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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진도여행)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와 벽파정. 진도 이충무공전첩비


이순신장군의 3대첩 중 한곳인 명량대첩이 일어난 곳이 진도와 해남 사이의 명량인 울돌목입니다. 

이곳은 육지와 섬 사이의 좁은 수로로 바닷물이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와랑와랑 우는 소리를 낸다 하여 울돌목이라 부릅니다.




진도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 주소:전남 진도군 고군면 벽파길 74

진도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 전화:061-540-3427


진도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 2001년 10월 30일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5호에지정




2014/03/03 - (전남여행/진도여행)모세의 기적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곧 열린다하여 미리 체험하고 왔습니다. 제36회진도신비의 바닷길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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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은 알다시피 이순신 장군이 모함으로 옥에 갇혔고 원균은 패전으로 조선수군은 전멸하다시피 해서 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합니다. 

이에 류성룡 등의 탄원으로 선조도 어쩔 수 없이 이순신을 방면하여 백의종군토록 하였습니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이순신은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패한 뒤 배설이 퇴각하면서 남은 12척의 배와 한 척을 보태어 총 13척으로 133척(기록에 따라 333척이라 하기도 함)의 왜선을 상대하여 울돌목에서 전투를 벌여 해전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승전보를 울렸습니다.

 


무능한 선조는 이순신에게 육군에 참여하라는 교지를 내렸지만, 이순신은 “신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하며 준비했던 명량해전. 

그 명량대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벽파진입니다. 

벽파진은 전라남도 고군면 벽파리에 있으며 진도대교가 생기기 이전까지는 해남군 황산면에서 진도를 드나드는 관문역할을 벽파진이 담당했습니다.

 




벽파진은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한 곳이며 명량(울돌목)의 길목이었습니다. 

이순신장군은 명량해전을 준비하면서 열엿새 동안 벽파진에 머물러 작전을 짜는 등 일전을 준비했습니다. 

명량해전의 승리를 있게 한 벽파진에 1956년 11월 29일 노산 이은상선생이 글을 짓고 글씨는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 쓴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를 세웠습니다.

 




명량대첩의 승전을 기리며 이곳 벽파진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세워진 벽파진 전첩비를 보기 위해 찾았습니다.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의 비신은 높이가 3.8m, 폭이 1.2m, 두께 0.58m이며 거대한 거북좌대위에 세웠으며 비신 위에 머릿돌인 이수를 올려놓았습니다. 

웅장한 이 전첩비는 동양최대의 높이라 합니다.



비신에 새긴 글자는 비명이 9자이며 본문이 749자, 말문 85자, 찬시 134자로 전체 888자의 예서체로 특이한 점은 글씨 형태가 똑 같은 게 없이 비신의 네 면에다 모두 다르게 썼다고 합니다.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의 비문을 일부 보면 

“벽파진 푸른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고작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 곳이 여기더니라.

옥(獄)에서 풀려나와 삼도수군통제사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척을 겨우 거두어 일찍 군수로 임명되었던 진도땅 벽파진에 이르니 공이 53세 되던 정유년 8월 29일 이때 조정에서는 공에게 육전을 명령했으나 공은 이에 대답하되 신에게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삽고 또 신이 죽지 않았으며 적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못하리이다. 하고 그대로 여기 이 바닷목을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16일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불고 맏아들 회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 9월 초7일 적선 13척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9일에도 적선 2척이 감포도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살피다 쫓겨 갔는데 공이 생각한 바 있어 15일에 우수영으로 진을 옮기자 바로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12척 적은 배로서 330척의 적선을 모조리 무찌르니 어허 통쾌할 사 만고에 길이 빛날 명량대첩이여.”




“이 고장 민속 강강술래 구슬픈 춤과 노래는 의병전술을 일러주는 양 가슴마다 눈물어리고 녹진 명량 두 언덕 철쇄 걸었던 깊은 자욱엔 옛 어른들의 전설이 고였거니와 이제 다시 이곳 동포들이 은공과 정기를 영세에 드높이고자 벽파진에 한 덩이 돌을 세움에 및여 나는 삼가 끓어 엎디어 대강 그때 사적을 적고 이어 노래를 붙이노니 열두척 남은 배를 거두어 거느리고 벽파진 찾아들어 바닷목을 지키실 제 그 심정 아는 이 없어 눈물 혼자 지우시다 삼백척 적의 배들 산같이 깔렸더니 울돌목 센 물결에 거품같이 다 꺼지고 북소리 울리는 속에 저님 우뚝 서 계시다 거룩한 님의 은공 어디다 비기오리 피흘린 의사 혼백 어느 적에 살아지리 이 바다 지나는 이들 이마 숙이옵소서.” (이 내용은 안내판의 이충무공벽파진 전첩비 내용을 일부 발췌했습니다)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 비문을 일부 옮겨 놓은 안내판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 왔습니다. 

거친 파고와 싸우셨고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수백 척의 적선을 보면서 장군과 순절하신 병사와 백성은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똘똘 뭉쳐 승리했던 명량대첩이 있었기에 지금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하겠습니다. 

이충무공 벽파진전첩비를 참배하고 내려오면서 벽파정을 올라보았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명량해협은 사람의 죽음으로 피바다였겠지만 현재 벽파정에서 바라보는 벽파진의 풍경은 당시의 참혹함은 모두 가슴속에 삭히고 지금은 그림 같은 아름다움이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벽파정은 1207년(고려 희종3년)에 진도의 관문인 벽파나루 언덕에 세워졌으며 1465년(조선 세조11년)에 중건했으나 허물어져 그 자취만 남아 있었습니다.








2016년 9월에 벽파정은 창건 당시인 고려시대 양식으로 앞면 5칸에 옆면 3칸인 팔작기와지붕으로 벽파정의 역사를 고려해 복원했습니다. 

벽파진은 고려 후기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본거지를 옮겨오면서 대몽항쟁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이순신 장군이 열엿새 동안 머물면서 전략을 세우고 준비하여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곳입니다. 

벽파진에 복원된 벽파정을 보면서 이곳에 올라 호령하시는 이순신 장군을 뵈옵는 듯 늠름한 기상이 서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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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진도여행)진도 운림산방. 소치 허련 운림산방 여행


진도군 여행 일 번지는 단연코 운림산방임을 보여주는 게 진도군청 홈페이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운림산방은 사시사철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습니다. 

진도에서 가장 높은 첨찰산 아래에 자리한 운림산방은 조선 말기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1808~1893)선생이 1857년(철종8년) 말년에 거처하면서 창작과 저술활동을 했던곳입니다.



진도 운림산방 주소: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시천리 61

진도 운림산방 전화:061-540-6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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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산방 앞의 운림지에 자연석을 쌓은 둥근 섬을 직접 만들고 백일홍 한그루를 심었을 만큼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조성한 곳입니다. 

허련선생은 어려서부터 그림실력이 뛰어나 20대 후반에 해남의 초의선사에게 그림지도를 받았으며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보며 그림을 익혔습니다.


진도 운림산방 입장료:어른 2,000원, 청소년군경 1,000원, 어린이 800원 

운림산방 입장시간:하절기 09:00~17:30, 동절기 09:00~16:30 

운림산방 휴관일:매주 월요일, 설날, 추석




33세가 되자 초의선사는 친구 추사 김정희에게 소개해서 서화수업을 받게 했으며 타고난 그림과 서예 실력으로 시·서·화에 능해 삼절로 칭송받았습니다. 

운림산방은 미산 허형이 태어나 그림을 익혔으며 의재 허백련도 미산에게 그림을 배웠던 곳입니다.

 








그러다 미산 허형이 운림산방을 떠나게 되면서 매각하여 허련이 머물던 당시 운림산방의 옛 모습은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이에 1982년에 허련의 손자인 남농 허건선생이 운림산방을 다시 사들였고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지금은 진도군에 기증했습니다.

 






운림산방은 첨찰산, 운림지와 함께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냅니다. 

운림산방은 아침저녁이면 안개가 피어올라 운림산방을 감싸며 구름 숲을 연출하는데 그때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갇힌다고 합니다. 

운림산방에는 초가집과 소치기념관, 진도역사관 등이 있으며 영화 “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의 배경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1년 8월 국가지정명승 제80호


◆운림산방 사진으로 보기◆






운림산방












운림산방 운림사


소치 허련 영정 


운림산방 소치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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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강진여행)월출산 월남사지삼층석탑. 해체해서 발굴조사와 복원을 기다리는 월남사지삼층석탑 여행


진도 출장을 가면서 강진의 병영 읍성이 있는 병영 오일장의 수인관에서 맛있는 연탄돼지불고기를 먹고 월출산 아래에 있는 월남사지를 잠시 들러가기로 했습니다. 

월남사지에는 보물 제298호인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보물 제313호인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강진 월출산 월남사지 삼층석탑 주소: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4

강진 월출산 월남사지 삼층석탑 전화:061-430-3224





2011/05/17 - (전남여행/강진여행)강진 만덕산 산행. 백련사 동백숲과 만덕산 봄 향기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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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도 꼭 가보고 싶었던 월남사지였던지라 쌩하며 차를 달렸습니다. 

멀리 닭볏 같이 울퉁불퉁 치솟은 바위 능선이 차츰 눈앞에 크게 다가왔습니다. 

곧 월남사지 안내판을 보고 들어섰습니다. 

함께한 일행이 이쯤이면 월남사지 삼층석탑의 상층부가 보여야 하는데 왜! 안보이지 했습니다. 

막상 월남사지 앞에 도착했더니 펜스로 가람막을 해 놓았습니다.



월남사지 2013년도 촬영 사진



월남사지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굴착기가 들어와서 진각국사비가 있는 곳을 막 헤집고 난리였습니다. 

아!! 월남사지 삼층석탑을 보려는 열망은 월남사지 삼층석탑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듯 허망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ㅋㅋ 갑자기 열불이 확 뻗쳐올랐습니다. 

머시고 만날천날 복구작업이고 하면서 괜히 엉뚱한데다 화풀이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문화재를 찾아 전국의 여러 곳을 많이 답사했지만, 보수공사를 한다고 가림막을 쳐 놓고 했던 곳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몇 시간을 달려 멀리까지 찾아갔다가 막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허탈감이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옛날 속담처럼 어찌 그런 속담과 맞아떨어지는지 하필 월남사지가 가는 날이 장날과 같이 발굴조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이 있던 자리 지금은 휑한 모습입니다.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는 아예 형체도 볼 수 없이 산산조각으로 해체해서 큰 건물 안에 일렬로 보게끔 진열해 놓았습니다. 

그래도 이곳은 해체한 부재를 한곳에 모아둔 곳이라도 보게끔 해놓아 아쉬운 마음에 해체된 부재를 보고 마음을 달래었습니다. 

월남사지는 월출산의 남쪽에 자리한 폐사지입니다. 

그런데 정확한 창건 연대는 확인되지 않았다합니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의 말사였다고 합니다. 

월남사에 관한 기록을 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월남사는 월출산 남쪽에 있으며 고려시대 진각국사가 창건하였고 이규보가 찬한 비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외의 문헌에도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월남사의 창건을 그 이전으로 보는 게 진도 용장성에서 출토된 청동함에 다음과 같은 명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진양부조월남사월악산양삽구인(晋陽付造月南社月岳山樣九印)”의 명문에서 월남사와 당시 고려의 최충헌이 무신정권으로 집권하며 진강후에 봉작되고 그의 뒤를 이은 최우가 진양부를 세워 최씨 무신정권의 중심 권력기구가 됩니다.









여기에서 진양부를 보면 월남사는 최씨 무신과 특별한 관계 속에 사세가 번창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때 순천 송광사에 2세 사주였던 혜심이 최씨 무인정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월남사를 크게 중창하였고 이를 혜심의 창건으로 잘못 기록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최근 발굴되는 유물에서 백제기와와 통일신라와 조선시대 유구가 함께 출토되며 이를 추정하면 월남사 창건은 백제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문화재 발굴 안내판을 참고하면 월남사의 폐사는 1739년 무위사 사적기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적기에는 정유재란으로 무위사만 남고 주변 모든 사찰이 불탔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그때 월남사도 함께 불탔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현재 월남사지는 형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해체해서 드러누운 월남사지 삼층석탑을 보고 왔습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 또한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으며 문헌과 석탑의 양식에서 고려 초기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벽돌처럼 다듬은 여러 석재를 쌓은 전탑(벽돌탑) 형식을 모방하였으며 지붕돌인 옥개석의 층급받침에서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은 석재를 사용했습니다. 

기단이 단층이고 옥개석의 끝이 미세하고 반전한 것을 보면 이와 비슷한 석탑이 국보 제9호인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입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을 모전 석탑인 백제계 양식의 탑으로 알고 있었으나 높이가 8.4m인 거대한 삼층석탑에다 기본양식과 결구 수법 등이 백제 석탑의 전형을 따르고 있어 2002년부터 월남사지 모전 석탑이 아닌 월남사지 삼층석탑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일부사진: 문화재 발굴조사 안내판 촬영)



일단 월남사지 삼층석탑도 해체되어 실물을 볼 수 없고 부재만 볼 수 있습니다. 

복원되면 그때 다시 월남사지를 방문하여 완벽한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혜심의 진각국사비를 포스팅하겠습니다. 

큰 부재와 수박만 한 크기의 부재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서 하루 일찍 복원되기를 빌었습니다.









월남사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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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남원/남원여행)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지리산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여행·


남원 실상사에서 세 번째 포스팅은 보광전 앞에 똑같은 모양을 한 동·서 삼층석탑입니다. 

실상사는 828년인 신라 42대 흥덕왕 3년에 흥척이 창건했으며 당시 구산선문의 실상산문으로 개창한 최초의 선종가람입니다.





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주소: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남원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전화:063-636-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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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척은 당나라 유학에서 826년 귀국하여 왕실과 중앙귀족의 도움을 받아 실상사를 세웠으며 수철화상 등에 의해서 고려 초까지 사세를 확장하며 전성기를 맞습니다. 

그러다가 1468년에 화재로 폐사되면서 승려는 말사인 백장암과 인근 암자로 뿔뿔이 흩어져 수행했습니다.







그 후 215년 만인 1680년경 숙종 때에 실상사는 중창되어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조선 후기인 1883년 고종 20년에 유생의 어이없는 방화로 대적광전, 노전, 명부전 등이 불타고 말았습니다. 

그 이듬해 대적광전이 있었던 곳에 보광전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을 보겠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은 1875년(고종12년)에 오래되어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전형인 1금당 2탑 양식을 따랐습니다. 

두탑이 같은 형태인 쌍탑을 하고 있습니다.









지대석 위에 이중기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상·하층 기단 면석의 각 모서리에 우주와 중간에 탱주를 1개씩 새겼습니다. 

탑신부인 몸돌은 1층에서 3층까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1개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몸돌 모서리에는 우주를 조각했고 지붕돌인 옥개석 처마 밑은 수평이며 4단의 층급받침에 2단의 몸돌 받침이 있습니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렸으며,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상륜부입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은 상륜부의 구성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석탑 중 하나입니다.

 








실상사 동 삼층석탑은 노반·복발·양화·보륜·수연·용차·보주로 이어지는 상륜부에 부재 사이에 간석이 있다면 서 삼층석탑에서는 수연만 결실되었습니다.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의 높이는 동탑은 약 844cm, 서탑은 약 863cm이며 두 탑의 아름다움에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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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실상사 석등. 보물 제35호 남원 실상사 석등


남원의 대표사찰인 실상사에서 두 번째 포스팅은 석등입니다. 

실상사 석등은 1963년 1월 보물 제35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실상사는 통일신라인 828년 흥덕왕 3년에 흥척이 선종인 구산선문의 하나로 실상산문을 개창하면서 창건했습니다. 

실상사 석등은 보광전과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사이에 있었습니다.





남원 실상사 주소: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남원 실상사 전화:063-636-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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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은 불을 밝히는 곳을 말하지만, 그 의미는 “중생의 마음에 불법을 밝힌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부처님의 자비의 빛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을 말합니다. 

석등은 하대석·중대석·상대석으로 나누어집니다.

 


실상사 석등도 마찬가지이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가운데 다 두고 밑에는 3단의 받침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에다 머리장식을 올렸습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등 형식인 팔각원단형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특히 실상사 석등은 둥근 기둥이 장고 모양을 하여 예술성이 돋보이며 일반 석등의 밋밋한 기둥과는 차이가 난다고 하겠습니다. 

하대석인 받침 부분은 아래 받침과 위 받침돌에다 연화문을 새겼으며 8장의 꽃잎이 앙련과 복련으로 서로 대칭 하도록 했습니다.

 








팔각인 화사석 또한 각 면에 모두 8개의 사각창을 내었으며 창 주위에는 창문을 달기 위한 구멍이 나 있습니다.

 지붕돌 또한, 팔각이며 각 모서리의 귀 끝이 모두 치켜 올려졌으며 끝에는 돌출된 꽃 모양을 얹었습니다.





지붕 위에 또 다른 작은 원형 지붕을 얹은 점이 독특하며 머리 장식에는 화려한 무늬를 새겨넣어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장식성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실상사 석등은 큰 규모 때문에 화사석에 불을 밝힐 때 밟고 오르도록 돌사다리를 만들었으습니다. 

지붕돌의 귀끝 꽃무늬나 받침돌의 연꽃무늬가 형식적인 점을 들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석등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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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남원여행)지리산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우리나라에 가장 큰 남원 실상사 철불을 만나다


철불은 석불과 비교하면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아 별로 기억에 남는 불상이 몇 안 됩니다. 그러나 적은 숫자에 비해 뚜렷한 인상으로 기억하는데 그중에서도 남원 실상사 철불과 장흥 보림사 철불 그리고 영천 선원동 철불입니다. 

제가 부산이 연고지다 보니 주로 남쪽의 철불만 만났습니다.





남원 실상사 주소: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남원 실상사 전화:063-636-3031




2015/01/26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국악성지. 남원에 조성된 국악성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2015/01/20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광한루. 성춘향과 이몽룡의 광한루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2015/01/23 - (전북맛집/남원맛집)주천맛집 지산지소 자연밥상. 우리농산물로 만든 음식이 가득합니다. 로컬푸드 식당 지산지소 자연밥상을 받아보세요

2015/01/22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 광한루 광한루원. 조선시대 지방관아 정원으로서 유일한 광한루 광한루원에 깜짝 놀라다.

2014/01/21 - (전북여행/남원여행)남원국립민속국악원. 우리 가락 판소리와 신기한 국악기를 만날 수 있는 국립민속국악원을 댕겨 왔습니다.




 

철의 특징인 붉은 색상에 꺼무튀튀하고 거친 표면의 불상이 내 머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기술로 화강암을 불상으로 빚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쇠를 녹여 돌로 만든 불상과 같은 형태의 철불을 만들었다는 것에 우리 선조의 손재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지리산의 너른 품에 자리한 실상사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남원의 지리산 여행을 할 때마다 한 번씩 찾아서 그런지 그리 생소하지는 않습니다. 

이번에도 지리산의 수많은 계곡 중 가장 아름답다는 뱀사골의 비경인 신선 둘레길을 걷고는 인근에 있는 실상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실상사 방문 전에 조금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두 곳 모두 보면 좋지만 늦은 오후라 딱한 곳만 볼 수 있는 시간만 남아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실상사의 부속 사찰인 백장사에서 국보인 삼층석탑을 보는 게 좋을까 아니면 실상사 철불을 만날까 하며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도 항상 실상사를 찾을 때마다 강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는 실상사 철불을 만나야겠다며 실상사로 향했습니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실상사 입구 매표소 관리인은 철수하고 없어 본의 아니게 무료입장을 했습니다.



실상사는 만수천에 걸린 해탈교를 건너야 비로서 실상산문에 들어섭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돌장승이 실상사 수문장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실상사는 통일신라인 828년 헌덕왕 3년에 증각대사 홍척이 지실사란 이름으로 창건했습니다. 

실상선문은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개창한 선문입니다.



이는 신라 왕실의 지원 아래 이루어졌으며 선종을 배우려는 많은 승려가 실상사에 몰렸던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때가 실상사의 최전성기였으며 홍척의 뒤를 이어 실상선문의 2대 조사 수철화상이 4천근의 쇠를 녹여 실상사 철불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2.69m 크기로 우리나라 철불로는 가장 큰 규모라 합니다.



실상사 철불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불상을 받치는 좌대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맨땅을 좌대로 삼아 바로 불상을 안치했는데, 일반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철불이라면 아마 어마어마한 규모의 좌대가 있을 법한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한반도의 기운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한 비보의 성격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실상사 철불은 지리산 천왕봉을 향하고 있으며 천왕봉에서 직선에 일본의 성스러운 산인 후지산이 있어 일본으로 넘어가는 한반도의 맥을 끊기 위해서라는 설명입니다. 

이를 보면 실상사는 호국불교의 성격이 짙으며 이런 비보의 성격 때문인지 정유재란에도 왜군이 불을 질러 전소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실상사 철불을 모신 전각인 약사전은 1468년 세조 14년에 소실되었다가 1659년인 효종 10년에 중창되었으며 1701년인 숙종 27년에 삼창 되었다 합니다. 

이번에 찾았던 약사전도 수리가 있었는지 새 부재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선종 사원에서 철로 불상을 만들었습니다. 

그중에서 실상사 철불이 가장 오래되었다 합니다.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상의 부처님 머리는 뽀글뽀글한 소라 모양이며 머리 꼭대기인 정수리에는 두툼한 상투 형태를 했습니다. 이를 육계라 하며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합니다. 

긴 귀에다 목에는 3개의 주름인 삼도를 표현했습니다. 이마는 좁고 길게 찢어진 눈, 다문 입에서 부처님의 근엄함을 표현했습니다. 

U자형의 옷 주름은 양어깨에 모두 걸친 형태로 통견이라 하며 넓은 가슴에 갸름한 허리는 온유함과 생동감이 잘 나타난 삼국시대 불상과는 달라진 모습입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통일신라 말에 제작된 불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상사 철불의 손은 분실되어 나무로 깎아 맞춘 두 손이 그 자리를 차지했는데 우연하게 복장 속에서 찾아내어 지금은 원래 모습으로 양손을 붙여 복원했으며 불상의 무릎 아래도 복원된 것이라 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상은 장애우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상은 보물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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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목포여행)목포 이훈동 정원. 개인 소유 정원이  문화재, 목포 유달산 이훈동 정원


목포여행을 하면서 유달산 아래 이훈동 정원을 둘렀습니다. 이훈동 정원은 주변에 많은 근대문화유산과 함께 꼭 찾게 됩니다. 이훈동 정원은 1930년인 일본 강점기에 지어진 정원입니다. 그런데 1988년 3월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5호로 지정될 정도로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정원이라 합니다.





목포 이훈동정원 주소: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동 4-1

목포 이훈동정원 전화:061-244-2529


2015/04/16 - (전남여행/목포여행)갓바위. 타포닌 지질의 목포 갓바위 그 모습이 신기.

2015/04/20 - (전남맛집/목포맛집)쑥꿀레. 유달산 맛집, 목포역 맛집, 쑥으로 만든 추억의 간식 쑥꿀레 목포 여행에서 꼭 맛보세요.

2015/04/21 - (전남여행/목포여행)유달산 어민동산. 쌈지공원인 독특한 유달산의 어민동산 여행.

2015/04/22 - (전남여행/목포여행)목포 평화광장 카페거리에서 진한 커피와 춤추는 음악 분수쇼를 즐기세요.

2015/05/13 - (전남맛집/목포맛집)유달산 맛집, 목포여객터미널 맛집, 목포유원지 맛집 선경준치회집. 참고기인 진짜 생선 준치회무침이 맛있는 목포 선경준치회집.

2015/05/25 - (전남여행/목포여행)목포 숙박 호텔 위드. 목포 여행에서 편안한 숙박지 "호텔 위드" 였습니다.






그래서 그 궁금 정을 풀 욕심에 주위 근대 문화유산과 함께 보고 왔습니다. 이훈동 정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이 소유한 정원입니다. 그런데 조금은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정원이라 하겠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우찌다니 만빼이가 지은 집을 이곳과 이웃한 해남 출신인 전 국회의원 박기배씨가 사들였던 것을 조선내화 창업주 이훈동이 사들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원과 어울리는 건물도 눈에 들어오지만 이훈동 정원은 유달산의 남서쪽 기슭에 자리했으며 목포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등 전망이 정말 좋았습니다.




일본인이 처음 정원을 만들어서 그런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일본풍이 많이 느껴지는 정원입니다. 이훈동 정원이 호남 일원에서 개인 정원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입구에서부터 대단한 규모를 갖추었으며 안뜰과 숲과 개울을 갗 춘 정원은 물론이고 계단을 이루는 후원까지 각종 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나무의 종류만도 113종류인데 우리나라 토종이 37종, 일본원산종 39종, 중국원산종 25종이며 그와 12종이라 합니다. 특이하게도 건물을 들어서는 현관앞에는 암수 한 쌍의 향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이는 사람이 심은 게 아니고 스스로 발아해서 이만큼 자랐다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일본에서 화산이 터지면서 그 영향으로 향나무 씨앗이 바람에 날려 목포까지 날아와 싹이 텄다는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가 있는 나무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훈동 정원에서 가장 멋졌던 정원수는 땅에 붙을 듯 드러누웠던 소나무였습니다. 얼마나 감탄을 했던지 정원수로서 가격을 매겨보기도 했습니다. 가격이 억하면서 억수로 비싸겠다며 생각을 하고 후원 계단을 올랐습니다.




유달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고 목포 시내와 바다가 가슴이 탁 터게 시원하게 펼쳐졌습니다. 정원은 대체로 남부지방이 원산지인 난대성 상록수가 많았습니다. 이훈동 정원이 있었던 곳은 목포항과 가까워 당시 많은 일본인이 거주했던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식 석물과 석등, 5층과 7층 석탑이 정원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원의 기본설계는 작은 계곡을 끌어들이는 등 우리나라 조선 시대의 정자 정원 양식을 따랐다 합니다. 현재 이훈동 정원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당시의 모습은 많이 잃었지만 그래도 일본식 정원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제강점기 종로통을 주름잡았던 김두한의 일대기였던 드라마 야인시대가 촬영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모든 남성을 티브이 앞에 잡아 놓았던 야인시대의 촬영지 이훈동정원 목포여행에서 둘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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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광양여행)도선국사의 중흥사 삼층석탑, 광양 중흥사 쌍사자석등 모작을 만나다.


광양 백운산 둘레길 7코스를 걸으면서 중간에 만났던 중흥사. 중흥사을 휘감은 편백숲이 사찰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었으며 청량감까지 들었습니다. 중흥사는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께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입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중흥사 당우는 폐사된 절터를 1963년에 중건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중흥사의 사격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석조물인 중흥사삼층석탑과 쌍사자 석등, 석조지장보살반가상 뿐입니다.




광양 여행 중흥사 주소: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90-1

광양 여행 중흥사 전화:061-763-6655


2017/11/28 - (전남맛집/광양맛집)광양백운산맛집 광양백운산자연휴양림 맛집 광양향수청국장, 광양향수청국장

2016/05/03 - (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백계산~제비추리봉산행. 한 많은 여자의 넋이 환생했다는 동백꽃이 아름다웠던 옥룡사지 동백숲과 백계산~제비추리봉 산행.

2016/04/21 - (전남여행/광양여행)백운산자연휴양림. 걷기 좋은 솔숲길과 산막에서 즐기는 휴식이 꿀맛일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여행. 광양백운산 자연휴양림

2014/10/22 -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 망덕포구 시인 윤동주 유고 보존집 정병욱 가옥 여행하기...

2016/04/30 - (전남여행/광양여행)폐사지를 찾아서 옥룡사지 동백림. 도선국사의 마지막 수도처 광양 옥룡사지와 절터의 기운을 도우기 위해 심었다는 동백림을 만나다. 옥룡사지동백림





중흥사의 흥망성쇠는 중흥산성과 아주 밀접합니다. 중흥산성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시대 초기로 보고 있는데 이는 출토된 와편 등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중흥산성의 규모는 중흥사 뒤의 200~400m 대의 6개 산봉우리와 계곡을 끼고 조성된 포곡형 토성입니다.





임진왜란 때는 중흥산성이 승병과 의병의 훈련 장소가 되었으며. 승병과 의병의 훈련장이란 정보를 입수한 왜군의 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그때 의병과 승병은 모두 전사하고 중흥사도 함께 불타면서 폐사되었습니다. 필자는 중흥사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게 예술성이 뛰어나면서 화려한 중흥사 삼층석탑과 중흥사쌍사자석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중흥사쌍사자석등은 국보 제103호로 지정되었지만 중흥사에 있지 않고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의 운명도 참 기구합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조선 말기까지 중흥사터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삼층석탑과 함께 궂궂하게 하늘을 받치며 그 자태를 뽐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시샘하는 놈들이 있었으니 그게 일제강점기 때인 1913년에 일본인이 밀반출을 시도하려다가 주민의 강력한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에는 경복궁에다 보관했습니다. 그러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이관하여 보관 중인데 하루빨리 원래 자리인 광양의 중흥사로 옮겨 왔으면 합니다.

 






현재 중흥사에는 중흥사쌍사자석등의 모조품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이 창건 당시 위치가 맞는다면 현재의 가람배치인 대웅전의 위치는 많이 달라져보입니다. 보통 금당을 중심으로 가운데 삼층석탑을 세우고 그 좌우에 석등을 배치하는 순서로 짐작하건대 말입니다.











그럼 필자가 보고 감탄과 함께 탄성을 질렀던 중흥사 삼층석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중흥사 삼층석탑은 지난해 보았던 군위군의 지보사삼층석탑과 느낌에서 비슷하다 생각했으나 중흥사삼층석탑을 보면서 정교한 조감솜씨와 사방불인 여래상과 인왕상, 보살상, 사천왕상을 도드라지게 세긴 것을 보고 더욱 뛰어난 예술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곳에 필이 꽂히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열심히 관찰합니다. 그 케이스가 이번 중흥사삼층석탑인데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즐겼다가 함께한 일행은 중흥사를 빠져나가 둘레길을 따라 흔적도 없어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접고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흥사삼층석탑은 신라 말기에 조성된 석탑이며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지금은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각과 장식이 매우 화려해서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탑의 몸돌과 지붕돌인 옥개석은 하나의 돌로 되었으며 각 층의 몸돌 네 귀퉁이에는 운주인 기둥을 굵직하게 나타내었습니다.

















옥개석의 아래 층급받침은 3단이며 처마 밑은 수평으로 처리했습니다. 1층의 몸돌에는 동서남북 각 면에다 연꽃 대좌 위에 앉은 여래불을 새겼으며 이는 사방불로서 어디에나 부처님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1층 몸돌을 받치는 기단은 각 면을 모두 둘씩 나누었고 앞면에는 인왕상을, 그 반대편인 뒷면은 보살상을 , 좌우 양쪽 면은 사천왕상을 새겼습니다.

 






그리고 2.3층의 몸돌은 급격하게 작아지면서 기단과 비교하면 기단부가 너무 크게 보이는데 이는 전체적인 석탑의 안정감은 뛰어나다 하겠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모작이지만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중흥사쌍사자 석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쌍사자 석등은 연꽃무늬 받침돌 위에 두 마리의 사자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서서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상입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하나의 돌을 조각해서 석등을 만들었을 정도로 그 조각 예술이 정말 빼어나다하는데 오리지널 중흥사쌍사자석등을 보지 못해 정말 많이 아쉬웠습니다. 어서 빨리 돌아오라 오버 중흥사 쌍사자 석등. 그리고 전남유형문화재 제142호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시간 관계로 보지 못해서 그냥 패스합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 갈 기회가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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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여행/청산도여행)청산도 서편제 촬영지 당리 언덕. 여인의 향기, 봄의 왈츠, 피노키오 촬영지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 하면 가장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1993년 임권택감독의 서편제 촬영지입니다. 서편제는 한국영화사상 최초 100만 관중을 돌파했던 영화였습니다. 그만큼 대중의 아슴푸레한 마음을 서정적으로 파고들었던 영화였습니다. 고갯마루에 있는 당리 표지석을 지나치면 소나무 숲이 나옵니다.




청산도 영화 서편제 촬영지 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당락리




2017/10/01 - (청산도여행)완도연안여객터미널~청산도 배 시간표 알아보기, 청산도~완도 배 시간표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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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2 - (전남여행/완도 청산도여행)청산도 구들장논. 온돌방과 비슷하다는 청산도 구들장논을 만나다.

 


당 집이 있는 곳으로 마을의 유래도 여기에서 나왔으며 지석묘가 함께 있습니다. 전하는 말을 보면 828년 통일신라시대 흥덕왕 3년에 청해진을 지켰던 해상왕 장보고 장군 휘하 장수인 한내구의 묘라고 합니다. 장군은 청산도를 지키면서 활·칼·창 등 모든 무술이 능했으며 청산도 주민을 깨우치는 교육에 힘썼고 농어업을 장려해 주민의 신망이 두터웠다 합니다.





그리고 천수를 누려 죽자 지석묘에 안장하고 사당을 지어 청산도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받들어 섬기고 있습니다.

 











임권택감독 영화 서편제 촬영지














이곳을 지나면 서편제 촬영지인 주막거리가 나옵니다. 약장사를 따라다니며 소리를 팔던 것을 그만두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 소리꾼인 유봉과 의붓딸인 송화는 당 집 앞의 청보리밭 사이로 난 긴 돌담길에서 

“사람이 살면은 몇백 년을 사나 개똥 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문경새재는 왠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 눈물이 난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의 진도아리랑을 서로 주고받으며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이에 동호도 흥이 나서 메고 있던 북으로 장단을 맞추는 모습을 보면서 임권택감독의 서편제는 영상의 아름다움에 심장이 멎는 듯했습니다.

 



그 봄날 아지랑이 같은 아름다운 장면이 청산도에서 촬영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꼭 한번은 와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청산도 여행 1번지가 영화 서편제 촬영지인 당리마을 청보리 돌담길이었습니다. 당리마을 돌담길을 보면서 영화 속의 그 분위기를 느껴보려 애썼지만 지금은 황량하여 그런 감정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막상 돌담길을 보고는 마음속의 큰 울림으로 남았던 영화 속의 한 장면이 그저 어느 영화 촬영지 같은 모습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고 실망감만 들었습니다. 그저 마음속에 꼭꼭 숨겼던 비밀의 장소 같았던 서편제 청산도 촬영지는 그동안 고이 간직하며 꼭 가보고 싶어했던 나의 청산도 꿈을 처참히 깨어버리게 했습니다.




SBS ‘여인의 향기’


꿈과 현실의 괴리라서 아니면 영화 촬영 당시와 비교하면 너무 세상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마음을 위로하며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청산도 서편제 촬영지에서’ 안내판을 보면“우리나라 영화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으로 꼽히는 부분을 아주 긴 시간을 할애하여 촬영했는데 원래 그렇게 길게 찍을 계획은 아니었으나 감독이 장소가 너무 좋아 바꿨다는 곳”이라 나와 있습니다.



그만큼 임권택 감독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곳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던 우리 민족만의 애잔한 정서인 그런 예스러움의 경치는 기대하기 힘들며 영화는 영화로만 생각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라고 빼어난 경치 때문인지 서편제 이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이 이루어졌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가 행복한 죽음과 행복한 삶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드라마로 SBS ‘여인의 향기’입니다. 주인공 김선아와 이동욱이 자전거 데이트와 캠핑 등의 여러 신을 이곳에서 담았다 합니다.

 


KBS 2TV에서 방영한 ‘봄의 왈츠’ 드라마 세트장






그리고 KBS 2TV에서 방영한 ‘봄의 왈츠’ 드라마 세트장도 있습니다. 동유럽풍의 현대식 전원주택 건물로 청산도의 도락항과 도락마을, 청산도의 관문인 청산항 등 한 폭의 그림 같은 바다풍경이 내려다보이는 당리마을 언덕에 자리했습니다. 봄에는 유채꽃과 청보리가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어우러져 동화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곳은 SBS '피노키오' 촬영 세트장입니다. 드라마에서 청산도를 향리도로 해서 등장합니다. 이종석과 박신혜가 남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동화 같은 청산도의 풍경에 풋풋한 설렘과 순수함을 아름답게 승화시켜 많은 사람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촬영지입니다. 실제 피노키오 촬영지에서 내려다보는 쪽빛 바다의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SBS '피노키오' 촬영 세트장












가끔 이곳에 들러 머리도 식히기에 딱 좋을 그런 장소인데 나도 얼른 많은 돈을 벌어 이런 곳에서 멋진 집을 짓고 그림 같은 바다풍경을 앞마당으로 삼고 자갈을 애무하는 파도소리를 매일 들을수 있는 전원생활을 해보고 싶습니다. ㅎㅎ 꿈인가요? 꿈은 이루어진다는 생각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이 이루어진 청산도의 당리마을 언덕인 서편제 촬영세트장은 그래도 청산도을 찾는 관광객에게는 여행 1번지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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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완도 청산도여행)청산도 구들장논. 온돌방과 비슷하다는 청산도 구들장논을 만나다. 


며칠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내가 살았던 고향에 관한 지명 유래가 올라있는 블로그를 봤습니다. 풋풋한 어릴 적 추억이 있는 고향이라 그런지 많은 관심이 갔습니다. 어릴 적에 온 가족이 부산으로 옮겨와서 살았지만 50대 중반이 되어도 잊지 못하는 내 고향 경주, 그 경주에도 구들장 논이 있다는 유래를 보면서 아! 얼마 전에 청산도 여행에서 보고 왔던 구들장 논이 생각나서 포스팅하지 않았던 청산도 구들장논 포스팅을 늦게나마 하게 되었습니다.





청산도 양지리 구들장논 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양중리

청산도 부흥리 구들장논 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부흥리 82-2

청산도 상서리 구들장논 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상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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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는 물을 가두어 벼와 보리농사를 짓습니다. 벼와 보리는 다른 작물과 달리 논에 물을 가두어서 농사를 짓다 보니 관개수로를 이용하기 좋은 평평한 땅에 논을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평지보다는 험준한 산이 더 많은 우리 국토의 70%가 산악지형입니다. 산비탈이나 자투리땅이라도 놀리지 않고 농사를 지으려고 돌을 치우고 논으로 개간했습니다.





그런 논을 다랑논과 구들장 논이라 합니다.. 다랑논과 구들장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농부의 억척스러움과 고단한 삶으로 만들어집니다. 다랑논이 대표적인 곳은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과 지리산이 있는 함양군 마천면 도마마을입니다. 그리고 산간지형이면 대규모는 아니지만 조금씩 예쁜 모습으로 모두 있습니다.

 









구들장 논은 완도 청산면에만 있는 특이란 형태의 논이라 알려졌습니다. 그런 구들장 논이 내 고향인 경주 내남면 망성리 인근에도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보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답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청산도 구들장 논이나 가천 다랑논이나 산비탈이 워낙 급해서 논농사를 짓기가 힘들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벼농사를 짓는 곳입니다. 실제 두 곳을 모두 답사를 했습니다.






남해의 설흘산과 청산도 대봉산의 험준한 산세가 서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청산도 구들장 논은 온돌방처럼 논에다 널찍한 구들장 같은 돌을 깔았다는 뜻입니다. 이는 논에다 우리의 전통 난방방식인 온돌의 구조인데 아궁이에서 들어온 열을 골고루 전달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합니다.






구들장논의 구조는 4단계이며 가장 아래쪽에는 샛똘이라는 보조 수로를 만들고 그 위에다 크고 작은 돌을 쌓은 하부석축을 만들었습니다. 논의 가운데에 다는 정방형의 통수로를 만들고 물의 용·배수를 조절하게끔 했습니다. 이를 보면 온돌에서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아궁이와 구들장 논에서 물의 양과 물길의 방향 조절과 용수의 관리 운용 등을 하는 통수로는 같은 역할이라 하겠습니다.










청산도의 상서리 구들장 논은 크기와 형태가 다른 4개의 통수로를 볼 수 있는데 그중에 오른쪽에 통수로는 사람도 들어갈 정도로 크게 만들었으며 이는 홍수 등 장마철에 많은 물이 유입하여 논바닥 흙의 유실을 막도록 적절한 배수를 하려는 조처입니다. 다시 그 위에다 작은 돌과 흙을 혼합한 토층을 깔고 맨 위쪽에다 순수한 흙을 덮습니다. 이는 작물의 생육이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들장 논은 1940년 후반까지도 양지리에서는 만들어졌다 합니다. 그리고 작은 구들장 논을 하나 만드는데도 1~2년의 긴 시간이 걸리는 고된 작업으로 쉽사리 엄두를 못 냈습니다. 구들장 논을 만드는 작업은 혼자서 할 수 없어 마을의 공동행사로 온 마을 청년이 동원되었다 합니다.




이런 고된 작업을 해서 만든 우리 문화유산인 구들장 논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고 노령인구가 늘면서 마을은 공동화 현상으로 휴경지가 늘고 태풍으로 무너져 차츰 황폐해져 갔습니다. 지금은 청산도에 구들장논 보존협의회가 결성되어 구들장논 보전 두레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허물어진 논을 정비하여 오늘날 청산도 구들장 논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재 부흥리에는 구들장논 체험장이 있습니다. 2013년 1월에 구들장 논은 국가 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 4월에는 세계중요농업유산에 실으면서 기존에 운영하던 체험장을 새롭게 정비했습니다. 구들장논 경작지와 농업문화 체험공원, 구들장논의 구조는 알기 쉽게 단면으로 만들었고 그 특징과 관찰·역사·이야기 등을 듣고 배우며 체험하는 공간으로 구들장논 열린박물관이 있습니다. 청산도의 구들장논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곳입니다.




현재 청산도에는 여러 곳의 구들장 논이 있습니다. 돌담마을로 유명한 상동리 상서마을 구들장 논과 양중리 양지마을 구들장논, 부흥리 구들장논 등이 있습니다. 본 포스팅은 양중리 양지마을 구들장 논입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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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여행/청산도여행)담쟁이가 아름다운 청산도 명품마을 상서마을 돌담, 청산도 상서 돌담마을


청산도 들꽃민박에다 베이스캠프를 정하면서 다녔던 청산도 2박 3일 여행. 이번에는 들꽃민박에서 가까운 상동리에 있는 상서 돌담 마을입니다. 상서마을은 울타리가 돌로 둘려 있으며 이게 상서돌담마을길로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어촌마을이야 대부분 돌담이지만 상서마을의 돌담은 오밀조밀 한 게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등록문화재 제279호.





청산면 상서마을을 감싸는 산은 청산도에서 아름답다는 매봉산입니다. 매봉산 아래에 터 잡은 상서마을은 앉은 지대가 높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멀리까지 보여 조망이 다른 마을보다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다랭이로 불리는 계단식 논이 이곳 청산면에서는 독특하게 바뀌었는데 그게 온돌방의 구들장 같이 널따란 돌을 깔은 구들장 논이 층계를 이루는 농촌과 어촌이 복합된 마을입니다.






먼저 상서마을의 유래를 보겠습니다. 상서마을은 성산포에서 들어서는 길목에 자리했는데 이는 성산포에서 마주 보이는 매봉산이 태풍과 해풍을 막아주고 산세가 빼어나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됐는지 ‘한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먼저 정착하여 살았다 하며,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곳을 덜리라고 부르며 1960년대까지 1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었다지만, 지금은 그저 빈터만 남아 있습니다.  그 후로 상서마을은 숙종 때에 언양김씨와 밀양박씨 나주임씨등이 들어와 살다가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이 청산면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을 보면 청산도에서 가장 사람이 살기 좋았던 모양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759년~1789년에 여지도서 지명표를 보면 상서마을을 뜻하는 사정리(射亭里)와 걸리(桀里)가 나오며 걸리가 지금의 덜리로 바뀐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1800년인 정조 13년에도 사정리와 덜리의 지명이 확인되며 사정리는 마을회관 앞 정자나무에서 마을 사람들이 심신을 단련하는 활을 쏜 데서 유래 되었다하며 그 표적지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희미하지만 남아있다 합니다.











1895 고종 3년 당리진때 상서리로 기록이 나타나고 1914년 상서리와 원동리가 합해져 상동리가 되었다가 완도가 군으로 승격하면서 상서리로 바뀌었습니다. 상서마을의 돌담을 둘러보면 투박한 돌을 격식 없이 차곡차곡 막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섬지방의 바람을 막으려는 듯 어떤 곳은 높은 담장이지만 어떤 곳은 허리춤까지 오는 낮은 담장도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칭칭 돌담을 감으며 올라간 담쟁이는 상서돌담마을의 또 하나 볼거리였습니다. 제가 찾았을 때는 마침 능소화가 끝물이었지만 화려한 선홍색 꽃이 녹색의 담쟁이 속에서 그 자태를 잃지 않았습니다. 능소화와 담쟁이가 돌담을 감싸는 상서돌담마을길은 정말 평온한 어촌의 전원마을 풍경이었습니다.







상서마을은 사실 어촌과 농촌을 함께하는 곳입니다. 섬에서 보기 힘든 벼농사를 짓는 것을 보면 그만큼 수량도 풍부하고 청산도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빈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청산도중에서도 상서마을은 긴꼬리투구새우 서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우는 알겠지만, 긴꼬리투구새우는 정말 생소한 이름입니다.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도해서 상서마을의 논두렁에서 물속을 유심히 주시하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긴꼬리투구새우는 고사하고 어떤 생물도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 철이 아니거나 부끄러워서 그런가 생각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상서돌담마을길은 돌담이 볼거리중 최고라면 다랑논인 구들장 논과 긴꼬리투구새우 서식지는 덤입니다. 그리고 상서마을과 구들장논을 연결하는 상서마을 둘레길을 걸으면서 반나절을 사색의 시간으로 힐링하기에 그저그만이었습니다. 이래서 청산도는 태어나서 한번은 꼭 가야된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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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여행/청산도숙박)청산도 들꽃팬션, 청산도 최고의 위치이며 일출일몰이 황홀했던  들꽃민박

 

느리게 걷는게 아름답다는 청산도 여행, 이번 청산도를 세상에서 가장 느리다는 ‘늘보’의 마음으로 2박3일 동안 찾았습니다. 우리들이 묵었던 팬션은 청산면 상동리에 들꽃민박입니다. 청산도의 가운데에 위치해서 청산도를 여행하기에 편리한 지리적 잇점이 참 좋았습니다.

 
 
 

 

청산도 들꽃민박 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상동길 27청산도 들꽃민박 지번 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상동리 810청산도 들꽃민박 전화:061-555-4448, 010-3804-6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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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은 야생화를 뜻하는 들꽃의 이름을 달아선지 작고 아담했으며 들꽃민박이란 상호를 달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건물은 4동이며 주인이 묵는 관리사를 빼고는 3동의 건물에다 모두 각각의 독립형태였습니다. 들꽃민박은 이름답게 모두 아름다운 야생화로 방이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총 8명이었습니다. 청산도에서 여름철 시즌이면 많은 관광객으로 방이 부족할꺼라 예상하여 미리 예약하였으며 그 덕분에 편안하게 2박3일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방은 수수꽃다리방, 제비꽃방이며 모두 독립 구조였습니다.

 

 

 

 

 

수수꽃다리방은 복층 형태로 건물 내부에 중간을 반쯤 가로질러 다락이 설치되었으며 제비꽃방과 구절초방은 각각 단층 건물로 목욕탕이 있는 화장실과 주방이 독립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 넓은 공간에 각각 4명씩이다 보니까 널널하게 생활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펜션의 꽃이라는 밤에는 숯불(착화탄)을 피워 고기를 구워 오붓한 저녁을 즐길 수 있었던게 정말 좋았습니다. 풀벌레가 지천으로 울고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했던 청산도 들꽃 민박의 여름휴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근에 둘러 볼것도 참 많았습니다.

 

 

 

 

 

 

구들장논과 돌담장, 슬로우길과 항도, 그리고 청산도의 명산인 대봉산 등산 등 청산도에서만 즐기고 볼수 있는게 정말 많았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2박 3일 알차게 보냈습니다. 산행을 하고 펜션이 가까이 있어 일행에게 차를 부탁해서 차도 부르고 슬로우길은 원점회귀가 아니라 시작점과 끝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일행에게 어디로 차를 가지고 오라하며 부탁하기도 좋았습니다. 이 모든게 청산도 들꽃펜션의 위치가 한몫을 했습니다.

 

 

청산도는 다 아시는 것처럼 ‘청산’은 산에 나무가 울창하여 푸르렀다는 뜻입니다. 청산처럼 산은 물론이고 바다도 에메랄드 빛이라 청산도를 찾는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청산도에서의 잠자리는 들꽃민박이 집처럼 즐길 수 있었서 정말 좋았던곳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청산도 들꽃민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게 해돋이와 해넘이의 장관입니다. 바닷가로 나가지 않고 들꽃민박에서 일출과 일몰의 황홀함에 홀딱빠져 스마트폰 카메라를 연신 눌러 사진도 담고 또한 눈으로 즐겼서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이 청산도라합니다. 그러나 청산도를 한번 갔다온 사람은 다시 꼭 찾는게 불문율이라 합니다. 벌써 저도 내년 여름의 청산도가 기다려집니다. 그때도 다시 들꽃민박에 짐을 풀고 청산도의 일출과 일물은 물론이고 가보지 못했던 청산도 슬로루길도 걷고 끝내지 못한 산행도 마저 하며 청산도에 흥에 취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역시 잠자리리가 편해야겠죠.

 

 

 

 

 

 

 

상세한 정보는 여기서 확인하세요

들꽃펜션의 카페 주소입니다. 참고하세요? http://cafe.naver.com/annegilb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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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여행)완도연안여객터미널~청산도 배 시간표 알아보기, 청산도여객버스터미널~완도 배 시간표 알아보기 


청산도는 전남완도에서 대략 19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최남단의 섬으로 완도항에서 뱃길로 50분 거리입니다. 자연경관이 너무나 빼어나 ‘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봐야 할 섬’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완도연안여객터미널 주소: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보고대로 335.

(지번)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1255

완도연안여객터미널 전화:1666-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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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4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조선시대 대표 정원 정자 세연정에서 어부사시사를 짓다.

2013/08/21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 윤선도 원림)조선시대 최고의 정원 대한민국 명승 34호 어부사시사를 창작한 세연정이 있는 관광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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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30 - (완도여행)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본다는 섬 청산도. 청산도 항도 여행. 청산도항도





예로부터 신선이 내려와 노닐 정도로 아름답다하여 청산여수, 선산, 선원이라 불렀다합니다. 청산도를 대표하는 상징은 푸른 바다와 푸른 산, 독특한 구들장논, 문화재로 지정된 돌담, 해녀 등이 있지만 지금은 느림의 풍경이라는 아시아 최초 슬로길이 있습니다.

 


2007년 12월 1일 슬로시티로 선정되어 ‘늘보’처럼 느리게 걸을수록 더욱 아름답다는 슬로길로 명실상부한 남해안의 힐링 1번지가 되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청산도의 향수를 자극한 한국 최초 백만 관중을 동원했던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촬영되었으며 KBS 드라마 ‘봄의 왈츠’와 ‘1박2일’ SBS '여인의 향기‘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청산도를 배경으로 촬영하여 소개했습니다.



공중파와 종편에서도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하면 빠지지 않고 청산도가 소개되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와 CNN이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고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청산도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게 났다‘는 고사성어 처럼 한번은 꼭 봐야 할 환상의 섬인 남해 완도군의 청산도 여행의 시작은 완도군 완도읍 장보고대로 335호 완도연안여객터미널에서 부터입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청산도 여객선 시간표를 참고하세요.








2017년 긴 추석 연휴에 환상의 섬 완도군의 청산도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청산도 배편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완도연안여객터미널에서 청산도행 배편은 추석특송기간인 2017년 9월30일~2017년 10월 9일까지 증편 운행중입니다.





완도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오전 6시30분, 8시30분, 10시, 11시30분, 오후 1시. 2시30분, 4시30분, 6시(막배) 청산에서 나오는 배는 오전 6시30분, 8시30분, 10시, 11시30분, 오후 1시. 2시30분, 4시30분, 6시(막배)로 8회로 증편하여 완도와 똑 같은 시간에 서로 운항합니다.

 


그리고 추선 연휴가 끝나는 2017년 10월10일~10월 15일가지 완도~청산도 방면 여객선 시간표를 보면 완도에 출발이 오전 7시, 8시30분, 11시, 오후 2시30분, 6시(막배)이며 청산도에서 출발은 오전 6시50분, 9시, 오후 1시, 3시, 6시(막배)로 일 5회 운항합니다.

 



청산도 선편은 여객 및 차량의 증감에 변경될 수 있다하니 청산 매표소 061-552-9381, 완도연안여객터미널 061-552-0116·9385. 청산농협 061-552-9388로 문의를 해서 이용하세요. 그리고 사진이 붙은 신분증 지참은 필수이며 미리미리 도착해서 수속을 밟아 안전한 청산도 여행 하세요

 













청산여객터미널 주소: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

청산여객버스터미널 전화:061-552-9381


완도 청선도 운행 여객선은 퀸청산, 청산아일랜드, 슬로우시티청산호가 있으며 차량 선적은 미리 전화해서 알아보세요. 차량 도착순으로 배에 선적하니 미리 도착해서 주차선에 대기하여 기다려야 안전합니다. 꼭 참고하세요








완도~청산도 배 시간표, 청산도~완도 배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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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여행/완도가볼만한곳)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본다는 섬 청산도. 청산도 항도 여행


청산도를 두고 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봐야할 곳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아직 청산도를 가보지 않았다하면 사람이 아니라 할까싶어 늦었지만 청산도 여행을 한번 하고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청산도안에서도 꼭 가보고 와야할 곳 중 한곳이 있어 소개합니다.





완도군 청산도 항도 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동촌리




2013/08/12 -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청해포구 촬영장, 영화 드라마 cf 촬영으로 유명한 청해포구 촬영장 눈으로 즐기기.

2013/08/14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조선시대 대표 정원 정자 세연정에서 어부사시사를 짓다.

2013/08/21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 윤선도 원림)조선시대 최고의 정원 대한민국 명승 34호 어부사시사를 창작한 세연정이 있는 관광정보센터

2013/08/24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윤선도가 마지막 숨을 거둔 낙서재와 곡수당, 동천석실 둘러보기.

2013/09/09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2014/11/04 -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명산 상황봉~백운봉 산행. 완도 오봉산 상황봉~백운봉 원점회귀 산행

 


청산도도 섬이지만 그 섬중에서도  또 섬속의 섬인 항도(肮道)입니다. 항도는 목을 뜻하는 섬이며 그 동쪽 끝에 새의 목이라는 새목아지섬이 있습니다. 이곳이 청산도에서 가장 유명한 일출 포인트라 합니다. 또한, 이곳은 들꽃민박집 여주인장의 말을 빌리면 감성돔이 많이 올라오는 낚시 포인트로 조사님의 파라다이스라는 섬입니다.



우리 일행 중에서도 민박집 주인장의 적극 추천 포인트에 낚시를 갔던 터라 밥 배달 겸 어떤곳인가 싶어 항도를 후다닥 갔다왔습니다. 밥은 내팽겨치고 혼자 항도 깊숙이 들어갔더니 새의 목처럼 잘룩한게 바닷물이 들어오는 밀물 때에는 섬으로 변해버리는 잘빠진 목이 나왔습니다. 이곳이 새목아지를 뜻하며 항도란 이름이  붙게된것 같습니다.












그리고 잘록한 새목아지를 지나면 목섬인데 꼭  새대가리를 닮았습니다. 다르게 보면 공룡 대가리 같기도 한 이곳을 보면서 주위 풍경이 완전히 거제도 해금강 뺨치는 모습에 넋을 잃고 쳐다봤습니다. 망망대해에 점점 떠 있는 다도해는 지상의 파라다이스가 별게 있을까 이곳이 지상의 낙원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풍광이 빼어났던 곳입니다.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방의 작은 나라인 한반도의 남해를 이곳저곳둘러보고 불로초를 찾으며 남긴 흔적과 전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곳인 청산도의 항도를 빠트리고 갔다면 아마 그는 큰 실수를 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청산도는 다른 섬과는 다르게 산에 나무가 많아 청산도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숲이 울창하여 더욱 푸르고 바다까지 에메랄드 빛인 아름다운 섬 청산도에서 더욱 아름다운 섬 항도. 항도안의 진주 새목아지인 목섬은 청산도 여행에서 꼭 한번 둘러보세요.






저도 어떤 섬인지 관광지도를 보고 궁금했는데 실제 답사를 해보고 정말로 아름다워 카메라의 화이트발란스를 막 바꾸어 가며 폼은 전문가 수준으로 항도의 추억을 여러장 담았지만 쓸만한 사진이 없었습니다.






청산도의 다른 이름은 신선선자가 들어가는 선산(仙山), 선원(仙源)이라 불렸습니다. 그만큼 아름다워 신선이 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뜻 같습니다. 신라시대부터 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고려시대에 탐진현 (현 강진군)에 속했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 그리고 임진왜란 등으로 외적의 침입이 빈번하자 조정에서 도서금주령으로  사람을 모두 소개시켜 한때 사람이 살지 않는 공도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1608년인 선조 41년에 다시 청산도 입도를 허가하여 사람이 거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청산도는 1681년 숙종 7년에 수군만호진을 설치하여 서남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으며 1866년 고종 3년에는 당리에 독진을 설치하였고 고종 33년에 완도군이 생기면서 완도군에 이속되어 청산면이 되었습니다.
















 1981년 청산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이제 청산도 여행 중에서 항도를 대충 훑어보고 와서 사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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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여행/무주가볼만한곳)부남면 금강벼룻길 대문바위와 각시바위  전설. 금강벼룻길


이번에 부남면 대소마을을 두른 옥녀봉과 조항산 산행을 하고 오면서 대소마을에서 장안리 안전마을 500m 근방에 큰 바위가 우뚝 솟은 대문바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부남면 대소마을 금강벼룻길을 걸으면서 포스팅을 못했는데 늦었지만 금강벼룻길의 대문바위와 각시바위 포스팅을 함께 하겠습니다. 





2017/07/10 - (무주여행)무주 옥녀봉~조항산 산행. 청정 산행지 무주 부남면 옥녀봉~조항산 등산.

2015/06/11 - (전북여행/무주여행)무주 숙박 이리스 모텔. 덕유산 무주구천동, 무주리조트, 무주 반디불이 축제, 무주에서 잠잘만한 숙박지 무주 이리스 모텔,

2009/02/23 - (전북여행/무주여행)덕유산 향적봉 산행. 얼음궁전 설천봉의 전망대와 겨울 덕유산 산행의 참맛

2008/11/13 - (전북여행/무주여행)적상산 장도바위. 단칼에 벨 수 있을까요? 최영장군의 적상산 장도바위를...

2008/11/13 - (전북여행/무주여행)안국사 적상산 사고지. 조선왕조실록 적상산 사고지를 둘러 봤습니다.




대소마을에서는 대문바위라 부르는데 전혀 대문바위같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옥녀봉에서 떨어지는 산줄기가 이곳 금강에서 꼬리를 감추는 그 끝에 대문바위가 있습니다. 지금은 대문바위와 산비탈 사이에 2차선 도로가 나서 당시의 모습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도로가 생기기 이전에는 대문바위와 옥녀봉 산줄기 사이에 한두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소로가 있었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웃마을과의 경계 역할을 했으며, 이웃마을에 돌림병이 돌거나 마을에 위험한 일이 일어났을 때는 제일 먼저 이곳을 막아 행인들의 출입을 통제했다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대문이라 생각하여 대문바위라 부르게 되었다합니다.

 


대문바위 정상부에는 대략 여섯 그루의 소나무와 노간주나무가 자생하는데 분재를 가꾸어 놓은 듯 독특한 모습입니다. 특히 소나무는 바위에 뿌리를 내려 그 세월만큼 대단해 천년송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도로가 뚫리면서 대문바위의 역할을 못하지만, 그이름만은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문바위는 금강이 활처럼 휘어 흐르는 아름다운 곳에 깊은 소를 만들며 솟았습니다. 대문바위 아래 깊은 소에는 황소를 잡아먹은 이무기전설이 있습니다. 대소마을의 총각이 황소를 끌고 나와 대문바위에 매어놓고 주위에 풀을 뜯어 먹게 했습니다. 총각은 무더운 삼복더위에 더위도 식힐 겸 물에 뛰어들어 멱을 감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흘러 집에 가기 위해 대문바위에 매어둔 황소를 찾았지만, 황소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 매어둔 소가 어디갔노”하며 대문바위 주위를 뒤지다가 그만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황소의 몸통은 오간대 없고 피투성이인 소머리만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놀란 나머지 마을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대문바위 근처를 샅샅이 찾다가 대문바위 아래 깊은 소에 이무기가 사는 것을 알았고 황소는 이무기가 잡아먹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부터 대문바위 근처에는 소를 묶어 두는 것을 금기시하였습니다. 지금도 추운 날에는 대문바위 근처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는 이무기가 연기를 뿜어낸다고 마을 사람은 믿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금강 벼룻길 여행에서 두 번째 이야기인 대유리 봉길마을의 각시바위 전설입니다. 금강에 뿌리를 박고 있는 각시바위는 마치 창같이 끝이 뾰쪽하여 찔리면 많이 아플 것 같아 보였습니다. 각시바위에는 시어머니에게 구박받고 바위가 된 착한 며느리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아주 먼 옛날 마을에는 홀어머니를 모시며 총각이 살고 있었습니다. 총각의 어머니는 청상과부로 겨우 유복자인 아들을 얻었고 금지옥엽처럼 귀하게 키웠습니다. 총각은 나이가 차서 마음씨 착한 어여쁜 색시에게 장가를 들었습니다. 시집온 그날부터 각시는 호된 시집살이로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들과 며느리는 부부의 정이 각별했고 “각시야 각시야”하며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럴수록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자신에게서 아들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여 질투심에 더욱 며느리를 구박했습니다. 세월은 흘러 3년이 지났습니다. 며느리에게는 아직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시어머니는 대를 끊으려 한다며 더욱 며느리를 구박하였습니다.













며느리에게 네가 빨리 죽어야 새로 며느리 얻어 대를 잇는다는 막말을 막 퍼부었습니다. 그래도 며느리는 지극정성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살았지만, 아이가 계속 생기지 않자 죽을 결심울 합니다. 며느리는 집을 나와 강 건너 바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자신만 죽으면 새 며느리가 들어와 이 집 안의 대를 잇게 된다며 천지신명께 하루빨리 이 집 안에 새 며느리가 들어와 대를 잇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집에 며느리가 보이지 않자 밖으로 나와 강 건너 바위에서 기도하는 며느리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때 구름이 바위를 감싸며 며느리와 함께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에 놀라 “아가! 아가!”하며 며느리를 불렀습니다. 바위는 갑자기 멈추었고 며느리는 바위에서 떨어져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하늘로 솟던 바위가 그대로 멈춘 게 꼭 여인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닮았다 합니다. 이를 두고 마을에서는 각시의 원혼이 바위로 변했다며 오늘날까지도 각시바위라 부르고 있습니다. 각시의 슬픈 전설과 함께 오늘도 천길 단애의 바위가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며느리의 슬픈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금강은 비경을 뽐내고 있습니다.



현재 이 각시바위 아래에는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가는 동굴이 뚫려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사람이 정으로 쪼아서 만든 동굴입니다. 이 길을 금강의 벼룻길이라하며 마을에서는 ‘보뚝길’이라합니다.

 





벼룻길은 강가나 바위벼랑의 험로를 말하는데 금강의 벼룻길은 처음에는 대유리 굴암마을 대뜰에다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대기 위한 수로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이 흐르던 관로는 사라지고 인근 율소와 대소마을 사람들이 다니는 가장 빠른 길이 되었다가 현재는 금강벼룻길을 찾는 둘레꾼의 길로 바뀌었습니다. 



(무주여행/무주가볼만한곳)부남면 금강벼룻길 대문바위와 각시바위  대중교통편. 금강벼룻길 대중교통편


무주군 부남면의 금강벼룻길에 있는 대문바위와 각시바위를 만나려면 무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야합니다. 제가 있는 부산에서는 열차를 타고 대전역에서 하차한 뒤 대전복합터미널로 이동해 시외버스를 타고 무주로 가면됩니다.

무주터미널에서는 부남면 대소행(부남주민자치센터정류장) 군내버스를 타는데 여기 군내 버스 시간표를 올려 놓겠습니다. 가당과 적상경유가 참고하세요.

가당 경유 버스(오전 8시15분, 10시, 낮 12시, 오후 2시, 3시30분, 5시20분, 7시40분)와 적상 경유 버스(오후 2시10분, 5시10분, 6시30분)가 있다. 그리고 부남면 대소마을에서 무주터미널로 나오는 군내버스 시간은 오전 6시40분, 8시35분, 11시20분, 낮 12시40분, 오후 2시40분, 4시, 4시15분, 6시(막차)를 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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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여행/진안가볼만한곳)마이산 탑사·은수사.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는 돌탑 마이산 탑사·은수사 


우리나라에서 땅의 기운이 가장 드센 곳 중 한곳이 전북 진안의 마이산입니다. 진안의 마이산은 보기부터 독특하게 생겼습니다. 큰 바위봉우리 두 개가 땅에서 박차고 올라온 게 언 듯 보면 꼭 말의 귀를 닮아 보이고 그래서인지 조선 태종은 ‘말의 귀를 닮았다’며 마이산이라 불렸던 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마이산 탑사 주소: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8

마이산 탑사 전화:063-433-0012


2017/04/15 - (진안여행)마이산 고금당 나옹암. 마이산 전망 일번지 고금당 나옹암을 찾아가다.

2016/04/02 - (전북여행/진안여행)진안 천반산 산행. 천반산의 죽도는 기축옥사를 피해 정여립이 몸을 숨겼던 곳입니다. 정여립 모반 사건의 역사를 추적하는 천반산 죽도 산행.

2011/06/27 - (전북여행/진안여행)진안 명도봉 산행. 오고가는 것은 구름뿐, 햇빛도 반나절밖에 못보는 희안한 계곡을 아시나요-진안 명도봉


 

 

그러나 마이산은 신라 시대에는 서다산으로 불렸다가 다시 고려 시대에 용출산이 되었고 고려말 이성계가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와 남원의 운봉 황산벌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이산을 찾았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하늘로부터 나라를 다스릴 권한인 금척을 받고 조선왕조 창업을 실천합니다. 이곳 마이산을 ‘금척천명지(金尺天命地)’라 하는 이유이며 그는 금척을 받고 속금산이라 이름했는데 이는 “선인에게 받은 금척을 묶어 놓은 거 같다”란 뜻입니다.

 

 마이산 탑사

 

 

마이산은 말의 귀를 닮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이외에도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쌓을 수 없다는 ‘불가사의’한 탑이 있습니다. 1885년 고종 25년에 임실에서 출생한 이갑용이 산의 기운이 하늘을 찌른다는 마이산을 수행처로 정하면서 입산하여 30여 년 동안 108개의 돌탑을 쌓았습니다.

 

 

현재에는 80여 기의 돌탑만이 남아 있으며 천지탑, 오행탑, 33신장군탑, 중앙탑, 일광탑, 월광탑, 약사탑 등 음양오행의 이치를 적용하여 정교하게 쌓았습니다. 탑 중에서도 대웅전 뒤의 원뿔형인 13m 높이의 천지탑은 일명 부부탑이라고도 합니다.

 

 

음과 양을 상징하며 앞쪽에서 보면 오른쪽이 하늘이고 왼쪽은 땅을 뜻하며 만 3년 동안 공덕을 쌓아 완성한 탑입니다. 낮에는 돌을 날라 쌓다가 꼭 자정에는 하늘의 기운을 받아 윗돌과 양돌·음돌을 올렸으며 1926년에 천지탑을 완공했습니다.



 

 

동·서·남·북·중과 목·화·수·금·토의 오행을 상징하는 다섯 개 탑의 호위를 받는 천지탑 답게 한 몸을 이루던 몸체는 올라가다가 두 개의 탑으로 나누어지는 특이한 형태입니다. 이는 다정한 한 쌍의 부부와 같으며 암·수마이봉의 마이산을 닮은 듯 보입니다.

 

 

 

마이산 탑사 약수 

 

 

천지탑을 보호하는 33신장군탑은 불교에서 말하는 하늘인 33천의 우주 세계를 뜻합니다. 탑을 둘러싸고 자연형태의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지만 어떠한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신비의 마이산 탑을 누군가는 말하기를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는 신비한 돌탑”이라 했습니다.

 

나도산 

 

 

마이산에는 이 말고도 신비한 현상인 역고드름으로 유명합니다. 고드름은 알지만, 역고드름은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탑사의 기도단에 정화수를 떠놓는데 한겨울이면 얼어붙은 물그릇에 역고드름이 솟는 현상입니다.

 

 

 

 

이제 이곳을 지나면 천왕문으로 오르는 중간에 은수사가 있습니다. 장군봉같이 우뚝한 수마이봉 아래에 자리한 은수사는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다가 숙종 때 폐사되었으며 그 뒤 정명암의 작은 암자가 있었지만 퇴락하여 없어졌습니다.

 


마이산 은수사 주소: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6

마이산 은수사 전화:063-433-2502


 

 

 

1920년경에 와서 이주부라는 분이 은수사로 절을 세웠는데 “태조 이성계가 이곳의 물을 마셔보고 물이 은같이 맑다 하였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 한다고 합니다. 특히 은수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이 두 가지 있는데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와 마이산 줄사철군락(천연기념물 380호)입니다. 은수사 청실배나무는 약 18m 높이에 산돌배나무의 변종으로 장미과에 속하며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하고 증표로 씨앗을 심었는데 그게 청실배나무입니다.

 

 

특히 은수사의 역고드름은 더욱 유명하며 한겨울에 이곳 청실배나무 아래에다 물을 담은 그릇을 두면 고드름이 거꾸로 솟아오르는 보기 드문 현상을 보게 됩니다. 이성계가 물을 마셨다는 샘은 섬진강의 발원지를 뜻하는 비석이 서 있으며 탑사와 은수사 사이를 걸어오다 하늘을 보면 암마이봉의 표면이 손으로 뜯어낸 듯 한 구멍이 수없이 많이 보입니다. 이를 타포니라 합니다.

 

 청실배나무

 

마이산 은수사 

 

 수마이봉

 

 

 

 

마이산은 역암(자갈)으로 이루어졌는데 자갈과 바위가 석회질과 점토질 같은 기질에 혼합된 암석을 말하며 오랜 세월 동안 지하수나, 지면이 얼었다 녹거나, 동결쐐기 작용에 균열이 생기는 자연적인 변화에 자갈이나 바위가 암석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서 여러 개의 구멍이 생기고 이게 합쳐져 더 큰 구멍이 발달하는데 이를 타포니라 하며 특히 마이산의 남쪽 면에 많이 생성해 있습니다.

 

 

 

 

 

 

이곳에서 마이산의 신비한 구멍인 타포니에 누가 어떻게 쌓았는지 알 수 없지만 여러 돌탑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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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여행/진안가볼만한곳)마이산 고금당 나옹암. 마이산 전망 일번지 고금당 나옹암을 찾아가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 하면 언뜻 생각나는 게 말의 두 귀를 닮은 바위봉우리와 사람의 힘으로 쌓았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탑사입니다. 이갑용 처사가 30년 동안 쌓았다는 돌탑은 “불가사의”라 합니다. 현재 탑사에는 돌탑이 80여 기가 있습니다.






고금당 주소: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탑사가 마이산도립공원을 대표한다면 광대봉의 고금당과 나옹암은 마이산의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또하나의 볼거리입니다. 그 때문에 마이산을 찾는 등산객은 반드시 고금당과 나옹암, 마이산과 탑사는 빼놓지 않고 보고 옵니다.

 

 

고금당은 탑영제 아래에 있는 금당사의 모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처음 금당사가 있었다는 곳이 현재 고금당 자리입니다. 바위 면에 절묘하게 자리한 고금당은 고려말의 고승이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의 수도처인 자연 석굴입니다.

 

 

나옹화상께서 수도했던 굴이라 하여 나옹암·나옹굴이라 부르며 현재에는 석굴 입구에 목탑의 형식을 갖춘 독특한 모양의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건물 외관은 고금당과 함께 누런 황금색을 입혀 규모는 작지만, 꼭 황금색 사원을 보는 느낌입니다.

 

 

 

 

 

 

고금당은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왔던 보덕스님의 제자 무상스님과 스님을 따르던 금취가 650년인 백제 의자왕 10년에 금동사로 처음 창건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해서 혈암사로 불리다가 절을 옮기면서 옛터에 있던 절은 고금당이라하고 옮겨와 다시 세운 절은 금당사가 되었습니다.

 

 

 

 나옹암

 

 

현재 고금당의 법당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좌우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셨습니다. 고금당에서 바라보는 마이산의 경치는 가히 감탄사가 연이어 터질 정도로 정말 아름답습니다. 나옹화상이 도통했다는 굴이자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꿈속에서 금척을 받아 훗날 조선을 건국했던 개국의 성지가 마이산 나옹굴이며 ‘금척천명지(金尺天命地)’라 칭합니다.

 

 

 

 

한, 동학농민의 녹두장군 전봉준 딸도 이곳 나옹굴에서 10여 년 동안 숨어 지냈으며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호남최초의 민중항쟁인 항일의병결사 창의동맹이 처음 시작되었던 애국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고금당 

 

 

어느날 이성계는 꿈속에서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고 깨어납니다. 그 후에 아지발도가 이끈 왜구와 남원의 운봉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이산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마이산을 보고 이성계는 얼마 전 꿈에 금척을 받았던 곳과 주변 모습이 똑같았기에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이성계는 땅에서 솟았다는 용출산을 “선인에게 받은 금척을 묶어 놓은거 같다”하여 속금산(束金山)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성계의 성씨인 이(李)자가 나무목(木)이 있는 목성이라 금(金)성 과는 상극에 해당하여 “금의 기운을 묶어둔다”는 뜻이라 합니다. 그 뒤에 태종이 이 산을 보고 말의 귀와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한 게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성계의 전설이 남아 있는 천하절경 고금당과 나옹암을 가는 길은 마이산 남부 매표소를 지나 밀집한 상가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600m 거리에 2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룡대 전망대에서  본 나옹암과 고금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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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여행/여수가볼만한곳)여수 돌산공원 여행. 여수 관광 1번지 돌산공원에서 돌산대교를 만나다.


여수 돌산공원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여수에서 가장 큰 섬인 돌산도를 1984년에 다리로 연결했는데 이게 돌산대교입니다. 돌산대교를 완성하고 돌산대교 준공기념탑을 돌산도 입구 그러니까 돌산대교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건립하면서 공원으로 조성이 됐으며 이게 1988년도에 완공해 오늘날의 돌산공원입니다.





돌산공원 주소: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799-76



 

그런데 지금은 여수의 자산공원하고 여수 한려해상 케이블카까지 연결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오동도와 함께 여수여행 일번지로 인기 몰이 중입니다. 돌산공원의 전체면적은 212,700㎡의 규모이며 돌산대교 준공기념탑과 그늘막이 5동 등 공원의 부대시설도 완벽하게 갖추어져 공원을 돌면서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준공기념탑 이외에도 1999년에는 여수시 타임캡슐을 공원 정상에 묻고 100년 후에 개봉을 기다리며 2002년에는 거친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다 숨져간 어민들의 혼백을 위로하는 어업인 위령탑도 세워 바다와 더욱 가까운 여수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여수 시내는 물론이고 여수 옛 항과 돌산대교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빼어난 경치 덕분에 여수로 신혼여행을 왔거나 결혼식을 끝낸 신혼부부가 기념사진을 찍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돌산공원에서의 제1경은 돌산대교 야경입니다.

 

 

돌산대교 야경도 구경하고 돌산대교 아래를 흐르는 청정의 에메랄드 바다도 만나보세요. 또한, 호빵을 올려 놓은 듯 닮은 장군도의 위용이 정말 대단합니다. 장군도는 여수시 중앙동 1번지이며 돌산대교를 건너다보면 왼쪽에 보이는 섬입니다.

 

 

장군도는 연산군 때의 이량장군이 바다 밑에 쌓은 수중성이 있습니다. 1497년 연산군 3년 이량장군은 전라도 흥양에 일어난 왜변을 다스린 공으로 전라좌수사로 발탁되었으며 전라좌수영에 부임하여 왜구의 침범 해로로 이용이 되는 돌산도와 장군도 사이의 해로를 돌을 막아 쌓은 수중제방이 성의 역할을 하여 수중성이라 불렀습니다.

 

 

 원래 독섬에서 대섬이라 불렀으며 이량장군이 쌓은 수중성인 장군성이 있다 하여 장군도라 불리고 있습니다.



 

 

 

 

 

 

 

 

장군도 

 

 

 

 

 

 

 

 

 

 

 

 

 

 

 

 

 

 

 

 

 

 

 

 

 

 

 

돌산공원내 여수해상케이블카 타는 곳 

 

돌산공원에서 여수해상케이블카를 타보세요??? 

 

돌산공원케이블카 

 

바다를 가로 지르는 여수해상케이블카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짜릿한 기분입니다.   

 

야호!!!!하며  고함도 질러봅니다. ㅋㅋ 

 

 

 

 

 

 

 

 

 

 와우 그림이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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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여행/여수가볼만한곳)여수 고소대, 타루비, 통제이공수군대첩비, 여수천사벽화골목 여행


전라좌수영·삼도수군통제영에 전란으로 불탔던 진해루 대신 새워진 건물이 국보 제324호인 진남관입니다. 이충무공이 머물렀던 전라좌수영·삼도수군통제영인 진남관을 마주하고는 고소대와 이충무공의 공적을 새긴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공을 추모하여 세운 눈물의 ‘타루비’가 있습니다.





고소대(타루비·통제이공수군대첩비)주소: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 620

 

2017/03/18 - (여수여행)전라좌수영 진남관. 우리나라 최대 단층목조건물인 웅장한 진남관 위용.

2017/03/07 - (여수여행/여수가볼만한곳)동백꽃 오동도. 3월이면 동백꽃이 최고절정이라는 여수 오동도 여행. 오동도

2015/03/13 - (전남여행/여수여행)자산공원 여수해상교통관제센터 곤충 체험실 빠삐용관을 만나고 왔습니다.

2015/03/12 - (전남여행/여수여행)여수케이블카와 자산공원. 자산공원에서 여수케이블카도 타고 즐거운 여수 여행 하고 왔습니다.

2015/03/11 - (전남맛집/여수맛집)자산공원 맛집, 여수 엑스포 맛집 한일관. 남도 해산물 명가 여수 한일관에서 봄내음 가득한 해산물 한정식 먹고 왔습니다.

2015/03/10 - (전남여행/여수여행)돌산도 향일암. 남해 최고의 기도도량 여수 돌산도 향일암 여행.



 

 

 

현재 진남관 아래 임란 유물전시관 인근에 있는 좌수영 다리를 건너면 정자인 매영정이 지어져 있습니다. 이 뜻을 보면 봄이면 전라좌수영·삼도수군통제영 건물 주변에 매화가 만발해서 매영성으로 불렸으며 진남관으로 통했던 길이 도로가 생기므로 끊어져 좌수영 다리를 놓아 옛길을 다시 이어서 오가는 길손에게 옛일을 되새겨 보도록 하는 의미에서 매영정을 지었다는 안내문이 있습니다.

 

 

 

 

이곳은 여수의 벽화 거리인 ‘천사벽화골목’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여 많은 관광객이 천사벽화골목과 고소대, 타루비,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찾고 있습니다. 먼저 천사벽화골목에는 이순신 장군의 스토리가 양쪽 벽면에 그려져 있습니다. 천사 이름에 맞게 그 길이가 1,004m이며 구 해양공원의 이순신광장에서 진남관의 좌수영 교까지입니다

 

 

 

 

이 지역 주민이 1,800만 원을 모금하여 완성된 벽화골목이라 하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진남관의 좌수영 교에서 타루비가 있는 고소대까지는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스토리텔링 하여 벽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순신은 28살의 늦은 나이에 무과에 도전합니다.

 

 

활쏘기, 말타기 등의 시험을 보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졌고 주위의 버드나무를 꺾어 껍질을 벗겨내 접질린 발목을 고정하며 끝까지 시험을 봤지만, 낙방의 고배를 마십니다. 그리고 4년 뒤인 32세에 식년 무과에 합격했습니다.

 

 

 

 

처음 받은 보직이 남해안의 해안가가 아닌 지금의 평안북도 삼수군인 압록강 유역이며 여진족과 국경이 접해있던 곳입니다. 이후 여러 부임지를 옮겨 다녔으며 1591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에 류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영에 부임합니다. 당시 남해에는 출몰하는 왜적의 노략질이 심해 큰 고민에 빠졌지만 이순신 장군은 만반의 태세를 갖추며 남해는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보유한 군선을 수리하고 새로 건조하며 또한 나대용에게 거북선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임진년에 왜군이 부산포로 몰려들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왜군은 순식간에 조선을 짓밟았지만 23전 23승의 세계해전 역사상 전무후무하다는 이순신 장군이 철통같이 지켰던 남해로 인해 조선은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그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에서 관음포로 달아나는 왜군을 끝까지 쫓아가다 그만 적의 흉탄을 맞았고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의 일대기가 천사벽화골목을 장식하고 있으며 힘이 없다면 언제라도 외침(外侵)을 받을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역사의 산교육장입니다.

 

 

 

 

 

 

그림을 하나하나 보다 보면 그 끝에는 당시 장대로 사용했던 포루인 고소대에 닿습니다. 이충무공이 이곳에서 군령을 내렸다 합니다. 현재 이곳에는 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이 비석의 건립 경위를 기록한 동령소갈비와 노량해전에 전사하자 장군의 죽음을 슬퍼하며 부하들이 세운 타루비가 있습니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는 좌수영대첩비로도 부르며 이순신 장군과 그를 따르던 수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비석으로 국내 비석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합니다. 1615년인 광해군 7년 이순신 장군을 모셨던 유형이 황해도 병마절도사로 있으면서 가장 좋은 돌을 보내어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의 글씨는 김상용이 썼고 비문의 내용은 오성 이항복이 짓고 글씨는 당시 명필이었던 김현성이 썼다 합니다. 보물 제571호. 그리고 보물 제1288호 타루비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따르던 부하들이 장군을 추모하며 1603년인 선조 36년에 세운 공덕비입니다.

 

 

 

 

타루의 뜻은 중국고사로 “비석을 바라보면 눈물을 흘리게 된다”를 뜻해 이순신을 추모하는 부하들의 심정을 타루비를 보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동령소갈비는 1698년인 숙종 24년에 대첩비를 건립하는 경위와 참여 인물 등을 기록한 비석으로 진안 현감이었던 심인조가 남겼습니다.

 

 

 

 

이 비석들은 그 후 일제강점기인 1942년 여수경찰서장으로 있던 일본인 마쓰키가 조선의 민족정기를 말살하려고 비각을 헐면서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타루비를 숨겨버렸습니다. 광복 후인 1946년 경복궁에서 발견되어 그다음 해 이곳에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진남관을 둘러보면 꼭 함께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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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여행/여수가볼만한곳)전라좌수영 진남관. 우리나라 최대 단층목조건물인 웅장한 진남관 위용.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당시 조선국왕인 선조도 아니고 또한, 태자인 광해군도 아닌 23전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이순신장군입니다. 세계 해군사의 전무후무한 기록이라는 영웅인 이순신장군, 우리는 이분을 성웅 이순신이라 부릅니다. 이순신장군은 남해에 빗장을 걸듯이 철통같이 지켜내어 전라도로 진격하는 왜군을 막았으며 그들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끝내는 조선에서 왜군을 몰아내는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여수 진남관 주소: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 472

여수 진남관 전화:061-659-5711


2017/03/07 - (여수여행/여수가볼만한곳)동백꽃 오동도. 3월이면 동백꽃이 최고절정이라는 여수 오동도 여행. 오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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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2 - (전남여행/여수여행)여수케이블카와 자산공원. 자산공원에서 여수케이블카도 타고 즐거운 여수 여행 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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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조선군과 장수, 의병과 의병장, 승군과 잡초 같은 근성의 백성이 힘을 합해 조선땅을 지켜냈지만, 그 가운데 조선을 지켜내는데 큰 공적을 세운 분이 이순신 장군이라 해도 큰 무리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지금 남해안 여행을 떠나면 이순신을 상징하는 거북선 모형이 전시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이순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순신 장군이 머물며 조선 수군을 지휘했던 전라좌수영 본영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여수에 전라좌수영 본영 건물이 있었나 생각하겠지만 분명히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라좌수영보다는 진남관으로 더욱 유명해져 모두 진남관으로 부르고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 진남관이 있는 곳이 이순신장군이 머물렀던 전라좌수영 본영 터입니다.

 




당시 성안에는 80여 동의 건물과 2,000여 호의 민가, 우물 등이 있었으며 봄에는 성곽 주변으로 매화가 만발해서 ‘매영성’으로도 불렸다 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재차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명량대첩에서 다시 패하자 명나라 장수에게 뇌물을 주며 물러나려니까 길을 열어달라며 화의를 재촉하지만, 이순신은 완강히 거부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죽자 일본은 철수를 감행하고 이순신은 마지막 해전을 준비합니다. 노량해협에서 일전을 벌여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또한, 관음포로 달아나는 적을 끝까지 추격하다 흉탄에 그만 전사하셨습니다. 전란 속에 전라좌수영의 모든 건물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순신장군께서 이 진남관에 머물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 왜 전라좌수영에 진남관이 들어서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진남관은 ‘남쪽 왜구를 진압해서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으로 정유재란이 끝나고 선조 32년인 1599년 삼도수군통제사이자 전라좌수사였던 이시언이 잿더미가 된 진해루터에다 75칸 규모의 객사를 지었습니다.












1664년 이도빈이 개축하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숙종 42년인 1716년에 발생한 화재에 그만 소실되었습니다.  2년 뒤인 1718년 전라좌수사였던 이제면이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웅장하고 장엄하여 조선 수군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으며 역대 국왕의 전비와 궐패를 봉안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관아의 수령이 정례 참배했습니다. 또한,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는 임금을 보듯 대궐을 향해 ‘향궐망배’ 의식을 거행하고 중앙관리나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는 건물로도 사용했다 합니다.







여수에 전라좌수영이 처음 들어서게 된 때는 1479년인 조선 성종 10년이며 1895년인 고종32년에 좌수영을 폐했습니다. 400여 년의 긴 세월을 남해안 방어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전초기지였던 전라좌수영 건물을 그대로 내버려 뒀다가 경술국치로 일본에 강제병합하면서 남아 있던 성곽과 관아건물은 모두 파괴와 헐렸습니다.

 






순종 4년인 1910년에는 전라좌수영 본영 입구를 지키던 망해루가 헐렸고 진남관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패배를 앙갚음이나 하려는 듯 건물 구조를 변형시켜 여수공립보통학교, 여수중학교, 야간상업중학원등의 학생 교실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1950년 일어난 6.25 한국동란에는 전쟁통에 건물이 붕괴위기에 내몰렸고 그 와중에도 긴급하게 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1959년 보물 제324호로 지정하여 그때부터 본격적인 원형 보존과 보수, 단청 등 성역화 작업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헐렸던 망해루는 1991년 2층 누각으로 복원하였으며 2001년 진남관의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하여 국보 제301호로 승격 지정하였습니다.

 


진남관의 규모를 보면 정면 길이가 54.5m, 높이는 14m, 넓이는 748㎡입니다. 건물을 받치는 기둥은 총 68개로 앞면 15칸에 옆면 5칸인 사찰의 회랑과 궁궐 건물을 제외하면 해인사의 장경판전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입니다. 저는 여수 쪽을 여러 번 여행하며 찾았지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조선수군인 전라좌수영의 본영 터인 진남관을 좀체 찾을 기회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다시 1박 2일 여수 쪽 여행과 산행을 기획하면서 도착과 동시에 가장 먼저 찾아 참배했습니다. 지금 진남관은 다시 보수공사 중입니다. 진남관을 빙 둘러 접근을 금지하는 안전펜스가 설치되어 진남관의 기둥을 만져본다든지 대청마루에 오르지 못해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사람도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하듯이 3백 살인 진남관도 아픈 부분을 고쳐서 이순신장군이 지켜냈듯이 우리 남해안을 지켜낸 전초기지의 역사를 후세에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진남관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본 유물인 문인석이 한 점 남아 있습니다. 여수석인으로 전란 속에 눈속임용으로 돌로 사람 형상을 깎아 세웠는데 두건에 도포를 입고 팔짱을 낀 형상이며 7기가 있었다지만 현재 1기만 남아 있습니다. 여수석인은 진남관과 마주하며 진남관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도지정문화재 제33호













그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순신 장군이 이끈 전라좌수영,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역사의 현장에 ‘진남관임란유물전시관’이 개관중입니다. 진남관의 건축적 특징과 규모, 축조와 용도 등 진남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명나라 황제인 신종이 이순신장군에게 선물했다는 참도 모형


그리고 유물로는 명나라 황제인 신종이 이순신장군에게 선물했다는 참도를 재현해 전시중이며 진품은 통영 충렬사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1917년, 1925년, 1930년에 교실로 사용했던 진남관을 사진으로 만나고 이순신장군이 임진란과 정유재란의 7년 전쟁을 하면서 쓴 진중 일기인 국보 제76호 난중일기와 가족과 친척에게 보낸 편지를 수집하여 만든 책인 국보 제 76호 ‘서간첩’도 재현해 전시 중입니다.








1917년, 1925년, 1930년에 교실로 사용했던 진남관 사진


변형된 진남관 모습






이순신장군이 임진란과 정유재란의 7년 전쟁을 하면서 쓴 진중 일기인 국보 제76호 난중일기


이순신장군이 가족과 친척에게 보낸 편지를 수집하여 만든 책인 국보 제 76호 ‘서간첩’





임진왜란과 이순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거북선입니다. 정조 때 편찬한 ‘이충무공전서’에는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길이와 너비 등 치수는 통제영 거북선과 같으나 다만 거북 머리 아래에 귀신 머리를 새겼다. 거북 잔등 덮게 판에는 거북 무늬를 그렸고, 좌우에 문이 2개씩 있다. 거북 머리 아래에 대포 구멍이 2개, 뱃전 좌우에 대포 구멍이 1개씩 있다. 뱃전 난간 좌우에 대포 구멍이 10개씩, 덮게 판 좌우에 대포 구멍이 6개씩, 좌우 노는 8개씩이다.”라고 거북선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이 항상 벽에 걸어두었다는 두 자루 장검에는 ‘삼척서천 산하동색(三尺誓天 山河動色), 일휘소탕 혈염산하(一輝掃蕩 血染山河)’란 친필을 새겨 스스로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었다는 합니다. 그 뜻을 보면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또한 정치권이고 간에 이순신 장군의 어록 중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게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인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다.”입니다. 참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까지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며 백척간두의 조선을 구한 장군의 유물과 전란에서 조선 수군이 사용했던 무기류 등을 관람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망해루를 지나면 왼쪽에는 전라좌수영 비군이 있습니다. 선정비와 불망비이며 그중에서도 ‘이량장군방왜축제비’가 문화재자료 제240호로 지정하였습니다.

 




1479년 연산군 3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량이 돌산도와 장군도 사이 수중에 제방을 쌓아 왜구의 침입을 막은 업적을 기념해 1643년 후손들이 장군도에 세웠으나 비석이 훼손되어 1710년에 좌수영 서문밖에 다시 세웠던 것을 1984년 이곳에 옮겨왔습니다. 현재 전라좌수영은 보수 중이지만 참관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으며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진남관임란유물전시관 개관시간은 하절기(3월~6월) 9시~18시, 동절기(11월~2월) 9시~17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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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여행/여수가볼만한곳)동백꽃 오동도. 3월이면 동백꽃이 최고절정이라는 여수 오동도 여행.


3월 초순. 아직은 꽃샘추위가 남아 있다지만 남도에는 벌써 봄소식을 알리는 동백꽃이 조금씩 폈다는 소식을 접하고 1박 2일 산행을 겸한 동백꽃 여행을 떠났습니다. 동백꽃 하면 여러 여행지가 물망에 오릅니다. 거제도의 지심도, 장사도, 백련사, 선운산, 마량리 동백나무숲 등 남해안 전체를 동백숲이라 할 정도로 여러 곳에 많이 있습니다.





여수 오동도 주소:전남 여수시 수정동 1-1

여수 오동도 전화:061-659-1819

오동도 입장료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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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8 - (전남여행/여수금오도여행)금오도비렁길 여행. 짧지만 여운은 길게 남았던 금오도 비렁길을 걸어 보세요.


오동도입구 여수케이블카 주차타워



이 많은 동백꽃 여행지에서 나에게 선택 받은 곳이 동백꽃으로 정말 유명한 오동도입니다. 오동도 하면 먼저 생각나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곳 오동도와 전혀 상관없지 싶은데도 배낭을 꾸리면서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동백꽃 천지인 오동도 여행을 간다 하니 흥이 절로 나는지. 요즘 노래도 아니고 1956년 황정자의 노래인 ‘오동동타령’을 흥얼거리는게 아마 그래서인가봅니다. 그래서 먼저 오동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실제 오동도는 그리 큰 섬이 아닙니다. 그런데 섬 전체가 동백나무로 덮고 있어 동백섬으로 불리며 멀리서 보면 오동나무 잎을 닮았다하여 오동도라 하는 여수의 상징 같은 존재입니다. 오동도는 섬이지만 이제 섬이 아닙니다. 760여m의 방파제가 연결되어 섬이라기보다는 육지라 해도 괜찮았습니다.





15분이면 걸어서 갈 수 있으며 아니면 동백열차를 타고 오동도 중앙광장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정말 편해서 그런지 벌써 오동도를 찾는 관광객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정작 필자가 오동도를 찾았을 때는 아직 일러서 그런지 동백꽃은 그리 피지 않았는데 그래도 3천여 그루의 동백나무는 1월부터 피고 지고하며 3월에는 동백꽃이 최고 절정을 이룹니다.







지금부터 오동도는 ‘최대 동백꽃 군락지’란 이름값을 할 것 같습니다. 오동도 입구에 왼쪽 데크 계단을 오릅니다. 용굴과 등대가는 산책로이며 오동도 전체 산책로에 데크를 깔아놓아 동백숲을 걷기에는 아주 편리했습니다. 길옆 나뭇가지에 노란색을 한 새가 도망가지 않고 사람이 그리운 듯 주위를 맴돕니다.












동백꽃이 피면 찾아든다는 동박새 인가하며 순간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겨우 1장만 담았습니다. 동박새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세찬 바닷바람을 가르며 잔잔히 들리는 새의 울음소리는 신나는 왈츠의 음악 같았습니다. 오른쪽 용굴로 내려가는 덱 계단이 나타났습니다.







동백숲으로 앞을 분간할 수 없다가 갑자기 앞이 훤히 열리면서 절벽이 드러나는게 꼭 혹성탈출의 희열을 느끼게합니다. 그 아래 바다가 바위를 깊숙하게 파고 들어와 만든 굴이 음침한게 용굴과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금방이라도 용이 나와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하늘로 올라가는 상상을 해봅니다.








용굴





이곳에도 관광객이 많았습니다. 너도나도 환상적인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고 난리법석이었습니다. 다시 되돌아 계단을 올랐습니다. 오른쪽에서 갑자기 바람이 몰아졌습니다. 특이하게도 이곳에 바람이 많이 분다. 생각을 했습니다. ‘바람골’이란 안내판이 붙었는데 지형이 꼭 깔때기를 닮아 아마 바람 통로인가 봅니다.

 


이곳을 지나면서 동백나무 숲은 더욱 울창하여 숫제 어두컴컴합니다. 곧 오동도 정상에 있는 25m 등대와 만납니다. 오동도등대는 여수항과 광양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안전항로를 위해 1952년 처음 불빛을 밝혔습니다. 등대 왼쪽은 시누대길입니다. 시누대는 화살을 만드는 대나무입니다.







특히 오동도에도 시누대가 여러 곳에 자라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이곳에서 이순신장군이 수군을 훈련하며 시누대로 화살을 만들었다합니다. 일단 등대 오른쪽으로 향하면 일출전망대가 나옵니다. 여수 앞 바다 건너에는 남해도의 모습이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여수와 남해군은 아주 가까웠습니다.











역시 이곳에도 사진을 담는 분이 많았습니다. 시원한 경치가 그저 그만입니다. 동백꽃이 아직 많이 피지 않은 것도 있지만 역시 시원한 바다 조망은 남해의 상징이자 최곱니다. 다시 되돌아 나오면 오동도에서 동백꽃이 가장 아름답고 장관이라는 ‘동박새꿈정원’입니다. 찐한 커피로 동백꽃의 향을 음미해봅니다.





이곳 일대가 오동도에서 가장 먼저 동백꽃이 무리 지어 피며 아름답다고 합니다. 역시 동백나무 숲에도 주위와 다르게 붉은 동백꽃이 여기저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었습니다. 오동도의 동백나무는 다른 곳과 다르게 더욱 붉으며 처연할 정도로 아름답다 합니다. 거기에는 동백꽃의 슬픈 전설이 전해옵니다.









여인이 정절을 지키려고 오동도의 천길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져 죽자, 여인의 남편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알고 그녀의 시신을 거두어 오동도의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며 매우 가슴아파하였습니다. 그해부터 북풍한설이 몰아지는 겨울이 오면 여인의 슬퍼함을 달래려는 듯 무덤주위에 핏빛의 동백꽃이 피었으며 이를 여심화로도 부릅니다.





또한, 푸른빛을 띤 시누대도 오동도에 많은 것 또한 그녀의 정절을 상징한다 합니다. 원래 오동도에는 오동나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봉황새는 오동나무 열매를 좋아하며 예로부터 길조로서 용과함께 최고 권력인 황제를 상징합니다. 오동도에 봉황새가 몰려드니 이를 괴이하게 여겼던 고려말 요승 신돈은 공민왕에게 왕조에 불길한 징조라 고하여 오동도의 오동나무를 모두 베게 했다 합니다.





그 때문인지 지금은 오동도를 상징했던 오동나무는 찾아볼 수 없고 그 대신 수령 100년이 넘은 2.5km의 동백나무 꽃길을 수놓아 국내 최고의 동백꽃숲 탐방로가 되었습니다. 오동도를 여행하면서 화려한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만나보세요.


오동도 중앙광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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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여행/고흥가볼만한곳)거금도 적대봉 봉수대. 남해안의 많은 봉수대중에서 가장 완벽하다는 거금도 적대봉 봉수대 


고흥군 거금도의 최고봉 적대봉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적대봉 봉수대라 부릅니다. 봉수대 또는 봉화대라하고 요즘말로 통신수단을 말합니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보내는 통신 수단으로 변방에 설치하여 국난 등 위급 사항이 발생 시 이용했습니다. 특히 남해안에 설치된 적대봉 봉수대는 임진왜란 등 전란에서 23승 신화를 이룬 이순신장군의 유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금도 적대봉 봉수대 주소:전남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납딱납딱한 자연석 막돌을 차곡차곡 쌓았으며 높이는 4m, 둘레가 34m, 지름 7m인 원형 봉수대입니다. 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을 보면 서쪽으로 녹도와 접해있고 동쪽으로는 고흥읍에 접한다는 사화랑 봉수대의 기록이 남아 있는데 적대봉 봉수대가 사화랑 봉수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적대봉 봉수대는 조선 중기에 설치된 6개 간봉 중 하나로 전국 직봉 경로 제5 거인 돌산 방탑진을 기점으로 남해안과 서해안을 거쳐 한성을 잇는 봉수대였습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흑지두봉수대는 서쪽에 사화랑 봉수대와 응하고 동쪽에는 가화봉수대와 연결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금도에는 녹도만호가 주둔했으며 적대봉 아래 8부 능선에는 산성의 흔적과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습니다. 최근까지도 봉수대에는 봉홧불을 올렸던 흔적인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하며 국내 여러 봉수대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본모습을 잃지 않은 봉수대라 합니다.


 

 

 

적대봉 봉수대는 1502년 연산군 대에 왜군의 잦은 출몰에 대한 대비책으로 봉수대를 세웠다가 1758년 영조 34년 이전에 폐지되었습니다. 봉수대를 보면 모두 도지정기념물로 지정되는데 적대봉 봉수대는 아무리 찾아봐도 문화재 지정 기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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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여행/강진가볼만한곳)하멜표류기와 하멜기념관. 서양에 최초로 조선을 알린 하멜보고서의 하멜표류기와 하멜 기념관 여행


바다에서 표류하다 조선 땅의 제주도에 닿아 13년간의 조선에서의 억류 생활을 겪은 뒤 지은 책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하멜표류기'입니다. 네덜란드 선원이었던 하멜이 조선에서의 참담했던 생활을 하나의 기행문으로 남긴 보고서인데 ‘난선 제주도 난파기’와 부록에 해당하는 ‘조선국기’로 조선의 지리와 풍속, 군사와 교육등 당시 사회 전반과 겪었던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2016/09/14 - (강진산행)강진 수인산 수인산성 산행. 여기에도 산길이 있을까? 멋진 가을 산행이 기다리는 철옹성 같은 산성이 있는 강진 수인산.

2016/09/12 - (강진여행/강진가볼만한곳)전라병영성. 지금 한창 발굴조사가 진행중인 제주도와 전라도 육군 총지휘부였던 전라병영성 여행, 그 규모에 입이 쩍~~강진 병영성




 


하멜표루기는 1666년 하멜 일행이 조선을 탈출하여 본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가 1668년 조선이란 나라를 최초로 유럽에 소개했던 책입니다. 하멜은 왜! 자의든 타의든 조선 땅에 오게 되었을까요?? 하멜은 네덜란드 사람으로 동인도회사의 선원이었습니다.


 

 


네덜란드는 일본과의 무역거래가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일본은 포르투갈과 교류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조총으로 한반도를 짓밟기도 했는데 단교하고 다시 네덜란드와 교류하여 유럽의 신식문물인 양학과 난학을 받아들이는 등 개혁개방을 추진하여 일본은 경제부흥을 일으키는 토대를 마련하면서 조선을 강제 병합하기에 이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그리 당하고서도 당시 정치꾼은 정신을 못 차리고 조선 말기에 일본에다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아픔을 당했습니다. 그 아픔이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져 오는 것을 보면 참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멜 돌담길:병영면에는 하멜 돌담길이 있습니다. 호박만한 크기의 돌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돌담길과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또한, 돌담의 높이는 2~3m로 병영성의 군사가 말을 타고 다녀 민가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집안 내부를 볼 수 없게끔 높이 쌓았습니다. 흙 담에다 돌을 일렬로 쌓지 않고 납작한 돌을 15도 각도로 기울려 한방향이 아닌 지그재그 형태의 빗살무늬로 쌓아 견고함을 더욱 높혔습니다. 이런 형태의 담장이 네덜란드 담장의 축조 양식이라 합니다.

 

 

 


동인도회사는 1602년에 설립되어 중국과 일본,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등과 활발한 해상무역을 펼쳤습니다. 주로 동양의 향신료와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된 청화백자를 유럽으로 가져가 엄청난 이윤을 남겼습니다.


 

 

 

 


하멜이 탄 배는 1653년 1월 10일 네덜란드에서 출발하여 6월 14일 타이완의 안핑까지 운항하였고 동인도 회사 본사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날씨가 변하면서 악천후를 만나 배는 좌초하였고 제주도의 모슬포 인근에 겨우 닿았지만 66명의 선원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38명이었습니다. 이로써 하멜 일행은 조선에서의 험난한 생활이 시작됩니다.


 

 

 

 


제주 목사였던 이원진이 이들을 체포하여 조정에 장계를 올렸으며 하멜 일행은 제주도에서 생활하면서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사정하지만 효종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에 선원 6명이 탈출을 시도하였고 실패로 끝나자 효종은 하멜 일행을 서울로 압송하라는 어명을 내립니다.


 

 

 

 


효종은 네덜란드 선원의 대포, 조총 등 신무기 기술을 활용하여 당시 추진하던 불벌계획에 이용하기 위해 이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고 박연의 휘하에서 군사훈련을 받도록 조치합니다. 그해 청나라 사신이 조선에 들어오자 조정은 양인을 억류하고 있다는 사실이 청나라 사신에게 오해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을 우려해 하멜 일행을 남한산성에 억류시켜버립니다.


 

 

 

 


일행 중 두 명이 빠져나와 청나라사신 앞에서 자신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하지만, 그마저 실패로 끝나고 하멜 일행 모두 전남 강진의 병영성에서 탈출 전까지 7년간의 유배 생활에 처해집니다. 하멜 표류기를 보면 유배생활 중 전라 병영성의 병마절도사가 총 5명이 바뀌었다 합니다.


 


 

 


풀 뽑기와 가벼운 청소 그리고 산에서 나무하기 등 호의적인 병마절도사도 있었지만 혹독하게 일을 시켜 입고 있던 옷이 누더기가 될 정도로 육체적인 노동을 강요했다 합니다. 1659년 현종이 즉위하고 조선은 가뭄과 홍수 등 천재지변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하멜표류기에는 이때의 상황을 “백성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산에서 도토리를 줍고 소나무 껍질을 벗겼으며 잡풀까지 뜯어 먹어야 했다”라고 당시 참담했던 상황을 기술하였습니다. 하멜 일행도 3년 동안의 생활은 말로 표현할 수없는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멜 일행도 역병과 굶주림에 생존자는 22명만 남게 되었고 조정은 이들을 순천과 남원, 여수 좌수영에 각각 분산 배치하여 수용하게 합니다. 하멜과 함께 11명은 여수의 좌수영으로 옮겨갔고 이곳에서도 기다린 것은 또한, 고된 노역과 배고픔이었습니다.


 

 

 

 


하멜은 고된 노역과 질병, 굶주림에 일행이 자꾸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탈출 계획을 세웠습니다. 먼저 타고 갈 배를 구입하는 게 문제였습니다. 하멜은 닥치는 대로 돈되는 일을 시작하여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탈출계획은 착착진행되어 당시 배삯의 두배를 주고 배를 구입하였고 1666년 드디어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을 성공하여 본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됩니다.. 당시 생존자가 16명인데 8명만 탈출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럼 강진군 병영성 앞의 하멜 기념관을 보겠습니다. 전남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80 하멜 기념관은 우리나라를 최초로 서양에 알린 하멜보고서인 하멜표류기의 저자 헨드릭 하멜(Hendric Hamel)의 생애와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 및 자매도시 네덜란드 호르큼 시와의 문화적 교류를 위해 개관하였습니다.


 

 

 

 

 

 


하멜 기념관의 건물은 타원형의 목조건물로 왼쪽 건물은 하멜이 처음 도착한 제주도를 상징하며 오른쪽 건물은 하멜이 일본 나가사키로 가기 위해 탓 던 조난선인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뜻한다 합니다.


 

 


하멜 기념관의 전시실은 ‘하멜보고서’ 외에도 하멜의 생애와 17세기 조선과 네덜란드의 사회 문화와 역사적 상황, 강진군과 네덜란드 호르큼시와 자매결연 등 주제별로 전시실을 꾸며 하멜 기념관을 더욱 알차고 풍성하게 꾸며놓았습니다. 하멜 기념관은 총 2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상설 전시 중입니다.


 

 

하멜기념관 사진으로 만나기


 

 

 

 

 

 

 

 

 

하멜보고서 원본 복제품

 

 

 

 

 

 

 

 

 

 

 

 

 

 

 

 


◆하멜기념관 관람정보안내

★하멜기념관 주소:전남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80

하멜기념관 전화:061-430-3318

관람시간:연중 09:00~18:00

휴관일:신장, 구정, 추석, 매주 월요일

관람료:무료

주차시설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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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여행/강진가볼만한곳)전라병영성. 지금 한창 발굴조사가 진행중인 제주도와 전라도 육군 총지휘부였던 전라병영성 여행, 그 규모에 입이 쩍~~


전라남도 강진에는 이름만 들어도 많은 군 병력이 주둔했음을 알 수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강진군 병영면이며 이곳은 지리적 역사적으로도 알 수 있는 게 1895년 고종 32년의 갑오개혁 때까지 조선 시대를 통틀어 500여 년 동안 전라도와 제주도를 포함하는 53주 6진을 총괄했던 전라도 육군의 총 지휘부가 있었습니다.









병영면에 전라 병영성이 설치되기 이전에는 오늘날의 광주시 광산구에 병마절도사 영이 있었지만 1417년인 태종 17년에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전라 병영성의 초대 병마절도사는 마천목 장군이었으며 병영성을 처음 축조하신 분입니다.





전라병영성 치성


전라 병영성을 세류성(細柳城) 또는, 설성(雪城)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마천목 장군이 꿈속의 계시를 받아 눈이 내린 자국을 보고 성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험준한 산세인 수인산을 등지고 평지에다 세운 성으로 남·북으로 긴 장방형에 전체 길이는 1.06km이며 높이는 3.5m, 면적은 93,139㎡입니다.





전라병영성 옹성


병영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7년 전쟁이 끝난 뒤인 1599년 선조 32년 도원수였던 권율 장군의 상소로 장흥으로 잠시 이전하지만 두 전란으로 파괴된 성곽을 보수하고 5년만인 1604년에 다시 지금의 병영성으로 옮겨왔습니다.







병영성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오면서 숱한 왜구와의 침략에 맞서다 1894년 12월 10일 동학농민전쟁으로 병영성이 동학군에 함락되어 폐허가 되자 1895년 고종은 갑오경장으로 병영성을 폐지하는 조처를 합니다.







강진 병영성은 또한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다 태풍에 좌초하여 표류하면서 제주도의 모슬포로 상륙하였습니다. 뒤에 하멜 일행은 전라남도 강진의 전라 병영성에서 7년간의 유배 생활을 하다 1666년 현종 7년 9월 4일 원래의 목적지였던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는데 조선에서 13년간 억류 생활이었습니다.







하멜은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가 1668년 ‘하멜 표류기’란 이름으로 서양에다 조선을 최초로 알리는 책을 출간합니다. 병영성은 이방인 하멜의 7년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입니다.





전라 병영성은 2012년도의 1·2·3차 발굴조사에서 전라 병영성의 북서쪽 일원을 조사하여 건물지 15곳과 연지 4곳, 담장과 배수로, 우물 등의 유구 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여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발굴조사에서 15곳의 건물지를 확인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슈는 객사 터의 발굴입니다. 정면 11칸에 측면 4칸으로 그 규모가 54m*18m 크기로 상당히 큰 규모를 가졌습니다. 앞면 15칸, 옆면 5칸인 우리나라에서 목재 건축물로 두 번째로 크다는 여수 진남관의 규모가 54.5m*14m 입니다. 따지고 보면 규모 면에서는 진남관보다도 더욱 크고 웅장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객사 건물은 당시 발굴조사에서 3차례 축조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1차 때는 발굴 유물인 기단의 배열과 초석, 온돌 등에 근거하여 조선 초기로 보이고 2차와 3차도 기단의 축조와 발굴된 유구 등에서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객사가 있는 서쪽에는 4개의 연못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병영성의 식수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연못 터 사이에서 건물터 3곳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연못의 크기는 큰 게 27m*20m*1.8m였고 당시 문헌의 기록을 보면 연못 터 사이의 건물이 연희당 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연희당은 병영성의 최고 책임자인 병마절도사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거나 부하장수들과 연회와 회의장소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 외곽을 둘러쌓은 성은 동서남북에 성문 앞을 반월형으로 가려 성문을 보호하는 작은 성인 옹성을 두른 성문에다 네귀퉁이와 동·서쪽벽은 성벽에서 돌출하여 쌓은 성인 치성을 각각 2개씩 복원하였습니다. 발굴에서 남서쪽에는 두 곳의 배수구 시설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필자가 이번에 강진을 여행하면서 전라 병영성의 규모가 대단하다하여 병영성을 찾았습니다. 현재 강진 전라 병영성은 2016년 4월 5일~2016년 11월 14일까지 160일간 5·6차 정밀 발굴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병영성은 지금 먼지가 펄펄 날리며 한창 발굴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지난번 남측의 4차 발굴조사와 연계하여 남측의 5차와 남동측의 6차 발굴이 무더위 속에서도 건물의 부재인 작은 파편이라도 찾는다는 일념으로 땀방울을 쏟아내었습니다.





 


현재 사적 제397호로 지정된 전라 병영성은 외곽인 성벽과 동서남북의 성문, 문루 등을 복원했다면 이번 발굴조사는 전라 병영성 관련 유구의 잔존 규모 등을 정밀히 조사하여 병영성의 내부인 여장 복원공사와 성 내부의 건물 및 주요시설 복원을 위한 추가 발굴조사로입니다. 모든 발굴조사가 완료되면 복원할 전라 병영성의 웅장한 건물 모습이 정말 기대됩니다.


전라 병영성 주소: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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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화순여행)옹성산 철옹산성. 완벽한 철옹성을 뜻하는 옹성산 철옹산성 여행. 옹성산 옹성산성


우리나라에는 어디를 가드라도 많은 산성이 원래 모습은 잃고 허물어져 남아 있습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그리고 조선시대, 더군다나 임진왜란 때는 왜적이 쌓았다는 왜성까지도 해안가 주위로 있는데 방어와 공격, 지원을 위해 전략적 요충지마다 돌과 흙으로 쌓은 산성의 흔적입니다.




◆화순군 가볼만한 여행지◆


☞2012/06/22 - (전남화순여행) 화순군의 유일한 국보가 있는 쌍봉사 둘러보기, 철감선사 탑과 탑비의 섬세함에 놀래



 

그중 일전에 ‘하늘이 내려준 산성’이란 뜻인 구미 천생산성을 본적이 있습니다. 사방팔방 360도가 까마득한 절벽이라 완전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라남도 화순에서도 도저히 깰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완벽하여 철옹성이라 부르는 산성이 있었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완벽하다는 ’철옹성‘을 뜻하여 산성의 이름까지도 철옹산성(鐵甕山城) 또는 옹성산성(甕城山城)이 되었습니다. 철옹은 ’쇠가마‘를 뜻합니다. 쇠로 만든 가마솥을 무쇠솥이라고도 합니다. 잘 깨지지도 않고 찌그러지지도 않으며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솥으로 그와 같은 난공불락의 산성을 철옹성이라 합니다.


 

 

이번 화순여행에서 발품을 팔아 옹성산에 쌓은 옹성산성의 애칭인 철옹산성을 만나고 왔습니다. 철옹산성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전남 화순의 동복호에 솟은 적벽 주위를 막은 산성입니다. 동복면과 북면, 이서면에 걸쳐 있는 해발 약 583m 옹성산에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쌓은 포곡식 산성입니다.


 

산은 높지 않으나 깊은 계곡을 적절히 이용하여 쌓은 철옹산성은 높이가 약 4m에 산성의 길이는 약 5,400m입니다. 산성은 양쪽 벽을 돌로 쌓은 협축법과 한쪽은 돌로 쌓고 다른 쪽은 흙을 쌓은 편축법을 적절히 이용한 산성은 해발 275m~550m에 아직 그 형태가 남아 있습니다. 철옹산성의 축성연대는 고려말로 보고 있으며 바다 건너 찾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산성으로 알려졌습니다.


 

장성의 입암산성과 담양의 금성산성과 함께 전남의 3대 산성에 꼽을 정도로 풍부한 수원과 넓은 활동 공간 그리고 바깥의 적에 노출되지 않으며 유사시 군사는 물론이고 인근 주민도 산성으로 몸을 피해 싸울 수 있는 규모를 갖추었습니다.


 

옹선산은 옹암과 쌍두봉, 바위 병풍인 적벽 등 좌우로 옹립한 바위 절벽으로 사람의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철옹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에 옹성, 옹성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습니다.


 

화순옹성산


전라남도 기념물 제195호.

철옹산성(옹성산성)주소:전남 화순군 동복면 안성리 산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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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광양여행)백운산자연휴양림. 걷기 좋은 솔숲길과 산막에서 즐기는 휴식이 꿀맛일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여행.


 전남 광양시 옥룡면 벽계산 옥룡사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옥룡사지는 풍수사상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처음 절터를 잡고 입적할 때까지 35년을 머물렀던 곳입니다. 도선국사가 이곳의 지기를 보강하기 위해 손수 심었다는 동백나무는 수령이 100~300년에 이르는 아름드리 나무로 3~4월에는 동백나무 7,000여 그루가 동백꽃 길을 만들어 일대 장관을 연출합니다.

 





◆광양 백운산 자연휴양림 인근 여행지


☞2016/03/05 - (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 백운산~신선대 산행. 뼈에 이롭다는 고로쇠와 매화꽃 산행지 광양 백운산~신선대 산행


2016/03/01 - (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 산남리 남정지석묘군.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현대 무덤이 함께하는 광양 산남리 남정지석묘군을 보며 명당은 똑 같은 모양입니다.


2014/10/22 -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 망덕포구 시인 윤동주 유고 보존집 정병욱 가옥 여행하기...


2014/10/14 - (광양여행/하동여행)광양 하동 걷기 좋은 섬진강 둘레길. 광양 망덕포구~하동 하동송림 섬진강 둘레길을 걷다.1


2014/09/13 - (전남여행/광양여행)진월면 망덕포구. 섬진강과 호남정맥의 끝과 시작인 망덕포구 가을 여행을 떠나보세요.망덕포구


 

이번에 광양여행에서 옥룡사지 동백림도 둘러보고 인근에 있는 백운산자연휴양림 탐방도 함께하였습니다. 백운산자연휴양림은 역시 그냥 자연휴양림하고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쭉쭉 뻗은키 큰 소나무하며 이름 모를 식물과 야생화에 그 너른 품의 백운산을 마음껏 활보하는 동물까지 백운산은 생태·경관 보호지역에다 야생 동·식물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역시 이름값을 하였습니다.





 

 

이 중심에 백운산 자연휴양림이 자리하며 누구나 백운산자연휴양림을 탐방하면 건강이 따라올 것 같습니다. 맑은 공기와 차다 못해 얼음장 같은 샘은 도시에서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치유하고도 남을듯합니다.


 

 

백운산자연휴양림의 수목은 삼나무와 편백 등 인공으로 조림된 숲과 자연발생적인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천연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휴양림에는 산막과 숙박동, 물놀이장, 황톳길과 운동장 등 숙박과 야영시설을 함께 갖추고 요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오토캠핑 시설까지 갖춘 최고시설의 휴양지입니다. 가족과 함께 즐기는 자연학습장 또한 최대 볼거리로 봄에 산책삼아 솔숲 길을 걸어보았습니다.


 

 

 

백운산 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

 

 

 

 

 

 야영장(평상)

 

 

 

 

 

 

 

 

 

 산막의 케빈하우스

 

 옥련사지 동백림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입장료와 주차요금 안내◆ 

(이하 백운산자연휴양림 홈피 캡쳐)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부대 시설 요금표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안내도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입장시간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에 대해 알아보기

 

◆광양 백운산 자연휴양림 영업정보

주소:(57702)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백계로 337

★문의전화:061-797-2655~6

평일 오전9시~오후6시, 단 토·일·공휴일 휴무

백운산 자연휴양림(생태숲)예약 홈페이지http://bwmt.gwangy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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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익산여행)고스락전통장. 3,500개의 장독이 모여 장관을 연출하는 고스락 전통장의 진풍경을 만나보세요 

 

익산여행을 하면서 황등비빔밥을 먹으려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찾았던 유기농 전통장류 전문업체 ‘고스락’입니다. 고스락은 약 2만여 평의 면적에 3,500개의 전통항아리가 줄지어 선 것을 보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장관이었습니다.


 장독이 모여 있는 이런 진귀한 풍경은 쉽지 않은데 익산여행에서 이리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스락은 으뜸, 최고라는 순우리말로 3,500개의 장독에서 최고의 전통장류가 발효 숙성된다고 하니 유기농 장류도 장류지만 아주 큰 장독의 연출이 정말 멋졌습니다.

 특이한 모양의 도기를 만나고 전통장이 발효하는 소리를 귀로 듣고 냄새도 맡아보며 눈으로도 느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고스락은 진사에게도 이름난 출사지라 그런지 우리가 찾았던 이날도 작품을 담는 사진사분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 그런 경지가 없어서 그런지 크고 많은 전통 장독과 특별한 모양의 도기만 눈에 들어왔는데 전문으로 사진을 담는 사람의 눈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특별한 무엇이 장독에서 느껴지나 봅니다.

 사진을 찍는 분도 물론이며 저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분도 고스락 방문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일요일 찾아갔는데 고스락과 음식전문점 이화동산은 휴무였습니다. 일요일은 휴무지만 고스락의 장독은 구경이 가능합니다.

 유기농 전통 장류 업체인 고스락은 농민들이 직접 키운 100% 유기농 콩만을 직접 구매하여 천일염과 익산의 청정수에 맑은 공기로 발효한 전통장이라합니다. 된장, 고추장, 간장, 양파식초, 감식초를 하나하나 정성으로 빚어내며 독아지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무조건 국내산 유기농이라고 홈페이지는 설명합니다. 익산 함열읍의 고스락전통장에서 잠시 장독구경 한번 해보세요.

 ◆고스락 전통장독 사진으로 구경해보세요◆

 

 

 

 

 

 

 

 

 

 

 

 

 

 

 

 

 

 

 

 

 

 

 

 

고스락 전통장 영업정보

★상호:고스락 전통장

고스락 주소:전북익산시 함열읍 익산대로 1424-14

고스락  전화:063-861-2280

고스락 전통식품제조:된장, 고추장, 간장 감식초 양파식초

 

 상기 팸투어는 전북도청, 전북관광협회에서 초청 진행했던 팸투어에 참가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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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익산여행)익산 미륵사지. 세계문화유산 익산 미륵사지에서 백제의 예술성이 집약된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하여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익산 여행하면 빠지지 않는 곳이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입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는 익산 미륵사지를 찾았는데 그 이유는 익산에서 가장 유명하며 국보 11호 미륵사지 석탑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처럼 딱 찾아갔더니 수십 년째 복원공사를 진행한다고 모두 해체하여 미륵사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륵사지의 엄청난 규모를 보고 놀랐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습니까? 어쩔 수 없이 미륵사지에는 석탑 이외에도 당간지주 등 많은 볼거리가 산재해 있습니다. 그럼 미륵사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미륵사는 백제시대 최고 최대의 사찰로 알려졌으며 미륵사 창건에 관해서는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와 ‘금제사리봉영기’에 잘 남아 있습니다.

 미륵사 인근 오금산에 홀어머니와 함께 마를 캐며 생활하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이가 바로 백제 30대 무왕(재위 600~641)입니다. 서동(훗날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훗날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을 사모한 나머지 서동은 꾀를 내어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을 만난다”는 서동요를 아이에게 가르쳐주며 퍼뜨리게 합니다.

 이에 신라 왕실에서는 왕실의 권위가 실추되었다며 선화공주를 귀양 보내었고 이때를 놓치지 않은 서동은 귀양 가는 선화공주를 구하여 백제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뜬금없는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냐고요. 서동은 무왕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선화공주는 백제의 왕비에 오릅니다.

 그러면서 선화공주는 무왕에게 청하여 익산에다 미륵사(왕흥사)를 창건하는데 지금의 미륵사지가 선화공주에 의해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삼국유사를 보면 무왕에 오른 서동은 왕비 선화와 함께 익산 용화산(지금의 미륵산)의 사자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용화산 아래에 있는 연못을 지나는데 물속에서 세 명의 미륵불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신기한 상황에 놀란 왕비는 세 명의 미륵불을 위해 절을 지어줄 것을 무왕에게 간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절을 짓기 위해 미륵 삼존불이 출연했던 연못을 메워 탑과 불전을 세 곳에 각각 세우고 미륵사라 한게 창건 설화입니다.

 미륵사지 석탑에서 나온 ‘금제사리봉영기’에는 “백제 무왕 639년 왕비였던 사탁적덕의 딸이 발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륵사의 탑과 불전을 세 곳에 배치한 것은 현재는 보살이지만 미래에는 부처님을 이어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불인 미륵이 성불하여 용화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설법을 세 번 베풀어 중생을 구제하는 모습을 나타낸다는 뜻이라합니다.

 미륵사는 독특한 가람 배치뿐만 아니라 석탑 건립, 금당을 받치는 기단의 구조, 석등과 석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등은 뛰어난 백제 예술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륵사는 통일신라 초기에 가장 융숭하였으며 1600년경까지도 미륵사가 존재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미륵사지에는 국보 11호인 석탑과 보물 236호인 당간지주, 보물 1753호인 금동향로 그리고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43호인 석등 하대석과 사리장엄구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1992년에는 동원구층석탑을 고고학과 건축학적인 고증을 통해 복원하였습니다.

 이제 미륵사지로 들어가겠습니다. 현재 미륵사지에는 두 개의 연못이 복원되어 있으며 사찰에서 연못의 의미는 극락세계를 상징한다합니다. 미륵사지의 동·서편 연못은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당간지주와 남회랑을 만들면서 함께 만들었습니다.

 동쪽 연못은 동·서 길이가 51m이며 남·북은 48m이고 서쪽연못은 동·서 길이가 54.5m, 남·북은 41m로 두 연못 사이에는 동·서로 50.5m 넓이의 길이 남회랑 중앙 계단까지 이어집니다. 특히 서쪽 연못에 비친 미륵산과 석탑의 반영은 말로서 미륵사지의 아름다움을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직접 두 눈으로 보아야만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습니다.

 

 아쉽지만 폐사가 되기 이전 연못에 비친 온전한 미륵사의 아름다운 반영을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필자를 즐겁게 해 줍니다. 회랑은 신성 공간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역할인데 중심건물이나 일정한 구역을 둘러싸는 긴 복도형태의 건물을 말합니다. 미륵사지의 남회랑은 중심 건물인 삼원가람 앞에 통일신라초기에 만들었습니다.

 

 동쪽과 서쪽 회랑은 남·북 길이가 69.9m, 남쪽 회랑은 동·서 길이가 190.4m에다 폭은 각각 4.8m입니다. 남회랑의 남쪽에 문이 세 개 있었으며 이는 삼원가람의 남북중심축에 맞추어 남문을 세운 것입니다.

 

 

 

 

 

 

 

 절에서 행사나 의식 등을 할 때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사찰 입구에 세우는데 그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잡아주는 똑같이 생긴 두 돌기둥을 지주라 합니다.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남회랑 안에 두기를 세웠는데 당간은 없고 지주만 남았으며 현재 보물 제23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동원구층석탑은 1974년 동원탑지를 발굴하고 출토유물을 조사하여 미륵사지석탑(서탑)과 같은 백제 때 석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원 탑지에 남아 있는 기단석과 옥개석, 노반 등 각종 부재와 그리고 미륵사지 석탑을 보며 고증을 거친 후 동원구층석탑은 1991년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992년에 끝마쳤습니다.

 복원된 동원구층석탑은 하층 기단의 한 변은 12.5m이며 상층기단은 10.5m의 2층 기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탑 높이만도 지면에서 상륜부까지 27.8m의 초대형 석탑으로 탑에 단 풍탁은 동원 탑지에서 나온 백제 금동풍탁을 복제하여 달았습니다.

 탑의 복원에 사용된 석재는 기존 동원 탑지에서 출토된 부재와 같은 재질인 익산 황등의 화강암을 사용하였으며 또한, 기존 동원탑지의 기단석과 몸돌 32개를 함께 사용하여 총 2,700톤의 화강암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석탑 복원 기록과 사리장엄은 5층 심주석에 봉안하였습니다.

 이곳은 동원 승방지입니다. 승방은 스님들이 기거하는 공간입니다. 미륵사지에는 승방지가 총 3개소가 있으며 동원과 서원 승방지는 길이 65m에 폭은 14m이며 방 두 개가 한조로 4조씩 있습니다. 동원의 승방지는 발굴당시 구들시설인 아궁이는 물론이며 사찰 바깥으로 출입하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858년 ‘대중 12년, 미륵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조각이 발견되었으며 북편 기단인근에서 백제 때의 치미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석등하대석

 

 

 

 이곳은 미륵사의 중심건물인 금당지입니다. 금당은 부처님을 모신 건물을 말하며 삼국유사에서는 연못에서 세 명의 미륵이 나타나자 연못을 메우고 그 위에 탑과 금당을 세 곳 두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발굴조사를 하면서 삼원의 가람 속에 각각 금당지가 있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금당지를 살펴보면 각각 남쪽과 북쪽에 계단을 둔 이중기단을 설치하였습니다. 기단내부에는 초석을 받치는 초반석 위에 기둥모양의 높은 초석을 놓아 지하 공간이 만들어졌고 초석의 윗면에는 마루를 깐 흔적인 홈이 파여 있습니다.

 

 미륵사지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미륵사지 석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원래 사찰에서의 석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미륵사지에서는 총 세 개의 탑이 있습니다. 서원에는 미륵사지 석탑이 있었으며 동원에는 동원구층석탑을 그리고 가운데 중원에는 목탑을 세웠음이 2009년 석탑 해체과정에서 발견한 ’금제사리봉영기‘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은 639년에 백제 무왕의 왕비가 발원하여 세웠으며 1층 가운데 기둥에 사리를 봉안하였다합니다. 미륵사지석탑은 우리나라 석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오래된 석탑으로 기단은 목탑 양식인 이중 기단을 했는데 이는 양식상 목탑에서 석탑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층 탑신의 각 면은 세 칸으로 나누었고 가운데 칸에 문이 있어 안으로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중앙에 사리를 봉안한 사각형 기둥이 있고, 탑의 외면은 목조양식인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민흘림 기법의 사각 돌기둥입니다. 사각 돌기둥 위에는 창방과 평방을, 그 위의 받침돌이 지붕돌을 받치며 네 귀퉁이는 살짝 올라갔습니다.

 2층부터는 몸돌과 각 부분이 대체로 간략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원래는 9층 석탑으로 추정하지만, 현재 북동쪽 부분이 6층까지 남았으며 높이는 16.24m로 그것도 보수와 정비를 위해 2001년 해체작업을 시작하였고 2016년 복원될 예정입니다.

 필자가 미륵사지를 보면서 너부러진 부자재가 얼마나 많은지 석탑의 퍼즐을 끼워 맞추는 것도 예삿일이 아닐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언제쯤 복원되어 미륵사지 석탑을 보게 될지 지금으로써는 가늠하기 어려워보였습니다.

 그 외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는 미륵사지 석탑에서 나온 사리장엄을 전시중입니다. 2009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과정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에서 사리 내호와 외호, 사리봉안기 등 19종 4900여점이 나왔고 6종의 원형합에서 금제 고리, 진주, 곡옥 등 4,800여점이 추가로 발견되었습니다. 가로 15.5cm, 세로 10.5cm의 사리봉안기는 백제왕비의 희사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된 배경 등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입니다. (금동제 사리 내호와 외호, 미륵사지 석탑 모형은 익산 보석박물관에서 모형을 찍었습니다.)

 

 

 

 

 

 

 

 

 

 부산에서 익산여행을 가는 길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미륵사지 석탑을 본다는 설렘으로 찾았는데 정작 석탑은 해체되었고 아쉬움이 참 많았던 여행입니다. 그래도 그 많은 석탑의 부자재를 볼 수 있었지만, 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완벽하게 끼워 맞추는 과정도 예삿일이 아니게 보였습니다. 하루빨리 복원되어 제 모습을 갖춘 위풍당당한 미륵사지 석탑을 보게 될 날을 기대해봅니다. 미륵사지는 사적 제150호이며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지구로 등록 되었습니다

 

◆익산미륵사지 안내정보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오전 9시~오후 6시

휴관일:매년 1월1일, 매주 월요일

익산 미륵사지 관람문의:063-290-6799

익산 미륵사지 주소: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428

주차장 있슴

상기 팸투어는 전북도청, 전북관광협회에서 초청 진행했던 팸투어에 참가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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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익산여행)익산보석박물관. 보석 싫어하시는분 손들어 보세요? 없죠, 주얼리. 보석이 궁금하다면 주얼 팰리스를 운영하는 익산보석박물관 강력추천.


세상에 만상에 사람치고 보석 싫어하는 분 있으면 손들어보세요? 하면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보석은 우리에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혹 모르죠. 그래도 저는 보석 싫어합니다, 하는 사람이 있을지요? 그러나 그런 분도 꼭 몸에는 주먹만 한 알이 박힌 금붙이 하나쯤은 목에 걸거나 손가락에 끼고 있습니다. 그만큼 아름다운 빛을 발산하면서도 탐나는 귀한 물건이라 보석이라 하나봅니다.



 익산·정읍·전주여행을 하다가 익산보석박물관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왜! 하고 많은 곳 중에서 익산에 보석박물관이 생겼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아마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당시 백제인의 손재주가 아주 뛰어나 출토되는 문화재를 보면 정교한 솜씨가 남다릅니다.

 특히 금세공술은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를 정도로 찬란하여 이런 모든 기술을 일본까지 전해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또한, 백제인들이 신라에다 금세공기술은 물론이며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등 뛰어난 예술작품을 많이 남긴 것을 보면 역시 삼국 중에서 백제인의 손재주는 남달랐나봅니다.

 그런 의미로서 세공기술의 결정체인 보석박물관이 백제 미륵사지가 있는 익산에 생기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여겼습니다. 그래서 익산여행을 하면서 궁금하여 보석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익산보석박물관은 왕궁보석테마관광지에 있습니다. 141,990㎡의 면적의 왕궁보석테마관광지는 1996년 공사를 시작하여 6년만인 2002년 5월에 완공하였습니다. 왕국보석테마관광지에 가장 중요한 시설인 보석박물관은 6.215㎡ 면적에 지하1층에 지상 2층 건물로 보석을 형상화한 특이한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보석박물관 내부는 수장고와 기계실이 있으며 1층에는 기획전시실과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 쉼터와 카페테리아, 2층에는 보석박물관의 핵심전시설인 상설전시실을 두었습니다. 전시실 안에는 진귀한 보석과 원석을 전시중이며 그와 더불어 보안 또한, 철통같았습니다.

 그리고 화석전시관도 갖추고 있어 보석박물관은 여성분이나 결혼을 앞둔 부모님이 좋아한다면 아이에게는 화석과 공룡 모형이 전시된 화석 전시관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귀금속 보석 판매장인 ‘주얼팰리스’를 운영 중인데 국내외 60여 업체가 입점하여 액세서리부터 보석에 이르는 고급 주얼리까지 장인의 기술이 집약된 눈부신 보석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곳으로 보석 좋아하시고 즐겨 착용하시는 분은 한번쯤 가보면 정말 눈을 확 사로잡습니다.

 저도 아이들이 모두 2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서는지라 ‘주얼팰리스’에 눈길이 가는 게 이게 어쩔 수 없는 부모님 마음인가 봅니다. 그리고 야외에도 다양한 조형물이 전시중인데 야외무대, 보석광장, 칠선녀상과 김중배가 심순애에게 선물 했을법한 어마어마하게 큰 보석반지 등이 있습니다.

 익산 보석박물관의 화려한 금세공기술의 집약체인 보석을 익산박물관에서 만났다면 이제 백제인의 예술품인 익산 미륵사지의 석탑 조성기법과 석탑에서 나온 사리 장엄구를 만나보면 백제 예술의 혼을 느끼게 됩니다.

 ◆익산보석박물관 사진으로 만나기◆

 

 

 

 

 

 

 

 

 

 

 

 

 

 

 

 

 

 

 

 

 

 

 

 

 

 

 

 

 

 

 

 

 

 

 

 

 

 

◆익산보석박물관 영업정보◆

★상호:익산보석박물관

★주소:전북 익산시 왕궁면 호반로 8

★관람문의:063-859-4641

★관람시간: 10:00~18:00

★익산보석박물관 휴관일:매주 월요일과 매년 1월1일

매표시간:10:00~17:00

익산보석박물관 관람료:성인 3천원, 청소년·군인 2천원, 어린이 1천원 (단체 할인가 적용)

단 6세이하 어린이와 65세 이상 경로대상. 익산 주민 신분증 제시시 50% 할인

★주차장 있슴

주얼팰리스 오픈시간:10:00~18:30

◆보석대축제 매년 4월과 10월(연2회)


상기 팸투어는 전북도청, 전북관광협회에서 초청 진행했던 팸투어에 참가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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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8 - (전북여행/전주·완주여행)전북관광자유권을 이용한 전주명소 경기전 전주동물원 전주자연생태박물관과 완주군명소인 고산자연휴양림 삼례문화예술촌 등 여행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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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0 - (전북여행/정읍여행)무성서원. 최치원과 7현을 배향하는 전북 최고 서원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가 확실한 9개 서원중하나 무성서원.


2015/12/09 - (전북여행/정읍여행)송참봉 조선동네. 100년전 조선시대 마을을 재현한 정읍 송참봉 조선동네에서 온돌방 체험 등 우리 전통 민속놀이를 경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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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2 - (전북맛집/정읍맛집)정읍동학농민혁명기념관맛집 송참봉 조선동네 들깨주막. 100년전 조선동네를 재현한 송참봉 조선동네에서 맛난 토종닭을 먹고 왔습니다.


2015/12/15 - (전북맛집/전주맛집)전주한옥마을 맛집 전주 종합경기장 맛집 현대옥 금암점.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 원조 현대옥 금암점.


2015/12/17 - (전북여행/전주여행)경기전 예종대왕 태실 및 비.조선 8대 임금 예종대왕의 태실 및 비가 전주한옥마을의 경기전에 있습니다.


2014/09/14 - (전북여행/전주여행)박진효자비. 하늘도 감복한 효자 죽정 박신 효자비 전주 향교 입구에 있습니다.


2015/08/20 - (전북여행/전주여행)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여행을 하다.


2015/08/21 - (전북여행/전주여행)전주향교. 전주한옥마을에서 빼놓을수 없는 여행지 전주향교. 전주향교


2015/09/01 - (전북여행/전주여행)오목대와 이목대. 조선왕조 발상지 오목대와 이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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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광양여행)광양 산남리 남정지석묘군.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현대 무덤이 함께하는 광양 산남리 남정지석묘군을 보며 명당은 똑 같은 모양입니다. 

 

요즘은 사람이 죽으면 매장보다는 화장이 많은 추세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종교인의 화장을 빼면 대부분 봉분을 올린 무덤이며 또한, 왕의 무덤을 능침이라 하여 모두 매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면 청동기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지 궁금합니다.




 흔히 청동기시대의 무덤을 지석묘 또는 고인돌이라 부르는데 역시나 대부분 매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흙이 아닌 바위 무덤입니다. 돌멩이인 지석을 받치고 그 위로 넓은 바위를 올렸는데 이를 고인돌 혹은 지석묘라 합니다. 전국적으로 고인돌은 참 많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바다가 가까운 곳의 평탄한 구릉지나 논밭 등에 무리지어 요즘으로 말하면 공동묘지를 이룬 곳도 있으며 아니면 달랑 하나인 개별적이 고인돌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위의 크기에 따라 죽은 자의 신분이 달라지는데 청동기시대 때나 삼국시대·고려·조선시대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이어져 와도 사자의 신분과 부에 따라 무덤은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보면 요즘 세상의 분묘와 전혀 다른 게 없어 보입니다. 죽으면 모두 똑같은 게 아닌 사후 세계도 현세와 같은 계급과 부자, 가난뱅이와 차등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현세에도 고생하며 살았는데 내세에서까지 영원히 죽지 않고 고생만 하고 산다면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이런 푸념을 늘어놓느냐고요. 아! 이번에 광양의 옥룡면을 여행하면서 ‘광양 산남리 남정지석묘군’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산남리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현재의 무덤이 함께 공존하였는데 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명당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입니다. 고인돌이 어떤 것은 아주 큰 바위였고 어떤 것은 아주 작은 바위였는데 고인돌 주인의 신분을 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광양시의 13개 군에서 약 269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다는데 이곳 산남리 남정지석묘군이 가장 많은 44기의 고인돌이 몰려있는 최대 지석묘군입니다. 남정지석묘군은 구릉의 등고선 방향을 따라 분포하고 있는데 대형 소형 등 다양한 크기의 덮개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지석묘군 입구에 덮개돌의 크기가 420cm*50cm*150cm의 장방형 평면형태인데 두 조각으로 깨져 있으며 지석 3개가 받치고 있습니다. 광양시 옥룡면 여행에서 잠시 들러 우리 조상의 옛 무덤인 고인돌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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