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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에서 봄나들이 하기 좋은 보문단지에서 만나는 경주천군리삼층석탑. 경주천군리삼층석탑


경주 천군동사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천군동사지는 경주에서 대표적인 위락시설이 있는 경주 보문동 보문단지 인근에 있는 절터로 보문호의 명성에 가려있어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곳에 자리했습니다.





경주 천군리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천군동 550-2



2019/02/08 - (경북여행/경주여행)나원백탑으로 불렸다는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만나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

2018/10/06 - (경북여행/경주여행)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국보 제236호 장항리 사지 서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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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보문단지 인근에 천군동사지가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으며 우연히 자료 검색을 하다 천군동사지에 동·서 삼층석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번 경주여행길에서 찾았습니다.

 


폐사지 대부분이 옛 절의 이름과 창건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이곳 천군동사지도 정확한 창건연대와 이름을 확인할 수 없어 천군동에 있는 절터라 해서 그저 경주천군리사지 또는 천군동사지라 부릅니다(천군동사지 사적 제82호)



경주천군동사지는 두 삼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을 확인 할수 있어 사찰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발견 당시에는 삼층석탑이 무너졌으며 탑재와 추춧돌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일본인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중문·금당·강당 자리를 일부 확인했습니다.

 


두 탑은 그 이듬해인 193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천군동사지의 가람은 통일신라시대양식인 쌍탑에 1금당 양식을 따랐습니다. 

앞에 중문이 있고 그 안쪽에다 동·서 쌍탑을 세웠으며 쌍탑 뒤로 금당과 강당을 두고 둘레에는 회랑지가 자리했습니다.



남아있는 주춧돌 등의 흔적을 보면 중문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 금당은 앞면과 옆면이 모두 5칸이며 강당은 앞면 8칸에 옆면이 3칸 크기입니다. 

중문에서 강당까지의 거리가 79m이며 폭은 대략 61m입니다.



특히 천군동에서 발굴된 유물 중에 궁궐의 지붕 맨 윗부분 양쪽 끝에 장식하던 치미가 발굴되었는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입니다. 

우리나라에 치미는 몇 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경주의 관문인 경주나들목을 빠져나오면 만나는 나정교 좌우 앞과 뒤에 황금색 모양의 치미를 세웠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웅장합니다.



그만큼 그 크기가 대단하며 이게 기와건물의 지붕 양쪽 끝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치미가 나왔다는 것을 보면서 천군동사지도 당시 신라 궁궐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사찰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천군동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양식인 쌍탑식 절배치이며 주위에 경작한 논밭으로 변해 있어 당시의 모습은 확인할수 없을 정도로 훼손 상태가 심합니다. 

복원된 동서 쌍탑은 그래도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168호)은 이중 기단에 삼층의 탑신이며 두탑은 서로 닮은 쌍둥이 탑으로 불릴 정도로 규모나 양식이 거의 같습니다. 

동탑의 머리장식인 상륜부는 분실되어 없지만, 그에 반해 서탑은 탑 꼭대기 머리장식인 노반 등이 일부 남아 있어 탑의 면모를 갖추어 더욱 위엄 있어 보입니다.

 




기단에는 양쪽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2개의 기둥을 새겼으며 3층의 몸돌에도 양쪽 모서리에다 각각 기둥을 조각했습니다. 

몸돌과 지붕돌인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지붕돌의 밑면인 층급받침은 5단이며 처마선은 짧고 급하게 떨어지면서 네 귀퉁이는 살짝 치켜 올려졌습니다.

 




몸돌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하나 도굴되었는지 사리장신구 등은 찾지 못했다 합니다. 

경주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분위기인 장중함이 느껴지며 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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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와 함께 창녕군에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그러니까 창녕군에서 두 점의 국보 중 하나가 이곳 술정리 동 삼층석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있는 것을 보니까 같이 술정리 서 삼층석탑이 어디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2-20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전화:055-530-1473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2018/03/29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2018/03/2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신라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신라 진흥왕 척경비 여행

2015/12/18 - (경남여행/함안여행)용화산 능가사. 남지철교와 낙동강을 끼고 앉은 최고의 절집 용화산 능가사 여행하기.

2015/12/11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남지철교. 6.25 한국동란 최대 격전지 낙동강 전투의 상흔이 남아 있는 등록문화재 145호 남지수변공원의 창녕 남지철교를 여행하다.




맞습니다. 술정리 서 삼층석탑도 있으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 사찰로 보기에는 힘들어 보였고 술정리 동·서삼층석탑으로 명시된 것에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인근에 절의 표시나 절을 알리는 당(깃발)을 묶은 깃대를 고정한 당간지주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일단은 사찰 터가 있었다고 생각되었으며 품었던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입니다. 

당시 가람배치의 형태는 대웅전 앞쪽에 좌우로 각각의 탑을 세우는 2탑 1금당 형식이며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절터에서 동·서 어느 쪽인지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라 이름 한 것도 1km쯤 떨어진 서쪽의 삼층석탑(술정리 서 삼층석탑. 보물 제502호)과 알기 쉽게 구분하기 위해서 붙여진 명칭이라 합니다.







2004년 11월 (재)동아문화연구원에서 낸 보고서에서는 “2002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동삼층석탑에 대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규명하고 석탑을 둘러싼 주변 사지(寺址)의 규모와 성격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의 수집을 위해 이 일대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한 결과, 동삼층석탑 주변 일대의 민가와 담장 등에서 확인되는 석재와 각종 문헌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곳에 ‘인양사(仁陽寺)’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를 보면 술정리 동 삼층석탑 일대는 인양사지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번 창녕여행에서 창녕 군청 옆 비각 안에 인양사 조성비를 보고 왔던 터라 그 조성 비문에서 인양사조성비를 금당 뒤쪽에 세웠다고 추정했습니다. 

인양사 조성비 부근에 절의 중심건물인 금당이 있었고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인양사 삼층석탑이라 보면 인양사의 규모는 정말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이층기단 위에 삼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입니다. 

그리고 불국사의 석가탑과 비슷한 모습에 군더더기 없는 절제미에 위풍과 당당함을 갖춘 아름다운 탑이며 경상남도에 남아 있는 석탑 중에는 가장 오래된 탑입니다. 

일명 ‘사지탑(寺址塔)’이라고 불리는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1965년 해체복원을 했습니다.





당시 해체를 하는 과정에서 3층 몸돌의 사리공에서 청동잔형사리용기, 사리병과 사리7과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현재 상륜부는 모두 남아 있지 않으며 납의 높이는 5.75m에 이릅니다. 

또한, 탑은 크고 웅장하며 기품있는 모습입니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이층의 기단을 올렸습니다. 

아래 기단과 위층기단의 각 면 모서리 기둥인 우주와 가운데 기둥인 두 개의 탱주를 새겼으며 몸돌은 각 모서리에 우주만 새겼습니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며 끝 모서리님 귀가 약간 들렸습니다. 

그 아랫면에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습니다.

 








2008년 10월~2009년 7월까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에서 석탑의 서편지역에서 문지로 보이는 건물지 1동과 계단 유구, 일부만 남아 있는 3동의 건물지를 확인했습니다. 

고려 시대로 보이는 건물지 1동에서 ‘송림사’ 명문이 들어간 기와가 발견되어 한때 송림사로 불렸다는 사실도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술정리 동삼층석탑을 보고 난 뒤 그 너른 광장 끝에는 국가 민속문화재 제10호인 창녕 진양 하씨 고택이 있습니다. 

이집의 특징은 요즘 좀처럼 볼 수 없는 초가집이란 점입니다. 

대문채에도 초가지붕이라 처음에는 이게 문화재인 초가집이구나 하며 신기하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진양 하씨고택인 초가집은 이 대문채가 아니고 대문을 들어서면 그 안쪽에 자리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대문이 굳게 잠겨져 있습니다. 

대문에는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평일에만 개방하고 주말에는 폐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요일에 찾았던 터라 개인 살림집인 고택 주인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멀리서 찾아간 우리로서는 그냥 발걸음을 돌린다는 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대문채 앞으로 기와건물인 사랑채가 있고 그 뒤에 초가지붕인 안채가 있어 밖에서는 까치발을 들어도 보고 보일만 한곳이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아도 초가집이 워낙 낮아서 볼 수 없었습니다. 

많이 아쉬웠으며 다음번에 평일 날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구조는 4칸의 일자형 건물로 흔히 말하는 초가삼간입니다. 

맨 왼쪽 1칸은 부엌이며 그다음은 안방 1칸에 대청이 1칸, 대청과 연결된 건넛방이 1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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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외동여행)경주 원원사지 삼층석탑. 조각예술의 결정체 경주원원사지 삼층석탑


경주 원원사지 삼층석탑

경주시 외동읍 모와리 산
보물 제1429호
울산에서 경주로 가는 국도변을 따라가면 외동읍 모화리가 나온다.

모화리 우측으로 큰 능선이 울산 장생포까지 이어지니 흔히 말하기를 삼태지맥이라 부른다.

봉서산과 삼태봉 능선아래 숨은 듯이 자리 잡은 천년고찰 원원사지가 자리를 하고 있다.

옛 절터의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절터임을 확인할 수 있는

쌍탑만은 오늘도 신라인의 예술성을 뽐내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원원사는 김유신이 신라를 지키기 위해 건립하였다.
사찰의 이미지 보다는 사찰로 위장을 하여 신라의 입구인 관문성을 지키는 호국사찰이었다. 





원원사지 삼층석탑은 다른 석탑보다 파손범위가 매우 크다.
그러나 석재 하나 하나에서 뿜어저 나오는 예술성은 매우 뛰어나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지금의 천불보전 뒤가 금당자리였는데 금당 앞에 파손되어
어지럽게 널려 있던 것을 1931년 복원을 한 것이다.
전체 높이는 7m이며 상륜부는 노반과 앙화 까지만 남아 있다.

2단의 기단위에 삼층으로 쌓아 올린 원원사지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며 탑신과 기단의 뛰어난 조각으로 유명하다. ]
상층인 사면에는 평복을 입은 십이지상이 3체식 조각되어 있고
1층 옥신에는 1구식 돋을 새김으로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찾아가는 길

부산 금정구 노포동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를 탄다. 오전 5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10분 간격 운행, .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모화행 600번 시내버스로 갈아타면 30분가량 걸린다. 운행 간격은 15분 안팎이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는 국도 7호선을 타고 울산 시내와 울산공항, 북구 호계동을 거쳐 경주로 진입한다. 외동읍 모화리에서 계동교를 지나면 오른쪽에 모화숯불단지 원원사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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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청도여행)금천면 미륵당 박곡동석가석조여래좌상. 부처님의 얼굴일까?. 함몰된 얼굴이지만 예술성이 뛰어난 박곡동석조석가여래좌상입니다.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미륵당마을안에는 보호각안에 불상이 안치 되어 있다. 대비사 가는 길목에 예사롭지 않은 모습으로 않아 있는 석조석가여래좌상으로 보물제203호로지정 되어 있다. 전체적인 크기는 276CM이며 어굴은 윤곽을 알 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한 상태이지만 석굴암의 본존불과 조각수법이 비슷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불두는 함몰되었지만 지금의 그 모습으로도 예술적 가치를 인정 받고 있어며, 떡 벌어진 어께하며 힘과 기상이 넘치는 뛰어난 작품이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분되며 8각으로 연꽃모양을하고 있다.




박곡리 마을에 안치되어 있는 보물203호 석조석가여래좌상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각이 설치되어 있다.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먼저 탑의 일부분을 볼 수 있다.









석조석가여래좌상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각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열차와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부산역에서 청도행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 출발시각은 오전 5시10분, 5시45분, 6시40분과 50분, 7시50분, 9시10분, 10시30분 등이다. 1시간 걸리며 4800원(주말 5000원). 청도역 앞 청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운문사행 버스를 타고 금천면 동곡에서 내린다. 오전 9시20분, 10시10분, 10시50분에 있다. 1시간 걸리며 3500원. 동곡정류장에서 산행 기점인 박곡리로 가기 위해서는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데 15분 걸린다. 박곡리 입구 정거장에 하차. 오전 9시45분, 11시30분, 오후 4시10분, 6시10분 등 하루 6회 운행한다. 요금은 1000원. 동곡정류장 입구에 있는 개인택시(054-372-3066)를 이용할 경우 요금 5000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는 대구-부산 고속도로를 타고 청도TG에서 내려 밀양·청도 방면 25번 국도를 타고 우회전했다가 곧바로 경주·운문 방면 20번 국도로 좌회전한다. 운문사 방향으로 동곡재를 지나 동곡리 사거리에서 직진한 후 남양·오봉 방면 919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 동창천을 건너 '대비사 6㎞'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 들어가면 박곡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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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약사암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600호

소재지: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산11 약사암


약사암 대웅전 안에 안치 되어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시대인 9c때의 작품으로 1976년 8월4일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의 불상에서 보면 광배가 떨어져 나가고 없어며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호남지방에서는 극히 보기드문 불상이다. 현재 원형이 거의 보존되어 있으며 불두는 나발위에 육계가 사발처럼 넓고 억굴은 둥글 넓적하다. 불상을 보면은 우리부리한 모습으로 보이며 백호와 초생달 같은 짙은 눈썹과 옆으로 긴 눈과 깨어진 코, 입술이 도톰하게 조각되어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귓밥이 짧은 모습이며 어께는 남성미가 물신 풍기며 앞가슴 또한 뚜렷하게 나타난다. 법의는 오른쪽 어께를 드러낸 한쪽만 걸친 모습으로 옷주름은 다리의 아래까지 덮고 있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는 상중하대로 연꽃무늬로 1개의 돌로 각각 다듬어 놓았다.




(좌상 뒷면에 새겨져 있는 관음보살상의 모습입니다.)

*무등산 약사암
소재지: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산11

약사암은 의제 백물관에서 0.8km 더 올라가면 새인봉 삼거리 직전에 좌측으로 약수암을 만날 수 있다. 철감선사가 증심사를 짓기 전에 먼저 약수암을 지었서며 약수암에서 기거하며 증심사를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다. 약사암의 대웅전에서 정면으로 바라 보이는 바위 암봉이 새인봉으로 사인암(舍人岩)이라 이야기를 하며. 천제단을 향하여 임금과 신하가 서로 받드는 형국이라 한다. 그리하여 새인봉과 천제단, 대웅전이 서로 일직선상에 위치를 하여 명당 터로 알려져 있다.







약사암의 대웅전에서 정면으로 바라 보이는 사진상의 좌측 바위 암봉이 새인봉으로 사인암(舍人岩) 또는 사인봉이라 이야기를 하며. 천제단을 향하여 임금과 신하가 서로 받드는 형국이라 한다. 그리하여 새인봉과 천제단, 대웅전이 서로 일직선상에 위치를 하여 명당 터로 알려져 있다.

석조여래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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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입곡 석불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4호
지정일:1979년1월25일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86-3

경주 국립공원의 남산을 야외 박물관이라 말한다. 금오봉에서 내려온 능선인 삿갓봉 아래 삿갓골 마을 인근에 위치를 하고 있다. 배동 함월사 좌측에 위치한 입곡석불두는 모두 세 개로 나누어져 전시되어 있다. 2개 바위돌을 조각하여 1개는 입상의 부처님을 만들고 1개의 바위는 대좌를 만들었는데 입상의 부처님은 중간에 두동강이 나 있고 대좌 또한 께어져 주위에 나뒹굴고 있던 것을 근래에 붙여 놓았다 한다. 입상과 함께 뒷 광배의 조각솜씨도 매우 섬세하며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광배를 보면 연꽃 위에 앉아 합장하고 있는 좌불상이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고 광배와 부처님을 하나의 바위에 조각하여 예술성을 더욱 높였다. 아쉬운점은 훼손상태가 심해 광배의 윗부분도 깨어지고 석불의 코를 떼내 갈아 먹어면 아들을 낳는 다는 민간신앙 때문인지 코 부분이 떨어져 나가 있다. 불두는 머리 위에 상투처럼 불쑥 올라와 있고 근엄하면서 이목구비가 뚜렷한모습이다. 어께 위 까지 축 처진 큰 귀와 목에는 삼도로 3개의 선을 표현하였다. 대좌는 하나의 바위에 홈을 파고 연꽃으로 마무리를 한 연꽃대좌로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 여래입상으로 추측하고 있다.
*교통편은 대릉원이 있는 네남사거리 앞 정류장이나 터미널, 경주역에서 500번501번 502번등 봉계방면의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1500원 .배동 삼릉앞에서 하차하며 함월사 좌측에 있다.





불두를 보면 코가 훼손되어 있고  축처진 귀가 매우 크며 근엄한 형상을 하고 있다.
큰 귀와 목에 3개의 선을 그어 삼도를 표현하였다. 

광배에는 연꽃위에 합장을 하며 좌불하고 있는 부처님이 새겨져 있으며 연꽃대좌로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입곡석불두의 뒷모습입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VdkVgwKey=21,009400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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