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에서 봄나들이 하기 좋은 보문단지에서 만나는 경주천군리삼층석탑. 경주천군리삼층석탑


경주 천군동사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천군동사지는 경주에서 대표적인 위락시설이 있는 경주 보문동 보문단지 인근에 있는 절터로 보문호의 명성에 가려있어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곳에 자리했습니다.





경주 천군리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천군동 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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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보문단지 인근에 천군동사지가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으며 우연히 자료 검색을 하다 천군동사지에 동·서 삼층석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번 경주여행길에서 찾았습니다.

 


폐사지 대부분이 옛 절의 이름과 창건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이곳 천군동사지도 정확한 창건연대와 이름을 확인할 수 없어 천군동에 있는 절터라 해서 그저 경주천군리사지 또는 천군동사지라 부릅니다(천군동사지 사적 제82호)



경주천군동사지는 두 삼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을 확인 할수 있어 사찰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발견 당시에는 삼층석탑이 무너졌으며 탑재와 추춧돌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일본인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중문·금당·강당 자리를 일부 확인했습니다.

 


두 탑은 그 이듬해인 193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천군동사지의 가람은 통일신라시대양식인 쌍탑에 1금당 양식을 따랐습니다. 

앞에 중문이 있고 그 안쪽에다 동·서 쌍탑을 세웠으며 쌍탑 뒤로 금당과 강당을 두고 둘레에는 회랑지가 자리했습니다.



남아있는 주춧돌 등의 흔적을 보면 중문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 금당은 앞면과 옆면이 모두 5칸이며 강당은 앞면 8칸에 옆면이 3칸 크기입니다. 

중문에서 강당까지의 거리가 79m이며 폭은 대략 61m입니다.



특히 천군동에서 발굴된 유물 중에 궁궐의 지붕 맨 윗부분 양쪽 끝에 장식하던 치미가 발굴되었는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입니다. 

우리나라에 치미는 몇 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경주의 관문인 경주나들목을 빠져나오면 만나는 나정교 좌우 앞과 뒤에 황금색 모양의 치미를 세웠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웅장합니다.



그만큼 그 크기가 대단하며 이게 기와건물의 지붕 양쪽 끝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치미가 나왔다는 것을 보면서 천군동사지도 당시 신라 궁궐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사찰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천군동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양식인 쌍탑식 절배치이며 주위에 경작한 논밭으로 변해 있어 당시의 모습은 확인할수 없을 정도로 훼손 상태가 심합니다. 

복원된 동서 쌍탑은 그래도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168호)은 이중 기단에 삼층의 탑신이며 두탑은 서로 닮은 쌍둥이 탑으로 불릴 정도로 규모나 양식이 거의 같습니다. 

동탑의 머리장식인 상륜부는 분실되어 없지만, 그에 반해 서탑은 탑 꼭대기 머리장식인 노반 등이 일부 남아 있어 탑의 면모를 갖추어 더욱 위엄 있어 보입니다.

 




기단에는 양쪽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2개의 기둥을 새겼으며 3층의 몸돌에도 양쪽 모서리에다 각각 기둥을 조각했습니다. 

몸돌과 지붕돌인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지붕돌의 밑면인 층급받침은 5단이며 처마선은 짧고 급하게 떨어지면서 네 귀퉁이는 살짝 치켜 올려졌습니다.

 




몸돌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하나 도굴되었는지 사리장신구 등은 찾지 못했다 합니다. 

경주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분위기인 장중함이 느껴지며 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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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천군동 550-2 | 천군리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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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과 창녕 직교리당간지주


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을 보고 나서 내친김에 술정리서삼층석탑을 보러 갔습니다. 

술정리동·서삼층석탑은 석탑의 이름에서 보면 같은 사찰의 동시대에 세워졌던 쌍탑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행정동이 같은 두탑이라 편의상 술정리동·서삼층석탑으로 나누어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4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 전화:055-530-1473



2018/04/27 - (경남여행/창녕여행)우천리 상월마을 반곡고택 여행, 창녕 반곡고택 여행

2018/04/18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리고분군. 비화가야의 순장한 소녀 유골이 나온 창녕 송현리고분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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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창녕 술정리동삼층석탑은 탑의 정교함이 빼어나서 국보 제34호에 지정됐지만 술정리서삼층석탑은 기단부의 제작과 탑의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동 삼층석탑에 비해 격이 현저히 떨어지고 또한. 탑의 제작 시기도 다소 늦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두 탑의 직선거리도 600여m가량 떨어져 있어 한 사찰의 탑으로 보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술정리서삼층석탑 옆의 창녕천 건너 직교마을회관 안 골목에 당간지주가 있는 것을 보면 절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이곳에도 대사찰이 있었다는 것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창녕 술정리서삼층석탑은 높이가 5.1m에 석탑은 이중기단에 삼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의 탑입니다. 

탑의 기단부는 아래층과 위층을 8개의 돌로 짜 맞춘 특이한 수법이라 합니다.



아래 기단은 바닥돌과 받침돌의 면석을 같이 붙인 8장의 돌로 구성되었으며 네 귀퉁이에는 모서리 기둥인 운주를 새겼으며 그 중간에 가운데 기둥인 탱주를 2개씩 새겨넣었습니다.

 


위층 기단 역시 8장의 돌에 각 면의 중간에 널돌을 한 장씩 끼워 넣었으며 아랫단과 달리 네 귀퉁이에 모서리 기둥은 새기지 않은 대신 각 면에 2개의 구름 모양의 안상을 새겼습니다. 

남쪽 면의 가운데 돌에는 문짝으로 보이는 문양을 새겼는데 이는 후대에 조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개의 돌로 구성했으며 몸돌의 네 귀퉁이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5단에다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날렵하며 경쾌한 느낌입니다. 

탑의 상륜부인 머리장식은 네모난 노반과 복발만이 남아 있습니다. 보물 제520호.
















이번에는 창녕 직교리당간지주입니다. 

당간지주란 보통 사찰의 입구에 사찰의 각종 행사나 사찰임을 알리는 깃발을 단 기둥을 양쪽에서 잡아주는 지주를 말합니다. 

당간에는 목당간, 철당간, 석당간이 있으나 필자는 철당간과 석당간은 여럿이 보았으며 이를 잡아주는 당간지주는 거의 돌을 깎아 만들어 세웠습니다.

 




창녕 직교리 당간지주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직교리 64-11



경주와 여러 곳에서 많은 당간지주를 만났지만, 창녕 직교리당간지주는 조금은 특별한 형태였습니다. 

화강석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약 2.5m에다 안쪽으로 마주 보며 아래위로 각 두 개의 구멍이 파였습니다.





바깥 쪽의 당간지주 머리부분은 기둥처럼 깎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인근에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인양사조성비가 있지만, 현재 어떤 사찰이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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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4 | 술정리서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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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5.11 10:38 신고

    창녕문화재 잘 보고 갑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과 진양 하씨고택 여행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와 함께 창녕군에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그러니까 창녕군에서 두 점의 국보 중 하나가 이곳 술정리 동 삼층석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있는 것을 보니까 같이 술정리 서 삼층석탑이 어디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2-20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전화:055-530-1473




2018/03/30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인양사 조성비. 인양사 조성에 관한 비문 창녕 인양사 조성비 여행

2018/03/29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송현동마애여래좌상. 단아한 모습을 한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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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술정리 서 삼층석탑도 있으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 사찰로 보기에는 힘들어 보였고 술정리 동·서삼층석탑으로 명시된 것에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인근에 절의 표시나 절을 알리는 당(깃발)을 묶은 깃대를 고정한 당간지주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일단은 사찰 터가 있었다고 생각되었으며 품었던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입니다. 

당시 가람배치의 형태는 대웅전 앞쪽에 좌우로 각각의 탑을 세우는 2탑 1금당 형식이며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절터에서 동·서 어느 쪽인지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라 이름 한 것도 1km쯤 떨어진 서쪽의 삼층석탑(술정리 서 삼층석탑. 보물 제502호)과 알기 쉽게 구분하기 위해서 붙여진 명칭이라 합니다.







2004년 11월 (재)동아문화연구원에서 낸 보고서에서는 “2002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동삼층석탑에 대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규명하고 석탑을 둘러싼 주변 사지(寺址)의 규모와 성격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의 수집을 위해 이 일대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한 결과, 동삼층석탑 주변 일대의 민가와 담장 등에서 확인되는 석재와 각종 문헌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곳에 ‘인양사(仁陽寺)’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를 보면 술정리 동 삼층석탑 일대는 인양사지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번 창녕여행에서 창녕 군청 옆 비각 안에 인양사 조성비를 보고 왔던 터라 그 조성 비문에서 인양사조성비를 금당 뒤쪽에 세웠다고 추정했습니다. 

인양사 조성비 부근에 절의 중심건물인 금당이 있었고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인양사 삼층석탑이라 보면 인양사의 규모는 정말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이층기단 위에 삼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입니다. 

그리고 불국사의 석가탑과 비슷한 모습에 군더더기 없는 절제미에 위풍과 당당함을 갖춘 아름다운 탑이며 경상남도에 남아 있는 석탑 중에는 가장 오래된 탑입니다. 

일명 ‘사지탑(寺址塔)’이라고 불리는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1965년 해체복원을 했습니다.





당시 해체를 하는 과정에서 3층 몸돌의 사리공에서 청동잔형사리용기, 사리병과 사리7과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현재 상륜부는 모두 남아 있지 않으며 납의 높이는 5.75m에 이릅니다. 

또한, 탑은 크고 웅장하며 기품있는 모습입니다.





네모난 지대석 위에 이층의 기단을 올렸습니다. 

아래 기단과 위층기단의 각 면 모서리 기둥인 우주와 가운데 기둥인 두 개의 탱주를 새겼으며 몸돌은 각 모서리에 우주만 새겼습니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며 끝 모서리님 귀가 약간 들렸습니다. 

그 아랫면에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습니다.

 








2008년 10월~2009년 7월까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에서 석탑의 서편지역에서 문지로 보이는 건물지 1동과 계단 유구, 일부만 남아 있는 3동의 건물지를 확인했습니다. 

고려 시대로 보이는 건물지 1동에서 ‘송림사’ 명문이 들어간 기와가 발견되어 한때 송림사로 불렸다는 사실도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술정리 동삼층석탑을 보고 난 뒤 그 너른 광장 끝에는 국가 민속문화재 제10호인 창녕 진양 하씨 고택이 있습니다. 

이집의 특징은 요즘 좀처럼 볼 수 없는 초가집이란 점입니다. 

대문채에도 초가지붕이라 처음에는 이게 문화재인 초가집이구나 하며 신기하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진양 하씨고택인 초가집은 이 대문채가 아니고 대문을 들어서면 그 안쪽에 자리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대문이 굳게 잠겨져 있습니다. 

대문에는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평일에만 개방하고 주말에는 폐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요일에 찾았던 터라 개인 살림집인 고택 주인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멀리서 찾아간 우리로서는 그냥 발걸음을 돌린다는 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대문채 앞으로 기와건물인 사랑채가 있고 그 뒤에 초가지붕인 안채가 있어 밖에서는 까치발을 들어도 보고 보일만 한곳이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아도 초가집이 워낙 낮아서 볼 수 없었습니다. 

많이 아쉬웠으며 다음번에 평일 날 한번 찾아야겠습니다. 

구조는 4칸의 일자형 건물로 흔히 말하는 초가삼간입니다. 

맨 왼쪽 1칸은 부엌이며 그다음은 안방 1칸에 대청이 1칸, 대청과 연결된 건넛방이 1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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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412-20 | 창녕술정리동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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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8.04.06 10:43 신고

    아쉽네요..초가집
    평일에민 개방한다니..




(전남여행/광양여행)도선국사의 중흥사 삼층석탑, 광양 중흥사 쌍사자석등 모작을 만나다.


광양 백운산 둘레길 7코스를 걸으면서 중간에 만났던 중흥사. 중흥사을 휘감은 편백숲이 사찰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었으며 청량감까지 들었습니다. 중흥사는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께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입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중흥사 당우는 폐사된 절터를 1963년에 중건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중흥사의 사격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석조물인 중흥사삼층석탑과 쌍사자 석등, 석조지장보살반가상 뿐입니다.




광양 여행 중흥사 주소: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90-1

광양 여행 중흥사 전화:061-763-6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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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사의 흥망성쇠는 중흥산성과 아주 밀접합니다. 중흥산성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시대 초기로 보고 있는데 이는 출토된 와편 등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중흥산성의 규모는 중흥사 뒤의 200~400m 대의 6개 산봉우리와 계곡을 끼고 조성된 포곡형 토성입니다.





임진왜란 때는 중흥산성이 승병과 의병의 훈련 장소가 되었으며. 승병과 의병의 훈련장이란 정보를 입수한 왜군의 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그때 의병과 승병은 모두 전사하고 중흥사도 함께 불타면서 폐사되었습니다. 필자는 중흥사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게 예술성이 뛰어나면서 화려한 중흥사 삼층석탑과 중흥사쌍사자석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중흥사쌍사자석등은 국보 제103호로 지정되었지만 중흥사에 있지 않고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의 운명도 참 기구합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조선 말기까지 중흥사터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삼층석탑과 함께 궂궂하게 하늘을 받치며 그 자태를 뽐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시샘하는 놈들이 있었으니 그게 일제강점기 때인 1913년에 일본인이 밀반출을 시도하려다가 주민의 강력한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에는 경복궁에다 보관했습니다. 그러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이관하여 보관 중인데 하루빨리 원래 자리인 광양의 중흥사로 옮겨 왔으면 합니다.

 






현재 중흥사에는 중흥사쌍사자석등의 모조품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과 삼층석탑이 창건 당시 위치가 맞는다면 현재의 가람배치인 대웅전의 위치는 많이 달라져보입니다. 보통 금당을 중심으로 가운데 삼층석탑을 세우고 그 좌우에 석등을 배치하는 순서로 짐작하건대 말입니다.











그럼 필자가 보고 감탄과 함께 탄성을 질렀던 중흥사 삼층석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중흥사 삼층석탑은 지난해 보았던 군위군의 지보사삼층석탑과 느낌에서 비슷하다 생각했으나 중흥사삼층석탑을 보면서 정교한 조감솜씨와 사방불인 여래상과 인왕상, 보살상, 사천왕상을 도드라지게 세긴 것을 보고 더욱 뛰어난 예술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곳에 필이 꽂히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것을 열심히 관찰합니다. 그 케이스가 이번 중흥사삼층석탑인데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즐겼다가 함께한 일행은 중흥사를 빠져나가 둘레길을 따라 흔적도 없어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접고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흥사삼층석탑은 신라 말기에 조성된 석탑이며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지금은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각과 장식이 매우 화려해서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탑의 몸돌과 지붕돌인 옥개석은 하나의 돌로 되었으며 각 층의 몸돌 네 귀퉁이에는 운주인 기둥을 굵직하게 나타내었습니다.

















옥개석의 아래 층급받침은 3단이며 처마 밑은 수평으로 처리했습니다. 1층의 몸돌에는 동서남북 각 면에다 연꽃 대좌 위에 앉은 여래불을 새겼으며 이는 사방불로서 어디에나 부처님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1층 몸돌을 받치는 기단은 각 면을 모두 둘씩 나누었고 앞면에는 인왕상을, 그 반대편인 뒷면은 보살상을 , 좌우 양쪽 면은 사천왕상을 새겼습니다.

 






그리고 2.3층의 몸돌은 급격하게 작아지면서 기단과 비교하면 기단부가 너무 크게 보이는데 이는 전체적인 석탑의 안정감은 뛰어나다 하겠습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모작이지만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중흥사쌍사자 석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쌍사자 석등은 연꽃무늬 받침돌 위에 두 마리의 사자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서서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상입니다.

 


중흥사쌍사자석등은 하나의 돌을 조각해서 석등을 만들었을 정도로 그 조각 예술이 정말 빼어나다하는데 오리지널 중흥사쌍사자석등을 보지 못해 정말 많이 아쉬웠습니다. 어서 빨리 돌아오라 오버 중흥사 쌍사자 석등. 그리고 전남유형문화재 제142호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시간 관계로 보지 못해서 그냥 패스합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 갈 기회가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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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90-1 | 중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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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8.01.18 06:53 신고

    경치가 참 불만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 보고 싶네요





☞(경남여행/함안여행)함성중학교 교정의 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해태상을 보는 것 같아요. 주리사지 사자석탑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소재지 인근에 있는 함성중학교에는 독특한 불교 유적이 현재 세워져 있습니다. 교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공적비와 사자석탑 등 절터에 있던 파석을 옮겨 놓았는데 그 연유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현재의 유물은 함안군 여항면 여항산의 주리사터에 있었던 것으로 일제시대때 함안면사무소로 옮겨왔고 그 후 광복을이 된 뒤 다시 이곳 함성중학교로 옮겨 오면서 기단부와 몸돌등도 하나 없이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합니다. 현재의 남아 있는 석재와 그 당시 조성 방식과 석탑의 규모를 볼때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5층 석탑으로 추정이 됩니다.





몸돌은 남아 있지 않지만 지붕돌은 완만한 흐름으로 균형감을 잘 이루었고 네 귀퉁이의 처마 끝을 살짝 올려 곡선의 아름다움을 살린 석탑입니다. 상륜부는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주리사지 사자석탑은 기존의 석탑과 다른 특징을 보여 줍니다.



네 마리의 사자로 몸돌을 떠받들도록 한 것은 구례 화엄사의 사사자석탑과 제천 월악산 사자빈신사지석탑 등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석탑입니다.

 



주리사지 사자석탑의 네 마리 사자를 보면은 모두 앉아 있는 모습을 하며 밖으로 들어 낸 이빨에서 사자의 위용을 나타내었습니다. 우람한 눈은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넘치고 휘날리듯 섬세하게 조각된 갈기는 백수의 왕 사자를 잘 표현하였다는 평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주지’를 보면은 주리사터는 현재 주서리 좌촌마을과 대촌마을 사이로 추정하며 함안면 북촌리 함안 중학교 교정에 주리사지 사자석탑을 복원 해 놓았습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으며 복원을 할 때 제작연대가 비슷한 월악산 사자빈신사지석탑의 사자탑재 부분을 참고하였고 상륜부는 지리산에 있는 실상사삼층석탑을 보고 3층 규모로 복원을 하였습니다.



현재의 주리사터 사자석탑은 수려하며 완벽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네 마리의 사자도 기쁜지 금방이라도 사자가 몸을 세우며 포효할 것 같습니다. 현재의 모습으로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함안 주리사지 사자석탑 안내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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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 함안주리 사지사자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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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는 천년고찰 운문사가 자리하고 있다. 운문사는 어떤 곳이냐?. 557년 신라 진흥왕 18년에 한 신승이 현 북대암옆 금수동에서 3년 동안 수도 정진하여 도를 깨닫고 내려와 도반10여명의 도움을 받아 560년 신라 진흥왕 21년에 7년 동안 오작갑사를 창건하였다 한다, 오작갑사인 운문사는 대작갑사(현운문사), 가슬갑사, 천문갑사, 소작갑사(현 대비사.대비갑사라고도 함),  소보갑사와 함께 창건하였다는 설화를 가지고 있다. 현 대작갑사인 운문사를 중앙에 두고 동서 남북으로 사갑사를 배치하였다 한다. 600년인 신라 진평왕 22년에 원광국사가 주지로 와 중창을 하게 된다. 원광국사는 대작갑사와 가슬갑사에서 주석을 하며 가슬갑사에서 화랑인 귀산과 추항에게 화랑도의 기본 정신인 세속오계를 전해주어 신라가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큰 역활를 하였다. 이때 신라는 삼국통일을 위하여 국력을 키우고 군비증강을 위하여 불교와 손을 잡고 운문사 일원에 화랑도의 훈련장이 들어서게 된다. 운문사는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로서 화랑도의 병참기지 역활을 하였으며 운문면 일대에는 선사시대때 부터 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문화유적이 많이 출토 되는데 문헌상으로 남아 있는 마을의 흔적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부터만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이전의 기록들은 남아 있지 않다.이 모두 화랑도등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라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운문사의2차 중창은 보양국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한후 왕건을 도와 이 일대를 평정하고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왕건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보양국사에게 운문선사란 사액을 내리고 전지500결을 하사하였다. 그후 1105년에 원응국사 학일스님이 왕사로 책봉되고 운문사는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며 1277년 고려 충렬왕때 일연선사가 주지가 되어 삼국유사를 집필하게 되었다 한다. 그 후에도 여러번의 중창을 거듭하며 오늘날의 운문사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현재의 대 가람으로 변모를 하였다.


운문사를 자세히 보면 여타 사찰과 다른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그 이유를 보면 운문사는  대웅전 비로전 금당등 모든 건물들이 운문산와 마주보고 있다. 즉 남쪽의 산을 향해 건립되었는데 풍수학적으로 보면 배산임수와는 정 반대이고 왼쪽은 복호산, 우측은 장군봉인 호거대로 운문사의 가람배치가 배산임수를 그대로 따라 운문산을 등지고  건물이 서 있었다면 현재의 운문사는 볼 수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한다. 그 이유는 운문사 옆으로 흐르는 약야계가 절 앞으로 곧장 빠져나가 재산을 모을 수 없고 운문산의 화기가 절을 덮쳐 비보 차원에서 다른 절과 반대방향인 가람배치를 하였다 한다. 

사실 운문사 경내를 들어설때 보통 일주문을 통과하는데 운문사는 일주문 대신 2층의 법종루 밑으로 통하면 된다.

영남알프스에 걸 터 앉은 절집 현판에는 모두 그 뒤 모산의 산명을 따라 이름을 붙인다. 가지산 아래 가지산석남사가 그러하고 통도사는 영축산통도사, 재약산표충사등 모든 사찰들이 그러하다. 영남알프스 운문사만은 유독 ‘운문산운문사’가 아닌 ‘호거산운문사’로 현판에 적혀 있어 어... 호구산이 어디지, 왜 운문산이 아니고 호거산으로 하였지 하며 궁금해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호거산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어느곳도 정답이 없으며 단지 현재의 우리도 옛 자료를 보며 추측을 할뿐이다. 먼저 운문사는 사찰이름에 나왔듯이 운문사란 이름이 먼저인지 아니면 운문산이 먼저인지 의문이 간다. 운문사란 937년인 태조20년에 후삼국통일을 도운 보양국사에게 왕건이 보답으로 '운문선사'란 사액과 전지500결을 내렸다한다. 그러면 운문산 보다 대작갑사로 불리던 운문사가 먼저 이름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이전부터 운문산으로 불리었을까하는 의구심도 해 본다..

호거산은 과연 어디를 두고 하는 말일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운문사로 들어서는 왼쪽으로는 바위가 절벽을 이루는 두 봉우리가 있다. 산세의 모양이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모습이라 통점과 염창등 신원마을에서는 복호산으로 부른다. 그리고 운문사의 전신인 대작갑사를 창건 할때에도 신승이 북대암옆 금수동에서 도를 깨닫고 운문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이곳을 호거대, 호거산으로 보는 이가 많은 것 같다. 다른부류는 운문산 일대로 범봉과 억산을 포함한 이곳을 호거산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 하나는 운문사 입구 우측의 툭 튀어오른 암봉이 호거대로 보는 시각이 있다. 신원리에서는 등선바위, 등심바위, 등신바위등으로 불리는 바위로 운문사에서 이 암봉을 장군봉으로 부르고 있다. 청도 향토사학회장 경북향토 사학회장인 박윤재 선생도 운문사 옆 호거대와 그 인근을 호거산으로 보는게 타당하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호거산을 ‘호랑이고 걸터 앉아 있는 산’이 아닌 다른 해석을 내 놓은 것이다.

원광법사가 중국에 유학을 하였던 소주에도 똑 같은 이름의 호거산이 있는데 원광법사가 그 곳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신라로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원광법사는 운문사에 거주를 하면서 바위가 있는 호거대 일원을 호거산으로 지칭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그 사이의 계곡인 운문사를 가로자르는 큰골도 약야계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그래서 호거산은 원광법사가 중국의 소주 호거산에서 그 이름을 따 왔어며 위치는 호거대와 부근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인지 모르지만 장군평 뒤 우뚝 솟은 봉우리를 보호한다는 뜻인 호산으로 부르고 있다.




운문사의 경내로 들어서면 처음 반기는 것이 500년 된 반송이다. 가지를 밑으로 축처저 일명 처진소나무로 불린다. 봄에 25말의 막걸리를 마시는 나무로 유명하며 안내판에는 어떤 고승이 소나무 가지를 꺽어 심었다하며 높이는 6m,둘레는 3.5m로 나와 있다. 천연기념물제180호.




처진 소나무 옆으로는 만세루가 자리를 하고 있다. 정면7칸 측면4칸의 단층으로 된 팔작지붕이다. 약150평의 크기이며 목조건물이다. 넓은 우물마루에 천장은 천장은 산자를 노출시킨 연등 천장으로 기와명문에는 강희17년, 상량문에는 순치12년이라 명문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17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이 되며 용도는 대웅전과 마주 보고 있어 법회나 설법을 하던 장소로 보고 있다.


새로 건립된 대웅보전이다.
대웅보전의 내부 모습








대웅보전으로 조선 숙종 44년에 중건되었다.정면3칸 측면3칸으로 다포계 양식이며 마륵전이라고도 부른다. 운문사의 대웅보전 터는 행주행으로 전복되는 배모양이다. 그 지세를 누르기 위해 대웅보전 앞에 쌍탑인 삼층탑을 세워 놓았다. 보물제835호




삼층석탑 보물제678호



오백전안의 모습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7호

운문사 사천왕 석주 보물제318호





원응국사비 보물제316호.



이목소
보양국사가 중국 유학길에서 귀국을 할때 서해 용왕의 초청을 받고  용왕을 만나 설법등 해박한 지식으로 용왕을 감동시키니 용왕은 그에게 자신의 아들인 이목(離目)을 같이 데리고 가 스님을 도우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니 보양국사도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귀국울 한다. 이 후 용의 모습을 한 이목은 운문사 옆 깊은 소에서 지내며 보양국사를 도우며 지내게 되는데.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어 인근의 주민들이 기근에 시달리게 되자 스님이 이목을 찾아와 비를 내리게 하였다. 그러나 천제는 하늘의 율법을 어기고 비를 내리게 한 이목을 잡아오라고 사자를 보양국사에게 보내었다. 보양은 이목을 마루 밑에 숨기고 나서 이목을 내어 달라고 하는 사자에게 법당앞의 배나무를 가르키며 '이목 여기 있소' 하니 사자는 배나무에 벼락을 때리고는 하늘나라로 돌아 갔다 한다. 이 이야기는 일연스님이 집필한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이야기이며 용이 되지 못한 뱀을 두고 이무기 또는 꽝철이라 하는데 이무기란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한다. 운문사 오백전 뒤 극락교 아래에 있는 이목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의 이목소는 잦은 사태로 인해 메워지고 사찰의 중창으로 메워져 볼품없는 작은 웅덩이에 불과하지만 보양국사가 부임하던 때에는 아마 둘레가 100여m나 되는 깊은 연못이었는 것 같다.

찾아가는길;
부산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20분 간격 운행. 3200원. 50분 소요.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구행 완행 버스를 타면 삼계리까지 갈 수 있다. 오전 9시, 10시30분 등 하루 5회 출발. 운문사 정류소에서 하차하면 된다. 운문사 앞 버스정류소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후 2시30분, 5시25분(막차) 등에 있다. 40분 소요. 3000원.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 경주 방면으로 가다가 언양교차로에서 밀양 석남사 방향 24번 국도로 옮겨 탄다. 덕현교차로에서 우측 석남사 청도 방향으로 빠져나간 후 덕현삼거리에서 청도 방면으로 69번 지방도를 탄다. 운문령을 넘으면 삼계리 , 신원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운문사 매표소는 금방이다.

 

 

 

  1. Real Estate Directory 2012.03.13 16:47

    나를 위해, 장소 이런 종류의이 나를 항상 붐빕니다. 내가 너무나도 자연을 좋아해요.



동리산 태안사 대웅전으로 화려한 단청을 하고 있으며 6.25때 불탄 것을 그후 다시 복원을 하였다.













태안사로 들어오면 만나는 매표소 우측으로 태안사 표지석과 아름다운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동리산 태안사>
동리산 태안사는 통일 신라 말기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를 이루며 신라 경덕왕 742년에 세 스님에 의해 태안사가 창건되었다. 적인선사 혜철, 광자대사에 의해 대사찰로 변모를 하였다.
풍수지리사상의 대가인 도선국사도 혜철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한다. 신라시대때는 대안사. 조선후기때부터 태안사로 불렸다 하며. 태안사를 품고 있는 동리산은 봉황이 먹고 산다는 오동나무가 열리는 숲속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고려 중기에 태안사의 말사였던 송광사가 독립을 하고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태종의 둘째 왕자인 효령대군도 머물렀으며 정유재란때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되고 6.25동란으로 대웅전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는다.
경내에는 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제273호), 광자대사탑과 탑비(보물제274호~275호), 대바라(보물제956호), 천순명동종, 능파각등 일주문과 고려후기 3층석탑등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일주문과 능파각만 남고 모두 불타버린 것을 다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6.25전쟁의 소실을 피한 능파각은 계곡의 물과 경치가 넘 아름다워 능파라한다.



능파각은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는 금강문의 역활을 가지고 있어  능파각의 다리를 건너면 불교의 셰계로 들어 온다는 뜻이 있다한다.


<태안사 능파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제82호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20

능파각은 문성왕 12년인 850년에 태안사가 창건될 때 혜철선사가 함께 지었고 그후 고려 태조24년에 광자선사가 고쳐 지었다 한다.

그 뒤 다시 파손되었던 것을 영조43년(1767)에 다시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능파각은 정면3칸 측면1칸으로 옆에서 보면 사람인자 인(人) 모양으로 맞배지붕이다. 계곡 좌우로 석축을 쌓아 석축위에 통나무를 걸치고 나무위에 판자를 깔았다. 그위에 주초를 대신한 하인방을 걸치고 기둥을 세워5량의 맞배지붕을 올였어며 처마는 겹치마이다.

계곡의 물과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워 능파라 하는데 능파각의 특징은 다리와 금강문 누각을 함께 구성하여 이다리를 건넘으로 해서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벗어 던 저 버리고 불교의 세계로 들어 온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한다. 능파각은 태안사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태안사 일주문은 태안사에서 6.25전쟁때에 소실이 되지 않은 건물로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능파각을 지나 태안사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이 주변의 풍치와 함께 오래 남을 아름다운 구간이다. 일주문을 향해 걸어 가는 관광객.

봉두산인 태안사는 일주문 현판에 동리산 태안사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봉두산과 동리산은 서로 관계가 있는 산명으로 봉황이 먹고산다는  오동나무가 열리는 숲속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태안사 일주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제83호

태안사 일주문은 6.25전쟁에서 능파각과 함께 화를 면하였다. 고려 태조 20년(937)경에 광자선사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일주문은 각현선사, 영월선사가 중수하였다 하며 1980년에 보수공사를 하였다 한다.

건축 양식은 단층 팔작집으로 전후 주칸에는 3구, 측면에는 1구의 공간포를 짜 올린 다포식 건물로 앙서로 된 살미첨차들로 내외 사출목의 공포를 짜서 아주 화려한 건출물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원래는 태안사입구 광자대사 부도탑 옆에 있었는데 복원을 하며 이곳으로 옮겼다 한다.

삼층 석탑 주위로 연못을 조성하여 웅장하며 신비감이 감돌며  태안사와 함께 잘어울려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태안사 삼층석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제170호

원래 사찰입구 부도탑이 있는 광자대사 부도 바로 옆에 있었는데 기단부와 탑신부 일부의 부재가 유실 된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복원을 하여 완전한 모습을 갖추었다 한다.

탑의 구조는 원래 2층 기단인 3층 석탑으로 연못으로 옮기면서 기단의 지대석을 높게하여 전체적으로 높게 보이며 웅장하게 보인다. 그리고 360도를 호수로 조성하여 더욱 웅장하며 신비감이 도는 석탑으로 구성미가 태안사와 함께 조화를 이룬다.

탑신부의 각 옥개석 층급받침은 4단이며 옥개석 상면에는 2단 괴임을 조출하여 고식을 보여 주고 있다. 상륜부는 모두 새부재를 보충 사용하였고 고려초기 작품으로 보고있다.

교통편은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석곡(구례)IC~구례 석곡 태안사(19㎞) 좌회전~구례 순창 옥과 좌회전~구례 압록~태안사 압록유원지 직진~죽곡면~구례 압록 18번~(태평삼거리에서)구례 압록 우회전~태안사 840번 지방도 우회전~순천 태안사 방향 좌회전~태안사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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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 태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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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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