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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명활성 탐방로

 

 

(경북경주여행)이만때 걷기 좋은 김유신이 비담의 난을 평정한 명활성(명활산성) 둘레길 

 

MBC에서 2009 5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임금인 선덕여왕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방송을 탔습니다당시 시청률이 40%가 넘었으며 50부작에서 12회를 연장할 만큼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내용은 ‘화랑세기를 많이 참고 했다고 하나 스토리에 재미를 더해 허구를 썩은 픽션(fiction)입니다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드라마틱(dramatic) 했던 부분이 많은데 명활성에서 비담이 난을 일으키자 김유신이 이를 평정했던 부분도 포함합니다.

 

경주 명활성 주소:경북 경주시 천군동 334

 

국제신문
트랭글 캡쳐

 

2023.07.14-(경북 경주 산행)수더분한 500m급 산에 기암괴석이 엄청난데 깜놀, 경주 마석산 산행.

 

(경북 경주 산행)수더분한 500m급 산에 기암괴석이 엄청난데 깜놀, 경주 마석산 산행.

(경북 경주 산행)수더분한 500m급 산에 기암괴석이 엄청난데 깜놀, 경주 마석산 산행. 필자는 지도를 들고 숨은 보물을 찾으러 가는 재미 있는 산행지 경북 경주 마석산(磨石山·531m)을 소개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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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진평왕릉에서 출발해 비담의 난을 진압했던 명활성(사적 제 47)을 따라 걷는 명활성 탐방로를 찾았습니다.

삼국사기 잡기에 보면 신라는 3 5악을 두고 명산대천에 대··소로 구분 하며 제사를 지냈다 합니다이중 대사를 지낸 3산은 월성 주위의 소금강산(176.7혈례산 명활산(明活山·253)이라 합니다.

그만큼 신라에서는 왕경을 지키는 산으로 명활산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명활산에 쌓은 산성인 명활성은 동해에서 신라 왕경으로 들어오는 왜구를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삼국사기에 실성왕(實聖王) 4(405)에 왜구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 하며,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18(475)부터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10(488)까지는 월성을 수리하면서 임시 궁궐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경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경주 역사 유적지구로 등재된 곳이 다섯 곳 있다남산·월성·대릉원·황룡사와 필자가 이번에 답사했던 명활성 산성지구입니다.

비담의 난 때 김유신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나옵니다선덕여왕 16(647)에 상대등 비담과 대아찬 염종은 여왕이 정치를 잘못한다는 구실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비담의 군은 명활성에 주둔하고 김유신의 병사는 월성에 진을 쳐 공방전을 펼쳤으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한밤중에 유성이 월성에 떨어졌습니다이를 본 비담 병사는 여왕이 패할 징조라며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면 반대로 김유신의 군사는 사기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이에 김유신 장군이 허수아비에 불을 붙여 연에 달아 날려 보내 마치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이 보이게 했습니다별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소문이 나면서 비담의 병사는 이를 사실이라 믿어 사기는 급격히 떨어졌습니다김유신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명활성을 공격해 승리하면서 비담의 난을 평정했다 합니다. 2011년 명활산성에서 명활성으로 공식명칭이 변경되었으니 참고 합니다.

산행 뒤에는 진평왕릉 주위에 있는 국보 제 37호 황복사지삼층석탑전홍유후 설총묘보문동 연화문당간지주보문사지(석조당간 지주), 낭산의 선덕여왕릉 등 문화재 를 찾아보면 좋습니다.

명활성 탐방로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진평왕릉 주차장~‘양지편’ 표석~보문 마을~3 발굴지·북문지입구 갈림길~힌등산 갈림길~3 발굴지~정토암~2 발굴지~1 발굴지~북문지~명활산~숲머리 갈림길~3 발굴지·북문지 입구 갈림길~보문 마을~진평왕릉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산행거리는 약 6.5이며, 2시간 30분 안팎 걸립니다편안한 산길에다 울창한 송림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정신을 맑게 해줍니다산행 시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2022.11.11-(경주맛집)남산·삼릉·용장골·포석정 맛집, 청정 발효 음식 전통 농가 맛집 경주 수정소반

 

(경주맛집)남산·삼릉·용장골·포석정 맛집, 청정 발효 음식 전통 농가 맛집 경주 수정소반

(경주맛집)남산·삼릉·용장골·포석정 맛집, 청정 발효 음식 전통 농가 맛집 경주 수정소반 방가방가 이번 포스팅은 경주 남산 맛집, 포석정 맛집, 삼릉 맛집, 용장골 맛집인 수정소반입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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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왕릉 주차장에서 먼저 진평왕릉을 둘러봅니다왕릉은 왕버드나무와  크고 작은 나무가 울창한 숲을 만들어 찾아오는 이들을 편안하게 해줍니다다시 주차장에서 배낭을 메고 출발합니다.

주차장을 나와 오른쪽 도로에 나가면 삼거리 입니다왼쪽에 이씨 집성촌인 양지마을을 알리는 ‘양지편(陽地便)’ 표석이 있습니다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 진평재를 지나 보문 마을로 들어섭니다.

3,4분이면 T자 갈림길 입니다오른쪽으로 꺾자마자 왼쪽으로 ‘보문마을길 50’ 주택을 돌아 개울을 따라갑니다펜션 포에버 입구에서는 왼쪽으로 갑니다.

가족 묘지를 지나 약 10분이면 임도는 콘크리트 포장이 끝나면서 명활성 탐방로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오른쪽 3 발굴지(2.4)로 향합니다직진은 북문지 입구 (1.4)로 취재팀의 하산길 입니다.

탐방로 오른편에 두툼하게 생긴 언덕이 길게 이어지는데 무너진 명활성 흔적 입니다탐방로는 산성의 안쪽 길을 걷습니다.

초반부터 파헤쳐진 돌길을 살짝 오르면 산길은 완만하게 이어집니다강하게 내리 쬐는 햇빛이 여름을 떠올릴 만큼 무더운 데도 아름드리 소나무가 만드는 숲 그늘은 청량하며 시원했습니다.

15분이면 김해김씨 가족묘 앞 이정표 갈림길에 도착합니다왼쪽 2 발굴지(2.2)·3 발굴지(1.6)로 향합니다이정표에 표시는 없지만 오른쪽은 흰등산에서 오는 길 입니다

이후부터 ()명활산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로 아직 탐방로는 완전하게 정비 되지 않았으나 산길은 뚜렷하게 잘 나 있습니다탐방로 안내판이 서 있어 이를 참고합니다.

양지바른 곳에는 각양각색 야생화가 폈고초록으로 물든 숲은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었습니다그윽한 솔숲 길은 완만하게 내려섰다 다시 살짝 올라갑니다.

 

2021.10.28-(경북경주여행)아기 장수와 아사달, 아사녀 전설 경주 아기봉산과 영지 둘레길을 걷다.

 

(경북경주여행)아기 장수와 아사달, 아사녀 전설 경주 아기봉산과 영지 둘레길을 걷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아기 장수와 아사달, 아사녀 전설 경주 아기봉산과 영지 둘레길을 걷다. 필자가 주로 장거리 산행을 많이 하다 보니 괜찮은 산행지인데 코스가 짧아 외면했던 곳이 여러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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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보문호를 품은 보문단지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입니다 30분이면 처음으로 조망이 열리는 3 발굴지에 도착합니다건너편 약산에서 시계방향으로 멀리 낙동정맥 능선인 침곡산 사관령 성법령 향로산이그 앞으로 천북면 서산의 풍력단지가 펼쳐집니다.

발아래는 보문댐과 북천변에 동궁원이 보입니다. 4분이면 정토암 입구에 내려서고 2 발굴지는 왼쪽으로 꺾습니다.

정토암 오른쪽에 탐방로 간이 화장실 앞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2 발굴지는 야자매트가 깔린 너른 길을 갑니다.

 

이내 나오는 갈림길에서도 오른쪽입니다석성의 흔적을 보여주는 돌들이 널 부러져 있습니다.

 

 

 

 

2021.02.16-(경주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여행/남산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과 출사지로 유명한 삼릉숲 여행. 경주 남산의 서쪽에는 배동 삼릉이 있습니다. 삼릉숲이라고도 하는데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왕릉을 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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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분이면  2 발굴지를 거쳐 다시 4분쯤이면 1 발굴지를 지납니다일부지만 산성을 복원했습니다여기서 4분여 완만하게 내려가면 2017년 북문지와 치성 100를 정비 복원한 북문지에 닿습니다.

북문지 발굴과정에서 다량의 기와 조각과 문루에 3.6 너비의 문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확쇠따쇠쇠못 등이 나왔다문지 동쪽에는 북문으로 들어오는 적을 방어하는 반원형 치성이 확인되었습니다.

 

명활성은 5세기에 성을 쌓고 개축을 이어오다, 647년 비담의 난 이후로 폐쇄된 것으로 보인다 합니다성벽을 끼고  북문지를 가로질러 맞은편 산등성이로 올라갑니다.

 

 1.2 높이의 사각 돌기둥과 이정표가 있습니다돌기둥은 일제강점기에 세운 조선총독부 표지석입니다.

여기저기 쫒아 깨져 있으나 명활산성과 조선총독부 글자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2020.10.08-(경북경주여행)영남에서 가장 대규모 억새군락 무장봉은 억새 바다. 경주 무장산 산행.

 

(경북경주여행)영남에서 가장 대규모 억새군락 무장봉은 억새 바다. 경주 무장산 산행.

(경북여행/경주여행)영남에서 가장 대규모 억새군락 무장봉은 억새 바다. 경주 무장산 산행.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는 벌써 지나 10월에 들어서면서는 찬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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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솔숲 길로 (작은)명활산 능선을 탑니다. 10분 남짓이면 조망이 열리는 쉼터가 나옵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당시 식수로 이용 했을 연못을 지나 안내판 갈림길에서 왼쪽 남문지로 향합니다오른쪽은 ‘숲머리에서 올라오는 길 입니다.

 

굽어진 토종 소나무가 만든 환상적인  숲길을  걷는다명활산 정상을 돌아   10분이면 개울에 걸린 통나무 다리를 건너면 명활성 탐방로 안내도가 반긴다. 오른쪽에 앞서 거쳤던 3 발굴지 갈림길을 지나 왔던 길을 되짚어 15분이면 진평왕릉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경주 명활성·명활산성 대중교통입니다.

대중교통과 승용차 모두 괜찮으나 경주 관광을 겸한다면 승용차 이용을 권합니다. 승용차 이용 때는 경북 경주시 보문동 608 ‘진평왕릉을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설정하고 갑니다. 차는 진평왕릉 주차장에 둡니다. 주차비 무료.

대중교통은 부산도시철도 1호선 노포역을 나와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주로 간 뒤 시내버스를 이용합니다.  

동부터미널에서 첫차는 오전 620분에 있으며, 20~40분 간격으로 출발합니다. 경주터미널을 나와 도로 건너편 시외버스·고속버스정류장에서 일반 버스는 10, 16, 277번이 있으며, 좌석버스는 10, 100, 100-1, 150 150-1, 18번이 있습니다. 신경주역에서는 좌석 버스 700, 710번이 운행합니다. 버스는 수시로 있으며, 남촌마을입구 정류장에서 내립니다. 진평왕릉은 정류장에서 버스가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보면 숲머리 전통음식특화거리 입간판에서 왼쪽으로 보문마을길도로를 따라갑니다. 진평왕릉주차장까지 약 1거리이며 걸어서 15분쯤 걸립니다.
산행 뒤 남촌마을정류장에서 터미널로 가는 일반 버스는 11,16, 좌석버스는 100, 100-1, 11, 15, 18, 130, 150, 150-1, 700, 710번이 있습니다.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동부터미널은 막차는 밤 930분이며 20~40분 간격으로 다닙니다. 심야버스(1040)도 있습니다.

※경주 보문단지·명활성 · 명활산성 맛집입니다.

맛집 한 곳 추천합니다. 남촌버스정류장 안쪽 숲머리 전통음식특화거리인데 순두부 전문 음식점 골목입니다. 이중 입구에 자리한 '전통맷돌순두부(054-743-0111)'가 괜찮습니다. 순두부 찌개는 약간 얼큰하다면 맑은 순두부는 담백한 지리식 입니다.  순두부 찌개·맑은 순두부 각 1만2000원

 

2017.12.1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월정교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신라의 고도는 서라벌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경주가 옛날 신라의 수도입니다. 그런 경주에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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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에서 봄나들이 하기 좋은 보문단지에서 만나는 경주천군리삼층석탑. 경주천군리삼층석탑


경주 천군동사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천군동사지는 경주에서 대표적인 위락시설이 있는 경주 보문동 보문단지 인근에 있는 절터로 보문호의 명성에 가려있어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곳에 자리했습니다.





경주 천군리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천군동 550-2



2019/02/08 - (경북여행/경주여행)나원백탑으로 불렸다는 경주나원리오층석탑을 만나다. 경주나원리오층석탑

2018/10/06 - (경북여행/경주여행)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국보 제236호 장항리 사지 서 오층석탑

2018/09/19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 남산에서 가장 당당한 경주 창림사지 삼층석탑을 만나다.

2018/07/03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신라 6대 지마왕릉을 찾아서. 경주 남산 지마왕릉

2018/06/26 - (경북여행/경주여행)신라 7대 경주 일성왕릉를 찾아서, 경주 일성왕릉

2018/06/27 - (경주여행)경주 삼릉 가는길 양산재와 경주 나정 여행




저 또한 보문단지 인근에 천군동사지가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으며 우연히 자료 검색을 하다 천군동사지에 동·서 삼층석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번 경주여행길에서 찾았습니다.

 


폐사지 대부분이 옛 절의 이름과 창건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이곳 천군동사지도 정확한 창건연대와 이름을 확인할 수 없어 천군동에 있는 절터라 해서 그저 경주천군리사지 또는 천군동사지라 부릅니다(천군동사지 사적 제82호)



경주천군동사지는 두 삼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을 확인 할수 있어 사찰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발견 당시에는 삼층석탑이 무너졌으며 탑재와 추춧돌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일본인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중문·금당·강당 자리를 일부 확인했습니다.

 


두 탑은 그 이듬해인 193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천군동사지의 가람은 통일신라시대양식인 쌍탑에 1금당 양식을 따랐습니다. 

앞에 중문이 있고 그 안쪽에다 동·서 쌍탑을 세웠으며 쌍탑 뒤로 금당과 강당을 두고 둘레에는 회랑지가 자리했습니다.



남아있는 주춧돌 등의 흔적을 보면 중문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 금당은 앞면과 옆면이 모두 5칸이며 강당은 앞면 8칸에 옆면이 3칸 크기입니다. 

중문에서 강당까지의 거리가 79m이며 폭은 대략 61m입니다.



특히 천군동에서 발굴된 유물 중에 궁궐의 지붕 맨 윗부분 양쪽 끝에 장식하던 치미가 발굴되었는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입니다. 

우리나라에 치미는 몇 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경주의 관문인 경주나들목을 빠져나오면 만나는 나정교 좌우 앞과 뒤에 황금색 모양의 치미를 세웠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웅장합니다.



그만큼 그 크기가 대단하며 이게 기와건물의 지붕 양쪽 끝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치미가 나왔다는 것을 보면서 천군동사지도 당시 신라 궁궐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사찰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천군동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양식인 쌍탑식 절배치이며 주위에 경작한 논밭으로 변해 있어 당시의 모습은 확인할수 없을 정도로 훼손 상태가 심합니다. 

복원된 동서 쌍탑은 그래도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168호)은 이중 기단에 삼층의 탑신이며 두탑은 서로 닮은 쌍둥이 탑으로 불릴 정도로 규모나 양식이 거의 같습니다. 

동탑의 머리장식인 상륜부는 분실되어 없지만, 그에 반해 서탑은 탑 꼭대기 머리장식인 노반 등이 일부 남아 있어 탑의 면모를 갖추어 더욱 위엄 있어 보입니다.

 




기단에는 양쪽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2개의 기둥을 새겼으며 3층의 몸돌에도 양쪽 모서리에다 각각 기둥을 조각했습니다. 

몸돌과 지붕돌인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지붕돌의 밑면인 층급받침은 5단이며 처마선은 짧고 급하게 떨어지면서 네 귀퉁이는 살짝 치켜 올려졌습니다.

 




몸돌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하나 도굴되었는지 사리장신구 등은 찾지 못했다 합니다. 

경주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분위기인 장중함이 느껴지며 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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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국보 제38호 고선사지 삼층석탑. 덕동호로 수몰된 고선사터 삼층석탑과 비석받침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문화재의 보고 경주에서는 현재 많은 절터가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는 문화재발굴조사로 그 빛을 발한 곳도 있지만, 또는 잡목에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지난봄 경주국립박물관을 보면서 아주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이 고선사터의 비석 받침과 국보 38호인 고선사터 삼층석탑입니다. 

고선사터는 사실 생소합니다. 저도 생소한 절로서 보문호 하면 모두 알 것입니다. 보문호 상부댐을 덕동호라 하는데 원래 고선사가 있던 곳이 지금의 덕동호 물속이라 합니다. 










덕동호를 거쳐 경주 시내를 관통하는 하천을 알천이라 합니다. 그 상류는 경주시 암곡동이며 1975년 덕동호 건설로 암곡동의 고선사터가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고선사터에 흩어져 있던 여러 문화재와 삼층석탑, 비석 받침 등 부재를 이곳 국립경주박물관 야외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고선사는 일연의 저서인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시대 신문왕(재위 681~692)때 원효대사(617~686)께서 주석하셨던 곳이라 합니다. 그런데 1914년 5월 이곳에서 원효대사 행적을 기록한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 비문조각을 발견했는데 그 내용에 비추어보면 686년 원효대사가 입적하기 이전에 고선사는 사찰의 규모를 갖춰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사(高麗史)’에도 1021년(현종 12년)에 고선사에 금란가사와 불정골 등을 내전에 두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 당시까지도 법통은 꺼지지 않고 상당한 규모의 사격은 계속 이어져 왔던 것 같습니다. 덕동호 수몰로 고선사터 발굴 조사를 진행하면서 금당터, 강당터, 중문터, 회랑터 등의 건물터와 금동불 등 건물의 부재인 기와, 전돌 등 많은 문화재를 발굴하였습니다.








먼저 원효대사의 손자인 설중업이 할아버지 원효대사를 기리며 고선사에다 세운 ‘서당화상비(誓幢和上碑)’의 귀부인 비석 받침입니다. 거북을 닮은 받침돌은 머리 부분이 남아있지 않고 몸통 부분만 현재 남아 있습니다. 통일신라 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전체높이는 약 70cm입니다.

 




귀부인 거북등의 가장자리를 따라 무늬 띠가 일정한 폭을 유지하고 등 부분의 귀갑무늬는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거북등 가운데 비좌인 비석을 꽂은 네모난 홈 주위를 돌아가며 연꽃무늬를 새겼습니다. 서당화상비(誓幢和上碑)의 서당화상은 원효대사를 뜻합니다.





1914년 고선사터에서 비신의 아랫부분을 발견하였으며 1968년 경주시 동천동의 한 민가 우물터에서 빨래판으로 사용하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여 현재 경주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비신의 명문을 보면 원효의 사상과 업적에 관한 것으로 비문은 33행에 각행은 61자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있는 고산사터 삼층석탑입니다. 덕동호 수몰로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로 옮겨온 고산사터 삼층석탑은 682년(신문왕 2년)에 세운 감은사터의 동·서삼층석탑과 너무나 닮아 보였습니다. 필자는 안내판을 보기 전에는 감은사터 삼층석탑의 짝퉁인 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2단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렸는데 노반까지 높이가 10.2m에다 총 82장의 돌로 이루어져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판박이라 해도 쉽게 수긍할 만큼 똑같이 닮았습니다. 1.2층의 탑신과 옥개석은 여러 부재를 짜 맞추었는데 다만 3층 탑신석은 하나의 돌로 만든 게 사리함을 넣는 사리공 때문이라 추정됩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다른 점은 1층 몸돌 네 면에 문(문비)을 표현했는데 문화재 여행의 초보인 저는 감은사 삼층석탑에는 찰주가 남아 있지만 고선사터 삼층석탑은 없다는 점으로 구분해야겠습니다. 통일신라 시대 초기인 686년 이전에 새웠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삼층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는 통일신라 석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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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곡동 왕산마을에서 무장골을 따라 40여분 올라가면 왼쪽 담벼락에 걸려 있는 무장산사지 안내판. 여기서 우측으로 무장골을 건너간다. 




무장사지터로 우측은 무장사지 삼층석탑가는 길 좌측은 무장사지 아미타불조성사적지 가는길이다.

무장사지아미타불 조성 사적비 이수및 귀부로 보물 제125호, 계화부인이 소성왕의 극락왕생을 빌며 조성한 아미타불의 기록을 적은비문으로 현재 비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빗돌을 받치고 있는 거북이를 귀부라한다. 두마리의 거북이가 빗돌을 받치고 있다. 장수를 의미하는 거북이로 알려져 있는데 계화부인이 부왕 소성왕이 일찍 승하하여 아마 귀부를 깔고 명복을 비는 것은 아닌지....

귀부위에 빗돌을  받치는 테두리에 12지신을 돌여 놓았다. 앞뒤로 4개씩. 좌우로 2개씩으로 마모가 심하여 확인이 힘들다.

12지신상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 보통 비석을 받치고 있는데 귀부라한다. 목이 달아나고 없습니다.

거북이와 거북이 사이에 역삼각형으로 있는 조각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여성 또는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함

빗돌위에 얹혀 있는 머리로 용이여의주를 받치고 있는 형상같이 보인다.


이수에 새겨진 용

이수의 측면 조각입니다.

측면의 전체적인 모습입니다.


무장사지

이절터는 경주시 암곡동 산1번지에 위치한다. 보문단지 뒤 덕동호 인근에 위치한 암곡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옛 서라벌)에서 아주 멀고도 험한 골짜리임을 알수있다.
그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무장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능선 끝에 자리를 잡은 절터이다. 무장사란 절이름에서 보면 아주 강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연을 간직한 절터로 짐작을 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절 이름부터 뜻이 있었다. 문무왕때 이르러 삼국을 통일하였지만 태종무열왕은 백제를 멸망시키고 지긋지긋한  전쟁은 끝났다 하며 이제는 피폐한 백성을 생각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병기와 투구를 감추어 나라의 평화를 기원했다는 뜻에서 무장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신라38대 원성왕의 부친인 효왕이 그의 숙부 파진찬을 위하여 세운 절이라 한다.
삼국유사에도 무장사의 기록이 남아 있는데 소성왕의 왕비인 계화부인이 소성왕이 임금의 자리에서 일찍 승하하자 무장사에 그의 극락왕생을 빌기위해 아미타불상을 조성하게 되었다한다.
무장사지에 남아 있는 귀부와 이수는 계화부인이 소성왕의 명복을 빌면서 조성한 아미타불상을 만들면서 그에 관한 내용을 기록해 놓은 기록비문이라한다.
1915년 귀부와 이수만 덩그런히 남아 있었는데 주변에서 비석조각을 발견하였다한다. 그 조각에 새겨진 내용을 보고 무장사지임을 알게 되었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그 비문이 보관되어 있다한다.
비문에는 금석학의 대가 추사김정희가 32세 때인 순조17년에 무장사지를 두 번이나 방문한 기록을 써 놓았고 당나라 왕희지의 글을 모아 집자해서 써 놓았다고 되어 있다.

무장사지 아미타불조상사적비 이수및 귀부(보물제125호)와 무장사지 삼층석탑(보물제126호)만 현재 남아 있다.
먼저 이수및 귀부를 살펴보면 비문은 없어지고 비석을 받쳤던 거북모양의 받침대인 돌을 귀부라 한다.
그 귀부위에 있던 비석은 파손된 조각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비석 위에 올려져 있던 용모양을 새긴 비석머리를 이수라 한다.
귀부인 거북이 두 마리 위에 12지신을 모시고 그위에 비문을 세웠서며 이수인 용이 새겨진 비석의 머리돌에는 아미타불ㅇㅇ란 여섯글자가 두줄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무장사지삼층석탑은 기단을 2단으로 만들고 그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려 놓았다. 1층 기단에는 모서리 기둥과 2개의 안기둥을 조각하고 덮개인 돌을 올려 놓았다. 덮개돌 위의 2층 기단은 8개의 돌로 짜 맞추었다. 2단 기단 네면에 두 개의 돌에다 안상을 넣었다. 둥근 창모양 같은 문양을 모서리기둥과 안기둥에 새겨 넣었다. 1층 2층3층 각각 몸돌과 몸돌을 덮은 지붕돌인 덮게 돌은 모두 1개씩의 돌로 만들었고 아랫면은 5단 그리고 모서리 기둥을 조각하였다.
1963년 무너져 있던 것을 일부 다른 돌을 넣어 다시 세웠다한다. 높이는4.95m


무장사지 삼층석탑 보물제126호. 1962년 복원 작업을 할때 일부 자재를 추가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었다합니다.

증명사진입니다.

2층 기단에는 창모양의 안상을 조각하였습니다

기단위에 하나의 돌로된 지붕돌을 놓았고 그의에 몸돌도 하나의 돌로 만들어 사각 모서리를 안쪽으로 조각을 하여  놓았다, 지붕돌은 덮게돌로 5단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돌이다.

옆에서 본 모습으로 안상하며 지붕돌이 5단으로 역층의 모습을 하며 몸돌의 네면에 안쪽으로 조각을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장사지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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