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화림동계곡 선비길 농월정. 달을 희롱할 만큼 아름답다는 함양 화림동계곡 선비길 농월정을 품다. 함양 농월정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면 “달을 희롱 한다”는 농월정(弄月亭)의 현판을 달았을까요? 농월정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다고요. 예 함양에 있는 화림동계곡의 농월정입니다. 함양에서 최고 경치라 하는 함양 8경에 이름을 올렸으며 여행을 자주 떠나는 분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곳으로 국민 관광지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함양 화림동계곡 선비길 거연정, 군자정 보기


2016/08/29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선비길 화림동계곡 거연정. 선비의 고고한 기풍이 느껴지는 함양 화림동 계곡 거연정에서 가을 하늘을 만나다. 함양 거연정

2016/08/26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화림동계곡 군자정. 일두 정여창이 유영하였다는 영귀대 암반에 새운 군자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가는 여름을 잡아보다. 함양 군자정



 


월연암이라 불리는 너럭바위와 옥구슬 구르듯이 암반을 타고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구불구불 꼬여 한 폭의 수묵화에 자리 잡을 듯한 소나무를 보면서 달도 반할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한 농월정입니다.


 

 


팬 암반에 고인 물을 보면 달이 은은하게 떠 있고 기울이던 선비의 술잔에도 뜬 달을 보면서 음풍농월하며 시문을 나누었을 농월정, 술잔을 기울이던 지족당의 모습은 찾을 순 없지만, 달이 희롱을 당할 만큼 아니 달도 가기 싫어 가지 말라고 희롱이라도 해주길 바랄 것 같은 농월정의 모습입니다.


 

 


달도 혼을 빼앗기며 머물렀다는 월연암의 농월정에 조선 시대 중기의 학자였던 지족당 박명부(1571~1639)가 1637년 월연암의 너럭바위에다 농월정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유유자적한 선비의 짧은 삶을 살았습니다. 지족당은 함양 안의면 성북마을 출생으로 어릴 적부터 유난히 총명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16세 때 동계 정온선생의 부친인 정유명의 제자가 되어 글을 익혔으며 20세에 급제하여 조정에 나아갔지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일어나 파란만장한 젊은 청춘을 보냈습니다. 그의 행적을 보면 의병을 모으기도 하고 곽재우 장군의 진영에 들어가 전투에 참여하여 선무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기도 합니다.


 

 


선생은 광해군 때 조정의 어지러움을 바로잡고자 노력했으며 그와 동문수학한 동계 정온이 영창대군의 옥사에 연루되어 유배 갈 때도 이는 부당하다 거침없이 주장하였습니다. 대북파가 인목대비의 폐모론을 들고나오자 지족당은 인목대비의 유폐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광해군에 간언했다가 파직당하자 미련 없이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면서 서당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이곳 화림동 월연암에 나와 마음을 닦았습니다.


 

 

 

 


그러나 민심은 천심이라고 민심이 광해군을 떠나자 서인들의 반정으로 선조의 후궁이었던 인빈 김씨의 3남인 정원군의 큰아들 능양군이 보위에 오르니 이게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입니다. 인조반정과 함께 지족당은 다시 벼슬길에 나아가 66세에는 예조참판에 올랐습니다.


 

 

 

 


인조가 정묘호란으로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자 모든 것을 물리치고 화림동 계곡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와 남은 삶을 마무리하려고 1637년 67세에 농월정을 건립하였습니다. 왕이 불러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다가 간곡한 요청에 어쩔 수 없이 강릉도호부사에 부임하여 백성을 위한 청치를 펴다 그다음 해인 1639년 그의 나이 69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651년 조정에선 이조판서에 추증하고 화천사에 배향하였습니다. 1637년 월연암 너럭바위에 농월정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려 했던 그의 몸과 마음은 크게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년 남짓 농월정에서 유영했습니다.


 



농월정은 400여년의 풍상을 견디며 몇 차례 중수하여 이어져 왔고 1899년 다시 중수하였습니다. 그러나 2003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2015년 새롭게 옛 자리에 복원하여 안타깝지만, 농월정의 역사를 새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자 앞 오른쪽 바위에는 생전에 선생이 지팡이를 짓고 노닐던 곳이란 뜻의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之所)”란 글자를 후손들이 새겨 놓았습니다. 은은한 달빛이 농월정을 비출 때면 지팡이를 옆에 두고 달과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실 지족당 박명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함양 농월정 정보 안내◆

★함양 농월정 내비 주소:경남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산 92

★함양 농월정 연락처:055-963-8141

 

 

 



728x90

728x90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화림동계곡 동호정. 하늘의 선녀도 시샘할 풍경 동호정을 여행하다. 함양 선비길 동호정.



남강 상류 60리의 금천을 화림동 계곡이라 합니다. 그 화림동계곡의 가운데에 동호정의 정자가 있습니다. 선비들의 시와 담론장소로 이용하였던 자리에 정자라 하기에는 큰 동호정을 주춧돌도 없이 구불구불 다듬지 않은 나무를 너른 암반에다 그대로 세웠습니다.







2016/08/29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선비길 화림동계곡 거연정. 선비의 고고한 기풍이 느껴지는 함양 화림동 계곡 거연정에서 가을 하늘을 만나다. 함양 거연정

2016/08/26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화림동계곡 군자정. 일두 정여창이 유영하였다는 영귀대 암반에 새운 군자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가는 여름을 잡아보다. 함양 군자정




 

 


층층이 포개어진 단애는 깊은 소를 이루어 함양 화림동 계곡에서 최고의 누각이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동호정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 크기의 중층 건물로 겹처마의 팔작지붕입니다. 화림동 계곡의 거연정과 군자정, 농월정 등 여러 정자보다 더 크고 웅장하며 주변의 진경산수와 함께 한 폭의 한국화 소재로 가장 잘 어울립니다.


 

 

 

 


누마루를 오르는 나무 계단에서 동호정은 꾸밈이 없는 모습을 하였습니다. 통나무 두 개를 자연스럽게 붙여 도끼로 찍어내어 투박하게 계단을 만들었지만, 그 어떤 오성급 호텔의 이탈리아산 대리석 계단보다도 훨씬 좋으며 운치 있고 양복에 짚신이 아닌 삿갓과 짚신같이 한 몸을 이룰 정도로 동호정과 정말 잘 어울려 자연에 동화하는 선비정신을 닮았습니다.


 

 

 

차일암과 동호정 

 

 


군자정은 이마에 밭고랑이 움푹 팬 수더분한 시골 촌로와 닮았다면 거연정은 연지곤지 예쁘게 색칠하고 시골 오일장을 걷는 품새 있는 아낙네 모습입니다. 그에 반해 동호정은 예쁘고 화려하게 치장하고 잘나가는 도시녀의 모습이지만 화려함에 비해 추하지 않으며 주변의 녹색에 스며들어 자연과 동화된 모습입니다.


 

 

 

 

 

 


그만큼 단청이 화려한 동호정을 마주하면 이때까지 답답했던 가슴에 생기를 불어 넣어줍니다. 삐꺽 삐꺽 소리를 내는 투박한 계단을 밟고 누마루를 올라 단청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 동호정을 지탱하는 대들보에는 용과 호랑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두개의 나무를 가지런하게 붙여 도끼로 찍어 만든 투박한 나무 계단

 

 


여의주를 문 황룡과 청룡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이는 용이 물을 다스리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궁궐이나 서원, 누각, 사찰 등 주로 목재건물에 청룡과 황룡을 많이 조각해놓았는데 이는 불에 취약하기 때문이며 호랑이 두 마리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악귀로부터 막는 비보 역할로 보입니다. 그리고 연꽃과 화려한 꽃무늬를 돌려놓았고 공자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니구산에서 기도하여 태어난 공자부터 74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모습을 보면서 동호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동호정은 조선시대 학자였던 동호 장만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그의 9대손인 가선대부 오위장 장재헌과 지역 유림이 뜻을 모아 1890년에 건립한 정자로 공의 호를 따 동호정이라 하였습니다. 동호 장만리는 임진왜란 때 의주로 몽진하는 선조를 등에 업고 피난하셨던 분입니다.


 

 

 

 

 

 


당시 충신이라 떠들던 신하들은 전란 통에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지만 장만리는 끝까지 선조 곁에 남아 주군을 보필하니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선조는 호국공신의 원조공신에 책록하셨습니다. 말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선생은 그의 고향인 함양군 서하면 황산마을에 낙향하여 화림동계곡의 차일암에서 마음을 닦으며 가끔 낚시를 즐겼셨는데 그의 후손이 모여 선조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다 동호정을 건립했습니다.


 

 

 

 

 

 

 

 


1892년 조선 말기에 고종황제는 공을 좌승지에 추증하고 충신정려를 다시금 내려 그의 충절을 기렸습니다. 공이 유영하던 백옥같이 하얀 암반인 차일암에서 보니 파란 하늘과 울울창창한 녹색의 숲, 물감을 푼 듯 파란 옥수와 동호정의 붉은 단청이 너무나 잘 어울렸습니다. 이만한 모습이면 화림동 계곡의 동호정은 선녀도 시샘할 것 같습니다.


 

 

 

 

 


함양 동호정 주소: 경남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842





728x90

728x90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함양 선비길 화림동계곡 거연정. 선비의 고고한 기풍이 느껴지는 함양 화림동 계곡 거연정에서 가을 하늘을 만나다. 함양 거연정

 

 

고고한 선비들의 묵향이 흐르지 않는 곳이 없다지만 그중에서도 영남의 안동과 함양을 선비의 고장 중에서 으뜸으로 꼽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영남에서 두 고장을 좌안동 우함양하며 서로 사이좋게 양분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선비의 고장여행에서 우함양인 그것도 함양 선비들의 보루였다는 화림동 계곡을 여행했습니다.

 


 

 

2016/08/26 - (함양여행/함양가볼만한곳)화림동계곡 군자정. 일두 정여창이 유영하였다는 영귀대 암반에 새운 군자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가는 여름을 잡아보다. 함양 군자정


 



화림동은 원학동과 심진동을 합해 안음(안의 옛 지명) 삼동이라 합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1,580m의 남덕유산 정상에서 흘러내린 금천(남강 상류)의 화림동입니다. 삼각형의 조각칼로 후벼 판 듯 골짜기를 휘감으며 빚어낸 기이한 암반은 소와 담을 만들었고 그와 함께 산림 처사를 자처하던 선비들은 몸을 낮추는 은신처로서도 화림동은 최고의 조건이었습니다.


 

화림교


방화수류천


 60리의 화림동계곡을 선비들은 무릉도원에 비교할 만큼 많은 소와 정자가 있어 팔정팔담이라 불렀습니다. 그만큼 소와 정자가 많다는 뜻인지 아니면 화림동계곡에 거연정, 동호정, 농월정 등 진짜 여덟 정자와 소가 있어서 그런지 확인할 수 없지만 지금 남아있는 정자를 고려해도 화림동계곡은 많은 선비들이 정자를 짓고 시문을 서로 나누었을 듯합니다.







오늘날 화림동계곡에서 최고의 꽃은 거연정과 농월정입니다. ‘달을 희롱한다’라는 농월정은 2003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전소하여 최근에 다시 복원하여 새 옷을 갈아입어 아직은 어색한 모습입니다. 그에 반해 거연정은 화림동계곡의 수려한 풍광을 한몸에 담아 날아오를 듯 고운 자태를 마음껏 뽐내었습니다.


 



거연정이 새워진 자리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던 정선전씨 화림재 전시서공이 1640년경에 서산서원을 짓고 난 뒤 이곳에다 억새를 올린 작은 정자를 지었던 게 그 시초입니다. 전시서는 이곳에서 인근의 선비와 시문을 서로 나누며 유영하였습니다.







1853년에 서산서원이 화재로 전소하였고 그다음 해 새롭게 복원했지만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습니다. 그의 7대 후손인 전재학 등이 억새로 남아 있던 정자를 헐면서 대신에 서산서원를 철거하여 나온 부재로 전시서의 뜻을 받들어 현재의 거연정 정자를 세웠습니다.







거연정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겹처마 합각지붕형식입니다. 거연정의 규모는 중층 누각 건물로 내부에는 뒷면의 1칸을 판재로 막아 따로 작은 마루방을 만들었습니다. 대청과 판재방 사이에 머름을 두어 구분하였고 판재 방은 뒷면을 뺀 3면은 모두 문이 없는 상태입니다.


 



 









누마루는 사면 기둥에서 30cm쯤 덧붙여 계자난간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자연 암반에다 나무를 대강 다듬은 누하주의 기둥을 세우다 보니 울퉁불퉁 바닥이 고르지 않아 높이를 맞추려고 나무 밑 둥을 깎아내고 주춧돌을 쓴 기둥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기둥도 있습니다. 마루 위의 기둥과 대들보 등을 보면 서산서원의 목재를 이용해서 지은 듯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연정의 편액은 주자의 시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의 12수 중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음을 취했는데 “물과 돌이 어울린 자연에 편안하게 살고 싶다”란 뜻입니다. 이곳 거연정에서 다리쉼을 하다 보면 누구나 물과 돌과 주변 자연에 꼭꼭 숨어 살고 싶다는 전시서 선생의 마음이 될 것 같습니다. 그만큼 거연정은 ”자연에 내가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길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세상일을 잊게 하는 곳이다”







거연정을 들어서는 무지개다리는 화림교이며 그 밑을 흐르는 담은 ‘방화수류천’이라 따로 부르고 있습니다. 금방 이무기라도 솟아오를 듯 바위에 갇인 물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감청색이며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간다”로 풀이하여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거연정 정자에는 구한말 유학자였던 은진 송병선(1836~1905) 선생의 편액이 걸려 있어 이곳 거연정에서 영호남의 선비와 함께 교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을사오적을 처형할 것을 고종에게 상소하고 을사늑약의 반대를 주장하다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음독 자결한 애국지사입니다.




 




학처럼 고결한 선비의 지조가 살아 있는 함양 화림동계곡의 선비길에서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올곧은 선비의 정신을 담아갑니다.

경남유형문화재 제433호이며 거연정을 위시한 이곳은 대한민국 명승 제86호에 지정되었습니다.






 


 

 

함양 화림동 계곡 선비길 거연정 정보 안내

 

★함양 거연정 주소: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2006

★함양 거연정 연락처:055-960-5756

 


 


728x90

+ Recent posts