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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 대장경전, 고려각판. 부처님의 원력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려했던 고려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을 여행하다. 



합천에 가야산이 있다면 가야산에는 법보사찰 해인사가 있습니다. 그 해인사를 대표하는 게 법보사찰의 상징인 고려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입니다. 그 큰 해인사 경내를 둘러보면서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관광을 했습니다. 그러나 해인사의 중심건물인 대광보전 뒤쪽 팔만대장경 현판이 걸린 전각 밑 계단에 올라서면 벌써 샤~ 하고 느끼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대장경의 엄숙한 분위기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대장경의 보안 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곳곳에 CCTV가 설치되었고 많은 경비원이 물샐틈없는 관리를 하고 있는게 역시 팔만대장경은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보배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팔만대장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려 때 부처님의 원력으로 오랑캐의 침입을 막아보고자 국가적인 사업으로 두 차례 간행되었습니다.


 

 

 

 


먼저 1011년 간행된 대장경판은 구판대장경이라 합니다. 거란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부처님의 원력으로 1087년까지 77년간 작업을 하여 완성하였습니다. 구판대장경은 대구 팔공산의 부인사에 보관하던 중 1232년(고종 19년) 몽골군이 침입하여 그만 불타고 말았습니다. 그 뒤 1236년 재차 대장경판 간행 작업을 추진하여 16년만인 1251년 완성하였습니다. 그때의 대장경판이 지금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중인 고려대장경이며 팔만대장경으로도 부르고 있습니다.


 

 

 

 

 

 


왜 팔만대장경이라 할까요? 경전이 새겨진 장경판 수가 팔만 장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불교에서는 아주 많은 숫자를 가르칠 때 팔만 사천이라 쓰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만사천법문이라 하는 데서 기인한다 합니다.


 

 

 

 


팔만대장경은 정확하게 81,350판이며 목판에 양각으로 새겼습니다. 이는 한역 경전에서 가장 오래된 원판 본으로 수정할 곳이 없이 완벽하다고 합니다. 총 1,514 경전에 52,382,960 글자, 6,791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경판으로 해인사를 모두 법보종찰이라 알고 있습니다.


 

 

 

 


대장경판에 사용된 나무는 산벚나무 등이며. 해충의 피해를 막고 조각을 쉽게 하기 위해 펄 밭에 담그거나 바닷물에 오랫동안 통째 쪘다 합니다. 대장경을 만들던 곳이 경남 남해군 고현면 대사리로 추정하는데 이곳은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 밀물 때는 나무 운반이 쉽고 뻘밭과 소금물, 조각에 사용하는 칼과 쇠붙이를 만드는 대장간, 인쇄에 필요한 한지를 만드는 한지마을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대패로 곱게 다듬은 판자에 경문을 새겼는데 먼저 붓으로 한지에다 경문을 쓰고 경판에 다시 글을 쓴 한지를 풀칠하여 조각칼로 하나하나 깎아내었다니 그 작업의 정밀도가 말할 수 없이 힘들었을 듯합니다.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을까요? 아차 하는 한 번의 실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이며 한글자 한글자 새길 때마다 절을 한번 했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하여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구양순체로 붙여진 글자는 꼴이 한결같으며 아름다워 꼭 한 사람이 쓴 듯 일정하다 합니다. 이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재주가 정말 뛰어난가 봅니다. 손으로 하는 기술이나 양궁, 골프 등 운동은 세계 최고인 게 이를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글자가 새겨진 경판 면과 경판 양 끝에 각목으로 덧댄 마구로로 만들어졌는데 경판의 총 길이는 약 70cm, 폭은 약 24cm, 두께는 약 2.8cm이며 무게는 대략 3.25kg입니다. 글자는 경판 양면에 돋을새김하였으며 한 면에다 글자를 새긴 새로 줄 수는 23행이며 행마다 14자 정도의 글자를 새겼습니다.


 

 

 

 


그런데 이리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팔만대장경판은 보관이 가장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각은 대적광전 뒤 가파른 계단 위에 네 동의 건물로 이루어졌습니다. 팔만대장경 현판이 걸린 출입문을 지나면 먼저 한일(一)자로 길게 이어진 건물은 수다라장이고 그 뒤 같은 길이의 건물은 법보전입니다.


 

 

 

 


고려팔만대장경은 이 두 건물 안에 봉안되었으며 두 건물 사이의 동서 양쪽 끝에 있는 작은 건물은 고려 각판을 안치한 사간판전입니다.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장경판전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장식을 갖추지 않은 그저 평범한 건물에 불과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건물에 장경판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놀라운 과학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하나 보면 장경판전이 자리한 위치부터 건물의 배치와 좌향 그리고 건물의 구조와 창호 처리 및 판가의 구조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따졌으며, 경판 배열은 원활한 통풍과 적당한 일조량 등 목판을 보존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도록 힘썼습니다. 목판 보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항온, 항습의 상태 유지를 위해서 판전 외벽의 앞뒷면에 크기가 다른 살창이 칸마다 아래위로 나 있어서 건물 뒤쪽에서 들어오는 습기는 억제하고 판전으로 들어온 바람은 건물 안에서 골고루 퍼진 다음 바깥으로 나가도록 설계되어 오늘날까지도 팔만대장경판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장 한장입니다.   


요즘 전자동 전자동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곳 장경판전이 모든 기후 환경에 가장 잘 조절되는 전자동 시스템으로 설계된 것 같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선조의 혼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조각을 했던 것을 하늘도 알았는지 해인사에 7차례나 불이 났어도 장경판전은 화마로부터 안전했다 합니다.


대장경판 국보 제32호, 대장경전 국보 제52호, 고려각판 국보 제206호, 보물 제734호


 


팔만대장경판은 현재 아무나 관람할수 없습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여기 사진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의 가림막에서 찍은 사진 6장 중 한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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