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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에서 봄나들이 하기 좋은 보문단지에서 만나는 경주천군리삼층석탑. 경주천군리삼층석탑


경주 천군동사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천군동사지는 경주에서 대표적인 위락시설이 있는 경주 보문동 보문단지 인근에 있는 절터로 보문호의 명성에 가려있어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곳에 자리했습니다.





경주 천군리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천군동 550-2



2019/02/08 - (경북여행/경주여행)나원백탑으로 불렸다는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만나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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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보문단지 인근에 천군동사지가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으며 우연히 자료 검색을 하다 천군동사지에 동·서 삼층석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번 경주여행길에서 찾았습니다.

 


폐사지 대부분이 옛 절의 이름과 창건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이곳 천군동사지도 정확한 창건연대와 이름을 확인할 수 없어 천군동에 있는 절터라 해서 그저 경주천군리사지 또는 천군동사지라 부릅니다(천군동사지 사적 제82호)



경주천군동사지는 두 삼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을 확인 할수 있어 사찰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발견 당시에는 삼층석탑이 무너졌으며 탑재와 추춧돌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일본인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중문·금당·강당 자리를 일부 확인했습니다.

 


두 탑은 그 이듬해인 193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천군동사지의 가람은 통일신라시대양식인 쌍탑에 1금당 양식을 따랐습니다. 

앞에 중문이 있고 그 안쪽에다 동·서 쌍탑을 세웠으며 쌍탑 뒤로 금당과 강당을 두고 둘레에는 회랑지가 자리했습니다.



남아있는 주춧돌 등의 흔적을 보면 중문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 금당은 앞면과 옆면이 모두 5칸이며 강당은 앞면 8칸에 옆면이 3칸 크기입니다. 

중문에서 강당까지의 거리가 79m이며 폭은 대략 61m입니다.



특히 천군동에서 발굴된 유물 중에 궁궐의 지붕 맨 윗부분 양쪽 끝에 장식하던 치미가 발굴되었는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입니다. 

우리나라에 치미는 몇 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경주의 관문인 경주나들목을 빠져나오면 만나는 나정교 좌우 앞과 뒤에 황금색 모양의 치미를 세웠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웅장합니다.



그만큼 그 크기가 대단하며 이게 기와건물의 지붕 양쪽 끝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치미가 나왔다는 것을 보면서 천군동사지도 당시 신라 궁궐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사찰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천군동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양식인 쌍탑식 절배치이며 주위에 경작한 논밭으로 변해 있어 당시의 모습은 확인할수 없을 정도로 훼손 상태가 심합니다. 

복원된 동서 쌍탑은 그래도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168호)은 이중 기단에 삼층의 탑신이며 두탑은 서로 닮은 쌍둥이 탑으로 불릴 정도로 규모나 양식이 거의 같습니다. 

동탑의 머리장식인 상륜부는 분실되어 없지만, 그에 반해 서탑은 탑 꼭대기 머리장식인 노반 등이 일부 남아 있어 탑의 면모를 갖추어 더욱 위엄 있어 보입니다.

 




기단에는 양쪽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2개의 기둥을 새겼으며 3층의 몸돌에도 양쪽 모서리에다 각각 기둥을 조각했습니다. 

몸돌과 지붕돌인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지붕돌의 밑면인 층급받침은 5단이며 처마선은 짧고 급하게 떨어지면서 네 귀퉁이는 살짝 치켜 올려졌습니다.

 




몸돌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하나 도굴되었는지 사리장신구 등은 찾지 못했다 합니다. 

경주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분위기인 장중함이 느껴지며 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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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나원백탑으로 불렸다는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만나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


경주 금박산 아래 나원리 오층석탑을 여행했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국보에 지정된 석탑입니다. 

경주 야외박물관이라 하는 남산과 그 주위에 있는 석탑이 아니라 형산강 건너 외따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로서는 경주 여행을 여러 번 했지만,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항상 마음만 가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원백탑 경주나원리오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나원리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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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2016/06/07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국보 제38호 고선사지 삼층석탑. 덕동호로 수몰된 고선사터 삼층석탑과 비석받침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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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1 - (경주여행/감은사지 이견대 문무대왕수중릉 여행) 호국용 문무대왕의 혼이 깃든 경주 감은사지 이견대 대왕암 이른 봄여행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까지 멀어진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독야청청하다보니 그런가봅니다. 

이번에 다시 경주를 찾게 되었습니다. 

경주에서 모든 일을 끝내고는 이번에는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반드시 찾아보기로 작정을 하고 부산에서 출발했습니다.



일을 마무리 하고 하늘을 보니 벌써 해는 노루 꼬리만큼 남았고 마음은 덩달아 급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어서 빨리 차를 몰아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해는 벌써 꼴깍 넘어가 버린 뒤였고 햇빛이 사라진 석탑을 보면서 참 많은 아쉬움을 달래야만했습니다.




석탑에서는 빛이 연출하는 명암이 중요한 한부분을 차지하는데 말입니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석탑의 그림자는 느낄 수 없었으나 세월의 무게를 이기며 한자리를 지켜온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묵직하며 장중함은 빛의 오묘함이 아니라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현재 절터의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석탑의 정식명칭은 나원리에 있는 오층석탑이라 하여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이라 부릅니다. 

신라 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는 사찰의 영화는 오층석탑만이 남아 천년세월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원리오층석탑 주위에서 ‘의봉4년개토’란 이름의 와당 기와파편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679년 문무왕 19년을 뜻합니다. 

이를 보면 최소한 이곳 오층석탑의 절터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래전부터 이곳이 ‘난원사터’란 이야기와 809년 신라헌덕왕 때에 승려 대각이 창건하여 국운창달을 기원하던 사찰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져오고 있다 합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의 건랍연대를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1995년 석탑이 해체 전까지는 모두 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의 건립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발굴된 사리함에서 나왔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1995년~1996년에 해체·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문화재 도굴로 보이는 1층 탑신이 30㎝ 정도 벌어져 붕괴의 위험이 우려되어 해체·복원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오층석탑의 3층 옥개석 부근에서 밀폐된 사리공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리공 안에서 사리함이 나왔는데 사리함의 뚜껑에는 연화당초문과 사면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개봉한 사리함에는 금동 소탑과 금동 소불상 등 많은 사리장엄구가 함께 나왔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리함 안쪽에 무구정광경의 다라니 묵서가 발견되었고 따라서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의 정확한 건립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구정광다라니경은 산스크리트어이며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된 게 704년이라 합니다. 

이를 근거로 보면 나원리오층석탑은 그 이후에 건립되었으며 석탑 기단부의 결구 방식 등에서 보면 8세기 중엽에 건립된 것을 추정할수 있다고 합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석재가 흰색을 띠고 있어 ‘나원백탑’이라 하며 '신라팔괴'의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이중의 기단에 오층의 탑신을 올렸습니다.

 2층인 기단과 1층 몸돌, 1·2층의 지붕돌인 옥개석을 뺀 나머지는 모두 하나의 돌로 짜맞추어 졌습니다.






아래 기단은 면석이 1매이며 양모서리(우주)에 각각 1개의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가운데에 3개의 탱주(기둥모양)를 새겼습니다. 

윗기단은 양모서리(우주)에 각각의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가운데에는 2개의 탱주를 새겼습니다.





탑신부인 몸돌 5개는 양모서리에만 기둥모양을 각각 새겨놓았습니다. 

몸돌 위에 올린 옥개석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렸으며 밑면에는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습니다. 

상륜부에는 현재 머리장식의 일부인 노반만 보였는데 밑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머리장식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쇠막대인 찰주가 끊어져 남아 있습니다.








경주에서는 몇 개 안되는 오층석탑이지만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신라 불교예술의 걸작품은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경주를 여행하면서 많은 석탑을 보았습니다. 

크기와 무게감 등을 생각해 대표적인 것만 꼽아도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황복사지 삼층석탑, 창림사지 삼층석탑, 고선사지 삼층석탑, 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정혜사지13층석탑,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등이 있습니다.

 










경주의 석탑은 다른 지방과 다르게 그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가슴속에 꽉 차듯이 밀려왔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 역시 고대하고 기대한 만큼 큰 감동이 쓰나미 처럼 밀려왔습니다. 

군더더기가 전혀 붙어 있지 않은 모습에 근육질에 수려한 외모를 가진 남성을 보는 듯 석탑의 자태는 아름다웠습니다.

 



늦은 시간에 찾았던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나를 다시 찾을 수 있게끔 흥분시켰습니다. 

경주여행을 다시 계획할 때 가장 먼저 한 번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은 국보 제39호에 1962년 12월에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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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군위여행)군위 화본리 오층석탑. 군위 덕림사 화본리 오층석탑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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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 면소재지인 화본리 뒷 산을 조림산이라 부릅니다. 아주 오래전 대홍수로 물난리가 크게 나 정상부가 새의 머리만큼 잠기지 않고 남았다하여 조림산으로 부릅니다. 조림산은 1950년 한국동란 때 피비린내 나는 대 격전지였습니다. 국군6사단 19연대와 인민군 8사단의 공방전으로 칠곡의 다부동 전투와 버금가는 격전지 였던 조림산에는 작은 사찰 덕림사가 있습니다.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석탑만이 이 자리에 있었는데 1960년 이 후 덕림사라 하여 극락전, 요사채, 산신각으로 작은 사찰이 들어섰습니다. 아쉽게도 옛 절터의 유래나 이름은 전하지 않는데 이곳에 남은 오층석탑은 한국동란의 격전지에서 그래도 포탄을 요행히 피해 석탑의 형태는 갖추고 있지만 훼손이 심한 상태입니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오층석탑으로 추정을 하며 높이는 2.95m이고 단층의 기단 하부는 현재 땅속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노출된 기단 상면에 3단 굄을 각출하고 그 위에 탑신을 올렸습니다. 맨 아래층 몸돌은 폭에 비해 높이가 높으며 나머지 몸돌은 높이가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몸돌위에 올려진 지붕돌인 옥개석은 모두 낙수면이 짧고 경사가 심합니다. 또한 상면에 1단 굄과 하면에 받침 4단을 조각하였습니다. 4층 몸돌을 제외하고 우주를 모각하고 2층 지붕돌과 3층 몸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었고 그 외 에는 지붕돌과 몸돌이 따로 만들어졌습니다. 지붕돌의 네 모서리에 풍탁을 걸기위한 두 개의 구멍이 뚫여져 있으며 상륜부에는 노반 파편이 남아 있습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6호. (참고:문화재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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