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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금정여행)휴가철 무더위를 잊게하는 사찰 여행,  영남3대 사찰 금정산 범어사 여행.


부산에 있는 많은 사찰 중 금정산 범어사가 대표적입니다. 

범어사의 창건연대와 창건주를 보면 678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이며 해동의 화엄10찰 중 하나로 세웠습니다. 

금정산 범어사는 가야산 해인사 영축산 통도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로 부르고 있는 천년고찰입니다.





금정산 범어사 주소: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금정산 범어사 전화:051-508-3122

범어사 입장료 무료, 주차비는 별도




2019/07/27 - (부산맛집/금정맛집)금정산 범어사 맛집. 저렴한 가격의 오리불고기 범어사 맛집 금정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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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30 - (부산여행/금정여행)금정산성 서문. 금정산성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성문 서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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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7 - (부산여행/금정구여행)금정산 범어사 보제루. 일제의 잔재로 헐렸던 범어사 보제루가 다시 복원 되었다.




의상대사 이후 범어사에서 수행 정진했던 고승 대덕을 보면 의상 하면 바늘처럼 붙어 다니는 원효, 표훈, 남백, 명학과 근대고승인 경허, 용성, 성월, 만해, 동산 스님 등이 주석하신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범어사의 창건 유래는 금정산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동래현 북쪽 20리의 금정산 중턱에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돌우물이 있다고했습니다.

 



항상 금빛의 광채가 났으며 물이 가득한 우물에는 금빛인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 하여 금샘이라 하였습니다. 

금어(金漁)와 금빛우물에서 범어사와 금정산이 유래했습니다.



범어사의 창건설화를 보겠습니다. 

신라 문무왕이 왜구의 침입을 항상 걱정하며 지냈는데 하루는 꿈에 신인이 나타나 이르기를 의상을 불러 금정산에 가서 화엄신중을 외우고 기도하면 왜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자 왕은 신인의 말을 그대로 따라 왜적을 물리 쳤다고 합니다. 

그때 세운 절이 범어사로 호국 사찰이라 하며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도 승병과 독립투사로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현재의 범어사 전각은 언제부터 있었던 건물일까 궁금했습니다. 

범어사는 창건 이후부터 고려를 거치고 조선 중기까지 이어져 오다가 1592년 조선 선조 2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불탔습니다.

 


부산 앞바다로 쳐들어온 왜군의 북상하는 길목에 자리한 범어사는 큰 피해를 입었으며 수많은 전각이 타버려 범어사는 한동안 폐허나 다름없이 방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유재란이 끝난 후인 1602년 관(觀)선사가 중건했으나 곧이어 다시 화재로 타고 말았습니다.



1613년인 광해군 5년에 묘전스님 등이 힘을 합해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 용화전 나한전, 일주문 등을 중건했습니다. 

1684년 해인화상이 비로전을 세웠고 1700년에 명학화상에 이르러 팔상전, 종루, 불이문, 보제루, 천왕문 등을 건립하여 오늘날 범어사 사격을 갖추었습니다. 



먼저 범어사 경내를 들어서면 만나는 일주문이 조계문입니다. 

조계문은 범어사로 들어서는 출입문으로 삼해탈문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만법이 모두 갖추어져 일체가 통한다는 법리가 담겨 있다 합니다. 

일주문 하면 보통 기둥이 2개에다 지붕의 전각 네 귀퉁이다 보조 기둥을 세우는데 조계문은 굵은 4개의 기둥을 한일자로 세웠습니다.




조계문의 건립연대는 1614년인 광해군 6년에 양병란 이후에 묘전화상이 범어사를 중수하면서 함께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에 1718년, 1781년 등 여러 번 수리가 이루어졌으며 정면 3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인 다포양식 건물입니다. 

보물 제 1461호 범어사 대웅전은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미래불인 미륵보살과 과거불인 제화갈라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지금의 대웅전은 1614년 묘전화상이 세운 것으로 1713년에 흥보화상에 의해 다시 지어진 건물입니다. 

그러나 내부의 불단과 닫집, 삼존불상은 묘전화상이 중수할 때 조성한 그대로입니다. 

건물은 정면 3칸에 옆면 3칸이며 다포양식의 겹처마 맞배지붕건물입니다. 

기둥 위의 장식과 섬세하면서 아름다운 처마, 빗살 창호와 닫집의 섬세한 조각장식 등이 조선 중기 목조건물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물 제434호.

 



이외에도 보물 제250호 범어사 삼층석탑, 범어사 석등, 범어사 당간지주, 팔상정, 불이문의 꽃창호 무늬, 보제루 등 수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특히 무더운 여름철 범어사를 찾는다면 바로 옆 부속암자인 대성암을 찾아볼 것을 권합니다. 

대성암은 계곡 바위에다 세웠는데 그 밑으로 물이 흐르면서 물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 하여 금정 8경 중 4경인 대성은수(大聖隱水)입니다.

 




그러나 낮이라서 그런지 물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대성암 왼쪽 북문 가는 길옆 바위 너덜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대성암에서 들을 수 없었던 계곡의 물소리가 들렸습니다. 

대성암 바로 옆은 짙은 나무그늘에 큰 바위가 빼곡한 이끼 낀 계곡으로 바위를 훑으며 흘러가는 차가운 계곡 물에 마음을 씻으며 한여름 무더위를 이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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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여행/문경가볼만한곳)사불산 대승사. 사면석불의 공양절인 공덕산 대승사 천년사찰 여행하기.  


문경의 공덕산에는 천년고찰인 대승사가 있습니다. 불가에서는 사불산으로 더 알려져 대승사 일주문 현판에도 사불산 대승사라 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사불산조에 나온 기록을 보면 사불산의 유래는 대승사와 윤필암 사이의 바위봉우리에 신라 시대 진평왕 9년인 587년 갑신년에 큰 돌이 붉은 비단보자기에 싸여 떨어졌는데 사면에 사방여래불이 조각되어 있다 합니다. 이 소문이 흘러 흘러 진평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왕도 기괴하게 생각하여 사면 석불의 바위가 떨어진 봉우리에 올라 친견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진평왕은 이곳에다 사면 석불을 공양하는 절을 짓게 하였는데 그게 오늘날의 대승사입니다.




◆문경 대승사 주위 가볼만한곳◆

2016/09/07 - (문경여행)문경 공덕산 윤필암과 묘적암 암자 여행. 경허, 성철, 청담 등 근대 선승의 수도처 문경의 사불산 윤필암과 묘적암 암자 여행

2016/07/08 - (문경여행/문경 가볼만한곳)문경 대승사 마애여래좌상. 머리에 뿔처럼 꽃무늬를 돋을 새김한 이색적인 불상을 만나다. 대승사 마애여래좌상

2016/07/07 - (문경여행/문경 가볼만한 곳)공덕산·사불산 사불암. 그럴싸한 전설이 정말 잘 어울리는 신비의 세계 사불암 사면석불, 공덕산·사불산 사면석불 사불암을 만나다.








사불암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하여 사불산 또는 역덕산이라 하고 사불암 공양절로 진평왕은 대승사라 이름하였습니다. 대승사는 묘법연화경을 외울 수 있는 자를 주지로 삼았는데 이대승사의 주지가 죽자 그의 무덤에 연꽃이 피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대승사는 1592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전소하였습니다. 









그리고 1604년 선조 37년에 중창을 시작하여 1701년까지 근 100년 동안 대승사의 대웅전을 비롯하여 승당, 관음전, 조전, 미륵전, 금당, 십왕전 등 여러 전각을 신축하여 큰 사찰다운 뼈대를 갖추어나갔습니다. 1725년 영조 1년에 의학스님이 삼존불상을 개금하였는데 복장유물로 사리 1과와 705년 신라 성덕왕 4년에 금을 입힌 화엄경 7권이 함께 나왔다 하니 천년 고찰은 틀림없나 봅니다.







그 후에도 종각과 금강문, 천왕문, 일주문을 중건하였고 1831년인 순조 31년에 구담스님이 중창을 하고 9개의 산내 암자를 거느리는 등 대승사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1862년인 철종 13년에 명부전과 응진전을 제외한 대승사의 모든 전각이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의운, 취월, 덕산 스님 등이 중건을 시작하면서 다시 극락전, 회랑, 염불당, 동별당 등 많은 전각을 중건했지만 1956년 또다시 일어난 화재로 명부전과 극락전만 남기고 소실되었습니다.







1960년에 대승사는 남인, 기종, 대휴 스님에 의해 다시 한 번 중창 불사인 삼창을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주지인 철산 스님에 이르기까지 객사, 범종루, 백련당 회랑 등을 복원하면서 대승사의 옛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습니다.


 



대승사의 많은 볼거리 중 가장 눈여겨볼게 보물 제991호인 대승사 금동보살좌상과 보물 제1634호 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입니다. 제가 누런 금붙이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금동불상에만 눈이 가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이외에도 대승사 목각 아미타여래 설법상과 관계문서는 보물 제575호에 지정되어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사실 사찰에서 법당의 본존불을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 찍기가 좀 민망한 곳도 있습니다. 유명사찰은 보통 사진촬영을 금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어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문경의 대승사에도 건물 외관만 사진을 찍고 불상 촬영을 하지 않아 대승사 포스팅을 하면서 너무 허전하여 문경시청 홈페이지의 문화재 사진을 출처를 밝히며 옮겨왔습니다.


 

노주석 






 




 





 

 

대승사 금동보살좌상(사진:문경시청 홈피)


대승사 금동보살좌상은 대승사의 선방에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습니다. 불상의 전체적인 높이는 90cm이며 보관 높이만 15cm에 불두를 포함하면 37cm, 어깨너비는 28cm, 무릎너비 57.5cm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입니다. 특히 머리에는 별도의 금속 보관을 썼는데 화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진:문경시청 홈피)


양쪽 귀의 보발은 여러 가닥이 흩어져 어깨를 덮고 있으며 이목구비는 원만한 얼굴에 미간에는 백호를, 목에는 삼도를 표현하였습니다. 금동보살좌상의 조성 시기는 “정덕 11년 병자사월개금”의 기록이 남아 있어 1516년인 조선 중종 11년에 개금이 이루어졌으며 불상 조성 시기는 그보다 빠른 15세기 후반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진:문경시청 홈피)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사진:문경시청 홈피)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극락전에 봉안된 주존불로 불상 높이는 87.5cm, 무릎 너비가 63cm입니다.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1301년 고려 충렬왕 27년을 전후하여 조성되었음을 복장유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고려 후기의 불상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복장유물에서 수습된 다라니 12매는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조성하면서 불복장되어졌습니다.

 


문경 대승사 주소: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8번지

문경 대승사 전화:054-552-7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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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건축물인 극락전, 대웅전이 있는 안동 천등산 봉정사를 만나다. 



안동 천등산 봉정사는 부석사의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 있습니다. 수덕사는 가요의 ‘수도사 여승’이 대웅전보다 더욱 유명하며 부석사는 무량수전이 워낙 유명한데 그에 반해 봉정사는 상대적으로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도 봉정사 방문 전에는 그저 극락전 정도 있다는 것만 알았지, 봉정사의 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봉정사 일주문


그러나 안동의 봉정사도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이 있는 것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봉정사의 문화재를 보면 극락전과 대웅전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고금당과 화엄강당은 물론이고 후불벽화,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보물이며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최근까지 봉정사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날려 봉황이 앉은 곳에 절을 세웠으며 그중 한곳이 지금의 봉정사라하였습니다.


 

 


그러나 1971년 극락전 수리과정에서 상량문이 나왔으며 신라 문무왕 12년인 672년에 능인대사가 창건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봉정사를 품은 산은 처음에는 대망산이라 불렀습니다. 능인대사는 도를 터득하려고 대망산 바위굴에서 수도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다 천녀가 나타나 능인을 시험하기 위해 파계하여 함께 살 것을 유혹하지만, 끝끝내 부처님 말씀을 따르겠다며 거부하였고 천녀는 스님의 도력에 감복하여 옥황상제께서 내린 등불을 굴 안에 환히 밝히게 하였습니다.


 

 


스님은 더욱 수도에 전념하였고 도력으로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이곳에 내려앉아 봉정사를 창건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 ‘하늘에서 등불이 내려왔다.’ 하여 천등굴이라 하였으며 산도 천등산이 되었습니다. 봉정사는 창건과 함께 대략 6번의 중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여러 번 어려운 과정을 겪었고 근대인 1950년 한국 전쟁 때는 인민군이 주둔하면서 사찰에 보관 중이던 여러 경전과 사지(寺誌) 등을 불태우는 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한, 1999년 4월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한국 방문을 하면서 이곳을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그럼 먼저 천등산 봉정사의 일주문을 보면 현판은 추사체의 맥을 잇는 서예가 은초 정명수(1909~1999)선생의 글씨입니다. 이외에도 해인사의 해탈문과 진주 촉석루 등 힘있는 선생의 여러 작품이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 날아오르는 봉황을 닮은 듯 한 보호수 소나무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면 봉정사를 들어서는 입구인 만세루입니다.


 

 

 

 


만세루는 봉정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고색창연하며 켜켜이 때가 묻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여느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천왕문 등은 없지만 2층 누각 형태인 만세루 아래를 지나야만 법당에 이르게 됩니다. 만세루는 1680년(숙종 6년)에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덕휘루(德輝樓)라 불렀습니다.


 

 

만세루 


만세루는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대웅전에서 보면 마당 높이와 같은 단층입니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2층 누각으로 1층은 출입구 역할만 합니다. 그리고 2층은 휴식을 취하는 정자와 스님의 강학장소인 강당을 겸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16/05/31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만세루. 천년고찰의 풍미를 간직하며 묵직하여 봉정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봉정사 만세루, 봉정사 만세루


 

 

 

 

 

 


만세루와 마주한 건물이 두 개의 봉정사 중심 건물 중 한곳인 국보 제311호 대웅전입니다. 대웅전도 극락전과 함께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습니다. 대웅전은 1428년(세종 10년)에 불화기록과 1431년에 단청을 칠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1425년인 세종 7년쯤에 중창한 것이 아닌지 추정을 했는데 최근 고려시대 불화로 추정되는 후불벽화가 발견되어 대웅전 조성을 고려 말기로 보고 있다고도 합니다.


 

 

 대웅전


 

 

2016/06/02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고려후기의 고건축물로 평가받는 독특한 불전인 국보 제311호 봉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특이한 것은 대웅전 앞면에 조선시대 누각 형태인 툇마루를 달아내었다는 점인데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이 접목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1963년 1월 보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국보로 다시 승격되었습니다.


 

 

 

 

 

 

 

 

 

극락전


그리고 대웅전과 함께 봉정사의 중심법당인 국보 제15호 극락전입니다. 우리나라 고려시대 건축물로 가장 오래된 곳 중 한 곳입니다.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하며 무량수전, 아미타 전이라 부릅니다. 1972년 해체 수리하면서 인조 3년인 1625년 작성한 상량문 기록을 찾았는데 고려 공민왕 12년인 1363년에 극락전의 지붕을 수리했다고 되어 있어 벌써 그 이전에도 건물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극락전은 가운데다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불당 벽을 만들어 불단을 설치했으며 닷집은 화려하지 않고 섬세하게 꾸몄습니다. 앞면 3칸에 옆면 4칸의 맞배지붕건물로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건물입니다. 처음에는 대장전으로 불리다가 극락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극락전 앞에는 고금당이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화엄강당을 세워 극락전과 대웅전을 두 개의 영역으로 만들었습니다. 고금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건물로 맞배지붕을 하였습니다.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여도 당시 건축기법이 주목받을 만큼 인상적이며 보물 제449호 지정되었습니다. 1969년 해체 수리과정에서 1616년인 광해군 8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을 찾았는데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엄강당 


화엄강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화엄강당은 ‘양법당중수기’를 보면 17세기에 대웅전을 고쳐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이때 화엄강당도 창건이나 수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본전의 대웅전을 고려하여 간결한 장식으로 꾸몄으며 법당과 강당의 차별성을 두려 했습니다. 보물 제448호.


 

 


2016/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 봉정사의 보물인 고금당, 화엄강당과 요사채인 무량해회를 만나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무량양회


 

 

 

 

 

 


봉정사 삼층석탑


극락전 앞에 자리한 봉정사 삼층석탑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중 기단에 석탑은 전체적인 무게로 인해 기단부가 일부 깨져있습니다. 또한 상륜부 일부는 분실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양호한 상태입니다. 고려시대 석탑이며 평범하며 일반적이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2016/06/16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삼층석탑. 봉정사의 고 건축물 극락전과 같은 고려 중엽의 봉정사 삼층석탑을 만나다. 봉정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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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 봉정사의 보물인 고금당, 화엄강당과 요사채인 무량해회를 만나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의 봉정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과 그에 못지않게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대웅전이 국가 문화재인 국보로 지정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봉정사는 국보 이외에도 고금당과 화엄강당이 보물로 지정된 유서 깊은 사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 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찰에서 이리 많은 목조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다는 자체가 드문 일입니다. 봉정사의 여러 목조건물을 소개했지만, 이번에는 고금당과 화엄강당을 포스팅하겠습니다.







◆안동 봉정사 둘러보기◆



2016/06/02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고려후기의 고건축물로 평가받는 독특한 불전인 국보 제311호 봉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2016/05/31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만세루. 천년고찰의 풍미를 간직하며 묵직하여 봉정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봉정사 만세루, 봉정사 만세루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2016/05/24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2016/05/19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봉정사는 극락전과 대웅전을 각각 둔 두 개의 중심법당이 있습니다. 극락전과 대웅전의 공간을 가르는 건물은 화엄강당이며 고금당은 극락전 앞에서 화엄강당의 뒷면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금당을 보겠습니다. 고금당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단층 목조건물에 맞배지붕을 올렸습니다. 고금당의 규모는 작아도 보물로 지정될 만큼 당시 건축 기법이 주목받을 만큼 인상적입니다.





고금당의 특이한 건축기법을 보면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한 주심포집 계통입니다. 기둥 윗부분에 꽂은 홑첨차와 그 위에 주두에서 나온 살미첨차가 겹쳐친 위에 다시 행공첨차를 가로로 놓았으며, 그리고 외목도리를 받쳐놓았습니다. 주두의 좌우 벽면에 배치된 첨차와 창방은 포벽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건물 뒷면은 원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동의 봉정사 고금당은 해체 수리를 위해 1969년 찾아낸 기록을 보면 1616년(광해군 8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뿐이며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1969년에 극락전과 함께 봉정사 건물 대부분이 해체와 수리과정에서 본모습을 많이 훼손하였습니다. 현재 옛 모습이 남아있는 곳은 방 앞쪽 쪽마루와 칸마다 달린 외짝문뿐이라 하니 고건축물의 보수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하겠습니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현재의 고금당은 앞면 3칸에 2짝 여닫이문을 달았으며 옆면과 뒷면은 벽으로 막았습니다. 북쪽 측면은 후예 팔작지붕으로 바뀌었고 남쪽의 지붕은 연장하여 칸을 막아서 부엌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방은 온돌을 넣어 선방이든 것을 요사채로 사용하였으며 방 앞에는 쪽마루를 깔고 벽간마다 띠살문을 달아 원래의 문짝이 아니라합니다. 

공포를 구성하는 첨차 형태 등을 보면 조선 전기의 특색을 잃어버렸으며 또한, 변형되어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중기로 그저 짐작만 할 뿐입니다. 당호는 고금당(古今堂)이라 쓰는데 금당의 뜻인 고금당(古金堂)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건물의 규모와 위치를 보면 봉정사의 중심건물인 불전으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기 힘든데도 현재 불전을 뜻하는 고금당(古金堂)으로 사용 하고 있습니다. 보물 제449호





그리고 화엄강당은 대웅전 앞 경내로 올라서면 왼쪽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앞면3칸 옆면 2칸의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입니다. 화엄강당은 ‘양법당중수기’ 등에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경내 극락전과 대웅전을 17세기에 고쳐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그때 화엄강당도 함께 창건이나 수리 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안동 봉정사 화엄강당



강당으로서 규모가 큰 건물인데 부재들이 다른 기법과 섞여 절충형식을 보이면서도 대웅전의 위상을 고려하여 간결하게 장식을 갖추어 법당과 강당의 차별성을 두려 했습니다. 처음부터 강당으로 사용한 건물이라 기둥은 낮으나 공포를 크게 하여 외관과 균형을 맞추었습니다. 건물 내부는 남쪽 2칸이 부엌, 북쪽 4칸이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데 원래는 앞면 4칸, 옆면 4칸으로 현재 온돌방 뒤쪽에 4칸의 마루가 깔렸으며 부엌도 지금보다 넓었다고 하지만 언제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화엄강당은 봉정사 창건과 극락전 중창 그리고 조선 전기의 대웅전 중창 등 어떤 기록에도 나와 있지 않는 것을 보면 1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보물 제448호


 

 


안동 봉정사 무량해회


무량해회는 앞면 4칸에 옆면 3칸의 겹처마 집에 전면과 남쪽에 마루를 달고 양쪽의 중앙에 칸 벽을 설치하여 방으로 나누어진 요사건물입니다. 건물의 구조는 ‘트인 ㅁ자형’


 









 (참고:안동시청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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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 용연사. 용연사 석조계단과 극락전, 천년고찰 대구 달성 용연사를 여행하다.


용연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801번지 비슬산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말사입니다. 용연사의 창건연대는 신라 신덕왕 원년 912년에 운문사를 창건한 보양국사에 의해 창건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세종원년인 1419년에 천일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가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용연사는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603년 선조 36년에 사명대사는 인잠과 탄옥, 경천스님을 불러 용연사 중창을 지시하여 용연사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또다시 화재로 소실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1728년 영조 4년에 극락전을 위시한 건물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용연사는 현재 여러 중요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용연사 석조계단인 보물 제539호와 극락전에 봉안된 보물 제1813호 아미타여래불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인 극락전,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8호인 용연사 삼층석탑 등이 있습니다. 그 외 천왕문, 안양루, 삼성각과 명부전 등의 전각이 있으며 용연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계곡 건너편에 따로 모셔져 있습니다. 그럼 용연사를 포스트하겠습니다.

 용연사 일주문을 지나면 석조계단과 극락전 갈림길입니다. 먼저 오른쪽 극락교를 건너 용연사 극락전을 먼저 보겠습니다. 극락전은 먼저 사천왕이 지키는 천왕문을 통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양루 밑을 지나면 정면에 용연사 극락전입니다. 

 

 

 극락전은 부처님 진신자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제외하면 용연사의 중심건물입니다. 영조4년인 1728년에 중건하였으며 좌우로 영산전과 삼성각을 배열하여 극락전은 한층 더 기품 있는 보습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단을 높여 위풍당당한 모습은 천년고찰 용연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단은 화강석을 쌓았으며 앞면3칸과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인(人)자인 다포계 맞배지붕입니다. 그리고 배면기둥과 대량에 시주자의 이름을 새겨 놓았으며 극락전의 내부와 단청은 화려하게 꾸며져 18세기 조선후기 사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연사 극락전

용연사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2014년 1월에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의 복장유물에서 나온 발원문에는 1665년에 도우스님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그 당시 대표적인 조각승 도우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며 불상에 개금을 한 중수 개금기까지 있어 조선시대 불상개금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용연사 극락전 앞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르나 1층의 기단은 줄고 지붕돌의 양식이 바뀐 것을 보면 고려시대 석탑이라 추정합니다. 석탑의 높이는 2.6m이며 기단은 1층에다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고 기단을 받치는 지대석은 최근에 새로운 돌로 보수했습니다.

 

 용연사삼층석탑

 기단과 탑신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겼고, 지붕돌은 낙수 면이 짧고 추녀가 얇으면서 밑면에 새긴 4단의 받침은 높아 극락전의 전체적인 모습에 비해 작아 보여 잘 어울리지 않는다하겠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전각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한 용연사 석조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왜 부처님의 진시사리를 이곳 용연사에 모시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용연사 영산전

 

 

 

 

 

 

 용연사 삼성각

 용연사 안양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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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3 - (대구여행/달성여행)달성 허브힐즈. 대구 허브힐즈에서 힐링을 하고 왔어요.


2013/11/17 - (대구여행/달성여행)국립대구과학관. '나도과학자' 국립대구과학관에 가면 누구나 과학자가 된다.


2013/11/16 - (대구여행/달성여행)화원읍 마비정벽화마을. 6~70년대 우리 어릴적의 모습 마비정벽화마을의 벽화로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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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익산여행)함라산 숭림사 보광전, 중국의 달마대사가 9년동안 면벽좌선한 숭산 소림사에서 따왔다는 선종사찰 숭림사에서 보물 825호 보광전를 만나다.


익산여행을 하다 만난 사찰로 숭림사입니다. 숭림사의 사명은 조금은 특별한데 중국 허난성의 숭산(崇山) 소림사(샤오린스)에서 따왔다합니다. 달마대사가 면벽좌선하면서 9년 만에 득도하여 소림사는 최초의 선종사찰이 되는데 숭산의 숭(崇)자와 소림사의 ‘림(林)’자를 따서 숭림사가 되었다합니다.




 숭림사는 고려 충목왕 1년인 1345년에 선종 사찰로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숭림사 보광전은 보물 제825호로 지정되었는데 보광전 중수기에는 조선 순조 19년인 1819년에 중수했다 합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3칸과 옆면 3칸에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다포계 양식의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건물 옆에는 공포를 배치하지 않았고 건물 안쪽의 보 끝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였으며 기둥 윗부분에 사용된 부재는 연꽃, 용의 몸, 여의주를 쥐고 있는 용의 앞발 모양을 장식해 놓았습니다.

 

 

 

 또한, 보광전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이 봉안되었는데 복장기문에 만력 41년으로 조선시대 광해군 6년인 1614년에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이며 목조석가여래좌상 좌우에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불을 협시보살로 안치하였지만, 지금은 석가여래 좌상만 남아 있습니다.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머리에는 나발과 육계가 있으며 이마에는 백호가 있습니다. 법의는 통견에 가슴 밑에 군의대를 하였으며 항마촉지인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상 위 닫집은 용과 구름이 섬세하게 조각된 보개가 설치되어 불상의 위상이 더욱 돋보인다하겠습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9호인 숭림사 영원전에 봉안된 지장보살좌상과 권속인데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상, 시자, 동자상, 금강역사 등 24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원전은 1697년인 숙종23년에 창건되었지만 1914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인근의 성불암 칠성각을 옮겨 지었습니다.

 지장보살은 1634년인 인조12년에 조성하였는데 여러 권속도 함께 조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장보살도 보광전의 석가여래불과 같은 목조의 결가부좌를 한 좌상이며 권속은 나무 뼈대에 흙을 붙인 소조상으로 좌상과 입상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지장보살과 권속이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귀중한 문화재입니다.

 

 리고 숭림사 나한전 소조 16나한 및 권속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아난존자, 16나한과 사자상, 제석천과 범천의 신중상, 동자상, 인왕상 등 총 29구의 소조상을 모셨습니다. 16나한 및 권속은 나무 뼈대에 흙을 붙인 소조상으로 좌상과 입상이 있으며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의 불상군 모습을 잘 보여주며 당시 조선 후기의 소조 제작기법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문화재안내판 참고)

 

 

 

 

 

 

 ◆숭림사 사찰정보

★절명:숭림사

숭림사 주소:전북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5

숭림사 전화:063-862-6394




2016/02/05 - (전북맛집/전주맛집)전주한옥마을맛집 전라도 음식이야기. 전라도 음식의 최고봉 전주한정식 '전라도 음식이야기'에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전라도음식이야기


2016/01/07 - (전북여행/익산여행)익산 두동교회 구본당. 익산시 성당면에서 한국 기독교 초창기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두동교회 구본당을 만나다. 한국기독교 사적 제4호


2015/12/24 - (전북여행/익산여행)익산교도소 촬영세트장. 7번방의 선물, 아이리스, 타짜, 식객등 국내에서 유일하게 교도소 촬영이 이루어졌던 익산교도소 촬영세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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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산와촌여행)불굴사와 홍주암. 팔공산 갓바위와 부부라는 불굴사 약사불괴 원효와 김유신의 수도처 홍주암을 여행하다. 


대구 팔공산의 기운이 능성고개에서 다시 한 번 힘차게 솟구쳐 무학산과 환성산, 그리고 초례봉 산군을 이루었습니다. 그 깊은 골짜기를 따라 팔공산 관봉인 갓바위와 마주 보는 자리에 불굴사가 있습니다.




불굴사는 690년인 신라 신문왕 10년 때 원효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굴사가 한창 번성할 때는 50동의 기와 건물에다 주위로 부속암자만 12개가 되었습니다. 또한, 쌀을 빻는 물방아가 8대를 돌릴 정도로 많은 승려와 신도들이 불굴사를 찾고 머물렀을 정도로 큰 사찰이었습니다.


그 후 불굴사의 정확한 역사는 알 수 없지만 1723년 조선 경종 3년 때 중창을 하였다가 영조 12년인 1736년 대홍수 때 일어난 산사태에 그만 수몰되어 불굴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뒤 전라도 송광사 노스님이 현몽을 받아 이곳에서 새롭게 중건을 한 것이 오늘날의 불굴사가 되었습니다.

1860년 철종 11년에 유혜·쾌옥 두 스님과 1939년 은해사의 경파 백현스님이 다시 중창하였고 오늘날 불굴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88년 원조 주지스님이 불굴사 창건당시의 대웅전 초석을 찾아낸 뒤 스님은 그 자리에다 적멸보궁을 짓고 인도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면서입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외에도 불굴사는 많은 문화재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김유신의 전설이 남아 있는 홍주암이 있습니다. 불굴사 적멸보궁 앞의 삼층석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물 제42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삼층석탑의 전체적인 높이는 7.43m이며 이중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쌓아 올린 형식입니다.

지붕돌은 넓고 추녀 밑이 수평이며 각부의 비례는 서로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상륜부는 일부만 남아있지만 양호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전체적으로 신라 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매우 아름다운 삼층석탑입니다. 

불굴사 석조입상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약사보전 전각안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은 1736년에 발생한 산사태에 묻힌 것을 조계산 송광사의 노스님이 현몽으로 찾아낸 불상이라 전합니다.



석불입상은 연화대좌위에 불상을 세웠는데 전체높이는 233cm, 어깨너비 75cm, 머리높이 53cm로 규모가 큰 석불입상이며 전체적으로 훼손이 심한 모습입니다. 얼굴 부분은 훼손이 심해 이목구비를 다시 조각하였으며 왼손 또한 분실되어 현재는 보주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불굴사 석불입상은 팔공산 관봉의 갓바위 약사여래불과 부부라는 설이 전해옵니다. 갓바위 약사불은 갓을 쓴 남성이라면 불굴사 약사불은 족두리를 한 여성의 모습을 하여 음양의 이치에 맞춰 조성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불굴사 약사불과 갓바위 악사불은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불굴사 약사불은 대좌의 양식과 상호와 신체의 표현 등을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불굴사 옆 소나무 길을 따라 오르면 천년송이 뿌리를 내린 암반에 절묘하게 세워진 홍주암이 있습니다. 원효대사께서 이곳에 머물며 수도를 하여 원효굴로도 불리는데 이곳은 김유신이 17세 때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수도했던 곳이라 알려졌습니다.




김유신은 신인에게 비법을 전수받아 삼국통일을 하게 되었다 하며 원효굴에서 나오는데 맞은편 산에서 백마가 울며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불굴사와 마주한 산봉우리는 지금도 명마산이라 부르며 김유신의 화신인 장군바위가 오늘도 늠름한 기상으로 팔공산을 지키고 있습니다.






원효대사와 김유신이 기도하며 마셨다는 바위틈의 석간수는 우리나라에서 물맛이 가장 좋고 귀한 약수라 하여 ‘아동제일약수’라 부릅니다. 아랫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장군수라 불렀으며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졌는데 실제 소화불량과 신장염에 좋은 물로 소문나 이물을 마시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홍주암이라 불렀는지 알 수 없지만 ‘붉은 구슬’의 의미는 태양을 뜻합니다. 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불굴사 경내에서 가장 먼저 양의 기운인 해를 마주하는 장소로 알려졌습니다.


내일이 대학 수능시험일입니다. 홍주암 독성각에 모신 나반존자는 500명의 나한중 제일 뛰어난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열반에 들지 않고 미륵불을 기다리는 부처님으로 한가지소원은 꼭 들어 준다 합니다. 팔공산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불굴사에 들러 만병통치 아동제일약수도 맛보고 한가지 소원도 이루어 보세요.  



김유신의 화신이라는 명마산장군바위

묵혔던 불굴사 사진 이제 포스팅합니다.(참고:불굴사 문화재 안내판)

#불굴사 #홍주암 #여행 #사찰 #경산와촌여행 #대구여행




2015/11/07 - (경북여행/경산여행)팔공산 관봉 용주암. 불교예술품의 전시장 같은 팔공산 관봉 용주암.


2015/11/04 - (경북여행/경산여행)팔공산 끝자락 명마산 장군바위. 자연이 만들었다하기에는 정말 신기한 토르현상 3층 석탑 명마산 장군바위에 깜짝 놀라다.


2015/02/20 - (대구여행/팔공산 케이블카)대구 팔공산 케이블카. 팔공산 산행이 아닌 여행으로 케이블카를 타 보았습니다.


2015/01/14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구경하기.


2014/11/16 - (대구여행/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팔공산마애약사여래좌상. 약한자든 힘 없는 자든 모든 중생을 보살펴줄 것 같은 마애약사여래불


2014/11/10 - (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2014/11/06 - (대구여행/팔공산 산행)팔공산 서봉~파계봉 산행. 알찬 팔공산 산행코스 서봉~파계봉 산행을 하다.


2014/07/04 - (대구여행/경산여행)팔공산 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을 만나다.갓바위


2014/07/02 - (대구동구맛집)팔공산동화사맛집 돌방구가든. 건강함이 가득한 식탁이라면 이정도 되어야죠??? 산채진미 나물 밥상 돌방구가든.


2014/05/31 - (대구맛집/팔공산 동화사맛집)자연산 송이로 맛을 내는 6천원 순두부백반 너무 맛있어요. 팔공산 동화사, 갓바위 맛집 산골기사식당


2013/12/18 - (대구여행/달성여행)팔공산 동화사에서 비슬산 대견사지 중창 불사진행, 비슬산 대견사 새로운 관광지로 될듯.


2013/12/12 -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병들고 아픈 국민들을 어루만져줄 것 같은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나다.


2013/11/06 - (경북여행/경산여행)팔공산 갓바위(관봉).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 준다는 팔공산 관봉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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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구경하기.


대구에는 팔공산이 있고 팔공산에는 동화사가 있을 정도로 대구에서 유명한 사찰 동화사를 보고 왔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팔공총림 동화사는 중생들의 병을 치료하는 약사여래 근본 도량입니다.



동화사적비를 근거로 신라소지왕 15년인 493년에 극달 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로 부르다가 흥덕왕 7년인 832년 심지 대사가 중창을 하면서 오동나무가 겨울에 상서로운 꽃을 피워 동화사로 개칭하였다는 설이며 또 하나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진표율사로부터 영심대사에게 전해진 팔간자를 심지대사에게 받은 뒤 팔공산에 와 이를 던져 떨어진 곳에 절을 세우니 이곳이 동화사로 첨당 북쪽 우물이 있는 곳이라 합니다.



이 두 설화에서 신라흥덕왕 7년에 심지대사가 중창이 아닌 창건을 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또한 중창과 중건을 거듭했는데 신라 말인 934년 영조선사, 고려시대로 넘어와 명종 20년인 1190년에 지눌보조국사, 충렬왕 24년인 1298년 홍진국사에 의해서 각각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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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선시대에는 선조39년인 1606년 유정사명대사, 숙종3년인 1677년 상숭대사, 영조8년인 1732년 관허, 운구, 낙빈, 청월 대사 등에 의해 중창과 중건을 이루어 현재의 대가람이 이루어 졌습니다. 동화사의 당우는 대웅전을 위시하여 천태각, 영산전, 봉서루, 심검당 등 이 영조 대 중창 된 건물이고 1992년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이 낙성 되면서 많은 건물들이 새롭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천왕문 격인 용호문을 들어서면 동화사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상서로운 새인 봉황은 대나무의 열매만을 먹고 오동나무에서 집을 짓고 알을 품습니다. 동화사 터를 풍수지리적으로 봉황이 알을 품은 모습인 ‘봉소포란형’의 지세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봉서루 앞 넓은 바위에 3개의 둥근 돌인 봉황알이 놓여져 동화사에 봉황의 정기가 서려서 인지 경건한 마음이 저절로 들게 합니다.







먼저 봉서루를 지나 동화사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을 향합니다. 보물 제1563호로 지정되었고 조선 영조 3년인 1727년 중건된 건물입니다. 정면3칸에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의 두리기둥을 세웠습니다.



 임진왜란 이 후인 1606년 사명대사가 학인에게 중창을 하게하고 1677년 개창을 하였습니다. 1725년 을사년 큰불로 소실 된 것을 1727년에 천순, 낙빈당 홍제, 홍우, 의삼등에 의해 중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웅전에는 어칸과 협칸에 꽃살문인 연꽃, 국화꽃, 금강저를 새겨 넣어 더욱 우아하고 화려하게 보입니다.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으며 보물 제 254호로 지정되어 금당암 입구에 있습니다. 당간을 세우기 위해 좌우에 지탱하는 돌기둥입니다. 통일신라 때부터 사찰 앞에 설치했던 구조물로 두개의 기둥사이에 기다란 장대를 세우고 의장용 깃발인 당(幢)을 매달아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였습니다.






현재 동화사에서 가강 많은 관광객과 불교신자들이 찾는 곳은 1992년 11월27일 완공하여 점안 봉안한 통일약사여래대불입니다. 높이가 17m, 거기다 좌대 높이만 13m 에 달하는 불상으로 150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갔습니다. 현재 약사여래불의 최대 둘레는 16.5m이며 총높이는 30m로 국내 최대의 입불상이다. 불교인 만이 아닌 국민의 염원으로 이루어진 동화사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은 병들고 아픈 전 국민의 상처를 꼭 어루만져 낳게 해줄 것을 믿습니다. 이외에도 동화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동화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산내 암자에 흩어져 있는 비로자나불좌상, 비로암 삼층석탑, 금당암삼층석탑, 흥진국사부도 등의 보물과 문화재가 있습니다. 한참에 다 불러 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으로 다음 팔공산 동화사 여행에서는 이번에 보지 못한 여러곳을 꼭 찾고 싶습니다.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입장료와 관람안내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 찾아가기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여행) 대구 팔공산 동화사. 약사 여래 근본도량인 팔공 총림 동화사를 찾는 방법 

봉황문에서 오르는 방법은 오래전부터 동화사의 주 출입구로 필자도 이곳으로 많이 올라 다녔습니다. 아마 동화사를 찾아오면 집단시설 지구로 오르는 도로 입구에 있습니다. 봉황문의 일주문을 통과하면 바로 우측 절벽에 창건당시 조성된 보물 제243호인 마애불좌상을 보게 됩니다. 옛 동화사를 오르는 길이라 창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걷다 108계단을 오르면 통일대불전 갈림길이 나옵니다. 지금부터 동화사를 둘러 보시면 됩니다. 또한 방법은 새로 조성된 집단 시설지구에서 동화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현재 동화문이 주 출입문이 되었습니다. 연못 앞에 걸린 다리를 건너면 관광안내소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여느 사찰의 천왕문격인 용호문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동화사를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참고;동화사 홈페이지)




2014/11/10 - (대구여행/팔공산파계사)팔공산파계사. 고즈넉하니 가을 풍경이 너무 좋았던 팔공산 파계사 절집구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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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화본리 오층석탑. 군위 덕림사 화본리 오층석탑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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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 면소재지인 화본리 뒷 산을 조림산이라 부릅니다. 아주 오래전 대홍수로 물난리가 크게 나 정상부가 새의 머리만큼 잠기지 않고 남았다하여 조림산으로 부릅니다. 조림산은 1950년 한국동란 때 피비린내 나는 대 격전지였습니다. 국군6사단 19연대와 인민군 8사단의 공방전으로 칠곡의 다부동 전투와 버금가는 격전지 였던 조림산에는 작은 사찰 덕림사가 있습니다.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석탑만이 이 자리에 있었는데 1960년 이 후 덕림사라 하여 극락전, 요사채, 산신각으로 작은 사찰이 들어섰습니다. 아쉽게도 옛 절터의 유래나 이름은 전하지 않는데 이곳에 남은 오층석탑은 한국동란의 격전지에서 그래도 포탄을 요행히 피해 석탑의 형태는 갖추고 있지만 훼손이 심한 상태입니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오층석탑으로 추정을 하며 높이는 2.95m이고 단층의 기단 하부는 현재 땅속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노출된 기단 상면에 3단 굄을 각출하고 그 위에 탑신을 올렸습니다. 맨 아래층 몸돌은 폭에 비해 높이가 높으며 나머지 몸돌은 높이가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몸돌위에 올려진 지붕돌인 옥개석은 모두 낙수면이 짧고 경사가 심합니다. 또한 상면에 1단 굄과 하면에 받침 4단을 조각하였습니다. 4층 몸돌을 제외하고 우주를 모각하고 2층 지붕돌과 3층 몸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었고 그 외 에는 지붕돌과 몸돌이 따로 만들어졌습니다. 지붕돌의 네 모서리에 풍탁을 걸기위한 두 개의 구멍이 뚫여져 있으며 상륜부에는 노반 파편이 남아 있습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6호. (참고:문화재안내판)
















2014/12/17 - (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조림산 산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이 있어 여행을 겸한 산행 조림산이 최고.


2014/12/13 - (경북여행/군위여행)산성면 화본마을, 화본역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2014/12/05 - (경북여행/군위여행) 중앙선 화본역.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마을의 화본역을 여행하다.


2014/12/02 - (경북여행/군위여행)화본역과 화본마을 추억여행. 화본역과 화본마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적 추억 여행을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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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1500년 전 원효가 창건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관룡사는  가야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천년고찰이다. 신라 26대 진평왕(538년)때 증법국사에 의해 창건된 관룡사는 원효대사가 화왕산 산상의 월영삼지의 연못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을 관룡사라칭하였다. 원효가 제자 1천여명에게 화엄경을 가르쳤던 곳으로 신라8대 사찰의 하나다. 관룡사는 화왕산군립공원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봄에는 진달레와 가을의 억새로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곳으로 화왕산과 함께 늘상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보물 4점과 지방문화재 5점 

 

특히 압권은 사찰 뒤로 펼쳐지는 병풍바위가 설악산의 천화대나 월출산의 한 부분을 잘라온 것 같은 절경이다. 관룡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데 대웅전(보물 제212호) 약사전(보물 제146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19호)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의 4점의 보물과 약사전 삼층석탑(경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원음각등 5점의 지방문화재가 있다. 지금 부터 관룡사의 문화재를 하나하나 찾아가 보자.

 

 


 

 

관룡사를 들어서면 먼저 작은 출입구가 보인다. 계단을 올라서면 통과하게 되어 있는 문으로 이전에는 이쪽문으로 출입을 하였던 것 같다. 아담한 문을 지나면 옛 빗돌이 서 있고 관룡사와 병풍암이 펼쳐진다.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느낌이다.

 

 

 

 

 

 

 

 

 화왕산 관룡사란 황금색의 현판이 빛을 발한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관룡사 원음각

 

관룡사 원음각은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40호로 사찰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범종각이 있다. 정면에 2층으로 된 건물이 원음각이다. 대웅전에서 바라보면 1층으로 보이는 건물은 1634년인 인조12년에 처음 세워졌다. 원음각에 있던 상량문을 보면 영조39년인 1763년에 크게 중건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숙종30년인 1704년에 발생한 산사태로 인해 다시 세운것으로 보여 진다. 정면3칸, 옆면2칸의 이익공계로 바닥은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이건물의 용도는 불구를 보관하거나 설법장소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관룡사 대웅전

 

대웅이란 부처님의 몸을 의미하는데 이 건물은  1965년 당시에 해체를 하여 복원을 하였다. 복원때 1749년 중창을 할때의 기록들이 상량문에서 발견되었는데 숙종30년인 1704년 대홍수로 인해 관룡사는 산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던 것 같다. 그때 관룡사는 많은 건물들이 훼손되어 1749년에 보수가 이루어 진것으로 보인다. 처음 대웅전의 건립은 1401년에 세워졌지만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것을 1617년~1618년에 다시 세워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면3칸 옆면3칸의 다포식 건물로 겹처마이며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은 형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르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점은 아랫 받침대 네면에 코끼리의 두눈을 형상화한 안상이 두개씩 조각되어 있다. 이는 장식적 의미이며 탑의 지대석을 따로 세우지 않고 자연 암반을 그대로 이용한 방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ㅣ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관룡사 약사전

정면과 옆면이 각각 1칸식인 맞배지붕이다. 주위의 건물에 비해 관룡사 약사전은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보물 제146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립시기를 보면 국보로 1404년 경에 지어진 송광사 극락전과 1473년 경에 중건된  도갑사 해탈문으로 역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와 같은 건축 양식을 보여 주며 15세기로 보여진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관룡사 약사전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519호로 고려시대 불상이다. 머리위의 둥근 육계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반달 구슬 계주가 표현되었고 법의의 겹쳐진 부분은 선각으로만 표현 되었다. 그리고 불상을 안치한 대좌를 보면은 석공이 신라 불상을 계승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대좌의 조성연대는 중좌에 나와 있는데 772년 혜공왕 8년으로 명문이 되어 있어 서로 만든 시기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관룡사는 많은 도지정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관룡사를 방문하여 병풍바위의 절경과 반야용선을 의미하는 용선대에서 석조여래좌상을 보며 타니타닉호를 타고 부처님의 세계로 가 보는 여행은 어떨지요.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관룡사 교통편

 

일단 창녕으로 가야한다 창녕시외버스 터미널을 나와 군내버스 정류장으로 가야한다. 오른쪽으로 사거리를 건너 150m 걸어가면 오른편에 영신버스정류장이 있다. 그곳에서 옥천행 버스를 타면 된다. 오전 7:25, 10:30, 12:30 옥천에서 창녕으로 나오는 버스는 오후 2:40, 4:20, 6:30(막차). 부산에서 출발시에는 서부터미널에서 창녕행7시부터 50분 간격으로 버스가 운행한다. 창녕에서 오전10:30분을 맞추기 위해서는 부산에서 오전7:50분 버스는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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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양산여행)천성산 원효암. 천성산 원효암에서 왜 천성산이라 하나요....

천성산은 먼저 대운산 척판암에서 주석하시던 원효스님이 하루는 혜안으로 중국 당나라 태화사의 사부대중이 산사태로 매몰될 위기에 처하자 원효는 급히 부엌문을 떼어 해동원효척판구중이라 적어 던져 일천명의 사부대중을 구하니 이들이 이곳 원효를 찾아 제자가 될 것을 간청하니 원효가 친히 마중을 나가 1천명의 제자와 함께 천성산에서 기거한다. 원래 천성산은 원적산으로 불려 지고 있었는데 원효의 당나라 제자 천명이 모두 득도하여 성인이 되었다하여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 만큼 이곳 천성산 대운산 일원은 원효대사의 전설을 두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곳이다.






 

 

 (경남양산여행)천성산 원효암, 천성산의 암자는...

원효대사는 천명의 제자와 함께 천성산인 지금의 내원사 입구에 도달하니 이곳 천성산의 산신이 친히 나와 원효와 그의 제자를 안내하니 그 후 원효는 산신을 처음 만난 곳에 산신각을 세웠는데 현재에도 그 곳에 산신각이 세워져 있다. 천성산에는 그들이 머물 수 있는 암자를 세웠는데 89암자가 될 정도로 많았다 한다. 그 중의 한 암자가 현재의 천성산 원효암이다.




 

 


(경남양산여행)천성산 원효암. 천성산의 암자 원효암

천성산 원효암은 한때 원효산 원효암으로 불렸다. 양산시 지명 위원회에서 천성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어 현재 원효산은 불리지 않는다. 부산 인근에서는 이 곳 원효암이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암자로서 주위의 경관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천명의 제자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였다는 화엄벌이 인근에 있어 더욱 원효의 전설이 흥미롭다.




 

 


(경남양산여행)천성산 원효암. 천성산 원효암 창건은,,,,

646년 선덕여왕 15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 그 후 1905년 효은스님에 의해 중창이 되었고 원효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의 내원사 말사에 속한다. 원효암은 깎아지른 절벽에 자리를 잡다 보니 앉은 터가 몹시 좁은 형세로 법당에는 1648년 인조 26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안치 되어 있고 본당 건물 오른쪽 바위벽에는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31호인 마애아미타삼존불이 섬세한 조각솜씨를 보여 주고 있다. 최근에 불사를 끝내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원효암은 천성산을 등지고 있는데도 바다와 대마도 까지도 볼 수 있다하니 원효암 암자중에서는 최고라 할만하다.



  

 

 

 

 

 

 

 마애아미타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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