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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보길도의 유래는

 

보길도 고산윤선도와 함께 하는 보길도는 섬의 생김새가 쟁기에 끼우는 보습의 모양이라 그 어원인 '보고래'에서 보길도가 유래하였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다 태풍을 피해 찾아간 보길도.

 

윤선도는 병자호란으로 고향의 해남에서 그의 가솔을 거느리고 뱃길을 인조가 피신을 해 있다는 강화도로 가는 도중 인조가 항복을 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여 다시 뱃머리를 해남으로 돌려 그길로 제주도로 향한다.
고산윤선도가 처음 이곳 보길도에 들어오게 된것도 세속의 모든 인연을 끊기 위해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태풍으로 잠시 몸을 피한것이 인연이 되었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보길도에서 윤선도가 처음지었던 낙서재 살림집

 

그길로 보길도에 눌러 앉게 되는데 그는 보길도의 격자봉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니  꽃망울을 터트리 직전의 연꽃이라 부용동이라 짓고 격자봉의 혈맥이 세번 꺽여 내려오는 곳에 처음으로 낙서재를 짓는다. 1637년인 인조 15년에 들어와 그가 가장 먼저 지었던 건물로 1650년 그가 이곳 낙서재에서 돌아가실때 까지 생활하였던 집이다.  

 

 

 

그는 이곳에다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뜻의 낙서재 현판을 걸고 조상의 위패를 모시며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는  무민당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의 낙서재와 곡수당은 모두 최근에 복원된 건물로 그 이전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그 흔적만이 남아 세월속에 묻혀 있었다.

 

 

 

 

보길도에는 그의 기인같은 행동이 많이 남겨져 있는데 그는 작은 바위 한개라도 허투로 보지 않고 많은 이름을 남겼다. 지금의 낙서재나 곡수당 그리고 동천석실은 그때의 흔적과 정취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이곳 툇마루에 앉아 둥근 달을 바라 보았을 것이고 저쪽 바위에 올라 하늘의 별을 세어 보았다고 생각하니 어느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부용동에 있는 모든 고산 윤선도 유적지는 '보길윤선도원림'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곡수당과 낙서재에 비해 동천석실은 고산 윤선도 선생이 독서도 하면서 부용동과 격자봉을 바라보며 주자학 연구에 혼신을 다한곳이 아닐까. 낙서재에서 바라보는 동천석실은 그야말로 바위에 위태롭게 걸린 제비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곡수당과 낙서재를 둘러 보고 이곳 입구로 찾아가니 차로는 갈 수가 없었다. 일행중에 연로하신분이 걸을 수 없는 처지라  젊은 우리들만 동천석실을 올라가자고 주장을 할 수도 없어 입구에서 돌아서 순천을 가기 위해 부두로 나왔다. 그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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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수당으러 건너편 산중턱의 바위가 동천석실이 있는 곳이다.

 

 

동천석실의 모습.

 

 

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동와와서와로 동쪽과 서족에 잠깐 휴식을 위해 지은 움막.

 

 

 

 

보길윤선도원림 동천석실

 

 

동천석실 입구 . 이곳에서 걸어야 한다.

 

 



 

 

고산 윤선도 홈페이지:http://yungosan.hosting.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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