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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남원여행)춘향골 남원시 도심속 향기원. 남원시민이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도심속 향기원의 작품으로 만나다.


  남원에 1박2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남원 지리산 바래봉 아래에 있는 허브밸리의 눈꽃축제가 3회를 맞으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남원 여행은 눈꽃축제도 볼 겸하여 남원의 춘향골로 겨울 여행을 떠났습니다.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지난 주말이 근래에 보기 드물게 포근한 날씨였습니다. 


눈꽃축제를 보고 난 뒤 저녁을 먹고 남원에 있는 지인이 지난 12월에 처음으로 트리 축제가 시작되었다며 그곳으로 안내를 하겠다하였습니다. 요즘 연말과 연초에는 각 지방마다 크리스마스트리축제와 빛 축제, 불꽃축제등을 다양하게 개최하여 많이 보았던 터라 시큰 둥 하며 있는데 남원 시민이라고 남원 홍보에 열을 올렸습니다. 


장소는 남원역이 옮겨가면서 그 부지에 ‘도심속 향기원’이란 꽃동산을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제공을 하였는데 겨울철을 맞이하여 남원시에서 야심차게 시작한 프로젝트라하며 꼭 봐야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겨울철에 시민의 화합차원과 아름다원 남원시를 알리기 위해서 올해 겨울에 처음으로 시도를 하였다는 트리축제. 

기존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향교동 농협 오거리에 대형 트리를 설치하였는데 올해는 그 경비로 시민들의 호응과 홍보효과 그리고 겨울철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트리 조명을 시민과 함께 꾸렸다합니다. 남원시의 도심속 향기원에 가면 다양한 트리 작품들에 눈길이 갑니다. 각 작품마다 출품자의 단체이름이 기재되어 있으며 남원 시민으로서는 더욱 애정이 가는 트리축제일 것 같습니다. 


남원시 관광발전협의회에서 시민과 함께 트리 만들기 행사를 추진하여 20여팀이 참여를 하였다합니다. 총 300백만원의 시상금을 걸고 열었던 트리 대회는 시민과 단체 중 여덟 작품이 뽑혔다합니다. 올해 처음으로 시작한 트리 만들기는 시민들의 열렬한 호응에 바래봉 눈꽃축제와 함께 겨울철 남원시의 홍보와 관광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남원의 친구덕분에 아직은 서툴지만 시민들의 정성이 담긴 트리작품 잘 보고 돌아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내년에도 열리는 크리스마스트리축제를  더욱 기대해봅니다.


 ◆남원시 도심속 향기원 트리축제 구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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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눈꽃, 동심으로의 여행 지리산 바래봉 허브밸리 눈꽃축제 남원시 초청 여행블로거기자단 팸투어

전라북도 남원시 초청 제3회 지리산 남원 바래봉 눈꽃축제 팸투어가 다음,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블로그에서 여행카테고리를 운영하고 있는 여행블로거들이 모인 최초의 모임인 여행블로거기자단을 대상으로 1월 11일(토요일)~ 12일(일요일) 1박2일 일정으로 진행됩니다.

 



남원 지리산 바래봉 허브밸리 눈꽃축제 남원시 초청 여행블로거기자단 팸투어에서는 광한루원, 지리산 바래봉 눈꽃축제장, 압화전시관 등 백두대간 생태탐방, 도심속 향기원 트리경관, 지리산 바래봉 등산- 여성산악인 오은선 대장 과 함께 하는 트레킹/남원시 자유취재 옻칠체험/구남원역 옻칠체험관 등 전라북도 남원시 문화 관광 축제 여행지 맛집 전통시장 농촌체험 취재가 진행됩니다.



제3회 지리산 남원 바래봉 눈꽃축제 팸투어

운봉읍 용산리 지리산허브밸리 / 바래봉 일원

눈썰매, 얼음썰매, 빙벽체험, 눈사람, 눈조각, 연날리기, 눈싸움 등

주관: 운봉읍 애향회와 운봉읍

후원 : 남원시청

주제 : '겨울·눈꽃, 동심으로의 여행'

기간 : 2013년 12월24일 ~ 2014년 2월 9일



다음, 네이버, 싸이월드, 티스토리, 야후 에서 여행 관련 블로그 를 운영하고 있는 여행블로거 들의 자발적 모임인 여행블로거기자단 은 지자체및 기업에서 초청하는 팸투어에 참가 한 후 각자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관련 기사를 올려 우리나라 문화 관광 여행 명소를 온, 오

프라인을 통해 알려 국내 관광산업을 활성화 시키고자 모인 서포터즈 성격의 모임입니다.



여행블로거들이 개별 여행블로그에 올린 여행 기사들은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여행하는 개별여행(가족여행) 및 단체 여행객들이 여행을 가기전에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여 여행일정을 계획하는데 기본 자료가 됩니다



 

여행블로거들이 자신의 여행블로그에 올린 문화, 관광, 맛집, 농촌체험, 농수산특산물, 맛집 포스팅은 지자체를 찾는 관광객 다변화 및 유치극대화, 지역의 다양한 연계관광자원의 발굴 및 여행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l. 팸투어 주제 : 남원 지리산 눈꽃축제 팸투어

2. 장 소: 전라북도 남원시청 관내

 

3. 일시: 2014년 1월 11일(토요일)~ 12일(일요일) 1박2일

4. 진행: 전라북도 남원시청

@ 블로거 참가 인원 : 여행블로거 16명

@ 참가신청 마감일 : 12월 31일(화요일) 13시

--------------------(진행상의 사유로 조기 마감될수 있습니다)

 

 

@ 참가신청자격 및 선정 우선 순위

1. 여블단(팸투어, 포스팅, 게시판, 댓글) 활동이 적극적인 회원

2. 블로그 댓글 과 추천 등 여블단 블로그 방문이 활발한 회원

3. 단장이 팸투어 참가를 특별 초청한 사람

4. 게시판 활동이 활발한 새내기 정회원 10% 내외 참여 가능

5. 블로그 운영과 카페 활동을 긍정적으로 하는 정회원 이상 활동우수자

@ 팸투어 참가회비: 10,000원(1박2일 일정/회칙에 의한 기자단 운영경비)

@ 일반진행경비는 주최 측에서 부담 합니다.

@ 준비물 : 카메라와 간단한 필기도구, 세면도구(수건포함)

@ 참가자 할일 : 팸투어 이후 빠른 시일내에 5개 이상 블로그와 카페에 포스팅

@ 팸투어를 처음 신청하시는 회원은 여행자보험 가입을 위해 주소 및

주민번호를 카페지기에게 이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여블단장 : 강경원(마패) faron@hanmail.net / 문의 - 010-5482-1325

@ 신청게시판 :

여행블로거 기자단 카페

다 음 : http://cafe.daum.net/tourbloger

네이버 : http://cafe.naver.com/tourblo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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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임실여행)성수산 상이암. 왕건과 이성계가 기도를 올렸다는 왕의 산 성수산 전설.


임실의 성수산은 장수의 팔공산에서 흘러 내려온 능선으로 이전에는 성수산도 팔공산으로 불리었다한다. 지금의 성수산으로 바뀌게 된 것은 태조 이성계의 전설로 인해 성수산으로 부르게 되었고 임실의 주산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성수산의 지세와 산세가 보통이 아니었는 것 같다.고려와 조선을 세우는데 공헌을 한 두 스님이 일찍부터 이 산을 천자가 날 산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점 찍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신라말에 도선국사는 왕건에게 성수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게 하였다. 그 후 그는 궁예를 몰아내고 신라를 굴복시켜 고려를 세워 왕이 되었다. 왕건은 관음보살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 준 것을 크게 기뻐하며 그곳을 환희대라 명명 하였고 도선국사는 그 자리에 도선암의 암자를 지었다.









고려의 왕권도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고 1380년 이성계는 아지발토와 운봉의 황산벌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려 승리하며 이를 황산대첩이라 부른다. 이성계는 전장에서 승리를 하고 부하장졸들은 다시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낸 뒤 그의 장수 8명과 함께 남원을 거쳐 개경으로 가기위해 전주로 가던중 일전에 무학대사가 그의 야심이 보통이 아님을 알고 이곳으로 안내하여 백일기도를 드리게 한것이 생각나 이성계는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올 것인가 생각하여 성수산의 상이암으로 발길을 돌려 찾아간다. 그는 그곳에서 하늘의 신에게 마음을 다하여 기도를 올리게 된다.


 



마침내 하늘도 그 정성에 감복을 했는지 하늘의 문이 열리며 어디선가 “성수만세” “성수만세” “성수만세”하며 세 번의 외침으로 화답을 하는데 이성계는 크게 기뻐하며 ‘삼청동’이라하였다. 그때문인지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여 권좌에 오르고 도선암은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하여 상이암이라 고치게하였다. 이성계는 성수만세를 3번 들었다하여 친필로 삼청동을 직접 쓴 바위를 하사하여 어필각을 지어 보존하게 하였다. 지금도 전주이씨종친회에서는 이곳을 전주이씨의 발상지로 여기고 있을 정도라 한다.


 




지금 상이암의 자리는 구룡지지의 명당으로 상이암에 삼청동이 모셔진 어필각 뒤 암봉이 용의 여의주라 한다. 여의주에 올라 기도를 하면 하늘의 기운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요즘에도 찾는이가 많다는 이야기다.







성수산 상이암을 오르는 길은 아름다운 숲속길이다.  성수산자연휴양림의 울울창창한 숲이 하늘을 가리고 10월의 성수산은 피빛이 뚝뚝 계곡으로 떨어져 붉은 단풍을 물들게 한다. 이 가을에 이성계의 성수만세 소리야 우리 같은 소시민은 들을 수 없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세의 기운은 폐부의 찌든 마음을 치유하고도 남음이 있다. 상이암의 약수도 들이켜 보자. 하늘의 소리가 들리까 싶어 두귀도 쫑끗 열어두자. 그것이 아니라도 상이암 자체만으로도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하겠다.





☞(전북여행/임실여행)성수산의 상이암. 도선국사사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 현재는 선운사 말사.  


상이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로 선운사의 말사다. 875년인 헌강왕 1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고 1394년 인 태조 3년에 각여가 중수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불타 1909년 대원에 의해 중건되었다. 한일합방으로 이절을 근거지로 항일운동이 일어났는데 왜인들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다시 중건 되었다 1950년 한국동란때 다시 불타는 아픔을 겪는다. 현재의 건물은 1958년 상이암재건위원들이 세웠다한다. 경내에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4호로 지정된 부도가 3기 남아 있다.







































이성계의 친필로 쓴 삼청동 각자.










중앙에 삼청동 바위가 보관되어 있는 어필각이며 그 뒤 암봉이 용의 여의주라한다.




도선암이었던 암자를 이성계는 상이암으로 고쳤다.
















부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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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전주여행)전주 전동성당,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가 있었던 터가 전동성당

 

전동성당은 1914년 초대신부 프랑스인 보두네 신부에 의해 현재의 전동성당의 모습으로 지어졌는데 여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1784년 천주교가 조선땅에 들어오면서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조상의 제사를 배격하여 ‘페제분주’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당시 조선의 상황은 유교사상이 팽배하여 천주교의 제사 배격은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으로 이로부터 천주교의 박해와 그로인한 순교의 죽음이 시작 되었다. 1790년에 북경의 주교였던 구베아가 조상 제사 금지령을 내린 후 그 이듬에 윤지충은 모친상을 당한다. 외사촌 형 권상연 함께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신주를 모신 위패를 태우고 제사를 폐지하였는데 이로 인해 윤지충, 권상현 두분이 조선에서 천주교가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순교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때 참수되어 효수되었던 장소가  풍남문 밖이다. 그 이후인 1801년에 호남의 첫 사도였던 유항검과 윤지헌도 참수되어 순교하였는데 현재의 ‘태조로’가 그 당시 남문 성벽자리이며 전동성당 앞이 형장 터였다.

 





 

 

☞(전북여행/전주여행)전주 전동성당, 남문 성터의 주춧돌로 23년만에 완공된 전동성당.

 

1907년에 왜인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풍남문의 성벽을 허물어 도로를 낸다는 계획을 미리 듣고 1908년 보두네 신부는 전라감사에게 요청하여 성벽을 받치고 있던 주춧돌을 가지고와 1914년에 외벽공사를 마무리하고 공사시작 23년만인 1931년에 지금의 전동성당이 완공 되었다. 전동성당은 풍남문 밖에서 이슬처럼 사라져간 순교자의 피와 영혼이 그대로 묻어 있는 성벽의 주춧돌을 옮겨와 성당의 주춧돌로 삼아 우리나라 천주교의 아픔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성당 내부의 유리에 그려진 성화 또한 그 당시 순교자의 모습을 담았다하니 볼수록 숙연해진다.


 



 

 

☞(전북여행/전주여행)전주 전동성당, 명동성당은 아버지 성당, 전동성당은 어머니 성당으로 불러,

 

전동성당의 신앙문화해설사 유철종교수는 “명동성당을 지었던 포웰신부의 설계도를 줄여서 전동성당을 지었는데 명동성당을 지었던 중국의 건축기술자를 그대로 데려와 성당을 완성하였다. 명동성당보다 규모가 조금 작은데 명당 성당은 고딕양식이고 전동성당은 비잔틴풍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해설과 유교수는 “두 성당을 명동성당은 아버지 성당, 전동성당은 어머니 성당으로 부른다며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50곳에 두 성당의 이름을 올리고 있다"(인문과 사상사, 재미있는 전주이야기편의 ‘전동성당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지’-성재민 저)

 


 





 

☞(전북여행/전주여행)전주 전동성당, 동양의 가장 아름다운 성당 50곳에 전동성당 이름올라. 전동성당

 

영화 ‘‘약속“에서 박신양과 전도연의 결혼식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어 더욱 유명한 전동성당은 전주여행에서 꼭 보고 와야 할 곳이다. 성당 주위로도 풍남문과 전주한옥마을 그리고 경기전등 전주의 조선시대 600년의 살아있는 역사가 흐르는 곳이다. 그 중심 위치에 전동성당이 자리하고 있어 독특한 외관만큼이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주위의 한옥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도 한옥마을의 일부처럼 완전히 동화 된 느낌으로 어릴적 시골의 예배당을 연상시킨다. 한때는 천주교 박해의 주역이었던 조선왕조의 경기전과 마주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적제288호

주소: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동 태조로

 

 전동성당 홈페이지:http://www.jeondong.or.kr

 

 





























































































































 

 

 

경기전의 굴뚝 구멍으로 보이는 전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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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전주여행)전주한옥마을과 서학동을 잇는 남천교와 웅장한 청연루 국내 유일한 다리 위 누각 함 보세요


조선시대를 건너 후백제로 역사를 거슬러 가는 길목이다. 전주에서 임실 남원 순창지역으로 가기위해 전주천에 가로 놓여진 남천교는 여러차례 파손과 개축을 되풀이하다가 2009년 12월 현재의 남천교가 완성 되었다. 완산구 교동 한옥마을과 서학동을 있는 남천교는 국내에 유일의 교량 건축물로 다리 중간에 세운 한옥 누각은 길이가 27.5m인 청연루이다. 총연장 82.5m의 왕복 4차선 도로 위에 마치 학이 날아갈 것 같은 날엽한 모습의 팔작지붕인 누각이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남천교 다리는 홍예문 기법을 도입한 3개의 아치로 서학동의 남고산성에서 들어오는 전주한옥마을의 관문 역할을 톡톡히 하며 전주한옥마을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것 같다. 청연루에 사용한 목재는 모두 국내산 육송으로 사용하여 그 의미가 더욱 크다하겠다. 









전주천에 가로 놓인 남천교와 청연루,







국내에 하나뿐인 다리 위 누각 청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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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전주여행)전주한옥마을 자만벽화마을, 전주에 가면 둘러 보세요.


전주여행의 첫코스는 풍남문과 전동성당이 있는 전주한옥마을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종일 걸어 다녀도 지겨움을 모르게 된다. 경기전도 보고 줄지어 들어선 한옥마을을 본뒤 머리를 들어보면 건너편에 작은 동산이 눈에 들어온다. 오목대가 있는 곳으로 황산전투에 승리한 이성계의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내려오는 곳이다.

 

 

 

 



 

이곳에 육교가 걸려 있다. 육교를 따라 건너면 이목대가 있는 자만마을로 산비탈에 독특하게 자리를 잡은 마을이다. 최근 이곳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찾아든다. 자만 벽화마을로 필자가 방문을 했을때도 전주한옥마을을 찾던 청춘남녀들이 너도나도 카메라를 메고 이곳을 찾고 있다.

 

 

 

 

화려한 채색으로 담장의 여백을 매워나가는 벽화의 모습이 너무 예쁜마을인 자만마을.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을의 모습이 통영의 동피랑 벽화마을의 모습처럼 서민의 눈에서는 정감이 간다. 자전거를 타는 여인의 모습등 시원시원한 벽화가 마을을 훤하게 만들어 준다. 전주한옥마을 여행시 찾아 가면 좋을 것 같다.

 

 

 

 

자동차는 그림이 아니구요.누가 얌체 주차를 해 놓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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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임실여행) 섬진강 시인 김용택과 진메(진뫼)마을 여행.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섬진강을 팔려는 시인이 있다.  대동강물을 팔았다는 김삿갓은 들어 보았지만 섬진강을 팔려는 사람이 임실 땅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분은 몇이나 될까. 그는 김삿갓 처럼 강물을 팔려는 것이 아니라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팔려는 것인지 그의 시에는 섬진강의아름다운 글귀가 철철 넘친다. 남들은 그를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라 부른다. 

 



 

 

 그는 이곳 섬진강 상류인 진메(진뫼)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릴적엔 집앞으로 흐르는 냇가에서 딩굴고 첨벙이며 그의 유년기를 보낸 섬진강 시인 김용택, 그가 섬진강을 가장 잘 알고 또한 섬진강의 아픔까지도 모두 아름다움으로 성화시켜 주기에 섬진강 글을 쓰는 시인이 된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게 여겨진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김용택 시인은 "지리산이 저무는 강물에 얼굴을 씻고"로 섬진강에서 얼굴을 씻는다고 비유를 하였다. 그의 섬진강은 그만큼 넓은 품을 가졌다. 지리산이 얼굴을 씻을 정도로 큰 강 섬진강. 섬진강 시인 김용택도 섬진강을 닮는 것이 곧 지리산을 닮는 것이라 여겼는것은 아닌지.

 

 

 

 

시인 김용택은 "시란 자연의 말에 귀를 기우려 자연이 전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뿐이라 하였다. 시인을 찾아 진메마을을 찾아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그날은 임실가을문화축제의 일환으로 김용택시인과 함께 섬진강을 따라  둘레길을 걷는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국제신문 DB-김용택시인

 

 

진메마을의 느티나무에서 임실군민에게 열강 중이였는데 필자는 그의 생가로 찾아갔다.  동네 입구의 기왓집이 김용택시인의 집이다. 집안 벽에 걸린 문패가 그의 집임을 알리고 있다. 흰문패에 김용택 글씨가 선명하다. 가을의 색깔이 처마끝에 걸려 있는 관란헌의 서재에는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이곳을 방문하여 닫혀진 문을 보고 섭섭해하는 분을 위해 모친이 언제나 그의 서재 문을 열어둔다는 이야기. 서재에는 김용택시인의 채취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손때 묻은 책속에 섬진강이 꿈틀 꿈틀 꼬랑지를 내밀고 있는 모습에 그의 섬진강이 이곳에서 나온 것을 알수 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향마을은 현재 임실군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마을이다. 시인을 만나기 위해 전국에서 관광 버스에 태마여행으로 시인을 찾아 몰려 온다. 시인이 뛰어놀던 마을입구 느티나무와 여름철 물장구를 치며 물놀이를 즐겼던 섬진강, 그 강에 걸려 있는 징검다리에도 시인의 발자취 쫒아 거닐다가는 인기 관광 코스가 되었다. 임실 여행시 꼭 진메마을 찾아 볼것을 추천한다. 그와 덩달아 천담마을과 구담마을도 빠트리지 말고  챙겨보자. 섬진강을 여행시에는 누구나 흥얼흥얼 섬진강 시인이 될수있다..



 

 

 

 

 

 

 

 

 

 

 

 

 

 




 

 

 

 

 

 

 

 

 

 

 

 

 

 

국제신문 DB-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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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만여 관람객이 다녀가 큰 호응을 얻었던 임실 필봉 농악보존회의 창작극인 "웰컴 투 중벵이골"이 2013년 5월 4일 부터 두번재 이야기가 선을 보였다. "웰컴 투 중벵이골2-필봉아리랑"이며 지난해 "웰컴 투 중벵이골"의 내용을 보면  임실 필봉 농악의 3대 양순용씨의 삶을  모티브로 상쇠의 삶과 애환, 그리고 임실주민들의 삶의 표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올해 필봉아리랑은 무대효과와 세트를 더욱 강화하여 필봉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필봉굿을 만들고 지켜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흥겹게 담아 냈다. 공연은 지난 9월28일까지로 모두 끝이 났지만 필자는 필봉문화촌에서 앵콜공연의 성격을 가진 특별공연을 우연찮게 만나 보았다.  필봉문화촌 한옥마당에서 올해의 마지막 공연을 관람하는 내내 신명나게 구경하고 어께춤도 들썩여 흥겨운 굿거리 장단이 되었다. 중벵이골은 필봉마을의 옛이름으로 한사람의 집념으로 우리의 필봉 농악이 이어지고 온다는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출연자  모두 이곳 임실군 주민들로 이루어져 더욱 의미가 있는 필봉아리랑 공연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더 보고 싶다.


 


 


임실 필봉농악은 국가지정 무형문화유산 제11-5호인 호남좌도임실필봉농악은 전북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에서 전승되어온 호남좌도 농악의 대표적인 마을 풍물굿이다. 필봉마을은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만큼이나 마을사람들의  삶과  노동의 문화속에서 꽃피워온 소리를 푸진굿 푸진 삶으로 풍성하게 담아 내고 있다.

 

 


 



 

 

















































































필봉문화촌의 한옥마을 상설공연장.

 

 

필봉문화촌의 한옥마을

 

 

필봉문화촌의 한옥마을 맞은편에 솟은 필봉, 그아래 골짜기가 중벵이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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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임실여행)덕치면 구담마을, 정지용의 향수가 생각나는 천담리 구담마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이시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의 앞  구절이다.

 

 

 

 


(전북여행/임실여행)덕치면 구담마을, 고향 같은 덕치면 천담리 구담마을.]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모습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무작정 길을 걷다가도  만나는 시골의 모습에 고향의 향수를 느끼곤 한다. 이제 나도 50줄에 들다보니 어릴적 고향의 모습이 무척 그리운가보다. 누구나 고향일것 같은  구담마을을 이번에 찾아보고 왔다. 전라북도 임실군 덕치면 천담리 구담마을은 향수의 싯구처럼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섬진강 물길이 회룡마을을 감아 휘돌아가는 정겨운 고향 같은 구담마을. 그 모습이 꿈속에서 본 고향마을과 너무 나 많이 닮아 있다.

 



 

 


(전북여행/임실여행)덕치면 구담마을, 안담울로 불렸던 천담리 구담마을.


안담울로 불렸던 구담마을은 마을앞을 흐르는 섬진강에 자라가 많이 나와 구담이 되었다는 설과  마을 앞에 급히 꺾여 나가는 개울에 아홉개의 소가 있어  구담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다. 열댓집 남짓한 구담마을은 봄이면 매화향기에 취한다. 광양 다압의 매실보다는 규모도 적지만 이곳에도 많은 집에서 매실 농사를 짓는다. 그 덕분에 전라북도 구담의 매실은 입바른 사람들에 의해 지명도가 높아 없어서 못 판다는 이야기다.

 

 

 

 

(전북여행/임실여행)덕치면 구담마을, 가을이 어울리는 천담리 구담마을.


한적했던 산촌의 풍경은 지워지고 자꾸만 도회지의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구담마을, 편리를 쫓아가는 마을의 변화는 어쩔수 없지만 안타까움이 없지만은 않다. 매실향기을 쫒아 이른봄부터 이곳 구담마을은 활기를 찾는다. 격정의 여름을 지나면서 누런 들판에 내려쬐는 때약볕에 허수아비는 고개를 숙이고  10월의 구담마을은 가을빛에 완전히 젖어 있다. 집집마다 담장에 가지를  드리운 감나무는 주렁주렁 감이 금방 떨어질듯 달려있고  할일 없는 강아지는 꼬랑지를 흔들며 방문객을 반긴다.

 

 

 

 


(전북여행/임실여행)덕치면 구담마을,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 천담리 구담마을.


구담마을 회관 앞을 내려서면 느티나무가 들어서있는 당산이 울울창창하다. 이곳은 1998년에 개봉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이광모 감독)"이 촬영된 곳이다. 이곳 당산나무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물돌이의 풍경은 한장의 그림 엽서를 보는것 같다.  발아래 보이는 개울에 잠겨있는 징검다리는 TV 문학관에서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한부분을 촬영을 하였던 곳이라 한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회룡마을이며 섬진강이 순창과 임실을 이곳에서는 경계 짓고 있다.

 

 

  

 

 


(전북여행/임실여행)덕치면 구담마을, 섬진강가의 천담리 구담마을.


섬진강은 데미샘에서 발원해 500리(약225km)를 유장하게 흘러간다. 하얀모래로 유명해서인지 옛날에는 다사강이라 불렀고 고려에 와서는 두차강으로 불렸던 섬진강. 그 강가에 형성한 구담마을, 흘러가는 섬진강의 역사처럼 구수한 입담을 한바가지 쏟아 낼 것 같은 아름다운 고향길 구담마을 길을 따라 섬진강 둘레길이 강을  따라 시작된다. 

 

 

 

 

 

 

 

 

 

 

 

 

 

구담마을 전경.

 

 

 

 

 

 

TV문학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촬영하였던 징검다리.

 

 

 

 

 

 

구담마을 당산. 이곳에서 '아름다운 시절'이 촬영되었다.

 

 

아른다운 시절의 영화속 당산나무 숲(다음 영화 발췌)





 

 

 

 

담소를 나누시던 할머니. 카메라를 보시더니 포즈를 잡아 주신다.

 

 

 

 

 

 

 

 

 

 

 

 

 

 

 

 

 

 


 

아름다운 시절의 영화 포스트 (다음영화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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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임실여행)옥정호와 국사봉, 정읍과 임실을 가로지르는 섬진강 다목적 댐 옥정호, 전국의 사진작가가 찾는 운암면 붕어등, 





옥정호는 전라북도의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와 임실군 강진면 용수리 사이를 가로막아 섬진강 다목적 댐을 만들면서 생긴 호수다. 1965년 식수와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건설되었는데 댐의 폭이 344.2m, 높이 64m, 15개의 수문에다 466백만톤의  저수량을 자랑하는 메머드급이다. 옥정호를 끼고 도는 임실군의 운암면에는운암정이 있다. 예로 부터 정자 앞 강은 깊은 소와 물의 흐림이 매우 빨랐다.그리고 주위가 산으로 둘러 쌓여 낮과밤의 일고차가 심하여 항상 물안개가 피어 올랐던 곳으로 알려져있다. 이곳에서 터를 이룬 전주최씨 운암 최응숙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파천을 하게되는데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가는 행렬속에 성균관 유생 52명이 선조를 따라 갔다한다. 그 중 이곳 운암면의 최응숙도 유생중의 한분으로 선조를 수행하며 동행을 하였고 임진왜란이 끝나자 바로 낙향을 결심한다.  그는 후학을 가르키며 섬진강가에  아담한 정자를 짓고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며 그의 호를 따 양요정이라 하였다.

 

 

국사봉을 오르는 전망대길 덱 계단

 

 


☞(전북여행/임실여행)옥정호와 국사봉, 봄 가을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옥정호를 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다는 국사봉 전망대는 이곳.


지금이야 수몰이 되어  옛 양요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현재의 장소로 옮겨와 복원이 되었다. 항상 구름이 산허리를 감고 있어 그때문인지 최응숙의 호도 운암이다. 지금도 이곳은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동으로 흘러가는 섬섬옥수의 섬진강은 다목적 댐 건설로 인하여 넓은 호수로 바뀌어 봄과 가을철에는 전국의 사진동호인 들이 이곳 옥정호의 물안개와 작은섬 붕어등을 담기위해 장사진을 이루며 덩달아 국사봉 전망대는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국사봉 전망대 주차장

 

 

 


☞(전북여행/임실여행)옥정호와 국사봉, 전국의 사진작가가 찾는 운암면 옥정호와 붕어등, 옥정호의 유래를 보면,

임실의 강진면에는 옥정리가 있다.  마을에 옥구슬 같이 맑은 물이 솟는 샘이 있었다하며 조선중기때인 어느날 탁발승이 시주를 받으러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을 보더니 물이 들어설 곳이라며 '머지 않아 이곳에 호수'가 생기게 될것을 예언하며 사라졌다. 그 예언 때문인지 실제로 이곳에 옥정호가 만들어졌다. 건설당시에는  운암호, 섬진강으로 불렸는데 그 전설로 인해 옥정호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외앗날로 지금은 금붕어를 닮아 붕어등으로 더 유명하다.

 

 




☞(전북여행/임실여행)옥정호와 붕어등, 옥정호는 전주최씨의 종산으로 12명의 진사 배출이 국사봉의 유래, 


옥정호 최고의 전망대는 임실 운암면의 국사봉이다. 보통 국사봉의 한자어를 보면 나라국(國)자와 스승사(師) 또는 선비사(士)자를 쓴다. 이름의 유래를 보면 이곳 잿말의 전주최씨 집안에서 고려시대에 12명의 진사를 배출하여 국사봉(國士峯)으로 부르며 전주최씨의 종산이다. 국사봉을 오르면서 바라보는 옥정호는 선계의 모습이다. 하늘의 선녀가 요즘에도 있다면 내려와 목욕을 하고 이곳의 경치에 홀딱 빠져 천상으로 올라가기를 거부하였을 것 같다.

 

 

 

 


☞(전북여행/임실여행)옥정호와 붕어등, 옥정호 절경은 넘실넘실 산등을 넘어가는 운해와 옥정호 일출,


필자는 지난 10월5일 서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각에 국사봉을 올랐다. 아쉽게도 아침에 만날 수 있는 옥정호의 운해를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지만 집에와 사진으로 보는 옥정호의 운해는 하늘에서 선녀가 하얀 드레스를  나풀그리며 내려오는 모습이 운해로 화한것이 아닌지,  산등성이를 스물스물 넘어가는 운해의 모습이 선녀의 옷자락이 날개짓을 하는것 같아 입에서 찐한 탄사가 절로 나온다.

 

 

 

 

 


☞(전북여행/임실여행)옥정호와 국사봉, 옥정호 한점의 섬 붕어등 유래, 전국의 사진작가가 찾는 운암면 옥정호 붕어등, 

국사봉 오르는 길은 옥정호 둘레길의 '옥정호 마실길' 을 오르는길이다. 처음부터 덱으로 만든 계단이 시작된다. 이곳만 지나면 곧 첫번재 전망대와 만난다. 이곳에서 보는 옥정호와 그 속에 잠겨 있는 붕어등의 모습은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좀더 높은 곳에서 금붕어를 닮은 붕어등을 보기 위해 또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국사봉 전망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옥정호의 모습은 올라온 수고를 충분히 보상을 해준다. 옥정호 중간에 뜨 있는 붕어등은 옛지명이 '외앗날'이다. 문화해설사 강명자님은 "산의 능선 끝을 날등이라 하는데 바깥날등 이란 뜻으로  '외앗날이 되었다'는 해설을 하였다. 

 

 

 

 


☞(전북여행/임실여행)옥정호와 국사봉, 붕어등은 금붕어를 닮아 명명, 

현재는 옥정호의 붕어등이 많이 알려졌지만 1970년대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서진 룸살롱 사건'의 범인이 이곳 붕어등에 낚시를 하면서 도피 생활을 하다 검거가 되는 사건이 터졌다. 그 당시 붕어등하면 모르던 사람이 '서진 룸살롱 사건 범인이 잡혔던 곳'하면 '아 그곳' 하고 알 정도로 유명세를 탓다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붕어등의 모습은 염팡 금붕어의 모습이다. 옥정호를 헤움치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에 세상에서 가장 큰 금붕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망대를 향해 올라온 사람은 이곳에서 거의 내려가지만 국사봉 정상을 가기위해서는 산길을 약간 올라야 한다. 그리 부담이 가는 길은 아니다. 누구나 싶게 오를 수 있는 코스로 정상으로 가는 산길에 전망을 여러곳 열어 준다. 옥정호 방면의 전망은 볼수 없지만 반대로 겹쳐지는 산의 모습을 보면서 임실이 산지가 70%임을 실감할 수 있다




 

 


☞(전북여행/임실여행)옥정호와 국사봉, 옥정호 드라이브길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혀,


북으로는 모악산이 우뚝 솟아 있고 남동쪽으로는 주변의 산들과 완전 다른 엄청 큰 산이 멀리서도 보여 아마 저정도의 산 높이면 덕유산으로 여겨진다. 이곳 옥정호에요즘 인기있는 드라이브길이 조성되어 있다. 옥정호의 물안개와 함께 주변의 산세가 어울려 한폭의 한국화를 보여주는 이 길은 한국관광공사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중 우수상으로 뽑을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가진 곳으로 살아가면서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추천을 하고 싶은 곳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힌 옥정호 드라이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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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임실여행)임실치즈테마파크, 임실치즈 유래


임실치즈는 한사람의 노력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벨기에 신부 디디에 세스테벤스(한국명 지정환신부)에 의하여 1964년 천주교 교구 소속 신부로 임실땅을 밟게 된다. 그는 두번째 한국 방문으로 1959년에 한국 땅을 밟은 후 1961년 부안성당에 부임을 하였다. 6.25한국 전쟁과 보릿고개 속에서 농촌의 피폐해 있는 모습에 팔을 걷어 붙이고 농민들과 함께 바닷물을 막아 땅으로 만드는 간척사업을 시작하였다. 30만평이란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사를 마친 후 건강악화로 고향인 벨기에로 돌아가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가 건강을 회복한 후 또 다시 한국땅을 밟게 되면서 그의 치즈 인생은 시작된다.  부임을 한 임실은 그야말로 참담한 모습이었다. 지신부는 주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자신이 키우던 산양을 동네 청년들에게 분양을 하며 그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 1966년 12월에 산양협동조합의 기초를 세우게 된다. 그러나 판로에 애로가 많은 산양우유로 지신부는 본국 벨기에로 치즈 기술을 배우러 떠나게 되고 1967년 한국 최초의 치즈공장을 세우게된다.

 

 

치즈캐슬

 

 

모든 일은 순조롭게 되지 않았다. 처음 배워 와 만든 치즈는 여러번 실패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실패의 원인을 서로 나누며 수정을 거쳐 까망베르, 체다, 모자렐라등의 치즈 생산에 성공하여 임실치즈가  탄생되었다. 임실치즈가 그런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지정환신부의 노력으로 인해 어느정도 기반을 잡자 치즈의 공장 운영권을 농민들에게 모두 돌려주고 임실치즈를 떠났다. 한 신부의 노력으로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치즈를 생산하는 임실치즈를 두고  외지인들은 임실주민이 기적을 일구었다한다. 그러나 임실치즈는 기적이 아니라 지정환 신부와 임실주민이 노력과 열정으로 만든 산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전북여행/임실여행)임실치즈테마파크, 임실군에서는 임실치즈를 임실N치즈 브랜드 사용.


현재의 임실은 어떤가. 임실하면 치즈, 치즈하면 임실을 떠 올리게 된다. 그만큼 임실은 임실치즈가 임실의 대표브랜드이다. 임실군에서는 치즈 체험을 위해 임실치즈테마파크를 조성하여 체험도하고 맛도 보고 치즈의 세계로 대한민국을  모두 끌어 들이고 있다.



임실군의 임실치즈 브랜드는 임실N 치즈, (임실치즈테마파크홈페이지 캡쳐).




 

 

 

☞(전북여행/임실여행)임실치즈테마파크, 임실치즈 체험경비.


임실치즈테마파크는 치즈, 피자체험관, 홍보관, 유가공공장, 농 특산물 판매장등의 시설을 만들었고 치즈 캐슬에서는 임실치즈의 현재와 지나온 발차취인 과거, 앞으로 나아갈 미래의 임실치즈를 모두 만날수 있게 꾸며 놓았다.  그리고 치즈로 만든 맛있는 음식도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필자가 먹은 치즈돈가스는 8,000원, 임실치즈 체험 코스를 보면 프리미엄체험(1인 35,000원), 임실N치즈체험(20,000원), 피자체험(1인 26,000원), 스패셜 요리 체험(성인 40명 기준 1인 36,000원)으로 20,000원에서 36,000원까지 다양한 치즈체험을 할수 있도록 하였다. 

 

 

 

 

 

☞(전북여행/임실여행)임실치즈테마파크, 임실치즈 과정.


임실치즈가 좋은 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임실의 면적중 70%가 청정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합니다. 그러니 항상 청청한 살아 있는 우유를 공급 받겠지요. 그게 임실치즈의 생명입니다. 신선한 우유가 준비되었다면 그 다음 단계는 항생제검사와 관능검사, 비중검사를 받게 됩니다. 언제나 안전한 우유인지 확인합니다. 




치즈 체험중인 어린이의 모습

 

 

일반인의 치즈 체험 현장입니다.

 

 


72도의 온도에서 15초를 살균하여 나쁜 병균은 모두 죽여야겠죠. 살균처리가 된 원유는 냉각장치를 거쳐 치즈밴드로 들어가고 유산균을 첨가한 우유를 발효시키네요. 여기에 린넷이라고 송아지 위에서 추출한 응고효소를 첨가하면 우유는 마술을 보여 줍니다.



응고효소인 린넷을 첨가 한 후 2번 정도 저어준 후 뚜껑을 닫아 두네요.

 

 

 

 

 

 

뚜껑을 닫은 후 한참 있다가 보니 순두부의 과정 처럼 굳어진 상태를 보여 줍니다. 보이나요. 45도 각도로 기우리니 순두부 처럼 고체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이를 커드라합니다. 


 

 

 

 

 

 

 

 

 

 

 

 

 

커드 덩어리를 잘게 잘라 줍니다. 잘려진 커드속에 유청분리한 치즈에  종류별로 다른 처리과정을 한다합니다. 



 

 

 

 

 

 지금의 과정은 모짜렐라치즈를 반드는 과정입니다. 38도의 미지근한 물을 부어 손으로 조물럭조물럭 주물러주면 지네끼리 뭉쳐집니다. 다시 고무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고무 재질이 얇아지는 것 처럼 여러사람이 잡고 늘려 줍니다. 



 

 

 

 

 

 

백년초

 

 

백년초가 들어간 모짜렐라 치즈

 

 

단호박이들어간 모짜렐라 치즈

 

 

 

 

 

 

 

이런 과정을 반복한 후 엿가락처럼 길게 늘여 줍니다. 엿가락 처럼 늘어진 치즈는 결로 찢어지게 됩니다. 그럼 맛있는 모짜렐라 치즈를 먹을 수 있습니다. 




 

 

 

 

 

 

 

 

 

 

 

 















◆임실치즈 제조과정(임실치즈테마파크홈페이지 캡쳐)◆







 

 

 

 

 

 

 

 

 

 

피자돈가스 8,000원

 

 

 

 

 

 

 

 

 

 

 

 

 

 

 

 

 

 

임실치즈에서 생산된 밸리애 요구르트

 


 조제분유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100%에 유산균만을 배양하여 만든 무설탕의 맛있는 요구르트입니다. 종류로는 딸기, 파워,복분자, 유자 요구르트가 있습니다. 임실 여행 내내 너무 맛있어 입에 달고 살았다는 이야기 ㅎㅎ


 

 

 

 

 

 

 

 

 

 

 

 

 

 

 

 

 

 

 

 

 

 

 

 

 

 

 

 

 

 

 

 


 








◆임실치즈 체험 문의는 063-643-230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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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 관광단지에 가면 입을 쩍 벌리게하는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이 무려 650년이라하니 장대한 모습에 놀래지 않을 수 없다. 느티나무는 시골동네의 정자나무다. 누구에게나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인 느티나무, 불갑사 여행시에 한번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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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도 이곳을 보았을까.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보길도를 찾아가는 방법은 한반도의 남쪽끝 땅끝마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가면 된다. 필자도 예송리를 찾아가기 위해 이곳 땅끝마을에서 배를 이용하여 보길도로 들어갔다.  보길도는 고산윤선도의 섬이라할 정도로 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다. 세연정, 동천석실등 제주도로 가기위한 노정에서 풍랑을 피해 잠시 들렀던 이곳 보길도에 마음이 빼앗겨 제주행을 멈추고 들어와 부연동이라 이름짓고 머물게 되는데 그만큼 보길도는 고산윤선도의 마음까지도 붙잡아 둘 정도로 매력과 함께 아름다운 섬이다. 






보길도를 가기위해 땅끝마을 선척장에서.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예의를 숭상한다는 예송리. 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그중 한곳이 보길도의 동남쪽에 자리한  예송리이다. "마을 주민이 모두 예의를 숭상하고 인륜도덕을 함양한다"는 뜻으로 마을 주변의 소나무들도 머리를 숙이며 예의를 갖추고 있다하여 예송리로 부른다. 그만큼 마을 전체가 순박하며 조용한 어촌마을 풍경이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예송리 마을앞의 방풍림이 천연기념물 40호,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예송리 마을앞에도 300여년전에 마을 주민이 힘을 합쳐 방풍림을 조성하였다. 남쪽에서 올라오던 태풍의 길목으로  마을은 항상 태풍의 피해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이 만든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제 40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울울창창한 성록수림 덕분에 마을은 태풍의 피해를 줄일수 있었고 그 덕분인지 물고기들의 서식지가 되어 마을은 살기좋은 동네가 되었다








예송리의 상록수림은 방풍림과 어부림을 겸하고 있다. 방풍림의 길이만도 약 800m이며  폭은 30m쯤 되는 반달 형태이다. 주종은 수종은 다양하며 그중 곰솔이 상당수 자라고 있다하며 가장 큰 곰솔나무를 당산나무로 정하여 마을의 안녕과 기원을 빌고 있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예송리의 볼거리는 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예송리의 볼거리는 상록수림과 또 한가지는 반달모양으로 이어지는 해수욕장이다. 길이만도 1km가 넘는 긴 해수욕장으로 이곳은 모래가 아닌 자갈밭 해수욕장이다. 일반 해수욕장에서는 들을 수 없는 파도소리가 이곳 해수욕장에서는 음악소리 처럼 들린다. 밀려들어온 바닷물이 빠져 나갈때 내는 "자르륵 자르륵~~~"하는 그 소리가 밤새 들여오는 예송리 해수욕장, 보길도와 함께 이곳에서 1박을 권해 봅니다. 

 


예송리상록수림과 해수욕장.




예송리해수욕장,




예송리해수욕장.




예송리상록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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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 금환락지의 곡전재. 천상의 정원이 좋아요.

 

우리는 신년이 되면 항상 토정비결을 본다. 믿거나 안믿거나 한해의 운수를 보며 올해의 길운을 점치는 자신을 보면 누구나 나약한 인간의 한 단면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운세를 미리 봄으로해서 그 만큼 마음의 위안을 삼기위함일까. 조상의 묫자리를 잡는데도 좌청룡 우백호니하면서 풍수를 본다. 그리고 집터를  정할때도 풍수에 근거하여 명당터를 잡게된다.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 금환락지의 곡전재.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곳 곡전재 명당터.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는 금환락지로 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곳으로 금가락지가 떨어진곳이 남한에서는 3대명당터로 알려져 있다. 운조루와 곡전재 모두 금환락지의 명당터에 위치를 하고 있다하니 어느것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일단은 지리산이 병풍처럼 둘러져진 이곳을 바라보면 문외한이 내가 보아도 좋아보이는 곳이다.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 금환락지의 곡전재. 담장이 금가락지 모양 곡전재.

 

오미리의 금환락지 명당을 보고 말하기를 무장이 천명, 문장가가 만명이 나올자리라니 대대손손 장군과 벼슬아치가 끊이지 않고 나올 그런 곳이라 여겨진다. 곡전재를 보면 높은 담장으로 인해 안을 전혀 볼 수 없다. 높이가 2.5m로 사람의 키 높이 이상으로 원형 담장을 돌렸는데 이는 금가락지를 의미한다. 결론은 옥녀의 금가락지가 떨어진 장소가 이곳이란 뜻이다.

 

 

 

 

곡전재는 구례군 향토문화유산(유형)3-9호로 7천석의 박승림이 명당터를 찾기위하여 지사와 함께 전국을 유랑하며 찾은 곳이다. 1929년 이곳에다 6채 53칸의 한옥을 지었는데 1940년에 곡전 이교신이 인수하여 현재 5대째 이어오고 있다.  1998년에 1월에 동행랑과 중간 사랑채를 복원하고 누각을 지어 춘해루'라 하였고 현재는 5채 51칸의 큰 저택으로 남아 있다.

 

 

 

 

곡전재는 대문과 중문사이에 천상의 화원을 연상시키듯 사계절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져 벌써 소문이 자자하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하였을때는 8월 초순에 연일 불볕 더위로 수은주는 끝이 어디인줄 모르고 붉은 막대가 널뛰기를 하는 그런 날씨가 연일 계속되었다. 곡전재를 들어서니 녹색의 푸르름이 벌써 온도를 내려주더니 지리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세연정을 지나 마당의 화원을 휘감아 돌며 와랑와랑 흘러 갈때는 한여름의 무더위를 완전 잊게 만들었다.

 

 

 

 

곡전재의 뜻은 성주이씨 20대손인 이교신의 호로 '곡전이 살았다'는 뜻이다. 현재에도 성주이씨 후손인 이병주씨가 생활하며 살고 있다. 조선 후기 한국 전통 목조 건축양식을 따르고 당시 영호남의 남부지방 부농의 민가 형식 가옥을 잘 보여준다.  건물의 특징을 보면 문간채, 사랑채, 안채가 모두 '一'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 금환락지의 곡전재. 한옥 체험 민박 곡전재.

오미리는 현재 한옥민박집이 여럿곳 있다. 운조루와 함께 곡전재도 한옥민박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ㅣ박을 하며 전통 한옥의 멋과 금환낙지 명당의 기를 받아 봄도 좋을 것 같다. 공식적인 입장료는 없다. 불우이웃돕기 기금 1,000원을 입구에서 모금하고 있다.

 

 

 

 

 

 

 

 

 

 

춘해루.

 

 

 

 

세연정

 

 

곡전재 안채.

 

 

 

 

 

 

 

 

 

 

 

 

 

 

 

 

 

 

 

 

 

 

마당을 흘러가는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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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 누마루.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운조루. 날다 지친 새가 둥지로 돌아온다는 운조루. 도연명의 귀거래혜사에서 취합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운조루는 지리산 노고단에서 흘러 내린 능선이 형제봉을 솟구치고 그 끝이 섬진강으로 사라지기 전에 ‘구만들’를 만들었다. 그 중심에 조선영조 52년인 1776년에 경북 안동태생인 유이주란 분이 이곳에다 99칸의 대저택인 살림집을 지었다. 그는 낙안군수등 여러곳에서 국가건축의 책임자로 있었는데 건축에 다양한 식견이 많아 그 영향으로 운조루가 현재의 모습으로 건재하게 남아 있다. 운조루는 전라남도 중요민속자료 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뜻을 살펴보면 “구름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 또는 ”구름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 어원은 중국의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혜사“에서 따왔다.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이글을 풀이하면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지로 돌아오네”에서 앞 글자인 운자와 조자를 조합하여 “운조루”의 택호를 정하였다. 유이주란 분도 종년에는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낙향하기 위함의 뜻으로 보인다. 오미마을과 운주루가 차지하고 있는 이곳은 남한의 3대명당으로 알려진 금환낙지형으로 “하늘에서 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명당터"로 세상의 난세를 피할 수 있다는 지리산의 청학동에 비견되는 곳이다. 그것을 입증하듯이 토지면(土地面)이 원래는 금가락지를 토해낸다는 吐指面(토지면)이었다하니 지리산의 풍수설에서 지명이 나왔다하겠다.





운조루 전경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운조루. 날다 지친 새가 둥지로 돌아온다는 운조루는 누마루. 금환낙지형의 천하명당 운조루.



운조루의 가옥구조를 보면 ‘장자구처기’에 운조루의 가옥을 78칸집으로 나와 있다. 7년간 공사가 이루어 졌다니 그 규모는 짐작하고 남겠다. 화재로 대문간의 행랑채와 안사랑등 거의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는데 다시 복구를 하여 현재는 73칸으로 129평이다. 민도리형의 구조양식으로 크게 나누어 보면 안채, 사랑채, 행랑채, 제실로 구분되며 유이주가 거처하였던 사랑채는 큰사랑채와 아랫사랑채로 나뉘고 큰사랑채에 거처하면서 아랫사랑채에서 손님을 맞이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큰사랑채 서쪽에는 세 방향이 툭터인 누마루가 놓여져 있는데 운조루는 이곳을 두고 말한다. ‘이산루’ ‘족한정’ ‘운조루’‘귀만와’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입구의 대문칸을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곳이 아랫사랑채다. 손님을 이곳으로 모시며 잠도 청한 곳으로 귀래정으로 불린다. 큰 사랑채에서 붙어 ‘ㄱ'자로 툭 튀어 나와 있고 ’농월헌‘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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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는 사랑채 사이의 중문을 통해 들어가며 부엌과 찬칸, 곡간, 대청이 배치되는 전형적인 조선후기 건축 양식을 취하고 있다. 솟을대문의 입구에는 뼈따귀가 걸려 있다. 원래는 호랑이 머리뼈가 걸려 있었는데 도둑맞고 현재는 말머리 뼈가 대신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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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운조루 둘러보기◆






























아랫사랑채로 귀래정으로 불렸다.




큰사랑채와 왼쪽 끝이 운조루 누마루,








안쪽에서 본 솟을 대문. 좌우로 행랑채며 현재는 한옥 민박을 겸하고 있다.







아랫사랑채.




아래사랑채와 운조루




운조루,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타인능해의 쌀 뒤주.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운조루. 날다 지친 새가 둥지로 돌아온다는 운조루. 나눔의 실천 타인능해 운조루.


운조루에는 독특한 쌀 뒤주가 있다. 쌀 3가마가 들어간다는 뒤주의 용도는 무엇일까. 200년이 넘은 원통형 뒤주에는 누구나 쌀 뒤주를 열수 있다는 ‘타인능해’가 적혀 있다. 경주 최부자처럼 이곳 운조루의 주인도 나눔을 실천하여 배고픈 사람은 누구든 뒤주를 열어 쌀을 퍼 갈 수 있도록 하였다. 한해 수확양의 20%나 되었다니 그 양도 엄청나 이 일대에는 배를 굶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안채의 모습.













운조루 편액.































운조루.



























◆운조루의 전체 내용은 아래 운조루 홈페이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더욱 많은 운조루 정보를 원하시면 방문을 해 보세요 

http://www.unjoru.net/

http://unjoru.com/bbs/board.php?board=homemain&command=skin_insert&exe=insert_iboard1_home


운조루 홈페이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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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숨게스트하우스 전경



☞(전남/경남/구례군/하동군여행)지리산둘레길 숨게스트하우스. 구례,하동 지리산둘레길 숨 게스트하우스 정보



어디로 떠난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닐까. 자연을 찾아서 또는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흔히 우리가 살기위해서 필요한  의식주가 여행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여행중에 가장 필요한게 먹는 것과 자는 것이다. 그 준비만 철저히하면 무턱대고 떠나는 여행도 힐링과 함께 여유롭게 여행을 즐겁게 마무리 할 수 있다.  



토미우리 6인실 침대실




☞(전남/경남/구례군/하동군여행)지리산둘레길 숨게스트하우스. 구례,하동 지리산둘레길 숨 게스트하우스 정보


부모님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어디를 가도 항상  '잠은 가려서 자라'는  말씀. 하동군이나 구례군을 여행하시는 분에게는 잠을 가려서 잘곳을 소개한다. 특히 지리산 둘레길에서 또는 혼자 여행을 준비하는 분에게 아주 편리한 정보다. 필자도 지리산 둘레길이용때 이곳 '지리산 숨게스트하우스'에서 편안하게 1박을 하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보는 섬진강과 건너편 밥봉에서 내려오는 하천산 봉우리의 경치가 기가막히며 아~~~ 멋진 곳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1인용 침대.




☞(전남/경남/구례군/하동군여행)지리산둘레길 숨게스트하우스. 구례하동 지리산둘레길 잠자리 걱정 끝. 숨 게스트하우스 정보


혼자 여행객에게도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인 구례군과 하동군의 경계에서 구례쪽으로 걸쳐 있다.  하동 쌍계사, 악양의 최참판댁, 피아골과 연곡사, 지리산 산행에도 예약과 함께 편리하게 이용 가능하며 특히 지리산 둘레길 16코스 가탄~송정과 17코스 송정마을~당재, 18코스 송정마을~오미마을을 계획하는 둘레꾼에게는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전남/경남/구례군/하동군여행)지리산둘레길 숨게스트하우스. 구례하동 지리산둘레길 숨 게스트하우스 피아골과 화개장터 먹거리 다양.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꾼은 미리 연락을 하여 하산지점에 픽업을 부탁하면 숨게스트하우스에서 직접 마중을 나와 둘레길을 걷고 난뒤 숙소를 잡기위해 이리저리 번거롭게 쫓아 다닐 필요가 없다. 그리고 숨게스하우스 인근에는 피아골과 화개장터가 도보로 5분과 10분거리에 있어 식사문제도 무리없이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숨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맛집 추천을 받으면 친절하게 안내도 해주신다.


  




☞(전남/경남/구례군/하동군여행)지리산둘레길 숨게스트하우스. 구례하동 지리산둘레길 숨 게스트하우스 이용요금.


토미우리라하여 10인실 온돌은 1인 18,000원, 6인실 침대는 1인 20,000원이다.여름철등 성수기에는 23,000원과 25,000원으로 가격이 변동이 있고 필자는 8월초에 성수기 요금이 적용되었다. 아 그리고 아침은 숨게스트하우스에서 커피와 토스트를 준비해 준다는군여. 저는 다음 코스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 위해 일찍 나서는 바람에 먹어 보지 못하고 출발했습니다.


     




☞(전남/경남/구례군/하동군여행)지리산둘레길 숨게스트하우스. 구례하동 지리산둘레길 숨 게스트하우스 다양한 정보 교환.


여행객이나 둘레꾼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숨게스트하우스 입구에 모든 정보가 수두룩하게 준비가 되어 있더군요. 이곳에서 정보도 서로 얻고 교환도하면 될것 같습니다. 물론 주방에서 취사도 가능하며 공동샤워등이 구비가 되어 있어 여러모로 좋은 것 같습니다. ㅎㅎ 가족이나 단체객을 위한 바베큐 시설도 준비되어 있어요. 우리 국민들 밖에 나가면 고기는 꼭 구워 먹는 욕심이 많은데 덱에 앉아 고기도 구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요.


 

입구에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방에서 취사도 가능하고예 이곳에 햇반과 라면은 판매를 한다는군요.







이집의 별미 2,000원 팥빙수. 많은 사람들로 정평이 나있더군요.











◆지리산 숨게스트하우스 정보 (홈페이지 캡쳐)◆






































◆지리산둘레길 숨 게스트하우스 정보◆

상호:지리산 둘레길 숨 게스트하우스

주소: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섬진강대로 4220

위치:19번 도로 전라남도구례군과 경상남도 하동군 경계지점.

전화:070-7784-9696

홈페이지:http://jirisan.sumhost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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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보길도의 유래는

 

보길도 고산윤선도와 함께 하는 보길도는 섬의 생김새가 쟁기에 끼우는 보습의 모양이라 그 어원인 '보고래'에서 보길도가 유래하였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다 태풍을 피해 찾아간 보길도.

 

윤선도는 병자호란으로 고향의 해남에서 그의 가솔을 거느리고 뱃길을 인조가 피신을 해 있다는 강화도로 가는 도중 인조가 항복을 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여 다시 뱃머리를 해남으로 돌려 그길로 제주도로 향한다.
고산윤선도가 처음 이곳 보길도에 들어오게 된것도 세속의 모든 인연을 끊기 위해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태풍으로 잠시 몸을 피한것이 인연이 되었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보길도에서 윤선도가 처음지었던 낙서재 살림집

 

그길로 보길도에 눌러 앉게 되는데 그는 보길도의 격자봉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니  꽃망울을 터트리 직전의 연꽃이라 부용동이라 짓고 격자봉의 혈맥이 세번 꺽여 내려오는 곳에 처음으로 낙서재를 짓는다. 1637년인 인조 15년에 들어와 그가 가장 먼저 지었던 건물로 1650년 그가 이곳 낙서재에서 돌아가실때 까지 생활하였던 집이다.  

 

 

 

그는 이곳에다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뜻의 낙서재 현판을 걸고 조상의 위패를 모시며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는  무민당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의 낙서재와 곡수당은 모두 최근에 복원된 건물로 그 이전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그 흔적만이 남아 세월속에 묻혀 있었다.

 

 

 

 

보길도에는 그의 기인같은 행동이 많이 남겨져 있는데 그는 작은 바위 한개라도 허투로 보지 않고 많은 이름을 남겼다. 지금의 낙서재나 곡수당 그리고 동천석실은 그때의 흔적과 정취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이곳 툇마루에 앉아 둥근 달을 바라 보았을 것이고 저쪽 바위에 올라 하늘의 별을 세어 보았다고 생각하니 어느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부용동에 있는 모든 고산 윤선도 유적지는 '보길윤선도원림'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곡수당과 낙서재에 비해 동천석실은 고산 윤선도 선생이 독서도 하면서 부용동과 격자봉을 바라보며 주자학 연구에 혼신을 다한곳이 아닐까. 낙서재에서 바라보는 동천석실은 그야말로 바위에 위태롭게 걸린 제비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곡수당과 낙서재를 둘러 보고 이곳 입구로 찾아가니 차로는 갈 수가 없었다. 일행중에 연로하신분이 걸을 수 없는 처지라  젊은 우리들만 동천석실을 올라가자고 주장을 할 수도 없어 입구에서 돌아서 순천을 가기 위해 부두로 나왔다. 그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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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수당으러 건너편 산중턱의 바위가 동천석실이 있는 곳이다.

 

 

동천석실의 모습.

 

 

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동와와서와로 동쪽과 서족에 잠깐 휴식을 위해 지은 움막.

 

 

 

 

보길윤선도원림 동천석실

 

 

동천석실 입구 . 이곳에서 걸어야 한다.

 

 



 

 

고산 윤선도 홈페이지:http://yungosan.hosting.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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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 윤선도 원림)대한민국 명승 34호 어부사시사를 창작한 세연정. 보길윤선도원림 관광정보센터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세연정 동천석실 낙서재 곡수당을 포함하고 있다. 대한민국 명승 34호로 지정되었고 고산 윤선도가 병자호란을 겪고 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은둔을 위해 제주도로 뱃머리를 돌리며 향하던둥 태풍으로 잠시 피신을 위해 보길도로 찾아 들어 갔다. 그는 이곳의 경치에 마음을 빼앗여 제주도 가는 길을 멈추고 이곳에다 안주를한다. 이곳의 산세가  마치 연꽃봉우리가 피어 터질 것 같은 의미의 부용동이라 짓고 낙서재 곡수당 그리고 건너편 바위에 동천석실을 짓고 세연정이란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을 꾸며 놓고 자신의  학문 연구에 채찍을 마다하지 않는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 윤선도 원림)대한민국 명승 34호 어부사시사를 창작한 세연정. 보길윤선도원림 관광정보센터

 

보길도에서의 새연정은 먼저 규모에 놀라게된다. 한갖 외딴섬인 이곳에서 조정의 부름도 마다하고 여생을 보내고 이곳 낙서재에서 마지막으로 운명을 한다. 그의 대표작인 '어부사시사'를 세연정에서 지었다하며 그의 보길도를 향하는 그의 행적과 보길도에서의 윤선도등을 '보길 윤선도 원림 관광정보센터'에서 소상히 알아볼 수 있다. 관람료 1000원을 지불하면 먼저 만나는 건물이다. 보길도에서 고산 윤선도에 관한 문화재를 보기 이전에 이곳을 먼저 들러 보고 새연정등을 관람할 것을 권한다

 

 

 

 

 보길 윤선도 원림 관광정보센터 구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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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전남 완도군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를 찾아가게 되었다. 출발은 땅끝마을 선착장에서  배편을 이용하면 된다.. 금오도 거문도 홍도 보길도등 섬여행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 보길도며 이곳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이야기를 빼고 보길도를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만큼 고산윤선도에게는 아름다운 섬 보길도 였고 보길도또한 고산윤선도와 함께하여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보길도 유래는...



완도군청의 홈페이지를 보면 보길도에 대한 유래가 나와있다. "영암에서 큰 부자가 선친의 묫자리를 잡기위해 이곳 보길도로 지관을 대동하고 들어 왔는데 그 지관이 보길도의 산세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섬에는 명당자리가 11곳이 있다며 십용십일구.보길(十用十一口.甫吉)이라하였다. 지관이 이르기를 이곳에는 명당터가 11곳으로 현재 10곳은 묫자리가 들어서 있고 나머지 한곳도 묫자리가 이미 정해졌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한다. 그 이후 보길도로 불리어졌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병자호란으로 은둔을 위해 찾아간 보길도.



고산 윤선도와 보길도는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1636년 인조14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에 인조는 한양을 버리고 강화도, 남한산성으로 피난처를 옮기기에 급급하였다. 윤선도는 그의 식솔들과 함께 인조를 지키기 위해 강화도, 남한산성으로 찾아가지만 청나라에 두손을 들고 항복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기탱천하여 그는 그길로 그의 고향 해남으로 발길을 돌린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태풍을 피해 찾아간 보길도에 그의 왕국 세연정을 세우다.



해남에서의 고산윤선도는 두번다시 조정과 세속의 일에는 나서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은둔을 위해 제주도로 뱃머리를 돌렸다. 제주도로 향하는 도중 태풍을 만나 피하기 위해 우연히 찾아 들어간 곳이 보길도이며 그는 이곳의 산세에 매료되어 재주도로 향하던 뱃길을 멈추게 된다. 이곳의 지형이 연꽃의 모습이라 부용동이라 이름짓고 낙서재란 작은 정자를 세웠다. 그와 함께 동천석실등과 함께 지은 또 하나의 정자가 조선시대 정원의 진수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세연정이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부용동의 세연정 뜻은.


세연정(洗然亭)의 세연은 어떤 뜻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주변 경관이 물에 몸을 씻을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의 뜻이며 '고산연보'에는 1637년 윤선도가 부용동을 처음 발견하고 지은 정자라 되어 있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양파 껍질 같은 정자 세연정.


세연정 정자는 다섯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중앙에 세연정이. 동쪽에는 호광루가 서쪽에는 동하각, 남쪽에는 낙기란, 서쪽에는 칠암헌의 편액을 따로 걸었는데 세연정은 꼭 양파같은 정자라 생각된다. 껍질을 벗기니 안에 또 양파가 들어 있는 것 처럼 세연정 안에는 또 다른 세연정이 들어가 있는 모양세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세연정의 건축미에 감탄.


고산윤선도는 다방면으로 재능을 가진것으로 보인다. 그중 또 하나의 재능은 세연정과 그가 손수 가꾸었다는 정원을 보면서 건축가적인 감각이 매우 뛰어난것 같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탄성이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것만 보아도 요즘에 태어 났다면 정치가가 아닌 건축설계를 하는 건축가가 되어도 세계 최고의 CEO는 따논 당상으로 보인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굴뚝다리의 판석보가 현재 유일.


세연정을 둘러싸고 있는 연못의 물은 판석보를 거치게 된다. 요즘 같은 건기에는 돌다리가 되어 밟고 건너는 기능을 하며 길게 굴뚝 처럼 생겨서인지'굴뚝다리'로도 불린다. 연못의 물을 가두는 역활도 하지만 비가 많이 올때는 연못의 물이 판석보를 통해 물이 넘쳐 나가면서 폭포가 되도록하였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세연정에서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지어졌다.


연못안에는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도록하는 기능을 가진 석조보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다. 세연정에는 또 인공으로 만든것으로 보이는 동대와 서대가 남아 있는데 자연석을 쌓아 올린 평평한 모습이다. 이곳에서 어부사시사가 불려지면 사람들은 어울려 춤을 추며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정자 세연정.


필자도 담양의 소쇄원,구례의 온조루, 옥산의 독락정, 양동의 관가정, 밀양의 월연정등 조상들의 숨결이 묻어난 멋들어진 정자를 많이 찾아 보았다. 모든 곳이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정자로 싯구가 저절로 머리속을 맴돌 정도로 주위의 경관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곳이다. 나름대로 우리 조상들의 삶의 공간인 정자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이곳 보길도의 세연정 처럼 그리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감동의 쓰나미를 느끼게한 세연정.


보길도의 세연정을 처음 접하고 그 웅장한 모습에 요즘 아이들이 말하는 '감동의 쓰나미'였다. 밀양 영남루를 처음 접할때의 그 감동을 이곳 세연정에서도 느꼈다. 영남루 처럼 규모도 웅장하며 건축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정자의 구조를 보면 일반 정자와는 다른 독특한 구조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더욱 놀랬다.

 

 

 

 

고산윤선도 그분은 어찌 이곳에다 이런 세연정을 지을 생각을 하였는지 아름다운 세연정을 보며 감탄만하고 또 하나의 고산 윤선도 유물이 남아 있는 곡수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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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청해포구 촬영장, 영화 드라마 cf촬영으로 유명한 청해포구 촬영장.


완도에 가면 꼭 들러보고 온다는 관광지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 cf 촬영의 명소라하는 '완도 청해포구 촬영장'으로 옛 우리 조상들의 삶과 모습을 그대로 재현을 하여 그 한 단면을 옅볼수 있다. 해상왕 장보고의 일대기가 이곳에 촬영되었고 신돈, 서동요, 대조영, 주몽,순옥이,태왕사신기, 이산, 대왕세종,추노, 김만덕, 김수로,근초고왕등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와 근대를 아우르는 드라마가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청해포구 촬영장, 해안선의 어촌풍경과 다도해의 전망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완도 청해포구 촬영장.


완도 청해포구 촬영장을 찾아가는 길도 너무 아름다운 길이다. 완도교를 건너면서 해안선으로 이어져 달려가는 완도 일주길은 보이는 것은 다도해와 망망대해의 바다라 도심에서 생활하며 꽉 막힌 가슴속을 힐링해주는 그런  아름다운 길이다.  해안선을 따라 실타레 처럼 엉켜있는 어촌의 풍경이 고요의 바다에 잠겨 관광객의 고함소리가 정적을 깨트린다.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청해포구 촬영장, 영화 드라마 cf촬영으로 유명한 청해포구 촬영장 황토방에서 숙식.

완도 청해포구 촬영장은 저잣거리, 포구, 본영,해변등 눈으로 즐길거리가 풍부하다. 이곳 청해포구 촬영장에서 보는 저녁 노을은 이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어 더욱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한다. 저잣거리에는 숙식을 위한 황토방이 만들어져 있어 저녁노을도 구경하고 다양한 먹거리등을 즐길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다. 완도에서 여행을 이곳에서 숙식해도 괜찮을 것 같다. 
















청해포구 촬영장 눈으로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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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은행나무  푸른 잎이 바람에 떨어질때면 마치 푸른비가 떨어지는 것 같다는 녹우당.

 

 

하늘을 가르는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온다. 사각사각 거리며 댓잎을 흔들고 덕음산 아래 비자나무도 어깨춤을 흔들며 소리를 낸다. 스르륵 스르륵, 후두둑 후두둑

하늘은 무엇이라도 태울 요령으로 염천 때약볕인데 어디서 비 뿌리는 소리가 들린다.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 녹우당은 '집앞의 500년 된 은행나무에서 푸른 잎이 떨어질때면 마치 푸른비가 떨어지는 것 같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은행나무  푸른 잎이 바람에 떨어질때면 마치 푸른비가 떨어지는 것 같다는 녹우당.


한여름인데도 7월의 막바지에 찾아간 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입구에는 가을의 문턱을 당기기 위함인지 목을 쭉 뺀 코스모스가 바람에 몸을 맡기며 이리저리 흔들린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가 있는 해남읍 연동은 백련동으로 불린다. 그런 연유인지 주차장 옆 작은 연못에는 연꽃이 푸르름도 잊고 꽃망울을 터트리며 화사하게 입맞춤을 하고 있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고산 윤선도를 알기위해서는 먼저 윤선도 유물관을 관람하자. 녹우당.


현재 오른쪽으로 새롭게 단장한 고산윤선도 유물관이 있고 녹우당은 정면의 은행나무가 보이는 직진길이다. 고산윤선도를알기 위해서 먼저 유물관을 관람하자. 고산윤선도에 대한 그의 삶과 해남윤씨 가문의 녹녹치 않는 삶이 이곳에 녹아 들어 있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500년된은행나무가 문화재. 윤효종이 아들의 진사합격을 축하하며 심었다한다. 녹우당.



녹우당 인근에는 세그루의 은행 나무가 있다. 먼저 녹우당 집앞과 전시관 뒤편에 두그루가 있다. 이 은행 나무는 다음과 같은 내력이 있다. 고산 윤선도의 4대 할아버지인 어초은 윤효종이 아들들의 진사시를 합격하며 손수 심었다한다. 그만큼 역사성과 녹우당과 함께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녹우당에서는 이 은행 나무가 있어 더욱 멋스러운것 같다. 현재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수령은 500년이 넘었다 한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다방면으로 박식한 팔방미인 고산 윤선도, 녹우당.


고산 윤선도는 조선조의 문신이며 정치가 국문학자며 시조시인 예술가 한의사등 다방면으로 요즘말로하면 팔방미인으로 불리든 분으로 이곳을 대표하는 건물은 녹우당이다. 효종이 그의 스승 고산 윤선도에게 직접 하사한 집이라 한다. 고산 윤선도가 고향으로 낙향을 할때 경기도 수원의 집에서 사랑채의 건축자재를 배로 싣고 현종9년인 668년에 이곳까지 옮겨와 다시 지었다하니 그만큼 고산 윤선도도 애착이 간 것 같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500년된은행나무와 비자림이 녹우당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녹우당.



사적제 167호로 지정된 고산 운선도 유적지는 고산 윤선도의 4대조인 어초은 윤효종이 15세기에 이곳에다 살림살이 터를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600년의 기나긴 역사를 이어온 해남윤씨 어초은공파 종택인 녹우당의 건축을 보면 풍수지리에 따라 지어졌는데 덕음산을 뒤로한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터 중의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는 500년이 넘은 비자림 숲이 있고 녹우당과 고산사당, 어초은사당이 함께 한다. 



 

 

 

(전남여행/해남여행/고산윤선도녹우당)고산윤선도유적지 녹우당. 문화재수공사로 녹우당은 개방을 하지 않는다.

현재 사랑채와 녹우당 그리고 부속 건물은 굳건히 문이 잠겨 있다. 녹우당 입구 대문에는 다음과 같은 알림문이 붙어 있다. '녹우당 안채 보수공사로 인하여 녹우당을 당분간 개방하지 않는다'는 공고문이다.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복원공사도 하여야 하고 재건축도 해야하지만 멀리서 찾아간 사람으로서 담장만 보고 돌아선다는것이 너무나 아쉬움이 큰것 같다. 기왕 보수공사를 시작하였다면 몇년의 땜질 공사가 아닌 완벽한 보안 공사로 향후 100년은 내다 보는 그런 녹우당을 후손에게 물려주면 멀리서 찾아간 분들에게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다.  


 

 

 

해남윤씨 어초은공파 녹우당.

 

 

 

 

 

 

 

 

 

 

추원당 가는 아름다운 길

 

 

옆에서 본 녹우당.

 

 

추원당 가는 아름다운 길

 

 

추원당.

 

 

 

 

추원당도 현재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다.

 

 

비자나무 숲.

 

 

 

 

 

 

어초은 사당.

 

 

 

 

 

 

 

 

고산사당.

 

 

500년된 비자나무 숲

 

 

 

 

보호수로 지정된 잘생긴 소나무.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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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순천여행)송광사 천자암의 쌍향수, 천자암의 쌍향수 곱향나무 줄기가 곱창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요

 

쌍향수인 천자암의 곱향나무
천연기념물 제88호
소재지: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읍 이읍리 1
천자암의 곱향나무는 상향수로 두그루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향나무과로 상록침엽교목이다.
세월의 깊이 만큼 곱향나무는 현재는 외형적으로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 처럼 이 나무도 외과적으로 수술을 하여 향나무 줄기에 시멘트로 수술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도 푸르름과 늠름함을 잃지 않은 조계산을 대표하는 향나무이다. 
오래된 만큼 전해 오는 전설은 한두가지 있을 법 한데 곱향나무를 자세히 보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모습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계산에서 수도하던 보조국사와 그의 제자인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들어 올때 짚고 온 지팡이를 여기 천자암에 나란이 꽂아 놓았는데 뿌리가 내려 지금의 곱향나무가 되었다 한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의 예를 다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래서 인지 마을 주민들이 향나무에 한번씩 손을 데면 죽어서 극락에 간다는 속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 향나무를 보기 위해 찾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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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굴

남근바위

사실 산행을 하다 보면 자연의 오묘함에 감탄을 자아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래 모양의 고래바위, 기차바위등 그사물의 모양에 따라
새로운 이름이 붙게 된다. 여기 월출산에도 남성의 심볼과 여성의 중요 부분이 서로 마주 보고 같은 능선으로 배열 되어 있어 음양의 조화가 신기할 따름이다.
월출산 정상을 지나 바람재로 내려서는 능선상에 솟은 남근석은 남성을 상징하는 바위로 봄이 되면 남근바위 상단에 철쭉 꽃이 피어 생명의 탄생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와 마주 보고 있는 도갑사 산행길의 구정봉 아래 여근석인 베틀굴은 임진왜란 대 이부근의 아낙네들이 난을 피해 올라와 이곳에서 베를 짰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 입니다.
굴의 깊이는 10m정도이며 굴속에는 항상 음수가 고여 있다하여 음굴
또는 음혈이라 부르기도 한다합니다.지난 일욜 산행시에도 가뭄으로 먼지 펄펄 날린 산행길과는 달리 베틀굴 바닥은 습기가 차 있어 바닥이 축축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그래서 굴 내부의 모습이 여성의 중요부분인 국부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합니다.




남근바의 꼭데기에 철쭉 나무가 보인다. 저 위에 자리 잡은 자연의 신비를 볼 수 있다.

남근석의 석문을 빠져 나와서 본 뒤돌아 본 모습

다른 각도에서 본 남근석의 모습으로 남근석은 천황봉에서 바람재 방향으로 올때만 남근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계단을 올라 우측으로 돌아가면 월출산의 명물인 남근바위가 나타나고 그 우측으로 큰 바위가 여근석인 베틀바위가 있는 구정봉이다.


베틀굴 안에서 밖으로 본 모습

베틀굴 내부의 모습

베틀굴이 있는 구정봉으로 사진상 가운데 소나무가 있는 곳이 베틀굴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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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른 봄이라 고목은 새싹을 다 피우지 못하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서 있었다.

봄이면 새잎을 달고 오고가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독차지 할 것 같다. 가지가 좌우로 뻗어 여름철에는 넓은 그늘을 만들어 쉼터 역활을 할 것이며 도갑사를 450년 동안 지켜온 터줏대감이 이 팽나무이다.
허리둘레는 장골 둘이서 양팔을 뻗어 겨우 잡을 수 있는 4.4m이며 팽나무의 높이 또한 8m로 낮지만 풍겨오는 무게감은 보는 이를 압도 하고도 남는다.  
1924년 12월 3일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고 위치는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58-2번지 도갑사 상가건물 한켠에 서 있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고목 답게 가지를 받이는 기둥이 여러개 서 있어 세월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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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최영장군이 제주도에서 발발한 민란을 평정하고 무주현을 거쳐 서울로 가던중 붉은 단풍이 온산을 뒤 덮고 바위가 병풍를 친 이곳의 산세에 이끌여 적상산을 오르게 되었다.
급한 산세를 올라 보니 7부능선에 큰 암벽이 앞을 막으니 대장부가 정상을 목전에 두고 내려 갈 수가 없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긴 칼을 가지고 바위를 내리치니 바위가 쪼개져 길을 내 주어 산 정상으로 오를 수 있었다 한다.
그 바위가 장도 바위이며 폭은 사람 한사람이 겨우 다닐정도의 길이 나 있다. 그곳을 벗어나면 적상산성으로 서문이 위치하고 있다.
최영장군이 산 정상에 올라보니 산세가 험하고 하여 이곳을 군사적 요충지로 보고 산성을 축조할 것을 건의 하였다 한다. 




총길이는 8km가 넘는 산성으로 적상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축성하였다. 그리고 서창으로 오르면 서문으로 오를 수 있다. 일명 용담문이라 하였다. 축성 당시에는 문루가 있었다는데 2층이며 3칸이었다고 “적상산성조진성책”에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은 산성의 흔적만이 남아 여기가 문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폐허가 된 것을 최근에 돌을 쌓아 올려 서문 터임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성문 밖에는 서창과 고경사가 있었다하며 서창은 미창과 군기창이 있었다한다.
험한 산세로 인해 성안까지 운반이 힘들어 사고지 옆으로 옮겼다하며 등산로 입구마을이 아직도 서창으로 불려지고 있다.

최영장군이 적상산을 오를 때 암벽이 앞을 막아 장도를 쳐 산길을 만들었다는 장도 바위로 사람 한사람이 겨우 빠져 나갈 정도의 폭이다.


장도바위와 주변의 산세가 험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장도 바위를 지나면 만나는 적상산성의 서문으로 일명 용담문이라 불린다.
누각은 사라지고 없지만 산성이라도 제 모습으로 복원을 하였다.

사적제146호로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에 위치하며 서창마을에서 오르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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