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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대구 경주최씨 종가 옻골마을 돌담길 여행. 전국 10대 아름다운 돌담길인 옻골마을 돌담길 


대구 둔산동의 옻골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대구 옻골마을은 경주최씨 종가인 백불고택을 정점으로 20여 채의 고택을 잇는 돌담길이 아름다운 전형적인 한옥마을입니다. 

특히 문화재청에서 선정한 ‘전국 10대 아름다운 돌담길’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한국미가 듬뿍 묻어나는 고향 같은 마을입니다.





대구 경주최씨 종가 옻골마을 주소: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195-5

 대구 경주최씨 종가 옻골마을 전화:053-983-6407




2016/04/09 - (대구여행/달성여행)달성 하목정. 낙동강의 저녁 낙조가 그리 아름답다는 달성 하목정에서 뉘엿뉘엿 서산으로 지는 붉은 저녁노을에 혼을 빼앗기다.

2016/04/07 - (대구여행/달성여행)달성태고정. 사육신 박팽년의 순천박씨 집성촌 묘골 육신사 한옥전통마을에서 보물제554호 일시루·태고정을 만나다.

2016/04/01 - (대구여행/달성여행)육신사의 도곡재. 하빈면 묘리 한옥전통마을 도곡재를 여행하다. 도곡재

2016/03/31 - (대구여행/수성구여행)국립대구박물관. 대구여행의 시작과 끝은 역시나 진귀한 문화재가 가득한 국립대구박물관입니다.

2016/03/29 - (대구여행/달성여행)사육신의 육신사. 단종복위 거사 실패와 계유정란인 세조의 왕권 찬탈에 끝까지 반대한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대구 달성 육신사 참배.

2015/11/12 - (대구여행/중구여행)대구근대골목투어 동산 청라언덕. 근대 건축물 스윗즈주택, 블레어주택, 챔니스 주택을 대구 청라언덕에서 만나다.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게 350년 된 회화나무 느티나무 숲입니다. 

미풍에도 파르르 잎을 떨며 춤을 추던 이파리는 지금은 모두 떨어져 황량했지만, 곧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가운데 학자를 상징한다는 회화나무를 심었으며 동쪽에다는 느티나무를 심었습니다.

 

비보숲


이는 옻골마을의 풍수를 보완하기 위해 조성한 비보림입니다. 

금호강의 지류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옻골마을의 지대가 높은데 이는 나쁜 기운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고 그 반대로 좋은 기운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도록 위함입니다. 





회화나무(최동집 나무)

진짜 외부에서 보면 이 골짜기 안에 이런 고택 마을이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옻골마을은 비보 숲에서도 알 수 있듯이 400여 년의 명맥을 이어와 조선 시대 양반가의 전통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구 옻골마을 돌담은 등록문화재 제266호로 돌을 박은 흙 담장이 주를 이루며 마을의 형성과 함께 쌓았다 합니다. 

그리고 마을 길을 돌아보면 여느 반촌의 분위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보통 마을의 지형에 따라 꼬불꼬불한 돌담길이 대부분인데 옻골마을은 직선으로 곧게 뻗은 돌담이라 시원스럽고 질서정연한 게 정말 정돈이 잘된 모습입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계곡에 걸린 다리를 건너면 최동집나무로 불리는 덩치가 큰 회화나무가 심겨 있습니다.




이 나무는 대암 최동집(1586~1661)선생이 1616년에 옻골에 정착하여 그 후손이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였다 합니다. 

이제 설설 마을 구경을 해보겠습니다. 

옻골마을 대부분 고택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어 고택관람에 주의해야 하며 주민에게 조금이라도 민폐가 가면 안 되겠습니다.




최흥원정려각


먼저 만나는 게 새로 화려하게 색을 입힌 최흥원 정려각입니다. 

백불암 최흥원은 최동집의 5대손으로 대산 이상정과 남야 박손경과 함께 영남삼로에 추앙받는 분입니다. 

이 정려각은 1789년 조정의 명에 세워졌으며 단순한 구조로 지어졌습니다.

 


벽면 위쪽에다 홍살문이 들어간 1칸의 비각을 세우고 그 바깥을 네모꼴로 토석담장을 돌렸습니다. 

정려각을 지나 갈림길에서 왼쪽 마을 길로 들어섭니다.

 


3단의 돌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다져 돌을 박아 넣은 담장 위에 솔가지를 꺾어 지붕을 만든 게 시골에서 많이 보았던 전형적인 토석담장이였습니다. 

제일 안쪽의 최 씨 종가인 백불고택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중간 쫌에 나무문이 굳게 닫힌 아래쪽에 백구가 머리를 내밀면 으르렁거렸습니다.



경주 최씨종가 백불고택

중요민속문화재 제261호인 백불고택을 둘러보겠습니다. 

대문 기둥에 ‘명품고택 백불고택’의 명패를 딱 달고 있어 더욱 품격이 있어 보입니다. 

백불고택은 최동집이 정착한 이후에 지은 집이며 조선 시대 주택 중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입니다.

 





백불고택의 대문을 들어서면 백불암 최흥원을 추모하여 지은 동산서원을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훼철되자 그 자재를 옮겨와 지은 건물이 사랑채입니다. 

안채는 1630년경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건물인 보본당은 1753년에 지었습니다.

 







동쪽 담장 밖에는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포사가 있습니다, 

보본당 뒤편에는 2동의 사당이 있으며 불천위 사당인 별묘에는 최동집의 위패를 모셨고 가묘에는 최흥원과 종손인 4대 봉사위 위패를 보시고 있습니다.

 


백불고택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떨칠 수 없는 게 사랑채와 살림채, 재실, 사당 건물 등이 조선 시대의 양반가옥과 생활양식을 조화롭게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사랑채의 두 칸짜리 마루 위에 힘이 넘치는 백불고택의 글씨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보본당 서쪽 방에서 우리나라 실학의 효시인 반계 류형원이 저술한 반계수록을 1770년 백불암 최흥원이 영조의 명을 받아 교정을 보았던 곳입니다.

 







백불고택 안채











백불고택에서 이제 수구당으로 향합니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1호이며 백불암 최흥원이 제자들과 가학하던 곳입니다. 

그 후에 후손에 의해 살림집으로 개조하면서 사랑채와 안채 두 동의 건물만 현재 남았습니다.

 

수구당







끝으로 보았던 게 백불암 최흥원의 아들인 동계 최주진을 기리는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5호인 동계정(東溪亭)입니다. 

동계정도 훼철된 동산서원의 자재를 가지고 1910년에 세웠으며 최주진의 호를 따와 동계정이라 불렀습니다.

 





후손들의 학문을 가르치는 서당 역할을 했으며 대청을 가운데 둔 수구당, 보본당과는 다르게 가장 왼쪽에 둔 독특한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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