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영도여행/영도가볼만한곳)청학동 해돋이 전망대 청학마루. 영도 최고 전망대로 손색없는 봉래산 둘레길 청학동 해돋이 벽화 마을 해돋이 전망대 청학마루를 만나다.


 어제 5일간의 긴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아쉬움을 달래고자 집 앞 남항에 놓인 남항대교를 걸어 영도로 콧바람을 쉬러 갔습니다. 영도는 이름 그대로 섬입니다. 섬인 영도를 이루는 게 영도의 최고봉인 봉래산입니다.







봉래산은 신선이 산다는 곳으로 강원도 금강산과 동격인 산입니다. 금강산은 사시사철 부르는 이름이 달라 여름에만 봉래산으로 부른다지만 부산 영도의 봉래산은 일 년 내내 주야장천 봉래산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산이면 신선이 사는 경치일까요?? 실제로 영도 봉래산 자락에는 신선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신선동이 그러하고, 청학동도 그러하고 영선동, 봉래동 등 모두 신선과 관계한 신비로운 이름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중에서도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푸른 학인 청학이 산다는 청학동 해돋이 마을에 올해 초 새롭게 해돋이 전망대 청학 마루가 조성되었습니다. 봉래산 둘레길을 걷고 할 때 한창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정상을 찍고 내려오면서 봉래산 둘레길에서 해돋이 전망대 청학 마루가 완공되어 우연히 보았습니다.



청학마루는 봉래산 둘레길에서 전망대 구실을 톡톡히 하였습니다. 해돋이 마을은 새뜰마을이라 부릅니다. 지난 2015년에도 해돋이 벽화 마을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해돋이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해돋이마을의 해돋이 전망대인 청학마루 포스팅 입니다. 해돋이 마을의 처음 시초는 한국전쟁으로 피난 온 분들이 이곳에 하나둘 모여들면서 지금의 마을을 이루어 다른 지역보다도 많이 낙후되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영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의 마을로 그만큼 조망이 끝내주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른 아침 떠오르는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라는 해돋이 마을의 애칭을 얻었습니다. 해돋이 벽화 마을 포스팅을 따로 올려 섰지만 벽화가 하나같이 어릴 적 동심을 끄집어 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딱지치기, 비석 치기, 동꼬찌르기, 말뚝박기 등 개구쟁이 아이들은 모두 한 번쯤 해보며 뛰고 놀았을 추억을 그림으로 만나는 곳입니다. 그리고 2016년 2월 23일에 또 하나의 볼거리가 완공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전망 좋은 곳에 청학 마루 전망대까지 떡하니 만들어져 이제는 영도 최고의 조망처가 되었습니다.



영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청학동 해돋이 마을 전망대 청학 마루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주민지원공모사업의 일환인 봉래산 둘레길 휴게소 조성사업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예산 3억 원으로 전체면적 58.35㎡에 번듯한 지상 3층 규모의 전망대입니다.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렸으며 2층의 청학 마루 카페도 연휴라 그런지 문이 꼭꼭 잠겨져 3층 전망대에서 부산항대교와 신선대 부두 등 주변 경치만 보고 내려왔습니다. 따뜻한 커피를 음미하면서 밖의 경치를 보고 싶었는데 참 많이 아쉬웠습니다. 또다시 봉래산 둘레길을 걸을 때는 삼각대를 들고 올라가 부산항 대교 야경도 담아야겠습니다.


청학동 해돋이 벽화 마을 해돋이 전망대 청학마루



해돋이 벽화마을에서 본 부산항 대교 



◆청학동 해돋이벽화마을이 궁금하다면 

2015/09/09 - (부산여행/영도여행)그림으로 다시 태어난 피난민촌 마을 청학동 해돋이 마을 벽화 여행을 하다. 청학동 해돋이마을.








해돋이마을 청학배수지 야경





728x90

728x90



 ☞(강진여행/강진가볼만한곳)전라병영성. 지금 한창 발굴조사가 진행중인 제주도와 전라도 육군 총지휘부였던 전라병영성 여행, 그 규모에 입이 쩍~~


전라남도 강진에는 이름만 들어도 많은 군 병력이 주둔했음을 알 수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강진군 병영면이며 이곳은 지리적 역사적으로도 알 수 있는 게 1895년 고종 32년의 갑오개혁 때까지 조선 시대를 통틀어 500여 년 동안 전라도와 제주도를 포함하는 53주 6진을 총괄했던 전라도 육군의 총 지휘부가 있었습니다.









병영면에 전라 병영성이 설치되기 이전에는 오늘날의 광주시 광산구에 병마절도사 영이 있었지만 1417년인 태종 17년에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전라 병영성의 초대 병마절도사는 마천목 장군이었으며 병영성을 처음 축조하신 분입니다.





전라병영성 치성


전라 병영성을 세류성(細柳城) 또는, 설성(雪城)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마천목 장군이 꿈속의 계시를 받아 눈이 내린 자국을 보고 성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험준한 산세인 수인산을 등지고 평지에다 세운 성으로 남·북으로 긴 장방형에 전체 길이는 1.06km이며 높이는 3.5m, 면적은 93,139㎡입니다.





전라병영성 옹성


병영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7년 전쟁이 끝난 뒤인 1599년 선조 32년 도원수였던 권율 장군의 상소로 장흥으로 잠시 이전하지만 두 전란으로 파괴된 성곽을 보수하고 5년만인 1604년에 다시 지금의 병영성으로 옮겨왔습니다.







병영성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오면서 숱한 왜구와의 침략에 맞서다 1894년 12월 10일 동학농민전쟁으로 병영성이 동학군에 함락되어 폐허가 되자 1895년 고종은 갑오경장으로 병영성을 폐지하는 조처를 합니다.







강진 병영성은 또한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다 태풍에 좌초하여 표류하면서 제주도의 모슬포로 상륙하였습니다. 뒤에 하멜 일행은 전라남도 강진의 전라 병영성에서 7년간의 유배 생활을 하다 1666년 현종 7년 9월 4일 원래의 목적지였던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는데 조선에서 13년간 억류 생활이었습니다.







하멜은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가 1668년 ‘하멜 표류기’란 이름으로 서양에다 조선을 최초로 알리는 책을 출간합니다. 병영성은 이방인 하멜의 7년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입니다.





전라 병영성은 2012년도의 1·2·3차 발굴조사에서 전라 병영성의 북서쪽 일원을 조사하여 건물지 15곳과 연지 4곳, 담장과 배수로, 우물 등의 유구 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여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발굴조사에서 15곳의 건물지를 확인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슈는 객사 터의 발굴입니다. 정면 11칸에 측면 4칸으로 그 규모가 54m*18m 크기로 상당히 큰 규모를 가졌습니다. 앞면 15칸, 옆면 5칸인 우리나라에서 목재 건축물로 두 번째로 크다는 여수 진남관의 규모가 54.5m*14m 입니다. 따지고 보면 규모 면에서는 진남관보다도 더욱 크고 웅장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객사 건물은 당시 발굴조사에서 3차례 축조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1차 때는 발굴 유물인 기단의 배열과 초석, 온돌 등에 근거하여 조선 초기로 보이고 2차와 3차도 기단의 축조와 발굴된 유구 등에서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객사가 있는 서쪽에는 4개의 연못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병영성의 식수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연못 터 사이에서 건물터 3곳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연못의 크기는 큰 게 27m*20m*1.8m였고 당시 문헌의 기록을 보면 연못 터 사이의 건물이 연희당 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연희당은 병영성의 최고 책임자인 병마절도사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거나 부하장수들과 연회와 회의장소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 외곽을 둘러쌓은 성은 동서남북에 성문 앞을 반월형으로 가려 성문을 보호하는 작은 성인 옹성을 두른 성문에다 네귀퉁이와 동·서쪽벽은 성벽에서 돌출하여 쌓은 성인 치성을 각각 2개씩 복원하였습니다. 발굴에서 남서쪽에는 두 곳의 배수구 시설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필자가 이번에 강진을 여행하면서 전라 병영성의 규모가 대단하다하여 병영성을 찾았습니다. 현재 강진 전라 병영성은 2016년 4월 5일~2016년 11월 14일까지 160일간 5·6차 정밀 발굴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병영성은 지금 먼지가 펄펄 날리며 한창 발굴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지난번 남측의 4차 발굴조사와 연계하여 남측의 5차와 남동측의 6차 발굴이 무더위 속에서도 건물의 부재인 작은 파편이라도 찾는다는 일념으로 땀방울을 쏟아내었습니다.





 


현재 사적 제397호로 지정된 전라 병영성은 외곽인 성벽과 동서남북의 성문, 문루 등을 복원했다면 이번 발굴조사는 전라 병영성 관련 유구의 잔존 규모 등을 정밀히 조사하여 병영성의 내부인 여장 복원공사와 성 내부의 건물 및 주요시설 복원을 위한 추가 발굴조사로입니다. 모든 발굴조사가 완료되면 복원할 전라 병영성의 웅장한 건물 모습이 정말 기대됩니다.


전라 병영성 주소: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728x90

728x90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화림동계곡 동호정. 하늘의 선녀도 시샘할 풍경 동호정을 여행하다. 함양 선비길 동호정.



남강 상류 60리의 금천을 화림동 계곡이라 합니다. 그 화림동계곡의 가운데에 동호정의 정자가 있습니다. 선비들의 시와 담론장소로 이용하였던 자리에 정자라 하기에는 큰 동호정을 주춧돌도 없이 구불구불 다듬지 않은 나무를 너른 암반에다 그대로 세웠습니다.







2016/08/29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선비길 화림동계곡 거연정. 선비의 고고한 기풍이 느껴지는 함양 화림동 계곡 거연정에서 가을 하늘을 만나다. 함양 거연정

2016/08/26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화림동계곡 군자정. 일두 정여창이 유영하였다는 영귀대 암반에 새운 군자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가는 여름을 잡아보다. 함양 군자정




 

 


층층이 포개어진 단애는 깊은 소를 이루어 함양 화림동 계곡에서 최고의 누각이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동호정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 크기의 중층 건물로 겹처마의 팔작지붕입니다. 화림동 계곡의 거연정과 군자정, 농월정 등 여러 정자보다 더 크고 웅장하며 주변의 진경산수와 함께 한 폭의 한국화 소재로 가장 잘 어울립니다.


 

 

 

 


누마루를 오르는 나무 계단에서 동호정은 꾸밈이 없는 모습을 하였습니다. 통나무 두 개를 자연스럽게 붙여 도끼로 찍어내어 투박하게 계단을 만들었지만, 그 어떤 오성급 호텔의 이탈리아산 대리석 계단보다도 훨씬 좋으며 운치 있고 양복에 짚신이 아닌 삿갓과 짚신같이 한 몸을 이룰 정도로 동호정과 정말 잘 어울려 자연에 동화하는 선비정신을 닮았습니다.


 

 

 

차일암과 동호정 

 

 


군자정은 이마에 밭고랑이 움푹 팬 수더분한 시골 촌로와 닮았다면 거연정은 연지곤지 예쁘게 색칠하고 시골 오일장을 걷는 품새 있는 아낙네 모습입니다. 그에 반해 동호정은 예쁘고 화려하게 치장하고 잘나가는 도시녀의 모습이지만 화려함에 비해 추하지 않으며 주변의 녹색에 스며들어 자연과 동화된 모습입니다.


 

 

 

 

 

 


그만큼 단청이 화려한 동호정을 마주하면 이때까지 답답했던 가슴에 생기를 불어 넣어줍니다. 삐꺽 삐꺽 소리를 내는 투박한 계단을 밟고 누마루를 올라 단청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 동호정을 지탱하는 대들보에는 용과 호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두개의 나무를 가지런하게 붙여 도끼로 찍어 만든 투박한 나무 계단

 

 


여의주를 문 황룡과 청룡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이는 용이 물을 다스리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궁궐이나 서원, 누각, 사찰 등 주로 목재건물에 청룡과 황룡을 많이 조각해놓았는데 이는 불에 취약하기 때문이며 호랑이 두 마리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악귀로부터 막는 비보 역할로 보입니다. 그리고 연꽃과 화려한 꽃무늬를 돌려놓았고 공자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니구산에서 기도하여 태어난 공자부터 74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모습을 보면서 동호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동호정은 조선시대 학자였던 동호 장만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그의 9대손인 가선대부 오위장 장재헌과 지역 유림이 뜻을 모아 1890년에 건립한 정자로 공의 호를 따 동호정이라 하였습니다. 동호 장만리는 임진왜란 때 의주로 몽진하는 선조를 등에 업고 피난하셨던 분입니다.


 

 

 

 

 

 


당시 충신이라 떠들던 신하들은 전란 통에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지만 장만리는 끝까지 선조 곁에 남아 주군을 보필하니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선조는 호국공신의 원조공신에 책록하셨습니다. 말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선생은 그의 고향인 함양군 서하면 황산마을에 낙향하여 화림동계곡의 차일암에서 마음을 닦으며 가끔 낚시를 즐겼셨는데 그의 후손이 모여 선조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다 동호정을 건립했습니다.


 

 

 

 

 

 

 

 


1892년 조선 말기에 고종황제는 공을 좌승지에 추증하고 충신정려를 다시금 내려 그의 충절을 기렸습니다. 공이 유영하던 백옥같이 하얀 암반인 차일암에서 보니 파란 하늘과 울울창창한 녹색의 숲, 물감을 푼 듯 파란 옥수와 동호정의 붉은 단청이 너무나 잘 어울렸습니다. 이만한 모습이면 화림동 계곡의 동호정은 선녀도 시샘할 것 같습니다.


 

 

 

 

 


함양 동호정 주소: 경남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842





728x90

728x90



 

☞(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가야산 해인사.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고려대장경 판전 불법종찰인 가야산 해인사를 여행하다. 합천 가야산 해인사. 



합천의 명산인 가야산은 해인사를 품고 있습니다. 가야산이 해인사고 해인사가 가야산으로 통할 정도로 서로 떼고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불교 성지로서 가장 신령스런 산중 한곳입니다. 가야산의 산 이름에서도 불교색채가 아주 강한데 '가야(Gaye)'의 뜻은 ‘최상의’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드신 ‘붓다 가야’에서 가야산을 따왔다고 하며 또한, 옛날 가야국이 있던 산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만큼 가야산은 성스러운 장소로 알려졌으며 이런 곳에 해인사가 창건한 것은 어쩜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2016/08/24 - (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 유정이 입적했던 암자 가야산 해인사 홍제암을 여행하다. 홍제암

2016/08/23 - (합천여행)가야산 홍제암 사명대사 석장비와 부도. 왜!! 사명대사 석장비는 쪼개졌을까요?, 부도에는 왜! 대사의 명문을 새기기 않았을까요? 사명대사 석장비와 부도

2016/08/20 - (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가야산 홍류동천 농산정. 고운 최치원이 갓과 짚신을 걸어놓고 신선이되었다는 명경산수의 해인사 소리길 농산정을 여행하다. 농산정





해인사가 가야산에 창건하기 훨씬 이전에 중국 남북조시대의 지공(418~514)스님이 예언하기를 “해동의 가야산에 대가람이 세워져 불법이 번창하리라”고 하셨다는데 약 300년쯤 후인 802년 신라 애장왕 3년에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이 해인사를 창건하여 오늘날까지 부처님의 법등은 꺼지지 않고 이어져왔습니다.





해인사의 이름을 보면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나왔다 합니다. 해인삼매란?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말할 때 들어간 선정의 이름으로 “바다에 풍랑이 그치면 모든 형상이 온전히 비치듯이 법계의 실상을 본래 모습 그대로 자각할 수 있는 상태” 즉 ‘마음의 고요함’을 뜻합니다. 사부대중인 필자는 해인사 이름에서 벌써 복잡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내 마음이 평정심을 되찾은 듯 평안함을 느꼈습니다.





해인사는 창건과 함께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선원, 강원, 율원을 포함한 최초의 총림으로 지정했으며 국보인 고려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한 법보종찰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95년에 유네스코에서 고려팔만대장경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여 장경판전을 세계문화 유산에 이름을 올렸으며, 2007년에는 고려팔만대장경경판과 해인사의 모든 경판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였습니다. 이런 문화재의 보고인 해인사를 늦었지만 여행하고 왔습니다.





먼저 부도전을 지나면 독특한 유래를 가진 ‘길상탑’이 있습니다. 길상탑의 유래는 신라 진성여왕 9년인 895년을 전후하여 7년간 궁예와 견훤의 싸움에 흉년으로 굶주린 장병을 위해 해인사 훈혁스님이 탁발하여 군량미를 조달하고 그 나머지로 길상탑을 세워 문수사리보살의 가피를 빌고자 무명으로 전쟁터에 나가 죽은 승병 56위의 넋을 기린 위렵탑입니다.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른 삼층석탑으로 높이는 약 3m이며 1965년 탑 속에서 최치원이 지은 ‘운양대묘길상탑지’와 157개의 소탑 등 유물이 나와 당시 사회 상황과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탑의 건립 내력을 소상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그리고 특이하게도 길상탑앞 도로에는 지금은 없지만 해방 이후까지 홍살문이 존재했으며 당간 석을 지나면 일주문이 나옵니다. 해인사 일주문은 1940년대 주지였던 변설호스님 때 대목장 이화백에 의해 중건하였습니다. 정면 현판의 ‘가야산 해인사’ 글씨는 해강 김규진이 섰으며 판각은 임환경 스님이 새겼고 뒷면의 ‘해동제일도량’ 현판은 박해근이 걸었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도 해인사를 찬미하였는데 “해인사의 사기는 가야산의 전국적 중심지로 그 자세가 당당하고 그 환경이 수려 명미 하여 아려한 위인이 칼을 잡고 설교하는 것 같다. 완연히 움직이는 활화일폭이다. 해인사는 명구라고 하느니보다 승지이며 승지라고 하느니보다 성경이다. 나는 국내외 사찰들을 많이 보았으니 해인사에 필적할만한 사기를 보지 못하였다. 거룩하다는 한 말 이외에 무슨 형용사를 붙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합천의 숨결 해인사의 향기/내암사상연구회)


 

 


 

 

 

 

 

 

 

 소원나무

 

 

 

 

 

 

 

 

 

 

 

 


해인사의 중심건물인 대적광전을 가기 위해서는 마당을 가로질러 갑니다. 그전에 먼저 석등을 만납니다. 석등은 부처님의 광명을 상징하며 사찰 경내를 어둠에서 밝히는 진리의 빛입니다. 해인사의 석등은 섬세하고 우아한 조각수법을 보면서 그 뒤쪽의 삼층석탑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여덟 잎 연꽃무늬가 엎어진 복련과 팔각의 화사석 아래에 연꽃무늬가 위로 향한 모양의 앙련 사이에 세운 팔각석간이 짧은 것은 1926년 석탑을 개축하면서 함께 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석등 북쪽에는 정중삼층석탑이 있습니다. 탑은 부처님의 사리 등을 봉안하는 곳입니다만 정중삼층석탑은 불상을 봉안한 탑으로 9세기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아마 해인사가 창건하면서 함께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며 대적광전 앞마당 한 쪽에 석등과 함께 약간 비켜 서 있습니다.


 

 

 

 


비로탑은 높이 6m 삼층석탑으로 기단은 원래 통일신라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2층 기단이었지만 1926년 중수하면서 3층 기단으로 탑을 높이고 확장하였습니다. 석등과 석탑 사이에 바닥 돌이 놓여있는데 정례석으로 이는 멀리 부처님을 향해 이마를 땅에 대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을 하는 곳입니다.


 

 

 



비로탑과 석등이 있는 마당 좌우에는 궁현당과 관음전이 있으며 궁현당 뒤에는 적묵당, 진영전, 정수당 등 전각 대부분이 해인사 승가대학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 사용합니다. 이제 대적광전이 있는 높은 축대를 오릅니다. 가운데 대적광전이 있으며 왼쪽으로 대비로전과 독성각, 오른쪽은 명부전과 응진전 등 예불공간입니다.


 

 


이제 해인사의 중심법당이자 큰 법당인 대적광전을 보겠습니다. 법당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셨습니다. 원래는 해인사를 창건하면서 비로전이 중심법당이었고 비로자나불을 모셨는데 6번이나 화재로 중창하면서 1488년에 대적광전으로 편액을 바꾸어 달았습니다. 지금의 대적광전은 단층이지만 겸재 정선(1676~1759)이 남긴 해인사 그림에 2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1817년 화재로 중창되기 이전에는 지금보다 더 큰 전각으로 추정됩니다.


 

 


대적광전의 의미는 비로자나불이 항상 계시면서 시공을 통하여 화엄경을 늘 두루 설하신다는 뜻입니다. 또한, 대적광전의 수미단에는 모두 일곱분의 불보살을 봉안한 아주 특이한 사례입니다.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을 가운데 모시고 그 왼쪽으로 지장보살, 보현보살, 법기보살을, 오른쪽에는 이전의 본존불이었던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관세음보살입니다. 이중 관세음보살과 법기보살은 쇠로 불상을 만들었으며 그 외 불상은 모두 목조로 만들었습니다.


 

 

 

 


대적광전 수미단에 모셔진 본존 비로자나 부처님은 고려 시대 불상으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불상의 높이는 233.3cm이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과 함께 처음에는 경북 성주군의 금당사에 봉안된 부처님이었는데 절이 폐사하면서 가야산의 용기사로 옮겨갔고 용기사 마저 폐사하면서 1897년 법운스님이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해인사 대적광전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현재 해인사 대적광전은 팔작지붕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웅장하며 큰 규모입니다. 네 면의 대적광전에는 모두 각각의 현판을 달고 있는데 이는 앞면의 대적광전 현판 글쓴이는 현재 알 수 없으며 뒷면 대방광전, 동쪽 면의 금강계단, 서쪽 면의 법보전은 해강 김규진(1868~1933) 선생의 글씨입니다.


 

 


현재의 대적광전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17년 (순조17년) 제월당 스님과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로 경상도 관찰사였던 김노경에 의해 중수되었으며 상량문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이 직접 썼다 합니다 해인사의 주련은 당시 명필가로 이름을 떨쳤던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니 해인사의 대적광전은 당대 명필들의 글씨로 더욱 유명합니다.


 

 


해인사 대적광전의 흥선 대원군이 썼다는 주련을 옮겨보겠습니다.

“불신보방대광명(佛身普放大光明) 부처님이 큰 광명을 두루 놓으시니

색상무변극청정(色相無邊極淸淨) 색과 모양이 가없이 청정하네

여운충만일체토(如雲充滿一切土) 구름이 온 국토에 충만하듯이

처처칭양불공덕(處處稱揚佛功德) 곳곳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네

광명소조함환희(光明所照咸歡喜) 광명이 비치는 곳마다 넘치는 환희여

중생유고실제멸(衆生有苦悉除滅) 중생들의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지네“


 

 

 

고려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



2016/08/25 - (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 대장경전, 고려각판. 부처님의 원력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려했던 고려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을 여행하다.



 

 

 


가야산이 있는 해인사의 지세는 거대한 방주형으로 가야산이 선체라면 해인사는 선실이고 중봉의 마애석불이 키를 잡는 선장이며 장경각 가운데에 큰 바위가 돛대바위였다 합니다. 그러나 1926년 대적광전 석축 보수를 하면서 이곳 바위를 깨어 사용하였습니다. 배의 돛대를 없애버렸는데 60년만인 1986년에 돛대바위 자리에 돛대를 대신하여 수미정상사리탑을 세워 이제 해인사는 앞으로 순풍에 돛단 듯이 순항할 일만 남았습니다.


 

 

 

 


여기는 학사대입니다. 신라말의 대문장가인 고운 최치원(857~?)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와 글씨를 쓰면서 보냈던 곳입니다. 그는 특히 가야금에도 능했는데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면 전나무에 수많은 학이 날아와 가야금 소리를 들었다고 전합니다. 학사대의 전나무는 최치원이 집고 다니던 지팡이를 거꾸로 꽂았는데 그게 살아남아 지금도 가지가 아래로 처져 거꾸로 자라는 듯 보인다고 합니다.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을 보신 법당입니다.  법당에는 중화 3년인 883년에 조성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동형쌍불 비로자나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끝으로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해인사를 찬미한 한시를 해석해 놓은 글을 옮겨 보겠습니다.

“옛 가야에 묻혀 있는 울창한 가람

천리 구름이 떠 있는 산을 대하며 참선을 한다

새가 내려 않은 정원에서 스님은 선정에 들고

담비가 나무를 타고 개염의 달콤함을 맛본다

글 바위 바둑 누각 어느 뉘 살고 있나?

잣나무 오동나무 소곤소곤 이야기 주고 받는다

객은 떠날 날 꼽으며 잠 못 이루고

깊은 밤 달빛은 소나무 탑 사이를 비춘다“


(참고:합천의 숨결 해인사의 향기/내암사상연구회 발행)

 



성철스님의 사리탑


2016/05/12 - (경남여행/산청여행)산청군 단성면 겁외사,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산은 산이요 물은물이로다" 성철스님 생가 율은고거와 겁외사 여행. 산청 겁외사









 

728x90

728x90

 


☞(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 대장경전, 고려각판. 부처님의 원력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려했던 고려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을 여행하다. 



합천에 가야산이 있다면 가야산에는 법보사찰 해인사가 있습니다. 그 해인사를 대표하는 게 법보사찰의 상징인 고려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입니다. 그 큰 해인사 경내를 둘러보면서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관광을 했습니다. 그러나 해인사의 중심건물인 대광보전 뒤쪽 팔만대장경 현판이 걸린 전각 밑 계단에 올라서면 벌써 샤~ 하고 느끼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대장경의 엄숙한 분위기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대장경의 보안 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곳곳에 CCTV가 설치되었고 많은 경비원이 물샐틈없는 관리를 하고 있는게 역시 팔만대장경은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보배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팔만대장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려 때 부처님의 원력으로 오랑캐의 침입을 막아보고자 국가적인 사업으로 두 차례 간행되었습니다.


 

 

 

 


먼저 1011년 간행된 대장경판은 구판대장경이라 합니다. 거란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부처님의 원력으로 1087년까지 77년간 작업을 하여 완성하였습니다. 구판대장경은 대구 팔공산의 부인사에 보관하던 중 1232년(고종 19년) 몽골군이 침입하여 그만 불타고 말았습니다. 그 뒤 1236년 재차 대장경판 간행 작업을 추진하여 16년만인 1251년 완성하였습니다. 그때의 대장경판이 지금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중인 고려대장경이며 팔만대장경으로도 부르고 있습니다.


 

 

 

 

 

 


왜 팔만대장경이라 할까요? 경전이 새겨진 장경판 수가 팔만 장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불교에서는 아주 많은 숫자를 가르칠 때 팔만 사천이라 쓰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만사천법문이라 하는 데서 기인한다 합니다.


 

 

 

 


팔만대장경은 정확하게 81,350판이며 목판에 양각으로 새겼습니다. 이는 한역 경전에서 가장 오래된 원판 본으로 수정할 곳이 없이 완벽하다고 합니다. 총 1,514 경전에 52,382,960 글자, 6,791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경판으로 해인사를 모두 법보종찰이라 알고 있습니다.


 

 

 

 


대장경판에 사용된 나무는 산벚나무 등이며. 해충의 피해를 막고 조각을 쉽게 하기 위해 펄 밭에 담그거나 바닷물에 오랫동안 통째 쪘다 합니다. 대장경을 만들던 곳이 경남 남해군 고현면 대사리로 추정하는데 이곳은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 밀물 때는 나무 운반이 쉽고 뻘밭과 소금물, 조각에 사용하는 칼과 쇠붙이를 만드는 대장간, 인쇄에 필요한 한지를 만드는 한지마을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대패로 곱게 다듬은 판자에 경문을 새겼는데 먼저 붓으로 한지에다 경문을 쓰고 경판에 다시 글을 쓴 한지를 풀칠하여 조각칼로 하나하나 깎아내었다니 그 작업의 정밀도가 말할 수 없이 힘들었을 듯합니다.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을까요? 아차 하는 한 번의 실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이며 한글자 한글자 새길 때마다 절을 한번 했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하여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구양순체로 붙여진 글자는 꼴이 한결같으며 아름다워 꼭 한 사람이 쓴 듯 일정하다 합니다. 이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재주가 정말 뛰어난가 봅니다. 손으로 하는 기술이나 양궁, 골프 등 운동은 세계 최고인 게 이를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글자가 새겨진 경판 면과 경판 양 끝에 각목으로 덧댄 마구로로 만들어졌는데 경판의 총 길이는 약 70cm, 폭은 약 24cm, 두께는 약 2.8cm이며 무게는 대략 3.25kg입니다. 글자는 경판 양면에 돋을새김하였으며 한 면에다 글자를 새긴 새로 줄 수는 23행이며 행마다 14자 정도의 글자를 새겼습니다.


 

 

 

 


그런데 이리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팔만대장경판은 보관이 가장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각은 대적광전 뒤 가파른 계단 위에 네 동의 건물로 이루어졌습니다. 팔만대장경 현판이 걸린 출입문을 지나면 먼저 한일(一)자로 길게 이어진 건물은 수다라장이고 그 뒤 같은 길이의 건물은 법보전입니다.


 

 

 

 


고려팔만대장경은 이 두 건물 안에 봉안되었으며 두 건물 사이의 동서 양쪽 끝에 있는 작은 건물은 고려 각판을 안치한 사간판전입니다.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장경판전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장식을 갖추지 않은 그저 평범한 건물에 불과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건물에 장경판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놀라운 과학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하나 보면 장경판전이 자리한 위치부터 건물의 배치와 좌향 그리고 건물의 구조와 창호 처리 및 판가의 구조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따졌으며, 경판 배열은 원활한 통풍과 적당한 일조량 등 목판을 보존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도록 힘썼습니다. 목판 보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항온, 항습의 상태 유지를 위해서 판전 외벽의 앞뒷면에 크기가 다른 살창이 칸마다 아래위로 나 있어서 건물 뒤쪽에서 들어오는 습기는 억제하고 판전으로 들어온 바람은 건물 안에서 골고루 퍼진 다음 바깥으로 나가도록 설계되어 오늘날까지도 팔만대장경판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장 한장입니다.   


요즘 전자동 전자동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곳 장경판전이 모든 기후 환경에 가장 잘 조절되는 전자동 시스템으로 설계된 것 같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선조의 혼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조각을 했던 것을 하늘도 알았는지 해인사에 7차례나 불이 났어도 장경판전은 화마로부터 안전했다 합니다.


대장경판 국보 제32호, 대장경전 국보 제52호, 고려각판 국보 제206호, 보물 제734호


 


팔만대장경판은 현재 아무나 관람할수 없습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728x90

728x90

 

 

☞(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가야산 홍류동천 농산정. 고운 최치원이 갓과 짚신을 걸어놓고 신선이되었다는 명경산수의 해인사 소리길  농산정을 여행하다. 농산정


빼어난 가야산 홍류동계곡 하면 얼른 떠오르는 분이 있습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857~?)으로 시대의 풍운아이자 대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던 분입니다. 필자는 고운 선생을 여행가라 말하고 싶습니다. 부산, 지리산, 가야산 등 영남에서 고운의 발자취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00년도 훨씬 넘은 지금도 전국의 명산 대천에는 해운이니 고운이니 임경이니 하면서 선생의 발자취가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고운 선생은 말년을 가야산에서 보냈습니다. 가야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물은 섬섬옥수가 되어 바위를 돌고 넘고 뚫고 휘몰아쳐 빼어난 절경을 연출합니다.


 



선생은 가을 단풍이 붉게 온산을 뒤덮어 흐르는 계곡 물까지 붉게 물들인다 하여 홍류동천이라 이름 짓고 이곳에서 은둔하며 수도하고 유유자적한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곳이 오늘날의 농산정입니다.


 



농산정은 고운 최치원 선생의 칠언절구 둔세시 ‘제가야산독서당(濟伽倻山讀書堂)“에서 따왔는데 그 한시를 보면

“광분첩석후중만(狂奔疊石吼重巒)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인어난분지척간(人語難分咫尺間)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상공시비성도이(常恐是非聲到耳) 늘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고교류수진농산(故敎流水盡籠山) 짐짓 흐르는 물로 온산을 둘러버렸네“





지금의 농산정 건너편에 치원대 또는 제시석으로 불리는 암벽에 새겨져있습니다. 그 한시의 맨 끝부분 ‘농산(籠山)’의 한 구절을 따와 농산정이라 하였는데 맨 끝에 ‘우암’이란 각자가 남아있어 우암 송시열의 한시가 아닌지 의문을 품기도 합니다.







정자는 앞면 2칸에 옆면 2칸 크기의 정방형 목조기와 건물입니다. 농산정은 언제 지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1936년경 후손과 이 지역 유림에 의해 중건되었고, 여러 번 수리를 거치면서 1990년에 전체적인 보수공사를 하였습니다. 지금도 단청이 입혀지지 않은 서까래 등을 보면서 최근에 다시 한 번 부분적인 수리를 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농산정 현판에는 김영한이 쓴 농산정기와 찬양사 4수가 새겨져 있으며 고운 선생의 둔세시를 차운한 시 8수도 있습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12세에 홀로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그곳에서 빈공과에 급제하여 지방관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 후 산동에서 황소가 난을 일으키자 선생은 ‘토황소격문’를 지어 최치원이란 이름을 널리 각인시켰습니다.





선생은 17년만인 29세에 고국 신라에 돌아왔으나 나라의 국운이 쇠퇴함을 알고 자천으로 변방을 전전하다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조’을 상소하였습니다. 신라의 국운은 난세로 세상이 혼탁해지자 894년 가솔을 거느리고 가야산으로 은거했습니다. 그때 입산하면서 남긴 시가 있습니다.





“승호막도청산호(僧乎莫道靑山好) 스님아! 푸른 산이 좋다고 말하지 말라

산호여하복출산(山好如何腹出山) 산이 좋은데 무슨 일로 다시 산을 나오는가!

시간타일오종적(試看他日吾踪跡) 시험 삼아 이다음에 나의 종적을 보아라.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 한 번 푸른 산에 들어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지금 농산정 옆 계곡에 홍류동 각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어느 해 엄청난 물난리로 ‘홍류’ 두 글자는 떨어져 나가고 지금은 ‘동’ 자만 남아 계곡에 남아 있습니다.


선생은 “다시는 시류에 얽매이어 속세로 나가지 않겠다”는 시처럼 그의 결연한 의지를 들어내었습니다. 고운은 가야산 홍류동계곡과 해인사. 매화산의 청량사 등에서 신선 같은 삶을 살다가 어느 날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는데 갓과 짚신만 지금의 농산정 자리에 남아있었습니다. 후세사람들은 이를 보고 농산정 뒤 골짜기로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며 최취밭골로 부릅니다.





농산정은 많은 선비가 이곳을 찾아들었으며 고운 최치원을 흠모하며 많은 차운시를 남겼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시 몇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점필재 김종직의 농산정 차운시입니다.

“청시광염사창만(淸詩光焰射蒼巒) 맑은 시의 광염은 푸른 봉우리 내쏘는데

묵지여흔궐륵간(墨漬餘痕闕?間) 먹으로 쓴 흔적은 새긴 바위에 희미해라

세상단운시해거(世上但云尸解去) 세상에서는 신선 되어 떠났다고 말을 할 뿐

나지마렵재공산(那知馬?在空山) 빈산에 무덤이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네“





그리고 가야산 홍류동 계곡의 농산정에는 예은 최동식 거사의 칠언절구가 있습니다.

“何日文昌入此巒(하일문창입차만) : 최치원께서 언제 이 산에 들어왔던가?

白雲黃鶴渺然間(백운황학묘연간) : 흰 구름과 황학이 아득히 어우러진 때였도다.

已將流水紅塵洗(이장유수홍진세) : 이미 흐르는 물로서 세상의 때를 씻었으니

不必中聾萬疊山(불필중농만첩산) : 만 겹산으로 귀 막을 필요는 없으리라“




‘고운최선생둔세지’





선생은 1918년 해인사 이회광 주지스님의 부탁을 받고 홍류동 계곡에서 가야산 정상인 상왕봉에 이르기까지 19 명소를 설정하고 칠언절구의 시를 남겼는데 ‘가야십구명소제영’에서 유래한다 합니다 허목선생의 ‘가야산기’에서 “홍류동, 취적봉, 광풍뢰, 음풍뢰, 제월담, 분옥폭, 완재암, 낙화담, 첩석대, 무릉교, 칠성대, 채필암 등 무흘 12곡 모두 고운 선생이 이름을 붙였다”고 했습니다.




갓과 짚신을 벗어 놓고 최취밭골로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는 농산정.





농산정에는 사방으로 농산정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그 중 한 곳에 걸린 최영하의 ‘농산정’ 칠언절구입니다.

“流水聲中聳翠巒(류수성중용취만) 흐르는 물소리에 푸른 산 우뚝하니

淸風百世在斯間(청풍백세재사간) 맑은 바람 백 세 동안 여기에 있네

詩登雅譜亭名擅(시등아보정명천) 시의 족보에 등재되어 이름을 떨치니

長使人○仰若山(장사인○앙약산) 오래도록 사람이 산을 우러르게 하네“





이외에도 고운 최치원의 농산정 차운시는 여러 사람이 남겼습니다. 그중 영재 이건창(1852~1898)과 매천 황현(1855~1910)선생의 한시를 옮겨보겠습니다.

영재 이건창 선생은 당시 부친인 이강학이 안의 현감으로 재직 중에 이곳 농산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百丈紅流萬疊巒(맥장홍류만첩만) 백 발의 홍류동 만 겹 봉우리인데

神仙詩句墮人間(신선시귀타인간) 신선 시구가 인간 세상에 떨어졌네

白雲一片孤飛去(백운일편고비거) 흰구름 한 조각 외로이 날아가니

疑是先生尙在山(의시선생상재산) 선생이 아직 이 산에 계시는가“





그리고 매천 선생은 광양에서 태어나 구한말 나라의 주권이 일본에 빼앗기게 되자 통분하여 구례의 매천 정사가 있는 서재에서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한 애국지사입니다. 매천 황현 선생은 1887년 이곳 농산정을 올라 차운시를 남겼는데

“雷?百折鎖重巒(뇌랑백절쇄중만) 구불구불 겹겹 산 잠긴 속을 울리며

玉洞春流紫翠間(옥동춘류자취간) 옥동의 봄물이 붉고 푸른 사이로 흐르네

山自孤雲詩益著(산자고운시익저) 산은 고운의 시로 더욱 드러났지만

(籠山未必善藏山(농산미필선장산) 산을 에워쌌으나 반드시 산을 잘 감춘 건 아니구나“.





옛 선인들은 홍류동 계곡의 정취와 농산정의 빼어난 절경을 흠모하며 많은 시와 차운시를 남겼습니다. 실제 농산정을 여행하면 올곧은 소나무의 자태와 함께 비류낙화하는 계곡에서 고운 최치원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역시 선인은 명경산수를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이제 입추도 지났고 다시 처서를 지나면 곧 홍류동천은 하늘과 나무와 바위와 흐르는 계곡 물이 온통 이름처럼 붉은 단풍이 드는 장관을 연출합니다.


농산정 주소: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1

농산정: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2호





728x90

728x90

 

 

☞(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제주도의 사진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영혼을 바쳤던 김영갑의 사진세계를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서 접하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찾았습니다. 요즘 제주도의 필수 여행지이며 사진으로 주는 감동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는 곳입니다., 내가 아시는 분 중에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서 김영갑님의 대형 작품과 마주 했는데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합니다.





 



 

 


저도 제주만을 사진으로 담았다는 김영갑님 갤러리 두모악이 궁금했습니다. 눈물이 저절로 주르르 흐르더라는 감동을 느꼈다는데 저는 그저 무덤덤했습니다. 살아오면서 그만큼 감정이 메말란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김영갑님은 1957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서울에서 거의 생활했습니다. 1982년 처음 제주도를 찾아 오름을 오르내리면서 사진 작업을 하였고 급기야 제주의 자연에 빠져 1985년에는 제주도에 거처를 잡고 정착하였습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다 그러하듯이 선생님은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당근과 고구마로 허기를 채웠고 제주의 구석구석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선생은 제주도에서의 사진 작업을 수행이라 할 만큼 그의 모든 영혼을 바쳤다 합니다.


 

 

 

 


제주도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사진으로 승화시킨 김영갑님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구해 잠자든 제주도의 살아있는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하였고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병마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누르려면 손이 떨렸고 허리가 아파와서며 나중에는 걷지도 먹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의 병명은 루게릭병이며 3년을 넘기기가 힘들다는 시한부 진단을 받았습니다.


 

 

 

 


선생은 절망 앞에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주어진 삶을 살기 위해 폐교를 사진전시관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2002년 여름에 개관하였습니다.


 

 

 

 

 

 


선생님은 투병생활을 한 지 6년만인 2005년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계절인 5월 꽃피는 두모악에서 영원한 제주인으로 영면했습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들어서는 입구부터는 제주 특유의 화산 돌로 담장을 만들었고 화단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손으로 이 모든 나무와 풀, 돌이 아름답게 하나의 자연 정원으로 가꾸어져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2006년 잘 가꾼 자연·문화유산”에 선정되었습니다. 전시관 내부는 현재 일체 사진과 동영상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부 사진은 입장권 대신 지급해주는 김영갑 선생님의 작품을 담은 기념엽서를 올렸습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서 김영갑님의 작품사진을 보면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의 감동을 느껴보세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영업정보 안내◆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주소:제주시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137(삼달로 437-5)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전화:064-784-9907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홈페이지:http://www.dumoak.co.kr/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관람시간:

봄(3월~6월) 가을(9월~10월): 9:30~18:00, 여름(7월~8월) 9:30~19:00,

겨울(11월~2월) 9:30~17:00, 관람시간 30분전 입장마감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휴관일: 매주 수요일, 신정, 추석, 설 당일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입장요금: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728x90

728x90

 

 절두산 순교자 기념탑


 ☞(서울마포구여행/서울마포구가볼만한곳)절두산천주교순교성지. 병인박해로 천주교 순교현장인 절두산순교성지를 여행하다. 절두산천주교순교성지



서울 양화대교 인근인 절두산 순교 성지를 보고 왔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로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순교했습니다. 원래 잠두봉으로 불렸던 봉우리입니다. 병인년에 9명의 선교사 처형 책임을 묻는다며 프랑스함대는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에 상륙하였습니다. 

서울 양화대교 인근인 절두산 순교 성지를 보고 왔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로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순교했습니다. 원래 잠두봉으로 불렸던 봉우리입니다. 병인년에 9명의 선교사 처형 책임을 묻는다며 프랑스함대는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에 상륙하였습니다. 

대원군은 “양으로 더럽혀진 이곳을 천주교 신자인 서학의 피로 씻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원군은 나라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쇄국정책을 더욱 공고히 하려고 전국에다 척화비를 세우고 수많은 천주교인을 잡아다 이곳 잠두봉에서 목을 잘랐습니다. 그 후 신자들 사이에서 잠두봉을 절두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대원군은 신자들을 이곳 절두산에서 처형함으로 프랑스함대의 조선 침략 책임을 신자에게 돌리려 하였으며 그 본보기를 보이려 했습니다. 

현재 기록으로 남아 있는 절두산 순교는 무명 5인을 합해 29명이지만 이외에도 많은 순교가 있었다 합니다. 1956년 순교터 확보운동의 목적으로 그해 12월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이곳 잠두봉 부지를 확보하였으며 1965년에 순교기념탑을, 병인박해 100주년인 1967년에 절두산 순교자를 위한 기념성당과 박물관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1968년 병인박해 순교자 24명의 시복이 이루어졌으며 기념성당 지하에는 순교자 유해 안치실을 설치하였습니다. 1997년 11월에 양화진·잠두봉이 국가사적 제39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양화진공원과 양화진 외국인 묘원등을 여행할 수 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

주소 서울 마포구 합정동 96-1(토정로6길)

전화:02-3142-4434



 

 

 

 

 

 

 

 

 

 

 


팔마를 든 예수상

“죽음으로써 믿음을 증언한 순교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갔음을 상징하는 팔마를 손에 들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상(최봉자 수녀 작품)”



 

 

 

 

성 오한 바로로 2세 교황 

 

 

 

 


'절두산성지에서 첫 순교한 가족상'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천주를 섬긴다는 이유로 이땅에서 약 100년간에 걸쳐 박해를 받아 죽임을 당한 수많은 순교자의 신앙을 공경하기 휘하여 세운 기념상. 절두산에서 처형된 첫가족 순교자로 병인박해때 순교한 이의송(프란치스코)와 그의 처 김이쁜(마리아), 아들 봉익(베드로)을 형상화 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최종태 교수 작품”



 

 

 

 

 

 

 

 

 

 

 

 

 

 

 

 

 

 

 

 

 

 

 

 

 

 

김대건신부 

 

 


오성 바위로 다섯 성인이 잠시 쉬어 갔다는 바위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인 다블뤼(1818~1866) 주교, 위앵(1836~1866)신부, 오메트로(1837~1866) 신부, 황석두(루카, 1813~1866), 장주기(요셉, 1803~1866)는 처형지인 갈매못으로 끌려가면서 아산군 음봉면 길가의 넓은 바위에서 쉬면서 신앙을 다짐했던 바위로 ‘복자 바위’로 불리다가 1984년 다섯분 모두 성인품에 오르면서 ‘오성 바위’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문지방돌

 


 대원군척화비

 

 김대건신부님상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 옛 십자가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요셉상

 

 

 

 

 

 


 

 

 

 

 

 

 

 

 

 

 

728x90

728x90

 

 

 

☞(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제주김녕미로공원. 거미줄 같이 얽혀있는 오리무중의 김녕미로공원 미로 탈출기. 제주김녕미로공원


제주시에 있는 김녕미로공원은 요즘 제주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미국인 더스틴이 제주대학교 관광학과에서 근무하면서 정년퇴임을 하면 제주에서 여생을 마무리하고자 1983년부터 직접 땅을 일구고 나무를 심으며 조성한 공원으로 1995년 처음 개장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미로(迷路)는 “어지럽게 여러 갈래로 갈라져 섞갈리기 쉬운 길”을 뜻합니다…. 그만큼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는 김녕미로공원. 국내 미로 공원으로서는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수익금은 교수님의 뜻에 따라 지역사회와 후학들의 장학금으로 기부된다니 정말로 제주도를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는 분 같습니다.


 

김녕미로공원의 입장요금표 

 

 


김녕미로공원의 미로 찾기를 디자인한 사람은 세계적인 미로디자이너인 영국의 애드린 피셔(Adrian fisher) 씨가 3년에 걸쳐 완성했는데 여기에는 “제주 역사 기행”을 담아내었다 합니다


 

 

 

 

 

 


미로 공원의 평면도는 제주도 모양을 하고 있으며 아시아권의 음양문화와 제주 섬사람들의 샤머니즘으로 숭배했던 뱀도 형상화하여 담아내었다 합니다. 이외에도 고인돌과 조랑말,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할 때 타고 온 배의 모습도 형상화 했다 하니 미로 공원은 단순한 하나의 놀이가 아닌 제주도의 역사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김녕미로공원 입구. 여기가 출발점입니다. 

 

 


우리 일행도 그런 기분을 느끼기 위해 덩달아 미로 공원을 찾게 되었는데 매표소에서 팀마다 지도를 나누어 주면서 미로 공원에서 주의사항과 입구를 출발하여 짧게는 10분, 길게는 60분이 소요된다는 설명을 곁들었습니다.


 

 

 

 


8명의 일행은 총 4팀으로 나누어 누가 먼저 종을 치느냐며 꼴찌팀은 아이스크림 내기를 하고 출발했습니다. 한사람이 딱 걸어가게끔 랠란디(Leylandii)로 나무벽을 만들었는데 양쪽 벽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갑니다.


 

 

 

 

 

 


렐란디의 특징은 사계절 푸른 상록수로 내 뿜는 향기는 사람의 정신을 맑고 청량하게 해주며 심리적인 입박감을 완화해주어 항상 좋은 기분을 들게 한다고 합니다. 또한, 바닥에는 붉은빛의 화산석 송이를 깔아 오염된 공기 정화는 물론이며 인체의 혈액 순환을 돕는 효과가 있다 합니다.


 

 

 

 


미로 공원을 걷는 것만 해도 상쾌한 기분을 들게 하며 랠란드의 초록색 나무 위로 정말로 에메랄드빛 파란 하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원이 미로 길을 빠져나왔으며 물론 꼴찌 팀은 아이스크림을 돌려야 했습니다.


 

 

 

 

 

 


제주여행을 하면서 팀을 나누어 미로게임을 한다면 단합도 되고 그저 눈으로 보고 웃고 즐기는 것보다 실제 동참하면서 그 속에 빠져들어 즐기는 것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와 어르신도 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미로 공원의 미로 길을 팀원 간의 조만 잘 짠다면 가족끼리도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나무벽을 이루는게 랠란디

 

 

 

 


미로 공원에는 “고양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는 세상-김녕미로공원”이란 케치 프레이로 미로의 고양이와 친해지는 방법 등 고양이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혹 미로 길에서 고양이를 만난다면 당황하지 마세요.


 

 

 

 

 

구불구불 뱀 같아 보이나요?  

 

 

 

저기 보이시죠! 저 종을 치면 됩니다.  

 

 

 

 

 

 미로공원의 야옹이. 팔자 늘어졌습니다. 

 

 


◆김녕미로공원 정보 안내

 

김녕미로공원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산 16번지(만장굴길 122)

김녕미로공원 전화:064-782-9266

미로공원이용요금: 성인 3,300원, 청소년·노인 2,200원, 어린이 1,100원

미로공원운영시간: 3~6월 08:30~18:30. 7~8월 08:30~19:00(야간개장시 22:00), 9~11월 08:30~18:00, 12~2월 08:30~17:30




728x90

728x90



 

☞(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에코랜드. 환상의 섬 제주에서 환상의 여행은 조천읍 에코랜드 기차여행. 에코랜드테마파크



여행의 최고성지라는 환상의 섬 제주도에서 가장 환상적이라는 에코랜드 기차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에 햇빛이 쏟아지네

~중략~

꿈을 좇는 방랑자의 가슴에선 찬바람 일고

엄마 잃은 소년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있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


2016/07/29 - (제주맛집/서귀포맛집)성읍민속마을 맛집 성읍칠십리주막. 감귤나무로 초벌해 감귤향이 가득한 흑돼지. 백종원의 3대천왕 제주 흑돼지 전문점 성읍 칠십리 식당.

2016/07/27 - (제주서귀포여행/제주서귀포가볼만한곳)천지연폭포. 시원한 물줄기가 거침없이 내리꽂히는 서귀포 천지연폭포로 무더운 여름나기를 했습니다. 천지연폭포

2016/07/26 - (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제주여행에서 꼭 가봐야할 곳 서귀포시 쇠소깍.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쇠소깍에서 수상레저 체험도 즐기고 무더위를 이기는 휴가지로 최고.

2016/07/22 - (제주맛집)제주공항맛집, 용두암맛집 도두해녀의집. 그 맛에 반하게 된다는 제주 현지인이 추천한 물회 맛집 도두해녀의 집, 특별하다는 특물회 먹고왔습니다.

2015/07/03 - (제주여행/서귀포여행)사려니오름, 사려니 숲길. 제주 사려니 오름 경이로운 삼나무 숲길을 걷다.






‘은하철도 999’ 주제가가 생각나는 제주 조천읍 에코랜드 테마파크에 철이가 되어 기차 여행을 왔습니다. 사춘기 시절 엄마를 찾는 소년은 아니지만, 제주도의 자연 여행에 흠뻑 빠져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곳 곶자왈 에코랜드 테마파크는 그 크기가 무려 30만 평이며 1800년대 증기기관인 볼드윈 기종을 모델로 하여 영국에다 수제품으로 주문 제작된 일명 링컨 기차입니다. 곶자왈의 독특한 지형과 원시림은 꼭 ‘은하철도 999’의 철이가 은하수를 건너듯 생태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된 숲을 기차와 걷기로 힐링하는 체험공간입니다.


 



제주에서는 ‘곶자왈’ ‘곶자왈’하는데 곶자왈의 뜻부터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곶’은 숲을 말하며 ‘자왈’은 바위와 나무 풀이 뒤엉킨 모습을 뜻해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하면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 쪼개지면서 다양한 크기의 암석이 요철지형을 만들어 형성된 제주만의 독특한 숲을 말합니다.





에코랜드는 모두 곶자왈로 이루어져 교래 곶자왈이라 부릅니다. 이곳은 풍부한 지하수와 보온·보습효과가 높아 북방한계와 남방한계의 식물이 서로 공존하는 그야말로 신비의 숲이자 제주도 동·식물의 보고입니다. 이곳을 둘러보는 4.5km 기차 여행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코스입니다.





특히 에코랜드 곶자왈 숲은 조성할 때부터 ‘자연 그대로를 원칙으로’ 정하고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도 홀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었으며 곤충과 동물, 식물과 인간이 공존하고 즐기는 체험공간을 만드는 데 노력하여 오늘날의 에코랜드 테마공원이 되었다 합니다. 이런 좋은 곳은 제주 여행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기차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에코랜드 기차 여행은 총 5개 역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출발역인 메인역과 에코브리지역, 레이크사이드역, 피크닉가든역, 라벤더·크린티&로즈가든역이며 다시 메인역인 출발역에 도착합니다. 운행 간격은 8~10분이며 각 간이역에서 하차하여 휴식도 즐기며 걷기 체험 등 다양하게 즐기다 오는 기차를 이용해서 다음 역으로 가시면 됩니다.


 



출발역인 메인역은 도넛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에코랜드 열차의 출발과 종착역으로 매표소, 대기실, 스낵바,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중앙분수대와 광장 등 이곳에서부터 다양한 볼거리와 편의시설인 즐길 거리가 준비되어 많은 기대가 됩니다. 이제 다음 역인 에코브리지역으로 출발합니다.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덜컹덜컹 출발합니다. 에코브리지역은 물이 주제입니다. 2만여 평 크기의 호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호수 가운데에 300m의 수상 데크가 설치되어 호수 위를 걷게끔 되어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지만 선선한 바람이 호수를 타고 불어와 더운 줄 모르고 즐겼습니다. 코끼리 코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며 각종 볼거리와 체험 놀이가 준비되어 아이에게도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기차를 타지 않고 바로 걸어서 레이크사이드역에 도착했습니다.


 













레이크사이드역은 예전에 말을 기르던 목장이 있어 완전 초원지대입니다. 원래 지형지물을 그대로 이용하여 조성하였고 호수 감상은 물론이며 내부를 볼 수 있는 풍차와 2013년 문을 연 디스커버리 존은 모래와 탐험선이 어우러져 꼭 해골 깃발을 펄럭이는 해적선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이곳은 사진찍기 정말 좋은 곳이 많습니다. 또한, 역사의 전망대에서 역 주위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다시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 피크닉가든역입니다.


 



































이곳은 꼭 소풍오는 기분입니다. 특히 제주도 보존자원 1호인 신비의 물질 화산 송이로 전 구간을 포장하였는데 길이 모두 붉은색을 띠고 있습니다. 화산 송이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화산 알갱이를 말합니다.









전체 구간이 생태 탐방로이며 지하의 마그마가 만들어준 화산 송이를 밟고 자연의 향기를 폐부 깊숙이 들어 마시면 아주 좋습니다.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길이라 머리가 아주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에코 로드는 400m 거리에 10분이 소요되는 단거리 코스와 1.9km에 약 40분이 소요되는 장거리 코스가 있습니다. 빨리 걷는 것 보다는 자연의 숲길을 천천히 아주 맛을 음미하며 토피어리 체험, 에코 카페&송이 맨발체험, 영국산 미니 말 포니, 에코테라피 족욕 등을 즐기다 보면 시간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키즈타운’이 있어 마음 것 뛰어놀 수도 있습니다. 이곳까지 충실하게 체험을 즐겼더니 많은 시간을 소비하여 다음 여행지를 위해 체력비축을 하면서 라벤더·크린티&로즈가든역은 통과했습니다.


 



















라벤더·크린티&로즈가든역은 2013년에 새롭게 오픈했다 합니다. 가든 브리지를 건너면 허브, 장미, 녹차가 어우러진 유럽식 비밀의 정원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또한, 라벤더와 더 넓은 초원이 펼쳐진 모습이 환상이라며 보지 않고 온 게 막급 후회가 됩니다. 그래도 다음일 정도 있으니까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에코랜드 곶자왈 기차 여행은 넉넉한 시간을 생각하고 편안하게 휴식도 즐기며 가족여행을 하면 최고일 것 같습니다. 느리게 걷는다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세계가 새롭게 보입니다. 에코랜드에서 ‘슬로우 슬로우’로 새로운 세상을 느껴보세요.

 



 

◆에코랜드 영업정보 안내◆ 


☞에코랜드 상호;에코랜드


☞에코랜드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번영로 1278-169


☞에코랜드 전화:064-784-8990


☞에코랜드 이용요금:성인 12,000원, 청소년 10,000원, 어린이 8,000원

30인이상은 단체요금 적용


☞에코랜드 이용시간:하절기 08:30~18:00, 동절기 08:40~17:00


☞에코랜드 기차 운행간격 7~12분,막차시간은 일몰시간에 따라 변경






728x90

728x90

 


☞(포항여행/포항가볼만한곳)동해면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선바위~하조대. 딸에게 권해주고 싶은 여름 캠핑 휴가지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선바위~하조대 정말 좋아요.,



찜통더위인 여름 휴가철에 계곡이 있는 산, 그것도 아니면 에메랄드빛이 반짝이는 바다에서 몸의 열기를 식히려고 너도나도 무더위를 피해 떠납니다. 하기야 오늘 얼마나 더웠던지 딸한테 카톡이 왔습니다. “아빠 우리 텐트 있어요”하며 물었는데 답장은 텐트가 너무 오래되어 원단이 다 삭았을 것이다 며 그 텐트가 네 나이보다도 더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참고로 딸은 올해로 24살이니까 여러 동 가지고 있는 텐트 모두 그 이상은 된 것 같습니다. 날씨가 얼마나 무더웠으면 24년 동안 캠핑 간다는 말이 없던 딸이 더위를 피해 1박 2일 캠핑이라도 가야겠다며 텐트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진짜 올해 엄청나게 더운가 봅니다. 그런 딸에게 이번 1박 2일 캠핑하며 휴가를 즐기기 좋은 곳 한곳을 소개해줄까 합니다.






◆포항여행/포항가볼만한곳◆


2016/02/17 - (경북여행/포항여행)포항 청하면 월포해수욕장 용산 산행. 동해 해돋이 명소로 소문난 낮지만 옹골찬 용의 전설을 간직한 포항 용산 산행. 포항 용산

2016/02/04 - (경북여행/포항여행)포항 달전리 주상절리. 200만년전 땅속의 불기둥이 굳어져 독특한 모습의 돌기둥으로 변한 포항 달전리 주상절리 여행

2014/12/21 - (포항여행/구룡포여행)구룡포항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2. 구룡포 공원과 일본가옥인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를 여행하세요.

2014/11/03 - (경북여행/포항여행)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 호미곶 가는 길에 있는 구룡포해수욕장 옆에 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가 있습니다.

2013/08/20 - (경북여행/포항여행) 내연산 12폭포. 금강산도 부럽지 않은 소금강 내연산 보경사 산행.





 


간단하게 더위도 식히며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바닷물과 해안 풍경이 있는 포항 동해면의 입암리와 마산리를 잇는 700m의 해안인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입니다. 이래서는 얼른 장소 등 이해가 퍼떡 안 간다고요. 호미곶은 다 아시죠. 왜 호랑이 꼬리라고 하면서 새해 일출 때는 장터같이 왁자지껄하며 매스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아 동해의 정동진과 함께 유명세를 떨치 곳이며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쳐들고 있는 곳 말입니다. 포항 시내에서 이곳을 갈려면 오천읍과 동해면을 거쳐 가는데 입암리는 그 가운데 있으며 호미곶 가는 영일만 해안 옛길을 따라가야만 합니다.


 

 


영일만의 오밀조밀한 해안선을 따라가면 바다와 가까워졌다가 또한 멀어 졌다를 반복하는데 그속에 숨어 있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에 숨은 비경지에 데크길을 만들어 천혜의 비경 보따리를 세상에 풀어 놓았습니다. 연오랑과 세오녀, 이육사의 청포도만 생각해도 벌써 무더위의 반은 삭혀질 것 같습니다. ㅎㅎ 상큼한 포도 향이 가득한 청포도의 이육사 고향이 이곳 동해면입니다. 


이 바위는 두눈이 툭 불거진게 완전 외개인을 닮았습니다.

 

 


선바위와 하선대 코스는 약 700m이며 거의 해안가 바닷속으로 기둥을 박아 데크길을 만들었습니다. 결국은 바다를 걷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 입구에 떡 버티고 우뚝 솟아 있는 바위가 선바위입니다. 선바위는 높이가 6m쯤 되며 한자로 바꾸다 보니 입암이 되었고 마을 지명이 되었습니다. 평택 임시가 처음 이곳에 정착했다 하니 딱 전망 좋은 곳을 단박에 알아채 뿌렸습니다.


요 바위가 불끈 힘이 솟는나는 남근바위 ㅋㅋ 자꾸 밑이 깎이면 예류지질공원의 여왕바위가 되는것은 아닌지 ㅎㅎ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지 그때가 기다려집니다.



 

 

시원한 데크로드가 정말 좋습니다. 해무가 왔다리 갔다리하는게 신비감이 듭니다.



 


입구의 수문장인 선바위는 꼭 시멘트에다 큰 돌 작은 돌을 함께 섞어 버무려 어기어 놓은 모습인데 이는 화산활동으로 인한 뜨거운 화산 열로 벤토나이트 성분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다는데 벼락을 맞아 지금은 아담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선바위를 지나면 같은 지질의 바위가 불끈불끈 솟아 독특한 지형을 보여줍니다. 꼭 기분으로 치면 지질은 다르지만 느낌이 대만의 예류지질공원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저한테 그만큼 특별한 모습입니다.


 

 


요 바위는 남근석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울퉁불퉁한 게 꼭 도깨비방망이 같아 보입니다. 수정같이 맑은 바닷물이라 그런지 바닥까지 훤히 내려다 보입니다. 포항시에서 바다를 뚫고 길을 만든다고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요바위는 제가 이름을 붙혔습니다. 미륵바위 어떤가요 아니면 사람바위?????ㅎㅎ



 

 

 

 

 

 

 

여기는 폭포바위입니다. 바위가 떨어지는 물줄기로 보였는지 아니면 틈마다 물이 흘러 내리는지 ㅎㅎ

그래도 폭포바위 이름을 어울리게 잘 지었습니다. 


 

 

 

 

 

 

 

 


여기도 미끈한 여인이 왕관을 쓴 여왕바위가 있습니다. 화산활동으로 생겼지만 지질이 참 특이합니다. 

 

 

 

 

 

 

 



킹콩바위.입니다. 두팔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ㅋㅋ 킹콩을 닮았습니까. ㅎㅎ 밑의 사진을 보면 제가 보기에도 염팡 닮아 보입니다. 

 

 

 

  

 

 

 

 

 

 

힌디기


 


힌디기는 노씨 성을 가진 분이 처음 정착하여 살면서 “흥하게 되기를 바래서” 흥덕(興德)이라 했는데 그게 음이 변해 힌덕, 힌디기로 불렸다 합니다. 그러나 이곳의 암질이 다른 곳 보다 유난히 흰색인데 이는 화산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화산성분이 백토로 형성되어 흰 바위가 많아 흰 언덕 또는 흰덕으로 불렸으며 흰덕에서 힌디기로 바뀐 게 아닌지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자갈이 많이 몰려 있어 하선대를 잇는 데크길에서 유일하게 자갈길로 이루어졌습니다.


 

 

 

 

 

 

 

 

 

 

 

 


저 멀리 한 점으로 보이는 편편한 바위가 하선대입니다. 파도가 심하게 칠 때는 하선대는 물에 잠길듯합니다. 동해면 입암리와 마산리의 경계지점을 황옥포라하는데 속칭 한미끼에 있는 암초입니다. 이곳에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놀고 갔다 하여 ‘하선대’또는 ‘하잇돌’이라 불렀습니다. 아주 옛날 칠석날만 되면 동해의 용왕이 하늘의 선녀를 이곳에 초청하여 춤과 노래로 신나게 놀았는데 그 선녀 중에서 유독 얼굴이 예쁘고 마음씨 착한 선녀에게 용왕은 마음이 끌려 왕비로 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선녀는 옥황상제의 허락이 있어야만 결혼을 할 수 있어 용왕은 옥황상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태풍을 없애는 등 바다를 항상 고요하게 하여 인간을 이롭게하는 일을 하면서 근심걱정을 없게 해주었습니다. 황제는 용왕의 마음씨에 감복하면서 선녀와의 결혼을 허락하였고 용왕과 선녀가 자주 이곳에 내려와 밀월을 즐기고 갔다 합니다.


 

 

 

 

 

 



이 바위는 먹바위 또는 검둥바위라 부르는데 제가 보기에는 꼭 돌배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곳 해안에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이 전해오는데 그 전설이 정말 이 돌배 모양인 먹바위와 잘 어울립니다. 이 이야기는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연오랑과 세오녀 편에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영일만 해안에 부부로 살았습니다. 하루는 남편인 연오랑이 바닷가로 나와 바위에 붙은 해조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더니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습니다.


 

 


일본에서는 돌배를 타고 온 사람이 신기해 보이기도 하고 비범한 사람으로 여겨 그들의 왕으로 모셨습니다. 세오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바닷가로 나와 바위에 벗어 놓은 남편의 신발을 보고 바위에 올랐습니다. 바위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세오를 싣고 쏜살같이 달려 대한해협을 건너갔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보고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연오는 세오와 만나게 되었고 귀비로 삼았는데 이때부터 신라에는 해와 달이 모두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일관이 말하기를 이런 기이한 현상은 해와 달의 정기가 지금 모두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왕은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어 두 사람을 찾았으며 연오는 하늘의 뜻이라며 신라로 돌아갈 수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세오가 짠 명주 비단을 내어주면서 이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된다 하였습니다. 사신은 고국으로 돌아와 왕에게 고하고 비단을 놓고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그전과 같이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왕은 비단을 나라의 보물로 삼고 창고에다 보관했는데 그 창고를 귀비고라 하였으며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곳은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했습니다. 이 먹바우가 연오랑과 세오녀를 태우고 간 그 배가 아닐까 하며 1000년 전의 퍼즐조각을 맞추어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2012/11/18 - (경북포항산행)비학산 산행.학이 알을 품어 하늘을 나는 형상인 '학포지란'인 천하명당 포항 비학산 산행

2008/11/22 - (경북여행/포항여행)죽장 두마리 곰바위봉~베틀봉산행. 낙엽산행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포항 곰바위산~베틀봉

2008/11/09 - (경북여행/포항여행)포항 죽장 베틀봉~면봉산 산행. 포항에서 제일 높은 산입니다 .죽장 베틀봉~면봉산

2008/07/18 - (경북여행/포항여행) 포항 동대산~바데산 산행. 적막강산의 청정계곡 옥계계곡과 경방골 호박소 비경-






728x90

728x90

 

 

 

 


☞(제주서귀포여행/제주서귀포가볼만한곳)천지연폭포. 시원한 물줄기가 거침없이 내리꽂히는 서귀포 천지연폭포로 무더운 여름나기를 했습니다. 천지연폭포

 


무더운 여름철 가장 그리운 곳이 시원한 물이 거침없이 떨어지는 폭포입니다. 특히 제주도 여행에서 그것도 서귀포 여행에서는 매번 여행 때마다 꼭 가게 된다는 곳이 시원한 물줄기가 거침없이 내리꽂히는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이며 그중 이번 제주 서귀포에서 천지연 폭포를 보고 왔습니다.





 


◆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


2016/07/26 - (제주여행/제주가볼만한곳)제주여행에서 꼭 가봐야할 곳 서귀포시 쇠소깍.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쇠소깍에서 수상레저 체험도 즐기고 무더위를 이기는 휴가지로 최고.

2016/07/22 - (제주맛집)제주공항맛집, 용두암맛집 도두해녀의집. 그 맛에 반하게 된다는 제주 현지인이 추천한 물회 맛집 도두해녀의 집, 특별하다는 특물회 먹고왔습니다.

2015/07/03 - (제주여행/서귀포여행)사려니오름, 사려니 숲길. 제주 사려니 오름 경이로운 삼나무 숲길을 걷다.

2015/07/02 - (제주여행/서귀포여행)성산읍 섭지코지. 드라마, 영화 단골 촬영지 제주 섭지코지 여행.

2014/10/19 - (제주여행/서귀포여행)쫄븐갑마장길과 따라비오름 걷기. 억새 군무가 좋은 제주 오름 가을이 최적이라는 따라비오름을 오르다. 갑마장길

2014/10/15 - (제주여행/조천여행)거문오름. 2007년 세계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거문오름 탐방.




 


제주여행에서 찾았던 천지연폭포는 하늘에서 시원한 물기둥이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게 무더위와 높은 습도에 지친 내 몸에 활기를 팍팍 밀어 넣어 주었습니다. 참말로 신기한 게 물이 귀하다는 제주에서 강력한 굉음을 내는 폭포가 있다는 게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폭포가 서귀포에 몰려 있다는 게 더욱 신기합니다. 천지연폭포의 규모를 보면 폭포의 높이는 약 22m, 넓이는 12m에다 소의 깊이는 20m라 합니다. 폭포 주위로 천길 단애를 이루는 바위 절벽에 난대림의 수목이 울울창창하여 사계절 내내 푸르르 육지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이라 더욱 아름답고 신비스럽습니다.


 


물허벅 


물허벅입니다. 주로 제주도에서 만 볼 수 있는데 사람이 물을 길어 나르는 물동이를 말합니다. 제주도가 화산섬인 것은 다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비가와도 물은 고이지 않고 땅속으로 모두 스며들어 가 버리고 그 물이 해안에 다다라 땅 위로 솟는 용출수입니다. 그때문에 제주도는 육지보다 물은 더욱 귀하게 여겼지만, 수질은 전국최고의 맛을 자랑합니다. 그 귀한 용천수가 흐르는 샘터에서 물을 길어 나르던 물통이가 물허벅이며 또한 잔칫날이라 던 지 흥겨운 날 남녀가 모여 물허벅을 악기로 사용하여 놀았는데 지금 허벅장단으로 남아 있습니다. 물허벅의 생김새는 주둥이는 좁고 아랫부분은 볼록하며 굽은 세워도 넘어지지 않게 평평하며 지고 다녀도 물이 세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허벅은 참대나 싸리로 만든 물구덕에 넣고 등에다 지고 다녔는데 물구덕 바깥쪽은 바닥에다 대나무를 쪼개어 받침을 만들었습니다. 아낙이 물허벅을 메고 가는 조형물을 천지연 폭포가는 길에 만났는데 돌하르방과 함께 제주에서만 볼수 있습니다.



 

 


생물권 보전 지역, 세계지질공원, 세계 7대 자연경관를 알리는 안내판 

 



 

그에 걸맞게 천지연 폭포 아래 검푸른 소에는 신령스러운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가뭄에는 천지연폭포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 합니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며 주변 경치에 취해 놀다 올라갔다는 신비의 폭포인 천지연폭포, 깊이를 알 수 없는 소에는 무태장어(천연기념물 제27호)가 서식하고 폭포주위로는 담팔수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63호)이며 제주 천지연 난대림(천연기념물 제379호)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곳 일대는 생물권 보전 지역, 세계지질공원,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지정되어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관광지입니다. 천지연폭포의 절벽을 보면 윗부분은 단단한 용암이라면 아랫부분은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무른 암석입니다. 


 

 

 

 


폭포수에 의해 아래쪽 암석이 깎여 지금과 같은 크고 깊은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신생대 지층인 서귀포 층에 노출되었으며 또한, 서귀포 층의 조개류 화석 산지입니다. 천지연폭포를 보고 나오는 길에 새롭게 조정된 여의주 조형물이 있습니다. 천지연에 살았다는 용의 전설입니다.


 

 


이곳 인근 마을에 마음씨 착하고 예쁜 ‘순천’이란 처녀가 살았는데 동네 남정네 모두가 그 처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천은 건넛마을의 총각에게 시집을 가버렸습니다. 어느 날 순천은 천지연 폭포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자기를 짝사랑했던 사내가 나타나서 위협하며 겁탈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천지연폭포에서 살던 용이 나타나서는 사내를 입에 물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순천이 깨어나서 보니 사내가 물려갔던 자리에 오색빛깔이 영롱한 구슬인 여의주가 있는 것을 보고 집에 들고 왔습니다.


 


 천지연폭포

 

 

 

 

 


그 후로 순천의 집안은 번창하고 후손들 또한 모두 다 잘되었다는 천지연 폭포의 용 전설입니다. 이곳 조형물이 설화를 형상화하여 만들었으며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지키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 여의주를 만지면 전설처럼 집안에 건강과 번창을 가져다준다 하니 믿거나 말거나 용의 기운을 한번 느껴보세요.


 

 

 

 

 

 

 

 


저기 바위 보이시나요. 천지연의 미소 바위입니다 물결이 잔잔한 날이면 반영이 꼭 미소를 띤 사람형상으로 나타난다고 하니 한번 두 눈을 부라리고 찾아보세요. 그리고 천지연폭포에 발전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폭포의 낙차를 이용하여 수력발전을 했다고 하는데 그 터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서귀포 천지연폭포 수력발전소 터를 알리는 표지석입니다.

  

 

 


요기가 미소바위입니다. 반영과 함께 미소짓는 모습이라 생각됩니까 ㅎㅎ 자세히 함 보세요.


 

 

 



용의 전설 여의주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합니다.  

 

 

 

 


1943년 11월 20일부터 1972년 8월 4일까지 총 915kW의 소비 전력을 생산하여 서귀포시 일부에 전기를 공급했다 합니다. 1970년대 제주·한림발전소에서 전력공급이 원활해지면서 폐쇄되었지만 지금도 당시 흔적인 수로관이 남아 있습니다. 요즘 천지연 폭포는 장마로 인해 일대 장관입니다. 많은 수량으로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을 울리며 시원한 물줄기를 마구 쏟아내는 폭포구경은 제주 여행에서 큰 행복입니다.


 


 

 



무태장어가 서식한다는 천지연 폭포

 

 


◆천지연폭포 정보 안내◆

천지연폭포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973-1

천지연폭포 전화 064-760-6304

천지연폭포 관람료:어른 2,000원, 어린이 청소년 군인 1,000원

천지연폭포 관람시간:일출시~22시까지

천지연 폭포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소도 있습니다. 



☞2014/09/29 - (제주맛집/신제주맛집)제주공항맛집 이가촌. 이가촌은 엄마의 손맛으로 만든 고등어 조림이 맛있습니다.

2014/09/21 - (제주여행/제주숙박)서귀포 표선면 숙박 유채꽃 프라자. 한라산을 가슴에 담고 숙박을 할 수 있는 유채꽃 프라자

2014/09/20 - (제주맛집/조천읍 맛집)에코로바 테마랜드 선녀와 나무꾼 맛집 낭뜰에 쉼팡. 토속음식으로 빛나는 건강한 밥상 낭뜰에 쉼팡

2014/09/15 - (제주여행)제주 거문오름 탐방로에서 만난 쇠살모사. 그 냥 조용히 지나가세요.

2014/09/12 - (제주맛집)제주공룡랜드, 러브랜드 맛집 늘봄 흑돼지. 제주에서 반드시 먹고 온다는 늘봄 흑돼지 먹고 왔습니다.

2014/09/11 - (제주여행/제주숙박)제주 여행에서 농촌테마체험도 즐기고 가족과의 숙박은 명도암 참사리 마을이 너무 좋아요.

2014/09/08 - (제주여행/제주마방목지)제주도에서 조랑말을 보고 추억 만들기를 하세요. 제주마방목지

2014/08/31 - (제주맛집/수다뜰)거문오름, 절물휴양림 맛집 콩 음식 수다뜰 건강밥상 맛보세요.

2014/08/28 - (제주여행/용눈이 오름)지금부터 제주여행의 대세는 오름 오르기... 용눈이 오름에서 제주를 보다.



 





 

728x90

728x90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금정산 금샘. 금정산과 범어사의 유래가 된 금정산 금샘 여행. 



부산과 금정산은 따로 생각할 수 없는 부산의 진산이자 종산입니다. 이곳 금정산에는 정상인 고당봉과 범어사를 긋는 일직선 상에 금정산과 범어사의 유래가 된 금샘이 있습니다. 금샘은 북문에 있는 금정산 탐방지원센터에서 정상인 고당봉 쪽으로 300m가량 오르면 고당샘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오른쪽 숲 속 길을 따라가면 금샘으로 향합니다. 금정산 금샘의 유래를 보면 1432년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의 동래현 산천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금정산 석정(金井山 石井). 현의 서북쪽 산정에 바위가 있는데 높이가 3장쯤 된다. 바위 위에 샘이 있는데 둘레가 10여 척이고, 깊이는 7촌 가량 된다. 물이 항상 가득하여 비록 가물어도 마르지 않으며, 빛깔은 황금색과 같다. 그 아래 범어사가 있는데, 세상에서는 옛날에 금색 물고기 한 마리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으로부터 내려와 그 속에서 헤엄치며 놀았으므로 그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금정산과 범어사가 탄생하였습니다. 금샘이 있는 바위는 자못 웅장하며 신비감까지 들게 합니다. 금샘 여행은 범어사에서 출발하여 금정산 산행을 최소한 1시간 30분 이상은 해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산을 상징하는 금정산의 금샘을 만난다는 행운은 그 수고로움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부산 금정산 금샘에서 금어를 만나는 행운을 느껴보세요.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62호


 

 

 

 

 

 

 

 

 

 

 




 

728x90

728x90



☞(영천여행/영천 가볼만한 곳)영천 임고면 환구 세덕사. 임고서원과 함께 갈만한 여행지 환구 세덕사

 

 

환구 세덕사는 1720년(숙종 46) 정세아의 후손들이 문중의 자제를 강학하기 위한 장소로 건립했습니다. 주요 건물을 보면 충효각, 충이당, 추원당, 환고정사 등 여러 건물로 지어졌는데 근래 서재와 사당 등을 복원하여 추모공간으로서 제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영천여행/영천 가볼만한 곳 ◆

 

2016/06/24 - (영천여행/영천가볼만한곳)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균형미가 아주 빼어난 고려시대 철불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을 만나다.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2016/05/18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보현산~보현산 시루봉 산행, 하늘바라기에 좋은 산행지 보현산 천문대가 있는 영천의 지붕 보현산 산행. 영천보현산

2016/05/11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모고헌, 독특한 누각이 돋보였던 MBC드라마 화정 촬영지 영천 보현산 아래 옛 태고와 누각 모고헌 여행.

2016/05/09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자천교회. 115년 역사를 가진 한국 기독교 사적 제2호인 영천시 화북면 자천교회 여행. 자천교회

2016/05/06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정각리 삼층석탑. 보현보살을 상징하는 보현산의 상징인 영천 정각리 삼층석탑 여행. 정각리 삼층석탑

2008/11/17 - (경북여행/영천여행)영천 거동사. 단풍이 황홀한 영천의 거동사입니다.

 


 



먼저 환구 세덕사를 알기 위해서는 호수 정세아(1535~1612) 선생과 그의 아들 정의번(1560~1592) 선생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두 부자는 의병인 ‘창의정용군’을 조직하여 영천 전투에 참여하여 승리하였으며 경주성 전투에도 함께 참여하여 고군분투했지만, 전세가 불리해져 아버지는 겨우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나 정의번은 그 사실을 모르고 아버지를 찾아서 다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습니다.





환구세덕사


최근 찾았던 신원마을 환구 세덕사는 한참 복원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추원당의 기둥 등이 모두 새롭게 조성되었는데 하루빨리 예전의 본 모습을 찾으면 합니다. 추원재는 앞면 3칸, 옆면 1.5칸 규모의 3량가 맞배지붕 기와 건물입니다.





가운데 대청을 넣고 좌우에 온돌방을 1칸씩 넣었으며 전면에는 반 칸 크기의 툇마루를 달았습니다. 건물의 기단은 높게 하였으며 자연석 초석에다 기둥을 세웠습니다.

















고직사는 환구 세덕사 입구인 출입문과 마주하고 있는데 앞면 6칸에 측면 1칸의 3량가 맞배지붕 기와집입니다. 건물의 가운데 대청을 기준으로 좌우 각각 한 칸의 온돌방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좌측의 방 옆에는 1칸의 고방을, 우측 방 옆에는 2칸의 부엌을 달았습니다.


 













충이



그리고 환구 세덕사 출입대문을 마주하고는 충이당 건물이 있습니다. 건물은 방형의 담장을 둘렀으며 앞면 3칸에 옆면 1.5칸 규모의 5량가 팔작지붕 기와건물입니다. 가운데 마루를 넣고 좌우로 각각 1칸의 온돌방에다 전면에 계자난간을 두른 반 칸의 툇마루를 달아내었고 출입은 좌우측면으로 하게했습니다.





환고정사



그리고 환고정사는 잡초에 묻혀 고졸한 모습이었습니다. 환고정사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학고 정일진과 그의 아들 교와 정하준을 추모하여 건립한 정자입니다. 환고정사는 1783년 이들 두 부자에 의해 처음 지어졌으며 그 뒤 1965년에 중건되었는데 그 중간의 과정은 알 수 없다 합니다.


 







환고정사는 정면 3칸, 옆면 2.5칸 규모의 5량가 팔작지붕 기와집입니다. 가운데 마루를 넣었으며 각각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그중 우측 방 배면으로 방 1칸을 덧붙였습니다. 건물 전면에는 계자 난간인 툇마루를. 좌우 측면과 배면에는 쪽마루를 달았는데 좌우 측면의 쪽마루에만 계자난간을 둘렀습니다.


 



이 건물의 특징은 경사진 곳에 초석을 세우고 기둥을 올렸으며 앞면 툇마루 아래에는 누하 기둥을 설치한 누각형식입니다. 지대가 높다 보니 임고면 선원리 앞 들판의 모습을 시원하게 바라보게끔 지어졌습니다. 1777년(정조원년)에 서재 뒤에 충현사를 짓고 향사와 강학공간으로 사용하다 1784년에 충효정려각인 사당 좌측에 충효각을 새로 건립하였습니다.







그러다 1868년(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다른 건물은 모두 훼철되며 충효각과 부속건물인 유사채와 고직사만 남았는데 근년에 와서 충이당과 추원당, 사당, 서재 등을 새롭게 복원하였습니다.



 "환산처사 오천 정공 유허비"


◆환구세덕사 정보안내◆

환구세덕사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768번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7호

 


 

728x90

728x90








☞(경주 남산 여행/경주 남산 가볼만한 곳)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의 많은 불상과 석탑 문화재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경주남산칠불암마애불상군



경주 남산에서 화려한 불상 군을 자랑하는 칠불암 마애불상 군은 칠불암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모두 7구의 불상이 있습니다. 3구는 본존불과 좌우 협시보살이며 사면 기둥에다 각각 4구의 석불을 조각하였는데 각 불상의 조각 수법이 매우 뛰어나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은 보물 제200호로 지정되었다가 국보 제312호로 승격되었는데 현재 경주 남산의 많은 문화재 중 국보는 유일합니다.





 



◆경주남산여행/경주남산 가볼만한곳


2012/09/24 - (경주남산여행)보리사 마애석불. 잔잔하며 엷은 미소가 아름다운 보리사 마애석불

2012/09/28 - (경주남산여행)장인의 조각솜씨에 경탄, 화강암을 시루떡이라 생각했는지-경주남산탑곡마애불상군

2012/11/01 - (경주남산여행)살인미소 짓는 부처님의 모습이 경주남산 보리사 석불좌상으로 태어나다. 미륵곡석조여래좌상

2012/11/05 - (경주남산여행)각기 다른 동,서탑의 모양이 특이한 경주 남산리 삼층 석탑

2013/02/11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남산여행 상서장.시대의 풍운아 최치원과 상서장

2013/03/26 - (경북여행/경주남산여행)남산 최고의 자리에 있던 삼화령의 연꽃대좌 미륵불은 어디로 사라졌나

2016/04/26 - (경주여행/남산여행)염불사지 삼층석탑. 은은한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린다는 경주 남산리 염불사지 삼층석탑 여행하기.

2016/04/28 - (경주여행/경주남산여행)동남산 서출지와 이요당, 연과 베롱나무가 꽃이 필때 최고 이름값을 한다는 1500년된 서출지와 조선시대 정자 이요당 여행.

2016/05/05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사마소. 출입문을 닫아 까치발로 목을 쭉빼고 눈도장만 찍었던 젊은 선비들의 강학소 경주 사마소 여행. 경주 사마소

2016/06/10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과 석조관음보살입상. 경주 중생사에서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과 국립경주박물관의 석조관음보살입상을 만나다.

2016/06/20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남산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을 보지 않고는 경주남산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없는 경주 남산의 모나리자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칠불암 오르는 길은 남산의 특징인 소담한 솔 숲길이 이어져 칠불암 마애불상군 못지않은 아름다운 산길입니다. 칠불암에 올라서면 먼저 정면에 만나는 암상군에 입이 떡 벌어집니다. 그 아래 두부같이 각진 바위 면에 불상을 부조한 게 마치 어머니가 떡 주무르듯이 빚어 놓은듯합니다.
















본존불이 있는 바위는 높이가 426cm이며 본존불만은 260cm, 좌우 협시보살은 210cm로 전체 바위 면을 여백이 없을 정도로 꽉 차게 마애불 3구를 조각했습니다. 본존불은 머리가 소발이며 큼지막하게 육계가 솟았으며 풍만하고 네모진 얼굴에 힘이 넘쳐 보입니다.







조각기법은 부드러운 곡선을 처리하여 마애불의 전체적인 윤곽은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주 편안하게 합니다. 목에는 삼도가 없고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취하며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에 광배는 보주형의 무늬를 두드러지게 나타내었습니다.





연꽃 대좌는 연꽃잎이 위로 향하는 앙연과 연꽃잎이 아래로 향하는 복연의 이중 연화좌에 특이하게 9세기에 나타나는 연화문을 새겼다는 점입니다. 두 협시보살은 비슷한 양식을 취하며 약간 통통한 얼굴에 어깨는 벌어져 당당한 인상입니다. 왼쪽 보살은 꽃을 들고 오른쪽 보살은 정병을 들었으며 자세는 본존불로 향합니다.







본존불과 마주 보며 사각기둥에다 사면석불을 새겼는데 바위의 형태에 따라 불상의 크기를 달리하였습니다. 223cm~242cm가량 크기의 바위에다 사방 불을 새겼으며 모두 연꽃 좌대에다 광배는 보주형 두광을 갖추고 결가부좌를 하였습니다.


 





동쪽을 향하는 불상은 본존불과 같은 양식이며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불로 추정하며 서쪽를 바라보는 불상 또한 동쪽 면의 불상과 서로 닮은 모습입니다. 북쪽을 바라보는 불상 또한 남쪽 면의 불상과 비슷한데 다른 3불상과는 다르게 갸름하며 작은 얼굴에 조금 수척한 모습입니다.







사방 석불의 명칭을 보면 방위와 수인, 인계를 보고 추정을 하면 동쪽은 약사여래불, 서쪽은 아미타여래 불로 각 방위를 주재하는 부처님의 모습을 새겨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더욱 장엄해 보입니다.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통일신라 석굴암과 비슷한 시기인 8세기의 작품이며 경주 남산의 수많은 불상 중에서 가장 대표적입니다.



































728x90

728x90

 

 

☞(문경여행/문경 가볼만한 곳)공덕산·사불산 사불암. 그럴싸한 전설이 정말 잘 어울리는 신비의 세계 사불암 사면석불, 공덕산·사불산 사면석불 사불암을 만나다. 


문경 하면 생각나는 게 당연히 문경새재입니다. 영남 쪽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이 3곳인데 추풍령을 넘는 길과 문경 새재 그리고 죽령입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 과거 길을 오르는 선비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추풍령과 시험을 보면 죽을 쑨다는 죽령으로 가지 않고 오직 문경새재로만 다녔습니다.






◆문경 가볼만한 것 여행지◆


2016/06/04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봉암사. 일년중 부처님오신날 딱 하루만 산문을 개방하는 천년고찰 문경 희양산 봉암사 여행을 하다. 문경 봉암사

2016/06/03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희양산 봉암사. 봉암사의 꽃이라는 통일신라시대의 완벽한 예술품 문경 봉정사 삼층석탑을 만나다. 문경 봉암사

2016/05/26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 탑비. 보물에서 국보 제315호로 승격된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 탑비의 웅장함에 깜짝 놀라다. 봉암사지증대사탑비

2016/05/25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 통일신라 최고의 걸작품 지증대사 부도인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의 아름다움에 반하다. 봉암사지증대사탑

2016/05/23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극락전. 잦은 화재로 봉암사 전각중 유이하게 남은 보물 제1574호 봉암사 극락전의 독특한 목탑양식 당우를 만나다. 봉암사 극락전

2016/05/20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무릉도원의 선경인 용추동천의 백운대에 자리한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을 만났습니다. 봉암사 마애보살좌상.

2016/05/17 - (경북여행/문경여행)희양산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 희양산 봉암사의 전성기를 이끈 정진대사 원오탑비를 만나다. 보물 제172호

2008/11/03 - (경북여행/문경여행)문경 대야산 산행. 문경의 명산 대야산 용추폭포와 만추홍엽 단풍보기



 



문경이란 뜻은 새재를 넘어간 선비가 과거에 급제했다는 희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다는 뜻이며 그래서인지 문경은 산이 깊고 물이 좋은 심산유곡의 선비 고장입니다. 문경에는 여행할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필자도 항상 문경 여행을 꿈꾸었지만 기회가 좀체 나지 않았는데 문경의 공덕산을 여행하며 겸사겸사 둘러보고 왔습니다. 공덕산으로 불리지만 불가에서는 사불산으로 더욱 알려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가고 싶었던 여행지가 사불암입니다.





사불암은 암자인가 오해를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4각 기둥의 바위 면에 새겨진 사면석불입니다. 이곳 사불산 사불암은 양산 천성산의 유래와 맥을 같이하여 꼭 찾고 싶었던 곳이며 실제 전설과 함께 끼워 맞추어보면 더욱 실감이 납니다.



동쪽 약사여래 


천성산의 전설은 많은 분이 알고 있습니다. 하루는 원효스님이 불광산(천성산과 마주하고 있는 산) 척판암에서 참선하던 중 천안통으로 당나라 태화사의 뒤 산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 원효는 급한 나머지 척판암 부엌 문짝을 떼어내어 “해동원효척판구중”의 글씨를 써서 날려 보냈습니다.


 



문짝은 태화사 하늘에서 빙빙 돌았고 법당에서 기도하던 많은 사부대중은 이상한 물체를 보고 궁금하여 밖을 나왔는데 때마침 뒷산 절벽이 무너져 법당을 덮쳤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린 사람들은 그때야 떨어진 판자의 글씨를 보고 “신라의 원효가 판자를 던져 중생을 구하다”란 글씨를 보고 원효의 도력을 쫓아 지금의 천성산으로 원효를 찾아왔습니다.



서쪽 아미타불


원효에게 제자가 되겠다 하였고 원효는 화엄경을 설법하여 이들 모두는 깨달음을 얻어 성불하게 했습니다. 그중에 8명은 대구 팔공산으로 들어갔으며 또한 4명은 문경 사불산으로 들어가 부처가 되었다 합니다.



남쪽 석가모니 불


실제로 문경에는 사불산이 있고 하여 언제 한번은 꼭 확인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최근에 문경을 가면서 사불산 여행을 했습니다. 사불산에도 또한 그에 어울리는 전설이 있습니다.





신라 진평왕 9년인 587년 하늘에서 사면이 한길이나 되는 큰 돌기둥이 붉은 비단 보자기에 싸여 내려왔는데 면마다 사방여래불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면석불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진평왕은 석불을 찾아 예를 표하고 그 아래에다 절을 세우게 했는데 그게 오늘날 대승사입니다.





일연의 ‘삼국유사’ “권2, 탑상제4, 사불산·굴불사·만불산 조”의 기록입니다. 대승사는 문경의 사찰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찰입니다. 진평왕은 신라 제26대왕으로 태어난 해는 알 수 없지만 632년에 붕어했습니다.







재위는 579~632년이며 원효대사의 생몰은 617년~686년입니다. 천성산의 전설이야 전설일 뿐이지만 서로 생몰 연대가 겹쳐지는 것을 보면 천성산의 네 성인이 이곳 사불암의 사방 여래 불상이 된 것은 아닌지 추정해 봅니다. 이리 생각하니 더욱 사불산 사불암의 전설과 스토리가 어울립니다.


 



사불산 사불암의 사면 석불 조성 경위를 보면 이는 당시 신라·백제와의 치열했던 국경분쟁과 무관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령과 계립령이 가까운데 당시 신라는 부처님의 힘으로 국경을 수호하려 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동서남북 네 방향의 바위에다 불상을 조각하는 것은 부처님의 눈으로 보이는 사방의 땅이 모두 불국토 임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불상 높이는 약 295cm, 너비는 약 150cm의 커다른 돌기둥 사방 불로 대략 1400년을 비바람에 풍찬노숙하였습니다.


 



북쪽 미륵불


지금은 흔적조차 희미하며 훼손상태가 심각하여 정확하게 사면석불의 추정은 곤란하지만, 서쪽에 아미타불, 동쪽에 약사여래, 남쪽에 석가모니 불, 북쪽에는 미륵불을 각각 모셨습니다. 동과 서쪽 불상은 앉은 모습이며 남과 북은 입상의 형태입니다. 대단한 곳에 신령스러운 사면석불이 있다는 것을 보면서 힐링하며 주위 풍광을 즐겼습니다.











 


◆문경 대승사 사면석불 사불암 정보 안내


★경북유형문화재 제403호(2007년 12월 31일 지정)

소재지: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산 38-1




728x90

728x90

 


☞(부산 해운대구 여행/부산 해운대구 가볼만한 곳)동해남부선 폐선 부지 둘레길.

연인과의 달곰한 데이트는 기본, 영화의 한장면이 따로 없는 동해남부선 폐선 둘레길 여행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경주로 달리는 기찻길을 동해남부선이라 합니다. 동해남부선이 복선화하면서 청사포 해안으로 달리던 철길이 내륙으로 옮겨가며 새롭게 개통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옛 동해남부선 선로는 폐선부지가 되었고 지금은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부산시민들의 휴식처로서 아주 인기 있는 둘레길 코스가 되었습니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인근 가볼만한 맛집 , 여행지


2011/10/03 - (부산여행/해운대여행)폐선 동해남부선 송정역. 가을에 옛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 송정역에 내리면 바다가 보인다.

2016/06/27 - (부산맛집/해운대맛집)청사포 카페곰. 동해남부선 철길 폐선 둘레길의 오아시스 청사포 곰카페에서 무더위를 식혔던 팥빙수. 청사포 곰카페

2016/05/30 - (부산여행/해운대해수욕장)2016년 해운대 모래축제. 사상누각인 모래로 만든 작품으로 믿기어려운 예술작품을 2016년 해운대 모래축제에서 만나다. 해운대모래축제

2015/06/01 - (부산여행/해운대여행)2015년 해운대 모래 축제. 세계 명작 동화를 모래 작품으로 2015 해운대 모래 축제에서 만나다.

2014/06/08 - (부산여행/해운대여행/해운대모래축제)이게 모래로 만든 작품이라 믿기 어려운 예술품. 제10회 해운대모래축제 보고 왔습니다.

2013/12/24 - (부산여행/해운대여행)레디움 아트 센터에서 모야의 작품을 만나고 왔습니다. 레디움 미술관 관람

2014/02/22 - (부산맛집/해운대맛집)해운대 중동 신도시 맛집 재첩마을 섬진강. 하동 재첩국 맛집보다 더 맛있는 해운대 재첩마을 섬진강 .

2013/07/05 - (부산맛집/해운대맛집)개그우면 이영자가 먹어보고 '진짜!.살이 풀린다"는 그 맛집. 해운대해수욕장 속시원한 대구탕.

2012/10/26 - (부산맛집/해운대맛집)얼마나 고기가 들었기에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아요.해운대형제돼지국밥

2012/05/19 - (부산해운대맛집) 임신한 부인을 위해 만들었다는 국내최초 쇠고기 양지물회-생선물회의 상식을 뒤 엎다.

2014/01/19 - (부산여행/해운대구여행)솔밭예술마을 창착공예공방, 모두가 수작업인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해운대솔밭예술마을창작공예공방

2014/07/11 - (부산맛집/해운대구맛집)송정해수욕장, 해동용궁사 맛집 송원물회. 여름을 이기는 보양식 송원물회에서 시원한 물회먹고 왔습니다.





 미포 건널목 


그러나 지금 폐선부지는 지역주민의 개발 요구와 부산시민에게 돌려주어 공원으로 개발하자는 시민단체 등 의견이 팽팽하여 완전 살얼음판입니다. 여차하면 개발이고 아니면 지금의 상태 그대로 부산시민의 휴식처로 돌아올지 어서 빨리 결론이 나야겠습니다.


 

 


개인적인 입장이지만 요런 선로가 남아 있으니까 젊은 연인들은 철길을 마음대로 걸어도 보고 영화에서 보든 ‘철길 손잡고 걷기’ ‘레일 떨어지지 않고 멀리 걷기’ 등 재미있는 놀이를 마음 것 할 수 있어 지금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옛 송정역까지는 대략 4.8km에 2시간 거리인데 출발은 미포 건널목입니다. 동해남부선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7월 15일 부산~경주 구간으로 해운대 좌동 역에서 송정역 구간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임해 철도 선로였습니다. 


 

 


그러나 2013년 12월 해운대 도심을 통과하여 기장까지 복선화가 되면서 기차를 타고 가야만 볼 수 있었던 청사포의 와우산 해안 절경을 두 발로 걸으면서 보 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곳은 해안초소 등 군사시설이 들어서서 일반인은 출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 놓고 미포, 청사포, 구덕포 등 동해안을 걸을 수 있는 부산에서 최고의 경관 코스가 되었습니다. 옛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출발은 미포마을입니다. 미포는 마을 뒷산이 풍수상으로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인데 소의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갯가라 하여 미포마을이 되었습니다.


 

 


해운대해수욕장의 동쪽 끝에 있으며 달맞이 고개를 오르는 입구 마을입니다. 사람의 기 보충에 꼬리곰탕이 최고라 하는데 소의 기운이 모두 이곳 소 꼬리인 미포에 모여서 그런지 요즘 해운대 해수욕장은 마천루 같은 건물이 ‘마구 마구’ 들어서는 것 같습니다.


 

 


또한, 미포마을은 1970년경 국내에서 횟집이 가장 먼저 생긴 곳이라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그러나 이곳 주민들 대부분은 어업에 종사하며 자연산 물고기만 판매한다네요. 그만큼 싱싱하고 쬰득한 게 정말 맛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는 강원도 고성이라고요 아니아니 아니예요. 부산 청사포해안가 풍경입니다. 지금도 해안초소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바다 끝에는 ㅎㅎ 아마 대마도가 보일것 같습니다.


 

 

 

 

아 아 대한민국~~~


 

 

 

 

 

 

 

 

 

 


청사포는 싱싱한 자연산 회는 물론 이고 장어와 조개구이가 유명했으며, 지금도 청사포는 횟집과 장어구이, 조개구이집이 성황을 이룹니다.


 

 


청사포에는 1970년에 건립한 당집이 있습니다. “현동조비김씨신위” 위패로 김씨 골매기 할매를 모시고 있습니다. 처음 청사포에 마을이 들어서게 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대략 300여 년 전입니다.


 

 


당시 남편이 어부인 김씨 부인이 살았는데 한마디로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고깃배가 좌초되어 생사를 알 수 없었습니다.




 

청사포 당산


김씨 부인은 남편이 살아서 돌아오리라 굳게 믿고 매일 바다로 나가 기다렸지만, 어느 듯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되었고 그만 죽어서 망부석이 되었다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골매기 할매로 당집에 모시게 되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당집의 망부송은 골매기 할매가 남편을 기다리며 심었다는 소나무라 합니다.


 

 


청사포(靑蛇浦)는 골매기 당산의 김해김씨 할매와 관련된 전설로 푸른 뱀이 나오는 데서 지명이 유래합니다. 주민들이 마을 지명에 뱀 사(蛇)자가 들어가는 게 좋지 않아 모래 사(砂)자를 넣어 청사포로 바꾸었습니다. 그 후 1927년경에 이곳에 세운 서당에다 청사(靑砂) 서당 현판을 달면서 마을 이름도 청사포(靑砂浦)가 되었습니다.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청사포 건널목에 남아있는 철도 시설물들.... 꽥~~하며 지금도 요란한 굉음을 내며 지나갈 것 같습니다.


 

 


청사포를 지나면 곧바로 철길 왼쪽의 새터마을 산비탈에 부산 최초 구석기 유적지 안내판이 있습니다. 2만 년 전 구석기인들이 고동, 조개 등을 잡으면서 막 집을 짓고 살았다는데 니암제 박편과 원판형 석기가 출토되었던 곳입니다. 부산지역 최초의 구석기 유적지를 이곳에서 만나는 행운을 누려보세요.


 

 

 

 


바위가 꼭 해골바위를 닮았나요 구멍이 쓩쓩 뚫려 괴기스럽기 까지 합니다. 이곳에 촛농이 많은 것을 보면 지금도 민간 신앙이 성행하는 곳 같습니다.


 

 

 

 

 

 

 

 


폐선부지 종착지인 송정역은 1941년 지어졌으며 등록문화재 제302호입니다. 송정역은 1934년 12월 16일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으로 출발하여 1941년 4월에 보통 역으로 승격하여 하루 12회가 이곳 송정역에 정차하였습니다.


 

 

 

 


참 대학 다닐 때 송정해수욕장 진하해수욕장 등 동해남부선을 따라 MT 단골 코스로 뻔질나게 다녔습니다. 그런 역사와 청춘의 낭만인추억이 남았던 곳인데 폐선이 되어 참 많이 아쉽습니다.


 

 

 


안동의 운산역과 의성의 역과 비슷하게 지어졌습니다. 현재 옛 송정역은 시민 갤러리로 운영 중입니다. 동해남부선 폐선과 옛 송정역을 가장 잘 표현한 글인데 옛 송정역에 세워져 있어 옮겨 보았습니다.


 

 

 

 


“기적 소리 처음 울렸던 1934년 12월 16일

일제의 군수물자 수송로 되었던 적,

새벽녘 암흑 불현듯 깨운 1950년 6월 25일

온 나라가 전쟁의 비극에 젖었던 적,

나는 견디고 버텨 끝까지 달렸습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의 통학열차와

일터 나선 어른들의 통근열차 드나들 적,

주말이면 지척에서 물결치는 바다 감상하며

추억될 짧은 여행 떠났던 적,

나는 온갖 삶 싣고 기꺼이 달렸습니다.

나는 이제 역사가 되려 합니다.

더 이상 스쳐 지나갈 수 없는 바다와 멀리

더 이상 싣고 추억할 수 없는 사람들 떠나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사이가 되어 갑니다“


 

 

 

 

 

옛 송정역 


송정마을은 조선 말기에 노영경(1845~1929)이 과거를 보면서 출신지를 송정이라 한데서 유래되었다 하며 말년에는 이곳으로 낙향하여 송호재 정자를 짓고 후학 양성에 여생을 보냈습니다. 송정은 기장과 함께 유명한 게 미역입니다.



 

 



그리고 송정만의 특산물인 쫄쫄이 미역이 유명하여 매년 2월에 ‘송정 미역축제’가 인기리에 열리고 있습니다. 부산 해운대의 명물인 해운대해수욕장의 미포마을에서 옛 송정역까지 동해남부선 철길을 따라 걸으면서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728x90

728x90



☞(부산동구여행/부산동구 가볼만한곳)자성대공원. 대한민국의 목에 해당하는 쪽국경은??? 자성대성,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뼈아픈 흔적 여행을 떠나보세요. 자성대공원


 범일동 부산진시장 앞에는 자성대로 불리는 작은 공원이 있습니다. 원래는 부산진성의 부산 지성으로 임진왜란 이전에는 부산포로 불렸습니다. 지금의 증산 일대에 부산성 또는 부산 진성이라 불리며 부산 수군 진영이 주둔했던 곳입니다. 그 규모는 2겹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산 동구 자성대공원 인근 가볼만한곳◆


2016/07/01 - (부산동구여행/부산동구가볼만한곳)조선통신사역사관. 조선통신사의 모든 기록을 알수 있는 조선통신사역사관 여행 추천이요. 자성대 공원 영가대와 조선통신사역사관

2016/06/29 - (부산동구여행/부산동구가볼만한곳)자성대 공원 영가대. 영가대는 일본으로 가던 조선통신사의 환송과 귀환 장소이며 해신제를 올렸던 곳입니다. 영가대

2016/04/19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 봄에 걷기 좋은 여행지 근대 역사문화박물관 범일동호랭이 이바구길을 걷다. 호랭이 이바구길

2016/04/12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누나의 길. 호랭이 이바구길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누나의 길이 있습니다.

2016/04/11 - (부산여행/동구여행)교통부 보림극장, 서민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부산 최초의 쇼 전문극장 보림극장이 호랭이 이바구길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2016/04/08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호랭이 이바구길 쉼터 똥산 전망대. 70~80년대 똥구덩이 산이 부산 최고의 힐링코스 호랭이 이바구길 똥산 전망대로 바뀌었습니다.

2016/04/06 - (부산여행/동구여행)범일동 안창마을. 70~80년대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 억척스럽게 살았던 대한민국의 참 모습을 찾는다면 범일동 안창마을 여행 추천.

2015/11/06 - (부산여행/동구여행)초량 이바구 야시장. 청년 창업가의 톡톡 튀는 맛이 궁금하다면 부산 제2호 야시장 초량 이바구 야시장을 찾아보세요.




 


부산진지성(자성대성)서문 금루관


부산진성은 내성이며 지금의 증산에 쌓았는데 정발장군을 모신 정공단에서 금성중 고등학교 일대를 말합니다. 외성은 부산진성에서 동쪽 해안의 나지막한 동산인 오늘날의 자성대를 중심으로 지성(支城)의 형식으로 쌓은 성을 말하며 자성대 성이라 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의 선봉에 선 고니시 유키나가는 부산진성을 지키는 정발장군에게 명나라를 치기 위한 길을 내어 달라합니다. 정발장군은 이를 거부하였고 조총을 가진 왜구의 공격으로 성은 함락되고 장군은 서문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습니다.


 

 

 

 


그 후 부산진성은 전란이 끝날 때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 전초기지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이를 증산 왜성이라 부르며 또한. 자성대 성은 1593년 선조 26년에 왜군이 주둔하면서 왜장 모리테루모토가 부산진성의 지성으로 고쳐 다시 쌓은 왜성입니다.


 

 


자성대 성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부산진성을 모성에 비유하고 자성대 성은 그에 딸린 자식의 성이라는 뜻을 가졌다 합니다. 또한, 산 정상에 자성을 쌓고 장대로 사용했다는 데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자성대성을 다시 쌓아 부산진 첨사영으로 사용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 시가지 정비계획으로 성은 철거되고 자성대 주변이 매축 되면서 자성대 성의 옛 모습은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현재 자성대 성의 규모를 보면 2단으로 이루어진 성벽의 높이는 최고 10m에서 최저 1.5m의 성벽이 비스듬하게 경사진 형태입니다. 그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스크루 모양으로 감듯이 좁혀 올렸는데 왜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 합니다.


 

 


부산진지성 서문 성곽 우주석


 

부산진 지성인 자성대 성의 서문을 금루관이라 부릅니다. 현재 금루관을 받치는 성벽에 부산진지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성곽 우주석인 돌기둥이 남아 있습니다. 돌기둥을 세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처음부터 부산진지성 서문 양측 성곽에 끼워져 있었는데 임진왜란이 끝나고 성을 다시 쌓으면서 세운 것으로 추정합니다.


 



복원된 영가대



돌기둥의 내용을 보면 “남요인후(南?咽喉) 서문쇄약(西門鎖鑰)”이라 새겨졌는데 그 뜻을 보면 “이곳은 나라의 목에 해당하는 남쪽국경이라.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 같다.” 지금이야 부산진지성 서문 복원을 자성대공원내에 했지만 원래 서문 자리는 성남초등학교 교정이었고 돌기둥 또한 그곳에 있었는데 1975년 부산진지성 정비공사를 하면서 이곳에 복원할 때 옮겨왔습니다. 왼쪽 돌기둥은 높이가 272cm, 너비 46~94cm, 오른쪽 돌기둥은 높이가 277cm에 너비 62~71cm입니다.


 

 

 

 

 

 


그리고 동문인 진동문도 웅장한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부산진지성(자성대성) 동문 진동문 

 


 

 

 

 

 

 

 

 

 최영장군 사당


이곳에는 고려 때 무장인 최영 장군 사당이 있습니다. 최영 장군은 1316년 고려 충숙왕 3년에 태어났으며 공민왕 3년에는 대호군의 벼슬에 올랐고 내란과 왜란을 평정하여 그 명성이 원나라에까지 떨쳤습니다.


 

 


왜구와 홍산 전투에서 대승하면서 왜구는 최영 장군을 ‘백수최만호'라 부르며 멀리서 최영 장군의 깃발만 보여도 '걸음아 나 살려라'며 꼬리를 내리며 전의를 상실하고 피해 도망갔다 합니다. ”황금보기를 돌 같이하라“는 최영 장군의 어록은 너무나 유명하며 왜구를 섬멸한 장군을 하나의 신앙으로 신격화하여 사당을 짓고 장군의 영정을 모시며 마을 수호신으로 삼았습니다. 감만동과 수영구, 영도구 자성대 사량도 등 우리나라 전 해안가에 장군의 사당이 남아 있습니다.


 

 

 

 


자성대 공원에는 천 장군 기념비도 있습니다. 천 장군은 명나라 장수 천만리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합니다. 구원군인 이여송의 휘하 장수가 되어 아들과 함께 조선에 출정하여 평양 곽산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고 1597년인 선조 30년 정유재란 때도 참전하여 평양과 울산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천장군 기념비



 

 

 


전란을 평정하고 명군은 회군하나 천만리 장군은 조선에 남아 귀화하였으며 조정에서는 화산군에 봉하고 충장공의 시호를 내렸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었던 천 장군 기념비는 광복 후인 1947년에 그의 영양천씨 후손들이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습니다. 비의 높이는 264cm, 너비 99cm, 두께 31cm.


 

 

 

 

 

 

 

 


“천만리 영양 천공비” 옆에는 1974년 부산진지성을 정비하면서 복원한 진남대가 있습니다. 장군의 지휘소였던 진남대는 부산진지성의 남문 이름이며 정면 5칸 옆면 4칸에 2층 규모의 팔작지붕 누대입니다.


 

 

 

 

 

 

 

 


자성대공원은 이외에도 고니시 유키나가가 주둔하여 고니시 성이라고도하며 명나라 장수 천만리의 공을 기린 비석이 있어 만공대라 불리고 있습니다. 현재 자성대공원인 부산진지성은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7호입니다.


 

 

 

 

 

 

 

 

 자성대 공원 진남대



 

 

 

 

 

 

 

 

 

 

 

 

◆자성대공원 정보 안내◆


★자성대공원 전화:051-4404064

★자성대공원 주소:부산 동구 범일동 590-5

★자성대공원 위치:부산진시장 건너편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