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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페이 북쪽에 우뚝 솟은 1120m의 육산
- 산책하듯 걸어도 3시간이면 넉넉한 산행
- 억새 산죽 흐드러진 정상서 바다 조망 일품
- 6개 뿐인 대만 국립공원에 선정된 명산
- 하산 길에 들린 산정호수 '몽환호'에 반해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의 이창우 산행대장이 대만 타이페이의 주산인 양명산 억새밭을 지나고 있다. 활화산인 양명산은 안개와 구름에 휩싸이는 날이 많은 육산이지만 날씨가 청명할 때 대만의 북쪽 바다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부산에 금정산, 대구에 팔공산, 서울에 북한산이 있다면 대만의 수도인 타이페이에는 양명산(陽明山·1120m)이 있다. 대만의 북쪽에 자리잡은 타이페이는 인구 220만 명의 대도시지만 대부분의 지역이 담수하(淡水河)라는 큰 강 하류의 평야지대에 속한다. 그래서 시가지에서 산을 찾아보기 힘들다. 시민들이 건강과 휴식을 위해 산행을 하려면 북쪽으로 40분가량 차량으로 이동해서 양명산으로 가야 한다. 해발 1000m급 초반에 불과한 양명산은 사실 3000m급 산이 258개나 있다는 대만에서 높이로만 따진다면 크게 부각되는 산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대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인 수도 타이페이의 주산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도 산자락 곳곳에 유황온천이 분출되고 땅 밑에서 연기가 솟아나고 있는 살아있는 화산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양명산은 옥산, 화련의 타로코(太魯閣) 협곡 등과 함께 전국에 6개 뿐인 국립공원 중 하나로 지정돼 있다. 날씨가 맑은 날 양명산 정상에 오르면 타이페이 시내는 물론이고 아름다운 해안선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동서남북 모두 탁 트인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한다는 것이 타이페이와 인근 시민들의 발길을 더욱 끌어당기는 요소다. 그리고 산의 정상부 주변이 온통 산죽과 억새로 뒤덮여 있고 길이 험하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큰 힘 들이지 않고 오르내릴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대만 양명산 정상에서 동봉으로 가는 길에 만난 바위지대.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오랜만에 해외 명산 답사에 나서면서 약간은 생소할 수도 있는 대만 타이페이의 주산인 양명산을 산행지로 택했다. 최근 들어 부산 경남 울산의 산꾼들도 해외 트레킹 여행이나 등산여행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단위 산악회별로 팀을 짜거나, 여행사들이 출시해 놓고 있는 다양한 해외산행 상품을 이용해 가까운 일본 중국 등으로 산행을 떠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토의 2/3가 산지인 대만의 산행과 관련해서는 동아시아 최고봉인 옥산(玉山·3952m)을 제외하면 별다른 산행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별로 없는 편이다. 그래서 우선 예약 입산객 추첨 당첨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는 옥산 산행을 고집하지 말고 누구나 쉽고 가볍게 산행을 하면서 이국적인 산행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양명산을 고른 것이다.

이번 취재에는 특별히 부산광역시산악연맹과 대구광역시산악연맹 관계자들이 동행해 더욱 뜻깊은 산행이 됐다.



양명산 산행 시간과 거리 등을 단순 비교하자면 부산의 범어사에서 북문을 거쳐 금정산 고당봉에 올랐다가 호포지하철역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 산행에 비해 조금 더 쉽다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국립공원 답게 전 코스의 등산로가 깔끔하게 정비돼 있어서 한결 여유롭다.

   
양명산 동봉에서 하산하는 길. 역으로 오르는 대만 산꾼들을 만났다.
들머리는 6부능선쯤에 위치한 소유갱(小油坑)이라고 불리는 유황분출구 주차장. 이곳에서 정상인 칠성산(칠성봉이라고도 함)에 올랐다가 동봉을 거쳐 칠성공원, 몽환호를 들르고 날머리인 냉수갱(冷水坑) 주차장에서 마무리한다. 총 산행 거리는 불과 4.5㎞가량 밖에 안되고 산행시간도 넉넉잡아 3시간이면 충분하다.

산행에 나서기 전날 밤 현지인으로부터 "양명산은 안개와 구름이 끼는 경우가 많다. 날씨가 좋을 경우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은 시원하지만 청명한 날씨를 보일 지는 미지수"라는 말을 듣고 노심초사 했지만, 역시나 그의 말처럼 아침부터 짙은 안개가 산을 휩싸고 말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기왕에 나선 걸음인데 안개와 구름이 두려워 산행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소유갱 주차장에서 본격적인 산행에 돌입하기 전에 우측 화장실 옆 길을 따라 50m쯤 가면 누런 유황이 드러난 가운데 희뿌연 연기가 솟아나는 소유갱에 들러 활화산의 면모를 일별한다. 연기가 나오는 곳 주변에 고인 용출수에 손을 담가보니, 단 1초도 견딜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부산과 대구의 산악인들이 대만 양명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소유갱 유황온천분출구를 살펴보고 있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왼쪽의 등산로를 따른다. 계단을 살짝 오르니 어른 평균 키보다 더 크게 자란 산죽이 숲을 이루고 그 사이로 잘 정비된 산행로가 개설돼 있다. 산죽과 억새가 이어지는 길을 따라 20분쯤 올랐을까. 왼쪽에 우뚝한 봉우리 아래에서 또 다른 유황분출지를 만난다. 곳곳에서 연기가 솟구치는 활화산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등산로에는 200m마다 정상인 칠성산까지 남은 거리를 표시해 놓고 있어 초행객에게 큰 도움이 된다. 큰 어려움 없이 완만하게 오른다 싶더니 한고비를 넘자마자 갑자기 내리막이다. 5분가량 내려서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연결된다. 주변은 온통 안개에 휩싸인 상태가 계속된다. 정상 약간 못미친 곳에서 한바탕 더 오르막을 치니 어느새 정상인 칠성산이다. 삼각점과 '해발 1120m, 타이페이 제1고봉'이라는 표시가 뚜렷한 정상목이 있는데 일행들이 기념촬영에 분주하다. 사방을 둘러보지만 안개는 더욱 짙어지고 기대했던 조망도 즐길 수 없는 처지다.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살짝 내려선 후 갈림길에서 동봉 방향인 왼쪽길을 택한다. 안부를 통과한 후 3분만 오르막을 타면 해발 1106m인 동봉. 산 밑에서 보면 정상과 쌍둥이 처럼 보이는 봉우리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저만치서 짙은 안개 속으로 정상인 칠성산이 사라져 간다.

   
대만 양명산은 국립공원 답게 산행로에 안전시설과 계단 등이 잘 갖춰져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산행을 할 수 있다.
동봉에서 하산하는 길은 제법 가파른 계단의 연속이다. 대체로 육산으로 분류되는 양명산이지만 하산 코스에는 제법 뾰족한 바위들도 가끔씩 등장한다. 국내 산에 익숙한 취재팀으로서는 반가울 따름. 쉼터를 지나 좀 더 내려서면 칠성공원 갈림길이다. 동봉으로부터 1시간쯤 걸렸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3분만 가면 또 한번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의 넓은 길을 따르면 산정호수인 몽환호(夢幻湖) 방향이고, 직진해서 작은 봉우리 위의 정자를 지나는 길은 날머리인 냉수갱으로 곧장 하산하는 길이다. 취재팀은 늘 안개에 싸여 있어 마치 꿈 속의 호수를 보는 듯 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몽환호쪽으로 내려선다. 10분 후 만나는 몽환호는 축구장 2개 정도의 크기라고 알려져 있지만 역시나 안개에 싸여 있어 호수의 모습조차 거의 분간하기 힘들다. 호수인듯 아닌듯, 역시나 꿈속의 호수다.

몽환호를 지나면 포장도로를 만난다. 우측 냉수갱 주차장 쪽으로 10분쯤 도로를 따르면 양명산 국립공원 냉수갱관리사무소와 주차장이 있는 날머리에 닿는다. 양명산은 타이페이 시내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본 후 반나절만 시간을 할애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산행지다.



◆ 교통편 & 주변 쉴만한 곳

- 산행 후 온천욕 즐기려면 베이터우 온천단지로

   
대만 수도 타이페이의 주산인 양명산의 정상은 칠성산 또는 칠성봉으로 불린다.
부산에서 타이페이까지는 지역기반 항공사인 에어부산에서 매일 직항편을 왕복 운항한다. 김해국제공항 국제선 청사 오전 11시20분 출발이기 때문에 넉넉하게 오전 9시20분 안팎까지 공항 출국장에 도착하면 된다. 소요시간은 2시간30분쯤 걸리지만 대만과 한국의 시차가 1시간이기 때문에 타이페이에 도착하면 현지 시각 오후 12시50분밖에 되지 않는다. 중식은 기내식.

양명산은 활화산이기 때문에 산행 후 온천욕을 즐길 곳이 많다. 그 중 대만 최고의 온천지대로 알려진 베이터우(北投) 온천을 권할만 하다. 1894년 독일 상인이 처음 발견했지만 일제 식민지시대 오사카 출신 상인이 여관업을 하면서 본격적인 온천지대로 개발된 곳이다. 독특한 고건축물이 즐비한 마을 자체도 볼거리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69

  • 국제신문
  •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취재협조=에어부산, 대만관광청


  • 정상을 지나면 만나는 갈림길로 동봉은 왼쪽길이다.


    동봉 정상의 모습

    대만 현지인으로 칠성산을 오르는 모습...아직은 등산 개념이 없는 대만인들로 운동화와 일반복장 차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만 현지의 커플로 칠성공원을 걷고 있었다.

     

    도착지점의 냉수갱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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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강서구 지사동(智士洞)의 마을 이름은 원래 학식 높은 선비가 글을 읽는 다는 의미의 소위 '고사독서형' 명당터라는 것에서 유래됐다. 그만큼 예로부터 이름 있는 선비가 많이 배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던 동네다. 그러나 지금은 원래의 마을 흔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부산과학산업단지'라는 이름을 가진 첨단 산업지대로 변모했다. 자동차부품, 조선기자재부품, 특수금속 등을 생산하는 업체들과 부산테크노파크 등의 첨단산업 지원 기관들이 들어섰다.

    이같은 마을 환경의 변화는 산으로 둘러싸인 부산의 서북쪽 끝 오지마을에 불과했던 지사동을 서부산권 발전의 어엿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적어도 겉으로 만큼은 원주민들이 겪었을 실향의 아픔을 찾기 힘들다.

     






    ◇ 지사동 북쪽 굴암산 자락 타는 10.5㎞ 코스

       
    부산 시계길 종주 답사에 나선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부산과 김해 진해가 만나는 지점인 삼시봉에서 전망대인 망해정으로 향하고 있다. 멀찍이 가덕도, 부산신항, 거가대교 등이 한 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조망이 압권이다.
    이번 주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부산 시계(市界)를 걷다' 제5코스로 바로 이 지사동을 둘러싸고 있는 부산 경남의 경계길을 답사했다. 과거에 비해 부산의 서북쪽 끝마을로서의 존재감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는 지사동은 서쪽의 굴암산(屈岩山·662.7m)과 동북쪽의 옥녀봉(玉女峯·333m), 남쪽의 보배산(479.5m)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과 산 사이의 크고 작은 고개는 경남 김해와 진해(현 창원시 진해구)의 여러 마을들과 지사동이 연결되는 통로였다. 서쪽의 너더리고개(또는 너드리고개)를 경계로 진해 웅천과 연결되고, 남쪽의 두동고개를 통해 웅동, 북쪽의 곰티재를 통해 김해 장유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 봉우리들이 연결되는 산줄기가 바로 부산과 경남의 경계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시계길 답사라고 하지만 사실상은 산행이라고 해야 할 만큼 코스 대부분이 산길이다.







       
    너더리고개 직후의 전망바위.
    제4코스의 경계길 마지막 지점이었던 너더리고개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강서구 지사동 마을버스 종점까지 가야한다. 전체 코스를 간략하게 요약해보면 지사동 매일정기 앞 마을버스 종점~너더리고개~339m봉~사거리갈림길~전망대(522m)~삼시봉(부산 김해 진해 경계점)~망해정(613m)~삼시봉~갈림길~전망대~철탑~율하고개~갈림길~묘지전망대~김녕 김씨묘~삼거리~곰티고개~지사동 이원쏠루텍 버스정류장으로 연결된다. 총거리 10.5㎞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30분, 휴식 식사 등을 포함하면 5시간쯤 걸린다.







       
    삼시봉 인근의 망해정. 왼쪽 봉은 굴암산 정상이다.
    지사동 마을버스 종점에서 골짜기 쪽 임도를 따라 오른다. 너더리마을이라고 불리는 이 마을도 원주민은 오간데 없고 무언가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너더리골에 자생하던 수령 500년짜리 팽나무는 여러 해 전에 고사했다고 하는데,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들머리로부터 임도를 따라 7분쯤 가서 만나는 임도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택해 10분쯤 더 간다. 우측으로 가지를 치는 임도 갈림길에서 직진, 100여m쯤 더 가면 임도를 버리고 우측 숲으로 진입하는 산행로가 보인다. 리본 몇 개가 달려 있기 때문에 찾기는 별로 어렵지 않다. 이 숲길로 들어서서 5분만 오르면 부산과 경남의 경계선에 위치한 너더리고개다. 직진해서 고개를 넘어가면 진해 웅천쪽으로 내려서게 되는데 취재팀은 우측으로 능선길을 따라 오른다. 길은 썩 편하지만은 않은 야생의 모습을 띠고 있다. 5분 후 왼쪽 웅천 방향이 탁 트이는 전망바위를 만나, 잠시 바위 위에서 풍경을 훑어본다. 발 아래로 저만치 군부대가 눈에 들어오고, 시선을 살짝 들어보니 진해 동부권의 크고 작은 산줄기가 올망졸망 서로 얽히며 키를 재고 있다.



    ◇ 너더리고개서 삼시봉 오른 후 줄곧 내리막

       
    가을 산길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망개가 빨갛게 익었다.
    이어지는 능선길도 크고 작은 잡초와 가시덩쿨이 뒤엉켜 여전히 불편하다. 10분쯤 가다가 능선의 날등을 왼쪽으로 살짝 비켜서 난 널찍하고 편한 길을 따라 오른다. 경계선에서 경남 권으로 조금 들어서 있기는 하지만 걷기에는 한결 수월하다. 10여분 가다가 사거리갈림길에서 우측 능선길을 따라 오르면 곧바로 원래의 능선길과 합류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능선길을 따르는데 지금까지와는 달리 서서히 경사가 급해진다. 25분쯤 꾸준하게 오르면 갑자기 전방이 탁 트이는 전망대. 2만5000분의 1 축척 공식지형도에 522m봉으로 표시된 곳에 닿는다. 눈 앞으로 굴암산 정상과 삼시봉, 망해정 등이 이어지는 산줄기가 마치 굳센 성벽처럼 버티고 있고 오른쪽 아래로는 지사동 일대와 멀리 김해평야 일대까지 눈에 들어온다.




       
    삼시봉에서 곰티고개로 가는 길은 줄곧 내리막이다. 활짝 핀 구절초가 취재팀의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한다.
    살짝 내려선 후 안부를 지나 다시 20분쯤 가파른 오르막을 치면 능선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이 바로 일명 '삼시봉'이다. 물론 공식 지형도상에는 표시가 없다. 옛 진해시와 김해시 그리고 부산시 등 3개 시가 만나고 헤어지는 지점이라고 해서 지역 산꾼들과 인근 주민들에게만 삼시봉으로 불린다. 부산 시계를 따라가야하는 취재팀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야 하지만, 왼쪽 약 80m 떨어진 613m봉의 정자인 망해정(望海亭)에 잠시 들른다. 정자에 올라 주변을 살피면 서북쪽으로 화산, 불모산, 웅봉, 시루봉, 천자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확연히 드러나고 북쪽으로는 김해 장유신도시와 용지봉 등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용지봉 8부능선상에는 수로왕비 허황옥의 오빠인 장유화상(본명 허보옥)이 창건했으며 허왕후의 일곱 왕자가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장유화상을 따라가 처음 수도를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때 이 암자에서 고시공부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 곰 출현 잦았다는 곰티고개서 우측 길 하산

       
    곰티고개에서 직진하면 옥녀봉, 오른쪽은 지사동이다.
    다시 '삼시봉'으로 복귀,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내리막이다. 이제부터 걷는 능선길의 왼쪽은 김해 땅이고 오른쪽은 부산 땅이다. 577m봉을 지나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따른다. 좀 더 내려서서 송전철탑을 지나고 계속 내리막을 타고 가면 20분 후 안부인 율하고개에 닿는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김해시 장유면 율하리 율하신도시다. 이어지는 길은 거의 임도수준의 널따란 길. 갈림길에서 직진한 후 계속 편안한 길을 따라가면 한 순간 왼쪽 묘지 앞쪽이 확 트인다. 안내도 상에 '묘지전망대'라고 표시된 지점. 남해고속도로 서부산 지선과 김해평야, 그 너머로 무척산 임호산 등 김해시가지 일대의 크고 작은 산들도 한 눈에 들어온다. 계속 널따란 길을 따라 15분쯤 가면 아래 위로 사이좋게 자리잡은 김녕 김씨묘에서 임도가 끝난다. 봉분 앞을 통과해 길이 이어지고 왼쪽으로 살짝 틀어 올랐다가 삼거리에서 우측길을 따른다. 10분 정도 내려서면 곰티고개(곰티재). 옛날에 곰이 자주 출몰했다고 해서 곰티고개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장유, 직진하면 옥녀봉으로 올라서게 되지만 취재팀은 이곳에서 경계길 답사를 마무리하고 우측 지사동 쪽으로 내려선다.

    3분 후 붉은 지붕 민가를 지난 후 넓은 길을 따라 15분 정도 천천히 내려서면 종착점인 지사동 '이원쏠루텍 버스정류장'에 닿는다.


    # 떠나기 전에

    - 태풍도 피해 갈만큼 살기 좋았다는 지사동, 개발 광풍 못피해 400여명 주민들 뿔뿔이…

    "1970년대 후반 중학교 다닐 때는 곰티고개를 넘어서 김해 장유면의 장유중학교를 다녔지. 편도 7㎞쯤 되려나. 하루에 왕복 40리 가까운 길을 매일 걸어다닌 셈이지. 그래도 우리 동네 학생들은 단 1명도 지각하는 일이 없었다고.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이 좋게 살았지. 산이 방풍막 역할을 해 주니까 태풍이 불어닥쳐도 안전했고,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살기는 썩 괜찮은 마을이었다고."

    이번 주 답사한 부산 시계길 제5코스의 기점인 부산 강서구 지사동.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배재한 국제신문 사회1부장은 지사동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 한 쪽이 먹먹해진다고 한다. 살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공장만 즐비한 낯선 동네가 되버렸다는 아픔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70여 호 400여 명의 주민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원주민 세대가 단 한집도 없다. 원주민들은 모두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 그를 포함한 지사동 원주민들은 고향 마을이 수몰된 것도 아니건만 사실상의 실향민이 된 셈이다.

    배 부장은 "분성 배씨 집성촌이기도 한 지사동은 지혜로운 선비가 많이 사는 곳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너무도 순하고 어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주민들은 부산과학산업단지 입주에 따라 고향을 떠나야 했을 때, 다른 동네에서 숱한 반발에 부딛혔던 부산시 공무원들조차 놀랐다고 할 정도로 비교적 순순히 고향을 내 주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는 "태풍도 피해가던 마을이었지만 '개발이라는 이름의 풍파'는 결코 피할 수 없었고, 평생 땅만 파먹고 살던 사람들은 낯선 도회지로 쫓겨나듯 나가서 무작정 장사에 손댔다가 망한 이도 적지않다. 잃어버린 고향만 생각하면 마음이 시리고 아프다"고 덧붙였다. '지사동 사람들'은 매년 10월 말 낙동강변에 모여 '수구초심'의 한을 달랜다고 한다. 과연 언제까지 '개발의 뒤안길'에서 힘 없는 민초들이 눈물을 흘려야 할지….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해 고향을 등져야 했던 지사동 사람들의 아픔이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후략)"고 읊었던 야은 길재의 마음과도 별반 차이가 없을 듯하다.


    # 교통편



    - 하단역·구포역에서 강서 마을버스 타야

    부산도시철도 1호선 하단역에서 강서구 지사동 매일정기 앞 마을버스 종점까지 운행하는 '강서 12번' 마을버스를 타거나 구포역 구포시장 등에서 지사동 행 '강서 7-2번'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된다.'강서 12'번 마을버스는 오전 5시50분부터 오후 10시55분까지 35~50분 간격(주말 기준)으로 운행하고 '강서 7-2'번 버스는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30분까지 평일은 1시간, 주말은 2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날머리에서 귀가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 마을버스들을 이용하면 된다.

    자가용 이용자의 경우 을숙도 지나 서낙동강 녹산수문 삼거리에서 우회전, 부산경남경마공원 쪽으로 간다. 이후 세산삼거리에서는 부산신항 진해 방면으로 좌회전(69번 지방도)한다. 1.5㎞쯤 가면 지사동 부산과학산업단지로 진입하는 삼거리가 나온다. 우회전해서 계속 직진하면 지사동 과학산단을 관통, 마을버스 종점까지 갈 수 있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69,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 국제신문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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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강서구와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경계에 위치한 보배산(478.9m) 남쪽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은 진해구 가주동 주포마을. 이 인정스럽고 화목한 동네의 경주 이씨 재실 앞에서 출발하는 이번 주 제4코스는 '부산 시계를 걷다' 시리즈가 시작된 이후 최초로 정확한 경계길을 따를 수 있는 구간이다. 명실상부한 부산-경남 경계길 답사가 본격 시작되는 셈이다. 사실 그동안 가덕도와 부산신항을 거쳐 온 제1~3코스는 섬이라는 특성과 매립지역(신항 일대)이자 보안시설이라는 한계로 인해 명확하게 경계길을 따랐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코스는 보배산과 '작은 마봉산(381m)' 등 비록 해발 고도는 별로 높지 않지만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 조망 만큼은 준수한 산봉우리들을 넘는, 사실상의 산행 코스라는 점도 미리 참고하자.


     

     




    ◇ 본격적인 경계길 답사 시작되는 9㎞ 코스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보배산 정상으로 향하던 도중 만난 전망대에서 해안 조망을 즐기고 있다. 부산 시계 종주의 첫 발을 내딛었던 가덕도와 그 앞쪽으로 부산신항, 용원CC 등이 보이고 오른쪽 멀리 거가대교도 희미하게나마 눈에 들어온다.

    코스를 간략하게 요약해 보면 주포마을 경주 이씨 재실~지능선 갈림길~주능선 갈림길(신 낙남정맥)~잇딴 전망대~보배산 정상~흥국사갈림길~소사나무 군락지~(작은)마봉산~전망대~두동고개~임도갈림길~여주 이씨·함안 조씨 묘~356.4m봉~너드리고개~임도~지사 버스종점 순이다. 총 거리는 9㎞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 3시간30분, 휴식 포함 4시간 30분쯤 걸린다.

    주포마을 경주 이씨 재실 앞 정자 뒤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보배산 정상이다. 정자에서 봉우리를 보면서 왼쪽의 민가(가주로 200번지) 왼쪽 골목으로 들어선다. 폐쇄된 우물 앞에서 우측 길로 오르면 곧바로 산길. 2분 후 지능선 등산로에 닿는다. 이 길이 바로 부산과 경남의 경계길이다. 왼쪽으로 틀어 오르막을 탄다. 묵은 낙엽 위에 올 가을 새로 떨어진 잎사귀들이 살포시 내려앉아 있다. 폭신하고 걷기에도 좋은 길. 윤곽이 뚜렷하다. 하지만 바닷가의 산들이 대개 그렇듯이 경사도는 제법 센 편이다. 구슬같은 땀방울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힐 즈음, 주능선 갈림길에 닿는다. 오르막을 30분가량 탄 후에 닿은 이 능선길은 일부 산꾼들 사이에 '신 낙남정맥'의 마지막 구간으로 인정받고 있는 길이다. 물론 '신 낙남정맥'이라는 것은 산줄기 종주 산행을 즐기는 일부 산꾼들이 주장하는 것이기는 하나, 기존의 낙남정맥을 완주한 사람들이 이 구간을 찾아오는 추세가 점차 강해지고 있기는 하다.

    경주이씨 재실에서 창원시와 부산시의 경계를 따르는 능선길을 오르고 있는 취재팀.

     

       
    마봉산 정상 직전 바위 전망대에 선 이창우 산행대장. 왼쪽 봉우리는 명월산 보개산으로도 불리는 보배산 정상이다.

    왼쪽으로 꺾어 본격적인 능선 산행에 들어간다. 1분 후 첫 번째 전망대. 발 아래에는 들머리인 주포 마을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고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부산신항과 가덕도 거가대교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희뿌연 연무만 걷힌다면 더없이 시원한 풍광이 드러날 것 같다. 이후 10여분을 가는 동안 전망대를 두 곳 더 지난다.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첫 번째 전망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골프장인 용원CC 남쪽의 야트막한 봉우리 인근 부인당(286.8m)이 눈에 들어온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부인당은 아유타국의 공주이자 수로왕비가 되는 허황옥 일행이 망산도에서 수로왕의 신하들과 조우하고 별포진에서 뭍에 잠시 내려 쉬면서 속바지를 벗어 산신령에게 폐백을 올린 후 조금 더 배를 몰아 정박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지금이야 골프장의 호화로움에 가려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 보배산 마봉산서 본 서부산권 풍광 압권


    보배산 정상 직전에서 좌측으로 본 창원의 산으로 맨 우측이 불모산 그리고 웅봉, 시루봉이 오똑하게 솟아 있다.


     

       
    보배산 정상에서 마봉산으로 향하는 능선길에서 만난 소사나무 군락지.

    그리고 세 번째 전망대에서 5분쯤 가서 만나는 네 번째 전망대는 좀 더 광활한 풍광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거가대교와 거제도가 좀 더 가깝게 다가오고 진해 웅동 일대까지 드러난다. 멋들어진 소나무 아래 너럭바위에 앉아 멋진 바다 풍광을 보면서 점심 식사를 하노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싶을 정도다. 그리고 2분 후 주포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지나면 곧바로 보배산 정상이다. 북동쪽으로는 부산 강서구 지사동 일대와 경남 김해시 장유, 율하 신도시 일부가 눈에 들어오고 남동쪽에는 다대포 몰운대 낙동강하구를 비롯한 서부산 일대 거의 대부분이 펼쳐진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천자봉 시루봉 웅산 불모산 화산 굴암산 등 진해 동부 김해, 서부권 산줄기가 산꾼을 유혹한다. 400m대에 불과한 해발 고도에 비해 조망도 빼어나고 고도감 또한 만만찮다.

    왼쪽 방향인 주능선을 따라 내리막을 탄다. 5분 후 갈림길에서는 직진한다. 우측은 흥국사 방향이지만 흥국사는 답사를 마친 후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다.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초야를 보냈다는 명월암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자리에 현재에는 흥국사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능선길 주변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단단해 보이는 나무들은 목공예 재료로 인기가 높은 소사나무들. 소사나무 군락은 300m이상 계속된다. 노랑색의 기린초, 연보라빛 잔대꽃 등 여러 종류의 단아한 가을 야생화도 수줍은 듯 미소를 띠고 있다. 안부를 지나 살짝 올라서면 일명 작은 마봉산(382m)이다. 국립지리정보원 발행 2만5000분의 1지형도상의 마봉산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직선 거리 약 1.8㎞쯤 떨어져 있는 401m봉이지만 남쪽 아래 마을인 진해구 두동 주민들은 두 봉우리를 모두 마봉산이라고 부른다는 점도 참고로 하자. 그래도 헷갈린다면 이 봉우리를 '작은 마봉산'이라 불러도 된다. 정상 직전 우측에 멋진 전망바위가 있어 잠시 올랐다가 길을 재촉한다.




    ◇ 수로왕비 허황옥 발자취 더듬으며 걷는 길

     

       
    마봉산 정상 주변에 서서히 가을색이 묻어나고 있다.

    또 정상에서 조금 더 가면 큰 바위 전망대가 있다. 저 만치 지형도상의 마봉산이 보인다. 이어지는 내리막은 꽤 가파르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다. 15분 후 두동고개에 닿는다. 왼쪽 골짜기로 내려서면 진해구 두동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두동을 거쳐 청안동 해오름APT 앞에서 부산행 버스를 탈 수 있다. 그렇지만 취재팀은 직진, 다시 약간의 오르막을 탄다. 한바탕 올라서면 편평한 길이 이어진다. 갈림길에서는 직진. 7분 후 여주 이씨, 함안 조씨 묘에서 왼쪽으로 꺾는다. 15분 후 삼각점이 있는 356.4m봉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은 마봉산, 오른쪽은 너드리고개 지나 굴암산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봉우리 옆 나무 가지에 본지 근교산 취재팀의 제2대 산행대장이었던 '준·희' 최남준 선생이 달아 놓은 흰색 표지판이 반갑다. 우측 완만한 내리막을 타면 10분 만에 안부인 너드리고개에 닿는다. 너드리고개에서 우측으로 살짝 내려서면 곧바로 임도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왼쪽으로 틀어서 20분쯤 걸으면 지사과학산업단지 버스 종점에 닿는다.


    강서구 지사동의 지사과학단지 모습으로 주위에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 떠나기 전에

    - 흥국사 내 사왕석, 불교 남방도래설 증거?

     

       
    명동마을 흥국사 극락전에서 볼 수 있는 사왕석.

    보배산은 보개산 또는 명월산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명월산(明月山)'이라는 이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48년 명월산 아래에서 왕후 허 씨를 친히 맞아 환궁하였는데, 이 때 허왕후는 비단바지를 벗어 이 산의 산신령에게 폐백을 드렸다고 전해온다. 또한 당시 수로왕은 허 씨의 아름다움을 달에 비유하며 이 산을 '명월산'이라 하고 명월사를 지었다고 한다. 즉, 수로왕과 허왕후 이야기에 직접 관련돼 있는 산이라는 것이다.

    명월사는 지금의 명동마을 계곡 깊은 곳에 위치한 흥국사(興國寺)로 전해진다. 흥국사 측에서는 수로왕과 허왕후의 이야기 등을 원용해 '가야불교의 발원지'로 사찰 안내판에 기록하고 있다. 한편 극락전에는 '명월사 사왕석(明月寺 蛇王石)'이 수로왕 및 허왕후의 영정과 함께 안치돼 있다. 이 사왕석에는 높이 60㎝ 너비 80㎝의 좌불이 양각돼 있고 양 옆에 코브라뱀이 떠받치듯 조각돼 있다. 이는 국내 불교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인도 불교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으로, 불교 남방 유래설의 주요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유물이기도 하다.


    마봉산 직전의 전망대에서 본 지사과학단지의 모습으로 옛신명마을은 다 뭉개지고 공장건물과 골프장이 대신하고 있다. 인걸은 간데 없고...
    # 교통편

    - 지하철 하단역서 '강서16번' 마을버스 이용

    부산도시철도1호선 하단역에서 주포마을까지는 마을버스(강서 16번)를 이용한다. 오전 7시20분, 9시50분, 11시50분 등 하루 7회 운행.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날머리인 지사동 매일정기 앞 버스종점에서는 하단역행(강서 12번) 또는 구포역행(강서 7-2번)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강서 12'번 마을버스는 오전 5시50분부터 오후 10시55분까지 35~50분 간격(주말 기준)으로 운행한다. '강서 7-2'번 버스는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30분까지 평일은 1시간, 주말은 2시간 간격 운행.

    자가용 이용자의 경우 을숙도 지나 녹산수문 삼거리로 가서 우회전 부산경남경마공원 쪽으로 간다. 세산삼거리에서는 부산신항 방면으로 좌회전, 10분쯤 가다가 옥포마을 버스정류소 앞에서 우측 샛길로 진입한다. 5분 후 주포마을. 차량 회수를 하려면 지사동 자동차부품복지관 앞 사거리에서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서부산권 일대에서 운행하는 콜택시(051-971-9955)를 불러도 된다. 1만 원 안팎.

    두동고개 아래의 두동리 마을 전경으로 들판에는 추수를 기다리는 나락들이 황금색으로 바뀌었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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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산행과 억새산행은 가을 산행의 2대 백미다. 특히 억새산행만 놓고 본다면 부산을 비롯한 영남의 산꾼들은 그야말로 복 받은 사람들이다. 부산 시내만 살펴 봐도 승학산 백양산 금정산 철마산 등 가볍게 훌쩍 다녀올 만한 억새산행지가 즐비하다. 게다가 조금만 발품을 팔면 신불산 영축산 간월산 천성산 화왕산 경주 무장산 등 전국적 명성의 억새산행지를 다녀올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영남알프스 일대는 전국 최고의 억새평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이나 철원의 명성산, 전남 장흥의 천관산, 광주 무등산 등을 모두 가봐도 가을의 신불평전이나 천황산 사자평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산꾼들은 보다 새로운 억새명산을 찾아 헤매기 일쑤다. 억새군락지의 규모 면에서야 조금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처음 밟아보는 산에서의 새로운 느낌이 충분히 그 아쉬움을 상쇄해 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새로운 느낌의 억새산행지를 찾는 부산 울산 경남 산꾼들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고싶은 마음으로 '근교산&그너머' 취재팀은 이번 주 충남 제일의 억새산행지로 알려진 오서산(烏棲山·790.7m)을 찾았다.




    ■ 충남 제3위 봉우리… 10㎞ 남짓 4시간 걸려

       
    충남 보령시와 홍성군의 경계에 우뚝 솟은 오서산은 서해 낙조를 감상하기 좋은 포인트로 알려져 있지만 정상부 능선에 펼쳐진 억새밭으로 인해 산꾼들에게는 가을철에 가장 인기가 높은 산이다. '근교산&그 너머' 이창우 산행대장이 정상 주변 억새밭을 통과하고 있다.
    충남 보령시 청소면과 홍성군 광천읍의 경계를 이루는 오서산은 서해안의 산 답게 규모가 육중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둔산(879m) 계룡산(847m)에 이어 충청남도에서 세 번째로 높다는 점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특히 계룡산 대둔산 등이 내륙으로 치우쳐 있는 데 반해 오서산은 천수만이 코 앞에 내려다 보이는 해안에 위치해 있고, 야트막한 바닷가 산들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에 옛날부터 서해 중부해안을 항해하는 뱃사람들에게는 '서해의 등대산'으로 통한 산이다.

    따라서 정상부에서 바라보는 서해 일몰과 천수만의 풍광이 더 없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특히 정상 주변에서 오서정에 이르는 2㎞ 남짓한 능선에 넘실 대는 억새의 물결은 서해의 잔잔한 파도, 시원한 바람, 새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새롭고도 특이한 가을산의 풍경을 연출한다. 부산 기준으로 왕복 700㎞에 달하는 먼 거리이기는 하지만 원거리 당일 가을 산행지로 충분히 가볼만 한 산이다. 오서산이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까마귀와 까치가 많이 서식했다고 해서 명명됐다. 요즘은 까마귀는 잘 보이지 않고 까치는 간간이 눈에 띈다.




    산행은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 성연주차장에서 출발해 이곳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로 진행된다. 총거리 10㎞,산행시간은 휴식 포함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전세버스를 이용하는 산악회들은 주로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에 위치한 정암사(淨岩寺)에서 출발, 보령 관내인 성연리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애용하지만 취재팀은 자가용 이용자의 차량 회수 용이성 등을 고려해 원점회귀 코스를 잡았다.



    ■ 정상~오서정 2㎞ 억새능선 걷는 맛 일품

       
    산행 기점인 성연리 성동마을의 거대한 은행나무.
    주차장에 있는 산행 안내도를 한 차례 훑어 본 후 성동마을 진입로를 따라 오른다. 인근에 칠갑산이 있어서일까. 이 마을에도 콩밭이 많다. 하지만 철이 철인지라 '콩밭 메는 아낙네'는 잘 보이지 않는다. 키 크고 둥치 굵은 은행나무 아래를 지날 때 어엿한 풍채를 자랑하는 육산(肉山)인 오서산 일대가 병풍처럼 둘러 서 있음을 알게된다. 10분 후 마을안 갈림길에서 '등산로(시루봉) peak 3.1㎞' 이정표가 가리키는 우측으로 길을 잡는다. 나중에 하산하게 되면 이 지점에서 다시 합류하게 된다는 점, 미리 알아두자. 간이 매점을 지나고 서서히 마을을 벗어나 오르막이 시작된다. 울창한 밤나무밭을 통과해 오르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가로질러 '시루봉 0.8㎞' 이정표를 보면서 오르는 길은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짙은 숲길. '국제신문 근교산 취재팀' 리본을 본 인근 산꾼들이 하산하면서 "아유, 반갑구먼유. 인터넷으로 기사 잘 보고 있는 팬이어유. 부산서 여기까지 참 멀리도 왔네유. 산행도 취재도 즐겁게 하고 가세유"라며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반가움을 표시한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비교적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15분 후 만나는 갈림길에서 이정표 상 '오서산 정상 2.3㎞' 방향으로 15분만 더 오르면 해발 559m인 시루봉이다. 어느새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흥건하다. 시루봉을 지나 정상까지는 이제 완만한 오르막 능선길이어서 크게 힘든 구간이 없다. 정상에 가까워 질수록 키 큰 나무들은 사라지고 주변 풍광이 시원하게 드러난다. 시루봉에서 출발해 30분쯤 가면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된 봉우리를 지난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국립 오서산자연휴양림으로 하산 할 수 있지만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와 있는 정상을 향해 능선길로 직진한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억새의 향연이 펼쳐진다. 서해를 넘어 온 바람에 몸을 실은채 이리저리 춤 추는 억새가 장관이다.





       
    시루봉에서 정상으로 향하다 뒤돌아본 풍경.
    3분 후 닿은 오서산 정상에는 높이 2m 안팎의 큰 정상석과 그보다 조금 작은 정상석 2개가 나란히 서서 산 아래 천수만을 바라보고 있다. 서쪽 보령 방향은 천수만과 원산도 등 서해안의 크고 작은 섬들이, 동쪽은 고추로 유명한 청양군의 농촌마을들이 훤하다. 진행 방향 능선을 따라 시선을 좇아가면 멀리 오서정 자리에 설치된 전망데크가 보인다. 능선을 따르는 길은 흔들리는 억새를 친구 삼아 신나게 내달릴 수 있는 구간이다. 5분 후 금북정맥에 합류되는 갈림길을 만난다. 우측으로 가면 공덕고개로 내려서게 되지만 취재팀은 '정암사 2.5㎞' '오서정 1.0㎞' 이정표를 따라 정면 바위 왼편을 비켜 직진한다.






    ■ 천수만 등 서해 바다 바라보는 조망도 일품

       
    오서산 정상에서 주위를 돌아보면 사방 거칠 것 없다.
    10분 후 '성동마을 2.4㎞'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지나 좀 더 가면 쉰질바위 갈림길을 통과한다. 다시 7분 후 '성연 용못' 갈림길에서 잠시 멈춰서 지도를 확인한다. 직진한 후 오서정 전망데크에 들렀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서 왼쪽 성연 용못 방향으로 하산해야 하는 주요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부터 3분 후 닿는 오서정 전망데크에 이르는 구간의 억새밭이 정상 부근에 비해 훨씬 더 풍성한 느낌을 주고 주변 풍치도 빼어난 느낌이다. 전망데크에서 직진해 왼쪽으로 휘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내려 서면 정암사까지 가거나 던목고개를 거쳐 아차산까지 갈 수 있다.

    전망데크에서 다시 갈림길로 돌아오면 본격적인 하산이다. 잠시 후 돌탑을 지나 10분쯤 가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무조건 직진해야 한다. 유순한 산길은 마치 산책로를 걷고 있는 느낌이다. 30분 후 화장실과 산행안내도가 서 있는 문수골 임도에 닿으면 직진하지 말고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꺾는다. 신암터마을의 '오서산 시남산장' 표지석 앞을 통과하면 임도 갈림길을 만나는데 우측 주차장 방향 임도를 따른다. 10분쯤 가면 출발할 때 거쳤던 성동(성골)마을 은행나무 인근 갈림길에 닿는다. 천수만 너머 서해 바다로 떨어지는 태양의 불그스럼한 빛그림자가 사위를 감싼다.



    ◆ 떠나기 전에

    - 1박2일로 '신비의 바닷길' 무창포 가 볼만

       
    오서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1.5㎞가량 떨어진 오서정 주변의 억새밭이 가장 풍성한 느낌을 준다.
    충남 보령은 사실 부산 시민들로서는 당일에 다녀오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오서산 산행을 계획할 때 아예 1박2일 정도로 계획을 짜서 하루는 산행을 하고 하루는 여행을 해 보는 것도 좋다. 보령은 여름철 머드축제로 유명하지만 '서해안의 해운대'라고 불리는 대천해수욕장도 유명하다. 또한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신비의 바닷길 현상이 일어나는 곳 가운데 서해안에서 최고로 꼽히는 무창포해수욕장도 좋다. 바닷길 갈라지는 현상은 여름철이 아닌 계절에도 지속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볼거리가 될 듯하다. 매월 음력 보름날과 그믐날을 전후 해 하루 2~3회씩 해변에서부터 석대도까지 1.5㎞의 바닷길이 열린다. 바닷길을 따라가며 게 조개 등을 잡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바닷길을 볼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은 보령시 문화관광홈페이지(http://ubtour.go.kr/index.jsp)를 통해 미리 확인할 수 있다.





    ◆ 교통편

    - 대중교통 이용 불편, 편도 4시간 잡아야



    산행 기점인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당일 산행을 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 자가용을 이용하더라도 고속도로를 5차례나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다소 복잡하다. 우선 대구부산고속도로를 이용, 동대구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옮겨 탄 후 대전의 회덕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탄다. 6분 후 유성JC에서 당진대전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31㎞쯤 가서 서공주JC에서 다시 서천공주고속도로를 타고 청양 서천 방면으로 간다. 20㎞쯤 가서 만나는 청양IC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간 후 학암삼거리에서 정산 공주 방면으로 우회전, 4㎞쯤 가다가 서정리사거리에서 칠갑산로를 보면서 청양 보령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3㎞쯤 가서 천장삼거리에서 청양 보령 방면(칠갑산로)으로 우측 도로를 타고 12㎞쯤 간 후 탄정삼거리에서 보령 대천해수욕장 방면으로 청양우회로를 타고 좌회전한다. 36번 국도다. 이후 11㎞쯤 가다가 화성면쪽 우측(강고지1길)으로 빠져나가 610번 지방도로를 타고 화성면 소재지로 들어선다. 화성우체국 인근 화성삼거리에서 화강-신산로 청소방면으로 우회전(610번 지방도), 6.5㎞쯤 가다가 용두삼거리에서 오서산 청소 방면으로 우회전, 4㎞쯤 가면 주차장에 닿는다. 4시간 소요.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69,
  • 국제신문
  •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 여기로 들어가시면 본인이 촬영한 오서산 억새산행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00&key=20111014.2202819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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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세와 이별한다'는 뜻을 지닌 속리산(俗離山·1057.7m)은 두 말할 필요 없는 명산이다. 과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대부분의 중학교에서 수학여행을 법주사와 문장대로 떠났을 만큼, 현재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 본 산이기도 하다. 비록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의 경계에 있어 부산 울산 경남에서는 그만큼 멀게 느껴지지만 유년기의 아련한 추억이 머물고 있기에 다른 산에 비해 친숙한 느낌을 준다.




       
    국내 대표적 암릉산행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속리산 묘봉 정상에 오르면 충북알프스라고 불리는 내륙의 명산들이 사방으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취재팀이 묘봉 정상에서 상학봉 비로봉 등 지나온 서쪽 능선 암봉들을 살펴보고 있다.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이번 주 인간 세상의 먼지와 때를 씻어내고 자연과 하나 되는 속리산 줄기의 묘봉(妙峰·874.0m)을 찾아갔다. 속리산 능선 가운데 서북쪽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묘봉 코스는 바위 산으로 이름난 속리산에서도 특히 기기묘묘한 암릉과 암봉이 발달한 구간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묘봉인가.

    사실 상학봉과 묘봉을 잇는 구간은 속리산 뿐 아니라 전국의 명산들을 통틀어서도 손에 꼽히는 암봉 코스다. 길이 험한 만큼 산행의 재미와 빼어난 조망을 원 없이 즐길 수 있어 산꾼들에게 인기가 높다. 게다가 은빛 화강암 바위와 울긋불긋한 단풍잎이 어우러지는 가을철의 묘봉은 진경산수화의 진수를 옮겨놓은 듯한 선경(仙景)을 자랑하기 때문에 특히 단풍산행과 암릉산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코스다. 아직 초록이 덜 지쳐 단풍은 이르지만 곧 붉게 물들테다. 다만 간간히 위험구간을 만나기 때문에 산행 입문 초보자의 경우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비 올 때나 겨울철에도 피하는 것이 좋다.

    ■ 속리산국립공원 서북능 10.5㎞, 6시간 걸려



       
    묘봉 코스는 유달리 로프구간이 많다.

    37번 국도 변에 위치한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운흥1리의 음식점 '묘봉두부마을'이 들머리다. 코스는 운흥1리 마을회관~이정표~토끼봉 하단 갈림길(이정표)~진터골~안부~통천문(토끼봉 상단 갈림길)~비로봉~돌탑~개구멍~굴바위~신정리 이정표~상학봉~개구멍~암릉표지석~묘봉~북가치~미타사앞 임도~운흥2리 표지석~화북면 서부출장소로 이어진다. 완전한 원점회귀 코스는 아니지만 들머리와 날머리가 걸어서 20분 내 거리이기 때문에 자가용 운전자의 차량 회수에도 큰 문제는 없다. 코스 총거리 10.5㎞, 주말 산꾼 보통 걸음으로 6시간 정도 걸린다.

    음식점인 '묘봉두부마을' 앞에서 남쪽으로 병풍처럼 둘러 선 묘봉~상학봉~비로봉 줄기와 산행 안내판을 번갈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한 차례 한 후 운흥1리 마을회관 쪽 골목길로 들어선다. 회관을 지나면 정식 속리산국립공원 안내도가 있다. 다시한번 묘봉~상학봉 능선을 바라본 후 개울을 따라 골짜기 안으로 진행한다. 10분 후 첫번째 이정표. 문장대 9.1㎞ 묘봉 4.2㎞ 상학봉 3.9㎞를 가리킨다. 다시 5분쯤 가면 주의해야 할 두 번째 이정표다. 우측으로 '상학봉 2.9㎞'를 표시하고 있다. 암릉 위험 경고 문구도 보인다. 직진하면 토끼봉 방향이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국립공원사무소 측에서 우측 방향으로 오르도록 유도하고 있다. 취재팀 역시 이정표가 가리키는 우측으로 길을 잡는다. 서서히 한적한 숲길의 분위기가 완연해 지면서 어느새 깊은 산중의 풍취가 물씬하다.


    ■ 기묘한 바위 즐비… 한국 대표 암릉산행지

       
    수많은 기암 중 하나인 스핑크스 바위.

    진터골 계곡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능선안부. 우측으로 가면 매봉 미남봉을 거쳐 활목고개까지 연결되고, 좌측은 묘봉 정상 가는 길이다. 묘봉 2.9㎞, 상학봉 1.9㎞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면서 왼쪽 오르막으로 길을 잡는다. 서서히 집채 만한 크기의 바위들이 나타나면서 빼어난 전망을 드러낸다. 곳곳에 노송과 바위가 어우러진 전망대가 즐비하다. 옅은 안개가 끼는 듯 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흡사 선경을 방불케한다. 15분 후 바위 자체가 언덕을 이루는 전망대봉에 오르면 앞으로 가야할 암봉들이 성난 파도 너울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총 12개를 넘어야 하는 암봉 코스의 첫 번째 봉우리에 선 것이다. 이 봉우리를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암릉산행이 시작된다.

    살짝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을 타면 5분 후 '상학봉 1.3㎞' 이정표를 지나고, 로프를 잡은 채 비스듬한 암벽을 오른다. 앞으로 줄기차게 나타나게 될 로프와의 조우다. 그런데 로프 마디 사이에 장력 약한 스프링이 함께 장착돼 있고 철사도 연결돼 있어 자칫하면 손을 다칠 위험이 크다. 무슨 이유로 스프링과 철사를 장착해 놓은 것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로프를 잡고 오르면 널찍한 마당바위 위다. 이곳 역시 조망만큼은 기가 막히다. 다시 로프를 잡고 내려서서 좀 더 진행하면 암봉 앞에서 좌우로 길이 갈린다. 왼쪽은 암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우측은 우회로다. 왼쪽 길을 택해 암봉으로 오르면 상모봉(772m)이다. 정상석은 없다. 전방 왼쪽으로 토끼봉 능선 암릉이 눈앞에 펼쳐진다.



    ■ 바위굴만 5개 산행 재미 듬뿍… 조망도 일품

       
    구름과 암릉이 어우러진 묘봉은 비경 중에 비경이다.

    다시 내려서면 순간적으로 능선길이 편해진다고 느껴지는데, 그 순간 왼쪽에 바위문이 보인다. 험로인 토끼봉 능선에서 올라와 주능선으로 합류하는 곳이다. 일명 통천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입구는 좁아 보이지만 살짝 들어가 보면 의외로 확 넓어진다. 다시 주능선으로 돌아와 원래의 진행 방향으로 30m쯤 가면 왼쪽에 거대한 바위 틈 사이 약 1m 정도의 통로가 보이는 데 다시 한번 이곳으로 나가보면, 토끼봉과 모자바위 주전자바위 등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주능선으로 복귀, 1분쯤 가면 상모봉 직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우회한 길과 만난다. 좀 더 가면 가평 이씨 묘를 지나고 또다시 바위 앞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택해 오르면 널찍한 전망대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조금 더 이어가면 비로봉(830m)이다. 선계(仙界)에 들어선 듯, 조망은 빼어나지만 눈 앞 어딘가 있을 상학봉과 묘봉은 도통 분간할 수가 없다. 암봉이 너무 많고 안개까지 뒤덮여 있으니….



       
    이창우 산행대장이 절벽 위 개구멍을 통과하고 있다.

    로프를 잡고 조심 스럽게 내려서다가 암봉 허리춤을 타고 왼쪽으로 휘돌아가면 돌탑 있는 안부에 닿는다. 왼쪽 철계단을 타고 가파른 오르막을 치면 암봉 하나를 넘는다. 다시 내려서는 길에 로프를 잡고 개구멍을 통과해야 하는데, 통과 후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천길 낭떠러지다. 조심해서 내려선 후 왼쪽으로 널찍한 굴바위를 통과한다. 악천후 때 임시 대피소로 삼아도 될 만큼 큰 규모의 바위굴이다. 또 다른 통천문이라고 해도 되겠다. 왼쪽으로 살짝 돌아가서 약간 오르막을 타면 널찍한 마당바위와 멋진 소나무가 있는 암봉. 이제 상학봉이 눈 앞이다. 살짝 내려서서 '신정리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통과, 직진하면 4분 후 상학봉(862m)에 닿는다. 정상부 바위로 오를 수 있던 철사다리는 제거돼 없어졌지만 살짝 옆쪽으로 비켜 서면 지나온 암봉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북쪽으로는 묘봉과 그 뒤 관음봉 문장대로 이어지는 속리산 주능선의 장쾌한 풍광도 고스란히 파인더에 잡힌다.



    ■ 암벽 로프구간 많아 산행 안전 주의 필요

       
    장닭의 볏인가, 용의 등뼈인가. 들머리인 운흥1리에서 보면 묘봉 암릉의 울퉁불퉁한 골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상학봉~묘봉 구간은 지금까지 통과한 암릉 코스의 험준함을 비웃을 만큼 좀 더 험악하다. 하지만 그만큼 짜릿함을 훨씬 많이 맛볼 수도 있는 구간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스핑크스를 닮은 기묘한 형상의 바위를 지나 내려선 후 다시 로프구간을 만나는데, 전체 코스에서 만난 것 중 가장 긴 로프다. 2단으로 이어져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10분 후 또 하나의 개구멍을 지난 후 사다리와 로프구간을 잇따라 통과한다.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개구멍에서 25분 가량 가면 비로소 '암릉(해발 860)' 표지석과 '묘봉 0.3㎞'가 표시된 곳에 닿는다. 살짝 넘어서서 사다리를 통과하고 왼쪽 우회로를 타고 올라 뿅뿅다리를 건너 오르면 마침내 해발 874.0m인 묘봉 정상이다. 충북 청주대학교 출신인 고(故) 고상돈 산악인을 추모하는 나무기둥이 반겨준다. 서쪽으로는 상학봉을 포함한 지난 암봉들이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도명산 낙영산 등의 명산들이, 또 동쪽으로는 관음봉과 문장대,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속리산 주능선이 파노라마를 이룬다.



    이정표 상 '관음봉 3.3㎞' 방향으로 로프를 잡고 살짝 내려서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10여 분 가면 북가치고개 사거리에 닿는다. 우측 길은 관음봉 문장대로 이어지는 능선이지만 '위험구간 폐쇄' 안내판이 보란듯이 서 있다. 고개를 넘어 직진, 계곡을 따라 내려서는 길은 순하디 순한 길이다. 20분 후 '묘봉 두부마을' 갈림길이 나오지만 직진해서 내려간다. 다시 20여분 걸으면 미타사 입구 임도에 닿고 이후 날머리인 운흥2리에 있는 화북면서부출장소까지는 임도를 따라 15분만 걸으면 된다.



    ◆ 떠나기 전에

    - 속리산 묘봉 암릉은 9000만 살 어르신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바위들과 암봉이 수없이 늘어 선 속리산 묘봉 산행을 하다가 문득 언젠가 읽었던 책 한 권이 생각났다. 국제신문 부설 부산과학연구소 손동운 소장이 본지 생활과학부 기자 시절 부산지역 지리학 및 지질학 교수단과 함께 발로 쓴 '우리 산, 땅의 자취 답사기…산에도 역사가 있다(부산대출판부)'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속리산 문장대는 마그마가 지하 수㎞에서 서서히 굳어진 화강암이며 방사성 연대측정 결과 그 나이가 대략 9000만 살에 이른다.



    묘봉 역시 문장대가 속한 속리산 능선에 위치한 점으로 미뤄 나이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는 부산 금정산(약6500만~8000만 살)보다는 '형님'인 셈이고 월악산(9000만~1억 살), 인수봉 만경대 백운대 등 3개의 거대 암봉을 지닌 탓에 옛부터 삼각산이라고 불린 북한산(1억3000만~1억8000만살)에 비해서는 '동생'인 셈이다. 억겁의 세월을 거친 이 땅의 산과 바위를 두고 고작 100살쯤 살까 말까한 인간이 이기려 한다는 것부터가 분수를 잊은 행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에서 겸손해야 할 또 다른 이유인 셈이다.



    ◆ 교통편

    - 자가용 이용해 속리산IC에서 내려야

    대중교통 이용시 당일 산행이 힘들 정도로 부산에서는 거리가 먼 편이다. 따라서 자가용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3시간 쯤 걸린다.

    우선 대구·부산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김천분기점까지 간다. 김천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옮겨탄 후 낙동분기점에서 다시 당진상주고속도로를 이용한다. 당진 방면으로 45㎞쯤 가서 만나는 속리산IC에서 내린 후 상장교차로에서 속리산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5.2㎞쯤 간 후 말티교차로에서 보은 방면으로 좌회전 한 후 2.5㎞지점 보은교차로에서 우회전 국도 19호선을 타고 괴산 미원 방면으로 간다. 4.7㎞가량 이동, 봉계1교차로에서 국도19호선을 버리고 우측으로 빠져나가 내북 산외 방면으로 향한다. 575번 지방도다. 원평삼거리에서 우측 길로 직진, 충북알프스자연휴양림 방향으로 계속 가면 활목고개를 넘어 운흥1리 묘봉 두부마을 음식점 앞에 닿는다. 주차는 식당 주변이나 마을회관 인근에 할 수 있다. 산행 후 차량회수를 위해서는 2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69,

    • 국제신문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필자가 촬영한 동영상 파일이 너무 커 국제신문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습니다. 천당과 지옥을 함 느껴보세요..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00&key=20110930.2202819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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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무장산


    산 이름은 등산로 입구 절터인 무장사지터가 있어 이곳은 태종 무열왕(김춘추)이 삼국을 통일한 후 이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왔다하여 투구와 병기를 묻은 곳이라 무장사라 하였다 한다. 그 뒤의 산을 무장산으로 부르는데 ‘무장사지 삼층석탑’과 ‘무장사 사적비 이수와귀부’가 현재 남아 있다. 이곳은 어떤 이유로 억새가 만발하게 되었을까.

     


    1970년대 초부터 정상일대에 젖소를 키우던 오리온 목장이 1996년 문을 닫으면서 초지가 억새로 뒤덮혀 버리게 되어 15년 전부터 오늘과 같은 억새 산행지가 되었다. 산행은 보문단지 뒤 덕동호 골짜기 안으로 경주시 암곡동 왕산마을에서 시작한다. 왕산마을~암곡펜션입구~입산통제소(산불초소)~무장사지 삼층석탑~억새군락지(옛오리온목장)~무장산 정상~폐비닐하우스 갈림길~안부~성황재 갈림길~잇단 전망대~664봉(삼각점)~650봉~안부 갈림길~황룡사지·동대봉산 갈림길~동대봉산 갈림길~임도~출입문~상수원 보호구역 초소~왕산마을 순으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30분 소요된다..


    산행은 크게 계곡을 타고 올라가 억새군락지를 보고 폐비닐하우스를 지나 안부 부터는 능선을 타는 산길이 이어진다. 세 부분으로 구분돼 있어 산행 하는 재미가 여타 산 보다도 훨씬 좋으며 억새 산행만 월할 경우에는 폐비닐 하우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하산을 하면 산불초소 방향으로 내려선다.



     

    원점회귀가 가능하여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포항 울산 직진~보문관광단지 우회전~보문관광단지 천북 좌회전~포항 천북 좌회전(경주생활체육공원)~천북 암곡~암곡 덕동~암곡휴게소(암곡노인회관)~왕산마을 순.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은 국제신문 홈페이지, 동영상 참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30&key=20081017.22029194920

     

     

    *창녕 화왕산~관룡산

     

     

    창녕 화왕산 하면 억새 산행지로는 두말 할 필요 없이 전국구인 산으로 누구나 아~하며 무릎을 칠 것이다. 봄에는 진달래 산행지로도 각광을 받지만 실질적으로는 억새 산행지가 더 유명한 명산이다. 화왕산은 산 정상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산성이 임진왜란때 이곳에서 곽재우 장군이 전공을 올렸다 한다. 산성의 크기는 18만4800㎡(5만6천평)으로 이곳 전부가 억새밭으로 덮혀 있다. 한때 창녕군에서 이곳에 화왕산 갈대제를 열었을 정도이다.


    산성안에는 3개의 연못인 용지와 ‘창녕조씨 득성비’그리고 허준 드라마 세트장, 관룡사의 용선대등 많은 볼거리가 산제해 있어 가을 억새 산행지로는 최적의 코스이다. 원점 회귀를 위해 옥천리 관룡사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옥천리 화왕산 주차장~임도(제1등산로)~차량 차단시설~이동통신 기지국~화왕산성 남문~헬기장~배바위~화왕산 정상~동문~허준세트장~옥천삼거리~관룡산 정상~용선대~관룡사~화왕산 주차장 순으로 걷는 시간만 4시간10분 정도지만 억새와 배바위등 역사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콘텐츠를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족히 7시간은 잡아야 한다.


    하산후 옥천리는 자연산 송이 버섯를 채취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향보리밥(055-521-2516)의 송이밥이 송이 향이 진하며 맛이 좋다. 원점회귀 산행이라 승용차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 영산IC~영산 방향 좌회전~대구 창녕 5번 국도~화왕산 우회전 1070번 군도~옥천~화왕산 군립공원, 관룡사 좌회전~화왕산 주차장 순.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은 국제신문 홈페이지, 동영상 참조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2&key=20071005.22029193021

     

     

    *양산 금정산 장군봉

     

     

    부산의 진산은 금정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억새 산행지하면 쌍수를 들고 금정산에 억새 산행지가 어디 있냐고 반문을 할 것이다. 그러나 금정산에도 억새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여타 산처럼 범위가 넓지는 않아 사실 부산시민들에게 등한시 받아 온게 사실이지만 양산 동면의 장군평전을 이야기 안할 수가 없다. 국토지리원에서 발행하는 지형도에는 장군봉이란 이름이 나와 있지 않으며 실제로 상학산과 계명봉 그리고 금정산만 명시되어 있다.
     


    장군봉은 구덕산악회 고장두석씨이며 이곳 봉우리에 올라보니 장군의 기상처럼 늠름하게 혼자 버티고 서 있어 장군봉이라 명명하였다 하며 그 옆 평전은 자연스럽게 장군평전이 되었다. 낙동정맥이 지나가는 718봉 봉우리에 최근에 갑오봉이란 새로운 표지석이 세워졌다. 새로운 산행로를 오르는 코스로 도시철도를 이용하여 산행을 할 수 있다. 양산시 동면 금산리 금선사~임도 갈림길~움막~습지~주능선(고당봉·장군봉 갈림길)~범어사기 석표~대형 철탑~샘터~718봉~장군봉(737m)~암릉길~727봉~잇단 철사다리~은동굴 갈림길~임도~(차단기)~금선사 순으로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4시간35분 정도 소요되는데 산행시간은 길 찾기등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6시간은 잡아야한다.
     


    원점회귀산행으로 승용차를 이용할시에는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화명동 부산 도시 철도 2호선을 통과~양산 35번 국도~언양 남양산IC~국도변 '양촌 촌국수' 간판 지나~국도변 대형 입간판 '금선사 삼호공원 양어장' 방향 우회전~삼호공원~금선사 순.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은 국제신문 홈페이지,동영상 참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2&key=20070928.22029194810

     

     

    *부산 사하구 승학산


    부산의 억새 산행지는 승학산을 이야기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새울 것이다. 그 만큼 억새 산행지로는 대적할 산이 주위에 없을 정도로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승학산 정상에 올라서서 낙동강 넘어로 떨어지는 낙조는 억새와 함께 승학산의 1경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무학대사가 이산을 보고 학이 날아 오르는 듯한 모습에 승학산이라 하였다. 승학산 산행은 부산 도시 철도를 이용하여 느긋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 1호선 괴정역~괴정성당 옆 동산빌라 입구~한샘약수터~헬기장~부산기상레이더관측소(시약산)~시약정~부산항공무선표지소(구덕산)~산불감시초소~잇단 헬기장~승학산 정상~동아대 하단캠퍼스 순으로 이어진다. 3시간 정도 소요 되는데 동아대 하단캠퍼스에서 역순으로도 승학산 산행을 많이 한다. 그러나 이곳은 급한 오르막이 정상까지 이어져 산행 초보자에게는 매우 힘이 드는 코스이다. 그래서 조금은 수월한 대티고개나 구덕령 꽃동네, 그리고 괴정역 코스로 올라 동아대 하단캠퍼스로 하산을 권한다. 한다.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은 국제신문 홈페이지 참조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10&key=20031009.01001R00870

     

     

    *양산 천성산 화엄벌

     

     

    양산 천성산은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의 이야기를 빼고는 논할 수 없다. 원효가 불광산 척판암에서 신통력으로 보니 당나라 승려 1,000명을 예지력으로 구하니 당나라 승려가 이곳 천성산에 원효대사를 찾아오니 원효가 이들 1,000명을 모두 화엄경을 설법하여 성인이 되게 하여 천성산이 되었다 한다. 원효가 화엄경을 설법한 곳이 화엄벌로 3만8천평의 너른터에 봄에는 철쭉꽃이 장관을 이루고 가을에는 억새가 춤을 추는 700m의 산상공원이다. 1999년에는 이곳이 고산습지로 새롭게 조명이 되어 2002년 환경부로부터 ‘화엄늪 습지 보호구역’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홍룡사의 홍룡폭포를 보고 화엄벌로 오를 수 도 있지만 석계에서 능선을 따라 걷는 것이 천성산의 진 면모를 보는 것 같아 추천을 하며 원적산 봉수대는 경남기념물118호로 천성산의 옛이름이다. 전국의 봉수대중 봉수지 고사지 건물지등의 기초가 유일하게 남아 있다.

    산행은 상북면 소재인 석계리에서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석계리~임도~원적산 봉수대~(차량)차단기~화엄벌~'군사시설보호구역' 팻말 이정표~원효암 갈림길~원효암~대형 주차장~작전도로~낙동정맥 산길~전망대~철탑~평산리 장흥부락 순으로 6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번 코스는 원점 회귀가 아니라 대중 교통편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들머리인 상북면 석계로 가기 위해서는 부산도시철도 1호선 명륜동역(종점)이나 온천장역 시외버스 정류장 앞에서 언양행 12번 완행버스를 타고 석계(상북면사무소)에서 내린다. 첫 차는 오전 5시20분에 있으며 이후 7~9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 정도 걸린다.

     

     

    날머리 덕계에선 덕계시장 스파편의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부산행 일반버스(50, 58, 147) 및 좌석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울산~부산간 운행하는 1127번 버스를 타도 된다.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은 국제신문 홈페이지 참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23&key=20041015.22033181116

     

    *영남알프스 신불산, 천황산 일원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과 삼남면 양산시 원동면의 접경에 걸쳐져 있는 산으로 지역민에게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다.

    보통 신불산 산행은 신불산 공룡능선으로 불리는 홍류폭포 좌측인 칼바위 능선을 타고 신불산 정상을 올라가는 것이 대표적인 산행코스이나 너무 많은 인파로 인해 억새 산행철에는 피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래서 권하는 코스는 신불산 직등능선으로 홍류폭포 우측능선을 타고 오르면 여기도 조망이 매우 뛰어나며 한적한 산행을 즐길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한때 신불산은 지리산에서 도망온 파르티잔 잔당들의 영남지역 최대 근거지 였다 한다. 지금도 그때의 흔적들이 남아 있어며 이곳 주민들은 그때 이야기를 하면 아직도 치를 뜬다. 낮에는 아군이 지켜 평온한 듯 하지만 밤만되면 빨갱이들이 설쳐 피난을 가거나 죽은 자가 숱하게 많다한다. 산행경로는 등억온천단지 내 온천교~간월산장~홍류폭포·간월재 갈림길~간월산 방향~신불산(험로)·간월산 갈림길~신불산 방향~갈림길~전망대~잇단 밧줄 걸린 암벽~영남알프스 주능선~신불산 정상~신불평원~군부대 사격장 안내문길~쓰리랑릿지 출발점~아리랑릿지 출발점~임도~장제마을~LG주유소 옆 버스정류장순으로 6시간 족히 걸린다. 원점회귀 삼행은 신불산 정상에서 다시 왔던길을 돌아내려와 간월재 방향으로 내려간다. 간월재에도 광명추파 억새의 군무를 확인할 수 있다. 영남알프스에는 이외에도 많은 억새 산행지가 있다. 밀양의 천황산~재약산이 그곳이다.


      천년고찰 표충사를 기점으로 이어지는 천황산은 전국의 억새 산행지에 올려도 손색없는 코스로 국내 최대 규모의 억새군락지인 사자평과 천황재의 광명추파는 천황~재약을 억새산행지로 단번에 올려 놓고도 남음이 있다. 표충사 우측계곡인 옥류동천은 흑룡폭퐁와 층층폭폭의 비경을 품고 있으며 좌측계곡은 금강동천으로 금강폭포를 안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천황~재약 산행은 표충사를 기점으로 우측 옥류동천을 끼고 올라 사자평을 지나 재약산 천왕봉을 거쳐 천왕봉 정상에서 금강동천을 타고 내려오는게 일반적인 산행코스이다.

    (국제신문DB)
    이번에는 산행을 달리하여 재약5봉이니 재약8봉에도 나와 있는 문필봉 즉 필봉을 경유하여 천황산으로 오르는 산행을 소개한다. 전체적인 산행 경로는 단장면 구천리 표충사 집단시설지구 주차장~매바위마을~너덜~전망대~필봉(665m)~필봉 삼거리~헬기장~도래재 삼거리~상투봉~남명리 삼거리~천황산(1189m)~천황재~내원암~표충사 순. 걷는 시간만 4시간50분 걸린다.

     


    이번 신불산 산행은 들머리와 날머리의 거리가 멀어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편리하다.노포동종합터미널(051-508-9966)에서 언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 첫차 이후 20~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10분 정도

     

     

     

     

    산행 기점인 간월 입구 또는 온천교에 가기 위해선 언양시외버스터미널 후문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버스정류장에서 323번 대우여객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오전 9시10분, 10시10분, 11시10분, 낮 12시30분에 출발한다. 15~20분 걸린다.

      (국제신문db)

     

    날머리인 LG한일주유소 옆 버스정류장에서 신평행 시내버스(12, 12-1, 63, 67번)는 8~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신평시외버스터미널(055-382-6624)에서 노포동종합터미널행 시외버스는 오후 3시10분, 3시45분, 4시20분, 4시55분, 5시30분, 6시, 6시30분, 7시, 7시35분, 8시10분, 8시40분(막차) 출발한다.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국제신문 홈페이지 참조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23&key=20040625.22029190833

     


    (국제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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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대(蓮龜臺)

    경남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 석계공원묘지 입구를 올라가다 왼편으로 외석천이 흐른다. 계곡 건너편에 암벽이 병풍을 친 것 같은 모습의 경치가 뛰어난 곳이 나오는데 이곳을 세상 사람들은 연구대라 부른다.

    조선 후기의 대(臺)로 철종때 의금부도사를 지낸 오명환이 만년에 이곳에서 유유자적하며 지냈다 한다. 그는 이곳에서 ‘병풍 같은 바위와 개석이 있어 매양 이곳에올라 소요 자적했다’는 제명이 바위에 남아 있다.

    이곳은 한때는 풍산홍씨의 집안 소유 였다 한다. 그러나 그후 나주 오씨 소유가 되었다하는데 연구대 맞은편에는 홍씨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지금도 이곳에는 붉은글씨의 연구대 각자와 죽재오명환의 시가 새겨져 있으며 나주오씨의 이름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이모든 유적들이 사실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풍화작용으로 인한 마모가 심하며 무분별한 행락객으로 인해 이곳에서 음식을 해 먹는다고 불을 피우는 일이 심심치 않게 목격이 되었다.
    선조의 얼이 담겨진 이곳 연구대의 유적들이 언제까지 뚜렷한 글씨체로 남아 후대에 물려줄지 알 수 없는 일 양산시는 지금부터라도 보존대책을 마련하여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길 바란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이곳 외석천 상류에는 오룡골과 장재골 두골짜기의 물이 합류해서 내려 오는데 합류점인 가리미 마을인근의 무분별한 양계장과 오폐수로 인해 이곳의 계곡물이 탁도가 흐린것 또한 사실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사진을 찍을 때 오물등을 피해 찍는다고 찍었는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연구대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찾아가는 방법

    부산도시철도 2호선 양산역 앞 우측 버스정류소에서 내석행 시내버스(107, 10번)를 탄다. 오전 6시30분, 7시30분, 8시50분, 11시30분 등. 약40분 소요. 석계공원묘지까지 들어가는 버스가 있지만 하루 단2회로 불편하며 석계공원묘지입구인 좌삼초교앞에서 하차를 한후 석계공원묘지 방향으로 20여분 정도 발품을 팔면 된다. 부산지역 교통카드 환승 가능.

      자가용 이용시 경부고속도로 양산IC에서 내려 35번 국도 언양 통도사 경주 방면 우회전 후 5.7㎞쯤 가다가 석계리 내석입구사거리에서 좌회전, 삼계교를 건너 골짜기 안쪽으로 직진한다. 석계공원묘지 앞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틀어 다리를 건너면 중리마을로 연구대는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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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근교에는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 친지 친구와 함께 가볍게 당일 산행을 할 만한 곳들이 많다. 사진은 기장 철마산~망월산 코스 산행 중 거치게 되는 억새 군락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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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金井山·801.5m)은 부산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산이다. 그 넉넉한 품과 장엄함은 한없이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익숙해서 편안하고, 수십번을 올라도 또 오르고 싶어지는 산이 바로 금정산인 것이다. 접근하기도 좋고 수백개의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어 시간 제약도 많이 받지 않으니 추석 연휴에 훌쩍 다녀오기에도 안성맞춤인 산으로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왕이면 좀 색다른 코스를 택해서 산행을 해 보면 어떨까.

    본지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지난해 6월 처음으로 소개했던 '남근(男根)바위~여근(女根)바위 연계코스'는 금정산의 주요 능선과 상징물을 대부분 섭렵하면서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물(奇物)'들까지 일별할
    금정산 남문 수박샘 인근에 있는 여근바위를 위에서 본 모습.


    수 있는 빼어난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이른바 '산성마을'로 알려진 금정구 금성동을 기점으로 한 원점회귀 산행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부담이 덜한 점이 우선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매력은 금샘 아래에 위치한 남근바위와 금정산성 남문 인근 수박샘 주변에 숨어 있던 여근바위의 오묘한 자태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륵암과 금샘 북문광장 의상봉 무명암 나비암 동문 남문 등 금정산의 대표적인 명소와 주능선을 섭렵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그러나 금정산 여근바위는 산성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오랜 옛날부터 신성시 되었던 바위이면서 그 아래에서 흘러 내리는 물은 마을 주민들의 식수원 역할을 한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싶다. 결코 훼손해서는 안될 금정산의 새로운 자랑거리라는 점을 잊지말자. 남근바위 또한 훼손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산행 총거리는 16㎞, 휴식 포함한 산행 시간도 7시간 안팎이 걸린다는 점을 참고로 하자.

    전체 산행은 금정구 금성동의 산성마을을 기점 삼아 한 바퀴 도는 원점회귀 형태로 진행된다. 금성동사무소~국청사~북문임도 갈림길~유씨농원 푯말 갈림길~무덤터~미륵사~금정산장(북문)~금샘 푯말 갈림길~금샘~9부능선길 갈림길~자연보호 안내판 갈림길~남근바위~(되돌아 나와서)북문~원효봉~의상봉~나비바위~동문~산성고개~남문~수박샘~여근바위~수박샘 인근 갈림길~공해마을 삼거리 순이다.


    교통편

    부산역에서 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온천장역에서 내려 203번 좌석버스를 갈아탄다. 산성마을 금성동사무소 앞까지 넉넉하게 30분가량 소요된다. 10~15분 간격 운행. 북구 방면에서는 도시철도 2호선 덕천역 수정역 화명역 등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8분 간격 운행.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부산 동래구 온천동 금강식물원 앞에서 산성로를 이용, 산성고개를 넘어가거나 북구 화명동 롯데낙천대아파트 앞 삼거리에서 산성 방향으로 우회전, 산성로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국제신문사이트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10&key=20100625.22020194857

    〈 근교산&그너머 683회 참조 〉



    # 동부산권 대표 조망 산행지, 억새 절벽 어울려 산꾼 유혹

    ■기장 철마산~망월산

       
    기장 철마산~망월산 코스 산행중 만나는 매암의 웅장한 자태.
    동부산권에도 산행을 즐기기에 좋은 산들이 많다. 해운대 장산, 기장 달음산 아홉산 등이 손에 꼽힌다. 그러나 이왕이면 좀 더 한적한 가운데 가볍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코스로 기장군 철마면과 정관신도시에 걸쳐 있는 철마산(鐵馬山·605.4m)~망월산(望月山·549m) 코스를 추천한다. 숨은 억새 산행지로도 알려져 있는 철마산~망월산 코스는 해발 500~600m대의 부담없는 고도를 가진 아담한 봉우리가 능선으로 연결돼 있어 걷기에도 좋고 조망 또한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산행지다.

    억새산행을 하기에는 이른 감이 많지만 추석 연휴를 맞아 한적함 속에서 기암으로 이뤄진 절벽 위에 서서 동부산권 일대를 조망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매력은 충분하다. 철마산에서 망월산을 거쳐 백운산까지 이어가는 산행을 할 수도 있지만 연휴를 맞은 당일 산행으로 철마산~망월산을 잇는 것이 딱이다.

    또한 부산 시내에서 도시철도와 마을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접근할 수 있고 원점회귀로 산행이 이뤄진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들머리겸 날머리는 부산 기장군 철마면 임기리 버스종점이다. 금정체육공원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다. 원점회귀로 이뤄지는 산행이다보니 자가용을 이용하려는 산꾼들에게도 편리하다.



    철마산 정상에서는 다방봉에서 장군봉 계명봉 고당봉 대륙봉 상계봉까지 이어지는 금정산 주능선이 모두 드러난다. 또 회동수원지와 아홉산 윤산은 물론이고 멀리 백양산과 장산 영도 봉래산 등 부산 시내 대부분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용왕에서 파견된 용마의 전설이 깃든 철마산을 지나 망월산 능선으로 들어서면 달음산과 정관신도시 일대가 깎아지른 절벽 아래쪽으로 시원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특히 매암산 주변의 암릉과 절벽들의 풍광이 빼어나다. 산행거리는 13㎞, 쉬엄쉬엄 걸어도 5시간이면 충분하다.



    들머리 겸 날머리는 부산 기장군 철마면 임기리 버스 종점이다. 코스를 전체적으로 요약하면 임기버스종점~임기마을회관~지장암 입구~지장암(삼성각 오른쪽으로 진입)~갈림길~쉼터~무명묘~서봉 밑 능선 이정표~전망대~철마산~안부 이정표~임도~574봉(소산봉)~소두방재~헬기장~매암산~망월산~철탑~해밋고개(이정표)~임도~용화사(다빈원)~상곡마을~임기저수지~지장암입구~버스 종점 순이다. 초반과 후반, 합쳐서 4㎞ 정도의 임도를 걷게 되고 억새밭 주변도 거의 평지나 마찬가지여서 크게 힘든 구간이 없다.

    교통편
    부산도시철도 1호선 범어사역 앞 버스정류장 또는 노포동종합터미널 앞에서 임기행 금정구 마을버스인 용진여객 2-2번을 이용한다. 오전 6시30분부터 밤 11시30분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교통편은 매우 편리하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울산 방향으로 가다가 임기마을입구교차로에서 우회전, 임기1교를 지나면 임기마을 표지석이 있다.




    국제신문사이트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10&key=20101001.22020210830〈 근교산&그너머 694회 참조 〉




    # 볼록한 시리바위 자태 웅장, 서부산권서 접근성도 좋아

    ■진해 천자봉~시루봉

       
    바람재에서 한 고비 올라서면 진해 시루봉의 시리바위가 보인다.
    부산 신항에서 창원시 진해구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천자봉(天子峰·506m)과 시루봉(653.5m)은 대한민국 해군의 모항인 진해항에서부터 멀리 거가대교까지 굽어보는 명산이다.

    진해만을 둘러싸고 있는 장복산 덕주봉 웅산 시루봉 천자봉 연결 능선의 주요 봉우리이면서 서부산권에서 바라봐도 뚜렷이 그 모습이 드러나는 산이기도하다.

    천자봉~시루봉 코스는 진해만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의 일부를 걷는 코스인데 정상부에서 바라보는 남해안의 풍광이 말할 수 없이 빼어나고 걷기도 편하다. 특히 매력적인 것은 멀리서 봤을때 마치 여인의 젖꼭지를 닮은 것으로 유명한 시루봉 정상의 시리바위(일명 곰메바위)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산행은 진해드림파크를 기점으로 삼은 원점회귀로 진행된다. 먼저 천자봉에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 시루봉까지 간 후 다시 약간 되돌아가서 바람재에서 하산하게 된다. 부산으로부터의 접근성도 좋고 남녀노소 누구라도 큰 힘 들이지 않고 산행할 수 있는 장점도 갖추고 있다. 산행 후반부에는 진해의 명품 산책로인 '안민도로'를 따라 편하게 걸으며 숲의 향기를 만끽할 수도 있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의 천자봉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부산 신항과 가덕도, 사하구까지 드러나고 남쪽으로 거가대교와 거제도, 북쪽으로는 도드라진 시루봉 시리바위와 웅산 정상, 불모산 등이 한눈에 드러난다. 또 서쪽으로는 진해 시가지와 안민고개 장복산에 이르기까지 병풍 같은 산줄기가 훤하다. 하산길에는 울창한 편백나무숲과 해병대 훈련체험장도 만나는데, 천자봉과 시루봉은 한때 해병대 신병들의 필수 행군코스 역할을 하기도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산행은 진해구청(옛 시청) 인근 진해드림파크에서 시작해 출발지로 돌아오는 코스로 구성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드림파크 주차장~드림파크 내 연못(광석곡소류지)~영산 법화사 불상~임도(안민도로)~정자 쉼터 앞 산행로 입구~능선 갈림길~천자봉 정상~수리봉~철탑 등산안내판~갈림길~483.2m 봉~바람재(정자)~시루봉(시루바위 또는 곰메바위)~바람재~시루샘터~안민도로~해병 훈련체험장~목재체험 전시관 이정표~사방댐~대형 주차장 앞 갈림길~청소년수련원~주차장 순이다. 총거리 11㎞에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이다. 휴식을 포함해도 5시간 내 마무리할 수 있다.



    교통편
    부산과 진해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갈 수 있다. 부산역에서 용원행 520번(20~25분 간격), 또는 사하구청 앞이나 부산도시철도 하단역 버스정류소에서 용원행 58-2번(10~15분 간격)을 타고 용원에서 내린다. 용원에서는 진해 시내버스인 305번(15분 간격) 또는 315번(30분 간격)을 타고 진해 시가지 방향으로 가다가 대밭령을 지나 진해구청 앞에서 하차하면 된다. 진해구청 우측 벽산아파트 뒤에 진해드림파크 주차장이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때 을숙도를 거치거나 남해고속도로 가락IC에서 내려 진해 방향으로 간다. 2번 국도를 타고 용원, STX조선소, 대밭령을 차례로 지나 10분쯤 가면 진해구청 직전 사거리에 닿는다. 진해드림파크 표지판을 보고 우측으로 진입, 벽산아파트 뒤편으로 가면 드림파크 주차장에 닿는다.




    국제신문 사이트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25&key=20101224.22028192422

    〈 근교산&그너머 706회 참조 〉



    # 계곡미 그윽한 도통골 코스, 북쪽 멀리 영남알프스 조망

    ■울주 대운산

       
    대운산 도통골의 구룡폭포 주변 가을 풍경.
    동부산권 끝자락에 우뚝 솟은 울산 울주군의 대운산(大雲山·742.7m)은 두 말 하면 입 아플 만큼 근교에서 손꼽히는 명산에 속한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도를 통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도통골 계곡의 아기자기하면서도 그윽한 풍치와 청량한 물소리는 걷는 이의 심신을 한없이 정화시켜주고 쉴 새 없이 반겨주는 쉼터와 전망대는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 준다.

    부산권에서는 접근하기도 좋다. 금정구 방면에서는 7번 국도를 따라 울산 방향으로 가면 쉽게 닿을 수 있고 해운대 기장권에서는 14번 국도를 따라 울산 방면으로 가면 금새 만난다. 여러 코스가 있지만 이번 추석 연휴에 추천하는 코스는 가을을 준비하는 도통골의 그윽함과 멋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 상대마을 상대 제3주차장을 들머리와 날머리로 삼은 원점회귀 코스다. 도통골을 따라 들어가 구룡폭포 용심지 큰바위전망대를 거쳐 정상에 오른 후 우측으로 꺾어 대운산 제2봉까지 간 후 내원암을 거쳐 내원골로 내려오는 코스로 진행된다.

    정상과 제2봉에서 동해와 울산시가지, 북쪽 멀치감치로는 영남알프스 산군까지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이 빼어나다. 용심지를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 구간은 제법 가파른 경사를 보이고 있어 한바탕 기분좋은 땀도 흘릴 수 있다.

    부산 울산 경남 산꾼들이 즐겨 찾는 산인 만큼 코스 곳곳에 이정표와 등산로안내도가 있고 계단과 난간 등 안전시설도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전체 산행 거리 9.7㎞가량 되고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3시간50분. 휴식과 식사 시간을 포함하면 5시간 정도 걸린다.

    한편 대운산을 이야기할 때 인근의 불광산 시명산 등과 떼 놓을 수는 없다. 대운산과 불광산 시명산도 원래는 전체가 '불광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하나의 산들로 전해진다. 걸음 빠른 산꾼들은 당일로 이들 3개 산을 연계해서 산행을 하기도 한다.



    전체 코스를 요약하자면 상대마을 제3주차장~애기소~삼거리~(우측 도통골 방향)제1대피소~구룡폭포(제2대피소)~제2봉 갈림길~갈림길~도통골 좌측능선 시작 갈림길~깔딱 쉼 고개~큰 바위전망대(용심지)~대운산 정상~헬기장~도통골 하산 갈림길~약수터 앞(철쭉군락지 안내판)~대운산 제2봉~내원암 갈림길~내원암~상대마을 제3주차장 순.

    교통편
    열차나 시외버스를 이용해 울주군 온양읍 남창까지 간 후 상대마을행(대운산행)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열차는 부전역 해운대역 등에서 남해동부선 무궁화호를 타야 하는데 부전역 기준 오전 6시, 6시50분, 7시35분, 9시05분, 9시20분 등 하루 15회 출발한다. 남창역까지 55분 소요되며 요금은 3000원. 시외버스는 해운대역 맞은편 버스터미널에서 울산행을 탄다. 20분 간격이며 요금은 3900원. 남창에서 상대마을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 7시20분, 9시15분, 10시45분 등에 출발하며, 오후 시간대에는 낮 12시50분부터 오후 6시4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10분쯤 걸린다. 산행 후 상대마을 제3주차장에서 남창으로 가는 버스는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부산~울산 고속도로를 타고 온양IC에서 내리면 편하다. IC를 빠져나간 후 온양읍(남창) 방향으로 우회전, 다시 남창사거리에서 국도 14호선 부산 기장 방면으로 2분쯤 가면 오른쪽에 대운산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 따라 5분만 가면 상대마을 제3주차장에 닿는다. 주차료는 무료.



    동영상사이트 국제신문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23&key=20101119.22028192401
    〈 근교산&그너머 701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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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신문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 선창 버스 종점~대항마을 선착장 11㎞
      - 외눌마을 골목길 1970년대 분위기 물씬
      - 낙동강·몰운대·나무섬 등 파노라마
      - 희망정 전망대 아름다운 풍광 압권
      - 일제 해안포 숨겼던 인공 동굴 보여




    최근 이뤄진 발굴조사에서 약 8000년 전 사람들의 인골과 융기문토기 옥장신구 등이 무더기로 발견된 바 있는 가덕도. 한반도 최고 최대의 집단 매장터의 발견으로 초기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부산 경남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한국 및 동북아시아 고고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땅이다. 수만 년 이상 부산 최대의 섬으로 존재했던 이곳은 이제 신항만의 건설과 거가대교의 완공으로 섬이 아닌 육지로 변모했다. 부산과 경남 울산의 갈등 해소와 화합을 기원하며 본지가 새롭게 시도하는 '부산 시계 종주로' 개척의 첫발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다.



       
    부산 시계 제1코스인 가덕도 둘레길은 천혜의 해안 절경 감상과 숲속 삼림욕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길이다. 본지 취재팀이 가덕도 누룽능~어음포 구간 숲길을 걷고 있다.

    가덕도는 부산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곳인 서부산권에서 거의 유일하게 휴식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땅이다.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해안선과 마치 동남아시아 정글을 방불케 할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한 천연 숲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섬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둘레길이 조성돼 있어 나들이를 겸한 트레킹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현재 행정구역상 부산 강서구 천가동으로 돼 있는 가덕도이지만 지난 1989년 1월 이전까지만 해도 경남 의창군에 소속된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경남과 부산의 정서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50대 이상의 연령대 주민들은 지금도 여전히 부산 시내에 갈 때 버릇처럼 "부산 좀 다녀오리다"라고 말한다.

    본지 취재팀은 이처럼 부산과 경남의 정서를 함께 갖고 있는 아름다운 땅 가덕도를 한 바퀴 돌아본 후 본격적으로 육상 부분 경계를 따르기로 했다.

       
    동선방조제를 지나는 취재팀 뒤로 신항이 보인다.

    제1코스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가덕도의 북쪽 들머리인 천가동 선창마을 웅동농협 천가지점에서 출발, 눌차마을~동선방조제~누룽능~어음포~대항새바지~대항마을 선착장으로 연결되는 구간이다. 총길이는 11㎞정도 되고 여유 있게 걸어도 4시간이면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닌 데다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워낙 예쁘게 조성돼 있어 가족이 함께 걷기에도 그만인 길이다.



    출발지인 천가동 58번 버스종점에서 왼쪽 선창 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정면에 연대봉과 뒤로 신항의 거대한 크레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내버스는 가덕도가 더 이상 섬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상징물이다. 연대봉 가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눌차다리인 천가교를 건너면 본격적인 가덕도 둘레길 답사가 시작된다. 동선방조제로 인해 담수호로 변한 눌차만에는 양식장 시설이 빼곡하다. 눌차다리에서 고개를 들면 머리 위로 거가대교 접속 고가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다리 건너 외눌마을 표지석 앞에서 우측으로 꺾어 마을 골목으로 접어든다. 수백 년도 더 됐을 거대한 고목들이 동네 수호신처럼 우뚝하다. 어촌 마을 골목길은 '개발의 뒤안길'인양 아련한 풍경들을 보여준다. 오래된 시골집 시멘트 담벽에 남아 있는 표어가 눈길을 끈다. '간첩 잡아 애국하고, 유신으로 번영하자'. 1970년대 분위기가 물씬하지 않은가.


       
    아름드리 고목이 반겨주는 눌차마을 골목.

    골목을 빠져 나가면 해안길. 가리비와 굴 등 조개류 껍질이 수북한 조개무지를 보면서, 최근 발굴된 가덕도 신석기유적지를 화제 삼아 흥겹게 걷다보면 동선방조제의 북쪽 끝부분인 눌차새바지다. 바로 눈앞에서 1300리 물길 낙동강이 대양과 조우하고 있다. 그 건너로 다대포와 몰운대가 보이고, 해상에는 무인도인 나무섬과 남·북 형제섬이 평화롭게 떠 있다. 10분쯤 천천히 걸으면 방조제 남쪽 끝인 동선새바지 갈림길에 닿는다. 가덕도 둘레길 안내도를 보면서 왼쪽 해안 방향 산책로로 접어든다. 동선포구를 지나 구멍이 뚫린 작은 기암 위 전망 데크를 들른 후 길을 이어간다. '강태공'의 후예들이 해안선을 따라 연이어 서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낚고 있다.

    부민교회 부설 가덕기도원까지 길은 해안에 바짝 붙은 채 별다른 오르내림조차 없는 편한 길이다. 20분쯤 가면 가덕기도원. 기도방과 빨래터 샘터 등의 시설이 있다. 기도원을 지나면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계단을 따라 가면 10여 분 후 긴 의자 2개와 너럭바위가 있는 쉼터 겸 전망대가 나온다. 바다 건너 다대포와 몰운대가 더 가깝게 다가오고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진우도 장자도 같은 퇴적섬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멀리 금정산 고당봉이 뾰족하다.



       
    누릉능 해안 절경은 희망정 해안과 쌍벽을 이룬다.

    쉼터를 지나 한 굽이 오르내리면 10분 후 생교동골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 왼쪽으로 내려서면 널찍한 임도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맑은 물 흐르는 작은 계곡이 보인다. 바다로 곧장 흘러 들어가는 계곡이다. 계곡 아래 해안으로 잠시 나가 보면 철거된 군 막사 터가 있고 주변 해안선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다시 길을 재촉하면 옛 집터에 새로 마련된 정자가 있다. '누릉능이란, 누런 바위을 깨 보면 벌건 나이테가 있는 곳이라고 해서 붙은 지명'이라고 설명해 주는 안내판이 있다. 헬기장을 통과하고 햇볕조차 잘 들지 않는 그윽한 숲 속 계단길을 오르내리면 20분 후 길 왼쪽의 전망대에 닿는다. 가덕도 최고봉인 연대봉과 최남단의 작은 봉우리인 국수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를 지나 5분쯤 가면 옛 어음포다.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가면 시원한 물이 계곡을 따라 흐른다. 먼저 가던 어르신들이 냉수욕을 하고 있다. 취재팀 중 누군가 "신선이 따로 없네요"라며 부러움 섞인 한 마디를 던진다. 어음포(魚音浦)는 '물고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포구'라는 뜻을 담고 있는 옛 마을로 한때는 가덕도의 중요 어항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마을이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대항새바지 인근 희망정 앞에서 본 가덕도 동남쪽 해안.

    40여 분 정도 천천히 걸으면 대항새바지가 보이는 갈림길에서 왼쪽 계단으로 내려선다. 옛 해병대 경비초소 건물 앞 '희망정' 정자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진행해야 하지만 잠시 바닷가 쪽으로 30m 정도 내려선다. 텅 빈 초소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광에 숨이 막힐 듯하다. 희망정으로 복귀, 왼쪽으로 열려 있는 길을 따르는데 얼마 가지 않아 코끼리 머리 모양의 구멍 뚫린 바위가 다가선다. 특이한 모양이다. 한 굽이 오르내리면 해안산책로가 끝나면서 대항새바지에 닿는다. 가덕도의 마을 이름에서 흔히 등장하는 '새바지'는 '샛바람이 부는 곳'이란 뜻을 가진 향토어다.

    대항새바지 해안을 따라가면 남쪽 방파제 부근 바위에 인공 동굴 3개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일제강점기 말 일본군이 해안포를 숨겨 놓고 연합군 군함에 대항하기 위해 파 놓은 가덕도 해안포 기지다. 대항포 주민들 중 가장 연장자라고 밝힌 허종혁(84) 할아버지는 "1942년에 일본군이 처음 가덕도에 해안기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외지에서 고등학생 나이 정도의 징용자들을 데려와서 모두 12개의 대포굴을 뚫었다. 일본군이 물러난 것은 1945년 해방되기 몇 달 전에 미군 폭격기가 가덕도를 폭격하면서다"고 증언했다.



    해안포 동굴 앞에서 100m쯤 되돌아 나가서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 시멘트길로 오르면 작은 고갯마루에 선다. 왼쪽 해안에 자갈마당이 보인다. 몽돌해수욕장 형태여서 피서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고갯마루를 완전히 넘어서면 대항 포구가 드러난다. 대항마을 부두 선착장에서 코스를 마무리하고 천성행 도선을 탄다. 15분 남짓한 동안 도선을 타고 가며 서쪽에 우뚝한 거가대교의 위용을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재밋거리다.




    ◆ 떠나기 전에

    - 천가초등학교 교정 '척화비' 챙겨봐야


       
    일본군이 파놓은 대항새바지의 해안포 진지.

    가덕도에서 본격적인 답사를 시작하기 전, 둘러볼 만한 곳이 있다. 바로 천가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척화비(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35호)'다. 코스 출발지인 농협 천가지소에서 천가동주민센터 앞까지 약 500m 거리를 가면 만나는 천가초등학교 정문을 지나면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에 조선 말기인 1871년(고종8년)에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흥선 대원군의 명령으로 전국 각지에 설치됐던 척화비가 서 있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는다면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洋夷侵犯非戰則和, 主和賣國)'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척화비는 1995년 인근 공사장 땅에 파묻혀 있던 것을 공사 인부가 발견했는데 이후 초등학교로 옮겨졌다.




    ◆ 교통편

    - 하단역 58번 시내버스, 선창마을 하차

    출발지인 가덕도 선창마을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하단역과 동아대학교 앞에서는 58번 버스를 탈 수 있고 부산 북구 금곡동에서는 김해공항을 경유하는 1009번 좌석버스가 운행된다. 답사를 마친 후 대항마을 부두에서는 가덕도 최후의 도선 선장인 김태복 씨가 운행하는 '외항포~대항~천성' 간 도선인 진영13호를 타고 천성마을로 간 후 천성마을에서 520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대항마을 기준 도선 출발 시간은 오후 1시50분, 4시50분(마지막 배) 등이며 하루 4회 운행된다. 천성마을에서는 매시 15~20분에 부산역 행 520번 버스를 탈 수 있다. 간혹 용원행도 있기 때문에 기사에게 물어보고 타는 것이 좋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부산 신항까지 간 후 북컨테이너터미널 정문 앞을 거쳐 가덕도 선창마을까지 가면 된다.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목적지 검색에 '부산 강서구 천가동 농협 천가지점'을 입력하면 된다. 차량 회수를 하려면 천성마을에서 오후 3시 20분, 4시 20분, 5시 20분, 7시(막차) 출발하는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출발지인 선창 버스 종점으로 간다.














    동영상 파일은 워낙커서 국제신문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00&key=20110901.22037195257 들어가시면 상세한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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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PS와 2만5000분의 1 지형도로 측정

    - 신항~금정산 고당봉~고리 이길봉수대 약 98.5㎞… 가덕도 23.5㎞ 등 더해

    - 경계마다 동남권의 기상·역동성 보여


    금정산 고당봉에서 바라 본 낙동강의 낙조.

     

    경계는 없었다. 사람들 마음 속에 불필요한 단절만 있을 뿐이었다.

     

    역설적이지만, 부산의 육상 부분 경계를 이루는 '부산 시계길'을 새로 개척하며 걸어 보니 경남·울산과 부산 사이에는 그 어떤 경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도에 그어져 있는 경계선은 말 그대로 '선(線)'에 지나지 않았다. 지도 한 장 들고 그 선이 가리키는 야트막한 능선을 걷다가 작은 나무 한 그루나 바위 하나 피하기 위해 왼쪽으로 한 걸음만 비켜 서면 경남 땅이고, 오른쪽으로 한 발만 딛으면 부산 땅인데 어떻게 구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금정산 고당봉

    그렇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부산과 경남 울산이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온 것은 각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마음 속에 적잖은 단절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대변해 주는 상징적 현상이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남강댐 물 부산 공급, 거가대교 운행 버스노선 도입, 신항 명칭 문제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많은 갈등의 연속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가야 할까. 정녕 극복하지 못할 일일까.

     

    부산시와 양산시의 경계인 지경고개가 발아래 보이고 계명봉과 금정산 장군봉 그리고 경계는 없다는 듯이 경부고속도로가 힘차게 달리고 있다.

    국제신문은 창간 64주년을 맞아 새 기획시리즈로 '부·울·경 갈등 치유와 화합을 위한 길-부산 시계(市界)를 걷다'를 1일부터 시작한다. 지금까지 부산의 그 어떤 매체도 시도하지 못했던 '부산 시계 걷기'를 통해 나눔과 구분으로서의 경계가 아니라 '만남과 화합의 선'으로서의 경계선의 역할을 되살리려 한다. 그리고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부·울·경의 상생 방안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작은 단초를 찾아볼 예정이다.

     

    ■섬 돌고, 산 넘고, 강 건너는 300리 길

     

    기장군 장안사

    '경계(境界)'라는 낱말은 '사물이 어떤 기준에 의해 나누어지는 한계' 또는 '지역이 구분되는 한계'를 뜻한다. 그렇다면 현재 부산광역시의 육상 부분 경계는 언제 확정됐을까?

     

    부산시청에 육상 부분 경계의 정확한 길이를 문의해 봤다. 그러나 부산시 관계자는 "면적은 나와 있지만 육상 부분 경계가 몇㎞인지 조사된 자료는 없다"고 답했다.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아 기초적인 취재 계획을 수립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대신에 본지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2만5000분의 1 공식지형도를 활용해 대략적으로 측정해 보았다.

     

    그 결과 부산의 서쪽인 신항 정문에서부터 서낙동강 대동수문을 거쳐 낙동강을 건너고 금정산 고당봉 및 장군봉을 지나 동쪽 끝자락인 기장군 장안읍 고리 이길봉수대까지 이어지는 육상부분 경계선의 길이는 약 98.5㎞였다. 여기에 원래는 바다였지만 신항 건설로 인해 지금은 육지로 변한 신항 동편길 3㎞, 그리고 취재팀이 답사한 가덕도 둘레길과 남쪽 국수봉 연결 코스의 거리 23.5㎞를 더하니 총거리만 125㎞에 달했다. 300리가 조금 넘는 결코 짧지 않은 거리다. 그 속에 동남경제권을 구성하는 부산 경남 울산의 꿈틀대는 기상과 역동성이 고스란히 포함돼 있다.

     

    ■부울경은 '세 지붕 한 가족'

     

    고리원전

    부산과 경남 울산 사이에 경계선이 그어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년도 되지 않았다. 부산이 경남에서 분리된 것은 1963년 1월 1일 부산직할시로 승격되면서다. 하지만 당시에는 강서구와 기장군이 경남 땅이었다. 이후 1978년 김해군 대저읍과 명지면 가락면 일부가 부산 북구로 편입됐다. 1989년에는 김해군 가락면 일부와 녹산면, 의창군 천가동(가덕도) 등이 추가로 부산에 편입되면서 강서구가 생겼고 그것이 현재의 서부산권 경계로 남게 됐다. 경남 도청 또한 부산의 직할시 승격으로부터 20년이 지난 1983년 7월 1일 창원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부산에 자리잡고 있었다.

     

    기장군 지역은 1995년 1월 부산이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변경되면서 기장읍과 철마면 정관면 등이 부산에 편입돼 현재의 경계가 확정됐다. 울산시는 1997년 광역시로 승격, 경남에서 분리되면서 현재 부산 기장군과 맞닿게 됐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만 살펴봐도 부산과 경남 울산은 애초부터 한 가족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세 지붕 한 가족'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모 방송사에서 인기를 끌었던 텔레비전 드라마인 '한 지붕 세 가족'에서는 서로 다른 가족도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알콩달콩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담아냈다. 하물며 지붕만 달라졌을 뿐 같은 가족이었던 지역 사람들끼리 아옹다옹하며 소원해져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도 지붕들이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고 서로 맞붙어 있지 않은가. '부산 시계'를 따라 걷는다는 것은 이들 세 개의 지붕이 맞닿는 곳을 따라 걷는 일이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신항

    2011년 제6회 윤동주문학대상 수상에 빛나는 함민복 시인은 자신의 작품 '꽃'을 통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갈파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부산 시계'에도 꽃이 필 수 있을까. 지역 이기주의라는 작은 욕심을 버리고 원래 한 가족이었다는 대승적 견지에서 서로 양보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좀 더 존중해 주는 마음만 되살린다면 분명히 '부산 시계'에도 화합의 꽃이 피어날 것이다.

     

    이번 기획시리즈를 함께 할 '근교산& 그 너머' 취재팀의 이창우 산행대장은 "'부산 시계'는 현재까지는 명확히 길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에 국제신문 답사팀이 산을 넘고 들판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다시 산을 넘으며 지역 최초의 경계길 개척을 시도하는 셈"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 '미래의 길'은 부산 시민의 길이기도 하지만 창원 김해 양산 울산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부산 시계길'이 아니라 그들의 길이다. 이 길에서 원래 한 뿌리였던 부산 경남 울산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걸으며 오순도순 웃음의 꽃을 피워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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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국민들 대다수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는 어느 부분을 가장 좋아할까 그것은 물어보나마나 삼겹살 일 것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장소를 가리지 않는 먹거리 삼겹살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 음식으로 누구나 좋아한다. 오늘 이야기 하고자하는 음식은 삼겹살이아니라 돼지로 만든 요리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금 이 음식을 보면 어떤분들은 너무 잔인하다,
    아무리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찌 어린 것을 하며 혀를 차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이음식 또한 전라도 진안땅에서 자리잡은 토속음식으로 예로부터 보양식의 첫 번째로 꼽았다 한다.
    한때는 유통과정과 보관상의 이유로 여름철에는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때가 있었다. 그 만큼 변질이 잘 되고 하여 한 여름철에는 돼지고기 먹기를 꺼려하였는데 요즘은 냉동 냉장고의 발달로 그러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한여름과 지금 이 시점에 보양식으로 어린돼지를 이용한 애저요리를 최고의 음식으로 추천을 한다.
    규합총서에는 애저탕을 전라남도특산음식이며 새끼를 밴 어미돼지를 잡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새끼를 가진 어미돼지를 잡는 다는 것이 우리내 미풍양식에 거슬리고 지금은 구하기도 힘이 들고 하여 생후 20일 정도 된 새끼 돼지를 이용한다 한다.
    진안의 금복회관(063-433-0650)이 애저요리 전문점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향토전통지정업소이다. 생후 20일 된 새끼돼지를 쪄낸 애저탕 전문점이다. 새끼돼지를 불쌍히 여겨 '애저(哀渚)'로 불리지만 어린 새끼돼지라 '아저(兒渚)'로도 부른다.



    진안읍에서 3㎞ 정도 떨어진 마이산 북부주차장 입구에 위치해 있다.
    어린 돼지를 4등분해 깨끗하게 씻은 다음 마늘 생강 등의 양념을 넣고 푹 삶은 뒤 묵은 김치에 싸먹거나 초장이나 소금에 찍어 먹는다. 고기는 워낙 부드러워 닭백숙을 연상시키지만 기름은 하나도 없어 깔끔하다.
    고기를 대충 먹은 후에는 신김치와 갖은 양념을 넣고 매운탕으로 다시 끓여 밥과 함께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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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계곡산행을 '여름산행의 백미'라고 하지만 약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아주 빼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는 대형 계곡을 끼고 오르거나 내려서면서도 정작 계곡 물에는 발 한 번 담그지 못한 경우도 계곡산행이라 할 수 있을까. 이 경우는 엄밀한 의미에서 여름산행의 백미라고 불릴 정도의 계곡산행이라고 보기 힘들다. 규모가 큰 산에 자리잡은 거대하고 깊은 계곡일수록 그만큼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기 힘들만큼 많은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시도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산행에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며, 산꾼들은 진한 아쉬움을 남기게 된다.




    ■ 지리산 웅석봉 서남쪽 파고든 숨은 계곡 왕복 5㎞ 짧은 코스



    이번 주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찾아간 경남 산청군의 백운계곡은 이같은 아쉬움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천혜의 계곡산행 코스다. '첨범첨벙'거리며 거리낌 없이 물길을 딛고 걷거나, 아예 흘러내리는 폭포수를 밟으며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암반 위를 내달릴 수 있다. 난이도가 평이하고 위험 구간도 거의 없기 때문에 산행 초보자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물길이다. 게다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조차 없이 많은 폭포와 소가 연속되면서 잠시나마 지겨울 틈도 주지 않으니 이보다 더 좋은 여름철 계곡 피서산행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어쩌면 계곡 전체가 누워 있는 거대한 한 개의 바위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끊임없이 나타나는 크고 작은 폭포들은 솔직히 어안이 벙벙해질 만큼의 감동과 시원함을 동시에 전해준다. 특히 높이 2~3m 정도의 소형 직폭 아래에서 옷을 입은 채 그대로 폭포수를 뒤집어 쓸 수 있는 곳도 셀 수 없이 많으니 금상첨화다.



    백운계곡은 또 조선 중기 성리학자이자 영남 사람의 거두였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이 가장 즐겨 찾았고, 그의 체취가 지리산록 중에서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명 선생이 남겼다고 하는 백운동(白雲洞), 용문동천(龍門洞天), 영남제일천석(嶺南第一泉石), 남명선생장지소(南冥先生杖之所) 등의 글자가 암석에 새겨져 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푸르른 산에 올라보니 온 세상이 쪽빛과 같은데 사람의 욕심은 그칠 줄을 몰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도 세상사를 탐한다'라는 시문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 남명 조식 선생 가장 즐겨 찾은 명소지만 아는 이 많이 없어




       
    완만한 경사도의 백운계곡 폭포를 오르는 취재팀.

    백두대간의 실질적인 마지막 봉우리로 알려져 있는 산청 웅석봉(1099.3m·일명 곰돌봉)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내리는 달뜨기 능선을 파고든 곳에 자리 잡은 백운계곡의 총길이는 5㎞가량 된다. 그리고 흔히 백운계곡 산행이라고 하면 감투봉 너머 서쪽의 대원사 입구 부근 딱바실골과 연계한 산행을 말하기도 한다. 근교산 시리즈에서도 이미 십여년전에 이 코스와, 감투봉 이방산을 연계한 코스 등을 소개한 바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번 주 다시 백운계곡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다. 순수하게 계곡 물줄기를 타고 오르는 피서 특집 계곡산행을 위해서다.

    코스는 간단하다. 산청군 단성면 백운리 백운계곡 입구에서 시작해 계곡 바닥으로 내려선 뒤 줄곧 계곡만 타고 오른 후 지리산길 갈림길도 통과, 중간에 끊어진 임도까지 갔다가 곧장 출발지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계곡 전체를 섭렵하는 것이 아니라 딱 절반만, 그러니까 편도 2.5㎞만 올랐다가 하산할 때는 서쪽 임도를 따른다. 오를 때 2시간, 내려설 때 40분 정도면 되니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따지면 2시간40분짜리 초미니 코스다. 하지만 계곡에서 만나는 수많은 비경 앞에서 휴식을 취하며 피서를 즐기다 보면 사실 몇 시간이 걸릴지 예측할 수 없다.



       
    백운계곡 하류에 있는 와폭인 용문폭포.

    백운계곡 입구 주차장에서 백운교를 건넌 후 지리산길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 오르막 임도를 따른다. 펜션과 산장, 민박집이 잇따라 나오는가 싶더니 오른쪽으로 백운계곡의 비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함소라고 불리는 길다란 소(沼)는 깊고 푸른 물 웅덩이에서 서기가 뻗쳐 오르는 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고 해도 믿을 수 밖에 없을 정도다.

    잠시 후 화장실과 대피안내도, 간이 매점이 있는 곳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선다. 길이 30m 이상되는 긴 와폭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간간이 비가 내리는 날씨인데도 몇몇 피서객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폭포를 그대로 타고 오르면 또다시 펼쳐지는 거대한 암반. 사실 백운계곡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암반덩어리나 마찬가지니 놀랄 필요도 없다. 왼쪽에 용문천(龍門川), 용문폭포(龍門瀑布)라는 글자가 쓰여진 바위가 보인다. 용문천 바위 왼쪽으로 좀 더 돌아가보면 남명선생장지소(南冥先生杖之所)라는 음각 글귀도 보인다. 남명 선생이 즐겨 찾아 휴식과 사색을 하던 곳인가 보다.



    ■ 폭포 소 수십 곳…난이도 평이해 물길 거슬러 오르기 안성맞춤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암반 위로 물줄기가 나 있다. 이런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산꾼은 마치 연어가 된 듯하다.

    이어지는 계곡도 크고 작은 폭포와 소의 연속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폭포가 사람이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규모와 형세를 갖추고 있어 계곡산행자들에게는 더없이 편하다. 어떻게 계곡이 이런 형태를 띨 수 있을까 싶다. 물장구 치면서 수많은 폭포를 거슬러 1시간 정도 오르면 높이 5m가량의 대형 폭포가 나온다. 일명 백운폭포다. 직폭이면서 깊은 소를 가진 이 폭포는 쌍폭보다 더 인상적인, 백운계곡의 수십개 폭포 가운데 대표격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빼어난 모양을 갖추고 있다. 좀 더 오르면 높이 2m 정도의 직탕폭포가 나온다. 취재팀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을 입은 채 그대로 폭포 밑에 서서 온몸으로 물줄기를 받아들인다. 시원함의 극치요, 여름 계곡산행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이 폭포를 지나 10분쯤 가면 지리산길 이정표가 있는 통나무다리를 만난다. 이 길을 통과, 직진해서 좀 더 오르면 2~3개의 폭포가 더 나오고 이윽고 계곡의 중간 지점인 끊어진 임도에 닿는다. 임도를 타고 끝까지 오르면 우측으로 웅석봉, 좌측으로 감투봉과 용무림산 감수봉 수양산 등으로 갈 수 있다.


    좀 더 계곡을 타고 올라도 되지만, 취재팀은 이번 산행의 목적이 원형 그대로의 계곡 물줄기를 내달리는 특집 피서산행이라고 보고 하산키로 결정한다. 빗줄기가 더 굵어지면 계곡산행이 위험해진다는 점도 참고했다. 왼쪽으로 돌아서 임도를 따라 내려서는 데는 40분 정도면 충분하다. 길을 따라 내려서다가 계곡에 몸을 담고 싶으면 언제든지 뛰어 들어도 무방하다. 이 계절이 아니면 그런 호사를 누리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떠나기 전에

    - 명소 수십 곳 이름 가졌다지만 안내판 조차 없어 방문객 아쉬움



       
    두 갈래로 갈라진 물줄기가 인상적인 백운계곡 쌍폭.

    산청 백운계곡은 지리산 자락 동남쪽 끄트머리의 숨은 비경이다. 규모 면에서는 뱀사골 피아골 대원사계곡 등에 비해 작지만 수많은 폭포와 소가 잇따라 나타나고 멋진 풍광을 간직하고 있어 '역시 지리산록의 계곡 답다'는 평가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방문자를 위한 행정관청의 세심한 배려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산청군청 홈페이지에는 백운동계곡에는 '목욕을 하면 절로 아는 것이 생긴다'는 다지소(多知沼)와 백운폭포, 오담폭포, 등천대, 청의소, 아함소, 장군소, 용소, 탈속폭포, 용문폭포, 십오담폭포, 칠성폭포, 수왕성폭포 등이 있다고 돼 있지만 안내판은 고사하고 작은 표지판 조차 없어 방문자 입장에서는 도대체 그 이름을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방문객을 위한 조금 더 세심한 배려를 기대해 본다.


    ◆ 교통편

    - 중산리행 시외버스 타고 백운계곡 입구 하차하면 간단


       
    백운계곡의 숨은 비경은 좀처럼 끝날 줄 모른다.

    부산서부버스터미널(051-322-8301)에서 중산리행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가 산청군 단성면 백운계곡 입구에서 하차, 표지판을 보면서 3㎞가량 걸어야 된다. 오전 6시10분, 8시20분, 10시20분 등 하루 6회 운행. 2시간30분 소요. 1만2000원 안팎.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를 거쳐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IC에서 내린다. 두번째 사거리에서 20번 국도 지리산국립공원 방향으로 우회전, 계속 따라가다가 하동군 옥종면으로 갈라지는 칠정삼거리를 지나 1㎞쯤 더 가면 백운동계곡이란 푯말이 있다. 백운리 점촌마을을 지나 계곡 입구 민박 밀집지역 오른쪽 백운교를 건너면 주차장이 있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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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부내륙 최대 폭포 낀 500m대 육산,  원점회귀 8.5㎞ 코스 여유 있게 4시간 산행
    - '3대 악성' 중 1인 난계 박연 자취 짙어
    - 투구봉서 바라 본 서재마을 풍광 절묘, 계곡 폭포 낀 여름 나들이 산행지 제격



     


    충북 영동읍에 들어서면 곳곳에 '국악과 과일의 고장, 영동'이라는 현수막과 안내판이 걸려 있다. 포도와 배 복숭아 등이 달고 맛있기로 유명하니 '과일의 고장'이라는 표현은 수긍이 가는데 대체 '국악의 고장'이라니? 문외한들은 의아해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곳이 바로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 등과 함께 '한국의 3대 악성(樂聖)'으로 불리는 조선 초기 문신이자 학자 음악가로 명성을 날렸던 난계(蘭溪) 박연(朴堧·1378~1458)이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 고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금세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충북 영동과 옥천의 경계에 솟은 월이산은 '한국 3대 악성' 중 한 사람인 난계 박연 선생이 즐겨 찾던 옥계폭포를 품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 볼만한 산행지다. 강수량이 많은 여름철에 옥계폭포는 더욱 웅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주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박연 선생의 자취가 오롯이 남아 있는 월이산(月伊山·551.4m)을 찾았다. 영동과 옥천의 경계에 솟아 있는 아담한 육산인 월이산은 '달이 떠오르는 산'이라는 뜻으로 '달이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내륙의 숨은 명산이다. 합쳐서 8.5㎞ 남짓한 거리에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오르내려 3시간30분이면 여유있게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어 부담이 없다. 특히 월이산 산행의 백미라고 불리는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옥계동의 옥계폭포(玉溪瀑布)는 높이만 30m에 달해 '중부내륙 최대 폭포'로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에는 폭포수의 유량이 늘어나면서 굉음도 더욱 커지고 물보라도 짙게 피어오르기 때문에 폭포 앞에 서 있으면 그 어떤 초강력 에어컨 바람을 맞는 것보다 더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옥계폭포 앞에서 젊은 시절의 박연은 피리(퉁소)를 불면서 훗날 대음악가로 성장할 기반을 닦게 된다.

    옥계폭포와 함께 월이산의 또 다른 명소는 정상과 서봉 사이에 있는 암봉인 투구봉(범바위)이다. 산 중 마을인 서재마을에서 보면 영락없는 투구 모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 거대한 암봉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광이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국악의 향기를 맡으며 웅장한 폭포와 맑은 계곡, 삼림욕하기 좋은 순한 등산로를 따를 수 있으니 월이산은 여름 나들이 산행지로 제격이다.


       
    옥계폭포 위 계곡의 작은 다리를 건너는 취재팀.

    산행은 영동군 구역인 옥계폭포 아래 천국사 주차장을 기점으로 하는 원점회귀로 진행된다. 천국사~옥계폭포~폭포 위 갈림길~449봉~갈림길~정상~투구봉~서봉(천모산·506m)~서재마을 입구~천화원(단학수련원)~폭포 위 갈림길~옥계폭포~천국사 순이다. '국제 선불교 조계종 본사'라는 다소 복잡해 보이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천국사 앞은 옥계폭포 주차장 역할을 한다. 최신식 화장실과 쉼터가 잘 갖춰져 있다.

    장마철인 탓에 예고 없이 빗줄기가 쏟아진다. 하지만 일부러 우중산행을 즐기는 산꾼들도 있는데 이 정도 비가 무슨 대수랴. 옥계폭포 방향으로 차량 통행이 가능할 정도의 널따란 임도를 따른다. 쌈밥이 맛있기로 유명한 폭포가든을 지나면 높다란 보를 가진 옥계저수지가 나온다. 빗물이 수천 개의 동심원을 그려내는 저수지가 호젓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저수지를 막 벗어났을까 싶은데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물 쏟아지는 소리. 바로 말로만 듣던 옥계폭포다. '국악의 고장 영동'이라는 말이 탄생하게 된 공간적 배경이기도 한 옥계폭포 앞 광장에는 관모(冠帽)를 쓴 박연 선생이 대금을 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 한 동상이 멀리서 온 길손을 반갑게 맞이한다. 광장 곳곳에서는 영화 '천년학'의 배경음악이 폭포수 소리와 어우러지며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월이산 정상에서 서봉 가는 길에 만나는 로프 구간.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쏟아져 내린 폭포는 절벽을 깎아 내고 숨막힐듯한 절경을 만들어냈다. 600여 년 전 음악을 사랑했던 '소년 박연'은 그 아래에서 피리를 불며 청운의 꿈을 꾸었으리라. 인근 마을에서 태어난 박연은 유독 이 폭포를 좋아했는데, 특히 그는 어느 날 쏟아지는 폭포수 밑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난초를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 자신의 호를 난초 난(蘭)에 시내 계(溪)를 붙여 '난계'라 지었다고 한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정자 뒤로 등산로가 열려 있다. 지름 30㎝가량의 금속관이 설치돼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대형 관로는 가물 때 저수지의 물을 폭포 위로 끌어올려 다시 흘려보내 폭포수의 유량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기 위한 시설이라고 한다. 3분쯤 오르면 폭포 위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넌다. 다리와 폭포 사이의 웅덩이는 옛날에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예저수'라고 알려져있다. 다리를 건너 2분쯤 가면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올랐다가 산행 막바지 왼쪽 길을 통해 원점회귀하게 된다.


       
    월이산 대표 암봉인 투구봉에 서면 서재마을이 보인다.

    오른쪽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그렇게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 바위에 붙어서 자라는 부처손이 유달리 많다. 중간 중간 멋진 전망대를 지나지만 제법 많이 내리는 비로 인해 세상이 온통 뿌옇게 변하는 바람에 시원한 조망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30여 분 오르면 449m봉에 닿는다. 봉우리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 본류의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능선길을 이어가면 15분 후 갈림길 역할을 하는 448m봉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왼쪽 능선길. 20분 정도만 더 가면 어느새 울산 박씨 무덤과 헬기장이 있는 정상에 닿는다. 맑은 날씨 같으면 정상에서 천태산 서대산 등 주변의 명산들이 모두 드러나는 멋진 풍광이 연출될 텐데 짙은 운무 탓에 보이지 않아 더욱 아쉽다.

    직진하면 옥천군 원동리 숯가마골로 내려서는 길이지만 옥계폭포로 원점회귀하려면 올라온 방향에서 볼 때 왼쪽으로 꺾어야 한다. 울산 박씨 묘비 앞을 통과해 왼쪽으로 20m만 내려서면 함양 박씨 묘가 있따. 점심 식사 하기에 딱 좋을 정도의 널찍한 터가 있고 서재마을 방향인 남쪽을 조망할 수 있다. 제법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진다. 서재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통과하고 '천모산 안내판'을 지나 능선을 계속 따르면 로프가 설치된 암벽구간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으니 큰 무리없이 오를 수 있다. 로프구간을 지나면 어느새 투구봉 위에 올라 있음을 알게 된다. 발아래에는 산으로 둘러싸인 서재마을이 드러나고 오른쪽으로 서봉(일명 천모산)에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올록볼록한 봉우리들이 드러난다.

       
    옥계폭포 앞 광장에 있는 피리 부는 박연 선생 동상.

    투구봉에서 서봉까지는 1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손바닥 크기의 판자에 국사봉 술목재 마니산 방향 화살표가 가리키는 왼쪽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15분쯤 가다가 한차례 갈림길이 나오면 능선길을 버리고 왼쪽 11시 방향으로 비스듬히 난 길을 택한다. 445m봉의 왼쪽 산허리를 타고 가는 길이다. 5분 후 본격적인 내리막 지능선을 타고 가다 보면 풀이 나지 않은 무덤 갈림길. 이곳에서 왼쪽으로 떨어지면 서재마을이지만 우측 길을 계속 따른다. 10분 후 연못까지 갖춘 멋진 양옥집 앞에 닿으면 임도로 이어진다. 5분 후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다가 '일지명상센터' 표지판이 보이는 갈림길에서 명상센터 방향으로 계속 길을 따른다. 자동차도 갈 수 있는 길이다. 10분 후 '천화원' 입구를 통과, 계속 직진하면 옥계폭포 위 갈림길에 닿는다. 나머지 구간은 산행 초반 거쳤던 길과 겹치니까 별다른 어려움 없이 폭포 밑까지 내려설 수 있다. 단, 비가 많이 오면 천화원에서 옥계폭포 상단 사이 계곡에 물이 급격히 불어나니 조심하자.


    # 떠나기 전에

    - 옥계폭포는 '음폭'… 불임 여성들 소원 빌어

    월이산 옥계폭포와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마을사람들은 옛날부터 이 폭포를 누워 있는 여자의 음부로 보고 '음폭(陰瀑)', 즉 여자폭포로 불렀다고 한다. 옥계폭포의 옥(玉) 자도 '여자'를 뜻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폭포수 떨어지는 웅덩이 바닥에서 '양(陽)바위'가 불룩 솟아나자 마을 사람들이 경관을 헤친다며 이 바위를 잘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 후로 마을의 남자들이 젊고 늙음을 가리지 않고 한두 명씩 객사하거나 병사하는 변고가 이어졌다. 마을에서는 거의 재앙 수준이었다. 급기야 주민들은 양바위를 잘랐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옮겼던 양바위를 원래의 자리로 옮겼다. 그 뒤로는 신기하게도 마을이 평온을 되찾았다고 한다. 자연의 이치인 음양의 조화를 인위적으로 깨뜨릴 수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듯하다. 지금도 불임인 여성들이 이 폭포를 찾아 아기를 갖게 해달라는 치성을 드리는 사람이 많다.


    박연은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세종 때 예문관대제학 이조판서 등을 거친 문신 겸 학자로 특히 궁중의 음악인 아악과 종묘 제례악의 틀을 완성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종류의 악기도 개발하고 완벽한 조율을 이뤄낸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특히 훗날 세종대왕이 되는 세자 충녕의 스승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박연은 거문고 등 악기 연주에도 능했는데 특히 피리 연주는 가히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세조 2년에 셋째 아들이 계유정난에 연루돼 참형을 당한 후 자신은 파직 당해 한강 나루에서 배를 타고 귀향길에 오를 때 그와의 작별을 아쉬워하는 벗들에게 배 에서 피리 연주를 했는데 그 곡조가 너무도 아름답고 구슬퍼서 모든 배가 멈추고 강물이 울었다고 전해 온다. 옥계폭포 주차장에서 영동읍 방향으로 1.5㎞만 가면 난계국악박물관이 있으니 산행 후 들러볼 만하다. 난계사당도 박물관 옆에 있다.


    # 교통편

    - 영동IC서 내려 읍 통과 후 4번 국도 우회전


    경부고속도로 영동IC에서 내려 영동 무주 방향으로 19번 국도를 따라 직진한다. 영동읍내에 들어서면 구교사거리에서 대전 무주 방향으로 좌회전, 250m쯤 가다가 구교삼거리에서 무주 대전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영동교를 건너 4번 국도를 타고 옥천 대전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10㎞가량 가면 옥계폭포 입구 사거리에서 좌회전 한다. 3시간 소요.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일단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 영동역에 하차한 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청주행 시외버스를 타고 고당리 옥계폭포 입구에서 내린다. 30분 소요. 시외버스는 오전 8시45분, 10시, 11시10분 등 하루 8회 운행한다. 버스정류소 옥계폭포까지 걸어서 30분가량 걸린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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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랑진 만어산은 만어사를 품고 있다.
    만어사란 사찰로 인해 전국적으로 알려진 산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밀양의 작은 산에 불과한 초라한 산이
    땀흘리는 표충비, 무봉사 태극나비, 얼음골의 시례빙곡과 여기 만어사의 불영경석으로
    밀양의 4대 신비중 하나가 된 것이다.
    이곳 사찰의 근원은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과 삼국유사에서 1181년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전해지는 설화에 의하면 가락국의 김수로왕까지
    그 근원이 올라가는 천년이 넘은 고찰이다.
    만어사를 대표하는 것은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도 아니요.
    대웅전 앞의 소원을 들어주는 바위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까 만어사는 뭐니뭐니 해도 만어사 절 밑으로 깔려 있는
     너덜을 빼고는 만어사를 이야기 할 수가 없다.
    그 바위 하나하나에 전설과 설화가 깔려 있는 것이다.


    먼저 삼국유사에서 창건설화와 만어사 어산불영경석에 대해 알아보자.
    수로왕때 가락국안의 옥지라는 연못에 못된 용이 살 고 있었는대
    만어산의 나찰려와 서로 사랑에 빠졌다 한다.
    그들이 사랑을 하게 되면서부터 하늘의 노여움을 산 는지
    벼락과비, 우박, 가뭄으로 백성들은 흉년이 들고 4년 동안 기근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에 수로왕은 신통력으로 그들을 막아 볼려고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처님 도움을 받아 여섯 비구와 일만의 천인을 데리고와
    독룡과 나찰녀의 항복을 받아
    그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함께 받게 하여 설법에 감응을 받아
    여섯비구와 일만의 천인들이 만어사 앞를 가득 메운 바위들이 되었다 한다.
    그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수로왕이 이곳에다 절을 지었다하는 이야기가 하나이며  


    또 하나는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 따르면
    동해 용왕의 아들이 자신의 명이 다한 것을 알고
    무척산의 신통한 스님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그 스님이 가다가 멈춰 서는 곳이 인연이라 이야기를 하였다.
    왕자가 길을 나서니 일만의 고기떼가 그를 따르고 왕자가 멈추어 선 곳이 이곳 만어사라 하였다.
    지금 미륵전 안의 미륵돌은 동해용왕의 왕자가 변하였다하는 미륵바위이며
    그의 뒤를 따르던 일만의 고기떼들은 바위로 변했다 한다.
    사실 만어산의 바위들은 이곳뿐만 아니라 산 전체로 분포되어 있어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만어사 앞의 바위들을 두들겨 보면은 맑은 종소리와 또는 쇳소리를 내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여섯비구즉 용이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동해의 왕자와 고기떼가 만어사로 왔을 때 나왔다는
    미륵전 옆의 작은 샘터가 있다.
    그래서 인지 동해의 밀물과 쓸물때 샘터 물높이가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낙동강이 범람할때도 이곳 샘터의 물이 넘쳐 난다는 이야기 있다 한다.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스님은
    만어사의 어산불영경석과 미륵불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는데
    만어사 경석중 금과 옥의 소리를 내는 것이 있으며
    미륵불은 멀리서 보면 부처 형상이 보였다가 가까이 가보면 사라져 버린다고 하였다.
    문외한인 내가 바위를 가깝게도 보고 멀리서도 보았지만
    그저 바위로만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방문화재 제152호에서 2011년 1월10일 천연기념물 제528호 승격되었다 합니다.



    아래내용은 밀양시장님이 주민에게  만어사에 관한 답변 내용이며 일부 옮겨 왔습니다.
    "1996년3월11일 경상남도 문화재(기념물 제152호)로 지정되어 관리해 오다가
    만어사에 있는 경석이 오랜 풍화과정을 거치면서 암괴가 마치 양파가 벗겨
    지듯 풍화되는 모습이 한반도 지질형성과정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만어산 정상부에서 700m이상 펼쳐져 있는 바위가 주변경관과
    어울려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등 탁월한 경관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청에서 현장 심사하여 금년 1. 10(월) 국가지정 문화재(천연기념물
    제528호)로 승격 지정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는 길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삼랑진IC~김해 삼랑진 58번(만어사 10㎞)~양산 삼랑진역 좌회전, 1022번 지방도~굴다리 통과(삼랑진역 앞에서) 양산 원동 좌회전~ 우곡리에서 만어사 표지판을 보고 만어사 방향~만어사 주차장 순

    만어사 055-356-2010
    밀양문화관광과055-359-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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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도봉 정상아래의 경주이씨 묘지에서 본 전망으로 왼편 용의 날등처럼 울텅불텅한 바위능선이 구봉산의 아홉봉우리와 그 옆 피라미드형의 주봉인 천왕봉, 그 우측으로 복두봉 

    (전북여행/진안여행)진안 명도봉 산행. 오고가는 것은 구름뿐, 햇빛도 반나절밖에 못보는 희안한 계곡을 아시나요-진안 명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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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두봉 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각우목재로 떨어졌다 다시 운장산 동봉을 세우고 주봉, 서봉이 성곽처럼 이루고 그 우측으로 연석산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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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일암 반일암 사무소 옆 주차장에서 주자천을 건너 산길은 이어진다. 원시림의 산길은 발아래 너덜길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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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중 만난 하늘말나리를 배경으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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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비알의 산길에 산죽까지도 산행을 방해하고 더욱 취재산행을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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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체만한 바위를 만나기도 하고 낙엽이 깔린 산길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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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다섯번째 댐의 규모와 최근의 가뭄으로 수량이 많이 줄어든 용담댐도 볼 수 있고  정상직전의 전망대에서 본 구봉산

    진안 명도봉

    정상은 황홀한 조망, 산밑은 시원한 계곡

    운일암반일암(雲日巖半日巖).

    뭣인고 하니 계곡 이름이다. 듣기에 따라 다소 해괴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이름은 아마도 국내 계곡 이름 중 가장 길지 않나 싶다. 깎아지른 기암절벽을 휘감아 흐르는 냉천수는 곳곳에 크고작은 폭포와 소를 만들어 그야말로 대자연의 절경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장삼이사들에게 익히 알려진 마이산이 있는 전북 진안의 최북단인 주천면에 위치한 이 운일암반일암은 북으로 병풍을 두른 듯한 무명의 명덕봉(해발 846m)과 남쪽의 명도봉(해발 863m)에 의해 형성된 일종의 기나긴 협곡이다. 이 운일암반일암을 따라 운장산 북쪽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과 명도봉 및 명덕봉 골짝에서 흘러내리는 지류가 만나 주자천을 형성한 뒤 국내 다섯 번째 규모인 용담호를 거쳐 금강 상류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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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도봉 정상 인근 전망대에 서면 진안 일대의 웬만한 봉우리들이 죄다 확인될 정도로 조망이 환상적이다.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상어이빨처럼 날카롭게 돌기된 구봉산, 여성의 젖꼭지 모양의 암봉인 복두봉, 운장산 동봉 주봉 서봉 등 1000m급 고봉준령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www.kookje.co.kr

    이름이 다소 독특하면 필히 사연이 있는 법.

    예부터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길이 없어 하늘과 돌, 나무만 있을 뿐 오가는 것은 구름밖에 없다는 뜻에서 운일암(雲日巖)으로 불렸고, 하루 중 햇빛을 반나절밖에 볼 수 없다 하여 반일암(半日巖)이라 명명됐다 전해온다. 또 다른 설도 들린다. 시집가는 새색시가 수십길 아래 깎아지른 절벽 위를 가자니 너무 겁이 나 울면서 기어갔다 하여 운일암, 공물을 지고 가던 관리가 이 길이 어찌나 험했던지 불과 얼마가지 못하고 해가 떨어진다 하여 '떨어질 운(隕)' 자를 써 운일암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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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같은 전설로 유추해 보면 이 운일암반일암은 상당히 험하지만 절승에 다름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 주 산행지는 운일암반일암을 들머리로 하는 명도봉. 산 자체는 평범하다. 하지만 정상에서 구봉산 운장산 복두봉은 물론 저멀리 덕유능선이 그려내는 산그리메는 일품이다. 구봉산 운장산은 들머리를 기준으로 한다면 운일암반일암에서 차로 각각 6~7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며 진안읍내에 우뚝 선 마이산은 차로 10여 분 소요된다.

    산행은 진안군 주천면 운일암반일암 관리사무소(주차장)~주자천~산죽길~능선안부~사거리~정상 직전 전망대~명도봉 정상~경주 이씨묘(전망대)~너덜길~도로(샬롬수양관 입구)~칠은교~팔각정(도덕정)~관리사무소. 날머리와 들머리의 거리는 1.8㎞. 이 구간을 포함해도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20분 정도.

    운일암반일암 관리사무소 옆 주차장을 가로지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명도봉이다. 민물고기 포획금지를 알리는 안내판 옆으로 난 계단을 내려가 주자천을 건너면 노란 원추리가 활짝 웃으며 뭇 객을 맞는다. 산으로 접어들면 주자천과 나란히 내달리는 오솔길을 만난다. 좌로 50m쯤 가면 우측으로 산죽길이 열려 있다. 본격 들머리다.

    한마디로 아주 거친 낙엽 깔린 돌길 오르막이다. 돌도 고정돼 있지 않아 꽤 신경 쓰이고 바닥엔 이끼류가 널려 있다.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려 약간은 음침한 기분도 든다.

    외길이라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차츰차츰 오를수록 산죽과 넝쿨 칡뿌리 등이 뒤엉켜 무성한 원시림을 떠오르게 한다. 한 줄기 빛이 겨우 숲 바닥에 꽂힐 정도로 울창하다. 20분쯤 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심해진다. 바닥도 한 보 내디디면 반 보 밀릴 정도로 미끄럽다. 이러한 구간은 능선 안부에 닿는 20분 정도 계속된다.

    계속되는 급경사 오르막길. 숨고르기를 하라고 길이 순해지지만 그것도 잠시. 집채만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아 왼쪽으로 우회하면 지옥같은 낙엽길 된비알이 기다린다. 스틱을 이용해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다행히 5분이면 오르막은 끝나고 사거리에 닿는다. 정면은 또 다른 운일암반일암의 들머리인 명천여관 쪽에서 올라오는 길, 우측은 전망대. 전망대에 서면 발아래로 들머리와 운일암반일암을 기준으로 마주보고 있는 명덕봉이 우뚝 솟아 있다.


    산행팀은 좌측으로 향한다. 한 굽이 올라서면 농짝만한 바위가 버티고 있어 다시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일순간 폭 꺼지며 수직 바위절벽 측면으로 내려섰다 올라선다. 주변이 온통 바위 전시장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바위들이 널려 있다. 바위 좌측으로 우회해 올라가면 이끼 낀 바위 아래 큰 굴이 보이고, 산길은 그 우측으로 꺾어진다.

    이어 만나는 또 다른 굴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바위군이 엉켜있어 길이 없는 듯 보였으나 다행히 밧줄이 걸려 있어 큰 무리없이 의지해 오른다. 도중 어른 손바닥 크기의 두꺼비가 눈길을 붙잡는다. 산 자체가 습한 데다 햇빛마저 투과되지 못할 정도로 울창하다 보니 산중에 두꺼비가 살고 있는 듯하다. 두꺼비가 있으면 반드시 천적인 능구렁이가 있기 마련이니 참고하시길.

    밧줄을 잡고 올라 6분이면 오르막은 끝이 나며 비로소 산행리본이 시야에 들어온다. 곧 우측으로 전망대가 하나 보인다. 나뭇가지 사이로 구봉산과 그 뒤로 덕유산, 발아래 주천면 소재지, 그 우측으로 유량은 줄었지만 용담호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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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최고의 피서지로 손꼽히는 운일암반일암 계곡.

    명도봉 정상은 전망대에서 6분이면 올라선다. 서울 사는 출향인들의 모임인 명도회가 2년 전 세운 조그만 정상석이 서 있지만 조망은 숲에 가려 아예 없다. 하지만 우측으로 약간 돌아 돌탑봉에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서면 경주 이씨묘가 위치한 너른 전망대가 기다린다. 좌측에서부터 우측으로 상어이빨처럼 날카롭게 돌기된 구봉산과 그 주봉인 삼각뿔 모양의 천황봉(1002m), 여성의 젖꼭지 모양의 암봉인 복두봉(1018m), 운장산 동봉 주봉(1126m) 서봉, 그 우측 낮은 봉이 연석산(925m) 등 1000m급 연봉들이 마치 장벽을 이뤄 솟아 있다. 근래에 보기 드문 장관이다. 구봉산 뒤론 덕유능선이 희미하게 손에 잡힌다. 참고로 경주 이씨묘 우측 열린 길로 40m쯤 가면 또 다른 전망대를 만난다. 앞서 본 조망과 큰 차이는 없지만 이곳에 서면 명도봉에서 복두봉으로 이어지는 종주길이 확연히 보인다. 참고하시길.

    이제 돌탑봉에서 날등을 따라 하산길로 내려선다. 산죽이 도열해 있는 사납고 드센 너덜길의 연속이다. 전체적으로 습한 산이라 미끄러워 자칫 방심하면 부상의 염려가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여기에 굵은 칡뿌리가 숲 바닥 여기저기 꼬여 널브러져 있고, 나무를 타고 내려온 덩굴줄기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어디선가 타잔이 '아~아아!'하고 나타날 분위기다.

    30여 분 지루한 너덜길을 걸으면 갈림길. 왼쪽은 너덜길의 연속, 오른쪽은 능선길로 너덜이 끝나는가 싶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이렇게 28분이면 너덜이 끝나고 산죽길을 거쳐 7분 뒤 도로에 닿는다.

    샬롬수양관 입구와 칠은교를 지나 우측으로 주자천을 따라 운일암반일암의 절경을 감상하며 걸으면 30분 뒤 관리사무소 앞 주차장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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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일암반일암 계곡에서 경관이 가장 빼어난 지점에 도덕정 정자가 하나 있다.

    # 떠나기 전에

    - 주자천, 고려 때 송나라 주자 종손이 다녀간 때문 명명

    엄밀히 말하면 운일암반일암은 명도봉과 명덕봉이 이뤄놓은 계곡 내 비경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장삼이사들은 운일암반일암 계곡에 더 익숙하다.

    운일암반일암으로 가는 도로변의 물길의 이름은 주자천. 마치 함양 용추계곡으로 불리는 곳이 실은 지우천이라는 진짜 이름을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주자천이라는 이 이름은 고려 때 송나라 주자의 종손인 주찬이 다녀갔다 하여 명명됐다고 전해온다. 지금도 인근 주천사에서는 주찬 선생을 추모하는 제사를 올린다.

    관리사무소가 위치한 지점이 운일암반일암 관광지의 중간 지점에 해당되며, 도덕정이라는 팔각정이 위치한 지점이 운일암반일암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영덕 옥계계곡에서 가장 풍광이 빼어난 지점에 선비 손성을이 침수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듯이 말이다. 팔각정 주변에는 부처바위를 비롯 용소바위 족두리바위 등 집채 내지 농짝만한 기암괴석들이 깎아지른 절벽과 작은 폭포 그리고 울창한 수목과 어우러져 여러 폭의 한국화를 그려내고 있다. 짧은 산행과 더불어 계곡의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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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일암반일암으로 오가는 도중 구봉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 교통편

    - 새로 생긴 익산장수 고속도로 진안IC로 나와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장수분기점에서)익산장수 고속도로 진안IC~무주 진안 30번 우회전~용담 795번 지방도 직진~용담 군청 군의회 방향 직진~진안군청 지나~(진안사거리에서)금산 용담 795번 좌회전~금산 용담댐 운일암반일암 우회전~금산 주천 운일암반일암~동상 운일암반일암 55번 좌회전~운일암반일암 관리사무소 앞 주차장. 익산장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진안 마이산의 모습을 오롯이 볼 수 있다. 대중교통편은 당일치기로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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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도봉 정상임을 알리는 정상석과  복두봉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있는 경주이씨묘, 돌탑뒤로 내려서는 칠은이골 방향으로 하산길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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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산길로 발아래 너덜길이 이어지고 타잔이라도 금방 나올 것 같은 원시림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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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일암 반일암 계곡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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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탄서원(七灘書院)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단장면 칠탄서원. 문화재라며 밀양관광책자에 나오는 칠탄서원이 흉가수준이라니...


    밀양, 청도를 여행하다 보면은 많은 문화재와 만나게 된다.
    유형문화재 또는 문화재자료란 이름으로 지정이 되어 있어 큰 기대를 하고 찾아간다.
    기대를 하고 간 만큼 우리의 고가들을 보고 오는 기쁨 또한 매우 크다.

    청도 신지리의 만화정, 운강고택, 선암서원, 삼족대등과 밀양의 오연정 월연정 금시당등 선조들의 풍류를 느끼면서 찾아가는 재미 또한 솔솔하여 만족을 하고 돌아 온다.
    어떠한 경우에는 안을 들어 갈 수가 없어 까치발을 들고 고택을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잘 정돈되고 관리가 되고 있는 문화재를 보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 올 수가 있었다.





    밀양의 칠탄정을 찾아가는 길은 보통의 문화재 가는 길과 다르다.
    단장천이 앞을 막고 있어 구서원이 있는 활성2교 다리를 건너야만 찾아 갈 수 있다.
    구역은 단장면에 속하지만 단장면에서는 들어갈 방법이 애매하다.
    넓은 동천(칠리탄)을 도강하던지 아니면 구미마을의 안법천을 신을 벗고 건너 가야 칠탄서원으로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마을어른들의 이야기로는 밀양읍내나 학생들의 동굣길도 모두 이길을 따라 칠탄정을 거쳐 활성동의 살내 ~금시당 옛길을 따라 밀양으로 갔다하는데 지금은 인걸도 간데없고 옛길도 사라지고 고가 또한 흉가로 방치되고 있어니 찾아간 나로서는 황당하면서 마음이 아프다.
     


    밀양시에서 발행하는 관광홍보 책자인 밀양여행 46P에 문화제자료 제72호 칠탄서원과 혜산서원이 함께 나와 있는데 관리 상태는 천차이다.
    칠탄서원은 밀성손씨의 오한 손기양(1559~1617)이 임진왜란때 석동산(지금의 운문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싸웠서며 만년에는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학문을 가르쳤던 곳이다.
    1725년에 그의 후손들이 다시 중건 하여 진암서당으로 고쳐부르다가 1844년에 청절사를 지어 손기양의 위폐를 모시고 칠탄서원이라 하였다.
    그러나 대원군때와 서원 철폐령에 의해 서원은 헐려 버리고 1914년에 다시 건물을 올렸다.

     
    ‘ㅁ'형태의 건물로 묘우 앞에 정면 5칸인 팔작지붕의 강당이 있다.
    좌우로 1칸씩 방을 넣었고 중앙의 3칸은 마루를 넣었다. 강당앞에는 좌우로 누각 형식의 동,서재가 있고 정문역시 문루를 통해 드나들게 하였다.
    사실 칠탄 서원 앞을 흐르는 강은 밀양강의 지류로 동천이라 부른다.
    엄연이 말하면 구미마을에서는 이곳만 잘라 칠리탄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단장리 앞의 경주산에서 두 물길이 서로 만난다.
    산내천과 단장천이 서로 만나 칠리를 흐르면서 여울을 만드는데 그야 말로 아름다운 곳으로 칠리탄이라 하며 칠탄서원이 칠탄산 자락에 숨은 듯 자리 하고 있다.



    칠탄서원을 찾아가면 문화재 관리 실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4동의 건물이 곳 허물어 지기 일보 직전이며 천장으로 다닌 쥐때문에 마루마다 까만 쥐똥들이 천지이며 방문과 대청을 닫고 있는 문짝들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들렁거리고 허리까지 자란 잡풀로 인해 이곳이 문화재가 되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엄연히 문화재란 안내판이 붙어 있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아마 남량특집극 전설의 고향 촬영 섭외장소로 이용하면 딱인데...









































    찾아가는 길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밀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부터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주말에는 오전 9시40분과 오전 10시20분에도 있다. 1시간 소요. . 들머리인 산외면 활성2동은 밀양터미널에서 남명리 얼음골행 및 표충사행 어떤 버스를 타도 다원마을에 정차한다.
    얼음골6시10분 9시35분 (직행)10시55분 7시05분 8시, 9시05분, 10시40분, 11시30분
    표충사6시20분 9시10분 (직행)7시35분,8시45분 10시10분 11시20분
    그리고 감물행 고례행 국전행 시내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다원정류장에선 하차한 후 버스진행 방향으로 직진하면 '율전 구서원 또는 리더스CC'를 가리키는 팻말을 따라가면 된다. 20분쯤 걸린다. 구서원 입구 활성2교 다리를 건너 리더스cc 입간판에서 왼쪽 동천을 따라가는 산길이 열려 맀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울산 언양 24번~금천리 용평~굴다리 통과~(이후 리더스CC 팻말 따라 가면 됨)~금천리 남기리 용평 방향 좌회전~신동국밥, 금천마트 지나~화동 표지석~용평 용활 방향 좌회전~동천변 활성2교 부근에 주차를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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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영남루,. 무더운 날에 밀양 영남루에 올라 시원한 대청마루를 생각한다.


    밀양하면 먼저 떠 올리는 것이 무엇일까?. 표충사, 사명대사, 영화 밀양촬영지, 얼음골,등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십중팔구는 밀양의 영남루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영남루는 외지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으며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그런 곳이다. 영남루는 어떤 누각일까. 밀양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로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힌다.

    1300리를 달려와 바다로 빠지기 전에 합류되는 마지막 낙동강 지류인 밀양강가에 솟은 건축물이다. 밀양읍성의 아동산 자락을 휘감아 도는 밀양강가 주위로 정면의 일자봉에서 용 한마리가 힘차게 꿈틀대며 밀양강 용두연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형상의 용두산과 좌측으로는 호두산 즉 범머리산이 월연정 앞의 월연에서 물을 뿜는다하여 호분탄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름하여 좌백호 우청용이며 용두목아래에는 밀양강이 빚어낸 최고의 절경지가 펼쳐진다. 삼문동을 감싸며 흐르는 밀양강, 종남산에서 흘러내린 말머리산인 마암산과 방울재 옆의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복호암이 감싸는 절경의 중심에 2층으로 시원하게 누각을 올리니 이를 영남루의 앞 정원이라 한다. 






    영남루는 밀양강과 조화를 이루며 밖에서 보는 외적임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3대 누각답게 영남루는 내적인 아름다움도 무시할 수 없다. 화려한 단청과 영남루를 화재로부터 보호를 하기 위해 물의 수호신인 용을 영남루에 새겨 넣었고 영남루 안 내 귀퉁이에 봉황과 용 거북이를 그려 넣어 영원한 영남루를 꿈꾸었을까. 누각을 연결하는 월(月)자형 계단을 넣어 한층 영남루의 품격을 더 높혔고 밀양강에 구름이 끼여 있는 운치 있는 영남루를 생각해보라. 신선이 따로 없을 것이다. 그것을 항상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루 끝을 운상인 구름모양을 돌려놓았고 꽃병에 화려한 꽃들이 꼽혀 있는 조각들이 영남루를 돌려 놓아 사시사철 구름위에 화려한 꽃들이 장식되어진 영남루가 되게 하였다.

    이런 곳에다 시가 빠질수가 있을까. 당대의 명필가인 퇴계이황, 목은이색, 문익점등 많은 분들이 시문을 현판으로 남겨 놓았다. 처음 이자리는 신라 경덕왕때에는 영남사란 사찰이 있었다 한다. 그 사찰네 부속 건물인 누각을 고려 공민왕때인 1365년 밀양부사인 김주에 의해 규모를 더욱 크게 확장을 하였다 하며 현재의 누각은 1844년에 이인재부사가 중건을 한 것으로 보물제 147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영남루 마루에 올라서면 많은 글씨체를 볼 수 있다. 영남루, 영남제일루, 교남명루등 많은 현판들 속에 1843년 7살의 이현석군과 11세의 이증석은 이인제부사의 아들이며 그들은 형제인데 어린나이에 대단한 필력으로 영남루와 영남제일루의 현판글씨를 남겨 지금도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날씨가 자꾸 무더워지고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는 요즘이다. 영남루 누각마루에 올라 앉아 시골의 대청마루에 걸터 않아 여름을 달래던 추억을 생각하며 향수에 젖어 보면 어떨까.










































    누각을 서로 연결하는 月자의 계단



















    찾아가는 길;
    부산역에서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열차로 밀양역까지 간다. 무궁화호 첫 차는 오전5시10분에 있고 20~4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3분 소요, 3800원. 밀양역 앞에서 영남루에 가는 시내버스는 수시로 있다. 1, 1-2, 5, 6번 등 다양하다. 10분 소요.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에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타고 긴늪사거리에서 직진, 밀산교를 건넌 후 표지판을 따라 영남루 앞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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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지정된 문화재가 폐가 수준인 영남알프스둘레길 13코스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지정된 문화재가 폐가 수준인 영남알프스둘레길 13코스


       
    청도와 마찬가지로 경남 밀양 또한 영남알프스의 넓고 깊은 자락에 수많은 문화재와 유적지, 고택들을 품고 있는 고장이다.

    이번 주 답사한 제13코스는 밀양이 자랑하는 전통마을과 정자를 거치며 옛 정취에 듬뿍 취하는 길이다. 유서깊은 전통을 가진 한옥마을과 넓은 들판, 폐허로 남은 절터와 정자를 찾아가며 밀양이 갖고 있는 다양한 특색들을 느낄 수 있다. 또 난생 처음으로 어마어마하게 넓은 대추밭 사이를 지나기도 한다. 녹음이 뒤덮인 산자락에 끝 없이 펼쳐진 대추밭 언저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흘린 땀'의 숭고함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를 가진다.






    코스 출발지는 경남 밀양시 산외면 남기리 남가마을의 남계교다. 그리고 종착점은 단장면 미촌리 구미마을 버스정류소. 총거리는 14㎞이고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40분, 휴식 등을 포함하면 6시간 정도는 걸린다.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는 막바지 구간인 칠탄정, 칠산정 구간의 묵은 옛길에 수풀이 우거졌기 때문이다.

    ◇ 다원고개 넘고 동창천 건너 14㎞, 넉넉 잡아 6시간


       
    영남알프스 둘레길에서는 흙돌담 정겨운 전통 한옥마을을 자주 만난다. 경남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또한 그 중 한곳이다. 옛 사람들의 운치를 그대로 살리고 있는 마을을 지날 때면 개척단의 발걸음도 더욱 가벼워진다.
    엄남천에 놓인 남계교를 건너 사거리에서 직진, 계속 동쪽으로 남계마을 들판길을 따른다. 정면 왼쪽의 꾀꼬리봉이 우뚝하고 오른쪽에는 물류창고가 있는 야트막한 화지산이 보인다. 두 산 사이의 안부 고개로 넘어갈 예정이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밑을 지나 양덕동(마을)에 들어선다. 양덕(陽德)이라고 한 것은 꾀꼬리봉에서 내려온 산기슭에 위치, 양지 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마을회관 앞에서 진영기와산업(주) 굴뚝을 보면서 직진한 후 공장 왼쪽의 골목으로 진입한다. 매꽃, 인동덩굴 등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3분 후 Y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다. 주변에는 온통 대추나무 일색이다. 다시 3분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 비포장 임도를 택해 50m쯤 가면 널찍한 공터가 나오는데 왼쪽을 잘 보면 임도로 휘어져 오르는 길이 보인다. 그 임도를 따라 가면 7분 후 다원고개에 닿는다. 능선을 타고 왼쪽으로 가면 꾀꼬리봉, 오른쪽은 화지산으로 가게 된다. 일단 우측으로 몸을 돌린 후 보이는 능선 마루금길과 왼쪽 11시 방향으로 휘돌아가는 길이 보이는데 비스듬한 왼쪽 길을 택한다. 3분 후 또 다시 작은 안부고개에 닿는다. 우측은 화지산, 직진하면 금촌리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왼쪽 능선길로 가야한다. 3분 후 무덤 앞 갈림길에서 능선을 버리고 왼쪽 내리막 길로 떨어진다. 얼마 가지 않아 다죽리 다원마을 포장도로에 닿는다.


       
    밀양사 산외면 다죽리 혜산서원 대문인 상례문을 나서는 개척단.
    다원마을은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연극배우 손숙 씨의 고향마을로, 일직 손씨 재실과 혜산서원(惠山書院) 등 고택들이 즐비해 은근히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이정표를 보면서 도로를 건너 혜산서원 방향으로 간다. 격재선생 신도비를 일별하고 흙돌담길 깊숙이 자리잡은 상례문(尙禮門)으로 들어가 서원의 강당과 사당 등을 둘러본다. 반질반질하게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하게 닦인 강당 대청마루는 후손들의 정성어린 관리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서원을 나와 흙돌담길을 따라 걷는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1호인 다죽리 손씨 고가 등 고택들이 이어진다. 참 운치있는 마을이다. 만화정과 운강고택이 있는 청도군 신지리 못잖다. 그러나 길에서 만난 마을 주민 아주머니는 "처음 온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지요. 그렇지만 뭐, 사람사는 곳이 다 마찬가지라오. 들일 하고, 농사 짓고, 자식 키우고. 그렇지 않소?"라며 밭으로 향한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손씨 고가에서 우측으로 꺾어 걸으면 옛 24번 국도 아스팔트 도로 사거리다. 나중에 이곳으로 돌아올 예정이지만 일단 왼쪽으로 꺾는다. 산외면사무소를 지나 주유소 앞에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선다. 그 골목 깊숙한 곳에 모당천(毛唐泉)이라는 샘터가 있다. 중국 원나라 말기에 모 씨와 당 씨가 전쟁을 피해 이곳까지 와서 식수용으로 팠다는 오래 된 샘물이다. 모당천을 지나 잘 생긴 소나무와 홍단풍의 호위를 받으며 올라서면 언덕 위에 죽원재사(竹院齋舍)라는 재실이 있다. 조선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지방관과 언관을 지낸 오한 손기양 선생을 기리는 제사를 모신 별묘가 있던 자리다. 1753년 최초 건립됐으며 이후 세월이 흐르며 황폐해 졌다가 1956년에 밀성 손씨 문중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했다. 본당 건물 앞 뜰에는 월연정과 금시당에서도 보았던 백송(白松)이 늠름하게 서 있다.


    ◇ 산외면 소재지 다죽리 전통한옥마을 운치 가득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지정된 문화재가 폐가 수준인 영남알프스둘레길 13코스


       
    다죽리 소재 죽원재사 가는 길. 홍단풍과 백송이 길손을 맞아 준다.
    죽원재사를 나오면 모당천 앞에서 직진, 마을 길을 따라 나오면 다원2리 경로당을 거쳐 옛 24번 국도에 닿는다. 우측으로 꺾어 산외면사무소를 거쳐 최초에 24번 국도에 닿았던 갈림길까지 돌아간다. 여기서 옛 국도를 건너 마을앞 들판인 다원들 사이 농로를 따라 율전마을 쪽으로 간다. 신 24번 국도 굴다리를 거쳐 직진하면 '털보양어장'을 가리키는 푯말 앞에서 화살표 방향대로 우회전하고 율전마을회관을 거쳐 털보양어장을 지나면 동천(또는 단장천)둑길에 닿는다. 우회전하면 '리더스CC' 표지판이 있다. 활성2교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밑 하천에서 다슬기를 줍는 50~60대 주민들이 눈에 들어온다. 초여름 햇살을 받은 여울이 반짝인다.

       
    대추밭 속에 숨은 영원사지. 조선 초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리를 건너면 큰 길을 버리고 왼쪽 강변 쪽으로 꺾어야 칠탄정으로 가는 길이지만, 일단 영원사지(瑩源寺址)에 들르기 위해 골프장 방향으로 직진한다. 영원사지 위치 안내판을 지나고 골프장가든 식당을 지나면 갈림길에서 우측 마을길을 따른다. 활성2동 경로당 앞을 지나면 온통 대추나무 천지다. 5분 후 대추나무밭에 숨은 영원사지에 닿는다. 골짜기 상류에 보면 골프장이 있고, 그 오른쪽에 자씨산 부도골이 보인다. 이 깊은 골짜기에 골프장을 건설한 것을 납득할 수 없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다. 영원사 창건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 충숙왕때인 1313년 왕사가 된 보감국사(寶鑑國師)가 머문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보감국사( 1250~1322)는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 스님의 제자로서 왕사에까지 오른 고승이다. 이 절터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호인 보감국사 부도와 제13호인 보감국사 묘응탑비가 있고 몇기의 고려시대 석불이 남아 있을 뿐 주변은 온통 대추밭일 뿐이다. 묘응탑비의 탑신도 오간데 없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다. 묘응탑비의 비문은 익재 이제현이 썼다고 알려졌지만 내용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비 상하단부의 조각 솜씨만은 예사롭지않다. 절은 조선 초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 드넓은 대추밭 속에서 찾은 영원사지 쓸쓸함 만 남아

       
    인적 적어 반 폐허가 된 칠산정 경내에 거대한 은행나무만 우뚝하다.
    15분이면 다시 활성2교 앞 골프장 입간판 앞까지 갈 수 있다. 다리 우측으로 진입, 강변의 숲길을 따른다. 큰 높낮이 변화없이 강변을 따라 가는 한적한 숲길. 그러나 최근에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잔가지들을 제법 헤치면서 진행해야 하는 길이다. 이 길도 정비만 제대로 된다면 '제12-1코스 상편'에서 답사한 금시당~팔각정 산책로 못잖은 걷기 좋은 길이 될 수 있겠다. 17분쯤 가면 다죽리의 죽원재사에 모셔진 오한 손기양 선생이 후학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는 칠탄서원(七灘書院·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2호)과 칠탄정(七灘亭)에 닿는다. 북쪽을 바라보며 지어진 이 건물은 강당과 정자 서재와 동재가 운치를 더하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잡초와 먼지만 무성해 을씨년스런 느낌을 준다. '칠탄'이라는 명칭은 산내천과 단장천이 합수된 단장면 단장리에서 이곳까지 흐른 동천의 거리가 칠리이며 이 구간을 '칠리탄'이라고 해서 붙었다고 전해진다.

    칠탄정의 동제 누각인 운강루(雲江樓) 아래 문을 통해 나가서 30m쯤 가면 우측으로 살짝 오르는 희미한 길을 타야 한다. 이곳부터는 길 상태가 험한 편이다. 안내리본을 잘 보고 조심스럽게 진행하자. 칠탄산 옆자락 타고 가는 험로를 30여분 가서 무덤을 만나면 길은 다시 좋아진다. 우측으로 살짝 틀면 일직 손씨 돌무덤이 있고 곧바로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살짝 돌아 다시 우측으로 임도처럼 넓은 길을 따른다. 묵었지만 그래도 갈만한 길이다. 5분 후 제대로 된 깔끔한 임도에서 우측으로 가면 곧바로 칠산정(七山亭)이 있다. 이 곳 역시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문화재라는 느낌이 덜하다. 다만 마당으로 들어서면 수백년 묵은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어 가을 분위기가 참 좋을 듯 할 뿐이다.

    칠산정에서 구미마을까지는 15분이면 족하다. 구미교를 건널 때 우측에 보이는 봉우리는 계령산. 다리 건너에 버스정류소가 있다. 제13코스의 종착점이다.


    # 떠나기 전에

    - 혜산서원 건물 사이 담장, 대원군 서원철폐령 피하려



    밀양 산외면의 면소재지인 다죽리에 있는 혜산서원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7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은 조선 초기 문신이자 학자인 격재(格齋) 손조서(1412~1473)의 학덕과 인품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조선 영조 29년(1753년) 건립한 서산서원이 있던 터에 1971년 확장 중건한 곳이다. 이 서원에는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일반 서원과는 달리 강당과 사당 살림채 등이 모두 담으로 구분돼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조선 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당시 건물의 강제 철거 만이라도 피하기 위해 일직 손씨 문중에서 가정집 처럼 꾸몄기 때문이다. 건물들 사이에 담벼락을 만들고 건물의 이름도 일반 가정집에 흔한 이름들로 바꿔 비로소 큰 화를 면했다는 것이다. 지혜의 산물인 셈.

    격재 선생은 집현전학사 병조정랑 봉산군수 등을 역임한 학자로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보면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마을에 돌아와 두문불출하며 학문의 길만 닦았던 인물이다. 그의 비장한 충절은 흔히 생육신의 그것에 비견된다.



    # 교통편

    - 밀양버스터미널서 정문마을까지 버스 30분 간격 운행

    무궁화호 열차는 부산역 기준 오전 5시10분 첫차를 시작으로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43분 소요, 3800원. 밀양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정문마을행 새마을버스 또는 얼음골 표충사행 직행버스를 이용한다. 새마을버스는 오전 6시10분부터 약 30분 간격으로 있고 직행버스도 7시05분부터 약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정문마을에서 하차, 남가마을 쪽으로 약 300m 걸어가면 남계교가 보인다. 코스 답사 후 종착점인 구미마을 버스정류소에서는 그냥 500m가량 걸어서 사촌마을 버스정류소에서 밀양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사촌마을 버스정류소에서 오후 4시35분, 7시25분에 탈 수 있다.

    자가용 이용의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향 24번 국도 긴늪사거리에서 좌회전, 200m쯤 간 후 다시 좌회전해 굴다리를 지나면 정문마을에 닿는다. 정려각에서 100m쯤 직진, 다리를 건너지 말고 좌회전해서 300m쯤 가면 된다.



    # 폐허같은 밀양 칠탄정·칠산정, 허술한 문화재 관리에 할말 잃어

    - 마당엔 잡초, 대청마루엔 쥐똥
    - 경내의 은행나무·배롱나무만이 수백년 지켜온 기품안고 우뚝

       
    밀양시 발행 관광안내서에도 수록된 칠탄정.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않돼 먼지와 잡초만 무성하다.
    아무리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다지만, 이번 제13코스 답사 도중 들린 중요 문화재인 밀양 칠탄정(七灘亭)과 칠산정(七山亭)의 폐허나 마찬가지인 몰골(?) 앞에서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두 곳 모두의 마당에는 웃자란 잡초들만 무성하고, 대청마루에는 쥐똥과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다. 여러 부속 건물마다 처마 밑에는 거미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펼쳐져 있기까지 하니 그 을씨년스러움에 기가 질릴 지경이다. 사실 칠탄정과 칠산정은 위치나 주변 풍광 면에서는 둘레길 개척단이 지금껏 답사한 각 구간에서 만난 그 어떤 정자나 서원들과 비교해봐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관리 실태만은 가장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어 안타까운 심경이다. 아니 '관리'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부끄러울 지경이라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칠탄산 자락에 자리잡은 칠탄정과 칠산정이 어떤 곳인가. 우선 칠탄정의 내력부터 살펴보자. 동천강 변에 북쪽을 보고 앉은 칠탄정은 임진왜란 당시 밀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손기양(1559~1617)이 만년에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1725년에 후손들이 건물을 다시 지어 진암서당이라고 명명했고, 1844년에는 청절사(淸節詞)라는 사당도 함께 지어 손기양의 위패를 모시고 '칠탄서원'이라고 불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손됐다가 1914년에 다시 복원했다. 칠탄정과 중앙의 강당을 두었고, 동서쪽에는 누마루가 있는 누각을 지어 강물과 그 너머 다원들판, 다죽리 마을, 비학산과 꾀꼬리봉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했다. 현재의 건물은 비록 20세기 초반에 지은 것이라고 하지만 조선 후기 양식을 대부분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역사성과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2호로 지정됐다. 손기양 선생은 밀양 손씨 문중 출신이다. 또 칠산정은 경남 문화재자료 제478호로 일직 손씨 가문의 별업 겸 재실이다.

    이들 두 곳 모두 수백 년 자란 은행나무와 베롱나무들이 경내에 그 세월의 흔적을 안고 우뚝하게 서 있고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들도 그 기품이 여전하지만 각 각의 건물들이 문화재다운 관리를 받지 못하다 보니 그 빼어남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누구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기관에서 무관심했든, 해당 문중에서 관리를 소홀히 했든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개척단이 칠탄정과 칠산정을 답사하면서 '우리의 문화재 관리 수준이 과연 이 정도밖에 안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근년 들어 찾는 이 드물어서 더욱 을씨년스런 이들 고 건축물들에 둘레꾼들의 발길이라도 계속 이어진다면 잃었던 생명력을 서서히 되찾을 것이고 제대로 된 관리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감을 나타내고 싶을 뿐이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 국제신문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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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밀양여행)밀양 아랑각.

    밀양 아랑각

    밀양에는 종종 남량특집극인 전설의 고향에 이곳 영남루 아래 아랑낭자의 이야기가 소재거리로 많이 나온다.

    그 만큼 전국적으로 아랑낭자의 이야기는 전설이 아닌 실제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밀양의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면 정절을 지키다 순절한 분들의 정려각들을 많이 만난다. 상동면의 낙화암에서 뛰어내린 민씨부인은 이 고을의 대단한 자부심으로 남아 있으며 산외면의 장씨 부인 역시 친정인 창녕의 월영대에서 뛰어내려 정절을 지켰다하여 그 마을의 이름을 정문으로 부르게 되었다하며, 단장면의 사촌마을등 숱한 이야기들이 전해 온다.

    그만큼 밀양에는 부도를 목숨과 바꾸며 정절을 지키겠다는 부인들이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많이 만난다. 정려각을 대표하는 것이 이곳 영남루의 아랑낭자가 아닐까 싶다. 명종때 죽음으로 순결을 지켰다는 아랑낭자의 사당을 함 가보자. 영남루 아래 돌계단을 내려가면 아랑각을 만난다. 정절문 우측으로는 큰 노거수가 밑둥치의 절반을 도려내고도 아랑각을 지키는 수문장을 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 열린 문을 들어서면 또 한번의 계단을 만난다. 계단위 아랑낭자를 모신 사당이 자리를 하고 있다.

    그곳에는 낭자의 영정과 좌우로 유모와 나들이를 나온 모습과 또 하나는 신임부사의 꿈에 나타나 낭자의 억울함을 호소하여 범인을 잡아온 그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삼문 옆 쪽문을 나서면 계단 위 낭자의 현장을 알리는 비석과 만난다.

    아랑은 그 당시 밀양부사의 딸로 윤씨이며 동옥 또는 정옥으로 불렸다. 하루는 유모와 영남루에 밤나들이를 나왔다가 유모와 내통한 괴한에게 겁탈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자결을 하였다. 그의 혼백을 위로하고자 마을에서는 사당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현재는 밀양시의 대표적인 축제가 된 밀양아랑제로 아랑아가씨 선발대회를 개최하여 낭자의 혼백을 위로하고 있다.

    1930년에 영남루를 중수하면서 현재의 위치에 ‘정순아랑지비’를 세우며 비각을 세워 아랑각이라 불러서며. 현재 아랑사는 1965년 비각인 아랑각을 헐고 그 자리에 맞배지붕의 3칸짜리 사당과 삼문인 중문을 세웠고 고육영수여사에 의해 이당 김은호가 그린 아랑의 영정과 위폐를 모섰다한다.

    바람이 좀 불라치면 아랑각 주위를 감싸고 있는 대나무의 스산함이 그 녀의 슬픔을 대신하듯 울부짓고 낭자의 죽음이 너무나 억울한지 밀양에서는 청춘남녀들이 아랑각에서는 절대로 데이트를 즐기지 않는다 한다. 그 후 반드시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다하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밀양 여인들의 자부심인 아랑각은 오늘도 영남루를 휘감고 가는 강물 속에 그때의 슬픔을 알고 있는지 말없이 흘러만 간다.






















    찾아가는 길;부산역에서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열차로 밀양역까지 간다. 무궁화호 첫 차는 오전5시10분에 있고 20~4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3분 소요, 3800원. 밀양역 앞에서 영남루에 가는 시내버스는 수시로 있다. 1, 1-2, 5, 6번 등 다양하다. 10분 소요.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에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타고 긴늪사거리에서 직진, 밀산교를 건넌 후 표지판을 따라 영남루 앞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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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관아

    밀양시 내일동인 아북산 자락인 밀양시장 맞은편에는 조선시대의 밀양관아 터이다.

    1895년 고종32년에는 이 곳이 밀양군청으로 사용이 되다가 1927년 삼문동으로 밀양군청이 옮겨가면서 밀양읍사무소, 밀양시청, 내일동 사무소로 변천을 하면서 사용을 하게 되었다. 2010년 국권회복 차원에서 밀양관아가 복원을 하였다.

    조선시대 밀양관아를 복원하기 위해 밀양관아터를 2008년부터 발굴을 하게 되었다. 밀주구지에 따르면 밀양읍성이 축성될 당시에 함께 세워졌는데 100여칸의 웅장한 건물로 축성이 되었다 한다. 본래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인 선조25년 즉1592년에 모두 불타버린 것을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32년인 1599년에 밀양부사인 이영이 영남루 경내에서 집무를 보다가 1611년인 광해군 3년에 와서 밀양부사 원유남에 의해 현재자리에 밀양관아를 세웠다.

    중건후 300년동안 관청 건물로 사용이 되었는데 조선 후기에 와 동헌, 정청, 매죽당, 북별실, 내삼문, 연훈당, 전월당, 신당등의 건물이 있었다 하나 현재에는 정확한 규모와 세워진 위치를 알 수가 없어 내삼문, 동헌, 매죽당, 북별실이 복원되어 있다.

    지방의 수령이 공무를 보던 관아의 중심은 동헌으로 근민헌(近民軒)으로 불렀는데 목민관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었다.‘백성을 친근히 하되 낮추어는 보지 않는다’. 사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큰 건물과 마주 한다. 그 중간에 집무를 담당하던 부사의 모습이 밀랍 인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동헌에 앉아 백성의 마음을 읽는 목민관을 보는 것 같아 마음 든든하다.

    내삼문 계단을 올라서기 전 좌측편으로 19기의 비석이 자리를 하고 있다. 이 비석들은 조선시대 밀양 부사와 밀양을 관할하던 관찰사의 행적에 관한 기록들이 소상히 적혀 있는 유허비로 밀양 목민관의 논공행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동헌 우측으로 담장을 둘러 중문을 달아 관아와 분리를 한 곳은 매죽당으로 관아의 별실이다. 이 건물은 부사의 비서가 사무를 보던 곳이며 밀양관아의 자재들이 공부를 하던 곳으로 이용을 하였다 한다.

    좌측의 관리동 뒤로는 누각건물이 들어 서 있다 . 조선시대 대표적인 건축양식으로 ‘ㄱ’자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북별실로 정확한 용도를 알 수가 없다. 다만 별실이란 이름에 의해 공무는 동헌에서 보았지만 업무 이외의 일들을 보던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찾아가는 길;부산역에서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열차로 밀양역까지 간다. 무궁화호 첫 차는 오전5시10분에 있고 20~4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3분 소요, 3800원. 밀양역 앞에서 영남루를 지나 밀양시장 앞에 가는 시내버스는 수시로 있다. 1, 1-2, 5, 6번 등 다양하다. 10분 소요.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에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타고 긴늪사거리에서 직진, 밀산교를 건넌 후 표지판을 따라 영남루 옆으로 가면 된다.


    내삼문의 모습으로 포졸 두명이 관아를 지키고 있다.

    밀양 부사및 관찰사들의 행적을 소상하게 기록한 19기의 유허비


    동헌의 모습으로 현판에는 목민관이 마음에 새겨야 할 '근민헌'





    관아의 자재들이 공부를 하던 장소 도는 부사의 비서가 업무를 보던것으로 관아와 분리를 해 놓았다.




    부사의 별업으로 업무는 동헌에서 보지만 그 이외의 일들을 본 것으로 추정을 하는 북별실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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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여행/정선여행)동강 백운산 산행. 구절양장을 여기 두고 한말인가?. 비경의 정선 동강 백운산

     


     





    - 천애절벽 병풍 이룬 '동강절경'의 중심
    - 점재나루~칠족령~제장교 잇는 6.4㎞
    - 산림청 100대 명산 포함된 정선 명산
    - 암릉길 위험지 산재… 우천 산행 금물

       
    동강 백운산은 강원도 정선에서 영월까지 흘러가는 동강의 물굽이가 절정을 이루는 곳에 솟은 명산이다. 정상을 향하던 취재팀이 중간 전망대에서 동강12경 중 제3경인 나리소(중앙 부분 짙은 녹색 물굽이)를 조망하고 있다. 오른쪽 끝 도드라진 봉우리는 칠족령이다.

    백운산(白雲山)이라는 이름은 참 흔하다. 휴전선 이남에만 줄잡아 50여 개라고 하니 말이다. 이 가운데 지난 2002년 산림청에서 전국의 100대 명산을 선정, 발표했을 때 3개의 백운산이 포함됐다. 광양 백운산과 경기도 포천의 백운산, 그리고 이번 주 답사한 동강 백운산이다.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과 평창군 미탄면의 경계를 이루는 동강 백운산은 해발 882.5m로 강원도 산치고는 별로 높지도 않고 규모도 크지 않은 산이다. 그런데도 그 많은 여타의 백운산들을 제치고 당당히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국의 비경, 강원도 최후의 절경이라는 동강(東江)의 중심부에 우뚝 솟아 천애절벽과 물줄기의 조화를 통해 한 폭의 아름다운 진경산수화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또한 천연기념물인 백룡동굴을 포함한 생태 환경적 보고(寶庫)들이 산자락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동강 백운산 등산로는 급경사 바위길이 많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 심심산골의 나무들을 잘라 뗏목으로 엮어 정선 아우라지에서 서울까지 실어나르던 뗏목들이 바로 이 백운산을 감싸고 도는 동강을 거쳐 가곤 했다. 수많은 뗏사공이 암초와 벼랑에 부딪혀 물속으로 사라지기 일쑤였기에 지역 민요인 '정선 아리랑'에서도 아우라지 뗏사공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백운산 주변 아홉 굽이를 돌아 평창군 미탄면의 '황새여울'까지 통과해야 비로소 무사귀환(?)을 기대할 수 있었을 만큼 백운산 주변 물굽이는 험하고 또 험했다. 황새여울은 뾰족한 바위들이 물길 중간에 널려 있어 물이 마를 때면 황새가 그 바위들에 내려앉아 놀던 곳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뗏사공들에게는 최후의 난코스였던 셈이다. 간혹 TV 뉴스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등에 등장하는 동강의 물돌이 장면도 백운산 상공에서 촬영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백운산은 동강의 중심적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산행코스는 가장 널리 애용되는 길을 잡았다. 점재마을에서 백운산 정상에 올랐다가 칠족령(또는 칠목령)을 거쳐 제장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다. 총거리는 8㎞지만 강변길 트레킹을 제외한 순수 산행 거리는 6.4㎞ 정도다. 시간은 5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하지만 거리가 짧다고 우습게 보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경사가 심하고 전체 구간의 70% 이상이 바위길이기 때문에 피로도가 만만찮다. 특히 안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제장마을 앞 절벽. 주민들은 '하늘벽'이라 부른다.

    다만 이 같은 피로도는 깎아지른 듯한 '뼝대(바위로 이뤄진 높고 큰 절벽의 정선 영월 평창 지역 사투리)'를 이리저리 휘돌며 흘러가는 동강의 비경을 볼 때마다 훌훌 날려버릴 수 있기에 백운산 산행의 매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학생인 자녀나 노부모를 동행해서 가족산행을 하기에는 무리다. 위험구간이 많고 날씨도 변덕이 심하기 때문에 갑자기 악천후라도 만나면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운치리 점재마을 앞에서 동강을 가로지르는 잠수교인 일명 '점재교'를 건널 때부터 아름다운 풍광에 숨이 멎는 듯하다. 비가 많이 내리면 물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이 다리는 잠겨버린다. 이 다리가 놓인 것은 불과 10년 남짓이다. 그전까지는 오로지 줄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을 점재나루라 부르고, 비가 많이 내리면 여전히 줄배를 이용한다고 한다. 잠수교에서 바라본 동강의 은빛 물줄기와 강물을 병풍처럼 감싼 백운산 여섯 봉우리가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점재나루에서 본 동강과 백운산. 오른쪽 끝은 점재교.

    잠수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강변을 따른다. 우측에 백운산 정상이, 정면에는 수리봉 능선이 보인다. 200m쯤 가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등산화 끈을 고쳐 맨다. 이윽고 백운산민박 앞 삼거리. '동강유역 자연휴식지 탐방안내도'라는 긴 이름을 단 등산안내판을 일별하고 왼쪽으로 꺾는다. 3분 뒤 갈림길에서 임도를 버리고 왼쪽 강변 오솔길을 따르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백운산의 야생화 가운데 '동강할미꽃'이 일반인들에게 유명하지만 철이 철이니만큼 보기가 힘들고, 망울을 한껏 터뜨린 엉겅퀴와 조뱅이 노랑갈퀴 쥐오줌풀 등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며 길손을 맞아준다.

    잠시 완만한가 싶던 등산로가 갑자기 가팔라진다. 백운산 정상까지 두 시간여는 줄곧 이보다 심한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20분 후 일명 '병매기고개'라고도 불리는 안부 삼거리. 왼쪽으로 100m쯤 가면 전망대가 있다. 발아래로 길게 뻗어내린 능선 끝에 동강 12경 중 제3경인 나리소와 바리소가 보인다.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굽어 도는 동강의 물줄기에서 백운산의 산세와 절벽 단애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 바로 나리소다. 다시 병매기고개로 돌아와 정상 쪽으로 향한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급경사 암릉길. 등산로 오른쪽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하늘의 구름은 동쪽으로 흐르는데 동강의 물줄기는 '조각배 구름'을 싣고 서쪽으로 굽이친다.


       
    칠족령 방향 하산길에 바라본 동강의 물굽이. 중앙 모래톱 부분은 소골, 그 위쪽은 제장마을이다.

    등산로 곳곳에 위험 표지판과 로프가 보이기 시작하고 작은 동굴을 지난다. 발길 닿는 곳이 전망대다. 작은 고사목 너머로 보이는 동강과 나리소의 풍광이 형용할 수 없으리만치 수려하다. 위험 구간의 안전계단 공사를 하는 인부들과 인사를 나누고 20여 분 더 오르면 쉼터가 나온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정상까지 0.5㎞ 남았다고 이정표가 가리켜 주지만 만만치 않다. 30분가량 더 급경사를 치달아야 정상에 닿는다. 하지만 우거진 수목이 능선길을 덮고 있어 직사광선을 가려주는데다, 시원한 산바람도 친구가 돼 주니 걸을만하다. 여름 산행지로 딱이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돌탑 3개가 세워져 있다. 굽이치는 동강의 물줄기가 마치 뱀이 똬리를 틀듯 나리소와 소동을 거쳐 하산지점인 제장나루까지 흐르는 풍광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동쪽 멀리로는 정선의 또 다른 백운산인 하이원리조트 뒷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 태백산 함백산을 거치는 백두대간이 남북으로 치닫는다.


       
    하산길에 나선 취재팀이 가파른 계단을 지나고 있다.

    하산길은 칠족령 제장마을 방향인 남서쪽. 곧바로 삼거리다. 우측은 천연기념물 제260호인 백룡동굴이 있는 문희마을 쪽으로 내려서는 길이지만 직진한다. 가파른 내리막의 연속이다. 울퉁불퉁한 바위길 왼쪽은 아찔한 낭떠러지.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 7분 후 전망대에 서면 나리소와 제장나루가 뚜렷이 드러나고 칠족령도 눈에 들어온다. 로프와 계단 등을 잇따라 지나면서 온몸이 바짝 긴장한다. 왼쪽으로 드러나는 동강의 비경을 원 없이 즐기면서 여유를 찾아본다.

    50여 분을 갔을까. '한비 이영미' 추모 돌탑을 지나며 명복을 빌고 좀 더 내려서면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문희마을과 칠족령전망대로 가는 길이지만 제장마을 방향으로 직진, 짧은 오르막을 탄다. 정선 땅인 신동읍 덕천리 제장마을과 평창 땅인 미탄면 마하리 문희마을을 연결하는 길목인 칠족령은 안부가 아니라 조그마한 봉우리의 갈림길이다. 왼쪽을 보면 동강 위로 치솟은 백운산 정상부가 훤칠하다. 백운산과 칠족령을 묶어 동강 12경 중 제4경으로 친다. 칠족령에서 우측으로 가면 '칠족령전망대'와 '하늘벽유리구름다리'로 갈 수 있지만 제장마을 방향으로 하산한다. 한동안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다가 갈림길을 지나면 길은 거짓말처럼 유순해진다. 고단한 다리에 평화가 깃든다. 10분 후 생태탐방로 안내판이 있는 임도 갈림길에 닿으면 산행은 끝난다. 정면에는 몇 겹인지 셀 수 없는 절벽의 파노라마. 부산 산꾼의 눈이 호사를 듬뿍 누리는 날이다. 왼쪽으로 5분쯤 내려서면 강 건너에 하늘에 닿을 듯한 절벽이 보인다. 제장마을 주민들은 이 절벽도 '하늘벽'이라 부른다. '하늘벽구름(유리)다리'가 있는 바세마을 건너편 하늘벽과 또 다른 벽이다. 왼쪽으로 틀어 제장나루 방향으로 걷다 보면 '1박2일 동강 편' 촬영지 안내판이 보인다. 날머리인 제장교(제장나루)까지는 5분이면 족하다. 동강12경 안내판이 있다. 산행로에는 샘터가 없다. 식수는 미리 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


    ◆ 떠나기 전에

    - '칠족령'은 옻칠 묻힌 개가 갔던 길서 유래

    백운산 칠족령은 칠목령으로도 불리는 해발 527m의 작은 봉우리 겸 고갯마루다. 동강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이름이 붙은 유래가 재미있다. 옛날 문희마을에 이 진사가 살았다. 그는 가구에 칠하려고 옻나무진액을 통에 담아 두었다. 어느 날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나와 보니 개가 통을 쏟아 놓고 없어졌다. 이 진사는 옻나무진액이 묻은 개 발자국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다 칠족령에 이르렀는데, 그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 한참을 머물렀다. 그는 개 발자국을 따라 길을 냈고 그 후로 사람들은 그 고갯마루 이름을 옻칠(漆), 발족(足) 자를 써서 '칠족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한편 칠족령에서 제장마을로 하산하지 않고 우측으로 가면 칠족령 전망대와 하늘벽(유리)구름다리를 거쳐 연포마을로 하산할 수 있다. 연포마을은 영화 '선생 김봉두'의 촬영지다. 추가로 2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만큼 더 아름다운 동강의 풍광을 즐길 수 있으니 해 볼 만한 산행법이다.



    ◆ 교통편

    - 중앙고속道 북단양IC 내려 태백 방향으로

    자가용을 이용한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거쳐 금호분기점에서 안동 영주 방향 중앙고속도로를 탄다. 북단양IC에서 내린 후 단양 매포 방향으로 우회전, 다시 평동삼거리에서 제천 원주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5번 국도다. 제천 시내 진입 직전 38번 국도와 만나면 태백 영월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영월읍을 통과, 태백 방향으로 20㎞쯤 가면 예미교차로를 만난다. 이곳에서 '동강, 백운산'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 고개를 넘으면 15분 후에 예미초교 고성분교를 지나고 나리재를 넘어 2㎞쯤 더 가면 강변길이 교행 가능한 1차로로 좁아진다. 동강을 가로지르는 점재교가 보이고 백운산 등산로 표지판을 따라 점재교를 건넌다산행 후 차량 회수를 하려면 4㎞ 정도 걸어야 가능하다. 제장교 건너 좌회전, 시멘트길을 따르면 20여 분 만에 산성민박 앞 삼거리에 닿는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30분쯤 걷는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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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향교.

    밀양향교는 고려 숙종5년인 1100년경 부북면 용지리에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02년 밀양부사 최기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와 다시 중건을 하였고
    그 당시 건축된 건물로 남아 있는 곳은 대성전으로
    향교 맨 뒤편 계단을 올라서면 굳게 문이 잠겨져 있어 내부를 볼 수가 없다.
    공자와 저명한 학자를 모시는 대성전은 여타 향교와 다른 배치를 두고 있다.
    향교는 전학후묘로 교육을 하는 건물은 앞쪽으로 배치를 하고
    제례를 올리는 건축물은 뒤쪽으로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밀양향교는 교육기관과 제례의 건물을 동서로 나란히 배치를 하였다.

    학문을 탐구하는 명륜당 좌우로 일상생활을 하는 동,서재를 두어 교육을 담당하며
    대성전은 제례를 올리는 기능을 하도록 하였다,
    1820년 교궁이건기(校宮移建記) 기록을 보면 대성전의 위치가 낮아 큰 인물이 배출되지 않아
    위치를 옮겼다는 기록이 있으며 대성전 이외의 건물은 1821년 부사 이현시에 의해 중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밀양향교는 영남지방에서는 진주, 경주향교와 함께 규모면에서는 큰 향교이다.
    정문의 풍화루를 비롯하여 부속건물들이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조선후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향교가 있다하여 교동으로 불리며 향교 주변에는 많은 양반들과 주민들이 마을을 이루는데 여기 밀양교동에고 밀성손씨 교동파가 세거를 이루어 마을을 형성하였다.







    학문을 연마하는 명륜당
    풍화루 내부 모습으로 밀양학교는 물론이고 전면으로는 마을의 모습과 아북산, 아동산, 밀양읍성의 모습과 왼편의 추화산도 볼 수 있는 곳에 위치를 하고 있다.



    서재로 유생들의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공자와 성현들을 모시는 곳으로 1602년 건축된 건물인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 앞의 은행나무


     동재건물로 유생들의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찾아가는 길

    밀양역 또는 밀양시외버스 터미널에서는 교동가는 시내버스가 자주 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청도 밀양방면 좌회전을 하면 긴늪사거리로 직진을 하여 밀산교를 건너면 교동이다. 밀양향교는 도로를 따라 춘복을 지나 밀양시립박물관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밀양향교 입구이다.
    문의전화:055)354-5872,359-5637(문화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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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봉사

    신라시대 때 신라의 5대 명사찰 중 하나로 773년인 혜공왕9년에 법조라는 고승이 영남사 부속 암자로 창건을 하였는데 혜공왕이 법조로부터 받은 불은을 갚기 위해 가람을 짓고 무봉암으로 했다는 전설이 있다. 처음 출토 될 때는 불상 뒤의 광배, 대좌가 없던 상태로 영남사 터에서 나왔고 광배와 대좌도 인근에서 찾아 서로 맞추어 무봉사에 안치를 하였다. 석조여래좌상은 전체적으로 볼때 통일신라후기의 불상으로 보고 있다. 영남루가 있는 아동산은 흔히 무봉산으로도 부른다. 천년의 세월을 무봉사는 밀양시를 휘감고 나가는 밀양강에서 그 자리를 지켰다. 강물에 비치는 무봉사의 모습은 어떨까?. 주변의 영남루와 함께 무봉사는 많은 사람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사찰이다. 밀양은 3대 신비가 있다. 남명리 얼음골의 시례빙곡, 나라의 변고를 알리는 땀흘리는 표충비와 만어사의 경석에서 나는 쇳(종)소리를 밀양의 3대 신비라 한다.  그러나 무봉사의 태극나비를 포함하여 밀양의 4대신비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무봉사는 석조여래좌상도 유명하지만 태극나비로 더욱 유명하다.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만 이곳 무봉사에 나타난다, 이 나비는 날개에 태극문양이 있다 하며 현재 밀양시립박물관에서 그 나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무봉사 석조 여래좌상

    보물 제493호 소재지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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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연정

    월연정은 담양의 소쇄원과 필적할만한
    조선시대의 정자로 양반들의 거처로 사용을 하는 정자로 지었다.
    중앙정부의 관료에 등용되었다가
    당파싸움에 염증을 느껴
    모든 관직을 버리고 낙향을 하여
    고향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정자를 짓는 일이다.


    월연정은 기묘사화에 염증을 느낀 월연(1483~1536) 이태선생이 1520년에 모든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월영사 터에 지은 정자인데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버린 것을 1757년에 그 후손인 이지복에 의해 중수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여러번 중수를 하였는데 월영대와 쌍경당은 작은 계곡에 걸린 다리를 두고 두 개권역으로 구분을 하였다. 좌측은 쌍경당과 우측은 월연대 누각으로 쌍청교를 두고 두 개권역을 하나로 합하여 놓았다. 주변의 자연을 잘 활용하여 지은 정자인 월연대는 작은 돌을 축대로 이용하여 기단을 높이 올려 정자를 만들었고 한칸의 작은 누각은 사방으로 작은 마루를 돌려 놓았다. 



    강물과 달이 너무 맑아 마치 거울같다는 쌍경당과 그 옆 월연대 아래 “한림이공대”란 돌출된 바위에 한림학사를 지낸 이태선생이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강물에 비친 달이 너무나 투명하여 마치거울에서 보는 것 처럼 아름답다 느꼈을까?. 그래서 어지러은 정치판을 버리고 낙향하였던 것을 잘하였던 생각이라 하였을까. 밀양강을 보며 북천과 동천이 합하여 남천강을 이루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여생을 정리하였을까. 지금도 그곳 이공대 위에는 백골송으로 유명한 백송이 자리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옛 백송은 죽고 그 뒤 뿌리에서 다시 올라온 백송이 늠름한 기상으로 월연정을 지키고 있다.

    월연정 주위를 감싸고 있는 키 큰 소나무와 은행나무, 그리고 오죽등 하나하나가 월연정과 어울려 한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특히 베롱나무에 꽃이 필 때는 월연정은 더욱 아름다워 진다. 붉게 물든 월연정이 밀양강의 월연에 붉은 색 물을 뚝뚝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월연대는 밀양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월연정, 재약산 억새, 시례호박소, 위양못 이팝나무,  종남산 진달래, 영남루 야경, 만어사 운해, 표충사 사계인 밀양8경중 4경으로 밀양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강건너 살내마을 강변유원지에서 바라본 월연정. 베롱나무에 꽃이 피면 더욱 월연정은 아름다움에 치를 떨것이다.

    최근인 2006년에 만들어진 월연, 옛날의 월연은 밀양강인데 그 큰 아름다움을 담기에는 지금의 연못이 너무 작은 것은 아닌지... 




    '똥개'의 용평터널
    1905년 1월1일 개통된 경부선 열차로
    개통될시에는 단선으로 열차가 달렸지만
    그후 복선으로 바뀌면서 이설되어 터널만 남게 되었다.

    현재는 자동차와 사람이 통행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폭이3~4m 길이가 400m로 차 한대가 겨우 다닐 수 있어
    서로 입구에서 반대편 차를 확인하고 들어서야 한다.
    터널속을 걸어가는데 차가 올시에는 한쪽에 붙어 차를 보내고 걸어면 되고
     터널은 중간에 하늘로 구멍이 뚫여 있어 두개의 터널로 이루어져 있다.
    중간쯤에 오면 1905년의 그때 그모습인
    돌과 천장에는 벽돌로 이루어져 옛모습을 옅볼 수 있다. 
    그래서 이 터널을 용평터널 또는 백송터널이라 하기도 하며 최근에는 정우성의 '똥개' 전설의 고향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 이기도하다.






















    쌍경당










    월연대


    쌍청교


    월연정의 백송

    찾아가는 길
    밀양역 또는 밀양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영남루옆 내일동주민센타 앞에서 내려 밀양관원좌측에 주차된 마을버스를 이용한다.(2시간간격)
     승용차 이용시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밀양톨게이트를 나와 청도,밀양방향 좌회전 후 긴늪사거리에서 직진하여 밀산교를 건넌후 바로 우측 안인리 방향으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굴다리를 통과한다. 직진을 하면 영천암표지석과 만나고 좌회전한후 작은 다리를 건너면 우측으로 오연정의 빗돌이 있고 모례마을을 지나면 용평터널, 터널을 빠져 나오면 바로 우측으로 월연정가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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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이 생기기 이전 '영남'이라는 이름을 단 장소 가운데 국민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무엇일까. 물론 영남권, 영남지방 등의 광범위한 지역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추측건대 그것은 단연코 밀양의 '영남루(嶺南樓)'가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 건국 훨씬 이전인 조선시대 중반 이후부터 영남루는 진주 남강의 촉석루,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으로 명성을 날렸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누각을 찾아 밀양강과 용두산 줄기, 종남산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학문과 삶의 길, 정세 등을 논했다. 그래서일까. 영남루는 밀양 8경 가운데 으뜸인 제1경으로 불린다. 오늘날 영남루는 밀양 여행의 1번지로 자리잡았을 뿐 아니라 주변에 산재한 수많은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 밀양읍성 추화산성 너머 손씨 고택까지 가볍게 9㎞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이 추화산으로 오르고 있다. 산성과 봉수대가 있는 추화산 오름길은 가파르긴 하지만 갈 지(之)자 모양의 옛길을 닮아 큰 힘 들이지 않아도 걸을 수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이번 주는 지난주에 이어 제12-1코스 하편으로 영남루에서 시작해 밀양향교까지 가는 길을 엮었다. '하늘이 내린 축복의 땅'이라고 하는 밀양의 어제와 오늘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짧지만 알찬 걷기 코스다. 옛날부터 밀양 읍내를 지켜 온 두 개의 산성 성곽을 따라 걷기도 하고 천년고찰 무봉사와 조선시대 정절녀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아랑의 전설을 엿보기도 한다. 또 영남권의 대표적인 고택 마을인 교동 손씨 고택을 찾아 옛 사람들이 꾸며놓은 고건축물과 돌담길의 정취도 느낄 수 있어서 자녀들과 함께 걸어도 교육적으로 썩 괜찮은 길이다.

    총거리는 9㎞ 남짓이고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따지면 3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영남루, 밀양관아, 아랑각, 무봉사, 밀양읍성, 추화산 봉수대와 산성, 충혼탑, 밀양시립박물관, 교동 손씨 고택, 향교까지 여유있게 찬찬히 둘러 보려면 5시간 정도 잡으면 넉넉하다.

       
    밀양시 교동 손 씨 고택 마을의 흙돌담 골목길에 옛 정취가 물씬하다.
    제12-1코스 상편의 종착점이었던 밀양교 부근 밀양시 내일동 영남루 앞에서 우선 밀양관아(密陽官衙)로 향한다. 북쪽으로 인도를 따라 3분쯤 가면 내일동사무소 건너편에 포졸 2명의 밀랍인형이 보초를 서는 밀양관아가 있다.


    다시 영남루 입구 광장으로 돌아가서 영남루를 바라볼 때 오른쪽인 1시 방향 강변길로 내려선다. 석화(石花)와 아랑각을 먼저 본 후 영남루로 오르기 위해서다. 곧바로 석화가 나타난다. 동심원을 그리는 듯한 돌의 모양이 국화꽃을 닮았다고 해서 석화라 불리는 이 돌들은 영남루 경내 안팎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자연 현상이다. 석화 안내판 바로 옆에는 아랑각이 있다. 조선 명종 때 밀양 부사 윤 씨의 딸인 아랑이 영남루에 달구경 나왔다가 유모와 밀통한 괴한에게 겁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자결했고, 그 이후 주민들은 그녀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사당인 아랑사에는 영정이 모셔져 있고 왼쪽 쪽문으로 나가 보면 '사건의 현장'을 알려주는 비석이 있다. 지금도 밀양 최대의 축제인 '아랑제'가 열리고 있고 아랑아가씨까지 선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랑이 밀양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능히 짐작할 만하다.


    ◇ 아랑각 석화 천진궁 박시춘옛집까지 이야기거리 즐비

       
    아동산이라고도 불리는 밀양읍성 성곽 위를 걷는 둘레길 개척단.
    아랑각에서 계단을 오르면 왼쪽에 보물 제147호인 영남루가 보인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 찬찬히 건물도 돌아보고 남쪽의 밀양강과 일자봉(산성산) 용두산 줄기, 종남산 일대와 밀양시가지를 감상하노라면 신선이 따로 없다. 스피커에서는 지역의 민요인 '밀양아리랑'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영남루 뒤의 천진궁(天眞宮)을 둘러보고 밀양이 낳은 한국 가요계의 거목인 작곡가 박시춘 선생(1996년 작고) 생가 복원지도 돌아 본 후 무봉사(舞鳳寺)로 향한다. 신라 혜공왕 9년(773년) 법조 대사가 현재 영남루 자리에 있던 영남사의 부속 암자로 건립한 무봉사는 보물 제493호인 석조여래좌상도 유명하지만 '태극나비'로 더욱 유명하다. 날개에 태극무늬가 그려진 이 나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무봉사에서만 발견되는 것인데 국가에 큰일이 있을 때만 나타난다고 전해온다. 표충비, 얼음골, 만어사 경석 등과 함께 '밀양 4대 신비'로 통한다.


       
    밀양교에서 바라본 영남루 아래로 밀양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무봉사를 나와 일주문 우측의 샛길로 오르면 사명대사 동상을 만나고 조금 더 오르면 아동산에 위치한 밀양읍성이다. 사위가 탁 트인다. 날씨 맑은 날에는 동쪽의 영남알프스 능선까지 보인다. 성곽을 따라 올라 망루 겸 정자인 무봉대에서 심호흡을 한 후 동문고개다. 일단 도로를 건넌 후 오른쪽으로 30m쯤 가서 왼쪽 작은 마을 앞 공터 쪽으로 꺾는다. 샛길이 나오고 텃밭 우측 길을 따라 5분만 가면 다시 왕복4차로인 큰 도로를 만나는데 건너편에 '대공원' 방향을 가리키는 조그마한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쪽에 조금 떨어진 횡단보도를 건너 이정표에서 대공원 방향으로 산길을 탄다.

    첫 갈림길에서 왼쪽 밀성 박씨 묘 방향으로 간 후 무덤 뒤 능선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 길을 택한다. 공동묘지 옆 길을 따라 살짝 내리막을 걸으면 작은 임도 사거리가 나온다. 왼쪽에는 화장장, 직진하면 대공원 방향이지만 우측으로 임도를 따른다. 5분쯤 가면 수십 개의 둥치가 세월이 가면서 서로 엉겨붙은 것 같은 특이한 모양의 커다란 모과나무를 지난다. '밀양 독립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을강 전홍표 선생의 묘소 안내판을 통과한다. 추화산성(推花山城)으로 오르는 길이다. 솔 향기 짙은 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해발 240m인 추화산 정상 봉수대. 추화산은 신라시대에 이 산의 이름을 따서 밀양 일대를 추화군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지역의 역사와 함께 한 산이다. 특히 추화산성은 가야와 신라, 후백제와 신라 등이 서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반증해 주는 유적이다. 봉수대에서 내려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산성을 한 바퀴 도는 길을 걷는다. 벤치 우측 길로 접어 들어 임도를 따라 5분쯤 가면 우측에 성곽 복원물이 있는 갈림길. 왼쪽으로 돌아서 계속 임도를 따른다. 10분 후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일단 왼쪽으로 100m쯤 올라가서 왼편에 있는 성내 우물을 본 후 다시 돌아온다. 우측 내리막을 따라 가면 영천암 입구 삼거리. 우측에 영천암이 있는데, 물 맛 좋은 샘터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7호인 백운사 범종이 있다.


    ◇ 박물관 독립운동기념관까지… 자녀 동반 코스로 적합


    다시 삼거리로 돌아 나와 포장길을 따라 200m쯤 내려서면 왼쪽으로 살짝 벗어나는 흙길을 만난다. 포장길을 버리고 이 흙길을 택한다. 3분 후 무덤 몇 개가 있는 제사고개에서 내리막을 타면 7분 후 충혼탑. 최근에 완공된 이 충혼탑은 한국전쟁과 월남전 등에서 산화한 이 지역 출신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곳이다. 충혼탑에서 5분 거리에 밀양시립박물관이 있다. 밀양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유적과 근현대의 유적들, 밀양 백중놀이를 비롯한 민속놀이, 약산 김원봉을 비롯한 항일독립투사들의 기록 등이 소중하게 전시돼 있는 곳이니 천천히 둘러볼 만하다. 박물관 앞 뜰에는 바닥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며 인근 어린이들의 여름철 놀이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박물관 정면 도로 우측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건넌 후 200m쯤 가면 교동 손 씨 고택에 닿는다. 우측의 운치 그윽한 돌담길을 따라 들어가면 크고 작은 고택들이 길손을 맞아준다. 그 중 '열두대문'이라는 한정식집으로 운영되고 있는 고가는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한 때 99칸에 달하는 대 저택이었다. 조선 숙종 때인 17세기 중반 손성증이 최초로 지었다고 전해온다. 손 씨 고가 뒤에는 밀양 향교가 있다. 1602년 건립된 밀양 향교는 대문 역할을 하는 풍화루(風化樓)와 대성전 등이 있는데, 크기가 유독 커서 경주향교 진주향교와 함께 영남 지역에서는 가장 큰 향교로 손꼽힌다. 이 향교로 인해 동네 이름도 교동이 됐다.



    향교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문이 있는데 이 문을 지나서 2분쯤 골목길을 걸어나오면 교동농협 앞 버스정류소다. 이곳에서 코스를 마무리한다.


    # 교통편

    - 밀양역에서 영남루 행 시내버스 수시로 있어

    부산역에서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열차로 밀양역까지 간다. 무궁화호 첫 차는 오전5시10분에 있고 20~4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3분 소요, 3800원. 밀양역 앞에서 영남루 가는 시내버스는 수시로 있다. 1, 1-2, 5, 6번 등 다양하다. 10분 소요. 코스 종점인 교동농협앞 버스정류소에서도 밀양역 행 시내버스가 자주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에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타고 긴늪사거리에서 직진, 밀산교를 건넌 후 표지판을 따라 영남루 앞으로 가면 된다.



    # 떠나기 전에

    - 답사 후 '똥개' 촬영지 삼문동 '추억의 거리' 가 볼만


    '영남제일루'라고도 불리는 영남루는 원래 밀양의 손님들을 머무르게 했던 건물이다. 최초 건립은 고려 말인 1365년 밀양 군수 김주가 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조선시대 들어 여러 차례 중건을 거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84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거대한 건물인 영남루는 좌우의 건물과 복도 또는 계단으로 연결돼 더욱 웅장하면서도 조화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특히 천정에 조각된 문양과 용의 몸통을 형상화 한 대들보, 용 그림, 네 귀퉁이의 남주작 북현무 좌청룡 우백호 그림 등이 모두 빼어난 예술 작품을 이룬다. 이 건물에 특히 용 조각과 그림이 많은 것은 옛날 사람들이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물을 화마로부터 지키기 위해 물과 가까운 용을 많이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믿거나 말거나' 속설도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연인들이 영남루와 아랑각 일대에서 데이트를 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속설 때문에 요즘도 젊은 연인들은 영남루에서는 데이트 하기를 꺼린다고 한다. 시집을 가지 못한 아랑 낭자의 심술때문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코스 탐방을 마치고 시간이 남는다면 영화 '똥개'의 주 촬영지인 삼문동 '추억의 거리'를 방문해 볼 만하다. 골목마다 1970년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 밀양 천진궁의 영욕

    - 역대 시조王 위패 모신 성소, 일제가 헌병대 감옥으로 악용
    - 독립운동가·우국지사 고초 겪어
    - 광복 후 밀양시민 노력으로 천진궁으로 이름바꾸고 복원


       
    경남 유형문화재 제 117호로 지정된 밀양시 소재 천진궁.
    밀양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영남루. 이곳을 방문하면 반드시 보게 되는 또 하나의 오래된 건축물이 하나 있다. 영남루와 뒷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천진궁(天眞宮)이 바로 그것이다. 1665년(조선 현종 6년)에 건립됐으며 현재 경남 유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된 천진궁 건물은 우리 민족이 건설했던 역대 국가 시조 왕들의 위패를 모셨던 성스러운 곳이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치욕적인 수모를 겪는 등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당초 이 건물은 시조 왕들의 위패를 모신 공진관(拱振館)의 부속 건물이었다가 1722년부터 공진관을 대신해 위패를 모신 사당 겸 객사 건물로 이용됐다고 한다.

    위패의 배치는 남쪽을 향해 봤을 때 중앙에 민족의 시조왕인 단군왕검의 위패를 두고 왼쪽 벽에 부여와 고구려, 가야 시조왕과 고려 태조의 위패를 봉안했다. 또 오른쪽 벽에는 발해와 백제 신라의 시조왕 및 조선 태조의 위패를 둔 성스러운 장소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 일본의 행패가 시작되면서 수난을 겪게 된다.

    조선을 침략하고 강제로 이 땅을 빼앗은 일본 측은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해 이곳에 모셔져 있던 역대 시조왕들의 위패를 지하 땅에 묻어버리고 헌병대 감옥으로 이용한 것이다. 숱한 우국지사와 항일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서 고초를 겪었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광복 이후 공진관의 복원을 위한 밀양 시민들의 노력이 펼쳐졌다. 그리고 1957년에 건물 이름을 천진궁으로 바꾸고 정문을 만덕문으로 지어 시조왕들의 위패를 다시 모심으로써 민족 정통성 확립을 위한 노력이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된다. 대리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가진 주심포식 건물인 천진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웅장한 위상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건물의 건축적 의미를 떠나 일제에 의한 고난의 역사를 되새기는 것 또한 둘레길을 걷는 이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매년 봄에 어천대제(음력 3월15일), 가을에는 개천대제(음력 10월3일)가 열린다.

    한편 영남루와 밀양읍성 망루 사이에 있는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생가 복원지 안내판을 읽다 보면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914년에 태어나 1996년 작고할 때까지 애수의 소야곡, 전우야 잘자라, 굳세어라 금순아, 전선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한국인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감정을 달래 준 숱한 명곡을 남긴 박 씨지만 '친일 작곡가'라는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에 작곡한 아들의 혈서, 목단강 편지, 결사대의 안해, 혈서지원 등 단 4곡의 노래로 인해 2005년 9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인사 명단 발표 때 그의 이름이 포함됐다. 한국 가요계의 거목으로서 대중가요 작곡가 최초로 1982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을 서훈받기도 한 그였지만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천진궁을 코앞에 둔 그의 옛집 앞에 서면 누구라도 착잡한 심정을 가눌 수 없을 것이다.

    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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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연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5호

    소재지;경상남도 밀양시 교동

    동창천과 청도천이 만나 밀양강을 이루는데 상동의 빈지소를 지나 빚어 놓은 정자가 오연정이다. 밀양시 교동의 밀성손씨 큰집인 오연정은 추천 손영제(1521~1588)가 명종때 문신으로 사헌부지평, 성균관전적등의 벼슬에 올랐고 예안 현감때는 퇴계이황에게 정치와 학문적으로 서로 많은 의견을 나누는 사제지간이었다. 예안현감 재임시 도산서원 건립에도 힘을 보태었다. 그 후 고향으로 낙향을 하여 지은 별서 건물로 추천은 밀양강의 북천 추화산 언덕배기에 아담한 정자를 짓고 오연정이라 하였다. 정자앞의 북천을 추천강이라 부르고 오연정이 서 있는 그 아래를 오연이라 불렀다. 

    상동의 북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산외면의 동천에서 돌아오는 강바람에 오연의 강물은 춤을 추고 추화산에 드리워진 노거수는 오연정의 자취를 감추어 유심히 보지 않으면 찾을 수 가 없다. 오연정을 오르는 길은 좌우로 느티나무, 소나무의 사열을 받으면서 올라선다. 짙은 나무 그림자에 의해 따가운 여름의 햇살도 차고 들어오지 못할 것 같으며 그속에 있는 오연정이 운치 또한 있다. 입구에는 수백년은 됨직한 키큰 은행나무가   출입문을 지키고 그 문을 들어서면 'ㄷ'자형의 관리를 위한 건물이 자리한다. 중문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고 그 문을 들어서면 먼저 넓은 앞뜰의 정원이 나타난다. 잔듸의 푸르름과 누각앞의 배롱나무가 녹색으로 치장을 하고 2층의 누각건물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편의 드라마속 사극의 전경이다. 뒤쪽으로 돌아가면 우측 한켠에 심어진 단풍나무가 가을에는 오연정과 어우러저 멋스러움을 더 할 것 같다.



    건물은 임진왜란때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다시 중건을 하였지만  1717년 다시 화재로 인해 완전히 소실되었다. 1771년 추천의 8세손인 행남 손갑동에 의해 다시 중건을 하였다. 순조때는 경내에 모례서원을 두었는데 고종때인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서원은 훼철되고 오연정만 남았다. 1935년 다시 화재로 인해 일부 불타버린 것을
    1936년 복원을 하였다. 그때의 위치 보다 조금 더 올려 후손들에 의해 더욱 확장을 하였고 1997년에 와 추천의 문중과 당국이 대대적인 보수를 하여 현재 정비가 가장 잘된 정자중 하나이다.
     
    ‘ㄱ'자 형의 돌출부에 누마루를 두었고 누마루 뒤와 맨 우측으로 온돌방을 넣었다. 문이 달린 중앙의 2칸은 대청마루를 넣었다. 사실 밖에서 보면 대청과 방이 구분이 안갈 정도로 문이 붙어 있으며 전면으로는 ’ㄱ'자형이만 뒷면은 ‘1’자형으로 뒤와 우측 누마루 쪽으로 작은 마루를 돌려 놓아 앞면과 뒷면이 구분이 안갈 정도로 우수한 건축물이다. 1930년대 건축물이지만 조선후기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모례서원 서원터
    오연으로 연못안에 오리들만 꽥꽥 하고 다니고 있다.

    찾아가는 길
    밀양역 또는 밀양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영남루옆 내일동주민센타 앞에서 내려 밀양관원좌측에 주차된 마을버스를 이용한다.(2시간간격)
     승용차 이용시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밀양톨게이트를 나와 청도,밀양방향 좌회전 후 긴늪사거리에서 직진하여 밀산교를 건넌후 바로 우측 안인리 방향으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굴다리를 통과한다. 직진을 하면 영천암표지석과 만나고 좌회전한후 작은 다리를 건너면 우측으로 오연정의 빗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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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흥사 경내에서 본 두륜산 암봉. 오른쪽부터 두륜봉 만일재 가련봉 노승봉(능허대). 전체를 하나의 그림으로 본다면 부처님이 누운듯한 와상(臥像)의 형상을 하고 있다.


    두륜봉으로 오르는 길에 만나는 구름다리. 자연석인 구름다리는 얼핏 코끼리 코를 닮았다.


    북암의 마애여래좌상.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땀을 흘린다고 한다.

    한반도 땅끝 명산올라
    새로운 시작을 告하다
    가련봉 등 8개봉 천년고찰 대흥사 병풍처럼 감싸
    일지암 샘물은 초의선사 다도 비법 그대로 녹아
    가파른 암릉길 아래 펼쳐진 다도해는 한폭 그림


      

       

    산행팀은 국토의 최남단, 땅끝이 있는 전라도 해남 땅의 두륜산을 택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는 지극히 평범한 경구가 어쩌면 이 시점에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두륜산이란 이름은 백두산(白頭山)의 '두'자와 중국 곤륜(崑崙)산맥의 '륜'자의 조합. 이 속에는 중국 곤륜산맥의 줄기가 동으로 흘러 백두산을 이루고, 그 맥이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을 거쳐 이곳까지 이어졌음을 짐작케 해준다.

    지난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해발 703m의 두륜산은 제법 만만찮은 암봉이다. 영암의 월출산이 남성적이라면 두륜산은 상대적으로 부드러워 여성적이다.

    산 밑에서 바라보는 스카이라인도 멋있고 산 위에 올라 걷는 맛도 괜찮다. 암릉길에서 펼쳐지는 다도해의 황홀한 풍경은 한 장면도 놓치기 싫은 한 폭의 그림같다.

    뭐니뭐니해도 두륜산의 자랑은 신라 천년고찰 대흥사를 품안에 안고 있다는 점. 대흥사는 영주 부석사, 순천 선암사, 청도 운문사 등과 함께 관광객이 많기로 유명한 아름다운 절. 명산에 명찰, 이 이상의 궁합도 없는 듯하다.

    두륜산은 대흥사를 중심으로 주봉인 가련봉을 비롯, 노승봉(능허대) 두륜봉 고계봉 도솔봉 혈망봉 등 8개의 봉우리가 원형을 이루고 있다.

    산행은 종주코스보다는 대흥사에서 출발하는 원점회귀 코스가 인기. 대흥사~표충사~동국선원(대광명전)~일지암~만일재(헬기장)~구름다리~두륜봉~만일재~가련봉~노승봉(능허대)~헬기장~오심재(헬기장)~북암~대흥사. 4시간 정도 걸린다.

    자동차가 절까지 들어가지만 매표소를 지나면 만나는 옛 주차장에 차를 세워 산행을 시작하자. 핏빛 동백이 벌써 꽃망울을 터뜨린 아름다운 숲길을 조금이나마 만끽하기 위해서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대흥사 경내. 정면에 암봉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오른쪽에서부터 두륜봉 가련봉 노승대. 찬찬히 들여다보면 부처님이 누워 있는 형상이다.

    경내의 연못인 무염지 앞 등산로 팻말을 따라 간다. 서산대사를 기리기 위한 유교식 사당인 표충사와 동국선원을 지나면 첫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북암, 오른쪽은 일지암 가는 길. 300m 거리인 일지암은 예상외로 급경사길. 이곳은 다성(茶聖) 초의선사가 40여년간 머물며 다도를 중흥시킨 우리나라 다도의 요람. 일지암 편액이 걸린 초가 뒤편에는 초의선사 때부터 써 온 샘이 있다. 물맛을 꼭 보자.

    일지암을 지나 동백숲을 3분 정도 걸으면 두륜봉 가는 길과 만난다. 이후 30분에 걸쳐 세 번의 갈림길을 만난다. 셋 다 두륜봉 방향으로 간다. 마지막 갈림길에서 만일재까지는 10여분. 헬기장인 만일재에 서면 정면에 해남 벌판과 바다 건너 완도땅이 다가온다. 만일재를 기준으로 오른쪽은 두륜봉, 왼쪽은 가련봉 노승봉으로 이어진다. 산행팀은 두륜봉에 다녀온 후 가련봉 노승봉으로 간다.

      



    두륜봉 가는 길은 만만찮다. 암봉 우측으로 빙돌아 뒤쪽으로 오른다. 가파른 절벽으로 이뤄져 쇠난간 길과 돌계단의 오르내림, 그리고 철계단과 밧줄에 의지해야 한다. 명물인 구름다리도 만난다. 자연석이 이뤄놓은 이 다리는 무지개형이라 일명 홍교(虹橋)라 불리지만 얼핏 보면 코끼리 코를 닮았다. 직접 올라갈 수도 있다.

    두륜봉(630m)까지는 대략 20분. 제법 너른 암반인 정상에 서면 남해안의 섬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날이 맑은 경우 완도의 숙승봉 너머 제주의 한라산이 보인다고 한다.

    만일재에서 가련봉 노승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암봉들의 등줄기를 밟으며 다도해의 절경과 해남땅의 산줄기를 감상하는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바위와 바위를 연결하는 쇠밧줄과 쇠손잡이 쇠발받침대를 이용하지 않으면 전진이 안되는 꽤 위험한 코스다. 손잡이와 발받침대는 꼭 필요한 곳에 설치돼 산행에 큰 도움이 된다.

    첫 암봉을 힘겹게 올랐지만 정상은 바로 옆 암봉이란다. 가련봉까지는 만일재에서 30분 정도. 눈 앞의 노승봉 뒤로 암봉인 주작산과 덕룡산, 그 뒤로 백련사가 있는 강진의 만덕산, 그 우측으로 장흥의 천관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대흥사는 왼쪽 저 멀리 미니어처처럼 보인다.

    아슬아슬한 암릉의 연속. 능허대라 불리는 노승봉(685m)까지는 15분. 40명이 너끈히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반석이 자리잡고 있다. 정면에 보이는 헬기장이 오심재, 우측 숲 사이 도로 부분이 오소재. 오소재를 기준으로 왼쪽은 해남읍, 오른쪽이 완도 방향. 흔히 오소재를 산행기점으로 삼기도 한다.

    하산은 능허대 뒤 절벽을 돌아 내려간다. 바위가 만든 좁은 터널을 지나면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내려갈 수 없는 난코스를 힘겹게 통과한다.

    이제부터 오솔길. 너무 힘든 코스를 지나온 탓인지 콧노래가 절로 난다. 헬기장을 지나면 오심재. 역시 헬기장이다. 산행은 거의 막바지.

      




    왼쪽으로 10분 정도 오솔길을 걸으면 북암. 예부터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심하게 땀을 흘린다는 마애여래좌상(보물 제48호)을 빠뜨리지 말자. 계단을 내려와 대웅전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어른 키보다 훨씬 큰 산죽 길과 너덜길을 지나면 일지암과 북암 갈림길. 산행 중 만난 첫 갈림길이다. 여기서 대흥사 경내까지는 10분, 경내에서 옛 주차장까지도 역시 10분 걸린다.


    # 교통편

    - 목포~해남~대흥사 이동…버스 당일치기 불가능


    부산에서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순천IC~여수 벌교 17번 국도~지하도~2번·17번 국도 벌교 여수~2번 국도 벌교 낙안민속마을~순천 청암대학에서 좌회전~벌교~보성~장흥~완도 해남 강진~진도 해남(호산삼거리) 직진~두륜산 대흥사~경찰서 진도 완도~대흥사 827번 좌회전~대흥사 순.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부산 서부터미널~목포공용터미널~해남터미널~대흥사 순으로 이동해야 한다. 당일치기는 불가능하다.

    # 떠나기전에
    - 고계봉~오심재 산길 폐쇄, 인근까지 케이블카

    애초 산행팀은 대흥사에서 출발, 일지암~북암~오심재~노승봉~가련봉~만일재~두륜봉을 거쳐 진불암 쪽으로 하산하는 5시간 코스를 타려고 했었다. 이 코스는 가장 널리 애용되는 산길. 문제는 시간이었다. 부산에서 아침 일찍 출발, 부지런히 달렸지만 대흥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30분. 간단한 아침 요기를 포함, 무려 4시간30분 정도 걸렸다.
      


    산행팀은 첫 갈림길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초의선사의 일지암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이후 북암으로 이어지는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참 가서야 북암으로 가는 길이 보였다. 이미 시간은 제법 흐른 상태. 다시 한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는 짧아 오후 5시쯤이면 어두워지는 점을 고려해야 했다.

    산행팀은 두륜봉으로 올라 만일재로 되돌아온 후 가련봉 노승봉 오심재 북암으로 내려오는 역순을 택했다. 결과론이지만 시간은 제법 남았다. 초행자의 기우였던 셈.

    두륜산에는 지난 2003년부터 운행되는 케이블카가 있다. 대둔산 집단시설지구인 유스호스텔 입구에서 출발, 1.6㎞를 오른다. 고계봉 인근에 닿는다. 고계봉 정상까지는 10분 거리. 정상엔 전망대 건물이 서 있다. 산행중 능선상에 나란히 보이던 2개의 건물이 바로 전망대와 케이블카 탑승장이었던 셈. 왕복 6800원. 편도요금을 물어보니 왕복뿐이란다. 고계봉에서 오심재로 이어지는 산길은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영원히 폐쇄되었다.


    /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51 이창우 산행대장010-3563-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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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산행지는 거창 장군봉. 해발 1000m 이상의 고봉만 25개나 되는 '산의 고장' 거창에서 사실 장군봉은 명함 내밀기가 약간은 쑥스럽다. 가조 벌판을 둘러싸고 있는 가조면에서도 우두산(별유산)이나 의상봉 미녀봉 등의 명성에 가려 역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 실상은 판이하게 달랐다. 암봉 자체도 기암절벽의 빼어난 근육질을 갖추고 있는 데다 장군봉에서 바라보는 이웃 암릉 또한 거칠지만 힘이 넘친다. 여기에 인적 드문 호젓함까지 갖췄으니 금상첨화라 아니할 수 없다.

    하산길의 암릉길 또한 여느 명산 못지않게 수려한 데다 날머리로 향하는 마지막 산길 또한 예스럽고 운치 있어 깔끔하게 산행이 마무리된다.




    산행은 가조면 사병리 병산마을~고려삼베 사무실~묘지(너른터)~장군바위~장군바위 전망대~추모비~거북바위~돌탑봉~장군봉~장군재~888봉(삼각점)~작은바리봉~고견사 주차장 갈림길~밀성 박 씨 납골당~가조면 수월리 용당소 마을 순. 걷는 시간만 4시간10분 정도이며 길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들머리인 밀양 변 씨 집성촌 병산마을 입구 사병리 병산버스정류장에 내리면 '병산마을의 유래'라 적힌 안내판이 서 있다. 포장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사거리에 닿는다. 우측 벽면에 '협동창고 병산새마을회관'이라 적힌 글귀가 보인다. 왼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길 좌측의 암봉이 보해산, 그 왼쪽 뾰족봉이 금귀봉이다. 춘당 변중량의 문집 춘당집과 춘정 변계량의 문집 춘정집이 보관된 산천재를 지나면 갈림길. 운치있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도열해 있는 우측, '고려삼베' 방향으로 향한다. 곧 '고려삼베' 사무실을 지나 포장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간다. 정면 저 멀리 장군봉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이내 갈림길. 우측으로 발길을 옮기면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거친 임도 수준의 길이 기다린다. 4, 5분 뒤 능선으로 치고 오르기 위해 우측 송림으로 오르며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30m 전방은 가시오가피밭.

    잠시 송림길을 가로질러 등산로와 만나면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오른쪽은 능선의 끝지점인 '고려삼베'에서 올라오는 길. 부드러운 흙길에 솔가리가 두텁게 덮여 마치 융단을 밟는 기분이다. 산길은 자연스레 우측으로 휘면서 폭이 좁아지고 된비알로 변한다. 동시에 좌측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앞서 본 금귀봉과 보해산 그리고 보해산의 들날머리인 용산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면에 엄청나게 큰 급경사 바위가 앞을 가로 막는다. 오르려고 시도해 봤지만 불가능해 좌측으로 우회한다. 토끼벼루 같은 소로이다. 곧 갈림길. 우측으로 올라 집채만한 바위를 힘겹게 오르다 보니 자연스레 좌측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일순간 산사태의 상흔이 뚜렷한 지점에 닿는다. 나무가 쓰러져 있고 절벽에 금이 가 있어 약간의 물리적 충격만으로 사태가 재발할 것 같은 상태이다. 다행히 6, 7m쯤 못가 우측으로 길이 열려 있다. 이후 바위길을 치고 오르면 양지바른 묘지에 닿는다. 묘지 좌측 바위에 서면 정면 보해산을 기점으로 우측 뒤로 삼봉산 불영산 흰대미산 양각산 수도산이, 뾰족봉인 금귀봉 왼쪽으로 황석산 괘관산, 오른쪽으로 금원 기백산이 확인된다.

      

    묘지 뒤로 곧장 된비알로 돌변한다. 집채만한 바위를 오르다 옆으로 빠진다. 잠시 오르면 멋진 입석을 만난다. 바윗길은 한동안 지속되다 푹신한 낙엽길로 바뀐다.

    계속되는 된비알. 7분쯤 뒤 우측 소나무 사이로 바위가 하나 서 있다. 그토록 찾던 장군바위였다. 코끼리에 올라 코끼리를 볼 수 없듯 잠시 오르면 우측 전망대가 기다린다. 장군바위가 또렷하게 관찰된다. 영락없는 장군이 칼을 들고 주변을 정찰하는 모습이다. 장군바위 좌측으로 가조 벌판 너머 미녀봉과 오두산 장군봉 단지봉 좌일곡령 수도산, 돌불꽃 가야산도 조금 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좌측으로 우회해 돌면 대구의 여성 산악인 추모비. 바위 아래로 내려선다. 낙엽이 발목을 덮는다. 이따금 우측으로 뒤돌아보면 장군바위가 보인다.

    이쯤부터 점차 길은 거칠어진다. 바윗길과 돌길, 된비알이 반복되고 때론 잡목도 헤치고 나아가야 된다. 재미는 있지만 체력 소모 또한 커 어깻죽지에 땀이 찰 정도이다. 어떤 전망대에선 장군바위와 들머리의 '고려삼베' 건물이 확인된다. 또 오르면 오를수록 조망이 더 넓어져 왼쪽으론 가야산과 덕유 주능선이, 오른쪽으로 지리 주능선이 새롭게 시야에 들어온다.

    추모비에서 45분쯤 뒤 약간 너른 터. 잠시 숨을 돌리고 정면 농짝만한 바위 좌측으로 간다. 장군봉까지의 이 길은 전체적으로 암릉 구간으로 크고 작은 요철이 있지만 그렇다고 사실 엄청나게 힘이 드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장군봉으로 다가감에 따라 좌측으로 지남산과 의상봉 우두산도 보인다.

    눈길 끄는 바위가 있다. 신경을 곧추 세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거북이 연꽃을 향해 오르는 형상의 거북바위와 연꽃바위이다. 여기서 7분이면 무명봉인 돌탑봉에 닿는다. 상봉인가 싶었지만 정상석이 없어 다시 7분쯤 더 가면 '장군봉 953m'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조형물이 서 있다. 조망은 없지만 하산길의 암릉은 한눈에 보인다. 험한 데다 갈 길이 아주 멀다.

    하산은 직진한다. 이때부터 산길은 앞서와 달리 반들반들하며 안내 리본이 자주 보인다. 2분 뒤 갈림길. 직진하면 의상봉(2.7㎞), 산행팀은 우측 장군재 방향으로 간다. 5분 뒤 장군재. 사거리다. 우측은 사병리 당동, 좌측 고견사 주차장 방향, 산행팀은 (작은)바리봉으로 직진한다. 한 굽이 오르면 갈림길. 진행 방향은 좌측이지만 잠시 우측으로 향한다. 장군봉 위용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왜 장군봉으로 명명됐는지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위엄이 있고 힘이 넘친다. 억산에서 수리봉으로 하산할 때 뒤돌아본 문바위와 농바위의 웅장함이 연상된다.

    발걸음을 되돌려 2분 뒤 삼각점이 있는 888봉. 정면으로 암봉인 (작은)바리봉과 그 뒤로 비계산, 비계산 자인봉, 그 뒤로 미녀봉과 오두산이 보인다.

    대체로 내리막 암릉길이지만 군데군데 운치있는 소나무와 조그만 암봉을 넘나드는 재미가 일품이다. 또 등로 좌측 지남산에서 의상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마치 용의 등줄기를 보듯 거칠고 힘이 넘친다. '충북의 설악'으로 불리는 영동 천태산의 하산길과 유사하다.

    888봉에서 17분이면 (작은)바리봉으로 올라선다. 둥그스름한 바위가 널브러진 제법 너른 상봉에 서면 방금 지나온 장군봉을 비롯한 주변 조망이 한눈에 펼쳐진다. 발 아랜 암벽등반가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회백색의 바위와 저 멀리 고견사 주차장도 보인다.

    밧줄을 잡고 힘겹게 내려오면 갈림길. (작은)바리봉 안부이다. 좌측 고견사 주차장, 우측으로 내려선다. 진짜 하산길이다. 보석같은 산길이다. 오룡산에서 임도를 거쳐 자장암으로 내려서던 마냥 걷고 싶던 길이 떠오른다. 28분이면 산을 완전히 벗어나 포장로로 이어지고, 여기서 7분이면 수월리 용당소 마을을 지나 주도로에 닿는다.


    ◆ 떠나기 전에

    - 가조면 동호식육식당 항정살 맛 일품

      



    흔히 거창 장군봉의 들머리는 가조면 사병리 병산마을, 장기리 당동마을, 고견사 주차장 등 셋. 병산마을의 경우 소림사가 들머리였다. 하지만 산행팀은 장군봉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능선의 끝자락에서 산길을 새로 개척했다. 장군바위를 보기 위해서다. 들머리 인근에서 만나는 '고려삼베' 사무실 인근이다. 산행팀은 이곳을 기점으로 출발하려 했지만 법인 사무실이어서 약간 떨어진 송림 쪽에서 바로 능선 쪽으로 치고 올랐음을 밝혀둔다. 참고로 '고려삼베'와 소림사는 병산마을의 극과 극이다.

    들머리 병산마을은 마을 뒤에 장군바위가 있어 장군이 있으면 병사가 있어야 한다며 병산(兵山)마을이라 명명됐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군사용어라 해서 '병사 병(兵)' 자 대신 '병풍 병(屛)'로 고쳐 병산(屛山)마을로 불리게 됐다 한다.

    산행 중 보이는 이정표 상의 바리봉은 작은바리봉을 의미한다. 바리는 스님들의 밥그릇을 뜻하는 바리때의 준말로 그 모양새가 닮아서 붙여졌다. 참고로 우두산(별유산) 바로 옆의 암봉인 의상봉은 큰바리봉이라 불린다.

    맛집 하나 소개한다. 동호식육식당(055-942-1633). 가조면 소재지 마상리 사거리에 위치한 22년 전통의 생고기 전문점이다. 생삼겹 생목살 항정살(이상 사진) 가브리살 한우 등의 고기맛이 일품이다. 갈비탕도 아주 맛있다. 생고기도 싸게 살 수 있다.



    ◆ 교통편

    - 현풍나들목 지난달 30일 개통, 숨통 트여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거창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부터 40~5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만2200원. 2시간40분 소요. 거창터미널에서 가북행 군내버스(서흥여객·055-944-3720)를 타고 사병리 병산마을 입구에서 내린다. 오전 8시30분, 11시10분에 있다. 2600원. 군내버스 정류장은 거창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가다 다리(중앙교)를 건너면 만나는 중앙시장 안에 있다. 도보로 6, 7분.

    날머리 수월리 용당소 마을에서 가조까지는 대중교통편이 없다. 개인택시를 이용하든지 걸어가면 된다. 700m쯤 된다. 가조에서 거창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시30분, 4시10분, 4시40분, 5시10분, 5시30분, 5시50분, 6시20분, 6시40분, 6시50분에 있다. 거창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5시, 5시50분, 6시40분(막차)에 출발한다. 부산행 막차를 놓쳤다면 서대구터미널로 가서 지하철을 이용, 동대구역에서 부산행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중부내륙(구마)고속도로 현풍IC~현풍분기점서 광주 방향~88고속도로 가조IC~가조 방향 1099번 지방도(장군봉 소림사 우두산 방향)~김천 거창 1084번 좌회전~가북 1099번 우회전~(사병교 직전)병산리 우회전~병산마을. 들머리와 날머리는 2㎞ 조금 안됨. 택시를 부르면 편리하다. 개인택시(055-943-8868). 6000원.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011-563-0254 www.yahoe.co.kr

    글=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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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알프스둘레길 12-1코스)밀양 월영정 금시당  영남루. 비밀의 정원 밀양시 영남알프스 둘레길 12-1 상코스

    근교산&그너머 <727> 제12-1코스(상) : 밀양 남기리 정려각~내일동 밀양교

     밀양강변 '비밀의 정원'들 … 마침내 빗장 열다




     
    경남 밀양은 흔히 시가지보다 외곽 지역의 여러 명소들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표충사 천황산 재약산 얼음골 호박소 등. 상대적으로 밀양 시가지의 보석 같은 명소들은 외지인들에게 미답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자면 '비밀스러운 양지'를 뜻하는 밀양(密陽)이 뜻하지 않게 숨겨 두었던, 그러나 엄연히 그 빼어난 존재감을 속으로 갈무리하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숨은 진주 같은 곳을 찾아가는 일은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걷는 둘레꾼들에게는 좀처럼 잊히기 힘든 경험이 될 것이다. "아, 밀양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이것 역시 영남알프스 자락의 힘인가"라고 되뇌며 경탄하게 되리라. 밀양 시가지가 꼭꼭 숨겨 두었던 '비밀의 화원'으로 가는 코스를 엮었다. 밀양의 속살과 가슴 떨리는 접촉을 시도한 것이다. 그 속에서 아름다운 정자와 정원, 희귀 노거수와 백송(白松·일명 백골송, 흰 소나무), 그리고 꿈결 같은 산책로를 만나며 정녕 아름다운 경험을 했다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 12.5㎞ 짧은 구간 볼거리 많아 5시간 잡아야 넉넉

     
      건물 배치, 풍경과의 조화, 분위기 등 여러 측면에서 담양 소쇄원과 쌍벽을 이룬다는 조선시대 정원 월연정. 영남알프스 둘레길 밀양 8경의 하나이기도 한 월연정을 둘러보고 있다. 오른쪽 작은 돌다리는 쌍청교다.
    출발은 제12코스의 종착지였던 산외면 남기리 정문마을 창녕 장씨 정려각(旌閭閣) 앞에서 한다. 긴늪솔밭유원지를 거쳐 밀산교를 건너고 이어서 오연정(鼇淵亭)~용평터널(일명 백송터널)~월연정(月淵亭)~용호정(龍湖亭) 심경루(心鏡樓)~살내마을 정자나무~금시당 백곡재(今是堂 栢谷齋)~일자봉 산책로~용두취입보~팔각정~천경사~용두교~소나무거리숲~밀양교까지 이어지는 총12.5㎞의 길이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30분 정도지만, 하도 볼거리가 많아서 걸음이 느려진다. 5시간 이상 여유를 잡고 걸으면 좋다. 사실 서두를 일도 없지 않은가. 걷는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이 바로 천천히 가면서 자세히 보고 느끼며 평정심 속에서 감동을 쌓는 것일 테니까.

    정문마을 정려각에서 긴늪유원지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10분 후 새 국도아래 굴다리를 통과하면 눈앞에 긴늪솔밭(일명 기회송림)이 보인다. 100m쯤 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입구가 있다. 전도연 주연의 영화 '밀양' 촬영지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긴늪솔밭은 100여 년 전부터 기회마을 주민들이 방풍림으로 조성하기 시작한 것. 이제는 수천 그루의 우람한 솔밭으로 변모해 지역민들의 큰 사랑을 받는 유원지가 됐다. 1970~1980년대에는 기업체 야유회나 계모임 나들이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오연정의 전면)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긴늪사거리에서 밀양 시가지 방향인 왼쪽 밀산교를 건넌다. 발밑에 밀양강이 흐른다. 왼쪽 가까이 보이는 산은 산성이 있는 추화산이다. 다리를 건널 때는 왼편 갓길을 이용하자. 다리가 끝나자마자 왼쪽 추화산 방향으로 내려선다. 블루베리농장 앞 사거리에서 직진한다. 곧이어 추화산 아래 T자 갈림길. 우측에는 영천암 표지석이 있지만 왼쪽으로 간다. 2분 후 이번 코스에서 만나는 첫 번째 정자인 오연정 입구다. 오른쪽 언덕으로 오른다. 우거진 소나무와 느티나무 밑을 지나는 길. 짙은 녹음이 내뿜는 청정 산소가 코를 간질인다. 오연정은 조선 명종 때 문신인 추천(鄒川) 손영제(1521~1588)가 낙향해서 지은 정자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8세기에 다시 지었다. 본당 건물은 'ㄱ자' 형태로 왼쪽에 누마루를 내고 본체의 앞과 뒤에 같은 폭만큼 마루를 설치했다. 앞뜰에는 배롱나무, 뒤뜰에는 단풍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누마루에서 보면 밀양강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멀리로는 영남알프스 산줄기가 강을 함께 달린다. 오연정 울타리 뒤에는 모례서원 유허비가 있다.

     
      추화산 자락에 자리잡은 오연정. 누마루와 배롱나무가 조화를 이룬다.
    다시 오연정 입구로 복귀, 길을 이어가면 10분 후 모례마을 버스정류소를 지나 일제강점기 때 경부선 철로로도 사용됐던 용평터널 입구에 닿는다. 길이 300m 너비 4m 안팎의 좁은 터널로 차량도 다니기 때문에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일명 백송터널로도 불리는 이 터널을 나서면 정우성이 주연한 곽경택 감독의 영화 '똥개' 촬영 기념 입간판이 있다.

    (월연정의 모습)
    영화 촬영 기념 입간판 왼쪽으로 걸어서 강을 따라 들어가면 월연정이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과 쌍벽을 이룰 만큼 아름다운 조선시대 정원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가운데 작은 개울에 놓인 쌍청교를 중심으로 왼쪽은 쌍경당, 우측은 월연대다. 월연대 앞에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희귀종인 백송이 밀양강을 내려보며 자라고 있다. 흰색 비늘 같은 껍질을 가진 이 나무는 원래 중국이 본산지다. 조선 초기 사신들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그 씨를 가져와서 국내에 심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월연정에는 백송 외에도 오죽(烏竹), 행단 등 희귀한 나무가 많아서 그 분위기를 더 심오하게 한다.


    ■ 오연정 월연정 용평터널 금시당… 밀양 숨은 명소 거쳐

     
      왼쪽부터 월연정 백송, 금시당 은행나무, 금시당과 백송.
    터널 출구로 돌아와서 길을 이어간다. 우측 용호정, 심경루를 지나서 왼쪽의 활성교를 건넌다. 강 건너엔 야트막한 산성산 줄기. 밀양 시가지에서 보면 한일(一)자처럼 보인다고 해서 일자봉이라고 불리는 산이다. 다리 건너 갈림길. 금시당 가는 방향은 오른쪽이지만 일단 왼쪽으로 간다. 강마을 식당을 지나 우측 살내마을로 들어선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고가교인 금시교 아래를 통과하면 눈앞에 어른 다섯 아름이나 되는 거대한 둥치의 느티나무를 만난다. 사실 이 나무를 보려고 일부러 이 마을에 들른 것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에서 만난 수많은 노거수 중 둥치의 굵기로만 따질 때 이 나무가 단연 으뜸이기 때문이다.

    다시 고속도로 밑 '금시교' 안내판까지 돌아간 후 왼쪽으로 간다. 고속도로를 머리 위에 이고 가는 길이다. 곧바로 작은 사거리에서 철조망 사잇길로 직진. 강물을 만나면 왼쪽으로 틀어 금시당으로 향한다. 5분 후 환상적인 금시당 산책로가 시작된다. 조선 명종 때 승지를 지낸 금시당 이광진(1513~1566)이 만년에 지은 정자인 금시당이 있다. 주변의 울울창창한 소나무뿐 아니라 '암새들'을 굽어도는 밀양강 물줄기를 내려다보는 고택의 배치 역시 호젓한 분위기를 북돋운다. 금시당에는 이광진이 1566년 직접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 수령 450년이 넘는 이 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돼 있는데, 가을 어느 날 황금빛 잎을 번쩍이다가 어느 순간 털어내고 또 한 겹의 나이테를 두를 테다. 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은데 왼쪽으로 돌아가면 담장 너머로 경내를 볼 수 있다. 뜰에는 은행나무뿐 아니라 배롱나무가 있고, 그 유명한 금시당 금시매화도 낮은 담장만큼이나 낮게 서 있다.

    (월연정)
     
      금시당에서 팔각정으로 가는 산책로는 밀양이 자랑하는 명품길이다.
    금시당 뒤에서 산성산(일자봉)으로 직접 오르는 등산로와 강줄기를 따라 팔각정까지 가는 1.8㎞ 길이의 산책로로 갈라지는데, 평편한 산책로를 따른다. '환상적'이라는 표현으로는 모두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호젓한 길이다. 달콤한 꿈속의 길 같다. 밀양 시내 주민들이 첫손에 꼽는 산책로이기도 한 이 길은 소나무와 아카시아, 참나무, 화살촉을 만드는데 사용됐다는 대나무 등이 울창하게 늘어서 있다. 오른쪽 아래에 밀양강을 끼고 돌아가는 길목마다 김남주의 '고목', 서정주의 '꽃', 천상병의 '강물' 등 서정성 뛰어난 명시(名詩)들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 밀양강 따라 가는 일자봉 산책로 환상적 분위기에 매료

     
      밀양시 활성동 살내마을의 노거수. 어른 다섯 명이 안을 만큼 굵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밑을 통과하고 기도터를 지나 호젓한 산책로가 좀 더 이어진 후 갈림길이다. 일단 오른쪽 내리막 계단을 타고 내려가서 용두취입보 보고 다시 올라오면 우측에 곧바로 팔각정 매점이 있다. 팔각정을 지나면 곧바로 천경사 입구.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계단길을 따른다. 3분이면 강가에 닿는다.

    (월연정)
    강변을 따라나가면 경부선 철로 밑을 통과하고 강을 가로지르는 3중 보를 잇따라 지나 용두교를 건넌다. 다리 건너 밀양사회복지관 앞에서 우측으로 틀어 강둑길을 걷는다. 강둑이 왼쪽으로 꺾어질 즈음, 강 건너에서 봤던 송림으로 내려선다. 지난 2002년 제3회 전국 아름다운 숲 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소나무거리 숲'이다. 강가에는 지역 출신의 이재금(1941~1977)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 그의 작품인 '도래재'가 새겨져 있는데, 그의 밀양 사랑이 절절히 녹아 있다.

    소나무길을 통과하면 강 건너에 밀양읍성과 무봉사, 영남루가 보인다. 둔치를 따라가다가 영남루 맞은편에 앉아 강물에 비친 거대한 누각의 그림자를 본다. 밀양교를 건너면 오늘 코스의 종점이다.

    (금시당백굑제)
    ◆ 교통편

    -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정문마을 행 버스 30분 간격

     
      밀양 영남루 건너편 고수부지에 있는 소나무거리숲.
    부산역에서 열차를 타고 밀양역으로 간다. 무궁화호는 오전 5시10분 첫차를 시작으로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43분 소요, 운임은 3800원. 밀양역에서 밀양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정문마을행 새마을버스 또는 얼음골 표충사행 직행버스를 이용한다. 새마을버스는 오전 6시10분부터 약 30분 간격으로 있고 직행버스도 7시05분부터 약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린 뒤 밀양 방향으로 가다가 첫번째 사거리인 긴늪사거리에서 좌회전, 200m쯤 가다가 다시 좌회전 굴다리를 통과해 우측으로 2분쯤 가면 남기리 정문마을회관앞에 닿는다. 정려각은 50m쯤 떨어져 있다.


    # 일제가 건설한 터널과 보 아직도 사용중


     
      일제가 경부선 철로용으로 건설한 용평터널. 폐선된 지금은 사람과 자동차가 다닌다(왼쪽). 용두취입보 전경.
    이번 주 밀양 시가지 길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두 곳을 지난다. 첫 번째가 한때 경부선 철로로 사용됐던 용평터널(일명 백송터널)이고 또 하나는 용두산 팔각정 아래에 있는 '용두취입보'다. 둘 다 100년이 지난 유산들이다.

    월연정 인근에 위치한 용평터널은 1905년 경부선 철길이 개통될 당시에 일본인들의 설계 하에 건설된 철로용 터널이다. 35년 동안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열차의 길로 역할을 다했지만 1940년 선로 복선화가 이뤄지면서 인근에 새 터널이 뚫리자 도보용 터널로 바뀌었다. 길이는 약 300m이고 높이 4~5m, 너비 3.5~4m 규모인 용평터널은 현재는 사람과 자동차가 이용하고 있다. 특히 차량은 교행이 안되기 때문에 멀리서 보고 반대편에서 한 대가 진입하면 이쪽에서 대기했다가 지나가야 한다. 걸을 때도 차량을 피하기 위해 한쪽 벽에 바짝 붙어야 한다. 그런데 이 벽면 중 일부는 106년 전 건설 당시 때부터 유지돼 온 것으로 보이는 화강암이 그대로 남아 있고 천장에도 벽돌로 마감을 처리한 흔적이 남아 있어 고풍스러움을 풍긴다.

    터널의 구조도 특이하다. 전체가 하나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중간에는 자연절벽과 뻥 뚫린 하늘이 있어 굳이 따지자면 두 개로 나뉘어 있는 셈이다. 이곳을 지날 때면 짙은 녹음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어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그래서 일부 사진작가들에게는 출사지로 인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곽경택 감독은 월연정 들머리 방향의 터널 앞에서 인기 배우 정우성을 내세워 영화 똥개를 촬영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일제강점기의 흔적인 '용두취입보'는 비록 일본인의 구상과 설계로 건설된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원래의 목적대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인상 깊은 곳이다.


    현재 이 용두취입보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밀양지사에 따르면 이 관개시설은 1909년 일본인 마쓰시타 데이지로가 구상해서 만들어낸 자연유화식 인공 터널 수로다. 밀양강에 보를 만들고 용두산 아래로 터널을 뚫어 물길을 낸 다음 산줄기 건너편 멀리 있는 상남면 일대 예림리 등 4개 마을 592㏊의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에서 건설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도 이 수로는 이들 지역의 농사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보석 같은 수리시설 역할을 한다. 전체 수로의 길이는 6438m이고 산 아래를 관통하는 터널의 길이만 433m에 달한다.

    (금시당의 모습으로 금시당 이광진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낙향하여 있는 것 즉 현재 자신의 처신이 옳았다는 뜻이 금시당이다)
    농어촌공사 밀양지사 관계자는 "요즘에는 펌프를 통해서 낮은 지대의 물을 끌어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농업용수를 댈 수도 있지만 100여 년 전에는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면서 "그렇다 하더라도 표고차를 이용해 밀양강의 물을 산 밑으로 연결해 농업용수를 공급하겠다고 구상하고 그것을 실행한 것을 보면 지금 입장에서 봐도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용평터널이나 이 용두취입보는 모두 일본인들의 설계와 구상으로 건설돼서 일면 유용하게 사용됐거나 현재도 사용 중이지만 그 터널들을 뚫기 위해 동원됐을 한국인 인부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애잔한 마음도 지울 수 없다. 일제의 유산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되겠지만, 그 속에 배여 있는 조상들의 아픔까지 잊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 GPS·동영상 www.kookje.co.kr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교동의 오연정은 전면으로는 ㄱ자 형태의 돌출된 마루를 넣었고 뒷면에도 일자형의 마루를 넣어 어느쪽이 전면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아름다운 누각이다. 추천손영제가 지은 정자로 경남문화재자료 제215호이다.(사진은 뒷면의 모습)








     지형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떤 모습의 동물을 상상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을 연상할 것이다.
    실제로 살내마을에서도 뒷산을 범의 얼굴로 생각을 하여 용과 호랑이가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생각을 한다
    그래서 살내마을 우측능선 끝부분을 범의 머리로 마을에서는 버머리깡이라 부르며 그 윗부분을 범설이라 부른다고 마을분이 이야기를 하였다. 일명호두산으로 불리며 그 앞으로 흐르는 천이 호랑이가 물을 뿜는 형상이라 호분탄이라 부른다.

    긴늪유원지유래석

    긴늪유원지

    긴늪유유ㅓㄴ지 앞의 북천으로 마을에서는 밀양강이 아닌 북천으로 부른다. 산외방향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동천이라 부르며 두 물줄기가 합하는 곳에 월연정이 있다.





    월영정의 백송

    금시당의은행나무

    오연정 입구

    살내마을의 당산나무로 느티나무껄이라 부르며 400년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북천과 동천이 서로 만나는 월연으로 그 뒤로 운문지맥의 끝부분인 비학산 보담산 낙화산 중산능선이 펼쳐진다. 그 안의 골짜기가 엄광리로 영남알프스 둘레길 12코스이다.

    밀양손씨의 용호정

    용두산과 그아래 용두연의 모습





    금시당 산책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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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남기리 정려각과 가곡리 민씨 정려각. 정절과 정려각, 옛길을 가다 만난 슬픈 이야기


    시골의 옛마을을 찾다보면은 마을 어귀에 효자각 또는 열녀각을 가끔 만난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비각은 그 마을의 자랑이며
    그 마을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마을 주민들의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
    그래서 인지 시골 농촌을 찾아가는 길손 또한 그곳을 지날 때 면
    옷깃을 여미고 마음가짐을 자연히 새롭게 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밀양에는 충과 효를 숭상하는 양반골로 마을 마을마다 자긍심이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인지 경부고속도로도 마을을 통과하면 시끄럽다고
    밀양박씨와 손씨 문중등 밀양을 대표하는 문중들이 반대를 하여 경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와
    한일합섬등 공장들이 들어올려고 해도 조용히 살고 싶다고 반대를 하여 마산으로 갔다는 이야기등
    밀양은 그만큼 자존심을 가지고 사는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효자와 열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분들의 이야기 또한 많이 전해온다.
    상동면과 산외면은 능선을 하나 두고 각각 열녀각이 하나씩 서 있다.
    모두 임진왜란때 정절을 지키기 위해 투신한 분들이다.
    산외면 남기리 입구에는 정문마을이 있다.
    이마을 이름도 정려각에서 따왔다.
    밀양손씨 손기후의 처인 창원장씨로 친정인 창원에 있을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변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월영대에서 뛰어내려 정절을 지켰다한다.




    창원장씨 열녀각은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안을 보니 좌우 앞면에 사군자인 매화, 난초,국화, 대나무
    그리고 소나무가 그려져 있어 더욱 숙연한 마음이다






    가곡리의 민씨 정려각 또한 박희량의 부인이자
    삼매당 밀양박씨인 민구서의 딸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마을로 왜구들이 들이닥치자 뒷산 바위굴로 피신을 하였다 한다.
    왜구들이 그곳까지 따라오자
    민씨 부인은 화를 피하기 위해 바위에서 몸을 던지니
    마을에서는 한송이의 꽃잎이 떨어졌다하여
    낙화암이라 부르며 그 봉우리를 낙화듬으로 현재 부르고 있다.



    내가곡마을의 전경과 마을 뒤의 낙화듬돠 정상아래 바위가 민씨부인이 투신 하였다는 낙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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