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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여행)범어사여행. 화재로 소실된 천왕문이 복원되다. 


2010년 12월15일 밤 10시20분경에 범어사 경내의 천왕문이 화재로 전소하였다는 뉴스가 다음날 전국을 강타하였다. 서울의 숭례문 화재가 발생되어 안그래도 우리 문화재의 관리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된 사건이다. 그 당시 상황을 보면' 범어사 경내로 들어서면 먼저 보물인 일주문(조개문)을 만나게 된다. 이 건물 30m 뒤에 4천왕상을 모신 천왕문이 있다. 문을 열고 한남자가 들어와 서성이다가 이남자가 나가고 난 뒤 곧 바로 천왕문에 불길이 치솟았다한다' 천왕문은 문화재는 아니지만 조선숙종때의 건축물로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범어사를 지켜 왔고 그 안에 모셔진 4대천왕상은 천왕문안에다 모사품을 세우고 보수를 위해 경내의 성보박물관에 보관을 하던 중이라 화재의 참사에서 피할 수 있었다. 





 

 화재 당시 소실된 천왕문이 현제 말끔히 복원이 되었다. 범어사로 들어서는 길은 천왕문을 지나 대웅전 방향으로 올랐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도 이 천왕문을 통하고서는 대웅전 방향으로 오를 수 없다. 또 하나의 공사가 있어 그러한데 일제의 잔재 건물인 보제루를 헐어내고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을 하고 있는 중이라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조만간 다시 옛날의 멋진 모습으로 범어사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복원된 천왕문과 4천왕상을 구경하세요

 

 

 

 

 

 

 

 

 

 

 

 

 

 

 

 

 

 

 

 

 

 

 

 

 

 

 

 

 

 

 

 

 

 

 

 

 

 

 

 

 

 

 

 밑의 사진은 화재전의 천왕문 모습과 4대천왕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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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양산여행)천성산 원효암. 천성산 원효암에서 왜 천성산이라 하나요....

천성산은 먼저 대운산 척판암에서 주석하시던 원효스님이 하루는 혜안으로 중국 당나라 태화사의 사부대중이 산사태로 매몰될 위기에 처하자 원효는 급히 부엌문을 떼어 해동원효척판구중이라 적어 던져 일천명의 사부대중을 구하니 이들이 이곳 원효를 찾아 제자가 될 것을 간청하니 원효가 친히 마중을 나가 1천명의 제자와 함께 천성산에서 기거한다. 원래 천성산은 원적산으로 불려 지고 있었는데 원효의 당나라 제자 천명이 모두 득도하여 성인이 되었다하여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 만큼 이곳 천성산 대운산 일원은 원효대사의 전설을 두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곳이다.






 

 

 (경남양산여행)천성산 원효암, 천성산의 암자는...

원효대사는 천명의 제자와 함께 천성산인 지금의 내원사 입구에 도달하니 이곳 천성산의 산신이 친히 나와 원효와 그의 제자를 안내하니 그 후 원효는 산신을 처음 만난 곳에 산신각을 세웠는데 현재에도 그 곳에 산신각이 세워져 있다. 천성산에는 그들이 머물 수 있는 암자를 세웠는데 89암자가 될 정도로 많았다 한다. 그 중의 한 암자가 현재의 천성산 원효암이다.




 

 


(경남양산여행)천성산 원효암. 천성산의 암자 원효암

천성산 원효암은 한때 원효산 원효암으로 불렸다. 양산시 지명 위원회에서 천성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어 현재 원효산은 불리지 않는다. 부산 인근에서는 이 곳 원효암이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암자로서 주위의 경관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천명의 제자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였다는 화엄벌이 인근에 있어 더욱 원효의 전설이 흥미롭다.




 

 


(경남양산여행)천성산 원효암. 천성산 원효암 창건은,,,,

646년 선덕여왕 15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 그 후 1905년 효은스님에 의해 중창이 되었고 원효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의 내원사 말사에 속한다. 원효암은 깎아지른 절벽에 자리를 잡다 보니 앉은 터가 몹시 좁은 형세로 법당에는 1648년 인조 26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안치 되어 있고 본당 건물 오른쪽 바위벽에는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31호인 마애아미타삼존불이 섬세한 조각솜씨를 보여 주고 있다. 최근에 불사를 끝내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원효암은 천성산을 등지고 있는데도 바다와 대마도 까지도 볼 수 있다하니 원효암 암자중에서는 최고라 할만하다.



  

 

 

 

 

 

 

 마애아미타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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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불원은 옛합판 왕국 동명목재 고강석진 회장께서 사재를 털어 창건을 하여 부산시에 헌납을 하였다 합니다.
1977년 5월22일 개원하여 처음으로 불법을 펼쳐진 날이라 합니다. 사실 동명불원에 가 보면 우리네 절집같은 푸근한
마음이 들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왜 일까요.
지금까지 생각하고 왔는 우리 사찰의 건물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동남아의 영향을 받아 올린 건물이라 용마루가 길게 뻗어 나와 있으며 외관 또한 화려하게 지어졌습니다. 건물의 규모는 엄청 큰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스님들이 있는 절집의 분위기 보다는 어느 사원에 들어선 것 같은 분위기는 나만의 생각일까. 



먼저 일주문과 만나게 됩니다.

사찰을 들어서는 이 건물은 용당으로 넘어가는 도로위에 지어져 모든 차들이 이 밑으로 통과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건물을 들어서는 입구입니다. 동명불원이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그 위에 전각을 올려 범종각이 조성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모든 번뇌에서 구재해 준다는 범종은 무게가 27톤으로 경주 에밀레종보다 6톤이나 더 무겁다하며 국내에서는 최대의 종이라하네요.


부산시 남구 용당동 비룡산 동명불원은 동남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전체적으로 건물들이 용마루가 뻗어 나간 형태로 지어 졌다. 대웅전을 본전으로 부속건물로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관음전,극락전,나한전의 당우가 있다.





사찰을 들어서기 위해서는 일주문을 지나 좌측으로 틀면 천왕문 격인 사천왕상을 통과해야 한다. 불국정토를 지키고 불법을 수호한다는 사천왕상은 악귀들을 밟고 서 있으며 사천왕문의 설계는 입상작으로 결정되어 지어졌다 한다.



대웅전

안의 내부에는 석가세존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미륵보살을 우측에는 제화갈라보사릉 3본을 모섰다. 법당의 높이는 16m로 가운데는 기둥을 세우지 않아 전체적으로 공간의 활용과 시원한 공간배치를 할 수 있도록 하였고 양쪽 벽에는 비천상과 천장의 중앙에는 4마리의 용머리로 꾸며 놓았다. 큰 대웅전에 걸맞게 목조개금불상은 국내 현존하는 불상중에서는 가장 큰 것이다.




대웅전 우측의 관음전입니다. 들어오는 입구 건물의 종각 반대편에 있는 건물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곳으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삼존불 즉 중앙의 아미타불과 좌우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보시는 곳이다.



화려하게 꾸며진 대웅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화려하고 큰 것 이외에는 감응이 전달 되지 않는 건물입니다.그리고 모든 건축물이 목재로 지어진 것이 아니고 시멘트로 올린것 같습니다. 자연의 조화가 아쉬운 마음입니다


 

 

 

 

 


 

 



불교에서는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사찰 당우인 극락전읩니다.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극락보전, 무량수전,무량전, 보광영전, 아미타전이라고도 합니다.


 
산신각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본 동명불원입니다. 왼쪽 건물이 대웅전이며 덕망탑과 부덕탑도 보이는 군요. 전면에 보이는 건물이 관음전입니다. 건물의 형태는 'ㅁ'자로 지어져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주차공간으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앞으로는 두 개의 석탑이 서 있는데 좌측의 탑은 효자효부를 기리는 뜻에서 덕망탑이라 하고 우측의 탑은 부덕탑으로 젊은 선남선녀가 불법에 귀의하여 덕망과 부덕을 잘 닦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탑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처음 보는 탑의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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