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여행/거창여행)거창 북상13경 갈계숲. 산림처사의 안식처 였던 거창 갈계숲을 여행하다. 


거창 갈계숲은 거창 북상 13경중에서 3경에 속하는 아름다운 숲입니다. 수승대 둘레길(거창 수승대 문화유산 여행길)을 걷느라고 늦게 도착했던 거창 북상면의 최고의 숲인 갈계숲을 상세하게 볼 수 없었던 게 지금까지도 많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거창 북상 13경의 3경 갈계숲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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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있는 갈계숲 여행을 하면서 자세한 포스팅을 해야겠지만 시간 제약으로 어쩔수 없이 다음으로 미루야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박 겉핥기식이라도 보고 왔던 거창 북상면 갈계숲을 소개하겠습니다. 갈계숲에 들어서면  우람한 굵기의 나무 밑둥치와 최소한 수령이 수백 년은 됨직한 고목은 아직도 푸름을 잃지 않고 싱싱하며 또한, 엄청나게 넓은 나무숲에 정말 놀랐습니다.

 


이를 보면은 치내마을에서 갈계숲의 위상을 잘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지금까지마을에서 갈계숲을 잘 보존하고 관리해서 오늘의 갈계숲은 거창을 찾는 관광객에게 최고의 힐링 숲이라는 찬사를 받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거창 북상 갈계숲은 1982년 11월에 거창군에서 천연보호림 2호로 지정하였습니다.




갈계숲의 수종을 보면 주종인 소나무를 위시하여 물오리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 족히 200~300년 된 고목이 군집해 있습니다. 2ha 넓이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친 나무는 한여름에 수림의 바다를 연상시키듯 넓고 내리쬐는 뙤약볕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여 북상면의 찾는 관광객에게 정자나무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정말 냉장고 속 같이 시원했습니다.








갈계숲은 세상에 나서지 않고 산림 처사로서 은둔하며 지냈던 선비들이 몸을 숨기기에 좋았던 곳으로 보입니다. 갈계리에 은진 임씨가 입향하게 된 것은 의령현감이었던 임천년은 세종이 승하하자 벼슬에서 물러나기로 작정하고 덕유산 아래 산자수명한 갈계리를 찾아 눌러 앉았다 합니다.

 


이분이 갈천선생의 증조부이며 북상면 갈계리는 은진임씨 세거지가 되었습니다. 송계사 계곡에서 흐르든 옥수는 숲머리에서 물길이 동서로 갈라져 흐르는데 이를 갈천이라 합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섬이 만들어져 나무 숲을 이루었으며 갈계숲이라 하였습니다. 갈계숲은 가선정이 있어 가선림이라하였고, 치내마을의 숲이라 하여 치내숲, 최근에 청학교 가설로 청학림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갈계숲은 조선 중기 갈천의 부친 석천공 임덕번께서 사마시에 합격하면서 진사가 되었으나 당시 나라의 정세가 예사롭지 않음을 깨닫고는 벼슬의 꿈을 접고 고향인 갈계에서 은거하며 처사로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갈천 임훈, 도계 임영과 첨모당 임운 삼형제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문인들과 시를 짓고 시문을 서로 나누며 은사(隱士)로서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 삶을 살게됩니다.



갈계숲에는 시문을 나누었을 법한 정자가 현재 3개 있습니다. 가선정, 도계정, 병암정입니다. ‘신선이 타고 노니는 정자’라는 가선정은 효자로 알려진 갈천 임훈선생을 추모하는 정자로 일제강점기인 1936년 후손에 의해 중창했습니다. 정자를 보면 날아갈 듯한 날렵한 모습에 풍류를 아는 고고한 선비의 정신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앞면 2칸, 옆면 2칸인 가선정은 팔작지붕 형태의 2층 누정의 기와건물입니다. 가선정은 특이하게도  2층 마루로 오르는 계단을 마루 밑에 두었으며 마루 판자를 열고 오르도록 설치했습니다. 이는 마루의 전체적인 공간활용을 하도록 했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정자입니다.





가선정의 단청을 보면 천장의 대들보에는 용무늬와 천장에는 갖가지 화려한 단청이 그려졌는데 그중에는 신선 4명과 바나나와 수박 그림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중창하면서 그린 것이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도계정은 도계 임영을 추모해 1889년 후손들이 경모제를 세웠다가 1934년 중건하였고 1935년에는 정자인 도계정을 건립했습니다. 임영은 갈천 임훈선생의 동생입니다. 재주와 학식이 걸출한 분이었다지만 31세에 요절해 생전에 남아 있던 저술마저 전하는 게 없었으며 근래에 임씨 문중에서 도계선생의 ‘석천세고’와 ‘도계선생유사집’을 간행했다 합니다.



도계정은 요절했던 임영선생을 기려서인지 단청은 하지 않았습니다. 앞면은 3칸, 옆면은 2칸이며 가운데다가 방을 넣고 좌·우 각 1칸의 마루에 계자난간을 둘렀습니다. 기와지붕 네 귀퉁이에는 활주를 세웠으며 보기에도 누각의 안정이 전체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또 하나의 정자는 보지 못하고 왔던 병암정입니다. 병암정은 첨모당 임운의 증손자인 병암 임여남이 일찍부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자연을 접하는 처사로 사는 삶을 살았으며 병암정은 후손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선생이 살았던 마을 서쪽 시냇가에 병풍처럼 둘러쳐 진 아름다운 곳을 병암이라하면서 자신의 호를 병암이라 했습니다.

 




그후에 후손들이 선조 임여남의 유허지에다 '병암정사'를 짓고 학문을 논하다가 1868년 화재로 불탔습니다. 1909년에 다시 그자리에다 작은 정자를 짓고 ‘병암정’이라 했습니다. 병암정은 두정자와는 다르게 단청이 돋보일 만큼 화려한 게 특징입니다.

 




또한, 작고 아담해서 그런지 여성적인 분위기가 매우 돋보이는 정자라고 하며 네 귀퉁에 활주까지 갖추어져 중후하고 단아한 조선 여인을 닮았다는 평입니다. 조선 선비상인 갈계숲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가선정, 도계정, 병암정의 누각 건물을 보면서, 다음에 다시 기회가 찾아온다면 갈계숲에서 산림 처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갈천 임훈선생과 그의 형제를 다시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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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 갈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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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7.11.20 07:45 신고

    올해 는 갈대숲 구경을 제대로 못했네요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거창여행/거창가볼만한곳)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농산리 석불입상)과 행기숲


경상남도 거창군은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이며 또한, 너무 거창하다 해서 거창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무엇이 거창하냐고요? 거창은 거창한 볼거리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볼거리를 여행하기 위해서 수승대를 찾았습니다. 수승대에는 거창의 선비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거창문화유산여행 길이 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농산리 석조여래입상)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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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문화유산여행 길에는 소나무 숲과 월성계곡 그리고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옛 건축물이 대부분 차지하지만 유일하게 농산리 야산에는 숨은 석불이 있습니다. 이번에 거창여행 포스팅은 농산리 석조여래입상과 이웃한 월성계곡의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인 행기숲을 하겠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호에서 세련미와 수려한 조각 솜씨 등으로 문화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보물 제1436호로 승격 지정하였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석불로 천년의 세월을 이어오면서도 석불의 광배, 받침대인 연화대좌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졌는데 불상과 광배는 하나의 바위에 큰 자연석을 원뿔꼴로 다듬었고 또 한 개는 석조여래입상을 받치는 연꽃 대좌로 조각했습니다. 석불의 머리 부분은 높고 두툼한 상투 모양이며 얼굴은 둥글고 온화하고 옅은 미소를 띠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석불과 마주하면 당당한 모습에서 사내다운 풍모가 느껴집니다. 가슴과 유연한 어깨,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에 긴 다리, 얇은 옷자락 속에 보일 듯 말 듯 입체감의 드러난 몸매는 통일신라 시대의 뛰어난 불교 예술품입니다. 또한, 양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의 주름이 가슴 위로 U자형을 그리며 내려오다 허리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두 다리에서는 다시 밀착되어 작은 U자를, 종아리 부분에서는 큰 Y자로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양식의 불상을 인도의 우드야나(Udyana)왕 여래상형식이라 합니다. 이는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입적하고 성불하여 한때 33천 중 부처님의 네 번째 나라인 도리천에서 다시 태어나 어머니에게 설법하였다합니다. 그때 밧사(Batsa)국의 우드야나왕이 지상에 부처가 잠시라도 없는 것이 아쉬워 그 허전함을 달래려고 150cm 크기의 아담한 여래상을 만들어 공양한 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우드야나왕이 공양한 여래상이 최초로 만든 불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때 만든 여래상의 흘러내린 옷자락의 표현이 농산리 석불입상의 조각양식과 같아 우드야나왕 여래상형식이라 합니다. 이런 형태의 옷자락 표현은 통일신라 시대 불상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농산리 석불입상의 광배는 마멸이 심하지만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몸 전체를 감싼 형태입니다. 불상을 받치는 연꽃 좌대도 연꽃을 엎어 놓은 듯 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으로 심하게 마멸된 모습입니다.

 


두발은 불신과 따로 좌대위에 조각되어 있으며 마멸과 훼손이 심해 현재 왼쪽 발가락 일부만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광배의 오른쪽 끝부분은 깨어졌지만 하나의 돌에다 광배와 부처를 함께 조각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은 배 모양인 주형거신광으로 마멸과 손상은 심하지만,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큰 규모의 불상에다 정제된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등 그 수가 많지 않은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농산리 석불입상과 이웃한 월성계곡에는 적송의 소나무 숲이 계곡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이며 정말 그림같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곳 행기숲에는 백제 무왕이 왕자 시절에 신라로 숨어들어 선화공주를 꾀어 백제로 돌아간 이야기가 전합니다.



월성계곡 행기숲 주소: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서동은 신라의 서라벌에서 서동요를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였고 나중에 선화공주와 함께 백제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인 월성계곡에 다다라 이곳의 빼어난 경관에 그만 넋을 잃고서 피로도 풀고 며칠 쉬어 갔다고 합니다. 행기숲은 서동과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의 로맨스만 있는 게 아닙니다.

 





행기 숲을 해인정(解印亭)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신라 말기에 고려의 침공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였습니다. 경순왕은 후백제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급하게 사신을 꾸려 보냈습니다. 사신이 이곳에 다다랐을 때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해 나라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신임을 증명하는 신표인 인장을 이곳에다 숨기고 종적을 감추었다 합니다. 해인(解印)은 인장을 싼 보따리를 풀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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