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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통일 신라 용장사


경주국립공원 남산지구 용장골은 용장사지 옛 절터가 남아 있다. 지금은 세월의 흔적이 무디어진 만큼 용장사의 영화스러움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깡그리 사라진 상태다. 약간의 석축만 남아 이곳이 절터임을 보여 준다.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에서 금오신화를 집필했던 곳으로 유명하며 조선 세조때 까지도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국내에서 가장 높은 기단석.


용장사지 오른편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용장사의 옛 전성기를 보여 주는 걸작인보물이 3점 반긴다. 하나는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으로 자연석의 암벽에 보일듯 말듯 조각한 솜씨로 보아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다. 그와 함께 용장사지에서 더욱 돋보이는 문화재로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데 아마 국내에서는 가장 크고 높은 석탑이 아닐까 싶다.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경주 남산을 기단석으로 사용한 삼층석탑.


이 석탑이 기존의 석탑과 다른점이 있다. 일반 석탑은 탑을 올리기 위해서 탑 밑에 기단석을 세우고 위에 탑을 올리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기단석은 생략하고 자연석 위에다 윗기단만 설치를 하고 그 위에 바로 삼층석탑을 올렸다. 남산의 자연석 암반으로 남산 전체를  기단으로 만든 것이다. 옛사람들의 생각에 다시금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남산의 상징 용장사곡 삼층석탑


그러니 전세계적으로 이리 높은 석탑은 아마 찾아 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시대 작품으로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간결하면서도 날렵한 이미지를 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많이 훼손이되어 있다는  점이다. 귀퉁이는 날아가고 없는 모습이지만 앞으로도 그자리를 굳건히 지켜 남산의 상징처럼 지켜나가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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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남산의 문화재 보고 용장골

 

경주 남산은 문화재의 보고로 알려진 것은 다 아는 사실. 그런 이유에선지 남산 골짜기에는 많은 절터를 숨기고 있다. 그 곳 절터마다  천년전의 숨결을 오롯히 느낄 수 있는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도 남산을 대표했던 절터는 단연코 용장사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김시습의 금오신화 집필 용장사지

 

용장사지는 조선 세조때 김시습이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했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신라와 고려를 지나면서도 존재하였던 사찰로 보여지는데 왜 이리 남산의 사찰들이 깡그리 폐찰의 아픔을 겪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보물3기가 남아 있는 용장사지

 

내남면 용장리 용장골을 들어서면 김시습의 호를 딴 설잠교가 있다. 이곳을 지나 금오산 방향으로 산길을 거슬러 오르면 옛 용장사지를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산죽으로 뒤 덮혀 절터의 흔적만이 존재를 한다.이곳에서 오른쪽 바위길에 3기의 보물이 기다린다. 남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은 용장사지 삼층석탑과 특이한 모습을 한 삼륜대좌불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통일 신라시대 8세기 작품

 

먼저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에 대해서 알아보자. 보물 제 913호다. 남산의 불상이 다 그런 것 처럼 이불상도 자연석의 바위면에 조각을 하였다. 머리에 두광을 돌리고 몸에도 두줄의 신광을 돌린 것을 볼 수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섬세한 조각기법으로 표현...

 

얼굴은 풍만하게 표현하였고 머리는 나선 같은 곱슬형의 머리카락을 나타내었다. 불상의 모습이 다그러한데 이곳 마애 여래좌상도 눈에서 목까지 내려 오는 긴 귀를 가졌다. 목에는 세개의 선을 가졌는데 삼도라 한다.

 

 

 

 

입고 잇는 옷은 아주 섬세하게 표현되었고 왼쪽 어께 부근에 '태평2년 8월'에 무엇인가 기록한 내용이 있지만 자연적인 마멸이 심해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조각 수법으로 보아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이곳 마애불을 보면 보일 듯 말듯 부드러운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욱 온화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찾는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무엇인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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