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행/사하여행)몰운대 다대포객사. 부산의 3대인 몰운대 다대포객사.
부산은 예로부터 사방팔방 조망권이 좋은 곳을 대(臺)라 하여 많은 시인묵객들이 조망을 즐기며 글을 남겼습니다. 그만큼 시가 저절로 떠오르는 곳이 많을 정도로 많은 전망대가 있으며 혹자는 부산의 3대, 5대, 8대로 나누어 분류를 합니다.
사람에 따라 조금은 다르지만 부산의 3대 몰운대, 태종대, 해운대를 말합니다. 부산사람이라면 모두 수긍을 할 정도 쟁쟁한 조망처 입니다. 또한 내륙의 전망대가 아닌 모두 바다를 끼고 있는게 특이합니다. 부산의 3대중 몰운대를 다녀 왔습니다.
몰운대는 16세기까지 몰운도라는 섬으로 불렸습니다. 지금이야 육지화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낙동강의 토사가 하류로 내려와 퇴적되었기 때문입니다.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그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다”는 뜻으로 몰운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일본과 가까이 있어 많은 부침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있던 정운장군이 이곳 부산포 해전에서 순절을 하였던 곳으로 현재 “정운공 순의비”가 몰운대에 있습니다. 일반인들 들어갈 수 없는 통제지역이라 너무 아쉬움이 남습니다. 부산포 해전은 100여척의 왜군을 격퇴한데서 정운장군이 큰 공을 세워 승리한 해전으로 지금도 부산 서구에 있는 장군산은 정운장군의 뜻을 기려 장군의 산이라 부르게 되었다합니다.
몰운대 정상부에는 다대포 객사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 다대 첨절제사영에 있었던 객사로 다대1동 부산 유아교육진흥원 내에 있던 것을 1970년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원형 그대로 복원을 하였습니다. 객사는 지방으로 출장을 나온 관리나 사신의 숙소를 말합니다.
다대포 객사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폐를 보관하였고 고을의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한양의 임금을 향해 신하의 예를 갖추어 망배를 드리던 장소로 사용이 되었고 또한 손님의 숙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객사라면 본채와 좌우에 방이 딸려 있어야 하는데 다대포 객사는 본체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다대포 객사는 정면 5칸, 측면2칸에 팔작지붕을 하였고 벽이나 기둥을 겹으로 두른 건물안쪽에 벌여 세운 기둥(안두리기둥)위에 마주보고 있는 두 기둥을 연결하는 나무인 들보를 올린 5량 건물로 벽은 두르지 않았습니다. 창건 연대는 불분명하지만 1825년(순조25년)에 중수를 하였습니다.
다대포 객사는 임진왜란 이후 더욱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여 경상좌도 7진중의 하나가 되었고 부산진과 함께 일반진의 두배인 병선을 거느리며 정3품 당상관이 상주를 하였던 곳입니다. 부산광역시 사하고 다대1동 산144번지에 위치하며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몰운대
화손대
다대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