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여행/해남여행)두륜산 케이블카. 맑은날 제주도 한라산도 볼 수 있는 해남의 전망대 두륜산케이블카
두륜산 케이블카는 천년 고찰 대흥사를 감싸고 있는 두륜산의 끝봉우리인 638m고계봉 정상까지 이어진다. 총선로 길이가 1.6km이며 편도 8분의 길지 않는 시간이지만 고도를 높이며 올라갈 수록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그야 말로 해남군의 모습을 일별할 수 있다. 정상 직전에 있는 상부 승강장에 내려 고계봉 정상까지 이어지는 목재 계단을 밟고 10분 정도 오르면 해남홍보관이 있는 전망대가 있다.
구림리 두륜산 케이블카 하부 승강장 출발.
☞(전남여행/해남여행)두륜산 케이블카. 맑은날 제주도 한라산도 볼 수 있는 해남의 전망대 두륜산케이블카
지난해 태풍의 영향인지 홍보관 건물은 잠겨 있지만 옥상의 전망대에서 360도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상부 승강장 오른쪽으로 저수지 부근은 한반도를 빼닮아 '한반도지도마을'이라 부른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영암 월출산과 강진 주작산 광주 무등산 완도의 상황봉등 주변의 명산과 아름다운 다도해의 풍광을 즐기기에 손색에 없다.
☞(전남여행/해남여행)두륜산 케이블카. 1박2일에도 소개된 해남의 전망대 두륜산케이블카
맑은 날에는 멀리 제주도 한라산이 구름위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한다. 최근에 kbs2tv 해피선데이 '1박2일'에도 소개가 되어 겨울 해남의 모습과 설경의 두륜산을 소개하여 해남을 대표하는 7대 관광지로 자리를 잡았다. 역시 1박2일이 대단했던 프로였죠. 한때는...ㅎㅎ
요즘 장마라지만 장마는 중부지방 이후에만 한정 된 것 같다. 아직 남부지방에는 장마다운 비를 보지 못하였는데 어제 낮에 울주군에 갔다가 할머니 한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가뭄이라 큰일이다며 걱정을 태산같이 하시는게 아닌가. 때아닌 장마기간에 가뭄 걱정을 해야하는 남부지방에 그 좋은 비소식을 좀 보내주면 좋을 것 같다.
장마속에 가뭄을 걱정해야하는 날씨라 지난 7월25일 새벽에 베란다를 내려다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해무가 올라와 사방천지 분간이 안가는 날이 허다한데 이날 아침 해수면에는 해무가 끼어 있고 영도 봉래산 옆으로 아침해가 기운차게 올라오고 있는게 아닌가. 그 해무속에 육지인 송도매립지와 영도를 연결하는 남항대교가 해무속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게 신선이 조화를 부리는 것 같은 모습이다.
아침에 만나는 영도와 봉래산 그리고 부산남항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아침풍경이 내내 기억속에 남는다. 그리고 동영상도 담아 보았다.
요즘 들로 산으로 나가다 보면 하천변의 양지바른 곳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비가 배추흰나비다. 배추흰나비는 흰나비과의 나비로 이름이 배추라서 그런지 배추 양배추 무등을 좋아하여 그 곳 부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4월에서 10월까지 주 활동 무대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비이다. 유충때는 무 배추의 잎등에 붙어 갉아 먹는 해충으로 지내다가 커면서 어른벌레가 되면 꽃가루의 수정을 도와주는 역활을 한다.
☞(울산울주여행/경북청도여행)상운산~학심이골 산행. 영남알프스 최고의 계곡 학심이골 산행 개요
경상북도 청도군과 경주시, 경남 밀양시와 양산시,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영남알프스는 그야말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1,000m의 봉우리가 9개나 솟아 있어 스위스의 알프스 풍광을 연상시킨다며 그리 부르고 있다. 산세가 높고 넓다 보니 자연스럽게 깊고 비경의 골짜기가 파여져 영남알프스를 찾는 등산객에게 영남알프스는 하늘 같은 존재이다. 청도군의 영남알프스는 현재 운문사 생태 환경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예전부터 입산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배너미나 아랫재등 도둑산행을 하곤하였는데 원래 청도군에서 관리를 하였던 운문산을 대구환경청에서 관리를 하게 되면서 앞으로 학심이골 산행은 힘들어지게 되었다.었다. 내년부터는 학심이골 심심이골 천문지골등 운문사에서 이어지는 모든 등산로는 출입이 통제된다. 그러나 새로 둘레길을 조성하여 놓은 학소대와 심심이골의 아랫재까지는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아 해설사인 가이드와 함께만 산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 이외는 전면 통제와 입산시는 과징금을 부과한다하니 올해 열심히 다녀야 할 것 같다.
울산시 울주군과 경북 청도군의 경계에 있는 운문령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석남사사와 가지산 온천으로 하산하는 갈림길.
가지산 귀바위
☞(울산울주여행/경북청도여행)상운산~학심이골 산행. 영남알프스 최고의 계곡 학심이골 산행 경로.
학심이골 산행은 울산시 울주군과 경북 청도군의 경계인 운문령을 출발해 석남사 갈림길~임도~운문산휴양림 삼거리~귀바위~상운산 정상~전망덱 임도~학심이골 입구~무명 폭포~학소대 갈림길~학소대(~다시 갈림길)~삼거리~비룡폭포(~다시 삼거리)~환경감시초소 사거리~학심이골-심심이골 갈림길 삼거리~사리암 주차장을 거쳐 운문사에서 마친다. gps상 산행거리는 14㎞ 정도며 산행시간만 5시간, 계곡에서 휴식을 포함하면 시간은 더 쇼요된다.
멀리 가지산 쌀바위도 보인다.
운문산 휴양림 갈림길
가가이선 본 귀바위의 모습
귀바위 정상.
상운산 정상.
☞(울산울주여행/경북청도여행)상운산~학심이골 산행. 영남알프스 최고의 계곡 학심이골 산행 운문령에서 시작.
들머리인 운문령은 찾아가기가 쉽다. 언양 터미널에서 대구 경산행 버스를 타고 가다 운문령에서 내리면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버스가 가는 방향에서 왼쪽이 가지산과 학심이골 가는 방향이며 오른쪽은 문복산 또는 낙동정맥 능선인 고헌산 방향이다. 가지산 방향인 왼쪽에 등산안내도가 있고 콘크리트 길을 잠시 올라가면 차단봉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을 지나면 환경감시초소와 만난다. 이곳을 찾는 등산객에게 ‘운문산 생태 경관 보존지역’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하고 있다. 결론은 2014년인 내년부터 능선에서 학심이골의 등반과 하산등 일체의 산행을 금지하며 출입시에는 법칙금등을 부과한다는 이야기다. 올해가 가지전에 열심히 학심이골을 찾아 볼 것을 권한다. 임도 길을 따라 슬렁슬렁 올라서면 안부의 5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쌍두봉과 가지산 쌀바위 방향 삼거리. 왼쪽 하산길이다.
헬기장과 전망덱이 있는 임도에 내려선다.
학심이골 입구로 경고문 안내판이 서 있다.
☞(울산울주여행/경북청도여행)상운산~학심이골 산행. 영남알프스 최고의 계곡 학심이골 산행 상운산 경유.
석남사 갈림길로 왼쪽으로 두갈래의 길로 나뉘는데 그중 왼쪽 능선 길은 가지산온천에서 산불초소를 지나 올라오는 등산로고 오른쪽은 석남사 안의 불당마을에서 올라오는 기존 등산로다. 이곳에서 진행 방향 임도를 두고 왼쪽 능선길을 따라간다. 물론 오른쪽의 임도길을 따라가도 된다. 중간에 서로 3번 정도 만나고 학심이골 입구로 함께 가게 된다. 제법 경사가 급한 오름 길로 빠르게 고도를 높인다. 10분이면 임도를 만나지만 계속 산길를 따라 오른다. 다시 5분 정도면 나무벤치가 3개 설치된 콘크리트 임도와 만난다. 이곳에서 왼쪽 임도를 따라 학심이골 입구로 바로 갈 수 있다. 상운산은 건너편 능선의 산길을 올라간다. 입구에 상운산 이정표가 서 있다.
학심이골의 무명폭포
학소대 갈림길
학소대폭포.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울산울주여행/경북청도여행)상운산~학심이골 산행. 영남알프스 최고의 계곡 학심이골 산행 귀바위와 상운산 올라.
평행선으로 달려가던 산길과 임도 길은 10분이면 임도와 거리를 두며 경사가 가팔라진다. 왼쪽으로 귀바위와 가지산, 능동산, 배내봉, 간월산, 신불산등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보면 웅장한 덩치의 고헌산도 눈에 들어온다. 곧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로 운문산휴양림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직진하면 곧 귀바위를 올려다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멀리서 보면 부처의 귀를 닮았다하여 귀바위로 불린다. 잠시 뒤 귀바위 정상에 오른다. 주변의 영남알프스 산세들이 막힘이 없이 펼져진다. 그야 말로 일망무제의 수직어가 아깝지 않다. 상운산 정상을 향하면 길은 울창한 숲 속의 완만한 오르막 능선이다. 10분이면 바윗길을 올라 상운산(1114m) 정상에 선다. 북쪽인 운문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는 전망을 가리는 나무가 없어 문복산과 옹강산등 경북의 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학소대 각자.
덱을 따라 하산한다.
학소대2폭으로 비룡폭포라 부른다.
☞(울산울주여행/경북청도여행)상운산~학심이골 산행. 영남알프스 최고의 계곡 학심이골 입구 '경고문' 안내판 .
학심이골 방향을 가기위해서는 왼쪽으로 내려간다. 20m만 가면 중요한 삼거리다. 오른쪽은 운문산자연휴양림과 쌍두봉, 삼계리 방향이다. 이정표의 왼쪽 쌀바와·가지산 방향으로 내려간다. 습기가 많아 내려서는 길은 미끄럽다. 10분이면 귀바위 오르기 전에 만났던 임도와 이곳에서 만난다. 헬기장과 전망덱이 설치되어 있다. 오른쪽으로 꺾어 가지산 쌀바위 방향의 임도를 따라 간다. 편편한 길을 5~6분 가다가 길이 왼쪽으로 꺾이는 곳에 학심이골 산행 주의 이동통신이 터지지 않는다는 경고문 안내판이 있는 곳이 학심이골로 내려가는 입구다. 현재는 하산을 할 수 있지만 내년부터는 출입자체가 불가능하다. 고도가 높은 만큼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다. 북사면이라 눅눅하게 습기가 차 있는 하산길에 중간중간 산죽밭이 있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학심이골의 장관.
배넘이재 갈림길로 환경초소가 있다.
☞(울산울주여행/경북청도여행)상운산~학심이골 산행. 영남알프스 최고의 계곡 학심이골 산행 학의 둥지 학소대 비경 감탄.
40여 분 하산하면 물소리가 들리면서 계곡을 건넌다. 이 곳을 내려서면 이름없는 10여 m 높이의 폭포를 만난다. 그래도 부산인근에서 높이 10m급의 폭포는 만나기 힘들다. 무더운 여름철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면 더위를 식히기에 충분하다. 잠시 뒤 비탈진 암벽에 물기를 머금고 있는 곳을 지난다. 겨울철에는 주의를 해야하는 구간으로 가는 로프가 묶여져 있다. 이곳을 지나면 다시 계곡을 건너고 넓은 갈림길에 내려선다. 오른쪽은 덱으로 만든 나무가 설치된 운문사 둘레길이 조성 되어 있고 학소대는 왼쪽방향으로 꺾는다. 작은 나무 이정표가 서 있다. 잠시 뒤 오른쪽에 비룡폭포로 바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직진하면 곧 학소대 전망대인 덱이 나타난다. 운문사 둘레길을 조성하며 만든 학소대 전망덱으로 정작 폭포는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학소대 앞으로 나가면 30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이다. 학심이골 최대의 비경지대로 이곳에는 항상 무지개가 서려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계곡의 바위를 건너면 바위면에 학소대(鶴巢臺)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학심이골 심심이골 갈림길.합수점이다.
심심이골의 비경.
사리암 주차자으로 가기위해서는 큰골을 건넌다.
사리암 주차장
신화랑 에코트레일길을 따라 간다.
☞(울산울주여행/경북청도여행)상운산~학심이골 산행. 영남알프스 최고의 계곡 학심이골 산행 학소대2폭의 비룡폭포.
다시 돌아 나와 온 길을 되짚어 올라간다. 비룡폭포 갈림길를 지나 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는 삼거리까지 돌아간다. 내년부터 비룡폭포 길은 폐쇄를 하는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다리를 건너면 덱을 바위면에 설치하여 길을 만들어 놓았다. 곧 돌계단을 내려간다. 10분이면 비룡폭포를 거쳐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비룡폭포를 보기 위해서 내려간다. 작은 폭포가 걸려 있는 암반의 계곡을 건너 40~50m 올라가면 학소대 1폭으로 불리는 비룡폭포와 만난다. 비경의 학심이 좌골에 걸려 있는 비룡폭포는 4단까지만 눈에 보일 뿐이다. 작은 소를 이루며 몇 번이고 돌아나가는 물줄기는 부산인근에서는 이곳 영남알프스가 유일한 것 같다. 폭포를 둘러보고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간다. 삼거리에서 하산을 계속한다. 급경사를 돌계단으로 내려가게 만들어 놓았다.
운문사.
☞(울산울주여행/경북청도여행)상운산~학심이골 산행. 영남알프스 최고의 계곡 학심이골 산행 사리암 주차장에서 통제.
다시 계곡을 건너 넓은 길을 10분 정도 가면 환경감시초소가 있는 사거리다. 오른쪽은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 계곡를 건너 배넘이재로 가고, 왼쪽은 초소 뒤로 올라 가지산 북릉과 심심이골로 가게된다. 운문사 길은 직진하는 넓은 길을 따라간다. 곧 심심이골에서 내려오는 계류와 만난다. 이곳이 학심이골과 심심이골이 만나는 합수점 삼거리며 왼쪽 이정표에는 아랫재까지 3.7㎞로 나와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 운문사 둘레길을 따라 산책하듯이 널찍한 임도를 내려가면 사리암 주차장 직전의 큰골인 계곡을 건넌다. 이곳에 철문이 잠겨져 있어 대구지방 환경청에서 나와 현재 올라가는 등산객을 통제 하고 있다. 사리암 주차장 화장실 오른쪽 구석에 운문사로 이어지는 '신화랑 에코트레일'의 흙길이 조성되어 있다. 운문사의 솔바람길 처럼 소나무가 쭉쭉 뻗은 길을 따라 30분이면 범종각아래 운문사 입구에 닿는다. 이곳에서 운문사 버스 정류장 까지는 솔바람길을 따라가면 된다.
운문사 경내
운문사 솔바람길.
☞(울산울주여행/경북청도여행)상운산~학심이골 산행. 영남알프스 최고의 계곡 학심이골 산행 교통편.
학심이골 출발지인 운문령에 승용차 주차공간이 없이 승용차 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더 좋을 것 같다. 부산에서 운문령으로 갈려면 노포동 동부버스터미널에서 언양으로 가는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언양에서는 동곡·경산·남대구행 버스를 타고 운문령에서 내린다. 오전에는 9시, 10시30분 두 차례 뿐이다.
운문사에서는 부산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청도로 들어가거나 언양행 버스를 타면 된다. 청도행 버스는 오후 3시30분, 5시30분, 7시15분(막차)에 출발한다. 운문사 주차장에서 출발지 운문령과 언양으로 가는 버스는 오후 2시35분, 5시25분 두 차례 있다. 대구로 가는 버스는 오후 7시40분까지 40분~1시간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청도에서는 부산으로 가는 열차가 오후 5시39분, 5시58분, 6시42분, 7시16분, 8시46분(해운대역 도착), 10시4분(막차)에 있다.
산행을 하다보면 기암이나 기목등을 많이 만나게 된다. 흔히 남근석이니 여근석등 무수하게 많은 종류의 기암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데 이번 산행에서는 기목을 만났다. 보통 기목은 연리지나 연리목등 나무의 뒤틀림을 말하는데 이번 산행에서는 민망한 자세의 모습을 산행에서 만났다. 신기한 자연의 모습 그냥 웃고 지나갑니다. ㅎㅎ올리지 않을까 하다가 신기해서 올려 봅니다.
☞(전남맛집/담양맛집/죽녹원맛집)담양 죽녹원갈비, 담양 여행시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 떡갈비와 대통밥.
담양을 여행하고 대통밥과 떡갈비를 먹지 않고 그냥 돌아 왔다면 그는 담양을 가지 않은 것 보다도 못하다 한다. 그만큼 담양 여행에서는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이 대통밥과 떡갈비이다.
☞(전남맛집/담양맛집/죽녹원맛집)담양 죽녹원갈비, 담양 사대부 집안의 잔치 음식 떡갈비 죽녹원 갈비.
담양에선 왜 떡갈비가 유명할까. 담양 정읍지방의 사대부 집안에서 잔치음식으로 내려온 음식이 떡갈비다. 한우의 갈비뼈에 붙은 갈비살을 추려내어 칼로서 다져 빵떡 처럼 만든 모습이 떡갈비로 부른다.
쫀득한 갈비 특유의 맛이 씹을수록 고소하고 나이드신 어른신도 드실수 있게 만들어져 가족음식으로 좋다. 담양여행시 찾아간 죽녹원 옆의 죽녹원 갈비는 죽녹원과 관방제림이 인근에 있어 한여름의 무더위를 사각사각 부딪치는 댓잎의 소리에 몸과 마음 그리고 귀가 맑아진다.
ㅎㅎ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아무리 좋은 구경도 배가 불러야 눈에 들어오는 법. 먼저 죽녹원 갈비에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괜찮다.
☞(전남맛집/담양맛집/죽녹원맛집)담양 죽녹원갈비, 담양 여행시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 떡갈비와 대통밥 죽녹원갈비.
죽녹원 갈비에서는 한우 떡갈비 대통밥 정식 27,000원, 돼지 떡갈비 대통밥 정식 20,000원. 한우떡갈비23,000원. 돼지 떡갈비15,000원. 대통밥12,000원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요 주문상차림은 대통밥 2개와 한우 떡갈비의 1개로 상을 차린 모습이다. 어때요 맛있어 보이나요. 밑 반찬도 하나 같이 맛이 괜찮았습니다. 특히 우리의 입맛을 자극한게 요~~요~~ 매실 장아찌 완전 사람을 잡아요. 세콤 달콤한게 너무 맛이 있더군요.
죽녹원 갈비에서는 주인장의 꼼꼼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기자기하게 내부를 꾸며 놓았고 특히 나무에다 글씨를 판 서각 작품이 엄청 많아요. 보통 작품이 아닌 것 같아요. 대통밥도 먹고 떡갈비도 먹고 그리고 덤으로 서각 작품까지도 구경할 수 있는 죽녹원 떡갈비에서 맛있게 먹고 왔습니다.
부산 인근의 청도는 보물 같은 곳이다. 청도란 수식어답게 오지로 인식이 되는 물맑고 산세 좋은 곳이다. 청도 방면으로 많은 산행을 떠나고 산길도 만들고 하지만 이번에는 생소한 산을 찾아갔다. 청도군 금천면의 숨은 오지마을로 이번 산행은 경북 청도군 금천면 사전리 남전 버스정류장을 출발해 동래정씨 묘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밀성박씨 묘~점삐알산~430m봉~488m봉~함박등(삼각점)~삼거리~굴띠산(409.6m)~송전탑~삼거리(비슬지맥 청도-경산 경계 만남)~327m~농원~304m~삼거리(용산-갈고개 갈림길)~송전탑~ 금천면 갈지리 갈고개 휴게소에서 산행을 마친다. 산행거리는 11㎞ 정도로 산행시간은 4시간 안팎, 휴식을 포함하면 5시간30분이면 된다. 이번 함박등 산행은 산길이 뚜렷하지 않은 개척 산행이라 충분한 식수와 함께 반드시 긴옷을 착용해야 한다.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 함박등 산행, 함박등 산행 오지 산행으로 험로.
금천면 동곡 버스 정류장에서 갈고개 김전리 버스를 이용하여 사전리 남전 정류장에 내리면 산행이 시작된다. 현재 도로 확장 공사 관계로 버스 정류장이 서 있지는 않다. 버스가 진행하는 방향의 도로 오른쪽에 보이는 산이 이번 산행지인 함박등이다. 함박등의 의미는 소천2리 생미마을에서 함박등이라 부르고 있다. 보통 동네 인근의 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지명이다. 대개 함박산과 함께 작약산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함박꽃을 작약꽃으로도 불리기 때문이다. 보통 함박산 아래 마을 어르신들의 설명으로는 옛날에는 함박꽃이 많이 피었다 하여 그리 부른다는데 이곳의 함박등은 대구의 매일신문사에서 기획 취재한 ‘운문에서 화악까지’ 32회에는다르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함박은 함지박으로 통나무를 깎아 만든 바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산의 모양이 함지박같이 생겼다고 보는 것 같다. 함박등 산행의 출발은 뒤쪽의 '사전2길' 방향의 2차선 도로를 들어서면 교량를 건넌 뒤 갈림길이 나온다. 다리 옆에 독립가옥이 있고 오른쪽은 대국사 방향, 왼쪽의 마을길을 따라 직진해서 200m쯤 가면 마지막 집을 지나 소나무로 조경한 것 같은 규모가 큰 동래정씨 묘에 닿는다. 정씨묘 끝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함박산 초입이다. 과수원가는 농로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오른쪽으로 샛길이 보인다. 이길을 따라 묘지를 지나는데 밀양박씨 묘 3기 있는 곳에서 위를 보며 능선으로 올라야한다. 능선에 오르는 산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아 산길을 만들면서 올라야 한다.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 함박등 산행, 함박등 산행 들머리 찾기.
오른쪽으로 대각선 방향으로 30~40m 올라가면 희미한 능선 길과 만난다. 조금 더 오르면 석축을 쌓은 반듯한 밀성박씨 묘를 지나면서 산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경사가 가팔라진다. 산길은 별 어려움 없이 능선을 따라 일직선으로 오른다. 오른쪽 건너편 산자락에 큰 규모의 대국사가 보인다. 10분 정도면 길이 가팔라지고 곧 이번 산행의 첫 번째 봉우리인 356m의 점삐알산에 오른다. 산행 시작전에 마을 어른신이 ‘산 아래 오래전부터 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있어 그리 부른다 아이가’하시며 ‘이 더운데 우찌 갈라고’ 하시기에 ‘저 능선으로 올라가면 됩니까'하며 손짓을 하니 ’봄에 나물도 뜯고 하며 댕긴다 아이가‘ 하신다. 작별인사를 하고 동래정씨 옆으로 들어가니 그곳에서 농사일을 하시던 어르신이 ’그쪽에 길이 없다‘며 다부 들어 왔던 길을 나가라며 입구를 설명해주시는데 나중에 그곳으로 가 산길을 찾는다고 1시간 이상을 허비하고 다른 분에게 ’이곳에 봄에 나물을 뜯고 하며 올라가는 산길이 있다는데 도저히 못 찾겠습니다.‘하니 ’따로 산길은 없고 그냥 올라가면 된다‘는 황당한 이야기에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고 할 수 없이 다시 처음 출발지 동래정씨로 왔다. 초입에서 90분 이상을 허비하고 오늘의 목적지 경산시 용성면 용산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을 한며 산행을 시작하였다.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 함박등 산행, 함박등 산행 갈림길 주의.
이번 산행은 별 특징이 없는 봉우리로 연결 되어 있다. 그저 길을 만들며 산길을 헤쳐 나가는 연속이다. 길이 없다보니 하산시에는 빠져나가는 능선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아차하면 다른 곳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능선을 타고 가다가 간벌한 곳을 지나면 430m 봉에 오른다. 잠시 뒤 달성서씨 묘와 밀양박씨 묘를 잇달아 지나며 산길은 조금 가팔라진다. 석축을 쌓은 오래된 폐무덤을 지나면 곧 펑퍼짐한 488m 봉 정상이다. 직진하면 완만한 내리막이다. 왼쪽으로 보니 나무사이로 건너편에 멀리 학일산(693m)이 살짝 보인다. 안부에서 다시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면 이번 코스의 최고 지점인 함박등에 올라선다. 물론 숲에 싸여 조망도 없다. 정상을 표시하는 것은 삼각점(동곡426)이 있고 안내 표지판 뒤로 내려간다. 하산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을 내려간다. 능선길은 희미하며 15분 정도 내려서면 유의를 해야한다. 직진하면 우봉골로 내려가 진다. 이곳에서 유의하며 11시 방향의 왼쪽으로 내려가는 능선길을 잘 찾아야 한다.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 함박등 산행, 함박등 산행 굴띠산과 연계
가파른 길을 잠시 내려가면 안부에 닿는다. 오른쪽 우봉골 방향으로 희미한 길이 내려가고은 굴띠산은 직진하는 오르막이다. 가파른 경사를 올라 봉우리에 올라서고 건너편에 정상이 보인다. 완만하게 오르내리며 10여 분 이면 무덤을 지난다. 잠시 뒤면 간벌지대를 지나 삼각점(동곡422)이 있는 굴띠산 정상(409.6m)이다. 굴띠산 아려 굴이 있다하여 불린다. 삼각점 안내 표지판을 지나 1시 방향으로 내려간다. 하늘이 트인 안부를 지나 송전탑에 무성한 잡풀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이곳에서 송전탑 밑을 지나 직진한다. 사람들의 흔적은 보이는데도 여름철이라 키 만큼 자란 잡풀과 칡넝쿨을 150m 정도 뚫고 가면 청도군과 경산시의 경계인 비슬지맥과 만나는 삼거리다. 여기서부터는 지맥종주길이 산길이 뚜렷해진다. 왼쪽으로 꺾는다.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 함박등 산행, 함박등 산행 용성면의 진산 용산.
150m 정도 가면 삼거리다. 이곳에서는 오른쪽으로 간다. 20분 정도면 왼쪽 아래로 콘크리트 도로가 보인다. 농원의 울타리를 따라 오른쪽을 따라간다. 울타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 산으로 들어선다. 비슬지맥이라 안내리본이 많이 붙어 있어 길 찾기는 쉽다. 능선에서 왼쪽으로 휘어져 주금씩 오르막으로 바뀐다. 20분이면 체력도 고갈되고 하여 힘들다는 생각이 들때쯤 산길은 봉우리를 왼쪽으로 돌아가 삼거리와 만난다. 오른쪽으로 완전 꺾어 내려가는 길은 용성면의 진산인 용산가는 길. 오늘 산행 계획인 용산(435m)으로 가기 위해서는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다시 송전탑과 만나고 그 아래에는 칡덩굴과 까시나무, 잡풀이 무성하고 산길은 더더욱 오리무중이다. 할 수 없이 시간이 촉박하여 갈고개로 방향을 바꾸어 하산하기로 하고 삼거리까지 되돌아 올라 왔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즉 직진방향)으로 5분 정도면 다시 송전탑을 지난다. 길은 뚜렷한데 역시 잡풀 때문에 고생이다. 산길은 조금씩 높이를 낮추고 20여 분이면 청도 동곡과 경산을 연결하는 도로의 갈고개에 내려선다. 건너편에 갈고개휴게소에서 여장을 풀며 버스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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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 함박등 산행, 함박등 산행 교통편.
부산에서 산행 출발지 금천면 사전리 남전마을로 가기위해서는 부산역을 출발하는 청도행 열차를 이용한다. 오전 6시35분, 7시10분, 7시50분, 8시42분 등에 있다. 청도역을 나와 청도터미널에서 동곡·운문사 방면 버스를 타고 동곡에 내리면 된다. 오전 7시40분, 9시20분, 10시40분 출발. 동곡에서는 김전리 갈고개행 새마을 버스를 탄다. 오전에는 8시, 10시10분 두 차례 있다. 부산역에서 오전 7시50분 기차를 타면 청도와 동곡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연결된다.
산행을 마치는 갈고개 휴게소 정류장에서 동곡이나 경산 방향 버스를 타면 된다. 동곡행 버스는 오후에는 5시20분, 7시에 있다. 경산 자인행 버스는 대략 1시간 간격이며 오후 7시, 8시30분, 9시, 9시25분(막차)에 있다. 동곡에서는 운문사에서 청도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운문사에서 오후 3시30분, 5시30분, 7시15분(막차)에 출발하며 동곡에는 15~20분 뒤 도착한다. 자인에서는 경산역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자주 있다. 경산역이나 청도역에서 부산행 열차를 타면 된다.산행을 마치는 갈고개 휴게소 정류장에서 동곡이나 경산 방향 버스를 타면 된다. 동곡행 버스는 오후에는 5시20분, 7시에 있다.
경산 자인행 버스는 대략 1시간 간격이며 오후 7시, 8시30분, 9시, 9시25분(막차)에 있다. 동곡에서는 운문사에서 청도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운문사에서 오후 3시30분, 5시30분, 7시15분(막차)에 출발하며 동곡에는 15~20분 뒤 도착한다. 자인에서는 경산역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자주 있다. 경산역이나 청도역에서 부산행 열차를 타면 된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여행)도덕산 도덕암. 경주의 북쪽에 숨은 듯이 자리 잡은 도덕산 도덕암
암자는 자리한 위치에 따라 여행객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 그 만큼 산자수려한 위치에 터 잡은 암자에 더 많은 호기심을 느끼며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한 암자가 있다. 경주 안강의 도덕산으로 정상이 702m인 수더분한 산이다. 그야 말로 별 특징이 없는 산으로 경주와 영천의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있다. 그래도 경주에서는 제법 높은 축에 들어가는 도덕산 언저리에 작은 암자가 자리 잡고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여행)도덕산 도덕암. 신라 선덕여왕이 찾아 왔다는 도덕산,
이 산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의 선덕여왕이 이곳을 찾아 왔다하여 두득(덕)산으로 불렸다 한다. 어찌 덕만공주와 느낌이 비슷한 것 같다. 그러다 조선중기때 회재 이언적에 의해 도덕산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한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여행)도덕산 도덕암. 신라 경덕왕때 창건된 유서 깊은 고찰 도덕산 도덕암
안강 도덕산 도덕암의 기원은 신라 경덕왕(742년~765년)때 창건 된 암자로 풍진세상을 견디며 천년고찰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원래는 아래 옥산리 정혜사의 12개 부속 암자중 하나였다한다. 어떠한 연유로 정혜사가 패사를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현재는 도덕암만 남겨놓고 모두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도덕암의 사찰 명칭도 창건 당시의 이름이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그 이유는 동방오현의 한사람인 회재 이언적에 의해 뒷산을 도덕산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후에 도덕암으로 부른 것은 아닌지..
지금이야 도덕암 오르는 암자길이 뚫여 승용차도 쉽게 올라오게 되었지만 필자가 처음 암자를 찾을 당시에는 대단한 불심이 아니라면 엄두도 내기 힘든 그런 위치에 있어 그저 절의 명맥만 유지할 정도였다. 최근에 다시 찾아보니 이제는 콘크리트 포장이 된 차도가 뚫여 그때와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여행)도덕산 도덕암. 동해 일출 관망 장소 도덕산 도덕암
이곳 도덕암은 암반을 깍아 만든 터에 제비가 둥지를 틀듯이 바위에 엉겨 붙어 있다. 옥산리 마을에서는 영험이 있는 기도처로 말려져 있다. 대웅전은 앞면3칸에 옆면 1칸의 그야말로 형식만 갖준 모양으로1890년대에 그려진 탱화가 한점 남아 있어 그 이전에도 암자의 명맥은 유지가 된 것 같다.
도덕암에 올라보면 암자의 위치에 놀란다. 앞으로 펼쳐지는 전망은 그야말로 그칠것이 없다. 동해에서 올라오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조망을 가진 암자로 이곳에서 하루 쯤 지낸다면 그야말로 몸에 찌든 때가 정화가 된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불국사 말사다.
고 육영수 여사가 1925년에 태아나면서 자란 곳으로 1950년 박정희 전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생활하였던 곳이다. 인근에 옥천향교가 있어 자연스럽게 마을이름도 교동이 되었다. 불렸다. 교통마을에서는 99칸의 대저택이었던 이곳을 '교동집'으로도 불렸다. 조선 중기인 1600년대 부터 김, 송, 민정승이 차례로 났다하여 삼정승이 살았던 집이라 '삼정승집'으로 더 유명하다.
☞(충북여행/옥천여행)옥천 육영수여사 생가지. 삼정승이 나왔다는 99칸의 대 저택 육영수여사 생가.
1918년 육영수여사의 부친인 육종관씨가 민정승의 후손인 민영기씨에게 매입을 하여 건물의 기단을 높이고 개축을하였다. 조선 후기 충청도 반가의 전형적 양식의 집으로 현재 복원된 건물의 형태를 보면 아랫집, 큰집, 윗집, 사당등 총 13동의 어마아마한 규모로 99칸이 빈말이 아닐 정도다.
☞(충북여행/옥천여행)옥천 육영수여사 생가지. 99칸의 대 저택 육영수여사 생가.
건물은 각기 독립된 형태로 구분이 지어졌고 한켠에 여름철에 음식을 보관하기위해 땅속을 파고 요즘 말하는 석빙고식 냉장고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연자방아와 쌀을 보관한 뒤주 그리고 부친은 승용차를 소유할 정도로 엄청난 재력가로 요즘 말하면 엄친딸로 자라신것 같다.
막상 육영수여사의 살았던 대저택을 보고 막상 여사가 생활하였다는 방을 보면 놀라게 된다. 어머니가 생활하시던 안채에 붙은 골방의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탁자 하나면 한사람이 겨우 누울수 있는 공간이다. 대 저택에서 정작 딸의 방은 왜이리 작았는지 모를일이다.
☞(충북여행/옥천여행)옥천 육영수여사 생가지. 13동의 대 저택 육영수여사 생가 복원.
옥천군에서 2009년에 육영수여사 생가 복원계획을 세우고 민간인이 주축이되어 '육영수여사 생가 복원 추진 위원회'를 발족하고 2003년 부터 2010년까지 37억5천만원을 들여 13동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그당시의 건물 주춧돌과 고증을 거쳐 현재의 생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충북여행/옥천여행)옥천 육영수여사 생가지. 육영수여사 생가 방문 전화사기 주의.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어 있는 육영수여사 생가는 전화 사기의 표적이 되고 있다. 나이드신 어르신께 옛 향수를 자극하여 육영수여사 생가를 방문한다고 하여 건강식품등을 강매하는 일이 뉴스로도 여러번나왔다. 개인적으로도 1만원에 육영수여사 생가지를 방문한다는 전화를 여러번 받았던 터라 궁금하기도 하여 옥천에 출장을 갔다 꼭 한번들러보자며 찾게 되었다. 위치는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313번지 네비에 육영수여사 생가지를 치면 됩니다. 그리고 나이드신 어르신께 고인을 빙자한 상술은 삼가를 해 주면 좋을 것 같다.
위에서 본 육영수여사 생가지 모습(옥천군홈페이지 펌)
복원공사때의 모습. 주춧돌의 흔적을 볼 수 있다.(옥천군홈페이지펌)
복원공사현장(옥천군홈페이지펌)
육영수여사 생가지 옆에 교동의 지명이 생기게 한 옥천향교가 있다. 이곳도 들러보면 좋은데 방문을 해보니 문이 잠겨져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옥천은 한국시단의 거목인 시인정지용의 고향이다. 그의 대표적 시 '향수'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에서 생가앞 실개천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푸른색의 넓쩍한 돌이 놓여 청석교로 불렸지만 현재의 청석교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변해 있다. 바짝말라버린 실개천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지금의 모습에서는 향수의 감정을 느낄 수 없지만 눈을 감고 어린 지용이 이곳에서 뛰어 놀았을 그모습을 그려 본다.
다리를 건너면 먼저 '정지용 생가터'를 알리는 입간판이 있어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검은 빗돌에 새겨진 '향수'를 소리내어 불러본다. 정지용의 향수보다는 더 유명해누구나 알고 있는 이동원 박인수가 부른 '향수'를 생각하며 서정적인 나의 고향 하늘이 향수와 얼버무러져 언듯 언듯 스쳐간다.
☞(충북여행/옥천여행)옥천 정지용생가, 문학관. 향수의 시인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 방문기
시인 정지용의 성장을 보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정지용 사이버 문학관'을 검색해 보면 '1902년 5월15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번지에서 부친 정태국과 모친 정미하의 4대 독자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한약상을 경영하여 별 어려움없이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느해 물난리를 만나 가산을 모두 수마에 잃고 빈털털리가 되어 소년 정지용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된다.
정지용의 지용은 모친이 그를 잉태하였을때 꾼 태몽에서 비롯되었다. “연못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하여 아명으로 지룡이라 하였고 발음만을 차용하여 본명을 지용(芝容)으로 했다한다.
12세에 송재숙과 혼인을 하였고 1918년인 17세때 휘문보통고에 입학하였다. 가정 형편의 어려움을 명석한 두뇌로 극복하여 교비생으로 학교에 다녔다. 2학년인 1919년 3.1운동때 그는 학교 시위를 주동하였다하여 무기정학을 받았고 그해 12월 창간호인 ‘서광’에 그의 유일한 소설인 ‘3인’를 발표하였다.
1923년 휘문고의 교비생으로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여 29년 졸업후 휘문고에 교사로서 첫발을 딛는다. 그의 시심은 6년의 일본 유학시절에서 완성되었다. 그의 대표작인 ‘향수’ ‘고향’ 등 6년간 유학생활을 하면서 옥천 고향과 부모님 생각 그리고 나라를 잃은 설움등 그의 감정이 잘 묻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의 유년기를 보낸 생가터에는 현재 초가집이 그 당시의 모습을 기초로하여 복원되어 있다. 부뚜막에 걸린 가마솥에 수증기를 내뿜어며 밥물이 스며나오고 그 옆에 밥상에는 밥보가 덮혀 있다. 밥상의 주인인 어린 지용이를 기다리는 어머님의 마음을 보게 된다.
장독대와 함께 있는 우물에는 고향의 모습이 어찌이리 똑 같을까. 우물가에서 등물을 치며 뚜레박으로 펀 냉수에다 꽁보리밥을 말아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먹던 그 고향의 향수에 시인 정지용도 얼마나 그리워 하였을까.
정지용 생가와 나란히 있는 정지용 문학관은 시인 정지용의 일대기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와 인간 정지용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학창시절에 모두 다 알고있는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을 청록파 시인이라 한다 정지용은 이분들을 문단에 등단시키는 역활을 하였다. ㅎㅎ 우연인지 1989년 '제1회 정지용 문학상'에 박두진시인이 눈에 뛴다.
그리고 토지의 박경리 선생 사위 김지하선생도 2002년 제14회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1회에는 도종환선생등 모두 쟁쟁한 분들에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필자는 시에 대해 문외한이라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의 포스팅을 하는 자체를 많이 망서렸다. 일반인으로서 시인정지용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아 이분에게 누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정지용 생가, 문학관' 포스팅은 접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옥천을 방문한다면 꼭 들러 보길 추천한다.
울산광역시와 경남의 양산시 밀양시 그리고 경북 청도군과 경주시에 걸쳐져 있는 큰 산군을 영남의 비경이라하여 영남알프스라 부른다. 1000m의 거대한 산군이 얼키고 설키며 용트림하듯이 뒤틀려 솟은 봉우리 봉우리에는 저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영남알프스의 맹주는 가지산이다. 1241m로 정상은 피라미드와 흡사하다. 그 꼭지점에서 세개의 능선을 만들어 달려나가니 낙동정맥과 운문지맥의 분기점이다. 능선과 능선 사이에는 바위가 깎여 나가고 그곳으로 골이 생겨 물이 흘러 간다.
가지산정에서 흘러 내리는 많은 계곡중에서도 유독 정상에서 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학심이골이라 칭한다. 이름처럼 이계곡에 학이 노닐었는지는 모르지만 계곡은 그야 말로 선경이라 하늘의 선녀가 학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해도 믿을것 같다.
30m 높이의 학소대에서 학심이 골은 절정을 이루는데 열린 하늘에서 암벽을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에 그만 어안이 벙벙해진다.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에 무지개가 서려있어 더욱 신비감을 자아낸다. 바위 한쪽에 학소대란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듯 숨어 있는 폭포가 흡사 학의 둥지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아늑하다.
황계복이 쓴 '영남알프스'에는 "학심이골의 비경은 학소대 폭포다. 폭포는 제1폭포, 제2폭포, 쌍폭으로 나누어진다. 모두 그 규모가 웅장하고 경관도 수려하다. 주변의 깎아 지른 암벽과 깊고 넓은 소(沼)는 세속에 찌든 인간의 마음을 확 씻어줄 것만 같다. 그런데 계곡 깊숙이 숨어 있는 높이 30m의 이 빼어난 폭포를 보는 청도 사람들의 표현은 좀 덤덤하다".고 표현하였다.
영남알프스의 북알프스는 운문사에서는 자연휴식년제라하여 항상 입산을 통제하여 왔다. 그러나 비경의 학심이골을 보기 위해서 가지산 능선이나 배너미재등에서 이곳으로 내려와 찾곤하였는데 2014년 부터는 이곳을 '운문산 생태 환경 보존 지역'으로 묶어 출입을 작정하고 막을 태세다. 이때까지 눈감아준 도둑산행은 내년부터는 대구 환경청에서 사법권을 발동하여 모두 벌금형을 때린다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사리암 주차장에서 심심이계곡과 이곳 학소대까지는 인터넷으로 회원을 받아 앞으로 운행을 한다고 한다. 물론 자연 해설사가 인솔하에 줄서기 관광을 이곳에서도 내년부터 실시를 한다네요. 이제 산행도 문화재 관광처럼 깃발을 세우고 줄을 세워 다니는 시대가 찾아 온것이다. 자연의 보고인 학심이골의 비경 이참에 함 찾아가 더위를 시켜보세요. 올해는 괜찮다는 상주 관리인 이야기. 그러나 사리암주차장에서는 여전히 막고 있어 들어갈수 없다.
금오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는 섬으로 2000여개의 유.무인도 중에서 21번째의 섬이다. 금오도에서 대표되는 산은 대부산으로 더 알려진 매봉산이며 함구미에서 시작하여 우학리의 검바위까지 산행을 할 수 있다. 섬 산행이다 보니 육지에서는 배시간등 제약이 따라 여천등에서 산행을 마무리 할 수 밖에 없다. 금오도는 당일로 찾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 여행지로 1박2일이나 2박3일 일정으로 찾는다면 더 없는 여행이 될 것이 확실하다. 첫날은 금오도 매봉산 산행. 그리고 둘째날은 금오도 비렁길. 셋째날은 금오도와 안도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요즘은 외지인에게는 매봉산 산행 보다 금오도의 비렁길이 더 알려져 있다. 1코스인 함구미 선착장에서 시작하여 5코스의 장지 마을까지 장장 23km의 긴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이다. 둘레길을 걷는 내내 나타나는 새로운 해안선은 둘레길 걷기의 묘미가 아닌지. 금오도 비렁길도 금오도 주민이 외지인에게 가장 추천하는 코스가 있다. 최고의 코스로는 1코스~3코스로 추천을 하는데 그중에서 금오도 주민은 2~3코스가 가장 좋으며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코스를 단연 금오도비렁길의 으뜸 코스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금오도 비렁길은 해안의 기암절벽을 따라 개설된 걷기 코스로 둘레길 걷기의 선풍을 타고 돌풍을 일으키며 여수시의 핵심 코스가 되었다.
우학리 남면 면사무소 앞 버스 정류장.
안도대교가 보이는 장지마을
장지마을 대합실 출발.
200년된 보호목 노거수
장지입구 이정표
☞(전남여행/여수여행/금오도비렁길)금오도비렁길. 금오도비렁길은 벼랑의 여수 사투리,
‘비렁길’은 ‘벼랑’의 우리말로 여수 사투리이다. 금오도 비렁길의 대부분은 금오도 주민들이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주민의 삶의 길로 이길을 따라 땔감과 낚시등을 하러 다녔다. 금오도 비렁길의 특징은 우선 하늘을 가리는 빼곡한 숲길이다. 동백나무와 해송이 대부분 숲길을 이루며 해안 절벽을 에돌아 이어지는 발길은 금오도 만의 매렷있는 둘레길이다. 보통 금오도비렁길과 매봉산 산행은 함구미 마을에서 시작을 한다. 그러나 이번 금오도 비렁길은 역으로 5코스 장지마을 대합실에서 시작을 한다. 금오도 매봉산을 산행한 뒤 우학리에서 하루를 자고 섬을 빠져 나갈 요령이라면 이 방법도 추천할만하다.
본격적인 비렁길 들머리 5코스 출발.
숲구지 전망대
막포마을터의 운치 있는 길.
왼쪽의 충산 모습.
심포마을
☞(전남여행/여수여행/금오도비렁길)금오도비렁길. 금오도비렁길 둘레길 경로.
비렁길 걷기는 5코스의 종점인 여수시 남면 금오도 장지마을의 '장지대합실'에서 떠날 준비를 한 후 출발한다. 숲구지 전망대~막포 전망대~막개 삼거리~심포마을(5·4코스 경계)~온금동 전망대~온금동~사다리통 전망대~학동 삼거리(4·3코스 경계)~갠자굴통 삼거리~매봉 전망대~갈바람통 전망대~직포 삼거리(3·2코스 경계)~촛대바위 전망대~굴등 전망대~두포 삼거리(2·1코스 경계)~신선대~대부산 삼거리~초분~송광사터~수달피비렁 전망대~미역널방을 거쳐 함구미 선착장에서 마친다.실제 거리는 23㎞ 정도로 답사시간은 7시간30분~8시간, 휴식을 포함하면 9~10시간 안팎 걸린다
심포마을의 200년된 소나무
심포마을 쉼터에서 왼쪽으로 꺾는다.
온금동 전망대.
☞(전남여행/여수여행/금오도비렁길)금오도비렁길. 금오도비렁길 5코스 출발은 장지마을.
5코스로 가기위해서는 남면사무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안도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한다. 안도대교가 보이는 장지마을에 내리면 선착장에 ‘장지대합실’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둘레길이 시작된다. 금오도 비렁길에는 갈림길 마다 안내 이정표가 꼼꼼히 설치되어 길을 잃어 버릴 일은 드물다. 그 만큼 잘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수령 200년의 팽나무 보호수를 지나면 역순이다 보니 곧 비렁길 '장지 입구' 이정표와 만난다. 여기서 정면의 마을을 빠져 나가는 오르막 콘크리트 길로 간다. 답사로 오른쪽에 구름을 이고 있는 산은 봉수대가 있는 망산(341m)이다. 조금만 올라가면 길이 갈라지며 올라온 장지마을과 안도의 풍광이 그림같이 잔잔하다. 본격적인 비렁길의 시작이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돌담으로 난 오솔길로 들어선다. 망산 허리를 돌아가는 길로 남해 섬 산행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동백나무가 우거져 있다. 너덜길 중간에 숲구지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고 작은 너덜을 지나면 막포 전망대다. 이곳을 벗어나면 주민들이 살았던 곳으로 보이는 막터에 도착된다. 석축을 쌓았던 집터 같은 흔적에 지금은 밭 고랑이 되어 있는 운치 있는 길이다. 곧 콘크리트 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왼쪽 충산으로 내려가는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일종고지 0.7㎞'로 흔적이 드물며 잡풀이 우거져 길 상태는 좋지 않아 보여 심포마을로 직진한다. 포장 된 도로를 내려가면 5코스와 4코스 경계인 심포마을이다.
사다리통전망대
매봉전망대
☞(전남여행/여수여행/금오도비렁길)금오도비렁길. 금오도비렁길 둘레길 최고의 코스에 꼽혀.
심포마을 삼거리에 수령 150년의 보호수 소나무 두그루가 운치있게 서 있다. 마을 앞 해안도로를 끝까지 걸어면 버스정류장이고 정자 쉼터가 있는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오른쪽 방향인 도로를 직진 하면 우학리 남면사무소 방향이며 비렁길은 왼쪽으로 꺾어 방파제 길을 간다. 방파제 끝에 설치된 목재 덱 탐방로를 거쳐 15분 정도 에돌아가면 바위 벼랑 위의 온금동 전망대다. 전망대에서 보면 걸어온 5코스 해안의 충산이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벼랑의 여수 사투리인 비렁길엔 로프와 난간이 설치돼 있어 둘레길의 안전에 많은 신경을 섰다. 70~80m 높이의 해안에서 솟아 오른 벼랑길을 오르내리며 20분을 더 가면 사다리통 전망대다. 과연 금오도비렁길의 속살를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해안길이다. 모퉁이를 돌면 등대가 보이고 학동 포구 쪽으로 해안선이 깊숙이 들어간다.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면 곧 4코스와 3코스 경계인 학동 삼거리다.
갈바람통
갈바람통전망대
촛대바위
굴등전망대 갈림길
☞(전남여행/여수여행/금오도비렁길)금오도비렁길. 금오도비렁길 매봉산 전망대 오르막 벅차.
시멘트 길을 따라 가면 울창한 동백나무 숲으로 올라간다. 20분쯤 편안한 숲길을 걸으면 갠자굴통 삼거리다. 오른쪽 능선을 넘어가면 직포로 바로 가는 편한 길이며 왼쪽 매봉 전망대로 가는 길은 비렁길 코스 중에서 가장 힘든 오르막 구간이다. 매봉 전망대를 오르기 위해서는 덱이 설치된 계단을 올라야 한다. 해발 170m 높이의 매봉 전망대는 비렁길 최고의 전망대를 자랑하지만 이날 가랑비와 함께 운무가 많이 끼어 매봉전망대의 장관을 볼 수 가 없어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매봉전망대는 비렁길 코스 최고 높이며 매봉 정상은 해발 194m이다. 정상을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돌아 능선을 따라 길게 뻗은 해안선을 내려간다. 동백 숲 속 급경사 길을 내려가면 다시 암반 전망대가 나타난다. 매봉산을 떠 바치고 있는 벼랑은 에메랄드 물빛과 함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10분 정도면 어디선가 파도가 바위와 부딪혀 내는 울림이 들린다. 바위가 'v'자로 찢어진 협곡을 이곳 마을에서는 ‘갈바람통’이라 부른다. 그 옆 암벽이 갈바람통 전망대다. 10분 정도 동백 숲 속 내리막을 지나면 직포 입구고 해안선을 따라 걸어가면 직포삼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이곳이 3코스와 2코스 경계인셈이다.
두포마을 1코스 종점
☞(전남여행/여수여행/금오도비렁길)금오도비렁길. 금오도비렁길 촛대바위와 볼거리 많아.
콘크리크 포장 길을 5분 정도 가다 도랑을 건너면 주택이 나오고 갈림길에 이정표는 오른쪽 방향을 가르킨다. 10여 분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촛대바위 전망대다. 뒤쪽으로 뾰쪽한 촛대바위가 버티고 있다. 산허리를 따라 15분가량 가면 집 몇 채를 지나게 된다. 굴등마을로 도로의 이정표는 왼쪽으로 굴등전망대를 알리고 있다. 왼쪽 덱 계단으로 50m만 내려가면 굴등 전망대다. 되돌아 올라오면 두포 삼거리에서 올라오는 콘크리트 길이 20분 정도 이어진다. 거북 모양의 샘터를 지나면 2코스와 1코스의 경계인 두포 삼거리에 닿는다.
신선대.
대부산 갈림길
초분.
☞(전남여행/여수여행/금오도비렁길)금오도비렁길. 금오도비렁길 초분등 이색 볼거리.
두포와 함구미 사이의 1코스는 5개 코스 중에서 가장 긴 코스지만 경사가 완만하여 크게 힘들지 않다. 두포마을의 해안 길을 끝까지 가면 정면에 꼭 재실 건물로 착각하기 쉬운 공중화장실과 만난다. 이 옆 대나무 숲으로 1코스 비렁길이 이어진다. 30분 정도면 벼랑위의 신선대에 오른다. 걸어온 해안선과 송광사 절터 방향의 해안선이 신선이 되어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다. 이곳으로 가까이 가다보면 더욱 많은 비렁길 탐방객을 만난다. 보통 당일 비렁길 코스는 1코스 또는 2코스 까지 걷고 금오도를 빠져 나가는게 일상이 되 이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 같다. 비렁길의 참 맛을 느낄요령이라면 풀코스인 5코스까지 걷기를 권해본다. 완만하고 편안한 숲길이 하늘을 완전히 닫아 버렸다. 중간에 거북이 입에서 뿜어내는 샘에서 목을 축인 후 임도 길 같은 넓은 길을 따라간다. 20분이면 금오도 산행길인 대부산(매봉산) 삼거리 이정표가 있다. 비렁길은 왼쪽으로 꺾는다. 곧바로 남해 섬마늘의 장례 풍습인 초분 안내판을 지나 15분이면 함구미가 내려다보이는 이정표 삼거리다. 오른쪽으로 함구미로 바로 내려가진다.
함구미마을.
함구미마을 갈림길.
송광사터.
비렁길 전망대.
☞(전남여행/여수여행/금오도비렁길)금오도비렁길. 금오도비렁길 미역 널방 최고의 비렁길 찬사.
체력과 많은 시간으로 인해 뱃 시간이 촉박하다면 이곳으로 탈출하면 된다. 송광사 절터 방행은 왼쪽 오르막이다. 콘크리트 길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가면 높은 암벽 아래 제법 너른 밭이 있는 곳이 옛송광사 옛터다. 전설에 의하면 "보조국사께서 모후산에 올라가 명당의 절터를 찾기위해 나무로 깎은 새 세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한 마리는 현재의 순천 조계산 아래 송광사 국사전에 앉고 한 마리는 고흥군 금산면 송광암에, 마지막 한 마리는 이곳 여수의 금오도에 앉았다. 이를 삼송광이라 하며 고려 명종 25년인 1195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이곳 금오도에 절을 세운 기록이 있어 이곳을 송광사터로 추정된다". 곧 바위 절벽에 덱으로 만든 수달피비렁 전망대를 지난다. 덱 탐방로를 따라 해안절벽을 아스라하게 벗어나면 왼쪽 벼랑이 솟구쳐 있다. 미역널방으로 설치미술 작품이 운치를 더 한다. "마을 주민이 채취한 미역을 지게에 지고 이곳에 올라와 미역을 널어 말렸다는 미역널방에는 풍수혈로 바둑혈이라는 명당터다. 현재에도 미역널방 중간에 작은 무덤이 한기 있고 바둑돌 역활을 하던 작은 바윗돌이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한다. 이제 함구미까지는 본격적인 하산길로 높게 돌담이 쳐져 마을의 흔적을 보이는 용두마을을 지나 30분이면 함구미 선착장에 닿는다.
여수에서 금오도로 들어가는 길은 선착장이 3군데다. 일단 부산서부터미널에서 여수 가는 버스는 오전 7시30분(첫차), 9시30분 등에 있고 노포동 버스터미널에서는 오전 6시35분(첫차), 7시25분, 8시35분 등에 출발한다.
여수에서 금오도로 들어갈 땐 주로 여수항과 신기항을 이용한다.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면사무소가 있는 우학행 배가 오전 6시20분, 오후 2시30분에 출발하고, 함구미행은 오전 6시10분, 9시40분, 오후 2시50분에 있다. 돌산도의 남쪽 끝인 신기항에서 금오도 여천으로 가는 배는 운항시간이 가장 짧고 편수도 많다. 오전 7시45분, 9시10분, 10시30분, 낮 12시, 오후 2시30분, 4시, 6시에 신기를 출발하며 30분 뒤에 다시 여천을 출발한다. 여수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정류장에서 신기를 거쳐 향일암으로 가는 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5코스 장지부터 시작한다면 마을버스를 이용하기는 어렵다. 우학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오전 7시35분 한 차례 장지로 들어가는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아님
금오도에서는 버스 시간이 맞지 않을 땐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정지운수 (061)665-9544, 남면택시 (061)666-2651, 2652
독락이란 혼자 즐긴다는 뜻이다. 경주시 안강읍 옥천리에는 회재 이언적이 만년에 내려와 소일하며 즐겼다는 독락당이 있다. 자계천변에 다리를 걸치면 서 있는 독특한 계정을 보면 그의 풍류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마 그래서 혼자로도 즐길 수 있는 곳은 아닌지.
☞(충북여행/옥천여행/독락정)옥천 독락정. 금강천변에 혼자 즐긴다는 옥천의 독락정.
경주 안강의 독락당과 같은 당호를 걸고 있는 곳이 또 있다. 서로의 살아 온 시대는 다르지만 충청북도 옥천군 안남면 안주리에 강물이 휘감아 도는 남강천변에 홀로 즐기기 좋은 정자가 서 있어 안강의 독락당과 비교가 된다. 흐르는 강물을 그저 바라만 보아도 괜찮을 것 같은 그런 곳이다.
☞(충북여행/옥천여행/독락정)옥천의 독락정. 초계주씨 주몽득이 창건한 독락정.
문화재청의 자료를 보면 "독락정은 조선 시대 40년(1607)절충장군 중추부사의 벼슬을 지낸 주몽득이 이괄의 난을 진압한 후 그의 나이 57세에 이곳에 독락정을 창건하였다. 원래는 주변의 경치가 너무 빼어나 혼자 즐기며 주위의 선비들과 함께 이곳에서 담론과 풍류를 즐기는 정자 였지만 후 대에 와서는 유생들의 학문을 연구하는 서원으로 바뀌었다. 독락정은 1772년인 정조 48년에 고쳐 지은 후 여러번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건물규모를 보면 정면3칸에 옆면 2칸으로 여덟팔(八)자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독락정 현판은 당시 군수였던 심후의 필체며 마루에는 송근수의 '율사기문'등 10여편점의 기문 액자가 걸려 있다".
ㅋㅋ 금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다 잡아 먹은 독락정 양수장.
☞(충북여행/옥천여행/독락정)옥천의 독락정. 독락정 양수장으로 주변 경치를 망쳐.
지금의 독락정은 어떠한가. 주몽득선생이 이곳에 독락정을 지을 당시와는 현재 많이 다르다. 그 당시 독락정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정자을 휘감아 돌듯한 착각에 빠질듯 금강의 물줄기는 흘러갔고 여름이면 학동들이 흐르는 개울에서 조잘거리며 물고기를 잡았던 아름다운 모습에 주몽득 선생은 혼자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독락정 양수장 건물이 정면에 턱 버티고 있어 지금은 한낮 그저 그런 풍경을 보여 준다. 굳이 아름다운 이곳에 정수장을 세워야 했을까 꼭 세워야 했다면 조금 비켜서서 독락정을 세웠다면 독락정의 그 값어치는 더욱 높혀 지겠다.
☞(충북여행/옥천여행/독락정)옥천의 독락정. 문화재 관리 소홀이 아쉬운 독락정.
주몽득의 독락정을 찾아 솟을 대문을 들어서니 어디선가 왱왱왱~~~하는 사이렌 소리가 귓전에 작게 들린다. 눈앞에 벌들이 자신의 할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듯 주인이 되어 독락정 앞 뜰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객인 우리는 그 벌들을 피한다고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정작 벌은 마루 아래에 난 구멍으로 열심이 들락날락을 하고 있다. 벌들이 현재 집을 지었는데 이곳 문화재를 담당하시는 분은 무엇을 하는지 문화재로 지정을 하였다면 그에 따른 관리를 하여야 하는데 문화재자료 23호란 말이 무색하다. 문화재를 안심하고 바랄 볼 수 있는 조처가 아쉽다. 마루바닥 아래다 보니 송근수의 율사기문등 10여점의 기문액자는 볼 엄두도 못내고 옆으로 돌아 뒷 모습을 열심히 보고 나오는 수밖에 없다.
경주의 대표적인 양반마을은 양동마을이다. 양동마을의 유래를 보면 경주(월성) 손씨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1433~1484)선생이 청송 안덕에서 560여년전에 류복하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처가인 양동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아 살면서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여강이씨 찬성공 이번(1463~1500)과 손소의 딸이 혼인을 하면서 처가인 양동에 이주하여 살았다. 두분 사이에 큰 아들로 동방오현의 한사람인 회재 이언적을 낳았다. 결국 회재 이언적은 손소의 외손자로 이곳 양동마을에는 손씨와 이씨가 서로 마을을 형성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양동마을은 어떠한 특징이 있는 마을일까. 손소도 장가를 들어 처가인 이곳에 이주하였고 그의 사위인 이번도 이곳으로 이주와 살면서 처가입향의 마을로 불린다. 그러나 처음 이 마을에 입향한 손소의 처 류씨부인은 그 당시 무남독녀였던 관계로 풍덕 류씨는 절손되어 현재에 외손인 손소의 문중에서 제향을 받들고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강동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의 인물. 양동마을
양동마을은 조선 중기 때 부터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조정에 진출한 사림들에는 세조 5년(1459년)에 손소공이 문과에 급제를 하여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여 큰 공을 세워 공신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둘째 아들인 우재 손중돈은 성종2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 ,우참찬등 조정의 요직를 두루 거치며 청백리에 올랐다. 그리고 손소의 외손자인 대 유학자이자 경세가인 문원공 회재 이언적이 배출되면서 퇴계 이황에 앞서 성리학의 기틀을 만들며 해동부자라 하였다. 회재이언적은 동방5현의 한분으로 종묘배향과 문묘에 종사되어 역대임금과 공자와 함께 위패기 모셔지고 전국의 20여곳의 서원에서 배향되기도하였다. 양동마을에서는 월성손씨와 여강이씨에서 모두 문과 26명, 무과14명 사미76명으로 과거에 급제한 분만 116명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은 주차장을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먼저 만나는 건물이 양동마을 문화관으로 조선시대 양동마을의 모습과 양동마을에서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 미니어쳐로 제작이 되어 한눈에 볼 수 있게 편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무료로 볼 수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관람료 4천원.
이곳을 지나면 매표소 건물이 나온다. 입장료는 4천원. 사실 작진 않은 관람료라 많은 가족이라면 부담도 간다. 그러나 이곳은 조선시대 양반 마을의 전형을 볼 수 있고 500년전의 건축물을 볼수 있는 몇안되는 곳 중의 한곳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양동초등학교를 지나면 양동마을의 전경이 펼쳐진다. 정면에 먼저 크게 보이는 가옥이 향단건물로 전체를 차근차근 돌아보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시간 제약상 다 볼 수는 없고 양동마을에서 대표적 가옥으로 15~16세기에 지어진 관가정, 서벽당, 향단, 무첨당을 중심으로 보면서 주위에 몇군데를 관람해도 두시간은 후딱 지나가 버린다.
필자는 양동마을의 매점에서 왼쪽으로 관가정을 먼저 관람을 하기 위해 왼쪽으로 걸었다. 관가정 아래 양동마을의 주민들이 현재 생활하고 있는 초가집이 많이 보인다. 주민들의 피혜가 가지 않도록 그냥 겉 모습만 보고 지나친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관가정.
먼저 관가정 입구에 늘어진듯 서 있는 고목나무에 눈길이 간다. 이곳에서 오른쪽 오르막을 가면 관가정의 솟을 대문이 나타난다. 관가정으로 중종때 청백리에 옹았던 우재 손중돈선생의 옛집이다. 관가정의 앞쪽은 탁 트이게 하여 낮은지대에서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건물 배치를 한것이 특이하다.
관가정은 '농사 짓는 광경을 내려다 보는 정자'라는 뜻으로 손중돈은 이곳 관가정 의 탁 트인 누마루에 올라 세상사 다 잊고 안강 들판을 바라보았을 것으로 보인다.이름그대로 누마루가 있는 정자로 양동 마을 초입의 물봉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관가정을 나와 영귀정과 설천정 관람을 위해 관가정 뒤 산길을 따라 간다. 먼저 영귀정 가옥과 만난다.
영귀정
영귀정은 향토문화재로 회재 이언적 선생이 만년에 이곳에 모옥을 지어 놓고 시를 읊으면서 산책을 하던 곳으로 후손들에 의해 정자를 지어 선생을 추모하고 있다.
설천정사는 향토문화재로 회재 이언적의 세째 손자였던 설천정 이의활공이 학문을 강학하기 위해 지었던 정자라 한다. 그 앞에 초가집이 한동 지어져 있다.
설천정사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무첨당.
무첨당은 보물제 4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기왓집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자이자 문신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이 경상감사 재직때 지은 종가별당이다. 이언적의 아버지 이번이 생활하였다는데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의 장손자인 이의윤의 호로'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무첨당에 걸린 편액중에 흥선대원군이 이곳 무첨당에서 하루 묵고 남겼다는 '좌해금서' 그 뜻은 '선비는 책을 읽어야 하지만 풍류도 알아야 한다'며 조선 선비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하였는데 필체를 보면 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대성헌은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제34호로 높은 언덕에 위치하며 18세기 중엽에 지어졌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며 'ㅁ'자를 이루고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낙선당
낙선당은 손소의 셋째 아들인 만재 손숙돈이 분가 할 때 지은 건물로 낙선당은 병자호란때 순절한 손종로(1598~1636)의 호에서 따 왔다.
낙선당은 1540년대 건물이라지만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천석꾼의 집으로 창고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 건물의 구조를 보면 대문채 사랑채 안채로 나누며 중문채와 함께 'ㅁ'의 형태지만 조금은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서백당.
서백당은 중요 민속문화재 제23호로 당호의 뜻은 '매일 하루에 참을 인(忍)자 100번을 쓴다'는 의미이며 서백당의 유래를 보면 어느 해 중국에 9대가 한집안에 살았는데 왕이 이곳을 지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어찌 9대가 이리 한집에 살 수 있었냐고 물어니 그는 붓과 종이를 들고 오더니 참을 인(忍)자를 100번 쓴다음 임금에게 이러면 안될 것이 없다하였다. 월성(현 경주)손씨 손소(1433년)~1484년)가 이곳에 처가 입향을 하면서 이곳에다 집을 지었는데 이곳이 월성손씨의 종택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향단.
향단은 보물제412호이며 회재 이언적(1491년~1553년)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때 병환중인 모친을 돌 볼 수 없어 중종이 지어준 건물이다. 다시 이언적이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그의 동생 이언괄에게 물려 준 후 여주이씨 향단파의 종가가 되었다. 향단이란 이언괄의 손자인 향단공 이의주의 호에서 이 집의 이름을 따왔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정충비각.
정충비각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6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비각은 조선인조 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인 버린 손종로와 그의 노비 억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7년에 세웠다. 손종로는 광해군 10년인 1618년 무과에 급제하여 병자호란때 쌍령전투에서 그의 노비 억부와 함께 전사하여 그의 시체를 찾지못하고 옷을 넣은 관으로 장례를 치렀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옥산서원.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는 회재 이언적선생의 고향이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1491~1553)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그의 사후인 선조 5년인 1572년에 경주부윤의 이제민이 지방 유림들과 함께 세웠다. 옥산서원 입구에서 150m의 진입로는 자계천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이 숲길을 이루어 햇볕 한 점 들어올 틈이 없다. 시냇물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이곳 옥산서원은 그야말로 낙원이 따로 없을 것 같은 곳이다.
먼저 정문에는 ‘역락문(亦樂門)“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는 논어의 학이편에서 '유붕이자원방래 불역락호아(有朋而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따왔다한다. 그 뜻은 서원을 찾는 손님에게 더 없이 정답고 편안하다는 의미로 당대의 명필가 한석봉의 필체라 한다. 또한 유생들의 휴식장소인 무변루와 강당인 구인당의 필체도 한석봉의 글씨이다. 구인당의 맞은 편에 흰바탕에 검은 글씨인 옥산서원의 현판 글씨 또한 추사 김정희의 필체로 알려져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독락당.
독락당은 건물 자체가 보물 제413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는 동방오현의 한분인 회재 이언적이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지은 사랑채다. 그는 이곳에 앉아 책을 보며 소일을 하였다. 현재에도 그의 후손이 거주를 하고 있으며 안으로 빼꼼히 보니 가정집이라 출입을 삼가해 달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독락당을 못보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가장 멋스런 건물은 자계전에 반쯤 발을 빠트리고 있는 독특한 계정이다. 널따른 암반위에 생긴 그대로 자연석을 이용해 쌓아 올린 2층 누각은 계곡과도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음식은 지방에 따라 지역색을 가지고 있다. 경상도식 전라도식 서울식등으로 불리는 음식을 보면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지방색이 도드라진 음식중에서도 추어탕도 그중 한 품목이다. 경상도식 추어탕, 전라도식 추어탕, 서울식 추어탕등으로 광범위하게 나누지만 지역으로 따지면 전라도는 남원식, 경상도는 청도, 서울로 구분하며 각자의 특징을 살펴보자.
서울은 추어탕 보다는 추탕으로 불린다. 그리고 미꾸라지가 통마리로 들어가 있으면서 매운탕 처럼 양념장이 들어가 있다. 전라도의 남원 추어탕을 보면 국물이 뻑뻑할 정도로 걸죽하고 경상도 식인 청도 추어탕은 먼저 국물 자체가 맑은 국물이다. 남원 추어탕과 같이 미꾸라지를 채에 걸러 갈아서 나오지만 청도추어탕은 추어탕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깔끔한 맛이다.
청도역전 앞에 줄줄이 늘어선 추어탕에 모두 다 원조를 내세우고 있다. 이골목에서 가장 먼저 터를 잡은 곳은 의성식당이며 추어탕을 체계화 한 곳은 향미식당이 아닐까 싶다. 농림수산부에서 주관하는 '한식 세계화 추진 전략'에서 향토 음식 전문가 양성 추어탕 조리 교육을 담당한 최달선씨가 이곳 사장님이시다.
향미식당의 좋은 점은 주위의 추어탕 집 보다 차려나오는 반찬의 종류가 더 다양하다. 그리고 이집에서 떨어지면 할 수 없지만 꼭 나오는 게 민물쪼림으로 사실 필자는 이 쪼림 대문에 찾아 갈 정도다. 일전에 찾아 갈때는 마침 민물쪼림이 떨어져 못 먹고 온 적이 있다. 그때는 얼마나 섭섭하던지....
이날은 민물 쪼림은 둘째 치고 늦은 시각이라 들어가니 영업을 종료한다고 간판 불 꺼진 것 못보았느냐는게 아닌가. 미안합니다며 퍼뜩 한그릇만 하고 가입시더하니 자리에 앉아란다. 그리고 조금 있어니 다른 손님이 두분 더 들어와 체면 치례는 면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방법은 먼저 미꾸라지를 해감을 시켜야 합니다. 미꾸라지에다 굵은 소금을 넣어면 어찌 될까요. 따가와서 저거끼리 몸을 비비고 난리아닌 난리를 칩니다. 그럼 손으로 실실 치대면 끈적끈적한게 막 나오고 해감이 됩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비린네를 없에주고 흙냄새등 모든 것을 잡아 줍니다. 그리고 씻어 냄비에 넣고 끓이며 나중에 배추등 갖은 야채를 넣고 더 끓이면 됩니다.
☞(전남여행/여수여행/금오도여행)금오도 매봉산 산행. 금거북이를 닮았다는 금오도 매봉산 개요.
대한민국의 부속도서는 유,무인도 합하여 2000개 쯤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다도해라는 말을 실감을 한다. 그럼 가장 큰 섬은 어디일까. 물론 제주도, 두번째가 거제도. 3번째가 진도이다. 여수의 금오도는 27㎢로 21번째로 그래도 큰 축에 들어가는 섬이다. 금오도는 여수 돌산도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있는 섬으로 여수시 남면에 속한다. 금오도는 안도 연도를 두고 있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지역에 속하며 예로부터 숲이 우거져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인다고 거무섬으로 부르던 것이 한자로 표기하면서 금오도가 되었다는 설과 섬의 형상이 금빛의 큰 거북이를 닮았다하여 금오도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사슴 사냥을 하였다하며 그야 말로 신선이 거처하는 신비스러운 섬으로 여겼고 수림이 우거진 소나무로 인해 민간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며 봉산으로 지정하여 공도로 관리를 하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 금오도를 민간인에게 대부를 하여 사람을 들어와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 영향으로 매봉산을 대부산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현재 그 이름이 굳어버렸다. 그러나 금오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대부산으로 불리는 매봉산이다. 산아래 마을 이름에서 따온 송고산으로도 불리지만 외지인에게는 대부산으로 더 알려져 있어 금오도를 찾는 등산객은 대부산이 아닌 매봉산으로 꼭 불러주면 좋을 것 같다.
돌산도의 신기항에서 금오도 여천선착장으로 출발
정면에 금오도의 매봉산이 보인다.
여천 선착장으로 하선하는 등산객들
함구미로 이동하면 만나는 비렁길 입구 선착장
☞(전남여행/여수여행/금오도여행)금오도 매봉산 산행. 금 거북이를 닮았다는 금오도 매봉산 산행 경로.
금오도는 매봉산 종주 산행을 주로 한다. 함구미에서 검바위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금오도를 대표하는 산행로다. 매봉산 산행 경로를 보면 금오도 함구미 선착장~매봉산 등산로 입구~중터~두우고개(금오도 비렁길 갈림길)~전망대~팔각정~암릉 전망대~매봉산 정상(대부산)~370m봉~문바위~여천 갈림길~333m봉~칼이봉~느진목재(대유 사거리)~소유 사거리~우물 삼거리~옥녀봉~252m봉~검바위~우학리 남면면소재지에서 산행을 마친다. 검바위까지 산행거리는 11㎞며 산행시간은 4시간30분~5시간 안팎이다. 매봉산 옥녀봉 산행은 해안에 바로 솟은 산이라 낮은 산임에도 오르내림이 잦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 된다, 휴식을 포함해서 6시간은 잡아야 한다. 당일로 금오도로 들어와서 전체 산행을 하고 배편을 맞추기는 까다롭다. 보통은 배시간을 계산하여 함구미에서 여천 갈림길 또는 느진목재에서 하산을 한다. 1박2일로 잡아 산행도 하고 금오도 비렁길도 함께 하길 권해본다.
매봉산 산행은 주로 함구미 선착장에서 시작한다. 교통이 편리한 잇점 때문이며 선착장에서 산을 바라보면 비렁길 안내판과 안내도가 붙어 있다. 오른쪽은 금오도 비렁길 출발 지점이고 매봉산 등산로는 여천에서 왔다면 왼쪽 도로를 되돌아 올라가야 한다. 만나는 도로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금오도 안내도와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콘크리트 길을 들서면 민가와 만나고 100m가량 올라가 마지막 집을 지나면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좁은 산길을 오른다. 10분가량 오르면 석축 앞에 등산로 표지판이 있다. 곧 대나무 숲을 지나는 중에 삼거리다. 예전의 중터 마을터로 이곳에서 매봉산을 오르는 길과 서로 만난다. 돌담 사이 오른쪽 길로 오른다. 폐가가 여럿 있고 산길은 납딱한 돌이 깔려 있다. 곧 하늘이 열리고 비렁길 갈림길을 알리는 삼거리다. 여기서 오른쪽 길은 비렁길 1코스로 연결되며 매봉산 등산은 왼쪽 오르막이다. 10분 정도면 작은 너덜을 지나며 남쪽으로 1코스 비렁길의 논밭이 보이며 조망이 트인다. 다시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으로 들어서면 오르막 산길이 이어진다. 섬 산행이라 그런지 습기 눅눅한 돌이 깔려 있어 미끄러 지기가 쉽다. 다시 10여 분 경사가 급한 길을 오르면 왼쪽으로 작은 바위 전망대가 열린다. 출발지인 함구미가 조망된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오르면 금오도 등산로 안내도가 있는 389m봉을 오른다 이곳에 매봉산 정상 보다도 약7m 쯤 더 높다. 정상을 가기 위해서 직진하면 가야 할 능선이 남쪽으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곳에 2층 팔각정이 설치되어 있다. 왼쪽 돌산도 사이에 점점이 떠 있는 대두리도, 나발도, 월호도, 화태도 등이 숨바꼭질 하듯이 점점히 포개어져 있다. 정면에 매봉산 정상과 그 뒤로 옥녀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길게 뻗어있고 멀리 망산과 안도의 모습도 보인다. 15분 정도면 매봉산 정상 직전의 작은 암릉 전망대와 만난다. 암릉 위에 올라서면 걸어온 능선과 돌산도 방향으로 조망이 시원하다. 진행방향에서 오른쪽에는 비렁길 1코스의 종착점인 두포마을이 작게 보인다. 곧이어 매봉산 정상이다.
매봉산 아래 전망대로 두포가 내려다 보인다.
대부산으로도 불리는 매봉산 정상.
암반의 전망대로 이어진다.
능선에서 바라본 송고마을 멀리 돌산도 사이의 섬들을 볼 수 있다.
☞(전남여행/여수여행/금오도여행)금오도 매봉산. 금거북이를 닮았다는 금오도 매봉산 낮지만 긴 섬 산행.
정상 주위의 잡목으로 조망이 어렵다. 지금부터 여천 갈림길 까지는 중간중간 바위전망대가 연속으로 펼쳐진다.
편안한 능선을 따라 주위의 조망도 즐기며 능선을 30분 정도 가면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마주보며 마치 문같아 보여 얻은 이름인지 문바위가 나타난다. 이곳을 벗어나면 여천 갈림길이 있는 사거리다. 왼쪽 내리막은 여천 선착장 방향이며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그리 뚜렷하지 않다. 옥녀봉 가는 길은 직진이며 당일 산행을 마치고 섬을 빠져나가려면 배 시간 계산을 잘해야 한다. 보통은 이곳에서 하산를 한다. 산길은 정면의 옥녀봉과 칼이봉 방향이다. 10분이면 숲 속에 스텐 안내판이 서 있는 칼이봉(327m) 정상이다. 표지판이 없다면 그저 흘러가는 작은 봉우리에 불과하다.
문바위
여천마을 갈림길
칼이봉 정상.
☞(전남여행/여수여행/금오도여행)금오도 매봉산. 금거북이를 닮았다는 금오도 매봉산 당일 산행에서 여천으로 주로 하산.
칼이봉을 내려서면 산길은 264m봉을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돌아간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만만치 않아 돌아가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계속 내려가는 길로 편안한 마음도 들지만 반대로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니 걱정도 된다. 10분 정도 가면 석축이 쌓여 있는 사거리로 느진목재다.. 왼쪽 내리막은 대유마을 방향이고 오른쪽은 느진목 방향이다. 우학·옥녀봉은 정면 오르막이다. 다시 20여 분 산길을 오르내리며 보면 100m 이상 돌담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어떤 용도인지 모르지만 중간중간 돌담들이 경계를 이루듯 많이 보인다. 잡풀로 인해 하늘이 열리는 곳에서 왼쪽으로 바위 봉우리가 보인다. 산세로 보아 옥녀봉임을 알 수 있다. 비탈진 능선에 임도와 만나는 사거리다. 왼쪽은 소유마을 방향이다. 등산로는 오른쪽 냉수동 방향으로 10m 올라가서 다시 왼쪽 능선 길로 올라간다.
옥녀봉 오르는 길을 따라 10분 정도 가면 오른쪽 우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곧 암반 전망대에 올라선다. 옥녀봉 정상 직전의 전망대에서 왼쪽으로 향일암이 있는 돌산도와 천길 절벽아래에는 대유와 소유마을 그 오른편에 수항도, 후여등 작은 섬들이 위태롭게 떠 있다. 숲으로 들어서면 금오도 안내도가 서 있고 정상이지만 실제 옥녀봉(284m) 정상은 이곳 전망바위로 보면 된다. 동북쪽으로 깎아지른 벼랑이라 조망이 거칠 게 없다. 옥녀봉을 내려서면 야트막한 봉우리를 지나 계속 내리막이다. 하산길에 습기 먹은 암반 길을 내려서서 40분이면 여천에서 우학리로 내려가는 검바위 도로에 닿는다. 그 아래 마을이 흑암동으로 검바위로 부른다. 남면사무소가 있는 우학리는 오른쪽 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여수에서 금오도로 들어가는 길은 선착장이 3군데다. 일단 부산서부터미널에서 여수 가는 버스는 오전 7시30분(첫차), 9시30분 등에 있고 노포동 버스터미널에서는 오전 6시35분(첫차), 7시25분, 8시35분 등에 출발한다.
여수에서 금오도로 들어갈 땐 주로 여수항과 신기항을 이용한다.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면사무소가 있는 우학행 배가 오전 6시20분, 오후 2시30분에 출발하고, 함구미행은 오전 6시10분, 9시40분, 오후 2시50분에 있다. 돌산도의 남쪽 끝인 신기항에서 금오도 여천으로 가는 배는 운항시간이 가장 짧고 편수도 많다. 오전 7시45분, 9시10분, 10시30분, 낮 12시, 오후 2시30분, 4시, 6시에 신기를 출발하며 30분 뒤에 다시 여천을 출발한다. 여수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정류장에서 신기를 거쳐 향일암으로 가는 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금오도에서는 버스 시간이 맞지 않을 땐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정지운수 (061)665-9544, 남면택시 (061)666-2651, 2652
(부산맛집/연산맛집)국제신문 맛집 남해 횟집. 직장인의 얇은 지갑에 안성맞춤인 6천원 멸치 쌈밥 부산 교대 맛집 남해 횟집
요즘 직장인은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주머니 사장을 생각 안 할 수가 없는데 매일 끼니때마다 면만 먹을 수도 없고 그 면도 최하로 4~5천원 이상을 하니 말이다. 항상 점심때 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 아닌 고민을 하게된다.
(부산맛집/연산맛집)국제신문 맛집 남해 횟집. 직장인의 얇은 지갑에 안성맞춤인 6천원 멸치 쌈밥 부산 교대 맛집 남해 횟집
국제신문사 옆의 부산 교육대학 입구에 남해 횟집이 있다. 물론 주위의 직장인이 많아 점심을 먹기 위해 이곳을 찾는데 이곳에는 메뉴 판에 없는 음식이 입구에 떡 하니 붙어 있다. 멸치 쌈밥 6천원. 직장인의 점심시간을 겨냥한 특하음식이다. 물론 저녁시간에도 주문을 하여 먹을 수 있다. 오늘 포스팅은 지인이 찾아와 저녁을 먹자며 찾아갔다.
칼슘의 왕 멸치 수도 없이 들어 왔다. 뼈대 있는 가문으로 치자면 그 작은 덩치에서도 최상급으로 알아주는 멸치.
멸치는 봄멸치를 최고로 치지만 요즘에도 먹을 수 있다. 멸치 전문점등은 1년 판매 할 것을 구매하여 냉동보관한다고 하니 말이다.
이곳은 횟집 전문이지만 멸치를 자박하게 끓여나오는 것은 어느 멸치 전문점 못지 않다. 지인이 먹어보고 맛이 괜찮다며 기장 근처의 멸치 전문점 보다 더 맛있다며 칭찬을 한다.
기장은 멸치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봄이면 너도 나도 봄멸치를 맛보러 기장으로 달려가는데 그 기장의 멸치 전문점 보다 더 맛있다는 집 남해 횟집.
직장인의 입맛과 가격까지도 딱 맞추어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맛집으로 그대신 밑 반찬은 그저 평범하다. 멸치찌개인 양은 얼마나 많은지...
멸치도 엄청 들어 있다. 두사람이 먹고도 남을 정도로 양이 많은 곳이다. 보이시나요 토실토실한 멸치가...
쌈이라해서 다른 특별한 채소는 없다. 그저 상추가 전부. 밥위에 멸치를 올리고 그 위에 쌈장을 척 찍어 올리면 모든게 끝, 그냥 입으로 직행하면 된다.
간편한 밥상이지만 직장인의 입맛을 사로 잡은 곳이다. 이곳은 2층에 위치하며 국제신문 인근에서 예전 부터 직장인에게 입소문 난 곳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서백당. 매일 참을 인자를 백번 쓴다는 뜻.서백당(書百堂).
우리 속담에 참을 인(忍)자 세번을 쓰면 살인도 면한다는 옛말이 있다. 아무리 밉고 죽이고 싶은 철천지 원수라도 기껏해야 忍자 세번으로 그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 진다고 하는데 그럼 매일 하루에 참을 인(忍)자 100번을 쓴다면 어찌 될까. 철천지 원수라도 33번은 살릴수 있다. 이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루어 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당호를 가진 곳이 있다. 경주 양동마을의 서백당으로 원래는 서인백(書忍百)이었다한다. 서인백의 유래를 보면 어느 해 중국에 9대가 한집안에 살았는데 왕이 이곳을 지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어찌 9대가 이리 한집에 살 수 있었냐고 물어니 그는 붓과 종이를 들고 오더니 참을 인(忍)자를 100번 쓴다음 임금에게 이러면 안될 것이 없다며 빙긋이 웃었다한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서백당. 매일 참을 인자를 백번 쓴다는 서백당 경주손씨 종택.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 경주 양동마을의 서백당이다. 월성(현 경주)손씨 손소(1433년)~1484년)가 이곳에 처가 입향을 하면서 이곳에다 집을 지었는데 이곳이 월성손씨의 종택이다. 흔히종택은 어떤곳인가 종손은 문중을 위하여 자신은 버려야하는 무거운 자리다. 그럼 얼마나 많은 참을 인(忍)자를 가슴에 새겼는지 알 수있다. ㅎㅎ 뜬 구름 같은 이야기는 접어두고,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서백당. 매일 참을 인자를 백번 쓴다는 서백당 물자형 명당..
양동마을에 있는 서백당에 대해 알아보자. 서백당의 입지는 양동마을을 감싸고 있는 설창산과 문장봉에서 뻗어 내려온 네줄기의 능선이 물(勿)자 형을 이루는 독특한 지형을 이룬다. 이는 양동마을 주차장이 있는 입구에서는 그 마을 존재 조차 보이지 않으며 안으로 들어서야만 양동마을의 모습이 들어나 온전하게 볼 수있는 물자형세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서백당. 매일 참을 인자를 백번 쓴다는 서백당 3명의 현인 배출.
양동마을은 예로부터 이중환의 택리지와 일제강점기때 일본인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에도 삼남의 4대 길지로 언급한 명당터로 알려져 있다. 손소는 세조2년에 서백당을 지을때 지관으로 부터 이곳의 지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곳을 정한것으로보여진다. 서백당이 있는 이곳은 혈이 모이는 지점으로 3명의 현인이 배출된다는 곳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서백당. 매일 참을 인자를 백번 쓴다는 서백당. 손중돈과 이언적 배출 또 한명은.
손소때에 벌써 두명의 현인이 태어 난것을 알 수 있다. 손소의 둘째 아들이 우재 손중돈(1463년~1529년)으로 정2품 의정부 우참잔의 벼슬에 올랐던 분이며 손소의 외손자며 손중돈의 생질인 동방5현의 회재 이언적이 또 한분이다.
사랑채와 내실을 가르는 작은 담장으로 왼쪽은 사랑채며 담장 오른쪽은 3명의 현인중 두명은 배출 되었지만 남은 한분은 반드시 월성손씨에서 배출 되어랴 한다며 며느리만 해산을 할 수 있다는 산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서백당. 매일 참을 인자를 백번 쓴다는 서백당. 550년 향나무 손소가 직접 심어.
아직도 월성손씨 종택에서는 한분의 현인이 태어날만을 학수 고대하고 있는데 이곳 서백당에서는 손씨의 며느리는 서백당의 산실에서 해산을 할 수 있지만 출가한 딸은 서백당의 산실에서 몸을 풀수 없다고 하며 몸을 풀러온 딸들은 이웃의 일가 친척집으로 내려 보낸다한다. 마지막 남은 현인 한분은 반드시 월성손씨에서 나와야 한다는 뜻이며 다른 문중에 빼앗길 수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서백당. 매일 참을 인자를 백번 쓴다는 서백당의 구조는.
서백당의 구조를 보면 먼저 한일자형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앞에 사랑채와 만난다. 사랑채와 연결되는 안채는 'ㅁ'자 형태를 취하며 오른쪽으로 손소를 모신 사당이 있다. 안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고 사랑채는 지붕의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사랑방과 잠을자는 침방이 대청을 두고 'ㄱ'자 모양으로 놓여 있다. 그리고 대청을 사이에 두고 사랑방과 작은 사랑방이 서로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작은 사랑방을 모서리쪽에 두었다. 툇마루가 작은 사랑방과 대청으로 연결된 점이 이채로우며 서백당 현판의 맞은 편에는 손소가 이 집을 짓고 기념하기 위해 직접 심었다는 550년된 향나무를 보며 월성손씨에게는 서백당의 존재가 어떠한지 알 수 있을 것다.
현재에는 안채 방향으로 가는 입구는 출입을 통제하는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다. 양동마을의 여러 건물이 현재에도 그의 후손들이 함께 거쳐를 하고 있어 건물의 보존상태가 얼마나 양호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550년의 풍진 세월도 잘 견디며 이어온 건축물 서백당. 우화하며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단정한 여인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아름다운 고가의 모습이다.
세월의 때가 켜켜히 배어나오는 기둥과 마루에는 그 당시 손중돈과 이언적이 태어났을때의 븐주한 모습이 그려지며 지금 보고 있는 향나무를 그 당시 두 현인도 보았다고 생각하니 그 흔적을 찾아보며 서백당을 내려와 향단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현재의 향단 가옥은 회재 이언적(1491년~1553년)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때 병환중인 모친을 돌 볼 수 없어 중종이 지어준 건물이다. 다시 이언적이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그의 동생 이언괄에게 물려 준 후 여주이씨 향단파의 종가가 되었다. 향단이란 이언괄의 손자인 향단공 이의주의 호에서 이 집의 이름을 따왔다.
향단의 솟을 대문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집주인 개성이 독특한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동마을을 대표.
조선 중기 살림집의 모습이 아닌 집주인 개성이 묻어나는 독특한 건축물로 지금의 행랑채는 1976년 보수 공사를 할때 위로 더 올라 안채와 더욱 가깝게 되었다. 원래 99칸의 양반가옥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지만 6.25 한국동란때 전화로 인해 소실되어 현재 56칸이 남아 있다. 향단은 양동마을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건물로 그 만큼 자리한 곳이 양동마을을 대표할 만한 곳이다. 보물 제 412호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풍수지리를 이용한 요새 같은 모습.
향단의 구조를 보면 일반 양반 기와집과는 달리 독특한 평면 구조이다. 몸체는 풍수지리에 따라 월(月)자 모양을 하고 여기다 한일(一)자 모양의 행랑채와 칸막이를 두어 용(用)자 모양을 이루었다. 행랑채 사랑채 안채가 모두 한몸체이고 마당이 두개인 특색있는 구성을 하고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밖에서는 안의 모습을 볼 수 없어.
행랑채 뒤편에 있는 본채는 행랑채와 똑 같은 규모로 중앙과 좌우 양쪽 끝을 이어서 방으로 연결한게 흥(興)자 모양의 한건물 처럼 배치가 되어 있다. 이곳을 방문하면 아쉬움 점이 많다. 아름답고 독특한 구조의 향단 건물은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일자형의 행랑채 모습만이 볼 수 있다, 빠삐용의 요새 같은 모습으로 향단안의 구조는 밖에서는 관찰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멀리서 보는 향단의 모습 너무 아름다워.
이곳은 현재에도 여주이씨 향단파의 후손들이 거주를 하고 있어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언뜻언뜻 볼 수 있는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할 수 없이 내려와 연밭이 있는 입구쪽의 먼발치에서 전체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한다. 멀리서 본 향단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멀리서 본 향단의 모습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양동마을 의 유래는
경주의 대표적인 양반마을은 양동마을이다. 양동마을의 유래를 보면 경주(월성) 손씨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1433~1484)선생이 청송 안덕에서 560여년전에 류복하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처가인 양동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아 살면서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여강이씨 찬성공 이번(1463~1500)과 손소의 딸이 혼인을 하면서 처가인 양동에 이주하여 살았다. 두분 사이에 큰 아들로 동방오현의 한사람인 회재 이언적을 낳았다. 결국 회재 이언적은 손소의 외손자로 이곳 양동마을에는 손씨와 이씨가 서로 마을을 형성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양동마을은 어떠한 특징이 있는 마을일까. 손소도 장가를 들어 처가인 이곳에 이주하였고 그의 사위인 이번도 이곳으로 이주와 살면서 처가입향의 마을로 불린다. 그러나 처음 이 마을에 입향한 손소의 처 류씨부인은 그 당시 무남독녀였던 관계로 풍덕 류씨는 절손되어 현재에 외손인 손소의 문중에서 제향을 받들고 있다.
초분, 요즘은 찾을 수 없는 우리의 장례풍습이다. 주로 남해 지방 섬마을에 내려오는 풍습으로 4년전까지는 죽음을 받아 들이는 하나의 의식으로 행해졌다. 그럼 초분은 어떤 뜻일까. 사람이 죽어면 시신을 바로 매장을 하지 않고 평탄한 장소에 돌이나 굵은 나무를 깔고 그 위에 시신을 넣은 관을 안치하여 초가집의 지붕을 엮듯이 이엉과 용마름으로 덮은 임시 무덤을 말한다. 그리고 2~3년은 이리 보관을 한다고 한다.
☞(장례풍습/초분)4년 전까지도 성행했다는 장례문화 초분, 남해 섬마을 장례 풍습
그동안은 망자의 혼을 달래듯 기일날 찾아 제를 지내고 지붕의 이엉을 새로 갈고 하며 사자에 대한 예를 갖춘다. 초분에 모신 시신이 탈육된 것이 확인되면 관을 해체하여 뼈만 추려내 일반 장례 풍습인 매장을 다시한다. 이런 풍습은 최종적으로 죽음을 확인하는 하나의 과정이며 고인의 뼈를 깨끗히 씻어 묻음으로서 고인이 다시 환생하여 사람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한다.
☞(장례풍습/초분)4년 전까지도 성행했다는 장례문화 초분. 고인의 환생을 믿어.
원래 우리 민족의 장례 문화는 매장 문화이다. 고인이 죽어도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닌 언제가는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믿음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에서는 다비장을 하며 이세상에 팃끌만한 인연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 일반 백성들과 다른 점으로 보인다. 그 장례풍습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왜놈들이 화장문화를 권장하지만 그래도 고인의 유해를 한점이라도 상하지 않게하기 위해 매장을 선호하였다.
그 뒤 좁은 땅에서 한해 무덤으로 사라지는 땅이 여의도의 몇배니 하면서 방송에서 떠들다 보니 시민들의 의식이 많이 깨어 매장에서 화장쪽으로 급격히 옮겨갔다. 그리고 요즘은 또 하나의 장례 문화인 수목장에도 많은 관심을 기우리고 있는데 현재 초분 장례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섬마을의 장례 풍습이 완전히 사라져 안타깝다. 사라져 가는 장례문화가 아쉬워선지 이곳 금오도 비렁길에 초분의 임시 무덤이 돌담 속에 자리하고 있다. 당시 상황을 재현하여 초분를 치루던 그 곳에 만들어 놓은 모습에 그 당시 남해 섬의 장례 풍습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리고 대구탕은 지리로 나오는 다데기 같은 양념장이 이 집만의 노하우면 노하우 . 조금을 넣었는데 목이 턱 막히 듯이 칼칼한게 그야말로 속시원한 대구탕의 진수를 보여 준다.
요. 양념장이 조금만 넣어도 칼칼해지는군요. 비법이 뭔지 ㅎㅎ궁금한데..알려고 하면 안되겠죠. 땡초는 기본이겠죠. 처음 부터 너무 많이 넣으면 안되요. 맛을 보고 조금씩 조금씩 넣어주세요.
요게 속시원한 대구탕의 상차림입니다. 푸짐하니 너무 맛있겠죠.
그럼 쬰득한 대구살이 어느정도 들어 있는지 보도록 합시다.
보이시나요, 대구살의 엄청한 양을요. 9천원의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 대구탕의 양입니다. 대구도 큼지막하구요.
양념장을 넣은 국물입니다. 맑은색이 너무 깔끔합니다. 전날 음주 후의 숙취해소가 아니라도 현대인의 답답함을 확 풀어주는 속시원한 대구탕. 해운대해수욕장을 가시면 꼭 한번 찾아가세요...너무 좋아요.
☞(부산맛집/해운대맛집)해운대해수욕장 속시원한 대구탕. 해운대를 찾는 연예인의 필수 코스 속시원한 대구탕
연예인 사인을 보면서 누구누가 왔는지 보는 재미도 있어요 너무 광범위해서 그저 앉은 자리에서 찾아 보았더니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하지원씨도 댕겨 갔네요. ㅎㅎ 고소영씨 박신양씨. 이영자. 설경구, 신하균, 송강호, 엄태웅, 이병헌 이민정 커플도 나란히 사인이 있네요. ㅎㅎ
먼저 석등의 의미 부터 알아보자. 불교에서는 석등이 어떤 존재일까. 등불을 밝히는 것은 공양중에서도 최고로 치며 오래전 부터 등불을 안치하는 공양구가 있었다. 보통 석등은 다섯단계로 구분을 하여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 화사석, 옥개석으로 나누고 옥개석 위에 상륜부인 보주를 올린다. 특히 화주석은 등불을 밝히는 곳으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석등의 역사를 보면 국내에서는 익산 미륵사지에서 백제의 석등 파편이 출토되어 삼국시대에도 석등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백제의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까지도 영향을 끼쳐 백제의 팔각형 화주석이 전해져 오고 있다. 영암사지의 쌍사자 석등과 같은 모양은 통일신라시대 부터 많이 만들어져 조선시대에 까지 이어졌다.
☞(경남여행/합천여행)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표지 모델로 더 유명세...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에 대해 알아보자. 팔각형의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을 두었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렸다. 중대석은 사자를 배치하여 가운대 받침돌을 제외한 각부분이 통일 신라시대의 기본형태인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쌍사자를 받치고 있는 아래받침돌에는 복련인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사자는 서로 가슴을 맞대며 뒷발은 아래받침돌을 딛고 앞발은 들어서 화사석 아래의 윗 받침돌을 받들고 있다.사자의 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퀴와 꼬리 그리고 근육등은 우람하여 백수의 왕 사자를 표현하였다. 화사석은 8각 기둥으로 네면에 창을 만들었고 그 외의 네면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화사석을 덮고 있는 8각 지붕돌은 각 귀퉁이에 자그마한 귀꽃이 조각되어 있다. 쌍사자석등을 보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작품으로 쌍사자석등의 걸작품인 국보 제5호 법주사 쌍사자석등과 어께를 나란히 하는 걸작품이다. 이곳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도 남모르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3년 일인들이 본국으로 가져 가기 위해 반출을 시도하다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어 면사무소에서 보관을 하였다. 그 후 1959년 원래 자리인 영암사지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졌다.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6권의 표지모델로 나와 더욱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보물제 353호
영암사지 삼층석탑.
☞(경남여행/합천여행)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영암사지 삼층 석탑. 탑의 의미는.
사찰에서 석탑은 어떤 의미일까. 스투파, 수두파 또는 탑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건축물을 말하며 불사리탑인 석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시나가라(kusinagara)의 보리수 밑에서 열반에 들은 후 사리가 8개국에 나누어져 탑파를 쌓기 시작한데서 비롯되었다. 즉 부처님의 무덤으로 보면된다. 모든 사찰에서 신성시하며 사찰의 중심에 탑을 세우고 부처님의 몸에 비유한 대웅전을 바라보며 세운다.
☞(경남여행/합천여행)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영암사지 삼층석탑의 구조는.
영암사지 삼층 석탑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1969년에 복원을 한 후 부터다. 그 이전에는 탑신이 무너져 있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영암사지로 보나 온전한 석탑 상태는 아니었던 같다. 2단의 기단에다 3층 석탑을 세웠는데 통일신라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기단석은 모서리와 그 가운데 기둥 모양의 홈을 파서 올렸다. 3층 석탑을 쌓아 올린 몸돌과 지붕돌은 하나의 돌을 깎았고 몸돌 모서리에 기둥을 새겼다. 맨 밑의 몸돌은 좀 높은 편이며 올라가면서 2.3층의 몸돌은 낮게 만들었다. 지붕돌 또한 올라가면서 크기가 조금씩 작아지고 밑변에 수평인 4단의 받침을 새겨 넣었다. 지붕돌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네 귀퉁이에 각진 끝부분이 살짝 치켜 올라가는 모습이 전형적인 우리의 기와지붕을 연상케한다. 보물 제480호로 쌍사자석등과 같은 시기인 통일신라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영암사지 귀부
☞(경남여행/합천여행)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영암사지 귀부의 유래.
영암사지에는 좌우 한쌍으로 거북 모양의 귀부가 남아 있다. 귀부란 거북 형상의 등에 사각의 홈을 내어 그 위에 탑신을 올리는 받침대 역활을 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 당나라에서 전해져 왔고 국내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부터 당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비석의 형식을 이루었다 현재 이수는 사라지고 없지만 거북 모양의 귀부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두 귀부가 같은 듯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 놓여진 귀부는 거북의 등무늬가 6각형이고 비신을 세우기 위해 만든 사각형의 모서리에는 아름다운 운상(구름무늬)이 세겨져 있다. 몸은 거북이며 머리는 용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왼쪽의 귀부도 6각형의 등무늬를 하였고 비신을 세우기 위한 사각형 홈에 안상과 중앙에 연꽃잎을 새겨 놓았다. 머리는 용의 모습에 가깝고 여의주를 물고 있다. 탑신등 비석은 존재하지 않아도 정교하게 조각한 귀부는 여의주를 물고 날아 갈듯한 맴씨를 뽐내고 있는게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물 제 489호이다.
당간석.
식수통.
수령 600백년된 느티나무 .현재 영암사 입구에 당당히 지키고 있다.
☞(경남여행/합천여행)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삼층석탑, 귀부가 남아 있는 영암사지에 대해서...
신령스러운 바위 산을 이루는 감암산 모산재는 신령스런 산이란 뜻인 영암산이라 부른다. 신라 시대 창건된 것으로 보여지는 영암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여지며 영암사의 사찰 이름 그대로 신령스러운 바위들로 뭉쳐진 그 아래 자리한 사찰터다. 언제 창건된 사찰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현재 남아 있는 유적과 기록을 보면 그 연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료에 의하면 고려현종 5년(1014년)에 적연선사가 이곳에 서 83세로 입적을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이전 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인 홍각선사비의 비문 조각에서도 영암사라는 사찰 이름이 나오는데 886년에 이 비석이 세워진 것으로 보면 그 이전부터 영암사가 존재한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 9C에 만들어진 쌍사자석등(보물제353호)과 삼층석탑(보물제480호), 귀부(보물 제489호)그리고 당시 흔적등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석재와 이곳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 작품으로 영암사의 창건연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자료라 볼 수 있다. 영암사지는 왜 폐사를 당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곳에 있는 폐사된 사찰의 기록을 보면 '빈대잡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옛 속담이 있다. 빈대가 득실거려 폐사 되었다는 기록이 의외로 많으며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많은 사찰이 사라지고 결정적인 것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등 전란으로 인해 많은 사찰이 폐허가 되다 싶이하였다. 영암사지도 그러한 전철을 밟은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영암사의 건물터를 보면 기존의 신라시대 절터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사적지 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은 경남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서 태어 났다. 승무원 판교를 지낸 부친 언형과 모친 인천이씨의 3남2녀중 2남으로 본관은 창녕이고 자는 건중이며 호는 남명이다. 남명선생 부친은 삼가현의 판현에서 이곳 처가로 결혼과 함께 옮겨와 살게 되었는 외토리는 남명조식선생의 외가다.
남명선생 생가터로 찾아가는 길.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의 외가가 있는 삼가면 토리마을
남명선생의 외가가 위치한 곳은 풍수설에 명당터로 알려진 곳이다. 닭의 해에 태어나는 아기는 자라서 현인이 된다고 하였는데 그해 남명조식선생이태어 나던날 우물에서 무지개빛이 온사방으로 퍼지며 남명선생을 잉태한 모친의 방안을 환히 비추었다. 그 빛을 받으며 남명조식선생이 태어나니 선생은 태어날때 부터 남 달랐다.
남명조식선생 생가터의 안내판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은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 유림의 태두,
선생은 퇴계이황과 함께 영남 유림의 태두로 우뚝서며 경과 의를 존중하고 배운 것을 실천하는 선비정신을 강조하였다. 30세에 남명선생은 처가가 있는 김해 대동면의 신어산 아래에 산해정을 짓고 제자릴 가르쳤다. 48세에 고향 삼가의 토동으로 돌아와 향천강 언저리에 뇌룡정과 강 건너 계부당을 짓고 제자를 길렀다.
남명조식선생 생가터의 모습, 밭이였던 이곳에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용암서원. 뇌룡정의 유래와 남명조식선생
뇌룡정은 조식선생이 산청군 덕산으로 옮겨 가기전 12년을 이곳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였던 곳으로 뇌룡이란 장자의 '연묵이뢰성 시거이용현 (淵默而雷聲 尸居而龍見 )'에서 따온말로 풀이를 하자면 깊은 연못처럼 고요하다가 우레처럼 소리치고 시동처럼 가만히 있다가 용처럼 나타난다.
선생의 나이 55세에 이곳 뇌룡정에서 당시의 국정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으로 단성현감을 사직하며 상소문을 올린다. 이를 을묘사직소라는데 단성소라고도 한다. 단성소에는 남명선생의 기개와 선비정신이 잘 나타나며 조선시대 최고 권력자인 왕을 고아라고 하고 왕의 어머니 문정왕후를 과부라 하여 조정과 사림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의 고향마을 삼가면 토리마을 뇌룡정.
그 단성소의 내용이 지금 뇌룡정 옆 용암서원 앞에 대리석으로 삐까번쩍하게 만들어 놓았다. 용암서원은 1576년에 삼가현 서쪽 회산마을에 노흠등 남명의 후학들이 회산서원을 지었는데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 1601년 향천강 앞으로 옮겨 지어면서 향천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8년 후 용암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서원지는 1987년 합천댐에 수몰되면서는 2006년 뇌룡정 옆으로 옮겨와 다시 복원을 하였다.
남명선생 생가터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용암서원과 함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남명조식선생.
당시의 뇌룡정은 정유재란으로 인해 소실된 후 1678년 합천군 봉산의 계산에 있었다. 용암서원의 부속건물로 로 뇌룡정은 재건되고 1758년과 1831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그 후 1868년 서원철폐령에 용암서원과 함께 뇌룡정은 훼철되었다.
합천군 생가면 외토리마을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의 신묘사도에 따라 뇌룡정 지어.
지금의 뇌룡정은 1883년 조희규의 발의에 의해 현감 신두선의 협조로 원래의 자리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전체 건물의 배치는 남명조식선생이 지은 '신명사도'의 모양으로 건물을 지었다. 정면5칸 측면 2칸의 뇌룡정은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왓집으로 중앙에 대청을 넣고 좌우로 방을 3개 두었다. 지금 외토리는 남명조식선생의 고향이라 그런지 복원공사가 여러곳에서 진행중이었다.
먼저 남명선생의 생가터로 그 당시의 흔적은 찾을길 없이 밭으로 흔적이 바뀌었는데 안내판이 없다면 이곳이 선생의 집터인지 알 수가 없다. 마을 입구 안내판을 보고 남명선생 생가터를 찾아 갔는데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찾을 길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집 뒤로 올라가라며 가르켜 주는데 현재에는 목조 건물을 한동 복원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건물을 토대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길게 한동을 짓는 중이었다. 그곳을 나와 왼쪽 향천강 쪽으로 보면 큰 기왓집이 보이는데 새로 지은 건물인 용암서원 복원현장이고 그 옆에 무너질 듯이 서 있는 건물이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29호인 뇌룡정이다.
외토리 쌍비.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의 뇌룡정 복구가 더 시급.
사라진 건물을 복원하는게 더 급한 것인지 있는 문화재를 먼저 복구하는 것이 더 급한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의 뇌룡정은 방문때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고 대청의 마루가 뜯겨나가 있는등 황폐화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용암서원 복원 공사도 중요하고 남명선생 생가터 복원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남아 있는 문화재를 제 모습으로 중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복원도 중요하고 복구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의 관리 문제에 더욱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산청군 시천면 덕산의 남명 유적지 관리 상태를 보다 이곳을 보니 말만 남명선생은 이황과 함께 영남의 거목이라 떠들지 말고 실질적인 관리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의 고향마을 삼가면 외토리 쌍비인 효자비 유래.
남명선생의 유적지는 아니지만 외토리 쌍비로 불리는 비석이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1호며 비각안에는 두개의 비석이 남아 있다. 왼쪽의 비석인 앞면에 '효자리'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남명선생 이전인 고려 말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이온선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세운 비석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말 이성계가 병마순찰을 영남지방으로 순시하였는데 선생의 효행을 듣고 왕에게 보고를 하니 1383년 고려우왕 9년에 고성군사 최복인에게 명하여 효행비와 비각을 세웠다전하며 비석의 명문이 남아 있다.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 비석은 현재 판독이 불가할 정도로 풍화작용으로 인한 마모가 심하여 백비로 부른다. 왼족비와 함께 효행비로 추정 할뿐 알 수 없다. 원래 비신만 남아 있어 1686년 숙종12년 비석의 대석과 이수를만들어 세웠다.
용암서원 앞에 남명조식선생이 단성현감을 사직하며 올린 단성소 상소문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원동마을 입구에 세워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게 하였는데 일제 강점기때 도로공사로 인해 원래 비가 있던 이곳으로 옮겨 왔다.
합천땅에는 북으로는 국립공원 가야산과 서로는 군립 공원 황매산을 품고 있다. 두산의 공통된 특징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야산 정상의 바위가 불꽃같다 하여 석화성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산청군과 경계한 황매산은 남으로 능선을 길게 뻗어 모산재와 감암산 그리고 부암산을 솟구치며 기암 전시장으로 전국의 산꾼을 불러 모우는데 손색이 없다. 황매산은 봄의 철쭉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멀리서 보면 붉은 듯 누런 황색을 띠고 있다. 산세 또한 매화낙지형이라 황매산이라 부른다.
모산재 암릉의 모습
모산재와 황매산 등산로 안내판
모산재 식당앞 삼거리
감암버스정류장. 대중교통 이용시 이곳에서 하차.
모산재로 오르는 산길.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의 유래.
황매산과 이웃한 모산재는 하나의 바위로 된 암봉이다. 모산재의 뜻은 찾기가 힘들다. 그러나 돛대바위 위에 천하 명당이 있어 무지개가 항상 피어 오른다며 무지개터로 불린다. 무지개터 앞에 용마바위가 있고 이곳은 비룡상천형의 명당터라 이곳에다 묘를 쓰면 본인 집안은 자손만대에 부귀와 권세를 누리지만 산 아래 마을에는 가뭄과 흉년등 갖은 질병으로 인해 마을에서 묘를 사용할 수 없도록 이곳에다 흙을 파 웅덩이를 만들었다는 것에서 모산재는 유래한다. 못이 있다는 산으로 못산 또는 못재로 불렸다. 지금도 이곳에는 그 때의 흔적인 웅덩이가 잡초에 덮혀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어원이 모산재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로 합천군의 설명이며 또는 모산의 의미는 '띠의 산'을 말한다. 띠는 잔디 보다 키가 크서 옛날에 농가에서 띠잎으로 도롱이등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사용 하였다. 띠는 풀중에 가장 순결한 풀이다. 모산은 순결한 산을 의미하며 정상부근에 순결바위가 있음이 우연이 아니다(가회면의 홈페이지). 마을에서는 잣골덤 또는 신령스러운 산이라하여 영암산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산아래 영암사지에서 나온 이름으로 보인다. 모산재는 합천8경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명산이다.
산행리본이 장식을 하고 있다.
모산재 오르는 길. 서서히 바위가 나타난다.
모산재는 계절에 관계없이 많은 인파로 붐빈다.
모산재의 바위 군상들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산행 경로
모산재 산행 경로는 정상까지 한번 치받아 오르다가 바로 하산을 하는 코스지만 산행시간에 비해 많은 체력을 요한다. 산행은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 모산재 승용차 주차장을 출발한다. 감암(감바위)마을~황룡사 갈림길~모산재 등산로 입구~ 돛대바위~무지개터~황매산·모산재 갈림길~모산재 정상~암릉~순결바위~국사당~영암사~영암사지를 거쳐 모산재 승용차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산행거리는 6km 산행 시간은2시간30분이며 휴식과 전망이 좋은 암산이라 4시간 이상은 잡아야 한다.
모산재를 오르다 본 염암사와 영암사지.
직립하다 싶이 선 나무계단. 이곳을 올라서면 돛대바위.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산행은 감암마을에서 시작.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 모산재 (승용차)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주차장 밑 도로에서 왼쪽으로 100m쯤 가면 모산재식당 앞에서 왼쪽으로 갈라지는 영암사지 가는 길로 들어선다. 입구에 이정표(모산재 1.7㎞, 영암사지 0.6㎞)가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버스를 타고 오면 이곳 감암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바로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좁은 콘크리트 포장길을 걸어 마을을 지나면 우거진 소나무 사이로 길게 누운 하나의 암릉과 마주 보게 된다. 그야 말로 바위 절벽으로 입이 쩍 벌어진다. 5분이면 왼쪽으로 황룡사 갈림길이 나오면 직진이다. 곧 작은 계곡을 만나고 이곳에 이정표(모산재 1.3㎞)가 서있다. 본격적인 모산재 등산로 들머리다. 계곡을 끼고 오르면 이내 마사토의 산길로 접어든다.
모산재의 비경 돛대바위.
모산재 정상을 거쳐 하산길 능선도 암릉으로 이어진다.
돛대바위 뒤로 보이는 허굴산의 모습.
감암산에서 부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왼쪽 오독한 봉우리가 부암산.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돛대바위가 들머리에서 보여.
돌계단을 오르면 정면으로 눈을 들어 까마득한 바위위에 날아 갈듯 한 돛대바위가 보인다. 사각 표지목인 '모산재 1.1km 이정표를 지나며 서서히 바윗길을 타고 오른다. 황룡사에서 올라오는 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세운 철망 담장에 산행 리본이 엄청 달려 있다. 고도를 높일수록 뒤돌아보면 전망이 트인다. 발아래 대기 저수지와 자굴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사길이라 그런지 미끄러워 바위에 발을 놓을때 마다 주위를 해야한다. 아님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이정표(모산재 0.8㎞)를 지나면서 바위를 밟고 산행이 시작된다. 그야말로 바위를 탄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로프를 잡기도하고 또는 바위를 잡기도하며 올라야 한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많은 구간이다. 복병은 암반이라 전망은 너무 좋은데 반해 햇볕이 내려쬐어 그늘를 피할 만한 곳이 없다.
천하명당의 무지개터
모산재 정상으로 이어지는 숲길.
모산재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돛대바위. 모산재 산행의 올라온 산길이 다 들어난다.
모산재 하산은 암릉을 타고 내려간다.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돛대바위 전망 탁월.
'모산재 0.6㎞' 이정표를 지나면 거의 수직으로 선 듯한 급경사 계단을 올라가야한다. 이곳을 올라서면 모산재의 명물 돛대바위와 만난다. 모산재의 바람을 받아 순풍하는 돛단배의 돛대라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곳은 거대한 하나의 암반이다. 풍수학자들은 이곳을 전국에서 최고로 꼽는 생기의 장이라 부르고 있다. 돛대바위를 돌아가면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낮은 산들 뒤로 대암산에서 태백산으로 잇는 대병면의 산들이 펼쳐지며 왼쪽으로 속이 비었다는 허굴산과 금성산 의룡산 악견산등 합천의 삼산이 합천호를 두고 솟아 있다. 돛대바위 건너편 능선은 모산재 정상에서 하산하는 암릉으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이 만리장성 같은 모습으로 내려간다.
황매산의 모습.
모산재 암릉에 올라선 바위. 마치 두부를 자른듯 틈이 벌어져 있다.
바위틈을 빠져 나가고 있다.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철쭉 명산 황매산과 마주보고 있다.
돛대바위에서 150m 정도 바위를 타고 올라가면 나무 그늘이 나오고 평탄한 바위와 만난다.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무지개터 안내판 뒤로 뻗은 능선이 감암산에서 부암산으로 이어지고 뒤로 정수산과 둔철산 그리고 지리산 웅석봉이 아스라이 솟아 있다. 이정표(모산재 0.3㎞)에서 오른쪽 숲에 무지개터로 불리는 작은 웅덩이가 있다. 천하제일의 명당터로 모산재의 유래를 만들었다. 이곳부터 황매산 갈림길까지 잠시 숲속의 산길을 따라간다. 능선을 바꾸어 타는 지점으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다. 왼쪽은 황매산 정상(4.0㎞) 방향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곧 모산재 정상이다. 정상도 하나의 커다란 암반으로 돌탑이 서 있고 마주보며 바위위에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
바위 틈을 빠져나가면 천길 단애. 간담이 녹아 내린다.
모산재를 내려오며 뒤돌아 본 암릉. 절경이 아닐 수 없다.
순결바위.단정치 못한 사람은 바져 나올 수 없다는 전설의 바위.
국사당. 태조 이성계의 왕위 등극을 위한 제단.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최대 볼거리 암릉과 순결바위.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 든다. 직진하여 내려서면 숲속으로 들어간다. 급하게 내려가면 벼랑 위 전망대가 나온다. 발아래는 끝이 보이질 않을 절벽으로 간담이 써늘하다. 돛대바위에서 보면 툭 불거진 바위로 보이는 곳이다. 이곳을 벗어나면 본격적인 암릉으로 햇볕을 맞으며 걸어야 한다. 오른쪽은 천길 낭떨어지며 국내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특이한 느낌을 준다. '영암사지 1.2㎞' 이정표를 지나면 더욱 거대한 암릉이 펼쳐지고 곧 두 개의 바위가 두부를 쪼개 놓은 듯 암릉에 올려져 있는 곳을 지난다. 흡사 제2의 순결바위처럼 보이는 곳으로 한사람이 빠져 나갈 수 있는 바위 틈이다. 이곳을 나가보면 그야말로 간이 콩알만 해진다. 잠시 뒤 순결바위 이정표를 만나고 오른쪽 끝에 순결바위가 있다. 사생활이 물란한 사람이 갈라진 바위틈에 들어가면 바위가 오무러들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전설이 있다.
영암사. 암릉으로 병풍을 두른 모산재 능선
영암사지.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하산 후 만나는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이 예술.
이곳에서 모산재의 암릉이 끝나고 갑자기 급경사 내리막 산길이 이어진다. 철 난간과 나무계단을 10여분 내려서면 곧 국사당이다. 태조이성계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기도를 올렸다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숲 그늘로 완만한 내리막을 걷는다. 간이매점을 지나면 곧 영암사다. 영암사를 지나면 사적 제131호 영암사지와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를 만나게 된다. 이곳의 쌍사자 석등은 유홍준교수의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6권의 표지모델로 유명하다. 이곳을 지나면 곧 올라갈 때 지났던 모산재 등산로 입구 삼거리다. 10여분이면 다시 모산재 주차장으로 이어진다.
영암사지를 지키는 600년된 느티나무
영암사지의 쌍사자석등.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표지 모델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교통편.
대중교통편은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합천행 버스를 타고 삼가에서 내린다.7시(첫차), 7시40분, 8시30분, 9시20분 등에 있다. 삼가에서는 오전 8시40분, 9시50분,에 덕만행 군내버스를 타고 감암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하루 4회 운행으로 이 버스를 놓치면 삼가 동성택시 (055)932-4656을 이용해야 한다. 산행을 끝낸 후 덕만에서 삼가로 나오는 버스는 오후 3시10분, 5시25분에 있다. 감암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타면 된다. 삼가에서는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오후 3시50분, 4시20분, 4시50분, 5시30분, 6시20분, 7시20분(막차)에 있다.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7시 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출발해야 한다.
합천의 모산재 산행은 대중 교통편은 시간 맞추기가 아슬아슬하여 원점회귀라 승용차를 이용하면 더욱 편리하다. 남해고속도로 군북IC에서 내려 의령을 지나 20번 도로를 타고 간다. 대의면 소재지에서 합천 방면 33번 도로를 탄다. 다시 삼가면 소재지에서 60번 도로를 타고 가회면 소재지를 지나면 곧 대기마을을 거쳐 모산재 주차장에 닿는다.
산청군 시천면 덕산은 남명조식선생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남명선생은 처가가 있는 김해 대동면 신어산자락에 산해정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다가 48세에 외가가 있는 삼가면 토리마을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조선시대의 풍습으로 양반내들은 결혼과 함께 처가입향을 하였다. 조식선생의 부친도 처가인 삼가면 외토리로 입향을 하여 남명선생을 낳았다. 선생은 삼가가 외가이며 고향이 된다. 외토리에서 선생은 뇌룡정과 계부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한다. 선생은 55세에 이곳 뇌룡정에서 왕과 조정을 조롱하는 을묘사직소(단성소)를 올린 후 61세가 되어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다 보이는 덕산에 산천재를 짓고 학문 연구와 후학양성에 매진하며 이곳에서 여생을 보낸다. 그 만큼 덕산은 남명선생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다. 덕산서원과 선생이 찾아와 즐겼다는 백운계곡이 모두 덕산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국가문화재 사적 305호인 산천재와 별묘 신도비 남명기념관 그리고 묘소등이 조성 되어 있다. 산천재 뜰 앞에는 남명선생이 손수 심었다는 460년된 남명매가 남아 있다. 남명선생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이곳에 산청군에서 개설한 남명등산로가 있어 소개를 한다.
사리버스정류장의 옛 산천재 모습
덕산교를 건너면
사리마을회관 옆의 수양산 등산로 입구.
시무산 정상. 삼각점이 있다.
402m봉 갈림길 . 수양산~덕산교 나무판
☞(경남여행/산청여행/지리산여행)시천면 덕산 수양산~마근담 계곡 산행 경로.
산행경로를 보면 산천재와 남명기념관이 있는 사리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한다. 덕산교~사리마을회관~임도~시무산 정상~402m봉~판짐재~수양산 정상~감나무 밭~벌목봉 정상~지리산 둘레길 사거리(용무림재)를 거쳐 안마근담 갈림길~마근담~사리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잡았다. 산행거리는 13.5㎞며 산행시간은 4시간 안팎, 휴식을 포함하면 5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리고 지리산 둘레길 사거리인 용무림재에서 왼쪽은 마근담 계곡 방향이고 그 반대 방향인 오른쪽은 남명선생이 찾아 들었다는 절경의 백운계곡으로 여름산행지로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시천면 소재지와 구곡산.
수양산 정상. 작은 안내판이 정상임을 알린다.
뒷 봉우리가 벌목봉. 300m의 표고차를 극복해야 한다.
안부의 감나무 밭
☞(경남여행/산청여행/지리산여행)시천면 덕산 수양산~마근담 계곡 산행 사리마을에서 시작.
산행은 산청군 시천면 사리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한다. 버스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산천재와 남명기념관이 나오며 하산 후 들러 보도록 하자. 수양산 산행은 그 반대인 진주방향이다. 덕산교를 건너면 사리마을회관이 나오고 맞은 편 산으로 임도길이 올라간다. 입구 나무에 리본이 많이 걸려 있어 쉽게 들머리를 찾을 수 있다.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지그제그 임도 길을 잠깐 올라가면 무덤을 지나 비포장 임도로 바뀐다. 다시 앞에 무덤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크게 꺾어 돈다. 5분 뒤 수양산 등산길은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 산길로 올라간다. 이곳도리본이 여럿 걸려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등산로 옆으로 오래된 철조망이 따라 올라간다
벌목봉 오르는 된비알 산길.
벌목봉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
벌목봉을 내려 오면서 보이는 백운계곡과 웅삭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지리산 둘레길인 용무림재. 이곳에서 왼족인 마근담 방향.
☞(경남여행/산청여행/지리산여행)시천면 덕산 수양산~마근담 계곡 산행 시무산과 판짐재를 지나면 수영산.
산길은 서서히 오름길이다. 무덤 하나를 지나며 급경사 된비알로 갈지자로 이어지다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이 완만해지면서 시무산 정상에 올라선다. 시무산의 내력은 알 수 없지만 '산청454' 삼각점이 박혀 있다. 이번 산행 내내 조망이 시원찮다. 그러나 그만큼 숲 그늘을 제공하는 산길은 완만한 능선을 따라 왼쪽 10시 방향으로 간다. 다시 시무산과 비슷한 높이인 402m봉에 닿는다. '수양산/덕산교' 방향을 알리는 작은 나무판이 걸려 있는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가파르게 내려간다. 산길은 곧 완만해지며 정면 나무 사이로 수양산 전위봉인 판짐재(454m)가 솟아 있다. 멀리서 보면 수양산으로 착각하기 쉽다.
마근담으로 내려가는 지리산들레길.
콘크리트 임도로 내려서면 왼쪽 사리 임도 방향.
안마근담 갈림길. 이곳에서도 역시 왼쪽마근잠 방향.
☞(경남여행/산청여행/지리산여행)시천면 덕산 수양산~마근담 계곡 산행 최대의 고비 벌목봉 오름길.
10분이면 사거리 고개가 나온다.왼쪽으로 내려가는 흔적이 뚜렷하다. 수양산은 직진해서 정면의 완만한 오르막을 타야한다. 15분 후 왼쪽 소나무 사이로 시천면 소재지인 덕산과 덕천강, 구곡산이 높게 솟아 있다. 잠시 뒤면 밑에서 본 454m봉 판짐재에닿는다. 수양산은 완만한 능선을 따라 간다. 묘터인지 넓은 공터를 지나면 수양산 정상이다. 정상석 대신 나무판에 수양산이라 적혀 있고 '산청455' 삼각점과 시멘트 원기둥이 서 있다. 여기도 시무산 정상 처럼 조망은 기대하기 힘들다.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벌목봉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표고차가 300m 이상이다. 벌목봉을 가기위해서는 정면으로 내려간다.
마근담 펜션.
감투봉의로 이어지는 능선.
필자의 모습.
☞(경남여행/산청여행/지리산여행)시천면 덕산 수양산~마근담 계곡 산행. 지리산둘레길인 용무림재에서 마금단 계곡 하산.
안부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다. 10분이면 삼거리다. 오른쪽은 개간지라 나무를 걸쳐 막아 놓았다. 왼쪽으로 가면 곧 임도 갈림길을 만나 직진한다. 6분이면 감나무밭에 선다 봄철에는 고사리가 지천으로 올라와 있는 농장으로 등산객은 농작물에 욕심을 내면 안될 것 같다. 정면으로 직진하여 소나무 숲 방향으로 들어선다. 여기도 리본이 많이 붙어 있다. 숲에 들어서면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곧 파 놓은 물길을 지나 간다. 산길은 잠시 뒤 이번 산행의 최고 고비와 직면한다. 급격한 오르막 경사로 고도차 300m나 극복해야한다. 이곳에서는 체력안배를 잘하여 천천히 올라야하며 급경사라 쉬기도 마땅찮다.
마근담에 있는 고목.
물의 맑기가 옥수인듯 깨끗한 마근담계곡.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아쉽다.
☞(경남여행/산청여행/지리산여행)시천면 덕산 수양산~마근담 계곡 산행 백운게곡을 보며...
급경사를 20여 분 올라가면 산길은 벌목봉을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간다. 잠시 후 743m 벌목봉 정상에 오른다. '벌목봉 743m'라 적힌 나무판이 걸려 있고 이곳 또한 조망이 없다. 옆에는 폐헬기장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간다. 고도를 그 만큼 높혀서인지 지리산 둘레길인 용무림재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이다. 하산 길 능선 오른쪽으로 깊게 파여진 골짜기가 백운계곡이다. 산길은 완만해지면서 지리산 둘레길과 만나는 용무림재 사거리다. 둘레길 이정표 뒤 능선길은 웅석붕으로 올라가는 산길이다. 입구에 지리산둘레길이 아니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오른쪽은 백운계곡으로 내려가는 지리산 둘레길이고 원점회귀를 하기 위해서는 왼쪽인 마근담 방향이다.
마근담계곡의 어느 집 정원의 모습. ㅋㅋ 남근석 같기더도하고
출발지 사리 버스 정류장.
☞(경남여행/산청여행/지리산여행)시천면 덕산 수양산~마근담 계곡 산행. 마근담으로 내려서는 지리산 둘레길 신바람.
넓은 임도를 걷다 다시 잠시 길이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진다. 많은 둘레길 탐방객으로 인해 산길은 잘 나 있다. 산허리를 따라 이어지는 지리산 둘레길 코스답게 정비된 길을 따라 20분이면 콘크리트 임도로 내려선다. 왼쪽 내리막길이다.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6, 7분 가면 사리에서 안마근담으로 올라가는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다. 여기서도 마근담 펜션이 있는 왼쪽으로 내려간다. 오른쪽으로 마근담계곡이 보이고 20여분 넓은 콘크리트 길을 내려가면 마근담교를 건넌다. 여기서부터는 작은 폭포와 소가 이어지지만 아쉽게 상수원보호구역이라 계곡을 바라만 봐야 하는 게 안타깝다. 한참을 내려가면 새로 만든 큰 다리를 지나 아스팔트 도로로 바뀌고 더욱 도로는 넓어 진다. 마을을 지나 도로 끝까지 내려가 삼거리에서 왼쪽은 출발지 사리 버스정류장이고 산천재와 남명기념관은 오른쪽에 있다.
산천재와 남명매
남명기념관.
☞(경남여행/산청여행/지리산여행)시천면 덕산 수양산~마근담 계곡 산행. 교통편.
산청군 시천면 사리는 진주에서 들어가야 한다. 진주행 버스는 사상시외버스터미널이에서 수시로 있다. 진주터미널에서 오전 8시, 8시35분, 9시5분, 9시30분, 10시 등에 출발하는 중산리나 홍계·대원사행 버스를 이용하여 기사님께 사리 정류장을 부탁하면 편리하다. 하산 후 사리에서 진주 가는 버스는 오후 8시(막차)까지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이번 코스는 원점회귀라 승용차를 이용하면 더욱 편리하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진주분기점에서 통영대전고속도로로 바꿔 탄다. 단성IC로 나와 20번 국도를 만나면 우회전해 중산리 방향으로 가다가 사리교차로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 들면 출발지 사리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소바는 국수의 일본이름이다. 왜 의령에서는 국수라 하지 않고 의령소바라 하는지 궁금하다. 먼저 의령소바의 유래를 보면 일제강점기때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유래가 되었다.
☞(경남맛집/의령맛집)의령소바. 의령소바는 원래 일본이 시초. 의령소바 유래.
의령군 부림면의 신반마을 할머니가 일본에서 메밀소바를 직접 배워 고향으로 돌아오며 시작 되었다는 설과 귀국선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온 분에게 배웠다는 설, 의령 전통 국수가 일제강점기에 소바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오늘날 의령소바의 시초가 되었다.
의령소바의 비빔소바 6천원.
☞(경남맛집/의령맛집)의령소바. 3대를 이어온 의령상설시장 맛집 의령소바.
의령읍내 의령상설시장 인근의 의령소바는 현재 박현철대표 외할머니 대부터 어머니를 거쳐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전통 음식점이다. 지금은 망개떡과 함께 의령을 대표하는 우리음식으로 당당히 자리를 꿰차고 있다.
☞(경남맛집/의령맛집)의령소바. 의령소바는 냉소바 온소바. 비빔소바등 다양.
일본의 메밀소바를 보면 면을 간장국물에 담가 먹는데 의령소바는 우리의 국수나 냉면 밀면 같이 먹는 방식과 똑 같다. 계절에 따라 겨울에는 온소바를 여름철에는 냉소바로 더위를 씻어 주고 취양에 따라 메콤한 비빔소바는 입맛이 없을 때 먹는 다면 최고의 맛이 아닐까 싶다.
☞(경남맛집/의령맛집)의령소바. 숙취해소에 좋은 메밀소바 의령소바.
메밀은 술먹은 다음날 숙취해소에 탁월하다는군요. 애주가분들 참고하세요. 의령소바는 우리 입맛에 맞는 육수로 개발되었다.
☞(경남맛집/의령맛집)의령소바. 의령소바는 멸치 국물 육수 사용.
의령소바의 육수는 멸치다시를 국물을 내는데 다시용 멸치를 3~4시간 푹 삶아 육수를 만든다. 그 국물에다 메밀소바를 넣고 일주일을 조린 쇠고기 장조림으로 잘게 찢어 기미를 올린다.
☞(경남맛집/의령맛집)의령소바. 의령소바는 장조림으로 쇠고기 엉덩이살 사용.
의령소바에서는 소의엉덩이 살로 장조림을 만드는데 기름기가 가장 적은 부위로 장조림을 만든 후 여과지에 걸러 기름을 완전히 제거한다. 멸치 육수에 장조림 국물을 섞어 사용하여 기존의 육수보다 더욱 고소하며 맛있다는 말씀.
☞(경남맛집/의령맛집)의령소바. 의령소바는 드라마 천명 후원
본점은 모든 음식이 선불이며 의령소바의 음식은 모두 놋그릇에 담겨져 나온다. 중후한 모습과 정성을 다한 것 같은 그 모습이 모든 놋그릇이 이야기를 대신 해준다. 놋그릇 들어보면 엄청 무거워요. 직원분들이야 고생을 하지만 손님들의 건강를 먼저 생각하는 의령소바. 그 놋그릇 때문에 KBS 드라마 '천명'을 후원한 것 같습니다. ㅎㅎ 혹 의령에 가면 함 드셔보세요. 냉면하고 또 다른 맛입니다. 아 그리고 요즘은 체인점이 많이 집 인근의 가까운 곳에서 먹을 수 있습니다.
신라 경덕왕때 주민의 평안함을 염원하는 뜻에서 안강이라 한것이 지명으로 굳어 졌는데 그만큼 넓은 안강들로 인해 살기 좋은 고을인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안강의 차디찬 북풍을 막아주는 도덕산과 자옥산은 경주 안강을 대표하는 산으로 들머리에 있는 독락당과 옥산서원이 동방오현의 한사람인 회재 이언적의 숨결이 묻어난다. 이곳 양동마을과 옥산리는 회재 이언적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채취가 골고루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신라시대때 부터 붉은 옥이 많이 생산되었다는 자옥산. 그 아래 있는 마을이라 옥산이라 자연스럽게 불렸고 신라의 선덕여왕이 이곳을 찾아 왔다한다. 궁궐에 많이 필요한 옥 때문에 온것은 아닌지 도덕산의 옛이름도 선덕여왕이 찾아 왔다하여 두득(덕)산으로 불리다가 조선중기 회재 이언적에 의해 도덕산으로 바꾸어 졌는데 이산을 오르면 자연적으로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깨닫고 먼저 인간이 되도록 하는게 아닐지 모를일이다. 요즘 인간 같잖은 사람들이 많아 도덕산을 열심히 올라볼 것을 권한다.
독락당 주차장. 도덕산~자옥산 출발지.
장산서원 빗돌을 따라간다.
독락당 뒤 운치 있는 숲.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갈림길.
정혜사지십삼층석탑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산~자옥산 산행 경로.
산행경로는 경주시외버스 정류장 옆 시내버스 주차장에서 203번을 이용한다. 양동마을을 거쳐 안강읍을 경유하여 버스 종점인 독락당 주차장에서 내리면 된다. 독락당~정혜사지십삼층석탑~민내마을 삼거리~도덕암 입구~도덕암~도덕산~사거리 안부~자옥산~전망대~산장식당~독락당 버스 정류장 순으로 산행 시간은 3시간30분이며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4시간30분에서 5시간쯤 소요된다.
먼저 주차장에서 독락당을 보고 왼쪽 장산서원 빗돌 방향의 도로를 따른다. 세심권역 전통체험 학습장을 지나고 독락당을 왼쪽으로 돌아 뒤쪽 숲을 끼고 간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 이정표가 서있다. 오른쪽 자계천을 건너면 포항시 기계면(3.2km)임도 방향. 도덕산은 장산서원 0.6km의 직진방향이다. 곧 정혜사지십삼층석탑 갈림길 이정표와 만난다. 왼쪽으로 정혜사지십삼층석탑이 보이고 도덕산과 자옥산를 잇는 안부 사거리에서 내려오는 하산길이 이곳에서 만난다. 석탑을 보고 나와 장산서원 방향(0.5km)을 따른다.
도덕암 갈림길. 왼쪽으로 오른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암을 거쳐 도덕산 정상으로...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르면 '산방을' 안내판을 지나면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도덕암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걸어 간다. 호룡산 관음사 안내판이 서 있는 삼거리 도로에서 오른쪽은 민내마을(2.12km)방향. 도덕산(2.66km)은 직진한다. 비포장 임도길로 바뀌고 4분이면 왼쪽 풀숲에 도덕암을 가르키는 안내판이 숨어 있다. 이곳이 도덕산 들머리다. 현재 도덕암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도덕암까지 차로 올라 갈 수 있는 전에 없던 임도 길이 뚫여 있다. 도덕산은 도덕암 산길을 오른다. 초입부터 나무계단을 올라야 한다. 잠시 뒤 산길로 변하고 햇빛 한줌 들지 않는 숲 그늘 오름길이다. 다시 돌계단을 오르면 산길은 다시 오르막이 나온다. 15분이면 도덕암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산길은 도덕산(2.03km) 방향. 오른쪽 도덕암 방향으로 직진한다. 곧 도덕암으로 오르는 임도와 만나며 콘크리트 포장이 완벽하게 되어 있다. 이곳에서 왼쪽의 도덕산 방향으로 올라도 도덕암으로 가진다. 도덕암 오르는 콘크리트 임도 길도 급경사라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승용차로 도덕암까지 오를때도 급경사와 곡각이 심하여 운전에 주의를 해야 하겠다. 7분이면 다시 도덕암(0.06km)과 도덕산(1.56km) 갈림길과 만난다. 머리를 들면 도덕암의 요사채를 볼 수 있다. 오른쪽 임도를 따라 도덕암으로 간다.
도덕암은 여느 절처럼 규모가 크지 않다. 작은 암자 수준으로 이곳에서 보는 전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면 기계면으로 임도가 구불구불 넘어가고 그 오른쪽에 어래산이 솟아 있고 왼쪽으로 봉황의 자리인 봉좌산이 큰 덩치로 솟아 있다. 이곳에서 수도꼭지를 틀어 시원한 물을 한바가지 들이키니 폐부의 때를 씻어 버리기에 충분하다. 누구나 이곳에 오르면 도덕의 경지에 도달할 것 같다. . 도덕산 오르는 산길은 암자 입구에서 바위를 왼쪽으로 돌아 오르는 길이며 도덕산과 산령각 가는 길이다. 작은 산령각 앞에도 바위로 된 멋들어진 전망대를 만난다. 도덕산 정상은 산령각 왼쪽의 덱으로 만든 계단길이다. 산신각 위의 덱 전망대에서 마지막으로 주위를 일별하면 다시 본격적인 오르막 산길이다. 7분이면 오래된 이씨묘를 지나고 왼쪽으로는 잘게 부서진 너덜이 길게 내려와 있다. 오르는 산길 옆으로 3m는 됨직한 반듯한 바위가 서 있고 주위로 고만고만한 바위가 층 덤을 이루고 있다. 9분이면 일직선으로 내려오는 덱 계단이 바위에 걸려 있다. 이곳을 올라서면 곧 능선이다. 자옥산과 도덕산을 연결하는 능선으로 왼쪽은 자옥산 방향, 도덕산 정상은 오른쪽 30m 앞이다.
오르막을 오르면 정상석이 3개나 서 있는 도덕산 정상이다 . 2010.3월 한맥회에서 세운 정상석이 눈길을 끈다.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포항의 기계쪽 풍경과 봉좌산~어래산 능선 그리고 들머리인 옥산리의 보면 고도감이 엄청 높아 도덕산의 높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도덕산의 유래는 신라시대에 선덕여왕이 이곳에 다녀 갔다고 두득(덕)산이라 불리다가 조선중기 동방오현의 한분인 회재 이언적이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 파직되어 낙향하여 옥산리 자계천에 독락당을 짓고 1533년 중종28년 사산오대를 명명하면서 도덕산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자옥산 방향은 삼거리까지 되돌아 간다. 왼쪽은 도덕암에서 올라온 길이며 자옥산 방향은 직진한다. 산길은 내리막이다. 바위를 잡고 내려서는 곳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타나고두 길다 서로 만나지만 오른쪽 산길이 전망대에 올라선다. 서쪽인 영천방향과 낙동정맥길인 삼성산이 오룡리를 감싸고 있다. 도덕산과 자옥산의 능선길은 숲이 짙어 하늘이 보이지 않는 초록색 오솔길이다. 왼쪽 능선을 따라 정혜사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희미한 갈림길을 나타나면 오른쪽 뚜렷한 산길을 내려간다.
도덕산과 자옥산 사이 사거리 안부 .
자옥산 정상.
계정마을 갈림길
안강들과 읍면 전망대.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도덕산~자옥산 산행. 도덕산~자옥산 산행 자옥산 아래 산장 식당으로 하산.
도덕산 정상에서 약25분이면 사거리 안부. 왼쪽으로 정혜사지십삼층석탑(1.65km)으로 하산하는 길이 열려 있다. 오른쪽은 오배마을(1.43km), 자옥산(0.74km)은 직진한다. 70m 뒤 다시 갈림길과 만난다. 왼쪽 정혜사지십삼층석탑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이 더 뚜렷하다. 오른쪽으로 서서히 올라간다. 자옥산까지는 대체적인 오르막 산길로 이어진다. 월성최씨묘에서 한숨을 돌리고 정상이 다 와 가는지 산길은 한결 수월하다. 정상 직전의 갈림길에서 왼쪽은 옥산리 산장식당으로 바로 하산을 하고 오른쪽을 오르면 곧 정상이다. 검은 빗돌이 자옥산 정상임을 알리고 그 옆으로 돌로 쌓아 올린 축대가 있다.
숲으로 가려 조망은 전혀 볼 수 없다. 하산을 서두르면 정상석 앞으로 난 길을 10m 내려서면 하곡저수지(4.24km) 갈림길. 왼쪽에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하곡저수지 계정마을(1.74km) 스텐리스 이정표가 서 있다. 계정마을 방향으로 하산한다. 곧 오른쪽으로 편편한 바위가 나타나고 그 끝에 두사람이 바위에 걸터 앉아 안강들판과 읍내를 바라 볼 수 있는 멋진 전망대를 만난다. 다시 산길로 복귀하면 이번에는 왼쪽으로 편편한 바위로 된 전망대를 열어준다. 하산길은 고도를 낮추기 위해 갑자기 뚝 떨어지고 묘지 한기를 지나면 소나무 숲길로 바뀐다. 에돌아 나가는 편안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자옥산 정상에서 40여분이면 산장식당 주차장이 나오고 곧 토산도요 앞 도로다. 독락당 주차장은 왼쪽 도로를 따라 가면 지척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도덕산~자옥산. 도덕산~자옥산 교통편.
일단은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까지는 가셔야 겠죠.
교통편은 경주시외버스 터미널을 나오면 오른쪽으로 50m만 가면 시내버스주차장이 나온다. 그곳이 양동마을가는 버스 주차장이다. 안강행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203번 버스로 오전 6시20분, 7시30분, 9시15분, 10시30분, 12시30분으로 45~55분이 소요된다.
승용차는 네비로 독락당이나 정혜사지십삼층석탑을 치면 된다. 위치는 버스 종점인 독락당 앞에서 장산서원 방향으로 따라가면 된다. 독락당 뒷편 자옥산과 도덕산의 부드러운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