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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교동여행)경주 교동 최씨고택.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 최씨고택 여행.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최씨 고택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경주최씨 고택은 400여 년 동안 12대 9 진사를 배출한 만석꾼 집안으로 경주에 살았던 저는 경주 최부잣집이라 불렀습니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은 교동에 있습니다. 교동이란 지명은 682년 신라 신문왕 2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고려 때에는 향학이, 조선 시대에는 경주향교가 자리해서 교동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경주여행 교동최씨고택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69




2017/12/14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월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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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최씨 고택은 1700년경에 지금의 건물을 지을 때 경주향교의 유림이 반대하자 향교의 뜻을 적극 받아들여 향교건물 보다 두 단 낮게 터를 깎아내고 99칸의 저택을 지었습니다. 당시의 그런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경주최씨 최진립 장군의 성품에 기인한 후손의 뜻인지 모르겠지만, 건물의 규모에 비해서 경주최씨 고택은 화려하지 않고 그저 아담한 시골 아낙네를 닮은 듯 소박합니다.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는 경주최씨 최진립장군 사당이 있으며 여기서 조선 중기에 교동으로 옮겨와 경주 교동 최씨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에 화재가 일어나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가 화마에 불타버렸으나 2006년 큰 사랑채를 복원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에 보니까 작은 사랑채에는 주춧돌만 남아 있었는데 복원을 하려는지 정비된 모습이었습니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은 문간채, 사랑채, 안채와 고방 등이 현재 남아있습니다. 경주 최부잣집 하면 ‘타인능해’의 철학이 숨 쉬는 구례의 운조루와 같이 흉년에 주위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곳간을 열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사랑채에는 문객들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문객이 많은 집안을 보면 매일 많은 손님이 찾아오고 자연스럽게 접대가 많다 보니 대부분 그 집만의 비법인 가양주가 내려옵니다. 경주최씨 가양주 하면 술 좋아하시는 분은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경주 교동법주는 경주최부자집에만 내려오는 전통주이며 중요유형문화재 제86-3호에 지정되었습니다.



경주 교동법주의 유래를 보면 조선 숙종 때에 궁중의 음식을 관장했던 최국선이 낙향하여 빚었던 술로 궁중에서 유래된 비법으로 빚은 술이라 합니다. 교동법주는 9월에서 다음 해 4월까지가 술을 빚는 최적기라 합니다. 밑술로 밀누룩과 찹쌀을, 덧술로 찹쌀을 넣어 빚어서 100일 동안 숙성을 거쳐야만 미황색의 교동법주가 완성됩니다.

 


외관이 맑고 투명한 교동법주는 그윽한 향기와 맛을 가져 누구나 좋아하는 술이라는 평가입니다. 지금은 그의 10세손인 최경씨가 교동법주 기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럼 경주최씨 고택을 둘러보겠습니다. 일자형의 출입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복원한 큰 사랑채가 보무도 당당합니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복원을 기다리는 작은 사랑채의 주춧돌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단체 관광객이 있어 먼저 안채를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큰 목조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경주최씨 최부잣집의 부의 상징인 곳간입니다.



우리나라 목재 곳간건물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되었다 합니다. 앞면 5칸에 옆면 2칸이며 700~800석의 쌀가마를 보관했다 하니 어마하게 큰 건물로 아마 단독 건물로는 경주최씨 고택에서 가장 높고 큰 건물 같았습니다.

 




안채로 들어가는 쪽문을 지나면 건물은 ‘ㅁ’자 형태입니다. 안채 건물은 건립 당시 8동이었다 하나 지금은 3동만 남아있습니다. 장독대와 붉은 벽돌로 만든 높은 굴뚝을 보면서 교동 최씨 고택의 위상을 새삼 느끼게되었고 사랑채로 돌아 나왔습니다.



현재 화재로 타서 복원된 큰 사랑채가 있지만 불타기 전의 큰 사랑채는 조선 말기와 근대 시기에 나라를 되찾고자 독립운동과 의병에 뛰어들었던 많은 분이 머물렀다 합니다. 대표적인 분은 구한말 태백산 호랑이로 불렸던 영덕의 신돌석 장군, 면암 최익현 선생, 스웨덴의 구스타트 왕세자, 의친왕 이강 등입니다.






경주최씨 고택이 오늘날에도 남아 있게 된 것은 경주 교동 최씨만의 가훈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 기에는 땅을 널리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집안의 부를 후대에까지 잇는다는 것이 힘이 드는데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은 최진립 장군의 뒤를 이어 12대를 잇는 만석꾼 집안이 계속 이어진 것을 보면 대단한 집안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언뜻 보면 아주 쉬워 보입니다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자기 호주머니에 한 개가 있다면 한 개 더 갖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자신을 잘 다스림으로써 오늘날 존경받는 경주 교동 최부잣집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주 최부자집 12대 만석꾼이었던 독립유공자 최준 선생은 만석이나 되는 모든 재산을 나라를 찾는 독립운동과 교육사업에 내어 놓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국권 회복단과 대한 광복회에 군자금을 지원하였으며 대한 광복회의 재무를 맡아 활동하다 옥고를 치루기도 했습니다.





또한, 백산 안희재 선생과 백산상회를 설립하고 대표로 취임해서 독립운동에 자금을 지원하였고 상해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께도 군자금을 보내는 등 대한 독립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전 재산을 교육에 투자하여 나라를 이끌어 나갈 동량을 키우려고 대구에다 계림대학과 대구대학을 설립했는데 이게 오늘날 영남 대학교의 전신입니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을 돌아 나와 인근에 경주향교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경주 교동에서 마약 김밥으로 불리는 교동 김밥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반디인지 비단벌레인지 전동차가 요란하게 경주교동을 깨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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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향교 대성전. 조선시대 교육기관 경주향교 여행


경주 최부자 최 씨 고택을 둘러보고 인근에 있는 경주향교에 갔습니다. 경주향교는 요즘으로 치면 국립대학입니다. 사립교육기관인 서원과 함께 조선 시대의 양대 교육기관이었습니다. 경주향교의 전신은 신라 시대로 올라갑니다. 682년 신문왕 2년에 처음 세워졌던 국학이 있었던 곳이며 고려 시대에는 향학, 조선 시대에는 향교로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계속 지방교육기관이 들어섰습니다.





경주향교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경주향교 전화:054-772-3624


2008/10/18 - (경북여행/경주여행)무장사지 삼층석탑과 무장사지아미타불 조성 사적비 이수및 귀부 여행. 태종무열왕이 전쟁후 병기와 투구를 감춘 곳, 경주무장사지 입니다.

2010/07/20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진덕여왕 여행.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진덕여왕릉 찾아가기

2013/03/10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 이것.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2013/03/08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남산)보일듯 말듯한 섬세한 조각기법이 예술.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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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의 둘째 공주였던 요석공주가 과부가 되어 머물렀던 요석궁이 있었으며 훗날 이곳에서 원효와의 로맨스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주 향교 포스팅입니다. 경주향교의 건립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492년 조선 성종 23년에 경주부윤 최응현에 의해서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성전 등 경주향교의 주요건물은 모두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대성전에 봉안했던 성현의 위패는 경주 안강의 도덕산 두덕암(현재 도덕암)으로 옮겼으며 1600년 선조 33년에 경주부윤인 이시발이 대성전과 전사청을 먼저 중건하면서 위패를 다시 모셔왔습니다.



4년 뒤에는 윤성이 대성전 앞의 동·서무를 중건하고 1614년 광해군 6년에는 부윤 이안눌이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를 중건함으로써 소실되었던 경주향교의 면모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그 후 1668년과 1979년에 보수를 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경주향교는 약 5천 평으로 경상북도 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라 합니다.

 







명륜당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보았던 여러 향교는 모두 전학후묘였다면 경주향교의 건물배치는 전라도 나주향교·부여향교·전주향교와 강원도 강릉향교 등과 같은 전묘후학인 문묘 영역이 강학영역의 앞쪽에 배치하는 형식을 따랐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 향교의 대표적 형식이라 하는데 저도 여러 향교를 찾았지만, 문묘인 대성전이 앞쪽으로 나오는 형식은 경주향교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경주향교의 대성전과 동·서무는 공자 이외에 성현의 위패를 봉안하여 배향하며 전묘후학의 형식을 따른 향교의 공통점은 대부분 옛 도읍지에 있는 것을 보면 이는 왕들이 공자를 비롯한 성현을 먼저 문묘하는 것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합니다. 경주향교도 조선 시대에는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국가로부터 받아 교생을 가르친 국가교육기관입니다.







대성전은 공자의 시호인 ‘대성지성문성왕’에서 따왔으며 공자의 위패를 중심으로 연국복성공인 안자, 성국종성공 증자, 기국술성공 자사, 추국아성공 맹자 등 중국의 5성과 경주에서 태어난 홍유후 설총, 문장후 최치원, 문원공 이언적 선생 등 3현을, 문묘에 배향한 퇴계 이황, 율곡이이, 김굉필, 조광조, 김집, 송시열 등 우리나라의 18현을 봉안해 음력 2월과 8월 초정일에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존영각


존영각





문묘인 대성전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인 주심포계 외1출목 이익공식(새 날개처럼 생긴 공포 양식) 건물로 내력 또한 분명합니다. 건물의 공포와 창호, 가구는 옛방식의기법이 잘 남아 있고 대성전의 용마루 받침대인종도리에서 건물의 중건연대와 참여했던 장인 등 당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묵서명이발견되었습니다.


대성전



대성전은 경주향교의 중요건축물이며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으로 우수한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국가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경주향교는 입구의 큰문인 외삼문은 출입할 수 없게 잠겨있습니다. 이곳을 통하면 내삼문을 거처 대성전으로 바로 통하지만 문묘 공간이라 출입할 수 없습니다.





경주향교를 보기 위해서는 관리실과 통하는 쪽문을 통해 들어가야 합니다. 먼저 만나는 게우물입니다. 신라 시대 국학이 건립될 때부터 남아 있던 유물로 현재 경주향교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것 같습니다. 널다란 돌 2개를 짜맞추어바닥을 깔고 낮게 테두리를 다듬었으며 요즘 우리가 보는 우물의 모습과는 약간 달라 보입니다.













뚜껑이 덮여있어 알 수 없지만 얕은 우물이라 두레박이 아닌 바가지로 물을 퍼 담을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의 강학장소였던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거처로 사용했던 동·서재를 만나고 대성전은 동재나 서재 앞쪽 긴 담장 사이를 따라가면 대성전 출입문인 내삼문이지만 문은 굳게 잠겨있어 바깥에서 까치발로 내부 전경을 보고 돌아 나왔습니다. 경주향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1호이며 대성전은 보물 제1727호로 지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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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사마소. 출입문을 닫아 까치발로 목을 쭉빼고 눈도장만 찍었던 젊은 선비들의 강학소 경주 사마소 여행. 


경주 최씨고가 앞에는 경주 사마소(司馬所) 건물이 이건 되어 있습니다. 사마소 많이 들어봤던 이야기로 ‘사마소 유생들이 궁궐밖에 모여 상소 어쩌고 저쩌고~~’조선시대 사극드라마에서 꼭 빠지지 않는 대사입니다. 그럼 사마소는 도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사마소는 조선시대에 과거에 합격한 그 지방의 생원과 진사들이 유학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던 장소였습니다. 고려말과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지방수령에 자문을 하던 유향소를 당시 훈구파들이 장악했는데 그에 맞서서 사마시 출신의 젊은 유생들이 만들었습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아주 좋은 의미로 친목 도모와 학문연구 정치토론 등 향리의 교화와 지방관청의 행정 보조를 자임하며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차차 세력화가 되면서 폐단이 생기게 되었고 유향소처럼 지방관청의 업무 간섭은 물론이고 심지어 수령을 능멸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또한, 권력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취하고 백성을 마구 잡아들여 벌을 주는 등 행패도 서슴지 않아 이를 보다 못한 류성룡이 선조에 사마소 폐지 상소를 올렸을 정도였습니다. 경주 사마소는 처음 세워진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것을 1741년인 영조 17년에 다시 세워 풍영정이라 불렀습니다.


병촉헌.


그런데 사마소 현판과 풍영정 현판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는데 필자가 찾았을 당시 아마 사마소 수리가 있었는지 두 현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마소 현판은 1762년 부윤이었던 홍양한의 글씨이며 병촉헌은 1832년에 생원 최기영이 지었습니다.


 

사마소는 경주향교와 옛 월정교 터 인근에 세워져 있었는데 1984년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경주최씨 고가를 둘러보기 전에 이곳을 찾았는데 출입문이 꼭! 잠겨 있어 까치발로 눈도장만 찍어 정말 많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경주 최씨 고가와 같이 경주를 찾는 많은 관광객에게 개방하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1985년 8월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호 지정


 

그리고 사마소 담벼락에 영광대란 안내판이 있습니다. 영광대는 그 옆에 놓인 돌기둥을 말하며 처음에는 사마소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1860년 경주 선비들이 하천에 나뒹굴던 월정교 석재를 모아 대를 쌓아 영광대라 불렀으며 이는 송나라 주희의 시인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한다”는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에서 따왔습니다. 뜻을 풀이하면 “책을 읽으면 그 속에 성현의 아름다운 말과 잘못하지 않게 타일러 주의를 시키는 글귀가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 합니다.


◆경주 남산 여행지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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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30 - (경주여행)경주남산서출지. 추석날 고향 같은 분위기가 좋은 서출지와 이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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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9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성형수술로 다시 태어난 삼릉계마애석불좌상. 경주남산삼릉계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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