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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중구여행)이맘때면 한국인의 감수성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곳 부산 중앙동40계단 문화관광 테마거리. 40계단


1950년 6.25 한국동란이 일어 났습니다. 서울 방어선이 무너지고 밀리고 밀려 

급기야 낙동강 방어선에 부산만은 지켜야 한다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부산 중구 추억의 40계단 주소:부산 중구 동광동 48-2




2019/11/23 - (부산여행)2019년 이제 아듀, 부산 크리스마스 트리 불을 밝히다. 11회 부산크리스마스 트리 문화 축제

2019/10/24 - (부산여행/영도여행)자식을 위해 희생했던 우리 어머님인 깡깡이 아지매를 영도 깡깡이 길에서 만나다

2019/10/21 - (부산여행/영도여행)우리나라 근대 조선의 발상지 부산 영도 대풍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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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군을 따라 피난대열에 선 국민들은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물려 들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물러설곳이 없었습니다. 

악전고투 속에 다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총공세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끝끝내 부산만은 지켜내었고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발판으로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중공군이 개입하여 퇴각하는 1.4후퇴가 벌어졌습니다. 

 


이때 저의 아버님도 큰 부상으로 후송되어 끝내 의가사 제대를 하셨습니다. 

전세는 완전 불리해졌고 어쩔수 없이 유엔군과 우리군은 흥남항에서 피난민을 태우고 철수했습니다. 



 빅토리아호는 선적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피난민을 태웠고 

10만여명의 피난민이 내려올수 있었습니다.  

부산은 많은 피난민들이 몰려 들었고 이들은 피난올 때 헤어진 가족과 친지를 찾을수 있을까 하며 

영도다리와 40계단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부산 영도다리와 40계단은 1980년대 있었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이산가족 찾기의 원조격입니다. 

많은 피난민이 이곳에서 가족을 찾았고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였습니다. 




이때 심금을 울렸도 노래 박재홍의 "경상도 아가씨"와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입니다. 

그중에 40계단이니까 "경상도 아가씨"의 노랫말을 일부 보겠습니다.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말고 속시원히 말좀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러워 묻는 구나~~~"로 시작합니다.  



1951년 당시의 피난민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노래로 

어려운 피난상황속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경상도 아가씨 노랫말에 나오는 40계단은 영주동의 산복도로에서 

옛 부산역과 국제여객부두를 왕래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습니다. 




피난민 대부분은 부두의 노동자로 나갔습니다. 

해뜨기 전에 40계단을 내려갔다가 해가지고 나서야 

컴컴한 40계단을 올라와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피난민들은 하루하루 수없이 40계단을 오르냈고 

어진 가족을 찾는 상봉장소였으며 

10만 피난민의 마음속의 안식처였습니다. 



노래말 속의 40계단은 지금도 40계단의 이름을 달고 남아 있습니다.  

당시 피난민의 애환속에 오르내렸던 40계단에서 영도다리가 뻔히 보였다고 합니다.  




피난민들은 40계단에서 영도다리를 보면서 헤어진 친지와 친구를 생각하였고 

고향을 떠난 서러움을 달래었습니다. 

그런 40계단에 한가지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ㅎㅎ



현재 40계단 기념비가 세워진 계단은 당시 피난민이 눈물을 흘리며 오르내렸던, 

헤어진 친척을 상봉했던 당시의 40계단에서 남쪽으로 25m 쯤 떨어진 또 다른 계단입니다. 



당시의 40계단은 폭이 4m 가량이 될 정도로 넓은 계단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폭이 좁고 옛 모습을 잃어버려 1993년 8월에 이곳에다 40계단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현재 40계단 주위를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로 지정해 

당시를 회상하는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1950~1960년대 어려웠던 시절의 애환과 향수가 짙게 배어 있는 

40계단 주위에 당시를 회상하는 여러 조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 "아버지의 휴식" "아코디언을 켜는 사람" 등 

조형물 하나하나는 당시의 피난민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40계단 가운데 세워진 "아코디언을 캬는 사람" 조형물 뒤에서는 

항상 박재홍의 "경상도 아가씨" 노래가 흘러 나옵니다. 

노래가사에 당시의 모습을 되새겨 보면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40계단에 올라섰습니다.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 전체를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전봇대만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듯 나무 전봇대 모습입니다.

위에 까치집도 지어져 있고요  ㅋㅋ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당시의 그 흔적이 이제 요런 안내문구로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이산가족을 찾는지 아니면 애인을 찾는지 ㅋㅋ누군가를 찾고 있습니다.



동광동 골목을 길의 모습입니다. 

당시 꼬불꼬불 이어지던 골목길은 이제 인문학길로 다시 태어나 골목길 여행으로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필자도 부산 서구 중구 동구의 산복도로 골목길을 많이 누비고 다니고 있습니다.



물동이를 인 어머님입니다. 

아이를 포대기로 고 물동이를 이고서 40계단을 오르내리던 어머님의 모습이 

당시 40계단에 사진에 담겨져 있었고 그 당시의 모습을 조형물로 빚었습니다. 




이름하여 '40계단 여인상'입니다. 

동광동 주민센터인 40계단 기념관 입구에 세워져 있습니다. 



동광동 40계단 주위로는 동광동 인쇄골목이라 불립니다. 

1960~80년대까지 부산 인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부산인쇄골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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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중구여행)40계단문화테마거리. 동광동 40계단 문화축제가 열려요.

 

제13회 40계단 문화축제가 내일부터 열립니다. 40계단 하면 모두 아시죠. “굳세어라 금순아”등 노랫말에도 나오는 동광동 40계단은 영도다리와 함께 피난민들에게는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피난보따리를 꾸리면서 친구와 형제는 부산의 40계단에서 서로 만나자는 말만 주고받고 헤어져 이곳 40계단에서 서로 상봉을 위해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다렸다는 피난민.,. 피난민들의 가슴 절절한 사연이 계단 하나하나에 한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1993년 8월에 중구청에서는 40계단을 정비하며 기념비를 세우고 음력 정월 대보름을 맞아 동광동 동민화합 윷놀이 행사를 시작한 게 지금 “40계단문화축제”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특히 중구에는 피난 온 실향민들이 많아 더욱 의미가 있는 행사였습니다. 6.25 전쟁으로 피난민의 애환과 향수가 깃든 40계단의 의미를 제 조명하며는 올해에도 40계단 문화 축제를 개최합니다.

 

 

동광동40계단 거리로 오시면 2004년 4월에 도로정비를 하였는데 피난시절의 모습을 50~60년대로 재현을 해놓았습니다. 나무 전봇대 하며 영화벽보하며 추억의 장소로 부모님과 아이들과 함께 방문을 해 보세요. 동광동사무소5~6층에는 40계단 기념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행사가 진행됩니다. 본 행사는 40계단 앞 특설무대에서 오후 6시부터 행사를 진행합니다. 사전행사로는 난타공연, 남도공연,  트럼펫 연주, 하모니카, 시낭송, 가수공연과 경헌예술단, 마당굿, 부채춤, 가야금병창, 경기민요, 한랑무, 사물놀이, 대동놀이등이 열리고 본행사는 노래교실, 이은정과 맴버스앙상블, 40계단 가요제, 초청가수 공연이 열립니다. 강냉이죽, 벙튀기, 국화빵, 네일아트, 솜사탕, 떡메치기, 60세이상 무료한방진료의 부대 행사와 노래자랑 시상식과 경품추첨으로 진행이 됩니다.

◆일시:2014년 10월15일 수요일 오후2시부터 진행. 본행사는 오후 6시부터~~~

◆사진으로 만나는 40계단의 추억들...

 

 

 



피난시절의 40계단. 사진에 보면 물동이를 진 여인은 40계단 문화관 입구 오른쪽에 "40계단 여인상"으로 만날 수있습니다.

현재의 40계단

 

 

 

 

 

 

 

 

 

 

 

 

2008/10/07 - 부산의 특이한 이름인 "40계단" 추억을 아시나요

 

2012/08/26 - 40계단 문화의 거리에 세워진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이 일제의 잔재로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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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미문화원이 있었다.
지금도 미문화원하면 40대 이후 새대들은 당장 대청동 어디어디 하며 설명을 해 줄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용두산공원 후문쪽에 있으며 용두산을 등지고 있다.
1982년 3월18일 이곳에는 국내의 모든 언론매체의 초점을 받았다.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 한 곳으로 최인순, 문부식, 김현장, 김은숙씨등 부산시내의 모 대학교 대학생들이 반미운동을 외치며 이곳 문화원에 불을 질렀다.

담당변호사는 고 노무현전대통령님, 사건을 재판한 판사는 이회창 전 총재였다.
지금 대청동의 미문화원건물은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모습을 바꾸어 시민들에게 어린시절의 향수를 갖게 하고 있다. 일제의 수탈현장이며 그 당시의 시가지 모습등 다양하게 전시를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때에는 이 건물이 동양척식주식회사건물로서 현재는 부산시 지정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어 문화재로 보호를 받고 있다.
1929년에 건립된 이건물은 당시에는 혁신적인 건물로 평가를 받았다.
그 당시 철근콘크리트로 건물을 올리고 외형은 서구양식을 도입하여 외관의 품격을 돋보이게 한 건물로 몇 안남은 현재 보기가 힘든 건축물이라 한다.
 여기서 일제가 경제 수탈을 자행하여 국민의 피고름을 짜게 만들었다.
해방후에는 부산에 들어온 미군의 숙소로 사용이 되었고 1949년부터 미문화원으로 이용되었다. 미문화원방화사건을 거쳐 1999년에야 반환이 되어 부산근대역사관으로 탄생되었다.
지금 부산근대역사관의 모습을 찾아보면 우리 부모님 새대 삶의 모습을 알 수 있다. 40계단과  용두산 공원을 연계 하며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용두산과 그 인근의 모습으로 전찻길이 보이며 용두산에는 일제가 세운 신사 건물도 2동 보인다. 전차를 타고 이곳을 지날때는 모두 일어서 큰절을 하였다 하니 그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영도다리의 모습.




찾아가는길

버스 : 해운대방면 40,139,140.
서면방면 : 17,17-1 35,52-1,81,82,85,87,88,89,10
부산역방면 : 40, 42, 59, 81, 140

지하철 : 1호선 중앙동역 하차1번,5번, 11번 출구
남포동역 하차후 용두산공원을 거쳐 와도 된다


관람시간 : 9시 - 18시

휴관일 : 1월1일,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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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의 발달로 편지를 쓸 일이 거의 없다 시피하다. 전화나 e-mail의 편리함속에 쉽게 친구나 연인에게 사연을 이야기하고 전할 수가 있다. 예전에는 편지한통 보낼려면 최소한 2박3일 동안은 그 편지로 인해 즐거움을 안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문명은 발달 되었지만 변하지 않았서면 하는 것이 손으로 쓴 편지이지 싶다. 편지지에다 깨알같은 글씨로 적어 하얀 봉투에 넣어 밥풀로 입구를 붙이고 우표도 싸 붙이고 집 앞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일을 생각하니 지금도 웃음이 피식 나온다.



우연찮게 부산우체국 뒷길을 걷다보니 하얀 우체통이 서 있다. 기존의 우체통은 빨간색으로 사각모양에 윗 부분이 둥근 모습인데 여기 서 있는 우체통은 흰색으로 원통의 기둥에 가깝다. 부산 동광동 40계단 아래에 있는 하얀 우체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옆면에 붉은 글씨로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이라 적혀 있다.


 이 우체통은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고 없는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그리운 님에게 보내는 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애절한 사연, 피난시절을 회상하며 떠오르는 옛이야기, 모든 이의 향수와 애환을 담은 편지를 넣을 수 있는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입니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곳은 어떠한 곳인가. 한국전쟁으로 전국의 피난민들이 몰려 와 이곳 40계단 아래에서 친구를 만나고 부모의 안부를 듣고 연인과의 재회를 하고 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지든 눈물과 사연이 많은 곳이 아닌가. 그래도 이곳 40계단에서 만나고 재회한 사람은 다행이라 여기고 만나지 못한 금순이는 오늘도 40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서 인지 연신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에 편지를 넣어 부모님과 친구, 그리고 연인에게 소식을 전해본다. 물론 우표는 필요가 없다 하네요.

‘이 우체통은 여러분들의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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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계단 여인상"입니다. 40계단을 대표하며 양동이를 이고 아기를 업고 있는 우리의 어머님의 모습입니다. 이 동상은 인쇄골목 40계단 문화관 건물 앞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양동이를 이고 애기를 업은  어머님이 40계단을 내려오고 있네요. 40계단 여인상의 모델로 수도 없이 오르내렸을 이계단을....이분은 지금 어디예 계시는 궁금합니다. 40계단 문화관 5층에 전시를 해 두었습니다.

현재의 40계단 모습입니다. 중간에 아코디언을 켜는 아저씨가 않아있네요.
그분 등뒤에는 스피커가 들어 있는 박스가 있습니다 이박스의 보턴을  누르면 박재홍님의 경상도아가씨가 흘러 나옵니다.

 

그시절에는 계단 좌우로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계단 옆으로 집이 꽉 들어서 있습니다.

아코디언을 켜는 아저씨의 모습입니다. 그때 그시절에는 길거리의 악사들이 많은 시절이였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생각나는 모습입니다. 뻥티기를 하는 아저씨와 그옆에 꼬마의 모습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이 그때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뻥 소리와 함께 김이 무럭무럭나며 주위로 박상이 튀어나와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 먹을여고 두 귀를 막고 서 있는 모습... 

피난시절 고달픔도 잊고 자식에게 젖을 물리는 우리 어머님의 모습
입니다. 지금 난장의 옷가게가 진을 치고 있어 그때의 모습과 너무 대조적입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물이 귀한 시절입니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수도꼭지를 틀면 뜨거운 물 찬물이 콸콸 쏟아지지만 그때는 공동우물로 물이 귀한 시절이였습니다. 온 가족이 총 출동하여 이고 지고하여 물을 져 나르는 모습입니다.

고단한 삶의 모습입니다. 전쟁후 먹고 살기 힘들때 지게를 지고 물건을 져 나르는 역전지게꾼이나 막노동을 하며 하루 날품팔이를 하는 우리 아버님의 모습입니다.
지게에 등을 데고 누워 있는 모습에 한켠에 고무신을 벗어 놓은 그 모습이 얼마나 힘이 드시는지...우리 모두의 아버님입니다. 아버지의 휴식

 테마 거리의 모습입니다. 전봇대하며 전봇대위의 까치집 그리고 중간의 영화 벽보하며 생각나는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40계단 테마거리를 알리고 있습니다. 중앙동 팔성관광에서 동광동으로 오르는 길이 중앙동 국민은행 옆으로 이어지는 테마거리를 알리는 안내판입니다. 팔성관광 건너편에 설치 되어 있습니다.


중앙동 국민은행 옆의 40계단 조형물입니다. 평화의 문으로 기찻길에는 희망찬 내일을 향한 등불을 형상화 했다합니다.

부산역을 나타내는 기찻길의 모습이 있어며

부산항을 나타내는 항구의 모습을 형상화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힘든 고비를 넘기기 위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터온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1950년 6.25가 발발하고 전세는 불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피난을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으로 다 수용을 못하고 피난온 사람들은 부산의 대표적인 엄광산 구봉산 용두산 아래 터를 잡고 계단식으로 거적 데기나 판자로 엮어 만든 동네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판자촌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게 중앙동의 40계단입니다.
 40계단이 생긴지는 뚜렷하게 알 수 없지만 중앙동에 새마당이 생긴게 1908년이니까 미루어보건데 동광동5가 언덕베기 윗길에서 중앙동4가 새마당으로 내려오는 길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 40계단이 널리 알려져 피난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곳이 된 것입니다.
6.25로 인해 피난민들이 이곳 40계단에서 구호물자로 흘러 나온 물건을 거래하는 난장이 생기고 국제시장과 함께 피난민들에게는 애환이 서린 곳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피난민들이 모두 모이다 보니 전쟁통에 잃어버린 가족과의 상봉의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합니다.

지금도 부모님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박재홍님이 부른 “경상도 아가씨”로 첫구절에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우는 나그네”로 시작되는 이노래는 가사가 피난민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 사십계단이 지금의 40계단으로 부산시 중구 동광동에는 40계단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40계단 문화관으로 동광동 인쇄골목에 위치를 하며 40계단과 함께 테마거리를 조성하여 부모님들에게는 피난살이의 힘겨웠던 추억을 생각하게하고 자라는 청소년들에게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도록하기 위해 그때의 물품이나 모형을 만들고하여 전시를 해 놓았습니다.

40대 후반 필자인 나도 추억이 떠 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양은으로 만든 도시락 구슬 딱지등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물건이 꽤 많아 꼭 한번 부모님과 자녀분과 함께 찾아 가 보길 권해봅니다.


이제 부터는 40계단 문화관의 모습입니다.



5층 입구에 들어면 만나는 모습입니다. 상설 전시실로 1876년 개항이전부터 개항기를 거쳐 일제 강점기, 광복 6.25등 중구의 역사를 이야기한 중구 연표가 전시되어 있다.


광복전후 부산의 사회상과 6.25로 인한 피난시절 부산 모습을 잘 나타내었어며



밥벌이 물전쟁 삶의 애환이 묻어 있는 그시절의 물품을 전시하여 장년층의 애환을  되살리고 있다.


피난시절의 꿀꿀이 죽 옥수수죽등 그때의 먹거리를 나타내었어며





전쟁중에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배움의 꿈을 키워 왔던 천막교실의 모습입니다. 봉숭아학당의 저요저요 하는 모습이 생각납니다.

풍금에서 흘러나오는 반주에 노래도 부르고....

박재홍님의 경상도 아가씨와 그 당시의 음반들과 전축

어렵던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남감입니다. 생각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양은 도시락과 교복, 추억의 책가방등 그때의 학용품하며...

전쟁물자를 이용하여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을 하였습니다. 재떨이하며. 사물함 그리고 호롱불대신으로 사용을 하였다합니다.





닥종이로 그때의 모습을 만들어 6층 특별전시실에 일부 전시를 해 놓았습니다.
천막으로 엮은 집 앞에서 피난민들의 모습입니다.

망~개~떡~ 외치는 망개떡장수의 외침이 귓전에 맴돕니다. 



6층 특별전시실 중앙에 전시된 그 당시의 군용석유램프 그리고 화덕, 불을 피우기위한 시설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4개의 사각 기둥안에는 그 때의 모습을 찰흙으로 나타내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상영을 할때 돌리는 영사기입니다. 한참 재미 있을 때 보면 필름이 지지지~하며  끊어져 다음장으로 넘어가면 휙~하고 휘파람을 불며 난리를 치던 그때그시절의 영사기입니다.

풀빵입니다.지금이야 추억으로 먹지만 그때는 한끼를 때우기 위한 식사였습니다.

전쟁통에 죽이라도 얻어먹을여고 줄을 서는 모습입니다.

많은 식구가 단칸방에 칼잠을 자던 시절입니다. 자세히 보니 흥부네 가족입니다.


그때 난전의 모습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배고픈 시절에는 부러울 것이 없는 가게 아저씨입니다.

가마니로 엮은 움막입니다. 움막안에 자는 꼬마와 밖에서 뭔가를 열심히 하는 엄마 그때의 모습입니다.

40계단 문화관 전경입니다. 5~6층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번쯤은 둘러볼 것을 권해봅니다.  


참고로 중구문화의집 051-600-4541
40계단기념관 051-600-4041
주소:부산시 중구 인쇄골목 2길81(동광동5가 44-3)
개관일:매주 화요일~일요일(월요일휴관)
관람시간:오전10시~오후7시까지이며 토.일요일은 오후5시까지
교통편은 지하철 1호선 중앙동역하차, 13번 출구로 나와서 5분거리임
버스는 17,26,27,40,41,61,81,82,85,87,88,103,134,508번임
홈페이지:www.bsjungg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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