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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 용연사 금강계단. 통도사 금강계단의 진신사리가 비슬산 용연사 석조계단에 모시게된 유래가 궁금하다면. 용연사 금강계단


대구시 달성군 비슬산 용연사의 두 번째 포스트는 용연사 석조계단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용연사는 신라 신덕왕 원년(912)에 보양국사가 창건했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을 겪다 1592년 임진왜란을 맞으면서 용연사는 최고위기를 맞습니다.






용연사는 임진왜란과 함께 불타고 선조 36년(1603년) 사명대사는 다시금 용연사 재건을 인잠과 탄옥, 경천스님에게 명하여 중창불사를 하지만 또다시 화재로 소실하였습니다. 지금 마주하는 용연사 극락전은 영조 4년(1728년)에 새롭게 조성하였습니다.

 용연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석조계단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 부르는데 우리나라에는 5곳이 있어 5대 적멸보궁이라 합니다. 자장율사가 643년 신라에 돌아오면서 부처님의 사리와 정골를 가져왔는데 오대산 상원사, 영축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정암사에 각각 봉안하였고 이를 5대 적멸보궁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5대 적멸보궁에는 비슬산 용연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용연사에 진신사리를 모시게 된 이유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영축산 통도사에 모신 부처님 진신사리가 왜군에게 도난당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왜군은 한양을 향하면서 이곳 통도사에 들어와 문화재를 약탈하고 급기야 석조계단을 허물고 부처님 진신 사리를 탈취하지만 사명대사는 이를 되찾아 금강산의 서산대사를 찾아가서 사리에 대해 의논합니다. 서산대사는 다시 통도사에 돌려주는 게 마땅하다 하면서 사리함에서 2과중 한과는 통도사에 돌려주고 한과는 태백산 보현사에 안치토록 하였습니다.

 

 

 

 

 이에 사명대사는 2과의 사리 중 1과는 통도사로 돌려주고 1과는 태백산 보현사에 봉안토록 제자 선화를 불러 조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영남 쪽은 아직도 전란으로 정세가 불완전한 상태였었고 또한, 통도사에 부처님 사리를 모실 마땅한 자리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부처님 불상을 모시지 않은 용연사 금강계단.

 

 

 

 

 그러는 와중에 사명대사는 일본으로 포로송환을 위해 갔다 왔으며 곧 입적하는 바람에 부처님 진신사리는 치악산 각림사에 일시 봉안하였습니다. 이에 사명당의 제자 청진스님은 진신사리를 비슬산 용연사로 모시면서 사부대중과 의논하여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려다 통도사에 돌려 주야 한다는 서산과 사명대사의 뜻에 따라 2과중 1과는 다시 통도사로 보내고 1과만 용연사에 봉안하였습니다.

 

 용연사 석조계단은 사리탑 오른쪽의 ‘석가여래부도비명’을 보면 조선 현종 14년(1673년)에 완성되었다며 제작연대 등이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사리탑에는 부처님 진신사리 한과를 모셨는데 2단의 기단위에 종 모양의 몸돌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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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돌을 바친 두 기단 중에서 아래층 기단의 네모서리에 사천왕상을 배치하여 사리탑을 수호토록 하였는데 도난등을 우려하여 따로 보관중이며 현재는 모조품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위 기단은 네 면에 팔부신장상을 돋을새김 했는데 조선후기 석조예술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종형의 몸돌 위로는 연꽃봉오리 모양을 장식하였고 1934년에 계단 주위에 돌난간을 둘렀습니다.

 

 

  현재 용연사 금강계단은 보물 제539호이며 통도사의 금강계단, 금산사의 방등계단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계단식 사리탑입니다. 필자는 이 세 곳의 금강계단을 모두 보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대구 달성군 비슬산 용연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는 따로 부처님을 보시지 않았으며 용연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불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는 천년고찰입니다. 대구 여행길에 한번쯤 찾는다면 아주 좋은 여행이 됩니다.

 통도사금강계단



금산사 방등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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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사 서부도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동부도 서부도. 예술성이 빼어난 보림사 동부도 서부도 보고 왔습니다.

 

전남 장흥군 유치면의 보림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6.25 한국동란등 많은 전란속에서 전각은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아름다운 통일신라의 삼층석탑과 석등, 철조비로자나불상 그리고 보조선사 창성탑비와 탑, 동부도와 서부도, 여러기의 부도탑이 남아 보림사의 전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보림사는 9산선문 가지산파의 중심도량으로 헌안왕이 보조선사 체징을 주지로 권하게 되어 창건되었습니다 장흥의 가지산 보림사를 인도와 중국의 보림사와 함께 동양의 3보림이라 합니다.

 

 

보림사 동부도

 

 

보림사의 많은 문화재중 스님의 무덤인 보림사 동부도와 서부도에 대해서 찾아 보았습니다. 보통 부도는 사찰의 입구에 위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도골 또는 부도밭이나 비석골로 부르는데 이곳 보림사 부도밭은 동부도와 서부도 그리고 보림사 경내의 보조선사승탑등 세 곳으로 나누어져 특이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넘어 오면서 보림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특히 동부도와 서부도의 거리는 족히 700m 는 됨직 떨어져 있는 거리입니다. 늦은 오후에 먼저 보림사 입구에 있는 보림사 동부도를 찾아보았습니다.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동부도 서부도. 예술성이 빼어난 보림사 동부도 구경하기

 

동부도는 여러 기의 부도들이 모여 있는 비탈에 가장 위에 모셔진 부도로 그 중 가장 뛰어난 보도입니다. 1963년 1월에 보물 제155호 지정되었고 전체적인 높이는 3.6m로 날렵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부도의 양식으로 보아 서부도와 보조선사 탑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묘탑의 형식으로 보여 집니다.

 

 

 

 

 

 

부도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지면에 지대석을 놓습니다. 보림사 동부도는 8각의 얇고 넓은 지대석 위에 상중하대석을 올렸는데 하대석과 상대석은 연꽃잎을 돌렸습니다. 하대석은 8장의 연꽃잎을 돌려 새겨 놓았고 각 귀퉁이마다 꽃 장식을 달아 조형미을 더 한 것 같습니다.

 



 

 

 

연꽃잎 밑으로 낮은 기둥을 8각으로 돌려 각 면마다 안상을 조각하여 받치고 있습니다. 중대석은 상대석보다 가늘고 낮은 8각의 기둥으로 표면에는 아무런 조각을 넣지 않았습니다.

 

 

 

 

상대석은 큰 연꽃잎 8장을 돌려놓았고 밑에는 3단의 낮은 받침이 있고 윗면에는 2단의 탑신 받침을 두었습니다. 8각형의 돌기둥인 탑신은 한 면에 자물쇠가 붙은 문이 새겨있고 지붕돌은 낮은 편으로 탑신과 만나는 부분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 위로는 상륜부가 남아 있는데 간석이 있고 그 위에 꽃장식이 새겨진 보개를 놓았고 보륜과 이중연판위에 보주를 차례로 올렸습니다. 보림사 동부도는 세련된 조각 기법이지만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입체감이 떨어지며 상대석에 비해 중대석이 낮고 가늘어 전체적인 불안감이 나타납니다.

 

 

 

 

 

 

 

 

 

 

보림사 서부도와 함께 있는 또하나의 부도.

 

 

 

 

 

 

 

 

 

 

보림사 서부도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동부도 서부도. 예술성이 빼어난 두기의 보림사 서부도 구경하기.

 

보림사 서부도는 보림사와는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구석마을에 자리한 서부도는 두기의 부도가 남아 있습니다. 두기 모두 기단, 몸체돌, 지붕돌이 8각원당형으로 기본형태는 닽으나 조각수법에서 차이가 난다. 전체 높이는 3m가 약간 넘고 1963년 1월 보물 제156호로 지정 되었습니다.

 

 

 

 

보림사 서부도는 네모난 지대석에 변형된 8장의 연꽃잎이 겹쳐져 아래로 향하여 놓였습니다(복련).중대석은 8각이며 상대석은 8장의 연꽃 무늬가 위를 향한 모양(앙련)을 하고 있습니다. 몸체돌은 8각으로 1단의 받침이 있으며 지붕돌은 약간 좁고 경사가 급하며 추녀 끝에 꽃 장식이 없습니다.

 

 

 

부도의 상륜부는 원형의 복발이 있고 그 위로 구름무늬와 연꽃잎이 새겨진 구슬모양의 보주가 겹쳐저 올려져 있습니다. 높이는 3.6m

 

 

 

 

다른 하나는 하대석의 각 판의 끝부분에 꽃장식이 있고 얇은 면을 돌려 8각을 이룹니다. 그리고 탑신의 한면에 문짝에 자물쇠 모양이 새겨져 있는게 앞의 부도와 다릅니다.

 

 

 

지붕돌은 추녀가 거의 파손되었고 경사가 급하며 부도의 상륜부인 보개, 보륜, 보주가 올려져 있습니다. 전체 높이는 3.2m 이며두 부도는 고려시대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려 중기의 부도로 추정합니다.(내용은 문화재 안내판과 민족문화대백과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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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8 - (전남여행/장흥여행)가지산 보림사 목조사천왕상. 국내 모든 사천왕상의 표준 모델이 된다는 보림사 목조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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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관룡산 관룡사의 부도탑

 

부도탑은 고승들이 열반에 들고난 후 그의 행적과 뜻을 기려 세우는 탑이다. 그래서인지 연륜이 있는 오래된 사찰에는 여러기의 부도를 만날 수 있다. 이곳 관룡사에도 1300년의 연륜으로 7기의 부도들이 흩어져 있다. 필자가 확인한 것만해도 4개인데 모두 종형을 이루고 있는 조선시대 부도탑으로 보였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관룡산 관룡사의 부도탑

 

관룡사의 부도탑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부도탑은 관룡사 뒤 청룡암 오르는 길에 한기가 놓여있다. 이 부도는 형태가 특이한데  꼭 쌓아 올린 탑처럼 떨어질까 불안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부도는 탑신에 비해 지대석이 넓은 편이다. 그리고 3층의 기단석으로 받쳐져 있는데 하대석은 중심부의 방형석괴와 장대석을 서로  끼워 맞추어 만들었다.

 

 

 하나의 돌로 깍아 만든 중대석은 사방을 연판으로 처리를 하였다. 그 위의 상대석도 앙연을 이중으로 처리를 하였다. 상대석 위에 올려진 탑신은 둥근 공모양을 하고 있는데 무늬의 조각이 없는 소박함 그대로이다. 그 위에 갓 처럼 올려진 지붕돌도 팔공산 관봉의 갓바위처럼 단순한 모습에 서민적인 모습이다.

 

 

 

 그 위에 올려진 상륜부는 사라지고 없는 상태다. 부도탑의 전체적인 높이는 205cm이며 전체적으로 불안감을 준다. 조성연대는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로 추정하고 있으며 어느분의 부도탑인지 확인을 할 수 없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호며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관룡사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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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마을에서 내려 걸어 들가면 별장같은 집 뒤로 문수산이 솟아 있다. 옛 영축산으로 청량산으로도 불려 청량면의 기원이 되었다.





망해사 가는 길. 망해사 안내문을 보고 넓은 길을 따라 올라간다. 대형버스는 여기가 끝으로 마을 입구에 차단봉이 설치 되어 있다. 



망해사 입구로 영축산망해사란 표지석이 있으며 등산로와 망해사지석조부도는 우측으로 오른다고 안내판이 설치 되어 있다. 



망해사로 들어서면 먼저 정면으로 대웅전이 반긴다. 어느절 처럼 정 중앙에 대웅전이 자리하고 좌우로 요사체와 산신각등이 위치를 하고 있다. 석조부도는 대웅전 우측뒤에 있다. 1957년 전 주지인 김영암화상이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 법당안에 모서져 있는 불상


법당 천장을 올려다 보니 동해용왕을 위해 지은 사찰이라 네귀퉁이에 용을 만들어 놓았다. 


화려한 천장의 연꽃무늬에 용의 모습까지 있어 더욱 헌강왕의 전설인 동해용왕을 위해 지은 절이라 실감을 한다.


건물 외벽에 그려진 벽화로 부처님의 설법 모습과  열반에 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바깥 단청의 화려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작은 범종각의 종소리가 동해로 퍼질때 용왕은 아직도 망해사가 자신을 위해 지은 절이라 기뻐하겠지요. 


석조부도탑으로 가기위해서 대웅전을 우측으로 돌아 산신각, 범종각을 지나 올라서면 만날 수 있다. 뒤돌아 본 대웅전

영축산 망해사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있다.
부산에서는 노포동 종합터미널(노포역)에서 울산행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영해마을 또는 망해사 입구에 하차를 하면 된다.
망해사 안내판을 따라가는 길은 많은 별장형 집들이 들어서 있다.
최근에 생긴 도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세상사의 실타레를 보는 것 같이 복잡하다.
정면에는 영축산이 우뚝솟아 있고 그 아래 망해사지와 현 망해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망해산를 안고 있는 산이 영축산으로 불교에서 따온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인도의 천축국왕사성에 있는 영축산으로 부처님이 이곳에서 법화경을 설법하였고 영축산 아래서 열반에 들어 불자들의 성지가 되었다한다.
그후 중국의 당나라로 건너가 당나로로 유학을 온 자장율사에 의해 영축산이 국내에 들어오게 되었다.
양산의 영축산, 창녕의 영축산등 모두 인도의 영축산에서 따온 이름일 것이다.
지금은 망해사 뒷산이 영축산으로 범위가 많이 축소 되었지만 신라시대에는 지금의 문수산이 영축산으로 불렸다한다. 또 한편으로는 청량산으로 불려 지금의 울주군 청량면의 유래가 여기서 온것일 것이다.
망해사는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이름처럼 현재는 바닷가가 보이지 않는 내륙의 사찰이다
한때는 이부근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는지는 모르지만 망해사의 창건연대는 매우 길다. 
신라 헌강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약1100여년 헌강왕이 창건한 사찰로 되어 있어 그 연유 또한 삼국유사에 전하고 있다..

신라 49대 헌강왕(875~886)때는 서라벌(현경주)에서 지방에 이르는 모든 마을이 태평성대를 누리며 평안하게 살았다.
이에 헌강왕은 울산의 세죽이란 곳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물가에서 앉아 쉬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에 구름과 안개가 끼여 천지를 분간할 수 없어 그 연유를 알아보니 동해의 용왕이 한 짓임을 알게 되었다. 이에 헌강왕은 그의 신하에게 명령을 하여 부근에 동해용왕을 위한 절을 짓게하니 구름과 안개는 사라졌고 개운포라는 이름으로도 현재 불리고 있다.
이에 동해용왕은 헌강왕이 자신을 위해 절을 짓고 망해사라 하였다는 이야기에 크게 감복을 하여 일곱 왕자들과 함께 헌강왕 앞에 나타나 왕의 성덕을 찬양하였고 용왕의 왕자중 한명은 궁궐에 남아 정사를 도우니 그의 이름을 처용이라 하였다.
울산의 바닷가인 처용암은 처용이 나온 바위라 하며 현재도 개운포에는 처용암이 남아 있다.
그후 망해사는 언제 폐사를 하였는지 모르지만 임진왜란으로 추정을 할 뿐이며 옛 터만 있던 자리에 1957년 김영암화상이 중건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망해사 위의 망해사지에는 현재 두기의 부도가 남아 있다.
망해사지 석조부도로 보물 제 17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부도란 유명한 스님들의 사리를 보관하던 곳이며 망해사와 함께 세워 졌다한다.
폐사와 함께 동서 두 탑이던 것이 동쪽에 있던 부도탑은 무너져 방치되어 있다가 1960년 11월에 다시 세웠지만 상륜은 두탑 모두 없어졌다한다.
 

망해사지 석조부도로 보물 제173호이며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울리산 16-3 망해사 위에 있는 동서 쌍탑으로 동탑은 폐사와 함께 무너져 있던 것을 1960년 11월에 다시 맞추어 세웠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동탑은 많이 깨져 있다. 형재 탑위 상륜은 남아 있지 않다.
서쪽에서 본 모습


동쪽에서 본 모습으로 그때의 주춧돌과 기단의 모습 등을 볼 수 있으며

그 우측으로 돌종 형태의 깔끔한 조선후기의 부도탑을 볼 수 있다.

쌍탑중 서탑으로 방치된것을 새로 세웠다. 서탑의 높이는 3.3m이며



동부도탑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높이는 3.4m이며 두 부도탑모두 같은 쌍탑이다.

8각원당형(八角圓堂形) 기본양식을 따라, 지대석(地臺石)은 정4각형으로 마련하고 기단(基壇)을 구성하였다.


8각상대(八角上臺)의 각면 상부에는 얕은 턱을 두고, 그 밑의 각면에 안상(眼象)을 1좌씩 얕게 조각하였다.

이 지대석 위에 복련석(覆蓮石)을 놓았으며, 복판(複瓣) 8엽(八葉)의 연꽃을 둘렀고,

 그 꽃잎 끝에는 귀꽃을 새겼으나 평면적이다.

중앙에 팔각형의 높직한 4단의 굄이 얕은 중대석(中臺石)을 받치고 있고, 중대석에는 각 우각(隅角)에 기둥모양이 모각(模刻)되어 있을 뿐 다른 조식(彫飾)은 없고,

그 위에 앙련석(仰蓮石)이 놓여 있다. 앙련석은 밑에 3단의 각형(角形) 받침이 있는 위에 단판(單瓣) 연꽃이 상하 6잎씩 2중으로 조각되었다. 이와 같이 기단을 구성한 위에 탑신을 받치기 위한 딴 돌이 있다.




이 돌은 갑석형(甲石形)으로 지나치게 내민 턱을 중심으로, 밑에는 8각 각면에 기단에서와 같은 수법으로 된 안상이 있고 위에는 24잎의 연꽃을 돌렸다.



이 돌은 갑석형(甲石形)으로 지나치게 내민 턱을 중심으로, 밑에는 8각 각면에 기단에서와 같은 수법으로 된 안상이 있고 위에는 24잎의 연꽃을 돌렸다.

탑신도 역시 8각으로 각 우각에 기둥모양을 모각하였고, 각면에는 위에 영창 의 형태를 나타냈으며, 밑에는 전후좌우 4면에만 호형(弧形)을 새겼다. 옥개석도 8각으로 각 부재(部材) 중에서 가장 많은 손상을 입었다.

옥리(屋裏)는 반원을 그리며 연목(椽木)을 번안(飜案)하였고, 추녀는 수평으로 넓은 편이다. 옥상에는 높직한 우동(隅棟) 8가닥이 흘렀고 곡선은 매우 완만하다. 상륜(相輪)은 양 부도가 모두 상실하고 있으나 그 일부가 따로 보관되어 있다.

 







현재 서부도탑의 모습으로 훼손이 심하며 이 두 부도는 각부의 구성과 조각수법이 다소 섬약(纖弱)한 편이다. 특히 얕게 새겨진 안상이나 복련석 귀꽃은 입체감을 잃었다. 그러나 8각원당의 기본형을 계승하였고, 석재의 결구(結構)에서 짜임새 있는 비율을 잃지 않아 통일신라 후기의 가작이다.<망해사홈페이지>



부도탑에서 본 망해사이며 현 위치에서는 바다를 볼 수 가 없다.

문수산 등산로 우측으로 터를 잡은 망해사로 등산로에서 본 대웅전 그뒤로 영축산도 보인다

망해사 홈페이지 가시면 더욱 자세한 망해사의 내력과 망해사지 부도탑을 만날 수 있습니다.
http://www.manghaesa.or.kr

그리고 문화재청 망해사지석조부도 : 문화재청
URL : 

http://www.cha.go.kr/newinfo/Culresult_Db_View.jsp?VdkVgwKey=12,017300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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