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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의성김씨 학봉종택. 안동 의성김씨 학봉 김성일 종택을가다. 의성김씨 학봉종택



양반의 고장인 안동에는 여러 종택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의성김씨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 선생의 종택을 여행했습니다. 학봉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본관은 의성입니다. 자는 사순(士純), 학봉은 호이며 사후 문충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안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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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7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건축물인 극락전, 대웅전이 있는 안동 천등산 봉정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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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김성일구택 

 

'학봉선생구택'이란 현판이 걸린 입구의 솟을대문입니다. 앞면 5칸, 옆면 1칸인 대문채의 규모 또한 학봉 선생의 올곧은 마음을 보여주는 듯 정갈한 모습입니다. 가운데에다 출입문을 내었고 좌우 두칸에다 1칸짜리 2개의 방을 각각 넣었습니다. 대문이 활짝 열려있어 여행객은 누구나 구경할수 있습니다.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먼저 소나무 등 온갖 정원수가 사계절 푸르름이 가득하고 거북바위 등 문양석이 마당을 가득 메워 조선 시대 학봉종택의 위상을 읽을수 있었습니다. 학봉선생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성리학의 학통을 잇는 류성룡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이라 일컫습니다.

 

 

 

 

잔디가 깔린 마당을 지나면 종택 건물인 사랑채가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학봉종택은 처음에는 지금의 자리에 있었다합니다. 그러나 저지대라 물이 차자 1762년인 영조 38년에 이곳에서 100m 가량 떨어진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러다 1964년에 다시 원래 자리였던 지금의 위치로 안채만 옮겨 세웠고 사랑채는 남겨두었는데 이는 소계서당으로 사용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번 안동여행에서 이웃에 있다는 사랑채 건물인 소계서당을 보지 않고 돌아온 게 매우 아쉽습니다.



 

 

뒤돌아 본 대문채입니다.



 

 

사랑채는 길게 한일자 건물로 이루어졌습니다. 안채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열려 있고 왼쪽 닫힌 문은 부엌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옮겨 세워왔다는 안채는 오른쪽에 대청이 3칸이며 안방은 왼쪽 2칸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 부엌이 달려 전형적인 경상북도 양반가옥 구조인 'ㅁ'자형입니다.

 

 

 

 

 

 

 

 

이곳도 사랑채 건물로 앞면 4칸에 옆면 3칸이며 2칸은 온돌을 넣은 방이며 2칸은 마루로 보입니다.  4칸 전면부에 길게 계자난간을 돌린 누마루가 달려 누각을 겸한 건물로 칸마다 각각의 현판이 걸렸고 1963년에 옮겨오면서 다시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참 잘 지은 건물입니다.

 

 

 

 

 

 

 

 

 

 

 운장각

 

운장각(雲章閣) 건물입니다. 학봉 김성일 선생의 유물을 보관해서 그런지 문이 꽉 잠겨져 있습니다. ‘운장’이란 “탁피운한(倬彼雲漢) 위장우천(爲章于天)”에서 한자씩 취했는데 그 뜻을 보면 “저 높은 은하수처럼 하늘 가운데서 맑게 빛난다”입니다. 운장각에는 경연일기, 해사록 등 선생의 친필 유고와 사기, 고려사절요 등 조선 초기에 간행된 전적 56종 261점과 교지, 편지 부류의 고문서 17종 242점 등 총 73종 503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학봉 선생이 사용하던 안경, 벼루, 말안장 등 온갖 유품이 400여 년이 넘은 지금까지 모두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후손분들 의 선조에 대한 공경심이 실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운장각 안쪽으로는 학봉 김선일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으며 사당은 평소에는 개방을 하지 않습니다. 사당을 오르는 계단에서 바라본 학봉종택은 잘 단장되어 마치 숲 속의 정원을 이룰 정도로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학봉선생의 시호를 딴 '문충고가' 현판입니다.

 

 

 

 

 

 

 

 

 

 

 

풍뇌헌입니다. 이 건물도 누각 형태로 보이며 앞면 4칸에 가운데 2칸은 마루를 깔고 좌우 1칸씩 온돌방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툇마루를 길게 달아내었고 난간을 둘렀습니다. 또한 특이한 것은 처마 끝의 긴 서까래 위에 짧고 네모진 며느리서까래를 다시 잇대어 달아낸 겹처마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왕이 머무는 곳을 뜻하며 궁궐이나 별궁 이외에는 겹처마를 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학봉 김성일은 황윤길과 조선 통신사의 일원이 되어 조선 침략의도를 정탐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 와 조정에 보고하기를 정사 황윤길은 “전쟁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보고를 하지만 김성일은 “일본은 전혀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 없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이에 류성룡은 왜 그런 보고를 올렸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제야 “전쟁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하며 덧붙이기를 “왜란의 가능성을 부인한 게 아니라 왜적이 쳐들어 오기 도전에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는 게 더 급하다”고 판단하여 그런 보고를 올렸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뒤 임진왜란이 터지자 조정에서는 학봉 김성일을 파직하고 참형의 형벌을 내렸습니다. 이에 류성룡의 시국이 이러한 때 학봉 김성일만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며 등용을 할 것을 청해 학봉은 경상도 관찰사 초유사로 임명되어 경상도로 내려왔고 의병장 곽재우, 정인홍 등이 도와 전쟁을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진주성 전투에서는 김시민장군이 죽자 학봉은 진주성을 지키게 되었으며 왜적이 곡창지대인 호남평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이곳 진주성을 공략할 것을 미리 알고 의병과 함께 진주성을 사수하여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을 진두지휘하였습니다. 그 뒤 1593년 왜적의 재공격을 대비하는 과정에서 학봉 김성일은 진주성에서 병사하였습니다.

 

 

 

 

 

 

 

학봉기념관

 

 

 

 

 

 

 

 

오른쪽 글씨는 퇴계 이황이 손수 쓴 병명을 학봉이 받았다  


 

 

 학봉집

 

 석문정사

 

 

 

학봉김성일의 유물 

 

 

 

 

 

 

 

해사록 

 

 

 

 

 

 

 

 


◆의성김씨학봉종택 정보 안내◆


의성김씨학봉종택 주소: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5

★의성김씨학봉종택전화:054-672-2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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