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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김천여행)가을에 걷기 좋은 둘레길 수도산 인현왕후길 여행. 김천 인현왕후길


김천 수도산의 인현왕후길을 걸었습니다. 

수도산은 산속의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이라 흔히 내륙의 알프스라고도 부릅니다. 

수도산은 그 높이만 해도 1317m의 고봉입니다. 

백두대간의 초점산과 능선을 잇대며 가야산과 연결하는 종주 코스인 수도산~가야산 종주는 우리나라 대표 종주 코스에 들 만큼 장쾌한 능선 종주의 백미 코스입니다.





김천 수도산 인현왕후길 수도리 주차장 주소: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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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랭글캡쳐



또한, 양각산으로 있는 능선 또한 그에 버금가는 코스입니다. 

수도산에도 여러 개의 계곡을 거느리고 그 대표적인 계곡은 옥동천입니다. 불영동천으로 불린다는 옥동천은 무흘구곡이 있는 대가천으로 흘러 낙동강과 합류합니다.

 


지금도 오지마을로 통하는 수도마을은 인현왕후길의 들머리와 날머리입니다. 

그럼 인현왕후는 어떤 분일까요? 정말 궁금하죠. 

텔레비전 사극드라마에 여러 번 소개되어 최대 인기 드라마로 등극했던 소재입니다.




인현왕후길을 걷다 보면 인현왕후의 일대기를 그린 안내판이 잘 되어 있으나 다시 한 번 소개하겠습니다. 

인현왕후 민씨는 조선 숙종의 2번째 왕후입니다. 그러나 왕자를 낳지 못하면서 왕의 총애를 잃게 되었고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나인 장옥정이 왕자 이윤을 낳고 숙종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숙종은 이윤을 원자로 장옥정을 희빈으로 책봉하였습니다. 

이에 송시열을 위시한 서인은 반대 상소를 올리며 강력하게 대항하자 왕은 이들을 파면과 사사로 숙청해버렸습니다. 

그리고서 장옥정의 왕자 이윤의 원자 책봉을 찬성하는 남인을 대거 등용시켰습니다.

 


이를 기사환국이라합니다. 

이후 장옥정은 인현왕후를 간계로 폐서인 시키는 데 일조합니다. 

숙종은 폐서인된 인현왕후를 도우려는 자는 모두 역적으로 간주하겠다고 하자 인현왕후는 갈 곳이 마땅찮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외가인 은진송씨 도움으로 수도산 청암사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청암사에다 폐서인이 되었지만, 국모인 인현왕후가 기거하는 한옥을 지어 예우하였습니다. 

현재 청암사에는 사찰건물과 다르게 양반가의 집처럼 한옥건물인 극락전이 있습니다. 

인현왕후가 3년간 머물렀던 건물은 화재로 탔으나 100년 전 다시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숙종은 인현왕후의 폐서인을 후회하면서 폐비복위가 의논되자 남인인 민암 등은 반대 상소를 올리면서 강력하게 저지하자 숙종은 이들을 다시 유배를 보내거나 사사시키면서 숙청해버렸습니다.

 


이를 갑술옥사라 하며 이후에 인현왕후는 다시 복위되었으나 35세의 꽃다운 나이에 숨졌습니다.



수도산 인현왕후길 경로를 보겠습니다. 

수도리주차장~인현왕후길 입구~잇딴 쉼터~임도 갈림길~청암사 갈림길~용추교~용추폭포 전망대~출렁다리~용추소공원~옥동천 소폭포~수도리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순 거리는 약 8㎞이며 3시간~3시간 30분쯤 걸립니다.





수도마을 주차장에서 마을 입구의 당산을 지납니다. 

해탈교를 지나면서 콘크리트포장 길에는 인현왕후길 안내판을 여럿 지납니다. 

수도녹색숲모티길갈림길 삼거리를 지나면 곧 인현왕후길 갈림길입니다.

 


수도암은 왼쪽, 인현왕후길은 오른쪽입니다. 

인현왕후길 입구에 대형안내판이 서 있으며 이정표도 있습니다. 

인현왕후길은 700m대의 수도산 산허리를 돌아갑니다.

 










높낮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편안한 길이 청암사 갈림길까지 뒤로 돌아보면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준봉들이 줄을 잇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만나는 포토죤과 인현왕후 스토리텔링이이어집니다.






















인현왕후와 장옥정을 알아가는 재미도 정말 쏠쏠했습니다. 

인현왕후길은 하늘을 가릴 정도로 키 큰 나무와 울울창창한 숲을 걸으면서 이런 숲길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행운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인현왕후 스토리텔링을 보면. 인현왕후의 가례식‘ ‘인현왕후의 눈물’ ‘인현왕후와 청암사와의 인연’ ‘인현왕후의 기도’ ‘인현왕후의 환궁’이 있는 스토리텔링 마지막 안내판에는 정자가 있고 임도는 왼쪽으로 나아갑니다.













임도는 진입금지 안내판이 붙어 있으며 인현왕후길은 직진 능선길을 오릅니다. 

인현왕후 포토죤을 지나면 청암사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아무 표시가 없는 왼쪽은 청암사이며 인현왕후길·용추폭포는 오른쪽입니다.





인현왕후길은 편안하게 내려가다가 계곡을 만납니다. 

수량이 제법 많았습니다. 

다시 내려가면 도로와 만나고 옥동천의 용추교를 건너갑니다. 

지금까지 옥동천의 오른쪽을 걸어왔다면 이제부터 왼쪽을 따라갑니다.










그 중간에 용추폭포가 있습니다. 용추폭포는 20여m 높이에서 떨어지며 뿜어내는 굉음은 심장을 멈추게 할 정도로 장관이었습니다.

 











진짜 무더위를 확 날려버릴 만큼 시원했던 용추폭포를 지나면 옥동천에 놓인 출렁다리를 건너 소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계곡의 작은폭포를 보고는 되돌아 나와 수도리 주차장까지 도로를 따라 20여 분이면 수도리 주차장에 닿았습니다.



청암사 이끼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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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김천여행)가을의 문턱에 다시 찾고싶은 사찰 김천 수도산 청암사 여행, 수도산 청암사 이끼폭포


김천 수도산 청암사는 직지사 말사로 859년 신라 헌안왕 3년 도선국사께서 건립한 사찰입니다. 

1647년 조선 인조 25년에 화재가 나는 바람에 청암사는 모두 불탔습니다. 벽암각성스님이 청암사 전소소식을 듣고 문도 중에 허정혜원스님을 보내어 중창토록 했습니다.





김천 수도산 청암사 주소: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688

김천 수도산 청암사 전화:054-432-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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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청암사는 특이한 이력이 있습니다. 

조선 19대 왕인 숙종의 2번째 왕후인 인현왕후는 1689년 기사환국으로 폐서인으로 되어 청암사 극락전에 복위될 때까지 3년을 머물렀던 곳입니다.

 


비록 서인의 신분으로 강등되었지만, 국모였던 인현왕후를 예우하여 새로 지은 한옥인 극락전은 사대부가 형태의 건물이라 사찰의 건물로서는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인현왕후를 위해 극락전 옆에다 42수관세음보살을 모신 보광전을 지어 복위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극락전에 머물렀을 때 어느 날 인현왕후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죽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서러움에 복받치다 살포시 잠이 들었고 꿈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천축산 불영사에 기거하는 중이라며 3일만 더 기다리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하며 사라졌습니다.



인현왕후는 꿈에서 깨어나 기이하게 생각하여 마음을 고쳐잡고 3일을 더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숙종은 명령을 내려 인현왕후를 서궁으로 이전하게 하고 다시 왕비로 복위시켰습니다. 

인현왕후는 꿈속에 나타난 청암사의 노스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서찰과 함께 수도산(불영산) 일대를 보호림으로 지정하고 전답을 하사하여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인현왕후가 머물러서 그런지 조선 시대 말기까지 청암사는 궁궐의 상궁이 신앙생활을 하던 곳이라 합니다.



청암사는 수도산 자락에 있습니다. 청암사 자체가 워낙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너무나 조용한 게 발소리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청암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숲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일주문을 지나고 천왕문을 통과하면 작은 다리가 놓였습니다.

 



좌우 바위벽에는 사람 이름 등 많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이 사진을 찍는 분들에게는 청암사 출사지로 유명합니다. 

저도 24mm 단 렌즈라 끌쩍거려보다 포기하고는 다리를 건너 계단을 올랐습니다.

 




청암사 경내이고 가장 먼저 인현왕후가 머물렀다는 극락전으로 향했습니다. 

현재 청암사는 비구니 스님의 수행 도량이며 극락전 또한 스님이 머무는 공간이라 출입을 할 수 없도록 막아놓았습니다. 

그래서 출입문에서 극락전을 보았습니다.

 






극락전 옆에는 인현왕후의 기도소인 보광전이 있어 둘러보았습니다. 

현재 극락전은 근대에 와서 새로 중건했습니다.





1905년 주지 스님이 빨간 주머니를 얻는 꿈을 꾸고 나자 한양에서 노보살이 자신이 죽으면 염불을 부탁하고는 많은 시주를 하였습니다. 

주지 스님은 노보살의 시주를 가지고 쇠락한 극락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극락전은 인현왕후께서 머물렀던 당시의 극락전이 아니라는 말씀.






청암사 보광전은 1689년 숙종 15년에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원당으로 건립되었으며 1905년 다시 중건했습니다. 

다포양식과 익공양식의 절충형 건물로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건축양식의 변천을 엿볼 수 있는 건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8호에 지정되었습니다.

 






대학 산악부일 때 수도~가야 종주산행을 여러 번 하면서 청암사 계곡으로 올랐던 기억이 새삼 생각났습니다. 

1980년 초이니까 그 당시의 청암사는 진짜 적막감만 흘렀는데 이번에 찾았던 청암사는 관광객이 제법 있었습니다.

 




대웅전으로 내려왔습니다. 창건 역사에 비해 청암사는 국보와 보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나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의 짜임새 있는 구조를 보았습니다. 

대웅전 앞의 청암사 다층석탑은 조선 후기의 석탑으로 1912년 성주에서 옮겨왔다고 합니다.

 


지대석 위에 2층의 기단을, 그 위에다 탑신을 올렸으며, 5층석탑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층 몸돌 각 면에 불좌상을 돋을 새김 했으며 전체적으로 지붕돌과 몸돌의 비례가 맞지 않아 불안정해 보였습니다.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21호. 현재 청암사 대웅전은 1900년대 초에 주지였던 대운 스님이 중건하였습니다. 

2단으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다 건물을 올렸으며 앞면 3칸에 옆면 3칸인 겹처마팔작지붕에 청기와를 올렸습니다.

 




건물의 외부는 금단청을, 내부는 모로단청으로 채색했습니다. 

건물 외벽에 그려진 보살상, 천인상 등 불화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20호. 청암사 경내를 둘러보고 나서 돌아가야 할 시간도 있고해서 입구로 급하게 나오는데 “폭포가 어디입니까” 하며 누군가 물어보기에 위치를 알려주었습니다.

 








입구에 도착해서 함께 온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표준렌즈로 바꾸고 삼각대를 들고 다시 청암사 1 출사 포인트인 이끼폭포로 향했습니다. 

폭포를 물었던 분이 한참 사진을 담고 있었습니다.

 








저도 양해를 구하고 한쪽에 삼각대를 펴고 청암사 이끼 폭포를 찍는다고 찍었습니다. 

필터도 없는데 옆에서 왜 필터를 안 끼워 찍습니까 하면서 염장을 팍팍 찔렀습니다. 

대중 찍고는 좋은 사진 많이 담으시라 하고는 일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달렸습니다.

 






벌써 계곡의 나무는 가을을 준비하는 듯 보였습니다. 

붉게 가을 색으로 채색한 청암사가 기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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