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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실록 5대 사고지는 오대산 마니산 적상산 태백산 묘향산이다,
그러나 묘향산에 있던 사고지가 적상산으로 옮겨와 보관을 하였다. 잦은 전란으로 조선왕실실록 사고지는 더욱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 선다.
그리고 관군을 배치하였어며 주변의 수호사찰에서 관리를 하였다.
태백산사고지는 각화사에서, 오대산은 월정사, 적상산은 안국사로 안국사의 사찰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조선실록 4대 보관지가 모두 남한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아마 북방에 있는 오랑케인 후금이 세력이 커짐으로 인해 사고지를 안전하게 하기 위함으로 보여진다 
마니산 사고지에서 보관하였던 실록은 서울대 규장각, 태백산 사고지는 부산의 국가기록원, 오대산사고지의 실록은 일본에 반출되어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 되었고 일부 일본 동경대에 있던것을 소진본 47책을 환수하여 서울대 규장각에서 보관을 하고 있으며 적상산사고지에서 보관을 하였던 실록은 6.25전쟁때 사라졌는데 현재 김일성대학에 보관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복원된 적상산 사고지 모습입니다. 아래에는 적상댐 양수 발전소의 상부댐으로 인해 물에 잠기게 되는 것을 현재 위치로 옮겨와 1997년 부터 복원을 하였다 합니다.

적상산 사고지 우측 건물에  정면에 붙어 있는 사각 현판



적상산 사고지에 대해 살펴보면
전라북도 기념물제88호
위치는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로 현재 적상댐 위에 안국사 올라가는 도로 옆에 복원이 되어 있다.
조선시대 조선왕조 실록과 족보를 보관하던 사고였다. 천혜의 절벽으로 둘러쳐진  적상산성내에 실록을 보관하기위해 광해군6년(1614) 실록각을 짓고 4년 뒤 1618년 선조실록을 보관하였다. 적상산에 사고가 설치되면서 무주현에서 무주도호부로 승격을 하였어며 무주도호부사는 수성장과 토포사를 겸하였다 한다.
인조 12년(1634)년 평안도 묘양산에 보관하고 있던  있던  조선왕조 실록을 일부 옮겨왔다. 인조19년(1641)에 선원각을 건립하고 선원록을 봉안하였다.
사고내에는 승장청, 군기고, 화약고, 수사당, 문루등이 있었서며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록, 의궤등을 보관하였다.
1910년 일제에  병탄된후 조선왕조실록등이 서울규장각으로 옮겨지면서 사고는 황폐화 되었다.
1992년 양수발전소 상부댐에 의해 사고지가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유구가 옮겨져 1997년 선원각, 1998년 실록각이 복원되었다. 


두동의 건물로 선원각과 실록각을 1997년 98년에 각각 복원을 하였다.

<내부에 전시되고 있는 자료들>




4대 실록지의 현재 보관 상황과 사고 변천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적산산성과 사고의 위치 안국사등 그때 당시의 모습을 지형물로 복원을 하여 알기 쉽게 해 놓았다.

 사고 건물 밑으로 들어서면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내부를 관람하도록 되어 있으며 많은 관광객이 조선왕조실록등을 보고 있다.


 
무주군청 문화관광 사이트에 더욱 자세하게 설명 되어 있습니다.
http://www.mujutour.com/tourplace/index.jsp?page_gubun=page7_view&no=121&page=1&resource_gubun=CP&resource_gubun2=CP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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