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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천봉산 대원사 앞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가을의 절정은 무었일까. 가을은 단풍을 보지 않으면 한해를 거르는 거와 같은 것처럼 산을 찾는 산꾼이나 일반인도 가을에는 단풍을 찾아 보지 못하면 그해를 잃어버리는 것 처럼 허전해 할 것이다. 그만큼 단풍은 누구에게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존재로 단풍을 찾아 많이 떠난다. 그래서 인지 언제가 최고의 절정이며 우리 인근의 산에서는 언제 쯤 단풍이 내려오는 지 궁금해 할 것이다. 그래서 기상청에서 발표한 올해의 단풍 분포를 보니 올해는 단풍이 예년보다 1~5일 늦어진다고 한다.
 

영천의 작은보현산과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  칠선계곡의 아름다운 단풍.


그러나 단풍의 절정 시기는 예년보다 빠르다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금강산에서 내려 와 설악산에 단풍이 물드는 시기는 평균 9월28일경부터 시작 되지만 올해는 늦어 10월초순인 3일부터 시작된다 한다. 설악산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가 10월18일경에 온설악을 붉게 물들인다 한다. 그리고 남하하는 단풍은 11월7일경 남부지방인 내장산이 절정을 이룬다 하며 설악산 오대산의 첫 단풍은 예년보다 1~2일 빠르지만 다른 지방은 1~5일 늦어진다고 기상청은 내다보고 있다. 흔히 단풍이 절정이다 할때 그 기준은 어떻게 나눌까?. 첫단풍은 산전체 높이로 보아 2할이 단풍으로 물 들었을때이며 8할이 단풍으로 물들때를 단풍의 절정기라 한다. 단풍의 절정기는 첫단풍 이후 보통 14일이 되면 단풍의 절정이 되는데 설악산등 중부지방과 지리산은 10월 중순 후반에서 하순경에 나타나며 남부지방은 10월말에서 11월 상순경까지 나타난다.

영남알프스 청수좌골과 설악산 천불동 계곡의 곱게 물든 단풍


올해 10월 상순 기온은 평년과 비슷하나 중순에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이 평년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되어 절정이 빠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한다.

전국 명산의 단풍 절정일을 보면은 금강산이 10월15일, 설악산과 오대산 10월18일, 북한산 10월28일, 치악산 10월23일, 월악산 10월26일, 계룡산과 속리산 10월27일, 팔공산과 가야산 10월28일, 지리산 10월23일, 내장산 11월7일, 무등산 11월3일, 한라산 10월28일, 두륜산 11월12일로 나타난다 한다.


대야산의 아름다운 단풍과 주왕산의 붉은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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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요일

쇼파에 누워 리모콘을 눌러다 그만 잠이 들었나 보다.

갑자기 딸아이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아빠’

‘아빠’하면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부시시 일어나

‘왜’하니 딸레미 하는말

‘내가 아빠를 위해 간식을 만들었지’하면서

‘쟌~~’하고 보여 주는게 아닌가.

그런데 시중에 파는 것과 모양은 비슷해 보인다 싶어

‘참말로 이거 지금 니가 만들었나’하니까

‘진짜로’하면서 고개를 끄떡인다

아니 니한테 이런 재주가 있나 싶어 신기할 따름이었다.

애가 아빠를 위해 빵을 다 굽어 내다니...

혹시나 싶어 어찌 만들었나 물어보니


모 회사의 파운드케익을 가지고 반죽을 하는데 우유와 계란이 좀 적어 5개를 넣고 반죽을 한 상태에서 틀에 담았다하였다. 조리법에는 마아가린이나 버터를 넣어라고 되어 있는데 몸에 나쁠까 싶어 넣지 않았다 하면서 조잘조잘 설명을 곁들인다. 그리고 고구마 껍질을 깍아서 잘게 썰고 하여 반죽에 넣었다 하면서 설명을 막 하는게 아닌가.

신기하기도 하고 참...그리고 부연설명으로 미리 오븐의 온도를 180도로 올려 놓아야 된다하며 안그러면 온도를 올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하며 설명을 해주는게 아닌가.

‘그럼 몇분 정도 전자레인지로 익혔노’물어보니

35분~45분인데 나는 고구마가 안익을까봐 40분을 익혔다 한다.

금방 나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운드케익.

‘이름은 뭐고’ 하니까.

‘고구마가 들어가 고구마파운드케익이지’하는게 아닌가.

딸레미 덕분에 오후 낮시간에 출출한 배를 갓 구워낸 빵으로 넘 맛있게 먹었다.

‘또 만들어 줄기제’하고 물어니

‘응’한다

귀여운녀석

일요일 오후시간이 즐거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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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얼마 전에 춘천의 102보충대로 입소한 아들놈으로부터 온 편지였다.
입소 후 애 옷도 받았고 훈련를 받기 위해 예하 부대로 내려 갔다는 연락을 추석날 아침에 전화로 받았다.
그 후 오늘 한통의 편지가 날아온 것이다.
애 엄마는 기다리던 아들놈의 편지를 버선발로 나가 받아 오더니 쭉 찢어서는 편지를 본 후, 그 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만 멀뚱 쳐다보더니 하는 말 ‘그 아버지 아들 아니라 할까 싶어’하며 기가 찬 듯 나를 쳐다보고 있다. 도대체 편지지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기에 가만히 있는 나를 걸고 넘어 지는 걸까 싶어 편지를 받아 보니 진짜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 넓은 편지지에 딱 4줄의 글자가 적혀 있었고 글자 수를 헤아려보니 마흔다섯글자 였다.
아무리 적을께 없어도 그렇지 군에서 편지지 첫머리를 장식하는 ‘부모님 전상서’하면서 당연히 들어가는 문구는 ‘부모님과 동생에게’로 바뀌었고 그 다음에는 부모님 건강과 안부를 묻고 하나뿐인 동생의 안부를 물어야 하는게 수순인데 이 놈이 적어 보낸 편지 내용을 보니 ‘이래 저래 써봐야 바뀌는 것 없다’뿐이였다.
그리고 ‘휴가때 맛나는거나 많이 사주시길 바란다’와 ‘군대는 답이 없다’뿐이였다.
애 엄마는 눈을 씻고 봐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눈꼽만도 없어니 그 화살이 내게로 돌아온 것이였다.
 


입대하기전까지 애한테 쏟은 정성을 알고 있는 터라 많이 섭섭 하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들이 부모님한테 보낸 편지로 그것도 군에 가서 보낸 첫 편지의 내용이 하도 기가차서 빵 터지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군에 가는 아들들이여 부모는 자식의 편지를 얼마나 많이 기다리는데 성의를 보여서 보네주세요. 첫 편지의 내용이 적어 보낼게 없어도 2/3는 편지지를 채워서 보네주고 그래야 ‘그 아버지에 아들 아니라 할까봐’란 소리를 안 듣게 되니까...


훈련소의 아들과 훈련병의 모습. 가운데 줄 맨 왼쪽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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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름 아닌 한여름 보다 더 더운 날씨가 연일 기승을 부린다. 그러다 보니 입맛을 잃기가 쉬우며 쉬는 날 점심때 뭘 먹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손 쉽게 라면에 계란과 만두를 넣은 만두라면을 주로 끓여 먹는다.


오늘도 집에서 X-ray를 종일 찍고 있었더니 방사능에 노출되었는지 온몸이 나른한게 도통 입맛이 없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물김치가 보인다. 메운 비빔밥이 생각이 난다. 밥솥에 밥을 퍼 양푼에 담고 배추물김치를 밥위에 올리고 그기다 고소한 참기름을 몇방울에다. 고추장을 한숟가락 퍼 넣어면 비빔밥 준비끝


. 여기다가 계란을 넣을까 하다 니끼한게 싫어 막비비니 뻘건 비빔밥이 완성이다. 아주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비빔밥, 씹이는 배추의 세콤한 맛과 절묘한 고추장의 맛에 호호 불며 먹다보니 잃었던 입맛이 조금은 돌아오는 것 같다. 역시 한국음식은 메콤한게 좋은 것이여. 곁들여 배추물김치의 국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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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의 발달로 편지를 쓸 일이 거의 없다 시피하다. 전화나 e-mail의 편리함속에 쉽게 친구나 연인에게 사연을 이야기하고 전할 수가 있다. 예전에는 편지한통 보낼려면 최소한 2박3일 동안은 그 편지로 인해 즐거움을 안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문명은 발달 되었지만 변하지 않았서면 하는 것이 손으로 쓴 편지이지 싶다. 편지지에다 깨알같은 글씨로 적어 하얀 봉투에 넣어 밥풀로 입구를 붙이고 우표도 싸 붙이고 집 앞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일을 생각하니 지금도 웃음이 피식 나온다.



우연찮게 부산우체국 뒷길을 걷다보니 하얀 우체통이 서 있다. 기존의 우체통은 빨간색으로 사각모양에 윗 부분이 둥근 모습인데 여기 서 있는 우체통은 흰색으로 원통의 기둥에 가깝다. 부산 동광동 40계단 아래에 있는 하얀 우체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옆면에 붉은 글씨로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이라 적혀 있다.


 이 우체통은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고 없는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그리운 님에게 보내는 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애절한 사연, 피난시절을 회상하며 떠오르는 옛이야기, 모든 이의 향수와 애환을 담은 편지를 넣을 수 있는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입니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곳은 어떠한 곳인가. 한국전쟁으로 전국의 피난민들이 몰려 와 이곳 40계단 아래에서 친구를 만나고 부모의 안부를 듣고 연인과의 재회를 하고 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지든 눈물과 사연이 많은 곳이 아닌가. 그래도 이곳 40계단에서 만나고 재회한 사람은 다행이라 여기고 만나지 못한 금순이는 오늘도 40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서 인지 연신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에 편지를 넣어 부모님과 친구, 그리고 연인에게 소식을 전해본다. 물론 우표는 필요가 없다 하네요.

‘이 우체통은 여러분들의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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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도 창 밖으로는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장마가 끝 난지 언제인지 모를 일이지만 오늘도 장마인양 하염없이 비만 내린다. 베란다 앞 건너편 영도의 맑은 모습도 본지가 꽤 된 것 같은데 지난 토욜일에는 머리에 버섯구름만 뒤집어 올리고 있어 반가운 마음에 몇장 담아 보았다. 맑은 날씨가 실로 오랜만이다.

그래서 답사 갈 일이 있어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나가 양산 땅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날씨는 맑았고 구름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씨 였는데 갑자기 구름이 서 쪽에서 몰려오더니 빗방울을 동반한 국지성 호우가 내려 퍼 붇는다. 시골 노인정 담벼락에 붙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쪼그리고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미동도 하지 않는 구름을 원망하며 우산을 빼고 온 것을 백번 천번 후회를 해본다. 이 맑은 날 갑자기 비가 올 줄을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다. 이제는 한반도도 기후가 변하는 것을 실감 할 것 같다. 



영도 봉래산에 뒤집어 선 구름의 모습과 남항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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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을 영남대로라 한다.
시대의 배경은 변하지만 이 영남대로는 변하지 않고 면면이 이어져
현재의 동맥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선시대때 과거길, 파발마의 길, 보부상들의 애환의 길, 백성들의 눈물의 길,
피난의 길등 아주 다양하게 이용이 되었다 ,
부산을 출발 낙동강을 끼고 올라가 밀양읍성을 거쳐 올라가는 영남대로는
내일동~교동을 거쳐 지금의 밀양대공원 충혼탑 뒤 제사고개로 해서 청도땅으로 영남대로는 이어졌다.


고개마다 애환과 눈물의 사연이 오롯이 배여 있는 우리의 옛길,
과거길의 선비들도 영남대로를 따라 한양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며
과거급제의 꿈을 안고 걸었던 이길,

과거길에 오르는 선비들은 관로인 영남대로를 두고
이곳 추화산 사잇길인 용평고개로 둘러 현재의 밀양대공원 충혼탑으로 돌아 갔다 한다.



이곳 용평고개에는 보기에도 비범한 모과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 있다.
수령 300년 이상을 이고개에서 오고가는 길손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이고개에는 원래 700살을 견더온 모과나무가 있었다 한다.
언제부터인가 이 모과나무 아래에서 치성을 드리는 무당이 살았는데
무당의 과욕으로 인해 그만 모과나무에 불을 내고 말았다.

그 후 모과나무는 죽고 어느 봄날 줄기에서 모과나무 새싹이 돋아 현재의 모과나무로 자랐다 한다.
이 모과나무를 자세히 보면 한그루가 아닌 여러그루가 자라면서
한그루의 모과나무로 되었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 모과나무에도 슬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용평동에 거주하는 윤할머니는 모과나무에 대해 과거길의 선비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나무였다 한다.
‘과거길의 선비들에게는 관도가 아닌 이길로 다녔제’. 모과나무의 효엄을 믿어
일부로 이길로 돌아 이 모과나무 아래에서 과거급제를 할 수 있도록 빌고 갔다는 것이다.
지금 이 모과나무 믿 둥치가 썩어 큰 구멍이 나 있다.
과거길에 오른 선비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피로가 몰려와 잠깐 눈을 붙일 요량으로
밑둥치의 구멍에 기대어 잠을 자다 변고를 당하고 말았다한다.
그후 한양 과객들은 ‘밀양은 몰라도 모개 남자는 안다’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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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연의 생태계는 새끼를 낳아 키우는 계절인것 같다.
그래서인지 산길에서 산토끼가  등산로 상에 나와 있다가
나를 만나니 움직여야 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곰곰히 생각을 하며 
몸을 최대한 낯추며 숨기고 있다.
그리고  아직 어미한테 자기보다 큰 짐승에 대한 대처법을 배우지 못하였겠지만
그래도 습관적으로 몸을 최대한 낯추면서 몸을 숨길려고 하는 습성은 자연에서 배우는 것 같다. 







이번에 임도길에 만난는 것은 꿩새끼 인것 같은데 아마 새끼들 무리에서 이탈을 한 것 같다.
어미를 찾는다고 얼마나 울던지 얼른 어미가 나타나도록 자리를 비껴 주었지만...
그날밤을 잘 보냈는지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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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가수’는 버라이티를 표방하는 프로가 아닌 것 같다.

현장의 생생한 감동이 본방시 화면에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벌서 네티즌에 의해서 누가 1등이라 누가 탈락을 하고, 누가 하차를 하고 그대신 누가 영입을 하고 하는 이야기가 인터넷상에 난전처럼 흘러다니니 말이다.
지난 일욜 본방때만해도 김범수가 님과함께로 1등하고 이소라가 탈락하고 jk김동욱이 자신의 실수땜에 자진 하차를 하는 이야기, 그리고 MC 이소라 다음으로 장혜진(그것은 아직 모르지만)이 가수겸 MC로 벌써 이야기가 된상태라는등 이런 상태에서 주말 본방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시청전에 벌써 모든 상황을 알고 있어니 긴강감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노래만 들은 것이다. 나가수는 7명의 가수들이 노래를 부른 후 청중평가단이 3명씩 추천하고 난후 모두 보낸 후 에(텔레비젼화면상) 결과를 정리하고 1등~7등을 뽑는 것으로 안다.
평가단에게는 1~7등과 탈락자를 모르게하고 정보를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기 위해 평가단을 미리 내보낸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그 결과는 그기 남아 있는 분 즉 가수, 메니저 나가수 관계자만 알고 있어야 하는 상황을 녹화와 동시에 인터넷에 기사꺼리로 올라오니 신PD는 출연진과 관계자분의 입단속을 철저하게 교육을 시켜 나가수가 표방하는 긴장감을 이어나가주길 바란다.
시청자의 한사람으로 보면 나가수는 현재 병을 딴 김빠진 맥주에 불과하니 이것은 버라이티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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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비슬산 자락인 풍각면 산골마을에는 요 근래 큰 중국집이 새로 열었다.

청도군 산골의 중국집 치고는 규모가 꽤 커 장사가 잘 되겠나 싶을 정도로 의문이 간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우려에 불과 하였다. 오늘의 영업시간인 오후 8시, 영업전에 고급승용차가 줄줄히 시간을 맞추어 들어 왔다. 음식이 맛은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 이곳의 사장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것이 궁금하여 사장님을 찾으니 개그계의 대부 전유성(62)씨 였다. 그는 지난 5월20일 이곳 청도군 풍각면 수월리에 중국집이 아닌 철가방을 오픈하였다. 중국집의 생명인 철가방으로 개그를 배달하며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배달을 해준다 한다. 그래서 인지 예약손님만 받지 일반 손님은 이집의 음식맛을 볼수가 없다. 반드시 예약을 해야만 음식맛을 볼 수 있다하니 개그계의 대부다운 발칙한 생각이다.

가격은 자짱면 한그릇 값인 4500원이며 공연장을 통째로 관람을 할 인원은 40명으로 18만원이다. 그러면 주위분들과 함께 오붓하게 관람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관람시간을 원하는 단체는 곱빼기인 7천원에다 40인분즉 28만원이면 관람이 가능하다한다. 80분은 배꼽을 덜었다 놨다 할 정도로 웃음을 주는 이곳은 좌석이 40개로 한정이 되어 있어 더 많은 손님은 받기가 힘들다고 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개그계의 전설인 전유성씨는 단원들에게는 시장님으로 불린다. 시의 시장이 아닌 그가 운영하는 “코미디 시장”의 장이다 보니 시장님으로 불리며 코미디시장의 2기 단원과는 아버지로서 또는 형님 오빠로 선배로서 후배들을 아끼며 지도하며 개그계 새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예약 하는 방법: 개인 및 단체로 나뉜다. 평일에는 단체, 주말 공휴일은 개인 예약이 가능하다. 단체는 40명이 상한선이고 최소 20명 이상 이어야 예약할 수 있다. 예약 문의 전화 02-703-1950, 010-6703-1950. www.comedymarket.kr

 

관람료: 1인당 4500원, 단체 관람은 40명 기준 18만 원. 20명만 예약해도 40명 값 지불. 원하는 시간 주문 공연은 곱빼기 값인 28만 원.

 

공연 시간: 평일 오후 2시, 5시. 주말 공휴일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5시.

 

찾아 가는 방법: 자가용의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청도IC에서 내려 청도 읍내 방향 우회전, 사거리에서 20번 국도 창녕 풍각 방향으로 다시 우회전한다. 풍각면 소재지를 지나 풍각농공단지 표지판 앞에서 우측 성곡리 방향으로 우회전해 성곡댐 위로 가면 된다. 대중교통은 청도역까지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한 후 풍각행 버스를 탄다. 오전 9시15분, 9시50분, 11시25분, 오후 2시55분 등 하루 17회 운행. 풍각에서 성곡리행 버스는 오전 8시15분, 10시30분, 오후 1시5분, 3시40분, 6시20분 등 하루 5회 운행.





무대 설치 및 준비를 하는 단원들의 모습



단일관람관으로서는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이야기를 하는 무대. 무대 뒷 벽이 열리면서 야외무대를 이용하여 앞으로 코미디를 하겠다고 하였다.


관람 좌석이 전부인 모습




단원들의 무대 전 리허설 모습을 모아 봤습니다,












실제 개그를 하는 모습들...







단원인 설명근씨와 홍용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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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남기리 정려각과 가곡리 민씨 정려각. 정절과 정려각, 옛길을 가다 만난 슬픈 이야기


시골의 옛마을을 찾다보면은 마을 어귀에 효자각 또는 열녀각을 가끔 만난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비각은 그 마을의 자랑이며
그 마을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마을 주민들의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
그래서 인지 시골 농촌을 찾아가는 길손 또한 그곳을 지날 때 면
옷깃을 여미고 마음가짐을 자연히 새롭게 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밀양에는 충과 효를 숭상하는 양반골로 마을 마을마다 자긍심이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인지 경부고속도로도 마을을 통과하면 시끄럽다고
밀양박씨와 손씨 문중등 밀양을 대표하는 문중들이 반대를 하여 경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와
한일합섬등 공장들이 들어올려고 해도 조용히 살고 싶다고 반대를 하여 마산으로 갔다는 이야기등
밀양은 그만큼 자존심을 가지고 사는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효자와 열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분들의 이야기 또한 많이 전해온다.
상동면과 산외면은 능선을 하나 두고 각각 열녀각이 하나씩 서 있다.
모두 임진왜란때 정절을 지키기 위해 투신한 분들이다.
산외면 남기리 입구에는 정문마을이 있다.
이마을 이름도 정려각에서 따왔다.
밀양손씨 손기후의 처인 창원장씨로 친정인 창원에 있을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변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월영대에서 뛰어내려 정절을 지켰다한다.




창원장씨 열녀각은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안을 보니 좌우 앞면에 사군자인 매화, 난초,국화, 대나무
그리고 소나무가 그려져 있어 더욱 숙연한 마음이다






가곡리의 민씨 정려각 또한 박희량의 부인이자
삼매당 밀양박씨인 민구서의 딸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마을로 왜구들이 들이닥치자 뒷산 바위굴로 피신을 하였다 한다.
왜구들이 그곳까지 따라오자
민씨 부인은 화를 피하기 위해 바위에서 몸을 던지니
마을에서는 한송이의 꽃잎이 떨어졌다하여
낙화암이라 부르며 그 봉우리를 낙화듬으로 현재 부르고 있다.



내가곡마을의 전경과 마을 뒤의 낙화듬돠 정상아래 바위가 민씨부인이 투신 하였다는 낙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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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을 여행하다 보면그 마을의 수호신을 만날 수 있다.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등을 심어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다.
짧게는 100년에서 길게는 1000년을 이어오며 그마을과 역사를 같이한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마을의 신으로 모시며 받들고 있다. 






청도군 매전면 내리 안마을의 당산나무도

안내동마을의 얼굴마담이다.
수령350년인 이 느티나무는 인물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매끈한 몸매와 위험과 기품을 한께 갖춘 당산나무로
사방 팔방으로 그의 너른 품으로 그늘을 제공한다.  


마을사람만을 위한 나무가 아닌
여행자 또한 그 넓은 품안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해본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의 향기에
어느새 짧은 토막잠도 청해 본다. 
그래서 한여름의 당산나무는 좋은 것이다.
곧 메미가 울것이며 그메미가 마을에 진동할때쯤
다시 당산나무 아래는 동네사람으로 북적이겠지...
새참의 기쁨을 나누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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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사월초파일은을 위해 삼광사에서 올해도 부산역에 탑등과 청용과 황용을 배치하여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고 있습니다. 부산역의 탑등은 4월15일 오후 6시에 점등식을 하였다네요. 부산역을 올라가는 계단옆에 설치되어 있는 용과 탑으로 인해 밤에는 많은 시민들이 사진 촬영을 한다고 정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달려 있는 연등의 의미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한방법이라 합니다. 부처님의 지혜로 어지럽고 번뇌와 무지로부터 어두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의 지혜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하여 연등을 단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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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대웅보전은 보물제835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안의 천장을 올려다 보면 화려한 채색으로 문양을 하였다. 그리고 밖에서 보면 기둥을 안쪽으로 하나만 넣어 부처님의 모습을 정면에서 시원스럽게 볼 수 있도록 처리를 해 놓았다.
천장은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꾸며 놓았는데 그 좌측으로 보면 무언가 천장에 대롱대롱 메달려 안떨어 질려고 악착같이 붙어 있는 악착동자를 만날 수 있다.

왜 이리도 악착같이 떨어지지 않을려고 할까요?.
알고보면 인간은 미미한 존재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버리는 한낮 먼지 같은 존재이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한길 불국토인 극락정토로 가는 길은 이 반야용선을 타고 가야만 갈 수 있는데 어디서나 꼭 늦게오는 사람이 있는지라 이날도 늦게도착한 보살을 버리고 갈 수 없어 밧줄을 던저 그 줄을 잡고 따라오도록 하여 극락정토로 인도하였다는데 그 지각생이 악착동자.
오늘도 대웅보전 천장에 붙어 늦은 누군가를 대신하여 극락정토로 인도하기 위해 악착같이 줄을 잡고 있다.
꼭 무리중에 늦게 도착하는 지각생이 있기 마련인데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여행에서도 늦게 오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 10분 일찍 도착 하는 버릇을 키워야 겠다. 나중에 마지막 여행을 하면서 반야용선에 줄을 잡고 악착같이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ㅎㅎ 편안한 여행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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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메스컴에서 자동차가 돌진하여 남의집 매장을 박살 냈다는 뉴스가 나오곤 한다. 그때 마다 운전사는 급발진으로 인해 사고가 났다는 둥 하며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승용차가 돌진을 하여 자동차 대리점을 박살 냈다는 그런 기사를 접하면 십중팔구는 자동차에 결함이 있어 회사에 교환을 요구 하였지만 거절을 당해 운전사가 홧김에 매장으로 자동차를 몰아 그 분풀이를 했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부산 중구의 자동차 대리점에 가 면은 매장으로 뛰어든 승용차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가 있다. 
사방으로 깨어진 유리조각하며 자동차가 쇼윈도에 박혀 있는 모습이 실제와 비숫하게 묘사가 되어 있어 
버스를 타고 가다 창밖을 보는 순간 자동차 사고다 하며 가슴을 조아리게 하였다.  자세히 보니 자동차 대리점에 광고용으로 설치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러나 순간적으로 많이 놀 랜  것이 사실이다.
광고효과를 확실하게 보였다고나 할까?.
역발상에서 사고를 가장한 자동차 대리점의 광고 모습에 광고도 전쟁이란 문귀가 새삼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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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의 대웅전을 가려면 반드시 거치는 곳이 보제루란 건물이다. 대웅전과 마주 하고 있는 보제루는 "어리석은 중생들을  부처님의 참된 진리와 가르침에 의해서 교화한다"는 취지로 건립이 되고 있으며 많은 사찰에서도 보제루란 전각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주로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드리거나 49제등 법회식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을 하고 있어 규모를 갖춘 사찰에서는 보제루를 두고 있다.


 


범어사의 보제루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보제루 건물이 건립당시의 모습에서 변형이 되었다 한다. 그래서 일본 잔재를 청산한다고 하여 33만장의 기와불사를 하고 있었다. 새로 건립할 보제루 지붕에 올릴 기와를 접수하는 보제루 외벽에는 기왓장 한장 한장에 어린이의 맑은 손길로 그려진 소원들이 전시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가족의 건강 혹은 돈을 많이 벌어  잘살게 해 달라는 소원,개인의 소원등을 비는 어린중생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기왓장에 담아  새로 건립될 보제루의 지붕에 올라 간다고 생각하니 보제루의 처음 취지인 어리석은 중생들을 부처님의 법력에 의해 깨달음을 얻게 되길 의심치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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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새벽녁에 고찰의 사찰에서 울려 퍼지는 범종의 소리를 들어면 우리들의 마음은 어떨까?
편안한 마음과 모든 번뇌를 놓을 것 같은 마음이 들 것이다. 사찰에서 새벽녁에 범종을 치는 이유는 지옥에서 고통과 번뇌를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범종을 치는데 지난 일욜 석굴암에 들러 보게 되었다. 주차장 앞에 내려 보니 어디선가 범종의 종소리가 들리는게 안닌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종소리가 아닌 둔탁한 쇠소리가 ...
예불드리는 시간도 아닌 멀건 대낮에 말이다.
잠시 후 그것도 시도때도 없이 치는 종소리...
잠시 뒤 그 이유를 보니[footnote][/footnote]
불국사 자원 봉사단에서 한번 타종을 하는 데 일금 1000원씩 받는 다는 내용이 붙어 있는 안내판과
그 종을 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기금 조성을 한다는 안내문과 함께 말이다. 이유야 좋은 취지인데 그 둔탁한 쇠소리 때문에 고요한 사바세계로 울려 퍼지는 은은한 종소리의 생각은 깨지고 만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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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와 서구를 있는 남항대교

☞(부산여행/서구여행)천마산 천마바위 여행. 하늘의 천마가 내려와 대마도로 날아 갔다는 천마바위에서 본 부산

 

부산시 서구 남부민동과 아미동을 둘러 싸고 있는 천마산이 있다. 태백산 매봉에서 내려온 낙동정맥이 몰운대로 가기전에 곁가지를 쳐 천마산를 거쳐 암남공원으로 빠지는 이곳에 하늘벽이 서 있다. 

 



이름하여 천마바위, 옛날에 이곳에 하늘에서 내려온 천마가 이바위를 박차고 일본의 대마도로 날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데  그래서 인지 이바위에는 큰 구멍이 여러게 나 있다. 말 발굽 같이 움푹 파인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으며 아마 대마도로 날아가기 위해 힘껏 차고 오를 때의 흔적은 아닌지...
그 전설을 뒷 받침해 주는 이야기가 신라시대에는 이곳에서 말을 키웠다는 목마장이 있었다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초장동이라 하였다 한다. 천마바위에서 바라보면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자갈치 시장 ,남항과 그리고 영도대교, 부산대교 용두산 공원, 롯대백화점, 남항대교 암남공원과 봉래산 태종대, 멀리 이기대등 부산의 중심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남항의 모습과 중구 서구 영도구의 모습이 한눈에 다 들어 온다.

암남동과 송도해수욕장 그리고 암남공원도 확인 할 수 있다.

집뒤 남부민동 주택가에서 바라본 천마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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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내원사 입구인 일주문을 지나 삼성교를 건너면 그 유명한 내원사의 산신각을 만날 수 있다. 당나라 스님 일천명을 데리고 천성산(그때는 원적산으로 불림)으로 들어올때 천성산 산신이 마중을 나와 지금의 산신각이 있던 자리에서 산신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 후 그곳에 산신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그 곳 앞에 현재는 700살이 된 소나무가  내원사 입구를 지키고 있다.

 



1300년 전 이야기인 '원효척판구중"의 '원효가 판자를 던져 천명의 대중을 구했다'는 전설을 알지는 못 하겠지만 700살이나 먹은 홍송이 아파 현재 주사를 맞고 있다. 어디가 아픈지 아니면 요즘 소나무에 유행하는 소나무의 흑사병인 소나무재선충인지 몹시 아파하고 있다. 내원사를 드나드는 예전에는 오솔길이 넓은 길로 확장이 되고 그 위에 벽돌로 덮어 있어니 700살중 근래의 몇십년이 소나무에게는 치명타가 되었을 것 같다.
뿌리의 성장을 막고 숨통을 막고 그 옆 내원천에 축대를 만들며 다리가 잘려나가고 현재의 모습은 처참할 정도이며 700년을 활짝 열린 마음으로 살아 왔는데  최근에 닫힌 마음으로 갑갑하게 살다 보니 대한민국아줌마들의 울화병이 아닌지 모를일이다.



100년안에 국내의 소나무가 전멸한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나오는 요즘에 700년을 살아온 이 소나무도 현재 마음은 어떠할까. "나무 근처에 오지마세요. 이 소나무는  현재 약제 처리중에 있어 만지거나 송진 및 솔잎 채취 사용하면 위험하다"는 접근금지 경고문구를 허리춤에 달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형수가 되어버린 소나무의 마음은 어떠할까?

허리통 3.1m 키는 25m로 제법 근사하고 늘씬한 소나무는 2000년 3월18일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다. 상록수인 소나무는 하루빨리 원기를 회복하여 앞으로도 1000년을 더 살 수 있기를 빌뿐이다.

소나무의 이름표로 익성암에서 관리를 한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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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지
흔히 연리지를 사랑목이라한다. 몸은 두개이지만  가지가 서로 만나 한몸이 되는 것을 사랑목이라 하며 흔히 두사람이 만나 화목하게 사는 것을 이 연리지와 비교를 하는 데 자연의 오묘함을 볼 수 있다.
전국적으로 많은 연리지를 볼 수 있는데 지난 일욜 삼신봉에서 불일폭포로 산행을 하는 중 등산로 상에서 본 연리지이다.소나무의 연리지는 많이 보았지만 특이하게 단풍나무는 처음이라 신기하였다. 가까이 자란 두 단풍나무가 거의 몸을 붙이며 서로 다정하게 올라가다가 한 순간은 서로를 확인하는 지 잠시 떨어져 이별을 하는 듯 사이가 벌어지더니 그것도 잠시 그러나 그 이별이 서로 아쉬움으로 남는지 가지를 뻗어 서로 한몸이 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듯 보인다.
우리의 삶도 이런 연리지 처럼 되었서면 한다.
서로를 사랑하고 잠시 멀어져도 다시 결이 통하는
연리지 처럼 살아가는 내가 되었서면 한다.






뒷모습의 연리지로 서로 한몸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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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금정산 장군봉 일원에 가면은 철골로 기둥을 세우고 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기존의 철계단을 두고 바위를 바로 올라가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것이다.

기존의 철계단은 부산의 모기업에서 설치한 것으로 바위와 적절한 손놀림으로 인해 최소한으로 설치하여 사실 다방리에서나 은동굴에서 장군봉으로 오르는 산행로를 설명할때 험하다는 부분으로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도 사라질 태세이다. 그자리에 양산시에서 최근에 발주공사를 하여 지금 에스컬레이트(?)공사가 한창 진행중으로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는 그곳도 쉽게 오를 수 있을 것 같으니(모든사람이 다오르는 곳) 어느 것이 산을 찾는 산꾼을 위한 처사인지 모를 일이다. 도심 한복판에서야 일반 시민들의 불편과 위험성이 있는 곳은 당현히 개선을 하고 안전을 위해 설치를 하여야 하지만 산에서도 그정도의 위험(기존계단으로 충분할 것 같음)과 불편감수를 해야는 것은 당연지사, 그것도 위험지역이라고  더 큰 인공 시설물을 설치 하니 자연과 동화되기 위해 찾아가는 우리에게는 한쉼할 따름이다. 
사실 금정산은 여러 코스가 있지만 다방리 또는 은동굴로 오르는 코스가  인공적인 색채가 덜 가미된 코스로 많이 찾곤 하였는데 이제는 여기도 내마음의 산행길에서 지워야 할 것 같다. 금정산 고당봉 오름길의 계단길 처럼 설치 때 말이 많았는데 장군봉의 계단 작업에도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설치를 하는지 물어 보고 싶다.
오늘 5월12일 공사가 끝난다하니  
제발 금정산의 고당봉처럼 그런 큰 인공 시설물은 이제 그만 하면 좋을 것 같다.  산은 산 그대로 두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은동굴 갈림길을 지나 사각기둥을 박아 놓은 모습들 철쭉이 아쉬운 듯 바라보고 있다.

무슨 ktx공사 현장 처럼 작업도구와 함께 널려져 있는 모습이 앞으로 장군봉의 앞날을 보는 것 같다.
바위면에 박아 놓은 철빔
멀리서 본 모습으로 바위의 이끼를 걷어 내고 지금 계단 설치공사 작업을 하고 있다.

공사 현장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 옛 철계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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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삼광사에서 오는 5월2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 하여 설치한 조형물입니다. 용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시간이 되면 입안에서 불을 뿜고 다리도 움직이고 하는 것이 흡사 살아 있는 용이 부산역 광장에 나타난 것 같았습니다.
용은 불교에서 과연 어떤 존재일까?.
흔히 최고의 지존을 두고 하는 말로  예로 부터 용을 지칭하여 왔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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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은 부산의 진산이다 부산과 양산을 가르는 최고봉인 고당봉에서

동서남북으로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어 부산 사람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이 금정산에 한때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민간신앙 또는 기도처로 금정산이 산불과 황폐화로 많은 노출이 되어 왔었다.
동래구나 금정구에서는 많은 등산객들로 인해 기도처를 볼 수 없지만
호포 쪽에서는기도처가 많이 남아 있었다.  
구청에서 대대적인 단속으로 근래에 와서 기도처등 민간신앙의 은신처들은 많이 정리가 되었지만 그의 쓰레기 들이 온 산을 황폐화 시켜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일요일 찾은 금정산은 호포에서 신기마을을 거쳐 고당봉으로 오르는 등산로 상에서 본 기도터의 흔적이다.
가스렌지며 담요등 온갖 쓰레기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추위를 피하기 위해 방구들을 만들어 군불을 땐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쓰레기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기도처를 단속을 하면서 사람만 내려 보내고 건물을 철거 후 그 흔적까지 깨끗이 정리를
하여야 하는데 쓰레기를 그대로 방치하니문제이다.
봄철에 행락객, 등산객들로 붐비는 등산로상에서  보는 쓰레기가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금정산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니 지자체의 빠른 청소를 기대해본다.





지난 일요일 맑은 날씨로 많은 등산객들이 금정산 고당봉을 차아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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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떠나면 고생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금정산 산행중에 모 사찰의 화단에서 본 동강 할미꽃이다.
강원도 정선의 동강 바위벽에 터를 잡고 있어야 할 동강 할미꽃이 금정산 해발 500m대의 사찰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것을 보니 측은 한 생각이 든다 ...생각없는 누군가의 무단 채취로 이곳으로 옮겨와 다행이 죽지 않고 뿌리를 내려 다행이지만 동강 할미꽃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그의 이름을 발하듯이 동강에서 꽃을 피워야 동강 할미꽃인데 이제는 이놈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야생화가 아닌  원예화로 되어버린 동강 할미꽃. 그래도 서식 환경과 기후가 비슷한 것인지 죽지 않고 뿌리를 내려 꽃을 피웠서니, 다음해도 그 다음해도 죽지 않고 뿌리를 내려 꼭 잘 살아주길 빌 분이다.




동강할미꽃:강원도 정선의 동강 바위벽에 자라는 한국특산으로 여러해살이풀. 몸전체이 흰털이 할미꽃보다  많으며 보라색 계통의 색상이며 꽃밥은 노란색이다. 일반 할미꽃은 꽃봉우리를 아래로 숙이고 있지만 동강 할미꽃 은 하늘을 쳐다 보고 있다. 크기는 15cm정도이며 4월에 꽃이핀다.






모사찰의 화단에 터를 잡은 동강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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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위에 K씨가 하소연을 한 말입니다.
"퇴사한지 벌써 석달하고 2일이 지나가는군요. 아직도 퇴직금 정리를 다 안해주는 회사를요..

양산에 본사를 둔 중소기업으로 모업체 직영점인 부산에 근무를 3년간 하였습니다.
 3년동안 근무하면서 자기네 들이 정해준 월급날인 매월 7일날에 한번도 그 날에 월급을 받아 본 적이 없는데 퇴직금까지 아직도 다 정리를 안해주니 말입니다.
처음 몇 달간은 3~4일 늦더니 그 다음에는 보름, 그다음에는 한달은 기본으로 깔고 가더니 퇴사하기 1년 전부터는 2달을 깔고가는 회사. 그래서 회사 경리 담당자에게 월급날이 언제냐고 따지니 매월15일이 월급날이라고 자기네 마음대로 월급날을 변경하고 그 15일도 한번도 지킨 적이 없는 회사. 근무하면서 만날 회사에 월급 독촉을 해야 마지못해 주는 회사. 그렇다고 회사가 어렵다고 하면 이해를 합니다.
전국에 직영점을 널리는 사세확장은 하면서 직원들 월급은 뒷전으로 밀어내는 회사에 3년 간을 다녔는데 돌아오는 것은 관리담당 사장님이 직원을 도둑놈 취급을 하는 회사. cc-tv를 24시간 돌리고 본사에 앉아 있는 간부급들이 근무시간 내내 CC-tv감시를 하고 관리사장 또한 오후4시~5시면 같이 근무를 하는데, 근무하는 직원을 그냥 짐작으로 도둑놈으로 몰아 인격적인 모독을 주는 회사,
퇴직하기 일주일전 저녁식사 시간에도 도둑놈이 어쩌고 하면서 매장 전직원을 싸잡아 도둑놈으로 모는 직장, 관리 사장이란 분이 다른 직영점은 직원들끼리 서로 감시를 하여 그날 직원이 어쩌고 이상하다는둥 자기한테 보고를 하는데 여기는 직원들끼리 똘똘 뭉쳐가지고 자기한테 직장동료감시자로 보고를 안한다는 말을 하는 직장,
그래서 그날 9월말에 퇴사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직원을 충원하라고 하면서 9월말에 퇴사를 하였습니다.
물론 2개월 월급이 밀린 상태에서요. 11월말에야 월급은 정리가 되었는데 퇴직금은 아직도 정리가 안되고 미루고 있어니 말입니다. 경리에게 이야기를 하니 지난 년말에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참내 하기야 몇 번을 약속해도 지킨적이 없어니...
오늘도 통장에 안들어 왔네요. 회사가 어려워서 그런다면 근무한 직원으로서 이해도 할여고 하지만 잘될때도 어렵다는 핑계로 두달씩 월급을 미루고 그 돈으로 회사를 운영하는지 말입니다.
정직원만 일백명 된다하니 두달치면 최소한 3억정도는 되겠네예. 지금은 핑계거리가 더 늘었겠네예. 금융위기라며 두달에서 석달로 더 미루는 것은 아닌지" 하며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K씨의 이런직장을 어찌 처리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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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전 집에서 본 일출입니다. 영도 태종대에서 부터 암남공원으로 보이는 바닷가에 검은 띠 구름이 바다위에 깔려 있습니다.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하다. 오메가를 못 볼 것 같아 그냥 집 베란다에서 본 모습입니다.
이때는 아직도  해가 뜰 전초전인 붉은 기온이 감돌지 않은 상태의 모습입니다.

조금 지나니 구름에 붉은 띠가 보이는 군요.
구름의 모습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잇습니다. 그러나 아침 해가 뜨는 자리에 구름이 더욱 두텁게 깔려 있습니다.

갑자기 구름의 모습이 변하고 하늘은 더욱 붉은색으로 채색을 하고 있습니다.
구름이 2개의 층으로 분리를 하였습니다.
갑자기 도깨비 불을 밝히는 두눈의 광채가 더욱 빛나 보입니다. 
구름 위로 올라온 2009년 첫 해입니다. 그래도 난관을 뚫고 올라 온다고 고생을 했는 가 봅니다. 이 해에게 박수를 보냅시다. 어려움이 있어도 올해에도 소 처럼 우직하게 밀고 나가자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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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전에 올린 토피어리 인형을 다시 가봤습니다,

지금은 그때 그 모습에 조명을 달아 더욱 부티 나게 반겨 주었습니다.

이번 광복로 빛의 축제 행사로 인해 토피어리 인형들은 지금 추운 겨울에도 꽃비 같은 조명등에 따뜻한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이빨빠진 사자, 갑순이, 갑돌이, 산타 설메를 끌던 루돌프, 돌고래 한쌍도 모두 빛의 축제를 빛내고 있었습니다.




자연그대로의 식물을 인공적으로 다듬어 자연상태 그대로 연출을 하는 것을 전문용어로는 토피어리라 한다합니다.

여러 가지 동물 모형 사람모형등 다양하게 연출을 하여 보기 좋게 만든 작품을 말한다하며 .철사나 와이어의 뼈대를 세우고 겉에 이끼류등을 붙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광복로 빛의 축제를 덤으로 올려 봅니다.

돌고래도 그 모습 그대로 반겨 주었습니다.


영도인 절영도에서 뛰 놀던 말일까요. 앞발을 치켜든 말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빨빠진 사자도 아직도 그때 그모습입니다.

때때옷을 입은 갑돌이 갑순이도 더욱 화려하게 보입니다.







덤으로 광복로 빛의 축제입니다.







한달 전에 올린 "광복로 입구에 가면 옛 친구들이 토피어리 인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의 그때 올린 사진의 일부분을 다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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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19일 오늘 오후6시에 제1회 광복로 빛의 축제를 개최하였다, 조명예술건축물인 루미나리에로 화려한 광복로의 밤거리를 밝히고 있다, 광복로 입구에서 옛 미화당 앞 까지 이르는 400m 길이에 조형물을 설치 해놓았다. 가족, 연인등 연말에 많은 사람들로 호응을 얻고 있다. 2009년 1월18일 까지이며 매일 점등은 오후5시30분~11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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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동래구 안락동에 가면 충렬사가 있다. 충렬사란 어떤 곳이냐 먼저 이 부분 부터 집고 넘어 가야 할 것 같다. 충렬사(忠烈祠)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 되어 있다. 1592년 임진왜란때 동래부사였던 송상현은 동래성과 운명을 같이 하였다. 그 당시 동래읍성을 쳐들어온 왜장이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으면 길을 빌여 달라”는 통첩을 받고 송상현장군은.“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여 주기는 어렵다”는 답장을 보내어 최후까지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이며 동래읍성과 함께 순절을 하신분이다. 그분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던 곳으로 1605년에 동래부사 윤훤이 처음으로 건립을 하여 인조2년인 1624년에 사액을 받았다.

또한 임진왜란때 부산진성 싸움에 전사한 부산진첨절제사 정발장군을 함께 배향하였고 증축과 보수를 그치며 1735년 영조때에는 임진왜란 전투에 참가하여 순절한 모든 분을 모시게 되었다 한다. 물론 다대포 첨사 윤흥신도 함께 모시고 있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초계와 같이 목숨을 던진 분을 모시고 있는 이곳에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어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분들의 의도와는 잘못 된 것 같아 몆자 적어 본다. 최근에 동래읍성을 답사할 기회가 있어 운동 삼아 올라오신 복천동 주민에게 여쭈어 보았는데 북장대와 서장대는 동래읍성과 함께 있어 모든 주민이 알고 있는데 동장대는 알지 못했다. 북장대에 올라 정면의 누각을 가르키고 물어보니 이름을 아는 분이 단 한명도 없었다. 그냥 북장대와 서장대 처럼 누각정도로 알고 있어 그 참에 가보기로 했는데 인생문은 멋지게 복원을 하였고 동장대와 연결되는 능선을 올라가니 충렬사에서 철망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들어 갈 수 없도록 해놓았다. 그 안으로 들어가야만 동장대로 갈 수 있는데 울타리로 막고 있어 하나의 격리시설을 만들어 놓아  정확한 이름을 모르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 같았다..

그옆에 작은문이 붙어 있었는데 폐문이 된지 오래 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산불조심 입산금지” 아래 충렬사 관리 사무소 플레카드가 붙어있는데 울타리 밖으로 마을 주민들이 다니는 길이 빤질빤질하게 나 있어 입산금지란 글씨를 무색하게 하는 것 같다. 이참에 작은 문이라도 개방을 하여 동래읍성과 연결을 시켜 문화재 복원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할 수 없이 아래 정문으로 내려가서 들어가 볼 욕심으로 내려가니 문이 잠겨져 있었다. 오후 5시 이후는 통제를 한다 하였다. 그런데 누구나 쉽게 들어가서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배우고 쉽게 참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입장료 어른200원 어린이100원이란 문구가 먼저 들어오니 충렬사의 의미와는 잘못 된 것 같다. 더군다나 어린이에게 까지 입장료를 받고 있어니 말이다.  휴일날 요즘 젊은 분들은 가족과 함께 공원을 찾는데 동래읍성을 산보 하며 동장대를 거쳐 충렬사에서 휴식도 즐기고 참배도 드리며 또 그분들의 숭고한 마음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최근에 밀양시 무안면의 예를 들면 사명대사 기념관과 생가지에는 입장료를 2000원씩 징수를 하였는데 지난 10월24일 폐지를 하였다한다. 폐지한 취지야 어떠하던 간에, 입장료의 많고 적음을 떠나 충렬사를 시민의 품으로 돌여 쉽게 접하고 참배를 할 수 있게 하고 입장료 징수는 제고를 하였서면 하는 바람이다.


울타리 안 충렬사 구역으로 들어가 있는 동장대. 울타리 우측으로 산길이 뚜렸한데 복천동 주민들은 동장대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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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창 밖의 바람은 가슴을 도려 내는 칼바람입니다. 추워서 추운 것이 아니라 경제 불황의 그늘이 강추위를 몰고 왔습니다. 처음에는 손과 발이 시려 왔는데 지금은 심장의 피도 얼어 붙게 만드는 정말로 추운 하루 하루 입니다.

 



오늘 밖으로 나가 봤습니다.

 

네 주머니 안만 냉동고 인줄 알았는데 그런게 아닌 것 같습니다.

경제 불황은 모두의 주머니를 냉동고로 꽁꽁 얼어 붙게 만들었는 것 같습니다.

이 주머니 안의 냉동고를 녹여 볼 욕심으로 산타까지 도우미가 되어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고 있습니다. 굴뚝을 타고 내려와 깁은 양말에 선물을 넣고 가야할 산타가 이제는 루돌프가 꺼는 마차도 마다하고 온몸을 흔들며 대한민국의 불황 타개를 위해 흔들고 있습니다. 이동통신사 앞에 서 있는 함박 웃음 짓는 산타 처럼 우리에게도 함박웃음이 언제 쯤 터질지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곧 함박웃음이 터지겠지요.

산타가 대한민국의 불황 타개를 위해 도우미가 되었습니다. 그 앞으로 불황타개를 극복할여고 직원되시는 분들이 바닥에 대문짝 만하게 공짜폰이라 붙이고 있습니다



음악에 맞추어 좌우로 몸을 흔들고 있는 미스터 산타



 

함박 웃음 짓는 산타 처럼 우리 경제도 활짝 웃게 되길 고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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