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여행)대구 불로동고분군. 엄청난 규모인 고분군 여행 대구 불로동고분군. 


올해 초 대구여행을 하면서 갔다 왔던 불로동 고분군을 이제야 포스트 합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우리나라의 많은 고분군 중에서 김해 대동면 예안리 고분군과 함께 1978년 6월 고분군으로서는 가장 먼저인 사적 제262호에 지정됐습니다. 

그만큼 규모 면에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대구 불로동고분군 주소: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335


2015/01/07 - (대구여행/대구 중구 골목투어)대구근대역사관. 1코스 경상감영달성길에서 대구 근대 역사를 한눈에 만나는 대구근대역사관 관람.

2014/12/23 - (대구여행/대구근대문화골목여행)대구 마지막 남은 요정 가미, 대구근대문화골목에서 만나보세요.

2014/06/24 - (대구여행/수성구여행)수성못 용지봉~병풍산 산행. 대구의 근교산 용지봉~병풍산 산행.

2014/01/17 - (대구여행/중구여행)'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영원한 가객 김광석 벽화거리에서 만나다.김광석

2014/01/27 - (대구여행/스파밸리 포레스트12)대구여행에서 숙박 걱정마세요 스파밸리 포레스트12 끝내줘요.




불로동 고분군의 고분 개수가 214기라 하니 당시 얼마나 큰 토착지배세력이 이곳 불로동을 근거지로 활동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팔공산의 남쪽 능선이 낮게 흘러내리며 금호강의 북쪽 충적 평야와 만나는 구릉지대에 있습니다. 

이를 보면서 역시 오래전인 삼국시대 이전의 주거지와 오늘날 주거지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분군이 발견된 주위로 현재에도 많은 집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서 주거지의 기본요소는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주택가의 골목을 400m쯤 거슬러 올라가면 야산의 구릉지에 자리했습니다. 

그 넓이만 해도 약 312,000㎡인데 이는 94,000평이 넘는 대규모로 불로동과 봉무동, 도동 등에 분포합니다.





저도 전국의 여러 고분군을 쫓아다녔지만 아마 제가 본 고분군에서는 가장 대규모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대규모 주택가에 있어서 그런지 정말 많은 시민이 휴식을 즐기려고 찾고 있었습니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구릉지라 걷기에 딱 좋아 보였습니다.







경주의 고분군은 모두 멀찍이 떨어져 보게끔 구분해 놓았지만 불로동 고분군은 고분과 고분 사이로 길이 나 있어 가까이서 고분군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의 발굴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 처음으로 2기를 발굴 조사하면서 ‘해안면 고분’이라 불렸습니다.







1963년 경북대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 2기의 고분을 추가 조사하면서 해안면 고분을 포함해서 대구 불로동고분군이라 명명했습니다. 

해안면 고분은 벽면을 축조하면서 산 돌을 이용했으며 바닥은 생토를 깔고 그 위에 다시 모래를 덮고 시신을 올려 둔 듯 보인다합니다.

 






부장품에는 금제와 금동제 장신구, 철도끼, 철제꺽쇠, 무늬가 새겨진 토기 등 다량이 나왔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5세기 전후에 삼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봉분의 크기를 보면 지름은 15~20m, 높이는 4m 내외인데 대형고분은 지름이 22m, 높이 6m의 원형 봉토분으로 당시 이 지역 토착세력의 지배층의 묘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내부를 보면 4기의 수혈식 석곽을 차례로 덧대어 만들었으며 대부분 지면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냇돌이나 깬돌로 4벽을 쌓아 넓고 납딱한 돌로 뚜껑을 덮은 직사각형의 수혈식석곽묘(구덩식 돌방무덤)입니다. 

이들 석곽은 시신과 부장품을 구분하는 칸막이를 가운데에다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위에다 자갈을 올리고 흙을 덮었습니다. 

1938년 18호와 22호 고분을 최초 발굴하였고 2007년 91호와 93호 고분 발굴조사를 마지막으로 했습니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의 탐방로 길이는 약 1.5km입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대구 동구 불로동 335 | 불로동고분군
도움말 Daum 지도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교동고분군. 창녕 교리고분군을 만나다.


창녕군 창녕읍 내에서 만나는 고분군은 두 곳 있습니다. 

1963년 1월에 사적지로 지정했으며 사적 80호인 창녕 교리고분군과 사적 81호인 송현리고분군 입니다. 

2011년 7월 문화재청이 역사와 특성에서 두 고분군이 비슷하다고 인정되어 2011년 7월 통합해서 사적 제514호로 재지정했습니다.





 창녕교동고분군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124

창녕교동고분군 연락처:055-530-1473




2017/12/09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말이산고분군. 아라가야 지배지의 무덤 함안 말이산고분군 여행

2017/12/06 - (경남여행/함안여행)신라시대 석성 함안 성산산성에서 시간여행을 하다. 함안 성산산성·조남산성

2015/03/31 - (경남여행/김해여행)대성동고분박물관. 금관가야 발굴 유물 전시관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 여행.

2013/12/28 - (충남여행/공주여행)공주 석장리박물관, 우리나라 조상도 구석기시대 인물, 석장리 유적지에서 확인을 하다. 석장리고분군

2008/12/10 - (부산여행/동래여행)동래 복천동고분군. 도심한복판의 U.F.O가 가야시대 고분인 복천동고분군




문화재의 보고인 경주에 버금간다는 창녕에도 고대부터 내려온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경남의 경주라 일컫습니다. 

왜 창녕에 많은 고분과 문화재가 있는지를 보면 이곳 창녕은 오래전부터 소국가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진한의 12개 국가 중 하나였던 불사국으로 비화가야라고도 합니다.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수록된 삼한 소국의 이름이며 불사국은 경남 창녕의 옛 이름인 ‘비사벌(非斯伐)’에서 나왔을 것으로 유추하고 있습니다. 

창원교동고분군과 송현리고분군은 화왕산 서쪽 능선의 목마산성 아래인 구릉지에 널리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다시에 의해서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후에 1917년 분포조사를 시행하였고 1918년과 1919년에 11기의 고분 발굴이 이루어졌으나 제21호와 31호 고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도 나오지 않는 등 완전 날림씩 발굴조사에 유물 반출만 이루어졌던 모양입니다.



당시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의 규모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마차 20대 분량과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공예품이 박 쏟아져 나왔다 하니 말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일부 유물만 소장해 있으며 현재 유물 대부분은 소재 불명 상태라 합니다.



당시 자료에는 금동관, 금동관모, 금·은제수식 등 많은 금장신구와 각종 마구류, 비늘 갑옷, 철제 무기류, 철제농기구와 토기 등이 나왔으며, 이는 창녕교동고분군의 출토 유물의 성격이 신라 서라벌에서 출토된 유물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를 보고 교동고분군은 5~6세기 전반의 고분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다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창녕교동고분군의 고분은 현재 밝혀진 숫자만 103기나 됩니다.

제가 교동고분군을 답사하고는 먼저 큰 규모에 놀랐습니다. 

창녕박물관 왼쪽에도 여러 기의 큰 고분군이 있었으며 24번 국도 건너편에도 한 무더기의 고분이 구릉을 끼고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당집이 있는 고개 건너편에도 많은 고분군이 정비되어 관리하는 것을 보면서 김해, 고령, 대구와 경주 등 여러 고분군에 비해서 규모에서 창녕교동고분군도 전혀 빠지지 않을 듯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1992년 동아대학교 박물관과 2004년 경남문화재연구원, 2009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각각 창녕교동고분군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동아대박물관에서는 1~4호의 고분을 발굴하였습니다. 횡구식 석실 구조를 확인했으며 이 고분에서도 다양한 토기류와 각종 금속유물이 나왔고 고분의 구조와 나온 유물에서 5세기 중반 이후에 조성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2004년 창녕문화공원 조성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횡구식석실분 13기와 통일신라 폐와무지, 조선시대 배수로 삼가마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고분군의 축조구조와 출입구의 형태 변화와 출토유물에서 고분의 조성시기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중반이라 보고 있습니다.







2009년의 창녕교동고분군 주차장 부지 발굴조사와 2011년 2012년 일제 강점기 때 발굴되었던 7호분의 고분군 재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일제는 고분발굴조사를 하면서 고분은 뒷전이고 유물 수습과 반출을 하여 당시 남은 기록을 비교하며 우리 문화재 발굴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봉토와 축조과정, 매장 주체부의 내부구조를 파악할수 있었으며 이를 학술연구자료와 고분의 보존 정비에 기초자료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ㅎㅎ 발굴조사 과정에서 딱 철기 2점만 나왔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서 당시에 얼마나 유물을 쓸어 담아 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발굴조사를 기초하여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보는 고분으로 재정비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남 창녕 교동고분군을 보고 나서 이제 송현리고분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참고:2013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녕교동고분군 보고서)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
도움말 Daum 지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