부의 촬영은 금하고 있어 외벽의 벽화만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훼손 상태가 심한데도 화려하고 빼어난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양산시청 홈페이지. 신흥사 문화재 안내판)


 

 

 

 

 

 

 

 

 

 

 

 

 

 

 

 

 

☞(양산여행/원동여행)원동 신흥사. 배내골 여행과 함께 화려한 건물 대광전이 돋보이는 양산 원동 신흥사 교통편.


경남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의 신흥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원동역 앞까지 가야한다. 부산에서 원동을 가기 위해서는 열차가 편리하다. 부산역을 출발하는 원동행 기차는 오전 7시50분, 9시28분에 있고 30분 정도 소요.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원동행 열차는 오전 6시10분, 10시35분에 각각 출발하며 약 40분 소요. 원동역 앞에서 출발하는 배내골행 2번 태봉 버스는 오전 7시, 8시30분, 10시10분, 11시20분, 오후 2시, 2시40분, 5시10분, 7시40분(막차)에 있다. 신흥사 절을 구경 한뒤 원동역으로 되돌아 올때는 태봉 출발 원동역행 버스 오후 12:00, 2시50분, 3시15분, 5시45분, 8시15분(막차)에 있다, 

양산시에서 원동으로 향하는 일반버스도 있는데 138번은 오전 5시30분, 6시, 7시25분, 11시10분에 출발하며 도시철도 2호선 양산역이나 물금농협에서 이용하면 된다. 물금농협에서 원동으로 가는 137번 버스는 오전 7시25분, 10시 정각에 있다. 원동초등학교에서 내린 뒤 원동역앞에서 태봉행 2번 버스를 이용한다. 소요 시간은 10분 안팎.

 ◆원동역~배내골 대중교통편 






2014/12/15 - (경남여행/양산여행) 양산8경 임경대, 최치원의 임경대에 올라 낙동강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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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구례여행)광의면 매천사. 우국지사 황현선생 순국지 매천사 .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 월곡마을에 조선 말기 대학자이자 우국지사이신 매천 황현(1855~1910)선생의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습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도 그분의 높으신 뜻을 기리는지 찾아 간 이른 아침의 매천사는 물안개가 피어나 평안한 분위기였습니다.



매천사 뒤 방광저수지에서 바라본 지리산은 1910년 8월22일 우리 민족에게 벌어진 치욕적인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한일 병합 조약’이 조인되었고 그해 8월29일 발효가 되어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떨어지며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날입니다. 이날을 ‘국권피탈’ 또는 ‘경술국치’로 부르며 매천 황현선생은 우리 민족의 국치를 통탄하며16일 뒤 절명시 4편과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하여 순국하였습니다



황현선생의 본관은 장수이며 자는 운경, 호는 매천입니다. 전라남도 광양에서 태어 난 선생은 고종23년과 25년에 생원시에 두 번이나 장원을 하지만 혼란한 시국과 관리의 부패를 보고 구례로 내려와 시를 쓰고 후진양성에 매진합니다.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 갑오경장, 청일전쟁을 겪으면서 ‘매천야록’과 ‘오하기문’을 남겼는데 1864년~1910년 선생이 자결 전까지 역사 기록물로 우리민족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기 위함이라 합니다. 



1962년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고 그의 후손과 유림들은 선생이 순국한 집터에 정면3칸, 측면1칸의 사당을 짓고 그의 호를 따 매천사라 하였습니다. 현재 대월헌을 복원하였고 황현선생의 유품을 보관한 유물전시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필자는 이른 아침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솟을 대문이 닫혀 있어 막막하였는데 마침 아침 일찍 농사일을 하시든 할머니 한분이 내려오시기에 매천사 문이 닫혀 있습니다하니 자물통은 잠기지 않았다며 그냥 열고 들어가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혹 매천사 방문 때 저처럼 문이 닫혔다면 참고를 하세요.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37호
















☞(전남여행/구례여행)광의면 매천사. 우국지사 황현선생 순국지 매천사 교통편.


대중교통편을 이용하여 월곡마을 매천사로 가기위해서는 구례터미널에서 천은사 또는 광의행 군내버스를 탄다. 광의 노선 참고하세요









2014/12/18 - (전남여행/구례여행)지리산둘레길 21구간 방광~산동. 끝물 단풍이 너무 좋았던 지리산 둘레길 21구간 방광~산동 둘레길.


2014/12/16 -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숙박 예일각모텔,


2014/12/12 - (전남여행/구례여행)지리산 둘레길 오미마을~방광마을. 지리산 둘레길 19구간 오미마을~방광마을 걷기.


2014/12/11 - (전남여행/구례여행)지리산둘레길을 만나다 동방천~황전마을 화엄사입구지리산 남부 탐방안내소.


2014/12/03 - (전남여행/구례여행)화엄사 동·서오층석탑. 부처님의 원력으로 화엄사의 지기를 다스리기 위해 조성한 화엄사 동·서오층석탑.


2014/11/28 -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 화엄사에서 화엄사 각황전과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을 보고 왔습니다. .


2014/11/26 - (전남여행/구례화엄사여행)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부처님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줄 광명등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2014/11/25 - (경남여행/하동여행/구례여행)평사리~화개장터 섬진강 둘레길. 박경리의 토지길과 섬진강 100리 길을 따라 걷는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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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대구근대문화골목여행)대구 마지막 남은 요정 가미, 대구근대문화골목에서 만나보세요.


대구근대문화골목투어 2코스를 걷다가 해설사님의 안내로 찾아간 곳입니다. 대구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요정 ‘가미’입니다. ‘가미’에 대해서 포스팅 전에 먼저 대구의 요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대구의 요정시대는 ‘근대로의 여행 골목(대구 광역시 중구 발행)’을 참고하였습니다.



대구에서 요정이 성업을 하게 된 배경은 일제강점기 때입니다. .1904년 경부선 철도가 건설되면서 대구에 일본인들의 거주가 많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구역 인근에 달성관, 명석, 화월, 대화, 야상옥, 동경관, 자유사, 대판옥등 많은 요릿집이 들어섰습니다.




그 후 1909년 4월 조선시대로부터 내려왔던 기생의 관기제도가 폐지되면서 기존의 기생들은 생업을 위해 1910년 5월에 대구기생조합을 결성하게 됩니다. 기생들은 대구역 근처의 요릿집 등에서 춤과 노래를 부르며 가야금 등을 탓 고 이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대구권번이 1922년 6월, 대구 기생조합 후신인 달성권번은 1924년 1월에 설립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아이들 그룹의 기획사쯤 될 것 같습니다. 이들의 역할은 기생들의 교육과 관리 그리고 알선, 화대 징수 등 기생들의 전반적인 업무 일을 맡았습니다. 대구와 달성권번에서는 도수원, 금호관, 해동원, 식도원, 청수원, 수향원 등 그 당시 대구에서 유명한 요릿집에 기생을 공급해오다 1942년 권번제도가 폐지됩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요릿집과 권번을 합친 ‘요정시대’가 들어서는데 권번에서 공급을 하던 기생을 요정에서 숙식과 금전, 교육 등을 모두 담당하는 것으로 그 역할이 바뀌게 됩니다.



대구에서 유명세를 날리던 요정은 1950년대 죽림헌, 칠락, 삼한관, 계림관, 대구관 등이 있었고 1960년에 들어와 춘앵각, 청수원 신남정등이 성업을 하였습니다. 그 명맥은 80년대 초까지 단추방, 가람, 가락, 십전방, 태금 등의 요정으로 이어져 오다 국민정서와 맞물려 차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당시의 대구 요정 명맥을 잇는 곳이 ’딱‘ 한곳 남아 있는데 대구 요정의 전통을 잇는다는 ’가미‘입니다. 대구중구 종로1가의 주택가 골목에 있습니다. 1962년에 ’식도원‘으로 처음영업을 시작하여 1986년에 ’가미‘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현재에도 예약으로 요정 영업을 하고 있는 가미는 이방인으로서는 궁금했던 요정에 대해 많이 알 고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제시대의 기생과 권번, 1960년대로 넘어오면서 시작된 요정이 대구에 130여개나 있었다는데 그 당시 요정의 위치가 미니어쳐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기생과 권번에 관한 문헌과 진술을 수집한 한 개인의 열정이 만들었습니다. 고지도인 혼천전도, 북한 화가의 금강산 등 풍경화와 태극 문양인 세필 금강경 반야심경, 농산스님 서예작품등이 방마다 전시되어 있으며 기생과 요정의 역사관이 2층에 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곳을 보면서 필자가 생각하고 있던 ’요정‘의 개념도 많이 바꾸게 되었습니다. 티비에서만 봐 왔던 요정의 이미지를 가미에서 불식시키게 되었던 그죠. 대구에서 딱 하나 남은 요정 ’가미‘ 대구근대문화골목투어에서 만날 수 있는데 대구근대문화골목투어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입니다. 그러나 문화해설사님의 해설에 의하면 평소에는 개방을 하지 않는 곳이라 하여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구근대문화골목투어에서 만나는 대구에 남은 마지막 요정 '가미'를 사진으로 만나보기

































2013/12/14 - (대구여행/중구여행)근대문화골목 대구제일교회, 대구 여행의 필수 코스 청라언덕의 제일교회에 깜짝놀래다.


2014/01/17 - (대구여행/중구여행)'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영원한 가객 김광석 벽화거리에서 만나다.김광석


2013/12/09 - (대구여행/계산성당)"육영수군과 박정희양"의 결혼식이 열렸던 뾰쪽탑의 대구 계산성당을 여행가기


2013/12/05 - (대구맛집/중구맛집)대구중구 골목투어 미도다방, 보약 같은 쌍화차가 맛있는 옛날식 다방 미도다방을 찾아가다.


2013/12/03 - (대구여행/중구여행)북성로 공구 박물관,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어요, 북성로 공구 거리 박물관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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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여행/구룡포여행)구룡포항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2. 구룡포 공원과 일본가옥인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를 여행하세요.


 구룡포에는 현재 근대문화유산거리가 꾸며져 있습니다. 동해안에서 가장 큰 어항이었던 구룡포는 일제강점기때인 1923년 일제가 구룡포 앞바다를 메워 항구를 만든 뒤 동해권의 어업을 관할하게하였습니다.



그 영향으로 일본인들이 이곳 구룡포로 대거 이주하였고 그에 따른 부대시설인 병원, 일본상점, 요리점, 여관 등도 몰려 든 인파에 성황을 이루었고 지역상권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945년 8월15일 광복과 함께 일본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갔고 일본가옥은 훼손과 파괴, 각종 개발과정등에서 철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포항시에서는 훼손되어가는 일본인가옥을 정비하여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를 탄생시켰습니다. 



비단 구룡포 뿐만 아닌 일본인은 우리 민족에게 큰 아픔과 뼈에 사무치도록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런 역사의 산 증거물인 일본가옥을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다시는 이런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는 교육장이 되어야 겠습니다.



구룡포 근대문화유산거리-1 포스팅에서는 일본가옥과 상점, 백화점, 병원등 일본 거리를 포스팅하였습니다. 근대문화유산거리-2에서는 일제강점기 구룡포 일대의 어업권을 쥐고 큰성공을 한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았던 살림집과 일본 신사가 있던 구룡포공원 포스팅입니다. 



1920년대에 지어진 집으로 부와 명성에 걸맞게 2층의 목조 가옥은 크고 화려하며 건물에 사용된 자재는 일본에서 가져와 사용을 하였습니다. 해방이후에는 개인주택을 사용을 하였는데 구룡포 근대역사문화거리를 조성하면서 포항시에서 매입을 하여 보수를 거쳐 현재 ‘구룡포 근대 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층에는 하시모토의 집무실과 부부가 사용하던 방과 아이들 방, 부엌과 식당이 있었고 2층은 이동식 칸막이를 하였다가 칸막이를 떼어내고 전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건물내부의 구조와 의장적 특징등 100여 년 전 일본 가옥의 모습이 잘 남아 있습니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를 두르며 구룡포 공원이 들어서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때는 일본의 신사가 있던 곳으로 이곳에는 많은 역사의 현장이 남아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먼저 구룡포의 이름을 낳은 아홉용의 조각상이 마치 꿈틀거리는 듯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뒤로 공원의 중앙에 충혼탑과 충혼각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국권회복을 위해 끝까지 항거를 하다 돌아가신 분과 6.25 한국동란 등 나라를 지키시다 산화하신 포항출신 전몰군경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1960년 건립되었습니다. 그러나 건립당시 일제때 일인들이 설치한 구조물을 탑신의 받침대로 사용하다 2007년 9월에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요것은 구 충혼탑의 기단과 일제강점기때 신사터초석 및 쵸우즈야입니다. 참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제국제향군인회’란 명문을 지우고 1960년 ‘대한군인유족회’라 새겨 호국선혈의 충혼탑 기단으로 사용을 하였던 받침대입니다. 소화라는 연호가 남아 있는 것으로 일제강점기때 건립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사터 초석은 대정2년이라 적힌 것을 보면 1913년 경에 신사가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쵸우츠야는 신사를 참배하기 전에 손을 씻는 곳이며 포탄모양 돌조각은 전쟁터에 나가기 전 승리를 위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였다 합니다.

 





구룡포의 용왕당은 여신이 아닌 남신인 사해용왕을 모신 것이 특징이며 일본의 신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1956년 건립하였다가 2008년 새롭게 신축을 하였습니다. 



이 큰비는 도가와 야스브로 송덕비로 부릅니다. 일제 강점기때 구룡포항의 방파제 축조와 도로개설 등에 관여하여 일본에서 규화석을 가져와 1944년경에 세웠다합니다. 그 후 구룡포 주민들이 시멘트로 덧칠하여 비문의 내용은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포항여행/구룡포여행)구룡포항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교통편,


부산에서 대중교통은 먼저 도시철도 1호선 노포역 종점에 있는 부산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포항 가는 버스를 이용한다. 오전 6시40분부터 10분 간격 운행. 포항시외버스 터미널 앞으로 나와 구룡포 행 200번 좌석버스를 타고 종점인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버스정류장에서 내립니다. 배차간격은 약13분.

내비게이션에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또는 '구룡포항' 입력




2014/12/10 - (경북여행/포항구룡포여행)호미지맥 응암산 박바위~명월산 산행. 호랑이 꼬리 호미곶 응암산 박바위~명월산 산행.


2014/12/08 - (경북여행/포항구룡포여행)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완벽한 일본 거리로 바뀐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탐방-1


2014/11/03 - (경북여행/포항여행)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 호미곶 가는 길에 있는 구룡포해수욕장 옆에 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가 있습니다.


2014/11/01 - (포항맛집/구룡포맛집)호미곶맛집 창우물회대게.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포항물회를 마약물회라 하는 이유는??? 창우물회대게.


2014/12/20 - (경북여행/경주여행)왕의길-신문왕 호국행차길. 신문왕이 되어 왕의 길인 추원마을~기림사 둘레길을 걸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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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구례여행)지리산둘레길 21구간 방광~산동. 끝물 단풍이 너무 좋았던 지리산 둘레길 21구간 방광~산동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오미마을에서 방광마을 구간을 끝내고 난 뒤 다시 찾은 광의면 방광마을, 지리산둘레길 방광~산동구간을 걷기 위해서다. 방광마을을 출발하여 지초봉의 구리재를 올라 지리산 온천과 산수유로 유명한 산동으로 들어가는 20구간 코스 역시 만만찮은 코스였다. 





지리산 둘레길 구간은 일반적으로 매천사를 포함하지 않고 산동면사무소로 향하지만 필자는 매천 황현 선생을 기리는 곳이라 지리산 둘레길에 포함을 하여 걸었다. 매천 황현 선생은 전남 광양이 고향이다. 1910년 일제 강점기에 분연히 일어나 항거를 하다 절명시 4편과 유서를 남기고 자결을 하였다. 정부는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그해 후손들이 순국한 집터에 사당을 세우고 그의 호를 따 매천사라 하였다.



지리산둘레길을 찾아 호연지기를 기른다하면서 자결로서 굳은 의지를 보이신 황현선생의 뜻을 알고 느끼는게 진정한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지리산은 걷는 자체도 너무나 좋다. 그러나 암울한 현실에서 자신의 몸을 던졌던 호국선열의 바른 뜻을 계승하기 위해서 꼭 찾아 볼 것을 권한다. 방광저수지에 비친 대지리산에 참 잘 왔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된다. 



지리산 둘레길 21코스 방광마을~산동마을 둘레길 경로를 보면 매천사~방광저수지~방광마을회관~참새미골 캠핑장~한울 감농장~대전리 석불입상~구례 예술인마을~난동마을 둘레길 삼거리~소나무 보호수~지초봉 임도~ 지초봉 구리재 정자 전망대~지초봉 정자 앞 삼거리~탑동마을~일송정 식당 옆 효동마을 표지석~지산정 궁도장~효동마을~구례군 산동면사무소에서 지리산 둘레길을 끝마친다. 지리산 둘레길 방광~산동 거리는 둘레길 홈페이지를 보면약 13.1km지만 매천사에서 출발하면 필자의 GPS는 약 15.5㎞ 거리로 나온다. 걷는 시간은 4시간~4시간30분, 휴식과 점심시간을 을 포함하면 산행시간은 더 걸린다.






 

매천사 출발을 위해 구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천은사행 버스를 타고 월곡마을 정류장에서 내린다. 마을길로 300m 들어서면 월곡마을이 나오고 오른쪽 둑 아래 매천 황현 선생을 추모하는 매천사가가 있다. 옷깃을 다시금 여미며 매천사를 둘러본 후 본격적인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한다.




매천사입구에서 오른쪽 담장을 끼고 돌면 배수로 옆을 따라 방광저수지 둑으로 오른다. 먼저 정면에는 그토록 가고 싶은 장대한 대지리산 능선이 펼쳐진다. 성삼재와 종석대가 저기 어디쯤이지하며 가늠해 보며 왼쪽으로 저수지를 돌아서 간다. 저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정자를 지나면 아스팔트 도로와 연결되고 직진한다. 잠시 후 방광마을 표지석이 있는 사거리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마을길로 들어선다.







방광마을 농협창고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골목을 나가면 느티나무 보호수다. 곧 오미~방광구간 종점이었던 방광마을회관 앞. 이제 산동방향으로 가기위해서는 이곳에서 출발한다. 마을 회관 오른쪽 골목길을 걷는다. 바로 지리산 둘레길 방광~산동 구간의 정겨운 돌담길에 산수유나무가 걸려 있다. 만나는 도로가에 방광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다.





다시 방광마을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지리산 둘레길은 직진하여 도로를 건너 참새미골 쉼터인 캠핑장 방향이다. 오른쪽 콘크리트 길을 내려서면 참새미골 캠핑장과 사무소를 지나 천은천의 잠수교를 건너면 산길 오르막이 시작된다.





조릿대를 빠져나가면 작은 능선을 넘고 둘레길은 작은 계곡을 올라서면 독립가옥 앞에서 임도와 만난다. 왼쪽 임도를 따라 약 100m 가면 오른쪽 산길 방향. 완만한 산사면 길을 따라 걷는다. 10분이면 콘크리트 길과 만나고 다시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는다. 곧 무덤 앞 사거리가 나오면 직진하는 흙길이다.






숲속의 평탄한 길을 가다 물길을 건너면 콘크리트 임도 끝에서 오른쪽 흙길이다. 잠시 후 어마어마한 대봉감 한울농장으로 들어선다. 감농장의 콘크리트 길을 따라가면 농장 입구 방향으로 둘레길이 이어진다. 곧 오른쪽 농장 끝을 따라 둘레길이 이어지며 농장을 벗어난다. 




갑자기 시야가 열리며 급경사로 내리막 길. 취수탱크와 사각 정자 쉼터가 있고 나무다리를 건너면 다시 콘크리트 임도와 연결된다. 왼쪽으로 꺽은 뒤 전남 유형문화재 대전리 석불입상을 지나게 된다. 곧 당동마을에 내려선다.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가면 구례예술인마을 입구을 알리는 조각품이 여럿 있고 도로를 따라 직진을 하여 산굽이를 돌면 예술인 마을이다. 직진하여 처음만나는 사거리에서 오른쪽 비탈길을 오른 뒤 계단을 오르면 임도길. 뒤돌아 보면 예술인 마을과 저수지등 마을 전체가 들어난다.







왼쪽으로 숲속 임도를 따라가면 난동마을로 향하는 도로와 만나고 곧 난동마을 앞 큰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꺾는다. 오른쪽 산자락에 한바구니에 담긴 듯 한 예쁜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난동마을과 지리산 둘레길 쉼터 역할을 하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곧 구례군 토지면 오미에서 구례읍을 거친 지리산 둘레길이 이곳 난동마을 삼거리에서 만난다. 지리산둘레길 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다. 직진하면 다리를 건너고 바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 계곡 옆을 오른다.





지초봉의 구리재로 오르는 임도는 갈지(之)자 형태다. 온난 저수지를 지난 뒤 급경사를 오르면 이정표 삼거리. 숨을 고르며 왼쪽 방향 전망대와 생태숲 방향이 구리재 오르는 길이다. 산사면으로 난 길을 10분 쯤 가면 임도 삼거리에서 구례 생태숲 탐방로는 왼쪽이지만 산동방향인 구리재 전망대는 오른쪽으로 오른다.





정자 쉼터를 지나고 에도는 임도를 따라 구리재 안부의 정자 전망대에 도착한다. 구리재 만당에 안내도와 이정표가 있고 왼쪽 임도는 지초봉(602m) 방향, 오른쪽은 간미봉 산길이다. 지리산 둘레길인 산동면사무소는 직진하여 고개를 넘어 내려간다.







지금부터 신나는 내리막길이다. 필자가 찾았을 때는 마지막 단풍으로 화려하게 치장을 하였는데 지금은 앙상한 가지에 바람소리만 요란할 것 같다. 20분이면 정자를 지난 뒤 바로 갈림길이다. 여기서 임도를 버리고 산길를 따라 하산한다.

 



산길을 내려서면 갑자기 앞이 트이며 개발의 흔적에 인공미가 가득한 엄청 큰 규모의 한옥 아래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100m 직진하면 정자가 있는 삼거리, 여기서 정자 오른쪽으로 난 콘크리트 임도를 내려간다.





곧 굽어 도는 길에서 구례군 산동면의 풍광이 넋을 빼게 한다. 탑동마을의 유래인 오래된 석탑이 남아 있고 파괴가 너무 심하여 문화재로 취급을 받지 못하지만 마을을 지키는 터주 대감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곧이어 탑동마을 입구에 큰 느티나무가 있고 지리산온천랜드로 들어가는 도로에 내려선다.







정면에 일송정 식당 왼쪽의 효동마을 방향이다. 효동교를 건너면 궁도장인 지산정, 잠시 뒤 효동마을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은 뒤 10여 분 호젓한 콘크리트 길을 따라가면 부촌마을의 은행나무가 있고 다리를 건너면 원촌리 산동면사무소에서 지리산 둘레길 21구간 방광~산동구간을 마무리 한다. 구례터미널행 버스는 산동농협 옆에서 타면 된다.




☞(전남여행/구례여행)지리산둘레길 21구간 방광~산동. 끝물 단풍이 너무 좋았던 지리산 둘레길 21구간 방광~산동 둘레길 교통편.


대중교통편을 이용하여 월곡마을 매천사로 가기위해서는 구례터미널에서 천은사 또는 광의행 군내버스를 탄다. 산동면(원촌)에서는 수락이나 중동, 남원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 구례터미널로 갈 수 있다. 30분~1시간 간격 운행. 

내비게이션에 매천사(구례군 광의면 월곡마을)로 입력




지리산둘레길 방광~산동고도표

지리산둘레길 방광~산동지형도




2014/12/16 -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숙박 예일각모텔,


2014/12/12 - (전남여행/구례여행)지리산 둘레길 오미마을~방광마을. 지리산 둘레길 19구간 오미마을~방광마을 걷기.


2014/12/11 - (전남여행/구례여행)지리산둘레길을 만나다 동방천~황전마을 화엄사입구지리산 남부 탐방안내소.


2014/12/03 - (전남여행/구례여행)화엄사 동·서오층석탑. 부처님의 원력으로 화엄사의 지기를 다스리기 위해 조성한 화엄사 동·서오층석탑.


2014/12/01 - (구례여행/마산면 효자 이규익 지려)허벅지 살을 베어 부친을 봉양한 하늘이 내린 효자 이규익 지려 찾아가기...


2014/11/28 -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 화엄사에서 화엄사 각황전과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을 보고 왔습니다. .


2014/11/26 - (전남여행/구례화엄사여행)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부처님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줄 광명등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2014/11/25 - (경남여행/하동여행/구례여행)평사리~화개장터 섬진강 둘레길. 박경리의 토지길과 섬진강 100리 길을 따라 걷는 둘레길,


2014/11/17 - (전남맛집/구례맛집)구례 산수유맛집 영실봉식당. 제주산 갈치로 만든 갈치탕 얼큰 한 국물이 끝내줘요. 구례 영실봉 식당.


2014/10/30 - (전남맛집/구례맛집)화엄사 맛집 지리각식당. 지리산이라 더욱 맛있는 산채비빔밥 맛집 지리각식당.


2014/10/16 - (전남구례여행)구례공용버스터미널 버스 시간표 올려요. 노고단(성삼재)버스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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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 양산8경 임경대, 최치원의 임경대에 올라 낙동강을 바라보다.

경상남도 양산시는 양산의 빼어난 경관을 알리기 위하여 양산8경을 정하여 양산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 중 7경은 낙동강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질 수 있는 낙동강 전망 1번지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임경대입니다.

 


임경대는 신라 말 문장가이자 문신, 유학자였던 최치원이 “황산강 임경대에서”라는 시를 남긴 곳으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풍광은 그야말로 ‘한마디로 끝내준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입니다.



최치원은 자는 고운 또는 해운이며 시호는 문창으로 그는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그곳에서 빈공과에 장원으로 올랐고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을 지어 난을 평정하게 됩니다. 그는 헌강왕 11년인 885년에 신라로 돌아와 중용이 되는데 기우러져 가는 신라의 국운을 바로세우고자 개혁을 위한 ‘시무 10조’의 상소를 진성여왕에게 올리지만 진골 귀족의 반대로 현실의 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팔도를 주유하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신선이 되었다 합니다.



필자는 고운 최치원 선생을 여행가로 부르고 싶습니다. 필자가 찾아간 곳의 많은 곳에서 그 분의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회자되고 있었습니다. 부산의 해운대, 거창 수승대, 가야산 백운동, 지리산 불일평전과 문창대, 함안의 오치재, 양산의 임경대등우리나라 팔도에서 고운최치원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고운 최치원의 흔적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간 임경대. 임경대는 양산시 물금에서 밀양의 삼랑진을 잇는 1022번 지방도의 오봉산 자락에 있습니다. 낙동강을 끼고 달리는 도로는 일찍부터 부산경남의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버 코스로 알려져 많은 여행꾼이 찾고 있는 탐방지가 된지 오래입니다. 




이곳 절경의 강가 절벽에 자리한 임경대는 최근에 고운 최치원이 거닐며 황산강을 바라보았다는 임경대의 위치 문제로 말이 많았습니다. 고증을 거쳐 최근에 임경대를 다시 찾아 새롭게 정자를 세우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는데 이또 한 위치가 틀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동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찾아간 임경대는 과연 낙동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최치원이 본 장소가 그리 중요한가요? 필자가 보았던 이곳이 임경대구나며 느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임경대는 고운대 또는 최공대로도 부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경치도 아름답지만 낙동강으로 떨어지는 저녁낙조도 너무 아름다워 시간가는 줄 모르고 혼을 빼 놓고 바라보다 왔습니다. 



바위에 최치원의 시가 있었다하나 장구한 세월 속에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는 “황산강 임경대에서”의 시를 옮겨 봅니다.

“연기 긴 봉우리 빽빽하고 물은 넓고 넓은데

물속에 비친 인가 푸른 봉우리에 마주 섰네

어느 곳 외로운 돛대 바람 싣고 가노니

아득히 나는 새 날아간 자취 없네“





지금도 임경대에서 바라보는 황산강은 고운 최치원 선생의 싯구와 변한 게 없습니다. 낙동강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로 주위의 봉우리는 숨었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넓은 강물에 비친 산 그림자의 반영속에 또 하나의 임경대가 보입니다.



현재는 황산 나루를 건너는 작은 돛단배는 찾을 수 없지만 1980년대까지 원동의 용당 나루를 건너다니던 철선의 추억을 떠 올리며 그 당시의 모습을 유추해 봅니다. 잠시나마 정자에 올라 임경대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던 낙동강. 그 장소가 어딘지 간에 낙동강의 아름다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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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군위여행)산성면 화본마을, 화본역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추억 여행 떠나보세요.


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은 솔 솔한 구경꺼리가 많이 있습니다. 70년대의 마을 분위기를 보여주는 아담한 화본마을의 풍경 그야말로 고향마을을 찾는 느낌입니다. 마을길을 가르는 도로를 따라 벽화가 예쁜 모습으로 그려져 침침한 마을은 더욱 밝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화본마을의 역사는 조선말기인 고종 33년(1896년) 경상북도 의흥군에 예속된 마을이었는데 1914년에 군위군으로 편입을 하였습니다. 또한 주위로 큰 산으로 겹겹이 둘러 쳐져 고립무언의 오지이며 팔공산의 가산산성으로 인해 산성면이 되었습니다.



이곳 산성면 화본리는 그 중심에서 있는 마을로 최근까지도 기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이 될 정도였습니다. 하루 6회 운행하는 중앙선의 화본역은 전국의 아름다운 간이역에 뽑힐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한때는 많은 인파로 들끓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하루 총 승객이 20여명 이 될 정도로 한적한 간이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화본역은 더욱 아련하게 내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습니다. 화본역은 1936년 일제강점기때 완공이 되어 2년 뒤 보통 역으로 업무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저 평범한 역에 불과했던 화본역이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하나둘 찾게 되었습니다. 2011년에는 옛 역사의 모습을 고수하며 관광객의 편의사항을 추가하여 보수를 하였습니다. 또한 KBS 1박2일의 촬영지가 되면서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려와 주말이면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찾는 가족관광객,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화본역도 보고 역사 안에는 옛 추억을 일깨우는 증기기관차의 물을 공급한 급수탑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필자가 어렸을 때인 1967년대 까지 운행이 되었다는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급수탑은 화본역의 최대 볼거리 입니다. 내부도 들어가 볼 수 있는 화본역의 급수탑, 그 당시 낙서의 흔적도 찾을 수 있습니다. 



화본역의 최대 볼거리는 또 있습니다. 산성중학교가 폐교가 되면서 학교를 보수하여 체험과 함께 60~70년대 생활을 알 수 있는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의 추억의 장소가 화본역 맞은편에 있습니다.



주말에 찾아간 이날 유치원들의 체험장소로 많은 아이들이 찾는 것을 보고 필자도 놀랐습니다. 쬰득이, 오뎅, 뽀빠이, 라면 땅, 자야 등 추억의 간식거리도 이곳에서는 만날 수 있습니다. 그저 반가울 따름입니다.





교실로 들어가 봅니다. 전국의 교실이 다 똑같은 모습이지만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열정은 추운 겨울의 냉기도 녹였습니다. 호호 곱은 손을 불며 선생님을 바라보았던 걸상에 앉아 책상에 팔을 올려 봅니다. 이제 50대의 중년이 된 모습에 세월의 빠름을 알았고 장난감 같은 책걸상을 보고 그때의 까까머리 중학생을 생각해 봅니다.



갑자기 유치원생들이 와~~~하며 교실로 몰려 옵니다. 그리고 걸상에 앉습니다.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망울만은 똘망똘망한게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교실 중앙에 놓여 있는 특이한 난로 위에 양은 도시락이 왜 올려져 있는지 꼬맹이들은 알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밥을 굶는다는 뉴스를 보고 그럼 라면을 먹지’하며 부족함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오늘은 좋은 교육장이 될 것 같습니다.



교실을 나와 옆반으로 옮겨 봅니다. 옛 다방의 모습이 꾸며져 있습니다. 시골에서도 제일 많은 게 다방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추억의 물건을 많이 모아 전시를 하였습니다.



70년대 마을마다 일어난 새마을 운동을 사진으로 만나보고 역대의 대통령도 이곳에서 추억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럼 찬찬히 둘러보도록 합니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자동차는 생활필품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한반에 한두명 정도 있을 까 하였을 정도로 귀한 자동차. 부자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필자의 학창시절에는 가정조사를 한다며 설문지를 나누어주고 집안에 있는 물건에 표시를 하게하였습니다. 자가용, 전화기, 텔레비젼, 냉장고등 요즘은 필수품이 된 가전제품을 말입니다. 필자는 집에 텔레비젼이 없어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고 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버님이 친척에게 부탁하여 일제 텔레비젼을 구입하였던 날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당시는 진공관이 들어가 있어 텔레비젼에 열이 많이 났는데 지금의 방식과는 많이 달랐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당시 엄청 궁금하였던 선데이서울등 잡지 요즘은 다 이디로 갔는지.....남진, 나훈아, 이미자, 조용필등 그 당시 절정의 가수들이..... 프로레슬링 ㅎㅎ 김일선수의 박치기 한방으로 상대 선수를 눕힐 때 참 어린 아이였지만 속이 후련하였습니다. 요즘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인기를 잃었지만 그 당시 안토니오 이노끼와의 대결은 세간의 큰 이슈였습니다.


 






 

 

그당시 이소룡의 흉내를 내며 쌍절곤을 돌리고 오~~~~오 ㅋㅋ 지금생각하면 참 웃음이 나오는 그런시절입니다. 60~70년대 말을 타며 달리는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서부영화 티비의 명절 단골 상영프로였습니다.  따각 따각 달리는 그 모습에 같이 말도 타고 달리며 그 흉내도 내보고 하였는데....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위한 세트장에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을 학교 교실에 꾸며 놓았습니다. 역전 상회의 구멍가게 풍경 ....아이스께끼 통 보이나요??? 달달한 팥알이 들어간 아이스께끼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맛입니다. 골목을 누비며 추억의 여행을 떠나보세요. 화본마을 옛 산성중학교에가면 만날 수 있는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ㅋㅋㅋ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경북여행/군위여행)산성면 화본마을, 화본역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추억 여행 교통편.


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의 화본역은 자가운전도 편리하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동대구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바꿔 타 서울 방향으로 간다. 곧 만나는 도동분기점에서 대구-포항고속도로를 탄 뒤 청통와촌IC에서 내려 919번과 908번, 79번 지방도를 이어 타고가면 산성면 화본역에 닿는다. 내비게이션에 화본역을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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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화본은 기차가 편리합니다. 부전역에서 청량리행 오전 7시20분에 출발하는 열차가 10시23분 화본역에 정차를 합니다. 하지만 부산으로 돌아오는 부전행 열차는 낮 12시41분에 있어 조금은 급한 감이 있습니다.



2014/12/05 -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2014/12/02 - (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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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포항구룡포여행)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완벽한 일본 거리로 바뀐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탐방.


필자는 여행을 하면서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지어놓은 건축물을 많이 보았습니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도 일제의 잔재인 건물이 있었지만 모두 헐리고 현재는 조금 남아 있습니다. 또한 필자는 군산을 여행하여 만나본 일본의 건물은 18은행, 조선은행, 군산세관 등 그 당시 일본인들의 관광서 건물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포항의 구룡포항을 방문하면서 만나본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는 일본 가정집 형태의 가옥들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그대로 남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이곳에 일본식 가옥이 많이 생기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보면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당시에도 동해의 최대 어업전진기지가 구룡포 항이었습니다. 1923년 일제 강점기 때 일제는 작은 포구에 지나지 않던 구룡포에 항구를 세운 뒤 동해권의 어업을 총괄하면서 일본인들이 많이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일본인의 상가가 형성되었고 사람들로 붐비다보니 병원, 백화점, 음식점, 여관 등의 편의시설이 들어서고 지역상권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 광복과 함께 일본인은 돌아가고 남아 있던 일본식 건물들은 개발의 여파 속에 자연히 훼손되고 헐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일본인이 우리 민족에게 저질렀던 만행은 엄청난 아픔과 시련을 주었습니다. 포항 구룡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고통의 역사가 지워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포항시에서 구룡포의 적산가옥 보수와 정비를 추진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의 풍족했던 생활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반대로 작취와 억압 속에 고통의 나날을 보낸 우리민족의 피맺힌 한을 잊지 않고 반면교사로 삼기위한 교육장으로 삼고자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가 태어났습니다.


 

2011년 3월부터 정비사업을 시작하였고 457m의 거리에 27동의 건물을 보수하였습니다. 또한 2012년 12월에는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가 국토해양부의 ‘제2회 대한민국 경관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합니다.


 

현재 '구룡포 근대역사거리'를 걸어보면 어느 일본의 거리를 걷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1924년에 지어진 일본 가옥 내부는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그곳에서 아기자기한 일본 소품이 진열된 상점의 모습을 보면  ㅋㅋ 갑자기' 이수일과 심순애' 의 신파극이 연상 됩니다. 혹 이 골목 앞에서 "김중배의 다이아반지가  그리 좋았단 말이야~~~" 아~~~왠지 건물을 보고 있자니 격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땅에 이런 건물이 존재한다는 것에 말입니다. 

 

 

 

 


 

 

여명의 눈동자는 책으로도 보았고 티비 드라마로도 재미있게 보았는데 이곳에서 촬영이 이루어 졌네요. 지금은 중년인 분들이 이곳에서는 풋풋합니다ㅎㅎ.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이 된다합니다. 




 

 

 

일제 강점기때 유희장으로 사용하였다는 건물입니다. 2층 목조건물로 지금은 가정 주택인데 이곳에서 '여명의 눈동자'기 촬영되었답니다. 2층 창문안에 조각이 보이나요.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 문양이라 합니다.


 

다양한 일본 가옥이 현재 남아 있는 구룡포항,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를 방문해 보세요 어르신에게는 그 당시의 생활상을 듣고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나라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려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2편도 있습니다.....


 

 

 

 

 

 

 

 

 

 

 

 

 

 

 


대중교통편은 구룡포로 가기위해서는 무조건 포항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야합니다. 포항시외버스 터미널 앞에서 구룡포읍 행 버스인 200번 좌석버스를 타고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정류장에 내리면 됩니다. 너무 편리하고 쉽죠잉. 그리고 구룡포 행 버스고 엄청 자주잇습니다. 대략 13분 간격 운행. 

내비게이션은 구룡포항으로 입력.




2014/11/03 - (경북여행/포항여행)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 호미곶 가는 길에 있는 구룡포해수욕장 옆에 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가 있습니다.


2014/11/01 - (포항맛집/구룡포맛집)호미곶맛집 창우물회대게.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포항물회를 마약물회라 하는 이유는??? 창우물회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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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부버스터미널)서부경남과 전라남북도 여행은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이용하면 됩니다.


진주, 하동, 구례, 지리산, 중산리, 순천. 광주, 광양, 여수, 전주, 목포  방면 버스 이용은 부산서부버스터미널입니다. 부산에서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부산역과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기차여행이 있으며 버스를 이용하여 여행하는 방법은 동부시외버스터미널과 서부시외버스 터미널 그리고 고속버스터미널이 있습니다. 경주 포항 등 동부경남을 여행하기위해서는 1호선 종점인 노포동의 부산동부버스터미널에서 이용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진주 하동 등 서부 경남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김해행 경전철 종점인 사상역앞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입니다. 



부산사상터미널 규모가 대단합니다. 부산을 기준으로 서부경남과 전라남북도 방향으로 떠나는 버스들이 모두 이곳에서 출발합니다. 


 

먼저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인천행은 선선휴게소를 경유하며 하루3회 운행을 합니다. 인천까지 직통으로 편안하게 갈 수 있습니다. 또한 선산휴게소로 향하는 버스는 하루 16회로 우등과 일반버스가 운행을 합니다. 선산휴게소에서 목적지로 환승을 하면 됩니다.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는 광주는 우등과 일반버스 그리고 심야버스도 운행을 하며 전남 여수행 버스도 수시로 있습니다.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경기도 용인은 3회, 경부선을 이용한 서울은 6회, 세종시도 하루 4회 운행을 합니다.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서부 경남인 통영, 고현, 옥포, 장승포, 김해, 진례, 진영 버스가 수시로 운행을 하며...


 밀양, 가술, 수산, 구기, 거창, 의령, 합천행 버스도 이곳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합니다.

 

전라남도의 동광양, 광양, 순천, 강진, 목포, 해남, 완도행 버스는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뒤 남해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요즘은 목포행 고속도로 지선을 이용하여 더욱 빠르게 목적지까지 가게 됩니다. 


 영산, 부곡, 남지, 창녕, 대구, 서울남부정류장,고흥, 녹동, 남원행 버스도 이곳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합니다

 경기전, 풍남문, 전주한옥마을, 전동성당등 볼거리가 무궁무진한 문화재의 도시 전주와 남해, 교육의 도시와 지리산 들머리인 진주, 사천, 삼천포, 함양, 진해도 부산서부버스터미널을 이용합니다.

 토지의 최참판댁, 쌍계사, 지리산, 섬진강, 악양들판, 화개장터등 역사적인 문화재와 볼거리가 가득한 하동도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출발을 합니다. 또한 하동 쌍계사, 구례, 화엄사,마산, 창원, 함안도 부산서부버스 터미널입니다.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는 부산과 가까운 장유, 경남의 오지 산청, 함양, 인월, 전주, 장계, 진안, 정읍까지 버스가 운행을 합니다. 


 

지리산 입구인 대원사와 중산리, 신반, 초계, 부천행버스도 부산서부버스터미널을 이용하시면 편안하게 갈 수 있습니다.

부산서부터미널에서 대원사행은 하루 3회이며 중산리는 하루 4회 운행을 합니다. 지리산 천왕봉을 가기위해서는 부산서부터미널에서 진주로 이동하여 중산리나 진주로 여행을 하면 빠르게 목적지 까지 갈 수 있습니다. 

부산서부버스터미널 요금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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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아름다운 간이역이 있다하여 찾아간 곳 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 중앙선 화본역. 마을의 분위기와 함께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간이역 여행"의 저자 임병국씨가 간이역 여행지로 "무언가 얻어가기에는 화본역 만큼 좋은 곳도 드물다"며 추천을 하였던 곳입니

 

화본역은 1936년 일제강점기 때 완공이 되어 2년 뒤인 1938년 2월에 보통역으로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화본역 역사는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2011년 개보수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많은 역들이 폐역의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만 화본역은 그래도 아름다운 간이역의 명맥을 잇고 있어 찾아가는 필자로서도 뿌듯합니다. 화본역은 작은 역이다 보니 상·하행선을 합해 하루 6회 열차가 정차를 합니다. 상행선인 청량리와 강릉방면, 하행선인 부산 부전역과 동대구역으로 각각 3회입니다.

 

 

한 때 화본역은 영천 장이 서는 날인 2일, 7일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 들어 기차 안에는 승객들로 왁자지껄 요란스럽던 진풍경도 있었는데 현재는  하루 화본역을 이용하는 승객은 모두 합쳐 20명 내외의 규모로 줄었고 주말에는 거의가 관광객이 이용 할 정도라합니다. 화본역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건물 입구 왼쪽에 박해수 시인의 “화본역” 시비입니다. 화본마을의 잔잔한 분위기를 서정적인 모습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을 하였습니다.

 

 

 

화본역에는 일반역에서 보기 힘든 급수탑이 남아 있습니다. 필자는 밀양의 삼랑진역에 남아 있는 급수탑을 보았고 그곳에서는 그저 밖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화본역의 급수탑은 내부로 들어가서 볼 수 있습니다.

 

 

일반 역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급수탑의 내부를 보면은 탑 안은 텅텅 비어 있고 두 종류의 파이프만 올라갑니다. 물탱크로부터 물을 공급하고 가열된 물을 끌어올리는 역할의 파이프와 환기구가 그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화북역의 급수탑은 193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외부의 높이가 20m에 달한다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증기기관차가 1899년 경인선을 시작으로 1967년까지 운행을 하였다하니 그 때까지 화본역의 급수탑은 제 기능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현재에는 퇴역을 하여 철도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으며 화본마을과 화본역을 찾는 관광객에게 최고의 사진 포인트로 인기가 있습니다. 화본역 옆에는 퇴역한 열차 두량으로 레일카페도 운영을 합니다. 분위기 있는 열차 안에서 쓴 커피로 낭만을 즐겨보세요. 화본역 앞 옛 산성 중학교에는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추억에 전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만나는 화본역 풍경



 급수탑 내부의 흔적입니다. "석탄정돈" "석탄절약" 그 당시 구호가 보입니다. 

 

급수탑 내부입니다. 두줄의 파이프가 물탱크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교통편

 

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의 화본역은 자가운전도 편리하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동대구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바꿔 타 서울 방향으로 간다. 곧 만나는 도동분기점에서 대구-포항고속도로를 탄 뒤 청통와촌IC에서 내려 919번과 908번, 79번 지방도를 이어 타고가면 산성면 화본역에 닿는다. 내비게이션에 화본역을 입력.

부산에서 화본은 기차가 편리합니다. 부전역에서 청량리행 오전 7시20분에 출발하는 열차가 10시23분 화본역에 정차를 합니다. 하지만 부산으로 돌아오는 부전행 열차는 낮 12시41분에 있어 조금은 급한 감이 있습니다.

 

 

 

2014/12/02 - (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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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구례여행)화엄사 동·서오층석탑. 부처님의 원력으로 화엄사의 지기를 다스리기 위해 조성한 화엄사 동·서오층석탑.


탑은 부처님의 무덤을 말합니다. 스투파, 수구파, 탑파라고도 부르는데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을 말하며 불사리탑인 석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시나가라(kusinagara)의 보리수 밑에서 열반에 들은 후 사리가 8개국에 나누어져 탑파를 쌓기 시작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사찰에서 신성시하며 부처님의 몸에 비유한 사찰의 가장 중심 건물인 대웅전 앞에다 새웁니다.

 


화엄사 동오층석탑(보물제1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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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기 헌강왕 원년인 875년에 화엄사 서탑과 함께 도선국사에 의해 조성된 탑입니다. 신라와 백제의 양식이 조화를 이루며 혼합된 탑으로 화엄사 홈페이지에서는 “부처님의 모든 탑이 거짓과 꾸밈이 없고 순수하여 진실 그대로 참된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는 부처님 도량은 참된 장소요. 세계요. 법계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탑이다”라 하여 화엄사 동오층석탑을 두고 증명탑, 다보탑, 다보분좌탑으로도 부르고 있습니다.

 

 

화엄사 대웅전 앞에 있는 동·서오층석탑은 두탑이 서로 비슷한 크기이지만 생긴 모습은 완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서탑은 광을 낸 뺀질이처럼 조각과 장식면에서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반해 동탑은 아무런 장식도 없이 그저 수더분한 시골 아낙의 단아한 모습을 한 탑 입니다. 온갖 기교와 재주를 피우지 않은 동오층석탑이지만 멋스러운 자태에서 풍기는 맛은 고고하며 우아하기까지 합니다. 1층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 기둥을 본뜬 조각을 두었습니다.


 


또한 탑신은 1층 몸돌이 높이에 비해 넓어 안정감이 있으며 각층 몸돌 넓이의 폭이 줄어드는 것에 비해 높이의 폭이 줄어드는 게 작아서 한층 늘씬하며 키가 커 보입니다. 지붕돌은 경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평평하며 얇게 얹혀 져 있는데 몸돌에 따라 지붕돌의 크기가 줄어드는 게 큰 편이며 특히 1층과 2층의 한층 차이는 더 큽니다. 맨 꼭대기 상륜부에는 머리장식 받침인 노반과 엎어 놓은 그릇 모양인 복발, 연꽃봉우리 모양의 보주가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탑은 2층의 기단인데 특이하게도 동오층석탑은 1층 기단에 세워진 석탑으로 기단부의 돌구성이 다소 짜임새 있는 모습이 아닌 느슨한 경향이 있는 점으로 보아 서탑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습니다.


석탑에서 오층의 의미는 욕계, 색계, 무색계, 보살계, 불계를 나타내고 장식과 꾸밈이 없음은 청정한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단층 기단은 신라고승 의상이 깨달음의 경계와 법에 대해 표현한 7언30구의 게송인 일승법을 뜻하여 동오층석탑은 화엄세계인 연화장 세계 즉 연꽃속에 담겨 있는 세계를 나타내는 탑이라 합니다.


 

화엄사 서오층석탑(보물제1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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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동탑은 아무런 조각 이 없는 그저 평범한 석탑의 모양이라면 서탑은 조각과 장식이 화려할 정도로 가득합니다. 화엄사 서오층석탑도 헌강왕 원년인 875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조성한 탑입니다. 백두대간 혈맥의 웅대한 힘과 태극을 그리며 흐르는 섬진강의 두 힘이 서로 충돌하여 땅의 기운이 대가람 화엄사란 배를 흔들어 버릴 태세라 풍수지리설의 대가인 도선국사는 부처님의 원력으로 막아보고자 동·서오층석탑에 부처님사리를 봉안하여 화엄사의 중심에 조성을 하였습니다.




 2층 기단에 5층의 탑신을 세웠는데 아래 기단 각면의 안상속에 십이지신상을 네방향으로 나누어 배치를 하였고 위층 기단은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본떠 두면으로 나누어 팔부신중을 그 안에 새겼습니다.


 

탑신인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서 몸돌은 각층 모서리에도 기둥모양을 새겨두었습니다. 1층 몸돌 네면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여 배치를 하였고 각층의 지붕돌은 밑면에 5단의 받침을 넣고 처마 밑은 수평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상륜부인 머리장식에는 2층의 단을 둔 받침위로 연꽃봉우리 장식을 한 보주를 올렸고 석탑의 형태를 보면 높아선지 약간은 불안한 감이 들지만 전체적인 상하의 체감비율에 지붕돌을 경쾌하게 처리한 수법등이 탑과 조화를 이루어 우아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래층의 기단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한 예는 흔하지 않은 석탑으로 팔부중과 사천왕상을 함께 조각한 것은 탑속에 모셔진 부처님 사리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보입니다. 동오층석탑과 같은 통일신라시대 9세기 작품으로 추정을 하며 화엄사 서오층석탑을 옹호탑이라 부릅니다.


 팔금강

 사천왕상

이는 십이지신, 팔금강과 사천왕은 부처님의 법과 부처님 제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신이란 의미에서 입니다. 동오층석탑의 단층기단과 달리 서오층 석탑의 2층 기단은 불이법을 표현한 것으로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상태를 초월하여 절대적이고 평등한 진리의 세계의 이치를 표현한 탑입니다.(참고:화엄사 홈페이지)


  팔금강

  사천왕상

  사천왕상

  팔금강

  사천왕상

  팔금강

 십이지신상

  십이지신상

 

 

 

☞(전남여행/구례여행)화엄사 동·서오층석탑. 부처님의 원력으로 화엄사의 지기를 다스리기 위해 조성한 화엄사 동·서오층석탑 교통편.


부산에서는 화엄사를 찾아가기가 너무 편하다.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화엄사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첫차 오전 7시부터 평균 1시간 간격으로 있다. 3시간30분 안팎 소요. 화엄사 구경을 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올 때 내렸던 화엄사 입구 버스정류소에서 타면 된다. 오후 1시10분, 3시10분, 4시10분, 5시10분, 6시10분(막차)에 구례 하동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땐 남해고속도로로 가다가 순천분기점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탄다. 황전IC에서 내려 구례구역과 구례군청 앞을 지나면 구례터미널을 거쳐 화엄사로 가면 된다. 내비게이션 화엄사 입력.








2014/11/28 -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 화엄사에서 화엄사 각황전과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을 보고 왔습니다. .


2014/11/26 - (전남여행/구례화엄사여행)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부처님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줄 광명등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2014/11/25 - (경남여행/하동여행/구례여행)평사리~화개장터 섬진강 둘레길. 박경리의 토지길과 섬진강 100리 길을 따라 걷는 둘레길,


2014/10/30 - (전남맛집/구례맛집)화엄사 맛집 지리각식당. 지리산이라 더욱 맛있는 산채비빔밥 맛집 지리각식당.


2014/10/16 - (전남구례여행)구례공용버스터미널 버스 시간표 올려요. 노고단(성삼재)버스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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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유년시절 과거로 떠나는 여행은 어떤 방법이 있을까하며 모두들 한번 쯤 고민을 해 보았을 것 입니다. 필자도 그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낸 날이 많이 있습니다. 축구공 같이 둥근 모양의 타임머신을 타고 가고 싶은 연대의 버튼를 쿡쿡 누르면 “기기끽 기기끽” 기계음을 내며 “눈 깜짝 할 새” 공간이동으로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상상을 말입니다.


 

이제는 세파에 찌들어 닳고 닳은 중년이 되어서 인지 그런 상상도 하지 않습니다. 필자가 가장 가고 싶은 과거로의 여행은 60년~70년대 나의 유년기 시절 여행입니다. 이제 나의 인생을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간접 체험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순간이동은 할 수 있습니다. 중년이 되어 어린 시절을 찾아 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즐거움이며 그래서 찾아간 곳입니다. 


 

경상북도 군위군에 있는 화본마을은 나의 유년기 추억을 끄집어내어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주었습니다. 그럼 화본역과 옛 산성중학교의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와 벽화거리 골목투어가 있는 군위군 산성면 “산성가음로”에 먼저 벽화거리 여행을 시작하겠습니다. 


 

화본마을이 있는 산성면은 1896년인 고종33년에는 경상북도 의흥군이었다가 1914년에 군위군에 편입되었습니다. 산성면은 주위로 높은 산인 팔공산과 조림산으로 둘러 쌓여 오래전 부터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던 곳이며 팔공산의 가산산성으로  인해 산성면이 되었다합니다. 


 

500여년전 김달영이라는 분이 처음으로 마을을 개척하여 "신내미"로 불렀다는 화본마을의 벽화이야기로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왠 뜬금없는 '주몽'이 ㅎㅎ 얼마전 지상파 드라마에서 워낙 뜬 드라마라 그런가요 ㅎㅎ 주몽속의 주인공인 송일국이를 닮았나요


 

 

 

화본마을에 3000여년전 청동기 고인돌이 2기 있습니다. 마을안과 화본마을회관앞에 있습니다. 여기 고인돌은 집 담장을 겸해 남아 있는데요 밖에서 보면 그저 큰 바위로 보이지만 옆 철문을 들어가 마당에서 보면 받침돌 공군 고인돌이 확인됩니다. 이리 큰 바위를 어찌 들어 올렸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집안에서 본 고인돌 입니다. 밑에 받침돌이 보이나요??????


 

 

 

 

화본 관사입니다. 1936년 지어진 화본역은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화본역과 마주하고 현재 화본역관사가 두채 남아 있습니다. 일본식 목조 가옥으로 현재는 내외부를 수리하여 이곳을 찾는 방문객의 숙박시설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수리를 끝낸 관사와 마주보고 있는 또 다른 관사입니다. 옛 모습 그대로 남은 관사의 모습으로 지금은 폐허 수준이 되었습니다.  


 

 

 

일연스님은 군위군의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습니다. 삼국사기와 달리 삼국유사는 야사로써 삼국사기에서 알 수 없는 많은 사료들이 그 속에 남아 있는데 단군을 우리나라의 국조로 받들어 개천절 행사의 근거가 되었고 사료를 알 수 없는 고조선의 서술을  삼국유사에서 제시 하여  우리나라가 반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근거를 제시한 분이 보각국사 일연스님입니다.  


 

 

 

 

 

화본역 앞에 있는 역전상회입니다. 그 당시 하루 6회 화본역으로 들어 오는 역전의 풍경과 함께 근대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화본의 근대역사와 함께 한다는 화본마을의 상점들이 지금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 문을 닫았지만 70~80년대 까지만해도 영천 장날인 2일, 7일에 맞추어 화본역은 인근 마을 촌로들이 보따리를 메고 지고하며  사람으로 들끓었다 합니다.   


 

옛 추억으로 빠져 들 게하는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가 구 산성중학교에 마련이 되어 있다는 안내판입니다. 


 

 

삼국유사를 저술하신 일연스님의 벽화가 담벼락에 매화꽃과 함께 화사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추억의 간식꺼리, 엄마아빠의 간식꺼리 ㅎㅎ

 필자의 유년기때 먹었던 뽀빠이, 자야. 라면당 등.........


 

 

일본식 이름 간또로 불렸던 오뎅입니다. 지금은 어묵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습니다. ㅎㅎ 학교 문방구에서 불티나게 국물이 팔렸던 추억의 오뎅도 맛 볼 수 있는 화본마을. 부산오뎅이라는 주인아주머니 말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이름이 올라있는 화본역입니다. 화본역과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화본마을 골목투어는 나의 소중한 추억을 담는 여행으로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가족과 함께 화본마을로 추억여행을 떠나보세요.


 

 

☞(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교통편


부산에서 찾아가는 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의 화본역은 자가운전도 편리하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동대구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바꿔 타 서울 방향으로 간다. 곧 만나는 도동분기점에서 대구-포항고속도로를 탄 뒤 청통와촌IC에서 내려 919번과 908번, 79번 지방도를 이어 타고가면 산성면 화본역에 닿는다. 내비게이션에 화본역을 입력

부산에서 화본은 기차가 편리합니다. 부전역에서 청량리행 오전 7시20분에 출발하는 열차가 10시23분 화본역에 정차를 합니다. 하지만 부산으로 돌아오는 부전행 열차는 낮 12시41분에 있어 조금은 급한 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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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구례여행/마산면 효자 이규익 지려)허벅지 살을 베어 부친을 봉양한 하늘이 내린 효자 이규익 지려 찾아가기...


지리산 둘레길 구례 구간을 걷다보면 많은 문화재를 만납니다. 특히 마을 입구에 지키고 있는 효자각 또한 구례 지리산 둘레길에서는 빼 놓을 수 없습니다. 효자 이규익은 하늘이 내린 효자라 칭송할 정도로 효자중의 효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분의 효심이 너무도 대단하여 우리 같은 사람은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순조 19년(1819년)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에서 출생을 하였습니다. 평소에도 그의 효성이 동네에 자자할 정도였는데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집안에 연못을 만든 뒤 고기를 길러 부모님께 맛있는 생선을 매끼 드실 수 있게 하였다합니다.



부친이 여든이 넘어 노환으로 자리에 눕자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좋다는 약은 모두두 다려 드렸으나 별 차도가 없게 되자 그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구워 드리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드시게 하여 부친이 3일간 더 연명하게 하였다합니다. 참 대단한 분이 아닐 수 없으며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티비의 “전설의 고향”에서 만난 듯한 이야기로 실제 이래 효자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설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규익은 부모님이 연이어 돌아가시자 6년의 시묘살이를 하였습니다. 그의 정성이 하늘도 감복을 하였는지 꿩이 그의 묘막에 들어오기도하고 호랑이가 옆에서 함께 지내주기도 하였다합니다.



그의 효행이 모든 백성의 귀감이 되어 한양에까지 알려졌 급기야 1881년 고종임금이 동몽교관의 벼슬과 정려를 함께 내렸다 합니다. 최근에 찾아간 효자 이규익지려는 새롭게 중수가 되었습니다. 솟을 대문인 출입구도 새로 세우고 주위도 정비를 하여 한결 깨끗한 모습입니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347-1에 소재하며 향토문화유산 제21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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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제6회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11월29일 토요일 부산 광복동거리에서 제6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와!!!!!! 엄청 많은 사람들로 행사장 주변인 메인트리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 였습니다.  


매년 12월 겨울이면 열리는 이번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화려한 빛의 성탄 축제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화려한 점등행사와 함께 특히 올해 큰 사고로 얼룩져 예년보다 더욱 다사다난 했던 한해 부산 크리스마스 트리문화 축제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만져주는 성탄축제가 되었서면 합니다. 



여섯번째 부산크리스마스트리 문화 축제 이야기는 "하나되어 누리자"라는 주제로 우리모두 하나가 되어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가슴 따뜻한 축제, 위로하는 축제,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 축제에서 모두가 위로 받는 축제가 되세요.



공식행사로는 개막점등식은 끝났고 2014년 12월 24일(수) 오후6시 성탄절 행사와 2015년 1월4일(일) 저녁9시 폐막소등식이 있습니다. 



제6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주요 행사를 보면 시민참여프로그램, 상가활성화 프로그램, 문화행사 프로그램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시민활성화프로그램은 아마추어 공연팀의 무대로 "데일리 콘서트", 오디션형 프로인 개인 장기자랑 "나는 클스다", 기독교 선교사 첫기착지 표지석, 트리를 밝혀라, 성탄축하 플래시몹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상가활성화 프로그램은 어릴때 추억의 게임을 통해 광복로의 숨은 곳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으로 행사일정은 1차미션: 12월13일 오후 4시~5시30분, 2차미션은 12월20일 오후 4시~5시30분



옥션!!! 광복로 프로그램은 상인들의 기증물품 경매 판매로 경매수익금은 불우이웃돕기에 후원하는 프로그램과 할인쿠폰북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문화행사 프로그램은 부산 지역 인디밴드 음악공연인 "언플러그 인디밴드 콘서트", 성탄가족영화상영은(미녀와 야수의 크리스마스) 2014년 12월14일(일) 오후4시~5시) 카페브릿지본점에서 상영되며 시낭송회는 18일 오후7시~8시에 열린다. 다양한 시민참여 행사와 문화행사가 열리는 제6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를 만나 보세요.



필자는 개막점등식날과 전날을 포함하여이틀을 광복로에서 담아 온 사진입니다. 스마트폰과 함께 찍었던 제6회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를 사진으로 만나보세요. 




















천국을 품은 교회






천지창조해와 달





트릭아트그래픽읠




소망트리

통일한국


















보석 프로포즈 존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홈페이지 캡쳐


다음지도 캡쳐




2014/11/27 -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2014 제6회 부산크리스마스 트리 문화 축제가 광복동에서 열려요.


2013/11/28 - (부산여행/중구여행/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더욱 화려해진 제5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개막식 전에 미리 댕겨왔습니다.


2012/12/01 - (부산크리스마스 트리 문화축제)화려한 트리 불빛에 깜짝 놀래, 미리가본 성탄절 축제 제4회부산크리스마스트리축제


2011/12/02 - 빛 축제 광복로에서 열리는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의 그 화려함에 놀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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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구례여행)화엄사 각황전과 원통전전사사자탑. 단일 불교 건축물로는 최고 최대라는 화엄사 각황전.

 

화엄사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은 각황전입니다. 현재 화엄사에서 연륜이 짧은 편으로 조선후기 숙종25년인 1699년에 중수된 목조건축물입니다. 원래 각황전 자리에는 의상대사가 670년에 창건 한 3층 건물 장륙전이 있었습니다. 내부 사방 벽면을 화엄석경으로 둘렀고 석가여래 입상인 장륙존상을 봉안하여 장엄하기가 이를 수 없었다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소실 되고 말았습니다. 장륙전 벽면을 돌렸던 화엄석경은 깨어져 1500여점 조각으로 남아 각황전 불단 밑에 보관되어 있으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각황전은 성능계파선사께서 소실된 장륙전 자리에 1699년 중건을 시작하여 1702년에 건물을 완공하였으며 국내에서 전해 내려오는 단일 불교 건축물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 합니다. 불교 건축에 무지한 필자가 보아도 규모가 너무 큰 게 국내 최고의 불교 건축물 같았습니다.

 

 

정면 7칸, 측면 5칸의 2층 규모로 내부를 들여다보면 통층 구조로 되었습니다. 건물을 받치는 기단이 높고 서쪽을 보도록 배치를 하였으며 팔작지붕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Daum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참고하면 각황전을 받치는 기둥은 평주이며 기둥 맨 위에 창방과 평방이 놓여 있고 평방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 올린 다포계 양식으로 1.2층 모두 안과 바깥에 두개의 공포로 도리를 받친 2출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포의 부재인 첨차는 아랫면을 둥글게 처리를 하였고 소의 혀 모양 장식을 쇠서라 하는데 그 끝이 모두 위로 올라간 앙서로서 이런 특징은 조선초기의 목조건축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1층의 앞면은 빗살무늬와 솟을살무늬로 장식된 문을 달았고 그 외의 면은 일부만 벽으로 막았습니다. 2층은 동서남북 모두 작은 창을 내었습니다. 2층까지 닿는 긴 기둥을 여러 개 배치하고 그 위에 대들보를 올려 종량의 한쪽 끝을 받치고 있습니다.

 

 

각황전은 우물 정(井)자형 천장으로 만들었고 그 주위를 경사지게 한 게 특이한 점입니다. 중앙의 뒤쪽에 놓인 대불단에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다보여래불을 모셨고 좌우로 보현보살, 관음보살, 문수보살, 지적보살의 3불4보살로 안치되어 있습니다. 모두 3m가 넘는 대형불상과 보살상으로 개금불사를 하면서 복장기가 나왔는데 숙종29년(1703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각황전을 중건하고 봉안 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습니다.

 

 

장륙전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일본인들이 각황전을 중수하면서 그때 일부가 변형된 것 같다 합니다. 이래저래 일본에 의해 각황전은 두 번이나 큰 시련을 겪게 된 샘입니다. 각황이란 뜻은 부처님을 깨달은 왕으로 성인중에 성인이라는 뜻이며 왕에게 불교사상을 일깨워 주었다는 뜻이라 합니다. 필자가 찾았던 이날은 각황전 외부와 내부 모두 복구인지 모를 공사가 진행중이었습다. 건물 외부의 왼쪽에 건축자재가 올라가고 내부 또한 양편으로 건축자재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부디 큰 공사가 아니길 빌어 보며 앞으로도 쭉~~ 천년 이천년  국보 제67호 문화재로 남아 주길 바래 봅니다.  

 

 

각황전 중건 불사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한토막입니다. 계파선사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장육전 중건불사를 위한 대발원의 백일기도를 올렸습니다. 마지막 날 밤에 신인이 꿈에 나타나 큰 불사를 이룰려면 “복 있는 화주승을 내어 큰 시주자를 얻어야 하느리라”하며 물담은 항아리와 밀가루를 담은 항아리를 준비하여 먼저 물항아리에 손을 넣고 난 다음 밀가루 항아리에 손을 넣어서 밀가루가 손에 묻지 않는 사람이 장륙전 건립의 화주승이 되어야 한다하며 사라졌다합니다.

 

 

 

천여 대중이 모두 하였지만 밀가루가 손에 묻지 않는 스님은 찾을 수 없었고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공양주 스님을 같은 방식으로 시험하게 한 뒤 손을 보니 밀가루가 묻어 있지 않아 계파스님은 공양주스님에게 장육전 건립의 화주승을 맡겼습니다. 공양주스님은 큰 시주자를 찾기 위해 화엄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문수보살이 지난밤 공양주 스님의 꿈에 나타나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권하라”하며 사라진 것을 기억하며 걸어가는데 반대편에서 스님을 향해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스님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공양주스님도 잘 알고 있는 남루한 행색의 노파로 절간의 일을 간혹 도와주며 공양주스님에게 누렁지 등을 얻어가는 거지 보살이었습니다.

 

 

망설임 끝에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 노파를 보고 시주를 하여 장육전을 지어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노파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음을 한탄하며 "이몸이 죽어서 왕궁에 태어나면 그 때 큰 불사를 일으키겠다"는 말을 남기며 연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화주승이 한양으로 올라가 창덕궁 앞을 지나는데 공주가 화주승을 잡고는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주는 태어나면서 한손은 주먹을 쥔 채 펴지지 않았는데 화주승이 그 손을 만지니 공주의 손이 펴지면서 손바닥에 장육전 석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숙종은 그 당시의 이야기를 소상히 듣고 노파가 공주로 환생하였다며 장육전을 중수할 수 있도록 크게 희사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숙종임금에게 불교사상을 일깨워 주었다는 뜻으로 각황전이 되었고 편액은 1703년에 형조참판 이진휴가 썼다 합니다.

 

 

☞(전남여행/구례여행)화엄사 각황전과 원통전전사사자탑. 사사자 감로탑으로 불리는 독특한 모습의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 만나고 왔습니다. 

 

화엄사 각황전 앞에는 석등과 또한 원통전과의 사이에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사자 감로탑으로도 불리며 화엄사 원통전 앞에 자리 하고 있습니다. 제작년도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독특한 석탑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생긴 사사자석탑을 함안군 함안면소재지 함성중학교 교정에서 보았습니다. 주리사지에서 옮겨 온 것으로 주리사지사사자석탑으로 불렸는데 파석이 되어 온전하게 남은 것은 사자상 뿐이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5층 석탑으로 추정을 하였는데 이곳 화엄사에서 통일신라 9세기의 사자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네 마리의 사자가 길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인데 절에서는 노주로 본다합니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지만 불사리를 모셨거나 공양대로 사용된 것이 아닌지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을 보면 탑을 받치기 위해 2단의 기단을 놓았습니다. 밑단은 무늬가 없는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모습이며 윗단은 이 탑의 특징인 각 모서리에 사자상을 안치하였습니다.

 

 

각각의 사자상은 연꽃 받침돌에 앉았으며 또한 연꽃이 세겨진 돌을 머리에 이고 있습니다. 그 위에 복련이 조각된 사각의 판석에 올려진 탑신은 직육면체의 몸돌로서 각 면에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렀습니다. 테두리 안에는 신장상을 조각하였고 그 위에 다시 앙련이 조각된 한 장의 판돌을 올렸는데 윗면에 반구형 돌이 솟아 있습니다.

 

 

사사자 감로탑의 네 마리 사자의 표정은 인간의 희노애락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번뇌를 뜻한다하겠습니다. 불가에서는 사자를 곧 부처님의 말씀으로 여깁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사자후 또는 감로법이라하며 이는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은 사부대중들이 부처님의 지혜를 얻어 죽으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연화장의 세계로 인도하는 탑이라 보고 있습니다. 보물 제300호로 지정.

(참고: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화엄사 홈페이지)

 

 


☞(전남여행/구례여행)화엄사 각황전과 화엄사원통전전사사자탑 교통편


부산에서는 화엄사를 찾아가기가 너무 편하다.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화엄사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첫차 오전 7시부터 평균 1시간 간격으로 있다. 3시간30분 안팎 소요. 화엄사 구경을 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올 때 내렸던 화엄사 입구 버스정류소에서 타면 된다. 오후 1시10분, 3시10분, 4시10분, 5시10분, 6시10분(막차)에 구례 하동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땐 남해고속도로로 가다가 순천분기점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탄다. 황전IC에서 내려 구례구역과 구례군청 앞을 지나면 구례터미널을 거쳐 화엄사로 가면 된다. 내비게이션 화엄사 입력.


 

 

2014/11/26 - (전남여행/구례화엄사여행)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부처님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줄 광명등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2014/11/25 - (경남여행/하동여행/구례여행)평사리~화개장터 섬진강 둘레길. 박경리의 토지길과 섬진강 100리 길을 따라 걷는 둘레길,

 

2014/11/17 - (전남맛집/구례맛집)구례 산수유맛집 영실봉식당. 제주산 갈치로 만든 갈치탕 얼큰 한 국물이 끝내줘요. 구례 영실봉 식당.

 

2014/10/16 - (전남구례여행)구례공용버스터미널 버스 시간표 올려요. 노고단(성삼재)버스 시간표

 

2014/10/30 - (전남맛집/구례맛집)화엄사 맛집 지리각식당. 지리산이라 더욱 맛있는 산채비빔밥 맛집 지리각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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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축제)2014 제6회 부산크리스마스 트리 문화 축제 광복동에서 열려요.


올해에도 어김없이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 축제가 열리네요. 벌써 6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큰 사고로 얼룩진 한해 였습니다. 우리 모두 밝은 빛과 기운으로 아픈 상처를 치유하며 충만한 2014년 성탄의 기쁨을 부산크리스마스트리축제와 함께 누려보세요.

 

2014 제6회 부산크리스마스 트리 문화 축제 행사 일정◆★

제목:2014 제6회 부산크리스마스 트리 문화 축제

기간:2014년 11월29일(토)~2015년 1월4일(일). 37일간 트리축제 여행으로 성탄의 기쁨을...

개막식:2014년 11월29일(토) 오후5시30분

폐막식:2015년 1월4일(일) 오후9시

축제장소:●남포역인 광복로 입구에서 시티스폿인 메인트리구간 약 440m

●시티스폿 메인트리~대청동 근대역사관 약 390m.

●시티스폿 메인트리~국제시장 사거리 약 330m



(부산크리스마스 트리 문화 축제홈페이지 캡쳐)

2014 제6회 부산크리스마스 트리 문화 축제 행사장 약도(다음지도 캡쳐)



◆2014년 제6회 부산크리스마스 트리 문화 축제 올해 사진 일부 구경하기◆








◆요기가 시티스폿인 메인트리로 아직 점등이 안된 상태ㅎㅎ






◆2013년 제5회 부산 크리스마스 트리 문화 축제 사진으로 만나기


















2013/11/28 - (부산여행/중구여행/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더욱 화려해진 제5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개막식 전에 미리 댕겨왔습니다.


2012/12/01 - (부산크리스마스 트리 문화축제)화려한 트리 불빛에 깜짝 놀래, 미리가본 성탄절 축제 제4회부산크리스마스트리축제


2011/12/02 - 빛 축제 광복로에서 열리는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의 그 화려함에 놀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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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구례화엄사여행)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부처님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줄 광명등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구례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여행지가 화엄사입니다. 많은 국보와 보물등 문화재를 품고 있어 문화재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화엄사를 빼 놓고 둘레길 여행을 할 수 없어 짧은 시간을 내어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범위가 워낙 넓어서 한 번에 다 볼 수 없다면 보지 못한 것은 다음기회에 만나기로 하면서 구경을 하였습니다. 화엄사에서는 각황전과 각황전 앞 석등, 동·서탑, 대웅전, 사사자석탑등 반드시 보고 올 것을 체크하고 올라갔습니다.


 

그럼 먼저 각황전 앞에 웅장한 모습으로 턱 버티고 있는 석등을 포스팅 하겠습니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석등 중에서 최고의 석등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 합니다. 그 높이만도 636㎝로 돌을 깎아 만든 석등으로는 믿기지 않을 큰 규모로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들게 합니다. 


 

각황전 앞 석등에 대해 문화재청 자료를 참고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석등은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여 설치를 합니다. 광명등이라고도 하여 등불을 밝히는 공양이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중에서 최고의 의미를 가진다합니다.


 

석등은 모두 다섯 단계로 나누어지는데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 화사석과 옥개석으로 위에 상륜부인 보주를 올립니다. 그 중 화사석은 등불을 밝히는 곳을 말합니다. 시대에 따라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 형태로 나누어집니다.


 

화엄사 앞 석등의 화사석은 팔각형으로 4개의 창문이 동서남북으로 뚫여 불빛이 사방으로 퍼지도록 한 백제의 화사석 형태로 통일신라시대에도 그 영향을 끼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대석을 보면 8각의 바닥돌 위에 큼지막하게 복련과 귀꽃을 조각해 놓았고 그 위로는 중대석인 장고 모양의 간주석을 세웠습니다. 배가 불룩한 특이한 기둥형태의 간주석은 통일신라 후기에 많이 사용되었던 양식입니다. 그 위에 앙련을 조각한 상대석은 8각의 화사석을 받치도록 하였고 화사석 위에 올린 8각의 옥개석 지붕돌은 귀퉁이마다 큼지막한 귀꽃을 달았습니다. 또한 상륜부는 보륜과 보개, 보주가 완벽하게 남아 있는 석등으로 정상부를 크게 장식 한 것이 특징이며 전체적 완성미가 아주 뛰어난 작품입니다.


 

석등의 연대는 통일신라 헌안왕 4년인 860년에서 경문왕 13년인 873년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을 하며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걸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국보 제12호

 

☞(전남여행/구례화엄사여행)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부처님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 줄 광명등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대중 교통편은....


부산에서는 화엄사를 찾아가기가 너무 편하다.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화엄사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첫차 오전 7시부터 평균 1시간 간격으로 있다. 3시간30분 안팎 소요. 화엄사 구경을 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올 때 내렸던 화엄사 입구 버스정류소에서 타면 된다. 오후 1시10분, 3시10분, 4시10분, 5시10분, 6시10분(막차)에 구례 하동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땐 남해고속도로로 가다가 순천분기점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탄다. 황전IC에서 내려 구례구역과 구례군청 앞을 지나면 구례터미널을 거쳐 화엄사로 가면 된다. 내비게이션 화엄사 입력.



2014/11/25 - (경남여행/하동여행/구례여행)평사리~화개장터 섬진강 둘레길. 박경리의 토지길과 섬진강 100리 길을 따라 걷는 둘레길,


2014/11/17 - (전남맛집/구례맛집)구례 산수유맛집 영실봉식당. 제주산 갈치로 만든 갈치탕 얼큰 한 국물이 끝내줘요. 구례 영실봉 식당.


2014/10/30 - (전남맛집/구례맛집)화엄사 맛집 지리각식당. 지리산이라 더욱 맛있는 산채비빔밥 맛집 지리각식당.


2014/10/16 - (전남구례여행)구례공용버스터미널 버스 시간표 올려요. 노고단(성삼재)버스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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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 경주최부자 최진립 충의당. 정무공 최진립장군 고택 충의당 찾아가기


경주에는 볼거리가 너무 많은 곳입니다. 신라 천년의 역사가 그대로 숨 쉬고 있는 곳 경주, 남산과 경주를 아우르는 문화재를 모두 만나기 위해서는 몇 달을 둘러보아도 부족합니다. 그 만큼 많은 문화재를 품고 있는 곳이 천년 고도 경주입니다.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재는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 분황사등 경주의 유명관광지라 모두다 한번 씩은 찾아 가본 곳입니다.  또한 초중고 수학여행 단골 코스 이기도합니다.

 

 

. 이외 관광지를 빼면 별로 보고 온 기억이 없습니다. 필자의 고향은 이곳 경주 외곽 남산 밑입니다. 저 또한 너무 알려진 곳만 찾아다녀 경주를 속속들이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친지방문이나 고향을 찾아갈 때 짬을 내어 잘 찾지 않는 경주의 문화재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대구 영남대학교를 설립한 경주최부자의 최진립장군 고택 충의당을 찾았습니다. 경주 근동에서 경주 최부자 하면 모르는 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막상 충의당을 찾아가면 너무 단촐한 풍경이라 처음에는 고택을 찾지 못하고 차로 이리저리 돌았을 정도입니다. 여느 알려진 고택을 생각하며 눈에 확 들어 날 것으로 생각을 하였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 세도가의 양반가옥 처럼 축대를 높혀 건물의 위압감을 주지도 않았고 또한 화려하지 않고 정갈하며 반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저 평범한 가옥 모습이었습니다. 그만큼 수수한 모습으로 과연 이곳이 경주최부자 집으로 연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문 앞에는 최진립 장군 동상과 함께 작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사당이 있습니다. 바로 곁이 사랑채의 앞 마당이며 차를 마시는 공간인 경모각을 지나면 단아한 모습의 충의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충의당으로 들어서는 대문입니다. 기와는 새로 올렸는지 개끗하며 고풍스러움과 옛 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모습입니다. 


 

충의당을 보면 경주최부자의 정신을 읽을 수 있습니다. 타인능해로 유명한 구례의 운조루와 함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곳이 경주 최부자이며 정무공 최진립장군의 정신이 깃들은 이곳 충의당이 그 시작이라 하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내부를 둘러 봅니다.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위패를 모신 사당 건물로 충열사란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경주 최부자는 정무공 최진립장군에서 시작 됩니다.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그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경주읍성 전투에 참가를 하였고 1597년 다시 왜군의 재침으로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권율도원수와 함께 서생포 전투와 도산 전투에 참가하여 선봉에서며  전공을 세워 1600년에 여도만호로 임명되면서 무관의 길로 들어 섭니다. 선무원종 이등공신에 오르고 경원도호부사, 공조참판을 지내다 청나라의 공격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몸을 피해 있던 인조를 구하기 위해 69세의 노구를 이끌고 용인에서 끝까지 항전하다 그를 따르던 두 노비 옥동 기별과 함께 전사합니다. 사후에 인조는 자헌대부 병조판서와 정무라는 시호를 하사하고 청백리에 올렸습니다.


 

두 건물인 경묘각과 충의당. 


 먼저 경묘각으로 차를 마시는 곳 입니다. 안쪽에서는 유리를 넣어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충의당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9호이며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492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최진립장군이 생활한 곳으로 전해지는 충의당은 흠흠당으로 불렸습니다. 1760년 건물을 중수하면서 후손에 의해 충의당으로 바뀌었고 집의 구조를 보면 조선시대 남부지방 양반집 형태인 ‘ㅁ'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앞쪽 취의당을 중심으로 흠흠당과 고방채 그 뒤로 안채가 있으며 충의당은 앞면이 4칸, 측면 2칸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온돌과 마루를 각각 2칸씩 넣었고 흠흠당인 충의당은 사랑채로 사용하였습니다.


 

 

최진립장군의 모습인가요. 큰 칼을 앞에 세우고 두손을 모은 무인상이 사랑채 앞에 떡 버티고 있습니다.


 

 

 충의당 뒤로 돌아가면 만나는 안채의 모습입니다. 주인이 생활을 하고 있어 들어가기에 조심스러운 공간입니다. 

 방을 2칸 넣은 충의당 모습입니다. 앞쪽으로 툇마루가 달려 이곳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충의당과 마주보고 최진립장군의 6대조인 사성공 최예의 사당 표지석이 세워져 있으며 마당에 잔디가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아녀자들이 출입하였을 것 같은 쪽문입니다. 이곳으로 나가면 밭뙈기와  마을길로 나가게 됩니다.  


 

 

 최진립장군 유물관입니다. 필자가 방문하였을때는 이곳에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전체적인 충의당의 모습입니다. 일반 살림집 같은 아늑함이 느껴지는 최진립 장군 고택 충의당.  

 

 

 흠흠당은 염근서흠 경절예흠에서 나왔습니다. "청렴하여 삼감을 흠모하고 굴하지 않는 곧은 절개를 흠모하다"는 뜻으로 인조임금이 진필를 하사하였는데 충의당을 들어가는 입구에 바위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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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당과 함께 전각인 충노각이 있습니다. 충노 옥동과 기별의 불망비로 이는 최진립장군의 후손인 가암 최채량 선생이 비문을 짓고 세웠습니다. 여기에는 일화가 전래져 오는데 장군은 두 노비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지만 두 종은 돌아갈 것을 마다하고 “주인이 목숨을 버려 충신이 되는데 어찌 우리 종들이 충노가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하며 끝까지 남아 최진립과 함께 죽었다합니다. 이 후 경주최씨 종가에서는 이들의 갸륵한 마음을 기려 장군의 제사를 받들고 난 뒤 두 충노의 제사를 지금까지 올리고 있다합니다. 


 보호수인 회화나무입니다. 내남면 이조리 최진립 장군 고택과 함께 너무 잘  어울리는 고목입니다.  

 

 


 

잠와 고택은 안채를 말합니다.  일(一)자형 건물로 왼쪽에는 부엌을 넣고 안방과 건너방 사이에 대청을 넣었습니다. 

 

 

 

월래는 초가 지붕이었는데 기와 지붕으로 바뀐 '우산초려'입니다. 안채에서 보면 오른쪽에 위치를 하며 충의당에 비해 소박하며 단독으로 숙박을 할 수 있게 욕실과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안마당에서 바라본 충의당 모습입니다. 사랑채인 충의당은 조선시대 남여의 생활 공간을 완전히 구별하여 충의당에 앉아서는 안채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는 구조입니다. 

 

 

 잠와고택과 현재의 흠흠당

 

 현재의 충의당은 한국관광공사 인증 한옥민박 체험 할 수 있습니다. 400여년 전 경주 고택에서 별헤는 밤을 즐겨보세요. 또한 500m 거리에 최진립장군을 배향하는 용산서원과 신도비각이 있습니다 




2014/09/04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용산서원. 정무공 최진립장군 용산서원, 한옥 고택 숙박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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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동구범일동여행) 범일동 매축지마을.  삶의 팍팍함이 묻어나는 일제 강점기 범일5동 매축지마을을 만나보세요.

 

 부산은 지역이 좁다보니 매립하여 만든 마을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흔하게 매립을 하여 땅을 넓히는 대역사를 여러 곳 하였지만 일제강점기때에 이루어진 곳이 부산에 있습니다. 부산 동구 범일5동의 매립지는 매축지마을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마 매축지에 마을이 들어 선 것은 이곳이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범일5동 매축지마을은 일제강점기때 조성이 되었습니다. 1902년부터 1926년까지 부산진 일대 앞 바다 14만 4천평을 3차에 걸쳐 매축을 하였다하니 그 당시로서는 규모가 어마어마한 대 역사였습니다.

 

 

지금의 부산진 역등이 있는 수정동과 범일동 초량동의 부산역일대 중앙대로가 그 당시 매축지로 이루어졌습니다. 매축지마을은 부산의 근대역사와 함께 합니다.

 

 

일본에서 들어오는 말과 마부가 이곳에서 하선을 하여 쉬어가는 장소로 이용이 되었고 광복이 되면서 일인은 돌아가고 강제로 끌려갔던 우리 귀환동포들이 돌아오면서 매축지마을로 몰려들었습니다. 다시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피난민들이 이곳 매축지마을로 찾아 들다보니 그야말로 사람으로 들끓을 정도였습니다.

 

 

귀환동포와 피난민들의 생활은 비참하였고 이들은 하루 입에 풀칠을 위하여 부두 노동자로 나서야하였습니다. 그런 팍팍함과 고단함이 묻어나는 곳이 부산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범일5동 매축지마을입니다.

 

 

지금은 재개발지역으로 묶여 옛것과 새것이 상반되어 매축지 마을은 더욱 낮은 자세가 된 듯 엎드려 있습니다. 부산 매축지마을은 도시철도 1호선 좌천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됩니다. 필자는 남포동에서 5-1번 버스를 이용하여 부두 길을 달려 대양산업 정류장에서 하차를 하였습니다. 왼쪽 'SK' 아파트 앞이 현재 남아 있는 매축지마을입니다.

 

 

집은 옛날 군대 막사를 생각하면 됩니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지붕이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집집마다 화장실은 언감생심이며 지금도 공동화장실을 이용합니다. 요즘 찾아보기도 힘든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이곳에서는 영화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가 그랬고 무서울 정도로 소름 돋았던 원빈의 ‘아저씨’도 이곳 매축지마을을 배경으로 촬영되었습니다. 요즘은 관광지를 다니다 보면 60~70년대 생활용품을 전시한 곳을 여럿 보게 됩니다. 필자도 50대중반으로 넘어가 어릴 때 동심을 쫒아 찾아 가곤합니다.

 

 

그러나 범일5동 매축지마을은 일부러 찾아가지 않고 매축지 집만 봐도 우리 부모님들의 고생담을 알 수 있는 곳입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직 후의 흔적들을 어렴풋이 느끼게 하는 곳으로 영화를 찍기 위한 세트장이 아닌 우리 삶을 끈끈한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매축지마을.

 

 

하늘을 가릴 정도로 전선이 얼키고 설켜 있습니다. 꼭 이곳에서 생활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매축지 마을에서 살아온 삶의 실타레가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다시금 매축지 마을을 찾고 싶습니다. 재개발과 함께 영원히 살아질지 모르는 매축지마을을 사진에 담아 두어야 겠습니다. 또한 매축지마을의 벽화를 만나보지 못했는데 그때는 좌천역에서 출발을 하고 벽화도 보면서 걸어보고 싶습니다.

 

◆범일5동 매축지마을 사진으로 만나보기◆

 

 

 

 

 

 

 

 

 

 

아저씨가 걸어갑니다. ㅎㅎ현빈의 아저씨는 아니겠지요.

 

 

 

 

 

 

 

 

 

 

 

 

 

 

 

 

 

 

 

 

 

 

 

 

 

 

 

 

2009/03/09 - 왜군이 임진왜란때 침략의 교두보였던 부산진지성 자성대의 모습입니다.

 

2014/09/06 - (부산여행/갈맷길)갈맷길 3-2코스. 이바구가 주렁주렁 달린 가을철 걷기 좋은 코스 갈맷길에서 힐링을 하다.

 

2014/11/02 - (부산여행/동구여행)초량동 옛 백제병원 내부 들여다 보기. "옛 건물을 사랑해주세요. 조용조용 살금살금" 옛 백제병원 건물 내부를 보고 경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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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0 - (부산여행/축제)부산 산복도로 개통 50주년 마을 축제가 열려요.

 

2011/10/02 - 동래여고 전신인 부산 최초 여자 교육기관 일신여학교의 서양식건물 모습,

 

2009/03/02 -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지며 방석집인 수정동의 정란각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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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사하구여행)낙동강하구 아미산 전망대. 부산여행에서빼놓을 수 없는 겨울 여행지 아미산 전망대에서 저녁노을 만나보세요.

 

낙동강하구언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오늘따라 날씨까지 너무 좋아 낙동강을 바라보기에는 그저그만입니다.  강원도 태백에서 출발하여 1300리를 쉼 없이 달려온 강물은 이곳에서 아쉬움도 미련도 없이 몸안의 찌거기를 토하듯 바다로 흘러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낙동강 하구를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인 부산 사하구 아미산 전망대는 일단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속의 묵은 때를 씻어 낼 수 있습니다. 가슴이 뻥 뚫린다 할까요?. 바다와 강과 만나는 부산에서만 느낄 수 있습니다.

 

 

낙동강하구는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겨울철에는 장관을 이룹니다. 낙동강에서 내려온 퇴적물이 이곳에 쌓여 넓은 갯벌과 모래 사구인 진우도, 대마등, 장자도, 맹금머리, 백합등, 신자도, 도요등의 무인도를 만들었습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지역이다 보니 많은 수생식물들이 서식하고 물고기와 조개 그리고 곤충들이 어느 지역보다 풍부하여 새들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 되었습니다. 여름철에는 강바람으로 시원하고 겨울철에는 따뜻하며 새들의 먹이까지 풍부한 낙동강 하구는 또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인 모래와 갈대까지 풍부하여 은신처 역할을 해줍니다.

 

 

그런 천혜의 조건을 새들도 아는지 시베리아등 겨울 철새들이 월동지로 선택을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아미산 전망대는 저녁 노을이 유명합니다. 불덩이가 멀리 서쪽으로 떨어지면서 낙동강 하구로 붉은 피를 토한다는데 ㅎㅎ 대낮이라 넘 아쉽습니다. 

 

 

그속을 유유히 나는 하늘의 왕자 솔개를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곳이며 역 ‘v'자를 그리며 을숙도로 잠을 자기위해 찾아오는 청둥오리의 장관도 만날 수 있습니다. 철새와 함께 저녁노을의 행운을 만날 수 있는 아미산 전망대는 을숙도와 함께 부산 철새여행의 일번지입니다.

 

 

을숙도는 1966년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이 되어 철새들의 천국이 된 곳입니다. 풍부한 먹이와 기후조건으로 매년 140~170여종에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찾아온다니 겨울 부산여행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아미산 전망대는 2011년 2월에 개관을 하였습니다. 대지는 1만254㎡에 건물은 1천309㎡의 3층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들어서는 입구에서 보면 비상하는 새의 모습을 닮았는지 건물자체로도 하나의 구경 꺼리입니다. 내부는 낙동강 하구언의 생성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구언의 모래섬과 을숙도, 몰운대, 가덕도, 다대동등 사하구의 관광지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잇습니다. 다양하게 꾸며 놓은 아미산 전망대의 관람료는 모두 무료입니다. 그리고 3층은 실내전망대와 카페로 꾸며져 있습니다.

 

 

망원경으로 가까이서 철새와 호흡을 하고 나면 카페에서 차한잔의 여유도 좋습니다. 필자는 대낮이고 저 혼자라 속의 천불도 달랠겸 냉커피를 주문하였습니다. 아미산 전망대는 겨울바람이 매서운 곳입니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낙동강의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운치가 최고 짱입니다. 야외 옥상 전망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스키슬로프 처럼 길게 덱으로 꾸며져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낙동강하구언과 삼각주를 만나보세요

◆낙동강 하구 아미산 전망대 사진으로 만나기

 

 

 

 

 

 

 

 

 

 

 

 

 

 

 

 

 

 

 

 

 

 

 

 

 

 

 

 

 

 

 

 

 

 

 

 

 

 

 

 

 

 

 

 

 

 

 

 

 

 

 

 

 

 

 

 

 

 

 

 

 

 

☞(부산여행/사하구여행)낙동강하구 아미산 전망대 교통편

 

아미산 전망대를 가기위해서는 대포해수욕장 행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부산역에서는 좌석버스인 1000번 버스를 타면 됩니다. 도시철도 1호선을 이용하면 괴정역, 대티역과 신평역에서 환승하면 됩니다. 괴정역은 96번, 대티역은 괴정초등학교정류장까지 가서 마을버스인사하 15번', 신평역에서 내릴 경우 338번, 2번, 11번 버스로 환승하면 됩니다.할 수 있다. 부산서부버스터미널 앞에서는 338번 시내버스를 타면 직통으로 다대포해수욕장까지 갑니다. 아미산 전망대까지 가는 마을 버스도 있는데 ㅎㅎ 저는 걸어가서 잘 모르겠습니다

 

2014/01/08 - (부산여행/낙동강 뱃길)낙동강뱃길. 을숙도에서 물금까지 낙동강에 배를 타고 새로운 부산을 보다.

 

2013/04/30 - (부산여행/강서구여행/가덕도여행)부산에서 가장 큰 섬은?. 가덕도 연대봉 산행.

 

2011/12/18 - 서낙동강 겨울 철새 낙원길 직접 걸어보니...발소리에 놀란 기러기 때 날아올라.

 

2008/11/10 - 철새 낙원 을숙도 에코센터를 아세요?

 

2008/11/08 - 철새들이 4200억짜리 명지대교 공사를 멈추게 하였다

 

2008/11/07 - 강과 바다를 볼 수 있는 낙동강하구 철새 전망대를 아시나요.

 

2014/11/18 - (부산여행/사하구 다대포몰운대여행)몰운대 다대포 둘레길. 갈맷길과 함께한 몰운대 다대포 둘레길 함 걸어보세요.

 

2014/09/29 - (부산여행/사하여행)다대포 몰운대. 꽃속에서 화장하는 여인의 모습에 비유하는 몰운대를 만나다.

 

2014/09/28 - (부산여행/사하여행)몰운대 다대포객사. 부산의 3대인 몰운대 다대포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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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서구여행)부산서구종단트레킹숲길. 아름다운 부산 서구 둘레길 걷기, 부산서구종단트레킹숲길을 걸어보세요.

 

부산은 동서를 가르는 큰 산맥이 있다. 흔히 부산의 꾼들은 금정산맥으로 부르는데 금정산과 구덕산을 잇는 낙동정맥 길로 다대포 몰운대까지 이어진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산은 고개를 만들기 마련이다. 특히 부산의 중심지인 중구와 서구를 두르는 큰 산군이 구덕산이다보니 이들 중심에서 길게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은 천마산과 암남공원을 일으켜 세웠다. 산과 산 사이에 말안장 같은 구덕령을 잠재우고 대티고개, 까치고개, 반달고개, 감천고개, 암남고개등 수많은 고개가 동서로 연결되어 소통의 역할을 하였다. 부산 서구청에서 최근에 고개와 고개를 연결한 둘레길을 조성하였다기에 만사를 제쳐두고 찾아갔다.

 

 

둘레길 출발지인 구덕령은 해안가인 부산포에서 내륙인 구포 밀양 양산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고갯길이며 지금길이다. 그러다 보니 방물장수와 봇짐장수들이 수산물과 소금 등짐을 메고 빨리 가기위해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 한 짐 가득지고 해발 226m 의 구덕령 정상에 오르면 몸은 자연적으로 파김치가 되고 등줄기로 타고내리는 땀을 식힐 요령으로 주막꺼리를 찾아 굿거리장단에 흥을 돋우며 마른 논바닥 갈라지듯 타들어가는 목구멍을 막걸리로 축였다. 그런 옛스런 구덕령의 주막은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

 

 

그런 애환이 점철된 구덕령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아름다운 꽃마을로 불린다. 6.25 한국동란으로 많은 피난민들이 이곳까지 올라와 정착을 하였고 자연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꽃을 재배하였고 카네이션, 국화등을 학교 앞에 직접 내다팔면서 꽃마을로 불려졌다. 또한 1984년 구덕령 아래로 구덕 터널이 뚫리면서 넘어 다니든 고개의 기능은 완전 사라졌다. 이에 부산 서구에서는 구덕령에서 시작하는 아름다운 둘레길인 ‘서구 종단트레킹 숲길’을 조성하였다. 부산의 관문이었던 중구와 서구 영도구등 해안가를 조망할 수 있는 사색의 길이라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둘레길로 꼭 걸어 볼 것을 권한다. 둘레길 중간에 만나는 감천문화마을은 한국의 산토리니, 마추피추로 불리며 부산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여행지라 더욱 의미가 깊은 곳이다.

 

 

서구종단트레킹숲길은 꽃마을에서 시작을 하여 구덕산 허리를 돌아 대티고개~까치고개~반달고개~감천문화마을~천마산~정운산~장군산~암남공원에서 송도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총연장 15.3km이다. 필자는 암남공원에서 송도해수욕장을 잇는 해안길을 수시로 걷다보니 이번 둘레길 산행에서 빼고 모지포까지 답사를 하였다.

 

 

둘레길 경로를 보면 꽃마을 서구종단트레킹 숲길 입구~구덕문화공원~서구 민방위교육관 갈림길~수로암 갈림길~서구9번 초소~대티 고개~대티 배수지~까치고개~당산 팽나무~반달고개~감천문화마을~아미고개~임도 전망 덱~천마산조각공원~해광사 입구~천마럭키아파트~알뜰주유소~송도요양병원 앞 갈림길~서구 예비군 교장 입구~모지포 마을~모지포 버스정류장 순으로 거리는 약 12km 에 산행시간은 4시간 안팎. 그러나 감천문화마을과 아미동 비석마을 등을 돌아 볼 계획을 세운다면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서구종단트레킹 숲길 입구를 가기위해서는 먼저 서대신동 꽃마을로 가야한다. 꽃마을로 가기위해서는 도시철도(지하철)1호선 동대신동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오면 서대시장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서구1번 마을버스를 탄 뒤 구덕꽃마을 정류소에서 내리면 도로를 건너고 바로 둘레길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과 안내도가 있다.

 

 

정자가 있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도로에 닿고 왼쪽으로 가면 계단이 구덕문화공원 입구다. 계단을 오른 뒤 왼쪽 주차장을 가로질러 화가 신창호 선생 추모비를 지나면 이정표가 있다. 직진형 오른쪽 길로 '대티배수지 방향'을 보고가면 된다.

 

 

 

 

아름다운 편백숲 구간으로 구덕산의 허리를 돌아가는 길이다. 숲이 워낙 짙어 한여름에도 더위를 느끼지 못 할 정도로 청량감과 상쾌한 기분을 들게 하는 곳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편백나무가 빼곡한 숲은 가히 부산에서 대신공원과 함께 알아주는 편백나무 군락지로 편백 명품 숲길이라 이름을 붙혀 본다.

 

 

 

 

 

편백나무를 지나면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왼쪽 내리막을 탄다. 계곡을 끼고 내려가면 나무로 만든 다리 직전 갈림길과 만난다. 왼쪽 길은 신창호 추모비의 대티배수지 이정표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타면 이곳에서 만난다. 오른쪽의 나무다리를 건너면 아름다운 산책로가 편평하게 이어져 편안한 마음으로 걸을 수 있다.

 

 

 

 

 

 

 

5분후 만나는 이정표 갈림길에서 대티배수지 방향은 오른쪽이다. 살짝 오르막을 타야한다. 15분 이면 '서구09번' 이정표를 지나고 수도암입구 갈림길에서도 계속 직진한다. 구덕산 산허리를 도는 둘레길로 한참을 치받아 오른다든지 그 반대로 내려가면 잘못 든 길이라 돌아서야 한다. 다시 10여분이면 '서구⑨' 산불감시초소'를 지나게 되고 체육공원까지 통과하면 대티고개가 내려다보이고 거의 다 왔다 생각될 때 쯤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다.

 

 

 

 

 

 

왼쪽 대티고개 방향 이정표를 보고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길바닥에 왼쪽으로 서구 종단 트레킹 숲길 방향표시가 그려져 있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이내 대티고개다. 일단 도로를 건너 왼쪽으로 돌면 대티배수지 입구가 보이고 이정표를 보면서 덱 계단을 올라서면 자연적으로 숲길과 연결된다.

 

 

 

 

 

 

대티2배수지를 내려서면 까치고개다. 도로 건너 아미까치공영주차장 오른쪽 골목으로 서구종단트레킹숲길이자 낙동정맥길이 이어진다. 바닥에 방향을 알리는 화살 표시를 참고하자. 2분이면 ‘까치고개로128번길 53번지' 집앞 갈림길로 이곳이 진짜 까치고개다. 몰운대로 이어지는 길은 능선길인 직진이지만 둘레길은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왼쪽 방향. 곧 만나는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아미동으로 내려서고 오른쪽에 이정표를 보고 산허리로 난 길을 돌아가면 감천문화마을 방향이다.

 

 

 

 

 

 

아미동을 지켜주는 수호목인 수령 100년 된 팽나무 당산 앞을 지나면 감천문화마을로 이어진다. 일명 반달고개로 불리는데 이 고개는 6.25 한국전쟁과 함께 처음 감천문화마을에 터 잡은 태극도 신봉자들이 60~70년대 학장등 공단으로 출퇴근을 위해 오르내린 길이라며 마을주민이 귀 뜸을 해주었다.

 

 

 

 

감천문화마을로 들어선다. 초창기보다 더욱 알려져 국내인을 벗어나 이제는 외국인까지 감천문화마을을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감천문화마을을 전체로 관망할 수 있는 하늘마루에 올라보자. 감천문화마을을 속속들이 볼려면 60분의 시간도 촉박하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쉽게 찾을 수 없고 하여 시간을 내고 둘러보자.

 

 

 

 

 

감내마을인 감천문화마을은 태극도마을로 불린다. 이는 6.25 한국동란과 함께 전국의 태극도를 신봉하는 분들이 피난을 와 마을공동체를 이루었는데 집터와 도로 등 요즘으로 치면 신도시계획에 준하는 설계를 하였고 그것이 지금 감천문화마을을 이루고 있다. 전기와 석유가 귀하다 보니 오랫동안 자연채광을 받기위해 아랫집이 윗집을 가리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가 되었다니 이를 하늘마루에서 보면 확인을 할 수 있다.

 

 

 

 

 

 

다시 문화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을 잡아가면 아미고개 또는 감천고개로 불리는 고갯마루 도로에 감정초등학교 주차장 입구가 있다. 감정초등학교를 왼쪽으로 돌아 오르면 도로 끝 부분에 차단봉이 설치 된 천마산임도와 연결된다. 지금부터는 천마산 허리를 감아 타는 임도 길을 따라간다. ‘천마산 10리길' 표지판을 무시하고 오른쪽 임도를 15분쯤 오르면 목재 덱인 천마산 전망대다.

 

 

 

 

 

 

 

서구종단트레킹숲길 최고의 전망대로 손색이 없다. 왼쪽으로 엄광산과 구봉산 그리고 대청공원 민주공원 용두산공원의 부산타워와 롯데백화점 자갈치시장 영도다리 부산대교 부산남북항 부산항대교 영도 남항대교까지 모두 설렵 할 수 있다. 이곳 천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부산 야경은 익히 소문이나 이를 찍기 위해 많은 사진작가들이 출사지로 선택하는 만큼 명실공히 천마산 최고의 전망대다.

 

 

 

 

 

 

 

 

10분이면 천마산조각공원이 나오고 임도길을 따라가도 되지만 오른쪽 해광사 방향 내리막을 탄다. 오솔길을따라 5분이면 해광사 입구인 임도 끝 갈림길에 닿는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천마럭키아파트 앞 도로와 만나고 오른쪽 암남타워빌 방향 도로를 따라가면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튼 뒤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교 정문을 지나면 알뜰주유소가 있는 큰 도로에 닿는다.

 

 

 

 

 

 

 

 

주유소 앞에서 금강송도타운아파트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쪽으로 틀어 인도를 걸어가면 서구 경계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에서 왼쪽으로 다시 꺾어 고가다리를 건넌다. 송도동일스위트아파트 앞을 지나면 송도요양병원 앞 갈림길에서 이정표를 보고 왼쪽 예비군훈련장 방향 진입로로 들어선다. 다시 만나는 갈림길에서도 직진하여 10여분 임도를 오르면 서구 예비군훈련장 주차장이다.

 

 

 

 

 

모지포마을로 가기위해서는 오른쪽 주차장을 돌아가면 숲길로 이어지고, 감천항과 수산창고가 오른쪽으로 눈에 들어온다. 10분이면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암남공원후문 방향으로 내려서면 곧 콘크리트 포장도로와 모지포 마을에 닿는다. 왼쪽 도로를 따라 마을을 빠져 나가면 모지포마을회관앞에 버스정류소가 있다.

 

 

 

 

부산도시철도 1호선 동대신역 6번 출구로 빠져나와 서대시장 버스 정류소에서 구덕꽃마을행 '서구1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 산행 후 모지포마을 버스정류소에서는 7번, 9번, 9-1번, 71번 시내버스를 타면 송도해수욕장을 거쳐 도시철도 남포동역으로 갈 수 있다.

 

 

 

부산서구종단트레킹숲길 고도표

부산서구종단트레킹숲길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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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6 - (부산여행/서구여행)아미동비석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만 아시나요. 일본인 공동묘지 위의 동네 비석문화마을과 최민식 갤러리도 만나보세요.

 

2012/09/09 - (부산의산)1구간:암남공원~천마산~대티고개. 눈을 씻고 봐도 이리 깨끗한 부산은 실로 오랜만...태풍 전야란 말이 실감

 

2012/09/02 - (부산사하맛집)한국의 마추피추에서 먹는 얼얼한 팥빙수 맛은-감천문화마을 우인(友人)

 

2013/01/19 - (부산여행/감천문화마을여행)한국전쟁으로 형성된 마을로 한국의 산토리, 마추피추 감천문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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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사하구 다대포몰운대여행)몰운대 다대포 둘레길. 갈맷길과 함께한 몰운대 다대포 둘레길 함 걸어보세요.

 

 부산은 해안선으로 이루어 지다 보니 바닷가를 따라 많은 전망대를 만들었다. 일찍히 이를 두고 선비들은 동래 3대, 5대니 또는 8대라 하면서 선경에 취해 많은 시를 남겼는데 그 중 빠지지 않는 곳이 부산 사하구의 몰운대다. 운해로 인해 보일 듯 말 듯 구름 속에 잠겨 있는 섬이라는 몰운대는 한반도의 등허리 타고 내려오는 낙동정맥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정맥 꾼들이 많이 찾고 있다.

 

 

지금은 몰운대로 불리지만 오래전에는 바다위에 떠있는 섬으로 몰운도라 불렸는데 언제부터 육지화가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문헌상을 종합해 보면 16세기 경으로 보고 있다. 낙동강의 퇴적물이 흘러와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사구는 몰운도를 육지로 만들어 버리고 지금은 마음껏 몰운대를 드나들 수 있다.

 

 

1763년 9월3일 조선통신사로 참여한 조엄이 일본으로 향하는 길에 몰운대에 들렀는데  신라이전에는 그저 조용하고 작은 섬인줄만 알았는데 이제보니 몰운대의 아름답기가 아리따운 여자가 화려한 꽃속에서 화장을 하는 것에 비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라며 그의 '해사일기'에서 칭송하였다. 그런 몰운대를 따라 다대포 둘레길을 한바퀴 걸어보았다.

 

 

 

 

 

 

다대포 둘레길은 몰운대~아미산~두성반도를 연결하는 코스로 경로를 보면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다대포 해수욕장 음악분수~ 몰운대 입구 표지석~화손대 갈림길~화손대 전망대~음수대 삼거리~몰운대 전망대~다대포 객사~다대포 음악분수~노을정~아미산 노을마루길 입구~아미산 전망대~몰운대 초교~홍티고개~아미산(응봉봉수대)~서림사~다대고개 육교~두송아파트 앞 삼거리~갈맷길 합류(두송반도 종점 삼거리)~야망대 삼거리~대선조선 삼거리~두송전망대~야망대 갈림길~다대2동 지질공원 안내도~다대동 체육공원~야망대 장어타운~다대어시장~다대 자유아파트~다대포 해수욕장 음악분수 순으로 둘레길 총거리는 약20km 에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6시간 안팎이 소요.

 

 

 

 

다대포 해수욕장 음악분수에서 시작을 하여 몰운대 입구의 표지석을 보면서 도로를 오르면 본격적인 다대포 둘레길이 시작된다. 곧이어 화손대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는다. 철조망을 끼고 내려가면 호젓한 해송 숲길이 이어진다. 현재는 몰운대 공원으로 지역 주민들의 휴게공간이다 보니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20여분이면 화장실과 운동시설이 있는 사거리에서 왼쪽 화손대 방향으로 짙은 숲길을 지나 봉우리에서 살짝 내려가면 바위가 비스듬히 누워 있는 절승이 화손대다. 아파트가 솟아 있는 다대항의 해안 풍경이 엄청나다. 바다와 맞닿아 있어 그런지 낚시꾼들도 많이 보이며 솔섬과 쥐섬등 크고 작은 섬이 물에 떠 있다.

 

 

 

 

바다건너 둘레길 막바지에 만날 두송반도가 길게 내려와 있다. 다시 화장실이 있는 사거리로 되돌아간다. 관리사무소와 몰운대 전망대 방향인 직진형 왼쪽 방향으로 산 허리를 에돌아 이어진 산책길을 10여분 가면 음수대 삼거리다. 몰운대 전망대 방향인 왼쪽으로 나가면 끊어질 듯 능선이 이어져 몰운대 전망대를 만들었다.

 

 

 

왼쪽은 모래사장이며 오른쪽은 몰운대에서 유일한 자갈마당이 펼쳐진다. 직진하면 옛 해안초소 건물이 있고 이곳을 좌우 돌면 침운대로도 불리는 몰운대 전망대다. 구름이 쥐섬을 타고 넘는 광경을 보니 왜 몰운대라 하는지 알 수 있다. 부산에는 많은 해안 전망대가 있지만 몰운대만의 독특한 모습에다 천혜의 비경까지 같이 만나게 된다.

 

 

 

 

다시 음수대 갈림길 까지 돌아나가야 한다. 직진하면 관리사무소가 있고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3호인 다대포객사가 정면에 있다. 객사 앞 갈림길에서 왼쪽은 부산시 기념물 제20호인 ‘정의공순의비’ 방향. 민간인 출입금지지역이라 출입을 할 수 없지만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우부장으로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를 한 녹도만호 정운장군의 순절을 기려세운 비석이다.

 

 

 

 

 

 

처음 출발한 몰운대 입구까지 나가야 한다. 도로를 따라 음악분수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다대포해수욕장을 두른 도로를 따라간다. 지금 지하철 1호선 다대포 구간 연결 공사가 한창 진행되어 어수선하다. 다대포 앞바다를 관망하는 노을정 정자를 지나면 아미산 전망대 방향 삼거리 도로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절개지에 노을마루길 1번 입구다. 지그제그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뒤돌아 보면 낙동강 하구언의 크고 작은 섬들과 멀리 가덕도 연대봉의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곳을 지나면 몰운대 성당 앞에 아미산 전망대가 있다. 겨울철새와 넘어가는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으로 전국의 출사지로 알려져 많은 사징작가들이 이곳을 찾을 정도다.

 

 

 

 

도로를 따라 롯데캐슬 아파트 단지 속으로 간다. 몰운대초등학교를 지나 만나는 부산은행앞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106동과 219동 앞 삼거리에서 왼쪽 횡단보도를 건너 두 아파트 사이 도로로 끝까지 간다. 101동을 지나면 상가건물 왼쪽에 아미산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다시 콘크리길과 만난 뒤 왼쪽으로 꺾으면 고개마루에 홍티고개 이정표가 있다. 직진하는 길은 낙동강 하구언 방향 갈맷길. 이곳에서 다대포 둘레길 원점회귀 코스는 오른쪽 응봉봉수대 방향 산길을 탄다. 완만한 능선 오르막이 15분가량 이어지면 아미산 정상에 있는 응봉봉수대 직전 갈림길과 만난다.

 

 

 

 

왼쪽은 아미산 숲 체험 방향. 오른쪽으로 50m 뒤 갑자기 하늘이 열리며 넓은 공터 중앙에 첨성대 같은 모습인 응봉 봉수대가 있고 아미산 정상이다. 다대항과 두송반도 몰운대 구덕산 승학산 천마산 장산 영도 등 부산의 산들이 확인된다. 정상에서 낙동정맥길을 따라 30m쯤 간 뒤 곧바로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간다.

 

 

 

 

초반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다. 돌탑이 세워진 사거리 길에서 직진하고 두 번째 갈림길에서도 직진하면 179봉을 넘는다. 완만한 하산 길은 왼쪽으로 꺾어 서림사 입구에 닿는다. 신다대아파트 105동 뒤 육교를 이용하여 다대고개 도로를 건넌다. 육교를 지나 왼쪽으로 내려서면 도원병원 앞. 도원 병원 앞 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한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면 끝에 두송아파트 201동앞 삼거리에서 직진하고 아파트를 지나면 도로는 비포장 임도로 바뀐다. 감천항과 대선조선으로 이어지는 임도길이다. 오른쪽에 망치소리가 요란한 대선조선의 선박건조 모습을 보면서 간다. 15분이면 비포장길 삼거리. 갈맷길 합류 지점으로 왼쪽은 감천항에서 올라오는 길. 두송반도 전망대와 몰운대 방향은 오른쪽 비포장길로 간다.

 

 

 

 

 

 

5분 후 야망대 갈림길. 몰운대를 가기위해서는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가야하지만 두송반도 전망대를 보고 이곳까지 돌아와야 한다. 직진한 뒤 10분이면 대선조선 갈림길, 다시 직진한다. 5분이면 다시 갈림길과 만나는데 어느 방향이든 상관없이 모두 이곳에서 만난다. 필자는 오른쪽으로 돌기로 하였다.

 

 

 

 

두송반도 끝 부분에 갈맷길 도보인증대가 있고 헬기장을 지나면 체육시설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초소가 있는 두송반도 전망대다. 바다 건너 암남공원, 태종대의 주전자섬등 바다를 실컷 구경하고 야망대 갈림길 까지는 25분이 걸린다. 임도를 버리고 야망대 방향으로 내려간다.

 

 

 

 

 

에돌아가는 숲길이 한참 이어진다. 대선조선의 선박건조를 더욱 가까이서 볼 수 있고 10여분이면 목재계단을 내려간다. 지금 대선조선으로 진입하는 도로공사가 진행중인 삼거리에 국가지질공원 안내판이 있다. 왼쪽으로 도로를 건너 해변 체육공원을 끼고 도로를 끝까지 가면 야망대 장어 타운이 나온다.

 

 

 

왼쪽으로 도로를 건너 해변 체육공원을 끼고 도로를 끝까지 가면 야망대 장어 타운이 나온다. 장어타운 안으로 들어가서 건물을 오른쪽으로 돌아 뒤편으로 나가 고개를 넘으면 도로에 나서고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 다대포 수산시장을 지난다.

 

 

 

다대어시장을 끼고 돌아가면 어시장은 끝이 나고 수산물 냉동창고가 이어진다. 창고 끝에서 이정표는 오른쪽 방향. 다대자유아파트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인도를 따라가면 성창기업을 지난다.

 

 

다시 원모텔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바닷가로 나간다. 오른쪽으로 꺾어 해안도로를 끝까지 따라가면 고성횟집 옆으로 나가게 되고 만나는 도로가 출발지인 다대포해수욕장 음악분수 앞이다.

 

 

 

 

 

 

 

 

 

 

 

2014/09/29 - (부산여행/사하여행)다대포 몰운대. 꽃속에서 화장하는 여인의 모습에 비유하는 몰운대를 만나다.

 

2014/08/13 - (부산맛집/사하구맛집)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맛집 가마솥추어탕. 50년 전통의 가마솥 추어탕 한그릇에 무더위를 훅~~ 날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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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팔공산마애약사여래좌상. 약한자든 힘 없는 자든 모든 중생을 보살펴줄 것 같은 마애약사여래불


팔공산은 대구광역시와 군위, 경산등에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너른 품이며 시내에서 바라본 팔공산은 독수리 가 날개를 펼쳐든 산릉이 길게 이어져 대구사람들은 팔공산맥이라 부릅니다. 팔공산의 최고봉은 비로봉입니다. 정상을 호위한 위성봉은 좌청룡 우백호의 동봉과 서봉으로 이들 두 봉우리와 함께 삼두마차를 이루고 있습니다.

 



 

좌우로 뻗어 나간 능선과 봉우리에 보석처럼 빛을 내는 바위는 마치 기치창검을 두른 모습입니다. 그런 만큼 능선에는 옹골찬 기세로 기암괴석이 많아 사시사철 탐방객과 산꾼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넓은 품에서 수많은 계곡을 타고 내리는 명산명수의 팔공산은 많은 암자와 사찰이 곳곳에 포진하여 요즘 같은 가을철에는 더욱 즐거운 곳이 됩니다.


 

이제 자신의 몸을 불태우든 정열의 단풍도 한풀 꺾였고 대구 근교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많은 문화재를 이곳 팔공산에서는 수시로 만나고 볼 수 있어 그 재미가 솔솔 합니다. 팔공산 사찰 순례를 하다보면 대부분 사찰과 암자들이 등산로 입구나 7부 능선에 자리를 잡아 수월한 편이지만 관봉으로 불리는 갓바위와 비로봉 정상 아래에 있는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은 여간 큰마음을 먹지 않고는 만날 수 없는 부처님입니다.


 

갓바위 부처님은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 준다”는 소문으로 행렬의 줄이 꼬리를 물어 선본사에서 편하게 오를 수 있지만 비로봉 암벽에 새겨진 마애약사여래좌상은 어지간한 불심이 아니라면 엄두를 낼 수 없는 곳입니다. 팔공산 쪽 서봉을 찾는 다면 꼭 찾아보는 필자는 오랜만에 서봉~파계사 산행을 하면서 산행 경로를 벗어나 찾아 갔습니다. 가을의 정취도 불어오는 겨울 앞에는 맥을 추지 못한 듯 마애약사여래좌상에는 세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누구의 정성인지 일찍부터 부처님 좌우로는 긴 촛대에 불을 밝혀 두었습니다. 이곳의 부처님도 갓바위 부처님과 같은 약사여래불로 약사발을 든 모습이며 중생들의 질병과 아픔 ,고통, 재앙을 소멸 시켜주는 부처님 입니다. 먼저 합장을 하며 기도를 합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인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은 불상의 왼손에 둥근 약그릇을 무릎위에 올려둔 모습이며 통일신라때 불상으로 자연암벽에 돋을새김을 하였습니다. 전체적인 불상은 선이 뚜렷하며 이목구비 또한 조화와 균형을 잘 이룬 모습입니다. 


 

오똑한 콧날에다 힘있는 턱과 눈썹, 잘록한 허리는 한결 세련미을 나타내 줍니다. 어깨는 둥글고 탄력감이 있으며 편단우견에 오른쪽 어께를 드러내며 왼쪽 어께로는 흘러내리며 비쳐지는 얇은 옷의 옷 주름 간격이 유려하며 규칙적이고 가슴에서 옷깃이 한번 뒤집어지는 것은 8세기에 제작된 불상임을 보여 줍니다.


 

불상 뒤로는 이중의 광배를 표현하였는데 화려하게 조각된 무늬가 부처님의 몸에서 나는 빛을 형상화 하였습니다. 광배의 안쪽과 바깥쪽에는 당초무늬와 불꽃무늬를 새겼고 불상을 안치한 연꽃대좌는 복련과 2겹의 앙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좌 아래에 두 마리의 용이 좌우에서 떠받드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대좌 밑을 받치는 용의 모습은 처음 보았고 특이하게 여겨졌습니다.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산 1번지에 위치를 하며 해발 약 1000m의 높이에 있습니다.(참고:문화재 안내판)


 

 

 




2014/11/10 - (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2014/11/06 - (대구여행/팔공산 산행)팔공산 서봉~파계봉 산행. 알찬 팔공산 산행코스 서봉~파계봉 산행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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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여행)채미정. 구미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야은 길재를 추모 하는 정자.

 

예로부터 선비의 충절을 비유할 때 거론되는 인물이 백이와 숙제입니다. 중국 상나라 말기때 주나라가 반란을 일으켜 상나라를 토벌하자 백이와 숙제 형제는 상나라에 대한 충성을 버릴 수 없다며 고죽군의 영주로 받는 녹봉을 거부하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왕미자가 백이와 숙제 형제를 보고 “주나라에서 주는 녹을 받을 수 없다더니 그대들은 어찌 주나라에서 나는 고사리를 먹느냐”는 말을 듣고 그 날부터 고사리도 먹지 않고 굶어 죽었다는 고사입니다.

 

 

 

 

흔히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충절을 지킨 분들을 백이숙제에 빗대어 이야기를 하는데 구미에 가면 도립공원 1호인 금오산이 있습니다. 금오산 입구에 그림같은 풍경으로 남아 있는 건물이 고려 말기의 충신인 야은 길재(1353~1419)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채미정 입니다.

 

 

 

 

고려말의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함께 고려의 충절을 끝까지 지켜 고려삼은(高麗三隱)이라 부릅니다. 야은 길재는 1386년인 고려 말에 벼슬길에 나가 성균관 박사와 문하주서에 오릅니다. 그러나 고려가 망하고 이씨조선이 들어서자 그는 모든 벼슬을 사양하고 “불사이충”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선산으로 낙향하여 은거하며 고려에 대한 굳은 절의를 지켰습니다.

 

 

채미’란 중국의 충신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며 연명하였던 고사에 비유한 말로 1768년인 조선 영조 44년에 ‘채미정’의 정자를 세웠습니다.

 

 

금오산 산행을 위해 찾아간 이날은 마침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을 60년만에 개방하는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미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던 정상을 시민에게 되돌아 오는데 강산이 여섯 번 변하는 긴긴 세월이라 그런지 더 큰 의미로 다가 왔습니다. 날씨 또한 현월봉 정상이 열리는 것을 반기는 지 너무 맑고 화창한 가을날 찾은 채미정.

 

 

 

채미정 돌다리를 건너는데 마침 가을 경치와 함께 어울리는 사진 전시가 열렸습니다. 사진을 구경하면서 걸어가니 채미정 입구인 ‘흥기문’ 앞에 새신랑 새신부 한쌍이 고은 한복을 입고 붉은 단풍과 함께 웨딩사진을 담는 모습을 보고 "축하합니다"하며 채미정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채미정은 오른쪽에 화려하게 단청이 되어 있는 정자입니다. 정면3칸에다 측면 3칸으로 가운데 1칸의 방을 만들고 사방은 마루를 넣은 특이한 구조의 팔작지붕형태입니다.

 

 

 채미정 뒤로는 경모각과 유허비각이 있습니다. 경모각에는 길재의 충절을 기린 숙종의 ‘어필오언구’의 해석이 있어 옮겨 봅니다. “금오산 아래 돌아와 은거하니/ 청렴한 기풍은 엄자릉에 비하리라/ 성주께서 그 미덕을 찬양하심은/ 후인들에 절의를 권장함일세”

 

 

 

 

 

 

 

 

 

 

 

 

 

 

 

 

2014/11/09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90도 각진 모서리를 깎아 섬세함이 돋보이는 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2014/11/08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대혜폭포. 수량이 많은 금오산 대혜폭포의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있어요????

 

2014/11/07 -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 금오산 오형돌탑. 어느 할배의 가슴아픈 손자사랑이 만든 금오산 오형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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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대구 팔공산 파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말사입니다. 804년 애장왕5년에 심지왕상이 창건을 하였는데 파계사의 유래를 보면 ‘파계(把溪)’란 ‘물길을 잡는다’란 뜻으로 절 주위로 아홉 갈래의 계곡이 어지럽게 흩어져 땅의 기운을 한곳에 모우기 위해 절 아래 연못을 파고 파계사를 창건하게 되었다합니다.

 


현응대사나무

그 후 1605년인 선조38년에 계관이 중창을 하였고 1695년 숙종21년에 현응이 삼창을 하여 오늘날의 파계사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파계사는 영조임금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에도 영조대왕의 도포와 영조임금 나무인 느티나무가 파계사에 남아 있습니다.



왜 영조대왕의 원찰을 파계사라 할까요. 그 이유를 보면은 조선의 19대 임금은 숙종입니다. 숙종은 후궁 화경 숙빈 최씨를 위해 파계사의 현응에게 세자 잉태를 위한 백일기도를 부탁 합니다.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 숙빈 최씨의 꿈에 농산화상이 전세의 과보에 따라 숙종의 왕자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을 현몽하였고 훗날 백일기도로 태어난 분이 연잉군입니다.



연잉군은 숙종과 장희빈에서 태어난 20대 경종의 뒤를 이어 조선 제21대 임금에 오른 영조입니다. 왕자를 생산하게 된 숙종은 그 보답으로 파계사 주위의 40리를 파계사에서 세금을 거둘수 있도록 명을 내리지만 현응은 그 대신 선대임금의 위패를 모실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올려 선조, 숙종, 덕종, 영조 네 분의 신위를 기영각에 모심으로 조선 후기에와 더욱 기세가 높았던 숭유억불정책의 칼바람을 피해 갈 수 있었다합니다.



1979년 파계사 원통전 관음보살상을 금칠하게 되었는데 불상안에서 영조의 어의가 나왔다 합니다. 1740년 건륭 5년 9월에 제작된 도포와 발원문에는 ‘탱불 일천불’을 희사하고 파계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며 대왕의 청사상의를 복장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럼 파계사의 문화재를 하나하나 만나 보겠습니다.



먼저 매표소 전에 만나는 오래된 나무를 현응대사 나무라 부릅니다. 현응대사는 파계사를 삼창하고 숙종의 부탁을 받아 백일기도로 숙빈최씨에게 훗날 영조대왕인 왕자를 잉태케하였습니다. 수령이 260년 쯤 된 느티나무로 현응대사의 공덕을 기려 부르는데 팔공산에 단풍이 한창 들때 찾아간 파계사. 천년세월의 절집과 함께 너무 잘 어룰리는 고목이었습니다. 

 


파계사는 문화재 관람을 위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통과해야 합니다. 일반 1,500원이며 승용차 주차비는 2,000원입니다.일주문을 통과하고도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파계사 주차장에 닿기 전에 왼쪽에 파계지로 불리는 저수지입니다. 파계사의 아홉갈래 물길을 한곳에 모아 땅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팠다는 연못으로 파계사 창건 유래와 함께 합니다. 

 


먼저 파계사 안내도를 일별합니다. 파계사 경내를 들기위해서는 반드시 만나게 되는 큰 나무가 있습니다. 영조임금나무로 키가 엄청 큰 나무입니다. 


영조임금나무

수령이 약 250년 느티나무로 보호수며 높이가 17m, 둘레는 3.8m. 영조임금의 치적과 현응대사의 백일기도로 영조임금이 탄생하였고 왕실의 원당에 영조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어 영조임금나무로 이름을 붙였다합니다.




먼저 진동루 입니다.진동루는 파계사의 유래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절 주위로 아홉갈래의 물줄기를 따라 새어나가는 땅의 기운을 잡기 위해 연못을 파고 파계사라 하였는데 그것으로는 이곳의 기운을 모두 다스릴 수 없어 경내로 들어오는 입구에 문을 세우고 ‘진동’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먼저 계단을 올라 1층의 누문을 들어서면 파계사 경내에 들어서게 됩니다. 100여평의 넓이에 정면5칸, 측면3칸의 2층 규모로 팔작지붕을 올렸습니다. 현판에 팔공산 파계사가 걸려 있습니다. 정면으로 원통전과 좌측에 설선당, 우측에 적묵당입니다. 




 원통전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파계사 적묵당입니다.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9호이며 조선 광해군 12년인 1620년에 처음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 후 숙종21년인 1695년 현응이 삼창을 한 후 1920년에 중건을 한 후 보수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적묵은 ‘눈을 감고 조용히 명산한다’는 뜻으로 스님의 수양 공간 같습니다. 정면 5칸, 측면 6칸의 규모로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팔작지붕이며 기둥 위에 공포를 두지 않고 기둥사이에 작은 접시 모양을 한 소로를 끼운 조선후기 건물로 소박한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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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전을 기준으로 왼쪽은 설선당입니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이며 대중의 공양간과 강습소로 사용하였던 건물입니다. 1623년 인조 1년에 계관법사가 중수를 하였으며 1646년과 1725년에 중건을 거듭하여 1976년에 현재의 모습을 하였습니다. 건물은 정면7칸, 측면7칸의 규모로 적묵당과 함께 아름다운 곡선를 가진 팔작지붕입니다. 초석은 북을 엎은 모양으로 그 위에 공포를 두지 않은 둥근 기둥을 세웠습니다. 간결하며 견실한 모양의 민도리집 구조양식입니다. 








원통전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220호 영조임금의 도포와 보물 제992호인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및 복장 유물이 있습니다. 파계사는 다른 사찰과 다르게 대웅전이 아닌 원통전에 관세움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습니다. 원통은 ‘진리는 원만하여 모든 것에 통해 있다“는 뜻으로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올렸습니다. 지붕 처마를 박치기 위해 커다란 역삼각형으로 짜 맞춘 공포를 두 기둥사이에 장식한 다포양식으로 17세기 후반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삼베에 여러번 옻칠을 도포한 방식의 불상입니다. 1979년 불상을 금칠할 당시 복장유물로 영조임금의 도포와 발원문이 함께 나왔고 1447년 세종29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불상의 전체 높이는 1m8cm이며 머리에는 3중의 화관을 씌었고 목의 삼도와 오른손과 왼손에 나타난 손가락과 손바닥 모양을 보면 고려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보물 제1214호 파계사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담은 불화입니다. 1707년인 숙종33년에 연잉군이 왕자일 당시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시주한 불화이며 길이가 340cm, 폭은 254cm.  



파계사 기영각은 연인군이 탄생하면서 그 보답으로 현응의 청원을 받아들여 조선왕실의 위패를 모신 전각입니다. 숙종35년인 1696년에 현응이 창건. 정면3칸 측면2칸으로 팔작지붕이며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혀처럼 앞으로 나온 두 개의 익공에 연화와 연봉 등으로 위와 아래에 화려한 장식을 한 조선 후기 이익공계 양식을 한 모습입니다.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11호.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8호인 파계사 산령각의 창건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1976에 중건을 한 후 1979년에 보수를 하였습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옆면에서 보면 사람인자인 맞배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기영각과 같은 공포를 사용하였는데 익공에 연봉과 연화로 장식하고 보 머리에 봉황머리를 끼운 초익공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팔공산 파계사를 찾았을 당시 추색으로 완전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특히 지장전 가는 길에서 본 파계사 왼쪽 언덕은 그야말로 만추의 분위기를 보여 주어 아름다운 절집에 매료되어 넋을 빼고 바라보다가 일행의 그만 내려가자는 말에 부랴부랴 내려 왔습니다. 고즈넉한 파게사의 가을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안내판을 참고하였습니다. 





영조임금나무












2014/11/06 - (대구여행/팔공산 산행)팔공산 서봉~파계봉 산행. 알찬 팔공산 산행코스 서봉~파계봉 산행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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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대혜폭포. 수량이 많은 금오산 대혜폭포의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있어요????

금오산은 경북 구미시와 칠곡군 그리고 김천시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습니다. 그러나 금오산은 단연 구미의 산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구미쪽 금오산이 빼어나 채미정, 도선굴, 대혜폭포, 금오산성, 금오산 마애여래입상, 약사암 등 금오산 관광객이 모두 찾을 정도로 볼거리가 많습니다. 


 

금오산 이전의 이름은 대본산 또는 고려 때에는 남숭산이라 불렀습니다. 그럼 금오산은 언제부터 불려지게 되었는지 그 유래를 보면 신라 땅에 처음 불교를 전한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의 이야기입니다. 아도화상이 지금의 구미 태조산 도리사에 머물 때 태양에 산다는 황금까마귀 금오가 남숭산에 노을이 걸릴때 그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하였다합니다.


 

금오산에는 구미시민의 젖줄인 폭포가 있습니다. 대혜비폭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구미시민에게 식수를 제공하고 퇴적물로 인해 농토는 기름지게 바꾸어 주며 매년 농사는 풍년이 듭니다. 구미 백성은 폭포가 큰은혜를 내려 준다는 뜻의 대혜 폭포로 부르게 되었고 또한 떨어지는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하여 명금폭포로도 불렀습니다.


 

실제 주말에 찾아보면 높이 27m 암벽을 뚫고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수는 힐링을 느낄 만큼 장관입니다. 지난주에 찾았던 대혜폭포에서 밝힐 수 없는 폭포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ㅎㅎ 여러번 찾았던 대혜폭포는 항상 일정한 물줄기를 보여 주었습니다.산이 높아 항상 계곡의 물이 풍부하게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평일에는 대혜폭포 위의 연못인 대혜지에 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주말에 연못을 개방하여 폭포로 내려 보낸다고 합니다


                                                                                                                               

 대혜폭포는 경북 8경에 속하며 경치가 빼어나 구미의 소금강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곳은 ‘자연보호운동 발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7년 9월 이곳을 찾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폭포 주변에 깨진 병조각과 휴지 등이 어질러진 것을 보고 “자, 우리 청소부터 하지”하며 병조각과 휴지등을 주운데서 자연보호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찾은 대혜폭포 사진입니다. 폭포 주변에는 노란단풍이 들어 떨어지는 폭포수와 함께 너무 멋진 풍경을 보여 주었습니다. 주로 봄, 여름철에 찾았던 폭포인데 가을에 찾는 대혜폭포가 역시 멋졌습니다.


 

 

 

                                                                                                                                                                                                                                                                                                                                                                                                                                                                                   

                                                                                                                                 




2014/11/07 -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 금오산 오형돌탑. 어느 할배의 가슴아픈 손자사랑이 만든 금오산 오형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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