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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부북면 가산저수지 위양못 둘레길, 밀양8경인 위양못 5월 이팝나무 꽃이 필때 최고의 둘레길인 밀양연극촌, 고가 탐방로 개요.


부산과 가까운 밀양시 부북면 퇴로리에는 두 개의 저수지가 얼마간의 사이를 두고 떨어져 있습니다. 80살인 가산저수지와 천년을 넘긴 위량못이 그것입니다. 이 두 저수지를 연결하는 둘레길이 조성되어 ‘밀양연극, 고가 탐방로’로 부르고 있습니다. 가산저수지는 퇴로 수리 못 또는 용호, 남호등으로 불리며 일제 강점기인 1931년 조성된 저수지입니다. 

퇴로마을 맞은편에는 왼쪽 옥교산 쪽에서 길게 능선이 내려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형국입니다. 퇴로마을에서 보면 용이 가산저수지로 물을 먹기 위해 내려오는 형상으로 보이는데 용은 물을 만나야 하늘로 승천을 하게 됩니다. 그것을 증명하듯 능선 끝에 용호정이 있는 봉우리를 용두산이라 부르며 퇴로마을의 안산이라 합니다. 승천을 기다리는 용이 가산저수지에서 마음껏 놀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용두산과 가산마을 뒤 산을 틀어막아 만든 큰 호수는 안산 뒤로 펼쳐진 봉만들의 논농사를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가산저수지는 넓이만 해도 63정보에 둘레는 10리나 된다고 합니다.


 

밀양연극촌











밀양가산마을연꽃단지




효자각









가산마을 뒤에 있다고 하여 가산지로 부르기도 하지만 정식명칭은 퇴로마을 앞에 큰 호수를 이루고 있어 근방에서는 퇴로수리못으로 더 알려져 있다. 물이 풍족하고 따뜻하여 오래전인 선사시대부터 마을을 이루었던 것을 토기등 출토된 유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씨족으로 뿌리를 내린 것은 400년쯤으로 보고 있으며 마을어른들의 전언에 따르면 재령이씨, 경주최씨, 순창설씨가 처음 입향을 하였고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한다.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가 술사와 함께 마을 뒤에 솟은 화악산의 기세를 보고 명당의 기운이 돛대산에 머물러 있다하여 인재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이곳의 기운을 끊었다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 풍파를 겪으며 함평이씨의 뒤를 이어 여주이씨 일가가 들어와 마을을 이루면서 퇴로리는 영남일대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퇴로마을은 양반고을 밀양에서도 교동과 다죽리의 다원마을, 사포리등과 함께 이름난 마을로 알려져 있다. 퇴로마을에는 여주이씨 고가가 즐비하며 대표적인 것이 도지정문화재인 여주이씨 고가이다. 항재 이익구가 마을에 입주하면서 세웠던 고가로 조선시대 후기 지방선비의 집을 원형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영화 오구의 촬영지였던 이병수 고가는 등록문화재 제152호로 지정되었고 1910년경에 근대 재료를 사용하여 조선 후기 건축양식으로 건축된 집이다. 이외에도 문화재인 서고정사와 한서암등 고가와 마을의 전설 등이 골짜기 마다 곶감 열리듯 주렁주렁 메 달려 있어 미리 공부를 하고 떠나보면 더욱 재미있는 둘레길이 된다.


 















가산저수지









 

☞(경남여행/밀양여행)부북면 가산저수지 위양못 둘레길, 밀양8경인 위양못 5월 이팝나무 꽃이 필때 최고의 둘레길인 밀양연극촌, 고가 탐방로 경로.


밀양연극 고가탐방로는 밀양가산저수지~위양못 둘레길로도 부르며 둘레길 경로를 보면 밀양연극촌~가산 저수지 전망대~팔각정~퇴로리 마을 갈림길~용현정사~여주이씨 이익구 고가~이병수 고가~퇴로마을 버스정류장~팔각정~위양못 사거리 갈림길~위양못~완재정~용호정~밀양연극촌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둘레길이다. 총 GPS 거리는 12km 안팎으로 4시간 쯤 걸린다. 걷는 동안 많은 볼거리와 전설등을 생각하다보면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림을 염두에 두자.


  
























 

☞(경남여행/밀양여행)부북면 가산저수지 위양못 둘레길, 5월 이팝나무 꽃이 필때 최고의 둘레길인 밀양연극촌, 고가 탐방로 밀양연극촌 출발.


'밀양연극, 고가탐방로'인 가산저수지 위양못 둘레길의 출발은 1999년 10월 문을 연 밀양연극촌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먼저 '밀양연극촌,고가탐방로' 안내도에서 걸어갈 길을 확인하자. 왼쪽 밀양연극촌 관광정보센터 방향으로 길을 잡아간다. 가산마을 방향으로 둘레길 중간에 밀양에서 가장 큰 연꽃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2009년부터 조성된 연꽃단지는 그 규모만 해도 엄청난 7만772㎡의 면적에 36종의 연꽃이 피어 여름철에는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진흙속에 화려하게 꽃을 피워 흙속의 진주로 불리는 아름다운 연꽃은 지금 볼 수 없어 안타깝지만 화악산등 주위의 경치가 그것을 대신해주고도 남는 다. 

연꽃단지를 지나면 가산마을 어귀에 심재 설광옥 선생의 효자각(孝子閣)'이 서 있다. 티비 프로인 ‘전설의 고향’에서 만날 법 한 분으로 모친의 병환이 깊어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고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살피고 마지막에는 손가락을 찍어 피를 흘려 넣어 모친을 간호하였다는 기록이 요즘 살아가는 우리에게 효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용현정사














 

효자각 앞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 전망대 방향을 따라간다. 가산저수지 둑 방향이며 포장된 농로길이다. 둑 못 미쳐 만나는 갈림길에 왼쪽 전망대 방향으로 꺾는다. 다시 무덤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가산 숲길을 살짝 오르면 전망대 밑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하여 덱 전망대에 오른다. 공사로 물이 빠져 텅 빈 가산저수지와 퇴로마을, 돛대산과 화악산등 눈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이 봄기운을 가득 담고 있다. 필자가 가야할 곳인 ‘퇴로리 고가농촌체험마을’이 정면에 보이고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왼쪽 가산 저수지 옆으로 난 둘레길을 걷는다. 

구불구불 하게 만들어진 저수지 둘레길은 걸으면 삼거리와 만나고 퇴로리 방향은 오른쪽 저수지 옆길로 이정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꺾는다. 걸어가는 내내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이 이제는 차지 않는데 입고 있는 옷을 거추장스럽게 만든다. 그만큼 날씨가 많이 풀려 걸어가기에 너무 좋은 것 같다. 팔각정에서 저수지 건너편에 보이는 산이 퇴로리 안산인 용두산이다. 정수리에 용호정이 보이고 가산 전망대와 둑을 연결하여 저수지를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왼쪽 대항리 방향 도로에는 이팝나무 가로수가 새순을 돋우고 꽃피는 5월을 기다리고 있다. 둘레길은 목재덱을 따라 걷는다.


 







퇴로리 여주이씨고가





















 

10분이면 퇴로고가농촌체험마을 방향의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다. 왼쪽 마을 방향으로 따라간다. 퇴로마을을 보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마을 앞 도로에 닿고 오른쪽 도로는 마을을 보고 돌아 나오는 길이고 먼저 왼쪽 용현정사 방향으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간다. 정면에 아담한 고가가 용연정사다. 5분이면 용현정사에 닿고 집 입구에 큰 노거수가 집의 연륜을 말해준다. 여주 이씨 가문의 서당으로 운영되었다며 관리 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집 구경을 하였다. 용현 정사는 정존헌 이능구의 유지를 받들든 곳으로 용현정사가 있는 이곳을 용현 또는 용터라 하는데 용두산과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용현정사를 둘러보고 왼쪽 마을길로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집집마다 기와를 올린 흙 담장이다. 마을 안으로 통하는 골목을 따라가면 이익구 고가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2호인 퇴로리 이씨 고가를 보고 돌아 나온다. 다시 흙담장의 골목을 빠져 나오면 ‘오구’의 촬영지 '이병수 고가' 앞이다.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 없는게 아쉽지만 이익구 고가와 비슷한 구조로 뒤어있다. 이외에도 서고정사등 많은 고가들이 있지만 다 둘러볼 수 없는게 아쉽다.


 

이병수고가













사우정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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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로마을 버스 정류장 앞으로 나온 뒤 마을회관 앞에 사우정의 큰 빗돌이 보인다. 퇴로 마을에 함평이씨 봉년, 송년, 익년, 학년 사종형제가 각각 느티나무를 한그루씩 심고 매일 이곳에서 수학하며 우애를 나누었는데 그 뒤부터 마을에서는 사우정이라 불렀다. 지금은 네그루의 느티나무중 세그루는 죽고 한그루의 잔해만 남아 있다고 한다. 

사물놀이 인형 캐릭터와 소달구지의 모습을 보고 밀양임실치즈마을 앞을 지나면 용현정사 갈림길인 도로 삼거리다. 다시 저수지 갈림길까지 돌아가 왼쪽으로 꺾어 저수지 길을 돌아가면 팔각정을 지나고 다시 퇴로마을로 가는 아스팔트 도로와 만난다. 이곳까지 10분이면 된다. 삼거리에 이정표가 서 있다. 

오른쪽은 용호정 방향이고 위양못을 보고 이곳까지 돌아 와야한다. '위양못' 방향은 왼쪽으로 틀어 20m 앞에서 다시 오른쪽 방향으로 꺾어 개울 옆 콘크리트 둑길을 간다. 만나는 갈림길에서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걸어 6분 후 포장길을 버리고 오른쪽 밭떼기 사이를 지나면 숲길로 들어선다.


 













위양못















밭과 소나무숲의 경계길을 따라 5분쯤 가면 정자가 있는 위양못에 닿는다. 못가에 엄청 큰 둥치의 수양버들이 소나무와 함께 운치를 더한다. 위양못은 ‘양민을 위한다’는 뜻으로 신라시대에 축조되어 농업용수로 사용되어 위양지로 불리게 되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인 위양지의 최대 볼거리는 5월달에 물위에 떠 있는 다섯 개의 섬과 흐드러지게 핀 이팝나무에 걸린 듯 자리한 완재정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위양지의 풍경이 밀양8경에 올라 있다. 위양지를 한 바퀴 둘러보기 위해 왼쪽으로 못가를 걸어간다. 

물에 비치는 주위 풍경의 반영이 너무나 아름답고 이팝 꽃과 함께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새벽녘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많은 사진가들이 새벽잠을 설치며 찾아 오는 곳이기도하다. 안동권씨 학산 권삼섭을 위해 지은 정자 완재정은 시경의 “완연히 물 한가운데 있다”는 뜻인 ‘완재수중왕’에의 취해왔다. 완재정이 물 가운데 있는 정자 임을 알 수 있다. 섬에는 문이 열려 있어 들어 가 볼 수 있지만 완재정은 잠겨 있어 내부를 볼 수 없고 밖에서 보며 돌아 나왔다. 현재에도 안동권씨에서 위량지를 관리하고 있다. 소나무 숲속길을 지나 위량못을 돌고 다시 왔던 길을 걸어 퇴로 마을 진입 도로인 용호정 갈림길 까지 간다.


 
















완재정












 

이정표의 '용호정' 방향 도로를 200여m 가면 다시 용호정 갈림길이 나온다. 용호정 방향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 간다. 울울창창한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지나면 용호정 주차장에 이정표가 있다. 밀양연극촌은 왼쪽이고 용호정은 주차장을 가로질러 간다. 다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언덕길을 올라 용호정이 있는 용두산에 올라선다. 가산저수지의 걸어온 둘레길과 퇴로마을의 고가, 돛대산과 화악산의 풍경이 따사로운 오후의 모습에 한참 여유를 즐기며 쉬었다. 

시원한 전망에 일별하고 다시 주차장의 이정표로 돌아간다. 이정표의 밀양연극촌 방향은 솔밭에 봉분이 큰 무덤을 지나고 곧 능선이다. 길이 잘 나있는 능선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100여m 가면 다시 왼쪽 무덤이 여러기 있는 쪽으로 내려서면 둘레길은 막바지로 이내 가산 저수지 둑 아래 임도에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밀양연극촌까지는 10여분 소요되며 잠시 후 출발할때 걸었던 길을 따라 효자각과 연꽃단지를 지나면 밀양 연극촌 주차장에 도착한다.


 




용호정
















☞(경남여행/밀양여행)부북면 가산저수지 위양못 둘레길인 밀양연극촌, 고가 탐방로 교통편.


부산에서 가산리 밀양연극촌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타고 밀양IC에서 내려 밀양시청 방향 24번 국도를 탄다. 밀양시청을 지나 만나는 신촌오거리에서 오른쪽 창녕, 청도면과 부북 방면으로 꺾어 부북면 소재지를 지나 5㎞쯤 이동하면 오른쪽에 밀양연극촌이 나온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부산역에서 기차를 탄 후 밀양역에 내린다. 역 앞에서 밀양시외버스터미널까지 버스로 이동한다.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북면 가산리 밀양연극촌으로 가는 버스는 오전 7시20분, 8시50분, 10시50분 등에 있다. 밀양역에서도 부북면사무소까지 가는 4번 시내버스가 하루 15회 있으며 하차 후에는 좀 걸어야 한다. 밀양역에서 밀양연극촌까지 택시를 탈 경우 10,000원 안팎이 나온다.



밀양가산저수지~위양못 고도표




밀양가산저수지~위양못 지도




밀양가산저수지~위양못 다음지도








2014/04/01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위양못(위량지). 5월이면 사진작가의 단골 출사지인 위양못에 댕겨 왔습니다. 이팝꽃은 없지만 역시 밀양8경의 풍경입니다.


2014/04/03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퇴로리 여주이씨 고가. 봄 여행지로 좋은 밀양 부북면 퇴로리 '오구' 촬영지 여주이씨 고가를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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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부북면 퇴로리 '오구' 촬영지 여주이씨 고가를 보고 왔습니다.

 

경북에는 안동이 있다면 경남에는 밀양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나요. 조선시대때 경북에는 안동이 양반들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면 경남에는 밀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ㅎㅎ 밀양에도 많은 양반촌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밀양 교동이고 또한 손숙장관이 나왔던 산외면 다죽리 그리고 부북면의 퇴로리등 손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양반의 득세가 얼마나 센지 박정희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대구에서 밀양으로 통과하게 하였는데 밀양의 양반님들이 시끄럽다고 우리 동네로는 통과 할 수 없다며 강력 반대 하여 경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할 정도입니다.

 

 






지금이야 신대구고속도로가 생겼지만 밀양의 발전이 그 덕택으로 더 늦어졌다네요. 이야기가 옆길로 빠진 것 같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밀양 부북면 퇴로리의 여주이씨 고택입니다.

 




 

퇴로마을에도 유독 고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황토 담장을 돌려놓은 기와집의 모습은 그 당시 세도가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특히 퇴로리의 중심에는 여주이씨 고가가 마을을 대표할 정도로 큰 규모입니다.

 









퇴로마을 버스 정류장에 내려 오른쪽 개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돌면 큰 고택의 담장이 연결 됩니다. 그 왼쪽으로 따라 갑니다. 마을 길 끝에 ‘오구’ 촬영지라며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먼저 만나는 이병수 고가로 근대문화유산이며 등록문화재 제15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에도 그의 후손이 살고 있고 담장이 높아 발끝을 들어도 집안 내부는 볼 수가 없습니다. 오른쪽으로 흙 담장을 따라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주이씨 고가의 규모가 엄청 큰 데요. 필자는 이병수 고가에서 왼쪽 골목으로 돌면 좌우로 아름다운 흙 담장과 연결되고 오른쪽으로 한바퀴를 돌면 이익구 고가 앞에 닿습니다.

 




이곳에는 문이 열려 있으며 최근에 대문이 수리가 된 것 같습니다. 여주이씨 자유헌공파의 종갓집으로 1890년 이만백의 7대손인 항재 이익구(1838~1912)가 마을에 입주하면서 세웠다합니다. 조선시대 후기 지방 선비의 집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합니다.




 

필자가 대문을 통해 들어가 보았습니다. 흙과 돌을 섞어 기와를 올린 담장으로 구분을 하였는데 같은 형태의 고가가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먼저 정침 안채는 정면 7칸, 측면2칸의 규모로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청덕당이라는 당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서익랑과 정면5칸과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건물에 ‘성헌’의 현판이 걸려 있는 중사랑이 안채와 마주보며 자리하고 출입문 왼쪽에 종가사당 건물이 배치되었습니다. 중사랑 앞의 작은 문이 열려 있는데 그 문으로 나가보니 또 하나의 건물이 비슷한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별채로 청덕당인 안채의 동쪽에 있습니다. 이 건물은 항재 이익구의 손자인 후강 이재형(1891~1970)이 결혼과 함께 분가를 하여 지어진 건물로 안채와, 동서익랑, 사랑채로 지어졌습니다.

 



 

안채는 정면7칸과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사현합‘의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사랑채는 정면5칸에 측면 1칸 반의 크기로 팔작지붕을 이루며 쌍매당의 당호가 걸려 있고 또한 후강유서, 담재, 청덕고가의 현판이 함께 걸려 있어 있습니다.


 





 


 


쌍매당의 남쪽으로 통하는 쪽문이 이병수의 고가로 통하는 문으로 보입니다만 문을 걸어 놓았습니다. 항재 이익구의 차남이 분가하였던 집으로 마당을 중심으로 북쪽에 ’一‘자형 안채와 서쪽에는 ’ㄱ‘ 사랑채, 안채와 마주보고 곳간채가 자리한 형태입니다.

 







특이한 점은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과 건물의 배치를 따랐지만 전, 후퇴 공간의 확장과 건물의 내부 수납공간을 크게 하는 등 근대 한옥의 특징을 보여 주며 사용된 재료 또한 기존과 다르게 근대 재료를 사용하여 건축하였습니다.

 




퇴로마을에는 앞으로 퇴로 수리못 또는 가산저수지, 용호, 남호로 불리는 큰 저수지가 있습니다. 1931년 일제 강점기때 만들어진 저수지로 둘레가 10리나 됩니다.  퇴로마을은 앞으로는 가산저수지, 뒤로는 돛대산이 둘러 싸여 아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돛대산 정상 인근에는 인위적으로 지맥을 끊은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였던 이여송이 조선의 산천지리를 술사와 살피며 큰 인재가 날 만한 곳은 산의 맥을 끊었다합니다. 그 때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퇴로마을에는 명당으로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여주이씨의 청덕당과 쌍매당터가 예로부터 명당터로 마을에서도 명당이라 부릅니다. 따뜻한 봄이 왔습니다. 5월의 꽃 이팝나무가흐트러지게 꽃을 피우는 위양지와 함께 밀양의 고가 여행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2014/04/01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위양못(위량지). 5월이면 사진작가의 단골 출사지인 위양못에 댕겨 왔습니다. 이팝꽃은 없지만 역시 밀양8경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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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 금환락지의 곡전재. 천상의 정원이 좋아요.

 

우리는 신년이 되면 항상 토정비결을 본다. 믿거나 안믿거나 한해의 운수를 보며 올해의 길운을 점치는 자신을 보면 누구나 나약한 인간의 한 단면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운세를 미리 봄으로해서 그 만큼 마음의 위안을 삼기위함일까. 조상의 묫자리를 잡는데도 좌청룡 우백호니하면서 풍수를 본다. 그리고 집터를  정할때도 풍수에 근거하여 명당터를 잡게된다.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 금환락지의 곡전재.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곳 곡전재 명당터.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는 금환락지로 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곳으로 금가락지가 떨어진곳이 남한에서는 3대명당터로 알려져 있다. 운조루와 곡전재 모두 금환락지의 명당터에 위치를 하고 있다하니 어느것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일단은 지리산이 병풍처럼 둘러져진 이곳을 바라보면 문외한이 내가 보아도 좋아보이는 곳이다.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 금환락지의 곡전재. 담장이 금가락지 모양 곡전재.

 

오미리의 금환락지 명당을 보고 말하기를 무장이 천명, 문장가가 만명이 나올자리라니 대대손손 장군과 벼슬아치가 끊이지 않고 나올 그런 곳이라 여겨진다. 곡전재를 보면 높은 담장으로 인해 안을 전혀 볼 수 없다. 높이가 2.5m로 사람의 키 높이 이상으로 원형 담장을 돌렸는데 이는 금가락지를 의미한다. 결론은 옥녀의 금가락지가 떨어진 장소가 이곳이란 뜻이다.

 

 

 

 

곡전재는 구례군 향토문화유산(유형)3-9호로 7천석의 박승림이 명당터를 찾기위하여 지사와 함께 전국을 유랑하며 찾은 곳이다. 1929년 이곳에다 6채 53칸의 한옥을 지었는데 1940년에 곡전 이교신이 인수하여 현재 5대째 이어오고 있다.  1998년에 1월에 동행랑과 중간 사랑채를 복원하고 누각을 지어 춘해루'라 하였고 현재는 5채 51칸의 큰 저택으로 남아 있다.

 

 

 

 

곡전재는 대문과 중문사이에 천상의 화원을 연상시키듯 사계절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져 벌써 소문이 자자하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하였을때는 8월 초순에 연일 불볕 더위로 수은주는 끝이 어디인줄 모르고 붉은 막대가 널뛰기를 하는 그런 날씨가 연일 계속되었다. 곡전재를 들어서니 녹색의 푸르름이 벌써 온도를 내려주더니 지리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세연정을 지나 마당의 화원을 휘감아 돌며 와랑와랑 흘러 갈때는 한여름의 무더위를 완전 잊게 만들었다.

 

 

 

 

곡전재의 뜻은 성주이씨 20대손인 이교신의 호로 '곡전이 살았다'는 뜻이다. 현재에도 성주이씨 후손인 이병주씨가 생활하며 살고 있다. 조선 후기 한국 전통 목조 건축양식을 따르고 당시 영호남의 남부지방 부농의 민가 형식 가옥을 잘 보여준다.  건물의 특징을 보면 문간채, 사랑채, 안채가 모두 '一'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 금환락지의 곡전재. 한옥 체험 민박 곡전재.

오미리는 현재 한옥민박집이 여럿곳 있다. 운조루와 함께 곡전재도 한옥민박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ㅣ박을 하며 전통 한옥의 멋과 금환낙지 명당의 기를 받아 봄도 좋을 것 같다. 공식적인 입장료는 없다. 불우이웃돕기 기금 1,000원을 입구에서 모금하고 있다.

 

 

 

 

 

 

 

 

 

 

춘해루.

 

 

 

 

세연정

 

 

곡전재 안채.

 

 

 

 

 

 

 

 

 

 

 

 

 

 

 

 

 

 

 

 

 

 

마당을 흘러가는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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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금천면 시루봉 아래에는 특이한 이력의 가옥이 있다 2005년 1월31일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으로 중요문화재 245호이다..임당리 마을에서는 이집을 내시집으로 부른다. 그리고 내시집으로 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김씨 고택이 처음이며 김씨 고택은 일반 가옥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반 가옥은 정남향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임당리 김씨고택은 남향이 아닌 햇볕이 잘들지 않는 서북향으로 서울의 임금이 있는 궁궐방향으로 가옥을 지은 것이 이채롭다.

내력의 특성상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내시란 거세된 사람들이 임금을 보필하는 환관인데 낙향을 하여 거주 할 목적으로 집을 지었다 한다.  안채(6칸), 사랑채(4칸), 중사랑채(7칸), 큰고방채(4칸), 소고방채(4칸), 대문채(5칸), 사당(3칸)으로 구성되어 총 7동이다. 집 구조를 보면 양반가옥은 사랑채가 안채와 적당한 거리를 두며 떨어져 바깥주인이 손님을 맞이하거나 거주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곳은 들어오는 출입문인 대문에 사랑채가 바짝 붙어 있고 큰사랑채는 대문을 정면으로 지켜보고 아녀자들이 거쳐하는 안채의 출입통로는 사랑채 옆 쪽문인 중문으로만 출입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 안채로 출입하는 사람들의 동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지어져 있다 1500년경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 내력을 보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특성상 양자를 입양하여 내시의 가계를 이어 왔어며 김일준(1863~1954)은 정 3품 통정대부의 벼슬을 지냈고 16대까지 이어져왔다.

그리고 ‘강희 25년 병인 윤 4월’이란 명문이 재실의 막새에 새겨 있는 것으로 보아 1686년 까지 건축연대가 올라감을 알 수 있다.
 

찾아가는 길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3200원. 50분 소요. 언양버스터미널에서 동곡 경유 대구행 완행버스를 타고 동곡까지 간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운행. 동곡버스정류장(054-372-3881)에서 임당리까지는 오전 8시30분 9시50분 11시20분 등에 새마을버스가 출발한다. 10분 소요. 버스가 여의치 않으면 동곡에서 택시를 타면 된다. 5000원 안팎. 운문면 소재지인 대천 버스 정류장에서 금천면 임당리 까지 도보로 25분 소요.
자가용 이용시에는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69번 지방도를 탄다. 운문사 입구를 거쳐 운문댐 아래 운문교를 건너자 마자 좌회전, 동창천을 왼쪽에 끼고 강둑길을 가다가 왼쪽 다리를 건너면 임당리다.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작은 사랑채와 만난다. 그 옆 중문이 안채로 들어가는 출입문으로 입구 우측 작은 공간에서 출입자의 동태를 확인 할 수 있다.
대문으로 이곳을 들어서면 왼쪽 정면으로 큰사랑채와 정면으로 작은 사랑채가 있다.
큰사랑채로 대문을 정면으로 보고 있다.
작은사랑채
재실로 들어서는 쪽문으로 이문이 안채로 연결된다.
왼쪽이 출입구인 대문이고 정면이 큰사랑채, 우측이 작은 사랑채이다.
재길건물로 이건뭉 막새에서 '강희25년 병인 윤 4월'이란 명문이 나와 처음 건축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재실에서 안채로 통하는 쪽문으로 좌측건물이 작은사랑채이며 우측건물이 아녀자들이 거주하는 안채건물이다.



아녀자들이 거주하였던 안채건물
대문으로 통할 수 있는 유일한 출입문으로 왼쪽건물이 작은 사랑채이다.


안채와 작은사랑채건물


작은사랑채에 붙어 있는 감시 구멍으로 중문을 보고 뚫여 있다. 원래에는 나뭇잎모양이었다 한다. 지금은 훼손되어 사랑의 상징인 하트 모양으로 보여 내시의 아픈 마음을 보여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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